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 (1) by Murakami Haruki 양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 주었으면, 하고 부탁 받은 것은 아직 여름이 한창일 때의 일이었다. 양사나이도, 의뢰하러 온 남자도 여름용 양의상을 입은 채로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한창 여름에 양사나이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런 일이다. 특히나 에어콘조차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양사나이로서는.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면서 두 사람의 양(羊) 귀를 펄럭거리고 있었다. "우리들 양사나이협회에서는.." 하고 상대의 양사나이는 가슴의 지퍼를 조금 내려서 선풍기 바람을 가슴 속으로 넣으며 말했다. "매년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양사나이님을 한 분 선정해서 그 분으로 하여금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을 작곡해서, 그 곡을 크리스마스날에 연주 하시게 하고 있습니다만, 올해는 경사스럽게도 당신이 선정된 것입니다." "아하, 저런."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특별히 올해는 성양상인(聖羊上人)님께서 작고하신지 꼭 2500년째가 되는 기념할 수 밖에 없는 해이고, 따라서 무엇보다 여기에 어울리는 훌륭한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해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바입니다." 하고 남자는 말했다. "과연, 그렇군요." 하고 양사나이는 귀를 긁으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4개월 반이나 있다. '그 정도의 날짜라면 나도 멋진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거야.' 라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좋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라고 양사나이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반드시 멋진 음악을 작곡해 보여 드릴테니까요." 그러나 9월이 지나고,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끝나도 양사나이는 양사나이 협회로부터 부탁받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양사나이는 낮 시간에는 근처의 도너츠숍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조금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사나이가 낡아 빠진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반드시 1층에 살고 있는 집 주인의 부인이 올라와서,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시끄러워요. 집어치워요! 텔레비젼 소리가 들리지 않잖아요!"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것도 크리스마스까지만 하면 되니까 잠시동안만 참아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만..." 양사나이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바보같은 소리 말아요!" 라고 집주인의 부인은 소리를 질렀다.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요. 댁같이 기묘한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세간에 웃음거리가 되니까. 이 이상 귀찮은 일은 사양하겠어요!" 양사나이는 참담한 기분으로 달력을 들여다 보았다. 크리스마스는 4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데 약속한 음악은 한 소절도 작곡되어 있지 않았다. 피아노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사나이가 침울한 얼굴로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도너츠를 먹고 있을 때 마침 양박사가 그곳을 지나갔다. "무슨 일이지? 양사나이군." 하고 양박사는 물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크리스마스도 가까워지는데 그러면 안되지." "제가 기운이 없는 건 그 크리스마스 때문입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말하며, 양박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흐으음." 하고 양박사는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것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정말이세요?" 양사나이는 수상쩍다는 듯이 말했다. 왜냐하면 양박사는 양에 관한 것 밖에 연구하지 않는 학자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머리가 조금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하고 양박사는 말했다. "저녁 여섯시에 우리집에 오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겠네. 그런데, 이 시나몬 도너츠 좀 맛봐도 될까?" 그러고는 양사나이가 "좋습니다." 라든가 "드세요." 라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도너츠를 집어서는 우적우적 먹어버렸다. 그날 저녁 양사나이는 시나몬 도너츠 여섯 개를 선물로 들고 양박사의 집을 방문하였다. 양박사의 집은 아주 낡은 벽돌 건조 주택이었는데, 정원수는 전부 양모양으로 깎아 다듬어져 있었다. 문의 초인종도, 문주(門柱)도, 입구에 깔린 돌도, 하나부터 열까지 양이었다. '이것 정말 대단한걸.'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양박사는 여섯 개의 도너츠 중 네 개 까지를 숨도 쉬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고 남은 두 개를 소중하다는 듯이 벽장속에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테이블 위에 흩어진 찌꺼기를 주워 모아 할짝할짝 핥았다. '이 사람은 정말로 도너츠를 좋아하는가 보군.' 하고 양사나이는 감탄했다. 손가락을 깨끗하게 핥고 나자, 양박사는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한권을 집어 냈다. 책의 표지에는 <양사나이의 역사>라고 씌어 있었다. "자아, 양사나이군." 하고 양박사는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는 양사나이에 관한 것이 전부 씌어 있네. 자네가 어째서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이유도 말일세." "하지만 박사님, 그 이유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요. 그건 하숙집 부인께서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만일 피아노만 칠 수 있게 해 준다면..." "아니야, 아니야." 라고 양박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게 아니라네. 그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작곡을 할 수 있는게 아냐. 거기에는 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고 양사나이가 물었다. "저주를 받은 거지." 양박사는 소리를 죽여 말했다. "저주를 받았다구요?" "바로 그거야." 하고 양박사는 말하고 몇 번이나 끄덕거렸다. "바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자네는 피아노도 칠 수 없고, 작곡도 할 수 없는 것이야." "흐음." 하고 양사나이는 신음했다. "그럼, 어째서 저주따위 받거나 하는거죠? 아무 것도 나쁜 짓 한 것이 없는데." 양박사는 책의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겼다. "자네는 어쩌다가 6월 15일에 달을 올려다보지 않았나?" "아닙니다. 벌써 5년째 달따위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멍 뚫린 걸 먹지 않았나?" "도너츠라면 매일 점심으로 먹고 있습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은게 어떤 도너츠였는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러니까... 어쨌든 도너츠를 먹은 것은 틀림 없습니다." "구멍이 뚫린 도너츠인가?" "예, 그건 그렇죠. 도너츠라는 건, 대개 모두가 구멍이 뚫려 있으니까요." "그거야!" 하고 양박사는 말하며,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에 자네에게 저주가 걸려 버린 것이야. 자네도 양사나이의 한 사람이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구멍이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텐데." "그런 이야기는 들은적도 없습니다요." 양사나이는 깜짝 놀라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건." "성양제일(聖羊祭日)을 모르다니. 이거 놀라운걸." 양박사는 더욱 놀라며 말했다. "요즘 젊은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만. 자네는 양사나이가 되었을 때 양사나이 학교에 다니며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겠지?" "예에, 뭐, 그건... 그렇지만 저는 학교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 양사나이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헛, 참, 이봐. 자네가 부주의했기 때문에 이런 궁지에 빠지게 된거라구. 하는 수 없는 녀석이구만. 그러나 도너츠를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하니 여기서 내가 가르쳐 주도록 하지." 하고 양박사는 말했다. "괜찮을까?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동시에 성양제일(聖羊祭日) 이기도 하거든. 즉, 이날은 성양상인(聖羊上人)께서 밤중에 길을 걷고 계시다가 구멍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신성한 날이 아닌가. 따라서 그 날에 구멍이 뚫린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마카로니라든가, 구멍 뚫린 오뎅이라든가, 도너츠라든가, 오징어링이라든가, 둥글게 자른 양파라든가, 그렇게 생긴 것들." "궁금한게 있는데요, 어째서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은 밤중에 길을 걷고 계셨으며, 어째서 길에 구멍같은게 뚫려 있었던 거죠?" "그런 것 나는 모르네. 아무튼 2500년이나 옛날의 일이잖아. 그런 것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그것이 '규정' 이라는 것이야.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규칙을 어기면 저주가 걸려. 저주가 걸리면 양사나이는 이제 더 이상 양사나이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야. 자네가 양사나이 음악을 작곡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야, 음..." "곤란하게 됐는걸.." 하고 양사나이는 아주 난처해하며 말했다. "그 저주를 풀 방법은 없나요?" "흐음." 양박사는 말했다. "저주를 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러나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지. 그래도 괜찮겠는가?" "상관없습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 방법은 자네 자신도 구멍에 떨어지는 것이야." "구멍?"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구멍에 떨어지다니, 어떤 구멍 말입니까? 구멍이기만 하면 아무 것이라도 괜찮습니까?" "바보같은 소리! 어떤 구멍이라도 괜찮을 리가 있나? 저주를 풀기 위한 구멍이라는 건 크기도 깊이도 정확히 정해져 있어. 잠시 기다리게. 지금 찾아 볼 테니까." 양박사는 <성양상인전(聖羊上人傳)> 이라는 너덜너덜한 책을 꺼내서 또 펄럭펄럭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니까... 음... 여기다! '성양상인(聖羊上人)은 직경 2m, 깊이 203m인 구멍에 빠져서 돌아가셨다' 라고 되어 있네. 그러니까 그것과 같은 구멍에 빠지면 되는거야." "그렇지만 말입니다. 깊이 203m의 구멍이라면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팔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런 구멍에 떨어지면 저주가 풀리기 전에 죽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기다려, 기다려. 아직 다음이 있어. '저주를 풀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는 구멍의 길이를 100분의 1로 생략해도 관계 없다' 즉 2m 3cm라도 좋다는 말이로군." "아, 다행이다. 그 정도라면 괜찮지. 파겠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했다. 양사나이는 양박사에게서 책을 빌려 집에 돌아왔다. 그 책에 의하면 저주를 풀기 위한 구멍에는 실로 많은 규약이 있었는데, 양사나이는 그것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 내려가 보았다. (1) 구멍은 토네리코 나무 손잡이의 삽으로 파지 않으면 안된다 [성양상인(聖羊上人)이 토네리코 지팡이를 짚고 떨어지셨기 때문이다] (2) 구멍에 떨어지는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 1시 16분이 아니면 안된다. [성양상인(聖羊上人)이 그 시각에 구멍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3) 구멍에 떨어질 때에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음식을 도시락으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1)과 (2)는 접어 두더라도 기껏해야 2m 깊이의 구멍에 떨어지는데 어째서 도시락이 필요한 것일까, 양사나이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뭐, 좋다. 그렇게 씌어 있으니 그대로 하면 되는 거지."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앞으로 3일 후로 임박해 있다. 3일 안에 토네리코 손잡이의 삽을 만들어 직경 2m, 깊이 2m 3cm의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 참, 정말이지 이상한 일에 휘말려 버렸네, 하고 생각하며 양사나이는 한숨을 쉬었다. 토네리코 나무는 숲속에서 발견되었다. 양사나이는 적당한 굵기로 자란 토네리코 가지를 잘라, 하루 걸려 그것을 칼로 다듬어 삽의 자루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다음 날 집 뒤 공터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하숙집 부인이 다가와서 "당신, 구멍따위 뭐 하려고 파고 있는거죠?" 하고 물었다. "쓰레기를 버릴 구멍을 파고 있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대답했다. "그런게 있으면 편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흠... 그래요? 이상한 짓 하기만 하면 경찰에 전화를 걸어 버릴테야!" 하숙집 부인은 미워 죽겠다는 듯이 말하고는 저쪽으로 가버렸다. 양사나이는 줄자로 정확히 길이를 재면서 직경 2m, 깊이 2m 3cm의 구멍을 파는데 성공했다. "음, 이걸로 됐겠지." 양사나이는 말하며, 구멍에 나무 뚜껑을 덮었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돌아왔다. 양사나이는 도너츠 가게에서 구멍이 뚫리지 않은 꽈배기 도너츠를 한아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배낭에 채워 넣었다. 이 정도면 도시락이 되겠지. 그리고 양의상의 가슴 주머니에 지갑과 소형 회중 전등을 넣고, 지퍼를 잠궜다. 오전 1시가 되자 주위의 집들의 불도 꺼지고 공터는 깜깜하게 되었다. 달도 없고, 별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손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어두워서야 성양상인(聖羊上人)님이라도 별 수 없이 구멍에 빠질 수 밖에." 양사나이는 중얼거리면서 회중 전등으로 구멍을 찾았다. "미치겠네. 이제 슬슬 1시 16분이 가까워질 시간인데. 만약 구멍을 못찾으면 내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주 큰일이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 돌연 양사나이의 발밑 지면이 푹 꺼졌다. 양사나이는 구멍에 빠진 것이었다. "누군가가 낮 동안에 뚜껑을 치워 버렸나.." 구멍을 떨어지면서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결국.. 하숙집 부인이 그랬나보군. 하여간 그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그러나, 양사나이는 그렇게 생각한 후에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아직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내가 판 구멍은 깊이 2m 3cm 밖에 안되기 때문에 바닥에 닿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리가 없다. 갑자기 콰당 소리가 나고, 양사나이는 구멍의 바닥에 부딪혔다. 굉장히 깊은 구멍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양사나이는 머리를 흔들고, 회중 전등으로 주위를 비춰 보려고 했지만, 회중 전등은 없었다. 구멍에 떨어질 때 없어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뭐야, 이 자식아." 라고 말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아직 1시 14분이잖아. 2분 빨랐어, 임마.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가서 처음부터 다시 해!" "죄송합니다. 어둡고 잘 안보여서 틀리게 떨어져 버렸습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깊은 구멍을 다시 한번 위에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요." "하는 수 없는 자식이로구만. 조금 때문에 다 틀려 버릴 뻔했잖아. 이 쪽에서는 1시 16분에 떨어져 올 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성냥을 켜는 소리가 들리고, 양초의 불이 켜졌다. 촛불을 켠 것은 키가 큰 남자였다. 그러나 키가 크다고는 해도, 어깨까지의 높이는 양사나이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머리가 지독하게 길고, 그것이 꽈배기 도너츠처럼 빙빙 꼬여 있었다. "그건 그렇고, 너 임마. 도시락은 틀림없이 가지고 온거겠지?" 라고 '꽈배기' 가 말했다. "가져오지 않았다면 정말 잔인한거지." "가지고 왔습니다요, 틀림없이." 양사나이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럼, 꺼내봐, 임마. 이 몸은 지금 배가 고프거든." 양사나이는 배낭을 열고, 가져 온 꽈배기 도너츠를 하나 꺼내, '꽈배기' 에게 건네주었다. "뭐, 뭐야, 이게?" 라고 꽈배기는 그것을 보고 소리 질렀다. "너, 내 얼굴 모양을 비웃으려고 이따위 것 가지고 온 거지? 이 자식아!" "아니, 그건 오해입니다." 하고 양사나이는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저는 도너츠 가게에서 일하고 있고,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음식이라고는 그 꽈배기 도너츠 밖에 없어서요." "그것 봐. 너 지금 '꽈배기' 라고 말했잖아, 임마." 하고 꽈배기는 말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꼬여진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얼굴을 하고, 이렇게 어두운 구멍의 밑바닥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줄 알어?" "아, 환장하겠네. 제가 말 실수 한거예요. '꼬인 도너츠' 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이미 늦었어, 임마" 꽈배기는 울면서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양사나이는 꽈배기 도너츠를 한 개 더 꺼내서 그 꼬인 부분을 풀어 똑바르게 늘인 다음 '꽈배기'에게 건냈다. "이것봐요, 아무것도 아니죠? 똑바르죠? 괜찮으니까 드세요. 맛있다구요." 꽈배기는 그것을 받아들고 우물우물 먹었지만, 그래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꽈배기가 울면서 도너츠를 먹고 있는 동안 양사나이는 꽈배기의 양초를 빌려서 구멍의 바닥을 조사해 보았다. 구멍의 바닥은 휑뎅그렁하게 넓은 방으로 되어 있었다. 방에는 꽈배기를 위한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문지기라고 한 이상, 어딘가 분명히 문이 있을거야." 하고 양사나이는 생각했다. "문이 없으면 문지기 따위 필요없는 것!" 양사나이가 생각한 대로 침대의 옆에 작은 횡혈이 뚫려 있었다. 양사나이는 양초를 가지고 횡혈로 기어 들어갔다. 구멍은 깜깜하고 구불텅 구불텅 구부러져 있었다. "세상에, 고작 작년 12월 24일에 도너츠를 먹었다고 이런 꼴을 당하게 되다니." 하고 양사나이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10분 정도 가니까, 주위가 차츰 밝아져 왔다. 그리고 구멍의 출구가 보였다. 구멍의 밖에는 밝은 햇살이 넘쳐나고 있었다. "왠지 이상한걸. 구멍에 떨어진 게 밤 1시 조금 넘어서 였으니까, 아직 낡이 밝을 리가 없을텐데." 하고 양사나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멍에서 나오자 텅빈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공터 주위는 양사나이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새소리도 들려 왔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걸까? 그 책에는 구멍에 떨어지기만 하면 그걸로 저주가 풀릴거라고 씌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하고 양사나이는 말했다. 양사나이는 약간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 앉아서 도너츠를 하나 먹기로 했다. 양사나이가 도너츠를 먹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안녕하세요? 양사나이님."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양사나이가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쌍둥이 여자아이들이 서 있었다. 하나는 <208>이라는 번호가 씌어진 셔츠를 입고, 또 하나는 <209> 라는 번호가 씌어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번호를 제외한다면 두 여자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 2편 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