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관하여 나는 여름을 굉장히 좋아한다.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오후에 짧은 바지 차림에 로큰롤을 들으며 맥주라도 마시고 있으면, 진짜 행복하다는 기분이 절로 든다. 한 석 달 남짓만에 여름이 끝나고 마니 실로 애석한 일이다. 가능한 일이라면 반 년 정도는 계속됐음 좋겠다. 며칠 전에 어슐라 K. 르귄*의 <변경의 혹성>이라는 SF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혹성에 관한 얘기로, 그 혹성의 일 년은 지구 시간으로 바꾸면 약 60년에 해당된다. 즉 봄이 15년, 여름이 15년, 가을이 15년, 겨울이 15년인 것이다. 굉장한 일이다. 그래서 그 별에는 '봄을 두 번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행운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 요컨대 장수를 하게 돼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얘기다. 그러나 장수하여 겨울을 두 번 겪게 되면, 그거야말로 고통이다. 왜냐하면 그 별의 겨울은 끔직하게 춥고, 암울하게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별에서 태어난다고 하면, 역시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 좋겠다. 소년기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며 지내고, 사춘기와 청년기는 가을에 차분하게 지내고, 장·중년기는 혹독한 추위와 함께 보내고, 다시 새 봄이 오면 노인이 되는 패턴이다. 운 좋게 장수를 하여 다시 한번 여름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 어디에선가 비치 보이스의 노래가 들리는데.' 하는 식으로 죽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나트라의 오래된 노래 중에 <셉템버 송(September Song)>이라는게 있다. '5월에서 9월까지는 지루하도록 길지만, 9월이 지나가고 나면 해는 짧아지고, 풍경도 가을다워져, 나뭇잎들은 물이 든다. 이미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라는 의미의 노래다.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 아주 좋은 노래이긴 하지만 - 마음이 어두워진다. 아무래도 죽을 때는 여름이란 희망 속에서 나이를 먹고 싶다. ----------------------------------------------------------------------- * 어슐라 K. 르귄(Ursula K. Le Guin) : 1970년대 미국 SF계를 대표하는 여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