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즐거워(2) 작년 정월 이 컬럼에다 '설날은 전혀 재미있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는 뜻의 글을 썼는데, 올해는 그래도 설날은 즐겁다는 식으로 쓰고자 한다. 나는 그렇게 뒤집어 생각해 보기를 좋아한다. 때때로 혼자서 토론을 하며 즐기곤 한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는 꼬리가 있는 편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태마를 가지고 꼬리 지지파 A와 꼬리 배척파 B를 차례차례 연기하면서. 그런 걸 해 보면 인간의 의견 혹은 사상 같은 것이 그 얼마나 불분명하고 임기웅변적인가 하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 불분명함과 임기웅변적인 부분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설날 이야기. 설날이 되면 우리 집은 일단 설 음식 비슷한 걸 만든다. 연말에 우리 마누라랑 같이 츠키지에 있는 수산 시장에 가서, 방어니 참치니 새우니 채소니 하는 것들을 듬뿍 사가지고 온다. 그러고선 무턱대고 설 음식을 잔뜩 만든다. 어떻게 숨기랴, 나는 설 음식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대개 고기류나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라, 설 음식처럼 생선이니 채소찜이니 하는 요리가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 기쁘다. 한 한달 정도 설 음식을 계속 먹는다해도 아마 질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떡국도 좋아한다. 우리 집 떡국은 내가 닭고기를 싫어하는 터라 가다랭이와 다시마로 국물을 낸 것에다, 방어살과 새우와 미나리와 표고버섯과 어묵과 홍당무와 무를 토란과 구운떡을 집어 넣으면 그만이다. 초 이튿날에는 방어 대신에 연어살과 연어알, 초사흘날에는 삼치를 넣는다. 이런 것들이 상에 올려지면 가슴이 뭉클하도록 행복하다. 하지만 요리를 잔뜩 만들어 놓아도, 우리 집은 단 두 식구인데다가 마누라는 원래 소식이고 나는 절식을 하고 있는 중이라 좀체로 음식이 줄지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초 사흘쯤 되면 둘다 먹기를 좋아하는 친구 부부를 불러서 펠리니의 영화처럼 마음껏 먹고 마시도록 한다. 그 친구들이 오면 뚜껑도 열지 않은 대형 술독도, 남아 있던 포도주도 싹 팔리고, 상하기 쉬운 음식은 버리지 않아도 되니까 아주 감사하다. 식사가 끝나면 스크램블 게임이나 마작을 하면서 논다. 먹는 일 외에 설날의 좋은 점은, 우선 하늘이 깨끗하고 거리가 조용하다는 것. 트럭이라든가 그런 대형 자동차의 소음도 적다. 나는 자동차라고 하는 것에 그리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으므로 자동차가 적다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설날 아침에 거리를 뛰면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그러나 뭐가 즐거우니 어쩌니 해도 동경 중심에 살면서 설날을 맞이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지 않을까. 나는 한동안 센다가야에 살았는데, 그때는 정말 설날이 재미있었다. 우선 섣달 그믐날 저녁나절에 걸어서 롯폰기의 메밀국수집 마미아나에 가서 메밀국수를 먹고, 신주쿠로 나가 술을 마시고, 가부키초를 어슬렁거리다 영화를 보고, 그러고는 하라주쿠에 가서 토고 신사를 기웃거리다 포장마차에서 낙지 구이를 먹고, 다시 걸어서 센다가야로 돌아와 하토노모리 신사에서 제주를 얻어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가, 국물을 끼얹어 만든 계란찜을 반찬으로 뜨거운 메밀국수를 먹으면서 홀 앤 오츠를 듣고, 그러고는 잔다. 이게 제야.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아카사카까지 걷는다. 그 일대의 분위기 또한 무척 좋다. 거리가 잠잠하고, 넓은 도로도 텅 비어 있다. 공기가 싸늘한 것이, 살갗이 따끔 따끔하다. 회화관 앞에서부터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빠져나와, 아오야마 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동경 마라톤 대회에서 세코가 고메스를 앞지른 언덕길을 내려가면 아카사카에 이른다. 왼편에 도요가와 이나리가 있어, 또 여기에 잠깐 들러 낙지 구이를 먹는다. 그러고는 다음이 히에 신사다. 히에 신사에서 복고양이를 사고, 힐튼 호텔의 티 룸에서 커피를 마신다. 이런 식으로 설날, 시내 한복판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동경이란 정말 좋은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하늘에는 스모그도 없고, 자동차도 적고, 사람도 적은 만큼 아주 느긋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행복하다. 매일같이 설날이라면 나는 기꺼이 동경이 살고 싶은데, 내 뜻대로 그럴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 지금은 치바에 살고 있다. 나는 설날에는 다른 사람 집에 가지 않는다. 텔레비젼 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이다. 너무 불평만 늘어놓고 싶지는 않지만, 설날의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는 왜 모두들 그렇게 소리를 왁왁 지르는걸까? 온 일본 땅이 일년 내내 히스테리컬할 정도로 시끄러우니, 설날 연휴 사흘 동안만이라도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방송을 중단하면 좋을텐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자동차 운전도 제한하면 좋겠다. 그러면 일본 전국이 조용해져서 좋다. 설날에는 모두 조용하게 떡국을 먹읍시다. 그런데 인간에게 꼬리가 붙어 있다면 지우개똥을 털어낼 때 굉장히 편리할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