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일문학의 발견 금각사 지은이:미시마 유키오 옮긴이:허호 차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작품 해설--소멸과 생성의 청춘 제1장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마이즈루 동북부의, 일본해로 튀어나온 쓸쓸한 곶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그곳이 아니라, 마이즈루 동쪽 근교에 위치한 시라쿠라는 마을이다. 절간에 입양되어 승적에 오른 후, 외딴 곶에 위치한 절의 주지가 되었고, 그곳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나를 낳았다. 나리우 곶의 절 부근에는 마땅한 중학교가 없었다. 이윽고 나는 부모님 슬하를 떠나 아버지 고향에 있는 숙부 집에 맡겨지게 되어, 그곳에서 하가시마이즈루 중학교에 통학하였다. 아버지의 고향은 햇빛이 유별나게 눈부신 곳이었다. 하지만 1년중, 11월이나12월 무렵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보이는 쾌청한 날씨에도 하루에도 너덧 차례나 소나기가 지나갔다. 나의 변하기 쉬운 성격은 그 땅에서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월의 저녁 무렵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숙부 집 2층에 있는 공부방에서 건너편의 산을 바라보곤 하였다. 신록으로 덮인 산중턱이 석양을 받아, 벌판 한복판에 금병풍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금각을 상상하였다. 사진이나 교과서에서 현실의 금각을 이따금 접하기는 하였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가 들려준 금각의 환상이 훨씬 멋진 것처럼 여겨졌다. 아버지는 결코 현실의 금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었다. 멀리서 논의 표면이 햇빛에 반짝이는 광경을 보거나 하면, 그것을 보이지 않는 금각의 투영이라고 생각했다. 후쿠이 현과 이쪽 교토 부의 경계를 이루는 기치자카 언덕은, 바로 동쪽에 위치한다. 그 언덕 언저리에서 해가 솟는다. 현실의 교토와는 반대 방향이지만, 나는 산간의 아침 햇살 속에서 금각이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금각은 곳곳에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더구나 그것이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지방의 바다와도 흡사하였다. 마이즈루 만은 시라쿠 마을에서 서쪽으로 15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바다는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하니만 이 고장에는 언제나 바다의 예감과도 같은 것이 떠돌고 있었다. 바람에서도 때때로 바다냄새가 풍겼고, 바다가 거칠어지면 수많은 갈매기들이 피신하여 근처의 논에 내려앉았다. 몸도 약할 뿐더러, 달리기를 하여도 철봉을 하여도 남에게 뒤지는데다가, 선천적으로 말더듬 증세가 더욱더 나를 내성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모두들 내가 절간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말더듬이 중이 더듬더듬 불경 읽는 흉내를 내며 놀려대었다. 옛날 이야기 속에 말더듬이 포졸이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러한 이야기를 일부러 소리내어 내 앞에서 읽어 대곤 하였다. 말더듬 증세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나와 외계와의 사이에 하나의 장애로 작용하였다. 첫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첫 발음이, 나의 내계와 외계 사이를 가로막는 문의 자물쇠와도 같은 것이었으나, 자물쇠가 순순히 열린 적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은 자유로이 말을 구사함으로써, 내계와 외계 사이에 있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 둘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자물쇠가 녹슬어 버린 것이다. 말더듬이가 첫마디를 소리내기 위해서 몹시 안달하는 동안은, 마치 내계의 농밀한 끈끈이로부터 몸을 떼어 내려고 버둥거리는 새와도 흡사하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물론 외계의 현실은 내가 버둥거리는 동안,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 줄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다려 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내가 애써서 간신히 외계에 도달하여 보아도, 언제나 그곳에는 순식간에 변색되어 신선하지 못한 현실, 거지반 썩든 냄새를 풍기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소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두 종류의 상반된 권력 의지를 품게 된다. 나는 역사 중에서 폭군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였다. 내가 말더듬이에다가 과묵한 폭군이라면, 신하들은 내 안색을 살피며 항상 주눅이 들어 지내게 되리라. 나는 명확하고 유창한 말투로 자신의 잔학성을 정당화시킬 필요조차 없다. 나의 무언만이 모든 잔학성을 정당화시키리라. 이런 식으로 평소에 나를 업신여기는 교사나 학우들을 모조리 처형시키는 공상을 즐기는 한편, 나는 또한 내면 세계의 제왕이자 조용한 체념에 잠긴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공상도 즐겼다.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나의 내계는 누구보다도, 이토록 풍요로웠다.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는, 넓은 운동장을 앞에 두고 길게 늘어선 산들에 둘러싸인 신식의 밝은 건물이었다. 5월의 어느 날, 중학교 선배인, 마이즈루 해군 사관 학교의 생도 하나가 휴가를 받아서 모교에 놀러 왔다. 그는 햇볕에 잘 탄 피부에, 깊게 눌러쓴 제모의 차양 밑으로 멋진 콧날을 드러낸 모습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젊은 영웅이었다. 후배들 앞에서 고된 규율투성이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참한 생활을, 마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일거수 일투족이 긍지에 넘쳤고, 젊었음에도 겸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제복 가슴의 줄무늬를, 마치 바닷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뱃머리의 조각처럼 활짝 펼치고 있었다. 그는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두세 단의 오야석(역자주:우쓰노미야 시 오야마치 부근에서 채석되는 녹색 응회암)으로 만든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 주위에는 이야기에 넋을 잃은 네댓 명의 후배들이 있었고, 튤립, 스위트피, 아네모네, 양귀비와 같은 5월의 꽃들이 경사진 화단에 일제히 피어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후박나무가 하얀색의 크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치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2미터쯤 거리를 두고 운동장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것이 나의 독특한 예의였다. 5월의 꽃들과, 긍지로 가득한 제복, 밝은 웃음소리 등에 대한 예의였다. 그러나 젊은 영웅은 숭배자들보다도 재 쪽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만의 위풍에 흔들리지 않는 듯이 보였고, 그렇게 보인다는 점이 그의 긍지를 손상시켰다. 그는 모두에게 내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는, "어이, 미조구치." 하고 초면인 나를 불렀다. 나는 입을 다문 채로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나를 향한 그의 웃음은 권력자의 아무와도 비슷한 데가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벙어린가, 자네는?" "마, 마, 마, 말더듬이입니다." 하고 숭배자 하나가 나 대신에 대답하자, 모두가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비웃음이란 얼마나 눈부신 것인가! 나에게는 같은 반 소년들의, 소년 사절 특유의 잔혹한 웃음이,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나뭇잎처럼 찬란하게 보였다. "뭐야, 말더듬이야? 자네도 해기(역자주:"해군 기관 학교"의 준말)에 들어오지 않겠나? 말더듬이 따윈, 하루에 두들겨 고쳐 줄 테니." 나는 어쩐 일인지, 얼떨결에 명료한 대답을 했다. 말은 줄줄 흐르듯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나왔다. "안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증이 될 겁니다." 모두들 조용해졌다. 젊은 영웅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 옆의 풀을 뜯어 입에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몇 년 후에는 나도 자네의 신세를 지게 되겠군." 그해에는 이미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때 나에게 분명하게 하나의 자각이 생겼다. 어둠의 세계를 향하여 팔을 크게 벌린 채 기다리면 된다는 것. 머지않아 5월의 꽃들도, 제복을 입은 자들도, 짓궂은 급우들도, 내가 벌리고 있는 팔 안에 들어오리라는 것. 내가 세상을 바닥으로부터 쥐어짜서 움켜쥐고 있다는 자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자각은 소년의 긍지가 되기에는 너무도 무거웠다. 긍지는 좀더 가볍고 밝고 눈에 잘 보이며, 찬란한 것이어야만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내 긍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좋으련만. 이를테면,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중학생들 모두가 동경하는 단검은, 정말로 아름다운 장식이었다. 해군 생도들은 그 단검으로 몰래 연필을 깎는다고 하는데, 그토록 장엄한 상징을 일부러 사소한 용도에 사용하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침, 기관 학교의 제복은 벗어 놓은 그대로 하얀 페인트 칠을 한 울타리에 걸쳐져 있었다. 바지도, 하얀 속 셔츠도... 그러한 것들은 꽃 가까이에서 땀에 젖은 젊은이의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꿀벌이 잘못 알고 그 하얗게 빛나는 셔츠의 꽃에 날개를 쉬고 있었다. 금실로 장식한 제모는, 그의 머리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히, 깊숙히, 울타리에 씌워져 있었다. 그는 후배들의 도전을 받고 뒤쪽 모래사장에 씨름하러 간 것이다. 벗어 놓은 그러한 것들은, 긍지의 묘지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5월의 수많은 꽃들이 그러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그 중에서도, 차양이 칠흑처럼 빛을 반사하는 제모나, 그 곁에 걸어진 혁대와 단검은, 그의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오히려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그 자체가 추억만큼이나 완전하여... 마치 젊은 영웅의 유품과도 같아 보였다. 나는 주위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씨름터에서 환성이 솟았다. 나는 주위에서 녹슨 연필깎이 칼을 꺼내어 조심스레 다가가, 그 아름다운 단검의 검정색 칼집 뒤쪽에 두세 가닥의 보기 흉한 칼자국을 새겼다... 이상과 같은 기술을 보고 나를 시인 기질이 있는 소년이라고 속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시는 고사하고 수기조차도 쓴 적이 없다. 남에게 뒤지는 능력을 다른 능력으로 보충하여, 그것을 가지고 남보다 앞서겠다는 충동이 나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 나는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도 오만하였다. 폭군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은 꿈일 뿐, 실제로 착수하여 무엇인가를 해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에게 이해되니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였기 때문에 ,무엇인가 남들을 이해시키겠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 눈에 띄는 것들이 나에게는 숙명적으로 부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독은 자꾸만 살쪄 갔다. 마치 돼지처럼. 돌연히 나의 회상은, 우리 마을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옮겨간다. 이 사건과는 실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관여하고 참가하였다는 생생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사건을 통하여 단숨에 모든 것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생에, 관능에, 배신에, 증오와 사랑에, 모든 것들에.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숭고한 요소를, 내 기억은 고의로 부정하고 간과하였다. 숙부 집에서 두 집 건너에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우이코라는 이름이었다. 눈이 크고 맑았다. 집이 부자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태도가 도도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지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기심이 강한 여자들은 우이코가 아마도 아직 처녀일 터인데도, 저런 인상이야말로 석녀상이라는 등의 소문을 퍼트렸다. 우이코는 여학교를 갓 졸업하고, 마이즈루 해군 병원의 특지(역자주:'특별 지원'의 준말) 간호사가 되었다. 병원은 자전거로 통근 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아침 출근은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서기 때문에, 우리들이 등교하는 것보다 2시간 정도 빨랐다. 어느 날 밤, 우이코의 육체를 생각하며 암울한 공상에 빠져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날이 밝기도 전에 잠자리를 빠져나와 운동화를 신고, 여름 새벽의 어둠이 깔린 집 밖으로 나섰다. 우이코의 육체를 생각한 것은 그날 밤이 처음은 아니다. 이따금 생각하고 있던 것이 점차로 고착되어, 마치 그러한 생각의 덩어리처럼, 우이코의 몸은 하얗고 탄력이 있으며, 희미한 어둠에 잠긴, 냄새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육체로 응결되어 보린 것이다. 나는 그 육체를 만질 때 손가락에 솟는 열기를 상상하였다. 또한 그 손가락에 거부하듯이 느껴지는 탄력과, 꽃가루와 같은 향기를 생각하였다. 나는 어두운 새벽길을 곧장 달렸다. 돌멩이도 나의 발길을 방해하지 못하였고, 어둠이 내 앞에 자유자제로 길을 터 주었다. 얼마 안 가면 넓은 길이 나와, 시라쿠 마을의 읍인 야스오카 부락 주변으로 이어진다. 그 곳에 한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 둥치는 아침 이슬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밑에 몸을 숨기고, 부락 쪽에서 우이코가 자전거로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기다려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기는 했지만, 느티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리고 나니, 자신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나에게는, 외계라는 것과 너무도 무관하게 살아왔던 탓으로, 일단 외계로 뛰어들면 모든 것이 쉽고 가능해지리라는 환상이 있었다. 숲모기가 내 다리를 물었다. 여기저기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길 쪽을 엿보았다. 멀리 하얗고 희미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새벽의 색깔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우이코였다. 우이코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양이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었다. 자전거는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나는 자전거 앞으로 뛰쳐나갔다. 자전거는 위태롭게 급정거하였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돌로 변하고 만 것을 느꼈다. 의지도 욕망도 모두가 돌로 변하였다. 외계는, 나의 내면과는 무관하게, 다시금 내 주위에 확고히 존재하고 있었다. 숙부 집을 빠져나와, 흰 운동화를 신고, 어두운 새벽길을 이 느티나무 그늘까지 달려온 나는, 단지 자신의 내면을 무작정 달려온 것에 불과하였다. 어두운 새벽 속에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마을의 지붕들에도, 시커먼 나무들에도, 아오바 산의 시커먼 산꼭대기에도, 눈앞의 우이코조차도, 끔찍할 정도로 완전히 의미가 결여되어 있었다. 내가 관여할 틈도 없이 현실은 이미 부여되어 있었으며, 더구나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무게로, 무의미하며 크고 어두운 이러한 현실은 나에게 부여되어 나에게 다가와 있었다. 말이 아마도 이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리라고, 여느 때처럼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 특유의 오해이다. 행동이 필요한 때에, 언제나 나는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입에서 말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쓰다가 행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에게는 행동이라는 휘황찬란한 존재가, 언제나 휘황찬란한 말을 동반하고 있으리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이코는 처음에는 겁을 먹은 듯하였으나, 나를 알아차리고는 내 입만을 주시했다. 그녀는 아마도, 어두운 새벽 속에서 무의미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구멍, 자그만 들짐승의 소굴처럼 지저분하고 모양 없는 작은 구멍, 즉 내 입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외계로 이어지는 힘이 무엇 하나 튀어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였다. "뭐야, 이상한 짓도 다 하네. 말더듬이 주제에." 하고 우이코가 말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아침 바람과도 같은 단정하고 상쾌한 느낌이 있었다. 그녀는 벨소리를 울리며, 페달에 다시 발을 올렸다. 돌멩이를 피하듯이 나를 피하여 우회하였다. 사람이라곤 그림자 하나 없는데도, 멀리 논 건너편으로 사라져 가는 우이코가 이따금 조롱하듯 울리는 벨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날 밤, 우이코의 고자질로, 그녀의 엄마가 내 숙부 집에 찾아왔다. 나는 평소에 온화하던 숙부에게서 심한 질책을 당했다. 나는 우이코를 저주하며 죽기를 바랐는데, 수개월 후에 그 저주가 이루어졌다. 이후로 나는 남을 저주하는 일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나깨나 나는 우이코가 죽기를 바랐다. 내 수치의 입회인이 없어져 버리기를 바랐다. 증인만 없다면, 지상에서 수치는 근절되리라. 타인은 모두 증인이다. 그러나 타인이 없으면 수치라는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우이코의 모습, 어두운 새벽 속에서 물처럼 빛을 발하며 내 입을 잠자코 주시하던 그녀의 눈 뒤에서, 타인의 세계--즉, 우리들을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자진하여 우리들의 공범이 되며 증인이 되는 타인의 세계--를 본 것이다. 타인이 모두 멸망하여야 한다. 내가 정말로 태양을 향하여 얼굴을 들기 위하여는, 세계가 멸망하여야 한다... 고자질을 한 2개월 후, 우이코는 해군 병원을 그만두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가을이 끝나 갈 무렵, 그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들은 이 마을에 해군 탈영병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단지 점심 무렵 촌사무소에 헌병이 왔다. 그러나 헌병이 오는 것은 신기해할 일도 못되었기에, 별다른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날은 10월 말의 맑게 갠 하루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학교에 다녀와, 밤 공부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등불을 끄려다가 내려다본 길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떼처럼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현관 입구에는 학교 친구 하나가 와서, 자다 말고 일어나 나온 숙부, 숙모와 나에게, 눈을 둥그렇게 하고 소리쳤다. "지금, 저쪽에서, 우이코가 헌병에게 잡혔어! 같이 가자!" 나는 신발을 걸쳐 신고 뛰쳐나갔다. 달 밝은 밤이라, 수확이 끝난 노의 군데군데에 볏단이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숲의 그늘 한쪽에,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검정색 양장 차림의 우이코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이 몹시 하앴다. 주위에는 너덧 명의 헌병들과 부모가 있었다. 헌병 하나가 도시락 보자기 같은 것을 들이대며 호통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리저리로 얼굴을 움직이며, 헌병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딸을 질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우리들은 밭 건너편 논둑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점점 불어나, 조용한 가운데 서로의 어깨가 부딪쳤다. 쥐어짜 놓은 듯이 조그만 달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친구가 내 귓전에 대고 설명하였다.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집에서 빠져나와 인근 부락으로 가려던 우이코가, 잠복 중인 헌병에게 붙잡혔다는 것. 그 도시락은 탈영병에게 갖다 주려던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 탈영병과 우이코는 해군 병원에서 사귀게 되어, 그 때문에 임신한 우이코가 병원에서 쫓겨났다는 것. 헌병은 탈영병이 숨어 있는 곳을 대라고 윽박지르고 있지만, 우이코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것...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나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우이코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붙잡힌 광녀처럼 보였다. 달빛 아래에서, 그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토록 거부로 가득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자신의 얼굴을,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이코의 얼굴은 세계를 거부하고 있었다. 달빛은 그녀의 이마와 콧등과 얼굴 위에 가차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부동의 얼굴은 다만 그 빛에 씻기고 있었다. 조금만 눈을 움직이고 조금만 입을 움직인다면, 그녀가 거부하려는 세계는 그것을 기화로 한꺼번에 밀어닥치리라.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얼굴을 주시하였다. 역사는 거기에서 중단되었고, 미래를 향하여도 과거를 향하여도 무엇하나 말을 건네지 않는 얼굴. 그러한 불가사의한 얼굴을 우리들은 방금 잘려 나간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서 보는 때가 있다. 신선하고 풋풋한 색을 띠면서도, 성장은 거기에서 멈추고, 예기치 못한 바람과 햇빛을 받아, 원래 자신의 소속이 아닌 세계로 돌연히 드러난 그 단면에, 아름다운 나뭇결이 그려낸 불가사의한 얼굴. 단지 거부하기 위하여 이쪽 세계로 향하여진 얼굴... 나는 우이코의 얼굴이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은, 그녀의 생애에 있어서도, 그것을 보고 있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도 다시는 없으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그 얼굴이 유지된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돌연히 변화가 생긴 것이다. 우이코는 일어섰다. 그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빛에 하얀 앞니가 빛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더 이상, 이 변모에 관하여 기술할 수가 없다. 일어선 우이코의 얼굴이 환한 달빛에서 벗어나, 나무 그림자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우이코가 배신을 결심한 때의 변모를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자세히 보았더라면, 나에게도 인간을 용서할 마음이, 모든 추한 것들까지도 용서할 마음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우이코는 인근 부락인 가하라 산 그늘을 가리켰다. "금강원이다!" 하고 헌병이 소리쳤다. 그러자 나에게도 어린애 같은 축제 분위기의 즐거움이 생겨났다. 헌병들은 편을 나누어 금강원을 사방에서 포위하기로 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협력이 요청되었다. 심술궂은 호기심에서, 나는 다른 5, 6명의 소년들과 함께, 안내하는 우이코를 앞세워 가는 선두 그룹에 가담하였다. 달빛이 비치는 길을, 우이코가 헌병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걸어가는, 그 확신으로 가득한 발걸음에 나는 놀랐다. 금강원은 유명하다. 그것은 야스오카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산그늘에 위치한, 다카오카 친왕이 몸소 심은 비자나무와, 히다리 진고로(역자주: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서 활동하였다는 유명한 석공. 그러나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옛날이야기의 등장 인물)가 세웠다고 전하여지는 우아한 삼층탑이 있는 이름난 절이다. 여름에는 자주 그 뒷산의 폭포를 맞으며 놀았다. 강가에 본당의 담이 있다. 허물어진 토담 위에 억새풀이 무성하여, 그 하얀 이삭이 밤중에도 윤기 있게 보였다. 본당의 문 옆에는 산다화가 피어 있었다. 일행은 묵묵히 강을 따라 걸었다. 금강원의 어당은 좀더 올라간 곳에 있었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에 삼층탑이, 왼편에 단풍나무 숲이 있고, 그 안쪽으로 105단의 이끼 낀 돌계단이 솟아 있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웠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기 전에 헌병이 뒤돌아보며 손짓으로 일행의 발길을 멈추어 세웠다. 옛날에는 여기에 운케이, 단테이(역자주:가마쿠라 초기의 불상 조각가. 단케이는 운케이의 장남)가 세운 인왕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쓰즈라 골짜기의 산들은 금강원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숨을 죽였다. 헌병은 우이코를 재촉하였다. 그녀 혼자서만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잠시 후 우리가 그 뒤를 따랐다. 돌계단의 아래쪽은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중간보다 위쪽은 달빛 아래에 있었다. 우리들은 돌계단 아래쪽의 그늘 이곳저곳에 몸을 숨겼다.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달빛에 검게 보였다. 돌계단 위에는 금강원의 본전이 있고, 그 왼쪽에 비스듬히 복도가 설치되어, 신락전과 같은 빈 어당으로 통하고 있다. 그 빈 어당은 공중으로 높게 세워진 건축물로, 가면극 무대를 본떠서 짜여진 수많은 기둥과 횡목들이 벼랑 아래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어당도 복도도, 이를 지탱하는 기둥들도, 비바람에 시달려서 청아하고 하얗게 변한 모습이, 마치 백골처럼 보였다. 단풍이 한창일 때에는, 단풍 색깔과, 이 백골과도 같은 건축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밤이 되면 군데군데 얼룩처럼 달빛을 받은 하얀 기둥들은, 괴이하게도 보이고, 요염하게도 보였다. 탈영병은 무대 위의 어당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병들은 우이코를 미끼삼아 그를 잡으려고 하였다. 우리 증인들은 그늘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10월 하순의 차가운 밤공기에 싸여 있으면서도, 내 뺨은 뜨거웠다. 석회암으로 쌓은 105개의 돌계단을 우이코 혼자서 올라갔다. 관인처럼 자연스럽게...검은 양장과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아름다운 옆모습이 유달리 희게 보였다. 달과 별, 밤하늘의 구름과, 즐비한 삼나무 능선이 하늘과 접하는 산, 얼룩 같은 달 그림자와 허옇게 솟아 있는 건물, 이러한 것들 속에서, 우이코의 배신이라는 투명할 정도로 맑은 아름다움이 나를 도취시켰다. 그녀 혼자서 가슴을 펴고 이 하얀 돌계단을 걸어올라갈 자격이 있었다. 그 배신은, 별이나 달, 혹은 창 모양의 삼나무와 동일한 것이었다. 즉, 우리 증인들과 함께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그녀는 우리들의 대표자로서 그곳을 걸어올라간 것이다. 숨이 가빠 오는 가운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신 행위로 인하여 드디어 그녀는, 나까지도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 순간에야말로 내 것이다!' ...사건이란 우리들 기억 속의 어느 지점에서인가 실추하고 만다. 105단의 이끼 낀 돌계단을 올라가는 우이코는 아직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그 돌계단을 올라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는 돌변하고 말았다. 돌계단을 다 올라간 우이코는, 다시 한 번 나를, 우리들을 배반한 것이었다. 그 이후의 그녀는 온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단지 애욕의 질서에 굴복하여, 한 남자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건을 낡은 석판 인쇄와도 같은 광경으로밖에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우이코는 복도를 건너가, 어당 속의 어둠을 향하여 누군가를 불렀다.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이코는 무엇인가 말을 걸었다. 사내는 돌계단의 중간을 향하여 권총을 쏘았다. 그에 응사하는 헌병들의 권총이, 돌계단 중간의 숲 속에서 발사되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총을 겨누더니, 복도 쪽으로 도망치려는 우이코의 등에 몇 발인가 연달아 쏘았다. 우이코는 쓰러졌다. 사내는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발사하였다... --헌병들은 물론, 모두가 앞을 다투어 돌계단을 뛰어올라 두 사람의 시체로 몰려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단풍나무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잠자코 있었다. 하얀 기둥들이 종횡으로 얽히어 내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그 위에서 널빤지가 깔린 복도를 밟아 대는 신발소리가 아주 경쾌하게 들려왔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손전등 불빛이 두세 가닥, 난간 건너에 있는 단풍나무의 가지까지 비치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먼 옛날의 사건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둔감한 사람들은 피가 흐르지 않으면 허둥대지 않는다. 하지만, 피가 흘렀을 때에는 비극은 끝나 버린 다음인 것이다. 어느 새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모두가 떠나 버리고 혼자 남은 내 주위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하였고, 아침 햇살이 단풍나무의 밑까지 깊숙히 비치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몸을 부르르 떨고는, 몸의 이곳저곳을 비볐다. 추위만이 몸 속에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추위뿐이었다. * 이듬해 봄방학 때에, 아버지가 국민복에 가사를 걸친 모습으로 숙부 집을 찾아왔다. 나를 2, 3일 교토에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폐병은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기에 나는 그 수척한 모습에 놀랐다. 나만이 아니라, 숙부 내외도 교토에 가는 것을 말렸으나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나를 금각사 주지에게 소개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물론 금각사를 방문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일부러 활기 있는 척하여도 누가 보나 중환자로 보이는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직 본 적도 없는 금각에 드디어 접할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내 마음에는 주저가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각은 아름다워야만 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금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도, 금각의 미를 상상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소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나도 금각에 관하여 통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술 서적들은 금각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서원사 가문으로부터 기타야마라고 불리는 저택을 이어받아, 여기에 대규모 별장을 세웠다. 그 주요 건축물은, 사리전, 호마당, 참법당, 법수원 등의 불교 건축과, 신전, 공경간, 회소, 천경각, 홍북루, 천전, 간설정 등 주택 관계의 건축이었다. 사리전은 가장 공을 들여 세운 것으로, 훗날 금각이라고 불리게 된 건물이다. 언제부터 금각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확실히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오닌의 난 이후인 듯 분메이(역자주:1469년부터 1487년까지) 무렵에는 상당히 보편적으로 금각이라 불렀다. 금각은 넓은 연못--경호지--에 면한 3층 누각의 건축으로서,1398년경 완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1, 2층은 침전 모양으로 만들어 덧문을 달았고, 3층은 4면 3자의 순수한 선당, 불당식으로 만들어, 중앙에 잔당호(역자주:틀을 짠 다음 얇은 판자를 붙인 문),좌우에 화두창(역자주: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창)을 달았다.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로 이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금동의 봉황이 올려져 있다. 또한 연못에는 ㅅ자형 지붕을 올린 수청이라는 낚시터를 돌출시켜, 전체의 단조로움을 없앴다. 지붕의 경사는 완만하며, 처마는 산뜻하게, 가느다란 나무로 경쾌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는 등, 주택식 건축에 불당 양식을 가미하여 조화를 이룬 정원 건축의 수작으로서, 귀족 문화를 도입한 요시미쓰의 취미와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하여 주고 있다. 요시미쓰의 사후, 기타야마 저택은 유언에 따라 선찰로 바뀌어, 녹원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곳의 건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황폐되거나 했지만, 금각만은 다행히도 남아 있다... 밤하늘의 달처럼, 금각은 암흑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꿈꾸는 금각은, 그 주위에 몰려드는 어둠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답고 가날픈 기둥의 구조가, 안으로부터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이 건축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더라도 아름다운 금각은 잠자코 섬세한 구조를 드러내 보이며 주위의 어둠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 나는 또한 그 지붕 꼭대기에서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시달려 온 금동 봉황을 생각했다. 이 신비스러운 금빛 새는 알리지도 않고 날갯짓도 하지 않고, 자신이 새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날지 못할 듯이 보이는 것은 착각이다. 다른 새들이 공간을 난다면, 이 금으로 만든 봉황은 번쩍이는 날개를 펴고 영원히 시간 속을 나는 것이다. 시간이 그 날개에 부딪힌다. 날개에 부딪혀서 뒤쪽으로 흘러간다. 날아가기 위하여, 봉황은 단지 부동의 자세로 눈을 부라린 채, 날개를 높이 들고 꼬리 깃을 휘날리며, 당당한 금빛의 양 다리를 힘차게 버티고 있으면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에게는 금각 그 자체도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아름다운 배처럼 생각되었다. 미술 서적에서 말하는 '벽이 적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건축'이라는 설명이 배의 구조를 상상하게 하였으며, 이 복잡한 3층의 지붕 달린 배가 임하고 있는 연못은 바다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금각은 수많은 밤을 노 저어 왔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항해. 그리고 낮 동안은, 이 신비스러운 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닻을 내린 채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밤이 오면 주위의 어둠으로부터 힘을 얻어, 지붕을 돛처럼 부풀려 출범하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문제는, 미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버지는 시골의 소박한 승려로, 어휘도 부족하기에, 단지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만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다. 그렇다고 해서 금각이 나에게 결코 하나의 관념은 아니었다. 산으로 막혀 있다고 해도, 보고 싶으면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물체였다. 미는 그처럼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눈에도 확실히 비치는 하나의 물체였다. 여러 가지로 변모하는 가운데, 불변의 금각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으며 믿고 있었다. 금각은 내 손 안에 잡히는 작고 정교한 세공물처럼 생각되는 때도 있었고, 혹은, 하늘 높이 끝없이 솟은 거대한 괴물과도 흡사한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었다. 미라는 것은 작지도 크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소년인 나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여름철의 꽃들이 아침 이슬에 젖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구름이 산 저편을 가로막고 천둥을 머금은 채 암담한 테두리만을 금빛으로 번쩍일 때에도, 그 웅대한 광경을 보며 금각을 연상했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마음 속으로, '금각처럼 아름답다'고 형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여행은 어딘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마이즈루 선은 니시마이즈루로부터, 마구라, 우에스기 등의 작은 역들에 정거한 후, 아야베를 지나 교토로 향하는 선으로, 객차는 지저분하였고, 호즈 골짜기 주변의 터널이 많은 곳에서는 매연이 가차없이 차내로 불어 들어와, 그 숨막히는 연기 때문에 아버지는 몇 번이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승객은 해군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3등 칸은, 하사관, 해군 사병, 기능공, 해군에 면회 다녀오는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나는 창 밖의 뿌연 봄하늘을 보았다. 아버지의 국민복 가슴에 걸쳐진 가사를 보고, 혈색이 좋은 젊은 하사관들의 금단추가 퉁겨질 듯한 가슴을 보았다. 나는 그 중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지않아 성년이 되면 나도 군에 징집당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설령 군인이 되더라도, 눈앞의 하사관들처럼 역할에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는 두 종류의 세계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이토록 젊지만, 보기 흉하고 완고하게 생긴 이마 속에서, 아버지가 관장하는 죽음의 세계와 젊은이들이 속한 삶의 세계가 전쟁을 매개로 하여 연결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 이음새가 되리라. 내가 전사해 버리면, 눈앞에 있는 이 갈림길의 어느 쪽으로 가건, 결국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나의 소년 시절은 희미한 빛으로 흐려져 있었다. 캄캄한 그늘의 세계가 두렵기도 했지만, 대낮처럼 뚜렷한 인생도 내 것이 아니었다. 심하게 기침하는 아버지를 돌보는 한편으로, 나는 이따금 호즈천을 창 밖으로 보았다. 그것은 화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황산 구리처럼 칙칙한 군청색이었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호즈 골짜기는 선로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또한 의외로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면서, 매끄러운 바위에 둘러싸여, 그 군청색 물결이 요란스럽게 소용돌이치기도 했다. 아버지는 흰쌀로 만든 주먹밥 도시락을 차안에서 펼치기를 부끄러워하였다. "암시장에서 사 온 쌀이 아니야. 단가(역자주:절에 시주하는 사람의 집)의 성의니까, 고맙게 먹으면 되지." 주위에 들리도록 그렇게 말하고 먹었지만, 아버지는 그다지 크지도 않은 주먹밥 하나를 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에게는 이 검정투성이의 낡은 열차가, 도회지로 향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기차는 죽음의 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차 안에 가득한 연기에서 화장터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역시 녹원사 정문 앞에 섰을 때,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이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산들은 뿌연 안개로 덮여 있었다. 관람객 몇 명이 우리 부자를 전후하여 문안으로 들어섰다. 왼편의 종루 주위에는 철 지난 꽃을 피운 매화 숲이 있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상수리나무 앞에 있는 본당의 현관에 서서 안내를 청하였다. 주지는 손님을 접대하고 있으니 20∼30분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금각을 돌아보고 오자."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아마도 안면만 갖고 무료로 참관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자식인 나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입장권을 파는 사람도, 참관문에서 검표하는 사람도, 10여 년 전에 아버지가 자주 들렀던 때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 다음에 올 때는, 또 바뀌어 있겠지." 하고 아버지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 다음에 올 때'를, 이미 아버지가 확신하고 있지 않음을 나는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소년답게--나는 이런 때만, 고의적인 연기를 할 때만, 소년다웠다--명랑하게 앞장서서 달음질치듯이 갔다. 그리하여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각은 너무도 싱겁게 내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었다. 나는 연못의 이쪽에 서 있었고, 금각은 연못 건너편의, 기울기 시작하는 햇빛에 그 정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청은 왼쪽 저 건너에 절반 가려져 있었다. 물풀 잎사귀가 드문드문 떠 있는 연못에는, 금각의 정교한 투영이 비치어, 그 투영이 오히려 완전한 모습으로 보였다. 연못 물에 반사된 석양이 각층의 추녀 밑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원근법을 파장시킨 그림처럼 고압적인 금각은, 몸을 약간 뒤로 젖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때, 멋있니 않아? 일층을 법수원, 이층을 조음동, 삼층을 구경정이라고 하지." 병환으로 메마른 아버지의 손은 내 어깨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재가 겸허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더라면, 그토록 낙담하기 전에, 자신의 감상력이 부족함을 한탄했으리라. 하지만 내 마음이 그토록 아름다움을 기대하였던 대상으로부터 배신당한 고통은, 다른 어떠한 반성조차도 빼앗아 버렸다. 나는 금각이 그 미를 숨기고, 무언가 다른 물체로 둔갑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좀도 금각에 접근하여, 내 눈에 추하게 느껴지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하나하나 세부를 점검하여, 미의 핵심을 이 눈으로 보아야 한다. 내가 눈에 보이는 미만을 믿고 있었던 이상, 이러한 태도는 당연하였다. 하편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법수원의 툇마루로 올라섰다. 나는 우선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정교한 금각의 모형을 보았다. 이 모형은 내 마음에 들었다. 이쪽이 오히려 내가 꿈에 그리던 금각에 가까웠다. 그리고 커다란 금각의 내부에 이토록 똑같은 모양의 작은 금각이 들어 있는 모습은, 대우주 속에 소우주가 존재하는 듯한, 무한한 대응을 연상시켰다. 비로소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이 모형보다도 훨씬 작은, 그러면서도 완전한 금각과, 실제의 금각보다도 무한히 커다란, 마치 세계를 감쌀 듯한 금각을. 하지만 내 발은 언제까지고 모형 앞에만 멈추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어서 아버지는 유명한 국보인 요시미쓰상 앞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그 목상은 요시미쓰가 삭발하고 난 후의 이름, 로쿠온 인도노 요시미쓰의 상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나에게는 검게 그을린 기묘한 우상으로 모였을 뿐 아무런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었다. 이어서 2층의 조음동에 올라가, 가리노 마사노부(역자주:무로마치 시대의 화가)가 그렸다는 천인주악의 천장화를 보고, 꼭대기의 구경정에 구석구석 남아 있는 초라한 금박의 흔적을 보았으나,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느다란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연못 위를 내려다보았다. 연못은 석양을 받아, 녹슨 고대의 구리와도 같은 표면에, 금각의 그림자를 단정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물풀보다도 훨씬 밑에 저녁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그 저녁 하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과는 달랐다. 그것은 청명하며, 석양을 가득 받아, 아래로부터, 내부로부터, 이 지상의 세계를 통째로 삼키고 있었기에, 금각은 그 속에 검게 녹슨 거대한 순금의 닻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주지인 다야마 도센 스님은 아버지와 선당 시절의 친구였다. 도센 스님과 아버지는 3년에 걸친 선당 생활을 경험하였으나, 두 사람은 그 동안에 기거를 같이 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역시 요시미쓰가 건립한 상국사의 전문 도량에, 전통적인 옥외 기거와 문간방 기거의 절차를 밟아 입문하였다. 뿐만 아니라, 훗날 도센 스님이 기분 좋을 때 한 이야기지만, 아버지와는 이러한 고생만 같이 한 것이 아니라, 취침 시간 후에 담을 넘어 유곽에 드나드는 재미를 같이 본 사이이기도 했다. 우리 부자는 금각 구경을 끝내고 다시 본당의 현관을 찾아갔다. 길고 널찍한 복도를 지나, 유명한 육주송이 있는 정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대서원의 주지 방으로 안내되었다. 나는 학생복의 무릎을 공손히 꿇고 긴장하여 앉아 있었지만, 아버지는 여기에 오자 갑자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와 이곳의 주지와는, 같은 출신이라도 풍채가 전혀 달랐다. 아버지는 병들어 쇠약하며, 초라한 인상에 까칠까칠한 피부를 하고 있는 반면, 도센 스님은 마치 분홍빛 과자처럼 보였다. 스님의 책상 위에는 화려한 절간답게, 각지에서 보내온 소포나 잡지류, 책, 편지 등이, 개봉도 되지 않은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스님은 통통하게 살찐 손끝으로 가위를 집더니 소포 하나를 능숙하게 벗겼다. "도쿄에서 보내온 과자야. 요즈음, 이런 과자는 드물지. 가게에서는 팔지 않고, 군이나 관청에만 납품한다더군." 우리는 차를 마시며,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서양 과자 같은 것을 먹었다. 긴장하면 긴장할수록, 가루가 자꾸만 나의 번질거리는 검정색 바지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아버지와 주지는, 군이나 관료가 신사만 중시하고 절을 경시하며, 경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압박까지 하는 데 분개하고는, 앞으로의 절간 경영은 어떤 식으로 해 나갈 것인가 등의 논의를 하였다. 주지는 통통한 체구에, 물론 주름도 있었지만, 주름 하나하나의 속까지도 청결히 씻겨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코가 유달리 길어서, 흘러내린 수액이 응고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얼굴과는 달리, 깎아 올린 머리 모양은 위엄이 있었으며, 정력이 머리에 몰려 있는 듯하여, 머리만이 무척 동물적인 느낌을 주었다. 아버지와 주지의 화제는, 승당 시절의 추억담으로 옮겨갔다. 나는 정원의 육주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송의 가지가 낮게 뒤엉키며 배 모양을 이루어, 뱃머리 쪽의 가지만이 일제히 높게 솟아 있는 나무였다. 폐문 시간이 다 되어 단체 관람객이 들어온 듯, 담 너머로 금각 쪽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도 목소리도, 봄날의 해질 무렵의 하늘에 흡수되어, 소리가 예리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원만하게 들렸다. 발소리가 또한 썰물처럼 멀어져 가는 것이, 과연 지상을 거쳐가는 중생의 발소리라고 여겨졌다. 나는 저물어 가는 석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금각 꼭대기의 봉황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 아이를 말일세... 하고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아버지 쪽을 돌아다보았다. 어둠이 짙어진 실내에는 내 장래가 아버지로부터 도센 스님에게로 위탁되고 있었다. "나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그때에는 저 아이를 말일세." 도센 스님은 과연 형식적인 위로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알겠네. 책임지지." 놀랍게도, 그 후로 두 사람의 흥겨운 대화는, 여러 명승들의 임종에 얽힌 일화였다. 어떤 명승은 '아아,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며 죽었고, 어떤 명승은 괴테처럼 '좀더 빛을'이라며 죽었고, 어떤 명승은 죽는 순간까지도 절의 돈 계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약석이라고 불리는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그날 밤은 절에서 묵기로 하였다. 저녁 식사 후 나는 아버지를 졸라서 다시 한 번 금각을 보러 갔다. 달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주지와의 오랜만의 대면에 흥분하여 무척 피곤해 있었지만, 금각이라는 말을 듣자, 숨을 헐떡이며 내 어깨를 잡고 따라왔다. 달은 후도 산 언저리에서 떠올랐다. 금각은 뒤쪽으로부터 달빛을 받아 검고 복잡한 그림자를 겹겹이 드리운 채 조용하였고, 구경정의 화두창 틀만이 달의 매끄러운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구경정에는 벽이 없었기에, 그곳에는 희미한 달빛이 살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아시하라 섬의 그늘에서 밤새가 소리치며 날아올랐다. 나는 내 어깨에 아버지의 여위어 가늘어진 손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그 어깨에 눈을 주었을 때, 달빛의 조화로, 나는 아버지 손이 백골로 변하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 그토록 실망을 주었던 금각도, 야스오카에 돌아온 후 나날이 내 마음 속에서 다시 아름다운 금각이 되었다. 어디가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몽상에 의하여 성장한 것이 일단 현실의 수정을 거쳐, 오히려 몽상을 자극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나는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에서 금각의 환영을 좇지 않게 되었다. 금각은 점차로 깊숙히, 견고하게, 실재하게끔 되었다. 그 기둥 하나하나, 화두창, 지붕, 꼭대기의 봉황 등도, 손으로 만지듯이 선명히 눈앞에 떠올랐다. 섬세한 세부와 복잡한 전모는 서로 상응되어, 음악의 한 소절을 떠올리면 그 전체가 흘러나오듯이, 어느 한 부분을 집어 내어 보아도 금각의 전모가 울려퍼졌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라고,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말입니다." 하고 처음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는 나를 숙부 집에 데려다 놓고는 곧바로 쓸쓸한 곶의 절간으로 떠나 버렸다. 곧 이어, 어머니에게서 전보가 왔다. 아버지는 심한 객혈을 하고 죽은 것이다. 제2장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나의 진정한 소년 시절은 끝났으나, 자신의 소년 시절에 인간적인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리고 이 놀라움은, 아버지의 죽음을 내 자신이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움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무력한 감회로 변하였다. 내가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왜냐 하면, 우치우라까지 도보로 가서, 그곳에서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나리우로 돌아가는 데에는 하루 종일 걸렸기 때문이다. 계절은 장마 직전의 불볕같이 더운 나날이었다. 내가 대면하고 나면 곧바로 관을 황량한 곶의 화장터로 옮긴 후, 바닷가에서 화장시키기로 되어 있었다. 시골 절간 주지의 죽음이란 특이한 느낌을 준다. 너무도 적절하기에 특이하다. 아버지는 소위 그 지방의 정신적인 중심임과 동시에, 단가 사람들 모두의 생애에 대한 후견인이기도 하며, 그들의 사후를 위탁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한 아버지가 절에서 죽었다. 그것은 마치, 직무를 너무도 충실히 수행하였다는 감명을 주었기에, 죽는 방법을 가르치며 다니던 사람이 손수 실연하다가 잘못하여 죽은 것 같은, 일종의 과실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아버지의 관은, 용의주도하게 준비된 곳에 맞추어 넣은 듯이, 너무도 그럴싸한 느낌이 들게끔 놓여 있었다. 어머니와 나이 어린 중과 단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이 어린 중의 더듬거리는 독경도, 어쩐지 관 속에 있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초여름의 꽃들에 묻혀 있었다. 꽃들은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꽃들은 우물 속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했다. 왜냐 하면, 죽은 사람의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지니고 있던 존재의 표면으로부터 무한히 함몰되어, 우리들을 향하고 있던 탈의 테두리 같은 것만을 남기고, 두 번 다시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멀리 존재하며, 그 존재 방법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소원한가 하는 점을,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여실히 설명해 주는 것은 없었다. 정신이 죽음에 의하여 이토록 물질로 변모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러한 국면에 접하게 되었으나, 지금 나에게 서서히, 5월의 꽃들이라든지, 태양, 책상, 학교 건물, 연필...그러한 물질이 어째서 그토록 나에게 서먹서먹하고, 나로부터 먼 거리에 존재하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 어머니와 단가 사람들은 나와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면이 암시하는, 살아 있는 자들이 속한 세계의 유추를, 나의 완고한 마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면이 아니라, 나는 단지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시체는 다만 보여지고 있었다. 나는 다만 보고 있었다. 본다고 하는 것, 평소에 아무런 의식도 없이 하고 있는 대로, 본다고 하는 것이, 이토록 살아 있는 자의 권리의 증명이며, 잔혹함의 표시일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신한 체험이었다.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일도 없고, 소리치며 뛰어다니지도 않는 소년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을 확인하는 방법을 배웠다. 비굴한 점이 많은 나였지만, 그때, 조금도 눈물에 젖지 않은 밝은 얼굴을 단가 사람들에게 보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절은 바다에 임한 절벽 위에 있었다. 조문객들의 뒤쪽으로는 여름철의 뭉게구름이 일본해 저편을 가로막고 있었다. 발인 전의 마지막 독경이 시작되자, 나는 거기에 참가했다. 본당은 어두웠다. 기둥에 걸린 깃발, 내진 중인방의 장식, 향로나 꽃병 따위가, 등불의 깜박이는 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이따금 바닷바람이 불어 들어, 내 승복의 소매를 부풀게 했다. 나는 독경을 하고 있는 자신의 눈가에, 강렬한 빛을 머금고 있는 여름날의 구름 모습을 끊임없이 느끼고 있었다. 끊임없이 내 얼굴의 한쪽에만 퍼붓는 그 엄청난 빛. 눈부신 그 모멸... --장례 행렬이 화장터의 한두 구역 앞까지 다다랐을 무렵, 우리들은 돌연히 비를 만났다. 마침 인심 좋은 단가의 앞이었기에, 관과 함께 모두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행의 비옷을 장만하고, 관에는 기름종이를 덮어서 화장터로 옮겼다. 그곳은 마을 남동쪽으로 불쑥 내민 곳의 밑부분으로, 돌멩이투성이의 조그만 해변이다. 그곳에서 태우는 연기는 마을 쪽으로 번지지 않기에, 옛날부터 그곳이 화장터로 사용되어 온 모양이다. 바위가 많은 그곳 해안은 파도가 유달리 거세다. 파도가 동요하며 부풀어 부서지려는 사이에도, 불안한 수면에는 끊임없이 빗발이 내리치고 있었다. 광택이 없는 빗발은 심상치 않은 해면을 냉정히 꿰뚫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바닷바람이 이따금 빗발을 황량한 암벽에 몰아붙였다. 하얀 암벽은 먹물을 흩뿌려 놓은 듯이 검게 변하였다. 우리들은 터널을 빠져나와 그곳에 도착하여, 인부들이 화장 준비를 하는 동안, 터널 속에서 비를 피하였다. 바다 경치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와, 젖어 있는 검은돌과, 비뿐이었다. 기름을 발라 윤기가 나는 관의 나뭇결은 비를 맞고 있었다. 불이 붙여졌다. 배급받은 기름이 주지의 죽음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기에, 불은 오히려 빗발을 거역하여, 채찍질하는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대낮의 불길이 엄청난 연기 속에서, 투명한 모습으로 뚜렷이 보였다. 연기는 탐스럽게 겹쳐지면서 조금씩 벼랑 쪽으로 밀려가, 어느 틈엔가, 빗속 한가운데에 불길만이 단정한 모습으로 일고 있었다. 나는 곁에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염주를 양 손으로 잡고 서 있었다. 그 얼굴은 몹시 경직되어,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단단히 응고되어 작게 보였다. *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는 교토로 가서 금각사의 도제가 되었다. 그때 주지 밑에서 득도하였다. 학비는 주지가 내어 주고 그 대신에 청소를 하거나 주지의 잔심부름 따위를 하게 되었다 일반 가정의 서생과 같은 것이다. 절에 들어와 곧바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질이 까다로운 사감은 군에 가고, 절에는 노인과 아주 젊은 사람밖에 없었다. 여기에 오니, 여러 가지 점에서 나는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일반 중학교처럼, 중놈 자식이라고 놀려 대는 일도 없고, 이곳에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만 있으니까... 나는 말더듬이에다가, 남들보다 약간 추하게 생겼다는 점만이 달랐다.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를 중퇴하고 다야마 도센 스님의 주선으로 린자이 학원 중학교로 전학하게 된 나는, 한 달도 안 있으면 시작되는 가을 학기부터 전학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가 시작되면 어차피 곧바로 어딘가의 공장에 근로 동원 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몇 주일간의 여름 방학이 남아 있었다. 상중의 여름 방학, 쇼와 19년(1944)의 전쟁 말기에 처한 기묘하게도 조용한 여름 방학... 절간의 도제 생활은 규칙 있게 지냈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최후의 절대적인 휴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의 매미 울음소리도 역력히 들린다. ...수개월 만에 보는 금각은, 늦여름의 햇빛 속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득도 때에 깍은 푸르스름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공기가 머리에 착 달라붙어 있는 듯한 그 감각, 그것은 자신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얇고 민감하며 연약한 피부 한 겹을 경계로, 외계의 사물과 접하고 있다는 기묘하고 위험한 감각이다. 그러한 머리로 금각을 올려다보니, 금각은 내 눈에만이 아니라, 머리에도 스며들 듯이 여겨졌다. 그 머리가 햇볕에 뜨거워지고, 저녁 바람에 선선하여지는 것처럼. '금각이여. 마침내 네 곁에 와서 살게 되었구나.' 하고 나는 빗자루를 든 손을 멈추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릴 때가 있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좋으니, 언젠가는 나에게 친근감을 보여 주고, 나에게 너의 비밀을 알려 다오. 너의 아름다움은, 지금 당장에라도 확실히 보일 것 같으면서, 아직 보이지 않는구나. 내 마음 속에 그리는 금각보다도, 실물이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 다오. 그리고 만약에, 네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어째서 아름다워야 하는가를 말해 다오.' 그해 여름의 금각은, 잇달아 비보가 날아드는 전쟁의 어두운 상황을 재물로, 한결 생생히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6월에는 이미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였고, 연합군은 노르망디의 벌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관람객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금각은 이 고독, 이 정적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전란과 불안, 수많은 시체와 엄청난 피가, 금각의 미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금각은 불안이 세운 건축, 한 사람의 장군을 중심으로 수많은 어두운 마음의 소유자들이 세운 건축이었던 것이다. 미술사가 양식의 절충밖에 발견하지 못한 3층의 부조화한 설계는, 불안을 결정화할 양식을 추구하여, 자연히 그렇게 만들어진 것임이 틀림없었다. 만약 금각이 하나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이었더라면, 그 불안을 포섭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붕괴되어 버렸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빗자루를 쥔 손을 멈춘 채 몇 차례고 금각을 우러러보는 나에게는, 그곳에 금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였다. 언젠가처럼, 단 하룻밤, 아버지와 함께 여기를 찾아왔들 때의 금각은, 오히려 이런 느낌을 주니 않았건만, 앞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금각이 내 눈앞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믿기 어려운 심정이었다. 마이즈루에서 생각하면, 금각은 교토의 한구석에 항상 있는 것처럼 여겨졌었으나, 여기에 살게 되자, 금각은 내가 볼 때만 내 눈앞에 나타나고, 본당에서 밤잠을 자거나 할 때에는, 금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금각을 구경하러 가서, 동료 도제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에게는 아무리 보아도, 그곳에 금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여, 일단 구경한 다음 본당 쪽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다시 한 번 보려고 하면, 금각은 에우리디케(역자주: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무의 요정)처럼, 모습이 홀연히 사라져 없어졌을 것 갖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나는 금각 주번의 청소를 끝내고, 서서히 열기를 더해 가는 아침 햇살을 피하여 뒷산에 들어가, 석가정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올라갔다. 개원 전이었기에, 사람 그림자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아마도 마이즈루 항공대 소속인 듯한 전투기 일개 편대가, 금각 위를 아주 저공으로, 짓누르는 듯한 굉음을 남기며 지나갔다. 뒷산 안쪽에, 잡초가 부성하고 쓸쓸한, 안민택이라는 못이 있었다. 그 못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백사총이라 불리는 5층 석탑이 하나 서 있다. 그 주변의 아침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우나, 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숲 전체가 지저귀고 있는 듯하였다. 연못 바로 앞에는 여름 풀이 무성하였다. 오솔길은 낮은 울타리로 그 풀숲과 구분되어 있었다. 그곳에 하얀 셔츠의 소년이 누워 있었다. 옆쪽의 조그만 단풍나무에는 갈퀴가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소년은 그 주위에 감도는 여름날 아침의 고요한 공기를 도려 낼 듯한 기세로 몸을 일으켰으나, 나를 보더니, "뭐야, 너니?" 하고 말했다. 쓰루카와라는 그 소년과는 간밤에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쓰루카와의 집은 도쿄 근교의 유복한 절이라, 학비도 용돈도 식량도 풍족히 집에서 받으며 단지 도제 생활을 맛보게끔, 주지의 연고로 금각사에 맡겨져 있었다. 여름 방학에 귀성했다가, 일찌감치 간밤에 돌아온 것이다. 또박또박한 도쿄 말투로 이야기하는 쓰루카와는, 가을부터 린자이 학원 중학교에서 나와 같은 반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 빠르고 쾌활한 말투가 간밤에 이미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뭐야, 너니?"라는 말에, 내 입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나의 무언이 그에게는 일종의 비난처럼 여겨진 모양이었다. "괜찮아,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지 않아도. 어차피 관람객들이 오면 더러워질 거고, 게다가 관람객 숫자도 적으니까." 나는 빙긋 웃었다. 이렇게 내가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쓸데없는 웃음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친근감을 주는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언제나 자신이 남에게 주는 인상을 일일이 책임질 수는 없었다. 나는 울타리를 넘어가, 쓰루카와 곁에 앉았다. 다시 주운 쓰루카와의 머리에 베인 팔은, 바깥쪽은 상당히 햇볕에 그을었지만, 안쪽은 정맥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하앴다. 그곳에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풀잎의 엷고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이 소년이 아마도 나만큼은 금각을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금각에의 집념을, 오로지 자신의 추한 모습 탓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응." 쓰루카와는 재빨리 눈동자를 움직이며, 소년다운 추리에 열중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네가 금각을 정말로 좋아하는 건, 그걸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기 때문이니? 가령 아버님이 금각을 아주 좋아하셨다든지 말이야." 절반 맞은 이 추리도, 나의 무감동하게 생긴 얼굴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고 느낀 나는, 그것이 약간 기뻤다. 쓰루카와는 인간의 감정을, 곤충 표본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년이 곧잘 그러하듯이, 자기 방의 잘 정돈된 서랍에 가지런히 분류해 놓고는, 때때로 그것을 꺼내어 그 자리에서 살펴보는 따위의 취미가 있는 듯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몹시 슬펐겠지? 그래서 넌 슬픈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거로구나. 어젯밤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거든." 이런 말을 들으니, 나는 아무런 반발심도 느끼지 않고, 자신이 쓸쓸해 보였다는 상대방의 감상으로부터 일종의 안심과 자유를 획득하여,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별로 슬플 건 없어." 쓰루카와는 성가실 정도로 긴 속눈썹을 올려서 이쪽을 모았다. "그래? 그럼 넌, 아버님을 미워했니? 아니면 싫어했니?" "미워한 것도 아니고, 싫어하지도 않았어..." "그래? 그렇다면 어째서 슬프지 않니?" "어쩐지, 그래." "모르겠군." 쓰루카와는 난문에 봉착하여, 풀 위에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렇다면, 그 밖에 더 슬픈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뭔지, 몰라." 하고 나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나는 남에게 의문이 일게 만드는 것을 어째서 좋아하는지 반성하였다. 내 자신에게 있어서 그것은 의문도 아무것도 아니다. 자명한 사실이다. 내 감정에도, 말더듬 증세가 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은 언제나 시기를 놓쳐 버린다. 그 결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각기 다른, 고립된, 서로 연결되지 않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미미한 시간의 엇갈림, 미미한 지체가 언제나 내 감정과 사건과를 전혀 다른, 마치 그것이 본질적으로 무관한 듯한 상태로 바꾸어 버린다. 나에게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떠한 사건이나 동기와도 관련 없이, 돌발적으로, 이유도 없이 나를 엄습하리라... ...또다시 나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눈앞의 새 친구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말았다. 쓰루카와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넝말, 별난 친구로군." 그가 입은 셔츠의 하얀 복부가 파도쳤다. 그 위에 움직이고 있는 햇살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 친구 셔츠의 주름살처럼, 내 인생은 주름살투성이다. 하지만 이 셔츠는 어째서 이토록 하얗게 빛나는 것일까, 구겨져 있는데도... 혹시나 나도? 속세와는 관계없이, 선찰은 선찰의 관습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름이라서 매일 아침 늦어도 5시에는 기상한다. 기상하는 것을 개정이라고 한다. 일어나면 곧바로 조과인 독경이다. 삼시회향이라 하여, 세 번 읽는다. 그리고는 옥내 청소를 하고, 걸레질을 한다. 아침 식사는 죽좌이다. 죽유십리 요익행인 과보무변 구경상락 이 죽좌의 경을 읽고, 죽을 먹는다. 식후에 풀뽑기, 마당 청소, 장작 패기 등의 작업을 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그 일을 끝낸 다음 학교에 갈 시간이 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 약석이다. 그 다음에 이따금, 주지가 경전 강의를 해 주는 일이 있다고 한다. 9시에는 개침, 즉 취침을 한다. 내 일과는 이상과 같으며, 매일 기상하는 신호는 주방 담당인 전좌가 울리며 다니는 종소리였다. 금각사, 즉 녹원사에는 본디 12__13명의 사람들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소집이나 징병으로, 70세가 넘은 안내원과 접수원, 60세에 가까운 취사부 이외에는, 집사, 부집사, 그리고 우리 도제들 3명이 있을 뿐이었다. 노인들은 이끼가 낀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고, 소년들은 요컨대 아직 어린애였다. 집사를 부사라고 하는데, 회계일로 항상 바빴다. 며칠 후, 나는 주지--우리는 그를 노사라고 불렀다--의 방에, 신문을 갖다 주는 역할을 맡았다. 신문이 오는 것은 조과가 끝나고, 걸레질이 끝날 무렵의 시간이었다. 적은 인원으로 짧은 시간에 방이 30개나 되는 절간의 복도를 닦자니, 자연히 일을 대충대충 하게 된다. 현관에서 신문을 집어, 사환 방 앞의 복도를 지나, 객실 뒤쪽을 한 바퀴 돌아, 중간 복도를 건너서, 노사가 있는 대서원까지 간다. 거기까지의 복도는, 적당히 마르겠지 하는 생각에, 양동이의 물을 거의 퍼붓다시피 하며 걸레질을 하기 때문에, 바닥의 움푹한 곳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인 채로 아침 햇살에 반사되며 발목까지 적신다. 그것이 여름철이라, 기분 좋게 느껴진다. 하지만 노사의 방문 밖에 무릎을 꿇고, "신문입니다." 하고 알린 후, "으응." 하는 대답을 듣고서 방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젖은 발을 승복의 옷자락으로 재빨리 닦아 두는 비법을, 나는 동료들로부터 배웠다. 나는 인쇄 잉크가 내뿜는, 속세의 선명하고 강렬한 냄새를 맡으며, 신문의 큰 표제를 흘낏흘낏 들여다보면서 복도를 바삐 걸었다.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나는 금각을 공습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이판이 함락된 이후로 본토 공습도 불가피하게 되었기에 교토 시의 일부에도 강제 소개령이 내려졌으나, 그래도 금각이라는 반영구적인 존재와 공습이라는 재앙과는, 나의 내부에서 서로 무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금강불괴의 금각과 과학적인 불과는 서로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마주치더라도 서로 슬쩍 몸을 비킬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금각은, 공습의 불길에 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대로 간다면, 금각이 재로 변할 것은 확실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싹트면서, 금각은 다시금 그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더하여 갔다. 내일이면 학교가 시작되는, 여름 방학의 마지막 날 오후였다. 주지는 부집사를 동반하여, 어딘가의 법사를 부탁받아 외출하고 없었다. 쓰루카와는 나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에, 그도 곧 포기하였다. 쓰루카와에게는 그런 점이 있었다. 우리 둥은 몇 시간의 휴식을 얻어, 카키색 바지에 각반을 두르고 린자이 학원 중학교의 제모를 쓰고는 본당을 나섰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철의 대낮이라, 관람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어디로 갈까?"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여, 어딘가로 가기 전에 금각을 차분히 봐두고 싶어, 내일부터는 이 시간에 금각을 볼 수 없을 테고, 우리가 공장에 가 있는 사이에 금각은 공습으로 불타 버릴지 몰라, 하고 말했다. 나의 우물거리는 대답은 중간중간 더듬거렸고, 쓰루카와는 그 동안에 질린 듯이 답답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것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내 얼굴에는, 무언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처럼 심하게 땀이 흘렀다. 금각에 대한 나의 기묘한 집념을 털어놓은 상대는 오로지 쓰루카와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쓰루카와의 표정에는, 나의 더듬거리는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조감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얼굴에 직면한다. 중요한 비밀을 고백할 때에도, 미에 대한 격렬한 감동을 호소할 때에도, 자신의 내장을 꺼내어 보여주는 듯한 경우에도, 내가 직면하는 것은 이러한 얼굴이다. 인간은 평소에 인간을 향하여 이러한 얼굴을 하면 안된다. 그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충실히, 나의 우스꽝스러운 초조감을 그대로 흉내내어, 마치 나의 무시무시한 거울처럼 변하여 있었다.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그럴 때에는, 나와 똑같이 추한 얼굴로 변모한다. 그것을 본 순간, 내가 표현하려고 생각했던 중요한 것들은, 기왓장이나 다를 바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쓰루카와와 나 사이에는, 여름철의 강렬한 직사광선이 있었다. 쓰루카와의 젊은 얼굴은 기름기로 번질거렸고, 햇빛 속에서 속눈썹이 하나하나 금빛으로 불타올랐으며, 찌는 듯한 열기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말을 끝냈다. 끝냄과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쓰루카와는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말더듬이라는 것을 놀려대려고 하지 않았다. "왜지?" 나는 그렇게 다그쳤다. 동정보다도, 비웃음이나 모멸 쪽이 훨씬 내 맘에 든다는 사실은, 수차 언급한 바와 같다. 쓰루카와는 더없이 다정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런 건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성격이거든." 나는 놀랐다. 시골의 거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이러한 종류의 다정함을 몰랐다. 나라는 존재로부터 말더듬 증세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나일 수 있다는 발견을, 쓰루카와의 다정함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홀딱 발가벗겨진 상쾌감을 몸 전체로 느꼈다. 쓰루카와의 기다란 속눈썹에 둘러싸인 눈은, 나에게서 말더듬 증세만을 여과시켜, 나를 받아들이고 바로, 나라는 존재를 말살당하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의 조화와 행복을 느꼈다. 그때 보았던 금각의 정경을 내가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우리 둘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접수 담당 노인의 앞을 지나, 인적이 없는 길을 담벼락 따라 바삐 걸어서, 금각 앞으로 갔다. ...나는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연못가의 한구석에, 각반을 두르고 흰 셔츠를 입은 소년 둘이서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다. 그 두 사람 앞에, 금각이, 아무것에도 가로막히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 마지막 여름, 마지막 여름 방학, 그 마지막 하루...우리들의 젊음은 어지러울 정도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금각도 역시 우리들과 같은 벼랑 끝에 서서, 대면하고 대화하였다. 공습에 대한 기대가, 이처럼 우리들과 금각을 가깝게 만들었다. 늦여름의 고요한 일광이 구경정의 지붕에 금박을 입히고, 곧바로 내리쏟는 빛은, 금각의 내부를 밤과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이 건축의, 불후의 시간이 나를 압박하며, 나를 멀리하고 있었으나, 머지않아 소이탄의 불에 타 버릴 그 운명은, 우리들의 운명으로 접근해 왔다. 금각은 어쩌면 우리들보다 먼저 멸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금각은 우리들과 같은 생을 살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금각을 에워싼 소나무의 산들은 매미소리로 가득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보이지 않는 중들이 소재주를 외고 있는 것처럼. "갸갸. 갸키 갸키. 운눈. 시후라시후라. 하라시후라하라시후라." 이 아름다운 것이 머지 않아 재가 되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에 따라서, 심상의 금각과 현실의 금각은, 생견을 대고 덧그린 그림을 원래의 그림 위에 겹쳐 놓듯이, 서서히 그 세부가 서로 겹치어, 지붕은 지붕에, 연못으로 돌출한 수청은 수청에, 조음동의 난간은 난간에, 구경정의 화두창은 화두창에 겹쳐지게 되었다. 금각은 이미 부동의 건축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위 현상계의 덧없는 상징으로 바뀌었다. 현실의 금각은, 이렇게 생각하니, 심상의 금각과 다를 바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내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 그 가느다란 기둥, 그 우아한 지붕의 곡선은 재로 변하여, 두 번 다시 우리들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는, 섬세한 모습이, 여름의 불덩이 같은 빛을 흠뻑 받으며, 태연자약하게 있었다. 산모퉁이에는 아버지가 침경을 외는 동안 내가 눈가에 느꼈던 것과 같은, 여름 구름이 위엄 있게 솟아 있었다. 그 구름은 울적한 빛은 머금은 채 이 섬세한 건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각은 이토록 강렬한 늦여름의 햇살 아래서는, 세부의 정취를 잃고, 내부에 컴컴하고 차가운 어둠을 품은 채, 다만 그 신비한 윤곽으로 번쩍이는 주위의 세계를 거부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꼭대기의 봉황은 홀로, 태양에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대좌를 꽉 붙잡고 있었다. 나의 기나긴 웅시에 질린 쓰루카와는, 발 밑의 돌멩이를 주워서 멋진 투수 폼으로 그것을 연못에 비친 금각의 투영 한가운데에 던졌다. 파문은 수면의 물풀을 밀며 번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아름답고 정교한 건축을 무너뜨렸다. * 그로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1년간이, 내가 금각과 가장 친했고, 그 안부를 걱정하며, 그 아름다움에 빠졌던 시기이다. 다시 말해서, 금각을 나와 같은 높이까지 끌어내려, 그러한 가정하에, 두려움 없이 금각을 사랑할 수 있었던 시기이다. 나는 또한 금각으로부터 나쁜 영향, 혹은 그 독을 받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나와 금각에게 공통되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무하였다. 미와 나를 연결시키는 매체를 발견한 것이다. 나를 거절하며 나를 소외시키고 있는 듯이 여겨졌던 것과의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고 느꼈다.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 버리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거의 동일한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의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때로는, 도망치는 도둑이 고귀한 보석을 삼켜서 숨기듯이, 내 육체의 속, 내 조직 속에 금각을 숨겨 갖고 도망칠 수도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1년간, 내가 경도 배우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매일같이 수신과 교련과 무도, 그리고 공장이나 강제 소개를 도우며 지냈다는 사실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나의 꿈꾸기 좋아하는 성격은 더욱더 그러한 성향을 더해 갔고, 전쟁 덕분에 인생은 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전쟁이란 우리 소년들에게 있어서, 단순히 꿈처럼 실속 없이 바쁜 체험이며, 인생의 의미로부터 차단된 격리 병실과도 같은 것이었다. 쇼와 19년(1944) 11월, B29의 도쿄 폭격이 있었던 당시는, 교토 역시 내일이라도 공습을 당할 듯이 여겨졌다. 이 도시는 너무도 낡은 것들을 원래의 모습대로 지키고 있었고, 수많은 신사나 불당들은 그 속에서 생겨났던 작렬하는 재의 기억을 잊고 있었다. 오닌의 난이 얼마나 이 도시를 황폐시켰는가를 상상하면, 나는 교토가 너무나 오랫동안 전화의 불안을 잊고 있었기에, 그 아름다움의 일부를 상실 한 것이리라고 생각하였다. 내일이야말로 금각이 불타리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형태가 사라지니라... 그 순간 꼭대기의 봉황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날아가리라, 그리고 형태에 속박되어 있던 금각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닻에서 벗어나 도처에 모습을 나타내어, 호수 위에도 어두운 바다의 조수 위에도, 희미한 빛을 흩뿌리며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겠지... 기다려도 기다려도 교토는 공습을 당하지 않았다. 이듬해 3월 9일, 도쿄의 번화가가 불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들었건만, 재화와는 무관히 교토의 상공에는 투명한 초봄의 하늘만이 있었다. 나는 거지반 절망에 빠져서 기다리며, 이 초봄의 하늘이, 마치 반짝이는 유리창처럼 내부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내부에는 불과 파멸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였다. 나에게 인간적인 관심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빈곤도, 거의 나의 내면 생활을 좌우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재화를, 큰 파국을, 인간적인 규모를 초월한 비극을, 인간도 물질도, 추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깡그리 동일한 조건하에서 말살시켜 버릴 거대한 하늘의 압착기와도 같은 것을 꿈꾸고 있었다. 때로는 초봄 하늘의 심상치 않은 광채가, 지상을 덮어 버릴 정도로 커다란 도끼날의 시퍼런 빛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단지 그 낙하를 기다렸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낙하를. 나는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 원래 내가 암흑의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관심은, 나에게 주어진 난문은 미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나에게 작용하여 암흑의 사상을 품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미라는 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암흑적인 사상에 자기도 모르게 직면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도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전쟁 말기에 교토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그것은 거의 믿기지 않는 사실이지만, 목격자는 나 하나가 아니다. 내 곁에는 쓰루카와도 있었다. 정전일인 어느 날, 나는 쓰루카와와 함께 남선사에 갔다. 아직 남선사를 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넓은 드라이브웨이를 가로질러, 인클라인(역자주: 비탈, 사면)에 걸쳐진 나무다리를 건넜다. 5월의 맑게 갠 날이었다. 인클라인은 대부분 잡초에 뒤덮여 있었다. 그 잡초에는 희고 작은 십자형의 꽃들이 바람에 산들거리고 있었다. 인클라인의 경사면이 시작되는 곳까지 더러운 물이 고여, 이쪽 둔덕의 벚나무 가로수의 그림자를 완전히 적시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작은 다리 위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 중의 추억에는 군데군데, 이러한 짧고 무의미한 시간이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으며 지내던 방심의 짧은 시간이, 때때로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러한 시간이 마치 통렬한 쾌락의 기억처럼 선명한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정말 좋군." 하고 나는 또, 아무런 의미도 없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응." 쓰루카와도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둘이는 이러한 2, 3시간이 자신들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넓은 자갈길이 계속되는 곁으로 아름다운 물풀을 흔들며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었다. 이윽고 유명한 산문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절 안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신록 속으로 수많은 탑두의 기왓장이, 녹슨 은빛 책을 덮어 놓은 듯이 튀어나와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이 순간에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있어서 전쟁은 인간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기괴한 정신적 사건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시카와 고에몬(역자주:이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전설적인 도적)이 그 누상의 난간에 발을 걸치고, 활짝 핀 꽃들을 즐겼다는 곳은 아마도 이 산문이리라, 우리들은 아이들 같은 기분에서, 이미 꽃이 져 버린 계절이었지만, 고에몬과 같은 포즈로 경치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되는 입장료를 내고는, 색이 완전히 검게 변색되고 경사가 급한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거의 다 올라간 곳은 층계참에서 쓰루카와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것을 보고 웃던 나도 곧이어 부딪쳤다. 둘이는 한 바퀴 돌아서 계단을 올라가, 누상으로 나갔다. 동굴같이 좁은 계단에서 웅장한 경관 앞으로 단숨에 몸을 드러내는 긴장감은 상쾌하였다. 무성한 벚나무와 소나무, 그 건너의 가옥들 저편에 위치한 헤이안 신궁의 숲, 교토 시가지의 끝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라시 산, 기타노카타, 기부네, 미노노우라, 곤피라 등의 산들이 늘어선 모습, 이러한 경치를 마음껏 즐기고 나서, 절간의 도제답게, 신발을 벗고 공손히 당리로 들어갔다. 어두운 어당에는 24장의 다다미를 깡아 놓은 곳에, 석가상을 중앙으로 16나한들의 금빛 눈동자가 어둠에 빛나고 있었다. 여기를 오봉류라고 한다. 남선사는 같은 임제종이라도, 상국사파의 총본산이다. 우리는 동종이파의 절에 소속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반 중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둘이는 안내서를 손에 들고 가리노탄유 모리노부(역자주:에도 시대 초기의 화가)와 도사호겐 도쿠에쓰가 그렸다는 선명한 색채의 천장화를 둘러보았다. 천장의 한쪽에는, 비상하는 천인과, 그가 연주하는 비파와 피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쪽에는 하얀 모란을 받쳐 든 가릉빈가가 날개 치고 있었다. 그것은 천축설산에 살며 기묘한 소리를 내는 새로, 상반신은 탐스러운 여자 모습을 하고, 하반신은 새 모습이었다. 또한 중앙의 천장에는 금각 꼭대기에 있는 새와 같은 종류이지만, 그 위엄에 넘치는 금빛 새와는 전혀 달리, 화려한 무지개 같은 봉황이 그려져 있었다. 석존상 앞에서, 우리는 무릎 꿇고 합장하였다. 어당을 나섰다. 하지만 누상에서 떠나기 싫었다. 그래서 올라왔던 계단 옆의 남쪽으로 향한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아름답고 자그마한 색채의 소용돌이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 보고 온 천장화의 천연색 잔상인 듯 여겨지기도 하였다. 풍부한 색이 응집된 느낌은, 가릉빈가를 닮은 새가 눈앞의 신록이나 소나무 숲 어딘가의 가지에 숨어서, 화려한 날개 끝을 살짝 엿보이고 있는 듯하였다.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들 눈 아래에는, 길 건너로 천수암이 있었다. 나지막한 나무들을 간소하게 심어 놓은 한적한 정원을, 네모난 돌의 모서리만 맞대어 늘어놓은 돌길이 꼬불꼬불 가로질러,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방으로 통하고 있었다. 방안에는 장식벽과 선반이 모두 보였다. 그곳은 자주 헌차를 행하거나, 다과회 장소로 대여되는 듯, 주홍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그것이었다. 전쟁 중에 이토록 화려한 기모노의 여자 모습을 보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런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가는, 길가에서 주의를 받고 되돌아가야만 하리라. 그럴 정도로 그 복장은 화려하였다. 자세한 무늬는 보이지 않았지만, 옥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거나 새겨져 있었고, 주홍색 허리띠에도 금실이 빛나는 모습이, 과장하여 말하자면, 주위가 빛나고 있는 듯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기에, 그 하얀 옆얼굴이 독보여, 정말로 살아 있는 여자인지 의심스러웠다. "저건, 도대체, 살아 있는 건가?" "나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인형 같군." 쓰루카와는 난간에 가슴을 딱 밀어붙인 채,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때 안에서, 군복 차림의 젊은 육군 사관이 나타났다. 그는 예의바르게 여자의 한두 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여자와 대면하였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가만히 마주 앉아 있었다. 여자가 일어섰다. 조용히 복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여자는 찻잔을 받쳐 들고, 산들바람에 긴 소맷자락을 날리며 돌아왔다. 사내 앞에서 차를 권하였다. 예법대로 묽은 차를 권하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사내가 무엇인가 말했다. 사내는 좀처럼 차를 마시지 않았다. 사내가 무엇인가 말했다. 사내는 좀처럼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그 시간이 기묘하게도 길고, 기묘하게도 긴장되는 듯이 여겨졌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다음이다. 여자는 자세를 바로 한 채, 갑자기 옷깃을 풀었다. 내 귓전에는 뻣뻣한 허리띠를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비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하얀 가슴이 드러났다. 나는 숨을 죽였다. 여자는 하얗고 풍만한 젖가슴의 한쪽을, 그대로 자기 손으로 꺼냈다. 사관은 짙은 색 찻잔을 받쳐 들고, 여자 앞에 무릎 꿇은 채로 다가갔다. 여자는 젖가슴을 양 손으로 주물렀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짙은 색 찻잔 속에서 거품을 띄우고 있는 연둣빛 차에, 희고 따듯한 젖이 뿜어나와, 방울을 남기며 잔 속에 담기는 모야, 고요한 차의 표면이 하얀 젖으로 흐려져 거품을 일으키는 모양을, 바로 눈앞에 보듯이 역력히 느꼈다. 사내는 찻잔을 들고, 그 기이한 차를 남김없이 마셨다. 여자의 하얀 가슴도 감추어졌다. 우리 둘은 긴장하여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차분히 생각하니, 그것은 사관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와 싸움터로 나가는 사관과의, 이별의 의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그 당시의 감동은, 어떠한 해석도 불가능하였다. 너무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기에, 어느 틈엔가 남녀가 방에서 모습을 감추고, 넓은 주홍빛 양탄자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하얗게 돋보이던 옆얼굴과, 더없이 하얀 가슴을 보았다. 그리고 여자가 사라진 뒤, 그날 하루의 나머지 시간도,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나는 집요하게 생각하였다. 분명히 그 여자는, 되살아난 우이코임에 틀림없다고. 제3장 아버지의 1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기묘한 생각을 해내었다. 근로 동원 중인 나의 귀향이 어렵기 때문이 어머니 자신이 아버지의 위패를 갖고 올라와, 다야마 도센 스님의 독경을 옛 친구의 기일에 단 몇 분이라도 부탁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돈은 없으니, 단지 자비심을 기대하고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님은 승낙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뜻을 나에게도 전하였다. 나는 그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듣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고의로 어머니에 관하여 붓을 생략해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에 관하여는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종의 사건에 관하여, 한마디도 어머니를 책망한 적이 없다. 입 밖에 낸 적도 없다. 어머니도 분명히, 내가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그 사건 이래로, 내 마음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고 있었다.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에 입학하여, 숙부 집에 맡겨진 후, 1학년 여름 방학이 되어 처음으로 귀성하였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어머니의 친척인 구라이라는 사내가, 오사카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나리우로 돌아왔으나, 그 부인은 자기 소유의 집이라는 이유로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형편이 풀릴 때까지 구라이는 아버지의 절에 기거하게 되었다. 우리 절에는 모기장이 몇 개밖에 없었다. 요행히도 감염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와 내가 결핵인 아버지와 같은 모기장에서 자는 곳에 구라이가 끼여들었다. 나는 여름날 한밤중에 정원수 사이로, 찌릭찌릭 하는 무언가에 얽힌 듯이 짤막한 울음소리를 내며 매미가 날아다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그 소리에 나는 잠을 깬 듯하다. 파도소리가 높았고 바닷바람은 모기장의 연둣빛 자락을 흔들었다. 모기장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았다. 모기장은 바람에 부풀었다가, 바람을 여과시킨 후,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에 밀리는 모기장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는 관계없이 각도가 변하였다. 다다미를 대나무 잎사귀처럼 비벼 대는 소리는, 모기장 자락이 내는 소리였다. 그러나 바람에 의한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 모기장에 전하여져 왔다. 바람보다도 미세한 움직인. 모기장 전체에 잔물결처럼 번지는 움직임, 그것이 성긴 천을 팽팽히 당겨 대며, 안쪽에서 보는 커다란 모기장 전체를 불안으로 가득한 호수의 수면, 안쪽에서 보는 커다란 모기장 전체를 불안으로 가득한 호수의 수면처럼 만들었다. 호수 위에 멀리 떠 있는 배가 일으키는 파도의 첫 도래, 혹은 이미 지나간 배가 남긴 여파의 먼 반영... 나는 조심스레 눈길을 그 근원지로 돌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크게 뜬 눈이, 송곳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4명에게는 비좁은 모기장 속에서, 아버지의 옆에서 자고 있던 나는, 몸을 뒤척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한구석으로 몰아붙였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와 내가 본 것과의 사이에는, 주름살 투성이의 하얀 시트가 있었고, 내 등뒤에서 웅크린 자세로 자고 있는 아버지의 숨결이 내 목 언저리에 직접 닿았다. 아버지가 잠을 깬 사실을 안 것은, 기침을 참으려는 호흡이 거칠고 불규칙하게 내 등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열세 살인 내가 뜨고 있는 눈은, 크고 따뜻한 물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두 손바닥이 등뒤로부터 뻗어나와 내 눈을 가린 것이었다. 지금도 그 손바닥의 기억은 살아 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손바닥. 등뒤에서 넘어와, 내가 보고 있던 지옥을 순식간에 그 눈으로부터 뒤덮어 가려 버린 손바닥. 타계의 손바닥. 사랑인지, 비애인지, 굴욕 때문인지는 모르나, 내가 접하고 있던 끔찍한 세계를 순식간에 중단시키고, 어둠 속에 묻어 버렸던 손바닥. 나는 그 손바닥 속에서 가볍게 끄덕였다. 양해와 합의가, 내 자그마한 얼굴의 끄덕임으로 즉시 전하여지자, 아버지의 손바닥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손바닥이 명령하는 대로, 손바닥이 치워진 다음에도, 불면의 아침이 밝아 와서 눈꺼풀이 눈부신 햇살을 통과시킬 때까지, 완고히 눈을 감고 있었다. --훗날, 아버지의 발인 때에, 내가 그 죽은 얼굴을 보기에 급급하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점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그 죽음과 더불어 손바닥의 속박은 해제되고, 내가 오로지 아버지의 얼굴만 바라보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확인하였다는 점을 상기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그 손바닥, 소위 세상 사람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이토록 성실한 복수를 잊지 않았지만, 어머니에 대하여는, 그 기억을 용서할 수 없는 것과는 별도로,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기일 전날 금각사에 와서 하룻밤 묵게끔 되었다. 기일 당일은 나도 학교를 쉴 수 있도록 주지가 편지를 써 주었다. 근로 동원은 절에서 다니고 있었다. 그 전날이 되자 나는 녹원사로 돌아가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투명하고 단순한 마음을 지닌 쓰루카와는 오랜만의 어머니와의 대면을 기뻐해 주었고, 절간 동료들도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나는 가난하고 초라한 어머니가 싫었다. 어째서 내가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은가를, 친절한 쓰루카와에게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게다가 그는 공장이 끝나자마자, "자, 뛰어서 돌아가자." 하고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전혀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건 과장이다. 어머니가 그립지 않을 리가 없다. 단지 나는 육친의 노골적인 애정의 발로에 그립지 않을 리가 없다. 단지 나는 육친의 노골적인 애정의 발로에 직면하기가 싫었기에, 그 때문에 갖가지 이유를 붙여 본 것에 지나지 않을 리가 없다. 단지 나는 육친의 노골적인 애정의 발로에 그립지 않을 리가 없다. 단지 갖가지 이유를 붙여 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의 나쁜 성격이다. 하나의 솔직한 감정을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정당화시키는 동안은 좋으나, 때로는 자신의 두뇌에서 만들어 낸 무수한 이유들이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나에게 강요하게 만든다. 그 감정들은 원래의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 혐오감만큼은 어딘가 정확한 데가 있다. 내 자신이, 혐오해야 할 인간이기 때문이다. "뛰어 봤자 소용없어. 힘만 들지. 다리를 끌며 가면 된다구." "그래서 어머님께 동정을 받아, 어리광부릴 작정이로군." 쓰루카와는 언제나 이런 식의 오해로 가득한 나의 해설자였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는 조금도 성가시지 않은, 필요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정말로 선의의 통역자, 내 말을 현세의 말로 번역해 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렇다. 때로는 쓰루카와가, 납에서 황금을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사진의 음화, 그는 양화였다. 한 번 그의 마음으로 여과되면, 나의 혼탁하고 어두운 감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투명한 빛을 발하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나는 몇 번이나 놀라움에서 바라보았던가! 내가 말을 더듬으며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쓰루카와의 손이 내 감정을 뒤집어서 외부로 전하여 준다. 이러한 놀라움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지 감정에 머물러 있는 한에는, 이 세상의, 최악의 감정도 외선의 감정도 차이가 없다는 것, 그 효과는 마찬가지라는 것, 살의도 자비도 겉보기는 다를 바 없다는 것 등이었다. 입이 닳도록 설명하여도 쓰루카와에게는 이러한 사실들이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엄청난 발견이었다. 쓰루카와 덕분에 내가 위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위선이 나에게는 상대적인 죄에 불과하였다는 점도 이유가 되었다. 교토에서는 공습을 당하지 않았으나, 공장에서 출장 명령을 받고는 비행기 부품의 발주 서류를 갖고 오사카의 본사에 갔을 때, 우연히 공습이 있었기에, 창자가 노출된 공장 노동자가 들것으로 운반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째서 노출된 창자는 처참한 것일까? 어째서 인간의 내부를 보면 끔찍해서 눈을 가려야만 하는가? 어째서 피의 흐름이 사람에게 충격을 줄까? 어째서 인간의 내장이 추한 것일까? 그것은 매끄럽고 젊음에 넘치는 피부의 아름다움과 완전히 동질의 것이 아닌가? 내가 자신의 추함을 무로 돌리는 이러한 생각을 쓰루카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면, 그는 어떠한 얼굴을 할까? 내부와 외부, 가령 인간을 장미꽃처럼 속도 겉도 없는 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러한 생각이 어째서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만약에 인간이 그 정신의 내부와 육체의 내부를, 장미의 꽃잎처럼 유연하게 뒤집어 감아서, 햇빛이자 5월의 산들바람에 드러나도록 할 수 있다면... --어머니는 이미 도착하여 노사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쓰루카와는 초여름 저녁의 툇마루에 무릎을 꿇고서, 지금 돌아왔습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노사는 나만 방으로 불러들여, 엄니를 앞에 두고, 이 아이는 아주 성실합니다, 하는 내용의 말을 했다. 나는 어머니를 거의 보지 않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깨끗이 빨아 입은 감색 몸빼의 무릎과, 그 위에 놓인 지저분한 손가락이 모였다. 노사는 우리 모자에게 물러가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는 그 방을 나왔다. 소서원 남쪽의, 안뜰을 향한 두 칸 반짜리 헛간이 내 방이다. 그곳에 단둘이 되자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나는 냉정할 수가 있었다. "난 이미 녹원사에 맡겨진 몸이니까 출세할 때까지 찾아오지 말어." "알아, 안다구." 나는 어머니를 잔혹한 말로 맞이하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옛날처럼, 어머니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점이 답답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자칫 경계선을 넘어 나의 내부로 들어오리라는 사실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어머니는 햇볕에 탄 얼굴에, 작고 교활하게 보이는 움푹 들어간 눈을 하고 있었다. 입술만은 별개의 생물처럼 빨갛게 윤기가 흘렀고, 시골 사람 특유의 튼튼하고 견고하며 커다란 치열을 하고 있었다. 도회지의 여자라면 짙은 화장을 하여도 괜찮을 나이였다. 일부러 보기 흉하게 하고 있는 듯한 어머니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웅덩이의 물처럼 육감을 남기고 있는 것을 민감하게 느낀 나는, 그것을 증오하였다. 노사의 앞에서 물러나 마음껏 울고 난 후, 요번에는 어머니는, 햇볕에 탄 가슴을 풀어헤치고 배급받은 인조 섬유 수건으로 닦았다. 동물과도 같은 빛을 발하는 천으로 만든 수건은, 땀에 젖어서 번쩍일 정도였다. 등산 가방에서 쌀을 꺼냈다. 노사에게 드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어서 어머니는 낡은 쥐색 솜으로 겹겹이 싼 아버지의 위패를 꺼내어 내 책꽂이 위에 놓았다. "고맙기도 하지. 내일 스님께 독경을 부탁드리면 아버지도 기뻐하시겠지." "기일이 지나면 엄마는 나리우로 돌아갈 거야?" 어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어머니는 그 절의 권리를 이미 남에게 넘겼을 뿐만 아니라, 얼마 되지 않는 논밭도 처분하여 아버지의 요양비로 빌렸던 빚을 모두 청산하고, 이제부터는 맨몸으로, 교토 교외의 가사 군에 있는 백부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이야기해 두고 온 것이었다. 내가 돌아갈 절은 없어졌다! 그 황량한 곶의 마을에는, 나를 맞이할 곳이 없어진 거이다. 이때 내 얼굴에 나타난 해방감을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어머니는 내 귓전에 입을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알겠냐? 이제 너한테 절은 없는 거야. 앞으로는, 이 금각사의 주지가 되는 수밖에 없어. 스님께 잘 보여서, 후계자가 돼야지. 알겠어. 엄마는 그것만 낙으로 살고 있으니까." 나는 깜짝 놀라서 어머니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두려워서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방은, 이미 어두웠다. 내 귓전에 입을 가까이하였기에, 이 '자모'의 땀냄새가 내 주위에 풍겼다. 그때 어머니가 웃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렸을 때의 젖 먹던 기억, 거무스레한 젖가슴의 기억, 그러한 심상들이, 몹시 불쾌하게 내 속에서 교차하였다. 좋지 못한 야심에 불을 댕길 때에는, 무엇인가 육체적인 강제력과도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듯이 생각되었다. 어머니의 곱슬곱슬한 귀밑머리가 내 뺨에 닿았을 때, 어둠이 깔린 안뜰의 이끼 낀 돌대야 위에서 한 마리의 잠자리가 날개를 쉬고 있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저녁 하늘은 그 자그마한 원형의 물 위에 비치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마치, 녹원사는 그때 사람이 살지 않는 절간처럼 생각되었다. 간신히 나는 어머니를 직시하였다. 매끄러운 입술 언저리에, 금니를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내 대담은 몹시 더듬거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군대에 끌려가서, 전사하게 될지 몰라." "바보야. 이런 말더듬이가 군대에 간다면 일본도 끝장이게." 나는 몸을 경직시키며 어머니를 증오하였다. 하지만 더듬거리며 나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공습으로, 금각이 타 버릴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간다면, 교토에 공습은 절대 없을 거야. 미국이 사양하고 있거든." 나는 대담하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절의 안뜰은 바다 밑과 같은 색으로 변하였다. 정원석들은 심한 격투라도 벌인 듯한 모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내 침묵에는 아랑곳없이, 어머니는 일어나, 다다미 방을 에워싼 판자 문을 거칠게 바라보며, "저녁밥은 아직 멀었냐?"하고 말했다 --훗날 생각하니, 이때의 어머니와의 대면은 내 마음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느낀 것도 이때였고, 어머니의 생각이 처음으로 강력히 나에게 작용한 것도 이때였다. 어머니는 아름다운 금각과는 태어날 때부터 무연한 인종이었지만, 그 대신에 내가 모르는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교토에 공습 걱정이 없으리라는 것은, 내 몽상과는 무관하게, 사실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만약 금각이 공습당할 위험이 앞으로 없다고 한다면, 당분간 내가 살아갈 보람은 사라지고, 내가 살고 있던 세계는 무너져 버리게 된다. 한편, 뜻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야심은, 그에 대한 증오심을 느끼게 하면서도,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같은 야심에서, 나를 이 절에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다야마 도센 스님은 독신이었다. 스님 자신이, 선대의 촉망을 받아서 녹원사를 계승하였다면, 나도 마음먹기 따라서는, 스님의 후계자로 지목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금각은 내 것이 된다! 내 생각은 혼란스러웠다. 제2의 야심이 부담스러우면, 제1의 몽상--금각이 공습을 당하는 것--으로 돌아갔다가, 그 몽상이 어머니의 명확한 현실 판단에 의하여 깨어지면, 다시 제2의 야심으로 되돌아가는 등, 너무도 이것저것 생각하다 지쳐 버린 결과, 목밑에 빨갛고 커다란 종기가 생겼다.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종기는 뿌리를 내려, 목 뒤에서,뜨겁고 무거운 힘으로 덮쳐 눌렀다.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나는 순금의 후광이 내 목에서 솟아나 머리 뒤를 타원형으로 에워싸려고 조금씩 번지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잠을 깨면, 그것은 못된 종기의 통증에 부과하였다. 마침내 열이 나서 나는 드러누웠다. 주지가 나를 외과 의사에게 보냈다. 국민복에 각반을 찬 외과 의사는, 이 종기에 프룬켈이라는 간단한 이름을 붙이고는, 알코올이 아깝다는 듯, 불에 쬐어 소독한 메스를 들이대었다. 나는 신음하였다. 뜨겁고 답답한 세계가, 내 후두부에서 터지며 오그라들어, 쇠퇴하는 것을 느꼈다... * 전쟁이 끝났다. 공장에선 종전 선언의 낭독을 듣는 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금각에 관하여였다. 절에 돌아가자마자, 내가 금각 앞으로 달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참관로의 자갈이 한여름의 햇볕에 달아올라, 내 운동화의 조잡한 고무 바닥이 돌멩이 하나하나에 달라붙었다. 종전 선언을 듣고, 도쿄라면 황궁 앞으로 가겠지만, 교토에서는 아무도 없는 어소 앞에 눈물을 흘리러 간 사람들이 많았다. 교토에는, 이러한 때에 눈물을 흘리러 갈 만한 신사나 불당이 많다. 어느 곳이나 그날은 붐볐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역시 금각사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뜨거운 돌멩이 위에는, 그리하여 내 그림자만이 있었다. 금각이 저쪽에 있고, 나는 이쪽에 있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이날의 금각을 첫눈에 본 순간부터, 나는 '우리들'의 관계가 이미 변하였다고 느꼈다. 패전의 충격, 민족적 비애 따위에는, 금각은 초연하였다. 혹은 초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금각은 이렇지 않았다. 결국 공습으로 불타지 않았다는 사실, 오는 이후로는 이미 그러한 걱정이 없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금각으로 하여금, 다시금, '옛날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여기에 있으리라.'는 표정을 되찾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내부의 낡은 금박도 그대로, 외벽에 칠한, 여름 햇빛에 빛나는 옻의 보호를 받으며, 금각은 쓸데없이 고귀한 가구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 타는 듯이 푸른 숲 앞에 놓인, 거대하고 텅 빈 장식 선반. 이 선반의 크기에 맞는 장식품은, 터무니없이 커다란 향로라든지, 터무니없이 방대한 허무라든지, 그러한 것들밖에 없으리라. 금각은 그러한 것들을 깨끗이 잃고, 실질을 즉각 씻어 버린 채, 이상하게도 공허한 형태를 그곳에 쌓고 있었다. 더욱 기묘한 것은, 금각이 이따금 보여 주는 미 가운데서도, 이날만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내 심상으로부터, 아니, 현실 세계로부터도 초탈하여, 변하기 쉬운 모든 것들과는 무관하게, 금각이 이토록 견고한 미를 보여 준 적은 없었다! 모든 의미를 거절하고, 그 미가 이토록 빛난 적은 없었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겠는데, 보고 있는 내 다리는 떨렸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언젠가, 금각을 보고 시골에 돌아간 후, 그 세부와 전체가 음악과도 같은 대응으로 울려퍼졌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완전한 정지, 완전한 무음이었다. 그곳에는 흘러가는 것, 변화하는 것이 전혀 없었다. 금각은 음악의 엄청난 중지처럼, 울려퍼지는 침묵처럼, 그곳에 존재하며, 우뚝 서 있었다. '금각과 나와의 관계는 끊겼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나와 금각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몽상은 깨어졌다. 다시 원래의, 원래보다 훨씬 절망적인 사태가 시작되리라. 미가 저쪽에 있고, 내가 이쪽에 있는 사태.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변함없을 사태...' 패전은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절망의 체험 그 자체였다. 지금도 내 앞에는, 8월 15일의 불길과도 같은 여름 햇빛이 보인다. 모든 가치가 붕괴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의 내부에서는 그와 반대로, 영원이 잠에서 깨어나 소생하여 그 권리를 주장하였다. 금각이 그곳에 미래에도 영구히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영원.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들 뺨에, 손에, 배에 달라붙어서, 우리를 묻어 버리는 영원. 이 저주스러운 것... 그렇다. 주위의 산에서 들리는 매미소리에서도, 전쟁이 끝나던 날, 나는 이 저주와도 같은 영원을 들었다. 그것이 나를 금빛의 흙벽 속에 매장시켜 버렸다. 그날 밤에는 취침 독경에 앞서서, 특별히 천황의 안전을 기원하고 전몰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기나긴 독경이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각 종파들은 간략한 가사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날 밤 특별히, 노사는 한동안 간직해 두었던 붉은 줄의 가사를 걸쳤다. 주름살 속까지 깨끗이 씻은 뜻이 청결하고 통통한 그 얼굴은 그날도 매우 혈색이 좋았으며, 무언가에 흡족해 있었다. 무더운 밤이었기에 옷자락을 끄는 소리가 서늘하고 냉랭하게 들렸다. 독경이 끝나고 모두들 노사의 방으로 불려가, 그곳에서 강화를 들었다. 노사가 선택한 공안은 무문관 제14칙의 남천참묘였다 '남천참묘'란, 벽암록에도, 제63칙 '남천참묘아', 제64칙 '조주두재초혜'의 둘로 나와 있다. 예로부터 난해하기로 소문난 공안이다. 당나라 시절, 지주의 남천산에 보원선사라는 명승이 있었다. 산 이름을 따서, 남천 스님이라 불렀다. 절간 승려들이 모두 나와서 풀베기를 하고 있을 때, 이 한적한 산 속 절간에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신기한 느낌에 모두가 달려들어 이것을 사로잡았으나, 그만 동서 양당의 다툼이 벌어졌다. 양당은 서로가 이 새끼 고양이를, 자기네가 키우겠다고 다툰 것이다. 그것을 모고 있던 남천 스님은, 당장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풀 베는 낫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살려 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 버리겠다." 중들은 대답이 없었다. 남천 스님은 새끼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날이 저물어, 수제자인 조주가 돌아왔다. 남천 스님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고는 조주의 의견을 물었다. 조주는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서 머리 위에 올린 채 나가 버렸다. 남천 스님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오늘 네가 있어 주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도 목숨을 건졌을 텐데." --대체로 이상과 같은 이야기로, 특히 조주가 머리에 신발을 올려놓은 대목이 난해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노사의 강화에 의하면, 이것은 그다지 난해한 문제는 아니었다. 남천 스님이 고양이를 벤 것은, 자아의 미망을 끊어 망념과 망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비정한 실천으로 고양이의 목을 자르고, 일체의 모순, 대립, 자타의 확집을 끊은 것이다. 이것을 살인도라 일컫는다면, 조주의 그것은 활인검이다. 흙투성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신발을, 무한한 관용에 의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음으로 해서 보살도를 실천한 것이다. 노사는 이렇게 설명하고는, 일본의 패전에 대해서는 조금의 언급도 없이 강화를 끝마쳤다. 우리들은 여우에게 홀린 듯하였다. 어째서 패전한 이날에, 특별히 이 공안을 선택한 것인지 전혀 몰랐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나는 쓰루카와에게 그러한 의문을 호소했다. 쓰루카와도 머리를 저었다. 모르겠군. 승당 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지. 그래도 오늘밤 강화의 핵심은, 전쟁에서 패한 날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니, 고양이를 베는 이야기를 한 점이라고 생각해." 전쟁에 졌다고 해서, 나는 결코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사의 그 흐뭇하고 행복스러워 모이는 얼굴은 마음에 걸렸다. 어느 절이나 통상적으로 주지에 대한 존경심이 절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지만, 지난1년간 신세를 지면서도, 나에게서는 노사에 대한 깊은 경애심이 우러나오니 않았다. 그것은 그런 대로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야심에 불이 당겨진 이래로, 열일곱 살인 나의 눈은 이따금 노사를 비판적으로 보게끔 되었다. 노사는 공평무사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만약 노사라면, 그 정도는 공평무사할 수 있으리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공평함이었다. 선승 특유의 유머도 노사의 성격에는 결여되어 있었다. 보통 그 같이 통통한 체구에는 유머가 따르기 마련이건만. 노사는 온갖 계집질을 다 해 본 사람이라고 들었다. 노사가 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우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분홍빛 찹쌀과자와도 같은 몸에 안기면, 여자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세상 끝까지 그 분홍빛의 유연한 살이 계속되어, 살의 무덤에 묻힌 듯한 느낌이 들겠지. 나는 선승에게도 육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였다. 노사가 온갖 계집질을 다 한 것은, 육체를 떼어버리고, 살을 경멸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그 경멸하는 살이 마음껏 영양을 섭취하여, 반질거리며, 노사의 정신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다. 잘 길들여진 가축처럼 온순하고 겸허한 살. 노사의 정신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첩과도 같은 그 살... 나에게 있어서, 패전이 무엇이었는가를 말하여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해방이 아니었다. 결코 해방이 아니었다. 불변의 것, 영원한 것, 일상 속에 숨어들어 있는 불교적인 시간의 부활을 의미하였다. 절간의 일과는 패전 다음날부터, 다시 이전처럼 계속되었다. 개정, 조과, 죽좌, 작무, 재좌, 약석, 개욕, 개침. 게다가, 노사는 암거래 쌀의 구입을 엄금하였기 때문에, 단가에서 기부한 쌀이라든지, 혹은 부사가 한창 자라는 우리들을 위하여, 기부라는 구실로 사들이는 약간의 암거래 쌀이, 빈약한 죽그릇에 가라앉아 있었다. 때때로 고구마를 사러 가기도 했다. 죽좌는 아침만이 아니라, 낮에도 밤에도 죽이나 고구마가 계속되어, 우리들은 언제나 굶주리고 있었다. 쓰루카와는 도쿄의 생가에 부탁하여, 이따금 달콤한 과자 같은 것을 보내오도록 하곤 했다. 밤이 깊어지면, 내 머리맡에 와서 함께 먹었다. 심야의 하늘에는 때때로 번개가 스쳐 갔다. 그토록 부유한 생가와 자애심 많은 부모님 곁으로, 어째서 돌아가려 하지 않는지 나는 물었다. "하지만 이것도 수행인걸. 어차피 나도, 아버지 절을 이어받을 거니까." 그에게는 조금도 걱정되는 일이 없어 보였다. 젓가락통에 꼭 맞게 넣어져 있는 젓가락처럼. 나는 이야기를 이어서, 이제부터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쓰루카와에게 말하였다. 그때 나는, 종전 후 3일째 되던 날에 학교에 갔을 때, 공장의 지도자인 사관이 트럭에 가득한 물자를 자기 집으로 갖고 갔다는 이야기를 모두들 하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사관은 공공연히, 이제부터 자기는 암거래상을 할 작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대담하며, 잔혹하고, 날카로운 눈을 지닌 사관이 본격적으로 악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장화를 신고 달리는 길목에는, 전쟁에 있어서의 죽음과 꼭 닮은 얼굴의, 아침노을과도 같은 무질서가 있었다. 가슴에 흰색의 비단 머플러를 휘날리며, 훔친 물자를 등이 굽을 정도로 짊어지고, 밤기운이 남아 있는 바람을 뺨에 맞으며, 그는 출발하리라. 그는 무서운 속도로 마멸하리라. 하지만 훨씬 멀리에서, 훨씬 가볍게, 무질서의 눈부신 종루의 종은 울리고 있다... 그러한 것들 모두로부터 나는 격리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돈도 없고, 자유도 없고, 해방도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라고 내가 말할 때, 17세의 내가, 아직 그다지 뚜렷한 형태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결의를 굳히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세상 사람들이 생활과 행동으로 악을 맛본다면, 나는 내계의 악에 가능한 깊숙히 가라앉아 버려야지.' 하지만 최초로 내가 생각한 악은, 노사에게 잘 아부하여, 언젠가 금각을 손에 넣겠다는 정도에 불과하였고, 또한 단순히 공상 속에서, 노사를 독살하고 그 후임으로 내가 들어앉는다는 따위의, 허황된 꿈에 불과하였다. 이 계획은, 쓰루카와에게 똑같은 야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내 양심의 평온함이 되기도 했다. "너는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불안도 희망도 없냐?" "없어, 아무것도. 그까짓 것, 지니고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 이렇게 대답하는 쓰루카와의 어조에는 일말의 어둠도, 자포자기적인 느낌도 없었다. 그때 번개가,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섬세한 부분인 가늘고 완만한 눈썹을 비추었다. 이발소에서 하는 대로, 쓰루카와는 눈썹의 위아래를 밀도록 놓아 두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가느다란 눈썹이 더욱더 인공적으로 가늘어져, 눈썹 가장자리의 일부에 밀어 낸 자국이 파랗게 나타나 있었다. 나는 힐끗 그 파란 자국을 보고, 불안을 느꼈다. 이 소년은 나 같은 인간과는 달리, 생명의 순결한 말단에서 불타고 있었다. 타오르기 전까지 미래는 숨겨져 있는 것이다. 미래의 등심은 투명하고 차가운 기름 속에 잠겨 있었다. 누가 자신의 순결과 순수를 예견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미래에 순결과 순수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그날 밤, 쓰루카와가 자기 방에 돌아가고 나서, 나는 찌는 듯한 늦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구나, 자위 행위의 습관을 참으려는 생각이 잠을 빼앗았다. 이따금 나는 몽정을 하는 때가 있었다. 그것도 확실한 욕정의 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령 어두운 거리를 한 마리의 검은 개가 달리고 있을 때, 그 불길 같은 입이 울림에 따라 흥분이 고조되어, 방울소리가 극도에 달하면, 사정을 하는 것이다. 자위 행위를 할 때면 나는 지옥과도 같은 환상을 보았다. 우이코의 젖가슴이 나타나고, 우이코의 허벅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더없이 작고 흉한 벌레처럼 변하여 있었다. --나는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서원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녹원사 뒤에, 석가정이 있는 곳의 동쪽으로, 후도 산이라는 산이 있다. 소나무 사이로 무성한 조릿대와 뒤섞여, 병꽃나무, 철쭉 등의 관목이 있다. 그 산에는 밤길이라도 전혀 지장 없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가미교, 나카교, 멀리로 에이 산과 다이몬지 산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올라갔다. 놀란 새들의 날개소리 사이를, 곁눈도 주지 않고 그루터기를 피하며 올라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이 등반으로, 금세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을 느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때,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땀투성이의 몸을 감쌌다. 눈앞의 조망에 눈을 의심하였다. 오랜만에 등화 관제가 풀린 교토 시는 온통 불빛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한 번도 이곳에 올라온 적이 없었기에, 이 광경은 나에게 있어서 거의 기적이었다. 불빛은 하나의 입체를 이루고 있었다. 평면의 여기저기에 흩어진 불빛이 원근감을 잃고, 등불만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대건축 하나가, 복잡한 뿔을 달고 날개를 펼친 채, 밤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듯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도회지였다. 크고 검은 동굴처럼, 어소의 숲에만 불빛이 없었다. 멀리, 에이 산의 한구석으로부터 어두운 밤하늘에 걸쳐서, 이따금 번개가 번쩍였다. '이것이 속세다.'하고 나는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자 이 등불 밑에서, 사람들은 사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수많은 남녀들이 등불 밑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바로 눈앞에 다가온, 죽음과도 같은 행위의 냄새를 맡고 있다. 이 무수한 불빛이 한결같이 사악한 불빛이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위안이 된다. 부디 내 마음 속의 사악이 번식하여 무수하게 불어나 광채를 발하며, 이 눈앞의 무수한 불빛과 하나하나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그것을 감싸는 내 마음의 암흑이 이 무수한 불빛을 감싸는 밤의 암흑과 동등하게 되도록 해 주소서!' * 금각을 찾는 관람객은 점점 늘어났다. 노사는 시에 신청하여, 인플레에 따른 입장료 인상에 성공하였다. 지금까지의 금각 관람객들은, 군복이나 작업복 혹은 몸빼 차림의 검소한 손님들이 약간 있었을 뿐이었다. 이윽고 점령군이 도착하자, 속세의 난잡한 풍속이 금각 주변에도 몰려들게 되었다. 한편, 헌차 습관도 되살아나, 여자들은 여기저기 소중히 숨겨 두었던 화려한 의상을 입고 금각을 찾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 우리들의 승복 차림, 그것은 이제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 마치 우리들은 술 취한 기분에 승려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 지방의 진기한 풍속을 보러 온 관광객을 위하여 일부러 옛날의 진귀한 풍속을 고수하는 주민들처럼... 특히 미군들은 멋대로 내 승복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웃어 대곤 하였다. 때로는 돈을 몇 푼 내고 기념 사진을 찍게 승복을 빌려 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왜냐 하면, 영어를 못 하는 안내인 대신에 이따금 쓰루카와나 내가,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안내자로 불려나갔기 때문이다. 전쟁 후의 첫 겨울이 되었다. 어느 금요일 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토요일에도 계속 내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정오에 파하면 돌아가서 눈에 덮인 금각을 볼 생각만 했다. 오후에도 눈이 내렸다. 나는 고무 장화를 신고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 참관로를 거쳐 연못가로 나왔다. 눈은 빠른 속도로 내렸다. 어린 시절에 곧잘 그랬듯이, 나는 지금도 하늘을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면 눈송이는 아주 엷은 은박을 들이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내 이에 닿기도 하고, 또한, 따듯한 입 안에 온통 눈이 날려 들어와, 내 빨간 살의 표면에 녹아 스며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구경정 위에 있는 봉황의 입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금빛 괴조의 매끄럽고 뜨거운 입을. 눈은 우리들을 소년다운 기분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새해가 되어도 아직 18세였다. 내가 소년다운 약동을 몸 속에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말이겠는가? 눈에 덮인 금각의 아름다움은 비할 바가 없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이 건축은, 눈 속에서, 눈이 날려 들어와도 아랑곳않고, 가느다란 기둥을 즐비하게, 산뜻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째서 눈이 더듬거리지 않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팔손이나무의 잎사귀에 닿거나 하면, 더듬거리듯이 내려와 땅에 떨어지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로막는 것이 없는 하늘에서 유려하게 내려오는 눈을 맞고 있노라면, 내 마음의 굴곡은 잊혀지고, 음악을 듣는 듯이 내 정신은 순순한 율동을 되찾았다. 사실, 입체적인 금각은 눈 덕분에 아주 온순하고 평면적인 금각, 그림 속의 금각이 되어 있었다. 단풍나무가 많은 양쪽 산의 마른 가지에는 눈이 전혀 쌓이지 않았기에, 그 숲은 평소보다도 발가숭이로 보였다. 여기저기 소나무에 쌓인 눈은 장관이었다. 연못의 얼음 위에는 한층 눈이 많이 쌓였으나, 이상하게도 쌓이지 않는 곳의 희고 커다란 반점은 장식화의 구름처럼 대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규센핫카이석도 아와지 섬도 연못의 얼음을 덮은 눈과 연결되어, 그곳의 무성한 소나무들은 마치 얼음과 눈에 덮인 벌판 한가운데에 우연히 자라난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금각은, 구경정과 조음동의 지붕들과, 또한 수청의 작은 지붕을 합쳐서 3개의, 뚜렷이 하얀 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둡고 복잡한 목조가, 눈 속에서 오히려 생생하게 검은색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우리들이 남화의 산중 누각 같은 곳에, 문득 사람이 살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그림 가까이 얼굴을 대고 들여다 보는 것처럼, 그 낡고 검은 나무 색의 우아함은, 금각에 누군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이 들게 하였다. 하지만 설령 내가 얼굴을 가까이 하였다 하더라도, 차가운 눈으로 된 비단 그림에 부딪혀서 그 이상 접근할 수는 없었으리라. 구경정의 문은 오늘도 눈이 내리는 하늘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었다. 그곳을 올려다보는 내 마음은, 날려 들어간 눈송이가 구경정의 아무것도 없는 작은 공간을 날아다니다가, 이윽고 벽면의 낡고 녹슨 금박에 머물러 목숨을 다하여, 조그만 금빛 이슬을 맺을 때까지의 전말을 빠짐없이 보았다. ...이ㅌ날인 일요일 아침, 늙은 안내인이 부르러 왔다. 개장 전 시간에, 외국인 병사가 구경을 온 것이다. 늙은 안내인은 손짓으로 기다리게 해 놓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나를 부르러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쓰루카와보다도 영어를 잘 했으며, 영어라면 더듬거리지 않았다. 현관 앞에는 지프가 서 있었다. 술에 만취한 미군 병사는 현관기둥에 손을 집고서 나를 내려다보며 경멸하듯이 웃었다. 눈이 갠 앞뜰은 눈부셨다. 그 눈부신 경치를 등지고, 기름진 살이 뒤룩거리는 청년의 얼굴은, 내 얼굴에 하얀 입김과 더불어 위스키냄새를 뿜어 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토록 크기가 다른 인간의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감정을 상상한다는 자체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건 반항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었기에, 개장 전이지만, 특별히 안내하겠노라고 말하고는, 입장료와 안내료를 청구하였다. 커다란 취한은 뜻밖에도 얌전히 지불하였다. 그리고는 지프 속을 들여다보며, '이리 나와' 하는 의미의 말을 하였다. 눈의 반사가 눈부셨기에, 지프의 어두운 차내는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차창 속에서 무엇인가 하얀 물체가 움직였다. 토끼 같은 것이 움직인 듯한 느낌이었다. 지프의 발판 위로, 하얀 하이힐을 신은 발이 모습을 보였다. 이 추운 날씨에 양말도 안 신었기에 나는 놀랐다. 여자는 외국 군인 상대의 창녀라고 한눈에 알 수 있는, 타오르듯이 새빨간 외투를 입고, 손톱도 발톱도 역시 같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외투 자락을 가다듬을 때, 더러운 타월 천의 잠옷이 보였다. 여자도 몹시 취해서 눈에 초점이 없었다. 남자 쪽은 그나마 군복을 제대로 입고 있었으나, 여자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잠옷 위에 목도리와 외투를 걸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눈에 반사된 여자의 얼굴은 몹시 창백하였다. 핏기가 거의 없는 피부에, 루주의 주홍색이 무기적으로 돋보였다. 내려선 순간 여자가 재채기를 하자, 가느다란 콧날에 잔주름이 잔뜩 생기며, 취기에 피로해진 눈이 일순 먼 곳을 보는가 싶더니, 다시금 생기를 잃고 깊숙히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잭을, 잭크라고 발음하며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재--크, 투--콜--드! 투--콜--드!" 여자의 목소리는 애절하게 눈 위에 퍼졌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몸파는 여자를,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기는 처음이었다. 우이코와 닮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모든 점에서, 우이코와 가능한 한 닮지 않도록 음미하며 그린 초상화 같았다. 그것이 어딘가, 우이코의 기억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영상의, 반항적이고 신선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인생에서 최초로 느꼈던 미에 대한 그 후의 관능의 반항에, 애교부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단지 한 가지 점이 우이코와 공통되었다. 승복도 안 입고, 지저분한 잠바와 고무 장화 차림의 나에게, 여자는 눈도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절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간신히 참관로의 제설 작업을 끝마쳤다. 단체 손님이라도 오면 곤란하지만, 평소와 같은 인원수라면, 일렬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통로를 만들었다. 그곳을 나는, 미군과 여자의 앞에 서서 걸었다. 미군은 연못 부근까지 와서 전망이 넓어지자, 양 팔을 펴고 무언가 모를 소리를 외치더니 환성을 올렸다. 여자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여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오--, 재--크. 투--콜--드!" 하고 말할 뿐이었다 미군은 눈이 수북히 쌓인 나무 그늘 사이로 보이는 상록수의 탐스러운 붉은 열매를, 저게 뭐지 하고 나는 물었지만, 나는 '상록수'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커다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서정 시인인지도 몰랐으나, 그 투명하고 푸른 눈은 잔혹하게 느껴졌다. "머더 구즈"라는 외국 동요에서, 검은 눈을 심술궂고 잔혹하다고 노래하지만, 이국적인 것에서 인간은 잔혹함을 꿈꾸는 것이 보통일지도 모른다. 나는 형식적으로 금각을 안내하였다. 몹시 취해 있는 군인은, 비틀거리며 구두를 아무 데나 벗어던졌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추위에 곱은 손으로, 이러한 경우에 읽어 주는 영문 설명서를 꺼냈다. 하지만 미군이 옆에서 손을 내밀어 이것을 빼앗더니, 익살맞은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안내할 필요는 없어졌다. 나는 법수원의 난간에 기대어, 엄청나리만큼 햇빛을 받아 반사시키는 연못을 바라보았다. 금각의 내부가 이토록 불안할 정도로 밝게 보인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청 쪽으로 가 있던 남녀 사이에, 입싸움이 벌어졌다. 다툼은 점차 심하여졌으나,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자도 무언가 거센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영어인지 일본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이는 다투며, 이미 내 존재는 잊어버린 채, 법수원 쪽으로 되돌아왔다. 여자가, 얼굴을 들이대고 욕설을 퍼붓는 미군의 그 뺨을, 힘껏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도망쳐, 하이힐을 신고, 참관로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채, 금각을 내려와 연못가를 달렸다. 하지만 여자에게 가까이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다리가 긴 미군이 쫓아가서 여자의 새빨간 외투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 상태로 청년은 내 쪽을 힐끗 보았다. 여자의 빨간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놓았다. 하지만 그 놓는 손에 주어졌던 힘은 보통 정도가 아니었던 듯싶었다. 여자는 눈 위에 나뒹굴며 자빠졌다. 빨간 옷자락이 찢어져, 눈 위에 하얀 맨살의 허벅지가 드러났다. 여자는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밑에서는 잠자코 구름처럼 높은 곳에 있는 사내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무릎을 꿇고 여자를 부축하여 일으키려고 하였다. 헤이, 하고 미군이 소리쳤다. 나는 돌아보았다. 가랑이를 넓게 벌린 채 버티어 선 그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손가락으로 나에게 신호하고 있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영어로 이렇게 말하였다. "밟아. 네가, 밟아 봐!" 무슨 소린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파란 눈은 높은 곳에서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넓은 어깨 뒤에는, 눈에 덮인 금각이 빛나고, 씻어 낸 듯이 파란 겨울 하늘이 촉촉이 어리어 있었다. 그의 파란 눈은 조금도 잔혹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서정적이라고 느낀 것은 어째서일까? 그의 굵은 손이 내려와, 멱살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명령하는 목소리는 역시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밟아. 밟으라니까!" 저항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고무 장화의 발을 들었다. 미군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 발은 내려와 봄날의 진흙처럼 부드러운 물체를 밟았다. 그것은 여자의 배였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신음하였다. "더 밟아. 더!" 나는 밟았다. 처음 밟았을 때의 위화감이, 두 번째에는 솟구치는 희열로 변하였다. 이것이 여자의 배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가슴이다, 하고 생각했다. 타인의 육체가 이토록 공처럼 정직한 탄력으로 대답하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이제 됐어." 하고 미군은 또렷이 말했다. 그리고 예의바르게 여자의 몸을 안아올려 흙과 눈을 털어 주고는,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앞에 서서 여자의 몸을 부축하며 걸었다. 여자는 시종 내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지프가 있는 곳까지 오자, 여자를 먼저 태우고는, 술이 깬 위엄 있는 얼굴로, 미군은 나에게 생큐라고 말했다. 돈을 주려고 했기에 나는 거절하였다. 그는 좌석에서 미국 담배를 두 상자 꺼내어 내 가슴에 들이밀었다. 나는 현관 앞의 눈에 반사되는 햇빛 속에서, 뺨을 불덩이처럼 하고 서 있었다. 지프는 눈보라를 일으키더니, 조용히 흔들거리며 멀어져 갔다. 지프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은 흥분되어 있었다. ...간신히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나에게는 위선의 기쁨이라는 음모가 떠올랐다. 담배를 좋아하는 노사는 얼마나 기뻐하며 이 선물을 받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고백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명령에 의하여, 강제로 행하였음에 불과하다. 만약 반항하였더라면, 내 자신이 어떤 보복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대서원의 노사 방으로 갔다. 삭발에 능숙한 부사가 노사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가득한 툇마루에서 나는 기다렸다. 정원의 육주송에 쌓인 눈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기에, 그것은 마치 접어 놓은 새 돛처럼 보였다. 머리를 깎고 있는 동안, 노사는 눈을 감은 채 종이를 양 손에 들고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받고 있었다. 깎인 머리는 점차로 그 동물적이며 생생한 윤곽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다 깎고 난 부사는 따듯한 수건으로 노사의 머리를 감쌌다. 잠시 후 그것을 벗겼다. 그 밑에서, 갓 태어난 것처럼, 따끈따끈한, 삶은 듯한 머리가 나타났다. 나는 그제야 용건을 말하고는, 두 상자의 체스트필드를 내밀며 머리를 숙였다. "으응. 수고가 많았군." 노사는, 입가에 웃는 듯한 미소를 약간 보이며 말했다. 그것뿐이었다. 두 상자의 담배는, 노사의 손에 의하여 매우 사무적으로, 여러 가지 서류와 편지가 쌓여 있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졌다. 부사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하자, 노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물러나야만 했다. 불만이 내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자신이 행한 불가사의한 악의 행위, 그 보상으로 받은 담배, 그런 줄도 모르고 그것을 받은 노사...이 일련의 관계에는, 보다 극적이고, 보다 통렬한 무엇인가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노사 정도나 되는 사람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노사를 경멸하게 만드는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물러나려는 나를 노사라 불러 세웠다. 그는 때마침 나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너를 말이야." 노사는 말하였다. "졸업하는 대로, 오타니 대학에 보낼까 생각하고 있어. 돌아가신 아버님도 틀림없이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지." --이 뉴스는, 곧바로 부사의 입을 통하여 절간 전체로 퍼졌다. 노사 쪽에서 대학 진학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무척 촉망받고 있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도제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주지의 방에 어깨를 주무르러 100일 밤이나 드나들어 겨우 소망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집에서 보내오는 비용으로 오타니 대학에 가게 된 쓰루카와는, 내 어깨를 치며 기뻐하였고, 노사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없는 다른 도제 하나는, 이후로 나와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제4장 내가 이윽고, 쇼와 22년(1947) 봄에, 오타니 대학의 예과에 들어갔을 때, 노사의 변함없는 자애와 동료들의 선망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입학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남의 눈에는 아마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진학에 관하여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사정이 있었다. 노사가 그 눈 내린 아침, 나에게 대학 진학의 허락을 내리고 나서 1주일 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대학 진학 소식이 없었던 그 도제가 무척이나 기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때까지 이 사내는 나와 말도 하지 않았었다. 잡역부의 태도에도, 부사의 태도에도, 무언지 모르게 평상시와 다른 데가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상시와 다름없게끔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쓰루카와의 침실에 가서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하소연하였다. 쓰루카와도 처음에는 나와 함께 고개를 꺄우뚱거렸지만, 감정을 속이지 못하는 그는, 이윽고 겸연쩍은 얼굴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녀석." 하고 또 하나의 도제 이름을 말하고는, "그 녀석에게서 전해 들었는데, 왜냐 하면, 그 녀석도 학교에 가 있어서 몰랐으니까...하여튼 네가 없을 때 묘한 일이 있었다더군."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세한 것을 물었다. 쓰루카와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나에게 받고는, 내 안색을 조심스레 살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에, 주홍색 외투를 입은 외국인 상대의 창녀가 절에 찾아와 주지에게 면회를 요구하였다. 부사가 대신에 현관에 나갔다. 여자는 부사에게 욕을 하며, 무조건 주지와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노사가 복도를 걸어오다가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현관 앞으로 나갔다. 여자의 말에 의하면, 1주일 정도 전의 눈 내린 날 아침, 외국 병사와 함께 금각을 보러 왔을 때, 젊은 중이 외국 병사에게 아부하여, 외국 병사가 쓰러뜨린 여자의 배를 짓밟았다. 그날 밤, 여자는 유산하였다. 그래서 얼마간의 돈을 받아야겠다. 내놓지 않으면 녹원사의 비행을 세상에 알리고 고소하겠다는 것이었다. 노사는 잠자코, 돈을 주어 여자를 돌려 보냈다. 그날의 안내인이 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비행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노사는 이 일을 절대로 나에게 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사는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인 것이었다. 하지만, 절간 사람들은 부사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내 비행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쓰루카와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그 투명한 눈은 나를 바라보았고, 그 소년다운 순수한 목소리는 나를 감동시켰다. "정말로 너는 그런 짓을 했니?" ...나는 내 자신의 암흑 같은 감정에 직면하였다. 쓰루카와가 이렇게 추궁하는 듯한 질문으로, 나를 그 감정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쓰루카와는 나에게 그것을 물었을까? 우정에서였을까?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알고 있을까? 그가 그러한 질문으로 나의 깊은 곳에서 나를 배반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수시로 말하지 않았던가, 쓰루카와는 나의 양화라고... 쓰루카와가 만약 그 역할에 충실하였다면, 나를 추궁하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의 어두운 감정을 몽땅 그대로, 밝은 감정으로 번역하여야 했다. 그러면, 거짓은 진실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었을 것이다. 쓰루카와 특유의 그러한 솜씨, 모든 그늘을 양지로, 모든 밤을 낮으로, 모든 달빛을 햇빛으로, 모든 밤의 이끼에 찬 습기를 대낮의 가볍게 흔들리는 눈부신 새싹으로 번역하는 솜씨를 보았더라면, 나도 말을 더듬거리며 숨김없이 참회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에 한하여, 그는 그러한 번역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암흑 같은 감정이 힘을 얻은 것이다...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난방이 되지 않은 절간의 심야. 싸늘한 무릎. 우뚝 서 있는 굵은 기둥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떨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추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공공연히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쾌락도, 잠옷을 입은 내 무릎을 떨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깐." "그래? 그렇다면, 그 여자는 거짓말을 하러 왔던 거로군. 빌어먹을. 부사까지 그걸 믿다니." 그의 정의감은 점점 고조되어, 내일은 나를 위하여 반드시 노사에게 가서 해명해 주겠노라고 흥분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내 마음에는 문득 노사의 그 삶은 야채와도 같은 갓 깎은 머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분홍색의 무저항한 뺨이 떠올랐다. 이러한 상상은, 어쩐지 갑자기 심한 혐오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쓰루카와의 정의감이 외부로 노출되기 전에, 내손으로 땅 속에 묻어 버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노사는 내가 한 짓이라고 믿고 있을까?" "글세." 하며 금방 쓰루카와는 난처해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대건, 노사님만큼은 잠자코 다 이해해 주실 테니까 안심하라구. 나는 그렇게 생각해." 또한 나는, 쓰루카와의 해명이 오히려 나에 대한 모두의 의심을 깊게 만들 뿐이라고 납득시켰다. 노사만은 나의 무고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불문에 붙인 것이다, 하고 나는 말하였다. 말하는 도중에 내 가슴에는 기쁨이 솟아나, 기쁨은 점차로 견고한 뿌리를 내렸다. '목격자는 없다. 증인은 없다.'는 기쁨... 하지만 나는, 노사만이 나의 결백을 인정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모든 일을 노사가 불문에 붙였다는 것은, 오히려 나의 이러한 추측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체스트필드 두 상자를 내손에서 받아 뉘었을 때, 노사는 이미 전부 알아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문에 붙인 것은 단지, 나의 자발적인 참회를, 멀리서 잠자코 기다리기 의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학 진학이라는 미끼를 주어 놓고는, 그것과 나의 참회를 교환조건으로 삼아, 만약 내가 참회하지 않으면 그 부정직에 대한 벌로서 진학을 금지시키고, 만약 참회한다면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요번에는 각별한 은혜를 베풀기라도 하듯이 대학 진학을 승낙할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장 큰 함정은, 노사가 부사에게 이 사건을 나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한 데에 있다. 내가 만약 정말로 결백하다면, 따라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날그날을 보낼 수가 있다. 반면에, 내가 만약 비행을 저질렀다면, 그리고 나에게 다소의 지혜가 있다면, 결백한 내가 보내게 될 순결한 침묵의 나날을, 즉 결코 참회의 필요가 없는 나날을 완전히 모방할 수가 있다. 아니, 모방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그것이 나의 결백을 주위에 알리는 유일한 길이다. 노사는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함정에 나를 빠뜨리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로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여자를 밟지 않았더라면, 외국 병사는 권총을 들이대어 내 생명을 위협하였을지도 모른다. 점령군에게 반항할 수는 없다. 나는 전부 강요당하여 한 짓이다. 하지만 고무 장화의 바닥에서 느껴지던 여자의 배, 교태 부리는 듯한 탄력, 신음소리, 짓밟힌 살의 현란한 감촉, 감각의 도취, 그때 여자의 내부로부터 나의 내부로 꿰뚫고 들어왔던 은밀한 번개와도 같은 것... 그러한 것들까지 내가 강요당하여 맛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지금도 그 감미로웠던 일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노사는, 내가 느꼈던 핵심, 그 감미로움의 핵심을 알고 있었다! 그 후로 1년간, 나는 새장에 갇힌 새와 같았다. 새장은 내 눈에 항상 보였다. 결코 참회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면서도, 나는 하루라도 안도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행위, 여자를 밟았다는 그 행위가, 기억 속에서 점차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여자가 유산하였다는 결과를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행위는 사금처럼 내 기억에 침전되어, 언제까지고 눈부신 광채를 발하였다. 악의 광채. 그렇다, 설령 사소한 악이라 하더라도, 악을 범하였다는 명료한 의식은, 어느 틈엔가 나에게 갖추어져 있었다. 훈장처럼, 그것은 내 가슴 안쪽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실제적인 문제로서, 오타니 대학의 입학 시험을 치를 때까지, 노사의 의향을 이리저리 억측하며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는 단 ks 번도 진학에 관한 언약을 번복하는 듯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수험 준비를 서두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느 쪽이건, 나는 얼마나 노사의 한마디를 기다렸던가! 노사는 심술궂게도 침묵을 지키며, 나를 기나긴 고문에 처하였다. 나도 또한, 두려움에서인지, 혹은 반항심에서인지, 진학에 관하여 노사의 의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남들 못지 않게 경의도 표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던 노사의 모습이, 서서히 괴물처럼 거대하여지며,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존재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아무리 눈길을 피하려 해도 그곳에 존재하는, 기괴한 성처럼 그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늦가을의 일이다. 어느 옛 단가의 장례식에 초청받고, 기차로 2시간이나 걸리는 장소였기에, 노사는 아침5시 반에 출발한다는 뜻을 전날 밤에 미리 분부하였다. 부사가 따라가기로 되었다. 우리들도 그 시간에 노사가 출발하는 때에 맞추어, 4시에는 일어나서 청소나 식사 준비를 하여야만 했다. 부사가 노사의 시중을 드는 동안, 우리들은 기상과 동시에 조과인 독경을 하였다. 어둡고 추운 주방 쪽에서, 두레박 끌어올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절간 사람들은 서둘러 세수를 하고 있었다. 늦가을 새벽의 어둠을 뚫고, 뒤뜰에서 닭 울음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우리들은 승복의 소매를 여미며 객전의 불단 앞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숙소로는 사용되지 않는 넓은 다다미 방은, 새벽녘의 냉기 속에서, 거부하는 듯한 감촉을 주었다. 촛대의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삼배하였다. 선 채로 숙이다가, 징소리가 나면 앉아서 머리를 숙인다. 그것을 3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조과인 독경 때에, 나는 언제나 합창하는 사내들의 목소리에서 생생한 느낌을 받곤 하였다. 하루의 일과 중에서도 조과인 경 읽는 목소리는 유달리 힘차게 들리지만, 그 힘찬 목소리가 밤 사이의 망상을 주위에 발산하여, 마치 성대에서 검은 물보라가 뿜어 나오는 듯하였다. 내 자신에 대하여는 모르겠다. 모르기는 하지만 내 목소리도 역시 사내로서의 불결함을 발산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기묘하게도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우리들이 죽좌를 마치기 전에, 노사의 출발 시각이 되었다. 절간 사람들은 현관 앞에 정렬하여, 전송하는 것이 예의이다. 아직 날은 새지 않았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였다. 산문까지의 사이에 돌을 깔아서 만든 길은 별빛을 받으며 뿌옇게 뻗어 있었으나, 상수리나무, 매화나무, 소나무 등 거목들의 그림자가 사방에 드리워져 있었기에 서로 맞붙은 그림자들이 지면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었다. 구멍이 뚫린 스웨터를 입고 있는 내 팔꿈치로 새벽녘의 냉기가 스며들었다. 모든 일은 말없이 진행되었다. 우리들은 잠자코 머리를 숙였다. 노사는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윽고 노사와 부사의 나막신소리가, 돌길 위를 따각따각 소리내며 멀어져 갔다. 뒷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전송하는 것이 선가의 예의이다., 멀리서 보이는 것은 뒷모습 전체가 아니었다. 승복의 하얀 나락과, 하얀 버선뿐이다. 이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그늘에 가려진 탓이었다. 그늘 저편에 다시금 하얀 옷자락과 하얀 버선이 나타나, 나막신소리의 메아리는 도리어 높아지는 듯이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는 잠자코 그것을 전송하였다. 정문을 나선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전송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길었다. 그때 나의 내부에는 기묘한 충동이 일고 있었다. 중요한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더듬거리는 버릇에 방해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충동은 나의 목안에서 불타고 있었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이전에 암시하였던, 주지 자리를 물려받을 가망은 고사하고, 대학 진학의 가망도 이때에는 없었다. 무언으로 나를 지배하며,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게 용기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고백하는 사람의 용기란 대수로울 것이 없지 않은가! 20년 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살아온 나에게는, 고백이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내가 과장되게 말한 것일까? 노사의 무언에 대항하여, 고백도 않고 버텨 온 나는, '악이 가능할까?'하는 문제 하나만을 시험해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내가 마지막까지 참회를 하지 않는다면, 아주 조그만 악이라도, 악은 이미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노사의 하얀 옷자락과 하얀 버선이 나무그늘 사이로 어렴풋이 새벽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목안에서 불타는 힘은, 거의 억누를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되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사를 쫓아가서, 그 소매에 매달려, 큰 소리로 눈 내린 날에 있었던 일을 실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사에 대한 존경이 그러한 생각을 들게끔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노사의 힘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력한 물리적인 힘과 비슷하였다. ...하지만 만약 실토한다면, 내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조그만 악도 와해되어 버리리라는 생각이 나를 저지시키며, 무언가가 내 등을 세차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정문을 나선 노사의 모습은 새벽녘의 하늘 밑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갑자기 해방되어, 떠들어 대며 현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멍하니 서 있는 내 어깨를 쓰루카와가 두드렸다. 내 어깨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 야위고 초라한 어깨는 긍지를 되찾았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타니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언급하였다. 참회는 불필요하였다. 그로부터 수일 후, 노사는 나와 쓰루카와를 불러서 간략하게 수험 준비를 시작하여야 하리라는 것, 시험 준비를 위하여 잡무를 면제한다는 것 등을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으나, 그것으로 모든 일이 일단락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사의 이러한 태도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후계자의 내정에 관하여도 무엇 하나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타니 대학. 이곳은 내가 평생 처음으로 사상을, 그것도 내가 멋대로 선택한 사상을 가까이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장소이다. 이 대학은, 300년 가량 옛날인 간분 5년에 축자관세음사의 대학 기숙사를, 교토의 기코쿠데이로 옮긴 것이 그 시초였다. 이후로 오랫동안 오타니파 본원사 자제들의 수도원으로 이용되었으나, 본원사 제15대인 쇼뇨 종주 때에 나니와(역자주:현재의 오사카 주변의 일대) 출신의 문하생인 다카기 소켄이 재산을 희사하여, 라쿠호쿠 가라스마가시라인 이 땅을 선정하여 본 대학을 세웠다. 1만 2,700평의 대지는, 대학으로서는 결코 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타니파뿐만 아니라, 각 종파의 청년들이 여기에서 공부하며 불교 철학의 기초적이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낡은 벽돌 문은, 전찻길과, 대학 운동장 너머로 서쪽 하늘에 솟아 있는 히에이 산과 마주하고 있다. 문을 들어서면, 자갈을 깐 찻길이 본관 앞의 차 대는 곳으로 통하고 있다. 본관은 낡고 침울한 빨간 벽돌의 2층 건물이다. 현관 지붕의 꼭대기에 청동의 망루가 우뚝 서 있으나, 종루라고 하기에는 종이 보이지 않고, 시계탑이라고 하기에는 시계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망루는, 가느다란 피뢰침 아래로 공허한 방형의 창문을 통하여 푸른 하늘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었다. 현관 옆의 수령이 오래된 보리수는 그 장엄한 잎사귀에 햇빛을 받아 구릿빛으로 반짝였다. 학교 건물은 본관을 여러 차례 증축한 관계로 무질서하게 이어져 있었으나, 대부분은 낡은 목조의 단층 건물로서, 건물과 건물 사이는 낡아 빠진 널빤지를 잔뜩 늘어놓아 만든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널빤지는 수시로 부서진 부분만 교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건너갈 때에는, 가장 새로운 나무 색으로부터 가장 낡은 나무 색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짙고 옅은 모자이크가 발에 밟혔다. 어느 학교나 신입생이 그러하듯이, 나는 매일 신선한 기분으로 통학하면서도, 어수선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쓰루카와 한 사람뿐이었다. 아무래도 쓰루카와하고만 이야기하게 된다. 그래 가지고는 모처럼 새로운 세계로 나온 의미가 없다고 쓰루카와 쪽에서도 느끼고 있었던 듯, 며칠이 지나자, 쉬는 시간에는 일부러 둘이 떨어져서 제각기 새로운 친구를 개척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말더듬이인 나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었기에, 쓰루카와의 친구가 불어남에 따라서, 나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었다. 대학 예과 1학년에는, 수신, 국어, 한문, 중국어, 영어, 역사, 불전, 논리, 수학, 체조의 10과목이 있었다. 논리 강의는 처음부터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 그 강의가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자, 이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학생에게, 나는 두세 가지 질문을 해 보려고 하였다. 이 학생은 언제나 혼자 떨어져서, 뒤뜰의 화단가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그 습관은 일종의 의식 같아 보이기도 했고, 맛없다는 듯이 먹는 그 식사 태도는 몹시 염인적이기도 하였기에, 아무도 그의 곁에 가는 자가 없었다. 그도 학우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에, 친구 사귀기를 거절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름이 가시와기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가시와기의 두드러진 특색은, 상당히 심한 안짱다리였다. 걸음걸이가 정말로 특이했다. 언제나 진흙탕 속을 걷듯이, 한쪽 다리를 진흙탕에서 간신히 빼내면, 다른 한쪽 다리가 다시금 진흙탕 속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자세였다. 그에 따라서 전신이 약동하였고, 보행이 일종의 과장된 무용과도 같았기에, 일상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입학 당시부터, 내가 가시와기에게 주목하였던 에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불구가 나를 안심시켰던 것이다. 그의 안짱다리는 애당초 내가 처해 있는 조건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고 있었다. 가시와기는 뒤뜰의 토끼풀이 무성한 곳에서 도시락을 펼치고 있었다. 당수부와 탁구부의 대부분 유리창이 부서져 없어진 폐가와도 같은 부실이, 이 뒤뜰에 면하고 있었다. 대여섯 그루의 빈약한 소나무와, 텅 빈 자그마한 온상이 있었다. 온상에 칠해 놓은 파란 페인트는, 벗겨져 일어나, 말라 버린 조화처럼 돌돌 말려 있었다. 그 옆에는 두세 단의 분재용 선반과 폐품 더미가 있었고, 히야신스와 앵초 화단도 있었다. 토끼풀밭은 앉기에 놓았다. 햇빛이 그 부드러운 잎사귀에 흡수되어 자잘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기에, 그 일대가 지면으로부터 약간 들떠 있는 듯이 보였다. 앉아 있는 가시와기는, 걷고 있을 때와는 달리, 남들과 다름없는 학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일종의 험악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육체적인 불구자는 미모의 여자와 마찬가지로 대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불구자도 미모의 여자도, 남들에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지치고, 보여지는 존재라는 사실에 질려서, 궁지에 몰린 끝에, 존재 그 자체로 마주 쳐다보는 것이다. 먼저 보는 쪽이 이긴다. 도시락을 먹고 있는 가시와기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눈이 자기 주변의 세계를 훤히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햇빛 아래에서 혼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상이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 봄날의 햇빛과 꽃 속에서,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그는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장하고 있는 그림자, 아니, 존재하고 있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햇빛은 그의 단단한 피부에 스며들지 못함에 틀림없었다. 열심히, 그러면서도 전혀 맛이 없다는 듯이 먹고 있는 그 빈약한 도시락은, 아침에 주방에서 내가 스스로 싸는 도시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쇼와 22년(1947)은 아직 암시장에 가지 않으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나는 공책과 도시락을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도시락이 내 그림자로 그늘졌기 때문에, 가시와기는 얼굴을 들었다. 힐끗 나를 보더니, 다시 눈을 깔고, 누에가 뽕잎을 먹는 듯한 단조로운 입놀림을 계속하였다 "잠깐, 아까의 강의에서 모르는 곳을 가르쳐 주겠니?" 나는 더듬거리며, 표준어로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표준어를 쓰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가시와기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말을 더듬어 대기만 하니." 하고 불쑥 말했다. 내 얼굴은 붉어졌다. 그는 젓가락 끝을 빨며, 잇달아 단숨에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어째서 말을 걸어오는가, 다 알고 있어. 미조구치라고 했지, 너? 불구자끼리 친구가 되려는 것도 놓지만, 너는 나에 비해서 말더듬이라는 점을,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너는 자신을 너무 소중히 여기고 있어. 그렇기에 네 자신은 물론, 자신의 말더듬 증세도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거 아니냐?" 훗날 그가, 같은 임제종의 선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최초의 문답에, 다소나마 그의 선승 기질이 나타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때에 내가 받은 강렬한 인상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더듬어! 더듬으라구!" 가시와기는,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향하여,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였다. "너는, 이제야 안심하고 말을 더듬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거야. 그렇지? 인간은 모두 그런 식으로 상대를 찾게 마련이지. 그건 그렇고 너는 아직 동정이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가시와기의 질문하는 수법이 의사와 비슷하였기에,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 몸에 이로울 듯이 여겨졌다. "그렇겠지. 너는 동정이로군. 전혀 아름다운 동정이 아니야. 여자에게도 인기가 없고 몸파는 여자를 살 용기도 없지. 그것뿐이지. 하지만 네가 동정끼리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나와 사귀겠다면, 잘못 생각한 거야. 내가 어떻게 동정을 벗어났는지, 이야기해 줄까?" 가시와기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산노미야 시에 있는 선사의 자식으로, 날 때부터 안짱다리였다... 하지만 내가 이런 식으로 고백을 시작하면, 너는 나를, 아무에게나 신상 이야기를 하는 불쌍한 병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내 쪽에서도, 창피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너를 고백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왜냐 하면, 아마도 내가 해 온 짓들이 분명히 너에게 가장 가치 있고, 내가 해 왔던 대로 한다면, 분명히 그것이 너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종교가는 그런 식으로 신자의 냄새를 맡고, 금주가는 그런 식으로 동지의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겠지? 그래. 나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했지. 그 조건과 화해해서, 사이좋게 지내는 건 패배하고 생각했어, 원망하자면 끝이 없지.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교정 수술을 해 주어야 했어. 이제는 이미 늦었지. 하지만 나는 부모님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더구나 원망한다는 건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 나는 절대로 여자들한테서 사랑받지 못하리라고 믿었어. 이건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확신이라는 건, 아마 너도 알고 있는 바와 같아. 자신의 존재 조건과 화해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이 확신과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아. 왜냐 하면, 만약 내가 이대로의 상태에서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만큼, 나는 자신의 존재 조건과 화해하는 게 되기 때문이지. 나는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용기와, 그 판단과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쉽사리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가만있으면서도 나는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야. 이러한 내가, 친구들처럼 몸파는 여자를 상대로 동정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지. 왜냐 하면, 몸파는 여자들은 손님을 사랑해서 받는 것이 아니거든. 노인이건, 거지건, 애꾸눈이건, 미남이건, 모른다면 문둥이라도 손님으로 받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평등성에 안심하고 첫 여자를 사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 평등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사지가 멀쩡한 사내와 내가, 같은 자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고, 그건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지기 모독으로 여겨졌거든. 내가 안짱다리라는 조건이 간과되고 무시된다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는, 네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공포에 나도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내 조건을 전적으로 시인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간보다 몇 배나 호화스러운 구상이 필요할 테니까. 인생은 하여간에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지. 우리들과 세계를 대립 상태로 만드는 무서운 불안은, 세계이건 우리들이건 어느 쪽인가가 변하면 해소되겠지만, 변화를 꿈꾸는 몽상을 나는 증오하니까, 몽상을 아주 싫어하게 됐지. 하지만 세계가 변하면 나는 존재하고, 내가 변하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으로 밝혀 낸 확신은, 오히려 일종의 화해, 일종의 융화와도 비슷하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세상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불구자가 결국에 빠져드는 함정은, 대립 상태의 해소가 아니라, 대립 상태의 전적인 시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그러니까 불구는 불치가 되는 거야... 어느 날, 청춘--이 말은 내가 아주 정직하게 사용하는 거지만--인 내 신사에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어. 절의 단가 아이로 그 미모가 유명한데다가 고베의 여학교를 나온 부잣집 딸이, 우연한 일로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거든. 잠시 동안 나는 내 귀를 의심했지. 나는 불행한 덕분에 인간 심리를 통찰하는 에 능숙해 있었기 때문에, 간단히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동기를 동정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심술궂게 굴었던 것은 아니야. 동정만으로 여자가 나를 사랑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거든. 내가 추측하건대, 그녀의 사랑의 원인은 유별난 자존심이었다. 굉장히 아름답고, 여자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구애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지. 자신의 자존심과 구애자들의 자만을 저울로 잴 수가 없었다. 소위 천생연분일수록 그녀에게 혐오감을 준 거야. 결국에는, 사랑에 있어서의 모든 균형을 결백하게 물리치고--이 점에서 그녀는 성실했다--나한테 관심을 갖게 된 거야.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 너는 웃을지 모르겠다만, 여자를 향해서, 나는, '사랑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구. 이것말고 다른 대답이 있었을까? 이 대답은 정직했고, 조금도 과장이 없었어. 여자의 고백을 듣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했더라면, 우스꽝스러운 걸 넘어서, 거의 비극적으로 보였겠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사내는, 잘못하여 자신이 비극적으로 보이는 것을 현명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만일 비극적으로 보이게 되면, 사람들이 절대로 자신에게 안심하고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자신을 비참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영혼을 위해서 중요하지. 그러니까 나는 간단히 말해 버렸지, '사랑하지 않아'라고 여자는 당황하지 않더군. 내 대답이 거짓이라는 거야. 그리고는 여자가,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끔 조심하면서, 나를 설득하려고 취한 방법이 볼 만했지. 그녀에게 있어서는, 사내치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란 상상할 수가 없었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사내는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그래서, 나에 관하여 세밀한 분석을 한 결과, 결국 사실은, 내가 그녀를 이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지. 그녀는 총명했어. 만약 그녀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상대를 사랑한 게 되고, 아름답지도 않은 내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내가 화를 낼 테고, 내 안짱다리를 아름답다고 한다면 나는 더욱 화를 낼 테고, 내 겉모습이 아니라 인격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나는 더욱 더 화를 내리라는 점을 계산에 넣어, 단지, 나를 '사랑해'라고 되풀이 말한 거야. 그래서 나의 내부에서도, 분석의 결과, 그것과 대응하는 감정을 찾아 낸 거지. 나는 이러한 부조리가 납득되지 않았어. 사실 내 욕망은 점점 격렬하게 솟구쳤지만, 욕망이 그녀와 나를 맺어 준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 그녀가 만약 딴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를 딴사람과 구별하는 개별적인 것이 있어야만 되지. 그것이 바로 안짱다리야.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내 안짱다리를 사랑하는 게 되고, 그런 사랑은 내 생각으로는 불가능했지. 만약에, 나의 개별성이 안짱다리 이외에 또 있다면, 사랑은 가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안짱다리 이외에 나의 개별성을, 나의 존재 이유를 인정한다면, 나는 그러한 점을 보충적으로 인정한 게 되고, 따라서, 상호 보완적으로 타인의 존재 이유도 인정한 게 되고, 나아가서는 세계 속에 둘러싸인 자신을 인정한 게 되지. 사랑은 있을 수 없어.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고,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거듭 말했지. '사랑하지 않아'하고. 이상하게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더 깊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졌어. 그러던 어는 날 밤, 드디어 내 앞에 몸을 던지는 짓을 하고야 말았지. 그녀의 육체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어. 하지만 난 불능이었어. 이러한 대실패는, 모든 것을 간단히 해결해 주었지. 그제야 그녀에게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모양이더군. 그녀는 내 곁을 떠났지. 나는 창피했지만, 안짱다리라는 창피에 비하면, 어떤 창피라도 대수로울 건 없었어. 나를 낭패스럽게 만든 건 전혀 다른 사실이야. 불능의 이유를 알고 있었지. 당시에, 나는 자신의 안짱다리가 그녀의 아름다운 다리에 닿으리라는 걸 생각하고는 불능이 되었던 거야. 그 발견은, 결코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지니고 있던 편안함을, 내부로부터 무너뜨리고 말았지. 왜냐 하면, 그때, 나에게는 진지하지 못한 기쁨이 생겨나서, 욕망에 의하여 그 욕망을 수행함으로써 사랑의 불가능을 실증하려 했던 것인데, 육체가 해 버렸기 때문이지. 나는 모순에 봉착했어. 굳이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확신을 이용해서, 사랑을 꿈꾸고 있었던 게 되지만, 최후의 단계에서는, 욕망을 사랑의 대리로 두고 안심했던 거야. 그런데도 욕망 그 자체가, 내 존재 조건의 망각을 요구하고, 내 사랑의 유일한 관문인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나는 욕망이란 아주 명석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내 자신을 꿈꾸기를 필요로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 이때부터, 나에게는 정신보다도, 갑자기 육체가 관심을 끌게 되었어. 하지만 내 자신이 순수한 욕망의 화신이 될 수는 없었기에 단지 그것을 꿈꾸었지. 바람처럼,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이쪽에서는 모든 것을 몰 수 있으며, 상대에게 손쉽게 접근하여 상대를 마음껏 애무하고, 심지어는 그 내부에 숨어들어갈 수 있기를... 너는 육체의 자각이라면, 일정한 질량을 지닌, 불투명하고 확고한 '물체'에 관한 자각을 상상하겠지. 나는 그렇지 않았어. 내가 일개의 육체, 일개의 욕망으로서 완성된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투명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즉 바람이 되는 일이었거든. 하지만 곧바로 안짱다리가 나를 저지하러 오지. 이것만은 절대로 투명해지는 일이 없다구. 그건 다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완고한 정신이었거든. 그건 육체보다도 훨씬 확고한 '물체'로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지.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불구라는 사실은 언제나 눈앞에 놓여 있는 거울이야. 그 거울에 종일, 내 전신이 비치고 있지. 망각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나에게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안 따위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뿐이지. 불안은 없어.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건, 태양이나 지구나, 아름다운 새나, 보기 흉한 악어가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거지. 세계는 비석처럼 움직이지 않아. 불안이 전혀 없고, 발붙일 곳이 전혀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 나의 독창적인 삶이 시작되었지. 자신은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사람들은 불안들 느끼고, 자살하기도 하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야. 안짱다리가 내 삶의 조건이고, 이유이며, 목적이자, 이상이고...삶 그 자체이니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니까. 원래 존재의 불안이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치스러운 불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나는 우리 마을에, 홀로 살고 있는 늙은 과부를 점찍었지. 예순 살이라는 말도 있고, 그 이상이라는 말도 있었어. 죽은 남편의 기일에 나는 아버지 대리로 경을 돌리러 갔지만, 친척이 하나도 없고, 불전에는 노파와 나뿐이었어. 독경이 끝나, 별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있을 때, 여름이라, 나는 좀 씻고 싶다고 부탁했지. 노파는 발가숭이가 되어 내 등에 물을 끼얹어 주더군. 노파가 안쓰러운 듯이 내 다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내 마음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지. 아까 있었던 방으로 돌아가자, 몸을 닦으며, 나는 그럴싸한 말을 하지 시작했어.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이 아이의 다리를 성심껏 떠받든 여자는 극락왕생한다는 계시가 있었다고 내가 이야기했지. 믿음이 깊은 과부는, 염주를 헤아리며, 가만히 내 눈을 직시한 채 듣고 있었어. 나는 적당히 경을 되며 염주를 든 손을 가슴 앞에 합장하고는, 시체처럼, 발가벗고 누웠어. 나는 눈을 감았지. 입으로는 여전히 경을 외면서. 내가 어떻게 웃음을 참았는지 상상해 봐. 내 속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조금도 내 자신을 꿈꾸지 않았지. 노파가 경을 되면서, 내 다리에 열심히 절하는 것을 알겠더군. 나는 절을 받는 내 다리만 생각하면서, 우스꽝스러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 안짱다리, 안짱다리, 단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그것만을 뇌리에 보고 있었지 그 기괴한 모습. 그 다리가 처해 있는 추악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 엉터리 싸구려 연극. 사실 이따금 절하는 노파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발바닥에 닿으니까, 간지러움이 더욱더 우스꽝스러운 걸 부채질하더군. 나는 이전에, 그 아름다운 다리에 닿아 불능이 되었을 때부터, 욕망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 왜냐 하면 이때, 추악한 예배 도중에, 나는 자신이 흥분하고 있음을 느꼈거든. 추호도 자신을 꿈꾸지 않으면서! 이러한 조금도 가차없는 상황하에서! 나는 일어나, 노파를 단숨에 쓰러뜨렸지. 노파가 조금도 놀라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틈도 없었어. 늙은 과부는 나자빠진 채로, 잠자코 눈을 감고, 경을 외고 있었지. 기묘하게도, 이때 과부가 외던 경이 대비심타라니의 한 구절이었던 것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 이혜이혜. 실나실나. 아라삼. 불라사리. 벌사벌삼불라사야.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해'를 보면, 이건 이런 의미야. "초청합니다. 초청합니다. 탐진치 삼독을 괴멸시킬 무구 청정한 본체를." 내 눈앞에는, 눈을 감고 나를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예순이 넘은 여자의' 화장도 하지 않은, 햇볕에 탄 얼굴이 있었지. 내 흥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더군. 그리고 이것이 싸구려 연극이라는 증거로, 나는 알게 모르게 유도 당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알게 모르게라는 문학적 표현을 쓰면 안 되겠지. 나는 모두 알고 있었거든. 지옥의 특색은, 구석구석까지 명료하게 보인다는 점이지. 그것도 암흑 속에서 늙은 과부의 주름살투성이 얼굴은, 아름답지도 않고, 신성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그 추하고 늙었다는 점이,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나의 내적인 상태에, 부단한 확증을 주는 듯이 여겨졌어. 어떠한 미녀의 얼굴이라 할지라도, 전혀 꿈도 없이 쳐다볼 때, 이 노파의 얼굴로 변모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니? 나의 안짱다리와 이 얼굴과... 그렇지, 요컨대 실상을 보는 게 내 육체의 흥분을 유지 시키고 있었던 거야. 나는 처음으로, 친화의 감정으로 자신의 욕망을 믿었지. 그리고 문제는, 나와 대상 사이에 있는 거리를 어떻게 좁힐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대상답게끔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거리를 유지할까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알겠니? 그때 나는, 그곳에 정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도달하고 있다는 불구의 논리, 결코 불안에 휩싸이지 않는 논리에서, 나의 에로티시즘의 논리를 발명한 거야. 이 세상 사람들이 탐닉이라고 칭하는 것과 닮은꼴의 허구를 발명한 거지. 은폐물이나 바람과도 비슷한 욕망에 의한 결합은 나에게 있어서는 꿈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보는 것과 동시에, 숨김없이 보여지고 있어야만 했지. 내 안짱다리와 내 여자는, 그때 세계의 밖으로 내던져져 있었지. 안짱다리도 여자도, 나로부터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어. 실상은 그쪽에 있었고, 욕망은 가상에 불과했지. 또한 보고 있는 나는, 가상 속에 끝없이 전락하면서, 보여지는 실상을 향하여 사정하는 거야. 내 안짱다리와 내 여자는, 결코 서로 접촉하는 일이 없이, 결합하지도 못하고, 함께 세계의 밖으로 내던져진 채로... 욕망은 끝없이 솟구쳤지. 왜냐 하면, 그 아름다운 다리와 내 안짱다리와는, 이미 영원히 접촉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 생각이 이해하기 힘든 걸까? 설명을 필요로 할까? 하니만 내가 그 이후로, 안심하고,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도 알겠지? 불안도 없어. 사랑도 없고. 세계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도달하고 있는 거야. 이 세계를 일부러, '우리들의 세계'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런 식으로, 세상의 '사랑'에 관한 미몽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있어. 그것은 가상이 실상과 결합하려는 미몽이라고--이윽고 나는, 결코 사랑받지 못한다는 내 확신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양태라는 걸 알게 됐지. 이것이 내가 동정을 버린 전말이야. 가시와기는 이야기를 끝냈다. 듣고 있던 나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서글픈 감명에 휩싸인 채,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하던 생각에 접한 고통으로부터 깨어나지 못했다. 가시와기가 이야기를 끝내자, 잠시 후, 봄날의 햇빛이 내 주위에서 살아나며, 환한 토끼풀밭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뒤쪽의 농구 코트에서 들려오는 환성도 되살아났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똑같은 봄날의 대낮인 상태에서, 의미를 완전히 달리하여 나타난 듯이 느껴졌다.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기에, 나는 무언가 대꾸를 하려고, 더듬거리며, 당치도 않은 말을 하였다. "그래서 너는, 그 이후로 고독한 거로군." 가시와기는 다시금 짓궂게도 잘 안 들린다는 표정을 지어서, 나에게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는 이미 친근감이 있었다. "고독하다구? 어째서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지? 그 이후의 나에 관하여는, 사귀는 동안에 점차 알게 될 꺼야." 오후 강의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나는 일어서려고 하였다. 가시와기는 앉은 채로, 내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내 제복은 선문 학원 시절의 것을 수선하여 단추를 새로 달았을 뿐 천은 낡고 헐어 있었다. 게다가, 몸에 맞지도 않았기에 빈약한 체구를 더욱더 작게 보이게끔 하였다. "요번은 한문이지? 시시하잖아, 근처에 산보하러 가자." 가시와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단 몸을 조각조각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듯이 대단한 수고를 들이면서 일어섰다. 그것이 영화에서 본 낙타의 동작을 연상시켰다. 나는 한 번도 강의를 빼먹은 적이 없었지만, 가시와기에 관하여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정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문을 나설 때, 가시와기의 그야말로 독특한 보행 방법이 문득 눈에 들어오자, 나는 부끄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그렇게, 남들과 같은 표정으로, 가시와기와 함께 걷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가시와기는 나에게 수치심의 근원을 확실히 알려 주었다. 동시에 나를 인생으로 재촉하였다... 나의 모든 부끄러운 감정, 모든 사악한 마음은, 그의 말에 의하여 도야되고, 일종의 신선한 것이 되었다. 그 때문인지, 우리들이 자갈길을 밟으며 붉은 벽돌의 정문을 나섰을 때, 정면에 보이는 히에이 산은, 봄날에 촉촉하게, 오늘 처음 보는 산처럼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도 또한, 내 주위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사물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의미로 재현된 듯이 느껴졌다. 히에이 산의 꼭대기는 우뚝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기슭이 완만하게 한없이 퍼진 것이, 마치 한 주제의 여운이 끝없이 울려퍼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지막한 지붕들이 늘어선 저편으로 히에이 산 산주름의 그늘진 곳은, 그 산주름의 부분만, 산중턱의 봄날다운 빛깔의 농담이 어둡고 짙은 남색 하늘 밑에 묻혀 있었기에, 그곳만이 유달리 가깝고 선명하게 보였다. 오타니 대학 문 앞은 사람들의 통행이 적고, 자동차도 적었다. 교토 역전으로부터 가라스마 차고 앞까지를 잇는 선로에도, 간혹 전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길 건너편에는 대학 운동장의 낡은 문기둥이 이쪽 정문과 마주 보고 있었고, 왼쪽으로 새잎이 돋은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운동장을 잠시 거닐까?" 가시와기가 말했다. 내 앞에 서서 전찻길을 건넜다. 몸 전체를 맹렬히 움직이며,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차도를 물레방아처럼 요란하게 건넜다. 넓은 운동장에는, 강의를 빼먹었는지 휴강인지 모를 학생들 몇 팀이 멀리서 캐치볼을 하고 있었고, 이쪽에서는 대여섯 명이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청년들은 다시금 정력 소모를 기도하고 있었다. 절간의 초라한 식사가 생각났다. 우리들은 낡아 빠진 놀이 기구 위에 걸터앉아, 타원 위를 달리는 마라톤 연습자들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새로 산 셔츠와도 같은 촉감이, 주위의 햇빛이나 산들바람에서 느껴졌다. 경기하는 학생들은 한 그룹을 이루어 괴로운 숨을 내쉬며 천천히 다가와, 피로가 심해짐에 따라서 흐트러진 발소리를, 흩날리는 흙먼지와 함께 남기며 멀어져 갔다. "멍청한 녀석들."하며, 조금도 분하다는 투가 아닌 어조로 가시와기가 말했다. "저 꼬락서니가 도대체 뭐야. 녀석들이 건강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건강을 남들에게 뽐내는 게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이야? 스포츠가 도처에서 공개되고 있지? 그야말로 말세의 징조야. 공개하여야 할 건 조금도 공개하지 않고 말이야. 공개하여야 할 것이란... 즉 사형이지. 어째서 사형을 공개하지 않는 걸까?" 하며 꿈을 꾸듯이 말을 이었다. "전쟁 중의 안녕 질서는, 비명에 죽어 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공개함으로써 유지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니? 사형을 공개하지 않는 건, 인심이 살벌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군. 바보 같은 소리지. 공습 때의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정하고 쾌활한 모습을 하고 있었어. 남의 고통과 피와 단말마의 신음을 보는 게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음을 섬세하고, 밝고, 부드럽게 만드는데도 말이야. 우리들이 잔인해지거나 살벌해지거나 하는 것은 결코 그러한 때가 아니야. 우리들이 갑자기 잔인해지는 건, 가령 이렇게 화창한 봄날 오후에, 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에,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을 때와 같은, 그러한 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이 세상의 온갖 악몽, 역사상의 온갖 악몽은 그런 식으로 생겨난 거야. 하지만 백일하에 피투성이가 되어 몸부림치는 사람의 모습은, 악몽에 뚜렷한 윤곽을 주게 되고 악몽을 물질화시켜 버리지. 악몽은 우리들의 고뇌가 아니라, 타인의 격심한 육체적 고통에 불과하게 되지. 하지만 타인의 아픔은, 우리들에게는 느껴지지 않거든.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러한 가시와기의 피비린내나는 독단보다도--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긴 했지만--동정을 버린 후의 그의 편력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오로지 가시와기에게서 '인생'을 기대하였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다.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는 그러한 질문을 암시하였다. "여자 말인가? 흥! 나는 최근에 안짱다리 사내를 좋아하는 여자를 육감으로 척 알아 낼 수 있게 됐지. 여자들 중에는 그런 종류가 있다구. 안짱다리 사내를 좋아한다는 건, 아마도 평생 숨기고 있다가, 무덤까지 갖고 갈지 모르는, 그런 종류 여자들의 유일한 악취미, 유일한 꿈이거든. 그렇지. 안짱다리를 좋아하는 여자를 한눈에 식별하는 방법. 그건 대체로 유별난 미인에다가, 콧날이 차갑게 오뚝하고, 게다가 입 언저리가 약간 단정치 못한..." 그때 여자 하나가 저쪽에서 걸어왔다. 제5장 그런데 그 여자는, 운동장 가운데를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운동장 바깥쪽으로, 주택가와 접하는 길이 있었다. 길은 운동장의 지면보다 두 자 정도 낮았다. 그곳을 걸어왔다. 여자가 나온 곳은, 웅장한 스페인식 저택의 쪽문이었다. 두 개의 굴뚝과 비스듬히 격자로 짠 유리창과 넓은 온실의 유리 지붕이 있는 그 저택은 무척이나 나약한 느낌을 주었지만, 아마도 그 집 주인의 항의로 만들어진 듯한 높은 철망이, 길 건너 운동장의 한 구석에 우뚝 솟아 있었다. 가시와기와 나는 철망 밖의 놀이 기구에 앉아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 고상한 얼굴은, 가시와기가 설명한 '안짱다리를 좋아하는' 여자의 인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그러한 놀라움이 어리석었다고 여겨졌으나, 가시와기는 그 얼굴을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선망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우리들은 여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봄날의 햇살이 가득한 가운데, 저편에는 히에이 산의 짙푸른 봉우리가 있고, 이쪽에는 점차로 다가오는 여자가 있었다. 나는 방금 전에 들은 가시와기의 이야기, 그의 안짱다리와 여자는 두 개의 별처럼 서로 맞닿지 않고 실상의 세계에 점재하는 상황에서, 그 자신은 가상의 세계로 끝없이 빠져들며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기괴한 말, 그 말이 준 감동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구름이 해의 표면을 가로막아, 나와 가시와기는 희미한 그늘에 덮였기에, 우리들의 세계는 순식간에 가상의 모습을 드러낼 듯이 여겨졌다.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변하여 불안하였고, 내 자신의 존재도 불안하여졌다. 그리고 저편에 있는 히에이 산의 짙푸른 봉우리와, 천천히 걸어오는 고상한 여자와, 이 두 가지만이 실상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며,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여자는 분명히 걸어왔다. 하지만 그 시간의 추이는 점점 심하여지는 고통과도 흡사하여, 여자가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의 얼굴이 점차로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가시와기가 일어섰다. 내 귓전에, 무겁고 짓눌린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걷자.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나는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와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여자가 걷고 있는 길보다 두 자 정도 높은 돌담을 따라서 우리는 걸었다. "이쯤에서 뛰어내리자." 가시와기의 뾰족한 손끝이 내 등을 밀었다. 나는 아주 낮은 돌담을 넘어, 길 위로 뛰어내렸다. 두 자의 높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서, 안짱다리인 가시와기가,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내 곁에서 나뒹굴었다. 당연히, 그는 잘못 뛰어내려 자빠진 것이었다. 검은 제복의 등이 내 눈 아래에서 커다랗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만, 엎드려 있는 모습은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일순간 그것이 무의미하게 커다란 검은 얼룩, 비 내린 길 위의 흙탕물 구덩이처럼 보였다. 가시와기는 여자가 걸어오는 바로 앞에 쓰러진 것이었다. 그러자 여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가시와기를 부축하여 세우려고, 천천히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그녀의 싸늘하게 높은 코, 단정하지 못한 입 언저리, 촉촉이 젖은 눈, 그러한 것 전부에서, 일순간, 나는 달빛 아래의 우이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환영은 사라지고,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여자가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보며 지나치려는 모습이 보였다. 가시와기는 나보다도 민감히 그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는 소리쳤다. 그 어마어마한 고함은, 인기척이 없는 대낮의 주택가에 메아리쳤다. "못된 것! 나를 내버려 두고 갈 작정이냐? 너 때문에 이 꼴이 됐다구!" 뒤돌아본 여자는 떨고 있었다. 메마르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핏기가 가신 얼굴을 문지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간신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쩌란 말인가요?" 이미 얼굴을 든 가시와기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게 말했다. "당신 집엔 약도 없단 말이야?" 잠시 동안 잠자코 있더니, 여자는 등을 돌려서, 방금 왔던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가시와기를 부축하여 세웠다. 부축하여 세우기까지는 몹시 무겁고, 아픈 듯이 숨이 거칠었으나, 내가 어깨로 부축하여 걷기 시작하자, 그 몸은 의외로 가볍게 움직였다... --나는 달음질쳐서, 가라스마 차고 앞의 정류장에 이르렀다. 전차에 뛰어올랐다. 전차가 금각사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을 때, 간신히 나는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손바닥은 땀투성이였다. 가시와기를 부축하여 그 스페인식 양옥의 쪽문을, 여자를 앞장세워 들어선 순간, 공포에 휩싸인 나는 가시와기를 그곳에 팽개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왔다. 학교에 들를 여유도 없었다. 조용한 거리를 달렸다. 약방, 빵집, 전기 상점들이 늘어선 곳의 앞을 달렸다. 그때 내 눈가에, 보라색과 빨간 색이 어른거린 것은 아마도 매화꽃 화분 모양의 문장이 새겨진 초롱불을 검은색 담장 위에 늘어놓고, 문에도 똑같은 매화꽃 화분 모양의 문장이 새겨진 보라색 장막을 두른 천리교 고토쿠 분교회 앞을 달려서 지나친 때였던 모양이다. 어디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지, 내 자신도 몰랐다. 전차가 서서히 시노에 접근할 무렵, 나는 자신의 성급한 마음이 금각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철이었기에 그날의 금각을 둘러싼 인파는 엄청났다. 안내하는 노인이, 사람들을 헤치며 금각 앞으로 서둘러 둘러 가는 내 모습을 의아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이리하여 나는, 흩날리는 먼지와 너저분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봄날의 금각 앞에 섰다. 안내인의 고함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금각은 여느 때의 미를 살짝 감추고는 시치미를 떼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연못에 비친 그림자만이 맑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성중내영도의 여러 보살들에 둘러싸인 내영의 미타처럼, 구름 같은 먼지는 보살들을 감싸고 있는 금빛 구름과도 비슷하였고, 금각이 먼지에 아른거리는 모습도, 오래 되어 퇴색한 물감이나 닳고 닳은 그림과 비슷하였다. 이러한 혼잡과 소음이, 섬세한 기둥들이 즐비한 내부로 스며들어, 조그만 구경정과 꼭대기의 봉황이 점차로 가늘어지며 높게 솟아서 접하고 있는 하얀 하늘로, 빨려들어가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이 건축물은 그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규제하였다. 주위의 소란이 심하면 심할수록, 서쪽에 수청을 두고 2층에는 유달리 가느다란 구경정을 올려놓은 금각, 이 불균형하며 섬세한 건축은, 흐린 물을 맑은 물로 바꾸어 놓는 여과기와도 같은 작용을 하였다. 사람들이 제각기 떠들어 대는 소음은, 금각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바람이 통하는 기둥 사이로 스며들어가, 이윽고 하나의 정적, 하나의 징명으로까지 여과되었다. 그리하여 금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연못의 투영과 똑같은 모습을, 어느 틈엔가 지상에도 성취시키고 있었다. 내 마음은 안정되고, 점차로 공포도 사라졌다. 나에게 있어서 미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것은 인생으로부터 나를 차단시키고, 인생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있었다. '저의 인생이 가시와기와 같은 것이라면, 부디 지켜 주옵소서. 저로서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으니까.' 나는 기도하였다. 가시와기가 암시하며, 내 앞에서 즉흥적으로 연출하여 보여 주었던 인생에서는, 산다는 것과 파멸하는 것이 똑같은 의미밖에 지니지 못하였다. 그 인생에는 자연스러움도 결여되어 있거니와, 금각과 같은 구조의 아름다움도 결여되어, 말하자면 끔찍한 경련의 일종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에 내가 크게 이끌리고, 그곳에 자신의 방향을 설정하였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우선 가시투성이인 삶의 파편으로 손을 피투성이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두려웠다. 가시와기는 본능과 이지를 같은 정도로 경멸하였다. 기괴한 모양의 공처럼, 그의 존재 그 자체가 굴러다니며, 현실의 벽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행위조차 되지 못하였다. 요컨대 그가 암시한 인생이란, 미지로 가장하여 우리들을 속이고 있는 현실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조금이라도 미지를 포함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청소하기 위한, 위험하고 천박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훗날, 그의 하숙방에서 다음과 같은 포스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니혼알프스를 그린 여행 협회의 아름다운 석판 인쇄물로서, 푸른 하늘에 솟은 하얀 산정에, "미지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하는 글자가 가로로 쓰여 있었다. 가시와기는 짙은 빨간색 글씨로, 그 글자와 산정을 십자형으로 지우고, 그 옆에다가 안짱다리를 연상시키는 그의 춤추는 듯한 글씨로, "미지의 인생이란 견딜 수 없다." 하고 갈겨써 놓았다. 이튿날 나는, 가시와기의 몸을 걱정하며 학교에 갔다. 그때 그를 내팽개치고 도망쳐 온 것은, 다시 생각해 보니 두터운 우정의 표시라고도 생각되었기에 그다지 책임감은 느끼지 않았으나, 만약 오늘 교실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기 직전 가시와기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부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쉬는 시간에 재빨리 나는 가시와기의 팔을 잡았다. 이러한 쾌활한 행동이 이미, 나에게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는 입가를 일그러뜨려 웃으며 나를 복도로 데려갔다. "다친 데는 괜찮니?" "다친 데라고?"--가시와기는 비웃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다쳤냐? 응? 너는 어째서 내가 다쳤다고 헛소리를 하냐?" 나는 할 말을 잊고 있었다. 가시와기는 나를 잔뜩 안달하게 만든 다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그건 연극이야. 그 길에 떨어지는 연습을 여러 차례 해서, 정말 뼈라도 부러진 듯이 멋지게 허풍을 떨며 넘어지는 방법을 연구해 두었지. 여자가 모르는 척하며 지나치려고 했던 것은 뜻밖이었지만. 하지만 보라구. 이미 여자는 나에게 반하게 됐으니까. 아니 잘못 말했군. 즉, 내 안짱다리에 반하게 된 거지. 그 계집애는 내 다리에, 요오드팅크를 발라 댔다니까." 그는 바지 자락을 걷어올리고, 엷은 노란색으로 물든 정강이를 보여 주었다. 그때 나는 그의 사기술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길바닥에 자빠진 것은, 여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행동이었음은 물론이지만, 부상을 가장하여 그의 안짱다리를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의문은 전혀 그에 대한 경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친근감을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극히 정년다운 느낌에 의하면, 그의 철학이 사기술로 가득하면 가득할수록, 그만큼 그의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 증명되는 듯이 여겨졌던 것이다. 쓰루카와는 나와 가시와기와의 교제를, 호의적인 눈으로 보지는 않았다. 우정에 찬 충고를 해 왔지만, 나에게는 귀찮게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꾸하여, 쓰루카와라면 좋은 친구도 얻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시와기가 제격이라는 투의 말을 하였다. 그때 쓰루카와의 눈에 비친,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슬픈 빛을, 훗날 나는 얼마나 심하게 후회하며 되새겼는지 모른다. * 5월이었다. 가시와기가 휴일의 인파를 피해서, 평일에 학교를 쉬고 아라시 산에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가시와기답게, 만약 날씨가 좋으면 가지 말고, 잔뜩 찌푸린 날씨면 가자고 했다. 그는 요전의 스페인식 집의 딸을 동반하고, 나를 위하여 자기 하숙집 딸을 데려오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보통 란덴이라고 불리는 교후쿠 전철의 기타노 역에서 만났다. 그날은 다행히 5월임에도 구름 낀 울적한 날씨였다. 쓰루카와는 무언가 집안에 복잡한 일이 생겨서, 1주일 정도 휴가를 받아 도쿄에 돌아가고 없었다. 결코 고자질할 그는 아니었지만, 나는 아침에 함께 등교하여 도중에 종적을 감추어야 하는 찜찜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 그 야유회의 기억은 나로서는 씁쓸하였다. 하여튼 야유회의 일행은 모두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음이 지닌 어두움과 초조함과 허무감이, 그 야유회날 하루를 온통 뒤덮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가시와기는 아마도 모든 것을 예상하고, 그처럼 암울한 날씨를 선택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날 바람은 남서쪽에서 불어와, 갑자기 심해지는가 싶으면, 뚝 멈추었다가, 불안한 산들바람소리가 들리곤 하였다. 하늘은 어두웠으나, 해가 있는 곳을 전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구름의 일부분이,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은 옷의 목 언저리로 살짝 보이는 하얀 가슴처럼, 흰빛을 발하여, 그 흰색의 희미한 속에 해가 있다고 알 수 있었으나, 그것은 다시 금방, 구름 낀 하늘 전체의 둔탁한 색에 빨려들고 말았다. 가시와기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두 명의 젊은 여자들 사이에 끼여서 개찰구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한 사람은 분명히 그 여자였다. 높고 차가운 코, 단정치 못한 입 언저리, 외제 옷감으로 지은 양복 어깨에 물통을 걸친 아름다운 여자. 그녀와 비교하니 퉁퉁하게 살찐 하숙집 딸은, 차림새도 용모도 초라해 보였다. 작은 턱과 튀어나온 입술만이 처녀다웠다. 가는 도중의 차 안에서 이미, 즐거워야 할 야유회 기분을 깨졌다. 그 내용은 확실히 들리지 않았지만, 가시와기와 부잣집 딸은 끊임없이 다투었고, 여자는 이따금 눈물을 참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숙집 딸은 모든 일에 무관심한 듯, 나지막이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하숙집 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아주 예쁜 꽃꽂이 선생님이 계시는데, 요전에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 주더라구요. 전쟁 중에 그 선생님께 애인이 있었는데, 육군 장교로 결국 전쟁터에 나가게 돼서, 잠깐 동안, 남선사에서 마지막 대면을 했대요.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이였지만, 헤어지기 직전에 임신한 것이 불쌍하게도 사산이었대요. 남자도 무척이나 슬퍼한 끝에, 마지막으로, 엄마로서의 네 젖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시간도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찻잔에 젖을 짜 넣어, 마시게 했다는군요. 그리고 한 달 후, 애인은 전사했지요. 그 후로, 선생님은 정조를 지키며 혼자 살고 계시다는군요. 아직 젊고 예쁜 여자인데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전쟁 말기에 남선사 산문에서 쓰루카와와 둘이서 본, 그 믿기지 않는 광경이 되살아났다. 하숙집 딸에게는 일부러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만약 입을 열면, 지금 이 이야기를 들은 감동은 그때의 신비한 감동을 배신할 듯이 여겨졌고, 입 밖에 내지 않음으로 해서, 지금의 이야기는 신비스러운 수수께끼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신비스러운 구조가 이중이 되어 한층 깊어질 듯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차는 그때, 나루다키 주변의 대나무 숲 옆을 달리고 있었다. 대나무는 한철이 지난 5월이라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작은 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마른 잎을 무성한 숲 속으로 떨어뜨리건만, 밑둥치는 그것과 상관없다는 듯이, 깊은 속까지 굵은 줄기를 어지럽게 교차시킨 채로 조용하였다. 단지 전차가 질주하는 바로 옆의 대나무들만이, 거창하게 휘며 흔들렸다. 그 속에 유달리 어리고, 푸른 윤기가 나는 대나무가 한 그루 눈에 띄었다. 그 대나무의 크게 휘는 모습이, 요염하고 기이한 운동과도 같은 인상을 내 눈에 남기고 사라졌다... 아라시 산에 도착하여, 와타리즈키 다리 언저리까지 온 우리 일행은,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고고노 쓰보네(역자주:다카쿠라 천황의 사랑을 받던 궁녀)의 무덤에 참배했다. 다이라노 키요모리를 피하여 사가노에 몸을 감춘 쓰보네를, 어명을 받들어 찾아 헤매던 미나모토노 나카쿠니는, 추석날 밤, 희미하게 들리는 가야금소리를 듣고, 쓰보네의 은신처를 찾아 내었다. 이 가야금 곳은 "고고"에는, "달빛에 이끌려, 법륜사에 참배하니, 가야금소리가 들리도다. 산봉우리에 부는 바람소리인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인가, 아니면 찾는 사람의 가야금 소리인가, 곡명이 무엇이냐 물으니, 임 생각 그리는 상부련이라 하니 기쁘도다."라고 되어 있으나, 쓰보네는 그 후에도 사가노의 암자에서, 다카쿠라 임금의 극락왕생을 빌며 여생을 보냈다. 무덤은 좁은 오솔길 안쪽에 있었으나, 커다란 단풍나무와 썩은 매화 고목의 사이에 끼여 있는 자그마한 석탑에 불과하였다. 나와 가시와기는 그럴싸하게 간단한 경을 올렸다. 가시와기의 유달리 진지하고 모독적인 독경이 나에게도 전염되어, 나는 보통 학생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심정으로 독경을 해 버렸지만, 이 사소한 독신 행위가 상당히 나의 감각을 해방시켜, 활기차게 만들었다. "우아한 무덤이란 초라한 거로군."하고 가시와기가 말했다. "정치적 권력이나 금력은 멋진 무덤을 남기지. 당당한 무덤을 말이야. 그 자들은 생전에 전혀 상상력이 없었으니까, 무덤도 자연히 상상력의 여지가 없는 자가 세우게 되지. 하지만 우아한 쪽은, 자타의 상상력에만 의지하며 살았으니까, 무덤도 이런,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남게 되지. 이쪽이 나는 비참하다고 생각해. 사후에도 계속해서 남의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하니까." "우아는 상상력 속에만 있는 건가?" 나는 쾌활하게 그 이야기를 받았다. "네가 말하는 실상은, 우아한 실상이로군." "이거야." 하며 가시와기는 이끼 낀 석탑 머리를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때렸다. "돌, 아니면 뼈, 인간의 사후에 남는 무기적인 부분이지." "제법 불교적인데." "불교고 나발이고 없어. 용안사는 아니지만, 돌멩이에 불과하지. 철학, 이것도 돌멩이, 예술, 이것도 돌멩이야. 그리고 인간의 유기적인 관심이래야, 한심하게도, 정치뿐이지. 인간은 모름지기 자기 모독적인 생물이니까." "성욕은 어느 쪽인가?" "성욕 말인가? 음 그 중간이겠지, 인간과 돌멩이와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격이지." 나는 그가 생각하는 미에 대하여 곧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논쟁에 질린 두 여자가 오솔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기에, 그 뒤를 따랐다. 오솔길에서 되돌아가기 시작했기에, 그 뒤를 따랐다. 오솔길에서 호즈천을 바라보니, 그곳은 와타리즈키 다리의 북쪽으로, 바로 둑이 있는 부분이었다. 강 건너 아라시 산에는 음울한 녹음이 울창했지만, 강의 그 부분만은 활기찬 물거품의 하얀 선이 하나 뻗어 있고, 물소리가 주위에 가득 울려퍼졌다. 강에 떠 있는 보트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강변로를 걸어, 막다른 곳에 있는 가메야마 공원의 문을 들어섰을 때, 후지 조각만 흩어져 있을 뿐, 이날 공원에 행락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이 있는 곳에서 우리들은 돌아서서, 다시 한 번, 호즈천과 아라시 산의 신록 풍경을 바라보았다. 맞은편 언덕에는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는 지옥이로군."하고 또 가시와기가 말했다. 아무래도 가시와기의 이러한 말투는, 나에게는 억측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나도 역시 그를 따라서, 그 경치를 지옥처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신록에 싸인 조용하고 평범한 듯한 눈앞에 풍경에도, 지옥의 흔적이 있었다. 지옥은, 낮에도 밤에도, 언제 어느 곳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우리들이 부르면 들리는 장소, 바로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13세기에 요시노 산의 벚꽃을 옮겨 심었다고 하는 아라시 산의 나무들은, 이미 꽃은 지고 잎사귀뿐이었다. 꽃철이 지나면, 꽃은 이 고장에서는, 죽은 미인의 이름처럼 불릴 따름이었다. 가메야마 공원에는 소나무가 가장 많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계절의 색이 변하지 않았다. 커다란 기복이 있는 광대한 공원으로, 소나무는 한결같이 쑥쑥 뻗었으나, 상당히 높은 곳까지 잎이 없는 수많은 벌거숭이 가지들이 불규칙하게 교차되어 있었기에 공원 경치의 원근감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올라가는 듯 싶다가 다시 내려가는 넓은 길이 공원을 통과하였고, 여기저기에 그루터기, 관목, 작은 소나무들이 있었으며, 거대한 바위의 하얀 표면이 절반 흙 속에 묻혀 있는 부근에 붉은 보라색의 진달래가 잔뜩 피어 있었다. 그 빛깔은 구름 낀 하늘 아래에, 악의를 품은 듯이 보였다. 우리들은 지면이 낮은 곳에 설치된 그네에 젊은 남녀가 타고 있는 곁을 지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우산 모양의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그 곳에서는 동쪽으로 공원의 전모가 대부분 보였고, 서쪽으로는 호즈천의 물이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였다. 그네의 삐걱거리는 소리는, 끊임없이 이를 가는 소리처럼, 정자 위로 들려왔다. 부잣집 딸이 보자기를 풀었다. 가시와기가 도시락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4인분의 샌드위치와, 입수하기 힘든 외제 과자와, 심지어는 점령군에게만 공급하기 때문에 암시장에서나 살 수 있는 산토리 위스키가 있었다. 당시의 교토는, 관서 지방의 암거래 중심지로 불렸다. 나는 거의 술을 못 마셨지만, 가시와기와 함께, 앞에 놓인 술잔을, 합장하고 나서 손에 들었다. 두 여자는 물통의 홍차를 마셨다. 나에게는 부잣집 딸과 가시와기가 그토록 친한 사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반신반의였다. 까다로울 듯이 보이는 이 여자가, 어째서 가시와기와 같은 안짱다리의 가난한 학생과 친숙히 지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 전차 속에서 다투고 있었지? 그건 말이야, 그녀의 집에서 그녀에게 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볶아대기 때문이야. 그녀는 금방 마음이 약해져서 시키는 대로 할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그 결혼을 철저히 방해하겠다며, 위로도 하고 협박도 했지." 이것은 원래,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이 아니었지만, 가시와기는 마치 곁에 그 여자가 없기라도 한 듯이 태연히 말하였다. 그것을 듣고 있는 여자의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늘씬한 목에는 사기 조각을 엮은 파란 목걸이를 걸고,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탐스러운 머리카락의 윤곽이, 지나치게 선명한 얼굴의 초점을 흐리게 하였다. 눈이 몹시 촉촉하기에, 그 때문에 눈만이 생생한 나체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단정하지 못한 입 언저리도, 여느 때처럼, 살짝 벌어져 있었다. 그 입술 사이의 가느다란 틈으로, 가늘고 날카로운 치열이, 맑게 건조된 모습으로 하얗게 엿보였다. 그것은 작은 짐승의 이빨처럼 느껴졌다. "아야! 아파!" 가시와기가 갑자기 몸을 구부려, 정강이를 만지며 신음하였다. 나도 당황하여 내려다보며 도와 주려 하였으나, 가시와기는 손으로 나를 밀어젖히고는, 묘하게 냉소하는 듯한 눈짓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아이구, 아야!" 가시와기는 정말 같은 목소리로 신음하였다. 얼떨결에 나는 옆에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 눈은 안정을 잃고, 입은 다급하게 떨리며, 차갑고 높은 코만이 태연한 모습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어, 얼굴의 조화와 균형을 무너뜨렸다. "미안! 미안해요! 제가 봐 드릴 테니까! 지금 즉시!" --그녀의 날카롭고 방약무인한 목소리를 나는 처음 들었다. 그녀는 긴 목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는 듯했으나, 곧바로 정자의 돌 위에 무릎을 꿇고, 가시와기의 정강이를 안았다. 뺨을 비벼 대고, 심지어는 그 정강이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금 예전과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하숙집 딸을 보았다. 그녀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 해가 구름 사이를 빠져나온 듯이 여겨졌으나,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용한 공원의 전경에는 그 구도에 위화감이 생겨, 우리들을 에워싼 맑고 밝은 화면, 그곳의 소나무 숲, 강에서 반사되는 빛, 먼 산들, 하얀 바위면, 여기저기 피어 있는 진달래...이러한 것들로 가득한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가느다란 균열이 전체에 퍼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당연한 기적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가시와기는 점차로 신음을 멈추었다. 얼굴을 들어 올려다보며, 또다시 나에게 냉소적인 눈짓을 하였다. "나았다! 신기하지? 아플 때 당신이 그렇게 해 주면, 언제나 통증이 멈추거든." 그리고는 여자의 머리를 얀 손으로 잡아 들어올렸다. 머리를 잡힌 여자는, 충실한 개와도 같은 표정으로 가시와기를 올려다보며 미소지었다. 구름 낀 날의 하얀 광선을 받아, 이 순간, 나에게는 아름다운 그 여자의 얼굴이, 언젠가 가시와기가 이야기한 60 먹은 노파의 바로 그 얼굴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적을 이룬 가시와기는 신이 나 있었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신이 나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었고, 서슴없이 여자를 무릎 위에 안아올려 키스하였다. 그의 웃음은 지면이 낮은 그 곳의 소나무 가지에 메아리쳤다. "모처럼 너를 위해서 아가씨를 하나 데려 왔는데. 혹시 말을 더듬거리다가 웃음거리가 될까 창피한가? 더듬어! 더듬으라구! 그녀도 어쩌면 말더듬이에게 반할지 모른다구." "말더듬이였나요?" 하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하숙집 딸이 말했다. "그렇다면 병신 셋 중에 둘은 모인 거로군요." 이 말은 강렬하게 나를 자극하여,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에게서 느낀 증오심이, 그러나 일종의 현기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그대로 돌연한 욕망으로 바뀐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두 쌍이 따로따로 어딘가에 몸을 숨기도록 하자구. 두 시간 지나면 다시 여기 정자에 돌아오자." 가시와기가, 아직도 질리지 않고 그네를 타는 남녀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가시와기와 부잣집 딸과 헤어진 나는, 하숙집 딸과 함께, 정자가 있는 언덕에서 북쪽으로 내려가, 다시 동쪽으로 우회하는 나지막한 언덕을 올랐다. "그 사람은 아가씨를 '성녀'로 만든 거예요. 언제나 그 수법을 쓰거든요." 하고 하숙집 딸이 말했다. 나는 몹시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어떻게 알지?" "왜냐 하면, 저도, 가시와기 씨와 관계가 있거든요."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 하지만 잘도 태연할 수가 있군." "태연하죠. 저런 병신, 상관없어요." 이 말이 요번에는 반대로 나에게 용기를 주어, 다음 질문이 거침없이 나왔다. "당신도 그 녀석의 병신 다리를 좋아한 게 아닌가?" "무슨 소리예요, 그런 개구리 같은 다리. 난, 그래요, 그 사람 눈은 아름다운 눈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이 말에 다시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가시와기가 어떻게 생각하건 여자는 가시와기가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있는 게 되지만, 자신에 관하여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거만함이, 그러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자신에게서만은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하숙집 딸은, 언덕 위로 올라가 한적하고 자그만 평지에 이르렀다. 소나무와 삼나무 사이로, 다이몬지 산, 뇨이가타케 등의 먼 산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대나무 숲이 이 언덕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비탈을 덮고 있었고, 숲 주위에 한 그루 철 늦은 벚꽃이 아직도 피어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철 늦은 꽃으로, 말더듬이처럼 더듬더듬 피어났기 때문에 이토록 늦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무겁게 느껴졌다. 술을 마셨기 때문이 아니었다. 막상 여자를 눈앞에 두고 보니, 욕망은 무게를 더하면서, 내 육체로부터 분리된 추상적인 구조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것은 마치 새까맣고 무거운 철제 공작 기계처럼 느껴졌다. 가시와기가 나를 인생으로 재촉하여 주는 친절 또는 악의를, 내가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다. 중학교 시절에 선배의 단검 칼집에 흠을 냈던 나는, 인생의 밝은 표면에 대한 무자격을, 이미 내 자신의 위에 명확히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시와기는 뒷면에서 인생에 도달하는 어두운 샛길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친구였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파멸로 돌진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또한 의외의 술수에 능하기에, 비열함을 그대로 용기로 바꾸어, 우리들이 악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금 순수한 에너지로 환원시키는, 일종의 연금술이라 해도 좋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인생이었다. 그것은 전진하고, 획득하고, 변모하며, 상실할 수가 있었다. 전형적인 삶이라곤 할 수 없지만, 삶의 모든 기능이 그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만약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모든 삶의 무목적이라는 전제가 부여되고 있다면, 그것은 더욱더 다른 일반적인 삶과 등가의 삶인 것이다. 가시와기라고 해서 술에 몹시 취하는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떠한 암울한 인식에도, 인식 그 자체의 취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은 하여간에 술인 것이다. ...우리들이 자리잡은 곳은, 색이 바래고 벌레 먹은 철쭉꽃 그늘이었다 하숙집 딸이 어째서 그런 식으로 나와 어울릴 마음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에 대하여 일부러 심한 표현을 하자면, 어째서 하숙집 딸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수치심과 다정함이 넘치는 무저항도 있겠지만, 그녀는 통통하고 자그마한 손 위에, 낮잠 자는 사람 몸에 달라붙는 파리처럼, 내 손을 그냥 달라붙게 해 놓았다. 그러나 기나긴 키스와 그녀의 부드러운 턱의 감촉이 내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무척이나 꿈에도 그리던 행위였지만, 현실감이 옅고 희박하여, 욕망은 별개의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얗게 구름 낀 하늘,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진달래 잎사귀를 기어오르는 무당벌레의 필사적인 등반...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아무런 질서도 없이 제각기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오히려 눈앞의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체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전진하여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인생은 나를 찾아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의 조급한 마음에는,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할 때의, 온갖 굴욕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결단코 입을 열어, 더듬거리면서라도 무엇이건 말을 하여,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가시와기의 그 잔혹한 재촉, '더듬거려! 더듬거리라구!' 하는 그 거리낌없는 외침이 내 귓전에 되살아나, 나를 고무하였다... 나는 서서히 손을 여자의 옷자락에 밀어넣었다. 그때 금각이 나타났다. 위엄으로 가득한, 우울하고 섬세한 건축, 벗겨진 금박을 여기저기에 남긴 호사의 주검과도 같은 건축. 가까운가 싶으면 멀고, 친하면서도 소원하고 불가사의한 거리에, 언제나 선명하게 솟아 있는 그 금각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나와, 내가 지향하는 인생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처음에는 미세화처럼 조그맣던 것이, 점차로 커지면서, 그 정교하고 치밀한 모형 속에 거의 전세계를 감쌀 듯한 거대한 금각의 대응이 보였듯이, 그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의 구석구석까지도 메워, 이 세계의 치수를 꽉 채울 정도가 되었다. 웅장한 음악처럼 세계를 채우고, 그 음악만으로 세계의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게끔 되었다. 때로는 그토록 나를 소외시키고 나의 외부에 우뚝 서 있는 듯이 여겨지던 금각이, 지금 완전히 나를 감싸, 그 구조의 내부에 내 위치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숙집 딸은 멀리 조그마하게, 먼지처럼 날려 가 버렸다. 그녀가 금각에게 거부당한 이상, 내 인생도 거부당하고 있었다. 남김없이 미에 감싸이면서, 어떻게 인생에 손을 뻗칠 수 있겠는가? 미의 입장에서도, 나의 단념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리라. 한 손으로 영원을 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생에 대한 행위의 의미가, 어느 순간에 대하여 충실을 맹세하여, 그 순간을 멈추게 하는 데 있다면, 아마도 금각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잠시 동안 나의 소외를 취소시키고, 금각 자신이 그러한 순간으로 변신하여, 인생에 대한 내 갈망의 허무함을 알려 주러 온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영원으로 변신한 순간은 우리들을 도취시키지만, 그것은 이때의 금각처럼, 순간으로 변신한 영원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금각은 잘 알고 있었다. 미의 영원적인 존재가, 진정 우리들의 인생을 가로막고, 삶을 해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삶이 우리들에게 잠시 동안 보여 주는 순간적인 미는, 이러한 독소 앞에서는 맥도 못 춘다. 그것은 순식간에 붕괴되고 멸망하여, 삶 그 자체까지도 멸망의 퇴색한 빛 아래에 노출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환상의 금각에게 완전히 포옹당하였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제정신이 들었을 때, 금각은 이미 숨어 버렸다. 그것은 여기에서 동북쪽 멀리 기누가사 지방에,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건축에 불과하며, 보일 리도 없었다. 그처럼 금각이 나를 받아들여, 포옹하고 있던 환영의 시간은 지나갔다. 나는 가메야마 공원의 언덕 꼭대기에 누워 있었고, 주위에는 풀과 꽃과 곤충들의 둔탁한 비상과 더불어, 난잡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여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갑자기 주눅이 든 것을 보고는, 곁눈으로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돌려 뒤돌아 앉아서, 핸드백에서 꺼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경멸은, 마치 옷에 붙은 가을철의 도깨비바늘처럼, 내 살갗을 온통 찔러 대었다. 구름이 낮게 덮여 있었다. 가벼운 빗방울이 주위의 풀잎과 진달래 잎사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황급히 일어나, 방금 전의 정자로 발길을 서둘렀다. * 야유회가 비참하게 끝난 것도 그렇지만, 그날 하루가 무척이나 어두운 인상을 남긴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날 밤 취침 전에, 노사 앞으로 도쿄에서 전보가 도착하여, 그 내용이 즉각 절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쓰루카와가 죽은 것이다. 전문에는 간단히 사고로 죽었다고만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날 밤 쓰루카와는 아사쿠사의 백부 집에 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대접받았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역 부근의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여서, 두 개골 골절로 즉사한 것이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던 가족들이, 녹원사에 전보를 쳐야 한다고 간신히 생각해 낸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나는 흘렸다. 왜냐하면 쓰루카와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훨씬, 나의 중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가시와기를 알고부터 쓰루카와를 약간은 멀리하였던 나였지만, 잃고 나서 지금 새삼스러이 느끼는 것은, 나와 밝은 대낮의 세계를 잇는 한 가닥의 실이,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끊어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나는 잃어버린 낮, 잃어버린 빛, 잃어버린 여름 때문에 울었다. 당장 도쿄에 문상을 가려고 해도,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노사에게서 받는 용돈은 월 500엔에 불과하였다. 어머니는 원래 가난하였다. 1년에 한두 번, 200__300엔씩 송금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재산을 정리하고 가사 군의 숙부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것도, 남편의 사후, 단가에서 들어오는 월 500엔 정도의 식비와, 당국에서 주는 약간의 보조금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쓰루카와의 유해도 보지 못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어떻게 쓰루카와의 죽음을 내 자신의 마음 속에 확인시키면 좋을까 망설였다. 이전에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으며 파도치듯이 움직이던 그의 하얀 셔츠의 배는 지금 화장되고 있다. 그토록 오로지 빛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빛에만 어울리던 그의 육체와 정신이, 묘지의 흙에 묻혀서 편안히 잠들리라고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요절의 징후라곤 조금도 없었고, 불안이나 우수와는 태어날 때부터 무관하였으며, 죽음과 유사한 요소를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의 돌연한 죽음은 그야말로 그러한 요소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순수한 혈통의 동물은 생명력이 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쓰루카와는 삶의 순수한 성분만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막을 방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그것과 반대로, 저주받을 장수가 약속되어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가 살고 있던 세계의 투명한 구조는, 항상 나에게는 깊은 수수께끼였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수수께끼가 한층 두렵게 느껴졌다. 이 투명한 세계를, 마치 너무도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유리에 부딪히듯이, 옆에서 튀어나온 트럭이 분쇄시킨 것이다. 쓰루카와의 죽음이 병사가 아님은, 너무도 이러한 비유에 어울렸으며, 사고사라는 순수한 죽음은, 그의 비길 바 없이 순수한 삶의 구조에 적합하였다. 한갓 순간적인 충돌에 인한 접촉으로, 그의 삶은 그의 죽음과 화합된 것이다. 신속한 화학 작용... 이토록 과격한 방법이 아니면, 그림자가 없는 불가사의한 젊은이는, 자신의 그림자, 자신의 죽음과 결부될 수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쓰루카와가 살고 있던 세계가 밝은 감정이나 선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오해나 단순한 판단에 의하여 그곳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그의 마음은, 하나의 힘, 하나의 강인한 유연성에 뒷받침되고, 그것이 바로 그의 운동 법칙이었다. 나의 어두운 감정을 하나하나 밝은 감정으로 번역해 주었던 그의 행동에는, 어딘가 아주 정확한 데가 있었다. 그의 밝은 삶은 나의 어두운 삶과 너무도 구석구석 대응되고, 너무도 상세한 대비를 보여 주었기에, 이따금 쓰루카와는 내 마음을 여실히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그의 세계가 밝은 것은, 순수하면서도 편파적이라서, 그 자체의 치밀한 체계가 형성되고, 그 치밀함이 악의 치밀함과 아주 흡사하여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젊은이의 굽힐 줄 모르는 육체의 힘이, 끊임없이 그것을 떠받치며 운동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밝고 투명한 세계는 곧바로 와해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트럭이 그 육체를 들이받은 것이다. 쓰루카와가 남들에게 호감을 주는 원인이 되었던 그야말로 명랑한 그 용모나 늘씬한 체구는, 그것을 상실한 지금, 또다시 나로 하여금 인간의 가시적인 부분에 대하여 신비적인 생각을 지니게끔 만들었다. 우리들의 눈에 보이며 거기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들이, 그토록 밝은 힘을 구사하였다는 불가사의를 생각했다. 정신이 이처럼 소박한 실재감을 지니기 위하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육체로부터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선은 무상을 체로 만든다고 하며, 자신의 마음에 형도 상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견성이라고 하지만, 무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견성의 능력은, 아마도 또한, 형태의 매력에 대하여 극도로 예민하여야만 가능할 것이다. 형과 상을 무사의 예민을 통하여 볼 수 없는 자가, 어떻게 무형이나 무상을 그토록 명확히 보고, 명확히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쓰루카와처럼, 소위 삶을 위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린 지금으로서는, 그 명료한 형태가 불명료한 무형태의 가장 명확한 비유이고, 그 실재감이 형태도 없는 허무의 가장 실재적인 모형이며, 쓰루카와라는 인간 자체가 이러한 비유에 불과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가령, 그와 5월의 꽃들이 제대로 잘 어울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5월의 돌연한 죽음으로 인하여, 그의 관에 던져진 꽃들과 적절하게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하여간에 나의 삶에는 쓰루카와의 삶과 같은 확고한 상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가 나와 같은 독자성, 혹은 독자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의식을, 추호도 갖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는 점이었다. 그 독자성이야말로, 삶의 상징성을, 즉 그의 인생이 다른 무엇인가의 비유일지도 모른다는 상징성을 박탈하고, 따라서 삶의 확대성과 연대감을 박탈하여, 항상 붙어 다니는 고독을 낳게 하는 본원인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허무와도, 연대감을 지니지 못하였다. * 다시, 나의 고독이 시작되었다. 하숙집 딸과는 그 후로 만나지 않았고, 가시와기와도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 가시와기의 생활 방식에서 느껴지는 매력은 여전히 나를 강력히 구속하고 있었으나, 조금이라도 그것에 반항하여,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소원히 지내는 것이, 쓰루카와의 명복을 비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어머니에게는 편지를 써서, 출세할 때까지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 두었다. 그것은 이전에도 어머니에게 입으로 말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 번 강력히 일러 두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답장에는, 어설픈 문장으로, 숙부의 농사일을 돕느라 바쁜 상황과, 단순한 교훈 같은 것이 잔뜩 씌어 있었고, "네가 녹원사의 주지가 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서 죽고 싶다."는 문가가 덧붙어 있었다. 나는 이 문구를 증오하였고, 그로부터 수일 후, 이 문구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름 동안에도, 나는 어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가지 않았다. 빈약한 식사 때문에 여름은 견디기 힘들었다. 9월도 열흘이 지난 어느날, 큰 태풍이 올지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다. 누군가가 금각에 숙직을 하여야 되었기에, 내가 자진하여 그 임무를 맡았다. 이 무렵부터 미묘한 변화가, 금각에 대한 나의 감정에서 생겨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증오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내부에 서서히 싹트고 있는 것과, 금각이, 결코 서로 용납되지 않는 사태다 언젠가 오고야 말리라는 예감이었다. 가메야마 공원의 사건이 있은 후로 이 감정은 명백하여졌으나, 나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하룻밤의 숙직 동안 금각이 나에게 맡겨지는 것은 반가웠기에,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구경정의 열쇠를 받았다. 3층은 가장 소중히 여겨지는 층으로, 상인방에는 고코마쓰 천황의 친필인 편액이, 지상 42척의 높이에 품위 있게 걸려 있었다. 라디오는 시시각각 태풍의 접근을 알리고 있었으나, 그러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후에 이따금 내리던 비는 멈추고, 밤하늘에는 환한 보름달이 떠올랐다. 절간 사람들은 뜰에 나와 하늘을 살피고는, 태풍 전의 고요함이라며 수군대었다. 절간이 조용히 잠들자, 나는 금각에 홀로 남았다. 달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있노라니, 금각의 육중하며 호화스러운 어둠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에 황홀감을 느꼈다. 이 현실의 감각은 서서히 나를 깊은 곳에 잠기게 만들어, 그것이 그대로 환각처럼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가메야마 공원에서 나를 인생으로부터 격리시켰던 그 환영 속에, 지금 내가 여실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단지 홀로 있고, 절대적인 금각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금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소유당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모처럼 균형을 이루어, 내가 금각이고 금각이 나인 상태가 가능해지려는 것일까? 바람은 밤 11시 반경부터 심해졌다. 나는 손전등을 비추며 계단을 올라가, 구경정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았다. 구경정의 난간에 기대어 섰다. 바람은 동남풍이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달은 연못의 물풀 사이에서 빛나고, 벌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주위에 가득하였다. 처음에 거센 바람이 정면으로 내 뺨에 부딪혔을 때, 거의 관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율이 내 피부에 전하여져 왔다. 바람은 그대로 겁풍처럼 무한히 거세어져, 나와 금각을 한꺼번에 붕괴시킬 징후처럼 여겨졌다. 내 마음은 금각 속에도 있고, 동시에 바람 속에도 있었다. 내 세계의 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금각은, 바람에 흔들리는 장막도 없이, 마음껏 달빛을 받고 있었으나, 바람, 나의 흉악한 의지는, 언젠가는 금각을 뒤흔들어,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붕괴의 순간에 금각의 오만한 존재 의미를 빼앗아 갈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 그때 나는 미에 감싸여, 그야말로 미의 내부에 있었으나, 무한히 거세지는 흉포한 바람의 의지에 의존하지 안았더라면, 그토록 내가 완벽하게 미에 감싸일 수 있었을지 의심스러웠다. 가시와기가 나를 '더듬어! 더듬으라구!' 하며 질타하였듯이, 나는 바람을 채찍질하여, 준마를 재촉하는 소리를 외쳐 보려 하였다. '힘을 내! 힘을 내! 더 빨리! 더 힘차게!" 숲이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연못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쳤다. 밤하늘의 색깔은 평온한 남색을 잃고, 침울한 회색이 가미되어 혼탁해졌다. 벌레소리는 여전한데도, 이 일대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바람의, 멀고도 신비한 피리소리가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달 앞으로 수많은 구름이 떠가는 광경을 보았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산 저편으로부터, 잇달아 대군단처럼 밀려왔다. 두꺼운 구름이 있다. 엷은 구름이 있다. 광대한 구름이 있다. 몇 개의 작은 구름 조각이 있다. 그러한 것들이 한결같이, 남쪽에서 나타나, 달 앞을 지나, 금각의 지붕을 덮고, 무언가 큰일을 서두르듯이, 북쪽으로 달려가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 위에서 황금의 봉황이 소리치는 것을 듣는 기분이었다. 바람은 문득 멈추었다가, 다시 거세진다. 숲은 민감하게 귀를 곤두세우고, 잠잠하다가도 술렁이곤 했다. 연못의 달 그림자가, 그럴 때마다 어두워지기도 밝아지기도 하였고, 때로는 흩어져 있던 빛이 모여서 연못의 수면을 한 차례 비추기도 하였다. 산 저편에 가로놓인 겹겹의 구름이, 커다란 손처럼 하늘 가득히 퍼지면서, 꿈틀거리듯 술렁이며 접근하여 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구름 사이로 절반 가량 맑게 보이던 하늘도, 순식간에 다시 구름에 뒤덮였다. 하지만 아주 엷은 구름이 통과 할 때에는, 이를 통하여, 희미한 후광을 그리고 있는 달이 보였다. 밤새도록, 하늘은 이러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이상 바람이 거세지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난간 밑에서 잠이 들었다. 맑게 갠 아침 일찍, 잡역부 노인이 나를 깨우러 와서, 태풍이 다행히도 교토 시를 비켜 지나갔다고 알려 주었다. 제6장 나는 쓰루카와의 죽음을, 1년 가까이 애도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독이 시작되자, 나는 그것에 쉽게 익숙하여졌고, 아무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삶에 대한 초조감도 나에게서 사라졌다. 죽어지내는 나날은 상쾌하였다. 학교 도서관이 나의 유일한 향락 장소가 되어, 그곳에서 불교 서적은 읽지 않고, 닥치는 대로 번역 소설이나 철학 따위를 읽었다. 그 작가들의 이름이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여기에서 밝히기는 삼가겠다. 그들의 작품에서 다소라도 영향을 받은 것이, 훗날 내가 저지른 행위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행위 그 자체는 나의 독창이라고 믿고 싶으며, 무엇보다도 나는 그 행위가, 어떤 기성 철학의 영향으로 결론지어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부터, 남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가 되었으며,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명석한 인간인 것처럼 여기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히 타인과의 사이에 놓이는 다리도 되기 때문이다. 금각의 미에서 느끼는 도취감이 나의 일부분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이 도취감은 어떠한 도취감마저도 몽땅 나에게서 박탈하였기에,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는, 별도로 나의 의지에 의한 명석한 부분을 확보하여야만 했다. 남들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는, 명석함이야말로 나의 자기이지, 그 반대, 즉 내가 명석한 자기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 예과에 진학하여 2년째, 쇼와 23년(1948)의 봄방학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저녁도 노사는 외출하고 없었기에, 모처럼의 자유로운 시간을, 친구가 없는 나는 혼자서 산보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절을 나서서, 정문 밖으로 나왔다. 정문 밖에는 도랑이 둘러 파여, 그 도랑 곁에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오랫동안 눈에 익은 것이었지만, 달빛에 비치는 낡은 푯말의 글자를 돌아보다 보고는, 나는 차근차근 읽었다. 주의 1. 허가를 받은 이외의 현상을 변경하지 말 것 2. 기타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말 것 위와 같이 주의함. 만약 이것을 어기는 자는 국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임 쇼와 3년(1928) 3월 31일 내무성 푯말은 명백히 금각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추상적인 어구가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불변불괴의 금각은, 이러한 푯말과는 별개의 장소에 서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이 푯말은, 불가해한 행위, 또는 불가능한 행위를 예정하고 있었다. 입법자는 아마도 이러한 종류의 행위를 개괄하느라고 애를 먹었을 것이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행위를 막기 위하여는, 사전에 어떻게 범인을 위협할 것인가? 아마도 미친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문자가 필요하리라... 내가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문 앞의 넓은 포장 도로에, 이쪽을 향하여 오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대낮의 관람객들은 모두 떠나고, 달빛을 받은 소나무와, 멀리 전찻길을 오가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이 일대의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돌연히 가시와기임이 밝혀졌다. 걸음걸이로 알았다. 그러자 1년이나 되는, 이쪽에서 선택한 소원함은 차지하고, 나는 단지, 그에게서 받았던 위안에 대한 감사함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그 보기 흉한 안짱다리로, 거침없이 상처 입히는 말로, 그 철저한 고백으로, 나의 불구자적인 생각을 고쳐 주었다. 나는 그때, 자신이 비로소 동격으로 대화하는 기쁨을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중이면서 말더듬이라는, 확고한 의식 속에 몸을 던진다는, 악덕을 저지르는 것과 유사한 기쁨을 맛보았음에 틀림없다. 그와는 반대로 쓰루카와와의 교제에서는, 언제나 그러한 의식이 모두 불식되곤 하였지만. 나는 가시와기를 웃는 얼굴로 맞이하였다. 그는 제복을 입고, 손에 가늘고 긴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외출하던 참인가?" 그가 물었다. "아니..." "잘 만났군. 사실은 말이야." 가시와기는 돌계단에 걸터앉아, 보자기를 펼쳤다. 어두운 광택을 발하는 두 자루의 퉁소가 나타났다. "요전에, 고향의 백부님이 돌아가셔서 그 유품으로 이 퉁소를 받았지. 하지만 내 것은, 옛날에 백부님에게서 배울 때 받은 게 아직 있는데, 유품 쪽이 명기인 모양이지만, 나는 손에 익은 게 좋으니까, 두 개 있어도 소용없으니, 너에게 하나 주려고 갖고 온 거야." 남에게서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무엇이건, 선물은 반가웠다. 손에 잡아 보았다. 구멍은 앞쪽에 네 개, 뒤쪽에 하나 있었다. 가시와기는 말을 계속하였다. "내 연주 방식은 금고류야. 모처럼 달이 좋으니까, 괜찮다면 금각에서 불어 보려고 왔어. 너에게도 가르쳐 줄 겸..." "지금이라면 괜찮겠지. 노사가 외출하고 없으니까, 할아범이 게으름을 부려서 아직 청소가 끝나지 않았어. 청소가 끝난 다음에 금각의 문단속을 하니까." 등장하는 방법도 당돌했지만, 달이 좋으니 금각에서 퉁소를 불고 싶다는 요구도 당돌하였기에, 그러한 점들이 내가 알고 있는 가시와기의 인상과 상반되었다. 하지만 단조로운 나의 생활에 있어서 놀라움이란 그만큼 기쁨이기도 했다. 나는 선물로 받은 퉁소를 손에 들고 금각으로 안내하였다. 그날 저녁, 내가 가시와기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그다지 실속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가시와기가 우선, 여느 때처럼 기괴한 철학이나 독살스러운 역설을 조금도 입 밖에 내려는 낌새가 없었다. 그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던 색다른 측면을, 일부러 나에게 보이기 위하여 온 것인지도 몰랐다. 미를 모독하는 일에만 흥미를 지니고 있던 이 독설가는, 그야말로 섬세한 별개의 측면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을 말로가 아니라, 몸짓이나 눈, 불어 대는 퉁소의 선율, 달빛 속에 드러낸 이마 등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들은 2층 조음동의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완만하게 젖혀진 기다란 처마의 그늘에 위치한 그 툇마루는, 아래쪽에서, 우아한 8개의 천축 무늬 기둥으로 떠받쳐진 채로, 달 그림자를 드리운 연못의 표면에 돌출되어 있었다. 가시와기는 우선 "어소차"라는 소곡을 불었는데, 그 솜씨에 나는 놀랐다. 흉내내어, 입술을 취구에 대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왼손을 위로 하여 잡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턱의 위치, 입술을 어느 정도 벌려서 취구에 댈 것인가, 폭이 넓으면서도 엷은 바람을 그곳에 불어넣는 기술 등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무리 불어 보아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뺨에도 눈에도 힘이 들어가, 연못에 드리워진 달 그림자가, 바람도 없는데, 산산이 조각나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운이 빠져 버린 나는, 일순간, 가시와기가 일부러 내가 말더듬이라는 것을 놀리려고, 이러한 고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서서히, 나지 않는 소리를 내려고 시도하는 육체적인 노력은, 더듬거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최초의 말을 원활히 발음하려는 평소의 정신적인 노력을, 정화시켜 주는 듯이 여겨졌다. 하직 나지 않는 소리는, 달빛을 받은 정적의 세계 어딘가에, 이미 확실히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그 소리에 도달하여, 그 소리를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 가시와기가 불어 댄 것과 같은 영묘한 소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숙련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며, 미는 숙련이기에 가시와기가 그 흉한 안짱다리에도 불구하고 맑고 아름다운 은색에 도달하였듯이, 나도 단지 숙련에 의해서 그것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식도 나에게 생겨났다. 가시와기가 연주한 "어소차"의 선율이 그토록 아름답게 들린 것은, 은은한 달밤의 배경만이 아니라, 그의 흉한 안짱다리 덕분이 아닐까? 가시와기를 깊이 알게 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미를 싫어하였다. 곧바로 사라지는 음악이라든지, 수일 후에 시드는 꽃꽂이라든지, 그의 취향은 그러한 것들에 한정되어, 건축이나 문학을 싫어하였다. 그가 금각에 온 것도, 달이 비치는 동안의 금각을 찾아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의 미는 얼마나 불가사의한 것인가! 취주자가 성취하는 그 일순간의 미는, 일정한 시간을 순수한 지속으로 바꾸어, 확실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와 같은 단명의 생물처럼, 생명 그 자체의 완전한 추상이며, 창조였다. 음악만큼 생명과 유사한 것은 없었고, 똑같은 미라 하더라도, 금각만큼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을 모욕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는 없었다. 가시와기가 "어소차"의 연주를 끝낸 순가, 음악, 이 가공의 생명은 죽고, 그 흉한 육체와 암울한 인식은 조금도 상처받지 않은 채로, 다시금 그곳에 남아 있었다. 가시와기가 미로부터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위로는 아니었다! 은연중에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로 퉁소의 취구에 불어넣은 숨결이 잠시 동안 공중에서 미를 성취시킨 뒤에, 자신의 안짱다리와 어두운 인식이 이전보다도 더욱더 선명하게 남게 되는 것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미의 무익함, 미가 자신의 체내를 관통하여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절대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 가시와기가 사랑한 것은 그것이었다. 미가 나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홀가분하였을까? ...가시와기의 지시에 따라, 몇 번이고, 질리지도 않고 나는 시도하였다. 얼굴은 충혈되고, 숨이 가빠 왔다. 그때 갑자기 내가 새가 되어, 내 목에서 새 울음소리라 흘러나온 것처럼, 퉁소가 굵직한 소리를 한 차례 울렸다. "그거야!" 가시와기가 웃으며 소리쳤다. 결코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같은 소리가 잇달아 났다. 그때 나는, 자신이 낸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이 신비스러운 소리에서, 머리 위에 있는 금동 봉황의 울음소리를 꿈꾸고 있었다. * 그 후로 가시와기가 준 독습서를 보며, 나는 매일 밤 퉁소 연습에 열중하였다. "흰 바탕에 빨간 태양을 수놓아"같은 곡을 불 수 있게 되자, 그와의 관계도 예전처럼 좋아져 갔다. 5월의 어느 날, 나는 퉁소의 답례로 무언가 가시와기에게 선물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숨김없이 그런 사정을 가시와기에게 말하자, 돈이 드는 답례는 필요없다며, 일단 입가를 기묘하게 일그러뜨리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글세. 모처럼 그렇게 말한다면, 원하는 게 있어. 요즈음 꽃꽂이를 하고 싶어도, 꽃이 비싸서 말이야. 마침 지금쯤 금각에는 붓꽃이나 제비붓꽃이 한창이지? 제비붓꽃을 너덧 송이, 봉오리 맺은 것과 막 피려는 것과 이미 피어 있는 것을 섞어서, 그리고 속새풀을 예닐곱 줄기 뽑아다 줘. 오늘밤이라도 좋아. 밤에, 내 하숙방에 갖다 주겠니?" 나는 어떨결에 간단히 응낙하고는, 실은 그가 나에게 도둑질을 시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체면상, 어쩔 수 없이 나는 꽃도둑이 되어야만 했다. 그날 저녁의 약석은 분식이었다. 새까맣고 묵직한 중량의 빵에, 야채볶음뿐이었다. 다행히 토요일이었기에 오후부터 휴식이라서 외출할 사람들은 이미 외출하고 없었다. 이날 밤은 자유 취침이기에 일찍 자도 좋고, 밤 11시까지 외출하여도 좋으며, 더군다나, 이튿날 아침은 '잊고 자기'라고 하여 늦잠을 잘 수 있었다. 노사도 이미 외출하셨다. 해는 6시 반이 지나서야 졌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나는 초야의 종소리를 기다렸다. 8시가 되어, 중문 좌측에 있는 황종조의 종이, 언제까지고 여운을 남기는 높고 맑은 음색으로 초야의 18성을 전해 왔다. 금각의 수청 곁에, 연못 물이 경호지로 흘러드는 자그마한 도랑이 있고, 반원의 수책이 이 도랑을 둘러싸고 있었다. 제비붓꽃은 그 부근에 무성하였다. 꽃은 최근 며칠간이 한창 아름다웠다. 내가 갔을 때, 제비붓꽃 숲은 밤바람에 소란스러웠다. 높이 달려 있는 보라색 꽃잎은, 조용한 물소리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 부근은 어둠이 깊었기에, 보라색도 잎사귀의 짙은 녹색도 검게 보였다. 나는 두세 송이의 제비붓꽃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꽃과 잎사귀가 뒤흔들리며 내 손에서 벗어나, 잎사귀 하나가 내 손가락을 베었다. 속새풀과 제비붓꽃을 안고 가시와기의 하숙을 찾아갔을 때, 그는 방바닥에 뒹굴며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하숙집 딸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으나, 집에 없는 듯하였다. 조그만 도둑질이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다. 가시와기와 관련될 때면, 언제나 우선 나에게는, 조그만 배덕이나 조그만 신성 모독 혹은 조그만 악이 동반되어, 그것이 반드시 나를 쾌활하게 만들었으나, 그러한 악의 분량을 점차로 늘려 간다면, 쾌활함의 분량도 그에 따라서 한없이 늘어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가시와기는 내 선물을 무척 반가이 받았다. 그리고 하숙집 아줌마에게, 수반과 물받이 양동이를 빌리러 갔다. 그곳은 단층집으로 그의 방은 별채의 두 평 남짓한 곳이었다. 도코노마(역자주:일본식 방의 윗자리에, 바닥을 약간 높여서 물건을 장식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에 세워 놓은 그의 퉁소를 집어 취구에 입술을 대고 간단한 연습곡을 불어 본 것이 무척 좋은 소리를 내어, 돌아온 가시와기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날 밤의 그는, 금각에 왔을 때의 그가 아니었다. "퉁소는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는군. 나는 말더듬이의 곡을 들어보려고 퉁소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 한마디로, 우리는 첫 대면 때와 같은 위치로 되돌아갔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되찾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요전의 부잣집 딸에 관하여 마음놓고 물어 볼 수가 있었다. "아아, 그 여자 말이야? 벌써 결혼했지." 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숫처녀가 아닌 게 탄로나지 않도록 내가 자상히 가르쳐 주었는데, 상대방 신랑이 고지식해서, 그럭저럭 무사히 넘어간 모양이야" 말을 하면서 그는 물에 적신 제비붓꽃을 한 송이 한 송이 꺼내어 자세히 살피고는, 가위를 물에 넣어, 물 속에서 줄기를 잘랐다. 그의 손에 잡힌 제비붓꽃의 꽃그림자가, 다다미 위에서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불쑥 말하였다. "너는 '임제록'의 시중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알고 있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는 그 뒤를 이어받았다.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할 수 있노라." "그래, 그거야. 그 여자는 나한이었지." "그래서 너는 해탈했냐?" "흥." 하고 가시와기는 잘라 낸 제비붓꽃들을 가지런히 놓고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기에는 아직 죽이는 방법이 미숙하지." 물이 깨끗이 채워진 수반의 내부는 은빛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가시와기는 구부러진 침봉을 정성스레 바로잡았다. 따분하여진 나는 말을 계속하였다. "너는 '남천참묘'의 공안을 알고 있지? 노사께서 전쟁이 끝났을 때 모두들 불러 놓고 그 강화를 했는데..." "'남천참묘'라." 하고 가시와기는, 속새풀의 길이를 재어, 수반에 대어 보며 대답하였다. "그 공안은 말이야, 그건 사람의 일생에, 갖가지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몇 번이고 나타나는 거지. 그건 기분 나쁜 공안이야.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똑같은 공안이, 모습도 의미도 바뀌어 있거든. 남천 스님이 베어 버린 그 고양이가 예사롭지 않지. 그 고양이는 아름다웠단 말이야, 알아? 이를 데 없이 아름다웠지. 눈은 금빛에,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그 작고 부드러운 몸에, 이 세상의 모든 향락과 미가, 용수철처럼 구부려진 채 간직되어 있었지. 고양이가 미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바로 나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고양이는, 느닷없이, 숲 속에서 뛰쳐나와, 마치 고의적인 듯이, 상냥하고 교활한 눈빛을 반짝이다가 붙잡혔지. 왜냐 하면, 미는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 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 의사에게 뽑아 달라고 하지.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 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 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 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하여튼, 나에게서 뽑혀 나와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이놈은, 이건 분명 별개의 것이지. 결코 그것이 아니야.' 알겠나? 미란 그런 거야. 그러니까 고양이를 벤 것은, 마치 아픈 충치를 빼내서, 미를 척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최후의 해결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미의 뿌리는 근절되지 않았고, 설령 고양이는 죽었어도,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해결이 안이했던 것을 풍자해서, 조주는 그 머리에 신발을 올려놓았지. 그는 말하자면, 충치의 아픔을 참는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이것은 그야말로 가시와기 특유의 해석이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빗대어, 나의 내심을 꿰뚫어보고는, 해결책이 없음을 풍자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나는 처음으로 가시와기에게서 진정한 두려움을 느꼈다. 잠자코 있기가 두려웠기에, 다시 되물었다. "너는 그러면 어느 쪽이냐? 남천 스님이냐, 아니면 조주냐?" "글쎄, 어느 쪽일까. 지금으로서는 내가 남천이고 네가 조주지만, 언젠가는 네가 남천이 되고 내가 조주가 될지도 몰라. 이 공안은 그야말로, '고양이 눈처럼'변하니까."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시와기의 손은 미묘하게 움직여, 녹슨 자그마한 침봉을 수반 속에 나란히 놓고는, 하늘을 의미하는 속새풀을 그곳에 가지런히 꽂고 나서, 석 장식 잎사귀를 맞춘 제비붓꽃을 여기에 배치하니, 점차로 관수류의 모양을 갖추어 갔다. 깨끗이 씻은 흰색과 갈색의 자그맣고 청결한 자갈들도, 끝마무리를 기다리며 수반 곁에 쌓여 있었다. 그의 손놀림은 그야말로 완벽하였다. 결단력 있게 움직이는 중에도, 대비와 균형의 효과를 정확히 집중시켜, 자연의 식물은 일정한 선율 아래에, 보기에도 멋지게 인공의 질서 속으로 이식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꽃과 잎사귀는, 순식간에, 그럴싸한 모습의 꽃과 잎사귀로 변모하여, 속새풀과 제비붓꽃은 동종 식물의 이름 없는 한 줄기 한 줄기가 아니라, 속새풀의 본질, 재비붓꽃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고 직서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의 손놀림에는 잔혹함이 있었다. 식물에 대하여, 그는 불쾌하고 어두운 특권을 지니고 있는 듯이 행동하였다. 그 때문인지 가윗소리와 더불어 줄기가 잘릴 때마다, 나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관수류의 꽃꽂이가 완성되었다. 수반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속새풀의 직선과 제비붓꽃의 대담한 곡선이 배합되어, 꽃 하나는 피어 있고, 나머지 두 개는 피어나려는 봉오리였다. 그것이 자그마한 도코노마에 거의 가득히 놓이자, 수반에 담긴 물의 투영은 잠잠해지고, 침봉을 덮은 자갈들은, 더없이 맑고 깨끗한 물가의 정취를 자아냈다. "훌륭하군. 어디서 배웠지?" 하고 내가 물었다. "근처의 꽃꽂이 여선생한테서. 곧, 그녀가 여기에 올 거야. 사귀는 동안, 나는 꽃꽂이를 배워서, 이렇게 혼자 꽂을 수 있게 되니까, 이제 싫증이 나는군. 아직 젊고 예쁜 선생이야. 듣자니, 전쟁 중에 군인과 관계하여, 아이는 사산되고, 군인은 전사하고, 그 후로 남자 도락이 끊이질 않아. 돈도 제법 있는 여자라, 꽃꽂이는 재미로 가르치는 모양이야. 괜찮다면, 오늘밤, 네가 어딘가에 데리고 가도 좋아. 어디든 그녀는 따라갈 거야." ...이때 나를 엄습한 감동은 착란되어 있었다. 남선사의 산문 위에서 그 여자를 보았을 때, 내 곁에는 쓰루카와가 있었으나, 3년 후인 오늘, 그 여자는 가시와기의 눈을 매개로 하여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여자의 비극을 예전에는 밝고 신비스러운 눈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다시, 아무것도 믿지 않는 어두운 눈으로 엿보게 되었다. 단지 확실한 것은, 당시 대낮의 하얀 달처럼 멀리 보였던 젖가슴에는, 이미 가시와기의 손이 닿았고, 당시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자락에 감싸여 있었던 무릎에는, 이미 가시와기의 안짱다리가 닿았다는 점이다.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이미, 가시와기에 의해서, 즉 인식에 의해서 더럽혀졌다는 점이다. 이 생각은 나를 무척 고민하게 만들어, 그 자리에 잠자코 있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또한 호기심이 나를 제지하였다. 우이코의 환생이라고까지 여겼던 그 사람이, 지금, 불구자 학생에게 버림받은 여자로서 모습을 나타낼 것이 몹시 기다려졌다. 어느 틈엔가 나는 가시와기에게 가담하여, 자신의 추억을 스스로의 손으로 더럽히는 듯한 착각의 기쁨에 빠져들었다. ...정작 여자가 찾아오자, 내 가슴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잠긴 듯한 느낌을 주는 그 음성, 아주 예의바른 거동과 예의바른 말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번뜩이는 거친 빛, 나를 꺼리면서 가시와기를 향하여 늘어놓는 푸념...그때 처음으로, 가시와기가 오늘밤 나를 부른 이유를 알았는데, 그는 나를 방패로 삼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내 환영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그것은 전혀 처음 보는 별개의 개체라는 인상에 그쳤다. 예의바른 말씨를 쓰면서도 점차로 거리낌이 사라지더니, 여자도 역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마침내 자신의 비참한 모습에 견딜 수 없게 된 여자는, 가시와기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요번에는 갑자기 침착한 태도를 가장하며 좁은 하숙방을 둘러보았다. 여자는 30분이나 있으면서 도코노마에 당당히 놓여 있는 꽃꽂이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럴싸한 관수로군요. 정말로 잘 꽂았네요." 이 말을 기다리고 있던 가시와기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였다. "제법이죠? 보다시피, 이제, 당신에게서 배울 건 아무것도 없다구. 이제 볼일이 없어요, 정말로." 나는 가시와기의 냉담한 말투에 여자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눈을 돌렸다. 여자는 약간 웃는 듯싶었으나, 그대로 예의바르게 무릎을 꿇은 채로 도코노마로 다가갔다. 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뭐야, 이따위 꽃! 뭐야, 이런 게!" 그리고는 물이 튀며, 속새풀이 쓰러지고, 꽃을 피운 제비붓꽃은 산산이 흩어져, 내가 도둑질하여 뽑아 온 꽃들은 낭자한 모습이 되었다. 나는 얼떨결에 일어섰으나, 어쩔 줄을 몰라서,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가시와기가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한 가시와기의 거친 일련의 동작은, 사실은 아까, 꽃꽂이를 하며 잎사귀와 줄기를 가위로 자르고 있었을 때의, 조용한 잔인함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대로의 연장인 듯이 여겨졌다. 여자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방을 뛰쳐나갔다. 가시와기는 우뚝 서 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아주 어린애 같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자, 쫓아가. 위로해 주라구. 자, 빨리!" 가시와기가 하는 이러한 말의 위력에 압도된 탓인지, 아니면 본심에서 여자를 동정한 탓인지, 그 점은 나로서도 애매하였지만, 하여간에 내 다리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여자를 쫓아갔다. 하숙집으로부터 두세 채 지난 곳에서 따라잡았다. 그곳은 가라스마 차고 뒤쪽의 이타쿠라 거리였다. 구름 낀 밤하늘에 차고로 들어가는 전차의 소음이 진동하며, 스파크의 연보랏빛 섬광이 일었다. 여자는 이타쿠라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 뒷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울면서 걷고 있는 여자를 나는 잠자코 미행하였으나, 이윽고 눈치채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눈물 때문에 더욱더 잠긴 목소리로,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예의바른 말씨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참 동안 가시와기의 비행을 호소하였다. 우리들은 얼마나 걸었던가! 내 귀전에 누누이 늘어놓는 가시와기의 비행, 그 악랄하며 비열한 갖가지 수법,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단지 '인생'이라는 말을 내 귓가에 전하여 줄 뿐이었다. 그이 잔인성, 계획적인 수법, 배신, 냉혹함, 여자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갖가지 수법, 그러한 것들은 단지 그의 뛰어난 매력에 대한 해설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안짱다리에 대한 그 자신의 성실성을 믿고 있으면 되었다. 쓰루카와의 급작스런 죽음 이래로, 삶 그 자체에 접하지 않고 지내던 나는 오랜만에, 별개의, 박명하지는 않으나 훨씬 어두운 삶, 그 대신에 살아 있는 동안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삶의 움직임에 접하여 고무되었다. 그의 "죽이는 방법이 미숙하지."라는 간결한 말이 되살아나 내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내 가슴에 떠오른 것은, 전쟁이 끝날 무렵 후도 산 꼭대기에서, 교토 시가지의 엄청난 불빛을 향하여 빌었던 기원의 내용, "내 마음의 암흑이, 무수한 불빛을 감싸는 밤의 암흑처럼 되게 하소서."라는 그 기도 문구였다. 여자는 자기 집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인적이 드문 뒷골목길만을 따라서 정처 없이 거닐었다. 이윽고 간신히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다다랐을 때, 그곳이 어디쯤인지 나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미 10시 반이었기에, 헤어져서 절로 돌아가려 했으나, 여자가 굳이 붙잡는 바람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여자는 전 등을 켜고,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남을 저주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는 단호히 "있지."하고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잊고 있었지만, 내 수치의 입회자인 그 하숙집 딸의 죽음을, 나는 명백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여자는 맥없이 주저앉아, 다다미 위에 옆으로 다리를 폈다. 방의 전등은 아마도 100와트인 듯, 전력 제한을 하던 무렵이라 진기할 정도로 밝은 것이, 가시와기의 하숙집 전등과 비교하면 3배의 광도였다. 여자의 몸이 처음으로 명백히 드러났다. 하얀 하카타 천으로 만든 나고야오비(역자주:매듭 부분은 보통 폭으로, 다른 부분은 절반의 폭으로 만든 기모노의 허리띠)가 선명하게 밝았으며, 화려한 수를 놓은 기모노의 보라색이 한층 돋보였다. 남선사의 산문에서 천수암의 객실까지는, 새가 아니면 날아갈 수 없는 거리였지만, 수년의 세월에 걸쳐서 나는 서서히 그 거리를 좁혀, 지금 드디어 그곳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부터 조금씩 시간을 들여서, 나는 천수암의 신비스러운 정경이 의미하는 것에, 확실히 접근하여 온 것이다. 그래야만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머나먼 별의 광선이 도달하였을 때에는, 이미 이 지상의 모습이 변하여 있듯이, 여자가 변질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또한 남선사의 산문 위에서 보았을 때, 나와 여자가, 오늘을 예정하여 맺어져 있었다면, 그러한 변모 따위는 간단한 수정으로 옛 모습을 되살려, 다시금 당시의 나와 당시의 여자가 상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였다. 숨이 가빠 오는 가운데, 더듬거리며 이야기하였다. 당시의 신록이 되살아나고, 오봉루의 천장화에 그려진 선인과 봉황이 되살아났다. 여자의 뺨에는 생생히 핏기가 돌았고, 그 눈에는 거친 빛 대신에, 초점을 잃은 난잡한 빛이 감돌았다. "그랬군요. 정말, 그랬었군요. 무슨 인연일까요? 이것이 바로 기연인가 봐요." 요번에는 여자의 눈에 흥분과 기쁨의 눈물이 가득했다. 방금 전의 굴욕을 잊고, 추억 속에 거꾸로 몸을 던져서, 똑같은 흥분의 계속을 별도의 흥분으로 옮겨 바꾸고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혔다. 기모노의 옷자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이제 젖은 나오지 않아요. 아아, 불쌍한 우리 아기! 젖은 나오지 않지만, 당신에게, 그때처럼 해서 보여 드릴게요. 그때부터 저를 좋아해 주셨잖아요. 지금, 저는, 당신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부끄러울 거 없어요. 정말로 그대로 해서 보여 드릴게요." 결단을 내리는 어조로 말하고 난 후에 여자가 취한 행동은, 광적인 기쁨이 지나친 때문으로도 보였고, 또한, 지나친 절망에 의한 것으로도 보였다. 아마도 의식 위에는 광적인 기쁨만이 있고, 그 격렬한 행위를 재촉한 진정한 힘은, 가시와기가 준 절망, 혹은 절망의 끈질긴 후유증이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눈앞에서 매듭이 풀리고, 수많은 끈이 풀어지고, 허리띠가 비단의 비명소리를 내며 풀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여자의 옷깃이 벌려졌다. 하얀 가슴이 살짝 보이는 언저리에서, 여자는 손으로 왼쪽 젖가슴을 꺼내더니 내 앞에 보여 주었다. 내가 일종의 현기증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리라. 나는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았다. 하지만 나는 증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 산문의 누상에서, 멀리 신비스러운 하얀 점으로 보였던 것은, 이처럼 질량을 지닌 살이 아니었다. 그 인상이 너무도 오랫동안 발효된 탓으로, 눈앞의 젖가슴은, 살 그 자체이며,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그것은 무엇인가를 호소하며 유혹하려는 살이 아니었다. 존재의 따분한 증거이며, 삶의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단지 그곳에 드러난 그 무엇이었다. 아직도 나는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그렇다. 현기증을 느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 눈은 너무도 자세히 보았기에, 젖가슴이 여자의 젖가슴이라는 사실을 넘어, 점차로 무의미한 단편으로 변모될 때까지, 샅샅이 보고 말았다. ...이상한 것은 그 다음이다. 왜냐 하면 이토록 참혹한 경과 끝에, 점차 그것이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의 불모의 불감적인 성질이 거기에 부여되어, 젖가슴은 내 눈앞에 있으면서도, 서서히 그 자체의 원리 속에 파묻혀 버렸다. 장미가 장미의 원리 속에 파묻히듯이. 나에게 미는 늦게 온다. 남보다 늦게, 남들이 미와 관능을 동시에 발견하는 것보다도, 훨씬 늦게 온다. 점차로 젖가슴은 전체와의 연관을 되찾아...살을 넘어...불감의, 그러나 불후의 물질이 되, 영원히 이어지게 되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시 그곳에 금각이 출현하였다, 아니, 젖가슴이 금각으로 변모한 것이다. 나는 초가을의 숙직날, 태풍의 밤을 회상하였다. 설령 달빛을 받는다 해도, 밤의 금각 내부에는, 덧문 속에, 판자 문 속에, 벗겨진 금박의 천장 밑에, 무겁고 호사스러운 어둠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당연하였다. 왜냐 하면 금각 그 자체가, 정성들여 구축되고 조형된 허무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눈앞의 젖가슴도, 겉은 환하게 살의 광체를 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부는 똑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실질은, 똑같이 육중하고 호사스러운 어둠이었다. 나는 결코 인식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식은 오히려 유린되며 모멸당하고 있었다. 삶과 욕망은 물론이고...! 하지만 깊은 황홀감은 나를 떠나지 않았기에, 잠시 동안 마비된 듯, 나는 그 적나라한 젖가슴과 대면하고 있었다. ... 이리하여 다시금 나는, 젖가슴을 품 속으로 감추는 여자의 싸늘한 경멸 섞인 눈초리를 받았다. 나는 작별을 고하였다. 현관까지 따라온 여자는, 내 뒤에서 요란하게 문을 닫았다. --절에 돌아가는 동안, 여전히 나는 황홀감에 젖어 있었다. 마음 속에서는 젖가슴과 금각이, 번갈아 명멸하였다. 무력한 행복감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소나무 숲 저편에, 녹원사의 정문이 보였을 때, 내 가슴은 서서히 안정되고, 무력감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도취감은 혐오감으로 바뀌어, 대상도 모르는 증오심이 끓어 올랐다. "또다시 나는 인생으로부터 격리되었다!"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또다시 말이다. 금각은 어째서 나를 보호하려는 것일까? 원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나를 인생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가? 물론 금각은,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구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금각은 나를, 지옥에 떨어진 인간보다 더욱 나쁜 인가, '누구보다도 지옥의 사정에 밝은 사내'로 만든 것이다." 정문은 어둡고 조용했다. 새벽종을 칠 때 소등하는 샛문의 전등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나는 샛문을 밀었다. 안쪽에서, 추를 끌어올리는 낡은 쇠사슬소리가 나며, 그 문이 열렸다. 문지기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샛문 안쪽에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문단속을 하라는 내용의 규칙이 붙어 있고, 또한 뒤집힌 명패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노사의 명패이고, 또 하나는 늙은 정원사의 명패였다. 걸어가다 보니까, 오른쪽 작업장에 놓여 있는 5미터 남짓한 몇 개의 목재가, 밤눈에도 밝은 나무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자그맣고 노란 꽃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톱밥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어둠 속에 향기로운 나무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작업장 언저리에 있는 우물 곁을 지나서 숙소로 가려고, 나는 되돌아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한 번 금각과 만나야만 했다. 잠들어 고요한 녹원사의 본당과는 반대 방향으로, 당문 앞을 지나서 나는 금각으로 향하였다. 금각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금각은 한밤중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러나 결코 잠드는 일도 없이 서 있었다. 마치 밤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그렇다, 나는 잠들어 고요한 절간처럼 금각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 건축물은, 잠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어둠은 인간적인 법칙이 완전히 면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저주하듯이 나는 금각을 향하여, 난생 처음으로 다음과 같이 거칠게 외쳤다.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 두 번 다시 방해하지 못하도록,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내 것으로 만들 테다!" 목소리는 황량하게 심야의 경호지에 메아리쳤다. 제7장 대체로 나의 체험에는 우연의 일치와도 같은 것이 작용하여, 거울로 된 복도처럼 하나의 영상은 무한히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기에, 새로이 접하는 사물에도 과거에 보았던 사물의 모습이 확실히 비치었고, 이러한 유사성에 이끌려서 어느 틈엔가 복도 안쪽 한없이 깊숙한 곳에 있는 방안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운명이라는 것에, 우리들은 갑자기 부딪히는 것이 아니다. 훗날 사형을 당하게 되는 사내는 평소에 다니던 전봇대나 건널목에서도, 끊임없이 사형대의 환상을 보기 때문에 그 환상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역시 내 체험에는 누적이라는 것이 없었다. 누적되어 지층을 이루고 산의 모양을 형성시키는 따위의 두께가 없었다. 금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물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자신의 체험에 대하여도 각별한 친근감을 품지 못하였다. 단지 그러한 체험 중에서, 어두운 시간의 바다에 휩쓸려 버리지 않는 부분, 무의미하고 끝없는 반복으로 함몰되지 않는 부분, 그러한 작은 부분의 연속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하나의 꺼림칙하고 불길한 그림이, 점차로 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하나하나의 작은 부분이란 무엇일까? 이따금 나는 그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빛을 발하는 그러한 단편들은, 길바닥에서 반짝이는 맥주병의 파편보다도 훨씬 의미가 없고 법칙성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단편들을, 과거에 이미 형성되었던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이 무너져 버린 파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것들은 무의미한 가운데, 법칙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무척이나 흉한 모습으로 나뒹굴면서도, 그 나름대로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파련 주제에, 대담하며, 불쾌하고, 차분하게...미래를! 결코 쾌유나 회복이 아닌, 신품의,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미래를! 이러한 불명료한 반성이 나에게도, 자신이 생각해도 걸맞지 않는 일종의 서정적인 흥분을 전해 주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에는, 마침 달밤이기라도 하면, 퉁소를 들고 금각의 곁에 가서 불었다. 지금은 이전에 가시와기가 불렀던 "어소차"도 악보를 보지 않고 불게 되었다. 음악은 꿈과 비슷하다. 또한 동시에, 꿈과는 반대로 한층 확실한 각성 상태와도 비슷하다. 음악은 그 어느 쪽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여간에 음악은, 이 상반되는 두 가지를, 때로는 역전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따금 나는 자신이 연주하는 "어소차"의 가락으로 화신을 했다. 내 정신은 음악으로 화신을 하는 재미를 알았다. 가시와기와는 달리, 음악은 나에게 있어서 확실한 위안이었다. ...퉁소를 불고 나서 항상 생각하지만, 금각은 어째서 이러한 내 화신을 책망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묵인해 주는 것일까? 반면에, 인생의 행복이나 쾌락으로 내가 화신을 하려고 하면, 금각은 단 한 번이라도 묵인해 준 적이 있는가? 곧바로 내 화신을 가로막고, 나를 내 자신으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것이 금각의 수법이 아니었는가? 어째서 음악에 한하여, 금각은 나의 도취와 망아를 허락하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자, 금각이 허락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음악의 매력은 줄어들었다. 왜냐 하면 금각이 묵인하고 있는 이상, 음악은 아무리 삶과 비슷해 보이더라도 거짓된 가공의 삶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내가 그것의 화신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화신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와 인생에 대하여 두 차례 좌절한 이후, 체념하여 주눅이 들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쇼와 23년(1948) 연말까지 몇 차례나 그러한 기회가 있었고, 가시와기가 이끌어 주기도 하였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여자와 나 사이, 인생과 나 사이에 금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내가 잡으려고 손을 댄 것은 곧바로 잿더미가 되고, 전망은 사막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방 뒤꼍에 있는 밭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에, 자그맣고 노란 여름철 국화꽃에 벌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다. 햇빛이 가득한 가운데 금빛 날개를 붕붕거리며 날아온 꿀벌은, 수많은 국화꽃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벌의 눈이 되어 보려고 하였다. 국화는 한 점의 흠집도 없이 노랗고 단정한 꽃잎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그마한 금각처럼 아름답고, 금각처럼 완전하였지만, 결코 금각으로 변모하는 일이 없는 국화꽃 한 송이일 뿐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확고한 국화, 한 송이의 꽃, 아무런 형이상학적인 암시도 지니지 않는 하나의 형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이처럼 존재의 절도를 유지함으로써, 넘칠 듯한 매력을 풍기며, 꿀벌의 욕망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형태도 없이, 비상하고, 흐르며, 약동하는 욕망 앞에서, 이렇듯 대상으로서의 형태에 몸을 숨긴 채로 숨쉬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가! 형태는 서서히 희박하여져, 무너질 듯, 떨며 전율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화의 단정한 형태는 꿀벌의 욕망을 본떠서 만든 것이며, 그 아름다움 자체가 예감을 향하여 꽃피운 것이니까, 지금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형태의 의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형태야말로, 형태도 없이 유동하는 삶의 거푸집이며, 동시에, 형태도 없는 삶의 비상은, 이 세상의 모든 형태의 거푸집인 것이다... 꿀벌은 그리하여 꽃의 깊숙한 곳으로 돌진하여, 꽃가루에 뒤범벅이 되어, 도취감에 빠져들었다. 꿀벌을 받아들인 국화꽃은, 그 자신이 노란색의 화려한 갑옷을 입은 벌처럼 되어, 지금이라도 줄기로부터 벗어나 비상할 듯이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햇빛과, 햇빛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행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문득 다시금 벌의 눈을 떠나서 내 눈으로 돌아왔을 때,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이, 바로 금각의 눈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러하다. 내가 벌의 눈이기를 포기하고 내 눈으로 돌아온 것처럼, 삶이 나에게 접근하는 순간, 나는 내 눈이기를 포기하고, 금각의 눈을 내 것으로 삼고 만다. 그때야말로, 나와 삶과의 사이에 금각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내 눈으로 돌아왔다. 벌과 국화는 망막한 물질 세계에, 그저 단순히 '배열되어 있는 물체'에 불과하였다. 꿀벌의 비상이나 꽃의 동요는, 바람에 흔들릴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정지하여 얼어붙은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동격이며, 그토록 매력을 풍기던 형태는 사멸되었다. 국화는 그 형태에 의하여가 아니라, 우리들이 막연히 부르고 있는 '국화'라는 이름에 의하여, 구속에 의하여 아름다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벌이 아니었기에 국화에게 유혹당하지도 않았고, 나는 국화가 아니었기에 벌에게 사랑받지도 않았다. 모든 형태와 삶의 유동과의, 그러한 친화는 사라졌다. 세계는 상대성 속에 내버려져, 시간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원의, 절대적인 금각이 출현하여, 내 눈이 그 금각의 눈으로 변할 때 세계는 이처럼 변모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변모한 세계에서는 금각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미를 점유하며, 그 밖의 것들은 흙먼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이 이상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이전에 금각의 정원에서 창녀를 밟은 이후로, 또한 쓰루카와가 급사한 이후로, 내 마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과연 악은 가능할까?' * 쇼와 24년(1949) 정월의 일이다. 토요일의 휴식을 이용하여, 삼류 정도의 싸구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랜만에 신쿄고쿠 거리를 혼자 걸었다. 그 혼잡 속에서 잘 아는 얼굴을 만났으나, 그것이 누구인지 생각해 낼 겨를도 없이, 얼굴은 인파에 밀려서 내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사람은 중절모에 고급스러운 외투와 머플러를 걸치고, 분명히 접대부라고 알 수 있는 적갈색 코트의 여자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분홍빛의 통통한 사내 얼굴, 평범한 중년 신사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어린애와도 같은 기묘한 청결감, 약간 기다란 코...다름 아닌 노사의 얼굴 특징이 중절모에 가려져 있었다. 나로서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도, 오히려 나는, 자신이 들켰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다. 왜냐 하면 노사를 미행한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어, 노사와 무언중에 신뢰와 불신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순간적으로 피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 마리의 검은 개가, 정월 밤의 혼잡한 인파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 검은 삽살개는 이토록 혼잡한 곳을 다니는 데에 익숙한 듯, 화려한 여자들의 코트 사이에 군인 외투도 뒤섞인 행인들의 발밑을 교묘히 헤치며 이곳저곳의 가게 앞을 기웃거렸다. 개는 성호원 야쓰하시의 옛날과 다름없는 토산품 판매점 앞에서 냄새를 맡았다. 가게의 등불로 인하여 개의 얼굴이 처음으로 보였으나, 한쪽 눈이 일그러져, 일그러진 눈꼬리에 엉겨붙은 눈곱과 피가 마노처럼 보였다. 성한 쪽의 눈은 바로 밑의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잔등이의 긴 털이 군데군데 뭉쳐서, 그 뻣뻣한 털뭉치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어째서 개가 내 관심을 끌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밝고 번화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완고히 내부에 간직한 채, 개가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끌린 것인지도 모른다. 개는 후각뿐인 어두운 세계를 걷고 있었으며, 그것은 인간들이 사는 거리와 이중이 되어, 오히려 등불이나 레코드의 노랫소리 또는 웃음소리는, 집요하고 어두운 냄새 때문에 위협당하고 있었다. 왜냐 하면 냄새의 질서는 보다 확실하였고, 개의 젖은 발 밑에 배어 있는 오줌냄새는, 인간들의 내장이나 기관이 풍기는 미미한 악취와, 확실히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몹시 추웠다. 암거래꾼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두세 명, 정월 연휴가 지났는데도 아직 그대로 놓여 있는 장식용 소나무의 잎을 손으로 뜯으며 지나갔다. 그들은 새 가죽 장갑을 낀 손바닥을 펴서 서로 비교하였다. 한 사람의 손바닥에는 불과 몇 개의 솔잎이, 다른 한 사람의 손바닥에는 자그마한 가지 하나가 통째로 남아 있었다. 암거래꾼들은 웃으며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어느 틈엔가 개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개는 시야에서 사라졌는가 싶으면 다시 나타났다. 가와라 거리로 빠지는 길을 돌았다. 나는 이리하여 신쿄고쿠보다도 약간 어두운 전찻길의 보도로 나왔다. 개의 모습은 사라졌다. 멈춰 선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찻길 옆까지 나와서 개의 행방을 눈으로 찾았다. 그때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택시가 눈앞에 멈췄다. 문이 열리고, 여자가 먼저 올라탔다. 나는 무심코 그쪽을 보았다. 여자에 뒤이어 타려던 남자는 문득 나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것은 노사였다. 어째서 아까 나를 지나쳤던 노사가, 여자와 함께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와 마주치는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것은 노사였으며, 먼저 차에 오른 여자의 코트 색깔도 아까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요번에는 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도 당황하여,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도 꺼내기 전에, 더듬거리는 소리가 입 안에서 들끓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즉, 그러한 상황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노사를 향하여 웃었던 것이다. 이런 웃음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웃음이 외부로부터 다가와서, 갑자기 내 입가에 달라붙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웃음을 본 노사는 안색이 변하였다. "바보 녀석! 나를 미행할 작정인가?" 그렇게 꾸짖고는, 즉각 노사는 나를 흘겨보며 차에 탔고, 문이 거세게 닫히더니 택시는 떠나 버렸다. 아까 신쿄고쿠에서 만났을 때에도 노사는 분명히 나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그때 갑자기 확실해졌다. 다음 날, 나는 오히려 노사가 질책하기 위해서 나를 호출하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해명할 기회도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창녀를 밟았던 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다음 날부터 노사의 말없는 방임에 의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에게서 다시 편지가 왔다. 내가 녹원사의 주인이 되는 날을 낙으로 삼으며 살겠다는 끝맺음은 예전과 같았다. "바보 녀석! 나를 미행할 작정인가?" 라고 소리친 노사의 말은,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어울리지 않았다. 보다 해학에 넘치고 대담하며 활달한 선승다운 선승이었다면, 이토록 저속한 질책을 도제에게 퍼붓지는 않았으리라. 그 대신에 보다 효과적이고 따끔한 말을 퍼부었으리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노사는 나를 오해하여, 일부러 노사를 미행하던 끝에 꼬리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비웃은 것이라 믿고, 거의 낭패스러워하면서 얼떨결에 경박스러운 노여움을 보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사의 무언은 다시금 내 생활을 짓누르는 불안이 되었다. 노사의 존재가 거대한 힘이 되어, 눈앞을 성가시게 날아다니는 나방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법요에 초빙될 때 노사는 한두 명의 측근을 동반하는 것이 상례로, 원래는 부사가 반드시 따라다녔으나, 요즈음은 소위 민주화되어, 부사, 전사, 나와 그 외의 도제 두 명이 번갈아 담당하게 되었다. 아직도 까다로운 성질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감은, 입대한 채로 전사했기 때문에, 사감의 역할은 45세의 부사가 겸하였다. 쓰루카와가 죽자, 도제는 한 사람 보충되었다. 때마침 같은 상국사파에 속하는 유서 깊은 절의 주지가 사망하여, 신임 주지의 취임식에 노사가 초대받았는데, 그 동행이 내순번이었다. 노사는 일부러 내 수행을 거절하지 않았기에, 그 왕복 동안에 무엇인가 해명의 기회가 있으리라고 나는 기대하였다. 그러나 전날 밤이 되자, 수행원으로 또 하나의 신참 도제가 추가됨으로 해서, 내가 그날에 걸었던 기대는 이미 절반 무너지고 말았다. 오산 문학(역자주:가마쿠라 말기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 교토 가마쿠라의 오산 승려들 사이에 행하여졌던 문학)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고안 원년에 이시무로 젠큐가 교토의 만수사 주지가 되었을 때 남긴 법어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신임 주지가 절에 도착하여, 산문에서 불전, 토지당, 조사당, 그리고 마지막을 방장으로 가는 길목에 하나하나 붙인 아름다운 법어가 남아 있다. 산문을 가리켜 주지는 신임의 기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역구중 속에, 제성만수의 문. 맨손으로 관건을 뽑아, 맨발로 곤륜에 오르도다."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분향이 시작되자, 사법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향인 사법향이 거행되었다. 옛날에 선종이 관례에 구속받지 않고, 개인적인 성오의 계보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던 시대에는, 스승이 제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였다. 제자는 최초로 업을 받은 스승만이 아니라, 모든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지만, 그 중에서 진심으로 법을 이어받을 스승의 이름을, 사법향 때에 법어로 공개하는 것이었다. 이 경사스러운 분향 의식을 보며, 만약 내가 녹원사를 계승하여 이와 같은 사법향에 임한다면, 관례대로 노사의 이름을 고할 것인가 마음 속으로 망설였다. 700년의 관례를 깨고 나는 다른 이름을 고할지도 몰랐다. 이른 봄 오후의 싸늘한 방장, 자욱한 오종향 냄새, 삼구족(꽃병, 촛대, 향로) 안에서 반짝이는 영락이나 본존의 배후를 감싸는 광배 모습, 늘어선 승려들의 가사 색상... 만약 언젠가 내가 그곳에서 사법향을 올린다면, 하고 나는 공상하였따. 신임 주지의 모습에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때야말로, 나는 이른 봄의 싸늘한 대기에 고무되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배신으로 이 관습을 짓밟아 버리리라. 자리에 줄지어 앉은 승려들은 너무나 놀라서 입도 열지 못하고, 분노로 인하여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겠지. 나는 노사의 이름을 말하리라... 다른 이름을? 그러나 나의 진정한 성오의 스승은 누구일까? 나는 우물거리겠지. 더듬거리는 소리에 막혀서 그 다른 이름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나는 더듬거리겠지. 더듬거리면서, 그 다른 이름을, '미'라 하기도 하고, '허무'라 하기도 하겠지. 그러면 만좌에 웃음이 터지고, 웃음 속에서, 나는 보기 흉하게 꼼짝도 못하겠지... 갑자기 공상에서 깨어났다. 노사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시승으로서의 내 도움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자리에 참석한 시승으로서는 당연히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녹원사의 주지는 그날 내빈의 상수였다. 상수는 사향이 끝나면 백추라는 망치를 두드려서, 신임 주지가 안부도, 즉 가짜 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노사는 외었다. "법연룡상증 당관제일의." 그리고 소리 높게 백추를 두드렸다. 방장에 울려 퍼지는 그 망치 소리가, 나에게 새삼, 노사가 지니고 있는 권력의 영묘함을 깨닫게 하였다. 나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노사의 말없는 방임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에게 무엇이건 인간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것에 대응하는 감정을 상대에게 기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사랑이건 미움이건. 틈만 있으면 노사의 안색을 살피는 일이 나의 한심한 습관이 되었으나, 그 얼굴에는 특별한 감정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무표정은 냉담한 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 무표정이 모멸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이 모멸은 나 개인에게 향하여진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것, 가령 인간성 일반이나 갖가지 추상적인 개념 따위로 향하여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무렵부터, 일부러 노사의 동물적인 머리 생김새나, 육체적인 불결함을 상상하기로 하였다. 그가 대변을 보는 모습을 상상하였고, 심지어는, 그 적갈색 코트의 여자와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의 무표정이 풀리며, 칠칠치 못한 얼굴이 쾌감으로 인하여 웃음도 고통도 아닌 표정을 띠는 모습을 공상한 것이다. 반질거리며 부드러운 살이, 똑같이 반질거리며 부드러운 여자의 살과 뒤엉켜서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된 모습. 노사의 튀어나온 배가 여자의 통통한 배와 맞닿은 모습...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마음껏 상상을 하여도, 노사의 무표정은 곧바로 배설이나 성교의 동물적인 표정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이 없었다. 일상의 사사로운 감정의 색조가 무지개처럼 그 사이를 잇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하나로, 극단에서 극단으로 변모하였다. 조금이나마 그 사이를 잇는 것,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곤, 그 일순간의 몹시도 천박한 질타, "바보 녀석! 나를 미행할 작정인가?"가 있을 뿐이었다. 고민하며 기다리던 끝에, 나는 오로지 증오로 가득한 노사의 얼굴을 확실히 포착하겠다는, 피할 수 없는 욕구의 노예가 되었다. 그 결과로 생각해 낸 다음과 같은 술책은, 미치광이 같기도 하고, 어린애 같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우선 나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장난이 노사의 오해를 자진해서 증명하게 되리라는 불이익조차도 상관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가시와기에게 가게의 장소와 이름을 물었다. 가시와기는 이유도 묻지 않고 가르쳐 주었다. 그날 당장 그 가게에 가서, 기온(역자주:고급 요정이 많은 교토의 지명)의 유명한 기생들의 엽서 크기 만한 사진을 여러 가지 보았다. 인공적인 화장을 한 여자들의 얼굴은, 처음에는 모두 비슷하게 보였지만, 이윽고 그 속에서 미묘한 성격의 농담이 나타나, 분과 연지의 똑같은 가면을 통하여, 명암이나, 교활한 지혜와 아름다운 우둔성, 불쾌감과 끊임없는 쾌활함, 불행과 행복 등 그러한 다양한 색조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윽고 나는 하려던 사진을 발견하였다. 그 사진은, 지나치게 밝은 가게의 전등 때문에 광택지의 표면에 빛이 반사되어, 하마터면 지나칠 뻔하였지만, 내 손 안에서 반사가 사라지자, 적갈색 코트의 여자 얼굴이 그곳에 나타났다. "이걸 주세요." 하고 점원에게 나는 말했다. 내가 어째서 그토록 대담할 수 있었는가 하는 불가사의는, 그 계획에 착수하면서 내가 갑자기 쾌활하여지고, 설명할 수 없는 기쁨에 용기가 솟은 불가사의와 서로 정확히 부합된다. 맨 먼저 생각해 낸 것은 노사가 부재중일 때를 틈타서, 누구의 짓인지도 모르게 행하는 방법이었지만, 이윽고 흥분된 기분에 들떠서, 명백히 내가 한 짓이라고 알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조간 신문을 노사의 방에 전달하는 일은 내 임무였다. 3월의 아직 쌀쌀한 아침에, 평소처럼 현관에 신문을 가지러 갔다. 품속에서 기온의 여자 사진을 꺼내어 신문 사이에 끼웠을 때,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앞뜰의 차 돌리는 곳 중앙에, 둥그런 생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소철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그 거친 줄기의 껍질이, 아침 햇빛에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왼쪽에 자그마한 보리수가 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방울새 너덧 마리가 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염주를 굴리는 듯한 자그마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방울새가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으나, 아침 햇빛이 비치는 나뭇가지를 따라, 아주 미미하게 노란 가슴털이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히 방울새였다. 앞뜰에 깔린 하얀 자갈은 고요하였다. 나는 대충 걸레질을 한 탓으로 군데군데 젖어 있는 복도를, 발이 젖지 않도록 주의하며 걸었다. 대서원의 노사 방에는 장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장지의 흰색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복도에 무릎을 꿇고 평소처럼 이렇게 말하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노사의 응답이 있었다. 장지를 열고 들어가, 책상 귀퉁이에, 살짝 접은 신문을 놓았다. 노사는 머리를 숙인 채 무슨 책인가 읽고 있었다. 내 눈은 보지 않았다... 나는 물러나, 장지를 닫고,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내 방을 향하여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방에 앉아서, 학교에 갈 때까지의 사이에, 고동소리가 점차로 높아지는 것도 아랑곳않고, 나는 이토록 희망을 지니고 무엇인가를 기다린 적이 없었다. 노사의 미움을 기대하며 한 짓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는 극적인 열정에 넘치는 장면을 꿈꾸기까지 하였다. 노사는 갑자기 내 방으로 와서, 나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용서를 받은 나는 난생 처음으로, 쓰루카와의 일상이 그러하였듯이, 그 티없이 밝은 감정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노사와 나는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의 이해가 부족했던 것을 한탄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어째서 내가 이토록 황당한 공상에 열중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냉정히 생각하면, 쓸모없는 짓 때문에 노사의 노여움을 사서, 주지 휴계자의 후보에서 내 이름이 말살되고, 나아가서는 금각의 주인이 될 희망을 영구히 잃게 되는 실마리를 자초하면서도, 나는 그때 금각에 대하여 오랫동안 지녀 온 집착마저도 잊고 있었다. 나는 오로지 대서원의 노사 거소 쪽으로만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요번에는 노사의 거센 분노를, 벼락 같은 호통을 기다렸다. 두들겨 맞고, 발에 차이고,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서원 쪽은 조용하기만 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날 아침 드디어 등교 시간이 되어 녹원사를 나선 내 마음은, 몹시 지치고, 황폐되어 있었다. 학교에 가도 강의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였을 때 모두들 웃었지만, 보니까 가시와기만은 무관심하게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가시와기는 내 마음 속의 드라마를 눈치채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절에 돌아와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절간 생활의 어둡고 곰팡내가 풍기는 영원성은, 오늘과 내일의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간격도 생기지 않게끔 되어 있었다. 매달 두 번 씩 행하는 교전 강의의 하루가 오늘이라서, 절간 사람들은 모두 노사의 거소에 모여 강의를 듣도록 되어 있었기에, 나는 아마도 그 무문관의 강의를 통하여, 노사가 모두들 앞에서 나를 문책하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은 이유는 이러하다. 오늘밤 강의에서 노사와 마주 보고 앉는다는 사실에, 나는, 전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일종의 남성적인 용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에 응한 노사가 남성적인 미덕을 보여 주어 위선을 타파함과 동시에, 절간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행실을 고백하고, 더불어 나의 비열한 행위를 문책하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전등 밑에, 무문관 교재를 손에 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추운 밤이었으나 노사의 곁에 조그만 난로가 있을 뿐이었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숙인 모두의 얼굴에는 그림자로 인하여,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떠돌았다. 새로 온 도제는, 낮 동안에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사내로서, 그의 근시 안경은 언제나 빈약한 콧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나만이 몸 속에 힘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교재를 펼친 노사가 모두를 둘러보았을 때, 내 눈은 노사의 눈을 좇았다. 결코 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던 것이다. 그러나 노사의 복스러운 주름살에 둘러싸인 눈은,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은 채, 나를 지나쳐서 옆사람의 얼굴로 옮겨갔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디에서 강의가 내 문제로 급전할 것인지, 나는 그것만을 기다렸다. 귀를 기울였다. 노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노사의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나는 노사를 경멸하며, 그 위선을 비웃으려 했으나, 점차로 솟아오르는 후회감이 언제까지고 나를 이러한 흥분된 기분으로 놓아 두지 않았다. 노사의 위선에 대한 경멸은, 기묘하게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그 따위 하찮은 상대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사죄한다고 해도 내가 패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깨닫기에 이르렀다. 일단 꼭대기까지 올라간 급경사를, 내 마음은 서둘러 뛰어내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 사죄하러 가야겠다고 나는 마음먹었다. 아침이 되자, 오늘 중으로 사죄하러 가리라고 생각했다. 노사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요란한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무심코 책상 서랍을 연 나는, 하얀 종이에 싸인 물건을 보았다. 싸여 있는 것은 바로 그 사진이었다. 포장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노사는 이런 방법으로 사건을 결말지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명백히 불문에 붙인 것은 아니나, 나의 행위가 무효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진을 돌려준 기묘한 방법은, 나로 하여금 갑자기 복잡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다. 노사는 이런 방법으로 사건을 결말지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명백히 불문에 붙인 것은 아니나, 나의 행위가 무효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진을 돌려준 기묘한 방법은, 나로 하여금 갑자기 복잡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다. '노사도 역시 고민하였음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심각한 고민 끝에, 이러한 수법을 생각해 낸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말로 분명히 그는 나를 미워하고 있으리라. 아마도 사진 그 자체에 관하여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한 장의 사진이 노사로 하여금 자신의 절 안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게끔 만들어, 남들이 없는 틈을 타서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게 하고, 가 본 적도 없는 도제의 방을 찾아가게 하여, 마치 범죄를 저지르듯이 내 책상 서랍을 열도록 만든 것, 그야말로 그토록 비열한 짓을 해야만 하였기 때문에, 노사는 지금 얼마든지 나를 미워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가슴에는 갑자기 정체 모를 기쁨이 솟았다. 그리하여 나는 즐거운 작업에 착수하였다. 여자의 사진을 가위로 조각조각 자른 다음, 공책의 두꺼운 종로 이중으로 싸서 그것을 손에 쥐고 금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금각은 바람이 요란스러운 달밤 아래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암울한 균형을 유지한 채로 우뚝 서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가느다란 기둥이 달빛을 받을 때면, 그것이 가야금의 현처럼 느껴져서, 금각이 거대하고 괴이한 악기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달의 높낮이에 의하여 그렇게 보이는 것이나, 오늘밤이 바로 그러하였다. 하지만 바람은 결코 울리지 않는 가야금의 현 사이를 헛되이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발 밑의 돌멩이를 집었다. 종이에 돌멩이를 넣어, 단단히 뭉쳤다. 그리고 잘게 썰어 추를 단 여자 얼굴의 조각들을, 연못의 중심에 던져 넣었다. 잔잔하게 퍼지는 파문은, 이윽고 물가의 발 밑까지 다가왔다. * 그해 11월에 내가 급작스럽게 출분한 것은, 모두 이러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급작스럽게 보이는 이 출분에도 기나긴 숙고와 주저의 시기가 있었으나, 나로서는 그것을 돌발적인 충동에 휩싸여 저지른 행위로 간주하고 싶다. 무언가 나의 내부에는 근본적인 충동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나는 충동을 모방하기를 유달리 좋아했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의 성묘를 가려고 전날 밤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던 사내가, 당일이 되어 집을 나서서 역 앞에까지 왔을 때,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술친구 집으로 가 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 그를 순수하게 충동적인 사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그러한 갑작스런 변심은, 그때까지의 장시간의 성묘 준비보다도 훨씬 의식적인, 자신의 의지에 대한 복수 행위가 아닐까? 내 출분의 직접적인 동기는, 그 전날, 노사가 처음으로, 단호한 어조로, "너를 장차 후계자로 삼으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러한 뜻이 없음을 일러 둔다." 하고 언명한 그 말에 있었다. 이것이 최초의 선고였지만, 나는 훨씬 이전부터 이러한 선고를 예상하며, 각오하고 있었던 듯이 생각된다. 나는 느닷없는 선고를 받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새삼스러이 놀라고 낭패스러워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의 출분이 노사의 말에 촉발되어, 충동에 의하여 실행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사진을 이용한 술책으로 노사의 미움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눈에 띄게 나는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예과 1학년 성적은, 중국어, 역사의 84점을 필두로, 총점 748점으로, 석차는 84명 중 24번째였다. 결석은 464시간 중, 14시간에 불과하였다. 예과 2학년 성적은 총점 693점으로, 석차는 77명 중 35번째로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무료함을 달랠 정도의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강의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한가한 즐거움만을 이유로 학교를 소홀히 하기 시작한 것은 3학년이 되고 나서이며, 이 신학기는, 마침 사진 사건이 있었던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1학기가 끝났을 때, 학교로부터 주의가 있었기에, 노사는 나를 질책하였다. 성적이 나쁘고 결석 시간이 많은 것도 질책의 이유였지만, 1학기에 불과 3일이 배정된 접심(역자주:선의 교의를 표하는 일)을 게을리 한 것이 노사를 몹시 노하게 만들었다. 학교의 접심은,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그리고 봄방학 전에 각각 3일씩, 제사 전문 도량과 같은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었다. 이 질책은 노사가 각별히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인 모처럼의 기회였다. 나는 단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있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한 가지뿐이었으나, 노사는 사진 건에 관하여서도, 거슬러 올라가 창녀의 협박 건에 관하여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에 대한 노사의 태도는 눈에 띄게 냉담하여졌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바라던 바이자, 내가 보기를 원하던 증거였으며, 일종의 나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단지 이것을 획득하기 위하여는 태만으로 충분하였다. 3학년 1학기 동안 내 결석 시간은 60시간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1학년의 모든 학기를 합친 결석 시간의 거의 5배였다. 그러한 시간을,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즐길 돈도 없으니, 이따금 가시와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외에,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이러한 무위도 내 나름대로의 접심이라고나 할까, 그런 식으로 지내는 동안에 나는 잠시도 따분한 줄을 몰랐다. 풀밭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집을 지으려고 미세한 흙을 나르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지낸 적도 있다. 개미가 내 흥미를 끈 것은 아니다. 학교 뒤쪽에 있는 공장의 굴뚝에서 솟는 희미한 연기를 오랫동안 멍하니 바라본 적도 있다. 연기가 내 감흥을 솟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신이라는 존재에 머리끝까지 완전히 잠겨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계가 군데군데 냉각되기도 하고, 또한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그렇다,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외계가 얼룩져 있기도 했고, 줄무늬로 보이기도 하였다. 자신의 내부와 외계가 불규칙하게 천천히 교체되어, 주위의 무의미한 풍경이 내 눈에 비치는 대로, 풍경은 내 속에 침입하였고, 게다가 침입하지 않은 부분은 저편에서 발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것은, 때로는 공장의 깃발이기도 하였고, 벽의 지저분한 얼룩이기도 하였으며, 풀 속에 버려진 헌 신발 한 짝이기도 했다. 온갖 것들이 순간순간 나의 내부에서 태어나, 다시 사멸하였다. 형태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사상들이라고나 할까... 중요한 것들이 사소한 것들과 손을 잡아, 오늘 신문에서 읽은 유럽의 정치적 사건이, 눈앞의 헌 신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나는 풀잎의 뾰족한 끝 부분에 관하여 오랫동안 생각한 적도 있다. 생각한 적이 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기묘하고 사소한 생각은 결코 지속되는 일이 없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나의 감각 위에, 음악의 후렴처럼 집요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어째서 이 풀잎의 끝이 이처럼 날카로운 예각을 이루어야만 하는가? 만약 둔각이라면, 풀의 종별은 사라지고, 그 자연은 그 일각으로부터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자연의 톱니바퀴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떼어 내면, 자연 전체를 전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나는 부질없이 이것저것 생각하곤 하였다. --노사의 질책은 곧바로 새어나가, 나에 대한 절간 사람들의 태도는 나날이 험악하여졌다. 나의 대학 진학을 시기하던 그 도제는, 언제나 승리의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생활이 절 안에서 계속되었다. 내가 출분하기 전날 아침, 노사가 부사를 보내서 나를 불렀다. 11월 9일의 일이었다. 나는 등교 전이었기에, 제복을 입고 노사에게 갔다. 노사의 원래 복스러운 얼굴은, 나를 만나, 나에게 말을 건네어야 한다는 불쾌감으로 기묘하게 단단히 경직되어 있었다. 반면에 나는, 노사의 눈이 나병 환자를 보듯이 나를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노사는 곧바로 눈길을 피하여, 난로 위에서 손을 비비며 이야기하였다. 그 부드러운 살결의 손바닥을 비벼 대는 소리가, 초겨울의 아침 공기 속에서 미미하나마 신선한 기운을 흐리게 하는 잡음처럼 들렸다. 스님의 살과 살은, 필요 이상으로 친밀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나. 이 편지를 보게. 하교에서 또 강경한 통고가 왔어. 그래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스스로 잘 생각해 봐." --그리고, 이어서 그 말을 하였던 것이다. "너를 장차 후계자로 삼으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러한 뜻이 없음을 일러 둔다." 나는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를 이제 버리시려는 겁니까?" 노사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렇게까지 하고서도, 아직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건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다른 소리를 하였다. "노사께서는 저를 구석구석 잘 알고 계십니다. 저도 노사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으니 어쩌자는 건가?"--스님은 어두운 눈빛이 되었다. "아무 소용 없어. 도움 될 게 없다구." 나는 이때처럼 현세를 완전히 버린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생활의 자질구레한 부분, 돈, 여자, 모든 것에 하나하나 손을 더럽히면서도, 이처럼 현세를 모멸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혈색 좋고 따뜻한 시체를 만지는 듯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때,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라도 멀어지고 싶다는 통렬한 느낌이 나에게서 솟았다. 노사의 방을 물러난 후에도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했지만, 이 생각은 더욱더 강렬해졌다. 불교 사전과 가시와기에게서 받은 퉁소를 보자기에 쌌다. 가방과 함께 이 보따리를 들고 바삐 학교로 가는 동안, 나는 오로지 출발에 대하여만 생각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마침 가시와기가 내 앞을 걷고 있었다. 나는 가시와기의 팔을 끌고 통로 곁으로 데려가, 3,000엔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가시와기의 얼굴에서, 평소에 역설을 내세울 때의 철학적인 상쾌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표정이 싹 사라졌다. 조그맣게 움츠린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햄릿 극중에서 레이어티스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뭐라고 충고했는지 기억하니? '돈은 빌려도 안 되고, 빌려 주어도 안 된다. 빌려주면 돈이 없어지고, 더불어 친구를 잃는다.'고 했잖아." "나한테는 이미 아버지가 없어."라고 나는 말했다. "한 되면 관둬." "아직 안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차분히 상담해 보자. 지금 내 돈을 긁어모아, 삼천 엔이 될지 안 될지." 나는 문득, 꽃꽂이 선생에게서 들은 가시와기의 수법, 여자에게서 돈을 뜯어 내는 교묘한 수법을 사실대로 말해 주려다가 말았다. "우선 그 사전과 퉁소를 처분할 방도를 생각해 보자." 가시와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발길을 돌려 교문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나도 되돌아, 걸음을 늦추어 그와 나란히 걸었다. 가시와기는, 히카리 클럽의 학생 시장이 사채 금융 용의로 검거되었다가 9월에 석방된 후로, 신용이 바닥에 떨어져서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 봄부터 히카리 클럽 사장은 무척이나 가시와기의 흥미를 끌었고, 우리들의 화제에도 이따금 오르내렸지만, 그를 사회적 강자라고 굳게 믿었던 가시와기도 나도, 불과 2주일 후에 그가 자살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뭐에 쓸 돈이냐?" 갑자기 그런 질문을 받은 나는, 정말로 가시와기답지 않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려고." "돌아올 거니?" "그렇겠지..." "뭣에서 벗어나려는 거야?" "내 주위의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내 주위의 것들이 뿜어 내는 무력한 냄새로부터... 노사도 무력해. 아주 무력하지. 그것도 알았어." "금각한테서도?" "그래. 금각한테서도." "금각도 무력한가?" "금각은 무력하지 않아. 결코 무력하지 않아. 하지만 모든 무력의 근원이지." "너다운 생각이로군." 하며 가시와기는 그 과장된 무용의 스텝으로 보도를 걸으며 몹시 유쾌한 듯이 혀를 찼다. 가시와기를 따라서, 우리는 썰렁한 느낌의 자그마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가 퉁소를 팔았다. 400엔밖에 받지 못했다. 이어서 헌책방에 들러 사전을 간신히 100엔에 팔았다. 나머지 2,500엔을 빌려 주기 위해서 가시와기는 나를 자신의 하숙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기묘한 제안을 했다. 퉁소는 되돌려받은 것이고 사전은 선물로 쳐서, 둘 다 일단 가시와기에게 귀속되는 것이니까, 그것을 판 500엔은 역시 가시와기의 돈으로, 2,500엔에 이것을 합하면, 빚은 당연히 3,000엔이 된다. 돌려줄 때까지, 이자를 매월 1할씩 받겠다. 히카리 클럽의 월 3할 4푼이란 고리에 비하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싼 이자다... 그는 종이와 벼루를 꺼내어, 이러한 조건들을 엄숙하게 적고, 이 차용증에 내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 싫었기에, 곧바로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혀서 찍었다. --나는 마음이 다급하였다. 3,000엔을 품에 넣고 가시와기의 하숙을 나서자, 전차를 타고 후나오카 공원 앞에서 내려서, 다테이사오 신사로 향하여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돌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곳에서 점을 보아 행선지를 암시받으려고 한 것이다.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에, 오른쪽으로 요시테루 이나리 신사의 현란한 붉은색 사전과, 철망에 들어 있는 한 쌍의 돌로 만든 여우가 보였다. 여우는 두루마리를 입에 물고, 날카롭게 세운 귀는 속까지 붉게 색칠되어 있었다. 의미한 햇살에, 이따금 불어 대는 바람이 쌀쌀한 날이었다. 올라가는 돌계단의 돌 색깔이, 미세한 재를 뿌려 놓은 듯이 보이는 것은, 나무 사이로 비치는 약한 햇빛의 색깔이었다. 그 빛이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지저분한 재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테이사오 신사의 널찍한 앞뜰로 나섰을 때, 거기까지 단숨에 뛰어오른 나는 땀을 흘렸다. 정면의 배전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다. 그곳으로 향하여 평탄한 돌길이 뻗어 있다. 좌우로는 낮게 드리운 소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색이 바랜 사무소가 있고, 현관 문에 '운명 연구소'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사무소의 배전 가까이에 흙으로 지어 하얗게 칠한 창고가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드문드문 삼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며, 흰 구름이 침통한 빛을 머금고 뒤엉켜 있는 하늘 아래로 교토 서부 근교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다테이사오 신사는 노부나가를 주제신으로 모시고,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를 더불어 모신 곳이다. 간소한 신사로서, 배전을 에워싼 붉은색의 난간만이 색채감을 주었다. 나는 돌계단을 올라가, 절을 하고, 헌금함 옆에 걸쳐진 선반 위의 낡은 육각 상자를 집어들었다. 나무상자를 흔들었다. 구멍에서 가늘게 깎은 대나무 하나가 떨어졌다. 거기에는 붓으로, "십사."라고만 적혀 있었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십사...십사..."라고 중얼거리며 돌계단을 내려왔다. 그 숫자의 소리는 내 혀에 정체되어, 서서히 의미를 더해 가는 듯이 여겨졌다. 사무소 현관에서 사람을 불렀다. 빨래를 하고 있었던 듯한 중년 여자가, 벗어 든 앞치마로 집요하게 손을 닦으며 나타나더니, 내가 내민 요금 10엔을 무표정하게 받았다. "몇 번이죠?" "십사번입니다." "저 툇마루에서 기다리세요." 나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그 젖어 부르튼 여자의 손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너무도 무의미하게 생각되었으나, 그러한 무의미함에 운명을 걸 생각으로 온 것이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닫힌 장지문 안에서, 잘 열리지 않는 낡고 작은 서랍의 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장지문이 조금 열리더니, "자, 여기 있어요." 하며 한 장의 얇은 종이를 내밀고는, 다시 장지문은 닫혔다. 종이 모서리에 나 있는 여자의 손자국은 젖어 있었다. "그대가 이 자리에 있으면 결국은 야소카미에 의하여 멸망하리라. 온갖 곤란을 겪으신 대국주명은 조상신의 교시에 의하여 이 나라를 퇴거하시려고 조용히 피신하실 징조." 해설은, 모든 것이 여의찮다는 사실과, 전도에 가로놓인 불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단에 적혀 있는 수많은 항목 중에 여행이라는 항을 보았다. "여행--흉. 특히 북서가 나쁨."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나는 북서쪽으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 쓰루가행은 교토 역을 오전 6시 55분에 떠난다. 절의 기상은 5시 반이다. 10일 아침, 내가 일어나서 곧바로 제복으로 갈아입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못 본 척하는 데에 익숙해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절간의 여기저기로 흩어져서, 사람들은 청소와 걸레질을 시작하였다. 6시 반까지가 청소 시간이다. 나는 앞뜰을 쓸었다. 가방도 하나 들지 않고, 여기에서 돌연히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동틀 무렵의 뿌연 자갈길 위에서 나와 빗자루가 움직이고 있다. 갑자기 빗자루가 쓰러지고, 내 모습이 사라져, 뒤에는 박명 속에 하얀 자갈길만이 남는다. 그런 식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바라고 있었다. 내가 금각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금각을 포함한 모든 환경으로부터, 나만이 갑자기 제거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정문 쪽을 향하여 비질을 하였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새벽 별이 보였다. 내 가슴이 크게 뛰었다. 출발하여야 한다. 이 말은 거의 날개 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나는 환경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감가불우로부터, 나의 말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하여야 한다. 손에서 빗자루는, 과일이 떨어지듯이 자연히, 새벽 어둠의 풀숲 속에 떨어졌다. 나무에 몸을 숨기며 정문 쪽으로 살그머니 걸어가, 정문을 나서자 마구 달렸다. 첫출발하는 전차가 다가왔다. 몇몇 노동자 차림의 승객들 속에 섞여서, 나는 차 안의 밝은 전등에 몸둘 바를 몰랐다. 이토록 밝은 곳은 처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여행에 관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완연히 떠올릴 수가 있다. 목적지도 모르는 채 출분한 것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중학교 시절에 한 번 수학 여행을 갔던 지방으로 정했다. 그러나 그곳을 향하여 서서히 다가가는 동안, 출발과 해방의 심정이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내 앞에는 미지의 세계뿐인 듯이 여겨졌다. 기차가 달리는 그 선은, 태어난 고향으로 향하는 낯익은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낡고 지저분한 열차가 이처럼 신선하고 신비롭게 보인 적은 없었다. 역, 기적, 새벽녘에 울려퍼지는 확성기의 탁한 목소리까지도, 동일한 감정을 되풀이시키며, 그것을 강조하여, 눈부실 정도로 서정적인 전망을 내 앞에 펼쳐 보여 주었다. 아침 햇살은 광대한 플랫폼에 명암을 만들었다. 그곳을 달리는 구둣소리, 튀는 듯한 나막신소리, 마냥 단조롭게 울려대는 벨, 매점의 광주리에 보이는 귤 색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내가 몸을 맡긴 커다란 것을 하나하나 암시하였으며, 하나하나의 징조인 것처럼 여겨졌다. 역의 어떠한 보잘것없는 단편이라도, 이별과 출발의 통일적인 감정을 향하여, 최대한으로 집결되어 있었다. 내 눈 아래에서 뒤로 물러나는 플랫폼은, 아주 의젓하고 예의바르게 멀어져 갔다.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콘크리트의 무표정한 평면이, 그 곳에서 움직여, 떠나고, 출발하는 것들에 의하여, 얼마나 눈부신 모습으로 변모하는 가를. 나는 기차를 신뢰하였다. 이것은 우스운 표현이다. 우스운 표현이지만, 자신의 위치가 교토 역에서 점차로 멀리 이동하여 간다는, 믿기지 않는 이 느낌을 보증하기 위하여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녹원사에서 밤에, 화원 가까이 지나가는 화물 열차의 기적을 몇 차례 들었지만,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을 그처럼 밤낮없이 확실히 달리던 기차에, 내가 지금 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기이하였다. 기차는 예전에 병든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군청색의 호즈 골짜기를 따라서 달렸다. 아타고 연봉과 아라시 산의 서쪽, 이곳에서 소노베 부근까지의 지역은, 기류의 영향인 듯, 교토 시와는 확연히 기후가 달랐다. 10월, 11월, 12월 동안, 밤 11시부터 아침 10시경까지, 규칙적으로, 흐즈천에 올라오는 안개가 이 지방을 남김없이 뒤덮었다. 그 안개는 쉬지 않고 유동하였기에, 끊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전원이 어슴푸레하게 펼쳐지자, 수확을 끝낸 논은 푸른곰팡이 색으로 보였다. 논둑에 드문드문 자라난 나무들은, 높이도 크기도 각각이고, 가지를 높게 다듬어, 가느다란 나무 둥치를 한결같이 이 지방에서 증롱이라고 불리는 짚더미로 감아 놓았기에, 그것들이 잇달아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나무들의 유령처럼 보였다. 또한, 어떤 때에는 차창 가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회색 논밭을 등지고, 아주 선명한 한 그루의 커다란 버드나무가 흠뻑 젖은 잎사귀를 무거운 듯이 떨군 채, 조금씩 안개에 흔들리며, 나타나곤 했다. 교토를 떠날 때 그토록 활기에 넘치던 내 마음은, 지금 다시 죽은 사람들의 추억에 잠겨들었다. 우이코와 아버지와 쓰루카와의 추억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다정한 느낌을 내 마음에 불러 일으켜, 나는 죽은 사람만을 인간으로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사랑받기 쉬운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다지 붐비지 않는 3등 객차에서도, 사랑받기 힘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담배를 피우거나 귤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무슨 공공 단체의 나이 든 임원들이 옆좌석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결같이 낡고 볼품없는 양복을 입었으며, 한 사람의 소매 끝으로 낡은 줄무늬 안감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나는 범용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어도 조금도 쇠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이 감탄하였다. 농사꾼처럼 햇볕에 그을린 주름살투성이의 그러한 얼굴들은, 술 때문에 거칠어진 목소리와 함께, 일종의 범용의 정화와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공공 단체에 기부하여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논평하고 있었다. 의젓한 대머리 노인 한 사람은, 이야기에 끼지 않고, 얼마나 많이 세탁하였는지 모를 누런 모시 손수건으로 쉬지 않고 손을 닦고 있었다. "이 시커먼 손은 매연 때문에 저절로 더러워진단 말이야. 곤란하게." 다른 한 사람이 말상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매연 문제로 한 번 신문에 투고한 적이 있으시지요?" "아니야." 대머리 노인은 부정하였다. "하여튼, 곤란한 일이지." 무심코 나는 들었다. 그들의 대화에 이따금 금각사와 은각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금각사나 은각사에는 잔뜩 기부를 하게끔 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수입은 은각 쪽이 금각의 절반 정도이지만, 그래도 막대한 금액이다. 일례로 금각의 연간 수입은 500만엔 이상으로 추측되나, 절간 생활은 선가들이 모두 그렇듯이, 전기료와 수도료를 넣어도, 1년에 20만엔 밖에 들지 않는다. 모인 돈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젊은 중들에게는 식은 밥을 먹여 놓고, 주지 스님 혼자서 매일 밤 기온의 기생집에 드나들며 쓰고 있다. 게다가 세금도 없으니까,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곳에는 가차없이 기부를 요구해야 된다, 하고들 번갈아 말하였다. 대머리 노인이 여전히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이야기가 끊길 때마다, "곤란하군." 하고 말하면, 그것이 모두의 결론이 되었다. 잘 닦인 노인의 손은, 매연자국도 없이, 무슨 장식품처럼 광택을 발하였다. 실제로 그 닦인 손은, 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갑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렸다. 기묘한 일이지만, 이것이 내 귀에 들어온 세상의 첫 비평이었다. 우리들은 승려의 세계에 속하여 있었고, 학교도 또한 그 세계에 있었기에, 서로 절을 비평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 든 임원들의 이러한 대화는 조금도 나를 놀라게 하지 않았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자명한 사실이었다! 우리들은 식은 밥을 먹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기온의 기생집에 드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늙은 임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내가 이해된다는 사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혐오를 느꼈다. '그들의 말'로 내가 이해되는 일은 참을 수 없다. '내 말'은 그것과 다르다. 노사가 기온의 기생과 걷고 있는 장면을 보아도, 내가 전혀 도덕적인 혐오감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늙은 임원들의 대화는 이러한 이유에서 내 가슴에, 범용함이 옮겨 놓은 냄새와도 같은, 어렴풋한 혐오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내 자신의 사상에 사회의 지원을 기대할 마음은 없었다. 세상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그 사상에 부여할 생각도 없었다.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이해되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목쉰 소리의 판매원이 가슴에 커다란 광주리를 걸치고 나타났다.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한 나는, 쌀밥 대신에 해초로 만든 듯한 녹색의 국수가 담긴 도시락을 사서 먹었다. 안개는 걷혔지만 하늘에는 햇빛이 없었다. 니와 산 언저리의 메마른 땅에, 닥나무를 심은 제지업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마이즈루 만. 이 이름은 예전과 다름없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라쿠 마을에서 보낸 소년 시절부터,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바다의 총칭이며, 결국에는 바다의 예감 그 자체의 이름이 되었다. 그 보이지 않는 바다도, 시라쿠 마을 뒤에 우뚝 솟은 아오바 산의 꼭대기에서는 잘 보였다. 내가 아오바 산을 오른 것은 두 번이다. 두 번째로 갔을 때, 우리들은 마침 마이즈루 군항에 들어와 있는 연합 함대를 보았다. 햇빛에 번쩍이는 항만내에 정박한 함대는, 비밀리에 집결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함대에 관련된 사항은 모두 기밀에 속하였기에, 우리들은 애당초 그러한 함대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심하였을 정도였다. 그러기에 멀리 보이는 연합 함대는, 이름만 알고 사진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위엄 있는 검은 물새들의 무리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위풍당당한 늙은 새의 경계 속에서 살며시 목욕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열차의 차장이 다음 역인 '니시마이즈루'의 이름을 알려 대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서둘러 짐을 짊어지는 해군 사병들도 지금은 없었다. 내릴 준비를 시작한 것은, 나 이외에는, 두세 명의 암거래상 차림의 사내들뿐이었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곳은 영어로 쓰인 교통 표시가 위압하듯이 이곳저곳 길목에 튀어나와 있는 외국의 항구 도시처럼 변하여 있었다.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초겨울의 구름 낀 하늘 아래로, 차가운 미풍이 소금기를 머금고 넓은 군용 도로에 불어 대고 있었다. 바다냄새라기보다는 무기질의, 녹슨 쇳덩이와도 같은 냄새가 났다. 마을 한복판으로 깊숙히 끌어들인 운하처럼 비좁은 바다, 그 죽어 버린 수면, 바위에 묶어 놓은 미국 소함정... 여기에는 분명히 평화가 있었지만, 너무도 잘되어 있는 위생 관리가, 예전의 군항으로서의 어수선한 육체적인 활력을 빼앗아, 거리 전체를 병원과도 같은 느낌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여기에서 바다와 친숙하게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프가 뒤에서 다가와, 장난삼아 나를 바다로 밀어 떨어뜨릴지도 몰랐다.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사실이지만, 내 여행의 충동에는 바다의 암시가 있었으나, 그 바다는 아마도 이러한 인공적인 항구의 바다가 아니라, 어린 시절, 나리우 곶의 고향에서 접하였던 것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거친 바다였다. 표면이 거칠고, 항상 노기를 품고 있는, 그 초조한 느낌을 주는 우라니혼(역자주:대한 해협에 접한 혼슈의 속칭)의 바다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라로 가기로 하였다. 여름에는 해수욕으로 붐비는 해변도 이 계절에는 쓸쓸하고, 단지 육지와 바다가 어두운 힘으로 서로 대결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니시마이즈루에서 유라로 가는 길은 무려 30리나 되었지만, 내 발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길은 마이즈루 시에서 항만의 낮은 곳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다가, 미야즈 선과 직각으로 교차하여, 이윽고 다키지리 언덕을 넘어 유라천으로 나간다. 오카와 다리를 건너면 유라천의 서안을 따라 북상한다. 그 다음은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하구까지 가면 된다. 나는 시가지를 벗어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걷다가 다리가 피로해지면,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유라에 무엇이 있는가? 무슨 증거를 얻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일까? 그곳에는 우라니혼의 바다와, 사람도 없는 해변이 있을 뿐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발길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어디든지, 나는 도달하고자 하였다. 무엇이건, 도달한 것에 직면할 용기, 거의 부도덕에 가까운 용기가 나에게서 솟았다. 이따금 생각난 듯이 햇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길가의 느티나무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햇빛 밑으로 나를 유혹하였지만, 무슨 까닭에서인지 나는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며 몸을 쉴 틈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의 광대한 유역에 접근할 때에 보이는 풍경 특유의 완만한 경사도 없이, 유라천은 산 사이의 길에서 갑자기 모습을 나타내었다. 강물이 맑고 강폭은 넓은데도 흐름이 둔탁하여, 찌푸린 하늘 아래에 그것은 서서히 본의 아니게 바다 쪽으로 옮겨가는 듯이 보였다. 강의 서쪽 기슭으로 나서자, 자동차의 통행도 인적도 끊겼다. 길을 따라서 여름철의 밀감 밭이 이따금 보였으나,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가즈에라는 작은 부락이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풀잎을 헤치는 소리가 갑자기 들리더니 코끝의 털이 새까만 개가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이 부근의 명소로서는, 내력도 의심스러운 산쇼다유(역자주:유라에 살았다는 욕심 많고 비정한 갑부)의 집터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곳에 들를 마음도 없었기에, 나는 어느 틈엔가 그 집을 지나쳤다. 강 쪽만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다. 강 복판에는 대나무 숲에 싸인 커다란 섬이 있었다. 내가 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는데도, 섬의 대나무 숲은 바람에 휘고 있었다. 한두 마지기의 천수답이 섬 위에 있었지만, 농부의 모습은 없고, 한 사람, 이쪽에 등을 돌리고 낚시하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사람 모습에 친근감을 느꼈다. '숭어 낚시일까? 만일 낚고 있는 것이 숭어라면, 여기는 하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때, 휘어져 있던 대나무 숲의 술렁이는 소리가 강물소리보다 높아지면서, 그곳에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인 것은 비인 듯하였다. 빗방울이 섬의 메마른 땅을 적셨다. 그 순간, 내 위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비에 젖으면서 보는 섬 위에는, 이미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아까 그대로의 모습으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위의 소나기도 지나갔다. 갈대와 가을 풀들은 길모퉁이마다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구가 곧 눈앞에 펼쳐질 듯이 생각되었다. 몹시 차가운 바닷바람이 내 코를 때렸기 때문이다. 유라천은 끝 부분으로 가까워짐에 따라, 몇 개의 쓸쓸한 섬들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강물은 확실히 바다에 접근할수록 바닷물에 침범당하고 있었지만, 수면은 오히려 잠잠하게 아무런 징조도 띠고 있지 않았다. 실신한 채로 죽어 가는 사람처럼. 하구는 의외로 좁았다. 그곳에서 융합되며 뒤엉키는 바다는, 하늘에 층층이 쌓여 있는 어두운 구름과 일체가 되어, 불명료하게 가로놓여 있을 뿐이다. 내가 바다의 감촉을 느끼려면, 들과 논밭을 건너오는 강풍을 향하여 아직 얼마간 더 걸어야만 했다. 바람이 북쪽 바다를 실감케 했다. 이토록 심한 바람이, 인기척도 없는 들판 위에, 이처럼 낭비되는 것은, 바다 때문이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 지방의 겨울을 뒤덮고 있는 기체의 바다, 명령적이고 지배적인 보이지 않는 바다였다. 하구 저편에 몇 겹으로 겹쳐져 있던 파도가, 서서히 잿빛 해면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모자 모양으로 생긴 섬이, 하구 정면에 나타났다. 그 섬은 하구에서 80리 떨어진 간무리 섬으로, 천연 기념물인 섬새의 서식지였다. 나는 밭으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량한 토지였다. 그때 무슨 의미가 내 가슴에 떠올랐다. 떠오르는가 싶더니 사라져, 의미는 상실되었다. 잠시 멈추어 있었지만, 불어 대는 찬 바람이 내 생각을 빼앗았다. 나는 다시 바람을 받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빈약한 밭은 황무지로 이어졌으나, 야생초는 거의 시들고, 시들지 않은 것이라곤, 땅바닥에 붙어 있는 이끼 따위의 잡초뿐이었다. 그 잡초의 잎사귀도 오그라들어, 납작해져 있었다. 그 일대는 이미 모래가 섞인 흙이었다. 떨리는 듯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사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무심코 내가 강바람에 등을 돌리고, 뒤쪽의 유라가타케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사람들이 있는 위치를 살폈다. 해변으로 내려가기 위하여는, 나지막한 벼랑을 따라 내려가는 샛길이 있었다. 그곳에서 심한 침식을 막기 위하여 소규모의 제방 공사가 진행 중임을 알았다. 백골처럼 콘크리트 기둥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으나, 모래 위의 그 새로운 콘크리트 색깔은 기묘하게도 생생하게 보였다. 떨리는 듯 둔탁한 소리는, 틀에 채운 시멘트를 진동시키는 콘크리트 바이브레이터의 소리였다. 콧잔등이 새빨개진 너덧 명의 인부들이, 학생복의 나를 수상쩍은 듯이 보았다. 나도 힐끗 그쪽을 보았다. 인간끼리의 인사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바다는 모래사장으로부터 절구 모양으로 급격히 움푹 패어 있었다. 화강암질의 모래를 밟으며 물가로 향하여 걷는 동안, 나는 아까 가슴에 떠올랐던 하나의 의미를 향하여, 확실히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하여 간다는 기쁨에 다시 휩싸였다. 차가운 강바람으로 인하여 장갑도 끼지 않은 손은 거의 얼어 있었으나,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라니혼의 바다였다! 나의 모든 불행과 어두운 사상의 원천, 나의 모든 추악함과 힘의 원천이었다. 바다는 거칠었다. 파도는 잇달아 쉬지 않고 밀려와, 지금 밀려오는 파도와 그 다음의 파도와의 사이에, 매끄러운 잿빛 심연이 엿보였다. 어두운 바다 위에 층층이 쌓인 구름은, 중량감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왜냐 하면, 경계도 없는 무거운 구름의 누적이, 아주 가볍고 차가운 깃털과도 같은 테두리로 이어져, 그 복판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푸른 하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납빛 바다는 또한, 검보랏빛 곶의 산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에 동요와 부동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두운 힘과, 광물처럼 응결된 느낌이 있었다. 문득 나는, 가시와기가 처음 만났던 날,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났다. 우리들이 갑자기 잔학해지는 것은, 화창한 봄날의 오후, 잘 깎인 잔디밭 위에서, 나무 사이로 새어나온 햇빛이 여기저기 비치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을 때와 같은, 그러한 순간이라고 했던 그 말이. 지금, 나는 파도와 거센 북풍을 향하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의 오후도, 잘 깎인 잔디밭도 여기에는 없었다. 그러나 이 황량한 자연은, 봄날 오후의 잔디밭보다도 한결 내 마음을 끌었고, 내 존재와 친밀하였다. 이곳이 나에게는 흡족하였다. 나는 아무것에도 위협당하고 있지 않았다. 돌연히 나에게 떠오른 상념이, 가시와기의 말처럼, 잔학한 상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여간에 이 상념은, 느닷없이 나의 몸 속에서 생겨나, 아까부터 떠오르던 의미를 계시하며, 환하게 나의 내부를 비추기 시작하였다. 아직 나는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햇빛을 쬐듯이 그 상념을 쬐고 있음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도 못했던 이 생각은, 생겨남과 동시에 강력하고 거대하여졌다. 오히려 내가 그것에 감싸였다. 그 상념이란, 이런 것이었다.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 제8장 그 다음에도 나는 계속 걸어서, 미야즈 선의 단고유라 역 앞으로 갔다.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의 수학 여행 때에도, 같은 코스를 따라, 이 역에서 귀로에 올랐었다. 역전의 자동차 도로에는 사람 그림자도 별로 없었기에, 여기가 짧은 여름 한철에 의지하여 생계를 꾸려 가는 고장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해수욕 여관 유라관'이라는 간판이 달린 역전의 자그마한 여인숙에 머물기로 했다. 현관의 반투명한 유리 문을 열고 사람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현관 앞의 마루에는 먼지가 쌓였으며, 덧문이 닫힌 실내는 어둡고 인기척도 없었다. 뒤쪽으로 돌았다. 철 지난 국화를 심은 소박하고 조그만 뜰이 있었다. 높은 곳에 설치된 물탱크가 있다. 여름 동안에 수영을 하고 온 손님들이, 몸에 붙은 모래를 씻어 내도록 샤워가 그 물탱크에 달려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 여관 주인의 가족이 사는 듯한 작은 집이 보였다. 꼭꼭 닫은 유리 문에서 라디오소리가 새어나왔다. 쓸데없이 높은 소리가 허전하게 들려와, 오히려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역시 그곳에서도, 나는 두세 켤레의 나막신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현관에서, 라디오소리의 사이사이에 사람을 부르고는 한없이 기다렸다.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찌푸린 하늘에서 햇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와, 현관에 있는 신발장의 나뭇결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몸의 윤곽이 녹아서 튀어나온 것처럼 뚱뚱하며 피부가 희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눈이 가느다란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방을 부탁했다. 여자는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잠자코 발길을 돌려서 여관의 현관 쪽으로 향하였다. --주어진 방은, 2층 구석의, 바다 쪽으로 창이 있는 작은 방이었다. 여자가 가져온 난로의 미약한 불기운이,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 안 공기를 녹이자, 그 곰팡내가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창문을 열고 북풍을 한껏 몸에 받았다. 바다 쪽에서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도 없는데, 구름의 느긋하고 육중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구름은 자연의 끝없는 충동의 반영이기라도 한 듯이 보였다. 더구나 반드시 그 일부분에는, 명민한 이지의 푸르고 자그마한 결정체, 푸른 하늘의 얇은 조각이 보였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창가에서, 다시 방금 전과 같은 상념을 좇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금각을 불태우려는 생각에 앞서, 노사를 죽이겠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을까 하고 스스로 물었다. 이전에도 노사를 죽이겠다는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곧바로 그것이 소용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설령 노사를 죽인다 하더라도, 그 중대가리와 그 무력한 악은, 계속하여 무수히, 어둠의 지평선에서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생명이 있는 것들은, 금각처럼 엄밀한 일회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의 온갖 속성의 일부를 담당하여,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것을 전파하고, 번식시키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살인이 대상의 일회성을 멸망시키기 위한 행위라면, 살인이란 영원한 오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금각과 인간 존재와는 더욱더 명확한 대비를 보여, 한편으로는 인간의 멸망하기 쉬운 모습에서 오히려 영생의 환생이 떠오르고, 금각의 불괴의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멸망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반면에 금각처럼 불멸의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메이지 30년대(역자주:1987년부터 1906년까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운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이 된다. 생각하는 도중에, 해학적인 기분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금각을 불태운다면' 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교육적인 효과는 각별하겠지. 그 덕분에 사람들은, 유추에 의한 불멸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리라. 단지 그냥 지속되어 왔던, 550년 동안에 연못가에 계속하여 서 있었다는 것이, 아무런 보증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존을 떠받치고 있는 자명한 전제가 내일이라도 무너지리라는 불안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다 분명히 우리들의 생존은, 일정한 기간 동안 지속된 시간의 응고물에 둘러싸여 유지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단지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도록 목수가 만든 작은 서랍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시간이 그 물체의 형태를 능가하여, 수십 년 수백 년 후에는, 거꾸로 시간이 응고되어 그 형태를 취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일정하고 조그만 공간이, 처음에는 물체에 의하여 점령당하던 것이, 응결된 시간에게 점령당하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영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중세의 동화 "부상신기"의 서두에 이렇게 씌여 있다. "음양잡기에 말하기를, 기물이 100년을 지나, 변하여 정령을 얻고 나서, 사람의 마음을 기만한다. 이것을 부상신이라 칭한다고 한다. 이것에 의하여 세속에선, 매년 입춘에 앞서서, 가정집의 낡은 구족을 처분하여, 길가에 버리게 되었는 바, 이를 매불이라 한다. 이것이 곧, 100년에서 1년 모자라는 부상신의 재난을 대신하게 된다." 내 행위는 그처럼 부상신의 재앙으로부터 삶들의 눈을 뜨게 하여, 이 재앙에서 그들을 구하게 되리라. 나는 이 행위에 의하여, 금각이 존재하는 세계를, 금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뒤바꾸게 되리라. 세계의 의미는 확실히 변하겠지... ...생각할수록 나는 쾌활하여지는 자신을 느꼈다. 지금 내 몸의 주위를 에워싸고 내 눈이 눈앞에 보고 있는 세계의 몰락과 종결은 바로 가까웠다. 일몰의 광선이 널리 퍼지고, 그 빛을 받아 번쩍이는 금각을 올려놓은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시시각각, 확실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3일간에 걸친 유라관의 체류가 끝난 것은, 그 동안 한 발도 숙소에서 나오지 않는 나의 낌새를 수상히 여기고, 주인 아줌마가 데려온 경관 때문이었다. 방에 들어온 제복 경관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발각될까 봐 두려웠으나, 곧 겁낼 이유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심문에 대답하여, 나는 사실 그대로, 절간 생활로부터 잠시 떠나 있고 싶어서 출분하였다고 말하고는, 학생증도 보여 주고, 일부러 경관 앞에서 숙박료도 깨끗이 지불하였다. 그 결과, 경관은 체포가 아니라 보호하는 태도가 되었다. 그는 곧바로 녹원사에 전화를 걸어, 내 말에 거짓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절에 데려다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장래가 유망한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일부러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단고유라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소나기가 내리자, 지붕이 없는 역은 삽시간에 젖었다. 경관은 나를 데리고 역 사무실로 들어갔다. 역장도 역원도 그의 친구임을, 사복 경관은 자랑스럽게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모두에게, 교토에서 찾아온 조카라고 나를 소개하였다. 나는 혁명가의 심리를 이해하였다. 빨갛게 타오르는 쇠난로를 둘러싸고 담소하고 있는 이 시골 역장이나 경관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세계의 변동, 자신들의 질서가 머지않아 붕괴되리라는 사실을, 전혀 예감하고 있지 않았다. '금각이 불타면... 금각이 불타면, 이 녀석들의 세계는 변모하여, 생활의 금과옥조는 뒤집히고, 열차 시간표는 혼란되며, 이 녀석들의 법률은 무효가 되겠지.' 자신들의 곁에, 시치미를 떼고, 미래의 범인 하나가 난로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들이 나를 즐겁게 하였다. 쾌활한 젊은 역원이, 이 다음 휴일에 볼 영화에 관하여 큰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것은 훌륭한, 눈물은 자아내는 영화로, 화려한 활극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 다음 휴일에는 영화를! 젊고, 나보다도 훨씬 믿음직스러우며, 활기에 넘치는 이 청년이, 이 다음 휴일에는 영화를 보고 여자를 껴안고, 그리고는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는 줄곧 역장을 놀려 대며 농담을 하고 주의를 받으면서, 그러는 사이에도 재를 쑤시거나 칠판에 무언가 숫자를 적곤 하였다. 다시금 나를, 생활의 매혹, 또는 생활에의 질투가 사로잡으려고 하였다. 금각을 불태우지 않고 절을 뛰쳐나와 환속하여, 나도 이런 식으로 생활에 파묻힐 수 있다. ...그러나 곧 어두운 힘이 되살아나 나를 그곳에서 끌어 내었다. 나는 역시 금각을 불태워야만 한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을 위한 미문의 삶이 그때부터 시작되리라. --역장이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거울 앞으로 가서 금실을 두른 제모를 단정히 썼다. 헛기침을 하고는, 가슴을 펴고, 식장에 나가듯이, 비가 갠 플랫폼으로 나갔다. 이윽고 내가 탈 가차가, 선로를 따라 깎아지른 벼랑에, 그 굉음을 앞세우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갠 벼랑의 흙을 통하여 들려오는 선명하리만큼 축축한 굉음을. * 오후 8시 10분 전에 교토에 도착한 나는, 사복 경관을 따라서 녹원사 정문 앞에까지 왔다. 쌀쌀한 밤이었다. 소나무 숲의 검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 정문의 완고한 모습이 가까워 왔을 때, 그곳에 서 있는 어머니를 나는 보았다. 어머니는 우연히도 그 푯말, "만약 이것을 범한 자는 국법에 의하여 처벌될 것임."이라고 적혀 있는 푯말 옆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 있는 모습은, 등불 아래에, 흰머리가 하나하나 솟구쳐 있는 듯이 보였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별로 흰 것도 아니나, 불빛이 반사되어 그렇게 보였다. 그 머리카락에 싸인 자그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체구가 작은 어머니의 몸은, 그러나 불길하게 부풀어올라, 거대하게 보였다. 어머니의 뒤에는 활짝 열린 정문 안으로 정원의 어둠이 펼쳐져 있었기에, 어둠을 등지고, 한 벌뿐인 나들이옷에 해어진 금실을 수선한 자국이 있는 허리띠를 매고, 허름한 옷을 아무렇게나 입은 모습이, 그곳에 선 채로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다가서기가 망설여졌다. 어째서 어머니가 여기에 와 있는지도 의아하였지만, 나중에 안 사실에 의하면, 노사가 나의 출분을 알고 어머니 있는 곳에 조회하자, 어머니는 기겁하여 녹원사로 찾아와서 그대로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사복 경관이 내 등을 밀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서, 어머니의 모습은 서서히 작아졌다. 어머니의 얼굴은 내 눈 아래에 있었고, 나를 올려다보며 흉하게 일그러졌다. 감각은 절대로 나를 속인 적이 없다. 작고 교활하게 보이는 움푹 파인 어머니의 눈은, 새삼스러이, 어머니에 대한 나의 혐오감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동감하게 만들었다. 애당초 이 사람에게서 태어났다는 안타까운 혐오, 그 깊은 오욕감...그것이 도리어 어머니와의 인연은 끊게 만들어, 복수를 기도할 여지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앞에서 말하였다. 하지만 굴레는 벗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가 모성적인 비탄에 절반 가량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돌연히 나는 자유가 되었다고 느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어머니가 이제는 결코 나를 위협하지 못하리라고 느낀 것이다. --날카로운, 목을 조이는 듯한 오열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그 손이 내 뺨으로 뻗어와, 힘없이 때렸다. "불효자식! 배은망덕한 놈!" 내가 매맞는 것을 사복 경관은 잠자코 보고 있었다. 때리는 손끝의 힘이 풀려, 손가락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손톱 끝이 싸라기눈처럼 뺨에 부딪혔다. 때리면서도 어머니의 표정이 애원을 잊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눈을 돌렸다. 잠시 후, 어머니의 어조가 바뀌었다. "그렇게...그렇게 멀리 갔으면, 돈은 어쩌고?" "돈? 친구한테 빌려서 갔어." "정말이야? 훔친 건 아니겠지?" "훔치진 않았어." 그것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는 듯이,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겠지?" "하지 않았어." "그래? 그건 다행이다. 스님께 잘 사죄해야 해. 나도 잘 사과해 두었지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받아야 돼. 스님께서는 마음이 넓으신 분이니까 이대로 봐 주시리라 생각되지만, 요번에야말로 개심하지 않으면 엄마는 죽어 버릴 테니까. 정말이야. 엄마를 죽게 하지 않으려면 개심해야 돼. 그래서 훌륭한 중이 돼서... 그것보다 빨리, 사죄해야지." 어머니의 뒤를, 나와 사복 경관은 묵묵히 따라갔다. 어머니는 사복 경관에게 해야 할 인사도 잊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가는 꾀죄죄한 허리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유달리 추악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를 추악하게 만드는 것은...그것은 희망이었다. 습기 찬 담홍색의, 끊임없이 가려움을 느끼게 하는, 이 세상의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더러운 피부에 번진 옴과도 같은 희망, 불치의 희망이었다. * 겨울이 왔다. 결심은 완전히 굳어졌다. 계획은 자꾸 미루어졌지만, 그것을 서서히 늦추는 데에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 후로 반 년 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별개의 일이었다. 월말마다 가시와기가 돈을 돌려달라고 졸라 대며, 이자를 포함한 액수를 나에게 통지하여, 이러쿵저러쿵 하며 갖은 욕설로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미 나는 돈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가시와기와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를 쉬면 되었다. 일단 이렇게 결심한 내가, 여러 모로 동요되어, 우왕좌왕하였던 경과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변덕이 심한 나의 마음은 사라졌다. 이 반 년 동안 내 눈은, 하나의 미래를 직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 동안의 나는, 아마도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우선, 절간의 생활이 편안해진 것이다. 금각이 언젠가는 불타리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견디기 쉽게 되었다. 죽음을 예감한 사람처럼, 절간 사람들에 대한 내 감정은 좋아지고, 대응하는 태도도 밝아지고, 무슨 일이건 화해하려고 들었다. 심지어 자연과도 나는 화해하였다. 겨울 동안 아침마다, 우메모도키(역자주:감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의 가지에 남아 있는 열매를 쪼아먹으려고 오는 새들의 가슴털에도 친근감을 느꼈다. 노사에 대한 증오심조차 나는 잊었다! 어머니에게서도, 친구들에게서도,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나날의 안락함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성취된 세계의 변모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토록 나는 어리석지 않았다. 어떠한 것이든,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그 종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을 내 것으로 만들고, 또한 그 종말을 부여하는 결단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자유의 근거였다. 그토록 당돌하게 생겨난 상념이라고는 하지만, 금각을 불태운다는 생각은 새로 맞춘 옷처럼, 정말로 내 몸에 꼭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그것은 목표로 삼고 있었던 듯이 여겨졌다. 적어도 아버지를 따라서 처음으로 금각을 본 날부터, 이 생각은 내 몸 속에서 자라나, 개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금각이 소년의 눈에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그 자체에, 이윽고 내가 방화자가 될 모든 이유가 갖추어져 있었다. 쇼와 25년(1950) 3월 17일, 나는 오타니 대학 예과를 수료하였다. 이틀 후인 19일에 생일을 맞이하여, 만 21세가 되었다. 예과 3학년 성적은 볼 만했다. 석차는 79명 중 79번째, 각 과목의 최저 학점은 국어의 42점이다. 결석 시간 수는 616시간 중 218시간으로, 3분의 1을 웃돌았다. 그래도 부처님의 자비심에 의하여, 이 대학에는 낙제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본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노사도 그것을 묵인하였다. 수업을 등한히 하면서, 나는 늦봄부터 초여름에 걸친 화창한 나날을, 돈이 들지 않는 절간이나 신사 구경을 하며 지냈다. 걸을 수 있는 곳까지 걸었다. 그러한 하루의 일이 생각난다. 나는 묘심사 앞의 큰길인 데라노마에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자 내 앞을, 같은 속도로 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마가 낡고 낮은 담배 가게로 그가 담배를 사러 들어갔을 때, 그 제모의 옆얼굴이 보였다. 미간이 좁고 하얀 피부의 예리한 옆모습이, 제모를 보니 교토 대학 학생이었다. 그는 곁눈으로 힐끗 내 쪽을 보았다. 짙은 그림자가 밀려오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때, '그는 방화자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직감하였다. 오후 3시였다. 시간은 그다지 방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포장된 버스 도로로 잘못 날아온 나비가, 담배 가게 앞에 놓인 꽃병의 동백꽃에 매달려 있었다. 하얀 동백꽃은, 시든 부분이 불에 탄 것처럼 다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도로 위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다. 어째서 내가 그 학생을, 방화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도중이라고 여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단적으로 그는 방화자로 보였다. 방화에 가장 곤란한 대낮을 굳이 선택하여, 그는 자신이 굳게 다짐한 행위를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목적지에는 불과 파괴가 있으며, 그의 등뒤에는 버려진 질서가 있었다. 그 제복의 약간 위엄 있게 보이는 뒷모습에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젊은 방화자의 뒷모습은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이전부터 나는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햇빛을 받은 검은 제복의 그 뒷모습은, 불길하고 험악한 느낌으로 가득하였다. 나는 걸음을 늦추어, 학생을 미행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걷고 있는 동안에, 왼쪽 어깨가 약간 처진 그의 뒷모습이, 내 자신의 뒷모습이기라도 한 듯이 여겨졌다. 그는 나보다 훨씬 잘생겼지만, 동일한 고독과, 동일한 불행과, 동일한 미의 망념으로 인하여, 동일한 행위를 하게 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느 틈엔가 그를 미행하면서, 나는 내 자신의 행위를 사전에 점검하는 듯한 심정이 되었다. 늦봄의 오후에는, 밝은 햇빛과 나른한 공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쉽다. 즉 내가 이중이 되어, 내 분신이 미리 내 행위를 모방하고, 정작 내가 결행할 때에는 보이지 않는 내 자신의 모습을, 역력히 보여 주는 것과 같은 일이. 버스는 여전히 오지 않고, 노상의 인기척도 끊겼다. 세이호 산묘심사의 거대한 남문이 가까웠다. 좌우로 활짝 열린 문은, 모든 현상들을 삼켜 버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여기에서 보면, 그 장대한 틀 속에, 칙사문이나 산문 기둥이 중복되어 있는 모습, 불전의 기왓장, 수많은 소나무, 그곳에 잘라 놓은 듯이 선명한 푸른 하늘의 일부와, 아련한 몇 조각의 구름마저도 삼켜 버리고 있었다. 문이 가까워 옴에 따라서, 넓은 절 안을 종횡으로 달리는 돌길과, 수많은 건물들의 담장 따위의, 수많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더구나 일단 문을 들어서니, 신비한 문은 그 안에 창공 전체와 구름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가람이란 그런 것이다. 학생은 문을 들어섰다. 그는 칙사문의 바깥을 돌아, 산문 앞의 연못가에 멈추어 섰다. 이어서 연못에 걸쳐진 당나라식 돌다리 위에 서서, 우뚝 솟은 산문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방화하려는 표적은 저 산문이로구나.'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장엄한 산문으로 불길에 휩싸이기에 적합하였다. 이토록 밝은 오후에는, 불길은 아마도 보이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그것은 엄청난 연기에 휩싸여, 보이지 않는 불길이 하늘을 핥는 모습은, 창공이 다만 일그러져 보이는 것만으로 그것이라고 알 수 있으리라. 학생이 산문에 이르렀기에, 나는 들키지 않도록 산문의 동쪽으로 돌아서 몸을 숨기고 보았다. 탁발승의 귀원 시각이었다. 동쪽 길에서, 3명의 탁발승 일행이 짚신을 신고 돌길을 일렬로 왔다. 삿갓은 모두들 손에 들고 있었다. 승방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규칙대로, 서너 척 앞을 바라보며, 서로 잡담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앞에서 우회하여 사라졌다. 학생은 산문 곁에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기둥 하나에 몸을 기대고는, 주머니에서 아까 산 담배를 꺼냈다. 주위를 불안하게 둘러보았다. 분명히 담배를 피우는 척하며, 불을 지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과연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얼굴을 가까이 하여 성냥을 댕겼다. 성냥불은, 일순, 조그맣게 투명한 빛을 발하였다. 불의 색깔이 학생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 이유는, 마침 오후의 햇살이 산문 주위를 감싸, 내가 있는 곳만 그늘이었기 때문이다. 불은 연못가의 산문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는 학생의 얼굴 가까이서, 불과 일순간, 거품과도 같은 것을 일으켰다. 이어서 그가 요란스럽게 흔들어 대는 손에서 꺼지고 말았다. 성냥이 꺼진 것만으로는, 학생은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초석 위에 버린 성냥을, 구두 뒤축으로 꼼꼼히 비볐다. 그리고, 그는 담배를 기분 좋게 피우면서, 뒤에 남은 나의 실망에는 아랑곳없이, 돌다리를 건너 칙사문 옆을 지나서 활보하며, 인가의 그림자가 조금 길어진 큰길이 보이는 남문을 빠져나갔다... 그는 방화자가 아니라, 단지 산보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마도 조금 따분하고, 조금 가난한, 그런 청년일 뿐이었다. 모두 빠짐없이 보고 있던 나에게는, 방화를 하려는 게 아니라 한 개비의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그토록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본 그의 소심함, 즉 학생식의 유치한 탈법의 기쁨, 불이 꺼진 성냥을 그토록 꼼꼼히 비벼 끄는 태도, 즉 그의 '문화적 교양', 특히 그 다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잡동사니 같은 교양 때문에, 그의 자그마한 불은 안전하게 관리되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성냥의 관리자이며, 사회에 대하여 완벽하고 지체 없는 불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자만하고 있으리라. 모든 옛 사찰들이, 유신 이후에 좀처럼 불타지 않게 된 것은 이러한 교양 덕분이었다. 어쩌다가 실화는 있어도, 불은, 절단되고, 세분되어, 관리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전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은원은 에이쿄 3년(1431)에 불이 났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화재가 있었다. 남선사는 메이토쿠 4년(1393)에 본사의 불전, 법당, 금강전, 대운암 등이 불탔다. 연역사는 덴키 2년(1571)에 잿더미가 되었다. 건인사는 덴분 21년(1552)에 전쟁으로 불탔다. 삼십삼간당은 겐초 원년(1249)에 소실되었다. 본능사는 덴쇼 10년(1852)에 전쟁으로 불탔다. 그 무렵 불과 불은 서로 친밀하였다. 불은 이처럼 세분되어, 멸시당하는 일도 없이, 언제나 불은 다른 불과 손을 잡고, 무수한 불을 규합할 수 있었다. 인간도 아마 그러하리라. 불은 어디에 있거나 다른 불을 부를 수 있었고, 그 소리는 곧바로 전하여졌다. 절의 화재가 실화나 비화 혹은 전쟁에 의한 것일 뿐, 방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설령 나와 같은 사내가 옛날의 어느 시절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단지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기고 있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절은 언젠가 반드시 불탔다. 불은 풍부하고, 방자하였다. 기다리기만 하면, 기회를 노리던 불이 반드시 봉기하여, 불과 불은 손을 마주 잡고, 해야 할 일을 해치웠다. 금각은 실제로 보기 드문 우연으로 불을 모면하였을 뿐이다. 불은 자연히 일어났고, 멸망과 부정은 정상이며, 세워진 건물은 반드시 불에 타, 불교적인 원리와 법칙은 엄밀하게 지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설령 방화라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불의 힘에 호소한 것이기에, 역사가들은 아무도 그것을 방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 무렵의 지상은 불안하였다. 쇼와 2년(1950)의 지금도 지상의 불안은 그에 못지 않다. 예전의 절들이 불안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면, 현재의 금각도 역시 소실되어야 하리라. * 강의를 태만히 하면서도, 도서관만큼은 자주 다녔기에, 5월의 어느 날, 나는 피하던 가시와기와 마주쳤다. 내가 피하는 낌새를 보이고,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쫓아왔다. 만일 내가 달린다면 안짱다리인 그가 따라붙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도리어 나를 멈추게 하였다. 내 어깨를 붙잡은 가시와기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방과후의 5시 반경으로 생각된다. 가시와기와 마주치지 않도록 도서관을 나온 나는 교사 뒤쪽으로 돌아, 서쪽의 가건물 교실과 높은 담장과의 사잇길을 걸었다. 그곳은 들국화가 무성한 틈새에 휴지와 빈 병이 버려진 채로 있는 곳으로, 몰래 들어온 아이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깨진 유리 너머로 먼지투성이의 책상들이 보이는 방과후의 교실에 사람이 없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멈추어 선 것은, 그곳을 지나서 본고나 서쪽으로 나와, 꽃꽂이부가 작업실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은 작은 방 앞까지 왔을 때였다. 담을 따라 솟아 있는 녹나무 가로수가, 작은 방의 지붕 너머로, 석양을 투과시킨 그 엷은 잎사귀의 그림자를, 본관의 붉은 벽돌담에 비추고 있었다. 석양을 받은 붉은 벽돌은 화려하였다. 숨을 헐떡이며, 가시와기가 그 담에 몸을 기대었기 때문에, 녹나무의 흔들거리는 잎 그림자는, 평소에는 초췌한 그의 뺨을 채색하여, 거기에 기묘하게 약동하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어쩌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붉은 벽돌의 반영이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천백 엔이야."라고 그는 말했다. "요번 오월 말로 오천백 엔이야. 너는 자꾸만 스스로 갚을 수 없게 만드는군." 항상 넣어 두는 가슴 호주머니에서, 그는 접혀 있는 차용 증서를 꺼내어 펼쳐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내가 손으로 잡으려 하자 찢어지는 것을 염려해서인지, 성급히 접어서 원래 있던 곳에 넣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짙은 빨간색 손도장의 잔영만이 남았다. 내 지문은 몹시도 음산하게 보였다. "빨리 갚아. 그편이 너에게 이로울 거야. 수업료건 무엇이건 유용하면 되잖아." 나는 잠자코 있었다. 세계의 파국을 눈앞에 두고 빚을 갚을 의무가 있을까? 나는 그것을 조금이나마 가시와기에게 암시할까 하는 유혹을 느꼈으나, 그만두었다. "잠자코 있으면 어떻게 해? 말을 더듬는 게 창피한가? 이제 와서 뭘! 네가 말더듬이라는 사실은, 이것도 알고 있어, 이것도!" 하며 그는 주먹으로, 석양에 빛나는 붉은 벽돌의 벽을 두드렸다. 주먹은 붉은색 가루로 물들었다. "이 벽도! 학교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래도 나는 잠자코 그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의 공이 빗나가, 우리들 둘 사이로 굴러왔다. 가시와기는 주워서 돌려주려고 몸을 구부렸다. 심술궂은 흥미가 나에게서 생겨나, 바로 앞에 있는 공을, 그의 안짱다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그의 손에 쥐여 주는가를 보려고 하였다. 무의식적으로 내 눈은 그의 다리 쪽을 본듯하다. 가시와기가 이것을 눈치챈 속도는 정말로 신속할 정도였다. 그는 아직 구부렸다고도 할 수 없는 몸을 일으켜서 나를 바라보았으나, 그 눈에는 그답지 않게 냉정을 잃은 증오심이 있었다. 한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우리들 사이에 있는 공을 주워 도망쳤다. 결국에는 가시와기가 이렇게 말했다. "좋아. 네가 그런 태도라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다음 달에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을 것은 받아 내겠어. 네게도 그 정도의 각오는 있겠지?" * 6월에 접어들면 중요한 강의는 점차로 적어지고, 학생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6월 10일에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터졌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밤이 되자 억수같이 쏟아졌다. 약석 후에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밤 8시경, 객전에서 대서원으로 가는 중간의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외출하지 않는 노사의 거소에 손님이 온 듯하였다. 그러나 그 발소리는 특이하게도, 비가 내리쳐서 판자 문에 부딪히는 소리와 비슷하였다. 앞장서서 가는 도제의 발소리는 조용하고 규칙적인데, 손님의 발소리는 복도의 낡은 판자를 기묘하게 삐걱이게 만들었고, 더구나 무척이나 느렸다. 빗소리가 녹원사의 어두운 처마에 가득하였다. 낡고 커다란 절간에 쏟아지는 비는, 텅 빈 무수한 곰팡내 나는 방들의 밤을, 말하자면 비로 가득하게 만들어 버렸다. 창고도, 집사실도, 전사실도, 객전도, 귀에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이다. 나는 지금 금각을 점령하고 있는 비를 상상하였다. 방의 장지문을 약간 열었다. 돌멩이뿐인 조그만 안뜰은 빗물이 넘쳐서, 물은 이 돌에서 저 돌로 검고 반질거리는 등을 보이며 옮겨가고 있었다. 신입 도제가 노사의 거실에서 돌아와, 내 방에 머리만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 "노사님 방에 가시와기라는 학생이 와 있어. 네 친구 아니니?" 나는 갑자기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낮에는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근시 안경을 낀 이 사내가 가려는 것을 붙잡아 안으로 불러들였다. 대서원의 대화를 이것저것 상상하며 홀로 있는 것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6분 지났다. 노사가 울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를 뚫고서, 종소리는 당당히 울려 퍼지더니, 뚝 그쳤다.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너야." 하고 신입 도제가 말했다. 나는 간신히 일어섰다. 노사의 책상이 내 손도장이 찍힌 문서가 펼쳐지더니, 노사는 그 종이의 한쪽을 들고, 복도에 무릎 꿇고 있는 나에게 보였다. 방에 들어오라는 허락은 없었다. "이건 분명히 네 손도장이지?" "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곤란한 짓을 저질렀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더 이상 절에 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 밖에도 여러 가지..."하고 말을 꺼내려던 노사는 아마도 가시와기를 꺼린 듯 입을 다물었다. "돈을 내가 돌려줄 테니, 이제 물러가도 좋아." 이 한마디로 나에게는 가시와기의 얼굴을 볼 여유가 생겼다. 그는 신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역시 나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악을 행할 때의 그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성격의 심이 빠져나온 듯한, 가장 순결한 표정을 지었다. 방에 돌아온 나는, 격렬한 빗소리 속에서, 또한 고독 속에서 갑자기 해방되었다. 신입 도제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더 이상 절에 두지 않을 테니까." 라고 노사는 말했다. 나는 노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그 말을 듣고, 소위 노사의 언질을 받은 것이다. 돌연히 사태는 명료해졌다. 나의 추방이 이미 노사의 염두에 있었다. 결행을 서둘러야 한다. 만일 가시와기가 오늘밤과 같은 행동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노사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결행은 또다시 연기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결단할 힘을 준 것이 가시와기라고 생각하니, 기묘한 감사의 마음이 그에게 솟았다. 빗발은 수그러들 기색도 없었다. 6월인데도 쌀쌀하고, 판자 문으로 둘러싸인 두 평 남짓한 방은 어두운 전등 밑에 황량하게 보였다. 이것이 나의, 머지않아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거처였다. 장식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변색된 다다미의 검은 테두리는 헌 채로 뒤틀려, 뻣뻣한 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 들어와 전 등을 켤 때면 내 발가락이 자주 그것에 걸렸지만, 수선하지는 않았다. 내 생활의 열의는 다다미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는, 여름이 가까워 옴에 따라서, 내 몸의 쉰 냄새가 배어들었다.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승려이면서 또한 청년의 체취를 지니고 있었다. 냄새가, 오래 되어 검은빛을 발하는 네 귀퉁이의 굵은 기둥들이나 두꺼운 판자 문에까지 스며들었기에, 그러한 것들은 세월이 모처럼 고상한 멋이 나도록 만든 나뭇결 틈에서 젊은 생명체의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한 기둥이나 판자 문들은, 거의 속된 부동의 생명체로 변하여 있었다. 그때, 조금 전의 기묘한 발소리가 복도를 건너왔다. 나는 일어서서 복도로 나갔다. 건너편 노사의 거소에서 나오는 불빛을 받은 육주송이, 비에 젖은 검은 녹색의 뱃머리를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모습을 등지고, 가시와기는 기계 장치가 갑자기 멈춘 듯한 몸짓으로 멈추어 섰다. 반면에 나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가시와기가 비로소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얼굴에 나타낸 것이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말했다. "방에 들렀다 가지 않을래?" "뭐야. 겁주지 마. 너는 묘한 인간이로군." --가시와기는 내키지 않으나마, 내가 권하는 얇은 방석에, 여느 때처럼 웅크리는 듯한 동작으로 천천히 옆으로 앉았다. 머리를 들고 방을 둘러보았다. 빗소리는 두꺼운 막처럼 옥외를 차단하고 있었다. 툇마루에 부딪히는 물보라 속에서, 이따금 빗방울이 장지문의 군데군데 튀었다. "원망하지 마.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건, 결국 너의 자업자득이니까. 그건 그렇고." 하며 그는 호주머니에서, 녹원사라고 인쇄된 봉투를 꺼내어 돈을 세었다. 돈은 금년 정월부터 발행되고 있는 빳빳한 1,000엔짜리가 석 장뿐이었다. 내가 말했다. "이 돈은 아주 새거지? 노사가 결벽하니까, 부사가 삼일마다 잔돈을 바꾸러 은행에 가거든." "봐. 겨우 석 장이야. 이곳 주지는 정말 구두쇠야. 학생끼리 돈을 빌리는 데, 이자 따위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자기는 잔뜩 버는 주제에." 가시와기의 이 뜻밖의 실망은 나를 진정으로 유쾌하게 만들었다. 내가 마음놓고 웃자, 가시와기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도 잠시뿐, 웃음을 멈춘 그는 내 이마 언저리를 보면서, 나를 밀치듯이 이렇게 말했다. "난 알고 있어. 무언가 요즈음, 너는 파멸적인 걸 계획하고 있지?" 나는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파멸적이라는 가시와기 특유의 해석이, 내가 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답은 전혀 더듬거리지 않았다. "아니...별로." "그래? 너는 기묘한 놈이야.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운데 가장 기묘한 놈이야." 그 말이 내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는 친근한 미소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 가슴에 솟아오르는 감사의 의미를, 그가 결코 눈치채지는 못하리라는 확실한 예감은, 내 미소를 한층 자연스러이 퍼지게끔 만들었다. 평범한 우정에서 흔히들 하는 식으로, 나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이제 고향에 돌아갈 거니?" "응. 내일 돌아갈 생각이야. 산노미야의 여름이라. 그곳도 따분하기는 하지만..." "당분간 학교에서 못 만나겠군." "뭐라구? 전혀 나오지도 않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더니, 가시와기는 허겁지겁 제복의 가슴 단추를 풀고, 안주머니를 뒤졌다.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 너를 기쁘게 해 주려고 이걸 갖고 왔지. 너는 무작정 그 녀석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으니까." 내 책상 위에 너덧 통의 편지가 던져졌다. 발신인의 이름을 보고 내가 놀랐을 때, 가시와기는 시치미를 때고 이렇게 말했다. "읽어 봐. 쓰루카와의 유품이야." "너는 쓰루카와와 친했었냐?" "그냥. 내 방식으로 친했지. 하지만 그 녀석은 생전에, 내 친구로 보이는 걸 몹시 싫어했지. 그러면서도 나한테만은 비밀 이야기를 털어놨거든. 죽은 지 이미 삼 년이 지났으니까, 남에게 보여 줘도 되겠지. 특히 네가 친했으니까, 너에게만은 언젠가 보여 줄 작정이었어." 편지의 날짜는 모두 죽기 직전의 것이었다. 쇼와 22년(1947) 5월에, 거의 매일같이, 도쿄에서 가시와기에게로 보낸 편지였다. 그는 나에게는 한 통도 보내지 않았지만, 이걸 보면 귀경한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가시와기에게 써 보내 것이었다. 필적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쓰루카와의, 모나고 유치한 글씨였다. 나는 가벼운 질투를 느꼈다. 무엇 하나 내 앞에서 그 투명한 감정을 속이지 않는 듯이 보였던 쓰루카와가, 때로는 가시와기를 나쁘게 말하고, 나와 가시와기와의 교제를 비난하면서도, 자신은 이처럼 몰래 가시와기와 교제한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날짜순으로, 엷은 종이에 가는 글씨로 쓰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문장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서툴고, 내용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으나, 그 전후 문장의 문맥에서 무언가 고통 같은 것이 느껴지더니, 다음 날짜의 편지를 읽을 무렵에는 쓰루카와의 선명한 고통이 눈에 보였다. 읽어 가면서 나는 울었다. 울면서, 한편으로 마음은, 쓰루카와의 범용한 고뇌에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연애 사건에 불과하였다. 부모가 용납하지 않는 상대와의 불행하고 철없는 사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쓰고 있는 쓰루카와의 자신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범한 감정의 과장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문구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불행한 연애도 나의 불행한 마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날 때부터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태어났다. 내 마음은, 환하게 밝은 세계를 전혀 몰랐던 듯이 여겨진다." 다 읽은 마지막 편지의 끝 부분이, 격류와도 같은 느낌으로 맺어져 있었기에, 그때 비로소 나는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혹에 눈을 떴다. "혹시..." 내 말에 가시와기가 끄덕였다. "그래. 자살이었어. 나한테는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아. 가족들이 세상의 이목을 생각해서 트럭에 치였다고 꾸며 댔겠지." 나는 분노로 더듬거리며, 가시와기의 대답을 종용했다. "너는 답장을 썼겠지?" "썼지. 하지만 죽은 다음에 도착했다더군." "뭐라고 썼지?" "죽지 말라고 썼어. 그것뿐이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감각이 나를 기만한 적이 없다는 내 확신은 물거품이 되었다. 가시와기는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말을 했다. 가시와기가 3년 후에 나에게 이 편지를 보여 준 속셈의 의미는 명료하였다. 하지만 그토록 충격을 받으면서도, 여름 풀이 무성한 속에서 뒹구는 소년의 하얀 셔츠 위에 자그만 반점을 뿌리던 나뭇가지 사이의 아침 햇살은,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쓰루카와의 죽음은 3년 후에 이토록 변모하였고, 그에게 기대했던 것들은 죽음과 더불어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이 순간, 오히려 별도의 현실성을 지니고 되살아났다. 나는 기억의 의미보다도 기억의 실질을 믿게 되었다. 이미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붕괴될 상황에서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시와기는 나를 내려다보며, 방금 그의 손으로 감행하였던 마음의 살육에 흡족해하고 있었다. "어때? 너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무너졌지? 나는 친구가 무너지기 쉬운 걸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습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내 친절은, 오로지 그것을 파괴하는 거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쩌지?" "어린애 같은 떼거리는 쓰지 마." 하고 가시와기는 비웃었다. "나는 너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구.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인식의 눈으로 보면, 세계는 영구히 불변이고, 또한 영구히 변모한다구,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너는 말하겠지. 하지만 이 삶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을 무기로 삼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동물에게는 그런 건 필요없어. 동물에게는 삶을 견딘다는 의식 따위는 없으니까. 인식은 견디기 힘든 삶이 그대로 인간의 무기가 된 거지만, 그러면서도 견디기 힘든 것이 조금도 경감되지 않아. 그것뿐이야."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니?" "아니. 나머지는 광기나 죽음이지."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라고 얼떨결에 나는, 고백에 가까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하였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예상대로 가시와기는, 그 차갑게 달라붙는 듯한 미소로 나에게 대꾸하였다. "또 나왔군. 행위로 나왔어.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들은, 인식의 보호 아래에서 무사안일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언젠가 말했던 '남천참묘'의 그 고양이 말이야.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그 고양이 말이야. 양쪽 중들이 다툰 것은, 각자의 인식 속에서 고양이를 보호하여, 기르고, 편히 쉬게끔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남천 스님은 행위자니까, 단숨에 고양이를 베어 버렸지. 나중에 온 조주는, 자신의 신발을 머리 위에 올렸지. 조주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역시 그는 미가 인식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개개의 인식, 각각의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인식이란 인간의 바다이기도 하고, 인간의 벌판이기도 하며, 인간 일반의 존재 양식이지. 그는 그것을 말하려 했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 그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식이 위탁된 나머지 부분, 잉여 부분의 환영이야. 네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의 환영이야. 원래 그런 건 없다고도 할 수 있지. 할 수 있지만, 그 환영을 강력하게 만들고, 최대한의 현실성을 부여하는 건 역시 인식이야. 인식에 있어서 미는 결코 위안이 아니라구. 여자이고, 아내이기도 하겠지만, 위안은 아니야. 하지만 결코 위안이 아니면서 미적인 것과, 인식과의 결혼에서는 무언가가 생겨나지. 덧없는, 물거품과도 같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지만, 무언가가 생겨나지. 세상에서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그거야." "미는..."하고 말을 꺼내자, 나는 심하게 더듬거렸다. 부질없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때, 내 말더듬 증세는 나의 미적 관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미는...미적인 것은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 "미가 원수라구?"--가시와기는 과장되게 눈을 부릅떴다. 그의 상기된 얼굴에는 평소의 철학적인 상쾌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정말로 변했군,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듣자니, 나도 내 인식의 렌즈 도수를 조절해야겠군." ...그러고 나서도, 우리들은 오랜만에 친근한 논쟁을 주고받았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돌아갈 때, 가시와기는 내가 아직 구경한 적이 없는 산노미야와 고베 항 이야기를 꺼내어, 여름철의 항구를 떠나는 큰 배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였다. 나는 마이즈루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어떠한 인식이나 행위도, 출범의 기쁨에는 미치지 못하리라는 공상에, 우리 가난한 학생들의 의견은 처음으로 일치를 보았다. 제9장 노사가 항상 훈계를 내리는 대신에, 마침 또다시 훈계를 하여야 할 시기에, 오히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은 아마도 우연은 아니리라. 가시와기가 돈을 받으러 왔던 날로부터 닷새 후, 노사는 제 1기분 수업료 3,400엔과, 통학 전차비 350엔, 그리고 학용품 구입비로 550엔을, 나를 불러서 직접 건네 주었다. 여름 방학 전에 수업료를 납부하여야 하는 것이 교칙이었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설마 노사가 그 돈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돈을 줄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나를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노사가 직접 학교에 그 돈을 우송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내 손에 돈을 건네 주어도, 나에 대한 신뢰가 허위라는 사실은, 노사 이상으로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노사가 말없이 베푸는 은혜에는, 노사의 그 부드러운 분홍빛 살과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거짓으로 가득한 살, 배신에 대하여 신뢰로, 신뢰에 대하여 배신으로 대처하는 살, 어떠한 부패에도 침범당하지 않고 살그머니 따듯하게 분홍빛으로 번식하는 살... 유라의 여관의 경관이 왔을 때, 일순간이나마 내가 발각되는 것을 겁냈듯이, 또다시 나는, 노사가 내 계획을 꿰뚫어보고, 돈을 주어 결행의 계기를 없애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망상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다. 그 돈을 소중히 진고 있는 동안은 결행의 용기가 솟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 돈을 쓸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을 쓸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노사가 알면 격노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당장 나를 절에서 쫓아내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방도를 생각해 내야 한다. 그날 나는 취사 당번이었다. 약석 후, 주방에서 그릇을 헹구면서, 이미 조용해진 식당 쪽을 무심코 보았다. 주방과의 경계에서 있는, 그을어 검게 빛나는 기둥에는 심하게 변색된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다고사부 불조심 ...내 마음에, 이 부적에게 붙잡혀 감금되어 있는 불의 창백한 모습이 보였다. 한때는 번창하던 불이, 낡은 부적 뒤에, 창백하고 희미하게 병들어 수척한 모습으로 변모된 모습이 보였다. 요즈음의 내가 불의 환상에 육욕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면 남들은 믿을까? 나의 살겠다는 의지가 모두 불에 걸려 있다면, 육욕도 그쪽으로 기우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나의 그러한 욕망이 불의 나긋나긋한 자태를 그려 내어, 불길은 검게 빛나는 기둥을 통하여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곱게 몸치창을 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 손, 그 다리, 그 가슴은 가냘팠다. 6월 18일 밤, 나는 돈을 품 속에 넣고 살그머니 절을 빠져나와, 속칭 고반초라고 불리는 기타신치로 갔다. 그곳이 싸고, 절간 중들에게도 친절히 대해 준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고반초는 녹원사에서 걸어도 30__40분의 거리이다. 습기가 많은 밤이었지만, 옅게 구름 낀 하늘에 달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국방색 바지에 잠바를 걸치고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의 내가, 다른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는 예상을, 어떻게 자신에게 납득시키면 좋을까? 나는 분명히 살기 위해서 금각을 불태우려 하였지만,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죽음의 준비와도 비슷하였다. 자살을 결심한 동정의 사내가 죽기 전에 유곽에 가듯이, 나도 유곽에 가는 것이다. 안심해도 좋다. 이러한 사내의 행위는 단순히 서류에 서명하는 것과 같아서, 동정을 잃더라도 그는 결코 '다른 인간'이 될 리는 없다. 그 수차례의 좌절, 여자와 나의 사이를 금각이 가로막으러 왔던 그 좌절은, 요번에는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고, 여자에 의해서 인생에 참여하겠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그 저편에 확고히 결정되어 있으며, 지금까지의 내 행위는 음산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였다. 그러자 가시와기의 말이 되살아났다. "몸파는 여자들은 손님을 사랑해서 받는 것이 아니야. 노인이건, 거지건, 애꾸눈이건, 미남이건, 모른다면 문둥이라도 손님으로 받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평등성에 안심하고 첫 여자를 사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 평등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사지가 멀쩡한 사내와 내가, 같은 자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고, 그건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자기 모독으로 여겨졌거든." 생각난 이 말은, 지금의 나에게는 불쾌하였다. 그러나 말을 더듬는 것과는 별도로 사지가 멀쩡한 나는 가시와기와는 달리, 자신의 극히 평범하게 못생긴 얼굴을 믿으면 되었다. '하지만, 여자가 그 직감으로, 내 못생긴 이마에서, 무언가 천재적인 범죄자의 표식 같은 것을 눈치채지나 않을까?' 하고 나는 다시, 얼토당토않은 불안에 휩싸였다. 나는 걸음을 머뭇거렸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도대체 금각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 동정을 버리려는 것인지, 동정을 버리기 위해서 금각에 불을 지르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아무런 뜻도 없이 '천보간난'이라는 고귀한 단어가 가슴에 떠올라, '천보간난천보간난'이라고 중얼거리며 걸었다. 그럭저럭 하는 사이에, 빠찡꼬나 술집들로 밝게 붐비는 번화가를 지나, 형광등과 희미한 초롱불이 어둠 속에 규칙적으로 늘어선 길모퉁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절을 나설 때부터 나는, 우이코가 아직 죽지 않고 이 길모퉁이에 숨어서 살고 있으리라는 공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공상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금각을 불태우겠다고 결심한 이래로, 나는 다시금 소년 시절과도 같은 새롭고 티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시작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사물들과 다시 한 번 재회하는 일이 있어도 좋으리라.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나는 살게 될 터인데, 이상하게도, 나날이 불길한 생각이 커지면서 내일이라도 죽음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금각을 불태울 때까지는 죽음이 제발 나를 모르는 척해 주길 빌었다. 결코 병에 걸린 것은 아니고, 병의 조짐도 없었다. 그러나 나를 살려 두는 조건들의 조정이나 그 책임이, 몽땅 나 한사람의 어깨에 지워지게 되었다는 부담을, 나날이 강력히 느끼게 되었다. 어제 청소를 하면서, 집게 손가락이 빗자루의 가시에 상처를 입었을 때, 이렇듯 사소한 상처조차도 불안의 씨앗이 되었다. 장미 가시에 손끝을 찔린 것이 사인이 되었다는 시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흔히 있는 범용한 인간은 그런 일로 죽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귀중한 인간이 되었으니까, 어떤 운명적인 죽음을 불러들일지 몰랐다. 손가락의 상처는 다행히 곪지도 않았고, 오늘은 그곳을 누르면 약간 아플 뿐이었다. 고반초에 가면서도, 내가 위생상의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날부터,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먼 곳의 약국에 가서, 나는 고무 제품을 사 두었다. 조잡하게 만든 그 막은 너무도 무기력하고 불건강한 색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나는 그 하나를 시험해 보았다. 검붉은 크레파스로 장난삼아 그린 불교화, 교토 관광 협회의 캘린더, 우연히 불정존승다라니의 부분이 펼쳐져 있는 불경의 선림일과, 신던 양말, 거스러미가 일어난 다다미, 이러한 것들의 한복판에, 내 물건은, 매끄러운 회색의, 눈도 코도 없는 불길한 불상처럼 서 있었다. 그 불쾌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은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나절(역자주:음욕을 버리기 위해서 성기를 제거하는 짓)이라는 흉악한 행위가 생각났다. ...나는 외등이 늘어선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백 수십 채의 집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는 모든 일을 장악하고 있는 우두머리에게 부탁하면, 수배 중인 범인이라도 간단히 숨겨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두머리가 벨을 누르면 유곽 전체의 모든 집에 울려퍼져서 범인에게 위험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어느 집이건 입구 옆에 컴컴한 살창이 있고, 한결같이 2층 건물이었다. 낡고 육중한 기와지붕이, 같은 높이로 촉촉한 달빛 아래에 늘어서 있었다. 입구마다 '니시진'이라고 희게 쓰인 남빛 포렴이 걸려 있었고, 앞치마를 두른 포주가 몸을 비스듬히 하여 포렴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에게는 쾌락의 관념은 조금도 없었다. 무엇인지 모를 질서로부터 버림받고 혼자서만 줄에서 벗어나 지친 다리를 이끌며 황량한 지방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욕망은 내 속에서, 불쾌한 모습으로 등을 보이며, 다리를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하여튼 여기에서 돈을 쓰는 것이 내 의무다.'하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하여튼 여기에서 수업료를 다 써 버리면 된다. 그러면 노사에게, 가장 그럴싸한 추방 구실을 제공하게 되니까.' 나는 그러한 생각에 기묘한 모순을 느끼지 않았지만, 만일 이것이 나의 본심이라면 나는 노사를 사랑하고 있어야만 했다. 아직 붐빌 시간이 아닌지, 그 거리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이 적었다. 내 나막신 소리는 생생하게 울렸다. 포주들이 손님을 끄는 단조로운 목소리가, 장마철의 낮게 드리운 습기 찬 공기 속을 기어다니고 있는 듯이 들렸다. 내 발가락은 느슨한 나막신 끈을 단단히 끼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후도 산의 꼭대기에서 바라본 수많은 불빛 속에는, 확실히 이 거리도 있었으리라고. 내 발길이 이끌려 가는 곳에 우이코가 있으리라. 어느 네 거리의 길모퉁이에, '오타키'하는 집이 있었다. 무작정 나는 그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3평 정도의 타일을 깐 방 하나가 바로 앞에 있고, 그 안쪽의 걸상에 여자 셋이, 마치 기차를 기다리다 지친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기모노에,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양장을 한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양말을 끌어내려, 종아리를 열심히 긁고 있었다. 우이코는 외출하고 없었다. 그 외출하고 없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다리를 긁고 있던 여자가, 이름이 불린 개처럼 얼굴을 들었다. 그 둥글고 약간 부은 듯한 얼굴은 동화풍의 선명한 윤곽이 분과 연지로 그려져 있었으나, 나를 올려다본 눈초리에는, 기묘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선의가 있었다. 여자는 그야말로 길거리에서 마주친 모르는 사람을 보듯이 나를 보았다. 그 눈은 나의 내부에 전혀 욕망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우이코가 외출하고 없다면, 누구라도 좋았다. 고르거나 기대하거나 하면 실패한다는 미신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 여자가 손님을 고를 여지가 없듯이, 나도 여자를 고르지 않으면 된다. 그 무시무시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미적 관념이, 아주 조금이라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여야만 한다. 포주가 물었다. "어느 아이로 하실 건가요?" 나는 다리를 긁고 있던 여자를 가리켰다. 그녀의 다리에 그때 퍼지고 있던 가려움이, 아마도 그곳의 타일 위를 배회하던 모기가 문 자국이, 나와 그녀를 맺어 준 인연이었다... 그 가려움 덕분에, 그녀는 훗날, 내 증인이 될 권리를 획득하리라. 여자는 일어서서 내 곁으로 오더니, 입술을 까뒤집은 듯이 웃고는, 내 잠바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어둡고 낡은 계단을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다시 우이코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 시간, 이 시간에 있어서의 세계를, 그녀가 잠시 비웠다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이상, 지금 어디를 찾아도 우이코는 없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녀는 우리들 세계의 외부에 있는 목욕탕 같은 곳에, 잠시 목욕하러 간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우이코가 생전부터, 그러한 이중의 세계를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었던 듯이 여겨졌다. 그 비극적인 사건 때에도, 그녀는 이 세계를 거부하는가 싶으면, 다음에는 다시 받아들였다. 죽음도 우이코에게 있어서는 일시적인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금강원의 복도에 남긴 피는, 아침에 창문을 엶과 동시에 날아오른 나비가, 창가에 남기고 간 인분과도 같은 것에 불과하였는지도 모른다. 2층 중앙에, 안뜰의 천장이 없는 부분을 낡은 투조식 난간으로 두른 곳에, 빨간 속치마나, 팬티, 잠옷 등이, 처마와 처마 사이에 걸쳐 놓은 장대에 걸려 있었다. 몹시 어두웠기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는 잠옷은 사람 모습처럼 보였다. 어딘가의 방에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의 노래는 매끄럽게 계속되다가, 이따금 엉뚱한 곡조로 불러 대는 사내의 노랫소리와 합창이 되었다. 노래가 중단되고, 짧은 침묵이 있은 후에, 간드러지게 여자가 웃어 대었다. "아무개로군." 하며 내 상대의 여자가 포주에게 말했다. "언제나 늘 저렇다니깐." 포주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집스럽게 네모진 등을 돌리고 있었다. 내가 안내된 작은 방은 살풍경한 한 평 반짜리로, 부엌 같은 곳을 도코노마 대신으로 삼아, 호테이(역자주:칠복신의 하나)와 고양이 인형이 산만하게 놓여 있었다. 벽에는 가느다란 글씨로 쓴 주의 사항이 붙어 있고, 달력이 걸려 있었다. 30__40와트의 어두운 등이 매달려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는, 바깥을 지나가는 손님들의 발소리가 드문드문 드렸다. 포주가 잠깐 쉬고 갈 것인지 하룻밤 묵을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잠깐 쉬는 것은 400엔이었다. 나는 술과 안주를 부탁했다. 포주가 부탁한 것을 가지러 아래층에 내려가도, 여자는 내 옆에 다가오지 않았다. 다가온 것은, 술을 갖고 온 포주가 다그친 후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여자는 코밑이, 비벼 댄 탓으로 약간 빨개져 있었다. 다리만이 아니라, 무료함을 달래려고, 그녀는 여기저기 긁거나 비벼 대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코밑의 이 불그스레한 색은 어쩌면 연지가 묻은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유곽에 와서, 그토록 자세히 관찰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쾌락의 증거를 찾아 내려고 하였다. 모든 것이 동판화처럼 정밀하게 보였고, 게다가 정밀하면서도 그것들은 나로부터 일정한 거리의 장소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손님, 언젠가 본 적이 있어요." 하고 여자는, 마리코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 뒤에 말하였다. "처음이야." "이런 곳, 정말로 처음이세요?" "처음이야." "그렇겠군요. 손이 떨리고 있으니." 그러고 보니, 술잔을 든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정말이라면, 마리코는 오늘밤 재수가 좋군."하고 포주가 말했다. "정말인지 아닌지, 조금 후면 알게 되니까." 하고 마리코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 육감은 없었고, 마리코의 마음은 내 육체와도 그녀의 육체와도 무관한 장소에서, 외톨이가 된 어린아이처럼 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리코는 엷은 녹색 블라우스에 노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빌려서 장난을 한 것인지, 양손의 엄지손톱만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윽고 4평짜리 침실로 들어갔을 때, 마리코는 이불 위에 한 발을 디디고, 전등갓에 달린 기다란 끈을 잡아당겼다. 불빛 아래에 화려한 무늬의 이불이 돋보였다. 프랑스 인형으로 장식한 멋진 도코노마가 딸린 방이었다. 나는 서툴게 옷을 벗었다. 마리코는 엷은 핑크색의 타월 천으로 만든 목욕 가운을 어깨에 걸친 채, 그 밑에서 능숙하게 옷을 벗고 있었다. 나는 머리맡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물소리를 듣고, "손님, 물고래로군요." 하며 그녀는 저쪽을 향한 채 웃었다. 그리고는 이불에 들어와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도, 내 코를 손끝으로 가볍게 찌르며, "정말로 처음 노는 거예요?" 하며 그녀는 저쪽을 향한 채 웃었다. 그리고는 이불에 들어와 얼굴을 마주 보고 나서도, 내 코를 손끝으로 가볍게 찌르며, "정말로 처음 노는 거예요?" 하며 웃었다. 머리맡의 희미한 사방등 불빛 속에서도, 나는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본다는 것이 내가 살아 있는 증거이니까. 하여간에 타인의 두 눈을 이토록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세계의 원근법은 붕괴되었다. 타인은 거리낌없이 내 존재를 범하고 그 체온이나 싸구려 향수 냄새와 함께, 조금씩 수위를 높이며 침수시켜, 나를 적시고 말았다. 나는 타인의 세계가 이런 식으로 용해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나는 완전히 보편적인 단위인 한 사람의 사내로서 취급당하고 있었다. 누구도 나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로부터 말더듬 증세가 벗겨지고, 흉한 모습과 빈곤이 벗겨지고, 그 다음에도 계속하여 무엇인가가 끝없이 벗겨졌다. 나는 분명히 쾌감에 도달하고 있었으나, 그 쾌감을 맛보고 있는 것이 나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먼 곳에서, 나를 소외시킨 감각이 솟구치더니, 이윽고 무너져 내렸다... 나는 즉각 떨어져 나와, 이마를 베개에 대고, 싸늘히 저려 오는 머리의 일부를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모든 것들로부터 내버려진 듯한 느낌에 휩싸였으나, 그것도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일을 치르고 난 뒤 자리에 누워서, 여자가 나고야에서 흘러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으면서, 나는 금각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추상적인 사색일 뿐, 여느 때처럼 육감이 무겁게 침전된 생각은 아니었다. "다시 꼭 오세요." 하고 여자가 하는 말에서, 마리코가 나보다 한두 살 위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이 그럼에 틀림없었다. 젖가슴은 내 바로 앞에서 땀에 젖어 있었다. 결코 금각으로 변모하는 따위의 일이 없는 단순한 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그것을 만졌다. "이런 게, 신기하세요?" 마리코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작은 동물을 어르듯이, 자신의 젖가슴을 잠자코 바라보며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그 살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마이즈루 만의 석양을 상상했다. 변하기 쉬운 석양과 변하기 쉬운 살이, 내 마음 속에서 결합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 눈앞의 살도 석양처럼, 이윽고 몇 겹의 구름에 감싸여 밤의 무덤 속 깊숙한 곳에서 잠들게 되리라는 상상이 나를 안도시켰다. * 같은 가게의 같은 여자를 찾아서, 그 다음 날에도 나는 갔다. 돈이 충분히 남아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초의 행위가, 상상했던 환희에 비하여 너무도 빈약하였기에, 그것을 다시 한 번 시도하여, 조금이라도 상상 속의 환희에 접근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 현실 생활에 있어서의 행위란 남들과는 달리, 언제나 상상의 충실한 모방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상상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오히려 내 원천적인 기억이라고 바꾸어 말하여야 옳으리라. 인생에서 언젠가는 내가 맛보게 될 모든 경험은, 훨씬 눈부신 형태로, 이미 체험하였다는 느낌을, 나는 지워 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육체적인 행위조차도,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아마도 우이코와) 한층 격렬하고, 한층 몸이 마비되는 듯한 관능의 기쁨을 이미 맛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모든 쾌감의 원천이 되어, 현실의 쾌감은, 그곳에서 한 모금의 물을 얻어 마시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분명히 먼 과거에, 나는 어디선가, 비길 바 없이 웅장한 저녁놀을 보고야 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에 보는 저녁놀이, 다소나마 퇴색되어 보이는 것은 내 잘못일까? 어제 여자가, 너무나 나를 평범하게 취급하였기 때문에, 요번에는, 며칠 전에 헌책방에서 산 낡은 문고본을 주머니에 넣고 갔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이다. 이 18세기 이탈리아의 형법 학자가 쓴 책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고전적인 정식 요리로서, 몇 페이지 읽지도 않고 나는 내동댕이쳤으나, 어쩌면 여자가 그 제목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리코는, 어제와 같은 미소로 나를 맞이하였다. 똑같은 미소이기는 했지만, '어제'는 아무 데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대한 친근감에는, 어딘가의 길모퉁이에서 잠깐 만났던 사람에 대한 친근감이 있었으나,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육체가 어딘가의 길모퉁이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자그마한 방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행위가 이미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지난 번 아가씨를 다시 찾다니, 젊은 나이에 제법이시네." 포주가 그렇게 말하자, "하지만, 매일 오면, 주지 스님께 꾸중을 듣지 않아요?" 라고 말한 마리코는, 들통난 내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 정도는 알 수 있죠. 지금은 모두가 리전트라서, 빡빡 깎은 건 절간 사람인 게 뻔하죠. 이 가게에, 지금은 훌륭한 스님이 되신 분들이, 젊었을 때는 모두들 왔었대요... 자, 노래라도 불러요." 마리코는 느닷없이, 항구의 여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의 행위는, 이미 눈에 익은 환경 속에서, 거침없이 편안히 진행되었다. 요번에는 나도 쾌락을 약간 맛본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은 상상했던 종류의 쾌락이 아니라, 자신이 그것에 적응하고 있다고 느끼는 천박한 만족에 불과하였다. 일을 치른 후에 여자가 윗사람답게 나에게 감상적인 훈계를 한 것이, 내가 잠시나마 느꼈던 감흥조차도 날려 버리고 말았다. "너무 자주 이런 곳에 오지 않는 게 좋아요."라고 마리코가 말한 것이다.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보여요.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진실되게 열심히 일하는 게 좋을 거예요. 오면 반갑기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하는 기분, 알아 줬으면 해요. 당신이 동생처럼 여겨지거든요." 아마도 마리코는, 무언가 싸구려 소설에서 그런 대화를 배운 것이리라. 그것은 그다지 깊은 생각에서 한 말은 아니고, 나를 상대로 하나의 작은 이야기를 꾸며서, 그녀가 만든 정서를 내가 함께 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 말에 맞추어서 내가 울기라도 했으면, 한층 좋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맡에서, "범죄와 형벌"을 집어, 그녀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마리코는 순순히 문고본의 페이지를 들추었다. 아무 말도 없이, 원래의 장소에 던졌다. 이미 그 책은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나와 만났다는 운명에, 무엇인가 예감하여 줄 것을 기대하였다. 세계의 몰락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식에 조금이라도 접근하여 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무관한 일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러한 초조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일 개월 ... 그래, 일 개월 이내에, 신문에 내 기사가 크게 날거야. 그러면, 기억해 달라구." 말이 끝나자, 나는 몹시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마리코는 웃음을 터뜨렸다. 젖가슴을 흔들며 웃다가, 나를 힐끗 보더니 소맷자락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지만, 다시금 솟구치려는 웃음을 참느라 온몸이 떨렸다. 무엇이 그토록 우스운지, 마리코로서도 설명할 수 없음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여자는 웃음을 멈추었다. "뭐가 우습지?" 하고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당신을 거짓말쟁이로군요. 아이, 우스워라. 너무나 거짓말쟁이에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아." "이제 그만둬요. 아이, 우스워라. 우스워 죽겠네. 거짓말만 하면서,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마리코는 또 웃었다. 그 웃음은 실로 단순한 이유, 너무도 벼르다가 꺼낸 내 말이 이상하게 더듬거렸던 탓인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마리코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눈앞에서 지진이 일어나도 그녀는 믿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붕괴하여도 이 여자만큼은 붕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마리코는, 자신이 생각하는 절차대로 일어난 사건밖에 믿지 않았기에, 세계가 마리코의 생각대로 붕괴할 리는 없고, 마리코가 그러한 것을 생각할 기회도 절대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마리코는 가시와기와 비슷하였다. 여자의 생각하지 않는 가시와기가, 마리코였다. 화제가 끊기자, 젖가슴을 드러낸 채로 마리코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 콧노래가 파리의 날갯소리와 뒤섞였다. 파리가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가 우연히 젖가슴에 앉아도, 마리코는, "간지러워라." 하고 말할 뿐 쫓아 버리지도 않았다. 젖가슴에 앉자, 파리는 아주 젖가슴에 밀착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마리코는 이 애무가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처마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그곳에만 내리는 듯한 빗소리였다. 비가 사방에 내리지 못하고, 이 거리의 한구석에 숨어들어와, 우뚝 멈추어 선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있는 장소처럼, 광대한 밤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머리맡에 있는 사방 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처럼, 국한된 세계의 빗소리였다. 파리가 부패를 좋아한다면, 마리코에게는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부패일까? 마리코가 자기만의 절대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파리가 찾아온다는 의미일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돌연히, 죽음 같은 잠에 빠져든 여자의, 머리맡의 불빛에 둥글게 비치는 젖가슴의 밝은 부위에서는, 파리도 역시 갑자기 잠에 빠진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 나는 그 후로 '오타키'에 가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이제는 노사가 수업료의 용도를 눈치채고, 나를 추방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노사에게 그 용도를 암시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고백은 불필요하였고, 고백하지 않아도 노사가 냄새를 맡을 것이 뻔하였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내가, 어떤 의미에서는 노사의 힘을 신뢰하고, 노사의 힘을 빌리려고 하였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마지막 결단을 또다시 노사의 추방에 맡기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일찌감치 노사의 무력함을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다. 두 번째로 외곽에 갔던 며칠 후, 나는 노사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노사에게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그날 아침 일찍, 개원 전의 금각 주변에 산보하러 나왔다. 청소하는 우리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노사는 시원하게 보이는 흰옷 차림으로 석가정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올라갔다. 그것에서 혼자 차를 마시며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날 아침의 하늘에는, 격렬한 아침놀의 흔적이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군데군데, 아직 붉은빛을 띤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구름이 아직 수줍음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청소가 끝나고, 우리들은 제각기 본당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나는 혼자 석가정의 옆을 지나서 대서원 뒤쪽으로 나가는 뒷길로 돌아갔다. 대서원 뒤쪽의 청소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금각사의 담장에 둘러싸인 돌계단을 올라가, 석가정 곁으로 나왔다. 나무들은 간밤의 비에 젖어 있었다. 관목 잎사귀 끝에 매달린 수많은 이슬에는 아침놀의 잔영이 비치어, 때아닌 담홍색 열매가 열린 듯이 보였다. 이슬을 엮은 거미줄도 아련히 붉은빛을 띠며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상의 만물이 이토록 민감하게 천상의 빛을 띠고 있는 모습을, 일종의 감동에서 바라보았다. 절 안의 녹음에 배어 있는 비의 윤기도, 모두가 천상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마치도 은총을 받은 듯이 촉촉이 젖은 채 부패와 생기가 뒤섞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나, 그 이유는 그들이 거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석가정에 인접하고 있는 공북루라는 이름은 '북진지거기소이중성공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공부루는, 요시미쓰가 세력을 떨치던 시절의 것이 아니라, 백 수십 년 전에 재건되어, 기호에 맞도록 둥근 모양의 차석으로 만든 것이다. 노사의 모습이 석가정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공북루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혼자서 노사와 얼굴을 마주치기 싫었다. 울타리를 따라 몸을 굽히고 걸으면 저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자세로, 발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공북루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벽에는 마루야마 오쿄(역자주:에도 시대 중기의 화가)의 족자가 보였다. 백단으로 새겨 만든 것으로, 세월과 더불어 검게 변색된, 천축에서 건너온 정교한 세공의 궤가 도코노마에 장식되어 있다. 좌측으로 리큐(역자주: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차인)식의 뽕나무 선반도 보인다. 후스마에(역자주:방문에 그린 그림)도 보인다. 노사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았기에, 무심코 울타리 위로 목을 내밀고 둘러보았다. 기둥 옆의 어두컴컴한 부근에, 크고 흰 보따리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노사였다. 흰옷 차림의 몸을 잔뜩 구부려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양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 자세에서 노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고 있는 나에게 갖가지 감정이 오갔다. 처음에 나는, 노사가 무언가 갑작스런 병에 걸려서 발작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장 달려가서 간호해 주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나를 제지하는 다른 힘이 있었다. 어떠한 의미에서도 나는 노사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일이라도 방화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기에 그러한 간호는 위선이며, 또한 만약 간호를 하여 그 결과로 노사가 감사나 애정을 표시한다면, 그것이 내 마음을 약하게 하리라는 걱정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노사는 병은 아니 듯했다. 어쨌든 그러한 자세에는 긍지도 위신도 없고, 비천한 느낌이 짐승의 잠자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소매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무거운 물체에 그 등이 짓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보이지 않는 무게란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고뇌일까? 아니면 노사 자신의 견디기 힘든 무력감일까? 귀가 익어 옴에 따라서, 노사가 아주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경문 같은 소리가 들렸으나, 무슨 경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들이 모르는 어두운 정신 생활이 노사에게는 있으며, 그것에 비하여 내가 열심히 시도해 왔던 조그만 악이나 태만은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이, 돌연히 내 긍지를 손상시키려고 나타났다. 그렇다. 그때 나는 알아차렸지만, 노사의 그 웅크린 자세는, 승당입중의 탄원을 거부당한 행각승이, 현관 앞에서 종일 자신의 짐 위에 머리를 떨구고 지낸다는 그 니와즈메의 자세와 비슷하였다. 만일 노사 정도나 되는 고승이, 신참의 떠돌이 중이나 하는 이러한 수행 모습을 본받고 있다면, 그 겸허함은 놀라운 것이었다. 무엇을 향하여 노사가 그토록 겸허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원의 풀이나 나뭇잎, 거미줄에 맺힌 이슬 등이 천상의 아침놀에 대하여 겸허하듯이, 노사도 자신의 것이 아닌 본원적인 악과 죄업에 대하여, 그것을 그대로 짐승과도 같은 자세로 스스로의 몸에 반영시킬 정도로 겸허하여진 것일까? '나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짓이다!'하고 돌연히 나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렇다. 내가 여기를 지나리라는 것을 알고서,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저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무력을 이제야 깨달은 노사는, 마지막 수단으로 무언으로 내 마음을 찢어 놓아, 나에게 연민의 정이 일게끔 하여, 결국에는 나를 무릎 꿇도록 만드는, 그러한 가장 교묘한 훈계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의 혼란을 느끼며 노사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하마터면 내가 감동할 뻔한 것은 사실이었다. 전력을 다하여 부정하면서도, 내가 노사를 그야말로 애모하려는 경계선까지 이르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나에게 보여 주려고 저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덕분에, 모든 것이 역전되어, 나는 이전보다도 더욱 결심을 굳힐 수 있게 되었다. 방화를 결행함에 있어서, 노사에 의한 추방 따위는 기대하지 않겠다고 내가 결심한 것은 이때였다. 노사와 나는 이미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 나에게는 장애물이 없었다. 더 이상 외부의 힘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생각한 시기에 결행하면 되었다. 아침놀의 색깔이 옅어짐과 동시에 하늘에는 구름이 불어나, 공북루의 툇마루에서 선명한 햇살이 사라졌다. 노사는 웅크린 채로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 6월 25일, 한국에 동란이 발발하였다. 세계가 확실히 몰락하고 파멸하리라는 내 예감은 사실이 되었다. 서둘러야 한다. 제10장 고반초에 갔던 다음 날, 실은 나는 이미 한 가지 시험을 하였다. 금각 북쪽의 판자 문에서 2치 정도의 못을 두 개 뽑아 두었던 것이다. 금각의 1층인 법수원의 입구는 두 개였다.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똑같이 좌우 여닫이식의 문이 달려 있었다. 안내하는 노인이 밤이면 금각에 올라가, 서쪽 문을 안에서 잠근 다음, 동쪽 문을 밖에서 잠그고, 거기에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열쇠가 없어도 금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동쪽 문에서 뒤쪽으로 돌아가는 곳에 있는 북쪽의 판자 문은, 마치 금각 속에 있는 모형을 뒤에서 보호하는 격이었다. 그 판자 문은 낡아서, 상하의 못을 6, 7개 뽑으면 간단히 들어 낼 수 있었다. 못은 한결같이 느슨하였기에, 손가락 힘만으로 쉽게 뽑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삼아, 그 두 개를 뽑아 두었다. 뽑아 낸 못은 종이에 싸서 책상 서랍 깊숙히 간직해 두었다. 며칠이 지났다. 아무도 눈치를 챈 낌새는 없었다. 1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눈치챈 낌새는 없었다. 28일 밤, 다시 나는 살그머니 두 개의 못을 원래의 자리에 꽂아 두었다. 노사의 웅크린 모습을 보고, 어느 누구의 힘에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던 그날, 나는 센본이마데가와의 니시진 경찰서 부근 약국에서 칼모틴(역자주:수면제의 일종)을 샀다. 처음에 가게 주인이, 30정들이로 보이는 작은 병을 꺼내 왔기에, 나는 더 큰 것을 달라고 하여, 100정들이를 100엔에 샀다. 또한 니시진 경찰서의 바로 남쪽에 있는 철물점에서, 길이 4치 정도의 칼집이 달린 단도를 90엔에 샀다. 나는 밤에 니시진 경찰서 앞을 오락가락했다. 몇 개의 창문에는 불빛이 환하였고, 노타이 차림의 형사가 가방을 끼고 황급히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과거 20년 동안 나에게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없었으며, 현재로서는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나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이 일본에도, 몇백만, 몇천만의, 남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가려진 채로 사는 인간이 있으나, 나는 아직 그런 부류에 속하였다. 이러한 인간이 죽건 살건, 세상은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그러한 인간은 실로 남을 안심시키는 데가 있다. 그렇기에 형사도 안심하고, 내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찰'이라는 글자가 떨어져 나간, 니시진 경찰서라고 횡서로 쓰인 석문자를, 붉고 희미한 외등이 비추고 있었다. 절에 돌아오면서, 나는 오늘밤에 산 물건들을 생각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물건들이다. 칼과 약을, 나는 만일에 자살에 대비하여 샀으나, 새 가정을 꾸린 사내가 무언가 생활의 설계를 세우고 사는 물건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것들은 내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절에 돌아와서도, 질리지도 않고 그 두 가지를 바라보았다. 칼집에서 빼낸 단도의 칼날을 핥아 보았다. 칼날에는 곧바로 김이 서리며, 싸늘한 느낌이 혀에 뚜렷이 전해져 오더니, 이윽고 어렴풋이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달콤한 맛은 이 엷은 강철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도달할 수 없는 강철의 실질로부터, 어렴풋이 반사되어 오듯이 혀에 전해져 왔다. 이토록 명확한 형태, 이토록 깊은 바다의 푸르름과 유사한 철의 광택 ...그것이 타액과 더불어 언제까지고 혀끝에 남는 청렬하고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그 달콤함도 사라졌다. 내 살이, 언젠가 이 솟구치는 달콤함에 취하는 날을 나는 유쾌하게 상상하였다. 죽음의 하늘은 밝기가 마치 삶의 하늘과 동등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두운 생각을 잊었다. 이 세상에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각에는 전쟁이 끝난 후, 최신식의 자동 화제 경보기가 부착되었다. 금각의 내부가 일정한 온도에 달하면, 경보가 녹원사 사무실 복도에 울려퍼지게 장치되어 있었다. 6월 29일 밤, 이 경보기가 고장을 일으켰다. 고장을 발견한 것은 안내하는 노인이었다. 노인이 집사실에서 보고하는 그 소리를, 우연히 그곳에 있던 나는 들었다. 나는 하늘이 격려하는 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30일 아침, 부사는 기계를 들여온 공장에 전화하여 수리를 부탁하였다. 사람이 좋은 안내인은 일부러 그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간밤이야말로 결행의 기회였음에도, 그 다시없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저녁때가 되어 수리공이 왔다. 우리들은 신기한 얼굴로 늘어서서, 수리하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수리는 오래 걸렸고, 수리공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기에, 구경꾼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적당히 나도 그곳을 떠났다. 이제는 수리가 끝나고, 수리공이 시험삼아 울리는 벨이 소리 높이 절 안에 울려퍼지는 것을, 나에게는 절망적인 그 신호를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금각에는 밀물처럼 밤이 밀려와, 수리하기 위한 등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손을 든 수리공은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말해 두고는 돌아갔다. 7월 1일, 수리공은 약속을 어기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절에는 그다지 서둘러 수리를 독촉할 이유가 없었다. 6월 30일, 나는 또다시 센본이마데가와에 가서 빵과 모나카를 샀다. 절에서는 간식이 나오지 않기에, 부족한 용돈을 아껴서 이따금 그곳에서 조금씩 과자를 산 적이 있다. 그러나 30일에 산 빵과 과자는 공복 때문이 아니다. 칼모틴을 복용하기 위해서 산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불안이 그것을 사게 하였다. 손에 든 두툼한 종이 봉투와 나와의 관계. 내가 지금이라도 곧 착수하려는 완전히 고독한 행위와, 보잘것없는 빵과의 관계... 구름 낀 하늘에서 새어나온 햇빛이, 무더운 아지랑이처럼 오래 된 거리에 가득하였다. 땀은 살며시 내 등에 돌연히 차가운 선을 그으며 흘렀다. 몹시 나른하였다. 빵과 나와의 관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행위에 당면한 정신이 아무리 긴장과 집중에 분발하건 말건, 고독하게 홀로 남은 내 위장이, 여전히 그 고독의 보증을 요구하리라고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나의 내장은, 볼품없는, 그러나 결코 순종하지 않는 나의 개처럼 여겨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이 아무리 잠에서 깨어 있어도, 위나 장처럼 둔감한 장기는, 제멋대로 미지근한 일상성을 꿈꾸리라는 것을. 나는 자신의 위장이 꿈꾸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빵이나 모나카를 꿈꾸리라는 것을. 내 정신이 보석을 꿈꾸는 사이에도, 그것이 완고하게, 빵과 모나카를 꿈꾸리라는 것을 ... 어차피 빵은, 내 범죄를 사람들이 무리하여 이해하려 들 때에, 적절히 단서를 제공하리라. 사람들은 말하겠지. '그놈은 배가 고팠던 거야. 정말로 인간적이로군!' * 그날이 왔다. 쇼와 25년(1950) 7월 1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화재 경보기는 오늘 중에도 고쳐질 가망이 없었다. 그것은 오후 6시에 확실해졌다. 안내하는 노인이 다시 한 번 독촉하는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바빠서 갈 수 없으니까, 내일은 반드시 가겠다고 수리공이 대답한 것이다. 그날의 금각 관람객은 100명 정도였으나, 6시 반이면 문이 닫히기에 이미 사람들은 나가기 시작하였다. 노인은 전화를 끊고는, 안내하는 일은 이미 끝났기에, 내 방의 동쪽에 있는 토방에서 자그만 밭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몇 번이고 내리다가는 멈추곤 했다. 바람도 약하게 불었기에 그다지 무더울 정도는 아니었다. 밭에는 호박꽃이 빗속에 드문드문 보였다. 한편 검게 반질거리는 고랑에는, 지난 달 초에 심은 콩이 싹을 내밀고 있었다. 노인은 무언가 생각할 일이 있으면, 턱을 움직여서 엉성한 틀니를 맞부딪치며 소리는 때가 있었다. 매일 똑같은 안내의 말을 하건만, 나날이 듣기 어려워지는 이유는 틀니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권해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밭을 바라보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중얼거리다가 다시 틀니를 소리내고, 소리내기를 중단하면 다시 중얼거렸다. 아마도 경보기 수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모양이었다. 잘 들리지 않는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에게는, 그가 틀니도 경보기도 이미 수리하기는 틀렸다고 중얼거리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날 밤 녹원사에는, 노사에게 진귀한 손님이 와 있었다. 옛날에 노사와 선당 시절의 벗이었다는 후쿠이 현 용법사의 주지, 구와이 젠카이 스님이다. 노사와 선당 시절의 벗이었다는 말은, 아버지와 그렇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사의 외출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1시간 정도면 노사가 돌아오리라는 이야기였다. 젠카이 스님은 녹원사에 한두 밤 머물 생각으로 올라온 것이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건 젠카이 스님에 관하여 즐겁게 이야기하였기에, 아버지가 스님을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스님은 외관도 성격도 그야말로 남성적인, 호탕한 선승의 전형이었다. 키는 6척에 달하였으며, 피부가 검고 눈썹이 짙었다. 그 목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노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스님의 의향을 전하려 동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였다. 스님의 단순 청명한 눈이, 오늘밤으로 임박한 나의 계획을 꿰뚫어보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본당 객전의 6칸짜리 방에서, 스님은 부사가 특별히 배려하여 내온 술을 간단한 안주와 함께, 양반다리를 하고 마시고 있었다. 동료가 그때까지 시중들던 것을, 요번에는 대신에 내가 스님 앞에 정좌하여 시중들었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빗 속의 어둠에 나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따라서 스님은 내 얼굴과 이 장마철 밤의 정원이라는, 두 개의 어두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젠카이 스님은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처음 대면하는 나를 보자마자, 아버지와 꼭 닮았군, 훌륭하게 컸어,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은 참 애석한 일이야, 하는 등, 잇달아 쾌활하게 말하였다. 스님에게는 노사에게서는 볼 수 없는 소박함이 있었고, 아버지에게는 없는 힘이 있었다. 그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코가 크게 벌어지고, 짙은 눈썹 언저리가 툭 튀어나온 모습이, 오베시미(역자주:우락부락하게 생긴 탈)의 얼굴을 본떠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조화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부의 힘이 남아서, 그 힘이 마음껏 드러나 조화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튀어나온 광대뼈조차도, 남화의 바위산처럼 기괴하였다. 그러면서도, 진동하듯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스님에게는, 내 가슴에 울리는 상냥함이 있었다. 세상에 흔히 있는 상냥함이 아니라, 마을을 벗어난 곳에서, 나그네에게 쉴 그늘을 제공하는 카다란 나무의 억센 뿌리 같은 상냥함이다. 몹시 거칠게 느껴지는 상냥함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오늘밤이라는 중대한 시점에 이으러, 자신의 결심이 이러한 상냥함으로 인하여 약해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러자 다시금, 노사가 일부러 나 때문에 스님을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솟았으나, 나 때문에 후쿠이 현의 스님을 상경시킨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스님은 기묘한 우연의 손님, 가장 적합한 파국의 증인에 불과하였다. 두 홉 가까이 들어가는 커다란 백자 술병이 바닥났기에, 나는 목례를 하고 술을 더 가지러 주방에 갔다. 뜨겁게 데워진 술병을 받쳐들고 돌아오면서, 나에게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솟았다. 한 번도 남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제 와서, 젠카이 스님만큼은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다시 돌아와서 술을 권하는 내 눈이 아까와는 달리 매우 진지하고 솔직하게 빛나는 것을 스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나는 여쭈었다. "음, 착실하고 좋은 학생으로 보이는데. 뒷전에서 무슨 짓을 하며 노는지, 내가 알 바는 아니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옛날과는 달라서 놀러 다닐 돈도 없겠군. 아버님과 나와 이곳의 주지는, 젊었을 때 제법 나쁜 짓을 많이 했지." "저는 평범한 학생으로 보입니까?" "평범하게 보이는 게 제일이지. 평범하면 되잖아. 그편이 남들에게 의심받지 않으니까 좋아." 젠카이 스님은 허영심이 없었다. 지위가 높은 중들이 빠지기 쉬운 폐단이지만, 인물로부터 시작해서 서화나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감식을 의뢰받기 때문에, 나중에 감식이 틀린 것을 비난당하지 않도록, 단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물론 선승답게 그 자리에서 독단을 내리는 수도 있으나,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게 마련이다. 젠카이 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강한 눈에 비치는 사물에, 굳이 의미를 구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의미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았다. 또한 스님이 무엇보다도 나에게 위대하게 느껴진 것은, 사물을 보고, 가령 나를 보는 데에도, 스님의 눈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점에만 의지해서 이의를 내세우려 들지 않고. 타인이 보리라고 생각되는 그대로 본다는 점이었다. 스님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주관적인 세계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스님이 말씀하려는 뜻을 알고, 서서히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타인에게 평범하게 보이는 이상, 나는 평범한 것이고, 어떤 이상한 행위를 굳이 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범함은, 키로 까부른 쌀처럼 남을 것이다. 나는 어느 틈엔가 자신의 몸이, 스님 앞에 서 있는 조용한 숲 속의 자그마한 나무처럼 여겨졌다. "남들에게 보이는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걸까요?"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하지만 유별난 짓을 저지르면, 또 남들은 그렇게 봐 주지. 세상은 건망증이 심하니까."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어느 쪽이 오래 지속될까요?" "어느 쪽이건 곧 멈추지. 무리하게 결심하고 지속시켜도, 언젠가는 멈추게 되지. 기차가 달리는 동안, 승객은 멈추고 있지. 기차가 멈추면, 승객들은 거기서부터 걸어야만 돼. 달리는 것도 멈추고, 숨도 멈추지. 죽음은 최후의 휴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거든." "저를 꿰뚫어봐 주십시오." 라고 결국 나는 말했다. "저는,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제 본심을 꿰뚫어봐 주십시오." 스님은 술을 입에 부어 넣고는, 나를 잠자코 보았다. 비에 젖은 녹원사의 크고 검은 기와지붕처럼 침묵의 무게가 내 위에 있었다. 나는 전율하였다. 갑자기 스님이, 더없이 맑고 쾌활한 웃음소리를 발하였다. "꿰뚫어볼 필요는 없어. 전부 네 얼굴에 나타나 있거든." 스님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완전히, 남김없이 이해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처음으로 공백 상태가 되었다. 그 공백을 틈타고 스며드는 물처럼, 행위에 대한 용기가 신선하게 솟구쳤다. 노사가 들어왔다. 오후 9시였다. 평소처럼 4명의 경비원이 순찰을 나갔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돌아온 노사는 스님과 술잔을 주고받았고, 심야 0시 반경, 동료 도제가 스님을 침소로 안내하였다. 스님은 목욕을 하였고, 2일 오전 1시에 야경꾼소리도 끊기자, 절간은 조용해졌다. 비는 아직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홀로, 깔아 놓은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녹원사의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밤은 점차로 밀도와 중량을 더하여, 내가 있는 비좁은 헛간의 굵은기둥과 판자 문은, 이 낡은 밤을 지탱하며 엄숙하게 보였다. 나는 입 속으로 더듬거려 보았다. 한마디의 말이 평소나 다름없이, 마치 자루 속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뒤질 때, 다른 것들에 걸려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건처럼, 잔뜩 나를 안달시키며 입술 위에 모습을 보였다. 내 내계의 중량과 농밀성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의 밤처럼, 말은 그 깊은 밤의 우물 바닥으로부터 무거운 두레박처럼 삐걱거리며 올라왔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내계와 외계 사이에 있는 녹슨 자물쇠가 보아란듯이 열릴 것이다. 내계와 외계는 곧장 통하게 되어, 바람이 그곳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된다. 두레박은 가볍게 날 듯이 올라오고, 모든 것이 광대한 들판처럼 내 앞에 전개되어, 밀실을 무너지게 된다...그것은 이미 목전에 있다. 조금만 더 뻗으면, 내 손이 닿으리라...' 나는 행복으로 가득하여, 1시간이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생전에 이때처럼 행복했던 시간은 없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연히 나는 어둠 속에서 일어섰다. 대서원의 뒤쪽으로 살그머니 걸어나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짚신을 신고, 가랑비 속을 녹원사 뒤쪽의 고랑을 따라 걸어서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작업장에 재목은 없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톱밥이 빗속에서 습기 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에 사다 놓은 짚단이 쌓여 있었다. 한 번에 40단씩이나 사다 놓는다. 그러나 오늘밤은 이미 거의 다 쓰고 석 단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석 단을 안고서, 밭 옆으로 되돌아왔다. 숙소 쪽은 잠잠하였다. 부엌 모퉁이를 돌아 집사실 뒤까지 왔을 때, 그곳 변소의 창문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 나는 그 자리에 웅크렸다. 변소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부사인 모양이다. 이윽고 오줌 누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끝도 없이 길었다. 짚단이 비에 젖을 것을 염려하여, 나는 웅크린 자세에서 가슴으로 집단을 가렸다. 미풍에 흔들리는 이끼 낀 숲에, 비로 인하여 변소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오줌소리가 그쳤다. 몸이 판자 벽에, 비틀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부사는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창문의 불이 꺼졌다. 다시 나는 석 단의 짚은 안고서, 대서원 뒤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내 재산이라곤, 일용품을 넣은 보따리 한 개와, 자그마한 트렁크 한 개뿐이었다. 그것을 몽땅 불태우려고 생각했다. 오늘밤에는 이미 서적류와 의류, 그 밖의 잡다한 것들을 이미 이 두 개에 넣어 두었다. 내가 얼마나 주도면밀한가를 알아주기 바란다. 운반하는 도중에 소리나기 쉬운 것들, 예를 들자면 모기장의 고리라든지, 타지 않고 증거를 남기는 것들, 가령, 재떨이, 컵, 잉크병 등은, 방석으로 싸서 보자기로 묶은 다음, 별도로 해 두었다. 그 밖에 이불 한 장과 담요 두 장을 태워야 한다. 이렇게 커다란 짐들은 대서원 뒤쪽의 출구가 있는 곳에 조금씩 날라다가 쌓았다. 그리고는, 금각 북쪽의 판자 문을 떼어 내러 갔다. 못은 하나하나, 부드러운 흑에 박혀 있든 듯이 간단히 뽑혔다. 나는 쓰러지려는 판자 문을 몸으로 떠받치고 있었으나, 그 비에 젖어 썩은 나무의 표면이 내 뺨에 축축이 부풀어오른 느낌을 주었다. 생각보다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나는 떼어 낸 문짝을 옆쪽의 땅위에 눕혔다. 들여다보이는 감각 내부에는 어둠이 가득하였다. 판자 문의 폭은 몸을 비스듬히 하여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금각의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이상한 얼굴이 나타나서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입구에 있는 금각 모형의 케이스에, 성냥불을 든 내 얼굴이 비친 것이다. 그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만, 나는 케이스 속의 금각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이 자그마한 금각은, 성냥이라는 달빛을 받아 그림자가 흔들리며, 그 섬세한 목조를 발안으로 가득히 채운 채 옹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즉각 어둠 속으로 삼켜져 버렸다. 성냥불이 꺼진 것이다. 불꺼진 성냥개비에 남아 있는 한 점의 불티가 마음에 걸렸기에, 내가 언제가 묘심사에서 본 학생처럼, 열심히 성냥을 밟아서 비벼 끈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 다시 나는 새 성냥을 켰다. 육각의 경당과 삼존상의 앞을 지나 성금함 앞까지 왔을 때, 돈을 던져 넣게끔 수많은 나무 살이 늘어놓은 것이, 그 나무 살의 그림자가 성냥불의 흔들림에 따라서 파도치는 것처럼 보였다. 성금함 안쪽으로 국보인 로쿠온인도노 미치요시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목상이 있다. 그것은 법의를 입은 좌상으로, 옷소매는 좌우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홀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눕혀 잡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삭발을 한 자그마한 머리가 법의의 옷깃에 묻혀 있었다. 그 눈이 성냥불에 반짝였으나, 나는 겁내지 않았다. 작은 우상은 몹시 음참할 뿐더러, 자신이 세운 건물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이미 오랜 옛날에 지배를 포기한 듯이 보였다. 나는 수청으로 통하는 서쪽 문을 열었다. 그 문이 안쪽에서 좌우로 열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다. 밤비가 내리는 하늘도 금각의 내부보다는 밝았다. 습기 찬 문은 나지막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풍으로 가득한 감색의 밤공기를 끌어들였다. '요시미쓰의 눈, 요시미쓰의 그 눈.'이라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 대서원 뒤쪽으로 달려가는 동안에 나는 계속 생각하였다. '모든 것은 그 눈 앞에서 일어난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죽은 증인의 그 눈 앞에서 ...' 달리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소리를 내는 물건이 있었다. 성냥갑이 울리는 소리였다. 멈춰 선 나는, 성냥갑 사이에 휴지를 끼워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손수건으로 싼 칼모틴 병과 단도를 넣은 다른 호주머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빵과 모나카와 담배를 놓은 잠바 주머니도 전혀 소리가 없었다. 이어서 나는 기계적인 작업을 하였다. 대서원의 뒷문에 쌓아 놓은 짐을 4차례에 걸쳐서 금각의 요시미쓰상 앞으로 옮겼다. 최초로 옮긴 것은, 고리를 떼어 버린 모기장과 이불 한 장이었다. 다음으로 옮긴 것은 이불 두 장이다. 다음은 트렁크와 보따리, 다음은 석 단의 짚이다. 이것들을 난잡하게 쌓아올리고, 석 단의 짚은 모기장과 이불 사이에 끼웠다. 모기장이 가장 불붙기 좋으리라고 생각되었기에, 그것을 다른 짐 위에 펼치듯이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대서원 뒤쪽으로 되돌아간 나는, 잘 타지 않는 물건들을 싼 보따리를 안고서, 요번에는 금각의 동쪽 끝에 있는 연못으로 갔다. 바로 눈앞의 연못 가운데에 위치한 섬이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몇 그루의 소나무가 그늘을 이루어,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연못 표면에 밤하늘이 어슴푸레하였다. 그러나 무성한 물풀은 육지와의 구분이 어려웠기에, 그 사이사이로 물이 있다는 것을 겨우 알 수 있었다. 비는 그곳에 파문을 그릴 정도는 아니었다. 비 때문에 뿌옇게 수증기가 끼어, 연못은 끝없이 넓게 보였다. 나는 발 밑의 돌멩이를 하나 물에 떨어뜨렸다. 그 물소리는 내 주위의 공기에 금이라도 낼 듯이 어마어마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 침묵으로, 방금 본의 아니게 낸 소리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몰 속에 손을 넣자, 손에 미지근한 물품이 휘감겼다. 나는 우선 모기장의 고리를, 물에 담근 손에서 떨어뜨렸다. 이이서 재떨이를, 헹구듯이 물에 넣어서 떨어뜨렸다. 컵도 잉크병도, 같은 방법으로 떨어뜨렸다. 물 속에 버릴 것은 모두 버렸다. 그것들을 쌌던 방석과 보자기만이 내 곁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이 두 가지를 요시미쓰상 앞으로 갖고 가서, 마지막으로 불을 붙이면 된다. 이때 내가 갑자기 식욕을 느낀 것은, 너무도 예상했던 그대로였기에, 오히려 나는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먹다 남은 빵과 모나카가 주머니에 있었다. 나는 젖은 손을 잠바에 닦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맛은 느끼지 못했다. 미각과는 별도로 내 위장이 아우성치기에, 나는 무작정 서둘러서 빵을 입 안에 쑤셔 넣으면 되었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뛰었다. 간신히 삼키고는, 연못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다. ...나는 행위의 일보 직전에 있었다. 행위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장시간의 준비를 모두 끝내고, 그 준비의 벼랑 끝에 서서, 마지막으로 그냥 몸을 던지면 되었다. 일거수일투족의 노력으로, 나는 간단히 행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사이에, 내 생애를 삼켜 버릴 정도로 넓은 늪이 입을 빌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그때 나는 마지막 이별을 고할 생각으로 금각 쪽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금각은 비 내리는 밤의 어둠에 묻혀서, 그 윤곽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시커멓게, 마치 밤의 결정체이기라도 한 듯이 서 있었다. 시선을 집중시켜 바라보니, 3층의 구경정에 이르러 급격히 가늘어지는 그 구조와, 법수원과 조음동의 가느다란 기둥들도 어렴풋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전에 그토록 나를 감독시켰던 세부는, 어둠 일색인 밤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에 대한 추억이 깊어짐과 더불어, 이 암흑은 자유로이 환상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 컴컴하게 웅크린 형태의 내부에, 내가 미라고 생각했던 것의 전모가 숨어 있다. 추억의 힘으로, 미의 세부는 하나하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그 빛은 전파되어, 결국에는 밤낮을 구분할 수 없는 신비한 시간의 빛 아래에, 금각은 점차로 명확히 눈에 보이게 되었다. 이토록 완전히 섬세한 적은 없었다. 나는 맹인이 시력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발하는 빛으로 투명하게 된 금각은, 외부에서도, 조음동의 천장에 그려진 천인주악이나 구경정의 벽에 남은 낡은 금박을 생생히 보여 주었다. 금각의 정교한 외부는 그 내부와 뒤섞였다. 내 눈은 그 구조나 주제의 명료한 윤곽을, 주제를 구체화시켜 가는 세부의 정성스러운 반복이나 장식을, 대비나 대칭의 효과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법수원과 조음동의 똑같은 넓이의 두 층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하나의 커다란 처마 그늘에 보호되어, 소위 한 쌍의 아주 비슷한 꿈, 한 쌍의 아주 비슷한 쾌락의 기념처럼 겹쳐져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는 망각되어 버릴 우려가 있었기에, 위아래에서 서로 다정하게 확인하며, 그로 인하여 꿈은 현실이 되고, 쾌락은 건축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구경정의 급격히 가늘어지는 형태를 3층에 올려놓음으로 해서, 일단 확인되었던 현실은 무너지고, 그 어둡고 찬란하던 시대의 고매한 철학으로 통괄되어, 그것에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널판 조각으로 이은 지붕 꼭대기의 높은 곳에서, 금동의 봉황이 무명의 긴 밤에 접하고 있었다. 건축가는 아직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법수원의 서쪽에 쓰리도노와 비슷한 자그마한 수청을 돌출시켰다. 그는 균형을 무너뜨리려고 미적인 힘을 무너뜨리려고 미적인 힘을 몽땅 쏟아 놓은 듯하였다. 수청은 이 건축에 있어서 형이상학적인 반항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결코 연못으로 길게 튀어나오지는 않았으나, 금각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 있는 듯이 보였다. 수청은 이 건축에서 날아오르는 새처럼, 지금이라도 날개를 펴고 연못 밖으로, 모든 현세적인 것들을 향하여 도망치려는 듯하였다. 그것은 세계를 규정하는 질서로부터, 무 규정한 것, 아마도 관능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의미하는 듯하였다. 그렇다. 금각의 정령은 절반 끊어진 다리와도 비슷한 이 수청에서 시작하여, 3층 누각을 이루고, 다시금, 이 다리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연못 밖에서 흔들거리는 막대한 관능의 힘이 금각을 세운 숨겨진 힘의 원천이었으나, 그 힘이 완전한 질서를 이루어 아름다운 3층 건물을 세운 뒤에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되어, 수청을 통하여 다시금 연못 위로, 무한한 관능의 흔들림 속으로, 그 고향으로, 도망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던 점이지만, 경호지에 아침 저녁으로 맴도는 안개를 볼 때마다, 나는 곳이야말로 금각을 세운 어머어마한 관능적인 힘의 본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는, 이러한 부분들의 다툼이나 모순, 모든 불균형을 통괄하며 다시금 그 위에 군림하였다! 그것은 농감지로 된 종이에 글자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금니로 적어 놓은 납경처럼, 무명의 긴 밤에 금니로 세원 건축이었으나, 미가 금각 그 자체인지, 아니면 미는 금각을 에워싼 이 허무의 밤과 동질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미는 그 모두이리라. 세부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며, 금각이기도 하고 금각을 에워싼 밤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전부터 나를 고민하게 하던 금각의 미에 대한 불가사의는, 거의 해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 하면 그 세부의 미, 그 기둥, 그 난간, 그 시토미도, 그 판당호, 그 화두창, 그 보형조의 지붕 ...그 법수원, 그 조음동, 그 구경정, 그 수청 ...그 연못의 투영, 그 자그마한 섬들, 그 소나무, 그 선박장에 이르기까지 세부의 미를 점검하면, 미는 세부에서 끝나 세부에서 완결되는 일이 결코 없이, 어느 한 부분에도 그 미는 그 자체가 불안으로 가득하였다. 그것은 완전을 꿈꾸면서도 완결을 모르는 채, 다음의 미, 미지의 미로 유혹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감은 예감으로 이어지고, 하나하나의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의 예감이, 소위 금각의 주제를 이루었다. 그러한 예감은, 허무의 징조였던 것이다. 허무가 이러한 미를 마든 것이다. 그렇기에 미의 이러한 세부적인 미완성에는, 저절로 허무의 예감이 포함되어, 가느다란 나무로 마든 섬세한 이 건축은 영락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허무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금각의 아름다움은 중단되는 일이 없었다! 그 미는 항상 어딘가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귓속이 울리는 고질을 지닌 사람처럼, 어디에서나 나는 금가의 미가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에 익숙하여졌다. 소리로 비유한다면, 이 건축은 5세기 반에 걸쳐서 계속 울려 댄 작은 금방울, 또는 작은 가야금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 소리가 두절된다면... --나는 격심한 피로를 느꼈다. 환상의 금각은 어둠 속의 금각 위에 여전히 생생하게 보였다. 그것은 찬란한 빛을 감추지 않았다. 물가에 있는 법수원의 난간은 몹시나 겸허한 모습으로 뒤로 물러났고, 그 처마에는 천축 양식의 받침목으로 받쳐진 조음동의 난간이, 연못을 향하여 꿈꾸듯이 그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처마끝은 연못의 반영으로 밝았으며, 출렁이는 물결이 그곳에 비치어 덧없이 흔들렸다. 석양을 받거나 달빛을 받을 때의 금각을, 무언가 신기하게 유동하는 것, 날개 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 물에서 반사되는 빛이었다. 흔들리는 물의 반영으로 인하여 견고한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그때의 금각은, 영구히 흔들리며 움직이는 바람이나 물 혹은 불 따위의 재료로 세워진 듯이 보였다. 그 아름다움은 비할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격심한 피로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나는 알고 있었다. 미가 마지막 기회에 다시금 그 힘을 발휘하여, 이전에 몇 번이고 나를 엄습하였던 무력감으로 나를 속박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손발의 힘이 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위의 일보 직전에 있었던 나는, 그곳으로부터 훨씬 멀리 물러나 있었다. "나는 행위의 일보 직전까지 준비했다."고 나는 중얼거렸다. '행위 그 자체를 완전히 꿈꾸었고, 내가 그 꿈을 완전히 살았던 이상, 더 이상의 행위가 필요한 것일까? 이미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가시와기가 말한 것은 아마도 사실인 듯하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인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최대한으로 행위를 모방하려는 인식도 있다. 내 인식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행위를 완전히 무효로 만드는 것도 그런 종류의 인식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오랫동안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오로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최후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 보아 두기 바란다. 이제 행위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잉여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생에서 넘쳐나와, 별개의 차가운 철제 기계처럼 내 앞에서 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행위와 나와는, 마치 아무런 인연도 없는 듯이 보인다. 여기까지가 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니다 ...어째서 나는 굳이 내가 아니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소나무 밑동에 몸을 기대었다. 그 축축하고 차가운 나무껍질은 나를 매료시켰다. 이 감각, 이 차가움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는 그대로의 형태로 정지되었고, 욕망도 없는 채, 나는 만족하고 있었다. '이 격심한 피로는 어찌 된 일일까?'하고 생각했다. '어쩐지 열이 나고 나른하며 손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마도 나는 병에 걸렸나 보다.' 금각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약법사'의 순토쿠마루가 본 일상관의 경치처럼. 순토쿠마루는 석양의 그림자가 춤추는 나니와의 바다를, 맹목의 어둠 속에서 보았다. 구름도 없이, 아와지에 섬, 스마이카시, 기노우미조차도 석양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내 몸은 마비된 듯하였고,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아침까지 이대로 있다가, 남들에게 발견된다 해도 좋았다. 나는 한마디도 변명의 말을 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장황하게,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의 무력함에 대하여 설명해 온 것이나 다름없으나, 돌연히 되살아난 기억이 기사회생의 힘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여야만 하리라. 과거는 우리들을 과거 쪽으로만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억의 여기저기에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강철로 된 용수철이 있어서, 그것에 현재의 우리들이 손을 대면, 용수철은 곧바로 늘어나 우리들을 미래 쪽으로 퉁겨 버리는 것이다. 몸이 마비된 듯하면서도, 마음은 어딘가에서 기억 속을 더듬고 있었다. 다시 살졌다... 그 말이 나를 부르고 있다. 아마도 나를 고무하기 위하여, 나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리라. "안으로 향하여 밖으로 향하여 마주치면 즉각 죽여라." ...그 최초의 한마디는 그런 것이었다. "임제록" 시중의 유명한 구절이다. 말은 잇달아 거침없이 나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탈자재히지리라." 그 말은 내가 빠져 있던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끌어 내었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넘쳤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집요하게 알리고 있었으나, 내 힘은 헛수고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질없는 짓이기에 오히려 나는 하여야만 했다. 곁에 있는 방석과 보자기를 뭉쳐서 옆구리에 끼고, 나는 일어섰다. 금각 쪽을 보았다. 찬란하던 환상의 금각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간은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늘어선 기둥들은 모습이 분명하지 않았다. 수면에 반사되던 빛은 사라지고, 처마 밑의 반영도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세부는 남김없이 밤의 어둠에 숨어들어, 금각은 단지 검정 일색의 희미한 윤곽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달렸다. 금각 북쪽으로 돌았다. 발길은 익숙하여 있었기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둠이 잇달아 펼쳐지며 나를 안내하였다. 나는 연못가에서, 금각 서쪽의 판자 문이 양쪽 모두 열려 있는 입구로 뛰어들었다. 껴안고 있던 방석과 보자기를 쌓여 있는 짐들 위에 던졌다. 가슴은 마구 고동치고, 젖은 손을 가볍게 떨렸다. 더구나 성냥은 젖어 있었다. 첫 번째는 불이 붙지 않았다. 두 번째는 붙으면서 부러졌다. 세 번째는 바람을 가린 내 손가락 사이를 밝히며 타올랐다. 짚이 있는 곳을 찾은 이유는, 아까 스스로 석 단의 짚을 이곳저곳에 끼워 놓았으면서도 이미 그 장소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찾아 내었을 때, 성냥불은 꺼졌다. 그곳에 웅크리고, 요번에는 두 개비를 한꺼번에 켰다. 불은 짚더미에 복잡한 그림자를 그리더니, 밝고 메마른 들판과도 같은 색깔을 띠며 점차로 사방에 퍼졌다. 이어서 치솟는 연기 속으로 불이 몸을 감추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않은 먼 곳에서, 모기장의 푸른색을 부풀리면서 불길이 올랐다. 주위가 갑자기 들뜬 분위기가 된 느낌이었다. 내 머리가 이때에 한결 맑아졌다. 성냥은 몇 개비 안 되었다. 요번에는 다른 쪽 구석으로 달려가, 한 개비의 성냥을 소중히 하여, 다른 짚단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은 나를 안심시켰다. 예전에 동료들과 모닥불을 피울 때, 나는 불을 지피는 솜씨가 좋았었다. 법수원 내부에는, 커다랗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생겼다. 중앙의 미타, 관음, 세지의 삼존상이 환하게 모습을 보였다. 요시미쓰상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목상의 그림자도 등뒤에서 펄럭였다. 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성금함에 착실히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보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칼모틴과 단도를 잊고 있었다. 이 불길에 싸여 구경정에서 죽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불길을 피하여 좁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조음동으로 올라가는 문이 어째서 열려 있는가 하는 의문은 솟지 않았다. 늙은 안내인이 2층의 문단속을 잊은 것이다. 연기는 내 등에 다가와 있었다. 기침을 하며, 게이신의 작품이라는 관음상과, 천인주악의 천장화를 보았다. 조음동에 떠돌던 연기는 점차로 자욱하여졌다. 나는 계속하여 계단을 올라가, 구경정의 문을 열려고 하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3층 자물쇠는 견고하게 잠겨 있었다. 나는 그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겠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그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구경정의 내부에서 열러 주리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구경정에 기대하였던 것은, 분명히 자신의 죽을 장소였지만, 연기가 이마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에, 마치 구제를 바라듯이 성급히 그 문을 두드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 저쪽에는 사방이 불고 3칸 4척 7치밖에 안 되는 작은 방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때에 절실히 꿈꾼 것은, 지금은 대부분 벗겨져 있기는 하지만, 그 작은 방이 온통 금박으로 발려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 문을 두드리면서, 내가 얼마나 그 눈부신 작은 방을 그리워하였는가는, 설명할 수가 없다. 하여튼 그곳에 도달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금빛의 작은 방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힘껏 두드렸다. 손만으로는 부족하여, 직접 몸을 부딪쳤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음동은 이미 연기로 가득하였다. 발 밑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연기에 숨이 막혀서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심하게 기침하면서 계속 문을 두드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순간, 거부당하고 있다는 확실한 의식이 나에게서 솟았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내렸다. 연기가 소용돌이치는 속을 법수원까지 내려와, 아마도 나는 불길 속을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간신히 서쪽 문에 도달하여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는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쏜살같이 달렸다. ...나는 달렸다.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렸는지 모른다. 어디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공북루 옆으로부터, 북쪽 뒷문을 나와서는, 명왕전 곁을 지나 대나무와 철쭉의 산길을 달려올라서, 히다리오모지 산의 정상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소나무 그늘의 조릿대 밭에 쓰러져서, 격렬히 고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헐떡이는 장소는, 분명히 히다리오모지 산의 정상이었다. 그것은 금각을 정북쪽에서 수호하는 산이다. 내가 명료한 의식을 되찾은 것은, 놀란 새들이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떤 새는 내 얼굴 바로 가까이에 커다란 날개를 스치며 날아갔다. 벌렁 드러누운 내 눈은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새들이 울어 대며 소나무 가지 사이를 지나갔고, 이미 불꽃이 머리 위의 하늘에 드문드문 떠돌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멀리 계곡 사이의 금각 쪽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소리가 그곳에서 울려왔다. 푹죽 같은 소리이기도 하다. 무수한 인간의 관절이 일제히 울리는 듯한 소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금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연기와, 하늘로 치솟는 불길이 보일 뿐이다. 나무 사이로 수많은 불꽃이 날리어, 금각 위의 하늘은 금가루를 뿌린 듯하다. 나는 다리를 꼬고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니, 몸이 온통 물집과 찰과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손가락에도, 아까 문을 두드릴 때의 상처인 듯 피가 배어 있었다. 나는 도망쳐 나온 짐승처럼 그 상처를 핥았다. 호주머니를 뒤지니,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 병이 나왔다. 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하여 던져 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작품 해설 소멸과 생성의 청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세계 1 1970년 11월 25일, 당시 만 45세의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을 지지하는 우익 단체인 '다테노카이' 대원들을 이끌고 이치가야 육상 자위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외친 후, 할복자살한 지 4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들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던 그 사건도 이제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불과 13세의 나이에 "수영"을 발표한 이후로, 유작 "풍요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180편의 소설과 60편의 희곡, 그리고 막대한 수의 수필 및 평론을 발표하여 '쇼와의 귀재'라고 불렀던 미시마의 작품 중에서, "금각사"는 그 정점이기도 하며, 동시에 전후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년의 미시마가 내셔널리즘의 작가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정치 사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 "하야시 후사오론"을 발표한 이후이며, 그 이전은 오히려 '전후 세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정치에 무관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1956년에 발표된 "금각사"를 굳이 그의 정치적 성향과는 결부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한다. 미시마의 작가 편력은, 10대를 습작기, 20대를 초기, 30대를 중기, 40대를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 즉 초기에서 중기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이 당시의 미시마의 문학 세계는 한마디로, 감수성에서 지성으로의 변천을 의미한다. 미시마는 미숙아로 태어나, 허약한 체질과 왜소한 체구,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상 생활에 대한 불안'을 품은 채 성장하였다. 그 감수성과 불안은 "담배"(1946)나 "가면의 고백"(1949) 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미시마가 30대를 맞이하여 육체미 운동을 시작함과 더불어, 급격히 육체와 지성을 중시하는 문학 세계로 돌입하게 된다. 미시마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적 원리'로부터 '남성적 원리'로의 이행이며, '자기 개조의 시도'이다. 미시마가 '남성적 원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작품으로는 30대에 들어서 최초로 발표한 "침몰되는 폭포"(1955)를 들 수 있다. 일찍이 부모의 사랑도 모르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기도코로 노보루는, 여자라곤 없는 집안에서 돌이나 철로 만든 장난감만 갖고 놀았기에 냉담한 성격의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는 불감증에 걸린 유부녀 기쿠치 아키코와 불륜의 관계를 맺지만, 아키코의 불감증이 치유되자 그녀를 버린다. 실연 당한 아키코는 폭포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그 폭포는 노보루가 참가한 댐 공사로 인하여 매몰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 노보루의 성장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여자의 손길을 배제시켰다는 점과, 노보루의 상징인 댐이 아키코의 상징인 폭포를 매몰시켰다는 점에서, '남성적 원리'에 의한 '여성적 원리'의 구축을 테마로 삼았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침몰되는 폭포"는 인물 묘사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너무도 인공적인 냄새를 풍기는, 부자연스럽고 비현실적인 작품이라는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하여, 이듬해에 발표된 "금각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취재한, 이른바 '시사 소설'이기에, 우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한, 작품을 수기 형식으로 만들어 고백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도, 미시마 문학이 '여성적 원리'에서 '남성적 원리'로 이행하는 과정을 묘사하기에는 적절하였다. 사실상 "침몰되는 폭포"를 발판으로 하여 "금각사"의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에, 어떤 의미에서 "침몰되는 폭포"는 "금각사"의 시작품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침몰되는 폭포"에서 댐의 건설로 폭포가 침몰된다는 상징성은, "금각사"에서 주인공 미조구치의 방화로 바뀌어 나타난다. 또한 젊은 시절 특유의 감수성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작가로서의 충분한 경험, 그리고 새로운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인 지성이 가미되어, 최고의 역작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칫하면 이러한 과도기에서 좌절하기 쉬우며, 미시마 역시 "침몰되는 폭포"에서 그러한 결함을 드러내었으나, 결국 "금각사"의 성공으로 인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 2 '금각사'는 1956년 1월부터 10월까지 잡지 "신조"에 연재되어, 그해 10월 말에 단행본으로 신조사에서 간행되었다. 시사 소설로서의 "금각사"가 얼마만큼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가는, 이 사건의 범인인 하야시 쇼켄(본명은 요켄)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야시의 신상에 관하여는 미나카미 쓰토무가 20년의 세월에 걸쳐서 면밀히 조사하여 작성한 "금각염상"(1079)이 가장 세밀하지만, 방화범이라는 관점에서 범행에 관련된 부분만을 종합한 것으로는 고바야시 준쿄의 "금각 방화승의 병지"가 있다. 이 자료들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방화범 하야시 쇼켄은 1929년 3월 19일 교토 부 마이즈루시 근교의 나리우 곶에 위치한 서덕사라는 조그만 절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도겐은 31세, 어머니 시마코는 29세였다. 아버지는 부유한 지주의 차남으로, 어려서부터 온화하고 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으며, 원래가 허약 체질로 26세에 주지가 되어 결혼 후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고, 하야시가 태어난 후에 결핵에 걸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정 반대로, 독단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친척들이나 마을 사람들도 꺼려할 정도였다. 하야시는 4세 무렵부터 말을 더듬게 되어, 주위로부터 놀림 당하는 것을 괴로워하였고, 이후로 친구도 없이 혼자서만 지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1, 2 등을 다투는 성적에 몸도 건강하고 각종 운동을 좋아하였으며, 유도와 기계 체조를 특히 잘 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나, 히가시마이즈루에 있는 큰아버지 기이치로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하야시의 말더듬 증세는 더욱 심해졌으나, 평범한 성격에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말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말을 더듬는다고 놀림을 받아도 태연하였다. 단지, 이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심하여져, "큰어머니가 지어 준 옷은 입겠지만, 어머니가 지어 준 것은 싫다."고 말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은, 소설에서는 1944년 초여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는 1942년 12월 10일이다. 하야시의 아버지는 당시의 금각사 주지인 무라카미 지카이와 전혀 면식이 없었으나, 죽기 2개월 전에 편지를 보내어 아들을 금각사의 도제로 받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주지의 승낙이 있자,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 3월 하야시는 어머니를 따라서 금각사를 방문하여 득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식량 문제 때문에 일단 마이즈루로 돌아갔다가, 1년 후인 1944년 4월에 정식 도제가 되어 학교도 히가시마이즈루 중학교에서 교토의 하나조노 중학교로 옮겼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6월, 하야시는 폐결핵으로 인하여 귀향하였으나, 증세가 양호해지자 이듬해 3월에 다시 금각사로 돌아왔다. 절에서는 혼자 고독하게 지냈으며, 성격이 괴팍하고 급한 탓으로 다른 도제들과 자주 다투었다. 1947년 4월, 하야시는 오타니 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예과에서는 말도 없이 고독하게 지냈으나 학업에는 열중하였다. 성적은 1학년 때에는 83명 중 24등, 2학년은 77명 중 33등, 3학년은 79명 중 79등이었다. 성적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하야시가 갑자기 변한 것은 3학년 때인 1949년 무렵부터였다. 예과 3학년의 성적은 당연히 낙제에 해당되었으나, 1950년에 학제가 개편되어 예과 3학년이 폐지되는 바람에 하야시는 본과로 진급하였다. 1950년, 본과에서도 학업을 게을리 한 탓으로 주임 교수의 주의가 있자, 장로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하야시는 사건 후의 조서에서, "장로에 대하여 어쩐지 호감을 못 느꼈고, 자신을 좋게 보아 주지 않는다는 불평이나 반항심이 갑자기 생겨났다." "장로는 친절한 듯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데가 있고, 나만을 따돌렸다." "훗날 누군가가 녹원사를 지배하겠지만,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의 도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 사람 중에서 자신이 가장 뒤지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장로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주지가 되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장로에게서 받은 등록금은 학교에 납입하였으나 여전히 등교하지 않았다. 옷과 서적을 판 돈으로, 6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유곽에 드나들었다. 이러한 곳에는 처음 드나든 것이었다. 상대한 여자는 와카야마 현 출신의 헤야 데루코, 21세였다. 유곽 출입을 끝낸 3일 후인 6월 22일, 약국에서 수면제를 구입하였다. "혼자 죽을 생각이었지, 금각을 불태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금각에 불을 지를까 하는 생각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2주일 정도 전부터 방화할 기분이 들었다."는 진술로 보아, 수면제를 구입한 이후에 방화를 결심한 것으로 여겨진다. 방화 당일인 1950년 7월 2일 새벽, 하야시는 화재 경보기의 고장을 확인하고, 자신의 방에서 소지품들을 꺼내어, 짚단과 함께, 북쪽 문으로 금각 내부에 들어가, 아시카가 요시미쓰상 앞에 두고 점화하였다. 하야시는 예정대로 금각 누상에서 죽으려 하였으나, 2층 입구가 잠겨 있었기에 올라가지 못하고, 뒷산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뒷산으로 올라가 금각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며 수면제를 먹고 단도로 몸을 찔러 혼수 상태에 빠졌다. 불 속에 뛰어들지 않은 것은 "불을 보고 무서워진 것인지 불 속에 뛰어들 생각이 없었는지 확실히 모르겠다."고 나중에 진술하였다. 하야시는 저녁 무렵 산기슭에서 체포되었다. 다음 날이 7월 3일, 하야시는 경찰에서 "자신이 한 짓에 대하여 사회가 제재를 가한다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나쁜 짓을 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로에게는 이따금 야단을 맞았지만 원인은 나에게 있으니,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와 있다고 하는데, 애정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이 폐가 된다면 어머니와 인연을 끊겠다." "이러한 생각들은 자신의 주관에 입각한 것이기에, 도저히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할 수가 없다."고 진술하였다 어머니는 이날 교토 지검에 출두하여 하야시의 성장 과정, 성격 등에 관하여 설명한 후, 저녁 무렵 귀향하던 도중,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 7월 24일 제 1회 공판에서, 기소장에 방화 및 자살 동기로 든 "자기 혐오, 미에 대한 질투,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죽고 싶었던 점, 사회에 대한 반감, 방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을 듣고 싶다는 호기심"에 대하여, 하야시는 "기소 사실 그대로, 별로 할 말이 없다. 정말이라면 정말이고, 정말이 아니라면 정말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훗날, 하야시는 "사회에 대한 반감이나 미에 대한 질투에 관하여는, 그다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다. 정신 감정은 교토 대학 교수인 미우라 모모에 씨에 의하여 8월부터 10월까지 5회에 걸쳐서 행하여저, "범행 당시 및 그 전후에 있어서의 정신 상태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고, 가볍기는 하지만 정신 이상 증세가 있기에, 분열병질로 진단하여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본 범행은 동증병질의 부분 현상인 병적 우월 관념에 의한 것임." 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야시는 미우라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형무소 대신에 정신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편으로, 상신서에서도 역시 무죄가 아니면 정신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탄원하였다. 12월 20일 제 3회 공판에서 검사는, "사실 관계에 있어서 금각을 불태울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전적으로 독선에 의한 범죄로서, 자기 만족을 위하여 사회를 희생시킨 악성 행위."라며, 관념적 경합죄를 적용하여 징역 10년을 구형하였다. 12월 28일의 판결에서 변호인이 주장한 심신모약에 관하여는, 정신 감정에 입각하여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야시를 징역 7년에 처하였다. 그리고 특사에 의하여 5년 3개월로 감형되었다. 하야시는 항소하지 않았다. 3년 후인 1953년 3월 12일, 하야시는 정신 장애 및 폐결핵으로 인하여, 하치오지 의료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1955년 10월 교토 형무소로 옮겨, 10월 30일 만기 출소하였다. 출소 즉시 교토 부립 라쿠난 병원에 조치 입원이 되었으나, 환청 피해 망상, 피영향 망상, 작위 체험 등의 증세에 시달렸다. 이듬해인 1956년 3월 7일, 환각, 망상, 작위 체험 등의 증세가 진정된 반면, 폐결핵 악화 및 전신 상태 불량으로 인하여, 만 27세에서 12일 모자라는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상과 같은 사건에 대한 여론은, 금각사의 주지가 되려는 꿈이 무너지고, 주지에게 냉대를 받자, 그에 반항한 하야시가 금각에 방화하였다는 식으로 일단락지어졌다. 하지만 오타니 대학 예과 3학년이었던 1949년, 하야시가 급격히 학업을 게을리 하게 된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고, 방화 당시 하야시의 정신 상태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며, 말더듬이라는 콤플렉스와 고독한 성장 과정도 범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시마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범인이 말더듬이였다는 점과, 범행 동기 중에 "미에 대한 질투"라고 진술한 부분이다. 범행 동기에 대한 하야시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으나, 미시마는 그 나름대로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여 "금각사"라는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3 "금각사"는, 주인공인 '나'--즉, 미조구치--의 고백으로 시종하는 1인칭 소설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각에 유별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일체감을 느끼던 미조구치가, 성장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현실에 접근하려 할 때면 금각의 방해를 받게 되고, 이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미조구치는 결국 금각을 불태우고 만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금각사"에 열거된 일련의 회상들을 좀더 자세히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음. (2) 주인공의 성장 환경, 신체적 특징 및 성격에 대한 소개. (3) 중학교 선배인 사관 생도의 칼집에 상처를 입힘. (4) 우이코에 대한 특별한 관심 및 잠복하여 그녀를 기다리다가 망신을 당한 일 (5) 우이코의 죽음과, 그녀가 죽기 전에 보여 준 아름다움. (6) 아버지를 따라 금각사에 가서, 처음으로 금각과 대면. (7) 아버지의 죽음. (8) 아버지의 유언대로 금각사의 도제가 되자, 금각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짐. (9) 티없이 맑은 성격의 쓰루카와와 사귐. (10) 출진하는 사관과 임신한 여자와의 이별 장면을 봄. 그 여자를 되살아난 우이코라고 생각함. (11) 어머니가 다른 사내와 불륜을 범하는 장면. (12) 어머니는 고향의 절을 처분하였다고 미조구치에게 알리며, 금각사의 주지가 되라고 당부함. (13) 전쟁이 끝나자, 미조구치는 자신과 금각과의 관계가 변한 것을 느낌. (14) 금각사의 경내에서 작부의 배를 밟음. (15) 작부의 배를 밟은 사건이 발각됐으나, 주지는 묵과함. 이 사건을 통하여 "과연 악은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미조구치에게 속음. (16) 오타니 대학에 진학하여 안짱다리인 가시와기와 사귐. (17) 가시와기는 자신이 동정을 버리게 된 사건의 전말을 들려줌. (18) 안짱다리를 좋아하는 부잣집 딸을 가시와기가 유혹. (19) 가시와기는 인식의 세계에 안주하여, '미지의 인생'을 경멸하는 인간임이 밝혀짐. (20) 아라시 산에 놀러 가, 가시와기의 하숙집 딸과 관계하려던 순간, 금각이 나타남. (21) 쓰루카와의 돌연한 죽음. (22) 가시와기에게서 퉁소를 받은 답례를 하려고 하자, 가시와기는 금각 주변의 꽃을 뽑아 달라고 부탁하여, 미조구치에게 도둑질을 암시함. (23) 가시와기와 '남천참묘'의 공안을 논함. 가시와기는 "지금은 내가 남천이고 네가 조주지만, 언젠가, 네가 남천이 되고 내가 조주가 될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미조구치가 '행위자'가 되리라는 것을 암시함. (24) 가시와기에게 버림받은 꽃꽂이 선생은, 예전에 보았던 임신한 여자임. (25) 꽃꽂이 선생과 관계하려는 순가, 다시금 금각이 나타나서 방해함. (26)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라고 금각을 향하여 외침 (27) 노사가 게이샤와 함께 가는 장면을 목격. (28) 게이샤의 사진을 입수하여 노사에게 건네 줌. (29) 노사로부터 후계자로 삼을 뜻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시와기에게 돈을 빌려서 출분함. (30) 유라의 바다를 바라보며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고 결심함. (31) 가시와기는 빌려 준 돈을 받으러 금각사에 찾아와, 쓰루카와의 편지를 보이며 그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줌. (33) 노사에게서 받은 학비로 유곽에 가서 동정을 버림 (34) 노사가 니와즈메의 자세로 신음하는 모습을 봄. (35) 한국 동란이 발발하자, 세계의 몰락을 확신함. (36) 방화 준비를 함. 방화 후 자살하려고 수면제와 단도를 구입함. (37) 방화 준비를 끝냈으나, 무력감에 사로잡힘. (38) 가시와기가 말했던 "임제록"의 한 구절을 떠올려, 힘을 얻음. (39) 불을 지르고 금각과 함께 구경정에서 죽으려 하였으나, 문이 열리지 않음. "거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뒷산으로 도망침. (40) 수면제와 단도를 계곡 아래로 던져 버리고, "살아야지"하고 생각함. 이상은, "금각사"에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을 순서대로 열거한 것으로, 작품의 구체적인 줄거리도 역시 이상과 같다. 미시마 문학의 특성은 그 화려한 문체에 못지않은 치밀한 구성력에 있으며, "금각사"는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면, 우선 (1)과 (2)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는, 즉 "금각사"가 '남성적 원리'의 작품이라는 뜻으로, 작품 전체의 성격 및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의, 신체적 특징 및 성격에 있어서, 주인공과 작자와의 유사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금각사"를 '고백 소설'로 만들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하겠다. 이어서(3)(4)(5)는, '세 종류의 전체'를 의미한다. '세 종류의 전제'란, 미시마의 출세작인"가면의 고백"에서 처음 사용된 기법으로, 작품의 서두에서 세 가지의 전제를 제시한 다음, 이 전제들을 기조로 하여 작품을 체계 있게 전개시키는 논리적인 기법이다. 이 기법이 "금각사"에서 다시 이용되고 있다. 첫 번째의 전제, 즉 칼집에 상처를 입히는 내용의 (3)은 "미에 대한 질투를 의미하는 것으로, 금각에 대한 방화를 예고하는 행위임은 물론이고, 실제로 벌어진 사건의 성격을 그대로 살림과 동시에 보다 흥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 두 번째의 전제, 즉 잠복하여 우이코를 기다리다가 망신을 당하는 내용의 (4)는 '여성적 원리'의 상징인 우이코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실의 방화 사건과는 무관하게 작가 자신의 내면 세계를 고백하기 위한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의 전제, 즉 우이코의 배신 행위와 죽음, 그리고 그녀가 죽을 때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모습에 관한 (4)는, 우이코의 죽음을 통하여 현상의 미를 심상의 미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죽은 후의 우이코는, 금각의 추상적인 미로 전환되고, 미조구치와 금각과의 대면을 통하여 다시금 그 심상의 미가 현실의 금각에게 부여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은 현실의 사건에 작자 자신의 고백을 중복시키는 절묘한 발상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주인공 미조구치는 현실의 방화범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작자의 화신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 종류의 전제' 이후로는, 비교적 일관성 있게 스토리가 전개된다. 특히, (10)에서 출진하는 사관과의 이별 장면을 보여준 여자가 우이코의 환생이라고 여기는 것을 비롯하여, 미조구치는 끊임없이 우이코의 환영에 접하게 된다. (14)의 작부도 역시, 우이코와 닮지는 않았으나 우이코를 생각나게 하였으며, (18)의 부잣집 딸도, "뛰어난 미인에, 콧날이 차갑게 오뚝하고, 입 언저리가 약간 단정치 못한" 여자라는 점이 결국 우이코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금각사"에는 미조구치가 금각에의 방화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 경과와 그 필연성이 순차적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우이코가 죽은 이후에도 우이코의 환영에 시달리는 미조구치가 그녀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금각사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술되어 있다. (20)의, 아라시 산에 놀러 갔을 때, 가시와기는 두 여자를 데리고 왔다. 하나는 부잣집 딸로 우이코와 유사한 미인이며, 또 하나는 못생긴 하숙집 딸이었다. 가시와기가 이토록 대조적인 두 여자를 미조구치 앞에 데리고 왔다는 사실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부잣집 딸은 인식자인 가시와기의 안짱다리를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것은 즉, 미조구치를 유혹하는 인식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미조구치가 처음으로 관계를 시도한 여자는, 우이코와는 무관한, 가시와기의 하숙집 딸이었다. 하숙집 딸과의 관계를 시도하려는 순간 금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서, 우이코의 환상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곧, 미조구치의 성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이코이며, 미조구치가 우이코 이외의 여자와는 관계를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물론 우이코와 닮은 여자와의 관계는 가능하다는 사실은, 가시와기가 바로 눈앞에서 실연하여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가시와기는 두 여자를 통하여 미조구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미조구치가 (25)에서 두 번째로 실패한 꽃꽂이 선생은, (10)에서 우이코의 환생이라고 생각했던 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에 실패한 것은, 그녀가 이미 가시와기와의 '인식'에 의하여 더럽혀졌기에 우이코의 환생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어, 결국 그녀는 하숙집 딸과 다름없는 여자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방화하기 며칠 전인 (30)의, 미조구치가 유곽에서, 우이코와 닮지도 않은 마리코와 관계할 수 있었던 것은 "우이코가 외출 중"이었기 때문이다. 우이코가 외출중이라는 말은, 금각이 외출 중이라는 의미이며, 그렇기에 여자와 관계하는 동안 금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조구치는 어째서 금각사의 후계자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면서까지, "악은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품고, 금각에 방화를 하게 된 것일까? 그러한 추이에 논리성을 부여한 것은 친구들이었다. 쓰루카와는 그 양화적인 모습을 통하여, 미조구치가 음화적인 인간임을 자각하게 하였고, 그러한 어두운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가시와기였다. 가시와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인식의 세계'가 미조구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시사하며, 미조구치가 '행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갖가지 지혜와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국보에 대한 방화라는 반사회적인 행위는, 미시마 자신의 내면적인 갈등과 중복되어, 새로운 삶, 새로운 문학 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개인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후의 미시마의 문학 세계는, 인식자 혹은 '보는 자'로부터, 행위자 혹은 '보여지는 자'의 입장으로 탈바꿈한다. 4 "금각사"처럼 '시사 소설'이면서도 '고백 소설'인 경우, 작품의 핵심을 밝혀 내려면, 작자가 실제의 사건에서 어느 부분에 관심을 지니고 그 부분을 작품에 인용하였는가 하는 점과, 실제의 사건과는 무관하게 작자가 창의력을 구사하여 삽입시킨 부분은 어디인가를 밝혀 내는 작업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창의력을 구사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실제의 사건을 모델로 하여 약간의 변경을 가한 부분이 있고, 전적으로 작가의 창의에 대한 부분이 있다. 우선 변경된 부분을 보면 대체로 주인공 미조구치에 관련된 부분으로, 실제의 방화범인 하야시 쇼켄이 4세 무렵부터 말을 더듬게 된 것을, 작품에서는 미조구치가 타고난 말더듬이로 설정된 점이 다르다. 이것은 미조구치의 증세가 '불치'에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작자의 의도로 보아야 하겠다. 또한 방화범 하야시가 비교적 건강한 체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허약한 체질로 변경시킨 것은, 작자 자신의 소년 시절을 미조구치의 내부에 반영시킨 것은, 작자 자신의 소년 시절을 미조구치의 내부에 반영시키기 위한 변경, 즉 주인공을 작자의 화신으로 만들기 위한 변경이라고 하겠다. 방화범 하야시가 어머니를 따라서 처음으로 금각사를 방문한 것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남성적 원리'를 강조하기 위하여, 철저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배격시킨 작품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미조구치가 항상 어머니에 대하여 냉담하게 행동하는 것은, 습작기나 초기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현상이다. "금각사" 이전의 작품을 보면, 처녀작인 "수영"을 비롯하여, "꽃이 만발한 숲", "곶에서 생긴 일", "하루코", "도적" 등, 아버지를 배격하는 반면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방화 후에, 방화범 하야시가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미조구치는 수면제와 칼을 버리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한 점이다. 이것은 "금각사"가 새로운 생을 모색하기 위하여 쓰인 작품임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편으로 창작성이 두드러진 곳은 등장 인물들에 관한 부분이다. 주요 인물 중에서 작자의 창작에 의한 인물로는, 미조구치의 성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우이코, 양의 세계를 상징하는 쓰루카와, 인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가시와기, 부잣집 딸, 꽃꽂이 선생, 가시와기의 하숙집 딸, 금각의 경내에서 배를 밟힌 작부 등이 있다. 반면에 실제의 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은 주인공 미조구치와 양친을 비롯하여, 금각사의 주지인 다야마 도센 스님, 고반초의 마리코, 주지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옛 친구인 젠카이 스님 등을 들 수 있다. 주지의 경우, 사건 당시에 금각사의 주지였던 무라카미 지카이 스님은 상당히 검소하고 신심이 깊으며, 전쟁 중에는 도제들이나 다름없는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절간 살림을 꾸려 간 사람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도센 스님의 경우, 무척이나 사치하고 방탕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아마도, 미시마가 소설을 쓰기 위하여 금각사에 취재를 요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는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5 "금각사"가 치밀한 구성에 의하여 제작된 작품인 이상, 그 구성의 도식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전형적인 파악 방법은 주인공 미조구치를 중심으로 하여 등장 인물들의 인간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미조구치는 항상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세계와 접한다. 우이코의 죽음 이후에 금각을 접하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금각사의 주지 밑에 들어가게 되며, 또한 쓰루카와의 죽음 이후에 가시와기와의 교제가 본격화된다. 이러한 인간 관계가 "암흑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금각이라는 건축물의 본질과 흡사한 구조를 보여 준다. 우선, 미조구치와 그 친구들에 관하여 살펴보면, 주인공 미조구치는 물론이고, 미조구치의 양화적인 존재인 쓰루카와, 인식을 상징하는 가시와기는 모두가 작자 미시마의 화신으로서 작자의 중요한 일면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티없이 맑으면서도 연약한 쓰루카와는 소년 시절의 미시마 자신과 비슷하며, 인식의 세계를 대표하는 가시와기는 20대의 미시마와 흡사하다. 그리고 인식의 세계에서 행위의 세계로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미조구치는, 새로이 맞이한 30대를 살아갈 인간이다. 가시와기보다도 쓰루카와를 먼저 등장시킨 이유는, 미조구치가 얼마나 어두운 인생을 걷는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포석으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쓰루카와가 죽은 후, 미조구치와 가시와기 사이에 생기는 사건들은 모두가 음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일들이다. 미조구치가 말더듬이인 것은, 언어능력에 장애를 지녔기 때문에 인식의 세계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결국은 행위자로서의 인생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에 반해서, 안짱다리인 가시와기는 보행이 불편한 관계로, 결코 행위자가 될 수는 없는, 필연적인 인식자임을 상징한다. 하지만 미시마는 가시와기를 미조구치와 적대 관계에 두지 않고, 오히려, 미조구치를 행위자로 만들기 위한 조력자 혹은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시킨다. 가시와기는 인식의 세계가 얼마나 암담한가를 보여 주고, 미조구치가 무력감에 빠질 때마다 격려하여, 끝내는 방화라는 행위에 다다를 수 있도록 채찍질하고 있다. 작중에는 결코 인식자 가시와기를 부정하는 부분은 없다. 왜냐 하면 가시와기도 작자 자신의 내면 세계를 상징하는, 바로 미시마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편, "금각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우이코는, 간단히 어떠한 존재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 우이코가 제 1장에서 일찌감치 죽게 되는 것은, "금각사"가 사후에 우이코를 다루기 위하여 쓰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금각은, 사후에도 미조구치의 성관념을 지배하게 되는 우이코를 의미한다. 따라서 "금각사"라는 작품의 핵심은 우이코에게 있으며, 우이코가 미조구치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금각사"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하겠다. 결국, 금각의 미는 에로스의 상징이며, 또한 '여성적 원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미"와 "관능"이 동일한 어휘로 사용되고 있는 점과도 연관된다. 미조구치가 우이코와 금각을 동시에 비교하며 회상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이 둘을 직접 비교하지 않았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 둘이 결코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6 현재까지의 연구를 보면, "금각사"는 수기의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 설에 대하여는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나, 일단, 미시마가 애당초 수기의 형식을 빌려서 "금각사"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작품의 군데군데에 보이는 "알아 주기 바란다", "이상과 같은 기술", "상기해 주기 바란다" 등의 표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독자를 의식한 수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단지, 후반부로 갈수록 현재 진행형의 문장이 눈에 띄는 점, 특히 마지막 부분의, 주인공이 금각에 불을 지르고 나서 산 위로 도망친 후의 부분은, 수기가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되어 있기에 문장의 시제에 몇 가지 문제점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금각사"는 현실의 방화 사건을 염두에 두고, "미에 대한 질투"라는 테마로 읽을 수도 있다. 미조구치가 선배인 해군 사관 생도의 칼집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는, 훗날에 있을 금각에의 방화를 암시한다. 이 행위는 "미에 대한 질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수많은 논문들이 '미'와 관련하여 "금각사"를 다루었다. 미시마는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코멘트를 남긴 작가이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금각사"에 관하여 언급한 적은 거의 없으며, 특히 이 작품을 '미'와 관련하여 언급한 적은 더더욱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미시마 미학'이라는 말은 결국, 평론가들에 의하여 성립된 어휘일 뿐, 정말로 미시마 자신이 그러한 미학을 주장하였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미시마 미학'의 중심이라고 하는 "금각사"의 경우도, "미에 대한 질투"는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논리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논문에서 빌려 온 것이라고 미시마 자신이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라는 것이 "금각사"의 테마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표면의 테마'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시사 소설로서의 "금각사"는 이 '표면의 테마'에 의하여 성립된다. 한편으로, 금각의 경내에서 작부의 배를 밟는 행위도 역시 금각에의 방화로 이어진다. 이것은 '미'라는 관점에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즉, 제1장에서 잠복하여 우이코를 기다리다가 망신을 당한 미조구치는, 작부의 배를 밟고, 유곽에서 동정을 버림으로 해서, 우이코의 상징인 금각에 방화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은 '여성적 원리'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방화하기 전에, 제9장에서, 미조구치가 유곽에 갔을 때, 끊임없이 우이코를 회상하는 것은, 방화의 실제적인 동기가 우이코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이코는 외출하고 없었다."는 말은, 곧 금각이 부재중이라는 말이며, 따라서 미조구치는 금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여자와의 관계에 성공하는 것이다. 과거에 자신을 지배하던 '여성적 원리'를 우이코로 상징시키고, 우이코를 금각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그녀를 죽게 만든 다음, 눅은 후의 우이코를 금각으로 상징시켜, 금각을 불태운 미조구치가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이것은 작자 미시마의 새로운 삶, 즉 '남성적 원리'의 시작을 의미한다. 여기에, 고백적 작품으로서의 "금각사"의 의의가 있다. 또한 이 부분이 '이면의 테마'이기도 하다. "금각사"의 잡지 연재를 시작하기 직전, 미시마가 육체미 운동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언급하였다. 잡지 연재가 끝나갈 무렵에 발표한 에세이 "보디 빌딩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다. "보디 빌딩을 시작하고 나서 오는 9월로 1년이 된다. 감기에 걸려 3주 정도 쉰 적이 한 번 있는 이외에는, 대체로 열심히 해 왔다. 원래 육체적인 열등감을 불식하기 위하여 시작한 운동이지만, 엷은 종이를 벗기듯이 그 열등감은 나아서, 지금은 완쾌에 가깝다.", "이러한 열등감을 30년이나 짊어지고 온 것이 무슨 이익이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정말로 어리석게 여겨진다." 말하자면 미시마가 육체미 운동에 열중하여 하루하루 몸의 근육이 불어 가는 것을 확인하며 써 나간 작품이 "금각사"이다. 당연히 작품에는 어디엔가 육체의 변화, 즉 열등감의 불식을 암시하는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탈고는 1956년 8월이고, 탈고에 즈음하여 "보디 빌딩 철학"도 쓰였다. 과거의, 육체적인 열등감으로부터 탈피한 작자 미시마와, 금각에 방화를 하여 행위의 세계로 뛰어든 미조구치는, "살아야지"라는 마지막 한마디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시마는 "금각사"를 '개인의 소설'이라고 칭하였다. '이면의 테마'에 중점을 두고 "금각사"를 평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청춘 소설'이다. 젊은 시절 특유의 어두운 고뇌와, 그 고뇌를 극복하여 성장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이 작품의 어디엔가 숨겨져 있다. "금각사"에 관한 논문은 과거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표되었으며, 지금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그만큼 "금각사"라는 작품이 무궁무진한 테마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에 관한 해석은 물론이고, '미시마 문학' 전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또한 전후의 일본 문학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금각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읽히고 언급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