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탄광의 비극 태풍이나 집중 호우가 닥칠 때마다 동물원에 가는 비교적 기묘한 습관을, 십 년동안 지켜온 사나이가 있다. 내 친구다. 태풍이 도시에 접근하고,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들이 덧문을 닫거나,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회중 전등의 상태를 점검할 때가 되면, 그는 베트남전이 한참이었을 때 손에 넣은 미군용 우천 판초에 몸을 감싸고, 주머니에 깡통 맥주를 집어넣고 집을 나선다. 운이 나쁘면, 동물원의 문은 닫혀 있다. 오늘은 일기 불순으로 휴원합니다. 그것은 하기는, 타당한 이유였다. 도대체 누가 태풍이 오는 날 오후에 기린이나 얼.룩.말.을 보려도 동물원에 오겠는가? 그는 기분 좋게 체념하고 문앞에 늘어서 있는 다람쥐 석상에 걸터앉아, 조금 미지근해진 깡통 맥주를 마시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운이 좋으면 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요금을 치르고 안에 들어가, 금방 흠뻑 젖어 버리는 담배를 피우고, 동물들을 한 마리 한 마리 꼼꼼하게 보고 돌아다닌다. 동물들은 자기 우리에 틀어박혀 멍한 눈으로 밖의 비를 보고 있거나, 강풍 속을 흥분해서 뛰어다니거나, 급격한 기압의 변화에 겁먹거나, 화를 내거나 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벵골 호랑이 우리 앞에 앉아서 맥주를 한 병 마시고(태풍에 대해서는 항상 벵골 호랑이 가 가장 화를 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고릴라 막사 앞에서 두 번째 맥주를 마신다. 고릴라는 대개의 경우 태풍에는 무관심하였다. 고릴라는 항상 반은 물고기 같은 모습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깡통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을 딱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어쩌다 둘이 탄 것 같은 느낌이야." 고 그는 말했다. 하긴 그러한 태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고는, 그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 조촐하고 인상 좋은 외자계 무역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깨끗한 아파트에 혼자 살고, 반년마다 걸 프렌드를 바꿨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부지런히 걸 프렌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지,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세포 분열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했지 때문이다. 많이 사람들이 왠지 그를 평범하고 둔하다고 필요이상으로 생각하려고 하였지만, 그는 전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상태가 나쁘지 않은 중고차를 갖고 있었고, 발자트 전집을 갖고 있었고, 장례식에 입고 가기에 딱 알맞은 까만 양복과 까만 넥타이와 까만 가죽 구두를 갖고 있었다. 누가 죽었을 때 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복과 넥타이와 가죽 구두를 빌리기 위해서다. 양복과 가죽 구두는 나한테 한 사이즈씩 컸지만, 물론 사치스러운 말을 할 처지가 아니다. " 미안해." 하고 나는 말한다. "또 장례식이거든." "괜찮아, 괜찮아." 하고 항상 그는 말한다. 그의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택시로 십오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의 방에 도착하면, 테이블 위에는 잘 다려진 양복과 넥타이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구두는 닦여 져 있었고, 냉장고에는 외제 맥주가 반타스 식혀져 있었다. 그런 타입의 남자였다. " 지난번에 , 동물원에서 고양이를 봤어." 하고 병따개로 맥주병을 따면서 그가 말했다. " 고양이?" " 응 , 이 주 정도전에 출장으로 북해도에 갔었는데, 그때 근처 동물원에 들어가 보았더니 '고양이' 우리라는 팻말이 걸린 작은 우리가 있고 말이야, 그 안에 고양이가 자고 있었어." " 어떤 고양이?" " 극히 보통 고양이야. 갈색 줄무늬에, 꼬리가 짧고, 지독히 살쪄있었어. 그게 그냥, 벌.렁. 드러누 워 자고 있었다는 얘기야." " 아마 북해도에서는 고양이가 진기한가 보지?" 하고 내가 말했다. " 설마." 라고 그가 말했다. " 게다가, 왜 고양이가 동물원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 라고 나는 물어봤다. "고양이도 동물이 아니겠어." " 습관이지. 즉, 고양이나 개는 흔.한. 동물이니까 말야. 일부러 돈을 치르면서 볼 만한 것 이 못 돼." 라고 그가 말했다. " 인간하고 똑같지." " 과연." 하고 나는 말했다. 반타스가 되는 맥주를 다 마시면, 그는 커다란 종이 봉투에, 넥타이와 비닐 커버로 싼 양복과 구두 상자를 꼼꼼하게 집어 넣어 주었다. 그대로 피크닉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언제나 미안해." 라고 내가 말했다. " 신경 쓰지 마." 하고 그가 말했다. 하긴 그 자신은 삼 년 전에 그 양복을 만든 후, 거의 입은 적이 없다. " 아무도 죽지 않거든." 하고 그가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양복을 만들고 나서는 누구 하나 죽 지 않아." " 다 그런 거지 뭐." " 정말이야. "라고 그는 말했다. ☆ 정말이지, 그해는 지독히도 장례식이 많은 해였다. 내 주위에서는, 친구라든가 옛날의 친구가 차례차례 죽어 갔다. 마치 날이 가문 여름의 옥수수 밭 같은 광경이었다. 스물 여덟 살이데 말이다. 내 주위의 친구들도, 대개가 비슷한 나이였다. 스물 일곱,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죽기에는 왠지 부 적합한 나이다. 시인은 스물한 살에 죽고 , 혁명가와 로큰롤러는 스물네 살에 죽는다. 그 나이만 지나면, 당분간은 그럭저럭 잘해 나가리라, 라는 것이 우리들의 대체적인 예측이었다. 전설의 불길한 커브도 지나갔고, 조명이 어두운 축축한 터널도 빠져 나왔다. 이제는 곧장 뻗은 육차 선 도로를 (그다지 마음은 내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목적지를 향해서 오로지 달리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매일 아참 수염을 깎았다. 우리는 이제는 시인도 혁명가도 로큰롤러도 아니었다. 술이 위해서 전화 부스안에서 잠들거나 지하철 찻간에서 버찌를 한봉투 먹어치우거나, 아침 네시에 도어즈의 LP를 큰 볼륨으로 듣거나 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교제상 생명보험에도 들었고, 호텔 바에서 술도 마시게끔 되었고, 치과의영수증을 간수해 두었다가 의료 공제를 받게도 되어 있다. 벌써 스물여덟인걸····. 예기치 않았던 살육이 시작된 것은 그 직후였다. 급.습.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우리는 느긋한 봄 햇살 아래에서, 양복을 갈아 있고 있는 도중이었다. 좀처럼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셔츠 소매가 뒤집혀 있거나, 오른쪽 다리를 현실적인 바짓가랑이에 집어넣으면서 왼쪽 다리는 현실적인 바짓가랑이에 집어넣거나, 말하자면 대단치 않은 소동이다. 살육은 기묘한 총성과 함께 닥쳐 왔다. 누군가가 형이상학적인 언덕 위에 탄환을 쏟아 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군,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모자에서 튀어나오거나, 보리밭에서 튀어나오거나, 토끼는 토끼일 뿐이다. 가.마.솥.은 고열의 가.마.솥.일 뿐이고, 연통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연통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일 뿐이다. ☆ 현실과 비현실(혹은 비현실과 현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그 어두운 연못을 처음 건넌 것은, 중학 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대학 시적 친구였다. 결혼한 지 삼 년 되었고, 아내는 출산 때문에 연 말부터 시코쿠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1월치고는 아주 따뜻한 일요일 오후, 그는 백화점 철물 매장에서 코끼리 귀라도 자를 수 있을 것 같 은 서독제 면도칼과 셰이빙 크림을 두 깡통사고, 집에 돌아와 목욕물을 끓였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스카치 위스키를 한 병 다 비운 후, 욕조 안에서 간단하게 손목을 자르고 죽어 버렸다. 이틀 후 그의 어머니가 시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경찰이 와서 몇 장이고 현장 사진을 찍었다. 관엽 식물의 분만 잘 배치하면, 토마토 주스의 커머셜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자살, 이라는것이 경찰의 공식 발표였다. 온 집안에 열쇠가 걸려 있었고, 도대체 그날 면도칼을 산 것 은 죽은 본인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쓸 예정도 없는 쎼이빙 크림을(그것도 두 개나) 샀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자기가 이제 몇 시간 뒤에는 죽어 있으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백 화점의 점원이 자기가 자살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까 봐 그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서도 메모도, 아무것도 없었다. 부엌 탁자 위에는, 위스키 잔과 빈 위스키 병과 얼음을 담는 볼, 그리고 두 개의 셰이빙 크림만이 남겨져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목욕물이 끓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헤이그의 온 더 록을 몇 잔이고 목구멍 안으로 흘려 보내면서, 셰이빙 트림 깡통을 쭉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수염을 깎지 않아도 된다, 고. 스물여덟 살짜리 청년의 죽음은, 겨울 햇살처럼 뭔지 애달프다. ☆ 그리고 그 후의 열두 달 동안에, 네 사람이 죽었다.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인지 쿠에이트인지의 유전 사고로 하나가 죽었고, 6월에는 둘이 죽었따. 심장 마비와 교통 사고였다. 7월부터 11월까지, 평화로운 계절이 계속된 뒤, 12월 중순에 마지막 하나가 역시 교통 사고로 죽었다. 처음에 자살한 친구를 빼놓고는 죽음을 의식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었다. 항상 걸어 올라 가는 계단을 멍하니 올라가고 있는 중에 판대기가 한 장 빠져 버렸다, 그런 느낌이다. " 이부자리를 깔아주지 않을래?" 라고 한 사나이는 말했다. 6월에 심장마비로 죽은 친구다. " 머리 뒤에서 딱딱 소리가 나." 그는 이불에 기어 들어가 잠들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12월에 죽은 여자아이가 그해에 있어서 최연소자의 죽음이었고, 동시에 유일한 여성이기도 했다. 스물네 살, 혁명가와 로큰롤러의 나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차가운 비가 내리는 저녁, 맥주 회사의 운반 트럭과 콘크리트 전주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그리고 극히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소녀는 깔아 뭉개지듯이 죽어 갔다. 마지막 장례식의 며칠 뒤엔가에, 나는 세탁소에서 막 돌아온 양복과 감사의 뜻의 위스키를안고 양복 주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 덕분에 살았어." 라고 나는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차피 쓰지도 않는걸." 하고 그가 말했다. 냉장고에는 여전히 맥주가 반타스 식혀져 있었고, 앉기 편한 소파에서는 희미하게 태양의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는 막 씻은 재떨이와 크리스마스용 포인세티아의 분이 있었다. 그는 비닐에 담겨진 양복을 받아들 자, 막 동면에 들어간 새끼곰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같은 손놀림으로 양복장 안에 가만히 집어 넣었다. " 양복에 장례식 냄새가 스며 있지 않으면 좋겠는데." 라고 내가 말했다. " 양복은 괜찮아. 그걸 위한 양복인걸. 걱정인 것은 알맹이 쪽이지." "응." 하고 나는 말했다. " 도대체가 온통 장례식뿐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는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올려놓고, 맥주를 잔에 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전부해서 몇 명이었지?" "다섯명." 고 말하고 나는 왼쪽 손가락을 전부 펼쳐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끝이야." "그렇게 생각해?" "그런 느낌이 들어." 하고 나는 말했다. " 이젠 충분한 숫자의 인간이 죽었어." "마치 피라미드의 저주 같군. 별이 하늘을 돌고, 달의 그림자가 태양을 덮을 때···." "그런거지." 반타스분의 맥주를 마셔 버리자, 우리는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겨울 석양이 완만한 언덕길처럼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최근 아무래도 얼굴이 어두운데." 라고 그가 말했다. " 그런가." 하고 내가 말했다. "틀림없이 밤중에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거야." 나는 웃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 나는 말이야, 밤중에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어."하고 그가 말했다. " 어떻게?" " 기분이 어두워지면 청소를 하지. 청소기를 돌리거나, 창을 닦거나, 잔을 닦거나. 책상을 움직이거나, 셔츠를 닥치는 대로 다림질을 하거나, 쿠션을 말리거나 말이지." "응." "그리고 열한 시가 되면 술을 마시고 자버려. 그뿐이야. 아침에 깨서 양말을 신을 때쯤은 대개의 일 은 잊고 있지. 깨끗이 말이야." " 으응." "한밤 세 시쯤에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거든. 이것 저것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지." " 한밤중 세 시에는 동물도 무.엇.을 생각하거든." 생각난 듯이 그는 그렇게 말했다. "밤 세 시에 동 물원에 가본 적이 있어? " "아니"라고 나는 멍하니 대답했다. "없어, 물론." " 나는 꼭 한 번 있지. 아는 사람한테 부탁을 했었어. 원칙으로는 안 되지만 말이야." "으응." "이상한 체험이었지.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 하겠지만 말이야, 마치 땅이 여기 저기에서 소리도 없이 갈라지고,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지. 그리고 밤의 어둠 가운데서 말이지, 땅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뛰고 있었어. 차가운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지. 눈에는 보이지 않아. 하지만 동물들은 그.것.을 느끼지. 그리고 나는 동물들이 느끼는 그.것.을 느끼고. 결국, 우리들이 밟고 있는 이 대지는 지구의 중심부까지 통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 지구 중심부에는 끝도 없는 시간이 빨려 들어가 있단 말이야. …… 이런 얘기 이상한가?" "아니." 라고 나는 말했다. "두 번 다시 가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한밤중의 동물원 같은 덴 말야." " 태풍 쪽이 좋아?" "응" 이라고 그가 말했다. "태풍 쪽이 훨씬 좋아." 전화벨이 울렸다. 언제나와 같이 세포 분열적인 그의 걸 프렌드로부터 세포 분열적으로 끝없이 긴 전화였다. 나는 체념하고 텔레비전 스위치를 켰다. 27인치 컬러 텔레비전으로, 앞에 있는 리모트 컨트롤 스위치에 가볍게 손을 대기만 하면 소리도 없이 채널이 바뀐다. 스피커가 여섯 개나 달려있는 덕분에 , 옛날 영화관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뉴스와 만화 영화가 동시 상영되는 그런 영화관이다. 나는 채널을 위부터 아래까지 두 번 돌리고 나서, 뉴스쇼를 보기로 했다. 국경 분쟁이 있고, 빌딩에 화재가 있고, 통화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고 있었다. 자동차 수입 제한이 있고, 겨울 수영 대회가 있었고, 일가 동반 자살이 있었다. 각각의 사건이 중학교 때의 졸업 사진과 같이, 어느 지점에서인가 조금씩 연결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뉴스가 있었어?" 그가 돌아와서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글쎄" 하고 나는 말했다. " 텔레비젼을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니까 말이야. " " 텔레비전에는 적어도 한 가지 괜찮은 점이 있지." 한참 생각한 뒤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 원하 는 때에 끌 수 있어." "처음부터 켜지 않으면 돼." "그만둬." 하고 그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이래도 나는 마음이 따뜻한 인간이라고." "그런 것 같군." " 괜찮지." 하면서 그는 스위치를 오프(OFF)로 했다. 순간 화면이 사라졌다. 방안은 조용하게 가라 앉았다. 창문 밖에서는 빌딩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오 분 정도, 우리는 이렇다 할 이야기도 없이 위스키를 계속 마셨다. 다시 한 번 전화벨이 울렸지만 , 그는 들리지 않는 척 했다. 전화가 울리기를 멈추었을 때, 그는 생각난 듯이 텔레비전 스위치를 다시 온(ON)으로 했다. 한순간에 화면이 돌아오고, 뉴스 해설자는 배후의 구부러진 그래프를 막대기로 가리키면서 석유의 가격 변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오 분간이나 스위치를 끄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그야 그렇지." 하고 내가 말했다. " 왜지? " 생각하는게 귀찮았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스위치를 끈 순간, 어느 쪽인가의 존재가 제로가 되었기 때문이지. 우리든지. 아니면 저놈이든지. 그 어느 쪽인가가 말이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나는 말했다. "그야 그렇지, 다른 생각 따위는 백만 개도 더 있지. 인도에는 야자나무가 자라고 있고 , 베네수엘라 에서는 정치범을 헬리콥터에서 뿌리고 있고." "응." "남의 이야기는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아." 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장례식이 없는 죽음도 있어. 냄새가 없는 죽음도 있어." 나는 잠자코 끄덕였다. 그리고 포인세티아의 잎사귀를 손으로 만지작 거렸다. "벌써 크리스마스군." "사실은 샴페인이 있꺼든." 하고 그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상등품인데, 마실 래." "누군가 여자아이용 아냐?" 그는 차가운 샴페인 병과 새 잔을 두 개 테이블 위에 놓았다. "몰랐어?" 하고 그가 말했다. "샴페인에는 용도 따윈 없지. 마개를 딸 때가 있을 뿐이야." "과연." 우리들은 마개를 땄다. 그리고 파리(Paris)의 동물원과 그 동물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 해 연말에 조촐한 파티가 있었다. 롯퐁기부근의 가게를 빌려서 매년 행해지는 그믐에서 신년에 걸친 파티였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피아노 트리오가 있고, 맛있는 식사와 맛있는 술이 나오고, 거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되는, 그런 마음 편한 모임이었다. 물론 몇 사람인가한테 소개받기도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그렇죠, 정말이요, 응, 그런 것이죠, 하지만 잘되면 좋을 텐데요, 등등 ……. 나는 빙긋 웃고 적당히 매듭을 짓고, 물을 탄 마실 것을 다시 받아들고 구석의 자리에 되돌아가, 남미 대륙의 나라들과 그 수도에 대해서 생각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날 내가 소개받은 여성은, 두 잔 째의 마실 것을 손에 든 채 내 자리까지 따라왔다. "당신을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부탁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눈길을 끌만큼의 미인은 아니었지만, 지독히 인상이 좋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적당히 돈이 들은 파란 실크 원피스를 잘 소화하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 둘 정도겠지. 좀더 젊게 보이려고 마음먹는다면 간단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손에 전부해서 세 개의 반지를 끼고 있었고, 입가에는 여름 저녁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와 똑같이 미소지었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분하고 꼭 같거든요." "그래요." 라고 나는 말했다. 학생 시절 자주 사용했던 여자를 꼬시는 말 서두와 똑같았지만, 그녀는 그런 흔한 수법을 허락하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얼굴 생김새부터 모습, 분위기, 얘기하는 법까지 깜짝 놀랄 만큼 똑같아요. 당신이 여기에 오시고 난 후부터 쭉 관찰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닮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만나 보고 싶네요."라고 나는 말했다. 이것도 전에 어디에선가 들 은 적이 있는 대사였다. "정말?" "예,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녀의 미소가 한순간 깊어지고,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리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오 년 전에 죽었으니까. 꼭 지금의 당신과 같은 정도의 나이였죠." "아아."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죽였어요." 피아노 트리오가 두 번째 스테이지를 마쳤는지. 주위에서 드문드문 신 이 나지 않는 박수를 쳤다. "얘기가 잘되어 가고 있는 것 같네요." 파티의 호스티스 역이 우리들 옆에 와서 그렇게 말했다. "네." 하고 나는 말했다. "그야 뭐." 하고 그녀가 애교 있게 그 뒤를 이었다. "원가 리퀘스트곡(신청곡)이 있으면 연주해 준다는데, 어때요? " 고 호스티스 역이 물었다. "아녜요, 왰어요, 여기에서 이렇게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걸요. 당신은?" "나도 같습니다." 호스티스 역은 생긋 웃고 다음 테이블로 옮겨갔다. "음악은 좋아하세요?" 하고 그녀가 내게 물었다. "좋은 세상에서 듣는 좋은 음악이라면 말이죠." 하고 내가 말했다. "좋은 세상에는 좋은 음악 따윈 없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좋은 세계의 공기는 진동하지 않거든 요." "과연." "워렌 비티가 나이트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는 영화는 봤어요?" "아니요, 보지 않았는데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럽의 손님이고 말예요, 아주 가난하고 비참한 역이었어요." "아아." "그래서 워렌 비티가 엘리자베스 테일러한테 물었죠, 무엇인가 리퀘스트가 있습니까 하고 말이죠." "그래서" 하고 나는 질문했다. "뭔가 리퀘스트했습니까?" "잊어버렸어요. 옛날 영화였으니까." 그녀는 반지를 반짝이면서, 마실 것을 들었다. "하지만 리퀘스트라는 것을 싫어해요. 왠지 비참한 느낌이 드는 걸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같이 말이죠, 시작한 순간에 벌써 끝날 때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녀가 담배를 물고, 내가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그런데 "하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닮은 사람 얘기였죠." "어떻게 해서 죽였어요?" "꿀.벌.통.에 집어 던졌지요." "거짓말이겠죠?" "거짓말이에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는 대신에 마실 것을 들었다. "물론 법률상으로는 살인이 아니었어요. "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도의적인 살인도 아니고." "법률상의 살인도 도의적인 살인도 아니고"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거기까지의 요점을 정리해 보았다. "그렇지만, 당신은 사람을 죽였다." "그래요." 하고 그녀는 , 즐거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과 아주 닮은 사람을 말이죠."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곡이었다. "오 초도 걸리지 않았지." 하고 그녀가 말했다. "죽이는 데말에요."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그 침묵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 적은 있어요?" 라고 그녀가 물었다. "가끔" 이라고 나는 말했다. "왜 그런 것을 묻죠?" "들국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아마도 …‥마치 IQ테스트 같군요." "비슷해요." 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웃었다. "그래서 저는 패스 했나요?" "네에."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 하고 내가 대답했다. 밴드가 <올드 랭 사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열한 시 오십오 분." 그녀는 펜던트 끝에 붙은 금시계를 잠시 바라보고 나서는 그렇게 말했다. "나 는 <올드 랭 사인>이라는 노래를 아주 좋아해요. 당신은?" "<언덕 위의 우리집> 편이 더 좋은 데요, 영.양.이라든가 들소라든가가 나오니까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방긋 웃었다.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안녕." "안녕." 하고 나도 말했다. ☆ 공기를 아끼기 위해서 칸델라(휴대용 석유등=영주)를 꺼버리자,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 초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 어둠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모두, 될 수 있는 대로 숨을 쉬지마. 남은 공기가 얼마 안되니까." 나이 많은 광부가 그렇게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천장의 암반이 약간 삐꺽거리는 소리를 냈다. 광부들은 어둠 속에서 가까이 모여, 귀를 기울이고, 단지 하나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곡괭이의 소리, 생명의 소리다. 그들은 벌써 몇 시간이나 그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이 조금씩 현실을 용해해 갔다. 모든 것이 아주 옛날에, 아주 먼 세계에서 일어난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혹은 모든 것이, 훨씬 먼 장래에 어딘가 먼 세계에서 일어날 지도 모르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모두, 될 수 있는 대로 숨을 쉬지 마. 남은 공기가 얼마 안되니까. 밖에서는 물론 사람들이 굴을 계속 파고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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