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울 아까부터 자네들의 체험담을 듣고 있자니까 말이지, 그런 경우의 이야기엔 몇 가지의 패턴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거든. 우선 한 가지는, 이쪽에 삶의 세계가 있고, 저쪽에 죽음의 세계가 있어서, 그 것이 그 어떤 힘에 의해 어디선가 교차한다는 형식의 이야기란 말이지. 예를 들면 유령이라든가 하는 거. 그리고 또 한가지는, 3차원적인 상실을 넘어선 어떤 종류의 현상이나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서 예지라든가 예감이라든가 하는 거 말이야. 크게 나누면 그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러한 것을 종합해 보면 말일세, 모두가 어느 쪽인가 한쪽 분야만을 집중해서 경험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결국 말일세,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은 흔히 유령은 보지만 예감을 하는 경우 는 거의 없는 것 같고, 예감을 곧잘 체험하는 사람은 유령 같은 건 보지 못한단 말이지. 왠지는 잘 몰라도, 그러한 개인적인 경향이라는 건 확실히 있는 것 같 단 말이야.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 그리고 물론 어느 쪽에도 딱 들어맞지않는 사람도 있지. 가령 내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미 서른 몇 해 살아왔지만, 유령 같은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구. 예지몽(豫知蒙)이라든가 예감이라든가, 그런 걸 경험한 적도 없어. 두 친구하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들은 유령을 봤다고 하는데도, 난 전혀 알아채지 못한 적도 있거든. 둘 다, 회색 옷을 입은 여자가 내 곁에 서 있었다고 했지만, 여자 같은 건 절대로 타고 있지 않았단 말이야. 우리들 셋뿐이었어. 거짓말이 아니야. 한데 그 두 사람도 일부러 나를 놀리 거나 할 친구는 아니거든. 뭐, 그건 그걸로 굉장히 을씨년스런 체험이었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유령을 보지 않았다는 점에는 다름이 없지. 아무튼 그렇단 말이야. 나라는 인간은 유령도 보지 못하며, 초능력도 없어. 뭐라고 할까, 실로 산문적(散文的)인 인생이란 말이야. 하지만 나한테도 꼭 한 번, 꼭 단 한 번, 마음속으로부터 무서움을 느낀 적이 있었어. 이젠 십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이제껏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은 없어. 입밖에 내는 것조차 무서웠단 말이야. 입밖에 내기만 하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들었다구. 그래서 여지껏 잠자코 있었지. 하지만 오늘 밤은 모두들 차례차례로 각자 무서웠던 체험담을 들려 준 셈이 니. 주최측인 내가 마지막으로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자리를 달아나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야. 그래서 나도 마음먹고 얘기해 보기로 하겠어. 아니야, 됐어. 박수는 그만두라구. 대수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니깐.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유령도 나오지 않으며, 초능력도 없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무서운 얘기가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런 식이 되고 말지도 모르지. 뭐, 그래도 좋아. 아무튼 얘기하겠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건 60년대 말 그 일련의 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 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체제 타파니 뭐니 하던 시대였지. 말하자면 나도 그런 물결에 휘말린 한 사람으로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몇 해 동안 육체 노동을 하면서 일본 열도를 방랑하고 있었어. 그런 것이 옳은 인생인 줄 알았었지. 말하자면, 젊은 놈의 패기라고나 할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생활이었다구. 그것이 옳았나 틀렸나 그게 아 니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아마 똑같은 걸 할 거란 말이지. 그런 거 아니겠나? 방랑 2년째의 가을에. 난 2개월 가량 중학교 야간 경비를 했었어. 니가타라 는 조그만 도시의 어느 중학교에서 말이지. 나는 마침 여름 내내 꽤나 고되게 일했던 탓으로, 좀 느슨하게 지내고 싶었거든. 어쨌든 야간 경비라는 건 쉬운 일 아닌가. 낮 동안은 사무실에서 잠이나 자다가, 밤중이 되면 전체 학교 건물을 두번 순찰하기만 하면 되거든. 그 이외는 음악실에서 레코드를 듣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체육관에서 혼자 농구를 하거나 했었지. 밤중에 학교에서 혼자만 있다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더군 그래. 아니지, 조금도 겁나거나 하지 않았거든. 그래, 열여덟, 열아홉, 그 시절이란 정말 겁 모를 때가 아닌가. 자네들은 중학교 야간 경비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순서를 우선 설 명하자면, 순찰은 오후 9시와 새벽 3시에 한 번씩 하면 되거든. 그렇게 정해져 있어. 건물은 제법 새 콘크리트의 3층이고, 교실 수는 18개에서 20개쯤으로 그 다지 큰 학교는 아니었어. 거기다 음악실이니, 재봉실이니, 미술실, 거기다 직원실이랑, 교장실 같은 것이 있지. 학교 건물 이외엔 급식실과 풀장과 체육관과 강당이 있어. 그런 것들을 한바탕 순찰하는 셈이야. 순찰하며 표시해야 하는 곳은 20개 가량 되는데, 걸어다니면서 일일이 그걸 확인하고, 볼펜으로 OK 사인을 용지에 써넣는다. 직원실 - OK 실험실 - OK. 이런식으로 말야. 물론 사무실에 뒹굴면서 OK, OK하고 써넣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런 정도의 수고를 아끼진 않았어. 왜냐하면 순찰을 돈다 해도 뭐 힘들지도 않고, 또 수상한 자가 침입했거나 하면, 잠결에 기습을 당하는 건 이 쪽이니깐 말야. 그래, 9시와 3시에 나는 대형회중전등과 나무 막대기를 들고 학교 안을 돌았어. 왼손엔 회중전등, 오른손엔 나무 막대기를. 나는 고등학교 때, 검도를 했으니까 팔 힘에는 자신이 있었지. 상대방이 프 로가 아닌 한, 비록 저쪽이 진짜 칼인 일본도(日本刀)를 갖고 있다 한들 별로 겁날 것이 없었거든. 그 시절엔 말이지......지금이라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 고 도망치겠지, 물론. 그건 10월 초의 바람이 드센 밤이었지. 춥지는 않았어. 어느 쪽이냐하면 오 히려 무더운 편이었지. 저녁쯤부터 더럽게 모기가 많지 않겠나. 가을인데도 모기향을 두 개나 켰던 걸 기억하고 있어. 줄창 바람이 윙윙거리고 있었지. 마침 풀장의 칸막이문이 망가졌었는데, 그 것이 바람에 덜커덩거려서 시끄럽기 짝이 없지 뭔가. 고쳐 놓을까도 했지만, 어두워서 고칠 수도 없었어. 그래서 밤새도록 덜커덩거렸지 뭔가. 9시에 순찰 을 돌 땐 아무 일도 없었어. 20곳의 순찰 표시는 OK였고, 열쇠는 딱딱 걸려 있 겠다, 모든 것이 어김없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었겠다,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 었어. 나는 사무실로 되돌아와 자명종을 3시에 맞춰 놓고 깊은 잠에 빠져 버렸 어. 3시에 시계의 벨이 울렸을 때, 나는 어쩐지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단 말이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말야, 일어나고 싶지 않더란 말일세. 일어나려고 하 는 나의 의지를, 몸이 마구 눌러 막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지. 나는 잠자리를 잘 털고 일어나는 편이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억지로 일어나, 순찰 돌 채비를 했지. 덜커덩 거리는 칸막이 문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 어. 한데 말이지, 그 소리가 어쩐지 아까하곤 틀리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나. 신경 과민이라면 그만이겠지만 어째 제대로 몸에 착 와닿지 않더란 말이야. 으스스하군, 순찰하고 싶지 않군, 그렇게 느꼈어. 하지만 역시 마음을 다져 먹 고 가기로 했지. 글세, 그런 일은 한 번 얼버무려 버리면, 다음엔 몇 번이고 얼버무려 버리게 되니까 말이야. 나는 회중전등과 나무 막대기를 들고 사무실 을 나섰어. 으스스한 밤이었다구. 바람은 더욱더 드세어지고, 공기는 더 축축 하게 젖어 있었어. 피부가 마구 쑤시고, 정신이 제대로 집중되지 않았어. 맨 먼저 체육관과 강당과 풀장을 순찰했지. 어느 곳이나 OK였어. 칸막이 문짝은 머리가 돈 인간이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것처럼 덜커덩덜커덩 열렸다 닫혔다 하고 있었어. 더럽게 불규칙하더라구. 응,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그런 느낌이 드는 소리였 단 말일세. 어째 좀 묘한 비유지만, 그땐 진짜 그렇게 느꼈단 말이야. 학교 건물 내부에도 별 이상은 없었지. 여느 때나 다름없었어. 쭉 한 바퀴 돌아보고 순찰 결과 보고서에 전부 OK사인을 써넣었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 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려 했지. 마지막 순찰 장소가 급식실 옆의 보일러실이었는데, 그건 학교 건물의 동쪽 끝에 있었지. 사무실은 서쪽 끝에 있었어. 그래서 항상 나는 1층의 긴 복도를 걸어서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지. 물론 매우 캄캄했어. 달이 떠 있으면 조금쯤 은 밝은 빛이 비쳐들어 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회중전 등을 비추어 조금 앞을 살피면서 걸어가곤 했지. 그날 밤은 태풍이 가 까이 와서, 물론 달은 뜨지 않았어. 어쩌다가 잠깐잠깐 구름이 걷혀도 이내 다 시 캄캄해지고 말았어. 그날 밤은 여느 때보다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걸었어. 농구화의 고무밑창이 리놀륨 위에서 털썩, 털썩 하고 소리를 냈어. 녹색 리놀륨이 깔려 있는 복도였 어. 이끼가 낀 것 같은 낡은 녹색이었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구. 그 복도의 한복판 언저리에 학교의 현관이 있었는데 말이지, 거기를 지났을 때에 갑자기 '으악!'하는 느낌이 들지 않겠나, 칠흑 속에서 무슨 형상이 보인 것 같았단 말이야. 옆구리 밑이 섬뜩했어. 나는 나무 막대기를 다시 움켜잡 고, 그쪽 방향으로 돌아섰지. 그리곤 그쪽으로 번쩍 회중전등 불빛을 비추었 어. 신발장 옆 벽 언저리로 말이지. 거기엔 내가 있었어. 다시 말해 -거울이 었단 말일세. 별 거 아니라구. 거기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을 뿐이란 말야.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런 곳에 거울 같은 건 없었는데, 어느 틈엔지 걸려 있더란 말이야. 그래서 난 깜짝 놀랐던 셈이지. 몸 전체가 비치는 세로로 기다란 체경이었어. 나는 안도의 숨을 쉬는 것과 동시에 너무나 어이없다는 느낌이 들었어. 이게 뭐야, 싱겁게시리, 하고 느꼈지. 그래서 거울 앞에 선 채 회중전등을 아래에 내려놓고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어. 그리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한 모금 빨았 지. 창문으로 아주 희미하게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와, 그 불빛은 거울 속에 까지 미쳐 있었어. 등 뒤쪽에서는 덜커덩덜커덩 하는 풀장 칸막이 문짝 소리가 들려 왔고. 담배를 세 번 가량 빨아당기고 나서, 갑자기 기묘한 사실을 깨달았어. 즉, 거울 속의 형상은 내가 아니더란 말이야. 아니지, 외견상으로는 완전한 나였 지. 그건 틀림없었어. 하지만, 그건 절대로 내가 아니었어. 나는 그걸 본능 적으로 알았어. 아니지, 틀렸어. 정확히 말해서 그건 물론 나였어. 하지만 그건 나 이외의 나였단 말이야. 그것은 내가 그럴 수 없는 형상으로서의 나였단 말일세. 어떻게 말하면 될까. 이 느낌을 타인에게 말로 설명하기란 지독히 어렵군 그 래. 하지만 그 때 단 한 가지 나로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이 마음속 으로부터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었어. 마치 그것은 캄캄한 바다에 떠오른 딱딱한 빙산 같은 증오였어. 그 누구도 치유해 줄 수 없는 증오였지. 나로선 그것만을 이해 할 수 있을 뿐이었어. 나는 거기에 한참 동안 망연히 서 있기만 했어. 담배가 손가락 사이로부터 바닥에 떨어졌어. 거울 속의 담배도 바닥에 떨어졌지. 우리는 똑같이 서로가 서로의 몰골을 바라보고 있었어. 나의 몸은 쇠사슬로 포박당하기나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어. 이윽고 그 놈팽이의 손이 움직였어. 오른손 손가락이 천 천히 턱을 만지고, 그리고는 조금씩 조금씩, 마치 벌레처럼 얼굴로 기어오르고 있었어. 알고 보니 나도 역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마치 내 쪽이 거 울 속의 형상인 것처럼 말일세. 즉, 그 놈팽이 쪽이 나를 지배하려고 했던 거 지. 나는 그 때, 최후의 힘을 몽땅 짜내어 아우성을 쳤지. "우오오"랄까 "구오 오"랄까, 그런 소리로 말이야. 그랬더니 쇠사슬 포박이 아주 조금 풀리지 않겠 어. 그래서 나는 거울을 향해 목도를 한껏 던졌어. 거울 깨지는 소리가 났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서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방문 열쇠를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썼어. 현관 바닥에 떨어뜨리고 온, 불이 붙은 담배가 신경에 걸렸 지. 하지만 나는 도저히 다시 거기로 되돌아갈 순 없었어. 바람은 줄곧 불어 대고 있었어. 풀장의 칸막이 문짝 소리는 날이 샐때까지 계속되었어. 응, 응, 아니야, 응, 아니야, 아니야......그런 식으로 말야. 이런 이야기의 결말이란, 이미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되지만, 물론 거울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던걸세. 태양이 솟아오를 즈음엔 태풍은 이미 사라졌어. 바 람도 그치고 태양이 따스하고 뚜렷한 빛을 던져 오고 있었지. 나는 현관으로 가보았어. 거기에 담배 꽁초가 떨어져 있었어. 나무 막대기도 떨어져 있었고, 하지만 거울은 없었어. 그런 건 애당초 없었던 거야. 현관의 신발장 옆에 거울이달려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랬단 말일세. 이런 경위로 해서, 나는 유령 같은 건 보지 못했어. 내가 본 것은 그저 그런 나 자신이야. 하지만 나는 그날 밤에 맛본 공포만은 여태껏 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지.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만큼 겁나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말이지. 자네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나? 그런데 자네들은 이 집에 거울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챘나? 사실 말이지, 거울을 보지 않고 수염을 깎을 수 있게 되려면, 제법 시간깨나 걸리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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