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에 관하여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벌써 십 년 이상이나 오래 전 일이지만,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급료는 보통 찻집의 커피 한 잔 값과 얼추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60년대가 끝날 무렵에 백 오십 엔 정도였다. 하이라이트가 팔십 엔, 소년 매거진이 한 백 엔 쯤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는 레코드만 열심히 사들였으므로, 하루하고 반나절 일하면 LP를 한 장 살 수 있지, 하는 일념으로 일했다. 지금은 커피가 삼백 엔인데 비해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급료가 오백 엔대이니까, 시세가 좀 변한 것 같다. LP만 해도 하루 일하면 두 장 정도 살 수 있다. 숫자로만 살펴보면, 요 십 년 사이에 우리의 생활이 좀 편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생활 감각으로 따져 보면 그렇게 편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주부가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일도 그다지 없었고, 샐러리맨이 겪는 고리대금 지옥도 없었다. 숫자라고 하는 것은 실로 복잡하다. 그런고로 총리부 통계국 같은 데는 도저히 신용할 수가 없다. 단언컨대 GNP도 수상쩍은 것이다. 그야 GNP라는 숫자가 신주쿠(新宿)의 서쪽 광장에 보란 듯이 놓여져 있어, 만지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만져도 좋다고 한다면야 믿어도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실체가 없는 그런 숫자 따위 절대로 믿을 수 없지. 그런 면에서는 아케무라 켄이치(竹村健一)*라든가 다나카 가쿠에(田中角榮)* 같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숫자가 지니는 그런 어정쩡함을 속속들이 통달한 연후에, 그 유리한 부분만을 골라 이용했으니 말이다. 그 정도의 숫자라면 대충 수첩 한 권쯤으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 모은 레코드는 지금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그 한 장 한 장을 소중하게 듣고 있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수라든가 양의 문제가 아니고 요는 질이 문제라는 겁니다. ----------------------------------------------------------------------- * 다케무라 켄이치 : 오오사카 태생. 정치·경제 평론가. * 다나카 가쿠에 : 니가타현 태생. 정치가. 1972년 7월 7일부터 1974년 12월 9일까지 수상으로 지내다 록히드 사건으로 사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