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도 서로 다른 수많은 성격이 있듯, 고양이에게도 실로 다양한 성격이 있다. 나는 대체로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우리집 고양이의 움직임을 종종 관찰하곤 하는데, 아무리 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고양이가 열 마리 있다면 거기에는 열 가지 개성이 있고, 열 가지 버릇이 있으며, 열 가지 삶의 모습이 있다. 그야 살아있는 생물이니까 당연하잖느냐고 하면 그뿐인 얘기지만,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로 신통한 일이 많아, 줄 곧 '거 참 신기하다, 신통하다.' 하고 생각하면서 고양이를 구경하다 하루 해를 보내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열 한 살짜리 샴종 암코양이와 네 살짜리 애비시니언종 수코양이가 있는데, 성격의 복잡함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나이를 먹은 샴고양이 쪽이 역시 연륜이 깊다. 그녀는 먹이를 주어도 곧장 입을 대는 법이 없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흥, 밥이야.' 하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휑하니 저쪽으로 가, 한동한 꼬리를 날름날름 핥는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 열기가 사그라졌을 즈음에 다가가서는 '이제 먹을까.' 하는 식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어째서 그렇게 일일이 거드름을 피우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또 그녀는 추운 계절에 이불 속으로 들어올 때면, 반드시 세 번은 이불 속을 들락날락하는 습관이 있다. 우선 이불 안에 들어가 길게 누웠다가는 잠시 생각한 후, '아무래도 안되겠다.' 는 듯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이런 동작이 세 번 거듭되다가, 네 번째에서야 간신히 안심하고 잠드는 것이다. 이 의식에 대충 십 분에서 십 오 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어떤 식으로 생각해봐도 이건 단순한 시간 낭비다. 고양이쪽도 성가실테고, 내쪽도 이제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고양이가 들락날락거리니까 울컥 화가 치민다. 세상에는 '삼고의 예' 라는게 있는데 고양이가 한밤중에 그런 의식을 치러야 할 필연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때때로 어째서, 어떤 이유로, 어떤 경과를 통하여 그런 버릇이 일개 고양이의 머리 속에 생겨나게 되었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 나름의 유아 체험이 있고, 사춘기의 뜨거운 고뇌가 있고, 좌절이 있고, 갈등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한 개체로서 고양이의 주체성이 성립되어, 그녀는 겨울 밤에 정확하게 세 번 이불 속을 들락날락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일까? 고양이는 그런 많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