영화의 자막 문제 영화에 자막을 다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듣자니, 자막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이란 무척 적은 모양이다. 오리지널 다이얼로그의 정보량을 1로 하면, 자막의 정보량은 1/3-1/4 정도로 줄어든다. 오히려 더빙을 하는 편이 한층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빙은 영화의 이미지를 어김없이 훼손시키므로, 나는 아무래도 호감이 가지 않아 자막에 의존하게 된다. 며칠 전에도 <스타워즈 일본어판>이란 걸 보았는데, 일본어로 된 대사를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흥이 깨지고 말았다. 발성이 나쁜건지, 아니면 대사의 리듬과 영화의 리듬이 제대로 맞지 않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갔다. 이런 경우는 참 곤란하다. 벌써 오래 전 일인데 <뉴른베르그 재판>이 일본에서 공개되었을 때, 감독인 스탠리 크레이머는 '이 영화는 미묘한 대사로 구성된 법정극이므로 자막을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더빙을 하여 공개해 주기를 바란다.' 는 주문을 덧붙였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더빙판을 만들었는데, '더빙이라는 텔레비젼 같아서 싫다.' 는 일본의 영화팬에게는 몹시 평판이 나빠, 결국 배급 회사는 조조 상영분만 일본어판을 상영하는 것으로 어물쩡 넘어갔다. 나는 당시 그런 것은 까맣게 모르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영화관으로 출근하여 행인지 불행인지 일본어판 <뉴른베르그 재판>을 보고 말았다. 내 생각에 그 일본어판은 자막판과 비교하여, 일장일단이 있었다. 스탠리 크레이버가 의도한 바를 잘 알겠는데, 뉴른베르그 재판에서 사용된 법률 용어와 정치 용어가 일본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라서 입으로 줄줄 늘어놓으면, 관객이 쏙쏙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던 것이다.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와 문자의 배열로 전해지는 정보 사이에는, 정보량만으로 다 측정할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