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하여(1)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은 편이다. 집에서도 홀로 레코드를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맥주나 위스키, 포도주를 찔끔찔끔 마시고, 밖에 나가서도 훌쩍 바 같은 델 들어가서는 두 세 잔 마시고 돌아온다. 물론 나는 자폐증 환자가 아니니까─요전에 삼 년만에 업계의 파티에 나갔더니 모 여성 작가가 '아니, 무라카미씨도 파티에 나오네. 자폐증이 아니잖아.' 하면서 놀라던데─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 그러나 횟수로 치자면 혼자서 마시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애당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탓이다. 거듭 되풀이하지만 나는 결코 자폐증이 아니다. 내가 자폐증이라면, 무라카미 류는 자개증(自開症)이다. 더구나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해도, 필립 말로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처럼 단정하게 앉아 조용히 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멍청하게 마신다. 조용히 혼자서 마시는 것과 멍청하게 혼자서 마시는 것은 겉 보기에도 상당히 다르다. 한신 타이거즈를 놓고 얘기하자면 마유미와 오카다만큼이나 다르다. 아니꼽게스리 그럴 듯한 대사를 읊는 것도 아니고, 트렌치 코트의 깃도 세우지 못하고, 허공의 한 점을 뚫어져라고 노려보지도 않는다. 그저 멍하게 마실 뿐이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적적한 눈빛으로 혼자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분께 한 잔 더 갖다 주시겠어요.' 하고 바텐더에게 은근하게 얘기해 주는 여성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날 턱이 없지. 안그래요). 어째서 이런 식으로 멍청하게 마시는가 하면, 우선 첫째로 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시력 차가 몹시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바깥에 있을 때면 양눈의 근육을 긴장시켜 양쪽에 비춰진 상을 인위적으로(물론 아주 자연스럽게이지만) 일치시킨다. 그러나 술집에 들어가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그 근육을 풀어 놓으니, 이른 바 '오카다 현상'이 일어나 얼굴 전체가 멍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마누라한테 늘 '당신은 나랑 둘이 있으면 왜 항상 그렇게 넋 빠진 얼글을 하는 거죠.' 하고 욕을 얻어 먹는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하루 스물 네 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이전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술집에서 일을 한 데 있다. 바텐더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주간 아사히>의 독자중 몇 명이 바텐더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하는 것은 내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이다) 카운터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는 손님이 있으면, 일하는 쪽으로서는 꽤 신경이 쓰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많다. 상대는 손님이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 물론 그렇겠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 하드 보일드적 인상을 띠고 있는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좀 불안스럽다. 그런 때는 곧 잘 잔을 깨뜨리기도 하고, 칵테일을 잘못 배합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손님으로서도 조용히 마시는 쪽 보다는 멍청하게 마시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멍청하게 마시고 있는 사람은 바텐더에게는 최상의 손님이다. 하기야 그런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되니까. 이런 식으로 혼자 술을 마시는 버릇이 들고 나면, 여자가 옆에 앉아 얘기를 하거나 술을 따르는 바 같은 델 들어가면 무척 암담하다. 눈도 일단은 긴장시키지 않으면 안되고, 화제거리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처음 대면하는사람 앞에서는 도무지 입도 뻥긋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며칠 전 호텔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한 밤중인 열 한시에 맥주가 마시고 싶어져 홀연 거리로 나갔다. 호텔 바에서 마셔도 상관은 없었지만, 불현듯 거리의 불빛이 그리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눈에 띤 스넥 바임직한 곳엘 들어가 맥주를 주문했더니, 검은 양복을 입은 형씨가 얌전하게 맥주를 날라왔다. '음, 이거 잘못 들어왔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니나다를까 그 뒤로 짧은 드레스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여자가 다가와 내 옆에 앉더니 '안녕하세요. 혼자예요?'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일로 인한 긴장을 풀기 위해서, 혼자서 맥주를 두 세 병 마시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런 때 그 방면의 명인이자 달인인 안자이 미즈마루씨라도 있다면 슬쩍 어루만져 주고는 도망칠 수 있지만, 혼자서는 그러기도 어렵다.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술집에서 여자랑 얘기를 하며 가장 난처한 것은 상대방이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이다. 상대편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별로 얘기할 거리가 없을 게 뻔하다. 따라서 날씨 얘기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직업이 화제에 오른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일을 끝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데, 나로서는 술을 마시면서 일 얘기 따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음─그러니까, 그 뭐랄까 자유업 비슷한 것인데...' 하고 얼버무리고 있으면, 화제가 곧장 동이 나고 만다. 야구 얘기를 하는 일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 얘기를 해 본들 분위기가 암울하게 될 뿐이다. 그럭저럭 별 대단한 얘기를 한 것도 없이, 맥주를 세 병 마시고 바를 나왔다. 나도 피곤했지만, 상대방 여자도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참 안됐다고 생각한다. ♣ 문득 생각이 났는데 '뜨개질 바'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여자가 모두들 잠자코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 옆에 손님이 앉아 차분하게 술을 마시는 그런 형식의 바 말입니다. "뭐 뜨고 있는데?" "음... 장갑."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조바심 태우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