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어에 대하여(2) 영어, 일본어 할 것 없이, 최근에는 정말 약어가 많다. 사회가 복잡화·다양화됨에 따라, 그에 맞추어 말도 꽤 길어졌기 때문에 도저히 생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현대 용어 기초 지식>같은 류의 책들을 좍 훑어보면 정말이지 뜻을 알 수 없는 약어투성이다. 취직을 앞둔 학생이야 그런 것들을 열심히 외우겠지. 고된 일이다. 근자의 약어중 가장 빼어난 것은 'SALT'가 바뀐 'START'이다 'SALT'가 순조롭지 못하니까, 이 즈음에서 심기를 일전하여 새롭게 시작합니다, 란 분위기다. 하기야 실제로는 'START'로 바뀌고 나서도, 군축 회의는 전혀 평탄하지 못하지만. 수일 전 오래간만에 <아메리칸 그래피티>를 보고 있으려니, 거기에도 약어가 넘치도록 있었다. 가령 I.D. 이것 물론 신분증명서(Identification)의 약자이다. 미국에서는 이 I.D.가 없으면 술을 마실 수도 없다. <아메구라>에서는 두꺼비(토드) 테리군이 여자애가 '술 마시고 싶어'라고 하길래, I.D. 없이 술을 사러 가는 장면이 있다. 테리는 길을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저 실은 지난 번 홍수 때 I.D.를 잃어 버려서 그러는데요...' 라고 하면서 대신 술을 좀 사 달라고 부탁하는데, 아저씨가 대답하기를 '그것 안됐군, 나도 마누라를 잃었지. 이름이 아이 디는 아니지만 말야'. 이 부분 제법 재치가 있다. 그리고 레이스광인 존이 교통 순경에게 위반 티켓을 받자 '이 C.S. 거기다 쑤셔 넣어 둬' 하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대목이 있다. 그러자 여자가 'C.S.라니 무슨 약자야?' 하고 묻는다. 이 C.S.란 치킨 시트의 약자이다. 물론 존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조금 전에 여자가 존을 향해 '너 제법 대단한 J.D.로구나.' 하는 신이 있다. J.D.란 불량 소년의 약자. 영화를 성실하게 보는 것도 고생스런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