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 관하여(1) 개미란 동물은 위대하다. 빈 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옛날부터 개미를 쳐다보는 걸 좋아해서 틈나는대로 곧잘 개미를 관찰하는데, 며칠 전에도 집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발 밑에서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개미 떼들이 있어, 십 오분 정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개미란 동물은 땅속에 구멍을 파서 집을 짓는데, 구멍을 팔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판 흙을 어떻게 땅 위로 운반해 내는가이다. 이 점은 영화 <대탈주>를 보신 분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제법 성가신 문제다. 개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면 그게 또 참 단순하게도 모두들 한 알갱이씩 흙을 앞 발로 부둥켜 안고 지상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꽤 고된 노동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개미라고 하는 것은 일하는 게 본분이니까, 뭐 당연하다고 치자. 내가 위대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 흙알갱이를 떨궈 놓는 방식이다. 땅 위에까지 흙톨을 날라도 개미는 결코 그 흙톨을 아무데나 손쉬운 곳에 휙 하고 내던지고 돌아서는 법이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간 입구 주변에 모래산이 생겨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걸, 개미는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미는 구멍에서 나와 30센티미터 혹은 5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적당한 곳을 가늠해서는 흙톨을 놓고, 다시 구멍 속으로 돌아간다. 그 '가늠하여'라는 분위기가 개미의 뒷 모습에 배어 있어, 곁에서 보고 있으면 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개미가 그런 것은 아니고, 개중에는 입구 옆에다 흙톨을 던져 놓고 휑하니 돌아서는 몰염치한 녀석이 있기도 하다. 개미의 세계에도 각양 각색의 개미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좀 생각해보면 너 나 할 것없이 흙톨을 멀리까지 나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칙 같은 것도 없고, 골고루 흙을 뿌린다는 관점에서 보면, 입구 가까이에다 흙을 버리고 가는 개미가 있어도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줄곧 그런 상황 판단을 하면서 움직이는 거라면, 역시 개미는 대단하다. 개미에 관하여(2) 지난 회, 개미는 위대하다는 얘기를 썼는데, 그 반면 개미란 동물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점점 무서워진다. 왜 무서운가 하면, 그들은 구멍 속에서 살며 집단 행동을 하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어도, 개미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옛날에 개미가 핵실험으로 거대해져서 인간을 습격하는 '거대개미 무슨 무슨'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런 상황 설정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게 사자떼한테 습격을 당하다든가 그런 종류라면 뭔가 생각할 여지도 있겠는데, 거대한 개미가 덮쳐 찔렸다 하면 전신이 마비되는 독침에 쿡 찔린 후 그대로 어두컴컴한 구멍 속으로 질질 끌려 들어가, 끈적끈적한 여왕 개미의 밥이 된다고 생각하면 나는 오금이 저리도록 두렵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것도 영화에서 본 것인데, 아프리카 원주민한테 붙들린 사람의 몸 야들야들한 부분에다 개미 꿀을 둘둘 발라서는 개미집 근처에다 포박해 놓는 그런 얘기도 있다. 이 '몸의 야들야들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뭐랄까, 참으로 섬뜩하다. 개미들이 깨알같이 모여 들어서는 그 야들야들한 부분을 '쩝쩝거리며'먹는 광경이 리얼하게 상상된다. 이건 이것대로 무척 겁난다. 이렇게 죽는 것도 절대로 싫다. 몸의 야들야들한 부분을 개미한테 먹히다니 싫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런 종류의 조잡한 영화가 제법 많았다. 그런 부류의 영화는 보통 변두리의 이·삼류 극장에서 보는데, 결과적으로는 시내의 아담하고 세련된 로드 쇼관에서 보는 것보단 분위기가 맞아, 제법 볼만하다. 그 밖에도 <독거미 타란툴라>라든가, 그런 핵실험에 의한 거대 생물을 다룬 영화들이 몇 편 있었다. 거대 거미라는 것도 몸 전체에 털이 잔뜩 나 있는 것이, 감촉상 징글징글하다. 거대 거미집에 걸려 죽는 것도 혐오스런 죽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