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있다가 내릴 때가 다 되어 요금을 지불하려고 했더니
공교롭게도 지갑 안에는 만엔짜리 지폐밖에 들어 있지 않고, 운전수도
잔돈이 없어 허둥지둥할 때가 더러 있다.
옛날에는 그럴 때면 '담배가게 앞에 세워 주십시오.' 라고 말하여,
담배를 사 돈을 바꿨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담배를 끊고 난 후로는, 
그렇게도 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는 하면,
나는 대게 화장품 가게 앞에다 차를 세워 달라고 하여, 쉐이빙 폼을 
사서는 잔돈을 받아 택시 요금을 지불한다.

어째서 쉐이빙 홈인가? 어때서 같은 화장품 중에서도 샴푸나 파우더나
애프터 쉐이빙 로숀이나 오데코롱은 안되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해도
난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나는 그냥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쉐이빙
폼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쉐이빙
폼을 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택시 요금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인데, 그 후
온종일 쉐이빙 폼 깡통을 껴안고 거리를 어물쩡거리지 않으면 안될
처지가 된다.좀 이상한 얘기지만, 쉐이빙 폼을 한손에 들고 거리를
걷다보면, 거리가 여느 때와는 좀 다르게 보인다.권총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거리를 걷고 있으면 거리가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보인
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지만
쉐이빙 폼만으로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바에 들어가 카운터 위에다 쉐이빙 폼이 들어 있는 꾸러미를 슬며시
올려 놓고, 위스키를 즐기는 것도 상당히 멋스럽다. 뭐 그런다고 무슨
대단한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외국에 가면 반드시 그 지방의 수퍼마켓에 뛰어 들어가 먼저 쉐이빙 
폼을 산다. 그리고 그것을 호텔 목욕탕의 선반에 면도기며 칫솔이랑
함께 나란히 늘어놓는다.그러면 그제서야 '아아, 외국에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나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제품은 질레트의 '트로피칼 코코넛'이란 
쉐이빙 폼인데, 그것으로 면도를 하고 있노라면 창밖으로 와이키키
해변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