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가게 재습격빵 가게 습격에 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준 것이 과연 바른 선택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나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아마 그것은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으로 따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즉, 세상에는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그른 선택이 있으며, 그른 결과를 가져오는 옳은 선택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부조리성(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나는 생각한다)을 회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제로는 "무엇하나 선택하지 않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으며, 대개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생겨난 일은 이미 생겨난 일이며, 생기지 않은 일은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나는 하여간 아내에게 빵 가게 습격에 대한 이야기를 해 버린 셈이 된다. 말해 버린 일은 말해 버린 일이고, 거기서 생겨난 사건은 생겨나 버린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사건이 사람들의 눈에 기묘하게 비친다고 한들 그 원인은 사건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상황 존재 속에서 찾아야 마땅한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건, 나의 생각으로 인해서 무언가가 변할 리는 없다. 이런 것은 그저 하나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빵 가게 습격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 원인이었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 줘야겠다고 미리 마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 순간에 문득 생각이 나서 '그러면...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나 자신도 사실 그 '빵 가게 습격'이라는 말을 아내 앞에 꺼내기 전까지는 내가 전에 빵 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내게 빵 가게 습격의 기억이 나게 해준 것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공복감이었다. 새벽 두 시가 좀 안된 시간이었다. 나와 아내는 6시에 가벼운 저녁식사를 하고, 9시 반에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바로 그 시간에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잠에서 깨어 한참 있으려니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회오리바람과 같이 공복감이 우리를 엄습하였다. 그것은 부당하다고 형용하여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공복감이었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는 먹을 것이라 이름 붙여줄 만한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프렌치 드레싱과 캔 맥주 여섯 개, 말라붙은 양파 두 쪽과 버터와 탈취제뿐이었다. 우리는 당시 결혼한지 보름 정도 되는 신혼이었기 때문에 식생활에 관한 공통인식이라는 것은 아직 명확하게 확립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가 당시에 확립해 가야 했던 일들은 그 밖에도 산더미처럼 많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법률 사무소에 다니고 있었고, 아내는 디자인 스쿨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스물 여덟인가 아홉(어찌된 일인지 결혼한 해가 몇 년이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이었고, 그녀는 나보다 2년 8개월 연하였다. 우리의 생활은 무척 바빴으며, 입체적인 동굴처럼 어수선하였기 때문에 도저히 음식을 남겨두는 데에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자리를 옮겨서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다시 잠들기에는 두사람 모두 너무 배가 고팠고 - 눕는 일도 고역이었다 -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 뭔가 하기에도 배가 너무 고팠다. 이런 강렬한 공복감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번갈아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열어 봤지만, 몇 번을 열어 보아도 그 내용물에는 변화가 없었다. 맥주와 양파와 버터와 드레싱과 탈취제다. 양파의 버터구이를 만드는 수도 있기는 했지만, 말라붙은 양파 두 개가 우리의 빈 뱃속을 유효하게 채워 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양파란 다른 뭔가 하고 함께 먹는 것이지, 그것만으로 요기를 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프렌치 드레싱의 탈취제 튀김은 어때?'하고 나는 농담 삼아 제안해 보았으나 예상대로 묵살당했다. "차 타고 밖에 나가서 24시간 영업하는 레스토랑을 찾아보자" 나는 말하였다. "국도 쪽으로 나가면 분명히 그런 데가 있을 거야"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나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밖에 나가서 식사하는 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밤 열두시 지나서 식사하기 위해서 외출한다니 어딘가 틀렸다구요. 이런 면에서 그녀는 몹시 고풍스러웠다. "하긴 그것두 그래" 라며 나는 한숨 돌리고 말하였다. 신혼 때에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아내의 이런 의견(내지는 테제)는 일종의 계시와 같이 나의 귀에서는 울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의 나의 공복감이 내게는 국도 변에 있는 24시간 영업의 레스토랑에서 편의적으로 채워질 수는 없는 특수한 것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특수한 飢餓란 무엇인가? ① 나는 작은 보트에 타고 고요한 바다 위에 떠 있다. ②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 속에 해저화산의 꼭대기가 보인다. ③ 해면과 그 해저화산 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④ 왜냐하면 물이 너무 투명해서 정확한 거리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업의 레스토랑 같은 데는 가고 싶지 않다고 아내가 말하고 나서, 내가 "하긴 그것두 그래"라고 동의 할 때까지의 2초나 3초 사이에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아니므로 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분석해 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계시적인 종류의 이미지라는 사실만큼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 공복감이 이상하리 만치 강렬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식사를 위한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테제(내지는 성명)에 절반은 동의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캔 맥주를 따서 마셨다. 양파를 먹기보다는 맥주를 마시는 쪽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6개의 캔 가운데 4개를 내가 마시고 그녀가 나머지 두 개를 마셨다. 내가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 그녀는 11월의 다람쥐처럼 열심히 부엌의 선반들을 뒤지고 다녔고, 봉투 속에 버터쿠키가 네 개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냉동 케익의 받침을 만들고 남은 것으로, 습기 때문에 완전히 눅눅해져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2개씩 먹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캔 맥주나 버터쿠키는 하늘에서 바라 본 시나이반도와 같은 막막한 우리의 고픈 배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였다. 그것들은 초라한 풍경의 일부와 같이 창 밖을 재빠르게 지나가 버렸을 뿐이었다. 우리는 맥주의 알루미늄 캔에 인쇄된 글자를 읽기도 하고, 시계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냉장고 문을 쳐다보기도 하고, 어제의 석간신문을 펼쳐 보고,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쿠키 조각을 엽서 끄트머리로 긁어모으기도 했다. 시간은 물고기가 삼켜버린 납덩어리처럼 어둡고 묵직하였다. "이렇게 배가 고파 보긴 처음이야." 아내가 말하였다. "이런 일이 결혼한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모른다고 내가 답하였다.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내가 새로운 먹을 것의 단편을 찾아 부엌 안을 뒤지고 다니는 동안, 나는 다시 보트로부터 고개를 내밀고 해저 화산의 꼭대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트를 에워싸고 있는 바닷물의 투명함은 나의 기분을 지독히 불안정한 것으로 만들었다. 명치 근처에 휑한 공동이 생겨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들어가는 곳도 나오는 곳도 없는 순수한 공동이다. 이 체내의 기묘한 결락감 - 부재가 실재하는 듯한 감각 - 은 뾰족탑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진저리 쳐지는 공포감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배고픔과 고소공포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예전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나는 "그 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배가 무척 고팠었다. 그 이야기는........ "빵 가게를 습격했을 때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빵 가게습격? 대체 무슨 말이야?" 이를 놓칠 세라, 아내가 내게 물었다. 이렇게 해서 빵 가게 습격의 회상이 시작되었다. "아주 옛날에 빵 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지. 그렇게 큰 빵 가게는 아니었구, 또 유명한 곳도 아니었어. 특별히 빵이 맛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구, 그렇다구 그렇게 맛없는 것도 아니었지. 어느 곳에나 있는 동네의 평범한 빵 가게이었지. 상점가의 한가운데에 있었구, 주인 아저씨가 혼자서 빵을 구워 파는 집이었지. 아침에 구운 빵이 다 팔리면 그대로 가게문을 닫아 버릴 정도로 작은 빵 가게이었어." "왜 그런 후줄근한 빵 가게를 고른 거야?" 아내가 내게 물었다. "큰 가게를 털 필요가 없었지. 우리에게는 배고픔을 채워줄 만큼의 빵이 필요했던 거지, 돈을 빼앗으려 한 게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습격자였지, 강도는 아니었거든." "우리?" "우리라니, 누구 얘기야?" "당시에 단짝 친구가 하나 있었어. 벌써 십년전 일이지만, 우리는 둘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치약 살 돈도 없을 정도였지. 물론 먹을 것도 언제나 부족했구. 그래서 그 때, 우리는 먹을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정말 별의 별 지독한 짓들을 했지. 빵 가게 습격도 그 가운데 하나였구........" "잘 이해가 안가네" 하며 아내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새벽하늘의 색바랜 별들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듯한 눈이었다. "왜 그런 짓을 했어? 일을 안하고. 조금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빵을 사는 정도는 가능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쪽이 간단하잖아, 빵 가게를 습격하기 보단" "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지. 그 점에 대해서는 말이지, 정말 확실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제대로 일을 하고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손등으로 눈까풀을 비볐다. 약간의 맥주가 내게 졸음을 가져오려 했다. 그것은 묽은 진흙처럼 나의 의식으로 스며들어 내 고픈 배와 서로 다투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면 공기도 바뀔뿐더러, 사람들 생각하는 방식도 바뀌지. 하여튼 슬슬 잘까? 내일 둘 다 일찍 일어나야 되고" "졸립지도 않고, 빵 가게 습격 얘기가 듣고 싶어" 아내가 말하였다. ;재미없는 얘기야. 적어도 당신이 기대하는 것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럴싸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습격은 성공했어?" 나는 포기하고 새 맥주 캔의 풀 링을 뜯어내었다. 아내는 무언가를 묻기 시작 하면 끝까지 들어내고야 마는 성미인 것이다.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고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지. 요컨대 우리는 빵을 먹고 싶은 만큼 손에 넣을 수는 있었지만, 그건 强奪로서 성립한 것이 아니었거든. 즉, 우리가 빵을 강탈하려 하기 전에 빵 가게 주인이 먼저 우리한테 빵을 준거지" "공짜로?" "공짜는 아니었어. 거기가 아주 복잡하거든" 나는 이렇게 말하고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빵 가게주인은 클래식 음악의 매니아였고, 바로 그 때엔 가게에서 바그너의 서곡집을 듣고 있었지.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만약 그 레코드를 끝까지 가만히 들어준다면 가게에 있는 빵을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도 좋다고 하는 일종의 거래를 내걸었어. 나와 단짝은 그것에 대해서 상의를 했지.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어. 음악을 듣는 정도야 뭐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이지. 그건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의 노동이 아닐뿐더러, 누구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아니니까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식칼과 단도를 보스턴 백에 도로 집어넣고 의자에 앉아서 빵 가게 주인 아저씨와 함께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서곡을 들었어" "그리고 빵을 받았구나" "그렇지, 나와 단짝 친구는 가게에 있던 빵을 거의 다 보스턴 백에 쑤셔 넣고 돌아와서는 나흘인가 닷새동안 그걸 먹었지" 나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맥주를 마셨다. 졸음은 해저지진에 의해 생겨난 소리 없는 파도와 같이 내가 타고 있는 보트를 둔중하게 흔들었다. "물론 빵을 손에 넣는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범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어. 그건 말하자면, 교환이라고 할 수 있었지. 우리는 바그너를 듣고, 그 대가로 빵을 손에 넣은 것이니까 말이지. 법률적으로 본다면 상거래와 비슷한 것이지" "하지만 바그너를 듣는 일은 노동은 아니야." 아내가 말하였다. "그렇지. 만약에 빵 가게주인이 그때 우리에게 접시를 닦는다거나 유리창 청소 같은 일을 요구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미련 없이 빵 가게를 강탈했을 거야. 한데 주인은 그런 요구는 하지 않고 그저 단순히 바그너의 LP를 끝까지 듣는 일만을 요구했거든. 그래서 나와 단짝은 아주 혼란스러웠어. 바그너가 나오다니,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거든. 그건 마치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와 같은 거였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런 제안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고 당초 예정대로 칼로 녀석을 위협해서 빵을 단순 히 강탈했어야 했어. 그렇게 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야" "무슨 문제가 일어났어?" 나는 다시 손등으로 눈꺼풀을 부벼댔다. "그렇지" 나는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건 뚜렷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가 없어. 그저 여러 가지 일들이 그 사건을 분기점으로 해서 아주 조금씩 변해갔을 뿐이거든. 그리고 한 번 변해 버린 건, 다시는 원래대로 되돌아오지 않았어. 결국 나는 대학으로 돌아가 무사히 졸업했고,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사법시험 공부를 했어. 그리고 당신하고도 알게 되어서 결혼했고. 두 번 다시 빵 가게를 털거나 하지는 않게 되었지" "그게 다야?" "응, 그런 얘기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남은 맥주를 마셨다. 그리하여 6개의 캔 맥주는 모두 비었다. 재떨이 안에는 6개의 풀 링이 인어의 떨어져 나간 비늘처럼 남아 있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뚜렷이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도 몇 개쯤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서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단짝 친구는 지금 뭐해?" 아내가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 후에 약간의 트러블이 생겨서 우리는 헤어졌지.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지금 뭐하는 지도 몰라" 아내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아마 그녀는 내 말투에서 뭔가 명료하지 못한 점을 느낀 듯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점에 대해서 굳이 그 이상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헤어진 건 그 빵 가게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거지?" "아마 그렇겠지. 그 사건에서 우리가 받은 충격은 겉보기보다는 훨씬 강렬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우리는 그 후에 며칠이고 빵과 바그너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과연 우리가 취한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말이지. 하지만 결론은 안 나오더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선택은 옳았다고 할 수 있어. 누구 한 사람 다치지 않았고, 모두 나름대로 일단은 만족한 셈이니까. 빵 가게 주인 아저씨는 -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되지만, 어쨌든 - 바그너를 선전할 수 있었고, 우리는 빵을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뭔가 중대한 오류가 존재하고 있다고 우리는 느꼈던 거야. 내가 아까 저주라는 말을 쓴 건 바로 그 때문이지. 그건 의심의 여지없이 저주와 같은 거였어" "그 저주는 이제는 사라진 거야? 두사람으로부터" 나는 재떨이 안에 있는 여섯 개의 풀 링으로 팔찌 크기 정도 되는 알루미늄의 원을 만들었다. "그건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야. 세상에는 꽤 많은 저주가 있는 것같고, 무슨 곤란한 일이 생겨도 그게 어떤 저주 때문인지 알아보기란 어렵거든" "음.....그렇지는 않아." 아내는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당신이 자기 손으로 그 저주를 해소하지 않는 한, 그건 썩은 이처럼 당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 당신을 괴롭힐 거야. 당신뿐 아니라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당신을?" "지금은 내가 당신의 단짝이잖아.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공복감이 바로 그런 거야. 결혼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지독히 배가 고파 본 일이 없었거든. 이런 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틀림없이 당신에게 걸린 저주가 나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원을 만들었던 풀 링을 다시 흐뜨러뜨리곤 재떨이 속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한참동안 의식의 바깥쪽으로 물러서 있던 공복감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 공복감은 전보다 더 강렬해 져 있었고, 그 때문에 머리 속이 심하게 아파 왔다. 위의 벽이 오그라들면, 그 진동이 클러치 와이어를 통해 머리중심으로 전도되는 것이다. 나의 몸속은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들로 이루어 진 듯했다. 나는 다시 해저화산으로 눈을 돌렸다. 바닷물은 아까보다도 훨씬 투명해져 있었고,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거기에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작은 돌 하나하나까지 손에 잡힐 듯이 뚜렷이 보였다. "당신하고 같이 산 게 아직 반년 정도밖에는 안 됐지만, 확실히 어떤 일종의 저주의 존재를 나는 신변에서 느껴 왔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테이블 위로 두손을 모아 잡았다. "물론 그게 저주라는 거는 당신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걸 확실히 알겠어. 당신은 저주를 받고 있는 거야" "당신은 그 저주를 어떤 존재로 느끼는데?" 내가 물었다. "몇 년이나 빨지 않은 먼지투성이 커튼이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거 같아" "그건 저주가 아니고 나 자신일지도 몰라" 웃으며 내가 말하였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 그걸 난 확실하게 알 수 있어" "만약 당신이 말하는 대로 그게 저주라면, 나는 대체 어쩌면 좋을까?" "한번 더 빵 가게를 습격하는 거야. 그것도 지금 당장" 그녀는 단언하였다. "그것 말고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은 없어" "지금 당장?" 나는 되물었다. "그래, 지금 당장. 이 공복감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 말이지. 이루지 못한 일을 지금 이루어 내는 거야" "하지만 이런 밤중에 하는 빵 가게가 있을까?" "찾아보자구요. 동경은 넓어요. 밤새 영업하는 빵 가게가 적어도 한 개 정도는 꼭 있을 거야." 나와 아내는 중고 도요타 카롤라에 타고, 오전 두시 반의 동경거리로 빵 가게를 찾아 방황하였다. 내가 핸들을 잡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도로 양쪽으로 맹금과 같은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레밍턴의 자동식 산탄총이 빳빳하게 굳은 가늘고 길쭉한 물고기와 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었고, 아내가 걸치고 있는 윈드 브레이커의 주머니에는 예비탄환이 쩔렁쩔렁하는 메마른 소리를 내고 있었고, 스키 마스크가 두 개 들어있었다. 왜 아내가 산탄총 같은 걸 소유하고 있는 지,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스키 마스크만 해도 그렇다. 나도 그렇고 아내 역시 스키 같은 것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런 일에 대해서 그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결혼생활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완벽하다고마저 할 수 있는 장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심야영업을 하는 빵 가게를 한 채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밤중의 텅빈 거리를 신쥬쿠, 요츠야, 아카사카, 아오야마, 히로오, 롯퐁기, 다이칸야마, 시부야로 차를 달렸다. 심야의 동경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가게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빵 가게만은 없었다. 그들은 한밤중에 빵을 굽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도중에 경찰차와 두 번 마주쳤다. 한 대는 길옆에 가만히 숨어 있었고, 또 한 대는 비교적 천천히 우리 차의 꽁무니를 쫓아 와서는 앞서가 버렸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드랑이 밑에 땀이 베었지만, 아내는 그런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빵 가게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몸의 각도를 바꿀 때마다 주머니의 산탄이 베갯속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이제 그만두자. 이런 밤중에 열려있는 빵 가게가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일은 미리 사전 조사를 해 놓고서가 아니면....." "차 세워" 아내가 갑작스럽게 말하였다. 나는 허둥지둥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여기로 정했어" 그녀가 조용한 어조로 말하였다. 나는 스티어링 휠에 손을 얹어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변에 빵 가게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에는 모두 거무튀튀한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주위는 쥐죽은듯이 조용하였다. 이발소 간판이 비뚤어진 義眼과 같이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매달려 있었다. 2백미터 정도 앞쪽에 맥도날드 햄버거의 밝은 간판이 보일 뿐이었다. "빵 가게이라곤 없는 걸" 내가 말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차의 뒤칸을 열고 천으로 만들어진 점착 테이프를 꺼내서 차에서 내렸다. 나도 반대쪽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차 앞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테이프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번호를 읽을 수 없도록 번호판에 붙였다. 그리고 나서 뒤쪽의 번호표도 같은 방법으로 가렸다. 아주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선 채로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고 만 있었다. "저 맥도날드를 털자구요" 아내가 말하였다. 마치 저녁상에 오를 반찬 이야기를 하는 듯한 말투였다. "맥도날드는 빵 가게가 아니라구"라고 내가 지적하였다. "빵 가게 같은 거죠. 경우에 따라서는 타협이란 것도 필요한 거예요. 하여튼 맥도날드 앞에다 세워요"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차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포기하고, 차를 이 백 미터 정도 전진시켜, 맥도날드의 주차장에 세웠다. 주차장에는 빨간색의 번쩍이는 블루 버드가 한 대 서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담요로 둘러싼 산탄총을 내게 건네었다. "이런 거 쏴 본 일도 없고, 쏘고 싶지도 않아" 나는 항의하였다. "쏠 필요는 없어요. 들고만 있으면 되. 아무도 저항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좋죠? 내 말대로 하는 거예요. 우선 둘이서 당당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곤 점원이 어서오세요라고 하면, 그걸 신호로 재빨리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 쓰는 거야. 알았어요?" "그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리고 당신은 점원한테 총을 들이대고, 종업원들하고 손님들을 모두 한 군데에 몰아 놓는 거야. 그걸 잽싸게 해야 돼. 그 다음은 내가 할 테니까 맡겨두고" "하지만......" "햄버거는 어느 정도나 필요할까? 삼십 개정도 있으면 될까?" "아마" 내가 말하였다. 그리고 한숨을 내 쉬고선 산탄총을 받아 들고 산탄총을 둘러 싼 담요를 조금 들추어보았다. 총은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웠고, 한 밤중의 어두움과 같은 검정색이었다. "정말로 이렇게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물었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질문이었으며, 절반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이에요" 그녀가 말하였다. "어서 오세요" 맥도날드 모자를 쓴 카운터의 아가씨가 맥도날드적인 미소를 띄우며 내게 말했다. 나는 심야의 맥도날드에서 아가씨들은 일을 안하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한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으나, 금새 애써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스키 마스크를 머리위로 뒤집어썼다. 카운터의 여직원은 갑자기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 쓴 우리 모습을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법은 "맥도날드 접객 매뉴얼"의 어느 곳에도 씌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어서오세요"의 다음을 이어서 하려 했으나, 입이 굳어져 말이 잘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용의 미소 만큼은 새벽녘의 초생달처럼 그녀의 입술 언저리에 불안정하게 걸쳐 있었다. 나는 가능한 최고로 빠른 속도로 담요를 치워 내고 총을 꺼내어, 그것을 손님들이 앉는 쪽으로 향했으나, 그 곳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한쌍의 커플이 있을 뿐이었고 그것도 플라스틱 테이블에 엎드려 푹 잠이 들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들의 머리통 둘과 딸기 쉐이크 컵 두 개가 전위적인 오브졔와 같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죽은 듯이 자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내버려 두어도 우리의 작업에 특별히 지장이 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총구를 카운터 쪽으로 들이댔다. 맥도날드의 종업원은 모두 셋이었다. 카운터의 아가씨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혈색이 안좋고 얼굴이 계란형인 점장,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희미한 그림자와 같은 조리장의 아르바이트 학생, 이렇게 셋이었다. 세 사람은 계산대 앞에 모여서 잉카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관광객과 같은 눈빛으로 내가 겨누고 있는 총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비명을 지른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며, 아무도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총이 지독히 무거웠으므로,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총신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 "돈은 드리겠습니다" 점장이 목 쉰 소리로 말하였다. "열 한시에 회수해 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는 없지만 전부 가져가십시오.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정면 셔터 내리고 간판 전기 꺼요" 아내가 말하였다. "잠깐만요. 그건 곤란합니다. 맘대로 가게문을 닫으면 제 책임 문제가 되거든요" 하고 점장이 했다. 아내는 같은 명령을 한 번 더 천천히 되풀이하였다. "들은 대로 하는 게 좋아요" 내가 충고하였다. 점장이 무척이나 헤메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산대 위의 총구와 아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간판의 전기를 끄고 패널의 스위치를 눌러 정면의 셔터를 내렸다. 엉겁결에 그가 비상경보 장치 같은 것의 단추를 누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쭉 경계를 하고 있었으나, 맥도날드 햄버거 체인점에는 비상경보장치 같은 것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햄버거 가게가 습격당할지도 모른다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정면의 셔터가 방망이로 양동이를 두드리며 돌아 다니는 듯한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힌 후에도 테이블의 커플은 계속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정도로 깊은 잠이란 것을 꽤 오랫동안 보아오지 못했었다. "빅맥을 삼십개, 테이크 아웃으로" 아내가 말하였다. "돈을 드릴테니까, 다른 가게에 가셔서 주문해서 드시면 안 될까요? 장부가 엄청나게 복잡해지거든요, 그러니까...." "들은 대로 하는 게 좋아요" 내가 되풀이해 말했다. 세사람은 조리장으로 들어가 삼십개의 빅맥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햄버거를 굽고, 점장이 그것을 빵사이에 끼운 후, 카운터의 아가씨가 흰 포장지로 그것을 쌌다. 그러는 동안 세사람 모두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대형 냉장고에 기대 서서 산탄총의 총구를 철판위로 향해 놓고 있었다. 철판위로는 갈색의 물방울 모양으로 고기들이 늘어서서 지글지글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단 냄새가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벌레떼처럼 내 몸전체의 털구멍으로 기어 들어와 혈액에 석여서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 다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 몸 속의 중심에 생겨 난 배고픔의 공동에 결집하여, 그 분홍빛 벽면에 찰싹 달라붙었다. 흰 포장지에 싸여서 옆으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햄버거를 한두 개 손으로 집어서 금새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런 행동이 우리의 목적에 걸맞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삼십개의 햄버거가 남김없이 구워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조리장 내부는 더웠고, 나는 스키마스크 속에서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세사람은 햄버거를 만들면서 가끔씩 총구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나는 때때로 왼손 새끼 손가락 끝으로 양쪽 귀를 긁었다. 나는 긴장을 하면 언제나 귓구멍이 가려워 진다. 내가 스키마스크 위로 귓구멍을 긁자 총신이 불안정하게 위 아래로 흔들렸고, 그것이 세사람의 기분을 조금 흐뜨러뜨린 듯했다. 총의 안전장치를 걸어둔 상태였으므로 오발할 걱정은 없었지만 세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고, 나도 일부러 가르쳐 줄 생각은 없었다. 세사람이 햄버거를 만들고 내가 총구를 철판 쪽으로 들이 댄 채 감시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아내는 손님들 자리쪽을 들여다 보고, 다 구워진 햄버거 개수를 세고 있었다. 그녀는 포장지로 싸놓은 햄버거를 종이 쇼핑백에 채곡채곡 채워 넣고 있었다. 한 개의 쇼핑백에는 열 다섯 개의 빅맥 햄버거가 들어갔다. "왜 이런 일을 해야만 되는 거죠?. 돈을 가지고 가서, 그걸로 드시고 싶은 걸 사서 드시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빅맥을 삼십개나 먹으면, 대체 그게 어디에 쓸모가 있는 거죠?" 점원 아가씨가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빵 가게가 열린 곳이 없어서 그래요. 빵 가게가 열려 있었으면 제대로 빵 가게를 털었을텐데" 하고 아내가 그 여자아이에게 설명했다. 그런 설명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되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지만, 하여튼 그들은 그 이상은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기를 굽고 그것을 빵 사이에 끼워서 포장지로 쌌다. 쇼핑백 두 개에 삼십개의 빅맥이 다 들어가자, 아내는 여점원에게 L 사이즈의 콜라를 두 개 주문하고 콜라 값을 지불하였다. "빵 말고는 아무것도 뺏을 생각이 없어요" 아내는 여점원에게 설명하였다. 그녀는 복잡한 모양으로 머리를 움직였다. 그것은 고개를 가로젓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고, 끄덕거리는 듯하기도 하였다. 아마 두 개의 동작을 동시에 하려 한 것이리라. 그녀의 기분은 내게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주머니에서 짐 싸는 데 쓰는 가는 끈을 꺼내어 --- 그녀는 뭐든지 갖고 있다 --- 세사람의 몸을 단추를 달기라도 하듯이 요령있게 기둥에 묶었다. 세 사람은 더 이상은 무슨 일을 하여도 무익하다고 깨달은 듯, 입을 다문 채 아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내가 "안 아파요?" 라고 물어도 그들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총을 담요로 둘러 싸고, 아내는 두 손에 맥도날드의 마크가 그려진 쇼핑백을 들고 셔터의 틈새를 통하여 밖으로 나왔다. 테이블의 두 사람은 그 때에도 아직 심해어와 같이 푹 잠들어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할까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삼십분 정도 차를 달리고 나서, 적당한 빌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맘껏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셨다. 나는 전부 여섯 개의 빅맥을 위 속으로 내려 보냈고, 그녀는 네 개를 먹었다. 그러고도 차의 뒷좌석에는 아직 스무개의 빅맥이 남아 있었다. 새벽과 함께, 우리의 영원히 계속될 듯이 생각되었던 깊은 기아도 소멸해 갔다. 태양의 최초의 빛이 지저분한 벽면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소니 베타 하이파이' 의 거대한 광고탑을 눈부시게 빛내고 있었다.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장거리 트럭의 바퀴소리에 섞여서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왔다. FEN은 컨트리 뮤직을 내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한 대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자, 아내는 내 어깨에 슬며시 머리를 기대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정말로 있었을까?" 나는 한 번 더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물론이야" 그녀가 대답하였다. 그리고서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나서는 잠들었다. 그녀의 몸은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그리고 가벼웠다. 홀로 남게 되자, 나는 보트로부터 몸을 내밀어 바다 속을 들여다 보았으나, 그곳에는 더 이상 해저 화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면은 조용히 하늘의 푸른 빛을 반사시키고, 작은 물결이 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파자마처럼 보트의 바닥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보트의 바닥에 몸을 눕히곤 눈을 감고, 밀물이 나를 내가 있어야 할 장소로 데려다 주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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