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화(1) by Murakami Haruki 3년 동안 교제하고 나서 결혼하기로 약속한 애인이 도넛화(化)해 버리고 그래서 우리들 사이가 거북했을 때쯤 -도대체 어느 누가 도넛화 해 버린 애인과 잘 지낼 수 있겠는가 ? 나는 매일 밤마다 고주 망태가 되어 <황금>에 나오는 험프리 보가트 처럼 비쩍 마르고 초췌해져 있었다. "오빠, 제발 부탁이니깐 그녀 일은 단념해요. 이러다간 몸을 망치고 말겠어요." 누이 동생이 충고해 주었다. "오빠 마음은 잘 알지만, 한번 도넛화해 버린 것은 다신 원상 복귀되지 않아요. 이젠 분명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분명히 그녀 말대로이다. 여동생이 말하듯, 한번 도넛화한 것은 영원히 도넛화된 채인것이다. 나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작별를 고했다. "너하고 헤어지는 것은 괴롭지만,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봐. 네 일은 평생 잊지 않을거야..... 어쩌고 저쩌고..." "당신은 아직도 모르시는군요." 도넛화한 애인이 말했다. "우리들 인간 존재의 중심은 무(無)예요. 아무 것도 없는 제로라구요. 왜 당신은 그 공백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하지 않죠? 왜 주변 부분에만 눈길이 갈까?" 왜? 라고 질문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내쪽이었다. 왜 도넛화한 사람들은 그처럼 편협하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는 애인하고 헤어졌다. 그것이 지금부터 2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작년 봄, 이번에는 여동생이 아무 예고 없이 도넛화해 버렸다. 대학을 나와 일본 항공에 근무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출장간 삿포르의 호텔 로비에서 갑자기 도넛화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집에 틀어박혀서 매일매일을 울면서 보내고 있다. 나는 가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잘 지내?" 라고 물어본다. "오빠는 아직도 몰라?" 도넛화한 여동생이 말한다. "우리들 인간 존재의 중심은 ........" 도넛화(2) 다시 죠치대학 도넛 연구회라는 데에서-정말 요즘 대학생들이란 별의 별것을 다 생각해 낸다니까- 도넛의 존재방식에 관해서 애기를 나누고 싶은데 심포지움에 참가해줄 수 없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좋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나도 도넛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고, 지식, 식견, 감상안, 어느 면으로나 아직 어지간하 대학생한테 지지는 않는다. 죠치대학 도넛연구회의 가을 모임은 호텔 뉴오타니 홀에서 개최되었다. 밴드 연주라든가, 도넛 맞추기 게임이 있었고, 저녁 대신 스낵이 제공되고 나서 옆방에서 문화 인류학자라든가, 요리 평론가 등이 참석했다. "만일 도넛이 현대 문학에서 힘을 지닐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식하의 영역을 아이덴티티화하는 어떤 종류의 개인적 수속력(收束力)에 다이렉트하게 커미트하는 불가결의 팩터(factor)로서....." 사례금은 5만엔 이었다. 나는 그 5만엔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텔의 바로 자리를 옮겨, 도넛 맞추기 게임에서 알게된 불문과 여자 대학생하고 둘이서 보드카 토닉을 마셨다. "결국, 당신 소설도 좋든 나쁘든 간에 도넛적이라구요. 플로베르는 틀림 없이 도넛 일 따위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플로베르는 아마도 도넛 일따위는 생각도 안해봤겠지.그렇지만 지금은 20세기이고, 이제 곧 21세기가 되려고 하는 시기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플로베르 이야기를꺼내면 곤란하다. "도넛은 나다." 라고 나는 플로베르 흉내를 내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세요." 라고 말하고 여대생은 킬킬 웃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불문과 여학생을 웃기는 데에는 제법 소질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