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재출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후지사와의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벌어져 다시 동경으로 돌아왔다. 도심의 맨션에서 생활하게 된 지 넉달 가량되었다. 어찌 된 셈인지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집 근처여서 '그럼,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놀아 보자구.' 라고 미즈마루 씨는 꼬셔대지, <소설 현대>의 미야다 편집장은 '뭐, 여러 가지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후후후.' 하고 얘기하지, 참 여러 가지로 힘들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넉 달 남짓만에 인격이 바뀌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후지사와에서 돌연 도심으로 돌아왔더니, 어쩐지 '마궁(魔宮)의 전설'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동경에 사는 게 그럭저럭 오 년만이다. 지난번에 동경에 살았을 때는 재즈 찻집을 하면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이란 두 소설을 썼는데, 그로 인하여 심신이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는 치바로 이사를 하여 <양을 둘러싼 모험>이란 장편을 세 번째로 썼다. 그대로 마냥 동경에 눌러 있다가는 차분히 좌정하고 앉아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게는 꽤 번창했고, '딱히 가게를 정리하지 않아도 그대로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기는 느긋하게 소설쓰면 되잖아.' 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충고를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왕 하는 거라면 이 구석에서 저 구석까지 자신이 관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편한 성격인지라, 결국 가게의 권리를 팔고 시골인 치바로 물러나 붓 한자락으로 먹고 살 결심을 했다. 그러니까 동경을 떠남에 있어서 내게는 나 나름의 굳은 결의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이제 다시는 동경 같은 데 돌아오지 않겠다.' 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동경에서 가게를 하면서 촌금을 아껴가며 소설을 쓰던 시절도 그 나름으로 무척 즐거웠다. 아마도 크레이그 토마스였다고 생각되는데(<파이어 폭스>를 쓴 작가), 그가 어떤 소설의 후기에 '대부분의 처녀작은 한 밤중의 부엌 테이블 위에서 씌어진다.' 는 내용의 글을 썼다. 요컨대 처음부터 전업작가라는 것은 없으니까, 모두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사람들이 잠든 후의 잠잠한 부엌 테이블에서 갈작갈작 소설을 쓰는 것이다. 물론 서재 같은 게 있으면 거기에서 쓰면 좋겠지만, 한 밤중에 고생스레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보통 그럴 만큼 생활의 여유가 없으므로, 할 수 없이 부엌 테이블이 일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처음 두 소설 역시 '키친 테이블 소설'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가게 문을 닫고나서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를 한 두 병 마시고, 그러고 나서 아파트의 부엌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그런 소설을 지금 새삼스럽게 읽어 보면 소설의 짜임새가 꽤나 톡톡 끊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한 두 시간밖에 쓸 시간이 없으니까 이제 슬슬 소설 속으로 빠져들 만한 즈음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뚝 끊어지고 마는 셈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을 이튿날 쓰려고 하면 '응, 무슨 얘기를 썼더랬지.' 하는 식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결국 그 두 작품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단편을 끌어 모아 놓은 듯한 꼴로 완성되고 말았다. 최초의 소설을 발표했을 때 일부로부터 '참신하다, 냉철하다.' 라는 호의적인 평을 받았는데, 이건 전적으로 생활 환경의 조화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두 작품은 도회지에서 생존하는 인간의 시간성의 틈바구니로부터 쥐어 짜 낸 소설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런 형식이나, 그런 작품에 웬지 좀 수긍이 안가서 결심을 하고 동경을 떠난 것이다. 그것이 오년 전 일이다. 오랜만에 동경에 돌아와 보니, 동경의 시간성이 오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스피디하고, 훨씬 더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도 많고, 빌딩의 숫자도 늘어났고, 지하철 노선도 증설되었고, 공기는 더러워졌고, 가는 곳마다 바니 레스토랑이니 하는 것들이 즐비하고, 서점에는 구경도 못해 본 새로운 잡지가 철철 넘치고, 다케시타 거리는 정상적인 신경의 소유자는 끝까지 다 걷지도 못할 만큼 히스테리칼한 도로로 변모했다. 오 년 전에는 최첨단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죄 낡은 구닥다리처럼 보이고, 옛날에 곧잘 들락거리던 가게도 지금은 거의가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무튼 온갖 소리들로 시끄럽다. 이런 식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정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옛날 같으면 혹시 나의 마음을 매료했을지도 모르겠다. 부엌 테이블에서 한 밤중에 캔 맥주를 기울이며 소설을 쓰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거로 흘러가 버렸으며, 두 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며칠 전 한 밤중에 근처를 산책하다가 신주쿠 방향을 바라보았더니, 그 거리의 상공만이 마치 불이라도 난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네온싸인과 거리의 불빛이 구름에 반사되는 현상이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저 금빛 구름 아래에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불현 듯 뇌리를 스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