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의 '선 셋 스트릿' 지난 회의 계속으로 영화 이야기.(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 컬럼의 일련 제목을 '지난 회의 계속'으로 하는 게 좋았을 뻔 했다.) 실은 나는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 영화 연극과란 델 다니면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영화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또 남들에 비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런 실정에 비추어 보면 대학 교육이란 그리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와세다의 영화과에 들어가 다행스러웠던 점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도 졸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과에도 일단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 이론'을 원서로 강독한다든가 하는 강의가 있어, 그 과목은 그 나름대로 예습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학생 쪽에는 '쳇, 이론을 한다고 영화를 알 수 있을 법한가.' 하는 생각이 있으니까, 근본적으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얼 하는가 하면, 강의를 땡땡이 치고 아침부터 영화관에 가 영화를 본다. 강의를 빼먹는다손 치더라도 영화과 학생이 영화를 보는 거니까, 그것은 틀림없는 공부인 셈이다. 질책을 할 여지가 없다. 그러한 연유로, 학생 시절에는 정말 영화를 많이 봤다. 일년에 200편 이상은 봤다. 당시에는 아직 <피아> 같은 잡지도 없었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내거나, 영화관을 발굴해 내는 것만으로도 고생스러웠다. 영화를 볼 돈이 없으면 와세다 본부에 있는 연극 박물관이라는 델 가서, 오래 된 영화 잡지에 실려 있는 시나리오를 한 귀퉁이부터 싸그리 읽어댄다. 시나리오를 읽는 작업은 한 번 맛들이고 나면 매우 재밌는 일이다. 본 적이 없는 영화일 경우에는그 시나리오를 따라 자기 머리 속으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쓴 빌리 와일더의 <선 셋 스트릿>도 내게는 그런 영화 중의 한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영화인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 * 에이젠슈타인(Sergei Mikhailovich eisenstein):소련의 영화감독으로 영화예술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몽타쥬 이론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