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서운 소년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 사가라 마끼꼬는 슈우퍼 마아켓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느때는 식료품 사입을 가정부한테 맡겨두고 있었지만, 그날은 그녀의 공휴일이라 외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끼꼬 자신이 오래간만에 찬거리를 사러 나온 것이다. 슈우퍼에서 집으로 향하는 도중 왕복 차량이 두 대가 다닐 수 있는 너비의 도로를 횡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택가 한복판을 꿰뚫는 도로이거니와, 포장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차들은 어지간히 빠른 속도로들 달리고 있다. 앞쪽 도로 곁 보도에 대여섯 명의 애들이 모여 있었다. 국민학교 4, 5학년쯤 되는 아이들이다. '우리 마사오하고 비슷한 나이또래군.' 마끼꼬는 속으로 자기의 아들과 비교하면서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를 앞지르고 한 대의 승용차가 달려갔다. 차가 아이들 가까이까지 다가갔을 때 느닷없이 한 아이가 자동차 앞으로 뛰어나왔다. '위험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은 그녀 앞에서 차는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차바퀴와 노면이 맞닿는 불길한 소리. "임마! 위험하잖아?" 운전사가 아이를 꾸짖었다. 그렇다면 무사했단 말인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눈을 뜨니, 뛰어나온 애는 길 반대편으로 무사히 건너가 입장이 난처한 듯 울고 있다. 운전사도 상대가 어린애이고 보니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달려갔다.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했지?" 아직도 두근거리고 있는 가슴을 누르며 마끼꼬는 주의를 주었다. "아, 마사오군 아주머니군요?" 아이들 속에서 이렇게 말을 걸어온 자가 있었다. 보니 마사오와 같은 학년의 오오노 소오이찌라는 아이였다. 좋지 않은 소문이 있는 애였다. "어머, 오오노군." "아줌마, 놀랐나요?" "그럼, 깜짝 놀랐다구. 심장이 멈추어지는 줄 알았지." "지금 그건 '가로지르기장난'이라는 거예요. 요새 굉장히 유행하고 있다구요." "가로지르기장난이라구?" "자동차가 아주 가까운 데까지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앞을 가로지르는 거라구요. 차 제일 앞쪽을 가로지른 놈이 일등이 되는 거예요. 지금 가로지른 나까다군은 그 짓을 못해서 비겁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방금 그렇지 않다는 걸 여러 사람 앞에서 증명해 보인 거라구요. 역시 체조박사라 하면 잘 한단 말야." 나까다군은 체조솜씨가 뛰어난 애였다. "어머나, 기막힌 장난들을--" 마끼꼬는 너무나 놀라와 잠시 멍하고 있었다. 우리집 애도 이런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앞으로 절대로 안돼요. 가로지르기장난 따위 야만인 같은 짓이야. 그런 짓 못해도 조금도 비겁하지 않아요. 만일 또다시 그런 짓하면, 선생님한테 일르겠어요." "왜 나빠요? 우리 용기를 시험해 보고 있는 거라구요." 오오노 소오이찌는 마끼꼬를 불만스러운 듯이 노려보았다. 힘께나 쓰는 애로써 클라스의 망나니였다. 부친은 마끼꼬의 남편 사가라가 경영하는 회사의 수위로 일하고 있다. "용기는 그런 짓으로 시험하는 게 아네요. 만일 말을 안들으면, 아버님한테 일르겠어." 소오이찌의 겁없는 시선은 누그러졌다. 그는 엄한 아버지가 질색인 것이다. "마마, 왜 그래?"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보니 아들인 마사오가 싱글거리며 서 있다. 최근 다니기 시작한 피아노 렛슨에서 돌아오는 도중인 모양이다. 마사오는 오오노 소오이찌와는 대조적으로 늘 클라스의 톱 자리에 서 있다. 국민학교 시절은 공부를 잘 하는 애나, 완력이 센 애가 세도를 부린다. 강경파인 소오이찌도 마사오에게 한 풀 꺾이고 있는 모양 같았다. 마사오는 오른손에 제법 큰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왼손으로 웬 허리가 굽은 노파의 손을 잡고 있다. "마사오, 그 할머니는?" 마끼꼬는 아들과 함께 있는 낯선 노파를 미심쩍은듯 보았다. "어머, 이 아기의 어머니슈? 이 근처에 있는 집을 찾아오다가 이 도령한테 길을 물었더니 글쎄 데려다 주겠다고 여기까지 짐을 들어다 주지 않았겠수? 정말 친절한 아기에요." 노파는 주름 투성이 얼굴 가득히 감사의 뜻을 띄우고 고개를 연거푸 숙였다. "어머나, 그랬었군요? 애가 도움이 돼드릴 수 있어 저 역시 기쁘군요." 다른 아이들의 악질적인 장난을 꾸짖은 직후였던 만큼 마끼꼬는 자랑스러운 심정이었다. '역시 우리 애는 달라.' 그녀는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아들의 선행이 거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행해진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아, 이 자리에 학교 선생님이라도 지나가 주었으면.' 마끼꼬는 오히려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도 우리 마사오를 좀 본받으려무나.' 마끼꼬는 악동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이제 알았겠지?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장난 하면 못써요." 마끼꼬는 아이들에게 못을 박아 놓고 마사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노파와 헤어지자, "마마, 대체 왜 그래?" 마사오가 질문을 되풀이했다. "방금 오오노군들이 글쎄 가로지르기 장난을 하고 있었다구요. 마사오는 설마 그런 장난 안할테지?" "마마, 그게 정말이야? 요새 유행하고 있지만, 우리 선생님이 절대로 해선 안된다고 그러셨어. 좋아 내일 학급위원회에서 말해 줘야지."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오오노군이 마사오를 못살게 굴지 않을까?" 마끼꼬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그애에게는 어린이답지 않은 음험한 것이 느껴진다. 어른의 주의를 받고도 불만스러운 듯이 노려보던 그 겁없는 얼굴. 그것은 국민학교 4년생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기막힌 아이가 찬바람도 쏘이지 않게 키우고 있던 마사오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무슨 짓을 할는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의 그것보다도 잔학한 데가 있다. 그들의 잔학성은 태어나면서 지닌 그대로이다. 가장 약한 자를 언제나 따돌리고 학대한다. 어린이 세계의 서열은 어른의 사회보다도 엄하고 철저하다. 아무리 학대를 당해도 부모나 선생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뒤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어른들 빰치는 협박이나 공갈이 어린애 세계에서는 그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마사오가 설마 그런 따돌림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상대가 보통 어린이의 척도로는 헤어릴 수 없는 오오노 소오이찌이고 보니 근심이었다. "마마는 그런 근심을 하고 있수?" 마사오가 웃었다. "하지만 오오노라는 애 무섭잖니?" "무섭다구 해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걸 보고도 잠자코 있으면 안된다구. 아무리 센 상대라도 나쁜 짓은 용서치 않는 게 용기 아뉴?" "그래, 맞아요. 그게 참된 용기란다." 그것은 가로지르기놀이의 만용과는 질이 다른, 사나이의 참된 용기이다. 그것을 우리애가 가지고 있다. 마끼꼬는 마사오를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느꼈다. 오오노 소오이찌가 불량소년으로 마아크된 최초의 사건은 반 년쯤 전에 일어났다. 소오이찌가 하급생을 괴롭히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사가와 히도미라는 같은 학급의 여생도가 선생에게 그 사실을 일렀다. 선생은 소오이찌를 불러 꾸짖었다. 그런데 그 때 그만 사가와 히도미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만 것이다. "앞으로는 하급생을 때리지 않겠어요." 소오이찌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사과했다. 며칠이 무사히 지났다. 그 며칠 뒤 사가와 히도미가 귀여워하고 있던 고양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히도미는 어두워질 때까지 찾아다녔으나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근처 단지에 있는 소각로로 쓰레기를 태우러 간 한 주부는 아궁이 문을 열자 상자 나부랭이가 잔뜩 쳐박혀 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반드시 그 때마다 불살라 버리도록 되어있다. 단지의 규칙으로 야간에는 태울 수 없기 때문에 간혹 내막을 잘 모르는 입주자가 그대로 쓰레기를 놓아두고 가는 일이 있다. 이렇게 되면 뒤에 온 사람이 낭패를 보는 것이다. 주부는 투덜대면서도 자기가 가지고 온 쓰레기와 함께 태워 버리기로 했다. 그녀는 불을 지폈다. 종이뿐이기 때문에 이내 불이 힘차게 타올랐다. 아궁이문을 닫고 돌아가려고 했을 때 무서운 비명이 일어났다. 이어 아궁이 안에서 무언가 날뛰는 기척이 났다. 주부는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순간 아궁이 안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명과 날뛰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동물이 산 채로 불태워지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아궁이는 한창 타오르고 있는 판이라 주부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참 뒤에서야 근처 사람들을 불러모아 아궁이를 가까스로 열었다. 동물성의 알퀴한 고약한 냄새가 쏟아져나왔다. 주부들 가운데에는 가슴을 움켜쥐고 도망치는 사람조차 있었다. 소각로 안에는 절반쯤 타다 남은 고양이의 시체가 있었다. 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탄화(炭化)까지 되지는 못했다. 무참한 외형으로도 히도미의 고양이로 판정되었다. 단지 입주자 중에 어젯밤 소각로 근처로 어슬렁대던 오오노 소오이찌의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다. 의당 소오이찌가 고양이를 잡아다가 꼼짝 못하게 잡아매어 아궁이 안에 쳐넣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난 몰라요." 하지만 그는 태연히 부정했다. "정말 거짓말을 않고 있다면,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라구." 소오이찌는 태연히 선생의 눈을 보았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선생쪽이었다. 마끼꼬는 그 사건이 생각나기에, "마사오, 오늘 학교에서 오오노군하고 나까다군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니?" 이렇게 물어 보았다. "그래. 오늘이 아니면 요새 싸움을 한 일 없느냐구?" "아, 생각나요." 마사오가 무언가 생각난 듯한 얼굴을 했다. "왜 그러니?" "오오노가 청소당번을 빼먹은 걸 나까다가 선생님한테 일렀기 때문에 오오노 녀석 아단맞고 있었다구." "어머, 역시 그렇구나." "뭐가 그렇단 말야?" "아, 아무 것도 아냐. 너 오오노하고 놀면 안된다." "오오노하곤 반이 틀리니까 같이 놀 수 없는걸." "같은 반이 되더라도 놀면 안돼요." "왜 그래? 엄마." "왜라니? 엄마 말대로 해요." "알았어. 엄마 이상하다." "지금 얘기 오오노한테 하면 안된다." 마끼꼬는 참으로 무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오오노 소오이찌는 청소당번을 빼먹은 사실은 젖혀 놓고 고자질한 친구를 원망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위험하고 음흉한 보복을 하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 나까다군은 무사했지만, 만일 그 애가 차에 치이기라도 한다면, 교묘하게 짜여진 살인이 아닌가? 게다가 그것을 국민학교 4학년생이 짜낸 것이다. 미성년인 어린애가 범인인 이상, 설령 살인범이 드러나 보았자 책임을 추궁할 수도 없다. 오오노 소오이찌는 그것까지 계산에 넣고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장례가 들여다보이는 무서운 아이이다. 마끼꼬는 그날밤 마사오가 잠든 뒤, 오오노 소오이찌의 부친에 대해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진지한, 책임감이 강한 사나이라 일을 잘 한다구. 왜 오오노가 어떻게 됐나?" 마끼꼬는 그의 아들인 소오이찌에 대해 이야기했다. "좀 문제아로군.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누구나 다소 그런 잔인한 면이 있게 마련이라구. 나 역시 개구리니 도마뱀 따위를 곧잘 해부하곤 했지. 그렇게 신경을 안써도 아마 괜찮게 될거야." "개구리나 도마뱀을 죽이는 것하곤 뜻이 달라요. 그 애한텐 살의가 숨어 있었는지도 몰라요." "이 사람, 살의라니. 그건 오우버 센스야. 아마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런 꼴이 돼버린 사실이 어린아이 성격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테지만 말야." 남편은 엽차를 마시면서 마끼꼬를 나무랐다. 소오이찌의 부친 오오노는 전에 택시운전사였는데, 충돌사고가 일어나 다리병신이 되었다. 그것을 딱하게 생각한 마끼꼬의 남편 사가라가 자기 회사에 수위로 채용해 준 것이다. 수위라고는 해도 회사 안의 보안은 계약 가아드맨에게 일임하고 있는만큼 간단한 안내나 접수사무 뿐이었다. 오오노의 입장에서는 사기라에게 채용되지 않았으면 일가가 길거리에서 헤매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사가라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오오노의 근무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다른집 애 근심보다도 마사오는 어떻소?" "그 애는 손톱만큼도 걱정없어요. 너무 훌륭해서 되려 근심이 될 정도군요." 마끼꼬는 낮에 마사오가 노파를 보살펴 준 이야기를 했다. "허어, 그랬었군?" 남편은 만족한 듯이 끄덕였다. 비지니스에는 수완가인 그도 외아들에게 약해지는 것이다. 나이또오 히로시의 열대어는 유명했다. 자택에 커다란 수조를 만들어 놓고, 엔젤휘쉬, 굿삐, 블랙 테트러, 스마트라 따위 초심가에게 맞는 열대어를 키우고 있는데, 서어머스탓트, 에어펌프, 휠터를 설비하고, 수조 안에는 각종 물풀을 배치하는 한편, 먹이도 생사료, 건조사료, 배합사료 등 밸런스를 생각하며 주고 있는 실정이라, 참으로 국민학교 생도라고는 할 수 없는 취미였다. 나이또오의 클라스에서도 몇 마리의 엔젤휘쉬와 굿삐를 기르고 있는데, 이 역시 그가 기증한 것이다. 먹이는 물고기당번을 정해 놓고 교대로 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이또오가 가장 열심히 보살피게 마련이었다. 먹이도 나이또오가 만든 것을 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물고기당번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나이또오 히로시가 가져온 먹이보다 오오노 소오이찌가 가져온 쪽을 물고기가 즐겨 먹게 된 일이다. 오오노의 먹이는 배합사료였는데, 시판되고 있는 것과도 달리, 그가 독특하게 배합해서 만든 모양이다. 이것을 주게 되면서부터 물고기의 발육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클라스 아이들의 소오이찌를 보는 눈이 달라져 왔다. 그의 그 때까지의 이미지는 매우 나쁘다. 현대의 아이들은 작은 어른이며, 클라스의 등급은 완력에서 테스트 성적으로 옮아갔다. 그저 완력만을 과시할 뿐, 테스트가 하위의 거치른 아이는 비록 두려워들은 하지만, 클라스 전체로부터 경멸되고 소외된다. '작은 어른의 사회'에 있어서는 테스트 성적 다음에 무언가 특기를 지닌 자가 존중 받는다. 엎드려뻗쳐 운동이 가장 센 아이, 동물에 강한 아이, 곤충에 강한 아이, 마라톤에 강한 아이들이 한쪽 분야의 권위였다. 나이또오 히로시는 물고기박사의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 분야의 권위자였다. 그런데 오오노 소오이찌가 그 이상의 우수한 배합사료를 '발명'한 뒤로 그의 권위인 박사호를 소오이찌에게 빼앗기게 될 판국이었다. 의당 히로시는 명예를 만회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고생해서 새로 배합한 사료를 갖다 주어도 물고기들은 오오노 소오이찌의 먹이쪽으로 몰리는 것이다. "오오노, 정말 근사하구나." "그 사료, 어떻게 만들었니?" "좀 가르쳐줘." "오오노가 열대어 사료를 만드는 박사인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젠 오오노가 물고기박사야." 이제껏 클라스에서 소외되고 있던 소오이찌에게 갑자기 인기가 집중되었다. 그런 모양을 히로시는 그저 입술을 깨물며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고기 박사인 그로서는 그 이상의 굴욕은 없었다. 며칠 후, 하교길에서 나이또오 히로시는 오오노 소오이찌를 만났다. 두 사람은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등하교때 길에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소오이찌는 히로시의 뒤를 쫓아온 모양이었다. "나이또오, 할 얘기가 있다구." 그는 주위에 같은 클라스의 생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나한테 볼 일이 있다구?" 히로시는 겁을 집어먹고 물었다. 그는 소오이찌가 싫었다. 자기의 영역으로 침략해 들어왔기 때문만은 아니고, 태권도 솜씨 따위를 자랑하며 완력으로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는 그에게 전부터 야만인 같은 혐오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국민학생의 세계에도 폭력이 활개를 칠 여지는 없어져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짓을 하려고 드는, 마치 동물적 인간을 보는 것 같은 공포감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봐, 너한테 내가 만든 금붕어 먹이를 줄까?" "뭐라구?" 순간 나이또오 히로시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사실은 말야, 난 과히 금붕어--가 아니고, 그 열대어 말야, 흥미가 없다구. 이 사료도 사실은 말야,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이웃에 살던 대학생 아저씨가 만들어 준 거라구. 그래서 난 만드는 법을 몰라. 그 아저씨, 이사해 버렸거든. 그래서 인제 사료를 만들어 달랠 수 없게 됐다구. 이거 다 없어지기 전에 너한테 줄려구 가져왔어. 넌 물고기박사니까 똑같은 걸 만들 수 있잖아?" 소오이찌는 그러면서 봉투같은 모양의 비닐 봉지에 든 사료를 내밀었다. "정말 받아도 되는 거니?" 느닷없는 호의에 히로시는 어리둥절했다. 하기는 몇 번이나 소오이찌에게 사료를 나눠 달래야겠다고 벼르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프라이드가 허락하지 않았다. 소오이찌에게 사료를 받는 것은 물고기박사의 권위를 버리고 전면적으로 항복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 판인데, 저쪽에서 받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게다가 상대방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 말을 걸어온 것이다. 히로시는 소오이찌가 무언가 함정을 파려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졌다. "그렇지만 이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구. 사료를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창피하단 말야." 소오이찌의 말투는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참된 심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히로시는 그제서야 경계심을 풀었다.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곤란한 것은 오히려 히로시쪽이다. 그런데 그것을 소오이찌한테서 발설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야말로 안성마춤이었다. "이렇게 많이 받아 미안한데." "괜찮아. 난 이제 금붕어 따윈 질렸다구. 그럼 잘 가라." "빠이빠이, 고맙다." 히로시는 의기양양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그의 물고기박사로서의 권위는 유지될 것이다. 느닷없는 침입자는 히로시의 영토에 흥미를 잃고 사라져 버렸다. '소오이찌에게 받은 사료를 참고로 해서 좀더 좋은 사료를 만들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야지.' 히로시의 가슴은 저절로 마냥 부풀었다. 이변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히로시! 큰일났다. 물고기가 모두 물에 떠 있어." 아직 잠자리 안에 있던 히로시는 모친의 비명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잠자리에서 졸고 있던 그는 모친의 목소리를 듣고 뛰어일어났다. 수조 곁으로 달려가보니, 그의 보물인 열대어가 모두 배를 보이고 물 위에 떠 있었다.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마마! 어떻게 된 거야?" 히로시는 얼굴이 창백해서 울먹였다. "마마 역시 모르겠어요. 히로시, 어제 뭔가 나쁜 것이라도 먹인 게 아니니?" 모친의 목소리도 겁을 먹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나쁜 것 주지 않았다구. 언제나 주고 있는 먹이 밖에--" 그러다가 히로시는 긴장했다. 사료는 하루에 세 번 정도, 10분쯤 걸려 먹을 수 있는 분량을 주고 있는데, 어제 마지막 사료로 오오노 소오이찌한테 받은 것을 사용한 사실이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나쁜 것이 섞여 있었다면, 그 사료 이외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사료는 이제까지 학교의 물고기가 그렇게 잘 먹고 있었는데--' 그 사료와 소오이찌가 준 사료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히로시는 소오이찌의 말만 믿고 받은 것뿐이다. '그 사료 안에 만일 소오이찌가 독물을 섞어 놓았다면?' 히로시의 머리 속에서 무서운 연상이 치달았다. '하지만 왜 소오이찌가 그런 못된 짓을?' 생각되는 것이 있었다. 히로시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괴물도감을 소오이찌가 빌려달라고 했었다. 그 도감은 고릴러나 안기라스에서 최근의 괴수에 이르기까지, 울트라맨, 미라맨, 가면라이더 등이 항목별로 신장, 체중, 탄생지, 무기 등의 상세한 해설이 적혀 있다. 아이들로서는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절판이 되어 있어, 헌책가게에서라도 찾아내기 전에는 구할 수가 없다. 그것을 소오이찌는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에게 빌려주면, 언제 돌려줄지 모른다. 그에게 책이나 학용품을 빌려준 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숱하다. 그런 위험인물에게 자기의 보물을 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히로시는 딱잘라 거절했다. 아마 그 때의 일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이런 무서운 보복을 해온 것이다. '그렇다. 소오이찌가 공짜로 사료를 줄 리가 없다. 사료와 교환조건으로 도감을 빌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분좋게 사료를 주었다.' 그 때 사료 안에 무언가 나쁜 것은 없는지 살펴봤어야 하는건데, 하고 후회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귀중한 물고기는 몰살을 당한 뒤였던 것이다. "개자식! 오오노 새끼, 오오노 이 개새끼, 그런 놈은 뻗어 버려라!" 발을 구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히로시에게, "오오노가 어쨌길래 그러니?" 이렇게 모친이 물었다. 히로시는 어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이 문제는 그대로 넘겨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짓치고는 너무나도 악질이다. 그녀는 마침 일어나 나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히로시, 오오노한테 받은 사료 아직도 남아 있니?" 부친은 과연 사태를 침착하게 보았다. 그는 아들에게서 그 증거품을 회수하자 그것을 가지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도 깜짝 놀랐다. 설마하고 생각하면서도 이과교사가 사료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일반적인 사료에 섞여 스미치온이라는 유기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살충제로 사용되는 비교적 저독성의 농약이지만, 델리게이트한 열대어에게 사료와 함께 주었다가는 끝장이 날 것은 분명했다. 학교측도 사태를 중시했다. 동급생의 열대어에게 농약이 섞인 사료를 주어 독살을 꾀했다는 것은 도저히 어린아이의 지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료에 맛을 보고 주는 수도 있는 만큼, 자칫하면 사람의 입에 들어갈 염려도 있다. 교장과 교감, 그리고 담임교사는 오오노 소오이찌를 불러 엄중히 조사했다. 그러나 소오이찌는 태연하게 부정했다. "난 나이또오군한테 사료 같은 것 준 일 없어요." 소오이찌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이또오보다 좋은 사료를 만든 게 아마 굉장히 화가 났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괜히 거짓말을 꾸며낸 거예요." 이렇게 주장을 하고 나오니, 그가 나이또오 히로시에게 사료를 넘겨주는 것을 본 사람이 없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학교측은 부득이 아직 남아 있다는 문제의 사료를 소오이찌에게 제출케 했는데, 물론 거기에는 독물 따위는 없었다. 소오이찌는 나이또오 히로시에게 준 사료에만 농약을 넣은 의심이 농후했지만,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나이또오 히로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오오노 소오이찌의 새로운 사료 때문에 그의 물고기박사로서의 권위가 떨어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소오이찌가 주장한 대로 히로시가 질투하고 있었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선생들도 난처했다. 소오이찌에 대한 의심은 농후ㅎ고, 학교측도 그의 짓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데 경솔한 말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사건은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오노 소오이찌의 '무서운 아이'라는 이미지는 선생들 사이에 정착된 것이다. "엄마, 어디 갔었수?" 외출에서 돌아온 마끼꼬를 뜰에 있던 마사오가 재빨리 알아냈다. "어머, 오늘은 일찍 왔구나?" 오늘은 일주일 중에서 수업시간이 가장 많은 날이라고만 믿고 있던 마끼꼬는 약간 놀라면서 아들을 보았다. "갑자기 선생님 연구수업이 있게 됐다구. 마마, 어디 갔다 왔어?" "물건좀 사러갔다 오는 길이야. 그런데 그 꼴이 뭐니? 흙투성이 아냐?" "무덤을 만들고 있다구." "무슨 무덤? 이상한 걸 묻으면 안돼요." "열대어야." "열대어?" 그 때 마사오와 함께 구덩이를 파고 있던 친구도 이쪽을 보았다. "어머, 나이또오군."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나이또오가 기르던 열대어가 모두 죽었잖아?" "알고 있어요." '오오노군이 독을 넣었잖아?' 이렇게 말하려다가 가까스로 꾹 참았다. "나이또오네 집은 아파아트 아냐? 뜰이 있어야지. 들판에 묻는 것은 싫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집 뜰을 빌려준 거라구." "아주머니, 미안합니다." 나이또오 히로시가 꾸뻑 절을 했다. 마끼꼬는 자기 아들이 친구와 물고기를 위해 무덤을 제공해 주고 있는 상냥한 심정이 기뻤다. "아냐. 괜찮아요. 아주 훌륭한 무덤을 만들어 줘라." 마끼꼬는 흐뭇해서 끄덕였다. "엄마한텐 말 안했지만." 마사오가 우물우물 말했다. "왜 그러니?" 복도쪽으로 가려다가 마끼꼬는 멈추어 섰다. "저어--" "왜 그러냐니까? 정말 이상하구나. 어서 말해봐요." 외출시간이 약간 길어졌으므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의 준비에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다. "사가와가 키우던 고양이 있잖아?" "고양이가 어찌 됐길래?" 분명히 그 고양이도 오오노 소오이찌가 태워 죽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지껏 말 안했지만, 그 고양이도 여기다 묻어 줬다구. 사가와네 집도 아파아트기 때문에 내가 무덤을 제공해 준 거야." "어머나?" "엄마, 잠자코 있어서 미안해. 하지만 고양이는 기분나쁘게 생각할까 봐서, 그랬어." "좋아요. 용서해줄께. 그렇지만 앞으로는 엄마한테 얘기해야 돼요. 그런데 참 고양이 옆에 물고기를 묻으면, 먹히지 않겠니?" "정말 그렇구나? 하지만 조금 떼어놓고 묻었으니 괜찮을거야." "다 묻고 나거든 간식을 먹으러 와요. 손을 잘 씻고 말야." 고양이를 묻었다니 약간 기분이 언짢지만, 마끼꼬는 흐뭇한 심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열대어 소동이 있은 지 석 달 가량이 지났다. 해가 바뀌자 겨울형 기압배치의 날이 이어져, 간또오지방의 비 한 방울 안온 날은 60일이나 넘게 되었다. 공기는 너무나 건조해져 매일같이 화재가 발생했다. 그것도 하루에 몇 건씩 발생한다. 공기의 건조상태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느낌마저 들을 정도였다. 방 안을 걸어다니기만 해도 몸에 정전기가 축적되어, 금속에 닿을 때마다 퍽하고 방전한다. 몸에는 비록 해롭지 않다고는 해도 기분나쁘기 짝이 없다. 마끼꼬가 살고 있는 지역은 도심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사철연선으로서, 2,3년 전만 해도 아직 무사시노의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최근에는 단지나 공장이 진출해 들어와 시가지로서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다. 이 지역에도 이상건조 때문에 매일 화재가 일어나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었다. 일단 불이 나면, 건물이 건조해 있어,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버린다. 소방차가 달려올 무렵에는 볼길의 확대를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민들은 불을 내면 마지막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주민들의 불안에 기름을 뿌리는 것 같은 악질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 다섯집에 각기 엽서가 배달되었다. 거기에는 국민학교 생도가 쓴 것 같은 유치한 글씨로 '화재를 위안합니다.'라든가, '불조심'이라든가, 혹은 '불씨에 부디 조심하시라.'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글귀로 보건데 흔히 있는 화재위안이거나, 화재예방을 강조한 엽서이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다. 처음에는 엽서를 받은 사람들도 과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누군지 이상건조하의 주의를 강조하는 것 정도로 예사로 넘겼다. 그런데 그로부터 2,3일 간격으로 같은 내용의 엽서가 연거푸 배달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제서는 이상히 여겼고, 공연히 불안해졌다. 연일 화재가 일어나고 있는 판국이라 주민들이 불안히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대체 이게 무슨 장난이지?" 특히 '화재발생을 위문합니다.'라는 엽서를 받은 사람들의 불안은 컸다. 이 말은 결국 현실적으로 불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불을 질르겠다는 예고가 아닐까?" 이런 불안을 품게 된 사람들은 그 엽서를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경찰도 장난치고는 지나치게 악질이라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소인의 발신지는 이 지역 관할우체국이다. 만일 범인이 우정 이 지역까지 와서 부친 것 이 아니라면, 근처 사람의 소행이라는 것이 된다. 이어 필적이 문제가 되었다. 매우 유치한 필적인 데다가 오자가 두 개나 있었다. 필적을 속이고자 특히 글씨를 바꾸어 쓴 상황은 엿보이지 않는다. 필적전문가 역시 이렇게 감정했다. "국민학생이 쓴 것 같은 글씨인데, 혹시 정말 국민학생이 쓴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이 생겨났다. 이렇게 생각하니, 유치한 오자도 납득이 간다. 엽서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없는가가 조사되었다. 그 결과 엽서를 받은 집의 애들이 모두 같은 국민학교 4학년생이며, 같은 학급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엽서의 글씨가 그 클라스 전 생도의 필적과 비교되었다. 글씨는 오오노 소오이찌가 쓴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오오노가 불리웠다. 아직 열 살짜리 국민학교 생도인 만큼 취조도 신중하다. 그러나 소오이찌는 태연하게 요즈음 화재발생이 잦아, 동급생의 집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엽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럼 왜 네 이름을 적어 넣지 않았지?" "여자애들 집이기 때문에 창피해서 그랬어요." "왜 몇 번씩 보냈지?" "매일 불이 일어나 근심이 돼서 비가 올 때까지 계속 할려구요." 이렇게 되고 보니, 상대가 어린아이기도 하고, 악의의 증명이 힘들었다. 엽서의 글귀로 보건대도 극히 흔한 화재위안편지라고 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오오노 소오이찌는 평소 호의를 품고 있던 여생도에게 자기의 호의를 암시하기 위해 엽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좀 조숙하기는 하지만, 국민학생의 의사표시로서는 충분히 생각될 수 있는 일이였다. 그것에서 협박의 고의를 찾아내기란 지난한 일이다. 또한 가령 협박이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당자는 16세 미만이므로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다. "만일 오오노가 이만한 법률 지식을 알고 협박한 것이라면, 정말 대단하군." "설마하니 그렇기야 할라구. 국민학교 사학년짜리야. 우리집에도 같은 나이의 꼬마녀석이 있지만 매사에 아직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구." "여생도한테 보내는 러브레터 대신 화재위문편지를 보냈다니, 정말 무서운 애구먼." 범인은 판명되었으나, 경찰은 범죄의 존재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5명의 여생도가 선생에게 호소했다. "오오노군은 우리보고 이과 노우트를 빌려달라고 했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빌려주면 안 돌려줄 것 같아, 주지 않았어요." "오오노군은 아마 그 일 때문에 그런 장난을 한 거예요." 여기에 협박의 동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쩌는 수가 없었다. 여생도들은 모두가 그 학급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그녀들의 노우트는 다른 남생도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오오노 소오이찌가 그 사실에 대한 보복을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을 화재위문편지와 연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선생이나 학부모들은 오오노 소오이찌에 대해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애는 악의 천재야." 어떤 선생은 이렇게 분명히 말했다. 아무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멀잖아 기막힌 사건을 일으키겠는걸." 학교측은 마치 폭탄이라도 안고 있듯이, 오오노 소오이찌를 대하고 있었다. "앞으론 지금처럼 자주 만날 수 없다구." 땀을 비오듯 쏟으며 서로 엉켜 만족을 나눈 몸에서 땀과 쾌감의 여운이 가신 뒤의 나른한, 그러나 도취에서 깨어난 목소리로 마끼꼬는 말했다. 암컷의 욕망을 채운 뒤에는 이내 모친과 아내로서의 의식이 되살아났다. "왜요? 주인이 눈치를 챘나요?" 행위가 끝난 뒤에도 미련이 가득한 눈으로 마끼꼬의 풍만한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사나이가 물었다. "그게 아네요. 마사오를 속일 수 없게 됐다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가슴에 매달려 있던 아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근래 갑작스럽게 어른스러워져 여러 가지를 알게 됐다니까. 일전에 당신을 만나고 돌아갔을 때도 '마마, 요즘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어.' 이러는 통에 깜짝 놀랐다구." "별다른 뜻 없이 말했을 거예요." 남자는 이 여자가 갑자기 자기에게서 물러서 버릴 경우의 일을 생각했다. 이제껏은 이 맛있는 육체가 찾으면 찾는 그만큼 얼마든지 기분좋게 주어졌다. 무료는 고사하고 실컷 먹고 난 뒤 그쪽에서 용돈까지 주었다. "그렇치 않아. 그 애 분명히 이상히 여기고 있다구. 어디 갔었느냐구 꼬치꼬치 캐묻는다니까. 슈우퍼나 미장원 핑계로는 안 통한다구. 얼마 전에도 미장원에 갔다온다고 했더니, 헤어 스타일이 똑같다는 바람에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지 뭐야?"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구요." 사나이는 어떻게 해서든 마끼꼬의 불안을 씻어 주고 싶었다. "난 말야, 마사오가 당신과 내 관계를 아무래도 눈치채고 있는 것 같이 여겨져. 그래서 도무지 불안한 거라구." "온, 별 말씀을. 국민학교 사학년짜리라구요." "전엔 남편 앞에서 흔히 당신 얘기를 했었는데, 근래에 와선 전혀 한마디도 않게 됐다구. 부자연스럽잖아? 똑똑한 애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린애란 금새 싫증이 나버리게 마련이라구요. 마사오군한테는 난 이미 과거의 인간이니까요. 그보다도 부인, 한 번만 더 해도 되잖아요?" 말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 남자는 욕망이 부채질된 모양이다. 마끼꼬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던 손에 힘이 가해졌다. "오늘은 안돼. 슬슬 가봐야 한다구. 오늘은 마사오가 일찍 돌아오는 날이야." "곧 피아노를 배우러 갈 게 아닙니까?" "오늘은 선생이 여행을 가서 쉬는 날이라구요. 그래서 다른 날에 보자고 했더니, 당신이 도통 말을 안 들어주잖아?"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요." "앞으론 너무 고집부리면, 그만 작별인사를 해야 된다구. 아무튼 오늘은 이제 그만이야." 마끼꼬는 사나이에게 틈을 주지 않고자 침대에서 빠져 나오자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사나이의 몸 밑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던 요염한 여인의 살갖이 순식간에 정숙한 아내의 위장으로 가리워져간다. 채비를 끝나면, 이미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눈뜬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나이는 자기의 팔 안에서 이내 멀어져가는 여자의 변신하는 모양을 미 련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부인, 이번엔 언제 만나 주시겠읍니까?" "내쪽에서 연락해 줄께. 당신쪽에서 연락하면 절대로 안 된다구. 내 주위엔 많은 눈이 빛나고 있으니까 말야. 자아, 어서 돌아갈 준비를 하라구. 차를 탈 수 있는 데까지 당신 차를 타고 갈 테니까." 마끼꼬와 사나이의 사이는 2년째이다. 젊은 사나이의 체력은 참으로 우람스러워, 일에 쫓기는 남편이 미처 가라앉히지 못하는 무르익은 여자의 몸의 욕망을 꺼주는 절호의 핀치히터였다. 처음 젊은 사나이는 자기의 욕망본위로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작용했다. 그래서 단단히 다짐을 받고 시작한 불장난이거니와, 그 점 상대는 계약정신이 발달해 있어 육체의 대차관계로서 끝내 주었다. 사나이는 경제적으로 궁해 있었다. 속성에 관계없이 더불어 즐긴 이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이 육체의 손료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데이트의 비용은 모두 마끼꼬가 부담한 데다가 교섭 때마다 사나이에게 돈을 지불했다. 그것은 손료인 동시에 그녀의 안전의 보장료이기도 했다. 사나이는 계약을 지켰다. 육체의 대차관계 이상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도 그 편이 좋았던 것이다. 마끼꼬 덕분으로 같은 나이또래의 사나이들이 빠지는 격렬한 성적 기아도 없다. 노상 충분히 채워지는 데다가 용돈마저 듬뿍 받을 수 있다. 그의 동료 중에는 생활을 위해 클럽에 나아가 여자한테 몸을 팔고 있는 자도 있다. 돈을 위해서는 이것저것 가려서 상대할 수도 없다. 이런 것에 비해 그의 경우는 매우 질이 좋은 여체를 포식하는 것으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관계는 없었다. 그는 마끼꼬를 만날 때마다 조금도 돈에 묶인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즐거움과 욕구로서 만나고 있었다. 정신이 따르지 않는 육체만의 대차관계치고는 기막히게 즐거운 데이트가 벌써 2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이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껏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던 것이 일정해지지 않게 된 것이다. 마끼꼬의 형편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데이트 날짜나 시간을 일일이 서로 연락하지 않아도 정해진 날, 정해진 장소로 가 있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끼꼬쪽에서 종종 안 나타나게 되었다. 본인은 나오고 싶지만,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외아들 마사오가 커져, 정기적으로 부친이 없는 시간을 노려 외출하는 모친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습소나 학교육성회 모임에도 시간을 빼앗기게 되었다. 튼튼한 보좌역할을 하는 사람이 생겨,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불어났다. 이런 여러 사정이 합쳐져 두 사람의 비밀데이트 시간을 침범해온 것이다. 이리하여 수요공급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마끼꼬에게 있어 사나이는 어디까지나 남편의 대용물이다. 마네리즘에 빠지기 쉬운 부부생활에 자극을 주기 위한 액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를 만나는 횟수가 좀 줄었다고 해서 이내 욕구불만이 되는 일은 없다. 이에 비해 사나이는 마끼꼬 밖에는 욕망의 돌파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에게서 차단되면, 단숨에 심한 성적 기아로 굴러 떨어진다. 그것은 동시에 그의 경제위기마저 초래한다. 그들의 안정된 계약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 이 사람과도 헤어져아 할 때다!' 마끼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돌이켜보건데 굉장히 즐겼다. 그에게는 남편같은 교묘하고 소프트한 기교는 없었지만, 퍼내도 한이 없는 샘같은 체력으로, 자기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여자의 관능의 불길을 어지간히 가라앉혀 주었다. 그러나 그 쾌감에 취해 언제까지나 욕심을 부리고 있다가는 언제 꼬리를 잡히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현재라면 남편도 눈치를 못채고 있고, 즐거운 추억만을 남기고 헤어질 수 있다. '정말 이제 그 때가 온 거야.' 마끼꼬는 생각했다. 이곳은 노상 이용하고 있는 모텔이다. 차를 탄 채로 그냥 드나들 수가 있고, 종업원과 얼굴을 대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어, 처음부터 줄곧 이용하고 있다. 지불은 미터에 표시되는 금액을 슈터에 넣으면 된다. 남의 눈을 피하는 정사를 위해 설계된 것 같은 설비였다. 모텔에서 만난 그들은 한껏 욕정을 풀고는 차를 잡을 수 있는 곳까지 사나이의 차로 함께 간다. 모텔로 차를 부르는 것보다도 그 편이 안전하다고 마끼꼬는 믿고 있다. 사나이의 차를 타고 있어도 별로 이상한 것은 없다. 요는 모텔에 드나드는 현장을 발견당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요 앞 다리 앞에서 내려 줘요." 잠시 뒷좌석에 앉아 있던 마끼꼬는 모텔을 나선 자동차가 안전권에 마침내 닿았다고 보고 윗몸을 일으켰다. "뭔가 사고가 있었던 것 같군요." 다리 앞쪽에 경찰백차와 구급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담 좀 곤란한데." 마끼꼬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럼 다리 지나서 세워 줘요." 이렇게 고쳐 말했다. 별로 경찰에 대해 떳떳치 못한 짓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남편의 눈을 속인 불륜 뒤 경찰관의 시선에 닿는 것은 저항이 있다. 사나이 역시 마찬가지였던지 스피이드를 더 냈다. 오오노 소오이찌는 아까부터 추운 다리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만간 한 대의 차가 올 것이다. 파란색의 칼로라, 차번호도 알고 있다. 절대로 잘못 알아서는 안되었다. 하기는 목표를 삼고 있는 자동차가 접근하면 연락이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 그의 눈 밑에는 끊임없이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온갖 차종과 형형색색의 보디컬러, 다리 위는 한산한데 비해 차도는 간단없이 움직이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차가 저절로 흘러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이따금 다리를 건너가는 통행인도 소오이찌에게 하등 주의를 하지 않는다. 차를 좋아하는 국민학교 생도가 다리 위에서 열심히 통행차를 관찰하고 있는 줄로 알았을 것이다. "여보세요, 차가 왔다. 파란 칼로라, 번호는 XXX, 지금 다리로 간다, 오버!" 느닷없이 그의 목에 늘어뜨린 작은 기계가 속삭였다. 그것은 휴대용 트랜시버였다. "오우케이." 소오이찌는 대답하고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손에 들었다. 마끼꼬가 탄 차는 다리로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은 문득 다리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경찰의 눈을 피해 시이트에 몸을 쓰러뜨리고 있는 자세였기 때문에 다리 위까지 보인 것이다. 그 크기와 모양으로 미루어 어린아이 같았다. 차는 그 아이가 서 있는 바로 밑을 향해 나아갔다. 마끼꼬의 시선에서 어린아이가 사라져 가려고 한 순간, 어린애의 손에서 무엇인지 작은 검은 물체가 튕겨저나왔다. 무언가 차를 향해 던진 모양이다. "위험해요!" 외쳤을 때 그 물체는 본넷 위에 부딪쳐 흩어졌다. 섬광과 불빛이 솟아올랐다. 차는 급브레이크의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센터라인을 넘었다. 앞쪽에서 오고 있던 차가 달려왔다. 또 다시 커다란 굉음과 불기둥이 청각을 빼앗고 시야를 찢었다. 그대로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트랜시버가, "그만, 그만 두라구!" 이렇게 말해왔을 때는 이미 화염병은 오오노 소오이찌의 손을 벗어나 있었다. 조준을 해서 던진 병은 보기좋게 명중하여 기막힌 불길을 흐트러뜨렸다. 순간적으로 불덩어리가 된 목표물은 센터라인을 넘어 대형차와 충돌해서 더 한층 불길을 내뿜었다. 자기의 대단치 않은 행동이 이런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잠시 멍하고 있던 소오이찌는 백차니 구급차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제 정신이 들어 허둥지둥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마침 근처에 작은 교통사고가 있어 경찰관이 와 있었기 때문에, 소오이찌는 이내 근처에서 잡혔다. 마끼꼬와 같이 타고 있던 사나이는 구급차로 병원으로 운반되는 도중 죽었다. 대형차의 운전사도 2개월의 중상을 입었다. 마끼꼬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을 뿐이였다. 경찰의 시선을 피하고자 반사적으로 시이트에 몸을 쓰러뜨리듯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몸의 상처보다도 정신적인 쇼크쪽이 컸다. 경찰의 조사에 대해 오오노 소오이찌는, "화염병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3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또한 질주하고 있는 차를 향해 다리 위에서 화염병을 던진다는 것도 어린아이의 장난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열 살 짜리 소년의 장난이 불러일으킨 결과치고는 너무나도 중대했다. 경찰은 오오노 소년이 트랜시버를 가지고 있는 사실에 주목했다. 시가지 2킬로, 평야에서는 20킬로 정도를 교신 범위에 담을 수 있는 고성능의 것이였다. 트랜시버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교신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의당 그 상대방이 누군가가 문제가 되었다. 오오노 소년은 트랜시버를 통해 누군가의 지시하에 화염병을 던진 것은 아닌가? 하는 억측이 떠돌았다. '만일 교신상대가 어른이라면.' 사건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어린이를 시켜 살인을 했다면, 이는 참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진, 게다가 비열한 범죄이다. 그러나 오오노 소오이찌의 배후에 수상한 어른의 존재는 떠오르지 않았다. 또한 소오이찌가 피해자들에게 원한을 품었으리라 짐작되는 점도 없었다. 경찰에서는 현장 주변의 트랜시버 소유자를 이잡듯이 뒤지기로 했다. 사건발생 3일 후, 두 형사가 이미 퇴원한 마끼꼬를 자택으로 찾아왔다. 한 사람은 관할서의 계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부인, 이번엔 정말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하셨읍니다." 계장은 정중히 초대면의 인사를 마친 뒤 날카로운 눈으로, "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놔서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마끼꼬는 의당 올 것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으로 실려갔을 때 다른 경찰관이 간단한 질문을 했을 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마끼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선 돌아가신 오바다씨인데요. 부인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오바다 선생 말씀이죠? 그 얘기는 벌써 드렸는데요. 일년 전에 우리집 가정교사로 채용했었던 청년으로, N학원 대학의 학생이예요." "그 오바다씨의 차에 어째서 함께 타고 계셨나요?" "외출했다가 우연히 자동차 안에서 불러세우기에 중간까지 편승한 것뿐이예요." 남편에게도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외출했다가 우연히라구요?" 형사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그것을 보고 마끼꼬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형사는 무언가 꼬투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인, 우리는 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수사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사실 그대로의 말씀을 듣고 싶다, 이 말씀입니다." "난,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마끼꼬는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계속 잡아떼었다. "실은 돌아가신 오바다씨의 포켓에서 어느 모텔의 성냥이 나왔지요. 그래서 그 모텔을 조사해 봤답니다. " 계장은 포켓에서 담배갑을 꺼내 한 개피 뽑더니 성냥을 그었다. 그 성냥은 그녀가 사나이와 이용한 모텔의 서어비스 성냥이였다. 마끼꼬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훨씬 전부터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죠?" 계장은 천천히 연기를 토해내면서 비수로 찌르듯이 말했다. "끝내 숨길 작정은 아니였어요. 제발 주인한텐 비밀로 해주세요." 마끼꼬의 버팀은 이내 무너졌다. "우리도 부인의 프라이버시를 폭로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인이 안계실 때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 제게 묻고 싶다는 것은?" 마끼꼬는 형사들이 찾아온 뜻이 다른 것에 있음을 알고, 일단 안심하면서 물었다. "오바다씨와의 관계를 아드님한테 눈치채게 한 기색은 없습니까?" "글쎄요, 워낙 날카로운 애라, 혹시." 마끼꼬는 최근 아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의심을 띄우고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만일 아드님이 부인과 오바다씨의 관계를 알았다면, 오바다씨를 미워했을테죠?" "네, 그것은--" 그러다가 마끼꼬는 형사의 말 뒤에 숨어있는 것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설, 설마 그 애가 그런 끔찍한 짓을-- 그, 그렇게 말씀하시려는 것은 아닐테죠?" 마끼꼬는 너무나도 무서운 연상에 신음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계장은 말끝을 흐렸다. "보나마나 오오노가 당찮은 말을 한 게군요? 그 애는 무서운 애랍니다." "오오노 소년은 트랜시버를 갖고 있었읍니다." "그게 마시오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런데 불행히도 댁의 아드님과 사건 직전에 교신하고 있었던 사실이 떠오른 겁니다." "설마? 차엔 내가 타고 있었다구요. 아무리 오바다 선생이 밉더라도 나까지 같이 죽이려들 리가 없어요. 마사오는 죽은 열대어나 고양이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 줄 정도로 착한 애에요.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애랍니다." 마끼꼬는 형사가 당치않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바보같은 소리람? 하필이면 마사오를 의심하다니. 아무래도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 마끼꼬는 형사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히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화를 버럭 냈다. 형사는 그녀의 노여움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말했다. "오오노 소년이 좋지 않은 소문을 뿌린 아이라는 것은 우리 역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화재위문편지사건으로 우리도 골치를 앓았었으니까요. 우리는 오오노 소년이 그 동안에 일으킨 사건의 관계자를 거듭 조사해 봤지요.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우리 마사오하고 관계가 있단 말인가요?" "불행히도 있습니다." 계장은 '불행히도'라는 말을 힘을 주어 말했다. "우선 열대어에 독을 투약당한 나이또오군인데, 그 애는 학급에서 이과성적이 일등입니다. 댁의 마사오는 이등입니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 "아무튼 들어 보십쇼. 이어 고양이를 소살당한 사가와 히도미는 산수가 일등이였습니다. 이 역시 댁의 마사오군이 이등입니다. 화재위문편지를 받은 다섯 명의 여자애들은 음악이 마사오군보다 모두 우위입니다."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거죠? 우리 마사오는 슈우퍼맨은 아니니까요. 모든 학과에서 일등을 모조리 차지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러믄요, 그렇고말구요. 마사오군은 종합성적으로는 언제나 톱이였습니다. 과목에 따라서는 이등 이상인 것도 있을 테지요. 그런데 여기 마사오군이 쓴 작문이 있습니다. 선생님한테 빌려왔습니다만, 잠깐 읽어 보시죠." 계장은 한 장의 원고용지를 마끼꼬 앞에 내밀었다. 마끼꼬는 그가 왜 그런 것을 가져왔는지 이상히 여기면서 아들의 작문을 읽어 보았다. '나는 크면 아빠처럼 사장이 되고 싶다. 사장은 첫째다. 나는 일등만이 좋다. 이등이 될 바에는 차라리 꼴찌가 났다. 국어도, 산수도, 이과도, 음악도, 체육도 모두 일등을 차지하기 위해 나는 열심히 공부한다.' 읽고 있는 사이에 마끼꼬는 심증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가로지르기놀이를 하고 있던 나까다군은 체육이 뛰어나, 체조박사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장난의 배후에도--' 아들을 중심으로 한 무서운 상상의 윤곽이 떠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에게 일등을 하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마사오는 공부를 잘 하는 애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일에 유달리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는 타입는 아니고, 모든 과목을 고루 잘 하는 애였다. 그래서 각 과목별로는 2등이나 3등이 많았지만, 종합점수로는 항상 1위였다. 마사오는 그 사실을 안타까와하여 전부 일등을 차지해야 한다고 버티고 있었다. 최근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게 된 것도 음악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애들을 따라넘기 위해서였다. 4학년이라는 시기는 아이들의 경쟁심이 드려날 때이다. 학교측에서도 생도들의 의욕을 북돋고자 경쟁을 부채질한다. 가령 가정학습을 해온 아이에게는 은으로 된 실, 한문 받아쓰기 성적순으로 금, 은, 동의 라벨을 준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실이나 라벨의 수집 경쟁을 시작하여 누가 제일 많은지 내기를 한다. 마사오가 모은 것은 그 수에 있어 클라스 넘버 원이였다. 마끼꼬도 마사오의 일등을 향한 이상한 집착이 근심이 되어, 모두 일등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좀더 어린이다운 장난도 하라고 권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일등을 하기 위해 라이벌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오오노 소오이찌를 이용했다니? 역시 경찰관의 오우버 센스야.' "마사오가 일등을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고 해서 오오노군 사건하고 관계가 있다곤 할 수 없잖아요? 이것은 순진한 어린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당찮은 짐작이예요." "그게 짐작이 아니라는 증거가 떠올랐단 말입니다." 계장이 딱한 듯이 마끼꼬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증거죠?" "오오노 소년이 트랜시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로 사건 직전에 누군가와 교신했다는 추측을 하게 됐죠. 그래서 현장 주변의 트랜시버 소유자들을 샅샅이 알아 본 겁니다. 그랬더니--" 계속해도 되겠냐는 듯이 계장은 마끼꼬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끄덕였다. "그랬더니 연락용으로 트랜시버를 사용하고 있는 근처 음식점이나 가게 사람들이 분명히 그 시간에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겁니다. 파란 칼로라, 번호는 XXX, 방금 다리로 간다. 준비하라--. 문제는 다음 말이올시다." 계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안돼, 마마가 타고 있어. 그만 두라구! 스톱, 그만 두라구!" 마끼꼬는 머리에서 피가 순식간에 물러남을 느꼈다. 그 때 언제나 내리는 다리 못미처 지점에 순경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더 지나온 일이 생각났다. 오바다만을 죽일 작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마사오는 내린 것으로 알고있던 어머니가 아직도 차에 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오오노를 제지했지만, 때가 늦은 것이다. 마끼꼬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계장의 목소리만이 아련히 들려왔다. "번호는 분명히 오바다씨의 차번호 올시다. 마시오군은 외아들이죠. 오바다씨의 차에 타고 있던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아이는 마사오군 이외엔 없소." "하지만, 왜? 왜 마사오가--" 마끼꼬는 마지막 신음처럼 꿈틀거렸다. "부인, 이번 기회에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시는 겁니다. 당신한테 설교할 생각은 없지만, 사랑하는 모친과 존경하고 있던 가정교사가 부친과 자기를 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쇼크는 아마 대단한 것이였을걸요. 마사오군은 그것을 혼자의 가슴 속에 넣어두고 있었죠. 이번 사건은 그 쌓이고 쌓인 노여움이 폭발한 결과일 겁니다." 형사의 말을 듣고 보니, 마사오의 1위를 향한 이상한 집착은 그 무렵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오오노 소오이찌가 불러일으킨 일련의 사건도. 마사오는 모친에 대한 마음의 상처와 울분을 그런 식으로 발산시키고 있었단 말인가? "오오노 소년은 모두 털어놨습니다. 마사오군한테 협박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오노군의 부친은 마사오군 아버님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오오노군의 부친을 자기 아버지한테 말해서 목아지를 시키겠다고 위협했다는 겁니다. 오오노군의 부친은 몸이 부자유합니다. 직장을 잃으면 다시 취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던 거죠. 오오노군은 부모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씨 착한 애였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마사오군은 겉은 우등생의 마스크를 쓰고, 실은 부모의 세력을 미끼로 약한 자를 괴롭혀온 겁니다. 물고기의 사료도, 화재위문편지도 마사오군의 아이디어였답니다. 트랜시버와 화염병도 마사오군이 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부인, 순진한 어린애의 가면 밑의 무서운 새 얼굴을 만든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형사의 마지막 말이 마끼꼬의 귀에 수없이 울렸다. 그것은 어느새 고양이나 열대어나 오바다를 죽인 범인은 바로 나라는 말로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