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그래피티(2) 이 잡지는 관동 지방에서밖에 팔지 않으니까(팔지 않겠지, 잘 모르겠다), 관서 지방에 대한 지리적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 한가한 사람은 지도를 보세요. 우리 집은 내가 철이 들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두 번밖에 이사를 하지 않았다. 불만스럽다. 훨씬 더 많이 이사를 하고 싶었다. 게다가 두 번 이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직선 거리로 일 킬로미터정도의 지역을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다. 그런 건 이사라고도 할 수 없다.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시의 슈쿠가와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시야시 아시야가와의 동쪽으로 옮겼을 따름이다. 동경으로 말하자면 신주쿠(新宿)의 미츠코시(三越)에서 마이씨티로 옮겼다가, 신주쿠 교엔(御苑)으로 옮긴 정도의 거리이다. 그런고로 전학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옛날부터 전학생을 몹시 동경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전학을 가게 되는 반 친구가 있으면 곧 잘 '이별 문집' 같은 것을 만들어서는, '에미코, 멀리 가더라도 꼭 편지해 줘.' 라든지, '모래밭에서 넘어뜨려서 미안해.' 라든가 하는 글을 정리하여 전해주곤 했다. 그 아이가 없어지고 나면, 한 동안 그 자리만 동그마니 비어 있다. 그런 걸 이상하게도 병적으로 좋아했다. 새로 들어오는 전입생도 무척 좋아했다. 귀여운 여자 아이가 조금은 예민해져 새침을 부리고 있거나, 새 교과서가 없어서 옆에 앉은 아이랑 함께 보는 걸 바라보면서, '이거야, 바로 이거'하는 식으로 흥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한번도 전학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충족되지 않았던 소년 시절의 욕구 불만이 열 여덟 살을 지내고 나자 '이사병'이란 숙명적인 형태를 띠고 내게 엄습해 온 것이다. 상세한 것은 다음 회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