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하여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이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에게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족자를 만들어 도코노마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글자 밑에 쇠로 된 아령그림 같은 게 들어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가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증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 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그 아무리 병약하다 한들 노력하지 않고도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내는 법이다. 의식적인 자기 훈련 따위 천재에게는 인연이 없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로써 나는 천재가 아니므로, 그 나름의 체계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건강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단한 재주도 없는 주제에 병적인 경우가 작가에게는 가장 불운한 패턴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좌우명을 족자로 만들 것까지도 없이, 나는 대충 건강한 인간이라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일이 없고, 근 이십 년동안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본 일조차 없다. 약도 안먹고, 신체상에 이렇다 하게 신경이 쓰이는 증상이 나타난 적도 없다. 어깨 결림, 두통, 숙취로 고통을 받은 경험도 전혀 없다. 단 불면증은 이십 대 초반에 몇 번인가 경험해 본 듯한 기억이 있긴 한데, 지금은 깨끗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두통이나 어깨 결림이나 숙취로 인한 고통이 실제로 얼마만큼 심각한 것인지, 나는 짐작도 안간다. 짐작을 할 수 없으니 동정심도 그다지 일지 않는다. 이따금 마누라가 '오늘은 머리가 아파요.' 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어, 그래.' 라고밖에 대꾸할 길이 없다. 내게 그런 말은 반인반어(半人半魚)가 '오늘은 아가미와 바늘이 닳아서 아파요.'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육체적 통증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자넨 말이야, 동정심이 부족해.' 라는 비난을 듣는데, 그건 착각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정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 증거로 치통이나 배멀미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의자에 정강이를 부딪혀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언제나 진지하게 동정을 한다. 숙취로 인한 고통도 잘 납득이 안가는 고통 중의 하나이다. 나는 별 대단한 양은 아니더라도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인간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술에 만취하는 일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숙취 때문에 그 다음 날까지 정신을 못차리는 일은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취했어도 이튿날 아침 햇살이 창으로 새어 들면 생생하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가서 친구에게 가끔 '이튿날까지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떤데.' 하고 물어보아도, 누구 하나 정확한 묘사 혹은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다. '좌우지간 머리가 무겁고, 속이 쓰리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난다구.' 라는 정도의 대답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좌우지간이란 말만 가지고서야 '머리가 무겁다'는게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동정을 할 여지도 없다.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봤자 '그것 참 시끄럽게 구네. 숙취로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은 숙취의 고통을 알 수 없다구.' 하고 조롱당하는 게 고작이다. 숙취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말투를 쓰게 되는 모양이다. 며칠 전 모처에서 맥주를 몇 병인가 마신 후,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포도주를 집중적으로 마시고는 꽤 취해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자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일곱 시경에 눈을 뜨니. 엷은 안개가 낀 듯 머리 속이 뿌옇다. 그래서 불현듯 '이게 가벼운 숙취 현상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식사를 하고서 한 12킬로미터 정도 달리기를 하다 돌아오니 그 몽롱함을 깨끗이 걷히고 없었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저 말이지, 그런건 숙취라고 안그래. 숙취로 나른할 때는 식욕 같은 것도 전혀 없고, 애당초 달려 보겠다는 욕망 따위 일지도 않는다구.' 라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숙취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변비, 치질, 꽃가루 알레르기, 신경통, 생리통(이건 뭐 당연하다), 현기증, 식욕 부진 하는 류의 증상도 나는 좀체로 이해를 못하겠다. 속이 메슥거리거나 설사, 치통, 피로, 감기, 고소(高所)공포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건강하지 못함에 대해 서로 나누는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으면, 당사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상당히 흥미롭다.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끼리 건강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기보단 훨씬 재미있다. 그건 분명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감대이 질이 높은 까닭일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치질이나 변비 이야기로, 본인은 몹시 힘겨워 고통스러운 것 같은데 당장 목숨에 관계되는 병이 아니니까, 이야기가 세부적인 데까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비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통하지만 재밌다. 재미있지만 비통하다─는 감정은 건강한 몸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감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