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시모다마루 군 이야기 며칠 전 야마구치 마사히로가 찾아와서는 '저, 하루키씨. 제 펜네임 하나 생각해 주지 않겠습니까.' 란다. 갑작스레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이름을 대봤자 독자의 대부분은 그게 누구인지 전혀 모르실테니까 일단 설명을 해두겠다.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지금부터 십 년 전에 내가 경영하던 재즈찻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나이다. 당시에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거의 아무런 도움도 안돼 골치 아프게 여기고 있었더니, 도중에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 뭐 대충 그런 사나이인데, 광고 관계 제작 회사에 들어가 안자이 미즈마루씨 같은 사람들이랑 책을 만들곤 하는 덕분에, 지금은 가끔씩 만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부인은 상당한 미인으로 안자이 미즈마루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야마구치한테는 분에 넘쳐.' 라고 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야마구치 마사히로 집에 놀러 갔다가 야마구치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부인에게 '저 말이죠, 저런 놈과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죠?' 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야마구치씨와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해요.' 라는 것이다. 남의 집 일이니까 아무려면 어떠랴 싶기도 하지만, 사람은 참 취미도 다양하다. 그래서 또 야마구치가 다니는 회사의 여직원 몇 명을 붙들고서는 '저 야마구치 바보지?' 하고 질문하면, '아니요. 야마구치씨는 회사에서는 굉장히 다부진데다, 말 수도 적어, 우린 그 사람 앞에 가면 긴장을 하는 정도.' 라는 대답이었다. '그건 머리가 모자라니까 얼굴이 딱딱한 것일 뿐이야.' 라고 내가 말하면, '무라카미씨, 야마구치씨한테 지나친 편견 갖고 있는 거 아녜요.' 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말까지 듣고 보면 나로서도 '내가 혹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인간을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스러워진다. 야마구치 본인도 '하루키씨는 나를 오해하고 있다니까요.' 라며 거리낌없이 큰소리를 쳐댄다. 그래서 얼마 전 시험 삼아 이사를 도와 달라고 했더니, 역시 전혀 쓸모가 없었다. 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과연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물론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질 나쁜 사내는 아니다. 질 나쁜 사나이는 부인에게 총애를 받거나, 동료 여직원으로부터 비호를 받지 못한다. 설명이 몹시 길어졌는데, 그 야마구치가 우리 집에 와서 펜네임을 하나 생각해 달라고 한 것이다. '저 말이죠, 저, 일러스트레이터가 될까 하고 미즈마루씨에게 그림을 들고 갔거든요. 그랬더니 미즈마루씨가 그림을 보고는, 어이 야마구치, 그만두는 게 좋겠어. 라는 거 아닙니까.' '알만 하군.' '질투는 아니겠지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그래서 말이죠. 히히히, 이번엔 저, 글을 써 볼까 생각해서요. 써 보라는 사람도 있고 말이죠.' '좋잖아.' '그래서 말이죠,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이름 가지고서야 어쩐지 신 좌익 같아서 멋이 없으니까, 이 기회에 하루키씨한테 펜네임 하나 생각해 달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싸한 것 하나 지어 주시면, 캬바레 클럽으로 끝내주게 모실테니까.' 캬바레 클럽은 둘째 치고라도 나는 타인의 펜네임을 요모조모로 생각해 보기를 비교적 좋아한다. '자네, 시모다에서 태어났지, 아마?' '네, 그렇죠. 시모다입니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는 어때?' '참내, 무슨 어선 이름 같잖습니까. 말이죠, 그런 거 말고, 예를 들면 시마다 마사히코라든가 사와키 코타로라든가, 그런 멋드러진 이름 지어 주시지 않겠어요?' '야마구치 이즈시치는 어때, 그럼?' '무슨 머리 나쁜 탐정 같은데. 하루키씨, 나한테 편견 갖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하여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팍 실망을 하고 돌아갔다. 캬바레 클럽 얘기도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나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는 내내 야마구치 마사히로를 '시모다마루'라고 막 부르고 있다. 그 탓인지 당사자도 점점 그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름 덕분으로, 나도 야마구치 마사히로 시대의 야마구치보다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명명 후의 야마구치 쪽에 훨씬 호감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펜네임이나 가게 이름을 붙일 때면 늘 세련되고 멋있는 이름을 고르는 듯하다. 그런 때면 나는 반대로 엉뚱한 이름을 고르니까, 내가 제안한 이름은 항상 기각되고 만다. 요전에 아는 사람이 바를 신장 개업하는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대 사막'이란 이름을 제안했더니 일언지하에 기각되었다. '글쎄 말이죠, '대 사막'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바에 누가 들어오겠어요?' '하지만 나라면 들어가겠는데.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은 하루키씨 정도라구요.' 이런 식으로 아오야마, 아자부 일대에는 멋진 이름을 붙인 바들이 넘쳐 흐른다. 좀 집요한 듯하지만, 만약 '대 사막'이라는 재치있는 꾸밈새의 바가 있다면 나는 주저 않고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