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세라복을 입은 연필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옮긴이: 김난주 출판사: 도서출판 백암 옮긴이의 말 간밤에 꿈을 꾸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꿈이 었다. 하루키는 푸른빛이 감도는 청결한 와이셔츠에 하얀 여름 샌들을 신고서는, 누군가의 결혼식에 간다고 했다. 나는 마냥 행복감에 젖어 생긋거리고 있었는 데... 언뜻 잠에서 깨어 나,꿈속에서의 상큼한 영상을 다시금 그려보니 그 모습은 결혼식에 가기에는 터무니없는, 구멍이 송송 뚫린 여름 샌들에 양복도 걸치지 않은 무례한 차림이 되고 말았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하루키에게 매달려 있다 보니 결국 이런 꿈도 꾸 는구나 싶어 혼자 웃고 말았지만, 한편 그 꿈이 하루키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테면 '양복을 입지 않고, 여름 샌들을 신은' 몰상식한 옷차림으로라도 내 가 그러고자 한다면 결혼식에 갈 수 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2>를 꾸미고 있는 하루키의 글에는 이러한 하루키의 고집스러움 내지는 집요함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수필집 1>의 <촌상조일당> 에서 그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었던 유머와 재치가 <촌상조일당의 역습>에서는 고집스럽고도 신랄한 가시가 되어 우리를 역습하는 것이다. 그의 역습은 세상을 전복하고자 꿈꾸는 혁명가의 선동처럼 거창하지도 않고, 무슨 희망 찬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마누라와 남편의 역할을 바꾸어 봄으로써 타인의 눈으로 세 상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계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있고 적나라하기까지 한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 엔드>가 번역상의 몇몇 문제점을 해결 짓지 못한 채 세 상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이 심심찮은 관심을 보여 주셨다. 이제 두 번째 수필집 <세라복을 입은 연필>을 마무리하며, 세 번째로 이어질 <랑겔 한스섬의 오후>에 까지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계절이 몇 번 더 바뀌고 그의 꿈을 몇 번이나 더 꾸게 될지,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어떤 또 다른 하루키 원더랜드와 만나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다. 1993년 12월 김난주 촌상조일당의 역습( 1985년 4월 5일 부터 1986년 4월 4일까지 <주간 아사 히>에 연재된 후 1986년 6월 단행본으로 간행된 수필집이다. 철도 스트라이크에 관하여 이런 발언을 하면 전철로 통금을 하시는 분들께선 혹 불쾌하게 여기실지 모르 겠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해 '철도 스트라이크'라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뭐 딱히 운수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든가, 시화가 혼란스러워지는 거 좋아한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고(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건 약간 좋아하지만), 그저 단순히 '평상시와는 다른' 일이 생기면 아주 기쁜 것이 다. 역이 폐쇄되어 휑뎅그레하거나, 야마노테선의 육교 위에서 삼십 분 동안이나 선로를 내려다 보아도 열차가 한 량도 지나가지 않곤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한 다. 좀더 자세하게 그런 심리를 분석해 보면, 나는 같은 '평상시와는 다른 일'이라 도, 여느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엇이 생기는 쪽보다, 여느 때는 무엇이 있 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마이너스적 상황, 결락 상황 쪽이 취향에 맞는 듯하다. 그러니까 철도 스트라이크 같은 경우는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만약 반 철도 스트라이크라는 것이 존재하여, 그날은 열차량수가 보통 날의 세 배쯤 으로 늘어난다 해도, 그런 종류의 비일상성은 그다지 나의 관심을 끌지 않을 거 라고 생각한다. 옛날 장사를 했을 시절, 철도 스트라이크가 있는 날이면 손님이 거의 한 사람 도 없어 영업상 상당한 손해를 봤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역시 스트라 이크가 좋았다. 물론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야 고통스럽지만, 스츠라이크 중이 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하는 심정으로 그런 날에는 일찌감치 가게문을 닫고, 인 기척도 없이 휑한 동경 거리를 마음껏 걸어 다녔던 것이다. 하라주쿠에서 시부야, 요요기에서 신주쿠로 걷고 있노라면, 거리 전체에 '오늘 은 쉬는 날'이라고 하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떠돌고 있는데다, 조용하기도 하고 사람도 적어, 정말 즐겁다. 어째 '방과 후' 같다는 느낌이 든다. 걷는 속도도 여느 때보다는 얼마간 느릿해져, '어, 느티나무 새잎이 제법 많이 돋았잖아'하고 보통 때는 별로 느끼지 못하던 부분에 문득 시선이 옮겨지기도 한다. 점심때가 지나 교섭이 타결되어 전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퍽 실망스럽다. 신문에 곧잘 '이제 스트라이크는 지긋지긋 합니다. 어떻게든 조처를 취해 주었 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샐러리맨 a씨(38세), '스트라이크를 하는 날은 장사가 안돼 서 밥만 축냅니다'라는 따끈따끈 도시락 장사(45세)의 발언 같은 게 실리는데, 정말 그런 사람들만으로 세상이 성립되어 있는 것일까? 하기야 뭐 스트라이크 덕분에 몹시 곤혹을 치르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개의 사람들 은 '스트라이크? 가끔씩은 괜찮잖아'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나처럼 '스트라이크 대환호'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제법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 에는 그런 류의 의견은 별로 실리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스트라이크, 좋잖아요, 오래 계속됐으면 하는데요'라는 의견이 나오면 지면이 수습되기 어려운 탓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수습되기 힘들 테지, 게다가 그런 걸 따르기 시작하면, 더 나아가 '태풍을 꽤 좋아한다'는 등, '요인 암살은 유쾌하다' 는 식의 의견까지 따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의 노동 쟁의권은 일 단(국철 문제는 제쳐두고) 법률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니까, '스트라이크를 좋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결코 윤리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태풍 지지 와 요인 암살과는 성질이 다르다. 이전에 국철 중앙선의 선로 변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것도 웬만한 연변이 아 니고, 뒤뜰로 전철이 지나간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닐 만큼 옆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시끄럽고, 따라서 집세도 싸다. 집세만 싸다면 좀 시끄러운들 상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그래서 우리(나와 마누라)는 매년 있는 철도 스트라이크를 기다리는 게 낙이 었다. 스크라이크가 시작되어 열차가 레일 위를 달리지 않게 되면, 우리는 선로 변에서 뒹굴며 한가롭게 햇볕을 쬐었다. 선로 변에는 이런저런 들풀이 자라 있 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꽃들도 피어 있다. 하늘에서는 종다리가 재재거리고, 사 방은 노아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잠잠하다. 이대로 그냥 신석기 시 대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는데 싶은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지난번 스트라이크 예정일 전날 밤에 거리에서 어물쩡거리고 있다가 아는 여 자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래서 '아니, 이렇게 늦게까지 뭘하고 있는 거지?' 하고 물었더니, '내일 스트라이크가 있잖아요. 회사에서 호텔을 잡아 주었어요' 하길래, '그럼, 어대 마시러 갈까' 하고는 짝짜꿍이 맞았는데, 그때도 아주 즐거웠다. 개중 에는 이런 찬스를 이용하여 재수 좋게 오피스 러브에 열중하시는 분들도 틀림없 이 있을 텐데, 물론 그런 사람들의 스트라이크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도 신문에 는 안 실린다. - 일본에서는 매해 봄, 3월경에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 조합이 벌이 는 전국적인 공동 투쟁이 있다. 기업과 노조의 온건한 타협으로 인상률이 결정 되는 까닭에 최근에는 '투쟁'이라기 보다 '교섭'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다. 검푸른 색 양복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입은 것은 열여덟 살 나던 해다. 지금도 생생 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VAN JACKET의 제품인 헤링본(생선뼈나 삼나무 잎 모 양을 도안한 무늬, 또는 그 무늬를 짜 넣은 복지.)양복이었다. 와이셔츠는 흰 색 버튼 다운 셔츠, 넥타이는 검정 색 니트 제품. 아이비 전성시대의 얘기다. 나는 헤링본 무늬를 몹시 좋아하여, 처음으로 맞추는 양복은 꼭 그 감으로 해 야지 하고 늘 생각했는데, 막상 맞춰 놓고 보니 헤링본지로 만든 양복이 열여덟 살 소년한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헤링본을 제대로 입어내기에는 역시 그 나름의 연륜이 필요한 모양이다. 두 번째로 입은 양복은 결혼할 때 맞춘 수수한 올리브 그린색의 영국식 쓰리 피스로, 이번에는-스스로 얘기하긴 좀 뭣하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그 당시 에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가 길고 지금보다 훨씬 야위어 있는 게, 얼굴에는 굳 은 결의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스물두 살 때 일이다. 나는 취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으므로, 세 번째 양복이 생긴 것은 훨씬 훗날 이다. 스물아홉 살 때 우연히 응모한 작품이<군상>이란 문예지의 신인상에 당 선(이라고 하나?)되어, 그 수상식에 나가기 위하여 일부러 여름 양복을 산 것이 다. 그러나 그때는 양복에 대한 동경이나 집착이 이미 사라지고 없던 때라, 가능 한 한 싼 것을 대충 사 입으려고 마음먹었다. 당시엔 나도 꽤나 거드름을 피웠 던지라, 문예지의 신인상 수상식에 나가기 의해 촐싹거리며 비싼 양복을 사랴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ㅍ 건방지게 느껴진다. 하긴 지 금도 건방지긴 하지만. 젊은이들에겐 당할 수 없다. 그리하여 어떤 양복을 살까 하고 산책삼아 아오야마 거리를 기웃기웃하고 있 는데, 옛날의 VAN 빌딩에서 도산 바겐세일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VAN 도 망해 버렸나 학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단추가 세 개 달린 구식 면 양복 을 팔고 있었다. 올리브 그린 색에 가격은 만 오천 엔이었다. 굉장히 싸다. 그래 서 그것을 사 가지고 돌아와, 세탁기에 넣고 빨아 쭈글쭈글하게 해가지고는, 헌 테니스 화를 신고 수상식에 나갔다. 지금 나의 옷장-이라 할 만한 것도 못 되지만- 에는 양복이 한 벌 밖에 없다. 폴 스튜어트에서 산 검은 양복뿐이다. 이건 순수한 관혼상제용으로, 아직 한 번 밖에 입지 않았다. 앞으로도 양복을 사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성가신 옷을 입지 않고 지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값은 비싸고, 음직이기에도 불편하고, 쉴 새 없이 스타일이 바뀌고, 드라이 클리닝 값도 든다. 아주 드물게 어디 한 번 양복을 입고 나가 볼까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입 고 나가면 두 시간쯤 걸어다니다가는 '아아 귀찮다. 내가 어쩌다 이런 걸 입고 나왔나' 하고 두고두고 후회한다. 양복이란 정말 부자연스런 옷이다. 넥타이를 졸라 맬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전부 블레이저 코트로 때운다. 나는 부 룩스 브러더스의 블레이저 코트를 좋아하여, 이것저것 여섯 벌이나 사고 말았다. 넥타이를 매는 것을 두 달에 한 번 꼴이니까, 좀 많이 산 듯한 감이 없진 않지 만, 도무지 의복비가 들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런 정도의 사치는 허용되 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더블 단추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호텔 로비에 멍청하게 서 있으면, 사람들이 호텔 관계자인 줄로 잘못 알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오 사카의 로얄 호텔에서는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어,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났다. '이봐, 000실 준비 다 됐나?'하고 말이다. 그런 걸 내가 알 턱이 없잖은가. 양복 이야기와는 관계없지만, 나는 여기저기에서 심심찮게 다른 사람들과 혼 동되는 불상사를 겪는다. 한 번은 이케부쿠로의 토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으려니, 아르바이트생과 혼동되어 '어이 이 봐, 왜 명찰 안 붙였어!'하고는 좀 상사인 듯한 아저씨에게 호통을 들은 일이 있다. 하도 기가찬 일이라 내 쪽도 아연실색하여 '옛'하고 있는 사이에, 상대방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토부 백화점에 딱히 원한이 맺힌 것은 아니지만, 그때 일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체험이었다. 여담은 그만하고 양복 얘기로 돌아가자. 내 자신은 양복을 거의 안 입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남자를 보면, 그 건 또 그 나름대로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연륜이 쌓여야 하고, 철학도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 어느 쪽도 없으니,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기란 좀처럼 수월치 않다. 미국 화장품계의 거물이었던 고 찰스 렙슨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검푸른 색 양복밖에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빌 피오라반티라는 테일러에게 약 이백 벌 정도의 검푸른 색 양복을 만들게 하여 그걸 차례대로 입었다고 하니까, 그 정도 되면 이미 철학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었다 해야 할 것이다. <에스콰이어>지에 의하면 검푸른 색은 어떤 류의 권위나 힘들 두드러지게 하고, 그 색깔 옷을 입 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 열심히 뛰고 있다!'란 인상을 부여한다고 한다. 과연 당 대에 렙슨 제국을 구축한 사람답게, 색에 대한 감각이 날카롭다. 그 얘기를 읽고나서부터는 거리에 나가면 유심히 사방을 둘러보곤 하는데, 검 푸른 색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는 웬만해서 없었다. 분명 검푸른 색 양복을 야만스럽게 보이지 않도록 차려 입기란 까다로운 일이겠지. - 1979년 하루키가 군상지에 응모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군상 신인상 의 당선작이며, 동시에 제뷔작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그것이 '우연한 응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십 대를 마감하기 위하여 형태 를 지닌 무언가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고, 군상 신인상이 요구하는 400자 원고 지 200매쯤의 중편 소설이 그가 쓰려는 글에 적당한 분량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또 처음에 씌어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종래의 리얼리즘 문체였다고 한 다. 결국 그것은 완전히 폐기되고, 새로이 다시 쓴 것을 지금 우리가 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의 이십 대가 응집된, 오래도록 가다듬어진 예리한 칼날이 기도 했던 것이다. 소문! 소문이란 그 나름으로 무척 재미있는 것이다. 나는 교우 관계가 폭넓은 편이 아니라서 - 잘라 말하면 좁다 - 그런 일이 흔치 않지만, 그래도 가끔 나와는 전 혀 무관한 나에 대한 소문이 귀에 들어오는 일이 있다. 고맙게도 지금껏 그다지 나쁜 소문은 없고, '무라카미가 BMW를 산 것 같던데'라든가(살 턱이 없잖아!), '무라카미는 튀긴 두부를 하루에 세 모나 먹는대'라든가(한 모밖에 안 먹는다) 하는 정도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어째서 내가 튀긴 두부를 하루에 세모나 먹지 않으면 안 된답니까?' 하고 상대방에게 물어 봤더니, '하참, 잡지 인터뷰에서 그렇게 대답하 지 않았습니까'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인터 뷰의 질문은 내용이 대개 엇비슷하기 마련이라, 몇 군데 겹치거나 하면 지겨워 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잡이 대답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좋아하는 음식 이요? 튀긴 두부입니다. 하루에 세 모는 먹죠, 아마' 하는 식으로. BMW 얘기도 어디에선가 농담 삼아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조롱하며 살다가는 언젠가 반드시 혹독한 일을 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든 다. 어찌 됐든 내가 응한 인터뷰는 그다지 믿지 말고 적당히 읽어 주세요. 이따 금 읽어보다가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질 때가 있을 정도니까. 하기야 '연 수익 은?' 하는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해가 없는 소문이란 참 재미있다. 문단에도 요령부득의 소 문이 풍성하다. 편집자와 만나면 가끔씩은 '실은요, 무라카미 씨. 우리끼리만 얘 긴데요 -' 하면서, 하나 둘 그 계통의 소문을 듣고는 '그런가, 그런 일도 있나' 하며 사화에 참여한 듯한 기분에 젖는다. 그러나 그런 것은 빙산의 일각 중의 또 그 부서진 조각과도 같은 것으로, 신주쿠의 골든가에 어떤 얼음 기둥이 솟아 있는지, 내 알 바가 아니다. 펭귄 북스에 란 책이 있다. 이 책은 미국에 유포되어 있는 무수한 소문이 진짜 소문인지 아니면 헛소문인지를 자세하게 해설해 놓은 꽤 재미있는 책인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에는 별의별 소문이 많기도 하구나 싶어 감탄 하고 만다. 예를들면 '존 딜린저의 페니스는 유달리 컸기 때문에 스미소니안 박 물관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아인슈타인의 뇌는 위치타의 의사가 병에 넣어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은 사후 자신의 뇌를 연 구용으로 써 달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는데, 그게 돌고 돌아 위치타까지 흘러가 서는 병에 담겨져 사이다 박스 안에 처박혀 있다는 것이다. '1943년에 주조된 일 센트짜리 동전을 포드사에 들고 가면 새 차를 한 대 준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 건 엉터리 헛소문이다. 그러나 1943년에 주조된 일 센트짜리 동전은 희귀품이라, 실제로 새 차 한 대를 살 수 있을 만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하니, 완전한 헛소문이라고도 할 수 없다. 미국판 <플레이 보이>지의 표지 타이틀 중 P자에 조그만 별이 몇 개씩 찍혀 있곤 한데 (1978년 이전의 <플레이 보이>지를 갖고 계신 분은 확인해 보세요), 이게 편집장인 휴 헤프너 씨와 그의 플레이 메이트와의 그 달 섹스 횟수를 나타 내는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건 - 섭섭하게도 - 엉터리다. <플레 이보이>지는 지역이나 용도에 따라 판을 달리 하고 있는데, 별의 수는 그 표시 였던 것이다. 문학에 관계된 것으로는 '토마스 핀천(Thomas Phnchon, 1937 - , 미국의 작 가)은 J. D.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1919 - , 미국의 작가)의 펜 네임'이 란 가공할 소문이 있다. 이것은 진짜가 아닌 백 퍼센트 거짓말로, 순전히 헛소문 이다. 샐린저는 자기 집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핀천은 사진도 공개하 지 않은 채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탓에 이런 소문이 떠돌아다니 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비밀 필명을 두 개 정도 갖고 있지만. '프랑스에서 제리 루이스는 채플린에 비견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필경 프랑스인이 포도주를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탓일 게라고 저자는 기술해 놓았다. 그리고 구리코 모리나가 사건(1955년 오카야마에서 분유에 함유된 비소가 원 인이 되어 유아4명이 사망한 사건. 전국적으로 환자가 일만 명 이상 발생하고, 그 중 113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로 발전하였다)을 봐서도 잘 알 수 있듯, 식품 관계 회사는 근거 없는 헛소문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예를들면 맥도날드 햄버 거에 들어 있다고 소문이 난 것만 해도 고양이 고기, 캥거루 고기, 거미 알, 벌 레의 유충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맥도날드사는 광고에 다 굳이 '백 퍼센트 돼지 고기'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체스터 필드 담배 회사는 한 번은 '공장에서 한센병 환자가 발견되었다'는 헛소문으로 수난을 겪은 일이 있다. 회사는 탐정을 몇 명 고용하여, 그 소문의 근원지에 가장 가까운 스물다섯 명 중 누가 장본인인가를 밝혀내는 자에게 상금으로 천 달러를 주겠노라고 했 다. 하지만 탐정들은 어느 누구도 그 천 달러를 손에 넣지 못했다. 아무리 연줄 연줄을 더듬어 소문을 퍼뜨린 경로를 헤쳐나가도 끝내 그 근원까지는 다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유해한 소문이란 참으로 겁나는 것이다. - 며칠 전 여성 편집자에게 '무라카미 씨도 제법 심술궂다면서요'라는 말을 들 었는데, 그 소문의 발생지를 더듬어 본 즉 아니나 다를까 안자이 미즈마루 씨였 다. 정말 곤란하다구요, 그런 장난. 관서 지방 사투리에 관하여 나는 관서에서 태어나 관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교토의 스님 자식이고, 어머 니는 센바(오오사카시의 한 지역)의 장삿집 딸이니까, 백 퍼센트 관서 토박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지만 관서 지방 사투리를 쓰며 살이 왔다. 그 이외의 언어는 말하자면 이단이고, 표준어를 구사하는 인간 중에는 쓸만한 인간 이 없다는 몹시 내쇼널리스틱한 교육을 받았다. 투수하면 무라야마, 식사는 슴슴 하게, 대학하면 교토 대학, 장어 요리하면 장어밥의 세계이다. 그러나 와세다에 들어가게 되어(와세다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도 거의 몰랐다. 그렇게 지저분한 곳인 줄 알았다면 아마 안갔을 거다) 선뜻 내키지 않는 기분으 로 동경에 올라왔는데, 동경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사 용하는 언어가 일주일 사이에 거의 완전하게 표준어 - 즉 동경 사투리 - 로 바 뀌어 버렸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말은 지금까지 써 본 적도 없고, 특별히 바꿔 야겠다는 의식도 없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는 걸 문득 깨 달은 것이다. 문득 깨닫고 보니 '그런 핑계를 늘어놔 봤자, 그거야 알 수 없지'하 는 꼴이 돼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동경으로 올라온 관서의 친구들로부터 '너 말야, 그 말투, 관서 사투리 잊지 말고 써야 될 거 아니야. 엉터리 같은 말 쓰지 말라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미 바뀌고 만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언어는 공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토지에나 그곳만의 공기 가 있고, 그 공기에 맞는 언어가 있어, 그것을 거역하기란 웬만해서는 불가능하 다. 먼저 액센트가 바뀌고, 그러고는 어휘가 바뀐다. 이 순서가 반대가 되면, 언 어는 쉽사리 마스터 할 수 없다. 어휘란 이성적인 것이고, 액센트는 감성적인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런 즉 나는 관서로 돌아가면 역시 관서 지방 사투리를 쓴다. 신칸선 코베역 에 내리면 첫 마디가 벌써 관서 사투리로 돌아와 있다. 그러면 이번에는 거꾸로 표준어가 입에서 안 나온다. 친구의 견해에 의하면 '너 관서 사투리 어째 좀 이 상한 거 아니야'인 모양이지만, 지금 막 도착했으니 별 수 없다. 일주일 정도 있 으면 완벽한 관서 사투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내 마누라는 삼 대째 계속되는 야마노테선 내족(이라고 한다)(야마노테션 전철 은 동경의 중심부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순환선이다. 그 안쪽에서 줄곧 살 았다 함은 즉 동경 토박이를 말한다.)인데, 그녀도 얼마간 관서에 가 있으면 곧 바로 관서 사투리에 물들어서는, '죄송하지만, 여기 가려면 어떻게 가면 되죠?'를 관서 사투리로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가지고 뭐라 얘기 할 수는 없지만, 곁에서 보고 있으면 놀랍다. 언젠가 함께 이치가와 콘감독(1915 - , 미에현 태생, 영화감독)의 <싸락눈(타니자키 쥰이치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것. 오오사카의 센바가 작품의 무대이다.)> 보고 난 다음 액센트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 한참을 애먹었다. 관서 지방을 무대로 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배우 중에도 사투리 습득에 능 란한 사람과 서투른 사람이 있어 제법 흥미롭다. 능란한 사람은 공기처럼 사뿐 인토네이션을 체득하고, 서투른 사람은 지나치게 어휘에 의존함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천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싸락눈>은 언어상으로 그럭저럭 합격이고, <도톤보리강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 역시 오오사카를 무대로 한 작품.)> 은 한심했다. 옛날 영화로는 <부부 좋을씨고(1955년작. 도요다시로 감독에 의한 토호 영화사의 영화,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이 강직한 애인의 보호 아래 어리 광을 피우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라는 훌륭한 관서 사투리 영화가 있다. 그러 나 물론 이런 차이는 그 지방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도치기 사람들은 <원 뢰(1981년작. 도치기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택지 개발로 급격히 변화하는 도시 근교 농촌의 희비극을 그린 영화이다. 네기시 기치다로 감독 작품)>를 보고, 저 런 건 도치기 사투리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데, 나는 왜 그런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외국어를 습득한다는 것도, 대충 이런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암만 영어 회화 공부를 해도, 실제로 외국에 가 보면 언어란 그런 인위적인 습득과는 상당 히 다른 위상으로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번역 같은 것도 하니까 영 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는 부자유스럽지 않지만 회화가 서툴러, 작년에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하기까지 거의 한마디도 영어를 주절거린일이 없다. 학교의 ESS나 영어 회화교실 같은 곳에서 모두들 영어로 토론을 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 한기가 들어 - 이것은 물론 편견입니다, 죄송 - 도무지 영어 회화를 해 볼 마음 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 일주일 정도 있으면 익숙해지겠지 하고 가 봤더니, 거기에는 역시 그곳만의 공기 같은 게 있어 별다른 불편 없이 한 달 반을 지내며, 많은 작가들 과 인터뷰까지 했다. 이런 것은 역시 순응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 본에 돌아오면, 또 다시 영어로는 얘기하기 어려워진다. 관서 사투리 얘기로 되돌아가서, 나는 관서 지방에서는 아무래도 소설을 쓰기 힘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관서에 있으면 결국 관서 사투리로 사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서 사투리속에는 관서 사투리 특유의 사고 시스템이 있어, 그 시스템 속에 갇히고 나면, 동경에서 쓰는 문장과는 전혀 문장의 뉘앙스나 리듬, 발상이 달라지고, 심하면 내가 쓰는 소설의 스타일까지도 싹 바뀌는 것이다. 내 가 줄곧 관서 지방에 살면서 소설을 썼다면, 지금과는 꽤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썼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면 좀 괴롭지만. 고양이의 죽음에 관하여 요전에 기르던 고양이가 죽고 말았다. 그 고양이는 무라카미 류(<수필집 1, 코 끼리 공장의 헤피 엔드> 199쪽 참조)씨네서 데리고 온 애비시니언(몸체는 근육 질에 꼬리가 길고 털이 짧은 고양이의 한 품종. 털은 뿌리 부분이 황갈색, 가운 데 부분이 벽돌색, 끝 부분은 암갈색.)으로 이름은 '기린'이었다. 용한테서 온 것 이라 '기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맥주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이는 네 살로, 인간으로 치자면 이십 대 후반이나 서른 살 정도니까, 이른 죽음이다. 그 고양이는 방광에 담석이 생기기 쉬운 체질이라서 이전에도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먹이도 늘 다이어트 캣 푸드(라는 게 이 넓은 세상에는 존재한다)를 주며 주의를 기울였는데, 결국 방광염을 앓은 게 목숨을 거두어 가는 결과가 되었다. 업자에게 화장을 부탁하여 그 뼈를 작은 항아리에 넣어, 가미다나(신이나 위패를 모시는 선반. 주로 옛 가옥에 많이 부착돼 있다.)에 올려 놓았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오래 된 일본식 가옥이라 가미다나가 붙어 있는 덕분에 이런 때는 아 주 편리하다. 요즘 새로 지은 2DK짜리 맨션 같은 곳에 사는 사람은 고양이 뼈 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적당한 장소를 찾느라 고심한다고 한다. 냉장고 위에다 슬쩍 올려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우리 집에는 '기린'외에도 열한 살짜리 암코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샴종에 이 름은 '뮤즈'(<수필집1, 코끼리 공장의 해피 엔드> 140쪽에 등장하는 예의 '따봉' 고양이)이다. 이 이름은 명작 소녀 만화 <유리의 성>에 나오는 등장 인물에게서 따왔다. 그전에는 '푸치'와 '선댄스'라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나오는 콤비로부 터 이름을 딴 수코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고양이를 잔뜩 기르다 보면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 대개는 지극히 쉬운 이름을 붙인다. 한때 는 '줄무늬'라는 이름의 줄무늬 고양이를 길렀고, '얼룩이'란 이름의 얼룩 고양이 를 기른 적도 있다. 스카티쉬 포르도라고 하는 종류의 고양이를 길렀을 때는 이 름을 '스코티'라고 지었다. 이렇게 되면 파생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일인데, '검둥 이'란 이름의 검정 고양이가 기숙을 한 일도 있다. 요 십오 년 간 우리 집에 왔다가 간 고양이들을 더듬어 각각의 운명을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A. 죽은 고양이 1.기린 2.푸치 3. 선댄스 4.얼룩이 5.스코티 B. 다른 사람에게 준 고양이 1.줄무늬 2.피터 C. 저절로 없어진 고양이 1. 검둥이 2.토비마루 D. 지금 남아 있는 고양이 1.뮤즈 돌이켜보면 집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었던 시기는 십오 년 간 고작 이 개월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이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고양이에게도 다양한 성격이 있어, 한 마리 한 마리가 저마다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행동양식도 다르다. 지금 기르고 있는 샴종 고양이는 내가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출산이 불가능한 실로 흔치 않은 성 격의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진통이 시작되면 곧장 내 무릎으로 달려와서는 '으 ㅆ'하고 앉은뱅이 의자에 기대는 듯한 자세로 주저앉는다. 내가 그 손을 꼭 쥐어 주면 이윽고 한 마리 또 한 마리하고 새끼 고양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고양이의 출산이란 곁에서 보고 있으면 상당히 신기하다. '기린'은 무슨 이유에선지 셀로판지를 둥글게 말 때의 그 빠지직빠지직 하는 소리를 굉장히 좋아하여, 누가 빈 담배갑을 꾸기기라도 하면 어디에선가 총알같 이 달려와, 쓰레기통에서 그 담배갑을 꺼내서는 한 십오 분 정도 혼자서 가지고 논다. 대체 어떤 경위를 통하여 이런 경향 내지는 버릇, 기호가 한 마리 고양이 의 내면에 형성되는지는 베일에 가린 수수께끼이다. 이 고양이는 활달하고 탄탄하게 살이 찐데다 식욕도 왕성한 수코양이로 - 이 부분에 대한 묘사는 무라카미 류씨의 퍼스넬리티와는 관계없다 - 성격도 개방적 이라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로부터도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방광의 상태가 나 빠지면 얼마간 기운이 없어지기는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도 도무지 그렇게 갑작 스레 죽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동네에 있는 동물 병원에 데려가 고인 오 줌을 빼 내고 담석을 녹이는 약을 먹였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보니 부엌 바닥에 웅크리고 눈을 딱 뜬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고양이는 언제나 참으로 깨끗하 게 죽는 동물이다. 너무나도 죽은 얼굴이 깨끗하여, 그대로 양지 바른 곳에 놔두 면 해동되어 되살아 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후에 애완 동물 장례를 전문으로 치르는 매장업자가 밴을 타고 고양이를 가 지러 왔다. 그들은 <장례식>(1984년 작. 이타미 쥬조 감독에 의한 영화. 장례식 의 형식적인 절차를 다룬 작풉) 같은 영화에 나오는 반듯한 상복 차림에, 일단은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사치레를 하는데, 이건 인간을 상대로 하는 조상의 말을 적당히 간략화한 것으로 상상하면 된다. 그러고는 장례비 얘기로 옮겨 간 다. 화장 -> 납골 항아리 코스는 항아리 값이 포함되니까 이만 삼천 엔이다. 라 이트 밴의 후미 짐 칸에는 플라스틱 의상 케이스에 들어 있는 독일 세퍼드의 모 습도 보였다. '기린'은 아마 저 세퍼드와 함께 태워지겠지. '기린'이 그 라이트 밴으로 운반되어 사라지고 난 뒤, 집 안이 갑자기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마누라도 뒤에 남겨진 고양이도 안절부절 못했다. 가족 이란 - 설령 그게 고양이라 해도 - 제 각각 밸런스를 맞춰 가면서 살아 가는 법 이라. 그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면 한동안은 미묘하게 균형이 뒤틀리고 만다. 집 에 있어 봤자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요코하마에나 놀러갈까 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속을 걸어 역까지 가긴 했는데, 그것 또한 왠지 내키지 않 아 도중에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 지금은 '뮤즈'와 '고로케'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마이클'이 니 '코가네'니 하는 이름의 고양이는 일본 전역에 걸쳐 제법 상당수 있을 테니 까. - 윤홍길씨는 나카가미 겐지에 대하여 첫인상을 '소도둑' 이란 말로 표현했는 데, 나의 개인적인 느낌으로 무라카미 류는, 작은 혹은 세련된 소도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하여 나는 프로 야구팀으로는 무슨 까닭에선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후원하고 있 다. 후원한다고 해서 응원단에 들어가 응원을 한다거나, 선수에게 용돈을 준다든 가 하는 구체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고, 그저 혼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이기 면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디어 헌터>에 러시안 룰렛이라는 게임이 나온다. 리볼버 권총에다 탄 환을 딱 한 발만 집어넣고 탄창을 빙빙 돌리다가, 자기 머리에다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이다.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는 일은 여섯 개의 탄창 에 탄환을 네 발 놓고 러시안 룰렛을 하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길 확률이 대충 삼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팀을 응원하는게 건강에 좋을 턱이 없다. 내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기 시작한 것은 십팔 년전 처음으로 동경으 로 올라왔을 때이다. 그 무렵엔 아직도 팀명이 산케이 아톰즈였는데, 이름이 다 를지언정 약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나는 옛날부터 야구는 원칙적으로 홈 팀을 응 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동경에 있는 한은 동경 팀을 응원하려 고. 재경 네 팀 '쿄진' '아톰즈' '토에 플라이어즈' '도쿄 오리언즈'를 여러 가지로 비교해 봤다. 그런데 결국 소거법에 의거하여 야쿠르트가 남았다. 동경 스타디움 은 줄곧 다니기에는 지리적 조건이 안 좋고, 쿄진전은 워낙 붐비는데다 도무지 고라쿠엔이란 경기장이 마음에 안 든다. 그 반면 진구 구장은 제법 상쾌한 경기장이다.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고, 그 무렵엔 외야석이 편평한 둔덕처럼 되어 있어서 거기에 벌렁 드러누워 맥주를 마셔가며 시합을 보고 있으면 꽤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긴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가 심하게 일어, 마침 그때 주먹밥을 들고 있기라도 하면 모래가 달라붙어 자글자글한 게 단점이라고 하면 단점이었지만. 낮 게임 때는 상의를 훌떡 벗어 던지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했다. 대 쿄진전을 제외하곤 늘 텅텅 비어 있다는 것도 심히 기뻤다. 요컨대 간단히 말해서 야쿠르트가 마음에 들어 진구 구장에 다니게 되었다기 보다는 진구 구장이 좋아 그 결과로써 야쿠르트를 응원 한 거나 다름없다. 따라서 텅 비어 있는 구장의 외야석은 여자와 데이트를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맥주를 마시거나 도시락을 까먹어 가며 옥외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입장료도 극장보다 싸다. 게다가 그럴 마음이 생기면 야구 시합을 볼 수도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게임은 십사오 년 전의 대 쿄진전 더블헤더로, 나는 그 때도 역시 여자와 함께 오른쪽 스탠드의 우익수 바로 뒷자리에서 시합을 관전하 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예의 오카다 응원 군단이 시끌법석하게 진을 치고 있을 자리이지만, 당시의 응원단은 오로지 큰 북 하나에 피리가 하나뿐인 조촐한 규 모여서 차분했다. 그 시합에서 야쿠르트가 이겼는지 졌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 지만, 쿄진의 타자가 때린 라이트 플라이만큼은 아주 상징적인 정경으로 선명하 게 기억하고 있다. 그 플라이는 실로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 편안한 외야 플라이였다. 타자가 야 구 방망이를 경기장에 내던지고는 머리를 갸웃갸웃하면서 일루 베이스로 달려가 는 그런 플라이였다. 야쿠르트의 우익수(불쌍하니까 이름은 특별히 감춘다)는 '올 라이트'라는 듯한 몸짓으로 오 미터 정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볼이 떨어 지기를 기다렸다. 평범한 광경이다. 그러나 볼은 -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 우익 수의 글로브로부터 오 미터 정도 뒤에 툭 떨어졌다. 바람도 잔잔하고, 태양빛도 그리 눈부시지 않은 오후에 벌어진 일이다. 관객들은 모두 망연자실하여 한동안 은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얘, 네가 응원하고 있는 팀이 바로 이 팀이니?'하고, 여자가 멋적은지 꾸물꾸 물하고 있는 우익수를 가리키면서 내게 물었다. '음, 그래'라고 나는 대답했다. '다른 팀 응원하는게 낫지 않겠어?'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당연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한결 같이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팬이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정이 깊어만 가는 듯한 기분까지 들 정도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렇 게 된 게 옳았는지 어쨌는지에 관해서도 확신이 안 서는 부분이 있다. 좀 안 좋 은 예이지만 '지나치다 우연히 만난 연분쯤으로 여긴 게 꼬리를 끌어' 지금에 이 르렀다는 느낌이다. 그 사이에 나는 실로 어이없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다. 마츠오카 투수가 쿄 진을 상대로 아마 9회 투 아웃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여, 완전 시합까지 앞으로 한 명만 아웃 시키면 될 곳에서 상대방이 홈런을 날리는 바람에 진 적도 있었 다. 내가 딱히 지는 걸 좋아하여 야쿠르트를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일이 생기면 역시 그 나름으로 실망하고 만다. 그러나 야쿠르트를 응원함으로 해서 얻을 수 있었던 자질도 없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바로 패배에 대한 관대함이다. 지는 것은 싫지만, 그런 일을 일일이 마음 깊이 묻어 두고 있다가는 도저히 오래 살아 남지 못하리라는 체념이다. 그 러한 경지에 있는 내 눈으로 보면 쿄진 팬은 졌을 때의 행실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게 보인다. 야쿠르트 대 쿄진전에서 야쿠르트가 이기면 '돼지에게 채였다'고 내게 전화를 걸어대는 쿄진 팬 친구가 있는데, 이런 건 정말 좋지 않다. - 마츠오카 투수의 은퇴 시합 관전 중, 내게 맥주를 권해 주었던 샐러리맨풍 의 두 아지씨분,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츠오카 선수도 상대편 와카나를 경원하지 않고 깨끗한 승부를 겨뤄 주어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깨끗하게 쓰리 런 홈런을 맞긴 했지만. 취미로 듣는 음악 가끔씩 무슨 앙케이트 같은 데서 취미는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난처해 하는 일이 있다. 제대로 대답하자면 독서와 음악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세월에 책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엄밀하게 말해 이 걸 취미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귀찮으니까 그런 때에는 대게 겸 손하게 - 그렇지도 않은가 - '무취미'라고 대답한다. 하긴 소설을 쓰게 되고부터는 독서가 일의 일환이 돼 버린 셈이니까, 현실적 으로는 이미 그걸 가지고 취미라고 할 수 없다. 음악만이 간신히 취미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음악만큼은 어떻게든 취미인 채로 남겨 두 고 일에는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글 쓰기를 업으로 하면서 어떤 특정 한 분야를 피해 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자라난 가정에는 나 이외에 음악을 자진하여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 다. 따라서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어느 누구의 지도나 어드바이스도 받을 수가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상세한 가이드 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마구잡이로 레코드를 사들여선, 수긍이 갈 때까지 무턱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 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없이 모아 들였군'하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으니, 바겐세일 때만 되면 레코드를 사기 위해 헤매 다니고 그러고는 레코드판이 닳아 빠지도록 들어댔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들은 연주는 평생토록 귀에 새겨져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몇 장 되지 않는 레코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니까, 그 무렵에 산 레코 드는 지금의 내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로 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글렌 굴드(자신의 독특한 해석과 기 법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전설적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의 연주로 내내 들었 기 때문에, '3번'하면 굴드의 연주가 머리 속으로 파뜩 떠오르고, '4번'하면 박 하 우스의 연주가 떠오른다. 훨씬 나중에 박 하우스(1884 -1969년 독일의 피아니스 트)가 연주하는 3번과 굴드가 연주하는 4번을 사기는 했는데, 그걸 듣고 있으며 - 연주는 물론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아무래도 안정감 없이 느껴진다. 귀가 '3번 은 도전적으로, 4번은 정통적으로'라는 연주 기준을 머리 속에다 철썩 같이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 곡 중 15번과 17번만 해도 그렇다. 그 경우에는 15번 은 줄리어드 현악 사중주단이고, 17번은 비엔나 콘체르토 하우스 현악 사중주단 으로 라는 경이적인 커플링이다.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두 개의 연주 단체는 서로 극단적일 만큼 정반대 쪽에 자리하고 있다. 줄리어드는 엄격하고 딱딱하며, 후자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15번은 엄격하고 딱딱한 곡이며, 17번은 부드럽고 따뜻한 곡이다. 모차르트란 사람은 과연 다면성을 지닌 천재 작곡가다 하고 오래도록 믿고 있었을 정도였다. 스무 살이 넘어 다른 레코드로 15번을 들어 보고서는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 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15번이 듣고 싶은 걸 하고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줄리어드의 레코드(물론 새로 산 것)쪽으로 가고 만다. 기묘한 일이다. 이런 예를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한마디로 바겐용 레코드를 계통없 이 마구 사 들인 결과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계통없이 들쭉날쭉 했던 점이 음악을 듣는 재미를 오히려 두드러지게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취향 이 편협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던 것은,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이 없 었던 덕분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 물꾸물 추진해 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인가 도달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 패도 많이 한다. 그러나 한 번 그게 몸에 배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흔들림이 없 다. 이런 얘기는 딱히 자랑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자칫하면 타인에 게 상처를 입히기 쉽고, 자기 자신 그 스타일을 교정하려고 해도 마음 먹은 대 로 수월스레 바꿔지지 않는 것이다. 타인이 무언가를 권유하면 대부분은 듣고 흘려 버리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유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 왔으니까 새삼스레 어쩌고 저쩌고 할 것도 없다. 그건 그렇다치고, 보통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란 스무살을 경계로 점 점 둔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해력이나 해석 능력은 훈련하기에 따라 높 아질 수도 있지만, 십 대에 느끼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감동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유행가도 듣기에 시끄러워지고, 옛날 노래가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왕년에는 록 매니어였던 청년들도 점차 '요즘의 록 같은 그런 빈약한 건 들을 기분이 안 나'라고 얘기하게 됐다. 그 기분은 이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푸념 따위만 늘어놓아 봤자 별소용이 없으니까,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전미 히트 차트 같은 것에도 귀를 기울이며, 귀가 노화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힘쓰고 있다. <컬쳐클럽>이라든가 <듀란 듀란> 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웸>의 저 은근함은 비교적 마음에 들어하는 오늘, 요즘입니다. 자유업의 문제점에 관하여 자유업이라 하면 도심에서는 무슨 화려한 직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다 큰 사내가 대낮부터 빈둥빈둥 놀고 있어도 괴상하다는 눈총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나처럼 도심을 떠나 - 실은 도심지의 집 값이 하도 비싸 밀려난 것이다 - 교외의 중소 도시를 전전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제법 신경이 많이 쓰이 는 직종이다. 우선 첫째로 '자유업'이란 직업의 개념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싫은 것은 보너스 시즌 중의 은행이다. 뭐가 싫으니 어쩌니 해도, 그것처럼 싫은게 없다. 의자에 앉아 창구에서의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반드시 은행 직 원이 곁으로 다가와 '보너스는 어떻게 하실 건지 정하셨습니까?'하고 묻는다. 그 런 걸 정했을 턱이 없으니 '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러시면 우선 이런 정기 구 좌에 들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시작해대기가 일쑤다. 그래서 '아, 저는 보너스를 안 탑니다'하고 말하면, 상대는 어김없이 '엣?'하며 공허한 눈으로 나를 본다. 비 유적 언어를 사용하자면, 길가에서 그야말로 지금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듯 비에 썩어 문드러진 폐옥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길이다. 그 시점에서 '아, 예 실례했습니다'하고 물러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 정도는 물러나지 않는다. 내가 은행으로 가는 시간은 대개가 아침 아홉 시나 열시쯤의 비교적 업무가 한가한 시간대라, 상대 편도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은 거의가 '그럼 저 죄송하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데요?'하고 묻는 다. '자유업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은행 직원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 는다. '목수이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기야 조깅 팬츠에다 고무 슬리퍼 를 신고 선글라스 차림으로 은행에 오는 쪽에도 좀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유업 -> 목수라는 극단적인 발상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당최 목수란 자유업인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음, 문필업인데요'라고 말하면, '아, 그러십니까. 토지를 분 필하는 일을 하고 계시군요'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이해가 잘 안 간다. 과연 은행원의 발상으로서는 앞뒤가 착착 맞는 것 같지만, '분필업'이란 직종이 세상 에 있답니까? 직업별 전화 번호부를 뒤져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직업은 어디에 도 없었다. '분비업'도 없고, '문궤업'도 없다. 문필업이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문필업'이다.(문필업이나 분비업, 문궤업은 일 본어로 하면 동음이다.) 하지만 귀찮아서 '저술업입니다'하고 고쳐 말하면, 상대 방도 그때쯤엔 대충 알아 먹는다. '나오키상(정식명칭은 나오키 산쥬고상. 아쿠다 가와상이 류노스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다가와상 이 순 문학에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주로 대중 작가의 통속 소설에 수여된 다.)이라도 받으시면 상금은 우리 은행에다 왕창 예금해 주시죠. 하하하'라며 사 라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신경의 소유자일까? 아마 친절하게도 격려해 주려는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누가 저금 따위 한답디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그나마 양호한 편으로, 심하면 '저술업입니다'라고 해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아 그러십니까. 저술업입니까'하길래, 그럭저럭 이 걸로 얘기가 통했나 보군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자 그럼 졸업을 하시고 보너스 를 받는 달에는 꼭 저희 은행으로'라는 등의 말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서른 여섯 살이나 먹은 사내를 붙잡고서는 졸업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잖은가 하고 생각이야 하지만, 뭐 은행에는 은행 나름의 가치관이 있고 세계를 파악하는 방 식도 있겠으나, 난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보너스 시즌에는 가능한 한 은행 가 까이에 접근하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다. 신통한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같은 은행에 이, 삼 년이고 다니다 보면 그런 대로 얼굴을 기억해 주 어, 보너스 시즌이 되어도 '저 사람은 별볼일 없으니까'하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 게 된다.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더니, 거듭 반복되는 세월이란 귀중한 것이다. 내가 작년까지 삼 년 동안이나 다니던 쿄와은행 기타 나라시노지점(1981년 부 터 1984년에 이르는 치바현 나라시노 시절.)의 어떤 은행원 같은 경우는 내가 쓴 소설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 은행 내의 콩쿨에서 상을 받았다고도 한다. 한마 디로 은행이라 해도 그 안에는 분명 다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사 매 니어니까, 이사를 할 때마다 각지의 은행에서 '저 죄송하지만 직업은?'하는 질문 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들어야 한다. 정말 피곤하다. 교외에 있는 주택 도시는 정직하게 말해 샐러리맨의 소굴 같은 곳이다. 아침 아홉 시가 지나면 성인 남자의 모습은 집배원 아저씨나 채서 가게 아저씨 정도 를 제외하면 전혀 볼 수가 없다. 뒤에는 아줌마들과 어린아이들밖에 안 남는다. 그런 데를 어슬렁어슬렁 한가하게 산책하며, 오락 센터에 들어가기도 하고, 냄비 를 들고 두부를 사러 가기도 하는 형편이니, 주위 사람들도 심상찮은 눈길로 보 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슈퍼마켓에 가 물건을 사면 계산대에서 바겐세일용 생리용품을 대형 박스로 한꺼번에 사들인 부인네들 사이에 끼여 '뭐야, 기분 나 쁘게 대낮부터 이런 데 남자가 오다니'하고 눈총을 받는 게 고작이다. 자유업이란 것도 여러 가지로 괴로운 일이 많은 직업이다. 그래도 자유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역시 동경의 미나토구 주변 같은 도시 한복판에 사는 편이 무난할 듯하다. 신구 게임 스키조프레니아(정신 분열병) <-> 파라노이아(편집병, 망상증)니, 아름다움 <-> 돈이니 하는 여러 가지 구분 - 그런 걸 차별화라고 한단다 - 이 항간에 유 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에 한한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힙(힙 합. 뉴옥의 흑인들과 푸에르토리코인 젊은이들이 1980년대에 시작한 음악 혹은 춤. 랩, 브레이크 댄스등.) <-> 스퀘어(스퀘어 댄스. 포크 댄스의 일종. 여덞 명 이 둘씩 짝을 지어, 상대를 차례차례 바꿔가며 사변형을 그리듯 추는 춤)라든가, 쿨 <-> 언쿨이라든가하는 구분이 지금껏 수없이 많았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그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런 구분 리스트를 농담 또는 패러 디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의 의식의 낙차 속에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에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인터뷰>라는 잡지가 있다. 발행 인은 앤디 워홀이고, 광고가 유별나게 많다. 이 잡지는 판형이 너무 커서 늘 어 디에 보관하면 좋을지 골치를 썩는데, 그건 뭐 이 글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이 <인터뷰>지를 일고 있으려니 '지금, 무엇이 세련된 것인가'라는 칼 럼이 실려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요컨대 다양한 세상사를 '뒤쳐졌다'와 '앞서간다'로 나누어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와타나베 카즈히로(히로시마 태생,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씨의 선별 시스템을 차용하자면 신과 구가 된 다. 미국 풍속의 최첨단에 있는 일이라 개중에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항목 도 있지만, 일단 아는 것만 쭉 열거해 본다. 앞이 구이고 뒤가 산이다. 마리화나 -> 아스피린 습관성 마약 -> 정사 NY 양키즈 -> NY 메츠 <배니티 페어>지 -> <애틀랜틱>지 레게(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확산된 자마이카의 팝 음악) -> 메렌게(도미니카 의 경음악. 초기에는 민속 악기를 위주로 한 소박한 것이었는데, 1970년대 이후 섹스폰이 첨가되면서 댄스 음악으로 각광을 받았다.) (아, 그립다) 쿨 -> 민감함 클럽 -> 레스토랑 일본풍 -> 타이풍 영국 -> 독일 조깅 -> 팀 스포츠 인디애나 존스의 소프트 모자 -> 야구 모자 팜 비치 -> 마이애미 비치(이유는 잘 모르겠다) 댄스 -> 오페라 노먼 메일러 -> 고어 비다르 록 콘서트 -> 오픈 브로드웨이 뉴욕 타임즈 -> 월 스트리트 저널 다이어트 -> 미식 로렉스 -> 스워치(스위스제 싸구려 시계) ...는 식이다. 이 중에는 그럴 법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무슨 얘긴지, 대체 이게 뭐야 싶은 것도 있다. 마리화나나 코카인은 사양하고 아스피린을 먹으며, 클래시컬한 사랑에 빠져서는 월 스트리트 저널(다소 경제 신문에 가깝다)을 읽 고, 오페라를 관람하러 다니면서 뉴욕 메츠를 응원하는게 지금 뉴욕의 선직적 신 인사의 모습인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로 어제까지 디스코테크에 들락날락거리던 인간이 하 루 아침에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마적>을 보러 가거나, 어제까지 매일 아침 10킬로미터를 조깅하던 사람이 갑자기 수구팀에 들어갈 것인가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낡은 것이라 해도 좋은 것은 좋고, 새로운 것이라 해도 싫은 것은 싫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 감각이다. 더구나 이런 리스트 는 하늘에 뜬 구름과 같은 것으로, 올려다 볼 때마다 그 모양새가 변해 있지 말 란 법도 없는 것이다. 그렇긴 하나 애당초 썼듯이 이런 류는 게임으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다. 예를 들면 나는 산토리 맥주를 마시며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고 있는데, 이런 사항 역시 내 멋대로 신구 리스트로 만들 수 있다. 기린 맥주 -> 산토리 맥주 요미우리 자이언트 -> 야쿠르트 스왈로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치요다선 -> 긴자선 버섯 -> 순나물 햄버거 -> 튀긴 두부 BMW -> 도요페트 크라운 ...하고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다. 딱히 이 리스트에 근거라고 할 만한 것은 없 다. 그저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 뿐이다. 긴자선은 깜빡하고 불이 나가는 점이 좋 고, 순나물은 버섯보다 맛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아름다운 여성은 도요페트 크라운을 몰고 다니고,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오노두부집'은 튀긴 두부가 일품이 다. 그런 정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목록을 작성해 보면, 자신이 제법 첨단적인 생 활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니 참 묘한 일이다. 한 번 하기 시작했다 하면 버릇이 될 것만 같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리스트를 제멋 대로 만들어, '아니, 아직도 계란 덮밥 먹어? 이제부터는 튀김 덮밥 시대라구'라 든가, '워드 프로세서? 뭘 모르시네. 지금은 잠자리표 연필이 제일 멋있다니까'라 는 등 자신을 갖고 저 하고 싶은대로 살기 시작한다면, 제법 흥미로울 듯하다. - 기린 맥주를 나쁘게 얘기했는데, 그 다음에 나온 청색 라벨은 나도 제법 좋 아합니다. 기린 맥주에 종사하는 분들, 미안합니다. 극단적인 얘기, 거품이 있으 면 그걸로 족한 면도 없지 않지만. 영화관에 대하여 장편 소설을 쓰는 작업이 간신히 마무리되고, 교정쇄의 교정도 다 보고, 그 다 음은 책이 출판되기를 기다리는 일뿐인 때가 내게는 가장 마음이 즐겁고, 또 평 온한 시기이다. 쓰고 싶은 것은 일단 다 썼고, 서둘러 해야 할 일도 없고 해서 - 라고 말하면서 때로는 생활을 위하여 이런 원고를 쓰기는 하지만 - 멍하니 봄볕 을 쬐며 고양이와 함께 툇마루에서 놀고 있다. 나는 자신이 쓴 글이 활자가 되 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도무지 그 다음 소설에 착수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몇 개월쯤은 싫든 좋든 간에 빈둥거리며 지내게 된다. 이런 하강 기류와도 같은 공백 기간에는 대개 일괄하여 영화를 본다. 최근에 는 비디오 소프트도 많이 보급되어 있어 나도 곧잘 대여점 신세를 지는데, 이렇 게 한가할 때는 역시 전철을 타고 영화관까지 출두하여 캄캄한 어둠 속에서 스 크린은 노려보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생맥주 집에서 한 잔 하는 게 상수다. 영화 관에서 영화를 보는 한, 마누라가 '저 말이죠, 지금 저 다이안 키튼이 입고 있는 스커트 멋있지 않아요?' 라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일도 없고, '잠깐 좀 되돌려 볼래요, 저 플로어 스탠드 비쌀 것 같죠'하는 일도 없다. 플로어 스탠드가 비싸 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 이번 봄에도 그런 연유로 정말 영화를 많이 봤다. <듄 모래의 혹성>을 보고, <2010년>을 보고, <터미네이터>와 <리틀 드러머걸>을 보고, <네버 엔딩 스토 리>를 보고, <아마데우스>를 두 번 보고, <사랑에 빠져서>와 <슛 더 문>을 보 고, <베스트 키드>를 보고, 바빠서 놓치고 말았던 <바디 더블>과 <젊은 사자 들>(이 영화는 <에스콰이어> 선정 1984년 워스트 필름)을 재개봉관에서 보충하 고, 오래간만에 방화도 보고... 그야말로 닥치는대로 봤다. 이런 정도로 연달아 영화관 출입을 하고 나면 과연 영화를 봤다 싶은 보람 같은 게 느껴진다. 영화라는 것은 의자에 턱 앉아 머리를 텅 비워 놓으면 제편에서 제멋대로 쓱 쓱 앞으로 나아가 주니 무척 편하다. 그게 연극이나 콘서트 같으면 '오늘은 좀 흥이 덜 나는 게 아닌가'라든지, '어디 불협화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든지, '박 수는 이 정도면 될까'라든지 하고, 그 나름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되니까 머 리를 텅 비우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내 쪽의 기분이 낙하해 있을 때는 아무 해가 없는 헐리우드 영화를 멍청하게 보고 있는 게 제일이다. 자극을 받거나 하 면 오히려 불쾌해지는 일마저 있다. 이번에 본 영화는 그 어느것이고 비교적 재 밌고, 신랄한 자극을 받는 부분도 없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트루먼 캐포티는 그의 소설 중에서 영화를 종교적 의식에다 비유하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홀로 댕그마니 스크 린과 대치하고 있으면, 웬지 자신의 혼이 어떤 잠정적인 장소에 보류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계속하여 영화관을 드나드는 사이에 그 런 기분이 자신의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고 여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게 소위 시네마딕트(영화 중독)라는 건가. 내게도 과거에 그런 시기가 있어, 그 당시에는 거의 매일처럼 영화관에 다녔 다. 바로 학원 분쟁으로 소란스러웠던 무렵으로 강의 따위 없는 거나 다름없었 으므로, 내 방과 아르바이트 하는 가게와 영화관이라는 트라이앵글을 뱅글뱅글 맴돈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매일 매일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있을 만큼 개봉되어 있는 영화 수가 많지 않으니까 결국 같은 영화를 몇 번 거듭해 보거나, 도저히 구제불능인 B급 C급 영화를 뼈다귀라도 쪽쪽 빠는 기분으로 보게 된다. 그러고 있노라며 꿈 속에서 MGM의 심볼 마크인 사자가 어흥하고 울기도 하고, 토에이 의 파도가 부서지기도 하고 20세기 폭스사의 라이트가 커머셜과 함께 회전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런 정도까지 되면 그야말로 완전한 병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소위 '명작'이라고 하는 영화보다는 볼거리가 없어 할 수 없이 거듭해 본 영화나, 명명백백하게 내용이 없는 작품 쪽이 훨씬 더 기 억에 착 달라붙어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별내용이 없는 B급 C급 작품은 소위 '명작'이라고 하는 영화와는 달리 자신이 어떻게든 좋은 부분을 찾아내려고 애쓰 며 보지 않으면 순전히 시간 낭비다. 그래서 그런 긴장감이 그대로 가슴 속에 뚜렷하게 새겨져 먼 훗날이 되어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마디로 영 화라 하지만 보는 방법에는 실로 여러 가지가 있다. 이번에 본 필름중에서 그렇게 B급 C급 영화 감상의 묘미를 맛보게 해 준 영 화는 뭐니뭐니 해도 존 밀리어스 감독의 <젊은 사자들>이다. 모두들 이 영화를 두고 호전적이니 황당무계하니 하는데,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꼼꼼하게 보 면 제법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미국이 소련과 쿠바의 연합군에게 침략, 점령당한 데 대하여 미국의 소년들이 게릴라전을 펴며 저항한다는 상황 설정인데, 이 상황은 생각해 보면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인의 입장과 위치 관계가 정반대로 역전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상황 설정 자체에 상 당히 무리가 있어, 작품 자체로서는 지리멸렬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끈질 기고도 강인한 반전 영화로 해석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타입의 영화를 비교적 좋아한 다. - 그 후, <젊은 사자들> 비디오 테이프를 사서 새로이 보았지만, 역시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 <록키4>나 <람보2> 같은 훨씬 노골적인 반공 영화가 출 현한 지금은, 어떤 장면에 있어서는 품위롭게까지 비춰진다. 밀리어스가 너무 일 찍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 이 글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출판되기를 기다리는 중에 씌어진 글인 모양이다. 왜 나는 이발관을 좋아하는가 요즘늬 젊은 남성들 대부분은 유니섹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모양인 데, 나는 옛날 그대로의 이발관을 애호하는 편이다. 도대체가 개성이 없는 천편 일률적 머리 스타일로 만들어 놓는 다는 까닭도 있지만, 미용실에 가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여자 손님들 옆에 앉아 여자 미용사가 내머리를 감겨 주고, 이리저 리 깍아 주고 하는 게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머리카락에 세트를 말고 있거나, 안면도를 하고 있거나, 건조기를 뒤집어 쓰고 넋 빠진 얼굴로 주간 지를 읽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훨씬 이전부터 그런 것들이 신경에 거슬리던 터라, 몇몇 여자를 붙잡고 는 '미용실에서 옆자리에 남자가 앉아 있으면 이상하지 않아?' 하고 물어 봤더니 그녀들 역시 일단은 '응,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줄곧 남녀 공학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와 동석을 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저항감이 없지만, 머리를 자르는 일에 관한 한 남녀 따로따로 쪽이 편하다. 그래 서 예의 꽈배기 과자 같은 간판이 서 있는 동네 이발관을 내내 애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뿐, '남자는 모두 이발관 에 가야 한다'는 확고한 주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만약 그렇게 되면 이 발관이 북적거려 안된다. 미용실레 가고 싶은 사람은 사양말고 미용실로 가 주 세요. 개인적인 애기를 하자면- 이라니 이 연재에서는 개인적인 일밖에 쓰지 않는데 - 내단골 이발관은 센다가야에 있다. 나는 지금 후지사와에 살고 있으므로, 두 달에 세 번꼴로 오타큐선의 로맨스 카(오타큐선은 신주쿠와 오타와라를 잇는 전 철. 그중 로맨스 카는 특급급행 열차로 친절한 서비스로 인기가 높다.)를 타고 센다가야까지 머리를 깍으러 간다. 이래저래 편도에 한 시간 반은 걸리니까, 세 월이 좋다면 좋은 거고, 유별나다고 하면 유별난 얘기다. 후지사와에 살기 전에는 나라시노에 살았는데, 그때도 역시 편도에 한 시간 반이나 들여가며 지금의 이발관에 다녔다. 하지만 소부선 쾌속보다는 오타큐선 의 로맨스 카쪽이 운치도 있고, 값도 싸고, 애플 티도 마실 수 있어 내게는 지금 이 훨씬 편리하다. 나라시노로 이사하기 전에는 그 이발관근처에 살았다. 그러니 까 그럭저럭 팔 년이나 같은 곳엘 다니는 셈이다. 어째서 그렇게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끈질기게 이발관은 같은 곳을 고 집하는가 하면, 다른 이발관에 가는 게 매우 귀찮기 때문이다. 다른 이발관에 가 면 여러 가지 사항들을 처음부터 일일이 다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나 는 회사원이 아니니까 그다지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할 필요도 없고, 삼 주에 한 번은 머리를 자르니까 그렇게 짧게 깍을 필요도 없다는 기본적인 방침을 이해시 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고는 세부적인 설명으로 옮아가, 귀 위는 어느 정도 길 이로 하고, 가리마는 어디쯤에 있으며, 수염은 깍지 말고, 매일 아침 머리를 감 으니까 샴푸질은 대충 한 번이면 족하고, 헤어 리퀴드는 필요없고... 하고 설명을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지쳐 축 늘어지고 만다. 게다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설명한대로 깍아 준다는 보장도 없다 - 고 할까, 아니 전혀 설명한대로 깍아 주 지 않는다. 특히 지방 도시의 경우는 정도가 심해서 대개는 국민 학생처럼 뒷머 리를 바싹 쳐 놓고 말아, 사나흘간은 의기소침해져 집 안에 처박혀 있게 된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막막하다. 그 반면 단골 이발관에 가면,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하고 한마디만 하 고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그 나머지는 끄덕끄덕 졸고 있어도 여느 때와 다 름없게 빈틈없이 깍아 준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발관의 조건, 그 첫째는 이발사 아저씨가 들락날락 자주 바뀌지 않는 것이다. 어쩌다 갈 때마다 이발사가 바뀌는 이발관이 있는데, 그래가지고서야 손님 쪽도 신뢰감이 없어지고, 그럴 때마다 다시금 설명하지 않 으면 안되니까, 단골 이발관을 만드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발사가 자주 바뀌지 않는 이발관은 그 나름의 안정된 분위가가 있고, 태도도 침착하다. 이 점은 생선 초밥집 요리사와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수다스럽게 말을 걸지 않은 것이다. 전혀 얘기를 하지 않는 것도 따분한 일이지만, 나는 이발관에서는 멍하게 있는걸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라, 말 을 너무 많이 걸면 피곤해진다. '벌써 봄이로군요' '따뜻하지요' '벚꽃 놀이는?' '아니요, 바빠서요' 정도가 이상적이다. 나의 단골 이발관에는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가다 경주 얘기를 짤막하게 나누곤 한다. 세 번째는 좀스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 놓지 않는 것이다. 요즘엔 오후 시 간대에 주부를 상대로 한 야한 프로그램이 유독 많아, 그런 프로그램을 듣고 있 으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우리 남편은 말이죠,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 같은 걸 하고 있으면 언제나 등 뒤에서 치마 속에다 손을 집어넣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 도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서...'하고 주절거려대면 머릿심지가 흔들흔들한다. 요즘 주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걸까? 정말은 NHK FM의 '오후의 클래식' 같은 프로그램이 흐르면 이상적이겠지만, 뭐 이발관에서 브라암스를 듣는다는 것도 약간은 속물 같으니가, NHK 제1방송 쯤이 바람직하겠다. NHK라디오 같은 건 이발관에서나 들을 수 있고,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제법 재밌기도 하다. 적어도, '세상은 넓고도 넓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감회가 깊다.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푸른 산맥>은 아오야 마에 있는 미용실에서는 도저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침 열한 시 반경에 하 는 소설 낭독도 이발관 의자에서 듣기에는 적격인 품위있는 프로그램이다. - 지금은 더욱 멀어져 편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변함없이 같은 이발관 에 다니고 있습니다. 퍼시 페이스의 <푸른 산맥>에는 도중에 격조 높은 포 버 스의 응수가 끼어 있기도 하여, 상당한 열연이다. 베를린에서의 오즈 야스지로와 모기향 며칠 전 오즈 야스지로(1903 - 1963, 동경 태생. 영화 감독) 감독의 영화가 레 이저 디스크로 나왔다기에 세 장을 한꺼번에 사 왔다. <만춘>과 <맥추>와 <동 경 이야기>이다.(<만춘> <맥추> <동경 이야기>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의 애환을 드라마틱하지 않은 잔잔한 영상과 지극히 억제된 내면적인 연기로 그려 낸 걸작이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하라 세츠 코는 조용하고 정숙한 딸 연기를 하여 순응하는 여인상을 구축했다.) 제작 연도 는 1949년, 1951년, 1963년 세 작품 모두 하라 세츠코(1920 -, 여배우)와 류치슈 (1904 -, 구마모토현 태생, 영화 배우)가 출연한 영화다. 나는 일본 영화 중에서는 오즈 감독과 나루세 미키오(1905- 1969, 동경 태생. 영화 감독)감독의 작품을 특히 좋아하여 바지런을 떠러가며 명화좌 같은 데서 보곤 한다. 그런데 오래 된 영화를 리바이벌 상영하는 극장은 대개가 소규모라 늘 만원인데다, 나이 탓도 있어 그런 곳에서 영화를 두세 편 연달아 보기란 몹 시 힘에 겨웁다. 그 점 레이저 디스크나 비디오 테이프는 아주 편하다. 특히 흑 백 스탠다이드 사이즈의 옛날 작품은 스크린으로 보기 보다는 화질이 훨씬 좋은 경우도 간혹 있어, 집 안에서 느긋하게 보기에는 최상이다. '음 말이지, 오즈의 새 디스크를 샀는데, 차라도 마시며 우리 집에서 같이 보지 않겠어?'하고 여자를 불러 들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기꺼이 응해 줄지 어떨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독일에서 <동경 이야기>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베를린의 한 호텔에 머 물며 무심히 TV를 켰더니, 방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목이 아마 <디 라이제 나하 도쿄(동경으로의 여행)>였고, 대화는 독일어로 더빙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히가시야마 치에코(1890 - 1980, 치바현 태생, 여배우)가 '피곤하시죠?'라고 물어, 류치슈가 '음'하고 대답하는 장면이 'Nein!'으로 되어 있다. '음'이 '나인!'이다. 이 대사를 들으며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인들도 일본말로 더빙이 되어 있 는 미국 영화를 보면, 틀림없이 묘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독일에서 <동경 이야기>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일본인이-적어도 당 시의 일본인이 - 무턱대고 인사를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일본어 대사로 보고 있으면 그다지 거슬리지 않지만, 독일어 대사로 보고 있으면 상당히 거슬 린다. 예를 들면 손님이 '그럼, 이만. 폐 많이 끼쳤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하고 말하 고 물러나려고 한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머리를 깊숙이 숙여가며 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게 독일 말이 되면 딱 한마디 '아우프비더젠'으로 끝나 버린다. 그러니 입놀림에 대사를 맞추자면 '아우...프...비...더...제...에...ㄴ'하는 식으로 된다. 하긴 이건 극단적인 예지만, 요컨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대사가 무지무지 많다. "그럴까?" "그래요." "역시, 그럴까?" "그렇잖아요." "역시, 그렇겠지?" "그래요." 같은 대사를 독일 말로 들으면, 어찌 된 셈인지 형이상학적 색채를 띠기까지 하니 묘한 일이다. "그런 것인가?" "그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렇다." "그렇다." 이런 상황이다. 나의 독일어 실력은 상당히 어중 띤 것이라, 정말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책임 못 지겠지만, 어감으로 봐서는 그런 꽤나 변증법적 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난해하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어나 이 탈리아어로 더빙된 오즈 감독의 영화에는 또 그나름의 정취가 있을 것이다. 더 빙된 오즈 감독의 영화에는 또 그 나름의 정취가 있을 것이다. 두 번 세 번까지 는 모르겠으나, 한 번쯤은 보고 싶다. 나는 영어로 번역된 발자크의 소설을 좋아 하는 기묘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 그런 별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춘>이나 <맥추>는 북 가마쿠라가 무대를 이루고 있어, 에노시마나 시치리 가하마 주변의 풍경이 종종 등장한다. 영화로 보는 1949년 당시의 시치리가하마 에는 자동차라곤 거의 없고, 아주 고즈넉하다.물론 서핀을 하는 사람도 없다. 조 깅을 하는 사람도 없다. 그 무렵의 사람들은 필시 모두 바빴을 것이리라. 오즈 야스지로가 담아 내는 그런 풍경은 늘 잠잠하고, 바람도 없고, 양지 바른 쪽과도 같은 기분 좋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특히 1945년에서 1955년 정도 사이 의) 오즈의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풍경을 좋아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 여 보게 된다. 놀랄 만큼 양식적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생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세부적인 얘기인데, <동경 이야기> 중에 도저히 알 수 없는 부 분이 있다. 묘기향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는 모기향이 나오는 장면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어느 장면에도 모기향이 하나 같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요 얼 마 전에 세로형 레코드 플레이어가 유행한 일이 있는데, 꼭 그런 식으로 세워진 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하도 신기하여, 모기향을 세로로 세워 놓는 방법과 그 이점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런 세로형 모기향이 실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오즈 미학에 따라 억지로 모기 향을 세로로 세워 놓은 것일까? 그리고 독일인은 그게 모기향임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었을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 최근에 디스크로 나온 <동경의 황혼>에 대해서는 나도 미즈마루 씨도 감탄 해 마지 않고 있습니다. 저 악동 바텐더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세로 형 모기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교훈적인 이야기 나는 교훈이 들어 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좋아한다. 그렇다고 뭐 내가 특별히 교훈적인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교훈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양상을 비교적 좋 아한다는 뜻일 뿐이다. 내 마누라의 언니는 학생 시절에 호리 타츠오의 <바람은 일다>(호리 타츠오 가 1926년에서 1928년에 걸쳐 발표한 장편 소설로ㅡ 약혼녀인 아야코의 병과 죽 음을 통하여 시인이 친인으로서의 각성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호리 타츠오 자신 도 결핵으로 절명했다.)를 읽고, '건강이란 소중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란 독후 감을 써 냈더니 선생님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하는데 - 그 얘기를 듣고는 나 역 시 그만 웃고 말았지만 - 이건 웃는 쪽이 잘못이다. 만약 그녀가 <바람은 일 다>를 읽고 건강의 중요성을 통감할 수 있었다면, 그건 틀림없는 문학의 힘이 다. 웃어서는 안된다. 그런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바람은 일다>를 읽어 보면, 반 드시 '음-'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몇 군데쯤 있을 것이다. 교훈이라는 것은 어 떤 경우에는 유형에 순응하고 마는 일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의미에 서의 유형을 무너뜨리는 힘을 함축하고 있는 일도 있는 것이다. 내게도 종종 소설을 일고 난 감상문을 쓴 편지가 독자로부터 오는데, '무라카 미 씨의 소설적 감성은 -'이라든가, '이런 언어의 사용은 -'이라든가, '이 작품을 읽은 느낌은 -'하는 게 대부분이고, '나는 무라카미 씨의 소설을 읽고 이런 교훈 을 얻었습니다'는 내용은 한 통도 없다. 모두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 통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무라카미 씨의 소설을 읽고, 병약한 어머님을 좀더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가, '나는 무라카미 씨 의 소설을 일고 돈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라든가 말이다. 하긴 무리일지 도 모르겠지만. 교훈이란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되어지고 있는 것처럼 딱딱한 게 아니다. 어 떠한 일에도 반드시 교훈은 있고, 그것은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 다. 내리는 비 속에도 교훈이 있고, 옆집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카로라 스프린터 에도 교훈이 있다. 그렇다고 억지로 찾아내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만 있으 면 있는 대로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옛날, 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쯔레즈레구사>(14세기 중엽 가마쿠라시대의 수 필 문학, 작가는 겸호법사. 일본 최고의 수필 문학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를 공 부할 때, 선생님이 '현대인의 감각으로 보면 작자의 설교적, 교훈적 의도가 약간 은 풍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여, 그때는 '흠, 그런가'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교훈적인 부분만이 머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으니 기묘한 일이다. <쯔레즈레구사>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작품을 예로 들어도 유려한 문 장이나 치밀한 심리 묘사는 읽을 당시에는 감탄스러워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싸 그리 잊혀지고, 아주 사소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좌우지간 효율적인 종류의 일 만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경향이 좋은 것인지 나 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것보다 나 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에 어떤 편집자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 주었다. 그 얘기는 꽤 교훈적인 얘기인데, 너무나 교훈이 많아 나는 아직도 정리를 다 못하고 있다. 케이스 스터 디로써 이 자리에서 재현해 본다. '케이스 스터디' 모 편집자의 이야기 나는 재즈를 아주 좋아하는 터라, 어느 전위 재즈 무지션의 연주를 테이프에 담아 사업상 방문하는 차에 XX 씨(주:고명한 재즈 평론가)에게 들려 주었죠. XX씨는 그 음악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음, 자네 이거 아주 좋은데, 최고야'하 고 격찬을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문득 내가 그 테이프를 배속 으로 틀어 놓았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아차, 실수를 했구나 싶어, '죄송 합니다. 속도를 잘못 맞추었어요'라고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틀었죠. 글세 부 정확한 걸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랬더니 그 선생님 격노하면서, '자 네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라는 거예요. 그 사람도 말로는 그럴싸하게 대범한 척 하면서 사실은 아량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 일화에는 아까도 말했듯 수많은 교훈이 포함돼 있어 내 나름으로 발견한 사항을 조목조목 써 본다. 수험을 앞두고 계신 분들은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O 를 해 주세요. 1) 전위 재즈 같은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속도로 들으면 된다. 2) 무엇이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3) 정확한 평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4)실수를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5) 뭐 부정확하다고 별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6) 실수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게 상책이다. 7) 아량이 넓은 사람은 그리 주절대지 않는다. 8) 편집자는 상대방에게 직접 험담을 하지 않는 법이다. 9) 무턱대고 칭찬하고 나면, 뒷처리가 골치 아프다. 하고 써 놓고 보니 이렇게 짧은 얘기 속에도 배워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교훈이 있을지 모르니까, 생각나 시는 분은 가르쳐 주세요. <쯔레즈레구사>라면 그 얘기 뒤에 어떤 교훈이 따라 붙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없는 때를 넉넉히 지낼 수 있을 것 같 다. 자동차에 대하여 나는 운전이라는 걸 하지 않을뿐더러, 또 자동차라고 하는 물체에도 별반 흥 미를 느끼지 않는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웬일인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몹시 적다. 대충 지인의 삼 할 정도밖에 운전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본 총인구의 육 할이 운전 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본 총인구의 육 할이 운전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불합리할 정도로 적은 수치이다. 어째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다지도 차를 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차를 타게 되면 불필요한 신경도 써야 하 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술도 마실 수 없고, 세차니 차 점검이니 하고 손질을 해야하고, 등등의 일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는 쪽이 편리하다. 하기야 홋카이도의 습읜 지대 한가운데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동 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겠지만, 동경 근교에 살면서 자동차 따위 특별히 필요없 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신을 예로 들자면, 자동차가 없어 불편을 겪는 일은 일년에 한두 번 정 도로, 그 한 번이나 두 번을 그럭저럭 넘기고나면-물론 넘길 수 있다- 그 다음 은 전철을 이용하거나 걷거나 택시를 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건 뭐 사람마 다 사정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앞을 다투어 자동차를 사려 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겨우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려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겨우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도 족 히 평화롭게살았으니 말이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맞아요, 그게 제일이지요. 차를 탈필요가 없으면 차를 안 타는 것 보다 좋은 건 없죠'라는 대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거쑤로 전철을 따고 한두 역이면 갈 수 있 는 데를 구태여 차를 몰고 가기가 일쑤다. 자기가 운전을 안 하니까 그런 소리 를 한다고 하면야,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겠지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기 분을 나는 통 알 수 없다.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기웃기웃거려야 하고, 간발의 시간 차밖에 없는데도 툭하면 차선을 바꾸며 달리는 류의 짓거리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가 없으면 자동차 월부금이니 주차비니 세금이니 기름값이니 수리비니 하는 돈이 들지 않는 만큼, 택시나 국철 같으면 특별석을 애용한다. 이것도 상당히 불 가사의한 일인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대개 택시나 특별석의 요금이 무모할 정도로 비싸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택시나 특별석을 종종 이용한다 고 하면, '자네, 그거 사치야'라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따져보면 동경. 후지사와 간의 특별석 요금은 주차장의 두 사간분 주차 요금과 비슷한 정도이다. 그런 가 격으로 푸근하게 자리에 눌러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생각 하기에 따라서는 싼 게 아닌가 하고 불쑥 생각해 보기도 한다. 딱히 국철 애호 론을 펼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만약 조름 더 젊다면 역시 고급 승용 차를 입수해거 여자에게 드라이브를 하자고 꼬시는-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 르니 큰소리는 칠수 없다. 이런 일은 인연과 비슷라여 약간만 방향이 어긋나도 정반대의 의견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횡행하고 있는 수많은 두장의 대부분은 결과가 좋으면 그것으로 다라는 정신 뤼에 성립되 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에서 자동차 배척론을 피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 동차가 없어도 멸로 부자유스러울 게 없는 경우가 적잖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추측을 온건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격분하여 빈론 같은 것을 보내지는 마 세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후지사와 거리도 여름이 가까워짐에 따라 차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말이 되면 후지사와교에서 에노시마에 이르는 도로는 차들로 꽉 차고, 간선 도로에까지 차들이 밀려들어온다. 한밤중에는 오토바이가 내지르 는 소음 째문에 시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만 해고 아침에 조깅을 하던 할머니 한 분이 차에 치어 죽었고, 오토바이의 소음으로 잠 을 잘 수가 없어 항의 자살을 한 사람도 있다. 안된 일이다. 내가 자동차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자동차 수가 늘어 나면서부터 일본 어디를 가도 차분하게 기문이 가라앉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 었다. 가끔씩 기분이 내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가곤 하 는데, 아무튼 거리 전체가 온통 자동차투성이라 머리가 아파져 재빨리 돌아와 버린다. 교토만 해도 옛날에는 그렇게 가슬가슬하게 시끄러운 동네가 아니었다. 세상 어딘가에 한군데쯤은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마을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 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와이어트업이 덧지 시티에서 사람들로부터 권총을 거두 어들인 것처럼, 담당 직원이 마을 입구에서 자동차를 보관한다. 어딘가에 그런 마을이 있다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 흔히 '보행자 천 국'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정도를 가지고 천국이라 하다니 도무지 기가 찰 노릇 이다. 차를 타지 않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 사정이 있어 이 글을 쓴 후 면허를 땄습니다.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 습니다만. 국철은 이후에 JR로 바뀌었습니다. '에노덴'은 어떻게 되었든가? 건강에 대하여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 에게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족자를 만들어 도코노마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글자 밑에 쇠로 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 있다면 좋겠는데 하 고 생각한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ㅉ가 재능'인가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 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 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 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증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 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그 아무리 병 약하다 한들 노력하지 않고도 훌륭한 작품을 창출해 내는 법이다. 의식적인 자 기 훈련 따위 천재에게는 인연이 없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 로써 나는 천재가 아니므로, 그 나름의 체계적 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건강 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단한 재능도 없는 주제에 병적인 경우가 작가에 게는 가장 불운한 패턴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좌우명을 족자로 만들 것까지도 없이, 나는 대충 건강한 인간 이라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일이 없고, 근 이십 년 동안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본 일조차 없다. 약도 안 먹고, 신체상에 이렇다 하게 신경이 쓰이는 증상이 나 타난 적도 없다. 어깨 결림, 두통, 숙취로 고통을 받은 경험도 전혀 없다. 단 불 면증은 이십대 초반에 몇 번인가 경험해 본 듯한 기억이 있긴 한데, 지금은 깨 긋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두통이나 어깨 결림이나 숙취로 인한 고통이 실제로 얼마만큼 심각한 것인지, 나는 집작도 안 간다. 짐작을 할 수 없으니 동정심도 그다지 일지 않는다. 이따금 마누라가 '오늘은 머리가 아파요'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어, 그 래'라고 밖에 대꾸할 길이 없다. 내게 그런 말은 반인반어가 '오늘은 아가미와 비늘이 닳아서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육체적 통증이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자넨 말이야, 동정심이 부족해'라는 비난을 듣는데, 그건 착각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정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 한' 것이다. 그 증거로 치통이나 배멀미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나, 의자에 정강이 를 부딪혀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언제나 진지하게 동정을 한다. 숙취로 인한 고통도 잘 납득이 안 가는 고통 중의 하나이다. 나는 별대단한 양은 아니더라도 매일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인간이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 럼 술에 만취하는 일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숙취 때문에 그 다음날 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취했어도 이 튿날 아침 햇살이 창으로 새어 들면 생생하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잘 이해가 안 가서 친구에게 가끔 '이튿날 까지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 떤데?'하고 물어보아도, 누구 하나 정확한 묘사 혹은 설명을 해주는 이가 없다. '좌우지간 머리가 무겁고, 속이 쓰리고, 좌우지간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난다구' 라는 정도의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좌우지간이란 말만 가지고서야 '머 리가 무겁다'는게 어떤 상태인지 도저히 알 수 없으니 동정을 할 여지도 없다.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 봤자 '그것 참 시끄럽게 구네. 숙취로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은 숙취의 고통을 알 수 없다구'하고 조롱당하는게 고작이다. 숙취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말투 를 쓰게 되는 모양이다. 며칠 전 모처에서 맥주를 몇 병인가 마신 후,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포도 주를 집중적으로 마시고는 꽤 취해서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자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일곱시경에 눈을 뜨니, 엷은 안개가 낀 듯 머리 속이 뿌옇다. 그래서 불현 듯 '이게 가벼운 숙취 현상일까'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 식사를 하고서 한 12킬로미터 정도 달리기를 하다 돌아오니 그 몽롱함은 깨끗이 걷히고 없었다.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저 말이지, 그런건 숙취라고 안 그래. 숙취로 나른 할 때는 식욕 같은 것도 전혀 없고, 애당초 달려 보겠다는 욕망 따위 일지도 않 는다구'라고 한다. 그런 까닭으로 숙취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이 다. 변비, 치질, 꽃가루 알레르기, 신경통, 생리통(이건 뭐 당연하다), 현기증, 식욕 부진 하는 류의 증상도 나는 좀체로 이해를 못하겠다. 속이 메슥거리거나 설사, 치통, 피로, 감기, 고서 공포증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건강하지 못 함에 대해 서로 나누는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으면, 당사자들에게는 죄송한 얘 기지만 상당히 흥미롭다. 적어도 건강한 사람들끼리 건강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기 보단 훨씬 재미있다. 그건 분명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는 공감대의 질이 높은 까닭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치질이나 변비 이야기로, 본인은 몹시 힘겨워 고통스러운 것 같은데 당장 목숨 에 관계되는 병이 아니니까, 이야기가 세부적인 데까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비 통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비통하지만 재밌다. 재미있지만 비통하다 - 는 감정은 건강한 몸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감흥이다. 소설가의 유명도에 대하여 가끔 바의 카운터 같은 데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노라면 옆에 안ㄷ은 사람들 이 누군가에 대한 소문 얘기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런 얘기를 어렴풋이 듣고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 소문의 대상은 나도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 데, 어느쪽이든 그 나름으로 재미있다. 제일 재미 없는 얘기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경우로, '저 말이지, 누구 누구 말 이야, 그 자식 굉장한 놈이야. 재능이 있어' 같은 얘기가 나오면 내 쪽도 시큰둥 해져 '빨리 험담이나 하지' 하고 마음 속으로 채근을 하기도 한다. '그 자식 바보 라니까. 정말 바보 얼간이라구. 도저히 구제불능이야'하는 기세이면, 어차피 남 얘기니까 내 쪽도 유쾌하기 그지없다. 몇 년 전인가 요코하마에 있는 '스토크' 란 재즈 클럽의 카운터에서 술잔을 기 울이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샐러리맨인 긋한 두 사내가 줄곧 신교지 기미에 얘 기를 하고 있걸래, 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귀를 솔깃하고 있었더니, 느닷없이 '저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있잖아, 그 사람 말야-' 라는 식으로 얘기 가 바뀌어 그 다음은 듣지도 않고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어찌하여 신교 지 기미에 얘기에서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 얘기로 화제가 바뀔 수 있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 때는 정말 애책이 없다. '음, 이제 신 교지 기미에 얘기는 이쯤하고 말이야, 다른 장르의 얘기를 좀 해보자구' '뭐가 놓을까?' '소설 얘기나 할까' '젊은 작가들 것 워 읽은 거 있어?'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하는 정도의 쿠션이 있으면 나로서도 일단 경계 태세를 갖출 수 있 어 좋은데, 못 밑에서 바로 위가 시작되는 것 같은 식으로 화제를 바꾸니, 그만 온더롯 잔에 콧부리를 부딪히고 마는 사태가 벌러지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안면이 없는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거 는 일도 있다. 나는 TV에 나가지 않으니까 아주 드문 정도로 그치지만, 쉴 새 없이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몹시 황당하리라고 추측된다. 잡지 사진쯤이라면 실물을 보아도 의외로 알아 먹지 못라는 경우가 많은데,TV라고 하는 것은 거의 실물에 가깝게 비춰지니까 실로 난처한 모양이다. 그런 까닭으로 난 TV 출연은 하지 않는다. 가끔씩 TV 방송국으로부터 출연 의뢰가 오면 '인형 옷을 입고 출 연해도 괜찮다면 나가지요' 라고 농담으로 응수하는데,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꼭 나와 주십시오' 라고 한경우는 한 번도 없다. 워 당연지사라고는 생각하지만서 도. 이 난에 그림을 그려 주시고 있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도 한 번 TV에 나갔다가 그 후 여러모로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그 다음날 따르릉따르릉 하고 쉴 새 없 이 전화가 걸려 와서는,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TV에 출연했더군요'라는 말을 들 었다고 한다. TV라고 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뭐니 뭐니 해도 문예지가 제일 이다. 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해 본들 전화 한 통 안 걸려오니 말씀이죠. 한번은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쿠르트대 츄니치전을 보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무라카미씨, 사인해 주세요'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진구 구장의 외야우익수석에 오는 여자에게는 대개 호감을 갖고 있으므로 '예, 그러죠'라고 대답하자, 상대방 여자는 '저-, 힘내라 야쿠르트 스왈로즈 라고 써 주시겠어요?'란다. 이런 사람을 나는 비교적 좋아한다. 한번은 소부선 전철 안에서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 온 적 도 있다. 단 이런 경우 나는 몹시 얼어 버리는 타입이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 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실례될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전철 안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힐끗힐끗 보니까 매우 부끄럽다. 야쿠르트대 쥬니치전만큼 텅텅 비어 있다면 내 쪽도 마음이 편할텐데. 아카사카에 있는 베르비라는 맨션 빌딩의 로비의자에 부루퉁하게 앉아 있을 때도(마누라의 쇼핑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말을 걸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때의 상대방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무라카미씨, 열심히 하십시오'라기에, 나도 모르게 '옛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쯤되면 '프로 야구 뉴스'의 인터뷰 같은 꼴이다. 내친 김에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롯폰기에서 젊은 커플이 말을 걸어 온 적도 있다. 오차노미즈의 메이지대학과신주쿠의 이세탄 백화점의 이층 과 후지사돠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과 오타루의 길모퉁이에서 한 번씩. 오타루에 서 내게 말을 건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홋카이도에서는 내책이 제법 잘 팔린다 고 한다. 암만 그렇다고 오타루역 앞 상점가에서 잘도 나 같은 사람의얼굴을 알 아봤다고 내심 감탄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손꼽아 보니,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육 년 동안에 길러 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게 아는 척을 한 횟수는 전부 여덟 번이 된다. 대충 일 년에 한 번 하고 나머지 조금의 비율인 셈인데,이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건 빈도' 가 나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인간에게 많은 수치인지 적은 수치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옛날, 모 가수가 살고 있는 맨션 옆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그 모 가수가 차에 서 현관까지의 십여 미터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했 다. 필시 팬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였겠지만 한 시가 넘은 한밤중, 사방에 사 람 그림다 하나 없을 때 조차도 그랬다. 유명인이란 상당히 기묘한 인생읗 강요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세라복을 입은 연필 얼마 전에 좀 볼일이 있어서 어떤 잡지사의 편집자와 만났다. 일이 다 끝난 후 둘이서 술을 마시며 세상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화제가 학용품 얘 기로 옮아 갔다. 학용품 얘기는 나도 퍽 좋아하는지라, 볼펜은 어느 게 좋다는 등, 지우개는 어느 게 최고라는 둥 하는 두서없는 얘기를 술집에 앉아 계속하고 있는데, 그러던 중 상대방이 '그런데 무라카미 씨는 늘 어느 정도 딱딱한 연필을 사용하십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늘 F심 연필을 사용하니까 '예, F인데요'라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그렇습니까. 그런데 F심 연필은, 전 늘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요,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란다. 술자리에서의일이었으므로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느끼는 방법 도 참 여러 가지로 많은 세상입니다'하는 정도로 웃고 있는 사이에 곧 다른 화 제로 넘어갔는데, 어쩐 일인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얘기만이 점점 마음에 걸렸다. 왜 F심 연필이 하필이면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인지를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할수록 영문을 알 수 없어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그리하여 영문 도 모르는 채 F심 연필이 어김없이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으로 보여지곤 했던 것 이다. 이런 경우는 무척 난감하다. 최근에는 F심 연필을 손에 쥘 때마다 세라복 차림의 여학생을 상기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체가 한 번 어떤 이미지를 창출하고 나면 이번에는 그 이미지가 거꾸로 물체를 규정짓고 만다는 현상이까, 어찌 됐든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폐를 끼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그대로 진행되면 언젠가는 연필을 손에 쥘 때마다 성욕을 자극당 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직업상 연필을 사용하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상당히 번거롭게 될 것이다. 차라리 F심 연필을 쓰지 말고 HB심 으로 바꿔 볼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불미스럽게도 그 시점에서 '만약 F심이 세라 복을 입은 여학생이라면, HB는 학생복을 입은 남자 고등학생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ㄷ르고 만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이건 또 이것대로 영 달갑지 가 않다. 나는 원래 세라복이니 학생복이니 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세라 복이란 멀찌감치에서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멋있어 보이지만,가까이 가서 보면 예상 외로 더럽고, 별로 볼품이 있는 옷도 아니다. 학생복이 그 얼마나 더러운가 에 대해거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H심은 어떤가. 이건 또 왠지 폴리스(록 밴드 폴리스 입니다.)의 멤버 인 스팅하고 분위기가 비슷하다. 스팅에 대해서라면 나는 딱히 나쁜 감정을 갖 고 있지도 않은데, 감정이 좋고 나쁘고는 차치하고 연필이 스팅과 닮았다는 느 낌은 어쩐지 심히 껄끄러운 일이다. 늘 귀 밑에서 '몰리스'의 음악이 쩡쩡 울리 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H심보다 딱딱한 연필이나 B심보다 부드러운 연필은 작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결국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 이거나, '학생복을 입은 남고생' 이거나, '폴리스의 스팅' 이란 세가지 가능성이랄까, 선택의 여지가 세 가지 밖에 없는 셈이다. 어쩌다가 하찮은 연필을 가지고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 빠져 들게 됐는 지 잘 모르겠지만, 그원인은 'F심 연필은 왠지 에라복을 입은 여학생 같지 않습니까?' 라는 쓸데없는 말을 꺼낸 편집자에게 있다. 거기에서부터 점점 엉뚱 한 방향으로 이미지가 퍼져 나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원고의 고칠 부 분을 연필이 아닌 볼펜으로 쓸 수밖에 없는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볼펜에 대해 서는 최대한 아무런 느낌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볼펜은 그저 단순히 볼펜이다. 그런데 연필이란 제법 귀여운 필기ㅜ이다. 요즘은 샤프 펜슬의 성능이 비약적 으로 향상된 탓에, 학용품계에서 연필이 차지하는 지위가 얼마간 저하됐음을 부 정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에는 사람의-적어도 나의-마음을 끄는 그 무엇이 있다. 단순하다면 시로 단순한 제품이지만, 연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 수많은 수수께끼와 예지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최초로 연필을 만든 사람은 꽤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음이 분명하리라. 나는 치 즈를 집어넣은 치쿠와(대나무 줄기처럼 원통형으로 만든 어묵)를 발명한 사람에 대해거 늘 외경심을 품고 있는데, 치즈를 넣은 치부와보다는 연필을 만드는 쪽 이 발상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훨씬 더 복잡할 듯하다. 나는 원고를 쓰다가 자잔하게 '고칠' 부분이 생기면 재개 연필을 사용한다. 샤 프 펜슬도 편리하니까 곧잘 사용하긴 하지만, 감촉이나 쓰는 맛으로 치자면 아 주 평봄한 연필 족이 작업에 더 적합하다. 아침나절에 한 한 다스 정도 연필을 깍아, 언더록용잔에다 담아 두었다가는 그걸 차례차례로 써 나가는 것이다. 그러 니까-얘기는 또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연ㅎ이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의 자태처럼 보이거나 하면 몹시 곤란 해지는 것이다. "이번엔 어디, 널 써 볼까." "꺅, 싫어요 거짓말이죠!" 라는 둥 혼자서 놀고 있노라면 작업ㅂ에는 눈꼽만큼도 진전이 없고, 바보 같 은 짓이다. - 신조사의 스즈키 치카라씨 덕분에 터무니 없는 일을 당한 셈인데, 본인은 곤드레가 되어 자기가 한 말을 기억조차 못한다. '예? 그런 얘길 했습니까?왜 F 심 연필이 여학생이 됐지!' 하며 말이다. 그런 걸 내가 알 턱이 있는가. 호놀룰루 영화관 (1) 여행 가방에 냉국수영 국수 다발을 열다섯 뭉치아 넣어 가지고 하와이로 날아 왔다. 이런 일은 그 어떤 가이드 북에도 실려 있지 않을 테지만 -아마도 실려 있지 않겠지-하와이에서 먹는 냉국수는 정말 일품이다. 하와이에 장기간체재하 려는 분은 반드시 냉국수용 국수를 지참하십시오. 그리하여 지금 한 한달 예정으로 호놀룰루에서 한가하게 휴양을 하고 있습니 다. 지금 세삼스럽게 무슨 하와이냐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하루 종일 해변에서 뒹굴뒹굴 하면서 수영하고 싶으면 수영하고 , 밤에는 술을 마시든가 영화를 보든가 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다면 하와이만큼 편안한 곳 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냉국수까지 곁들여진다면 지상 천국 이 따로 없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평판이 좋을 영화는 론 하워드가 감독한 <코쿤>으로 극 장은 평일에도 상당히 붐빈다. <코쿤>이란 누에고치를 일겉는데, 어째서 그런 제목이 붙었는가를 설명하고 나면 영화가 재미없어지니까 설명은 삼가겠다. 플 로리다의 고급양로원에서 여생을 천천히(그러나 무척 쓸쓸하다) 보내고 있는 노 인들과 그 곳을 찾아온 우주인과의 교감을 그린 훈훈한 온정이 스며 있는 작품 - 대충 이런 내용인데, 뭐야 그렇다면 하고 똑같잖아 하고 생각하시는 분 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옳은 말씀, 정말 똑같다. 내 주위에 있던 미국인 관객 들은 모두 훌쩍훌쩍 울고 있었는데, 그런 점까지 랑 진짜 비슷하다. 그러 나 같은 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인 <스플래쉬>와 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영화라고 표현하는 게 보다 엄밀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코쿤>의 주 인공은 쭈글쭈글한 노인네들이니, 그런만큼 이 영화의 시점이 쪽보다 한 층 더 굴절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인 역을 맡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볼 만한 것으로, 특히 던 아메슈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장면 같은 경우 대단한 호평이었다. 론 하워드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어딘가 모르게 연 약해 보이는 남자 우등생 역을 맡았던 사람인데,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제법 무 시 못할 것이다. <스플래쉬>는 일본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지만, 이 <코 쿤>은 꽤 분위기가 좋은 영화니까 일본에서도 히트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등 장 인물의 대부분이 노인과 우주인인 영화 따위, 일본의 영화 회사라면 기획 단 계에서 벌써 제작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코쿤>을 명랑하고 긍정적인 우주인 영화라고 한다면, 토비후퍼의 신작 <라이프 포스>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우주인 영화다. 원작자는 콜린 윌슨이라고 하는데, 책을 아직 읽지 못했으니 비교할 길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에어리언> 과 <존비>와 <고스트 바스터즈>를 뭉뚱그려서 토비 후퍼 특유의 그로테스크 지향으로 양념을 한 것과 다름없는 작품이니까, 그런 부류의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은 안 보시는게 현명하리라. 나는 이런 류의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지 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지만, 얼마간 장난 같은 느낌이 있어, 한 중간쯤까지 보다 보면 싫증이 난다. 후퍼의 주무기는 적은 예산으로 만든 싸구려 영화의 악 취미적인 것이니까, 이 정도의 대작을 마지막까지 구경하는 것은 좀 힘겨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도 집요하게 악취미적 경향을 살리고 있는 부분을 보면 과연 대단하다 싶다. 관객은 드문드문. 존 부어맨의 <에메랄드 포리스트>는 개봉 첫날이라는 이유도 있어 제법 관객 들로 붐볐다.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전 광고가 있었는데, 줄거리가 너무 매 끈하게 처리되어 있어 어디까지가 '기초'인지 잘 모르겠다. 경험상 '실화에 기초 를 두었다'는 헐리우드 영화만큼 그 사실 여부가 수상쩍은 게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원주민에게 아들을 납치당한 아버지가, 십 년에 걸쳐 아마존 정글을 헤매며 아들의 행방을 찾아 다닌다는 얘기인데, 부어맨 류의 원시적 폭력성이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어 그 나름으로 박력은 있다. 그러나 얘기의 흐름이 너무 매끄러워 도중에는 '뭐야 뭐야'하는 식이 됐다가, 결국 마지막 부분에는 서둘러 얘기를 후딱후딱 끝마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부어맨으로 말하자면 뭐니뭐니 해도 <포인트 블랭크> <탈출> <엑스컬리버> 이 세 작품이 최고의 영화이고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나머지는 약간 격이 떨어진다. 식인종들이 모두 보조를 맞추어 정글 속을 '우호, 우호, 우호'하고 행진 을 하는 장면은 타잔 영화 같기도 한 게 아주 재밌다. 부어맨이라고 하는 사람 은 무슨 생각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 건지 잘 알 수 없어 찜찜하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레드 소냐> 를 감독한 리차드 프래이셔 쪽이 한술 더 뜨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코난 더 그레이트>와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하고 계속된 작품인데, 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전압이 약해진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그 래도 호의적인 안목으로 보고 있는 편인데, 그럼에도 <레드 소냐>는 좀 심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터미네이터>로 평판이 쑥 올라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도 <레드 소냐>에서는 전혀 빛이 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관객석 쪽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는 듯 박수도 없다. 로버트.E.하워드(미국의 작가)의 원작 중 에는 훨씬 더 스릴이 있고 와일드한 작품이 얼마든지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평 범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페니 라이더>와 <실버래드> 이 두 흥미진진한 서부극에 대해서는 내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COMING SOON! 호놀룰루 영화관(2) 지난 주에 이어 영화 이야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페일 라이더>는 오래간 만의 대형 서부극이라는 이유로 업계의 주목을 모았는데, 개봉 첫 주에 벌써 흥 행 순위 넘버 원으로 치솟았다. 이스트우드의 인기는 과연 놀랄 만한 것이다. 관 객 쪽의 반응도 활기차고, 작품의 완성도도 꽤 높다. 스토리는 대충 <쉐인>하고 비슷한데, 그렇다고 해서 <쉐인>의 팬들이 <페일 라이더>를 탐탁해 할까 하면,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쉐인>과 <페일 라이더>는 줄거리가 비슷한 반면 내용상의 차이가 두드러지 는 기묘한 상관 관계에 있는 영화다. <쉐인>의 알란 랏드가 전후의 민주주의적 (이건 물론 일본의 영화 관람법이지만) 모랄리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음에 반 해, 이스트우드는 슈퍼 내츄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무기적인 마초 역을 맡고 있어, 까끌까끌한 감촉이 무척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비평도 <페일 라이더>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장르에서 한 작품을 낼 때마다 세련미를 더해 가고 있다'라든가, '과거 십 년 동안 최고로 완성도가 높은 웨스 턴 무비'라는 의견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는 블루스 새 티스가 맡았는데, 영상은 <타이트 로프>때처럼 극단적으로 어둡지는 않다. 이스 트우드의 영화는 뉴욕에서는 웬지 흥행에 실패한다는 정설이 있는데, 이번에는 내용이 좋다는 평판이 나 뉴욕 동부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같은 마초 영화이면서 <람보2>쪽은 비평가들에게 곤죽이 되도록 혹평을 들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억 달러나 수익을 올려, 올 여름 최고의 대 히트작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다음에 인질 사건이 일어나면 미국이 취해야 할 길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는 바주카포 를 맨 레이건을 그린 만화가 실렸는데, 표제에는 <레간보2>라고 씌어 있었다. 베이루트 사건에 대한 미국의 일반인들이 품고 있는 욕구 불만은 우리가 상상하 고 있는 이상으로 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로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게 개봉되었다고 할 구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우익적 정치 메세지에 대해 생리적인 불쾌함을 표명하고 있다. 스텔론 자신도 '다시 한번 전 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이긴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과연 상당하다. '그렇다면 스텔론 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고 어 느 신문이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 나, 매일 체중 조절을 하면서(그의 어머니는 트레이닝 센터를 경영하고 있었다) 열아홉살ㄸ 부잣집 자식들만 모아 놓은 스위스의 어떤 미국 대학에 입학했는데, 거기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런 후에 마이 애미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베트남 전쟁을 종결되고 말았 다. 이런 남자가 베트남 전쟁을 다시 한번 하라는 따위의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게 그 글을 쓴 컬럼니스트의 의견이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작품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여 딱히 평을 하고 자시고 할 만한 영화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부극이라면 <페일 라이더>가 개봉되고 일주일 후에 개봉된 로렌스 캐스던 제작, 감독, 각본의 <실버래드>가 정말 멋진 서부극으로, 내 자신의 취향으로 하 자면 <페일 라이더>보다 이 쪽이 몇 배나 더 재미있다. 간단히 말해, 지금까지 히트한 서부극의 재미있는 부분을 전부 긁어모은 데다, <스타워즈>나 <레이더 스>적인 속도감을 가미하여 보는 이들을 스크린 속으로 쭉쭉 빨아들이는 타입 의 작품으로, 저거야 바로 저거 하는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과연 로 렌스 캐스던이다라고 할까, 정말 대단하다. 스토리 자체는 이른바 '흔히 있는 얘 기'인데, 연출도 카메라의 움직임도 홀딱 반할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신선하여, 지루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 캐스팅도 절묘. 신문은 '만약 이 영화가 서부 영 화를 부활시킬 수 없다면, 이후 어떤 영화도 서부극의 부활을 가능케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절찬을 했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를 맡고 스토리를 쓴 <구니스>는 완전히 기대에 어긋났 다. 공전의 양식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던 무렵의 디즈니 영화와 실로 비슷하다. 스필버그도 이쯤에서 조금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팬들에게 싫증을 줄 것 같 다. 신문에 의하면 올 여름 시즌의 영화는 흥행이 상당히 저조하다고 한다. 그러 고 보면 작년 여름에도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 한 달 반 정도 영화를 마구 봐댔 는데, 그에 비하면 올해의 작품군에는 어쩐지 활기가 부족하다. 무조건으로 재미 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실버래드>정도이고, 그 영화도 영화관이 터져나갈듯 만원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고스트 바스터즈> <크레믈린> <가라테 키드>등, 영화관이 시끌법 석한 영화가 줄지어 있었다. 미국인들의 견해로는 '작년에는 올림픽도 있었고, 마이클 잭슨의 투어도 있었고, 대통령 선거도 있었고 해서, 그런 상승 효과가 작 용했지만, 올 해는 축제가 다 끝난 뒤니까'라서 그렇단다. 영화뿐만 아니라, 올 미국의 여름은 상당히 저조하다. 그것만 저조한 게 아니다. 나의 서핀 솜씨도 몹시 저조하다. 중고 서핀 보드를 사서 매일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는데, 이 부근 소년들처럼 재주 좋게 파도를 타 기가 꽤 힘들다. 파도에 혼쭐이 나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몸이 울렁울렁 하는 지경이다. 쿠게누마해안(후지사와의 앞 바다, 사가미만에 있는 해안. 에노시 마의 오른쪽이다. 왼쪽이 시치리가하마)과는 몹시 다르게 생겨 먹은 모양이다. 파도에 관한 한 권위자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에 의하면 '한 달쯤 지긋하게 들여 다 보고 있지 않으면 못 탄다'는데, 한 달이나 파도를 보고 있다가는 그것만으로 휴가가 끝나 버린다. 중년이란 무엇인가? 그 첫 번째 '탈모에 대하여' 며칠 전 어느 주간지로부터 '나의 이십 대'라는 페이지에 하루키 씨 얘기를 싣 고 싶은데, 그 일로 이십 대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빌렸으면 한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옛날에는 사진 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십 대의 사진이란 게 거의 없는데, 그래도 어떻게 대 여섯 장은 찾아냈다. 그런데 그 십 년 남짓 이전의 사진을 보고, 내 머리카락이 이십 대 때보다 훨 씬 풍성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머리 스타일이 달라진 탓이겠지 했는 데,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단연 지금 쪽이 머리카락 양이 많다. 더부룩한 것이 빼 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발소에 다니는 횟수도 옛날보다 늘어났다. 참으로 불가사 의한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카락이 많아졌다는 건 흔한 얘기가 아니다. 마누라는 '옛날에 비해 머리를 안 쓰니까,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어진 때문 아 니예요?'라고 간단히 말하는데, 암만 별 볼일 없는 소설이라 해도 소설을 쓰는 이상은 그 나름으로 머리를 쓰고, 머리를 쓰면 스트레스도 자연 쌓인다. 문단이 라든가 업계, 세금, 월부금 등등의 일도 잇고, 더구나 소설가도 옛날처럼 뜰에 나 앉아 참새 떼를 바라보며 '벌써 봄이로군'하고 주절거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머리를 안 쓰니까'라는 둥 간단히 결론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게도 역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다. 그런 것이 바깥으로 반영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아닌게 아니라 내 머리카락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 은 전업 작가가 되고 난 뒤부터이다. 그렇다면 전업 작가가 된 일이 나의 생활 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 하는 문제를 총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내 증모현상의 수수께끼;도 자연히 풀릴 것이다. 명명 변화를 리스트 업 해 보니까 다음과 같다. (1)동경을 떠나 교외에서 살게 됐다. (2)타인과 만나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어졌다. (3)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일찍 자게 되었다. (4)하루 세 끼를 꼬박 먹고, 혼자서도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5)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다. (6)교제상 마시는 술이 팍 줄었다. 물론 머리카락이 빠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획일적인 결론은 내릴 수 없지만, 내 경우에는 이러한 생활의 변화가 모발 상태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뒤집어 말하면 뼈를 깍아내듯 소설을 쓰고 있 지 않다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때-오 년 정도 이전 일인데-머리 숱이 눈에 띄게 줄어든 적이 있다. 그 무 렵엔 사업상 이런저런 말썽이 많아(지금은 그때 일을 되돌이키는 것만으로도 피 곤하다) 그 탓으로 머리카락이 쑥쑥 빠져 나갔다. 목욕탕에 들어가 머리를 감으 면 바닥 배수구에 항상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뒤엉켜 있었다. 나는 원래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서, 처음 한동안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 았는데, 드디어 목욕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서면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조금씩 들여다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좀 이 마가 벗겨진 것 아니야'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단계까지 가서야 나도 머리 를 의식하게끔 되어,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헤어 스토닉으로 열심히 두 피를 맛사지하게도 되었다. 탈모라든가 발기부전이라든가 하는 것은(후자는 아직 관계없지만서도) 비만이나 금연과는 달리 스스로 노력하면 어떻게 개선될 수 있 는 종류의 사태가 아닌 만큼, 당사자의 심경은 몹시 어둡다. 그러나 타인이란 참으로 잔혹하여, 본인이 그 사실을 염두에 두면 둘수록 '괜 찮아. 까짓 것, 요즘에는 진짜 같은 가발도 많으니까'라는 둥, '하루키 씨, 대머리 가 되면 또 대머리가 된대로 귀여울테니까 염려 놓아요'라는 둥, 정말 집요하다. 이게 어느 귀 한 쪽이 잘라져 나갔다거나 하는 일이라면, 모두들 동정의 여지도 있고, 앞에 두고 놀려대거나 하는 일도 없을텐데, 탈모라는 것은 구체적인 통증 을 동반하지 않으니 진지하게 동정을 받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젊은 여자는 자신이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없는 만큼, 이런 류의 일에 관해서는 정말 철딱서니가 없다. '아이, 볼상 사나워. 정말 대머리가 됐잖아. 봐 요, 좀 보여줘요. 어머 머릿가죽이 보여. 아이 징그러워, 우와'하고 말이다. 이런 경우는 꽤 화가 치민다. 하지만 고맙게도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성가시고 불쾌한 상황이 개선돼 삼에 따 라, 나의 탈모량도 서서히 줄어들어, 두석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원래의 상태대 로 감쪽같이 회복되었다. 그 이후 머리카락 때문에 마음을 조린 일은 한번도 없 다. 언젠가 또다시 무슨 날벼락 같은 문제에 휩쓸려 머리카락이 빠지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가능한 한 사소한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불 필요하게 많은 일도 하지 않으며 느긋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 중년이란 무엇인가? 그 두 번째 '비만에 대하여' 지난 주에는 탈모에 관한 얘기를 했으니까 이번 주에는 비만에 관해 쓰겠습니 다. 그다지 달가운 화제도 못 되므로, 읽고 싶지 않으신 분은 안 읽어도 상관없 습니다. 중년이 되어(나는 서른 여섯 살이므로 싫든 좋든간에 일단은 중년 초기에 속 한다) 가장 곤란한 일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점점 살이 찐다는 것이다. 이십 대 일 무렵에는 아무리 먹어대고 마셔대도, 체중계의 바늘이 60킬로그램 선을 넘어 서는 일이 결코 없었는데, 최근에는 조금만 방심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65킬로 그램 정도가 되어 버려 아연해지고 만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아연해지는' 경험이 날로 풍성해지는 것 같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한동안 장편 소설에만 매달려 있었던 터라 시간이 아까워서 조깅을 쉬었더니, 지난 2월에 나의 체중은 마침내 66킬로그램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딪고 말았다. 운동 부족에다 일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에 과식, 폭음이 겹치다 보면 살 이 찌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정도 체중이 되면 사뭇 몸이 무겁고, 사이즈 29인 치인 바지에 몸을 쑤셔넣기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래서 석달 동안 감량에 감량을 거듭한 결과 59킬로그램까지 체중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조금 더 힘내어 어떻게 든 58킬로그램 선에 정착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키가 168센티니까 그 정도 선이면 가장 가뿐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봐서 일 개월당 2킬로그램 정도의 감량이라면 그렇게 대단한 노 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찌기는 쉽고, 빼기는 어렵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또 다르게는 '비만에 이르는 길은 짧고 평탄해도, 감량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기야 이 점은 체질 탓도 있 어, 중년이 되면 너나할것 없이 모두 살이 찌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안자이 미즈마루 씨 같은 경우는 나보다 한 단계 위의 중년인데도, 늘 바싹 말라 있어 부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우리 마누라 같은 경우도 절대로 살이 찌지 않는 체 질이다. 살이 찌는 체질인가 안 찌는 체질인가 하는 차이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꽤 작 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제삿날이라든가 결혼식처럼 친척들이 한 꺼번에 모인 자리에 나가, 주위를 한바퀴 휘 둘러보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 경우를 보면, 우리 친척들은 뚱뚱하다고 할 정도까지는 안되지만 꽤 통통한 체형의 사람이 많고, 마누라의 친척들 쪽은 모두가 대개 야위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제삿날에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면 '이거야 상당한 끈기를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는걸'하고 결심을 새로이 하여 운동에 힘쓴다. 마츠모토 세이초(소설가.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추리소설가로 전신, 일본 추 리 문학계에 한 획을 그었다.)의 오래 전 단편에 세끼 손가락이 짧다는(아마도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이유로 박복한 운명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일 가족의 얘기가 있는데, 나는 요즘 들어 그런 사람들의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 게 되었다.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 들이 노력 없이는 도저히 획득할 수 없는 것을 또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불공평, 불평등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이런 얘기를 쓰다 보면 점점 화가 난다. 그러나 그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마누라 집안에는 암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반면 우리 집안은 암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만과 암 사이 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가 하는 데까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이와 같이 혈통 이라고 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어쩌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기라도 하면, 식장에서 좌우로 나뉘어져 나란히 앉아 있는 양가 친척들의 얼굴 생김이 니 체격이니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견주어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기회가 있 으면 꼭 한번 시도해 보세요. 틀림없이 흥미로울테니까. 그건 그렇고 세상에는 비만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꽤 많은듯, 책방에 나가 보면 살을 빼기 위한 노하우 책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데, 또 그 대부분이 베 스트 셀러인 모양이다. 나도 몇 권인가 들쳐 보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이거 야말로 결정판!'이랄 만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세 권을 읽으면, 거기에는 살 을 빼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어, 그 각각의 방법이 전혀 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몹시 극단적인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책도 있다. 살을 빼기 위한 영양학이 아직 체계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현재, 지나치게 편협한 요법에 의존하면 사람에 따라서는 위험 부담이 클 것이 라 여겨진다. 나는 애당초 꼼꼼한 성격이라 다이어트나 살을 빼기 위한 운동에 대해서 꽤나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 결과로써 나온 결론은 '사람에게 다양한 생김새나 성격 이 있는 것처럼 사람이 살 찌는 방식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만인에게 적 합한 살빼기 방법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체질이나 식생활, 직 업이나 수립에 맞추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처럼 권위있는 영양과 의사가 각 개개인의 얘기 를 '음,음'하고 들어가며, 그 상대에게 알맞는 살 빼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게 이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하지만, 갑작스레 그런 수준까지 도달하 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한군데다 뭉뚱그려 놓은 다이어트 책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뭐가 어찌됐든, 프랑스 요리집에서 디너를 먹고 디저트를 생략해야 하 는 분함이나 불쾌함은 필설로는 다 하기 어렵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학습에 대하여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또 잘 가르치 기도 하는 사람'과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또 잘 배우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양쪽 다 못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략 처음에 말한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타입으로,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 치는 데는 그야말로 잰병이다. 그래서 강연의뢰라든가 컬쳐 스쿨의 '소설 작법 강좌'를 맡아 달라는 의뢰같은 게 와도 늘 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뭐가 불행하 니 어쩌니해도, 가르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한 인간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야 할 입장에 놓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게서 소설 작법을 배 운 사람이 훗날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쓰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카락이 쭈빗쭈빗해진다. 가르치는 쪽도 불행하지만, 배우는 쪽 역시 상당한 불행 이다. 미국의 대학에는 '창작과(크리에티브 코스)'라는 게 있어, 거기에서는 작가가 학생들에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친다. 나도 내 두 눈으로 본 게 아니라서 정확 한 얘기는 할 수 없지만, 대충 열명 이내의 학생이 주에 한번 모여 자기가 쓴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거기에 대하여 토론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리고 교사인 작가가 학생들의 작품을 체크하여, 새로 고쳐 쓰기위한 어드바이스 를 해 주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의 좋은 점은 학생들이 프로 작가들과의 교제를 통해 실전적인 어드 바이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작가의 수입이 안정된다는 것에 있다. 교사로서 의 업무량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작가는 여가를 자신의 창작에 할애할 수도 있다. 이런 시스템이 교육 수단으로써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판단할 수 없으 나, 일본의 대학에도 조금쯤은 이런 코스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도 저히 무리지만, 가르치는 게 장기인 작가와 배우는 게 장기인 학생이 일체가 되 면, 그 나름의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소설 적법 같은 걸 배울 수 있을 법한가'하는 의견은 역시 지나치게 일면적이라고 생각한 다. 사람은-특히 젊은 사람은-모든 것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워 나가는 법이고, 그 장소가 대학의 강의실이라 해서 나쁠 건 없다. 하긴 내 자신은 학교하고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변변하게 공부도 하 지 않았고, 오히려 반항심 투철한 학생 쪽이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얻어 맞은 일밖에 기억나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은 마작을 하거나 여자 친구랑 놀러 돌아다니는 사이에 삼 년이 지나가 버렸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학원 분쟁이 기 다리고 있었고, 그게 일단락지어질 무렵에는 학생인 주제에 결혼을 했으니, 그 다음은 생활에 쫓겨서 라는 이유 등등으로 암만 되새겨 보아도 지긋하게 엉덩이 를 들러 붙이고 면학에 힘쓴 기억이 없다. 특히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는 7년 동 안이나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이건 자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얘긴데- 무엇 하 나 배운 게 없다. 와세다 대학에서 얻은 것이라곤 지금의 마누라뿐인데, 마누라 감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게 교육 기관으로서의 와세다 대학의 우수성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된 것은 대학을 나와 소위 '사회인'이 되고부터이다. 어쩌면 그것은 학생시절에 마음껏 놀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학교하고 하는 제도가 애당초 내 성격에 안 맞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혹은 또 내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데 가치를 두는 타입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이 한가한 틈을 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미국 소설을 찔끔찔끔 번역하거나, 아는 사람한테 프랑스어를 배우거나 하는 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 찰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주의 깊게 듣도록 노력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일이란 무척 재미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생각하는 방식도 저마다 다 다르다. 그 중에는 '과연 그럴듯한데'하고 감탄 하게 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있다. 그 러나 무의미하고 허무맹랑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유심히 들어보면 그것은 또 그 나름의 가치 기준 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됐든 이 편이 한걸음 물러나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교 적 정직하게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그 당시에는 소설을 쓰게 되리라곤 생 각도 못했지만, 이러한 학습 체험은 훗날 소설을 쓰는데 코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런 것들은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젊은 시절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면 어른이 되어 완전히 공부벌레가 되거나, 반대로 공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않 을까 하고 생각한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인이란, 학생 시절에는 무턱대고 공부를 했는데 사회 인이 되고 나서는 뒤굴뒤굴 뒹굴면서 TV나 보는 타입이고, 공부벌레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튼 무슨 공부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타입이다. 뭐 그런 거야 어차피 타인의 삶이니까 어째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어린 시절에 실컷 놀 수 있었던 사람쪽을 좋아한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화풍으로 봐서 꽤나 여유로운 소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데, 글쎄 어떨까요? - 하루키는 현재 삼 년째 미국 생활 중이다. 미국의 한 대학에 속해 있으며, 타 대학에 강연을 하러 가기도 하고 있단다. 특히 올해부터는 주에 한 번씩 일 본 문학을 강희하고 있다는데 미국이라는 문화 패턴이 다른 환경 덕분인지 모르 겠으나 그도 그 나름의 진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해보니까 예상했던 것만큼 고통스럽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가르치기 경험에 대한 감상. 오디오 스파게티 어쩌다 신문이나 잡지 류를 읽어보면, 수많은 것들이 발견되기도 하고 발명되 기도 했다는 기사와 조우하게 된다. 그 중에는 '허어'하고 감탄음을 내지르게 하 는 것도 있고, 대체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 구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동경 대학 이학부의 XX박사는 일본 원숭이의 뇌하수체를 전기적 처리로 계층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등의 기사를 읽으면-이건 물론 엉터리 예입니다-대 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설령 '허어'하고 감탄할 수 있는 부류의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원리에 근거하여, 어떤 단계를 거쳐 성립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그런 것들은 내게는 전혀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화학이라든가 물리 같은 과목은 부진한 편이었다. 이런 발견이나 발명은, (1)어떤 필요가 생겨, (2)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거쳐야 할 이론적 고찰이며 시행 착오가 있 은 후, (3)발견이나 발명에 도달한다 는 과정을 밟게 될 테지만, (1)과 (3)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어도, (2)에 대해 서는 너무 어려워서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1)이란 필요가 있어 (2)어영부영 (2)이런 것이 생겨났다는 정도의 인식으로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즉 비디오 레코 더를 예로 들면, (1)영상을 테이프에 간단히 녹화할 수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2)어영부영, 우물쭈물, (3)비디오 레코더가 생겨났다, 라는 식이다. 비디오 레코더가 어떤 원리로 성립된 것인지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나는 비디오 레코더를 아무런 불편없이 조작할 수 있고, 제법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와트의 증기 기관이나 마르코니(이 탈리아의 전기 기술자. 무선 전신 장치를 발명. 처음으로 실용화하였다.)의 전신 장치나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쯤이라면 나도 웬만큼은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데, 얘기가 그 이후의 테크놀로지로 옮겨지면, 내게 있어선 대부분이 무지한 심 연의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이런 한심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결코 안이하게 동족을 구하고 있 는 것은 아니다-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모두들 일상적 으로 사용하고 있는 저 소형 계산기, 이삼천 엔만 내면 살 수 있는 그 보잘것없 고 작은 물건으로 {{ ROOT13 * ROOT272 }} {{ }} 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에 대해 올바르게 설 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그건 그런 물건이니까'하면서, 계산기를 사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런 식으로 보면, 우리는 테크놀로지에 관해서는 소위 절대 군주적인 체제 하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칙명'과도 같이 신발견품 내지는 신발명품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모두들 '이게 무슨 일이 지?'라는 둥 '잘 모르겠는데'라는 둥 웅성웅성 떠들지만, 그래도 좌우지간 '임금님 의 말씀이니까 틀림없을 거야'하며, 그것에 길들여진다. 적어도 테크놀로지에 관 한 한은 데모크라시라는 것도 완전히 종결을 고하고 만 것처럼 생각되어진다. 나는 지금 집에다 레코드 플레이어 두 대와 카셋트 데크 세 대,FM 튜너 한 대, VTR 두 대,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두 대 두고 사용하고 있는데, 지옥과 같은 나날이다. 우선 세 대의 카셋트 데크를 테이프 셀렉터에 연결한다. 그러고 는 비디오 셀렉터에 FM 튜너의 아웃풋을 연결하여 하이파이 녹음이 가능하도록 한다. 그것은 오디오 테이프에 더빙할 수 있도록 비디오 셀렉터의 아웃 풋을 테 이프 셀렉터에 연결한다. 그리고 FM 튜너의 전원을 오디오 타이머에 꽂아...하고 궁리하는 사이에, 도중에서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레코드를 들으면서 FM 방송을 비디오 데크에 녹음하는 동시에 카 셋트에다 더빙할 수 있는가?'하고 누가 묻는다면 한참 동안이나 이리저리 생각 지 않고서는 결론이 나오지 않고, 결론이 났다 해도 번번이 틀리기 일쑤다. 배선 도를 솜솜히 들여다본들, 머리 속은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마누라는 애당초 그런 노력을 일체 포기한 터라, 오디오 장치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제일 난감한 것은 이사를 했을 때다. 기계를 늘어놓고 배선을 다시 껴맞추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거리다. '음, 이 아웃 풋이 이쪽 인 풋으로 들어가고...'하고 주 절거리고 있다 보면, 점점 '내가 어쩌다 이런 짓을 하게 됐지?'하고 절망적인 기 분이 들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을 무렵에 는 세계는 훨씬 단순했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종합 앰프(라는 게 있었다)에 연 결하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고, 그 다음은 느긋한 기분으로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스파게티 오 인분을 방바닥에다 퍼질러 놓 을 것 같은 전깃줄더미에 파묻혀 악전고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데모크라 시의 죽음이라 부르지 않으면, 대체 뭐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실수에 대하여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후 가장 절실하게 통감하는 일은 '인간은 반 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기 이전에도 일상 생활 속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던 터라 새삼스레 그렇다는 걸 통감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 나 글쟁이가 되기 전에는 실수를 해도 대충 '아,미안. 실수였어'하면 그만이었다. 상대방도 '정말 도저히 구제 불능이군'하고 탄식하는 정도로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노라면, 실수란 반드시 확고한 형태로 남고, 그뿐 아니라 광범 위하게 살포되기까지 한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아, 미안. 실수 였어'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에는 스스로 자초했다고는 하나, 상당히 견디기 힘들다. 그대신-이라고 하기도 좀 뭣 하지만-나는 타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타인의 실언을 들춰가며 '어이, 자네 말이야. 지난번에 그 런 말 했지, 그렇지. 말이지 말야'하고 시비를 거는 일은 전혀 없다. 덕분에 십사 년 간 그럭저럭 평온한 부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문장상의 실수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텍스 트가 있으니까, 나보다 어학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테스트와 번역문을 꼼꼼하게 대조하면 자잔한 실수 같은 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근자에 카츠시카구에 사는 모리시타라는 분으로부터 엽서를 받았는데, '귀하의 번역문 중에 a couple of weeks가 '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주 간'이라 고 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받았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순전한 나의 실 수이다. 죄송할 뿐이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또 드러내는 것 같지만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적도 있다. 'bald'와 'bold'를 혼동해서 번역한 적도 있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였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학생 시절에 시험 을 치르면 답안지에 '사소한 실수가 많으니까 문제를 잘 들여다보도록'이라는 언 질이 몇 번이고 씌어 있었는데, 그런 성형은 나이를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고쳐 지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이런 얘기를 쓴 것은 어쩐지 변명을 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문장 하 나 단어 하나를 정확하게 번역하고자 온 종일 끙끙거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한다. 그리하여 그런 중요한 부분을 간신히 통과하고 비교적 평 범한 부분으로 들어서면 후 하고 긴장이 풀어져 하찮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나중에 텍스트와 번역문을 몇 번이나 대조해 보는데도, '이런 곳에서는 실수를 할 리가 없어'라는 선입견이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검토를 하는 사이에도 실수는 발견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하 면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타인에게 지적받을 것까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오역을 나중에 아차 하고 깨닫는 경우도 있다. 밤에 이부자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멍하니 잠을 청하 고 있을 때 '아차, 잘못했어. 이건 실수다!'하고 벌떡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부주의로 생긴 실수라기 보다 한층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실수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자 보다 훨씬 식은땀의 양이 많아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저지른 수많은 부주의를 전부 끄어 모아 병리적 으로 분석해 보면, 꽤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글뿐 아 니라,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믿기 어려운 실수를 범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 이다. 예를 들면 '소변을 봐야지'하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던 것이 목욕탕으로 들 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아니, 좀 이상한데. 아직도 소변이 보고 싶은 걸. 몸 상태가 좀 이상한건가'하고 의심하는 정도의 일은 다반 사다. 그런데 비하면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건 꼭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열차 시간표나 전화부를 만드는 회사의 편집자가 안되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번역만이 아니고, 지금처럼 자신에 관한 문장을 쓸 때도 가끔씩 형편없는 실 수를 한다. 그러나 나는 데이터를 참고로 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가며 글을 쓰는 타입의 글쟁이도 아니고, 모델 소설이나 논픽션도 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누군가 에게 딱히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으므로, 대개의 실수나 사실 오인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며칠 전 아키시마시에 사는 오카무라란 분으로부터, 무라카미 씨의 소설 중에 '폭스바겐의 라디에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투 서가 모 잡지에 실렸는데 알고 계십니까 라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관 해서는 잘 모르니까, 누구에게 물어 봤더니 역시 폭스바겐 비토르에는 라디에터 가 없다고 한다. 영락없는 실수다. 그러나 그 일로 내가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하는가 하면, 역시 웃어 넘기고 만다. 왜냐하면 그건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가 줄어들어 손바닥 위에 올라탄다 해도,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터가 붙어있다 해도, 베토벤이 제11번 교향곡을 작곡했다 해도,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아, 그래. 이건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 터가 붙어있는 세계의 얘기란 말이지!'하는 상상력으로 소설을 읽어 준다면, 나 로서는 무척 기쁘겠다. 암만 그래도 실수는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강직한 분께서는 근일 중 출간될 영 어판 속에다는 그 부분을 올바르게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십시오-하고 음흉하게 선전까지 하다니. 여름의 끝 드디어 여름도 끝나 간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소년 아저씨-라는 표현을 요 즘 들어 비교적 자조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라서 여름이 끝나 가는 것이 무 척 애닯다. 여름 따위 내년에 또 올텐데 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해변가에 있던 방갈로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고추 잠자리가 하늘을 빙빙 돌아다니고, 해안에 잠수복 차림의 서퍼들이 늘어나곤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 버렸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발상은 어린이의 그 것과 거의 다름없다. 며칠 전 근처에 사는 모 광고 회사 사람 집에 놀러갔더니, 부인이 나와 '죄송 하지만 여름 휴가가 다 끝나서 오늘부터 출근이에요'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렇군, 여름이 끝나서 모두들 사회로 복귀하는군, 수영이니 일광욕이니 불꽃 놀이 니 비치 보이스니 서핀이니 하고 아직도 건들건들 놀러다니는 것은 나 정도밖에 없어'하고 암담한 기분에 젖는다. 나 역시 9월 초순까지는 다 쓰지 않으면 안될 소설이 있는데, 아직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다. 이래서 될까 하고 생각한다. 여름 의 끝이란 몹시 애처롭다. 그래서 '일이 힘드시겠죠'라고 내가 말했더니, '네, 집을 나서면서 긴 바지를 입 어야 하니 싫다면서 마구 고함을 질러대던 걸요'하고 그 부인은 말한다. 그런 사 람의 기분을 나는 가슴이 저리도록 잘 안다. 여름이란 계절은 원칙적으로 짧은 바지에 런닝 셔츠를 입고, 맥주를 마시며 지내야 마땅한 그런 계절인 것이다. 나 만해도 요 두 달 반 정도 사이에 긴 바지를 입었던 일은 딱 한번밖에 없다 여름 휴가가 끝나 긴 바지를 입어야만 하게 된 그의 심경을 생각하면, 남의 일이면서 도 안됐다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여름이 후덥지근한 나라니까 출퇴근 시에 반 바지를 입는 정도는 회사가 허락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도 무지가 그렇게 멋대가리도 없는 에너지 절약복 같은 옷이 존재했을 정도니까, 샐러리맨이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이라니, 그런 것 회사가 허락할 턱 이 없잖아'라면서 역시 회사에 다니는 지기가 어처구니없어 했다. '난 여름 내내 긴팔 셔츠를 입고 다녔다구. 햇볕에 그을리면 안되니까 말이야.' 이 친구는 올 봄부터 손해 배상 보험 회사에서 고객을 담당하고 있다. 하긴 고객 담당이라니 긴팔 셔츠를 안 입으면 안되겠군 하고 납득은 가지만, 타면 안 된다는 둥 하는 소리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나는 한번도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 회사의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었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 말 모르겠다. '저 말이지, 손님이랑 만나 얘기를 하잖아'하고 그는 설명해 준다. '그럴 때 이 쪽이 검게 타 있으면 말이야, 이 자식 우리가 지불한 보험료를 가지고 진창 놀 아댔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네 장사는 손님한테 반감을 사게 되면 끝장이잖아. 그래서 타면 안된다는 거지. 나 같은 경우 제법 살이 쪘 잖아. 그러면 말이지, 돈을 하도 많이 벌어 들여서, 애일 좋은 것만 먹으니까 살 이 찌죠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으니 골치라구. 난 아무거나 먹어도 살이 찌 는데 말이야.' 이런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모두들 나름대로 힘들겠군 하고 동정이 간다. 이 사람은 작년까지만 해도 요트니 스쿠버니 하고 진탕 놀며 새까맣게 탔 던 이인 만큼, 측은함도 한층 더하다. 사람이란 성장해감에 따라 여름을 맞는 즐 거움을 조금씩 잃어가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집이 코시엔 구장에서 제법 가까웠던 이유로, 여름이 되면 자전거 를 타고 곧잘 고교 야구를 보러 갔다. 고교 야구의 외야석을 공짜였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비닐 주머니에 들어있는 아이스 케키를 날름날름 핥거나, 녹은 물을 스트로로 쪽쪽 빨거나, 머리에 올려놓고 머 리를 식혀가며 온 종일 싫증도 내지 않고 애구 구경을 했던 것이다. TV로 보는 고교 야구는 뭐라고 주절주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해설이 딸려 있거나, 아나운서 혼자 흥분해 가지고 떠벌려대거나 해서 흥이 깨지지만, 실제로 구장에 가서 관전하기에는 제법 괜찮은 구경거리다. 나는 TV에서 중계하는 고교 야구 는 불쾌해서 거의 안 보지만, 코세엔에는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 특히 외야석 에 있으면 관중도 시큰둥하니 적당하게 어물쩡거리고 있어, '저 멀리서 고등 학 생들이 우당탕탕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다.청춘의 땀이라든가 눈 물같은 것은 그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다. 적어도 내게 고교 야구란 그런 것이었다. 고교 야구의 결승전이 끝나고, 폐회식이 끝나고, 응원단이 깃발을 탁탁 접어서 는 줄지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어린 마음에도 이젠 여름도 다 끝났구나 싶은 감회가 느껴졌던 것이다. 어찌된 셈인지 폐회식이 끝나 구장 밖으로 나오면, 언 제나 고추잠자리떼가 머리 위를 뱅뱅 맴돌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나의 소년 시 절에 있어서 여름의 끝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코시엔의 해변도 아시야의 해변 도 헤엄치기에는 차가워지고, 숙제도 본격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나 는 일들은 모두 끝나고 만 것이다. 가끔씩 왜 이렇게 여름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교 야구 기사가 거의 실리지 않는 전국지가 하나 정도 있어도 좋으리라 생 각한다. 그런 신문이 있다면 구독해도 좋을텐데. 무용지물의 누적에 대하여 나는 특별히 물건에 집착이 많은 편도 아니고, 수집벽 같은 것도 그다지 없는 편인데, 그런데도 그냥 놔두면 사방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점점 쌓인다. 레코드 니 책이니 테이프니 팜플렛이니, 그 밖에 서류, 사진, 시계, 우산, 볼펜 등등 하는 류의 것들이다. 어떤 것들은 그 나름의 필연성에 의하여 늘어나고, 어떤 것들은 아무런 필연서도 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필연성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그 물 건들은 자동적으로 증가해 가는 것이고, 우리의 한정된 힘으로 그 흐름을 저지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한 것처럼 생각된다. 이러한 무용지물의 자연적 증가 경향은 젊은 시절에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 지만, 인생의 한 포인트를 지나고 나면 돌연 명확한 형태를 띠고 그 모습을 우 리 앞에 나타내는 듯하다. 여하튼 싫건 좋건간에 정신없이 사방에 물건이 늘어 나기만 한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물건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돈을 주고 산 것도 있다. 어느 쪽인지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다. 약간은 쓸모가 있는 게 있는가 하 면, 거의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떤 하나의 공통된 특질을 지니고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간단히 버릴 수 없다'는 특질이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는 볼펜이 전부해서 오십 자루 정도나 있다. 그러나 '왜 볼펜이 오십 자루나 있는가?'하고 물어도, 신속하게 대답하기 힘들다. 나는 볼펜 이라고 하는 필기구를 일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까, 일 이외의 일상 생활에 서 쓴다고 해 봤자,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크레디트 카드에 사인을 하는 경우 정도로 한정돼 있다. 그러므로 문방구에서 볼펜을 산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볼펜은 끊일 새 없이 늘어나기만 한다. 그리고 어느 볼펜이고 잉크 가 1센티미터나 2센티미터 정도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내 쪽도 '볼펜이란 제멋대로 증식하여 늘어나는 것이다'라는 인식 하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상 싶다. 물론 그렇다고 볼펜이 제멋대로 증식을 하는 것은 아니고(만약 그렇다면 멘델 의 법칙에 따라 빨강 파랑 혼합이라든가 파랑 검정 혼합이라는 색깔이 존재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볼펜이 늘어나는 데는 그 나름대로 반드시 몇 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품으로 받았거나, 누군가가 잊어 먹고 두고 갔거 나, 여행지의 호텔에서 기념으로 들고 왔거나, 외출한 곳에서 문득 필기구를 갖 고 나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임시 변통으로 역내 매점에서 샀거나(무엇보다 싸니 까)하는 이유이다. 그러한 경로를 거쳐 볼펜 오십 자루는 밤 새 소리도 없이 내 린 눈처럼 우리 집에 쌓여 있는 것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그 볼펜 꾸러미 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진저리를 친다. 볼펜 오십 자루라니 필시 나는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것이다. 그러나 그 불필요한 볼펜이 성가시다고 싹 버릴 수 있는가 하면,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아직 잉크가 남아 있고 사용 가능한 상태에 있는 볼펜을 쓰레기통 에다 내던지는 것은 미네랄 워터로 이를 닦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용기를 필요 로 하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무리 이사를 거듭해도, 볼펜수는 절대로 줄지 않는다. 가끔 '이제 잉크가 굳어 버려 쓸 수 없게 된 것이 있지 않을까'하 는 기대를 갖고 한 자루 한 자루 실험을 해 보곤 하는데, 최근의 볼펜은 품질이 향상된건지, 그런 경우는 한 자루도 없어 퍽 실망하고 만다. 볼펜 정도라면 아무리 쌓여 있어도 그렇게 무겁지도 않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 도 아니니까, 눈에 보일 만큼의 실질적인 해는 없다. 문제는 책과 레코드이다. 직업상 책의 숫자는 점점 늘기만하고, 레코드도 올바로 세어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세어 볼 마음도 없다) 전부 삼천 장 정도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레코드 삼천 장하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만, 한 장에 앞뒤 45분으로 치면 통 털어 듣는데 2200시간 이상 걸린다. 요컨대 그렇게 많은 양의 레코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죽을 지경이다. 정말 무슨 수를 써야지 하고 뼈저리게 생각한다. 마누라는 '새 레코드를 열 장 사면, 헌 걸 열 장 팔아 버리면 되잖아요. 어차 피 그렇게 많이 듣는 것도 아니니까'하고 투덜거리지, 나 역기 그게 옳은 논리라 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 건 좀 희귀한 레코드고'라든지, '이건 고등 학교 때 산 추억이 담신 레코드니까' 라든지, '별로 듣지는 않지만, 이 한 곡만큼은 마음에 드니까'하고 생각하기 시작 하면, 결국 재고가 한 장도 줄어들지 않는다. 속수무책이다. 실은 지금도 몇 달 후로 다가와 있는 이사를 빙자하여 레코드 500장, 책 500 권 삭감에 애쓰고 있지만, 늘 그런 것처럼 간단히 처리될 것 같지 않다. 인터뷰에 대하여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미국판 <플레이 보이>지에 실려있는 '플레이 보이 인터뷰'를 좋아해서, 매 호 빠뜨리지 않고 읽었던 적이 있다. 이 인터뷰 시 리즈는 물론 각 외에 따라 내용의 재미가 좀 덜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는 꽤 높은 평균점을 올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카트 보네거트나 멜 부룩 스를 다룬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가 며 상대방에게 마음껏 얘기하게 해 주는 인터뷰 기사가 달리 없었으므로,, 얘기 하는 쪽도 진지하게 얘기하여,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제목 그대로 '탁 털어놓고 하는 대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길기만 하면 상대방이 모든 걸 정직하게 털어놓는다고 할 수 없으니까, 거기에는 사전에 대충 얘기의 포인트를 지적해 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이 설정되 어 있고, 방침도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롱 인터뷰란 그저 언어의 방류에 지 나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을 어떻게 잘 요리하는가에 질문자의 역량이 드러 나는 것이다. <플레이 보이> 인터뷰의 기본적인 방침은 대략 다음과 같다. (1)그 분야에 전문적인 인물을 질문자로 지정하되, 지면에서는 그 이름을 밝히 지 않는다. (2)질문자는 원칙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70퍼센트 정도의 호의를 갖고 있는 게 - 아니면 적어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느껴지도록 한다. -바람직하다(나머지 30퍼 센트로 도발적인 발언을 한다). (3)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고, 정체되지도 않아야 하며, 질문은 간결하게 한 다. 물론 이것은 <플레이 보이>의 방침이므로, 다른 모든 인터뷰에 그냥 그대로 직결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세 가지 포인트는 일반적인 인터 뷰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중요한 열쇠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좀더 다 름 표현을 쓰자면, (1)'아니 뭐야, 이런 것도 모른단 말이야?'하고 상대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지 않 도록 한다. 즉 사전 조사를 면밀히 한다. (2)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얘기를 유도해 내며, 그 위에 이따금은 바싹 긴장 하도록 하기도 한다. (3)프로그램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의 발언에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하여 얘기의 줄기를 앞으로 진전시켜 나간다. 는 게 되는데,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해 보면 이처럼 어려운 일이 또 없 다. 나 자신도 인터뷰에는 흥미가 있는 터라 몇 번인가 질문자 역할을 해 본 적 이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거꾸로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에서도, '아, 좋은 인터뷰였다. 유익했어'하고 즐거 워할 수 있는 인터뷰란 그리 많지 않다. 이건 물론 내 쪽에도 얼마간 책임이 있 으므로, 질문자에게만 그 책임을 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식으로 해서 될까'하는 불만이 남는다. 일본 인터뷰의 최대 문제점은, 질문자가 사전에 준비해 둔 프로그램에 지나치 게 집착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슨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답변이 있고, 그 얘기가 어떤 식으로 발전돼 갈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으면, '그럼 다음 질문 인데요-'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실망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만해도 그 자리에 맞추어 적당히 얘기를 하는 일도 있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정 도까지는 안되더라도 대충 만들어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꽤 알쏭달쏭한 말을 하기도 하여, 그 부분에 대해 파고 들어오면 좀 골치 아프겠는데 하고 생각할때 가 있는데, 그런 약점을 꼬집는 사람은 - 조금은 있었지만 - 별로 없다. 그렇게 되면 내 쪽에서도 스릴이 없으니까, 점점 더 적당주의 노선으로 흐르고 만다. 몇 년이나 소설가를 업으로 하면서, 몇 십 번이나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내 쪽 도 '이런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지'하는 패턴이 생겨, 이런 것은 편리하다고 하 면 편리한 거겠고, 재미없다고 하면 아무런 재미도 없다. 소설가란 자기가 쓴 소 설이 전부이고, 특히 나는 자기 방어 능력이 탁월한 편이라서, 무슨 질문을 받더 라도 쉽사리 정직한 본심을 털어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놔두면 60퍼센트는 정직하게, 40퍼센트는 방어하는 선에서 얘기가 점점 진전되는 것이다. 그게 70퍼 센트, 30퍼센트 정도 선이라면 약간은 재미있는 인터뷰가 된다. 80퍼센트, 20퍼 센트이면 스스로 얘기하기는 좀 뭣 하지만, 어느 정도 쇼킹한 내용도 폭로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건 그리고 면밀한 사전 조사를 해 가지고 오는 질문자도 그렇게 많지는 않 은 것 같다. 잡지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바쁘니까 그러려니 여기지만, 이 쪽이 등골이 오싹해져 제대로 얼버무려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드는 질문을 준 비하여 도전해 오는 사람도 그다지 없다. 하기야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이 친절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뭐 나로서는 그 편이 편하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그건 그렇고 인터뷰 중에 받는 질문이란 대개 그 내용이 정해져 있어, 가장 질문의 횟수가 많은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1)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자는가? (2)필기구는 무얼 사용하고 있는가? (3)사모님과는 어디서 알게 되었는가? 그런 걸 물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고 늘 염려스럽지만, 모두들 묻는 것 을 보면 역시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나보다. 류즈쿠의 호의 비극 한 사 년쯤 전에 '자동차의 가로 쓰기 표기'에 대하여 어떤 신문의 컬럼난에 짧은 글을 쓴 일이 있다. 라고 얘기해 봤자 그것만으로는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테니까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나는 그 컬럼에다 상업용 자동차의 경우 우측면에 씌어 있는 글자가 좌우 반대로 되어있는 것 문제삼았다. 얘를 들어 '백조 드라이 클리닝'의 자동차 좌측면에는 좌->우로 분명 '백조 드 라이 클리닝'이라고 씌어 있는데 반해, 우측면에는 우->좌로 '닝리클 이라드 조 백'이라고 거꾸로 되어있다. 뭐 좌->우면 어떻고 우->좌면 어떠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옛날부터 그게 거슬려 견딜수가 없었다. 늘 순간적으로 '아니, 닝리클 이라드가 뭐지?'하고 궁리하기까지 한다. 거기에 덧붙여 세탁소 이름 밑 에 있는 전화 번호만은 멀쩡하게 좌->우로 씌어 있거나 하면, 이거야 지옥이 따 로 없다 - 는 취지의 문장을 썼던 것이다. 하긴 나의 주장이야 무력하기 짝이 없으니까,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그것으 로 이 세상의 체제나 관습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리는 없다. 근자의 예로는 <스 쟈-타>라는 회사의 트럭이 몹시 신경에 거슬린다. 이 경우 역시 우측면이 <타- 쟈스>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듯한 느낌이 든 다. 그래서 나는 이 회사의 자동차를 발견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쌩쌩 내달리고 있으니, 딱히 <스쟈-타>란 회사에 원한을 품소 있는 건 전혀 아닌데. 한편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이 문제에 적잖이 골머리를 썩는 모양이다. 자동 차의 우측면에다 좌->우로 글자를 디자인하면, 반드시 회사측으로부터 주문이 내려와 우->좌로 바꾸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글이 신문에 게재된 후 얼마 지나, 교토의 어느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는 마쯔미 씨라고 하는 분이 <자동차의 우측면 가로 쓰기에 있 어서 기묘한 습관>이란 4페이지 정도의 얇은 팜플렛을 보내 주었다. 그것은 '자 동차의 우측면 우->좌 표기가 왜 오류인가?'에 대하여 확실한 예증을 들어가면 논한 훌륭한 내용의 팜플렛이었다. 문장도 논지도 빈틈이 없고, 설득력도 있는데 다, 더욱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상당한 용기를 얻었다. 그 당시에는 곧장 답장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늘 그러듯 차일피일 질질 끌다가 결국 사 년이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쯔미 씨의 팜플렛에 의하면 일본의 자동차나 선박의 우측면 표기가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한심한 게 선박으로, 제대로 돼 있는 경우를 찾아내 는 쪽이 오히려 곤란할 지경이란다. 예를 들어 해상 보안청의 배는 우측면에서 보면, <토로무> <퓨즈쿠> <모리에> <마지노> 라는 이름들을 죽 예로 들었는데, 이건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츄즈쿠>가 쿠즈 류란 걸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분이 그렇게 많이는 안 계실 것이면, <모리 에>는 브레드 앤드 버터의 오래 된 노래 제목과 비슷하고, <마지노>는 프랑스 의 요새 같다. <토로무>는 SF적인 냄새가 풍기는 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제 아무리 어감이 좋다고 해서 헷갈리기 쉬워도 상관이 없다면 어불성설이다. 1949 년의 내각 통고에 '공용 문장은 좌->우로 쓸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경우 좌->우로 일관성있게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해상 자위대와 페리 회사에 속해 있는 일 부 선박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팜플렛은 1977년 발 행이니까 다소 사정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 각하리라고는 나도 생각지 못했다. 어째서 사람들이 탈 것, 즉 차량이나 선박의 우측면에 한해 우->좌로 표기를 선호하는지, 그것은 역시 진행하는 방향을 좇아 차례차례로 글자를 늘어놓는다 는 의식에 근거하는 듯하다. 그러나 만약 <미즈마루 택배>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면, 이 회사의 상표는 어디까지나 <미즈마루 택배>라고 하는 하나의 개념, 말 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미와 즈와 마와 루와 잭과 배라는 단순한 글자의 모임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미즈마루 택 배>라고 하는 마크가 일체가 되어 앞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옳다. 로고나 마크는 대저 그러한 것이다. 얼마 전 <배택 와가사>라는 트럭이 달리는 걸 보았는데, 어쩐지 설사를 할 것처럼 어딘가로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아 보여 무척 재미있었다. 마쯔미 '씨의 그 팜플렛에 제시되어 있는 예를 좀더 인용해 보면, 교토의 시내 버스에는 각기 애칭이 붙어 있는데, 그 중에는, <카사야> <즈미요키> <쿠카킨> 이라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물론 <야사카> <키요미즈> <킨카쿠>를 말 한다. 이런 것들도 그저 재미있다고 얘기하면 그뿐이겠지만. 어찌하여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최근에는 옛날에 비하면 현저하게 책방엘 들락거리지 않게 된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책방에 안 가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자신이 글쟁이가 된 데 있다. 자기 책이 책방에 진열돼 있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진열돼 있지 않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난감한 일이다-등등의 이유로, 책방으로부터 싹 발길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 안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탓도 있다. 아직 채 읽지도 못한 책이 몇 백 권이나 저장돼 있는데, 그 위에다 부질없이 더 올려 쌓는 것도 왠지 바보스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쌓여 있는 책더미를 죄다 정리하고 나면 책방에 가서 또 읽고 싶은 책을 끌어 모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한 권도 줄지는 않고, 오히려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실정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아니지만, 나 역시 '독서용 복제 인간'같은 것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하여 그가 책을 왕창왕창 읽으면서, '주인 나으리, 이건 아주 좋습니다. 꼭 읽어야만 해요'라든가, '나으리, 이건 읽을 필요 없습니다'하고 다이 제스트식으로 설명해 주면 무척 편리할 것 같다. 딱히 복제 인간이 아니더라도 정력이 넘치고 한가한데다가 책에 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 곁에 있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그런 일도 쉽지가 않다. 책방 나들이를 그다지 하지 않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신간 중에 외국 소설을 번역한 작품이 눈에 띄게 줄어든 데 있다 . SF라든가 미스테리, 모험 소설 같은 번역물은 상당히 많은데, 이런 류의 번역물은 옥석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 그 유명한 나도(한때는 무턱대고 읽었으니까)요즘엔 거의 안 읽게 되었다. 따라 서 순수한 번역 소설의 간행량은 극단적으로 적다. 한 출판 관계자는 '순수 문학 번역물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안 팔린다'고 말하는데, 어찌됐든 유감스러 운 일이다. 그리고 또, 내 자신의 독서 시간이 대폭 감소했다는 이유도 있다. 출판사 사람 들을 만나면 모두들 입을 모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자리에 앉아 지긋하게 책 을 안 읽는다니까요'하고 투덜거리고, 나도 덩달아 '그래요. 그것 참 한심한 일이 군요'하고 장단을 맞추기는 하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책을 그다지 안 읽게 된 것이다. 십 대 시절에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과 <쟝 크리스토프>와 <전쟁과 평 화>와 <조용한 돈강>을 세 번씩 읽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옛날 일이다 싶다. 하긴 당시에는 책이란 양만 넉넉하면 그걸로 대만족이었던지라 <죄와 벌>같은 작품은 페이지가 너무 적어 어쩐지 성에 안 찬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 당시 에 비하면-나이를 먹어 책 한 권을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읽게 되었다는 변화 가 있기는 하지만-독서량이 오분의 일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어찌하여 이렇게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그건 한마디로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데 독서 이외의 활동에 시간을 많이 뺏겨, 그 영향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예를 들면 런닝이 하루에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음악을 듣는데 두 시간, 비디오를 보는데 두 시간, 산 책에 한 시간...하고 따져 나가다 보면, 차분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 따위 거의 없다니까요, 이것 참, 뭐 직업상 읽어야 할 책은 한 달에 몇 권 매달리듯 해 가 며 읽고 있기는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책을 정지하게 말해 도무지 읽지 않 는다. 한심한 노릇이다. 하기야 이런 상황 내지는 경향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이들이 책을 읽지 앉게 된 것은 역시 독서 이외의 다양한 활동에 시간이나 돈, 에너지를 대폭 할애하고 있는 까닭일 거라고 나는 추측한 다. 내가 젊었을 때는-하면서 얘기가 갑자기 궁상맞은 아저씨 투로 바뀌지만-전 체적으로 시간이 흘러 넘쳐, '할 수 없지, 책이라도 읽을까'하는 기분이 들기 쉬 웠다. 당시에는 비디오도 없었고, 레코드도 상대적으로 비싸 많이는 살 수 없었 고, 스포트도 오늘날처럼 번성하지 않았다. 시대적인 분위기도 대단히 이론적이 어서, 어떤 종류의 책을 일정량 독파하지 않으면 주위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 는 풍조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뭔데 그게? 그런 거 안 읽었어. 알지도 못하는 거'하면 스므 스하게 넘어간다. 그 밖에도 할 일이 얼마든지 있고,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장 소나 방법, 미디어도 각양각색으로 갖추어져 있다. 결국 독서란 것이 유일한 신 화적 미디어였던 시대는 급속하게 종식되고 만 것이다. 지금의 독서란 그 다양 한 각종 미디어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경향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그렇듯,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양 주의적, 권위주의적 풍조가 사그라지고 있다는 것을-정말 사그라지고 있는 거겠 지-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나, 한편 한 사람의 글쟁이로서는 책이 안 읽히게 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섭섭한 반면 또 우리(란 출판에 관계된 여러 사람들을 말합니다)가 우리 자신의 의식과 체질을 전환시켜, 그 새로운 지평으로 부터 새로운 종류의 우수한 독자들을 포획하는 일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언제 까지 한탄만 하고 있어서야 묘책이 안 생기는 법이니까. 술에 관하여(1)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은 편이다. 집에서도 홀로 레코드를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맥주나 위스키, 포도주를 찔끔찔끔 마시고, 밖에 나가서도 훌쩍 바 같은 델 들어가서는 두세 잔 마시고 돌아온다. 물론 나는 자폐증 환자가 아 니니까-요전에 삼 년만에 업계의 파티에 나갔더니 묘 여성 작가가 '아니, 무라카 미 씨도 파티에 나오네. 자폐증이 아니잖아'하면서 놀라던데-사람들과 어울려 즐 겁게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 그러나 횟수로 치자면 혼자서 마시는 쪽이 압도적 으로 많다. 애당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탓이다. 거듭 되풀이하지만 나는 결코 자폐증이 아니다. 내가 자폐증이라면, 무 라카미 류는 자개증이다. 더구나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해도, 필립 말로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처럼 단정하게 앉아 조용히 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멍청하게 마신다. 조 용히 혼자서 마시는 것과 멍청하게 혼자서 마시는 것은 겉보기에도 상당히 다르 다. 한신 타이거즈를 놓고 예기하자면 마유미와 오카다만큼이나 다르다. 아니꼽 게스리 그럴듯한 대사를 읊는 것도 아니고, 트렌치 코트의 깃도 세우지 못하고, 허공의 한 점을 뚫어져라고 노려보지도 않는다. 그저 멍하게 마실 뿐이다. 그러 니까 '저쪽에서 적적한 눈빛으로 혼자 마티니를 마시고 있는 분계 한 잔 더 갖 다 주시겠어요'하고 바텐더에게 은근하게 얘기해 주는 여성도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날 턱이 없지. 안 그래요). 어째서 이런 식으로 멍청하게 마시는가 하면, 우선 첫째로 나의 오른쪽 눈과 외쪽 눈의 시력 차가 몹시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바깥에 있을 때면 양 눈의 근육을 긴장시켜 양쪽에 비춰진 상을 인위적으로(물론 아주 자연스럽게이 지만)일치시킨다. 그러나 술집에 들어가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그 근육 을 풀어놓으니, 이른바 '오카다 현상'이 일어나 얼굴 전체가 멍청하게 되는 것이 다. 이런 현상은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마누라한테 늘 '당신은 나랑 둘이 있으면 왜 항상 그렇게 넋 빠진 얼굴을 하는 거죠'하고 욕을 얻어 먹는다. 하지 만 나라고 해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긴장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이전에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술집에서 일을 한데 있다. 바텐더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주간 아사히>의 독자 중 몇 명이 바텐더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하는 것은 내 상상력을 훨씬 넘어서 는 문제이다)카운터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는 손님이 있으면, 일하는 쪽으로 서는 꽤 신경이 쓰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많다. 상대는 손님이고, 타인 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 물론 그렇 겠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 하드보일드적 인상을 띠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으 면 좀 불안스럽다. 그런 때는 곧잘 잔을 깨뜨리기도 하고, 칵테일을 잘못 배합하 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손님으로서도 조용히 마시는 쪽 보다는 멍청하게 마시 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멍청하게 마시고 있는 사람은 바텐더에 게는 최상의 손님이다. 하기야 그런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되니까. 이런 깃으로 혼자 술을 마시는 버릇이 들고나면, 여자가 옆에 앉아 예기를 하 거나 술을 따르는 바 같은 델 들어가면 무척 암담하다. 눈도 일단은 긴장시키지 않으면 안되고, 화제거리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처음 대면하는 사암 앞에서는 도무지 입도 뻥긋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며칠 전 호텔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한 밤중인 열한 시에 맥주가 마시고 싶 어져 홀연 거리로 나갔다. 호텔 바에서 마셔도 상관은 없었지만, 불현듯 거리의 불빛이 그리워졌던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눈에 띤 스넥 바임직한 곳엘 들어 가 맥주를 주문했더니, 검은 양복을 입은 형씨가 얌전하게 맥주를 날라 왔다. '음, 이서 잘못 들어왔나'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그 뒤로 짧은 드레스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여자가 다가와 내 옆에 앉더니 '안녕하세요. 혼자 예요?'하는 것 아닌가. 이런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일로 인한 긴장을 풀기 위해서, 혼자서 맥주를 두세 병 마시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런 때 그 방면 의 명인이자 달인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라도 있다면 슬쩍 어루만져 주고는 도망 칠 수 있지만, 혼자서는 그러기도 어렵다. 얘기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술집에서 여자랑 얘기를 하면 가장 난처한 것은 상대방이 직업이 뭐냐고 물을 때이다. 상대편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별로 얘기할 거리가 없을 개 뻔하다. 따라서 날씨 얘기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직업이 화제에 오른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일을 끝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있는데 , 나로서는 술을 마시면서 일 얘기 따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음-그러니까, 그 뭐랄까 자유업 비슷한 것인데...'하 고 얼버무리고 있으면, 화제가 곧장 동이 나고 만다. 야구 얘기를 하는 일도 있 지만, 술자리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 얘기를 해 본들 분위기가 암울하게 될 뿐 이다. 그럭저럭 별 대단한 얘기를 한 것도 없이, 맥주를 세 병 마시고 바를 나왔다. 나도 피곤했지만, 상대방 여자도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참 안됐다고 생각한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뜨게질 바'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여자가 모두들 잠자코 뜨게질을 하고 있는, 그 옆에 손님이 앉아 차분하게 술을 마시는 그런 형식의 바 말입니다. "뭐 뜨고 있는데?" "음...장갑."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조바심 태우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술에 관하여(2) 옛날,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 당시 <태양>의 편집 장이었던 아라시야마 코자부로 씨에게서 '아, 무라카미 군 자네는 줄곧 맥주만 마시는 모양인데, 그건 아직 젊기 때문이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맥주에서 다른 술로 기호가 바뀌게 되는 법일세, 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 그렇습니까?'하고 그때는 반신반의했는데, 과연 그로부터 육년 남짓 지난 요즘 유심히 생각해 보니, 전체 주량중에서 맥주가 점하는 비율이 조금씩 감소 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시는 맥주의 양 자체에는 변함이 없는데, 거기에 다 더하기 위스키나 포도주를 마시는 양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젊었을 시절에 는 그렇게 술을 마시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데 본디 위가 튼튼한 터라 나이를 먹음에 따라 보통 아니 보통을 약간 끝내고 술잔을 기울일때의 기분이란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소확행(작기는 하지만 확고한 행복)중의 하나이다. 외국 속담 에 '인생에 있어서 행복은 세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먹기 전의 한 잔과, 먹은 후의 한 대이다'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나이를 먹어서 주량이 늘었다고 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나와 동세대인 사람들 대부분은 내장에 무슨 고장이 생겨 ' 아니, 나 그렇게 못 마셔'하면서 두세 잔으로 끝내고 만다. 특히 ㅈ었을 때 주량이 많 았던 사람들 중에 이런 예가 많다. 정열적인 투수가 어깨를 못 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지나치게 마셔 댄 탓에 내장이 피폐하고 만 것이다. 아울 러 회사에 다니는 인산은 삼십대 후반에 접어들면 관리직에 올라 있게 되므로 많든 적든 스트레스도 쌓이고, 처자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해서 비교적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인생, 마시고 싶은 만큼 실컷 술을 마실 수 있을 때가 꽃이 다. 시부야의 역 앞 같은 데서 단숨에 마셔 치우기를 한 후 시끌법석 소란을 피우 는 학생들을 보면, 앞으로 십오 년만 지나면 이 사람들 중 반 정도는 주머니에 다 위장약을 숨겨 두고 술을 마시겠지 하고 상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의 환성중에서도 제행무상의 울림을 들을 수 있어 제법 정취가 있다. 하기야 나도 학생 시절에는 매일처럼 근처 선술집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 셔대던 시기가 있었다. 대개는 싸구려 정종으로, 그걸 꿀꺽꿀꺽 마셔대니까 당연 히 뒤끝이 안 좋다. 누군가가 취해 나동그라지면 대학 구내에서 '미제타도'라고 씌어 있는 플랭카드를 뜯어 와 그것을 들것삼아 하숙집까지 운반한다. 플랭카드 도 그럴 땐 제법 쓸모가 있다. 딱 한번 운반되던 도중에 플랭카드가 찢어지면서 친잔소의 옆 계단에다 신나게 등을 부딪힌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소동도 한 넉 달쯤 가다가 끝이 나고, 그 이후로는 모두와 왁왁거리며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어지고 말았 다. 요컨데 사람 사귐새가 나빠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그 튼튼한 위에 한층 더 광을 내 가면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고, 술 을 마셨다고 뒤끝이 안 좋은 법도 없고 가슴 언저리가 쓰리고 아픈 일도 없다. 실제로 볼 수 없어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내 위는 제법 좋은 색깔에, 돌고래처럼 매끌매끌 씽씽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바다에다 풀어놓으면 어딘가로 헤엄쳐 가 버릴 듯한 기분마저 든다. 다시 돌아와서 술 얘기. 나는 지금은 정종이란 것 거의 안 마시는데, 그것은 학 생 시절에 정종으로 줄곧 곤욕을 치뤘던 후유증이다. 그 책임은 백 퍼센트 내 쪽에 있지 정종 쪽에는 없다. 만약 정종을 안 마신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한 다면 나는 자기 변호를 일절 포기하고, 그 죄값을 달게 받을 생각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맥주의 나라에 가면 나는 분명 VIP급의 빈객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개인적인 소비량만 해도 상당하고, 소설속에서도 꽤 난 맥주 지지론을 펴며 광고를 해 왔다. 나의 소설을 다 읽자마자 곧장 술가게로 달려가 맥주를 사 왔다고 하는 사람도 몇 명이나 알고 있다. 소설의 질이야 어찌 됐든 적어도 어떤 종류의 효용은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포도주도 꽤 마시게 되었고, 지금도 부동액 소동은 나 몰라라 하고 어김없이 마시고 있다. 원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몇 번인가 꼬임에 빠져 야마나시현의 양조장에 다니는 사이에 홀딱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가 마시는 포도주는 그리 속물적인 것은 아니고, 제일 싼 캘리포 니아 와인을 사 와서는 페리에를 섞고 거기에다 레몬즙을 짜 넣어, 주스 대신으 로 꿀꺽꿀꺽 마시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또 꽤 맛있다. 리차드 브로 티간을 알콜 중독자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가로의 푸어보이 보틀(손잡이가 붙어 있는 대형)같은 건 그냥 보기에도 거칠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적포도주가 최고이지만, 이건 한 병에 이만 엔 이상이나 하니까 그렇게 자주는 마실 수 없 다. 위스키는 비교적 비싼 것을 좋아하여, 외국으로 나갈 깨마다 면세점에서 시버 스 리갈과 와일드 터키를 사 가지고 와, 주로 언더록으로 마신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빈 병, 빈 깡통을 회수하는 날이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다. 그날 한 달에 걸쳐 마신 포도주병이며, 위스키 병이며, 보드카 병 이며, 맥주 캔을 지정된 장소에다 내다 놓아야 하는데, 이게 무시 못할 양이다. 양손에다 주머니를 들고 두 번쯤 왕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마다 얼렁뚱땅 내버리지는 않는지 체크하는 동네 아줌마가 '무라카미 씨, 알고 보니 술꾼이로군요'하며 어이없어 한다. 애달 애달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꽤 고 통스러운 일이다. 최근 어찌된 판인지 정종이 몹시 좋아져, 대낮부터 메밀국수집에 들어 앉아 쫄쫄거리며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미즈마루씨에 의하면 '무라카미 군, 그건 인 간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이야'라는데, 정말일까? 정치의 계절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투표라는 걸 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어째서냐고 물으 면 한 마디로 뭐라고 잘 대답할 수 없어 '글쎄요 왜일까요?'하고 얼버무리고 마 는데, 좌우지간 투표는 안 한다. '그런 행위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이 아닌가'라고 누가 말한다면, '아마 그렇겠지'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투표 는 안 한다. 정치적 관심이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표는 안 한 다. 들은 얘기에 의하면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는 선거에 투표를 하는 일이 국민의 의무로서 법률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없이 투표권을 포기하면 , 그 밖의 여러 가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야 그런 일은 없으니까, 투표를 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가 있다. 어느 쪽이 제도로서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가 분분할테지 만, 나 개인으로서는 일본의 방식이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 투표하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투표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람은 각양각색이다. 내 주위에도 투표 따위 안 한다는 사람이 꽤 있다. 어째서 선거 때 투표를 하 지 않는가에 대한 그들(나를 포함하여)의 이유는 거의가 대동소이하다. 그 첫째 는 선택의 질이 너무나도 허황되다는 것, 둘 째는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선거의 내용 그 자체가 무척 수상쩍은데다, 신뢰감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세대는 예의 '가두 시위'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많고, 시종 '선거 따위 기만이다'라 는 선동에 젖어 있었으므로, 나이를 먹어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어도 그렇게 순순히 투표소에 가거나 하질 않는다. 정당의 종적 관계와는 무관하게 한결같은 신념으로 지내 왔다는 생각도 있다. 무얼 했는데 하고 물어도 뭘 했는지 거의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 선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무언가 명확한 쟁점이 있고, 오늘날의 정당들이 지니고 있는 도식적인 종적 조직이 없어진다면, 우리도 투표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경 우는 없었다. 기권이 많은 것은 민주주의가 쇠퇴된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그런 경우를 제공할 수 없었던 사회 시스템 그 자체 속에 민주주의 쇠퇴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표면상의 원칙론으로 기권 자에게만 책임을 몰아부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마이너스 4와 마이너스 3중 그 어느쪽을 고르기 위하여 투표소까지 가라고 한들, 안 가요, 그런곳엔. 치바에 살고 있을 때, 지방 선거가 있었다. 내가 앞뜰에서 고양이랑 놀고 있으 려니, 동네의 우두머리격인 아줌마가 밭에서 갓 뽑은 시금치를 들고 와서는 '저 말이죠, 이 부근 사람들은 모두 누구 누구 씨한테 투표하기로 정했어요'란다. 무슨 소린지 잘 알 수 없어 '네, 그렇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아줌마는 '누구 누 구 씨한테 표를 던지면 도로 정비라든가 하수구 청소같은 걸 잘해 준데요'라며 시금치를 두고 돌아갔다. 내가 그것이 투표 의뢰임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 때는 과연 치바로구나 하고 감탄스러웠다. 나는 여러 동네에 살 아 봤지만, 시금치를 미끼로 투표 의뢰를 받다니, 치바 말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시금치는 맛있게 먹고, 투표하러는 가지 않았다. 나야 빠짐없이 세금도 물 고 있으니까 하수구 청소쯤 해 주는 건 마땅한 일이다. 경험으로 봐서도 그 누 구 누구 씨한테 투표를 하기 보다는 매일 구청에다 전화를 걸어 직접 불편을 호 소하는 편이 하수구 청소도 빨리 해 주고, 지당한 절차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투표하러 가기가 더욱 더 싫어진다. 치바에 사는 것 자체는 상당히 즐거 웠지만. 그러나 내가 이대로 투표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일생을 마칠 수 있을까 하면,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한 나의 직감에 불과하 지만, 금세기 중에 반드시 중대한 정치의 계절이 다시 한번 돌아오지 않을까 하 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싫어도 스스로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가치 체계들이 철저하게 전복되어, '무엇이든 적당하게' 처리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나 역시, 저 영화 <빅 웬즈데 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투표용지를 손에 들고 투표소로 행하게 될지 모르겠다. 뭐 이건 그냥 단순한 예측이고, 내가 하는 예측의 대부분은 빗나가니까 대단 한 얘기는 못되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 머지 않은 장래에 벌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점은 미국의 1920년대와 그에 뒤따르는 대공황에 관한 역사책을 읽고 있으면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미증유의 번영과 화려하고 향락적인 문화를 구가하고 있었던 1920년대의 미국은 단 하루 만에 와해되고, 그후로는 어둡고 무거운 나날과 전쟁이 찾아온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시대와 사회를 겹쳐 놓고 견주어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억 지스런 일이지만, 그 경제적 번영의 얄팍함과 흥청망청거리는 사회 양상, 그리고 세계적인 부의 편재 상황을 보더라도, 1920년대의 미국과 우리 시대 사이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하여 만약 저 대공황에 필적하는 붕괴가 도래했다고 하면, 당시의 미국과 별다를 바 없이 현재의 방만 한 분화 주변에 기생하며 생식하고 있는 인사들 대부분은-혹 나도 그 중 한 사 람일지 모르겠지만-흔적도 없이 어딘가로 흩어져 버리고 말 것이 환히 내다보인 다. 내가 이런 말을 해 본들 별 설득력도 없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이제 슬슬 그러한 가치 붕괴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재확인해야 할 시기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기증 나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정말 옴싹달싹 못한다. '여기서 떨어졌다가는 영락없이 죽겠지'싶은 장소에 가면 허리께가 찡한 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런 나에 비하면 우리 마누라는 높은 곳을 밥보다 좋아하여 함께 여행을 떠 나기라도 하면, 반드시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깡총깡총 뛰기도 하고 외발로 서 있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런 무신경함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단순한 놀림 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곳이면 어디를 막론하고 무서운가 하면 그런 건 아니고, 산이라 든가 절벽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높은 곳은 비슷한 높이라도 빌딩이나 탑 등의 위에 서는 것에 비해 그렇게-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무섭지 않다. 가장 겁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높은 곳이다. 내 책의 표지 그림을 그려 주고 있는 사사비 마키씨의 댁도 고층 아파트의 9 층인가 19층에 있는데, 나는 거기에 가기가 겁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면 허공으로 뻥 뚫려 있는 바깥 계단을 통해 한 층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기 때문이 다. 안쪽 벽에다 손을 대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늘 담당 여 성 편집자가 '무라카미 씨, 뭐하고 계세요?'하고는 흰 눈을 뜨고 흘깃거린다. 곁 에서 보고 있으면 과연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어찌 됐든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공포의 성질을 설명하기란 지난한 일일 것이 다. 나도 때로는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그런 류의 비디오를 보 여 주며, '저것 봐, 전기 톱에 손목이 날아갔어'하고 놀려대니까 남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가장 겁났던 것은 빈의 성 슈테판 사원 위이다. 그 당시에 나는 전 혀 그런 곳에 올러걸 엄두도 안 내고 있었는데, 마누라가 '어때요, 안 무서워요. 올라가 봐요. 인간이라면 일보 일보 진보를 해야지요'라며 끈질기게 설득을 하는 바람에 '그런 어디'하고 얼떨결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말았다. 퀘른의 대성당을 오를 때는 계단이었기에 도중에 겁이 났어도 되돌아올 수 있었지만, 엘리베이터 니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니 그곳은 바람이 휭휭 불어대 는 깍아지른 듯한 지붕 위였다. 더구나 한번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그 다음 손님 이 정원을 채울 때까지는 올라오지 않는다. 물론 지붕을 따라 철조망으로 된 울 타리가 쳐져있긴 했지만, 그런 울타리 따위 나로서는 도저히 신뢰할 수도 없고, 얼어붙을 듯한 겨울 바람을 쌩쌩 불어대지, 도무지 살아있다는 기분이 안 들었 다. 그렇게 무서워해야 할 정도라면 인간, 진보 같은 거 안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공포심도 재산의 하나이다. 공포를 느끼지 않으니까 위대하다든가 느끼니까 형편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단면적인 단정을 내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다. 그건 그렇다치고,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에는 제법 겁나는 곳이 많다. 특히 대 성당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예각으로 치솟아 있어 실제로 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어중간한 고층 빌딩의 옥상보다 훨씬 박력이 있고, 공포의 질도 높다. 비교 문화 론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 슈테판 사원의 지붕 위에서 느끼는 고소 공 포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느끼는 고소 공포와는 질적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내게 는 느껴진다. 고소 공포증을 모르는 사람은 이런 미묘한 차이를 도저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시간만 있다면 세계의 고소를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면서 '고소 공 포의 시점에서 본 고소 문화론'같은 것을 써 보고 싶을 정도이다. 이런 건 단언 컨데 고소 공포증 환자가 아니면 쓸 수 없다. 때로는 세상에는 왜 고소 공포증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일 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 도 유아기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없고, 그렇다고 고소 공 포증이 유전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혹은 프로이트의 '억압된 심적 트러블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지론에 심증이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 부터, 어떤 식으로 고소 공포증이라는 병에 휘말리고 말았단 말인가? 이렇게 되면 이제 '동포의 선택이란 무작위하게 이루어진다'라고 생각할 수 밖 에 없다. 즉 인간에게는 소위 정신의 보호막으로써 하나나 둘쯤은 공포가 필요 하기 마련이라. 결국 그 대상이 무엇이 됐든 상관없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된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우연찮게 고소 공포증인 셈이다. 개중에는 폐소공포를 선택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첨단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암흑 공포를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운 나쁘게도 그 모든 공포를 다 선택하고 만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레이더스>에 나오는 저 공포를 모르는 무적의 인 디애나 존스 씨만 해도 뱀만큼은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요컨대 공 포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인이고, 그것이 해석하기 어 려운 것일수록 그 유효성은 클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저 우주의 거대한 암흑 속에 동그마니 떠 있는 바위 덩어리에 매달리듯 달 라붙어서 불안정한 생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는 상황쪽이 내게는 더 없는 공포이다. 식자공 비화 이 연재를 시작한 지도 벌써 팔 개월째다. '미감 일이 있는 인생은 빨리 흐른 다'는 어느 미국 저널리스트의 말이 있는데, 정말 말씀 그대로이다. 아는 척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영어로는 마감 날짜를 '데드 라인'이라고 한다. 데드 라인 이라는 말에는 이 뜻 외에도 '사선, 죄수가 이 선을 넘으면 총살당한다'라는 의 미가 있어, 이것은 일본어의 '마감'보다 훨씬 어감이 절실하다. 끔찍하다. 단 마감이란 작가 쪽뿐만 아니라, 상대편 편집자에게도 말 그대로 데드 라인 이라서, 편집자와 얘기를 하다 보면 이 마감 날 얘기가 곧잘 화제에 오른다. (1)마감 날짜에 늦는다 (2)악필이다. (3)건방지다, 이 세 가지는 편집자를 울리 는 삼 대 요소라 해도 무방하리라. 나는 (3)에 대해서는 제법 기억거리가 있는데 (1)과 (2)에 대해서는 대체로 결백하다. 마감 날짜는 대개 정확하게 지키고, 글씨 는 특출나게 읽기 쉽다. 따라서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작가는 악필인 작가에 대한 불평같은 것은 남의 일이니까 웃으며 흘려들을 수 있고, '응, 그건 좀 심한데'하면서 적당히 편집자를 동정하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지필 또는 악필이란 것은 재능이나 인격과는(아마도)무관한 성향 내지는 경향이니까 소문으로써도 비교적 칼칼하고 밝다. 편집자의 얘기에 의하면 거물급 작가가 되면, 그 중에는 마감 날짜 사나흘 전 에 전화를 걸어 '아, 자네 이번 호 연재는 좀 쉬어야겠어!'하는 말만 하고는 뚝 전화를 끊어 버리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잡지사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우습다고 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혹 나 같은 작가가 그런 짓을 했다가는 즉각 어디 벌판으로 질질 끌려나가 총살을 당 하고 말 것이다. 오 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지금 한 말은 거짓말입니다. 원 고,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으니까'라고 말한들 두 번 다시 일거리가 돌아오지 않 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아도 편집자가 작가의 집에서 밤을 지새웠다든가, 원 고를 받아 쥐고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데드 라인 한 시간 전에 겨우 인쇄소 에 던져 넣었다는 류의 얘기는 종종 듣는다. 'XX씨한테는 이제 두 손 두 발 들 었다니까'하고 편집자는 투덜거리지만, 내가 듣기에는 편집자 쪽도 제법 그런 데 드 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이 글로 만약 저자의 모든 작가들이 정확하게 마감 사흘 전에 원고를 완성시키게 된다면 -그런 일은 혹성이 직렬로 나란히 늘어선 데다 헬레 혜성까지 겹치는 정도의 확 률로 밖에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만-편집자 나으리들께선 필시 어디 바 같은 데 옹기종기 모여서 '요즘 작가들은 기개가 없다니까. 옛날이 좋았지'하며 또 투덜투덜거릴 것이다. 이 얘기는 목을 걸어도 좋을 만큼 명백한 일이다. 작가 중에도 그런 사고 방식을 갖고 잇는 사람이 꽤 많아. 내가 막 첫 소설을 써 냈을 무렵, 이삼 일 후로 다가온 마감 날짜를 걱정하고 있으려니 '어이, 이봐. 원고란 건 말이야, 마감날이 되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하는 거라구'하면 충고를 해 주기도 하였다. 한편 편집부란 반드시 몇 일쯤은 날짜를 앞당겨 마감 일을 정하는 게 보통이라 그 사람의 일설에도 일리는 있지만, 나는 성격상 도저히 그 렇게는 못한다. 마감 사흘 전쯤까지는 원고를 완성하여, 원고 용지의 모서리를 톡톡 두드려 가지런하게 맞추어서는 책상위에다 쌓아 두지 않는 한 웬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쿨 오프 효과라는 것도 있다. 다 쓰자마자 곧장 원고를 넘기면 나중에 서야 '아휴, 그런 글 안 쓰는 게 좋았을텐데'라든가, 거꾸로 '하참, 이렇게 썼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하는 일이 가끔씩 있는데, 사흘 쯤 시간 여유가 있으면 그런 위험을 피할 수도 있다. 어지간한 베테랑이 아닌 이상 글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 지도 않게 빗나가고 마는 그런 것이다. 단 사흘의 여유를 둠으로 타인에게 무의 미한 폐를 끼치거나,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내 쪽이 쓸데없는 창피를 당하는 일 을 피할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간단한 일이다. 그 다음, 마감 신간에 아슬아슬하도록 원고가 늦으면 인쇄소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일도 있다. 나는 고등 학교 시절에 신문을 만드느라 줄곧 인쇄소를 들락날락했기 때문에 잘 아는데, 인쇄소 아저씨들은 누군가의 원고가 뒤늦게 도 착하곤 하면 철야를 해 가면 활자를 뽑아 내야만 한다. 참 안됐다. 그런 식자공 집에서는 부인이 식탁에 저녁 식사를 차려 놓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 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행여 국민 학생짜리 아들이 '아빠 되게 안 돌아오시네'리고 말하기라도 하면, 엄마는 '아빤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원고가 늦어져서 야근을 하시 게 됐데. 그래서 집에 못 돌아오시는 거야'라고 설명한다. "흥,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 나쁜 사람이야." "그래 마장. 틀림없이 별볼일도 없는 어중간한 소설을 써서는 세상을 속여먹고 있을 거야." "엄마, 난 말이지 어른이 되면 그런 나쁜 자식들 때려 줄거야." "얘는 원." 이런 대화를 상상하고 있으면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곧바 로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어쩌면 상상력(이랄까, 망상력이겠죠, 이런 건)이 지나 치게 발달한 건지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나는 틀림없는 (3)의 건방진 인간일지는 모르겠으나, 식자공의 처자들한테까지 미움을 받는 가능성만큼은 일단 배제시켜 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독서용 비행기 몇 회쯤인가 앞 컬럼에다 최근에는 책을 별로 안 읽는다는 글을 막 쓴 터에 이런 얘기를 쓰는 건 아무래도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데, 요 한 달 사이에 제 법 책을 많이 읽었다. 일상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이와 비슷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담배를 끊은 지 이 년, 몸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라고 쓴 순간 다시금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거나, '넥타이를 매는 경우는 일년에 두세 번밖에 없다' 라고 쓴 직후에 연달아 세 번이나 넥타이를 매게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거나, 이 런 등등이다. 무책임하다고 하면 무책임한 일이겠지만, 뭐 세상이란 다 그런거 다. 어째서 갑작스레 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가 하면 , 요 한 달 사이에 전철이니 비행기를 탈 기회가 비교적 많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동이 빈번해지면 나는 책을 잘 읽는다. 우선 남반구 순환 비행기로 동경→아테네 사이를 왕복하였는데(편도20시간), 그 동안 책을 세 권 읽었다. 존 어빙(미국의 작가)의 〈Water methor Man〉과 닥터로()의 〈다니엘서〉와 존 고어스의〈하메트〉이다. 남반구 순환 유럽행 비행기를 타면 몸도 마음도 밥 주머니도 다 너덜너덜하도록 지치지만, 적어도 책만큼은 잘 읽힌다. 〈Water methor Man〉은 삼 년인가 사 년 전에 읽었을 때는 도무지 감이 안 잡혔더랬는데, 이번에 새로이 읽어 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재밌다.〈카프 의 세계〉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풍속 소설을 자잘하게 토막내 놓은듯 특 유의 와일드한 재미가 있어 제법 심취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준적인 기 준으로 하나면, 두 번째로 읽었을 대가 첫 번째보다 재미있는 작품은 좋은 소설 이다. 하기야 두 번이나 읽고 싶은 기분이 드는 소설은 그다지 없으니까, 다시 한번 읽어 봐야지 하는 기분이 드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닥토로의 〈다니엘서〉도〈Water methor Man〉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소설이다. 따라서 익숙해지지 않은 동안에는 포인트를 잡 기가 까다롭지만, 한번 포인트를 잡고나면 몸이 소설의 시간성에 자연스레 감응 하여 술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읽은 맛이 나는 소설이다. 고어즈의 〈하메트〉는 그럴 법하다는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어 재미는 있었 지만, 실재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놓은 만큼, 짜임새가 훤히 들여다보이 는 경향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독서벽이 붙어 버렸는지 귀국을 하고서도 일 사이사이 시간만 생기면 핀천의 〈경매 넘버 49의 외침〉을 읽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영어로 읽 어 보려고 시도하다 좌절한 소설인지라, 번역본이 나와 준 것은 내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물론 핀천의 소설이니까 술술 읽히는데다, 재미도 있고……하는 식 으로 수월치는 않지만, 이 정도로 우스꽝스런 소설도 흔치 않을테니, 관심 있는 분께선 꼭 읽어보세요. 그 다음으로 존 어빙의 신작(여전히 무턱대고 긴 소설)〈THE CIDERHOUSERULES〉의 후반부를 완독.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도저히 한마 디로 요약할 수 없으므로 통과. 그리고는 스파게티 소설을 세 권. 크럼리()의 〈댄싱 베어〉 와 리차드 콘든의 〈여자와 남자의 명예〉(제목의 뜻은 불명)와 마이클·Z·류 인의 〈침묵의 세일즈맨〉이다. 스파게티 소설이란 내가 만든 조어로, 스파게티 를 삶으면서 읽기에 적합한 소설이라는 의미다. 물론 펴 폄하하여 그렇게 부르 는 것은 아니고, 스파게티를 삶으면서도 무심결에 손에 들고 마는 소설이란 뜻 으로 해석해 주면 좋겠다. 세 권 중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명예〉가 좀 얼빠진 듯한 맛이 있어 가장 재미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다음으로는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아 류탄지 유(이바라기현 태생, 소설가. 1928년, 소화 초기의 모더니즘 문학의 물결을 타고 등장. 또 선인장 연구가로도 유명하다.) 전집을 세 권쯤 읽었다. 나는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으므로 류탄지 유라고 하는 사람이 문학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는 잘 모르지만, 전체적으 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몇몇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모리타 요시미츠(동경 태생, 영화 감독)의 〈그로부터〉(나쯔메 소세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 1995년 개봉)를 본 이후, 전전의 일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모 두들 마츠다 유사쿠(야마구치현 태생. 배우. <그로부터>에서는 메이지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미의식을 주장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지식인이자 주인공인 다이스케 역을 맡았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다. 영화 는 무척 재미있었데. 또 한 권, 저자인 스즈무라 카즈나리(아이치현 태생. 시인)씨가 보내주신〈아 직 / 이미·무라카미 하루키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책도 읽었는데, 이 책은 제목을 봐서도 알 수 있듯 나에 관한 평론을 엮은 책이므로 감상은 쓰지 않겠다. 자신에 대해 씌어진 글을 읽는다는 것은 웬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 일이다. 아마도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세계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가 끔 독자와 만나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누군가를 대신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마지 않는 것이다. 한편 우리 마누라는 그 사이에 책을 세 권 읽었다. 앨리스 워커(1944 - , 미국 의 작가 )의 〈컬러 퍼플〉과 헨리에트·폴·씨라 하슈미트(참 긴 이름이다)의 〈히틀러를 둘러싼 여인들〉과 키티 하트()의 〈아우슈비츠의 소녀〉이다. 그녀가 대체 어떤 취향과 목적으로 책을 선택하는지 나는 아직껏 잘 모른다. 한마디로 부부라 해도, 그 사이에 가로 놓여져 있는 물길을 깊고도 어두운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내가 읽는 책의 영역과 마누라가 읽는 책의 영역은 거의 겹 치는 일이 없으므로(고작해야 랩 크래프트 정도가 양쪽 영역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서로가 제멋대로 책을 사들여 우리 집의 책은 늘어나기만 한다.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어떻게 안 되리라. 굿 하우스 키핑 결혼하고 이 년째쯤 되던 해의 일인데, 나는 한 반 년 정도 '주부'역할을 했더 랬다. 그때는 이렇다 할 느낌도 없이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지금에 와 서 돌이켜보니 그 반 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시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긴 그 당시엔 딱히 '주부'가 되고자 소망한 것도 아니고, 우연찮은 사소한 인연으로 마누라는 일을 하러 밖으러 나가고, 내가 집에 남아 있게 되었을 뿐이 다. 이럭저럭 벌써 십이삼 년전, 존레논이 '주부'가 된 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전의 일이다. '주부'의 일상은 '주부'의 일상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하다. 우선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마누라를 일터로 보내고 뒷정리를 한다. 싱크대 속에 있는 그릇들을 재빨리 씻어 놓는 것은 물론 가사의 철칙 중 하나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이들 같으면 신문을 읽든가 텔레비전을 보 든가 라디오를 듣든가 할테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는 무형 문화재처럼 궁핍해서, 라디오도 못 사고, 텔레비젼도 못 사고, 신문 을 구독할 돈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집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돈이 없 으면 생활이란 놀랄 만큼 심플해 진다. 세상에는 '심플 라이프'란 브랜드가 있는 데, '심플 라이프'에 관해서라면 내 편이 훨씬 더 경험이 풍부할 것이다. 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빨래를 한다. 새삼 밝힐 것도 없지만 세탁기도 없으니 까 목욕탕에서 발로 꾹꾹 밟아 빠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시간은 꽤 걸리지만, 제 법 상당한 운동이 된다. 그리고 넌다. 빨래가 끝나면 시장을 보러 간다. 시장을 본다고는 하지만 냉장고가 없으니까 (참 너무 가난하다) 필요 이상은 살 수 없다. 그날 꼭 쓸 것만을 여분이 생기지 않도록 사는 것이다. 그런 형편이니 저녁 반찬이 무우 된장국에 무우 조림, 무우 즙에 섞은 잔멸치란 상황도 심심치 않은 빈도로 발생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생 활을 '심플 라이프'라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어떤 표현이 가능하랴? 시장을 보는 길에 '고쿠 분지 서점'에 들러 새 책을 사기도, 싸구려 헌 책을 사기도 한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림질을 하고, 대충 청소를 하고(나는 청소에는 서툰 터라 그다지 꼼꼼하게 하지 않는다), 저녁 때까 지 지낸다. 무엇보다 한가하니까, 나는 이 시기에 <강담사, 소년 소녀 세계 명작 전집>을 독파했고, <싸락눔>같은 소설을 세번이나 읽었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면 슬슬 저녁 준비를 한다.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된장국 을 끓이고, 조림을 만들고, 생선을 구울 준비까지 해 놓고서는 마누라가 돌아오 기를 기다린다. 마누라가 돌아오는 것은 대개 일곱 시가 안되어서인데, 이따금 야근을 하느라 늦어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지금 또다시 것도 없지만-우리 집에 는 전화가 없으므로, 연락을 취할 길이 없다. 그런고로 나는 생선을 석쇠 위에다 올려 놓은 채, 마누라가 돌아오기를, "..." 하는 식으로 지긋이 기다리는 것이다. 이, "..." 은, 일상 속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이해하기 힘드리라 여겨지는데, 매우 미묘한 감흥이다. '오늘은 좀 늦어질 모양인데, 먼저 먹어 버릴까'하는 생각도 들다가. '그래도 지금까지 애써 기다렸으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지'하고도 생각하고, 그건 그렇고 배가 고픈 걸'하고 주억거리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의 집약이. "..." 하는 침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 미안해요. 저녁 먹고 왔어요'란 소리 를 들으면 역시 화가 난다. 그리고 이건 기묘하다고 하면 기묘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렇게 기묘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음식을 식탁에 늘어놓는 순서가 되면 으레껏, 뜻대로 안되었거나 모양이 일그러진 부분을 내 접시에 얹어 놓고 만다. 생선 같으면 몸통을 반으로 나누어, 머리 쪽은 마누라에게 주고, 나는 꼬리 쪽을 먹는다. 이것은 딱히 내가 주부가 된 자신을 비하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하 게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하고 싶은 요리사의 습성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주부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속성 중 많은 것이 반드시 '여성적'이란 것과 동의어는 아닌듯이 생각된다. 즉 여자가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레 주부적인 속성을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히 '주부'라고 하는 역할에서 빚어지는 경향 내지는 성향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가 주부의 역할을 맡으면 당연히 많든 적든간에 어 느 정도는 '주부적'으로 되어 갈 것이다.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일생동안 최소한 반 년이나 일 년쯤 '주부'구실을 해 봐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단 기간 이나마 주부적인 경향을 습득하여, 주부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통념의 대부분이 얼마나 불확실한 기반위에 성립되어 있는가를 잘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유유자적하게 주부생활을 마음껏 누려 보고 싶은데, 아내가 도무지 일을 하러 나가주지 않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곤경에 처 해 있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군 이야기 며칠 전 야마구치 마사히로가 찾아와서는 '저, 하루키 씨. 제 펜 네임 하나 생 각해 주지 않겠습니까'란다. 갑작스레 '야마구치 마사히로'하는 이름을 대봤자 독자의 대부분은 그게 누구 인지 전혀 모르실테니까 일단 설명을 해 두겠다.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지금부터 십 년 전에 내가 경영하던 재즈 찻집에서 아르 바이트를 했던 사나이다. 당시에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거의 아 무런 도움도 안돼 골치 아프게 여기고 있었더니, 도중에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 다. 뭐 대충 그런 사나이인데, 광고 관계 제작 회사에 들어가 안자이 미즈마루 씨 같은 사람들이랑 책을 만들곤 하는 덕분에, 지금은 가끔씩 만나 술을 마시기 도 한다. 부인인 상당한 미인으로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야마 구치한테는 분에 넘쳐'라고 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야마구치 마사히로 집에 놀러갔다가 야마구치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부인에게 '저 말이죠, 저런 놈과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죠?'라고 물었 더니, '아니요. 야마구치씨와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해요'라는 것이다. 남 의 집일이니까 아무려면 어떠랴 싶기도 하지만, 사람은 참 취미도 다양하다. 그래서 또 야마구치가 다니는 회사의 여직원 몇 명을 붙들고서는 '저 야마구 치 바보지?'하고 질문하면, '아니요. 야마구치 씨는 회사에서는 굉장히 다부진데 다, 말수도 적어, 우린 그 사람 앞에 가면 긴장을 하는 정도'라는 대답이었다. '그 건 머리가 모자라니까 얼굴이 딱딱한 것일 뿐이야'라고 내가 말하면, '무라카미 씨, 야마구치 씨한테 지나친 편견 갖고 있는 거 아녜요'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말까지 듣고 보면 나로서도 '내가 혹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인간을 오 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고 불안스러워진다. 야마구치 본인도 '하루키 씨는 나 를 오해하고 있다니까요'라며 거리낌없이 큰소리를 쳐댄다. 그래서 얼마 전 시험 삼아 이사를 도와 달라고 했더니, 역시 전혀 쓸모가 없었다. 십 년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과연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물론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질 나쁜 사내는 아니다. 질 나쁜 사나이는 부인에게 총애를 받거나, 동료 여직원으로부터 비호를 받지 못한다. 설명이 몹시 길어졌는데, 그 야마구치가 우리 집에 와서 펜 네임을 하나 생각 해 달라고 한 것이다. "저 말이죠, 저, 일러스트레이터가 될까 하고 미즈마루 씨에게 그림을 들고 갔 거든요. 그랬더니 미즈마루 씨가 그림을 보고는, 어이 야마구치, 그만두는 게 좋 겠어 라는 거 아닙니까." "알만 하군." "질투는 아니겠지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그래서 말이죠. 히히히, 이번엔 저, 글을 써 볼까 생각해서요. 써 보라는 사람도 있고 말이죠." "좋잖아." "그래서 말이죠,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이름 가지고서야 어쩐지 신 좌익 같아 서 멋이 없으니까, 이 기회에 하루키 씨한테 펜 네임 하나 생각해 달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싸한 것 하나 지어 주시면, 캬바레 클럽으로 끝내주게 모 실테니까." 캬바레 클럽은 둘ㅉ치고라도 나는 타인의 펜 네임을 요모조모로 생각해 보기 를 비교적 좋아한다. "자네, 시모다에서 태어났지, 아마?" "네, 그렇죠. 시모다입니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는 어때?" "참내, 무슨 어선 이름 같잖습니까. 말이죠, 그런 거 말고, 예를 들면 시마다 마사히코(1961 - , 동경태생. 소설가이자 평론가. 1983년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희유곡>이 아쿠다가와상 후보에 오르면서 데뷔한 그는 이후 줄곧 가장 새로운 세대의 문학 기수로서 기존의 문학에 도전장을 보내고 있다.)라든가 사와키 코타 로(1947 -, 동경 태생. 넌픽션 작가.)라든가, 그런 멋드러진 이름 지어 주시지 않 겠어요?" "야마구치 이즈시치는 어때, 그럼?" "무슨 머리 나쁜 탐정 같은데요. 하루키 씨, 나한테 편견 갖고 있는 거 아닙니 까?" 이렇게 하여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팍 실망을 하고 돌아갔다. 캬바레 클럽 얘 기도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나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들어, 그 이후로는 내내 야마구치 마사히로를 '시모다마루'라고 막 부르고 있다. 그 탓인지 당사자 도 점점 그 '시모다마루'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름 덕분으로, 나도 야 마구치 마사히로 시대의 야마구치보다는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명명 후의 야마구 치 쪽에 훨씬 호감을 품고 있다. 사람들은 펜 네임이나 가게 이름을 붙일 때면 늘 세련되고 멋잇는 이름을 고 르는 듯하다. 그런 때면 나는 반대로 엉뚱한 이름을 고르니까, 내가 제안한 이름 은 항상 기각되고 만다. 요전에 아는 사람이 바를 신장 개업하는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대 사막'이란 이름을 제안했더니, 일언지하에 기각되었다. "글쎄 말이죠, '대 사막'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바에 누가 들어오겠어요?" "하지만 나라면 들어가겠는데.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은 하루키 씨 정도라구요." 이런 식으로 아오야마, 아자부 일대에는 멋진 이름을 붙인 바들이 넘쳐 흐른 다. 좀 집요한 듯하지만, 만약 '대 사막'이라는 재치있는 꾸밈새의 바가 있다면 나는 주저않고 들어갈 것이다. - 야마구치 마사히로 씨 얘기라면 <수필집1, 코끼리 공장의 해피 엔드> 190 쪽에도 있습니다. 바빌론 재출현 이런저런 사정으로 후지사와의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벌어져 다 시 동경으로 돌아왔다. 도심의 맨션에서 생활하게 된 지 넉 달 가량되었다. 어찌 된 셈인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집 근처여서 '그럼,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놀아 보자구'라고 미즈마루 씨는 꼬셔대지, <소설 현대>의 미야다 편집장은 '뭐, 여러 가지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후후후'하고 얘기하지, 참 여러 가지로 힘들다. 이 런 식으로 가다가는 적 달 남짓만에 인격이 바뀌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후지사 와에서 돌연 도심으로 돌아왔더니, 어쩐지 '마궁의 전설'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니 동경에 사는 게 그럭저럭 오 년만이다. 지난번에 동경에 살았을 때는 재즈 찻집을 하면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이란 두 소 설을 썼는데, 그로 인하여 심신이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러고는 치바로 이사를 하여 <양을 둘러싼 모험>이란 장편을 세 번째로 썼다. 그대로 마냥 동경에 눌 러 있다가는 차분히 좌정하고 앉아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게는 꽤 번창했고, 딱히 가게를 정리하지 않아도 그대로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기는 느긋하게 소설 쓰면 되잖아'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충고를 들었다. 그렇 지만 나는 이왕 하는 거라면 이 구석에서 저 구석까지 자신이 관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불편한 성격인지라, 결국 가게의 권리를 팔고 시골인 치바로 물러나 붓 한 자락으로 먹고 살 결심을 했다. 그러니까 동경을 떠남에 있어서 내게는 나 나름의 궂은 결의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이제 다시는 동경 같은 데 돌아오 지 않겠다'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이켜보면 동경에서 가게를 하면서 촌금을 아껴가며 소설을 쓰 던 시절도 나름으로 무척 즐거웠다. 아마도 크레이그 토마스(1942 -, 영국의 작가, )였다고 생각되는데 (<파이어 폭스>를 쓴 작가), 그가 어떤 소설의 후기에 '대부분의 처녀작은 한밤 중의 부엌 테이블 위에서 씌어진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요컨대 처음부터 전업 작가라는 것은 없으니까, 모두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사람들이 잠 든 후의 잠잠한 부엌 테이블에서 갈작갈작 소설을 쓰는 것이다. 물론 서재 같은 게 있으면 거기에서 쓰면 좋겠지만, 한 밤중에 고생스레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 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보통 그럴 만큼 생활의 여우가 없으므로, 할 수 없이 부 엌 테이블이 일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처음 두 소설 역시 '키친 테이블 소설'이다. 하루 종일 일하 고 가게문을 닫고서는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를 한두 병 마시고, 그러고 나서 아파트의 부엌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그런 소설을 지금 새삼스럽게 읽어 보면 소설의 짜임새가 꽤나 톡톡 끊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쓸 시간이 없으니까 이제 슬슬 소설 속으로 빠져들 만한 즈음에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뚝 끊어지고 마는 셈이다. 그 리하여 그 다음을 이튿날 쓰려고 하면 '응, 무슨 얘기를 썼더랬지'하는 식이 되 어 버린다. 그러니까 결국 그 두 작품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단편을 끌어 모아 놓은 듯한 꼴로 완성되고 말았다. 최초의 소설을 발표했을 때 일부로부터 '참신하다, 냉철하다'라는 호의적인 평을 받았는데, 이건 전적으로 생활 환경의 조화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두 작품은 도회지에서 생존하는 인 간의 시간성의 틈바구니로부터 쥐어짜 낸 소설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런 형식이나, 그런 작품에 웬지 좀 수긍이 안 가서 결심 을 하고 동경을 떠난 것이다. 그것이 오 년 전 일이다. 오랫만에 동경에 돌아와 보니, 동경의 시간성이 오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스 피디하고, 훨씬 더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동차도 많고, 빌딩의 숫자도 늘어났고, 지하철 노선도 증설되었고, 공기는 더러워졌고, 가는 곳마다 바니 레 스토랑이니 하는 곳들이 즐비하고, 서점에는 구경도 못해 본 새로운 잡지가 철 철 넘치고, 다케시다 거리는 정상적인 신경의 소유자는 끝까지 다 걷지도 못할 만큼 히스테리칼한 도로로 변모했다. 오 년 전에는 최첨단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죄 낡은 구닥다리처럼 보이고, 옛날에 곧잘 들락거리던 가게도 지금은 거의가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온갖 소리들로 시끄럽다. 이런 식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 부정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옛날 같으면 혹시 나의 마음을 매료했을 지도 모르겠다. 부엌 테이블에서 한밤중에 캔 맥주를 기울이며 소설을 쓰던 시 절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거로 흘러가 버렸으며, 두 번 다시 원 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며칠 전 한밤중에 근처를 산책하다가 신주쿠 방향을 바라보았더니, 그 거리의 상공만이 마치 붕이라도 난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네온싸인과 거리의 불빛이 구름에 반사되는 현상이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저 금빛 구 름 아래에서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3일의 불멸일(석가모니가 죽은 날. 즉 매사에 흉하다는 날.`) 옛날, 한때 점에 열중했던 적이 있다. 물론 열중했다고 해야 아마츄어의 장난 비슷한 것쯤이었지만, 그래도 밤중에 의식을 한군데로 집중시키고 있으면 가벼 운 트랜스 상태가 찾아와, 그런 때는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것들이 잘 맞았다. 가령 어느 여성에 관한 점을 치고 있으면, 그녀 애인의 나이라든가 고 향, 형제가 몇 명이나 있는지 등등의 사연들이 제법 시원스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하고 나면 데쳐 놓은 시금치처럼 폭삭 지쳐 버리고, 친구들을 상 대로 하는 것이라 사례금을 받을 수도 없으므로 어느 사이엔가 그만두고 말았 다. 이런 것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간주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양 분되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일종의 '감'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은 생각 하고 있다. 딱히 점을 치는 게 아니더라도 주의깊게 사람과 접하고 있으면, 상대 방의 몸짓이니 말투니 사소한 분위기니 하는 것들로부터 여러 가지 일들을 미루 어 추측할 수 있는 법이고, 트랜스 상태에 몰입할 수 있으면 그런 '감'은 훨씬 연마되어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트랜스 상태'라는 것은 어는 정도는 속임수일지도 모르겠는데, 긴 소설을 쓰 고 있노라면 이따금 머리가 휘하고 어디론가 날아가 그와 비슷한 상태로 되는 적이 있기는 하다. 소위 말하는 '라이팅 하이'인데, 이것 또한 특별한 초자연 현 상이 아니고 그냥 단순한 '감'의 확대이다. 그런 상태에 빠졌을 때 재떨이나 지 우개가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쓰는 글에도 좀 으시시한 기운이 감돌텐데, 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런 일은 한번도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점이란 것을 상대하지 않는다. 운수라든가 징크스 같은 미신 에도 흥미가 없다.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고, 원칙적으로 상대를 안 하기로 하고 있다. 이것은 나와 자동차의 관계와 흡사하다. 그 유효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런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예깁니다. 점이나 운수 같은 건 한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줄곧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 고, 무언가 한가지에 집착하면 그 영역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나는 성격상 그런 부담이 증폭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지라, 다소 운이 안 좋은 일이라도 하고자 한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건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에 관 한 문제가 아니라 사고 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결혼할 때 점장이한테 '이거 참 한심한 인연이로군요'라는 말 을 들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정말 한심한 인연 이라는 걸 깨닫게 된 셈이지만, '뭐 어때'하고 체념하고 십오 년 가까이 함께 산 다. 정말 한심한 인연은 의외로 효율적인 기능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나는 툭하면 이사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점에 열중인 지기로부터 '이번엔 그만두는 게 좋겠어. 방향이 지독하게 안 좋아'란 소리를 듣는다. 그 사 람의 점괘에 의하면, 아무래도 나는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방향에서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하는 특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야말로 이사를 했다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테니까. 아픈 사람도 생 기고, 일도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며, 부모가 죽는가 하면, 화재를 당할 수도 있 어. 나카소네 수상도 삼 선 될테니까(이건 거짓말). 두 달만 기다리라구. 두 달만 지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린다니까'라고 그 사람은 점친다. 그래도 나는 두 달은 커녕 단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이사해 버린다. 그런 일로 한번 양보했다가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 생겨, 두 달이 반 변이 되 고, 반 년이 일년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 한번 물리치지 못하면, 결국은 평생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아, 무슨 말이든 상관없어. 멋대로 지껄여 보시라구'하는 배짱으로 당당하게 밀고 나간다. 이런 저돌적인 자 세가 있는 한, 결코 운세 따위에 지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예의 그 지기도 포 기하고, 내 이사에는 일절 끼어들지 않게 되었다. 이런 성격은 오랜 옛날부터 변함없는 것으로, 고등 학생 때 어머니가 대학 수 험을 위하여 신사에서 사 온(사 왔다기 보다 받아 온)잡귀를 막아 낸다는 화상 을 둘로 뚝 분질러 버린 일이 있다. 그런 짓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앞 날을 기다려 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더구나 화살 한 대 부러뜨린 정도로 대학 시험에 떨어진다면, 그까짓 대학 안 가도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뭐랄까, 자포자 기 비슷한 실증주의였다. 결과부터 예기하자면, 나는 국립 대학에는 떨어지고 사 립대학은 두 군데나 패스했다. 부모님은 '사립 대학은 돈이 많이 드는데'라면서 웅얼웅얼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 후 국 립 대학에 못 들어간 탓에 현실적인 무슨 불이익을 당했다는 기억은 없다. 혹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다. 점괘를 믿느냐 안 믿느냐, 길흉을 가릴 것이냐 안 가릴 것이냔 하는 선택은 사람 저마다의 기호에 속하는 것이며, 타인이 이러쿠저러쿵 끼어들 문제는 아니 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굳이 불멸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을 좋아한다. '불멸이 됐든 뭐가 됐든 우리는 잘 해 나갈 것이다'라는 신념이 있으 면 무슨 일이든 잘 괼 것이다-라는 기분이 든다. 책임은 질 수 없지만. 일기, 혹은 그런 류에 대하여 '일기는 새해가 시작되면서부터'라는 통념이 암암리에 일반화돼 있는 건지, 신 년이 되어 자, 올해야말로 한번 써 봐야지 하는 기세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분 도 수 없이 많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어쩐지 찬불을 끼얹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건데 정초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거의 길게 가지 못한다. 그것 보다는 6월 13일에 문득 생각이 미처 쓰기 시작한 일기 쪽이 의외로 오래 지속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정월부터 일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정월'이라는 이벤트성에 편승된 안이함이 있어, 그래서 제대로 이러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애당초 편지를 위시한 등등의 글 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스물아홉 살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글이라곤 거의 써 본 일이 없지만, 일 기만은 불현듯 생각나면 단속적으로 썼다. 반 달쯤 쓰고는 넉 달을 쉬고, 석 달 을 쓰고는 또 두 달을 쉬는 그런 리듬으로. 그런 게 지금까지 토막토막 이어지 고 있다. 하기사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기'가 아니라, '일지'이다. 아 침 몇 시에 일어남, 날씨, 무얼 먹음, 누굴 만남, 얼마만큼 일을 했음 하는 사실 을 메모하는 것뿐으로, 그 이상의 것은 전혀 안 쓴다. 심리 묘사라든가, 창작을 위한 노트라든가,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것은 백 퍼센 트 없다. 그러니까 사후 일기가 발견된다 해도 출판될 가능성은 전무할 것이다. 보십시오, 아침 6시 기상. 한 시간 달리기. 아침 시가->붕장어 챠즈께. 오전 중, 소설 7매. 메밀국수->점심 식사. 오후, 소설 4매. <주간 아사히>H씨로부터 전화(3시) 저녁 식사->새우 고로케, 야채 샐러드, 맥주 2병. 오후 10시 취침. 평화로웠던 하루. 이런 기술이 하염없이 계속되는 평화롭고 지루한 일지를 누군가가 즐거이 읽 어 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잖습니까. 그야 나 역시, 12월 16일 (맑음) 점심 식사. 미우라 모모에씨 댁에 초대되어, 손수 준비하신 덮밥을 대접받았 다. 오후. 옥중의 미우라 카즈요시(보험금을 타 낼 목적으로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 건의 용의자)씨로부터 전화 왔음 저녁 식사. <길조>에서 야쿠시마루 히로코(1964 -, 동경 태생, 여배우)씨와 회 식. 식사 후 아자부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심. 집으로 돌아와 원고 250매 씀. 강담 사로부터 2억6천5백만 엔을 구좌에 넣었다는 통지 있었음. 하는 내용의 일기를 딱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소설가의 하루란 정말 평범하고 지루한 것이다. 이런 원고를 사각사각 쓰면서 존슨 면봉으로 귓구멍을 후비고 있는 사이에 질질 하루가 끝나 버린다. 내가 이런 기술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라이프'란 문방구 메이커가 출 고하는 '업무일지'리는 지극히 즉물적인 제목의 노트이다. 그것은 단순하고 튼튼 하고, 정서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싸구려에다, '자못 일기장'스러운 은근함이 없 어, 나의 사용 목적에는 딱 들어맞는다. 겉 띠에는 '업무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나타내는 업무 성적의 필연적 향상. 조기에 발견할 수 잇는 과거의 결점'이란 선 전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글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향이 약간 있기는 하지만, 왠지 쓸 모가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과거의 결점'같은 문 구가 눈에 띠면, 내 마음은 저도 모르게 소용돌이친다. 과연 옛날의 일기를 보면, 과거의 결점을 쉬 발견할 수 있다. XX년 10월 8일 (맑음) M과 식사, 가볍게 한 잔하고 집까지 바래다주다. 같은 기술을 읽으면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그때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음'하고 반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결점'을 지금 새삼스레 발견해 본들 도저히 '조기발견'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번 손해를 봤다고 할까 뭐랄까,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다지 효용이 있다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우리 마누라는 내가 쓰고 있는 '일지'보다 다섯 배 정도는 농밀한 일기를 매일 녹색 잉크로 빼곡하게 쓰고 있다.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일 듯한데, 요 몇 년 동 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 '소송이라도 걸 일이 생기면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요.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매일 일어난 일을 기록해 두면'하고 그녀는 일기를 쓰는 이유를 내게 설명한다. '소송? 소송이라니 그게 뭐야? 무슨 소송?'하고 나는 질문을-아주 당연한 질문 을-한다. '뭐 특별하게 무슨 소송이랄 것도 없어요. 그저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때때로 가정이란 것은 굉장히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이 원고를 쓴 후, 오오사카에 있는 '마루니'라는 문구 제작회사에서 '비 정서적, 기록적'기술을 목적으로 하는 유니크한 일기장을 부쳐 주셨다. 잘만 이용하면 한 권을 가지고 이십 년은 쓸 수 있다는 선전 문구까지, 제법 잘 고안해 냈다. 좌우 지간 비 정서적이라는 게 좋다. 금연이 취미 까마득한 옛날에 읽은 책이라 줄거리의 세세한 부분이 정확한지 아닌지 좀 자 신이 없는데, 스티븐 킹의 단편에 <금연 회사>(였다고 생각한다)라는 작품이 잇 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금연을 청부해 주는 회사 이야기다. 금연을 하고 싶 기는 한데, 자기의 의지만으로는 자신감을 가질 구 없는 사람이 이 회사에 신청 을 하면, 회사 쪽에서 책임지고 금연에 성공하도록 해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너나할것없이 아무나가 간단하게 신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는 엄중한 비밀 조직체로 구성되어 있어, 정보는 입에서 입을 통하여 비밀리에 전달될 뿐 이고, 가입금도 놀랄 만큼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금연의 성공률은 과장없는 백 퍼센트이다. 한 남자가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반신반의하며 금연 회사에 신청을 했다. 그런 데 며칠인가 지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만 담배를 한 개비 손에 들고 거기 에 불을 붙이고 만다. 자,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이라는 좀 소름이 끼치는 얘기인데, 마지막까지 얘기해 버리면 소설을 읽는 재미가 없어지니까 애 석하지만 결말은 덮어두겠다. 그렇지만 이 얘기의 교훈은 '요컨데 금연은 자기 힘으로 실천하는 수밖에 없 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편하려고 하니까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금연에 관한 한 상당히 자신이 있다. 옛날에는 하루에 오육십 개비를 피워대는 무지막지한 헤비스모커였지만, 어느 날 딱 끊은 이후로는 온통 장편 소설에 매달려 있는 몇 달 동안만 피우고, 그 일이 끝나면 안 피우는 그런 사이클로 지금까지 지내 오고 있다. 따라서 끊으려고 하면 '금연 회사'에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담배를 끊을 수 있다. 내 생각에 금연에 성공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의지와는 별관계가 없는 것 같 다. 그야 물론 의지의 위력을 전혀 빌리지 않고서 금연을 할 수 있을 턱이 없겠 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하우이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금연할 수 있을까' 하는 노하우를 알기만 하면, '금연'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온 집 안에 금연이라고 쓴 종이를 다닥다닥 붙여 놓거나, 라이터와 재떨이를 싸그리 강물에 내다 던지거나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는 데, 이런 것은 겉보기는 화려한 반면 효과는 별로 없다. 금연을 위한 노하우는 사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다음 세 가 지로 요약할 수 있다. (1)금연을 시작하면 삼 주일은 일을 안 한다. (2)타인을 걸고 넘어진다. 지저분한 말을 토해낸다. 거리낌없이 남이 싫어할 소리를 한다. (3)먹고 싶은 만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나는 비교적 간단하게 담배를 끊을 수 있다. (1)일을 안 한다는 것은 내게는 금연의 필수 조건이며, 현실적으로도 담배를 끊고 난 한동안은 문장 따위 도저히 쓸 수 없다. 글자도 삐뚤삐뚤해지고, 말도 잘 안 나온다. 그러니까 금연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사전에 한 삼 주 동안 은 글자 한 자 안 써도 좋을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는 한가롭게 영화를 보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면서 지낸다. 애인이 있는 분은 함께 온천에라도 가면 좋겠죠.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획을 반듯하게 세워 놓고 금연을 하고 있을 때 느닷없 이 '죄송하지만, 지난번에 써 주신 원고 말인데요, 지면 사적으로 두 매 정도 더 써 주셨으면 하는데요'라는 전화가 걸려 오기라도 하면 정말 난처하다. 무엇보다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지 않은가. 요 전번 같은 경우 '그로부터'라는 글자를 썼 더니 '으로부터'가 돼 버리고 말았다. '이거 좀 이상한데'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 것이 '그로부터'를 잘못 쓴 것임을 인식하기까지는 문장을 다섯 번 정도 되풀이 하여 읽지 않으면 안된다. 하긴 샐러리맨 분들 같으면 이삼 주 동안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 적으로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단 호하게 한 이삼 주간은 일을 대충대충하며 게으름을 피워 보는 것도 좋지 않을 까 생각한다. 가끔씩은 기분 전환으로 좋지 않습니까. 그 결과로 뭐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책임 못 지겠지만요. 그리고 (2)의 사람을 걸고 넘어지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내 쪽은 고통을 참아 가며 금연을 하고 있으니까, 뭐 일부러 얌전한 척 제고 있을 필요는 없다. 보통 때 같으면 말할 수 없는 것들도 금연의 초조함을 빙자하여 떠들고 싶은대로 떠 들어대는 것이 제일이다. 나는 금연을 할 때마다 담당 편집자로부터 '무라카미씨 도 한 꺼풀 벗고 나니까 좋지 않은 성격이로군요'라는 말을 듣지만, 사람과 사람 의 교제라고 하는 것은 무릇 그 정도의 스릴이 없고서야 재미도 아무것도 없다. (3)의 먹는 일인데, 담배를 끊으면 확실히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다. 담배를 끊는다, 다이어트도 한다는 따위의 일석이조를 노 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살 찌는 게 싫으면, 금연이 일단락된 후 일괄하여 다이어 트를 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금연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든 그 모은 걸 한꺼 번에 처리해 버리자'는 성급함, 자기 과신에 있다. 자신은 극히 한정된 능력밖에 소유하지 못한 비참한 존재라는 자기 인식 없이는 금연에 성공할 수 없다. 이를 테면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해 내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을 버리지 않을 수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금연이란 것도 이렇게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주 흥미로와, 생각지도 않게 몇 번이고 할 것만 같다. 외국에서 비행기를 탈 경우 '금연석으로 하시겠습니까, 끽연석으로 하시겠습니 까?하는 질문에 'Cancer seat, Please'라고 대답하면 간혹 환호를 받는다. 아무래 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비평을 향유하는 방법 미리 말할 것까지도 없는 일이지만,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 고유의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은행원은 돈을 셈하는 데 있어 실수를 해서는 안되고, 변호사는 술집 에서 타인의 비밀을 주절거려대서는 안되고, 성 풍속 관계의 사람은 손님의 페 니스를 보고 웃음을 터뜨려서는 안된다는 등이다. 매니큐어를 칠한 생선 초밥집 요리시라도 곤란하고, 소설가보다 월등하게 문장력이 있는 편집자도 좀 곤란하 다. 그러나 그러한 기본적인 룰과는 달리,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각자가 개별 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조라는 것이 있다. 그런 신조를 많이 껴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사람 관찰하기를 비교적 좋아하 여, 이것저것 많이 살펴보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조에 완고하게 매달려 잇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아주 거친 방식으로 적당하게 모든 사항을 처리하다가-그건 또 그것 대로 좋지만-뜻대로 안되면 타인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신조가 적은 반면에 자기 선전이 과다한 타입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처음에도 말했듯 이 사항 저마다의 재량에 따르는 종류의 일이므로, 단적으로 어느것이 좋고 어 느것이 나쁘다고 얘기할 수 없다. 나도 물론 글을 씀에 있어서 몇 가지 개인적 신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딱히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처음 단계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붙 어 버린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연령이 비교적 늦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경험한 각양각색의 직업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그냥 그대로 문필업에 응용한 것 이다. 처음 한 동안은 일시적인 방편으로 사용했는데, 너무나도 내 자신에 딱 들 어맞는듯 느껴져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 나의 개인적 신조를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다간 꽤 길어질 것이고, 그다 지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읽을 거리로서도 아마,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가지만 예를 들겠다. 그것은 '작가는 비평을 비평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적어도 개별적인 비평에 대해서든 비평가에 대해서든 비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해 봤자 무의미하고, 무익한 트러블에 휩쓸릴 뿐이고, 자신이 치사스러워질 뿐이다. 나는 줄곧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 왔고, 그 덕분에 스 스로를 갉아먹는 기회를 꽤나 무사히 넘기며 지낼 수가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내적 지옥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는데, 작가가 비평이나 비평가를 비평하는 상황도 그 지옥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 고 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그것이 일이다-비평가는 그것에 대해 비평을 쓴다.-그것 도 일이다-그리하여 하루가 끝난다. 각기 다른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 사를 하고(혹은 혼자서 식사를 하고), 그리고 잔다. 그런 게 세계라는 것이다. 나 는 그런 식으로 성립되어 있는 세계의 형태를 신뢰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전제 조건으로써 수용하고 있으며, 트집을 잡아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 각한다. 그러니까 트집을 부리기 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마치고, 한시라고 빨리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잠들려고 노력한다. 스칼랫 오 하라는 아니지만, 밤이 밝으면 내일이 시작되고, 내일은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에 관한 비평이란 걸 전혀 읽지 않는 인간이다. 그래도 간혹 기분이 내켜 읽거나 하면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하고 생각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명백백하게 빗나간 추측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도 있고, 책을 마지막까지 읽지도 않고 썼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따 라서 무슨 소린지도 모를 비평이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거기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변명을 하거나 하는 것은 당치않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 다. 나쁜 비평이라고 하는 것은, 말똥이 듬뿍 들어차 있는 오두막과 흡사하다. 만약 우리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런 오두막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서둘러 지나 가 버리는 게 최상의 대응책이다. '왜 이렇게 냄새가 나지'라는 등의 의문을 품 어서는 안된다. 말똥이란 원래 냄새가 나는 것이고, 오두막의 문을 열기라도 했 다가는 더욱 냄새가 진동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얼마 전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나에 관하여 신문에 난 비평을 오려 놓 은 옛날 스크랩이 한 상자 가득 튀어나왔다. 대개가 오육 년 전 내가 데뷔했을 당시에 , 마누라가 정성스레 오려서 보관해 준 것이다. 기특하게스리 하고 감탄 하면서 훌훌 넘기며 읽어 보았더니 제법 재미가 있어, 결국은 전부 읽고 말았다. 칭찬을 하고 말고와는 무관하게 그 중에는 지금도 '음, 과연 그런가'하고 납득 할 수 있는 것도 있었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마는 엉터리도 있었다. 그 러나 어찌 됐든 오육 년이나 지난 옛날 것이고 보면 생생함도 사라지고 없으니 까, 그럭저럭 따뜻한 기분으로 비평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평과 관계하 는 것도 꽤 즐거운 방법이다. 지금 나의 소설에 관하여 어떤 비평이 나와 있는 지는 또 오육 년쯤 후에 천천히 숙독, 향유하고 싶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또다시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순, 그리고 안자이 미즈마루 씨에 대하여 몇 회전 이 컬럼에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즉 야마구치 마사히로 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썼다. 그랬더니 그 며칠인가 후에 야마구치 군이 찾아와 얼음 에 채워진 은어를 몇 마리 두로 갔다. '이게 뭔데?'라고 내가 묻자, '이히히히, 시모다의 어머니가요, 무라카미 씨한테 드리라고 하면서 주더군요. 가끔은 좋은 얘기도 써 주시도록 부탁한다면서요. 하 여간에 시골 사람이니까'라는 것이다. 덕분에 은어는 고맙게 받아 소금을 뿌려 구어 먹기도 하고, 잡탕죽을 만들기 도 하고, 칼칼하게 튀겨 먹기도 했다. 아주 맛있는 은어였다. 동경에서는 맛있는 은어를 구할 수가 없으니 귀중하다. 타인의 험담은 쓰고 볼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세 번 정도 야마구치 마사히로=시모다마루의 일을 에세이 에 썼는데, 좋은 얘기는 한 번도 쓰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머리가 나쁘다'든 가, '눈치코치가 없다'든다, '도움이 안된다'든가, '여자한테 인기가 없다'든가, 그 런 나쁜 일만 잔뜩 썼다. 은어를 받았다고 해서 안이하게 반성을 하는 건 아니 지만, 야마구치에게도 야마구치의 부모님께도 참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가 지금껏 야마구치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하고 쓴 험담의 사 분의 일 정도는 농 담입니다-라고 해도 아마 이런 얘기로는 변명이 되지 않겠지. 며칠 전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다가 안자이 미즈마루씨와 우연히 딱 마주쳤길 래(미즈마루라고 하는 사람은 마냥 바쁘다 바쁘다고 얘기하는 주제에 늘 그 주 변에 어물쩡거리고 있다) '저, 지난번 원고에 야마구치 얘기를 좀 심하다 싶게 쓴 거 아닐까요?'하고 물었더니, '아니, 그런 정도를 가지고 뭘. 정말 그대로라니 까. 그걸로 됐잖아'란다. 그래서 나도 자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래도 가끔씩은 야 마구치의 좋은 점을 써 주고 싶다.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는 옛날 나와 내 마누라에게 T셔츠와 레코드를 준 일이 있다. 요컨데 친절한 사나이인 것이다. T셔츠에는 하얀 다원형의 물체가 틀림없 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필치로 그려져 있었다. '이건 또 뭐지?'하고 내가 묻자, '아니, 섭섭합니다. 이거 모르세요?'하고 야마구 치는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이건 말이죠, 내가 만든 <구인 타임즈>의 '황금달걀이 되고 싶어'라는 CM이 있는데 말이죠, 그 CM용으로 만든 T셔츠입니다. 알고 계시죠, '황금 달걀이 되 고 싶어'란 CM?" "모르는데. 텔레비전 안 보는 걸 뭐." "참 그렇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죠. '인간이었다면 좋았을텐 데'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 참, 텔레비전 안 보시죠. 그럼 테마 송도 모르겠군 요?" "모르지." "레코드가 있는데 들어 보렵니까?" "듣고 싶지 않아, 그런 거." "그런 말씀 마시구요. 내가 가사를 직접 썼단 말입니다. 이히히히, 좀 들어 보 세요." 라고 하며 야마구치는 레코드를 두고 돌아갔다. 재킷에 인쇄되어 있는, 야마구치 가 붙였다는 가사가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그 레코드는 한 번도 듣지 않았다. 며 칠 후 그런 얘기를 야마구치에게 했더니 몹시 낙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말이야. 자네, 솔직하게 감상을 얘기해 주는 사람 따위 이 세상에 그 리 많지 않다구." "에, 뭐....,뭐, 그건 그렇지만." 하고 야마구치는 맥없이 대답했다. 결국 또 험담이 되고 말았는데, 야마구치 시모다마루=마사히로는 상당히 친절 한 남자이다. 그 후 나와 마누라는 바로 그 '황금 달걀'T셔츠를 입고 미국에 갔다. 미국에서 '황금 달걀'T셔츠를 입고 있었더니. 미국 사람들한테 '그거 무슨 그림이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음, 그러니까. 골든 에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오호, 그 그 림 달걀로는 안 보였는데요'리며 놀랐다. 그러나 이건 야마구치의 책임이라기 보 단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책임이다.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그림이 격렬하게 희 망해마지 않는 포스트 모던 리얼리즘은 후진국 미국에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이 해되지 못하는 것이다. 불굴의 명작 <보통 사람들>이 뉴욕 근대 미술관에 입성 하는 날도 좀 먼 훗날이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세간에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그림을 둘러싸고 대립되는 두 의견이 있다. 하나는 '미즈마루의 그림은 언뜩 보기에는 단순한 듯하지만, 그건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그린 것이다'라는 설과, 또 하나는 '시간이 걸릴 리가 없 지 않은가'하는 설이다. 나는 그 진상이 알고 싶어서 연말에 미즈마루 씨와 일 관계로 상의할 겸 식사 를 함께 나누던 차에, '저, 미즈마루 씨. 연하장 그림 좀 그려 주시렵니까?' 하고 주머니에서 엽서 두 장과 펜을 꺼내 미즈마루 씨에게 건넸다. 미즈마루 씨는 '아, 좋지요'라면서 엽서와 펜을 옆에다 밀쳐 두고는, 그대로 찔끔찔끔 술을 마시 고. 간 천엽을 집어먹고, 북어를 입으로 운반하고, 이러쿵저러쿵 세상 얘기를 했 다. 미즈마루씨가 불현듯 잔을 상에 놓고 펜과 엽서를 집어 든 것은 약 삼십 분이 경과한 후였다. 결과적으로는 그 두 장의 그림을 그리는 데 약 십오 초밖에 걸 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 십오 초에 도달하기까지의 삼십 분 동안에 있다. 안자 이 미즈마루 씨에게 그 삼십 분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가능성으로서는, (1)간 천엽을 집어먹으며 줄곧 구상을 짜내고 있었다. (2)갑작스런 부탁이었으므로, 부끄러워 삼십 분 간 겸연쩍어 하고 있었다. (3)너무 잽싸게 그려 버리면 고마움을 모를 것 같아, 그냥 단순히 폼을 잡고 있었다. 이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음, 어느 것일까요? 좀 이상한 하루 며칠 전 느닷없이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빌드>가 읽고 싶어져 모 대학 서 점에 가서 찾아 보았지만, 그게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 다. 할 수 없이 참고 자료 창구에 있는 여점원에게 '저 미안하지만,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빌드>를 찾고 있는데요'라고 말하자, '어떤 분야의 책입니까?'라 는 질문을 되받았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저도 모르게, "네?" 하고 말하자, 상대방 역시, "네?"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빌드>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어떤 종류의 책이냐구요?" "음 그러니까, 즉 소설입니다." 라는 대화가 있고, 결국 그 소설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 문의하라는 결론이 나왔다. 순간 '서점의 참고 자료 담당이 디킨즈를 모르다니'하고 어이가 없었지 만, 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디킨즈 따위 전혀 안 읽으니까, 그런 무실함 또한 당 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이란 우리가 그렇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꽤나 대담한 변화를 이룩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그 여점원에게 차라도 한 잔 같이 하자고 꼬드겨서는, '그럼, 저 샤 롯트 브론테는 알고 있나? 푸시킨은? 스타인 백은 또 어때?'하고 소상하게 추궁 해 보고 싶었지만, 그 사람도 상당히 바쁜 듯했고, 나 역시 결코 한가하지는 않 았으므로, 유감스럽게도 그 일은 단념했다. 서점에서 나와 볼일을 다 끝내고 나자 배가 고프길래, 언뜻 눈에 들어온 예쁘 장한 양식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대충 다섯 시경이면 저녁을 먹으니까 덕분에 늘 한산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제법 기분이 좋다. 시끄럽지도 않고, 메뉴도 천천히 고를 수 있다. 메뉴판에 '양식 도시락 2500엔'이라는 것이 있어, '음, 이건 어떤 것들이 들어 있죠?'리고 웨이트리스에게 물어 보았다.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요." 하고 그녀는 딱부러지는 어조로 말했다. "저 말이죠, 그야 도시락이라고 써 놨을 정도니까 여러 가지가 들어 있을 거라 는 건 알겠지만, 예를 들어 어떤 것들이 들어 있지요?" "그러니까, 양식풍 먹을 거리가 여러 가지 들어 있다니까요." 라고 한다. 이래가지고서야 '염소 씨 집배원'풍의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될 것 같 아, 나는 양식 도시락은 단념하고 다른 일품 요리를 주문했다. 딱히 그녀에게 화 를 내는 건 아니지만, 도시락에 뭐가 들어가는지 한 가지나 두 가지쯤은 가르쳐 주어도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나로서도 그걸 미끼삼아 무슨 껄끄러운 짓 은 하려는 꿍꿍이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식사를 마친 후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백화점 앞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 어, 안으로 들어가 트위드 상의를 찾아 보기로 했다. 그 얼마 전에 담당 편집자 인 키노시타 요코씨가 '무라카미씨, 언제나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니, 도 대체 돈은 다 어디에다 쓰는 거예요?'라는 질문은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에 드는 윗도리가 있길래, '좀 사이즈가 작은가'싶은 생각이 들어 시험삼아 소매 에 팔을 꿰어 보니 여점원이 어디선가 바람처럼 날아와, '손님, 그건 사이즈가 아주 작은 거예요. 손님한테는 도저히 무리입니다'라고 내뱉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음, 그런 것 같군요. 좀 큰 사이즈가 있으면...'하고 말하려 했더 니, 이미 그 자리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년가 돌아오 기를 마냥 기다렸지만, 도무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여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 다. 어째 뭐가 뭔지 통 영문을 알 수 없는 하루이다. 타인으로부터 이렇다 할 이 유도 없이 부당한 취급을 당했다는 기분도 든다. 어느쪽이 진짜인지 판단을 못 하겠다. 어쩌면 서점의 그 여점원은 집으로 돌아가 식탁에서 '참, 엄마. 오늘 좀 이상 한 손님이 와서 말이죠, 알지도 못할 책 이름을 대면서, 내가 무슨 책인지 모르 겠다고 하니까 노골적으로 바도 취급을 하잖아요. 기가 막혀서'하고 투덜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는 '흥, 양식 도시락이라고 매뉴에 씌어 있으면 암말 말 고 주문해서 먹을 것이지'하고 주방장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있을지 모른다. 백화점의 여점원은 '자기 옷 사이즈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옷을 입어 보는 그런 촌놈을 상대하고 있을 새가 어딨어'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의 말에도 각각 일리가 있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살 아가는 방식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려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 다. 세상이란 무척 까다롭다. 이 글에 등장하는 키노시타 요코는 '고소 공포'에서 나를 바보 취급한 사람과 동일 인물입니다. 잡지를 즐기는 법 출판에 관계된 업계 사람들을 만나 예기를 하노라면, '무라카미 씨는 요즘 어 떤 잡지를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까?'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 오늘날의 잡지 전쟁은 극단적으로 치열하니까. 그런만큼 만드는 쪽도 꽤 진지한 상황분석을 해 가며 임하지 않는 한 도저히 살아 남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렇게 물어 본들 나는 잡지를 열심히 보는 독자도 아니고, 어쩌다 기 분이 내키면 손에 집어 들고 팔락팔락 넘기며 훑어보는 정도이므로, 어느 잡지 가 현재 제일 재미있고, 어느 잡지가 가장 선구적인지 그런 건 도저히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판단은 고사하고 이렇게나 엄청난 양의 비슷비슷한 잡지가 서 점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지금, 내게는 선택의 여지, 그 자체의 실태를 파악 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대체 그 누가 오후 네 시 반의 어슴푸레한 어둠과 오 후 네 시 삼십오 분의 희끗희끗한 어둠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혹 그런 것을 차이라고 부를런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조금은 막연 한 기준 하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 류의 선별 작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요컨대 잡지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어느게 어느 잡지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좋은 잡지란 폐간된 잡지이다'란 말을 했는데, 그 기분 이해가 간다. 구태여 실명을 들지 않겠지만, '그 잡지도 몇 년 전에 폐 간을 했더라면 아쉬워했을텐데'싶은 잡지도 몇 종류인가 머리에 떠오른다. 거꾸 로 폐간된 잡지는 두 번 다시 입수할 수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빠짐없이 나올 동안에 좀 더 소중하게 다룰 것을'하는 후회스런 기분에 자칫 빠지기도 한 다. 예를 들어 지금은 없는 <해피 엔드 통신>같은 잡지는, 나도 기꺼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없어져 버려 유감이다. 이런 얘기를 당시 <해피 엔드 통신>에서 편집 을 맡고 있던 카가 야마히로 씨에게 하면, 그는 시니컬에게 입술을 삐죽이며 '모 두들 그렇게 말씀을 하지만, 없어지고 난 다음에 동정을 산들 아무런 소용도 없 잖습니까' 라고 한다. 뭐 만드는 쪽에서 보면 그 말이 지당한 정론일 것이다. 그 리고 이런 얘기도 카가 야마히로가 들으면 '철 지난 동정론'의 한 젼형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개 글쟁이로서 비교적 일하기가 수월했다고 생각한 잡지 는 잘 망한다. 예의 <해피 엔드 통신>도 원고료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데 일은 기분좋게 할 수 있었고, 중앙공론사에서 나오던 <우미>에서도 갓 등단 한 신출내기치고는 피츠 제럴드나 카버의 번역을 나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 다. 그리고 문화출판국에서 나오던 란 잡지에서도 여러가지로 즐겁게 일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잡지들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나 같은 글쟁이가 한가롭고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 잡지는 어쩌면 조만간에 소멸될 운명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조사의 <대 컬럼>같은 것 역시 두 번 다시 출간되지 않을 것 아닌가? 읽는 잡지 중에 훌훌 넘기면서나마 비교적 열심히 보는 것이 있다면. 먼저 <플레이 가이드 저널>이란 관서 지바의 정보지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이 잡지 에는 관서 지방의 일 엔짜리 영화에서부터 콘서트, 그 밖의 잡다한 정보밖에 실 려 있지 않으니까. 동경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따라서 당 연한 일이지만 동경의 일반 서점에서는 팔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 로 그런 종류의 '쓸모 없음'을 꽤 좋아한다. 게다가 자잘한 정보를 꼼꼼하게 체 크해 가다 보면 동경과 관서 지방 사람들의 여러 사상들에 대한 개념이 미묘하 게 다름을 알 수 있어 제법 재미있다. 예를 들어 관서 지방의 TV 방송국은 <원숭이들의 혹성>을 다섯 편이나 연달 아 보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설음식을 먹기도 하는 관서 사람들의 모습을 상 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머리는 덜컥덜컥거린다. 그리고 나카지마류의 컬럼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신난다. <플레이 가이드 저널>이외에는 <광고비평>이란 잡 지에서 TV CF 소개 기사를 골라 읽는다. 어째서 그런 걸 읽는가 하면, 나는 텔 레비전에도 CM외에 거의라고 해도 좋을만큼 흥미가 없고, 대부분의 CF를 실제 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CF를 문장이나 선전용 사진 만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상당히 괴이하고, 더 나아가 별 도움도 안되는 작업이 다. 이를테면 여기 '이리(어백. 물고기의 수컷 뱃속에 있는 정액 덩어리.) 김'의 광 고 필름에 대한 소개가 있어 조금 발췌해 본다.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토 시로와 부하 미네 노보루. 이토: 야마시타군, 자네는 며칠 전에 이리 김을 아직 먹어 보지 못했다고, 틀 림없이 그렇게 얘기했지? 부하: 아, 예. 공부가 부족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하 생략) 이런 식인데, 문장만을 읽소 있으면 이게 어떻게 연간 제1위의 CF가 될 수 있 는지, 그 재미의 질을 잘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본 사람을 재미있다고 하니...하고 심각하게 '이리 김' CM의 영상을 상상하곤 하는 오늘, 요즘입니다. 누군가 'TV CM걸작편'이란 비디오 모음집 같은 것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잘 팔리지 않을까? 그리고 '메이킹 오브 이리 김'이라든가 말 이죠. 카가 야마히로는 이후에도 잡지사를 몇 군데나 망하게 했다. 럼 커피와 오뎅 개인적인 소견을 기술하자면, 겨울이 되어 맛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찌게류 와 럼을 넣은 커피이다. 물론 찌게와 럼이 든 커피를 함께 먹으면 맛있다는 게 아니라, 제각각 맛있다는 뜻이다. 만약 럼이 든 커피를 마시면서 오뎅을 먹는다 면 맛있을 리가 없다. 나는 요 한 이 년에 걸쳐 존 어빙의 <곰을 풀어 놓다>라는 괜스레 길기만 한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데, 그 안에 럼이 든 커피 애기가 종종 나온다. 이 작품은 빈을 무대로 한 소설로, 주인공들이 곧잘 길 모퉁이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럼 커피'를 주문한다. 그런 장면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몹시 럼이 든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는데, 유감스럽게도 일본에는 맛있는 럼이 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가게 가 별로 없다. 메뉴에 '럼 커피'라고 씌어 있어도 , 그다지 주문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따라서 럼주도 꽤 오래 된게 아닐까 하고 의심스러워진다. 그리 고 일본에서 마시는 럼 커피에는, 뭐랄까 음악에서 말하는 스노리티 같은 것이 결여된 듯한 기분이 들어 께름칙하다. 즉 '럼 커피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라는 개념풍의 울림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웬지 식은땀이 흐르는 일이지만-겨울 에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마시는 럼 커피는 굉장히 맛있다. 하기야 그 동네는 동경 따위에 비하면 뼛속까지 파고들 만큼 압도적으로 추우니까, 오리털 파커에 다 장갑에다 머플러까지 중무장을 하고 대처해도 곧바로 '으-추, 추워'하는 꼴로, 카페로 뛰어들어가 따스한 것이 마시고 싶어진다. 카페의 유리창도 대개는 난방 탓으로 뽀얗게 김이 서려있어, 바깥에서 보면 정말 따뜻하고 푸근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 곳에 뛰어들어가 주문하기에는 역시 '럼 커피'가 제일이다. 독일어 로는 아마 '카페 미트 루므'였던 것 같은데,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뜨거운, 뜨거운 커피 위에 새하얀 크림이 듬뿍 얹혀져 있고, 럼 향기가 핑하고 코를 찌른다. 그리하여 크림과 커피와 럼의 향기가 하나가 되어 구수하게 누른 듯한 냄새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법 상당한 맛이다. 그리고 확실하게 몸 이 따스해진다. 그런 연유로, 나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있는 동안에는 날이면 날마다 럼 커피만 마신다. 포장마차에서는 커리 부르스트(카레맛 소시지)를 아작거리고, 카 페에 들어가서는 럼 커피를 마시는 패턴이다. 엄청나게 춥기는 했지만, 그 나름 으로 행복한 한 달이었다. 구경꾼 하나 없는 춥디 추운 프랑크푸르트의 동물원 에서 덜덜덜 떨면서 마시는 럼 커피의 맛 또한 각별하여, 지금도 꽤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본에는 '럼 커피'는 없지만, 그 대신 '오뎅'이 있다. 럼 커피도 좋지만, 오뎅 도 나쁘지는 않다. 낮에는 빈에서 럼이 든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동경에서 오뎅 을 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하고 얼빠진 생각을 하고 있는 오늘 요 즘입니다. 내 개인적인 사정만 말씀드려 죄송하지만-이라니, 이 컬럼의 내용은 철두철미 하게 내 얘기뿐인데, 우리 마누라는 오뎅이란 존재를 심각하고도 강렬하게 증오 하는 터라, 나를 위하여 오뎅을 만드는 일은 결코 없다. 그녀가 오뎅을 혐오하는 까닭은 소녀 시절에 무우와 어묵 때문에 전철 속에서 봉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라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고(당연하다), 그저 단순하게 싫어할 뿐이다. 그런 탓 에 나는 혼자 바깥에서 오뎅을 먹는다. 중년 남자가 홀로 오뎅을 먹고 있는 모습은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 게 볼썽사나운 것도 아니다. 이십 대일 무렵에는 오뎅집에 혼자 들어가서 술을 마신다는 게 어쩐지 썩 탐탁치 않았지만, 삼십대를 지나고 나서는 아주 일상적 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본 후 혼자 밥이라도 먹고 돌아갈까 할 때는 나는 대충 오뎅집의 카운터에 앉기로 하고 있다. 생선 초밥집은 '오뎅집이라고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오늘의 특별 메뉴니 뭐니 하는 게 없으니까 기분도 편안 하고, 우선은 싸다. 혼자서 멍청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기에는 오 뎅집이 최고다. 다만 늘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는 과연 오뎅을 먹는 정통적 방법 이란 세 존재할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선 초밥집에서는 처음부터 다랑어 를 두 접시 계속 먹어대면 안된다든가, 치쿠와와 한펜(어묵의 일종. 보통 어묵이 기름에 튀겨 낸 것인데 반해, 한펜은 쪄 낸 것이라 한충 부드럽다.)사이에는 다 시마를 끼워 넣는 것이 상식이라든가, 롤 카베츠 따위 애당초 식도락가는 먹어 서는 안되는 음식인가 하는 것들이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오뎅 을 먹는 옳은 방법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안자이 미즈마루씨는 그런 일에는 제법 까다로운 사람이니까, 혹 함께 오뎅을 먹으러 갔다가 나중에 '무라카미 씨는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은 주제에 정작 오 뎅을 먹는 매너는 순 엉터리로군요. 곤약을 먹은 후에 은행을 먹다니 말입니다' 라는 핀잔을 들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나는 감자를 넣은 오뎅을 무척 좋아하는데, 동경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 오뎅 을 파는 포장마차로는 에노시마의 다리 입구에 몇 군데 줄지어 있는 포장마차가 조개 같은 것도 많이 들어있어 제법 맛있다. 후치사와에 살던 시절에는 점심시 간에 곧잘 에노시마까지 산책삼아 갔다가 먹곤 했다. 한신 사이 키드 내가 태어난 곳은 일단은 교토이다. 곧바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슈큐가와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같은 효고현 아시야시로 이사를 했다. 그러니까 고 향이 어디라는 게 좀 명확하지 않지만, 십 대를 아시야에서 지냈고, 부모님 집도 거기에 있으므로 아시야 출신으로 되어있다. 내 진심을 말하자면 좀더 막연하게 '한신간'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이 '한신 사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관서관계자 외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기야 같은 '아시야'라고 해도 내가 자란 곳은 지금 화제로 들끓고 있는 '공 주병 붐'의 아시야가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인 아시야라서, 솔직하게 '아 시야 출신입니다'라고 말하기가 난처한 구석이 있다.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든 다. 우리 집 근처는 유괴를 당할 것 같은 순간에 큰소리를 쳐대면 사람들이 와 하고-까지는 안되더라도, 너덧 명은 뛰어나올 그런 아주 평범한 주택가이다. 이전에 덴엔쪼후 출신의 사나이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도 '그렇다니까, 정말 그래'하고 도의를 표해 주었다. '우리 집은 말이지 덴엔쪼후의 가난한 쪽에 있는데도, 태어나서 자란 곳이 덴 엔쪼후라는 말만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야, 굉장하군요'라구 한다니까. 답답한 노릇이지'라는 것이다. 정말 답답할 것 같다. 당최 나 같은 사람은 아시 야에서 십 대를 보내면서 '공주님'같은 여자애한테는 단 한번도 말을 건네 본 기 억이 없다. 아시야에 관한 기억 중에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 다면. 한밤중에 곧잘 집을 빠져나가서는 해안으로 가(지금은 이미 없어지고 말았 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장작불을 피웠던 일 정도이다. 허나 그런 정도는 특별히 아시야가 아니더라도 바다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줄곧 '고향이 어딥니까?'하는 물음에 '코베쪽입니다'라고 대답해 왔는데, 그렇게 대답하면 '코베라구요, 좋은 곳이로군요'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어쩐지 그런 것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아, 최근에는 '효고현 남부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있다. '효고현 남부'라는 호칭은 왠지 일기 예보처럼 시원스러워, 비교적 좋아한다. 그러나 출생지가 어딘지를 엄밀하게 얘기하기 위하여 이리저 리 궁리를 해야 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자신은 아는 사람이 많은 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그런데 동경에서 대학을 나와 동경에 있는 회사 에 취직하는 코스를 밟아 결혼하고 자리를 잡았던 한신 사이 출신 친구들이 요 즘 들어 탁탁 신변 정리를 하고서는 관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득 주위를 돌 아보니 나의 고등 학교 시절 친구이면서 지금도 동경에 있고 연락이 닿는 친구 는 딱 한 명밖에 없다. 그들이 귀향하는 이유를 대략 요약하자면 '아이들도 이젠 제법 컸고, 동경보다 는 한신 사이 쪽이 주거 환경이 훨씬 좋은 데다, 이제 슬슬 속내를 알 수 있는 토지에서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인 모양이다. 대개의 회사에는 관서 지사 (혹은 본사)가 있으니까, 동경을 떠난다 해도 생활이 곤란해질 일은 없다. 때때 로 이런 편리함이라든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 한신 사이 출신들은 동경에 와 서도 맹렬, 활달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열심으로 애쓰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는 본 적이 없다. 이 런 경우는 나의 친구나 자기에 한정된 현상인지도 모르겠으나, 모두들 비교적 느긋하여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린다거나 타인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일은 거 의 없다. '뭐, 좀 어때'하는 정도로 대부분의 일이 수습된다. 로렌스 키스던 감독의 영화에 <다시 만날 때>라는 영화가 있다. 60년대 키드 가 십 몇 년인가 만에 재회했는데, 그 동안에 쌓인 사랑과 증오에 서로가 뒤엉 켜 이성을 잃는다는 동창회물이다. 만약 똑같은 설정으로 한신 사이 출신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했다면, 그 영화는 그렇게 애증이 엇갈리는 작품은 안 되었을 것이다. "오랜만이야. 지금 뭐 하는데?" "소설 쓰고 있어." "소설 쓰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 "그저 그렇지 뭐." "그래, 건강하게 잘 해 봐." 하는 정도로 영화는 한가로이 끝나고 말 것 같다. 옹보리 카즈키가 <다시 만 날 때>를 재촬영한다면 이런 노선에 근접할지도 모르겠다. 요 며칠 전 아시야로 돌아간 친구와 오랜만에 동경에서 만나 한신 사이에 대 한 여러 정보를 들었다. '지난번에 우리 어머니가 가정부 모집 광고를 신문에 냈더니 25,6명이나 신청 이 들어와서 말이야, 그래서 아시야의 시민 회관을 빌려서 면접을 했더랬어'라고 그는 말한다. 가정부 면접을 치르는데 시민 회관을 빌리다니, 스케일이 크다고 할까, 기우가 웅대하다고 할까, 좌우지간 굉장하다. "그래서 어머니가 혼자서 하기는 좀 힘들다고 하길래, 나도 따라 갔거든. 하긴 스물 몇 명이니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것 아냐." 그의 얘기에 의하면 그 스물 몇 명 중에는 '어찌하여 이런 사람이'하고 의아스 러울 만큼 아름답고 이지적인 사람도 있어, 한 사람을 고르는데 상당히 애를 먹 었다고 한다. 나도 한번 아시야의 시민 회관에서 가정부 면담을 해 보고 싶다. 미즈마루씨도 해 보고 싶죠? 고쿠분지와 시모다카이도 사이의 수수께끼 나는 대게는 쉽게 잠드는 편이다.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순간에는 이미 돌처 럼 푹 잠들어 있는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금방 잠든다, 잘 잔다, 어디서나 잔다 가 내 잠의 삼 대 특징인데, 어렵게 잠드는 사람들은 그런 인간이 앞에서 알짱 거리면 적잖이 불유쾌한 모양이다. 나만 해도 나보다 빨리 잠드는 인간을 보면-그런일은 극히 드물지만-'그 자식 바보 아니야'하고 생각한다. 며칠 전 처남이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술을 마시 다가, 열 한시가 되었길래 '이제 그만 잘까'하고 각자 잠잘 방으로 헤어졌는데, 문을 닫자마자 두고 나온 물건이 생각나 손님 방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그는 벌 써 코를 드르렁거리며 숙면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가 약 십초 정도이다. 암만 나라도 잠드는데 이십 초는 걸린다. 그래서 마누라에게 '저 놈 뇌수가 거의 텅텅 비어 있는 거 아니야?'라고 혀를 차며 말했더니, '당신은 뭐 다른 줄 알아요'하고 바보 취급을 당했다. 과도하게 건강한 인간이란, 곁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바보 같다. 하긴 나 역시 옛날부터 시종 일관 변함없이 쉽게 잠들었던 건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새벽녘까지 한잠도 자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의식이 상실된 것처럼 푹 잘 수 있게 된 것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어쩌면 원래 체질이 뭔가를 쓰는 대 적합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심각한 내면 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는 글을 쓰는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내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산처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도 산적해 있고, 제대로 얘기가 통하지 않는 인간도 있고, 길을 걷다 보면 자동차와 신호가 너무 많아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정신적 스 트레스와 잠이 전혀 다른 별개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이다. 요컨대 '이건 이거 고, 저건 저거다'하는 식이다. 1960년대에 곧잘 여자가 '나도 너를 좋아하기는 하 지만, 아직은 그냥 좋은 친구 사이로 있고 싶어'라는 애가를 했는데(지금도 그런 말을 할까?), 좌우지간 뭐 그런 식으로 나의 잠은 나의 스트레스를 명확하게 구 분 짓고 있다. 따라서 나는 기분 좋게 푹 잠잘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잠이란, 신선한 과즙이 담뿍 들어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과일과 비슷하다. 이불 속에 들어가 '잘 먹겠습니다-'하는 기분으로 눈을 감고, 그 잠의 과즙을 쪽쪽 빨다가, 다 빨아먹고 나서야 눈이 떠지는 셈이다. 좀 이상한 표현일 지 모르겠으나, 정말 그렇게 느끼는 걸요, 어쩔 수 없잖아요. 즉 잠에 관한 한 나는 비교적 진지한 것이다. 꿈 같은 것도 거의 꾸지 않고, 꾼다한들 토막토막 난 단편을 간신히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동경으로 이사 오고 난 요 몇 달 사이, 이전보다는 어느 정도 확실한 형태의 꿈을 꾸게 되었다. 시골에서 오랜만에 도심으로 돌아온 터라 역시 약간 은 흥분하고 있는 까닭일 게라고 생각한다. 이제 곧 또 시골로 이사를 할 것이 고, 그렇게 되면 꿈도 그다지 꾸지 않게 될 것이므로, 최근에 꾼 꿈을 한 세 가 지쯤 여기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1) 12월 22일. '눈투성이 고양이' 나는 털이 북실북실한 커다랗고 예쁜 고양이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쓰다듬고 있다 나도 고양이도 아주 만족해 있는 듯 행복한 기분이다. 그런 데 쓰다듬고 있다 보니 손가락 끝에 뭐가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래서 뭘까 하고 털을 가르고 보니, 그게 누이다. 아니? 하고 놀라 고양이의 몸을 살펴보니까, 있다, 있 어. 온 전신에 눈이 좍 깔려 있다. 전부해서 서른 개나 마흔 개쯤 될까...하는 장 면에서 페이드 아웃. (주:꿈과는 관계없을지 모르겠는데, 그 꿈을 꾼 날 저녁 식사는 말린 아지와 데친 두부였다.) (2)2월 8일. '고쿠분지, 시모다카이도' 고쿠분지에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창 밖 풍경이 아무래도 다른데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상하군 하고 내려 보니 그곳은 시모다카이도였다...그것뿐. 나는 시모다카이도에 가 본 적이 없는데, 꿈 속에서 본 시모다카이도는 조용하고 제 법 좋은 동네였다. (주:이것도 꿈과는 별관계없겠지만, 그 전말 나는 아오야마 1가의 '르 콩드'에 서 오래간만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3) 1월 14일. '자전거 타이어 소동'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앞 타이어에도 뒤 타이어에도 거의 공기가 들어 있 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거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자전거포가 눈에 띄길래, 공기 펌프를 빌려 열심히 공기를 집어 넣는다. 그런데 어찌 된 셈 인지 앞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면 뒤 타이어 공기가 빠지고, 뒤 타이어에 넣으면 앞 타이어가 빠져 버리고, 도무지 끝이 없다...여기에서 페이드 아웃. (주:그 전날 긴자에서 로베르 브레슨의 <상냥한 여자>를 보고, 그 후에 '미미 우'에 들어가 메추리알이 들어 있는 뜨끈뜨끈한 메밀국수를 먹었다.) 이런 식으로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선명한 꿈을 꾸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 리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이 선명한 꿈을 꾼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될 수 있 는 한 그런 꿈과는 관계하지 않고, 잠의 과즙을 무아지경으로 쪽쪽 빨며 자고 싶다. 그런데 어째서 시모다카이도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일까? 전혀 짐작도 못하 겠다. 동경을 떠나고 나자, 실제로 꿈을 전혀 안 꾸게 되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꾼 꿈은 우리 집 고양이와 헤르베르트 폴 캬라얀과 비슷하게 생긴 까마귀가 격투를 벌이는 꿈이었다. 말리려고 했는데, 까마귀가 무서워서 말릴 수가 없었다. 그 이 후론 한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 쓰레기의 시대 며칠 전, 오엔이라는 일본에 온 지 얼마 안된 스물 두 살의 미국 청년과 식사 를 하면서 세상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소위 '탁상 대화'이다. 나는 영어 회화 에는 그리 능통하지 못하기 때문에(라고 일본어 회화에는 능통한가 하면 그렇치 도 못하다) '탁상 대화'는 정직하게 말해 서투르지만, 그래도 외국인과 얘기를 나 누다 보면 무언가 한 가지쯤은 '으-음'하고 신기하게도 납득이 가는 일이 있다. 이것은 딱히 외국인이 일본인에 비해 머리가 좋다든가 감각이 뛰어난다든가 그래서가 아니고, 외국인과 일본인이 구사하는 표현의 발상 사이에 약간의 기본 적인 격차가 있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표현방법이 나 시점이 아주 조금 다른 것만으로도 그 내용까지 신선하게 느껴져, 그래서 '으 -음'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오엔군은 일본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면서, 그 자신도 조금씩 일본어를 배워 나가고 있는 꽤 성실한 청년이다. 일본의 TV를 보면서 일본어 단어를 습득하고 있다고 하기에, '일본의 TV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는 나도 '음, 과연 그렇군'하는 식으로 웃어 넘겼는데 나중에 점점 그 '농 담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다'는 표현이 TV 프로그램의 존재 방식뿐만 아 니라, 더욱 폭 넓게 세상의 일반적인 상황에까지 부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발언의 내용 그 자체는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것도 아니데,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데'하고, 그야말로 신기하게 납득이 가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신문을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양 각색의 사건이나, 상황, 유명인의 농담적 측면에 자연히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런 시점으로부터 주변 의 풍경을 휘 둘러보면, 현재 세상을 시끌법석하게 하고 있는 사건의 약 65퍼센 트 정도는 '농담으로 생각하고 보면 재미있는'영역에 수납되고 말 거라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런 '농담으로 보면 재미있는'사건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가 모두 농담 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저 칼 마르크스씨가 지적한대로 심각하게 시작하여 농담으로 끝나는 종류의 세상사도 있고, 또 당사자들에겐 지극히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는 완전한 우스개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문제도 있다. 깊고도 진지한 우물에 서 차갑고 깨끗한 물을 길어 올려 어릿광대한 잔에다 따르는 예도 없지 않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모가 나겠지만-하고 예기하면서도 결국은 예를 들고 있지 만-이디오피아 기근의 심각함은 인정해도, <위 아 더 월드>란 노래는 내 귀에 는 질 떨어지는 농담처럼 울린다. 그리고 살인 사건이란 원리적으로는 심각한 것일테지만, 지금에 와서 미우라 카즈요시(보험금을 타 낼 목적으로 아내를 살해 했다는 사건의 용의자. 1985년 9월 그는 공범인 애인과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 되었다.)를 둘러싼 저 야단법석을 농담 이외의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다. 스포츠도 그 자체는 엄숙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프로야구 따위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조크로 얘기된다 해도 별 도리가 없지 않을까.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오늘날의 구루메 가이드 붐은 역시 일종의 농담으로 봐야 할 것이고, 양복점을 경영하는 고급(혹은 고급스러 운) 레스토랑 따위도 농담의 순수하고도 화려한 결정이라고 밖에 말할 길이 없 는 곳이 많은 듯하다. 이런저런 식으로 세계에는 수많은 형상과 사이즈를 지닌 불가사의한 일들이 넘쳐 흐르고, 우리는 일일이 그것들의 본래적인 성립과정에 관계하기 보다는-그 런 짓을 하고 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농담으로써 재미있다'는 선에 서 대개의 세상사를 흘려 버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게 바람직한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난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 고서 달리 이 '쓰레기 같은 시대'에 효율적으로 살아 남을 방법이 없지 않나 싶 은 생각도 든다. 즉 정말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있는 부분만을 자신의 힘으로 깊이 성찰하도록 노력하고, 그 나머지 쓰레기는 농담이라 여기고 버리는 것이다. 분명 금후 몇 년 간에 걸쳐, 우리는 싫건 좋건 관계없이, 그러한 삶의 방식을 강요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평적 선 택은 가볍게, 수직적 선택은 신중하게'라는 뜻이 되겠는데, 그건 그렇다고 쳐도 1960년대는 점점 뒤로 멀어져 가고 있군요. 하루키 동맹 일전에 어느 편집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그가 나카노구에서 발견 했다는 기묘한 얘기가 나왔다. 그 벽보에는 '하루키 구함'이라는 글자와 전화 번 호만 씌어 있었다고 한다. "뭡니까, 그게?" "글쎄, 뭘까요?" 하고, 그도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요컨대 하루키를 구하고 있으니까 전화를 해 달라는 뜻이겠는데....잘 모르겠 군요." "개를 찾고 있는 건 아니겠죠?" "네, 개라면 보통 어떤 품종이라든가 특성을 쓰기 마련이죠. 역시 인간 하루키 겠죠." "그게 특정의 하루키인지, 아니면 불특정한 하루키인지?" "허, 모르겠군요. 뭐, 어찌 됐든 다음에 또 보게 되면 전화 번호를 메모해 두었 다가 가르쳐 드릴테니까, 직접 연락해 보는게 어떻겠습니따? 무슨 좋은 일이 있 을지도 모르고." "아니, 그건 상상도 안되지만 말입니다." 하는 데서 얘기가 끝난 채 그와 만나지 못했고, 전화 번호도 모른다. 따라서 물 론, 도대체 나카노구의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하루키'를 구하고 있는지 여전히 수 수께끼로 남아 있다. 가장 하기 쉬운 추측으로는 '하루키'리는 이름을 듣기만 하면 몸의 심지가 사 르르 풀려버리는 성욕 과다증 미녀가 나카노구에 있어, 밤이면 밤마다 '하루키' 를 구하여...하는 것이지만, 이름과 성욕이 정말 그럴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연 결되는 것인지, 나는 확신이 안 선다. 또 하나의 희망적 추측은 대부호인ㄴ 노부인이 전쟁에서 죽은 자신의 아들과 동명의 남자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기려고 한다는 것인데, 현실 속에야 그런 일 이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치의 세계를 제외하면, 부자인ㄴ 노 부인이 그렇게 엉뚱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 보 다는 오히려 카트 보네거트의 <슬랩스틱>식으로 , 누군가가 '하루키'확대 가족을 원하고 있는 쪽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하루키'가 모여 맥주 를 마시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빙고 게임을 하기도 하면서 친분을 돈독히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 모임이 과연얼마나 제미있을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전 례없이 재미있든지, 도무지 시시하기 짜기이 없든지, 그 어느쪽이겠지. 어쩌면-하고 상상력이 점점 날개를 펴고 부풀어 가고 있는데-이것은 중대한 범죄에 관련된 일인지도 모른다. 나카노구에 사는 어떤 범죄자가 코난 도일의 <빨간 털 동맹>을 읽고 '하루키 동맹'이란 걸 생각해 낸 건지도 모른다. 나카노 구에 사는 하루키를 전부 한군데에 끌어 모아 백과 사전을 열심히 베끼게 해 놓 고, 그 사이에 터널을 파가지고 은행을 습격할 작정인 것이다. 범죄자 쪽은 그렇 다치고, 빌딩의 한 방에 나카노구 내에 사는 '하루키'가 몇 십 명이나 모여서, 모 두들 부지런히 백과 사전을 베끼고 있는 정경은 흐뭇하기도 하고, 제법 보기도 좋다. 그런 곳에 아까 쓴 성욕 과다증 미녀가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뒤죽박죽이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상상하기 시작하자, 점점 나카노구라는 곳이 무정부적 인 장소로 생각되어진다. 그건 그렇다치고 '하루키 구함'의 진상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시면 <주간 아시 히>로 제보해 주십시오. 좋은 일이 있으면-그리고 그것이 만약 분할 가능한 일 이라면, 조금은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좀 기묘한 얘기'를 계속한다. 며칠 전 발렌타인 데이의 이튿날 아침에, 센다가 야의 하토모리 신사 근처 길 위에, 하트형 대형 초컬릿이 몇 개 질근질근 밟혀 져 있었다. 상당히 무참한 광경이었다. '이런 짓을 하다니 도대체 남자 쪽일까, 아니면 여자 쪽일까?'하고 마누라가 물었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남자의 짓이라면 처참하고, 여자의 짓이라면 무섭 다... 이건 나의 편견일까? 물론, (1)여자로쿠터 초컬릿을 잔뜩 받은 모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 시키기 위해 전부 짓뭉개 버렸다는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2)공양을 위하여 불단에 포개 얹어 놓은 떡을 가르듯, 의식으로서의 초컬릿 가르기가 정착했다는 가늘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초컬릿을 보내고, 그 행위로 인해 사랑이 성취되면, 그 날 밤 이 다 지나가기 전에 신사 근처에서 둘이 초컬릿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그리 고는 '후 발렌타인'으로서 8월14일에 남자가 여자에게 수박을 선물한다든가 말이 죠. 그런 여절가지 부속 행사가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혹은, (3)초컬릿을 애인에게 선물해 주혀고 길을 걸어가고 있던 여성이 앞뒤에서 사 자와 표범의 습격을 받았다는 가설도 성립될 수 있다. (4)초컬릿이라고 생각하고 씹어 보니까 하트 모양 고형 카레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하루키 구함'의 진상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장거리 주자의 맥주 봄이 가까와 오면 왠지 모르게 장거리 레이스가 하고 싶어져 며칠 전 '아스카 (나라분지의 한 지역. 6, 7세기에 이르는 문화사적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 히나 쯔마리( 3월 3일, 여자 아이가 있는 집에서 제단을 만들어 여자 인형으로 장식하 고, 마름모꼴 떡과 흰 술. 복숭아꽃 등을 바치는 제의) 고대 마라톤'이란델 출전 하였다. 출발 지점이 아스카촌의 이시부따이 고분 앞이고, 오니노마나이타와 아 스카절(나라현 아스카촌에 있는 절. 596년에 완성됨), 다카마쯔총(1972년에 발굴 된 아스카촌의 원형 고분. 8세기 초엽의 묘로 추정됨. 보존 상태가 양호한 극채 색의 벽화가 우리 나라의 동시대 벽화와 비슷하여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 다.)등을 바라보며 42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꽤 신날 듯한 코스이다. 날씨도 좋고, 따뜻하고, 이시부따이 고분 옆에 벌렁 누워, 필립 로스( 1932 -, 미국의 작가)의 <해부학 강의>를 읽으며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마음이 푸근하게 누그 러진다. 벌써 봄이다. 풀 마라톤에 출전하는 것은 그것이 세 번째였는데, 두 번째가 1983년 호놀룰 루에서였으니까, 약 2년 반만에 뛰는 42킬로미터인 셈이다. 호놀룰루 전 해에는 역시 아테네에서 풀 마라톤 보스를 뛰었고, 틈이 생기면 10킬로, 20킬로에도 간 간이 출전했다. 하지만 호놀룰루 이후에는 좀 생각한 게 있어서, 한동안 레이스 에 출전하는 건 삼가하고, 혼자 느긋하게 뛰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몇 번을 뛰어도 세 시간 반 이하로 시간이 단축되는 법이 없는 '아주 평 범한' 아마츄어 런너니까, 그리 잘난 소리는 할 수 없고, 할 마음도 없다. 그러나 굳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이름있는 시민 마라톤 대회는 해를 거듭할 때 마다 비대해지고, 어떤 종류의 대회는 좀 지나치다 싶게 요란스럽다. 일본의 TV방송국이 마구 설쳐대는(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호놀룰루는 별도 로 하더라도, 좀 이름이 있다 싶은 대회 같으면 참가자를 끌어 모으기 위한 상 품이 있는가 하면, 기념 T셔츠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무슨 무슨 달리기 동호 회'가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플렝카드까지 내세우고는 우루루 몰려들기도 하고, 그럴싸한 '완주증'을 발급하기도 하고, 길기만 할 뿐 별다른 의미도 없는 개회식, 폐회식이 있고, 정말이지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저 놀이에 불과하다고 한다면야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들이 적잖 이 성가셔-그런데 그 세부적인 모습이 어쩌면 문학상 파티하고 그렇게 비슷할까 -대회에 나가는 것을 당분간 삼가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출전했던 대회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미국의 워싱턴 D.C에 서 뛰었던 이름도 없는 10킬로미터 레이스였다. 이 10킬로미터짜리 레이스는 주 말 아침에 포트맥 호반에 있는 출발점에 가기만 하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참 가할 수 있는 지극히 부담없는 대회로 , 그러니까 물론 권위도 아무것도 없다. 참가자는 오, 육십 명 정도로 연령도 천차만별, 모두들 저하고 싶은 차림으로 삼 삼오오 모여든다. 접수처에 않아 있는 여자가 참가자가 이 달러(였다고 기억한 다, 아마도)를 내면 '오 예, 저기에 있는 오렌지 주스 마시고 싶으면 마음껏 마셔 요. 저 쪽에 있는 롤 케이크도 좋을대로 드시구요'라고 말하며, 참가비를 냈다는 표시로 손에 꽝하고 스탬프를 찍고, 노트에 주소랑 씨명을 쓴다. 출전 번호라든 가 등등의 표시는 일절없다.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자 모드들 모여요. 그럼, 출 ---발'하고 1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다뛰고 나면 '수고하셨습니다. 몇 분 몇 초입니다'하고 가르쳐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꿀꺽꿀꺽하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 고는, 롤 케이크를 씹어 먹고, 마지막까지 앞뒤를 다투었던 아저씨와 악수를 하 고 헤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호놀룰루나 오메(동경도 서부의 시. 오메 구 도로의 요충지.) 대회가 틀려 먹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호놀룰루는 그 나름으로 즐거웠고, 오메만 해도 가능하다면 한번 뛰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워싱턴 D.C 에서 참가했던 것 같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경주가 아마츄어 런너의 기본이라 고 생강하고 있고, 우리는 적어도 그런 기초적인 것을 잊어 어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각지에다 구태여 미니 호놀룰루 마라톤을 출현시켜야 할 필요 성 따위 전혀 없는 것이다. 반듯한 코스와 정확한 시계와 유효 적절한 급수와 주최자측의 따뜻한 배려만 있으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경주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아스카 마라톤'은 실제로 뛰어 보니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힘든 코스였다. 아스카에서 걸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주지하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 이 부근은 높낮이의 차가 격렬한 울퉁불퉁한 지역이라,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바로 다음 언덕이 있어,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의 낙차가 약 백미터는 된다. 그러니까 늘 평지를 달리던 감각으로 뛰다보면, 후반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게 되고 만다. 원래 나는 언덕길에 약한 편은 아닌데, 요즘에는 진구가이엔이나 쇼난 자전거 도로 같은 평탄한 코스만 달린 탓에 그 높낮이를 이기지 못하고, 35킬로미터를 지난 지점에서부터는 그만 언덕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져, 결국 오르 막길은 걷고 말았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이제부터 또 크로스 컨트리로 착실하 게 단련을 하여,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그 코스에 도전해 보고 싶다. 그러나 기록이야 어찌 됐건, 42킬로미터를 다 뛰고 난 다음에 꿀꺽꿀꺽하고 단숨에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라고나 표현해야 할 맛으로, 그 맛을 능가할 만큼 맛있는 것을 나는 달리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러니까 대게 마지막 5킬로미터쯤은 늘 '맥주, 맥주'하고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리며 달리는거 나 다름없다. 이렇게 마음 속까지 맛있어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하여 42킬로미터 라는 먼, 먼 길을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때로는 좀 잔혹한 조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정당한 거래인 듯하기도 하다. 자,이렇게 하여 일년 간 계속되었던 이 연재 컬럼도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한 동안 쉬게 되었습니다. 애독해-까지는 안되더라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자이 마 즈마루씨와 함께 또 지상에서 언젠가 뵐 날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요즘 필립 로스의 소설이 갑자기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그런 생각을 한고 있 는 건 나뿐일까? 그리 재밌다는 평판도 못 들은 것 같은데. 대담, 촌상조일당 참석자: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옵서버: 오카 미도리 때와 장소: 1986년 4월 12일. 무라카미 댁에서 대담은 청주 '은령립산'을 기울이며, 넙치, 돌돔, 새끼 방어회를 안주로 하여 진 행되었다. 조촐하지만 이노우에의 한펜과 진벽의 두부도 한몫 끼었다. 오카 미도리 씨는 쿠가야마에 사는 수수께끼의 독신 여성이다. 하루키: 음, 그러니까 오늘은 <무라카미 아사히도의 역습>의 삽화를 그려 주 신 거장 안자이 미즈마루 씨를 모시고 삽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 선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삽화 중에 제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거나, 제 방에 골프가방이니 어깨를 두드리는 기구니 하는 게 있는 그림이 있는데, 그 건 완전히 심술이죠? 미즈마루: 아니, 어흠, 그건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고, 그저 그건 하루키 씨 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시츄에이션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 절대로 할 턱이 없는 일을 슬쩍슬쩍 그림 속에다 그려 넣어 보면 재미있지 않을 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요전번에 부인한테서 들었는데, 그런 일로 제법 팬들 로 부터 문의 전화가 온다면서요? 하루키: 가끔 전화가 오는 모양이에요. '정말로 어깨 두드리는 기계 사용하는 겁니까?' 라는 등등 말이죠. 미즈마루: 놀랍군요. 그런일이 다 있다니. 하루키: 하지만 마지막 회 그림(마라톤의 세계 기록)은 친전하고 호의적인 그 림이었습니다. 미즈마루: 그건 이제 마지막이니까 하고, 음. 하루키: 음. 미즈마루: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호의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하루키: 음, 전체적으로는 물론. 그런데 말이에요, 미즈마루씨의 그림은 남자한 테 보다는 여자쪽에 호의적인 거 아닙니까? 대체로 남자한테는 시니컬하단 말이 에요. 여자한테는 약하고. 미도리: 후후후.... 미즈마루: 그런가, 그럴 리가 있나요. 아, 그렇지, 바에서 여자를 지명하는 그 림도 그렸죠. (술에 관하여1) 하루키: 아, 그 그림은 너무했습니다. '무라카미 씨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편자 가 올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면.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는 그런 짓은 안 할 거라는 이미지가 있죠. 딱히 한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닌데. 하루키: 음, 그야 물론 인간의 도리에 어긋난다거나, 윤리에 벗어난다든가 하 는 건 아니죠. 그건 그렇고, 이번 책에는 우리 마누라도 그림에 두 번 등장하지 요. 꽤나 친절하게 그린 모양이든데. 미즈마루: 곰곰 생각해 보니까 부인하고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잖아요. 그러니 까 음, 어떤 얼굴이었던가 하고 잊어 버릴 것 같을 무렵이면 우연히 만나게 되 곤 하더군요. 그러면 '무라카미 씨의 부인은 이런 사람이었군'하는 생각이 나는 겁니다. 하루키: 얼마 전 오모테산도의 '에이코'에서 딱 맞추쳤드랬죠? 미즈마루: 음, 그때는 '아니, 무라카미 씨 부인하고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바로 부인이어서... 그랬죠. 하지만 참 좋은 마누라야. 하루키: 미즈마루 씨는 정말 남의 집 마누라 칭찬을 잘 하십니다. 미도리: 후후후... 미즈마루: 하지만 귀엽잖아요. 오늘은 안 계셔서 좀 섭섭하지만.(급한 볼일이 생겨 외출을 했기 때문에 내가 손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있다.) 미도리: 미즈마루 씨가 즐겨 그리는 여자와 경향이 비슷하죠, 머리가 길고 날 씬하고. 미즈마루: 경향으로써는 말이요, 어흠. 하루키: 웨이브진 머리칼이라든가, 별로 없죠, 그러고 보면. 미즈마루: 안 그립니다, 어려우니까. 하루키: 단순히, 이유는 그것뿐입니까? 미도리: 하하하... 미즈마루: 그래요, 어려운 것은 안 그립니다. 그러니까 자전거 따위 안 그리잖 아요, 난. 기계는 안 그린다구요, 어려우니까. 하루키: 하지만 말이죠, 옛날 <아르바이트 뉴스>에 롬멜 장군 그림 그린 적 있잖아요. 그 그림 어렵지 않았습니까? 미즈마루: 그런 건 좋아해요, 제법. 나치스는, 제복 같은 걸. 하루키: 나치스와 여자를 좋아한다... 미주마루: 거의 <사랑의 폭풍>이군. 미도리: 후후후... 쿡쿡쿡... 하루키: 저 말이죠, 그림은 그때 그때에 따라 이번에는 부담 없이 하자든가, 이번에는 좀 정교하게 그려 보자든가, 그런 게 있습니까? 미즈마루: 대개의 경우 아주 즐거운 기분으로 그립니다. 무라카미씨의 원고는 대충 삼 회분 정도가 한꺼번에 내게로 오잖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삼 회분 한꺼 번에 그림을 그리죠. 소파에 드러누워 읽으면서 '아- 재밌어, 재밌어'하고 읽고 는, '어흠, 이 부분을 그림으로 해 볼까'하고 원고의 복사본에다 줄을 찍 처 놓고, 단번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렇지만 한꺼번에 건네주면 <주간 아사히> 사람, 잃어버릴 것 같아서 한 회분씩 건네주지만 말입니다. 후후후. 하루키: 저도 말이죠, 이런 원고를 쓰면 미즈마루 씨는 틀림없이 이런 그림을 그리겠지 하고 예상을 하면서 쓰는데, 그런 예상이 별로 안 맞았습니다. 미즈마루: 그렇죠... 나도 무라카미 씨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걸 대충 짐작하기도 하는데... 하지만 말이죠, 무라카미 씨의 원고는 아주 그림 그리 기가 쉽습니다. 하루키: 아, 그래요. 미즈마루: 개중에는 웬지 그림 그리기 어려운 사람도 있어요. 무라카미 씨 경 우에는, 음, 그러니까, 스스로 그림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원고 중에는 원고대 로 그림을 갖다 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문장을 읽어도 그림이 안 떠오르는 원고도 있고 말이죠. 미도리: 누굴까요? 녹음하지 않기로 하고 좀... 미즈마루: 아니 뭐, 그런 건, 후후후(하고 얼버무린다). 하루키: 그런데 미즈마루 씨 하고는 몇 번인가 콤비가 되어 일을 했는데, 주간 지의 연재 (<주간 아사히>)는 상상 외로 반응이 크더군요. 가령 거 있잖아요, 동경에 와서 미즈마루 씨라든가 <소설 현대>의 미야다 씨에게 꼬심을 당했다는 얘기말이에요(바빌론 재출현). 미즈마루: 있었죠. 하루키: 미야다 씨가 나중에 투덜거리더군요. 그런 얘기를 쓰면 주변 사람들이 흰 눈으로 본다고요. 미즈마루 씨는 그 일로 부인한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하던 데... 미즈마루: 음, 마누라도 읽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마누라의 어머니도 읽고 읽 거든요. 그런데 마누라는 제법 말이 많은 편이라서. '당신 그렇게 나쁜 짓 하고 다녀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마누라의 어머니 쪽은 과연 신중하여 '저, 무라카 미 씨가 가까이에 이사온 모양이지'라고 나한테 은근하게 얘기하는 겁니다. 하루키: 하하하... 미즈마루: 그게 더 무섭거든요, 어쩐지. 하루키: 영향을 받는 게로군요. 하지만 미즈마루 씨와 미야다씨가 함께 있으면 상당히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처럼 보인단 말입니다. 풍경상. 미도리: 후후후후. 미즈마루: 그런데 말입니다, 무라카미 씨의 얼굴 딱히 그림하고 닮았다고는 생 각되지 않는데(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화제를 바꾸는데 매우 능숙한 사람입니다), 줄곧 그러다 보면 무라카미 씨의 얼굴은 바로 이것이라는 기분이 들거든요. 웬지, 그, 점점 내 자신도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렇지만 분위 기는 드러나죠? 미도리: 물론이죠. 뭐랄까, 그... 미즈마루: 그 그림의 얼굴이 죽 무라카미 씨라는 식이 돼 버리는 거죠. 하루키: 음, 겁나는군요. 미즈마루: 그거 팔까, 인형으로 만들어서. 하루키: 아라시야마 인형, 하루키 인형하고 시리즈로 말이죠. 미즈마루: 맞았어요, 맞았어요. 미도리: 하하하...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의 얼굴은 약간 언잖은 듯한 분위기로 그러면 훨씬 좋 거든요. 틀이 딱 잡힌단 말씀이에요. 하루키: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듯한... 미즈마루: 그래요, 그래요.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얼굴. 미도리: 과연. 하루키: 하하하하하... 미즈마루 :필시 무슨 하찮은 일로 짜증을 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뭐 랄까 제멋대로 토라져 있는 듯한... 그런 식으로 약간 기분 나쁜 듯한 얼굴을, 눈 썹을 약간 구부려서 그리면 굉장히 닮았단 말씀이에요. 미도리: 흐 - 음. 하루키: 그러나 미즈마루 씨가 그리는 초상화는 남자 쪽이 여자 쪽보다 리얼 리티가 있어요. 미즈마루: 라기보다는, 뭐랄까, 남자는 조금만 비슷해도 본인이 '닮았군요'라고 말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자는 정말 비슷하지 않으면 ' 난 여기가 달라요'라는 둥 따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초상화를 보는 눈이 남 자와는 다른거죠. 따라서 좀 안 닮았어도 좌우지간 예쁘게 그린다거나, 비교적 그런 일이 많습니다. 하루키: 친절하군요. 미즈마루: 그야 물론 친절하죠. 하루키: 뭔가 흑심이 있는 거 아닙니까? 미즈마루: 그런 건 흑심이라고 하는 법이 아니예요. 미도리: 후후후... 하루키: 그러니까 요약해서 말하자면, 리얼하게 그려서 불평을 듣는 것보다는 예쁘게 그려서 좋은 일이 있는 편이 좋다는... 미즈마루: 으 - 음. 여자란 말씀이죠. 닮지 않았어도 조금 예쁘게 그려 주면, '내 얼굴이 이렇게 예뻐요'라면서. 보는 방식이 달라요(대답이 안된다). 하루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 얼굴을 그렸더라? 미즈마루: 아라시야마라든가 가와모토 사부로(1944 -, 동경 태생, 영화, 문예 평론가)라든가... 하루키: 가와모토 씨의 얼굴 그림은 본 적이 없는데요. 미즈마루: 무라카미 씨 얼굴이랑 별다를 바 없어요. 무라카미 씨와 가와모토 씨의 차이점은 말이죠, 이렇게 뒷머리를 가와모토씨 경우는 좀 길게 그리죠. 그 사람 좀 머리가 길잖습니까. 그러고는 눈썹을 약간 처진 듯하게 그리는 겁니다. 하루키: 흐음, 흐음. 미즈마루: 눈은 똑같아요. 이, 흑점. 하루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가와모토 씨와 형제입니까?'란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나는군요.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그렇군요, 함께 나란히 있으면 그렇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키: 문예 평론가는 모두 형제가 되는건 아닌지. (웃음) 그리고 코미(다나카 코미마사(1925 -, 동경 태생. 소설가))씨도 그렸죠. 야마모토 마스히로(1948 -, 동 경 태생. 요리, 연예 평론가) 씨도 그렸고. 미즈마루: 음, 마스히로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예요. 수염을 덧 그릴 뿐. 나는 대체로 초상화에는 서툴고, 그다지 그리지도 않습니다. 단 저의 경우 삽화를 가지고, 문장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말하자면 어리광이죠, 그렇게 봐 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심할 때는 화살표로 이 름을 곁들이기도 하고. 미도리: 하하하...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읽는 편도 결국은 용서하고 말죠. 미 즈마루 씨에 대해서는. 미즈마루: 그러니까 아라시야마 같은 사람은 말하죠, '난 그런 얼굴이 아닌데 미즈마루 씨가 동그랗게 그려 버려서 그렇게 돼 버렸다'고 말입니다. 자연이 예 술을 모방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전에 야마후지 씨한테 이런 말을 들었습니 다. '미즈마루 씨의 초상화는 시적 재능이 없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루키: 칭찬을 들은 거로군요? 미즈마루: 음, 글세, 어떨까?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그건 그렇고, 야마구치 시모다마루가 요전에 하루주쿠에서 무라카미 씨의 부인을 우연히 만났다면서요? 하루키: 음, 그런 얘기했더랬습니다. 미즈마루: 그런데 야마구치 씨가 '저 말이죠, 무라카미 씨 부인 있잖습니까, 내 가 저, 요코 씨 하고 말을 걸었더니, 몸을 뒤로 쭉 내빼는 거 아니겠어요'하고 한탄을 하더군요. 하루키: 마누라의 기분도 알만 해요. 깊은 이유도 없이. 미즈마루: '전 그렇게 나쁜 짓 안 하는데'라고 합디다. 했다가는 큰일이죠. 하루키: 한데, 시모다마루 군에게도 번듯하게 아이가 생겨 다행스럽습니다. 미 인 마누라와 남자 아이와 에비스의 맨션에서... 행복한 인생이라 축하해 줘야겠 어요. 축복해 주고 싶어. 미즈마루: 야마구치 코헤이라고 하지요. 하루키: 그 작자, 지금 정력제 광고 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견본을 주더군요. 미즈마루: 아, 그거 나한테도 주었어요. 하루키: 미즈마루 씨한테는 줄이는 약을 주라고 했는데... 미도리: 하하하하... 미즈마루: 일단 먹어 보긴 했는데... 미도리: 벌써 먹었단 말이에요? 하루키: 그거 일흔 살이 될 때까지 그냥 보관해 두라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뭐, 상관없겠죠. 음, 이제 슬슬 머위순 밥이 다 된 것 같으니까, 오늘은 이쯤하 고. 미즈마루: 좀더 얘기하고 싶은데. 하루키: 다음에 또 얘기하죠. 미도리: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