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어떻게 배우고 생각할 것인가 지은이:이케우치 사토루 옮긴이: 김정흠 출판사:한겨레 인류는 오늘날 과학의 힘에 의해 달 위를 걸어다녔고, 화성에 관측장치를 설치해 놓았고, 목성이나 토성의 띠의 실체를 밝혀내고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하늘과 땅의 지위를 바꾸어 놓는 지동설을 주장하고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곰보 투성이의 달 표면과 목성 주변을 도는 네 개의 위성, 태양의 흑점 등을 관측한 이래, 450년 사이 인류는 그 직접적 경험이 미치는 영역을 태양계 전체로까지 넓혔고, 더 나아가 우주 궤도를 도는 허블 우주 망원경을 통해 우주 저쪽에서 140억 년이나 먼 옛날에 일어났었던 우주 초기의 모습을 관찰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정말로 문명학적으로도 큰 뜻을 갖는 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1946년의 컴퓨터(ENIAC) 발명, 1948년의 트랜지스터 발명, 같은 해에 제창된 샤논의 정보 이론,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 등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전자공학 및 컴퓨터 공학에 힘입어 산업 현장은 물론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컴퓨터화,자동화되었다. 그리고 휴대폰의 놀라운 보급과 이리듐 계획은 수 년전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순간전달의 범세계적 정보화시대를 생활화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또 1953년 와트슨과 크릭에 의해 모든 생물의 유전의 비밀을 간직한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지자 생명공학이라는 새 기술분야가 개발되어, 뿌리에는 감자가 열리고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린다는 잡종작물(키메라 작물)마저 만들 수 있게 되었는가 하면, 체외수정에 의해 시험관 아기를 태어나게 하여 불임부부에 희소식을 전했고, 나아가서는 체세포 하나만으로 암수 교배를 거치지 않고도 복제 양, 즉 클론 양(clone sheep)까지 만들어내는 등, 신도 무서워하지 않는 일마저 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이런 인위적인 생물공학적 조작에 의해 어느 독재자의 체세포로부터 수없이 많은 복제인간마저 만들어낼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을 지니게까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에 수십억달러나 소모되는 거대화한 실험장치를 동원한 거대과학(Big Science)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어 과학 본래의 순수했어야 할 자세를 흔들어대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과학은 점점 더 일반 시민으로부터는 멀어져 가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또 지수함수적으로 증가만 해 가는 기술폭발의 여파로 지금 지구의 환경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해가 생활 주변에 넘쳐나는 등 엄청나게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고만 생각했던 과학기술이었건만 이제는 양날의 칼과도 같아 자칫 잘못하면 인류의 멸망까지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도 자아내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여러 문제, 즉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우선 과학이란 무엇이며, 그 과학은 어디에 원천을 두었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이래 어떤 발자취를 밟아 발전되어 왔는가, 그리고 과학자란 어떤 범주에 속하는 인간이며 과학자가 지켜야 할 윤리적 책임은 무엇인가 등을 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하게 과학의 본질은 무엇이며, 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또 과학이 어떤 발전 경로를 밟아 왔는가 등을 해설한 책에 그치지 않고, 과학 기술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인류의 미래마저도 근심해 보는 책으로서, 앞으로 과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물론이려니와 인문,사회계 학자들도 꼭 한 번은 읽어 보셨으면 해서 권하는 책이다. 1999년 4월21일 과학의 날에 역자 김정흠 들어가는 말 과학을 둘러싼 대사건들 1995년은 갖가지 대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해였습니다. 일본에서만 해도 한신(오사카와 고오베)지역의 대지진, 오우무진리교 소동, 고속증식로인 "몬쥬"의 사고 등등. 그 어느 사건에서도 과학과 기술의 바람직한 임무랄까 이상적 목표 같은 것, 또는 과학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 과학교육의 실태 등등이 신문이나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에서 눈에 띄게 논의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현대인들이 과학의 성과에 의해 풍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과학 그 자체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들이 뜻밖에도 연약한 기반 위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이들 사건들은 명백히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학은 조금이라도 악용하면 예사롭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를 멸망시키기까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과학에는 이처럼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이와 같은 이중적 감정은 어쩌면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일는지도 모릅니다. 과학이라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19세기의 산업혁명은 뉴턴역학과 열역한이란 토대위에 발명된 증기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대량생산,대량가공이 가져다 준 결과였습니다. 그것이 곧이어 철강이나 자동차 등 중후장대형 상업의 기반이 됨으로써 그때까지 주로 사람의 힘과 소나 말의 힘에 의존해 왔던 생활을 갑자기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또 20세기 현재 생산력의 기초도 이 산업혁명의 결과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오자, 원자나 분자의 세계의 법칙(양자역학)이 밝혀져, 그것을 토대로 하는 전자공학 또는 전자기술이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기술을 이용한 컴퓨터나 반도체 소자는 현재 거의 모든 전기제품에 이용되고 있으며, 경박단소형의 산업이 발전되었습니다. 또 동일한 맥락에 의해 생명세계이 법칙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결과 유전자조작이 산업화되는 시대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사실 20세기는 "과학의 세계"라 불리우리만큼 지난 100년사이에 있었던 과학의 진보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은 이런 과학적 성과 위에 과거에는 누릴 수도 없었던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생활은 과학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 면만을 살핀것에 불과합니다. 원자의 연구는 그 원자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원자핵에 대한 연구 쪽으로 진척되었고, 그 원자핵 안에 내장되어 있던 엄청난양의 원자력 에너지마저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원자력에너지는 처음에는 원자폭탄,수소폭탄 등 폭탄의 형태로 이용되다가 곧이어 원자력 발전과 같은 평화적인 쪽으로도 이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 경쟁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을 몇 번씩이나 죽이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핵폭탄을 제조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지구는 핵폭탄 폭발시 땅에서 버섯구름과 함께 솟아올라 간 먼지로 뒤덮이게 되고, 그것이 태양 빛을 가린 결과 지상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핵의 겨울). 또 원자력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은 아직도 그 처리방법이 미처 정해지기도 전에 계속 쌓이고 쌓이는 중입니다. 또 반도체 소자의 개발이나 세척에 쓰여진 약품, 플론 가스의 처분도 골칫거리입니다. 이들 물체가 바다나 강물을 오염시키고 대기권 위에 있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되는 석유나 석탄의 연소로 공기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온실효과"에 의해 지구가 온난화하지나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업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상승함에 따라 지구라는 환경이 더 이상 무한한 것이 아니란 것도 명백해졌습니다. 또 유전자 조작 기술은 21세기에 가서는 더 본격화되겠지만, 이에 의해 생명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과학의 진보에 따라 우리들은 커다란 불안도 함께 갖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래에의 불안이야말로 현재 일반대중들이 품고 있는 "과학불신"의 원천이 아니었던가 생각도 됩니다. 무턱대고 과학을 싫어하게 된 까닭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지나친 "불신"이라는 서로 모순된 감정들이야말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초능력이나 초과학을 뒤쫓게 하고 동경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점괘나 신탁 또는 투시나 예언 등에 의존하게도 되고,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도 않은 공중부양이나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 물질이 미지의 힘에 의해 갑자기 이동하는 것)을 믿게도 되고, 실체가 없는 수호령이나 오라(aura,인체에서 발사된다는 영적인 방사체)같은 것이 존재하거나 하는 것처럼 믿게 되는 심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리가 하필이면 현대와 같은 과학의 시대에 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현대과학을 초월할수 있다는 환상에 잠김으로써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고 신비의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더 이상 골치 아픈 일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과학에만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력만이 장래를 결정해 주고, 회사나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서 살아야만 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회 전체가 혼돈에 말려들어 장래의 일들이 잘 보이지 않았던 시대가 바뀔 때마다 초능력을 간판으로 내건 사이비 종교들이 유행했던 것입니다. 현대도 물론 그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옛날과 지금 사이에는 명백히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입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싫건 좋건 과학적 사고방식이나 방법을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즉 너무도 지나친 황당무계한 논리는 누구도 믿질 않습니다.(물론 마인드 컨트롤을 다하거나 최면술에 걸리면 교주가 한 말은 무엇이것 무조건 믿게 됩니다만). 예컨대 많은 사이비 교단들이 그들의 교단 이름 앞에 "과학"이라든가 "진리"란 말을 붙이게 되는 것도, 적어도 자신들의 종교를 넓히기 위해서는 "과학적"이라는 눈가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현대사회는 과학의 기본적 소양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영위되고 있다는 점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과학의 내용이 너무도 지나치게 통상적인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고, 또 그 내용이 어려워져서 일반 대중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알기 쉽게 해설해 주는 일도 별로 없고 또 책을 읽어도 알기 힘든 수식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니 과학을 이해할 만한 기초가 되어 있는데도, 과학을 싫어하고 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먹을 수 이쓴ㄴ데도 먹기도 전에 무턱대고 싫어진다고나 할까요. 정말 아까운 일입니다 모처럼의 별미가 있는데도 그것을 먹지도 않은 채 내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과학을 아느냐 어떠냐에 달려 있다. 필자는 과학에의 이와 같은 불신이나 미래에의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우선 과학을 생활화시켜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불안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과학의 힘을 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현재 우리들이 골몰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가 등등을 우선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과학의 힘이 중요하다고 해서, 환자에게 무턱대고 몇 차례나 주사를 놓아 그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것과 같은일이 일어나서는 물론 안 됩니다. 우선 그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여러가지 각도로 살피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로지 과학의 전문가에게만 그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해서 의견을 진술하고, 그 의견에 따라 전문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측면이 밝혀지는 수도 있으니까요. 한때 병을 고쳐 준답시고 본인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인체실험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는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게 된 후에도 원자탄을 개발할 목적의 맨해튼 계획은 추진되었으며, 과학자들도 협력을 계속했습니다(사실인즉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맨해튼 계획은 출발했던 것입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손대고 있는 문제에 재미를 느끼면 그 연구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연구에 열중하기 쉽습니다. 이 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것은 과학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이 현실화되었을때, 어떤 사태가 야기되는가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지의 힘입니다. 이화 같은 전문가와 시민의 협력 또는 상호작용이야말로 우리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시민으로서도 과학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과학연구나 개발의 전모를 파악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대로의 소비구조나 에너지 사용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100년도 못 가서 지구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단순히 자원이나 에너지가 없어진다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도 지나치게 써 버린 결과 지구환경이 황폐화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지구인은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어 나가야 할까요?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렇게 간단하게는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이 문제 해결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지혜를 내서 합의를 해야 하겠지요. 그러려면 우선 그 문제가 생겨난 지역에서 주민들의 합의를 얻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요. 우선 현재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활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가, 어떤 방법을 택할 때 어떤 결과가 얻어지는가, 어디까지를 받아들일 수 있고, 어디까지는 받아들일수 없게 되는가, 등등의 예측을 세계 각국의 모든 사람들과 협의해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합의를 본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식의 절차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때 과학의 힘을 빌자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전쟁에 의해 강대국의 논리만이 강요되었습니다만 지금은 그 같은 폭력이 아니라 "과학적 지"의 힘에 의해 세계의 미래를 결정해 가자는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 이 책에서는 먼저 저자가 어떤 계기로 과학자가 될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회상부터 시작해서, 과학적 사고방식이라든가 방법에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또 과학은 어떤 단계를 밟아 태어났고 또 발전해 왔는가를 밝힐 생각입니다. 그 과학의 원점은 개인의 호기심에 있었으며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행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안 있어 사회와의 연계 속에서 주로 관측, 또는 측정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 생겼고, 곧이어 대학의 발전과 더불어 지식이 집약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이런 과정 속에서 과학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학자라는 직업이 확립되고 과학의 힘이 국가에 의해서 인정되게 되자 과학의 연구방향은 질적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의 개인적 활동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세금으로 운용되는 연구기관을 통해 현재와 같은 공적인 활동으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바뀌었더라도, 과학 하는 생각법이나 방법은 기본적으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과학이 어떤 경로를 밟아 태어났는가 하는 역사를 되살펴 보고, 또 오늘날의 과학연구가 어떤 방식에 따라 진척되는가 등을 살펴보면서, 과학과 기술, 기술과 사회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가는가를 살피고자 합니다. 즉 과학연구에 대량의 자금을 지출하게 되고, 과학연구의 현장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는 현재, 어떤 종류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과학자에 기대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또 과학자는 사회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니고 있는지 등등을 논해 볼까 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21세기의 과학과 사회를,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물리학 출신이므로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물리학이나 우주에 관련된 문제들을 화제로 올리는 수가 많겠지만 그래도 과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는 사람이라면, 생물이나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문과계로 나아가려 하는 사람들에게도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사실 과학은 엄밀하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 도 볼 수 있게 해 주는 뛰어난 방법입니다. 문과계이건 이과계이건(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둘로 갈라 놓는 고등학교식의 분리 방식은 본래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과학적 사고방식은 누구나가 다 생활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21세기를 짊어질 여러 독자들이 이다음 과학의 지적 힘을 빌려 미래를 개척해 나아갈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참고 중후장대형 산업과 경박단소형 산업 1981년경의 히트 상품은 PC,경자동차,워크맨,휴대용 VTR,미니입술연지 등이었는데 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가볍고 얇고 짧고 작으면서도 무게당 가격이 비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 상품이나 산업을 경박단소형 상품, 산업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 IC(집적회로)가 고집적화되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소형화,고도화되었고, 이에 따라 부품 수가 줄어들었다. 이들 전자두뇌가 내장되었기에 상품들도 따라서 크기가 줄어들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상품들을 경박단소형 상품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서 재래식의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 특징을 갖는 산업을 중후장대형 산업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컨데 철도, 선박, 자동차, 공작 기계, 비료, 석탄 등 덩치가 큰 재래식 산업이 그것이다. 플론(Flon)가스 프레온(Freon)가스의 원래 이름. 염화불화탄화수소의 총칭. 원래는 탄화수소의 플루오르(fluoro, 치환제)에 대한 미국 듀폰(Dupont)사의 상품명. 대표적인 것으로서 플로 22(CHCIF2, , 융점 -160도, 끓는점 -40.8도), 플론 12(CCI2F2), 융점 -160도, 끓는점 -29.8도), 플론 113(CCI2FCCIF2, 융점 -36도, 끓는점 47.6도)등이 있다. 플론 12와 플론 22는 전기 냉장고, 실내용 에어컨디셔너, 플론 113은 대용량 냉방의 매체로 쓰인다. 이들은 모두 화학적으로 안정하고, 금속을 부식시키지 않고, 무색무취 불폭발, 불연성일 뿐만 아니라 독성이 약하기 때문에 분무제, 소화제, 용매, 스티로폼(styrofoam)이나 우레탄폼(polyurethaneform)등의 발포제, IC제조시 세제 등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사용 후 대기중에 방출되면 화학적으로 안정한 까닭에 성층권까지 올라가고 자외선을 받아 분해되어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1987년 몬트리올 회의에서 플론 가스의 소비를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자는 제안이 가결되었다. 오우무진리교 사건 일본의 신흥 컬트(cult, 주술적 색채가 짙은 광신적 종교단체)집단인 오우무 진리교도가 교주의 명에 따라 1995년 지하철 구내에 독가스의 일종인 사린(sarin)이라 불리는 맹독성 물질(마시면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가스, 1930년대에 독일이 개발한 화학병기의 일종)을 뿌리고 사람을 납치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 사건. "오우무"란 산스크리트어로서 기도, 주문등의 뜻을 갖는 aum이란 말을 일본식 발음으로 고쳐서 만든 말이다. 몬쥬 사건 일본이 1991년 조립을 끝낸 고속증식로(FBR, fast breeder reactor) 몬쥬가 일으킨 사고, 2차계냉각제인 나트륨(Na)이 700킬로그램이나 새어 나가 예기치 않게 화재와 마루 바닥의 손상을 일으켰다. 방사능 누설은 없었으나 원자로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큰 문제라 판단되어 이 증식로는 현재 운전을 중단하고 있다. 우라늄 매장량은 빈약한데다 보통의 원자로에서는 천연 우라늄 중 겨우 0,7퍼센트만이 포함되어 있는 우라늄 동위원소 U-235를 쓰기 때문에 에너지 자원으로서는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연료로 쓸 수 없는 나머지 99.3퍼센트의 U-238에 중성자를 쬐어 주면 플루토늄(plutonium 239, Pu-239)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이 Pu-239를 핵연료로서 다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면 우라늄 자원은 이론상 143배(1/0.7퍼센트 = 143)로 그 효율을 높일수가 있다. 이렇게 U-235를 태우면서 발전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중선자를 써서 Pu-239를 계속 만들어 주되 , 만들어진 Pu-235보다 더 많도록 설계한 원자로를 증식로라한다. 이 목적으로 만들어진 몬쥬의 출력은 28만 킬로와트였다. 다만 이 증식로는 화학적 활성이 매우 강한 나트륨을 냉각제로 써야 하고 건설비가 무척 많이 들며 원자로 연료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등의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래서 증식로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는 포기해버렸고, 미국은 핵확산 우려 때문에 개발을 중단시킨 바 있다. 몬쥬는 문수 보살을 뜻하는데, 여래의 왼편에 있는 지혜를 담당하고 있는 보살이다. 제1장 과학과 나 왜 나는 과학자의 길을 택했는가? 재미나는 우주연구 필자는 지금까지 별의 진화나 은하의 구조 및 진화, 우주에서의 은하계의 형성 등 주로 우주에 존재하는 천체들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진화과정을 밟아 왔는가 하는 문제들을 연구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천체 사이에는 언제나 중력(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을 뜻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천체가 이 우주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이외에도 중력에 반발하는 힘도 항상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천체는 자기 자신의 무게로 눈깜박할 사이에 찌그러져 버릴 것입니다. 예컨데 별의 내부는 1천만도도 더 넘는 고온으로 되어 있어 그 압력이 있기 때문에 붕괴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고온에서는 내부로부터 외부로 열에너지가 흘러 나갑니다. 그런 까닭에 별은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로 열이 방출되어 나가면서 별은 나이를 먹게 됩니다. 다시 말해 별이 진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천체들도 다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진화를 하는 이상 처음(탄생, 기원)이 있고 마지막(죽음)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주에 관한 연구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천체의 일생을 조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처음에는 별의 진화의 최종단계에 관한 연구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별이 수없이 많이 모여 형성된 은하계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은하가 수없이 많이 모여 있는 전 우주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는 등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경험을 쌓아 올라가는데 따라 조그마한 천체에서 큰 천체로 그 연구의 대상을 바꾸어 갔습니다. 흥미가 옮아감에 따라 자연스레 연구대상이 바뀐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또한 최근의 천문학 전체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필자 자신이 유행을 따라다닌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누구하나 손을 대지 않은 미답의 문제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갖는 과학연구의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미분형과 적분형 연구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형이 있어 보입니다. 필자는 그것을 "미분형"과 "적분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미분형이란 문제의 세부를 캐고 그 세부를 세밀히 추궁하고 분석해 나가는 형이고, 적분형은 이와는 반대로 문제 자체를 넓은 관점에서 두루 살피면서 문제 해결의 방향이나 전체의 정합성을 따지는 형입니다. 즉 전자는 "벌레의 눈", 후자는 "새의 눈"을 갖고 연구하는 형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요. 두 가지 눈을 다 갖는 사람이 정말 유능한 연구자이겠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며, 아무래도 둘 중 어느 하나에만 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는 후자인 적분형입니다. 연구의 전체적 흐름을 살펴 가면서 아직 아무도 미처 생각에 이르지 못한 문제라든가, 앞으로 중요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문제들을 생각해 왔습니다. 즉 개개의 문제를 푸는 재간이 약하기 때문에, 미분형의 연구자와 경쟁하면 아무래도 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미분형의 사람들은 수학적 능력이나 직감력이 강해서 필자는 언제나 그들에게 열등의식을 느끼곤 했습니다. 즉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 필자는 언제나 그 문제를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걸려 도중에서 따라가기가 힘들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일에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만, 사람은 저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길이 다르다는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즉 나에게 알맞은 문제를 찾아내면 된다고 말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이라든가 보는 관점에 관한 이와 같은 두 가지형은 비단 연구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예컨대 반에서 어떤 행사를 할 때도, 공부를 하는 방식에서도 부분을 먼저 정확히 해 두자는 형과 전체를 잘 아우르면서 하자는 형의 두 가지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사람에게는 이처럼 제각기 능한 부분과 능하지 않은 부분의 두 가지가 있으며, 그것은 머리의 좋고 나쁘기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능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가 나쁘다" 고만 제멋대로 생각하고 더 이상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능한 방법이나 방향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문소년 우주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별을 좋아했나요?" 하는 질문을 자주 받곤 했습니다. 실제로 천무학자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망원경으로 별을 쳐다보곤 하다가 그만 계속해서 천문학을 연구하게 된 사람이 많기는 합니다. 따라서 남이 보면 천문학자란 "어렸을 때부터 꿈을 쫓아다닌 행복한 그러나 별난 사람" 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유감입니다만 저는 그런 낭만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도 망원경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별자리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천체물리학자입니다." 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옛날에도 천문소년이 아니었거니와 지금도 천문관측은 전혀 하지 않는 천문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천문학이라 부르지 않고, 천체물리학이라든가 우주물리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있습니다. 제3장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자연과학의 뿌리는 중세의 연금술이나 영구기관의 연구 등 약간 어정쩡한 시도에 있었습니다. 또 자연관찰의 기초가 된 박물학이 집대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별을 쳐다보는 것이 낙" 이라는, 말하자면 박물학적인 흥미는 자연을 연구하는 첫걸음이긴합니다. 하지만 박물학만으로는 사물의 한쪽 면밖에 알 수가 없습니다. 물질 그 자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본질을 파악해낼 기본적 원리나 법칙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물리학(옛날 한때는 궁리학이라고도 했습니다.)적인 눈으로 자연을 되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물리학적 방법에 의해, 다양하게 전개되는 자연현상들이 간결한 원리나 법칙에 의해 이해되고 설명도 되게 됩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물리학적 수법에 따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천체물리학이나 우주물리학입니다. 물론 우주에 관한 관측이 그 기초에 있지만, 책상 위에서 생각할때는 개개의 별이든가 은하 같은 것의 특성을 잊을 채, 그 일반적인 성질 같은 것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사는것이 이 학문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망원경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과학 중에는 큼직하게 현상이나 대상 그 자체에 흥미를 갖고 관측,관찰,실험을 한 후 그 결과로부터 이들 현상의 공통성이라든가 규칙성을 발견해 내는 방법(이것을 귀납적방법이라 합니다)과, 기본적인 원리나 법칙을 써서 추론하고, 구체적인 현상이나 대상에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연역적 방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분야나 연구의 발전단계에 따라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중점이 놓이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설계하는 일을 좋아하는지, 제작하는 일을 좋아하는지, 또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지, 연출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등 말입니다. 물론 두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만 자기의 성미에 어느 쪽이 맞는지, 어느 쪽에 더 능한지는 미리 판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도대체가 실험이 서툴고 주의성도 없고 해서, 직접 자연과 접해서 일하는 분야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된다. 물리학적 방법이란 관측된 현상을 보다 근원적인 물질과 법칙을 써서 이해하려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장 중심적인 연구과제는 물질 그 차제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운동은 어떤 성질의 것인가 하는 것을 연구하는데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거시적(macroscopic)물질은 원자나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라는 기본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등등으로 물질의 구조를 보다 궁극적인 요소로 파헤쳐 나갑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계층(원자,분자 -원자핵-양성자,중성자-쿼크)에 적용되는 운동의 법칙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유카와 히데키박사가 1949년에 원자핵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의 연구로, 토모나가 신이치로박사가 1965년에 빛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로 각각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1963년에 대학에 들어간 필자도 이들 두 박사가 연구했던 소립자물리학이라 불리는 분야에 대해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어쩌면 노벨상을 받을수 있을 것 같은 착각까지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넓더군요. 대학에 들어가 보니 무서우리만큼의 수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그들과는 맞설수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남아서 끝까지 공부는 계속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뜨셔서 가족관계도 홀가분했었고 또 대학 4년간의 연구만으로는 무엇인가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때 필자는 스스로 연구자로서 적절한 소질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해 보지 ㅇ낳았습니다. 그런 것은 실제로 해 보아서 결과가 나타나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지레짐작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지금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것밖에는 없다"고 결정해 버리는 식의 생각도 한편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필자가 선택한 것은 "천체핵물리학"이라는 분야로서 유카와 박사의 제자인 하야시 츄시로 교수의 연구실에 남기로 했습니다. 천체현상에 원자핵물리학적 수법을 적용한다는 새로운 분야로서, 하야시 선생은 세계적으로도 이 방면의 개척자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된다"는 사실에 크게 흥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멀리에 있는 별들은 지구에서는 관측만 할 수 있을 뿐, 그 천체에 직접 가서 되풀이 실험을 해본다거나, 가속기로 그 내부를 조하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의 기본법칙을 결합시켜 엄밀한 논리를 쌓아올려 간다면, 별의 내부상태도 알 수 있게 되고, 또 그 일생도 밝혀 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과학의 힘을 빌림으로써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별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가 볼 수가 없는 데도 마치 별 속으로 들어가 보기나 한 것처럼 그 내부를 알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고백합니다만 필자는 소립자물리학이라는 연구분야에도 미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 진출에는 경쟁률이 높아 도저히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그 당시는 아직도 경쟁률이 낮았던 천체핵물힉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물리학 제국주의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은 "원자력 붐"이 한창인 시대였습니다. 데즈카 오사무(1926년생. 만화를 소설에 필적할 만큼의 예술적 장르로 확립한 전후 일본 만화의 대가. ("철완 아톰(우주소년 아톰)", "정글대제(밀림의 왕자 레오)"등 연재만화는 특히 유명하다)의 "철완 아톰"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 필자는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이나 소련 등에서 잠수함용으로 개발된 원자력발전 방식을 육지로 옮겨와 대형의 원자력 발전소를 개발 중에 있었습니다. "꿈의 에너지"라든가 "무한의 에너지"라는 등의 구호로 원자력 발전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도 여기에 마음이 끌려 한때는 원자력 분야를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성미로 보아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보다는 원리적인 것을 해명하는 쪽에 더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물리학분야로 진학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한편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서는 경제부흥을 위해 "이공계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이학부(이학부란 일본에서 이과대학을 뜻한다)나 공학부(공학대학)가 확장되고, 제조산업 분야로 더 많은 인재를 보내야 한다는 국가 정책때문이었습니다. 필자가 입학한 1963년에는 교토대학 물리학과의 모집정원이 2배로 늘어났습니다.(그 때문에 필자도 입학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실인즉 공화대학 쪽이 압도적으로 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만, 주로 기초과학의 연구를 행하는 이과대학도 커져서 폭넓게 학문분야를 넓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하나가 소위 "물리학 제국주의"의 대두입니다. 물리학은 주로 원자나 원자핵 등 물질의 궁극적 요소라든가 그 운동에 관한 법칙을 탐구하는 분야였습니다만, 이 물리학적 방법을 쓰면 여러 새로운 학문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 예가 생물학입니다. 그 때까지는 현미경을 통한 세포 수준의 연구에 머물러 있던 이 분야에, X선 해석이나 분자역학등의 새로운 물리적 수법이 적용되어 유전자 수준까지로 육박해 들어갔고 드디어는 DNA의 이중나선구조까지도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분자 생물학, 생물물리학이라 불리는 분야가 오히려 생물학 연구의 주류를 이루게 되어, 유전 메커니즘이나 생물진화의 수수께끼를 밝혀 가고 있는 중입니다. 천문학도 또한 물리학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분야의 하나입니다. 그때까지는 눈으로 보이는 빛, 가시광선만을 이용해서 지상에 설치된 망원경을 쓴 천체관측이 주였던 천문학 분야에, 기구나 로켓, 그리고 인공위성을 사용한 대기권 밖에서의 관측이 추가되었습니다. 또 세계2차대전 중 개발된 레이더 기술을 발전시킨 전파관측을 시작으로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X선이나 자외선 또는 적외선에서 전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파장 영역에서 관측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분야의 관측장치나 관측방법은 모두가 물리학자들이 그들의 실험실 안에서 고안해 냈고 또 개발해 낸 것들입니다. 예컨데 신호검출장치를 스스로 개발한 그들은 이것을 망원경과 결부시켜 우주를 관측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옛날 천문학에는 없었던 발상들이었습니다. 천체물리학 등의 성과를 발판으로 해서 별의 구조나 진화를 미시적(microscopic)과정을 통해 해명하는 방법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역시 천체의 위치라든가 운동만을 취급하는 재래식 천체역학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었습니다. 천체의 운동뿐만 아니라, 그 질적 변화 -즉 별의 진화-를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진화"는 천체가 가지고 있던 특징의 하나였던 만큼 이와 같은 물리적 수법이 유효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사회의 동향과 과학 지금까지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의 시대적 배경을 길게 말한 이유는 기초과학일지언정 물리학도 사회의 동향이 크게 반영될 뿐만 아니라, 그 연구의 발전방향이나 분야 확산의 정도도 사회나 시대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연구, 그 자체는 순전히 개인의 일이 될지 모르지만 연구를 진척시켜 주고 있는 환경이라든가 학문의 내용 그 자체는 결코 개인의 의향이나 자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즉 자유의지와 스스로의 흥미에 의해 선택한 연구과제라 할지라도 사실은 주위호나경의 조건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것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한때 공해가 크게 사회문제로 부상되었을 때 화학이나 화학공학을 지망하는 학생수가 격감했었습니다. 또 현재는 원자력 분야도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켜 역시 지망하는 학생수가 줄고 있답니다. 그러나 원자력 붐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다수의 학생들이 쇄도(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이 될 뻔했었습니다만)했고, 석유화학공업이 붐을 일으켰을 때는 화학분야의 지망생이 늘어났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행을 따라 진로 선택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붐으로 많은 학생들이 그 학과를 지망할 무렵이 되면 재미나는 연구나 개발은 대부분 이미 끝나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별 신통한 것이 못되는 것들뿐일 것입니다. 즉 붐이 한창일 때는 누구나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무미건조한 분야만이 남아 있는 법입니다. 사실 인기가 한창일 때가 되면 오히려 자기의 흥미나 과학에의 정열을 불태울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는 법입니다. 한편 그 분야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화되고, 미래가 어두워보일 때야말로 오히려 도전해 볼 만한 과제가 많이 있고, 해 볼만한 재미나는 부분을 담당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자기의 앞날의 진로를 선택할 때는 현재 자기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의 배경을 의식하면서 개인으로서의 연구의욕을 살릴수 있는 분야로 진출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연구와 그 매력 연구라는 일 우주에 관해 연구해 온 지 이미 25년 가까이 됩니다. 이 25년간 필자가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으며, 또 항상 자신이 불충분하다는 불만을 가져 왔습니다. 아마 다른 연구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 많은 논문을 읽을 수 있고 더 많은 문제들을 계산할 수 있고,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자신의 노력에 비례해서 지식이 축적되고, 연구업적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식의 강박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운다고 느끼면 기분이 불안정해지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길게 들이는 것만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는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는 쪽이 기분전환도 되고 보다 신선한 기분으로 과제에 부딪혀 볼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공부할 때도 훈련을 받을 때도 또는 어떤 종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략법을 구상할 때는 과거에 행해진 방법을 살펴보고, 또 직면하고 있는 과제로부터 조금 비껴난 위치에서 냉철하게 생각해 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필자의 동료 중에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과제를 갖고 있다가,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 그쪽이 막히면 다시 원래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연구를 한다는 식의, 필자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을 실행하고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또 막혔을 때 만화책 읽기에 열중하는가 하면 파친코(빠징코)에 몰두하기도 하고 또 등산을 한다거나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기분전환을 시도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필자의경우는 옛날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독서를 기분전환의 한 방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읽는 책은 소설이나 수필 또는 논픽션 등이고 때로는 생물이나 전공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과학분야에 관한 책도 읽고 있습니다.(현재는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이나 잡지의 원고도 쓰고 있습니다만). 과학을 연구하는 즐거움-첫발견을 했을 때의 기쁨 본질적으로 과학연구라는 일은 "쌓아올리기"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연구자들이 해 놓은 성과를 토대로 해서, 그것을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셈입니다. 따라서 "과학의 업적"은 항상 새로운 연구업적에 의해 추월 당한다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어지간히 뛰어난 업적을 제외하고 연구자가 쌓아올린 업적이나 연구성과는 언젠가는 망각되어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보통의 연구자가 겪는 운명이며, 또 그런 연구자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며, 필자가 해놓은 일(업적) 중 후세에 남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을런지 모릅니다. 허무해 보이지만 그것이 과학이라는 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연구를 계속하는 속셈은 아무리 조그마한 업적일지라도 자기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견했다(허풍을 떠는 것 같습니다만)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험가나 등산가가 세계최초를 목표 삼는 것과 공통된 심리입니다. 또 자기의 머리 속에 자연의 한 부분을 깊이 뿌리내리고,, 머리 속으로 자기만이 알고 있는 세계를 전개시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머리 속에서 자유롭게 자연의 모습들을 그려 보기도 하고, 새로운 진화의 시나리오를 써 보기도 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답니다. 이 감각은 예술가가 느끼는 희열과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연구업적의 결과가 잘된 것인지 어떤지를 근심하기에 앞서 현재 부딪히고 있는 힘든 과제나 수수께끼와 씨름한다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것은 열쇠 없이 자물쇠를 열려고 악전고투하는 열쇠공의 심리와도 같습니다. 과학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모두 동일하다. 우주에 관한 필자 본래의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필자는 인접한 다른 과학분야에도 흥미를 갖고, 될수록 그 분야 최전선에서의 연구결과에도 접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전문적 논문을 읽는다는 것은 아니고, 과학학술잡지에 실린 해설이라든가 신서(이 주니어 신서도 그 중의 하나)를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속에는 알기 쉽게 그림도 그려져있고, 또 너무 자세한것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본질적인 것들만이 주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책을 읽으려 하는 목적은 그 과학분야의 최신정보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만, 그 학문분야에서 생각하는 방식이라든가 검토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입니다. 사실 과학의 구조란 어느 분야든 간에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입니다. 예컨대 필자는 과학의 구조를 어떤 자연현상-그 배후에 있는 물질의 운동-그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그 법칙을 관통하는 어떤 원리(또는 가설)라는 도식으로 해석합니다. 좀더 단순화시킨다면 "현상-물질의 운동-법칙"이라고나 할까요. 이 도식을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무엇이 이미 알려져 있고 무엇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또 무엇이 현재 긴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가 등등을 어슴푸레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첨단에서 현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가고 있는 과제일수록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나게 되고,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도 잠시동안이나마 그 문제에 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야에서의 연구를 진행할 수야 없겠지만, 어떤 종류의 접근법이 알맞아 보인다던가 하는 의견만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다른 분야 사람들과 연구의 진행방법에 관해서 논의에 참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장기나 바둑 두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다가 훈수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다만 이런 경우 기본 룰(돌을 움직이는 규칙)과 정석(바둑에서 최선인 것으로 인정되어 온 일정한 수)은 알고 있어야만 참견도 할 수 있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야의 과학에 흥미를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분야에 관한 기본적 원리나 법칙을 알고 있어야 하겠지요. 다행히도 "과학"인 한 어느 분야에서도 그 사고방식이나 연구공략의 방법은 공통한 법입니다. 과학연구는 일정한 구조를 갖고 있으니까 말입니다.(자세하게는 제2장에서 논하겠습니다.) 일단 그 구조를 파악하게 되면, 연구과제에 관한 이해는 간단해집니다. 기초지식의 부족은 있을지언정 큼직하게나마 그 연구 동향을 알 수 있어, 무엇이 그 분야 연구과제에서의 급소인가를 예측할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의 메커니즘, 원자로가 사고를 일으켰으면 원자로의 구조, 핵실험이 실시되면 핵폭탄의 원리, 비행기가 추락하면 비행의 원리 등을 조사해 보고, 그렇게 함으로서 개개의 사건에 관해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문분야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과학(또는 기술)에 관련된 화제에 관해서도 의견을 진술하고, 필요한 비판을 하는 것은 과학의 구조를 우리들 현대인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과계"의 과학에도 사실 위에서 언급한 과학의 구조는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역사나 경제 또는 정치나 사회에 관한 현상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연현상과 인간의 행위는 서로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기는 합니다. 즉 자연현상은 물리법칙에 따라 정해진 운동을 하게 됩니다만,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어 변덕,반항,동정,사랑,원한 등등 때문에 미리 정해진 어떤 법칙대로는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해가 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불리한 방향으로 행동하는가 하면,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해 판단을 잘못하기도 하는 등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원리(유리하게 된다,이득을 본다,정상적으로 판단한다 와 같은)를 적용시킬 수가 없습니다. 추리소설에서는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합의에 의해서 결국 범인을 찾아내기에 이르지만, 이 세상이란 추리소설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미궁에 빠지는 사건도 많은 법입니다. 인간에 관련된 개개의 사건을 보는 한 법칙성 같은 것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살펴본다던가, 수없이 많은 사례를 모아서 관찰한다면, 사회나 역사에서도 일정한 법칙성이 보이게 됩니다. 즉 개개의 인간은 변덕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대국적으로는 인간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최종적으로는 "행복"을 위해서라던가, "유리" 해지기 위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나라,지역,학교,회사 등등)이 되면 그런 경향은 더 짙어지게 될 것이지요. 집단을 유지하는 원리가 개인의 감정보다도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나 경제의 움직임도 어떤 원리 밑에 어떤 행동(운동)을 취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현상)가 되었는가 하는 식의 도식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문과계열의 분야에 관한 현상이라 하더라도 자연과학과 공통된 구조, 즉 "원리-운동-현상"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이들 학문을 사회과학이라든가 인문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만 간파할 수 있다면 사회나 역사를 하나의 체계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의해 필자는 이들 분야의 책도 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과계"의 입장에서 의견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부러 "이과계의 입장에서"란 단서를 붙인 것은, 문과계 학문의 경우에도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의 중요성과, 그 구조 자체의 변화를 파악해 내는 것, 그리고 그때 그때의 문제에 따라 원리나 법칙에 적용한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연과학의 경우 원리나 법칙은, 최종적으로는 자연현상 자체에 의해 실증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들 원리나 법칙이 반증(즉, 현상과 모순)되는 경우 그 원리나 법칙은 바뀌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경우 실증도 반증도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든가 "나는 이렇게 믿는다"라는 말로 끝을 맺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의논해 보았자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그것이 "과학"이라 불리울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만, 필요한 것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뚜렷이 판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사회과학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게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 미시적(microscopic) 원래의 뜻은 현미경적이란 뜻이며 극미 세계를 형용하는 말. 미크로 또는 마이크로라고도 함. 분자,원자,소립자 등 물질의 궁극적 구성요소를 본질적인 것이라 보는 입장에 섰을 때의 대상 또는 상태를 형용하는 말. 예컨데 물질의 성질을 그 구성입자인 원자나 분자 등의 운동에 의해서 이해하려는 입장을 미시적이라 부르며, 구성입자의 기하학적 배치, 역학적 운동상태 등을 미시적 상태라 부른다. 미시적 상태를 나타내는 양을 미시적 양이라 한다. 엄격하게는 우리가 대상을 관측할 때 그 관측이라는 조작이 대사에 영향을 미칠때 이 대상을 미시적 대상이라 부르며, 관측 조작이 대상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간주될 때 이 대상을 거시적 대상이라 부른다. 거시적(macroscopic) 마크로라고도 한다. 우리들 인간의 감각으로 직접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적 크기와 시간적 계속 및 에너지의 크기들을 갖는 대상이나 현상 또는 상태를 형용하는 말. 미시적(미크로 또는 마이크로)에 반대되는 말. 직접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의 압력,체적,온도 등등의 양 또는 그로부터 유도되는 양을 거시적 양이라 한다. 또 거시적 양에 의해 정해지는 상태를 거시적 상태라 부른다. 거시적 양은 이에 대응하는 미시적 양의 통계적 평균치로 간주된다. 경제학에서도 이들 말들을 끌어와서 미시경제학(기업의 합리적 경제 활동의 분석 등이 기본). 거시경제학(국민총생산,투자,저축,일반물가 수준 등과 같은 집계개념을 써서 사회 전체의 마크로적 경제활동의 법칙성등을 주안점으로 함) 이론 등을 전개하고 있다. 귀납적방법과 연역적방법 개별적으로 관찰된 사례 또는 실험 결과로부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방법을 귀납적 방법(induction)이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일반적인 명제로부터 특수한 명제(또는 추상적 명제로부터 구체적인 명제)를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에 의해서만 유도해내는 방법(deduction). 대표적인 예로 삼단논법이 있다. 양자역학 원자,분자,소립자 등 미시적인 대상을 다루는 물리학 이론체계의 하나. 거시적인 대상을 다루는 고전 역학과는 달리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빛이나 물질입자 등 미시세계의 대상물들을 이중성(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특이한 성질을 갖는다. 이 이중성의 인정을 그 기본원리로 삼고 불확정성원리, 에너지나 운동량 등의 양자화(연속적인 값을 갖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떨어진 값을 갖는 것을 양자화라고 한다) 등 주용개념을 중심으로 풀 수 없는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물리학 분야가 양자역학이다. 이중성(duality, dualistic nature) 빛 또는 전자나 양성자 등 소립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이라는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그러나 상보적(complementarity)인 두 성질을 겸해서 갖고 잇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입자의 가장 뚜렷한 성질은 그 하나 하나를 셀 수 있다는 것인데(countablity), 파동은 연속되어 퍼져나가기 때문에 구별하여 셀 수가 없다. 이렇게 입자성과 파동성의 속성은 서로 모순되어 있는데도, 여러 가지 실험 사실로 보아 빛이나 전자 등은 이 두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 따라서 입자성이나 파동성의 어느 한 가지 성질만으로는 빛이나 전자들이 활동하는 미시세계를 올바르게 기술할 수가 없다. 이런 이중성을 인정하는 것을 토대로 만든 새로운 물리학 분야를 양자론 또는 양자역학이라 한다. 제2장 과학과 과학적 사고방식 과학의 출발점 과학은 자연현상의 관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대의 토기나 동탁(종 모양의 청동기, 제사 때 악기로 사용했다고 함)에 새겨진 문양을 잘 살펴보면 갖가지 형상의 소용돌이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모양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용돌이의 방향이 같은 방향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쌍을 이루어 그려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또 그 소용돌이가 쌍을 이룬 경우에도 오른쪽 것이 시계바늘 방향이고 왼쪽 것이 시계 반대 방향인 것과, 그 반대로 오른쪽이 시계 반대 방향, 왼쪽이 시계 방향인 것의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다음 도감을 보거나 박물관 견학을 갔을 때 확인해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는 우리 주변 어디서 관찰될 수 있을까요? 유명한 곳은 나루토 해협(일본 오사카 시 서쪽 아와지 섬과 시코구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의 소용돌이이지요. 그 외에도 태풍이나 용오름(육지나 바다에서 일어나는 맹렬한 바람의 소용돌이)의 소용돌이, 굽은 제방의 가장자리를 흐르는 물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 다리의 교각 뒤에서 생기는 소용돌이, 입에서 내뿜어진 담배연기의 소용돌이, 인공위성에서 찍은 거대한 구름이 만드는 소용돌이 등 갖가지의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가 도는 방향까지도 세밀히 들여다 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고대의 사람들은 그 소용돌이가 도는 방향까지도 세밀히 관찰하고, 그것을 문양으로 새겨 놓았던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이 살았던 사회에서는 태풍, 해협을 흐르는 센 물결, 용오름 등등 난폭한 자연에 의해 집도 날아가고, 어린아이가 급류에 휘말리기도 하는 등 피해를 입었던 관계로 아마도 소용돌이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학의 출발점은 이처럼 우선 자연현상을 자세히 관찰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관찰이란 "주의해서 자세히 살펴보는것"을 뜻합니다. 막연히 보면 별 차이점도 없어 보이던 현상도 주의해서 자세히 관찰하면 소용돌이의 도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또 매일 매일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런 일을 끈기 있게 계속하면 거기에 무엇인가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라도 많이 모아서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된 성질(소용돌이가 형성된다는 사실), 서로 상이한 성질(소용돌이가 도는 방향), 변화해 가는 성질(강물의 유속과 소용돌이 수의 증감) 등등 여러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같은 관찰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현상이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규칙성에 따라 일어나며 몇 가지의 단순한 패턴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성립될수 있는 최대의 근거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현상의 성질을 관찰하고, 그 규칙성을 기술하는 것을 "정성적 연구" 라고 합니다. 박물학은 말하자면 정성적 연구의 집대성으로서, 사람들에겐 자연의 풍성함을 실감시켜 주는 대표적 예였던 것입니다. 초등학교의 자연공부도 바로 이것을 목표로 교과과정이 짜여져 있어, 여러분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 "자연"공부를 좋아했던 분들도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관찰에서 관측으로 관찰을 한층 더 진전시킨 것이 관측입니다.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갖가지 성질을 자세히 살펴볼 뿐만 아니라 측정 즉, 어떤 종류이건 간에 적적한 눈금 곧 척도를 정하고 그 척도를 써서 현상의 성질을 수치화하는 작업 말입니다. 예컨대 소용돌이의 경우라면 소용돌이의 크기,회전속도,발생빈도,소멸할 때까지의 시간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려면 측정에 쓰이는 척도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척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척도(단위)는 아시다시피 크기(길이),질량(또는 무게),시간이겠지요. 예컨대 시간의 경우라면 별의 움직임, 달의 참과 이지러짐, 지면에 세운 막대 그림자의 길이라든가 방향 등을 관찰하고, 손가락을 꼽아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의 횟수를 셈하고, 한 해, 한 달, 하루 등등의 시간의 척도를 정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잇겠지요 기원전 약 4천년 경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의 여러 성질을 어떤 정해진 공통된 단위를 써서 재고 수치화하는 것을 "정량적 연구"라 합니다. 이처럼 공통된 단위를 써서 재면,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잰 관측결과도 객관성을 띠게 되어 서로 비교도 할 수 있고 정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 변화의 크기나 차이의 크기가 정확하게 정해질 수가 있어 현상에 대한 계통적 기록이 가능해집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수식을 써서 표현된 법칙과의 대조도 가능해집니다. 설사 법칙이 아직 발견되어 있지 ㅇ낳더라도 그 데이터 들이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가를 추측하기가 쉬워집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이과에서는 이화 같은 정량적 기술법을 배우게 됩니다. 사실 왜 그렇게 수식화되는지, 그리고 그 수식화에 의해 무엇이 밝혀지게 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한 이과 과목은 별로 재미가 없을러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어쩌면 이과를 싫어하는 학생수가 늘어나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천체처럼 아주 먼 곳에 있어서 손이 가 닿지 않는 현상의 경우에는 오루지 망원경을 써서 관측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관측결과를 정확하게 절량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망원경을 크게 만들어 그 관측의 정밀도를 올리고, 또 대기권 밖으로 나가 측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지금 우리들의 머리위 오백킬로미터 상공에는 지금 이점오미터의 망원경을 실은 인공위성이 돌고 있습니다. "허블(Hubble) 우주 망원경"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우주 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별들의 정밀한 영상을 보내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자연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에 관한 갖가지 정보를 자세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의 진보가 중요합니다. 관측에서 실험으로 한편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관해서는 한층 더 고도화된 실험이란 것을 행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조사하고자 하는 자료를 새로 제작도 하고, 환경조건을 정비도 하고,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데 기여하는 상호작용에 대한 반응 같은 것 등등을 측정해야 합니다. 즉 관찰이나 관측이 수동적인데 반해서 실험의 경우에는 자연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동이 필수적입니다. 즉 이런 식의 실험을 행하면, 자연계에 이미 존재해 있던 물질이건 사람의 손에 의해 합성된 물질이건간에 그 물리적 성질(물질의 조성이나 운동양식, 열적,전기적,자기적 성질 등)이나 화학적 성질(어느 한 화합물의 다른 물질에 대한 반응성)을 총체적으로 조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쓰면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알아낼 수 있게 되고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밝혀 낼 수 있게 되고, 또 우리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갖가지 생산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예컨대 약품이나 반도체 소자 등), 지구나 생명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갈 수도 있게 됩니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갈라 주는 열쇠 실험에 관해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점은, 그 실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꼭 같은 실험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재현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조건하에서 주어진 물질과 방법을 써서 실제로 다시 해 본 결과 누구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실증성을 통해서 "과학의 객관성"이 보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험에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점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실험을 하고나면 반드시 실험에서 사용된 자료 또는 시료,실험조건,실험결과를 정확히 기술한 논문이 발표되거나 또는 실험절차를 적은 공책이나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누구나 추시(확인 실험)를 해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과학과 사이비 과학 사이를 엄준하게 갈라 주는 열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저 유명한 고온초전도에 관한 논쟁의 경우, 세라믹스를 액체 헬륨으로 냉각시키면, 여태껏 알려져 있지 않았던 비교적 고온에서도 초전도 상태(전기저항이 영이 되는 상태)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1986년 뭘러(Karl Alex Muller, 1927. 4. 20 ~ )와 베드노르츠(J. Georg Bednorz, 1950.5. 16 ~)에 의해 실험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발견 소식은 눈 깜박할 사이에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졌고 세계의 여러실험실에서 추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용된 자료를 개량하면 더 높은 온도에서도 초전도 상태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발견자들은 1987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실험결과를 정확히 공표먼 한다면, 곧장 그것이 세계 여러 곳에서 즉시 추시로 확인이 되어 더 한층 연구가 진전된다는 좋은 예였던 것입니다. 이와 정반대인 경우가 정식 논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으로 발표된 "상온 핵융합"의 경우입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통상적으로 핵융합은 온도가 적어도 1천만도를 넘는 상태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되고 있었는데, 실온에서 중수소를 포함한 물을 파라듐을 전극으로 써서 전기분해를 시키면 핵융합이 이루어진다는 믿기 힘든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던 것입니다. 그 기자회견에서는 특허를 신청한다는 미명하에 그 실험에 관한 상세한 데이터는 발표되지 않았고(잘못이 수두룩이 들어 있는 짧은 논문이 쓰여졌을 뿐), 실험설비도 곧장은 공개되지 않았었습니다. 이렇듯 얼마 되지 않은 정보만 갖고 세계의 연구자가 곧장 추시를 해보았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의 연구팀들은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고, 동일한 결과를 재현시켰다고 주장한 연구팀은 단 1회에 그쳤거나 형편없는 계측을 했었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결국 "상온 핵융합"은 일어나지는 않았고 그 발표내용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누구나가 재실험을 통해 재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야말로 과학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따라서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는 행할 수 없는 초능력 같은 것은 절대로 과학의 범주 안에는 넣어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라는 의문을 항상 품어 보아야 한다. 관찰,관측,실험에 의해 정성적이건 정량적이건 자연현상에 규칙성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면 누구나 다 왜 그런 규칙성이 있게 되는지를 묻게 됩니다. 필자의 아들 하나가 3살 때쯤 되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수상쩍게 여겨졌는지 "왜?","왜?"를 연발하여 필자를 난처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그 때 그 질문을 받고 난 필자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고 그 질문에 답하여 설명하기가 매우 힘든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이상히 여기고 "왜?"라고 묻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특징지어 주는 호기심이었던 것입니다(물론 무엇이건 그 냄새를 맡아보군 하는 우리 집 강아지에게도 호기심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논리적으로 순서 세워 계통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 인간뿐일 것입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들은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 신화 속에는 이 세상(우주)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인간은 누가 창조해 냈으며, 또 그 민족의 제사는 언제 시작됐는가? 하는 세 가지 주제가 반드시 들어 있다고 합니다. 우주,인간,문화의 기원이 바로 이 신화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컨데 일본의 신화인 고지키속에는 "해삼은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하는 유쾌한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신화는 "왜?"하고 물어 오는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참고서였을런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왜냐?"라는 물음은 인간이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때(두 발로 서서 다니기 시작했을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에 있어서도 과학 하는 마음의 본질이 "호기심"에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언제나 해명하기 힘든 수수께끼나 풀기 힘든 문제에 대해 항상 "왜냐?"고 물어 보고, 그것을 해명해 내려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그런 "왜?"라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그러하니까 그렇다(본성론), 예컨대 중세 스콜라 학파 사람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는 따위의 대답)"라는 식의 대답을 하거나, "그렇게 되도록 신이 결정하였으니까 그렇다(신학),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답변)"라는 식으로 대답한다면, 그것은 진짜 답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안타깝게도 세상의 아빠,엄마들은 어린이들의 물음에 대해 그런 시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지만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한 열쇠-물질의 역할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답하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까요? 물론 문제마다 그 답은 제각기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먼저 "그 문제에는 어떤 것 또는 어떤 물질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자연현상에는 물질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그 문제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물질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그 문제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가를 특정(identify)하는 일이 우선 제일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 문제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상이 그 물질의 성질에 의한 것인지 또는 그 물질의 운동이나 변화에 의한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또 때로는 그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것까지 생각해 보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연구란 결국 이런 여러 단계를 거쳐가면서 무엇이 결정적으로 중요한가를 찾아내고 그 이유를 밝히고, 실험 결과나 관측결과를 재현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식칼로 야채나 생선을 자르는 장면을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도 수많은 "왜냐?"라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야채나 생선의 종류에 따라 식칼의 무게나 칼날의 모양도 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고기나 생선은 식칼을 잡아당기면서 자르고, 야채는 눌러서 자릅니다. 왜 그럴까요? 둔한 칼날을 갖고 있는 식칼로 자르면 맛이 없어진다는데 정말일까요? 식칼이 잘 들지 않게 되었을 때 숫돌에 갈면 왜 잘 자를 수 있게 될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는 식칼 자체가 무슨 물질로 되어 있는가(철이나 스테인레스이냐에 따라 굳기나 칼날의 모양 또는 녹이 잘 스는지 아닌지가 달라집니다), 식칼의 칼날은 어떤 각도로 되어 있는가(자르려고 하는 재료의 단단한 정도나 마찰과 관계됨), 잘랐을 때 잘린 재료의 세포는 어찌 되었는가(세포를 파괴시키지 않는 쪽이 보기도 깨끗하고 맛이 좋다), 숫돌로 갈면 칼날은 어찌 되는가(예리하게 칼날이 서게도 할 수 있고, 톱니 모양의 미세한 울퉁불퉁한 모양으로도 갈 수가 있다)등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자른다는 현상 하나만 해도 식칼과 재료라는 물질의 성질, 칼날의 운동, 세포의 화학반응 등등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자른다" 라는 간단한 현상인데도 이처럼 많은 "왜냐?"라는 문제가 얽혀 있었던 것이다(위에서 말한 마찰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 현상 중에는 뜻밖에도 그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왜냐?"에 대해서 대답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가면서 "왜냐?"에 대해 대답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생각해 본 일은 없으신지요? 물질과 그 운동-환원주의 위에서 "왜냐?"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는 어떤 물질이 그 문제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운동을 하며,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더라도, 기본적인 부분에서 작동하고 있는 요소들은 단순하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보다 더 기본적인 물질이랄까 요소로 되돌아가 생각한다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잘 알아낼 수 있고 또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 하는데, 근대과학은 이 환원주의의 방법을 적용시킴으로서 성공을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거시적 물질은 분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분자는 원자들의 결합으로 되어 있고, 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되어 있습니다. 현상에 따라 분자의 단계에서 생각하기도 하고(세포의 환원반응), 원자의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칼날의 구조나 굳기도)해서 그 성질을 조사하고, 일어나는 현상의 원인을 밝혀 주자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물질에 관한 현상도 원자나 분자의 운동이나 변화를 써서 설명이나 이해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 요소가 될수록 그 구조나 운동도 단순해지고 또 분석하기도 쉬워지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환원주의적 방법에 의해 전자기술 혁명이 달성되었고, 생명을 유전자 수준에서 해명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환원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그러나 환원주의가 반드시 만능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더 기본적인 물질이나 요소 및 그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도 하나도 단순해지지 않거니와 이해하기도 쉬워지지 않는 현상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진과 같은 파괴현상, 날씨와 같이 공기와 수분(물)과 일조량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나는 현상, 물이나 공기의 흐름이 일으키는 난류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일반적으로 "비선형현상"이라 불리며, 집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이와 같은 계에서는 우연이라든가 요동이라 불리는, 우리들로서는 예측도 제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결과를 크게 바꾸어 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환원주의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원적인 물질이나 요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현상 자체가 꺼져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전되어 온 근대과학은 실인즉, 환원주의에 의해 해결되는 문제민을 취급해 온 것이었으며, 환원주의로 해결될 수 없는 위와 같은 비선형 문제들을 일부러 피해 왔다고 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제4장에서 언급하게 되듯이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최근 10년 사이에 그와 같은 비선형 문제도 물리학의 대상으로서 정력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를 공략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물질의 운동이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니만큼, 그 현상 안에 어떤 법칙성이 관철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조사한다는 관점은 동이랗기 때문입니다. 물리 법칙의 구조 물리학이나 화학을 공부하다 보면, 원리,가설,법칙,보존칙등 알기 힘든 여러 가지 술어가 나와 혼란을 느끼는 사람도 잇을지 모릅니다. 예컨대 지금까지 갖가지 경험이나 실험을 토대로 갖가지 규칙성이 발견되는 데 따라 그 규칙성에 대해 "xx의 원리"라든가 "xx의 법칙"등등의 이름이 역사적으로 붙여졌기 때문에 원리나 법칙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과 어긋나 있는 예가 많았던 것입니다. 이 절에서는 먼저 이 술어들의 뜻부터 정리해 두기로 하겠습니다. (1)원리,가설 "원리"란 물리학에서는 "경험에 의해 틀림없이 옳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것이 옳다고 엄밀하게 증명할 수 없는 가정"을 뜻합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거시적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고 있는 뉴턴 역학에서는 "좌표계가 어떤 종류의 운동을 하고 있든 간에 모든 좌표계에서 시간은 공통하다"라는 원리가 채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절대시간"이라 부릅니다. 즉 이 우주에는 시간이 하나뿐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3.14~1955.4.18)은 이 원리를 "빛의 속도는 광원의 운동상태와는 관계없이 언제나 일정하다"라는 "광속불변의 원리"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특수 상대성 이론"을 건설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은 좌표계마다 달라도 좋다라는 "상대시간"이란 개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여러가지 실험의 결과 실제로 시간은 절대적이아니란 것이 밝혀져, 뉴턴 역학보다 특수 상대성 이론 쪽이 옳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다만 빛의 속도에 비해 충분히 느린 운동에서는 지금도 뉴턴의 역학은 맞는 이론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든가 "파스칼의 원리"라 할 때의 원리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원리는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이 두 원리는 뉴턴의 역학을 써서 증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원리들이 발견된 당시에는 증명될 수 없는 근원적인 원리라 생각되었겠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역학을 간단히 응용하면 이끌어낼 수 있는 결과였던 것입니다. "가설"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미리 세워 두는 가정"을 뜻합니다. "가정"이란 뜻에서 본다면 원리와 동일하지만 그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신뢰도나 적용범위는 크게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어떤 물리과정이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현상 때에 나타나는 것인지에 관해 나름대로의 가정을 이것저것 세워 가면서 연구를 진척시키는 법입니다. 그러니 항상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기도 하고 변경도 하는 것이 연구의 본질이라고도 할수가 있습니다. 물론 원리이건 가설이건 경험사실 또는 실험 사실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 그것을 내버리거나 변경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2)법칙 "법칙"이라 불리는 여러 물리량 사이의 상호관계를 나타내주는 명제 중에는 여러 가지 수준의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그 첫째 종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든가 "쿨롱의 법칙"또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법칙(전기를 띠고 있는 전하에는 음과 양이 따로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나 자기를 띠고 있는 자하에는 남극과 북극이 반드시 쌍을 이루어 자석과 같은 형태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법칙)"과 같이 실험에 의해 얻어진 법칙입니다. 이런 종류의 법칙을 "물질 상호간에 작용하는 힘의 법칙(A)"라 부르기로 합시다. 이런 종류의 법칙(A)는 그 모드가 실험적으로 좌해 본 결과 틀림 없다는 것이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만유인력이나 쿨롱의 힘이 왜 거리의 제급에 반비례하는지, 그리고 정말로 이승인지, 또 1.9999...승일는지는 증명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법칙도 "원리"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옳은 것이라 가정을 하고 잇는 것입니다. 그 다음 종류의 법칙은 예컨대 "뉴턴의 운동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중력의 법칙(일반상대성 이론)"등이며, 원리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물리량 사이의 관계를 뜻합니다. 원리를 가장 충실하게 적용시켜 여러 물리량 사이의 관계로서 표현한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와 동시에 이런 종류의 법칙은 다음에서 설명하게 될 보존칙을 만족시키도록 법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법칙을 "운동의 법칙(B)"라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원리가 증명될 수 없는 만큼 이런 종류의 법칙도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또 원리가 같으면서도 성격이 다른 또 다른 법칙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어느 쪽이 맞는지를 역시 실험을 통해서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뉴턴의 운동의 제2법칙(물질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은 그 물질에 걸어 준 외려과 같다)"을 다른 법칙으로 변경하려고 시도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주와 같은 큰 규모의 공간이나 장에서는, 힘의 법칙이 다른 종류의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가 제안해 놓은 우주방정식에 제멋대로 추가항을 하나 더 첨가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뒤에 가서 아인슈타인은 "내 생애 최대의 실패작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종류에 들어가는 법칙도 있습니다. 이 법칙 역시 경험에 의해 얻어지는 법칙이긴 하지만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예를 든다면 "케플러의 법칙"이라든가 화학에서의 "정비례의 법칙" 또는 "배수비례의 법칙"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케플러의 법칙은 뉴턴의 운동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써서 완전히 증명될 수 있는 법칙입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화학의 법칙도 화합물이 어떤 원소로 되어 있는가를 알수만 있다면 간단히 증명됩니다. 이런 종류의 법칙은 경험에 의해 얻어진 규칙성을 법칙이라고 고쳐 불렀을 뿐이며, 앞서 말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와 같은 수준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법칙을 법칙(C)부르기로 합시다. (3)보존칙 시간과 더불어 물리적 상태가 변하더라도(그 형태가 바뀌더라도) 그 상태에 관여된 어떤 물리량의 전체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법칙입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에너지 보존칙"입니다. 이 이외로 운동량,각운동량(어느 점 또는 축 둘레를 운동(회전)하는 물체의 운동량과 그 점까지의 거리를 곱한 양)등도 보전된다는 것이 경험상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보존칙도 우선은 경험을 기초로 해서 발견된 법칙입니다. 그런데 뉴턴의 운동 법칙은 에너지,운동량,각운동량이 보존되도록 구성되어 있거든요(그렇다고 해서 뉴턴의 운동법칙으로부터 보존칙이 유도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보존칙이 공간이나 시간의 성질과 관련되어 있따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만약 시간의 흐름이 일양(언제나 같은 비율로 시간이 흘러 간다, 즉 시간의 원점을 어디에 두어도 시간은 동일하다라는 뜻)하기만 하다면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이 증명이 됩니다. 또 공간이 일양(어느 곳에도 특별한 장소는 없고, 공간에 어느 점도 동일한 성격이며, 어느 점을 원점으로 택해도 된다는 뜻)만 하다면 운동량은 보존되며, 공간이 등방(어느 방향도 같은 자격, 즉 어느 방향으로 X축,Y축을 택해도 좋다는 뜻)만 하다면 각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시간의 일양성이나 공간의 일양성 및 등방성은 경험적으로 ㅇ라려져 있었으므로 이것을 원리로 삼는다면 보존칙도 증명될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물리법칙들은 경험(실험적사실)을 그 기초로 하며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즉, (1)실험사실을 만족시키는 원리나 힘의 법칙(A) (2)원리를 나타내며, 보존칙을 만족시키고 있는 운동의 법칙(B) (3)원리나 법칙(A)(B)를 쓰면 증명이 가능한 법칙(C) 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추가해서 (4)시간이나 공간 구조가 기초가 되어 있는 보존칙 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배워 온 원리나 법칙(1)에서 (4)중 어느 것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요? 자기 스스로 지금까지 배워 온 원리나 법칙을 분류도 해 보고 정리도 해 본다면, 물리학이나 화학이란 학문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머리에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과학연구를 추진시키는 방법 과학의 방법-실험 그렇다면 실제로 과학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어 가고 있을까요? 자연과학은 물질의 운동과 그 성질을 밝혀 나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우선 그 대상이 되고 있는 물질을 관측하고 실험해 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됩니다. 이 경우 어떤 수단으로 어떤 물리량을 측정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맑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됩니다. 또 물질 자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 물질의 성질(비열이라든가, 전기저항 등등)이 온도나 자기장의 세기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가, 그리고 다른 화합물을 첨가했을때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 그 반응의 속도는 첨가된 화합물의 농도나 온도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등등. 무엇을 밝혀 낼 것인가 하는 목적에 따라 실험자료나 실험수법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 어느 하나에서건 새로운 고찰을 해내서 게계 최초의 실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 연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원입니다. 실험자료와 실험수법 우선 실험자료에 관해서 말씀드린다면 얼마나 순수한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퀴리 부인은 겨우 1g도 될까말까 하는 라듐을 입수하기 위해 수t이나 되는 콜타르를 화학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또 어떤 연구자는 겨우 수mg의 호르몬을 추웇ㄹ하기 위해 몇천 마리의 돼지 뇌수를 모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크고 순수한 결정을 만들거나, 천연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물질을 새로 합성해 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방법으로 실험자료를 준비하는가가 실험을 성공시키는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 실험방법으로는 이미 확립되어 있는 장치를 쓰는 경우도 있고, 새로이 스스로 고안해 낸 장치를 조립해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확립되어 있는 장치를 쓰는 경우에는 실험결과 자체에는 신뢰가 가나 실험자료에 대해 새로운 고안을 하지 않는한 세계최초의 측정이 되기는 힘들겠지요.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실험에 쓰일 자료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 실험을 해 본다거나 또는 온도나 압력 등으 ㅣ물리환경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면서 조직적이고 계통적으로 상세한 측정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환편 여태껏 아무도 측정한 일이 없는 물리량의 실험을 행하기 위해서는 장치의 설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경우에는 시판하고 있는 장치가 없는 만큼 모든 장치를 손수 만들어야 될지도 모릅니다. 전자현미경이나 레이저 등 새롭고 유력한 실험장치를 개발해 냄으로써 노벨상이 수여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은 그때까지는 연구될 수도 없었던 새 영역을 개척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대규모의 실험 또 현재 세계 여러 곳에서는 입자가속기 실험처럼 몇 백명이나 되는 연구자가 모여서 하는 대규모의 실험을 포함하는 빅 사이언스(Big Science)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대규모가 아니더라도 5 ~10명 정도가 모여서 하는 공동연구는 어느 분야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즉 실험자료,장치개발,결과의 해석을 팀을 짜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개개인은 실험의 일부만을 담당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실험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야구나 축구와 같은 집단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해 가면서 자기가 맡은 바 어느 한 분야를 확실하게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집단실험의 경우는 가장 약한 부분의 수준이 전체적 결과의 수준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매우 조그마한 고안이라 할지라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때가 많습니다. 필자는 실험이 서툴러 자기 스스로 실험을 한 경험은(학생 때 행한 실험 이외에는)없습니다. 그러나 실험을 함으로써 직접 자연현상이라는 대상에 부딪쳐 본다는 실감은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실험이 시작만 된다면 몇 시간이라도, 그리고 때로는 며칠씩이라도 철야를 하면서까지 실험을 계속하는 에너지가 솟아오르게도 되는데, 이것은 자기가 지금 자연과의 대결을 벌이고 있구나 하는 충족감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험악한 기상조건 아래서 야외조사라든가 야외채집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자연 그 자체에 대해 몸소 부딪쳐 보겠다는 의욕 때문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역사가 인각되어 있는 지층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오랜 세월 동안 숨겨져 있던 화석을 발견도 하고, 생물의 생태를 직접 관찰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찰이나 실험의 누적이야말로 과학의 초석임을 잍어서는 안됩니다. 과학의 추진법-이론 과학이론의 목표는 실험에 의해서 밝혀진 자연현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어느 물질의 어떤 성질이 중요한가를 밝혀내고, 그 현상들을 더 기본적이고 더 단순화된 원리나 법칙에 의해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을 갖고도 완전설명이 불가능해져서 모순이 남게 되는 경우에는 그 때까지의 사고 방식을 과감히 내버리고 새로운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이론가란 현상과 원리를 연결시켜 주는 중매역할을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론적 연구는 자연현상의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패턴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모형을 만든다 지금까지의 이론으로는 예측조차 못하는 새 현상이 발견되는 경우, 과학자들은 우선 그 현상을 재현시켜 줄 수 있는 간단한 모형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모형은 우선 재래의 이론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해 낸 것일 것이므로 적용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간단한 모형을 갖고도 어떤 물리과정이 중요하며, 문제 삼고 있는 대상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에는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모형이 단순하면 조사해 보기도 쉽고, 물리적인 예측도 세워 보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금세기 초 원자나 전자 등 미시적 세계의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 그 때까지의 뉴턴 물리학을 갖고는 이해하기 힘든 모순되는 현상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문제가 되었던 것은 원자가 양의 전하를 갖는 부분(당시는 아직도 그것이 무엇이며 어떤 크기의 것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과 음의 전하를 갖는 입자(전자라고 명명되었었습니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까지는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이들 입자들이 어떤 배치를 가지며,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던 점입니다. 영국의 톰슨(J. J. Thomson, 1856. 12. 18 ~ 1940. 8. 30)은 이때 건포도빵 모형을 제안했습니다. 양의 전하를 갖는 부분이 빵이고, 그 안에 음의 전하를 갖는 전자가 건포도처럼 산재해 있다는 모형이었습니다. 한편 일본의 나가오카(1865. 8. 18 ~ 1950. 12. 11.)는 1903년에 태양계 모형을 제안했습니다.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태양의 위치에 양의 전하를 갖는 입자가 있고, 음의 전하를 갖는 전자가 행성처럼 그 주변을 돌고 있다는 모형입니다. 이렇게 우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나 현상에서 단순한 모형을 고안해 내고, 다음으로 원자에 다른 입자를 충돌시켜 이 입자가 어떻게 산란될 것인가를 살펴보면 앞의 가설들이 맞는지 검증해 볼 수 있겠지요. 이론을 실험치와 비교해 본다면 어느쪽 모형이 더 현실에 가까운지 판단될 것입니다. 실제로 1911년에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 8. 30. ~ 1937. 10. 19)는 이론적 계산과 산란실험의 결과를 비교해 본 결과 나가오카의 모형이 더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밝히고,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양의 전하를 갖는 입자를 원자핵이라 명명했습니다. 모형과 가설 이렇게 해서 일단 원자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가가 알려지면, 이번에는 그 구조를 갖고 있는가가 알려지면, 이번에는 그 구조 안에서 구성입자들이 어떠한 운동을 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에도 모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가오카 모형을 쓰면 전자가 행성처럼 운동을 한 다 할때 어떤 파장의 및을 내는가가 계산됩니다. 이 계산치가 만약 실험치와 일치한다면 나가오카의 모형은 맞는 이론이 됩니다. 그러나 그 값은 그때까지 알려진 실험값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전자는 빛을 계속 방출만 하다가 마침내 원자핵에 잡혀 잡혀 버린다-즉 원자는 눈 깜박할 사이(십의 마이너스십이승초 이하의 짧은 시간)에 붕괴되어 불안정해진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큰 모순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는 물론이려니와 우리들의 몸도 모두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언자가 붕괴되지 않고 안정한 상태로 있으니까 우리몸도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덴마크의 닐스 보어(Niels Henric Kavid Bohn, 1885. 10. 7. ~ 1962. 11.18.)는 "양자가설"이라 불리는 새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전자는 어느 정해진 에너지(양자)상태에만 있을 수 있고, 두 양자 상태 사이를 오갈 때에만 빛을 방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양자 상태에 있을 때 이 원자는 빛을 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실험과도 일치했기 때문에 가설이라 불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모형이 실험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적절한 가설을 새로이 채택하여 그 모형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그 모형이 실험과 일치되도록 고쳐 나가기도 합니다. 물론 때로는 모형 자체를 변경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때 유카와(1907. 1. 23. ~ 1981. 9. 8.)가 원자핵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힘(핵력)을 운반 또는 매개해 주는 입자로서 파이 중간자란 입자의 존재를 예언했습니다. 이 역시 처음에는 모형으로서 제안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우주선 입자 속에 파이 중간자 비슷한 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입자는 유카와가 예언한 수명은 갖지 않았고, 또 핵력을 매개하는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카타(1911. 1. 18. ~ 1970. 10. 16.)는 중간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2중간자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유카와가 예언한 파이 중간자 이외에 그것이 분리되면서 생겨나는 제2의 중간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우주선에서 발견된 입자는 이 제2의 중간자(뮤 중간자)에 해당하며, 유카와가 예언한 파이 중간자도 곧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사실 얼마 안 았어 이 파이 중간자도 발견되어 중간자 가설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현재는 핵력이 작용하지 않는 이 제2의 중간자는 중간자라 이름 붙히지 않고 뮤 입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가설의 근거와 대칭성 일반적으로 모형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실제모형"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재현시키고자 구체성을 띠게 물질을 조립해서 만든 모형이고 또 하나는 "분석모형"으로서 현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법칙을 단순화시켜 만든 모형입니다. 전자는 모형 그 자체가 미지의 물질상태를 구현시키도록 되어 있고, 후자는 현상을 정리,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소 쓰이고 있습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모형을 제한하는 가설"은 실험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첨가한 것이므로 그 근거는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왜 그 가설이 성립하는지를 생각해 내야 합니다. 물론 그 첫 단계에서는 그 가설이 최종적으로는 더 근원적인 원리나 법칙을 써서 설명이 될 것인지 또는 설명이 불가능해서 이 가설을 원리로 승격시켜야 되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원리"를 시간이나 공간의 성질 또는 보다 근원적으로 물질의 거동을 특징지어 주는 "대칭성"과 관계가 있는 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과학에서 대칭성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소절 이하에서 대칭성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대칭성"에 주목 종이 위에 원을 하나 그려봅니다. 원은 중심 둘레로 어떤 각도로 돌려보아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으며, 본래의 원과 겹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주어진 모형에 어떤 정해진 조작(지금의 경우는 임의 각도로 회전)을 시키는 것을 변환이라 부르며, 이 변환에 의해서 그 모형이 원래의 모형과 동일해지는(겹치게 되는) 것을 "그 변환에 대해서 불변"이라거나 "변환에 대해서 대칭"이라 합니다. 또 그와 같은 성질은 "불변성" 또는 "대칭성"이라 부릅니다. 즉 "원은 회전에 대해 불변" 또는 "원은 회전대칭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은 중심을 지나는 어느 직선(또는 직경)에 따라 접어도 겹치게 됩니다. 이 접는다는 조작은 직선 상에 거울을 세운 후 만들어진 상을 보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경영변환(parity transformation)이라 부릅니다. 또는 "우수계와 좌수계 사이의 변환"이라고도 부릅니다. 좌우의 손을 펴서 포개는 것과 같은 조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은 경영대칭"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정6각형을 그려봅시다. 정6각형은 회전이나 경영이라는 변환에 대해서 어떤 불변성을 갖고 있을까요? 회전에 대해서는 60도 또는 그 정수배인 120도, 180도, 240도, 300도, 360도에 대해서만 불변하게 됩니다. 또 경영에 대해서도 서로 마주보는 접점을 맺는 3개의 직선과 서로 마주보는 변의 중점을 잇는 3개의 직선에 대해서만 불변하게 됩니다. 원이 어떤 각도의 회전에 대해서도, 그리고 중심을 지나는 어떤 직선(또는 대칭)에 대한 경영에 대해서도 불변(겹치는 또는 대칭인)인 것과는 달리 6각형의 경우는 대칭인 경우의 수가 줄어듭니다. 즉 정6각형은 원이나 대칭성이 낮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방형, 장방형, 정삼각형, 2등변삼각형의 경우는 어떻게 변할까요? 벽지나 커튼의 패턴이나 바둑판처럼 어떤 패턴(도형)이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좌표의 원점의 위치를 바꾸어 주는 "평행이동변환"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간 내에서의 변환에 대해서 가장 대칭성이 높은 것은 완전히 일양한 공간입니다. 평면(2차원공간)의 경우라면 도형이 전혀 그려져 잇지 않은 무한히 넓은 백지가 그것입니다. 또 3차원의 공간이라면 물질이 일양하게 차 있는 무한히 넓은 공간이 그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종류의 변환을 하더라도 포개지기 때문에 대칭성이 매우(최고로) 높은 경우가 됩니다. 우리들은 눈의 결정과 같이 정6각형이라든가 다이아몬드와 같은 정다각형을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렇다고 대칭성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고, 조화를 이룬 도형을 아름답다고 우리는 느끼지만, 완전히 대칭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자연의 물질적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생겨났는가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해집니다. 위에서는 구체적인 도형(또는 공간)의 대칭성(기하학적인 성질)을 생각해 보았스빈다. 이 대칭성에 관한 생각법은 도형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러 다른 물리적인 성질의 변환에 대해서도 응용이 됩니다. 예컨대 전하의 플러스나 마이너스의 바꿔치기, 입자와 반입자의 바꿔치기도 그 하나입니다. 또 시간의 원점을 바꾸는 (언제부터 시간을 재는가) 변환도 있습니다. 대칭성의 역할 이처럼 대칭성을 중시하는 까닭은 "물리법칙이 어떤 종류의 변환에 대해서는 불변(대칭)이고 어떤 종류의 변환에 대해서는 불변이 아닌가"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실험이란 "어떤 물리현상이 어떤 변환에 대해서는 불변이고, 어떤 변환에ㅐ 대해서는 불변이 아닌가를 확인해 가는 작업"이며 이론이란 " 그 작업에서 발견된 불변성(대칭성)을 만족시켜 주도록 법칙과 원리를 조립시켜 주는 작업"인 것입니다. 또 법칙이 아직도 발견되어 있지 않은 단계에서는 실험적으로 확인된 대칭성은 물질세계의 거동을 정리해주는 중요한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종류의 대칭성이 성립(어떤 변환에 대해 불변)되면 반드시 이에 대응되는 어떤 물리량이 보존된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습니다. 에너지 보존칙,운동량 보존칙,각운동량보존칙이 성립하는 것은 시간의 원점을 어느 시점으로 잡아도 된다던가, 공간이 일양하고 등방성을 갖는다는 대칭성이 그 배후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타 공간이나 시간과는 무관한 보존칙도 있습니다. 예컨대 "전하의 보존칙"은 그 좋은 예입니다. 이 보존칙은 이미 경험적으로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 9. 22. ~ 1867. 8. 35.)의 전기분해 실험에 의해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3차원공간 외에 소립자는 가상적인 내부공간을 하나 더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공간 내에서의 회전대칭성(게이지 변환에의 불변성이라 함)에 그 근거를 구하고 있습니다. 또 경영변환에 대한 불변성은 패리티 보존칙과 결부되어 있습니다만 베타 붕괴에서는 보존되질 않습니다. 또 입자와 반입자의 바꿔치기에 대한 대칭성(하전변환에 대한 불변성이라고도 함)도 어떤 소립자의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갖가지의 보존칙이 있는데, 그 보존칙 중에는 거시적 물질 세계에서나 미시적인 소립자 세계에서나 모두 성립하는 것과 어떤 한정된 영역에서는 깨지는 보존칙도 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길까요? 그리고 또 우리들은 가능한 모든 보존칙(즉 대칭성)을 모두 다 알고 있을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의 일부는 다음 소절에서 알아보기로 하겠지만, 아직도 완전히는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칭성의 깨짐 패리티 보존칙은 우수계와 좌수계 사이의 변환에 대한 불변성, 즉 물리법칙을 우수계로 기술하나 좌수계로 기술하나 똑같은 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 3차원 공간은 예컨대 X축을 오른쪽 방향으로 긋건 왼쪽 방향으로 긋건 물리법칙은 똑같이 성립할 것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 물리현상(예를 들면 베타붕괴)에서는 패리티 보존칙이 깨지고 있습니다. 왜 깨질까요? 공간은 좌우가 대칭이므로 깨지는 원인은 그 물리현상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에 원인이 있을 듯 합니다. 자세하게는 제4장에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처럼 물리법칙은 대칭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현실세계에서의 물리현상이나 물질구조에서는 대칭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팔꽃의 덩굴이나 고둥이 좌,우 어느 한쪽으로만 감겨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즉 자연계에서는 이처럼 좌우의 대칭성이 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인즉, 대칭성이 깨져 있기 때문에 우리 생물은 존재할 수가 있게 된 것이고 또 자연은 풍요로워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물질이 존재한다 할 때 가장 대칭성이 높은 상태란 앞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 3차원공간이 물질로 일양하게 꽉 차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는 공간의 원점을 어느 곳으로 평행이도 시켜도, 또 어느 임의의 축에 대해 회전시켜도, 즉 어떤 변환에 대해서도 불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도의 대칭성의 상태에서는 은하계도 있을 수 없고 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물질이 구조를 갖는다는 뜻은 대칭성이 깨져서 물질이 일양하지 않은 덩어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불균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지구도 태어납니다. 그리고 지구표면을 덮고 있는 갖가지 원자가 비일양하게 굳어져서 우리들의 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또 공기중을 떠돌아다니는 수증기는 그대로는 공기중에 일양하게 떠 있겠지만, 냉각되는데 따라 수적이나 얼음 알갱이(각 알갱이들의 비일양한 상태)로 변하고, 그것이 비,눈과 같은 구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수증기(기체)-물(액체)-얼음(고체)로 상태가 바뀌는데 따라 일양했던(대칭성이 높았던, 즉 구별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대칭성이 깨지는 물리과정을 거쳐서 물질의 구조(구별이 가능한 상태)가 형성되는 것이라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단순하고 보편적인 상태에서 대칭성이 깨진 복잡하고 특수한 상태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모양일수록 대칭성은 높아지고 복잡한 모양일수록 대칭성은 낮아지고 특수해지기 때문입니다. 대칭성을 깨는 것이 진화 물리학이란, 또는 자연과학이란 모두가(더 넓게는 기원이나 진화를 생각하는 학문은 모두) 이 대칭성의 깨짐을 연구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무엇이 원인이고 어떠한 작용으로 어떠한 조건 밑에서 대칭성이 깨졌는가를 연구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컨대 생물을 생각해 봅시다. 지구가 태어나고, 바다가 생기고, 바닷물 속에서 갖가지 화학반응이 일어난 결과, 환경과 독립한 반응성을 유지하는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생명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그리고 마침내 손,발을 갖는 생물로 진화해 갔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 분자들이 어떤 규칙 하에서 큰 덩어리로 연결이 됨으로써 어떤 특수한 반응성을 획득하게 되고 또 복잡한 기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원시 생물의 탄생에서 현재의 형태에 이르기까지의 진화 과정은 단순에서 복잡으로의 (보편에서 특수로의) 과정의 전형적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언어의 발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아"라든가 "우"따위의 단어뿐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증가해 가면서 가나다라 라든가 알파벳이 되고, 그것들을 어떤 규칙에 따라 결합을 시킴으로서 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 말을 어떤 규칙에 따라 나열시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을 모아서 이야기라든가 논문이 생겨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때 "어떤 규칙"이란 작업이 각 단계에 끼여들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대칭성을 깨는 작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회나 문화 등 어느 하나를 취해도 단순한 (보편적인) 상태로부터 복잡한(특수한) 상태로 진화해 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간다면 일반적으로 학문의 연구란 것이 어떤 작업 위에서 성립해 왔는가를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것은 우리들이 상대하고 있는 현실의 자연이나 사회는 대칭성이 깨진 결과일 뿐, 본래 어떤 대칭성을 가진 상태로부터 출발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연구의 즐거움일지도 모릅니다. 수학의 역할 아시다시피 물리법칙은 모두가 수학수식을 써서 표현이 됩니다. 왜 수식(수학)을 쓸까요? 수학에 자연의 비밀이라도 숨어 있는 것일까요? 자연현상을 관측하거나 실험에 의해 갖가지 물리량이 측정됩니다. 물리법칙은 이들 물리량 사이의 관계나 수학의 술어를 써서 기술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측정결과와 비교하게 됩니다. 수학은 본래 엄밀한 논리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어떤 공간점, 또는 어떤 시간점에서도 성립하게 될 관계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학은 언어처럼 나라마다 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한편 자연의 구조나 운동도 특별한 장소나 시간에 의해 달라지거나 하는 일 없이 보편적으로 성립한다고 생각됩니다. 즉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물질은 동일한 법칙에 따라 운동해야만 하겠지요. 따라서 수학적 언어(술어)로 표현해 두면, 물리법칙의 보편성은 자동적으로 보증이 됩니다. 그 결과 다른 나라의 언어는 모를지라도 수학의 식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가 있다(훈련이 필요하지만)는 것입니다. 어떤 물리법칙이 수식(수학)으로 표현되어 있으면 대칭성을 조사할 때 매우 편리합니다. 물리량이나 좌표에다 어떤 변환을 시켜 준 결과 그 물리법칙을 나타내어 주는 수식의 형태가 바뀌어지지 않는다면, 그 변환에 대해 그 물리법칙은 불변임을 즉석에서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대칭성에 수반되는 보존칙의 성립도 보증된다는 것도 곧바로 알게 됩니다. 또 여러 종류의 대칭성을 갖는 경우, 이들을 정리해 주는 수학인 "군론"을 쓰면, 보다 크고 넓은 규모의 대칭성을 갖는 상태를 수학적으로 조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일단 자연을 직접 다루지 말고, 그것을 수학의 언어인 수식을 써서 그 대칭성을 철저하게 조사한다면, 이 대칭성이 어떤 매커니즘에 의해 깨지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이 경우 수학이 모형의 역할을 하는 것이 됩니다. 예컨대, 1950년대에 그때까지 알려져왔던 양성자,중성자,전자 이외에 여러 개의 많은 새 소립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소립자란 물질의 근원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이 여러 개 있다고는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아마도 무엇인가 더 단순하고 더 적은 수의 기본입자가 있고, 그 기본입자의 조합으로 모든 소립자가 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조사하면 알 수 있게 될까요? 이 때 군론이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군론은 단순히 수학이므로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 주장한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발견된 소립자가 따라야 할 대칭성을 조사하고, 이들 소립자들이 공통으로 갖는 성질을 정리함으로써 소립자들을 몇 가지의 집단(이것을 군이라 합니다)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눈 군의 성질을 수학적으로 조사해 보면 아직도 발견되어 있지 않은 입자도 그 군(집단)에 속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실험에 의해 그 미지의 입자도 발견되어 군으로 나누는 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군을 만들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는 무엇인가를 조사한 결과 쿼크라는 기본입자의 개념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이러한 쿼크의 조합에 의해 200여 개나 되는 소립자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수학과 물리법칙 사이의 관계 이와 같은 성공사례에 접하면 꼭 수학 속에 자연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만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즉 자연을 기술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수학입니다만, 수학 그 자체는 물질세계가 아니니까요. 따라서 자연현상을 정확히 기술해 주는 수학이 있는가 하면 추상적인 채 자연의 구조와는 전혀 무관한 수학도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보다 정확히 기술하기 위해 새로운 수학을 개발해 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뉴턴이 스스로가 발견한 물리법칙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미분적분법을 개발해 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또 그와는 반대로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에 관한 새 이론을 세우기 위한 수학적 방법을 찾던 중 리만 기하학을 발굴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리만 기하학은 단순한 수학적인 시도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수학과 물리학이 2인3각의 짝을 짜고 진전해 나아간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만 "수학적 보편성"과 "물리세계에서의 보편성"은 일부는 공통하지만 다른 일부에서는 포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고, 수식에 의해 표현된 물리법칙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알려주기 않습니다. 그 수식은 갖가지 조건(초기조건이나 경계조건)밑에서 풀어 봄으로써 비로소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사과나 로켓의 운동, 물이나 연기의 흐름, 달이나 지구 또는 은하의 운동 등 공간적으로나시간적으로나 갖가지 규모의 크기 세계에서 옳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 각각의 문제에 상응한 조건 밑에서 풀이를 얻고, 그것을 실험과 관측과 비교해 본 결과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필자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토성의 환(고리)의 존재를 예언할 수 없었으니 잘못된 법칙이 아닌가라는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뉴턴의 법칙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뉴턴의 법칙을 써서 토성 둘레의 물체의 운동을 조사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조사해 보면 토성의 환은 뉴턴의 법칙을 써서 재현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물리법칙을 수식을 써서 표현한다는 것은 과학이란 학문의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지만, 그 배후에는 물질세계의 대칭성(보존칙)이나 원리가 있다는 것을 재삼 강조하고자 합니다. 즉 그 배후에는 모종의 대칭성과 같은 구체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그 기초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물리법칙은 수식을 쓰지 않고서도 틀림없이 설명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지 않고서는 정말로 그 물리법칙을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고 환원주의(reductionism) "환원주의"라는 말 속에는 근본적인 원리로 되돌아간다는 뉘앙스가 배어 있지만, 원래 영어의 reduce는 줄인다는 뜻으로서 reductionism이란 용어도 영어 본래의 뜻대로 "줄여서 생각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즉 그 뜻하는 바로는 자연현상에 내재하는 계층성을 인정할 때 상위계층에서 성립하는 기본법칙과 거기서 사용되고 있는 기본개념들이 반드시 그보다 하나 아래 층에 있는 하위계층에서 성립하는 기본법칙들이 반드시 그보다 하나 아래 층에 있는 하위계층에서 성립하는 기본법칙이나 기본개념에 의해 번역 또는 설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말한다. 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은 최하위 계층(원자,분자,소립자)에 관한 법칙과 개념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기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개념 및 법칙의 다양성을 줄인다는 뜻에서 reductionism이란 술어가 생겼다는 것이다. 파스칼이 그의 "방법론서론"에서 제창한 방법론이다. 쿨롱의 법칙 프랑스의 쿨롱이 발견한 법칙. 1.전기력에 관한 법칙(1785년 발견):서로 r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q1 및 q2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은 두 전하를 연결하는 직선에 평행하고 그 크기가 q1q2/r제곱 에 비례하는 힘 f, - f는 k곱하기 q1곱하기 q2 나누기 r의 제곱, 여기서 k는 비례상수 - 를 받는다 q1q2가 플러스 마이너스 중 같은 부호일 때는 척력(서로 밀침)이 되고 다를때는 인력(서로 끌어당김)이 된다. 2.자기력에 관한 법칙(1785년 발견): 서로 r거리 떨어져 있는 두 정자극 m1및 m2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두 자극을 연결하는 직선에 평행하고 그 크기는 m1m2/r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 f, - f는 k 곱하기 m1 곱하기 m2나누기 r의 제곱 여기서 k 비례상수 - 를 받는다. m1m2의 극이 같을 때는 척력, 다를 때는 인력이 된다. 특수상대성이론 상대성 이론의 한 분야. 서로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관성계에 관한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발표함. 서로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는 두 관측자에 대해 모든 물리법칙은 동일한 모습을 갖는다는 소위 특수상대성 원리와, 빛은 광원이나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하게 항상 일정하다는 소위 광속불변의 원리라는 두 원리를 기본으로 삼는 이론. 이 이론에 의하면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길이는 그 운동방향으로 속도에 비례하여 수축되며, 시간도 천천히 흐르게 된다. 또한 이 이론에서부터 E=mc2 ( e:에너지, m:질량, c:빛의 속도) 이라는 에너지,질량 공식이 유도된다. 일반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이론, 가속도 운동, 즉 가장 일반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두 관측자에 대해서도 물리법칙은 항상 동일한 모습을 갖는다는 소위 일반 상대성 원리와, 관성질량(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질량(만유인력의 법칙)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등가원리라는 두 원리를 기본원리로 하는 이론. 이 이론에 의해 만유인력을 포함하는 중력현상이 설명되며, 수성의 근일점 운동, 강한 중력장 안에서 빛이 휘는 현상, 방출되는 빛의 적색이동, 중력장 안에서의 시간 지연 등도 설명된다. 또한 이 이론으로서 우주구조론, 블랙홀 이론등등의 이론이 전개되었다. 파스칼의 원리 파스칼이 1653년에 발견한 유체(액체,기체)의 압력에 관한 법칙. 밀폐된 용기안에 들어 있는 유체 어느 한 부분에 가해진 압력은 그 유체의 나머지 모든 부분에 똑같은 크기로 전달된다는 원리. 뉴턴역학 뉴턴의 운동의 세 법칙을 기본으로 삼는 역학 체계. 상대론적 역학과는 달리 질양과 에너지가 서로 돌깁적인 역학이라 간주한다. 뉴턴의 운동법칙 1.제1법칙(관성법칙):외부의 힘을 받지 않을 때 정지하고 있었던 물체는 정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운동하고 있던 물체는 계속 같은 직선 운동을 한다. 2.제2법칙(힘의 법칙):질량 m인 물체에 외부에서 힘 F를 작용하시키면 m에 반비례하고 f에 비례하는 가속도 알파를 발생시킨다. 3.제3법칙(제3법칙):두 질점 1,2가 서로 상호작용을 할 때(즉 서로 힘을 미칠때) 제1질점에 작용시키는 힘 f21은 제2질점이 제1질점에 작용시키는 힘(반작용) f12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가 된다. 케플러의 법칙 1.제1법칙(타원궤도의 법칙):태양 둘레를 도는 모든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초점의 하나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린다. 2.제2법칙(면적속도의 법칙):태양과 어느 한 행성을 연결하는 직선(정확히는 동경)이 동일한 시간 안에 휩쓴 면적은 언제나 동일하다. 3.제3법칙:모든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각 행성의 태양으로부터의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정비례의 법칙(law of definite proportion) 각 성분원소의 질량(또는 무게)의 비는 언제든지 일정하다는 법칙. 예컨대 물의 경우는 수소와 산소의 질량비율이 언제나 1:8이고, 이산화탄소의 경우는 탄소와 산소의 질량비가 12g대 32g 즉 3:8이다. 1795년 프랑스의 프루스트(J. L. Proust, 1754 ~ 1826)가 발견. 배수비례의 법칙 두 개의 원소가 화합해서 2종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한쪽 원소의 일정량과 결합하는 다른 쪽 원소의 양 사이에는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는 법칙. 1802년 영국의 돌턴(J. Dalton, 1766 ~ 1844)이 발견하여 원자론의 근거가 되었다. 예컨대 질소와 산소의 경우 일정량의 질소(여기서는 14g)와 화합하는 산소의 양은, 일산화이질소 n2o의 경우 8g (1배수) 일산화질소 no의 경우 16g (2배수) 삼산화질소 n2o3의 경우 24g (3배수) 이산화질소 no2의 경우 32g (4배수) 오산화이질소 n2o5의 경우 40g (5배수) 처럼 1:2:3:4:5가 되어 간단한 정수비가 된다. 게이지 변환 원래의 길이의 기준을 게이지라 한다. 이 길이를 적절히 다른 것으로 변환시켜도 이론체계 자체가 변하지 않을 때 이 변환을 게이지 불변의 변환이라 부른다. 전자기학과 양자전자장론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패리티 비보존 소립자 또는 원자나 원자핵과 같은 복합입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원점에 관해 모든 공간좌표의 방향이 바뀌는 소위 경영변환(거울에 비추었을 때와 같이 각 좌표의 상하좌우가 뒤바뀌는 것)을 시켜 주었을 때 그 파동함수가 불변이면 그 파동함수의 패리티(우기성)를 우, 부호만이 바뀌면 기라한다. 강한 상호작용(강력0이나 전자기적 상호작용이 관련된 과정에서는 패리티가 보존되나, 베타붕괴와 같이 약한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패리티 보존이 깨진다. 이것을 패리티 비보존이라 하며 1956년 중국 태생의 물리학자 양진녕과 이정도 박사에 의해 제안되었다. 베타붕괴 핵종(고유의 원자 번호,질량수에 의해 구분되는 원자핵, 또는 그 원자의 종류)의 방사성붕괴 중의 하나. 이때 불안정한 원자핵이 붕괴되면서 원자 번호는 하나 늘고 중성자 수는 하나 줄어들며 전자와 반중성미자를 방출한다. 하전변환 입자와 반입자을 바꿔치기하는 변환을 하전공액변환 또는 하전변환이라 한다. c변환이라고도 하며 연산자 c라 쓴다. 예컨대 입자, 반입자의 파동함수를 각각 파이 파이프라임라 한다면 c곱하기 파이 = 파이프라임 이 된다. 강한 상호작용 및 전자기적 상호작용은 이 변환에 관해 불변이지만 약한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불변이 아니다. 군론 군의 구조, 특히 유한군을 종류에 따라 구별하는 것을 다루는 연구. 덧셈(+) 또는 곱셈과 같은 수학적 조작(조작 대신 연산이라고도 한다)을 어떤 집단에 속하는 두 요소(이것을 원이라 한다) a, b에 작용시킬 때 a플러스 b는 c 또는 a 곱하기 b는 c와 같이 덧셈 및 곱셈에 의해 정해지는 c 역시 같은 집단에 속할 때 이 집단 g를 각각 덧셈에 관한 군 또는 곱셈에 관한 군이라 한다. g가 군이 되려면 그 외에도 단위 원(덧셈일때 0, 곱셈일때 1) 및 역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덧셈이나 곱셈 이외에도 갖가지 수학적 조작(연산)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군을 정의할 수가 있다 중력장 중력 즉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공간을 중력장이라 한다. 정량적으로는 어떤 주어진 점에서의 중력장은 그 점에 가져온 단위 질량당 작용하는 중력(만유인력)의 크기로 정의한다. 리만 기하학 비유클리드기하학의 하나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어느 한 점을 지나 어느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만 그릴 수 있다. 소위 평행선 공리가 성립하는데, 리만 기하학에서는 이 평행선 공리를 "어느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하나도 그을 수 없다"는 새로운 공리로 대체하고 있다. 위와는 반대로 직선 l위에 있지 않은 임의점 p를 지나 l에 평행한 직선을 적어도 둘 이상 그을 수 있다는 공리로 대체한 기하학을 쌍곡기하학 또는 로바체프스키 기하학이라 한다. 제3장 과학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최초의 과학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1871년에 찰스 다윈이 인류의 진화론(인류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논쟁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구체적인 증거들이 쌓이게 되자 그의 주장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역학이 근대 물리학의 기초가 된 것처럼 다윈의 진화론은 근대생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인류는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었던 유인원에서 먼저 호미니드로 진화하고, 호모 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로 진화하였습니다. 모두가 뼈의 화석(뇌의 크기가 키의 크기),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석기의 정밀도와 종류), 생활상(집단의 크기와 주거)등 그들이 남긴 유품을 살펴봄으로써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 진화해 왔다는 것이 밝혀직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류가 최초로 이루어 놓은 과학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이는 도구의 사용이 아니라 그 도구의 제작이 과학의 시작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해달이나 원숭이마저도 도구를 씁니다. 그러니 단순히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 과학의 시작은 아니고, 적극적으로 그 도구를 만든다는 쪽에 과학의 맹아를 인정하자는 의견입니다. 하긴 침팬지도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잎을 모두 뜯어내 버리고 그 가지로 흰개미의 집을 쿡쿡 찌른다니 이 역시 어쩌면 도구의 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약 200만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류의 조상)에게 호모 하빌리스(손재주 좋은 인간)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것도 그 들이 만든 석기에 그 손재주가 역력히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또 100만년 전이 되면 예리한 석기를 만들어 그것을 칼로 사용해서 코끼리나 들소의 어금니나 뼈를 깎아서 더 예리한 도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도구에 의해 인류는 그때까지 하이에나처럼 죽은 동물을 먹기만 했던 시대로부터 적극적으로 사냥을 해서 산 짐승을 잡아먹는 시대로 옮아갔던 것입니다. 인류최초의 하이테크 혁명 또 "불의 사용"이 과학의 시작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벼락으로 일어난 산불과 같은 우연을 이용해서 불을 얻었겠지요. 그러나 그 불을 이용해 몸을 녹이기 도 하고,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옷으로 만들고, 음식물을 굽거나 삶는 등 익혀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발견이었습니다. 또 불을 이용해서 철이나 구리를 녹여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모프(유명한 공상과학 소설가) 는 "불의 사용"이야말로 인류최초의 하이테크 혁명이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약 50만년 전쯤 의 이야기입니다. 흥미있는 것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종교"나, 동굴의 벽에 그림을 그려 놓는 예술이 태어난 것도 모두 5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까지 사이여서 불의 사용과 거의 동 시대라는 점입니다. 정신세계의 발달이 급속히 진척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공간의 구획과 천문학 도구나 불은 실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건 또는 현상으로서 우리 생활과 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 예컨대 시 간 같은 것을 재기 시작한 것은 어느 때부터 였을까요? 물론 하루의 길이를 태양의 운동을 통해서, 한 달의 길이는 달의 영휴(참과 이지러짐)을 통해서 알 수 있으므로 하루나 한 달의 길이는 태고때부터 직감적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하루의 길이를 더 잘게 쪼개서 측정해 주는 시계를 어떻게 고안해 냈는가 하는 점에 있습니다. 그 힌트는 이미 기원전 4천년 경부터 발견된 듯 합니다. 즉 아침부터 대낮까지는 나무 그림자의 길이 가 점차 줄어들어 일단 가장 짧아진 후(정오), 저녁까지는 다시 길어졌던 것입니다. 그 그림 자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언제나 같은 각속도로 진행한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그렇 다면 땅위에 막대를 꽂고(이것을 그노몬이라 합니다), 그 막대 둘레에 원을 그려 놓으면, 막 대 그림자가 어느 위치(각도)에 오는가에 따라 시간을 잴 수 있게 됩니다. 즉 "해시계"가 발 명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시계바늘이 오른쪽으로 돌게 되어 있는 것은 이 해시계가 북반구 의 이집트에서 발명되었기 때문이리라 추측됩니다(남반구에서는 햇빛의 그림자가 왼쪽으로 돕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노몬의 막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원둘레를 24등분(실제로는 원 의 반을 12등분)했기 때문에 주간이 12시간, 그에 따라 야간도 12시간으로 나뉘어지게 되었 던 것입니다. 이 해시계의 발명은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즉 그노몬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졌을 때의 태양의 방향을 남쪽, 그때의 그림자의 방향을 북쪽, 이 두 방 향과는 직각이면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 해가 지는 쪽 방향을 서쪽으로 정하는 등 공간을 여러방향으로(우선 동서남북의 4방향)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다느 것입니다. 그라하여 시간 과 공간이라는 좌표계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현재 사용되고 있는 해시계는 언제나 그 림자의 길이가 같아지도록 그노몬을 북쪽 방향으로 알맞게 기울어지게 만들도록 되어 있습 니다. 이런 해시계는 이미 기원전 700년경 이집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년을 여러 시간 구간으로 나누기 한편 1년을 살펴보니 계절이 있기는 하나 그 계절은 너무도 천천히 변합니다. 또 1년은 날짜로 따져 수백일이나 지나서야 한바퀴 돌기 때문에 1년을 날의 단위로 구분하기에는 날 짜가 너무 많아 귀찮아집니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달의 모양의 변화 즉 달의 영휴를 살폈던 바 만월에서 다음 번 만월까지는 대략 29일 또는 30일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서 이것을 한 달이라 삼으면, 1년은 대체로 12개월로 나눌 수 있어 달력상의 날짜를 셈하기 가 쉽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달의 영휴를 기준으로 하는 달력이 만들어졌습니다. 1년은 지 구가 태음력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1년은 지구가 태양둘레를 한바퀴 도 는 시간이므로 달의 영휴와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그 결과 1년에는 12개월 짜리와 13개 월 짜리가 생겨 복잡해집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약 365일마다 규칙적으로 나일강이 범람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또 같은 계절에 동쪽 하늘에 시리우스라는 별이 뜬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본다면 별과 달 등이 붙어 있는 천구를 태양 은 1년을 걸려서 한바퀴 도는 셈이 되겠지요. 이 사이에 초승달이 12번 나타난다는 사실로 부터 1년을 12개월로 하고, 한달을 30일씩으로 똑같이 나누면 5일분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집트 사람들은 이 5일을 마지막 달에 억지로 떠 안겼습니다. 이것을 태양력이라 부르며, 현 재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 후 이 달력은 조금씩 수정이 이루어져 왔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이집트에서 발명된 달력이 5천년간이나 거의 그대로 쓰여져 온 셈입니다. 1주일은 왜 7일인가? 하루, 한 달, 1년이라는 시간 구분은 태양이나 달의 운동을 통해서 얻어졌습니다. 말하자 면 천문학이 그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하나의 시간 단위인 1주일도 갖고 있습니다. 1주일은 어떤 이유로 7일이 되었을까요? 인간은 적당한 간격으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피로가 겹쳐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1주일마다 안식일을 만들었습니다 만, 그것이 7일이 된 것도 역시 천체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육안으로 볼 때 너무도 멀리에 있기 때문에 거의 제자리에 붙박혀 있는 듯 보이는 별인 항성에 비해서 해와 달 그리고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등 다섯 개의 행성들은 그 상대적 위치가 바뀝니다. 그래 서 옛날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그 둘레를 이 7개의 별들이 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7개의 별(천체) 이외의 나머지 별들을 달아맨 채 천구는 그 전체가 천 천히 회전한다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7개의 별을 주로 다루는 점성술과 관련지어 져 1주일이 7일로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1주일이 7일이란 생각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기 원전 1800년 전부터 그려 온 우주관(이 천동설은 17세기까지도 믿어져 왔었습니다.)을 반영 한 것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처럼 달력은 본래가 사람들의 생활에 유용하도록 만들어 진 것이지만, 그 달력 제정의 기본은 달이나 태양 그리고 행성들의 운동이라든가, 별들이 보 이는 위치 등에 관한 자세한 관측이 그 기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천문학이 "가장 오래 된 과학"이라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천문학과 점성술 달, 해 그리고 5개의 행성 등 7개의 천체가 천구 상에서 이동(운동)하고 있는 장소는 언제 나 정해져 있습니다. (왠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지나가는 길은 12등분되었고 12개의 성좌(별자리)에 의해서 표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태양은 대략 한 달에 하나씩 이들 별자리를 차례로 옮아가게 되는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행성들도 이들 성좌 사이를 천천히 옮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치 관계로부터 행성이나 별들이 미 치는 영향이랄까 효과를 이리저리 상상해 본 것이 "점성술"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더듬어 보면 점성술에서 천문학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천문학에 기생해서 점성술이 태어났다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지구가 세차운동(지구의 자전축의 방향이 팽이의 머리처 럼 흔들어 대는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그리스 시대와 비교하면 성좌 하나만큼 태양이나 행 성의 위치가 어긋나게 되어 있어, 점성술의 기본대본과 실제는 별자리 위치 하나만큼 어긋 나 있습니다. 그뿐이랴 그 후 천왕성,해왕성,명왕성이라는 3개의 행성이 추가로 발견되었습 니다. 그러나 점성술에 이들 3행성은 추가로 등장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점성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수학의 시작 우리들은 통상 10진법을 쓰고 있습니다. 일,십,백,천,만이라든가, 또는 하나,둘,셋,넷... 열 등. 1에서 10까지를 기본으로 하는 10진법을 쓰고 있습니다. 손가락 수가 좌우 합쳐서 10개 이기 때문에 10진법은 직관적으로 가장 셈하기 쉽기 때문이겠지요. 또 10진법을 쓰면 계산 도 간단해집니다. 그런데 시간이나 각도를 셈할 때는 12라든가(그 배수인 24), 60 등이 한 단위로 되어 있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한 때 돈의 셈도 20진법과 12진법을 병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육십 갑자, 즉 10간 12지에서 12개로 한 바퀴 도는 12진법이었습니다.) 왜 이런 12진법이나 60진법을 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집트나 바빌로이나에서 천문학이 크게 발 전된 것에 기인합니다. 이집트 사람이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수학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었 습니다. 과학과 수학의 발전이 2인3각으로 발전되었다는 좋은 증거의 하나가 되겠지요. 이집 트에서는 피라미드의 건설이라든가, 나일강의 범람 후 코지의 구획이나 경계선을 다시 긋기 위해 기하학이 발전되었습니다. 해시계를 발명해서 방향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 니다. 사실 피라미드의 밑변의 정방형은 정확히 동서남북에 평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해 시계의 그림자의 이동을 12등분도 했었습니다. 한편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60진법으로 셈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시간을 셈할 때 60초가 1분이고, 60분이 1시간이라는 식의 셈이 바로 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각도도 60진법으로 셈합니다. 사실 시간은 태양의 방향 즉, 천구 상에 서의 태양의 위치변화라는 각도의 측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12라든가 60이라는 숫자가 택해졌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 수로 간편하게 나뉘 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2는 2,3,4,6으로 나뉘어집니다. 또 60을 여기에 추가해서 10,12,15,20,30으로 쪼개집니다. 고대 사람들에게는 나뉘어지지 않는 수는 분수로 표시해야 했기 때문에 귀찮게 느껴진 것이겠지요. 또 1년은 대략 12개월이고, 한 달은 대략 60의 반인 30일입니다. 또 1년도 대략 60의 6배 또는 30(60의 반)의 12배가 됩니다. 그러니 12나 60이 무엇인가 하늘이나 천체의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기타 문화의 기원 그리스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몇 개의 학문과 그 기초적 부분이 개 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분야를 몇 개 소개합니다. 기원전 2600년경 높이가 60미터나 되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건축학의 시 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밑변의 한 변의 길이가 233미터나 되며 높이는 147미터나 됩니다. 이것은 일본 동경에 있는 동경 돔보다 횔씬 더 큰 크기입니 다.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 하는데 이것은 큰 집을 뜻하는 이집트 말을 그리스 말로 번역 한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돌덩이(한 개 의 무게가 약 2.5톤)를 쳐들어 올리는 도구, 그 돌을 운반하는 배나 운반기구와 같은 도구가 발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이와 같은 기술이 발달됨으로써 비로소 거대 한 건축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한편 술을 만드는 기술도 기원전 2천년 경에는 이미 발견되 어 있었습니다. 과일이 썩어 있었거나 또는 쌀이나 밀이 오랫동안 물에 젖은 상태로 내버려 져 있었던 것을 어느 누군가 배가 몹시 고팠거나 목이 말라서 한 모금 마셔 보았더니 맛이 좋고 기분이 좋아지더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술을 만드는 방법은 우연히 발견되었겠지요. 그 술을 이루고 있는 알코올이 효모의 작용으로 쌀이나 보리, 밀 또는 과일에 들어 있던 당 과 녹말이 분해될 때 생겨난다는 기술은 이미 4천녕 전에 발견된 것입니다(놀랍게도 기원전 1800년경에 이미, 맥주를 과음한 취한이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는 벌칙이 논의되고 있었답니 다). 또 밀을 가루로 만들고, 물로 반죽을 하고 효모를 넣어서 놓아두었다가 화로 속에 넣어 구우면 빵이 만들어집니다. 곡물을 먹기 쉽게 만드는 발효기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문자발명이 가져다 준 영향 아시다시피 문자의 발명은 문화의 전달이나 기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가 최 초로 발명된 것은 기원전 3500년경이라 합니다. 이 문자가 시간이 지나가는데 따라 서서히 일정한 양식으로 통일이 되었고, 간략화되어 사람들 사이(물론 처음에는 극히 소소의 사람 들 사이)에 퍼져 갔습니다. 일단 문자가 발명되고 나면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책을 모 아 놓은 도서관이 건설되게 됩니다. 이 도서관에 수집된 갖가지 책으로부터 우리들은 역사 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문자가 발명된 이후를 "유사시대", 문자가 없었던 그 앞 시대를 "선사시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기원전 1500년 경에 이르기까지 세 계에는 3종류의 문자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쓰여진 상형문자, 바빌로 니아의 점토에 인각된 설형문자, 그리고 중국의 거북이 등이나 소뼈에 쓰여진 한자의 원형, 갑골문자가 그것입니다. 그 중 여태껏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한자뿐이고, 처음 두 문 자는 너무도 복잡해서 현재는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문자를 써서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옛날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까지는 구전으로만 전해졌던 이야기(구전문학)가 문자로 기록됨 으로써 아무때나 보거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메르의 왕 길가메슈가 불사의 약초를 찾아 여행한다는 이야기는 기원전 2500년에 쓰여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이집트에서는 파 피루스에 갖가지 병의 치료법(마술적인 방법과 함께 병에 듣는 식물이나 동물의 사용법도 쓰여져 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학,의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또 중국에서는 천문기상이나 군사행동에 관해 제왕이 점을 친 내용이나 그 결과가 쓰여진 것도 남아 있습 니다. 말하자면 정치자료라고나 할까요. 물론 문자가 발명되었을 때 동시에 숫자를 적는 방 법도 발명이 되었습니다. 숫자의 발명은 수학은 물론이요, 기타 여러 과학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란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러나 이 숫자는 처음에는 기록을 위해서만 사용되 었고 계산은 주판과 같은 도구를 통해서만 행해졌습니다. 그 이유는 영을 몰랐기 때문입니 다. 이 영에는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하고, 또 하나 는 자릿수 매기기에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종이 위에서 계산하기 위해서는 자릿수 매기기를 해주는 영을 알고 있어야만 하겠지요. 따라서 기원전 400년경 인도에서 영이 발견될 때까지 숫자가 계산에 사용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문자는 우리 인류문화의 내용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고, 또 지적인 가능성을 넓혀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밑에서 그리스 문자는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그리스의 자연과학자들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에는 많은 자연 철학자들이 나타나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갖가지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이성론"으로서, 우주에서 일 어나고 있는 갖가지 현상은 관측과 증명에 의해서 이해될수 있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며, 신 의 신통력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 서 사물의 겉보기에 구애되지 말고, 그 현상 또는 물체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 이 무엇인가를 깊이 숙고하고 관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로 과학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 이라 할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추론과 사변만으로 사물을 증명 하려는 이론적 방법을 중시하고, 실험에 의해서 확인하거나 새 현상을 발견한다는 방식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는 엄격한 신분제가 있어서, 실험 같은 것 은 하천한 직인들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학자 스스로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 다. 따라서 실험과학은 육성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의 추론은 추론으로 머문 채 증명되거 나 확인되지는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육성되지 못했고, 자연철학의 상태 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이 효력을 나타낸 것은 오직 수학뿐이며, 유클리드 기하학은 이미 기원전 300년경에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하지 않고 이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최초로 생각 해 본 사람은 아마도 기원전 600년경에 활약했던 탈레스였다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일식이 나 월식은 신이 인간을 벌하려 하는 전조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나 달의 운동을 자세히 조사하는 가운데 이들 자연 철학자들은 일식이나 월식이 예측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연이 일으키고 있는 당연한 현상이 란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탈레스는 바빌로니아의 계산법을 배워서 일식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습니다. 즉 자연현상이란 것이 인간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그 무엇이란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 고 주장하게도 됩니다. 즉 물이란 것이 갖가지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어 가면서, 모든 물질을 구성해 주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물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자세, 즉 물질은 그 모습을 바꾸 어 갈지언정 갖고 있던 본래의 본질적인 것은 바꾸지 않는다는 사상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 다. 이런 사고법은 현재의 과학 속으로도 관철되어 있는 것입니다. 데모크리토스와 원자론 탈레스의 주장의 발전시킨 사람은 기원전 500년경에 살았던 레우키포스와 그의 제자인 데 모크리토스였습니다. 레우키포스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는 사물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설명하려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배제하려 는 사상이 깃들어 있었던 것으로서 바로 현대과학의 정신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 로 의학의 조상이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으며 신이 내린 천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데모크리토스는 스승인 레우키포스가 품고 있던 생각을 승계 하여 "모든 물질을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조그마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원자론" 을 제창했습니다. 원자(atom은 분할될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가 물질의 기본단위라 생각 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탈레스의 주장을 극한까지 찾아간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원자론의 증명에는 2천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고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단지 철학적 주 장으로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훨씬 후에 가서 이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분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분할이 되었고, 그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로 분할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이 깊이 연구될수 있게 된 배경에는 학파 또는 학당(아카데미)을 만 들어 토론의 장을 열고, 획득한 지식을 계승시켰다는 점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예컨대 피 타고라스는 일종의 종교적 결사를 만들어 수학 연구를 했으며, 플라톤은 아테네 교외에 대 학에 해당하는 아카데미를 창설했습니다(기원전 387년). 특히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는 류케이온에 학당을 만들고, 당시의 학문적 지식을 집대성하여 강의를 했고 그 결과를 150권이나 되는 저작집으로서 편찬했습니다.(후세에 남아 있는 것은 50권뿐입니다.) 이 저작 물 속에서 그는 전제의 명제(가정이나 원리에 해당)로부터 추론을 거듭해 가면서 필연적인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논리의 방법을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수학이나 과학 에서 취하고 있는 바와 같이 추론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취초의 체계적인 "논리학"이었던 것 입니다. 이 방법의 구체적인 운용의 하나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는 둥글다"라는 것을 논리만으로 추측했던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근거는 1.월식일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 2.북으로 여행을 가면 북쪽 하늘에 새로이 별이 나타나는데 반해서 남쪽 하늘에 있었던 별 은 모습을 감춘다(반대로 남쪽으로 여행을 가면 위의 사실은 반대가 된다.)3.배가 항구에서 멀어져 갈 때 선체가 먼저 모습을 감추고, 마지막에 가서야 돛대가 사라지게 된다. 라는 3가지 사실이었습니다. 훌륭한 추론이지요.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을 기초로 해서 분류를 하는 일이 계통적으로 학문을 세울 때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매우 자세히 관찰한 사람으로서 동물을 종에 따라 분류도 하고 해 부도 해보았습니다. 한 예로 그는 돌고래가 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애의 형태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돌고래는 어류가 아니라 육상의 짐승과 같은 종류라고 분류하고 있습 니다.(식물의 분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가 했습니다). 또 아리스토텔 레스는 이 세상은 4개의 원소(흙,물,공기,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그 무 게의 순서에 따라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차례로 층을 이루고 있으며, 또 이 전체의 층으로 된 지구 또한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그 위에 있는 하늘(우주)은 에테르라 불리는 제5의 원 소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테르란 "반짝 반짝 빛나다" 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그 에테르가 응고해서 빛나게 보이는 것이 태양,달,행성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들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 적 우주체계를 제창했습니다. 이 천동설은 그후 2세기에 가서 프롤레마이오스에 의해 관측과 계산을 통해 정밀화된 후에도 1400년간이나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지배했었습니다. 지구의 크기를 잰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280년경에 활약했던 아리스타르코스입니다. 그는 먼저 월식 때의 지구의 그림자의 크기로부터 달은 지 구 크기의 1/3이라 추론했습니다. 다음으로 반달이 될 때 지구와 달과 태양이 직각삼각형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 때 달의 방향과 태양의 방향이 이루는 각도 쎄타를 잼으로 써 지구로부터 달과 태양까지의 거리의 비를 구했던 것입니다. 또 일식과 월식일 때 달과 태양이 겹치는 만큼 겉보기 각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거리의 비율은 크기의 비율이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태양은 달의 크기의 약20배, 따라서 지구 크기의 약 7배라는 계산 결 과를 얻게 됩니다. 당시의 관측기술은 아직도 유치했기 때문에 이 수치에는 커다란 오차가 들어 있습니다.(실제로는 달의 크기는 지구 크기의 약 1/4, 태양은 지구 크기의 약 109배입 니다). 그러나 그의 이 추론방법 자체는 올바른 것이었으며, 이렇게 직접 측정이 불가능한 먼 곳에 있는 물체라도 방법만 잘 선택하다면 그 크기는 계산이 가능하다는 과학적 방법의 위대함을 충분히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쨋든 이 결과를 토대로 아리스타르코스 는 지구보다도 큰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 리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관측과 추론을 결합시킨 멋진 생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와 비슷하게 간단한 방법을 써서 "지구의 크기 는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의문에 도전한 사람은 기원전 240년경의 에라토스테네스였습니 다. 그는 시에네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태양이 머리 바로 위까지 올라와 그림자가 생기지 않 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뜨게 (그림자가 가장 짧아진다. 즉 같은 경도 상에 있다)되지만, 태양의 그림자 방향은 7도(태양 고도는 83도)임을 관찰했습니다.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고 그 는 생각하고,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다면 지구의 크기도 알 수 있 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 어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까지 몇 발자국의 거리인가를 걸어 서 재는 작업이 있었다 합니다. 그 보폭과 보수로부터 거리를 잰 결과 지구의 둘레 길이는 약 4만킬로미터란 계산결과를 얻어냈습니다. 현재의 값과 거의 같은 값입니다. 걸어서 거리 를 잰다던가, 태양의 각도를 잴 때의 오차 즉 측정정밀도 등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정밀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히파르코스 이 측정 결과를 토대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사람은 기원전 150년경 히파르코스였습니 다. 히파르코스는 삼각함수의 값을 가장 정확하게 표로 만든 사람이며 또 행성운동을 세밀 히 계산한 사람으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 그림에서처럼 그는 지구상의 두 점 A와 B로 부터 달의 중심을 겨누고 각도 M을 쟀습니다. 그리고 A,B 두 점간의 거리를 써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던 것입니다. 이 방법은 우리들이 두 눈으로 어떤 물체를 보고 그 물체가 얼 마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추론하는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두 눈에 대해 그 물체가 어 느 방향으로 보이는가를(우리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한 채) 재기 때문입니다. 이 각을 시차라 합니다. 이 시차로부터 그 물체가 얼마큼 먼 거리에 있는가가 산출됩니다. 히파르코스가 구 한 달까지의 거리는 지구직경의 30배였습니다. 앞서 말한 에라토스테네스가 구해 낸 지구의 크기를 쓴다면 달까지의 거리는 약 38만킬로미터가 됩니다. 정말 정확하게도 구해 냈지요. 히파르코스는 1천 개 가까이나 되는 별들의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만든 이 별의 분포도와 과거의 별의 위치의 기록을 비교함으로써 모든 별들이 서에서 동쪽 으로 약 2만 6천년을 걸려서 천구를 한바퀴 돌고 있다고 것도 그는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지구의 자전축이 세차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만, 눈으로밖에는 별의 위치를 잴 수 없 었던 시대에 그것도 기껏 길어 보았자 겨우 150년간의 별의 위치기록(알렉산드리아 천문대 에서의 기록)으로부터 이런 엄청난 사실을 발견해 냈으니 히파르코스를 "그리스 시대 최대 의 천문학자"라 부르는 이유를 알 만도 합니다. 또 그는 별을 1등성으로부터 6등성까지 그 밝기에 따라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이 분류법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밀한 관 측이 과학의 발전을 위해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지요. 아르키메데스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를 소개해 둡니다. 아르키메데스 는 기원전 260년경에 확약했던 시실리 섬 시라크 사람으로서 갖가지의 전설로 유명합니다. 그가 "지레의 원리"를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지레 그 자체는 이미 이집트 시대부터 사 용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레를 쓰면 약한 힘을 갖고도 무거운 물체를 들 어올릴 수 있는가"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생각한 자세랄까 태도 속에 과학의 원점을 들여다보는 깊은 생각이 엿보입니다. 모든 사물을 당연한 것으라고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원리로 되돌아가서 생각함으로써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보다 유효한 도구를 만드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받침대를 다오. 그러면 지구까지 도 쳐들어 올리리"라고 말했답니다. 또 아르키메데스는 그리스 시대 사람치고는 드물게 갖 가지 도구나 기계를 만들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몸이 가벼워진다는 사실로부터 부력에 관한 그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아르키 메데스의 원리"의 힌트를 얻게 된 것이지요. 즉 그는 실험가로서의 센스를 갖고 있었던가 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가축문제"라 불리는 엄청난 수의 가축의 마리 수에 관한 문제를 제안한 일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네 종류의 털 색깔을 갖는 소의 수를 계산하라는 문제로 서, 4종류의 소의 암소의 수 및 숫소의 수라는 8개의 미지수에 대해 7가지 관계식과 2가지 조건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문제의 답이 있다는 것은 확신하지만, 그 정확한 수치의 계산은 2천년간이나 여러 사람들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981년이 되어서야 겨우 슈퍼 컴 퓨터의 힘을 빌려 그 해답이 얻어졌습니다. 흥미 있는 독자는 본서의 부록을 보아주시기 바 랍니다. 중세의 과학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개척해 낸 이상과 같은 과학적 고찰의 방법이나 결과는 안타깝 게도 그 후 약 1400년경에 가서 르네상스가 이루어질 때까지 서구사회에서는 완전히 잊혀져 있었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세력을 휘둘렀던 중세에서는 신에 대해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사고방식은 엄하게 단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고찰하거나 실험해 보는 것이 금지되었던 시대에는 사람들은 점괘나 신의 계시나 탁선 등 초자연적인 힘을 믿 게 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 풍조였기에 "괴상한 과학"도 유행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앞서도 언급한 점성술입니다. 과학적 사실은 누가 언제 어느 곳에서 해보아도 꼭 같은 현상 이 재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xx술"이라 불리는 것은 누군가 특수한 능력의 소지자만이 쓸 수 있고, 또 해보았댔자 반드시 같은 결과가 얻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운동하는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대 에서는 "xx술"이라든가 "괴상한 과학"의 모두가 무의미했다고 만은 할 수 없었겠지요. 왜냐 하면 그들이 행한 실험을 통해서 과학이 움트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연금술 그 대표적인 것이 "연금술"입니다. 납이나 철처럼 흔해빠진 금속(비금속이라 불리고 있었 습니다)에 약품을 부어 보기도 하고, 녹여 보기도 하고, 두들겨 보기도 해서 금(귀금속)으로 바꾸어 보자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므로 기원전 300년경부터 근 1400년간에 걸쳐 사람들은 연금술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천재 뉴턴마저도 연금술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연금술이 태어난 배경에는 진흙으로부터 도자기를 만들어 낸 다거나, 광석으로부터 구리나 철 또는 금을 적출 해내고, 또 모래로부터 유리를 제작하고, 곡물로부터 술이나 빵을 만들어 내는 등등의 화학변화를 이용하는 기술을 사람들이 획득해 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즉 열을 가하거나 효모를 첨가하면 보다 편리하고 보다 고급한 것 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이 금이 될 수도 있 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추이겠지요. 그래서 연금술의 기술을 집대성한 책이 벌써 기원 300년경에는 나와 있었습니다. 연금술의 또 하나의 배경에는 일신교인 기독교와 는 달리 다신교적인 사상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여러종류의 신이 여러 곳에 머물러 있다 는 사상 말입니다. 또 대우주와 지상의 세계는 서로 조용(잘 맞는)의 관계에 있으며 서로 관 련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모든 물질은 둥근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생각 입니다. 이렇게 시대가 갖는 사상이나 사고법이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 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결국 물질은 서로 종류가 다른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화학반응을 통해 원자의 조합은 바뀔지언정 원자 그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서 연금술은 18세기에 이르러 그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러나 철을 금 으로 바꿀 것을 목표로 한 실험의 결과 갖가지 화학실험의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리하 여 화학반응의 짜임새가 밝혀졌고 연금술의 불가능성이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연금 술은 화학이라는 학문의 어머니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구기관 "페르 페툼 모빌레", 라틴어로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영구기관은 말하자면 인류의 꿈이었습니다. 그 영구기관이란 연료도 근육의 힘도, 바람이나 물의 흐름의 힘도, 전 기의 힘도 없이, 즉 외부로부터 일체 에너지를 가하지 않고서도 영구히 일을 해주는 기계를 뜻합니다. 물론 그런 것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짜로 일을 해주는 기계가 됩니 다. 무에서부터 에너지를 얻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옛날부터 숱한 사람들이 영구기관 에 도전했습니다만 누구하나 성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느 기계나 굳 멎어 버렸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왜 영구기관을 만들 수가 없는가 하는 이 문제를 풀어 보는 과정에서 중요 한 물리학의 법칙의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제1종의 영구기관은 왜 불가능한가? 영구기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제1종의 영구기관은 에너지 보존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영구기관으로서 그림에서와 같이 톱니모양의 들쭉날쭉이 붙어 있는 차륜의 가장 자리에 추를 매단 막대를 매단 기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 하면 영원히 회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발명가는 주장합니다. 즉 우측에 있는 추는 좌측에 있 는 추보다 차륜의 중심에서 더 멀리 있기 때문에 오른쪽 반이 이 바퀴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힘은 왼쪽 반이 이 바퀴를 왼쪽으로 돌리려는 힘보다 셀 것이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아도 쉽게 알수 있듯이 같은 간격으로 추를 매달고 있다 해도 추의 수는 언제나 왼쪽 반쪽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추에 작용하는 중력에 의해서 이 바퀴를 회전시키 려고 하는 회전력(토크)은 좌우가 같아지게 되는 것입니다.(추의 무게에다 바퀴의 중심에서 추까지의 거리를 곱한 것을 토크 "회전력"라 합니다.) 그래서 얼마 못가서 이 기계는 바퀴 축의 마찰로 인해 그 회전이 멎어 버리고 맙니다. 자석을 이용한 영구기관도 있습니다. 그림 에서처럼 기둥 위에 강한 자석을 고정시켜 놓고, 기둥으로부터 두 개의 홈통을 비스듬히 세 워 놓습니다. 위쪽 홈통의 끝 쪽에는 구멍이 뚫려져 있습니다. 위쪽 홈통에 강철 구슬을 놓 으면 이 구슬은 자석에 끌려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홈통 상판에 도달하면 구멍이 빠져 그 밑에 있는 아치형의 구부러진 홈통에 떨어집니다. 구슬은 이 아래쪽 홈통을 굴러 내려가 바닥에 도착하면 바닥의 끝부분의 구부러진 곳에서 방향을 바꾸어 위쪽 홈통으로 올라갑니 다. 그러면 구슬은 다시 자석에 의해 이끌려 위쪽 홈통과 아래쪽 홈통 사이를 움직여 갈 것 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맞는 말일까요?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맞춰 보십시오. 이런 종 류의 제1종의 영구기관은 에너지 보존칙에 위배됩니다. 그 에너지는 운동 에너지, 위치 에너 지, 열 에너지 전기에너지 등등 갖가지로 그 형태를 바꾸어 갑니다만 그 전체 량은 항상 일 정하다(보존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에너지의 합이 0이면 언제까지나 0으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런 에너지 보존칙이 명확하게 확립된 것은 1838년 의 일입니다. 운동 에너지는 마찰에 의해서 열 에너지로 바뀌므로 반드시 줄어듭니다. 따라 서 운동은 멎어 버리는 것입니다. 제1종의 영구기관이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에너지 보 존칙이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장난감 물 마시기 새는 외부로부터 아 무런 에너지도 받고 있지 않는데도 왜 언제까지나 작동을 계속하고 있을까?"하고 의문을 품 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 것 처럼 보일 뿐, 사실은 태양에너지가 공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 마시기 새가 서 있는 사 이에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솜 속에 스며든 물이 햇볕을 받아 기화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이 장난감 새의 몸은 냉각이 됩니다. 그러면 관 안에 있던 기체인 에테르가 액체로 바뀌기 때문에 압력이 줄어듭니다. 그 때문에 꼬리 부분의 기체 에테르의 압력이 머리 쪽의 압력보 다 높아져서 액체 에테르를 위로 밀어 올리게 됩니다. 그 때문에 머리부분이 무거워져 물을 마시는 자세로 바뀝니다. 이 때 이 물을 마시는 자세에서 곧 일어서는 것은 이 때 관의 꼬 리 부분이 물위에서 이탈하여 액체 에테르가 다시 꼬리 부분으로 되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물 마시기 새는 햇볕의 열이 에테르의 상태를 변화시킴으로써 몸의 무게중심의 위치를 옮겨 놓아, 물 마시기 운동을 되풀이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과 제2종의 영구기관 또 하나의 영구기관인 제2종의 영구기관이란 말하자면 에너지의 질에 관련된 영구기관입 니다. 예컨대 온도가 높은 물과 온도가 낮은 물을 접촉시켜 놓으면 어찌 될까요? 반드시 온 도가 높은 물에서 낮은 물 쪽으로 열 에너지가 흘러 내려가며, 그 반대로 찬물에서 뜨거운 물 쪽으로는 열 에너지가 흘러 올라가는 일은 없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전체의 에너지는 같 을 것이므로 에너지 보존칙은 만족됩니다. 이처럼 에너지 보존칙은 만족되면 서도 현실적으 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물리과정도 있습니다. 제2종의 영구기관이란 바로 이렇게 현실 적으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물리과정을 써서 영구하게 작동시키려는 기관을 뜻합니다. 예컨대, 바닷물은 그 온도가 찹니다만, 열에너지는 갖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써서 배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을까요? 뱃머리에서 바닷물을 퍼 올려 그 열에너지를 빼앗아 가지고, 그 열 에너지로 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려 배를 움직이게 하자는 것입니다. 열에너지를 빼 앗긴 바닷물은 얼음이 될 것이므로 그것을 선미에서 내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만약 가능하다면 에너지 고갈문제는 쉽게 풀리겠지요.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 능합니다. 온도가 높은 물과 낮은 물은 동일한 크기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질은 다릅니다. 앞서 말한 제1종의 영구기관을 예로 든다면, 일단 마찰로 열에너지로 바뀌어 버리 면 또다시 원소의 운동 에네지는 되돌려 줄 수가 없습니다. 열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는 질 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너지의 질을 다루는 물리량이 고찰되었습니다. 그 물리량이 바로 엔트로피입니다. 자연현상에서는 반드시 이 엔트로피가 증대하게 되어 있습니다.(열역 학의 제2법칙). 제2종의 영구기관은 이 물리법칙에 위배됩니다. 위에서와 같이 영구기관의 제작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만, 그 원인을 추구하는 가운데에서 또 하나의 물리학 법 칙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과학혁명의 시대 14세기로부터 시작된 르네상스는 재생이라는 뜻을 갖는 바와 같이 고전시대(그리스, 로마) 의 문화와 학문의 부활 및 재생을 지향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중세의 속박으로 부터 인간의 자유정신을 해방시켜 주는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실크 로드나 해상을 통해서 동서의 교역이 번성했다는 점도 있겠지요. 이와 같은 문화교류에 의해 사람 들은 자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보다 편리하고 합리적인 사고법이나 새로운 기술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항해에 없어서는 안 되는 나침반은 11세 기에 중국에서 발견된 것이지만, 그 지식은 아라비아에서 전달되었고, 곧이어 (십자군을 거 쳐) 12세기경에는 유럽에 전달되었습니다. 또 배의 키는 아라비아에서 발명되고, 13세기에는 유럽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15세기의 대항해시대가 가능해졌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 안경, 유리로 만든 거울, 기계 시계등도 13~14세기 중에 발명되어 곧 동서로 퍼졌습니다. 그런 한편 화약,대포,화승총 등 위험한 물품들도 개발이 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 되어 갈릴레이,데카르트, 뉴턴에 이르는 16~17세기를 "과학혁명"의 시대라 부릅니다. 근대과 학의 기초가 이 시대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회의정신" 이 움트고,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하고, 실험과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의 방법이 발견된 것입니다. 즉 과학분야에서도 그리스의 "이성론"이 부활,재생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0을 표시하는 아라비아 숫자의 사용도 퍼지기 시작했고, 본래가 중국에서 발명된 "목재를 원료로 하는 종이" 만드는 법도 보급하게 되었고, 금속활자를 쓴 인쇄기술이 개발 된(이것도 한국에서 먼저 발명된 것이 중국을 거쳐 유럽에 전달)것이 과학혁명의 배경에 있 었따는 것도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과학의 진전에는 반드시 기술의 뒷받침이 수반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소절에서는 과학혁명의 이정표가 되는 몇 가지 사항을 예로 들 어 이들이 근대과학의 확립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동설의 부활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비해 놓은 "천동설"은 그 시초부터 갖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습 니다. 예컨대 태양이나 달은 언제나 항성들 사이를 서에서 동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 고 있는데 반해서 행성의 이동방향은 간혹 가다가 역으로 되는 수도 있고(역행현상), 또 그 밝기가 변화하기도 합니다. 또 태양과 행성들이 천구 상을 움직이는 속도는 계절에 따라 달 라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태양이나 행성이 지구 둘레를 그냥 단순히 원운동 만 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들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 복잡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행성은 지구의 위치에서는 좀 벗어나 있는 점을 중심으로 하 는 원(이심원) 위를 돈다든가, 그 원궤 위를 또다시 더 작은 원(주전원)을 그리면서 움직인 다던가, 또 그 움직이는 속도는 지구에서 보아서 일정하지 않다든지 따위의 수정을 거쳐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중에는 전부 합쳐 50개 이상이나 되는 원을 마련해 놓아야 했습니다. 즉 기존의 이론을 고집하는 하 부분적인 수정을 쌓아올리는 수밖에 없었으며 그럴수록 이론은 더욱더 복잡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폴란드의 신부이자 천 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에 되돌아가, 태양이 중심 이 된 "지동설"을 검토해 보기로 마음멈ㄱ었스빈다.(이것이 바로 "가설"이란 것이지요.) 이 가설에 따라 그가 채용한 "모형"에서는 지구도 포함해 모든 행성이 태양 둘레를 원운동 한 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형에 따라 계산해 본즉, 행성의 역행현상이라든가 행성의 겉보기상 의 밝기 변화 등이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행성 운동의 속도 등을 정확히 재현시켜 보기 위해서는 프콜레마이오스의 모형에서와 같이 많은 수의 주 전원이나 이심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운동이란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 코페르니쿠스는 항성을 관측함으로서 지동설을 증명하려고도 하였습니다. 즉 만약 지구가 운동을 하고 있다면 항성이 보이는 방향이 바뀌 리란 것입니다. "시차"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안에 의한 관측으로는 시차를 관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별의 위치의 시차가 검출된 것은 훨씬 뒤인 1838년의 일이었습니 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중심설을 단순히 논리적인 추론에 따라 설명하려 한데 반해서 코 페르니쿠스는 이론(모형)과 관측의 쌍방에서 증명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 자연철학"과 "자연과학"사이의 차이라 할 수 있스빈다. 하긴 코페르니쿠스로서도 카톨릭 교 회가 옹호하고 있는 천동설에 정면으로 대립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준비해 두고 싶었 던 것이라 추측됩니다. 결국 그의 모형은 불만족한 상태로 남아 있었고, 관측적 증명도 불가 능하긴 했었습니다만, 그는 지동설의 내용을 "천체의 회전에 관해서"라는 이름의 책에 담아 출판을 했습니다(1543년). 이 책이 출판되자 세상은 떠들썩해졌고, 교회는 금서처분을 내려 신자들이 읽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인쇄기술의 놀라운 보급력에 의해 전유럽 에 퍼졌고, 갈릴레이를 시작으로 여러 학자들이 지동설을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동설의 확립 지동설의 금지령은 1835년에 가서야 겨우 철회되었습니다. 이 해에 주목하십시오. 즉 지구 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 주는 항성의 시차의 검출이 보고된 것은 바로 3년 후 인 1838년이었으니까요. 즉 카톨릭 교회는 이 발견보다 3년이나 앞서서 지동설을 인정했다 는 것입니다. 비록 직접적인 물증은 없었지만 이 때 즈음에는 지동설이 이미 상식화되어 있 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지동설을 확립시켜 가기 위해서는 티코 브라에에 의한 행성운 동의 자세한 관측과 케플러에 의한 원운동에서 타원운동으로의 모형변경, 그리고 뉴턴에 의 한 만유인력법칙과 운동의 3법칙에 따른 이론적 증명이라는 단계가 필요했었습니다. 현상의 관측(브라에)과 가설과 모형의 제안(코페르니쿠스,케플러) 및 물리법칙의 발견(뉴턴)이라는 과학이론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3가지 기본요소가 조화가 되어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실험의 중요성 과학혁명을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습니다. 그는 17살 때, 파사 의 대성당 천정에 매달린 청동으로 만든 램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던 중 램프의 흔들림 이 그 진폭의 크기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일정한 시간내에 왕복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흔들이를 만들고 그 진폭을 여러가지로 크게 또는 작게 바꾸어 가면서 주 기를 측정해 보았습니다. 이 때 갈릴레이는 맥박을 이용해서 시간을 쟀다고 합니다. 이처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본다는 것이 갈릴레이가 발견한 태도요 방법이었습니다. 1586년에 네덜란드의 스테뷘이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을 동 시에 떨어뜨리면 동시에 땅에 부딪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이 이야기는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서 갈릴레이가 실험했다는 에피소드로 둔갑이 되었습니다만 유명인은 얻는 것도 많은 가 보지요.) 한편 그 옛날(약 2천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론"이라는 저서에서 "무거운 물체일수록 아래쪽에 있고자 하는 성질 때문에 빨리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명백히 모순 이 있는 말이지요. 갈릴레이는 높은 곳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는 대신 경사진 면을 이용했습 니다. 짧은 시간을 정확히 재는 시계가 없었던 시절이라, 천천히 떨어지는(굴러 내리는) 경 사면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척 보기에는 힘들어 보이는 실험도 방법을 택하기에 따라 손쉽 게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겠지요. 이 실험에 의해 물체는 그 무게에는 관계없이 동일한 속도로 경사진 면을 굴러 내려간다는 것, 그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서 커져 간다는 것도 발 견했습니다. 또 겉보기에 가벼워 보이는 물체가 느리게 낙하하는 것은 공기의 저항(이나 마 찰)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 놓았습니다. 또 갈릴레이는 속도가 기간과 함께 커지는 것은 일 정한 크기의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저항이나 마찰이 없고, 중 력도 작용하지 않는 경우, 어느 주어진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어찌될까요? 아마도 주어진 속도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언제까지나 운동을 계속하겠지요. 이것을 "관성의 법칙"이라 부 르며, 뉴턴의 운동의 제1법칙으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저항이나 마찰로 가득 차 있으므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언젠가는 멎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이 운동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의 운동을 논하려면 먼저 저항이나 마찰이 전혀 없는 이상적인 상태에서의 운동의 법칙(처음 속도로 계속 운도)을 밝혀 낸후, 저항과 마찰을 고려해서 현실세계의 운동을 살펴본다는 순서를 밟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 럼 이상적인 상태에서의 물리법칙을 확립시킨다는 것이 과학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 의 하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험을 하되 될수록 이상에 가까운 상태를 만 든 후 그 상태에서의 운동이나 성질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방식의 실험의 중요 성을 처음으로 밝혀 준 사람이 바로 갈릴레이였던 것입니다. 또 갈릴레이는 당시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망원경을 써서 은하수가 수없이 많은 별의 집합체란 것(데모크리토스도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달에도 산이나 크레이터(속칭으로 분화구) 또는 바다가 있다 는 것(그림자의 크기나 길이로부터 그산의 높이까지도 계산했다 합니다), 목성에는 4개의 위 성이 있으며, 태양에는 흑점이라는 검은 점들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여 러 발견으로부터 달은 지구와 같은 성질로 되어 있고, 태양도 자전하고 있으며(흑점의 움직 임으로부터 태양이 자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합니다), 우주는 태양계에 한정되지 않고, 더 거대한 수없이 많은 별들의 집합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망원경을 씀으로써 갈릴 레이는 사람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우주의 크기를 대번에 크게 확대시켰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새로운 기술이 과학을 진척시키는데 있어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실험기구의 발명이 과학을 발전시켰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한 저서 "신천문학대화"를 출판하였기 때문에 종교재판에 걸렸 습니다. 그는 그 재판장에서 강제적으로 지동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을 나올 때 그는 혼잣말로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인 즉 갈릴레이 자신이 이 책에서 지동설의 직접적 증거를 제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었던 여러가지 상황증거 모두가 지동설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교재판 측 은 단죄의 근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로마 교황청은 실로 350년이 지난 1983년이 되어서 야 갈릴레이 재판은 잘못이었다는 것을 사죄했습니다. 일단 실험과학의 방법의 중요성이 인 식되고 나자, 여러 분야에서 실험기구가 고찰되어 과학의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예컨대 온도 계, 기압계, 공기 진공펌프 등이 발명되는데 따라 화학이나 유체에 관한 연구가 진척이 되었 고, 현미경에 의해 세포,미생물,박테리아 등이 관찰된 결과 생물학과 의학의 여러분야가 새 로이 개척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7세기에 개척된 만큼, 역시 이 시대는 "과학혁명"의 시 대라 할 수 있겠지요. 과학의 방법론 또 하나 과학혁명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과학연구의 방법론에 관한 고찰이었습니 다.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은 "신 오르가논"이라는 저서(1620년)에서 "과학은 관찰이나 실 험에서 얻어진 지견으로부터 보다 일반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학문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귀납적 추론"이라 불리는 과학의 논리적 수법을 처음으로 명확히 논했던 것입니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르가논"이라는 저서에서 원리나 공리로부터 출발해 서 현상에 이르는 "연역적 방법"이라는 논리수법을 제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서 베이컨은 경험에 기초를 둔 실증과학을 주장한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바꾸어 말한다면, 이 미 갈릴레이 등에 의해 시작된 실험과학을 옹호하고, 그 방법의 이론적 뒷받침을 해준 셈입 니다. 한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철학원리"란 저서 를 통해 과학을 진척시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과학연구의 목적은 "어떠한 목적으로 그와 같은 것(객관자연)이 만들어졌는가"를 묻는데 있는 것이 아 니라 "왜 그렇게 거동하는가"를 조사하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그때까지의 학문 이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신의 목적을 되찾는데 있었던 것과는 달리, 신의 의도를 문제삼 아 보았자 별 수 없고 정말로 해 나가야 할 일은 자연이 어떠한 틀 짜임으로 되어 있는가를 밝히는데 있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으며, 그 몸(신체)은 기계로 이해될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 다"라는 그의 말에 의해 대표되듯, 모든 것에 의문을 품어 보는 자기야말로 실재하는 가장 확실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의문에 가득한 마음가짐으로 물질세계의 모습을 꿰뚫 어 보자는 것입니다.(마음을 갖고 있어 보이지 않는 다른 생물들도 하나의 기계로 객관세계 안에 말어 넣었던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과학의 방법은 "객관세계의 현상을 보다 기본적인 물질의 성질과 운동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환원주의"라 불리며 여러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방법입니다. 현대과학은 데카르트적 방법에 의해 성공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에 대한 반성에 대해서는 이미 제2장에서 논한 바 있습니다. 새로운 수학의 개발 물리법칙을 기술하는데 있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앞장에서 논의했습니다. 그런 만큼 과학혁명의 시대에 새 수학이 개발된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16세기부터 17세 기에 걸쳐서 음수,소수,대수,허수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대수기호(미지수를 x라 놓는 것과 같은)를 쓰게 되자 특수한 경우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까지도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 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증명된 "페르마의 정리"는 1637년 페르마가 책의 여백에 적 어 놓은 것이라 합니다(도박을 할 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파스칼과 페르마가 확률론을 연구한 것도 이때 였습니다.) 데카르트는 x축,y축,z축의 좌표계를 설정하고(이 때문에 이들 좌표를 "데카르트 좌표"라 부릅니다), 대수와 기하학을 융합한 "해석기하학"이라는 새로운 수학을 전개시켰습니다. 대수의 문제(예를 들면 2차방정식의 답을 구하는 문제)를 기하학적 으로 풀기도 하고(2차곡선과 x축과의 교점 찾기)역으로 기하학적 문제(예를 들면 두 직선이 직교하는가 어떤가를 조사)길이 열린 것입니다. 또 뉴턴은(거의 같은 때에 독일의 라이프니 츠도)미분,적분법을 고안해 내서, 스스로가 제안한 운동방정식을 풀었습니다(운동방정식을 풀기 위해 새로운 수학을 개척해 냈다 하는 것이 더 정곡을 찌른 말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 다만). 과학의 교류와 연구 업적의 발표 과학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발달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험이나 관측, 모형,경험적인 법칙, 가설이나 원리 등등. 그 하나하나 마다의 논리나 증거를 쌓아올림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이 론체계가 이루어지니 말입니다. 따라서 과학을 개척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연구결과의 공표, 결과의 정확한 기록, 과학자 상호간의 비판 등, 과학활동이 공개되고, 추시되고, 그 이론의 올바름이 확인되도록 여러 조건을 맞추어 가야만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누가, 언 제,어떤 방식으로 발견했는가를 객관적인 증거를 써서 판단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진짜 발견자인지 알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학도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것인 만큼 개인의 업적이나 영예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만 합니다. 유명한 이 야기로서 "3차원 방정식의 해법은 누가 발견했는가" 에 관한 사건을 소개해 둡니다. 이탈리 아의 수학자 타르탈리아가 3차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을 발견했었습니다만, 그는 그 발견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1535년) 학문은 아직도 "사적인 교양"이라 생각되어 있 어서 공적으로 발표하는 습관이 없었습니다. 수학자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를 속여서 그 결 과를 알아내고 그것을 마치 자기가 발견한 것처럼 발표해 버렸습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 노에게 항의했습니다만 이미 끝나 버린 일이라 별 소용이 없게 되었고, 3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한 사람은 카르다노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결과를 발표해야 할 중요성 솔직히 말해서 카르다노가 타르탈리아를 속였다는 것은 욕 얻어먹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카르다노의 행위는, "중요한 연구업적은 반드시 발표해야 한다"라는 과학세계에서의 철칙을 어긴 것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설사 먼저 발견했다해도,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다 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이므로, 세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공식발표를 함으로써 비로소 그 발견은 여러 사람들의 공유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 이후 제1발표자가 제1발견자라는 규칙이 확립되었습니다(덧붙여 서 이야기한다면 타르탈리아의 업적을 가로챈 카르다노도 사실은 우수한 수학자로서 확률론 을 가장 먼저 연구했고, 음수를 대수학에 도입했고, 후에 가서는 4차 방정식의 해법도 발견 하는 등 공적이 많은 수학자 였습니다.) 그렇다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데는 어떤 방법이 있 을까요? 과학혁명 이전의 시대에는 과학 그 자체의 연구는 말하자면 본업의 틈을 타서 하는 부업 비슷한 것이었고, 또 그 양도 적었고, 톱경쟁도 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했을 때는 친구에게 편지로 써 보내거나, 또 는 어떤 명제에 관한 주장이라면 저서로서 간행하고, 천문관측의 결과는 국왕의 포고에 의 해서... 등등과 같은 형식이 취해졌었습니다. 즉 현재의 "논문"에 해당하는 것이 친구에게 보 낸 편지였습니다. (책으로 쓰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곧 발표하기는 힘들었겠지요.) 발견의 선취권을 따질 때는 날짜가 쓰여진 편지가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분실을 염려해서 여 러통의 편지를 써 놓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쨌든 배달 도중에 편지가 도난 당해 결과를 가 로채일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기 힘들도록 왼손으로 쓰기도 하고, 거울문자(거울에 비추어 보면 올바르게 읽을 수 있는)를 사용하기도 했고, 또 그냥은 보이지 않는 특수 잉크 로 써서 불위에 쬐어 주어야 글자가 나오게 하는 들 꽤나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다 빈치라던가 갈릴레이가 고생스럽게 써 놓은 편지라던가 공책이 남겨져 있습니다. 과학자 집단의 설립 카르다노 사건 같은 것의 영향도 있고 해서 논문으로 공표한다는 것의 중요성이 차차 인 식되어 가자, 과학자 상호간에 정보를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같은 논제를 놓고 서로 논의도 해 보자는 기운이 솟아올랐습니다. 또 과학연구의 성과가 많이 나돌기 시작하기도 했고, 로 마교회의 압력을 공동의 힘으로 피해 보자는 생각도 들었고, 뒤에 가서는 로마교회로부터 독립한 세속적 국왕이 과학을 장려하기 시작했다던가 등등의 여러 이유에서 모종의 과학자 들의 공적인 기관을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학회 비슷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먼저 이탈리아에서 과학자들의 정보교환의 장이 만들어졌습니다 만(1560년), 안타깝게도 이단심문소에 의해 탄압되어 곧 해산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움 직임은 영국에도 퍼져 비공식적인 과학자 회합이 1600년경부터 시작된듯 합니다. 그러던 중 1662년에는 찰스2세가 법적으로 허가한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과학이 국가의 위신을 높여 주고 물질적인 이익도 가져다 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왕립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일류 과학자란 증거가 되었고, 그 회합에서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큰 명예가 되었습니다. 즉 과학이라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국가와의 연결이 생겨난 것이 바로 이때의 일입니다. (예컨대 뉴턴은 왕립협회 총재를 그만 둔 후 우리나라로 치면 재정경제부 장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취임했습니다). 논문공표가 갖는 의미 이 와립협회가 시작한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논문발표의 규칙을 확립했다는 일입니다.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서술하고, 그것을 같은 분야의 과학자가 심사하고, 심사에 통과하면 철 학회보라고 하는 왕립협회가 발행하는 학술잡지에 게재해서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방식입니 다. 이것은 당시만 해도 연구성과를 공표하는데 적극성이 없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고 또 발 견의 선취권 싸움이 일어날때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왕립협회의 사무총장인 헨리 올덴 버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이라 합니다. 이 방식은 현재에도 채용되고 있는 표준적인 논문공표의 방식으로서 전문가의 심사에 의해서 논문내용의 질을 높여 주고, 공적인 학술잡지에 게재해 줌으로써 발견자란 것을 인증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학자들의 모임인 학회와 논문공표 방식의 확립은 과학자간의 정보교환과 공개토론을 가능케 해 주는 동시에 과학활 동이 공정한 규칙에 따라 행해진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알려주는 중요한 단계의 하 나였습니다. 또 과학자 사이의 상호비판과 토론이 과학의 내용을 높여 주고 과학자 사이의 상호비판과 토론이 과학의 내용을 높여주고 과학이 신뢰 될수 있는 활동임을 증명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과학혁명의 가장 중요한 집대성이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영 국에서는 아직도 학회명에 "왕립"이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관습 때 문이며 실제로는 개인가맹의 민간단체로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의 뜻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영국에서 세계최초로 간행된 과학논문게재용의 학술잡지인 "철학회 보"가 왜 그런 명칭을 갖게 되었는가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들이 "과 학"이란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학문분야, 즉 자연의 물질의 구조나 운동 또는 진화 등을 연 구하는 분야는 당시에는 필로소피(지를 사랑한다는 뜻,우리 나라 말로 철학이라 번역)라 불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과학은 넓은 지식의 체계 중 하나였기에 필로소피의 한 부문이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시대 이래 "자연과학"의 전통을 이어받았던 것입니 다. 한편 사이언스(라틴어로 지식이나 기술을 뜻하는 scientia, 스키엔티아가 그 어원)란 말 도 현재의 자연과학보다는 더 넓은 뜻을 갖고 있었지만, 필로소피란 말보다는 약간 좁은 의 미로 쓰여졌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필로소퍼이긴 하지만 사이언티스트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1870년대가 되어서도 다윈의 진화론을 강력히 옹호한 토마스 헉슬리는 스스로를 필로소퍼일지언정 사이언티스트라 불리기를 거절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이언티스트란 말은 영어에 없는 말로서 새로 만들어진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이언티스트라 하면 과학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이란 어감이 남아 있어 싫어했던 모 양입니다. 즉 당시 과학자들도 스스로를 "지를 사랑하는 인간" 이며 결코 과학의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변용-국가와의 연관성 이 이야기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유럽에서는 과학의 뜻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 을 뜻합니다. 즉 그때까지는 과학이 지식 체계(문화)의 일부이며 개인의 교양으로서의 연구 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자산을 많이 갖고 있었거나, 재산가인 후원자를 발견하지 못하면 과 학연구는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산업혁명의 성과 위에 꽃이 핀 것(역으로 산업혁명이 "열역학"이라는 물리 분야를 개척해 주기도 하였습니다만)이었지 만, 이때만 해도 과학과 기술은 아직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학(사이언 스)이 주로 자연과학을 뜻하게 되고 과학자(사이언티스트)가 물질 세계의 연구를 하는 전문 가란 뜻으로 변하게 된것은 20세기초부터이며 아직도 1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이언스의 의미가 바뀌게 된 이유는 과학이 국가를 위해 유용하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 입니다. 과학이 기술과 강력하게 결합되어 새로운 기계나 물질을 생산하는데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기초적인 연구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기술적인 응용이 발견되기 만 하면 곧 큰 부를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가는 세금의 일부를 과학연구 에 투입하게 되고 과학자를 조직적으로 육성하도록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 결과 과학예산 이 늘어나고,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커다란 연구체제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물론 대학은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지만, 옛날의 대학은 어디까지나 교양전달의 장이었으며, 국가가 연구 비를 보장해 주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 원자폭탄의 개발처럼 국가가 과학자를 동원하여 엄 청나게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킴으로서 큰 힘도 얻었습니다. 생산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 에 과학이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과학은 국가의 가장 중 요한 부분의 하나가 되어 사회동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과학혁명은 르네상스 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만 현재는 과학을 빼놓고는 도대체 미래란 것을 말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특수성 이처럼 서양에서 시작된 근대과학이 지난 100년 사이에 크게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그 의미에 관해서는 근대과학의 도입과 발전이 서양과는 약간 달랐다는 것을 말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구제국과 비교해서 뒤늦게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에서는, 과학은 우선 수입과 모방으로 시작이 되고, 기술과 분간할 수 없게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던 관계로(그래 서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 과학기술이라는 이상한 말이 생겨남), 쓸모가 있는 과학만이 장려 되었습니다. 과학이란 것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그 내용이 정비되 어 왔으며 과학자란 어떤 존재이며, 사회와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일본의 과학의 현실이며, 사람들의 과학관, 과학 자의 자세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에 관해서는 제4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참고 엔트로피 초보자에게 그 참뜻을 가르쳐 주기가 매우 힘든 물리학 용어의 하나. 계에 출입하는 열량 Q와 온도 T에 관계되는 양으로서 물질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열역학적 양의 하나. 물질계 안에서 그 일부인 고온 T1의 부분에서 저온 T2인 다른 부분으로 열량 Q가 옮아갈 때 고온 부의 엔트로피는 Q/T1만큼 감소하고 저온부의 엔트로피는 Q/T2만큼 증가하여 그 물질계 전체로서는 ...만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즉 엔트로피 S는 수학적으로는 ...에 의해 주어진 다. 열은 항상 고온에서 저온으로 흘러내려갈 뿐 반대로는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이 델타S는 항상 0보다 크다. 이것을 엔트로피 증대의 원리라 부르며 때로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도 한다. 영 숫자, 그 중에서도 특히 정수의 하나. 양수도 음수도 아닌 실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 하는 이 영은 0,1,2,3....처럼 수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동시에 230,503,2030처럼 숫자의 자릿수 를 매길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데 2030이란 숫자는 203이나 20300과는 달라 그 크기 가 2000과 3000 사이에 있는 네자리 수를 나타낸다. 자릿수를 정해 준다는 이 중요한 성질 은 인도에서 이미 5~6세기 경에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또 위의 경우 2030은 1단위 뿐만 아 니라 100단위의 자리마저 비어 있다는 것을 표시하며, 2030이 230과도 다르고 23과도 다르 고, 203과도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페르마의 정리 빛이 어느 한 점 P1에서 다른 한 점 P2로 진행할때 그 경로는 항상 그 광로차가 최소, 또 는 같은 말이지만 소요시간이 최소가 되도록 진행한다는 원리. 이 원리에 의해 빛의 직진성, 반사법칙, 굴절법칙 등이 유도된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아르키메데스가 발견한 부력에 관한 원리. 유체중에 정지해 있는 물체의 무게는 그 물체 의 체적과 같은 체적의 유체의 무게만큼 가벼워진다는 원리. 역행 현상 모든 항성들은 지구상에서 볼 때 1항성일(23시간 56분 4.09초) 사이에 천구상을 한 바퀴 돈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볼 때 항성은 매일 태양일(24시간 0분 0초) - 항성일(23시간 56분 4.09초) = 3분 55.91초(각도로 따져 약 0.983도 즉 약1도)시간만큼 일찍 동쪽 하늘에 떠오른 다. 그러나 이들 항성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별자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변하지 않 는다. 항성으로 구성된 이 별자리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태양계의 모든 별(태양,달 및 지구 이외의 모든 행성 및 그들의 위성)들은 언제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매일 조금씩 위치를 바꾼 다. 이것을 순행운동이라 한다. 그러나 금성이나 수성 등 지구 안쪽에 있는 내행성은 보통 때는 순행운동을 하나 때때로 이 순행운동 외에 짧은 기간이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 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역행운동이라 한다. 또 순행운동에서 역행운동, 역행운동에서 순행 운동으로 바뀌는 짧은 기간을 유라 한다. 이 역행운동은 내행성 외에 혜성이나 목성 등의 외행성(지구 궤도보다 바깥쪽에 있는 행성, 즉 수성,금성,지구 외의 행성)의 위성 등에 대해 서도 때때로 관찰된다. 이런 역행운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동 일 방향의 원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 행성의 운동을 지구에서 관찰하면 내행성의 경 우는 지구와의 상대적 위치 관계 때문에 1회합주기(행성의 지구에 대한 상대적 위치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동안에 2회씩 일어난다. 이 역행운동을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까닭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여러 후세 천문학자들의 지지를 얻게 되었던 것 이다. 제4장 현대의 과학과 과학자를 생각한다. 현대과학의 도달점 과학의 목표는,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물질세계의 기원이나 구조 또는 성질,반응,운동,진화 등을 살피고 그것을 기본적인 법칙에 의해서 해명하는 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원리나 법칙의 근거를 보다 기본적인 원리나 법칙을 써서 명백히 해두고자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와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는 가운데 과학의 전선은 일상세계의 범위에서 벗어나 점차 미시 적인 세계로 파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연구 토픽 줄의 몇가지를 골라 언급함으로써 어 떤 종류의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또 현재 어느 선까지 와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물질의 근원을 찾는다. 물질이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자연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생 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803년 영국의 화학자 돌턴은 화학실험에 의해서 발견된 정비례의 법칙과 배수비례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원자론"을 제창했습니다. 이 원자론에 의하면 각 원소는 그 각각에 대응되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합물"은 이들 원자들이 간단한 비 율로 결합된 분자로 되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위의 두 법칙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습니 다. 돌턴은 이 원자에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를 따라 아톰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화 학"은 아시다시피 서로 인접하는 원자나 분자가 갖는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의 힘에 의 한 반응성을 알아보는 분야입니다. 현재 세계에는 매년 1만 건도 더 넘는 새 화합물이 합성 되고 있습니다. 이 원자가 더 이상 분할이 될 수 없는 입자가 아니라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 도 곧 밝혀졌습니다. 즉 원자로부터 방출되는 광복사(스펙트럼),전자의 방전,광전효과(빛을 원자에 쬐어 주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등의 현상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들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톰슨이나 나가오카의 원자모형이란 것이 제안되었고, 러더퍼드의 실험에 의 해 원자는 양의 전하를 갖는 조그마한 크기의 원자핵과 원자 전체의 넓은 공간에 퍼져 있는 음의 전기를 갖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즉 각 원자는 제각기 전하 가 서로 다른 원자핵을 갖고 있으며, 그 전하의 수로 원자에 번호를 붙일 수 있다는 것, 원 자의 반응성과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은 원자핵을 둘러싸는 전자의 양자적 성질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원자가 다수 모인 물질은 그 온도에 따라 고체,액체,기 체들과 같이 "상의 변화"를 일으키며, 높은 자기장,극저온,초고압 상태를 만들어 주거나 또 는 서로 다른 원자를 섞어 주면 그 물리적 성질(비열,열팽창률,자화율,전기저항)이 변화합니 다. 이런 변화들은 물질 중에 들어 있는 여러 전자의 거동에 의해 정해집니다. "물성 물리학 "은 물질의 이와 같은 물리적 성질을 조사하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며 전자공학은 현대사회 에서는 생활의 구석구석까지에서도 이용되고 있는 학문분야입니다. 원자핵의 구조에 파고 들어간다. 위에서와 같이 실험에 의해 얻어진 경험법칙을 물질의 보다 기본이 되는 성질이나 구조에 의해 이해하려는 방법이 성공한 셈입니다. 그리고 각 물질에 상응한 과학분야가 계속 생겨 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미시적 세계에서의 물질의 운동법칙은 뉴턴 역학과는 달리 양자 역학에 의해서 기술된다는 것이 명백해지기도 했습니다. 또 물질의 궁극적 근원을 향해 다 가간 연구는 원자핵의 구조 해명 쪽으로 파고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원소의 방사성 붕괴, 원 소의 동위체(같은 원소라도 무게가 서로 다른 것)의 발견, 원자핵 반응실험 등을 통해서, 원 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이들은 일괄해서 핵자라 불립니다)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려졌습 니다(1932년). 그 핵자끼리를 결부시켜 주는 힘을 밝혀 준 사람은 일본의 유카와입니다. 원 자핵의 연구에는 고에너지 입자를 원자핵에 부딪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방사성붕 괴로 방출되는 알파선(헬륨의 원자핵)이 이용되다가, 얼마 안 있어 하전입자(전자나 양성자 등)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 주는 장치가 개발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술개발이 있었기 에 미시적 세계의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원자핵 물리학"은 핵반응을 통해 서 얻은 여러 데이터로부터 원자핵의 구조나 운동을 밝히려고 하는 물리학 분야입니다. 물 질의 근원을 살피려는 연구는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연구와 병행해서 진행되었습니다.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힘 중 가장 먼저 발견된 것은 뉴턴의 만유인력으로서 1687년의 일입 니다. 그 다음에 발견된 힘은 전하를 갖는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쿨롱력으로서 1785년의 일 입니다. 원자핵 내에서 작용한는 힘은 강력(강한 상호작용, 강한 힘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 로 핵력)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 까닭은 쿨롱의 힘에 비해 강하다는 뜻입니다. 대략 쿨롱력 의 137배의 세기기 됩니다. 따라서 같은 크기라면 쿨롱력으로 지배되는 화학반응(예컨대 석 유의 연소)에 비해 핵반응(예컨대 우라늄의 분열)을 쓰면 엄청나게 큰 에너지를 얻어낼 수 가 있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폭발력 크기를 "20킬로톤"이라 부르는 것 은 TNT화약(화학폭탄) 약 2만톤 분의 폭발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폭발력 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의 개발 이라는 형태로 시작했던 것입니다.(맨해튼 계획) 소립자의 등장 원자핵이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후 그 핵자 또한 구조를 갖 고 있다는 것이 핵자 상호간의 반응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핵자 이외에도 핵 자들과 강한 힘으로 반응하는 중간자나 람다 입자 또는 시그마입자(이들은 중입자, 즉 hadron이라 부릅니다) 등도 발견되었고, 또 강한 힘과는 반응하지 않는 뮤입자나 뉴트리노 (중성미자)등 경입자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라하여 1930년대 후반이 되면 핵자와 전자만의 시 대는 지나가고 다수의 소립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엄청나게 높은 에니지 까지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는 각종의 가속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소립자가 붕괴 를 하거나 다른 소립자들로 변신해 가는 반응도 자세히 조사되었고, 그때 작용하는 약력(약 한 상호작용, 약한 힘이라고도 함)의 성질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약력이라 불리는 이유는 쿨롱력의 약 1천억 배나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이 발견된 소립자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소립자 물리학"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의 주된 관심거리는 " 대칭성" 또는 "보존칙"에 있었습니다. 중입자는 강한 힘에 의해 반응하지만 그 강한 힘이 어 떤 대칭성을 나타내는가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모형을 만들고, 그 모형이 예측하는 결과 를 실험과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칭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중입자 에는 최소 몇 개의 기본입자가 필요한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가 추구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음 페이지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3세대 6종류의 쿼크가 기 본입자일 것이란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쿼크는 단독으로는 직접적으로 검출 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실험에서건 쿼크 모형은 이론과 썩 잘 일치하고 있으며, 소 립자간의 반응의 중간상태에서 쿼크가 반응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어 있기 때문에 쿼크 모형은 올바른 이론이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직접 그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여러 증거로 보아 그 존재는 의심할 바 없는 것으로 확신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원자론의 경우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즉 돌턴이 원자론을 부활시킨 후 원자의 크기를 직접 잴 수 있게 된 것은 100년도 더 지난 뒤였는데, 그 원자의 존재는 아주 옛날부터 믿어 져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원자 한 개 한 개를 정말로 볼 수 있게까지 되었습니다. 한편 경입자는 쿨롱력과 약력에 의해 반응됩니다. 그리고 이들 힘의 대칭성에 관한 고찰로부터 3세대 6종류의 렙톤이 존재하며, 그 중 전자와 3종류의 뉴트리노 등 4개가 안정하며, 이들은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참뜻의 소립자이라라 생각되고 있습니 다. 이들 6종류의 렙톤은 모두가 발견되어 있으며, 더 이상 다른 종류의 렙톤은 존재하지 않 는다는 것도 실험에 의해 증명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쿼크와 렙톤 모두가 3세대 6종류로 서 로 대응관계에 있는 모형을 "표준이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표준이론이 성립하는 참 이유는 보다 근원적인 물질에 그 근원 을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상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4가지의 힘(힘이람 말 대신 상호 작용이란 말을 씀)의 전부가 등장했습니다. 즉 중력(만유인력),쿨롱력(전자기력),강력,약력의 4가지 말입니다. 왜 힘이 4가지뿐일까요? 또 이 4가지 힘은 본래가 하나였던 것이 어떤 이 유에 의해 4가지로 갈라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대칭성을 설명할 때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원 래는 대칭성이 높은 하나의 상태(단 한 종류의 힘)로 있다가, 그 대칭성이 깨지면서 제각기 특징적인 구조(4종류의 힘)가 생겨난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는가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만 년에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일적으로 기술하는 이론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결국 그 시도는 성공을 보지 못했습니다만 보다 단순한 구조로부터 대칭성이 깨져 복잡한 구조가 태어날 것 이란 발상은 옛날부터 물리학자들이 생각해 왔던 바입니다. 실제로 약력과 전자기력이 매우 극미한 상태에서는 같은 크기가 되어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실험에 의해 확인되었 습니다. 그렇다면 강력이나 중력까지도 통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겨 현재 연 구가 진행되어 있습니다만 아직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앞으로 이룩 해 놓아야 할 주요한 과제의 하나입니다. 실험에 의해 얻어진 경험칙과 거기서 중요한 역할 을 행하고 있는 물질, 그리고 그것을 연구하는 과학분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와 지구의 기원 및 그 진화 "우리들은 현재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그 세계는 어떤 과정을 밟아 생겨났는가? 그 리고 그 안에서 우리들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태어났으며 진화해 왔는가?" 이런 질문들 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 옛날부터 품어 온 의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 에 관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29년부터입니다.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 "우주는 팽 창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미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어떤 모양으로 운동할 것인가를 기술하는 방정식을 발표하고 있었으며, 그 해답도 몇 개인가 발견되어 있 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순간의 우주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지 않는 한 그 방정 식이 옳은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며, 또 해답을 발견했다 해도 그 해답은 탁상공론 에 불과하게 됩니다. 과학에서는 역시 자연현상에 관한 관측과 실험이 이루어져 있어야 비 로소 옳바른 연구가 시동이 되는 것이빈다. 우주 팽창은 멀리에 있는 은하가 우리들로부터 그 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를 갖고 멀어져 가고 있다(허블의 법칙)는 사실로부터 추론된 것으로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우주전체가 커져 갈 때(일양팽창) 이와 같은 팽 창법칙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인슈타인의 우주방정식으로부터 러시아의 프 리드만이 얻어낸 해답 속에 이미 이와 같은 팽창법칙이 예언되어 있기도 하였습니다.(1922 년) 우주론의 난점 우자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곧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어려운 문제가 떠올랐습니 다. 그 하나는 우주팽창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주가 유한한 과거 어느 때엔가 한 점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됩니다. 즉, "우주가 어떤 식으로 탄생했는가" 하는 "우주의 기 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우주가 팽창을 한다면 공간이 퍼져 나아가 밀도나 온도 가 내려가기 때문에 우주는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어 가게 됩니다. "우주는 어떤 방식으 로 진화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는가"하는 "우주의 진화"에 관한 문제입니다. 실은 두 가지 어려운 문제는 현재로서도 우주론 최대과제의 하나로서 아직도 결말이 나 있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우주팽창이 발견되고 나서 이미 69년이 지난 지금인데도 왜 이 두 난제는 풀리지 않고 있을까요?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우주가 소립자들보다도 더 작은 매우 미시 적인 상태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물질의 기원에 관한 지식 없이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도 동시에 생겨난 것이라 해석되 기 때문에 시공간의 기원도 문제가 됩니다. 말하자면 시간적으로는 "그 이전"이란 것이 없 고, 공간적으로는 "우주가 태어난 장소"란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물질,시간,공간 을 통틀어 일체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호킹등의 제안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어려운 문제의 하나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우주의 진화에 관해서는 현재 우주의 정확한 모습이나 과거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변해 왔는지에 대해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 다. 지구나 생명의 진화를 연구하는 데에는 과거 지질학시대의 지층이나 화석을 조사함으로 써 과거의 상태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없 는 한 우주의 진화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현재까지 상당히 진척이 되어 있 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주의 과거나 현재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주의 진화를 자세히 논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주진화의 문제는 어려움 투성이라는 이야기만 늘 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말해, 곤란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오히려 앞으로 연구 가 크게 진척될 가능성도 큰 분야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개척 분야이기에 새로운 구상, 고도의 기술, 계통적인 추구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과특이 가능해져 새로운 우주상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시점에서 우리들은 우주가 고온,고밀도의 상태로부터 팽창을 시작하고(폭탄이 폭발했을 때와 비슷), 그 팽창과 정에서 은하가 태어났고, 별들이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빅뱅우주"라 부릅 니다만, 현실적인 모형으로서 제창한 사람은 가모브로서 1948년의 일입니다. 이 우주모형을 기초로 우주의 진화에 관한 연구가 구체적으로연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는 하이테크기술이 우주관측에 응용되어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어두운 은하의 모습 까지도 포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분야는 "관측적 사실을 기초로 한 우주론 "이라는 실증적인 과학으로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뿐이랴, 앞으로의 계획으로는 대망원경의 건설, 여러 망원경에 의한 공동관측, 인공위성, 월면 천문대, 행성탐사기 등등이 계획되고 있고 논의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본은 하와이의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구경8미 터나 되는 대형 광학망원경(스바르라 명명)을 건축중에 있으며, 아마도 21세기초에 가서는 대활약을 하게 될 것입니다. 행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지구의 탄생과 진화"의 문제는 천문학과 지구과학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과제중의 하 나입니다. 별(항성)이 태어날 때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확률로 행성이 부수적으로 탄생하는 가 하는 것을 논하는 행성의 탄생에 관한 연구는 천문학상 중요과제의 하나입니다. 사실 우 리 은하계 내에서는 매년 10개 정도씩 별(항성)들이 탄생하고 있는데 그 80%는 이중성으로 태어나며, 행성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이와 같은 별의 탄생과정은 은하의 진화 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물리과정의 하나로서 관측적 연구와 이론적 연구가 한 묶음이 되 어 정력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포물면으로 된 전파망원경을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은하수 내에서 현재 별이 탄생되어 가고 있는 장소로부터 방출되는 전파를 받아, 성운가스의 온도나 밀도, 그 조성과 운동 등의 물리적 상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리고 최근들어 행성을 갖는 별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습니다. 이론적인 예상처럼, 우리 태양 계만이 유일한 행성계는 아니란 것이 명백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지구와 같은 행성이 존재 하는지 어떤지 더 자세한 관측이 이루어지게 될것입니다. 행성의 탄생에 관한 연구와 더불 어, 행성이 일단 태어난 후 그 질량과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차 때문에 행성들이 각각 어떻 게 진화해 나아가는가 하는 것에 관해 연구하는 "행성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새로 생겨 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금성과 지구는 그 무게가 거의 같은데도 금성은 그 대기가 이산화탄 소에 의해 덮혀 있고, 400도라는 작열지옥과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생명은 도저히 탄 생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왜 이렇게 커다란 차이가 생겼을까요? 또 1994년에 거대한 혜성 의 파편이 목성에 충돌했습니다만, 그와 같은 일이 지구에서도 그 옛날 언젠가 일어났었을 까요, 그리고 그런 경우 지구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행성의 진화에 관한 이와 같은 연구가 개척되게 된 것은 행성탐사기라던가 인공위성에 탑재한 망원경에 의한 관측에 의해 행성의 물리적 상태가 마치 지구상에서 측정하거나 한 것처럼 세밀히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행성과학이 그 한편으로는 천문학의 연장선상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과학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시스템으로서의 지구 행성 중에서도 특히 우리 지구에 관한 연구에서는 갖가지의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과가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화석이나 지층을 조사할 뿐만 아니라 나 무나 조개의 껍데기 등에 남아 있는 연륜이라든가, 바다나 호수에 퇴적된 진흙의 조성, 남극 의 빙산이나 빙하 등에 포함되어 있는 동위원소등의 분석으로부터, 지구가 갖가지의 리듬을 새겨 가면서 진화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또 플레이트 테크토닉스라 불리는, 대륙이나 해저 밑바닥의 이동에 관한 연구로부터, 지구가 다이나믹한 운동을 계속하면서 진화해 왔다 는 것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운동은 기후변동이나 해류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지구환경도 크게 변경시켜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생물의 진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겠지요. 지구를 고체로 된 대륙이나 섬, 액체로 된 바다, 기체로 된 대기의 3가 지 상이 상호작용 하는 계라 생각하고 그 안에서 생명들이 환경을 변화시켜 가면서 자라고, 또 반대로 생명 그 자체가 환경을 변화시켜 가면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지구를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으로서 다루는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한 분야이지만, 인 간의 미래와도 관련되는 만큼 앞으로 더욱더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즉 우주 역사에 있어서의 지구, 지구의 역사에서의 생명, 그 생명과 자연이 옷감을 이루는 작물처럼 서로 엮여서 진화를 거듭한다는 관점과 상상이 퍼져 가고 있습니다. 생명의 논리 "이 우주에 우리들 이외에도 생명은 있을까요? 있다면 그 생명은 우리들과 똑같은 생명 일까요?" 이런 질문을 잘 받습니다만 저는 이에 대해서 "아마도 우주에는 많은 다른 생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성의 탄생은 극히 흔한 물리적 과정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 생 명들이 지구에서의 생명체와 같은 것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가 아직도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므 로 만약 정말로 UFO를 타고 우주인들이 와 있다면, 생물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커다란 문제로서 노벨상을 4개나 5개라도 받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지요. 그런 이야기가 여태껏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UFO우주인 설은 거짓말입니다."라고 덧붙입니 다. 생명이 그밖의 무기적인 물질과 다른 것은 첫째로 외계와 독립적으로 생명 유지활동을 행한다는 것(대사), 그 생명의 속성이 복제되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유전), 단순한 형태 에서 복잡한 형태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진화)의 3가지입니다. 이 3가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세포로서 현미경이 발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665년에 로버트 훅에 의해 발견 되었습니다. 그 세포중의 어느 부분이 이들 3가지 기능의 주역인가 하는 점을 추구한 결과, 세포질이라 불리는 액체가 대사를 담당하고, 핵 안에 들어있는 DNA가 유전과 진화에 관여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DNA는 염기쌍을 가로목으로 하는 이중나선으 로 된 줄사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염기의 나열순서가 유전정보로 되어 있 다는 것이 1953년 와트슨과 트릭에 의해 발표되었습니다. 이리하여 현재와 같이 DNA를 축 으로 하는 생물학의 기초가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물리학적 방법으로 DNA의 구조를 분석 DNA의 구조를 밝혀 내기까지의 일련의 연구과정은 원자론이나 양자론이 확립되기에 이 르기까지 과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선 염색체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핵산 중 어느 쪽이 유전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가 하는 것이 논쟁이 되었습니다. 실험결과 탄화수소를 다 른 것으로 전환시켜 주는 능력을 갖는 물질로서 DNA쪽이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지구상 의 모든 생물이 DNA에 쓰여진 정보를 토대로 몸체를 만들고, 생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판면된 것입니다. 생물의 진화는 DNA의 정보가 변화하는 것에 대응되는 셈이지요. 그 후 DNA를 실험을 통해 염기로까지 분리해서 조사하여 두 쌍의 염기(구아닌과 시토신, 아데 닌과 치민)는 각각 서로 같은 수만큼 있다는 경험칙을 발견하였습니다(샤르가프의 법칙). 어 떤 종류의 발견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경험칙(예컨대 원자론에서의 정비례의 법칙, 양자론에 서의 발머가 발견한 수소 스펙트럼의 규칙성, 즉 발머 계열의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DNA에 X선을 쬐어서 나선구조를 추측해 내고, 최종적으로 두 쌍의 염기가 서로 짝을 이루면서 다리(사다리의 가로목)를 놓는다는 이중나선의 줄사다 리 모양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염기의 쌍이 어떤 방식으로 아미노산을 만들고, 그 아미노산이 어떤 방식으로 결함된으로써 단백질을 합성하고 있는지 그 암호는 어떻게 되 어 있을까요? 그 암호의 하나를 푼 사람은 백 뱅 우주론을 제창한 조지 가모브였습니다. 염 기 쌍이 3개씩 모여서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든다는 것을 그는 증명했습니다. 가모브는 소립 자의 연구 등등 실로 다채로운 연구업적을 올린 사람인데, 그처럼 기본적인 논리나 법칙을 철저하게 파악해 두기만 한다면, 그 사고방식은 어떤 종류의 대상에도 적용될수 있다는 것 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셈이지요. 어쨌든 생명현상에 대해서도 원리를 보다 근본적인 물질로 환원시켜 그 구조나 성질을 추구한다는 물리학적 방법이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유전정보의 해독과 생명의 기원 현재 인간의 DNA에 쓰여져 있는 유전정보를 해독하려는 연구가 전세계에서 경쟁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유전자의 어느 부분에 어떤 유전정보가 적혀 있는가를 읽어 내려는 것 입니다. 인간의 DNA속에는 줄잡아 약 30억 개의 염기 쌍이 있으므로 그것을 전부 읽어 내 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 해독이 완성된다면, 어떤 종류의 정보를 토 대로 해서 생명체가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갖가지 생물의 유전정보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어떤 과정을 밟아 생명이 진화했는지도 알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유전정 보로부터 실제의 생명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 갖가지의 생체의 방어기능(예컨대 이물질을 배척하는 면역작용), 원활하게 생체를 기능케 해주는 메커니즘(예로 효소나 호르몬의 작용), 생물의 진화(예로 어류로부터 양서류,파충류,포유류로의 진화 및 원숭이에서 사람으로의 진 화 등)등, 생명의 다양한 측면이 DNA의 수준, 아미노산, 단백질의 수준, 세포의 수준 등등. 각각의 문제에 알맞은 분자 수준에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생명이 어떻게 탄 생했는가에 대해서는 해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시지구가 어떤 상태였었는지, 그 원시상태 에서 어떠한 화학반응이 일어났는지, DNA에 의한 유전방식은 우연의 산물인지 필연적인 것이었는지 등등. 미지의 요소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고열의 온천에서 살고 있는 생물, 강한 알칼리성의 물 속에서 사는 생물, 자기에 강하게 반응하는 생물 등 극단적 조건하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이 어쩌면 힌트를 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를 해 결하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도 생각됩니다. 35억 년에 걸친 생명의 역사와 3천만 종도 넘는 생물의 연구는 앞으로 더욱 더 성황을 이룰 것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다시 말했지만 이 분야는 "유전자 조작"이 라는 중대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만큼 그 장래의 방향에 대해서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임해야 할 줄로 압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이상은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이과대학이라는 기초과학에서 다루고 있는 최신 연구분야를 소개한 것입니다. 그밖에도 컴퓨터를 중심으로 하는 정보과학(멀티미디어)이나 제어공학(로 봇), 원자를 조작하는 나노테크놀로지, 에이즈나 에볼라 등의 바이러스학, 인공장기 및 장기 이식을 다루는 의학 등이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한 과학의 응용분야의 화제 쪽의 "과학"을 더 우리 몸 가까이 느끼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렇긴 하나 이들 응용분야에서 사용되는 있는 기초적인 원리나 개념들은 모두가 물리학,화학,생물학 등의 기초연구에서 발견된 것들 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과학의 기술화"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기술화의 과정을 거쳐 과학은 비로소 사회나 생활 속에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초적인 과학연구가 있었기 때 문에 비로소 기술혁신이 진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물론 과학자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구의 결과로서 기초과학은 인간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해 둘 것은 기초과학의 역할은 인 간의 문화의 하나로서 자연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우주 나 지구의 진화에 관한 연구는 직접적으로 우리 인간생활에 무엇인가 도움을 주는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 알아낸다는 것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수가 있고, 또 용 기를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를 생각할 때의 힌트를 떠오르게 할지도 모릅니 다. 훌륭한 회화나 음악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대한 큰 격려가 되는 것과 사정이 같다고나 할까요. 현대과학의 특징 극도로 발달된 오늘날의 과학을 되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 첫 째 특징은 과학의 최일선에서는 보다 극한의 상태를 찾아서 장치가 거대화하고, 숱한 과학 자들이 조직화되어 과학이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차원에서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과학자 개인 개인은 스스로의 흥미와 열의 아래, 스스로의 직업으로서 과학연구에 종 사하고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거대한 예산을 쓴 커다란 연구계획(프로젝트) 안에서, 보잘 것 없는 어느 한 부분의 연구일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과학의 최일선이 점 차 일상생활에서는 벗어난 미시적인 세계로 파고 들어가고 있으며 또 난해한 수학을 구사하 게 되어 과학의 실상을 붙잡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즉 과학이 웬지 먼 곳에 있어 우 리와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고 일반사람들의 감각과는 빗나가기 시작하 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과학에서 발견된 원리가 기술화되기까 지의 시간이 짧아져 싫건 좋건 인간이 과학에 지배되어 가는 상태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입 니다. 이 최후의 문제에 관해서는 달리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처음 두 문제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과학의 거대화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찾고, 우주의 더 멀리를 관측하고 또는 30억 개나 된다는 유전 자 정보를 해독한다던가 하는 연구에는 거대한 장치와 숱한 연구자,연구보조자,기술자가 필 요하며, 그 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예산이 필요해집니다. 대기업과도 같은 정도의 예산과 인 원이 단 한가지 프로젝트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초과학이므로 연구 그 자체 가 곧 직접적인 이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닙니다(장치를 만들거나 작동시켜 주는 회사는 돈을 벌겠습니다만). 따라서 필연적으로 정부가 예산을 내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즉 과학연 구에 국민이 낸 세금을 쓰게 됩니다. 정부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위해 무엇인가 이유를 만들 어 내야 합니다. 성공한다면 응용범위가 넓어진다라던가, 주변기술에 도움을 준다던가 또는 세계제일이 된다던가 하는 따위의 이유입니다. 그 결과 이런 이유를 붙이기 쉬운 프로젝트 일수록 예산을 따기 쉽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과학적인 중요성보다도 붙이기 쉬운 이유 쪽 이 더 우선 순위가 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리하여 과학의 거대화는 과학의 변질을 가져올 위험성을 잉태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계획되었던 SSC(초전도 초대형 입자 충돌기)의 예산은 총액 80억불이란 견적이 나왔습니다. 이 돈은 미국으로서도 단독으로 마 련할 수가 없어 일본이나 유럽 그리고 한국등 여러 나라에게도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 니다. 그 수%라해도 엄청난 금액이 되기 때문에 일본에서조차 간단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 습니다. 그리고 SSC의 건설은 일단 시작은 되었지만 결국 미국 국회에서 예산지출이 거부 된 결과 계획 자체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국가의 위신을 걸고 세계제일의 연 구를 이끌어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가속기 경쟁에서 유럽연합의 CERN에 선 두를 빼앗겼던 초조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 국회는 이와 같은 분야에 거 대한 예산을 지출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한 때 아폴로 우주선 계획으로 인류가 최초 로 달세계에 발을 디디려 했을 때 "달보다는 빵을"이라는 비판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과 학이 거대화하면 할수록, 국가예산 중의 다른 분야와의 평형관계로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연구도 진행시킬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대장치에 의한 연구의 문제점 한편 연구자 측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거대한 장치의 건설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동 안 장치의 개발에 시간을 빼앗겨 연구를 진행시킬 수가 없어집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 은 시절을 막노동 일만 하고 말았네" 하고 술회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또 자기가 관여하는 부분은 프로젝트 전체의 아주 좁은 부분으로서 프로젝트 전체에 비하면 흥도 나지 않아 충 실감을 맛 볼 수도 없게 되겠지요. 예컨대 1985년 톱 쿼크가 발견되었는데, 논문에 실려 있 는 연구자의 수는 403명이나 되었답니다. 이렇게 다수가 되면 서로 얼굴조차도 모르는 공동 연구자도 많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합니다만, 현재에는 수 천만불에서 수억 불의 프로젝트가 흔해져 버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못하면 좋은 연구 를 할 수 없게 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장치 를 누구라도 쓸 수 있게 공동이용으로 하는 방법도 취해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 방법은 연구자 사이의 불평등을 없애 주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은 됩니다. 하지만 모처럼 만들어 놓 은 비싼 장치가 자잘한 연구에 사용된다는 등의 안타까운 문제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 긴 하나 현재 일본의 사정으로는 우선 기초과학을 위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인 시대 입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기초과학에 연구비가 할애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 게 해서 제작한 장치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이용하게 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라 생각됩 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입니다. 일단 이렇게 큰 장치를 만들어 놓으면 연구자들은 그 다 음 단계로서 더 크고 더 비용이 드는 장치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 이전까 지의 성과 위에 차례로 연구결과를 쌓아올려 간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서 반 드시 더 거대하고 더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정해진 단계에서 거대화 로의 진행이 언젠가는 멈추어지리란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어느 단계인지는, 최종적으로 세금을 내는 국민이 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얼마나 과학내용에 대해 이해하 고 있는지가 그 나라의 과학의 수준을 정해주는 것이 돌지도 모릅니다. 과학자 자신이 이 점을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연이 가져다 준 새로운 발견 또 한가지, 커다란 장치를 사용한 연구만이 최첨단의 과학인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필 요가 있습니다. 소규모의 장치를 쓴 연구는 확실히 화려하지는 못합니다만, 스스로가 고찰해 낸 장치인 만큼 더 자연 자체에 밀착된 연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혀 새로운 국면 이 그와 같은 연구로부터 개척됨직도 합니다. 큰 장치를 쓴다는 것은 연구의 방법이 이미 확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 니다. 과학의 역사상 "우연"이 새로운 발견과 연계되어 있었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예컨대 플레밍이 항생물질을 발견한 것은 감기가 들어 재채기를 했을 때 눈물 한 방울이 우 연하게 페트리접시(독일의 세균학자 페트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세균 배양용 접시)에 달 라붙었기 때문이랍니다. 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은 음극선이라 부르는 입자선(전자선) 을 쓴 실험 도중에 우연히 음극선관을 까만 종이로 감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연한 발견 을 세렌디피티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진리는 뜻밖의 곳에 숨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연구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곳에야 말로 오히려 과학연구의 참된 즐거움 과 재미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런 분야에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과학연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멀어져가는 과학 과학의 최전선은 점차 우리들의 일상 감각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예를 든 톱 쿼크를 발견했을 때 "그런 것이 뭐 가 재미있는가?"하고 꽤 냉담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연구대상이나 연구방법이 극한에 가까워져 실생활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상태 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 조분의 1센티미터라는 극미 세계를 헤쳐 들어가는가 하면 극저온,초고압,초강자기장,초진공 등등. "극"과 "초"란 형용사가 붙는 환경하에서의 물질의 성질이나 운동을 조사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상태에 관해서는 남김없 이 모두 조사해 버렸다는 뜻인가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 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방법에서는 자연현상을 보다 기본적인 물질의 구조나 성질 및 운동 을 써서 설명하려는 데카르트 식의 방법(환원주의)이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에 의해 근대과학은 보다 미시적인 상태로 되돌아가, 보다 극단적인 조건하에서 보다 이상적인 상태 를 설정해서 물질의 성질이나 운동을 조사한다는 식의 방법에 따라 연구를 진행시켜 갔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상적인 상태는 모두 남김없이 조사해 버렸다는 측면은 확 실합니다. 따라서 더욱 더 극단적인 상태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환원주의적인 방법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는 지금까지 별로 연구되질 않았었습니다. 다 음절에서는 어떤 문제가 연구과제에서 빠져 있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습니다만, 그런 문제들은 매우 일상적인 수준의 연구테마로서 그 연구의 방법이 아직도 확립되어 있지 않아 아주 진전이 느렸던 것입니다. 수학의 문제 과학이 소원해져 간 또 하나의 이유에 수학이라는 언어를 썼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수학 을 써서 기술을 함으로써 과학이 논리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고, 누구에게나 이해되기 쉽게 되고, 수치적으로 실증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과학의 법칙이 보편적으로 성립한 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데에는 수학이라는 언어가 절대 불가결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이나 현상이 일상에서 멀어져가는데 따라 매우 난해한 수학이 등장하 게 되어 전문가 이외에는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과학자로선 좀더 수학을 쓰지 않고 누구나가 다 알 수 있 는 쉬운 표현을 고안해 낸 개념인 만큼 일상용어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은 일반인으로부터 소원해진 것입니다. 확실히 전문가끼리는 일상 언어를 쓰는 것보다 수식을 쓰는 쪽이 이해하기가 쉽고, 또 문제의 본질도 간단히 꿰뚫어 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전문가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좀더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을 위한 과학잡지가 몇몇 있스니다만, 그것마저도 너무도 난삽하고 이 해 불가능하게 썼다던가 또는 사진이나 삽화를 많이 써서 속임수를 쓴 해설도 많은 것 같습 니다. 사진이나 삽화를 쓰면 한눈에 무엇인가 안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서투른 문장보 다는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상만 남은 채 잊혀지기도 하고 또 보는 사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또 사진이나 삽화만으로는 독자에게 오해를 품게 해 줄 위험성도 있고 저자가 그 주장을 강조코자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전쟁을 테마로 한 삽화나 사진에서는 적군은 추하게 아군은 멋지게 그려져 있지요.). 역시 말로 표 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됩니다. 거대화한 과학, 일반인들로부터 소원해진 과학,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과학자는 진지하게 그 실상을 잘 살피고, 시민들과의 대화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현대과학이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 한신,아와지 대지진 재난으로 6천명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30억 년 전부터 지진을 예측하려는 연구가 계속되어 왔습니다만, 아직도 당분간은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미리 예측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에게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이 아 직도 잘 이해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지진의 문제 말고도 우리 주변 에는 담배 연기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의 운도, 수도꼭지에게 내뿜는 수돗물의 흐름의 운동, 나뭇가지나 번개의 가지치기의 위치, 모래사장의 풍문(바람에 의해서 모래 위에 새겨지는 무늬)이나 유리가 깨질 때의 파편의 모양 등등, 명확히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언뜻 보아 매우 간단해 보이면서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또는 왜 그런 모양으로 생겼고 또 성장했는지 전혀 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이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의 공통점 이처럼 현대과학으로서도 다루기 힘든 난처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 하게 뒤얽혀서 1. 보다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거나 2. 보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같은 형태가 계속 되풀이되어 나타나, 문제가 하나도 단순화되지 도 않고 풀리기 않는다. 라는 점입니다. 1.의 경우 "비선형의 작용"이라 하며 2.의 경우를 "프랙털현상"이라 합니다. 이 둘은 서로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아직도 충분히는 해명되어 있지 않는 않습니다. 또 물 리학에서는 3. 형태 또는 형상을 다루는 문제는 다루기가 무척 힘들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수학에서도 매듭이나 종이접기의 기하학이 최근에 와서야 겨우 자세하게 연구될 수 있게 되 었습니다. 다음에서는 이 3가지 문제를 문제 삼아 그것이 왜 풀리기 힘든 문제인가, 지금 어 떻게 연구되어 가고 있는가 등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풀기 힘들어 지금까지 별로 연구 되지 않았던 문제야말로, 앞으로는 많이 연구될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비선형의 물리학 지금까지 취급되어 온 물리과정은 거의 모두가 1차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선형"과정(비례 관계)이었습니다. 선형의 경우, 그 해의 정수 배도 해가 되며, 두 독립된 해를 합친 것도 해 가 됩니다(중첩의 원리). 예컨대 "어느 전하 하나가 만드는 전기장을 알 수 있다면, 여러 개 의 전하가 있는 경우의 전기장은 단순히 각 전하가 만드는 장의 힘(다만 벡터 합)으로 표시 된다" 라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이 중첩원리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매우 간단해져서, 해가 어떤 성격을 갖게 되는가를 쉽게 알아맞힐 수가 있게 됩니다. 또 물리법칙을 선형 방정식으 로 표시해 두면, 완전히 성격이 다른 현상인데도 방정식만 동일한 형태가 된다면 동일한 해 를 활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예컨대 용수철의 진동, 흔들이의 운동, 코일과 축전 기를 연결한 회로를 흐르는 전류 등이 모두 동일한 조화진동의 방정식으로 기술이 됩니다. 또 열과 전하와 소용돌이 운동이 같은 타입의 방정식으로 쓰여 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물리현상도 닮아 있고, 한쪽 현상이 이해되면 다른 쪽 현상에 대해서도 예상이 가능해집니다. 사실 "물리학에서의 유사관계"라는 책이 나 올 정도이며, 뜻밖의 경우에 동일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데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법칙을 수 식으로 표시 했기 때문에 생기는 효험을 이런 일들로부터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자연현상은 모두가 선형일까요? 사실 선형의 방정식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는 현상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는 비선형인데도, 선형적 근사로 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 습니다. 용수철의 진동에서 용수철이 줄어들려 하는 힘이 줄어든 길이(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길이의 일승)에 비례하는 것은 이상적인 경우일 뿐이며, 실제로는 용수철의 늘어난 길이 의 2승이나 3승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흔들이의 경우에는 진동하는 각도가 작을 때에 한 해서 선형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근사는 그 유효범위 안에서밖에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선형 방정식의 해를 구한다는 것은 힘이 들며, 특별한 경우 외에는 풀려져 있 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를 구할수 없는 경우에는 우선 선형의 부분만의 해(근사해)를 구하 고, 그것을 비선형 방정식에 대입해서 풀어 나가는 방법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을 "섭동법" 이라 합니다. 근사해부터 시작해서 차차 올바른 해로 접근해 가자는 셈이지요. 예컨대 바다 에 파도가 일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파도의 높이(진폭)가 작을 때는 선형으로도 충 분하며, 해가 하나의 파장으로 표시될 것입니다. 그러나 파고가 높아지는데 따라 비선형성이 영향을 미치게 되어 파장이 짧은 쪽 파동도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파도에 대해서 도 기술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이 섭동법으로는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비선 형항 쪽이 선형인 항보다 훨씬 크면, 축차대입법은 할 수 없게 됩니다. 호꾸사이(일본 에도 시대 중기에 활약한 유명한 풍속화가)가 그린 "북안삼십육경"에서처럼 물마루가 휘감겨 방 금이라도 떨어져내려갈 듯한 파도는 아예 처음부터 비선형파로서만 계산하지 않으면 안됩니 다. 초음속 제트기가 만드는 충격파나, 얕은 강 위에 물뱁이 머리를 쳐들고 가듯 그 모습을 바꾸지 않고 진행(전파)해 가는 고립파 등도 비선형 특유의 파도입니다. 이처럼 비선형 항이 지배하는 문제에서는 갖가지 해법을 고안해 그 각각에 알맞은 해를 찾게 됩니다. 특별한 경 우를 제외하고, 이런 경우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이 발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처럼 해를 구할 수 없는 경우의 문제들이 많은 등, 비선형 문제는 손을 대기가 힘들었던 것 입니다. 카오스의 세계 그러나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어 현재에는 비선형 문제를 수치적으로 풀 수 있게 되었습 니다. 예컨대 만유인력에 의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3천체의 운동은 100여 년 전부터 연구 되어 왔습니다. 라그량쥬의 해라는 특별 경우의 해가 있다는 것은 밝혀졌습니다만, 그 이외 의 해는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자 이 3체운동(3천체의 운동) 은 카오스(해가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완전한 예측이 불가능한 또는 허용되지 않는 현상) 적이란 것이 밝혀졌습니다. 뉴턴 역학에서는 초기조건만 주어진다면, 그 이후의 상태는 완전 히 결정이 됩니다. 즉 최초의 위치나 속도를 안다면, 그 이후의 위치나 속도는 방정식을 풂 으로서 완전히 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론"이라 합니다. 그러나 카오스의 경우, 비선형 항이 있기 때문에 초기조건의 극히 미소한 차이가 시간과 더불어 있다가 확대 되어 가서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로서는 초기조건을 100% 완전 히 알아낼 수는 없는 만큼, 이 사실은 우리가 결정론적인 뉴턴 역학을 이용한다 해도 결과 를 100% 알아맞힐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운동은 완전히 예측불허의 불규칙적인 흐트러진 운동이기 때문에 카오스(혼돈)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 태양계에서의 행성들이 운동이 과연 영원히 안정한 운동인지 카오스적인지는 아직도 완전히는 알려져 있 지 않습니다(탄생한 후 46억 년간이나 안전학 공전운동을 해 왔다고 해서 안정이라고 단언 할 수는 없습니다). 만유인력이 아니더라도, 3개 이상의 성분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 (예컨대 화학반응,물에서 증기로 넘어가는 상변화,여러 개의 용수철에 연결되어 있는 흔들이 등), 공기나 물의 흐름이 빨라져서 난류가 되어 흐트러진 흐름이 되는 경우(수도꼭지에서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물이 끓을 때의 대류운동,잉크 한 방울을 물위에 떨어뜨렸을 때의 잉크 의 확산 등), 파친코의 알이 제멋대로(일정치 않은) 방향으로 산란되는 경우 등등 카오스는 온갖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몸 안에도 카오스는 온갖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 리고 우리들의 몸 안에도 카오스는 온갖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몸 안에도 카 오스 현상은 가득 차 있습니다. 신경의 진동, 뇌파, 안구운동,호흡,음성 등등은 주기가 정해 진 운동이 아니라 흐트러진 카오스적인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비가 한번 날개치자 태풍이 인다? 카오스를 상징하는 말의 하나에 "버터플라이 효과"란 것이 있습니다. 나비가 한번 날개를 치자 공기의 흐름이 변합니다. 공기의 초기조건이 약간 바뀐 것이 됩니다. 공기가 카오스 상 태에 있으면, 이 결과 공기의 흐름이 크게 변해 가서, 마지막에는 태풍이 되어 버릴지도 모 릅니다. 그래서 하찮은 조그마한 변화가 카오스(즉 비선형 항) 때문에 대변동을 일으키는 것 을 버터플라이 효과라 부릅니다. 일기예보가 100% 적중하지 않는 것은 공기의 흐름이나 온 도변화가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카 오스가 일어나는지, 또 카오스를 특징지어 주는 물리량이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물리현상에 카오스가 깃들이는지 등등에 관해 갖가지 방향에서 카오스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또 인체내 부(특히 뇌)에 카오스가 충만되어 있다는 것은, 카오스가 생명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카오스가 생명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오스를 컴퓨터나 기계의 제어에 이용할 수 없을까 하는 연구 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오스에는 아직도 수많은 수수께끼가 해결되지 못한 채 남 겨져 있습니다. 프랙털 현상 유명한 코흐 곡선을 잘 보아주십시오. 톱니 모양이 되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도형이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지요. 기본이 되는 도형 의 패턴이 크고 작은 갖가지 크기로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꼭 러시아의 마크료시카인형처 럼 큰 인형 안에 이보다 조금 작지만 똑같은 모습의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안에 또다시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것과 닮아 있지요. 이런 경우 도대체 이 마트료시카 인형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물어 보아도 대답은 할 수 없겠지요. 어느 인형도 크기가 다를 뿐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느 것의 크기인가를 지정하기 전에는 그 크기를 말할 수는 없습 니다. 이처럼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모습(도형이나 패턴)으로 되어 있으면 서 특징적인 크기를 갖고 있지 않는 구조나 현상을 일반적으로 프랙털이라 부릅니다. 유리 를 깨뜨렸을 때의 파편의 크기와 그 파편의 수의 분포, 모래알부터 백두산까지의 암석의 크 기와 그 크기를 갖는 암석 수의 분포, 나무의 가지나 강의 길이와 그 길이를 갖는 나뭇가지 나 강의 수의 분포 사이의 관계 등등 갖가지 것이 프랙털이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 같 은 프랙털 현상에서는 이들 물리량 사이의 함수가 지수함수로 연결이 됩니다. 예컨대 유리 의 파편의 크기(나뭇가지의 길이라도 무방)를 L이라 하고, 그 크기를 갖는 파편(또는 나뭇 가지)의 수를 N(L)이라 하면 파편의 수는 길이나 파편의 크기의 지수배로 증가합니다. 경험 적으로 강의 길이와 면적의 관계, 혈관의 직경과 개수의 관계, 소행성의 크기와 그 개수의 관계, 전체의 크기와 밀도 사이의 관계 등등 갖가지 현상이 지수함수로 표시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크기나 길이에 한정하지 않고, 무엇이건 어느 두 물리 량 사이의 관계가 한쪽이 다른 쪽의 지수함수로 표시되는 현상도 프랙털이라 불리게 되었습 니다. 예컨대 지진의 에너지의 크기와 그 크기의 지진의 발생빈도 사이의 관계, 전기회로의 잡음의 진동수와 그 개수 사이의 관계, 주가의 변동폭과 그 빈도분포 사이의 관계가 그렇습 니다. 재미나는 것은 영문에 나타나는 단어의 빈도에 순위를 붙일 때(1번은 the, 2번은 of, 3 번은 and...)와 그 빈도 수는 순위 n의 역함수(지수 함수)인 n의 마이너스 일승로 표시된다 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관계가 도시의 인구(실제로 1위 서울, 2위 부산, 3위 대구...등의 순위와 그 인구를 조사해 보십시오)라던가 나라별의 수입액과 순위 사이의 관계 에서도 성립하고 있습니다(이것을 지프의 법칙이라 합니다). 이와 같은 프랙털 현상(일반적 으로 지수함수로 표시되는 현상)은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자세히 연구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물리학에서는 어느 특징적인 물리량(크기, 에너지, 온도, 밀도 등)을 갖는 현상이 주로 연구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왜 그런 특징적인 물리량이 존재하 는가 하는 것을 보다 기본적인 원점으로 되돌아가 찾아봄으로써 문제 풀이를 진행시키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더 근원적인 상태로 환원시키는 방법이 유효했던 것입니다. 그 런데 프랙털 현상은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갖가지 척도의 현상이 뒤 범벅되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알아내기가 힘듭니다. 또 더 근원적 상태로 환원시키려 해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환원의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는 데카르류의 환원주의는 다루기 힘든 문제였던 것입니다. 카오스와 프랙털 사이의 관계 프랙털 현상의 연구가 정력적으로 진척되기에 이르게 된 데에는 역시 컴퓨터의 힘의 컸습 니다. 갖가지의 프랙털 도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려 주고, 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복잡 한 물리과정을 시뮬레이션(모의실험)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비선형 과정을 대 표하는 카오스와 프랙털의 개념이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컴퓨터에 의해서 명백해졌던 것입니다. 예컨대 카오스 운동을 추적해 가면 카오스가 완전하게 불규칙한 운동은 아니고, " 기묘한 애트랙터"라 불리는 영역에 몇 차례씩이나 접근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애트랙터를 조사해 본 즉 프랙털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프랙털 구조를 갖게 되는지 프랙털 현상을 특정지어 주는 지수함수는 어떤 물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프랙털 현상과 비선형 현상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등 여러 기본적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도 프랙털 현상의 과학은 덜 개척된 젊은 분야라 할 수 있겠지요. 지진의 예를 들어 봅시다. 지진은 지하에서 서서히 이동 중에 있는 지각이 압력을 받아 지하 수십 킬로미터 깊이에서 암석이 파괴되는 현상입니다. 암석이 파 괴될때의 파편의 크기와 그 수 사이에 관계, 지진의 세기와 그 빈도의 관계로부터, 지진은 프랙털 현상일 것이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암석 파괴가 어느 장소에서 얼마만한 크기의 힘 을 받았을때, 어떤 규모의 크기로 일어나는가를 정확히 알기 전에는 절대로 지진의 예측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 지진은 카오스의 측면도 갖고 있습니다. 아직 암석파괴가 일어날 상 태가 아닌데도, 근처에서 생긴 소지진 때문에 힘의 균형이 그만 깨져 버려 단숨에 암석파괴 가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교적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지진 말고도 불규칙 적으로 일어나는 지진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도 있고 해서 지진의 연구는 엄청나게 힘 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또 도전해 볼만한 연구분야라 할 수도 있겠지요. 형상의 과학 우리들은 실로 갖가지의 모양을 갖는 물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특히 생물에는 "왜 하필 이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하고 묻고 싶을 정도의 괴상한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 컨대 기린이나 제브라등의 얼룩의 모양, 새의 날개나 나비의 아름다운 문양, 벌이나 개미가 지은 집의 재미스런 모양 등 생물자체의 생김새는 물론이요, 생물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모 양의 집이나 둥지 등등. 멋진 모양들이 많습니다. 또 물의 흐름이나 물결, 비누방울이나 물 방울, 소용돌이 모양의 은하계, 눈의 결정이 상고대등등. 자연현상 속에도 재미나는 모양의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은 어떤 원인으 로 그렇게 만들어지게 됐을까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형상들은 일반적으로 힘의 균형,흐름, 진동현상 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들로서 물리법칙에 의해서 쉽게 이해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생물의 생김새나 무늬중에는 잘 이해될 수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생물들은 물리법 칙에 의해서만 모양이나 무늬를 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배우자를 찾 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 등등과 같은 생물 특유의 목적을 좇다 보면 다소 불합리한 모습을 택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요. 또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겪는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미 절멸한 생물(공룡도 포함해서)의 화석 속에는 괴상한 꼴을 갖는 것도 많이 발견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물리학적인 원인추구보다 생물학적인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 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런 문제 특유의 난점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곤란한 것은 원이나 정 방형 등 간단한 형태들은 수학(기하학이나 대수학)의 언어로 표현이 됩니다만, 복잡한 형태 의 경우에는 수학적 표시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과학의 한 가지 특색이 수학의 언어를 써서 표현하는(정량화, 수식화하는)데 있었던 만큼 형상의 연구는 과학이 되기 힘들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완전히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불규칙적인 것도 아닌 형상들은 특히 취급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 3차원적으로 복잡하게 생긴 형상은 머릿속으 로 상상해 보거나 종이 위에 그려내기조차도 힘듭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형상의 과학 은 접근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컴퓨터 그래픽스기술이 형상의 연구를 진척시키는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3차원적인 입체화를 그려 줄 수도 있고, 형태의 안정성도 시험해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가상적인 형상도 컴퓨터안에서 만들어 볼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가상적인 형상도 컴퓨터안에서 만들어 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런 저런 방법에 의해 단편밖에는 발견되지 않은 화석으로부터 전체의 모습을 재현시켜 보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까지 거대하기만 하다고 생각되었던 공룡이 훨씬 작 았더라 하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상의 과학"은 현재 막 시작한 초기의 단 계에 있습니다. 형상을 대상으로 물리학,수학,화학,생물학,의학,건축학 등 갖가지 분야의 공동 연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처럼 현대과학이 취급하기 힘든 문제들을 열거했습니다 만, 그렇다고 이 때문에 현재의 물리학이나 화학을 공부하는 것이 쓸모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으로 이와 같이 접근하기 힘든 문제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식을 잘 파악하고, 그 방법을 습득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관점이나 수법을 이끌어 내는 근원이 될 테니까요. 과학,기술,사회 사이의 관계 20세기는 한마디로 "과학의 세기"라 불릴 만큼 과학연구가 크게 진보된 시대인 동시에, 과학에서 발견된 법칙이나 원리의 기술화를 통해서 기계나 도구가 만들어져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와 사회 전체를 크게 바꾸어 놓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 전형적인 예로 금세기 전반의 전기,자동차, 후반의 원자력이용,석유화학공학,전자공학 등이 있습니다(비행기 나 레이저 등도 있습니다만,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무래도 앞에서 언급한 것들 이겠지요. 또 앞으로는 유전자조작을 통한 생물 "인간도 포함?"의 개변이 아닐까요?). 이처 럼 과학이 기술을 통해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것이 20세기의 터다란 특징이며, 또 앞으로 더욱더 굳혀져 나갈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시대에 사는 만큼 우리들은 과학,기술, 사회 등 3자 사이의 관계를 잘 파악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후퇴할 수 없는 과학의 기술화 "과학의 기술화"까지의 시간이 매우 단축화된 결과, 그것이 사회에 어떤 효과를 미칠 것 인가 하는 것을 및 생각할 틈도 없는 사이에 과학의 성과는 잇달아 우리 생활 속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원자력의 경우입니다. 원자핵내에서 작용하는 힘이나 핵의 구조가 밝혀진지 10년도 채 안된사이에 원자폭탄은 개발되었습니다. 맨해튼 계획이라 불리는 정부 및 군에 의해 조직된 사상 최초의 빅 프로젝트에 의해 진척되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그 원리나 위력을 미처 알기도 전에 핵의 시대는 도래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 니다. 그 후 수소폭탄의 개발,원자력 발전 등등.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은 가속화되었고, 우리 들 시민들이 그 길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새도 모르게 우리는 핵의 문제와 상면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 유전자 조작에 관해서도 비슷한 과정을 밟게 될 것 같스빈 다. 일단 기술화가 되고나면, 그 목적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더 한층의 정밀화,효율화만 이 이루어지면서 후퇴는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여기서 특히 원자력과 유전자 조작문제를 들 고 나온 것은 이 두 문제가 두고두고 오랫동안 후세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 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의 핵폐기물은 1만년 이상에 걸쳐 감시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 다. 또 유전자 조작으로 새로운 형태의 생물이 만들어졌을 경우, 미래의 생물세계가 온통 뒤 바뀔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기술 덕분으로 우리들 현존하는 인간들은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자손들은 그 빚을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과학의 기술화를 하는데는 이와 같이 긴 시간에 걸쳐 예측을 한 후에 비로소 그 기술화를 채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 볼 틈도 없이 기술화는 잇따라 진척되 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로서는 일단 걸음을 멈추고, 현재의 과학과 기술 사이의 관계를 다 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술화 방법은 다양하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두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원리나 법칙은 단 하나라 해도 기술화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원자력 발전에서나 제트기에서나 또는 PC에서나 또는 워드프로세서에서나 각 기종에 대응해서 여러 가지 방식이 쓰여지고 있습니 다. 최종적으로 그 중의 어느 하나가 살아남게 될 것인지, 또는 병행해서 동시에 여러가지가 경쟁을 해 나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 선택은 어떤 이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인 지 살펴봅시다. 어느 기술이 최후까지 살아남게 된 이유로서는 에너지나 자원에 관해 절약 형이니까, 사용하기가 가장 편하니까, 안전성이 우수하니까, 시장의 경쟁에서 이겼으니까, 제 조회사가 크고 힘이 세니까, 정부가 원조해 주었으니까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즉 기술 은 그 과학적인 합리성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연관성에 의해서도 선택이 되는 만큼, 사회변 화에 대응해서 기술의 내용도 변화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만큼 그 기술의 선택이 긴 눈으로 보아서 옳았는지 어떤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한때는 "튼튼하고 오래 견디는"형의 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계도 라이오도 몇 10년이나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자 원절약이라는 목표가 우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1회용 품 형의 제품이 주류가 되어 있습니다. 수년간 쓰다가 망가지거나 고장이 나면 수리하지 않 고 내버리고 새것을 산다는 식의 대량소비 패턴이 우선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제논 리에 의해 기술화의 방식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환경파괴 에 우리들 소비자 층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형의 하나는 자동차 우선 사회가 된 현재의 일본입니다. 좁은 국토 위에 고속도로망을 둘러쳐 놓고 그 위로 6천만 대도 넘는 자 동차가 넘쳐흐르고 있어, 사람들이 걸어다니기조차 힘들정도입니다. 또 어린이나 노인들 그 리고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위험한 도시구조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정 책으로서 전차나 버스 등 공공의 교통기관보다 트럭 운송이나 자가용차들이 우선되었기 때 문입니다. 그리하여 자동차 회사들은 별 뜻도 없이 매년마다 모델 변경을 일삼아, 멀쩡한 차 를 버리고 새 차로 바꾸어 사게 함으로써 자원을 낭비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태인데도 우리들은 그것을 당연시까지 했으며, 조금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이상심 리가 되어 있습니다.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만 좋은가, 어떻게 해야만 바람직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등등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과학자의 책임과 윤리 최근 과학자나 기술자(또는 과학의 훈련을 받는 자)가 관련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습니 다. 한신,이와지 대지진, 오우무진리교 소동, 고속증식로 몬쥬의 사고, 에이즈 소송 등등이 그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으로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한계,문제점, 등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의 표면에 표출된 내용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이들 사건 속에는 현재의 과학자나 기술자들의 사고방식이라든가 생활철학 같은 것이 반 영되어 있는 만큼, 이들 사건 안에서 드러난 그들의 반응을 뒤돌아보면서 현재의 과학자들 이 지켜야 할 책임이랄까 윤리 같은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재난 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교토에 있던 필자의 집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필자 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습니다. 다행하게도 빨간 커피 컵 몇 개가 깨진 것으로 끝이 났습 니다만, 도요사카시에 있는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서가가 모두 넘어졌습니다. 만약 대낮이었 다면 필자 또한 책에 깔려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인즉 그때까지 "관서지방에는 지 진이 안 일어난다"라는 속설이 있어서 필자도 방심을 했던 것입니다. "관서지방에도 지진은 일어날 수 있다"라고 경고를 올린 지진학자도 있었습니다만, 그의 목소리는 일반인인 우리 들의 귀에는 와 닿아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관서지역에서는 지진 대책도 고려된 일이 없 었던 것입니다. 지진 후에 여러 신문,잡지,라디오,텔레비전 보도를 보고, 또 그 보도 안에서 과학자들이 한 발언을 들으면서, 전문가라 불리는 과학자가 자연이나 학문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많이 상실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즉 지진학자들은 오랫동안 "지 진은 예측될 수 있다"라고 주장해 오면서 많은 연구예산을 획득해 왔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지진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의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게 되었던 것 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필자는 이번에 일어난 지진재난을 파악하고자 지진학의 현상을 조사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지진에 관한 데이터가 많이 모였고, 진동의 파형 분석,지각의 휨(왜 곡),중력이상 등으로부터 지진의 규모,전파의 방식,일어날 수 있는 피해의 크기 등을 계산할 수 있는 피해의 크기 등을 계산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지진이 일 어나는 메커니즘이나, 일단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연구는 많이 진척이 되 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진이 "언제 어디서나 어느 크기의 규모로" 일어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해주는 연구는 거의 진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지 진은 지하 수십킬로미터 지점에서 일어나는 암석파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지점 의 암석을 직접 입수해서 손수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그런 암석파괴 현상은 현대 물리학이 가장 힘들어하는 카오스 현상이 끼여드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젠가 지 진이 일어날 것이란 말은 할 수 있어도, 그 지진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 것이란 것은 현재 의 지식을 갖고는 미리 단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진 예측"이란 "언제 어디서 어떤 규모로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을 예언하는"것이므로 현 단계에서는 지진의 예측은 불가능했 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실은 당연히 지진학자들도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대부분 의 학자들은 확실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뿐이랴. "지식 예지 연락회"라 불리는 법률 에 의해 인가된 조직에 참가해서 "지진은 예측해서 내각에 알린다"라는 것을 의무화까지 시 키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할 수도 없는 것을 할 수 있따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순된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요? 지진예측사업에 투입되는 연구예산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태도는 비단 지진학자에만 한한 것은 아닙니다. 연 구예산을 따내기 위해 "작문"이라 해서 우리들 과학자들 중에는 가능하지도 않은 것을 약속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는 과학자의 퇴폐 또는 타락이라고 생각 합니다. 연구예산이 없으면 연구자로선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얻기 위해 질실을 왜곡시킨다는 것은 과학자의 진실을 탐구한다는 사명과 모순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특히 인명에 관계되는 분야에서는 살인에 가담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감수할 수밖 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자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과학자란 자연현상에 관해 무엇이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 무엇이 알려 져 있고, 무엇이 알려져 있지 않는가"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까지 알 려져 있지 않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 과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현재 무엇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를 정직히 이야기 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 니다. 1989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이 일어나 고속도로가 파괴었습니다. 그 때 그 실정을 보고 온 어느 교통공학의 학자가 "일본에서는 저런 사고는 절대로 안 일어난다"라고 절대 안정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 고속도로가 뒤집혀졌으니 그의 장담은 거짓이 된 것이지요. 그의 경우 "이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다면 이 고속도로는 파괴 됩니다."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 과학자로서 그가 했어야 할 본래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즉 "저의 지식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니만큼 이것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므로 보증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했겠지요. 과학에 관한 한 "절대"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현재 자연현상의 일부분박에는 이해하기 못하고 있으며, 미지의 부분이 있는 한 "절대안전"이라는 등의 "절대"란 말은 쓸 수 없지 않습니까. "모릅니다"라고 정직히 얘기 하는 과학자 쪽이 오히려 "알고 있다"라고 득의만면하게 얘기하는 과학자보다 더 신뢰가 가 는 법입니다. 지진학자들은 지진이 예측이 아니라, 지진이 일어났을 경우의 방재 쪽에 그 지 식을 살려야 할 줄 압니다. 지진의 진폭의 크기로부터 그 규모나 일어날 수 있는 재해를 예 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진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도시공학,교통공학,지방자치단 체,라이프라인(수도,전기,가스)의 관리자들이 합심하여 지진방재 체제를 짜내야만 한다는 것 이 필자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과학자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가 있게 되겠지요. 몬쥬의 사고 고속증식로 몬쥬가 나트륨 누출을 일으킨 사고로 운행을 멈추어 버렸습니다. 고속증식로 는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써 가면서, 그 한편으로는 우라늄을 새로운 핵연료인 플루토늄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연료를 스스로 증식시켜 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궁극적인 원자로입니다. 지금까지 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서 실험은 해 보았지만, 그들 모두가 기술적인 난관으로 정지 또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핵반응에 의해 방출되는 열에너지를 온도로 표시하면 대략 섭씨 1천만도가 됩니다. 한편 석유나 석탄을 때는 화학반 응에서 얻어낼수 있는 열에너지는 그 1만분의 1인 1천도씨 크기입니다. 보통의 화력발전은 이 열에너지로 물을 고압의 수증기로 바꾸어서 터빈을 돌리고 전기에너지를 얻어냅니다. 전 기 에너지를 얻어내는 부분은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도 똑같으므로 원자력 발전의 문제는 1 천만도씨의 핵반응부분으로부터 1천도씨의 수증기 발생부분까지를 어떻게 이어받아서 열로 운반해 주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보통의 원자로에서는 고압으로 만들어 증기가 되지 못하게 만든 물이 이 역할을 합니다. 고속증식로에서는 보다 가혹한 반응을 쓰기 때문에 나트륨을 씁니다. 이 나트륨이 원자핵 반응과 화락반응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나 트륨이 원자로에서 새어나갔으니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방사선을 쪼이지 않은 부 분의 나트륨이긴 했습니다만). 이 나트륨의 취급법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고속증식로에서 물러났던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현재 30기 이상의 원자로가 가동하고 있습 니다만, 지금까지 있었던 드리마일섬이나 체르노빌에서와 같은 대사고는 한 번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폭격을 받아 핵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것과, 자주,민주,공개의 3원칙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원자력 기본법이 제정되어 있어서, 원자로 점검이나 사고 방지에 대해 엄하게 대응해 왔다는 것, 그리고 이 3원칙을 토 대로 "건전한 반대파"가 육성되어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핵의 무서움을 알고 있 는 것을 "핵앨러지"라고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앨러지란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이므로 앨러지를 일으킨다는 것은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합 니다). 과학을 건전하게 발달시켜 주는 조건 몬쥬의 사고는 지금까지 대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 주었던 갖가지 요소가 일시에 깨져 나가지나 않나 하는 것을 예감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자로에 관한 갖가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 생각됩니다. 과학이나 기술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쌓아올려 가면서 발전시켜 온 것인 만큼 일어난 일들은 반드시 공개되고, 여러 분야의 과학자나 기술자에게 계승시켜 가야만 합니다(실패의 결과도 충분히 의미가 있거든요). 기초적인 과학분야에서는 그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됨으로써 누구나가 다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용한 자료도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공도 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이야말로 과학을 건전하게 발달시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앞서 논한 과학의 역사 속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원자력 이용도 마찬가지로 공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분야는 아직도 많은 기초적 연구가 필요한 만큼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많은 인명이 손상됩니다. 이런 사실을 깊이 인식 한다면 원자력 이용에 비밀이 횡행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원자력 위원회에 참 가하는 과학자,핵연료사업단,기술자들은 비밀주의에 손을 내밉니다. "무식꾼들에게 정보를 공개해 보았댔자 불안만 부추길 뿐"이라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아무것 도 모르고 어떻게 대처하라는 건가요. 앞서 말한 지진학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자로의 설계자나 제작자들이 해야 할일은, 그리고 했어야 할 일은 원자로 사고의 방재대책의 중심 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원자로의 한계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그들인만큼, 어 떤 사고가 일어나면 어떤 피해가 일어날 것인가를 가장 잘 안고 있을 터이니까요. 그것이야 말로 원자로라는 위험한 것을 만든 과학자의 책임이며, 또 가져야 할 윤리이기도 합니다. 의약사고, 에이즈문제 "구조적인 의약 사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약회사와 후생성과 의사가 유착된 구조가 갖 가지 의약 사고를 일으켜 왔지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의 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10여 녕의 세월과 1천억 엔(한화 약 1조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들 합니다. 따라서 일단 개발이 완성되면, 하루 빨리 후생성의인가를 받고, 많은 의사들로 하여금 사용케 해서 이익을 올리 고 싶은 것이 제약 회사의 마음입니다. 그 때문에 위험한 부작용이 있더라도 되도록이면 감 추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생성에 얼굴이 통하는 관료 출신들을 낙하산 식으로 임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후생성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의학계의 권위자를 고문으로 모 셔 가기도 할 것입니다. 또 평소 큰 병원이나 대학병원에 자주 출입해서 갖가지 편의를 보 아주는 대가로 약의 실험이나 사용(채택)을 부탁하고 때로는 부작용을 얼버무려 주도록 협 력도 바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유착체제가 의약 사고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과 거에도 스몬이나 탈리도마이드등 심각한 의약 사고가 몇 번씩이나 일어났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 또 다시 에이즈문제와 같은 비참한 의약 사고가 일어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의학 자가 유착의 구조 속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후생성 산하의 심의회에 참가해 서 약사행정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의학자들은, 의학회와 의학계의 권위자로서 다른 한쪽에 서는 제약회사와도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생성이나 제약회사의 편 을 들고, 병을 고티고 생명을 지켜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오 히려 환자를 많이 만들어 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그 약이 부작용을 일으킬 것인지 어떤지, 에이즈 바이러스와도 같은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사실 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당연 한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미지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과학이니까요. 또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겠지요. 예사외의 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그 자체 는 비난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판단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곧장 그 잘못 을 인정하고 고쳐 나가는가 어떤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판단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대해 성실한 과학자의 태도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필자는 그와 같은 의학 자들을 과학자라 인정하고 싶지도 않으며, 또 이와 같은 의학자가 많이 있는데도 모르는 체 하고 있는 이 현실을 생각할 때 우울한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공해문제가 일어났을 때 회사 편을 들어서 엉뚱한 설을 내기도 하고(미나마타 병의 경우에도 "아민 설"이나 "바이러스 설 " 같은 엉뚱한 가설이 나왔었음), 병상을 매우 좁게 한정해서 환자수를 줄이려 하고도(구마 모토에서 일어난 미나마타 병의 환자비율이 니아가타 미나마타 병 환자의 1/10밖에 안 된다 고 증언)반성의 발언 한마디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또 환경문제에 관한 평가의 의뢰를 받고도 충분치 못한 조사로 우물쭈물 얼버무리고 자치단체가 희망하는 그대로 결과를 내준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 결과 자치단체들은 "대학에 계시는 권위자들이 보증한 것이다" 라는 구실 하에 공해의 사실을 덮어 버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해의 피해를 크게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사실 과학자들은 좀더 진리에 대해 충실했어야 하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쳐다보면서 자기가 맡은바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냉철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 니다. 오우무진리교 소동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은 모두가 과학이나 기술을 업으로 삼는 분들의 문제였었지만, 오우 무진리교 소동은 소위 유명대학에서 과학연구의 훈련을 받은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유능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았을 터인데도 왜 교주의 계시만을 믿고 사린(유기 인 화합물로서 신경 가스의 일종)을 뿌린다던가, 살인을 범했을까요? 종교란 것이 사람을 구원해 주는 것이 그 목적인 이상 사람을 죽이라는 신의 계시가 있을 수 없다는 데에 왜 생 각이 이르지 못했을까요.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들은 대학에서 과학의 지식은 얻었겠지만, 과 학과 사회와의 사이의 관계, 과학자가 해야 할 역할, 보다 넓은 문화 속에서의 과학의 뜻 등 등을 생각하게 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과학 오타쿠"(오타쿠:어떤 분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폐쇄적인 경향을 가진 마니아들)인 채로 자 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기도 하 는 등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점이야말로 바로 현재의 과학교육, 그리고 과학자 자신에게 결여 되어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앞서도 여러 번 말한 바 와 같이 과학은 기술을 통해서 사회 그리고 일반대중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과학 은 그 사용법 여하에 따러서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갖 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을 좀더 넓은 시야에서 쳐다보는 훈련이 불가결합니다. 그러나 현 재의 과학교육시스템은 그와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교육의 장은 아닙니다. 또 가르치는 입장에 선 과학자 자신 역시 그런 훈련을 받아 온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우무진리교의 "과학기술청"에 속해 있던 그 사람들 도 현실세계의 과학자와 별 큰 차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 은 단순히 과학의 세계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역사 또는 문학이나 정치에도 접근해서, 스스 로를 커다란 우주전체 안에서의 존재라 파악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연구의 뜻이 무엇인 가를 언제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의 윤리란 무엇인가 필자 자신이 과학자이면서 이렇게 좀 심하게 과학자를 비판한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환경의 문제 등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모순은 결국 과학의 힘에 의해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학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자 신들이 견고한 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의 뒷받침만 있다면, 과학이라는 행위 는 실로 굉장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 그와 같은 과학자의 출 현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가져야 할 윤리를 정리해 봅니다. 우선 진리에 충실할 것, 둘째로 허위나 비밀주의를 배제할 것, 셋째로 과학 의 한계를 알아야 할 것, 넷째로 무엇을 위한(누구를 위한) 과학인가를 항상 문제삼고 또 의 식할 것, 다섯째로 과학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해할 것, 여섯째로 과학의 결과나 영향을 상상력을 써서 살펴볼 것 등등입니다. 이 자체들은 결코 힘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어떤 입장에 선다던가, 어떤 상황에 놓여지면 지키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런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나는 과연 진리에 대해서 충실한가"라고 몇 번이나 되물 어 보고 따져 보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필자는 그러한 윤리를 몸에 지닌 젊은 과학자들이 독자들 안에서 태어나기를 강하게 바라는 바입니다. 참고 성운가스(interstellar gas) 구름 모양으로 우주 공간에 넓게 퍼져 있는 가스나 먼지 등으로 되어 있는 천체를 말하며 성간물질이라고도 한다. 그 밀도는 지구상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어떤 진공상태의 밀도보다 도 작으나, 위낙 엄청나게 낣은 우주공간에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그 전체량은 매우 커서, 이들이 언젠가는 중력에 의해 서로 모여서 별들이나 은하계를 만든다고 생각된다. 플레이트 테크로닉스 지구의 표층 구조를 설명하는 지질학적 모형의 하나. 지구의 표층은 두께 약 백킬로미터 의 점성을 갖는 10수 개에서 약 25개의 플레이트라 불리는 판상암석권으로 덮여씌워져 있으 며, 이들 플레이트는 서로 독립적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 결 과 그 위에 떠 있는 대륙이 이동(1년에 수센티미터)하며, 플레이트가 서로 부딪혀 조산작용 이 일어나고 또 화산 활동이나 지진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있다. 축차대입법 계산 또는 측정에 의해 어떤 값을 구하고자 할 때 처음부터 그 값을 정확히 구할 수 없을 때 쓰는 근사법의 하나이다. 다른 말로 축차근사법이라고도 한다. 이 방법에서는 먼저 대충 어림으로 짐작되는 어느 한 근사치(제0근사치)를 가정하고(또는 적절한 방법으로 구해내고), 그 후로는 어떤 정해진 수법에 따라 제1근사치, 제2근사치...등등을 차례로 구해 감으로써 근 사의 정밀도를 높여 가는 방법, 다만 이때 축차로 구해낸 근사치가 점 차 어떤 일정치로 수 렴해 간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오사카시 서북의 이와지섬 북부를 진원으로 하는 진 도 7.2를 기록한 대지진. 사회,경제적인 기능이 고도로 집결되어 있는 고오베 시(인구 약 150만명)을 강타한 직하형 지진으로서 사망자 6000여 명, 부상자가 41,500여 명에 이르는 등 고오베 시를 중심으로 그 일대의 밀집 인구 지역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지진에 의해 고 속도로나 중,고층 빌딩들이 부서지고 화재로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히는 등 그 규모가 매우 컸다. 그 결과 내진구조기준, 공원 등의 도시 기반구조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 쳤다. 도 비상시의 정보전달, 이재민 대책등 지방자치제나 나라의 위기 관리능력이 문제화되 었고, 지방자치체의 활동이나 봉사활동의 중요성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스몬 이급성척수시신경장해라는 질병의 영문 이름을 줄여서 이르는 말. subacute myelo-opcito-neuropathy가 정식 명칭인데 그 당시에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자면 키노포름제, 즉 옥도클로드히드로키시킨제를 복용할 때 일어나는 중독성신경장해라고 불러야 할 병이다. 이 약은 방부약으로서 창면궤양의소독에도 쓰이고, 장내세균의 번식을 막아 주는 내복약으로서 널리 사용되어 왔으나 현재에는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탈리도마이드 진정제 및 수면약으로 널리 쓰여졌던 약. 임신 초기(6~7주경)에 복용하면, 손발이 짧은 기 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 때문에 이 약의 안전성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크 나큰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오타쿠 일본말로 오타쿠란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 귀하,당신,댁이라는 정도의 뜻. 애니매이 션의 어느 한 분야에 깊숙히 빠진 마니아들이 다른 붕야 사람들과 심리적으로 격리된 생활 을 한 결과 다른 사람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처음 만나는 상대방에게 "댁은..."이라고 부 른 데서 나온 말.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마니아들을 뜻했으나 어린이와도 같은 취 미에 편집광적으로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즉 마니아나 팬보다도 더 열렬한 편집 광이라는 의미로 세계 여러 나라에 이 말이 널리 사용되어 퍼지고 있다. 한편 이들을, 오타 쿠 세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소비자층, 정보화 사회의 창의적인 젊은 층, 남과는 차별화에 신경을 쓰는 소위 신인류라는 입장도 있다. 나노테크놀로지 10억분의 1을 나노라 한다. 여기서의 nano는 nanometer, 즉 10억분의 1미터, 1밀리미터의 100만분의 1, 1미크론의 1/1000, 세균의 크기가 대략 1마이크로에서 10마이크로인데 1밀리미 터는 이것을 또다시 1000으로 나눈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이다. 나노테크놀로지는 지극히 작은 크기(분자 크기 수준)의 기계나 장치를 다루는 기술로서 앞으로 반도체나 기계가공, 생 물이나 의학분야에 널리 응용되어지리라 예상되는 미래기술이다. 쿼크 소립자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입자의 하나. 쿼크는 스핀 1/2+2/3e 또는 -1/3e(단 e는 전자 가 갖는 전하의 크기)를 가지며 반쿼크는 스핀 1/2, 전하 -2/3e 및 +1/3e를 갖는다. 이 쿼크 이론에 의하면 양성자 p, 중성자 n 등 핵자(p와 n의 총칭)나 중입자는 3개의 쿼크가 갖가지 로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쿼크는 6가지의 향기(Flaver u,d,s,c,b,u)와 3가지의 색(빨강,파랑,초 록)을 갖는다. 그 결과 반쿼크까지 합쳐 36가지(6곱하기3곱하기2는 36)의 종류를 갖는다.(이 것을 내부자유도라고 한다). 열팽창률 압력이 일정할 때 물체가 그 온도 상승에 따라 그 체적이 변화할 때 단위온도 변화에 따 른 그 물체의 길이 또는 체적의 변화율을 각각 선팽창률(또는 선팽창계수라고도 함), 또는 체팽창률(체팽창계수라고도 함)이라 한다. 이 열팽창률의 값은 매우 작기 때문에 체팽창률 베타는 선팽창률 알파의 3배와 같아진다. 자화율 물질에 자기장 H를 걸어 주면 그 물질은 자성을 띤다. 이것을 자기화(자화라고도 한다)라 한다. 이 때 그 물질은 자화 모멘트 M을 갖는다. 이때 이 물질의 단위체적당 자기 모멘트M 을 그 물질에 걸어 준 자기장 H로 나누어 준 비를 그 물질의 자화율이라 한다. 제5장 21세기의 과학과 인간 지구의 환경문제 인류의 활동이 지구를 파멸시키고 있다. 현재 환경문제가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환경문제라고는 합니다만 거 기에는 지구 온난화,오존층 파괴,열대림의 감소,산성비,유기화합물이나 유독금속에 의한 지구 오염 등등, 많은 문제들이 들어 있으며, 그 대책도 각 문제마다 제각기 달라집니다.그러나 그 원인은 단 하나입니다. 인간의 갖가지 활동이 환경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지구환경은 계속 오염이 되고 있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있습 니다 사실 인류에 의해 여러 종의 동식물이 멸종 당했습니다. 물론 인류도 자연속에서 태어 난 생물인 만큼, 그 활동이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다 만 인류는 생산활동을 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생물들과는 구별되어야 할 존재이며, 자 연적으로는 생겨나지도 않았던 물질마저도 생산하고 있으며, 그 생산품들을 대량으로 소비 하고도 있습니다. 그 결과 이런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환경이 수용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연자체만의 힘으로는 정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인 공화합물이 쏟아져나왔고, 요새는 이에 덧붙여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들마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시도까지도 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인류 자신이 의식하고 있건 말건 간에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치기 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태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 다. 한때 "환경은 무한대"라 생각했습니다. 즉 환경의 수용용량은 인류의 활동에 비해 압도 적으로 커서, 오염이나 공해는 발생 즉시로 모두 흡수하고 처리해줄 것이라 믿어져 왔던 것 입니다. 따라서 폐기물을 마음놓고 바다나 하늘로 내버렸고, 삼림의 나무를 마구 베어버리 고, 제멋대로 바다나 호수를 매립하고 댐을 축조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무한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즉 한경이 더 이상 무한대가 아니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육지에 서나 바다에서나 사막화가 진행되고 (바다에서도 사막화가 진척되고 있어 해조가 고사되고 있습니다) 자연의 생산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구의 허 용능력을 넘어 카트스트로피(파국)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미래는, 이 환경문제라는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 다. 그러니 다가올 21세기는 바로 이런 과제에 직면하게 될 시대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빚을 자손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환경의 문제가 생겨난 원인은 무책임하게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구조를 만들어버린 우 리 세대의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우아하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해 가면서, 그 빚은 자손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빚 중에서도 최대의 상징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대량의 방사성 폐기물이겠지요. 전기를 써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들이겠 지만, 해독에 가득찬 방사성 폐기물을 1만년이상이나 관리하여야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자 손들인 것입니다. 또 열대림의 나무를 잘라 대량으로 값싼 종이를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은 우리세대들이겠지만, 겉흙이 물에 휩쓸려 흘러나가 불모의 땅이 되어버린 대륙이나 섬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우리들의 자손들입니다. 환경문제는 모두 다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우리들 자손들이 부담을 덜 갖 도록 해줄 방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지구환경의 위기에 대해서 "원시시 대에서와 같은 생활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량생산이 원인이었던 만 큼, 대량생산만 중단한다면 된다는 식의 안일하고 단순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정 말로 옳은 생각일까요. 일단 획득한 지식이나 능력을 버리고, 원시시대의 불안한 생활로 되 돌아갈 수가 있을까요? 생산력이 낮은 생활로 되돌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 게 될 지 상상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가 그것을 명령할 수 있을까요. 아마 도 이 답은 머리가 빈 사람의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생각과는 달리 정말로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우리들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면 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어 갈 수 있고, 또 그러려면 과학이 어떤 역할을 담당 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해결을 위한 힌트 :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과학들 환경문제를 야기시킨 원인의 하나는 오늘날의 생산양식이 자연의 논리에 부합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생산양식은 편하게 손쉽게 대량으로 만들어 내기 만 하면 된다는 편의위주의 방식밖에는 채용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현존 생 산방식의 대부분은 고장을 집중화시키고, 거대한 설비로 대량생산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 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방식 쪽이 생산효율이 높습니다. 즉 값싸게 대량샌산이 된다는 경 쟁원리가 우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가 기반정비를 위한 투자를 해 주었고, 거기에 맞추어 수송수단을 집중시켜 주었고, 도시로 사람ㅇ르 모으게 한다는 식으로 사회구조까지 포함한 거대화,집중화에만 힘을 쏟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소량이었더라면 자 연환경의 힘으로도 정화되었던 배출물들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배출되어 바다나 대기의 오염 을 부채질하고 심각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장을 분산시키고, 소규모 시설로 하는 것이 문제해결에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생산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반론을 하시겠지만, 소규모로도 동일한 생산력을 유지케 하는 연구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런 연구에의 힌트는 과학 기술화의 방법은 단 한가지만이 아니란 점입니다. 실인즉 지금까지 우리들은 대규모 생산밖에는 생각해 내지 않았고, 이 방식에 알맞는 기술밖에는 연구와 개발을 하려 하지 않 았던 것입니다. 이익을 남겨야만 한다는 경제원리가 과학기술의 내용까지도 정해 버렸을 가 능성이 큽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과학" 또는 "자연과 잘 조화된 과학"이라는 뜻은 종 래와는 색다른 소규모라 할지라도 높은 생산성을 보장해 주는 원리나 기술의 발견을 뜻하기 도 합니다. 또 거대화,집중화는 획일화에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꼭 같은 물건 들이 팔렸고, 꼭같은 텔레비젼 프로가 흘러나왔고, 동일한 모양의 빌딩군들이 즐비하게 건립 되었습니다. 획일화된 문화 속에서 획일화된 생활을 보내고, 획일화된 제품에 둘러싸인 결과 가 대량소비구조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기 고유한 문화속에서 살고, 독특한 생산양식 을 만들어 낸다는 식의 가치관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다양성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에 의해서건 태양이나 바람 또는 해류나 지열같은 자연의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하고, 인공화합물이 아니고 자연물을 그대로 이용 토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등, 역시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과학"이 소망된다는 것입니다. 해결을 위한 힌트 : 생체반응을 이용한 기술 이런 식의 자연과 잘 조화된 과학의 한 가능성으로서 초극미 전자기술을 쓴 "마이크로머 신(초극미의 미세기계)"이 있습니다. 생물들이 채용하고 있는 생체반응을 모방하자는 것입니 다. 사실 모든 벌레들은 무척이나 작은 몸체인데도 실로 정교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모기는 1센티미터도 채 되지 DSKG은 몸체인데도 먹이를 찾기 위해 3종류의 센서 (이산화탄소용-사람의 호흡 탐색, 적외선용-사람의 체온 측정, 유산용-사람의 땀을 감지)와 사람의 모세혈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는 예리한 바늘로된 이중구조로 된 주둥이, 바늘의 선단부가 혈관에서 멎도록 혈장을 검지해주는 센서 등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 런 기능들을 갖는 기계를 만들어내려 한다면 굉장히 크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계가 되겠지요. 그런데 모기는 그 조그마한 몸체이면서도 이 모든 기능을 다 지니고 있었던 것입 니다. 마이크로머신은 바로 그러한 아주 작으면서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는 생물기계의 실 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 힌트는 전기에너지를 써서 기계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생체반응을 보다 많이 이용하자는데 있습니다. 원자 하나 하나를 제어하는 나노테크놀러지 도 새로운 기계공학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이크로머신이나 나노테크놀러 지 등을 씀으로서 대량생산,대량소비 때와는 다른 논리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 면 어떨까요. 해결을 위한 힌트 : 전기에너지로부터 벗어난다. 전기에너지는 깨끗하고 취급하기도 쉽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에서는 무엇이건 전기로 움직 이는 기계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기 에너지의 이용에는 낭비가 ASKG이 숨어있습니다. 우선 석유나 우라늄으로부터 얻어낸 열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열이나 모터의 운동으로 바꾸어준다는 2단계 의 변환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를 변환할 때마다 소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결과 본래 이용 가능했던 에너지의 반도 채 못쓰게 됩니다. 또 원자력 발전은 위ㅎㅁ하다 해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건설되어 있어 먼 거리로의 송전을 위한 송전선과 철답 등 의 설비시설이 필요하며 또 송전 중의 손실도 있습니다. 이용을 전제로 해서 구축되어 있는 만큼, 이에 적합한 기술만이 개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만큼 "자연과 잘 조화된 과학"에서는 전기 에너지 일변도에서 자연에 밀착된 에너지 이용으로 과학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새로운 과학기술과 우리들 등신대의 과학 과학의 전선이 일상세계에서 멀어져 간다고 해서 반드시 연구대상이 극한의 세계쪽으로만 집중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래의 환원주의적인 방법으로라면 그런 미시의 세계로 갈 수 밖에는 없었겠지만, 카오스나 프랙털 등 아직도 해결되어 있지 않는 수수께끼가 우리 주변 에 얼마든지 남아있습니다. 새로운 수법으로 연구해 나가야 할 이런 종류의 현상을 다루는 과학을 미시의 과학도 아니고 거시의 과학도 아니라는 뜻에서 필자는 "등신대의 과학"이라 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등신대의 크기(사람의 몸과 같은 크기)이며, 설비도 연구예 산도 그리 크지 않으며, 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갖가지 현태로 참가할 수 있는 과학을 뜻 합니다. 예컨대 "자연사"또는 "자연지"라 불리는 과학은 간단한 구조의 아메바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실로 다양한 생물의 세계를, 그 현태의 발생,기능의 획들,종의분화,생물상호간 의 관계 등등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는 분야입니다. 즉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진화를 살필 뿐만 아니라, 화학(생물의 갖가지 활동에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을 이용하고 있는가), 물리학 (골격들의 세기,혈액의 흐름,초음파나 자외선의 이용,모기가 갖고 있는바와 같은 기관이 갖 는 기능들), 생태학(생물의 먹이 사슬 등), 지구물리학(자연환경의 변화와 생물진화 사이의 관계)등 갖가지 분야와 공동으로 생물의 진화를 하나의 전체로서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물세계를 자세히 관찰하고, 일어났으리라 생각되는 변화를 기록 하고, 많은 수의 종을 모아 분류하고, 여러 가지 정해진 조건하에서 실험ㅇ르 해본다는 식의 작업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옛날의 박물할의 부활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지 금까지의 지식을 토대로 한 새로운 종류의 생명의 역사에 관한 연구입니다. 이런 종류의 연 구는 다른 분야에서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지층,남극과 북극의 얼음,생물의 연륜(수목뿐만 아니라 조개껍질이나 산호에도 연륜이 새겨져 있음),운석이 부딪친 흔적인 크 레이터,암석의 자화방향이나 방사성 물질의 잔존 양 등등, 여태껏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것까 지를 조사해 보는 연구가 있습니다. 또 가루와 알갱이처럼 종래의 유체역학으로는 다룰수 없었던 물질의 물리적 성질이나 화학적 성질의 연구,의학,물리학,고분자 물리학이 공동으로 연구하는 인공장기의 개발 등등도 있습니다. 허물어지는 이과계와 문과계의 벽 이들 새 분야는 모두가 지금까지의 재래식 전문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수법으로 대 상을 종합적으로 다루려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더 나아가 인류학과 물리학(도구의 발견과 인류의 진화 사이의 관계), 고고학과 지진학(유적에 남겨진 지진의 기록, 지진과 화산폭발이 고대인의 이동과 식생활에 미친 영향), 역사학과 화학 또는 약학(약,독약,기호품,약석의 기원 과 영향), 문학과 통계학(사용되고 있는 용어의 빈도)등 뜻밖의 분야들끼리 모여 공동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자연현상 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사회의 역사나 활동을 다루는 분야 까지에도 그 대상을 넓혀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하여 이과계와 문과계라는 벽이 허물 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는 문과계니까 과학하고는 무관하다던가, 자기는 이과계이니까 문학은 몰라도 된다든가 하는 따위의 태도는 잘못되어 있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래에의 가능성을 스스로 좁혀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런 경향은 과학자체의 내용을 풍족스럽게 만 들어주는 동시에 과학의 연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과목 으로 따지자면 이과)은 역사적으로 보아서 사회에도, 정치에도, 문학에도, 경제에도, 그리고 인간의 활동 전분야에 걸쳐 그 모두에게 영향을 끼쳐 왔던 만큼, 과학과 단절시켜 이들 분 야를 연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인간의 제활동과 연결된 과학들도 " 등신대의 과학"의 한 분야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21세기는 이런 의미의 과학들이 활짝 꽃피우게 될 세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과 우리들 이제 여기서 기술과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과학의 기술화가 진행되는 데에 따라 우리들의 생활은 편리해졌고 쾌적해져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 보 교환기술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서 시간적으로나 (순시간에 연결이 된다). 공간적으로 나 (국제적으로 연결이 된다),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구규 모로 전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순시간에 연결 될 수 있게 되어 이제 우리들은 더 이상 어느 한 특정 국가 안에만 갇혀있어 좁고 낡은 발상에만 매달리지 않고 넓고 새로운 발상의 날개를 펼 수 있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게 됩니다. 21세기가 되면 이런 경향은 더욱더 가속도 되어 가겠지요. 이런 경향을 "정보혁명" 또는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이라 부릅니다. 컴퓨터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는 상상조차 못했던 기계나 도구가 마이크 로머신이나 나노테크놀러지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리라 생각됩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새 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만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기술의 향상과 인간의 기술 이해수준 그 첫째는 아무리 훌륭한 성능을 갖는 제품이라도 그 능력은 그 제품을 이용하는 인간의 기술수준에 의해 결정이 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필자의 PC에는 실로 갖가지의 기능이 들 어있습니다만, 필자는 그 일부밖에는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 더라도 그것을 남김없이 구사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을 살릴 길은 없습니다. 이 점은 PC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기술에 대해서도 꼭 같이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그 기술의 참 가치를 활용하려면 무엇보다도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기술수준도 올려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러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의 내용을 이해하고 논리적인 사고나 전체적인 연계성을 파악할 줄 아는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은한 그 기술은 그것을 효과있게 쓸 줄 아는 엘리트만의 독점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러면 우리들은 항상 새로운 기술에 매 달리게 되고 내몰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관계로 차분히 사고할 틈마저도 상실하게 될지 도 모릅니다. 예컨대 필자는 눈부시게 발전해가는 컴퓨터의 기능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 이 컴퓨터 사회에서는 항상 처지고만 있습니다. 사실은 새 기술을 따라잡으려고 해서 공부 할 시간을 확보하려 해도, 연달아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새로운 정보처리 방법이 나타나 따 라가기가 무척 힘든 실정입니다.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약 25년 전에는 컴퓨터라 하면 대형 밖에 없었고, 그것도 프로그램을 전용 카드에 천공기로 구멍을 뚫은 후, 그때 그때마다 계산 센터에 제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TSS(Time Sharing System)라 불리는 단 말기로부터 프로그램을 읽게만 해주면 계산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컴퓨 터는 대형 컴퓨터로부터 개인이 조작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 그리고 PC로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생명이 단세포 하나만으로 생물이 가져야할 모든 기본기능을 지니고 있었던 시대 로부터 다세포가 되어서 각 세포가 분화된 전문적 일만 하게 되어간 "진화"와 매우 닮아 있 지요). 그러나 지금의 PC는 계산 뿐만 아니라 문서작성,표 계산,영문 타이프,도표 제작에도 쓰일 수 있고, 네트워크를 경유해서 편지,그림,도표,사진,동화상,음성까지도 서로 교환할수 있 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PC는 말하자면 필통,탁상,계산기,콤파스나 자,전화,타이프 라이터,사진 필름,영사기 등등의 갖가지 도구를 하나로 모아놓은 것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러니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상당한 시간동안 새로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게을리 하면 PC는 단순한 전자두뇌 이상의 그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물론 새 로 나오는 PC일수록 더 쓰기가 편리해져 가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항상 기술에게 쫓기어 다니기만 하는 시대에도 과연 진정한 뜻의 지가 개화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노인의 푸념 일지는 모릅니다만). 정보혁명의 문제점 또 하나는 "정보혁명"에 과한 문제점입니다. 정보는 갖게 되거나 알게 되면 즐거워지고 풍족스런 느낌을 갖게 되지만, 그 것을 사용하지 않는 한 가치를 낳아 주지는 않습니다. 돈 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따라서 정보는 그것을 모두가 유효하게 쓰지 않는 한 혁명은 일어 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적수준을 올려주지 않는 한 정보는 유효하게 쓰이질 못합니다. 즉 정보를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보에 의해 세계를 넓은 시야로 살피 고 장래를 깊이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불가결합니다. 정보혁명은 인간의 지적수준을 올려 주지 않는 한 "정보 오타쿠"만을 만들어 줄 뿐일 것입니다. 그 결과 정보를 유효하게 쓸 줄 아는 대기업이나 정부만이 이익을 얻는다면,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한다거나, 국경의 벽을 허물어 버릴 수는 없게 됩니다. 현재와 본질적으로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되기 때 문입니다. 즉 개개인이 모두 정보 속에 파묻혀 있지만 말고, 정보를 유효하게 구사할 줄 아 는 능력이 21세기에는 강력히 소망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 한가지 추가해 둘 것은 정보 화 사회가 되면, 모든 일이 책상위에서만 행해지게 되어 3D(Difficulty, Danger, Dirty)의 일 은 사라질 것만 같은 환상을 부추기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 잘 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매일 매일 회사나 학교에 가지 않고서도 일아니 학습을 할 수는 있 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PC를 만드는 사람, 그것을 운반해주는 사람, 운반하는 도로 또는 트 럭이나 철도 또는 화차를 만들고, 정비해주고, 그 자채를 만들어주는 사람, 그 원료를 채굴 해 주는 사람 등등... PC하나만 예를 들어도 다수의 사람들의 노동의 결정인 것입니다. 그 노동자체는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활해나가는데 필요한 의식주 모두 에 노동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정보혁명은 통신수단의 혁명이지 생활이나 노동을 송두리째 바꾸어주는 혁명은 아니란 것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테크놀러지와 우리들 제 4장에서 DNA의 발견에 의해 생물의 유전과 진화의 메커니즘이 밝혀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즉 DNA상에서 염기가 늘어서는 순서에 따라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그 아미노산 이 모여서 갖가지의 단백질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단백질에 의해 생체가 구성되었던 것 입니다. 따라서 DNA상에서 염기가 어떤 순서로 늘어설 때 어떤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지 는가 하는 정보만 알 수 있다면, 유전정보를 해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해독만 된 다면, 유전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사실 어떤 병이 유전하는가 하는 것 은 유전자인 DNA에서 염기가 늘어서는 순서에 문제가 있는 것인 만큼, 그 부분의 염기를 병이 일어나지 않도록 바꾸어 세우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의해 유전 자 치료법이 실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전자의 어느 주어진 부분을 자르는 "가위", DNA 의 딴 부분을 그 지점까지 운반해주는 "운반자", 그것들을 연결시켜주는 "풀"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100%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약을 갖고는 고칠 수가 없는 유전병도 이 방법을 쓰면 치료해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자연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생물을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을 유전자 치료법에만 국한시켜 두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실제로는 이미 인슐린이나 인터페론 등 의약품으로 쓰여지고 있는 단백질을 대장균을 써서 대량 생산을 시킨다던가, 세균이나 바이러스 병에 대한 저항 유전자를 갖는 말이나 토마토 를 만들어내는 기술 등 유전자 조작에 의해 유익한 약품이나 농작물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유전자적 성질(예컨대 우유를 많이 만드는 소)이 쓸모 있다 해 서 그 성질을 유전자 속에 넣어서 클론(복제)생물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오히 려 이런 것들이 더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숱한 제약,식물,화학,종묘회사들이 유전자 조작 사업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뿐이랴, 바이오테크놀러지라 불리는 이런 기술 속에는 유전자 조작뿐만 아니라, 서로 종이 다른 세포를 융합시키는 "세포융합"기술이라던가, "체세포 잡종 작성"이라 부르는 기술도 들어있습니다. 예컨대 이미 햄스터와 쥐, 쥐와 사람등 이종의 동물 의 세포를 서로 융합시키는 실험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로서는 유전자의 기능이 나 그 작용 등을 조사해보는 실험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긴 합니다. 그러나 감자와 같은 지하줄기를 갖는 동시에 토마토처럼 열매도 맺는 포마토, 오렌지의 맛과 탱자의 향기를 모 두 갖는 "오레타치"등등 양쪽의 장점을 살린 새로운 작물들을 만들어내자는 시도가 진행되 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신종의 작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은 하고 있습니다만, 양자 의 장점을 100% 살려내는 데는 현재로선 실패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포마토의 경우, 그 열 매는 단단하고 쓰기만 하며 지하 줄기에 달린 포마토알은 조그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량을 위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바이오테크놀러지에 의해 자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기능을 갖는 단백질이나 생물이 만들어지게 되면 여러 문제가 생 깁니다. 즉 그와 같은 생물이 생태계나 자연환경 속에서 어떻게 거동을 할 것이며, 또 순도 가 낮은 단백질이 병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또 품 종이 제한되어 있어 돌발적인 이변으로 절멸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예상할 수도 없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실험에 쓰이고 있던 새로운 형의 바이러스가 실험실 에서 새어 나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즉 "생물 재해"가 언젠가 대규모적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신의 손이 사람의 손으로 넘겨진다면 더 나아가 만약 그 기술이 인간에게까지 적요되기에 이른다면 어찌 될까요. 유전병 치료 에 그치지 않고, 갖가지의 유전적 소질을 바꾸는 일에까지 인간의 손이 미치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시험관 아기라던가 체외수정 등 생식세포를 조작하는 기술은 이미 넓게 퍼지고 잇습니다. 또 남자아기와 여자아기의 선별적 출산이라던가 복제인간은 공상과학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게 돌 것입니다. 어떤 아기가 태 어날 것인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는 "신의 손아귀"속에 있었던 것이, 이제부터는 인간의 손 아귀 속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일이 용서될 수 있을까요? 그 시행에 있어서 는 심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을 줄 압니다. 왜냐 하면, 과학의 기술화가 너무도 빨리 진행 되어, 미처 사람들 사이에 합의를 얻기도 전에 삽시간내에 그 기술이 퍼져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일이 여러번 있었기 때문입니다(원자력의 개발, 인공생식 등). 현재로선 유전병 치료문 제 이외에는 인간의 생식유전자를 조작할 수 없다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만, 그 약속을 저 버리는 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영향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또 유력한 기 술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만큼 어느 선까지가 허용될 수 있으며, 어느 선 이상으 로는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직면한 큰 과제라 생각합니다. 대화하는 과학을 21세기의 과학이나 기술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만, 결국 그 관건은 우리들이 우리 분수 에 알맞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유효하게 구사하는가 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렇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내용이나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언제 나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통한 합의에 의해서 행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 다. 이 때 전문가들은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의 힘의 한계를 말하고, 비전문가들은 그 한계 내에서 앞으로 어떻게 연구를 진행시켜 나갈 것인가를 선택케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까지에도 형식적으로는 그와 같은 형태의 시책이 진행되어 왔었습니다. 정부는 전문가의 의 견을 듣는 심의회에서 안을 검토하고, 그 안은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서 토론을 하게 되고, 합의가 얻어지면 진행에 옮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무엇인가 깔끔하지 못한 느낌이 나는 것은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에이즈 문제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방식이 그리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행중에 있는 심의회의 토론이나 논의들은 비공개 적이었고, 과주도적이었고, 전문가들만의 회의였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나 인간 생 활에 큰 영향을 미칠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만 합니다. 공개되고, 폭넓게 토론됨으 로써 비로서 과학,기술의 내용은 풍족해지는 것입니다. 또 과학적 문제라 할지라도,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들도 토론회에 참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정측의 입장이나 전문적 테 두리 안에 구애되지 않는 보통 시민들의 의견도 중요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심의회 말고도 행정과 독립한 "제3자 평가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면 합니다. 문제마다 갖가지 분야의 사람들 이 참가해서 심의회의 토론내용을 점검하는 기관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해 과학적 내 용을 알기 쉽게 풀이해 줄 필요를 느끼게 되겠지요. 이와 같은 협력이 있으므로 해서 비로 소, 국민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정책이 국민들에게 납득이 되고 국민들의 합의를 얻어내게 되겠지요. 시민과 대화하는 과학자가 되기를 그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시민과 과학자들 사이의 대화가 자주 열려야 할 필요가 있습 니다. 과학자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연구내용이나, 그 연구에서 얻어진 지견, 그리고 그 지 식의 한계에 대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실 수식이나 전문용어를 빼놓고 과학을 말한다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일이 더 욱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본다면 과학이라 해서 특별나게 괴상한 것만을 생각하는 분야는 아니고, 일상생활과 비슷한 현상도 얼마든지 있으 터입니다. 이런 종류의 과학자가 21세기에는 많이 요구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앞으로 다가올 지구상에서의 여러 난관에 대해 과학자와 시민이 일체가 되어 맞서 나가야 하니까요. 필자가 "대화하는 과학" 이라 부르짖는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 였습니다. 필자 자신 우주론이나 환경문제에 관해서 여러 강연회에서 강연할 기회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때까지 과학이 싫었던 사람이 필자의 강연을 듣고 나서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람도 여럿 만났습니다. 결 국 과학이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소원한 느낌을 갖게 한 데에는 과학자 자신이 책임 도 있지 않았나 하고 반성하고 있는 바입니다. 참고 박물학 옛날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교과목으로도 사용되었던 학문분야의 명칭, 동물학,식물학, 광물학,지질학 등의 총칭. 넓게 천연물 전반에 걸친 지식의 기록을 주안점으로 한 학문분야. 세포융합 보통의 경우 식물이나 동물의 개개 셒는 생명 단위로서 존재하기 우해 세포막으로 외계와 격리되어 있다. 그래서 난자와 정자 사이의 수정이라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포와 세포가 접촉해 있는 것 만으로는 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생명공학 적 기술의 발달에 딸 인위적으로 세포융합이 가능해져서 예컨대 감자와 토마토의 세포를 융 합시켜 두 세포를 합친 성질을 갖는 포마토라는 세포융합작물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포마토는 뿌리에는 감자가 줄기에는 토마토가 열린다는 괴상한 잡종식물이다. 현재 이런 세 포융합의 기술에 의해 백람(배추 즉 백채와 양배추즉 감람이란 말을 합쳐서 백람이라 이름 지음)이라는 야채가 만들어지는 등 그 활용도가 점차 늘고 있다. 제 6장 미래를 짊어질 여러분에게 과학을 어떻게 배우는가 학교에서도 곧 주5일제 수업이 실시된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이과시간 도 줄어들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더 실험실습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그 에 따라 주입식 수업이 횡행할지도 모릅니다. 이과(과학)는 이미 연구된 지식이나 경험을 하 나하나 쌓아 올라가는데 그 특징이 있는 만큼, 띄엄띄엄 수업을 하다 보면 이해해 나아가는 데도 힘이 들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앞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쉬 는 날이 느는 것을 역이용해서 과학을 좀더 우리 생활에 가깝게 느끼게 하는 기회로 만들어 보기로 합시다. 과학관을 이용합시다 그 하나로서는 각지방에 많이 세워진 과학과,플라네타륨,천문대,박물관을 이용하는 일입니 다. 필자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 볼 때 이런 시설들은 확실히 그 내용이 충실화되어 있어, 마 음만 먹는다면 언제나 스스로 실험도 해볼 수 있고,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을 쳐다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 박물관도 단순히 옛날 것을 수집해 놓는데 그치지 않고, 학문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행사에 직접 참가도 할 수 있고, 그 행사도 여 러 가지로 새것이 고안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설에서는 교과서에서와는 달리 실물을 직접 볼 수도 있고 만져 볼 수도 있고 움직여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과학을 몸소 체험할 수 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은 시설에 갈 때 알아두면 좋은 비결이 몇 가지 있습니 다. 그 하나는 반드시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한 가지 한가지 전시품에 대해 "왜 그럴까?", "어떤 구조와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을까?" 등등을 토론도 하 고, 또 보거나 움직여 보다 보면 뜻밖의 발견을 할 때도 많습니다.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관원이나 계원에게 질문하는 것도 비력의 하나입니다. 관원이나 계원은 항상 질문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께 설명해 줌으로써 스스로의 공부에도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사실 친절하게,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 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원 또는 계원과 친해지면 보통 때는 보여주지 않는 것까지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모처럼의 시설인 만큼, 충분히 이용할 때까지 다 이용 해서 완전히 알아 버리지 않으면 밑지는 것이 아닐까요. 최신 연구를 해설해 준 책을 읽는다 또 과학의 최전선에서 현재 어떤 연구가 행해지고 있는지를 쉽게 해설해 준 책을 읽는 것 도 즐거운 일의 하나입니다. 현재 "파퓰러 사이언스"라든지 "과학 라이브러리"등과 같은 총 서로 출판되어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 "주니어 신서"에는 재미있는 과학 책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 필자도 전문서적 이외의 과학분야에 대해서는 먼저 이 "주니어 신서" 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거의 수식을 쓰지 않고, 힘든 개념이라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책들의 필자들은 틀림없이 전문가를 위한 책 보다도 이 주니어 신서를 쓸 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섰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 최전선에서의 연구내용을 알게 되면 현재 무엇을 향해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십년 가까이에 있는 현상부터 고찰 또 한 가지는 부엌의 과학이라던가 장난감의 과학 등과 같은 신변 가까이에 있는 일들을 다룬 책을 읽기도 하고 또 그 책안에 써 있는 내용을 실험해 보기도 하는 일입니다. 예컨대 아이스크림의 튀김이라던가 계단을 기어오르는 장난감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원리, 그네가 흔들리는 원리 등등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로 이상하 고 불가사의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리 현 상과 무관한 것들은 아닙니다. 예컨대 에어컨과 물 마시기 새와 지구상에서의 물의 순환은 모두가 같은 원리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퍽 복잡해 보이는 현상마 저도 극히 단순한 몇 가지 원리를 써서 설명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인가 우주 전 체를 한눈에 내려다본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기본원리를 파악 - 과학자는 일종의 탐정 무엇이 기본원리이고, 어떤 종류의 법칙이 작용해서 어떤 방식으로 운동(현상)하고 있는가 를 한 묶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라고 합니다. 이 "안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원리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파악해 두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이것이 원 인일 것이다"라고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그것이 물질의 성질 때문인지, 구조 때문인지, 운 동 때문인지, 변화 때문인지 등등을 이것저것 가정을 세워 가면서 추리해 보는 것입니다. 이 런 과정은 꼭 추리소설의 탐정이나 현사의 행동과 비슷하지요? 그렇습니다. 과학자는 말하 자면 일종의 탐정입니다. 이론가는 소파에 앉은 채 사색에 의해 범인을 추려 내는 안락의자 탐정이고, 실험가는 두발로 현장을 마다 않고 돌아 다니는 형사 같다고나 할까요. 원리가 동 기이고, 법칙은 인간관계, 현상이 범죄행위라 비유하는 것을 억지 맞춤일까요? 과학에 새로운 바람을 이 책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현재 과학이나 기술은 그 방향과 사고법이 크게 바 뀌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잡한 현상을 앞에 두고 보다 기본적인 궁극적 물질의 구조와 운동을 통해 알아본다는 환원주의적 방법과 더불어 그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복잡성을 그대 로 받아들이면서 그 전체를 파악하는 방법도 개발중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는 취급 할 수 없었던 카오스나 프랙털 같은 것까지도 다룰 수 있는 과학이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 렇게 연구대상이 넓어지고 물질이나 운동에 관한 새로운 개념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의 거대화,집중화 일변도의 기술에서 떠나서 생체반응까지도 이용하는 소규모화, 분산화의 길도 개척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자연,인간과도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기술의 방법과 방향도 모색되고 잇습니다. 아직은 기초연구로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야만 하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자연과의 공생"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에서는 기술에 대한 이와 같은 재점검부터 시작해야 비로소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등신대의 과학,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기술 쪽으로 전환을 시켜 간다면, 과학과 기술은 무척 이나 우리 신변생활과 친근한 것이 될 것입니다. 지구의 위기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재래의 과학이나 기술의 성과를 계승하는 동시에, 그 한편으로는 그에 구애되지 말고, 새로운 발상 에 기반을 둔 과학이나 기술을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고, 대전환의 시대를 더욱더 크게 전개시켜 나가는 것은 바로 미래를 짊어지게 될 여 러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