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드디어 여름도 끝나 간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소년 아저씨─라는 표현을 요즘 들어 비교적 자조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라서 여름이 끝나 가는 것이 무척 애닯다. 여름 따위 내년에 또 올텐데 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해변가에 있던 방갈로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빙빙 돌아다니고, 해안에 잠수복 차림의 서퍼들이 늘어나곤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 버렸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발상은 어린이의 그것과 거의 다름 없다. 며칠 전 근처에 사는 모 광고회사 사람 집에 놀러갔더니, 부인이 나와 '죄송하지만 여름 휴가가 다 끝나서 오늘부터 출근이예요.' 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군, 여름이 끝나서 모두들 사회로 복귀하는군. 수영이니 일광욕이니 불꽃 놀이니 비치보이스니 서핀이니 하고 아직도 건들건들 놀러다니는 것은 나 정도밖에 없어.' 하고 암담한 기분에 젖는다. 나 역시 9월 초순까지는 다 쓰지 않으면 안될 소설이 있는데, 아직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다. 이래서 될까, 하고 생각한다. 여름의 끝이란 몹시 애처롭다. 그래서 '일이 힘드시겠죠.' 라고 내가 말했더니, '네, 집을 나서면서 긴 바지를 입어야 하니 싫다면서 마구 고함을 질러대던걸요.' 하고 그 부인은 말한다. 그런 사람의 기분을 나는 가슴이 저리도록 잘 안다. 여름이란 계절은 원칙적으로 짧은 바지에 런닝셔츠를 입고, 맥주를 마시며 지내야 마땅한 그런 계절인 것이다. 나만 해도 요 두 달 반 정도 사이에 긴 바지를 입었던 일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여름 휴가가 끝나 긴 바지를 입어야만 하게 된 그의 심경을 생각하면, 남의 일이면서도 안됐다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여름이 후덥지근한 나라니까 출, 퇴근 시에 반바지를 입는 정도는 회사가 허락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도무지가 그렇게 멋대가리도 없는 에너지 절약복 같은 옷이 존재했을 정도니까, 샐러리맨이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이라니, 그런 걸 회사가 허락할 턱이 없잖아.' 라면서 역시 회사에 다니는 지기가 어처구니없어 했다. '난 여름내내 긴 팔 셔츠를 입고 다녔다구. 햇볕에 그을리면 안되니까 말이야.' 이 친구는 올 봄부터 손해 배상 보험 회사에서 고객을 담당하고 있다. 하긴 고객 담당이라니 긴 팔 셔츠를 안입으면 안되겠군. 하고 납득은 가지만, 타면 안된다는 둥 하는 소리는 잘 이해가 안간다. 나는 한 번도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 회사의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었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 말이지, 손님이랑 만나 얘기를 하잖아.' 하고 그는 설명해준다. '그럴 때 이쪽이 검게 타 있으면 말이야, 이 자식 우리가 지불한 보험료를 가지고 진창 놀아댔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네 장사는 손님한테 반감을 사게 되면 끝장이잖아. 그래서 타면 안된다는 거지. 나 같은 경우 제법 살이 쪘잖아. 그러면 말이지, 돈을 하도 많이 벌어 들여서, 매일 좋은 것만 먹으니까 살이 찌죠.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으니 골치라구. 난 아무거나 먹어도 살이 찌는데 말이야.' 이런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모두들 나름대로 힘들겠군, 하고 동정이 간다. 이 사람은 작년까지만 해도 요트니 스쿠버니 하고 진탕 놀며 새까맣게 탔던 이인 만큼, 측은함도 한층 더하다. 사람이란 성장해감에 따라 여름을 맞는 즐거움도 조금씩 잃어가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집이 코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제법 가까웠던 이유로, 여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곧 잘 고교야구를 보러 갔다. 고교야구의 외야석은 공짜였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는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비닐주머니에 들어있는 아이스케키를 날름날름 핥거나, 녹은 물을 스트로로 쪽쪽 빨거나, 머리에 올려 놓고 머리를 식혀가며 온 종일 싫증도 내지 않고 야구 구경을 했던 것이다. TV로 보는 고교야구는 뭐라고 주절주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해설이 딸려 있거나, 아나운서 혼자 흥분해 가지고 떠벌려대거나 해서 흥이 깨지지만, 실제로 구장에 가서 관전하기에는 제법 괜찮은 구경거리다. 나는 TV에서 중계하는 고교야구는 불쾌해서 거의 안 보지만, 코시엔에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특히 외야석에 있으면 관중도 시큰둥하니 적당하게 어물쩡거리고 있어, '저 멀리서 고등학생들이 우당탕탕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다. 청춘의 땀이라든가 눈물 같은 것은 그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다. 적어도 내게 고교야구란 그런 것이었다. 고교야구의 결승전이 끝나고, 폐회식이 끝나고, 응원단이 깃발을 탁탁 접어서는 줄지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어린 마음에도 이젠 여름도 다 끝났구나 싶은 감회가 느껴졌던 것이다. 어찌된 셈인지 폐회식이 끝나 구장 밖으로 나오면, 언제나 고추잠자리떼가 머리 위를 뱅뱅 맴돌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나의 소년시절에 있어서 여름의 끝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코시엔의 해변도 아시야의 해변도 헤엄치기에는 차가워지고, 숙제도 본격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고 만 것이다. 가끔씩 왜 이렇게 여름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