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관하여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후 가장 절실하게 통감하는 일은 '인간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기 이전에도 일상 생활 속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던 터라 새삼스레 그렇다는 걸 통감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글쟁이가 되기 전에는 실수를 해도 대충 '아, 미안. 실수였어'하면 그만이었다. 상대방도 '정말 도저히 구제불능이군'하고 탄식하는 정도로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노라면, 실수란 반드시 확고한 형태로 남고, 그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살포되기까지 한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아, 미안. 실수였어'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에는 스스로 자초했다고는 하나, 상당히 견디기 힘들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도 좀 뭣하지만─나는 타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타인의 실언을 들춰가며 '어이, 자네 말이야. 지난번에 그런 말 했지, 그렇지. 말이지 말야'하고 시비를 거는 일은 전혀 없다. 덕분에 십사년간 그럭저럭 평온한 부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문장상의 실수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텍스트가 있으니까, 나보다 어학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텍스트와 번역문을 꼼꼼하게 대조하면 자잔한 실수 같은 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근자에 카츠시카구에 사는 모리시타라는 분으로부터 엽서를 받았는데, 「귀하의 번역문 중에 a couple of weeks가 '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주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받았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순전한 나의 실수이다. 죄송할 뿐이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또 드러내는 것 같지만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적도 있다. 'bald'와 'bold'를 혼동해서 번역한 적도 있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였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학생시절에 시험을 치르면 답안지에 '사소한 실수가 많으니까 문제를 잘 들여다보도록'이라는 언질이 몇 번이고 씌어 있었는데, 그런 성향은 나이를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이런 얘기를 쓰는 것은 어쩐지 변명을 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문장하나 단어 하나를 정확하게 번역하고자 온 종일 끙끙거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한다. 그리하여 그런 중요한 부분을 간신히 통과하고 비교적 평범한 부분으로 들어서면 후 하고 긴장이 풀어져 하찮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나중에 텍스트와 번역문을 몇 번이나 대조해 보는데도, '이런 곳에서는 실수를 할 리가 없어'라는 선입견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검토를 하는 사이에도 실수는 발견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타인에게 지적받을 것까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오역을 나중에 아차 하고 깨닫는 경우도 있다. 밤에 이부자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멍하니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아차, 잘못했어. 이건 실수다!'하고 벌떡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부주의로 생긴 실수라기보다 한층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실수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자보다 훨씬 식은땀의 양이 많아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저지른 수많은 부주의를 전부 끌어 모아 병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꽤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글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믿기 어려운 실수를 범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변을 봐야지'하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던 것이 목욕탕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아니, 좀 이상한데. 아직도 소변이 보고 싶은 걸. 몸 상태가 좀 이상한건가'하고 의심하는 정도의 일은 다반사다. 그런데 비하면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건 꼭 터무니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열차 시간표나 전화부를 만드는 회사의 편집자가 안되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번역만이 아니고, 지금처럼 자신에 관한 문장을 쓸 때도 가끔씩 형편없는 실수를 한다. 그러나 나는 데이터를 참고로 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가며 글을 쓰는 타입의 글쟁이도 아니고, 모델 소설이나 논픽션도 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딱히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으므로, 대개의 실수나 사실 오인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며칠 전 아키시마시에 사는 오카무라란 분으로부터, 무라카미씨의 소설중에 '폭스바겐의 라디에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투서가 모 잡지에 실렸는데 알고 계십니까 라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관해서는 잘 모르니까, 누구에게 물어 봤더니 역시 폭스바겐 비토르에는 라디에터가 없다고 한다. 영락없는 실수다. 그러나 그 일로 내가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하는가 하면, 역시 웃어 넘기고 만다. 왜나하면 그건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가 줄어들어 손 바닥 위에 올라탄다 해도,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터가 붙어있다 해도, 베토벤이 제11번 교향곡을 작곡했다 해도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아, 그래. 이건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터가 붙어있는 세계의 얘기란 말이지!'하는 상상력으로 소설을 읽어 준다면, 나로서는 무척 기쁘겠다. 암만 그래도 실수는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강직한 분께서는 근일 중 출간될 영어판 속에다는 그 부분을 올바르게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십시오─하고 음흉하게 선전까지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