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그래피티(3)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1968년으로, 처음에는 메지로(目白)에 있는 학생 기숙사에서 살았다. 이 기숙사는 친잔소(椿山莊) 옆에 지금도 있으니까, 메지로길을 지나갈 때 행여 생각나면 한번 보세요, 힐끗. 나는 그곳에 반 년 동안 살다가 그 해 가을에 행실 불량으로 내쫓기고 말았다. 경영자가 이름난 우익인데다, 기숙사 사감은 육군 나카노(中野)학교 출신의 으스스한 아저씨이고 보면, 나 같은 학생을 내쫓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때는 바야흐로 1968년, 학생 운동의 전성기였고, 내 편은 혈기왕성한 나이었기에 화가 치미는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우익 학생이 점검을 하러 온다기에 베갯밑에 칼을 두고 잔 적도 있다. 하지만 태어나서 여지껏 혼자서 지내기는 처음이라 매일 매일의 생활은 꽤 즐거웠다. 밤이 되면 대개 메지로 언덕길을 내려가 와세다일대에서 마셔댄다. 그리고 마셨다 하면 반드시 곤드레 만드레가 된다. 그 무렵에는 곤죽이 되지 않도록 마시는 기발한 재주는 아직 피울 줄을 몰랐다. 술에 취해 나가 떨어지면 누군가가 들 것을 만들어 기숙사까지 운반해 주었다. 들 것을 만들기엔 실로 편리한 시대였다. 요컨대 여기저기 아무데고 프래카드가 넘쳐 흘렀기 때문이다. '일제분쇄'라든가 '원잠기항 절대 저지'하는 프래카드를 적당히 골라 짓찢어 와서는, 거기에다 술주정뱅이를 태워 옮기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재밌었다. 헌데 한번은 메지로 언덕길에서 헝겊이 찢어지면서 돌계단에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머리를 부딪힌 일이 있다. 덕분에, 이, 삼일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한밤중에 일본 여자 대학의 간판을 훔치러 간 일도 있다. 까짓 거 훔쳐봤댔자 별 신나는 일도 없지만, 웬지 갖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는데, 그만 순경 아저씨한테 들켜 줄행랑을 쳤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엔 일주일에 한번은 순경 아저씨한테 검색을 당했다. 시절도 어수선했지만, 내 쪽 인상도 나빴으리라. 최근에는 한번도 검색을 당하지 않았다. 순경아저씨한테 검색 한번 당하지 못하게 되다니 내 인생 이제 끝장이 아닌가, 하고 문득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