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발관을 좋아하는가 요즘의 젊은 남성들 대부분은 유니섹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모양인데, 나는 옛날 그대로의 이발관을 애호하는 편이다. 도대체가 개성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머리 스타일로 만들어 놓는다는 까닭도 있지만, 미용실에 가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여자 손님들 옆에 앉아 여자 미용사가 내 머리를 감겨 주고, 이리저리 깎아 주고 하는 게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카락에 세트를 말고 있거나, 얼굴 면도를 하고 있거나, 건조기를 뒤집어 쓰고 넋 빠진 얼굴로 주간지를 읽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그런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던 터라, 몇몇 여자를 붙잡고는 '미용실에서 옆 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으면 이상하지 않아?' 하고 물어 봤더니 그녀들 역시 일단은 '응,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줄 곧 남녀 공학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와 동석을 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저항감이 없지만, 머리를 자르는 일에 관한 한 남녀 따로따로 쪽이 편하다. 그래서 예의 꽈배기 과자 같은 간판이 서 있는 동네 이발관을 내내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뿐, '남자는 모두 이발관에 가야 한다.' 는 확고한 주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만약 그렇게 되면 이발관이 북적거려 안된다. 미용실에 가고 싶은 사람은 사양말고 미용실로 가 주세요.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이라니 이 연재에서는 개인적인 일밖에 쓰지 않는데─내 단골 이발관은 센다가야에 있다. 나는 지금 후지사와에 살고 있으므로, 두 달에 세 번꼴로 오다큐(小田急)선의 로맨스 카*를 타고 센다가야까지 머리를 깎으러 간다. 이래저래 편도에 한 시간 반은 걸리니까, 세월이 좋다고 하면 세월이 좋은 거고, 유별나다고 하면 유별난 얘기다. 후지사와에 살기 전에는 나라시노에 살았는데, 그때도 역시 편도에 한 시간 반이나 들여 가며 지금의 이발관에 다녔다. 하지만 소부(總武)선 쾌속보다는 오타큐선의 로맨스 카 쪽이 운치도 있고, 값도 싸고, 애플티도 마실 수 있어 내게는 지금이 훨씬 편리하다. 나라시노로 이사하기 전에는 그 이발관 근처에 살았다. 그러니까 그럭저럭 팔 년이나 같은 곳엘 다니는 셈이다. 어째서 그렇게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끈질기게 이발관 같은 곳을 고집하는가 하면, 다른 이발관에 가는 게 매우 귀찮기 때문이다. 다른 이발관에 가면 여러 가지 사항들을 처음부터 일일이 다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나는 회사원이 아니니까 그다지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할 필요도 없고, 삼 주에 한번은 머리를 자르니까 그렇게 짧게 깎을 필요도 없다는 기본적인 방침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고는 세부적인 설명으로 옮아가, 귀 위는 어느 정도 길이로 하고, 가리마는 어디 쯤에 있으며, 수염은 깎지 말고, 매일 아침 머리를 감으니까 샴푸질은 대충 한 번이면 족하고, 헤어 리퀴드는 필요없고... 하고 설명을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지쳐 축 늘어지고 만다. 게다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한대로 깎아 준다는 보장도 없다─고 할까, 아니 전혀 설명한대로 깎아 주지 않는다. 특히 지방도시의 경우는 정도가 심해서 대개는 국민학생처럼 뒷 머리를 바싹 쳐놓고 말아, 사나흘간은 의기소침해져 집안에 처박혀있게 된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막막하다. 그 반면 단골 이발관에 가면,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하고 한 마디만 하고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그 나머지는 끄덕끄덕 졸고 있어도 여느 때와 다름 없게 빈틈없이 깎아 준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발관의 조건, 그 첫째는 이발사 아저씨가 들락날락 자주 바뀌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갈 때마다 이발사가 바뀌는 이발관이 있는데, 그래가지고서야 손님 쪽도 신뢰감이 없어지고, 그럴 때마다 다시금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단골 이발관을 만드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발사가 자주 바뀌지 않는 이발관은 그 나름의 안정된 분위기가 있고, 태도도 침착하다. 이 점은 생선 초밥집 요리사와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수다스럽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전혀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따분한 일이지만, 나는 이발관에서는 멍하게 있는 걸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라, 말을 너무 많이 걸면 피곤해진다. '벌써 봄이로군요.' '따뜻하지요.' '벚꽃놀이는?' '아니요, 바빠서요.' 정도가 이상적이다. 나의 단골 이발관에는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가다 경주 얘기를 짤막하게 나누곤 한다. 세 번째는 좀스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 놓지 않는 것이다. 요즘엔 오후 시간대에 주부를 상대로 한 야한 프로그램이 유독 많아, 그럼 프로그램을 듣고 있으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우리 남편은 말이죠,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 같은 걸 하고 있으면, 언제나 등 뒤에서 치마 속에다 손을 집어넣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도 싫어하는 편이 아니라서...' 하고 주절거려대면 머릿심지가 흔들흔들한다. 요즘 주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정말은 NHK FM의 '오후의 클래식' 같은 프로그램이 흐르면 이상적이겠지만, 뭐 이발관에서 브라암스를 듣는다는 것도 약간은 속물 같으니까, NHK 제1방송 쯤이 바람직하겠다. NHK 라디오 같은 건 이발관에서나 들을 수 있고,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제법 재밌기도 하다. 적어도, '세상은 넓고도 넓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감회가 깊다.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푸른 산맥>은 아오야마에 있는 미용실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침 열한 시 반경에 하는 소설 낭독도 이발관 의자에서 듣기에는 적격인 품위있는 프로그램이다. ♣ 지금은 더욱 멀어져 편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변함없이 같은 이발관에 다니고 있습니다. 퍼시 페이스의 <푸른 산맥>에는 도중에 격조 높은 포 버스의 응수가 끼어 있기도 하여, 상당한 열연이다. * 오타큐선은 신주쿠와 오타와라(小田原)를 잇는 전철. 그 중 로맨스 카는 특급행 열차로, 친절한 서비스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