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여인 #241. #242 by Murakami Haruki 검정 플라스틱 손가방을 든 중년여인이 우리 집 현관에 서서 벨을 누르고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여자로 시각은 오후 4시 전이었다. 그녀가 벨을 누르자, 휑뎅그렁한 집 안에 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거대하고 텅 빈 위장 바닥에 앉아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중년 여성이 검은 손가방을 들고 있다는 그 조합도 왠지 이상하고, 사실 그 가방은 그녀에게 전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블라인드 사이로 살그머니 여인을 관찰했다. 연령은 40세에서 45세 사이이며 어디에나 있는, 아무 데서고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키는 크지 않다.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엷은 갈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우산은 녹색 비닐 우산이다. 지나치게 색이 짙은 드롭스같이 천한 녹색이었다. 이상한 색 배합이었다. 빗속에 서 있는 핑크색의 여인은 마치 물을 머금어 부풀어오른 심장 처럼 보였다. 팽창한 심장이 잃어 버린 보금자리를 찾아 4월의 비내리는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눈이 잘 안 보이는데, 혹시 여기가 제 집인가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긴 제 집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중년 여인은 부풀어오른 심장 따위가 아니고, 또 보금자리를 찾아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인은 단지 화장품 판매원이었다. 나는 그걸 그녀가 두 번째 벨을 누를 때 알아차렸다. 여인은 현관 차양 속으로 들어오더니, 그 때까지 들고 있던 손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고, 그 때까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접어 벽에 세우고 왼손으로 벨을 눌렀다. 그래서 손가방 측면에 붙어 있는 화장품 회사의 마크가 보였던 것이다. 마크 밑에는 #241이란 번호가 테이프로 부착되어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241호 여인인 것이다.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린 어둠침침한 방 안에 두 번째 벨 소리가 천천히 울려퍼지는 동안 여인은 주변 풍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다지 재미 있는 풍경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주택지의 풍경이다. 집과 도로와 가로수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여인은 매일 매일 질릴정도로 그런 풍경을 보아 왔을 터였다. 그런 표정이었다. 문을 계속 쳐다보는 데 지쳐서 할 수 없이 주변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뭔가에 흥미가 끌려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문 쪽으로 가지도 않았다. 물론 나가서 거절할 수도 있었다. 집 사람은 집에 없으며, 나는 화장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그렇지만 나는 그 때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어두운 방의 의자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화장품 샘플을 담은 손가방을 손에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친 듯이 보였다. 나는 창가에 앉아 두 다리를 작은 테이블 위에 얹은 채 물 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오후 4시는 술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다. 나는 평소에는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 내게는 술을 마실 만한 이유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곤혹스러웠다고 해도 좋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 기분을 잘 몰랐다. 모퉁이를 잘못 돌아 같은 곳을 언제까지나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의 접속이 어딘가에서 어긋나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암실에 들어가 사진을 현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마누라가 직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로 그녀와 이야기한 다음,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어 그대로 창가의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히 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죽고 싶어할 이유란 아무 데도 없는 것이다. 단지 나는 죽음이란 것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한번 부엌 바닥에 누워 죽은 시늉을 해 보았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계속 죽어 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나는 위를 보고 누워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숨을 멈췄다. 물론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숨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 숨을 멈추었다가 숨을 한 번 들이킨 다음 다시 숨을 멈췄다. 한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외면적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나는 죽어 있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텅 비워 보았다. 이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이것이 죽음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죽음이 아니었다. 단지 어둠이었다. 나는 단념하고 일어나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모든 건 꿈 탓이었다. 내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두운 오후였다. 뭘 생각해도, 뭘 해도 거기엔 어두운 그림자가 배어 있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책도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엇을 시도해도 안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단념하고 그냥 위스키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때 벨이 울린 것이다. 나는 가만히 여인을 보고 있었다. 저 여인은 도대체 무얼 기다리는 것일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 번째 벨 소리를 듣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0초나 40초, 대략 그 정도였다. 그래도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지도 않고, 세 번째 벨도 누르지 않았다. 변함 없이 무표정하게 층층나무 가지 언저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층층나무 가지엔 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지만, 여인은 특별히 달팽이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특별히 뭔가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건 죽은 시늉을 연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여인은 단념했다. 그녀는 #241의 손가방을 오른손에 든 채, 왼손으로 녹색 비닐 우산을 들고 자루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활짝 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문을 힐끗 쳐다보고 나서 현관을 떠나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올 때는 왼손에 손가방을 들고 오른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돌아갈 때는 그것이 반대가 되었다. 즉, 오른손에 손가방을 들고 왼손에 우산을 든 것이다. 그런 사실은 아마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우산과 가방의 위치가 어쩌다 바뀌었을 뿐이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매우 괴로운 기분이 되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거기에 확실한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 일로 나는 대단히 우울해졌다. 그렇게 된 것이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산과 가방의 위치를 전환시킨 일로, 나는 내가 그 여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던 거야.' 하고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는 단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귀찮았을 뿐이다. 나는 다시 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3일 전에 흰 뱀 꿈을 꾼 것이다. 커다랗고 흰 뱀인데, 눈은 녹색이었다.(그 여인은 우산과 닮은 색이었다.) 뱀은 큰 나무 위에 살고 있었다. 매우 큰 나무였다. 나무 이름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나무는 내 존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뿌리와 내 뿌리가 이어져 있는 것이다. 뱀이 움직이면 내 뿌리도 움직였다. 나는 그게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석유를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뱀은 타면서 아주 격렬한 소리를 냈다. 그 연기에서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 고약한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공기를 좀먹었다. 공기가 전부 뱀이 되어 그게 내 입을 통해 몸에 들어 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죽자고 뛰어 지하철로 도망쳤다. 지하철 열차 안에는 대형 냉동고가 여러 개 늘어서 있었는데, 그 속에 다람쥐 시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모두 꽁꽁 얼어 있었다. 뱀이 나를 쫓아오자, 나는 뱀을 향해 그 다람쥐 시체를 던졌다. 내가 다람쥐를 던지면 그게 뱀에게 도달하지 않고, 도중에서 곰팡이 같은 포자로 분해되어 공중에 둥둥 떴다. 그런 꿈이었다. 나는 그다지 꿈을 꾸지 않는 편이며, 어쩌다 꾸었다 해도 곧 잊어 버린다. 그래서 꿈에 거의 흥미를 갖지 않는다. 자신이 꾼 꿈만이 아니고 타인이 꾼 꿈에 대해서도, 또는 꿈이란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흥미가 없다. 그러나 이 꿈만은 잠이 깨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매우 극명하게 기억되고 있었으며 또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내가 얼어붙은 다람쥐를 잡았을 때, 손에 느낀 감촉을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내게는 그게 죽음과 관련된 꿈처럼 생각되었다. 나와는 달리 집사람은 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꿈의 분석이나 점 같은 것에도 통달해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 꿈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꿈이 지닌 의미 같은 것을 가르쳐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그 꿈 이야기를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거기에 신경이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처남이 뼈 계통의 까다로운 병에 걸려 막 입원했을 때라서, 나로서는 그런 때 굳이 그녀의 기분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동생 병의 유전성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꿈에 대한 응어리는 나쁜 예언처럼 내 속에 줄곧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빨리 잊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그 중압감은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자고 있는 동안에 입 안에 들어온 벌레를 잘못해서 그대로 삼킨 것처럼 거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했다. 그것도 쉽게는 생각나지 않을 것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 냈다. 그는 물리 교사로 오른쪽 손목에 청자색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가 칠판에 분필로 수식을 쓸 때마다 우리는 그 화상 자국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색조를 명확히 생각해낼 수 있다. 칠판의 흑색과 분필의 백색, 청자색의 화상 자국이다. 내가 그에 대해 특별히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따분했고 옷 차림새도 볼품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물리란 과목이 딱 질색이었다. 그렇지만 공평하게 보면 그는 결코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어느 날, 학교 뒤쪽의 산림 속에서 목을 매달고 죽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노조 분규 때문에 줄곧 고민했었다고 모두들 말했다. 그런 냄새를 풍기는 짤막한 유서도 있었다. 확실히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런 정도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노조 때문에 일부러 목을 매달고 죽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내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 어째서 노조 따위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그 물리 교사에 대해 잠시 동안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을 때의 그에 관해, 이제는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손목에 있는 화상 자국과 장례식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에겐 부인과 국민학생인 자식이 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건 여름의 일로 몹시 더웠었다. 모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밖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여자 아이도 몇 명인가 있었다. 나는 얼음이 녹아 버린 물 탄 위스키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다음, 그걸 손에 쥔 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택시 한 대가 집앞에 멈추었고, 거기서 감색 레인코트를 입은 중년 남성 한 명이 내렸다. 남자는 차에서 내리더니 우산을 펴고 그리고 내 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눈초리가 날카롭고 체구가 큰 사내였다. 그러나 그 사내는 길을 건너 그대로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다음에 내가 생각해낸 건, 테이블 위에 놓인 두 개의 썩은 사과에 관한 것이다. 사과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껍질이 화상으로 생긴 물집처럼 군데군데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사과는 내가 알던 한 젊은 여성이 흔적으로 남기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