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의 오즈 야스지로와 모기향 며칠 전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감독의 영화가 레이저 디스크로 나왔다기에 세 장을 한꺼번에 사왔다. <만춘(晩春)>과 <맥추(麥秋)>와 <동경 이야기>이다.* 제작연도는 1949년, 1951년, 1963년, 세 작품 모두 하라 세츠코*와 류치슈*가 출연한 영화이다. 나는 일본 영화 중에서는 오즈 감독과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작품을 특히 좋아하여 바지런을 떨어가며 명화좌 같은 데서 보곤 한다. 그런데 오래 된 영화를 리바이벌 상영하는 극장은 대개가 소규모라 늘 만원인데다, 나이 탓도 있어 그런 곳에서 영활 두 세 편 연달아 보기란 몹시 힘에 겨웁다. 그 점 레이저 디스크나 비디로 테이프는 아주 편하다. 특히 흑백 스탠다이드 사이즈의 옛날 작품은 스크린으로 보기 보다는 화질이 훨씬 좋은 경우도 간혹 있어, 집안에서 느긋하게 보기에는 최상이다. '음, 말이지, 오즈의 새 디스크를 샀는데, 차라도 마시며 우리집에서 같이 보지 않겠어?' 하고 여자를 불러 들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기꺼이 응해 줄지 어떨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독일에서 <동경이야기>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머물며 무심히 TV를 켰더니, 방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목이 아마 <디 라이제 나하 도쿄(동경으로의 여행)>였고, 대화는 독일어로 더빙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히가시야마 치에코*가 '피곤하시죠?' 라고 물어, 류치슈가 '음.' 대답하는 장면이 'Nein!' 으로 되어 있다. '음.' 이 '나인!' 이다. 이 대사를 들으며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인들도 일본말로 더빙이 되어 있는 미국 영화를 보면, 틀림없이 묘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독일에서 <동경 이야기>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일본인이─적어도 당시의 일본인이─무턱대고 인사를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일본어 대사로 보고 있으면 그다지 거슬리지 않지만, 독일어 대사로 보고 있으면 상당히 거슬린다. 예를 들어 손님이 '그럼, 이만. 폐 많이 끼쳤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물러나려고 한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머리를 깊숙이 숙여가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게 독일 말이 되면 딱 한마디 '아우프비더젠.' 으로 끝나 버린다. 그러니 입놀림에 대사를 맞추자면 '아우……프……비……더……제……에……ㄴ.' 하는 식으로 된다. 하긴 이건 극단적인 예이지만, 요컨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대사가 무지무지 많다. "그럴까?" "그래요." "역시, 그럴까?" "그렇잖아요." "역시, 그렇겠지?" "그래요." 같은 대사를 독일 말로 들으면, 어찌 된 셈인지 형이상학적 색채를 띠기까지 하니 묘한 일이다. "그런 것인가?"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렇다." "그렇다." 이런 상황이다. 나의 독일어 실력은 상당히 어중 띤 것이라, 정말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책임 못 지겠지만, 어감으로 봐서는 그런 꽤나 변증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난해하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더빙된 오즈 감독의 영화에는 또 그 나름의 정취가 있을 것이다. 두 번 세 번 까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쯤은 보고 싶다. 나는 영어로 번역된 발자크의 소설을 좋아하는 기묘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 별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춘>이나 <맥추>는 북 가마쿠라(鎌倉)가 무대를 이루고 있어, 에노시마나 시치리가하마 주변의 풍경이 종종 등장한다. 영화로 보는 1949년 당시의 시치리가하마에는 자동차라곤 거의 없고, 아주 고즈넉하다. 물론 서핀을 하는 사람도 없다. 조깅을 하는 사람도 없다. 그 무렵의 사람들은 필시 모두 바빴을 것이리라. 오즈 야스지로가 담아 내는 그런 풍경은 늘 잠잠하고, 바람도 없고, 양지바른 쪽과도 같은 기분 좋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특히 1945년에서 1955년 정도 사이의 오즈의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풍경을 좋아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보게 된다. 놀랄 만큼 양식적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생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세부적인 얘기인데, <동경 이야기> 중에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모기향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는 모기향이 나오는 장면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어느 장면에도 모기향이 하나 같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요 얼마 전에 세로형 레코드 플레이어가 유행한 일이 있는데, 꼭 그런 식으로 세워진 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하도 신기하여, 모기향을 세로로 세워 놓는 방법과 그 이점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런 세로형 모기향이 실제했던 것일까? 아니면 오즈 미학에 따라 억지로 모기향을 세로로 세워 놓은 것일까? 그리고 독일인은 그게 모기향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 최근에 디스크로 나온 <동경의 황혼>에 대해서는 나도 미즈마루 씨도 감탄해 마지 않고 있습니다. 저 악동 바텐더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세로형 모기향에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 * 오즈 야스지로 : 동경 태생. 영화 감독. * <만춘> <맥주> <동경 이야기>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의 애환을 드라마틱하지 않은 잔잔한 영상과 지극히 억제된 내면적인 연기로 그려 낸 걸작이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하라 세츠코는 조용하고 정숙한 딸 연기를 하여 순응하는 여인상을 구축했다. * 하라 세츠코 : 여배우 * 류치슈 : 구마모토현 태생. 영화 배우. * 나루세 미키오 : 동경 태생. 영화 감독. * 히가시야마 치에코 : 치바현 태생. 여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