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있어서의 정보의 존재 양식 지난 회 그리스란 나라는 재밌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계속. 그리스란 참 희한한 나라다. 거리를 다녀 보아도 책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에 띄는 것도 아주 작은 규모인데다 손님은 하나도 없다. 수도 아테네가 그런 형편이니까, 지방으로 가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요컨대 책 같은 건 아무도 안 읽는 것이다. 그러면 뭘 하는가 하면,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들어 이러쿵저러쿵 토론을 하며 나날을 보낸다. 그만큼 얘기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지 않을까 싶다. 사정이 그러니,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도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에서는 정보는 먼저 TV에서 보도하고, 신문으로 확대대며, 잡지에서 보충되고, 책으로 확인되는데, 그리스에서는 무슨 정보가 한 가지 들어오면 동네 아저씨들이 카페에 모여들어, 그것에 대해 이런 것도 아니다 저런 것도 아니다, 하면서 끝낼 줄 모르고 떠들어 대는데, 그 결과로써 막연한 여론 같은 것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여론 형성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런만큼 사리 정연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령 버스를 타고 시골을 여행하고 있노라면, 그리스인 할아버지가 내게로 다가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며, 그리스어로 뭐라 뭐라고 술술 얘기를 한다. 귀를 귀울여 들어 보니, '1944년에 독일군이 여기에서 마을 사람 250명을 학살했다.' 는 얘기인 듯하다. 그러면 버스 안에 있는 그리스인들이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음, 맞아 맞아.' 하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는 나치스를 용서할 수 없어.' 라고 말하면, 또 모두들 '음, 그래 그래'하고 고개를 주억 거린다. 벌써 사십 년이나 지난 옛날 일인데, 모두들 그 당시의 학살을 마음 속으로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너무 완고하다고 하면 그뿐인 얘기겠지만, 반대로 너무나 간단하게 매사를 강물에 흘려보내거나 사고 체계를 십 년에 한 번씩 쉽사리 바꿔 버리는 국민성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쪽이 나은가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