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개미 제 1 부 개 미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이책을 짓는 데 도움을 준 모든 이들, 벗들, 연구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차 례 --- 제1장 일깨우는자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제3장 세 편의 오디세이아 제4장 미로의 끝 당신이 다음 네 줄의 글을 읽은 몇 초 동안.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 태어나고 있다. -30명의 사람과 5djr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람: 포유 동물로서 크기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로 다양함. 몸무게는 30킬로그램에서 100킬로그램 사이.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월.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50억 이상으로 추산됨. 개미: 곤충으로서 크기는 0.01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로 다양함. 몸무게는 1밀리그램에서 150밀리그램 사이. 산란은 정자의 저장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수십억의 십억 배 이상으로 추산됨.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작가의 말 인간이 별들을 정복하러 나서는 이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인 지구를 더욱 잘 알아 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구에는 우리가 밝혀내야 할 신비가 아직도 무척이나 많 기 때문입니다. 지구 밖의 생명을 찾아서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간편한 여행을 해봅시다. 무릎을 구부리고 3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몸을 숙 인 다음 땅바닥을 들여다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공상 과학 소설에 나오는 어떤 장면에도 손색이 없는광경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흙먼지, 풀, 자그마한 동물들, 이끼, 꽃들이 보 일 것입니다. 그것은 색다른 세계의 정취를 자아내는 장식들로 가득찬 하나의 모형 정글과 도 같습니다. 로케트는 외계인을 찾으러 가지만, 우리는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도 지중 동 물과 만나게 됩니다. 그 지중 동물 중에서 가장 수가 많고 가장 강력한 것은 틀림없이 개미입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삼림에서는 개미가 생물 총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 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 있는 식물들과 동물들을 하나의 남비 속에 넣고 뒤섞는다면 그 남비에 담긴 내용물의 10%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개미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동물입니다. 어디를 가든, 어디를 살펴보든 우리는 개미를 발 견하게 됩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지구의 표면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적도 사 막의 열기에도 북 유럽 스텝 지역의 혹독한 추위에도 적응할 줄 알았습니다. 개미는 어디에서나 수가 많고 강력합니다. 개미는 자기들을 잡아먹는 어떤 동물도 두려 워하지 않으며, 어떤 살충제에도 적응합니다. 개미는 모든 생태 구역에 쳐들어가서 그 곳 을 정비하고 그곳을 지배합니다. 인간이 지구에 살게 된 지는 3백만 년에 불과하지만, 개미 가 지구에 살 게 된 지는 1억 년이 넘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 9천 7백만 년 동안 이 곤충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문명, 즉 9천 7백만 년의경험을 축적한 문명을 건설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개미에 비하면 우리는 경험이 없는 아기에 불과합니다. 아기들처럼 우리는 우리 를 둘러싸고 있는 장난감들을 깨뜨립니다. 하지만 1억 년 후에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개미들이 한 것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개미의 문명이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개미 문명의 초기, 그러니까 1억 년 전에는 개미들에게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흰개미가 그들입니다. 그러나 그 경쟁자 는 개미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을 했을 뿐입니다. 흰개미들과 싸우면서 개미들은 전쟁과 기술을 배웠습니다. 흰개미들을 앞지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개미들은 무기와 도구들을 발 명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최근 들어서야 사용하게 된 첨단 기술을 개미 들은 그때부터 향유하게 된 것입니다. 개미는 자기들의 애벌레를 활용해서 얇은 천을 만들 줄 알고, 일개미들을 활용해서 먹이를 공급할 줄 알며, 일개미들을 살아 있는 냉장고로 변 형시킬 줄도 압니다. 또한 진딧물을 사육하여 분비꿀을 짜 낼 줄 알고, 술과 곡물 가루와 버섯을 만들어낼 줄도 압니다. 개미의 힘은 그들의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양성이란, 형태의 다양성, 기술의 다양성, 지 적인 능력의 다양성을 말합니다. 현미경으로 보아야 보일 만큼 아주 작은 개미가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겁을먹을 만큼 커다란 것도 있습니다. 전쟁만을 하는 개미가 있는가 하면 채식 활동만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몇 개의 마을, 심지어 몇 개의 도시가 연합하여 몇 헥 타르에 걸친 연방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이 있는가 하면, 여덟에서 열 마리가 작은 씨족을 이루어 사는 개미들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인간은 개미를 관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3천여 년 전에 솔로몬 왕은 <개미를 따라 가거라. 개미가 그대에게 지혜의 길을 보여주리 라>고 말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에 사는 도공 사람들은 <애를 못 낳는 여자가 개미집 위에 앉으면 애를 낳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친숙한 라퐁텐은 개미에게 쩨쩨하고 인색한 동물이라는 인상을 부여함으로써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라퐁텐은 매미와 개미의 우화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개미는 빌려줄 줄 모른 다네. 그에게 결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라네.> 하지만 그 곤충을 알기 위해서 그런 신랄한 말들을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개미들을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작은 나뭇가 지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개미 마을의 구멍을 넓혀본 적이 있고 그들의 도시를 갈라서 그 들의 군대를 짓밟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들의 병정개 미들 중의 한 마리가 우리에게 기어 올라와서 마치 가지 얹는 마무로 가득찬 행성에라도 온 것처럼, 우리의 손이 팔의 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관찰을 하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개 개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몇 시간 동안 정원에 머물며 개미를 바라보던 아이는 마침내 낙담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개미들을 학 살하기에 이릅니다. 고드디오스의 매듭을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잘라버렸듯이 사람들은 매듭을 도통 이해하 지 못할 때는 그것을 잘라보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법입니다. 개미를 죽이는 것은 사람들이 개미들과 다른 형태의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미를 죽이는 것이 아이에게는 소인국 난쟁이들에 대한 자신의 전능함을 처음으로 입증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개미들을 죽였고, 개미들을 밟았으며, 개미들의 통로에 레몬 시럽을 탄 물을 부 었습니다. 그러나 개미집을 유린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더 많은 것 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냥>이라는 개미를 연구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 니다. 거기에서는 마냥 개미가 사람을 죽이기도 했기 때문에 인간과 개미와의 관계가 역 전되어 있었습니다 육식성 개미들의 행렬 앞에서 인간들이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1억 마리에 가까운 성난 병정개미들이 면도말처럼 날이 선 턱으로 무장하고 검은 띠를 이 루며 몰려옵니다. 아무것도 그 개미들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개미떼는 흡사 분출하는 용 암처럼 시커먼 물줄기가 됩니다. 그 물줄기 앞에서 울부짖거나 도망치려고 바둥거리는 온 갖 작은 동물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도망을 치고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포기합니다. 마냥 개미떼의 모습은 <<묵시록>>의 광경을 방불케 합니다. 그것은 개미들의 힘이 가장 사납게 표현된 모습입니다. 나는 여왕 개미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가 하마터면 그 곤충들에게 산 채로 먹힐 뻔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녀석들에게 나를 알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던 모양입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동시 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주 작은 형제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한 편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책이나 쓰겠다는 것이 아니 라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숲속의 불개미, 즉 가장 영리하고 가장 잘 조직된 유럽 종의 개미들이 주인공이 되는 서스펜스가 있는 소설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한 책은 하나의 모험소설이기도 하고 '반지의 주인'처럼 신비스런 지식을 가르 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숲속의 요정이 실제로 존재하며, 여러분이 '개미'의 주인공들을 만나시려면 여러분의 찬장을 열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개미와 사람들에 관한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나에게 12년이나 걸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배경과 줄거리와 괴물과 전사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4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에 여러분 자신이 개미라는 인상을 갖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러분은 생식 능력이 있는 젊은 병정개미 327호와 사귀어야 합니다. 그는 자기 나라 안 에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고 난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이 잠입했을 거 라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병정개미 103683호가 그를 도와 벨로캉의 캄캄한 통로로 탐색 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는 자신의 더듬이로 밝혀주는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 '개미'에 있는 모든 것은 실제와 비슷하게 구상 된 것입니다. 어떤 것도 과장해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아주 환상적이어서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이야기 하기만 하면 됩니다. 실제로 개미들은 대규모의 전쟁을 수행합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는 정말로 전차, 일광욕 실, 노예, 나라들의 연방, 수문장, 온도가 조절되는 영아실, 마약 공급자, 진딧물 사육실, 알콜 주조실 등이 있습니다. 소설 '개미'는 여러분이 잠시 인간 관점을 떠나서 소설을 읽는 동안 개미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기>가 이 책의 중심 사상입니다. '개미 '가 출판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다시는 개미들을 죽일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멋진 일입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그 사람들이 천 배나 더 작은 존재, 즉 그들의 부모들이 <더럽다>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고 좋 게 봐 준다고 해야 <흥미없다.>정도가 고작이었던 존재들과 감정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영원히 우리와 나란히 걸어갈 것이고, 우리의 뜨 락 안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고 있는 이 동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차 외계의 생물 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관점을 넓히는 것입니다. 개미만큼 작고 하찮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사고 능력을 키 울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람들끼리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 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1992년 5월 7일 제 1 부 개미 제1장 일깨우는 자 "아시게 되겠지만 그건 당신이 기대하는 것이 전혀 아닐게요." 공증인은 그 가옥이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늙은 현인들이 거기에 살았으며 그 현인들의 이름은 이제 생 각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어둠침침한 복도로 들어갔다. 공증인은 어두운 복도에서 한참 더듬거리다가 누름단추 하나를 헛되이 눌러보 고는 투덜거렸다. "이런 제기! 이거 고장났구만." 그들은 요란하게 벽을 더듬으면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공증인 은 마침내 문을 찾아내어 열더니, 이번에는 전기 스위치를 제대로 누르고나서, 자기 고객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어디 편찮으시오, 웰즈 씨?" "일종의 공포증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벌써 한결 나아졌어요." 그들은 집을 둘러보았다. 66평쯤 되는 지하층이었다. 밖으로 트인 곳이라고는 천장에 닿을락말락하게 나 있는 몇 안 되는 좁은 채광창 이 고작이었지만, 조나탕은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벽들은 모두 똑 같은 회색으로 도배를 해놓았고 어디에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조나탕이 이러쿵저러쿵 까탈을 부릴 형편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것의 5분의 1쯤 될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그 집의 집세를 낼 방도조차 막막하였다. 그가 일하던 자물 쇠 용역회사에서 최근에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의 이 유산은 정말이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 나 다름없었다. 이틀 후, 조나탕은 아내 뤼시와 아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푸들 종의 불깐 개를 데리고 시바리트가 3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이 회색 벽돌 말이예요, 이거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치장할 수가 있잖아요. 여기에 있는 거 다 손을 보아야 되겠어요. 감옥을 호텔로 바꾸는 일이나 진배없어요." 숱이 많은 살구빛 머리채를 들어올리면서 뤼시가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내 방은 어디 있어요?" 니콜라가 물었다. "저 안쪽 오른편에 있는 방이란다." "왕왕." 개도 질세라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러고는 뤼시의 장딴지를 잘근 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의 팔에 안겨 있는 것이 예전에 혼수로 장만 해 온 그릇들이라는 사실을 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탓에 개는 느닷없이 화장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개의 주인은 화장실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예 문을 잠가버렸다. 개가 문의 손잡이까지 뛰어올라 손잡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영악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삼촌이 시원스럽게 인심을 쓰셨군요. 그분 잘 알아요?" 뤼시가 말을 이었다. "에드몽 삼촌? 사실은 말이야.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 주 어렸을 때 그 양반이 나를 거꾸로 들고 비행기태우기를 곧잘 하 셨다는 것뿐이야. 한번은 그게 너무나 무서웠던 나머지 위에서 그 양반한테 오줌을 싸버렸지." 그 말 끝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었다. "겁많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안 그래요?" 조나탕은 짐짓 못 들은 체하고 말을 이었다. "그분은 나를 탓하지는 않고 우리 어머니에게 대뜸. '이런, 이 녀 석 싹수를 보아하니 비행사 만들기는 글렀군....' 하시는 거야. 어머 니 말로는, 그 후로도 그분은 줄곧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 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오셨다는데, 정작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그분을 뵌 적이 없어." "뭐 하는 분이었어요?" "학자였지. 생물학자였다든가." 조나탕은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벨로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높 이 1미터, 지하에 50층, 지상에 50층이 있어, 그 일대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거주자들의 수는 1,800만으로 추산된다. 연간 생산량 은 다음과 같다: 진딧물 분비꿀 50리터, 연지벌레 분비꿀 10리터, 느타리버섯 4킬로그램, 방출되는 돌 조각 1톤, 실용 통로 120킬로미 터, 지표 면적 2평방미터. 한 줄기 빛이 비쳐들었다. 다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석 달 전, 겨울 잠에 들어간 이후 가장 먼저 보인 몸짓이다. 다른 다리 하나가 천천히 뻗어 나온다. 다리 끝에 달린 두 개의 발톱이 시나브로 틈새 를 벌린다. 세 번째 다리가 펴진다. 다음에 가슴이 펴지더니 하나의 생명이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열 두 마리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무색 무명한 피가 동맥망 속을 원활히 순환하게 하려고 바 르를 몸을 떨었다. 동맥 속은 반죽 같은 상태에서 리쾨르 같은 상태 가 되더니 다시 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심장이 조금씩조금씩 발 딱거리기 시작한다. 심장의 따뜻한 기운이 되돌아온다. 고도로 복잡 한 관절들이 회전을 한다. 보호판에 싸인 둥근 돌기 모양의 다리 관 절들은 재 깜냥대로 한껏 회전 운동을 해본다. 개미들이 일어난다. 그들의 몸이 다시 숨을 쉰다. 그들의 동작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낱낱으로 나뉘어 있다. 느릿느릿 추는 춤사 위 같다. 살며시 몸을 흔들고 바르르 몸을 떤다. 마치 기도를 하려 는 것처럼 앞다리를 입 앞으로 모은다. 그러나 기도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발톱을 적셔서 그것으로 더듬이를 닦으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이 서로서로 몸을 비벼 준다. 그러고는 옆의 동료들을 깨워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제 몸 을 추스를 힘만 겨우 남아 있을 뿐, 동료들에게 나누어 줄 에너지는 없다. 그들은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고 깨우기를 포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조상처럼 몸이 굳어버린 동료들의 한가운데 를 힘겹게 빠져나와 거대한 '바깥 세상'으로 향한다. 아직 싸늘한 피가 도는 그들 몸의 기관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흡수해야만 한다. 기진 맥진한 개미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겹기만 하다. 도로 누워서 수백만의 자기 동료들처럼 평안을 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그러나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들은 가장 먼저 깨 어난 개미들이다. 이제 온 도시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넣어야 할 의 무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을 통과한다. 햇빛이 눈부셔 아무것도 볼 수 가 없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가 몸에 와닿자 그들은 기력을 되찾는다. '햇살이 우리의 텅 빈 몸 안으로 들어와 고통에 겨운 우리의 근육 을 움직이고 갈라진 우리의 생각을 맺어주도다.' 이 노래는 불개미 왕국 오천 년째에 만들어진 오래된 여명악이다. 그 시대에 벌써 불개미들은 따사로운 햇살과 접촉하는 순간에 머릿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개미들은 절도있게 몸단장을 하기 시작한다. 하얀 침을 분비해서 그것을 턱과 다리에 바른다. 그러고는 솔질을 하듯 몸을 닦는다. 이 모두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내려온 의식 이다. 먼저 눈을 닦는다. 하나하나의 낱눈을 이루는 1,300개의 둥근 창들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촉촉하게 적셨다가 습기를 말린다. 더듬 이와 앞다리, 가운뎃다리, 뒷다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깨끗하게 매만 진다. 끝으로 붉은 갈색을 띤 아름다운 등판을 불똥처럼 반짝이도록 윤을 낸다. 먼저 깨어난 열두 마리의 개미들 중에는 생식 능력을 가진 한 마 리의 수개미도 들어 있다. 그는 벨로캉의 보통 개미들보다 조금 더 작다. 위턱도 다른 개미들보다 좁다.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만 있으 면 죽어야 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그러나 수개미는 역시 다른 개 미들이 알지 못하는 유리한 신체 구조를 타고난다. 수개미 계급의 첫번째 특권은, 생식 능력을 가진 중요한 개미답게 눈이 다섯 개라는 점이다. 작은 공 모양으로 생긴 두 개의 커다란 겹눈으로는 180도까지 넓게 볼 수 있다. 또 이마에는 세 개의 홑눈 이 삼각형의 꼭지점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여분의 눈은 적외선 감지 기나 다름없는 것으로서, 어디에선가 열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 이든 간에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라도 먼 거리에서 그것을 탐지해 낼 수가 있 다. 십만 번째의 천 년을 맞이한 대규모 개미 도시의 거주자들 대부분 이 지하 생활 탓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수개미의 그러한 특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수개미에게 그러한 특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개미는(암컷들이 그러하듯) 날개가 있어서 교미를 하는 데 필요한 하루 동안의 비행 을 할 수가 있다. 그의 가슴은, 가운뎃가슴 등판이라고 불리는 방패 모양의 특수한 판으로 감싸여 있다. 또 수개미의 더듬이는 다른 개 미들의 더듬이에 비해 더 길고 더 예민하다. 생식 개미인 그 젊은 수개미는 햇살을 실컷 즐기면서 도시의 둥근 덮개 위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고는 충분히 몸이 덥혀지자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시적으로 전열개미 계급의 일원이 되 어 태양에너지를 옮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하 3층의 통로를 돌아다닌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아직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얼어붙은 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더 듬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젊은 수컷은 자기 몸의 윤기로 잠을 깨우려고 일개미 한 마리를 향해 다리를 내민다. 다사로운 기운이 일개미의 몸에 닿자 기분 좋 은 방전이 일어난다. 초인종이 두 번 울리고 새앙쥐 걸음처럼 사뿐한 발소리가 들렸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문에 달린 사슬을 벗기느라고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문을 열었다. 자식 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뒤로 할머니는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아홉 평 남짓한 이 작은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삶이 행복할 리가 없을텐데도 할머니의 상냥한 성품은 예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는 게 우스광스럽다는 건 안다만 끌신을 신는게 좋겠다. 마룻바닥에 밀랍 을 칠했거든." 조나탕은 할머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앞장서 걸으며, 그를 거실로 데리고 갔다. 거실의 많은 가구들에는 덮개를 씌워놓았다. 등받이가 있는 커다랗고 긴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으면서 조나탕은 그 플라스틱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네가 와줘서 정말 기쁘다. 내 말이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 지 않아도 근간에 너를 한번 부르려고 했지." "아 그러셨어요?" "에드몽이 말이다. 너 주라고 하면서 나한테 맡긴 게 있단다. 편 지 한 통인데, 그 애 말이, 자기가 죽거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편지를 조나탕 너한테 꼭 전해 주라는 거였어." "편지를요?" "그래, 편지를.... 가만 있자, 내가 그 편지를 어디다 두었더라. 생각이 안 나네.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구.... 그 애가 나 한테 편지를 주고, 내가 잘 보관하겠다고 말을 했지. 그런 다음에 내가 그 편지를 어떤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그 상자가 어떤 거였더 라.... 아, 틀림없이 큰 벽장 양철 상자 중의 하나일 게야." 할머니는 끌신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발짝을 미끄러져 가서 멈추었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구나! 마편초 차 좀 마시련?" "좋지요." 할머니는 부엌 안으로 들어가서 그릇들을 이리저리 옮겼다. "조나탕!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 좀 해다오." 할머니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음.... 썩 좋은 편은 아니예요. 직장에서 쫓겨났어요." 할머니는 하얀 새앙쥐가 머리만 살짝 내밀고 살펴보듯이 문께에 잠시 머리만 내보이더니, 이내 기다랗고 파란 앞치마를 두른 모습 에,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전신을 다시 드러냈다. "회사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예." "뭣 땜에?"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자물쇠 용역 회사라는 데가 특이한 데잖아 요. '자물쇠 SOS'라는 우리 회사는 파리 시내 어디드지 하루 24시간 아무 때고 부르면 달려가지요. 그런데, 제 동료 하나가 습격을 당한 뒤부터, 밤에 꺼림직한 동네에는 영 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래 서 안가겠다고 버텼더니 그냥 잘라버리더군요." "잘했다. 실업자 안 되자고 몸 상하느니 차라리 실업자 되고 몸 보전하는 게 백번 나은 일이다." "게다가 주임하고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런데 그 뭐냐,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던 거는 어떻게 됐니? 내가 젊었을 적에는 그런 것을 누야쥬 공동체라고 부르곤 했었지" 할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는 뉴에이지를 '누아쥬'라 고 발음하고 있었다. "피레네 산맥의 농장 일이 실패하고 나서 다 집어치웠어요. 뤼시 도 이 사람 저 사람 밥 해먹이고 설거지하는 일에 진저리를 내더군 요. 우리들 중에 기생충 같은 자들이 있었어요. 결국 서로 틀어지게 되었지요. 이젠 뤼시와 니콜라하고만 살아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 죽지 못해 사는 거지. 한 순간 한 순간 목숨 이어가는 게 어 느덧 내 일이 됐구나." "할머니는 행운을 누리셨어요. 천년이 바뀌는 때를 사셨잖아요." "그래? 한데 말이야, 새로운 천년을 맞았는데도 달라진 게 아무것 도 없으니 정말 놀랍지 뭐냐? 옛날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천년이 바뀌고 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하더니만, 네가 알다시피 정작 나아진 게 없지 않니? 늙은이들은 여전히 고독 속에 서 살고, 실업자들이며 매연 내뿜는 자동차들로 여전히 말이야. 사 람들 생각조차 달라진 게 없어. 봐라, 재작년엔 로큰롤, 작년엔 초 현실주의를 재발견했다고 야단들을 떨고, 또 요즈음 신문에선 벌써 부터 올 여름에 복고풍의 짧은 치마가 유행할 거라고 떠들어대고 있 잖니.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면 지난 세기 초의 낡은 사상들도 머지 않아 다시 나오게 될거야. 공산주의라든가 정신 분석, 상대성 원리 따위 말이다." 조나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몇 가지 달라진 게 있긴 있었어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고요, 이혼율, 대기 오염의 수준은 높아지고, 지하철 노선도 연장되었잖아 요." "다 쓸데없는 일이지. 난 말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개인용 비행기 를 갖고 발코니에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단다.... 내 가 젊었을 땐 사람들이 핵 전쟁을 두려워했지. 정말이지 엄청나게 무서워했단다. 이제 100살을 눈앞에 두고 보니, 핵탄이 빚어낸 거대 한 버섯구름의 불길 속에서 이 지구와 함께 죽는다면 그래도 그럴싸 할 것 같애. 그렇게 죽는 대신에 나는 이제 썩은 감자처럼 죽어야 할 판이지 뭐냐. 썩은 감자 따위에 누가 신경을 쓰겠냐. 모두들 나 몰라라 하겠지."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 갈수록 더워져. 나 젊을 적에는 이렇 게 덥지 않았어. 겨울은 겨울다웠고 여름은 여름다웠지. 어떻게 된 게 이제는 삼복 더위가 3월부터 시작이야." 할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범상치 않은 노련한 솜씨로 진 짜 감칠맛 나는 마편초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방을 빠뜨리지 않 으려고 바삐 움직였다. 성냥 긋는 소리, 옛날식 가스 레인지의 분사 구에서 가스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나서, 할머니는 훨씬 더 느긋해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네가 나를 찾아온 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텐 데. 요즘 세상에 이렇게 늙은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말이지." "어째 할머니 말씀이 꼬인 것 같은데요." "꼬는 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는 거지, 다른 뜻 은 없어. 자, 내숭은 그만 떨고 무슨 일로 왔는지 얘기나 해봐라." "'그분'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한테 집을 물려주셨는데 저는 그분을 알고 있지도 못하잖아요." "에드몽 말이냐? 에드몽에 대한 기억이 없단 말이지? 너는 잘 생 각이 안 나는 모양이다만, 네가 어렸을 때 그 애는 너를 거꾸로 들 고 비행기를 곧잘 태웠지 한번은 말이다. 이런 일도 있었...."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건 저도 생각이 나요. 그런데 그 일 말고는 전혀 아는게 없어요." 할머니는 의자 덮개가 너무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커다란 안락 의자에 앉았다. "에드몽은 뭐랄까. 인물이지, 아니 인물이었지. 아주 어렸을 때 벌써 네 삼촌은 많은 골칫거리를 나에게 안겨주곤 했지. 그 애 엄마 노릇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어. 예를 들자면 이런 거지. 장난감이 란 장난감은 분해했다가 재조립한답시고 죄다 박살을 내놓았어. 다 시 조립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 장난감만 박살을 냈으면 다행이 게! 뭐든지 다 분해를 하는 거야. 시계, 전축, 전기 칫솔 할 것 없 이. 한번은 냉장고까지 분해한 적이 있었지." 할머니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실에 걸린 고 물 괘종 시계가 을씨년스럽게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저 시계도 어 린 애드몽 때문에 온갖 쓴맛 신맛을 다 보았으리라. "게다가 에드몽에겐 이상한 버릇이 또 하나 있었지. 은신처를 만 드는 버릇이었어. 그 애는 다락방에다 이불이며 우산으로 저만의 공 간을 만들기도 했고, 제 방에다 의자와 모피 외투로 만든 적도 있단 다. 그 애는 그렇게 숨을 곳을 만들어 거기에 제가 모은 보물들을 쌓아놓고는 그 안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했지. 그 안을 한번 들여 다보았더니, 방석들이며 그 애가 기계에서 빼낸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더구나. 어떻게 보면 그곳이 꽤 아늑해 보이기도 했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삼촌의 경우는 정도가 심했지. 그 애는 더 이상 침대에서 자지를 않았어. 한사코 제가 만든 둥지에서 만 자겠다는 거야. 이따금 며칠 낮을 꼬박 거기에 꼼짝 않고 틀어박 혀 있기도 했어. 마치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말이야. 오죽하면 에 드몽이 전생에 틀림없이 다람쥐였을 거라는 소리를 네 어미가 다 했겠니." 조나탕은 할머니가 이야기에 신바람을 낼 수 있게 하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는 에드몽이 거실 탁자 다리 사이에 제 오두막을 지으려고 했지. 그게 꽃병의 물을 넘치게 한 마지막 물방울처럼 되고 말았어. 네 할아버지는 별로 화내는 일이 없는 분인데. 그날은 불같이 화를 내셨단다. 그 양반은 에드몽의 볼기를 때리고 둥지를 모두 부숴버리 더니 에드몽이 침대에서만 자도록 잡도리를 하셨지." 그 말 끝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부터 그 애와 우리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갔단다. 어미와 자식 을 잇고 있던 탯줄이 끊어진 거나 다름없었어. 우리는 더 이상 에드 몽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 면, 그런 시련을 그 애가 겪었어야 했어. 세상이 언제까지고 제 맘 대로 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야 했던 거지. 그러지 못한 것이 나중에 그 애가 커서도 문제가 되었어. 에드몽은 학교 생활을 견뎌 내지 못했어. '어릴 적에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라고 또 말할는지 모르겠다만, 에드몽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쳤지. 선생님한테 심한 꾸 지람을 받은 것 때문에 화장실에서 제 허리띠로 목을 매다는 아이들 이 어디 흔하겠니? 에드몽은 말이다, 일곱 살 때 목을 매달았단다. 청소부가 용케 끌어내렸기에 망정이지." "삼촌은 감수성이 너무 예민했던가 봐요...."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글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살 소동이 있고 일 년이 지나서 에드몽은 제 선생님 한 분을 가위로 찌르려 했 지. 심장을 겨누고 찔렀는데, 천만 다행으로 선생님의 궐련갑을 부 수는 것으로 그쳤어." 할머니는 눈을 들어 천장을 보았다. 흩어졌던 추억들이 눈송이처 럼 할머니의 생각 속에 다시 내려쌓이는 듯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그런 대로 괜찮았어. 용케도 몇몇 선생님들 이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지. 에드몽은 제 마음에 드는 과목에서는 만점을 맞고 나머지 과목에선 모두 영점을 맞았지. 언제 나 영점 아니면 만점이었어." "엄마 말로는 에드몽 삼촌이 천재였다던데요." "에드몽이 네 어미한테 털어놓기를, 자기는 '절대적인 지식'을 얻 으려 한다고 했지. 그 때문에 에드몽이 네 어미의 마음을 사로잡았 던 거야. 네 어미는 열 살 때부터 전생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에드 몽을 아인슈타인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환생한 사람으로 생각했지." "게다가 다람쥐가 환생한 사람이라고도 했다면서요?" "물론이지. 부처님 말씀이 '하나의 넋이 태어나면서 여러 목숨의 넋이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더냐." "삼촌은 지능 검사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럼, 그런데 결과가 아주 안 좋았어. 180점 만점에 23점을 맞았 으니까 경우에 해당하는 지능 지수지. 선생들 생각은, 그 애가 바보 라서 전문 교육 기관에 보내야 한다는 거였지. 그렇지만 나는 그 애 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린 에드몽은 그저 '빗나가 있었던 것'뿐이야.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단다. 그 애가 겨우 열한 살이나 되었을까 할 땐데, 나보고 성냥개비 여섯 개만 가지고 정삼 각형 네 개를 만들어보라는 거야. 그게 쉽지 않지. 자 너도 한번 해 보면 알게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슬쩍 눈길을 보내고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왔다. 조나탕은 잠시 머뭇거렸다. 될 것도 같았 다. 그는 성냥개비 여섯 개를 이리저리 놓아보았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해보았지만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답이 뭐예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정작 그 애가 나한테 답을 가르쳐 준 적은 없었던 것 같구 나. 다만 내가 답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그 애가 해준 말은 기억 이 난다. 그 애가 그랬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돼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어요.' 라고 말이야. 상상해 봐라. 열한 살짜리 어린애 입에서 그런 묘리가 튀어나오다니 말이야. 어이구, 주전자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구나. 물이 뜨거워 졌을거야." 할머니는 찻잔 두 개에 아주 진한 향기가 나는 노르스름한 액체를 담아 들고왔다. "네가 네 삼촌에게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정말 기쁘구나. 요즘엔 누가 죽으면 그 사람이 태어난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기 일쑤 인데 말이야." 조나탕은 성냥개비에서 손을 떼고 마편초 차를 몇 모금 홀홀 마셨다. "그 후로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더 이상은 나도 아는 게 없다. 에드몽이 대학에서 자연 과학 공 부를 시작한 다음부터는 우리도 그 애 소식을 못 들었으니까. 네 어 미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들은 얘기로는, 애드몽이 박사 과정을 훌륭 하게 마치고 어떤 식품 회사에서 일했다는구나. 그러다가 회사 그만 두고 아프리카에 갔다는 게야.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로는 시바리 트 가에 살았다는데 죽을 때까지 아무도 그 동네에서 에드몽에 관한 얘기를 못들었다는구나." "삼촌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저런, 너 모르고 있었니? 얘기 들으면 믿기지 않을 게다. 모든 신문에서 그 얘기를 했지. 글쎄 에드몽이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구나." "말벌에요? 어쩌다 그렇게 됐죠?" "혼자서 숲속을 거닐다가 부주의로 벌떼를 건드린 모양이야. 말벌 들이 일제히 에드몽에게 달려든 거지. 검시관이란 사람은 '사람 몸 에 이렇게 벌에 쏘인 자국이 많은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주장했 지. 에드몽의 혈액에는 리터당 0.3그램의 독이 들어 있었다는거야." "무덤은 있나요?" "아니, 에드몽은 숲속에 있는 소나무 밑에 묻히고 싶어했단다." "삼촌 사진 가지고 계세요?" "저기 봐라, 저기 서랍장 위쪽 벽에 걸린 사진 말이야. 오른쪽이 네 어미, 쥐지다. 저렇게 젊은 네 어미 모습을 본 적이 있니? 왼쪽 이 에드몽이다." 에드몽은 이마가 벗겨지고 뾰족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귀 는 귓볼이 없고 눈썹 높이 위로 쫑긋 올라온 것이 카프카의 귀를 닮 았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폼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의 모습이다. 에드몽은 옆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쉬지의 모습이 화사하다. 그 사진을 찍을 때로부터 몇 년 후에 쥐지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음 에도 쉬지는 결혼 전에 쓰던 웰즈라는 성을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남편의 성을 붙이는 걸 원 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진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 에드몽 삼촌이 자기 누이의 머 리위로 손가락 두 개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조나탕의 눈에 들어왔다. "삼촌은 무척 장난기가 많았던가 봐요, 그렇지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의 화사한 얼굴을 다시 대 하자 애잔한 마음에, 너울을 뒤집어쓴 듯 눈앞이 흐릿해졌다. 쉬지 는 6년 전에 죽었다. 술취한 운전자가 몰고 가던 15톤 화물차가 쉬 지의 자동차를 좁은 골짜기로 밀어버렸던 것이다. 임종의 고통이 이 틀 동안 계속되었다. 쉬지는 에드몽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에드몽은 올 형편이 아니었다. 그때도 그는 무슨 일엔가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에드몽 삼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 다른 사람 알고 계세요?" "가만 있자.... 에드몽이 자주 만나던 죽마고우가 하나 있다. 대 학도 같이 다녔지. 이름이 자종 브라젤이라던가. 나한테 그 사람 전 화번호가 아직 있을 게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재빨리 컴퓨터에 입력된 자료를 뒤져보고 나서 자종 브라젤의 주소를 조나탕에게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애정 어린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보기에 조나탕은 웰즈 집안의 마지막 생존자이고 착한 어린애였다. "어서 차 마셔라. 식겠다. 프티트 마들렌도 있는데 좀 주랴? 메추 리 알을 깨넣고 반죽을 해서 내가 직접 만든 거란다." "아뇨, 됐어요. 가봐야 되겠어요. 저희 새 집으로 언제 놀러 오세 요. 세간살이도 다 들여놓았어요." "그렇게 하마. 아참, 기다려라. 편지를 가져가야지." 커다란 벽장에서 쇠로 만든 상자들을 열심히 뒤진 끝에 할머니는 편지 봉투 하나를 찾아냈다. 봉투 겉면에는 힘찬 글씨로 '조나탕 웰 즈에게'라고 씌어 있었다. 봉투 뚜껑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열어보 지 못하도록 접착 테이프를 몇 겹으로 붙여서 단단히 봉해져 있었 다. 조나탕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찢었다. 작은 노트 크기의 접힌 종 이 하나가 나왔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특히 당부하건대, 지하실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가지 말 것! 따스한 기운을 전해 받은 개미가 더듬이를 가볍게 떤다. 마치 오 랫동안 눈에 덮여 있던 자동차에 다시 시동을 걸 때 자동차가 떠는 모습 같다. 수개미는 같은 몸짓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일개미를 문 지르고 따뜻한 침을 발라준다. 생명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원동기가 움직이듯 생명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차례의 겨울이 지나간 것이다. 마치 그런 '가사상태'따위는 겪은 적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수개미는 열 에너지를 전해주려고 일개미를 다시 문지른다. 일개 미는 이제 원기를 회복했다. 수개미가 계속 애쓰고 있을 때, 일개미 는 더듬이를 수개미 쪽으로 뻗는다. 일개미도 더듬이로 수개미를 간 질인다. 일개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일개미의 더듬이가 수개미의 머리를 벗어나 더듬이의 첫번째 마디 를 어루만지며 그의 나이를 읽는다. 그의 나이는 173일. 앞을 못 보 는 일개미이지만 두 번째 마디에서 그의 계급을 알아낸다. 그의 계 급은 생식 능력이 있는 수컷, 세 번째 마디에서는 그가 속한 종과 도시를 알아낸다. 어미 도시 벨로캉에서 출생한 숲속 불개미. 네번 째 마디에서는 산란 번호를 읽어내는데, 산란 번호가 그의 호칭이 된다. 그는 가을초부터 계산하여 327번째로 산란된 수개미 327호이다. 일개미는 그쯤에서 후각 정보의 해독을 멈춘다. 다른 마디에서는 후각 정보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마디는 동료들끼리 길 안내를 할 때 방출하는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데 쓰인다. 여섯 번째 마디는 간단한 대화를 할 때 사용되고, 일곱 번째 마디는 교미 를 할 때와 같은 복잡한 대화에 사용된다. 여덟 번째 마디는 어머니 인 여왕개미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도톰한 끄트머리를 이루는 나 머지 세 마디는 자그마한 곤봉 구실을 한다. 이상으로 일개미는 수개미 더듬이의 위쪽 반을 이루는 열한 개의 마디를 다 더듬어본 셈이다. 그러나 일개미는 그에게 해줄 말이 아 무것도 없다. 그래서 일개미는 그의 곁을 떠나 이제는 스스로 몸을 덥히려고 도시의 지붕 위로 나간다. 수개미도 나간다. 열 전달하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보수 작업을 할 차례다! 위에 다다르자 327호는 지난 겨울 동안에 생긴 피해 상황을 확인 한다. 벨로캉은 악천후에 따르는 피해를 가장 적게 하기 위하여 원 뿔꼴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겨울엔 여지없이 피해를 당한다. 바람 과 눈과 우박 때문에 잔가지들의 첫번째 켜가 벗겨졌다. 새들이 내 갈긴 똥 때문에 몇 개의 출구가 막혀버렸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327호는 노르께하고 커다란 오물 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 들어서 큰턱으로 그 단단하고 악취나는 것을 치우기 시작한다. 건너 편에서는 벌써 안쪽으로부터 오물을 파내고 있는 다른 개미의 그림 자가 비쳐오고 있다. 문에 빠끔히 나 있는 렌즈 구멍이 침침해졌다. 그 구멍으로 누군 가가 문 밖을 엿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구뉴라는 사람인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문에 왔어요." 문이 반쯤 열렸다. 구뉴라는 사람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 머 리의 사내아이가 나타나자 눈길을 아래로 떨구다가, 자그마한 개가 나타나자 눈길을 더 낮추었다. 개가 사내아이의 다리 사이에 코를 들이밀고 아르릉대기 시작했다. "아빠 안 계셔요!" "그러냐? 웰즈 교수께서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하셨는데...." "웰즈 교수는 저희 종조부이신데, 돌아가셨어요." 니콜라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구뉴라는 사내는 완강하게 발을 들이 밀었다. "진심으로 조의를 표해야겠구나. 얘야. 그런데 혹시 그분이 서류 가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서류 묶음 같은 거 남기시지 않으셨니? 내가 책 장정하는 사람이거든. 그분이 나에게 돈을 미리 주시면서 연구 노트들을 가죽 표지로 장정해 달라고 하셨단다. 내 생각에 그 분이 백과사전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해놓고선 통 소식이 없어서 말이야...." "그분은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남자는 무릎으로 문을 밀면서 발을 더 들이 밀었다. 아이를 떼밀 고 당장이라도 들어올 기세였다. 왜소한 개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동작을 멈추었다. "돌아가셨다 해도 약속은 약속이지. 그분이 약속을 안 지키시게 되면 내가 상당히 난처해지는데..., 그렇지 않겠니? 미안한 얘기다 만 확인 좀 해다오. 어딘가에 틀림없이 빨간색으로 된 커다란 서류 철이 있을 게다." "백과 사전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래, 그분이 그 서류 묶음 전체에다 손수 이름을 붙이시기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이라고 하셨단다. 그렇지만 표지에 그렇게 적혀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그레 우리 집에 있다면 우리가 찾아냈어도 벌서 찾아냈을 거예요." "자꾸 이래서 미안하다만...." 왜소한 푸들 종의 개가 다시 짖어댔다. 사내가 조금 뒷걸음을 쳤 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는 남자를 문 밖으로 쫓아냈다. 이제 온 도시가 잠에서 깨어났다. 열을 전달하는 개미들이 통로를 가득 매운 채 동포들의 몸을 덥히느라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런 데 몇 군데 너른 마당에는 아직도 꼼짝 않고 있는 개미들이 눈에 띈 다. 전열 개미들이 그들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하지만 허 사였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들은 끝내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들은 죽은 것이다. 겨울잠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장 박동을 멈춘채로 3개월을 지내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대기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동안에 쓰레기터에 버렸다. 죽은 세포를 털어내 듯 아침마다 시체들을 다른 오물과 함께 치워내는 것이 그 도시의 일상적인 일이다.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해 낸 뒤의 혈관처럼, 개미 도시의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다리가 꿈틀거린다. 턱으로 땅을 후비고 더듬이를 흔들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모든 것이 이전의 모습대로 되 돌아 온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겨울이 이전의 모습대로. 수개미 327호가 자기 몸무게의 60배는 족히 나갈 잔가지 하나를 운반하고 있는데, 500일 이상 된 병정개미 하나가 다가간다. 병정개 미는 그의 주의를 끌려고 더듬이 끄트머리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 린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든다. 병정개미는 자기 더듬이를 그의 더 듬이와 맞댄다. 병정개미는 수개미에게 지붕 수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한 무리의 개미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자고 권한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입과 눈을 더듬으며 묻는다. '뭘 사냥하러 나간단 말인가?' 병정개미는 제 가슴마디의 주름 속에 갈무리해 둔 말라비틀어진 고깃조각의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이 고기는 겨울이 되기 바로 전에 찾아낸 건데, 이게 있던 장소 는 정오의 태양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으로 23도 되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개미가 고기 맛을 본다. 딱정벌레의 고기가 틀림없다. 더 정확 하게 말하면 딱정벌레목 중에서도 잎벌레의 고기이다. 이상한 일이 다. 정상대로라면 딱정벌레목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을텐데 지금 사냥을 하자니.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불개미는 기온이 12도가 될 때 잠에서 깨어나고, 흰개미는 13도 파리는 14도, 딱정벌레는 15도 가 되어야 깨어나지 않는가. 늙은 병정개미는 그런 반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개미에게 설명한다. '이 고깃덩이는 특별한 지역에서 나온 거다. 지하수 때문에 비정 상적으로 따뜻해진 지역이지. 거기에는 겨울이 없다. 그런 좁은 지 역의 미기후에서는 특이한 동물상과 식물상이 나타나는 법이다. 게 다가 갓 잠에서 깨어난 우리 도시의 동포들이 너무 굶주려 있지 않 은가. 도시가 다시 움직이려면 빨리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한다. 햇 볕의 온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병정개미 계급에 속하는 스물여덟 마리의 개미들로 원정대가 꾸려 졌다. 수개미에게 사냥을 권유했던 개미가 그렇듯이 원정대의 대부 분은 비생식 계급에 속하는 나이 많은 개미들이다. 수개미 327호만 이 유일하게 생식 계급에 속해 있다. 수개미는 체처럼 생긴 그의 겹 눈을 통해, 조금 떨어져 있는 동료들을 살펴본다. 수천 개의 낱눈이 모여 있는 개미의 겹눈에는 똑같은 상이 수천 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낱눈이 감지한 상이 조화를 이루 어 모자이크와 같은 상이 맺힌다. 그래서 개미는 사물의 세밀한 생 김새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 대신 아주 작은 움직임도 감지해 낼 수 있다. 원정에 나선 이 탐험가들은 한결같이 원거리 여행에는 이골이 나 있는 듯하다. 육중한 그들의 배에는 개미산이 가득 들어 있다. 그들 의 머리에는 아주 강력한 무기들이 달려있다. 갑옷과도 같은 그들의 가슴마디 등판에는 여러 전투에서 적들의 위턱에 맞아 긁힌 자국들 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몇 시간 전부터 앞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같은 연방에 속해 있는 여러 도시들을 지나쳤다. 도시들은 공 중으로 높이 솟아 있기도 하고 나무 밑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모두 '니'왕조의 자매 도시들로서, 그 면면을 보자면,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요뒬루베캉, 2년 전에 용맹한 병정개미 군단을 보내 남쪽 흰개미 도시들의 동맹을 정복한 바 있는 지울리에캉, 전투용의 고농 축 개미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화학 실험실로 유명한 제디베이나 캉, 연지벌레의 분비꿀을 발효시켜 나무진 맛의 인기 좋은 술을 생 산하는 리이우캉 등이다. 이렇듯 불개미들은 도시를 이루어 살 뿐 아니라, 몇 개의 도시들 이 모여 연방을 이루기도 한다. 단결은 힘을 낳는 법이다. 쥐라 산맥 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의 불개미 연방들이 발견되었다. 그 연 방들은 24만여 평의 표면적에 걸친 1만 5천 개의 개미집들을 포괄하 고 있었고, 전체 연방원 수가 2억이 넘었다. 벨로캉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벨로캉은 역사가 길지 않은 연방으로서 시초의 왕조가 세워진 지는 5천 년이 되었다. 이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의 어떤 암개미 하나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신의 연방을 찾아가지 못한 암개미는 벨로캉을 건설했고, 벨로캉으로부터 수백 세대에 걸쳐 '니'왕조의 여왕들이 태어나고 현재의 연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길 잃은 개미'라는 뜻을 가진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맨 처음 여왕 의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앙의 둥지를 차지한 여왕들이 모두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그것은 벨로캉 중심 도시의 여왕을 일 컫는 이름이 되었다. 현재 벨로캉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중앙의 커다란 도시 하나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64개의 분가도시들뿐이다. 그럼에도 벨로캉은 퐁텐블로 숲의 그 구역에서는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가진 연방으로 이미 자지를 굳혀가고 있다. 탐험에 나선 개미들이 여러 동맹 도시들을 거쳐 벨로캉 연방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라숄라캉을 지나자 작은 둔덕이 나타났다. 여름 보금자리로 쓰이거나 '전진기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둔덕이 다. 그곳은 아직 텅 비어 있지만, 머지 않아 사냥과 전쟁이 시작되 면 병정개미들로 북적댈 것임을 327호는 알고 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곧장 나아간다. 터키 옥처럼 푸르른 넓은 풀 밭을 지나고 가장자리에 엉겅퀴가 늘어선 언덕을 내달리고 나니 벨 로캉의 사냥 구역 밖이다.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것이 적들의 도시 시게푸라는 것을 그들은 이내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 시간이면 시게 푸의 거주자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나아간다. 주위의 곤충들은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 다. 일찍 일어난 몇몇 곤충들이 땅굴 밖으로 이따금 머리를 내민다. 그 곤충들은 붉은 갈색의 갑옷 투구를 발견하자 이내 겁을 집어먹고 몸을 숨긴다. 개미들이 신명을 낼 때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개미들도 신명을 내며 무언가를 할 때가 있다. 특히 더듬이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이렇게 행군을 할 때가 그런 때이다. 먹이 탐색에 나선 개미들이 땅 끝이라고 알려진 곳에 다다랐다. 이제 분가 도시 따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전진 기지 같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다리로 파놓은 아주 작은 오솔길 조차 없다. 냄새를 뿌려 동료들을 이끌던 옛 길의 어렴풋한 흔적이 겨우 남아서 옛날에 벨로캉의 개미들이 그쪽으로 지나갔음을 말해주 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머뭇거린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뭇잎들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그 냄새는 그들의 후각으로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이다. 그 나뭇잎들이 지붕처럼 그들을 덮고 있어서 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이 그 나뭇잎 위로 점점이 수를 놓듯 올라서자 그 거대한 식물이 개미들을 움켜잡으려 한다. 지하실에 내려가지 말라고 식구들이 잘 알아듣도록 얘기를 하긴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한다? 그는 저고리를 벗어 내려놓고 가족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짐은 다 풀었어?" "예, 아빠." "고생 많았군, 그런데 말이야, 부엌 좀 살펴봤어? 안쪽에 문이 하 나 있던데." 그 말에 뤼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한테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게 지 하실로 통하는 문 같은데, 열어보려고 했지만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요. 문에 커다란 틈새가 하나 나 있길래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속이 깊어 보이던데요. 당신이 자물쇠를 비틀어 따야 되겠어요. 그래도 자물쇠장이 남편을 둔 게 쓸모가 있긴 있군요." 뤼시는 빙긋 웃으며 다가와 그의 품에 안겼다. 뤼시와 조나탕이 함께 살아온 세월이 이제 13년이 되었다.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우 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다. 어느날 어떤 부랑아가 너무도 할 일이 없 었던 나머지 지하철 차량 안에다 최류탄을 던져넣었다. 그러자 승객 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심하게 기침을 해대며 바닥에 넘어졌다. 뤼시와 조나탕도 서로 포개지듯 넘어졌다. 콜록거림이 멎고 눈물이 잦아들었을 때 조나탕은 뤼시에게 집까지 바래다주겠노라고 제안을 했다. 얼마 뒤에 조나탕은 자신이 꾸려나가던 유토피아적인 공동체 로 뤼시를 초청했다. 그곳은 그가 공동체 운동 초창기에 만든 공동 체 중의 하나로서 파리 시내 북역 근처에 있던 집이었다. 그러고 나 서 3개월 뒤에 둘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어." "무슨 얘기예요?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다니요?" "그래 자물쇠 채운 데로 그대로 두고 지하실을 쓰지 말자고, 지하 실 얘기는 이제 꺼내지 않기로 해. 거기에 가까이 가지도 말고 문을 열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접어두자고." "지금 농담하는 거예요? 무슨 예긴지 좀 알아듣게 해봐요."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면 그럴싸한 핑겟거리가 있어야 하 겠는데, 조나탕은 미처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얼떨결에 말을 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자기 의도와 정반대가 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 다. 아내와 아들의 호기심만 잔뜩 부추긴 셈이었다. 이제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삼촌 주변에 뭔가 불가사 의한 것이 있는데, 지하실에 내려가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분이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셨다고 설명할까? 그건 식구들을 설득할 만한 설명이 못 된다. 기껏해야 쓸데없는 미신이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뤼시와 니콜라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턱이 없다. "공증인이 나한테 귀띔을 하더라고" 조나탕이 밑도끝도없는 소리를 했다. "당신한테 누가 뭘 귀띔했다는 거예요?" "저 지하실에 쥐가 우글거린다는 거야!" "으악! 쥐가요? 그러면 그놈들이 틀림없이 문 틈새로 나올 거예요." 아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걱정할 것 없어. 틈새를 다 막으면 되니까." 조나탕은 자기가 지어낸 말이 조금 먹혀들어가자 마음을 놓았다. 용케 쥐를 생각해 낸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좋아.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까 아무도 지하실에 접근하면 안돼,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뤼시가 곧 그 의 뒤를 따라왔다. "할머니 뵈러갔었지요?" "그래, 맞아." "오전 내내 거기서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래, 그것도 맞아." "계속 이렇게 허성 세월만 할 거예요? 피레네 산맥 농장에서 당신 이 다른 사람들한테 했던 얘기 생각 안 나요? '무위는 모든 악행의 근원이다.'라는 얘기 말이에요. 다른 일을 좀 찾아봐요. 이제 가진 돈도 다 떨어져가요." "숲 가장자리 멋진 동네에 66평이나 되는 집을 물려받은 마당에, 일타령만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안 되겠어?" 그는 아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자 뤼시가 뒤로 물러서며 대꾸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미래도 생각해야죠. 내가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당신도 실업 상탠데, 1 년 후에는 어떻게 살겠어요?" "아직 저금이 남아 있잖아" "정신차려요. 몇 달 근근이 살아갈 돈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는." 뤼시는 자그마한 주먹을 양허리에 대고 가슴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은 밤에 위험한 지역에 안 가려고 하다가 일자리를 잃 었어요. 그건 좋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데 가서 다른 일을 찾아볼 수는 있는 거 아니예요?" "물론이지. 일거리를 알아볼거야. 마음이 내킬 때까지 내버려두면 내가 다 알아서 할거야. 한 달쯤 있다가 구직 광고를 낼께. 약속하겠어."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금발의 아이가 욕실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곧 이어 플러시 천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듯한 네 발 짐승이 나타났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였다. "아빠, 조금 전에 웬 사람이 왔다 갔는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 문이라고 하던데요." "책? 무슨 책을 장정한단 말이냐?"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에드몽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큰 백과사전 얘기를 했어요." "그래? 그거 참.... 그 사람 집 안에 들어오게 했니? 그리고 니콜 라하고 당신, 그런 책 본 적 있어?" "못 들어오게 했어요. 착한 아저씨처럼 보이질 않았어요. 또 들어 와 봤댔자 책도 없는걸요...." "그래 기특하다. 잘했구나." 낯선 사람이 어떤 책을 찾으러 왔었다는 아들의 얘기가 조나탕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넓은 집안을 온통 뒤지고 돌아다녀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러자 그 는 한동안 부엌에 머물면서 지하실 문이며 커다란 자물쇠며 문에 난 틈새를 살펴보았다. 도대체 이 지하실에 어떤 불가사의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이 덤불을 빠져나가야 한다. 먹이 탐색에 나선 개미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드는 개 미 하나가 제안을 한다. '뱀 머리' 대형을 짓자는 것이다. 들어가기 가 꺼림한 지역으로 나아갈 때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 즉시 합의 가 이루어졌다. 모두들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선두에서 척후 개미 다섯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대열의 눈이 되어준다. 한걸음한걸음을 조금씩 신중하게 떼어놓을 때마다 척후 개미들은 흙을 만져보고 하늘의 냄새를 맡고 이끼를 조 사한다. 모든 게 이상이 없으면 '전방 이상 없음'이라는 뜻이 담긴 후각신호를 동료들에게 보낸다. 그러고 나서 척후 개미들은 대열의 후미로 돌아가고 '후각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다른 개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선다. 이러한 교대 방식을 취함으로써 개미의 대 열은 언제나 극도로 예민한 '코'를 가진 기다란 동물처럼 앞으로 나 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전방 이상 없음'이라는 신호가 스무 번쯤 청아하게 울리더니, 돌 연 청아한 신호가 끊기고 아주 불쾌한 신호가 전해진다. 척후 개미 중의 하나가 칠칠치 못하게 어떤 벌레잡이 식물에 접근했던 것이다. 끈끈이귀개라는 식물이다. 끈끈이귀개가 고혹적인 향기로 척후 개미 를 끌어들여 끈끈물로 개미의 다리를 붙들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끈끈털에 곤충의 몸이 닿으면, 문의 경첩이 접히면서 문이 닫히듯이 생체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경첩으로 이어진 듯한 두 개의 커다란 잎이 가차없이 닫 힌다. 잎 가장자리의 긴 털은 이빨과 같은 구실을 한다. 그 털들이 서로 얽히면서 견고한 울짱으로 바뀐다. 희생물이 완전히 탈진하여 움직이지 않게 되면, 그 야수와도 같은 식물은 소화 능력이 왕성한 효소를 분비한다. 아무리 질긴 등딱지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이다. 그렇게 개미가 스러져가고 있다. 그의 몸뚱이가 온통 부글거리는 액체로 바뀌어간다. 단말마의 고통이 물방울이 되어 부글거리는 것 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서 다른 개미들이 할 수 있는 일 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일은 원거리 파견을 나선 개미들이 흔히 겪 는 불상사의 하나로서 사전에 예측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천연의 덫 가장자리에 '주의! 위험'이라고 표시를 해두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개미들은 불상사를 잊고 냄새의 자취를 따라 계속 나아간다. 페로 몬의 자취가 저쪽으로 가라고 일러주고 있다. 덤불을 가로질러 그들 은 서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여전히 태양광선을 기준으로 23도 벌어 진 방향이다. 그들은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울 때만 조금 휴식을 취 한다. 한참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돌아가지 않으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탐험에 나섰던 개미들이 도시로 돌아오다가, 적의 군대가 도시를 포위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포위망을 뚫고 도시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마침내 탐험 개미들이 동굴 입구를 알리는 페로몬(같은 종 동물의 개체들끼리 신호를 전달할 때 작용하는 체외 분비성 물질)의 자취를 찾아냈다. 땅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다. 개미들은 자갈 땅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은은한 개울물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온 천이다. 샘에서는 김이 모락거리고 유황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개미들이 샘물에 몸을 적신다. 문득 이상하게 생긴 동물 하나가 눈에 띈다. 흡사 공에 다리가 달 린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니 풍뎅이과에 속하는 쇠똥구리가 쇠똥 과 모래로 만든 공을 밀고 있는 것이다. 공 안에는 쇠똥구리의 알이 들어 있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처럼 그는 자신의 '세계'를 받치 고 있는 것이다. 비탈이 내리막일 때는 공이 저절로 굴러가고 쇠똥 구리가 쫓아간다. 오르막에서는 애면글면 헐떡거리며 공을 밀어올 리다가 공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시 가지러 내려가기가 다반사다. 여기서 풍뎅이과의 곤충을 만난 것은 뜻밖이다. 그것은 더 따뜻한 지대의 곤충이 아닌가.... 벨로캉의 개미들은 쇠똥구리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쇠똥구리의 살은 맛도 별로 없고 등껍데기는 너 무 무거워서 운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왼쪽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달아나더니 우툴두툴한 바 위 속으로 숨어버린다. 집게벌레이다. 그것은 쇠똥구리와는 달리 맛 이 좋다. 제일 나이가 많은 개미가 가장 재빠르게 사냥 동작을 취한 다. 배를 목 아래로 들어올리고 뒷다리로 평형을 유지하면서 사격 자세를 취한다. 그런 다음 본능적으로 겨냥을 하고 개미산 한 방울 을 아주 멀리 쏘아보낸다. 부식제와도 같은 농도 40퍼센트의 그 액 체를 맞은 집게벌레의 몸이 갈라져버린다. 명중이다. 집게벌레는 정통으로 개미산 벼락을 맞은 것이다. 농도 40퍼센트 의 개미산은 유장같은 밍밍한 액체가 아니다. 농도가 4퍼센트만 돼 도 벌써 따끔거리게 만드는데, 하물며 40퍼센트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집게벌레가 쓰러지자 개미들이 개미산에 덴 그의 살을 먹으려 고 달려간다. 그곳에 사냥감이 많은 걸 보니, 지난 가을에 탐사를 나갔던 개미들이 페로몬을 제대로 뿌려놓은 셈이다. 멋진 사냥이 될 것 같다. 개미들은 아르투아 지방의 우물처럼 물이 솟는 곡까지 깊이 파인 우물 안으로 내려간다. 생전 처음 보는 갖가지 종류의 동물들이 개 미들을 보고 겁을 집어먹는다. 박쥐 한 마리가 그들이 더 이상 못 들어오게 하려고 한껏 위세를 부려보지만 개미들이 개미산을 안개처 럼 뿜어 덮어버리자 달아나버렸다. 그 다음 며칠 동안 개미들은 그 따뜻한 동굴을 계속 탐색하면서, 하얗고 자그마한 곤충의 껍질과 연초록빛 버섯 조각을 긁어모았다. 그들은 항문샘으로부터 페로몬을 방출하여 새로운 자취를 남겨놓았 다. 나중에 동료들이 거기에 와서 사냥을 할 때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들의 사냥 구역이 서쪽 덤불 너머 그곳까지 손길을 뻗친 것이다. 식량을 잔뜩 짊어지고 귀로에 오르면 서 그들은 점령지에 깃발을 꽂듯 벨로캉 연방을 나타내는 화학 물질 을 두고 간다. 깃발이 펄럭이듯 그 향기가 허공에 퍼져나가면서 '벨 로캉!'을 외치고 있다. "아니, 누구시라고요?" "웰즈입니다. 에드몽 웰즈라는 분의 조카되는 사람입니다." 문이 열리고 키가 2미터 가까이나 될 듯한 거구가 나타난다. "자종 브라젤 선생님이시지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만, 선생님하고 제 삼촌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싶어서 왔는데요. 저 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만 제 할머니께서 선생님이 그분하고 둘도 없 는 친구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럼 들어오게.... 에드몽에 대해 뭘 알고 싶은 겐가?" "뭐든지요. 유감스럽게도 그분에 대해 아는 게 없거든요...." "으음, 그런가. 에드몽은 살아 있는 신비라고나 할 만한 그런 부 류의 친구라네. 누구도 그걸 부정하진 못하지." "그분을 잘 아시지요?" "그 누구든 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에드몽을 잘 안다고 말하지 않겠고, 다만 우리 두 사람이 인생의 많 은 시간을 나란히 걸어왔고 그 친구도 나도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대학에서 생물학을 같이 공부했지. 내 전공은 식물이었고, 그 친 구전공은 박테리아였지." "두 세계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그렇지만 식물이 박테리아보다 더 잔인하다는 점에서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 자종 브라젤은 식당 안으로 기어들어온 녹색 식물들을 가리키면서 토를 달았다. "저 식물들을 보게나. 저것들은 빛 한 줄기, 물 한 방울을 차지하 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고 서로 죽일 준비가 되어 있지. 잎새 하나가 응달에 놓이게 되면 식물은 그 잎새를 포기하고 옆에 있는 잎들을 더 키우게 되지. 식물의 세계는 무자비한 세계라네." "그럼 에드몽 삼촌이 연구하신 박테리아는요?" "에드몽은 자기 연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조상을 찾게 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곤 했지. 말하자면 생물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계 통수에서 그 친구는 표준적인 것보다 좀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지...." "왜 하필이면 박테리아였을까요? 원숭이나 물고기를 연구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그 친구는 가장 원시적인 단계에 있는 세포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네. 그는 인간을 세포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세포 전 체의 작용을 연역해 내려면 세포 하나의 '심리'를 철저하게 이해해 야 한다고 생각했지. '크고 복잡한 문제는 실제로는 작고 단순한 문 제들의 결합일 뿐이다.' 그런 경구를 그 친구가 편지에 슨 적이 있지." "그분은 박테리아에 대해서만 연구를 하셨나요?" "천만에. 그 친구 어떤 점에서는 신비주의자였고 정말 만물 박사 였지. 뭐든지 다 알고 싶어했던 것 같아. 가끔 엉뚱한 생각도 하곤 했지. 예를 들면 자신의 심장 박동을 제어하려고 했다든가...." "정말 엉뚱하셨군요?!" "인도와 티벳의 요가 수행자들 중에는 그런 놀라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 걸 해서 도움되는 일이 있나요?" "낸들 아나.... 그 친구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를 바랐지. 자기 의지대로 심장을 멎게 해서 생을 마감하려는 것이었지. 그렇게 되면 언제 어는 때라도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 는 거라고 생각한 게지." "그래서 얻는 게 뭘까요?" "그 친구는 아마도 늙는 것에 따르는 고통을 두려워했던 것 같아." "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그분이 뭘 하셨나요?" "대학을 떠나서 회사에 취직했지. 요구르트를 만드는 데 쓰는 살 아있는 박테리아를 생산하는 회산데. 이름이 '스위트밀크'라네. 거 기에서 에드몽은 일을 잘 해냈지. 맛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향까지 촉진시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네. 그 덕분에 그 해에 가장 훌륭한 발명을 해낸 사람에게 주는 발명상을 63년에 탔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됐나요?" "그 다음에 중국 여자와 결혼을 했지. 링마라는 여자였어. 부드럽 고 생글생글 잘 웃는 여자였지. 꽤 까다롭던 그 친구 성미가 금방 누그러지더군. 그 여자한테 아주 푹 빠졌지. 결혼하고 나서부터 그 친구 보기가 더 힘들어지더군. 당연한 얘기지." "삼촌이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야." "무슨 일이 있고 나서 가신 건가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나서지. 링미가 백혈병에 걸렸다네. 혈 액암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병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지. 발병하고 3 개월만에 그 여자가 세상을 떴지 가련한 친구 같으니라고. 세포에만 관심이 있고 사람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사코 주장하더니만, 링미 의 죽음이 준 교훈은 잔인했지. 그래서 그 친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그 재앙에 겹쳐서 '스위트밀크'회사 동료들하고도 말썽이 생겼지.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낙담한 채 집에 틀어박혔지. 링미 덕 분에 인간에 대한 그의 믿음이 되살아나는가 했더니. 그녀를 잃고 나서 인간에 대한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네." "링미라는 분을 잊으려고 아프리카로 떠나신 건가요?" "그럴꺼야 다른 목적도 있었겠지만 생물 연구에 전력 투구함으로 써 상처를 아물게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흥미있는 연구 주제를 새 로이 찾아냈던 것임에 틀림없어.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 르네만 박테리아는 아니었네. 그가 아프리카에 머무른 것도 아마 그 연구 주제를 다루는 데 거기가 편했기 때문일거야 나한테 엽서 한 장이 왔었는데, 국립 과학 연구소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는 것과 로 젠펠트라는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만 했지. 로젠펠트가 누군지는 모르겠어." "그 뒤로 에드몽 삼촌을 다시 만나셨어요?" "그렇다네 샹젤리제에서 한 번 우연히 만나 잠깐 얘기를 나눴지. 삶에 대한 의욕을 다시 찾은 건 분명한데, 그 친구 뭔가를 많이 숨 기고 있더군. 내가 좀 전문적인 질문을 할라치면 대답을 회피했어." "백과 사전을 집필하고 계셨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거 말인가? 그건 더 오래 전 일이지. 그 친구다운 거창한 착상 이었어. 자신의 모든 지식을 하나의 저작 속에 긁어모으겠다는 것이었지." "그 백과 사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보여 준 적이 없을 거야. 에드몽의 사 람됨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을 눈에 안 띄는 깊숙한 곳에다 감추어두 었을거야. 불을 내뿜는 용이 그것을 지키게 하면서 말이지. 그 백과 사전이 그에게는 '위대한 마법사'같은 것이었지" 조나탕은 자리를 뜨려고 하다가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아참, 여쭤볼 게 하나 더 있는데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 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나요?" "알다마다. 그 친구 그걸로 곧잘 사람들의 지능을 시험하곤 했지" "그런데 그 답이 뭔가요?" 그 물음에 자종이 폭소를 터뜨렸다. "저런, 자네에게 확실하게 답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네. 에드몽 말마따나 '저마다 혼자서 제 길을 찾아야지'. 그리고 나면 답을 찾 았을 때의 만족감이 한층 커질거라네." 등에 고기를 잔뜩 짊어진 탓에, 올 때보다 길이 멀게 느껴진다. 개미 대열은 밤의 심한 추위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아간다. 개미들은 3월부터 10월까지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기온이 떨어지면 그들은 무기력해 지고 잠을 자게 된다. 하루 낮 이상이 걸리는 원정을 떠나는 일이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들여 불개미 도시는 그 문제를 해결했다. 불개미들은 사냥 구역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다른 풍습을 가진 동물들이 살고 있는 먼 지방을 아는 일이 중요하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50번째 천년기에 '가'왕조(서쪽에 있던 왕조러서 10만 년 전에 사라짐)의 불개미 여왕 비스탱가는 세계의 '끝'을 알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여왕은 주요한 네 지점에 수백 차례나 원정 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돌아온 원정대는 하나도 없었다. 현재의 여왕 벨로키우키우니는 그리 욕심이 많지 않았다. 여왕은, 남쪽 깊숙한 곳에서 보석 모양의 자그만한 금빛 딱정벌레를 발견한 일에 흡족해 했고, 다른 개미들이 뿌리째 날라온 벌레잡이 식물을 관찰하면서 언젠가는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 것으로 만족했다. 새로운 구역을 샅샅이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연방을 확장하 는 것임을 벨로키우키우니는 알고 있었다. 원거리 파견이 계속 늘어 나고, 분가 도시가 점점 많아졌으며, 전진 기지도 자꾸 늘어난다. 연방은 이런 영토 확장에 쐐기를 박으려는 모든 것들을 상대로 전쟁 을 벌이고 있다. 세계의 끝을 정복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끈질기 게 조금씩 나아가는 이 정책을 개미들의 일반적인 철학, 즉 '천천히 그러나 항상 앞으로'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오늘날 벨로캉 연방은 64개의 분가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똑같은 냄새의 깃발 아래 64개의 도시가 모여 있는 것이다. 125킬로미터에 달하는 자국길과 780킬로미터에 이르는 냄새길이 64개의 도시들을 잇고 있다. 기근이 들었을 때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 도시들은 굳 게 연대한다. 도시들의 연방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서자 몇몇 도시들이 특정 산 업을 전문화할 수 있게 되었다. 벨로키우키우니가 꿈꾸고 있는 대로 라면, 어떤 도시는 곡물만 취급하고, 어떤 도시는 고기만을, 또 어 떤 도시는 전쟁만을 책임지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아직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생각 역시 개미들의 일반적인 철학에서 가르치는 또 다른 원리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임 이 분명하다. 그 원리란 '미래는 전문가들의 것이다'라는 것이다. 탐사 개미들은 아직 전진 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걸 음걸이를 더욱 빨리 한다. 동료 하나를 삼켜버린 그 벌레잡이 식물 옆을 다시 지나갈 때 한 병정개미가 그 식물을 뽑아서 벨로키우키우 니에게 가져가자고 제안을 한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 광장에 모여 회의를 하듯이 개미들이 더듬이 를 모으고 토론을 한다. 휘발성을 띤 미세한 냄새 분자를 주고 받는 다. 페로몬이다. 몸 밖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셈이다. 이 분자 하 나하나를 시삭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의 어항에 비유할 수 있으리 라. 그 어항에서 물고기 한 마리는 한 개의 단어가 된다. 페로몬 덕분에 개미들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개미들의 대화에서 도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무한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 더듬이들의 떨림이 심해지는 것으로 보아 토론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 다.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어머니는 이런 종류의 식물을 모르고 계신다.' '저 식물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 목숨을 잃을 염려도 있고, 저 걸 운반하려고 해도 손이 딸릴 것이다.' '벌레잡이 식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연방 전체에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그것들을 일렬로 심어놓기만 해도 우리 방어선은 끄떡없 을 것이다.' '우리는 지쳐 있고 곧 밤이 될 것이다.' 그들은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 식물을 빙 돌아서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숲 가까이 다가가던 중, 앞에 있던 327 호 수개미가 빨간 데이지 한 송이를 발견한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식물이다. 이제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끈끈이귀개는 그냥 두고왔지만 이건 가지고 가자.' 그는 잠시 거리를 두고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꽃 줄기를 썬다. 툭! 하고 꽃 줄기가 쓰러지자 그는 그것을 긁어쥐고 동료들을 따라 잡으려고 달려간다. 동료들을 따라잡기는 했으나 그들은 이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 다. 분명히 그의 앞에 새해 첫 원정대가 있긴 있으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격렬한 충격. 긴장. 327호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의 모든 동료들이 죽은 채 누워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광 같은 습격을 받았음에 틀림 없다. 개미들은 전투 대형을 갖출 겨를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죽은 개미들이 아직 '뱀머리 대형'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 그는 동료들의 시체를 살펴본다. 개미산은 한 방도 쏘지 않은 채 로 남아 있었다. 개미산은 고사하고 경보 페로몬을 발산할 겨를 조 차 갖지 못한 모양이다. 수개미 327호는 조사에 착수한다. 한 동료의 시체에서 더듬이를 검색한다. 더듬이를 맞대어 냄새를 맡아본다. 동료의 더듬이에는 화학적인 정보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동료들은 걸어가고 있다가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꼭 알아내야 한다.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다. 먼저 할 일은 기관을 깨끗이 닦는 일이다. 앞다 리 끝에 붙은 두 개의 굽은 발톱을 이용하여 더듬이에 묻어 있는 산 성거품을 긁어낸다. 아까 긴장감을 느끼던 찰나에 솟아났던 거품이 다. 327호는 발톱을 입 쪽으로 구부린 다음 그것을 핥는다. 그러고 는 발목마디 위쪽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톱니 모양의 솔에다가 발톱 을 문질러 닦는다. 그 자리에 솔을 마련해 놓은 조물주의 조화가 절 묘하다. 그러고 나서 깨끗해진 더듬이를 눈 높이로 낮추고 1초당 300회의 진동으로 가볍게 흔든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 진동수를 초당 500, 1000, 2000, 5000, 8000으로 증가시킨다. 그가 지니고 있는 수 신능력의 3분의 2까지 올린 셈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주위에 떠도는 아주 미세한 발산물들을 감 지 한다. 이슬에서 발산한 수증기가 있고, 꽃가루와 홀씨가 있다. 또 전에 맡아본 적이 있으나 정체가 아리송한 냄새가 있다. 그는 진동수를 더 높인다. 수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진동수가 초당 1만 2천 회가 되었다. 더듬이가 빠른 속도로 돌면서 작은 흡입 기류를 형성하여 주위의 작은 알갱이들을 모두 빨아들인다. 됐다. 드디어 그 옅은 냄새의 정체를 알아냈다. 범인들의 냄새다. 그렇다. 그 자들, 작년에 지지리도 속을 썩였던 북쪽의 냉혹한 이웃 들임에 틀림없다. 바로 시게푸의 난쟁이개미, 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벌써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들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번개처럼 빠른 새로운 무기를 사용한 것임이 분명하다. 단 한 순간도 지체할 겨를이 없다. 온 연방에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대장님, 그들을 몰살시킨 것은 아주 강력한 진폭을 가진 레이저 광선입니다. -레이저 광선이라고? -그렇습니다. 원거리에서도 가장 큰 우리 우주선들을 녹여버릴 수 있는 새로운 무기입니다. 대장님. -자네 생각에는 그게.... -그렇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들은 금성인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소행임이 분명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가차없이 보복을 해야지. 오리온 대에 주둔해 있는 전투 로켓이 몇 기나 남아 있지? -네 기입니다, 대장님. -그거로는 도저히 안 되겠군. 지원을 요청해야지.... "수프 좀 더 주랴?" "아뇨, 됐어요." 넋을 잃고 텔레비젼 화면을 바라보면서 니콜라가 대꾸했다. "얘, 수프가 코로 들어가겠다. 제대로 보면서 먹어라. 안 그러면 텔레비전 꺼버린다." "아유, 엄마. 제발...." "저거 이제 지겹지도 않니? 초록색 난쟁이들 나오고, 분말 세제 상표하고 똑같은 혹성 이름들 나오는 그 이야기지?" 조나탕이 물었다. "전 재미있어요. 저는 언젠가 우리가 외계인을 만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 입에서 그런 얘기 나온 게 어디 하루 이틀이라야지!" "가장 가까운 별에 무인 우주선을 보냈잖아요. 그 무인 우주선 이 름은 마르코폴로구요. 곧 우리 이웃 별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될 거예요." "그것도 전에 보냈던 다른 무인 우주선들처럼 아무런 실속 없이 우주만 오염시키고 말거야. 거기는 너무 먼곳이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외계인들이 우리를 만나러 올 수도 있 지 않을까요? 미확인 물체(UFO)를 보았다는 증언들을 모두 다 해명한 건 아니거든 요." "그렇지만, 지능을 가진 다른 생물들을 만난다 한들 우리에게 무 슨 소용이 있겠니?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끝장이 날 판인데. 외 계인을 만나는 문제는 고사하고 우리 지구인들끼리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지 않니?" "낯선 세계를 보게 될 거예요. 휴가 여행을 떠날 만난 새로운 장 소가 생길지도 모르죠." "그래 봤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기는 거겠지." 그러면서 조나탕은 니콜라의 턱을 잡고 말을 이었다. "얘야, 더 크면 자연히 알게 되고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될 거다만, 정말 흥미롭고 우리의 지능과 아주 다른 지능을 가진 동물 이 딱하나 있단다. 그게 뭔 줄 아니? 그건.... 여자란다." 그의 말이 농담인 줄 알면서도 뤼시가 체면치레로 화를 냈고, 부 부가 함께 웃었다. 그러나 니콜라는 상을 찌푸렸다. 저런 게 어른들 의 유머인 모양이군.... 아이는 식탁 밑으로 손을 내려 우아르자트 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려고 했다. 탁자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아르자자트 어디 갔지?" 개는 식당 안에 없었다. "우아르지! 우아르지!" 니콜라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 면 대개는 금방 효과가 나타나서 짖는 소리가 나고 발소리가 들리게 마련이었다. 아이는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 었다. 아이는 집 안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개를 찾아보았다. 부모들도 아이와 함께 찾아보았다. 개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제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갔을 리는 없었다. 열쇠를 사 용할 줄 아는 개는 아직 없을 테니까.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은 모두 부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니, 지하실 문 쪽으로 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문에 난 틈새는 아직 메우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런데 틈새는 우아르자자트만한 동 물이라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니콜라가 신 음을 토하듯 말했다. "개는 저 안에 있어요. 저 안에 있는 게 분명해요. 개를 찾으러 가야돼요." 아내의 요구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지하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단 속적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모두 금단의 문으로 다가갔다. 조나탕이 문을 가로막고 나섰다. "아빠가 말했지. 지하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여보, 개를 찾으러 가야 되잖아요. 개가 쥐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몰라요. 쥐가 우글거린다고 당신이 그래놓고선...." 뤼시의 말에 조나탕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아르자자트에게는 참 안된 이야기지만, 내일 다른 개를 사러 가지 뭐." 그 말에 아이가 기겁을 하며 토를 달았다. "그렇지만 아빠, 내가 원하는 건 '다른'개가 아니예요. 우아르자 자트는 내 친구예요. 친구가 저렇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당신 참 이상하네요. 도대체 왜 그래요? 당신이 겁나면 나라도 가게 내버려둬요." 뤼시도 아이와 한편이 되어 말을 보탰다. "아빠, 겁나서 그래요? 아빠 겁장이예요?" 조나탕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정 그렇다면 한번 들 여다볼께'라는 투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손전등을 가지러 갔다. 그가 틈새로 전등을 비추었다. 캄캄했다.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릴 것 같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조나탕이 몸서리를 쳤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 러나 아내와 아들이 그 바닥모를 심연 속으로 자기를 떠다밀고 있는 것이다. 꺼림칙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의 어둠 공포증 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니콜라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개가 죽었어! 죽은 게 분명해! 다 아빠 때문이야." "다치기만 했을지도 모르잖니? 내려가 봐야 알지." 뤼시가 아이를 달랬다. 조나탕은 에드몽 삼촌의 편지에 다시 생각이 미쳤다. 편지 어투는 분명히 내려가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는 어투였다. 그러면 이 일을 어쩐다? 내가 지금 안 내려가면 틀림없이 조만간 식구들 가운데 누 군가가 문을 부수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조나탕은 이 마의 땀을 훔쳤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마침내 오랜 공포증에 의연히 맞서서, 그 것을 뛰어넘고 위험을 이겨낼 기회가 온거야. 어둠이 나를 삼켜 버 리기야 하겠어? 참 잘 된 일이야. 조나탕은 갈 데까지 가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쨌든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이었다. "내려가겠어!" 조나탕은 연장을 가지고 와서 자물쇠를 땄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야 돼. 특히 나를 따라 서 내려온다든가 경찰을 부를 생각은 아예 말아. 내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당신 얘기가 참 이상하네요. 겨우 지하실에 들어가는 걸 갖고 웬 야단이에요? 이건 모든 건물에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그저 하나의 지하실일 뿐이에요." "나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지는 해가 오렌지색 알처럼 빛나고 있다. 그 빛을 받으며, 봄철 첫사냥 원정대 중에서 혼자 살아남은 327호 수개미가 달려가고 있 다. 고립 무원의 외로운 신세이다. 오래 전부터 그의 다리가 웅덩이와 진창과 곰팡내 나는 나뭇잎 속 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바람 때문에 입술의 촉촉한 물기가 다 말 라버렸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누런 외투를 입은 것 같다. 이젠 근육에 아무런 감각이 없다. 발톱 몇 개가 부러졌다. 그러나 달려오던 냄새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327호는 금방 자신 의 목표물을 찾아낸다. 벨로캉 연방의 도시들이 다들 언덕을 이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중심 도시인 베로캉은 거대한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 형체가 자국 길 어디에서나 보인다. 그 피라미드가 향기로 그를 매혹하면서 등대처럼 이끌고 있다. 마침내 327호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도시의 발치에 이르러 고개를 들었다. 도시가 그새 더 커졌다. 둥근 지붕 위에 엄폐물 한 켜를 덧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잔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꼭대기가 달을 간질일 만큼 높다. 젊은 수개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땅에 닿을락말락하게 빠꼼히 나 있는 입구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간다. 때맞춰 온 셈이다. 밖에서 일하던 일개미와 병정개미가 모두 돌아 와 있다. 문지기 개미가 안의 온기가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막 출 구를 막으려던 참이었다. 327호가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문을 막는 개미들이 움직이고 그의 뒤에서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다시 막힌다. 이제 춥고 야만적인 바깥 세계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수개미 327호는 다시 문명 세계 속에 들어온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포근한 동료들 속에서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혼자 가 아니라, 수많은 동료들이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파수를 보는 개미들이 다가온다. 327호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탓에 파수 개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의 신 분을 알리는 냄새를 발산한다. 그러자 파수 개미들이 마음을 놓는다. 일개미 하나가 그의 몸에서 피로의 냄새를 감지한다. 일개미는 그 에게 영양 교환을 제안한다. 영양 교환이란 자기 몸에 있는 영양물 을 나누어 주는 의식을 말한다. 개미들은 모두 배 안에 주머니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위에 딸린 그 주머니에서는 먹이를 소화하지 않는다. 이른바 사회위라 불리는 갈무리 주머니이다. 개미는 갈무리 주머니에 먹이를 언제까지라도 손상시키지 않고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다. 그러다가 그 먹이를 되 올려서 '소화 기능을 가진 정상적인' 위에 보내기도 하고, 먹이를 뱉어서 동료에게 주기도 한다. 영양을 교환할 때의 몸짓은 언제나 똑같다. 먹이를 주려는 개미는 영양 교환의 대상이 되는 개미에게 다가와 머리를 가볍게 두드린다. 제안을 받은 개미가 먹이를 받을 의사가 있으면 더듬이를 낮춘다. 만일 더듬이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면, 그것은 사양하겠다는 의사 표 시로서, 그 개미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다. 수개미 327호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에게 남아 있는 기력이 너무 미약해서 곧 전신 경직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입과 입을 맞댄다. 주머니에 저장해 둔 영양물이 다시 올라온다. 제공자 개미 는 먼저 침을 되올리고 다음에 분비 밀과 미음처럼 삭힌 곡물을 되 올린다. 아주 맛있고 금세 기력을 찾게 해주는 음식이다. 영양 교환이 끝나자 수개미가 곧 기운을 차린다. 원정을 나가서 그가 겪었던 모든 일들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죽음, 매복.... 한시 라도 지체해서는 안된다. 그는 더듬이를 세우고 주위에 가는 알갱이 를 뿌려 그 사실을 알린다. '비상! 전쟁이다. 난쟁이개미들이 우리 첫 파견대를 몰살했다. 그 들은 치명적인 성능을 가진 신무기를 가지고 있다. 전투 준비! 전쟁 이 선포되었다' 파수 개미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 경보의 냄새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벌써 수컷 327호 주위에 개미들이 모여들고 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난거야?' '저 친구 말이 전쟁이 났대.' '증거가 있나?' 여기저기서 개미들이 달려나온다. '신병기 얘기도 하고 원정대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얘기도 하는 데.' '보통 일이 아니네.' '증거가 있나?' 이제 수개미를 가운데 두고 한 무리의 개미들이 둘러서 있다 '비상! 비상! 전쟁이 선포되었다. 전투 준비!' '증거가 있나?' 그 말의 냄새를 모든 개미들이 맡았다. '아니야. 저 친구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서 증거 가져올 생각을 못 했대.' 더듬이들이 움직인다.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들을 설레설레 흔든다. '그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인가?' '라숄라캉 서쪽, 척후 개미들이 새로 발견한 사냥터와 우리 도시 들 사이다. 난쟁이들이 종종 정찰을 다니는 곳이지.'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첩보원들이 나갔다. 돌아왔다. 그들 얘기 로는 난쟁이개미들은 아직 자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틀릴 리가 없 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더듬이가 그런 페로몬 문장을 내보냈다. 군중 들이 흩어진다. 군중들은 그 익명의 더듬이가 발산한 말을 믿고 327 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의 어조에 진실성이 깃들인 것은 확 실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터무니없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봄철의 전 쟁이 그렇게 일찍 시작되는 일은 없다. 그리고 아직 자고 있는 자들 이 있는데도 난쟁이개미들이 공격을 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것이다. 수개미 327호가 전해준 소식에 개의치 않고 개미들은 저마 다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첫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 세상 에, 그러면 그 참사를 내가 꾸며냈단 말인가! 결국은 어떤 계급에 결원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 그의 더듬이가 맥없이 이마 위로 축 처진다. 자신의 존재가 더 이 상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든다. 더 이상 다 른 개미들을 위하여 살지 못하고 그저 저 하나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그는 두려움 마음을 가 누지 못한 채 열에 들떠서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고는 일개미들을 모아 쑤석거리면서 자기 얘기를 뒷받침해 줄 개미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외쳐대자 이제 다 른 개미들은 발걸음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탐험가인 나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 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그의 말에 귀기울이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의 얘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심드렁하게 자리를 뜬다. 저 친구 그만 휘젓고 다녔으 면 좋겠군! 조나탕이 내려간 지 이제 네 시간이 지났다. 그의 아내와 아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엄마, 경찰을 부를까요?" "아니야. 아직은 일러." 뤼시가 지하실 문으로 다가갔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난거죠, 엄마. 그렇지요? 아빠도 우아르지처 럼 죽은 건가요?" "말도 안되는 소리. 이 녀석,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니!" 뤼시는 불안감으로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몸을 구부 리고 문틈으로 안을 살펴보았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성능 좋은 할로겐 램프로 비추어보니 좀더 안쪽으로 나선 계단이 보이는 듯도 했다. 뤼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니콜라도 와서 옆에 앉았다. 뤼시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빠는 곧 돌아오실 거야. 참고 기다려야지. 아빠가 우리보고 기 다리라고 하셨으니까 더 기다려보자." "그러다가 아빠가 안 돌아오시면 어쩌죠?" 327호는 지쳐 있다. 자신이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느낌 이 든다. 발버둥은 치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벨로키우키우니에게 직접 보고하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연방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는 비생식 계급 개미들이 기껏해야 3년을 사 는데 비하여, 어머니인 여왕개미는 열네 번의 겨울을 났기 때문에 비길데 없이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여왕이라면 그를 도와서 모두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도를 찾 아낼 것이다. 젊은 수개미가 도시의 중심으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선다. 알을 잔 뜩 짊어진 수천의 일개미들이 그 넓은 통로에서 부지런히 걷고 있 다. 그들은 지하 40층에 있던 그 알들을, 지상 35층의 햇빛방에 자 리잡고 있는 영아실까지 나르고 있는 중이다. 하얀 고치들이, 아래 위 좌우로 흔들리는 다리 끝에 실려 대대적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 다. 327호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어쩌다가 유모 개미들과 부딪히자 그네는 이렇게 야만적인 짓 을 할 수 있느냐며 야단을 친다. 다른 개미들이 그를 들이받고 발길 질하고 떠다밀고 할퀴기도 한다. 통로가 완전한 포화 상태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는 바글거리는 군중 속을 애면글면 헤치며 빠져나온다. 그런 다음 작은 터널들이 있는 길로 접어들어 빠른 걸음으로 나아 간다. 그쪽 길이 더 멀기는 해도 힘은 덜 들 것이다. 개미 도시 전 체를 하나의 인체에 비유한다면, 그는 심장으로 가기 위해서 동맥에 서 소동맥으로, 소동맥에서 다시 정맥과 소정맥으로 건너가고 있는 셈이다. 다리와 육교도 건너고, 때로는 비어 있는 광장을, 때로는 북적거리는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몇 킬로미터를 달린다. 칠흑같은 어둠 속이지만 방향을 잃지 않고 용케 잘도 나아간다.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홑눈들을 이마에 달고 있는 덕이다. 통제 구역인 도시의 중심으로 다가감에 따라 어머니의 달콤한 향기가 더 진하게 끼쳐오고 경비 개미들의 수가 늘어난다. 병정개미 계급에서 분화된 모든 아계급의 개미들이 보인다. 크기 도 각각이고 무기도 가지각색이다. 톱니 모양의 기다란 위턱을 가진 자그마한 체격의 개미가 있는가 하면, 목질처럼 단단한 가슴판으로 무장하고 있는 건장한 개미가 있고, 짤막한 더듬이를 가진 땅딸보가 있는가 하면, 유선형으로 잘 빠진 배에 경련 유발성 독액을 담고 있 는 포수 개미도 있다. 수개미 327호는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지를 당하지 않고 검문소를 통과한다. 병정개미들이 조용한 걸 보 면, 영토를 지키기 위한 큰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모양이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서 그는 문을 지키는 개미에게 냄새 신분증 을 제시하고 여왕의 방으로 통하는 마지막 통로로 들어선다. 문지방을 넘어서다가 그는 그 특별한 장소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발걸음을 멈춘다. 둥근 모양을 한 그 커다란 방은 아주 정 확한 건축 법칙과 기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 법칙은 누수 대에 걸쳐 더듬이에서 더듬이로 어머니 여왕이 딸에게 전해준 것이다. 둥근 천장의 주요 부분은 지름이 36머리에 높이가 12머리이다.(머 리는 벨로캉 연방에서 사용하는 척도러서, 한 머리는 인간 세계에서 사용하는 척도로 3밀리미터에 해당한다.) 희귀하게도 돌가루 반죽을 굳혀서 만든 벽 기둥이 이 곤충의 전당을 받치고 있다. 바닥이 오목 한 이 방은 개미들이 발산한 냄새 분자가 벽에 스며들지 않고 되도 록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고안해 놓았다. 말하자면 훌륭한 후각 원 형 극장인 셈이다. 가운데에 퉁퉁한 암개미가 엎드려 있다. 암개미는 배를 깔고 엎드 린채 이따금 노란 꽃을 향해 발길질을 해보고 있다. 그 꽃은 그때마 다 다리를 붙들려고 잽싸게 꽃잎을 오무리지만 암개미는 그보다 먼 저 다리를 빼낸다. 그 암개미가 벨로키우키우니다. 불개미 중심 도시의 현 여왕 벨로키우키우니. 도시의 유일한 산란 개미이며 모든 동포들의 육체와 정신을 낳은 개미, 벨로키우키우니. 벨로키우키우니는 재임중에 이미 꿀벌과의 대전을 치렀고 남쪽 흰 개미 도시를 정복했으며, 거미의 영토를 평정했고, 떡갈나무 말벌들 이 일으킨 지긋지긋한 소모전도 겪었다. 작년부터는 북쪽 경계를 넘 보는 난쟁이개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방 도시들의 힘을 정비하고 있다. 최장수 기록을 깨뜨린 바 있는 벨로키우키우니. 수개미 327호의 어머니이기도 한 벨로키우키우니. 연방 역사의 산 증인이 예전처럼 그의 곁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 이다. 한때는, 스무 마리쯤 되는 어린 시종 개미들이 여왕을 촉촉하 게 적셔주고 안마를 해줄 때를 제외하고는, 바로 327호 그가 아직 서툰 다리로나마 여왕의 시중을 들었는데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 가 되어 버렸다. 여왕이 관찰하고 있는 어린 벌레잡이 식물이 턱처럼 생긴 꽃잎을 오므리자, 여왕이 투덜거림 섞인 냄새를 발산한다. 여왕이 어쩌다가 그런 야수 같은 식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327호가 다가간다. 가까이에서 보니 어머니는 그리 아름답지는 않 다. 머리가 길쭉하게 앞으로 나와 있고, 한번에 어디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두 눈이 둥그렇게 불거져 있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들은 이마 가운데 모여 있는데, 더듬이는 반대로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더듬이는 아주 길고 날렵하며 이따금 가볍게 떨리는 모습에서는 완벽한 노련미가 엿보인다. 벨로키우키우니는 며칠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 후로 여왕은 계 속 알을 낳았다. 보통 개미들의 배보다 10배나 큰 여왕의 배에 연속 적으로 경련이 일어나더니, 여왕이 여리디여린 알 8개를 낳는다. 자 개빛을 띤 연회색의 그 알들이 벨로캉의 막내 세대가 되는 셈이다. 벨로캉의 미래를 가꾸어갈, 그 아주 동그랗고 끈적끈적한 알이 모태 를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모 개미들이 떠맡는다. 젊은 수개미는 그 알들의 냄새로 거기서 태어날 개미들의 신분을 알아낸다. 그 알들은 수개미들과 생식 능력이 없는 병정개미들이다. 날씨가 추워서 '딸들'을 낳는 분비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상 조건이 나아지면 어머니느 도시가 필요로 하는 만큼 모든 계급의 알 을 낳을 것이다. 일개미들이 어머니에게 와서 '곡물을 빻을 개미와 포수 개미가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그 요구대로 알을 낳아줄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 자신이 거처를 나와 손수 통로를 돌 아다니며 냄새를 맡는 일도 있다. 어머니는 아주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계급에 조금만 결원이 생겨도 그것을 금방 알아 낸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부족한 부분을 곧바로 보충해 준다. 어머니가 다시 야릿야릿한 알 다섯 개를 낳는다. 그러고는 방문객 을 향애 몸을 돌린다. 어머니가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핥아준다. 여 왕의 침이 몸에 닿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 침은 두루두루 효 험이 있는 소독제일 뿐 아니라, 머릿속에 난 상처만 아니라면 어떤 상처라도 치료할 수 있는 만병 통치약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식을 가진 탓에 자식 하 나 하나를 찬찬히 다 알아보지는 못 한다. 그럴 때는 그렇게 침을 발라줌으로써 자식의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알아냈음을 보여주는 것 이다. 내 자식이 왔구나. 비로소 더듬이를 사용하는 대화가 시작된다. '겨레의 모태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내 폼을 떠나기 는 했으나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지니.' 어머니가 자식에게 하는 의례적인 말이다. 그 말을 하고나서 어머 니는 끈끈한 액을 내어 327호의 더듬이 열두 마디에서 페르몬이 나 오게 한 다음 그 냄새를 맡는다. 어머니는 벌써 방문의 이유를 알고 있다.... 서쪽에 파견된 첫 원정대가 전멸을 당했다. 참사가 빚어진 장소 주변에 난쟁이개미들의 냄새가 있었다. 그 자들은 십중 팔구 비밀 무기를 발명해 낸 것이다. 탐험가인 그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 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너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다만, 네가 겨례를 일깨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네 페로몬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나 벨 로키우키우니만이 진실을 겨레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 고 생각하고 나를 찾아온 것이로구나. 어머니는 한층 더 세심하게 그의 냄새를 맡는다. 더듬이 마디마디 와 다리에서 나오는 아주 사소한 냄새 알갱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 다. 그래, 죽음과 불가사의의 흔적이 묻어나는구나. 전쟁일 수도 있 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많지. 어머니는, 그의 말을 사실이든 아니든 어머니 마음대로 무엇을 결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다. 개미 도시에서는 무엇을 결정할 때 확고 부동한 합의를 토대로 한다. 어떤 계획이 나오면 그 일에 함께 매달릴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인체에 빗대어 말하면, 일종의 신경 중추를 하나 만드는 셈이다. 그렇게 하나의 집단을 모 아내지 못하면, 327호의 경험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다. 어머니조차 그를 도울 수 없다. 수개미 327호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 얘기를 끝까지 들어 줄 듯한 말 상대를 만난 기회를 놓칠세라,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가장 설득력이 간한 냄새 분자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 자면, 그 참사는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따 라서 즉시 첩보원들을 보내 그 비밀 무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아 야 한다는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겨레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 적해 있어서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대답한다. 겨울잠에서 께어나는 일도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 아니고 도시의 거죽도 아직 수리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잔가지로 이루어진 맨 윗켜가 놓이지 않 은 상태에서 전쟁을 하러 떠나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겨례는 지 금 단백질과 당분이 부족하다. 그뿐인가. 신생의 축제를 준비할 생 각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자면 각자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한 다. 첩보원을 보내고 싶어도 손이 모자란다. 결국 327호가 불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전하려는 소식은 다른 개미들의 이해를 구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꽤 흘렀다. 어머니는 다시 벌레잡이 식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등딱지를 핥는 일개미들의 입술 소리만이 정적 을 깨고 있다. 어머니는 배가 가슴 아래에 가서 멎을 때까지 몸을 비틀고 있다. 두 뒷다리가 대롱거린다. 벌레잡이 식물이 턱처럼 새 긴 꽃잎을 오므리자 어머니는 재빨리 다리를 빼낸다. 그러고는 327 호에게 그 벌레잡이 식물이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 깨운다. '벌레잡이 식물로 울타리를 세워 북서쪽 경계 전체를 방위할 수 있을 게야. 그러자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이 작은 괴물들이 아직 우리 도시 거주자와 외부 침 입자를 구별할 줄 모른다는 거야....' 327호는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화제를 다시 들고 나온 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사고'로 숨진 개미가 몇 마리냐고 묻는 다. 수물여덟입니다. 죽은 자들이 모두 병정개미의 아계급인 탐험 개미였느냐는 질문에, 327호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자기가 유일한 수 개미였노라고 덧붙인다. 그러자 어머니는 정신을 집중하면서 스물여 덟 개의 진주를 연달아 낳는다. 죽어간 동료의 수와 같다. 스물여덟 마리의 개미가 죽은 대신에, 그 역할을 대신할 스물여덟 개의 알이 태어난 것이다. 때가 되면 숙명적으로 때가 되면 숙명적으로, 손가락이 이 지면들 위에 놓일 것이고, 눈 이 이 단어들을 핥을 것이며, 뇌가 단어들의 의미를 해석할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빨리 도래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결과가 끔 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꼭 알아야 할 것이 다. 아무리 깊은 곳에 감추어둔 비밀이라도 끝내는 호수의 수면으로 떠오르고 마는 법이다. 시간이야말로 비밀의 가장 나쁜 적이다. 이글을 읽고 잇는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먼저 당신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있을 쯤이면, 나는 아마 죽은 지 10 년 아니면 100년쯤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만 여하튼 나는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백과 사전에 담으려는 지식에 도달하게 된 것을 이따금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며, 비록 지금은 인류에 대한 나의 연대 의식이 가장 밑바닥에 와 있지만, 그래도 당신들 속에 세 계 인류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가 인류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겪은 일들을 전해주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좀더 가까이에서 보면 결국 서로 비슷비슷하다. 먼저 '그래서 어찌어찌 되었다'고 발전할 씨앗을 가진 하나의 소재 가 있다. 그 소재가 어떤 위기를 겪는다. 그 위기가 소재에 반전을 불러오고, 소재의 성격에 따라 소재가 소멸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먼저 당신에게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우리의 우주에 관 한 것이다. 우리가 그 세계의 내부에 살고 있고, 삼라 만상은 크건 작건 모두 똑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고 똑같은 상호 의존 관계를 맺 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이 지면을 넘길 때, 당신의 손가락이 어느 지 점에선가 종이의 섬유소와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그 접촉으로 극미 한 마찰열이 생긴다. 지극히 적기는 해도 마찰열은 실재한다. 이 마 찰열 때문에 어떤 전자의 방출이 일어나고 그 전자는 원자를 벗어나 다름 입자와 충돌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작은 알갱이지만, 사실 그 입자도 저 나름으로는 거대한 세계이다. 따라서 전자와의 충돌이 입자에게는 말 그대로 하 나의 대격변이다. 충돌이 있기 전만 해도 입자는 움직임 없이 고요 했고 차가운 상태에 있었다. 당신이 책장을 '넘김으로써'입자가 위 기를 맞은 것이다. 거대한 불꽃이 일면서 입자에 번개 무늬가 생긴 다 책장을 넘기는 동작 하나로 당신은 어떤 일을 일으킨 것이고 그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세계가 생겨나고 그 위에 사람들과 같은 거주자들이 나타나 야금술이며 프로방스 요 리, 별나라 여행 같은 것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영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당신이 손에 이 책을 쥐지 않았 던들, 그리고 당신이 손가락이 바로 종이의 그 자리에 마찰열을 일 으키지 않았던들,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우주는 책장 한 귀퉁이, 구두의 밑바닥, 맥주병의 거품에도 다른 종류의 어떤 거대한 문명이 깃들 자리를 분명히 마련 해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아마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 주 오랜 옛날, 우리 우주, 아니 우리 우주를 담고 있던 입자는 텅 빈 채, 차갑고 캄캄하고, 고요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아니면 무 엇인가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가 책장을 넘기고, 돌 위를 밟고, 맥주병의 거품을 걷어냇던 것이다. 하여튼 어떤 외부 충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우리 입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지 금 우리는 그 외부의 충격을 거대한 폭발이었다고 알고 있으며, 그래 서 빅뱅이라 이름을 붙였다. 150억 년 이상 전에 우리 우주가 태어난 것처럼, 어쩌면 매 순간, 무한히 큰 곳에서, 무한히 작은 곳에서, 무한히 먼 곳에서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다른 우주를 모른다. 그러 나 우리 우주가, 수소라고 하는 가장 '작고' 가장 '간단한' 원자가 폭발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거대한 폭발로 돌연 잠에서 깨어난 그 거대한 침묵의 공간을 상상 해 보라. 저 높은 곳에서 왜 책장을 넘겼을까? 왜 맥주 거품을 걷어 냈을까? 그건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수소가 타고, 폭 발하고, 더워진다는 것이다. 한 줄기 거대한 빛이 순결한 공간에 비 친다. 위기. 꼼짝 않던 것들이 움직인다. 차가웠던 것들이 더워진 다. 잠잠하던 것들이 소리를 낸다. 최초의 폭발 과정에서 수소는 헬륨으로 바뀐다. 헬륨은 수소보다 겨우 조금 더 복잡한 원자일 뿐이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에서도 우 리 우주를 지배하는 위대한 제1법칙을 연역해 낼 수 있다. 그 법칙 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에 그 법칙이 관통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우주에도 그 법칙이 적용되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다른 우 주에서는 어쩌면 '끊임없이 더 재미있게'라는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서도 사물이 더 뜨거워진다든가, 더 단단해진다든가, 더 재미있어지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제1법칙이 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부차적인 법칙일 뿐이다. 다른 모든 법칙의 토대가 되는 우리 우주의 근본 법칙은 바로 '끊임없이 더 복잡하게'인 것이 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에서 ------------------ 수개미 327호가 도시 남쪽 통로에서 헤매고 있다. 평정을 잃은 그 가 그 유명한 구절을 되뇌고 있다. 탐험가인 그는 다리였노라. 현장에서는 눈 노릇을 했고, 이제는 돌아와 겨레를 일깨우노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디에 잘못이 있었던 것일까? 그 가 얻은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에 그의 몸뚱이가 부들거리 고 있다. 그가 보기에 분명히 겨레가 상처를 입었음에도 겨레는 그 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처가 주는 고통을 일깨울 자는 327호 자신이다. 말하자면 그가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 자극인 셈이다. 따라서 도시가 그 자극에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일 도 그의 몫이다. 아, 겨레의 일부가 수난을 당했는데도 그 소식을 받아들이려는 더 듬이들이 없어서 그것을 제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는 그 끔찍한 진실을 다른 개미들과 함께 나누면서 모든 짐을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열을 전달하는 개미 하나가 그의 곁을 지나간다. 327호가 맥이 빠 져 있음을 직감하고, 그 개미는 그가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못 차리 고 있는가 싶어서 태양 에너지를 나누어준다. 그러자 327호가 조금 힘을 얻고 이내 전열 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비상이야, 난쟁이개미들의 매복에 걸려서 우리 원정대가 박살났 어. 비상!'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처음과 같은 진실의 어조가 담기지 않았 다. 전열 개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심드렁하게 자리를 뜬 다. 327호는 단념하지 않고 경보의 메세지를 퍼뜨리면서 통로를 달려간다. 이따금 병정개미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치명적인 신종 무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도통 못 믿겠다는 눈치를 보인다. 군사적인 임무를 떠맡을 수 있는 집단을 이루어내야 하는데, 그러기는 영 그른 것만 같다. 녹초가 된 채 그가 걷고 있다. 지하 4층 발길이 끊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데 돌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그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이다. 327호는 몸을 돌렸다. 적외선 홑눈으로 통로를 탐색한다. 빨간 반 점과 검은 반점이 어른거릴 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 명히 발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 다시 뒤에서 발소리가 울린다. 쓰 윽, 츠스스스.... 쓰윽.... 츠스스스.... 누군가가 여섯 다리 중에 서 두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혹시 환청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는 교차로가 나올 때마 다 방향을 바꾼 다음 잠시 멈추고 살펴본다. 그가 멈추면 소리도 멈 춘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만 하면 쓰츠.... 츠스스, 쓰츠....츠스스 소리가 다시 난다.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가 몸을 돌리자 누군가가 몸을 숨긴다. 듣도 보도 못 한 이상한 짓거리다. 어째서 겨레의 한 구성원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다른 구성원의 뒤를 밟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각각의 구성원은 모두 겨레와 더불어 살고 있고 아무에게도 숨길 게 없지 않은가? 뒤를 밟는 자의 '존재'가 여전히 그를 성가시게 한다. 여전히 멀 리 떨어진 채, 여전히 몸을 숨긴 채. 쓰츠....츠스스, 쓰츠....츠스 스. 이럴 땐 어떻게 한다? 그가 애벌레였을 때, 유모 개미들은 그에 게 위험에 마주치면 언제나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가르쳤 다. 그는 멈추어 서서 몸단장하는 시늉을 한다. 그 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자의 냄새가 가까스로 감지할 수 있다. 씻는 몸 짓을 흉내내면서 327호는 더듬이를 움직인다. 드디어 미행자의 냄새 분자가 감지되었다. 그자는 1년생의 작은 병정개미이다. 그 병정개 미는 특별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 냄새 때문에 현재의 신분 을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냄새는 딱히 뭐라고 규정짓기가 어렵 다. 바위 냄새라고나 할까. 작은 병정개미는 이제 몸을 숨기지 않는다. 쓰츠....츠스스스, 쓰 츠....츠스스스. 이제 적외선 홑눈에도 병정개미가 보인다. 병정개 미는 실제로 다리 두 개가 모자랐다. 그의 몸에서 바위 냄새가 더 진하게 끼쳐온다. 327호 페로몬을 풍긴다. '거기 누구인가?' 대답이 없다. '왜 내 뒤를 밟고 있는가?' 대답이 없다.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도 하여 327호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앞에 두 번째 개미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덩치 큰 병정개미이다. 통로가 좁아서 지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돌아갈까? 그러면 절름발이와 부딪힐 것이다. 게다가 그 자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327호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병정개미 두 마리가 있고, 그들의 몸에서는 바위 냄새가 난다. 327호는 그 사실을 깨닫는다. 덩치 큰 병정개미가 기다란 작두같이 생긴 위턱을 벌린다. 함정이다! 도시의 한 개미가 다른 개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저 들은 내 신분의 냄새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를 이방의 개체 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해괴한 일이다. 이건 마치 위 가 창자를 죽이려는 거나 다름없지 않는가. 수개미 327호는 더 힘을 주어 페로몬을 발산한다. '나도 너희처럼 겨레의 한 일원이다. 우리는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 이들은 어린 병정개미들이다. 어린 탓에 착각을 한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방출한 페로몬은 그와 대치하고 있는 병정개미들을 누 그러뜨리지 못했다. 커다란 병정개미가 위턱으로 327호의 머리를 조 이는 사이, 작은 절름발이는 327호의 등 위로 뛰어올라 날개를 붙잡 는다. 그렇게 꼼짝 못하게 조르면서 병정개미들은 그를 쓰레기터 쪽 으로 끌고간다. 수개미 327호는 발버둥친다. 교미를 할 때나 사용하는 더듬이 마 디로 페로몬을 발산하여 비생식 계급 개미들은 알지도 못하는 갖가 지 감정들을 나타낸다. 병정개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 냄새들 때 문에 차츰 두려움을 느낀다. 그 '추상적인' 관념들 때문에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절 름발이는 가운뎃가슴 등판을 줄곧 여민 채, 턱으로 327호의 더듬이 를 닦아낸다. 절름발이는 그런 동작으로 327호의 모든 페로몬을 없 애버렸다. 통행증 구실을 하는 페로몬마저도 없애버린다. 결국 그가 가는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그 셋 사이에서 뭔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발길이 가장 뜸한 통로로 나아간다. 작은 절름발이는 더 듬이 닦는 일을 꼼꼼하게 계속하고 있다. 327호의 머리에 어떤 정보 도 남겨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수개미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는 박동을 늦추면서 조용히 사라져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폭력이 이렇게 성행하고 증오가 이토록 만 연하는 겁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같이 지구와 하느 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공허한 싸움은 그만둡시다. 22세기는 영적인 시대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만과 위선에 뿌리박은 우리의 해묵은 싸움일랑 이제 집어치웁시다. 개인주의,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적입니다! 가난한 형제 하나 가 있는데 그가 굶주려 죽도록 내버려둔다면, 여러분은 거대한 세계 공동체에 동참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길 잃은 자가 여러분에게 도움과 원조를 요청하는데 그의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다면, 여러분 은 우리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압니다. 여러분은 비단으로 몸을 두른 채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개인적인 안락만을 생 각하고, 개인적인 영광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안다고 장담합니다. 당신, 당신, 당신 그리고 당 신! 텔리비젼 앞에서 웃고 계시겠지요. 그만 웃으십시오. 저는 심각 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인류의 미래가 더 이상 지속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활 양식에 분별력이 없습니다. 우 리는 모든 것을 낭비하고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일회용 화장지를 만들려고 숲을 줄이고 있습니다. 뭐든지 일회용입니다. 수저와 필기 구, 의복, 사진기, 자동차, 게다가 여러분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여 러분 자신도 일회용이 될 판입니다. 이런 천박한 생활 양식을 버리 십시오. 내일 그런 생활 양식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하기에 앞서, 오 늘 당장 포기하셔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시오. 우리 신자들의 군대에 합류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는미의 병사들입니다. 여자 아나운서의 모습이 비친다. -이상으로 선교 방송을 마칩니다. 이 방송은 제45일 재림 신교회 의 맥도널드 신부와 '스위트밀크' 냉동 식품 회사의 제공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이 방송은 위성을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었습니다. 곧 이어 공상 과학 연속극 '자랑스런 외계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먼 저 광고가 있겠습니다. 뤼시도 니콜라도 텔레비젼을 보고 있지만 생각은 딴 곳에 가 있었 다. 조나탕이 아래로 내려간 지 벌써 여덟 시간이 지났건만 여전히 소식이 캄캄했다. 뤼시는 전화기로 손을 가져갔다. 조나탕이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 지만, 그가 죽었다든가, 무너진 돌더미에 깔리기라도 했다면 어쩔 것인가? 뤼시는 아직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수화기를 들고, 경찰 구조대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전화하지 말라고 당신한테 말했을텐데." 부엌 쪽에서 울림이 적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다! 아빠" 니콜라가 달려갔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주소를 말씀해 주세요"라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송수화기를 뤼시는 딸깍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그래, 그래, 아빠다. 걱정했던 모양이구나. 그럴 필요가 없었는 데 내가 올라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건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니! 그는 아주 뜻밖의 말을 하고 있었다. 조나탕의 앞에는 이제 핏빛 살덩이에 불과한 우아르자자트의 시체 가 들려 있었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옛날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겁을 먹거나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미소를 짓기 까지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뭐랄까.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 픈 것 같기도 했다. 눈빛은 열기로 달아 있는데, 낯빛은 파리했다. 그는 떨고 있었고 숨이 가쁜 듯했다. 니콜라는 죽음을 당한 개의 몸뚱이를 보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가련하게도 그 푸들 종의 개는 면도칼 같은 것에 몇 차례 찢긴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은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개를 뉘었다. 니콜라는 제 동무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울었다. 우 아르자자트를 보는 것도 이젠 끝이었다. '고양이'라는 말만 나오면 벽위로 뛰어오르던 모습도, 껑충거리면서 문의 손잡이를 돌리던 모 습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덩치 큰 독일산 셰퍼드들이 성 도 착에 빠져 우아르자자트를 괴롭힐 때마다 니콜라가 구해주곤 했었는 데, 앞으로 그런 일도 다시는 없을 거다. 우아르자자트는 이제 존재 하지 않는다. 조나탕이 아들을 달래려고 선심을 쓴다. "내일 이 녀석을 페르-라셰즈 개 공동 묘지로 데려가자. 1,500프 랑짜리 무덤을 사주고 거기다 이 녀석 사진을 놓아두는거야." "예, 좋아요! 그렇게 해요. 우아르자자트에게는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해주어야 돼요." 니콜라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그런 다음에는 동물 애호 협회에 가자. 가서 다른 개를 고르렴. 이번에는 몰티즈 종 복슬강아지로 하면 어떨까? 그것도 꽤 이쁘던데." 뤼시는 의아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궁금한 게 하도 많아서 어느 것부터 물어봐야 할 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개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 었나요? 뭘 좀 먹을래요? 식구들이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저 아래에 뭐가 있어요?" 마침내 질문 하나를 던진다는 것이 고작 그거였고 목소리는 마음 과 다르게 심드렁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거기 갔다온 당신 모습이 어떤 줄 알아요? 그리고 개는 어떻구 요. 꼭 고기 써는 기계 안에 들어갔다 나온 거 같아요. 우아르자자 트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조나탕은 더러워진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공증인의 얘기가 옳았어, 저 아래는 쥐가 우글우글해. 우아르자 자트는 사나운 쥐들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거야." "그럼 당신은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 사람아, 쥐들이 보기에 개보다 더 커다란 동물이 아닌 가, 그놈들은 나를 보더니 겁을 먹더군." "말도 안 돼요! 여덟 시간 동안 밑에서 도대체 뭘 한 거예요? 이 저주받은 지하실 안에 뭐가 있지요?" 그녀가 드디어 화를 냈다. "안에 뭐가 있는지는 나도 몰라. 끝까지 가 본 게 아니거든." "끝까지 안 갔다구요?" "그래, 너무너무 깊더라구." "여덟 시간 걸려서도 끝까지 못 가봤단 몰이에요? 우리 지하실 대 단하네요." "그래. 더 가려다가 개를 발견하고는 그만두었지. 온통 피투성이 더구만. 우아르자자트는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 게야. 이렇게 작은 개가 그렇게 오랫동안 버틴 것도 정말 대단한거지." "그런데, 당신이 멈췄다는 데가 어디예요? 중간쯤 되는 덴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 하여튼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어. 나 도 무서웠거든. 내가 어둠과 폭력에 약하다는 거 잘 알잖아. 다른 사람이라도 내가 멈춘 자리에서 포기했을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 태에서 무턱대고 나아갈 수는 없잖아. 그리고 당신, 니콜라 생각도 나더라구. 얼마나 캄캄한지 상상이 안 갈거야. 죽음 같았어." 말을 마치면서 그는 왼쪽 입가를 들어올리며 바르르 떨었다. 뤼시 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를 성가시게 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뤼시는 그의 허리를 끌 어안고 그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마음 놓으세요. 이제 끝난 일이예요. 이 문을 꼭꼭 막아버리고 이제 얘기도 꺼내지 말기로 해요." 조나탕은 아내를 떼어놓으면서 뜻밖의 말을 했다. "아니야, 끝난 게 아니야. 벽이 빨갛게 되어 있는 구역이 있었는 데.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어.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 을거야. 난 폭력이라면 지레 겁을 먹었던 사람이야. 동물을 상대로 한 폭력에도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지.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거의 끝까지 갔던 것인지도 모르잖아...." "지하실로 다시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래, 에드몽 삼촌이 지나간 길이야. 나도 가겠어." "에드몽 삼촌이요?" "그분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인가를 했어. 그게 뭔지 알아야겠 어." 뤼시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여보, 나하고 니콜라를 사랑한다면, 더 이상 내려가지 말아요." "다른 도리가 없어." 그러면서 조나탕은 다시 왼쪽 입 가장자리를 바르르 떨었다. "난 언제나 반거들충이처럼 일을 했어. 내 이성이 위험이 닥쳐오 고 있다고 일러주기만 하면 언제나 하던 일을 그만두었지. 지금 내 꼬락서니가 어떤가 보라고. 위험한 일 한번 제대로 겪어본 적도 없 고 인생살이에 성공하지도 못한 한 사내의 모습을 보란 말이야. 내 친 걸음에 갈 데까지 가보는 기백이 있어야 하는데, 난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 자물쇠 회사에 그냥 있을 걸 그랬나봐. 그 동안 익힌 기술이 쓸모없게 됐지. 우범 지역에서 습격도 당해보고 그랬어야 했 어.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폭 력이 뭔지도 알고 폭력을 다스리는 법도 알게 되었겠지. 그렇게 하 기는 커녕, 험한 일 안 하려고 꽁무니 빼다가 결국 요렇게 세상 물 색을 모르는 아이처럼 되어버렸어." "당신 이상한 소릴 하네요." "아니야. 이상한 소릴 하는 게 아니야. 사람이 영원히 고치 속에 서 살 수는 없는 거야. 이 지하실이 나에게 고치를 뚫고 나갈 수 있 는 좋은 기회를 준거야.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나는 거울 속의 나 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거야. 그저 겁쟁이 하나만을 보게 되겠지. 게다가, 나보고 내려가라고 등을 민 건 당신이야. 생각해 봐, 당신 이 뭐라고 했는지." 조나탕은 피로 얼룩진 셔츠를 벗으며 못을 박듯 말했다.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내 결심을 돌이킬 순 없어." "좋아요. 그럼 나랑 같이 가요!" 손전등을 그러쥐면서 뤼시가 당차게 나섰다. "안돼, 당신은 여기 있어." 그는 우악스럽게 아내의 손목을 잡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거예요?"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 이 지하실은 나하고 만 상관이 있어. 이건 내 일이고, 내가 갈거야. 아무도 끼여들어선 안돼. 내 말 알아듣겠어?" 그들 뒤에서는 니콜라가 여전히 우아르자자트의 시체 위에서 울고 있었다. 조나탕은 뤼시의 손목을 놓아주고 아들에게 다가섰다. "자, 그만 진정해라. 니콜라." "엄마 아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우아르자자트가 죽었는데 말 다툼만 하고, 정말 답답해요." 조나탕은 분위기를 좀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성냥 갑을 가져오더니, 여섯 개를 꺼내서 식탁 위에 늘어놓았다. "자, 이거 봐라.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께.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수가 있거든, 잘 생각해 보면, 틀림없 이 답을 찾아낼 수 있을거야." 아이는 호기심을 보이며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달려들어 성냥개비를 이리저리 놓아보기 시작했다. "너한테 일러둘 게 하나 있다. 답을 찾으려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 해야 한단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답을 찾아내지 못할거야." 니콜라는 정삼각형 세 개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네 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눈동자가 파란 큰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아빠는 답을 찾았어요?" "아니, 아직 못 찾았어. 하지만 곧 답을 알아낼 것 같아." 조나탕은 잠시나마 아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아내를 진정시키지 는 못했다. 그를 바라보는 뤼시의 노기가 어려 있었다. 그날 저녁에 그들 부부는 꽤 격렬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러나 조나탕은 끝내 지 하실과 그 비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조나탕은 일찍 일어나서 오전 내내 지하실 입구에 철문을 설치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철문에는 맹꽁이 자물쇠를 달았다. 그 러고는 하나밖에 없는 열쇠를 끈에 매어 자기 목에다 둘렀다. 구원은 지진이라는 뜻하지 않는 모습으로 찾아왔다. 가장 먼저 벽들이 옆으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모래가 천장으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두 번째 진동이 일더니, 세 번째, 네 번째로 이어진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떨림이 점점 더 가까이, 점점 더 빠르게 이어지면서, 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세 마리 개미에게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진동은 어마 어마한 포효처럼 끊일 새 없이 계속되고 그 진동 때문에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 요동 속에서 젊은 수개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심장 박동을 다시 빠르게 하더니, 자신을 죽이려고 끌고가는 두 개미에게 위턱을 날려 그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터널 속으로 달아난다. 그는 아직 배냇날개에 불과한 날개를 흔들어서 장애물 위로 더 높이 띄고 더 빨리 도망가려고 애를 쓴다. 더 강한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서 모래 사태가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통로의 벽 전체가 다른 통로 한가운 데로 무너진다. 다리와 육교와 지하 동굴이 붕괴되면서 수백만 개미 들이 혼비 백산한 채 함께 떨어지고 있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경보 냄새가 분출하여 널리 퍼져나간다. 먼저 자극성을 지닌 페로몬이 상층의 통로들을 안개처럼 덮어버린다. 그 냄새를 맡자마자 개미들은 모두 발발 떨면서 사방 팔방으로 달려가 훨씬 더 자극적인 페로몬을 뿜어댄다. 그러면서 공포는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이것이 1단계 경보가 발동했을 때의 모습이다. 위험을 일깨우는 먹구름이 번져나간다. 마치 상처난 부위의 독소 가 정맥을 거쳐 대동맥에 합류한 다음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형국이 다. 겨레의 몸 안에 이물질이 침투하여 독소가 생기고, 그 독소가 통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젊은 수개미가 그토록 일깨우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런 독소였다. 체내에 침투한 이물질에 피톨이 저항하듯 이 개미들은 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개미들은 재해 지역에 가까이 있는 알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고 있고 병정개미들은 전 투 부대별로 재집결하고 있다. 수개미 327호가 모래와 개미떼로 반쯤 막힌 어떤 널찍한 네거리에 다다랐을 때 진동이 멎었다. 그러자 불안한 정적이 감돈다. 개미들 은 저마다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일지 가슴을 졸이면서 미동도 하 지 않고 있다. 곧추세운 더듬이들이 가볍게 떨린다. 그들은 무엇인 가를 예감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선명하고 반복적인 소리로 괴 로움을 주던 방금 전의 탁탁거리는 소리 대신에 돌연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무겁게 울려오기 시작한다. 도시의 지붕을 덮고 있는 잔가지 덮개에 구멍이 뚫리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어떤 거대한 것이 둥근 지붕 속으로 들어와 잔가지들을 뚫고 벽을 부수고 있는 것이다. 연체 동물의 발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가늘고 불그스레한 살덩이 가 네거리 한복판으로 불쑥 밀고들어온다. 그 장미빛 살덩이는 채찍 처럼 허공을 후려치다가 맹렬한 속도로 땅바닥을 훑어댄다. 되도록 이면 많은 개미 시민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병정개미들이 위턱으 로 그 살덩이를 물어뜯으려고 덤벼들자, 그 살덩이 끝에 포도송이 같은 커다란 개미 송이가 생겨났다. 개미떼가 충분히 달라붙자, 혀라는 이름의 그 불그레한 살덩이가 개미떼를 목구멍에 쏟아 붓느라고 위로 사라졌다가 다시 뚫고 들어온다. 번개가 치듯 잽싸게 움직이는 혀가 점점 더 깊이 파고들면서 개미 떼를 게걸스럽게 걸터듬는다. 그러자 2단계 경보가 발동한다. 일개미들이 배 끝으로 땅바닥을 두드린다. 아직 비상 사태가 발생한 줄 모르고 있는 아래층의 병정 개미들을 불러 모으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마을에 탐탐 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온 도시에 북소리가 진동한다. 탁, 탁, 탁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개미 도시 전 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그 소리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침입자가 도시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려고 둥근 지붕을 다시 쑤셔대면서 툭, 툭, 툭 소리를 내고 있다. 개미들은 저 마다 벽에 찰싹 달라붙는다. 불그스레한 뱀처럼 통로를 미친 듯이 훑어대는 그 혀에 붙잡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혀로 핥을 수 있는 개미의 양이 너무 적었던지 침입자는 혀를 더 길게 늘이며 밀고 들어온다. 부리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거대한 머리가 뒤따라 온다. 청딱따구리다! 봄철의 무법자.... 곤충을 잡아먹는 이 탐욕스런 새는 불개미 도시의 지붕을 뚫고 60센티미터나 들어와 개미들을 잡아먹곤 한다. 이제 3단계 경보를 발동할 때가 된 것이다. 극도로 흥분한 몇몇 일 개미들은 흥분을 미처 행동으로 발산하지 못해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질린 춤이다. 춤사위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불규칙하고 단속적 이다. 뛰어 오르고, 위턱을 서로 부딪치고, 침을 뱉어내고.... 어떤 개미들은 완전히 미쳐서 통로를 뛰어다니며, 움직이는 것은 뭐든지 물어뜯는다. 두려움을 잘못 다스릴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도시가 침입자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은 자멸하고 말것이다. 재난이 일어난 곳은 서쪽 지상 15층이다. 그러나 2단계 경보가 발 효된 지금은 온 도시가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개미들은 알들 을 피난시키기 위해 지하의 맨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는 일개미들과 엇갈려 위턱을 세운 병정개미들의 행렬이 서둘 러 위로 올라가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개미 도시 벨로캉은 그 런 불상사에 맞서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 북새통 속에서도 병정개미들 계급 중 포수 개미에 속하는 개미들은 특공대를 형성하고 긴급 작전을 떠맡는다. 그들이 청딱따구리의 몸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목을 둘러싼다. 그런 다음 몸을 뒤집고 근접 사격 자세를 한다. 그들의 배가 총이 되어 청딱따구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발사! 포수 개미들을 괄 약근에 있는 힘을 다 주어 고농축 개미산을 발사한다. 청딱따구리는 누군가가 갑자기, 가는 핀으로 만든 목도리로 목을 죄어오는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새는 버둥거리면서 목을 죄어 오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새는 너무 깊이 들어가 있었다. 새의 날개가 짧고 둥근 지붕의 잔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청딱따구리가 부들거리면서 호흡이 버거워짐을 느낀다. 발사! 개미 산이 청딱따구니의 신경을 뚫고 그를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는다. 사격이 멎는다. 여기저기서 커다란 턱을 가진 병정개미들이 달려 나와 개미산에 덴 상처를 물어뜯는다. 한편에서는 한 무리의 병정개 미들이 바깥쪽 둥근 지붕의 남아 있는 부분으로 올라가서 청딱따구 리의 꼬리 위치를 알아낸 다음, 가장 냄새가 많이 나는 부분인 항문 으로 뚫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타고 나길 싸움꾼으로 타고 난 이 병 정개미들은 금방 항문의 입구를 벌리고 새의 창자 속으로 밀고들어 간다. 앞서 개미산 공격을 벌였던 무리가 목 살갗에 구멍을 뚫어냈다.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병정개미들은 경보 페로몬의 방출을 중단한다. 이제 목 부위의 싸움에서는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목의 살갗이 활짝 벌어지자 병정개미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청딱따 구리가 삼켰던 개미들 중에서 후두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개미들이 있다.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구출해 낸다. 병정개미들은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머리 안으로 들어가 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일개미 한 마리가 통로 하나를 찾 아냈다. 목의 굵은 혈관이다. 아직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심장에서 머리로 피를 보내는 목 동맥을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그 반대인 목 정맥은 안된다. 마침내 찾아냈다. 병정개미 네 마리가 그 혈관을 째 고 붉은 혈액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심장 박동이 밀어 올리는 피의 흐름에 실려, 병정개미들은 곧 뇌반구의 한복판까지 올라갔다. 그들 은 거기에서 회색 물질을 파들어갈 채비를 갖춘다. 청딱따구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이리저리 뒹굴어보지만, 몸 안 에 들어와 살을 저며대는 이 침입자들을 당해낼 도리는 없다. 온 부 대의 개미들이 청딱따구리의 허파 속으로 들어가 개미산을 쏟아붓는 다. 새가 참혹하게 기침을 해댄다. 위턱으로 무장한 다른 개미들이 식도 안으로 짓쳐들어가 항문 쪽 에서 올라오는 동료들과 소화 기관 안에서 합류하려고 한다. 항문 쪽으로 들어갔던 개미들은 잘록창자를 발빠르게 기어오르고 있다. 도중에 그들은 위턱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지나쳐 가는 모든 기관 들을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여느 때 땅을 파는 것처럼 살아 있는 살코기를 후벼파고 있다. 모래주머니, 간, 염통, 지라, 이자 등을 요새 하나하나를 공격해 가듯이 물어뜯는다. 이따금 혈액이나 림프액이 뿜어져 나와 개미들이 뜻하지 않게 익 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를 어떻게 쏠아야 하 는지를 제대로 모르는 미숙한 개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개미들은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한 살 속을 요령 있게 헤치며 나아간다. 그들은 새의 살덩이가 경련을 일으켜 자칫하면 자신들의 몸이 으깨어진다는 것을 알고 미리미리 피할 줄도 알고, 쓸개즙이나 소화액이 가득 들어 있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다. 식도로 들어간 부대와 항문으로 들어간 부대가 마침내 콩팥 어름 에서 서로 만났다. 새는 아직 죽지 않는다. 세의 심장은 위턱의 공 격을 받아 상처 자국이 선연하지만, 구멍난 혈관 속으로 여전히 피 를 보내고 있다. 일개미들이 사슬처럼 길게 늘어서더니, 그들의 제물이 마지막 숨 을 쉴 때를 기다리지 않고 아직 팔딱거리는 고깃덩어리들을 다리에 서 다리로 옮기고 있다. 이 작은 백정들을 당해낼 장사는 없다. 그 들이 뇌수부위를 토막내기 시작했을 때, 청딱따구리가 마지막으로 경련을 일으켰 다. 온 도시의 개미들이 달려들어 그 거대한 날짐승의 각을 뜬다. 통 로는 청딱따구리의 깃털과 솜털을 전리품으로 가지려는 개미들로 북적거린다. 집 짓는 개미들이 벌써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그들은 둥근 지붕 을 다시 세우고 피해 입은 터널들을 복구할 것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는, 새의 공격을 개미떼가 막아낸 것으로 보기보다는 개미떼가 새를 잡아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리라. 개미 들은 새의 고기를 먹고 소화를 시킨다. 그리고 새의 살, 기름, 깃 털, 가죽을 쓸모에 따라 도시 곳곳에 분배한다. 창세기 개미 문명은 어떻게 건설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자면, 수억 년전 지구 위에 생명이 처음으로 출현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 중에 곤충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작고 연약한 그들은 모든 포식가들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였던 것이 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곤충들은 메뚜기처럼 번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그것들 중에 꼭 살아남는 자가 생 기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어떤 곤충들은 말벌이나 꿀벌처럼 독을 선택햇다. 여러 세대를 거 치는 동안 그들은 독침을 갖추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무서 운 존재로 만들어갔다. 어떤 곤충들은 바퀴벌레처럼 포식자들이 먹기에 부적합하게 되어 가는 쪽을 선택했다. 특수한 분비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그들의 살에 서 고약한 맛이 나도록 해주기 때문에 어떤 포식자도 그 고기맛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곤충들은 사마귀나 밤나방처럼 위장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풀이나 나무껍질과 비슷해 보이게 함으로써 그들은 살기 험난한 자 연 속에서 발각되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약육 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초기의 정글에서 많은 곤 충들은 살아남기 위한 '비결'을 찾아내지 못한 채 소멸할 운명을 맞 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불리한 처지에 놓인 곤충들'중에서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 는 것이 흰개미이다. 땅거죽 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억 5천 만년 가까이 된 곤충으로서 나무를 쏠아 먹고사는 이 종은 불운하게도 종 의 영속성을 유지할 만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포식자는 너무나 많은데,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한 천연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흰개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흰개미들이 죽어 갔고, 살아남은 자들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리다가 하나의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부터는 혼자 싸우지 말고 똘똘 뭉쳐 집단을 만들자. 혼자 도망가려 고 애쓸 게 아니라 스무 마리가 모여 함께 맞서면 우리의 천적들이 우리를 공격하기가 한결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써 흰개미가 사회 조직이라고 하는 복잡성을 띤 생존 방법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그 방법은 가장 확실한 생존 방법의 하나였다. 이 곤충은 작은 세포들이 모인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햇다. 처음엔 가족 단위의 사회를 이루었다. 알을 낳는 어머니 흰개미 주위에 모 두가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가족이 촌락이 되고 촌락이 커져 도시 가 되었다. 모래와 흙반죽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도시가 곧 지구의 모든 표면에 솟아오르게 되었다. 흰개미는 영리한 곤충으로 최초의 사회를 형성한 우리 행성 최초의 주인이었다. 에드몽 월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두 자객이 더 이상 보이지 않 음을 알았다. 이젠 정말로 그들에게서 풀려난 것이다. 그들은 아마 도 무너져내리는 모래 더미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나마 죽음 을 모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우두망찰 생각에 젖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풀 려났다고 해서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 제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가 전혀 없다. 가장 보잘것없는 병정개 미와 마주치더라도 무사하지 못할 판이다. 동포들은 당연히 그를 외 부에서 온 침입자로 여기고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경 고도 없이 개미산을 쏘아대고 위턱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연방의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를 발산하지 못하는 자는 으레 그런 식으로 처분을 받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어이가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이 모두가 바위 냄새를 풍기던 그 빌어먹을 놈의 두 병정개미 탓이다. 그들은 왜 그 런 짓을 했을까? 미친 자들임이 분명하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유 전자 배열이 잘못되어 그런 종류의 심리적 장애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3단계 경보가 발동할 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미 친 개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미친 것 같지는 않았고 정신이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 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세포들이 같은 조직에 속하는 다른 세포들을 의식적으로 파괴하는 상황으로밖 에는 달리 볼 수가 없었다. 유모 개미들은 그런 것을 암이라고 불렀 다. 말하자면.... 그들은 암에 걸린 세포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풍기던 바위 냄새는 질병의 냄새이리라.... 겨레에게 알려야 할 사실이 또 하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수개미 327호가 해결해야 할 불가사의가 두 가지이다.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가 그 첫째요, 벨로캉의 암세포가 그 둘째다. 그러나 현재로서 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깊이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어떤 감춰진 방책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해결책 이 떠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더듬이를 닦기 시작한다. 먼저 더듬이를 촉촉하게 적신다. (통행 허가 페로몬의 독특한 냄새를 느끼지 못한 채 더듬이를 핥는 다는 것이 너무나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 다음에는 솔질을 하고 다리 관절에 난 털에 문질러 윤을 내고 물기를 말린다. 젠장 장차 이 일을 어쩐다지?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 신분을 증명하는 냄새로 확인하지 않고도, 적외선으로 그를 알아 볼 수 있는 개미는 어머니인 여왕개미뿐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신 금단의 구역에는 병정개미들이 넘칠 만큼 많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이 오래 전에 말씀 하신 격언에도 있지 않은가?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때로는 가장 안전하다'라고. "에드몽 웰즈는 이곳에 좋은 추억을 남겨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떠날 때 아무도 붙잡질 않았지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스위트 밀크'회사 간부 중의 한 사람으로서, 곰살가운 얼굴을 가진 노인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그 사람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식품 박테 리아를 개발해 낸 적도 있어요. 요구르트를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박 테리아였지요. 사실, 화학 분야에서 그는 이따금씩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지요. 그러나 노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들쭉날쭉했어요." "그분과의 사이가 껄그러웠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동료들과 잘 어울 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겁니다. 그는 외톨이였습니다. 그 가 개발한 박테리아가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여기 에서는 아무도 그를 제대로 인정해 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팀에든 우두머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에드몽은 우두 머리가 있다는 걸 싫어했고, 어떤 형태의 위계적 권위도 참아내지 못했어요. 그는 늘 관리자들을 경멸했어요. 그의 말을 따르자면, 관 리자들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지휘하기 위해 지휘를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모두는 상관의 장화라도 핥아야 할 처지였거든요. 그런 걸 마다하지 않았고, 또 제도가 그런 걸 요 구하거든요. 그에 비하면 그 사람은 거만을 떨었던 셈이지요. 그게 우리의 신경을 거슬렀던 것입니다. 정작 그가 거역하는 상관들 자신 보다는 동료인 우리가 그를 아니꼽게 보았던 것이지요." "그분이 회사를 떠날 때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우리 간부 중의 한 사람과 어떤 일 때문에 말다툼을 했어요. 그 일에서는 단언컨대....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옳았어요. 그 간부가 그 의 사무실을 뒤진다는 걸 알고 에드몽이 꾀를 내어 간부가 혼쭐이 나게 만들었지요. 에드몽은 모두가 덮어놓고 간부만 두둔하는 걸 보 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분이 옳았다고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호감은 가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발휘하기보다는, 싫어도 내가 아는 사람을 위해 비겁자로 처신하는 게 더 나을 때가 가끔은 있는 법이지요. 에드몽은 여기에 친구가 없었어요. 우리와 식사도 하지 않앗고, 술 한잔 같이 나눈 적이 없어요. 그는 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런데 왜 선생님의 '비겁함'을 저에게 털어놓으시는 건가요? 그 런 얘기를 다 저한테 들려주실 필요는 없으실텐데요." "그건, 막상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어쨌든 우리가 잘못했다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그 사람 조카라니까, 당신한 테 그런 얘기를 하면 내가 좀 위안을 얻을 것 같기도 하고...." 어둠침침한 협로의 안쪽에 나무로 만든 요새가 보인다. 금단 구역이다. 사실 그 건물은 소나무 그루터기 둘레에 둥근 지붕을 세워놓은 것 이다. 그 그루터기가 벨로캉의 심장이자 척추 구실을 하고 있다. 심 장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곳에 여왕의 거처가 있고 귀중한 식량들 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고, 척추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그루터기 덕분에 도시가 폭풍과 비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금단 구역의 벽에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원시 문명인들이 글씨를 새겨놓은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 통로들은 옛날에 그루터기를 가장 먼저 차지하고 살았던 흰개미들이 파놓은 것이다. 시조 벨로키우키우니가 5천 년 전 이 지역에 표착했을 때, 오자마 자 충돌한 것이 흰개미들이었다. 아주 지리한 전쟁이 천 년 넘게 계 속된 끝에 마침내 벨로캉 개미들이 승리를 쟁취했다. 그때 벨로캉 개미들은 '영구적으로' 튼튼하게 건설된 도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 다. 그 도시의 통로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 을 것 같았다. 그 소나무 그루터기가 그들에게 도시 공학과 건축학 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위쪽으로는 평평한 탁자 같은 것이 높이 솟아 있고, 아래쪽으로는 깊은 뿌리가 땅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는 방향을 따라 뿌리보다 더 깊 이 땅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그루터기의 윗부분이 더 넓어 보이게 하려고 그루터기 위에 잔가지를 쌓아올렸다. 벨로캉의 발상지가 되는 금단 구역은 현재는 거의 비어 있다. 어 머니와 특별히 선발된 파수 개미들만 거기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변 두리에 살고 있다. 327호가 진중하고 불규칙한 발걸음으로 그루터기로 다가가고 있 다. 불규칙한 발소리는 모래가 사뿐하게 흘러내리는 소리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규칙적인 소리는 걸어오는 자가 있다는 소리로 느끼게 해준다. 327호는 그저 어떤 병정개미와도 마주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가 몸을 낮추어 기기 시작한다. 금단 구역까지는 이 제 200머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루터기에 뚫어놓은 여남은 입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입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입구를 막고 있는 '문지기' 개미들의 머리가 보이 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문지기 개미들은 유전자에 어떤 이상이 있어서 그렇게 만들어 졌는지도 몰라도, 머리가 커다랗고 둥글넓적하다. 그래서 그들이 구 멍을 막고 있으면, 마치 그 구멍과 둘레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문이라고 할 만한 이 개미들은 옛날에 벌써 자신들이 쓸 모있는 존재임을 입증한 바 있다. 780년 전 '딸기나무 전쟁'이 일어 나 노랑개미들이 도시에 쳐들어왔을 때의 일이다. 벨로캉의 생존자 들이 모두 금단 구역으로 대피하고, 문지기 개미들이 안으로 후퇴해 들어가 금단 구역의 모든 입구를 밀봉해버렸다. 노랑개미들이 그 살아 있는 빗장을 푸는 데 이틀이 걸렸다. 문지 기 개미들은 단지 구멍을 막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턱으로 적을 물기도 했다. 마침내 노랑개미들이 키틴질로 된 문지기 개미들 의 머리를 파내고 입구를 통과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문'들의 희 생은 헛되지 않았다.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도시들의 원군을 꾸려 달려올 시간을 그들이 벌어 준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시간 후에 도 시는 해방되었다. 수개미 327호는 단 한 마리의 문지기 개미도 마주치지 않기를 간 절히 바라면서 어쩌다가 문 하나가 열리는 때를 이용할 요량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낳은 알을 싣고 나오는 유모 개미를 내보내기 위해 문이 열리는 틈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문이 다시 닫 히기 전에 재빨리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듯도 하다. 방금 머리 하나가 막 움직였다. 그러더니 통로가 열리고, 파수 개 미 하나가 나온다. 이번엔 안 되겟다! 파수 개미가 곧바로 되돌아와 서 그를 죽일 것이다. 문지기 개미의 머리가 다시 움직인다. 그는 뛰어오를 채비를 하느 라고 다리를 구부린다. 아니다! 잘못 생각한 것이다. 문지기 개미는 그저 자세를 바꾸었을 뿐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문지기 개미라 지만, 나무 테두리에 그렇게 목을 찰싹 붙이고 있노라면 경련이 일 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낭패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 수개미가 장애물을 향해 돌진한다. 그가 더듬이의 감지 능력이 미치는 거리에 들어오자, 문 지기 개미는 그에게 통행 허가 페로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문지기 개미는 구멍을 더 잘 봉쇄하려고 다시 뒤로 물러서서 경보 냄새를 발산한 다. '금단 구역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금단 지역에 침입자가 나타났 다!' 사이렌을 울리듯 문지기 개미가 되풀이해서 냄새 분자를 뿜어댄다. 문지기 개미는 달갑지 않은 침입자를 겁주려고 위턱을 빙빙 돌린 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그를 공격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가로 막는 것이 문지기의 공식적인 수칙이다. 서둘러야 한다. 수개미에게는 문지기 개미에게 없는 유리한 점이 하나 있다. 문지기 개미는 어둠 속에서 장님이 되지만 수개미는 볼 수 있다. 수개미가 달려든다. 겨냥하지 않고 마구 휘들러대는 위턱 의 공격을 피하면서, 위턱의 밑부분을 잡으려고 파고 든다. 수개미 가 문지기 개미의 턱을 하나하나 잘라버린다.맑은 피가 흘러나온다. 턱의 남아 있는 부분이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이젠 솜방망이에 지 나지 않는다. 문지기 개미를 쓰러뜨리기는 했으나 327호는 여전히 입구를 통과 할 수가 없다. 상대의 시체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는 탓이다. 문 지기 개미의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반사적으로 구멍 둘레의 나무를 꽉 누르고 있다. 어떻게 한다? 그는 문지기 개미의 이마에 배를 대 고 개미산을 쏜다. 문지기 개미의 몸뚱이가 울찔거리더니 개미산에 쏘인 키틴질이 회색 연기를 내면서 녹기 시작한다. 그러나 머리는 두껍기 때문에 쉽게 녹지 않는다. 그는 문지기 개미의 넓적한 머리 를 뚫고 길을 내느라고 네 번이나 개미산을 쏘아야 했다. 이제 지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건너편에 쪼그라든 문지기 개미의 가슴과 배가 보인다. 저 개미는 그저 문일 뿐이다. 하나의 문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자들 그로부터 5천 만 년이 지나 개미들이 처음으로 지구 위에 나타났 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독 립 생활을 하던 원시적인 벌의 하나인 티피과 벌의 먼 후손으로서, 개미들은 턱도 침도 타고나지를 못 했다. 개미들은 작고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지는 않아서 흰개미들을 흉내내는 것이 도움 이 된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들은 단결하지 않을 수가 없 었던 것이다. 개미들은 촌락을 만들고 열치기로나마 도시를 건설하였다. 곧 흰 개미들이 그 경쟁자에게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흰개미들은, 지구 위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곤충은 자기들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의 거의 곳곳에서, 섬이든 나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흰개미 도시의 군대가 갓 만들어진 개 미 도시의 군대를 상대로 싸웠다. 동물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수백만의 위턱들이 나란 히 늘어서서 칼 싸움을 벌이는데, 그 싸움은 먹이를 위한 것이 아니 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훨씬 경험이 많은 흰개미들이 매번 이겼다. 그러나 개미 들도 싸움에 이골이 나기 시작했다. 개미들은 흰개미와 개미 사이의 전쟁이 줄잡아 5천 만 년에서 3천 만 년 동안 지구를 뜨겁게 달구었 다. 개미들이 개미산을 발사하는 무기를 개발해서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늘날에도 그 적대적인 두 종 사이에 전투가 계속 벌어지고 있 다. 그러나 흰 개미 군대가 승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선생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그분과 알게 되셨지요. 그렇지요?" 그 질문에 교수가 대답했다. "그렇다네. 에드몽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 부인 이 죽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네. 그는 곤충 연구에 모든 신 명을 바쳤다네." "왜 하필이면 곤충을 연구하셨을까요?" "왜, 곤충을 연구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곤충은 예로부터 인간의 관심을 끌어 왔지. 아주 오랜 옛날 우리 선조들은 파리가 열 병을 옮긴다 해서 무서워 했고, 벼룩은 몸을 가렵게 하니까 싫어했 고, 거미는 늘 사람은 문다고 두려워했으며, 바구미는 갈무리해 둔 식량을 먹어버린다고 싫어했다네. 그런 생각들이 대대로 이어졌지." 조나탕은 국립 과학 연구소 풍텐블고 곤충하고 센터 326호 실험실 에서 다니엘 로젠벨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수는, 뒤 로 넘긴 머리털을 뒤통수 위쪽에서 묶어 말 꼬리처럼 길게 내려뜨린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웃기도 잘 웃고 입심도 좋았다. "곤충이 인간을 성가시게 해 왔지. 곤충은 우리보다 작고 연약한 데도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위협하기까지 한다네. 어디 그뿐인 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야, 우리의 육신이 결국은 곤충의 위 속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 무슨 얘기인고 하니, 구더기 있잖은 가? 파리의 애벌레 말일세. 그놈들이 우리의 시체를 포식하는 거 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곤충은 오랫동안 해로운 것의 대명사로 생각되어 왔지. 예를 들 어 사탄의 앞잡이 중의 하나인 벨엘제불은 파리 머리로 표현되는데, 그렇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지." "개미는 그래도 파리보다 좋은 인상을 주고 있잖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있지. 탈 무드에서는 개미가 정직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네. 티벳 불교에서는 개미가 물질적인 행위를 조롱하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되지.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상아 해안의 바울레 부족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개미에게 물리면 개미 머리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고 믿고 있고, 폴 리네시아의 어떤 부족들은 오히려 개미를 작은 신처럼 생각한다네." "에드몽 삼촌이 그 전에는 박테리아를 연구했다고 들었는데요. 왜 박테리아 연구를 그만두셨을까요?" "그가 박테리아에 열중했던 게 사실이지만, 곤충에 대한 연구에 열중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지. 특히 개미에 관한 연구에 비하면 말이야. 내가 그저 '연구'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연 구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각적인 사회 참여이기도 했지. 거 왜 장난 감으로 만든 개미집 있잖은가, 여왕개미 한 마리에 일개미 600마리 를 플래스틱 상자 안에 넣어가지고 대형 잡화점 같은 데서 파는 거 말이야. 그것들을 팔지 못하게 하자고 청원했던 사람이 바로 그 친 구라네. 그는 개미를 '살충제'로 활용하는 방안을 실용화하기 위해 서도 애를 썼지. 그의 구상은, 숲속에 불개미 집들을 체계적으로 들 여앉혀서 해충들을 말끔히 없애버리자는 것이었다네. 터무니없는 생 각은 아니었지. 과거에도 벌써 송충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개미를 활 용했고 폴란드에서는 전나무의 납작잎벌을 몰아내기 위해 개미를 활 용한 적이 있다네. 둘 다 삼림을 황폐하게 만드는 곤충이지." "곤충끼리 서로 맞서 싸우게 하자는 거로군요?" "음, 그 친구는 그것을 '곤충들의 외교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라 고 말했지. 지난 세기에 사람들은 화학 살충제로 어리석은 짓을 너 무나 많이 했어. 곤충에게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지. 또 곤충을 과소 평가해도 안 되고, 우리가 포유류를 정복한 것처럼 곤충을 정복하려고 해서도 안 돼. 예를 들어 화학적인 독극 물로 곤충을 박멸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지. 곤충은 모든 독극물 에 대해 방어 수단을 갖고 있거든. 다시 말하면 독극물에 면역이 되 는 거지. 우리가 여전히 메뚜기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도, 그놈들이 모든 살충제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 나. 메뚜기에게 살충제를 잔뜩 뿌려대면, 99퍼센트는 죽어버리지만 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네. 살아남은 그 1퍼센트는 스스로 면역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살충제에 대해 완벽하게 '예방 접종 받은' 새끼들 을 낳게 되는 거지. 그런식으로 우리는 200년 동안 끊임없이 살충제 의 독성을 증가시켜 왔지. 그 결과 살충제는 곤충보다도 사람을 더 많이 죽였고, 우리는 아무리 해로운 독극물을 먹어도 끄떡없을 만큼 저항력이 강한 종자들을 만들어낸거지." "우리에게 곤충에 맞서 싸울 이렇다 할 방도가 없단 말씀이신가요?" "자네가 직접 확인해 보게. 모기, 메뚜기, 바구미, 체체파리가 여 전히 있고 개미도 있네. 개미들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내지. 1945년 핵 폭발이 있었을 때, 개미와 전갈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사람들 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네. 개미는 그것에조차 적응을 했던거지." 수개미 327호는 겨레의 세포 하나가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자기 가 속한 유기체를 상대로 가장 저열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 사 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자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닌가? 그 에게는 중요한 정보를 겨레 전체에 알려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가 겨레의 구성원을 죽인 것은 다른 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암과도 같은 인종의 연쇄 반응이었다. 겨레가 그 에게 비정상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도 어쩔 수 없이 마찬가지로 행 동한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는 동료 세포 하나를 죽였다. 어쩌면 다른 세포들을 또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은 무엇하러 아프리카엘 가신 건가요? 개미는 어디에 나 있는데 말이에요." "물론 개미는 어디에나 있지. 그러나 개미라도 다 똑같은 개미는 아니지. 에드몽은 부인과 사별하고 나서 생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 었던 것 같아. 시간이 좀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 개미가 자기 를 '자살 시키기'만을 기다렸던 게 아닌가 싶네."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들이 하마터면 그를 죽일 뻔했지. 아프리카의 마냥 개미들 말일세.... 자네, '성난 마라분타'라는 영화 본 적 있나?" 조나탕은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라분타는 도릴린 개미의 일종인 마냥 개미 또는 검은 아노마 개미가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들이 평원을 나아 갈 때는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다네." 로젠펠트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치 앞에서 개미떼가 몰려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기에 맞서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먼저 희미하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나가지. 개미떼로 부 터 도망치려는 작은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 짹짹거리는 소리, 날 개치는 소리, 다리 부딪히는 소리 따위가 섞인 소리야. 그 단계에서 는 아직 마냥 떼가 보이지 않지. 그러다가 병정개미 몇 마리가 둔덕 뒤에서 불쑥 나타난다네. 척후 개미들이 줄을 지어 나타나지. 언덕 이 까맣게 변한다네. 닿는 것은 뭐든지 녹여버리는 용암이 분출난 것 같은 모습이지." 교수는 자기 이야기에 몰두해서 연신 요란한 몸짓을 해가며 왔다 갔다 했다. "아프리카에 흐르는 독혈이라 할 만해. 살아 움직이는 독이지. 그 수도 엄청나다네. 마냥 개미의 한 군체는 매일 평균적으로 50만 개 의 알을 낳지. 양동이 몇 개를 가득 채울 만한 양이지.... 그러니까 검은 황산이 개울을 이뤄 비탈길도 오르고 나무에도 올라가는 셈이 지. 아무것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어. 새이건 도마뱀이건 곤충 잡 아먹는 포유류이건 운수사납게 가까이 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 계시록의 한 장면 아닌가! 마냥 개미는 어떤 짐승도 두려워하지 않아.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개미떼 에 다가갔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녹아 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지. 그 개미들은 시냇물을 건너가기도 한다네. 제 동료들의 시체를 띄워 서 다리를 만드는 거지.... 우리가 연구 활동을 했던 곳이 상아 해 안에 있는 람토 생태 전이 연구소인데. 그 인근 지역에서는 주민들 이 마냥 개미의 침입에 대해 속수 무책이었지. 그 작은 오랑캐들이 마을을 지나갈거라는 소식이 전해지면 사람들은 가장 값나가는 재산 들만 챙겨 가지고 도망을 친다네. 그들은 식초 양동이에다 식탁과 의자 다리를 담가놓고 자기네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지. 돌아와 보면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모든 게 씻겨갔지 식량은 단 한톨도 남아 있지 않고 목숨 가진 건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네. 좁쌀만한 벌레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 결국 마냥 개미들이 그들의 오두막 집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아주 깨끗하게 청소를 해준 셈이지." "마냥 개미가 그렇게 사나운데 어떻게 그것들을 연구하셨나요?" "정오가 될 때까지 기다렸지. 곤충들은 우리처럼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잇지 않다네. 바깥 기온이 18도이면 곤충의 몸 속도 18도이지. 날이 뜨거워지면 곤충의 피도 부글거리게 되는 거야. 곤충들은 그것을 참아낼 수가 없지.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마냥 개미들은 야영할 둥지를 파고 그 안에서 날씨가 서늘 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짧은 겨울잠과도 같은 것이지 겨울잠은 추위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이고 그것은 더위 때문에 꼼짝을 못하 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일세." "그 다음에는요?" 조나탕은 어떤 대화가 참다운 대화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대화란 그저 두 그릇의 밑 쪽을 연결하여 액체가 자유로이 흘러 통하게 하 는 연통관 구실을 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있다. 하나에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고, 하나는 비어있다. 액체가 가득 담긴 그릇이 아는 사람이라면 비어 있는 그 릇은 모르른 사람에 해당한다. 조나탕 자신은 대개 비어 있는 그릇 쪽이었다. 잘모르는 사람은 귀를 활짝 열고, 상대방이 이야기에 신 명을 낼 수 있도록 이따금 '그 다음에는요?'나 '그거 굉장하군요'같 은 말로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가 아는 대화법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그가 동시대인들을 관찰 해 본 바로는, 사람들은 저마다 대화의 상대방을, 치료비 안 받는 정신과 의사 정도로 생각하고 그를 이용하려고만 든다. 그래서 평행 선처럼 서로 만나지 않는 독백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세간의 사정이 그러하니. 그로서는 자신의 대화법을 선호할 수 밖 에 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 지만, 그래도 그는 그런 대화법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었다. 중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묻는 사람은 잠깐 바보가 되지 만 묻지 않는 사람은 평생 바보가 된다.'라는. "그 다음엔 어떻게 했냐구? 에드몽하고 나는 그놈들에게 다가갔 지.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어. 우리는 그 흉악한 여왕개미를 찾아내려고 했지. 하루에 50만 개의 알을 낳는다는 그 무지막지한 녀석을 말이야. 우리는 그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고 싶었고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지. 우리는 하수도 청소부들이 신는 커다란 장 화를 신었다네. 운수 사납게도 에드몽의 신발 문수가 43인데 남아 있는 장화는 40짜리 한 켤레뿐이었지. 그러니 에드몽은 단화를 신고 거기에 갈 수 밖에 없었지.... 마치 어제 일처럼 그 일이 기억에 생생해. 12시 30분에 개미들이 쉬고 있는 굴의 윤곽을 땅바닥에 표시하고, 빙 둘러가면서 1미터 깊 이의 도랑을 파기 시작했지. 오후 1시 30분에 개미굴의 바깥쪽 방에 도달했어. 흡사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따다닥 소리를 내면서 흐리기 시작하더군. 극도로 흥분한 병정개미 수천 마리가 큰 위턱을 부딪히 며 소리를 내고 있었던 거야. 그놈들의 위턱은 면도날처럼 예리하 지. 우리가 여왕개미가 있는 방쪽으로 계속 삽질과 곡괭이질을 해나 가는 동안에, 그놈들의 턱이 우리 장화에 사정없이 꽂혔지.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찾고 있던 보물을 찾아냈어. 여왕개미 말이야. 유럽의 여왕개미들보다 덩치가 열 배는 더 큰 개미였어. 우리가 갖가지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는 동안에, 그놈이 제 냄새 언어로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라는 노래를 울부짖듯 부르고 있었던 모 양이야....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더라구. 도처에서 병정개미들이 꾸역구역 모여들더니 우리 발을 새까맣게 뒤덮었지. 몇 놈들이 고무 장화 속에 박혀 있는 제 동료들을 타고 넘어서 기어 오르기 시작했 어. 그러더니 자비 밑을 지나 셔츠 아래로 올라왔지. 우리는 모두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된 꼴인데, 우리의 소인국 난장이들은, 우리 를 먹을 수 있는 고깃조각으로 알고 갈기갈기 찢을 생각만 하고 있 었던 거라네. 특히 조심해야 했던 게 무엇이냐하면, 그 놈들이 우리 몸에 나 있는 구멍, 그러니까. 코, 입, 귀, 항문 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였지. 만일 그 놈들이 그런 데로 들어왔다가는, 몸 속에서 우리를 후벼팔게 아니겠나!" 조나탕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교수의 이야기에 푹 빠져든 모양 이었다. 교수는 젊었을 때의 팔팔한 모습으로 그 장면을 흉내내면서 옛날의 상황을 재현해 보려는 듯했다. "우리는 몸을 세차게 툭툭 쳐서 개미들을 쫓아냈지. 개미가 우리 에게 달려드는 것은 우리의 호흡과 땀이 그놈들을 유인하기 때문이 었어. 우리는 모두 그 전에 요가 수행을 통해서 호흡을 천천히 하고 공포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두었지. 우리는 우리를 죽이려 하는 개미 떼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고 노력했어. 그러고는 계속 사진을 찍었어. 필름 두 통을 찍었는 데 일부는 플래시를 사용해서 찍었지. 일을 끝내고 우리는 우리가 파놓은 도랑 밖으로 튀어나갔 지. 에드몽만 빼고 말이야. 개미들이 에드몽의 머리까지 새까맣게 덮고 있었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우리는 재빨리 그의 팔을 잡고 끌어내서, 옷을 벗기고, 커다란 칼로 그의 몸에 박혀 있는 개미들의 털이며 머리를 끌어냈지. 사실 우리는 모두 기겁을 했지. 그러니 장 화를 안 신었던 에드몽은 오죽했겠나. 그 친구는 완전히 넋이 나갈 정도로 두려움에 질린 기색을 보이더군." "운이 나빴군요." "아니지. 그런 상황에서 용케 살아났으니 운이 좋았던 거지. 그 사건을 겪고 나서도 에드몽은 개미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네. 그렇기는커녕 훨씬 뎌 열심히 개미를 연구했지." "그 다음에는요?" "파리로 돌아왔지. 그 다음부터 소식이 끊겼어. 그 친구 말이야. 나한테도 전화 한번 안 했어. 옛 친구인 이 로젠펠트에게도 말이야. 결국 신문을 보고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지. 신이여. 그의 영혼 에 안식을 주소서." 교수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커튼을 젖히고, 에나멜 칠을 한 금 속판에 박혀 있는 낡은 온도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4월 중순에 30도라니, 믿을 수가 없어. 해마다 점점 더 더 워지고 있어.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10년 후면 프랑스가 열대 지방 이 되고 말거야. " "그렇게까지 될까요?" "조금씩조금씩 더워지니까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 세. 그러나 우리 곤충학자들은 그것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네. 적도 지방에 서식하는 열대성 곤충이 파리 분지에서 발견되고 있지. 나비들이 점점 더 알록달록해지는 걸 자네는 느껴본 적이 없나?" "사실은 저도 어제 그런 나비를 한 마리 보았어요. 자동차 위에 번쩍거리는 검은색에 빨간색 섞인 나비가 앉아 있더군요." "아마 다섯점박이 알록나방일 게야. 그 전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나 볼 수 있었던 독나방이지. 계속 그런식으로 나가다간.... 파리에 마냥 개미가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게. 상상이 가나? 난리가 나겠지. 볼만할거야...." 수개미는 더듬이를 깨끗이 닦고, 문지기 개미의 미지근한 살덩어 리 몇 개를 먹었다. 그는 문지기 개미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문이 부서지듯 '부서진' 것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통행 허가 냄새 를 잃어버린 수개미가 나무 통로를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방은 저쪽이다. 어머니 냄새가 난다. 때마침 25도인 시간이다. 그 온도에서는 금단 구역에 별로 개미가 없다. 슬그머니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 병정개미의 냄새가 느 껴졌다. 하나는 덩치가 크고 하나는 작다. 작은 병정개미는 다리 수가 모자란다.... 수개미와 병정개미 두 마리가 멀리서 서로 상대방의 냄새를 맡았다. 이럴 수가, 그놈이다! 이럴 수가, 그놈들이다! 327호는 병정개미들을 따돌리려는 일념으로 힘껏 도망을 친다. 그 는 3차원으로 된 미로를 돌고 또 돌았다. 금단 지역을 빠져 나왔다. 이번에는 문지기 개미들이 그의 길을 막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만 검문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개미는 이제 그루터기 속 을 빠져나와 무른 땅을 밟고 있다. 그는 모퉁이를 돌고 또 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쫓는 병정개미들도 그에 못지 않게 빠르다. 그 들이 멀어지지 않고 계속 따라오고 있다. 그때, 수개미가 잔가지를 들고 오던 일개미 한마리를 떼밀어서 일개미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수개미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바위 냄새를 풍 기는 암살자들의 달음박질에 제동이 걸렸다. 이 틈을 이용해야 한다. 수개미는 재빨리 통로의 울퉁불퉁한 곳으 로 몸을 숨겼다. 절름발이 개미가 다가오고 있다. 수개미는 은신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그 애는 어디 갔니?" "다시 내려갔어요." "다시 내려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뤼시는 오귀스타 할머니의 팔을 붙잡고 할머니를 지하실 문 쪽으 로 데려갔다. "조나탕은 어젯밤부터 저 안에 있어요." "그럼 아직도 안 올라왔단 말이냐?" "예,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겟지만, 그 사람이 경찰을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벌써 여러 번 내려갔다가 되돌아오곤 했어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질겁을 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얘기이긴 하다만, 제 삼촌이 내려가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이번에는 연장 꾸러미하고 강철판하고 커다란 콘크리트 판들을 가지고 갔어요. 아래에서 뭘 손질하려고 하는 건지...." 뤼시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 있었다. 신경 쇠약이 다시 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그 앨 찾으러 내려갈 수는 없니?" "예, 그 사람이, 안에서 잠그는 자물쇠를 설치했거든요." 할머니는 낭패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이런, 이런, 내 불찰이다. 에드몽 얘기를 다시 들추어내면 이런 말썽이 생기리라는 걸 진작에 예상했어야 했는데...." 전문가 현대의 개미 대도시에서는, 수 천 년간 되풀이된 분업의 결과로 유전자들의 돌연 변이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어떤 개미가 절단기 구실을 하는 커다란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병정개미가 되고, 어떤 개미는 곡물을 빻기에 적합한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곡물 가루를 생산한다. 또 어떤 개미는 고도로 발달 된 침샘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애벌레를 적셔주고 소독을 해준다. 마치 우리 인간 사회에서 그런 유전자 돌연 변이가 일어나, 병사 들은 칼처럼 생긴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고, 농부들은 과일을 따러 나무에 올라가기 편하도록 집게 모양의 발을 가지고 태어나고, 유모 들은 10쌍 쯤 되는 유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전문화를 가져오는' 모든 돌연 변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랑의 전문가를 만들어 낸 돌연 변이다. 실제로 일개미들은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할 일이 많은 일개미들이 성적인 충동 때문에 한눈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생식 능력은 모두 생식만을 도맡아 하는 전문가들에게 집 중되어 있다. 수개미와 암개미, 다시 말하면, 개미 문명의 왕자와 공주만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식 능력을 가진 개미들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 을 위한 특별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미하게에 편리 하게끔 여러 가지 오묘한 기관들을 지니고 태어난다. 날개가 그렇 고, 추상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더듬이가 그러하며, 적외선을 감지하 는 홑눈이 그렇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가 숨어 있는 곳은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 그곳은 작 은 동굴을 통해 있다. 327호는 작은 동굴 안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숨어 있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그를 찾아내지 못한 채 지나쳤다. 그러나 동굴은 비어 있지 않았다. 저 안쪽에 따 뜻하고 향내나는 누군가가 있다. 그쪽에서 냄새가 날아온다. '누구세요?' 그 냄새 언어는 깜끔하고 정확하면서도 딱 부러진 데가 있다. 적 외선 홑눈 덕분에,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커다란 개미 를 볼 수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몸무게가 모래알 90개의 무게만큼 은 될 듯하다. 그렇지만 병정개미는 아니다. 이제껏 냄새를 맡은 적 도 본 적도 없는 개미였다. 그렇다면 암개미다. 아, 암개미로구나! 그는 찬찬히 그 개미를 살펴본다. 완벽한 곡선미를 지닌 야릿야릿한 다리에, 성호르몬의 달착지근한 끈기를 머금은 잔털이 나 있다. 도톰한 더듬이가 강렬한 냄새를 발 하며 반짝인다. 붉은색을 띤 겹눈은 두 알의 월귤나무 열매 같다. 암개미의 두두룩한 배는 매끈매끈하고 끝이 날렵하게 빠졌다. 커다 란 가슴딱지 위에는 가운뎃가슴 등판이 얹혀 있는데, 그 표면이 오 톨도톨한 것이 여간 멋져 보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긴 날개는 수개 미의 날개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인다. 암개미가 예쁘장하게 생긴 자그마한 위턱을 벌린다. 그러고는 그 의 목을 자르려는 듯 목으로 달려든다. 목이 졸려 숨이 막혀온다. 수개미에게 통행증 구실을 하는 냄새가 없는 탓에, 암개미는 조르고 있는 목을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을 것 이다. 외부에서 침입해 온 자는 죽여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개미 327호는 자신의 몸집이 작은 점을 이용하여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암개미의 어깨 위로 기어올라가 머리를 잡았다. 앞치락뒤치 락하는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막상 막하의 접전이다. 암개미도 만만 치 않은 상대다. 암개미는 힘이 약해지다, 수개미는 더듬이를 앞으로 내민다. 수개 미는 암개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암개미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 기를 바랄 뿐이다. 일이 간단하지가 않다. 수개미는 더듬이를 맞대 고 완전 소통을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방법은 완전 소통밖에 없다. 수개미가 암개미의 산란 번호를 알아낸다. 암개미 56호다. 암개미 는 더듬이 맞대는 것을 피하려고 제 더듬이를 벌린다. 그리고는 수 개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수개미는 가운뎃가슴 등판 위에 요지부동으로 올라탄 채, 제 위턱에 더 힘을 주어 암개미의 머리를 누르고 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암개미의 머리가 잡초가 뽑히듯이 뽑혀나갈 것만 같다. 암개미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수개미도 마찬가지다. 180도의 시야를 가진 홑눈으로, 암개미는 제 가슴 등판 위에 올라 탄 공격자를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아주 작은 개미다. 수개미로구나! 암개미는 유모 개미들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수개미는 불완전한 존재란다. 도시의 다른 세포들과는 달리, 그 들은 우리 종이 가진 염색체의 반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 그들은 수 정되지 않은 알에서 부화된 거야. 그러니까 그들은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생식 세포, 말하자면 커다란 정자인 셈이지.' 그렇다면 지금 정충 한 마리가 암개미의 등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 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재미있다는 느낌마저 든 다. 어째서 어떤 알은 수정이 되고, 어떤 알은 수정이 되지 않는 걸 까? 아마 온도 탓일 게다. 20도 이하에서는 여왕의 저정낭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왕은 수정이 안 된 알을 낳게 된다. 그러니까. 수개미들은 추위의 산물인 셈이다. 죽음이 추위의 산물이듯이. 암개미 56호가 살과 키틴질로 된 실제의 수개미를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여기, 처녀들의 규방에 뭘 찾을 게 있다고 왔을 까? 이곳은 암컷의 성세포들을 위해 마련된 금단의 구역이다. 그 순 결한 성역에 어떤 세포이든 외부의 것이 침투할 수 있다면 이곳이 온갖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327호 수개미는 다시 더듬이를 통한 의사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 나 암개미는 막무가내다. 수개미가 더듬이를 벌리자, 암개미는 곧바로 머리로 되받아 친다. 수개미가 더듬이의 두 번째 마디를 살짝 스치 자, 암개미가 더듬이를 뒤로 뺀다. 암개미는 더듬이를 맞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수개미는 턱에 더 힘을 주어 누른 끝에, 기어이 제 더듬이의 일곱 번째 마디를 암개미 더듬이의 일곱 번째 마디에 접촉시킨다. 56호 암개미는 그런 식으로 의사 소통을 해 본 적이 없다. 어떤 경우든 직접 더듬이를 맞대지 말라고 배웠고, 공중으로 발산물을 쏘 아 보내고 받는 방법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공중에 냄새를 뿌리는 소통 방식으로 의사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 문제에 대해 페로몬을 발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뇌 사이에는 늘 갖가지 오해와 거짓이 생기게 마련이니 라. 그 오해와 거짓은 쓸데없는 냄새가 끼여든다든지, 공기의 흐름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든지, 냄새를 발산하고 수신하는 방법이 좋지 않다든지 해서 생기는 것이니라.' 그런 불상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완전 소통, 즉 더듬이와 더듬이를 직접 맞대는 방식이다. 아무런 장애없이 한쪽 뇌의 신경 전달 물질과 다른 쪽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이 교류하는 것이다. 암개미에게는 그것이 제 영혼의 순결을 잃는 행위로 여겨졌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꺼림칙하고 달갑지 않을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개미가 계속 몸을 조르고 있는 폼이 곧 자기를 죽일 기세다. 암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 를 어깨 위로 내렸다. 비로소 완전 소통이 시작되었다. 두 쌍의 더듬이가 스스럼없이 서 로에게 다가간다. 미세한 방전이 일어난다. 극도의 흥분 상태이다.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빠르게 두 곤충은, 톱니 모양으로 한 열두 개의 마디를 서로 비빈다. 생각과 생각이 얽히고 설키면서 거품이 조금씩조금씩 일기 시작한 다. 그 미끈미끈한 물질은 더듬이 사이의 접촉을 부드럽게 해서 마 찰의 율돌을 더 빠르게 해준다. 곤충의 두 머리가 한동안 마구 떨리 더니, 두 더듬이가 춤추던 걸 멈추고 뻗을 수 있는 데까지 길게 뻗 은 채로 서로 붙어버렸다. 이제 그들은, 머리와 몸은 둘이로되, 오 로지 한 쌍의 더듬이를 가진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한쪽 몸의 페로몬 이 수천 개의 작은 구멍과 모세관을 통해 다른 쪽으로 전해지고 있 다. 두 생각이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관념을 부호로 만들고 해독할 필요가 없다. 관념들은 이미지, 음악, 감정, 향기와 같은 원 래 그대로의 단순한 상태로 전달되는 것이다. 327호 수개미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그 언어를 통해서 자기가 겪은 일들을 모두 암개미 56호에게 이야기했다. 즉, 원정대의 참사, 난쟁 이 개미들의 냄새, 어머니와의 만남, 자신을 제거하려는 기도, 통행 냄새의 상실, 문지기 개미와의 싸움, 바위 냄새를 풍기며 끊임없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자객들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완전 소통이 끝나자, 암개미는 수개미에 대해 좋은 기분을 갖게 되었다는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후퇴시켰다. 수개미가 등에서 내려 와 이제 자신을 암개미의 처분에 맡기겠노라는 태도를 취한다. 암개 미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를 죽일 수도 있다. 암개미가 턱을 크게 벌리고 다가온다. 그러더니.... 제 통행 페로몬의 일부를 그에게 나 누어 준다. 그러자 수개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암개미가 그에 게 영양 교환을 제안하자, 그가 받아들인다. 암개미는 그들이 대화 를 나눌 때 생겨난 수증기를 흩뜨리려고 날개를 붕붕거린다. 마침내 수개미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신이 알 고 있던 정보를 다른 세포에게 전달했고, 그를 이해시켰으며, 그가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머지 않아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함 께 할 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시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은 사람의 경우와 개미의 경우가 아주 다르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절대적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시간의 길이와 주기가 일정하다. 그와 반대로 개미에게는 시간이 상대적이다. 날씨가 더울 때는 시 간의 길이가 아주 짧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간이 축축 늘어지고 무한히 길어져, 마침내는 동면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까지 된다. 시간에 대한 지각이 이렇게 탄력적인 까닭에, 개미는 사물의 속도 를 지각하는 데서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사물의 운동을 규정할 때, 곤충들은 단지 공간과 소요 시간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요 소인 온도를 덧붙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이제 그들 둘은 어떻게 하면 '비밀 살상 무기 사건'의 심각성을 최대한 많은 동료들에게 일깨울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다. 너 무 늦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신생의 축제를 앞둔 시점이라 모두들 그 일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이므로,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일개미들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우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제3의 공모자가 필 요하다. 또 하나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다시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은신처가 필요하다. 56호가 자기 방을 은신처로 삼자고 제안한다. 자기가 비밀 통로를 파놓은 게 있어서 곤경에 처하게 될 때는 그곳을 이용하여 도망을 치면 된다는 거였다. 수개미 327호는 그 얘기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비밀 통로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 라 100년 전에 시작된 일이다. 끈끈이침 개미들과 전쟁을 벌이던 때 의 일이었다. 한 동맹 도시에 아예테두니라는 여왕이 있었는데, 그 여왕은 안보 문제에 거의 망상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여왕은 '난 공 불락'의 궁궐을 짓게 했다. 벽에는 커다란 자갈을 쌓고 흰개미들 이 그러듯이 돌가루 반죽으로 자갈들을 접합시켰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었 다. 그래서 끈끈이침 개미들이 궁궐을 포위했을 때, 여왕은 꼼짝없 이 궁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끈끈이침 개미들은 여왕을 손쉽게 붙들어, 금방 말라버리는 그들 의 더러운 침으로 여왕을 질식시켜 버렸다. 그 뒤에 아예테두니 여 왕의 원수를 갚고 도시를 해방시켰지만, 그 끔찍하고 어리석은 결말 이 오래도록 벨로캉 개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개미들은 그 엄청난 사건을 기화로 해서, 자기들의 거주 공간을 변경했다. 각자 위턱을 사용해서 비밀 통로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 한 마리가 구멍을 팔 때는 괜찮았지만, 천 마리가 파게 되니 전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적인' 통로들이 밑을 파고들어 오는 바람에 '공적인' 통로가 무너지고는 했다. 남의 비밀 통로를 이용하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남들'의 비밀 통로 때문에 자기의 통로가 미로나 다름없이 되어버 리는 일도 있었다. 급기야는 모든 구역이 허물어지기 쉬운 취약 지 대로 변해버렸고, 벨로캉의 미래마저도 위태롭게 되었다. 어머니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사적인 용도로 구멍을 파는 일이 금지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그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 슨 수로 모든 방들을 다 통제할 수 있겠는가? 56호 암개미가 자갈 하나를 떠밀자 컴컴한 구멍이 드러난다. 여기 다. 327호는 은신처를 살핀다.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3의 공모 자를 찾는 일이 남았다. 그들은 은신처를 나와서 찬찬하게 다시 구 멍을 막는다. 56호가 페로몬을 발한다. '제일 먼저 만나는 자를 설득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내게 맡겨라.' 그들은 곧 어떤 깨미와 마주쳤다. 커다란 비생식 병정개미 하나가 나비 고기 한 덩어리를 끌고 오고 있다. 암개미가 멀리서 호소력이 강한 냄새를 발하여 겨레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 병정개미가 발길을 멈춘다.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암개미의 노 련한 솜씨에 수개미가 넋을 잃는다. 병정개미는 즉시 끌고 가던 사 냥물을 버리고 이야기를 나누러 다가온다. '겨레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 있다고! 어디서, 누가, 어떻게, 왜?' 암개미는 봄철 첫 원정대에게 닥친 재앙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설 명하면서 암개미는 달콤한 향기를 뿜어댄다. 암개미는 벌써 여왕으 로서의 기품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병정개미는 이내 설복되고 만다. '우리는 언제 떠나는가? 난쟁이 개미들을 공격하자면 병정개미가 얼마나 필요한가?' 병정개미가 자기를 소개한다. 여름에 산란된 103683호 비생식 개 미이다. 번쩍거리는 커다란 머리에 긴 위턱, 거의 보이지 않는 눈, 짧은 다리, 믿을 수 있는 동지이다. 천성이 열정적인 듯도 하다. 56 호 암개미가 도리어 그 병정개미의 열성을 눅여야 할 판이다. 병정개미는 겨례의 한복판에 첩자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난쟁이개 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벨로캉 개미 들이 그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게 그 자들이 방해를 하 고 있다는 거였다. '그 자들은 특유의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식별할 수가 있을 게야' '나를 믿게나.' 그들은 각자가 활동할 구역을 나누었다. 327호는 햇빛방에 있는 유모 개미들을 설득하러 가기로 했다. 유모 개미들은 대개가 순진하 기 때문에, 이야기가 될 듯 싶었다. 103683호는 병정개미들을 데리러 갔다. 103683호가 부대 하나를 꾸려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나도 척후 개미들에게 질문을 해서,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한 다른 증언들을 수십해 보겠어.' 56호는 버섯 재배실과 축사로 가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 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온이 23도가 되는 시간에 여기로 돌아와서 각자의 활동 결과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텔레비전에선 이제, '세계의 문화'라는 시리즈의 일환으로 일본 사람들의 관습에 관한 르포를 방영하고 있었다. -섬나라 민족인 일본인은 수 세기 전부터 자급 자족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습니 다. 즉, 일본 사람과 그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일본 사 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관습을 지닌 이방인들 로서, 그들 말대로 가이징입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아주 까다로운 민족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 다. 예를 들어 어떤 일본 사람이 유럽에 와서 정착을 하면 그는 자 동적으로 그가 속해 있던 집단에서 제외됩니다. 1년쯤 지나서 그가 돌아가면, 그의 부모도 더 이상 그를 자기들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 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가이징 나라에서 살면 '남들'의 정신에 물 들어 가이징이 되어버린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의 죽마 고우들 마저도 낯선 관광객을 대하듯이 그를 대하게 됩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절이며 신사 따위가 차례차례 나타나고 있었다. 나레이터의 해설이 이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것과 다릅니다. 일본에 서는 한 개인의 죽음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들이 걱정하는 것은, 생산력을 가진 하나의 세포가 사라지는 것입니 다. 죽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무술 연마를 즐깁니다. 국 민학교 때부터 어린이들에게 검도를 가르치고.... 화면 중앙에 옛날의 사무라이처럼 옷을 입은 검도 선수 두 사람이 나타났다. 가슴을 마디가 진 검은 판으로 덮었고, 머리에는 계란 모 양의 투구를 썼다. 투구에는 양쪽 귀 높이에 기다란 깃털 장식이 꽂 혀 있었다. 그들은 살기 등등하게 고함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들어 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한 남자가 두 손에 쥔 칼을 배에 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자살 의식인 셋푸쿠는 일본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우리로서는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그.... "허구한 날 텔레비젼이로구나! 텔레비젼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 는거야. 우리 머리 속에 갖가지 획일적인 심상을 심어넣지. 온갖 방 법으로 별별 얘기를 다 한단 말이지. 이제 신물이 날 때도 됐는데, 아직 안그러냐?" 몇 시간 전에 돌아와 있던 조나탕이 소리를 쳤다. "내버려둬요. 그거라도 보면서 위안을 찾아야죠. 개가 죽은 뒤로 는 니콜라가 영 생기가 없어요...." 딱딱한 음성으로 뤼시가 말했다. 조나탕은 아들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니? 니콜라?" "조용히 하세요, 텔레비젼 소리를 듣고 있단 말이예요." "여보, 이녀석 우리에게 말하는 투가 왜 이래!" "우리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말하는 투가 그런 거예요. 당신을 자주 못 보니까 쌀쌀맞게 대하는 거 아니겠어요?" "니콜라,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 풀었니?" "아뇨, 신경질나서 못 하겠어요. 텔레비전 소리 좀 듣게 가만히 계세요." "그래, 신경질이 나더란 말이지...." 조나탕은 깊은 생각에 잠겨 탁자 위에 성냥개비를 늘어놓고 이리 저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해보면 좋을텐데. 이 문제는 좋은 교훈을 주거든." 니콜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뇌는 텔레비젼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조나탕이 자기 방으로 가려는데, 뤼시가 물었다. "뭘 하려고 그래요?" "준비해야지. 거기로 돌아가야잖아." "뭐라구요? 안돼요!" "달리 도리가 없어." "도대체 저 아래에서 당신을 그토록 홀리고 있는 게 뭐예요? 애인 이라도 숨겨놨어요? 말해봐요. 당신 아내인 나한테 말 못할 게 뭐냔 말이예요!" 그는 묵묵 부답이었다. 그의 눈이 아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볼쌍사나운 버릇이 또 나왔다. 싸우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라야 말이지 뤼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쥐들은 죽였나요?" "죽일 필요가 없어.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놈들은 멀찌감치 도 망을 가거든.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이걸 꺼내서 겁을 주지." 조나탕은, 오랫동안 갈아서 날을 세운 커다란 식칼을 휘둘렀다. 그는 다른 손으로 할로겐 전등을 쥐고 지하실 문 쪽으로 향했다. 등 에는 가방을 짊어졌는데, 거기에는 자물쇠 회사에서 일할 때 쓰던 연장들과 푸짐한 식량이 들어 있었다. "잘 있거라, 니콜라. 당신도...." 뤼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조나탕의 팔을 잡았다.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이건 너무해요. 나에게 말을 해야 돼요." "아, 제발 그만해 둬." "이런 얘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저 빌어먹을 지하실 에 내려가면서부터 당신 아주 딴 사람이 되었어요. 돈은 다 떨어졌 는데, 개미에 대한 책하고 자재를 이것저것 사들인 게 못 돼도 5만 프랑어치는 될 거예요." "자물쇠 설치하는 일하고 개미 연구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래. 그 건 내 권리야." "아니예요, 그건 당신 권리가 아니예요. 먹여살려야 할 자식과 아 내가 있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실업 수당도 다 개미에 관한 책 값으로 나가고, 끝을 내든지 해야지 원...." "이혼하겠다는 거야?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뤼시는 낙담한 표정으로 남편의 팔을 놓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조나탕이 아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날 믿어줘. 난 끝까지 가야 돼. 난 미친 게 아냐." "미친 게 아니라고요? 당신 모습이 어떤지 좀 봐요! 안색이 백지 장 같구 무슨 열병을 앓는 사람 같아요." "몸은 늙어가지만, 머리는 젊어지고 있어." "여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얘기해 줘요!" "흥미 진진한 일이야. 나중에 다시 올라올 수 있으려면 더 아래로 자꾸자꾸 내려가야 돼.... 수영장 같은 거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바닥을 디뎌야 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 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잠시 후 그가 사라진 뒤 지하실 나선 계단에서도 울려 퍼졌다. 지상 35층. 잔가지로 된 얇은 덮개가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 효 과를 내고 있다. 그 필터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영롱하게 반짝이다 가, 별들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처럼 땅에 떨어진다. 여기는 햇빛 방. 벨로캉의 시민들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방은 찌는 듯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기온은 38도. 당연한 얘기 지만, 햇빛방은 태양의 열기를 되도록 오랫동안 받을 수 있도록 정 남향으로 되어 있다. 어쩌다가, 잔가지들이 온도를 높이는 데 촉매 작용을 해서, 기온이 무려 50도에 이르는 때도 있다. 수백 개의 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가장 수가 많은 계급은 유모 개미 계급이다. 유모 개미들이 방금 어머니가 낳 은 알들을 쌓고 있다. 스물네 개의 모다기가 모여서 하나의 더미를 이루고, 열두 더미가 모여 하나의 줄이 된다. 그러한 줄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뻗어 있다. 구름이 해를 가려 그늘이 지면, 유 모 개미들이 알모다기를 옮긴다. 가장 어린 생명들은 언제나 따뜻하 게 해주어야 한다. '알은 촉촉하고 따뜻하게, 고치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게.' 이것이 훌륭한 2세를 만들기 위한 개미 세계의 오랜 비방이다. 왼쪽에 온도 조절을 담당하고 있는 일개미들이 보인다. 일개미들 은 검은 나무 조각과 발효한 부식토 덩어리를 쌓아놓고 있다. 검은 나무 조각은 열기를 모으고, 부식토는 열을 만들어낸다. 그 두 개의 난방 장치가 있는 덕분에, 햇빛방은 바깥 기온이 15도밖에 안 되어 도 언제나 25도에서 40도 사이의 온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포수 개미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혹시 청딱따구리 같은 것들이 와서 말썽을 피우지나 않을까 경계하면서.... 오른쪽으로, 세상에 더 먼저 나온 알들이 보인다. 길고 긴 탈바꿈 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유모 개미들이 어린 알들을 핥아주며 보살핀 덕분에,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작은 알들이 굵어지고 노르스름 해진다. 그 알들은 노란 털이 달린 애벌레로 탈바꿈한다. 그 기간은 1주일부터 7주일까지 다양한데, 그것은 일기 상태가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 유모 개미들이 알을 돌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항균성을 지닌 침을 아낌없이 주면서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러운 것이 와서 애벌레를 오염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눌 때 발산되는 페로몬조차도 되도록 적게 나오 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것들을 저 구석으로 옮기게 나를 도와 주게.... 조심, 조심, 자네 모다기가 무너지겠어....' 어떤 유모 개미가 제 몸보다 두 배나 긴 애벌레를 옮기고 있다. 포수 개미가 될 애벌레임이 틀림없다. 유모 개미는 장차 겨레의 '무 기'가 될 그 애벌레를 구석에 놓고 핥아준다. 그 커다란 부화실 한가운데에는 애벌레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 다. 그것들의 몸 마디 열 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애벌레들 은 유모 개미들이 입으로 전해주는 먹이를 받으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목을 길게 늘이면서 요란한 몸짓을 해대면, 마침내 유모 개미들이 약간의 분비밀을 전해주기도 하고 벌 레 고기를 던져주기도 한다. 3주가 지나 제대로 성숙한 애벌레는 먹기와 움직이기를 중단한다.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가사 상태를 맞는 것이다. 고치를 짓기 위해 모든 힘을 모으는 것이다. 고치가 애벌레들을 번데기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유모 개미들이 노란색의 그 커다란 애벌레 더미를 옆 방으로 끌고 간다. 옆 방에는 공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도록 마른 모래가 채워 져 있다. '알은 촉촉하고 따뜻하게, 고치는 보송보송하고 따뜻하 게'. 그 비결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그 건조실에서, 푸른 기운이 도는 하얀 고치가 노랗게 되었다가 다시 회색으로, 그 다음에 갈색으로 변한다. 연금술에서 돌이 변하 는 것과 반대로 변하는 셈이다. 고치 상태에서 자연의 기적이 일어 난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이다. 신경 조직, 호흡기, 소화기, 감 각 기관, 딱지.... 건조실에 놓인 번데기는 며칠 만에 커다랗게 덩치가 불어날 것이 다. 새에 비유하자면, 알이 부화를 기다리면서 성숙해 가고 있는 것 과 같다. 위대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치를 깨고 나오기 직전의 번데기는, 같은 상태를 맞고 있는 번 데기들과 함께 간격을 벌여서 놓아둔다. 유모 개미들이 용의주도하게 고치의 너울을 찢고 더듬이와 다리를 들어내면, 마침내 한 마리 하얀 개미가 몸을 떨면서 고치를 벗어난 다. 키틴질이 아직은 물렁물렁하고 투명하지만, 며칠 후엔 벨로캉의 모든 개미들처럼 붉은 갈색을 띠게 될 것이다. 327호는 다들 일하느라고 눈코 뜰 새가 없는 그 북새통 속에서,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떤 유모 개 미가 갓 태어난 개미의 걸음마를 도와주고 있다. 그는 그 유모 개미 에게 짤막한 냄새 언어를 쏘아보냈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모 개미는 그의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겨우 감지 할 만한 냄새 문장을 보내왔다. '조용히 하게,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네.' 포수 개미 하나가 더듬이 끝에 난 도톰한 곤봉으로 수개미를 툭툭 건드리면서 그를 떼밀었다. '방해하면 안 돼. 돌아가.' 수개미에게는 기력도 충분하지가 않았고, 냄새를 발산해서 상대방 을 설득시킬 만한 능력도 없었다. 아! 56호만한 대화의 능력을 가지 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수개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유모 개미들에게 다시 냄새를 보냈다. 유모 개미들이 그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자 문득 자신의 사명이 자기가 생각하 는 것만큼 정말 중요한 것일까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어쩌면 어 머니 말씀이 옳은지도 모른다. 일에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 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일보다는 생명을 보전하는 일이 우선이다. 수개미가 그런 뜻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개미산 한 방이 그의 더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모 개미 하나가 위에서 그에게 쏜 것이었다. 그 유모 개미는 곧 이어 자기가 맡고 있던 고치를 떨 어뜨려 수개미를 맞추려고 했다. 다행히 겨냥이 빗나간다. 수개미가 그 폭력 분자를 잡으려고 덤벼든다. 그러나 그 자는 벌 써 첫번째 영아실 안으로 도망을 쳤다. 도망을 치면서 알 한 모다기 를 뒤집어 엎어서 수개미가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알 껍질이 깨지 면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저 자가 알을 깨뜨렸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유모 개미들이 잉태 상태에 있는 세대를 보호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며 사방으로 달려간다. 수개미 327호는 도망치는 개미를 붙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 고 가슴 아래로 배를 올려 사격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가 미처 사 격을 해보기도 전에, 그 도망자가 알 모다기를 뒤엎는 것을 보았던 포수 개미가 시체 위로 더듬이를 기울인다. 틀림없이 희미한 악취가 난다. 바위 냄새다. 사회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는 사회성을 타고난다. 새끼 개미는 너무 약해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치를 혼자서 깨뜨릴 수가 없다. 사람 의 아기도 혼자서 걷거나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 개미와 인간은 둘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할 줄도 모르고 터득할 수도 없다. 그 의존성이 또 다른 진화를 가져온다. 지식 추구가 그것이다. 어 린 개체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터에, 생존 능력을 지 닌 개체들에게 지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지하 20층 암개미 56호는 아직 농격 개미들하고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신기로워서 아무 냄새도 발산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암개미 계급은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내내 공주 들의 규방에서 갇혀 지낸다. 그래서 암개미들은 세계가 그저 100여 개의 통로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지하 10층 이하나 지상 10층 이상을 다녀본 암개미는 얼마 되지 않았다. 56호는 한때, 유모 개미들이 이야기해 준 커다란 '바깥 세상'을 보고 싶어서, 나가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파수 개미들에게 떼밀려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냄새는 얼마간 숨길 수가 있었 지만 기다란 날개는 숨길 도리가 없었다. 그 당시에 경비 개미들은 밖에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 있다고 했다. 그 괴물들이 신생의 축제 이전에 밖으로 나오는 어린 공주 개미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56호는 바깥 세상에 대해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지하 20층에 내려와 보고, 56호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거친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기 전에 자기 도시 안에서 발견해야 할 경이 로운 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었다. 56호가 버섯 재배장을 본 것도 그곳에서가 처음이다. 벨로캉 전설에 따르면, 버섯 재배장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5만 번째 천년기의 일로서, '곡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라고 한다. 포수 개미들의 한 특공대가 어떤 흰개미 도시를 포위했을 때였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큰 방이 나타났 다. 가운데에 하얗고 둥글넓적하게 생긴 커다란 것이 솟아 있는데, 백여 마리의 흰개미 일꾼들이 계속 그것을 문질러 윤을 내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그 맛을 보고나서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 은.... 한 마을을 통째로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먹이였 다. 포로가 된 흰개미들이 그것이 버섯임을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흰개미들은 섬유질만으로 살아가는데, 섬유질을 그대로 소화할 수가 없으니까,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그 버섯을 이용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에 비하면 개미들은 섬유질을 아주 잘 소화하니까 버섯을 그렇 게 교묘한 용도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개미들은 버섯을 도시 내부에서 재배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버섯을 도시 안에서 재배하게 되면, 도시가 포위되어 식량 난에 허덕일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오늘, 벨로캉 지하 20층의 커다란 방들에서는 개미들이 버섯의 균 주를 고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개미들이 이용하고 있는 버섯은 흰 개미들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벨로캉에서는 느타리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버섯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전반적인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암개미 56호가 그 하얀 정원의 화단들을 둘러보고 있다. 한쪽에서 일개미들이 버섯이 자라게 될 '모판'을 만들고 있다. 일개미들은 나 뭇잎을 자잘하고 각이 지게 자른 다음, 그것들을 밟고 버무려서 반 죽을 만든다. 그러고는 나뭇잎 반죽을 배설물로 만든 퇴비 위에 가 지런히 늘어 놓는다(개미들은 이런 때에 쓰려고 우묵한 곳에 배설물 을 모아둔다). 그 일이 끝나면 침을 뱉어 물기를 주고, 싹이 트기를 기다린다. 이미 발효가 된 반죽은, 먹을 수 있는 하얀 팡이실로 뒤덮여 있 다. 저기 왼쪽에 그런 것이 보인다. 일개미들이 소독성을 지닌 침으 로 물을 주고, 하얗고 자그마한 원뿔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것들을 모두 잘라버린다. 버섯이 마냥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가는, 방이 터 져버리고 말 것이다. 수확한 팡이실들을 일개미들이 납작한 위턱을 써서 가루를 만드는데, 그 가루는 맛깔스러울 뿐만 아니라. 몸에도 좋다. 여기에서도 일개미들은 전혀 한눈을 팔지 않고 일에 몰두해 있다. 자기들이 보살피는 버섯 사이에 잡초 하나, 기생 곰팡이 하나라도 끼여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56호가 한 원예 개미와 더듬이 접촉을 시도한 건 바로 그런 분위 기에서였다. 요컨데 계제가 좋지 않았다. 그 원예 개미는 하얀 원뿔 중의 하나를 잡고 꼼꼼하게 가지치기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 도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 하다. 우리 일에 합류할 생각은 없는가?' '어떤 위험이 있단 말인가?' '난쟁이 개미들이 무시무시한 성능을 가진 비밀 무기를 만들어냈 다 되도록 빨리 대응해야 할 것 같다.' 원예 개미는 차분하게 자기가 가꾸고 있는 아름다운 느타리를 어 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56호는 그 버섯이 훌륭하다며 그에게 칭 찬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자 원예 개미가 버섯 맛을 보라고 권했 다. 암개미가 그 하얀 반죽 같은 것을 한 입에 떼어 물었다. 곧바로 식도가 후끈거렸다. 이거 독이잖아! 느타리에는 미르미카신이 배어 있었다. 보통 희석시켜서 제초제로 사용하는 아주 강렬한 산이다. 56호는 기침을 하면서, 그 독이 든 먹이를 늦기 전에 얼른 뱉어냈 다. 원예 개미는 제 버섯을 팽개치고, 위턱을 내밀면서 56호의 가슴 께로 덤벼들었다. 원예 개미와 56호가 퇴비 위에서 뒹굴고 있다. 더듬이 끝을 재빨 리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린다. 때려도 그 냥 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박살내 버리겠다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때리는 것이다. 농경 개미들이 그들을 떼어놓는다. '너희 둘 다 어떻게 된 거 아냐?' 원예 개미가 도망을 친다. 56호는 날개를 펴고 경이롭게 비약을 하더니 도망가던 원예 개미가 땅바닥에서 꼼짝을 못 하게 만들어버 린다. 그때 56호는 원예 개미에게서 바위 냄새가 옅게 풍기고 있음 을 알았다. 틀림없이 그 암살자들 패거리에 속한 한 개미가 이번에 는 56호의 목숨을 노린 것이다. 56호는 그 원예 개미의 더듬이를 붙들었다. '너는 누구냐? 왜 나를 죽이려 했지? 이 바위 냄새는 뭐냐?' 아무 대답이 없다. 56호가 원예 개미의 더듬이를 비튼다. 그게 너 무 고통스러웠던지 원예 개미가 발악을 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대답 을 하지 않는다. 56은 겨레의 세포에게 해를 입히는 개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56호는 더듬이를 더 세게 비튼다. 원예 개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제 스스로 경직 상태에 빠 져든 것이다. 그 자의 심장은 이제 거의 뛰지 않는다. 곧 죽게 될 것이다. 분한 마음에, 56호는 그 자의 두 더듬이를 잘랐다. 그렇지 만 그것은 시체와 씨름하는 꼴일 뿐이었다. 농경 개미들이 다시 56호를 둘러쌌다. '무슨 일이야! 저 자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은 변명할 때가 아니라고 56호는 생각했다. 도망가는 게 낫겠 다. 56호가 날개짓을 하면서 도망을 친다. 327호가 옳다 뭔가 놀라 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겨레 안에 미쳐버린 세포들이 있다. 제 1 부 개미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지하 45층. 비생식 개미 103683호가 전투 훈련실로 들어간다. 병정개미들이 춘계 전쟁에 대비해서 훈련을 하고 있는, 천장이 낮은 방들이다. 어디에서나 병정개미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다. 대련자들은 먼저 상배방의 체격과 다리 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서로서로를 더듬는다. 다음에는 몸을 돌려 옆구리를 서로 더 듬어보고 상대방의 털을 잡아당기면서 냄새를 풍겨 도전장을 내고, 더듬이의 도톰한 끝 으로 서로를 가볍게 두드린다. 대련 준비를 끝낸 병정개미들이 마침내 서로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딱지 부딪는 소리, 저마다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쪽이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 잡자, 다른 쪽은 상대의 무릎을 깨물려고 한다. 로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몸짓 하나하나 가 나뉘어 있다. 두 뒷다리로 버티며 몸을 곧추세웠다가, 쓰러지며 구르기도 한다. 맹렬한 연습이다. 대련자들은 대개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면 동작을 멈추고, 다른 대상에게 달려든다. 이 것은 그저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한 연습일 뿐이다. 그러나 몸 한 부분이라도 깨지거나 피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등을 대고 누워버리는 개미가 생기면 전투가 중단된 다. 그때 그 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항복을 하면 중단하는 대련이기는 해도, 실제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려고 발톱으로 사정없이 눈을 찌르기도 하고, 위턱이 맞부딪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 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50머리 떨어진 곳에 조약돌을 놓고, 겨냥을 해서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은 대개 과녁에 적중한다. 고참 병정개미가 신참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 기려고 마음을 먹은 자와 패배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전투란 그렇게 역할을 나누는 문제일 뿐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을 선택하고 나면, 승리를 결심한 자는 겨 냥을 하지 않고 쏘아도 과녁의 한가운데를 명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패배를 생각한 자 는 제 위턱을 아무리 휘둘러도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 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하는 것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인 자를 그 무엇이 당할 수 있으랴. 결투를 하고 있던 두 개미가 병정개미 103683호를 떠밀었다. 103683호는 그들을 힘껏 밀어젖히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103683호는 전투 연습장 아래 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병들의 구역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로 가는 통로가 저기 보인다. 용병들의 방은 일반 부대의 방보다 훨씬 더 널찍하다. 용병들은 끊임없이 훈련장 위에 서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로지 전쟁에 대비해서 존재할 뿐이다. 용병 부대에는 벨로 캉 인근의 갖가지 미개부족의 개미들이 어우러져 있다. 동맹을 맺은 부족의 개미들이 있 는가 하면, 정복을 당한 부족의 개미들도 있다. 즉, 노랑개미, 빨강개미, 까망개미, 끈끈이침 개미, 독침을 가진 원시개미 등이 들어 있고 심지어는 난쟁이개미도 섞여 있다. 다른 부족의 개미를 먹여살리는 대가로 적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이 자기 편에 서서 싸 우게 만든다는 생각은 흰개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개미 도시에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즉, 외교적인 문제가 미묘해 지면서 개미들 이 다른 개미와 싸우기 위하여 흰개미와 동맹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흰개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미부대를 아예 용병으 로 만들어서 흰개미 도시에 영원히 주둔하게 하면 어떨까? 그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놀라 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개미군대가, 흰개미들을 위해 싸우는 같은 개미 동포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개미 문명이 아주 빠르게 적응력을 키워감에 따라 이번에는 개미쪽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 다. 개미들은 흰개미들이 했던 대로 흰개미 부대를 용병으로 삼아 제 종족과 싸우게 함으로 써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장애가 생겨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 다. 여왕에 대한 흰개미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이 워낙 빈틈 이 없어서 제 겨레에 맞서 싸우질 못했다. 결국 용병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용병을 제 겨레와 싸우게 하는 패륜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인데, 그 모든 폐단을 감내할 수 있는 것 은 개미들뿐이었다. 개미들은 생리적인 특징만큼이나 다채로운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 던 것이다. 흰개미들을 용병으로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족의 개미들이 있기에 용병 제도를 만 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개미 대연방들은 많은 이방 개미 부대를 만들어 자신들 의 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방 개미들의 부대는 모두 벨로캉 페로몬의 기치 아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103683호는 난쟁이개미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시게푸의 비밀무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순식간에 불개미 원정대 28마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출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용병 개미들은 그렇게 강력한 무기는 본 적이 없고, 그런 소리는 듣 던 중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103683호는 가까운 동료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모두 103683호가 잘 아는 개미들이었다. 그들은 103683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를 믿어주었다. 그의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결의에 찬 30마리 이상의 개미들이 모여 '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를 탐색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아, 327호가 이 사실을 알면 얼 마나 좋아할까! '주의할 점이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를 모두 죽이려 하는 한 무리의 조직된 집 단이 있다. 그 자들은 틀림없이 난쟁이개미들을 위해 일하는 불개미 용병들일 것이다. 그 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보안을 위해서, 그들은 첫 모임을 도시의 가장 밑바닥인 지하 50층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방 가운데 하나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아무도 거기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거기에서라 면 마음놓고 거사 계획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몸이 갑작스럽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그는 몸으로 기 온이 23도임을 느낀 것이다. 103683호는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327호, 56호와 만 나기로 한 장소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개미의 미학 개미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구부슴한 테두리 선은 맵시좋게 다듬어져 있고, 몸 매에 구현된 공기 역할의 원리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몸의 구석구석이 정교하게 고 안된 차체와 같아서, 공기 역학의 원리에 맞게 오목오목 들어간 자리에 다리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박혀 있다. 몸 마디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다. 몸 마디를 감싸고 있는 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어떤 디자이너가 마름질한 것처럼 사개가 꼭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삐걱거리 는 일이 없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세모진 머리는 공기를 헤쳐나아가기에 알맞고, 구부러진 긴 다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몸을 사뿐하게 받치고 있다. 마치 이탈리 아의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다. 발톱은 천장에서도 붙어다닐 수 있게 되어 있고, 눈은 180도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더듬이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가지의 정보를 감지하며, 그 끄트머리는 망치 구 실을 한다. 배에는 화학 물질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나 자루나 샘들이 가득하다. 위턱으 로 물건을 자르고 구멍을 내며 붙잡을 수도 있다. 몸안에 그물처럼 퍼져 있는 관들을 통 해 후각 정보를 방출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니콜라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도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었다. 무인 탐사 우주선 '마르코폴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뉴스가 방금 끝났다. 탐사 작업을 통 해 얻은 결론은, 지구와 가까운 태양계에는 생물이 살고 있는 징후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 다. 무인 우주선이 탐사한 행성들이 보여준 모습이란 바위 투성이의 사막이나 암모니아 액 으로 된 표면이 고작이었다. 아주 보잘것 없는 이끼 하나, 아메바 하나, 미생물 하나도 없 었다. '정말 아빠 말대로 외계의 생물은 없는걸까? 온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의 형태는 우리뿐인가?....' 니콜라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 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가 끝나자 '세계의 문화'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인도의 카스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힌두교인들은 태아날 때부터 각자의 카스트를 타고나 죽을 때까지 거기에 속하게 됩니 다. 카스트마다 따라야 할 규율이 있는데, 그 규율이 엄격해서 그것을 범했다가는 출신 카스트는 물론이고 다른 카스트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그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떠올려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니콜라가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지하실에서 개가 죽은 뒤로, 아이는 매일 4시간씩 일삼아 텔레비젼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 딴 사람처럼 되 어보려는 제 나름의 방법이었다. 니콜라 어머니의 음성이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일깨웠다. "자, 이제 그만 보거라. 피곤하지 않니?" "아빠는 어디 계셔요?" "아직 지하실에 계시단다.... 이제 자야지." "잠이 안 와요." "옛날, 얘기 해줄까?" "예, 좋아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로요." 뤼시는 아이의 방으로 함께 가서, 오렌지빛의 긴 머리채를 풀어 해치며 침대 가장자 리에 앉았다. 뤼시는 히브리의 옛이야기 하나를 골랐다. "옛날에 석수장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파는 일이 그 사람 일이었지. 어느 날 그 석수장이는 자기 일에 싫증이 났어. 석수장이는 생각 했지. '이런 삶은 지긋지긋해. 허구헌 날 돌맹이나 깎고 있자니 지겨워서 못 하겠어.... 저 햇님은 늘 따가운 햇살로 나를 힘들게 해. 아, 내가 햇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높 은 곳에서 세상에 햇살을 가득 뿌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못 할일이 없을 거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어. 곧바로 석수장이가 햇님이 된 거지. 그는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자 행복했어. 그런데,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 여기저기에 햇살을 보내고 있는데, 구름이 나타나서 햇살을 막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이 소리쳤지. '구름이 저렇게 쉽게 내 햇살을 막아버리니 햇님이 된 게 무슨 소용이있담! 구름이 햇님보다 더 힘이 센 거라면 구름이 되고 싶어.' 이렇게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구름이 되었어. 그는 세계 위 를 날아다니면서 비를 뿌렸지.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구름을 흩뜨리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생각을 했지. '아, 바람이 구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가장 힘이 센 건 바람 이다. 난 바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그는 바람이 되었나요?" "그렇지,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 폭풍을 일으키고, 돌풍을 만들기도 하고, 태풍이 되기도 했어. 그런데 느닷없이 벽이 하나 나타나서 그가 가는 길을 막았어. 아주 높고 튼튼한 벽이었지. 산이 나타난거야. '고작 산 하나가 내 길을 막는다면, 바람이 된 게 무슨 소용이람? 가장 힘이 센 건 바로 산이로구나!' 하고 그가 말했어." "그래서 그는 산이 되었겠군요." "맞아, 그때 그는 산이 된 자기를 뭔가가 두드리고 있는 걸 느꼈지. 그보다 더 힘이 센 무언가가 안에서 그를 후벼파고 있었던 거야. 그건.... 자그마한 석수장이였어...." "아아!"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니?" "그럼요, 엄마." "텔레비젼에서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하는 거 본 적이 없지?" "예, 엄마." 뤼시는 웃으면서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뭔가를 파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간 아빠는, 저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아빠 자신이 해나 구름과 같은 다른 것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빠는 이곳이 편치 않은가 봐요." "그렇단다. 니콜라. 아빠는 실업자인 걸 부끄러워하셔. 아빠는 햇님이 되는 게 낫다고 생 각하시는거야. 땅 속의 햇님 말이야." "아빠는 아빠 자신을 개미들의 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뤼시가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야. 네 아빠에겐 아이 같은 구석이 있지 않더냐. 어린애치고 개미집에 반하지 않는 애가 없지. 너는 개미를 갖고 장난해 본 적이 없니?" "왜요, 있어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베개를 다독거리고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자야지. 그럼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성냥개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아직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뤼시는 거실로 돌아와 서 읽던 책을 다시 들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집의 내력을 밝혀놓은 건축 책이었다. 그 책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이 이 집에 살았으며, 특히 중세에는 신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미셸 세르베라는 사람이 그 한 예인데, 그는 이 집에서 몇 해 동안 산 걸로 나와 있 었다. 책의 어떤 구절이 유독 뤼시의 눈길을 끌었다. 그 구절에 따르면, 종교 전쟁중에 도시 밖으로 신교도들을 도망시키기 위해 지하실을 팠다고 한다. 보통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깊고 긴 지하실을.... 개미 세 마리가 완전 소통을 실행하려고 세모꼴을 이루며 앉아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 은 마치 조사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하여 한 몸뚱이가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더듬이를 결합하자 생각들이 순환하면서 융합하기 시작한다. 아무 문제없이 일 이 잘되어 간다. 각각의 뇌수는 하나의 트랜지스터가 되어, 자신이 받아들인 전기 신호를 증폭시켜 다른 뇌수에 전하고 있다. 그렇게 결합된 세 개미의 정신은 그들의 능력을 단 순히 합쳐놓은 것보다 뛰어나다. 그때 갑자기 꿈결 같은 더듬이 대화가 중단되었다. 103683호는 잡스러운 냄새가 끼여들 고 있음을 깨달았다. 벽에 웬 더듬이가 붙어있다. 정확히 말하면, 56호 암개미의 방 입구 에 더듬이 두 개가 비죽 나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분명하다. 밤 열두시, 조나탕이 다시 올라오지 않은 지 이제 이틀이 되었다. 뤼시는 가슴을 졸이 며, 거실 안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니콜라를 보러 건너가보니 아이는 깊이 잠들어 있 었다. 그때 뤼시의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성냥개비였다. 문득 어떤 직 감이 뇌리를 스쳤다. 성냥개비의 수수께끼 속에 지하실의 수수께끼를 풀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었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해서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어.'라고 조나탕이 되뇌이었지. 뤼시는 성냥개비를 들고 거실로 돌아와서 오랫동안 만지 작거렸다. 마침내 그녀는 불안감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뤼시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먼저 에드몽 삼촌이 보였다. 아니 꿈에 보인 그 사 람이 에드몽 삼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남편이 전에 얘기했던 에드몽 삼촌의 모 습과 일치하는 사람이었던 건 확실했다. 그 사람은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 은 사막 한복판 돌투성이 땅이었다. 멕시코 병사들이 그 줄을 둘러싸고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는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멀리에 사람들의 목을 매다는 교수대가 여남은 개 보였 다. 사람들이 뻣뻣한 시체가 되면, 그들을 떼어내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세웠다. 그 사람 이 들어 있는 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에드몽 삼촌 뒤에는 조나탕과 뤼시 자신과 아주 작은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가 바짝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사형수들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두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그들 넷이 나란히 교수대에 매달렸다. 그들은 하릴없 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에드몽 삼촌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쉰 음성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모르겠어요.... 살아야죠. 이왕 태어났으니, 되도록 오래 살아야죠. 그런데 이거, 끝이 날 것 같은데요." 조나탕이 대답했다. "이보게 조카, 자네 비관하지 말게. 우리 목이 매달리고 멕시코 병사들이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이건 어쩌다 맞닥뜨린 인생의 고비일 뿐 끝은 아니야. 그저 하 나의 고비일 뿐이라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있다네. 뒤에 있는 자 네들, 올가미가 느슨한가 보게." 그들은 포승에 묶인 채 버둥거려보았다. "아, 내 올가미는 느슨하군요. 이걸 벗어버릴 수가 있겠어요."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잘했네, 그럼 우리를 풀어주게...." "어떻게 해야 되죠?" "내 손에 자네 몸이 닿을 때까지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게." 그 뚱뚱한 남자가 몸을 뒤틀며 애를 쓴 끝에 살아 있는 시계추가 되었다. 그가 에드몽 삼촌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차례차례 속박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에드몽 삼촌은 '다들 내가 하는 대로 하게!'라고 말하더니, 목을 조금씩 들썩거 리면서 그 줄의 맨 끝에 있는 교수대를 향해서, 올가미들을 하나씩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잖아요! 이 들보를 지나면 아무 것도 없어요. 저 자들 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눈치챌거예요." "보게, 이 들보에 작음 구멍이 하나 있네, 저기로 가세." 그러면서 에드몽 삼촌은 들보를 향하여 뛰어올랐다. 그리고 삼촌은 아주 작아지면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조나탕과 뚱뚱한 남자가 그대로 했다. 뤼시 자신은 도저히 못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나뭇조각을 향해 달려들어 구멍 안으로 들 어갔다! 안에는 나선 계단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들이 도망친 것 을 알아차린 군인들의 고함 소리가 벌써 들려오고 있었다. 로스 그링고스, 로스 그링고스, 퀴다도! 장화 소리, 총소리, 군인들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현대적인 호텔 방이 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었다. 그들은 방으로 들 어가서 문을 닫았다. 8호실. 문이 꽝 하고 닫히는 바람에 꼿꼿이 서 있던 8자가 옆으로 누 우면서 무한대 기호로 바뀌었다. 방은 호사스러웠다. 거기에 있으니 험악한 군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뤼시가 다짜고짜 남편에게 덤벼들었다. '니콜라를 생각해야죠, 니콜라를 생각해야 한다구요.'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오래된 화병 하나를 집어들어 남편을 때렸다. 어린 헤라클레스 가 뱀을 목 졸라 죽이는 그림이 그려진 화병이었다. 조나탕은 양탄자 위에 거꾸러지더니 껍질이 벗겨진 새우로 변했다. 그 새우가 꿈틀거리는 모양이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에드몽 삼촌이 앞으로 나섰다. "질부, 자네 후회하고 있지, 안 그런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알게 될꺼야. 나를 따라오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뤼시를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발코니로 데려가더니, 손가락을 구부리며 두두둑 소리 를 냈다. 그러자 곧 구름에서 불붙은 성냥개비 여섯 개가 내려와 그의 손 위에 일렬로 늘 어섰다. 그가 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내 얘기를 잘 듣거라.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세계를 언제나 똑같은 진부한 방식으로 파악하지. 그걸 사진 찍는 것에 비유하자면 언제나 광각 렌즈 하나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지. 그것도 현실의 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건 하나의 시각일 뿐이야.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보거라." 성냥개비들이 잠시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땅바닥에 모였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어다니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었다. 그 모양은.... 다음날, 뤼시는 무척 흥분한 상태가 되어, 용접을 하거나 쇠를 녹일 때 쓰는 불꽃뿜개를 샀다. 그걸 가지고 뤼시는 지하실 문의 자물쇠를 녹여버렸다. 그녀가 지하실 문턱을 넘어 가려는데, 니콜라가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부엌에 나타났다. "엄마! 어디 가요?" "아빠 찾으러 간다. 아빠는 자신이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거야. 산들을 넘어다닐 수 있는 구름 말이다. 아빠 얘기가 허풍이 아닌지 좀 알아봐야갰어. 갔다와서 얘기해 줄 께...." "안돼요. 엄마, 가지 마세요. 가지 말아요.... 저 혼자 남잖아요." "걱정 마라, 니콜라. 다시 올라올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태니 기다리고 있거라." 뤼시는 지하실 구멍에 불을 비추었다. 그곳은 캄캄했다. 너무나 캄캄했다. '게 누구요?' 두 더듬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머리와 가슴과 배가 차례로 모습들을 드러낸다. 바위 냄 새를 풍기는 예의 그 작은 절름발이다. 그들이 그 절름발이를 덮치려 하는데, 그 뒤에 위 턱으로 단단히 무장한 백마리쯤의 병정개미들이 나타난다. 병정개미들은 모두 바위 냄 새를 풍기고 있다. '비밀 통로로 도망가자!' 암개미 56호가 페로몬을 뿜었다. 56호는 지하 통로의 입구를 열었다. 그러고는 날개를 파닥여 천장에 스칠 정도로 올라가 더니, 앞장서서 난입해 오는 자들에게 개미산사격을 한다. 그 틈에 두 공모자들이 도망을 치고, 병정개미들 속에서 '저놈들을 죽여라!'하는 야만적인 구호가 튀어나온다. 이번에는 56호가 구멍 속으로 숨어들어 간다. 병정개미들의 개미산이 아슬아슬하게 56 호를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빨리! 저놈들을 잡아라! 수백 개의 다리가 56호를 쫓아 몰려 든다. 첩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들은 도망치는 셋을 잡으려 고 비좁은 통로에서 시끌벅적거린다. 수개미와 암개미와 병정개미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더듬이를 뒤로 젖힌 채, 통로를 질주 하고 있다. 그 통로는 이제 비밀 통로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암개미 거주 구역을 빠져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얼마 안 가서 좁은 통로가 끝나고 갈림목이 나온다. 거기서 부터 네 거리가 자꾸 나온다. 그렇지만 발씨가 익은 327호가 낭패스러워 하는 동료들을 이 끌고 간다. 그때 느닷없이, 터널 모퉁이에서 그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마리의 병정개미들과 맞다뜨렸다. 아니 이럴 수가.... 절름발이가 벌써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 간교한 곤 충은 모든 지름길을 훤히 알고 있지 않은가! 세 도망자들이 뒤로 물러서며 도망을 친다. 그들이 가까스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103683호가 한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적들이 지리를 훤히 아는 구역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 난마처럼 뒤얽힌 통로 속에서도 적들은 너무나 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적이 나보다 강할 때는 적의 의표를 찌르라.' 벨로캉의 시조께서 말씀하신 이 오랜 격언이 지금 그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56호 가 꾀를 하나 낸다. 벽 속에 숨자는 것이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내몰리기 전에 숨을 곳을 마련하려고, 세 개미는 안간힘을 다해 측벽에 구멍을 판다. 위턱을 부지런히 놀려 흙을 부수고 퍼낸다. 눈과 더듬 이가 흙투성이다. 그들은 일을 더 빨리 끝내려고 이따금 흙을 크게 한입씩 삼켜버리기 도 한다. 구멍이 꽤 깊어지자 그들은 그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벽을 원래대로 해 놓고 기다린다. 추격자들이 다가왔다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훨씬 더 느린 걸음이다. 얇은 벽 뒤에서 추격자들이 세 개미를 찾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병정개미들은 세 마리가 벽 속에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고 마냥 벽 속에 있을 수는 없다. 병정개미들이 셋의 냄새 중에서 어떤 냄새인가를 감지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땅을 판다. 더 커다란 위턱을 가진 병정개미가 앞에서 곡괭 이질을 하고, 두 생식 개미는 그 흙을 퍼다가 그들의 뒤를 메운다. 암살자들이 그들의 작전을 눈치챘다. 그 자들은 벽을 조사해 보고 나서 세 개미가 지나 간 흔적을 찾아내고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세 개미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검 은 안개 속을 가고 있는 듯한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길잡이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는 1초마다 세 개의 통로가 생기고 두 개의 통로가 막히는 판이다 형편이 이 러하니 믿을 수 있는 도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고정되어 있는 기준점은 둥근 지붕과 그루터기 뿐이다. 세 개미는 과실의 살덩이를 파고들어가듯 천천히 도시 속을 파고 든다. 이따금 기다란 덩굴 식물이 길을 막아선다. 그것은 실은 비가 올때 도시가 무너지지 말라고 농경 개미들 이 심어놓은 송악의 뿌리이다. 어딘가를 가다 보면 땅이 딱딱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들의 위턱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빙 돌아서 다른 곳을 파고 들어 가야 한다. 두 생식 개미는, 추격자들이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 았다. 세 개미는 거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 곳은 벨로캉 한가운데, 개미들의 발길이 미 치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텅 빈 동굴이다. 비도 스며들지 않고, 공기도 희박한 곳 으로서, 아무도 여기에 이런 동굴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무인도 같은 곳이다. 이 작은 동굴까지 그들을 찾으러 올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어머니 뱃속의 난소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56호가, 마주 대하고 있는 327호의 머리를 제 더듬이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영양 교환 을 부탁하는 것이다. 327호는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더듬이를 낮추고 제 입을 암개미의 입에 갖다 댄다. 327호는 진딧물 분비꿀을 조금 되올린다. 그 분비꿀은 전에 경비 개미가 그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56호가 다시 원기를 찾는다. 이번에는 103683호가 56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그들은 서로 입술을 갖다 댄다. 56호는 방금 전에 제 먹이 주머니 에 넣어두었던 영양물을 되올려 103683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고 나서 세 개미는 서로를 어루만져주고 비벼준다. 아! 개미에게 있어서, 동료에게 뭔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 나 유쾌한 일인가! 원기를 되찾기는 했지만, 무한정 거기에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산소가 다 떨어져 간다. 개미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도, 공기도, 온기도 없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고 는 하지만, 그런 생명의 요소가 없으면 결국 잠이 들게 되고, 그 잠은 죽음을 불러오게 된다. 세 개미가 더듬이를 맞대고 상의를 한다.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계획에 찬동하는 3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지하 50층의 어떤 방에서 우리를 기다 리고 있다.' '그리고 가자.' 그들은 다시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방향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지구 자 장에 민감한 존스톤 씨 기관 덕분이다. 그들은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이제 자기들이 지하 18층 곡물 창고에서 지하20층 버섯 재배장 사이에 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추워지고 있다. 밤이 되면서 냉기가 땅 속 깊이 스며들 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몸놀림이 느려지더니 마침내 땅을 파던 자세 그대로 멎은 채 잠 이 들어버린다. 다시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조나탕, 조나탕, 나예요 뤼시예요!" 그 암흑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면서, 뤼시는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다가 나선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면서는 다른 심리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내부로 점점 깊이 침 잠해 들어가는 기분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가, 그 다음에는 뱃구레의 태양 신경절이 고통스럽게 조여드는 듯했고, 이어서 명치가 콕콕 쑤 셔왔다. 그러더니 이제는 배 전체로 통증이 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릎과 발이 기계가 움직이듯 무의식적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얼마 못 가 서 탈이 날 것만 같다. 거기에서도 통증이 느껴지는 듯하다. 곧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독선적이었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녀를 늘 죄인으로 만들었고, 귀염둥이 아들들 편에 서서 불공정한 처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졸장부였던 아버지, 아내 앞에서 벌벌 떨었고,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입 한번 뻥긋 못하고 피하려고만 들었으며, 여왕 같은 어머니 말이라면 무조건 예예 하던 아버지, 겁쟁이 였던 아버지.... 자신이 조나탕을 온당치 못하게 대했던 것도, 어린 시절의 그 고통스런 기억이 지어내 는 감정 때문이었다. 사실 뤼시는 친정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 면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자나깨나 잔소리를 퍼부어대니까 남편이 기가 죽고 오갈이 들어 친정 아버지를 닮아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었다. 뤼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것, 즉 친정 부모들 같은 부부 관계를 다시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선 안 되었는데, 뤼시는 남편에게 퍼부어 댔던 질책이 후회스러 웠다.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뤼시는 나선 계단을 돌고 돌아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이 남편에게 정말 잘못했다 는 것을 깨닫고 나니, 몸을 짓누르던 두려움과 고통이 가시었다. 계속 돌며 내려가다가 뤼 시는 하마터면 어떤 문에 부딪힐 뻔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인데, 한쪽에 무슨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잡이가 하나 달려 있었다. 문은 삐걱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문 너머 저쪽으로도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와 눈에 띄게 른 점이 하나 있다 면, 바위 복판에 철광석의 앎은 광맥이 나타나 다는 것이었다. 땅 속 물줄기에서 스며들 어온 물과 섞여서, 철광석은 붉은색이 섞인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달라진 게 그것밖에 없었는데도, 뤼시는 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뤼시의 손전등이, 발치에 있는 얼룩을 비추었다. 우아르자자트의 피 얼룩이 남아 있는 것이려니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겁 모르던 작은 푸들 종 개가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여기저기에 피가 튀어 묻은 것 같은 얼룩이 있었다. 그러나 벽에 있는 얼룩들은 핏자국인지 녹슨 철광석의 얼룩인지 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문득 무슨 소리가 들렸다. 따닥거리는 소리였다. 무엇인가가 뤼시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것들은 마치 겁을 먹고 감히 다가올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듯했다. 뤼시는 발걸음을 멈 추고 손전등 빛으로 어둠 속을 뒤져보았다. 맨처음 소리가 났던 곳을 비춰보고 나서, 뤼 시는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뤼시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녀 의 울부짖음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아침이 찾아온다. 세 개미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지 하 36층. 103683호의 발씨가 익은 곳이다. 103683호는 이제 통로로 나가도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 미들이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올 리는 없었다. 그들은 개미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나지막한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의 왼쪽 또는 오 른쪽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열 번의 겨울나기 이전부터 버려진 곡물 창고들이다. 땅바닥이 끈적거린다. 물기가 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지대는 비위생적인 곳으로 여겨졌던 것이고, 벨로캉 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구역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취가 풍긴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뭔가 적의를 가진자들이 숨어 있음을 느끼고 더듬이로 그것들을 탐색한다. 이곳에는 기생 곤충과 불법 거주자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다. 그들은 위턱을 활짝 벌리고 음산한 방들과 터널 속을 나아간다. 갑자기 새되게 긁는 소리가 들려 그들을 소스라치게 한다. 씨르, 씨르, 씨르.... 음조가 단순하다. 그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면을 거는 듯한 그 단조로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핀다. 진흙 동 굴 속에서 울리고 있다. 병정개미의 얘기에 따르면 귀뚜라미가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 소리가 그들의 사랑 노래 라는 것이다. 두 생식 개미는 조금 안도가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 았다. 어쨌든 귀뚜라미들이 도시 안에까지 들어와서 연방의 군대를 조롱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103683호 자신에게는 그 일이 놀라울 게 없다. 선대의 여왕께서 이런 격언을 남기시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강점을 공고히 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이런 일은 바로 그 가르침의 산물일 뿐이다.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아주 빠르게 땅을 파들어오고 있는 듯하다. 바위 냄새 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찾아낸 것일까? 아니다. 앞다리 두 개가 그들 앞으로 불 쑥 튀어나온다. 발톱에 날이 서 있어서 쇠스랑처럼 보인다. 그 앞다리로 흙을 움켜쥐었다 가 뒤로 밀어내면서 시커멓고 커다란 몸뚱이를 추진시키는 것이다. 땅강아지가 아니면 좋으련만! 세 개미는 모두 위턱을 벌린 채, 꼼짝 않고 있다. 땅강아지다. 흙의 소용돌이가 인다. 검은 털과 하얀 발톱이 달린 공 같다. 그 동물은 흙의 침전층 사이를 헤엄치듯 나아간다. 마치 개구리가 호수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세 개미는 흙에 두드려맞고 이리저리 내 둘리고, 진흙 덩어리에 들러붙기도 한 다. 그러나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고비를 넘겼다. 땅 파는 기계 같은 땅강아지가 지나 갔다. 땅강아지는 벌레들만 찾고 있었다. 벌레들의 신경절을 깨물어서 마비시킨 다음에, 그것들 을 제 땅굴에 산 채로 저장해 두는 것이 땅강아지의 커다란 낙이다. 세 개미는 몸에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찬찬하게 몸 단장을 한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들은 이제 아주 좁으면서도 높은 통로에 들어섰다. 길잡이를 맡은 병정개미가 천장을 가리키면서 주의하라는 냄새를 발산했다. 천장에는 아닌게아니라, 검은 얼룩이 있는 빨간 빈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긋지긋한 골칫덩이! 길이가 3머리(9밀리미터)인 이 곤충의 등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이 그려져 있는 것처 럼 보인다. 이 곤충은 대개 죽은 곤충의 축축한 살을 먹고 살지만 때로는 팔팔하게 살아 있는 곤충을 먹기도 한다. 빈대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세 개미 위로 떨어진다. 그놈이 땅에 닿기 전에 103683호가 가슴 아래로 배를 디밀어 개미산을 쏘았다. 개미산을 맞은 빈대는 땅에 떨어 지자 뜨거운 잼으로 변해버렸다. 그들은 잼처럼 변해 버린 빈대를 서둘러 먹고는, 또 다 른 놈이 공격해 오기전에 얼른 그 방을 떠났다. 개미의 지능 나는 이른바 '1월-58'이라는 실험에 착수했다. 첫번째 주제는 지능이었다. 개미에게 지능 이 있는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중간 크기의 비생식 충인 불개미(불개미속 루파 개미) 한마리를 다음과 같은 문제 상황에 놓았다. 구멍이 하나있고, 그 구멍 바닥에 단단하게 만든 꿀을 한 덩어리 놓았다. 그런 다음 작가지 하나를 구멍 위에 놓아 개미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 다. 그 작가지는 가볍지만 아주 긴 것이었고, 단단하게 박아놓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개미는 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 갈수 있겠지만, 이 구멍의 테두리는 딱딱한 플래스틱으로 만 들어져 있어서 뚫을 수가 없다. 제1일: 개미가 잔가지를 이따금씩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잔가지가 조금 들썩이자 그것을 다시 놓았다가 들어올린다. 제2일: 개미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잘라보려고도 해보지만 성 과는 없다. 제3일: 위와 같음. 이 곤충은 그릇된 추리 방식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다른 식 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곤충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그게 지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제4일: 위와 같음. 제5일: 위와 같음. 제6일: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뭇가지가 구멍에서 치워져 있었다. 밤 사이에 그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 통로는 반쯤 막혀 있었다. 흘러내리던 차갑고 메마른 흙이 하얀 뿌리에 매달려 포도송이를 이루었다. 이따금 흙덩이가 굴러 떨어진다. 흔히들 그것을 '안에서 내리는 우 박'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흙덩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것이 라고는, 한층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재빨리 흙더미 쪽으로 건너뛴다는 것뿐이 다. 세 개미가 전진하고 있다. 배를 땅에다 붙이고 더듬이를 뒤로 바짝 젖힌 채 다리를 성 큼성큼 벌리고 있다. 103683호는 자기가 이들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땅이 다시 축축해진다. 메스거운 냄새가 주위를 맴돈다. 산 것의 냄새, 어 떤 벌레의 냄새다. 수개미 327호가 멈춰선다.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327호가 보기에 누군가가 몰래 벽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가 미심쩍은 곳으로 다가갔다. 벽이 다시 덜덜 떨린다. 거기 에서 입처럼 생긴 것이 하나 나타났다. 그가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땅강아지가 아니다. 그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 입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하더니 그 한가운데서 혹 같 은 것이 툭 튀어나와 수개미에게 덤벼든다. 수개미가 비명을 지르듯 냄새를 뿜는다. 지렁이다! 수개미가 위턱으로 쳐서 지렁이를 잘라버린다. 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는 벽 들이 그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곧 지렁이들이 잔뜩 몰려든 다. 꼭 회충이 많은 새의 창자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암개미의 가슴을 휘감으려들자, 암개미는 위턱으로 잽싸게 쳐서 지 렁이를 몇 토막으로 잘라버렸다. 그 토막들이 암개미 양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다른 지 렁이들이 떼를 지어 그들의 다리와 머리를 휘감았다. 더듬이에 지렁이가 닿는 게 특히 견디기 힘들다. 세 개미는 일제히 사격 준비를 하고 공격력이 약한 그 지렁이들에게 개 미산을 쏘았다. 마침내 땅바닥에 황토색 살덩이가 질펀하게 깔렸다. 그 살덩이들은 세 개 미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팔딱거렸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자 103683호가 그들이 지나가야 할 통로들을 가리킨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수록 고약한 냄새가 조금씩 진하게 나고, 그럴수록 그들은 그 냄새에 익숙 해진다. 무엇이든 되풀이 되면 익숙해지는 법 아닌가. 병정개미가 벽 하나를 가리키며 이 곳을 파야한다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이곳은 옛날에 퇴비 처리장으로 쓰던 곳이다. 모임 장소는 바로 옆이다. 조용하니까 여 기서 모임을 갖는게 좋을 게다.' 그들은 벽을 파고 넘어간다. 건너편에 커다란 방이 하나 나타나는데, 배설물 냄새가 진 동한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의 대의에 동참한 30마리의 병정개미들이 거기에서 그들을 기 다리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병정개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초보적인 조각맞추 기놀이라도 해야할 만큼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병정개미들이 모두 토막이나 있었던 것 이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두려움에 떨면서, 세 개미가 그 죽음의 방을 조사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여기, 벨로캉의 맨 밑바닥에서 이들을 죽였을까? '틀림없이 위에서 내려온 어떤 자의 소행일 게다.' 327호가 페로몬을 발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든다.' 56호 암개미가 반박하고, 땅바닥을 파보자고 제안한다. 수개미가 위턱을 바닥에 박는다. 아프다. 밑에는 바위가 있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103683호가 설명을 한다. '거대한 화강암이다. 그게 도시의 맨 밑이고 단단한 바닥이다. 두껍다. 아주 두껍다. 그리 고 널찍하다. 아주 너른 바위다. 아무도 이 바위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바위가 세계의 끝일지도 모른다. 그때,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무엇인가 가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잇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겨레 개미 는 아니고, 딱정벌레의 한 종류인 로메슈제이다. 아주 어린 애벌레 시절에, 56호는 어머니에게서 이 곤충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메슈제의 감로에 한번 맛들이면, 그것을 마실 때의 기분을 따라갈 게 이 세상에 아 무것도 없을 게다. 그건 온갖 육체적 욕망이 빚어낸 음료다. 그 로메슈제의 분비물을 마시 게 되면 아무리 강인한 의지라도 맥을 못 추게 되느리라.' 실제로 그 물질을 마시게 되면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력이 작용을 멈추게 된다. 로메슈제를 도시 안에 들여와 그 독물을 마시던 개미가, 그것을 공급해 주던 로메슈제가 죽은 뒤에도 어쩌다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개미는 새로운 약을 찾아서 어 쩔 수 없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 개미는 더 이상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탈진할 때까지 걷는다. 그러다가 로메슈제를 찾아내 지 못하면, 풀잎에 달라붙어 죽음을 맞는다. 금단의 고통을 이겨내 려고 수없이 물어뜯은 상처를 온몸에 남긴 채로. 어린 56호가 어느 날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흰개미와 꿀벌 들은 로메슈제를 가차없이 죽여버리는데, 우리는 왜 그 재앙의 씨앗 이 도시에 반입되는 것을 용인하느냐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떤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이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이 반드시 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로메슈제의 분비물은, 복용량 을 알맞게 조절하거나 다른 물질하고 배합하면, 훌륭한 약이 될 수도 있다. 수개미 327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로매슈제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홀려서, 수개미가 로메슈제의 배에 난 털을 핥는다. 거기에서 환각 작용을 하는 끈끈한 액체가 묻어나온다. 너무도 놀라 운 사실은, 그 독물 공급자의 배에 두 개의 기다란 털이 달려 있어 서,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진 개미 머리와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도 달려든다. 그러나 미처 그 맛을 즐길 겨를이 없었 다. 개미산 한 방이 날아든 것이다. 103683호가 배를 들어 사격을 했다. 화상을 입은 로메슈제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을 비튼다. 병정개미가 간결하게 자신이 방해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이런 곤충을 만나게 되는 것은 범상한 일 이 아니다. 로메슈제는 땅을 팔 줄 모른다. 누군가가 우리 일을 방 해 하려고 일부러 이놈을 데려온 것이다. 여기를 뒤져보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두 개미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기들 동지의 명철함에 그저 감복할 따름이었다. 세 개미가 오랫동안 수색을 벌인 다. 자갈들을 치우고, 방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아본다. 이렇다. 할 실마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마침내 이미 알고 있는 냄새를 감지해 냈다. 암살자들의 엷은 바위 냄새다. 느낄 듯 말 듯한 겨우 두세 개 의 냄새 분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냄새는 저쪽에서 오 고 있다. 바로 저 자그마한 바위 밑이다. 그들이 그것을 밀어내자 비밀 통로 하나가 나타난다. 역시 비밀 통로가 있었다. 다만, 그 통로는 아주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흙이나 나무를 파서 만든 통로가 아니라 놀랍게도 화강암을 뚫어 각이 지게 만든 통로였다. 아무리 강한 위턱을 가졌다 해도 이런 재료에 구멍을 낼 수는 없다. 통로는 꽤 넓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그들은 양식이 가득 찬 커다란 방에 내려섰다. 곡물 가루, 꿀, 알곡, 갖가지 고기....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만한 양이면 온 도시가 다섯 차례의 겨울을 날 수 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에서, 바 위 냄새가 난다. 그들을 쫓고 있는 병정개미들이 풍기는 냄새와 똑같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듯 많은 양식을 갈무리해 둔 창고가 이런 곳에 은밀하 게 꾸며질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인가! 이 창고에 접근하는 것 을 막으려고 로메슈제를 이용하다니! 이런 사실을 다른 동료들은 까 맣게 모르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양식으로 실컷 배를 채우고 나서, 현재 자신 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알기 위하여 더듬이를 결합한다. 일이 갈수록 오리 무중이다. 첫 원정대를 몰살한 비밀 무기, 특별한 냄새 를 풍기는 가는 곳마다 그들을 공격하는 병정개미들, 로메슈제, 도 시의 바닥밑에 감추어진 양식 창고, 난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 첩자들이 있을거라는 가정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자 들은 대단히 잘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327호와 동료들은 한가롭게 마냥 생각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었 다. 희미한 진동이 그곳까지 깊숙하게 전해져오고 있다. 둥둥 둥둥, 둥둥 둥둥. 위에서 일개미들이 배 끝으로 땅을 두드리고 있다. 비상 사태다. 2단계 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원 요청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 개미의 다리가 반사적으로 반회 전을 한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들의 몸은 벌써 겨레의 다른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에 들어서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뒤쫓고 있던 절름발이 개미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휴! 다행히 저 자들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군....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하실에서 돌아오지 않자, 견디다 못한 니콜 라는 경찰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 뒤, 많이 운 탓에 눈은 발갛고, 무척 굶주려 보이는 아이 하 나가 경찰서에 들어와 '아빠, 엄마가 지하실로 사라졌어요'하면서 아마도 쥐나 개미에게 죽음을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깜짝 놀란 경찰관 두명이 아이의 뒤를 따라 시바리트 3번지의 지하층까지 왔다. 개미의 지능(계속) 실험에 다시 착수했다. 이번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피실험자: 먼젓번과 똑같은 개미집에서 꺼내온 동종의 다른 개미. 제1일: 개미가 나뭇가지를 밀고 당기고 물어뜯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는 없다. 제2일: 위와 같음. 제3일: 됐다! 개미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나뭇가지를 조 금 당기고, 그 틈새로 제 배를 집어넣은 다음 배를 부풀려서 나뭇가 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잡 고있는 다리를 내려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조금씩 간헐적 인 동작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잔가지를 밀어낸다. 그러면 그렇지....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경보는 비상 사태 때문에 발동된 것이었다. 서쪽 맨 끝에 자리잡 고 있는 분가도시 라숄라캉이 난쟁이개미 군대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반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전쟁은 불가피하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시게푸 개미들의 봉쇄를 뚫고 도망쳐 와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태의 자초 지종은 이러했다. 기온이 17도인 시작에, 기다란 아카시아 가지 하나가 라숄라캉의 주입구로 다가왔다. 기이하게도 움직이는 나무가지였다. 그 가지가 단번에 짓쳐들어와 빙빙 돌면서 입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파수 개미들이 사정없이 후벼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를 공격하려고 나갔지만, 모두 죽음을 당했다. 그 다음에는 모두들 그 나뭇가지의 광란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는 장미 봉오리 하나를 날려버리듯 둥근 지붕을 날려버리 고, 통로를 휘저어댔다. 병정개미들이 닥치는 대로 사격을 해보았지 만, 개미산으로는 그 식물성 파괴자를 조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여 라숄라캉의 개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기진 맥진 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뭇가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기온이 2도 일 때의 시간 길이만큼 쉴 틈을 주더니, 이번에는 난쟁이개미 군대가 돌격해 왔다. 이미 지붕이 날아가 구멍이 뚫려버린 분가 도시는 그 첫번째 공격 에 힘겹게 저항했다. 사망자가 수만을 헤아렸다. 견디다 못한 생존 자들이 자기들의 소나무 그루터기 속으로 도망을 쳐서 가까스로 버 티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양식도 없으려니와 난쟁이개미들이 벌서 금단 구역의 나무 속 통로에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라숄라캉은 연방의 일원이므로, 벨로캉과 인근의 모든 분가 도시 들은 마땅히 원군을 보내야 한다. 사태의 전말에 대한 이야기의 초 입 부분을 더듬이들이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전투 준비가 포고되어 있었다. 이 마당에 누가 쉴 생각을 하고 도시 보수 공사를 운운하 랴! 봄철의 첫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수개미 327호와 암개미 56호와 병정개미 103683호가 최대한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어디에서나 그들의 주위에는 개미들이 북적거린다. 유모 개미들은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를 지하 43층으로 옮기고 있 다. 진딧물 감로를 짜는 개미들은 그 풀빛 가축들을 도시의 맨 밑바 닥에 숨기고 있다. 농경 개미들은 전투 식량으로 쓸 양식을 잘게 다 져서 비축하고 있다. 병정개미 계급의 방들에서는 포수 개미들이 배 에다 개미산을 가득 채우고 있고, 절단 개미들은 위턱을 갈고 있다. 용병 개미들은 밀집 대형으로 모여 있다. 생식 개미들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힌 다. 당장 공격할 수는 없다. 지금은 춥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리라. 두 경관 중에서 더 뚱뚱한 사람이 자기 팔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면서 물었다. "그런데 얘야,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네 부모님이 저 안에 계시단 말이지?" 아이는 지친 기색을 보이며 대답을 하지 않고 경관의 팔에서 빠져 나왔다. 갈랭 형사는 계단 아래로 몸을 기울여보더니, 우스꽝스럽기 도하고 우렁차기도 한 소리로 '이리 와봐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 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정말 아주 깊어 보이는데요. 이대로는 못 내려가겠어요. 도구들 을 좀 가져와야겠어요." 빌솅 경정은 불안한 낯빛을 보이며 손가락 끝을 입술에 댔다. "하긴 그래." "소방대원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갈랭 형사가 말했다. "그러게, 그동안 나는 이 꼬마에게 뭘 좀 물어봐야겠어." 경정이 녹아버린 자물쇠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는 네 엄마가 그런거냐?" "예." "그렇다면 네 엄마 솜씨가 대단하구나, 응? 용접 토치를 가지고 이렇게 철통같은 문을 딸 줄 아는 여자는 드물거야.... 그리고 하수 구를 뚫고 들어갈 줄 아는 여자는 네 엄마밖에 없을거다." 니콜라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간거예요." "그렇구나,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저 아래로 내려가신 지는 얼마나 됐니?" "이틀 됐어요." 빌솅이 코를 긁으며 난처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왜 내려가셨는지 너는 아니?" "처음엔 개를 찾으러 내려가셨구요, 그 다음엔 잘 모르겠어요. 금 속판을 사들이시더니 그걸 아래로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개미에 관 한 책들도 잔뜩 사셨어요." "개미라구? 하기야 그럴 수도 있지." 빌솅 경정은 상당히 어리둥절해 있으면서도, '하기야'라는 말을 몇 번 더 중얼거리면서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사건의 해결이 쉬 울 것 같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가 '특별한' 사 건들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태껏 늘상 쓰레기 같 은 일들만 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다들 미친 소리라고 외면하는, 얼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관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아도 그런 것들을 귀기울여 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럴 때면 그는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고개 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하긴 그래'라 는 말만 되뇌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심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끌려고 복잡한 말과 칭찬의 말을 늘어놓느라고 정 신이 없는데, 빌솅은 '하긴 그래'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이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어린 빌솅은 실제로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그의 학교에서 가 장 말을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는 학년말의 학생 대표 연설을 하라는 요청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빌솅은 정신과 의사가 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제복이 주는 매력 에 이끌렸다. 의사의 하얀 근무복도 제복은 제복이겠지만 그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이 들끊는 세상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경찰과 군대가 '절도있게 사는 사람들'의 기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횡설수 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는 그런 사 람들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빌 솅의 신경을 가장 심하게 거스르는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 로 떠드는 자들이다. 조금 전에 겪은 일들을,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손짓 발짓해가며 떠벌여대는 족속들 말이다. 빌솅이 경찰에 투신했을 때, 그의 천성은 곧 상관의 눈에 띄었다. 상관들은 온갖 '터무니없는 사건들'을 모두 그에게 떠맡겼다. 전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자 기가 맡은 사건에 몰두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대단한 일이었다. "아참, 성냥개비가 있었어요!" "성냥개비가 어쨌다는거냐?" "이 사건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야 돼요." "답이 뭔데?" "'새로운 사고 방식'이에요. 아빠는 그것을 '새로운 논리'라고 하셨어요." "하긴 그래." 그 말에 아이가 불거진 소리를 했다. "'하긴 그래'라는 말만 하면 어떡해요! 삼각형 네 개를 만들 수 있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찾아야 돼요. 개미, 에드몽 할아버지 성냥 개비,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는거예요." "에드몽 할아버지? 에드몽 할아버지가 누구냐?" 니콜라가 생기를 되찾았다. "그분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지은 분이에 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아마 쥐들 때문일거예요. 우아르자자트를 죽인 것도 쥐들이고요." 빌솅 경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저 녀 석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지? 잘돼봐야 알콜 중독자겠다. 드디어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빌솅은 대견스럽 다는 듯 갈랭 형사를 바라보았다. 갈랭은 타고난 형사였다. 짓궂은 구석도 많은 녀석이었다.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곧잘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가 기이하면 기이할수록 그는 더 깊이 빠져들곤 했다. 이해심 많은 빌솅과 정열적인 갈랭은 둘이서 '아무도 맡고 싶어하 지 않는, 넋 나간 자들의 사건' 전담반을 비공식적으로 구성한 바 있다. 이미 그들이 파견되었던 사건은 많이 있었다. '자기 고양이들 에게 물려 죽은 노파' 사건을 위시하여, '혀로 손님들을 질식시켜 버린 매춘부' 사건이 있고, '햄, 소시지 제조업자들의 수를 줄이려 던 사람'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 소장님은 여기에 계십시오. 저희가 들어가서 이 튜브 식 들것으로 그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새 생명을 낳는 순결한 방에서, 어머니가 알 낳는 일을 중단했다. 어머니가 한쪽 더듬이만을 들어올린다.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다. 시종 개미들이 사라진다. 벨로캉의 살아 움직이는 모태라 할 만한 벨로키우키우니의 심사가 편하질 않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불안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겪은 전쟁이 50차 례는 족히 된다. 여왕을 불안케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비밀 무기 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빙빙 돌면서 둥근 지붕을 날려버린다는 그 아카시아 가지 말이다. 수개미 327호의 증언도 마음에 걸린다. 스물여덟 마리의 병정개미가 전투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몰살을 당 했다고 한다. 이 특별한 사건들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래선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벨로키우키우니는 옛날 '이해할 수 없는 비밀 무기'에 맞서야 했 던 때를 회상한다. 남쪽 흰개미들과 전쟁을 벌이던 때의 일이다. 어 느 날 개미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12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죽은 것도 아닌데 '꼼짝 않고 있다'고 했다. 두렵기 이를 데 없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더 이상 흰개미들을 정 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벨로캉에서 첩보원을 파견했다. 아닌게아니라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쏘아대는 포수 개미 계급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고 있던 참이었 다. 즉 큰코흰개미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으로써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200머리(600밀리미터)까지 쏘아보내, 병정개미들의 다리와 털을 마비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벨로캉 연방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대응책을 찾아냈다. 즉, 낙 엽으로 끈끈물을 방어하면서 전진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 것을 바탕으로 저 유명한 '낙엽' 전투를 벌였고, 그 전투는 벨로캉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의 적수는 멍청한 흰개미들이 아니라, 민첩성으로 보 나 지능으로 보나 흰개미들을 몇 배 능가하는 난쟁이개미들이다. 게 다가 그들의 비밀 무기는 대단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신경질적으로 더듬이를 만지작거린다. 난쟁이 개 미들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도 많다. 난쟁이개미들은 100년 전에 이 지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척후 개미 몇 마리뿐이었다. 그들의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다들 대수롭 지 않게 여겼다. 척후 개미들의 뒤를 이어 난쟁이개미들이, 다리 끝 에 알과 식량을 싣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커다란 소나무 뿌리 밑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 그들의 반수가 굶주린 고슴도치에게 떼 죽음을 당해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북쪽으로 멀리 떠나, 까망 개 미들의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터를 잡았다. 연방에서는 '난쟁이개미들과 까망개미들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이 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허약한 것들이 덩치 큰 까망개미들의 먹이가 되게 방치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개미들조차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매일 잔가지와 작 은 딱정벌레들을 나르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초의 예상과 는 달리 사라지는 쪽은 놀랍게도.... 덩치 큰 까망개미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벨로 캉 척후 개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후로 까망개미들의 둥지 전체 를 난쟁이개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그 사 건을 그저 팔자 소관으로 치부하고 심지어는 재미있어 하기까지 했 다. '까망개미놈들 건방지게 굴더니 고거 참 고소하다.'라는 뜻의 냄새마저 통로에 퍼져나왔다. 그 보잘것없는 작은 개미가 연방의 골 칫거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까망개미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들장미 꿀을 먹고 사는 꿀 벌들의 둥지가 난쟁이개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 다음에는 북쪽의 마지막 남은 흰개미 도시와 독을 지닌 빨강개미들의 둥지가 난쟁이 개미들의 깃발 아래로 들어갔다. 피난자들이 벨로캉으로 모여들어 용병대의 규모가 커졌다. 그들이 와서 전하는 얘기로는, 난쟁이개미들이 첨단의 병법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난쟁이개미들은 희귀한 꽃에서 추출한 독 을 물에 풀어서 수원을 오염시키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벨로캉 개미들은 여전히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에 니지우니캉이라는 도시가 기온 2도 대의 시간 만큼 버티다가 무너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무시무시한 적 들을 가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과소 평가했던 것은 사실이지 만, 난쟁이개미들도 불개미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는 마찬가지였다. 니지우니캉은 아주 작은 도시였지만, 그 뒤에 벨 로캉 연방 전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난 쟁이개미들이 승리를 쟁취한 다음날, 각각 1,200마리의 병정개미들 로 이루어진 240개의 부대가 몰려와서 팡파르를 울리며 난쟁이개미 들의 단잠을 깨웠다. 전투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난쟁 이개미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런 탓에, 연합군이 도시를 탈환 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해방된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난쟁이개미들은 니지우니캉 안 에 한 마리의 병정개미가 아닌 200마리의 여왕개미를 들여앉혀 놓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었다. 공격군대 개미는 공격용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회성 곤충이다. 흰개미와 꿀벌들도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적 진화가 덜 되어 왕정주의에 머물고 있는 그 종들은, 그저 도시를 방위하거 나 둥지에서 멀리 나간 일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병력을 사용한 다. 흰개미 도시와 꿀벌 도시에서 영토 정복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 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포로가 된 난쟁이 여왕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의 역사와 관습에 대 해서 이야기했다. 기상 천외한 이야기였다. 난쟁이 여왕개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쟁이개미들은 수십억 머 리나 떨어져 있는 다른 고장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고장은 연방이 깃들여 있는 숲과는 아주 달랐다. 때깔 좋고 맛 좋은 살진 과일들이 열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겨울이 없어서 겨울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그런 꿈 같은 풍요의 땅 위에, 난쟁이 개미들이 '고대' 시게푸를 건설했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어떤 왕조에서 갈라져나온 도시였다. 그 도시는 협죽도나무 밑동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협죽도나무가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과 함께 뿌리째 뽑혀 나무 상자 안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나무 상 자는 다시 아주 단단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구조물 안으로 옮겨졌다. 그 구조물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보니 물이 펼쳐져 있었다. 끝간데를 알 수 없이 너르고 소금기가 있는 물이었다. 많은 난쟁이개미들이 제 선조들의 땅을 찾아 돌아가려다가 물에 빠졌다. 그러자 대다수의 난쟁이개미들은 체념을 하고, 짠 물로 둘 러싸여 있는 그 단단하고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삶을 도모하기로 결 정했다. 그렇게 갇힌 상태가 몇날 며칠 계속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존스톤씨 기관을 통해 자기들이 먼 곳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는 지구 자기 장벽을 백 개쯤 통과했다. 그 구조물이 우리를 데려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협죽도나무와 함께 여기에 부려 졌다. 그럼으로써 우리느 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국적인 식물 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보니 실망스럽기 한량없었다. 과일이며 꽃 이며 곤충들이 더 작고 때갈도 보잘것이 없었다. 빨강, 노랑, 파랑 이 주조를 이루던 고장을 떠나와 맞닥뜨린 이 고장은 초록과 검정과 밤색이 지천이었다. 산뜻한 원색의 세계에서 파스텔 색조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겨울과 추 위가 있었다. 고향 땅에서는 추위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 고, 그들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은 오로지 더위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우선 추위에 대항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 련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 두 가지를 얘기하자면, 하나는 당 분을 섭취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달팽이가 분비하는 끈끈물을 몸 에 바르는 것이었다. 당분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딸기, 오디, 버찌의 과당을 모았다. 또 지방분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일대의 달팽이들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한편, 난쟁이개미들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매사에 실용성을 중시 했다. 그들에게는 날개 달린 생식 개미가 없었고 결혼 비행도 없었 다. 그들의 암개미는 땅 속에 있는 자기들 집에서 교미를 하고 알을 낳았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도시는 알 낳는 개미를 한 마리가 아니 라 수백 마리씩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져다 주는 이점은 대 단한 것이었다. 훨씬 더 커다란 강점이었다. 불개미 도시 하나를 괴 멸시키려면 여왕개미를 죽이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난쟁이개미의 도 시는 단 한마리의 생식 개미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알을 낳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에서도 불 개미들과 달랐다. 불개미들은 결혼 비행을 통해 되도록 먼 곳에 착 륙한 다음, 냄새의 자취로 연방 내의 분가 도시와 다시 연결되는 데 반해서, 난쟁이개미들은 중심 도시로부터 조금씩조금씩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들의 작은 체구마저도 장점이 되었다. 아주 적은 칼로리만 있어 도 그들은 정신이 활발해지고 행동이 민첩해질 수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졌을 때 난쟁이개미들이 대응하고 있는 걸 보고, 불개미들은 그 들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불개미들 은 아직 침수된 통로에서 진딧물 떼와 갓 낳은 알들을 빼내느라고 여념이 없는데, 난쟁이개미들은 벌써 몇 시간 전에 커다란 소나무 껍질의 울퉁불퉁한 곳에 둥지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자기들 의 모든 보물들을 옮겨놓은 뒤였다. 벨로키우키우니는 불길한 생각을 쫓으려는 듯 몸을 움직이더니, 알 두 개를 낳는다. 병정개미들의 알이다. 그 알들을 거두어 갈 유 모 개미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여왕은 그것들을 아귀아귀 먹어 버린다. 그것은 아주 좋은 단백질인 것이다. 여왕이 벌레잡이 식물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근심은 이미 털어버 렸다.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하는 길은 단 하나, 성능이 더 우수하고 더 무시무시한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는 것밖에 없을 듯 하다. 불개미들은 이미 개미산과 낙엽 방패와 끈끈이 함정을 잇달아 개발해 낸 바 있다. 다른 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서 그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리라. 여왕은 자기 방에서 나온다. 병정개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서 여왕은,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할 비밀 무기 찾아내 기'라는 주레를 다룰 집단을 만들어 연구해 보자고 제안한다. 온 겨 레가 여왕의 자극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르는 곳마다 병정개 미들뿐 아니라 일개미들까지도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작은 집단을 형 성한다. 그런 다음 더듬이들을 삼각형이나 오각형으로 연결하고 완 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러한 완전 소통이 수백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조심, 조심! 밀지 말게. 정지할거야." 갈랭 형사는, 소방대원 여덟 명에게 등을 떠밀리고 싶지가 않아서, 그렇게 말했 다. "안이 너무 깜깜한데! 더 성능 좋은 전등을 주게." 그가 몸을 돌리자 누군가가 커다란 손전등을 내밀었다. 소방대원 들은 안심찮은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죽으로 만든 웃옷도 입었고 헬멧도 쓰고 있었다. 갈랭 형사만이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 더 적합한 복장을 착용했어야 했는데, 그 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들은 조심조심 내려갔다. 길잡이 구실을 하는 갈랭 형사는 한걸 음 한걸음을 떼어놓기 전에 구석구석을 열심히 비추어 보았다. 나아 가는 속도는 아주 더뎠지만, 그래도 그게 더 안전했다. 손전등 불빛이 눈 높이의 나지막한 둥근 천장에 새겨진 글귀를 찾 아내 붓질을 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 자신을 돌아보라. 끊임없이 그대를 정화하지 않으면, 화학적 인 혼인은 그대에게 해악을 끼치리. 거기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자에 게 재앙 있으라. 너무 자발없는 자, 몸가짐을 삼갈진저. 아르스 마그나 "저기 봤어요?" 소방대원 한 사람이 물었다. "오래된 새김글이군. 별거 아닐세."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의 마음을 누그려뜨렸다. "마법사들의 어떤 비결을 새겨놓은 듯한데요." "어쨌든 너무 깊어보이는군." "저 글귀의 뜻이 말인가요." "아니, 계단 말일세. 저 아래로 수 킬로미터는 이어져 있을 것 같구만." 그들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표고에서 150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와 있는 듯했다. 계단은 여전히 나선 모양으로 돌게 되 어 있었다. 세포 핵 속에 들어 있는 디옥시 리보 핵산의 나선 구조 를 닮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현기증을 느끼다시피 했다. 그들은 깊 이, 점점 더 깊이 내려갔다. "이렇게 무한정 계속 내려갈 거예요? 우리가 뭐 동굴 탐사하는 사람들인 줄 아시 오?" 소방대원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그 말을 받아 튜브 식 들것을 메 고 있던 다른 소방대원이 말했다. "난 그저 지하실에서 사람 하나 꺼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거야 원. 집사람이 8시부터 저녁 차려놓고 나를 기다렸을텐데, 벌써 10시 아닌가! 우리 마누라 잔소리깨나 하게 생겼군." 갈랭 형사가 대원들을 다시 다독거렸다. "여보게들, 이제 입구보다 바닥이 더 가까울텐데. 조금 더 힘을 내 보자구. 여기까지 와서 어정쩡하게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그때까지 내려온 길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되는 거리였 다. 15도쯤 되는 기온에서 몇 시간 동안 완전 소통을 한 끝에, 노랑 용병 개미들의 한 무리가 하나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 방안이 나오 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모든 집단들이 그것이 가장 좋다고 인정한다?a 그 방안이란 '낫개미'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벨로캉에는 '낫개미'라고 하는 특별한 종류의 용병개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머리통이 크다는 것과, 아주 단단한 씨앗도 깨뜨릴 수 있는 예리하고 기다란 위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는 그들이 쓸모가 없었다. 몸뚱이가 너무 육중한 데 비해서, 다리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곳까지 겨우겨우 기어가느 라고 힘을 다 쓰고 적에게 별로 타격도 주지 못하니 그들을 전쟁터 에 데리고 가봐야 말짱 헛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맡길 일 이라곤, 나뭇가지 자르는 일 같은 허드레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랑개미들이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덩치만 커다랗고 굼 벵이 같은 이 개미들을 싸움터의 용사로 만들 방도가 있다는 것이 다. 몸이 잽싼 작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들을 한 마리씩 싸움 터로 데리고 나가면 된다는 것이 그 방안의 요지였다. 그렇게 되면, 낫개미들이 '살아 움직이는 다리' 구실을 하는 일개 미들을 냄새로 이끌어가면서 적들에게 덤벼들 수 있을 것이고 그들 의 기다란 위턱으로 적들을 토막토막 잘라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당분을 잔뜩 섭취한 병정개미들이 햇빛방에서 그 방법이 적절한지 시험해 보고 있다.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 한 마리를 들어올린 다음 보조를 맞추어 달린다. 제법 효과가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불 개미 도시 벨로캉에서 전차를 발명해 낸 것이다. 그들은 끝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퐁텐블로 소방대원 8명과 경찰관 1명, 지하실 안으로 의문의 잠적. 천지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새벽이 오자, 라숄라캉의 금단 구역 을 포위하고 있던 난쟁이개미들은 안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 루터기 안에 고립된 불개미들은 굶주린 채 탈진해 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그리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전투가 재개되었다. 개미산 포 공방을 한참 벌인 끝에, 난쟁이개 미들이 보조 교차로 두 개를 점령했다. 개미산을 맞고 구멍이 뚫린 나무안에서, 농성하며 버티던 병정개미들의 시체가 쏟아져나왔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불개미들의 운명도 백척 간두에 서 있다. 난 쟁이개미들이 금단 구역 안으로 전진해 오고 있다. 천장의 울퉁불퉁 한 곳에 숨어 있던 유격대원들이 겨우겨우 그들의 전진을 늦추고 있다. 여왕의 방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다. 그 방 안에서 여왕 라숄라키우니가 심장 박동을 늦추기 시작한다. 이제 만사휴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맨 앞에 있던 난쟁이 부대에 돌연 경보 냄새가 날아든 것이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난쟁이개미들이 되돌아 나 간다. 저기, 도시를 굽어보는 '개양귀비' 언덕 위에, 선홍빛 꽃 사이로 수천 개의 까만 점들이 보인다. 마침내 벨로캉 개미들이 공격에 나선 것이다. 가소로운 것들, 스 스로 무덤을 파러 왔군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은 저희들의 중심 도시 에 이 사실을 알리려고 날파리 용병들을 전령으로 보냈다. '날파리들이 모두 똑같은 페로몬을 지니고 날아간다.' '놈들이 공격해 온다. 동쪽에 원군을 보내 놈들을 협공하라. 비밀 무기를 준비하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아침 햇살의 따사로움이 불개미들의 공 격 결정을 서두르게 했다. 지금 시각 8시 3분. 벨로캉 군대는 질풍 처럼 비탈길을 내리닫아, 풀들을 우회하고 작은 돌들을 뛰어넘는다. 수백만의 병정개미들이 모두 위턱을 벌린 채 달려가는 모습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것에 겁먹을 난쟁이개미들이 아니다. 불개미들이 그런 전술을 들고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터이다. 간밤에, 난쟁 이 개미들은 주사위의 5점 눈 모양으로 간격을 벌려서 이미 구멍을 파두었다. 그들은 그 구멍에 틀어박혀 위턱만 내놓고 있다. 그럼으 로써 그들의 몸뚱이는 흙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불개미들의 돌격이 이 방어선 때문에 곧 주춤해졌다. 몸뚱이는 땅 속에 감춘 채, 가장 강한 부분만 드러내 놓고 있는 적들을 상대로, 연방군들은 헛되이 위턱을 휘둘러대고 있다. 난쟁이개미들의 다리를 자르거나 배를 뽑아버릴 방도가 없었다. 그때, 볼레 독버섯의 앞이갓을 덮개 삼아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하 고 있던 시게푸 보병의 주력 부대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불개미들이 중간에서 협공을 받게 되었다. 벨로캉 군대가 수백만이지만, 시게푸 군대는 그것의 수십 배가 된 다. 줄잡아도 불개미 한 마리가 다섯 마리의 난쟁이 병정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개별 참호 속에 있는 난쟁이개미들을 계산에 넣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들은 구멍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자 기들의 위턱이 미치는 범위로 지나가는 것들은 뭐든지 잘라버리고 있다. 전투의 형세가 시시 각각으로 수가 적은 쪽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도처에서 튀어나온 난쟁이개미들의 공격을 받고, 연방군의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다. 9시 36분이 되자 연방군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한다. 난쟁이개 미들은 벌써 승리의 냄새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전략이 완벽하게 적중한 것이다. 비밀 무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은 퇴각 하는 군대를 추격하면서, 라숄라캉의 점령은 이미 끝난 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다리가 짧아서, 불개미들이 한 번 펄쩍 뛰 면되는 거리를 열 발짝으로 가야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헐떡거리면 서, '개양귀비'언덕을 오르고 있다. 벨로캉 연방의 전략가들이 예상 했던 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번재 공격의 목표가 그것이었 다. 즉, 난쟁이개미들의 군대를 분지에서 끌어내 비탈길에서 맞붙으려는 것이었다. 불개미들이 능선에 다다랐다. 난쟁이 군대가 대열을 완전히 흐트 린 채 불개미들을 계속 추격해 오고 있다. 능선 위에 돌연 가시의 숲 같은 것이 우뚝 나타난다. 집게 모양을 한, 낫개미들의 거대한 위턱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낫개미들은 위턱을 휘둘러 햇빛에 번 쩍거리게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에게 달려든다. 곡물을 자르는 낫개미 가 난쟁이개미를 자르는 낫개미로 변한 것이다! 기습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넋이 나간 시게푸 개미들은, 겁에 질 려 더듬이가 뻣뻣해진 채, 잔디가 깍여나가듯이 쓰러진다. 낫개미들 은 비탈길의 기복을 이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적들의 전열을 무너뜨 린다. 각각의 낫개미 밑에서는 일개미 여섯 마리가 즐거움을 만끽하 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전차의 무한 궤도에 해당하는 셈이다. 전차 의 포탑과 바퀴들 사이에 혼연 일체의 더듬이 소통이 이루어지는 덕 분에, 36개의 다리와 2개의 커다란 위턱을 가진 동물이 적들의 한가 운데를 종횡 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스토돈같이 커다란 동물 수백 마리가 위에서 달려내려오며 난쟁 이개미들을 쳐부수고 어깨버리는 와중에서 난쟁이개미들은 그 동물 을 제대로 쳐다볼 겨를조차 없다. 거대한 위턱들이 난쟁이개미들의 무리 속에 깊숙히 들어가, 풀을 뜯어먹듯 풍지 박산을 내고는 다시 올라온다. 피범벅이 된 다리와 머리들을 그 위턱에 잔뜩 묻힌 채 나 온다. 그 다리와 머리들은 밀짚이 으스러지듯 다시 부서진다. 난쟁이개미들의 진영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겁에 질린 난쟁 이 개미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지지밟고 난리가 났다. 자기들끼 리 싸우다 죽는 자들도 있다. 벨로캉의 전차들은 난쟁이개미들의 보병 부대를 그렇게 '빗질하 듯'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일거에 그들을 제압해 버렸다. 전차들은 일단 멈추었다가, 완벽하게 줄을 맞춘 상태 그대로, 또 한바탕의 밀 어붙이기를 하려고 비탈길을 다시 올라간다. 살아남은 난쟁이개미들 이 선수를 쳐서 달아나려는데, 이번에는 저 위쪽에서 새로운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평행선 을 이루며 사목사목 조여든다. 각각의 전차들 앞에 시체가 산을 이 룬다. 대학살의 현장이다.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라숄라캉 개미들이 자매들을 응원하기 위 해 밖으로 나온다.?a 처음의 놀라움이 신명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환희의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이것은 기술과 지능의 승리다. 연방 의 재능을 이렇게 유감없이 발휘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시게푸가 자기들의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시게푸에는 아직 비밀 무기가 남아 있다. 원래 이 무기는 도시 안에 틀어박혀 완강하게 저항하는 적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 만, 전세가 워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난쟁이개미들 은 그 무기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 비밀 무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갈색 식물로 불개미들의 머리통들을 꿰어놓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난쟁이개미들은 벨로캉 연방에 속한 어떤 탐사 개미의 시 체를 발견한 바 있다. 그 시체는 붙살이하는 팡이의 하나인 '알테르 나리아'의 압력 때문에 터져 있었다. 난쟁이개미 연구자들이 그 현 상을 분석한 뒤에, 그 붙살이 팡이가 휘발성 홀씨를 만들어내고 있 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홀씨들이 불개미의 딱지에 달라붙어 그것을 부식시킨 다음 불개미의 몸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딱지를 터뜨려 버릴 정도까지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무기인가! 게다가 난쟁이개미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 홀씨들은 불개미의 키틴질에는 달라붙지만, 난쟁이개미들 의 키틴질에는 전혀 달라붙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난쟁이개미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몸에다 달팽 이 끈끈물을 바르는데, 그 끈끈물이 '알테르나리아'를 막아주는 효 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벨로캉 개미들이 전차를 발명했다면, 시게푸 개미들은 세균전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난쟁이개미의 보병 부대 하나가 행동을 개시한 다. '알테르나리아'로 오염시킨 300개의 불개미 머리를 운반하는 중 이다. 그 불개미 머리는 라숄라캉과의 첫번째 전투에서 확보해 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이 적들의 한가운데로 그것들을 던진다. 낫개미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개미들이,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들이 지어내는 치 명적인 먼지 속에 재채기를 해댄다. 그들의 딱지에 홀씨들이 달라붙 자, 그들은 겁에 질린다. 운반 개미들이 메고 있던 낫개미를 팽개치 자, 본래의 무기력 상태로 되돌아간 낫개미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다른 낫개미들을 사납게 공격한다. 불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10시경에, 갑작스레 추위가 밀어닥쳐 교전자들을 갈라놓았다. 차 가운 기류 속에서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난쟁이개미 부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전차 부대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왔고, 불개미 부대의 전차들은 간신히 비탈길을 되돌아왔다. 양쪽 진영에서 부상자들을 헤아리고 사망자의 수를 세었다. 잠정 적으로 집계된 피해가 막심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투의 양상을 바꾸어야 한다. 벨로캉 개미 진영에서는, 자신들을 괴롭혔던 먼지가 알테르나리아 의 홀씨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 홀씨가 몸에 닿은 병정개미들을 모두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 장차 다가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첩보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보고를 한다. 그 세균 무기로부 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달팽이 끈끈물을 몸에 바르 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행동으로 옮겨졌다. 벨로캉 개미 들은 그 연체 동물을 세 마리 잡아(그것들을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 려워진다), 각자 재해에 대비해 그 끈끈물을 몸에 바른다. 그런 다음 더듬이를 맞대고 전략을 숙의한다. 불개미의 전략가들 은 전차만 가지고 공격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다. 병력을 새롭게 배치하기로 한다. 전차가 가운데를 맡고, 120개의 일반 보병 군단과 60의 용병 군단이 양 날개로 산개하기로 한다. 병사들의 사기가 되살아 난다. 아르헨티나 개미 아르헨티나 개미(학명: 이리도미르멕스 후밀리스)는 1920년에 프 랑스에 상륙했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도로를 꾸미기 위하여 협죽 도나무를 들여올 때,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 상자에 함께 실려온 것임이 거의 확실 하다. 그 개미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것은 186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이다(아르헨티나 개미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1891년에 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도 그것들이 발견되었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 산 말들을 수출할 때, 그 말들의 잠자리 짚 속에 묻어, 1908년에는 남아프리카에, 1910년에는 칠레 에, 191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1920년에는 프랑스에 오게 되었다. 이 종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를 띠었다. 하나는 체구가 아주 작다 는 점이었다. 다른 개미들에 비해 유난히 작기 때문에 사람으로치면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 정도가 될 터였다. 또 하나는 대단히 영리하 고 병정개미들이 호전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주요 특징들이 생 태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오게 된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터를 잡기가 무섭게, 아르헨티나 개미들은 모 든 토박이 종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그것들을 정복해 버렸다. 1960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로셀로나까지 진출했다. 1967년 에는 알프스 산맥을 지나 로마까지 쏟아져들어갔다. 그러더니 70년 대부터, 이리도미리멕스는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프랑스 중부를 가로지르는 루아르 강을 건넌 것은 1990 년대 말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법이 빼어나 기로 말하면 시저나 나폴레옹 찜쪄먹을 정도였던 두 종의 개미들과 맞붙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개미(파리 지역 남쪽과 동쪽에 터를 잡 고 있었음)와 왕개미(파리 북쪽과 서쪽에 터잡고 있었음)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개양귀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 시게푸는 10시 13분에 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240개의 예비 군단이 첫번째 공격의 생존자들 과 합류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전차' 공격에 대한 설 명을 듣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완전 소통을 하기 위하여 더듬이를 모은다. 이 괴이한 기계를 막아낼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시 30분경에 일개미 하나가 한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낫개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그들을 싣 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 '살아 있는 다리들'을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다른 일개미가 불쑥 페로몬을 발한다. '그 기계의 약점은 신속하게 뒤로 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약점 을 이용할 수 있다. 밀집된 방진을 치는 것이다. 그 기계가 돌진해 오면 저항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게 길을 틔원준다. 그러다가 그 기 계가 달리던 힘으로 계속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치고 들어가 는 것이다. 기계가 뒤로 돌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하면 된다.' 또 다른 개미가 의견을 내놓는다. '일개미들의 다리가 보조를 정확히 맞추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았다시피, 더듬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낫개미들이 일개미들을 이끌지 못하도록 낫개미들에게 달려들어 더듬이를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모든 의견들을 받아들여, 난쟁이 개미들이 전투 계획을 새로이 짜기 시작한다. 개미의 고통 개미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개미들에겐 고통을 느끼게 할 만한 신경 조직이 없다. 신경이 있다 해도 통증을 전달하는 물질이 없다. 개미 몸의 일부를 잘라버렸을 때, 그 토막이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과 떨어져서 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살아 움직이는' 것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것 도, 그런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개미에게 고통이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공상 과학의 세계로 우리 를 이끌어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고, '자 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개미들은 고통을 느 끼지 못한다. 개미 사회의 응집력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 동안 곤충학자들은 그런 이론에 기울어 있었다. 그 이론은 모든 것 을 설명하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아무런 꺼리낌없이 개미들을 죽일 수 있게해준다는 점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어떤 동물이 있다면, 나는 그 동물을 무척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 은 잘못이다. 목이 잘린 개미는 특별한 냄새를 발한다. 고통의 냄새 인 것이다. 개미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런 냄새가 생길 리 없다. 개미에게 전기적인 신경 감은은 없지만, 화학적인 신경 감응은 있는 것이다. 개미는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 져나가면 고통을 느낀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인 데, 그 방식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전투는 11시 47분에 속개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이 밀집 대형으로 길게 늘어서서 '개양귀비'언덕을 치기 위하여 천천히 올라간다. 꽃 사이에서 전차들이 나타난다. 신호가 떨어지자 전차들이 비탈 을 내리닫는다. 전차 부대의 좌우로 보병 군단과 용병 군단이 산개 하면서, 마스토돈 같은 전차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면 그것을 이어 일을 마무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쪽 군대가 이제 100머리(300밀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가 사목사목 좁혀진다. 50머리.... 30머리.... 10머리! 가장 먼 저 공격에 나선 낫개미가 난쟁이개미들과 막 접전을 벌이려는 찰나,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빽빽하게 늘어서 있던, 시게푸 개미들 의 전열이 갑자기 간격이 넓은 점선 모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이 방진을 치고 있 다. 전차 앞에 있던 시게푸 개미들이 자취를 감추고, 전차 앞에 보이 는 것은 텅 빈 통로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을 붙잡으려면 재빨리 갈 짓자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느 전차는 하나도 없다. 위턱들이 허공을 찌르며 소리를 내고, 36개의 다리는 달리던 힘 때문에 티미하게도 계속 내딛기만 한다. 톡 쏘는 냄새가 훅 끼쳐온다. '놈들의 다리를 잘라라!' 냄새가 날아오기가 무섭게 난쟁이개미들이 전차 밑으로 달려들어 운반 개미들을 죽인다. 그러고는 무너져내리는 낫개미에 깔리지 않 으려고 서둘러 빠져나온다.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과감하게, 세 마리씩 두 줄로 늘어선 운반 개미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한쪽 위턱으로 낫개미의 드러난 배를 후 빈다. 그러자 액체가 흘러 나온다. 물탱크가 터져 물이 쏟아지듯이 낫개미의 체액이 땅 위로 쏟아진다. 또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마스토 돈 같은 낫개미의 몸뚱이로 기어올라 더듬이를 자르고 뛰어내린다. 전차가 하나씩하나씩 무너져내린다. 운반자들을 잃은 낫개미들은 기동을 못하는 환자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참상이다! 낫개미가 배 터져 죽은 줄도 모르고, 그 시체들을 열심히 메고 가 는 여섯 일개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낫개미의 더듬이가 잘 린 전차들은 '바퀴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뿔뿔 이 흩어지고 만다.... 그렇게 참패함으로써, 전차의 발명이라는 기술적 개가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가 나왔다가도, 적들이 대응책을 너 무 빨리 찾아내는 바람에, 위대한 발명품이 역사의 뒤안으로 그렇게 사라지는 일은 개미 역사에 숱하게 있어 왔다. 전차 부대를 측면에서 지원하던 보병 부대와 용병 부대는 전차 부 대가 괴멸됨으로써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전차 부대가 거둔 승리의 이삭이나 주으라고 배치되었던 이 부대들이 필사적으로 싸워 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낫개미들을 신속하게 해치우고, 벌써 다시 방진을 치고 있다. 벨로캉 개미들이 그 방진의 한쪽 가장자리를 건드리기가 무섭게, 수천 마리의 난쟁이개미들이 탐욕스럽게 위턱을 들이대서 벨로캉 개미들의 기를 꺽어버린다. 불개미들과 그들의 용병 개미들은 이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언덕 위에 재집결한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살피고 있다. 난쟁 이개미들은 여전히 밀집된 방진을 짠 채로, 공격을 하러 서서히 올 라오고 있다. 기세가 당당하고 서슬이 시퍼렇다. 시간을 벌려는 생각으로, 덩치 큰 병정개미들이 돌을 날라와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린다. 그러나 그 돌 사태도 난쟁이개미들의 전진을 별로 늦추지 못한다. 약삭빠른 난쟁이개미들은 돌덩이가 지나가는 길에서 비켜섰다가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돌덩이에 맞아 으깨 지는 난쟁이개미는 거의 없다. 벨로캉 부대는 그 궁지에서 벗어날 묘책을 찾느라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몇몇 병정개미들이 고전적인 싸움 방식으로 되돌아가자 고 제안한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저 개미산 포격을 하자는 것이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개미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접전 중에 개미산을 쏘면 적군뿐 아니라 아군까지도 다치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쟁이개미들이 밀집된 방진을 짜고 있을 때 는 그 효과가 크리라는 얘기였다. 포수 개미들이 부랴부랴 사격 자세를 취한다. 뒤의 네 다리로 단 단힘 몸을 받치고 배를 앞으로 내민다. 그렇게 해야만 배를 상하 좌 우로 움직여 가장 알맞은 조준 각도를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능선 바로 아래까지 올라온 난쟁이개미들은 수천 개의 배가 능선 위로 끝을 비죽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진영 사이에 아직은 좀 거리가 있다. 난쟁이개미들이, 비탈길의 마지막 몇 센티미터를 건너 가려고 힘을 한껏 내어 속도를 높인다. '돌격!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그러자, 반대쪽 진영에서 단 한마디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사!' 아래쪽으로 방향을 돌린 배들이 난쟁이개미들 위로 뜨거운 독물을 뿜어댄다. 피웅, 피웅, 피웅, 노르스름한 분출물이 바람처럼 허공을 날아, 공격자들의 제1선을 정면으로 내리친다. 먼저 더듬이가 녹아서 머리 위로 굴러떨어진다. 그 다음에 독이 딱지로 퍼져나가면, 마치 플라스틱이 불에 녹는 것처럼 딱지가 녹아버린다. 개미산에 쏘인 몸뚱이가 털썩 내려앉으면서, 거치적리는 장애물이 되어 난쟁이개미들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성난 난쟁이개미들이 비틀 거리는 몸을 추스리고 더욱 격렬하게 능선을 향해 돌진한다. 위에서는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앞서 사격에 나섰던 포수 개미들과 교대를 했다. '발사!' 방진은 흐트러졌지만, 난쟁이개미들은 물컹거리는 시체를 짓밟으 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또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나섰다. 끈끈 이침 개미 용병들도 그들과 합세했다. '발사!' 이번에는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난쟁이개미 전체가 끈끈이침 개미가 뿜어낸 끈끈이물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린다. 난쟁이개미들도 포수 개미들을 정렬시켜 반격을 시도한다. 그 포수 개미들은 능선을 향해 뒷걸음을 치면서 겨냥도 하지 않고 사격을 한 다. 가파른 비탈이라서 위에 있는 불개미처럼 뒷다리로 버티는 자세 를 취할 수가 없는 탓이다. '발사!' 난쟁이개미 쪽에서도 그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짤막한 그들의 배는 겨우 작은 개미산 방울을 쏘아댈 뿐 인. 그 분출물은 설사 목표물에 맞는다 하더라도, 딱지를 뚫지 못 하고 가벼운 염증만을 일으킬 뿐이다. '발사!' 양진영에서 쏘아대는 개미산 방울들이 서로 엇갈리며 어지러이 날 린다. 이따금 부딪혀 상쇄되기도 한다. 개미산 포격이 이렇다 할 성 과를 거두지 못하자 시게푸 개미들은 포병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 기로 한다. 그들은 보병들이 밀집된 방진을 치고 돌격하면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발사!' 불개미들이 응답한다. 그들의 포병 부대는 여전히 놀라운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개미산과 끈끈물이 또 한차례 분출한다. 불개미들의 사격이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쟁이개미들 은 '개양귀비'언덕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능선 위에 늘 어선 그들의 윤곽이 검은 띠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복수를 갈망하고 있다. 격돌. 격노. 격멸. 이제는 '묘책'이 따로 없다. 불개미 진영 포수 개미들은 더 이상 배로 사격할 수 없고, 난쟁이개미 진영 방진도 이제는 밀집 대형을 유지할 수 없 다. 의산 의해. 질풍노도 모두 한데 뒤섞여서, 어지러이 흩어졌다. 가지런히 정렬하고, 치 달리고, 돌아가고, 달아나고, 덤벼들고, 흩어지고, 모여들고, 쑤석 거려 시비걸고, 밀었다가 당겼다가, 뛰어오르고, 주저앉고, 일어나 서 추스르고, 욕지거리, 맞대거리, 뜨거운 김 내뿜으며 울부짖듯 악 을 쓴다. 도처에 살기가 어려 있다. 서로 맞서서 힘을 겨루고 칼싸 움 하듯 위턱을 휘두른다. 살아 있는 몸뚱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 는 몸뚱이를 가리지 않고 짓밟으며 내달린다. 불개미 한 마리마다 성난 난쟁이개미가 적어도 세 마리씩은 달라붙어 있다. 그러나 불개 미들의 덩치가 세 배는 더 크니까,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 다. 드잡이 싸움, 냄새의 아우성, 엷은 안개처럼 뿜어지는 씁쓸한 페 로몬. 수백만 개의 위턱이 맞부딪치는데, 그 생김생김도 가지각색이 다. 끝이 뾰족한 것이 있는가 하면 가장자리가 깔쭉깔쭉한 것이 있 고, 톱니처럼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검처럼 생긴 것과 얇은 집게 처럼 생긴 것도 있다. 또 외날인 것이 있는가 하면 양날인 것도 있 고, 독물을 바른 것이 있는가 하면, 끈끈물이나 피를 바른 것도 있 다. 그 위턱들이 서로 뒤엉키며 땅바닥이 진동한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끝에 자그마한 곤봉을 매단 듯한 더듬이들이 상대가 가까이 접근 하지 못하도록 허공을 후려친다. 그러면 갈퀴가 같은 발톱을 가진 상대방의 다리가 더듬이를 때린다. 더듬이가, 성가시게 구는 작은 갈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낚아채기, 허 찌르기, 허방치기. 상대를 붙잡을 때는 위턱이나, 더듬이나, 머리, 가슴, 배, 다리를 잡기도 하고, 뒷다리 관절, 앞다리 관절, 다리 마디에 솔처럼 난 털 을 잡기도 하며, 등딱지에 난 홈이나, 키틴질에 난 구멍, 눈을 잡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몸뚱이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 축축한 땅에 나동그 라진다. 나는 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서 있는 개양귀비 위로 난쟁이개미들이 기어오른다. 그러더니 그 위에서 발 톱을 있는대로 세우고 불개미에게 뛰어내린다. 마치 마차에 뛰어들 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불개미 등에 구멍을 뚫어 심장까지 파고든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위턱들이 반들반들한 딱지에 줄무늬의 흠집을 낸다. 어떤 불개미는, 두 개의 투창을 동시에 쏘아대듯이, 더듬이를 노 련하게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더듬이에 묻은 맑은 피를 닦아낼 겨를 도 없이, 적의 머리통을 열 개씩이나 관통시키고 있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죽자 하고 싸운다. 잘라진 더듬이와 다리가 땅에 지천으로 깔려서 가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자기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 달려 들어서 접전에 합세한다. 불개미 한 마리가 많은 난쟁이개미들에게 사로잡혔다. 절망에 빠 진 그 불개미는 제 배의 끝을 구부려 제 몸 쪽으로 개미산을 쏜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들을 죽이면서 자기도 죽으려는 것이다. 그들 은 모두 밀랍처럼 녹아버린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불개미 쪽의 다른 병정개미 하나가, 적이 자신의 머리를 뽑아버리려 할 찰나에, 잽싸게 상대의 머리를 먼저 뽑아버리고 있다. 병정개미 103683호는 아까 난쟁이개미들의 선두 병력이 몰려올 때, 다른 병정개미 수십 마리와 함께 삼각진을 쳤었다. 몰려드는 난 쟁이개미 떼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삼각진이 깨진 마당이라서 혼자서 다섯 마리의 시게푸 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시게푸 개미들은 벌써 사랑하는 전우들의 피로 칠갑을 하고 있다. 시게푸 개미들이 103683호의 몸뚱이 여기저기를 물어뜯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들에게 대항하는데, 불현듯 전투 연습실에서 늙은 병정개미가 신참들에게 해주던 충고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결정이 나버리는 것이다. 위턱으 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기 지 못할 것이 없다.' 적이 한 마리라면 그 가르침이 통할 법한데, 다섯 마리일 때는 어 떻게 해야 하나? 103683호가 보기에 그 다섯 마리의 적 중에 적어도 두 마리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의에 차 있는 듯하다. 그의 가슴 마디를 끈질기게 물어뜯고 있는 자와, 왼쪽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 는 자가 그렇다. 103683호의 몸에 힘이 충만해 온다. 몸을 버둥거리 면서, 한놈의 목 위에 비수를 꽂듯 더듬이를 박아넣고, 위턱이 평평 한 쪽으로 또 한놈을 쳐서 박살을 냄으로써 적들을 떨쳐버린다. 그러는 사이 비밀무기를 가지러 갔던 난쟁이개미들이 돌아와, 싸 움터 한복판으로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수십 개의 머리를 던져넣는다. 그러나 불개미들도 저마다 달팽이의 끈끈물로 방비를 하고 있는 터라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는 공중에서 나풀거리다가 딱지 위에서 미 끄러져 기름진 땅 위로 살포시 떨어진다. 결국 오늘은 새로운 무기 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날이다. 양쪽 진영 모두 장군에 멍군을 불렀던 것이다. 오후 세시에 전투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개미들의 시체가 내뿜는 올레인 산이라는 특이한 발산물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 다. 4시 30분에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남은 다리가 뚜 개밖에 없어도 아직 서 있을 수 있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양귀비 밑 에서 싸움을 벌였다. 전투는 다섯시가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비가 들이닥칠 것을 예고 하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3월에 뒤늦게 우박 섞인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하늘이 땅에서 벌어지는 오랜 폭력 에 신물이 난 듯하다. 생존자들과 부상자들이 물러간다. 전투의 총결산: 사망자 500만, 그중 난쟁이개미 400만, 라숄라캉 수복. 마디가 잘려나간 몸뚱이, 구멍난 딱지, 이따금 단말마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을씨년스런 토막들이 땅 위에 까마득하게 깔려 있다. 래 커처럼 투명한 피와 노르스름한 개미산의 웅덩이가 지천이다. 끈끈이침개미들이 뱉어냈던 끈끈이물의 진창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몇몇 난쟁이개미들이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면 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새들이 날아와 그 개미들 을 쨉싸게 쪼아먹는다. 먹장 구름을 비추면서 번개가 번쩍거리자, 그 불빛에 아직도 위턱 을 오만하게 세우고 있는 전차의 등딱지가 반짝거린다. 그 위턱의 뾰족한 끝으로 멀리 있는 하늘이라도 구멍을 내고 싶어하는 듯하다. 배우들은 모두 돌아가고, 빗물만이 무대를 씻어내리고 있다. 그 여자는 입에다 잔뜩 문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빌솅?" "여보세요?" "(우물거리는 소리....)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요, 빌솅? 신문 봤 어요? 갈랭 형사, 당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죠? 처음 들어왔을 때 부터 나한테 버르장머리없이 굴던 그 애숭이 맞지요?" 경찰국장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그 친구 잘라버리라고 했더니 그냥 두어가지고, 이제 죽은 뒤에 용을 만들어 놨더군요. 당신 완전히 돈 거 아니예요? 그렇게 중요한 사건에 어쩌자고 경험도 하나 없는 그런 자를 보냈어요?" "갈랭은 경험이 없는 친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뛰어난 요원 이지요. 다만 저희가 그 사건을 너무 얕잡아보았던 겁니다...." "훌륭한 요원은 해결책을 찾고 무능한 요원은 핑계거리를 찾는 거예요." "사건에 따라서는 우리들 중엥 아무리 훌륭한 요원들이라도...." "사건에 따라서는 당신들 중에 아무리 무능한 요원들이라도 꼭 해 결해 내야 하는 사건들이 있는 법이에요. 지하실 안에 들어가서 거 기 갇힌 사람들을 다 꺼내 오세요. 당신이 그렇게 잘났다고 말하는 그 갈랭이라는 친구는, 교회 묘지에나 보내세요. 경찰 묘지는 어림 도 없어요. 이달 말까지는 신문에 우리가 일 잘한다고 칭찬하는 기 사가 실릴 수 있겠지요?" "말씀인즉슨, 이 사건이...." "말인즉슨, 전적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달렸다는 말 이에요!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벌리지 말았으면 좋 겠어요. 일단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언론에다 떠벌이란 얘기예요. 필요하다면 치안 대원 여섯 명하고 첨단 장비를 보내주겠어요." "그런데 만일...." "그런데 만일 당신이 계속 그렇게 뭉기적거리고 있으면, 당장이라 도 퇴직시켜 줄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빌솅 경정은 미치광이들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러 나 그녀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지하실 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 내분비샘에 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 지 금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거나, 땀이 나려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려 하거나, 소리를 치려 하거나, 울려고 한다고 치자, 그런 것은 그 사람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덤덤하게 바라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 기도 할 터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성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안 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이른바 페로-호르몬 또 는 페로몬인데,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 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 을 남이 똑같이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연방의 모든 도시가 환희에 차 있다. 지친 병사들에게, 달디단 영 양교환이 넘치도록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영웅은 없다. 저마다 제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임무가 끝나면 모든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개미들이 침을 듬뿍 발라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다. 어리숙한 몇 몇 어린 개미들은 전투 중에 뽑혀나간 제 다리들을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찾아내서는 위턱으로 꼭 부여잡고 있다. 다른 개미들이 그것들을 다시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지하 45층의 전투 연습실에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개미들 을 위하여 '개양귀비' 전투의 실황을 차례차례 재연해 보이고 있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한쪽은 난쟁이개미 역할을 하고, 다른 쪽은 불 개미 역할을 하기로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라숄라캉의 금단지역을 공격한 장면부터 시작해서 불개미의 공격, 난쟁이개미들이 몸을 땅에 묻고 머리만 내놓고 있던 때의 싸움, 짐짓 도망가는 체했던 것, 전차의 투입,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에 밀려 퇴각했던 일, 난쟁이개미들이 능선 위로 돌격해 왔던 일, 포수 개미들의 활약, 마지막 대접전 등을 하나하나 그대로 흉내낸다. 일개미들이 그것을 보러 많이 왔다. 장면 하나하나가 재현될 때마 다 그들이 토를 단다. 특히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차'라는 새 로운 기술이다. 자기네 계급이 거기에서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다. 그 기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개미들의 의견이다. 비 단 전선의 공격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기술을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개미들 중에는 103683호도 들어 있다. 103683 호는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살아남았다. 다리 하나만을 잃었을 뿐이다. 다리 여섯 개를 자유자재로 쓰던 때에 비하면 약간 흠이 되지만, 크게 표시 나지는 않는다. 생식 개미라서 전투에 참가 할 수 없었던 암개미 56호와 수개미 327호가 103683호를 한쪽 구석 으로 이끈다. 더듬이 접촉. '여기는 별 문제가 없었는가?' '없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도 모두 전투에 참가했었 다. 우리는 난쟁이개미들이 안에까지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해서 금 단구역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떤가? 비밀 무기를 보았는가?' '못 보았다.' '어째서 못 보았단 말인가? 움직이는 아카시아 가지가 있었다고들 하던데....' 103683호가 설명한다. 자신들이 접해본 새로운 비밀 무기는 하나 뿐이었는데, 그것은 잔인무도한 알테르나리아였으며, 그 무기에 대 한 대응책을 찾아냈다는 것을. '첫 원정대를 죽인 것은 그게 아닐 것이다.' 수개미가 단언한다. 알테르나리아는 개미를 죽이는 데 시간이 많 이 걸린다. 게다가 그가 조사해 본 개미들에는 분명히 그 치명적인 홀씨가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완전 소통을 연장하기로 한 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다. 관념 과 의견들이 교류되면서 더듬이들 사이에 새로이 거품이 인다. 스물여덟 마리의 탐사 개미들을 순식간에 몰살한 그런 강력한 무 기를 어째서 난쟁이개미들이 전투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걸까? 승리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동원했던 그들이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들 은 아무런 주저없이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럼 난쟁이개미들은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까? 비밀 무기의 공격이 있기 전 이나 있은 후에 언제나 난쟁이개미들이 나타난다. 그건 어쩌면 까마 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라숄라캉을 공격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러한 가정에도 일리가 있 다. 첫 원정대가 몰살당한 사건을 생각해 봐도, 누군가가 겨레를 혼 란에 빠뜨리려고 난쟁이개미들의 냄새를 뿌려놓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해서 덕을 볼 자가 누구인가? 이제껏 행 해진 짓가지 나쁜 짓이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혐의를 두어야 할까? 의심이 가는 다른 자들이 있는가? 있다! 악착 같은 제2의 적, 대대로 이어져온 원수, 흰개미들이다! 그 의심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동쪽의 커다란 흰개미 도시에서 떨어져나온 흰개미 병정개미들이 강을 건너서 연방 의 사냥구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맞다. 틀림없이 흰개 미들의 소행이다. 그 자들이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서로 싸우 도록 이간질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싸움 한번 안 하 고 양쪽을 몰아내려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아주 힘 이 빠져 있을 때 힘 안 들이고 개미 도시들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그 자들은 흰개미들 을 위해 일하는 용병 첩자일 게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그렇게 된 것이다. 세 개미는 한결같은 생각이 세 개의 뇌 속을 순환하면 할수록, 그 의혹투성이의 '비밀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자들은 흰개미들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들은 대화를 멈추어야만 했다. 겨레 전체가 함 께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벨로캉 도시는 전쟁의 막간을 이용하여 신생의 축제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생의 축제는 내일 열릴 것이다. '모든 계급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라! 암개미와 수개미들은 꿀단 지 개미들의 방으로 가서 당분을 실컷 섭취하라! 포수 개미들은 유 기화학실에 가서 배에다 개미산을 재충전하라!' 동료들의 곁을 떠나기 전에 병정개미 103683호가 페로몬을 내어 한마디를 일러준다. '교미 잘 하게! 이 일은 내가 계속 조사를 할 테니까 걱정들 말 게. 자네들이 공중에 올라가 있을 동안 나는 동쪽의 흰개미 도시로 가 보겠네.' 그들이 서로 헤어지자 마자 두 암살자, 즉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병정개미와 자그마한 절름발이 개미가 나타났다. 그들은 벽을 긁어 서 아까 세 개미가 나눌때 발산되었던 휘발성 페로몬들을 거두어들였다.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들여보낸 일이 비극적인 실패로 돌아감 에 따라, 니콜라는 한 고아원에 보내졌다. 시바리트 가에서 몇 백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에는 진짜 고아들 말고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 모의 학대를 피해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제가 난 새 끼들을 버리고 학대하는 동물은 별로 없는데, 인간은 사실 그런 희 귀종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내 면서, 엉덩이를 때리는 우악살스러운 발길질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 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그 아이들은 강해져가고, 더 나이가 들면 직 업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가는 것이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첫날, 니콜라는 실의에 빠진 채 발코니에서 우두 망찰 숲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텔레비젼에서 위 안을 찾았다. 텔레비젼 수상기는 식당 안에 놓여 있었는데, 감독 선 생들은 그 '거지 같은 녀석들'이 줄창 텔레비젼이나 보면서 멍청이 가 되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텔레비젼 덕분에 아이들에게 해방되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장과 필립이라 는 다른 두 고아가 공동 침실에서 니콜라에게 물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 봐. 너만한 나이에 이런 데 오는 애는 없 어. 먼저 네 나이나 좀 알자. 몇 살이니?" "난 알아. 쟤네 엄마 아빠는 개미들한테 죽었나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던?" "누가 그러더라.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면 그게 누군지 가르쳐줄께." "너희들 까불면 죽을 줄 알아." 장과 필립이 니콜라에게 달려들었다. 필립이 니콜라 뒤에서 팔을 비트는 동안, 힘이 더 센 쪽인 장이 니콜라의 어깨를 잡았다. 니콜라는 불의의 습격에서 몸을 빼내어, 손바닥의 새끼손가락 쪽 을 칼날처럼 세워 장의 목을 후려쳤다(아이는 그런 것을 텔레비젼의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이 캑캑거리기 시 작했다. 필립이 니콜라의 목을 조르려고 다시 덤벼들었다. 그러자 니콜라가 팔꿈치로 그 아이의 명치를 쑤셨다. 덤벼들던 필립이 무릎 을 꿇고 주저앉아버리자, 니콜라는 다시 장에게 맞서서 그 아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아이가 달려들어 장딴지를 피가 나도록 물 어뜯었다. 세 아이는 침대 밑을 굴러다니면서 넝마주이들이 서로 싸 우는 것처럼 계속 싸웠다. 마침내 니콜라가 밑에 깔렸다. "네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 그러지 않으면 개미 가 너를 물어 죽이게 할꺼야!" 장은 싸움을 하던 중에 무심코 그 말을 생각해 냈다. 말을 해놓고 보니까 꽤 그럴 듯했다. 정이 새로 들어온 아이를 마루 바닥에 눕혀 놓고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동안에 필립은 어딘가로 달려가서 개미 몇 마리를 가져왔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였다. 필립 은 니콜라의 얼굴에 개미들을 들이대고 흔들었다. "자, 아주 살진 먹이가 여기 있단다!" 그 말투가 마치 뻣뻣한 딱지로 덮인 개미들이 사람의 살찐 정도를 식별할 수 있다는 투다. 필립은 니콜라의 입을 벌리게 하려고 코를 움켜쥐었다. 니콜라가 입을 벌리자 그 아이는 거기에다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개미 세마리를 던져넣었다.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개미들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때 니콜라는 생전 처음 느끼는 놀라운 기분을 맛보았 다. 개미가 달착지근했던 것이다. 다른 두 아이는, 니콜라가 더러운 곤충을 다시 뱉어내지 않는 걸 보고 놀라서, 이번에는 자기들도 개 미를 맛보고 싶어했다. 분비밀을 저장하는 꿀단지 개미들의 방은 벨로캉에서 가장 최근에 성취한 혁신의 하나이다. '꿀단지' 기술은 남쪽의 개미들에게 빌러 온 것이었다.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남쪽의 개미들은 언제나 북쪽으 로 올라온다. 그 개미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을 때, 밸로캉 연방의 개미들이 그들의 꿀단지 개미의 방을 발견했었다. 곤충의 세계에서 전쟁이란 발명의 원천이자, 발명을 널리 퍼뜨리는 매개자 역활을 한다. 그때 그 현장에서 벨로캉 병사들은 꿀단지 개미들을 발견하고 경 악을 금치 못했다. 평생 천장에 매달려 살도록 되어 있는 일개미들 이 있었는데, 머리는 아래쪽으로 두고 있고, 배가 어찌나 뚱뚱한지 여왕개미 배보다도 두 배는 커 보였다. 남쪽 개미들의 설명에 따르 면, 그 일개미들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개미들로서, 어마 어마한 양의 꽃꿀이나 이슬이나 분비꿀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당분 덩어리라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모든 개미들이 영양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갈무리 주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갈무리 주머니'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가서 '꿀단지 개미'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실용화한 것이었다. 개 미들이 와서 그 살아 있는 저장고의 배 끝을 건드리면 꿀단지 개미 는 자기가 저장하고 있는 소중한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주거나 줄줄 쏟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남쪽 개미들은, 그런 꿀단지 개미가 있는 덕분에, 열대 지역을 휩 쓰는 지리한 가뭄에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동을 할 때, 꿀단지 개미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 기간 내내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꿀단지 개미는 알 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꿀단지 개미라는 기술을 차용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양의 먹이를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 음에 들었던 것이다. 도시의 모든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당분과 수분을 가득 섭취하기 위해서 꿀단지 개미의 방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꿀 덩어리 앞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날개 달린 개미들이 줄 지어 서 있다. 327호나 56호가 흠뻑 단것을 빨아들이고 나서 물러난다. 모든 생식 개미들과 포수 개미들이 지나가고 나자, 저장 개미의 몸이 텅 비어진다. 그러자 일단의 일개미들이 꽃꿀과 이슬과 분비꿀을 신속하게 다시 가져와, 훌쭉해진 그들의 배가 작은 공처럼 빛나는 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채워놓는다. 니콜라와 필립과 장은 어떤 감독 선생에게 들켜서 함께 벌을 받았 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고아원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세 아이는 대개 식당의 텔레비젼 앞에 붙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아이들이 '자랑스런 외계인'이라는, 방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된 연 속극을 보고 있었다. 극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주 비행사들이 어떤 행성에 도 착했는데 그 행성에 거대한 개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장 면을 보면서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쿡 쿡 찌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즈귀 별의 거대한 개미들입니다. 그 뒷얘기는 늘 보던 것과 비슷했다. 즉, 거대한 개미들은 정신 감응을 일으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메세 지를 보내어 서로서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 막 생존자가 모든 것을 깨닫고 적의 도시에 불을 지른다. 운운.... 그 결말에 만족한 아이들은 달착지근한 맛을 내던 개미들을 잡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그들이 잡은 개미 들에게서는 지난 번과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를 않았다. 이번 것을 더 작고 신맛이 났다. 레몬 즙을 농축시킨 것 같은 맛이었다. 우웩! 정오 무렵에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아침 공기에 다사로운 기운이 감돌자마자, 포수 개미들이 도시 꼭 대기 주위를 화환처럼 두르고 있는 방호 구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 다. 새들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서, 포수 개미들이 꽁무니를 하 늘로 치켜들고 대공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포수 개 미들은 사격 때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배를 작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끼워넣고 있다. 그렇게 하면 과녁을 별로 빗겨가지 않고 똑같은 방 향으로 두세 차례의 일제 사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자기의 방 안에 있다. 시녀 개미들이 암개미의 날 개에 침을 발라주고 있다. 소독력을 지닌 침이다. '당신들은 위대한 '바깥 세상'에 나가본 적이 있어요?' 일개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가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곧 여왕개미가 될 이 암개미는 잠시 후면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터인데, 밖에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암개미는 더듬이 접촉으 로나마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한시라도 먼저 알고 싶다고 한사코 때를 쓴다. 일개미들은 그래도 여전히 암개미의 몸단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 다. 일개미들은 암개미의 다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당겨보기도 하고, 몸을 비틀게 해서 가슴마디와 배마디에서 오도독거리는 소리 가 나게 하기도 한다. 또 암개미와 모이주머니를 눌러서 분비꿀 한 방울이 나오는 걸 보고, 모이주머니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 그 꿀이 암개미로 하여금 몇 시간 계속되는 비행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드디어 56호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다음 암개미를 준비시킬 차례 이다. 한껏 치장을 하고 향기를 듬뿍 머금은 공주 개미가 규방을 떠난다. 327호 수개미가 그 모습을 보면 56호를 딴 개미로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 맵시가 정말 곱다. 56호는 날개를 들어올리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요 며칠 사이 에 날개가 어찌나 빨리 자라든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제는 날개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땅에 질질 끌린다.... 웨딩드레스 같다. 다른 암개미들이 통로의 출구에 나와 있다. 수백 마리의 그 처녀 개미들과 함께 56호가 벌서 둥근 지붕의 잔가지 속을 돌고 있다. 너 무 흥분한 어떤 암개미들이 잔가지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네 날 개에 줄무늬의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하며 아예 뽑혀 버리기도 한다. 그 불행한 암개미들은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가 없 다. 설사 올라간다 해도 날아오를 수는 없으리라. 안타까운 일이지 만, 그 암개미들은 5층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난쟁이개미의 공주들처럼, 그 암개미들은 결혼 비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볼 썽사납게도 밀폐된 방에서 그것도 땅바닥에서 교미를 하게 될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아직 무사하다. 56호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서, 그리고 여린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 면서,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강중거린다. 다른 암개미 하나가 56호에게 다가와 더듬이 접촉을 하자고 청한 다. 그 암개미는 말로만 듣던 수개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수벌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파리처럼 생겼을까? 56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문득 327호와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이젠 모든 게 끝났다. 일을 함께할 세포가 없다. 설사 있 다해도 수개미와 자신은 이제 그 일을 나설 수가 없다. 이제부터 모 든 일은 103683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애잔한 아쉬움을 느끼며 56호는 지나간 일들을 되새기고 있다. 도 망치던 수개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었다.... 통행냄새도 없이! 그와 나누었던 최초의 완전 소통. 103683호와의 만남.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도시의 밑바닥에 갔던 일. 그들의 '군대'가 될 수도 있었던 병정개미들의 시체로 가득찼던 은신처. 모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통로.... 56호는 걸어가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돌이켜보고, 자신은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떠나가기도 전에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 들을 겪은 암개미는 하나도 없을 터였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그렇게 많은 개미가 가담하고 있는 걸 보면, 미친 자들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흰개미들 편에 서서 첩자질하는 용병들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아귀가 안 맞 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첩자의 수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거니와, 그렇게 잘 조직되어 있을 수도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도시의 밑바닥 밑에 왜 식량을 저장해 둔단 말인가? 첩자들을 먹이 기 위해서? 아니다. 그만한 양이라면 수백만을 배불리 먹일 수 있 다.... 첩자가 수백만이 될 리 만무하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던 그 로메슈제는 또 어떤가. 로메슈제는 지 표에 사는 곤충이다. 것이 제 발로 걸어서 지하 50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곤충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곤충에게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 발산물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 괴물을 보들보들한 나뭇잎 같은 것으로 폭 싸서 조심스럽게 아래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꽤 강력한 어떤 집단이 있어야 한 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엄청난 수단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보면, 겨레의 일부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같은 구성원들에 게조차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낯선 암개미들과의 접촉이 56호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한다. 56 호가 걸음을 멈춘다. 동료들이 보기에는 56호가 결혼 비행 전의 흥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한 것만 같다. 그런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그만큼 생식 개미들은 예민하다. 56호는 더듬이를 입 쪽으로 가져간 다. 그간의 일들이 다시 빠르게 스쳐간다. 첫 원정대의 죽음, 비밀 무기, 병정개미 30마리의 죽음,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비축되어 있는 양식.... 아뿔싸! 56호는 문득 깨달았다. 56호가 오 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개미의 교육 개미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이루어진다. -제1일에서 제10일까지. 대부분의 어린 개미들은 알 낳는 여왕개 미의 시중을 든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핥아주고 애 무해 준다. 그 대신에 여왕개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독 효과를 지 닌 침을 어린 개미들에게 발라준다. -제1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이 고치를 돌볼 수 있게 된다. -제2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을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들 을 돌보고 먹이를 준다. -제31일에서 제40일까지. 일개미들은 어머니인 여왕개미와 번데기 들을 돌보면서, 도시 안의 일과 길 닦는 일에 종사한다. -제40일째 되는 날이 중요하다.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인정을 받은 일개미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제41일에서 제50일까지. 일개미들은 경비 보는 일이나 진딧물 분 비꿀 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제51일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개미들은 개미 도시의 일원으 로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사 냥을 나간다든가 미지의 지방을 탐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주: 제11일부터 생식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식 개미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결혼 비행을 하는 날까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혀 지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도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더듬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수개미들은 너나없이 암개미들 얘기만 하고 있다. 암개미들을 본 적이 있는 개미는 아주 적다. 그나마도 금단 구역의 통로에서 슬쩍 훔쳐본 게 고작이었다. 많은 수개미들이 나름대로 암 개미들을 상상해 보고 있다. 그들은 고혹적인 향기와 넋을 잃게 할 만한 관능을 지닌 암개미들을 상상하고 있다. 수개미 하나가 자기는 암개미하고 영양교환을 한 적이 있노라고 떠 벌리고 있다. 그 암개미가 나누어 준 분비꿀은 자작나무의 수액 과 같은 맛이었고, 성호로몬 냄새는 노란 수선화 줄기를 잘랐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고 한다. 다른 수개미들은 그 수개미를 부러워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다. 327호야말로 어떤 암개미(그것도 보통 암개미가 아닌)가 나누어준 분비꿀을 맛본 적이 있기에, 그것이 일개미나 꿀단지 개미가 나누어 주는 분비꿀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대화에 끼여들지 않는다. 다른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이다. 한 가지 엉큼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암개미 56호에게 미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자들을 실컷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56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56호하고 군중 속에서 다시 만나려면, 서로를 찾아낼 수 있 는 페로몬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다. 그때 암개미 56호가 수개미들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모든 수개미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암개미가 여기에 오는 것은 겨레의 법도에 어긋난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결혼 비행 전까지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 여기는 난쟁이 개미들의 도시가 아니다. 통로에 서 교미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암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수개미들은 정작 암개미가 들어오니까 일제히 비우호적인 냄새를 풍겨서 56호가 이 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시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56호는 결혼 비행을 준비하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는 그 북새통의 한가운데 로 계속 나아간다. 56호는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페 로몬을 발산하고 있다. '327호! 327호! 327호! 어디에 있지?' 수개미들은 56호를 보고 대뜸, 교미할 수컷을 그렇게 대놓고 고르 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힐책한다. 그러고는, 원하는 수개미가 있어 도 참아야 한다고, 상대방을 고르는 게 아니라 우연에 맡기는 거라 고, 몸가짐을 좀 정숙히 하라고 타이른다. 그런 얘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암개미 56호는 끝내 자신의 수컷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수개 미는 죽어 있었다. 위턱에 맞아 머리가 잘린 채로. 전체주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개미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완벽한 전체주의의 체제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사실 밖에서 보면 개미 둥지에서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 두가 전체의 이익에 따르며,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전체주의 체제는 현재로 서는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모듬살이 곤충을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나폴 레옹의 휘장이 꿀벌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개미 둥지 전체를 하나 의 생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 페로몬이라면, 오늘날인 인간 사회 에서는 세계적인 방송망을 가진 텔레비젼이 그런 역활을 한다. 사람 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인간 사회가 이루 어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 만상의 이치는 그런 것 이 아니다. 자연은 다윈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좋은 것이 지 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좋고 나쁜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악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곱추, 언청이, 쾌활한 자, 슬픔에 빠진 자, 영리한자,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도량이 넓은 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빨간 것, 흰 것 등등 이 다 있어야 한다. 갖가지 종교, 갖가지 철학, 갖가지 광신, 갖가 지 지혜를 가진 자들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 때문에 소멸당하는 것, 위험이라면 오직 그것 뿐이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 이삭(즉, 물 을 더 적게 필요로 하고, 결빙에 가장 잘 견디며, 알곡이 가장 실한 이삭)의 덩이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 이 돌아도 다 죽어버린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그루한그루가 저 마다의 특성과 약점과 비정상성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 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 스스로 찾아낸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 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둥근 지붕을 향해서 56호가 시름에 겨운 발걸음을 조금씩조금씩 옮겨 놓고 있다. 암개미 방 가까이에 있는 한 통로에서 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56호의 적외선 홑눈에 감지된다. 바위 냄새를 풍기 는 암살자들이다. 커다란 병정개미와 다리를 저는 작은 개미가 있다! 그들이 56호 쪽으로 곧장 다가오자, 56호는 날개를 붕붕거리면서 절름발이 개미의 목덜미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56호를 꼼 짝 못 하게 만들어버렸다. 56호를 당장 처단해 버릴 수 있을텐데도,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더듬이 대화를 하자고 강요한다. 암개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차피 결혼 비행을 하고 나면 죽게 될 327호 수개미를 왜 죽였느냐고 따진다. 그를 왜 암살했는가? 두 암살자가 암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일 중에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한시바삐 해치워야 할 일이 있 다. 겨레가 계속 정상적으로 움직여나가기를 바란다면, 비난받을 만 한 임무가 나쁘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벨로캉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따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이들은 첩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이들은 첩자가 아니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겨레의 안전 과 건강을 지키는 요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주 개미가 분노의 페로몬을 사납게 뿜어낸다. 327호가 겨레의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를 죽였단 말인가! 두 암살자가 그렇 다고 대답한다.?a 지금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라면서 .... 이해할 거라고? 도대체 뭘 이해한단 말인가? 겨레의 한 가운데에 치밀하게 조직된 암살자 집단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고? '겨레의 생 존이 걸린 위급한 일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수개미를 죽여놓고, 겨 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절름발이 개미가 나서서 해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이라는 것 이다. 스트레스에는 유익한 스트레스와 악성 스트레스가 있는데, 유 익한 스트레스는 겨레를 발전시키고 사기를 복돋워주지만, 악성 스 트레스는 겨레를 자멸에 빠뜨린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있다. 어떤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주 해롭다. 겨레에 독성 물질이 생겨나 모두를 중독시켜버린다. 사실을 아는 건 '잠깐'이지만, 겨레의 생존은 '영 원'하다. 따라서 겨레의 영원한 생존이 더 중요하다. 눈 하나가 어 떤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유기체의 다른 모든 부분에 해가 된다면 뇌가 그 눈을 무시해 버리는 편이 낫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절름발이 개미가 늘어놓 자, 덩치 큰 병정개미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눈을 파낸거라네. 우리는 신경 자극을 잘라버린거라네. 우 리는 고뇌를 끊어버린거라네. 그들은 더듬이로 페로몬을 계속 발하면서, 모든 유기체는 그와 같 은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기체는 두려움 때문에 죽거나 고뇌스러운 현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살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56호는 무척 놀라기는 했으나 냉정을 잃지 않는다. 참으로 그럴듯 한 페로몬이다! 그러나 적에게 비밀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들 이미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 비밀 무기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해도, 라숄라캉이 이미 그것 때문 에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고 있는 사실이다.... 두 병정개미는 여전히 침착하게 56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채로 설 명을 계속한다. 라숄라캉에 대해서는 다들 벌써 잊어버렸다. 승리가 호기심을 잠재운 것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통로의 냄새를 한번 맡아 보라. 독성 물질의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을 것이다. 온 겨레가 신 생의 축제를 차분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왜 머리를 이렇게 짓누르고 있는가? 아래층에서 쫓고 쫓길 때 개미 하나가 더 있었다. 병정개미였다. 그 자의 신분 번호가 어떻게 되는가? 그제서야 56호는 왜 암살자들이 자기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깨 달았다. 대답하는 척하면서 암개미는 덩치 큰 병정개미의 눈을 더듬 이 끝으로 찌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고는 해도 더듬이 끝이 그렇게 박히고 보면 몹시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 서슬에 놀라 절 름발이 개미가 당황하면서 잡고 있던 것을 반쯤 풀었다. 암개미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달려가다가 나중엔 더 빨리 가려고 날개짓을 한다. 날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자 추격자들이 길 을 잃고 헤맨다. 빨리 둥근 지붕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56호가 신생의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제 56호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장난감 개미집의 판매 금지 입법을 청원하며 (국회 조사 위원회에서 에드몽 웰즈가 행한 연설을 발췌한 것임.) 어제 저는 어떤 가게에 들렀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았습니다. 흙이 채워진 플라스틱 상자였는 데, 흙 속에는 개미 300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 중에는 알 낳는 여왕 개미 한 마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장난감을 통해서 개미들이 일하는 것이며, 땅 파는 것,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 장난감은 매력적입니다. 아이는 아마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거 주자들이 아주 작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것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 습니다. 그 거주자들은 자치 능력을 지닌, 수백 개의 작은 자동 인형과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자신도 그와 비슷한 개미집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개미 연구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저는 생물학자로서 개미 연구를 제 직업의 일환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미집들을 어항에 들여앉 히고 공기가 잘 통하는 판지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미집 앞에 있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합 니다. 마치 자신이 개미들의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느낌 말입니 다. 내가 먹이를 빼앗아버리면, 제 개미들은 모두 죽어버릴 것입니 다. 문득 비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물 한 컵을 물뿌리개에 담아 그들의 도시 위에 뿌려주면 그뿐입니다. 개미집 안의 기온을 높여주고 싶으면, 개미집을 난방 장치 위에다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 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하려고 그중의 한 마리를 납치하고 싶으면, 핀셋을 어항 안에 집어넣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개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해치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개미들은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말하자면 그 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작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떨까 요.... 아이들 역시 개미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모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혹시 이게 우 리의 도시는 아닐까? 혹시 우리는 어떤 어항 안에서 갇혀 있고 다른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무대 장치를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넣어놓고, 실험용 흰쥐를 관찰하 듯 '구경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단지 갇혀 있던 어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노아의 대홍수라는 것도 기껏해야 신이 조심성이 없거나 호 기심이 많아서 그저 물 한 컵 쏟은 걸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글쎄.... 개미집과 우리가 사 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제 개미들은 갇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어항의 주둥이를 막고 있 는 판자를 베어내고, 벌써 몇 마리는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는 어떻 습니까? 우리도 중력을 벗어나는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어항 안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미들을 상대로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관대하고 자비 로우며 개미들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기는 신입니다. 그래서 백 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개미들에게 행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천 개의 개미집이 팔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한 수의 아이들이 어린 신이 될 것입니다. 그 아이들 모두가 저 만큼 너그럽고 자비로울 수 있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나의 도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이 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의 주인이 됨과 동시에,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며, 장난으로 개미들을 죽이 지 않을 의무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일로 불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 히, 아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문제입니다. 불만의 원인은 학교 성적일 수도 있고 부모의 꾸지람이 나 동무와의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아이들은 '어린 신'의 의무를 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 아이들의 손아귀 에 있는 '피통치자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장난감 개미집을 규제하는 이 법안을 가결해 주십 사고 부탁드리는 것은, 개미에 대한 연민 때문도 아니고 개미에게도 동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 한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가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을 희생시켜 우리의 소비에 충당하려는 것이겠지요. 제 가 거대한 존재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는 포로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구가 어느 날 어떤 무책임한 어린 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넘겨져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지각한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으로 빠지는 통로 속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일개미들이 그들을 밀어주고, 핥아주고, 격려한다. 암개미 56호는 환희에 찬 개미들의 물결 속에 때맞추어 합류한다. 모든 통행 허가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를 분간해 내지 못하리라, 물 흐르듯 나아가는 자매들의 흐름에 실려, 56호는 이제껏 알지 못하던 구역들을 지나 자꾸 위로 올라간다. 한 통로의 모퉁이에서, 56호는 갑자기 어떤 낯선 것과 마주쳤다. 햇빛이다. 처음엔 그저 벽 위에 빛이 비치는가 싶었는데, 이내 그 햇무리 같은 빛이 눈을 못 뜰 만큼의 강렬한 빛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유모 개미들이 말하던 그 신비로운 힘이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아름다운 빛, 놀라운 신세계에 대한 약속. 눈알에 빛 알갱이들이 글자 그대로 빨려들어오자, 56호는 취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마치 32층에서 발효한 분비꿀을 너무 많이 먹 었을 때의 기분 같다. 56호 공주 개미는 계속 나아간다. 땅바닥에 하얀 알갱이들이 부서 진다. 56호는 따듯한 빛 알갱이 속을 허위허위 해쳐 나간다. 어린 시절을 땅 속에서만 보낸 개미들에게는, 어둠과 빛의 대조가 너무나 강렬하다. 다시 모퉁이를 돈다. 투명한 빛이 붓질하듯 56호를 간지르다가 눈 부신 원 모양으로 넓어지더니, 은빛 너울이 되어 56호를 휘감아 버 린다. 빛이 너무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56호가 주춤거린 다. 눈 속으로 빛 알갱이가 들어와 시신경을 태워버리고 세 개의 뇌 를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미의 뇌는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벌레와도 같았던 조상 때부터 내려온 유산이다. 개미 의 조상들은 몸 마디마다 신경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몸의 각 부분에 신경 체계를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56호가 바람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빛 알갱이를 거슬러 나아간다. 멀리 햇빛에 휘감긴 자매들의 윤곽이 어른거린다.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하다. 56호는 계속 나아간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딱지가 따뜻해지고 있 다. 많은 개미들이 수없이 이 빛을 묘사하려고 해보았지만, 빛은 어 떤 언어로도 도저히 형용할 수 없다. 빛은 그냥 즐겨야 한다! 문지 기 개미들이 생겨난다. 가엽게도 그들은 평생 도시 안에 갇혀 있어 서 바깥 세계가 어떠한지, 태양이 어떤 건지를 모르고 산다. 56호는 장벽처럼 버티고 있는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 도시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수많은 낱눈들로 이루어진 겹눈이 조금씩조 금씩 빛에 익숙해져간다. 빛에 익숙해졌다. 싶으니 이제는 거친 바 람이 눈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공기와는 반대로 차 갑고 빠르고 갖가지 냄새가 섞여 있다. 56호의 더듬이가 빙글빙글 돈다. 뜻대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더 세찬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56호의 얼굴을 때린다. 56호가 날개를 파닥거린다. 둥근 지붕 꼭대기, 저 위에서 일개미들이 56호를 기다리고 있다. 일개미들은 56호의 다리를 잡고 들어올려서, 생식 개미들이 모여 있 는 앞쪽으로 밀어준다. 좁은 땅거죽 위에 수백 마리의 수개미와 암 개미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이 결혼 비행을 위한 이륙용 활주로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일기 상태가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바람이 계속 심술을 부리고 있다. 개미들이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열 마리쯤 되는 참새들이 생식 개미들을 발 견했다. 웬 횡재인가 싶어, 참새들이 점점 더 가까이 날아든다. 참 새들이 아주 가까이 접근해 오자 지붕 꼭대기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포수 개미들이 일제히 개미산을 퍼부어댄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과감하게 달려들어 암개미 세 마리를 낚아챘 다. 그 대담한 참새가 다시 날아오르기 전에 포수 개미들이 공격을 가했다. 참새가 풀밭으로 나뒹군다. 가련하게도 부리를 벌리고 날개 에 묻은 독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다른 놈들은 정신을 차릴거야! 실제로 참새들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 들은 곧 다시 돌아와서 대공 방어 태세를 다시 시험하려 들 것이다. 포식자 만일 인류가 늑대나 사자, 곰 하이에나 같은 주요한 포식 동물들 을 몰아내지 못했다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끊임없 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는 불안한 문명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대 로마 인들은 술을 부으며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사람의 시 체를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곤 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만사 가 덧없다는 것과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 을 멸종시키거나 희귀 동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미생물이나 개미 같은 곤충뿐이다. 인간의 문명과는 반대로 개미 문명은 주요 포식 동물들을 제거하 지 않고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이 곤충은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개미들은 자기들 문명의 갈 길이 아직 험 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이루어 놓은 결실을,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라도 발길질 한번으로 허물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 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바람이 잠잠해졌다. 공기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기온이 올라간다. 기온이 22도가 되자, 벨로캉은 자녀들을 놓아 보내기로 결정한다. 암개미들이 네 날개를 붕붕거린다. 암개미들은 만반의 준비가 되 어 있다. 성숙한 수개미들의 갖가지 냄새가 암개미들의 성적인 욕구를 절정으로 끌 어올렸다. 첫번째 처녀 개미들이 우아하게 이륙한다. 100머리쯤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들이 덤벼들어 암개미들을 낚아챈다.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개미들 사이에 동요가 인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이 일 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암개미 100 마리 중 네 마리만 참새의 부리와 깃털 장벽을 벗어난다. 수개미들 이 그 암개미들의 뒤를 쫓아 밀집 대형으로 날아오른다. 참새들이 수개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너무 작은 수개미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의 암개미 떼가 구름을 향해 솟구친다. 50마리가 넘는 새 들이 암개미들을 가로막는다. 대학살이 벌어진다. 살아난 암개미는 한 마리도 없다. 날짐승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저희들끼리 신호라도 보낸 모양이다. 이제 공중에는 참새뿐만 아니라, 티티새, 울새, 방울새, 비둘기들도 있다. 새들이 신나게 짹짹거린다. 그들에 게도 오늘은 잔칫날이다. 네 번째의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이번 역시 단 한 마리도 통과하 지 못한다. 새들이 더 맛있는 먹이를 차지하려고 저희들끼리 싸운 다. 포수 개미들이 화가 났다. 개미산 분비샘에 있는 힘을 다 주어 수직 사격을 한다. 그러나 개미를 잡아먹는 그 날짐승들은 너무나 높이 있다. 치명적인 개미산 방울들이 빗물처럼 도시 위로 떨어져 내려와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았다. 겁에 질려서 결혼 비행을 포기하는 암개미들이 생겨난다. 새떼를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다시 내려가 방 안에서 교미를 하려는 것이다. 사고를 당해 못 올라온 다른 공주 개미들처럼 말이다. 다섯 번째의 암개미 떼가 죽을 각오를 하고 일어선다. 있는 힘을 다해서 저 새들의 장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17마리의 암개미가 통 과하자 43마리의 수개미들이 바싹 따라 붙는다. 여섯 번째 떼: 12마리가 통과했다. 일곱 번째 떼: 34마리! 56호가 날개를 움직인다. 아직 날아오를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 늘에서 자매의 머리 하나가 56호의 발치로 떨어지더니 이어서 새의 솜털하나가 살며시 떨어진다. 불길한 조짐이다. 56호는 위대한 '바 깥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안달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여덟 번째 떼와 함께 날아오를까? 아니야.... 안 그러기를 잘했다. 여덟 번째 떼가 전멸을 한 것이다. 56호 공주 개미가 겁을 먹는다. 네 날개를 다시 붕붕거리면서 조 금 올라가본다. 좋다, 날개는 아무 이상이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두려움이 56호를 엄습해 온다. 냉정해야 한다.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 56호가 날개짓을 멈춘다. 아홉 번째 떼에서는 73마리의 암개미가 통과했다. 일개미들이 격려의 뜻이 담긴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열 번째 떼와 함께 출발할까? 56호가 망설이고 있는데, 좀 떨어진 곳에 돌연 작은 절름발이 개 미와 눈이 불구가 된 커다란 암살자 개미가 나타났다. 더 이상 머뭇 거릴 겨를이 없다. 56호는 단숨에 날아오른다. 위턱을 벌리고 달려 들던 두 병정개미들이 허탕을 치고 위턱을 다시 오무린다. 간발의 차로 암개미를 놓친 것이다. 56호는 잠시 동안 도시와 새떼의 중간 높이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열 번째의 암개미 떼가 날아오르면서 56호를 덮어버리자, 그 틈을 이용하여 56호 자신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공중의 그 지점으로 힘 껏 날아오른다. 옆에서 날고 있던 두 암개미가 잡히는 사이에 56호 는 구사 일생으로 박새의 어마어마한 발톱 사이를 빠져 나간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열 번째 떼 중에서 무사히 새떼를 빠져 나온 암개미는 열네 마리 이다. 그러나 56호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다. 이제 겨우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더 힘겨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의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개 1,500마리의 암개미가 날아 오르면, 그중에서 열 마리 정도만 무사히 땅에 닿는다.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한다 하더라도 그 열 마리 중에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고 여왕이 되는 개미는 네 마리 정도일 것이다.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파리 같은 것을 밟을 뻔하는 때 가 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가 아니라 여 왕개미임을 알게 된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그렇게 쓰러져 있다는 얘기는, 여왕개미들이 그런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 왕개미들이 그렇게 땅바닥에서 몸을 뒤틀며 죽어간다. 사람들의 신 발에 밟히기도 하고 자동차의 앞 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한다. 더 이 상 날아오르지 못하고 탈진해 간다. 그럼으로써 개미 도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여름날 여왕개미가 단지 자동차 와이퍼에 부딪히 는 것만으로 길 위에서 사라져간 개미 도시가 얼마나 많았을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생긴 네 날개를 움직이고있을 때, 뒤에서는 새떼들이 열한 번 째와 열 두 번째로 날아오를 암개미 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불쌍한 자매들! 이제 다섯 차례 더 암개미 들이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면 벨로캉은 미래를 향한 모든 희망을 다 내보내는 셈이 된다. 56호는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무한한 창공 속에 서 심호흡을 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푸르다! 땅 속의 삶밖에 모르 던 개미에게는 공중을 비상하는 일이 너무나 황홀하다. 또 다른 세 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56호는 좁은 통로들을 떠나 이제 모든 것이 3차원으로 드러나 있는, 현기증 나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56호는 본능적으로 모든 비행 방법을 알아낸다. 오른쪽으로 돌 때 는 오른쪽 날개에 체중을 싣는다. 올라갈 때는 날갯짓의 각도를 조 절한다. 내려가보기도 하고 속도를 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회전 을 하려면 날개 끝을 중심 축에 박고 지체없이 45도 이상으로 몸을 돌려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56호는 하늘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기류는 '펌프'처럼 56호를 밀 어올린다. 반대로, 진공 상태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추락하게 된다.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 달리 있는 것은 아니고 앞에 가고 있는 곤 충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56호가 한기를 느낀다. 높이 올라올수록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따금 회오리바람이 일기도 하고, 훈훈한 기류나 찬 기류의 돌풍이 몰아치기도 하면서 56호를 팽이처럼 뱅그르 돌려버린다. 한 무리의 수개미들이 56호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암개미 56호가 속력을 낸다. 가장 빠르고 가장 끈질긴 자들만 따라오라는 뜻이다. 보다 좋은 유전 형질을 골라내려는, 일차적인 선별 방식이다. 무엇인가가 56호의 몸에 와닿는다. 수개미 한 마리가 56호의 배에 올라타더니 기어오른다. 수개미 몸집은 작은 편이지만, 56호의 날갯 짓을 중단시킨 걸 보면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듯하다. 56호가 조금 아래로 위에 탄 수개미는 암개미의 날갯짓 때문에 떨 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는 완전히 평형을 잃고, 침처 럼 생긴 제 생식기를 암컷의 생식기에 닿게 하려고 배를 구부린다. 56호는 어떤 기분이 들는지 호기심을 느끼며 기다리고 있다. 기분 좋게 따끔거리는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문득 하나의 생 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56호는 갑자기 앞으로 움직이더니 급강하하 기 시작한다. 숨막힐 듯한 기분이다! 엄청난 황홀감이다! 속도감과 교미의 쾌감이 어울려 이제껏 맛보지 못한 환희의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수개미 327호의 영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눈에 난 털 사이 로 바람이 빠져 나가면서 소리를 낸다. 톡 쏘는 듯한 나뭇진 냄새가 56호의 더듬이를 짜릿하게 만든다. 56호의 내부에 있던 혼들이 사나 운 파도가 되어 요동친다. 56호의 모든 분비샘에서 이제껏 분비되어 본 적이 없는 체액이 흐른다. 그 체액들이 섞이어 끓어오르는 수프 처럼 되더니 56호의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풀밭 위에 이르자, 56호는 다시 힘을 모아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화살처럼 다시 올라간다. 암개미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음에 반해, 수개미는 이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수개미가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의 위턱이 마냥 벌어져 있다가 저절로 오무라든다. 심장이 멎는 다. 그런 다음엔 추락만이 남아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 대개 수컷들은 교미를 하고 나면 죽게 되어 있 다. 수개미들에게는 단 한 번의 사랑을 할 권리만 주어져 있다. 정 자들이 수컷의 몸을 빠져나오면서 주인의 목숨도 앗아가는 것이다. 개미의 세계에서도 수컷들은 사정을 하고 나면 죽는다. 어떤 곤충 의 암컷은 제 몸에 정자가 가득 차면 정자를 제공한 수컷을 죽여버 리기도 한다. 격한 감정 상태가 암컷의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곤충의 세계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암컷의 세계이 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홀어미들의 세계이다. 수컷들은 부차적인 지 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수컷이 벌서 56호에게 달라붙고 있다. 수컷 하나가 떠나 기가 무섭게 다른 수컷을 받아들인다. 세 번째 수개미가 오고, 다시 여러 수개미들이 거쳐 간다. 암개미 56호는 그 수를 더 이상 헤아릴 수가 없다. 적게 잡아도 열일곱이나 열여덟 마리의 수개미들이 번갈 아가면서 56호의 저정낭을 싱싱한 생식 세포로 가득 채워주었다. 56호는 제 뱃속에서 살아 있는 액체가 부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장차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살게 될 거주자들을 저장하고 있는 것 이다. 수컷들이 넣어준 수백만 개의 성세포들이 있기에 56호는 15년 동안 매일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56호 주위의 암개미 자매들도 56호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늘 가득히 암개미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의 수개미들이 암개미 위에 올라타서 똑같은 암컷을 상대로 교미를 한 다. 한데 뒤엉킨 사랑의 행렬이 구름처럼 공중에 걸려 있다. 암개미 들은 피곤에 지치고 행복에 취해 있다. 암개미들은 이제 공주가 아 니라 여왕이다. 반복되는 사랑의 즐거움이 몸을 녹초로 만들어 암개 미들은 이제 날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힘겹다. 바로 그 순간을 노리고, 꽃이 만발한 벗나무에서 제비들이 위풍 당당하게 튀어나온다. 제비들은 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층과 층 사이를 미끄러져 내리는 듯하다. 그 태연 자약한 모습에 소름이 돋 는다. 제비들이 부리를 활짝 벌리고 날개 달린 개미들에게 달려들어 차례차례 삼켜버린다. 이번에는 56호가 당할 차례이다. 103683호는 탐험 개미들의 방에 있다. 동쪽 흰개미 도시에 잠입해 혼자서라도 조사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일단의 탐험 개미들이 '용 사냥'을 하러 가는데, 함께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 의를 받았다. 알고 보니 주비주비캉이라는 도시의 초원 지대에서 도 마뱀 한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주비주비캉은 전 연방에서 가장 중요한 진딧물 목장을 가진 도시로서, 분비꿀을 짜낼 수 있는 진딧 물만도 900만 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목축 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주비주비캉은 연방의 동쪽 경계, 즉 벨로캉과 흰개미 도시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103683호는 그 원정대와 함께 떠나기 로 했다. 그렇게 되면 그가 흰개미 도시로 떠난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103683호의 주위에서 다른 탐험 개미들이 꼼꼼하게 원정 준비를 하고 있다. 탐험 개미들은 각자 갈무리 주머니에 당분이 많은 식량 을 가득 채우고, 개미산도 가득 장전해 둔다. 그러고 나서 추위도 막고 알테르나리아 홀씨에 대한 방비도(이제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 는 것이다) 할 겸 몸에다 달팽이의 끈끈물을 바른다. 도마뱀 사냥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혹자는 도마뱀이 도룡 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탐험 개미 서른 두 마리 가운데 다수가 사냥하기 어렵기로 말하자면 도마뱀이 최고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어떤 나이 많은 개미가 주장하기를, 도마뱀은 꼬리가 잘리면 그것 을 다시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다들 그 개미의 말을 비 웃는다. 또 한 개미는, 도마뱀 한 마리가 기온 10도 때의 시간 동안 을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한 다. 모두들, 개미산의 사용이 그리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벨 로캉 선조들이 위턱 하나만으로 그 괴물들을 상대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103683호는 소름이 오싹 끼쳐오는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는 이 제껏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도마뱀을 위턱이나 개미산으로 공격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자신이 생전 처음으로 달아나는 짓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 냥에 열심히 참가하는 것보다 '비밀 무기'에 대한 조사를 하는 쪽이 겨레의 생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탐험 개미들의 준비가 끝났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통로를 올라가 7번 출구, 즉 '동쪽 출구'를 통해 빛 속으로 나아간다. 우선 도시의 변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 다. 벨로캉 주변은 너나할것없이 바쁘게 일하는 일개미와 병정개미 들로 북적거린다. 몇 군데에 특히 개미들이 많이 몰려 있다. 어떤 개미들이 잎새, 열매, 알곡, 꽃, 버섯 따위를 나르고 있다. 어떤 개미들은 건축 자 재로 쓸 잔가지며 잔돌들을 운반하고 있다. 또 어떤 개미들은 사냥 물을 싣고 온다.... 냄새들의 아우성. 도마뱀 사냥에 나선 개미들이, 교통이 혼잡한 곳을 비집고 나아간 다. 그곳을 지나니 교통이 한결 원활해 진다. 대로가 점점 좁아져, 폭이 3머리(9밀리미터)가 되더니, 다시 두 머리로, 이어 한 마리로 된다. 그들은 이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집단적으로 의사 소 통을 하느라고 풍기던 냄새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그 무리는 도 시와 연결되는 냄새의 탯줄을 잘라버리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하 나의 단위가 된 것이다. 그들은 '산보'대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 보'대형이란, 개미들이 둘씩 짝지어 행진할 때의 대형을 말한다. 그 무리는 이내 다른 무리와 마주쳤다. 역시 탐험 개미들의 무리 이다. 그들은 갖은 고생을 다했던 모양이다. 그 대열에는 몸이 성한 개미가 한 마리도 없다. 다들 몸뚱이 여기저기가 잘려나갔다. 어떤 개미들은 다리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 처참한 모습으로 기어가고 있 다. 더듬이나 배가 잘린 개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03683호는 '개양귀비' 전투 이래로 그렇게 심하게 다친 병정개미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어떤 무시무시한 것과 부닥뜨렸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그 '비밀 무기'가 아니었을까? 103683호는 기다란 위턱이 부서진 커다란 병정개미와 대화를 나누 어보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 가? 흰개미들에게 당한 것인가? 그 병정개미는 걸음을 늦추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린 다. 아니 이럴 수가, 눈 구멍이 텅 비어 있다! 게다가 입에서 목관 절까지 머리가 쪼개져 있다. 103683호는 그 병정개미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을 더 가더니, 그 병정개미가 쓰러진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지 못한다. 그래도 아직 길 수 있는 힘은 남았는지 엉금엉금 기어서 길 밖으로 나간다. 자기의 시체가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제비를 피하려고 잽싸게 급강하를 시도한다. 그러 나 제비가 열 배는 더 빠르다. 커다란 부리가 더듬이 위로 덮쳐오는 가 했더니 벌써 배와 가슴과 머리를 덮어버린다. 부리가 56호보다 훨씬 빨랐다. 입 천장과의 접촉이 견디기 어렵다. 이어 부리가 다시 닫힌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희생 개미를 관찰해 보면, 저 자신의 생존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몸통에서 머 리가 잘려나가면 그 머리는 적의 다리를 물거나, 곡물 알갱이를 자 름으로써 여전히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쓴다. 가슴이 잘려나 갔을 때도 그 가슴은 적이 쳐들어오는 입구를 막으려고 기어 간다. 자기 희생인가? 공동체에 대한 광신인가? 집단주의 때문에 생긴 미련함인가? 그 어느것도 아니다. 개미 역시 외톨이로 살아갈 줄 안다. 겨레를 필요로 하지 않고, 겨레에 반역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현재 내 연구가 도달한 수준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겸양에서 비롯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그리 대단한 사건이 못 되는 것 같다. 즉, 개체의 죽음이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일을 단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탐험 개미들은 나무와 흙 둔덕과 가시나무 덤불들을 돌아, 불길한 조짐이 느껴지는 동쪽으로 계속 헤쳐나간다. 길이 좁아졌지만, 도로 공사하는 일개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일개미들은 한 도시와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도 소 홀히 하지 않는다. 도로 개미들은 이끼를 뽑고, 걸치적거리는 잔가 지들을 치우고, 뒤푸르 씨 샘에서 페로몬을 발하여 냄새 신호를 남겨놓는다. 이제 반대 방향으로 통행하는 일개미들은 거의 없다. 땅바닥에 놓 인 길 안내 페로몬이 이따금 눈에 띈다. '29번 교차로에서 아가위나 무들을 돌아가시오!' 적들이 잠복해 있음을 알리느라고 최근에 뿌려 놓은 냄새의 자취인 듯하다. 103683호는 걸어갈수록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높이가 80머리나 되는 볼레 독버섯이 있다 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종류의 버섯은 서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버섯인 것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뱀눈나비도 눈에 띈다. 비위에 거슬리는 그 냄새가 파리들을 유인한다. 또 머리가 진주처럼 생긴 말볼버섯과 샹 트렐 버섯도 눈에 띈다. 103683호는 샹트렐 버섯에 기어올라 그것의 부드러운 살을 밟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103683호는 갖가지 낯선 식물들을 발견한다. 꽃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야생 대마, '비너스의 나막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려하면서 도 꺼림칙한 개불암꽃, '고양이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줄기가 길 쭉한 적설초.... 103683호가 꽃이 꿀벌레처럼 생긴 봉숭아 한 그루에 다가가 무심 코 톡건드린다. 건드리자마자 봉숭아의 여문 씨앗이 얼굴에 쏟아져, 끈적거리는 노란 알갱이로 103683호를 덮어버린다. 다행히 알테르나 리아의 홀씨처럼 딱지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씨앗은 아니다. 그런 일로 주눅들지 않고, 103683호는 미나리아재비의 일종인 아 네모네 한 그루에 기어오른다. 하늘을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공중에서는 꿀벌들이 꽃가루 많은 꽃이 있는 장소를 동료들 에게 알려주기 위해 8자를 그려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위 경관이 갈수록 신기롭게 느껴진다.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 새들이 진동을 한다. 이름모를 작은 곤충들이 사방으로 달아난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 작은 곤충들이 있 다는 것을 알게 될 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있는지도 모를 판이다. 103683호가 대열에 합류한다. 아까 봉숭아 씨 세레를 받은 머리가 아직도 따끔거린다. 어느덧 동맹 도시 주비주비캉의 경계에 이르렀 다. 멀리에 여느 것과 다름없는 덤불이 하나 보인다. 주비주비캉 개 미들이 닦아놓은 이 길과 냄새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쪽으로 해서 어떤 도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할 것이 다. 가까이에서 본 즉, 주비주비캉은 전형적인 불개미 도시이다. 그 루터기가 있고, 잔가지로 만든 둥근 지붕과 쓰레기터가 있다. 그러 나 그 모든 것이 나무 덤불 아래 감추어져 있다. 주비주비캉의 입구는 둥근 지붕의 꼭대기와 거의 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도달하자면 고사리 한 무더기와 들장미 한 무더기를 통과해야 한다. 탐험 개미들이 그것들을 통과해서 입구에 이르렀다. 안에는 작은 곤충들이 우글우글하다. 도시에서 기르고 있는 진딧 물이다. 진딧물은 잎새와 색깔이 똑같아서 언뜻 보면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에 숙달이 된 더듬이와 눈을 가진 개미라면, 어렵지 않게 풀빛의 작은 돌기들을 알아볼 수 있다. 수백만 마리의 진딧물들이, 젖소가 풀을 뜯듯, 식물의 즙을 '뜯어 먹으면서' 조금씩조금씩 통통해져가고 있다. 개미와 진딧물 사이에 아주 오래 전에 하나의 협약이 맺어졌다. 진딧물들은 개미들에게 먹 이를 제공하고, 대신 개미들은 진딧물들을 보호해 주기로 했던 것이 다. 어떤 개미 도시에서는 아예 '젖소들'의 날개를 잘라버리고, '젖 소들'에게 통행 허가 냄새를 주는 일도 있다. 가축을 관리하는 데는 그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주비주비캉에서도 실제로 진딧물의 날개를 자르는 야비한 짓을 행 하고 있다. 그것에 보상하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순전히 현 대화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비주비캉은 2층에 대규 모 축사를 세우고 진딧물의 복지에 필요한 갖가지 편의 시설을 갖추 어 놓았다. 거기에서 유모 개미들이 개미 알을 돌볼 때와 똑같은 정 성으로 진딧물 알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고 나면, 주비주비캉에서 목축업이 특별히 중요한 산업이 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103683호와 동료들이 장미 가지의 진을 열심히 빨고 있는 진딧물 떼에 다가간다. 그들이 두세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진딧물들은 체 도 않고 장미 가시의 살 속에 주둥이를 처박고 있다. 개미의 냄새 언어를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탐험 개미들은 더듬이로 목축 개 미를 찾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병정개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 당 벌레 세 마리가 진딧물 떼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 무시무 시한 야수들이, 날개가 잘려 도망을 못 가는 진딧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 고 있다. 다행히 목축 개미들이 튀어나와 그 늑대 같은 무당벌레들을 응징 한다. 두 마리의 주비주비캉 개미가 나무잎 뒤에서 뛰어나온 것이 다. 그들이 거기에 숨어 있었던 까닭을 이제는 알 만하다. 까만 얼 룩을 가진 빨간 무당벌레들에게 효과적인 기습을 가하려고 숨어 있 었던 것이다. 목축 개미들은 무당벌레들을 겨누고 정확하게 개미산 사격을 퍼부었다. 무당벌레들이 쓰러지자, 목축 개미들은 아직 겁에 질려 있는 진딧 물 떼를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다닌다. 진딧물의 배를 주무르고, 토 닥거리다가, 더듬이를 어루만져준다. 그러자 진딧물들은 커다란 당 분 덩어리를 내놓는다. 맛있는 분비꿀이다. 그 액체로 한껏 배를 채 우고 있던 주비주비캉의 목축 개미들이 벨로캉의 탐험 개미들을 발견했다. 인사를 나누고 더듬이를 맞댄다. '우리는 도마뱀 사냥을 하러 왔다.' 탐험 개미들 중의 하나가 페로몬을 발한다. '그렇다면, 동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그 괴물 한 놈을 발견한 적이 있다.' 먼 길을 다니는 나그네 개미들에게는 영양 교환을 제안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목축 개미들은 그 대신에 직접 진딧물 분비꿀을 짜먹으 라고 권한다. 탐험 개미들은 주저하지 않고 각자 진딧물을 하나씩 골라 맛있는 분비꿀을 짜내려고 배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한다. 인두 안은 컴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미끈미끈하다. 암개미 56호는 이제 끈끈한 액체로 온통 뒤범벅이 된 채, 제비의 식도로 미 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제비는 이가 없어서 씹지를 않기 때문에 56 호는 아직 다치지 않았다. 체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다. 자신이 죽으면 도시 하나가 온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56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식도의 매끈매끈한 살에다 위턱을 박아 넣는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서 56호가 목숨을 건진다. 제비가 구 역질을 느끼고 콜록거리다가 그 성가신 먹이를 멀리 뱉어버린 것이 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으면서도 56호는 날아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날개가 끈끈물에 젖어 있어서 너무 무겁다. 56호가 강의 한 복판으로 떨어진다. 교미를 끝내고 죽어가는 수컷들이 56호 주위에 떨어진다. 공중에 는 제비 떼를 뚫고 살아남은 수무 마리쯤 되는 암개미들이 고르지 못한 리듬으로 비행하고 있다. 암개미들은 기력이 다 빠져서 점점 아래로 내려온 다. 그 암개미들 중의 하나가 수련위에 내려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 룡농 두 마리가 달려들어 암개미를 낚아채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다른 암개미들은, 비둘기, 두꺼비, 두더지, 뱀, 박쥐, 고슴도치, 닭, 병아리 등등의 공격을 받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결 국, 벨로캉에서 날려보낸 1,500마리의 암개미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여섯 마리 뿐 이었다. 56호도 그 살아남은 여섯 마리에 들어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56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 하고 그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리라고 다짐한다. 그러자면 누군 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바로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생명들이 힘 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생명들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햇살의 각도를 헤아려보고, 56호는 자신이 추락한 지점이 동쪽 강 물 위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별로 바람직한 곳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섬에 개미들이 살고 있는 건 사실이지 만, 헤엄 칠 줄 모르는 개미들이 어떻게 그 섬들에 정착하게 되었는 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뭇잎 하나가 위턱이 닿을 만한 거리로 흘러가고 있다. 56호가 위턱에 있는 힘을 다 주며 그 잎새에 매달린다. 그러고는 뒷다리로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데, 그 추진 방식이 도리어 비참한 결과를 낳 고 만다.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한참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수 면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생김새는 올챙이인 듯도 한데 덩치는 천 배나 더 크다. 몸매는 유선형으로 되어 있고, 살갗은 매 끈매끈하며 얼룩 무늬가 져 있다. 56호로서는 처음 보는 동물이다. 송어였다! 그 괴물이 나타나자 닷벌레, 물벼룩 같은 작은 견갑충들이 달아난 다. 괴물이 자맥을 하며, 겁에 질린 채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암개 미 쪽으로 다가온다. 지느러미에 힘을 잔뜩 주면서, 물살을 가르고 송어가 달려든다. 암개미가 커다란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사이, 공중으로 솟구 친 송어는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입을 벌리더니 저쪽에서 파닥거 리고 있던 날파리 한 마리를 삼켜버린다. 그런 다음 꼬리를 한 번 휘둘러 몸을 비틀고는 수정처럼 맑은 제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그 서슬에 해일과도 같은 물결이 일어 개미를 삼켜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개구리들이 송어에게 암개미와 그 뱃속에 있 는 알들을 빼앗기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암개미를 서로 차지하려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암개미가 다시 물 위로 솟아 올랐으나 이번에는 소용돌이가 일면서 다시 여왕개미를 견디기 힘든 심연 속으로 빨아들인다. 개구리들이 암개미를 쫓는다. 한기가 엄습해 오면서 암개미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암개미가 의식을 잃고 있다. 니콜라가 새로 사귄 두 친구 장, 필립과 함께 식당에서 텔레비젼 을 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 주위에도 발그레한 얼굴을 한 다른 고아 들이 둘러앉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시속 500킬로미터 의 속도로 뇌의 기억 장치에 전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뇌는 600억 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 장치가 포화 상태가 되 면, 가장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들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연스 럽게 조절이 된다. 그렇게 해서 충격적이었던 일에 대한 기억과 즐 거웠던 일에 대한 아쉬움만이 남게 된다. 연속극이 끝나고 곤충에 대한 토론 프로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아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지껄여대는 과학 프 로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르뒤크 교수님, 선생님께서는 로젠벨트 교수와 더불어 유럽 최고 의 개미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미를 연구하시게 된 특별 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어느 날, 부엌의 찬장을 열다가 일렬로 늘어선 개미들과 마주치 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서 있었지요. 그 개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겸손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개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 온 것이지요. 그게 동기 라면 동기죠(웃음). -로젠펠트 교수와 선생님 두 분 다 탁월한 과학자이신데, 로젤펠 트 교수와 선생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 로젠펠트 교수와 말입니까? 그분 아직 은퇴하지 않으셨나 요?(다시 웃음) 안 하셨군요. 웃자고 해본 소리고요, 사실 우리는 학문하는 입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미라는 곤충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모듬살 이 곤충들(흰개미, 꿀벌, 개미)은 모두 왕정주의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개미 사회에서 여왕은 알을 낳는 것 말고는 아무 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개미 사회의 정치 형태는 다양합니다. 군주 정치, 과두 정치, 병정개미들의 삼두 정치, 민주 주의, 무정부주의 등등이 다 있습니다. 때로는 개미 시민들의 정부 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고, 도시 안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제 생각도 그렇고, 제가 속해 있는 이른바 '도이치'학파의 생각 도 그렇습니다만, 개미 세계의 조직은 뭐니뭐니 해도 몇 개의 계급 으로 이루어진 위계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개미보 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엘리트 개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 고 일개미 집단을 이끄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로젤펠트 교수나, 그가 속해 있는 소위 '이탈리아'학파는, 개미들은 근본적으로 무정 부주의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엘리트, 즉 평균보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개체들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 기 위해서 어쩌다 자발적으로 지도자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것을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말하자면 이탈리아 학파의 생각은, 어떤 개미라도 다른 개미들의 관심을 끌 만한 독창적인 생각이 있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도이치 학파의 생각은, '우두머리의 자 질'을 타고난 개미들이 언제나 다른 개미들에게 임무를 부과한다는 것이구요. -그 점에서 두 학파가 다른 건가요? -사회자께서 알고 싶어하는 게 이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은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을 때, 그러한 견해 차이가 주먹다짐으로 까지 발전한 적이 있지요. -색슨 정신과 라틴 정신 사이의 유서 깊은 경쟁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오히려 '선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후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맞붙은 싸움과 비슷합 니다. 바보는 태어날 때부터 바보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식의 논쟁 말입니다. 그게 우리가 개미 사회를 연구하 면서 해답을 구하려고 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토끼나 생쥐들을 상대로는 왜 그런 실험을 안 하십니까? -어떤 사회, 즉 수백만의 개체로 구성된 사회가 움직이는 것을 관 찰할 수 있게 하는 실험 대상으로는 개미만한 게 없지요. 개미들이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개미들을 관찰하는 것은 하나의 세 계를 관찰하는 거나 다름이 없지요. 수백만 마리의 토끼나 생쥐가 어울려 사는 도시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어요. 누군가가 팔꿈치로 니콜라를 꾹 찔렀다. "야, 니콜라, 너는 저거 듣고 있니?" 그러나 니콜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저 얼굴, 저 노란 눈, 언젠가 본적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였지? 그게 언제였지? 니콜라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마침내 생각이 났다. 책 정장하는 일을 한 다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자기가 구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텔 레비젼에서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르뒤크라는 사람이 영락없는 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니콜라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일 저 교수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건 백과 사전을 가로채려는 생각 에서였을 것이다. 백과 사전의 내용이 개미 연구에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어. 그것은 틀림없이 지하실 저 아래에 있을 것이다. 모두들 백과 사전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저 르뒤크라는 사람도, 그 빌어먹을 백과 사전이 문제였던거야. 그것을 찾으러 가 야겠어. 그러면 모든 걸 알게 될꺼야. 니콜라는 일어났다. "어디 가니?" 니콜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 개미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니콜라는 문까지 가만가만 걸어가다가 문을 나서자마자 달음박질 을 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많은 소지품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 았다. 마스코트처럼 여기는 가죽 자켓과 주머니칼과 고무 창이 달린 커다란 구두만을 챙겼다. 니콜라가 1층의 커다란 홀을 지나가는데, 감독 선생들은 니콜라에 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니콜라가 고아원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보니, 게예이톨로 기지 중에서 화산 분화구처럼 동그란 부 분만 눈에 들어온다. 꼭 두더지가 만들어놓은 흙 무더기 같다. '전 진 기지'는 일종의 작은 개미 도시로서 백 마리쯤 되는 개미들이 머 무르고 있는데,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되고 가을과 겨울에는 내내 비어 있다. 이곳에는 원시적인 개미 사회에서처럼 여왕개미도, 일개미도, 병정개미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곳에선 누구나 스스럼없이, 열병을 앓고 있는 듯한 거대 도시를 비판한다. 교통 체 증이며, 통로의 붕괴, 도시를 벌레 먹은 사과처럼 만들어버리는 비 밀 통로, 전문성을 너무 키운 나머지 이제는 사냥할 줄도 모르는 일 개미, 좁은 입구에서 평생 갇혀 지내는 눈 먼 문지기 개미 등등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103683호가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게예이톨로는 다락방 하나와 널찍한 주실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주실에 천장등과 같은 구실을 하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두 줄기의 햇살이 박제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열 개쯤 되는 사냥물을 비추고 있다. 그것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가면서 획획 소리를 낸다. 103683호가 그 알록달록한 박제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기지 에 거주하는 개미 하나가 다가와 103683호의 더듬이를 어루만지면서 그 화려한 동물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개미들이 갖가지 꾀를 써서 잡은 것이다. 그 동물들은 개미산으로 덮여 있다. 개미산은 시체를 보전하는 데도 쓰이는 것이다. 가지런하게 줄을 맞추어 늘어놓은 사냥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 비란 나비는 다 모아놓았고, 크기와 생김새와 빛깔이 가지각색인 곤 충들을 모아놓았다. 그런데 잘 알려진 동물 가운데 수집 품목에 들 지 않은 것이 있다. 여왕 흰개미이다. 이웃 흰개미들과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103683호가 묻는다. 기지 의 개미가 더듬이를 세우는 것으로 보아 무척 놀라는 눈치다. 위턱 을 가볍게 움직이고 있던 그 개미가 움직임을 멈추고 무거운 침묵에 빠져든다. '흰개미 말인가?' 기지 개미의 더듬이가 아래로 처진다. 무슨 페로몬을 내서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또한 설명을 하고자 해도 그럴 겨를이 없다. 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썰던 중이었다. 벌써 시간을 꽤 허비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그 개미가 몸을 돌려 꽁무니를 빼려 한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103683호가 아니다. 기지 개미는 이제 완전히 겁을 먹은 눈치다. 그의 더듬이가 가볍 게 떨린다. 흰개미라는 말만 나와도 어떤 끈찍한 일이 떠오르는 모 양이다. 흰개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 하는 듯하다. 그가 한창 술 잔치를 벌이고 있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이 있 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 일개미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긴 사슬 모양으로 둘러서서, 각 자 앞에 있는 개미의 꽁무니를 빨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이미 각자 의 갈무리 주머니에, 꽃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득 채워놓았던 것이다. 그 기지에 배치된 다섯 마리의 사냥 개미가 꽤 요란한 소리를 내 며 들어온다. 사냥 개미들이 애벌레 한 마리를 내민다. '이걸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이놈에게서 꿀이 나온다!' 그 새로운 소식을 전한 사냥 개미가 더듬이 끝으로 애벌레를 톡톡 건드린다 그런 다음 애벌레 앞에 잎새 하나를 놓아둔다. 애벌레가 사냥 개미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헛일이다. 사냥 개미는 애 벌레의 옆구리를 발톱으로 그러쥐고 몸을 돌리더니 애벌레의 꽁무니 를 핥는다. 이윽고 애벌레의 꽁무니에서 끈끈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모두가 그 사냥 개미의 공로를 치하한다. 개미들은 생전 처음 보 는 분비꿀을 위턱에서 위턱으로 돌려가며 맛을 본다. 진딧물의 분비 꿀과는 맛이 다르다. 그보다 더 기름기가 많고 뒷맛이 나뭇진 맛처럼 진하다. 103683호가 그 끈끈한 액체를 맛보고 있는데, 더듬이 하 나가 그의 머리를 스친다. '자네, 흰개미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듯한데.' 누가 그런 페로몬을 발했는가 하고 돌아보니, 아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개미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 개미의 딱지에는 위턱에 긁힌 상처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103683호는 동의의 표 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그 개미의 이름은 병정개미 4000호이다. 머리가 나뭇잎처럼 납작 하고 눈이 작다. 그 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떨림이 많아서 술 냄새 에 금방 묻혀버린다. 그래서 굳이 밀폐된 곳이나 다름없는 이 작은 구멍 안에서 대화를 나누려 했던 것이다. '걱정 말게. 여기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네. 이 구멍이 내 방일세.' 103683호는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청한다. 그 개미가 더듬이를 벌린다. '왜 그걸 알고 싶어하는가? 자넨 도마뱀 사냥을 하러 온 게 아니던가?' 103683호는 그 늙은 비생식 개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하 기로 하고, 라숄라캉 병정개미들이 불가사의한 비밀 무기에 공격 당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엔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2의 적인 동쪽 흰개 미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는 것 등등. 늙은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구부리며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런 사 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개미가 103683호를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질문을 던진다. '자네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도 그 비밀 무기 때문인가?' 젊은 병정개미는 그건 그런 게 아니라, 라숄라캉을 수복하던 '개 양귀비' 전투에서 잃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4000호가 반색을 한다. 자기도 그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다! '몇 군단에 있었는가?' '15군단에 있었다. 자네는?' '3군단!' 마지막 공격 때 15군단은 왼쪽 날개에서 싸웠고, 3군단은 오른쪽 날개에서 싸웠다. 두 전우가 몇 가지 일들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 눈다. 전투를 겪고 나면 언제나 소중한 교훈들을 많이 얻게 마련이 다. 4000호가 전투의 초동 단계에서 난쟁이개미들이 날파리 용병을 전령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것도 그런 교훈 중의 하나이다. 원 거리 통신에는 그런 방식이 재래적인 '파발 개미'보다 훨씬 유리하 다는 것을 4000호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103683호는 진심으로 그 개 미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 서둘러 자기가 처음 꺼냈던 화제로 돌아간다. '왜 다들 흰개미 얘기를 꺼리는가?' 늙은 병정개미가 다가온다. 둘이서 머리를 맞댄다. '이곳에서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늙은 병정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이곳에 뭔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아주 이상한 일, 아주 이상한 일....' 그 말이 벽에 부딪혀 냄새의 메아리로 되울린다. 4000호의 설명이 이어진다. 얼마 전부터 동쪽 도시의 흰개미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흰개미 첩자들이 사테이 쪽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잠입하곤 했다. 불개미 쪽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첩자들을 그럭저럭 다스릴 수 있었 다. 그러더니 이제는 첩자들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공격해 오는 적이 성가시다가도, 막상 그 적이 사라지면 더 불안 해지는 법이다. 흰개미 첩자들과 사소한 접전을 벌이는 일마저 없어 지자, 이번에는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첩보원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첫번째 첩보 분대가 그곳으로 떠났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분대가 뒤를 이었으나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혹 자는 아주 탐욕스러운 도마뱀이나 고슴도치에 당했을 것으로 생각하 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동물들의 공격을 받았다 면 적어도 한 마리는 상처를 입은 채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 데 파견된 병정개미들은 마술의 힘에 의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 103683호가 페로몬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늙은 개미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차례의 파견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게예이톨로의 병정개미 들은 마지막 모험을 한 번 더 하기로, 중무장한 병정개미 500마리로 소규모 군단을 만들어 파견했다. 이번에는 한 마리의 생존자가 있었 다. 그 개미는 수천 머리나 되는 거리를 기어와서는 기지에 다다르 자마자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힌 채 죽었다. 그 개미의 시체를 조사해 보았지만 상처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더듬이에는 전투를 겪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죽음이 아무 까닭 없 이 그 개미를 덮쳤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왜 다들 동쪽 흰개미 도시 얘기를 꺼리는지 이제 알겠는가?'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103683호는 아주 흡족해 하면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확신한다. 비밀 무기의 수 수께기를 풀려면 어쩔 수 없이 동쪽 흰개미 도시를 거쳐야 한다. 홀로그래피 인간의 두뇌와 개미 둥지는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홀로그래피 방식으로 만들어낸 입체 상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홀로그래피란 무엇인가? 레이저 광원에서 나온 간섭성 빛을 물체에 비추면 빛이 난반 사되는데 그 빛을 모은 다음 일정한 각도에서 참조광을 비추면, 빛이 겹치면서 물체의 일체 상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일체 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홀 로그래피라고 한다. 사실 그 입체 상은 어디나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성 빛이 모임으로써 다른 것, 즉 입체의 환영이라는 제3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두뇌에 있는 각각의 신경 단위, 개미 둥지에 있는 각각의 개체는 저마다 정보를 통 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의식, 즉 '입체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으려면, 신경 단위가 모이고 개체가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 이제 갓 여왕이 된 그 개미가 의식을 되찾는다. 둘러보니 강가의 자갈밭에 닿아 있다. 급한 물살에 휩쓸린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싶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구리 먹 이가 되었기가 십상이다. 날아오르고 싶지만 아직 날개가 젖어 있다. 기다려야 한 다.... 56호는 찬찬히 더듬이를 닦고 주위의 냄새를 맡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어느쪽 강기슭에 닿아 있는 것일까? 살기 힘든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56호가 1초당 진동수를 8천으로 해서 더듬이를 작동한다. 종종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들 이다. 다행히도 서쪽 강기슭 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방 개미들의 자취를 알리는 페로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56호가 세우려는 미래의 도시가 연방과 결합될 수 있으려 면 중심 도시쪽으로 좀 더 다가가야 한다. 마침내 56호가 날아오른다. 비행 방향은 서쪽이다. 당장은 그다지 멀리 날아갈 수가 없 을 것 같다. 날개 근육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6호는 초정공 비행을 하고 있다. 두 병정개미가 게예이톨로 기지의 주실로 돌아온다. 103683호가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 캐물으려고 하면서부터, 기지의 개미들은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개미를 피하듯 그를 피했다. 103683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서 벨로캉 개미들이 게예이톨로 개미들과 영양 교환을 하고 있다. 벨로캉 개 미들은 햇느타리를 맛보게 해주는 대신 야생의 애벌레에서 짜낸 분비꿀을 맛본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이러저러한 화제로 페로몬을 주고받는다. 바햐흐로 도마뱀 사냥이 화 제로 오른다. 최근에 도마뱀 세 마리가 나타나 주비주비캉의 진딧물 떼와 그것들을 돌보 던 목축 개미들이 그놈들에게 모두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공포에 떨었고, 목축 개미들은 가축들을 나무가지 속에 파놓은 안전한 통로에서만 놀게 했다. 그러다가 개미산 포격 덕분에 그놈들을 쫓아버릴 수 있었다. 두 마리는 멀리 달아났는데, 상처를 입은 다른 한 마리가 여기에서 5만 머리 떨어진 어떤 바위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비주비캉 군대가 이미 그 도마뱀의 꼬리를 잘라놓았다. 따라 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놈이 다시 힘을 회복하기 전에 요절을 내야 하는 것이다. '도마뱀 꼬리는 잘리고 나면 다시 나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어떤 탐험 개미가 묻는다. 기지의 어떤 개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똑같은 꼬리가 다시 나오는 건 아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잃어 버린 것을 그 대로 되찾는 법은 없다. 새로 난 꼬리엔 등골 뼈가 없어서 훨씬 더 말랑말랑하다.' 게예이톨로의 어떤 개미가 다른 정보들을 전해 준다. 도마뱀은 기상 변화에 아주 민감 하다. 개미보다 훨씬 민감하다. 태양 에너지를 많이 축적하고 있을 때는 움직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반대로 몸이 차가워지면 모든 몸짓이 느려진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 서 내일의 공격을 계획하자. 가장 좋은 것은 날이 밝자마자 도마뱀을 공격하는 것이다. 도마뱀은 밤새 몸이 차가워져 혼수 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차가워져 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벨로캉 개미 하나가 불쑥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러자 기지의 사냥 개미 하나가 반박한다. '난쟁이개미들이 추위를 막을 때 사용하는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꿀과 술을 잔뜩 먹고, 열이 몸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가지 않도록 끈 끈물을 딱지에 바르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103683호의 더듬이가 그 얘기를 받아들인다. 103683호는 흰개 미 도시의 수수께끼와 늙은 병정개미가 들려준 의문투성이의 실종 사건을 생각하고 있다. 기지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났던 게예이톨로 개미가 다시 그에게 다가온다. 사냥 노획물 을 그에게 보여주었고 흰개미들에 대한 언급을 마다했던 그 개미이다. '4000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103683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것을 못 들은 셈쳐라. 시체와 대화한 거나 다름없다. 그는 며칠 전에 맵시벌에 쏘였다....' 맵시벌! 103683호가 전율을 느낀다. 맵시벌은 기다란 산란관을 가진 벌로서 밤에 개미 둥지를 뚫고 들어와 개미의 따뜻한 몸에 내려 앉아 개미 몸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알을 깐 다. 맵시벌은 또 개미 애벌레를 가장 못살게 구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주사기같은 산 란관이 천장을 뚫고 들어와서는, 개미 애벌레의 보드라운 살을 더듬더듬 찾아서 거기에 알 을 깐다. 처음에는 맵시벌의 알들이 개미 몸 속에서 자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알들이 탐욕스런 애벌레로 변하면서 살아 있는 개미를 몸안에서 갉아먹는다. 아니나다를까. 그날 밤 꿈 속에서 103683호는 자기에게 알을 까려고 덤벼드는 맵시벌의 끔찍한 산란관에 쫓겨다녔다. 현관문의 비밀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니콜라는 자기 열쇠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경 찰이 붙여놓은 봉쇄 표지를 뜯는 것만으로 쉽사리 집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소방대원 들이 사라진 뒤로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지하실 문도 활짝 열린 채 그대로였다. 손전등이 없었지만 니콜라는 낙심하지 않고, 대신 횃불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탁자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그 끝을 구긴 종이로 빽빽하게 둘러싼 다음 불을 붙였다. 그러자 별 까 탈 없이 나무에 불이 붙었다. 불꽃은 작았지만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바람이 불 어도 좀체 꺼지지 않았다. 니콜라가 횃불을 다 만들자 이내 나선 계단으로 내려섰다. 한 손에는 횃불을 또 한 손 에는 주머니칼을 들고 있었다. 니콜라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니콜 라는 스스로 영웅의 자질이 있다고 믿었다. 니콜라가 다시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울퉁불퉁한 둥근 천장 아래에서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불러보기도 하고 힘을 얻기 위해 떨리는 소리를 내 지르기도 했다. 니콜라의 걸음이 아주 당당해졌다. 니콜라는 의식에 제동을 걸 사이도 없 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날아가듯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니콜라 앞에 돌연 문이 하나 나타났다. 니콜라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두 무리의 쥐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가, 불빛에 둘러싸인 니콜라가 고함을 지르며 나타나자 줄행랑을 놓았다. 늙은 쥐들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얼마 전부터 '커다란 것들'이 자꾸 그곳을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새끼 밴 암컷들의 둥지에 불을 지르러 온 건 아닐까? 제발 그런 게 아니어야 할텐데.... 니콜라는 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내려갔다. 여전히 계단이 이 어졌고 천장에 새김글도 나타났다. 그러나 니콜라는 그 새김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파닥파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박쥐 한 마리가 니 콜라의 머리로 덤벼들었다. 소름이 끼쳐왔다. 니콜라가 박쥐를 떨쳐내려고 횃불을 들이댔 다. 그러나 자기 머리털만 몇 가닥 태웠을 뿐이었다.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내달 리기 시작했다. 박쥐는 모자처럼 머리 위에 달라 붙어 있다가, 니콜라 머리에서 약간의 피를 뽑아낸 다음에야 떨어졌다. 공포에 짓눌린 니콜라는 이제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숨결이 거칠고 심장과 관자놀이 가 끊어질 듯했다. 니콜라는 갑자기 벽에 부딪혀 넘어졌따. 니콜라는 이내 다시 일어났다. 횃불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니콜라가 불꽃을 앞으로 내밀었다. 확실히 벽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끌어들인 콘크리트 판과 강철판으로 만들어진 벽임 에 틀림없었다. 시멘트로 된 이음매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눈에 띄었 다. "아빠! 엄마! 거기 계시면 대답하세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이 메아리만 어지럽게 되울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목표에 가까이 왔음에 틀림없다. 니콜라가 생각하기에 그 벽은 빙그르 도는 벽 일 것 같았다. 문이 없는 데다가, 그런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 을 한 것이었다. 벽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마침내 니콜라는 다음과 같은 새김글을 찾아냈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그 새김글 바로 위에는 전화기 번호판 같은 작은 글자판이 붙어 있었다. 숫자가 아닌 문자가 들어 있는 글자판이었다. 스물네 개의문자가 들어 있었다. 문제를 풀어서 답이 나 오면, 글자판의 누름단추를 하나하나 눌러 그 답의 단어나 문장을 조합하도록 되어 있 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니콜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니콜라는 자기가 소리를 쳐놓고도 깜짝 놀랐다. 자기도 모 르는 사이에 그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니콜라는 글자판을 누를 엄두를 못 내고 한참 동안 답을 열심히 찾았다. 그러는 사이 니 콜라는 기이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갖가지 생각을 다 떨쳐버리게 하는 깊은 침묵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침묵의 힘에 이끌려 니콜라는 여덟 개의 문자를 잇달 아 눌렀다. 기계 장치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이 돌아갔다! 그것을 보고 흥분한 니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벽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 서 술에 바람이 일면서 몽당이 남아 있던 횃불이 꺼져버렸다. 빛 한 줄기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 갇히자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니콜라는 다시 나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벽의 이쪽에는 암호 글자판이 없었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니콜라는 콘크리트판과 강철판에 기대어 손톱을 잘근 거리고 있었다. 니콜라의 아버지가 철저하게 작업을 해놓은 것이었다. 니콜라의 아버지는 유능한 자물쇠장이였던 것이다. 곤충의 청결함 파리보다 더 청결한 게 무엇이 있을까? 파리는 끊임없이 제 몸을 씻는다. 그것은 다른 개체에 대한 의무 때문이 아니라 제 스스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더듬이와 낱눈 들이 티 하나 없이 청결하지 않으면, 파리는 멀리 있는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자 기를 죽이려고 덮쳐오는 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 곤충의 세계에서 청결은 생존에 꼭 필요 한 요건 가운데 하나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날, 대중 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퐁텐블로, 저주받은 지하실에 또 하나의 실종 사건! 웰즈가의 외아들 증발.... 경찰 속수 무책.' 거미가 고사리 꼭대기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주 높은 곳이다. 거미는 거미줄 액을 한 방울 분비해서 잎새에 바르고는 가지 끝으로 나아가서 허공으로 뛰 어내린다. 거미가 떨어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거미는 땅에 닿기 직전까지 줄에 매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줄이 끊어져 몸통이 물렁 열매처럼 터져버릴 뻔한 적 도 있었다. 많은 동료들이 이미 사고를 당해 등딱지가 부서졌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치 면서 줄이 튼튼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거미는 줄에 매달린 채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여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다리를 쭉 뻗어 다른 잎새 위에 내려앉는다. 그곳이 그 거미가 만들려는 그물 의 두 번째 버팀대가 되어 줄 지점이다. 거미는 그 잎새에 거미줄의 끝을 붙인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처지게 해서 붙인다. 왼쪽에 줄기가 하나 보인다. 거미가 달려가서 그 줄기로 기어오른다. 다시 몇 차례 펄쩍펄쩍 뛰면서 몇 개의 가지와 거미줄을 연결한다. 드디어 테두리 줄이 만들어졌다. 바람과 먹이의 무게를 지탱해 줄 버팀줄이다. 전체 모습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거미줄은 피브로인이라는 섬유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피부로 인이 질기고 방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개미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었 을 때 지름 2미크론의 실을 7백 미터나 뽑아낼 수 있다. 그 실은 같은 굵기의 나일론과 맞먹을 정도로 질기며 탄력성은 나일론의 세 배이다. 거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일곱 개의 분비샘에서 각각 다른 실을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즉 그물의 테두리 줄을 만들기 위한 실, 퇴각줄을 만들기 위한 실, 그물 가운뎃줄을 만들 기 위한 실, 신속하게 먹이를 잡는데 쓰이는 끈끈물이 묻어 있는 실, 알을 보호하기 위한 실,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한 실, 먹이를 감싸기 위한 실 등이 있다. 거미가 뽑아내는 실은, 알고 보면 개미의 페로몬과 마찬가지로 호르몬의 연장선 위에 있다. 즉, 거미의 실은 호르몬이 실 모양으로 발전한 것이고, 개미의 페로몬은 호르몬이 기화하기 쉬운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거미가 퇴각 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올라선다. 어떤 위험이 나타나면 거미는 그 줄에 매달려 뛰어내릴 것이다. 헛된 노력을 들이지 않고 위험을 모면하는 방법이다. 그 거미는 숱하게 목숨을 지켜왔다. 그 일이 끝나자 거미는 팔각형 그물 안에 네 개의 실을 엇건다. 수억년 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몸짓이다.... 그물이 제법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오늘은 마른 실로 그물을 짤 생각이다. 끈끈물 묻은 실은 먹이를 잡는 데는 훨씬 효과적 이지만 너무 쉽게 끊어지는 게 흠이다. 갖가지 낙엽 부스러기들이 날아와 달라붙기 때문 이다. 마른 실은 먹이를 붙잡는 힘은 약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밤이 될 때까지는 버틸 것이 다. 대들보 실을 놓고 나자, 거미는 방사사 열 개를 덧붙이고 그물 가운데 나선사를 두름으 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나선사를 두를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거미는 마른 실이 걸려 있 는 가지에서 나와 방사사 사이를 건너뛰면서 되도록 천천히 그물 가운데로 나선사를 돌러 나간다. 언제나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간다. 거미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긴 거미 그물은 없다. 사람들의 지문이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거미에겐 이제 그물코를 촘촘하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물의 한 가운데에 다다르자 거미는 실을 엮은 자기 작품이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흔들어본다. 그 다음엔 방사사마다 성큼성큼 올라가서 여덟 개의 다리로 흔들어본다. 그렇게 흔들어도 끄떡없다. 이 지역에 있는 거미의 대부분은 75:12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다시 말하면, 방사사 12개에 나선사를 75바퀴 둘러 안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거미 는 섬세한 레이스와도 같은, 95:10 방식의 그물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눈에 더 잘 띈다는 약점은 있지만 더 튼튼하다는 강점도 있다. 마른 실로 그물을 짤 때는 실을 아끼지 말아 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이 왔다가듯 곤충들이 걸리지 않고 빠져나가 버릴 것이 다. 거미는 시간이 꽤 걸리는 그 일을 하느라고 기력이 다 빠졌다. 거미는 당장 뭔가를 잡 아먹어야 한다. 그건 하나의 악순환이다. 그물을 짓느라고 힘을 다 빼고는, 그 그물로 먹 이를 잡아 허기를 메운다. 대들보 실 위에 스물네 개의 발톱을 올려놓고 잎새 아래에 거미가 숨어서 기다린다. 그물이 마이크 진동판처럼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덕분에, 거미는 눈이 여덟 개나 되면서도 눈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공간을 지각하며, 다시 사이에 극히 미세한 공기의 파문이 일어도그것을 감지한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8내지 10머리 떨어진 곳에서 꿀벌이 맴돌고 있다. 꽃밭의 위치 를 제 둥지의 꿀벌에게 가리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물이 가볍게 떨고 있다. 잠자리가 다가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잠자리는 맛이 좋다. 그러나 그 잠자리가 날고 있는 방향이 그물 쪽이 아니라서 거미의 먹 이가 되어주지는 않을 듯하다. 뭔가가 묵직하게 와닿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그물 위에 뛰어내린 것이다. 남이 해놓은 일을 가로채려는 도둑 거미다! 그물 주인은 먹이가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그 도둑 거미를 쫓아낸다. 바로 그때, 왼쪽 앞다리에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동쪽으로부터파리 같은 것이 다가오 고 있다. 그다지 빨리 날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곤충이 비행 방향을 바꾸지만 않는다 면 그물에 걸려 들 것 같다. 찰딱! 그 곤충이 달라붙었다. 날개 달린 개미다.... 거미에게는 이름이 없다. 독립 생활을 하는 탓에 종족들끼리 서로를 구별해야 할 필요 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미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그 거미가 더 젊었을 때는 너무 자 발 없이 굴다가 먹이를 놓친 적이 많았다. 자기 그물에 걸린 곤충들이 모두 죽는 줄만 알 았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물에 걸린 곤충 중에서 50퍼센트만 죽는다. 모든 것은 시간이 결정한다. 참고 기다리면 사냥물이 미쳐 날뛰면서 스스로 제 몸을 옭아맨다. 거미 세계의 철학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이런 것이다. '최상의 병법은 적이 제풀에 쓰러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 거미는 자기 먹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다가간다. 여왕개미다. 벨로캉이라는 서쪽 불개미 제국의 한 여왕개미다.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제국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다. 수백만이 함께 모여 살면서 ' 서로 의존하기'때문에 이제 그들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된 듯하다. 거미가 생각하기에 그런 생존 방식은 별로 이로울게 없다. 진보도 없을 것 같다. 이 개미는 벨로캉 제국의 여왕개미 가운데 하나이다. 그물에 걸린 개미를 살려두면, 그 제국의 일부가 될 도시를 또 만들 것이다. 그 다루기 힘든 침입자들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 이다. 거미는 개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어머미가 벨로캉 빨강 천막개미 떼에 쫓기 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거미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먹이를 바라본다. 먹이는 아직 버둥거리고 있다. 어리석은 곤충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해롭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날개 달 린 개미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그물에 옭매인다. 그 와중에 그물이 망가져 거미를 언짢게 한다. 성이 나서 버둥거리던 56호는 절망에 빠진다. 이제는 거의 움직일수가 없다. 이미 몸에 는 가는 실이 칭칭 감겨 있고 움직일 때마다 감긴 것이 점점 두터워진다. 산전 수전을 다 겪은 56호이건만 여기에서는 이렇게 티미하게 당하고 있다. 하얀 고치 안에서 태어나 이제 거미줄이 만든 하얀 고치 안에서 죽게 될 판이다. 거미는 다시 다가와 지나는 길에 그물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살펴 본다. 56호는 오렌지 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동물을 이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그 동물의 머리 위쪽에 빙 둘러가며 여덟 개의 눈이 달려 있다. 저런 동물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자 기가 먹이가 될 차례이다.... 그 자가 위에서 실을 뱉어내려고 한다! 거미는 먹이를 지나치게 칭칭 감는 법이 없다. 독이 든 실을 두번 뱉어서 죽이지 않고 그냥 겁만 준다. 사실 거미류는 그물에 걸린 먹이를 바로 죽이지 않는다. 거미류는 살아 있는 고기를 먹기 때문에, 사냥물을 죽이기보다는 마취 효과가 있는 독으로 혼절시킨다 음, 조금씩 갉아먹고 싶을 때만 깨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미류는 아주 신선한 고 기를 실로 싸서 감춰놓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 일 동안 신선한 먹이를 유지할 수 있다. 56호도 그런 습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당하는 것은 지금 죽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몸이 한 부분씩 차례차례 잘려나갈 것이다. 한 번 깨어날 때마다 거미가 몸의 한 부분을 잘라먹고 다시 마취를 시킬 것이다. 매번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침매 몸의 중요한 기관이 뽑히고 나서야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게 낫다! 거미의 발톱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56호는 공포에서 벗어 나기 위해 심장 박동을 늦출 채비를 한다. 바로 그때 하루살이 한 마리가 그물에 부딪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거미줄이 하루 살이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린다. 그 하루살이는 겨우 몇 분 전에 태어났을 것이고, 거미 그물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몇 시간 후면 수명이 다 되어 죽을 터였다. 하루뿐인 삶이 하 루살이의 삶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허비하지 않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삶이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게 될까? 애벌레로 2년을 살고 나면 하루살이는 바로 자기 재생산을 하기 위해 암컷을 찾아 떠 난다. 자식을 통해 불멸을 누리려는 덧없는 노력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삶을 하 루살이는 교미의 상대를 찾는데 바친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먹거나 쉴 생각을 안 하고 상 대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의 천적은 '시간'이다. 1초, 1초가 하루살이의 적이다. 거미가 무섭다 해도 '시간' 그 자체에 비하면, 단지 시간을 잠복시키는 요인일 뿐 온전한 의미에서의 적은 아니다. 거미 그물에 걸린 하루살이는 제 몸 속에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 몇 시간 후면 하루살이는 늙어버릴 것이다. 이제 그 하루살이에게는 희망이 없다. 태어나서 아무것 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참담하게 실패한 삶이다. 하루살이가?a 발버둥친다. 곤충들이 거미 그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이유는, 움직이 면 움직일수록 점점 그물에 옭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 잡아드쇼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다가가서 보조 실을 몇 바퀴 더 두른다. 이제 좋은 먹이가 두 개 다. 그 먹이들이 내일 두 번째 그물을 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제공해 줄 것이다. 거미가 다시 자기 희생물을 잠재우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다시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영리한 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떨림이다. 팁 팁 팁팁팁 팁 팁팁, 암거미다! 암거미가 실 하나를 타고 다가오면서 실을 두드려 신호를 보낸다. '나는 네 거야. 난 네 먹이를 훔치러 온 게 아니야.' 그렇게 요염하게 구는 것을 수거미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팁 팁팁팁. 아, 수거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암컷을 향해 달려간다. 암컷은 네 차례 허물을 벗은 어린 거미다. 그에 비해 수거미는 벌써 열두 차례나 허물을 벗었다. 그럼에도 암컷이 세 배는 더 크다. 하지만 수거미는 커다란 암컷을 좋아한다. 수거미는 그 들에게 곧 새로운 힘을 주게 될 먹이들을 암컷에게 보여준다. 두 거미가 교미를 시작한다. 거미의 교미는 꽤 복잡하다. 수컷은 음경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쌍열박이 총처럼 생긴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수거미가 서둘러 과녁이 될 만한 작 은 그물을 만들고 거기에 제 생식 세포를 뿌린다. 거기에 다리 하나를 담가 적신 다음 암 컷의 생식기에 집어넣는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수거미는 극도의 흥분상태를 맞는다.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암컷이 갑자기 수컷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와작 와작 씹어먹는다. 그렇게까지 된 마당에 수컷을 통째로 먹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게다. 그렇게 수컷을 해치우고도 여전히 암컷은 허기를 느낀다. 암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달려들어 하루살이의 삶을 더 짧게 만들어 버린다. 암거미가 이제는 여왕개미 쪽으로 몸 을 돌린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물릴 차례가 되었음을 알고 겁에 질려 다리를 달달 떤다. 56호는 정말 운이 좋다. 지평선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로운 동물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 북쪽으로 올라온 남쪽 출신의 한 곤충이다. 개미와 마찬가지로 곤충이기는 하지만 아주 커다란 곤충이다. 뿔풍뎅이라고도 하고 뿔쇠똥구리라고도 한다. 그가 거미 그 물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 실을 끈끈이처럼 길게 늘여서 끊어버린다. 95:10 방식의 그물 은 정말 질기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비단 레이스는 올올이 뜯겨 넝마쪽이 되어버린다. 암거미는 벌써 제 퇴각 줄에 매달려 뛰어내린다. 하얀 굴레에서 벗어난 여왕개미가 땅바닥에서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다. 다시 날아오를 힘이 없다. 그런데 그 암거미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암거미는 어떤 가지로 기어올라가더 니 실을 뽑아 알 낳을 집을 만든다. 수십 개의 알을 깨고 나올 거미 애벌레들은 나오자 마자 저희들의 어미를 잡아 먹을 것이다. 그렇듯 거미 세계에서는 은혜라는 것을 모른다. "빌솅!" 그는 수화기가 사람을 쏘는 벌레라도 되는 양 재빨리 멀리 떼어 놓았다. 전화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상관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여보세요?" "내가 명령을 내렸는데 당신 아무 일도 안 했어요.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온 도 시 사람들이 다 자하실로 사라질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빌솅, 당신 보아하니 그저 쉴 생 각만 하고 있군요! 하지만 난 게으름뱅이는 딱 질색이예요! 48시간 내에 이 사건을 해결 하세요. 안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예요." "하지만 국장님...." "그놈의 '하지만 국장님' 소리는 듣기도 싫어요! 당신 부하들한테는 내가 지시를 해놓 았으니까 내일 아침에 그들하고 내려가기만 하면 돼요, 필요한 장비는 다 현장에 있을 거 예요. 이제 그놈의 엉덩이는 그만 뭉개고 일어나세요!" 빌솅은 울화통이 터졌다. 손이 떨렸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부랑자가 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는 아직 그런 것을 겪을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의 한쪽에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갈망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또 한쪽에는 남의 의지에 따라 살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마음이 싸우는 와중에 궤양 이 생겨났다. 위궤양이었다. 질서에 대한 갈망이 자유를 향한 욕망을 눌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한 무리의 사냥개미들이 바위 뒤에 숨어서 도마뱀을 살피고 있다. 도마뱀의 길이는 60머리(18센티미터)는 족히 된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노란 바탕에 검 은 반점이 박힌 울퉁불퉁한 등딱지는 무시무시하고 징그럽다. 103683호에게는 그 검은 반 점이 도마뱀에게 희생된 온갖 동물들의 피가 튀어 얼룩진 것처럼 느껴진다. 예상했던 대로 그 동물은 추위 때문에 둔해져 있다. 걸음이 느릿 느릿하다. 마치 발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다. 해가 막 떠오르려 할 즈음, 페로몬 하나가 발산된다. '저놈을 쳐라!' 도마뱀은 한 떼의 새카맣고 작은 것들이 자기에게 호전적으로 덤벼드는 것을 보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불그스름한 주둥이를 벌린다. 그 주둥이 안에서 날랜 혀가 춤을 추며 나오더니 가까이 다가온 개미들을 후려치고 끈끈 물로 붙잡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그러고는 가볍게 트림을 한 번 하고 쏜살같이 사라진 다. 서른 마리쯤의 동료를 잃은 사냥 개미들이 숨을 죽인 채 멍하니 있다. 추위 때문에 동작이 둔할 거라더니 도마뱀은 힘이 철철 넘치지 않은가! 저런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개미들 사이에서 나온다. 겁이라고는 모르는 103683호도 그런 얘기를 먼저 꺼낸 개미 가운데 하나였다. 도마뱀은 난공 불락의 요새처럼 보인다. 도마뱀의 가죽은 위턱이나 개미산으로는 공격할 수 없는 갑옷이다. 덩치도 너무 큰 데다가 기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빠른 걸 보면 개미 들은 따라잡기 어려운 우월함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미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작은 이리들이 몰려가듯이 그들은 그 괴물의 족적 을 쫓아 달려간다. 고사리 덤불 아래를 달려가면서 그들은 살기 어린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 서슬에 겁먹는 것은 민달팽이들뿐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개미들 스스로에게는 힘을 주 고 자신감을 준다. 수천 머리 떨어진 서쪽에, 가문비나무 껍데기에 붙어 있는 도마뱀이 보인다. 아마도 방금 식사로 먹은 개미들을 소화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공격해야 한다! 늑장을 부리면 부릴수록 저놈이 힘을 더 얻을 것이다! 추울 때도 날쌘는데, 태양 에너지를 흠뻑 받으면 더 힘이 세어질 것이다. 더듬이를 맞대고 토론을 한 다. 즉석에서 전술을 짜야 한다. 하나의 전술이 실행에 옮겨진다. 병정개미들이 나뭇가지 에서 그 동물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개미들은 눈꺼풀을 물어뜯어서 도마뱀이 눈을 못 뜨게 하고는 콧구멍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첫 특공대는 실패하고 만다. 화가 난 도마뱀이 발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떨어지는 개미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두 번째 돌격대가 달려간다. 도마뱀의 혀가 미치는 지점까지 거의 다가가서 개미들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몽당이로 남아 있는 꼬리 위로 사납게 덤벼든다. 어머니 말씀마따나, '어떤 적이든 약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로 지 그 약한 부분만을 공격하라.' 개미들은 꼬리가 잘려나간 부분의 상처를 찾아 거기를 개미산으로 지지고 도마뱀의 몸 속으로 들어가 창자를 공격한다. 도마뱀은 벌렁 자빠지기도 하고, 뒷발로 달리기도 하고, 앞발로 제 배를 두드리기도 한다. 개미들이 몸 속 곳곳을 갉아먹고 있다. 그 틈을 타서 또 한 무리의 개미들이 마침내 콧구멍에 들어가서 뜨거운 개미산으로 구 멍을 넓히면서 파고들어간다. 그 바로 위에서는 개미들인 눈을 공격한다. 개미들이 물렁물렁한 눈알을 터뜨린다. 그러 나 눈구멍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시신경 구멍이 너무 좁아서 그 구멍을 통해서 뇌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눈 구멍에 있던 개미들은 이미 콧구멍 안으로 깊이 들어간 동료들을 뒤쫓아간다. 도마뱀은 몸을 비비꼬면서 목을 찌르고 있는 개미들을 죽이려고 주둥이 안에 발을 집 어넣는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허파의 한 쪽 구석에서 4000호는 젊은 동료 103683호를 만났다. 안이 캄캄한데다가 비생식 개미들은 적외선 홑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더듬이 끝을 연결한다. '자, 동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틈을 이용해서 동쪽 흰개미 도시쪽으로 떠나세. 동료 들은 우리가 전투중에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처음에 들어왔던 도마뱀의 몽당이 꼬리 쪽으로 빠져나온다. 꼬리에서는 이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내일이면 그 도마뱀은 개미들이 먹을 수 있는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뉠 것이다. 그 고깃 조각 가운데 일부는 흙에 싸여서 주비주비캉으로 옮겨질 것이고 일부는 벨로캉에도 갈 것이다. 그러면 개미들은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이 사냥을 묘사하리라. 개미 문명은 힘을 더 키워야 한다. 도마뱀을 정복한 일은 개미 문명에 자신감을 준 특별한 사건이다. 이종 교배 개미 둥지에 다른 종이 섞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미는 저마다 자 기 도시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그렇게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흙을 채운 어항에 불개미 100마리와 검은 목축 개미 100마리를 함께 넣으 면 어떻게 될까? 두 종 모두에 알 낳는 여왕 개미 한 마리씩을 포함시켜서 말이다. 그러면 우선 몇 차례의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길 정도의 충돌은 아니다. 그 후에는 더듬이들을 맞대고 긴 토론을 벌이고 나서 함께 개미 둥지를 건설해 나가기 시작 한다. 어떤 통로는 불개미의 체구에 알맞게 되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목축 개미에 알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과 교배를 해서 서로 섞인다. 이상 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개미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어떤 종이 도시 안에 게토와 같은 특별 보호 구역을 만들어 다른 종을 격리시키는 일 이 없다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동쪽 영토로 가는 길은 아직 말끔히 닦여 있지 않다. 흰개미들과의 전쟁 때문에 이 지 역에서는 평상적인 일들을 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4000호와 103683호는 수많은 접전이 벌어졌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빛깔의 독나방들이 그들의 더듬이로 바로 위에서 빙빙 돈다. 그때 마다 그들은 불안을 느낀다. 한참을 더 가다가 103683호는 자기 오른쪽 발 밑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진드기 떼다. 침과 더듬이와 털과 갈고리를 갖춘 미물들이다. 그 미물들은 먼지가 많은 둥 지를 찾아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103683호의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는 진드기처럼 작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개미처럼 커다란 존재도 있는 것 이다. 4000호가 어떤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해진다. 오늘 너무 많은 고생을 한 그의 몸 안에서 맵시벌 애벌레들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벌레 들이 그 가련한 개미의 내부기관들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이대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 는 모양이다. 103683호는 그를 구하려고 갈무리 주머니 안쪽에 숨겨 두었던 로메슈제 분비꿀 몇 덩어 리를 꺼낸다. 벨로캉 지하에서 벌이던 싸움의 막바지에 103683호는 진통제로 쓰려고 로메 슈제 분비꿀을 조금 모아 두었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에 그 달 콤한 독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 끈끈한 액체를 삼키고 나자 4000호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4000호는 그것을 더 달라고 한다. 103683호가 4000호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다. 그는 싸움을 해 서라도 동료의 갈무리 주머니에서 그 귀중한 약을 빼앗아낼 기세이다. 뛰어오르며 103683호를 때리려던 4000호가 분화구처럼 생긴 흙구덩이로 미끄러진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구멍이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은 머리가 삽처럼 생겨서 그걸 가지고 절구통 같은 구멍을 팔 수 있다. 일단 구멍을 파놓고 나면 그 안에 숨어서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다. 4000호는 뒤늦게서야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는다. 개미는 원래 가볍기 때문에 그런 곤경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다. 그렇지만 개미가 미처 구멍에서 올라오기 전에, 구멍 아래쪽에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기다란 위턱이 올라 오고 개미에게 흙을 뿌리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는 것이다. '개미 살려' 4000호는 이제 몸 속의 맵시벌이 주는 고통도 로메슈제 분비꿀을 맛본 뒤에 찾아온 금 단의 고통도 다 잊고 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개미귀신의 함정은 거미의 그물과 마찬가지 로 희생물이 겁을 먹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4000호가 구멍을 기어오르려고 버둥거릴수록 비탈이 허물어지면서 점점 바닥 쪽으로 끌 려간다. 바닥에서는 개미귀신이 계속 흙을 뿌리고 있다. 103683호는 동료를 구조하겠다고 몸을 기울여 발을 내밀다가는 자신도 빠질 염려가 있다 는 것을 재빨리 간파하고, 구조하는 데 쓸 만한 길고 튼튼한 풀줄기를 찾으러 간다. 안달이 난 늙은 개미가 강렬한 냄새를 뿜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흘러내리는 거나 다름없 는 흙 속에서 더욱 세게 발버둥을 친다. 그럴수록 내려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개미귀신 의 가위 같은 위턱들이 불과 5머리 아래에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 하게 생겼다. 구부러진 두 개의 기다란 창을 벌려놓은 듯한데, 위턱마다 수백 개의 작은 톱 니들이 뾰족뾰족하게 나 있다. 게다가 그 끝은 송곳처럼 생겨서 개미의 어떤 딱지라도 쉽 게 뚫을 수 있을 듯하다. 103683호가 다시 구멍 가장자리에 나타나 동료에게 데이지 줄기를 내민다. 빨리! 4000 호가 그 줄기를 잡으려고 발을 뻗는다. 그러나 순순히 먹이를 포기할 개미귀신이 아니다. 개미귀신은 두 개미에게 미친 듯이 흙을 끼얹는다. 개미들은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수도 없다. 개미귀신이 이번에는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개미의 딱 지에 부딪친다. 4000호가 반쯤 흙에 묻혀서 죽 미끄러진다. 103683호는 위턱 사이에 데이지 줄기를 꽉 물고 버틴다. 그는 동료가 그 줄기를 붙잡 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의 절망적인 순간에 발 하나가 흙구덩이에서 삐져나왔다. 살았다. 4000호가 마침내 죽음의 구덩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아래에서는 먹이를 놓친 개미귀신이 분노와 실망을 이기지 못하고 집게 같은 위턱을 맞 부딪치고 있다. 개미귀신이 명주잠자리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 다른 먹이가 미끄러질 때까지 저 개미귀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까? 4000호와 103683호는 서로를 닦아주고 여러 차례 영양 교환을 하면서 갈무리의 주머니 에 있는 양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메슈제 분비꿀을 메뉴에 넣지 않 았다. "안녕하세요, 빌솅 경정!" 여자가 그에게 보드라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여기 온 걸 보고 놀라는 눈친데. 하지만 사건이 오래가고 심각해지는 데다, 지사 께서 임기 말년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하시고, 또 곧 장관이 될 분이기도 하셔서 내 가 이렇게 직접 나섰어요. 밥줄 끊어질까봐 불안한 모양이지요. 자, 얼굴 좀 펴요. 농담이 에요. 당신 유머 감각도 이젠 다 죽었구만?" 늙은 형사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 앞에서 주눅들며 지내온 세 월이 15년이었다. 그 여자에게는 '하긴 그래' 가 통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려 했지만 눈길은긴 머리채 아래에 머 물러 있었다. 살구빛으로 물들인 머리채였다. 요즘에는 그게 유행이었다.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여자는 머리털이 본래 살 구빛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풍기는 진한 염색 약 냄새는 이제 완전히 그녀의 냄새가 되어버렸다. 솔랑쥬 두망. 그 여자는 폐경기를 맞으면서부터 아주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정히 늙는 게 싫으면 여성 호르몬 제를 복용하면 되었을텐데, 그 여자는 뚱뚱해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호르몬 제가 살찌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여자는 자기를 늙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들을 이를 악물고 부하들에게 떠넘겼던 것이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지하실에 내려가시려구요?" 빌솅이 물었다. "농담마세요, 빌솅! 내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내려가는 거예요. 난 여기 있겠어요. 미리 모든 걸 다 준비해 왔지요. 차가 들어 있는 보온병하고 내 워키토키 말이예요." "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벌써부터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걸 보니 겁나는 모양이지요? 말했다시피 우리는 무선으로 연결이 돼요. 어떤 위험이 느껴지면 바로 나한테 신호를 보내 세요. 그럼 내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테니까. 게다가 까다로운 임무에 필요한 최신 장비들도 가져왔으니 그걸 가지고 내려가세요. 우 리도 당신 생각 끔찍히 하고 있는 거예요. 자 봐요. 등산용 밧줄에다 총, 게다가 건장한 남자가 여섯 명이나 있잖아요." 솔랑쥬가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치안 대원들을 가리켰다. 빌솅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 다. "갈랭은 소방대원 여덟 명하고 같이 갔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었는 걸요." "그들은 무기도 없었고 워키토키도 없었잖아요! 자, 우거지상 좀 펴세요, 빌솅." 빌솅은 더 이상 왈가 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상관이랍시고 재면서 을러대는 꼴에 배알이 뒤집혔다. 솔랑쥬하고 싸우다 보면 자신이 솔량쥬가 되고 말았다. 그 여자는 꽃밭의 잡초 같았다. 그 잡초에 물들지 않고 자라는 게 상책이었다. 빌솅은 마음을 가다듬고 동굴 탐사 복장을 갖추었다. 허리에 등산용 밧줄을 두르고 워키 토키를 어깨에 걸었다. "제가 만일 다시 못 올라오거든, 제 재산을 모두 경찰 고아원에 주십시요." "바보 같은 소리 그만 하세요, 빌솅. 당신은 다시 올라올 꺼고 우리 모두 레스토랑에서 그것을 축하하게 될꺼예요." "제가 다시 못 올라올 경우를 생각해서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솔랑쥬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 애들 장난 같은 짓은 그마두세요, 빌솅!"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행한 나쁜 짓에 대해서 언젠가는 모 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젠 숫제 신비주의자가 되셨군! 빌솅,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나쁜 짓을 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아요. 당신 생각대로'착한 신'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에 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 살아서 이 존재를 활용하지 않으면 나중에 죽어서 는 활용할 길이 없어요." 솔랑쥬는 빈정거림을 얼른 멈추고 자기 부하에게 다가가 그를 닥거렸다. 고약한 냄새, 빌솅은 숨 들이쉬기를 멈추었다. 저런 냄새를 지하실 안에서도 지겹도록 맡게 되겠지. "걱정 마세요. 당신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당신은 이 사건을 해결해 낼거예요. 당 신의 죽음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갑자기 달라진 솔랑쥬의 태도가 빌솅을 어린애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이제 흉기를 들고 반항하다가 그걸 빼앗기자 풀이 죽은 채 허세로 볼멘소리를 중얼 거리는 사내아이나 다름없었다. "물론이죠. 내가 죽으면 '친히' 조사에 나선 국장님이 실패하게 되는 거지요. 국장님 이 '직접 나선'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게 되실 겁니다." "빌솅, 나를 좋아하지 않나 보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난 상관 없어요.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사랑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사 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돼요. 당신이 저 아래에서 죽는다 해 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꺼예요. 또 다른 대원들을 보내면 돼요. 당신이 나에게 정말 폐를 끼치고 싶으면 일을 끝내고 살아서 돌아오세요. 그러면 내가 당 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솔랑쥬의 머리채를 흘끗거렸다. 유행에 따라 손질한 머리 채 밑 부분이 희끗희끗하다. 그것을 보니 빌솅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치안 대원 가운데 한 명이 총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모두가 밧줄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좋아. 내려가자고." 그들은 밖에서 그들과 연락을 계속 취하기로 되어 있는 세 경찰관에게 신호를 보내고 지 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솔랑쥬 두망은 워키토키를 들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행운을 빌어요. 빨리 돌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