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불멸일 옛날, 한때 점에 열중했던 적이 있다. 물론 열중했다고 해야 아마츄어의 장난 비슷한 것쯤이었지만, 그래도 밤중에 의식을 한군데로 집중시키고 있으면 가벼운 트랜스 상태가 찾아와, 그런 때는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것들이 잘 맞았다. 가령 어느 여성에 관한 점을 치고 있으면, 그녀 애인의 나이라든가 고향, 형제가 몇 명이나 있는지 등등의 사연들이 제법 시원스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하고 나면 데쳐 놓은 시금치처럼 폭삭 지쳐 버리고, 친구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사례금을 받을 수도 없으므로 어느 사이엔가 그만두고 말았다. 이런 것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간주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양분되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일종의 '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딱히 점을 치는 게 아니더라도 주의 깊게 사람과 접하고 있으면, 상대방의 몸짓이니 말투니 사소한 분위기니 하는 것들로부터 여러 가지 일들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법이고, 트랜스 상태에 몰입할 수 있으면 그런 '감'은 훨씬 연마되어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트랜스 상태'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속임수일지도 모르겠는데, 긴 소설을 쓰고 있노라면 이따금 머리가 휙하고 어디론가 날아가 그와 비슷한 상태로 되는 적이 있기는 하다. 소위 말하는 '라이팅 하이'인데, 이것 또한 특별한 초자연 현상이 아니고 그냥 단순한 '감'의 확대이다. 그런 상태에 빠졌을 때 재떨이나 지우개가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쓰는 글에도 좀 으시시한 기운이 감돌텐데, 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런 일은 한번도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점이란 것을 상대하지 않는다. 운수라든가 징크스 같은 미신에도 흥미가 없다.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원칙적으로 상대를 안하기로 하고 있다. 이것은 나와 자동차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 유효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점이나 운수 같은 건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줄곧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고, 무언가 한가지에 집착하면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나는 성격상 그런 부담이 증폭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지라, 다소 운이 안좋은 일이라도 하고자 한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건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결혼할 때 점쟁이한테 '이거 참 한심한 인연이로군요.' 라는 말을 들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정말 한심한 인연이라는 걸 깨닫게 된 셈이지만, '뭐 어때.' 하고 체념하고 십오년 가까이 함께 산다. 정말 한심한 인연은 의외로 효율적인 기능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나는 툭하면 이사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점에 열중인 지기로부터 '이번엔 그만두는 게 좋겠어. 방향이 지독하게 안좋아.' 란 소리를 듣는다. 그 사람의 점괘에 의하면, 아무래도 나는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방향에서 새로 이사갈 집을 구하는 특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이사를 했다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테니까. 아픈 사람도 생기고, 일도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며, 부모가 죽는가 하면, 화재를 당할 수도 있어. 나카소네 수상도 삼선될 테니까(이건 거짓말). 두 달만 기다리라구. 두 달만 지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린다니까.' 라고 그 사람은 점친다. 그래도 나는 두 달은 커녕 단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사해 버린다. 그런 일로 한번 양 보했다가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생겨, 두 달이 반 년이 되고, 반 년이 일 년이 될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한번 물리치지 못하면, 결국은 평생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아, 무슨 말이든 상관없어. 멋대로 지껄여 보시라구.' 하는 배짱으로 당당하게 밀고 나간다. 이런 저돌적인 자세가 있는 한, 결코 운세 따위에 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예의 그 지기도 포기하고, 내 이사에는 일절 끼어들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성격은 오랜 옛날부터 변함없는 것으로,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대학 수험을 위하여 신사(神社)에서 사 온(사왔다기 보다 받아온) 잡귀를 막아 낸다는 화살을 둘로 뚝 분질러 버린 일이 있다.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앞 날을 기다려 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화살 한 대 부러뜨린 정도로 대학시험에 떨어진다면, 그까짓 대학 안가도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뭐랄까, 자포자기 비슷한 실증주의였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국립대학에는 떨어지고 사립대학은 두 군데나 패스했다. 부모님은 '사립대학은 돈이 많이 드는데.' 라면서 웅얼웅얼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 후 국립대학에 못들어간 탓에 현실적인 무슨 불이익을 당했다는 기억은 없다. 혹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다. 점괘를 믿느냐 안 믿느냐, 길흉을 가릴 것이냐 안 가릴 것이냐 하는 선택은 사람 저마다의 기호에 속하는 것이며, 타인이 이러쿵 저러쿵 끼어들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굳이 불멸일(佛滅日)에 결혼식을 올리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을 좋아한다. '불멸이 됐든 뭐가 됐든 우리는 잘 해 나갈 것이다.' 라는 신념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잘 될 것이다─라는 기분이 든다. 책임은 질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