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초 저자: 이케다 다이사쿠 역자: 화광출판사 편집국 출판사: 화광출판사 서 나는 청년을 좋아한다. 몇 번이고 좌절을 되풀이하면서도 눈을 미래로 돌리고 무엇인가에 도전해 가는 씩씩한 청년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20 년 전의 어느날, 여위고 몸이 작은 청년이 우리집에 불쑥 찾아 왔던 일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가슴에 간직한 결의를 정열을 다해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미국에 유학가고 싶습니다."라고. 나는 그의 불타는 듯한 눈동자를 보자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라면 무엇인가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직감 했다. 아니, 죽음을 결의한 도미의 각오가 맥동치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유학간다고는 하지만 그는 결코 넉넉한 처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패전으로 인해 외지에서 귀환한 그의 일가는 가난했다. 게다가 그 자신은 천식을 앓고 있는 병든 몸이다. 그로부터 2 년여,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도미가 결정된 날, 나는 그를 데리고 은사에게 인사드리러 갔다. 은사도 각별히 청년을 사랑한 인간지도자였다. 은사는 큰 꿈과 사명을 품고 나래치려는 어린 새를 감싸안듯이 다정하게 격려했다. 단신으로 이국땅을 밟은 그를 뒤쫓아 온 것은 "부친사망"의 비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펜을 달렸다. 신뢰하는 제자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일을 생각하니 격려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유학생활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마음으로 울었으나 남에게 약한 소리를 한적이 없었다. 자신이 결의한 신조아래 참을성 있게 인내로써 미국인으로서의 도정을 걸었을 것이다. 1958 년 4월 2일, 나도 어버이로, 지주로 경모하고 존경했던 은사가 서거하셨다. 나는 다시 편지를 썼다. "슬플 것이다. 그러나 참된 사명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의 지도자로 성장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36,36^아마 이런 내용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몇 차례나 거센 파도를 극복해 주었다. 그 후 2 년^36,36^수많은 쓰라림을 맛보면서도 자신의 인생으이 국토라고 결의한 미국사회의 발전과 벗의 행복을 위해 공헌하고자 하는 그의 염원은 훌륭하게 결실을 맺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니치렌 대성인의 "태양의 불법"에서 참된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발견한 수십만의라는 소생의 동지가 그와 함께 생기발랄하게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미국시민권을 얻고 있었던 그는 사다나가사카야스라는 일본이름을 죠지.M.월리암스라고 고쳤다. 그는 명실공히 미국시민으로서 불법과 평화와 문화의 등불을 밝히는 사상적 지도자의 한사람으로서 존경과 신망을 얻고 있다. 내가 굳이 한사람의 인물을 소개한 것은 그의 반생속에서 청년의 특권을 충분히 발휘해 온 청춘의 궤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용기도, 미래도, 정열도 청춘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그의 확고부동한 마음이다. 불퇴의 궤적이다. 그 외에도 나는 인간으로서 씩씩하게 성장한 벗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에게 공통된 점은 어떠한 고난을 만나더라도 자신과 싸우며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 무한한 가능성을 촉발해 나아간 점에 있다. 내가 기회있을 때마다 청년들 속으로 뛰어들어 가는 것은 그러한 젊은이들의 한없는 가능성과 미래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청년의 숨결을 가득히 머금고 청년과 함께 살아가고자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나마 인생의 선배로서, 젊은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힘과 자신감과 인간원점의 지표를 그들의 흉중에 스며들게 한다는 신념과도 같은 생각으로 대화하며, 서투르나마 글을 남겨왔다. 본서는 그 중에서 선정하여 일서로 묶은 것이다. 결코 체계적인 것은 아니다. 인생에 한번밖에 없는 귀중한 청춘시대를 뜻있게 살아가는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젊은이의 미래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1973 년 11월 18일 저자 I. 청년과 건설 고투에 져서는 안된다. 기나긴 인생항로에는 화창한 햇빛을 흠뻑 쬐는 봄날과 같은 때도 있고, 심한 추위와 싸우지 않으면 안될 엄동설한의 밤과 같은 시기도 있다. 고투의 시기란 이를테면 인생의 겨울밤인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고투의 시절을 청춘시대에 맞이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청춘시대를 지나서 나이가 들어 그때부터 고투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는 젊은 시절에 될 수 있는 대로 고생을 맛보면서 이것을 극복하고, 강한 일생의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원해 왔다. 그러나 결코 뭔가 타인과 다른 특별한 고생을 일부러 해서 특수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따위의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직 나 이상으로 대단한 고생을 하며 그것과 감연히 싸우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수없이 많다. 다만 나도 다소의 병고나 고생이 있었기 때문에 타인의 병고나 가난에 대해서도 남들처럼 걱정할 줄 아는 그러한 인간이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미국의 시인 휘트먼은 "추위에 떨어 본 사람일수록 태양의 따뜻함을 알고, 인생의 괴로움을 겪은 사람일수록 생명의 존귀함을 안다."라고 말했다. 겨울은 언제까지나 겨울이 아니다. 겨울의 고투 뒤에는 반드시 봄햇살을 맞게 되는 것이다. 고난에 져서는 안된다. 이때야말로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자기를 단련하는 것이다. 오히려 겨울의 추위를 알고 있기에 봄햇살을 기뻐하며 온 몸으로 향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대 운명의 별은 그대의 흉중에 있다"고 읊은 시인도 있다. 자기의 처지가 어떻든, 과거가 어떻든 미래를 구축해 가는 운명의 별은 다름 아닌 자기자신의 흉중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폭풍우가 오든, 노도가 밀어닥치든 언제나 그대 자신이 엄연하게 빛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나는 지금 수많은 고투와 싸우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의 고난은 여러분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 여러분들을 장식하는 지보로도 된다"라고. 나에게는 네명의 형이 있었으나 모두 전쟁에 끌려가고 망았으며 자연히 뒤에 남은 내가 형들을 대신하지 않은면 안되었다. 집은 폭격으로 타버리고, 늙은 부모는 열심히 일하여 자식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 주었으나, 귀여운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내가 떠맡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당시 나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으니 나자신의 병고와의 투쟁에도 이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늘날의 보통 가정이라면 당연히 입원하여 장기요양을 해야 될 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말기부터 종전직후에 걸친 그 시대에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일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매일 저녁이 되면 결핵 특유의 미열이 오른다. 쉴사이 없이 나오는 기침^5,5,5^ 밤에 잠자리에 들지만 고통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자주 있었다. 의사는 23.4세를 넘길 수 있을까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또 은사 도다회장 슬하에서 일하고부터 항상 걱정을 끼쳐 드렸으며, 어떤 때는 저 몸으로는 30세까지도 연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부모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매일의 격무 속에서도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해 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일부러 무리해서라도 일을 해야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경우 거꾸로 생각해 보면, 만약 그 정도의 긴장이 없었더라면 나의 몸은 병마에 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의욕을 가지고 근무하는 한, 직무가 있었다는 것은 정신에도 육체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주었고 그것이 건강에도 이로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키호테"의 작자인 세르반테스의 말에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법이다"라는 일절이 있다. 나도 여러번 절망에 빠져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악화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직 생명은 있다. 희망은 아직도 있다"라고 자신을 격려해 왔다. 세상에는 나 이상의 병고와 투쟁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병마에 지지않겠다는 강하고 명랑한 마음을 가져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병에만 한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의 고경이든 반드시 그것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찬스는 있는 것이다.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씩씩하게 앞으로 도전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1949 년 정월, 21세 때부터 은사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나 연일의 격무는 병약한 몸에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이로운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이다. 그 가운데서 은사는 모든 면에 걸쳐 엄격한 훈련을 시켜주셨다. 어떤 때는 백뢰가 한꺼번에 떨어지듯이 심하게 질타하셨고, 어떤 때는 다정스럽게 타이르듯이 가르쳐 주신 적도 있다. 그러나 근저에는 깊은 신뢰가 있었으며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도록, 훌륭한 인간으로 키우려는 자^36^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미진의 의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은사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엄격한 훈도를 괴롭다든가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굴복한 적은 없었다. 따뜻한 인간성이 넘치는 살아 있는 유대가 얼마나 희망과 확신과 용기를 주는 것일까.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도 결국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는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도 신뢰감은 인간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특히 청년에게 있어서 직무상의 신용이 최상의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신용의 축적이 없는 청년이라면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패배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현재는 무책임시대라고 말하듯이 남의 신뢰를 짓밟아버리고도 태연하게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존속하는 한, 신뢰감이 그 근본이라는 것은 진리이며 신뢰를 짓밟아버린 사람이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여 패배해 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지금은 우쭐대는 마음으로 "무책임의 버릇"을 구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불쌍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무샤노 코 지 사네아쓰였다고 생각되는데 "신뢰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의 한마디는 믿을 수 없는 자의 백만마디보다도 힘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신용이라는 것은 쌓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쉬운 법이다. 10 년 걸려서 쌓아올린 신용도 유사시의 아주 사소한 언동으로 인해 상실되고마는 경우도 있다. 잔재주로 겉만 장식한 도금은 중요한 때에는 벗겨지고 만다. 고난 속을 한결같이 스스로의 사명에 사는 사람이야말로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의 신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누구도 보아주지 않고 지루하게만 여겨지는 그러한 일이라 해도 그것을 소중히 여겨 일보일보을 인내심 강하게 자기의 건설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다. 신용이 중요하다고 해서 너무나도 옹졸하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진다는 것은 청년으로서 치명적인 손실이 되고 만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실패가 얼마나 장래의 기반을 만드는데에 소중한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미완성을 자각하여 자기답게 용기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 주기 바라는 바이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골드스미스는 그의 저서 속에서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누구의 말인지 잊어버렸으나 다음의 말은 나의 흉중에 깊은 감동을 가져왔다. "실패! 실패란 무슨 뜻인가, 이는 세상의 일상다반사가 아니겠는가, 아니 대사업의 찬스가아닌가, 나는 이로 인해 만권의 책을 읽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얻고(중략) 아아! 실패는 하늘이 나에게 행복을 내리는 것으로서 실로 인생의 지보(최상의 보물)이다"라고. 한번이나 두번의 실패로 꺾이고 만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 인생은 기나긴 여로이다. 도중에는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인생을 걸었다 해도 최후에 불행한 패배의 인생으로 바뀌고 만다면 이 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청춘시대는 실패하면 할수록 새로운 인생, 일생의 행복에의 기반이 구축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는 것이다. 더욱이 실패는 실패로서 청년답게 솔직하게 인정하는 대담함이 필요할 것이다. 자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그러한 비열한 짓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을 냉정하게 판단해 나가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다음의 가치창조의 원천이 되리라. 청년이 어떤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해 나가는 모습은 가장 힘차고 가장 신선하고 가장 아름답다. 전세계의 어디를 찾아보아도 청년의 고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성실하라. 독일의 시인, 실러의 말에 다음과 같은 일절이 있다. "청년은 오직 알몸으로 좋다. 이것이 청년다운 순정을 가지고 청년다운 감격을 가지며, 청년다운 건강과 솔직함과, 젊음과 빛남과, 희망에 불타고 있다는 것만으로 재상보다도 장군보다도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활태도의 신조를 한마디로 말하면 청년다운 성실성을 가지고 어디까지나 서민의 편이 되어 서민과 더불어 일생을 관철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도쿄 토박이의 습성으로서 여러가지 일을 일부러 숨긴다든가, 진상을 속인다든다 하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 너무나도 개방적이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직접 지적을 받기도 하고, 충고 받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으며,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결구, 인간은 본바탕대로 사는 것이 가장 즐거운 법이다. 속인다든가 꾸민다든가 하려고 하면 거기서 아무래도 무리가 생긴다. 아무리 고위고관의 자리에 오르고 부귀영화를 다 누려도 허식이 있는 한, 절대로 참된 의미에서의 행복은 맛 볼 수 없다. 몽테뉴의 말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여자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없는데도 여자들 자신이 기교를 존중하고 겉치레를 일삼고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여성의 경우에 몸가짐으로서의 화장은 당연히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야하게 치장하고 있는 것은 도리어 보기 흉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자기를 필요 이상으로 꾸며 실물보다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여성에게만 한하지 않는다. 남성에게도 이러한 경향은 어떤 의미에서 여성 이상으로 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몽테뉴의 말을 빌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인간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는데 인간들 자신이 기교를 존중하고 겉치레를 일삼고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36,36^이것은 보기 흉할 때에는 이 이상 흉한 것도 없으나, 성실한 아름다운 인간성 또한 이 이상으로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으로 감동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왕년의 대정치가인 디즈레일리는 말했다. "성실보다 더한 지혜는 없다"라고. 불성실한 정치가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우리들 일본인에게 있어서, 이 말이 정치가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외의 느낌을 주는데, 나는 니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나는 다행히도 많은 친구 지기를 가졌고, 또 해외에도 모든 인종의, 모든 계층의 벗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절실하게 통감하는 것의 첫째는 허식을 홱 벗어 던져버린 알몸과 알몸의 인간의 연대야 말로 가장강하고, 가장 앎답고, 가장 거룩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적의를 품고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 해도 이쪽이 진실과 성의를 가지고 접촉해 나간다면 반드시 호의로 변해 가는 법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라도 성의만은 민감하게 전해지는 법이다. 인간이 본연적으로 지닌 직감의 능력이라고나 할까. 그 예민함은 무서울 정도이다. 이러한 가장 가까운 주변의 마음의 유대가 인류에게 있다면 서로가 미워하고 죽이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세계평화나 세계연방을 외치는 것 보다 결국은 이러한 인간성의 차원에서 문제해결의 여하에 귀착해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민의 편이 되라. 나는 어디까지나 서민과 더불어, 서민의 편이라고 자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았고 그것을 위해 싸워왔으며 또한 영구히 약한 사람들의 절대적인 편으로서 횡포와 허위의 위정자들과 싸울 결심이다. 진실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서민의 행복이 기반으로 되어야만 성취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서민이라 하면 반드시 품위가 없고 촌스러운 싸구려란ㄴ 형용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 위에 군림한 귀족이나, 사족의 편견에 의한 것이며, 민주주의인 현대에 아직도 그러한 감정을 품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심한 착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 자신은, 서민출신이었고 서민으로 자랐으나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민이라 하는 것에 한없는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서민과 더불어 살고 서민의 편이 되어 싸운다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 생애, 청춘으로 나의 인생이, 19세 때 은사를 만나서 크게 변한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청춘시대를 보낼 수가 있었다. 이 한가지 일만으로도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지금 나의 흉중에는 은사의 훈도가 생생하게 맥동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비참"이라는 두글자를 없애는 일' 이었다. 또 어떤 때 은사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란 결론적으로 청년시대의 신념과 정열을 평생토록 잃지 않는 사람이다"라고도 말했다. 목표가 결과적으로 이상이었다고 해도 좋다. 나도 일생동안 청년답게 생기 있게, 순수하게 살아나가고 싶다. 그리고 조금도 정체됨이 없이 항상 전진과 향상을 계속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하고 원하고 있다. 어느 국민학교 교장은 60세를 지나면서부터 열심히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영국 같은 곳에서는 나이든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다시 공부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신조를 관철하여 일생을 장식하기 위해 고난을 타파하고 늠름하게 살아간 것일까. 더군다나 나는 아직도 젊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청년이다. 나는 가장 평범한 청년이다. 그리고 항상 청년과 이야기하고 청년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나는 청년을 누구보다도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에 있어서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청년이며 미래에 있어서 이상을 지향하고 세계를 움직여 가는 것도 청년이기 때문이다. "청년이란 건설시대의 이명이다"라고 흔히 나는 후배를 격려한다. 그것은 본인 자신의 완성과 행복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사회 건설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또한 나자신에게 타이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겨울 속의 청춘 젊음만이 역경을 이길 수 있다. 성가신 시세가 되어 버렸다. 이 1 년 남짓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그칠 줄을 모르고, 일본 열도의 구석구석까지 모르는 사이에 가스가 가득 차듯이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되고 말았다. 게다가 곧바로 석유파동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석유는 불씨가 되어 순식간에 대폭발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피해자가 속출하는 상태인데 이렇게 되면 어떠한 낙관론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폭발은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모든 물가의 등귀가 계속되고 있다. 패전이래 최악의 긴급사태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은 날이 갈수록 고통스러워져 가는 경기동향이다. 젊은 여러분들에게는 처음 당하는 사태이므로 얼마나 당황하는 일이 많을까 라고 생각되지만 패전을 경험한바 있는 우리들 연대의 사람들은 미지근한 물과 같은 번영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겠는가 라고 염려하고 있었다. 패전직후의 말할 수 없는 생활에 비한다면 요즘은 아직 견딜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패전이라는 숙명을 갑자기 짊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들 20세 전후의 청년은 전쟁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준엄하게 일어섰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숙명과의 투쟁의 제일보를 내디뎠다. 젊음이란 언제나 어떠한 곤란에 처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날의 부족한 생활도 고통스러웠으나 그보다도 사상적인 괴로움 쪽이 나에게는 더 강했다. 군국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자란 청년들은 나라가 망했다는 것보다 사상에 패배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패배해 버린 사상의 빈 껍질을 가슴에 품고 잡탕죽을 훌훌 마시고 있던 그 당시의 고민에 찬 청년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이해될 것이다. 나도 그러한 청년의 한사람이었다. 오직 의지만은 굳건히 가지고 인생의 여로를 일보일보 전진해 왔다. 꽤 긴 겨울의 여로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은사의 회사에 직장을 얻기는 했으나 얼마 지나자 경제계의 불황에 말려들어, 분투한 보람도 없이 마침내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다. 사원은 거의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으나, 나는 은사와 함께 사후정리에 몰두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재건의 목표는 서지 않았으나 서광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겨울에도 태양은 빛나듯이 병약한 나의 오체 속에도 청춘의 뜨거운 피는 돌고 있었다. 나의 연애와 결혼 이와 같은 인생행로의 길을 가면서 나는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아내이다. 여행의 좋은 반려라고 생각했다. 두사람만의 생각은 서서히 결실로 향했으나 막상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가지가지의 장해가 나타났다. 우선 나의 꽤 오랜 시일이 경과되고만 병약. 게다가 보잘 것 없는 한사람의 이름 없는 청년에 불과한 나에게 그녀의 부모는 과연 허락해줄까. 나는 집을 나와서 겨우 자립은 했으나,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완고한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회도 불안한 상태였으나 나의 생활 실태는 누가 봐도 그보다 더 불안정했다. 어느날, 은사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그녀의 부모와 간담 끝에 승낙을 얻었다. 그리고 또 나의 집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와 대면하였다. 은사는 아버지에게 나를 자기에게 달라고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당황한 아버지는 잠시 심사숙고를 계속한 후 마지막에 한마디,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속해서 은사는 나를 결혼시키고 싶다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당신에게 드린 이상 그 생각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고 쾌히 승낙한 것이다. 이윽고 결혼했다. 1952 년 5월 3일의 일이다. 결혼식도 피로연도 했으나 결코 무리를 하는 그러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극히 간소한 것이었으나 은사는 가까운 친구들의 축복은 참으로 마음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구로의 단칸 셋방에서 변변치 못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는 아직도 전후의 궁핍생활의 그림자가 참으로 짙게 꼬리를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여로에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아내가 제일 염려한 것은 식사였다. 병약한 나를 어떻게 해서라도 건강한 몸으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제일의 과제가 되었다. 나는 아내인 동시에 비할 데 없는 훌륭한 간호사와 영양사를 얻은 셈이었다. 나의 당시부터의 심한 활동이 오늘날까지 이럭저럭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이때의 의지와 노력 덕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고투라 할까, 사투라 할까. 도산한 회사의 재건을 위해 현실과 끝까지 싸운 수년 후이기는 하나 모든 것은 서서히 타개되어 가기는 했지만 아직도 공사에 걸쳐서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다. 하나의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그 보다 더 강한 장애가 가로막아 선다고 하는 상태여서 사생활을 돌아볼 틈도 없었다. 저 멀리 희망의 별을 주시하며 초창기의 고통스러운 건설에 이를 악문 그러한 긴장된 매일이 계속되었다. 때로는 이러한 여의치 않은 상태가 일생동안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아내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우리들의 인생의 현상에 지쳐버린 적도 있었으나 서로 믿고 있었던 우리들은 '겨울은 반듯이 봄이 된다'는 금언을 확신하고 용기를 분기시켰다. 그러나 현실의 생활은 좀처럼 봄이 오지는 않는다. 계절은 눈부신 봄이 되어도 생활은 변함없이 겨울과 같았으며 나의 숙명의 무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 '겨울은 반듯이 봄이 된다'는 일절의 참뜻에 예리하게 육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얼마 안 가서 봄이 된다는 것은 우주의 필연적인 확실한 운행인 것이다. 정말 봄이 가을로 된다는 것은 옛날부터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 한사람 한사람의 생활은 반듯이 이와 같은 운행을 하고 있지 않다.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운행은 왜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가. 이 법칙에야 말로 인생의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의 운행이 우주의 운행리듬과 합치할 수만 있다면 겨울은 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반대로 역행이 초래되는 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운행리듬을 타지 못하고 불행 위에 불행이 겹치는 그러한 사람도 많다. 그러면 당시 우리들의 생활은 도대체 어느 쪽일까 하고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몇번이나 이 "겨울은 반듯이 봄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거기에야말로 한 인간으로서의 끝까지 살아가는 근본자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주의 필연적인 운행과 같이 우리들의 생활에도 반듯이 봄이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신앙 수행이 도대체 어떠한가, 깊은 반성 속에 스스로를 엄하게 판가름하였다. "겨울은 반듯이 봄이 된다"고 하는 일절만은 항상 되풀이해서 외쳤다. 마음에 유연한 희망이 솟아오르고 일체의 푸념을 버릴 수가 있었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의지의 힘만으로는 우주운행의 리듬에 탈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와 같은 지혜를 가졌다고 해도 이것은 인간의 생명에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운행은 표면적으로는 역학적인 설명으로 충분한 것 같이 생각되나, 보다 깊은 생명적인 힘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 힘의 리듬이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가 하면 우주생명의 본연의 힘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 본연의 힘에 합치하려고 하는 인간은 뭔가 위대한 법칙이라는 것을 발견해서 인간 스스로의 생명의 작용을 발현하는 이외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단독의지로는 인간 본연의 생명을 움직일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웃는다는 것도, 노한다는 것도 누구나 웃으려고 생각하여 웃고 있는 것이 아니고 노하려고 생각하여 비로소 노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기연에 닿았을 때, 인간의 생명은 의지와 여하에 관계없이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웃는다던가, 노한다던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작용을 보고 어떠한 기연으로 되는 신앙의 중대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주생명과의 기연, 그것은 그대 자신의 생명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 속에 있는 재보를 나타내는 신앙에 의해 우주생명의 운행의 리듬에 자기도 모르게 합치되어 "겨울은 반듯이 봄이 된다"고 하는 확실한 체험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역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의 위기에 즈음하여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자연환경의 파괴는 지구운행의 리듬에 대한 최대의 역행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십수년의 일본열도는 대대적인 역행을 진전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주민은 자연으로부터의 복수를 받아야만 했다. 공해라는 인재라 하더라도 현대문명의 악의 전부는 이와 같은 자연의 운행, 다시 말해서 우주생명의 운행을 완전히 무시한 위에 성립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앞이 막혀 손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겨울에서 가을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대로 가다가는 도대체 언제 봄이 올 것인가. 현대의 위기는 겉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뿌리가 깊다. 현대의 경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긴급사태에 처하여 우리들 종교운동의 비원 또한 싫더라도 불타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청춘은 확실히 겨울 속에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은 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봄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지금 젊은 여러분들은 최근의 사태를 두려워하면서 겨울의 내습을 예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겨울 속의 청춘의 체험이 어떠한 참고가 된다면 그것은 나의 기대 이상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일본열도도 지금 겨울이다. 계절도 겨울이고, 생활환경도 더욱더 엄동으로 향하고 있다. 우주생명에 역행해 온 것을 이쯤에서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 자신에게 봄을 부르고, 일본열도에도 이 지구에도 진짜 봄을 부르기 위해서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미 그것은 내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1974. 1) 우정에 대하여 우정을 빼놓고 청춘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정은 청춘을 장식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기도 하다. 청춘시대를 되돌아 볼 때, 연애의 추억은 때로는 달콤한 것보다도 쓰라림이 앞서는 법이다. 그러나 우정의 추억은 상쾌한 회고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인생에는 그 인간형성의 시대에 따라서 갖가지 부류의 벗이 생긴다.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의 "소꼽친구"^5,5,5^ 국민학교 시절의 "학우"^5,5,5^ 청년시대의 친구^5,5,5^ 사회인이 되었을 때부터의 동료, 놀이친구, 술친구^5,5,5^ 노년에 들어가면 "차 마시는 친구"등등. 어느 종류이든 친구들이란 이해도 없고 추악한 흥정도 따르지 않는 순수하게 인간과 인간의 진심으로 결합된 사이이다. 물론 그것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얕고 깊은 차이나, 우정에 거는 자세의 강약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소년시대의 우정은 아직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숙하다. 성인이 된 후의 친구교제는 이를테면 편의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기능에 따라서 친구들을 구별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전인격적으로 서로 신뢰하기에는 서로가 너무나도 "인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춘시대의 우정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연애의 서곡이며 스스로도 인격을 기울이게 되고, 상대방에게도 전인격적 신뢰를 기대한다. 인간의 존귀함을 아는데 있어서의 귀중한 일부이며 그 자체는 가령 허무하게 없어지더라도 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불구가 된다고 해도 나는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뢰감과 신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결합된 친구끼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거울인 것이다. "자아"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청춘기이다. 친구를 가지고, 친구를 믿는 동시에 스스로도 친구의 신뢰에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라는 것에 대한 변혁에 도전하는, 처음 있는 경험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가족이나 학교교사는 때로는 꾸지람을 받더라도 어쨌든 "버릇없이" 굴 수 있는 상대이다. 그의 가슴속에는 아직 "자아"아는 것의 명확한 영상은 없다. 청춘기가 되어 비로소 그것을 영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며, 같은 인격형성의 도상에 있는 친구를 거울로서 활용할 수 있는 의식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문명사회에 있어서는 인간관계가 생활환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성^36,36^이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인생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친구들은 형식적인 겉치레나 욕망에 지배된 야심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 무구한 가장 인간다운 인간관계이다. 생신의 인간으로서의 상호이해는 인생에 있어서 부딪치는 모든 대인 관계의 불가결한 기반이기도 하다. 장래, 사회인으로서 경험하는^36,36^회사의 선배, 후배도 경쟁상대(라이벌)도 표면으로 보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바탕에 인간으로서의 이해가 있어야만 비로소 그것을 살려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사회는 인간이 서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존경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기술우위, 조직우위라는 현대문명의 기본자세에서 오는 결과이기도 하겠으나, 하나는 인격 형성의 중요한 단계에 있어서 우정관계의 결여에 그 원인이 있다. 심한 수험경쟁^36,36^그 속에서 자녀 교육에 극성스러운 어머니나 학교 교사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으며 덮어놓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청춘에는 진실한 친구를 가질 시간적 여유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 경쟁의 인생에서는 본래 둘도 없는 친구도 미운 적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치열함이 극에 달하는 대학수험이 17세부터 19세경이라는데 심각한 문제의 뿌리가 있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따뜻한 마음과 마음의 접촉을 유지해 나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들은 모른 채 성장하고 있다. 대학분쟁에서 볼 수 있었던 교수나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는 확실히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이를테면 "소아적"인 제 멋대로의 자세를 기조로 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의 책임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한 발상이나 대처밖에 할 수 없는 비뚤어진 인간으로 만들어 낸 것은 다름 아닌 현대사회이며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깊은 반성 없이 문제의 구극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으며 미래의 건전한 건설도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정의 교환에 의해 청년은 비로소 이 세상에 제멋대로의 버릇 없는 짓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그 도리를 무시하면 자기라는 존재는 동료사회에서의 정당한 위치를 빼앗기고 만다. 자연의 섭리 속에 엄격한 벌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친구의 불행 때문에 자기도 울고, 친구의 기쁨에는 자기의 가슴도 뛴다. 그러한 생명의 공명이 참된 의미로 사회에 열린 인격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이것만큼 귀중한 인생의 공부도 없을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식의 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부모라면 친구를 만드는 것, 친구를 소중히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청년은 자진해서 친구를 구하고 좋은 벗을 만드는 동시에 벗에 의해 스스로 배우고 자신도 벗을 바르게 계발한다는 점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경우에 우정은 선악 양면에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악우는 얻기 쉽고 선우는 얻기 어렵다. 진실한 선우란 때로 자기의 결함이나 잘못을 엄하게 지적해 주는 사람이다. 거짓으로 친하는 것은 도리어 자신을 망치게 하는 악우이다. 인간의 약점은 왕왕 결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려고 하는 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결점에 의해 자신이 받는^36,36^현실의 결과는 그것보다는 몇십배나 괴로운 것으로 된다.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가르쳐 주는 친구들이나 선배의 충고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좋은 벗을 가질 것. 훌륭한 선배를 가질 것. 이것은 인생의 그 이상 없는 행운이며 자랑해야 할 보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인간성이 여러 가지 거역하기 어려운 힘에 의해 무참하게도 말살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우정이라는 인간관계는 인간성을 지키는 유일한 성채로 까지 되어 가는 것 같다. 건강에 대하여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건강이다. 평소, 건강할 때에는 몸의 건강따위는 조금도 염두에 없다. 그러다가 일단 병자가 되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갑자기 회색으로 변하고, 침울해져서 즐겁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또 아무리 훌륭한 식견의 소유자라 해도 그것만으로는 인생은 무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함과 싸우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나로서는 여러분의 빛나는 전도를 생각할 때 언제나 이 건강문제가 걱정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만큼 우리들의 건강을 좀 먹는 요인을 많이 갖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호흡하는 공기에 독이 있다. 마시는 물에 독이 있다. 고기에도 물고기에도 야채에도 모두 독이 있다. 그러나 이들 독은 최근, 인간 스스로가 부지런히 만들어 놓은 것이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픈 일이지만, 현대는 건강유지라는 면에 있어서 2차대전 전인 옛날보다 훨씬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알아야만 한다. 기나긴 인생의 도정에 있어서 몸이 튼튼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없다. 아무리 재능이 우수하고 풍부하다 해도 그 힘을 매몰시키고 만다면 공부도 귀중한 체험도 모두가 허무한 것으로 되고 말 것이다.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선인 중에는 병고와 싸우면서 그것을 성장의 양식으로 삼아서 인류에 공헌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중에는 수많은 업적을 남기면서도 요절한다든가, 고민 속에서 그대로 일생을 끝마친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몸이 허약한 사람은 그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진다든가 편파적인 사고방식이 되기 쉽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일단 지당한 말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발랄하게 생명력 왕성한 신체를 기반으로 해야 비로소 자유활달한 정신의 작용도 생긴다는 뜻이다. 건전한 육체를 바탕으로 위대한 정신의 빛을 발산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친 저 슈바이처도 튼튼한 신체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의 세계에서는 이대거인이라고 일컬어졌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도 모두 천수를 다했다. 토인비 박사가 고령의 몸이면서도 더욱 창조적인 일을 성취했던 것은 청년시대에 건강을 배양 해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에서는 색심연지라고 설하고 있으며, 건전한 육체와 정신이 함께 약동하고, 빛나며, 삶의 환희를 구가함으로써만이 청년다운 희망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에 연령의 한계는 없다. 본인의 노력 여하로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만 진실로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일생 중에서도 15, 6세부터 20세 전후에 이르는 청춘시대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인간의 성장시대에서 보아 늠름한 육체를 만들어내는 최후의 시기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동시에 크게는 인생의 기반이 완성기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 기간에 구축하게 된 것이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젊은 육체를 스포츠 등을 통해 스스로 단련하여 일생동안 풍설에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생명을 여러분의 것으로 해주기 바란다. 이렇게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자기에게 도전하자. 생에, 구도자가 되라. 청년기는 호기심이 강하고 또한 향학심이 강하기 때문에 길을 구하는 정신이 매우 왕성하다. 그것이 인간형성에 강한 영향을 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나와 30 대에 들어설 무렵부터 사람은 구도심을 잃고 만다. 10 대의 신동이 완전히 범인으로 되고 마는 것도 구도심의 상실에 의하는 것이다. 현대의 막다른 골목에 와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도 어른이 된 사람들이 청년시대의 구도심을 어느 사이에 잃고 말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다. 정신의 황폐도 사회의 부패도 인류의 타락과 파멸도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구도심을 모두 버린 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청년의 수중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커다란 책임이 청년의 두어깨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동안 구도심을 불태워간다면 반듯이 자기자신의 커다란 사명으로서의 일사를 성취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일이야말로 인류의 파멸을 구하기에 충분한 공헌이 될 것이다. 또 구도심을 잃은 사람은 예외 없이 오만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같다. 현대의 오만이 바로 사람들을 손상케 하고 스스로도 망하게 하고 있으며 여기에 현대의 불행과 비참이 널리 퍼지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의 길도 기술의 길도 인생이 깊음과 같이 극히 깊은 것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생각해 주기 바란다. 각각의 길을 구하고 또 구해서 평생토록 끝까지 구도자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각기 인간으로서의 정상을 구명하기 바란다. 자기답게 사람에게는 각기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있다. 처지나 입장도 가지각색이다. 따라서 아무쪼록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 자기라는 것을 벗어나면 열등감에 사로잡힌다든가 자신감을 상실한다든가 해서 하찮은 일로 청년기의 구도, 향상의 의욕을 없애고 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결코 허영을 부린다든다,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자기에게는 자기의 궤도라는 것이 있다. 그 궤도를 자기의 페이스로 전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테두리를 정하고 거기에 안주해도 좋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기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서 거기에 자기답게 전혼을 다하여 후회 없도록 하루하루 몸으로 부딪쳐 나아가 주기 바란다. 그 현실의 문제와 진지하게 대결하여 그것을 해결했을 때에 자기라는 것을 재발견하고, 자기다움을 창조해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꾸로 타성에 흐르고 있을 때, 달콤한 꿈에 잠기고 있을 때에는 자기라는 것을 모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 놓여 있는 모든 환경과 처지는 모두 자기의 인간혁명의 장이다^36,36^ 이렇게 자각하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이 자기 자신이 지금 놓여 있는 현실을 떠나서 어딘가 먼 곳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일이나 생활 면에서 고투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의 그 장이야말로 인간건설, 인간혁명의 도량인 것이다. 거기에 본래의 자기자신을 연마하고 광채를 발산시켜 갈 근원이 있다는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확고한 신념으로 이루어내는 그러한 건설의 투쟁 속에 "자기다움"이 축적되는 것이 아닐까. 인내하는 용기를 갖자. 뜻대로 안되는 경우에 처했을 때, 인내라는 용기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날씨에 맑음, 비가 있듯이 인생에도 또한 반듯이 파도가 있다. 어느 때는 재난을 만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곤경에 빠진다던가 앞길이 암담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사람이란 괴로울 때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법이다. 그러나 비오는 날이 일생동안 계속된 일은 지금까지 없었듯이 반듯이 맑게 개인 날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괴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젊으면 젊을수록 헛되이 초조함을 느끼고 허둥대는데 이것은 더욱 더 깊은 곳에 빠지게 되는 졸렬한 헛수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처럼 청년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없다. 노력해도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때에는 그것을 당당하게 견디며 참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초조감에 쫓겨 성급해져 스스로를 파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오는 것을 유연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참된 인내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고금의 용자는 이 인생의 지혜의 체득자였다. 청년은 인내해야 할 때에는 훌륭히 견디며 참을 수 있는 용자가 되어 주기 바란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괴로울 때,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착각이다. 그것은 후에 생각하면 아주 작은, 일시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장래 큰 일을 하려는 청년에게 결코 초조해서는 안된다. 인내하는 용기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강하게 살자. 사람에게는 갖가지의 성격이 있는 법이다. 말이 없고 소극적으로 되기 쉬운 사람, 다변이며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 침착한 사람, 재미없는 사람, 정에 약한 사람 등등.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장점이며 반대로 결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말이 없고 소극적인 사람은 자칫 내성적이고 약하게 보이나 장점으로 보면 고분고분하고 겸허한 인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다변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젊음이 넘치고 능률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보이겠으나 단점으로 본다면 쓸데없이 지껄이기만 하는 가볍고, 주제넘게 잘 나서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민첩하다고도 할 수 있고, 침착한 사람은 동작이나 머리가 아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헛되이 자기의 성격을 비하하고 타인을 선망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자기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습은 다를지라도, 무엇인가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만약 당신이 주위의 사람들을 보고 자기와는 아주 동떨어진 특별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모두가 같은 인간이다. 나쓰메소세키는 풀베개의 일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 역시 가장 가까운 이웃에 어른거리는 보통사람이다. 보통사람이 만들어 놓은 사람의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서 이사갈 만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있다면 사람 없는 나라에 갈 뿐이다. 사람 없는 나라는 사람의 세상보다도 더 살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인생을 도피해서는 안된다. 자기를 비하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오직 용기를 가지고 자기자신답게 강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확실히 인생에는 반성도 필요할 것이다. 반성이 없는 사람에게 향상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성이 자기혐오가 되어서는 가치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일에의 향상을 위한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반성이 항상 과거의 일에 구^36^애되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렇나 생활태도는 노인의 모습이며 청춘의 생기발랄한, 이제부터 가능성 풍부한 인생을 살아야 할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미래를 응시하고 전진하자. 거기에는 반드시 희망이 솟는다. 무한한 가능성을 청년은 간직하고 있다. 밝게 살자. 자기의 청춘을 위해서라도, 또한 싱싱한 이웃사람을 위해서도.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넘쳐 흐른다. 용기를 가지고 강하게 살자. 거기에서 자연히 길이 열리게 된다. 자기의 길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강한 자기의 건설만이 새로운 자기의 혁명으로 되는 것이다. 허영에 지지 말자. 허영심은 누구의 마음속에도 있다. 자기를 선양한다든가, 보다 좋게 평가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파스칼은 명상록 속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허영심은 이렇게 깊이 인간의 마음에 닻을 내리고 있으므로 병사도, 제자도, 요리사도, 잡역부도 각기 저 나름대로 남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철학자조차도 그것을 원한다. 영예에 반대한 논자도 자신은 멋지게 했다고 하여 영예를 얻으려고 원한다. 또 그것을 읽는 쪽도 그것을 읽었다고 해서 영예를 얻으려고 한다. 이러한 것을 쓰는 나도 아마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영예를 원하는 마음은 우리들의 생활 모든 면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이상의 것으로 아무리 꾸며도 결국 실익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뒷면에는 언제나 공허함이 머물고 냉랭한 바람이 불고 지나갈 뿐일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영예가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대한 거짓이며 허영으로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허영은 뒷면에서 자기를 괴롭히게 된다. 허영을 부려서 일시적으로 만족했다고 해도 긴 안목으로 볼 때, 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역시 허세 정도는 부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습성이리라. 그러나 진실만큼 강한 것은 없다. 허식에 찬 생활에 진실한 행복이 있을 리가 없다. 과대평가를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장래 생각치 않은 전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서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한 행복생활을 원한다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가령 과소평가 당했다고 해서 절대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에 의해 그 이상의 향상을 지향할 수가 있다면 더 좋은 것이고 또한 반드시 진가를 알게 될 때가 오는 법이다. "위대한 사람"이란 평범이라는 것의 위대함을 알게 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뽐낸다든가, 자기를 위대하게 보이려고 하는 따위의 짓은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훌륭하게 보이기 위해 고생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남에게 자진해서 보이는 것과 같다. 흔히 타인의 허영에 속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도 혀영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한 타인의 평판만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 칭찬을 받으면 금방 자만하는 사람, 욕을 얻어 먹게 되면 상대방을 원망하는 사람 등도 허영의 포로가 되기 쉬운 사람이다. 허영에 찬 생활에는 쓸데 없는 많은 고생이 따르며 그것은 뿌리 없는 풀과 같이 허무한 나날이 아닐까. 우리들은 허영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허영에 좌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것만큼 거룩한 것은 없고 또한 강한 것도 없다는 자각아래, 견실한 청춘을 걸어가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인 기나긴 인생에는 누구라도 크든 작든 실패나 좌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죽지 않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그러한 실패나 좌절은 절대로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운은 우리들로부터 부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용기를 빼앗을 수는 없다" 또한 독일의 대시인 실러도 읊고 있다. "그대의 운명은 그대 자신의 흉중에 있다"라고. 실패나 좌절은 기나긴 인생 도상의 시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에 의해 당신의 용기마저 빼앗길 수는 없다. 또한 그것이 불행에 결부되는가, 새로운 행복을 낳게 하는 계기로 되는가 하는 운명도 당신 자신의 흉중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화를 복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실패를 극복하고, 전환하여 용감하게 일어서서 다음 인생의 출발로 삼음으로써 시험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여 멋지게 재기한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승부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 승부에서 완전히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목적을 향하여 초조하게 굴지 말 것. 초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 번 실패하면 극도로 피로하여 자신을 잃고 만다. 착실하게 허세를 부리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은 실패도 다음의 재기의 재산으로 만들 수가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현명하고 용기 있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진다는 것. 실패했을 때 그 사람과 반드시 상의하여 다음의 희망과 용기를 찾아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땅에 쓰러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선다고 한다. 또한 보리는 밟혀야만 튼튼하게 자라난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 관계나 사회생활에서의 실패로 일어서지 못할 까닭이 없다. 실패했다고 해서 자포자기하는 것은 인생을 스스로가 포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때야말로 보다 냉정하게, 현명하게, 교양 풍부한 당신을 완벽하게 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침착하게 해서 재기의 준비를 위해 역사상 훌륭하게 끝까지 싸우며 살아온 위인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고뇌와 역경을 이겨온 유명한 헬렌.켈러여사의 고투와 승리의 인생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II. 인생과 행복 인간답게 산다는 것 누구라도 자기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가지가지 세태를 보고 있노라면^36,36^자기를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까지 생각되는 일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 실감이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비근한 이야기로, 경제행위라는 가장 인간다운 영위에 경제동물이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행위도 짐승에게 인간이라는 자리를 양보했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만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일에 저항을 느끼는 시대는 이제까지 없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인간폐업도 부득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36,366인간이 인간을 폐업하고 짐승이 되어 산다. 그러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스럽다고 하는 시대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일찍이 인류라는 어리석은 짐승이 지구상에 횡행하여^5,5,5^ 라는 역사를 어딘가의 별이 주민이 쓰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36,36^이것을 가장 소박한 말로 줄인다면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태고로부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과학의 진보도 필요했으며 복잡한 사회의 형성도, 철학, 문학에 대한 노력도 필요했었다. 그런데 20세기를 지나서 가장 인간답게 향상된 세기가 되어야 할 현대에 이르자, 인간의 무서운 수성(동물적 성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휴머니즘이라는 말조차 낡아서 퇴색되어 버린 전시대적인 말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마음에 숨어 있는 수성에 대한 자각이 오늘날만큼 등한시되어 망각되려는 시대도 없다. 인간소외는 이 수성에 의한 소행인 것이며 과학이나 사회의 진보에 좌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전의 인간의 역사는 이 수성의 억제를 위해 열심히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절대적인 요청이었다. 이 비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대이다. 여기에 현대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현대의 전환을 부득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항상 따라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 연원을 더듬어 가면 이 인간이라는 점에 대한 망각에 귀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수성을 극도로 노출시키는 전쟁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구상의 각국의 방대한, 공전의 군비확장은 인간의 수성방위의, 무서운 준비공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국가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며, 마치 인간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수성의 조작은 실로 복잡해졌다. 그를 위한 대의명분의 고안도 교묘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지혜는 무한하나 악지혜도 실로 대단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죽인다^36,36^수성이 극에 달한 것으로, 이것이 대규모로 태연하게 행해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전쟁이다. 더군다나 한사람의 인간이 한사람의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최대의 죄악이기에 국가는 이에 엄한 제재를 가하면서도, 이 같은 살인행위를 국가라는 이름아래 대규모로 행하게 되면 훈장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국가는 그들을 영웅으로서 치켜올린다. 대규모로 행하면 죄가 없어지고 한사람 두사람을 죽이면 죄가 된다는 것인가. 이런 불합리한 누구나가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에 없는 현대의 군비, 핵을 포함한 방대한 살육력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나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불합리를 불합리로서 생각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뭔가가 여기에 숨어 있다. 인간수성의 깊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인간의 가지가지의 일상생활 풍경도 또한 현대의 병폐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불합리를 불합리라고 구명할 수 없는 데에 현대만이 가지는 단절과 폭력이 횡행하여 뒷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른바 계급투쟁, 학생운동으로 대표되는 세대의 단절^36,36^그리고 정치가나 관료와 민중 사이의 뿌리 깊은 생각의 차이, 거기에는 이것이 같은 인간인가하고 의심할 정도의 불신과 증오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현대는 보이지 않는 "38 도선"이 복잡하게 교착하여 무기라는 것은 겨우 몽둥이나 화염병 정도이지만 정신의 차원에서는 비참한 전쟁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비근한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장면이 적어졌다. 대기업은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것 따위는 생각치도 않고 유해가스를 뿌리며 맹독의 폐수를 방출한다. 식품산업은 그저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표백제나 염료를 대량으로 사용하여 "화장식품"을 시장에 유통시킨다. 부동산업자의 부정행위는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현대의 광경을 정신문명의 정체 때문이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나 정체시킨 것도 인간이고 보면 그런 태평한 말투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수 밖에 길은 없지 않은가.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지금만큼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생명의 존귀함을 아는 것 이외에 없다고 나는 단언하겠다. 생명존엄에 철저하는 이외에 인간의 수성을 강력하게 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간사고의 원정에 두었을 때, 현세기의 고뇌와 비참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을 자연히 발견하기에 이를 것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인간성"에 되돌아 가서 "인간성"의 부흥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69. 11. 13) 인생과 행복 행복이라는 문제만큼 포착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인간은 누구라도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만큼 절실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항상 행, 불행이라는 문제와 직면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그 실상에 대해서는 극히 무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어떤 뜻에서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욕망의 충족과 자기의 부담 경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행, 불행은 마음가짐에 달렸다"라고 하듯이 정신주의적인 말을 내뱉으면서 현실에는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고 편안히 지내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추구의 노력에는 아무래도 물질숭배와,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는 편안히 지내고 싶다고 하는 추악한 측면이 따라다닌다. 예로부터 문명의 진보는 그러한 욕망에 의해 초래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과학문명 사회에 있어서는 인간의 이러한 욕망이 급속도로 팽창 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자신들의 손으로 해야 했던 일은 차례차례로 기계의 힘이 대행하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통기관일 것이다. 옛날에 10여일 걸려서 터벅터벅 걸어간 도카이도의 여행이 이제는 신간선을 이용하면 3시간이면 가능하다. 여객기라면 1시간이다. 단순히 시간적으로 생각해도 신간선은 여행의 노력을 120분의 1로 감소시키고 제트기는 360분의 1로 감소 시킨 셈이다. 기타 청소기, 세탁기 등의 가사노동 분야에서도 "합리화"나 생산활동 면에서의 오토메이션(자동조작장치)화는 새삼스럽게 열거할 필요도 없다. 머지 않아 거대한 생산공장의 벨트 콘베어 앞에 서서 노동하고 있는 것은 로보트이며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될런지도 모른다. 기계로 바뀌고 있는 것은 육체노동 분야 뿐만이 아니다. 컴퓨터의 출현에 의하여 지능노동까지도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경리사무는 물론이거니와 생산계획의 입안이라는 것까지도 인공두뇌가 해낼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이리하여 인간의 노동부담은 현저하게 감소를 계속하고 있다. 과거의 왕후귀족과 같이 모든 대중이 레저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살기위해 소비해야 했던 시대에서^36,36^살아있는 시간을 무엇을 위해 활용하는가 라고 사색하는 시대에 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의 행복이라는 문제도 이 전체적인 시대의 변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끊임없는 발전을 수행에 온 결과 도리어 새로운 불행의 양식을 낳게 한 결과가 되고만 것이 아닐까.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복의 두 가지 적은 고통과 무료함에 있다"고 말했으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고통이라는 불행"에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망설이게 되는 "무료함이라는 불행"으로 바뀌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에 대응하여 행복이라는 것에도 두가지 형이 있는 것 같다. 욕망이 만족됨으로써 얻어지는 행복감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자각하여 그것을 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생명의 충실감이다. "고통이라는 불행"의 진흙탕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은 욕망의 충족만이 행복을 가져오게 해주는 것처럼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행복감은 그때 뿐인 허무한 행복으로서 일단 만족하면 어느덧 어딘가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타인과 비교해서 왠지 모르게 자기가 얻은 것이 하찮게 생각된다든가, 또는 별도의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생각해내고는 다시 고통에 몸을 태우는 결과로 될지도 모른다. 인간인 이상 이러한 욕망과의 추격은 평생동안 계속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영구히 확고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속에 일보 더 깊은 차원에 눈을 떴을 때, 인생의 끊임없는 행복의 실상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나는 "절대적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에 비해서 단순히 욕망의 충족에 의한 얕은 행복감은 "상대적 행복"이 된다. 굳이 병렬적으로 말하면 상대적 행복은 "고통이라는 불행"에 대응하는 것이고 절대적 행복은 "무료함이라는 불행"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본원적 차원의 천심 문제에 귀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똑같이 욕망충족을 위한 활동이라 해도 타인에게 의존하여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라면 그 행복은 타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금방 사라지는 불꽃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서 스스로 행동하여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경우는 거기에 생명의 충실감이 있다. 이렇게 해서 쟁취한 기쁨은 일시적인 감각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위에 새겨진 영광의 기록이며 영구히 남을 것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보는 한, 그것은 똑같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욕망의 충족 행위이다. 왕왕 인간행복의 숭고함을 강조한 나머지 그와 같은 현실성을 비천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러한 이론은 결국 관념론이며 행복생활에 대한 지도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성의 현실 속에 존엄이 있는 것이며 그것은 차원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무너지지 않는 참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인생의 문제에 맞부딪쳐 가는 생명 자체의 자세이다. 객관적 상황에만 지배되어 수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체적으로 자기의 힘을, 그러한 상황이나 운명에 부딪쳐서 조금이라도 개척해 가려는 의욕이다. 그러한 적극적인 생명의 자세는 대체로 생명체인 이상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특질이라고 해도 좋다. 특히 식물보다 동물, 동물 중에서도 진화 정도가 높은 동물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하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도 이 특질을 가장 강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인간은 아무리 불리한 조건에 직면해도 항상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이것과 대결하여 도전해 가야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인간생명의 본연적인 특질이며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산 넘어 저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신의 내면에 있다. 그러나 편안하게 앉아서 한가로이 지내는 자기가 아니라 끝까지 저편에 있는 것을 향하여 험한 산등성이에 도전하고, 장애를 일보일보 극복하면서 전진하고 있는 "싸우는 자기"의 생명의 약동 속에 있는 것이다. 행복의 둘째 조건은 영지이다. 아무리 의욕에 넘치고, 전진에 전진을 하고 있어도 영지의 등불 없이는 어둠 속의 원정이 되고 만다. 고대 그리스철인의 말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나 "인간은 모두 행복을 찾고 있지만 행복이란 우주 및 인간의 지도원리인 이성에 따르며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경우 우주란 자연계, 물리적.과학적 현상계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이란 인간사회의 심리적, 정신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법칙, 원리를 바르게 인식하지 않고서 행복실현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높은 산을 정복하려는 의욕이 있어도 등산 기술이 없다면 무모한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모든 장해도 그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하게 가치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이 철인이 말하는 "우주 및 인간의 지도원리"가 무엇인가^36,36^그는 그것을 그저 이성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나 그 본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구명하는 것이 인류 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취직의 철학 취업시험의 시즌을 맞이했다. 남성에게 있어서 취직은 냉엄한 사회로 향하는 새로운 스타트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그 준비단계였다고 해도 좋다. 학생시절에 우등생이었던 사람도, 열등생이었던 사람도 똑같이 "사회"라는 새로운 레이스의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된 것이다. 같은 라인이라고는 하지만 중졸, 고졸, 대졸로 조건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관청 등 특정적인 직장에 있어서는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심한 차별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러한 사회적인 시점에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기에게는 학력이 없으므로,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므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는다"^36,36^그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이 인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엾기 그지 없다. 남자의 일생은 어떠한 일을 했는가, 그리고 또 자기가 선택한 일에 있어서 얼마만한 공적을 남겼는가에 따라서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요는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하여 일에 부딪쳤는가, 그리고 생명을 완전히 연소시켜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자기가 연소시킨 에너지에 의해 어떠한 이익을 가져왔는가 라는 점이 아닐까. 따라서 이 취직이라는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직종과 직장의 선택이다. 그것을 생각하는 기준은 자기의 특질을 마음껏 살리고 발휘해 갈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점이 아니면 안된다. 초봉이 얼마라든가, 회사의 이름이 알려져 있는가 어떤가 라는 눈앞의 이익이나 외면적 볼품이 좋은 것만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에서 얻는 참된 기쁨은 자기의 피와 땀의 고투에 의해 쟁취되는 것이며 거기에 남자의 진가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허영이나 허위 속에 생명의 빛남은 없다. 인생의 진실한 승리도 없다. 자기가 거기에 전력을 경주해 갈 수 있는 직업이야말로 생애의 보람이며 그리고 또 승리라고 확신해야 한다. 이때에 자기라는 것을 분명하게 응시하여 부모나 선배, 친구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은 다음에 가장 자기에게 알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가 결정되면 입사시험의 관문을 돌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청년이여, 큰 뜻을 가져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기업간의 심한 경쟁 속에서 얼핏 보기에는 케케묵은 듯이 여겨지는 이 말이 지금 또 새로운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여러 회사에서 청년사원에게 이러한 호소를 하고 있는 예도 있다. 그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무드로 되어가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청년이라는 본질에서 보아도 젊은이는 커다란 이상을 가져야 한다. 이상이 없다면 청년의 의의는 없다. 그러나 그것에는 반드시 철저한 준비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취직에 있어서도, 이제부터 말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인생에 있어서도 모두 이것은 공통된 원칙일 것이다. 지금 취직시험을 치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직업인의 이야기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선발에 합격하기 위해 평소에 맹렬한 연습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선발에 통과한 그날부터는 더욱 격렬한 연습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미안하나 직업에 있어서도 그 정신은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경쟁이 격화하여 소위 "맹렬사원"을 지향하고 사내특훈이 유행하려는 현재,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입사를 맞이하는 것은 스스로 패배의 원인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지식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상식 등도 지금부터 몸에 익혀 두는 것은 중요하다. 상당히 전문화된 직업이라 해도 어떠한 지식이 어떻게 소용될런지는 모른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바로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또 최근의 경향으로서 기술자는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 사람과 만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장래 간부후보로 지목되는 우수신입사원에 대해서도 실력을 기르기 위해 처음엔 제일선의 바깥 활동을 시키는 회사도 적지 않다. 그 경우에 역시 사람과 대응하는 비결이라든가, 풍부한 화제, 인간의 마음을 포착하는 방법 등을 공부하여 몸에 익혀가야 할 과제로서 어느 한가지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자기 것으로 되어간다는 것은 입사하면서 부터의 실천 여하에 달려 있겠지만, 그 이전부터 유의해서 공부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은 스타트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중요한 점은 일에 임하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의욕의 유무가 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을 결정지으며 인생에 있어서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일에 대해서 그것이 자기가 원하는 바의 일인 경우에는 당연하지만 불행하게도 원하지 않던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전혼을 기울여서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설사 그것이 자기가 희망한 직장이라 해도 실제로 입사해 보면 이상과는 훨씬 거리가 멀어서 이내 실의에 빠지고 마는 예도 흔히 있다. 특히 대기업에서는 분업화가 심해져서 주어진 일은 단순한 작업을 되풀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사유로 취직한지 얼마 안가서 직장을 바꾸고 마는 젊은이도 종종 볼 수가 있다. 나는 결코 전직 그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위의 의견도 들은 다음이라면 그 쪽이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자기 멋대로의 기분에서 차례차례로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마이너스이며, 또 그 일에 살아가는 보람을 발견해 갈 수 있는가 어떤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일은 자기가 그 속에 뛰어들어 노고를 감수해 갔을 때 비로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파스칼은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우연히 그것을 결정한다"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연이란 "찬스"라는 것이겠지만 찬스는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면 저쪽에서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일처럼 생각되더라도 진지하게 성의를 다하여 끝까지 할 때에 최고의 찬스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말한다면 사람은 일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생의 과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에 의해 어느 정도의 인물인가 하는 주위의 물음에도 대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으로서 일에서 사는 보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최대의 불행일 것이다. 생각해 봄이 좋을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일에 소비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그저 생활의 양식을 얻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원컨대 인간인 이상 살기 위해 먹고 있는 것이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사는 것이란 자기 생명의 발동에 의해 이 세계에 어떠한 이익을 주고, 그리고 자기존재를 가치 있는 것으로 해가는데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그것은 일을 통해 행하고 있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을지 모른다. 그런 뜻에서 일은 권리이지 의무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일 그 자체는 회사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의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연마하고, 자기를 빛나게 하며, 자기를 발휘해 나아간다는 점에 있어서 권리인 것이다. 권리라고 느껴 가는 데에 기쁨이 있으며 성장이 있고 주체자로서의 충실감이 생긴다. 특히 취업하면서부터 최초의 1 년간은 매사에 적극적으로 몰두하고 일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선배보다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가 창조적인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먼저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난 다음에 창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없이 아무리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보수적인 직장에서는 상대해 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곳이 진취적인 직장이라면 처음에는 그 신선함을 받아 줄지 모르지만 기초가 되어있지 않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막혀버리고 만다. 이윽고 비참한 기분이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일, 혹은 회사의 노^36^예가 되는가, 자기가 그 주인이 되는가는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 여하에 달렸지만, 그 기초는 최초의 1 년간에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직장의 인간관계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선배와의 관계이다.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연공서열을 중히 여기는 풍조가 있다. 최근에는 일부에 능률주의를 도입하여 그 개혁에 착수한 회사도 있으나 그 흐름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지배하는 직장에서는 무사주의적인 보수주의가 전체를 지배하고 형식에 집착한 권위주의가 활개치는 법이다. 혁신의 숨결에 불타서 입사한 활기있는 청년에게 있어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자존심이 상하게 되어 굴욕의 눈물을 머금는 경우도 자주 있음에 틀림없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실문제로서는 꾹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실정이다. "살이 에이고 뼈를 깍는다"라는 비유와 같이 이윽고 자기가 명실공히 핵심적인 존재가 되어 갔을 때, 그러한 악폐일소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어 상사와 대립해 보아도 따돌림을 당하고 패배자로 남게 된다면 어떠한 이상도 실현할 도리가 없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스터하여 선배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흡수해서 선배이상의 시력을 몸에 익혀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지 정신까지 그러한 공기에 물들어, 이윽고 자기들이 선배가 되고 중심자가 되었을 때에 그와 같이 나쁜 악폐를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래서는 인간으로서 실격이며 후배로부터 미움을 받고 조소받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일의 직장도 사회도 신입사원인 여러분의 수중에 있다는 점을 확신하여 자신을 갖고, 순수한 이상성과 강한 책임감을 계속 유지하여 내일을 위해 오늘의 성장을 기해주기 바란다. 끝으로 회사 및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해 두고자 한다. 이것은 당연히 지금까지 말한 것과 관련되나 단순히 고용자 근성으로 월급만큼만 일하면 된다든가, 잔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나가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자기에게 마이너스이다. 인생의 본의에서 말해도 그런 자세로는 너무나도 허무하다. 한 사회인이고 직업인인 이상,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의해 자기를 연마하고 자기를 만들며 그 직장을 통해서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전국시대에 "진영을 빌린다"라는 것이 있었다. 전투가 있으면 주군을 갖지 못한 낭인(떠돌이 무사)들은 자진해서 한쪽의 대장에게 무보수로 고용되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거기에서 공적을 세우면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가신으로 등용된다는 것이다. 케케묵은 이야기여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그 가치의 차원도 훨씬 낮다. 그러나 그 근저의 원리와 정신은 어느 시대나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직장도 이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현하여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빌린 "진영"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런 신념과 자각에 선다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직장일지라도 자연히 일에 힘쓰게 된다는 것은 틀림없다. 링컨의 말에 "세상에는 천한 직업은 없고, 다만 천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 있다. 사회의 법에서 벗어나서 해악을 미치게 해나가는 그러한 특수한 경우는 별도로 치고 직업이나 직장에 귀천의 차별은 없다. 각자 각자가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가치와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로 직업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천하다고 하는 것은 그 일에 임하는 사람의 의식과 자세가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월급만 받으면 된다고 하는 것과 어떻게든 상사에게 인정받으려고 요령주의자가 되는 것, 일을 통하여 자기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인류사회의 미래에 진력하고 싶다고 하는 것 사이엔 각자 각자의 인생철학에 의해 하루의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나 내용에 자연히 차이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것이 1 년, 2 년으로 거듭되어 쌓여 나아갈 때, 생명의 연륜에 명백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역사상에 불후의 공적을 남긴 사람들도 그 이면에는 부동의 인생관과 뼈를 깎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의 일본에는 본래의 민주주의 정신을 잘못 생각한 무책임한 방종이 횡행하고 있다. 자기의 회사만 벌면 된다는 기업, 나자신만 편안한게 있으면 된다는 사원, 거기에는 조화있는 사회전체의 진전은 없고 민중 모두의 행복도 없다. 개인과 사회, 소사회와 전체사회, 그사이에 있는 단절의 골짜기는 더욱 더 깊어지는 것만 같다. 이 골짜기를 메우는 것은 결국 한사람 한사람의 직업인이며 사업가이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의 하나가 개인가 회사와 사회를 포함한, 이 새로운 기업인, 직업인의 모랄(윤리, 도덕)의 확대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매력 사람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36,36^이에는 사람 각자의 의견과 보는 방식이 있음이 틀림없다. 지성의 빛남을 매력의 제1의 척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간적인 친밀도의 깊이, 배려, 포용력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몸매, 청정한 정신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요건이라고 지적할런지도 모른다. 또한 일률적으로 매력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남성과 여성의 경우는 자연히 판단의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남성의 강한 힘과 늘름한 모습 거기에다 상냥함^36,36^여성의 순수함과 화려함 등. 이러한 점에서, 사람의 매력이라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규정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 직관적인 감각으로 매력을 말하고 또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매력이라는 실체는 현실에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약간 해석하기 어렵고 막연한 매력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바로 그 막연한 것, 그러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무엇^36,36^다시 말해서 "Something"(썸씽^36,36^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매력 있는 사람이란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사람, 즉 "Something"을 느끼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 약간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의 정의에 나도 대강에 있어서 찬성이다. 굳이 그것에 보탠다면 그 "Something"이라는 것은 결코 신비적인 아니라는 점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Something"이란 그 사람의 깊이, 넓이에서 스며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깊이와 넓이, 이것을 별도의 관점에서 말하면 그 사람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세계의 경계선이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는가^36,36^여기에 인간의 매력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깊이와 넓이를 가진 인간을 육성하는 데에는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식이나 기술은 인간의 속성이다. 그 지식, 기술의 습득과 연마를 통해 자기자신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결코 깊은 자기세계의 구축은 있을 수 없다. 현실의 인간사회, 세계의 모순에 심한 분노를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세계의 완전한 구축에 엄한 시선을 보내는 법이다.^36,36^나는 이 원칙에 인간세계의 미래를 여는 유일한 열쇠가 있다고 믿고 있다.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하여 인생은 가치창조 가장 훌륭한 인생을 살아나가는 방식은 가치창조에 있다. 주어진 가치를 인식할 뿐이고 그저 평범하게 청춘을 보내는 것이라면 가엾은 청춘의 인생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철학자가 "이.선.미"라는 것의 가치판정을 말하고 또한 가치창조에 대해 각각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의 가치란 자기의 이익, 남의 이익, 즉 자기도 이웃도 조금이라도 행복해지자고 하는 사고방식, 행동이다 라고.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재능, 개성으로 뻗어갈 수 있는 제일보이다. "미"의 가치란 그림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자기의 지성, 교양, 인격 등을 완성시키려고 힘쓰는 데 있으며 그것은 남에게 인정을 받든 못 받든, 뛰어난 결과를 낳게 하며 마침내 이웃사람이나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어가는 법이다. "선"의 가치란 자기중심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일가에 있어서는 태양과 같이 밝고, 꽃과 같이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가정을 화기^36^애^36^애하게 만들어 가는 것도 선이며 나아가서는 그것은 사회에 있어서 위대한 힘으로 되어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직장에 있어서도, 친구와의 세계에 있어서도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행위는 작은 것 같지만 거룩한 선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선.미"의 가치를 자기의 창조로 더욱 깊고 폭 넒은 것으로 한다는 것이며, 자기의 재능이나 개성도 뻗어나게 하는 것이 청춘에 넘치는 풍족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민의 편이 되라. 나는 항상 민중과 함께, 거만하게 굴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인간이다. 그런데 마치 특권계급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데에 오늘날의 사회와 같이 모순과 폐덕이 생겨 상호불신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떠한 입장이나 지위에 오르더라도 인간성, 서민성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삶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무리해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다. 권위나 조직의 힘, 재력 등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은 한사람의 인간의 힘에 한도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권위나 조직의 힘, 재력에도 한계가 있다. 더욱이 후자의 한계 쪽이 인간의 힘의 한계보다 훨씬 무정하고 냉혹한 양상을 띄고 있다. 그에 비해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삶의 자세, 즉 근본적인 인간성에는 한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인간성을 바탕으로 해서 살 경우, 절대로 사회의 모순이나 폐덕에 억눌리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흠모받는 깊은 마음의 연계를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명인은 "유명"이라는 두글자가 없어지면 그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고 만다. 재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재력"이라는 두글자가 없어지면 허무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한다. 권력에 의한 자는 권력에 의해 쓰러진다는 것은 많은 역사가 증명해 온 터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칫 영예를 얻고 싶어 한다. 물론 주어진 영예는 고귀하다. 그러나 경고하고 싶은 것은 그 영예를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며 거만하게 구는 일이다. 사실, 영예란 반딧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암흑의 밤하늘에 빛난다고 하는 점에서는 아름답고 그런 범위내에서는 고귀하다고 할 수 있으나, 가까이 가서 보면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은 마땅히 주어져야 할 영예를 갖게 된 그 사람의 뛰어난 인격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예가 주어져도 견실하게, 착실하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서민적으로 거만하지 않게 사는 인품은, 한없는 근본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후회 없는 인생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은혜를 알라. 보은이라 하면 뭔가 전시대의 유물인냥 생각하고 마는 시대이지만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천이 있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점에서 외면의 형태는 달라도 보은이라는 덕의는 깊은 인간성에 뿌리내린 인류의 영원한 윤리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솝 이야기"는 기원전 620 년 경의 그리스의 짧은 우화를 모은 것이지만 그 중에도 동물의 세계를 소재로, 은혜에는 보답해야 하는가 라고 하는 교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선진국인 서구 여러나라에서도 어린이의 가정교육에 훌륭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 "세상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보다 나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옛부터 사상, 철학, 종교에 의해 고지천심, 천차만별은 있지만 보은에 대해서 설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인간본래의 뛰어난 미덕이며 인간으로서 배우고,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고 살아가기 위한 중심윤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인 이상 부모가 키워주고,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사회의 은혜를 입은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실에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 이하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후회 많은 인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성이 존중되는 진보된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눈여겨 보면 이른바 민주주의의 정신을 잘못 이해하여, 그것 때문에 방종주의의 횡행이라는 그릇된 경향이 널리 퍼지고 있지 않은가. 무책임한 시대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임이 없는 자유는 무질서와 혼란을 낳는다. 논리를 중히 여기지 않는 개인의 주장은 인간성의 경시라고 말하고 싶다. 의무를 존중하지 않는 권리의 주장으로는 결코 참된 민주주의 사회는 이룩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책임주의의 향락은 단지 순간의 물거품과 같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그저 비^36^애와 공허가 뒤에 남을 뿐이다. 신뢰와 존경에 싸인 아름다운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부모나 스승, 또한 국가사회에서 받은 은혜를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유머를 가져라. 인생에 유머가 없다면 봄에 꽃이 피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들은 법률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육법전서"속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한자도 없어 허전해 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제2차 대전중,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은 독일의 대공습 속에서 공을 만지작거리며 유유히 농담을 해가며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여유 있는 태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확신을 깊게 했는가. 또한 세계최고의 의회정치라고 불리는 영국의회에서 아무리 어려운 법률의 논의를 할 때에도 반드시 유머와 위트(임기응변의 재치 있는 지혜)를 잊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민중 중에서도 특히 영국국민은 항상 유머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이다. 이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만이 웃음과 유머를 가진 특권자이다. 일본에서도 국민 개개인이 직장과 가정에서 그리고 바쁘고 냉엄한 세태 속에서도 언제나 유머를 잊지 않고 서로 이야기하고 접한다면 얼마나 부드럽고 즐거운 사회가 건설될까. 과학문명의 진보, 생존경쟁이 극심한 변화 속에서 유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밝은 등불을 들고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어떠한 어려운 논리 정연한 교훈을 나열해도 상대방에게 조금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오히려 평범한 서민적인 유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용기를 얻었는가는 역사를 펼쳐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사소한 인간다운 발로가 상대방의 본성에 직결하여 복잡한 인생의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유머가 있는 이야기는 남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지도자는 꼭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단순한 일상생활에서도 유우머는 많은 효용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유머의 근저에는 성실미가 넘쳐 있지 않으면 안된다. 유머가 단순히 남을 속이는 트릭(계략)이거나 경박하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어서는 진실한 유머라고 할 수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도리가 있고, 사람들이 기분 좋게 깊은 납득과 감명을 받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유머는 인간성의 진실한 발로이며 그 사람의 인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절하게 여행이라 하는 것은 자연히 많은 추억을 만드는 법이다. 설령 실패담이라 해도 때가 지남에 따라 그 그리움은 더해간다. 나의 외국여행도 마찬가지다. 많은 유적, 그 나라 특유의 아름다운 산수, 색다른 풍속, 이민족의 진귀함, 북극의 오로라 등등, 갖가지 추억은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행선지에서 받은 친절만큼 몸에 스며드는 것은 없다. 내가 처음으로 북미를 여행했을 때,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공항으로 가는 자동차가 길을 잘못 들어 뉴욕에 가는 비행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빽빽한 스케줄로 하루가 연장되면 모든 스케줄이 어긋나고 만다. 다음 비행기의 좌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 항공회사의 젊은 사원이 팔방으로 손을 써 다른 항공회사의 다음 편을 설득해서 일행의 좌석을 겨우 확보해 주었다. 실은 이쪽의 불찰로 타지 못했던 것이다. 모른 척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서 동분서주해 준 그 사원의 친절은 잊을 수 없다. 해결된 후도 그는 생색도 내지 않았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환송해 준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많은 사람은 보고도 못본체 한다. 관계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거나 또한 귀찮게 여기거나 멀리해 버린다. 그러한 때의 친절은 진실과 용기 있는 사람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은 편도표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행선지에서는 오늘 만난 사람도 이젠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보수가 따르지 않는 행위라고 해서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을 위해 이해를 초월한 행위는 아름답다. 그것은 정말로 인간을 사랑하고 또한 자기도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그러한 인간의 행위라고 생각된다. 진심을 간직한 선물 사회속에서 또한 친구와의 교제에서 서로가 선물을 교환하는 기회는 많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우의 마음가짐에 대해 나의 경우를 섞어가면서 약간 말해 보겠다. 나는 선물이란 마음과 마음의 결합에 의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선물은 그 마음을 맡기는 게재물로 된다고 할 수 있다. 꽃말에 "제비꽃은 겸손" "백합은 순결" "올리브는 평화"라고 하듯이 하나의 화초도 마음에 전해주는 것이 있다. 따라서 어떤 것 보다 선물만큼 그 사람의 마음이나 인품을 표시하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행을 가거나, 또한 외국에 갔을 때는 가끔 그 나라의 낙옆을 책갈피로 하려고 가지고 왔으며 또 어떤 때는 행선지인 그 나라의 그림엽서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증정하도록 애써 왔다. 특히 그 나라 특유의 손수건을 선택해서 구해 온 일도 있었다. 값비싼 물건이 반드시 최고의 선물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의가 아닐까. 진심을 찾아볼 수 없고 과시하는 듯한 선물을 받았을 때만큼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없다. 때에 따라서는 분노를 느끼는 일마저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선물은 스스로 선택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다. 상대방의 인품이나 취미도 항상 염두해 두며 여행한 기쁨을 서로 함께 나누는 기분으로 선물을 고르려고 애쓴다. 특히 외국선물이라고 해서 남이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여 값싼 것을 값비싼 것처럼 보여 상대방을 속이려 하는 것은 가장 실례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때에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 구해 올 때의 상황 등도 즐겁게 이야기 하면서 그 기념으로 건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마음 따뜻하게 하는 선물인지 모른다. 일시적인 속임수는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명기해 두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청춘시대의 좋은 추억으로서 먼 훗날까지 마음에 남는 그러한 선물을 하려고 유의했으면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형식적인 허례의 선물은 오히려 없는 편이 좋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III. 연애와 결혼 결실 있는 연애를 위해 그것은 아름다운 인생의 꽃이다. "아름다운 연애" 그것은 우선 첫째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깊은 애정으로 감싸여 있는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 찰나주의적 또한 충동적인 감정대로 그 순간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사랑이야말로 진실한 연애라고 말하는 연애지상주의는 인생의 일시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옛부터 "사랑은 맹목적이다"라고 해서 일신의 파멸도 돌보지 않고 사랑에 빠져 비련의 생애를 끝내는 사람의 소설이나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아니 소설이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동일한 기구한 운명을 택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들은 그것으로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연애는 젊고 아름다운 인생의 꽃이다. 꽃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인생에 있어서의 연애가 단순한 열병과 같은 것이어서는 안된다. 감정에만 지배되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유아와 비슷한 것이다. 순수한 애정은 아름답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리석음과 약함도 함께 한다. 그것 때문에 애정에 짓밝혀 불행에 우는 여성이 얼마나 많았는가. 당신은 그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지속해야만이 연애는 진실로 행복한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정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풍부한 이성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풍부한 이성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연애를 보다 깊고 충실한 것으로 키워갈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찰나적인 연애는 결코 진실할 수 없으며 사라져가는 잔조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한 연애라면 미래에 행복한 열매를 맺는다는 희망이 없으면 안된다. 장래를 향한 밝은 건설과 전진이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연애 그 자체가 이상을 지향하면서 현실을 굳게 내딛는 현명함을 가지는 것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인의 결점을 장점으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사랑은 없다"라고 괴테는 말하고 있다. 깊고 풍부한 애정은 서로의 존경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밝고 흐뭇하다는 호감과 동경을 받게 되고 진심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연애이기를 바라는 바이다. 연애는 행복한 결혼을 위한 시련 요즘 일부 젊은 남녀들간에는 연애는 연애, 결혼은 결혼이라는 사고방식도 있는 것 같은데 낡은 사고방식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러한 사고방식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남녀의 교제와 결혼을 구별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도 또한 오랫동안의 봉건적인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낡은 사상을 타파하는 데 있어서는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확실히 일본인이 한층 더 사회성을 몸에 지니고 남녀 함께 인간으로서 평등한 입장을 서로 이해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남녀교제라는 것과 연애라는 것은 자연히 다른 것이다. 연애는 교제가 깊어진 것에는 틀림없지만 거기에는 상호간의 완전한 이해하에 애정과 함께 엄격한 자각에 의한 책임감이 수반되고 있다. 대체로 연애는 연애, 결혼은 결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들 또한 자기자신의 생활을 얼마만큼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떠한 책임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그러한 사고방식에는 자유와 방종을 잘못 인식하여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잊어버리고 권리만을 주장하는 무책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연애를 방종이라 생각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말의 이면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뿐이다. 프랑스의 평론가인 샹플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결혼보다 연애를 좋아한다. 소설이 역사보다도 재미있다고 하는 이유 때문이다" 이것은 책임감을 엄격하게 문책하려는 현실생활에서 도피하는 이기주의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 하겠다. 일방적인 논책에 의해 일시적인 자기를 분장할 수는 있어도 현실의 고뇌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을 때는 거기에 남는 것은 후회스러운 인생뿐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어야 한다. 연애에 의해 한 사람의 인간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애정이 진실이라면 평생토록 고락을 함께 하는 결혼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지당하다고 하겠다. 연애는 행복한 결혼에 대한 진실을 시험하는 시련의 행위라고 생각된다. 애정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불장난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연애는 이미 연애라는 이름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것은 도학자(도덕을 가르치는 학자)의 말은 아니다. 생활자로서의 발언이라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직장연애에 보내고 싶은 축복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끼리 연애해서 결혼에로, 그리고 명랑한 가정을 구축한다는 것은 여성이 직장에 진출한 이상 있을 법한 일이다. 직장연애는 보기에도 참으로 흐뭇한 일이며 축복을 많이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교제 범위는 자연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호간에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 이성인 상대방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하겠다. 특히 직장의 경우에는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으며 일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많으므로 직장연애나 직장결혼이 성립되기 쉬운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경우에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서 생활태도나 성격이나 일하는 태도도 알 수가 있으며 또한 장래의 일을 생각하면 상대방의 일의 내용도 또 거기에 대한 재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으므로 플러스 되는 점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연애나 결혼을 너무나 타산적으로 생각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결혼해서 행복한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이 중요한 기본조건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직장연애의 경우, 어디까지나 주위 사람들에게 불쾌한 느낌을 주거나 빈축을 사는 태도 등의 행위는 절대로 삼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흔히들 눈으로 보기에 망측스러운 행동을 취한다거나 일에 실수가 많아져서 손가락질을 받거나 또 비판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직장연애의 나쁜 사례이며 도리어 연애 그 자체가 불성실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직장연애는 항상, 선배나 동료로부터 축복받으며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것이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서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첫째로 공사의 구별을 잔혹하게 할 것, 두 번째는 자기일에 책임을 지고 신뢰받는 자기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 여성은 이지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연애에 의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상호간의 인생에 플러스가 되도록 하려는 마음 가짐이 있다면 직장연애는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만 한마디 더 추가해 두고 싶은 것은 입사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 아직 직장이나 일에도 충분히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애를 하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직장을 소홀히 하게 되므로 삼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위 적령기는 지났어도 막연하지만 결혼에는 이른바 적령기라는 것이 있어서 많은 여성이 그것을 넘겨버리면 어쩌나^5,5,5^ 하는 불안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령 이상적인 연애의 기회도 없이 이미 30세가 되었다고 해서 이제는 도저히 만족한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결혼에 의한 행복한 생활은 결코 연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19세, 20세 때에 결혼했어도 젊어서 미망인이 되어 고뇌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일찍부터 살림살이에 시달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겉 늙어버린 사람,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나빠 결혼이 너무 빨랐다고 후회하는 사람들,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다. 젊기 때문에 가정경제를 안정시키지 못하여 의외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30세가 지나서도 좋은 상대방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보통의 경우 적어도 가정경제만은 안정되어 그러한 고생은 비교적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겠다. 결코 안타깝게 애태울 필요는 없다. 그 중에는 30세가 되었어도 여성으로서 생기발랄하고 매력있는 사람도 있다. 매일의 생활을 충실하게 보내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는 인생관이나 사상의 내용이다. 사상이나 인생관은 그 사람의 인생행로를 결정짓는다. 용모라든가 재산, 가정환경 등에 자신을 잃고 비굴한 인생관을 가지게 되면 모든 세상이 비뚤어진 거울에 비추어진 것 처럼 비뚤어져 보이는 것이다. 그럴 때는 도리어 여성의 결점이 표면에 나타나는 법이다. 질투를 한다거나 후배에게 심술을 부린다거나 남의 행복을 시기한다. 이러한 여성은 적령기의 사람이라 해도 행복이 가득찬 연애에서 결혼에로의 길을 쉽게 걸어가기는 어렵다. 노처녀라 해도 밝은 인생관을 가지고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이 건전하다면 비관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그 보다도 어떻게 하면 자기의 장점을 신장시킬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개성을 풍부하게 살릴 수 있는가에 마음을 쓰고 인간성에 눈뜬 자신에 넘친 인생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연령이나 모습, 매력을 훨씬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신뢰하는 자기를 구축할 때 비로서 행복에의 길이 자연히 열린다고 확신하며 하루하루를 뜻있게 보내야 할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것 작가인 무샤노 코 지 샤네야쓰가 말한 "보아도 좋다. 보지 않아도 좋다. 그렇지만 나는 꽃피우리라" 참으로 깊이를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매화는 매화, 벚꽃은 벚꽃, 국화는 국화. 꽃에도 각각의 개성이 있다. 사람도 또한 같은 것이다.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그 위에 그것이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인생이며 사회라 하겠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결코 표면상의 결점 때문에 비굴해져서는 안된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화려한 사람들이나 세계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지만 그 사람들이 과연 그로 인해서 진정 행복하게 되는가를 냉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이성 있는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또 유명인이 반드시 인생의 승리자는 아니다. 지도자라고도 말할 수 없다. 눈앞의 일에 현혹되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착실하고 선량한 인간이어야 한다. 자기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라! 자기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주위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쥐가 조르르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아 헤메는 것과 같은 비열한 마음은 버려야 한다. 인생은 마치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훌륭하게 5천 미터까지 선두를 달리다가도 도중에서 넘어지면 보람이 없다. 9,900 미터까지 일등이라고 박수를 받았지만 거기에서 실격하면 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계속 뛰어간 사람만이 인생의 승리자라 하겠다. 1 등, 2 등이란 것은 문제가 아니며 결승점을 향해서 마지막까지 뛰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은 연애에서 결혼의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그러하다. 그러므로 하나의 목표는 결혼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다시 결혼은 새로운 인생에의 출발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조급히 서둘러서는 안된다. 표면적인 것에만 치우쳐서도 안된다. 22 내지 23세에 몇천 만원이란 결혼 비용을 들여 많은 명사로부터 축복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도 이혼하여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18,19세에 결혼했지만 자살한 사람도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만혼이라 해도 또 누구도 축복을 하지 않았어도 부부 두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서로 신뢰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도 많다. 결혼이야말로 청춘의 결승점이며 행복한 인생의 출발점이다. 그것을 결실이 있는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연애와 결혼의 바람직한 자세 연애는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반드시 결혼에 도달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옛날에는 주위의 장애 때문에 부득이 비련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스스로가 연애는 연애, 결혼은 결혼^36,36^이라고 딱 잘라서 생각하는 풍조가 강하다고 한다. 어쩐지 결혼의 첫째 조건은 "애정"이 아니라 재산이나 지위나 명성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의 표현인 것 같다. 합리적이라고 하면 합리적이고 근대적이라고 하면 근대적이겠지만 무엇인가 정감이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근대 합리주의라는 옷속에 있는 것은 결국 보기 흉한 이기주의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라고 한탄한 시인도 있다. 연애와 결혼은 각각 독립된 것처럼 생각해서 그것이 근대적인 방식인냥 그럴싸하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은 잘못이라 생각하고 있다. 역시 진지한 연애는 결혼이라는 열매를 매게 하는 꽃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거기에는 결혼의 첫째조건에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를 고쳐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결혼한 후의 새로운 가정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것과 가정 내에서의 아내의 지위가 시어머니 등의 존재 때문에 과중하지 않을 것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으로서 부득이 할 것이다. 그러한 현대 여성의 희망을 상징하여 "자기 집이 있고, 자가용이 있고, 늙은이는 없을 것"이라는 유행어를 볼 수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현대 여성의 일반적인 경향으로서 결혼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미래의 축도인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데에 실망과 파탄을 초래하는 근본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도리어 결혼은 미혼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여러 가지 노고가 배가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남편이라는 남성을 떠받들어 전혀 새로운 세계에 한 가정을 구축해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들을 다스려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아내로서, 여성의 이 막중한 임무를 아무런 노고도 하지 않고 완수한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은 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흔히 결혼이 결정된 남녀에게 사람들은 "축하한다"라고 말한다. 결혼이 축하할 일이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째서 축하할 만한 것인가,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야 할 만한 것으로 하려면 본인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서는 선배들도 그다지 설명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황하고 지루한 말인 것 같지만 신랑 신부인 남녀가 함께 힘을 합쳐서 하나의 가정을 꾸미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노고에 스스로가 몸바치게 된 그 결단과 성장을 경사스럽다고 하는 그 마음이 "축하한다"라는 말로 응축된 것이 아닐까. 이 축복의 본뜻을 모르고 결혼을 그대로 행복의 결승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망과 낙담에 빠지고 끝내는 상호간의 불만에서 이혼의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도 말을 사용하는 방법의 문제가 되겠지만 결혼에 골인한다는 것도 오해를 낳기 쉽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결혼은 오히려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 남편은 아내와 가정에 대한 책임, 아내는 남편과 가정에 대한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각자가 짊어져야 할 가혹한 경주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독신시절에는 부모, 형제라는 귀중한 비호자가 뒤에 있어서 다급할 때는 풍설에서 지켜주었다. 그러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게 되면 직접, 풍설에 몸을 내맡기겠다는 각오가 절대로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자신들 두사람 사이에 태어나는 자식들을 위해 비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혼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가장 명심하지 않으면 안될 요점이라고 나는 호소하고 싶다. 따라서 결혼의 첫째조건으로 해야 할 요소도 또한 여기서 필연적으로 인도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결혼생활은 사회의 풍설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파란에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부부의 마음과 마음의 연계가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본래는 혈연관계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이 연이 있어 생활의 고락을 함께 하며 두 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을 낳아 인류의 영구한 역사 속에 확고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무어라 해도 상호간의 애정의 유대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연애가 그 상호의 애정을 견고히 하기 위해 중요한 기반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사랑은 맹목적이고, 격하게 불타오르면 몸을 망칠 위험마저도 이미 생각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의 마음을 냉정하게 끝까지 지켜보는 여유 같은 것은 어디엔가 내던져 버리는 것이 통례인 것 같다. 또 그러한 맹목성을 사랑의 순수함의 표시라 해서 특별히 찬미하는 풍조도 특히 문학세계에서는 강하다. 물론 추한 타산이나 책략의 도구로 사랑을 이용해서 아름다워야 할 청춘을 탁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종 사랑에 눈이 멀어 인생을 그르친다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역시 큰 불행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피해도 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결과로 되고 만다. 사랑을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젊은 여성의 심리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불행의 함정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명한 제삼자에게 조언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한은 자기의 판단에는 언제나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우려가 따라다닌다고 할 정도까지 자기를 객관시하는 것이다. 연애 때문에 주위와의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자신이 만사에 미온적으로 된다면 그 사랑은 진짜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이 생생하게 맥동치며 일에도 보람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과 더욱더 친밀해질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진짜라고 생각해도 우선 틀림없을 것이다. 그 어느 쪽이 되는가 하는 것은 사랑에 빠져 자기를 상실해 버리는가 자기를 객관시하면서 사랑을 살려가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연애라고 하는 활주로를 어떻게 지나가는가에 따라 결혼이라는 이륙과 상승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연애와 결혼의 격동은 긴 인생행로의 출발이다. 앞길에 어떠한 폭풍우나 기류의 혼란이 있더라도 꿈쩍도 않을 만큼의 기체정비를 비상하기 전에 굳게 두 사람의 힘으로 해두기를 바라는 바이다. 결혼과 사랑 결혼은 제 2의 인생 결혼은 제 2의 인생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다. 나도 이 표현은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아주 다른 각자의 처지에서 자라나고 생활해 온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이 애정에 지탱되어 새로운 공동인생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독신시절에는 남성도 여성도 보통은 자기에 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지만 결혼하고 나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 관해서 아내는 남편에 관해서 그리고 자식이 출생하면 자식에 관해서 사회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현대에 있어서 법적으로는 개인은 자기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은 가정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보고 그 공동책임을 요구하는 관습을 아직 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또 부부가 되는 것은 상호간의 깊은 애정의 연대 위에 성립되어 가는 것이며 그것이 없으면 가정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따로 흐르고 있던 하천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에 비유해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만큼 결혼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또 그것을 찰지하고 있으므로 적령기의 사람에 있어서는 결혼은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서 절박하다고 하겠다. 희망과 불안이 뒤섞여서 마음 속에 교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특히 미혼여성이 결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며 또 그렇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을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을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과 연애의 차이 옛날이라면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관계를 중시했었지만 오늘날에는 본인끼리의 관계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더 큰 가치를 두었음을 뜻한다. 거기에 따른 본인끼리의 책임도 무거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에 임해서는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연애는 아름다운 오해이며 결혼은 비참한 이해라고들 말하고 있다.^36,36^확실히 연애시절에는 상대방의 일부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서로가 잘 보이려고 하기 때문에 각기의 "나쁜 버릇"은 고의적으로 숨기려고 한다. 그런데 결혼하면 상호간에 조심성이 없어져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결함이 눈에 띄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연애는 오해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비참한 심정에 빠진다. 이러한 사실에는 연애와 결혼의 실제를 정확하게 찌른 엄한 풍자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상적인 결혼은 가령 연애가 "아름다운 오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도 서로가 그것을 커버해 주고 지켜줌으로써 영위되어 가는 것이다. 젊은 두 사람의 일이므로 연애에는 당연히 오해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꿈은 두 사람이 착실하게 보호 육성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역시 현실적인 올바른 "눈"을 잃어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로는 냉정함이 필요하겠다. 사랑은 하나의 열정이다. 열정과 냉정함은 모순되는 듯하지만 열정속에 냉정함, 냉정함 속에 열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애정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 어느 타인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기자신이 결혼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기자신의 일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서도 사람의 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에 사로잡혀 냉정한 사려를 잃으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결과로 끝날지도 모른다. 따라서 교제기간은 소중한 시간이다. 상호간에 이해를 깊게 하는 둘도 없는 장을 연애시대의 교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혼은 결혼, 연애는 연애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에 찬성하고 싶지 않다. 연애는 어디까지나 결혼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결혼과 분리된 연애는 단순한 유흥에 지나지 않으며 서로의 애정이 없는 결혼도 살벌한 생활이 될 뿐이다. 특히 여성에 있어서는 직장에서 일하는 남성과 달리 생활의 장이 대부분 가정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정에 싸인 결혼생활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기의 청춘에 생명을 건 연애이며 결혼이다. 거기에 허위가 있어서는 단연코 안된다. 결혼에 있어서 허위는 상대방에 대한 배반임과 동시에 자기자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하겠다. 피가 통하고 생애를 건 인간관계에 냉정하고 추한 이기주의가 파고들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상대방을 선택하는 방법 결혼에는 연애결혼의 경우도 있을 것이며 중매결혼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라 해도 무엇인가 알게 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며 중매라 해도 마음에 맞는 무엇인가가 있어서 애정으로 변하여 개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소개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자기가 선택했다고 하는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결국 마지막 선택은 자기자신이 행한 것이므로 그다지 차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떻든 간에 본인의 의사를 가장 소중히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가장 좋지 않은 일은 체념의 분위기와 자기를 묵살하는 무드 속에서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성공한 예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타인에게 떠맡기는 무책임한 짓이 아닐까. 아니 너무나 비굴하지 않은가. 결혼은 애정에 의해 이루어지고 지탱되는 것이다. 참으로 잘 되었다라고 진심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결혼이라야 비로소 새로운 인생을 희망에 넘쳐서 출발을 할 수가 있다. 흔히 지나치게 분에 넘치는 소원, 즉 눈이 높아서는 안된다고들 말하고 있다. 나는 그러한 표현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말 자체에는 인간에 어떤 평가를 정하거나 상품화하는 듯한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다만 허영이나 허식으로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옳다고 생각된다.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분수나 능력에 넘치는 소원"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결코 주위의 평판에 신경을 곤두세워 그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회의 동료 여성들이 모두가 샐러리맨으로서 장래성이 있고 날씬한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들이 모두가 동경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적절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리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고 떠들썩하지 않은 사람속에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훌륭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평가나 선망과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결혼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도 동일한 "인간"이다. 문제는 성실함이 있는가 없는가, 생활태도는 어떤가,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은 어떤가, 자기와 꼭 맞는가 어떤가가 중요한 것이다. 주위에서 축복할만한 결혼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 결혼이 주위에서 축복받는 결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실로 축복받는 결혼이란 당사자끼리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제일 좋은 것은 자기도 진심으로 납득하고 주위에서도 기뻐해 주는 결혼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결정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노력해서 이해시키면 되는 것이며 또 무엇 보다도 두사람의 행복스러운 모습이 웅변이 되어 결혼의 성부를 말해 주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그 위에 입각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그것은 결혼은 본인끼리의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사람이 별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정은 양친, 친척이라는 가까운 테두리에서 이웃, 사회 그리고 그보다 넓은 사회에로 그 테두리는 넓혀져 간다. 따라서 가지가지의 조건을 무시하고 결혼을 성립시킬 수는 없다. 생활의 기반을 도외시하고 감정만으로 결혼을 감행했다 해도 곧 두 사람의 애정 그 자체에도 금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양친이나 선배의 훌륭한 충고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순수한 애정과 사회적인 조건을 조화시켜가는 가운데 행복한 결혼이 허상이 아니라 실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주위의 사람들도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이 꼭 결실할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를 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나는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어둡고 그늘이 있는 결혼이 아니라, 애정과 이해에 싸여 있는 결혼이 되도록 두 사람이 노력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결혼에는 확실히 기회라는 것이 있는 듯하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때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연령, 경험, 교제, 주위의 상황, 생활의 기반 등의 가지가지 요소가 하나가 되었을 때 라고나 할까. 연애가 자유화되고 교제범위가 옛날보다도 넓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결혼 상대라고 하면 쉽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서 여러모로 상대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그러한 호의도 하나의 기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기회라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결코 남의 의견에만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가지가지로 생각해 준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때, 당사자로서는 분명한 자기의 의견을 가진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남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의견을 통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놓치면 절대로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골똘히 생각하며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자기의 생애에 둘도 없는 문제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결혼을 하고부터 또한 장래의 문제로서 결혼하고부터의 일들을 이야기해 두겠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한다고 하는 자세이다. 남성의 이기와 여성의 이기가 서로 충돌하는 가정은 비참하다. 애정이란 상호의 이해 속에서 보호되고 육성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용해되는 가운데 항상 신선한 생명이 소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인간의 정신이란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바라며 동시에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거기에 인간으로서의 특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가정생활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움과 조화를 끊임없이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어느 틈엔가 "권태"가 숨어드는 것이다. 5 년, 10 년이 지나는 동안에 크든 작든 누구나 경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나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련을 극복해 가는 현명함이 없어서는 안된다. 사랑이란 고정된 것도 정숙한 것도 아니다. 마치 분수와 같이 인간의 마음의 샘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인간관계에도 그런 것 같지만 말이라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부생활은 긴 회화라고 말한 철인도 있다. 때로는 친절히 대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도 필요하다. 결혼생활이란 한사람의 남성이 연주하는 선율과 한사람의 여성이 연주하는 선율과의 교향악이며 그 화음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인간 대 인간의 성실한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결혼은 출발이 중요하다. 더욱 깊이 생각해 보면 결혼 이전의 교제 속에서도 이미 새로운 인생의 맹아가 있었다고 하겠다. 현재의 인생의 자세가 일생을 관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결혼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자기자신을 주시하며 확실하게 사물을 보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배양하는 것이 행복을 잡는 요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IV. 평화와 신앙 불안한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정보사회라고 일컬은 말은 참으로 적합하다. 일본의 경우 어느 가정이나 일본열도를 덮칠 경제불황에 대한 방비를 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이와 같이 불안한 상황은 전후 처음있는 일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전쟁중과 전후의 궁핍한 생활을 우리들 세대는 경험했지만 여러분들은 아마 그것을 모르는 세대에 속할 것이다. 지금까지 십수년의 경제성장에 익숙해져서 세상은 이러한 상태로 해마다 생활이 향상될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항해는 참으로 평온하고 태평하기만 했다. 그런데 수개월 전부터 문득 정신차려 보니 어느 사이에 폭풍우권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배의 키를 잘못 잡은 것이다. 검은 구름은 두텁고 앞에는 파도가 머리를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고 있다. 배의 키를 잡은 사람에게 불평할 틈도 없이 긴박한 정세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오늘날의 일본열도라고 한다면 조금은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청소년시대를 전시, 전후에 보낸 사람이지만, 그 무렵의 궁핍생활은 아마도 평생토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국민이 그와 같은 궁핍생활을 견디어 낸 것은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전쟁이라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며, 전후에는 또 패전이라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냉엄한 숙명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시도 아니며 패전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역시 우리들의 생활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요괴와 비슷한 검고 두터운 벽이다. 그것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종전후, 최대의 난국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더욱이 그것에 대처할 준비는 결여되어 있고 전시전후의 궁핍했던 생활과는 달라서 정신적 지주로 할 만한 것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일전에, 1930 년대에 학생생활을 보낸 어느 한사람의 노 인테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 무렵의 경제불황의 심각함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여러 가지 양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28 년생인 나로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유년시대의 일이다. 그는 그만큼 침울하고 싫은 시대도 없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일을 하고 싶어도 마음놓고 일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 번 실직하면 쉽사리 취직도 할 수가 없었다. 젊은이들의 희망은 하나같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도 불경기에 대한 이야기는 인사말을 대신했다. 세상은 험악하였고 찰나적인 향략에 몸을 맡겨서 파멸하는 자도 많았다. 착실하게 플러스의 노력을 해도 결과는 겨우 7 또는 8의 수확밖에 얻을 수가 없었다. 질식상태 속에서 정치적 불만은 몇 번의 쿠데타로 폭발하였고 그때마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처할 방법도 없이 무력으로 외지를 침략하는 일이 점점 더 격화되었다. 마침내 만주국이라는 극히 인공적인 국가를 탄생시켰고 일본의 모든 모순을 그 만주국에 투입했다. 실직한 지식인들은 대거 현해탄을 건넜고 불황에 허덕이던 각종 기업은 한꺼번에 만주로 진출했다. 군사침략에 호응한 경제침략이라는 것이다. 1940 년대는 그 덕택에 일본내지는 풍요로왔겠지만 막대한 군사^36^예산이 증대하여 그것들을 흡수해 버렸다. 군수경기가 생기고 그 계열에 있는 국민만이 겨우 불황해서 헤어날 수가 있었다. 심각한 경제불황의 시대라는 것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인격이 훌륭하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으며 인간은 완전히 위축되어 버리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실로 생각하기 싫은 질식할 듯한 시대였다. 나는 노 인텔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은 그러한 시대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한사람이지만 지금 예측되는 것은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뜻밖의 충격적인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만주국은 이젠 두 번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경영이 수출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자원이 없는 일본의 전도는 다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원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석유를 생각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 직전의 미일교섭은 실은 석유교섭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을 중도에 단절했고 그것은 일본의 사활문제가 되어버렸다. 교섭은 결렬되었고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석유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개전을 단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해 보지만 아랍의 석유제한이 10 년전이었다면 틀림없이 제3차 대전 발발의 충분한 불씨가 되었을 것이다. 아라비아해에는 대함대가 즐비하게 줄지어 그 포문은 아랍국가들을 겨냥하고 있었을 것이다. 석유획득을 위한 위협이고 그야말로 일측즉발이었다. 지금은 세상도 변하여 그와 같은 사태가 돌발하지 않는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세계는 좁아졌고 경제적인 이해는 서로가 긴밀하게 얽혀 있어 전쟁이라는 비참한 사태는 양쪽이 함께 파멸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인류의 지혜에 나는 겨우 여기까지 왔구나하고 기뻐한다. 세계사람들의 마음에 깃들은 항구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평화적 노력으로서 강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하나의 사실로서, 하나의 광명이 되기를 기원하고 싶은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천재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인재는 인간의 구극의 지혜로 언젠가는 극복할 수가 있다. 인류가 수천년간 되풀이 해온 참혹한 전쟁까지도 곧 먼 옛날 이야기가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고 전후도 멀리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처음에는 경험하게 될 심각한 경제불황도 석유기근도 모두가 인재에 속한다. 인재를 극복하는 데는 무엇이 필수조건인가 하면 그것은 단하나, 인간의 마음의 오저에 깃들어 있는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일이다.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한사람 또 한사람이 자기의 이기주의의 추악함을 자각하는 일이야말로 앞으로 인류최대의 과제가 된다는 것은 틀림없다. 사람의 일생을 자세히 보면 파란이 많고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여서 뜻밖의 긴급사태에 빠지곤 하지만 곧 혈로를 발견해서 새로운 전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지가 싹트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때이다. 여러분들은 언제까지나 안일한 생활에 젖어 있어서는 안된다. 앞으로는 세계의 각양각색의 새로운 사태를 경험하고 단련하며 고난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깨달은 것은 인류의 미래에 지혜의 종자가 되고 곧 빛날 때가 오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1974. 1) 큰 뜻에 대해서 1900 년 전후 개척지였던 훗카이도의 청년과는 달리,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큰 뜻을 품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넌센스"가 될 것 같다. 현대사회의 부조리는 큰 뜻만 품으면 청년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다. 청년의 특질은 순수한 정열과 그것을 마음껏 연소하려고 하는 "뜻"의 크기에 있는 것 같다. 청년이 청년답게 산다는 것은 자기의 "뜻"에 자신을 걸고, 가지고 있는 힘을 후회 없이 발산하는데 있다. 그런데 현대는 청년으로부터 꿈을 빼앗고 청년의 정열을 허무하게 썩히는 비정한 사회로 변했다. "청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라고 말한 클라크 박사의 말을 이 현대사회에서 되풀이하는 것은 정말로 진부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넌센스!"라고 크게 비웃고 지나쳐 버린 역사의 저변에 묻어 버리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도 역시 넌센스이다. 청년이 청년답게 살 수가 없게 된다.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추궁했을 때 비로서 적극적인 비판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청년이여 큰 뜻을 품어라"라는 말은 상당히 전시대적인 냄새가 강하다. 우리들도 전시중에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소위 "전중파"이며^36,36^ 사회 전체가 일본남자는 큰 뜻을 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풍조였다. 나 자신은 너무나 병약했고 무기력했으므로 커서는 대장이 되겠다거나, 제독이 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나 나름대로 살며 시가나 문학과 사귀면서 생애 한 번정도는 라이프워크(대표작)가 될 만한 소설이라도 쓰고 싶었다. 전황이 불리해짐에 따라 작가나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이를테면 무위도식하는 비국민인 것처럼 보였지만 적어도 나는 나 나름대로 "큰 뜻"을 품고 있었다고 하겠다. 원래 클라크 박사가 말하는 "큰뜻"도 단순히 사회에 인정받고 명예와 부를 쌓아 올린다고 하는 천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권위나 기존의 체제와는 관계가 없는 개척정신에 가득찬 것이며 명예욕을 초월한 순수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이 어느 사이에 근대 일본을 지탱한 독점자본과 군국주의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서^36,36^사업가로서 재벌이 된다든가 군신이 되어 숭배받는 것 외에 남자 본래의 목적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큰 뜻을 품은 청년의 순수함과 에너지는 군국주의 일본의 부국강병책을 위해 교묘하게 위해 교묘하게 이용되었다. 전후 큰 뜻이라는 말은 청년을 설득할 힘이 없는 공허한 개념으로 변화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운명에서 볼 때 무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연대에 관해서 말한다면 두 번 다시 국가권력이나 매우 교활한 지도자들의 도구로는 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당초의 사고방식의 발단이었다. 그러한 심정은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물론 절박한 현실감은 희박해졌지만 아직도 매우 농후하게 남아 있다. 우리들 세대와 같이 생생하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후 많은 시대의 격동을 거쳐서 정련되고 결정화되어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도 또한 전시중 저 잿빛 같은 청춘을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한사람으로서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청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건설을 위해 지금까지도 노력을 거듭했다고 생각하며 평생토록 그러한 결의와 실천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화되고 고도로 발달하여 단순하게 "큰 뜻"을 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모든 조직과 기존의 권위의 힘이 몇 겹으로 뿌리를 뻗고 가지를 넓혀 미개지가 조금도 없이 완성되어 안정된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렇겠는가. 모든 뿌리가 서로 얽히고 지엽이 빈틈없이 가득 차서 서로 겹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완성과 안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전체가 이전에 없었던 격심한 기세로 움직이고 회전하며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미개세계가 문명의 주변에 퍼져 있었다. 일본으로 말하면 훗카이 도가 미개지이며 남양제도가 미개의 토지였다. 지금은 사회 전체가 미개지이며 도리어 문명의 중심지에 가까울수록 미개의 도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미개 분야에 도전하는 청년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상을 향해 씩씩하게 불타는 "큰 뜻"임과 동시에 시대와 사회를 올바르게 간파하는 영지일 것이다. 에너지만이 있고 위정자의 사고를 간파하지 못하고 시대의 조류를 모르는 어리석은 청년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 헛되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는 청년으로서의 특권도 기쁨도 동시에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교활한 지도자에게 있어서 단순한 거부반응은 그 자체도 이용하기에 충분한 에너지인 것이다. 예를 들면 과거의 수 많은 혁명운동은 모두가 청년의 기존 체제에 대한 거부반응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일을 수행해 왔다. 그리고 더욱 나쁜 것은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혁명이 성공하여 새로운 권력이 정착되면 청년의 에너지는 이젠 백해무익한 것이라 해서 버렸던 것이다. 청년은 청년답게 역시 "큰 뜻"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체제에 의존하는 몰주체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큰 뜻"은 굳이 체제 속에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이 사는 길은 언제나 미래이다. 청년 그 자체가 미래인 것이다. 미래는 청년의 흉중에만 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청년은 그 "큰 뜻"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해 영지를 가져야 한다. 현재나 과거를 위해 자신들의 미래가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냉정한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종전기념일에 생각한다. 청춘시대^36,36^특히 고교시대의 추억은 생애, 선명한 영상이 되어 뇌리에 남아 있다. 10 대라고 하면 거의 어른과 같은 판단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소년시대부터의 예민한 감수성이 그대로 계속되는 세대이기 때문인 것일까. 금년도 얼마 안 있으면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이 다가온다. 나의 고교시대는 때마침 전쟁이 끝난 직후 였다. 전시중 나의 집은 강제로 소개를 당했고 또한 옮겨간 집도 소이탄에 의해 불타버렸다. 나 자신도 비처럼 내리고 있는 폭탄 속을 이불이라든가 양동이를 들고 도망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나는 전쟁중의 빈곤한 식량사정과 과로 때문에 폐병을 앓게 되어 전쟁이 끝나던 해에는 최악의 상태였다. 네명의 형들은 차례차례로 전지로 떠났다.^36,36^후방에 남게된 것은 늙으신 부모님과 가날픈 남매뿐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후, 집 가까이에 있는 어느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한 집안의 모든 책임은 오남인 나의 어깨로 넘어왔다. 곧 전쟁이 끝났다. 그해 연말에 가장 의지하고 있었던 맏형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다. 그때의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의 슬픔은 지금도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져 없어지지 않는다. 다행히도 다른 형들은 차례차례로 전지에서 돌아왔지만 직장도 얻기 어려웠고 어두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오늘날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동양공업(구제)에 들어간 것은 종전직후로 형들이 돌아오기 전이었다. 나날의 생활은 고생스러웠지만 길고 괴로웠던 전쟁이 끄나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 왔다고 하는 사실은 오직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밑바닥까지 밝은 희망의 빛을 주었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만큼 전쟁의 비참함과 잔혹함은 심각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젠 두 번 다시 그러한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는 책상이나 의자도 충분치 않았다. 창문은 깨어져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온다. 전구도 어둡고 읽어야 할 책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런속에서 청년들은 맑고 엄숙한 눈동자로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공부다운 공부도 할 수 없었던 전시에 뒤떨어진 공부를 만회하기 위해, 또 새로운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도 탐욕스럽게 책을 읽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전쟁으로 가장 큰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청년이었다. 살아 남게 된 우리들은 그래도 좋다. 전쟁터에서 하잘 것 없는 벌레처럼 맥없이 함께 죽음을 당한 수백만명의 사람들의 비극을 두 번다시 되풀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앞으로도 더욱 더 격심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헌법의 법문해석의 논의이며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한 권력항쟁의 일환이다. 나는 민중의 저 전쟁체험에서 눈을 돌리고 이기를 위한 여론에 시종 하는 일부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격렬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헌법이 성립된 사정은 어떻든간에 그 당시,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전국민의 실감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가장 현실적인 논의이며 올바른 사고방식이라 나는 생각한다. 동시에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전쟁의 비참함과 어리석은 실태를 올바르게 전하여 재차 그것을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일이 전쟁을 경험한 자의 최대의 의무라고 생각된다. 시대의 청춘상 생각해 보면 청년만큼 시대의 무참한 희생을 당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는 것과 표리의 관계가 있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노인인 지배자이다. 작전을 세우는 것도 늙은 장군들이다. 흙탕물이나 산하나 해상에서 죽음을 걸고 싸우며 전진하는 사람은 언제나 젊은이들이다. 개전결정이나 작전 입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청년은 표면상으로는 "나라의 보배"라고 치켜세워지지만 실은 교활한 노인들의 영예를 위해 이용되고 발판이 되어 꽃피워야 할 청춘은 흙탕물과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이 슬퍼해야 할 청춘의 운명을 완전히 백팔십도 전환하여 젊은이들이 진심으로 충실감을 가지고 청춘을 꽃피울 수가 있는 시대를 도래케 하는 것이야말로^36,36^현대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청춘은 인생의 꽃이다. 그것은 생명의 자연의 모습이며 너무나 당연하리만큼의 도리일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는 청춘으로부터 기쁨을 빼앗고 고통에 가득찬 잿빛세계로 바꾸어 버렸다. 자연의 도리를 비뚤어지게 하는 이와 같은 문화가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거대하고 복잡한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그것을 계승하기 위해 젊은익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고 다음 세대를 이어받을 준비를 위해 청춘이 희생되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다면 거기에는 미래에의 밝은 희망과 기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명사회의 청춘상은 필요 이상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더욱이 앞날의 희망은 매우 희박하다. 많은 청년들이 어둡고 폐쇄된 미래상밖에 가질 수 없지 않겠는가. 또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고 선택의 여지도 없는 현실적인 인생의 구상밖에 주어지지 않는 현상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슬픈 것은^36,36^인간의 영지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가장 암담하고 고통이 많은 생활방싱만을 즐겨 선택하여 후배에게 강요하는 것처럼만 생각된다. 확실히 청춘에 있어 괴로움은 붙어 다니는 법이다. 고난은 인생 최고의 단련이다. 그런데 부당하고 불합리한 고통은 도리어 정신을 위축시켜 기형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나이든 지배자들도 근원을 밝힌다면 그러한 청춘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현대에 와서 비뚤어진 것은 결국 그들의 청춘기에 이미 결정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지도자상을 비뚤어진 것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도 현대의 청년 육성에 잘못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하고 싶다. "단절된 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현대는 세대간의 상극의 시대이기도 하다. 세대간의 상극이야말로 가장 오래되었고 더욱이 생존의 본원에 얽힌 문제라 하겠다. 에너지의 크기로 말한다면 젊은이편이 압도적으로 강대하다. 오늘날 일본의 인구구성도 1925 년 이후의 세대가 7 할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도권은 불과 1 할 전후인 메이지(1866 년^36,36^1900 년)세대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도자의 시책이 젊은이들을 희생으로 몰고가려 할 때, 젊은이들의 분노가 격하게 소용돌이 치는 것은 도리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나는 현재 세대간의 투쟁에 선두에 서는 학생들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도자는 이 젊은 세대의 심정만은 최소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춘에는 청춘다운 희망과 꿈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에너지가 그들 자신의 미래 건설을 향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지도자는 모든 영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이미 충분히 주도권을 잡고 있는 분야에 관해서는 깨끗하게 횃불을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세대를 소중히 하는 사회는 이미 미래의 발전과 번영이 약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에 있어서도 젊은 인재가 등용되는 기업일수록 활력이 있으며 성장이 현저하게 높다. 노인이 주도권을 독점하고 젊은이가 그 밑에 숨어 있는 그러한 기업은 같은 일을 해도 내부에서 부패하고 붕괴된다. 하나의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 원리는 전혀 변함이 없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활로를 선구에서 개척하는 것은 언제나 청년들이었다. 우리들은 과거의 격동시대를 뒤돌아 볼 때 거기에 약동하는 청춘의 숨결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가 인류문명사의 거대한 전환기라고 한다면 현대에 있어서 주역도 또한 청년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시대는 좋든 싫든 청년의 대두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 청년의 에너지를 올바르게 미래의 건설과 개척을 위해 리드해 가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해서 탐구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현대문명과 종교 근대 이후의 과학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해 최대의 타격을 주었다. 과학의 빛이 과거의 종교를 둘러싼 신비의 베일을 뜷고 그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눈뜨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현대인은 종교에 대해서 이미 무용장물이라는 일종의 경멸까지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단정하여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사회체제로서 세계의 3/1을 차지했었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지구상의 대부분의 문명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종교가 쇠퇴하는 모습은 도리어 당연하다고 말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확실히 스스로를 신비의 베일로 싸고 보이지 않는 권위에 의해 사람들 위에 군림한 종교는 그것만으로도 배격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나도 생각하고 있다. 하물며 불합리한 교의로 인간의 이성을 비뚤어지게하고 문화의 침체를 초래하는 종교는 시대와 함께 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나는 종교 그 자체에 존재가치가 없는 것처럼 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아무리 눈부시게 발달했다고 해도 인간은 과학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도리어 과학이 진보되면 진보될수록 종교가 강하게 요구되며 사실은 종교가 크게 지도성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환경세계에 대해서 그 물리화학적 법칙성은 분명하게 밝혀준다. 또 그 법칙을 기반으로 해서 여러 가지 응용화 방법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런데 관심인 생명주체, 그 자신에 대해 과학은 아무런 해명도 해주지 않는다. 과학만능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에 대해서는 생물학이나 생리학이 그것을 구명해 주지 않는가 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한 학문이 아직도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아 생명의 본원을 해명하기에는 아득히 멀다는 것은 내가 새삼스럽게 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러한 추구방법은 생명을 단순히 기성의 각종 개념에서 분석하여 죽은 물체로 만들 뿐이며, 결코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바꿔 말하면 다만 "미숙"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고 있는 방향 자체가 생명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생물학이나 생리학이 충분히 발달하여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현재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의 해명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들 인생의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다. 생명에의 접근은 과학의 본원인 분석과 총합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지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수하고 주관적인 것이며 살아 있는 자기의 생명관이다. 인간의 행.불행의 여러 현상은 이 생명감의 변화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배고픈 사람에게 있어서는 눈앞에 있는 한그릇의 밥은 비할 데 없는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실연의 비^36^애속에 빠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동일한 물건이라 해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행복감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하겠다. 만약 인간에게 있어서 어떻게 하여 거대한 에너지를 생산하는가, 물질적인 부를 어디까지 발전시키는가, 인간의 우주선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둥, 이러한 것만이 목적이라면 과학은 충분히 그것에 보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만큼 인간의 행복에 결부되는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미 과학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행복감이라고 하는 문제의 주요 요인은 어디까지나 인간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문제의 결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생명 그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생명에의 접근의 길을 열어 가는 것이야 말로 진실한 종교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한 종교의 존재는 인간영지의 최고봉임과 동시에, 모든 인간의 노력이나 그 노력의 성과로서 문화를 참으로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하는 토양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어떠한 노력도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현대문명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냉정하게 직시한 사람이라면 이 도리는 명확하게 납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라는 시점에 한해서 보더라도 자산이 있고 물질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다 아는 대로이다. 또 역사의 흐름위에 서서 보더라도 예를 들면 300 년전에 살고 있던 서민과 현재의 서민을 비교하면 된다. 생활환경의 편리함이나 물질적인 조건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서민이 몇 백배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만큼 행복감도 백배가 되는가 하면 아마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굳이 말한다면 현대사회에 있어서 생명경시의 풍조도 물질편중에 흐르고 있는 현대문명의 일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범죄 등의 사회문제,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며 아무도 뒫ㄹ아보지 않는 공해, 증가일로에 있는 교통사고, 그리고 최대의 공적 살인인 전쟁 등 모든 것이 생명경시라는 동일한 뿌리에 귀착된다. 생명존중의 발상,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사조를 이 현대문명을 움직이는 강력한 저류로서 확립하여 생명경시에서 생명 존중에로 180도의 전환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과 종교의 흥륭이 실현되어야 한다. 또 그러한 문화 전체의 전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지도성과 이념,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 생명에 호소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종교가 아니면 존재가치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참으로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종교가 없는 과학은 불구이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목"인 것이다. 이 말은 과학시대라고 하는 현대에 있어서도 또한 더욱 더 과학이 발달하리라고 예측되는 미래에 있어서도 문화의 창조와 건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중요한 경고이며 지침이 될 것이다. 인류의 문화가 광기와 부패의 흙탕물에서 탈피하여 희망으로 충만된 광명의 세계에 들어가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평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가 어떤가는 이 강력한 이념을 가진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이 세계에 흥륭시켜 인류의 것으로 하는가 어떤가에 따라 결정되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에 대한 무관심 인간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것은 아마 인간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것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되고부터라는 표현은 별로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나 인간의 진화역사를 더듬어 보면 "신비한 것에 대한 외경"이라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뜻은 충분히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일본인의 대부분은 이 신앙이란 문제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일본인의 신앙에 대한 냉담함과 무관심함의 정도는 아마도 그 무엇보다도 심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세계의 여러 민족, 특히 구미의 국민들 사이에도 차츰 신앙이란 것에 대해서 관심이 희박해진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지식인계층의 현상이고 서민대중의 대다수는 신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신앙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신앙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앙 그 자체를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많은 젊은이들이 신이나 요가 등, 비기독교적인 것에서 신앙의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종교에 대해서도 지극히 무신앙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본인은, 그러한 뜻에서, 전세계에서 특이한 존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일본인은 설날에 신사에 참배하고, 법사는 불교의 중에게 의뢰하며,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올리고, 장례식은 절에서 행한다고 하는 다채로운 일본적 종교관은 일본인의 신앙이 두터움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에서 문제삼지 싶은 것은 그와 같은 인생의 그때 그때의 행사를 위해 형식으로서 행하고 있는 "신앙"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한가닥 줄기로서의,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일생을 관철하는 마음의 지주로서의 "신앙"이라는 문제인 것이다. 나는 무슨 설교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온 신앙의 실체를 지금 한 번 더 음미하고 인생에 있어서 대체로 신앙이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또 그 신앙과 인생은 어떠한 관계이어야 하는가라는 등의 문제에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일본인과 구미인의 차이 우선 신앙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얼마 전에 E여사의 "나의 유럽"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속에 유럽인의 "믿는다"라는 개념과 일본인의 "믿는다"라는 개념의 차이를 언급한 문장이 있었다. 그 첫머리에 프랑스의 "르 몽드"지에 실려 있는 "일본인의 종교에 관한 태도"를 분석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재인용이 되지만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의 특수성은 종교를 형이상학적 문제(바꿔말하면 지성과 이성의 문제)로서 포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문제도 지적 추론에 의하는 존재학상의 문제로서 포착하지 않는다. 도리어 행동(예를 들면 선행과 자비행 등)의 문제만으로 포착하는 데에 있다" 이 글에서 E여사는 "르 몽드"지의 집필자도 독자층도 종교 내지 신의 문제로 우선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적인 지적 이론적인 문제로 포착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인이 종교를 행동의 문제로 포착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그대로이다. 단지 괄호 속에 있는 것(예를 들면 선행과 자비행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선의적인 해석이며 일반적인 일본인의 실정은 "관행, 의식"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물론 그와 같은 일본인과 유럽인(특히 프랑스인)의 종교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각기 걸어온 역사의 차이에 따라 좌우되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져 예리하게 대립하였기 때문에 처참한 살생을 서로 되풀이해 온 유럽인과, 몇 백년 이래 종교가 국가체제 속에서 단가제도에 묶이어 교의에 대한 대립이 없었던 일본인과는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속 깊이에는 다른 종교나 교의에 대해서 타협을 허락치 않았던 유태교=기독교 정신과 모든 것을 포용해 온 불교정신의 이른바 종교 그 자체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쨌든 종교에 대한 정신적 태도가 그와 같이 다르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거기에서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긴다. 종종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를 인용해서 일본문화는 "부끄러움의 문화"이며 구미문화는 "죄의 문화"라고 말하고 있다. "죄"란 신, 혹은 신이 정한 법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생기는 사고방식이며 신의 의지, 혹은 법에 위배하는 것을 "죄"라고 해서 이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부끄러움"이란 그와 같은 초월적, 절대적인 것은 없고, 있는 것은 세상이며 사회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되어 있다. 초월적인 "선" 혹은 그 신이 정한 "법"을 일체의 전제로 하면, 가령 누가 보지 않더라도 신은 알고 있으며 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므로 나쁜 짓을 하는데 대한 강한 규제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일본적인 "부끄러움"의 사고법은 세상이라는 즉 주위의 사람들이 위화감을 품지 않는 한은 그것은 "악"이 아니다. 여기에서 집단이라는 경우에는 엉뚱한 나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른다 라는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구미적 사고방식에 매우 편을 들어준 추론이며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면도 있다. 예를 들면 구미인의 사고방식을 극단적으로 추진시킨다면 신의 의지나 법의 절대성에서 그것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나 생활을 파괴하고 짓밟는다 해도 조금도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역사가 십자군, 이단재판, 마녀사냥, 종교전쟁 이렇게 피투성이의 싸움에 몰두한 것은 가장 좋은 증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치스시대 독일에서는 유태인 대량학살을 했었지만 그러한 학살을 집행한 사람들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나쁜 일을 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명령에 따른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신의 법"에 따른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것과 비교해서 일본 인도 중국대륙 등에서 잔혹한 많은 행위를 저질렀지만 그것은 "명령에 따랐다"라기 보다는 집단심리로 움직였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므로 싸움에 져서 주위의 정세가 변하면 일변해서 "일억총참회"를 해야 했던 것이다. 일본적인 종교의 탣도 선의로 해석하면 모든 인간이나 사상 속에는 본래 불성 혹은 신성이 있다고 하는 일본적 종교관이 연원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 이 기본정신이 지금도 맥맥히 살아서 인간의 생활방식을 지배하고 있다면 매우 훌륭한 일이며,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큰 의의가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적극적인 면은 잃어 버리고 마이너스면에서 덮혀 비종교화 무신앙화가 현대 일본인의 특징으로 되어 버린 것 같다. 신앙의 출발점 여러 곳으로 이야기가 빗나가서 약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정리해 보겠다. 신앙이란 이 인생에 있어서 인간의 힘으로 처리할 수 없는 어떤 힘, 법, 현상에 대한 외경이 그 출발점으로 되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인생의 외부에서도 강한 영향을 인생에, 인간존재에 미치고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앙의 본래의 출발점의 하나는 우주나 자연계의 힘에 대한 외경과 복종이며, 하나는 생과 사라고 하는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한 외경과 탐구에 있었다는 것은 이 사정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계의 힘에 대한 외경은 곧 인간의 지혜나 집단의 힘이 자연의 힘에 대한 우위를 쟁취하게 되어 그러한 우수한 힘을 가지는 개인이나 집단의 힘(또는 그 상징)에 대한 외경과 그 신격화로 변해 갔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산이나 산하 그리고 수목 등에 깃든다고 샌각되었던 신 등은 자연계의 힘을 신격화한 예라고 하겠다. 천조태신은 본래는 태양의 혜택을 신격화한 것이지만 곧 그대로 일본민족의 선조신으로 생각하게 된 듯하다. 직접적으로는 천황이 그의 자손으로서 천조태신의 힘은 천황에게 집약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일본민족이라는 집단력을 체현화하려 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동일한 과정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 대해서도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외계의 힘에 대한 외경은 인간이 자연을 구명하여 인간자신의 힘의 지배하에 둠으로써 차츰 신비성을 잃어가는 것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이나 기술의 진보, 발달에 의해 이와 같은 연원에서 흘러온 "신앙"은 이미 성립의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연은 지금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으며 구명하면 구명할수록 수수께끼가 깊어진다는 것은 과학의 첨단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솔직한 감개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더욱더 예리하고 깊게 탐구하는 대상일지언정 "신앙"의 대상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신앙의 또 하나의 연원에서 발한 더욱 깊은 신비에 싸인 흐름은 인간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고 과학이 진보한다 해도 조금도 변함 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신앙"의 흐름은 전자의 "신앙"이 주술적이었던 것에 비해서 철학적이며, 전자의 "신앙"의 결과로서 기대되었던 것이 형이상학적 이었던 것에 비해서 이것은 형이상학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여러 가지 이론도 있겠지만 오늘날 고등종교라고 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그리고 힌두교 가운데 몇 개는 이러한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오달을 기점으로 해서 수립된 것이다. 그후, 대중 사이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각 기존의 주술적인 종교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으므로 지금 현재의 모습은 이와 같이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출발점에 있어서는 상당히 분명하게 그 특질을 지적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이 생과 사, 생명의 불가사의에 대한 외경과 탐구심을 기점으로 하는 종교신앙은 지금도 그 존재의의를 상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한, 절대로 의의를 상실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존재나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의미와 의의를 찾아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비추는 영지의 빛 2, 3 년전부터 인간의 "삶의 보람"이란 것을 많이 논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하나의 증거이다. 직장에 있어서도 무턱대고 일만 해온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스스로 자문하여, 자기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사고방식으로 강화되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 특히 이 경향성이 현저하게, 급료가 좋은 것보다도 자기의 의의를 인정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근원적인 "행위"는 말할 나위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 그 직장을 선택하는가,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가라는 것과는 비교됴 안된다. 근원적인 테마이며 더욱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문제이다. 또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가라는 것은 자기의 인생에 대한 이상이나 사회에 대한 사고방식의 관련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그에 비해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문제는 현실의 이 생과 현실사회의 관련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인생 그 자체"에 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현실의 생이나 사회를 초월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 인간의 생은 유한이다. 그 저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죽음의 구덩이가 파여 있다.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생명은 죽음으로 일체가 끝나는가.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는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계속되는가. 불교는 생명이 불멸의 실재이며, 생이라든가 사라는 것은 이 생명이 나타나는 변화의 모습이라고 하며 이 불멸의 생명이라고 하는 실재에서 인생의 의의를 부여하는 것을 설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초월적인 존재를 현실에서 벗어난 저편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명 그 자체에서 구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해서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현실의 저편에 신이라는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여 그 신과의 관계에서 인생의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 나는 어느 쪽이 우수하고 어느 쪽이 열등하다고 하는 논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원적으로 말하면 기독교, 이슬람교 등은 자연계의 힘에 대한 외경이라는 신앙이 모세, 예수, 마호멧이라는 인격에 의해 승화되어 고등종교에 변혁한 것이라 하겠다. 불교는 처음부터 한사람의 성인이 생과 사의 문제를 사색하여 거기에서 개오한 오달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초월적인 전지전능한 신이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존재를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의미로 그것은 또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생명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실재는 신비에 가득차 있으며 한 없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초월적인 신에의 신앙은 잃어버릴수가 있어도 생명의 불가사의를 기점으로 하는 신앙은 영구히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신앙은 인생에 대한 강력한 "지주"가 되며 수 많은 문명의 기반이 되어 왔다. 서구에서 과학의 진보도 그것은 결과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몰락을 가져다 주었지만 진리의 구명은 신의 섭리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는 "신앙"의 정세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예술도 또한 신의 조화의 미를 찬탄하며 표현한다고 하는 역시 "신앙"에 기인하는 정세에서 창출된 것이라 하겠다. 현대는 인간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를 캐묻고 스스로가 나아가는 길을 다시 음미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라 하겠다. 그런 자기를 비추어 주는 영지의 빛을 우리들은 대체 무엇에서 구하면 좋겠는가, 만약 그러한 큰 반성도 없이 물질적 욕망과 관능적 충동과 이기주의가 향하는 대로 돌진한다면 곧 머지 않아 지구를 파괴하고 스스로도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인생과 신앙이라는 가장 오래된 문제가 지금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위기에 직면하고 보면 도리어 가장 새로운 문제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통절하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신념을 관철하자. 이것은 내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한 청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그것은 프랑스에 '쇠사슬에 매인 집오리'라는 이름의 작은 신문이 있었다. 그 뜻은 꽥꽥거리며 울고만 있는 힘없는 집오리라는 뜻으로 사전에는 "삼류신문의 속칭"이라고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부수도 결코 많지 않고 겨우 2, 3 만부 정도라고 한다. 또 보통 신문보다 한층 작고 제 2차 세계대전중에는 등사판으로 인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신문이 완수한 역사적 역할과 현재에 있어서 사회적 비중은 매우 크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 신문이 유럽의 양심을 나타낸 용기있는 언론을 전개해 왔으며, 그리고 지금도 그것을 관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운동에서 탄생한 이 소신문은 정부의 어용신문으로 전락한 많은 언론기관들 속에서 용감하게 진리와 정의를 끝까지 부르짖은 것이다. 그래서 역대의 편집원은 몇 명이나 나치에 의해 총살되고 말살당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신념의 등불은 다음사람으로 또 다음사람으로 끊이지 않고 인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강한 신념의 전통이라는 무게 때문에 오늘날 반정부적 색채가 강한 소신문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신문을 없앨 수는 없다. 일체의 허위를 배제하며 진실을 보고하여 어떠한 작은 기사라도 권위가 있다는 점이 그 특징이라 한다. 또 이 신문의 정면에는 "자유는 그것을 쟁취하는 사람들의 손 안에만 있다"라는 서브타이틀(부제목)이 붙어 있으며 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에 의해 프랑스의 자유는 만들어진다는 기개를 구독자에게 보여 주고 있다고도 한다. 거기에 대해서 많은 독자는 자기가 몇 년 몇월 몇일 제 몇호 이래 이 신문을 계속 읽고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자랑이라 생각해서 호응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중추에 이 신문의 기사 제공자가 있다고 하는 것도 매호의 기사를 보면 명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메스메르상의 전임자였던 수상이 탈세한 것을 이 작은 신문이 폭로했으므로 마침내 사임하게 되었는데 정부가 발표하기 전에 인사가 누설되거나 정책이 폭로되어 언제나 정부나 대기업은 선수를 빼앗기게 된다. 진실을 국민을 위해 알린다고 하는 점은 뛰어난 존재이지만 스스로는 "쇠사슬에 매인 집오리"^36,36^다시 말하면 삼류신문이라 해서 소신문이라는 점에 도리어 큰 긍지를 가지고 광고도 싣지 않고 오로지 독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매우 흥미 깊었고, 또 감명 깊었다. 청년의 입장이 참으로 이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주위에는 조소와 억압의 폭푸우도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진실을 계속 호소하며 신념을 지속하는 행동을 관철하는 곳에 인간으로서 또한 청년으로서 살아 가는 최대의 의의가 있다. 이 신념의 지속이야말로 청년의 싸움이며 그것만이 새로운 세기를 만들어 가는 본원이라 하겠다. 또 어떤 영화를 보았다. 스토리는 대양의 끝에서 대폭풍우를 만나게 된 가다랭이 어선이 바로 가까이에서 조난을 당한 외국 요트의 "SOS"를 받아 구조하는 내용이지만 처음엔 승무원들도 자기들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된다고 하여 요트를 그냥 내버려 두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중심자가 "요트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들이 피해 버린다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SOS를 받은 우리가 도망갔다는 후회스러움은 일생동안 남을 것이다. 그 후회는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마음 아프게 된다. 그런 뜻에서 조금이라도 요트 가까이 다가가 구출하자"라고 호소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왜 이러한 말을 하는가 하면 어떠한 곤란이 있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신념을 관철하는 중요성을 알아 주기 바라는 의미에서이다. 사상의 천심고저를 불문하고 과거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주의자라도 가령 그 사람의 일생이 가난하고 고난의 연속이라 해도 그 주의주장을 평생 관철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러한 사람이 적은 것 같다. 그 반대로 동지를 배반하고 자기를 배반해서 전향하는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시류에 잘 타서 번영할지 모르나 그 사람의 마음의 오저에는 죽는 그 순간까지 틀림없이 큰 상처가 남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타인에게 잘 숨긴다 해도 자기의 본원에서는 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회한은 최대의 불행이다"라는 말도 이런 사실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V. 지식과 영지 대학의 사명 대학은 과거에는 문화건설의 요람이며, 옹호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에서는 파괴의 수라장으로 변하여 자신에게 파산을 통고하려 하고 있다. 멀리 12세기경 북 이탈리아에 보로냐 대학이 생긴 이래 프랑스에는 파리대학, 영국에는 옥스포드, 켐브리지 등 많은 우수한 대학이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역사를 이루어 왔다. 이 수백년 동안 그 발생 이래의 대전환에 육박할만한 사태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본의 대학은, 대학과 정치권력 또는 교회권력과의 대결등이 아닌 대학을 포함한 사회의 관리기구와 그것에 대한 청년의 불만과의 격돌이며 더 나아가서는 기존사회, 문화, 가치관에 대해서 그것을 이어 받아야 할 세대가 맹렬히 계승을 거부하며 파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대의 단절, 전환을 강요당하는 문명의 실태가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청년은 순수하다. 흐리지 않은 렌즈와 같이 뚜렷하게 피사체의 실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곡은 왜곡으로서 정직하게 찍어낸다. 결백하고 청명한 청년의 심정은 부패한 허위의 번영 속에 "쇼와부흥"이라는 등 "풍요한 사회"라는 등, 큰소리치는 어른들의 뻔뻔스러움에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오늘날 스튜던트 파워^36,36^대학운동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원래 그들의 행동에는 교활한 정치가들의 책모에 영향을 받는 면도 있을지 모른다. 또 그 수단도 예의나 상식을 무시한 난폭함과, 자신들의 의지만 통하면 좋다고 하는 제멋대로인 일면 등 비난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잘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교활한 잔꾀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대학에 들어가기 이전의 교육에 원인이 있다고도 생각된다. 결국 그러한 교육을 시행한다든가, 교육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 어른들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의 과보로서 지금 학생들의 "폭력"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원수폭을 만들어서 그 가공할 위력에 움츠리며 떨고, 기계문명을 발달시켜 놓고 그 중압밑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현대문명의 위기라는 것도 냉정한 영지의 눈으로 본다면 날카로운 비난의 회화의 재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핵무기라는 "데모클레스의 검(신변에 따라 다니는 위험)"이나 발밑에 밀어 닥치는 전쟁의 위기, 그리고 외형의 풍요에 반해 마음 속에는 텅빈 공동 등등.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기는 하지만 응시하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에 열중하는 수험생과 같이 현대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눈앞의 즐거움을 쫓는데만 급급하다고나 할까. 머지않아 이 세계를 이어 가는 것은 청년들이다. 어차피 뒷일은 맡길테니까 라는 안이한 마음가짐이라고 한다면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적어도 사회의 모순을 될 수 있는 한 해결하여 정상으로 해놓고 다음 대로 물려주는 현명한 노력이 어른들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그러한 청년들의 불만이나 분노를 무턱대고 억압한다는 것은 비열하고도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특별히 운동권학생에게 겉치레의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사회의 모순과 불안에 대해서는 부단한 싸움을 계속해 왔으며 권력의 횡포에도 정면으로 도전해 온 한사람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바가 나의 생명에 아플 정도로 공감되어 오기 때문에 나는 마음으로부터 동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그렇지만 가끔 소강 상태가 유지되기는 해도 언제 또 소란이 일어나게 될는지 모르는 상태를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국 문화의 흥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본래의 사명을 생각한다면 지금 옛 문화의 붕괴가 대학을 그 집약점으로 하여 일어나고 있듯이 새로운 문화 건설도 또한 대학 재건을 기점으로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파괴를 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학생들도, 어이없이 멍해져서 어떻게 할 방책을 모르는 교수들도, 파괴의 다음에 어떠한 건설을 해야겠다는 "비전(Vision)"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대학건설의 이념과 비전을 그대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회 건설의 축도이며 원천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념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명쾌한 해결을 주는 이념이 아니고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학 그 자체가 구극적으로는 인간을 만드는 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및 미래의 사회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구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인간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교시인 것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이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이 기독교 였다. 그렇기 때문에 종래의 대학은 중세유럽의 신학연구에서 출발하여 기독교에 대한 신념에 의해서 지탱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전통에 입각한 구미의 대학에서조차도 구래의 기독교 사상에 대한 정면적인 반역이 학생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그 현저한 표출이 미국의 경우 8할 가까이가 경험하고 있다는 대학생의 "히피"화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히피족"이 의처로 하고 있는 것은 거의가 힌두교나 불교인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무신앙화의 경향은 유럽쪽이 더욱 강하다. 최근의 어느 조사에 의하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미국에서는 3할인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7할이나 된다고 한다. 한편 일본 대학은 이러한 이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굳이 말한다면 서구적 민주주의가 그것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어느쪽이든간에 그 연원을 찾아보면 모두가 구미에서 수입된 것이며 그 아류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새로운 대하건설에 있어서 나는 이전의 신의 철학 대신에 "생명의 철학"을 구하라고 호소하고 싶다. 인간을 존엄하게 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천으로서의 신"을 구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것은 우리 생명 속에 존극의 당체를 열어 나타내감으로써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 이 철리를 깊은 사색과 과학적 실증성을 갖고 설해 밝힌 생명의 철학이야말로 21세기의 위대한 문화창조의 원천이라는 것은 확신하고도 남음이 있다. 끝으로 대학, 나아가서는 교육의 재건을 위해서 정치와 교육의 자세에 대하여 한마디 해두고 싶다. 그것은 현재의 일부 인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조속히 대학의 재건을 기획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더욱 복잡한 문제를 남기게 될 뿐이다. 진실한 해결책은 오히려 교육의 존엄을 인정하고 정치로부터 독립하는 데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본래 교육은 다음 대의 인간과 문화를 창조하는 엄숙한 사업이다. 따라서 시대의 정치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일이 없는 확고한 자립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에 교육을 더해 사권분립안을 제창해 두고 싶다. (1969, 5, 13) 지식과 영지 오늘날의 사회는 정보화사회의 양상을 급격히 강화하고 있다. 정보화사회란 무엇인가 하면 여러 가지 면으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지식범람의 사회, 지식혼란의 사회라고 해도 좋다. 그 속에서 지혜는 모두 매몰되어 버렸다고까지 생각된다. 따라서 지식 그 자체의 혼란도 심하지만 지혜와 지식의 혼란도 여기에 한몫 끼여 있는 것 같다. 이 슬퍼해야 할 경향을 어디에선가 체크하지 않으면 인간의 두뇌는 언젠가 백치화될 것이다. 가지가지의 주변의 양상은 그것을 말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식과 지혜란 원래,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대개 구분되지 않은채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현대에서 가장 잘못된 생각의 하나는, 지식편중에 빠져들어 지식을 그대로 지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착각의 결과로 오늘날 학교교육은 막다른 길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의 우등생이 꼭 사회에서의 우등생이 아닌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학교교육이 지식의 축적에만 치중하고 지혜의 개발이라고 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학자는 확실히 경제에 관한 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이론이 어떻다는 등 "케인즈"의 학설이 어떻다는 등 당당하게 논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달간의 가계를 이리저리 궁리하여 살림을 꾸려 나가는데는 한사람의 셋방살이 주부에게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것은 고상한 이론이나, 난해한 학설은 아니다. 정해진 생활비로 일가 다섯식구의 한달간의 생활을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기업의 경우도 한 자치단체의 경우도, 또한 국가의 경우도 규모는 다르지만 원리는 같은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지 모르지만 결코 이론이나 학설 자체를 경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생활속에 살아 있는 구체적인 지혜를 가르치지 않는데에 학교교육이라든가 학문이라는 것이 마치 민중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처럼 되어버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학생들이 이러한 학문의 위선적인 권위에 분노와 불신을 외쳤다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지식은 과연 지혜로 들어가는 문인 것이다.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광범위한 지식이 없이는, 훌륭한 지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보람있게 쓰면서 살아나가는 것은 지혜인 것이다. 지혜가 없고서는 가치없는 잡동사니의 산에 불과하다. 우리들이 음식을 먹었을 때 그것이 소화되어 에너지라든가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되어야 비로소 가치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이 지식에 의하여 지혜가 증대하고, 그 지혜가 지식의 흡수가 그것을 살려나가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지식은 지혜를 유도하고 지혜를 여는 문은 될 수 있지만 지혜 그 자체는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을 획득하고 승리자가 되기 위한 근원의 힘은^36,36^ 각자의 환경이나 조건,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고 개척해가는 영지, 지혜인 것이다. 지식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힘도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옛사람은, 이러한 것을 "논어를 읽지만 논어를 모른다"라고 말하며 훈계하고 있다. 지식과 지혜를 혼동하는 경향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다분히 과학기술의 급격한 진보나 문화의 국제교류의 증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소위 정보화사회의 지식의 홍수현상을 야기시킨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반면 현대 정보사회화의 새로운 존재로서 "컴퓨터"가 등장함에 따라 지식편중의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통감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억에 대해서 말하면 인간의 두뇌능력은 컴퓨터의 기억능력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컴퓨터"가 잇따라 보급되어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지식의 저장은 완전히 "컴퓨터" 독무대가 될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어떠한 지식을 끌어내어 활용해 나가는가에 있다. 다시 말하면 창조성에 넘친 미래의 전망과 컴퓨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살려 나가는 지혜를 갖는 사람이야말로 "컴퓨터"시대의 올바른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혜, 영지 그 자체는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가슴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영지의 사람인가 아닌가는 그것이 눈떠서 숨쉬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잠자고 있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하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도 독서라 하는 것도 그것을 눈뜨게 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대뇌생리학의 어는 권위있는 학설을 보면 아무리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능력의 3/1밖에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아무리 머리를 많이 써도 너무 많이 쓴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활동은 활발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 이 영지, 지혜를 눈뜨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역시 지식은 지혜로 인도하는 문이기도 하지만 지식은 그대로 지혜로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혜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학문도 꼭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학문에 의해서 얻은 지식과 그 속에 있는 지혜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을 나는 목적관, 사명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비근한 예이지만 평상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책을 읽을 경우와 시험을 눈앞에 두고 어떻게든 이것만은 "마스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상황하에서 읽는 경우는 흡수하는데 있어서 전혀 다른 것이다. 시험에 좀더 좋은 성적을 따야겠다는 목적관이 그 책에 쓰여있는 지식을 소화하는 지혜의 활동을 보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또 개인의 주체성확립의 토대이기도 하다. 생명의 존엄이라는 것도 인간회복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내면으로부터의 주체성확립이 되지 않고서는, 장난감 병졸에게 호령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 사명감과 책임감이라는 문제는 인류전체에 관계되는 일이다. 더욱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사회의 풍조나 가치관에도 관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개인에 있어서의 인간혁명과 사회에 있어서의 사상혁명이 요청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끝으로 지혜는 문화의 창조와 행복을 획득하기 위한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파괴와 비참한 고뇌를 가져오는 원동력으로도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대문명의 고통은 모두가 인간 영지의 왜곡된 발상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도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러한 간사한 지혜, 악지혜는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가 하면 생명이 탁한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이미 학문이나 도덕윤리의 영역은 아니다. 생명 그 자체와 대결하여 거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완수한 유일한 것이야말로 동양문명의 진수인 불법이라는 것을 덧붙여 두는 바이다. 교양에 대하여 교양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현실생활에 있어서 힘이 있다 없다고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생활과 관계가 없는 독서나 취미에 있어서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교양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최근의 학생, 특히 여성들 가운데는 대학에 가는 것은 특별히 어떤 구체적인 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한사람의 사회인으로서의 부끄럽지 않은 교양을 갖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교양의 유무는 인물을 평가하기 위한 커다란 기준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을 나와서 지식도, 기술도 우수하지만 예의를 모른다든가 인생의 여러 가지를 분별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교양이 없다는 혹평을 받는다. 그러면 교양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판단하여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지식도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사물의 고사내력이나 과학지식을 아는 것이 매우 높이 평가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 정조의 풍부함은 그 이상으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가지가지의 예를 통하여 교양이라는 실체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것은 "원만한 인격"이라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각도에서^36,36^ 무엇인가 주위에 호소하는 상쾌한 것을 갖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 가는데 있어서 유효하게 작용해 가는 것, 이것이 "교양"이라는 전체상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흔히 인격형성의 기본요소로서 지, 정, 의 를 말해 왔다. 따라서 교양이란 지도, 정도, 의도 다같이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슈아놀드"가 내린 "교양이란 전체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정의는 간명하고도 요령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문제는 그와 같은 전체적인 인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또한 형성되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교양은 분명히 그 자체로서는 전문적인 기술이나 학문과, 직접으로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기의 전문을 등한시 하고 교양을 교양으로서 추구하였을 때 과연 진실한 교양을 얻을 수 있을까 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답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힘은 결국 자기의 전문적 기술이라든가 학문에 있어서 얼마만큼 우수한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생활의 기반이며 사회에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엔진"에 해당되는 것이다. 교양이 있다 없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다가 "차체"가 얼마나 스마트한가, 타는 기분이 얼마만큼 쾌적한가라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교양이 "전체에 있어서 산다"고 해서 교양의 추구에만 일관하는 것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벽만으로 집을 만드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엔진"을 생각하지 않고 자동차의 모양만을 문제로 하는 것과 같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전문이 그 골격이고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교양이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것은 우연한 기회에 의해 세간이 내리는 일시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실한 교양이란 그 사람이 힘을 다하여 열심히 산 결과로서 자연히 그 생명 속에서 스며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양을 위해 공부한다"고 하여 허영을 쫓는 식의 삶의 방식은 본말전도이며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적어도 수업료를 내면서 대학에 간 이상은 훌륭하게 "실력"을 쌓는 것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학교공부와는 별도로 자신이 스스로 시간을 짜 독서를 하며, 보고들은 것은 그 사람의 진실한 교양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교양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면 대학만이 그 장이 아니라, 일하면서 자신이 꾸준히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여러 가지의 것을 보고 들어 깊이 몸에 간직해 나가는 것도 훌륭한 교양이 될 것이다. 대개 대학을 나와도 졸업해 버리면 책하고는 아주 멀어져 버리는 이름만의 "인텔리"라면 그도 저도 아닌 불완전한 것이 되어간다. 어쨌든 인생의 거친 물결을 극복하는 투지도 가지지 못하고 교양을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이 인생의 실천과 체험에 의해 닦인 깊은 정조와 거기서 관철되고 단련된 강고한 의지가 있어야만이 폭넓은 지식도 살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년은 각자의 어려운 처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리고 일하며 힘을 가득히 몸에 길러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승부인 것이다. 이 진지한 생활속에 비로서 자기가 연마되고 인격도 강하고 또한 풍부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어느 사상가는 말했다. 천박한 지식의 "레텔"만으로는 먼지를 몸에 묻히고서 장식했다고 생각하는 원숭이와 다를 바와 없다 라고. 손쉽게 아무데서나 익힌 "교양"이 아니고 그 사람의 생명의 내면으로부터 스며나와 빛나는 듯한 진실한 교양을 지키고 육성해 갔으면 한다. 독서에 대하여 최근, 여성의 독서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베스트셀러의 뒷면에 있어서의 영향은 어쩐지 젊은 여성에게 힘입은 바가 큰 것 같다. 이에 비해서, 남성은 시청각 미디어에 흡수되어 독서를 즐긴다고 하는 풍조는 현저하게 줄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철 속에서도 남성들이 읽고 있는 것은 만화주간지나 스포츠신문이 많다고 한다. 대학생까지도 소년판 만화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류기업에 근무하면서 생존경쟁의 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엘리트.비지니스맨"은 어느 정도 고도의 기업경영의 책을 소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엘리트"와 뒤에 쳐진 사람의 격차는 급격히 증대해 가고 있다. 이제부터의 사회에 있어서는 지식이 있는 사람과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격차가 이전에 재산, 자본의 유무에 의한 계급적 대립을 대신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컨대 자기전문에 관계되는 어느 한정된 부문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있어서 넓은 지식과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이 요청되어 가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또 인간관리의 일에 종사하는 이상은 특히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중요한 요소로 될 것이라는 점도 틀림없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 독서는 단지 전문적인 참고서 뿐만이 아니고 소설이나 역사등 넓은 시야를 양성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양해할 수 있을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학자선생들은 주간지나 신문 등을 읽는 것은 독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러한 딱딱한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것이 한 장의 "전단"일지라도 진리가 쓰여 있다면 훌륭한 독서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식의 샘은 우리들 주변에 무한히 있다. 중요한 것은 진실과 허위를 어떻게 식별하고,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여 올바른 것, 좋은 것만을 흡수하도록 하는가가 중요하다. 어느 학자는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과 읽을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할 일없이 따분한 사람 사이에는 대단한 상위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대로 라고 생각한다. 독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에 임하는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그 바른 자세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하면 결국 인생에 대한 의욕적인 자세, 언제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건전하고 강하고 힘있는 삶의 태도에서 일어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권의 책에 쓰여 있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양서인지 악서인지를 판별하는 눈도 생활 속에서 배양된 판단력과 어느 정도의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양서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인생, 사회에 대한 눈이 열리고 희망과 용기와 환희가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매스컴"의 발달에 따라서 근래의 소설이나 문학은 어떻게 하면 많은 독자를 얻느냐 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이 흥미위주이고 쓸데없이 "센세이셔널"한 면에만 치우쳐 깊이가 없다. 언론의 자유시대에 있어서 작품의 질적향상을 위하여 최대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중인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지지하는 것은 현명한 민중의 존재이다. 어리석음이 태반을 차지하고 현명함이 소수파일 때, 그 사회는 어리석은 민중으로 전락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니체"는 '쓰여진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직 그 사람의 피를 가지고 쓴 것만을 사랑한다'라고 말하였다. 저자가 자기의 생명을 기울여서 쓴 글은 반드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 경박하고 속악한 작품은 돌아다 보지도 말고 진실하고 훌륭한 책을 구하는 책을 구하는 참된 독서인이 되어 주기 바란다. 지금 세상에도 진지하고 열성의 피가 넘치는 작가, 학자가 많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한 인물이 표면에 많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결국 독자대중의 책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모든 저작은 이것을 읽는 사람과의 대화이며 저자와 독자와 공동작품이기도 하다. 훌륭한 작품이 후세에 남는다고 아는 것은 한사람의 저자의 명예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대중의 지적수준을 증명하는 것이며 기념비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깊이가 없어지며 사회의 전진에 뒤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서의 사람 읽느냐 읽지 않느냐는 별도로 하고 나는 책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틈을 내어 서점이 줄지어 있는 간다에 때때로 발을 옮기곤 한다. 그때마다 20 년전의 일이 그립다. 그것은 전쟁직후의 일이었다. 세상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내핍생활이 한창이었다. 김을 만들고 있던 우리집은 물물교환도 할 수 있어 다소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18, 19세의 청년이던 나는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간다로 책을 사러갔다. 다리가 뻣뻣해지도록 몇집이고 책방을 돌다가 구하던 책을 싸게 샀을 때는 의기양양하여 돌아오곤 했다. 그 후 수년동안은 빈번하게 간다의 밤거리에서 책방을 도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어느 봄날 아침, 당시 병약했던 나는 양지에서 볕을 쬐면서 책을 펼치자 '그대여 일서의 사람이 되라'라는 어구가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것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일서를 정독하고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 즉 "일서의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극히 중요한 독서법이라고 하는 것을. 한권의 책이 얼마만큼 한사람의 인간에게 큰 영향을 주는가는 추량할 수 없으리라^36,36^대문호인 "괴테"나 "톨스토이"도 "일서"인 성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확고한 지탱이었고 그 중후한 대문학의 초석이 되었다고 아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원리는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통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서로 하는가는 각자의 자유일 것이다. 한권의 책을 몇백번씩 독파하여 자신의 피와 살로 한다든가, 그것을 생활에 응용해가는 것은 훌륭한 일임에 틀림없다. 현대와 같이 어지럽게 격동하는 사상 속에 있으면 있을수록 언제나 자기의 시점의 위치를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을 지탱하는 깊이는 역시 일서의 사람이 되는 이외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서에 정통하고 일서를 인생의 근간에 두는 것은 결국 만서를 가까이하는 파동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다. 언제나 책을 곁에 두고 그것을 펴보는 사람은, 적어도 사물을 깊이 사색하는 토대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책이 없는 집은 주인이 없는 집과 같다'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일서의 사람은 인생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이 강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저자와의 대화 나는 건강상의 이유와 또 가정 형편상 대학에서 배울 기회에는 그다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런만큼 청년시절부터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책이 탐이나 구할 수 있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붙어버리고 말았다. 일종의 독서벽이라고나 할까. 독서에 대해서는 남달리 관심도 강하고 바쁜 오늘날에도 나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그만큼 책을 통해서 계발되어 다대한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처음으로 책을 읽을 때는 한사람의 벗과 알게 되고,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옛날 벗과 만난다' 라는 중국의 속담이 있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등장인물과 시대배경 속에 빠져들어 열심히 읽은 역사소설. 이해하기 어려워서 악전고투하며 조금도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수를 원망스럽게 생각한 철학서적. 월급이 박봉이었던 시절에도 틈만 있으면 간다의 헌 책방을 자기집 서고처럼 내왕하며 용돈이 모이는 것을 기다렸다가 달려가 아직 팔리지 않고 남아있던 책을 수중에 넣었을 때의 기쁨. 생각하면 이런 책 한권 한권이 청년시대의 그리운 옛친구였다. 무엇을 쓴다고 하는 고생은 역시 자기가 써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한다. 한권의 저작에서는 그 나름대로 작가 자신의 생명을 드러내어 놓고 전력을 다한 생명의 약동이 뚜렷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기란 아주 드문 일이다. 어쩌다가 그런 책을 만났을 때처럼 기쁜일은 없으며 말할 수 없는 충실감을 느낀다. 반대로 신간광고를 믿고 기대감을 가지고 펼친 책에서 완전히 독자를 우롱하는 불성실한 작자의 태도가 보였을 때처럼 화나는 일은 없다. 극소수의 "인텔리"만이 책을 읽었던 것은 이미 과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근대교육의 보급은 문맹을 추방하여 지식의 독점을 배제했다. 이제부터는 지식의 대중화와시대 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정보의 흐름속에 어떻게 주체적인 인간형성을 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자칫하면 사고조차도 타인의 두뇌를 빌려써서 자신 스스로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마는 사람조차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의 효용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단지 지식의 충족 뿐만이 아니다. 책을 통하여 저자와 독자의 대화가 생명의 파동을 낳고 인생의 조각을 깊게 새겨가기 때문이다. 독창의 존귀함 "존경 받을만한 인물의 자격이란 무엇인가"라고 어떤 사람에게 물으면 '인격이 있는 사람' 지도성이 있는 사람' 등과 함께 '학식,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기분좋은 울림으로 들리는 듯이 지식, 교양을 갖는 일이 사회에 있어서 "리더쉽"을 위해 불가결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동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독창의 존귀함을 더욱 더 사회가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호소하고 싶다. 시라고 하는 것은 운을 달기도 하고 오자나 철자의 어구를 바르게 줄지어 만드는 것이다.^36,35^라고 생각하여 만들고 있는 동안은 지식이나 경험에 따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형식에 구^36^애됨이 없이 흉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 자유시가 탄생한다. "서양 음악은 발레"라고 한다. 장구하고 오랜 전통을 유연하게 넘어서서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 등에 맞춰 일본무용을 난무한다면, 거기에 새로운 독창적인 예술이 생겨나지 않을까. 일본은 멀리는 중국에서 문화를 흡수하고 가깝게는 메이지유신에 의해서 서구로부터 다량의 지식을 받아들였다. 거기에서 "박식"을 존중하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이제까지의 일본에는 박식의 학문, 모방의 문화가 물결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욱 더 독창적인 새롭고 산 학문, 문화의 꽃을 찬란하게 개화시켜나가는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지식과 경험의 문화는 어느쪽인가 하면 완성된 아름다움이며, 독창적인 그것은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다. 박식의 학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안이하며 독창적 학문은 고뇌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보다 커다란 가치를 낳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박식은 일부 사람의 것이다. 독창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갖는 특성을 가졌다. 서민의 평범한 독창성이 현실생활에 윤택을 주고 가치를 낳고 있다는 것은 자주 보고 듣는 일이다. 어쨌든 학문에 있어서도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는 독창적인 연구가 중요시 되고 가장 존중되어가는 사회였으면 하는 것이다. 초대 마키구치 회장, 나의 은사인 도다전회장의 "가치론"이나 "오전수 업제도론" "추리식 지도론"은 서민의 감정에 밀착된 독창적인 학문이며 교수법이었다는 그 업적을 겨우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독창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박사학위가 주어진다면 얼마만큼 위대한 서민문화가 탄생할까^36,36^라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신학기 청춘의 4월. 미래의 희망에 가슴부푼 많은 대학생이 탄생한다. 나도 이들 젊은이의 전도를 마음으로부터 축복하고 싶다. 얼마전 조간에 동경대 합격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실려있었다. 가방을 높이 치켜들고 전신으로 기뻐하는 모습, 여학생이었다. 모녀가 서로 껴안고 감격하여 어쩔줄 모르는 모습. 가지가지의 희비극이 금년에도 전개되어 갔을 것이다. 그 지면 한쪽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동경대에 들어갔다든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요. 나의 주위에도 자식을 동경대에 꼭 넣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선을 따라가는 평온무사한 인생이란 대체로 시시한 것이다"라고 동경대, 동경대하며 떠들기 전에 파란많은 인생을 견디고 고뇌와 싸울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문단에서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는 사토 아이코씨의 예리한 말이었다. 사람은 제각기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합격한 사람은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고, 운이 나빠서 불합격된 사람도 긴 인생의 여로에 있어 일단은 좌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사히 합격하고 순조롭게 "스타트"한 사람보다도 훨씬 위대한 재보의 쐐기가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깊이 명기하기 바란다. 특히 나는 불합격된 사람들에게 가슴 아픔을 느끼면서 그 전도의 인생이 보다 깊고 크게 구축될 것을 기원한다. 나는 많은 학생들을 알고 있다. 몇번의 재수생활에서 수험에 대한 첫 뜻을 관철하여 지금 사회의 제일선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쾌활하게 말한다. "나도 두 번 동경대에 떨어졌어요" "대학시절에 2 년이나 낙제하고 말았어요" 이제와서 말할 수 있는 그들에게 있어 그것은 이미 그리움과 추억의 역사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그늘도 없으며, 그들의 영광된 인생에 있어서 그것은 깊은 체험과 토대가 될지언정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내가 관계하는 대학에 다음과 같은 말을 보냈다. "영지를 연마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대여 그것을 잊지 말라" "노고와 사명 속에서만 인생의 가치(보배)는 생긴다" VI. 나의 청춘시절 청춘의 하늘 나의 고교시절은 전쟁이 끝나고 막 시작되었다.^36,36^고등학교라 해도 6, 3제 직전인 구제중학의 고학년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폐허가 된 시가에서 올려다 본 맑디 맑은 저 푸른 하늘색은 지금 생각해도 상쾌하다. 나의 청춘의 "하늘색"이기도 했다. 실생활은 돌더미 위에 사는 듯한 어려운 시대였다. 나도 그 무렵의 젊은이로서 언제나 배를 주리고 있었으며 폭격으로 가난한 몸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나의 흉중은 일시에 희망의 꽃이 핀 듯이 부풀어 있었다. 겨우 되돌아온 귀중한 평화^36,36^나의 신변에도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하였다. 희생이 컸던 만큼 나의 꿈과 희망은 한없이 부풀었다. 야간 학교에는 교실도 황폐해지고 알몸의 전구가 덩그러니 천정에 매달려 있었다. 허술한 책상과 의자, 더구나 정전은 매일밤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가 원기왕성했다. 한결같이 갖가지 생활상의 불편을 안고 있었으나 고생을 고생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저 패전 직후의 활짝 개인, 푸르고 맑은 하늘을 한사람의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모두가 함께 공부를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책도 읽을 수 있고 서로 장난을 칠 수도 있다. 이젠 이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으며 몹시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지식에 굶주려 있었다. 난문일수록 그 노력은 기쁨으로 돌아온다. 지식은 마른 모래가 물을 흡수하듯이 극히 자연스럽게 흘러 들었다. 매일 밤마다 일종의 충실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의 독서벽은 여기에 또 더해져서 고전, 신간, 동서양에 걸친 문학서 등 손에 들어오는 것을 닥치는 대로 탐독하였다. 박봉 속에서도 용돈이 얼마 모이면 서점에 뛰어가 다행히 아직 남아 있던 책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지금 시대가 바뀌고 생활경제는 풍족하게 되었으나 나의 고교시대의 맑고 푸른 하늘은 어딘가 먼 곳으로 간 것 같다. 여러분의 "청춘의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스모그에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만 여겨진다. 도대체 그 스모그는 무엇일까. 현재의 일본사회는 유감스럽게도 과거에 전쟁을 지도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절대 평화의 푸른 하늘을 21세기에 바라보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이제부터 이러한 스모그에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스승과의 만남 나의 인생에 도다 죠세이라는 은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무와 같은 존재였음에 틀림없다.^36,36^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은 것은 얼마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선생님의 생전에 나는 그저 정신없이 분투하면서 지내왔다. 그리고 선생님이 서거하신 이래 10 년, 은사의 유업을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온 셈이다. 지금, 이제까지의 20 년을 되돌아 보고 오늘날까지 성취한 것들을 문득 돌이켜보니 그것은 모두 은사가 생전에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이야기한 것이 그대로 실현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볼 때, 어떤 경이로움을 가지고 엄연한 은사의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21 년전 그 무렵, 도다 죠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그때부터 그는 20 년후의 오늘날을 분명히 예견하고 더 먼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47 년, 19세의 더운 여름밤이었다. 점령하의 도쿄, 죠난일대는 아직 불타버린 들판이며 활량한 밤의 여기저기에 작은 가건물이나 방공호가 산재하여 희미한 등불이 비칠 뿐이었다. 우리집의 가업이었던 김 제조업은 전시중에도 그럭저럭 지속되고 전쟁에 빼앗긴 네명의 형들은 한사람이 전사하고 나머지 세사람은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불황의 파도 속에 시대는 크게 전환되어 거리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소리가 팽배했고 기성의 권위라는 권위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있었다. 철이 들고나서 천황이 절대라고 하는 국가주의를 주입받았던 우리들 세대는 싫어도 일체가 공허로 변하고 말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청년, 초조와 불안이 날이 갈수록 심신을 들볶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와 같은 생활 속에서 한사람 두사람 이렇게 벗이 모여 작은 독서그룹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활자에 굶주린 청년들은 타다 남은 약간의 책을 서로 가져와서는 그저 탐독에 열중했다. 문학서, 철학서, 위인전기, 과학해설서, 무엇이라도 닥치는 대로 읽고 감상을 서로 이야기했다. 논의는 한없이 계속되었으나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자 몸에 익혔다고 생각했던 정신의 지주는 금방 상실되고 마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이 그룹 외에 국민학교때부터의 친구로서 가끔 찾아오는 동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친구는 자기 집에서 "생명 철학" 에 관한 모임이 있다며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그때 도다 죠세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호기심에서 권유하는 대로 독서그룹의 동료도 데리고 나갔다. 약간 쉰 목소리로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40 대였다. 도수가 높은 두터운 안경이 빛나고 넓은 이마는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내용은 처음에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불법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보면 주변의 일상생활이나 현대의 정치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어려운 불법용어가 나오기도 하고, 나에게는 실로 불가사의한 미문의 철학이었다. 이른바 종교가의 강화도 아니고 전통적인 철학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야기는 극히 즉물적이며 관념을 가지고 노는 곳이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사실들이 그대로 고도의 진리가 되어 가는 듯 했다. 방에는 중년남자들과 가정주부, 그리고 젊은 여자와 원기왕성한 청년들로 가득했다. 옷은 한결같이 허술했으나 꼼짝않고 도다선생님을 주목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였다. 거리의 선량한 서민층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거기에는 불가사의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도다선생님은 내가 그때까지 만났던 어떠한 타입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말투이면서도 한없는 따뜻함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응시했고 자주 선생님의 시선과 마주쳤다. 나는 당황하여 눈을 내려뜨고, 잠시 있다가 얼굴을 들면 선생님의 시선은 아직도 나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으나 어느 사이엔가 구면같은 친숙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는 나를 선생님에게 소개했다. 선생님은 호오, 라고 말하며 안경너머로 나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그리고 뭔가 알았다는 듯이 친근감 넘치는 미소를 뛰우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 지금 몇살인가" 나는 구면인듯한 감정에 즉시에 대답했다. "19세 입니다" "19세인가" 하고 선생님은 무엇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19세라고 하면 내가 도쿄에 나왔을 때다. 훗카이도에서 처음으로 도쿄로 나왔다네^5,5,5^" 선생님은 그때, 은단을 씹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 무렵 품고 있었던 인생상에 대해, 그리고 사회상에 대해 몇가지 의문을 자연히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36,36^올바른 인생이란 어떠한 인생을 말합니까. 참된 애국자란? 천황제에 대하여? 불법의 진수란? 선생님의 대답은 솔직했으며 주저함과 막힘이 없었다. 힘안들이고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뽐내는 것도 없고 거짓도 없으며, 확고한 것의 본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만족하여 진리가 이렇게도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동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날밤으로 부터 10일후인 8월 24일 나는 입신을 결의하여 창가학회원이 되었다. 점차로 불법철학의 정당함도 알게 되었고 도다 죠세이라는 회유의 인격을 알기는 했으나 아직 마음에 주저함이 남은 채 낮에는 어느 기업단체에 근무하고 밤에는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 년이 지났을 무렵 선생님이 경영하는 출판사에 근무한다는 것이 마치 자연스런 결과인냥 결정되었다. 1949 년 정월부터 은사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은 힘들고 바빴다. 패전후의 일본경제는 난파선과 같이 "인플레"의 파도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하나인 은사의 사업도 이 불황의 파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49 년 말부터 51 년 봄까지 연일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많았던 사원은 한사람, 두사람 떠나고, 어느새 채권자와 싸우는 것은 나 혼자가 되고 말았다. 나의 건강도 생활도 아주 위태로운 상태에 빠져 있었으나 결토 선생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옥 끝까지라도 따르겠다는 결심이 어느 틈엔가 굳혀져 있었다. 은사를 믿고 대성인의 불법의 올바름을 믿고 마지막 한계에서 고군분투를 계속한 것이다. "나는 사업에는 망했으나, 인생과 불법에는 망하지 않는다" 은사는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통절하게 느껴져 왔다. 일체는 여기에서 재건의 길로 향했던 것이다. 은사의 사업재건과 학회재건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사람의 제자인 나를 가엾게 여겨,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부 가르쳐 주마" 그때부터 수년에 걸쳐 선생님의 집에서, 그리고 아침 일찍 회사에서 개인교수가 시작되었다. 법률, 정치, 경제, 물리, 화학, 천문학, 한문 등, 외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간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자기 속에 있는 모든 학문을 나에게 옮겨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은사의 학문의 길은 스스로 연찬하신 것이었다. 훗카이도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샷포로에서 견습점원으로 일을 배우면서 국민학교 준교원 자격을 취득하여, 유바리 탄광의 국민학교에서 교원이 되었다. 다시 정교사 자격을 획득하셨다. 19세때 상경하여 생애의 스승인 마키 구치쓰네사부로 선생님을 만나, 야간중학에 편입했고 구제중학 4 년 수료의 검정시험에 합격한 후 주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처럼 거의 독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은사에게 있어서 학교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필요했다. 특히 수학에는 조^36^예가 깊어서 시습학관이라는 학원을 성대하게 경영하고, 또 수험 참고서로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전전의 저 도다 죠가이저 "추리식지도산술"은 당시 백만부의 베스트셀러였다. 지금의 연배자들 중에는 이 책에 대한 추억을 지닌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지각색의 학문 외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가르침 받은 것은 불법의 생명철학이었다. 불전이나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를 상세하게 해설하면서 현대사상과 대비해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었다. 학회재건에 있어서의 자신의 활동, 일상생활의 일체가 선생님의 목숨을 건 가르침이었다고 나는 지금 끊임없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나도 또한 선생님의 엄한 훈도에 열심히 견디었다. 그리고 일체를 나의 몸에 받아들인 셈이다. 서거 직전까지 꾸지람만 받는 불초의 제자이기는 했으나. 오늘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도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 창가학회를 이어받아 광선유포를 사명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업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어느 일순간도 도다선생님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행복은 도다 죠세이라는 생애의 스승을 만나 사제의 길을 관철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1969. 1. 10) 나의 결혼 아주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만 나의 결혼은 지금 상기해도 당시 자신의 신변에 처해 있는 상황이 짙은 색깔로 남아 있다. 세월의 흐름은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나의 결혼에 대한 갖가지 추억은 반드시 세월의 안개 속에 희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1950 년 여름부터 1951 년 봄에 걸친 끝없는 고경속에서 은사와 함께 온갖 신고를 다하고 있었다. 나의 미숙한 청춘의 혼신을 다한 용기를 후회없이 그 고경속에서 불태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더구나 이 고투는 은사와 두사람만이 서로 나누었던 만큼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사로 남아 있다.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또한 체력의 쇠약이 얼마나 정신을 잠식하는 것인지 그러한 일체는 나는 몸으로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은사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실시트에 전신의 땀 흔적이 남았고 나는 발열한 몸이었으나 분주하게 마구 돌아다녀야 했기에 나의 몸을 돌볼 틈조차 없었다. 사태는 참으로 절망적으로 보였으나 긴박한 싸움이라 하는 것에는 막힘이 없는 것일까. 은사의 위대함은 역시 유연한 여유로 스스로를 객관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여유가 젊은 나에게 유일한 지탱이며, 절망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의 별이었다. 나는 은사의 사명만을 믿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고투에서의 탈출을 분명하게 의식한 것은 1941 년 5월의 일이었다. 그것은 재건이라 하기 보다 전혀 새로운 전망을 수반한 신생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시야 위에 갖가지 광경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러한 광경 속에 지금의 아내도 한사람의 젊은 여성으로서 나의 눈앞에 비추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불가사의하게도 어떤 특별한 한여성으로서의 영상이 서서히 나의 마음 속에서 커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몰래 서정시를 쓰기 시작하여 감정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도 했다. 감정의 결정작용은 날마다 강해져 그 사이에 어떤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어떤 예정된 회합이 있었는데 시간전이기는 했으나 소낙비에 젖어, 나는 회합장소에 뛰어들어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녀가 혼자 있을 뿐이고 다른 누구도 없었다. 나는 평소의 감정을 담은 한편의 서정시를 그 자리에서 적어 허둥지둥 건네주었다. 그녀가 읽을 것을 두려한 나는 집에 돌아가서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순진하게 종이조각을 핸드백에 넣었다. 그때의 나의 표정이 어떠했을까, 아마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의 고백을 감행했다는 것에 만족하여 일의 성부는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쓰면 매우 로맨틱하게 들릴런지도 모르겠으나 이 이야기는 20수년전의 일이며 23세라는 청춘의 뇌세포에 의한 소행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 직전까지 수년간 계속된 격렬한 고투속에서 나는 세간의 때를 싫도록 뒤집어쓴 만큼 그와는 반대로 나의 마음의 왕국만은 굳게 지키고 온갖 꿈에 넘치고 있었다. 그것들이 자아내는 꿈을 나는 그녀에게 일거에 맡겼던 것이다. 그녀와의 편지왕래가 시작되었다. 다마가와의 제방을 자주 거닐기도 했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서로에게 공통된 어떤 사명의 자각이 그녀에게도 커가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애를 결정짓게 한 것이다. 유희적인 안이함은 전혀 없었다. 사명에 사는 미래를 자신들의 것을 하려고 한 것 뿐이다. 노력이라기 보다 환희가 앞서 있었다고나 할까. 앙.모르다의 결혼후에 "결혼에 성공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약혼 시절에 영원한 연계를 맺고 싶다는 의지가 진지하다는 점이다"라고 있지만 당시의 우리들은 이와 같은 교훈은 몰랐지만 어느새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스스로 회고하여 우리들의 결혼이 나의 생애에 있어서 바꿀 수 없는 보배가 된 지금, 결혼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이 얼마나 엄숙하고 진지헀는가에 일체가 달려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아는 것이다. (1974. 4. 4) 하나의 거울 나의 바로 옆에 거울이 하나 있다. 대략 손바닥 크기의 유리 파편이라고 하면 파편에 불과하다. 그 앞뒤에는 촘촘하게 긁힌 많은 자국들이 있다. 그러나 물체를 비추어 보는데에는 불편이 없다. 어딘가 쓰레기 버리는 장소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약간 두터운 거울 파편이지만 나는 이것을 버릴 수가 없다. 나의 부모는 1915 년에 결혼을 하신 것 같다. 이때 혼례도구의 하나로서 양질의 거울이 달린 경대가 있었다. 거울은 흐림도 없고 비뚤어짐도 없이 신부차림의 어머니를 비추었을 것이다.^36,36^20수년이 지났을 때, 이 거울이 깨졌다.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큰형인 기이치와 나는 거울의 파편속에서 적당한 것을 각기 얻어서 자기 것을 했다. 말하자면 깨진 거울 한 조각이다. 시대는 이윽고 전쟁으로 돌입해 갔다. 네명의 형들은 차례차례 전쟁터로 가고 말았다. 어떤 형은 중국대륙으로, 다른 형은 동남아시아에서 싸우고 있었다. 네명의 아들을 전쟁에 빼앗긴 어머니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갑자기 늙어 버렸다. 이윽고 매일을 공습하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지키듯이 이 깨진 거울 한 조각을 몸에서 떼지 않았으며 가슴에 품고 소이탄 속을 뚫고 빠져나간 적도 있다. 전쟁이 끝나고 큰형이 버마에서 전사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을 때, 나는 형의 가슴 주머니에 들어 있을 한 개의 거울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은 전쟁터의 한 때, 자기의 수염난 얼굴을 그 거울 파편에 비춘 적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고국의 어머니를 멀리서 생각하면서 그리워했음에 틀림없다. 또 거울의 파편 하나를 나누어 갖고 있던 나는 그 형의 심정을 애처롭게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나의 거울을 손에 들고 형을 그리워했다. 패전후의 거센 파도속에서 나는 굳이 집을 나왔다. 그리고 비좁은 아파트의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살풍경한, 가난한 방에는 거울 하나 없었으나 이 거울 파편은 책상서랍에 간직해 두었다. 아침 출근전에 이 거울로 나의 여윈 얼굴을 비추어 수염을 깍고, 머리를 빗고, 포마드를 바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루 한 번 이 거울을 손에 잡을 때 나는 싫어도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연히 중얼대고 있었다.^36,36^어머님, 안녕하신지요 라고. 하루에 한 번 틀림없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일상은 지금 생각하면 불량청소년 방지의 최고 수단이었던 것 같다. 허탈한 사회 속에서 나는 드디어 자포자기의 원인이 되는 기연을 전부 피할 수가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한 개의 거울 덕택이다. 때때로 거울은 안색이 심하게 나쁜 것도 가르쳐 주었다. 건강의 위기를 알게 된 나는 외식권 식당에서 두사람분의 식사를 했다. 또한 때때로 광대뼈가 나온 인상이 나쁜 나의 얼굴을 보고 소름이 끼쳐서 반성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 기분 좋은 나의 얼굴을 보고 휘파람을 불 때도 있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의 무언의 깊은 배려와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이리라. 깨진 거울 한 조각은 결국 내가 세상에 임하는 자세를 바르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은사가 19세 때 뜻을 세우고 훗카이도의 한촌에서 상경할 때, 어머님께서는 한 장의 "아쓰시"의 겉옷을 선생님에게 주었다.^36,36^이것만 있으면 어떠한 괴로운 일이라도, 이것을 입고 일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라고. 흰 천에 감색 무뉘를 곁들여 실로 천을 총총이 누빈 "아쓰시"는 어머님의 정성과 진심으로 꿰매어 완성시킨 것이었다. 은사는 일생동안 이것을 간직하고 있었다. 1945 년의 종전 직전, 은사는 출옥하여 자기집에 돌아와서 전제를 면하고 "아쓰시"도 무사했다는 것을 알고서는 맨먼저 부인에게 이야기한 것은^36,36^저 "아쓰시"가 무사하다면 이젠 나는 괜찮다, 생활 따위의 걱정말라고 했다고 한다. 다 낡은 "아쓰시"도 상처투성이인 한 개의 거울도 어머니의 기원을 전하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힘을 갖고서 인간의 약한 마음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풍적인 감상이라고 남들은 비웃을런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 이 심정은 조금도 고풍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살아 있다. "아쓰시"나 거울이 약간 고물로 변한 것 뿐이다. 1952 년, 내가 결혼했을 때, 아내는 새로운 경대를 가지고 왔다. 나의 얼굴은 새로운 거울에 비추게 되었으나 어느날 아내는 깨진 거울 한 조각을 손에 들고 미심쩍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잡동사니 폐품도 이 보다는 더 좋을 것이다. 아이의 장난감으로서는 전혀 매력이 없다. 쓰레기통으로 갈 운명을 알아차리고 비로서 나는 아내에게 어머니나 전사한 형의 일, 이 거울에 파편에 얽힌 내력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작은 오동나무 상자를 찾아내더니 거울을 그곳에 넣어 무사히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 개의 보잘 것 없는 만년필이라 해도 그것이 대작가의 유품이라면 가지가지의 걸작의 비밀을 말해 주고 있으리라. 사람들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당연한 일로 생각될 것이다. 나의 이 거울은 나 자신의 전하기 어려운 청년의 나날과 어머니의 기원과 불행한 큰형의 일을 한 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한권의 책 '풀잎' 얼마나 싱싱하고 늠름한 내용을 간직한 제명인가. 거기에 청춘이 있다. 희망이 있다. 자연이 있다. 그리고 평등한 대화가 있다. 지금 이 책의 판권을 보면 1949 년 5월 31일 발행으로 되어 있다. 내가 21세였던 해이다. 내가 이 한권을 간다의 어느 서점에서 구입한 것은 23세경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발행 직후는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사고 싶어서 산 책이다. 아카시아꽃이 핀 작은 가지가 그려진 수채화의 아름다운 표지가 선명하였다. 505쪽의 두터운 책이다. 당시 신간의 종이질은 어느 것이나 형편없을 정도로 저질의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책만은 상질의 화지에 인쇄되어 매우 멋진 왕자의 풍격이 있었다. 정가 550엔을 지불할 때 나는 갑자기 지갑이 가벼워져 순간 염려스러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라면 2,3천엔은 하는 책이다. 생각지도 않던 충격이 그 후에 기다리고 있었다. 첫머리에 "사람의 자주를 나는 노래한다" 라는 근대의 인간선언은 당시의 나에게는 강렬한 것이었다. 사람의 자주를 나는 노래한다, 한사람의 소박한, 인간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언한다, "민주적" 이라는 말을. "대중과 하나가 되어"라는 말을. 생리학에 관해서는 머리끝에서 발톱 끝에 이르기까지, 나는 노래한다. 인상만이, 두뇌만이, "시신"에게 있어서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감히 말하면 완전한 "인체"야 말로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성"을 "남성"과 구별하지 않고 나는 노래한다. 나에게는 생명의 찬가로도 들렸다. 여기에는 과거의 망령은 없다. 현재에서 미래에의 찬란한 조망이 시인의 눈에 비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신세계의 탄생과 신세기의 도래를 예언한 것이었으리라. 구세계의 견고하고 무거운 유럽문명과 깨끗한 결별의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월트.휘트먼은 인종적인 편견을 분쇄하고 계급의 벽을 타파해 갔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통풍이 나쁜 것 일체를 미워하고 미래의 건설에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는 자기자신을 가장 먼저 노래했다.^36,36^1855 년 초판본에 실린 권두의 장시 "나 자신의 노래"가 그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하고 자신을 노래했다, 그래서 내가 몸에 입는 것은 그대에게도 입게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속하는 일체의 미분자는 마찬가지로 그대에게 속하는 것이므로. 이 장시를 더듬어가면 중간에 그의 인간상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월트, 휘트먼, 한사람의 우주인, 거짓없는 진짜의 맨하탄 토박이, 소동을 좋아하고 살이 찌고 육감적이며 잘 먹고, 잘 마시고, 훌륭한 씨받이, 홀짝거리는 자가 아니고 남자들이나 여자들 위에 떡 버티는 자도 아니고 그들로부터 초연하게 떨어져 있는 자도 아니다. 무례한 자 이상으로 겸손한 자도 아니다. 이와 같이 시인의 눈에는 신세계에 약동하는 삼라만상이 약동하는 그대로 비치었다. 그는 신계기의 바쁜 시인이었다.^36,36^산이나 강이나 바다를 노래하고 들판이나 도시의 구석까지 읊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인간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농부나 광부나 노동자나 뱃사람이나 노^36^예나 창부까지 읊어갔다. 더욱이 암살된 대통령이나 좌절한 혁명가나 고투하는 개척자나 전쟁에서 부상당한 자나 남편을 잃은 아내, 자기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배나 기계나 마천루까지 읊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다. 한 우주인은 흐림 없는 사랑의 충동을 믿고, 자유와 평등을 민중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19세기의 미국에서 열심히 노래부르며 이 세상을 끝마친 것이다. 패전후의 점령하에 있어서^36,36^한사람의 가난한 청년이었던 당시의 나는 이 시집과의 만남을 지금은 그리워하며 감사하고 있다. 나는 그 무렵의 떠들썩한 회색풍경 속에서 이 책에 의해 미래를 전망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의 감동은 애착으로 변했다. 나는 좋아하는 시를 몇가지고 암송하여 심야의 귀가길에 낮은 소리로 낭독하기까지 했다. 어느 때는 피로한 몸을, 신궁외원의 잔디 위에 내던지고 손에 든 이 시집을 탐독한 가을날도 있었다. 지금도 이 책 속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 세장이 끼워져 있다. "풀잎"은 나의 청춘과 함께 있었다. 아니 이 시집에 청춘이 있었을 것이다. 용기도 미래도 정열도 청춘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시인의 기원과 함께 이 한권에 있었다고 해도 좋다. 지금 조용히 생각하면 휘트먼의 출현은 그 당시 이단시인이라고 생각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초로 그를 이해한 오직 한사람이 있었다. 에머슨은 그의 시를 "태양광선"이라고 찬탄하며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원시의 태양으로부터 두터운 구름사이를 통과하여 강렬하고 청정한 광선이 지상에 도달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에 의해 나는 확실히 따뜻함을 얻었고 오늘날의 사명에 자신을 가졌다. 이 시집의 출현으로부터 벌써 백년이 지났다. 그러나 휘트먼 스스로 읊었듯이 "동료여 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것을 접하는 것은 인간을 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녕)라는 것이리라. 나에게 있어 평생동안 잊지 못할 한권의 책이다. 한 장의 그림 나의 거실에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그것은 색인쇄의 에칭(부식동판화)을 액자에 넣어 걸은 것이다. 내가 그림이라는 것을 방에 장식한 최초의 액자인 것이다. 평범하다고 하면 이만큼 평범한 그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리운 기념물이다.^36,36^한사람의 생기발랄하고 천진난만한 아가씨와 그리고 젊음을 마음껏 과시하는 듯한 발랄한 홍안의 청년이 방 한쪽에서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 아가씨 옆에는 실을 뽑는 물레가 있고 흰실을 감은 것이 선명하다. 고풍적인, 긴 의상을 입은 아가씨는 앞치마를 걸친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청년은 문득 생각이나서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띄어온 것일까. 청년을 응시하는 아가씨의 표정은 가련할 정도로 귀엽다. 그 청년의 뺨은 빛나고 민첩한 몸은 의자에 앉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빛나는 젊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작자인 화가의 눈만이 그 젊음의 아름다움을 믿고 그것을 알고 그렸다고나 할까^5,5,5^. 이러한 그림이지만 순진한 젊음이 실로 가슴을 후련하게 할 정도로 넘치고 있다. 청춘의 자랑이라든가, 부끄러움이라든가, 어색한 생각이라고 하는 쓸데없는 것은 이 화면에는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싱싱하고 청렬한 정열을 간직한 순수한 서정이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는 정경이다. 이 순진하고도 절실한 젊음이라는 것을 나는 소중히 여기는 그러한 기분으로 가끔 이 액자에 눈을 돌리곤 한지 8 년이 지났다. 아직도 바꾸어 걸 기분은 조금도 없다. 아니 틀림없이 평생 곁에 둘 것이다. 내가 이 한 장의 그림을 손에 넣은 것은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였다.^36,36^ 1961 년 가을,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을 때였다. 파리의 거리들을 걷고 있노라면 마치 예전부터 알던 고시에나 온 것 같은 불가사의한 친근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착각이라고 알고 있기는 했으나 묘한 기분이었다. 어느날, 활짝 개인 가을하늘 아래, 어느 공원 안을 산책하고 있을 때, 나의 착각이 무엇에서 유래하는가를 문득 알게 된 것이다. 이 거리, 이 공원, 나는 정말 알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위고의 "레미제라블" 을 20세 전후에 탐독하고 있었던 나는 이 대로망의 무대인 파리라는 도시에 어느 사이에 친숙해져 있었던 셈이다. 내가 착각한 것은 그것을 상기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레미제라블" 이 명작인 까닭을 파리에 와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나서, 눈에 비치는 풍경은 갑자기 친근감이 더하여 주위를 몇번이나 살펴 보는 것이었다. 공원 앞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나의 발은 그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채의 작은 그림가게가 있었다. 여러개의 그림이 걸려 있었으나 대부분은 명작이라고 생각되는 그림의 복사였다. 기왕 복사라면 우선 판화나 에칭(부식동판화)쪽이 더 낫다고 하는 기분으로 몇장을 구입한 것이다. 한 장에 1,000엔 정도였다. 이 몇장중의 한 장이 지금도 액자에 들어있는 젊은 여자와 젊은이의 그림이다. "레미제라블"의 연상에서 때마침 손에 넣은 이 한 장에 그려진 젊은이를 나는 자유의 전사 마리우스와 장발장이 손수 키운 고아인 코젯트, 이 두사람에 비교하면 바라보는 버릇이 어느 틈에 몸에 배고 말았던 것이다. "레미제라블" 파리 한 장의 에칭 "마리우스"와 "코젯트" 액자 속의 그림은 이 연상의 실을 견고하게 이어 벽에 걸려 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젊고, 청춘의 싱싱하고도 순수한 지속을 한평생 잃지 않으려는 나의 마음의 거울이 되려 하고 있다. 생명의 영원한 빛남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청춘의 순수한 지속,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먹게 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청춘을 난무하고 있는 모든 사람도. 그러나 정신은 늙고 싶지 않다. 원숙하다는 따위로 속이는 인생을 나는 보내고 싶지 않다. 생명의 진실한 모습은 멸, 불멸을 나타내면서도 영원히 불변일 것이다. 내가 사무를 보는 회관에 한 장의 그림이 걸려 있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야마카이이의 작품이다. 그것은 덴마크의 "녹원"의 너도밤나무 수풀 속의 "푸른 늪"이라는 그림이다. 자연풍경이 스스로 호소하는 서정을 멋지게 포착한 희유의 명수를, 히가시야마카이이외에 나는 모른다. 이 그림의 풍경이 내포하는 확고한 생명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조용하고, 깊게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와 언제까지나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떠한 한그루의 나무도 그의 손이 닿으면 하나의 성격마저 지니며 그 상쾌하고도 싱싱함을 발산한다. "푸른 늪"의 너도밤나무의 굵은 나무가지는 정적 속에서 푸르고 맑은 수면에 꼼짝하지 않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채, 나무의 생명을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한 장의 풍경화 속에도, 풍경과 화가가 나누는 만물긍정의 대화가 숨쉬고 있다. 따뜻하고 조용하며 감동에 넘친 화가가 마음까지 살아서 맥동치고 있다. 하나의 풍경의 개성을 내포하는 그 생명에서 포착할 때, 그것이 나에게는 우주에 통하는 웅변의 실증으로까지 여겨진다. 불법에서 말하는 "해인삼맥"라는 사의 할 수 없는 경지는 아마도 이와 같은 경지인지도 모른다. 한 장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두장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 죄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히가시야마카이이의 한 장의 그림이 억지로 발언을 강요해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의 기쁨 바쁜 일상생활에 쫓기고 있는 나는 유감스럽게도 여기저기의 음악회에 참석할 만한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음악이라 해도 나의 경우는 주로 레코드로 듣는 음악이다. 그대신 까마귀가 울지 않는 날은 있어도 레코드를 듣지 않는 날은 없다. 이것이 이 20여년에 걸친 나의 습성으로 되고 말았다. 목이 말라서 샘물을 마시듯이 밤의 정숙한 한때, 나는 꼼짝 않고 레코드에 귀를 기울인다. 누구에게 듣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나 혼자를 위한 것이다.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듣는 것이 일과이다.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듣는 것이 일과이다. 이렇게 해서 판의 홈이 완전히 마멸되어 버린 레코드도 꽤 쌓이고 말았다. 이와 같은 습성은 평생동안 변함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6,36^그것은 20세 전후인 종전 직후의 일이다.^36,3^좀 더럽혀진 좁은 아파트에 살면서 전후의 살벌한 풍경은 나의 마음까지도 거칠어지게 했다. 나날의 노력도 모든 선의도 모두 배반당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의 황폐라고 관념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청춘의 열정은 무익한 파멸에의 광폭한 도약대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한 장의 레코드가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는 음악을 즐기기 위해 레코드를 듣는 것이 아니다. 없앨 수 없는 나의 심중을 울리는 좋은 곡의 음파에 의해 공명하여 때론 울려퍼지고, 때로는 발랄하게 소생한 것이다. 나의 마음의 오저에도 묘한 악기가 존재하여 공명에 의해 그 금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얻기 어려운 남 모르는 기쁨이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자각하게 된 기쁨이라고나 할까.^36,36^말할수 없는 환희의 한때를 나는 레코드의 음악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베토벤의 제 5교향악 "운명"이 좁은 방안에서 가득 울려퍼졌을 때, 그 중후한 소리의 한복판에서 놀라워 했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제 4악장에 이르러 나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 듣고나서 정신을 차렸을 때, 상쾌하고도 늠름한 용기가 나의 혈액 속을 돌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어느 사이에 흉중은 만족스러움에 가득했다. 이후, "운명"의 레코드 판은 홈이 급속도로 마멸되었으나, 그 무렵 더 마멸된 판중에 슈만의 가곡 "유랑의 백성"이 있다. 이 집시의 심야의 광연이 끝나고 밤이 훤하게 밝아질 무렵 수풀 속의 추이는 항상 피로에 지쳐 있던 나의 두뇌를 씻어주며 위로했고 평정하고도 순수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듯했다. 나는 구차한 음악이론이나, 그럴 듯한 음악해설서와는 전혀 연이 없는 한사람의 음악애호가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곡의 선택기준은 좋은가, 싫은가 라는 단순 소박한 기분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싫어진 곡은 돌아보지 않는다. 좋은 곡은 싫증을 모른다. 자연히 나의 선택에는 약간 편애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 편애를 적당치 못하다고 말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 타고난 심정의 치졸함에서 유래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부득이한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음악에 관해서는 나의 심정에 정직하며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이라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심정에 이야기를 거는 것이며 음파라는 매개 이외에 구실이나 이론이나 사색 등을 일체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급도 저급도 없다. 교향곡이든 협주곡이든 대중곡이든, 민요나 가요곡이든 좋아하는 곡은 좋아한다. 또한 동서양을 따지지 않는다. 나의 생명이 공명하는 음악은 좋아한다. 수년전부터 나는 미아시로미치오의 거문고의 음색에도 마음이 이끌리게 되었다. 처녀작 "물의 변태" 로 시작한 미치오의 거문고의 현대적인 창작은 어느 것이나 나에게 있어서 버리기 어려운 보배가 되었다. 심야, 자기전의 한때, 2층의 내방에서 옆으로 드러누워 때로는 1시 이상이나 들은 적도 있다. 나의 심정의 금선은 더욱 소년시절에 귀에 남은 다이쇼거문고의 리듬조차 그리워한 적도 있다. 음악은 나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국내나 해외여행을 할 때는 테이프레코더의 휴대를 잊어버린 적이 없다. 여정이라 하는 것은 더 한층 음악에 향수를 더하는 법이다. 생각치도 않은 감개에 잠기는 일도 자주 있었다. 어쨌든 음악처럼, 인간의 심정의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는 이만큼 정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언어도 필요없다. 논리를 쫓을 필요도 없다. 이해하려는 따위의 자세를 갖출 어리석음을 결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의 마음 속의 악기는 자연히 공명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공명을 더없이 소중히 하고 싶다. 시대를 초월하고, 거리를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여 각기 서로가 진심으로 정직하게 말을 건넨다. 거기에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대화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이야기하는 언어가 달라도 풍속습관이 달라도 문명의 심도의 차가 아무리 크더라도 서로의 심정의 공명은 음악의 힘에 의해 완수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서로 그 심정에 있어서 공명하고, 피비린내 나는 지구의 풍경을 말살하는 것이 20세기에서 21세기로 가는 인류의 최대과제라고 한다면, 음악이야말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의 하나로서 각광 받지 않으면 안될 숙명에 놓여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VII. 청춘의 벗 청년기 청춘은 일생의 토대를 구축하는 시기이다. 토대가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위에 무엇을 쌓아올려도 무너지고 만다. 장래 커다란 꽃을 피우기 위한 그 토대를 건설하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면, 공부도 일도 모두가 뜻깊은 것으로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청년은 건설이다. 청년은 미완성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한 미지수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청년이란 혁신의 기운이며 터질 듯한 생명력의 소유자이다. 이만큼 위대한 것은 없을 것이다. 만약 청년으로서 자기 건설을 잊어버리고 허영만을 쫓고, 요령을 피우며 무기력하게 되어 버린다면 청년으로서의 정신적인 자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보다 어리석고, 천박한 모습은 없을 것이다. 청년답게란 청결, 정열, 그리고 올바른 비판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청년기란 장래의 인간형성을 위해 괴로움과 투쟁해 나가는 시대의 이명이다. 청년시대는 학력, 지위, 재산, 명예, 직위 등에 결코 현혹 되어서는 안된다. 알몸의 인간으로서 인생의 승리를 쟁취해 나아가야 한다. 인생의 기초를 만들 때에는 신사복이 아니라 작업복이 필요하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라면 완전한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성장 향상심이 없는 청년은 청년이라고 할 수 없다. 향상이란 청년의 이명이며 청년의 특색은 거기에 있다. 이상을 가지고 또한 꿈을 그린다는 것은 청춘으로서 가장 소중한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청년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 꿈을 실현하여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와의 엄격한 대결에 이겨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일에 모든 능력, 모든 정열을 기울여 나아가는 일이야 말로 미래에 사는 인생에 있어 진실로 위대한 모습인 것이다. 다망한 가운데 진실한 성장이 있다. 격동 속에 시달림을 받고, 괴로워하며 투쟁했을 때 비로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선 자기를 만들고, 자기를 키워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여러분은 과거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현재에만 집착해야 할 사람도 아니다. 미래를 만들고 미래에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군들의 성장이야말로 모든 것에 대한 가장 강한 무언의 혁명이며 불모의 인간관계 속에 새롭고 싱싱한 힘과 기운을 주어가는 것이다. 지금, 깊은 골짜기를 흐르고 있는 눈에 띄지 않는 물도 이윽고 도도한 대하가 되고 광대한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또한 뿌리를 깊이 뻗으면 뻗을수록 큰 나무는 하늘 높이 커 갈 것이다. 표면만 보기 좋은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스포트라이트 따위를 몸에 받을 필요도 없다. 제군들에게 지금 필요한 점은 진실이며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서의 힘을 키워 가는 것, 깊은 영지를 개발하여 폭넓게 지식을 흡수해 나가는 것, 생명의 존엄에 눈 떠서 평화를 끝까지 지켜 나가는 신념과 책임감을 함양하는 일이다. 고교, 대학에서는 공부가 본업이다. 공부란 "억지로 힘쓰는" 작업이다. 적당히 힘쓰면 되겠지^5,5,5^ 라는 따위의 공부는 없으며, 요령좋게, 정도껏 해두는 건설이라고 하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다. 벗, 선배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을 동지로 삼고 싶다. 벗으로 삼고 싶다. 선배로 삼고 싶다. 후배로 삼고 싶다. 인생에 있어서 벗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며 그리고 우정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어떠한 벗이 있는가에 의해서 그 인품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자기를 엄하게 꾸짖어 주는 사람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하여 따라가라. 치켜세워 준다든가, 달콤한 말을 해준다든가 하는 사람은 적이라고 생각하여 멀리 해라. 친구란 어떠한 이해에도 좌우됨이 없이, 또한 어떠한 것도 꾸밀 필요도 없이, 한 평생 변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소박함에서 서로가 모든 것을 이해하여 그릇됨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최대한 행복은 생애의 스승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스승을 갖지 않은 인생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아무리 유명인이 되고 성공자가 되더라도 스승이 없는 사람은 쓸쓸하다. 고용당해 온 사람은 남을 키울 수가 없다. 섬겨 온 사람은 남을 키울 수가 있다. 괴로움 괴로움이 없는 곳에 전진은 없다. 괴로움이 있음으로써 만이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괴로움은 누구에게라도 크든 작든 있는 법이다. 청춘시대에는 개성에 대한 괴로움, 생활의 괴로움, 이성에 대한 괴로움 등등, 다종다양하다. 그러나 그 원인을 타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고 타인이나 환경이 나쁘다고 미워하고 있는 인생은 괴롭다. 스스로를 변혁하고 또한 자기의 처지를 끝까지 개혁해 나가자고 하는 적극주의와 용기없이는 괴로움을 타개 할 수는 없다. 고뇌나 곤란을 피하는 그러한 짓을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당당하게 그것에 도전하여 멋지게 극복하는 것이다. 어쨌든 청춘은 무한한 환희와 더불어 또한 반드시 심로가 있다. 괴로움이 있다. 이것은 표리일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알고 투쟁해 나아가는 데에 빛나는 청춘시대가 있다. 한 번이나 두 번의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다. 요는 그것 때문에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실망하지 않고 언제나 그 속에서 용기를 분기시켜 늠름하게 일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과거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면 누구나 실패에 이은 실패의 인생이었다고 해도 좋을 사람이 대부분이다. 단지 그들은 그때마다 불굴의 투혼을 불태우며 일어서서 최후의 승리를 장식했던 것이다. 청춘시대의 진짜 실패는 오히려 그러한 고투를 피해서 목적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는 바로 그 점에 있다. 고투한 다음의 실패는 인생의 재보가 아닐까. 아무쪼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늠름하게 청춘을 끝까지 살아 주기 바란다. 자기에게만 괴로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괴로움이 세계최대의 괴로움인 것도 아니다. 그러한 때는 주저하지 말고 선배나 친구에게 상의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좋은 선배, 좋은 벗들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인간성 시대, 사회를 초월하여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란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것, 남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 사악한 것에 도전해가는 용기, 약한 사람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 자기를 위해 진력해 준 사람에게 대한 감사 등 등을 들 수가 있다. 보는 사람의 혼을 부드럽게 해주는 아름다운 꽃에도 무수한 종류가 있다. 개성,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풍요로운 대지에 뿌리박음으로써만이 난만하게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할 수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청년의 개성, 특성, 특기도 인간으로서의 풍요한 대지위에 발휘되어야 비로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겠다. 어떠한 결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성실한 사람과 접촉하면 상쾌하며, 이윽고 반드시 행복해져서 인간으로서 대성하여, 승리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은 사람을 성실로 감싸줌으로써 만이 상대방도 세상도 동감하는 법이다. 진실한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행복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혁명이란 무엇인가. 먼저 자기가 강하고 올바른 인생관에 사는 것이며, 사회인으로서도 훌륭한 사회성을 몸에 지닌 인생을 보내고, 도리바르게, 예의바르게, 원만한 상식인이 되는 것이다. 타인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된다. 타인을 존경하는 사람은 타인으로부터도 존경받는다. 마치 거울 앞에 서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하면 노하는 얼굴일 것이며 웃으면 웃는 상이 비쳐진다. 결국 자기의 모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인정이야말로 사람의 사람다운 자격이다. 자^36^애도 잔혹함도 그 양국적 나타남이라고 생각된다. 인정은 타인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자기를 위한 인간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고 타인에게 호감을 받도록 하라. 상대방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고서는 그 사람에게 선의가 도달하지 않는다. 나는 훌륭하지 않다. 주위 사람이 전부 나 이상으로 인재이다 라고 마음의 오저로부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 인간의 훌륭함이란 자기가 훌륭하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 않는다. 주위의 사람이 결정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그리고 전체의 조화를 가져라. 인재를 찾아내자, 인재를 지키자, 인재를 키우자. 인재의 성만이 영원히 번영해 가기 때문이다. 천재란 노력의 이명이다. 노력 없이 어떻게 힘있는 사람이 되겠는가. 자기가 뿌린 종자는 자기가 수확하자. 책임있는 사람은 지혜가 솟는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악지혜가 솟는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겉만의 아름다움은 금방 싫증이 나고마는 법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내면으로부터 빛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하나의 목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바이탤리티(활동력, 생활력)가 풍부하고, 전혼을 기울여 가는 모습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 반대로 시류에 흘러서 우고좌면하는 잔재주가 능한 인간만큼 추한 것은 없다. 아름다워지려고 원한다면 자기의 신념에 살고, 이상에 사는 것이다. 뽐내서는 안된다. 잘난 체 해서도 안된다. 또한 뽐내게 해서도 안된다. 겸허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 일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마라, 권리라고 생각해라. 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패배자이다. 그것은 환경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그 장소를 즐거운 세계로 바꾸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직장에는 대체로 세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은 사람, 없는 편이 좋은 사람. 그것은 일의 종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떠한 사업이라도 인생에도, 가정에서도 그밖에 어떠한 경우에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긴다" 는 결의, 근성이 성장을 뜻하고 승부를 결정한다.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반드시 일은 성취된다. 계획한 일이 전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반드시 새로운 길이 거기에서 열려져 가는 법이다. 작은 일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해내며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일도 만족하게 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사를 성취할 수가 있겠는가. 인생 진실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자기답게 개성 풍부하게 살아가는 인생일 것이다. 또 인생에 있어서 가장 거룩한 것은 무엇인가. 자기가 믿는 길을 누가 뭐라해도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관철해 가는 것 외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바탕 위에 사회를 위해,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공헌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한다. 생활에 이념이 없는 인생만큼 공허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릇된 인생관도 전도는 바람앞의 등불과 흡사하다. 인생은 한평생 건설이다. 건설이 상실된 인생은 패배이다. 희망에 살지 않는 인생은 없다. 미래를 갖지 않는 인생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인생은 마라톤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골인은 달려가는 도중의 순위가 아니라 가슴으로 테이프를 끓는 사람이 장식하는 것이다. 자기의 최대의 영지와 정열을 가지고 진지하게 구하고, 투쟁하여, 타개한 인생이야말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위대한 생애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신분이나 소질에 관계없이. 젊은 사람들이여, 내일에 살자.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모두 꿈이다. 인생을 도피해서는 안된다. 자기를 비하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단지 용기를 가지고 자기자신에 강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이다. 그 길을 확실하게 전진해가는 사람은 강하다. 지금 몇리까지 왔는가 하고 뒤돌아 볼 때 그 길을 걸어온 데 대한 기쁨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다망할 때는 여가를 원하는 법이다. 그러나 여가만 있고 충실하게 의욕을 가지고 하는 일도 없이 속이 텅 빈 인생을 지내고 있을 때만큼 이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행복이라 하는 것은 결코 남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명 안에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인생에 폭풍의 날도 있고, 눈이 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흉중의 창공은 항상 희망의 태양이 빛나고 푸른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인생에 대해 이념이 없고 행동에 확신이 없으면 언제나 세간의 체면이나 평판을 염려하여 유행의 파도에 떠 다니는 사람의 생활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불쌍하다. 결혼의 빠르고 늦음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혼의 행, 불행은 오히려 결혼 그 자체에 있다. 사상 평화와 행복에 대한 소원은 만인 공통의 염원이다. 전쟁은 결단코 해서는 안된다. 전쟁을 해서 누가 기뻐하겠는가. 누가 행복할 것인가. 승리자도 패배자도. 어떤 사람, 어느 나라에도 철학을 갖지 않은 자는 없다. 사상을 갖지 않은 인생은 키가 없는 배와 같은 것이다. 하나의 사상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사람은 사상을 위해 죽을 수가 있다. 인간이 그와 같은 생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 사상의 정, 부, 정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한 점이다. 말하자면 사상의 마력이다. 자본주의를 위해 인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공산주의를 위해 인간이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어떠한 사상이라도 인간을 위해, 민중의 행복을 위해 쓰여 간다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이다. 과학은 인간의 토양위에 핀 한송이의 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근저의 인간성을 무시한다면 결코 과학은 건전한 발달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앉아서 망상에 잠기는 것보다도 기원하고, 움직이고, 쓰고, 말하고, 한평생 사람들의 마음의 창문을 열고, 마음에 무너지지 않는 평화와 행복의 성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이 현실 속에만 정의가 있으리라. 출발도 인간, 마지막도 역시 인간이다. 아무리 컴퓨터 시대라 해도 행복의 근본은 인간 그 자체의 해명, 인간의 존엄의 해결에 귀착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의 선악은 물론 정치가의 우열에 의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더욱이 대중의 지성과 교양과 도의심에 의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그릇된 사상 혹은 정치에 대해서는 감연히 싸울 용기가 필요하다. 즉 이젠 모든 대중이 자기를 확립한 정치가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진실한 민주주의는 민중 한사람 한사람이 주체성을 확립하여 지혜, 책임, 자각을 가지고 사회전반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서 성립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