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피하기 얼마 전에 읽은 어떤 소설에서 '돈을 주고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성실한 남자가 금해야 할 조건 중 하나'라는 문장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 뿐이다. 그런 신념을 가진 남자도 존재한다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돈을 지불하고 여자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취미의 문제이다. 따라서 돈을 지불하고 여자와 자는 사람을 성실하지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끔 그런 운명에 놓일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도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많든 적든 모두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라고. 물론 훨씬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섹스는 공짜라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호감과 호감 - 좀 더 다르게 부르는 방법도 있겠지만 - 이 만나면, 거기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자연발생적으로 섹스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지불할 돈도 없었을 뿐더러, 분명히 그 생각이 통했다. 돈은 없었지만 상대도 나도 상관하지 않았다. 모르는 여자의 아파트에서 자고, 아침에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차가운 빵을 나눠 먹던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성숙해짐에 따라 우리는 인생전반에 대해 좀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측면을 모아 성립된 존재라기보다, 어디까지나 분리할 수 없는 총체라는 견해이다. 결국 우리가 일해서 돈을 벌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선거에 투표를 하거나, 야간 경기를 보러 가거나, 여자와 자거나 하는 각각의 행위는 하나 하나가 독립해서 가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성생활의 경제적인 측면이 경제생활의 성적 측면이기도 하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 소설에 나온 주인공처럼 단순하게 '돈을 주고 여자와 가는 것은 성실한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밖에 나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실로 여러 가지 물건을 일상적으로 사거나 팔고 교환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무엇을 팔고 무엇을 샀는지 전연 모르게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 * 그때 함께 술을 마신 여자는 몇 년 전에 돈을 받고 여러 명의 남자와 잔 적이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내가 술을 마신 곳은 새로 생긴 레스토랑 바였다. 캐나디안 위스키가 세 종류 갖추어져 있고, 가벼운 프랑스 요리도 있고, 대리석으로 만든 카운터 위에 야채가 통째로 쌓여 있고, 스피커에서는 도리스 디의 '이츠 매직'이 흘러 나오고 있고,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사람이 모여서 감각 혁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그런 레스토랑이었다. 그런 곳은 어느 시대에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100년 전에도 있었고, 100년 후에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레스토랑에 들어간 것은, 그 근처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부야에서 일을 끝내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면서 '파이드 파이드'로 레코드를 보러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났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레스토랑 안에는 거의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길에 인접한 벽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비가 내리는 것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맥주라도 마시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가방 안에는 방금 산 책이 몇 권 들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때우는데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메뉴판을 가져다 주어서 맥주 항목을 보니 20여 종이 넘는 수입 맥주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대충 맥주를 고르고, 안주는 잠깐 망설이다가 피스타치오를 주문했다. 계절은 여름의 끝 무렵으로, 거리에는 늦여름에 어울리는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여자들은 햇볕에 검게 탄 건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눈 깜짝할 사이에 검게 물들이며 거리의 열기를 식혔다. 그 떠들썩한 일행이 우산을 탁탁 접으면서 레스토랑에 뛰어 들어온 것은 내가 솔 벨로우의 신작 소설을 읽고 있을 때였다. 솔 벨로우 작품은 비를 피해 시간을 때우면서 읽을 만한 작품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책을 덮고 피스타치오 껍질을 벗기면서 그 일행을 관찰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 7명으로, 남자 4명에 여자가 3명이었다. 나이는 21살에서 29살 정도였으며, 최첨단 유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요즘 한창 유행하는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세우거나, 구깃구깃한 인견 알로하 셔츠를 입거나, 넓적다리 부분이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있거나, 둥근 모양으로 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중앙에 있는 계란형 큰 테이블에 앉았다. 이 레스토랑의 단골로 보였는데, 아니다 다를까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위스키와 얼음통이 나왔다. 웨이터가 모두에게 메뉴판을 하나씩 돌렸다.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기획 모임이든지 뒷풀이든지 둘 중 하나가 틀림없다. 어는 쪽이든 결국에는 술에 취해서 같은 말을 또 하고, 끝으로 악수를 하고 헤어지기 마련이다. 상당히 취한 여자를 남자 한 명이 택시로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고, 잘 하면 침대에 기어들어갈 수도 있다. 100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고전적인 모임이다. 나는 그 사람들을 관찰하는데 싫증이 나서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는 아직 계속 내리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덮개라도 씌운 듯 컴컴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비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릴 것 같은 기세였다. 도로 양편으로는 빗물이 모여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레스토랑 반대편에 있는 낡은 반찬 가게와 유리 진열대에는 콩과 무우 말랭이 같은 찬거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경트럭 밑에는 커다란 흰 고양이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나서 레스토랑 안으로 눈을 돌리고, 피스타치오를 몇 개 먹으면서 책을 계속 읽을까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 하나가 내 테이블로 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아까 들어온 7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맞죠?' "그런데요." 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저를 기억하지 못 하시겠어요?" 그녀는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본 기억은 있지만 누군지는 몰랐기 때문에, 나는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내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예전에 무라카미 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확실히 기억이 났다. 내가 첫 소설을 냈던 무렵이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다. 그녀는 어느 큰 출판사가 내고 있는 월간 여성지의 기자로 책 소개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내 인터뷰 기사를 실어 주었다. 나에게는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인터뷰였다. 그녀는 그 무렵 머리도 길었고, 깔끔하고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틀림없이 나보다 4,5살 연하였다. "상당히 달라져서 미처 못 알아봤어." "그래요?" 그녀는 장난기 있게 웃었다. 그녀는 요즘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대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자전거 방수천으로 만든 것 같은 카키색 셔츠를 입고, 귀에는 모빌 모양의 금속 조각을 두 개 늘어뜨리고 있었다. 미인에 가까운 데다가 꾸미기 쉬운 얼굴이라 그런지, 그런 모습이 그녀에게 상당히 잘 어울렸다. 나는 웨이터을 불러 위스키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어떤 위스키로 하겠냐고 물었다. 시바스 리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물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같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시바스 리갈을 두 잔 주문했다. "저 쪽에는 안 가도 돼?" 나는 중앙 테이블 쪽을 흘낏 보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그녀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일 관계로 마시러 왔는데, 벌써 끝났으니까 상관 없어요." 위스키가 왔고, 우리는 컵에 입을 댔다. 평소대로 시바스 리갈의 향기가 좋았다. "저 무라카미 씨, 그 잡지 망한 거 아시죠?" 그녀는 말했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평판은 나쁘지 않았지만 판매가 시원치 않아서 2년전에 회사가 망한 것이다. "그래서 부서가 바뀌었는데 글쎄 총무과가 아니겠어요. 마음에 내키지 않아사ㅓ 거세게 항의했지만, 회사 쪽에서는 콧방귀만 뀌더라구요. 더 이상 있어봤자 뻔하다 싶어 그만뒀어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꽤 좋은 잡지였는데." 나는 말했다. * * * 그녀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2년 전 봄이었는데, 그 무렵 3년 동안 교제하던 애인과도 헤어졌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길지만 이 두 가지 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그와 그녀는 같은 잡지의 편집부에 근무하는 동료였다. 남자는 그녀보다 10살 위로 이미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다. 남자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녀에게도 그것을 확실히 말했다. 그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의 집이 타부에 있었기 때문에 센타게야 근처의 회원제 호텔을 빌려서 일이 바빠지면 일주일에 2,3일은 그곳에서 묵었다. 그녀도 일주일에 하루는 거기에서 잤다. 결코 무리한 교제는 하지 않았다. 그러한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험이 많은 남자 쪽이 주의 깊게 행동했으며, 그녀도 그런 것이 마음 편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3년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계속되었다. 편집부 내에서도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쁘다고 여겼다. "대단한 사람이지요?" "그렇군."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건 흔한 이야기였다. 잡지의 폐간이 결정되고 인사 이동이 발표되었는데, 남자는 여성 주간지의 부편집장으로 발탁되었다. 여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총무과로 발령났다. 여자는 기자로 입사했기 때문에 잡지 일을 하고 싶다고 회사에 항의했지만,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 수만 늘릴 수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 대신 1,2년 지나면 원하는 대로 다시 잡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잡지 분야에서 떠난 사원이 두 번 다시 이전의 부서로 돌아오지 못하고, 판매과나 총무과에서 서류에 둘러싸여 도태하는 것을 그녀는 몇 번이나 보았다. 공백 기간은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고, 3년이 4년이 되고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어 제일선에 있느 기자로서의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를 같은 부서로 데려가 달라고 애인에게 부탁했다. "물론 노력은 해 보겠지만 어려울 거야. 지금 단계에서 내 발언권은 한정되어 있고, 더구나 남의 눈에 띄어 억측을 사는 것도 싫고. 그보다 1년이나 2년 정도 총무과에서 참고 있으면, 그동안 나도 힘을 길러 당신을 데려올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해." 그게 제일 좋다고 남자는 말했다. 거짓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는 겁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승진에 뒤따르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그녀를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의 변명을 들으면서 그녀의 손은 테이블 밑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깔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커피를 남자에게 뿌려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바보 같은 짓이라서 그만두었다. "그래요. 그럴지도 몰라요." 그녀는 비웃듯이 방긋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 * *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아요?" 그녀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깔끔하게 매니큐어를 칠한 모양 좋은 엄지 손톱으로 피스타치오 껍질을 깠다. 내가 깔 때보다 훨씬 좋은 소리가 난 것처럼 느껴졌다. "별로 지루하지 않은데." 나는 그녀의 엄지 손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두 조각으로 갈라진 껍질을 재떨이에 버리고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네. 아까 무라카미씨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나 봐요." "그리움인가?" 나는 조금 놀라서 반문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녀와 두 번 밖에 만난 적이 없었고, 더구나 특별히 친밀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지만 예전에는 아주 가까웠던 사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관계를 갖진 않았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제 말 뜻을 이해하시겠죠?" "알 것 같아." 그녀에게 내 존재는 기호적인 - 조금 호의적으로 말하면 축제적, 의식적인 -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내 존재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가 일상적 평면으로써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나는 대체 어떤 종류의 일상적 평면에 속해 있는 것일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까다로운 문제였다. 게다가 그녀와는 관계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 것 같아'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는 피스타치오를 또 하나 손에 들고 아까처럼 엄지 손톱으로 껍질을 깠다. "알아 주셨으면 하는 것은, 아무한테나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한 건 지금이 처음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에는 아직 여름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 안에서 갖고 놀던 피스타치오 열매를 재떨이에 버리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일 관계로 알고 지냈던 기자와 카메라맨, 프리랜서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알렸다. 그 중에 몇 명은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말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오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광고지나 지역 신문에서 패션계의 팜플렛 같은 작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큰 회사에서 전표 정리를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단 두 군데에서 일 하기로 결정하고, 그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 수입도 지금보다 뒤떨어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는 안심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본격적으로 일에 뛰어들기로 하고, 그동안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지내기로 했다. 그다지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퇴직금도 나왔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불안은 없었다. 그녀는 잡지사에 다닐 때 서로 알게 된 헤어 디자이너에게 가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그 디자이너의 단골 부티크에 가서 새로운 헤어 스타일에 맞는 옷이며, 구두며, 핸드백이며, 악세사리를 모두 갖추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이틀째 되는 저녁에 옛날 동료이자 애인이었던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가 이름을 대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15초 후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또 그 남자였다. 이번에는 전화를 끊지 않고 수화기를 쇼율더 백 속에 처넣고 지퍼를 채웠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한 달 간의 휴가는 여유롭게 흘러갔다. 결국 여행은 가지 않았다. 원래부터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남자와 헤어진 28살의 여자가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3류 멜로 드라마 같아 흥미를 잃었다. 그녀는 3일 동안 5편의 영화를 구경하고, 콘서트에 가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재즈를 들었다. 그리고 시간에 쫓겨 읽지 못한 책도 실컷 읽었다. 레코드도 들었다.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죠깅 신발과 런닝 셔츠와 반바지를 준비하고, 집 근처에서 매일 15분 정도 달려 보았다. 처음 일주일은 그렇게 느긋하게 보냈다. 번잡하고 골치가 지근대는 일에서 해방되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기분이 내키면 요리를 만들고, 날이 저물면 혼자서 맥주나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나 휴가 열흘째가 지날 무렵부터 그녀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다. 이제 보고 싶은 영화도 없고, 음악도 싫증이 났고,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팠다. 만든 음식은 모두 김이 빠진 것 같이 맛이 없었다. 조깅은 어느 날 기분 나쁘게 생긴 남자가 뒤를 따라 와서 아예 그만뒀다. 이상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한밤중에 잠이 깨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자꾸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동이 틀 때까지 담요를 뒤집어 쓰고 밤새 떨고 있었다. 식욕이 떨어지고, 하루종일 안절부절 했다. 더 이상 무엇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중 몇명은 수다를 떨기도 하고 상담에 응해 주기도 했지만, 그들도 일이 바빠서 언제까지나 그녀를 상대해 줄 수 없었다. '2,3일이 지나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한 가지 일을 끝내면 숨돌릴 여유 없이 다음 일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도 6년 동안 쭉 그런 생활을 반복했기 때문에, 그런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전화를 걸어 상대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면 집에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그녀는 밤이 되면 새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록폰키나 아오야마 근처의 조촐한 바에서 마지막 전차 시간까지 혼자서 칵테일을 홀짝홀짝 마셨다. 운이 좋으면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 세상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운이 나쁘면 - 그럴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더 운이 나쁘면 마지막 전철 안에서 모르는 남자의 정액이 스커트에 묻거나, 택시 운전사에게 유혹을 받기도 했다. 천백만 명의 사람이 북적대는 도시 안에서 그녀는 자기가 견딜 수 없이 고독하게 느껴졌다. 그 때 처음으로 상대한 남자는 중년의 의사였다. 그는 핸섬하고 좋은 양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51살이었다. 그녀가 록폰키의 재즈 클럽에서 혼자서 마시고 있는데 그 남자가 옆에 왔다. "만나기로 한 분이 안 오실 것 같군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어는 쪽이든 상대가 올 때까지 같이 한 잔 할까요?" 판에 박힌 대사를 지껄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낡디 낡은 속임수였지만 그의 목소리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잠시 재즈를 듣고 - 묽은 설탕물 같은 피아노 트리오 - 술을 마시고 - 그가 병을 맡겨둔 다니엘스 - 수다를 떨었다. - 록폰키의 옛날 이야기 - 물론 그의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 식사하러 가지 않겠습니까?" 시계가 11시를 지나자 그는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집이 멀어서 이제 가봐야 해요." "그럼 자동차로 집까지 바래다 주겠습니다."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마침 이 근처에 방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서 자고 가면 될 것 같은데요."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물론 당신이 싫다면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도 잠자코 있었다. "나는 비싸요." 그녀는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일단 내뱉은 말을 번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상대의 얼굴을 노려봤다. 상대는 빙긋이 웃고, 컵에 새 위스키를 따랐다. '좋아요'라고 상대는 말했다. "몸값을 말해 봐요." "7만." 그녀는 즉석에서 대답했다. 어째서 7만인지 전혀 근거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7만은 돼야 할 것 같았다. 7만이라면 아마도 남자가 거절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7만에도 프랑스 요리 풀코스를 덪붙여서 대접하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위스키를 단숨에 마시고는 일어났다. "자, 가지." * * * "의사라고 했어?" 나는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예, 그래요." "어떤 의사였어? 그러니까 전문 분야가......" "수의사요." 그녀는 말했다. "세다야에서 수의사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수의사." 나는 수의사가 여자를 산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수의사도 여자를 산다. 수의사는 그녀에게 프랑스 요리를 사주고 카미타니 교차로 가까이에 있는 원룸 맨션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다루었다. 난폭하게 하지도 않았고 변태적인 곳도 없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몸을 섞고, 한 시간 뒤에 다시 또 한 번 몸을 섞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빠진 것에 대해 몹시 당황했지만, 그의 정성스런 애무를 받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도 조금씩 사라지고 섹스에 점점 끌려들어 갔다. 남자가 성기를 빼내고 샤워를 하러 간 후, 그녀는 잠시 침대 위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요 며칠 간 그녀 안에 뒤얽혀 있던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가 말끔히 사라져 버린 걸 깨달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거지? 아침 10시에 잠에서 깨보니 남자는 벌써 출근을 한 뒤였다. 책상 위에 만 엔 짜리 지폐 7장이 들어 있는 봉투가 있었고, 그 옆에 열쇠가 놓여 있었다. 편지가 있었는데, 열쇠는 편지통에 넣어달라고 적혀 있었다. 냉장고에 애플파이와 우유와 과일이 들어 있다는 것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만약 좋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으니까, 생각이 있으면 여기로 전화하기 바라오. 1시부터 5시까지는 반드시 있으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축 병원의 명함이 끼워져 있었다. 명함에는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2211이라는 번호 옆에 '야옹 야옹, 멍멍'이라는 의성어가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편지와 명함을 네 갈래로 찢고는 성냥을 켜 설겆이대에서 태웠다. 돈은 핸드백에 집어 넣었다. 냉장고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택시를 잡아 타고 자기 아파트에 돌아왔다. * * * "그 후로도 몇 번 돈을 받고 다른 사람과 잔 적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대고 입술 앞에서 손가락을 끼었다. 그리고 나서 웨이터를 불러서 위스키를 두 잔 주문했다. 곧 위스키가 왔다. "다른 걸 좀 먹겠소?" 나는 물어보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는 다시 홀짝홀짝 위스키를 마셨다. "질문해도 괜찮아? 좀 실례되는 건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물어보세요." "그녀는 잠깐 눈을 둥글게 해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싶고, 지금 이렇게 무라카미씨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남지 않은 피스타치오 껍질을 깟다. "다른 때도 가격은 항상 7만엔이었어?" "아니오." 그녀는 잘라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그때 그때 입에서 튀어나온 금액이 달랐어요. 제일 비쌌을 때가 8만엔, 제일 쌌을 때가 4만엔 정도였을 거에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직감적으로 숫자가 나와요. 금액을 말하고 거절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굉장하군." 그녀는 웃었다. * * * 그녀는 그 '휴가 중'에 전부 5명의 남자와 잤다. 상대는 모두 40대나 50대였고, 옷차림이 좋고 노는데 익숙한 남자였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을 것 같은 술집에서 남자를 고르고, 한 번 남자를 고른 곳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대개는 남자가 호텔방을 잡고 그곳에서 잤다. 딱 한 번 이상한 꼴을 당했지만, 그밖의 상대는 모두 성실했다. 돈도 정확히 지불했다. 그리고 그녀의 '휴가'는 끝났다. 다시 일에서 일로 쫓기는 나날로 되돌아왔다. PR잡지나 지역 신문이나 팜플렛에는 큰 잡지가 갖는 명성이나 사회적 영향력은 없지만 그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가 이었다. 옛날과 비교해 보면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녀에게는 두 살 많은 카메라맨 남자 친구가 있고, 더이상 돈을 받고 다른 남자와 잘 생각도 없다. 지금은 일이 재미있기 때문에 곧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한 2,3년 지나면 그런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무라카미 씨에게도 연락할게요." 그녀는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수첩의 메모란에 주소를 쓰고 그것을 찢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여러 남자와 자고 받은 돈은 어떻게 했어?"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위스키를 마시고 나서 쿡쿡거리며 웃었다.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모르겠는데." "전부 3년 정기 예금에 넣어 버렸어요." 나도 웃고 그녀도 웃었다. "글쎄요, 그때 쯤이면 결혼이다 뭐다 해서 돈이 있어도 부족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래." 나는 말했다. 중앙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가봐야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빙긋이 웃었다. 아주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내가 돈을 지불하고 같이 자자고 하면, 만일에 말이야." "예." "얼마를 부를 거야?" 그녀는 입술을 조금 벌려 숨을 들이마시고 3초 정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긋 웃고는 '이만 엔'이라고 말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이 얼마나 있나 세어 보았다. 3만 8천엔이 있었다. "이만엔 플러스, 호텔비 플러스, 여기 술값 플러스, 그리고 집에 갈 전철비, 그 정도죠." 정말 그대로였다. "안녕." 나는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 * * 밖에 나와보니 벌써 비는 그쳐 있었다. 여름비는 그렇게 오래 내리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이 빛나고 있었다. 반찬 가게는 벌써 문을 닫고, 고양이가 비를 피하던 경트럭도 어디론다 사라졌다. 나는 비가 그친 밤거리를 걷다가 배가 고파서 뱀장어집에 들어가 뱀장어를 먹었다. 뱀장어를 먹으면서 나는 이만엔을 지불하고 그녀와 자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와 자는 것은 나쁘진 않지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좀 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옛날, 섹스가 화산처럼 공짜였던 때를 생각했다. 정말로 그때는 화산처럼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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