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분지와 시모다카이도의 수수께끼 나는 대개는 쉽게 잠드는 편이다.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순간에는 이미 돌처럼 푹 잠들어 있는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금방 잠든다, 잘잔다, 어디서나 잔다가 내 잠의 삼대 특징인데, 어렵게 잠드는 사람들은 그런 인간이 앞에서 알짱거리면 적잖이 불유쾌한 모양이다. 나만 해도 나보다 빨리 잠드는 인간을 보면─그런 일은 극히 드물지만─그 자식 바보 아니야, 하고 생각한다. 며칠 전 처남이 우리 집에 놀러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열 한시가 되었길래 '이제 그만 잘까.' 하고 각자 잠잘 방으로 헤어졌는데, 문을 닫자마자 두고 나온 물건이 생각나 손님 방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그는 벌써 코를 드르렁거리며 숙면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가 약 십초 정도이다. 암만 나라도 잠드는데 이십 초는 걸린다. 그래서 마누라에게 '저 놈 뇌수가 거의 텅텅 비어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혀를 차며 말했더니, '당신은 뭐 다른 줄 알아요.' 하고 바보 취급을 당했다. 과도하게 건강한 인간이란, 곁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바보 같다. 하긴 나 역시 옛날부터 시종 일관 변함없이 쉽게 잠들었던 건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새벽 녘까지 한 잠도 자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의식이 상실된 것처럼 푹 잘 수 있게 된 것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어쩌면 원래 체질이 뭔가를 쓰는데 적합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심각한 내면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는 글을 쓰는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내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산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도 산적해 있고, 제대로 얘기가 통하지 않는 인간도 있고, 길을 걷다 보면 자동차와 신호가 너무 많아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정신적 스트레스와 잠이 전혀 다른 별개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요컨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하는 식이다. 1960년대에 곧 잘 여자가 '나도 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냥 좋은 친구사이로 있고 싶어.' 라는 얘기를 했는데(지금도 그런 말을 할까?), 좌우지간 뭐 그런 식으로 나의 잠은 나의 스트레스를 명확하게 구분짓고 있다. 따라서 나는 기분좋게 푹 잠잘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잠이란, 신선한 과즙이 담뿍 들어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과일과 비슷하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잘 먹겠습니다─'하는 기분으로 눈을 감고, 그 잠의 과즙을 쪽쪽 빨다가, 다 빨아먹고 나서야 눈이 떠지는 셈이다. 좀 이상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정말 그렇게 느끼는 걸요. 어쩔 수 없잖아요. 즉 잠에 관한한 나는 비교적 진지한 것이다. 꿈 같은 것도 거의 꾸지 않고, 꾼다한들 토막토막 난 단편을 간신히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동경으로 이사 오고 난 요 몇 달 사이,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확실한 형태의 꿈을 꾸게 되었다. 시골에서 오랜만에 도심으로 돌아온 터라 역시 약간을 흥분하고 있는 까닭일게라고 생각한다. 이제 곧 또 시골로 이사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꿈도 그다지 꾸지 않게 될 것이므로, 최근에 꾼 꿈을 한 세 가지쯤 여기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① 12월 22일. '눈투성이 고양이' 나는 털이 북실북실한 커다랗고 예쁜 고양이를 무릎 위에 앉혀 좋고 쓰다듬고 있다. 나도 고양이도 아주 만족해 있는 듯 행복한 기분이다. 그런데 쓰다듬고 있다 보니 손가락 끝에 뭔가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래서 뭘까 하고 털을 가르고 보니, 그게 눈이다. 아니? 하고 놀라 고양이의 몸을 살펴보니까, 있다, 있어. 온 전신에 눈이 좍 깔려 있다. 전부해서 서른개나 마흔개쯤 될까...하는 장면에서 페이드 아웃. (주:꿈과는 관련없을지 모르겠는데, 그 꿈을 꾼 날 저녁식사는 말린 아지와 데친 두부였다.) ② 2월 8일. '고쿠분지, 시모다키아도(下高井戶)' 고쿠분지에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창 밖 풍경이 아무래도 다른 데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상하군. 하고 내려 보니 그곳은 시모다카이도였다... 그것뿐. 나는 시모다카이도에 가 본 적이 없는데, 꿈속에서 본 시모다카이도는 조용하고 제법 좋은 동네였다. (주:이것도 꿈과는 별관계없겠지만, 그 전날 나는 아오야마 1가의 '르 콩드'에서 오래간만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③ 1월 14일. '자전거 타이어 소동'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앞 타이어에도 뒤 타이어에도 거의 공기가 들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거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자전거포가 눈에 띄길래, 공기 펌프를 빌려 열심히 공기를 집어 넣는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앞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면 뒤 타이어 공기가 빠지고, 뒤 타이어에 넣으면 앞 타이어가 빠져 버리고, 도무지 끝이 없다……여기에서 페이드 아웃. (주:그 전날 긴자에서 로베르 브레슨의 <상냥한 여자>를 보고, 그 후에 '미미우'에 들어가 메추리알이 들어 있는 뜨끈뜨끈한 메밀국수를 먹었다.) 이런 식으로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선명한 꿈을 꾸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리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이 선명한 꿈을 꾼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될 수 있는 한 그런 꿈과는 관계하지 않고, 잠의 과즙을 무아지경으로 쪽쪽 빨며 자고 싶다. 그런데 어째서 시모다카이도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일까? 전혀 짐작도 못하겠다. ♣ 동경을 떠나고 나자, 실제로 꿈을 전혀 안 꾸게 되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꾼 꿈은 우리 집 고양이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비슷하게 생긴 까마귀가 격투를 벌이는 꿈이었다. 말리려고 했는데, 까마귀가 무서워서 말릴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론 한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