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지럽히기와 손가락 자르기 내가 본 영화의 고문 장면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간지럽히기 고문이다. 영화 제목이 뭐였는지는 잊어 버렸는데, 오래 전의 B급 서부극이었으니까 앞으로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간지럽히기 고문이란 어떤 건가 하면, 우선 나쁜 편 갱단이 좋은 편의 애인을 붙잡아 어디엔가 감금한다. 그 다음 좋은 편이 나쁜 편 중의 한 놈을 붙잡아 테이블 위에다 눕혀 포박해 좋고는 애인이 있는 곳을 대라고 질문하는데, 영화의 세계에서는 대개 좋은 편은 그리 난폭한 짓을 못하도록 설정돼 있으니까, 나쁜 편도 그런 것 쯤 이미 알고 있어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시간만 흐르자 좋은 편은 그만 지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게 되는데, 그 당시의 성냥이 또 로맨틱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악당의 발바닥에다 푸시식하고 성냥을 긋는다. 그런데 그 악당은 극단적으로 간지럼을 잘 타는 인간이라, 참지 못하고 끝내 쿡쿡하고 몸을 뒤튼다. 일이 이렇게 되면 그 다음은 간지럽히기 고문밖에 없다. 새털 같은 것을 찾아와서는 발바닥을 간질간질 간지럽히거나, 연필 끝으로 글씨를 쓰거나 하면, 악당 쪽은 견딜 수가 없어 그만 실토하고 말 게 된다. 이런 고문은 명랑 쾌활해서 좋다. 반대로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끔찍했던 것은 버트 레이놀즈의 <샤키즈 머신>으로, 이 영화는 애인이 있는 곳을 실토하지 않는 형사가 그 탓에 손가락을 칼로 하나 하나 잘리워 나가는 얘기인데, 기억을 되살 리는 것만으로도 한기가 오싹 든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더 야쿠자>에서 다카쿠라 켄이 새끼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 때문에 미국 관객이 몇 명이나 실신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샤키즈 머신> 쪽의 고문 장면이 훨씬 충격적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보고 있으면 식은 땀이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트 레이놀즈가 분한 샤키 형사는 그 나이프를 기차게 다루는 동양인을 향해 '너 이 자식, 베니하나의 요리사지.' 하고 조롱한다. 이런 부분이 버트 레이놀즈의 진면목이다. - 멜 부룩스의 <세계의 역사 파트 Ⅰ> 고문 얘기를 끈질기게 계속한다. 영화의 고문 장면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우익적 장면은 단연 멜 부룩스의 <세계의 역사 파트 Ⅰ>에 나오는 토르케마다의 종교재판이다. 이것은 스페인의 사법관 토르케마다가 17세기에 이교도를 붙잡아 들여서는 곤욕을 치르게 했던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패러디화한 것인데, 대단히 끔찍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니까 기회가 있으면 꼭 보시길. 특히 에스터 윌리암이 주연한 왕년의 MGM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풀 신 같은 것은 포복절도할 정도이다. 하긴 이 멜 부룩스의 영화는 그저 재미있게 웃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잘 보면 전체를 통하여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묘사한 역사 영화로, 그런 의미에서 제법 뼈대가 있는 작품이다. 멜 부룩스는 우디 알렌과 마찬가지로 부룩클린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부룩클린 출신의 유대인이 종종 그런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구박을 받으며 자라났다. 인간은 계속적으로 천대를 받으면 두 종류의 반응을 나타낸다고 한다. 즉 폭력적이 되어 상대에게 복수를 하든가, 익살꾼이 되어 상대방을 웃기든가. 유대인에 한해 말하자면 전자의 대표적 인물이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이고, 후자의 대표가 막스 브러더스와 멜 부룩스이고, 그 중간 정도에 우디 알렌이 위치한다. 나는 멜 부룩스와 막스 부라더스를 상당히 좋아한다. 멜 부룩스의 <세계의 역사>에서는 유대인이 끊임없이 천대를 받는다. 로마편에서는 유대인 코미디언과 유대교도라고 자칭하는 흑인 노예(물론 새미 데이비스가 모델이다)가 독재자 시이저에게 고난을 당하고, 스페인편에서는 아까도 말했듯이 유대교도가 토르케마다에게 고문을 당하고, 프랑스 혁명편에서는 유대인 소변 담당이 루이 16세를 대신하여 목이 잘릴 뻔한다. 무척 불쌍하다. 하지만 마지막에서는 <스타워즈>식으로 유대인이 우주적 레벨에서 해방되는데, 이 대단원은 영화를 보면서 즐기시길. --------------------------------------------------------------------- * 토르케마다(Tomas De Torquemada)의 종교 재판 :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국가 기관으로 운영하던 종교재판소의 초대 장관을 지냈던 토르케마다는 가장 격심하고 무참한 종교 재판을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