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혹은 그런 류에 대하여 '일기는 새해가 시작되면서부터' 라는 통념이 암암리에 일반화 돼 있는 건지, 신년이 되어 자, 올해야말로 한번 써 봐야지. 하는 기세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분도 수 없이 많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어쩐지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정초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거의 길게 가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6월 13일에 문득 생각이 미처 쓰기 시작한 일기 쪽이 의외로 오래 지속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정월부터 일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정월'이라는 이벤트성에 편승된 안이함이 있어, 그래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애당초 편지를 위시한 등등의 글 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스물 아홉 살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글이라곤 거의 써 본 적이 없지만, 일기만은 불현 듯 생각 나면 단속적으로 썼다. 반 달쯤 쓰고는 넉 달을 쉬고, 석 달을 쓰고는 또 두 달을 쉬는 그런 리듬으로. 그런 게 지금까지 토막토막 이어지고 있다. 하기사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기'가 아니라, '일지(日誌)'이다. 아침 몇시에 일어남, 날씨, 무얼 먹음, 누굴 만남, 얼마만큼 일을 했음, 하는 사실을 메모하는 것뿐으로, 그 이상의 것은 전혀 안쓴다. 심리묘사라든가, 창작을 위한 노트라든가,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것은 백 퍼센트 없다. 그러니까 사후 일기가 발견된다 해도 출판될 가능성은 전무할 것이다. 보십시오, 아침 6시 기상. 한시간 달리기. 아침 식사→붕장어 챠즈께. 오전 중, 소설 7매. 메밀국수→점심 식사. 오후, 소설 4매. <주간 아사히> H씨로부터 전화(3시). 저녁 식사→새우 고로케, 야채 샐러드, 맥주 2병. 오후 10시 취침. 평화로웠던 하루. 이런 기술이 하염없이 계속되는 평화롭고 지루한 일지를 누군가가 즐거이 읽어 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잖습니까. 그야 나 역시, 12월 16일 (맑음) 점심 식사. 미우라 모모에(三浦百惠)씨 댁에 초대되어, 손수 준비하신 덮밥을 대접 받았다. 오후. 옥중의 미우라 카즈요시(和義)씨로부터 전화 왔음. 저녁 식사. <길조>에서 야쿠시마루(藥師丸) 히로코씨와 회식. 식사 후 아자부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심. 집으로 돌아와 원고 250매 씀. 강담사로 부터 2억6천5백만 엔을 구좌에 넣었다는 통지있었음. 하는 내용의 일기를 딱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소설가의 하루란 정말 평범하고 지루한 것이다. 이런 원고를 사각사각 쓰면서 존슨 면봉으로 귓구멍을 후비고 있는 사이에 질질 하루가 끝나 버린다. 내가 이런 기술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라이프'란 문방구 메이커가 출고하는 '업무 일지'라는 지극히 즉물적인 제목의 노트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튼튼하고, 정서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싸구려에다, '자못 일기장'스러운 은근함이 없어, 나의 사용 목적에는 딱 들어맞는다. 겉 띠에는 '업무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나타내는 업무 성적의 필연적 향상.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과거의 결점'이란 선전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글이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향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웬지 쓸모가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과거의 결점' 같은 문구가 눈에 띠면, 내 마음은 저도 모르게 소용돌이친다. 과연 옛날의 일기를 보면, 과거의 결점을 쉬 발견할 수 있다. XX년 10월 8일 (맑음) M과 식사, 가볍게 한 잔하고 집까지 바래다 주다. 같은 기술을 읽으면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그때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음.' 하고 반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결점'을 지금 새삼스레 발견해 본들 도저히 '조기 발견'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 번 손해를 봤다고 할까 뭐랄까,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다지 효용이 있다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우리 마누라는 내가 쓰고 있는 '일지'보다 다섯 배 정도는 농밀한 일기를 매일 녹색 잉크로 빼곡하게 쓰고 있다.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일 듯한데, 요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 '소송이라도 걸 일이 생기면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요.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매일 일어난 일을 기록해 두면.' 하고 그녀는 일기를 쓰는 이유를 내게 설명한다. '소송? 소송이라니 그게 뭐야? 무슨 소송?' 하고 나는 질문을─아주 당연한 질문을─한다. '뭐 특별하게 무슨 소송이랄 것도 없어요. 그저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때때로 가정이란 것은 굉장히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 이 원고를 쓴 후, 오오사카에 있는 '마루니'라는 문구 제작 회사에서 '비 정서적·기록적' 기술을 목적으로 하는 유니크한 일기장을 부쳐 주셨다. 잘만 이용하면 한 권을 가지고 이십 년은 쓸 수 있다는 선전문구까지, 제법 잘 고안해 냈다. 좌우지간 비 정서적이라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