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알렉산드로스 2권 지은이: 아토다 다카시 옮긴이: 이경희 출판사: 도서출판 우석 등장 인물 네아르코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헤타이로이. 배에 정통하여 알렉 산드로스가 이끄는 동정군 가운데 수군의 지휘를 맡는다. 인도에서 돌아올 때 인더스강 하 구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하구에 이르는 신항로를 개척한다. 이로 인해 바다로 가는 또 한사람의 알렉산도로스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고대의 탐험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달레이오스 3세: 흔히 다리우스 3세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왕. 이수스에서 알렉산드로스와 첫 전투를 치르지만 태후와 왕비, 공주 등을 버린 채 도주길에 오른다. 결국 부하 베소스 일 당에게 죽임을 당하는 최후를 맞는다. 로크사네: 알렉산드로스의 비. 소그디아나를 지배하던 옥시아르테스의 딸로 권세욕이 있는 여자이다. 알렉산드로스 4세를 낳으며 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인다. 바르시나: 알렉산드로스의 애첩. 원래는 이름을 떨친 용병 멤논의 형수이지만 남편이 세상 을 떠나자 멤논의 아내가 된다. 그러나 멤논이 돌연 병사하자 알렉슨드로스와 만나게 되어 헤르쿨레스 왕자를 낳는다. 왕이 죽은 후 왕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자 왕자와 함께 자객 에게 암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자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필리포스 2세와의 인연 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며, 미에제 학사 시절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 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이라고 해준 말을 알렉산드로스는 평생의 신념으로 삼는다. 안티파르로스: 필리포스 2세의 장군. 알렉산드로스가 왕좌에 않은 후 동정길에 오를 때 마 케도니아의 국정을 책임지는 재상이 된다. 재상 자리에 머무는 동안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밀고에 시달린다. 알렉산드로스: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식 이름이며 사자왕이라고도 불린다. 왕위에 오른 후 동정길에 나서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인도까자 그 영토를 넓히나 서른두 살의 나이에 원정지에서 죽는다. 흔히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린다. 올림피아스: 필리포스 2세의 비이지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알렉산드로스를 신의 아들이 라고 주장하여 필리포스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에는 이혼당한다. 그러나 곧 필리포스가 암살 당하자 태후로서 권력을 휘두른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결국에는 돌에 맞아 죽는 비참 한 최후를 맞는다. 크라테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전략에 뛰어나 부장군까지 승격한 알렉산 드로스의 절친한 친구이다. 동정길을 반대로 돌아가 나이 든 안티파르토스를 대신하여 마케 도니아의 내정을 담당하게 된다. 클레안드로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왕의 암살 음모에 연루된 파르메니온을 죽이는 일을 맡는다. 후에 엑바타나의 태수가 되지만 횡포가 심하여 알렉산드로스왕의 분노를 사 처형된 다. 파르메니온: 필리포스 2세의 장군으로 필리포스가 암살되자 알렉산드로스를 지지한다. 부 장군이 되어 동정길에 나서지만 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아들 필로타스와 함께 죽는 다. 페르디카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알렉산드로스가 죽을 때 곁에 있다가 옥새 를 맡게 되는 것을 계기로 로크사네를 앞세워 권력을 쥐려한다. 한창 암투가 벌어지는 중에 부하에게 암살당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현인으로 불리는 장군으로 알렉산드로 스왕이 세상을 떠난 후 페르디카스가 장례를 치르려 하자 유체를 탈취하여 이집트의 알렉산 드리아로 간다.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운다. 필로타스: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파르메니온의 장남으로 알렉산드로스와는 오 랜 지기이지만 왕의 신성을 믿지 않고 동정을 중자하도록 병사들을 선동한다. 왕의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죽는다.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의 부왕. 선왕에 뒤이어 필리포스의 큰형이 왕위에 오르지만 어머니 에우리디케의 책략에 의해 살해당하고 작은형이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왕위를 둘러 싼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왕이 된다. 딸 필리피아의 결혼식장에서 암살된다. 헤페스티온: 알렉산드로스의 중신, 헤타이로이. 미에자 학사 출신으로 뛰어난 예지 능력의 소유자로 중요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신적인 영감을 받는다. 왕이 "크라테레스는 마케도 니아 왕의 친구이고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왕이 진심 으로 아낀 인물이다. 동정군이 귀로에 오른 후 엑바타나에서 말라리아로 죽는데, 알렉산드로 스도 같은 병으로 죽는다.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시와 오아시스 신전을 방문하는 길에도 키레네 사절단과 동맹을 맺어 친교를 돈독히 했다. 키레네는 이집트 서편에 위치하는 고도로 오늘날 리비아령 키레 나이카 지방 일대에 널리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친교를 돈독히"하자 말하면서도 알렉산드로스는 등에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생 각하면 이 친목도 또 하나의 가벼운 지배인 것이다. 하여튼 후대의 역사가 알렉산드로스 왕 국의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한계선을 리비아령에까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 키레네 영 역에까지 넓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시와의 아몬 신전에서 이집트의 멤피스로 되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여전히 정역적으로 활 동했고 몇 가지 결단을 내려 실행해서는 경의를 표했다. 이 나라의 지배에는 사제들의 협력 을 무시할 수 없었다. 본래부터 이집트의 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품고 있었던 알렉산드로스는 황폐한 흔적이 현저한 신성 구역인 룩소르를 개수하여 호화로운 신전을 건립했다. 신전 벽면에는 이집트의 대신에 경의를 표하는 대왕 자신의 모습을 조각했지만, 이곳의 알렉산드로스는 왕년의 초강 대국을 다스렸던 파라오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수완으로 "나는 이 나라의 주인 파 라오의 후계자이며 이집트 신들을 공경하는 사람이다"라며 내외에 널리 선전했다. 룩소르를 방문하는 사람은 지금도 신전에서 성소에 이르는 이 벽화를 볼 수 있다. 이집트 통치에 대해서는 행정관에게는 현지의 지배 계급을 두어 종래의 관습을 답습시키 는 한편, 그들을 감시하는 수하의 무장들을 수호 대장으로 임명하여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또 성대한 사열식을 열어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였고 투기와 음악 대화를 열어 병사들을 위로했다. 이 와중에 장군 파르메니온의 어린 아들이 실수로 물에 빠져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헤티 아로이의 일원인 필로타스의 남동생이다. 사지왕은 비탄에 빠진 부자를 배려해서 성대한 장 례를 치르게 했다. "참 안됐소." "신의 뜻이지요." 파르메니온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 것은 무인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 다는 결연한 의지에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자리를 떠나는 장군을 지켜보았다. "그래? 신의 뜻이구나." 같은 말을 혼자서 되풀이했다. 가까이 다가온 헤페스티온에게도 일부러, "아들의 죽음이 신으 뜻이라는군"하고 턱으로 파르메니온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에 채 반년도 못 있었다. 대왕은 기원전 331년 늦봄, 이 땅에서 또 하나의 위업인 항구 도시 알렉산드리아 건설을 디노클라테스 일행에게 맡기고 시리아 지방 으로 군사를 돌렸다. 나중에 지중해의 여왕이라고 까지 칭찬받는 이 도시의 번영을 알렉산드로스가 이때 명확 하게 의식하고 있었을 리는 없으나, 이 건설 사업을 빼고서 알렉산드로스의 공적을 말할 수 는 없다.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헬레니즘 문화의 거점으로서 사상, 과학, 예술의 메트로폴리 스로서 그리고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이 도시가 해낸 역할을 정말 대단하다. 알렉산드 로스의 야망을 길이길이 역사에 남긴다는 점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유산이 었다. 서둘러 군대를 북방으로 귀환시킨 첫 번째 이유는 일단 평정되었어야 할 시리아 지방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에서는 수호 대장이 참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 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알렉산드로스가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저절로 진정되었다. 티루스에 서 진영을 재정비하고 제국에 격문을 띄웠다. 이 땅과 인연이 깊은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리스극을 하는 배우들을 초대하여 연극 공연과 떠들썩한 경가를 열어 장병들을 기 쁘게 했다.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었다. "스파르타의 움직임이 마음에 걸리는데." 이번에는 현재 머물고 있는 시리아 연안보다 그리스 본토 쪽이 불안의 대상이 되었다. 스 파르타는 마케도니아를 맹주로 하는 코린토스 동맹에 등을 돌리고 있엇고, 전에는 멤논의 봉기에도 가담하려 했었다. 스파르타 국와 아기스 3세는 아테네의 반마케도니아 세력과 손 잡고 마케도니아를 배척하는 또 다른 그리스 동맹을 만들 야심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까지 지배하에 넣었고 시와 오아시 스에서 신의 계시도 들었으나 고국을 떠난 지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몇 가지 사정 을 감안하나 철수하여 그리스 반도의 방비를 위해서 군대를 옮길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 다. 파르메니온이 스파르타를 치자고 설득하려 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스 남쪽을 차지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아직 만족할 만큼 마케도니아에 복종하고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여기에서 스파르트의 반항을 누르고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도 마케 도니아로 개선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전에 없이 드높습니다"라는 헤타이로이의 보고도 들어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승 때마다 병사들에게 충분한 포상을 준데다가 "사자왕은 결코 지지 않 는다"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병사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병사들은 승리함으로써 얻어 지는 재화와 이국 여자들에게 적잖이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어차피 싸움에서는 이길 것이 고 그렇다면 좀더 싸워 막대한 페르시아의 부를 얻고 여자들로 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속에 잠재해 있던 것도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로서도 그리스로 귀환하는 것보 다 앞으로 전진하는 편이 성격에 맞았다. 처음부터 페르시아 정벌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가. 때마침 아테네에서 사절이 와서, "제발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일단 마무리 짓는 대로 포 로를 되돌려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간청을 했다. 그라니쿠스강에서 승리했을 때 페르시아측에 가담했던 아테네인을 많이 잡아 포로로 만들 고 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석방을 구하는 진정이 아테네로부터 있었지 만 알렉산드로스는 언제나 말끝을 흐리면서 거절했었다. "좋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절대 스파르타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하늘에 맹세코 서약하겠습니다. 아테네인 누구라도 사자왕에게 거역한 스파르타와 내통 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 말 잊지 않겠다." 구두로 한 약속을 믿고 아테네 포로를 풀어 주었다. 헤티이로의 한 사람인 필로타스는, "사자왕은 왜 아테네에게는 약하지"하고 고래를 갸웃 거리며 빈정거렸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다. 좋든 나쁘든 알렉산드로스는 선진 문화를 동경하 며 부러워했다. 일종의 열등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분명히 아테네에 비하면 마케도니아 는 아무리 분발해도 모든 면에서 훨씬 뒤처져 있으며 너무나 촌스럽다. 선왕 필리포스의 아테네에 대한 경애는 노골적인 편애였다. 마케도니아 왕가는 아테네를 소외한 그리스 통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명제가 옳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편애한 때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며, 이 젊은 대왕도 아테네인이 약간 부드러운 태 도로 대해 주면 자신도 모르게 기쁨을 느끼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한참 후의 이야기지만, 이것은 장치 화려한 페르시아 문화와 접촉했을 때에도 똑같은 형상을 엿볼 수 있는 알렉산 드로스의 특징이었다. 물론 단점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느끼는 게 나쁜가?" 알렉산드로스는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문화에는 탄력성 있게 대응하며 재빠르 게 좋은 점을 섭취할 수 있었던 점은 알렉산드로스를 한낱 야만적인 정복자로 끝나지 않게 만들어 준 장점의 하나일 것이다. 그 평가는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때 즉 티루스에서 아테네 사절단을 맞았을 때 쉽게 포로 를 해방시켜 준 것은 아테네에 대한 편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제압한 다면' 하는 의도가 대왕의 심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라기보다는 필요라고 잘라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스파르타가 겁없이 날뛰는 것을 아테네 힘으로 견제헤 주었으 면 하는 것이다. 시리아 오지에서는 달레이오스 3세가 대군을 정비하여 총력을 다해 알렉산드로스를 무찌 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수르에서 패한 페르시아 왕은 당연히 반격을 꾀하고 있을 터였다. 페르시아의 동향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들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신속하게 결정됐 다. 망설임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생각은 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달레이오스를 없애자.' 이수스에서의 접전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달레이오스는 도망쳐 버렸다. 페르시아 왕국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국지전에서 거둔 승리는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은 전투 에서는 이겼지만 달레이오스는 점점 더 오지로 도망갔다. 붙잡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추적만 거듭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무한한 궁지에 빠질 우려마저 있다. 달레이오스가 전군 을 이끌고 싸우러 온다는 보고가 확실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뜻밖의 행운이 아닌가. 바라고 바라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병사들의 사기도 높다고 하니 또 한번 신의 은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서 경비를 굳건히 하겠다는 생각 따윈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스파르타 의 봉기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선은 아테네를 믿고 진압을 맡겨 두자. 어차피 스파르타가 가담하지 않으면 그리스 본 토에서 위험한 반란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자왕은 아테네에게는 약하다는 필로타스의 말이 전혀 빗나간 것은 아니지만, 알렉산드 로스에게는 나름대로 깊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각지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에 대비하여 해군만을 그리스 해역으로 들여보내고, 알렉산드로스는 전군을 이끌로 티루스에서 북상하다가 도중에 동으로 진로를 변경하여 다마스쿠스의 여름 사막 지대를 향해 들어갔다. 괴로운 행군이었다. 태양은 매일같이 불덩어리가 되어 대지를 태우고 바람까지 살갗에 달 라붙어서 태웠다. 가다가 쓰러지는 병사가 날마다 늘어났다. 더위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아 제 대로 된 생각이 나올지도 의심스러웠다. 한여름의 시리아 사막은 사람이 갈 곳이 아니었다.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씩 쇠잔해져 갔다. '저편에는 페르시아 대군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을 텐데'하는 공포심만 더할 뿐이었다. 알렉산드로스 곁에는 바르시나가 있었다. 페르시아 태생인 바르시나는 이 주변의 풍물이 나 자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르시아에는 불타는 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왕이 석유를 알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더운 거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바르시나의 지식이 대왕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훌륭한 위로가 되었다. 폭서에는 견딜 수 없었지만 적군의 방해는 적었다. 탑사쿠스는 대하 유프라테스의 도하 지점이다. 6000이 넘는 적병이 양가슭에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한 정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군이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도 적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매우 의아스러웠지만 적군의 목적은 도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하를 건넌 후에 알렉 산드로스군이 남으로 진로를 찾아서 직접 바빌론으로 진격해 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합인 것 같았다. 달레이오스 또한 어딘가 적당한 지역에서의 결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 로스군을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다리를 가설하여 강을 건너 우선 북으로 전진했다. 달레이오스는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확실한 정보를 캐낼 수가 없었다. 주변 지세에 대한 알렉산드로스군의 지식이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적군은 훤히 알고 있을 것으므로 어쩔 수 없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에 없이 서두르지 않으며 정 보 수집에 전념했다. 조사를 해가면서 대왕은 여기서도 니케포리온이라는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날 시리 아령 라카 근처에 유적이 남아 있다. 야영하는 동안 틈틈히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인 크라테레스를 불러 이야기 를 했다. 물론 두 사람의 식탁에 붉은 포도주는 빠질 수 없다. 대왕은 술잔의 술을 목으로 흘려 보내면서 지난날을 그리워했다. "미에자 학사에서 마을 사람들고 씨름을 한 적이 있었지." 마케도니아의 씨름은 오늘날의 레슬링에 가깝다. 학사 내에서 열렸던 운동회의 여흥으로 인근 주민들을 초청하여 대항전을 했던 것이다. 모여든 인근 주민들 쪽은 힘센 젊은이들이 100명 남짓, 학사 쪽은 10여명. 상대편이 많은 것 을 보고 "패싸움이라면 완전히 지겠는걸" 하고 외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1대1로 싸워서 이긴자가 진출하는 토너먼트전이었기 때문에 미에자 동로들 이 강했다. 평상시부터 단련하고 있고 크라테레스가 스물여덟 명을 연거푸 이기는 대단한 기염을 토했다. 마지막에 알렉산드로스가 일곱 명을 쓰러뜨려 학사 쪽이 간신이 체면을 세 웠다. 이때의 일은 크라테레스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저쪽 편에 굉장히 센 놈이 있었는데 발을 미끄러지게 해서 다행이었어. 큰일날 뻔했지." 추억담으로 얘가가 활기를 띠었다. "조가였어, 그라니쿠스강 싸움에서 전사한..." "아냐, 조가가 아니야! 또 한 명 얼굴이 약간 거무스름한... 사자하고 말고 나하고 싸웠던 상대야. 키가 내 목 하나만큼 더 크니까 덤벼들자마자 머리부터 누르려는 거야. 하도 거침없 이 밀어붙여서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크가테레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몸짓을 섞어 가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더 이상은 듣지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드문일이 아니었다.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자신의 생각속에 틀여박혀 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크라테레스는 이야기를 멈추고 새로 술을 따르며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얼버무리고 는 혼자서 쑥스러워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 무언 지 모를 사냥감을 발견해 낸 것 같았다. 늘 있던 일이기 때문에 크라테레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뇌리에 무언가를 찾아내어 추적하고 있었다. 티그리스강도 쉽게 건넜다. '달레이오스는 어디에 진을 치고 있는 걸까. 어디에서 싸울셈인지, 원.' 만족스러운 정보가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적군의 위치를 모르면 아무리 용맹한 알렉산드 로스로서도 공격을 가할 수가 없다. 시리아 사막은 맹목적으로 적을 찾가에는 너무나 광대 하다. 초조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초초해 해서는 안 됩니다." 파르메니온 이렇게 충고할 때 초조하지 안핟고 하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것 자체가 초조 하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자신도 잘 알기 때문에 더 더욱 초조함을 느꼈다. 아무리 태연한 척 가장해도 부하들은 대왕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똑 같은 초조함을 느꼈다.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이야기는 무성했 다. "굉장한 대군 같은데." "사막을 새카맣게 메울 정도의 수야." 적의 크기만 계속해서 선전됨에 따라 공포는 더 더욱 커졌다. 대개 병사들은 무아지경에서 싸우게 하든지 풀어놓고 긴장을 해소하게 하든지 둘 중의 하 나가 좋다.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르는 채 공포를 가슴에 계속 담고 있으면 좋지 않다. 정 신력의 소모가 눈에 띄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체력까지도 약화된다. 알렉산드로스는 진영의여기저기에 날마다 공포와 권태가 커져 가는 데에 위기감을 느꼈 다. 그러나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무심결에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막사를 뛰어나와 점술사를 불러댔다. "아레크산드로스는 어디 있느냐? 아레크산드로스를 불러라." 밤하늘의 달이 조금씩 파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월식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황급하게 달려온 점술사의 어깨를 뒤흔들며 하늘을 가리켰다. "어떻게 보느냐?" "예?" 점술사는 눈만 깜박였다. "달은 페르시아의 상징이고 나는 태양이다, 알겠지." 월식이 태양의 작용에 의해 알어난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달이 페르시아의 상징 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점술사는 페르시아와 달과의 관계를 믿고 있었다. 페르시아 군기에 반달이 그려져 있었던 것도 같았다. "예..." 태양은 사자와 더불어 틀림없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표장이다. 16갈래로 빛을 발하는 태양 은 왕실용 가루류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이 왕의 의향인 점 역시 왕을 모시는 점술사가 헤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빨리 맞춰 보아라." "알겠사옵니다." 점술사 아레크산드로스는 즉각 준비를 하고 신중하게 신의 뜻을 물었다.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를 공략할 전조입니다." "그래." "이달 중이옵니다." "좋다. 그 뜻을 널리 전하라." 제사지낼 준비를 했고, 대왕은 제물을 바쳐서 신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병사들의 공포심은 당연히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월식이 어떤 징조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페르시아가 달이고 그것이 파먹혀 들어 간다는 것은 결코 페르시아에게 좋은 징조일 리가 없다. 첫째, 우리의 사자왕은 지지 않는 다. 반드시 이긴다. 결전을 앞두고 이렇게 획실한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니 이것이 승리의 전 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사에 관련한 근원적인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쓸데없이 의 심했던 부분은 깨끗이 불식되어 장병들의 사기는 다시 올라갔다. 헤타이로의 기세도 높아졌다.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병사들을 격려한 뒤,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몇 사람디 모여들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의 아들답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했다. 그러나 필로타스는 이때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자왕을 평가했다. 왕 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남자다. 친근함의 과시로도 보이겠 지만 파르메니온의 아들이라는 자신도 있기 때문이다. 동정군 중에서 이만큼 훌륭한 인물도 드물다. 옆자리에 앉은 프톨레마이오스가 맞장구를 쳐주었으면 했는데, 고개를 약간 흔든 것은 동 의를 피하는 의지가 표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지." 헤페스티온이 필로타스의 말을 감추려는 듯이 말했다. 이것은 빈정거리면서 한 말이 아닌 본심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신의 아들인 것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클레이토스가 돵의했다. "사자왕은 절대지지 않아." 다소 추앙하는 뜻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신의 아들이라면 질 리가 없을 것이다. 크라테레 스와 카산드로스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모두가 뛰어난 용사들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헤타이로이는 능력에도 성격에도 차이가 있으나 모두가 탁월한 무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알렉산드로스군의 강인함이기도 했다. 결속만 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각자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충분한 사고력도 갖추 고 있었다. 가장 단순하고 명쾌하고 충실한 것은 클레이토스다.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드로스 유모의 님동생으로 말 그대로 요람에 누워있을 때부터 줄곧 함께 자란 사이이다. 한 살 연상인 알 렉산드로스를 경애하며 소박한 마케도니아인의 진실한 마음으로 추종하고 있어 알렉산드로 스의 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왕 스스로가 "신의 아들이다"라고 칭하면 클레이토스 는 '반드시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가장 뛰어난 충성심과 순박한 인품은 마케도니아군 의 하층 병사들에게도 신뢰받고 있었다. 크라테레스도 충실한 측근이었지만 신의 아들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반신반의하고 있었 다. 사실대로 말하면 '신과 태후가 어떻게 잘 수 있을까?"라며 믿을 수 없었지만 반론할 근 거도 별로 없었다. 현대인에게는 약간 기이하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고대에서는 문명이 진화함에 따라 신과 인간과의 융화가 빈번해졌다. 적어도 변경 지역의 마케도니아인보다는 좀더 발달한 그리스 본토쪽의 주민은 신과 인간과의 융화를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신이 인간과 교합하여 자식 을 얻는다는 그런 이야기는 그리스인에게는 그다지 진가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그와 같은 종류의 에피소드가 넘칠 만큼 있었고 철인 플라톤도 신과 처녀와의 결합에소 태 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리스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두드러지게 뛰어나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고, 왕이나 예언자나 위대한 인물은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리스인은 깊 이 생각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며 위대함이 한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박한 마케도니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 군림하는 신들을 공경하고는 있 어도 가까운 일상에 관해서는 현실적인 판단을 고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과는 다르 다, 교합은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신을 공경하는 마음이 깊은 헤페스티온은 '신의 아들'을 한결 같이 믿었다. 이것은 잘 알 지 못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며 신의 존재를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속에서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 한편 지성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필로타스는 '적절한 방편이군'하고 생각했다. 소박하고 입 이 무거운 병사들은 움직이기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좋은 예가 오늘 방의 월식이다. 신 의 계시든 아니든 병사들의 불안은 적잖게 해속되지 않았는가. 도움이 될 수 잇는 것은 활 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자신마저도 속일 만큼 훌륭하게 연기해 내야 한다. 어차피 속마음은 알 수 없다. 신을 믿는다는 것과 믿는것처럼 가장하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필로타스는 사자왕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도 여기에 가깝지만 태도는 전혀 달랐다. '그의 말대로 속마음 모르 는 일이다. 그렇다면 의문점일 있더라도 사자왕과 같이 우리도 연기 좀 한들 어떻겠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만약 사자왕이 정말로 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 태도는 별다른 문제 없이 무난하 게 넘어간다. 그러나 필로타스처럼 자신의 의혹을 아무리 좋은 시기라 해도 노골적으로 드 러내서는 병사들에게 언제 그 연기를 간파당할는지 모르는 일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신중 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헤타이로이를 포함한 마케도니아군의 간부들은 대체로 크라테레스의 생각에 가까 웠을 것이다. 다소의 의문점이 있어도 우선은 사자를 믿겠다는 것이다. 신의 아들이라면 그 것으로 족하다. 월식이 승리의 전조라면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다. 그리스인 용병들은 훨씬 더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소의 의문점이 있어도 이런 기운이 대세를 제압했다. '나는 신의 아들이다.' 시와 오아시스를 방문한 알렉산드로스의 신념은 더욱더 확고한 것으로 변했고 몇번의 승 리가 그것을 입증했다. 그렇다고 해도 월식을 보고 점숙하를 부른 것은 순간적인 판단이엇 다. 그래, 하나의 책략이었다. 달이 페르시아의 상징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왠지 그런 마음 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때마침 월식이 일어난 것은 역시 신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아리스토텔 레스가 말했다.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 신의 아들이라면 저절 로 보이는 것이 있다." 이것이 그 '보이는 것'은 아닐까. 결단을 앞두고 병사들의 불안은 밀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만월이 일그러지는 것이 신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대로다. 의심할 수 없다." 밤새도록 헤페스티온이 곁에 있었다. 조금씩 정보가 날아들었다. 달레이오스는 대군을 모집하여 뜻밖에도 가까이까지 진군해 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지방의 중심지인 아르벨라에 주둔하고 잇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윌실이 있었던 사흘째 되는 날, 마케도니아 전선의 부대가 적의 기병대를 확인했고 알렉 산드로스는 바로 정예군을 모아서 그파했다. 몇 명을 살상하고 도망가는 적군을 추격하여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 왔다. 포로의 입에서 달레이오스 군사의 위치를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즉, 가우가멜라라는 신중 도시로, 아르벨라에서 600스타디아(약 100킬로미터)를 진군하여 도시에서 떨어진 평지 를 격전지로 결정했다. 알렉산드로스 진영에서부터 100스타디아도 안 되는 곳이었다. 적군의 규모도 대충 알게 되었다. 기병 4만, 보명이 50만이 넘고 커다란 낫이 달린 전차 200량, 약간의 전투용 코끼리가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소의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놀랄 만한 대군임에는 틀림없었다. 전번의 이수스 해안은 협곡이 있었어 기복이 심한 전장이었다. 대군을 움직이기에는 불리 하도고 판단한 달레이오스는 이번에는 구릉으로 싸여 잇는 넓은 평지에 포진할 작정인 모양 이었다. 어디에서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이수스 때와는 크게 달랐다. 알렉산드로스는 열심히 부근 지형을 조사하게 했다. 자신도 부세팔로스를 달려서 결전장 을 살펴보았다. "한번 더 달려다오" 그토록 훌륭한 애마도 눈에 띄게 노쇠했다. 한편 병사들에게는 상세한 정보를 주지 않고 충분한 휴식만을 취하게 했으며, 후위 진영 의 방비를 견고히 하고 군량과 마초를 가득 채워 병사들에게 안도감을 심어 준 뒤에 전군을 전진시켰다. 페르시아군도 정세를 파악하고 군을 평지로 옮겼다. 알렉산드로스도 구릉을 감듯이 진군 했다. 60스타디아(10킬로미터 정고)의 간격에서는 보이지 않던 적의 모습이 30스타디아까지 좁혀지자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임전 태세로 돌입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에서도 혈기를 앞세우지 않고 한 번 더 지형을 확인하여 적군 의 진형과 방비의 상황을 찾아내오 자군의 배치와 전략을 짰다. 그리고 지휘관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조용하게 말했다. "전투를 앞두고 새삼스럽게 제군들을 격려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미 제군들의 의기는 매우 왕성하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투는 시리아와 페니 키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 누가 아시아에서 군림할 것인지, 세계의 지배를 둘 러싼 전쟁이다.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쳐라! 충분한 포상을 약속하겠다. 용사에게는 바라는 이 상의 영예가 주어질 것이라고 제군의 부하 병사들에게도 전하라. 단결을 우선으로 하고, 소 리를 내지 않고 전진할 때는 굳은 침묵을 지키고, 환성이 필요할 때에는 큰소리로 외치라! 명령은 더없이 신속하게 전해져야 하며 그리고 엄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적의 대군을 무 서워할 필요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명심하여 준수하고 결코 소홀해 해 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이것이 내가 할 말의 전부다. 한 사람이 자신의 임 무를 게을리 했을 때에 그것이 전체에 위험을 미친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말고 각자가 본 분을 다해야 한다. 적의 대군에 대해서는 이미 작전을 강구하고 있다." 일동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며 파피루스로 만든 작전도를 펴서 진용을 보여 주었다. 지 휘관들이 그것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 바로 곁에 서 있던 프라테레스에게 물었다. "알겠느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군은 비스듬히 진형을 만든다." 파피루스에는 횡으로 일직선인 페르시아군에 대해 마치 기러기 행렬처럼 비스듬하게 대치 하는 진용이 그려져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프라테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진형을 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 차를 두는 것이다. 미에자에서 했던 씨름과 같은 이치다. 한 번에 싸운다면 수가 만 은 쪽이 당연히 유리하지만 진형을 비스듬히 만들면 제일 앞의 부대는 계속해서 적의 일부 와 싸우게 되므로 수의 차가 시간 차로 경감된다는 이치다. 적어도 사전은 그렇게 나가고 그러다고 전진이 흩어지면 어차피 예측 불가능하다. 빈틈을 노려서 적의 본진을... 달레이오 스만을 노린다." 손짓발짓을 해가면 온몸으로 설명했다. "과연." 어제 둘이서 술을 마셨을 때 사자왕은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더구나 이런 기러기 진형은 약점이 쉽게 적에게 드러나지 않아 적도 공략하기 어렵다. 실전으로 경험했던 일이다." 설득력이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러기 진형의 어느 부분을 어떤 부대가 맡을 것인지, 측면에서의 공격에 는 어느 부대가 나설 것인지, 기회를 틈타 돌격을 감행하는 것은 어디와 어디인지, 또 전황 을 확인하고 지원하는 것은 어느 부대인지, 적의 응원 부대를 가로막을 군사는 어디에 대개 시킬 것인지... 상세한 지시를 내리며 하나하나 확인시켰다. 각자 임무를 엄중하게 지키려고 철저하게 노력했다. 기러기 진형은 선황 필리포스가 테베 명장에게서 배워 실천하였고 알렉 산드로스에 이르러 완성한 것이다. 이후 고대 무장들이 그대로 이용했던 뛰어난 전법이다. "대군과 맞서 싸우기에는 야습이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제안하는 파르메니온에게 알렉산드로스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몇 개의 명언을 남긴 대왕의 에페소드로 자주 인용되는 것 가운데 하나지만 단순한 긍지 가 아니라 의외로 의미 심장한 말이다. 야습은 적도 당황하지만 아군에게도 오산이 생길 수 있다. 얻둠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 고 혼란은 공포를 낳는다. 확실한 작전과 통솔력만 있다면 밤을 틈타 요행을 훔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렉산드로스는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라고 마음으로 결정하고 있 었다. 달레이오스를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었고 달레이오스를 죽이면 자연히 페르시아 왕국의 명 운은 끝난다.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어도 달레이오스가 도망간다면 전투는 언제까지나 계 속될 것이고, 안으로 안으로 광대한 산지를 헤매며 달려야 한다. 달레이오스를 절대 놓쳐서 는 안 된다. 밤에 도주하는 것은 달레이오스에게는 구원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이므로 야습은 절대 안 된다. 파르메니온은 젊은 왕의 심리를 잘 읽고 있었다. 완전히 파악한 다음 반대로 권하면 왕은 더욱 용기를 내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게 되고,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사기 진작에 적잖 은 도움이 되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페르시아군은 알렉산드로스가 야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대군에 비해 규모가 작은 마케도니아군이 결전을 벌인다면 역시 한 밤의 습격이 순리일 것이며 기 습을 좋아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오늘 밤 올 거야!" 병사들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철야 경계를 계속했다. 그리고 무사히 밤이 지나고 그 다음날 밤이 되었다. "오늘 밤에는 꼭..." "각오는 되어 있다."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임전 태세로 보내는 밤의 긴장감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공포는 쌓이고 피로도 더하다. 마 케도니아군이 월식이 있었던 밤을 경계로 불안을 던 것과는 반대 현상이 페르시이군에게 일 어나고 있었다. 대군임에는 틀림없는데 소위 말하는 오합지졸이므로 결속력이 부족하여 전 군의 지휘는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전, 전야, 알렉산드로스는 밤이 깊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파르메니온이 깨우러 올 때까지도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흔들어 깨우는 파르메니온이 태평하다는 듯 비난하자 "여기까지 궁지에 몰아넣었으니 편히 잠잘 수 있지 않소. 이미 이긴 전쟁이니" 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기원전 331년 9월 30일, 낮은 구릉을 끼고 대치해 있던 양군이 진격을 개시했다. 페르시아군의 진격을 마케도니아 측에서 보면 오른쪽에 베소스 장군의 군대, 왼쪽에 마자 이오스 장군의 군대, 달레이오스 자신이 지회를 맡은 군대가 중앙에 있었다. 전위군으로서 베소스 진영 앞에 박트리아인 기병대와 스키타이인 기병대가, 또한 마자이오스 진영 앞에 아르메니아인 기병대와 카파도키아인 기병대가 있어 오른쪽에서의 신속한 공격에 중점을 두 고 있었다. 50대의 전차와 50마리의 전투용 코끼리도 진영의 최전선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본진은 긴 횡대를 만들었고 베소스군은 또 하나의 박트리아인 기병대, 다인 기병대, 아라 코시아 기병대, 페르시아인 보병. 기병 혼성대, 수시아나인 가병대, 카두시아나인 기병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렬하고 있었다. 한편, 마자이오스군도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 로 카파도키아 기병대, 알바니아인 기병대, 히르카니아인 기병대, 타파르인 기병대, 시케인 기병대, 파르티아인 기병대, 메디아인 기병대, 메소포타미아인 기병대, 시리아인 기병대가 차 지하고 있었다. 중앙의 달레이오스왕은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친위대를 한가운데 두고, 마르드인 궁병대, 카리아인 정예대, 인도인 기병대, 그리스인 용병대를 끌고 와서 자리를 지 키고 있었다. 후위 공격은 시타케니아인, 에리트라 해안의 백성들, 바빌로니아인, 우크시엔인 등 마치 구름처럼 모여든 많은 보병대로 그 수는 헤아릴 수도 없으며, 거의 30만 가까이는 될 것 같 다. 전에 마케도니군이 잡았던 포로의 입에서 들었던 수보다는 보병이 적은 것 같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대군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딘 오합지졸이군!" 알렉산드로스가 띄운 격문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들어 보지도 못한 종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페르시아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 징용된 병사다 대세를 차지하고 있었고, 상호 연계도 그다지 긴밀해 보이지 않았다. 아에 대응하는 알렉산드로스 군사는 페르시아군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다. 마케도니아 무인 을 중추로 그리스인, 테살리아인, 고국 북방에 사는 아그리아네스인, 트라키아인, 크레타인, 그리고 전쟁에 익숙한 용병들이다. 기러기 진형의 오른쪽 맨 앞을 헤티이로이 필로타스가 지휘하고 중앙에 알렉산드로스의 주력 부대가 정렬해 있고 후위는 파르메니온 부하들이다. 필로타스 진영의 최전선에는 역시 헤타이로이 클레이토스가 기병대 정예를 모아서 선진을 살필 것이다. 헤타이로이의 강자가 각자 부대를 맡고 명령이 내려지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 여 새로운 공을 세우려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기병수는 8000이 안 되며 보병대는 우수 한 조직 집단인 파란쿠스 1만 2000명을 포함해도 전체 5만 명을 못 넘어, 수에 있어서는 압 도적인 열세였다. 그러나 이쪽은 결속력이 대단하다. 잘 훈련되어 있으며 더불어, "승리를 의심하지 마라. 제군의 지휘를 맡은 사람은 신의 아들의며 불패의 장군 알렉산드로스다"라는 우렁찬 외침에 는 힘겨운 상대와 싸워서 이겨낸 실적이 있으며 신뢰가 있다. 대왕의 투구는 은빛으로 빛나 며 무구에는 화려한 세공으로 박힌 보석이 춤추는 듯 보이기 때문에 상스럽기까지 하다. 전투는 오른쪽 맨 앞에서부터 시작했다. 필로타스가 이끄는 군대는 오른쪽에서 더 오른쪽 으로 움직이면서 싸우며 굴곡이 심한 들판으로 적을 유인했다. 그것을 쫓아오던 베수스 진 영이 지치기 시작하여 마케도니아의 기병대가 빈틈을 노려서 공략하면 상대도 지원 군대가 한꺼번에 모여들어 반격을 개시했다. 적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는 듯 형세가 불리하다고 보 여지는 순간에 이쪽에서 지원군이 가세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페르시아의 전진대 가 알렉산드로스를 목표로 커다란 낫이 달린 전차를 타고 요란한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왔 다. "작전 준비!" 이미 대책은 강구되어 있었다. 눈앞에까지 전차를 유인해 놓고 그 순간 대열을 열면 전차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지나가 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기복이 심한 곳이다. 대열을 벌였던 마케도니아군이 방향을 바 꾸어 뒤에서 창을 던지며 전차를 덮치자 적병은 쓰러졌다. 이리하여 전차 공격은 아무런 효 과를 보이지 못하고 궤멸되었다. 파르메니온 군사가 뒤늦게 전투에 가담하자 마자이오스 군세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파 르메니온은 적의 대군의 맹공격을 받고 매우 고전하면서도 왼쪽으로 도망가며 적의 진용을 유인했다. 중앙에서는 마케도니아군의 군진 파란쿠스가 거대한 생물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 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흙먼지가 휘몰아치고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소영돌이쳐 서 전투의 전모를 예측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어디가 우세 하고 어디가 열세인지, 대군을 움직이는 방법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한정된 범위의 국지전 이라면 결속이 돈독한 마케도니아군이 당연히 유리할 것이었다. 마케도니아군은 적진의 중앙부에 빈틈이 생겼을 때 소속 기병대와 함께 일체의 작전을 포 기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아니, 이것이 바로 작전의 비결이었다. 파란쿠스의 돌진으로 달레 이오스 친위대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그곳으로 노도 같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가병대가 발려왔다. 달레이오스의 눈에는 흙먼지를 가르고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검은 격류처 럼 보였다. 주위를 둘려보며 "도망가지 마라"하고 아무리 외쳐도 페르시아군의 패주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넓은 싸운터를 일일이 확인한다면 우세한 페르시아 부대도 적잖게 있었을 테지만 전모를 알 수는 없었고, 전투가 지연됨에 다라 페르시아군 중앙부가 약화되고 그곳을 집중 적으로 공격받자 도망하는 병사가 생겼다. 달레이오스의 눈에는 그것만 보였다. 역시 용가가 부족했던 것인지 모른다. 달레이오스는 자신이 알렉산드로스의 불패의 소문 과 신의 도움을 등에 업었다는 전설에 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공포 가 밀려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수스 패전의 재현이었다. 전차의 방향을 돌려 단숨에 도주를 시작했다. "기다려라!" 허술하기는 해도 달레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사이에는 많은 군사들이 있었다. 도주가 시 작되었지만 적의 대군은 여전히 도처에 정예를 남겨 두고 있었다. 추격하는 기마군은 길을 가로막는 적을 상대로 격심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파르메니온이 위험하다!"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급히 외쪽으로, 지원을!" 전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전의 총지휘관에게는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왼쪽에 있는 파르메니온이 위험 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전투의 추세를 살피면서 노장 파르메니온이 교묘하게 적의 공격에 응대해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시간은 견딜 수 없을 것 이다. 외치는 소리, 병사들의 움직임, 형용하기 어려운 전황 속에서 왼쪽의 파르메니온이 위험하 다는 것은 알렉산드로스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순간 갈등했다. 그러 나 외침이 먼저 튀어나왔다. "딜레이오스를 쫓아라." 하지만 전령의 목소리를 듣고 알렉산드로스가 거느린 기마 몇 기가 즉시 말머리를 왼쪽으 로 틀어 지원하러 가려 했다. '아니다, 이쪽이다'하고 외치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찌된 일인지 부세팔로스가 방향을 왼쪽으로 돌려 달리기 시작했고, 이것을 본 기병대가 한꺼번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애마의 배신에 놀란 나머지 당황했다. "아냐, 달레이오스를..." 말고삐를 잡아당려도 부세팔로스느 앞으로 달려만 갔다. 현마는 이수스 전황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달레이오스를 쫓지 않고 파르메니온을 구했다. 일단 달리기 시작 한 군사들의 움직임을 멈출 길이 없었다. 좋든 싫든 간에 전투는 시작되고야 말았다. 대왕 자신도 좌익을 공략해 오는 적군에게 포위되어 버려 싸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흙먼지 속에 서 있는 파르메니온의 볼에 회색이 감도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페르시아군도 정예를 모으고 있었다. 처절한 공방전이 시작되었고 적군도 아군도 죽음에 저항하며 미친 듯이 싸웠다. 죽은자, 부상당한 자, 그들을 밟으며 달리는 자... 한동안은 우열 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거느린 기마대는 마케도니아군 최고의 강자만 모여 있다. 그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던 것이다. 총지휘관조차도 예기치 못했던 것을 적이 알아차릴리가 없었다. 적군은 협공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차츰 기세를 잃어 갔다. 한번 열세 에 빠지면 전황은 순식간에 판가름 난다. 마케도니아측에 승기가 보이자마자, "달레이오스를 쫓아라"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성난 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화가 치밀어 목에서부터 화가 넘쳐 나왔다. 말머리를 되돌리면서도 '이젠 늦었어'하는 절망감이 뇌리를 스쳐 갔다. '그렇다면 패배야.' 달레이오스의 목을 자르는 것이 이 전투의 첫쩨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쫓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이번에는 부세팔로스도 거역하지 않고 달렸다. 수백의 기 마대가 뒤를 쫓아 반항하는 적을 뿌리치며 달려갔지만 이미 페르시아 왕의 자취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있어서도 이수스전의 재현이며 이미 추격을 불가능했다. 끝까지 추격해 봐도 잡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추격을 포기하고 허탈하게 전장으로 되돌아오자 전쟁은 대 충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승이다." "알렉산드로스 만세!" 그런 승리의 함성에도 아랑곳 않고 그 자리에서 추격군을 조직했다. 며칠 아니면 몇십 일 이 걸릴지도 모르는 추격이다. 적군의 반공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부상이 적은 기마병을 모아서 뒷일을 파르메니온과 부하들에게 맡기고 출발했다. 이미 밤 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했는데도 이 대하의 지류를 건너야 했다. 페르시아측 병사가 달아났 던 후진을 습격하여 전리품을 모았고 부하 병사들에게도 휴식을 취하게 했다. 한밤이 지나서 달레이오스가 아르벨라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급히 출진을 명령했다. 아르벨라는 가우가멜라 결전을 앞두고 페르시아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도시이다. 달레이오스 가 숨었다면 그곳이 틀림없을 것이다. 밤을 세워서라고 추격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이 빗나갔다.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지만 달레이오스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아르벨라에서 다 시 도주한 모양이었다. 당황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이 있었다. 엄청난 양의 재화와 왕의 소 지품을 거두어들였지만 달레이오스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페르시아측의 사상자는 십수만 명, 포로는 그 수를 상회했고 노획한 전리품도 어마어마했 다. 한편 마케도니아측도 사상자로 우수한 장수를 상당수 잃었고 군마에도 막대한 순상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피해는 적군의 10분의 1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리하여 가우가멜라 전투는 마케도니아측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으나 알렉산드로스만은 이겼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무엇이든 이수스 전투와 똑같은 꼴이 아닌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고서야 어떻게 승리했 다고 할 수 있겠는가. 급기야는 '이것이 딜레이오스의 전술이 아닐까'하는 의아심마저 품게 되었다. 일리는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드로스도 페르시아의 광대함을 깨달았고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영토가 광대하 고 군자금이 풍족하다 못해 넘치면, 이길 것 같은 때에는 반드시 이기고 질 것 같은 때에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재빨리 도망가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오히려 추격하는 쪽이 더 지 친다. 전쟁을 반복하다 보면 항상 이기던 군대도 언젠가는 질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적의 전법이라면 이수스도, 가우가멜라도 그 틀 안에서 만들어진 사건밖에 안 된 다. 달레이오스의 재빠른 도주를 생각하면 그것이 예정된 전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었 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초조함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그래도 역시 추격하는 것 되에 달리 방법이 없다. 적의 전술에 맞추면서 땅 끝까지 추격 하여 결국 달레이오스를 제거하지 않은 한 필경 페르시아는 세력을 만회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승리를 축하하는 술에도 기분 좋게 취할 수가 없었다. 뒤틎게 아르벨라에 도착한 파르메니온이 축하를 전하러 왔지만 대왕은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으로 노장을 무 섭게 노려보았다. "왜 그때 나를 불렀지?" "예?" 파르메니온은 바로 알아차렸다. 가우가멜라 전장에서 좌익군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왜 대 왕의 가마병에게 도움을 청했는가. 대왕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전략대로..." 노장은 알렉산드로스의 분노를 알면서도 일단을 해면을 해보았다. 열세에 빠진 부대가 재 빨리 주의의 아군에게 지원을 청하는 것은 치밀한 결속을 자랑하는 마케도니아군이 언제나 쓰고 있는 전략이다. 그리고 함부로 전략을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달레이오스를 쫓고 있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부세팔로스가 갑자기 내달리는데..." 짧게 당시의 정황을 설명했다. 부세팔로스의 심경까지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르메 니온이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되물었다. "그 놈이 아니었어라면 저희를 버릴 생각이셨습니까?" "달레이오스를 죽이는 것이 이 전쟁의 목적이고, 그것을 위한 전투였다. 지휘관이라면 알 고 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노장은 아버지가 자식을 타이르듯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버렸어야 마땅 했습니다'라는 말이라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 는 법이다. 대왕의 짐작은 예리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사자왕의 표정이 노기를 띠고 있었고 파르메니온도 입을 닫고 침묵으로 대항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이겠지요.' 무언중에 눈과 눈을 서로 깊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의 정황으로는 파르메니온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정당한 일아며 조금도 잘못 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는 때마침 페르시아 왕을 죽일 수 있는 절대의 호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달레이오스의 목, 바로 그것을 많은 병사를 희생해서라도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전투의 최대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파르메니온을 버리고서라도 페르 시아 왕을 쫓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총지회관 알렉산드로스 외에는 아무도 없다. 판단을 잘못한 사람은 다름아닌 대왕 자신이며 죽었을지도 모르는 파르메니온을 꾸짖 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잡기 직전에 놓친 고기가 너무나 커보이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러 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분함을 파르메니온에게 터트리고 말았다. 무심결에 "이젠 너무 늙었 어"하고 애마 부세팔로스를 나무랐는데, 파르메니온은 순간 서운함에 슬픈 눈빛으로 바라봤 다. 부장군의 수염에는 하얀 털이 부쩍 눈에 띄었다.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달레이오스에게, 그리고 파르메니온에게도 심한 굴욕을 느꼈다. 특히 의기 양양해 보이는 파르메니온의 얼굴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헤페스티온이 나타나, "또 기회가 올것입니다"라며 느긋하게 웃기 시작했다. "부세팔로스가 뭘 착각했을까..." "부세팔로스가 명하신 신의 계시인지도 모릅니다. 좀더 아시아 오지의 땅까지 밟으라는..." 그 말읊 들으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부세팔로스의 행동은 보통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마 치 다른 누구에게 명령을 받은 것처럼... "밟으라고?" "선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라고." "그럴지도..." "힘내셔야죠!" 오랜 친구의 설득을 듣고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았지만 영혼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분노 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왕의 심중이 어떻든 페르시아 왕에게 가우가멜라의 패배는 하나의 전 술로만 생각하고 간단하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전군을 다 동원해서 승리를 꾀했음에도 불구하고 궤멸하다시피 패한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마케도니아군이 강했기 때문이다. 즉 마케도니아는 선왕 필리포스 시 대 때부터 군제의 개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군대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예전의 군제는 좀 심하게 말하면 수에 의존하여 대규모 군대를 거느리고 위 압적인 군비를 과시하며 공략해 갔고, 그후에는 논공 행상을 목표로 하는 자들의 공명심과 무용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에 비해 마케도니아군은 훨씬 조직적이었고 평상시에 훈련받은 직업 군인을 중심으로 하여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 통치하는 전술이 획립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면에 서 군대로서는 한 발짝이나 두 발짝 정도 앞서 있었던 것이다. 수적으로는 다섯 배나 넘는 페르시아군이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패주하는 달레아오스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쉽게 이길 수 있 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미쳐 날뛰는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짐작할 수 없는 예사 인물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전장에서의 용맹성과는 달리 포로로 잡힌 태후와 왕자, 공주에게는 더없이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대한다고 하지 않는가. 왕비를 능욕하지도 않았고 병으로 죽었을 때에는 정중하게 묻어 주었다는 보고도 들었다. 그런 걸 보면 훌륭한 인물인 것 같기는 한데... 신일지도 모른 다는 소문도 들었다. 다섯 배나 많은 대군에게도 태연하게 맞서 싸웠고 실제로 이겼으니 불사신인 것만은 확실 하다. 실제 있었던 사실이지만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었어도 죽은 적이 없었으니 신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며 신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달레이오스에게는 이런 생각이 가 장 두려웠다. '신과 싸워서는 이길 리가 없다.' 달레이오스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신의 분노를 살 만한 소행은 없었는지, 새삼 그 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알렉산드로스라는 무서운 괴물이 나타난 것은 어쩐지 자신의 과거의 죄상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떳떳하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신을 모독한 몇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왕위 찬탈 그 자체가 피와 독약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살육, 잔학함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 다. 그때마다 신들에게 정죄를 빌며 산 제물을 바쳤으나, 페르시아 신과 마케도니아 신이 달 라서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라면 어떻게 하나, 잘되도록 빌기 위해서 감행한 일에도 조금은 후회를 했다. 왕은 몹시 당황했다. 달레이오스 3세는 인품이 있는 교양인이었다. 페르시아 왕가의 계보를 볼 때 이것은 대서 특필해도 될 만큼 사실이다. 패주중에 마케도니아 왕의 인격을 생각하고 숙적의 늠름함에 충격을 받아 신성를 생각했다는 사실, 그 가체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대페르시아 왕국의 귀족으로 자란 달레이오스의 왕위 계승에 대해서만은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지만 왕으로서 의 평판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성격도, 행동도 품위가 있었고 보기에 따라서는 느슨한 면도 없잖아 있었기에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적국의 왕이 경애심을 표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달 레이오스는 솔직히 감사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역사가의 전송에 의하면 이 시기에 달레이오스는 다음과 같이 신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페르시아 왕가의 수호신이여,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은혜를 내리소서. 제가 먼저 죽어도 이 땅에 페르시아의 부흥을 실현하시어 예전의 번영을 다시 직접 펼쳐서 저에게 보 여 주소서. 그리하면 제가 패배자로서 받은 일체의 불행을 승리자로서 알렉산드로스에게 되 돌려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의 몸에 신의 분노가 내리기사 우리 왕가의 지배 가 이 지상에서 사라질 운명이라면, 그때는 위대한 대왕의 자리에 알렉산드로스를 앉혀 주 소서." 첫 번째 바람은 당연히 자신의 권세의 부활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바 로 페르시아를 공략한 당사자인 적군의 총사령관 알렉산드로스에게 대아시아의 대왕이 되기 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것은, 패사에서 볼 수 있는 일화라면 몰라도 현실로서는 지나친 미담 이다. 어찌되었든 달레이오스의 심중에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적이지만 훌륭했다고 생각하며 외경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도망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도주중에 가세한 병사를 합쳐서 달레이오스를 따른 군사는 기마병 4000기와 보병 3만 5000으로 상당한 대군이었다. "바빌론이나 수사는 곤란하다." 달레이오스는 행선지를 변경했다. 이때만 해도 패배의 충격을 엿볼 수 있다. 패자의 무력함이 엿보인다. 아르벨라에서 바빌 론, 수사를 거쳐 대도시 페르세폴리스에 이르는 코스는 페르시아가 자랑하는 왕도이며 대왕 국을 관통하는 중요 도로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여세를 몰아 이 길을 동으로 달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러나 지금 여기에서 추격을 몰아붙인다면 진실로 파멸할 것이다. 국왕의 명령도 왠지 불안 했다. 북동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아르메니아 산악을 빠져 나와 메디아 지방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이 방면의 지리에 어둡기 때문에 추격을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달레이오스는 얼마간의 시간을 벌고 싶었다. 태세를 다시 갖추기 위한 시간의 필요성보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므로 보다 안전한 길을 택하거 싶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쪽은 달레이오스의 퇴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지만, 상당 수의 군사가 페르시아 왕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막다른 지경에까지 몰아넣고 싸울 것을 생각하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군사를 갖고 있어야 했다. '또 놓쳤단 말인가.' 한동안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가우가멜라 전장의 뒷정리도 끝나지 않았고 아군 전사자들을 정중하게 장사지내 줘야 했으며 공적을 세운 병사에 대한 상도 내려야 했다. 이 모든 일을 지휘관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적군의 전사자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 질병이 발생하고, 그러 면 새로운 도시를 세울 수가 없게 되며,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위업과 은혜를 보여 주는 데도 많은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대왕에게는 가신에게만 맡겨 둘 수 없는 중요한 임무가 몇 가지 있었다. 며칠 후에 달레이오스와 그의 병사들이 아르메니아 산악 지대로 도망갔다는 정보가 들어 왔다. "아르메니아 방향이라 해도 너무 넓어서 말야." "그러하옵니다." 거기에서부터는 보고가 몇 가지로 나누어졌다. 지형이 확실치 않다, 신뢰할 만한 지도를 그릴 수 없다, 달레이오스는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바빌론이나 수사로 들어갈 것이라는 관축 도 나왔다. 왕이 쉽게 도시를 버릴 리가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왕도의 동쪽으로 진격 하기로 했다. 우선은 바빌론까지, 오늘날로 말하면 약 500킬로미터의 거리를 20일 만에 행지했다. 바빌론은 말할 필요도 없이 고바빌로니아와 신바빌로니아 두 왕국의 수도로 대단히 번영 했던 도시다. 특히 알렉산드로스보다 300년 정도 전에 군림했던 네브카드네자르 대왕 때에 는 세계 제일로 칭송되었던 상업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 시대에는 어는 정도 쇠퇴하는 듯 했지만 그래도 번영했던 시절의 자부심만은 남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시 입성을 앞두고 군용을 정비하여 전투에 임할 각오를 하고 있어지만, 도시의 유력자가 모두 마중 나와 있었다. 주민들도 꽃 장식을 한 채 환영 대열을 만들고 있 어 글자 그대로 무혈 입성이었다. 알렉산드로스도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 환영 인판 속에는 태수 마지아오스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환송해 하고 있 었다. 마지아오스는 달레이오스 3세의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그보다 며칠 전 가우가멜라 전장 에서 마케도니아 군과 대치하며 페르시아군의 일익을 담당했던 바로 그 지휘관이었다. 비록 적이었지만 마자이오스가 이끄는 군대가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는 사실은 기억에도 새로운 데, 그가 일찌감치 임지 바빌론으로 돌아와서 태수 임무를 계속하고 있었다니... 바빌론은 달레이오스의 충신을 태수를 받들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그 이름 대로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로니아인이었다. 페르시아인과는 다른 마자이오스는 가우가멜라 전장에서의 참패와 바빌로니아인들의 반페르시아적 감정을 깊이 고려하여, 이번 기회에 알 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복종하는 것이 상책이겠다는 액삭빠른 판단을 내렸다. 페르시아군이 쉽게 무너진 것이 이렇게 빨리 변신하게 된 이유겠지만 또한 난세를 헤쳐 하는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것을 양해하고 마자이오스에게 계속해서 태수의 지위를 주었다. 이것은 일종이 정치적인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 페르시아인 유력자 를 무시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정 도중에 페르시아 왕의 고관을 알렉산드로스 의 직속 고관에 앉힌 첫 번째 신호탄이며 이후에도 여러 번 시행되는 정략이었다. 한편으로 바빌로니아인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사제의 제안을 대폭적 으로 받아들여 예전에 페르시아인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파괴한 베로스 신전의 재건에도 아낌 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 일로 인해 이집트 원정 때와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멍에로 부터 민중을 해방한 영웅으로서 바빌로니아인으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바르시나는 언제나 대왕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다. 항상 싸움터에 가까운 막사에 기거하 며 대황의 휴식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왕의 일은 엄청나게 바쁘고 복잡했다. 전투, 회의, 집무, 외교, 포상, 연설, 제사, 단련, 독서, 환담, 주연... 잠잘 새도 없었다. 거처에서 지내는 시간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중에도 두 사람은 사이 좋게 보냈다. 웃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밤도 많았다. 중신 중에는 "페르시아 여자인데 대왕을 암살할 우려는 없을까"하며 바르시나를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전혀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설마 살해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 지만, 지나친 기대를 거면 실망하는 법, 처음에는 방심할 수 없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바르시나는 특별한 여자였다. 어느 사이엔가 마음을 다 털어놓게 만들어 버렸다. 같이 있으면 도저히 페르시아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케도니아 여 자도 아니었다. "왜 그렇지?" 알렉산드로스가 물어 볼 때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곱게 미소지었다. "저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아테네에서 자랐고 마케도니아에서 처녀 시절을 보냈습니 다. 사람은 태어난 고향으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사람은 국경을 초월하여 어디에도 있는 법이니까요. 나쁜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페르세아인이 더 좋지?" 하고 놀리면, 애교 있게 눈을 흘기며 이렇게 반문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찌 마케도니아 대왕을 곁에서 모실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렇구나." 대화는 언제나 짧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예리한 지성은 바르시나라는 존재 자체에서 나오 는 미묘한 힘을 알아채고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아니면 바르시나의 현명함이 그것 을 말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전했을지도 모른다. 미묘한 힘, 그것은 인종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는 것, 현대식으로 말하면 코스모폴라타니즘과 페미니즘이 복합된 듯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감정의 조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대충은 짐작하고 있겠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고대의 권력자로서는 드물게 여성을 존중 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근대적 모랄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말이다. 남성 우월 사상이 철보다 도 단단했던 시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대에 살던 알렉산드로스는 '여자의 생각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며 여성에게 어느 정도의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태후 올림피아스의 영향이 있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부왕은 전쟁에만 열중하여 왕자를 돌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린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고 지식이나 도덕도 누구보다 어머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올림피아스는 광적인 면이 있기는 했지만 결코 지성이 모자라는 여자는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소년기에는 때때로 포악한 술 주정뱅이인 아버지보다 어머 니 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성장함에 따라 아버지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어리석음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성인이 된 후의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의 광적인 성격과 권모 술수에 혐오감마저 갖게 되었 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에 길러진 감성은 떨쳐 보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전도 연령의 여성 에게는 항상 예를 다해서 대했고, 또 여잔가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도리에 맞는 말 이라면 귀기울여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다. 가신의 말보다 부드럽게 말하는 쪽을 들어주는 일도 있었다. 바르시나는 그런 귀에 통하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대왕의 감성에 호소하는 기 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여자에게 암살당한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이지!' 여자에게 반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어디까자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바르시나의 악의를 미처 간파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눈이 형편없다면, 자신의 감성이 잘못되어 있다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하는 심리였다. 바르시나가 발하는 기운을 알렉산드로스는 무실결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처음부터 옳다고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케도니아를 출진했던 알렉산드로스는 몇몇 도시에서 가벼운 지배라는 명목의 승리를 되 풀이하고 많은 사람을 다스림에 따라 '마케도니아만을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통감 했다. 이국인 중에서도 좋은 신분, 좋은 능력,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찾 아내어 도움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조금씩 깨달았다. 물론 고향을 같이하는 동족의 충성심은 존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의 끝까지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젊은 시절에는 마케도니아의 소박한 충성심만을 믿고 있었지 만 충성을 바라보는 견해도 한층 더 비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빌론 통치에서 약간은 절조가 결여된 마자이오스를 중용한 것도, 또한 바빌로니아 사제 들의 요구에 따른 것도 이러한 알렉산드로스의 심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내부의 적 바빌론에서 수사까지는 티그리스강의 주류를 따라, 그리고 대하를 건너서 약 400킬로미터 이다. 현재의 지도에 의하면 여가에서 이라크로부터 이란으로 국경이 넘어간다. 가는 도중에 는 자그로스 산맥의 험준한 산등성이가 마치 인간의 도래를 거부하는 듯이 높고 길게 우뚝 솟아 있다. 수사가 어니냐고 물어 보면, 공항이 잇는 도시 드즈풀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30분 정도 달 리면 거친 사탕수수밭이 계속되는 들판이 나오는데, 그곳을 가리키며 "바로 여깁니다"라고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 않는 가이드가 태평스럽게 웃으며 가르쳐 준다. 궁전 유적 같은 석주와 벽과 초석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어 언뜻 보기에도 오래되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20세기 초, 바로 여기에서 발견되었다고 했 던가. 고대 페르시아를 건축한 대와 키루스는 파사르가다이, 엑바타나, 바빌론으로 왕도를 옮겨 갔다. 마찬가지로 대왕으로 불렸던 달레이오스 1세는 바빌론에서 수사로 천도하였고, 다시 파사르 가다이 근교에 대도시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지만 완성은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대규모 계획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시대에 대부분이 준공을 보았다. 그후 그 상태 로 거의 100년이 경과하여 달레이오스 3세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알렉산드로스가 동정길을 떠났을 때 페르시아 수도는 페르세폴리스였고, 수사에 는 동궁, 즉 혹한을 피하기 위한 궁전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란 고원에 위치하는 페르세폴리스는 아무리 호화로운 궁전을 가지고 있어도 삼엄한 겨울 추위에는 적합하지 않 았다. 그래도 알렉산드로서는 갔다. 기원전 331년 늦가을, 예사롭지 않은 한기가 감돌기 시작할 무렵에 가우가멜라 승리를 뒤 로한 채 동정군은 수사로 향했고, 여기에서도 바빌론처럼 전쟁을 하지 않고 무혈 상태에서 점령하여 왕가 소유의 재화를 거둬들였다. 신에게 재물을 바치고 각종 경기 대회를 열어 잔 치를 베풀었고 이 땅의 태수 자리에 페르시아인을 앉힌 것도 바빌론 때와 갔았다.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의 도망은 이미 주위에 널이 알려져 있었지만 200년이 훨씬 넘도록 번영을 자랑한 페르시아 왕조가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라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국왕께서는 엑바타나에서 대군을 모으고 있어. 이번에는 그깟 알렉산드로스한테 이길 거 야." "그러나 두 번이나 졌기 때문에..." "아냐. 방심했기 때문이지, 그것만 아니라면 졌을 리가 없어." "우리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잠시 동안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낫겠어." "그래." 달레이오스의 반격도 충분히 예측된 정황이었기 때문에 관망하는 것이 좋겠고, 우선은 알 렉산드로스에게 복종하는 것이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지 주둔한 뒤, 다시 동정의 진로를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로 잡았다. 고 국 마케도니아로부터 대망의 신규지원 부대 1만 5000명도 도착했다. 페르세폴리스까지는 700킬로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였지만, 이번에는 험준한 산골짜리를 빠져 나가는 어려운 코 스였다. 게다가 때는 한겨울, 그것만이 아니라 주위에는 독립심이 왕성한 토착 부족 세력이 할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국의 정복자 따윈 필요 없어, 뭐 하는 놈이야!" 하고 적의를 드 러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주의 지형이나 그 땅의 이점을 잘 파악하 고 있었다. 수사를 출진한 지 얼마 안 되어 주요 통로 주변을 소굴로 하는 산악 부족이 전언을 보내 왔다. "우리는 페르시아 왕한테도 통행료를 받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너희들도 이 경계를 넘어가려면 소정의 재화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요구에 따르는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성격이 아니다. 격렬한 전투를 벌어 이 약속을 깨고 반대로 조공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또다시 그들 앞에는 페르시아의 관문이라고 불 리는 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수 아리오발자네스는 이 협곡을 지키며 동정군에게 복종하 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의 관문 주변에 군세를 모아서 수도 페르세폴리스로의 침공을 저지하려고 했다. 알렉한드로스 쪽은 지금까지의 연전 연승, 무혈로 승리를 거둔 것 까지도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헤이해져 있었다. 사자왕은 예전처럼 강행 돌파를 명했지만 적의 반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암석이 머리 위 에서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듯이 우박이 되어 쏟아졌다. 동정군은 머리 위에 방패를 일렬로 펴서 막으려고 했다. 이 방책은 여태까지 몇 번이나 성공을 거우었지만, 페르시아의 관문에 서는 주위 절벽이 높이가 그 경우들과는 달랐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서 거대한 암석이 굴러 떨어지다 도중에 몇 개로 깨어져 무서운 기세로 경사면을 달렸고 겨냥은 빗나가지 않 아 정확하게 길 위로 낙하했다. 절벽보다 약간 낮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사출대가 도망가 려고 갈팡질방하는 마케도니아군 병사를 향해 돌멩이를 정확하게 조준하여 사살했다.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적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부상자도 없는데, 알렉산드로 스 군사만 부질없이 죽음을 당하고 중상을 입어 손해가 막심했다. 페르시아의 관문에 발을 디딘 자 가운데 상처 없는 병사는 한 사람도 없을 지경이었다. 국지전이라 해도 알렉산드로스가 처음으로 맛보았던 완벽한 패배였다. 총지휘관의 실책인 것이 명백했다. "후퇴하라!" 분노가 머리로 치밀어 오르고 굴욕감에 가슴이 떨렸다. 이러다간 불패의 신화가 무너져 버린다. '반드시 대책이 있을 것이다.' 지형을 확인한 뒤 면밀한 작전을 세웠다. 알렉산드로스의 구상은 이 부근 자리에 밝은 자 들조차 주저할 만큼 무모한 진격이었지만, 왕은 "내가 갈 것이다"라고 분노하며 말했다. 우선 헤타이로이 크라테레스에게 군사의 절반을 맡겨 페르시아의 관문에 대기시켜 놓고 사자왕 자신은 남은 군사와 함께 샛길로 우회하여 적의 배후에 포진했다. 한밤중의 강행군 이었다. 도중에 헤타이로이 필로타스에게 페르세폴리스에 이르는 다리를 가설할 것을 명령 하고, 같은 헤타이로이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적이 도주하리라 예상되는 분지에 병사들을 숨겨 두도록 명령했다. 그런 다음 사자왕 자신은 정예 병사와 함께 가장 험준한 산을 넘어 적군이 발 아래로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좋다!" 크라테레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절벽 위에 진을 친 적군을 상하에서 협공하기로 했다. 적군은 당황하여 허둥대는 바람에 응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뒤편 높은 지대에서 자신 들이 써먹었던 전법대로 돌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데 맞서서 싸울 수도 없고, 산을 내러가 서 도망치려 해도 거기에는 크라테레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행히 산속을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프톨레마이오스군이 숨어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사상당한 가운데 태수 아리오발자네스는 간신히 몇 명의 기병의 보호하에 탈출에 성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거기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전군을 모아 팔로타스가 놓은 다리를 빠져 나 와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서둘러 진격했다. 모든 것이 마치 유회를 즐기듯이 계획대로 착착 성공했다. 페르시아의 관문의 공방전은 실패도 컸지만 성공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이 전쟁 의 결과는 사자왕이 오히려 자신감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신속한 행동이 공을 세워 동정군은 누구에게도 왕궁의 재물과 보화를 약 탈당하지 않은 가운데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입성하는 거사를 이루었 다. 귀금속 종류만도 12만 달란트, 마케도니아의 예산을 상회하는 금액이었다. 잔혹한 피비린내 나는 난전을 치른 직후였다. 동정의 목적은 이 도시였고 '페르세폴리스까 지만 견디자'는 것이 암묵의 약속이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던 총지휘관은 병사들의 약탈을 묵인했다. 번영의 도시는 한순간에 탐욕스런 짐승들 손에 송두리째 빼앗겨 지옥을 방불케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가 휘두른 횡포에 대한 그리스인의 보복이므 로 신들도 용서해 줄 것이다"라며 정당화했지만, 수도는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너무나 비참한 참상에 알렉산드로스마저 당황했다. "이젠 그만해라. 규율 바른 병사로 되돌아가거라." 새로운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전쟁터가 아닌 마을을 습격하는 잔학 행위는 원정군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드문 일이었 다. 측근 중에는 틀림없이 사자왕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 에서는 혹독한 겨울 동안 장병을 휴식시킬 필요도 있어서 세 달을 보내기로 했다. 알렉산드 로스가 또 다른 수도 파사르가다이를 점거하여 막대한 보물들을 차지한 것도 이 시기 전후 며 홍해를 본 것도 이때쯤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그 이름대로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왕도지만, 페르시아 왕의 지배라는 시 점에서 보면 이 부근의 고원 지대까지가 지배의 동쪽 한계선이었다. 물론 대왕국 지도상의 영토는 여기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멀리 인더스강까지 미치지만 치정은 그렇지 않았다. 몇 몇 부족이 각자의 지역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국왕의 입장은 통치라기보다 회유에 가까웠다. 페르시아의 관문 부근에 살던 산악 부족이 "우리는 페르시아 왕한테도 통행료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일례이다. 그리스인이 여기보다 더 동쪽 으로 들어간 일도 극히 드물었다. 즉, 동정군은 이때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방인의 땅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지금까지의 행로는 이국임에는 틀림없지만 전혀 낯선 미지의 세계는 아니었다. '드디어 야만족의 땅에 발을 내딛는구나.' 예민한 알렉산드로스는 무의식중에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하듯 또 하나 의 사건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할 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겨우 가라앉은 것은 어느 봄날 저녁 무 렵, 알렉산드로스는 각별이 아끼는 중신들을 주위에 불러모아 주연을 열었다. 주연이 시작되 기 바로 직전에 달레이오스가 엑바타나에서 병사들을 모으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들어왔 다. 알렉산드로스는 만취했다. 거나하게 취해 있었어도 계속 술잔을 기울여 단숨에 들이켜 마시고는 손등으로 뺨에 흘린 술을 닦아 냈다. "왜 수염을 기르지 않으시는지요?" 옆에서 시중을 들던 아테네 출신의 아리따운 여가 타이스가 물었다. "이렇게 하는 쪽이 더 미남으로 보이지." "네..., 하지만 선왕에게 받은 벌이라던데요." 타이스는 뜻밖에도 옛날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10대 중반이었을 때 맘대로 군을 출동시켜 그 벌로서 수염을 깎아 버렸다. 벌은 그것으로 끝났는데, 이 반항아는 지금까지도 수염을 기 르는 풍습을 따르지 않는다. "아하하하."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마이다족 반란을 진압한 뒤 거기에다 알렉산드로폴리스를 세웠었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시였다. 그것이 부왕의 노여움을 사게 만들었고 "어리석 은 녀석, 자만하지 마라! 20년이나 빨랐어.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킬 때도 그 이 름을 지껄여 주면 좋겠구나!" 하며 심하게 매도당했었다. 페르세폴리스가 뭔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다. 아버님의 얼굴이 보고 싶구나.' 뺨에 흐르는 엷은 미소는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타이스는 대왕의 씁쓰레한 미소의 참뜻을 알지도 못한 채 화제를 바꿨다. "페르시아 왕이 아테네 신전에 불을 질렀다고 하더군요." "잘 알고 있구나. 크세그크세스다. 이 왕궁도 그가 지었지. "아테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위대한 대왕은 여느 사람은 생각도 못할 일을 하니 까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는 거군요!" "글세?" 타이스도 꽤나 취해 있었다. "그렇다면 사자왕께서도 크세르크세스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여기에 불을 질러 전부 태워 버려야만 위대한 그리스 사자왕이시지요!" "재밌구나." 나중에 타이스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항변했다. "오, 그렇구나." 그리스의 대표자라면 아테네 신전에 가해졌던 난폭함에 대한 보복을 보여 줘야 한다. "눈 에는 눈, 이에는 이"이것은 이 나라의 속담이 아닌가, 취한 머리로 이런 생각을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벌떡 일어나서 바로 전에 헌상품으로 가져온 불타는 물을 바닥과 벽이 뿌 렸다. "여봐라. 모두 불태워라. 이 야만인들과 함께 그들의 집도 모두 다 태워 버려라!" 횃불을 쥐고 불을 붙이며 돌아다녔다. 술에 취해 있어도 동작만은 민첩했다. 몇 사람이 따 라 했다. 왕궁을 불태우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단순하게 판단한 탓인 것 같다. 나머 지 무리들도 취해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파르메니온이 말리려고 달려왔을 뿐 대부분은 어 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불은 순식간에 주위로 번졌고 기둥도 타기 시작했다. 불길이 거세지는 것을 보고 "불을 꺼라"라고 대왕 자신이 망연 자실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일단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을 쉽게 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세가 더해 갔다. 워낙 거대한 왕궁이었기 때문에 전소는 피할 수 있었지만 상당 부분이 불타 버렸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횃불을 들고 원숭이처럼 불을 지르며 달리는 자신의 모습뿐이다. 왜 그런 난폭한 짓을 했는지 가만해 생각해 봐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타이스가 부채질한 기억도 없을뿐더러 설사 부추겼다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소유인 아름다운 궁전에 자기 손으 로 불을 지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또 설령 타이스가 무슨 말을 했다 하더라도 술자리에 서 나눈 농담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인으로서 크세르크세스한테 복수 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낯선 타국 땅에 와서, 만취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라는 야릇한 흥분 이 잠재하고 있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페르시아인의 신앙은 신의 상징으로서 화염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이다. 배화교라고 불 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배화교 신전은 그리스 신전과는 달리 후세의 사람들은 판 별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당시의 건축 미술의 정수를 엿보려면 페르시아에 서는 신전보다도 왕궁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페르시아 궁전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오늘날에 그 훌륭한 기예를 전해 주는 유적은 매우 적다. 페르세폴리스 왕궁 유적이 거의 유일한 존 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르세폴리스 왕궁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된 것은 1930년에서 1940년 사이의 일인 데,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왕궁 중추부에 확실히 불탄 자국이 확인되었다. 실화인지 방화인 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방화설도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며 적어도 시대적으로는 잘 부합되고 있다. 이 소설의 필지로서는 만취 상태에서 한순간의 광기에 사로잡혀 원숭이처럼 불을 지르며 날뛰던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믿고 싶다. 이 탁월한 이성의 소유자가 광적인 단면을 숨기 고 있었던 점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폭발했다면 바로 이때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 던 그 시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횃불을 높이 쳐들고 광란하는 알렉산드로스와 매우 화려한 왕궁이 이루는 대비는 인간의 영웅과 문명의 정수가 경쟁하다 뒤얽힌 아이러니컬한 회화로써 흥미롭게 비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전소를 면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오늘날에 남은 유적은 전모의 위대한, 석벽 과 석단의 웅장함, 조각의 화려함 등으로 모두가 탁월한 유물이다. 성문을 기키는 인간의 머 리를 하고 날개가 달린 목우, 기둥머리에 장식된 머리가 둘 달린 괴물, 괴수와 싸우는 대왕 의 용감한 모습, 행렬하는 인물의 무리들은 지금 당장에라도 움직일 것만 같다. 의장과 기술의 정교함은 2천 몇백 년 전의 위용을 느끼에 하며, 망가져 있어도 조금도 흠 잡을 데가 없다. 페르시아의 번영과 부가 생생하게 떠올라 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밀려오는 감명에 압도당하게 마련이다. 인류가 자랑할 만한 굴지의 유산임에는 분명하다. 아마도 마케 도니아 대왕의 눈에도 이 세상이 압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거기에 불을 지른 충동인 도대 체 무엇 때문일까. 술에 만취한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해서 잤다. 이틀 밤낮이 지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는데 일어나자 두통이 너무나 심해서 현기증이 날 지 경이었다. 구토를 느꼈고 갈색의 위액을 토하기까지 했다. 술에는 상당한 강한 체질이지만 너무 많이 마셨던 탓인지, 술이 별로 안 좋던 탓인지 숙취가 좀 심했다. 어렴풋이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왕궁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없었다. 수행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헤페스티온을 불러서 다시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왜 말리지 않았지?" "그럴 틈이 없었어. 아무 기억도 안 나?" "그래, 횃불을 들로 춤췄던 것 같은데,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완전히 남의 일이군." "머리속에서 내가 튀어나왔어." "그랬을지도 모르지." "신이 하라고 시켰을지도."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후회를 했다. 아니, 수행원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불경스러운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마음에 변화가 생겨 후회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다. "뭐라고?" 의아해 하는 헤페스티온에게 말을 이었다. "일부러 불을 질렀다면 불을 끄게 하는 일은 없어야지. 그런데 내가 불을 끄라고 했지?" 창밖에 늘어서 있는 석주는 궁전이 전소를 면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음." "신이라면 다 태웠을까?" 오만하게 내뱉었다. "글세." 헤페스티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신은 아름다운 것을 끝까지 없애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그럴지도 모르지. 언젠가 복구시킬 거야. 하지만 얼마 동안은 이대로 두겠어." "마음내키시는 대로." 회랑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파르메니온이었다. "기침하셨습니까." "오냐." 위의 불쾌감은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지난밤의 화재 사건은... 그래, 예전에 그리스 신전에 불을 지른 페르시아 왕에 대해 보복 하기 위해 사자왕이 자신의 재산이 된 궁전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이것으로 양쪽 다 유 감이 없어졌다고 알려 주게. 그리스인에게나 페르시아인에게나, 알았지?" 물러가는 헤페스티온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벌써 그렇게 조치했습니다." 파르메니온이 눈짓으로 헤페스티온을 가리켰다. 이미 헤페스티온의 제안으로 그런 방침을 택했다는 눈짓이었다. "그런가." 대왕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헤페스티온에게 월권하는 일을 없었다. 그러나 헤페스티온은 언제나 정확하게 알렉산드로 스의 의도를 알아맞혔다. 사자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이 친구는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월 권한다 하더라도 헤케스티온이라면 용서했다, 그는 바로 또 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이기 때 문이다. 파르메니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달레이오스의 근황을 알아냈습니다. 엑바타나에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베소스가 호위하고 있으며 병사를 모아서 주변 부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는 도주로를 찾고 있습니다. 파르티아에서 박트리아의 끝까지. 오지로 도망간다면 쉽게는 잡 을 수 없을 듯하옵니다." 엑바타나는 수사에서 북으로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메디아 지방의 중심지로서 번영 하고 있던 대도싱이다. 달레이오스가 북쪽으로 도망간다면 그 부근을 근거지로 한다는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보다 더 깊은 속으로, 예를 들어 박트리아로 간다면 이름 조차도 생소한 곳이다. "베소스가 있었구나, 충실하군." 가우가멜라에서 적진이 좌익을 지휘했던 장군이다. 우익을 맡겼던 장군 마자이오스는 이 미 배신할 것 같은 인격의 소유자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베 소스는 박트리아 태수이기 때문에 도주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베소스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녀석입니다." "좋다. 출격이다. 오지로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되지." 오랫동안 숙취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고국에 있던 재상 안타파트로스가 스파르타군과 싸워 승리를 거뒀고 많은 인질도 사로잡았다는 소식이었다. 훗날의 걱정이 없어져 앞으로의 징조가 참으 로 좋았다. 며칠 후에 달레이오스를 쫓는 군사들이 알렉산드로스 지휘하에 엑바타나를 향해 달렸다. 현재의 하마단, 300킬로미터 북방에는 벌써 카스피해의 넓은 바다가 펼쳐저 있었다. 봄이라고 해도 고원 지대의 행군은 힘들다. 우회로를 찾아 강행군하여 엑바타나로 서둘러 갔지만 달레이오스는 모을 수 있는 재화를 모아서 허물 벗은 뱀처럼 빠져 나가 오지로 도망 가고 없었다. 다와 주리라 믿었던 주변 부족한테서도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던 모양이었 다. 카스피해까지 진을 끌고 가서 싸울 작정이라는 판단이 섰다. 카스피의 관문은 카스피해 남쪽, 엘부르즈 산맥 기슭을 빠져 나가는 주요 협곡을 장악하는 난코스이므로 복동 오지로 퇴각하는 적군은 반드시 이 지역을 방위의 요지로 할 것이다. '장기전이 되겠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엑바타나에서 동정군의 진용을 일신했다. 즉, 코린토스 동맹의 해산이다. 페르시아 원정은 본래 그리스 민족 공동의 적을 정벌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코린토 스에서 동맹을 맺었고 그리스 각지에서 병사를 모아서 진격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목적 은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며 동정군에게 있어서 그리스병은 그리 대단한 전력이 아니었다. 위로금을 쥐어 주며 고향으로 귀환시킨 것도 훗일을 생각하면 하나의 방책이었다. 그런 다 음 군의 조직과 편성을 새로이 하여 새로운 병사들을 모집하고, 군량미와 마초를 충분히 준 비하여 오지로 군세를 전진시켰다. 달레이오스가 있는 위치를 알고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쫓았기 때문에 대열에서 탈락하는 자도 속출했다. 카스피의 관문 바로 앞에 와보나 노리는 상대는 며칠 전에 산간의 협곡을 빠져 달아난 후 였다. 반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달레이오스는 오로지 앞으로만 도망갔고 달레이오스와 동행한 측든도, 병사도 점점 이탈해 갔다. 카스피의 관문을 넘어설 무렵 들어온 정보에 의하 면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 3세는 포로의 몸이 됭어 마차에 의해 구금되었으며, 실권은 베 소스가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용서할 수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감히 베소스 따위가!" 적어도 달레이오스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대페르시아 왕국의 대왕이 아닌가. 적군의 왕이 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어느 정도 경의심을 늘 표해 왔다. 베소스 같은 놈에게 무시당해도 좋 을 만한 신분이 아니다. 의아심이 나는 부분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찬양과 동경이 마음속 에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달레이오스 3세만큼 슬픈 운명을 걸었던 국왕도 들물다. 200여 년 전 에 위대한 정복자 키루스가 신바빌로니아를 쓰러뜨리고 페르시아 왕국을 창건했고, 제 3대 왕위를 물려받은 달레이오스 1세 시대에 국위는 점점 더 높아져 유례없는 대왕국이 건설되 었다. 왕국은 번영의 일로를 걸었고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등 비난과 칭송의 갖가지 세평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강력한 국왕을 배출시켜 대왕국의 기초가 철벽 처럼 강고하게 보였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조카의 아들로 태어난 달레이오스 3세는 혈통적으로 보면 왕위 계승이 약속된 신분은 아니었으며 유력한 후보조차도 못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나라 의 왕위 계승에는 음흉한 수단이 횡행한 것이 많았다. 환관 바고아스는 꼭두각시 왕을 세워 마음대로 정권을 농락하고 독재하려 했다. 그래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시해하고 그 아들 아르세스를 왕위에 앉히지만, 이 사람도 다시 암살한 후 바고아스의 계략에 말려 왕위 를 이은 사람이 바로 달레이오스 3세였다. 달레이소스는 선왕의 진철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바로아스를 독살했다. 피투성이로 이뤄 낸 왕좌를 이어받아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는지 하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지체 높은 왕가의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품에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가문도 좋고 잘생겼 으며 키도 훤칠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예에도 걸출한 역량을 보여 주위를 감탄시켰다. 그리 고 영리했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정말 그 지위에 어울리는 인품이라고 평가받아 대왕이 되어야 할 인물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으며, 비할 데 없는 권세를 갖고 잇는 대페르시아 왕 국의 원수로서 이상적인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본성은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무예에도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 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습장에서 만이었을 뿐 전장에서 적을 죽이는 용기는 별개의 문제 다. 결과적으로 후세에 명성을 남기는 명군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업적을 전할 전승은 극히 부족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의 충돌을 보면 이 왕에게는 귀인의 느긋함을 느낄 수 있 어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돋보이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면 어머니 시시감비스가 대단한 여인이었다. 포로의 몸으로 알렉산드로스 진 영에 머물 때에도 늘 청렴한 위엄을 지니고 있어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보여 준 예의와 온정도 이런 인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어려운 입장이면서도 차분하게 현실을 파악하여 무슨 의견을 말할 때도 자신의 처지를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방 정벌중에 알렉산드로스가 감행한 피정복인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이 태후가 때때로 "너그럽게 대하시옵소서"라며 자비를 베풀도록 청할 때는 '훌륭하신 대왕국의 어머님'이라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었다. 아마도 현모였을 것이다. 이런 어머니 슬하에서 훌륭한 귀공자로 자라난 달레이오스는 태 평 무사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는 적합해도 존망의 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 자체가 불운이었다. 그라니쿠스강에서의 전쟁은 하찮은 것이었고, 이수스전에서는 방심하고 있었으며, 가우가 멜라에 이르러서는 적군이 어느 사이에 막대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그 세력이 무서워 벌벌 떨었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때에 타고난 본성인 소심함이 본의 아니게 튀어나와 적에 게 등을 보이고 말았다. '여기에서 지더라도 다음에 이기지 뭐!' 하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늠름한 영단을 읽고 말 았다. 부하는 적보다고 먼저 예리하게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켜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적 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위험한 때에는 동승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데 뜻밖에도 낙하 시작부 터 파멸해 가는 마지막까지 전부를 직접 보게 되었다. 비록 목숨을 잃는 패전이라도 공적을 남기며 전사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예감이 있었다. 애마 부세팔로스는 늙어서 이젠 절박한 때에는 도움이 안 되었다. 새로운 준마에게 심한 채찍을 가해서 힘차게 달리게 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추적했다. 초여름에 접어들 자 그렇게 추웠던 고원 지대도 완전히 맹서로 돌변했다. 지름길을 찾았다. 앞길은 더 더욱 험준했고 하룻밤 사이에 산길을 400스타디아(약 70킬로미터 정도)나 달려왔다. 뒤따라 오는 부하들에게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며 사자왕 자신은 글자 그대로 잘래 달린 야수처럼 날아갔다. 대왕을 따르는 자는 마지막에는 60기를 넘지 못했다. 어느새 먼저 출발한 달레이오스를 가둔 수레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화려한 장식은 틀림없 는 페르시아 왕가의 것이었다. 적병은 알렉산드로스의 모습을 보고는 싸울 마음도 먹지 못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신속함 하나만으로도 적을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달레이오스를 가둔 수레를 끌고는 제대로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적군은 일제히 마차를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주 직전에 베소스의 심복이 달레이오스를 찔 렀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왕이여, 달레이오스 왕이시여!" 알렉산드로스가 다가가서는 수레의 문을 열었을 때에는 페르시아 왕의 고귀한 얼굴은 이 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신차리시오." 아무리 뒤흔들어도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안타까움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눈을 깜박거렸다. 죽이려 마음먹었던 상대의 죽음을 막상 제 눈으로 보며 무엇이 아쉽다고 하는 걸까.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무튼 슬픔이 느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슬픔을 지나 분노가 가슴을 뚫고 올라왔다. 시선을 멀리 한곳으로 모았으나 이미 적병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 추격을 하더라도 이미 늦었고 여기까지 질주해 온 말들은 힘을 모조리 다 썼을 것이다. 사자왕보다 먼저 마차에 달려가서 달레이오스의 최후를 지켜본 병사는 페르시아 왕이 "알 렉산드로스"라고 외마디를 지르며 한 쪽 손을 겨우 들더라고 전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것 을 달레이오스의 감사의 표시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자신이 버린 왕가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것에 대한 감사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주권을 양도한다는 뜻으로 생각한 것은 확실히 아준인수 격 판단이었으리라. "유체를 정중하게 모시고 돌아가라. 반드시 대왕의 예우에 맞는 장례식을 치러 줄 것이 다." 달레이오스의 시체에게 말하듯이 엄숙하게 선언했다. 달레이오스 3세의 장례는 후일 페르세폴리스에서 성대하고 엄숙하게, 참으로 대왕의 죽음 에 걸맞고 역대 어떤 왕들에게도 조금도 뒤지지 않게 치러졌다. 알렉산드로스는 남아 있는 왕자에게 훌륭한 훈육을 시킬 것도 약속했고 달레이오스의 딸을 아내로 맞을 것도 알렸으며 나중에 약속대로 실행했다. 장례를 주관한 알렉산드로스는 속으로 '나야말로 진정한 아시아 의 맹주이며 페르시아 왕의 후계자가 되리라'하고 다짐했다. 달레이오스를 죽이려 했던 목적 오, 그의 장례식을 주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베소소를 죽여야만 했다. 후계자라면 국왕을 시해한 역적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 새로운 명분이 생겼다. 이제부터의 전쟁은 페르시아인과 싸우기는 해도 구리스인의 보복 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역적을 죽이는 셈이 된다. 이치는 당연히 그렇게 바뀌어야 했고 사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그런 위화감을 없애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자신도 이제는 페르 시아의 적이 아니고 달레이오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페르시아의 우방국이라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기쁜 일이 하나 있었다. "저런, 알타바조스는 건재하다고." 굴복한 페르시아 고관에게 소문을 듣고 알렉산드로스는 수줍은 듯이 웃었다. 왕이라는 입 장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평소에는 나이에 비해 말투나 표정이 근엄했다. 하지만 이 때는 오랜만에 보이는 젊은이의 표정이었다. 알타바조스는 애첩 바르시나의 아버지이지 부왕 필리포스의 친구로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 라로 망명해 와서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사자왕보다 훨씬 연장자이지만 오랜된 친구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알타바조스는 달레이오스의 충신이기 때문에 요 몇 년 간 동정군에게 적대하는 입장이었 지만, 언제나 알렉산드로스에게만은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페르시아 전쟁은 알타바 조스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본의는 아니지만 그의 입장은 페르시아 고관이다. 패전하여 퇴각 하는 순각까지 달레이오스와 군사들을 끄고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사자왕은 현재의 정황 속 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피중에 베소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바로 빠져 나온 모양이었다. 베소스에게는 복종할 수 없다는 것이 달레이오스에 대한 최소한의 충성심 일 것이며, 역모 같은 거친 행동은 좋아하지 않는 인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동정군 중에서 그와 성격이 비슷한 클레이토스는, 뜻이 있는 자라면 페르시아 왕을 지키 고 베소스와 싸워야 했다며 분개했다. 알타바조스의 인격에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클레이토 스가 깊은 뜻을 알 리가 없었다. 확실히 선왕 필리포스의 비호를 받았으면서도 알렉산드로 스에게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 점이나, 베소스에게 도전해서라도 달레이오스를 지키려 하 지 않았다는 점등으로 보아 충성심이 결여된 아쉼움은 있지만, 알타바조스는 훨씬 더 큰 것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인이면서 그리스인의 마음도, 마케도니아 사정도 잘 파악 하고 있었다. 도량이 넓고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으므로 융화를 꾀할 때에는 반드시 필요 할 인물이었다. "아버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이따금 바르시나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알렉산드로스도 희미하게나마 그의 지혜의 깊이를 알고 있었다. 그의 성품은 딸인 바르시나에게도 잘 전해져 있었다. 이러한 지혜자를 확보하 고 있는 것이 바로 페르시아의 힘일 것이다. 민도의 우수함일 것이다. 그 점은 아테네에 대 해서도 느끼는 것이었다. 무력으로 급해 성장한 마케도니아에는 나타나기 어려운 인격이라 고 알렉산드로스는 깨닫고 있었으나 클레이토스는 달랐다. "알타바조스는 무인이 아닙니다." "그래. 분명 알타바조스는 무인이 아니다. 전쟁의 목적은 평화다. 평화를 찾으로 한다면 그런 형세도 파악할 줄 알아야 도움이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설득해도 클레이토스는 막무가내였다. "저는 죽을 때까지 사자왕을 따를 것입니다." 어색할 정도로 예의를 갖추며 화가 난 듯이 자리를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처음과 같은 웃음을 떠올렸다. 마케도니아 군인이 가진 이러한 우직함도 알렉산드로스가 매우 좋아 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페르시아 왕을 죽여야 한다는 집념과 페르시아와 융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알렉산 드로스의 마음속에서 타협하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페르시아 국내에서 인망있는 국왕을 추 격해서 시해했다면, 그후에 민중과 쉽게 화해할 수 있었을까. 전국토를 황폐화시킨 전쟁에서 죽어 간 수많은 페르시아 병사들은 민중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아니 민중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국왕을 추종하고 있던 고 관이나 유력한 상인, 부족이 우두머리들의 평판과 역량도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니루스와 기자에서처럼 두목만 죽이면 나중에는 가벼운 지배 체제로 충분할 것이라고 젋은 사자왕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대로 말하면 알렉산드로스는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을 죽이겠다는 거의 본능적이라할 목적이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품었던 이 목적은 웅대 했으며 그 목적대로 페르시아는 장대하고 페르시아 왕도 위대하게 보였다. 달레이오스를 죽 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을 죽인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그후의 대책이 현실로서 알렉산드로스 마음속에 싹트고 성장하게 된 것은 동정군이 도정을 상당히 전진하고 나서였다. 마케도니아 국왕에서 비약하여 그리스 전국토의 왕임을 의식하고, 다시 웅대한 페르시아 땅을 밟고 이 집트를 알게 되고 나서 아시아의 왕이 되겠다는, 그리고 이상적인 통치를 세계 구석구석까 지 펼치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다. 바르시나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리스의 자유 로운 예지에 의해 길러진 자질과 동경, 바꿔 말하면 진실에의 추구가 짧은 시간에 젊은 뇌 리에서 자라나서 정세 변화에 대응하며 구체성을 띠게 되는 과정을 겪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로 말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반추 해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말 신의 인도인지 모른다. 동정이 진 척되고 성동함에 따라 점점 더 이상이 커져 갔다. 처음에는 페르시아를 정복하여 제압하면 마케도나아 또는 그리스의 지배하에 두고 통치할 생각이었다. 명확한 의식은 없었다고 해도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에 있었던 것은 그것에 가까 운 이미지였을 것이다. 펠라를 출발하던 단계에서는 광대한 페르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영토 와 아시아인의 범유라시아적인 시점에서 진심으로 자신의 영토로, 자신의 백성으로 생각하 는 발상은 도저히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것으로 움트고 있을 때 한 손으로 페르시아 왕을 제거해도 되는가. 페르 시아 왕을 죽인 자가 페르시아 왕을 죽인 자가 페르시아 민중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석 연치 않은 것이 당연하다. 사실 달레이오스가 살아서 도망갔다면,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살인자가 되었다면 사태는 미묘하게 변했을 게 분명하다. 또다시 행운이 찾아든 것이다. 달레이오스왕을 시해한 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페르시아의 충신이지 알렉산드로스가 아 니다. 반역자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상황이 돌변했고 이 명분은 너무나 이해하기 쉬웠다. 누 구에게라도 쉽게 납득되었다. '페르시아 왕을 죽인 다음은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 닫자, 쉽게 눈앞의 난관을 뛰어넘고 있었다. 난관이 사라져 버렸다. 알렉산드로스의 추측으로는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위하감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위대한 페르시아, 위대한 페르시아 왕.... 자신의 목표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대상의 위대 함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위대한 왕을 살해하고 부당하게 왕위 찬탈을 꾀하고 있는자, 베소스 일당을 켤코 용서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에 알렉산드로스는 달레이오스를 매우 경애하고 경애한 탓에 그 적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친구로 변해 버렸다. 이전부터 달레이오스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목표를 크게 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더욱 크게 부풀린 점도 있었다. 여하튼 지금은 그런 감정으로 일관하 는 것이 한층 더 편했다. 반면에 베소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더 커졌다. 민중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베소스를 죽여야 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뀌었지만 집념은 더욱 단단해졌다. 앞으로 지나갈 과정은 달레이오스를 추격할 때와 큰 차이는 없지만, 지금은 페르시아의 편이 되어 페르시 아의 역적을 죽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페르시아인을 보호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런 생각은 페르시아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페르시아인의 입장에서 보면 달레이오스는 이미 죽어 버렸으며, 베소스는 역적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불패 전설은 페르시아 오지에까지 전해지고 있었으므로 겉보기에도 대왕의 자리에 걸맞았고, 게다가 이 정복자는 페르시아게게도 이해를 구하는 것 같으니 지금은 알 렉산드로스호를 타는 쪽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도처에 알렉산드로스군에게 굴복하는 자가 나타났고 베소스 측에는 그만큼 가담하는 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원래부터 국경에 사는 사람은 페르시아인만이 아니었으며, 페르시아인과 같은 마음은 가 진 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각기 독립심이 강한 부족이 일단 페르시아 통치하에서 타협 하는 상황이 많아졌고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대응도 여러 가지였다. 사지왕은 언제나 그랬듯이 대항하는 자는 철저하게 싸워서 굴복시켰지만, 순순히 투항하 는 자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여 그들의 영토는 가벼운 지배 체제로 두었다. 이렇게 해서 적과 아군을 선별하면서 히르카니아, 파르티아, 아레이아로 진격했다. 베소스는 또 다른 오지 박트리아의 태수이며, 그곳에 세력의 기반을 갖고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하먼 베소스는 페르시아 왕관을 쓰고 왕의 옷을 입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5세라고 자칭한다고 했다. 이것이 왕위 계승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누구 맘대로!" 알렉산드로스의 분노는 예사롭지 않았다. 분노는 화염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아레이아 지방에서는 베소스의 심복 사티바르자네스가 항복해 왔다. 무장을 해제하고 재 산을 모두 내놓고 눈물을 흘리며 복종의 뜻을 보였다. 이 남자는 달레이오스를 찌른 상해범 의 한 사람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알렉산드로스가 그를 태수 자리에 앉힌 것은, 나머지 세력 을 회유하여 앞길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케도니아 병사 사이에서 사자왕도 도리없 이 페르시아인에게는 약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국의 펠라를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을 함께한 병사들에게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가 없었다. 바로 어제는 아들과 함께 항복해 온 알타바조스를 후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애첩 바르시나의 일족이며 오랜 지기이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라 해도 사티바르자네스의 경우는 어떤가. 사자왕은 본심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요즘은 자주 페르시아인 옷 차람을 하고서는 흐뭇해 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가. 게다가 페르시아 말까지 배워서 편지에 는 가끔 페르시아 왕의 옥새를 쓴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진영 내의 그런 의혹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아버님 일, 오라버니의 일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사옵니다." 무릎을 꿇어 절하며 기뻐하는 바르시나에게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저으며 턱으로 막사 바닥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일어나서 지도 위에 손끝으로 크고 작은 두 개의 원을 그 렸다. 작은 원은 그리스 반도를 에워싸고 큰 원은 아시아를 에워쌌다. "그리스는 작아, 나는 대아시아의 왕이 되고 싶다." 알타바조스 일족에게 후의를 베푼 것은 그런 자신의 희망를 이루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풍기고 있었다. 페르시아를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시아의 맹 주는 될 수가 없다. "이미 폐하의 발 아래 있습니다." 바르시나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참으로 대왕의 발 바로 아래에 아시아가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만 더.... 이제 곧 유린할 수 있다. 바르시나의 재기는 언제나 대왕을 기쁘게 했다. "페르시아인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겠다." "예."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이 마케도니아 병사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 다. 그러나 사티바르자네스는 경험이 많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레이아에 약 간의 마케도니아 경비병을 남겨 두고 베소소를 쫓아 서둘렀는데,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사 티바르자네스가 봉기를 했다. 처음부터 베소스와 연락을 서로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만 복종하는 척했을 뿐이었고 수호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반역의 신호로 봉화를 올렸다. 충실한 마케도니아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알리려고 급히 달려갔다. 그는 사자왕에게 사티바르자네스의 배신을 알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뭣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화내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바로 군대를 돌렸다. 그나마 신속하게 대처하 여 다행이었다. 가티바르자네스가 주변의 불만 분자를 모아서 진영을 강화하는 것보다 먼저 동전군이 되 돌아왔다. 신속함과 사차없는 공격은 사자왕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장점이다. 최강의 기병 군 단이었다. 일부 지역이서 격심한 전투가 있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여졌고, 사티마르자네스의 군사 는 산으로 도망가다가 항복을 했으나 용서하지 말하는 사자왕의 엄명을 맏은 부하들은 사방 에서 불을 질러 화염 속에서 모두 태워 죽일 계획을 세웠다. 주변 마을에 몰래 잠입한 자들 도 샅샅히 색출하여 참살시켜 버렸다. 그러나 사티바르자네스는 진작에 도망치고 없었다. 이 반역은 진압하는 데 많은 노고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사건 자체는 사사로웠지만 남은 불씨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무언중에 이 방인들을 믿어서 좋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무언중에 이방인들을 믿어서 좋을 리가 없으며 역시 마케도니아인을 중용하는 것만이 알렉산드로스군의 단결에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군사들은 대왕에 대해 수군거리게 되었고 이를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대왕은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왕을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고참 병사들 은 다소의 불만이 있어도 모두 충실한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이었다. 모두가 딱할 정도로 오로지 대왕을 경애하고 있었고, 그런만큼 대왕의 동정에 관한 집념을 생각하면 마음속으로 는 편치가 않았다. 그런 기운을 상장하기라도 하듯 켤코 사소사하고 할 수 없는 사건이 일 어났다. 대왕은 카스피해를 본 뒤 히르카니아, 파르티아를 빠져 나와 아레이아레서 남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드랑기아나 지방의 작음 마을에 이르러서 막사를 치고 도시를 세우려 는 계획을 세웠다.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가능성이 실감과 함께 울컥 치밀어 왔다. 도시 이름을 예견이라는 의미의 프로프타시아로 정했다. 어려풋한 미래가 조금씩 보이는 듯해 가 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만을 골똘해 하고 있던 중에 황급히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헤페스티온이 심각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뭐라고?" 알렉산드로스는 옆에 있던 수행원헤게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필로타스한테서, 무슨 말 들었느냐?" 필로타스는 알렉산드로스 부하 중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었고 그의 부친은 부 장군 파르메니온이다. 파르메니온이 나이 든 지금 실질적으로는 젊은 필로타스가 부장군의 지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중에도 활약상이 뛰어나 많은 공을 세우고 있다. 알 렉산드로스와의 친밀함에 있어서는 헤페스티온이나 크라테레스에게는 뒤지더라도 무인으로 서의 평가는 높다. 베소스 추격군 중에서 최전선에 군사를 끌고 가 충분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고, 갖가지 단 서를 찾아내어 정보를 모으는 탁월한 능력도 있었다. 그리고 둘도 없는 지장이기도 했다. "베소스 때문이냐." "아닙니다." 헤페스티온은 다시 한 번 더 주위를 살피며 다욱 잦은 소리로 속삭였다. "사자왕의 암살 음모입니다." "암살? 금시 초문인데." "이 문제에 대해 최근에 아무런 보고가 없었습니까?"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데없다니, 무슨 말씀이옵니까?" "그럼, 무슨 내용이냐?" "디무노스는 알고 계신 것이옵니다." "그래."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으로 마케도니아를 출전할 때부터 함께한 충실한 병사다. "디무노스가 페르시아인과 내통하여 사자왕 암살 계획을 꾸몄다고 하옵니다." "그놈은...." 믿어지지는 않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에 비해서 는 잔재주가 뛰어난 사내였다. 헤페스티온의 이야기는 조금 복잡했다. 디무노스는 니코마코스라는 젊은 병사와 특별한 사이로 이 암살 음모를 연인에게 털어놓 으면서 한패에 끌어들이려고 권유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니코마코스는 형인 케바리노스에 게 이 일을 의논했다. 케바리노스 역시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엇다. 너무나 놀란 케바리노 스는 자신의 상관인 필로타스에게 이 일을 의논했다.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단 사자왕께도 조심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알았다. 대왕님께 보고하겠다. 그 대신 너는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마라!" 필로타스는 격려의 뜻으로 어깨를 두르려 주었고 일단은 안도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필로타스가 대왕에게 보고한 것 같은 기색이 없었다. 케바리노스는 그 일을 필로타스에게 독촉하면 다시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엄명할 것이고, 묵살한 내색조차 비치지 않을 것이라 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케바리노스는 펠라에 있을 때 헤케스티온과 가까이 살아서 누나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다. 케바리노스 자신은 지금까지 필로타스 부하에 속해 있었지만, 헤페스티온과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시하는 정도의 친분을 있었다. 그 인연을 믿고 헤베스티온에게 의논을 하고 은밀 히 갔던 것이다. 헤케스티온은 직감적으로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다행이 도 필로타스는 막사를 비우고 있었고 비밀리에 진상을 밝힐 만한 증거를 찾았다. "그랬더니...." 조사 내용을 보고하기도 전에 알렉산드로스가 재촉했다. "디무노스는 뭐라고 하더냐?" 사자왕의 판단은 언제나 빠르다. 핵심을 찔렀고 초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방금...."하고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었습니다. 막사 뒤편에서." 디무노스는 무언가 낌새를 차렸던 것이다. 조사는 그것으로 끝나 버렸다. "음." "바로 전에 잡았어야 했는데...." 헤페스티온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필로타스를 포박하여 자백받을 수는 없는 일 이다. 의심스럽다고 판단한 순간 상대는 죽음을 택했고 그것만으로 근거 있는 계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사자왕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필로타스는 오늘 아침에도 만났다. 이야기도 나누었고 보고도 들었고 우스갯소리도 했는 데...." 좋지 않은 소문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드로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두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무슨 생각이 떠 올랐는지, "어딘가 수상해"라고 중얼거렸다.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한마디 덧붙이고는 말끝을 흐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던 듯합니다." 헤페스티온도 수긍했다. 두 사람은 벌써 한차례 의심한 것이 있었다. 동정군이 이집트에 머물고 있을 무렵,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필로타스의 음모 소문이 떠올 랐다. 그의 아버지 파르메니온도 가담했고 대왕의 끝없는 욕망을 제지한다는 그러듯한 대의 명분도 덧붙여졌다. 소문에는 암살은 시기상조로 생각되오 달레이오스를 죽인 후로 미루었다는 아주 그럴싸한 판단까지 덧붙여져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라며 무심코 들어 넘겼던 알렉산드로스를 젖혀놓 고 헤페스티온이 조사를 감행했지만 음모를 증명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의 혹 대상은 알렉산드로스에 버금가는 비중있는 인물 두 사람이었다.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결국 일부 병사들의 욕구 불만이 형태를 바꾸어 나타난 것, 즉 소문 자체는 아무 근거도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후의 필로타스의 공적은 뛰어났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거슬리는 행동이 없지는 않 았다.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하며 동정을 비판하였고, 특히 요즘에는 방만한 생활을 하 며 "동정군의 승리는 나와 아버지 파르메니온의 덕택이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지껄이는 것 같았다. 어딘가 수상하긴 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의논했다. 노장 파르메니온은 엑바타나에 물러나 있고 필로타스는 산악지대에 흩어졌던 적병을 찾아 내어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올 것이다. "니코마코스와 케바리노스를 불러라. 필로타스도 돌아오는 대로 즉각 출두하도록 수배령 을 내려라." 대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헤페스티온은 빈틈없이 자신의 부하들을 산지로 보내어 필로타 스의 도주에 대비했다. 슬프게 우는 니코마크스의 말에는 충분한 신빙성이 있었다. 케바리노스도 헤페스티온이 들은 소문을 다시 입증했다. 게다가 조사해 보니 자살한 디무노스와 친분이 있는 두 사내가 이미 행적을 감추었다. 디무노스가 처음 보는 페르시아인과 은밀하게 만났다는 증언도 얻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음모의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져 갔다. 이윽고 필로타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불려 왔다. "무슨 일이옵니까?" 여유를 보이면서 대왕의 막사로 들어왔으나 주위의 심상찮은 표정을 보고 순간 미간을 찌 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듣고 싶은 게 있다." 대왕 앞에서 엄중항 심문이 시작되었다. "케바리노스에게 장난 같은 소문을 들은 것을 사실입니다." 필로타스는 일단 인정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허무 맹량한 것이라 대왕님의 귀를 거슬리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 여 흘려 버렸습니다." 말하는 내내 필로타스는 태연했다. 하지만 헤페스티온의 조사는, 필로타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면서도 진지하게 소문 의 진위를 밝히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결단코 필로타스는 흘려 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능성이 짙었다. 그 부분이 찔리는지 필로타스의 대답이 금방 나오지 않았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당치않습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전부터 그럴 가능성은 있었다." "맹세코 그런 일 없었습니다." "아니다. 있어." 이집트 원정 이후부터 생각했던 몇 가지 소문을 들이댔다. 필로타스의 얼굴이 비통하게 일그러졌고 그 순간 케바리노스가 불려 나왔다. "한 번 더 그때의 상황을 소상히 말하라." 왕이 재촉하자 케바리노스는 머리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예. 저는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만, 대장은 절대 입 바께 내지 말라는 엄명만 내렸습니다." 힐끔 필로타스를 훔쳐봤다. "케바리노스!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모함하느냐! 그건... 진영 내에 쓸데 없는 혼란을 일 으키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필로타스는 항변했다. 하지만 지난밤에 필로타스와 디무노스가 만나는 것을 목격한 테살리아린 용병까지 증인으 로 나왔다. 진영 내에서는 알아주는 술꾼으로 그때도 흠뻑 취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알아봤느냐?" "달이 비쳤습니다." 분명 반달이 뜬 밤이기는 해도 구름이 걷혀 있었다. 올리브나무 그늘에 서성이던 두 사람 은 확실히 필로타스와 디무노스라고 잘라 말했다. "아니, 이 목소리가 틀림없습니다." 증인은 추궁을 당하자 쓸데없는 말까지 하며 우겨댔다. 이러한 증언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는 알렉산드로스의 재량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케바리노스의 진지한 주장을 들으면서도 내밀하게 디무조스를 심문하는 것을 간과했음을 깨달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반역을 묵인하려 했던 의혹은 분명해졌다. "아버님을 불러 주십시오. 저의 충성심은 누구보다도 아버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네 아버지도 의심스럽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렇게 많은 공을 세우신 분을."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깊은 의혹으로 긴장한 나머지 필로타스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신의 아들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뱉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도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마침내 대왕의 한쪽 뺨이 조금 일그러졌다. 자 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신의 아들은 다 알 수 있지." 필로타스의 유죄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필로타스는 많은 공을 쌓은 지휘관이므로 일단은 군사들을 모아서 재판을 열었다. 증인은 모두 다 필로타스에게 불리한 증언만을 했다. 몇 안되는 증거도 그럴싸하게 제시되 었다. 거기다 피고는 고문을 당하게 되고 자백을 강요받았다. 모든 것이 유죄라는 인상을 심 어 주기 위한 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자조는 이런 결과를 예측 하고 있었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필로타스에게 마지막으로 형식적이나마 해명의 기회가 주 어졌다. 하지만 이미 실신해 있었고 변명은 희미하고 나약한 목소리로 동정심을 끌었지만 유죄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죄인에 대한 벌로 돌팔매질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필로타스의 절친 한 친구인 대왕의 눈짓을 신호로 창이 던져졌다.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리고 비통한 울 부짖음이나 호소를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한편, 재판을 열기 직전 대왕은 사자에게 세 통의 편지를 건네주며 엑바타나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사자는 폴리디마스로, 그는 노장 파르메니온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세 통의 편지 내용은 하나는 대왕이 파르메니온 앞으로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이고, 또 하나는 필로 타스가 아버지 파르메니온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것은 당연히 조작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대왕이 엑바타나 부관에게 보내는, 즉 파르메니온 밑에 있는 클레인드로스에게 보내는 공문 이었다. 필로타스를 처형하기로 결정한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과 더불어 크라테레스를 불러서 상의했다. "파르메니온 문젠데... 이집트를 나올 때, 알다시피 막내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지." 필로타스의 남동생 말이다. "예?" "파르메니온은 아들의 죽음을 '신의 뜻'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이 말 한마디에도 두 사람의 헤타이로이는 쉽게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을 꿰뚫었다. '대왕은 이번에도 파르메니온의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라고 필로타슬의 죽음도 신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크라테레스가 진언했다. "엑바타나에는 파르메니온 지휘하에서 3만 명의 정예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쪽 군사는 전부 모아야 겨우 그 정도가 될까말까 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같은 편에 적이 있을 때입니다. 아군의 결속만 단단하다면 외부의 적 따위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사자왕! 결단을...." 확실하게 '내부의 적'이라는 말을 썼고 파르메니온의 봉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 다. 크라테레스는 전략에 뛰어난 장군으로 전대 방심하지 않는 철저한 사령광이었다. "그러면...." 알렉산드로스가 말하려는 것은 헤페스티온이 가로마고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을 살피며 의지를 확인했다. 헤페스티온이 모든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는 대왕의 손은 전대 더럽혀서는 안 된 다고 다짐했고,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자신이 죽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엑바타나로 가던 사자 폴리다마스는 자신의 진짜 역할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일을 신중하 게 실행에 옮겼다. 오로지 극비 사항이므로 시급히 해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그의 생각대로 매우 시급한 일이었다. 필로타스가 처형된 사실이 엑바타나에 전해지기 전 까지.... 폴라다미스는 필로타스가 죽은 사실조차도 몰랐다. 1300킬로미터라는 엄청난 거리를 사지 는 열하루 만에 달려간 것이다. 반역이 시작되다. 전선 가지에서부터 낙타를 달려서 엑바타나에 도착한 폴리다마스는 마중 나온 파르메니온 에게 먼저 알렉산으로스의 친서부터 건너주었다. 엑바타나에는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지휘관인 파르메니온과 부관 격인 클레인드로스 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폴리디마스는 파르메니온의 막사로 들어갔다. "파르메니온, 건강은 어떤가?" "자네 덕분에 무사하네." 서로가 다가서서 반갑게 어깨를 껴안았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절실한 친구 사이였다. "사지왕의 편진데... 아참! 자네 아들 필로타스가 준 편지도 갖고 왔네." "수고했네. 정말 수고했어." 파르메니온의 얼굴에 회색이 만면했다. 그는 먼저 왕이 보낸 서찰을 펼쳤다. 편지는 전선 에서의 무운의 호조를 전한 다음에 파르메니온의 영예를 칭찬하며 그의 누구의 안위를 걱정 하는 내용이었다. "대왕께서는 별고 없으신가?" 안부를 물으면서 필로타스의 편지를 폈다. "변함없이 의기 왕성하시다네. 어디까지 군을 진격하실는지." "그래." 파르메니온은 한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그러나 불길함의 원인은 막사 밖에 감도는 희미한 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발자국 소리와 동시에 부관 클레안드로스가 몇 명의 부하와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이 부관과는 처음부터 뜻이 맞지 않았다. 직책상 어쩔 수 없이 적당ㅇ히 대하고 있지만 친구인 폴리디마스가 찾아온 지금 불쑥 들어와서 방해하다 니 기분 나쁜 일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아냐?" 불쾌감이 얼굴에 드러냈다. "폴리다마스님." 출입구에 서 있던 병사가 밖을 가리켰다. 사자 폴리다마스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밖을 가 리켰다. 사자 폴리디마스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밖을 살피며 어둠 속으로 한두 발 걸어 나 갔다. 파르메니온도 똑같이 "무슨 일이냐"라는 친구가 나간 쪽으로 고래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칙명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단검이 파르메니온의 등을 찔렀다. 몇몇 병사가 뛰어들어 가슴과 배를 거 푸 찔렀다. "무슨 일이냐?" 소리를 들고 밖에서 뛰어들어온 폴리디마스는 뜻밖의 광경을 보고 망연 자실하여 허둥대 며 칼을 꺼내려 했지만, 병삳들이 양쪽에서 말렸다. "칙명이다." 클레안드로스가 친서에 찍혀 있는 대왕의 옥새를 보여 주었다. 그의 목소리도 손도 떨고 있었다. 폴리디마스는 그제야 바로 자신이 친구를 방심하게 만든 미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급히 친서를 확인해 보았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가혹한 역할을 맡게 된 폴리다마스의 입장에서 고려한 치밀한 계획이었다. 필적은 헤페스티온의 것으로 짐작되나 이런 일에 있어 서 헤페스티온의 지위는 대왕에 준하고 있었고 대왕의 서명과 옥새만 있으면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발 밑에 쓰러진 늙은 친구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파르메니온의 마지막 절규는 작고 짧았지만 막사 내의 소동은 곧장 진영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알려졌다. "칙명이다! 대왕의 명령이야. 파르메니온에게 반역 음모가 있어서 대왕이 주살을 명했다!" 부관 클레안드로스는 10여 명의 직속 부하를 불러들여 친서를 높이 쳐들고 크게 외쳤지 만, 몰려든 모든 병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파르메니온이 암살당했다." 이미 밤의 장막이 내려져 있었지만 진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모여 있던 병사들은 클레안드로스 등의 주모자들을 에워쌌다. "잠깐만 기다려라! 침착해라!" 사자 폴리디마스도 부관의 입장에 서서 왕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설득해야 했다. 장군들의 눈으로 대왕의 서명과 옥새가 확인되자 일단 소동은 진정되었다. "무슨 이유냐!" 석연찮은 느낌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정군은 확실히 대왕 알렉산드로스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군사임에는 틀림없지만, 심정적으로는 파르메니온을 총사령관으로 여기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선왕 필리포스가 치세한 뒤부터 계속 파르메니온의 지휘를 높이 평가해 왔던 고참 병사들에게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했다. 그러니 알렉산드로스의 옥새 하나로 파르메니온이 살해당한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 이었다. 파르메니온이 급사한 기금 주둔군의 지휘는 부관인 클레안드로스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 군대의 규율이지만, 오히려 클레안드로스 일당이 포위되어 있었다. 진영 전체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전선 기지에서 계획을 세웠던 헤페스티온은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폴리다마스를 사자로 보낸 직후에 알렉산드로스의 막사로 클레이토스를 불렀 다. "사자왕의 명령이야.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이 일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간청했고 결국 납득시켰다. 즉시 알렉산드로스의 명령 이 떨어졌고 대왕의 바람 또한 간절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클레이토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폴리다마스 뒤를 따라갔다. 그 군사가 도착한 것은 마침 엑바타나 진영이 파르메니온을 잃고 혼미해 있던 때였다. "나는 클레이토스다. 잘 들어라! 파르메니온은 반역 음모를 꾸몄고 그 아들 필로타스도 이 미 처형당했다. 이 모든 것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칙명에 따른 것이므로 만약 거역하는 자 는 역적으로 간주하겠다." 그는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다. 외곬에다 순박한 클레이토스는 마케도니아 고참 병사들 사이에서도 많은 신뢰를 받는 인 물이기도 했다. 클레이토스를 직접적으로 모르는 군사들까지도 "클레이토스는 우리 편이야" 라고 말하며 그 이름에 남다른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파르메니온을 대장으로 생각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클레이토스는 부대장 격이었다. 그를 택한 것은 훌륭한 작전이었다. 주둔군 중에 산재하는 불만 분자도 "클레이토스가 하는 말이라면" 하며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클레이토스가 전군의 통솔을 맡았기에 별 탈없이 수습되었다. 며칠 뒤에 새로운 지휘 임명이 발표되었다. 필로타스가 장악하고 있던 군대는 둘로 나뉘 어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각각 지휘를 맡았다. 카르메니온 후임에는 클레이토스가 임 명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를 보좌하게 되었다. 모두가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신임하는 헤타이로이이다. 마케도니아 군사는 선왕 필리포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시절의 용장 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한 선왕의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끈을 끊어 버리고 진 정한 의미에서 알렉산드로스 체제를 확립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필로타스의 반역은 사실일까. 정말 파르메니온은 그 일에 가담했 던 것일까. 이런 혐의에 대해서 알렉산드로스는 어디까지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확증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면 반역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중요시하 지 않았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부왕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알렉산드로스 체제의 확립을 위한 것이었고, 여기에 동정군 중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치고 있는 필로타스 의 존재가 장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별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필로타스 또한 오랜 지기이고 헤타이로의 한 사람이 것은 분명하지만 언동에는 불손한 점 이 자주 비쳤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신성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게다가 동정군의 침공 에 대해서는 이쯤 해서 싸움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면서 심 심찮은 병사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알렉산드로스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행동이었으며 동정군 중에는 이런 그의 주장에 찬성하는 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국을 떠나온 지 어언 4년. 그것도 만리 타향에서 언제나 고 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해 하는 병사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대왕은 더욱더 깊은 오지 로 진군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하튼 피롤타스의 언동이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유쾌할 리가 없었는데, 날이 감에 따라 그 런 주장이 눈에 띄게 퍼져 갔다. 오늘의 반역은 근거가 희박해도 내일의 반역은 충분히 있 을 수 있는 일이다. 직감은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필로타스의 죽음은 그런 위험을 사전에 잘라 내겠다는 계산이었으며 이런 마당에 확실한 증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파르메니온에 대해서는 노령인 데다 대왕의 곁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시로도 반역 의혹은 더욱 희박했다. 게다가 이 인물은 선왕 때부터의 충신이며 공적도 눈부신 장군이다. 알렉산 드로스의 왕위 계승도 파르메니온의 강력한 지지로 인해서 비로소 실현된 일이었다. 둘도 없이 소중한 공신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러만큼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거북 한 존재이기도 해서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전장에서의 처신에도, 예를 들면 가우가멜 라 전장에서 달레이오스를 잡을 뻔하다가 놓친 일이라든지, 파르메니온 역시 비위에 거슬리 는 언동을 한두 번 보인 게 아니었다. 젊은 필로타스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자의 노회한 면 이 있었으나, 아들 필로타스와 마찬가지로 군대를 마케도니아로 돌리는 것을 대망하고 있었 고,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을 사주한 적도 있었다. 적어도 원정군 중에 파르메니온 필로타스파라고도 할 수 있는 일당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 실은 의심의 여기가 없었다. 필로타스를 처벌한 이상 파르메니온 일당이 한꺼번에 반격하고 나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파르메니온도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이 제거 해야만 하는 중신이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개운치 않은 응어리가 남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사자왕은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고국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이대로 끝도 없 는 진군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가디라고 있는 것은 영광보다는 죽음이 아닐까. 그 래 틀림없어. 아마 영광과는 아무 상관없는 한낱 비참한 죽음일지도 모르지. 믿었던 파르메 니온마저 알 수 없는 죄목으로 살해당하고 말았잖아. 병사들은 이런 생각들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나.' 국왕에게 늘 충성의 뜻을 보이던 병사들은 그런 충성심과는 달리 가슴속에 불순한 생각들 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불안이 한순간에 나쁜 방향으로 파급되지 않았던 것은 병사들에 대한 클레이토스의 위로도 있엇지만, 뜻밖에 고백이 알렉산드로스 진영에서 전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 장의 유서였다. 이 유서를 남긴 병사는 대왕 암살을 꾀하다가 자살한 다무노스 의 친구로 사태를 짐작하고는 재빠르게 행방을 감추었지만, 자신의 불충을 부끄럽게 여겨 프라티아의 깊은 산속에서 목을 매고 죽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디무노스한테 유혹을 받 고 일단 대왕 암살의 한패가 되었다가 계획이 발각된 것을 눈치채고 도망쳤지만, 곰곰이 돌 이켜 생각해보니 마케도니아의 충실한 병사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매우 부끄 럽게 여겨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유서에는 왜 자신이 디무노스의 꼬임에 생각 없이 놀아났던가 하는 후회도 있었다. "대왕 님의 깊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나날이 병사들의 불만이 커져 하는 것을 알아야 한 다"는 진심 어린 호소가 씌여 있었다. "부끄러워해야 할 병사였다"고 고백하면서 깊이 사죄 하면서도, "제발 마케도니아의 자랑스러운 병사들의 심정에, 대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수많은 병사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왕은 하해와 같은 자애심을 가지시어 귀기울여 주소서"라며 병사 들의 심정을 필사적으로 대목도 없지 않았지만, 목숨을 바친 호소에는 간절함이 넘치고 있 었다. 그러나 유서 내용은 동시에 디무노스의 반역에 필로타스가 관련한 사실과 배후에 베르시 아의 유력한 자가 가담하고 있다는 냄새까지 풍기고 있었다. 따라서 절실한 호소보다는 이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이 팔로타스가 음모를 꾸몄다는 유력한 증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피론타스의 처형은 정당하고 파르메니온의 주살도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여겨지게 되었다. 대왕은 처사에 의혹을 품었던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도 우선은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평정을 되찾은 듯 가장했지만 마음속은 편할 리가 없었다. 필로타스는 제 쳐놓고라도 파르메니온은 가장 믿었던 심복이었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고 수많은 추억을 함께 나누었다. "저희들은 더욱더 잘 모시었습니다." 플레이토스가 어깨를 치켜 올리며 힘주어 충성을 맹세했고, 파르메니온이 없는 앞으로의 동정군에도 지장이 없다는 것을 호소했다. "그래. 지장은 없을 테지." 알렉산드로스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느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클레이토스만이 아니 라 다른 헤타이로이 대해서도, 가장 신뢰가 두터운 헤페스티온에게도 혼다 있고 싶다며 아 무도 만나 주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체제의 확립을 생각하면 헤페스티온의 계략은 성공했지만 대왕에게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대왕은 나흘이 지나서야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헤페스티온, 크라테레서, 자네즐은 조금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자왕의 표정에는 한겨울의 태양처럼 따스함속에 차가움이 숨어 있었언 것도 사실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동으로 진격했다. 무엇을 위해서? 선한 것을 추구하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고.... 그것은 동쪽 끝에 정말 있는 것일까. 누구 도 알 까닭이 없다. 기원전 330년 가을, 알렉산드로스는 필로타스의 음모를 '예견(프로프타 시아)'한도시 프로프타시아를 출발하여 헤르만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은 오늘날 아프 카나스탄의 산악 지대로서, 산기슭에 있는 도시 판다하르는 사자왕이 세운 알렉산들리아 폴 리스라는 이름이 오랜 역하의 흐름 속에서 전와된 것이다. 칸다하르는 알렉산드로스의 변형 된 말이다. 그 칸다하르에서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의 수도인 카불로, 동정군이 하늘과 경계를 짓는 힌 두쿠시 산맥을 바라볼 쯤에는 혹한의 계절을 맞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는 몇몇 산 악 부족이 할거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 독립심이 왕성한 야만족들은 지배는 물론이고 길 을 빠져 나가는 것조차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싸우고, 화약을 맺고, 다시 배신하고, 다 시 싸우고, 회유를 하며 나아갔다. 전진할 때마다. 새로운 사상자를 헤아려야 했고 그때마다 고국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밀려오는 추위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굳게 얼어붙은 설원은 생명이 있는 존 재를 거부하여 짐승은커녕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번 마람이 불면 냉기는 예리한 칼날로 바뀌어 살같을 찌르고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굶주림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병으로 쓰러지는 자, 추위에 목 견뎌서 정신을 잃는 자, 쓰러져서 혼수 상태에 빠진 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군이었다. 병사들의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그래도 병사들이 동정길을 계속 나아간 것은 순박산 마케도니아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의 한결같은 충성심과 알렉산드로스 의 불가사의한 힘 때문이 아닐까. 병사들에게는 우선 대왕의 위광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며 또한 신뢰도 있었다. 이 젊은 대왕은 병사들을 끌어들이는 매력도 갖추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었다. 따라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병사들의 마 음 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 자신을 맡기는 체념이었다. 단 한 사람, 알렉산드로스만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달레이오스 3세를 배신한 역적 베소스 의 추적은 당면 문제일 뿐이다.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일. 세계의 맹주가 되는 일. 야망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세계는 얼마나 넓은지,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알렉산드로스는 체력도, 정신력도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다고 한다. 혼자서 행 군길을 되돌려서는 수마에 쓰러져 하는 병사들을 찾아내오 두드려 깨우면서 돌아다녔다. 걸 어갈 수 있을 때까지 부축해 주었다. 혹한 속의 행군에는 활동을 멈추면 순식간에 동상이 엄습해 와 잠이 들면 여지없이 죽고 만다. "여기에서 죽어서 어쩔 셈이냐! 영광을 목표로 걸어라." 어떤 때는 병사를 등에 업고 전진했다. 대왕의 이런 깊은 마음은 야심 많은 횡포와는 달리 병사들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뭣이라고!"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로 들어간 사타바르자네스가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 식이었다. 만만차 않은 페르시아인이다. 달레이오스의 충신이면서 도망중인 페르시아 왕을 죽였고, 한 때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항봅하여 아레이지 지방의 태수로 임명받았지만 곧바로 배신하고 공격을 해왔던 바로 그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배소스와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잡아서 능지처참에 처해도 울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마라." 이 주면 지역에 기반 세력을 둔 알타바조스, 애첩 바르시나의 아버지인 알타바조스와 그 의 부하들을 진압에 침투시켰지만, 서전에 사티바르자네스가 전사하자 그의 목만 알렉산드 로스에게 가져왔다. 죽은 얼굴은 살짝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입술은 다부지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가 고전하리라는 예측을 했다는 듯 조소하고 있었다. 베소스는 사티바르자네스를 매우 의지했던 모양이었다. 베소스는 박트리아 산중에서 동정 군을 협공하는 작전을 세웠지만 사티바르저네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겁을 먹고 항전 보다는 다시 북쪽 오지 소그다아나 지방으로 후퇴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이것을 보 고 지금까지 베소스를 지지하던 주변 부족들도 구에게 협조하기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소굴 인 산속으로 들어가 흩어져 버렸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며 조직을 짠 것은 스피타메네스라는 토착 호족이었다. 알렉산드로 는 한동안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 수피타메네스의 본심을 꾀뚫어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유력한 페르시아인으로서 후하게 예우해 주었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을 지나 짧은 봄을날아서 맹서의 여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날마다 더위가 심해지고 박트리아 사막 지대는 화염 지옥으로 변했다. 바로 몇 달 전에 추위에 떨 었던 군사는 무정하게도 이번에는 더위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날마다 태양이 하늘 에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불타고 있었다. 바위가 불타고 모래가 불탔다. 온통 뜨거운 아지랑 이만 자욱하여 대기가 마치 화염처럼 뜨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불의 바다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폭염 그 자체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알타바조스를 박트리아 지방의 태수로 앉히고 베소스를 추격했다. 군대는 견디기 힘든 폭서에도 참아내고 의식을 잃을 정도의 갈증도 극복하며 전진해 갔다. 베소스는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면서 도망갔다. 추격대는 군령미와 마초를 구하는데에 어려 움이 많았지만, 이부근 최대의 옥수스강(현재 러시아의 아무다리아강) 기슭에만 도착하면 물 부족은 해결할 수 있었다. "배를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베소스가?" "예. 물살이빠르면서 강밑은 완만하여 가교를 건설하기에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천막을 모조리 모아라. 안에 마룬풀을 채워 넣고 양쪽을 맞춰서 꿰매라." 이것은 수년 전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도나우강을 건널 때 실행했던 방법이었다. 야영용 가죽 텐트에 바짝 건조시킨 억새풀을 쑤셔 넣어 끈으로 묶어서 입구를 막고 물 위에 띄워 강을 건넜다. 얼마 전에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인 고참 병사와 그리스에서 온 파견병을 900명 정도 골라서 충분한 수당을 지급한 뒤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부대 내에 응어리져 있던 불만을 가 라앉니는 동시에 실질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노병들을 제대세키는 조치이기도 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마라칸다는 현재의 사마르칸트이다.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에 있는 도 시로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인도, 그리고 동쪽은 멀리 중국을 바라보고 있어 예날부터 교 통의 요지로서 발전한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도시에 들어가기 직전에 스피타메네스 로부터 베소스를 연금했다는 전갈이 왔다. 베소스와 스피타메네스는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알 렉산드로스에게 반공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사티바르자네스가 전사한 뒤 베소스는 스 피타메네스를 의지했음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타메네스가 등을 돌렸다. 베소 스 입장에서 보면 예상이 빗나갔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즉시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베소스의 신변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알몸으로 밧줄을 묶어서 길거리에 목을 매달아 놓아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베소스는 동정군이 지나가는 길에 방치해 두었다가 박트리아 지방의 수도 박트 라로 보내져서 결국 처형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분발하여 마라칸다로 입성했다. 그리고 다시 침략의 노정을 북동쪽 으로 바꾸었다. '왜 또 가는 거지?' 병사들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 하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베소스를 체포하여 달레이오스왕을 시해한 주모자를 처형시킨 지금, 대체 알렉산드로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대왕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사정을 생각하면 의문을 품는 것 이 당연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주위 정세가 위급함을 알리는 전갈이 날아왔다. 군수 물자를 마련하기 위해 떠났던 마케도니아 병사가 부근에 할거하던 부족에게 참살당한 사건 이 일어난 것이다. 적은 3만에 가까운 대군은 것 같았다. '어느 사이에? 누가 모은 군사란 말인가?' 산악 부족이 복종하는 체하며 다가왔다가 결집하여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는 격노했고 토벌에 착수했다.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앙렉산드로스 자신도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겁내지 마라! 다 죽여 버려라!" 동정군에게 막대한 피해가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사자왕의 진타가 효과를 나타내며 3만 적 군을 거의 다 죽임을 당하거나 절벽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이 전장 근처에 세워진 도시가 알렉산드로아 에스카테로, 오늘날 타지키스탄 공화국의 수 도인 레나나바트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코칸트로 추정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에스카테라고는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은 '맨 끝'이라는 뜻으 로 대왕이 만든 3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 중에서 이 도시가 결과적으 로 북동쪽의 맨 끝에 위치하게 되어 후세인들의 지혜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 도 없다. 동정군의 실정을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진해 가려 해도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다. 생수를 마시고 배탈이 나서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아픈 대왕의 막사에 정보가 속속 날아왔 다. "뭐라고! 이번에는 스피타메네스가?" 베소스를 동정군에게 넘겨준 그 페르시아인이 반란군을 조직하여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 것도 꽤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도처에 서 보고가 들어왔고 각지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부대가 참패를 당하고 있었다. 사자왕은 북통 을 앓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페르시아 호족들은 이다지도 쉽게 배반 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오지에서 각지에 흩어져 할거하는 호족들의 독립심이 매우 강하여 간단하게는 지배 를 받지 않으며 국지적인 유격전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술이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스피타메네스가 그들의 심리를 충동질하여 적개심을 부추겼고 교묘하게 군대를 조직하 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알렉산드로스는 내심으로는 사티바르자네스도, 베소스도 모두 처음에는 만만 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정강이뼈를 다쳤고 심한 설사로 체력이 많이 상해 있었다. 매일같이 날아드는 뜻밖의 고전 소식에 애를 태우며 정예군을 마라칸다로 보냈지만, 이것도 스피타메 네스의 작전에 휘말려 사막으로 끌려들어 가서 전멸당하고 말았다. "어찌된 일이냐!" 알렉산드로스는 관자놀이에 핏발을 세우며 격노했다. "이번 일은 일절 입 밖에 꺼내지 마라!" 위반자는 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할 정도로 패배에 대해 엄중한 함구령을 내렸다.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초조함은 더해지고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불만 없이 가 벼운 지배 체제하에 있던 무리들이 일체의 선무 공작을 거부하며 조소하듯이 각지에서 조금 씩 반격의 불을 태웠다. 하지만 때마침 동정군에게는 그리스 본토에서 유력한 새로운 지원 부대가 도착했다. 3만 이 넘는 대군은 이 땅에 주둔하는 군사와 맞먹는 숫자였다. 체력을 회복한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격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몰랐 다. "다 죽여라! 다 태워라! 다 빼앗아라!" 자신이 직접 전투에 나서서 잔혹한 작전을 감행했고 몇 군데 촌락이 파멸의 고배를 마셨 다. 그래도 적은 반항항 기색을 잃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봉화를 올렸다.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은 더한층 가혹해졌고 잔혹함도 더해 갔다. 광기라고 할 만큼.... 아니, 사자왕은 정말 미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맹스런 사자는 몇 마리의 사냥개에 둘러싸여도 물러서지 않고 포효했으나 사냥개들은 아무리 쫓아도 끊임없이 공략해 왔고, 아무리 쓰러뜨 려도 지치지 않고 다시 또 다른 사냥기들이 덤벼들었다. 사자는 여기저기 물리고 찢어져 이 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쳐드는 전황이었다. 쌓이고 쌓였던 초조와 불안이 냉철한 사자왕을 미치게 만들었던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 실이다. 동정군을 뒤흔든 대사건은 바로 이때에 일어났다. 대왕의 직속 부하 병사들의 마음도 편안할 리가 없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원정에 휘말 려 부상과 죽음에 직면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워 거칠어진 영혼이 잔학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더욱더 거칠어져 갔다. 신출귀몰하는 스피타메데스의 반격에 알 렉산드로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초조해 하고 있었다. 마라탄다 진영에서 이 땅의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냈고 주연고 베풀었다. 술 자리는 떠들썩하여 평소와 같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뭔지 모를 무거운 분위가가 감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안을 감추는 데는 술밖에 없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마구 마셔댔다. 그리고 잊었다. 그래도 또다시 무거운 불안이 앙금처럼 술자리 여기저기에 가라앉아 있었다. 대왕을 모시는 시인이 어제 전사한 한 무장의 비겁함을 한편의 풍자시로 꾸며서 즉흥적으 로 불렀다. 시인으로서는 비위를 맞추려고 보여 준 것이다. 그때 곁에 있던 헤타이로이 클레이토스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순박한 클레이토스다. 요 람에 있을 때부터 사자왕 함께 자라나 그라니쿠스강의 접전에서는 몸을 던져서 왕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그 새까만 얼굴의 용사 클레이토스다. 이 남자는 마케도니아인의 소박함으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오로지 알렉산드로스만을 경애해 온 정직한 무인이면서 부하 병사들에 게도 매우 신뢰받고 있었다. 파르메니온 주살 작전에서는 병사들의 반감을 위로해 주는 어려운 역할을 맡았고, 자신의 이런 인품 덕분에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 냈으며, 전장에서는 언제나 가장 힘든 전투를 도 맡아서 처리해 왔다. 군공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주제넘게 그런 노래를...." 클레이토스가 새카만 얼굴을 붉히며 시인일 나무랐다. 시인은 풀이 죽어서 물러갔다. "과연 그럴까." 알렉산드로스가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클레이토스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전에 없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사자왕에게 반발했다. 시선이 얽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기며 험악하게 변했다. 분위기는 숨을 죽여야 할 만큼 무서웠다. "건망지게 굴지 마라!" "흥! 사자왕이야말로." "뭐라고! 한 번 더 말해 봐!"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어!" 대왕과 가신의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오래된 친구 사이다. 말해야 할 것이 있다면 속시 원하게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참아왔지만.... "사자왕 한 사람의 공로가 아니다!" "그럼 네 녀석의 공이냐!" "나라고는 안 했어, 모든 병사들의 것이지. 죽은 자나 부상당한 자 모두 말이야. 묘비에 왕 이름부터 병사들 이름을 다 새기면 되겠지." 마음속의 응어리가 터지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았다. "거창한 소리하지 마라!" 알렉산드로스가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말했다. 이럴 때가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클레이 토스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주변에는 재빠르게 사태의 위험성을 눈치채고 모두 들 돌아가고 아무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뭐야. 모든 것이 우리 덕분이야. 이 팔을 봐라. 이 팔이 그라니쿠스에서 사자왕을 구해 주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자왕은 무덤 속에 있을 테지." "말 다했느냐!" 알렉산드로스가 뛰어나와 식탁위의 사과를 던졌고 다시 수호병의 작은 창을 빼앗아 던졌 다. 멀리에서 지켜보던 프톨레마이오스가 달려왔다. "기다려! 잠깐만. 제발 잠깐만." 대왕을 말리고 클레이토스의 어깨를 안고 막사 밖으로 끌로 나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바 로 발길을 돌려서 뒤쫓아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술 탓이야. 두 사람 다 취했어"라며 두 사 람을 뜯어말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손바닥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대왕의 작은 창에 찔린 것 같았다. "알았어. 어서 치료나 해라!" 알렉산드로스는 턱으로 가리키며 자신의 상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프톨레마이오스를 재 촉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로 곁에 있던 수호병에게 치료를 맡겼다. 하지만 그때 일단 돌아갔던 클레이토스가 다시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자왕! 다시 한 번 생각하라. 대왕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어야 좋겠는가!" 클레이토스는 취하기는 했지만 죽음을 각오한 간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양팔을 아래로 내 리고 무방비의 상태로 호소했다. 마치 죽일 테면 죽이라는 듯이.... 사자왕은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작은 창을 다시 쥐어 그대로 클레이토스의 가슴에 꽂았 다. 창 끝의 움직임에는 분명히 살기가 서려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쓰러진 클레이토스를 왼팔로 누르며 창을 빼내어 창살을 벽에다 꽂더니 스스로 자해하려고 창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프톨레미오스가 사자왕의 몸을 밀쳤다. 다행이 목을 살짝 비켜갔다. 두 사람은 바닥에 뒹굴었고 병사들이 창을 빼앗아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자왕! 지금 죽어서 어쩌자는 거야. 대업은 아직 반밖에 이루지 못했어." 알렉산드로스는 일어나서 쓰러져 있는 클레이토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몸을 돌려 자신의 막사로 서둘러 돌아갔다. 몇 명의 가신이 그의 뒤를 따랐다. 먼저 대왕의 막사로 들어온 프톨레마이오스가 모든 무기를 치워 버린 것은 순간적인 기지 이지만 현명했다. "껴져 버려. 다 나가!" 모두를 쫓아내고 알렉산드로스 혼자만 남았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입구 가까이에 멈춰 서 서 방안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시 자해하려는 것은 아닌지 희미한 소리에도 떨 었다. 마침내 낮은 흐느낌이 들려 왔다.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클레에토스는 절명하고 말았다. 진영을 떠나 있던 헤페스티온과 크라테레스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가장 친한 헤페스티온이 아무리 애원해도 알렉산드로스는 출입구를 단단히 닫고는 열려고 하지 않았다. 천하의 알렉산드로스에게도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은 뼈아픈 일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우직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무시해 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 만큼 마음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만큼 신뢰한 자도 없을 것이다. 가장 용감하고 가장 충실 한 부하였으며 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를 술에 취한 끝에 죽이고 말았다. 중신들 은 막사를 멀찌감치에서 둘러싸고 수근거렸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누워만 있어." "자고 있는 걸까." "아니, 침울해 하고 있어." 알렉산드로스는 한동안 자신의 좁은 막사에 틀어박힌 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병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때는 클레이토스에 관한 일체를 무시했다. 클레 이토스의 죽음 따원 마치 없었던 일처럼, 클레이토스라는 무인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다. 정황이 달랐다면 알렉산드로스도 좀더 그럴싸하게 애도의 뜻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겸연 쩍은 생각을 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스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또 다른 번 거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것을 생각하면 클레이토스의 간언을 지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 다. 그 귀찮은 문제는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며 부득이하게 야기된 문제는 더 더욱 아니었다. 바빌론에서 수사, 수사에서 페르세폴리스의 동정길을 전진함에 따라 알렉산드로스가 의도적 으로 감행해 왔던 일에 대한 병사들의 초조, 불안 혹은 반감일지도 모르는 의혹ㅇ이 진중에 잠재해 있었다. 광대한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페르시아인의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알렉산드로스 의 확고한 신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없는 번영을 이루어 낸 페르시아의 예지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장점도 많이 있다. 아시아 대륙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페르시아인을 요직에 중용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의 하나였으며, 대왕 자신이 스스로 자진해서 페르시아의 풍습과 친숙해지려는 것도 범아시아적인 사고로 생각하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에게는, 특히 마케도니아 병사에게는 '무엇을 위한 동정인가'라는 민족적 인 감정이 뿌리깊게 장재해 있었다. 옛날부터 전쟁이라는 것은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하여 좋은 생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필사적인 도발이다. 그런 시점 에서 바라볼 때 사자왕의 페르시아 편애는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전쟁에서 진 페르시아인을 높은 지위에 앉히고 측근으로서 중용하여 헤타이로이가 페르시아인을 윗사람으로 모셔야만 하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대왕은 페르시아인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페르시아 의상을 차려입고, 페르시아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여봐란 듯이 페르시아의 습관을 따르며, 이제는 그리스인에게까지 궤배라는 인사법을 요구하고 나왔다. 자존심이 얽 힌 문제라는 점에서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궤배의 예절, 그것을 페르시아 궁정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습관이었다. 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까지 붙이고 예배한다는 것은 경의의 표현이고, 이런 인사를 받고서야 비로소 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페르시아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인처럼 왕이 병사와 어깨동무를 하는 것은 야만족이라는 증거였다. 페르시아에서 군림한 알렉산드로스는 대왕으로서 이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페르시 아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었으며, 마케도니아인의 왕과 병사처럼 허물없이 지내서는 궁정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었다. 어느 사이에 알렉산드로스의 주변에서 궤배의 예가 빈번 하게 실행되었고 그리스인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자처하는 알 렉산드로스에게 이것은 결코 기분 나쁜 관습이 아니며 권력이 커지면 그만큼 위엄을 과시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리스인은 원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군대의 중추를 이루는 헤타이로이라는 말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잇다. 상대가 비록 대왕이라 하더라도 엎드려서 머리를 바닥에까지 붙여서 절하는 것은, 신 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것과 같아 참을 수 없는 관행이었다. 마라칸다에 진주한 동정군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절충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었다. 페르시아인은 페르시아 풍습을 지키면서 궤배의 예를 상징적으로 행했 고, 그리스인은 그리스인대로 자신들의 관습을 지키면서 궤배의 예를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 다. 그리고 이른 아슬아슬한 균형은 대왕 자신의 의향을 맞추어서 조금씩 페르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클레이토스가 이런 경향에 반발심을 느꼈던 것은 분명하다. 누구보다도 마케도니아 병사 들의 마음을 하는 부대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자왕에 대한 충성심에서 함부로 말하는 일조차 도 없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동방병에 물든 것을 본 충성스런 무인은 상당히 괴로웠을 것 이다. 그러므로 취한 탓에 폭언을 한 것과 궤배의 예에 다한 저항과는 적잖은 관련이 있었으며, 뿌리는 같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도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 하기 어려웠다. 마라칸다에서는 그리스인 대부분이 대왕의 뜻에 맞추어 무릎을 구부리는 평 신저두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이 동서 융화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있었던 것이 다. 클레이토스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을 했어도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건은 여전히 여운을 남겼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한사람의 헤타이로이 에 대해서 언급해야 한다. 칼리스테네스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에자 학사에서 함께 공부한 적도 있는 웅변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이며 무용보다는 학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예지는 도저히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미칠 수 없었지만 외모는 많이 닮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각나튼구 나"라며 이 사내를 곁에 두고 나름대로 후하게 대해 주었다. 도즘으로 치면 종군 지가 같은 역할로 전사를 기록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와 관련하여 말하면, 칼리스테네스가 남긴 기록은 모조리 유실되어 버렸고 알렉산드로 스의 동정을 전하는 사료로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후세에 조금 미심쩍은 알렉산드 로스 실록이 날조되어 나왔었는데 이 작자를 칼리스테네스라고 부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역 사적인 사실은 아니지만 재미는 있다. 이런 위작은 먼 옛날에 몇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 리 유포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켤코 적지 않다. 이것이 칼리스테네스 위서라고 불리는 고 전이다. 아무튼 칼리스테네스는 궤배의 예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유를 존중하는 그리스 민족의 전 통에 어긋나며, 노예법이라는 것을 만든 자부심을 가진 시민이 켤코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고 방식은 하나의 양식이겠지만, 그 문제와는 별개로 그는 그다지 평판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것을 늘 자만하며 오만 불손하게 변설을 휘두르는 버릇도 없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도 가끔씩 이런 말을 하곤했다. "사자왕은 분명히 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왕이며, 용사 중에서도 가장 용맹스러운 용 사이고, 사령관 중에서도 가장 그 이름에 어울리는 총사령관으로서, 인간으로서도 최고의 인 격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신은 아니다. 궤배의 예는 신에게만 하는 것이다. 굳이 그것을 행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대왕을 깔보 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대왕에 대한 칭찬은 아낌이 없었지만 터무니없이 자존심이 강했다. 최근의 좋지 않은 평 판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대왕의 페르시아병에 불만을 가진 병사들의 마음을 아주 후련하 게 해주었다. 병사들의 뜨거운 응원이 날아오고 인기가 높아졌다. 대단한 영웅이 된 듯한 기 분을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임이 있은 직후였는데도 위험의 기색을 이 남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쭐거리던 자만심이 강했던 만큼 판단이 어긋났다. 사자왕이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의 조카인 자신을 무시할 리가 없다고 믿었고 그리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후대받고 있었 지만, 그런 후대도 자신이 잘나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인 양 마치 호메로스나 된 듯한 착각 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자왕의 위업도 그것을 전해 줄 사가기 없으면 헛된 것이다. 전해 줄 자가 있음으로 해 서 영웅은 진짜 영웅이 된다. "사자왕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단언한 것도 있었으니 약간은 과대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발언을 되풀이하는 이상 자신이 궤배의 예를 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런 예를 요하는 기회를 스스로가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식전에 참 석할 것을 강요당하게 되자, 다른 중신들이 무릎을 구부려서 머리를 숙이는 사이에 팔리스 테네스는 그것을 살짝 건너뚸고 바로 대왕의 입맞춤을 받으려 했다. 원래는 궤배를 하고 나 서 대왕의 입맞춤을 받는 것이 순서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불경스런 행동을 목격하지 못했지만, 뒤늦 게 곁에 있던 시종의 말을 듣고 매우 분노를 느꼈다. 이날의 식전은 마케도니아인이 대왕의 명령에 따라 빠짐없이 궤배를 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칼리스테네스는 그다지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왕에게 입맞춤을 거부당했을 때도 "저런, 입맞춤 하 나 손해봤잖아"라고 익살을 부렸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허세를 부렸으나, 알렉산드로스는 불 쾌하게 느끼며 칼리스테네스의 이름을 그의 뇌리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 또다시 음모의 소문이 흘러 나왔다. 한낱 소문으로 넘기기에는 근거가 아주 충분했다. 대 왕 측근 중에 헤르모라오스라는 이름의 젊은 사관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수렵할 때 무심코 대왕보다 먼저 가서 첫 번째 창을 던져 야수를 죽인 일로 태형에 처해져 채찍으로 맞게 되 었다. 태형은 신분이 낮은 이에게 내려지는 굴욕적인 형벌이었다. 이 젊은이는 대왕에게 커 다란 원한을 품고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같은 시간에 진영의 여기저기에서는 "이대로 지구 끝까지 데리고 가겠지!", "그래서 결국 죽는 거야. 비참하게 말이야", "마케도니아를 위해서가 아냐. 대왕의 방자함 탓이야" 등등 동정에 대한 불만이 잔 물결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대옹이 모두를 죽일 거라는 불안은 현실감을 띠고 있었으며, 이런 불안 심리는 대왕을 암살하는 길만이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어졌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특히 그렇 게 흐르기 쉽다. 헤르모라오스의 가슴속에 있는 원한과 정의감이 섞여서 동조하는 자도 속 속 나타나고 여하튼 대충의 계획이 세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대왕은 취하면 숙면에 빠지지, 그때를 노리면 쉽게 실행할 수 있어." 사관들은 대왕의 신변 보호를 맡고 있었다. 야간 경호를 맡은 몇 사람이 마음만 하나로모 으면 모략을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 비밀리에 동지를 모았고 적절한 때에 동지들끼리만 경 호하는 밤이 왔다. "오늘 밤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다. 실행에 옮기자." "좋다." 몸을 떨면서 맹세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알렉산드로스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잠자리에 들 생각을 하지 않 았다. 시리아인 여가 점술사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귀띔을 했다는 소문까 지 들려왔다. 그러는 가운데 암살을 계획했던 패거리 중 한 명이 두려움에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상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비밀을 고백했다. 신중하게 조사가 시작되었고 줄지어서 반역자들이 잡혔으며 주모자가 판명났다. 대왕 앞 에 끌려 나온 헤르모라오스는 이제 더 이상 살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대왕을 노려보며 모여든 병사들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대왕이 우쭐대는 것과 횡포와 동방병에 걸 린 것을 외치며 규탄했다. 헤르모라오스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투성형에 처해져서 죽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헤르 모라오스는 팔리스테네스의 수제자로서 그가 주장한 내용은 모두 다 칼리스테네스의 평소의 언동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바로 며칠 전에 "어떻게 하면 유명하게 되지요?" 라 는 제자의 질문에 팔리스테네스는 "가장 유명한 인물을 죽여라"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모두가 다 칼리스테네스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관들끼리 저지른 일 치고는 계획이 너무나 대담했다. 칼리스테네스는 체포되고 탄핵당하여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병사라고 전해지지만 이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 지역에서의 전투는, 첫 번째는 산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국지전을 해야 하고, 두 번째는 모든 부족들이 용맹 과감하며, 세 번째는 무엇보다도 지리적 조건이 적에게 유리한 점 등의 이유로 인해 동정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몇 번이나 패전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 이라는 것은 굴복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집요하게 공방을 계속한다면 대군이 전면적으로 패 하는 일은 없는 법이다. 이길 때까지 싸우는 것이 사자왕의 장점이며 계속해서 공략하면 좋 은 결과를 만나게 된다. 우선 흑해 동쪽에 절대적인 세력을 가진 스키타이족의 변화였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늘 호 의적이지 않던 왕이 타계하고 새 왕이 즉위하자 새로운 방침을 채용하여 친목 사절단을 보 내 왔다. 고마운 일이었다. 군수 물자 확보에도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도 동정군은 배후에 큰 불안을 갖지 않고 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행운 하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집요한 공격을 받자 야만족의 통일 전선에도 혼란이 생겨 분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피타메네스의 능력에도 한계가 찾아온 듯했다. 이 페르시아인이 반알렉산드로스 부족을 조직하여 어느 정도의 세력을 쥐고 있는지 정확한 내 용은 알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동정군을 에워싼 지역은 상상도 못할 만큼 방대하다. 아무리 유능한 호족이라 해도 스피타메네스라는 개인이 매일매일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하여 이렇게 광대한 지역을 연계시키고 회유하고 조직화하는 것은, 하늘을 날아 다니는 날개를 가진 것도 아니 고 단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동정군이 받았던 인상은 그것에 가까웠다. 각지에 스피타메네스의 냄새가 뿌려져 있었구 꿈틀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야만족 단독의 지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전략이 도처 에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전쟁의 상황이 변했다. 처음에는 열세였던 동정군도 1년을 넘는 전투를 겪 자 조금씩 승리의 개가를 올리게 되었고, 박트리아의 산속에 스피타메네스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코에누스라는 민첩한 헤타이로이를 추격하러 보냈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갔다. "알렉산드로스가 온대." 이 정보가 스피타메네스에게 가담한 박트리아인을 떨게 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전쟁을 빠 짐없이 돌이켜보면 국지전에서 이기기는 했어도 사자왕이 오면 결국 패했다. 패하면 모두가 죽어야 할 운명을 만나게 된다. 박트리아 지도자가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와서 "스피타메네스"하며 친근하게 부렀다. 그 리고 "무슨 일인가?" 하는 그에게 부족장들이 느닷없이 세 방향에서 칼을 빼내어 찔러댔다. 스피타메네스의 목을 알렉산드로스 앞으로 가지고 언 곳은 예전의 사티바르자네스 때와 마찬가지였다. "정말 스피타메네스냐?" 알렉산드로스는 생전의 스피타메네스를 아는 페르시아인들에게 보여 주어 확인했다. 그렇 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여려 차례 속았고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죽었다고 했는 데 실제로는 죽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허를 찔린다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목을 가져온 야만족의 소원은 이것을 대가로 화약을 맺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산드 로스 쪽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부장군 격으로 승진한 크라테레스가 대왕에게 말했 다. "산악 야만족은 페르시아인과 달리 근본이 순박했기 때문에 일단 항복만 하면 다루기가 쉽습니다." "음." "그 대신 이쪽이 소극적이면 철저하게 항전에 도전해 올 것입니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순박하다는 말을 들을 알렉산드로스는 순간 클레이토스를 생각했다. '소중한 친구를 잃었어.' 다시 한 번 크게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다. "다음은 소그디아나 요새다." 화제를 돌려 버렸다. "상당한 난관이 될 듯합니다." "그곳을 함락시키고 남으로 향한다" "남으로!" "인도다. 그곳이 지구의 끝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은 동정길을 페르세폴리스 부근에까지 진격했을 때였다. 페르시아 반대편에 있는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신기한 나라 같았다. 그리 스와도, 페르시아와도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고, 사는 사람도 다양해서 배꼽 한 가운데 얼굴이 달려 있는 인간도 있다고 했다. 심오한 철학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도라는 존재 그 자체는 고국에 있을 때부터 들었지만, 그것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이 미지였다. 동정길을 나아감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전해져 왔다. 인도를 찾아내어 그 반대 편에 있는 바다에 이르면 거기가 지구의 끝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지도를 그렸다. 그곳은 마 우리타리아(아프리카) 바다와 이어져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인도에까지 다다르면 무슨 계시가 있을까. 달레이오스를 추격하고 베소스를 추격하며 배후자의 안녕을 확보하기 위해 공교롭게도 아 시아 북부 산악 지대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인도야말로 정말 세계의 끝이라고 반신반의의 판단을 뇌리에 그리고 있었다. 아시아 북부는 그저 황량한 산등선이 하늘과 땅을 나누어 경계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매 력은 별로 없다. "앞으로 한 번이나 두 번...." 남은 정복은 이 정도뿐이라고 생각했다. 소그디아나 요새에서 벌였던 공방전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전투를 상징하는 처참한 과정을 거친 전쟁이었다. 소그디아나는 박트리아 지방의 동남부 어딘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름이 같은 이 도시 에는 왕궁도 세워져 있어서 이 지방의 호족 옥시아르테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동정군의 추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옥시아르테스는 용감한 산악 부족과 함께 산중에 있는 요새에 틀어박혀 있었다. 옥시아르테스는 충분한 군량미와 마초를 마련해 놓았고, 험준한 산 세는 아무리 강한 적의 공격도 뿌리칠 수 있는 요새였다. 정말이지 날개를 달지 않은 이상 이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동정군은 먼저 산기슭을 진압하고 투항을 권고했지만 옥시아르테스는 "하늘 위에서 공략 해 오너라, 하하하"하며 비웃었다. 공격을 맡았던 크라테레스도 고개를 내저었다. 공략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공략해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작전을 세워 지휘를 맡았다. "뒤쪽의 산밖에 없다." 아래쪽에서부터 올라가서 공략하는 방법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방법이 있다면 오새 뒤쪽 에 있는 고지로 올라가서 공격을 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계절은 겨울이라 그런 등반은 더 더욱 힘든 일이었다. 예전에 그런 등반을 경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만큼 험준한 절벽이었다. "올라가라." 300명의 정예군이 선발되었고 성공한 자에게는 이례적인 상금이 약속되었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밤중을 택해서 결행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이 대못과 밧줄을 써서 필사적으로 등반에 도전했으나 목숨을 읽은 자도 적지 않았다. 꼭대기까지 올 라간 자도 너무 지쳐 도저히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후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소그디아나성 공략에 관해서 "전쟁사에 기록할 만한 것이 아니 라 등반사의 효시로 들어야 할 난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요새에 틀어박혀 있던 옥시아르테스는 "알렉산드로스는 날개를 가지고 있어, 신의 아들일지도 몰라"하고 경탄했다. 등반에 성공한 병사가 싸울 수 없는 상황인 줄도 모르고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고 그대로 항복했다. 어리석은 판단이었지만, 산악 에 사는 자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옥시아르테스는 완전히 돌변하여 알렉산드로스에게 순순히 복종하는 길을 택했고 사자왕 의 힘에 놀라서 두려움에 떨었다. 진심으로 감복하여 존경의 수준까지 마음이 움직였던 모 양이다. 이러한 태도를 접하게 되면 알렉산드로스는 이해심이 부족한 왕은 아니었다. 화약을 축하하는 주연이 열렸고 알렉산드로스는 웅변을 했다.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지만 나의 본심이 아니다. 나의 진정한 소망은 모든 나라의 평화와 번영에 있고, 내 지배하에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번영을 구가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이상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아테네 패권하에 번영한 그리스의 국가관이다. 그리스 도시 국가군은 몇 몇 빗나간 나라도 있지만 우선은 이 이상에 따라 조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도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선왕 필리포스의 생각이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것을 알렉산드로스에 게 가르쳤다.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심중에도 이런 고전적인 국가관이 자라나고 있었다. 통역관은 사이에 두고 문답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이 대화가 옥시아르테스 에게 전해지고 있는지, 그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매우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들 또한 소부족이 독립해 있으면서 전체 우두머리의 지배하에 통치받는 형태를 지금까지 택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논리는 납득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크라테레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일단 진 심으로 복종하기만 하면 그들은 충실하고 배신하는 일도 적었다. 알렉산드로스의 훌륭한 이 념은 이민족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역을 대상으로 하여 실현되기에는 조금은 미숙하고 고대 사회적이며, 이상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납득을 시켰다. 축연이 한창일 때, 옥시아르테스가 "오래도록 우호를 지키기 위하여"라며 말하며 최고의 진상품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바쳤다. "받아 두겠다." 부하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주연의 과정이었다. 거절할래야 할 수 없는 일아며 거절할 만큼 귀찮은 일도 아니 었다. 오히려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미모가 뛰어나기로 평판이 자자한 옥시아르테스의 딸 로크사네가 대왕의 비로 바쳐졌던 것이다. 정략 결혼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굳이 옥시아르테스의 심정을 덧붙인다 면 페르시아 궁정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딸을 시집보낼 적당한 상대를 찾 을 수가 없었다. 산악의 야만족이 딸의 상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므로 훌 륭한 안물이 알렉산드로스에게 딸의 일생을 맡기려고 결심했다. "진심으로 모시겠사옵니다." 이렇게 말하며 로크사네는 자신이 화려한 융단이라도 된 것처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 로 납작 엎드려 아버지의 결정에 따랐지만, 청순하고 아름다운 얼굴과는 반대로 권세욕과 무관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로스의 측근 사이에는 소문이 돌았다. "사자왕도 로크사네의 미모에 반해 버렸어." 로크사네의 미모가 출중하게 빛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왕비로 맞는다는 것 은 알렉산드로스답지 않았다. 취향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여자는 얼 마든지 만나 왔기 때문이다. 역시 민족 융합이라는 이념이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 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선두에 서서 본을 보이는 것이 알렉산 드로스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자왕과 가장 친밀하며 때때로 신적인 영감을 받는 무장 헤페스티온은 '사자왕은 자신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하고 어렴풋이 불안감을 품었다. 헤페스티온은 이 의혹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도 부정했다. 하지만 정 말 어렴풋한 의혹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자왕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단명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무의식중에도 자손을 남기려는 쪽으로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하고 대왕의 친구 는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의 사자왕은 이러한 상상이 무리가 아닐 정도로 자신의 목숨을 소 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지역이서 코리에네스 요새라고 불리는 견고한 산성을 굴복시킨 뒤 박 트리아 지방의 수도인 박트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여가를 내서 편지를 썼다. 이것도 알렉산드로스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미음에 걸리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충고하고 명령하며 간절히 부탁하는 글을 썼다. 편지 쓰기를 매우 좋아했으며 간결한 문장으로 요점 을 정확하게 적고 막힘이 없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고국의 수도 펠라에 있는 태후 올림피아스에게, 그리고 그 다음으로 재상 안티파르로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양의 답장이 날아왔다. 태후는 최근에는 거의 평정을 되찾고 있다. 불만이 있어도 예전처럼 사나운 행동을 하는 일이 없다. 언젠가 겁을 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알고 있겠지." 알렉산드로스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단순한 협박은 아니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에게 태후의 존재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면 헤페스티온이 예민하게 눈치채고 비상 수단을 단행했을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단독으로 재빠르게 강행했을 것이었다. 헤페스티온만이 해낼 수 있 는 일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태후가 느꼈던 것은 아닐까. 속으로 '어머니는 바보가 아니지' 하고 생각하며 자조하듯 웃으면서, '안타파트로스를 재상 에 앉힌 것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 었어'하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7년 전 출진할 때 깊이 생각한 끝에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제일가는 충신에게 가장 무거 운 역할을 맡겼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파르메니온이었다면 어쩌면 멀리 고국에서 반역 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안티파스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처럼 현명하고 클레이토스처럼 충 실하다. 그런 결단 덕분에 후일의 걱정 없이 동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태후는 일일이 안티 파트로스의 어림석은 행동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 왔지만 안티파트로스를 바꿀 수는 없었 다. 편지에 카산드로스를 후하게 대우하라는 내용을 썼다. 카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큰아 들이자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다. 지금은 펠라에서 아버지의 정무를 보좌하고 있으나 이 아들의 영달이 안티파트로스를 즐겁게 하는 제일의 방편일 것이다. 막사 밖에서 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렵지 않게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르시나인가?" "네." 목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어쩐 일이냐?" "잠시 괜찮겠습니까?" "괜찮다." 바르시나는 잠깐 머뭇거린 뒤에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계신 곳에 잠시 머물다 돌아왔으면 합니다." 부친인 알타바조스는 이젠 박트리아 태수를 그만두고 은둔생활을 하는 처지였다. "질투하는 것이냐." 로크사네에 대한 소문은 바르시나도 듣고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딱 잘라 부정했다. "그럼 무엇 때문이냐?" "허락해 주십시오." "아니다, 말해라. 말하면 허락해 주고 말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겠다." 두 번, 세 번을 다르쳐 물으니 이제야 바르시나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대왕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뭘 모른단 말이냐?" 붉은 입술이 열리기까지 또다시 시간이 걸렸다. "애당초부터 대왕님께서 옳으십니다. 저 같은 계집이 틀렸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저 같은 계집의 어리석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사옵니다. 파르메니온 님도 그랬고, 클레이토스님도 그랬고... 신의 아들의 마음을, 저는...." 바르시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허락해 주십시오서." 조용하게 머리를 숙이더니 재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세 섰거라!" "말만 하면 허락하신다는 약소, 잊지 않으셨죠?" 알렉산드로스가 다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르시나가 먼저 막사 밖으로 나가다 말고 뒤돌 아보며 입을 열었다. "임신했습니다. 아들이겠죠." 그리고 나서 재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헤라클레스를 능가한 왕 박트라의 길모퉁이에서 자칭 성자라고 부르는 걸인 같은 차림의 노인이 동정군의 중진인 프톨레마이오스를 불러 세웠다. 노인은 뱃사람들이 잘 쓰는 그리스 방언으로 떠들어댔다. 그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제국을 방랑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누구한테 지배받느냐?" 물어 오는 걸인에게 프톨레마이오스는 대답했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도에서 사자왕은 허물을 벗고 꼬리가 생겨서 하늘러 춤추며 오르는 용이 된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허물을 벗는다?" "그래." "재밌군." 동전을 던져 주고 헤어졌다. 거지 노인의 헛소리 따위에 신경 쓰지는 않지만 "허물을 벗는다"는 말은 프톨레마이오스 의 가슴속에서 어느 정도의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사자왕도 허물을 벗는구나.' 요즘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일이다. 마치 뱀이나 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옛것을 속속 벗 어 버리며 알렉사늗로스는 변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를 떠나올 때는 소아시아 반도를 공략하여 외적으로부터의 위협을 뿌리치고 그 리스 전국토를 통합하는 일, 그것이 목표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자왕의 심중을 그렇게 헤아리고 있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사실들을 곳곳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침내 정복의 꿈은 시리아 해안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으로 확장되어 페르시아 를 붕괴시켰고 아시아의 맹주로 변했다. 그런데 이제는 인도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아서 세 계의 끝을 찾아가려고 한다. 마케도나아에서 그리스로, 페르시아로, 다시 세계로 야망이 커져 감에 따라 사자왕의 인품 도 변했다. 사자욍의 심중에 구국 마케도니아가 차지하는ㄹ 부분은ㄹ 점점 작아지고 이집트 를 생각하고 페르시아를 떠올리고 마침내 인도에 대한 생각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참으로 성장을 더해 감에 따라 허물을 벗듯이 알렉산드로스는 민첩하게 변모해 갔다. 어떤 때는 전 그리스의 융화를 갈구하는 아테네인처럼 행동했으며, 어떤 때는 페르시아인처럼 생활했다. 이국인을 중신으로 중용하며 자신도 아테네인이나 페르시아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영리하고 현명항 인물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로 사자왕의 빠른 변신에 약간은 당황할 정도였다. 어느 사이에 군대도 변했다. 마케도니아를 떠나올 때의 병사들은 눈에 띄게 숫자가 감소 해 버려 마케도니아인 병사는 3분의 1도 안된다. 나머지는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동방인이 차지했다. 수치상뿐만 아니라 정예 부대의 중추에도 페르시아에서 징병되고 페르시아에서 훈련받은 젊은이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동정군은 어떤 사각으로 보아도 이젠 마케도니 아 군대가 아니었다. 사자왕의 염원은 세계의 끝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 프톨레마이오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이상 세계의 끝을 알아내고 세계의 왕이 되는 것은 아 무나 해낼 수 없는 영광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많은 노고와 바꿀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의문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모험인 것도 사 실이다. 역사에 찬연히 빛날 정복자라는 수확이 눈앞에 있다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왕 중의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그런 집념을 잃었다면 사자왕이 아니 다. 사자왕이 숭배받고, 공경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바로 이 집념 때문이다. 그것 이 없으면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며, 알렉산드로스의 상실 그것은 바로 죽음과도 같다.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이 사자왕에게 공손과 우애와 동경심을 바치는 것도 사실을 이런 그 의 비범한 인격 때문이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모시켜 가는 영혼의 유연함 때문이다. 언젠가 용이 될지도 모른다. 용은 신이다. 거리의 성자가 했던 말을 알렉산드로스에게 들려 주었다. "사자가 허물을 벗는다고, 인도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자왕은 그 땅에서 다시 탈피한답니다." "나는 피부색을 바꾸겠어. 마우리타라아(아프리카)의 도마뱀, 카멜레온처럼 말야." 아리스톨텔레스의 제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야생 동물의 변색 본능을 알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사자왕은 순식간에 정황에 맞게 바꿔 버리니까. 페르시아에서는 페르시 아 색으로." "이번에는 인도 색으로 물들여 볼까." "정말요." 미에자의 친구들은 쾌활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이때에는 명석한 프톨레마이오스나 알렉산드로스는 인도가 어느 정도로 든넓은 더지인지, 그리고 세계가 어디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는지 그 엄청난 광대함을 알 수가 없었 다. 기원전 327년 여름. 알렉산드로스는 힌두쿠시 산맥 남쪽을 넘어서 지도로 정확하게 설명 할 수는 없지만 카불에서 인도 방면으로 군대를 진진시켰다. 아주 오래 전부터 변경의 중요 지점으로 알려졌던 카이바르 고개를 넘어가면 오늘날의 파 키스탄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는 도중에 할거하는 야만족들과 싸우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야만족이라는 호칭 자체가 동정군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리스와 페르시아 문명을 경험한 병사들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역시 후진한 부족들이었다. 용맹 함은 있지만, 무기나 전쟁 기술 면에서 많이 뒤처져 있었다. 물론 동정군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의 연속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동정군은 지세에 어두우며 지리적으로 불리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것은 진격 하는 쪽보다는 자기 고향을 필사적으로 방위하는 쪽이 결속하기 쉬운 법이다. 그런데도 동 정군이 이기며 전진한 것은 군사력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우수하고, 지휘관에서 하급 병사에 이르기까지 전투 체험을 쌓아서 전투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마사가라는 마을을 공략할 때는 유난히 심한 반격을 받아서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심한 부 상을 당했고 많은 군사를 잃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도 중상을 당했지만, 사자왕의 정확한 치 료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군의 희생을 지켜본 사자왕의 분노는 대단했다. 일단 휴전을 성립시킨 뒤에 상대를 끌어내자마자 포위하여 전멸시켰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도 흘 러 나왔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변명했다.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쪽이야말로 비검하게 협정을 위반하려고 했다." 마사가의 의용군이 순수하게 복종한다고 하면서 도망가서 새로운 군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낌새가 없었던 것도 분명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공격 이 이때부터 점점 더 흉폭함을 더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상대를 원숭이에 가까운 야만 부족으로 취급하며 깔보는 면도 있었으나, 그 반면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산악 부족 의 거센 반격에 너무나 불안한 탓에 제정신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마사가 다음은 아오르노스 요새였다. 이 부근의 협곡은 페르시아와 인도를 잇는 중요한 통로이고 적대할 세력을 방치해 두면 화근이 되는 곳이며, 그것만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서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조차도 공략할 수 없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었다. 전설의 전위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강자라 해도 그리스 영웅이 정말 여 기까기 왔을까? 정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리스인에게 알려 주기 위해 헤라클레서의 이름을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겠다. "뭐라고? 헤라클레스 해내지 못했다고." 이 말을 들은 사자왕은 투지가 샘솟았다. 자신을 헤라클레스의 후예라고 믿고 있고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뒤지지 않는 용사가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이런 고지를 놓치고 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정보를 모으고 정찰해 보니 요새가 있는 산꼭대기로 가는 데는 꼬불꼬불한 좁은 길 하나밖에 없고 게다가 가파른 비탈길만이 계속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산꼭대 기는 샘물이 풍부하여 밭농사가 가능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다. 산기슭을 포위 하고 지켜보아도 성안에 버티고 있는 적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했다. '헤라클레스를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 이렇게 결심한 알렉산드로스는 1년 전에 수그디아나 요새를 공략했던 작전을 감행했다. 즉 적의 요새와 맞서서 대항할 수 있는 높이까지 아군을 올려 보내는 전략이다. 먼저 적군 의 요새에 가까운 적당한 고지를 찾아낸 후, 알렉산드로스 부하와 프톨레마이오스 부하를 둘로 나누어 적군의 격렬한 공격에 맞서서 양쪽에서 공격하며 등정하여 고지를 점령했다. 험준한 바위산이라는 사실만 생각해도 매우 어려운 전투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겠지 만, 그래도 적군의 요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접한 고지에 알렉산드로스군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자왕은 즉시 흙담을 쌓으라는 허무 맹랑한 명령을 내렸다. 진을 친 고지에서 적군이 있 는 요새까지 흙담을 만들어 접근하겠다는 작전이었다. 병사들에게 제각기 100그루의 나무를 베어서 흙담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을 비 스듬히 해서 못을 치고 안에는 흙을 담아서 인공 지붕을 축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길 이까지 연장하면 돌멩이를 날릴 수도 있고 더 연장한다면 공성탑을 접근시킬 수도 있을 것 이다. 단 하루 작업으로 1스타디아(약 200미터) 정도의 흙담을 만들었다. 적은 작업하는 군사들 을 노리고 공격해 왔다. 이쪽은 작업과 동시에 방어를 하며 발판을 단단히 굳히고 공격에 나섰다. 사자왕 자신이 토목 공사를 지휘하여 적군의 사기는 더한층 고무되었다. 이틀, 사흘 쉬지 않고 작업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나흘째 되는 날에는 적의 요새에 연결되는 지붕에까 지 접근시킬 수 있었다. 소부대가 요새가 있는 산으로 쳐들어갔고 그 사이에 더욱 튼튼한 흙담이 만들어졌다. 불패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드로스군이 떼를 지어 공략에 돌입한 태세로 나왔다. 아오르노스에서 버티고 있던 적군은 알렉산드로스군의 뛰어난 용맹함에 놀라서 항복해 왔 고 사자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달아나려는 적병은 추격하여 가차없이 죽였다. "해냈어!" 이리하여 헤라클레스를 초월한 알렉산드로스의 공적의 하나가 되었다. 덧붙여 말하면 전략에서 토목 공사 같은 작전이 가미되는 것은 알렉산드로스군의 특색이 었다. 무기를 배치하여 전투 가진을 다지기 위해서 전장 내외의 대규모적인 작전을 가끔씩 짜내기도 했다. 동정길에는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혹은 병참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도로 정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시 건설과 함께 이러한 종합적인 전략은 당 대의 예지로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후대 헬레니즘 문화의 전파도 이 업적고 무관하지난 않 다. 그건 그렇고, 알렉산드로스는 아오르노스 요새를 함락시켜 사기가 충천한 가운데 진영으 로 날아온 낭보를 들었다. "바르시나님이 왕자를 생상하셨습니다." "그래, 둘 다 건강하지...." 목이 메었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이런 난공불락의 산성을 함락시킨 바로 이때에, 헤라클레스의 위업을 뛰어넘는 이때에 이런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어쩐지 신 의 뜻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건강하십니다." 바르시나는 아버지 알타바조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바르시나와의 이별을 정식으로 허락하지는 않았다. 이제 왕자가 태어났으니 더더욱 왕자의 어머니를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알타바조스의 보호에 맡겨 두자. 보호를 위해서 약간의 부하들을 알 타바조스의 집으로 보내야겠다. 전장은 어린아이를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곳이다. 그렇게 결심한 다음 사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헤르쿨레스라고 명명해 주게." 마케도니아 왕가에는 왕자에게 걸맞는 이름이 몇 개 있었다. 예를 들면 아민타스, 페르디 카스, 선왕인 필리포스도, 또 사자왕 자신의 이름인 알렉산드로스도 그렇다. 하지만 구태여 이러한 인습을 피해 첫 번째 왕자에게 헤르쿨레스라고 이름을 지어 준 것은, 그저 단순하게 낭보를 들었던 시기가 헤라클레스도 함락할 수 없었던 요새를 공략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는 그 하나의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의 왕이 되어 달라는 알렉산드로스 자신의 꿈을 왕자의 이름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사자왕의 위업을 계승할 왕자는 마케도니아 일국의 지배자가 아니다. 그리스는 말할 필요 도 없고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 멀리 인도까지 다스려야 할 입장인 것이다. 세계에 알려 질 이름이 아니면 안 되겠지.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 헤라클레스 위업은 전 승의 형태를 바꾸며 여러 나라의 말로 세계 각지에 전해지고 있다. 하물려 아오르노스 요새 까지 그 힘든 난공불략을 알리기 위해 헤라클레스 이름을 쓰고 있지 않은가. '이 이름만이 나의 위업을 이어 갈 왕자에게 걸맞는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로르노스 산기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굿에 뉴사라는 도시가 있는데, 다름아닌 그리스 신화의 또 다른 신인 디오니소스가 세운 옛날 도읍지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주신 바커스와 동일한 신인데, 제우스를 필두로 하는 저명한 올림포스 12신 중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스 과정에서 그 지역의 신앙과 함께 합해져 새롭게 그리스 신 화에 덧붙여진 별칭이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지방에서도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제사 때 에는 술에 취하여 이성을 잃고 광란에 빠지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것을 미개 사회 에서는 있을 수 있는 신성이며, 소아시아에서도 디오니소스 신앙은 널리 성행하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느 인도에까지 왔고 오는 도중에 만든 도시가 뉴사라고 한다. 이 도시가 카이바르 고개 근처에 있는 이유는 일단은 이치에 맞다.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제우스아몬신을 믿고 있지만 제사 때에는 술에 취하 고 약초에 취하여 난무하며 주술을 하는 것이 의례적이었다. 선왕 피리포스와의 만남도 이 제사가 인연이었고, 이런 의식이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이었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이상을 생각해 볼 때 디오니소스는 알렉산드로스와는 대단히 인연이 깊은 신이었다. 헤라클레스의 위업을 능가한 사자왕은 디오니소스가 만든 도시라는 말을 듣고 새로운 흥 미를 품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도시의 우두머리가 찾아와 화평을 간절히 청했다. "우리 도시는 디오니소스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제발 멸하지 마시고 지나가 주옵소서." "그럼 디오니소스와 연관한 증거라도 있느냐." 사자왕이 반문하자 우두머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도시 이름 자체가 디오니소스를 키운 요정 뉴사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내려 다보는 산을 메로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디오니소스가 대신 제우스의 허벅지(그리스어로 메로스)에 숨어서 자라났다는 사실에 유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왕님께서 친히 부근 산속에 들어가 직접 보이면 산의 기운이 그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디오니소스가 풍부한 자연을 저희 조상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송악은 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리스 송악과 같은 종류인데, 디오니소스 제전에서는 이것으 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춤추는 점도 동일하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산속으로 들어가자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고향과 똑같다며 눈물을 흘릴 만큼 풍경이 비슷했다. 포도도 같은 종류가 열렸다. 알렉산드로스도 마케도니아의 산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좋구나." 디오니소스가 만든 도시를 파괴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도시를 번영시키는 게 좋겠어." "황공하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기병 300기와 뛰어난 인재 100명을 우리 마케도니아군에게 제공해 주시오." 그러자 도시의 우두머리는 낙담한 듯했다. "기병 300기는 준비하겠사오나 뛰난 인재 100명은...." "안 된다는 말이냐." "예. 대왕님께서는 방금 도시를 번영시키는 게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그랬지." "한 도시에 뛰어난 인재가 100명이나 없어지는데 어찌 번영할 수 있을런지요." "그 말이 옳구나." 알렉산드로스는 웃으며 인재의 징용을 포기했다. 사자왕은 확실히 무시무시한 침략자였지 만, 동시에 전승해 오는 민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해학을 즐기는 낙천적인 지성인 이기도 했다. 뉴사의 우두머리는 정말 현명했다. 이야기의 앞뒤가 바뀌었지만, 아오르노스 요새를 공략하기 전에 사자왕은 헤페스티온의 군대를 먼저 보내 인더스강을 건널 다리 건설을 명령했다. 인더스강 동쪽에 있는 탁실라를 다스리는 왕은 알렉산드로스의 군사에 대해 처음부터 호 의적이었다. 동정군은 여기에서 한달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오랜만 에 맛보는 평온이며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인도의 지세나 문화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축적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자왕은 탁실라 왕에게 감사하며 1000달란트가 넘는 재물을 그동안의 후의에 대한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매우 만족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알렉산드로스를 무시하고 어떤 무장은 불만 스럽게 투덜거리며 냉랭한 시선으로 냉소를 보내기도 했다. "대왕은 1000달란트짜리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이 먼 땅까지 왔다는 거야?" 탁실라에 진군하기 직전에 건넜던 강은 인더스강 상류를 차지하는 본류로, 인더스강은 이 지역에서 몇 갈래로 나뉘어 동으로 가다가 다시 네 갈래의 대하를 건너는 지형으로 되어 있 다. 서쪽부터 순서대로 보자면 히다스페스강(현재의 젤럼강), 아케스네스강(현재의 세나브 강), 히드라오테스강(현재의 라비강), 히파시스강(현재의 베아스강)이다. 휴식의 땅 탁실라에서 동쪽으로 첫 번째 강 히다스페스 동쪽에 군림하는 것은 명성 높은 포로스왕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조공을 요구한 것에 대해 거부의 뜻을 표했다. "무기를 준비해 좋고 기꺼히 맞이하겠습니다." 사자왕은 당연히 싸움에 나섰다. 사실대로 말하면 탁실라 왕과 포로스왕은 대하를 사이에 두고 이전부터 대립하고 있었고 이런 사정도 알렉산드로스에게는 호조건이었다. 왜냐하면 탁실라 왕에게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하를 사이에 두고 포로스왕의 군사와 대치해 보니, 놀랍게도 적군에게는 200마리가 넘 는 코끼리 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코끼리 떼를 보는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강기슭을 빈틈 없이 메우고 있는 데다가 훈련도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정군이 자랑하는 텐트로 만든 배를 이용하더라도 간단하게 상륙할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사들을 힘을 내서 싸울 수 있다하더라도 말이 거대한 코끼리 떼를 보고 놀라서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사자왕은 매일같이 아군축 기슭으로 군사를 움직이며 적당한 자리를 찾이 도하를 감행하 려는 적극적인 작전을 시도했다. 적의 눈을 그곳에 붙잡아 놓고는 그것과는 별개로 멀리 상 류에 도하하기 적합한 자리를 찾도록 몰래 군사를 보냈고, 텐트에 건초를 쑤셔 넣은 도하용 뗏목도 준비시켰다. 포르스왕의 군대와 마주보는 강기슭은 크라테레스에게 맡기고 사자왕은 명령을 내렸다. "준비됐느냐. 우리는 상류에서 도하하여 적을 공격한다. 코끼리 떼가 강을 건넌 우리에게 덤벼들 때까지 여기 있는 군사는 절대 움직이지 마라. 대신 코끼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재 빨리 행동하여 강을 건너라. 작전은 이것이 전부다." 사자왕 자신이 상류 도하 작전의 총지휘를 맡았고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우회하거나 야음을 틈타서 이동시켰다. 전부 기병 5000과 보병 6000을 헤아렸다. 비가 내리고 번개가 쳤 다. "대신 제우스가 오셨어!" 밤의 어둠과 비가 그들의 작전을 은폐해 주었다. 비 때문에 물이 불어 강 가운데 떠 있는 섬을 건너편 기슭으로 착각한 병사도 있었지만 어쨌든 선도 부대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때마침 포로스의 왕자가 2000기의 군사를 이끌로 상류 기슭을 순회하고 있다가 알렉산드 로스군의 도하를 발견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사 대부분이 강을 넌넌 뒤였다. 왕자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순찰하는 병사들을 여럿으로 나누어 지켜보았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왕자는 알렉산드로스 군대에 덤벼들기 시작했다. 싸움을 하는 사이에 동정군은 점점 강을 건너와서 수가 늘어갔다. 왕자는 분전했으나 헛되게 전사하고 말았고 이 소식을 들은 포로 스는 분노했다. "뭐! 왕자가 죽었다고! 알렉산드로스가 죽였느냐?" 즉각 강기슭에 포진해 있던 본진에 철수 명령을 내려 예상대로 상류로 이동하고 코끼리 부대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하류 강기슭에서 크라테레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 던 군사들이 일제히 도하를 개시했다. 모조리 맞은편 기슭으로 상륙하자 포로스왕의 군대는 협공을 당하게 되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믿었던 코끼리 부대도 좁은 전쟁터에서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고, 코끼리 위에 올라타고 있던 병사는 알렉산드로스 병사의 창에 쓸러졌다. 코끼리도 사방팔방에서 무기가 날아와 공격을 받게 되고 도끼에 찍하는 상처를 입게 되자 적군, 아군도 구별 못하고 날뛰 기 시작했다. 사실 코끼리 때문에 당한 포로스측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격렬한 공방전 을 거치면서 전황이 조금씩 동정군 쪽으로 기울었다. 포로스왕의 군대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승리를 확신한 사자왕은 적군 진영에서 특히 용감하게 분투하는 강자를 보게 되었다. 그는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어깨를 다쳤으면서도 혼자 남아서 창을 휘두루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포로스왕이다.' 죽음을 각오한 항전으로 보였다. 그런데 포로스왕이 더 깊은 상처를 입자, 코끼리는 주인의 몸을 코로 안고 풀밭에 살짝 내려놓더니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왕의 몸에 꽂힌 창과 화살을 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코 끼리도 길러 준 주인의 은덕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알렉산드로스는 사람을 보내 포로스왕을 위로하며 만남을 제의했다. 포로스왕은 신장이 2 미터 가까이 되는 대장부로스 용모도 고상하며 용감했다. 사자왕은 말에서 내려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포로스와,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소. 지금 왕이 원하는 건 무엇이요?" "생사는 묻지 않겠고. 바라건대 왕으로 대해 주시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소. 하지만 바람은 사람에 따라 다른 법, 왕으로서 어떻게 대접받 고 싶으오?" 거듭해서 물었다. "그냥 왕으로스. 대답은 이 말 속에 전부 포함되어 있소."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알았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이 나라를 다시리시오. 단 우리에게 우호를 지켜야 하오." 용사는 용사의 예로 대해야 한다.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방식이다. 포로스도 또한 훌륭한 무인이며 충분히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호의에 감사하오. 오래도록 우호를 내려주시오." 눈과 눈을 마주치자 사자왕은 빙그레 웃었고 이로써 화해가 성립했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가벼운 지배를 완수할 수 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었다. 굳이 포로스왕의 목이 필요할 까닭이 없었으며, 주변 세력들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도 강력한 자기편을 만들어 그 세력을 남겨 두는 것이 중요했다. 앞으 로 얼마 동안은 포로스왕의 협력을 받아서 주변 야만족을 정복하고, 정복한 지역의 지배를 포로스왕에게 맡기기로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 전쟁 직후에 사자왕의 애마 부세팔로스가 죽었다. 천하의 명마도 오래 전부터 실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땅까지 데려왔던 것이다. 사자왕은 이 따 에 새롭게 만든 도시의 이름을 애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부세팔라라고 지었다. 그것이 오 늘날의 어디쯤인지는 연구자들의 답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 계절은 벌써 우기로 접어들었다. 비가 계속 오면 펀자브 지방은 대하의 강폭이 한없이 넓 어지면서 온통 황토색 물 세계로 바뀐다. 그래도 사자왕은 동으로 동으로 전진했다. 포로스왕을 항복시킨 일은 주변 제국에게도 빠 르게 전해졌고 이것은 도중에 있는 다른 부족들을 신속하게 복종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강한 부족들이 오히려 꼼꼼하게 준비를 갖추고 알렉산드로스 군대를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두 번째 아케스네스강에서는 사납게 출렁이는 거센 물살 때문에 곤란함을 당했고, 세 번 째 히드라오테스강에서는 용맹한 부족의 살벌한 공격을 받아 2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생 겼다. 독화살, 독뱀과 전갈의 피해도 있었고 까닭 모를 열병과 피부병이 만연했다. 멀리 이 국 땅에서 온 병사들에게는 전혀 낯선 미지의 세계에서 당한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바 로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는 길은 정말 심상치 않았다.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 끝에는... 거기에 이르는 길 중 간중간에는 온갖 사악함이 횡행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행방도 모르는 탁류, 으스스한 동식 물, 살고 있는 야만족들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고 발걸음이 피로와 공포로 납을 붙인 것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겁내지 않았다. 군사들을 달래고 격려하며 질타해서 전진시켰다. 그리고 30개나 넘는 도시들을 지배하에 넣었다. 그렇지만 히드라오테스강을 건너는 지역에 있는 상갈라라는 도시는 공납을 거부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격렬한 공방전이 되었다. 상갈라는 동정군을 우습게 보았다기보다 이렇게 많은 대규모 군사의 공격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한편 사자왕 쪽은 백전의 노장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있어서 도시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도 어느 방면에서 어떤 전술로 공략하면 좋을지 신속하고 유효한 작전을 짜냈다. 성을 공략할 무기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포로스왕의 협력을 받아 군대는 더욱더 수를 늘렸 고 지세를 아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코끼리 군단도 가세했다. "공격하라! 전멸시켜라!" 사자왕의 신호를 받아서 지칠 대로 지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 면 병사들은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승산의 기미가 보이면 용기도 절로 솟아나는 법이 다. 사자왕은 본보기를 보여 주겠다는 의미도 있어서 철저하게 공격했다. 유인해 내서 죽이고 마을을 공격해서 죽이고 도주로에 잠복해 있다가 죽였다. 몰살을 감행하여 파멸시킨 다음 포로스왕의 영지에 편입시켰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부족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대로 무저항 무혈 로 항복의 길을 택했다. 사자왕의 대응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국을 떠나온 이래 변함없이 일 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순히 지배에 응하면 관대한 치정을 베풀어 종래 있던 체 제를 대부분 존속시키고 종교나 습관도 충분히 존중했다. 병사들의 약탈이나 폭행에는 엄격 한 제제가 가해졌다. 그런 다음 공납을 명하고 병참에 필요한 병력과 그외의 노동력의 제공 을 촉구하며 가벼운 지배를 시행했다. 그러나 반항하면 반드시 군대를 보내어 이길 때까지 싸우고 그에 상응하는 삼엄한 지배를 실현했다. 그리고 배신 행위 따위가 있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파멸시켜 예 전에 그 나라가, 그 도시가, 그 부족이 존재했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죽이고 태우 고 붕괴시켜 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항복하는 것이 최선의 상책이었다. 이라하여 동정군은 인더스강 동쪽 지류 히파스시강 부근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의 파키스탄을 가로질러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어가는 인더스강은 본 류 외에 네 개의 거대한 지류를 가지고 있다. 전체 길이 3000킬로미터 중류에서 합쳐지는 큰 지류는 다시 다섯 줄기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그 때문에 이 유역은 펀자브, 즉 5대강 지방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류의 이름은 이미 서술했으나 가장 동쪽으로 흐르는 지류는 사툴레지강아며 이것은 다 시 상류에서 둘로 나뉘어져서 서쪽지류가 베아스강이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고생 끝에 찾아 온 히파시스강이 여기에 있었다. 인더스강 본류를 포함하여 4대 대하를 건너온 동정군이 히 파시스강 기슭에 섰을 때, 이 강은 다시 건너편 서툴레지강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동정군 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알렉산드로스가 그린 지도는 엉터리였다. 동정길에 오면서 조금 씩 정보를 얻을 때마다 수정이 가해졌으나 더 더욱 실제 지형과는 동떨어진 이미지밖에 가 질 수가 없었다. 그리스인의 지혜로 페르시아 영토까지는 그런 대로 정확하게 그렸다. 그러나 카피스해는 바다이며 아랄해와 연결되어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약사르테강(현재의 스일다리아강)은 상류에서 인더스강과 만나고 인더스강은 또다시 나일강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펀 자브 지방에까지 발을 내디딘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 더스강은 나일강과는 전혀 다른 강이며 또 인더스강 건너편에는 이 대하에 뒤지지 않는 갠 지스강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사이에 있는 인도를 매우 작게 생각하고 있 었고 갠지스강을 넘으면 이제 그곳은 세계의 끝을 둘러싼 대양이, 그리스인이 말하는 오케 아누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강 하나, 많아야 둘, 대하를 건너기만 하면 동 쪽 끝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라고 해도 겨우 파키스탄 북부를 답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는 그보다도 다섯 배나 넓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광대한 아시아 대 륙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는다. 시점을 바꾸어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시대는 마가다 왕국의 난다 왕조 말기에 해당 한다. 기원전 6세기경 갠지스강 하류 지역이세 발흥한 마가다 왕국은 북쪽의 코살라 왕국 제압을 시작으로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여 크게 융성하였으나, 기원전 4세기에 접어들 무렵 부터 왕족 내부의 내분이 끊이진 않아 국력은 서서히 쇠퇴해 갔다. 알렉산드로스가 몇 가지 정보를 통해 마가다 왕국은 무서워할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고대 인도의 영웅 찬드라굽타가 마가다 왕국을 발전시켜 마우리아 제국을 건국한 것이 기 원전 317년인데, 이것은 알렉산드로스가 펀자브의 강기슭에 섰을 때로부터 헤아리면 꼭 9년 후의 일이다. 고대 인도도 통일을 이루는 찬란한 시대의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것만으로도 바로 직전의 시기는 왕국도 매우 약화되어 있었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쉬 운 상태였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하 바로 건너편의 정황은 설령 숱한 어려움이 예측된다 하더라도 알렉산드로스에게 결 코 불리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끝없는 원정에 지쳐 의기 소침한 기색이 완연했다. 사자왕은 그것을 눈 치채고 간부를 불러모아 설득하려 했다. 연설은 언제나 능숙했다. "마케도니아인 들이여! 그리고 우리와 동맹한 제국들의 용사들이여! 잘 들어라." 첫머리는 친근하게 호소하고 나서 오만하게 선언했다. "제군들이 지금까지 참아 왔던 간난 신고에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듣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차라리 어서 돌아가는 편이 좋다. 말리지는 않겠다. 단, 뜻 있는 자들은 우리가 고국을 떠난 뒤 얼마나 많은 나라를 평정해왔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카파도키아, 리디아, 카리아, 리키아, 팜필리아,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바빌로니아, 메이아, 파르티아, 팔필리아,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가 없지 않은 가. 그리고 지금 인도에 있는 몇 개의 대학유역이 우리의 지배에 굴복하고 있다. 우리는 여 기까자 오는 두중 많은 부족들을 정복하여 모두 수중에 넣었다. 뜻이 있는 자에게 영광이 있는 한 어려움은 없으며 그것이 무인의 영혼이다. 이제 원정은 얼마 남지 않았다. 눈앞에 놓인 저 강을 건너 인도로 진입하여 갠지스강까지, 동쪽의 대양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으며 인도해는 갠지스강까지, 동쪽의 대양까지는 그다지 멀기 않았으며 인도해는 페르시아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홍해로도 이어져 있을 것이다. 어느 바다로 통한는지 찾아내기만 하 면 고향 바다도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여기에서 되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인도는 바로 반란 자들 손에 함락되고 그렇게 되면 제국의 반란 분자가 일제히 봉기할 가능성도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화근이 남는 법이다. 우리의 대과업도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가장 중요 한 시기다. 제군들은 단지 일신의 안녕만을 바라고 생을 마치려고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그 렇지 않으면 눈부신 공훈을 가슴에 달 것을 바라는가. 명예를 버리고 싶으면 버려도 좋다. 하지만 뜻이 있는 자여! 이곳에 끝까지 남아서 나와 함께 전진하지 않겠는가! 다 같이 난관 과 싸우고, 싸운 자들에게는 전리품을 똑같이 나눠 주겠다. 이 말을 신께 맹세하겠다. 최후 의 도정을 함께 나가 최후의 전쟁을 함께 싸워 자랑스럽게 개선하여 고향에 보여 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열변을 토해 내고, 일동을 날카로운 눈으로 둘러보며 연설을 마쳤다. 그러나 울려 퍼져야 할 환호가, 당연히 일어나야 할 환호성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 과는 달랐다. 그저 침묵만이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반론도 없지만 동의도 없이 모두가 싸 늘하게 조용했다. "왜 그런가? 무슨 말이든 해라!" 재촉해도 반응은 여전했다. "생각이 있는 자는 말하라. 어떤 말이든 용서하마." 두 번 세 번 재촉하자 코에누스라는 무장이 앞으로 나왔다. 코에누스는 마케도니아 산악 지방에서 세력을 떨친 호족 출신의 무용이나 충성심에 있어서 누구보다 신뢰가 돈독한 무장 으로, 이 때 나이 마흔이었다. 사리 분별도 갖추고 있는 수염을 기른 정결한 용모가 사자왕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무슨 발언을 하든지 용서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감히 제 생각을 기탄없이 말씀드리겠습니 다." "좋다." 코에누스는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자신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군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병사들의 외침이 며, 동시에 우리의 사자왕을 위해서도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말씀드리 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주십시오. 대왕과 함께 고국을 출전했던 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여 기에 남아 있습니까? 대부분이 죽고 부상당한 채로 아시아 각자에 남겨져 있습니다. 살아 남아서 동행하고 있는 자들도 옛날처럼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친 나 머지 이젠 기력조차 읽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를 생각하고 아내를 생각하고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았던 공적을 갖고 고향으 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뜻이 있는 자도 충분히 그 뜻을 보 였습니다. 용기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진격의 의지도 쇠잔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나간다 해도 변변한 결과는 보일 수 없을 것입니다. 제일선의 지휘관으로서 이 한 몸은 죽 어 없어지더라도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전언입니다.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 이며 전쟁을 아는 자의 판단아리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자왕이시여! 제발 대왕 님께서도 한번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 태후님께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원정의 공훈을 말씀하시고 그리스 본토의 정세에도 신경을 써주십시오. 선왕의 영혼에게도 보고하실 것이 많은 줄 압니다. 그 다음에 새로운 원정군을 모집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새로운 전 쟁을 위한 힘을 비축한 차후에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분발하겠사오니 저를 동해시켜 주십시 오. 이번의 무훈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용감한 원정군이 결성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겠지요. 그것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입니다. 현재의 군사와는 비교도 안 될 것입니다. 정예를 모집한 후에 이번에는 동쪽 바다 끝이든, 서쪽 마우리타리아 끝이든 원하시는 곳으로 진격하시면 될 줄 압니다.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만 현재의 군사로는 변변한 승리를 바랄 수 없음은 물 론 패배도 충분히 예측됩니다. 전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자왕이시여! 신의 은총을 받고 계실수록 자제가 중요하며 용기 중에는 한걸음 물러나는 용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왕님 께서 신의 계시를 받고 계신다는 것을 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도 있는 법입니다. 제발 군대를 일단 되돌려 주십시오. 간절히 호소드립 니다." 코에누스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지고 눈에는 눈물까지 어른거리는 듯 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장군들 사이에 조용한 술렁임이 일었다. 누구 한 사람 그를 비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찬성의 증거다. 모두의 눈빛이 코에누스의 발언을 시인하고 있으며 작은 탄식으로써 지원하고 있었다. "반박하는 이는 없느냐!" 사자왕의 얼굴도 약간 창백해졌다. "...."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코에누스의 뜻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이냐!" "...." 역시 말이 없었다. "헤페스티온...." 헤페스티온을 불러 봤지만, 그는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거기에서 강을 두 번이나 건녀야 하는 먼 곳에서 또 하나의 도시를 세우고 있었다. 사자왕은 말을 하려다가 삼케며 다른 이름을 불렀다. "크라테레스! 프톨레마이오스!" 헤타이로이의 이름을 부르며 중신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한 번 더 살폈다. 크라테레스는 망설이고 있었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른 뒤에 프톨레마이오스가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 다. "저의 생각은 차후에 들으시고 지금은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서서." 모여 있는 장군들의 얼굴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여전해 답답 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알았다. 비겁자는 돌아가라! 말리지 않겠다. 고향에 돌아가서 왕을 적진 속에 버려 놓고 왔다고 알려라! 이젠 믿지 않겠다, 그 누구도!" 사자왕은 분노의 눈빛만을 남기고 훌쩍 발길을 돌려 막사로 돌아왔다. 프톨레마이오스와 크라테레스가 허둥대며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자왕은 두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필요 없다! 혼자서 생각하고 싶다." 그대로 사흘 밤낮을 그림자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흘째 아침이 되자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불렀다. 사자왕은 수염이 자라 초 췌한 모습이었으나 얼굴에는 오히려 순진 무구하게 보이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병사들은?" 말투로 보아 사자왕은 자신이 칩거하는 동안에 장군들과 병사들 심경에 변화가 생길 것으 로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고개를 크게 저으며 진지 내 상황이 사자왕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 고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전했다. 사자왕은 그 자리에서 생각에 빠졌다. "그랬어. 겁쟁이 녀석들...."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프톨레마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정도의 중대사에 대해서 의견을 구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프톨레마이오스도 사흘 밤 낮을 생각했었다. 거의 결론이 나와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어리석었다고 후회할 만큼 솔직하게 말했다. "코에누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일리야 있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반 이상은 옳은 말이지요." "알고 있다." "제일선에 있는 지휘관이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화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알렉산드로스의 표정은 온화했다. "코에누스의 말뜻은 알아. 하지만... 왜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 모두." "모두가 알렉산드로스는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지만, 이 자명한 이치 안에 모든 뜻이 담겨 져 있을 것이다. "신의 뜻을 듣겠다." "그렇지만... 누가?" 프톨레마이오스가 망설인 것은 제사를 담당하는 아리스탄드로스는 여기까자 수행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묻겠어. 프톨레마이오스가 들어라." "제가요?" 헤페스티온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다. 분명히 들어라!" "....." 한 사람이 묻고 다른 한 사람이 신의 뜻을 듣는 형태의 제사는 자주 지내고 있었다. 이는 신의 말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굉장한 외경심을 느꼈다. 전신에 긴장이 스쳐 지나갔다. 저쟁보다 두려 웠다. "진중에서 가장 현명한 너에게 명하노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신의 뜻을 들어라."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예." "좋다. 부탁한다." "예." 같은 대답만 힘주어 되풀이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헤페스티온이 있었다면 그가 할 역할이 며 그가 없는 지금 부장군 크라테레스의 임무가 아닌가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자왕 자신이 묻고 대답을 듣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 아닌가.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심으로 기뻐하며 다시 한 번 깊이 생가하며 마침내 확신에 이르렀다. 생각은 한 쪽으로 달렸다. '사자왕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타고 났어. 언제나 사려도 깊지. 보통 사람과는 달라. 설령 내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목숨을 버리면 그걸로 족하다.' 무서운 각오를 했다. 제단이 만들어지고 사자왕이 제물을 바치고 엄숙하게 신의 뜻을 물었다. 프톨레마이오스 는 옆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신의 뜻을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흉하다. 도하는 안 된다!"라며 소리 높여 외쳤다. 사자왕의 표정이 미묘하게 움직이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려웠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 뜻을 따라야겠군." 쓴 약을 삼킨 듯 사자왕이 떫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의 길을 선언했다. 큰일을 치른 프톨레마이오스는 막사로 돌아온 뒤 일단은 한사름 놓았다. 점술사 아리스탄드로스가 제사 때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헤페스티온을 가끔씩 찾아온다는 영감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신의 뜻은 들리지 않았으나 그저 눈을 감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을 때 뇌리에 서, '그게 옳다. 그것으로 결정해!' 하는 판단이 떠올랐다. 그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신의 뜻이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의 판단이었다. 아마 알렉산드로스도 간파하고 있 을 것이다. 예측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의 명령이나 응답, 즉 신탁은 제사장의 입을 통하거나 어떤 일에 정통한 사람의 입을 통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모르지만 후자는 판단의 주체가 그 사람 자신이다. 무의 식중이거나 무의식을 가장하여 자신의 판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단 그 자체가 탁월해야 한다. 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서 본질을 꿰뚫어 보고 관계자 전부의 의사에 입각한 판단이 아니면 안 된다. 국왕으로 대표되는 권력자에 대한 아 부나 어리석은 대중의 바람이 아닌 국가의 대계를 위한 최선의 판단, 그것만이 신의 뜻으로 서 존중받고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는 자는 그 일에 걸맞는 인격과 지혜를 갖춘 인격자이어야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경우는 틀림없이 그 적절한 예이다. 히파시스강을 건너 인도로 진격하는 것은 의심의 여기 없이 사자왕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길이었다. 병사들을 아무리 질타하고 격려해도 이미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폐해 있었고 심 신이 완전히 힘을 읽고 있었다. 예측보다 훨씬 광대하고 거친 인도땅으로 들어가서 계속해 서 공격을 받게 될 때, 그것에 대항해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상태 였다. 코에누스의 판단은 철두철미하리만큼 예리했고, 현명한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숙원과는 다르게 이런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사 자왕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으로 철회를 결정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려 해도 그 굴욕감에 참을 수가 없었다. 비록 명목이라 하더라 도 신의 의지에 따르는 결단이 바람직했던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가 기탄없이 말한 것은 코에누스의 주강에 대한 찬성이었다. 그는 전면적 으로 두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은 사자왕에 대한, 사자왕의 뜻에 대한 깊은 배려였음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성격과 사고 방식을 아는 자 라면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사자왕이 신탁을 받는 사람으로 프톨레마이오스를 택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중신의 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다. 크라테레스라면 인도로의 침공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있고 오로지 무용만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프톨레마이오스와는 크게 다르 다. 프톨레마이오스를 선택한 일 자체에 알렉산드로스의 신중한 판단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탁은 객관성도 보장된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지만 프톨 레마이오스가 침공을 말했더라면 그때는 정말 그것이 신의 뜻인 것이다. 사자왕은 한 가닥 기대를 걸면서도 진격을 철회해야 된다는 것을 각오했다. 그것이 사흘 밤낮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며, 현명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자왕의 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저 마음을 정화시켜 신의 의지를, 자신의 내심으로부터 떠오 르는 판단을 말했는데, 결국 사자왕의 생각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태는 의도한 대로 진행되었다. 명령 전달과 함께 진영 내에 조용한 환희가 바람이 되어 퍼져 갔다.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병사들의 주고받는 눈빛이 한결 느긋해졌다. "과연 우리의 사자왕이야." 군사들 사이에 대왕에 대한 신뢰가 다시 높아졌으며, 알렉산드로스가 의도했던 바는 아닐 지라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었다. 사자왕은 히파시스강에 열두 제단을 만들어 이렇게 먼 땅에까지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모든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다시 이 땅에 와서 대하를 건너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기도했다. "사자왕, 만세!" "우리 대왕님께 영광 있어라!" 모든 군사들의 환호는 보통 때보다도 더 높아졌다. 기원전 326년 한여름의 일이다. 오늘날 베아스강 항목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은 이 땅의 서안에까지 이르렀다."라고 이 역사적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파키스 탄 국경을 넘어서 겨우 인도 땅에 들어갔던 강기슭의 부근이었을까. 이 또한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왔던 길을 되돌려 히드라오테스와 아케시네스 두 줄기 강을 이번 에는 동에서 서로 건넜다. 거기에는 전에 헤페스티온에게 건설을 명령한 두 개의 도시가 완 성되어 3만을 넘는 지원 군세가 각지로부터 모여 있었다. 군수품과 약품, 전투용 코끼리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인도 원정 준비는 나름대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이지? 준비는 계획대로 다되었는데...." 사자왕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코에누스도 언제쯤 대왕으로부터 소환 을 받을지, 그때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헤페스티온이 대왕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자왕에게는 세가지 인격이 잠들어 있습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면서 조금씩 울분을 삭이게 했다. "무슨 뜻이냐?" "첫째 마케도니아인의 기질입니다. 절대 적에게 속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탁월 한 그리스인의 이성,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올바르게 판단하는 냉정함이죠. 그리고 마지 막은 신의 축복, 용기를 초월하고 이성을 초월하여 신비에 감응하는 영혼을 갖고 계십니다." 헤페스티온의 분석은 예리했다. 확실히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세 가지 성격이 섞여 있었다. "과연." "마케도니아 기질은 잠시 삼가시고...." "그리스인의 이성으로 판단할까?" "그렇지요. 신의 뜻도 그것입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해." 헤페스티온은 사자왕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오래도록 화낼 수가 없다. 도리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이 냉정함을 찾게 된다. 그렇다 해도 동정해 왔던 길을 그대로 서쪽으로 되돌리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 귀국 선언을 들은 병사들은 힘을 되찾았고 새로운 군사도 정비되었다. 아울러 신뢰할 만한 정보 도 들어왔다. 인더스강은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러가고 다시 그 바다는 페르시아만으로 통하 고 있으며 이집트해로 연결되어 있어 고국으로는 해로를 택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남쪽에 있는 대양 오케아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꼭 답사하고 싶었던 목표의 하나였다. 오 케아누스는 마케도니아해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신의 뜻이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흥미와 희망이 솟구쳤다. 인도로 침공하는 것보다 수확이 더 클지도 모른다. 기대가 확신으로 부풀어 갔다. 대양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세계의 전모는 파악할 수 없다. 몇 개의 대하가 흐르는 펀자브 지방에 들어갔을 때부터 배를 준비해 두라고 명령했지만 새롭게 대선단 제조를 착수하도록 네아르코스를 선단의 지휘관에 임명했다. 네아르코스도 물론 미에자 학사에서 공부했던 헤타이로이의 한 사람이다. 10년쯤 전에 선왕 필리포스의 의도에 반대하여 알렉산드로스를 카리아 왕의 사위에 앉히 려고 책모했던 반역의 무리가 있었는데, 최초의 친알렉산드롯파의 결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계획은 선왕 측근에게 발각되어 전원이 수도 페라에서 축출되는 벌을 받았었다. 네아르 코스는 그때의 일원으로 사자왕과의 우의는 어제 오늘의 것의 아니다. 원정군이 시리아 지방 해안을 남하하던 시기에는 수군의 지휘를 맡고 있었으며, 이집트 나일강에서도 군단의 운항을 맡았다. 얼마 전까지 동정지의 태수로 있었으나 갑자기 알렉산 드로스의 소환을 받아 다시 군단의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당초는 항해 목적도, 규모도 정확하지 않았고 사자왕 자신이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태수에서 경질되었다는 안 좋은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네아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믿고 있었고 수군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언젠가 이날이 오기 를 기대하고 었었을지도 모른다. "부탁하네, 네아르코스." "알겠습니다." 하강하는 선단의 총지휘자라는 임무를 떠맡은 네아르코스는 세 달 후에 크고 작은 배 1000척이 넘는 대선단을 만들어 냈다. 물론 사자왕의 대사업이지만 네아르코스의 수완도 간 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메케도니아 호족 출신이지만 선조가 크레타섬의 상인이었던 덕분에 배에도 정통했다. 게다가 보기드문 쾌남이며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우애심도 돈독하 여 앞으로의 원정에서 이 남자가 보여 주는 언동은 극적이며 너무나 호쾌하다. 미에자 학사 시절부터 훌륭한 친구를 두었다는 점, 이것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타고난 행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기를 내어 사자왕에게 철퇴하라는 진언을 퍼부었던 코에누스가 원통 하게도 이 땅에서 병사하게 된다. 살아 남았더라면 새로운 공을 보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사자왕은 성대한 장례를 치러 주어 코에누스의 충성을 기렸다. 선단의 출항을 앞두고 알렉산드로스는 펠라에 있는 태후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인 더스강에도 악어가 서식하고 잇다는 것, 나일강 유역과 비슷한 콩이 이 땅에도 자라고 있다 는 것, 그리고 풍경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 등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일강과 인더 스강을 같은 계통의 강으로 추측하고 있었지만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전했다. 그러나 대양 오케아누스로 흘러 들어간다로 생각되기 때문에 두 개의 강을 답사하게 되면 머지않아 마케 도니아해로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페르시아만 저편에 펼쳐진 바다는 4년 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을 때에 멀리까지 나가서 보았던 그 바다(오늘날의 홍해)로 통하고, 그 바다는 이집트에서 연결되는 것 같다고도 적었 지만 그 바다와 나일강, 즉 자신이 만들라고 명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로스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을지, 그것까지는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편지에는 바르시나가 낳은 아들 헤르쿨레스도 보고 싶으니, 바르시나를 설득하여 빠른 시 일 안에 모자 둘 다를 펠라의 왕궁에 머물도록 애써 달라는 내용도 씌여 있었다. 사자왕은 편지쓰기를 매우 좋아했는데, 조목별로 여러 가지 화제를 맥락 없이 열거하는 것이 그 편지 의 특징이다. 성대한 제사를 열어서 신들의 은혜를 기원하고, 앞날의 장도를 축하하는 경기회를 열어 장병들을 위로하고 칭찬했다. 선단은 히다스페스강을 내려가서 아케시네스강으로 흘러 들어 가 마침내 본류인 인더스강과 합류했다. 네아르코스가 기함에 승선하여 전체 지휘를 맡고, 강 주변 지역의 통채는 포로스왕에게 맡긴 후 사자왕 자신도 함께 배를 탔다. 크라테레스의 군대가 오른편 기슭으로, 헤페스티온 의 군대가 왼편 기슭으로 전진하고 육로 쪽을 코끼리와 가축을 이끌로 선단을 따라갔다. 수 상에서는 병첩을 담당하는 작은 배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축제로 소란스 러운 것을 알고 전송하랴 구경하랴 근처 주민들도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풀어 희색이 만면하여 흥분했다. 사자왕이 붉은 포도주를 강으로 콸콸 부으며 출진 의식을 끝냈다. "출발!" 호령과 함께 선단이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강 양안의 군사도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군중들이 환호하며 소란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배는 각양각색의 돛을 달고 깃발로 화 려하게 꾸몄으며 음악도 울려 퍼졌다. 때마침 날씨도 좋아 만추의 강바람도 상쾌했다. 들뜬 기분을 반영하듯 들놀이 가는 기분 으로 출발한 여행이었지만,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 앞에 펼쳐진 지도는 모든 사람의 상상을 뒤엎는 광대하고 미개한 대지와 대해였다. 처음은 1000킬로미터에 가까운 탁류의 흐름이며 이르는 곳마다 사납고 무서운 야만족들이 날뛰고 있었다. 게다가 독성을 띤 동식물과 갖가지 풍토병, 사막의 폭서, 기아와 갈증을 어 떻게 알았겠는가! 다수의 인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축제의 노래가 끝나지 슬픈 바람소리가 희미한 휘파람을 불며 사라졌다. 죽음의 사막 노장 파르메니온과 그의 아들 필라토스가 반역을 도모한 이유로 처형당하고, 클레이토스 는 사자왕의 진노를 사는 바람에 창에 찔려 죽었고, 코에누스는 병으로 죽었다. 때문에 알렉 산드로스 아래에 원정군의 중추는 크라테레스, 헤페스피온, 프톨레마이오스, 네아르코스, 거 기에다 페르디카스, 레오나테스, 필리포스, 페이톤 등이 차지하게 되었다. 페르디카스 그 이름 자체가 마케도니아 왕가와 연고가 깊다. 역대 국왕과 왕자 중에도 이 름이 같은 인물이 여럿 있다. 미에자 학사 시절부터 뛰어난 인물로 주목받았으며 헤타이로 이의 일원이기도 하다. 레오나테스도 마케도니아 귀족 출신으로 대대로 왕가의 근위병으로 서 왕실에서 인정받는 집안의 자손이다. 필리포스는 우연하게도 선왕과 이름은 같지만 혈연 관계는 없고 형 하르팔레스가 미에자 학사 이래의 헤타이로이인 것을 인연으로 해서 사자왕 이 보살펴주고 있었다. 형은 바벨로니아 태수로서 원정 배후 지를 수호하며, 동생은 사자왕 을 수행하며 무용을 자랑하는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다. 페이톤은 테살리아 지방 출신으로 동정 초기부터 마케도니아 군에 가담하여 그 군공에 따라 점점 지위를 높여 갔던 무장이다. 나란히 앉아 있는 중신들 중에서 부장군 격인 크라테레스와 헤페스피온 두 사람은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로 두 사람 모두 사자왕의 훌륭한 헤 타이로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쪽이 더 많은 신임과 총애를 받는가 하는 미묘 한 경쟁의식이 생긴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원정지에서의 군인은 자칫하면 마음의 여유를 잃고 하찮은 일로 쓸데없는 싸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만은 냉정했다. 인도로 들어간지 얼마 되 지 않았을 무렵, 크라테레스와 헤페스피온늬 언쟁이 격화되어 하마터면 유혈 사태로까지 번 질 뻔했는데 사자왕이 두 사람을 직접 만나 엄하게 나무라며 엄명을 내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한 번 더 발생한다면 이유는 차치하고 둘 다 사형에 처하겠다." 그와 동시에 사자왕 자신도 두 사람을 대할 때에 조금의 기울어짐도 없도록 적절하게 배 려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사이는 많이 호전되었다. "대왕께서는 어느 쪽을 가장 좋은 친구로서 생각하시는지요?" 그 무렵 페르시아의 요인이 두 사람의 중신을 비교하며 물었을 때 사자왕은 태연하게 대 답했다. "크라테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친구며 헤페스피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다." 과연 대왕다운 수사법이 아닌가. 두 사람의 체면을 세우면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표현 하는 말이다. 마케도니아 왕을 보좌하며 공무를 수행하는 점에서는 크라테레스가 약간 더 높은 위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군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알렉 산드로스에게 좋은 우정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헤페스피온을 뛰어넘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고 있는 지기였다. 그러고 보니 원정군의 하강 작전은 마치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 양기슭을 타고 전 진했다. 수군 지휘는 선박 전문가 네아르코스가 맡았고 사자왕도 기함에 함께 올라타 뱃머 리에 서서 히다스페스강을 내려갔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유격군 지휘를 맡아서 강을 내려가 면서도 도처에 닻을 내려 주변도시와 부족을 굴복시키는 작정을 감행했다. 긴 뱀처럼 떠내려가는 선단은 히다스페스강에서 드디어 아케시네스강으로 흘러 들어갔고, 합류지점이 가까워짐에 따라 폭이 급격하게 좁아져 역류가 생기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용솟음치는 파도가 귀를 찢을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거품을 일으켰다. "소용돌이를 피해라! 노를 저어라!" 네아르코스의 필사적인 명령도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사태에 노 젓는 병사가 망연자실하고 당황하여 손을 멈추고 말았다. 노의 리듬이 깨져 버렸 다. "저어라, 저어라. 어서 끝까지 저어라." 흡사 수중의 요물처럼 느닷없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소용돌이를 피해 가면서 좁은 급 류를 단숨에 헤쳐나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속도를 늦추면 뒤에서 따라오는 배가 부딪히고, 배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순식간에 소용돌이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둥그스름한 모양의 운반선은 회오리에 말려도 어찌된 일인지 빙글빙글 돌면서 가 라앉지도 않았다. "신이시여." 기도하는 사이에 운반선은 슬며시 회오리를 빠져 나와 강 하류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 가! 무서운 것은 가늘고 긴 모양의 군선 쪽이었다. 모양으로 봐도 소용돌이를 끌어들이기 쉬 운 데다가 노 젓는 데가 2, 3층으로 설계되어 있고 맨 밑바닥이 수면에 닿을락말락하게 만 들어져 있기 때문에, 높이 솟구치는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받아 순식간에 물 속에 잠길 것 같아서 얼떨결에 뒤로 기울이자 말려들어 버렸다. 선체가 비스듬히 뒤로 젖혀짐과 동시에 배 안에 있던 사람이 모두 물보라 속으로 내던져져 빙글빙글 돌면서 수마에 빨려 들어 모습 을 감추었다. "어찌된 거냐." 사자왕을 실은 기함은 네아르코스의 뛰어난 판단 덕택에 재빠르게 난관을 빠져 나왔지만 뒤쪽을 바라보니 그저 굉음과 물보라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수많은 배들만 보일 뿐이었다. 휩쓸려 내려온 병사들은 쉴새없이 건져 올렸지만 사육용 가축까지는 구할 수가 없었다. 파 손된 배는 그대로 강줄기의 흐름에 맡겼다. 난관을 빠져 나오자 강폭은 갑자기 넓어지고 흐름은 완만해졌다. 온통 물에 젖은 병사들 이 한숨을 돌릴만한 모래톱도 펼쳐져 잇고 배를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깊은 강도 있었다. "인도의 강은 예측할 수가 없구나." 완만하다가도 급해지고 급하다가도 완만해지는 변화에 어이가 없어 알렉산드로스가 투덜 대며 한마디하자, 네아르코스가 대꾸했다. "강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세계의 끝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돼." 이렇게 말할 때의 사자왕의 모습은 소년처럼 눈동자를 빛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은 배를 수리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역에 사는 야만족들이 떼지어 몰려와서 강을 내려온 사자왕 군사를 두려워하여 대부분 항복하고 가벼운 지배 체재에 응했다. 그러나 말리라는 부족은 주변에 몇 개의 촌락을 만들 어 세력을 떨치며 투쟁심도 대단히 왕성했다. 독립에 대한 의기가 넘쳐 간단하게는 원정군 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원정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저항하는 말라인의 거점을 하나하나 쳐부수고 남으로 진격 했지만, 히다스페스강을 흡수한 아케니시강이 다시 히드라오페스강과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한층 더 단단한 수비를 갖춘 무루탄이 있었다. 높은 방위벽을 이중으로 둘러쌓고 그 사이에 무장한 군사의 모습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곳곳에 망을 보는 탑이 있고 창문에는 화 살을 날리는 장비가 있었다. 언뜻 보아도 공략하기 힘든 요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자왕은 먼저 마을을 포위하고 며칠동안 적을 긴장 시켰다. 아군 병사들에게는 휴식을 주고 꼼꼼하게 작전을 세웠다. 성급한 대왕에게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장군들이 익숙지 않는 하강과 몇 번의 전쟁으로 지치고 고달픈 것은 이해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행동이 느 려진 변화가 사자왕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자왕의 공격 명령에 민첩하게 대응하던 기동 력이 어딘지 모르게 저조해진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친 군대를 재충전하기 위해 사기를 올리려 애써도 그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말라인들의 전법은 패색이 짙다고 판단되면 기존 취락지를 버리고 다른 취락으로 도망가 버리는 것으로, 하나씩 하나씩 공략하면 한도 끝도 없어 유역일대를 평정하려면 한꺼번에 공략하지 않으며 소용없는 일이었다. 크라테레스, 헤페스피온, 프톨레마이오스, 페이톤 등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들의 소굴로 출두시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사자왕은 무루탄의 공략에 전념했다. 수하군사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을 페르디 카스에게 맡기고 양쪽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아쉽게도 공성탑은 대부분 하강도중에 물에 떠 내려갔고 급히 서둘러서 만들어 보았지만 수량도 모자라고 높이도 충분치 않았다. 사자왕 수하 군대는 횡으로 넓게 펼쳐진 진열을 만들어 일시에 성벽에 접근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 라가 공략하는 작전을 세웠다. "돌격! 사다리를 세워라! 공략하라!" 단번에 전투에 돌입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사자왕의 호령이 떨어져도 병사들은 동작이 느릴 뿐 아니라 머뭇거리기까지 했다. 돌격할 때에는 먼저 뛰어나가는 자가 가장 위험하며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앞장서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만 적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 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부하 병사들은 언제나 그렇게 싸워왔는데 이번에는 뒷걸음치며 앞 장서려 하지 않았다. 그 기색을 눈치챈 사자왕 자신이 선두로 뛰쳐나갔다. "겁쟁이 녀석들! 전쟁은 이렇게 하는 거다!" 눈을 부릅뜨고 사다리로 달려가서 방패로 몸을 보호해 가면서 원숭이처럼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몇 명의 장군이 당황하며 뒤쫓아갔으나 그 무게에 사다리가 부러져 발을 디디려는 찰라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꼭대기에 있던 사자왕은 재빠르게 한 발을 흔들거리 면서 다른 발로 성벽 위에 뛰어 올랐다. 비틀거리는 자세로 방패아래쪽으로 작은 창을 던져 바로 앞에 서있던 적병 두 명을 찔렀다. 한사람의 무사로서, 아니 그리스인이 존경해 마지않는 한 사람의 혁명가로서 알렉산드로 스가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은 의심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의 육체는 단련되어 있었 다. 칼을 꺼내 다시 세명을 성벽에서 떼어 내버리자 적군은 그 기세에 지레 겁을 먹고 한 발 두 발 물러섰다. 성벽 위는 접아 일단 후퇴한 적은 방패를 세워 방어했다. 그리고 다시 한 발 한 발 바짝 다가섰다. 바로 그때 적병 중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알렉산드로스다!" 은빛으로 빛나는 투구, 아름다운 갑옷, 행동거지로 보아 신분이 높은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사자왕, 그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해도 저렇게 무모하리 만큼 적진 한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적병의 시선은 일제히 성벽 위에 서 있는 용맹스런 모습에 집중되었다. 아래쪽에서부터 창이 날아왔다. "죽여라!" "놓치지 마라!" 적은 이렇게 외치며 몰려들었다. 성벽 위에서는 좌우에서 살금살금 조금씩 다가서며 퇴로 를 막았다. 주위에 세워진 망루에서도 많은 눈이 지켜보며 빛나고 있었다. 활을 가진 자는 살며시 활시위를 당기고, 투석기도 조준을 맞추었다. 위기 일발의 순간이었다. "물러서십시오!" "사자왕, 뛰어내리십시오." 성벽 바깥쪽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군사들이 외쳐댔다. 날아온 창이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관자놀이를 스쳐 지나갔고 돌이 정강이를 때렸다. 사자 왕은 비틀거렸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닫고 뛰어 내렸다. 맞다. 본능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자왕이 뛰어내린 곳은 성벽 바깥쪽 아군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성벽 안쪽이었다. 결단코 지치지 않는 끈질긴 투쟁심, 그것이 사자 왕의 본능이었다. 공훈을 세우기 위해 멈추지 않는 용사의 본능이며, 만용을 부려서 휘하의 장군들을 고무하는 지휘관의 본능이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적 둘을 죽였다. 그러나 적도 겁내지 않았다. 사자왕을 둘러싸고 이때다 하며 공격했다. 수많은 칼이 날아 왔다. 아무리 물리쳐도 적의 칼이 눈앞에서 번쩍거리며 난무했다. "야만인들!" "이쪽으로 덤벼." 사자왕의 근위병 셋이 마침내 성벽에 올라와서 안쪽으로 뛰어 내렸다. 이 또한 죽음을 겁 내지 않는 용맹이었다. 사실 한 병사는 뛰어내리자마자 이마에 화살을 맞아 눈알이 튀어나 와 쓰러졌는데도 그 자리에서 칼을 마구 휘둘렀다. 돌아볼 틈도 없이 적의 칼이 사자왕의 어깨를 찔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치른 전투 중에서 이때만큼 처참한 전쟁은 없을 것이다. 화살 하나가 사자왕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왕은 쓰러지면서도 칼만은 쥐고 있었다. 살아 있는 두 병사가 왕을 지켰다. 상처는 깊어 피가 거품을 내며 흘렀다. 숨을 쉴 때마다 피가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방패로 왕을 지키는 두 병사에게도 적은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어 댔다. 그때 계속해서 원정군 군사 가 뛰어내려와 여기에 가세했다. "의사를 불러." "사자왕이 위험하다!" "어서 옮겨라." 사자왕을 방패 위에 싣고 성벽 밖으로 끌어 내렸다. 사자왕은 눈을 공허하게 뜨고 "건방 진..." 하고 중얼거렸지만 의식을 잃었다. 때마침 페르디카스가 이끄는 군사들이 성벽일부를 부수고 몰려들어 왔다. 순조롭게 사자 왕을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은 도망치려고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성 벽 안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갔다. 사자왕이 이끌던 군사도 뒤질세라 성벽을 넘어 공략 해 왔다. 순식간에 성벽을 에워싸더니 원정군의 우렁찬 외침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아무리 용감한 말라인이라도 승산이 없었다. 공격하는 쪽이 그저 에워싸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벽 안의 적은 가만히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페르디카스는 그대로 작 전을 몰고 갔고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말리인이 항복을 청해 왔다. 처음에 페르디카스는 항복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자왕이 부상을 입은 것을 떠올리는 순간 분노가 폭발하여 모든 것을 죽이고 빼앗고 불태워 버렸다. 이 또한 원정군이 저지른 가장 처참한 잔학 행위 가운데 하나였다. "대왕이 돌아가셨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도 모르게 소문은 요원의 불길처럼 진영내에 퍼졌다. 병사들은 전장에서의 많은 경험으로 인간이 어떻게 죽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숨이 거칠 면서 피가 거품이 되어 쏟아져 나오면 더 이상 살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자왕의 부상 을 목격했던 병사들은 그런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병 사들은 어느 누구도 사자왕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어떤 이는 통곡을 하며 흐느껴 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고개를 숙인 채 초연하고 땅을 응시하기도 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림자도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독선적이기는 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왕이었다. 전장에서는 무서웠지만 평소에는 부드러 웠고, 비겁한 것은 용서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이 용감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은 매우 검소하고 꾸밈이 없었다. 모두가 사자왕을 경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이 사람을 잃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지.' 사자왕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불안 감이 밀려들었다. 네아르코스의 선단에도 침울한 소문이 도달했다. 크라테레스는 소문을 듣고 멍해졌고, 헤 페스피온은 칠흑 같은 밤을 뚫고 자신의 전쟁터에서 사자왕의 진영으로 말을 달려 날아왔 다. '거짓말이야,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말에서 힘껏 채찍질을 가하면서 그렇게 빌었다. 기도가 신에게 들린 것일까?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왕 알렉산드로스 는 목숨을 건졌다. 근위대 군의는 필사적으로 수술을 강행했다. 왕의 가슴 깊숙이 화살이 박혀 있어 갑옷을 벗기기 위해서는 화살을 잘라 내야만 했다. 톱의 진동이 상처에도 그대로 전달되었지만, 왕 은 이를 악물고 "빨리 해라! 주저할 것 없다." 라고 명령했다. 가슴을 절개하여 갓난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의 화살촉을 빼냈다. 왕은 엄청 나게 많은 피를 흘렸고 몇 번이나 정신을 잃 었다. 그래도 호흡만은 잃지 않았다. 놀랄만한 체력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아니면 정 신력일까. 역시 신일지도 모른다. 수술을 마치고 간신히 죽음을 모면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왕이 살아있다는 새로운 소문 이 퍼지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믿는 이는 적었다. 누구나 책략이라고 생각했다. 사자왕의 죽음이 주위에 흩어져 있는 야만족들에게 알려진다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않 을 것이며 일제히 봉기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우호 관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격을 받아 도망가려 해도 연이어서 새로운 적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보복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의 모든 도시가, 마을이, 길이, 강이, 산이, 사막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렉산드로스의 이 름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던 것이다. 왕이 죽어 그 이름이 없어진다면 휘하의 군사들이 걸어야 할 운명은 너무나 뻔한 것이다. 누가 뒤를 잇는다 하더라도 시간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한동안은 죽은 자가 살아주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 적이며, 정상적인 인간의 지혜다. 거꾸로 말하면 사자왕이 입은 상처는 그 정도로 치명적이었고 직접 본 사람이라면 살아날 가망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만큼 결정적인 부상이었다. 소문은 어떻든 간에 전쟁터의 진지 내에서는 치료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만약의 경우 적 의 역습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했다. 마침 이때의 원정군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네 아르코스 지휘하의 선단이 아케시네스강 하안에 정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자왕을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들것에 실어서 작은 배로 옮기고 히드라오테스강을 내려가서 아케시네스강 으로 들어갔다. 사자왕은 배 위에서 힘겹게 눈을 뜨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적은?" "무루탄은 함락했습 니다." "그랬구나." "대왕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아케시네스 강가의 진지에 다가서자 대왕이 살아 있는지 의심하며 수군대는 병사들의 소 리가 들렸다. 그러자 사자왕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하려고 친 차양을 뱃전에서 걷어 내도 록 명령했다. "차양을 걷어라." "아니 되옵니다." 용태는 아직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괜찮다." 의사가 마지못해 차양을 치웠다. 사자왕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기슭에서 정말 살아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인지 의심 스러운 눈길로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말이야?" "정말 대왕일까?" 그래도 여전히 대왕과 닮은 인물이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의심하는 자가 대다 수였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알렉산드로스는 강기슭에 다가서서 상륙하자 명령했다. "부축 좀 해다오." "무리입니다." "아니, 괜찮다. 병사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며칠 전에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치명상을 입었던 남자가 서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평 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알렉산드로스는 죽지 않는다!" 진실은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 갔다. "사자왕, 만세!"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영광을!" "대왕은 불사신이다!" "정말 신의 아들이다!" 어마어마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자왕의 모습을 좀더 확실히 보려고 뛰어오르는 자, 앞으로 달려나오는 자, 신에게 기도 하는 자, 꽃을 꺾어서 던지는 자, 춤추며 기뻐하는 자... 가우가멜라 전장에서 대왕한테 도움 을 받았던 병사는 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조금씩 다가왔다. 힌두쿠시 산맥을 넘을 때 사자 왕이 부축해 주었던 장교는 기뻐서 한없이 소리를 질렀다. 카불강 습지에서 독뱀에 물렷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한 족 팔을 잘라 목숨을 건진 취사 담당 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 다. 모두의 얼굴에 희열이 넘쳤고 전군이 기쁨으로 술렁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군사들의 뜨 거운 흥분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귀청을 찢을 것 같은 환호를 몽롱한 의식 속에서 들었다. 의식이 없는 상 태에서 손을 흔들며 막사로 옮겨졌다. "이제 ... 됐다." 눈을 감았다. 초췌한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놀랄 만한 회복력이었다. 며칠 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자왕의 침대를 둘러싸고 친구들이 모여 앉았다. "옥체, 소중하게..." "지휘관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자제해 주십시오." 한마디씩 간언 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은 사자왕은, 표정은 찌푸리고 있었지만 무척 기뻐하며 입을 열 었다. "자네들 말은 다 옳다." 그러고 나서 부상당한 팔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음 번에 그런 일을 당할 때는 나도 용기 잃게 되어... 어느 사이에 달레이오스 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옳은 것보다 용기를 더 사랑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용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용기를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은 얼 마든지 있다. 그러나 구실을 찾는 순간 용기는 위축되고 만다. 그렇지만 전장에서는 용기 있 는 자가 이긴다. 용기는 한산 집요하게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며 겁쟁이에게 구실을 주어서 는 안 된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자왕의 강인함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전리품으로 거두어들였던 커다란 거울을 언제나 침대 가까이에 두고 있었는데, 상처를 치료받을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그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했다. "필리포스 대왕처럼 되려면 조금 더..." 선왕은 죽기 직전 한족 눈을 잃었고 어깨는 부상으로 축 처져 있었으며 다리는 절름거렸 다. 알렉산드로스도 벌거벗으면 많은 상처가 온몸에 있었다. 그러나 선왕의 비하면 아직 영 광의 상처가 부족하다. 필리포스 왕은 보기 흉한 상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사자왕은 전신에 넘칠 만큼 상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찰과상 하나 없어 단정한 외모는 조금도 망가지지 않았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곁에 서 잇는 시종이 그것을 넌지시 말하자 사자왕은 자신의 뺨을 톡톡 치며 "나이가 다 르지 않은가" 라고 만 대답했다. 젊음은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예..." 머뭇거리는 시종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머지않아 이 상처 자국도 없어질 것이다." 상처를 가볍게 문지르며 옷을 입었다. 그 모습을 부고 시종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신비한 외경심을 느꼈다고 훗날 술회했다. 얼굴에 상처자국 하나도 없는 것처럼 몸의 상처도 잠깐 사이에 없어지지는 않을까. '신의 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몰라.' 사자왕은 달이 한번 일그러지는 시간보다도 빨리 원래의 정기를 되찾았다. 이미 무루탄 마을은 전멸해 버렸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말리인도 새삼 사자왕의 무서움을 알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잇는 마을과 취락에서는 이 흉폭한 정복자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를 모아 대책을 세우려 했다. 사자와의 관용을 받았던 인더스강 서쪽 뉴사 마을의 정보도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뉴사처럼 자진해서 항복했고 공납에도 순순히 응하며 가벼운 지배 체재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사자왕은 그것이 기본 방침이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여 병사와 군수물품 그리고 배를 조달해 가며 다시 남으로 내려갔다. 아케시네스강은 히파시스강도 삼켜 버리고 드디어 본류인 인더스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신인 필리포스와 페이톤을 정복지의 태수로 임명하고 영토를 확보하면서 원정을 계속했 다. 두 강의 합류점 부근에 인근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왕 무시카노스 는 처음에는 "그깟 야만족 놈들!"하며 우습게 여겼다가 원정군의 진격을 알자마자 완전 돌 변하여 비위를 맞추며 자진해서 공물을 잔뜩 바쳤다. 알렉산드로스는 예에 따라 가벼운 지 배를 택해서 무시카노스를 계속해서 왕으로 머물게 했지만, 무사카노스 쪽은 원정군이 통과 하기를 기다렸다 반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페이톤이 이끄는 군대를 토벌하도록 보내고 짧은 전투를 끝낸 뒤 무시카노스를 사로잡았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도 함께 사자왕 앞으로 잡혀와서 너그러이 용서하여 목숨만 은 붙여 달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열 명이나 되는 야만족이 목이 잘리는 효수형에 처해졌다. 브라만 승려들도 많이 잡혀와 같은 효수형에 처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중에 "이젠 됐다."라며 처형을 중지 시켰다. "무슨 연유로?" 페이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저놈들은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구나." 짧게 대답하고 막사로 돌아갔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에 숨어 있는 하나의 선망이었다. 이런 경향은 젊은 시절 코린토스에서 술주정뱅이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만났을 때에도 엿 볼 수 있었다. 걸인 같은 철학자와의 짧은 문답을 나눈 뒤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가 욕 심 없는 것에 탄복하며, "내가 만약 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처럼 되고 싶구나"라고 말 한적이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잘 알려 진 에피소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상의 욕망 과는 다른 영혼의 욕망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도 꼬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브라만의 은둔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무시키노스왕에게 협력하여 자신의 앞길 을 가로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브라만의 승려들 또한 영혼 의 참모습을 찾으며 목숨도 아끼지 않는 금욕자들이기 때문이다. 인다스강은 두 줄기로 나뉘어 삼각주를 만들며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 토록 원하던 해양 오케아누스에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로 나서기 전에 육지의 안녕을 확보해 두어야만 했다.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정복해왔 던 도정에 전혀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곳곳에 태수를 두었고 당연히 군사를 주둔시켜 왔지만 불온한 정보가 날아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일부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사자왕 자신의 입으로는 "바다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그편이 더 빠를 것이다." 라 고 주장하고 있어도 사실 자신도 믿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희망일 뿐이고 군사들을 위로하 기 위한 발언이기도 했다. 앞에는 여전히 커다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게다가 여행 을 계속함에 따라 사자왕의 마음속에 또 다른 새로운 기대가 솟구쳤다. 동정을 단념해도 먼 쪽 바다에는 새로운 발견, 새로운 모험이 있을 것 같았다.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 면 그냥 지나갈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고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한 견지에서 주위를 들러보면, 히파시스 강변에서 코에누스가 호소했던 것처럼 군 내 부에는 마음속에 불만의 응어리를 안고 있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이럼 병사들은 동행해 보 아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크라테레스를 불러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정복해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 더 지원할 게 없는지 살펴보게. 자네가 사자왕이 되어 통치하고 불순한자는 용서하지 말게!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병사들을 동행시킬 테니 이일 도 잘 부탁하겠네. 도중까지만 가주게. 나와 재회하는 곳은 카르마니아일세." 정복지에는 야만족이 아니라 태수와 그곳을 지키는 장군들 중에도 잘못된 마음을 품고 있 는자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세워 크라테레스 직속 군단과 귀 국 군사들을 함께 출발시켰다. 그리고 코끼리 부대도 맡겼다. 이 군단은 대하를 거슬러 올라 가 카이바르 고개를 지난 후 남하하여 아라코리아, 드랑기아나로 들어갔다. 재회의 예정지 카르마니아는 그곳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가면 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아직 그 땅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단지 5년전 페르세폴리스를 점거했을 당시에 사절을 보냈기 때문에 일단 은 가벼운 지배 체재가 시행되고 있다. 사자왕은 인더스 하구에서부터 바다로 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전진하다가 도중에 북상 하여 북에서 내려오는 크라테레스와 만날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구 근처에는 파탈라라는 도시가 번영하고 있었다. 파탈라는 삼각이라는 뜻으로 대하를 이루는 삼각주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은 틀림없으나 강의 흐름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파 탈라의 소재지는 지금의 하이델라바드(카라치 북동 150킬로미터)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파탈라의 우두머리는 사자왕의 배까지 일부러 마중 나와 항복을 자청하였다. 그러나 실제 로 도착해보니 마치 허물을 벗은 뱀처럼 텅 비여 있었다. 주민들은 원정군이 무서워서 도망 친 모양이었다. "도망갈것까진 없다. 복종만 한다면 족하다." 도망자를 추적해 끌고 와 지배에 따르게 한 다음 요새를 만들고 우물을 파는 등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복구할 때까지 상당한 고생을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은 정복지를 폐허 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고대 왕들 가운데는 드물게 항상 건설적인 비젼이 있었다. 물론 전멸시킨 정복지도 있었지만,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본심에서 나왔다기보다 분노가 시킨 무분별한 행동이었다. 그의 본심은 정복지에서 가벼운 지배를 베풀어 번영시켜 그곳의 민중들부터 훌륭한 대왕이라는 칭송을 듣는 것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바람이기도 했지만, 이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참 모습이었다. 정의를 중시하고 자애로 넘치며, 민중을 윤택하게 만들고 외적을 물리치며, 문화수준을 높 이고 철학에 정통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선의 추구를 구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 다는 알렉산드로스의 규범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파탈라를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것도 그곳이 정복의 거점이 될 수 잇다 는 관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많은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었던 것도 공통 하는 이념의 발로이며 사자왕의 선의이기도 했다. 파탈라는 하구에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외해까지는 1000스타디아(약 150 킬로미터) 정도 유유히 내려가야 한다. 사자왕은 "바다는 반드시 봐야 한다."라며 매우 빠른 선단을 만들게 했다. 현지 뱃길 안내인이 도망치고 때마침 우기에 접어들어 대부분의 배가 파손되었으나 그럭저럭 바다에는 이를 수 있었다. 육지에 상륙하여 해안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큰일입니다." 선장 한 사람이 달려와서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정박시켜 두었던 배들이 어느 사이에 물살에 떠밀려 어느 것은 기울어 있고 어느 것은 서로 부딪쳐 뱃머리가 망가져 있었 다. 알렉산드로스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고 신이 하신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시간에 소리도 없이 이렇게 많은 배를 육지로 밀어 올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네아르코스는 놀라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이런 일은 본 것은 물론이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함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바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도가 점차 거칠어져 어리둥절해서 보고 있는 사이에 좌초한 배를 점점 떠밀었다. 배는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서 움직였다. 사자왕을 비롯하여 원정군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에게해는 가만의 차가 극히 적다. 그만 큼 눈앞의 변화는 글자 그대로 오묘하게 비쳤다. 인더스강이 흘러 들어가는 아라비아해는 조수의 간만이 특히 심한 곳이다. "틀림없이 우리는 대양 오케아누스에 도달했어. 대해이기 때문에 조수의 간만의 차도 크 겠지."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에 머리를 나부끼며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바다 저편을 노려보던 사자왕이 말했다. "그런 듯합니다." 네아르코스도 진심으로 동의했다. 두 사람은 그저 가만히 서서 일찍이 그리스인은 본 적이 없는 대해를 끝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를 성취했다는 느낌이 드는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날 폭풍이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잇는 섬들에 상륙하여 여러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치 고 기도했다. 특히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는 정중하게 기도를 올렸다. 병사들 중에는 땅 끝 에는 대양 오케아누스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은 지옥의 입구이며 본적도 없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말을 믿는 자가 많았다. 사자왕 자신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국 땅에서 신들이든 괴물이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것에 대해 진혼제를 드리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었다. 다시 배를 앞 바다까지 나가 그 앞에 또 다른 육지의 그림자가 보이는지를 확인했다. 10 여일 동안 주면 지역을 조사한 뒤, 알렉산드로스는 헤페스티온에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시 설인 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 조달을 명했고 상류에 있는 파탈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을이 명령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이번에는 두 갈래로 나뉜 강의 동쪽 이 흘러 내려가는 주위 지형을 조사하기로 계획했다. 약 1800스타디아( 약 300킬로미터) 정도 만하하여 넓은 바다로 나왔다. 만은 강의 일부이 면서 바다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물은 짜고 물고기의 종류도 많았다. 그 만을 빠져 나와 명확히 바다라고 알 수 있는 수역에까지 배를 끌고 와서, 전에 헤페스 티온에게 자재 조달을 명령했던 하구보다 동쪽 하구가 항구로서 입지 조건이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인더스강으로 가는 통행이 편하고 적당한 평지도 바다와 면하여 펼쳐 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한 사람의 어엿한 토목 기사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 땅에 배의 정박지를 만들어 독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파탈라를 정점으로 하여 동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강줄기는 바다로 이르는 두 개의 변을 이루고 있었다. 이 부근 삼각주의 답사를 대충 끝낸 알렉산드로스는 이곳 역시 지배하에 넣 었다. "여기를 거점으로 해서 서해로 달려나가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하구에 도달한다." 오래도록 생각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렇게 믿으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나가는 육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 험난하여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은 고대로부터 단 한 명도 없다고 하옵니다. 아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여왕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도 발은 디뎠으나 겨우 목숨만 건져 부하들과 함께 도망쳐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삼가 십시오." 이런 보고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키루스 대왕도 만족하게 해낼 수 없었던 이 일이 더한 층 마음에 끌렸다. 게다가 육로를 통해 페르시아로 이르는 길은 진작부터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남으로 향하는 군사는 수륙 두 방향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율로의 지휘는 주변에 사는 야만족을 평정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당연히 사자왕 자신이 할 것이다. 해로 역시 무슨 일 이 일어날지 모르고 해도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역시 네아르코스 말고는 해낼 사람이 없었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내가 육지로 간다. 도처에 정박지를 만들면서 말야. 큰일은 없을 거야." "물론이지요." 막역한 친구도 기분 좋게 동의해 주었다. 여기에서 네아르코스가 거부한다면 항해 자체의 안전성이 희박해진다. 네아르코스가 할 수 없는 항해를 누가 해내겠는가. 네아르코스는 설령 가슴속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사자와의 부탁이므로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육지와 바다를 동행하는 두 사람, 남자끼리의 우정이 걸려 있어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불 안한 내색도 않고 기분 좋게 따르며 준비에 착수했다. 항해에는 날씨가 고르지 않으면 안 된다. 하해는 육지를 따라 나아갔다. 육지로부터의 보급을 받으면서 가지 않는다면 긴 여행 은 힘들다. 우선 육로로 가는 군사가 해안으로 나가 정박지를 찾아 해군에게 공급할 군량미 와 마초를 확보해 두면, 항해하는 선단은 그것을 찾으면서 항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자왕이 4만 군단을 이끌고 삼각주가 있는 도시 파탈라를 출발한 것은 기원전 325년 8월 이었다. 주위는 여기저기에 야만족이 흩어져 있는 땅이다. 사자왕이 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금세 복종하는 부족도 있었지만 격한 저항을 보이는 부족도 있었다. 정복 방법은 지금 까지 해왔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으나, 알렉산드로스로 하여금 이국 땅에 왔다는 사실을 절 실하게 느끼게 만든 것은 대자연의 변화였다. 현저한 조수간만도 그중 하나지만 동식물도 매우 희귀한 것들이었다. 사람 말을 흉내내는 새, 엄청나게 긴 뱀, 덩치 큰 원숭이, 게다가 바다에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등지느러미만 을 보이며 달렸다. 감송나무의 뿌리는 강한 향기를 풍겼는데 그 수액을 의복에 뿌리면 언제 까지나 향기가 따라 다녔다. 냄새는 기억에 분명히 남는다. 병사들은 일생동안 이 냄새를 맡 을 때마다 이 황량한 이국 땅에서 맛보았던 숱한 노고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는 월계수나무와 아주 비슷한 잎을 가진 교목이 우거져 있었는데, 만조 때 바닷물 에 흠뻑 잠기는 것으로 수분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막에는 키가 크고 거친 가시나 무가 무성했다. 그 가시는 매우 단단해서 일단 휘감기면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말을 탄 병사한테 달라붙은 것을 떼어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말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재밌는데, 막사 방비에 도움이 되겠어." 미에자 출신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게 하나하나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전진해 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이 시기의 알렉산드로스는 은사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 머물고 있어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최근 몇 년간 편지만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였으나 나날이 멀어지는 느낌을 피 할 수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자로서의 실적을 쌓고 매우 존경받는 지위로 변해 갔 다.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했고, 편지 내용도 때로는 의도적으로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하여 이 해하기가 어려웠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선생의 가르침에 눈을 반짝이던 시절의 소년이 아 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까지나 스승으로서의 입장을 잊지 않았다. 편지의 어딘가에 서 그런 느낌이 엿보이면 대왕에게는 즐겁지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존경심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거북했다. 그런 거북함이 두 삶의 관계를 소원하 게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자신의 손으로 다루기에 벅찬 거친 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으면 조금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알렉산드로스로서는 꽤 오래 전부터 이젠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며 경원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시기에 칼리스테네스 사건이 일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인 그를 처형시켜 버렸 다. 표면적으로는 병사로 처리되었지만, 사실 사자왕의 분노를 사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조카에게 그다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처형 하나 로 사자왕과 은사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나빠질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칼리스테네스 의 처형 뒤에도 두 사람 사이가 회복될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알렉산드로스로서 는 뭔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점점 편지 쓰기가 싫어졌다. 특히 왕으로서 철학에 관해 은사로부터 조언을 받겠다는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튼 젊은 시절에 가졌던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은 뿌리깊어서 이런 흥미는 일생 을 통해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었다. 원정 가는 곳곳에서 보였던 우물 파는 일에 대한 관심도 집요했고, 그때마다 채택했던 지질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자. 네아르코스의 선단이 파탈라를 출항하여 인더스강의 지류를 따라 내려가 바다로 나온 것은 10월 중순 무렵, 사자왕이 출진하고 나서 두 달 정도 후의 일이다. 이 해는 특히 계절풍이 심하게 불어서 좀처럼 결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라고 해도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온화하고 잔잔한 에게해와 황량한 아라비아 해는 크게 다르다. 앞 바다로 나가 보면 금세 바다 색이 변하고 물살이 매우 빨랐다. 그 위 에 있으면 순식간에 밀려 없어져 버릴 정도로 간만의 차가 심하기 때문에 어제의 바다가 어 느새 암초로 변해 있었다. 물길 안내인의 조언도 여기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다에 나가자마자 역시 출항 시기가 너무 빨랐음을 깨달았다. 네아르코스 선단은 폭풍우 에 휩쓸려 여러 척의 배를 잃었지만 육지를 따라 바다로 전진을 계속하여 아라비스강의 하 구를 찾아냈고, 파가라라는 항구 도시에 도착하여 물과 식량을 보급 받았다. 사자왕이 이끄 는 근대에 대해서는 약간의 소문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코카라에 도착하자, 사자왕의 부하 레오나테스가 상처투성이의 얼 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사자왕은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계속하면서도 요소요소에 군사를 두고 떠났다. 코카라도 그런 도시중의 하나였으나 본부대가 지나간 뒤 현지민들의 격심한 저항이 있어 레오나테스는 6000명의 적군을 죽이고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였다. 네아르코스는 여기에서 열흘 분의 식량과 물을 보급 받은 후 내친 김에 항해에 맞지 않는 병사들은 육지의 레오나테스에게 맡기고 반대로 그만큼의 보충병을 다시 안수 받았다. 레오 나테스는 사자왕으로부터 네아르코스의 부탁만은 반드시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네아르코스는 수호 대장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여전히 현지 정세는 평정했다고는 할 수 없는 사정인 데다가 군량미와 마초, 우수한 병사까지 해군 편에 지원해 주었으니 레오나테스는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휴식시킨 뒤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네아르코스의 가슴속에는 밝은 희망은 조금도 없었다. 단지 웃음은 주위에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레오나테스의 보고에 과장은 없었을 것이다. 항복했던 현지인한테 급습을 당하고 수호명 전원이 분투한 끝에 그럭저럭 겨우 진압하기는 했지만, 아군의 정예 부대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 새로운 지원군은 과연 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 정세는 일단 진압이 되 었어도 앞날은 모르는 법이다. 불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훨씬 심각한 또 다른 의구심이 있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너무 쉽게 사자왕의 마력에 빠져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후회는 않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선단 지휘를 맡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부심도 컸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이라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까닭도 없었다. 사자왕이 육지를 가고 네아르코스는 바다를 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합류한다. 몇 달 전 에 강을 내려오던 때를 생각하면 위험을 충분히 예상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힘있는 각오와 계획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바뀌면서 오히려 의욕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사자 왕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사실 사자왕은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도 반드시 성취해 냈다. 지금 까지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할 수 있어.'라고 파탈라에서는 생각했었고 물론 지금도 그런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전에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라비아해의 거친 파도가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육로는 무사할까'하는 의구심이었다. 레오나테스의 웃음 띤 얼굴은 결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자 왕의 앞길에도 불안이 비치고 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앞으로 해안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 간다지 않는가. 바다에는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절벽이 있어 대군의 앞길도 순탄하지는 않 을 것이다. 아마 배를 정박시키기도 곤란할 테고 야만족의 습격도 있을 수 있다. 육지를 따라 선단을 이끌고 항해하면서 순간적으로 깨달은 사실이지만, 멀리서 바라본 육 지는 너무나 황량하고 쓸쓸하여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아내기도 힘들 것 같았다. 어설프게 다가가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야만족의 급습을 당하게 될지 도 모른다. 코카라에 서 레오나테스와 해후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졌다. 알렉산드로스와 약속했던 대로 해안 곳곳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을는지, 네아르코스는 경 험이 많은 사람의 직감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당초의 약속은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본대가 해안으로 난 육로를 더듬어가서 해변에 우물을 파고 신호로 깃발을 세운 곳에 식량을 숨겨 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카라를 떠난 이래 아직 깃발을 못 보았다. 육로를 잃으면 해로도 잃게 된다. 네아르코스의 우려는 적중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본대는 코카라를 지나서 며칠은 큰 문제없이 육지로 진격해 갔다. 야만족 과의 충돌이 몇 번 있었지만 늘상 있던 일로 대항하는 상대에게는 공격을 가하고 따르는 자 에게는 가벼운 지배를 베풀었다. 대군이 내륙으로 전진하게 되어 해안에 소부대를 보내기가 곤란해졌다. 안내인도 바다로 나가는 길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네아르코스에게 보급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 앞길은 어떻게 되느냐?" 지리에 밝은 노인을 찾아내어 통역을 사이에 놓고 답답한 문답을 반복했다. 세 가지 길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단연코 해안 길을 찾는 것이다. 두 번 째는 바 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오래 전부터 있던 통상의 길, 그리고 세 번째는 북으로 가는 우회 로이다. 사자왕은 해안길을 주장했지만 저 멀리까지 꽤나 높은 바위산의 해안이 이어져 있어 군단 은 말할 것도 없고 소부대조차도 진격하기 힘들 것 같았다. 두 번째의 오래된 길은 마크란 사박을 넘어가는 길이므로 이 계절에 맞지 않고, 세 번째의 우회로는 바다로 연락을 취할 길이 전혀 없는 반대 방향이었다. "사막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은 있느냐?" 두 번째 안이다. 사자왕은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막을 서쪽으로 전진해 가면서 수시 로 남쪽의 바위산을 넘어서 소부대를 바다로 보낼 방법이 있을까 싶어 물은 것이었다. "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하기야 바위틈에 어민도 살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있느냐?" "어떻게든 갈 정도는 ..." "좋다. 그럼 사막을 넘는다." 이집트에서도, 시리아에서도 사막을 넘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 "뭐가 문제냐?" "가실 길은 사막입니다." "괜찮다. 키루스가 항복한 것도 사막이지." "그 ..." "좋다. 애썼다." 결국 마크란 사막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통상의 길이라 해도 그것은 계절이 가장 좋을 때 재상들이 다녔던 길로 그리 좋은 행로는 아니었다. 그저 망망한 사막과 바위의 평원이 펼쳐지고, 길다운 길은 좀처럼 눈에 띄 지 않았다. 군단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끼여 있었다. 4만 군중이 사자와의 명령을 신호로 사막으 로 전진의 발을 내디뎠다. 한낮의 더위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생기고 일사병에 걸려 행군이 어 려운 자가 속출하여 할 수 없이 밤을 택해서 전진했다. 그러나 어둠 속의 행진은 순식간에 길을 잃게 만들었다.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안내인도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푹 빠져 들어가는 곳도 있었다. 마차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대규모의 장비는 오도가도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열기는 밤이 되어도 견 디기 힘들 정도로 쉽게 식지 않았다. 물은 부족한데 보급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이 살 만한 마을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식량 조달도 힘들었다. 상황이 하루하루 악 화되어 갔다. 해질녘을 기다렸다 출발하여 일출보다 빨리 다음 야영지에 도달할 수만 있으 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그대로 몸을 한낮의 사막에 눕혀 놓고 밤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몸을 가릴 나무 그늘조차 없었다. 천막을 덮고 갈증과 싸 우면서 사막의 화형을 견뎠다. 부상당한 사람, 탈진 상태에 빠진 사람, 그리고 죽어가는 가 축이 속출했다. 치료해 줄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도 함들 지경이니 쓰러지면 버리고 보려지면 죽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와 여자가 죽어 나갔다. 식량도 우선 여자와 아이들 몫부터 줄여 갔다. 군단은 차례차례 시체를 버리면서 비틀거리며 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을을 찾아내면 싸우면서 서로 물을 마시고 식량을 조달했다. 약탈도 했다. "반은 손대지 말고 남겨 두어라." 사자왕은 네아르코스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식량을 보급해 주지 않으면 선단은 매우 곤궁에 빠질 것이다. 물은 있어도 암초뿐인 해안에서 식량을 얻는 것은 힘들다. 또한 배에는 그리 많은 식량을 실을 수가 없다. 육로와 연락을 취하면서 나가는 수밖에 없 다. 적은 수로 부대를 조직하여 산등성이를 넘어 바다로 나가 네아르코스 군단에게 보급할 식 량과 물을 옮기도록 명령했다. 바다까지의 거리는 거의 150스타디아( 약 100킬로미터)정도였 으며, 산너머에도 협곡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 군단에 물과 식량의 부족이 눈에 보이는 데 도 불구하고 사자왕은 소부대를 두 번이나 바다로 보냈다. 엄숙한 결단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물자는 도달하지 못했다. 네아르코스가 육지로부터 원조 받았던 것은 앞에서 말한 코카라에서 정박해서 레오나테스를 만났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산 너머의 소부대는 물자에 사자왕의 봉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운반하는 인부, 아니 병사들까지도 자신들의 위에 채우고 말았다. 그 사정을 듣고 사자왕은 서둘러서 소부대의 군사들을 불러 놓고 힐문을 했다. 왕 앞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병사들은 이미 극형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랬느냐?"라고 묻는 사자왕에게 힘없이 대답했다. "산 속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그곳에서 죽을지 나중에 죽을지, 그것 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군단 실정이 이들의 말 그대로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는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이 일 을 용서했다. 죽은 가축은 물론 식용으로 내 놓았다. 더러는 살아 있는 것까지 죽인 다음 자연히 죽은 것으로 거짓말하고 먹어 치워 버렸다.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엄하던 군기는 어디로 갔는지... 자부심 강하던 알렉산드로스의 군단도 그저 굶주리 고 목말라서 지쳐 쓰러지고 문자 그대로 반죽음의 상태에 빠졌다. 산악 지대로 들어가서 실개천을 찾아 오랜만에 갈증을 해소했던 그날 밤, 곤히 잠든 야영 지에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다! 물이다! 신의 은총이야!" 그러나 환히 하는 순간, 물다운 물을 한번도 흘려 보낸 적이 없는 사막의 구덩이가 순식 간에 암석이 뒤섞인 거대한 탁류로 변해서 밀어닥쳐 왔다. "도망쳐라!"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대부분이 떠밀려 갔고 끝까지 살아 남은 사람도 달랑 몸 하나만 건졌을 뿐이었다. 전투무기는 대부분 떠내려갔고 살아 남았던 가축도, 얼마 안돼는 식량도 탁류에 실려 없 어져 버렸다. 사자왕의 전투용 무기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은 음푹패인 곳을 야영 지로 정한 탓에 그곳에서 대부분 죽고 말았다. 그러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쓸데없이 밥 만 축내는 밥벌레들! 잘 됐구나, 귀찮았는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병사들의 마음은 삭막해져 있었다. 호우는 순식간에 멈춰, 행군을 시작하자 주위는 바싹 메말라 버린 땅으로 되돌아가고 다 시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이 때만큼 가혹한 행군은 없었다. 식량이 없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폭염 속에서 의 갈증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이 며칠씩 계속 되었다. 필사적으로 참으려고 해도 몸은 탈수 증상을 일으켜 두통, 현기 증, 환각 상태, 급기야는 발광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샘이 있습니다." 안내인의 말을 믿고 태양이 뜨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행군을 계속해 왔으나, 있다는 샘은 도대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 병사 한 명이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나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죽음을 확인하는 이도 없었다. 다시 걷기를 계속했다. "여긴 것 같습니다." "여기라고?" 바위 사막 한가운데에 몇 그루의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서 관목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 는 곳이 보였다. 불과 몇 안돼는 잎사귀가 사막의 뜨거운 열기로 오그라든 데다 흙모래를 뽀얗게 뒤집어써서 생기도 없이 시들어 있었다. 그리고 샘은 메말라 있었다. 나무 아래 쓰러져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아 그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병사하나가 바위 밑바닥의 웅덩이에 아주 조금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투구에 담아 조심스레 달려왔다. "대왕님!" 사자왕의 앞에 공손하게 바쳤다. "무어냐?" "물이옵니다." 쇠약한 병사들의 귀에도 이 한마디만은 잘 들렸다. 사자왕은 그것을 받아서 투구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네가 마시지 않고?" "..." "고맙구나." 사자왕은 상쾌하게 웃으며 병사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는 투구를 재빨리 거꾸로 뒤집어 물을 버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모두가 없는 물을 마셨다." 대왕은 조용하게 선언했다.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없다면 자신만 마실 수는 없다. 모두가 똑같이 목마르다는 것 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페스피온은 눈을 감았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구세주의 왕림을 느끼게 하는 성스러움이 알렉산드로스의 주위에 감돌고 있었다.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도 사자왕의 기개는 전해져 힘없고 나약하지만 환호가 일어났다. '그래, 모두 다같이 괴로운 거야.' 병사들은 어느 정도의 용기를 되찾았고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이리하여 사자왕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단은 완전히 지친 몸으로 게드로시아의 푸라에 겨우 도착했다. 60일에 걸친 마크란 사막의 횡단으로 4만의 군사가 실로 1만 5000으로까지 축소되었던 죽음의 행군이었다. 푸라에 들어갈 즈음에 사자왕은 마을에서 가져온 술을 전원에게 마시게 하고 거나하게 취 해서 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며 창부나 걸인들과 뒤섞여 난무하며 행진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떤 심리에서?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술을 위해서 공연히 그렇게 하 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신적인 긴장감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광란을 부려서라도 떨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사 자왕의 성격이기도 했다. 푸라는 아주 작았다. 사자왕은 지난밤의 광기는 어디에 갔는지 정력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뒤 사흘간의 휴식을 병사들에게 주었고, 극도로 지친 자들을 남겨 놓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네아르코스에 대한 소식은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 면서도 단념하는 마음이 앞섰다. 알렉산드로스로는 자신들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열흘이나 보 름 정도 늦게 푸라에 도착했더라면 더 더욱 많은 사망자를 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네아르코 스의 선단은 육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으면 정처 없는 떠돌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안선이 험 한 지역이므로 식료품과 물의 보급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었다. 아직도 계절풍이 세차게 불 어대고 있으므로 선단을 정박시킬 수 있는 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무책임함에 대한 수치감이 알렉산드로스의 폐부를 찔렀다. 아무리 육로의 행군이 어려웠다 하더라도 약속을 어기고 네아르코스를 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기대 감을 버리지 않고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앞으로의 여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푸라에서 웬만한 물자는 보급할 수 있었고 여로도 대충 잡았다. 마크란 사막 같은 지옥은 더 이상 없었다. 인더스강 하구의 도시 파탈라를 출발한 이래 100여 일을 허비하여 겨우 카르마니아 지방의 제일 큰 도시인 사르무즈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처절한 여로였다. 사르무즈는 현재의 진도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의 북안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들 어가나 지역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나 것은 알 수 없다. 산 속의 중요 지점에 세워진 고읍 이었을 것이다. 사자왕은 여기에서 크라테레스가 이끄는 군대와 성공적으로 재회했다. 고난 뒤의 쾌거였다. 크라테레스는 사자왕의 명령을 받고 부하 군사와 함께 히파시스강 하반에서 동정길을 반 대로 되돌아가서 각지의 지배를 재정비한 뒤, 일부 잔병을 그리스로 되돌려 보내고 이곳 카 르마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본대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크라테레스는 차질 없이 왕 명을 수행하여 무사히 군대를 이끌고 사르무즈로 들어왔던 것이다. "수고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크라테레스와 그의 군단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사실 사자왕의 군단 쪽이 더 심한 고생을 했다. 돌이켜 보면 많은 병사들에게는 그날 어느 군단에 속해 있었는가, 자 산이 속한 군대가 사자왕과 가는 것인가 아니면 크라테레스와 가는 것인가가 운명의 기로였 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렇고 크라테레스의 보고에 의하면 예상대로 각지에서 반갑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야만족들의 반란만이 아니라 사자왕이 임명하여 통치를 맡겼던 태수들까 지 명령대로의 치세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크라테레스를 보냈던 것이다. 부하의 태만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자왕은 신속하게 실정을 조사하여 비행이 확실히 드러나면 극형으로 단죄했다. 태수든 중신이든 용서하지 않았다. 일벌백계라며 가차없이 처단했다. 그 가혹함은 각지의 태수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르무즈에서 페르세폴리스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열흘 정도 면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곳은 5년전에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승리의 개가와 함께 입성한 감회가 새로운 도시였다. 왕 궁을 태워버린 쓰라린 추억도 있었다. 동으로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마라칸다까지, 서로는 고국 펠라까지 중요 지점은 이미 통과 하면서 모두 지배하에 넣었다. 앞으로 어찌할지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뜻하지 않던 보고가 날아들어 왔다. 주위의 산야를 조사하라는 명령에 따라 둘러보고 있던 병사 몇 명이 급히 달려와 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산 속에서 마케도니아 말을 하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야망은 다시 서쪽으로 시간을 여기서 조금만 과거로 되돌려 다시 알렉산드로스의 도정에서 수백 스타디아 남쪽 의 네아르코스의 항해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 두자. 사자왕은 파탈라를 먼저 출발하여 육로의 서쪽으로 전진하면서 요소요소에 뒤따라올 선단 을 위해 적당한 기항지를 찾아내어 식료와 물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 하자면 네아르코스의 선단이 육로를 행군하는 군사로부터 원조를 받았던 것은 해안의 마을 코카라에 잔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레오나테스의 수호 군과 해후했을 때, 단 한번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육로를 가는 여정이 참담했기 때문이었다. 마크란 사막을 넘어간 군사는 자신 들이 살아 남는 것도 힘겨울 정도였으므로 남을 생각하는 것은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자왕은 늘 네아르코스와의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 지킬수만 있다면 지키고 싶었고 결단코 잊지 않고 있었지만, 눈앞에 비참한 일을 당하고 있으니 멀리 있는 병사들에게까지 배려를 베풀 수는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약속한 병사들을 해안으로 보내려 해도 식료품도, 물도, 가는 길조차도 없었 다. 이 외진 변경에, 이 살인적인 폭염에, 이 광활한 사막에... 결국 사자왕의 판단이, 애초부 터의 계획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체력도 기력도 떨어져 기진맥진하여 부득이하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네아르코스 쪽은 배 위에서 아무리 육지를 살펴보아도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약속한 물 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어도 네아르코스는 용감하고 침착하며 냉 정했다는 점이다. 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선단을 맡을 수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네아르코 스는 오히려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인 알렉산드로스가 명령을 내린 것은 아라비아해의 서쪽으로 향 해하면서 지세를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었다. 원조 없이 혼자 해내겠다는 결심도 있었지만, 네아르코스는 실제로 고대의 뛰어난 탐험가였으며 바다를 가는 또한 사람의 알렉산드로스였 다. 여기에 항애기를 상세하게 쓸 여유는 없지만 네아르코스는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해의 자연을 관찰하고, 조류를 연구하고, 암초가 있는 곳을 찾고, 여러 해안을 탐사 하여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 연안은 인가로 보이는 곳도 별로 없는 미개척지였으며, 사람이 있어도 원숭이와 같이 착 각할 만큼 이상하게 생긴 민족이었다. 해안은 불그스름한 갈색 바위만 끝없이 이어져 있을 뿐 무성한 수풀을 찾아내기도 힘들었다. 네아르코스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습관, 즉 바다 생선을 먹고산다고 해서 그들을 어식민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식민들은 작은 촌락을 만들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육로의 아군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상 자력으로 식료품과 물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안에 인접한 산 속에 촌락을 발견하자 선단을 접근 시켰다. 야만인들은 장창을 준비해 놓고 싸울 작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장창 끝은 철이 아니었다. 네아르코스는 바위에서 화살을 날려서 위협했다. 수영을 잘하는 정예를 선발하여 물가에까 지 헤엄쳐 가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에 세줄로 진열을 만들게 했다. 야만족은 만약의 경우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네아르코스는 준비가 충분히 마무 리된 시점에서 일제 공격을 명했다. 무기에도 전술에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야만족은 당황한 듯 뒤편의 산지로 도망갔다. 잡힌 자들을 살펴보니 온몸에 털이 나 있었다. 그들은 짐승과 같은 손톱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손톱을 사용하여 마치 단칼을 다루듯 나무를 자르고 생선을 가르며 해초를 썰었다.. 그 밖의 도구는 대부분이 석기였다. 몸에는 동물의 가죽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거대한 생선의 가죽을 걸치고 있는 자도 있었다. 이렇듯 네아르코스의 관찰은 면밀했다. 생활 모습에 다소의 차는 있으나 어식민, 즉 게드로시아 해안에 사는 야만족은 그 이름대 로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날것도 먹지만 햇볕에 바짝 말려서 두들겨 어분을 만들 었고, 곡물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이 어분을 물로 반죽해서 곡물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촌락을 찾아도 먹을 만한 것은 드물었고, 습격해서 약탈하는 방법도 써봤지만 전리품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물 하나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산양 한 마 리를 빼앗았고 낙타를 죽여서 먹어 치워 버렸다. 새우, 굴, 홍합 따위가 걸리면 꽤 괜찮은 편이고 참치도 붉은 살이지만 맛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대추야자 열매를 보고는 그리움 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단은 우연히 고래를 보았다. 난데없이 거대한 파도가 솟아오르며 바닷속에서 거대한 괴 물이 나타나자 이를 본 선원들은 정말 간이 콩알만해질 정도로 매우 놀랐지만, 네아르코스 는 눈 하나 깜짝 하지도 않고 침착했다. 오히려 일부러 배를 가까이 몰고 가서 관찰했다. "겁낼 것 없다. 이놈이 소문의 괴어야!" 그러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야만족의 촌락에서 조사해본 결과 괴어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얕은 바다에 남 겨지는 일이 왕왕 있는 것 같았다. 뼈만 모래톱에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야만족은 뼈를 집 의 기둥이나 지붕에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네아르 코스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몇 가지 표본과 함께 채집한 지식이었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린 힘든 항해였지만 아마 육로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특히 어식민 이 사는 해역을 뚫고 카르마니아 지방으로 들어가자 주위의 정황은 선원들이 겪었던 풍경에 가까웠다. 30여 일을 지나 1만 스타디아(약 1800킬로미터)에 가까운 해로를 떠돌았던 선단은 간신히 하르모지아에 도달했다. 많은 배와 선원을 잃고 숨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초췌한 몸으로 흘 러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르모지아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 북측에 위치하는 곳으로 예전 에는 동서 교통의 요지였다. 마르코폴로가 방문한 유적이 남아 있다. 선단의 병사들은 조촐 하고 보잘것없지만 이 땅에서 둘도 없는 귀한 생명을 향유했다. 네아르코스는 곧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소식을 찾았고 굳은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해로가 힘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육로도 가혹한 행군이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사태도 있을 수 있다. 병사들을 몇 갈래로 나누어 산 속으로 정찰을 보냈다. 한편 사르무즈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는 처절한 참회를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사 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자부심이 강한 대왕으로서 약속을 내팽개친 것은 다시없는 수치였다. 자존심이 상했고, 자신의 과오를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도 가시에 찔린 듯이 아팠다. 알렉산 드로스 역시 또다시 네아르코스의 소식을 찾아서 부하 병사들을 해안으로 출발 시켰다. 두 군대의 병사들이 산중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리스 말이야." "마케도니아 사투리가 있어." 놀랍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자 순식간에 환희가 터져 나왔 다. 이야기를 하는 둥 마는 둥 둘 다 왔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갔다. 선단의 병사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가 네아르코스를 사자왕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야 만 했고,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는 재빨리 이 기쁜 소식을 왕께 전해야만 했다. 포상도 있을 것이다. 밤을 낮 삼아 달렸다. "산중에서 마케도니아 말을 하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네아르코스님의 부하였습니다." 사자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이냐?" 금방은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네아르코스는 만났느냐? 무사하냐? 어디에 있어?" 흥분한 사자왕은 쉴새없이 질문을 퍼부어 댔고 미천한 병사들은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사자왕은 안절부절못했다. 병사들은 분명히 마케도니아 사투리가 섞인 그리스말을 들었지만 만난 사람은 아는 얼굴 이 아니었다. 네아르코스라는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선단이 도착한 항구 도 시도 듣기는 했는데 확실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추궁하자 모호한 말뿐이었다. "아무튼 대왕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쪽에서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겁먹은 태도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대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멍청한 놈들!" 사실이라면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기대한 만큼 정확한 보고가 아니어서 더 화가 나고 초조했다. 새로운 척후병을 보냈지만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찾아와야 할 네아르코스 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스말을 하는 남자들과 만났던 것은 사실이었겠지?" "예..." "꿈은 아니었겠지?" "아닙니다." 낭보를 가져왔던 병사들은 의심을 받게 되고 일단은 체포되어 신병을 구속당하는 불운에 빠지고 말았다. 선단이 도착한 하르모지아에서 사자왕이 주둔하는 사르무즈까지는 의외로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한편 네아르코스는 사자왕이 건재하다는 소식을 듣고 몇 명의 부하들과 바로 출발했다. 산을 넘는 길은 너무나 험준해서 우회로를 택한 탓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게다가 호우도 만났다. 그리하여 닷새 만에 마침내 사자왕의 주둔지를 찾아 냈을 때에는 상당히 지 쳐 있었다. 더구나 네아르코스 일행은 고달픈 바다 여행을 겪은 직후였다. 피부는 야만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그을린 데다가 거친 바닷바람에 갈라지고 햇빛 때문에 짓물러진 눈 은 제대로 뜰 수도 없어 인상까지 바뀌어 있었다. 막사 출입구를 헤집고 들어오며 "사자왕!"하고 외쳤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불쾌한 듯 노려 볼 뿐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누구냐?" "제가 바로 ...네아르코스입니다." "네아르코스라고? 정말이냐." "그렇게 변했습니까?" "오, 그래. 무사했구나." 알렉산드로스는 벌떡 일어나 달려와서 네아르코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두 팔로 어깨를 감싸며 끌어안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네아르코스의 눈도 젖어 있었다. 잠시 포옹을 한 채 흐느껴 울고 난 후 사자왕은 네아르코스 부하 병사들을 한 사람씩 포 옹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그래. 살아 남은 것은 자네들뿐이냐. 바다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야겠구나." 선단의 슬픔 운명을 물었다. 못 알아볼 정도로 마르고 지친 네아르코스와 그의 병사들의 표정을 보며 알렉산드로스는 생존자는 이들뿐이고 나머지는 바다의 쓰레기로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육로로 온 쪽이 4분의 3의 군사를 잃었는데 해로도 대부분을 잃었음에 틀림없을 거라고. 네아르코스는 눈물을 닦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사자왕, 제게 맡게 맡겨 주신 병사도 배로 반 정도는 무사합니다. 그 사실을 한시라도 빨 리 전해 드리고 싶어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세상에! 정말이냐?" "하르모지아라는 항구 도시에서 모두들 사자왕의 다음 명령을 가다리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예." 사자왕은 무심결에 양팔을 하는 높이 치켜들어 신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엄 숙하게 고했다. "네아르코스, 자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목소리는 떨렸고 다시 눈물이 넘쳐흘렀다. "자네의 소식을 듣고, 나는 전아시아를 정복한 것보다 더 기뻤다네." 이 말에는 털끝만큼의 거짓도 없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일생 동안 가장 기쁜 순간 중의 하 나였다. "네아르코스, 수고했다. 이제 다시 자네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겠네. 얼마 동안 육지에 서 심신을 편히 쉬는 게 좋겠어." 알렉산드로스는 항해 보고서를 소상히 듣고는 매우 만족하여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네아 르코스는 투지를 불태웠다. "안 됩니다, 대왕님.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 해온 수고가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수사 에 도착할 때까지 에리트라해를 답사할 수 있는 명예를 저에게 주십시오." 에리트라해는 오늘날의 페르시아만을 가리킨다. 해안의 북쪽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양 대하가 흘러 들어오고 그 안쪽에 페르시아의 대도시 수사가 있다는 것은 대충 알려져 있었 다. "진심인가, 네아르코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가거라." 사자왕도 힘이 나서 청을 받아들였다. "후일, 수사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세." 네아르코스는 축연을 마친 뒤 다시 선단의 닻을 올려 출항 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 나와 페르시아만의 북안, 즉 오늘날의 이란 부근해혁을 물을 따라 계속 항해 했다. 곤란하리 라는 예상은 했지만 불모의 땅 게르도시아 해협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카르마니아 지방 을 통과하기만 하면 훤하게 아는 페르시아의 바다다. 예측을 불허하는 앞바다의 조류와 진 흙의 퇴적등에 대해서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항해이므로 어쩌다 하나라도 잘못 판단하 면 크나큰 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식료품과 물의 보급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예상했다. 야만족의 급습은 거의 없었 다. 네아르코스는 꼼꼼하게 항해 일지를 기록하면서 이 해역의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그리 고 순조롭게 선단을 지휘히려 바다에서 강을로 역행하면서 예정대로 알렉산드로스와 약속했 던 수사에서의 해후를 이루어 냈다. 쾌거였다. 서양 인명 사전의 네아르코스에 대한 항목에 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장군, 아버지는 크레타인이다. 대왕을 따라 동정에 나섰고 원정 귀 로에 인더스 하구에서 키그리스, 유프라데스 하구까지 항해하여 신항로를 개척했다. 그의 저 서 연항항애기는 아리아누스의 인도지에 인용되어 있다." "한 장수가 공을 세우는 데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른다."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알렉 산드로스의 부하로서 매우 드문 인물이다. 마크란 사막의 횡단 길에서 공전의 고난을 경험한 사자왕이었지만, 카르마니아로 돌아가 서 예정대로 크레타레스가 이끄는 군대와 재회하고 네아르코스 선단도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의욕을 되찾아 야망을 불태웠다. 페르시아만의 맞은편 기슭에는 광활한 아라비아 반도가 펼쳐져 있으며 다시 그 건너편 홍 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가 있을 것이다. 정복지와 정복지를 선으로 잇고 그 선을 넓히면 세계의 왕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도 지배해야 한다. 야심을 가슴에 품고 사르무즈에서 파사르가다이로, 그리고 5년전에 자신이 군림했던 도시 페르세폴리스로 되돌아가 보니 애초의 구상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파사르가다이에서는 카루스 대왕의 묘소가 황폐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는 이 페르시아의 대정복자에 대한 경애심이 대단하여 묘소의 엄중한 수호를 명령해 두었음 에도 불구하고, 묘실은 마구 파헤쳐지고 약탈당하여 유체에까지 능욕이 가해져 있었다. 진상 을 규명하려 애썼지만 그 원인조차도 알아 낼 수 없었다. 사자왕의 명령이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단서로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하자마자 정보를 모아 보니 어찌된 일인지 명 령에 대한 위반 행위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정복지의 통치를 맡겼던 태수나 수호 부대가 제멋대로 날뛰며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소문은 이미 사르무즈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탐관오리를 색출해 내어 극형에 처했지만, 정복지를 더욱더 깊이 파 해쳐 보자 배신 행위는 한층더 현저히 드러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통치를 맡은 중신들은 사자왕이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지 도 않았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측근인 그들은 대왕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있어서, 그 가 지구의 끝까지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아마도 어딘가에서 전사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 다. 대왕은 죽을 때가지 야망을 키워가는 인품인 것을 잘 알고있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 행 운아 알렉산드로스를 우습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위정자도 이런 배신을 용서하지 않 겠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유난히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성격이었다. 순식간에 숙청의 회오리 가 세차게 불었다. 배신 행위가 명백한 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의혹이 있는 자까지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 고 처단해 버렸다. 중신도, 중견 간부도, 말단 병사도 엄중하게 죄를 물어 평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처벌이 가해졌고 도처에서 사형이 단행되어 수많은 핏줄기가 흘렀다. 글자 그대로 피의 숙청이었다. 클레안드로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자왕의 명에 따라 에바타나에서 노장 파르메니온을 주살 했던 그 부장군이다. 그때의 공적으로 에바타나 지방의 태수에 임명되었 는데 횡포를 부린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알렉산드로스가 카르마니아로 돌아온 시점에서 바로 처형되었다. 공적이 큰 중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외를 두어서는 본보기가 못 된다는 생각 이었다. 그보다도 중신의 배신 행위는 대왕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를 가장 화나게 했고 절망감까지 느끼게 했던 것은 하르팔레스의 배신이었 다. 하르팔레스는 미에자 학사 이래의 친구이며 헤타로이중서도 유력한 인사였다. 이수스 전 투에서는 전선에서 도망을 쳐서 많은 이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자신도 충분히 잘 못을 인정하고 뉘우쳤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전장의 용사는 못 되었고 그런 탓에 원 정군의 재정을 맡겼고 바빌론 지방의 통치자로 임명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다. 재정적인 면에서는 알렉산드로스보다 정통해 있었고 군사와는 다른 방면에서 중요한 한 쪽 팔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하르팔레스는 바벨론 땅에서 마치 자신이 대왕이나 된 듯 횡포가 극에 달하여 사 복을 채우며 여색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다. "하르팔레스가..." 알렉산드로스는 그 소식을 듣고 말문이 막혔으나 배신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잡아들여라." 바빌론으로 엄명이 내려졌다. 그러나 하르팔레스도 빈틈이 없었다. "사자왕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얇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다부지게 웃었으나 공포심을 얼버무리려는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사자왕의 엄명이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 하르팔레스는 은밀하게 모아둔 막대한 재물 과 부하 장군들을 거느리고 도망갔다. 타르투스에서 해로를 통해 아테네로 향했다. "아테네인이여, 일어나라. 알렉산드로스의 횡포를 용서하지 마라." 이렇게 떠들면서 많은 뇌물을 주며 망명허가를 요구했다. 이 또한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싫어하는 선동이며 용서의 여지도 없는 분명한 배신 행위였다. "하르팔레스는 아테네와 손잡을 셈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 소식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양미간을 찌푸릴 뿐 무표정하게 받아들였다. 가장 격심한 분노는 오히려 평손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 대왕의 특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찬가지로 조용히 말했다. "나를 암살한 것보다 더 무거운 죄다." 하르팔레스의 사형은 어차피 정해진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와 대항할 세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르팔레스의 입장에서라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정말 '그 럴 수 있는'인물이었다. 그때부터 알렉산드로스는 아테네에 대한 몇 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아테네의 식민지로 되어 있는 사모스섬을 해방시키고 알렉산드로스를 신으로 섬길 것을 명 했다. 최근 몇 년 국력이 쇠퇴해 가기만 했던 아테네와 상승세를 달리는 알렉산드로스와의 관계는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사자왕은 냉정한 판단으로 교활한 아테네인에게 압박을 가 했다. 아시아의 왕은 아테네를 제압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더한층 강력한 지배를 아테 네에, 그리고 그리수 전국토에 가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르팔레스를 없애려는 목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아테네는 알렉산드 로스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는 옛날의 아테네가 아니었다. 힘이 없으면 자부심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아테네인들은 완전히 무기력해 져서 겁을 먹었다. 사 자왕의 위협은 충분히 효과를 거두고 있었고, 한번 배신한 놈은 어차피 믿을 수 없다고 생 각하는 아테네인도 있었다. 하르팔레스의 행동은 누구의 눈에도 지나치게 비쳤고 특히 강직 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접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하르팔레스에게 가담하는 사람은 소수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마케도니아에 가차없이 반기를 들었던 철학자 데모스테네스가 손길을 뻗어 왔다. 그러나 이 웅변가의 힘 도 이젠 쇠잔해져서 자칫하면 알렉산드로스가 육지와 바다로 한꺼번에 공략해 올 것을 상상 하며 겁먹고 있었다. 세월의 무상함 때문일까, 사자왕의 위력 때문일까. 하르팔레스에 대한 사자와의 분노는 심상치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테네는 지금까지 심심찮게 알렉산드로스의 비위를 거슬리는 짓만하고 있었고, 그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도 저히 씻을 길이 없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며 하르팔레스 망명은 아테네 인에 의해 거부당했는데 현명한 판단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하르팔레스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고, 아테네인이 생각한 대로 만약 하르팔레스를 받아들였다면 그 도한 절대로 영서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한다면, 알렉산드로스의 또 하나의 요구에 대해서도 아테네인은 "신이 되고 싶으면 되라지" 하며 마케도니아 대왕을 신으로서 섬기는 것도 납득하기로 했 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뭐! 알렉산드로스가 신이라고? 그런 신을 섬긴다면 신전에 들어갈 때가 아니라 나올 때 에 몸을 깨끗이 씻어야겠지." 아테네인답게 통렬한 비판을 했지만, 그것이 여론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 쇠퇴의 길 로 가는 증거였다. 하르팔레스는 하는 수 없이 크레타섬으로 도망갔고 결국 그곳에서 배신한 부하한테 암살 당했다.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사자왕은 건재했다.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로 귀환한 것을 알고 해이해졌던 각지의 상 황은 단숨에 긴장된 상황으로 돌변했다. 사자왕도 잇달아 새로운 정책을 표방했다. 사병을 철폐하고 일체의 군사를 왕의 군대로 편성시켰다. 행정군을 축소하고 문관과 무관을 명확하 게 분리했다. 즉 태수는 병력을 가질 수 없고 왕 직속의 수호 대장이 왕의 병사를 맡아서 군무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규율이 회복되고 대왕 중심의 직제가 의욕적 으로 만들어졌다. 황폐되어 버린 키루스 대왕 묘소를 복원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예전에 페르시아 왕궁에 있었던 호족 한사람이 그것을 지켜보던 어느 날 사자왕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냐?" "페르시아 왕가에 한 가지 더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무엇이냐?" "대왕님은 분명 달레이오스왕의 공주님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약조를 하셨습니다. 왕의 영혼 앞에서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기억이 떠올랐다. 페르시아 왕의 후계자로서 그것을 유해 앞에서 약속한 기억이 있다. "공주는 어찌 지내고 있느냐?" "수사에 있는 별궁에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 역시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장점가운데 하나였다.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애첩 바르시나는 대왕의 곁을 떠나 지금은 박트리아의 부친에게 몸을 맡겨 왕자 헤르쿨레 스를 키우고 있다. 또 한사람의 비 로크사네는 아주 빼어난 미인이지만 산악 부족의 딸이기 때문에 속마음을 이해하는 데 조금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스말이 서툴고 그리스 사정에 대 해서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 공주라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알렉산드로스의 부름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가엾기도 했다. 우선 헤페스티온을 불러들여 의논했다. "어떡하지?" "뜻대로 하세요. 스타테이라 공주는 마음씨도 고운 분이지요." "이름이 스타테이라던가?" "모르셨습니까?" "잊어버렸지." "이제부터는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야겠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은 딴 곳으로 갔다. 헤페스티온이 찬성하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 페르시아인 과의 융화는 불가결하다. 그런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헤페스티온이었다. 헤 페스티온은 사자왕 자신보다도 페르시아인과 친하고 페르시아 말도 유창하게 잘했다. 페르 시아인과의 교섭에는 언제나 헤페스티온을 지명해 왔다. 그러나 또 한사람의 중신인 크라테레스는 어떻게 생각할는지... 미처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크라테레스가 고문을 듣고 사자왕을 찾아왔다. "새로운 왕비를 맞으신다고요?"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왕비라고 정한 것은 아니지만..." 국왕이 많은 후비를 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자들끼리 신분의 상하가 모호해진 다. "소홀히 대했다가는 오히려 불편하지 않으실까요?" "물론이다." 크라테레스는 오히려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불만을 품지 않도록 하는 헤페스티온과는 정반 대의 역할을 맡아 왔지만, 그런 그도 페르시아인과의 친화의 필요성은 충분히 이해했던 것 같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이제는 마케도니아 군사의 대변인이 아니라 좀더 높은 견지에서 정세를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크라테레스의 웃음 속에서 그런 심정을 짐작하고 매우 만족했다. "좋다. 결정했다." "결혼하시는 쪽입니까?" "그렇다. 나는 내 한 몸이 아니다." 엉뚱한 생각을 개진했다. 그 생각은 이전부터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이 지만, 심사숙고를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크라테레스의 얼굴을 보고있는 사이에 왠지 무엇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결심한 것이었다. 크라테레스는 사자왕의 진의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대왕 자신은 이 즉흥적인 생 각에 점점더 말려들어갔다. 아무튼 함께 동고 동락했던 병사들에게 뭔가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돈도 주고 여자도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간의 벽을 허물지 않으 면 진정한 화합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합법화된 약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수사에서의 합동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역사에는 이 결혼식 을 기며하게만 묘사되어 있지만, 이 사건은 알렉산드로스의 복잡하게 뒤얽힌 성격을 정확하 게 반영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달레이오스 3세의 유해 앞에서 맹세한 약속에 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면도 정말 알렉산드로스다운 행동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노고를 함께한 병사들에게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기쁨을 고루 나 누어주겠다는 배려에서 여자를 주고 결혼 수당을 나누어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사자왕 은 전쟁에서 일어나는 약탈과 능욕을 좋아하지 않았다. 폭행은 보기에도 안 좋으며 당당하 지도 못하다. 전쟁에서 억누르고 있던 병사들의 욕망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는 목적도 있었 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달레이오스의 딸 스타테이라 외에도 달레이오스 바로 전 왕이었던 오코스의 막내딸인 파리사티스도 아내로 맞았다. 헤페스티온에게는 스타테이라의 여동생을 주었는데, 장래에 헤페스티온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과 이종형제가 되기를 바랐던 까닭에서 였다. 더불어 크라테레스에게는 누구, 페르디카스에게는 누구, 프톨레마이오스에게는 누구, 네아르코스에게는 누구 하는 식으로 거의 80여명에 가까운 페르시아 처녀를, 그것도 모두 페르시아에서는 고귀한 집안의 딸들을 중신들에게 짝 지어 주었다. 또 사자왕의 명령에 따 라 충분한 결혼 수당이 지급되었다. 병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인으로서 아시아 여자와 결혼한 자는 남김없이 신 고하도록하여 축하금으로 여느때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의 결혼자금을 주었다. 신고한 수가 1만에 가까웠다고 한다. 혼인의식은 닷새 간에 걸쳐 거행되었다. 당연히 성대하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행사였다. 사 자왕의 명령에 따라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혼례방식이 채택되어 페르시아 의상을 입고 엄숙 하게 거행되었다. 열광하는 군중들속에 더러는 불쾌한 표정을 짓는 마케도니아 병사도 있었 다. "또 사자왕의 동방병이 도졌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이 치러진 수사에서 또 하나의 기묘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흉사였다. 카라노스라는 인도의 승려가 분신 자살한 사건이다. 카라노스는 원정군이 인더스강 유역에 머물렀을 때 세상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이 생활하 는 승려에게 흥미를 느낀 사자왕이 굳이 동행을 요구했던 자였다. 본명은 따로 있는 것 같 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카라라고 불렀고 이것이 다시 카라노스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 는 수사에서 심한 위장병을 않고 있었는데 나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목숨은 아깝지 않으니 불에 타서 죽었으면 좋겠소." 사자왕은 카라노스의 간절한 소망을 받아들여 장작을 쌓아서 화장시킬 준비를 하도록 명 령했다. 카라노스는 전신에 포도주를 부은 다음 머리를 뽑아서 태우며 스스로 장작더미 위 로 올라갔다. "군중들이여, 기분 좋게 축하해 주게. 그럼 안녕히. 사자왕이시여, 머지않아 바빌론에서 만 납시다."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대며 불을 지를 것을 명했다. 너무나 태연한 자살이었다. 말라빠진 몸은 순식간에 타서 없어졌다. 카라노스를 알게 된 것은 그에게 이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보면서였 다. 알렉산드로스의 물음에 그는 한 겹의 얇은 가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잘 건조되어 푹 패인 가죽은 한 쪽 끝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다시 다 른 곳이 튀어나왔다. 한가운데를 눌러야 비로소 가죽은 평정되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한가운데를 다스리라는 뜻인가?" 카라노스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나는 계속 돌아다닐 것이다." 카라노스의 죽음 앞에서 사자왕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때는 그저 그 정도에서 그쳤다. 알렉산드로스는 결혼한 뒤 곧바로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달랠 새도 없이 곧바로 모든 병사들이 지고 있는 빚을 자신이 갚아 줄 것을 선언했다. 병사들 중에는 빚 때문에 괴로움 을 당하는 자들이 적잖게 있었던 것이다. 증거가 되는 문서를 가지고 신청만 하면 그 금액 을 주는 것으로 전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겠다는 알렉산드로스의 호의였지만, 호의가 지나쳐 서 왠지 불쾌감 마저 들었다. 말단 병사로서는 사자왕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 다. 병사들은 사자왕의 그런 조치를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를 색출해 내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빚을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는 그 동안 갖은 고생을 해온 군사 들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하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이다. "좋다. 그러면 책상 위에 돈을 두겠다. 이름은 묻지 않겠으니 증거 문서의 금액을 나눠주 어라." 이번에는 매우 기뻐하며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고참병들 이 수군거렸다. "기쁜 일이야." "이것으로 빚이 없어졌다." "그것도 기쁘지만 역시 사자왕은 우리의 대왕님이셔." 빌린 돈을 다 갚는 것보다 사자왕이 자신들에게 진심을 보여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더 기 뻐하며, 오로지 알렉산드로스의 보살핌에 감사하는 소박한 영혼이 많았던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사자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까. 이어서 알렉산드로스는 성대한 잔치라도 해도 될 만큼 선심을 쓰는 논공행상으로 감행했 다. 말리족 마을을 침공했을 때 혼자 맨 앞에 나가 성벽으로 뛰어든 사자왕을 뒤에서 도운 페우케스타스에게, 해안선 마을 코카라에 주둔하며 네아르코스에게 물자를 보급했던 레오나 테스에게, 그리고 신항로를 개척한 네아르코스는 물론 공을 세운 중신들에게는 차례로 융숭 한 포상이 주어졌다. 사자왕의 진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혹을 품을 만큼의 흡족한 보상 이었다. 자신의 부를 부조리 잃을 정도의 향응이었다. 때마침 지금까지 정복했던 각 마을과 도시에서 새로 징집된 수만 명의 젊은 정예 병사가 도착했다. 페르시아인을 중심으로하는 동방인의 아들들로 그들은 출신에 상관없이 마케도니 아식 군사 훌련을 받았다. 복장도 장비도 군단의 편성 방법도 모든 것이 마케도니아 정규군 과 다름이 없었으며 전술도 똑같이 터득하고 있었다. 사자왕이 제각각 지역의 태수들에게 양성시켜 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 젊고 활기찬 위용을 본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젊은 장병들은 에피고노이라고 불렸는데, 후계자라는 뜻이 었다. 모두들 '후계자란 무슨뜻이지'하고 의아심을 품기 시작했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자꾸 의심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야망에 불타는 알 렉산드로스에게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군사 조직에 대해서도 사자왕의 뇌리 에는 펠라를 출진했을 당시처럼 마케도니아 정규군만을 중추로 둔다는 생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함돈 결혼까지 감행하여 민족간의 벽을 걷어치워버린 것이다. 군대에는 마케도니아 인도 그리스인도 페르시아인도 있을수 없고 얼굴 생김 따윈 아무래도 상관 없었 다. 잘 휼련된 간한 군대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념을 알고보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마케도니아 병사에 대한 배 려가 부족함은 부정할수 없다. 왕의 나이가 어려서 일까 성격이 급해서일까. 아니다. 이것은 원대한 이상주의자와 소박한 병사 사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갈등이 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거리낌없이 자신의 방침을 추진해 나갔다. 결단도 행동도 보통 사람보다 민첩했다. 놀라 당황해 하는 사이에 이미 돌진했다. 석연치 않은 생각이 마케도니아 병사들 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동안에 새로운 조직 편성이 착수 되었다. 페르시아인과의 화합 에 뛰어난 페우케스타스를 후대 했고 페르시아인을 점점 군의 요직에 앉혔으며, 그 한편으 로 헤페스티온을 육군과 함께 페르시아만으로 출발시키고 사자왕 자신도 배를 타고 티그리 스 유프라테스강 하구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새로운 군사와의 새로운 모험을 생각하면 날이 면 날마다 꿈이 부풀어갔다. 오피스는 티그리스 하반에 있는 도시이다. 진지를 수사에서 오피스로 옮긴 알렉산드로스 는 여기에서 1만 명이 넘는 마케도니아 병사에 대해 제대 명령을 내렸다. "제군들에게는 오랫동안 많은 고생을 시켰다. 보상금을 등에지고 당당하게 고향으로 개선 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일생동안 제군들의 무훈을 잊지 않겠다." 알렉산드로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또한 호의에서 나온 처사였다. 대상은 노령자와 부상자 들이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히파시스강 하반네서 코에누스의 발언에 찬성하며 인도로의 전 진을 거부했던 무리들 아니었던가. 고향으로 귀환시켜 줄 것을 호소했던 마케도니아 병사들 아닌가.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다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생각을 실천한 것이다. 3 만에 이르는 마케도니아 병사중 2만을 남기고 1만 병사를 제대시켰다. 그 1만은 쇠약해지고 나이가 들어 실전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병사들이었다. 한편 사자왕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계획이 움트고 있었다. 그것은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 아 반도로, 다시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의 ... 그러기 위해서는 노명들은 제대시키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해야만 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전쟁은 힘들고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 었다. 더구나 몹시 지친 자들은 더욱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고 또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에 몸을 두고 지금까지 사자왕과 함께 싸우고 사자왕과 함께 죽는 것 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고, 그런 긍지를 단 한순간도 잊어 본적이 없었다. 비록 어쩔수 없는 혼자만의 착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열렬히 사자왕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이야 말로 마케도니아 군의 강대함이며 그렇기 떄문에 지금까지 필설로 다할수 없는 고난에 도 견디며 살아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젠 쓸모가 없어졌으니 그만 돌아가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게다가 노 골적으로 페르시아의 젊은 병사가 마케도니아 병사와 똑같은 모습으로 행진하는 것을 똑똑 히 보고는, 그리고 그들이 후계자로 불려지는 것을 알고서는... 진작부터 사자왕의 동방병에 는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불만을 품은 것은 제대를 명받은 자들만이 아니었다. 잔류 병사들의 심경도 마찬가지 였 다. 제대 군사들에 대한 처우을 생각할수록 내일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군 조직 중에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입장이, 가장 신뢰되어야 할 그들의 셀력이 조금씩 수가 줄고 비율이 감소하여 힘이 경감되어 가는 현실이 떠나는 자에게도, 남는 자에게도 무엇보 다 견다기 힘든 괴로운 일이엇따. 그리고 그것이 틀림없이 알렉산드로스의 징의이며 의도적 인 방침이기 때문에 불복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모두 불만을 드러냈다. 몇 년 간 참아 왔던 불만이 한계를 넘어 폭 발했다. 한꺼번에 복받쳐 나왔다. "대왕은 우리를 뭘로 생각하는 거지?" "돈만 주면 끝이야?" "평소에 말했던 그 뜻은 어디에 갔어!" 어조가 격해졌다. 마침내는 통렬하게 비난하는 이도 나왔다. "아! 이제 알았어. 부왕 필리포스를 버리고 그깟 아몬신이나 애비로 섬기면 되겠군. 페르 시아인하고 같이 어디라도 가는게 낫겠어." 마케도니아의 고참 병사들은 선왕 필리포스 시대부터 양성되었으므로 아직도 선왕을 경애 하는 자가 많았다. 사자왕이 "아몬신만니 나의 아버지"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어 이없어했고, 페르시아병은 원래부터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이런 비난은 마케도니 아 병사들의 불안을 단적으로 나타낸것이었지만, 동시에 알렉산드로스의 마음 아픈 부분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뭣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군중의 불만의 소리를 듣고 연단에 섰지만 통렬한 비난은 멈춰지지 않았 다. 이렇게 불손한 행동은 지금까지 없었다. "무례한 놈들!" 알렉산드로스는 너무난 흥분하여 연단에서 뛰어내려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병사들을 색출해 냈다. "불한당들은 체포하라. 이놈하고 이놈, 이놈도!" 왕의 시종이 왕명에 따라 몇 명을 체포했다. 사형이다. 즉시 처형하라." 군중은 일순간 기가 꺾였다. 그러나 잔잔한 물결처럼 다시 불만의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조금씩 퍼져 갔고 높아져 갔 다. 원망, 분노, 절망... 설기마저 감돌았다. 이들이 한꺼번에 폭도로 변한다면 사자왕의 목숨 을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헤페스피온도, 크라테레스도, 중신들은 대부분 오피스를 떠 나 있었고 왕을 수호할 근위병은 스무명도 채 안되었다. 칼을 빼지 않았던 것은 그래도 대 왕에 대한 경애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재빨리 냉정을 되찾아싿. 그리고 다시 연단에 서서 여느때와 변함없는 말 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용사들이여!" 군중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만큼 정적이 감돌았다. 그것을 깨고 알렉산드로스의 목소리가 퍼졌다. "마케도니아의 용사들이여!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가라. 나는 말리지않겠다. 마음 대로 해라. 하나 마케도니아의 용사들이여, 그대들에게 귀가 있다면 들어 보아라." 일동을 응시하며 차근차근 말을 시작 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듣는 군중에게 사자왕의 오 른쪽 눈동자가 한층 더 파랗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부왕이 통치하던 시절부터 말하겠다. 그 무렵의 제군들은 모두 다 불쌍한 모스 이 었다. 정해진 거처도 없고 들짐승 가죽을 걸치고 몇마리 안 되는 양을 치며 근근히 살고 있 었다. 그런 제군들을 모아서 용사로 변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바로 나의 아버지 였다. 마 케도니아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고 제군들은 지배당하던 자에서 지배하는 자로 바뀌었으며 트라키아는 제군들의 영토가 되었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테살리아인도 제군들앞에 엎드릭게 되었다. 테배도 굴복했고, 아테네도 마케도니아의 힘을 인정했다. 그리스 전체가 마케도니아 를 매우주로 받들게 되었으니 제군들이 부왕르 경애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부왕 이 제군들에게 배푼것은 여기까지이다. 내가 부왕에게 물려잗은 것은 60달란츠의 금화와 500달란트의 빚이 전부였다. 듣던 대로 마케도니아군은 강했지만 주위의 압박을 받으면 그 시절의 군대로는 잠시도 버틸수가 없었고 여전히 취약했다. 그러나 마침내 헬레스폰투스를 건너서 몇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이집트를 제압하고 다시 시리아를, 페르시아를 수하 에 넣었고 인도에까지이르렀다. 이 모든 나라가 제군들에게, 그리고 마케도니아에게 한복했 던것이다.전복지의 통치는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제군들도 쓰디쓴 체험으로 잘 알것이다. 수 많은 방겻에도 우리는 지배를 지켰고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모든 것이 제군들의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제군들만이 진정한 지휘관인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라. 수많은 고난을 겪어 온 지금 내손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 왕의 옷과 왕관과 가슴에 달린 쓸 모없는 리본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제군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걸치고, 제 군들과 같이 잔다. 그리고 잠네서 깨어나면 언제나 제군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낸 몸도... 보고 싶다면 보여 주겠다. 만신창이, 상처없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모든 게 제군들을 위해서, 제군들의 친형제, 가족들을 위해서 흘린 피의 흔적이다. 언제어느때라도 내자신을 의해서는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마케도니아를 의해서 였다. 전사자를 위해서 성대한 장례 식을 치러 주었고, 살아남은 자를 의해서는 많은 포상을 내렸다. 제군들의 공적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대로다. 그리고 소리 높여서 알렉산드로스의 승리와 영광을 마케도니아인에게 알 려 주기 바란다. 또한 지금도 전쟁에 견딜수 있고 건강한 자는 조금더 남아서 싸워 줬으면 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등을 돌리고 싶으면 돌려도 좋다. 어디든 도망가서 왕을 적진속 에 두고 왔다고 떠벌려도 좋다. 그리고 다시들지승 가죽을 입고사는 집도 없는 불쌍한 마케 도니아인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지!" 말을 마치고 한번더 병사들을 노려본후 훌쩍 몸을 돌려 군중들만 남겨졌다. 측근인 수호병 이외에 뒤를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입이 열리 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한숨만이 새어 나왔다. 사자왕의 웅변을 들은 병사들의 가슴에는 감동이 물결쳤고 몹시 기뻤다. 그러나 이상하게 도 가슴 한구석에 석연찮은 응어리가 만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한동안 초연하게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서서히 두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흩어 져 어디론가 갔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엇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할수 있는 정도라면 소박하고 충실한 마케도니아 병사드이 그렇게 까지 대왕에게 반항할 리가 없지 않 겠는가. 알렉산드로스는 우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순박한 병사들에게 괘변을 늘어놓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진심을 호소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왜 새삼스럽게 밝혀야만 햇나 하는 씁씁한 생각이 마음속에 남았다. '나는 마케도니아를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내가 세계의 맹주가 되는 순간 내 곁에 있는 이는 언재ㅔ나 마케도니아인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지언정 알렉산드로스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페르시아인을 중용하는 일이 있어도 그성느 하나의 방편이며, 마케도니아인은 자신의 심중을 당연히 헤아려 줄 것 이라고 생각했다. 회를 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종잡을수가 없었다.출발점이'마케도니아를 위함'이었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확신 의 근거가 거기에 있다 하더라도 결과가 나빴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대왕의 생각이 그대 로 마케도니아 병사의 생각이 될 수 는 없으며 엄연히 입장이 다르다. 더구나 마케도니아를 위해서 라고 말하면서 현실적으로는 페르시아인을 중용하고 있지 않은가? '에피고노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아테네에게도 꽤나 너그럽게 베풀고 있다. 세계의 맹주를 목표로 한다면 어차피 마케도니아는 그 일부 밖에 될 수 없다. 중요한 일 부라고 하더라도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대왕의 의 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막을수 없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박사로 들어갔고 뜻이 맞는 측근과 페르시아인만을 불러 놓고 독자적인 방침을 강했한다. 즉 새로운 군제실시였다. 페르시아인의 중용문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지지 않는다.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알렉산드로스의 가슴은 다시 투지로 불탔다. 히파시스강 하반에서는 아군 병사들의 반항 에 인도 침공을 단념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설령 마케도니아병사 전 원이 탈락한다 해도 그들을 대신할 군사는 이미 전비되어 있다. 바로 에피고노이, 후계자들 이다. 모든 마케도니아 병사가 그렇다 해도 중신들까지 모조리 떠나지 않을것앋. 그 이상의 이 탈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타격이 있다 하더라도 사후의 대책이 전혀 세워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괴로운 쪽은 대왕에게 거역한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아닐까. 전장의 용장은 평상시의 심리전에도 뛰어났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병사의 반항에 대해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했다. 마케도니아 병사 앞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야기를 나눌기회도 주지 안았으며 오히려 1만명의 제대 명령을 기정 사실로서 추진해 갔다. 사흘 밤낮 동안 침묵의 승부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사자왕이 이겼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마치 유순한 양떽 축사 입구에 몰려 들 듯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알 렉산드로스의 막사앞에 하나 둘 끊임없이 모여들어 무기를 버리고 엎드렸다. "용서해 주십시오. 대왕님." "버리지만 말아주십시오." "어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사자왕! 그자태를 보여주십시오." 어느새 1000명도 넘는 집단이 되어 울면서 호소했다. 이들이 그렇게 늠름하던 병사들의 무리인가 의아스러울 만큼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 대와의 자애를 빌었다. 아렉산드로스는 곧바로 복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한 병사가 나와서 호소했다. "대왕이시여 우리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슬퍼하고 있는 이유는 단한가지, 대왕께서 페르시 아인을 동포라고 부르며 후하게대하는 것, 단지 그것 뿐입니다. 대왕은 툭하면 페르시아인의 어깨를 끌어안고 입맞춤까지 해주십니다. 마케도니아 병사는 지근까지 그런 대우를 받은 적 이 한번도 없습니다." 확실히 페르시아인에게 하듯이 어깨를 안고 뺨에 입술을 맞추는 그런 과장된 태도는 마케 도니아 병사들에게 는 보여주지 않았다. 버릇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군. 나는 제군 모두를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동포보다 더 믿 을수 있는 친구로 믿고 있다.신도 굽어 살피실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드 높은 기상을 보여 다오." "대왕님 만세!" "마케도니아여 영광 있어라!" 울려 퍼지는 환호 속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병사들과 어깨를 끌어 안고 수염투성이인 뺨에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 화해가 이루어졌다. 1만 명의 마케도니아 병사는 예정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 었고 나머지는 사자왕의 진영에 남아서 한층 더 충성하게 되었다. 사자왕은 어느때 보다도 성대한 향연을 베풀어 마케도니아 병사의 마음을 위로했다. 대왕 을 중심으로 먼저 마케도니아 병사가 둘러싸고, 페르시아인은 그 바깥쪽에, 다른 부족은 다 시 그 바깥쪽에 배치시켜 특히 신경을 썼다. 이정도의 배려에도 마케도니아 병사는 나름대 로 만족감을 느꼈던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제대하는 맠도니아 병사 중에는 이미 동방 여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진 자도 많이 있었다. 집단 결혼의 결고로서 임신한 여자도 적지 않았다. 사자왕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수당을 지급한 다음에, 원칙적으로 단신으로 귀국하도록 조치했다. 대부분이 고국에 가족을 가진 몸으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들 사이에 도 성가신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남겨진 여자에게는 위로금이 지급되었다. 사내아이는 마케도 니아의 젊은이로서 훌륭하게 키울 것을 대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내가 어엿한 청년으로 키워서 너희들의 아버지와 만나도록 해 주겠다." 대왕은 그렇게 약속했다. 이러한 배려는 합동 결혼식을 거행한 이상 어차피 당연히 마련해 놓았어야 할 대책이었지 만,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마케도니아 병사의 반란이 사자왕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다. 크라테레스에게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과 함께 귀국하도록 명령했다. 고참병들을 버 리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런 개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케도니아 병사 들의 심정을 생각해서 취한 조치였으나 언제나처럼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는 그것 하나만은 아니었다. 예리하게 노려보는 눈빛에 그것이 숨겨져 있었다. 첫 번째는 실력있는 크라테레스를 펠라로 보내어 마케도니아와 그 부변을 굳건하게 만드 는 일이었다. 출진해서 이제 10년, 사자왕 자신이 귀국해서 내우외환은 일소하고 조국의 안 보를 다지는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대신할수 있는 장군을 보내어 마케도니 아는 물론이고 트라키아, 테살리아, 그리고 그리스 본토를 통괄할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아울러 안티파트로스를 소환했다. 고국의 통치는 안티파트로스를 재상에 임명하여 일체를 맡겨 놓고 있었으며 이 일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안티파트로스는 유능하고 충실하지만 태후와의 관계가 최근들어 부쩍 악화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에 대해서 변함없는 애정 을 갖고 있었지만 공인으로서는 신용하지 않아, 내정에 대한 태후의 간섭에 대해서는 "열 달동안 배를 빌린 대가치고는 좀 비싸게 드는구나"라며 곤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 찌되었건 어머니의 말 속에는 들어야 하는 것도 몇가지는 있었다. 이런때에 안티파트로스를 장군으로 국외로 불러내고 크라테레스에게 내정을 맡기는 방법 도 하나의 책략이겠다는 생각과, 원정지 에서는 항상 사이가 좋다고 할수 없는 크라테레스 와 헤페스티온 두 사람을 때어놓는 것도 또다른 목적 이었다. 나이 많은 안티파트로스에게 는 한직을 주어 위로했다. 물론 다소의 번민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념에 근원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렉산 드로스는 깨닫고 있었다. 왕에게는 '내가 어떻게 마케도니아를 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무슨일을 해도 결국은 마케도니아의 이익과 결부될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이 원하듯 이 오로지 마케도니아만을 사랑하고 있으며 대사는 성취하지 못한다. 목표를 앞두고 물러설 수 없는 자신을 알렉산드로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로워할 필요 없이 포기해 버리자. '결국에는 마케도니아를 위해서다' 라는 생각이 보든 것을 가려 줄 것 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로 귀환하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렸다. 다음 목표는 이미 정해졌다. 수십척의 대형선이 머지않아 준공될 것이다. 이제 곧 알렉산 드로스의 대선단이 탄생한다. 그 선단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의 하구를 나와 페르시아만 서안으로 향한 다음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할 것이다.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광활한 지역인 것 같다. '얼마나 넓을까, 어떤신기한 풍물을 볼수 있을까? 자원이 풍부한 곳일까...' 아직도 대략적인 지도밖에 없었다. 선단은 반도를 돌면서 아마도 홍해로 들어가게 될 것 이다. 상륙한 군사들도 광대한 대지를 횡단하여 아마 홍해에 이를 것이다. 지역이 광대하다 면 군대는 셋으로 나누어 알렉산드로스 자신이 가운데를 가고 부쪽은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남쪽은 헤페스티온에게 맡기자. 동해의 건너편에는 이집트가 있고, 다시 그 건너편에는 끝조 차도 알 수 없는 마우리타리아(아프리카) 황야가있는 것같다. 해로는 네아르코스의 것이다. 하나하나 지도를 만들면서 지배 지역을 넓혀간다. 세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가슴이 두근 거려서 견딜수가 없다. "어때, 헤페스티온." 이 친구에게는 모든 야망을 털어놓았다. "굉장합니다. 정말 사자왕답습니다." "인도보다 재미있어." "인도에서 철퇴한 것은 역시 신의 계시입니다." "그래, 이국에 들어가면 다시 새로운 발견이 있을거야." "정말입니다." "새로운 철학이 있어." "철학."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답다. "그래, 인도의 철학자들은 정말 자신을 버리고 있었지. 물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목 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았지." 카라노스가 좋은 예였다. "신을 보고 있는 걸까요?" 일체의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몸안에 신이 사는 것일까. "나는 아직 신을 만나지 못했어." "선한 것을 추구할 것, 진실한 것을 추구할..." 계속해서 추구하면 그곳에 신이 있지 않을까.알렉산드로스가 헤페스티온의 말을 가로막았 다. "인도 승이 재미있는 말을 했었지." "카라노스 말입니까?" "아냐, 그게 아냐. 브라만승이야." "네에?" "자기 완성을 추구할 것과 세계 구제를 실현할 것, 그 두 가지가 합치했을 때 신이 나타 난다고 말이야. 그놈들 말투는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런 뜻이었을 거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 한 관조의 극치와 비슷해." 그것은 마침내 대승과 소승으로, 두 개의 불교로 분리되어 가는 길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 해탈과 구제와... "자신을 향상시키면서 민중을 구할수 있다면 확실히 신과 가까워질텐데." 알렉산드로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헤페스티온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까다 로운 문답에 빠질때가 아니다. "헤페스티온." "예?"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다오. 내가 신을 만날때까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몇 번의 배신이 있었다. 그러나 헤페스티온만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사 자왕은 친구의 눈 속을 들여다봤다. 똑같은 눈빛이 이상하게 빛나더니 다시 여느때의 눈빛 으로 되돌아 왔다. 가장 강한 자에게 기원전 324년의 늦여름, 이미 고원에는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알렉산드로스는 메디아 지방의 대도 시 엑바타나로 들어갔다. 6년전 달레이오스를 사로잡기 위해 입성했던 적이 있는 낯설지 않은도시였다. 고지에 위치하는 엑바타나는 하절기에는 지내기가 괜찮았다. 페르시아 왕가의 여름용 궁정이 여기에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가혹한 원정으로 몹시 지친 사자왕은 사막 지대 도시를 피해 이 땅에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각지에서 심기에 거슬리는 사건이 일어나 그 처리에 쫓기다 보니 엑바타나에 오는 것이 늦어지 고 말았다. 도시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한기가 들었다. 기후가 좋고 나쁨에 따라 행동이 좌우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굳 이 우회로를 택한 것은 예전에 정복한 동방 지역에 지배자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쁜 일이라고 하면 바르시나가 낳은 아들을 처음으로 대면 한 것이다. 세 번째 생일을 지나 한참 귀여울 때였다. 전장의 맹장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정에 희색이 만연해졌다. "영리하십니다." "그래, 몸은 튼튼하냐?" "예." "그럼, 이제 펠라로 가거라. 태후도 보고싶어하니 펠라궁정에서 왕자로 키워라." 일반적인 명령을 듣고 바르시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금만 더 박트리아에서... 아버님이 그리 오래 사실 것 같지 않습니다." 바르시나는 사자왕의 곁을 떠난 뒤 줄곧 아버지의 집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노령인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 켜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왕명에 거역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쯤은 그녀 자신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 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구실일 뿐이었다. "왕자는 왕궁에서 자라야 한다." "로크사네님이 계십니다. 스타테이라님도..."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바르시나는 새로운 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몸에서도 왕자가 태어날 것이다. "힘있는 자가 왕자가 된다. 나도 그랬다. 이 녀석 잘생겼구나!" 아이를 안아서 머리위로 높이 쳐들면서 말했다. 놀란 헤르쿨레스가 울기 시작하자 시녀들이 손을 내미는 거 을 만류하고 바르시나가 왕자를 받아들고 가슴에 안으며 물었다. "펠라로는 언제 돌아가십니까?" "머잖아서, 한번은 돌아가야겠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달랐다. "예?" "아직은 이루어야 할 일이 좀더 남아 있다." 바닥에 펼쳐진 지도로 눈을 떨구었다. 어디에서나 대왕의 방에는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있다. "대왕님께서 귀국하실때에 불러주신다면 맹세코 바로 왕자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음..." 바르시나의 염려를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펠라의 정세는 반드시 바르시나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로크 사네와 스타테이라에게도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마. 아무튼 박트라는 펠라에서 너무 멀다. 불렀을 때는 바로 와야 하느니라." "허락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왕자의 어머니라고 해도 바르시나 자신은 정식 왕비의 입장이 아니고, 일단은 자진해서 대왕의 곁을 떠날 의사를 밝혔던 과거가 있다. "좋다. 내가 명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신경쓸 것 없다." "아버님의 병환을 보고... 시리아 근처라면 몸을 맡길 곳이 있습니다." 한때는 페르가몬에 머물렀었다. 거기에서 에게해의 동쪽으로 가면 펠라는 그리 멸지 않다. "페르가몬에는 내 지기도 많이 있지. 아버님께는 안부전해 다오." "틀림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만나고 싶구나." "언제라도 오십시오" "그래, 알았다." 대답하고 다시 한 번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대답과는 달리 바르시나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있는 박트라 까지 길을 되돌릴 여유는 없었다. 바르시나는 열흘간 에바타나에 머물렀다가 다시 박트라로 돌아갔다.로크사네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스타테 이라도 파리사티스도 대왕의 비로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았다. 여자들의 질투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왕자를 낳은 사람에게는 살벌하게 대한다. 유리하다면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지만 그만큼 질시도 받기 쉽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 같아 웬만큼 권세욕이 없으면 대항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바르시나는 그런 성격의 여자가 아니었다. '헤르쿨레스라고 해서 안전할 수는 없어.' 바르시나는 왕자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자신의 아들이 편안한 일생을 보내기를 바라는 것은 바르시나 만이 아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틀림없이 그것은 이루어질수 없는 바람일 것이다. 헤르쿨레스의 용모는 벌써 대왕과 닮아서 늠름했다. 엑바타나의 궁전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사자왕은 보통때보다 한층더 성대하게 모든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쳐서 제사를 지낸다음 무예와 음악, 경기회를 개최했다. 일정은 열흘 남짓을 예정하고 있었다. 경기를 관람하는 대왕 곁에는 오른편에 로크사네, 왼편에 스타테이라와 파르사티스가 앉아있고 중신들이 그 바깥을 둘러싸고 잇었다. 승자에게 환성을 보내면서 술을마시는 것도 평상시의 습관대로였다. 헤페스티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엑바타나에 오자마자 건강이 나빠져서 누워 있었던 것이다. 경기회도 이레째로 접어들어 사자왕은 모처럼 왕비들과 중신들을 상대로 미에자 학사에서 단련했던 무렵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무렵의 친구들도 이젠 눈에 띄게 줄어들어 버렸다.' 이런 회상을 하면 기분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클레이토스의 우발적인 죽음을 생각할때는 정말 괴로웠다. 요즘은 꿈에 자주 클레이토스의 망령이 나타났는데, 오랜 친구 는 언제나 원한 어린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시종이 급하게 뛰어와 귓속말을 했다. "송구하옵니다만..." "사실이냐?" 이 한마디만을 하고 알렉산드로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떨치며 취기를 쫓았다. "무슨일이라도..." 측근들이 차마 묻지도 못하고 어물거렸다. "헤페스티온이 심상치 않아." 이렇게 대꾸하고는 몸을 뒤로 돌렸다. 마음이 초조해 시간이 아까웠다. 헤페스티온의 거처는 그리 멀지 않았 다. 쉬지 않고 달렸다. 알렉산드로스는 서둘러 가면서 머리 속으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켰어. 얼마동안 휴식을 취하게 해야지. 지금하는일은 아무에게나 맡기자. 프톨레마이오 스로 할까, 그렇지 않으면 최근 눈에 띄게 두각을 드러내는 셀레우코스를 기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아니 면 안티파트로스와 함께 펠라에서 오는 카산드로스에게 전군 지휘를 맡길 좋을 시기일지도 모르지.' 카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이다. 노장의 공헌에 보답하는 데는 다른 어떤 보상보다 카산드로스를 중 용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한동안은 헤페스티온을 제일선의 격무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 하게 해주자고 생각했다. "헤페스티온!"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목소리로 부르며 친구가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시종이 뛰어나와 맞아 주었다. 그런데 주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헤페스티온은?" 그들을 헤치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헤페스티온!"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불렀다. 의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큰소리를 자제시키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헤페스티온은 잠들어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며 생기를 잃어 거무스름해져 있었다.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 다. "왜 그러느냐?" 옴몸으로 껴앉으며 쓰다듬어싿. 갑자기 몸을 돌려 의사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살려내라!" "그건..." "왜 죽였냐?"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왜 안 불렀느냐?" "아닙니다. 오후까지 의식도 맑았고 대왕님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셔서..." 대답없는 얼굴을 응시하며 뺨을 때렸다. 오열이 터지고 점점 더 소리를 높여 울부짖었다. 초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죽여라! 너는 사형이다!" 의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용서해 주십시오." "안 돼, 바로 처형해라!" 시종들이 화급하게 데리고 나갔다. 사자왕이 칼집에 손을 대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다가 벽을 치고 바닥을 차고 자신의 목에 칼을 대기도 했다. 이것도 시종들이 황급 히 만류했으나 이성을 잃고 미쳐서 날뛰다가 지치면 다시 통곡을 하다가 그렇게 하루 종일 헤페스티온의 유해 와 있었다. 어디에서인지 모르지만 독살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의사는 다시 한 번 사자왕의 심문을 받았다. "고열인데도 차가운 술을 계속 마시셨습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나..." "왜 말리지 않았느냐?" "말렸습니다." "말렸는데 왜 마셨지?" "아무리 말려도 제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독살당한 시체는 사후에 흉측한 증거가 살갗에 나타난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헤페스티온의 피부가 언제 까지나 깨끗한 채로 있었던 것은 의사로서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암살 혐의는 풀렸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리지 않은 죄는 무거웠다. "이 무능한 놈이!" "용서해 주십시오." 엄한 태형은 피할 수가 없었다. 병사드은 그런 처사를 의아해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며칠 동안 식사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오로지 비탄에 빠져 있었다. 헤페 스티온은 틀림없이 중신이었지만 그 진가는 반드시 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예전에 사자왕 자신이 페르시안 인의 질문에 "크라테레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친구이고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라고 대답했듯이, 그는 틀림없는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의 친구였다. 이 진실은 공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며, 더불어 활약의 범위 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뜻을 헤아린 헤페스티온이 꺼림칙한 일에, 모략과 암살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경우에 있어서나 철학에 있어서도 헤페스티온은 알렉산드로스의 주변에서 확인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신의 아들 같은 존재라는 것을 믿는 것이 헤페스 티온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진가였다. 대왕의 연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물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당시에 남색은 일상적인 일이었으므로 연인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연인이 었을 것이다. 왕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그저 성적 욕망을 채워 주고 아들을 낳으면 충분했고 마음의 친구는 되 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경우 지적 수준이 달랐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 부분을 채워줘야 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헤페스티온은 연인이며, 친구이며, 전우이며, 같은 신을 믿는 신도였다. 그의 갑작스런 죽 음은 바로 또 한사람의 알렉산드로스의 상실이며 자신의 일부를 잃는 일과도 같은 통탄스런 사건이었다. 역경어세의 회복이 빠른 알렉산드로스도 이때만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성대한 장례식도 슬픔을 더하게 할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산악지에서 설치고 있는 코 센족 정벌이 기분 전환이 되었다. 헤페스티온을 위해서 몰살을 감행했고 산 제물이 바쳐진 피의 제전이 되었 다. "엑바타나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구나."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알렉산드로스는 예정대로 바빌론으로 행했다. 멀리 이집트에서 도착한 디노크 라테스가 새 도시 건설을 맡겨 두었던 기술자와 동행하여 장대한 도시 조성을 설명하며 대왕의 슬픔을 위로했 다. 게다가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에 사절단이 찾아왔고 이 일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사절단은 카르타고, 이디오피아, 이베리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사자왕의 위업은 모든 땅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그 너머에도 드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갈 길은 반만 남았어." 사자왕은 드디어 타고난 투지를 되찾았다. 엑바타나에 있을 때에 카스피해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궁금한 점이 많았다. 광활한 해역은 어디에 맞닿아 있는 것일까, 오케아누스로 들어가는 만일까, 아니면 몇 개의 강을 삼켜서 내뱉은 내해일까, 몹시 궁금했다. 그 런 조사에도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적잖게 움직였지만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답사는 가 신에게 맡기고 자신은 주저하지 않고 아라비아 반도를 향해 떠났다. 이쪽이 더 큰일이며 범위가 넓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풍요로운 지역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홍애, 이집트, 그리고 지중해 끝에는 헤르쿨레스 기둥이라 불리는 해협이 대해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오늘날로 말하면 지브롤터 해협이다. 꿈은 점점 더 부풀어 갔다. 유프라테스 하안에 있는 대도시 바빌론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 자체가 첫 걸음이었다. 이 시기에 여러 가지 예언이 난무했다. 아포로드로스라는 한병사가 동지들이 억울한 혐의로 계속해서 처형되어 가자, 불안을 느끼고 점술사인 아우 에게 편지로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했다. 그러자 그의동생은 "누구를 가장 두려워하느냐?"라고 물어왔다. 아포 로드로스는 사자왕과 헤페스티온의 이름을 들었다. 헤페스티온이 죽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 점술사는 제물의 간을 확인하며 먼저 헤페스틴온을 점쳤는데,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 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 헤페스티온의 죽음이 현실로 되었다. 그 다음 마찬가지로 같은 제물을 바쳐서 간을 파헤치며 사자왕을 점쳤는데, 이쪽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 답장을 받은 아포로드로스는 먼저 헤페스티온일이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 충성심을 보일 기회라고 생각하 여 점술사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증거로 사자왕에게 보고 했다. 사자왕은 편지를 읽어보고 나서도 태연했다. "정말 대단한 점술사로구나." "예?" "네 충성심은 잘 알겠다. 하지만 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하고 크게 웃었다.. 점술사가 말한 대로 '왕이 너를 의심하는 일은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라는 의 미였다. "신변 보호에 신경 쓰셔야..." "알았다. 그러마." 애초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또한 바빌론으로의 입성에 대해서는 신전의 신관들이 입을 모아 대왕의 위험을 미리 알렸다. "신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서쪽에서 바빌론에 입성하는 것은 흉하니 피해야 합니다. 아끼는 친구를 잃었다고 해서 자포자기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예리한 이성의 소유자 였지만 신의 계시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알겠구나." 양미간을 찌푸리며 뱉은 말은 늘 가까이에 두고 즐겨 읽는 일리아스 안에서 영웅 아킬레우스가 친구 파트로 클로스의 죽음을 맞아 "이렇게 슬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먼저 죽었으며 좋았을 것을"하고 탄식하는 대목을 넌지시 빗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자신과 헤페스티온의 사이를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에 견주었던 것 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헤페스티온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이런 식으로 호소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슬픔의 깊이는 확실해도 말은 액면 그대로의 본심은 아니었다. 신관들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었다. 신전 보수 공사를 구실로 가만히 앉아서 상당한 이익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자왕이 바빌론으로 돌아오면 규율을 재점검하게되고 신전 수리도 실시하여 신관들은 부수입이 생기 지 않게 될 터이니 사자왕이 바빌론에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 입성하는 것 을 저지하고 싶었던 신관들은 신의 게시에 그들의 입장을 반영했던 것이었다. 사자왕은 그 사실을 듣고 알겠노라고만 기분 좋게 대답해 주었다. 서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쁘다면 동쪽으 로 가면 된다. 바빌론을 그냥 통과하여 반대 방향으로 전진해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서쪽이 아닌 다 른 방향으로 바빌론에 입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쪽은 늪지로 뒤덮여 있어서 군사들의 전진이 쉽지 않아 결국 신의 계시를 어기게 되었다. "교활한 놈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도착했는데, 이 땅의 왕궁에는 그리스에서 온 사절단이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찾아왔고, 유 프라테스강에는 훌륭한 선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정박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 는 페케니아 선원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음속으로 '신의 뜻은 내가 갖고 있어'라며 불안을 단번에 지워버렸고, 언젠가 저 몹쓸 신관들의 음모를 분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새로운 결심도 했다. 그러 나 먼저 그보다 시급한 문제인 항구의 건설을 명령했다. 아라비아 반도로 갈 생각을 하면 점점 기대가 커져 갔다. 아직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 있는 것 같았 고 자원도 풍부한 듯했다. 배의 준공을 기다리며 정보를 모으는 한편으로 사자왕 자신이 조사를 진두 지휘하며 유프라테스강의 관개 공사에도 착수했다. 군사뿐만 아니라 국정에까지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 이정복자의 비범한 면이다. 몇 가지 계획을 입안하여 그 실행에 분주한 사자왕의 거처에 로크사네가 찾아온 것은 바빌론 왕국에 자리잡 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뭐냐?" 요즘은 그녀를 찾을 틈도 없었다. "곧 왕자가 탄생하십니다." 로크사네의 잉태소식을 들었지만 왕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를 터였다. "왕자라고?" "의사도 점술사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쨌든 몸조심 해야 하느니라." "예, 이름을 지어 주셨으며 합니다만." "생각해 보겠다." "아니 되옵니다. 지금 여기에서." 로크사네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자세히 보니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고 떨고 있는 것이었다. 미인인 만큼 오히려 더 무서웠다. 악마의 여신처럼 무섭게 비쳤다. 단단히 각오하고 찾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크사네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스타테이라님을 왕비로 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국왕의 결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4년 전 로크사네는 산악 부족의 우두머리에게서 확 실한 왕비로서 맞이하겠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새로 스타테이라와 파리사티스가 후비로 들어왔고 이들 모두 가 왕비였다. 이렇게 되자 왕비 중에도 서열이 없으면 곤란했고, 없으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었다. 파리사티스는 제쳐놓 더라도 페르시아 왕 달레이오스의 딸 스타테이라는 가볍게 대접할수 없었다. 여하튼 이 문제는 사자왕이 페르 시아 왕가를 계승하게 되면 그 근거가 되어야 할 결혼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빠른 시일 내에 스타 테이라를 정실, 즉 첫 번째 왕비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로크사네는 그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 으나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 말대로다." 대왕은 나무라듯이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최소한 왕자 이름이라도 지어 주셔야..." 로크사네는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결심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정실 문제는 양보 했으니 이 문제 만은 자신 의 원대로 했으면 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둔 이름이라도 있느냐?" 로크사네의 얼굴을 보니 세심한 부분까지 생각을 한 끝에 찾아온 것임을 알수 있었다. 여자들의 싸움은 골 치아픈 법이다.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다소의 타협을 택하는 편이 낫다. "알렉산드로스라고... 성인이 되고 나서라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약속만이라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나 불 안해서." 땅바닥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다. 이것도 작정하고 하는 몸짓일 터였다. "알렉산드로스라고?" "예." 로크사네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백해서 노골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점에서는 사자왕도 선왕과 아주 닮았다. 필리포스왕도 자신의 후계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 다. 이젠 10년이 지난 일이다. 그때 뭇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미 청년이 된 알렉산드로스만이 후계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도 아리다리오스와 아민타스가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결혼으로 태어난 왕자 칼라노스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필리포스왕은 "지금 그렇게 성급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도 필리포스왕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권력의 자리는 칼로 쟁취하는 것이므로 이름따윈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으로 로크사네의 기분이 진정된 다면 원하는 이름을 약속해 줄수 있었다. "그러면 옥새를 찍어 주십시오." 어쩌면 그렇게까지 신경을 썼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 말이냐?" "늘 바쁘셔서 만나 뵙기도 힘드니 나중으로 미루지 마시고 제발..." 대왕의 옷자락을 잡고 엎드리는 것이었다. "좋다." 약간은 머쓱해하면서 요구에 그냥 응해 주었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안티파트로스가 군사를 이끌고 펠라에서 바빌론에 막 도착했던 것이다. 시종의 종종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안티파트로스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알았다." 대왕은 한걸음에 안뜰까지 달려나갔다. "안티파트로스, 오랫동안 수고하셨소." 어깨를 껴안으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사자왕도 무사하시니 너무나 기쁜일입니다." 10년만에 보는 준장은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 등뒤에 서 있는 아들 카산드로스는 젊은 시절의 안티파트로 스와 쏙 빼 닮았고 한층 늠름해졌다. 알현 의식도, 환영주연도 베풀어진 그날 밤 늦게 펠라에서 온사자가 아무도 모르게 사자왕의 거처에 찾아왔 다. 누이동생 필리피아(저자주: 본명은 클레오파트라이지만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여왕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 해 이름을 바꾸었다)가 보낸 사자였다. 그녀는 에페이로스 왕과 결혼했는데, 이 결혼식장에서 아버지 필리포스 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 에페이로스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필리피아는 생모인 태후 올림피아스와 손을 잡고 고국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재상을 맡은 안티파트로스와는 정면에서 대립하는 상대였다. 그 필리피아가 두터운 서장과 함께 안티파트로스의 반역을 고발하려고보냈던 것이다. 지금까지 태후에게서 받았던 수 많은 참언은 적당히 흘려 들었지만 누이동생의 밀고에는 많은 증거가 제시되어 있었다. 믿기는 부 분도 없지 않았다. 남몰래 안티파트로스와 카산드로스 두 사람만 불러서 엄중하게 심문했다. "억울합니다. 왜 그런의혹이..." 안티파트로스는 횡성수설 대답했고 늙어서 그런지 변명도 시원찮았다. 원래 언변이 능란한 무장이 아니었고 머리 회전도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 대신 카산드로스의 변명이 훌륭했다. 하나하나 심문에 속시원하게 해명해서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무고함을 호소했다. "이제 와서 이런 연세에 그런 나쁜 마음을 가지겠습니까? 황송하오나 그게 사실이라면 대왕님께서 한창 원 정길에 계실때에 반역을 일으킬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언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고국을 아무 탈 없이 다스리는 일, 이보다 더한 충성의 증거가 있겠습니까?" "그래."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안티파트로스에게 사심이 있었다면 10년 전에 그 반역은 실현되었어도 되었을 것이 었다.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뻔뻔스럽게 바빌론까지 늙은 몸을 끌고 올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알렉산드로스의 마음은 늙어버린 중신의 모습을 대적하고 보니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한 달전 엑바타나에서는 또 한사람의 노장 파르메니온의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명에 따라 엑바타나에서 주살되었던 중신이다. 백발의 장군은 꿈에 나타날때마다 슬픈 듯이 서 있었다. 아들 필로타스는 마르지만 파르메니온에게 반역의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파르메니온의 뒤를 이어 수호 대장이 된 클레안 드로스가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 것을 생각하면 파르메니온이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수가 없었다. 지금 은 후회하고 있었다. 같은 실수를 두 번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누이니지만 태후와 한 패가된 필리피아의 밀고도 어 느정도 믿어야 할지 잘 모르는 일이고, 안티파트로스는 이미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 노인이 아닌가. 섣부른 판 단은 금물이니 좀더 펠라의 실정을 살펴보기로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무고함을 인정했다. "카산드로스, 정말 훌륭하구나!"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두둔하는 마음씨를 칭찬했다. "황공하옵니다." 안티파트로스에게로 눈을 돌리자, "헤페스티온이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다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라고 위 로의 말을 건넸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소." "정말입니다. 훌륭한 묘소를 만들어서 위로해 주십시오. 아몬 신에게도 보고하시고." 알렉사늗로스는 안티파트로스의 이말이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빨리 헤페스티온의 묘소를 세워야겠다고 생 각했다. 자신이 서쪽으로 떠나고 없을 때에 동방의 정복지를 헤페스티온이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빌 론에 묘소를 만들기로 했다 안티파트로스의 권유에 따라서 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둘러 시와 신전에 물어보니 아몬신의 뜻도 마차가지 였다. 영웅신으로서 제사지내기로 했다. '이로써 헤페스티온도 신이 되었다. 모든일이 순조롭다. 무서울 만큼...' 아몬신의 계시를 가져온 사자들을 치하하는 연회석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미열을 느꼈으나 흥분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심신이 흥분한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차가운 슬을 마셔서 목을 즐겁게 했다. 헤페스티온이 같은 증세를 호소했던 사실을 알렉산드로스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열이 고열로 변했다. 그러나 마음은 더더욱 흥분되어 갔고 계속해서 유쾌한 전갈이 날아왔다. 기분좋은 화제로 궁궐 내부가 활기 를 띠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다. 새로운 헤타이로들을 모아 느긋하게 허물없이 술을 나눠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것은 사자왕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이야기는 장황해지고 사자왕 자신의 전투담을 자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듣는 사 람은 따분했지만 사자왕은 수다스럽게 떠들고 뺨에 홍조마저 띠었다. 최근 며칠간은 특히 그랬다.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낸뒤에 으레 있는 주연에서는 더욱 엉망으로 취해서 아랫사람들의 술자리에도 거침없이 끼였다. 몸이 타는 불처럼 뜨거웠다. 차가운 술을 단숨에 비우고 거실로 돌아가서 목욕을 했다. 일단 잠들었다가 깨 어나자 아직도 어딘가에서 주연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을 낮삼아 계속해서 마셨다. 그리고 또 다시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고, 잠깐의 수면... 열은 여전히 높고 몸의 나른함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현기증을 느꼈으며 때때로 오한이 들었다. 체력에는 자신있는 대왕은 이런 증상들을 가볍게 여겼다. 신의 아들이 진실한 것을 찾아내려 하는데, 이런 멋진 시간을 마음껏 향유하지 않고 어찌 현세를 살아갈 보람이 있겠는가! 아무리 몸이 약해졌다 해도 신들에게 하는 기도도 거르지 않았다. 신에게로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은혜가 필요했기 때문에... 들것에 실려 신전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바쳤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런 와중에도 몇가지 명령을 내렸다. "너는 5000군사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하안을 내려가라. 나흘후 아침에 출발하라." "예." "알았지, 자네의 선단은 닷새 후에 출항이다. 게을리 하지 말고 준비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자리에 들어서도 이것저것 궁리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지시를 내렸다. 필여하면 들것에 실려 시찰을 돌앗 다. 그래도 차가운 슬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의사의 충고 따윈 조금도 듣지 않았다. 고열은 전혀 내려가지 않았고 발한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안색은 벌겋게 달아올랐으면서도 이상하게 거무스 름해지고 오한이 더 잦아졌다. "사자왕, 좀 쉬시오소서." 중신들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여느 때와 다른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몸의 열기는 마음의 열기에서 온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못다 이룬 꿈을 그리며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도취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용태는 더욱 악화되어갔다.이젠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지경이었다. 머리맡에 충신들을 불러놓고 회의를 열어 지시를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네아르코스에게는 여전히 출진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준비는..." "지체없이 잘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그러나 사자왕께서는..." "농담하느냐, 사흘후에 출항이다. 멋진 여행이 될게야." 의욕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네아르코스와 함께 기함을 탈 일정을 변경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들것 에 실려서라도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시킬 것이다. "..." 네아르코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유프라테스강은 지금이 항해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들었다." "분명 그렇습니다." "잘됐다! 아라비아해에서는 계피와 몰약(역주: 향수나 구강 소독 및 건위제 등에 쓰임)을 손에 넣을수 있다 던데." "듣자니 사막도 많은 곳이라던데..." 알렉산드로스는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그것마저 힘겹게 되자 아라비아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네아르코스에게 명령했다. 눈을 감고 듣다가 깜빡 졸고나서 다시 눈을 뜨면 "계속하게"라고 재촉했다. 잠은 혼수 상태같은 기미를 띠기 시작했다. 중신들이 대기실에 모였다. "페르디카스" 행정을 담당하는 중신을 가까이 불렀다.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해 주게." 출항을 앞두고 인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항이 몇가지 있었다. "예." 국왕의 옥새가 페르디카스에게 전해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한편 병사들 사이에는 "대왕이 위급하다", "이미 죽은 것 같다"는 등의 소문이 무섭게 퍼져 나갔다. 침실 창 문에까지 와서 대왕을 부르는 병사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겨우 눈을 뜨고 병사들의 불안을 들었다. "내가 직접 만나야겠구나." 의식이 희미한 채로 명령했다.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엄명이었다. 수많은 병사가 병실로 와서 열을 지어 침 대 곁을 지나갔다. 대왕은 말도 할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고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웠다. 가까운 시종이 대왕곁에 다가가서 왕권을 물려받을 후계자에 관해 물었다. "만일의 경우 대왕의 왕국은 누구에게?" "가장 강한 자에게." 이것이 알렉산드로스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기원전 323년 6월 10일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저무는 태양을 따라 사자왕 알렉산드로스는 눈을 감았다. 서 른 두 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인도 승려 카라노스가 예언했던 것처럼 이로써 두 사람은 바빌론에서 재회했다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이상한 말에 조금이나마 신경을 써야 했었다. 독살이라는 의혹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만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마 헤페스티온도 같은 말 라리아로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병이 들어서도 몸을 함부로 했던 것이 죽음을 자초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헤 페스티온의 사후 알렉산드로스는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일생동안 사자왕이 자신의 죽음을 재 촉했다는 인상을 씻어 버릴수가 없다. 병사들의 통곡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신들은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앞으로의 대책이 세워지지않았 다. 앞일을 몰라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두 달후 로크사네가 아들을 낳았다. "대왕의 환생"이라며 소리높여 선언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왕의 옥새가 찍힌 증서를 높이 쳐들고 그 자리에서 갓 태어난 왕자에게 알렉산드로스 4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로써 처절한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피로 피를 씻는 후계자 쟁탈 투쟁이었으며, 일단락 지 어지기까지에는 4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다. 에필로그 알렉산드로스가 지배한땅과 바다는 매우 광대했다. 부하 장군들이 사병을 갖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는 각지에 태수를 두고 그 밑에 상당한 군사를 두어 통치를 맡겨 두었다. 대왕의 죽음과 함께 장군들의 봉기가 일기 시작했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장군들은 크라테레스, 안티파트로 스,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페르디카스, 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 리시마코스 등이었다. 대왕바로 밑의 부 장군 격이었던 크라테레스, 오랫동안 마케도니아의 재상을 맡았던 안티파트로스, 그리고 대왕의 동료로서 많은 공적을 쌓은 프톨레마이오스, 페르디카스 등의 대두는 당연한 결과라 해도 될 것이다.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 산드로스는 젊은 나이이지만 전에부터 눈에 띄는 수완을 보였었다. 그리고 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 리시마코 스는 모두 다 사자왕의 중신이었으나 오히려 대왕의 사후에 이름을 역사에 드러낸 인물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니다. 후계자는 왕가의 혈육에서 나와야 한다는 대의 명분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었고, 또 그렇지 않고서는 폭 넓은 지지를 얻을수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알렉산드로스 4세로 만든 로크사네는 페르디카스 등의 지지를 얻 어 앞으로 화근이 될지도 모르는 스타테이라와 파리사티스를 죽여 버렸다. 스타테이라는 페르시아왕 달레이오스의 공주이며 파리사티스도 페르시아왕가의 지체 높은 딸이었다. 수사의 축하연에서 대왕의 아내로 받아들인 여자들이며, 적어도 스타테이라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알렉산드로스 의 첫 번째 왕비였다. 스타테이라는 잉태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포박되어 우물에 빠져 죽게 되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로크사네는 현장에서 스타테이라의 죽음을 지켜보고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크사네는 산악 부족 출신 이었지만 미모는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미모에 배어있는 섬뜩함은 제아무리 역전의 용사라 해도 움츠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헤르쿨레스도 살려 두면 안 된다.' 로크사네는 심중에는 이런 불길한 생각도 불타 오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애첩 바르 시나가 낳은 아들 헤르쿨레스는 벌써 네 살이 되었다. 대왕이 그렇게 귀여워하며 안았던 유일한 아들이며 왕 위를 계승할지도 모를 존재였다. 그러나 바르시나는 멀리 소아시아 해변의 도시 페르가몬에 있었고 로크사네의음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크 사네로서도 그 것은 먼 훗날의 일이며 당장 시급한 일은 바빌론을 중심으로 동방의 세력을 자기편에 끌어들이 는 것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군의 중심을 이루는 마케도니아 본국의 병사들 사이에서는 마케도니아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옛날부터 뿌리깊었다. 그들은 왕가의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아리다이 오스에게 눈을 돌렸다. 이 이라다이오스를 필리포스 3세라고 부르며 크라테레스가 후견인이되고 안티파트로스 가 통치에 나선다는 책략을 들고 나왔다. 아리다이오스는 선왕 필리포스 2세의 애첩의 몸에서 태어난왕자로, 사자왕의 이복형이며 정신 지체라는 장 애를 갖고 있어 왕으로서의 자질에는 큰 문제가 있으나, 그 때문에 이전부터 여러 세력에 이용당하여 꼭두각 시로 추대되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이번에는 영예롭게도 선왕 필리포스 2세의 이름을 계승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4세와 필리포스 3세, 이름만으로는 부족할게 없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왕이 옹립한 셈이지 만, 한 사람은 어린아이이고 한 사람은 무능했다. 누구라도 그들이 오래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민첩하게 파악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집트를, 리시마코스는 트라키아를, 레오나테스는 프리지아 를 태수라는 직책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굳히는 일에 전념했다. 셀레우코스도 기병 대장의 지위를 이용해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대왕의 유체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또하나의 중대사 였다. 성대한 장례식을 관장하는 일은 후계자가 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자왕 츠근에 있던 페르디카스는 유체를 왕도 펠라로 옮겨 그곳에서 대왕에 상응하는 장의를 거행할 예정 이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가 사자왕의 유체를 페르다카스 같은 놈에게 맡길수 없다며 이송하는 도중에 탈취하 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 그리고 사자왕의 위대함을 생각하면 소박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입장으로 짐작하면 매우 성대한 장의를 거행하여 화려한 사당을 만들어 유해를 모셨다. 그의 심적 동기는 단지 사자왕에 대한 존경심과 사모, 우애의 표시였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이 자신의 존재를 천하에 알리는행위가 되었던 것도 의심할수 없다. 경애심과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또 한사람, 여기에서 또 한번 암약한 사람이 요부로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올림피아스, 사자왕의 어머니인 태후였다. 올림피아스는 딸 필리피아를 현재의 실권자인 페르다키스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페르디카스 쪽애 서도 안티파트로스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있었으나 오래된 부인과 이혼하고 새로운 결합으로 마음이 동요했다. 페르디카스는 사자왕이 죽기 직전에 옥새를 받았다. 게다가 대왕은 후계자에 대해서 "가장 강한 자에게"라 고 유언했다. 페르디카스는 두뇌회전도 빠르고 민첩하게 활약하여 급속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태후 올림 피아스의 눈 빛은 변함없이 예리했다. 그러나 다른세력들이 이렇게 날뛰는 꼴을 지켜보고 있을리 가 없다. 모든 장군들이 손을 잡고 페르디카스와 대항하는 전투가 순식간에 터져싿. 전투중에 페르디카스는 부하 무장에게 암살당했고 또 한사람의 유력자 크 라테레스도 전장에서 죽었다. 이미 노령이 었던 안티파트로스도 병으로 죽었다. 이제는 대의 명분은 사라지고 가장 강한 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과 야심이 충돌할 뿐이었다. 서로가 힘을 합쳐 강적에 대항하는 분쟁이 반복되어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지럽게 뒤얽힌 실타래처럼 사태 파악이 쉽지 않았다.어느 때는 안티고노스가 우세하다가, 또 어느때는 카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본국을 중심으로 지배력을 과시했다. 꼭두각시 국왕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의 비 에우리디케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그녀는 능력이 없는 왕을 누르고 자신이 섭정을 하여 수도 펠라를 지배하려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후 올림피아스는 고향인 에페 이로스에서 군사를 일으켜 펠라를 공격해 왔고, 에우리디케를 자살하게 만든후에 아리다이오스마저 죽여 태후 자시이 마케도니아의 통치에 나섰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진격하고 있던 카산드로스는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군대를 철수시켜 펠라를 공격했다. 태후 올림피아스는 잡혔고 사형에 처해졌다. "원한이 있는 자는 처형에 가담해도 좋다"라고 선언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장 잔혹한 벌인 돌로 쳐서 죽이는 형에 처해전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녀는 갓 쉰을 넘긴 나이였다고 한다. 태후와 손을 잡았던 로크사네와 어린 알렉산드로스 4세도 이때 카산드로스에 게 잡혀 감옥에 갇혔고, 6년 후에 카산드로스의 명에 따라 살해당했다. 한때는 태후 얼림피아스의 주선으로 페르디카스의 안가 될뻔했던 누이 필리피아가, 이번에는 이집트의 지배 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내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자와의 장례를 거행할 사당을 만들어 고인의 영혼을 모 셨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점점더 세력을 확장하여 야심을 펼쳐 나갔다. 대왕의 누이를 바로 맞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필리피아도 마음이 내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티고노스가 이 계획을 방해했다. 자객을 보내 그 혈통 탓에 일생을 권력자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필리피아를 암살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자왕을 둘러싼 혈통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자는 바르시나의 아들 헤르쿨레스뿐이었다. 현명한 바르시나는 일찍부터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세력 다툼의 소용돌이에서 몸을 피하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중요했다. 헤르쿨레스는 대왕이 생전에 품에 안았던 유일한 왕자이며 그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한 영웅과 비슷하지 않은가. 임종때에 대왕의 뇌리에 있었던 후 게자는 왕자 헤르쿨레스를 두고 달리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 헤르쿨레스를 왕위에 앉히려 했던 자는 폴리페르콘이라는 무장이었다. 사자와의 부하 중에는 중견에 속하는 자였고, 마케도니아의 노장 안티파트로스는 임종의 병상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이 폴리페르콘을 지명했다. 친아 들 카산드로스를 제쳐놓고 이런 유언을 남긴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조치에 카산드로스가 기분 좋았을리 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급속하게 기울었다.헤르쿨레스를 수중에 넣어서 세력을 확장하려던 폴 리페르콘의 야심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한편 두각을 나타내던 카산드로스는 이제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혈통따윈 해가 되면 되지 이익이 될게 없다 고 판단하기에 이르렀고, 카산드로스의 의향ㅇ르 받아들인 폴리페르콘 자신이 바르시나와 어린 헤르쿨레스가 있는 곳으로 자객을 보냈다. 폴리페르콘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자객으로 마케도니아와 관련있는 고참 병사를 피하고 동방 출신의 젊은 병사를 택했는데, 이것은 암살을 성공시키려는 적절한 판단이었다.헤르쿨레스는 사자왕을 꼭 빼어 닮은 데다가 사자왕을 경애하는 병사들이 여전히 많아 자객이 헤르쿨레스의 모습의 속에서 사자왕을 보고 겁멱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309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던 밤,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고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달렸다. 먼저 바릇 나가 희생량이 되었다. "위대한 대왕의 아들입니다.섣부른 짓을 했다가는... 후회하게 될거요!" 이렇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칼로 베어 버렸다. 헤르쿨레스는 열여덟살의 어엿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지만, 무용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눈을 깜박이며 스스로의 운명을 깨달았는지 "대와의 왕자에게 어울리는 죽음을"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가슴에 예리한 칼을 꽃고 쓰러졌다. 슬픈 일이지만 상처는 치명적인 중상이 되지 않았는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왕자의 등에 자객 한 사람이 창 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가장 강력한 자가 천하를 쥐어야 할 세상으로 변했다. 기원전 311년에는 유력한 지배자들 사이에 협 정이 성립되는 듯하다가 바로 결렬되고 말았다.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화려한 무훈을 내세우며 등장하여 이 분쟁에 다음 세대마저 끌어들였다. 그리스 본토도 전투에 가담했지만 이 땅에는 이제 왕년의 실 력자는 없었다. 40년이 넘는 기나긴 혼란 끝에 사자왕 알렉사느돌스의 왕국은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지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 셀레우코스 왕조인 시리아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인 이집트 왕국, 그리고 안티고노스 왕조 인 마케도니아 왕국이다. 시리아 왕국은 소아시아에서 동으로 펼쳐지는 영토를 다스렸고 가장 컸다. 이집트 왕 국은 나일강 주변 지역을 지배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은 필리포스왕 등장 이전의 마케도니아 영토와 그리스 본 토의 일부를 영토화하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전쟁도 하나의 문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따라 세계는 눈에 띄게 확대되어 동서 의 예지가 섞이고 교역이 활발해졌으며 고대사에 찬연히 빛나는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했음은 주지의 사실이 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는 32년, 미에자 학사에게 아리스토 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던 시기부터 헤아리 면 불과 20년이 채안되는 시간이었다.후계자 분쟁의 40년에 비교해도 짧은 세월이었다. 사자왕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자라나서 함께 공부하며 함께 싸웠던 친구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면서 영광을 누렸고, 대와의 업적을 오래토록 후세에 전해준 인물은 프톨레마이오스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시자이 며 오늘날 사서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라고 불려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수도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하구를 차지하는 큰 도시였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발상에 위해 구축되었고 명명되어 준공후에 많은 전란을 지켜보면서도 커다란 번연을 이 루어 낸 도시다.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30여개늬 도시 가운데 가장 웅대하고 가장 오 랫동안 번창한 곳도 이 도시였다. 오늘날에는 이집트의 제2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말년의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다를 마주하고 세운 왕궁의 테라스에 서서 때때로 회상에잠겼다. 그의 가슴에 수많은 추억들이 밀려들었을 것이다. 눈아래 펼쳐진 망망한 바다 저편에는 마케도니아가 있고, 펠라가 있다. 그리운 미에자는 지금쯤 어떻게 변모 했을까. 생각하면 미에자에서 알렉산드로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젊은 청년이었다. 눈을 가만히 감으면 젊은 시절의 사자왕이 떠올랐다. 알렉산드로스를 생각할때면 언제나 그는 위대한 인격 자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친구 헤페스티온은 미에자 숲 속에서 파란 빛이 서로 합쳐지는 것이 아리스토테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만남 이었다고 말했었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유일의 철학자가 되어 생애를 마쳤다는 소식은 프톨레마이오스 의 귀에도 들려왔다. 훌륭한 사람은 죽고나서 더한층 칭송받고 있었다. 왕으로서의 알렉산드로스의 역량은 누 구보다도 프톨레마이오스가 잘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의 뛰어난 예지의 만남이었다.프톨레마이오스는 그 만남에 자신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진심으 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기억은 몇몇 가르침을 빼면 희미했지만, 사자왕에 대한 추억은 너무나 많아 뇌리에 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만 하면 언제라도 뇌리에 밀려들었다. 간추려서 한두가지 만 말하라고 해도 어느것을 말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어떤 대왕이었느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말하자면 역시 '위대한 인격자였 다'는 말 이외에는 할말이 없다. 누구보다도 용감했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으며, 오로지 하나의 이상만을 목표로했다. 그리고 이세상 누구보다도 신에 접근해 있었다. 대왕의 애첩 바르시나는 대와의 마음을가장 잘아는 여자였다. 바르시나는 입버릇처럼 "대왕님이 옳으십니다. 그렇지만 저같이 어리석은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했었다. 명석한 두뇌에 있어서는 뒤 지지않는 프톨레마이오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후에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매 사에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소박한 군인, 신을 공경하고 자신도 신이라고 생각하는사람, 합리를 존중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제자, 호메로스의 늠름한 기사, 필리포스왕의 피를 물려받은 정렬의 광인, 이런 여러 가지 특징들이 높이 비약하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도저히 한마디로 설명할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곁에서 수많은 것을 배웠다. 수많은 체험을 맛보았다. 알렉산드로스없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자신도 없었을 것 이다 훨씬 왜소한 인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사자왕에게도 단하나 약점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자왕의 인격 그자체이며, 그 인격을 고결하다고 보는 이상 약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점이 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그것은 이상을 지나치게 좇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 늘의 높은곳을 좇는 나머지 현실의 부조리를 간과해 버린다. 미숙한 세계를 잊어버린다. 세계의 끝을 찾아서 인도 저편까지 통치라는 도구로 자신의 이상을 펼쳤었다. 그러나 과연 번영이, 평화가 제대로 향수될수 있었을는지. 그것은 알렉산드로스의 예지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았을까. 그것은 신의 업적에 가까운 것, 아니면 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그리스 도시 국가는 작은 지역이지만, 공존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인도의 끝까지 영토를 펼 쳐가서는 그것도 이루지 못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성은 부정적인 판단으로 기울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상에 동경ㅇ르 품으면서도, 프톨레마이오스 스스로는 운명이 내려준 이집트 왕국의 번영 에만 부심하기로 결정했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사자왕의 현실적인 예지를 가장 잘 이어받아서 하나의 왕국을 세워 번영을 이룩해 냈다. 다행이 행운도 뒤따랐다. 이집트는 풍요의 땅이며, 위치상전란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천혜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고 당대 최대의 항구도 이미 먼들어져 있었 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후계자 선택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했고 영단을 보였다. 이상을 향하는 알렉산드로스를 흠 모하면서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성은 항상 현실에 두발을 디디고 있었다. 이집트왕국을 넘어서 지배의 폭을 넓히지 않았는데, 그것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사자왕의 생애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이야기 했듯이 알렉산드로스의 지도를 나누어 성립된 세 개의 왕국 가운데 가장 오랫 동안 존속하며 역사에 영광을 남긴나라는 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열었던 이집트왕국이다. 왕도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와 고대 중세문화의 교류의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여 대왕의 이름과 업적을 후세에 알렸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15대 300년이 지난후에, 역사에 이름높은 미녀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간섭에 무너 져 자결함으로써 끝났다.헬레니즘에서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 또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전환점이 었다.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의 변천을 왕궁의 테라스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 르가 알 까닭이 없었다.그러나 사자왕의 됨됨이와 위대한 인격에서 시작하여 역사의 흐름속에 거대한 발자취 를 남긴사실을 프톨레마이오스가 실감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95년 2월 6일자 아사히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집트 서쪽 시와 오아시스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가 발견되었다. 매장품 등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 의문을 나타내는 학자도 있지만, 현장을 확인한 이집트 최고 고고학회 위 원장은 1월말, "그규모로 보아서 대왕의 묘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카이로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렉산드리아를 경유하여 해안선을 따라서쪽으로 달려 다시 남하하는 육로 900킬로미터를 거쳐 발굴현 장으로 들어갔다. 장엄한 석조 건물의 잔해는 미지의 역사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발굴의 개요를 소개한 뒤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대왕은 알렉산드리아의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묘는 아몬 신전이 있는 시와밖에 없다고 나는 믿고 있다"라며 발굴에 임하는 그리스의 여성고고학자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말했다.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변호사이자 비문 학자이기도 한 남편 마수뉴 슈바르지 씨와 1978년 이후 수차례시와 를 찾아왔다. 1986년 시와 중심부에서 북서로 20킬로미터 떨어진 말라키라는 곳을 찾아가서 높이 쌓여 있는 모래사막을 보고 그곳에 알렉산더의 묘가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었다고 말했다. 말라키라는 지명은 아라비아어로, 그 지방 말도 아닌 그리스어로' 요절'이라는 의미를 가진 밀라키오가 변화 한것이라고 생각했다. 1989년부터 그리스의 헬레니즘 연구협회의 조사 대장으로서 발굴을 시작했고 먼저 돌을 쌓아 올린 입구의 문을 발견했다. 그 북쪽으로 뻗은 길이 35미터, 폭 10미터정도의 복도 맞은편에 세 개의 방이 나란히 놓여진 윤곽이 나타났다. 전체 길이는 51미터였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 왕의 묘의 전형이지만 이렇게 거대한 묘는 그리스 본국에도 없다"고 말했다. 보통 은 가장 안쪽 방에 유체가 매장되어있다.(중략) 유적에는 트리그리포스라는 세 개의 세로 기둥 장식 등 그리스 건축의 특징이 여기저기에 있고, 출토한 석 재에는 참나무 잎과 장미꽃 모양과 이를 드러낸 어린이 머리만한 크기의 사자머리 부저 등 여러 가지 의장이 가미되어 있었다. 보통 개 정도 크기의 사자상도 출토되었다. 올해 1월 중순, 남문 근처의 2.3미터 깊이에서 비문이 새겨진 석재가 잇달아 발견되었다. 한 비문에는 "내가 이집트 사령관이었을 때 알렉산더의 유체를 이곳으로 가져와 매장했다"라고 씌여 있었다. 여기의 '나'는 알렉 산더 대왕의 장군중 한사람이며 , 대왕이 세상을 떠난후 이집트왕이 된 프톨레마이오스 1세라고한다. 리아나 슈바르지 씨는 "내가 믿어왔던 사실이 증거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상세하고 현장감 넘치는 기사다. 글에서도 알수 잇듯이 이 유적을 알렉산드로스의 묘라고 판정하기에는 아직 약간의 의문이 남아있는것같다. 그리스 정부의 고고학대표단도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 지방에서도 최근 10년간 정력적으로 발굴이 진행되었다. 테살로니 키에서 가까운 베르기나에서는 눈부신 왕가의 보석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 스2세의 유품이며 여기가 그 묘소였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부근에 무혀있지 않 을까 하는 추측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자왕의 묘소가 있다면 고향 마케도니아 보다는 대왕의 신앙의 거점이 되는 시와 오아시스와 가까 운곳, 그리고 절친한 친구 프톨레마이오스의 손이 미치는곳, 즉 오늘날의 이집트어딘가라고 추정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다. 사자왕의 의지는 마케도니아를 넘어서 보다 넓게, 보다 멀리, 보다 장대한 세계로 나아가려 했 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와 오아시스에 가까운 말라키... 정말, 역사의 로망으로서 격에 맞다. 그 땅의 이름에 요절이라는 뜻이 있다면 이야말로 알렉산드로스의 생애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남겨진 자 들의 아쉬운 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참으로, 참으로 바람처럼 불처럼 물처럼 역사를 달려 나와서 사라져 간 용맹스런 왕자, 그는 왕 중의 왕이었다. 온갖 칭송과 비난이 있었다 하더라도 긴 역사를 통 하여 그만큼 위대한 대왕은 없었다. 언젠가 그 영광이 대지 밑바닥에서 되살아나서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지 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