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하여(2) 옛날,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당시 <태양>의 편집장이었던 아라시야마 코자부로씨에게서 '아, 무라키미군, 자네는 줄곧 맥주만 마시는 모양인데, 그건 아직 젊기 때문이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맥주에서 다른 술로 기호가 바뀌게 되는 법일세, 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 그렇습니까?' 하고 그때는 반신반의했는데, 과연 그로부터 육 년 남짓 지난 요즘 유심히 생각해 보니, 전체 주량 중에서 맥주가 점하는 비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시는 맥주의 양 자체에는 변함이 없는데, 거기에다 더하기 위스키나 포도주를 마시는 양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젊었을 시절에는 그렇게 술을 마시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데 본디 위가 튼튼한 터라 나이를 먹음에 따라 보통이나 보통을 약간 넘을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한가지 일을 끝내고 술잔을 기울일 때의 기분이란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소확행(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중의 하나이다. 외국 속담에 '인생에 있어서 행복은 세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먹기 전의 한 잔과, 먹은 후의 한 대이다.'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를 먹어서 주량이 늘었다고 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나와 동세대인 사람들 대부분을 내장에 무슨 고장이 생겨 '아니. 나 그렇게 못 마셔.' 하면서 두세 잔으로 끝내고 만다. 특히 젊었을 때 주량이 많았던 사람들 중에 이런 예가 많다. 정열적인 투수가 어깨를 못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지나치게 마셔댄 탓에 내장이 피폐하고 만 것이다. 아울러 회사에 다니는 인간은 삼십 대 후반에 접어 들면 관리직에 올라있게 되므로 많든 적든 스트레스도 쌓이고, 처자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해서 비교적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인생, 마시고 싶은 만큼 실컷 술을 마실 수 있을 때가 꽃이다. 시부야의 역 앞 같은 데서 단숨에 마셔 치우기를 한 후 시끌벅적한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을 보면, 앞으로 십오 년만 지나면 이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주머니에다 위장약을 숨겨 두고 술을 마시겠지, 하고 상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환성중에서도 제행무상의 울림을 들을 수 있어 제법 정취가 있다. 하기야 나도 학생시절에는 매일처럼 근처 선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셔대던 시기가 있었다. 대개는 싸구려 정종으로, 그걸 꿀꺽꿀꺽 마셔대니까 당연히 뒤끝이 안좋다. 누군가가 취해 나동그라지면 대학 구내에서 '미제타도'라고 씌어 있는 플랭카드를 뜯어와 그것을 들것 삼아 하숙집까지 운반한다. 플랭카드도 그럴 땐 제법 쓸모가 있다. 딱 한번 운반되던 도중에 플랭카드가 찢어지면서 친잔소의 옆 계단에다 신나게 등을 부딪힌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동도 한 넉 달쯤 가다가 끝이 나고, 그 이후로는 모두와 왁왁거리며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어지고 말았다. 요컨대 사람 사귐새가 나빠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튼튼한 위에 한층 더 광을 내가며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고, 술을 마셨다고 뒤끝이 안좋은 법도 없고, 가슴 언저리가 쓰리고 아픈 일도 없다. 실제로 볼 수 없어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내 위는 제법 좋은 색깔에, 돌고래처럼 매끌매끌 씽씽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바다에다 풀어놓으면 어딘가로 헤엄쳐 가버릴 듯한 기분마저 든다. 다시 돌아와서 술 얘기. 나는 지금은 정종이란 걸 거의 안마시는데, 그것은 학생시절에 정종으로 줄곧 곤욕을 치뤘던 후유증이다. 그 책임은 백 퍼센트 내쪽에 있지 정종쪽에는 없다. 만약 정종을 안마신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한다면 나는 자기 변호를 일절 포기하고, 그 죄값을 달게 받을 생각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맥주의 나라에 가면 나는 분명 VIP급의 빈객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비량만 해도 상당하고, 소설 속에서도 꽤나 맥주지지론을 펴며 광고를 해왔다. 나의 소설을 다 읽자마자 곧장 술가게로 달려가 맥주를 사왔다고 하는 사람도 몇 명이나 알고 있다. 소설의 질이야 어찌 됐든 적어도 어떤 종류의 효용은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포도주도 꽤 마시게 되었고, 지금도 부동액 소동은 나 몰라라 하고 어김없이 마시고 있다.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몇 번인가 꼬임에 빠져 야마나시현의 양조장에 다니는 사이에 홀딱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가 마시는 포도주는 그리 속물적인 것은 아니고, 제일 싼 캘리포니아 와인을 사 와서는 페리에를 섞고 거기에다 레몬즙을 짜 넣어, 주스 대신으로 꿀꺽꿀꺽 마시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또 꽤 맛있다. 리차드 브로티간을 알콜중독자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가로의 푸어보이 보틀(손잡이가 붙어 있는 대형) 같은 건 그냥 보기에도 거칠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왔다이다.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마시기에는 로트실트의 적포도주가 최고이지만, 이건 한병에 이만 엔 이상이나 하니까 그렇게 자주는 마실 수 없다. 위스키는 비교적 비싼 것을 좋아하여, 외국으로 나갈 때마다 면세점에서 시바스 리갈과 와일드 터키를 사 가지고 와, 주로 언더 록으로 마신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빈 병, 빈 깡통을 회수하는 날이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다. 그날 한 달에 걸쳐 마신 포도주병이며, 위스키병이며, 보드카병이며, 맥주캔을 지정된 장소에 내다 놓아야 하는데, 이게 무시 못할 양이다. 양손에다 주머니를 들고 두 번쯤 왕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얼렁뚱땅 내버리지는 않는지 체크하는 동네 아줌마가 '무라카미씨, 알고 보니 술꾼이로군요.' 하며 어이없어 한다. 매달 매달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 ♣ 최근 어찌 된 판인지 정종이 몹시 좋아져, 대낮부터 메밀국수집에 들어 앉어 쫄쫄거리며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미즈마루씨에 의하면 '무라카미군, 그건 인간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이야.' 라는데, 정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