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1982년의 이파네마 처녀▶ 햇볕에 그을리고 날씬하며 앳되고 예쁜 이파네마 아가씨가 걸어간다 걸음걸이는 삼바 리듬 경쾌하게 흔들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좋아한다 말하고 싶지만 내 마음을 주고 싶지만 그녀는 내가 있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뿐 1963년에 이파네마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역시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 는 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지 속에 갇힌 채, 시간의 바닷 속을 조용히 떠돌고 있다. 만일 나이를 먹었다면, 그녀는 이제 그럭저럭 마흔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녀는 더 이상 날씬하지도 않을 테고, 그다지 햇볕에 그을려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어린애가 셋이나 있고, 햇볕에 그을리면 피부가 상할 것이다. 물론 아직 조금은 예쁠지도 모르지만, 20년 전만큼 젊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레코드 속에서는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스탠 게츠의 벨벳 같은 테너 색소폰의 선율 속에서는, 그녀는 언제나 열 여덟이며, 활달하고 부드러운 이파네마 아가씨다. 내가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걸고, 바늘을 내리면 그녀는 곧 모습을 나타낸다. 좋아한다 말하고 싶지만 내 마음을 주고 싶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의 복도를 떠올린다. 어둡고 약간 습기 찬, 고등 학교의 복도다. 천장이 높고,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가면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들린다. 북쪽으로 몇 개의 창문이 있지만, 바로 옆에 산이 있어서 복도는 언제나 어둡다. 그리고 대개는 조용하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복도는 언제나 조용하다. 왜 <이파네마 아가씨>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교의 복도를 생각하게 되는지,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연관성이 전혀 없다. 도대체 1963년의 이파네마 아가씨는, 내 의식의 '우물'속에 '어떤 돌멩이'를 집어 넣고 간 것일까? 고등학교의 복도라고 하면, 나는 콤비네이션 샐러드를 떠올린다. 양상추와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피망과 아스파라거스, 가로로 둥글게 썬 양파, 그리고 핑 크색의 서든 아일랜드 드레싱. 물론 고등학교 복도의 막다른 곳에 샐러드 전문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 학교 복도의 막다른 곳에는 문이 있고, 문밖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25미터짜리 풀이 있을 뿐이다. 어째서 고등학교의 복도가 나에게 콤비네이션 샐러드를 연상 시키는 것일까? 이 경우도 역시 연관성은 없다. 그 두 가지가 우연히 어떤 영향을 받아 결부되어 버린 것이다. 갓 페인트 칠을 한 벤치인 줄 모르고, 거기에 앉아 버린 불행한 부인처럼. 콤비네이션 샐러드는 예전에 좀 알고 지내던 아가씨를 연상시킨다. 이 연상 은 아주 논리정연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제나 야채 샐러드만 먹었기 때문이 다. "이제......(아삭아삭)......영어 리포트......(아삭아삭)......끝냈어요?" "......(아삭아삭)......아니 아직......(아삭아삭)......약간......(아삭아 삭)...... 남아있는데." 나도 야채를 그런대로 좋아하는 편이라, 그녀를 만나면 그런식으로 야채만 먹었다. 그녀는 이른바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야채를 균형있게 먹기만 하면 모든게 잘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야채를 계속 먹는 한, 세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건강하고 사랑으로 충만할 거라고 말이다. 왠지《딸기 백서(白 書)》같은 이야기다. "옛날 옛적에 물질과 기억이 형이상학적 심연에 의해 분리되었던 시대가 있었다."라고 어느 철학자가 썼다. 1963년·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는 형이상학적인 뜨거운 모래사장을 소리도 없이 계속 걷고 있다. 아주 기다란 모래사장이며, 거기에는 잔잔하고 하얀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바람은 거의 없다. 수평선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다 냄새가 난다. 햇볕이 뜨겁다. 나는 비치 파라솔 밑에 드러누워, 아이스박스에서 캔 맥주를 꺼낸 다음 딴다. 그녀는 아직 걷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늘씬한 그녀의 몸에는 원색의 비키니가 딱 달라붙어 있다. "이봐요"하고 나는 과감히 말을 걷어 본다. "안녕하세요"하고 그녀는 말한다. "맥주라도 마시지 않겠어요?"하고 나는 권해 본다. 그녀는 약간 망설인다. 하지만 그녀도 모래사장을 거니느라 목이 마르고 지 쳐 있다. "좋아요." 그리고 우리는 비치 파라솔 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신다. "그런데"하고 나는 말을 꺼낸다. "확실히 1963년에도 아가씨를 보았어요. 같은 장소, 같은시간에." "꽤 오래된 이야기 아녜요?"하고 말하며 그녀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요. 확실히 꽤 오래된 이야기예요." 그녀는 단숨에 맥주를 절반쯤 마시고, 캔에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본다. 그것 은 보통의 캔 맥주 구멍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게 대 단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온 세계가 그리로 쑥 들어가 버릴 것처럼 생각된 다. "하지만 만났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