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어에 대하여(1) 요전 번 우리 마누라와 비행기 애기를 하고 있는데 '보아크'란 말이 종종 튀어나왔다. 내가 모르는 말이다. 무슨 말인가 싶어 물어 보니까, 그게 놀랍게도 'BOAC'를 일컫는 말이었다. 도대체 'BOAC'라고 하는 회사는 이미 없어지고, 지금은 '브리티시 에어웨이'로 바뀐지 오랜데. 그러나 그런 사실이야 어떻든 'BOAC'(비 오 에이 씨)를 '보아크'라고 읽는 것은, 정말이지 언어도단이다. 어째서 'BOAC'를 보아크로 읽는 것이 언어도단인지, 그것은 좀 설명하기 곤란하다. 여하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BOAC'는 어디까지나 '비 오 에이 씨'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누라는 '당신처럼 자자부레한 일에만 그렇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나이 들어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다구요.' 란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UFO'를 '유포'라는 둥 읽을 때마다 나는 늘 머리가 아프다. 'UFO'는 역시 '유 에프 오'다. 아무래도 '유포'가 좋다는 사람은 USA를 '유사'라고 읽어 주십시오. 그렇잖습니까. 비행기 얘기로 돌아가서, 예를 들어 JAL이나 KAL같은 경우는 '잘' '칼'하고 읽지만, TWA같은 경우는 '트와'라고 읽지 않는다. 극동방송 'FEN'을 '펜'이라고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 경우는 어떠할까? 미국 사람이면서 'FEN'을 '펜'으로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에프 이 엔'으로 제대로 읽는 편이 좋을 듯한 기분이 든다. 대단히 힘든 일도 아니니까. <블루 선더>라는 영화 중에서 신참 헬리콥터 근무 경관이 'JAFO'란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모자를 쓰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포라니 뭐의 약어야?' 하고 묻고 다니는 장면이 있다. 무슨 말의 약어인지는 영화를 보고 확인해 주세요.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니까. 약어에 대하여(2) 영어, 일본어 할 것 없이, 최근에는 정말 약어가 많다. 사회가 복잡화·다양화됨에 따라, 그에 맞추어 말도 꽤 길어졌기 때문에 도저히 생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현대 용어 기초 지식>같은 류의 책들을 좍 훑어보면 정말이지 뜻을 알 수 없는 약어투성이다. 취직을 앞둔 학생이야 그런 것들을 열심히 외우겠지. 고된 일이다. 근자의 약어중 가장 빼어난 것은 'SALT'가 바뀐 'START'이다 'SALT'가 순조롭지 못하니까, 이 즈음에서 심기를 일전하여 새롭게 시작합니다, 란 분위기다. 하기야 실제로는 'START'로 바뀌고 나서도, 군축 회의는 전혀 평탄하지 못하지만. 수일 전 오래간만에 <아메리칸 그래피티>를 보고 있으려니, 거기에도 약어가 넘치도록 있었다. 가령 I.D. 이것 물론 신분증명서(Identification)의 약자이다. 미국에서는 이 I.D.가 없으면 술을 마실 수도 없다. <아메구라>에서는 두꺼비(토드) 테리군이 여자애가 '술 마시고 싶어'라고 하길래, I.D. 없이 술을 사러 가는 장면이 있다. 테리는 길을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저 실은 지난 번 홍수 때 I.D.를 잃어 버려서 그러는데요...' 라고 하면서 대신 술을 좀 사 달라고 부탁하는데, 아저씨가 대답하기를 '그것 안됐군, 나도 마누라를 잃었지. 이름이 아이 디는 아니지만 말야'. 이 부분 제법 재치가 있다. 그리고 레이스광인 존이 교통 순경에게 위반 티켓을 받자 '이 C.S. 거기다 쑤셔 넣어 둬' 하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대목이 있다. 그러자 여자가 'C.S.라니 무슨 약자야?' 하고 묻는다. 이 C.S.란 치킨 시트의 약자이다. 물론 존이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조금 전에 여자가 존을 향해 '너 제법 대단한 J.D.로구나.' 하는 신이 있다. J.D.란 불량 소년의 약자. 영화를 성실하게 보는 것도 고생스런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