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개미의 날 여섯 번째 비밀 손가락들의 나라 182. 목표에 더욱 가까이 가다 103호는 허벅지 윗부분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다섯 개의 긴 손가 락들이 다가와 허벅지 살갗 위에 내려서더니 그가 샅에 닿기 전에 길을 차단한다. 긴 여정은 끝났다. 103호는 으스러질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손가락들은 마치 그와 만 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과 연 지울리캉 개미들이 옳았다. 이 손가락들은 나쁜 성품을 지닌 자 들이 아니다. 103호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뒷다리로 버티며 몸 을 곧추 세우고. 허공을 향해 그 편지를 내민다. 레티샤 웰즈는 매니큐어를 칠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손톱으 로 섬세한 핀셋을 놀리듯이 접힌 종이를 천천히 잡는다. 103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위턱을 크게 벌리고 그의 귀중한 짐을 내준다. 바로 이 놀라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많은 개미들이 죽었 다. 레티샤 웰즈는 손바닥 위에 종이를 올려놓았다. 종이의 크기는 우 표의 4분의 1정도였는데, 양면에 깨알 같은 글자들이 씌어 있었다. 글자가 너무 작아 읽을 순 없었지만, 그것이 사람의 필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개미가 우리에게 편지를 가져왔어요." 조그만 쪽지를 읽으려고 애를 쓰면서 레티샤가 말했다. 자크 멜리에스가 그의 커다란 조명 돋보기를 가져왔다. "이 돋보기로 그 편지를 해독하면 훨씬 쉬울 겁니다." 그들은 개미를 작은 병 속에 넣고 옷을 입은 후, 허리를 숙이고 돋보기로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잘 보이는군요. 판독한 단어를 적게 만년필을 줘요. 일단 적고 나서 빠진 단어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멜리에스가 말했다. 183. 백과 사전 흰개미 우연한 기회에 흰개미 전문 학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내 가 몰두해 있는 개미들에 대해 물론 관심이 가긴 하지만, 개미들의 문명은 흰개미들이 이루어놓은 문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 했다. 사실 그렇다. 흰개미들은 <완벽한 사회>를 이룬 유일한 모듬살이 곤충임에는 틀 림이 없다. 흰개미들은 절대 군주 체제의 형태로 조직되어 각 구성 원이 여왕개미를 섬기는 데 행복해 하며, 모두들 서로 이해하고 서 로 돕고, 어느 누구도 사소한 야심이나 이기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 다. <연대 의식>이란 말이 가장 강한 의미를 띠는 곳은 분명 흰개미 사회이다. 이미 2억 년 전에 최초로 도시를 세운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흰개미 사회의 그러한 성공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 다. 완벽하다는 것은 이론상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 한다. 따라서 흰개미 도시는 이의 제기, 혁명, 내분을 모르고 지낸 다. 그곳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건전한 유기체처럼 너무 잘 돌아가 기 때문에, 흰개미들은 아주 단단한 진흙으로 만든 정교한 둥지에서 그저 행복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에 비하면 개미는 훨씬 무질서한 사회 체제에서 산다. 개미들은 시행 착오를 통해서 진보하고, 그들이 시도한 모든 일에서 오류를 범하면서 발전한다. 개미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일 이 없으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개 미 군체는 그리 견실한 체제는 아닐지라도, 기상 천외한 해결책이 나타날 때까지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자멸할 위협을 무릅쓰면서가 지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사회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흰개미 보다 개미에 한층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84. 편지 해독 몇 분 동안 해독을 한 후에 멜리에스는 편지 한 통의 내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개미집 아래에 스무 명이 갇혀 있습니다. 당신들에게 이 편지를 전한 개미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 다. 그 개미가 당신들이 우리를 구하러 올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우리들 위에 화강암 너럭 바위가 있으니 망치와 곡괭이를 가지고 오 십시오. 서둘러주십시오. 조나탕 웰즈.> 레티샤 웰즈가 벌떡 일어났다. "조나탕! 조나탕 웰즈라고요! 구원을 요청한 사람이 내 사촌 조나 탕이라니!" "그를 안단 말이오?" "만나본 적은 없지만 네 사촌이에요. 시바리트 거리의 지하실로 사라져 죽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 지하실 사건 기억나요? 조 나탕이 첫번째 희생자였어요!" "살아 있기는 한데, 모두가 개미집 아래에 갇혀 있다니!" 멜리에스는 그 작은 종이 조각을 살펴보았다. 그 메시지는 바다 속에 던져진 병과 같았다. 아마도 죽음의 위기에 처해서 떨리는 손 으로 쓴 것 같았다. 개미가 이 편지를 가지고 오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는 개미들이 얼마나 더디게 이동하는지 알고 있 었다.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편지는 분명히 보통 크기의 종이에 씌어 진 뒤, 복사기를 사용해서 여러 차례 축소된 듯했다. 그렇다면 그들 이 갇혀 있는 곳은 복사기와 전기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는 말인가? "이게 사실일까요?" "개미가 이 편지를 갖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는 사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일 없잖아요?" "하지만 이 개미가 당신 아파트에 정확히 도달했다는 것은 우연이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공교롭지 않나요? 퐁텐블로 숲은 커요. 그 리고 퐁텐블로 시는 개미 쪽에서 볼 때 엄청나게 크죠.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 개미가 5층에 있는 당신의 아파트를 찾아냈다.... 이건 좀 비약이 심하지 않아요?" "그래요, 하지만 때때로 어떤 일들이 백만 번 가운데 한 번 일어 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당신은 개미집 아래에 <갇혀 있는> 그 사람들의 목숨이 개 미의 뜻에 따라 좌우 우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불가 능해요. 개미 집단은 발 뒤꿈치로 한 번 밟아 버리면 궤멸되어 버리 고 말텐데요!" "지하실 사람들이 자신들을 차단하고 있는 화강암 너럭바위에 대 해서 얘기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개미집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오? 분명 제정신이 아님에 틀림없어요. 이건 장난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시바리트 가의 지하실 사건은 하나의 불가사의였 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지하실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감쪽같이 사 라졌었어요. 지금, 문제는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에요. 꾸 물거릴 때가 아니예요. 내가 보기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자는 하나 밖에 없어요." "누구 말이오?" 그녀는 병정개미 103호가 바둥거리고 있는 유리병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저 개미가 우리를 사촌과 그의 동료들에게로 안내할 수 있다고 편지에 적혀 있잖아요." 그들은 개미를 유리병 감옥에서 석방했다. 그들의 수중엔 개미에 표시를 해놓는 데 쓸 물질이 없었다. 레티샤는 다른 개미들과 구별 하기 위해 그 개미의 머리에 붉은 매니큐어를 칠해 놓았다. "자 개미야, 가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렴!" 아무리 기다려도 개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거 아니오?" "아뇨, 더듬이가 움직여요." "그런데 왜 나아가지 않죠?" 자크 멜리에스가 손가락으로 밀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더듬이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우리를 안내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하나 뿐이에요. 이 개미와... 대화를 나누어야 해요." "맞아요. 아더 라미레의 <로제타 석>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군요." 185. 개척지 24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어디 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한다. 서로 다른 두 종족이 어 울려 이상적인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코르니 게라 아카시아가 도와주고 강물이 포식자들로부터 섬을 지켜주고 있 으니 그 일이 한층 더 순조롭다. 그러나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며 화 목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을 믿는 개미들은 거석으로 조상을 세우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모퉁이에 신을 믿는 개미들의 시체를 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흰개미들은 마르고 굵은 널 조각을 찾아서 거기에 죽치고 있다. 꿀벌들은 코르니게라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작은 벌집을 만들고 있 다. 개미들은 버섯 재배장으로 쓸 방을 만들고 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가동된다. 그런데 왜 24호는 모든 것을 질 서 정연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걸까? 각자 남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 하지 않은가. 저녁마다 공동체의 구성원인 모든 곤충들이 코르니게라 아카시아 나무의 방에 모여서 서로 자기들의 세계에 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정벌들이나 집짓는 흰개미들이 냄새로 전해 주는 이야기레 모든 곤충들이 더듬이를 기울이는 바로 그 평범한 순간들이 공동체를 끈 끈하게 결속시켜 주는 주요한 때이다. 코르니게라 공동체는 갖가지 이야기나 전설을 통해 결속력을 강화 한다. 냄새로 주고받는 영웅담들이 아주 쉽게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 나로 맺어준다. 신을 믿는 개미들의 종료는 다른 곤충들 사이에서는 단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떤 곤충도 그 종교가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하 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가지 기준이 중요할 뿐이다. 그 종교가 꿈을 꾸게 해주는가 그리고 신이라는 개념이 그들에게 꿈을 주는가 하는 것읻. 24호는 가장 아름다운 전설들을 채록할 것을 제안한다. 벨로캉의 화학 정보실의 통과 비슷한 통 안에 개미, 꿀벌, 흰개미 또는 풍뎅 이들의 전설 중에서 좋은 것들을 모아 전수하자는 것이다. 코르니게라 아카시아 나무의 현창 구멍으로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 쳐든다. 오늘 밤은 꽤 덥다. 곤충들은 해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기 로 결정한다. <<왕 흰개미가 여왕 흰개미의 산란실 주위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 면서 빙빙 돌고 있는데, 나무를 파던 흰개미들이 갑자기 나타나 살 짝수염벌레 때문에 여왕 흰개미의 성적 욕구가 식어버렸다고 알려주 더라고....> 어떤 곤충이 페로몬을 발한다. <<말벌이 나타나 침을 앞으로 내민 채 나에게 덥벼들었어. 나는 겨우 피했어....>> 또 다른 곤충들이 이야기한다. 모든 곤충들은 아스콜레인 꿀벌과 마찬가지로 지난달의 두려움으 로 떨고 있다. 하지만 주위의 노란 수선화 향기와 강기슭을 쓰다듬는 평온한 물 결이 그들을 편안하게 다독거려준다. 186. 최후의 심판 건강이 훨씬 좋아진 아더 라미레가 멜리에스와 레티샤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아더는 그들이 경찰에 자기 부부의 범죄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라미레 부인은 <알쏭달쏭 함정 퀴즈>프로에 출연 하러 가고 집에 없었다. 여기자와 경정은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새로운 사건, 즉 개미 가 그들에게 사람의 손으로 쓴 편지를 가져온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 했다. 그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라미레 씨는 즉시 그 문제의 핵심을 이해했다. 그는 흰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는 자기의 기계 <로 제타 석>을 작동시키는 걸 승낙했다. 그는 그들을 지붕 밑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몇 대의 컴퓨터를 작동시키고는 페로몬을 만들어내는 물질이 들어 있는 플라스크들에 불을 비추고 아무런 침전물도 생기지 않도록 투명한 대롱을 흔들었 다. 레티샤는 아주 신중하게 103호를 작은 유리병에서 끄집어내었고, 아더는 개미를 유리 덮개 아래에 옮겨놓았다. 두 개의 대롱이 그 덮 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개미의 페로몬을 흡수하는 대롱이었 고 다른 하나는 개미에게 인간의 메시지를 번역해 주는 인위적인 페 로몬을 전달해 주는 대롱이었다. 라미레는 조종 장치가 모여 있는 판 앞에 앉아 몇 개의 톱니바퀴 를 조정하고 몇 개의 표시등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전위차계들 을 돌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인간의 단어들을 입력시키기 만 하면 되었다. 그의 '프랑스 어-개미 어 사전'은 인간의 단어 10 만 개와 페로몬 10만 가지를 수록하고 있다. 아더는 마이크 앞에 자 리를 잡고 또박또박한 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발신:"만나서 반갑다." 그는 손가락으로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비디오 화면에 그 말이 화학식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그런 다음 그 화학식이 페로몬을 만드는 물질이 담긴 플라스크들에 전달되고, 거기에서 컴퓨터에 입 력된 조제법에 따라 분자들이 배합되면서 냄새가 만들어졌다. 각각 의 단어마다 그것에 맞는 특별한 냄새가 있었다. 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기체는 공기 펌프에 의해 대롱 속으로 들 어간 다음 개미가 들어 있는 유리 덮개 안에 다다랐다. 개미가 더듬 이를 흔들었다. 수신:<<반갑다.>> 메시지가 접수되었다. 개미의 응답 메시지를 깨끗하게 포착하기 위해 송풍기로 유리 덮 개 안에 남아 있는 불필요한 냄새를 제거했다. 개미가 다시 더듬이를 흔들었다. 페로몬이 투명한 대롱을 타고 올라와서 그것을 분자로 분해하는 분광계와 색층 분석 흡착판에 도달했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페로몬 에 대응하는 단어가 나타났다. 하나의 문장이 조금씩 컴퓨터의 화면에 나타났다. 동시에 음성합 성 장치가 그 문장을 발음했다. 모두들 개미의 메시지를 들었다. 수신:<<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당신의 페로몬을 이해하기가 어렵 다.>> 레티샤와 멜리에스는 경탄했다. 에드몽 웰즈의 기계가 정말 작동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발신:"당신은 인간과 개미 사이에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기계 안에 있다. 이 기계 덕분에 우리는 당신에게 얘기할 수 있고 당신의 페로몬을 이해할 수 있다." 수신:<<인간들? 인간들이란 뭐지? 손가락들의 일종인가?>> 분명히 그것을 놀라운 일이었다. 개미는 그들의 기계에 대해 거의 놀라지 않았다. 개미는 대수롭지 않게 페로몬을 발하고 있었고, 자 기가 <손가락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 지 했다. 그래서 대화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아 더 라미레가 마이크를 잡았다. 발신:"그렇다. 우리는 손가락들의 연장체이고, 손가락들은 우리 몽의 일부이다." 대답이 컴퓨터 위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졌다. 수신:<<우리는 당신들을 <손가락들>이라고 부른다. 나도 당신을 손가락들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어떤가?>> 발신:"당신이 원하는 대로 불러도 상관없다." 수신:<<당신은 누구인가? 리빙스턴 박사는 아닌 것 같은데....>> 세 사람 모두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개미가 어떻게 19세기에 아프 리카를 탐험했던 리빙스턴 박사를 안단 말인가? 그리고 그 당시에 아프리카 흑인들이 백인을 만나면 으레 <당신은 리빙스턴 박사이시 군요>라고 말하던 것을 흉내내어 <리빙스턴 박사는 아닌 것 같은 데....>라고 페로몬을 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처음에 그들은 번역 기계가 잘못 조정되었거나, 아니면 컴퓨터에 입력된 '프랑스 어-개미어 사전'의 기계적인 고장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전 혀 뜻밖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가진 개미 앞에 있는 것이 아 닐까 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개미들이 알고 있는 리빙스턴 박사가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발신:"아니다. 우리는 리빙스턴 박사가 아니라 세 명의 사람이다. 즉 세 손가락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이름은 아더, 레티샤, 그리 조 자크다." 수신:<<어떻게 당신들은 지중 동물의 언어를 배웠는가?>> 레티샤가 속삭였다. "개미는 어떻게 우리가 개미들의 냄새 언어를 할 줄 아는지 묻고 있어요. 저 개미들은 진정한 지중 동물은 자기들뿐이라고 믿고 있어 요." 발신:"그것은 비밀이다. 우연히 우리에게 전해졌을 뿐이다. 그런 데 당신은 누구인가?" 수신:<<103683호다. 그러나 나의 동료들은 나를 103호라고 짧게 줄여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탐험하는 병정개미 계급 출신으로 비생식 개미이다. 나는 벨로캉 왕국에서 왔다. 그곳은 개미 세계에 서 제일 큰 도시이다.>> 발신:"어떻게 해서 당신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가져왔나?" 수신:<<우리 도시 아래에 살고 있는 <손가락들>이 그 편지를 당신 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임무를 <메르쿠리우스 임무> 라고 불렀다. 나느 손가락들와 접해 본 경험이 있는 유일한 개미이 므로, 다른 개미들은 내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개미라고 생각했다. 103호는 자기가 지상의 모든 손가락들을 퇴치하도록 임무를 부여 받은 원정군의 선봉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 모두 이 시원시원하게 페로몬을 발하는 개미에게 물어볼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더 라미레가 대화의 고삐를 계속 쥐고 있 었다. 발신:"당신이 우리에게 준 편지에는 당신 도시 아레에 사람들, 아 니 손가락들이 갇혀 있고, 당신만이 우리를 그들에게 데려가서 우리 가 그들을 구하게 할 수 있다고 씌어 있다." 수신:<<틀림없이 그렇다.>> 발신:"그럼,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달라. 그러면 우리는 당신을 따라가겠다." 수신:<<안 된다.>> 발신:"어째서 안 된다는 것인가?" 수신:<<나는 우선 당신들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당신들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은 매우 놀라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개미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 가 개미들을 매우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막상 하찮은 미물에 지나 지 않는 개미가 솔직하게 <안 된다>고 대답하는 걸 듣고 보니 좀 마 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 덮개 아래에 있는 그 시커멓고 하 찮은 것이 스무 사람의 목숨을 빌미 삼아 뻔뻔스럽게 굴고 있었다. 그들이 엄지 손가락으로 한번 누르기만 하면 간단히 으스러져버릴 주제에 그들을 잘 모른다는 핑계로 돕는 걸 감히 거절하고 있는 것 이다! 발신:"왜 우리를 알고 싶어하는가?" 수신:<<당신들은 크고 힘이 세다. 그러나 당신들이 선한지 악한지 는 모르지 않는가? 나는 당신들의 종족 몇 명을 구해내는 것이 가치 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전에 당신들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이 우리 여왕 클리푸니가 믿고 있는 것처럼 괴물인지, 23호가 생각하듯 이 전지 전능한 신인지, 위험한 동물인지 영리한 동물인지, 야망스 런 종족인지, 구성원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당신들의 기술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지 따위를 알아야 한다.>> 발신:"그러면 당신은 우리 세 사람이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 주기를 원하는가?" 수신:<<내가 이해하고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들 세 명이 아니 라 당신들 종족 전체이다.>> 레티샤와 멜리에스는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시 작해야 하나? 개미에겐 고대 문명을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중세 시대, 르네상스, 세계 대전.... 어느 걸 설명해야 하지? 아더는 이 런 토론에 대해 매우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신:"그럼, 우리에게 질문을 해다오. 우리가 대답을 통해 우리 세계를 설명해 주겠다." 수신:<<그건 너무 쉬운 일일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 세계의 가 장 좋은 면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단지 우리 도시 아래에 갇혀 있는 동료들을 구할 목적으로 말이다. 그러니 보다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바란다.>> 103호의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더마저도 신실한 모습을 보 여주며 개미를 설득하기 위해서 무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 했다. 멜리에스는 화를 냈다. 레티샤 쪽으로 몸을 돌리며 그가 노기 띤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잘 됐어! 우리는 이 건방진 개미의 도움이 없더라도, 당신의 사 촌과 그의 동료들을 구해낼 수 있을거야. 아더, 퐁텐블로 숲의 지도 를 갖고 있습니까?" "그래요, 있어요." 그는 퐁텐블로 지도 한 장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퐁텐블로 숲은 만7천 헥타르에 걸쳐 퍼져 있었다. 그 숲에는 개미집이 산지 사방에 널려 있다. 어디에서 찾을까? 바르비종 옆에서, 아프르몽 바위 아래 서, 프랑샤르 늪에서, 솔 고지의 모래밭에서? 그들은 수색하는 데 수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 의 방식으로는 결코 벨로캉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얕잡아보는 개미는 안 돼." 멜리에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더 멜리에스는 개미의 입장을 변호했다. "이 개미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자기 도시로 데려가기 전에 우리 를 더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개미 말이 옳아요. 내가 개미 입장 이라도 똑같이 처신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 세계의 객관적인 모습을 개미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곰곰히 생각했다. 또 하나의 수수께끼다! 자크 멜리에스가 마침내 묘안이라도 있는 듯이 소리쳤다. "내게 생각이 있어요!" "무슨 생각인데요?" 경정의 성급한 제안에 항상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레티샤가 물었다. "텔레비젼으 이용하는 거예요. 텔레비젼을 매개로 해서 우리는 인 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전 인류의 맥박을 느낄 수 있지요. 텔레 비젼은 우리 문명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텔레비젼을 보 면, 103호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자기의 의식와 정신 속에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187. 페로몬 분야: 개미 전설(이 페로몬은 누구나 자유로이 해독할 수 있음) 기억 페로몬 번호:123 주제:전설 정보제공자:여왕 클리푸니 두 나무의 전설이 있다. 적대적인 종의 두 개미 사회가 각자 한 그루의 나무 위에 살고 있었다. 두 나무는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가지 하나가 다른 나무와 만나기 위해서 옆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그 가지는 매일 조금씩 다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적대 관계에 있는 개미들은 그 가지가 다른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적대 관계 에 있는 개미들은 그 가지가 다른 나무에 닿자마자 전쟁이 일어나리 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개미 사회도 선손을 쓰지 않 았다. 그 가지가 이웃 나무를 스치던 날, 바로 그날이 되어서야 전 쟁이 일어났다. 전투는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먼저 하면 너무 이르고, 나중에 하면 너무 늦는 법이 다. 누구나 좋은 순간이 어느 때인지를 직각으로 알게 된다. 188. 말들의 무게, 영상의 충격 그들은 역조명되는 조그만 액정 칼라 텔레비젼 앞에 103호를 옮겨 놓았다. 화면이 개미에게는 너무 크기 때문에 그들은 영상이 100분 의 1로 축소되는 렌즈를 앞에 놓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개미는 완전 한 텔레비젼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더 씨는 소리도 전달되도록 <로 제타 석>의 마이크 앞에 텔레비젼의 스피커를 연결해 놓았다. 이제 벨로캉의 탐험가는 손가락들의 텔레비젼 영상과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개미는 음악도 음향도 알아듣지 못할 테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대화와 설명의 요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03호는 손가락들의 풍습을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하여 액 체 상태의 페로몬을 한 방울 만들어낸다. 그 개미는 그런 관찰을 통 해서 인간들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아더 라미레는 텔레비젼을 켜고 되는 대로 리모컨을 눌렀다. 채널 341: <크락크락 가는 곳에 벌레 전멸, 개미....> 자크 멜리에스는 벌떡 일어나 얼른 채널을 바꿨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니! 수신:<<저것은 무엇인가??>> 103호가 묻는다. 그들은 난처해진다. 그들은 개미를 안심시키려고 애를 쓴다. 발신:"식료품 광고다! 별로 흥미로운 게 없다." 수신:<<아니, 저 불빛이 나오는 네모판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발신:"텔레비젼이다. 인간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저 있는 의사 소 통 수단이다." 수신:<<저 불은 납작하고 열기가 없는 것 같은데, 맞는가?>> 발신:"당신들도 불을 아는가?" 수신:<<물론이다. 하지만 저런 것은 아니다. 설명해 주기 바란 다!>> 아더 라미레는 개미에게 음극관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난처해 했 다. 그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려고 했다. 발신:"저것은 불이 아니다. 빛이 나고 밝지만 불은 아니고, 우리 문명의 도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추는 창이다." 수신:<<이 영상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하나?>> 발신:"이 영상들은 공기 중으로 날아다닌다." 103호는 이러한 인간의 기술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치 인간 세 계의 여러 곳에 동시에 있는 것처럼 인간 세계를 보게 될 것임을 깨 닫는다. 채널 1432. 뉴스가 나온다. 기관총이 따르륵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시라크 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를 만들어냈습....> 아더가 재빨리 채널을 바꾼다. 채널 1445.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 미녀들이 몸을 흔들면서 늘 어서 있다. 수신:<<아래쪽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비치적거리고 있는 저 곤충 들은 무엇인가?>> 발신:"저건 곤충이 아니다. 저 동물들이 바로 인간들이다. 바로 당신들이 <손가락들>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저기 보이는 것은 인 간의 암컷들이다." 수신:<<그럼 저것이 손가락 하나가 온전히 드러난 모습인가?>> 개미는 오른쪽 눈을 축소경으로 접근시켜서 화면 위에 움직이는 형태를 관찰하느라 오랫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다. 수신:<<당신들은 눈 두 개와 입이 하나 있는데, 그것들이 당신들 몸의 맨 꼭대기 쪽에 달려 있다.>> 발신:"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수신:<<나는 붉은 덩어리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신들은 더듬 이도 없는데 어떻게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가?>> 발신:"우리는 더듬이를 사용하지 않고 청각적인 통신 방식을 사용 한다." 수신:<<당신들은 다리가 우리보다 두 개나 적은데.... 다리가 네 개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두 다리로 어떻게 걸을 수가 있나?>> 발신:"우리는 아래 두 다리만으로 충분히 걸을 수 있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고 서게 되기까지는 세월이 좀 걸렸다. 그리고 앞 다리 두 개는 우리가 물건을 운반할 때나 도구를 사용할 때 쓴다. 이 점 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다리를 다 사용하는 당신들과 다른 점이다." 수신:<<머리 위에 긴 털을 가지고 있는 저 자들은 환자들인가?>> 발신:"어떤 암컷들은 수컷들의 마음을 더 끌기 위해 털이 자라도 록 내버려두기도 한다." 수신:<<당신들 암컷은 왜 날개가 없는가?>> 발신:"어떤 손가락들도 날개는 가지고 있지 않다." 수신:<<생식 능력을 가진 손가락들조차 날개가 없는가?>> 발신:"그들도 없다." 103호는 주의 깊게 화면을 살피고 있다. 개미는 암컷 손가락들이 매우 추하다고 생각한다. 수신:<<당신들은 카멜레온처럼 딱지 색깔을 바꿀 수 있나?>> 발신:"우리는 딱지가 없다. 우리 피부는 붉고, 노출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색깔의 옷과 장신구로 피부를 보호한다." 수신:"옷이라고? 그것은 포식자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인가?" 발신:"꼭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오히려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 하고, 자기의 개성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식물에서 뽑아낸 실로 짠 천이다." 수신:<<아! 나비들처럼 구애 행위를 하는데 사용하는 건가?>> 발신:"원할 경우 그럴 수도 있다.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옷을 입 은 암컷들이 수컷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끄는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 다." 103호는 질문을 많이도 하지만 매우 속도가 빠르다. 103호의 질문 가운데는 그를 만족시킬 만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손가락들의 눈은 왜 움직이는가?> 또는 <왜 같은 신분의 개체들이 크기가 다른가?> 그 세 사람은 최선을 다해, 단순하고 명 쾌한 어휘를 사용해서 대답하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 들 가운데는 대단히 암시적이고 미묘한 뜻이 담긴 것들이 있어서, 그들은 개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 단어들을 새롭게 정의해야만 했 다. 프랑스 어를 거의 새로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마침내 103호는 여자들의 행렬에 싫증을 내면서 다른 걸 보고 싶 어한다. 멜리에스가 채널을 바꾼다. 어떤 영상이 개미의 주의를 다 시 끌자. 개미는 <정지>라고 외친다. 수신:<<정지, 저것, 저게 뭔가?>> 발신:"대도시의 교통 문제에 관한 르포다." 화면에 등장하지 않은 해설자의 내래이셔이 흘러나온다. -교통 체증은 우리 대도시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의 하나 입니다. 전문 기관의 한 연구 보고서는 길이나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게 되고, 교통 혼잡은 나날이 심해질 거라고 얘기합니다. 화면에 긴 자동차 행렬이 회색 매연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늘어서 있다. 카메라가 후진하면서 아스팔트 위에 늘어붙은 채 수 킬로미터 나 이어져 있는 버스, 트럭, 승용차, 캠핑 차들을 보여준다. 수신:<<아! 대도시 어디에서나 교통이 저렇게 혼잡하다니...무척 고통스럽겠군! 다른 일도 있겠지....>> 화면이 계속 이어진다. 수신:<<정지, 저것은 무엇인가?>> 발신:"세계의 기아에 관한 기록 영화다." 야윈 몸뚱이들, 눈에 파리가 달라붙어 있는 어린애들, 얼굴을 일 그러뜨린 어머니의 말라붙은 젖가슴에 매달려 있는 아기들,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이도 알 수 없는 사람들.... 해설자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린다. -극심한 가뭄이 이디오피아에 계속 재난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재민들은 벌써 5개월 째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현재 이동하는 메뚜 기 떼의 습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국제 적십자 의사들이 지역 주민을 구하기 위해서 미력하나마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수신:<<의사가 뭐하는 손가락들인가?>> 발신:"다른 손가락들이 아프거나 곤궁에 빠질 때, 지역이 어디든 지, 심지어 피부색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을 도와주는 손가락들이 다. 모든 손가락들이 다 붉은색은 아니다. 세상에는 검은색, 노란색 의 손가락들도 있다." 수신:<<우리 종에도 역시 색깔이 여러 가지이다. 그것이 때론 적 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발신:"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채널 1227, 1226, 1225. 정지. 수신:<<저것은 무엇인가?>> 멜리에스는 곧 그 화면을 알아보았다. "저런, 음성적인 성인 전용 채널이군, 그것은 저.... 포르노 영화 야." 운이 없다. 라미레가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103호는 진실을 요구 한다. 수신:<<저것은 뭘 하는 건가?>> 발신:"손가락들이 번식하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개미는 많은 관심을 보이며 화면을 주시한다. 103호의 논평. 수신:<<손가락들은 머리로 성 행위를 하나?>> 발신:"음.... 아니, 그건 확실히 아니야."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레티샤가 말한다. 화면 위에 한 쌍의 남녀가 위치를 바꾸어 서로 뒤엉킨다. 103호의 논평. 수신:<<보아하니 당신들은 민달팽이처럼 사랑 행위를 하는 것 같 군. 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면서 말이다. 그건 별로 즐거울 것같지 않 은데. 저렇게 하려면 온갖 군데를 다 비벼야 되겠는걸.>> 레티샤가 언짢아 하면서 채널을 바꾼다. 채널 1224. 조그만 점들이 오글오글거린다. 수신:<<정지, 저것은 무엇인가?>> 운수가 사납다. 곤충에 관한 기록 영화다! 발신:"<개미>에 관한 르포다" 수신:<<개미라고?>> 그들은 개미를 우글거리는 마그마 같은 존재로 비하하면서 개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화면을 설명하기 위해 머뭇거린다. 수신:<<개미가 어째서 저렇게 보이는가?>> 발신:"음....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하다." 라미레가 주저하면서 사실대로 얘기한다. 발신:"저게 바로 당신들의 모습이다." 수신:<<저게 우리라고?>> 103호는 목을 쭉 뺀다. 제 동료들이 클로즈업되어 있는데도 그 개 미는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이 평면적인데 비해 개미 의 눈은 구형이기 때문이다. 개미는 어렴풋하게나마 결혼 비행 장면을 식별해 낸다. 암컷과 수 컷들이 이륙한다. 103호는 리포터의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종에 대해 많은 것을 터득한다. 103호는 지구상에 개미가 그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그 개미는 <바늘 개미>라고 명명된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종들이 개미산을 지니고 있으며, 개미산이 나무를 태울 정도의 농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103호는 기억하고 또 기억해둔다. 그 개미는 흥미있는 많은 정보 가 아주 빠르게 스쳐가는 화면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온통 텔레비젼에 몰두해 있는 시간들이 계속 이어졌다. 셋째 날, 103호는 코미디 배우들의 쇼를 관람하게 되었다. 몇몇 코미디언들이 마이크를 들고 온 스튜디오가 떠나가도록 재담을 늘어 놓는다. 뚱뚱하고 익살스럽게 생긴 남자가 방청객들에게 이야기한 다. -여러분들은 정치가와 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세요? 모른다고 요? 자 바로 이겁니다. 어떤 여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글쎄요>의 뜻이고, 여자가 <글쎄요>라고 얘기할 때 그것은 <예>을 뜻합니다. <예>라고 대답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녀는 칠칠치 못한 여 자로 취급받습니다. 반면에 정치가가 <예>라고 말하면 그것은 <글쎄 요>를 뜻하고, 정치가가 <글쎄요>라고 말하면 그것은 <아니오>를 의 미하며, 정치가가 <아니오>라고 말하면 그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 급받습니다. 방청객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개미가 더듬이를 비비댄다. 수신:<<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발신:"우스갯소리를 하는 거야." 아더 라미레가 설명한다. 수신:<<우스갯소리가 무엇인가?>> 레티샤 웰즈가 인간의 유머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천장을 다시 칠 하는 정신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개미에게 들려주었지만 헛일이었다. 다른 농담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문화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없기 때문에 모든 얘기가 소용이 없었다. 발신:"개미 세계에는 우스갯소리가 없는가?" 자크 멜리에스가 물었다. 수신:<<우선 우스갯소리가 뭔지 알아야지. 그게 무엇인지 정말 이 해할 수가 없어!>> 그들은 개미를 소재로 한 농담을 지어내려고 애를 썼다. <천장을 다시 칠하는 개미의 이야기인데....> 그러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개미사회에서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아야 이 야기가 될 것 같았다. 103호는 지금 당장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기의 동물 학 기억 페로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손가락들은 어떤 심리적 인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조롱하고 싶어한다.> 채널을 바꿨다. <알쏭달쏭 함정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라미레 부인이 나타났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감각형 여섯 개를 만드는 수수께끼를 풀고 있었다. 부인은 답을 찾지 못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티샤와 자크는 라미레 부인이 오래 전부 터 정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터였다. 그들은 채널을 바꿨다. 아인슈타인의 일생에 관한 영화였다. 천제 물리학자에 관한 그의 이론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103호는 그 영화 에 뜻밖의 관심을 보인다. 수신:<<처음에는 나는 손가락들 각자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지 금은 손가락들의 외모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 손가락은 수컷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컷인지 아닌지 이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수컷은 머리털이 짧기 때문이 다.>> 비만에 대한 기록 영화가 상영된다. 해설자가 비만과 식욕 부진을 설명한다. 개미가 의아한 듯 질문한다. 수신:<<이것저것 닥치는 먹어치우는 저 손가락들은 뭐지? 먹는다 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런 행위다. 한낱 애벌레조차 도 어떻게 양분을 섭취해야 하는지 알지. 꿀단지 개미가 먹이를 잔 뜩 먹곰 몸을 부풀리는 것은 바로 공동체의 선을 위한 것이다. 그래 서 꿀단지 개미들은 뚱뚱해진 자기 몸을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손가락 암컷들과는 유가 다르다!>> 103호는 지칠 줄 모르는 텔레비젼 시청자가 되었다. 라미레 부부는 그들의 장난감 가게를 닫았다. 레티샤와 자크는 라 미레 부부의 손님 방에서 잤다. 모두들 103호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차례로 교대를 했다. 103호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갈망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개미의 관 심을 끌고 있다. 축구와 테니스와 갖가지 게임들의 규칙, 손가락들 의 상호간의 전쟁, 국가들의 정치 제도, 손가락들의 구애 행위 등 등. 103호는 만화 영화의 단순하고 명쾌한 그림에 매료되고 "별들의 전쟁" 앞에서 넋을 잃는다. 개미는 영와의 모든 대본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몇몇 장면들을 보면서 <황금의 벌집>전투를 떠올린다. 103호는 이 모든 것들을 그의 동물학 기억 페로몬에 저장한다. <손가락들은 상상력을 지닌 동물이다!> 189. 백과 사전 파동 모든 사물과 관념과 사람은 하나의 파동으로 귀결될 수 있다. 형 태파, 소리파, 그림과 냄새파 등 여러 파동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파동들이 유한한 공간 속에 있으면 다른 파동과 필연적으로 상호 간 섭하게 된다. 사물과 관념과 사람들의 파동 사이에 일어나는 간섭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록큰롤>과 <클래식> 음악 을 혼합하면 어떤 음악이 생겨날까? <철학>과 <정보학>을 섞으면 어 떤 학문이 될까? 아시아의 예술과 서구의 기술을 섞으면 어떤 것이 나타날까? 잉크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린다고 하자. 두 물질은 처음엔 아주 단조로운 상태에 있다. 잉크 방울은 까맣고 물은 투명하다.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서, 일종의 위기가 조성된다. 이 접촉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혼돈의 모습이 나타나는 때이 다. 바로 희석되기 직전의 순간이다. 서로 다른 두 요소끼리의 상호 작용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빚어낸다. 복잡한 소용돌이, 뒤틀린 형 태가 생기고, 온갖 종류의 가는 실 형태가 생겨났다가 점점 희석되 어 결국엔 회색의 물로 변한다.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내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고정시키기가 어렵지만, 생명 의 세계에서는 어떤 만남이 고착될 수도 있고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90. 클리푸니가 괴로워하다. 클리푸니는 불안하다. 동쪽에서 돌아온 날파리 전령들은, 손가락 들과 맞서 싸운 원정군이 전멸당했다고 보고한다. 원정군은 <따가운 물>의 소용돌이를 분사하는 손가락들의 병기에 완전히 섬멸당했다는 것이다. 많은 군단, 많은 병정개미들, 많은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다. 벨로캉의 여왕개미는 어머니 벨로키우키우니 시신 앞에서 조언을 구한다. 아무 대답이 없다. 시신이 껍질은 비어 있고 구멍이 나 있 다. 클리푸니는 안절부절못하고 산란실을 성큼성큼 걷는다. 일개미 들이 여왕개미들을 끌어안고 달래려 하지만, 여왕개미는 단호하게 그들을 밀어낸다. 여왕개미는 멈춰서서 더듬이를 높게 세운다. <<손가락들을 없앨 방법이 분명히 있을거야.>> 여왕개미는 페로몬을 내뿜으면서 화학 정보실 쪽으로 간다. <<확실히 손가락들을 궤멸시킬 방법이 있을거야....>> 191. 103호가 손가락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벌써 5일 전부터 103호는 조금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텔레비젼을 보고 있다. 103호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손가락들에 대한 동물학 기억 페로몬을 담아둘 조그만 캡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레티샤는 갇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했다. "이 개미는 정말 텔레비젼에 중독이 되었어요!" "103호는 자기가 보는 것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멜리에스가 말했다. "아마 화면에 지나가는 것의 10분의 1정도만 이해할거예요. 그 이 상은 안 될 겁니다. 개미는 갓난아이가 텔레비젼을 보듯이 보는거예 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그걸 해석하겠지요." 아더 라미레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저 개미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라크 와 시란 사이의 전쟁에 대한 논평은 아주 그럴듯해요. 게다가 텍스 에이버리의 만화 영화를 평가할 줄 압니다." "나는 개미를 전혀 과소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개미가 너 무 영리해서 불안할 정도입니다. 그 개미가 만화 영화에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어제는 나에게 이런 얘길 하더군요. 인 간들은 왜 서로에게 고통을 주려고 그렇게 애를 쓰느냐 라고요." 멜리에스의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똑같은 걱정이 그들을 사로 잡았다. <도대체 그 개미는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걸 까?> "그 개미가 우리 세계의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보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합니다. 적당한 채널을 돌려야죠." 경정이 덧붙였다. "안 돼요. 이번 경험은 너무나 흥미로운 거예요. 처음으로, 인간 이 아닌 존재가 우리를 판단하는 거예요. 개미가 우리를 심판하고,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둡시다." 장난감 가게 주인이 반박했다. 그들 세 사람은 <로제타 석> 기계 앞에 다시 돌아왔다. 유리 덮개 안에는 그들의 소중한 손님인 개미가 액정 화면 앞에 머리를 바싹 들이대고 텔레비젼 시청에 몰두해 있었다. 마침 선거 방송의 일환으 로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개미는 연신 더듬이를 까딱거리 고 분주하게 페로몬을 뿜어대면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발신:"안녕 103호" 수신:<<안녕, 손가락들.>> 발신:"잘 지내나?" 수신:<<물론.>> 103호가 제 마음에 드는 방송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라미레는 개미가 실험용 유리 덮개 안에서 채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원격 조종 장치를 만들어냈다. 103호는 그것을 남 용한다. 싶을 정도로 그것을 애용했다. 실험은 며칠 더 지속되었다. 개미의 호기심은 끝이 없어보였다. 개미는 끊임없이 손가락들에게 새로운 설명을 요구했다. 저것은 무엇인가? 공산주의, 내연 기관, 대륙 이동설, 컴퓨터, 매춘 행위, 사회 보장 제도, 기업 연합, 경제 공황, 우주 정복, 핵 잠수함, 인플레이션, 실업, 파시즘, 일기 예 보, 식당, 경마, 권투, 피임, 대학 개혁, 재판, 농촌 인구의 대이동 등등.... 103호는 손가락들에 대해서 벌써 세 개의 기억 페로몬을 저장해 놓았다. 열흘째, 레티샤는 지칠 대로 지쳤다. 레티샤는 이제껏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사람들이 선하다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았던 것이 사 실이다. 그렇지만 피붙이에 대한 애정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쯤 그녀의 사촌 조나탕은 죽느냐 사는냐의 갈림길에 있을 것이 분명한 데, 그가 구원의 사자로 보낸 개미가 텔레비젼 앞에서 꼼짝을 안 하 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발신:"당신은 지금 우리를 벨로캉으로 안내할 준비가 되어 있나?" 그녀가 103호에게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동안에 레티샤의 가슴은 두근두근거렸다. 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도 걱정스럽게 개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수신:<<당신들은 나의 평가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할 것이다. 좋 다. 나는 당신들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보았다고 믿는다.>> 개미는 텔레비젼 화면에서 머리를 떼어내고 뒷다리로 버티고 선 다. 수신:<<나는 당신들을 완전하고 명백하게 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 다. 당신들의 문명은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본질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개미는 뜸을 들이면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여시 개미든 손가락이 든 개체를 다루는 데 이골이 난 103호였다. 수신:<<당신들의 문명은 매우 복잡하지만,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 에 그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들은 비뚤어진 동물들이고, 당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할 줄 모르며, 유독 당신들 이 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긁어모으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 동물들 이다. 당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것 은 크건 작건 살인의 연속일 뿐이다. 당신들은 우선 죽여놓고 그 다 음에 토의를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서로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평가의 조짐이 좋지 않았다. 세 사람은 얘기가 길 거라고는 예상 하지 않았다. 수신:<<하지만 당신들의 세계에도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이 있다. 아, 그건 바로 당신들의 그림이다! 특히 나는 그 손가락들... 레오 나르도 다 빈치를 무척 좋아한다. 세상에 대한 지식의 해석을 그림 을 통해서 나타낸다는 생각, 순수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a 실 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 그것은 놀라운 발 상이다! 우리 세계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의사 소통을 하기 우해서가 아니라 단지 냄새를 맡는 즐거움을 위해서 페로몬을 만드 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그 무상의 무용의 아름다움, 그것은 당신들이 우리보다 우월한 점이다. 우리 사회엔 그러한 것이 없다. 당신들의 문명에는 예술과 무용의 열정이 풍부한 것 같다.>> 발신:"그럼, 당신은 우리를 벨로캉에 데려가는 데 찬성하나?" 개미는 아직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수신:<<당신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바퀴를 만났다. 그 바퀴 들이 나한테 가르쳐준 게 있다. 서로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자들은 사랑을 받고, 서로서로를 도우려는 자들은 도움을 받는다고....>> 개미는 자기의 주장에 대해 확신라면서 더듬이를 흔들어댄다. 수신:<<나는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장을 바꾸어서 물어보 고 싶다. 당신들은 손가락들이라는 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 낭패스러운 일이었다. 레티샤도 아더 라미레도, 그 질문에 긍정적 으로 답할 만한 사람드리 명백히 아니었다! 개미는 담담하게 자기 논리를 펼쳐나간다. 수신:<<당신들은 내 페로몬을 이해하는가? 당신들은 다른 사람이 당신들을 사랑할 마음이 들도록 서로를 사랑하는가?>> 발신:"그건...." 수신:<<당신들 자신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 들이 우리처럼 다른 존재들을 사랑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발신:"그건 말하자면...." 수신:<<당신들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효과 좋은 페로몬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당신들한테서 기대했 던 설명들은 당신의 텔레비젼이 죄다 나에게 제공했다. 나는 텔레비 젼에서 손가락들이 서로 돕고, 다른 손가락들을 구하기 위해 먼 길 을 달려가며, 붉은 손가락들이 갈색 손가락들을 돌보는 내용의 기록 영화를 보았다. 당신들이 개미라고 부르는 우리는 결코 그렇게까지 는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둥지를 원조하러 달려가 지 않으며, 다른 종의 개미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 나는 플러시 천으로 만든 곰 인형 선전도 봤다. 그것은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 는다. 하지만 손가락들은 그것들을 껴안고 애무했다. 손가락들의 내 면에는 남에게 배풀 넘치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개미의 결론을 요모조모로 예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런 평가는 전혀 뜻밖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나, 의사들, 플러시 천으로 만든 곰 인형 덕분에 인간이란 종족이 개미의 눈길을 끌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수신:<<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신들은 2세들을 보살필 줄도 안다. 당신들은 미래의 손가락들이 오늘날부다 더 우수하기를 희망하고, 발전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마치 동료들을 개울 저편으로 건네줄 다 리를 만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병정개미들 같다고나 할까. 젊은 손가락들의 전진을 위해서라면, 늙은 손가락들은 언제든 목숨을 바 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래, 내가 본 모든 것, 영화, 뉴스, 광고 들 은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는 그것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었어, 그리고 그 희망으로부터 당신들의 <유머>가 분출하고, 당신들의 <예술>이 생겨나고 있지.>> 레티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에게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설명해 줄 저 개미와 같은 존개가 필요했 었다. 103호의 얘기를 듣고 난 그녀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 었다. 그녀의 대인 공포증이 한 마리의 개미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 다니! 그녀는 갑자기 동시대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 꼈다. 사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녀가 평생 깨 닫지 못한 것을 이 개미는 불과 며칠 동안 텔레비젼을 보고서 깨달 은 것이다. 레티샤는 마이크 쪽으로 몸을 숙여 또박또박 말을 했다. 발신:"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도와줄 생각이 있는가?" 유리 덮개 아래에서 103호가 더듬이를 세워서 정중하게 페로몬을 발한다. 수신:<<우리는 당신들에게 대항할 수 없고, 당신은 우리들에게 대 항할 수 없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것도 다른 종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않다. 파멸을 자초할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는 당연 히 서로 도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당신들을 필요로 하고 있 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당신네 세계로부터 배울 게 많다. 그것들을 배우기 전에는 당신들을 죽여서는 안된다.>> 발신:"그러면, 우리를 벨로캉으로 안내해 주겠는가?" 수신:<<나는 우리 도시 아래에 갇혀 있는 당신 친구들을 구하는 일을 돕는데 찬성한다. 왜냐하면 우리 두 문명이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92. 공룡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역사를 담은 기억 페로몬이다. 클리푸니는 아주 진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가득찬 캡슐에 더듬이 를 갖다댄다. 페로몬 캡슐이다. 찌릿한 느낌과 더불어, 더듬이 속에 서 내용이 복원된다. 분야:역사 정보 제공자:제24대 베롤키우키우니 여왕 <<개미들이 항상 지구의 주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우리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다른 종들이 우리의 주인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수백만 년 전, 자연은 도마뱀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때까지만 해 도, 도마뱀들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발 달린 물고기에 불과한 동물 이었다. 하지만 그 도마뱀들은 둘만 모이면 서로 싸웠고, 그 통에 그들의 몸은 결투에 적합하도록 조금씩조금씩 변화했다. 그들은 점점 더 커 지고 공격적이 되었다. 형태의 진화가 일어났다. 도마뱀들은 결투에 적합하도록 우리가 스물, 서른 혹은 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덤벼도 그것들을 더 이상 죽일 수가 없게 되었다. 너무 강해지고 아주 많아지고 매우 파괴적 인 도마뱀들이 지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이 되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머리가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올 만큼 키가 컸다. 그 것들은 이미 도마뱀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공룡이었다. 그 거대한 괴물들의 지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우리 개미 사회 어디서나 반성의 기운이 일었다. <우리는 무서운 흰개미들을 정복했어, 그러니까 공룡들도 없애버 릴 수 있을거야.> 여기저기서 전의에 충만한 페로몬이 발해졌다. 그 러나 공룡과 대결하러 갔던 개미 특공대들은 모조리 전멸하고 말았 다. 그들이 정말로 우리의 주인이 아닐까? 어떤 개미 군체들은 이미 공룡들에게 굴복하여, 그들의 사냥터에 대한 통제권을 공룡에게 넘 겨주었다. 그 군체들은 공룡의 발 아래에서 도망쳤고, 땅을 쿵쿵 울 리면서 지긋지긋하게 싸워대는 공룡들에 대한 강박 관념 속에서 살 아가고 있었다. 흰개미들도 위턱을 낮추었다. 바로 그때, 마냥 개미 둥지의 한 여왕개미가 다음과 같은 명령의 페로몬을 발했다. <괴물들에 맞서 모든 도시여 단결하라.> 메시지는 단순했지만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개미 사회의 내분 은 끝났다. 종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더라도, 어떤 개미도 다른 개미 를 죽이지 않게 되었다. 전세계 개미들의 대동맹이 형성되었다. 공룡들의 강점과 약점을 알리기 위해, 전령들이 모든 도시를 돌아 다녔다. 그 괴수들이 완전 무결한 듯해도, 어떤 동물에든 약점이 하 나씩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그 약점을 우리는 발 견해야 했고, 드디어 우리는 그것을 발견했다. 공룡의 가장 큰 약점, 그것은 그들의 항문이었다. 그 문으로 짓쳐들어가 몸 속을 난도질하니까 끝장이 났다. 정보는 매우 빠르게 전달되었다. 도처에서 개미 군단이 그 민감한 통로 안 으로 쳐들어갔다. 기병, 보병, 포병 부대는 이제 공룡의 발톱이나, 다리, 이빨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적은 분출하는 소화액, 백혈구들, 근육의 반사 작용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내장으로 돌진했던 군대들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병사들 이 굵은 큰 창자 안에서 모퉁이를 돌고 또 도는데 느닷없이 저쪽에 서 치명적인 포탄이 발사되었다. 바로 똥 한 덩어리였다. 전사들은 창자의 주름 사이로 달려가 피신했다. 때로는 역겨운 바 위 덩어리가 모퉁이에서 길을 막았고, 때로는 그것이 굴러내려 병사 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개미 군단의 가장 큰 적은 똥이었다. 딱딱하고 조그만 똥 덩어리 사태에 휩쓸려 죽은 개미가 무릇 몇 천 마리였던가. 얼마나 많은 병 정개미들이 진흙탕같이 질펀한 똥 물결에 익사했던가! 단 한 방의 방귀에 질식사한 특공대원들은 또 그 얼마였던가! 하지만, 그 사이에 개미 군단의 대부분은 적시에 내장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이 조그만 곤충들의 공격을 받은 공룡들의 거대한 몸퉁이 차례차례 무너져갔다. 톱니 같은 꼬리들, 뿔, 독, 단단한 비늘로 중 무장한 초식 공룡도 육식 공룡도, 냉혹한 외과 의사 같은 수백만 마 리의 미물 앞에서 맥을 못 추었다. 한 쌍의 위턱이 거대한 뿔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 개미들이 공룡을 멸종시키는 데는 수십만 년이 걸렸다. 그리고 어는 봄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휜히 트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공룡은 없었다. 살아남은 것은 키 작은 도마뱀뿐이 었다.>> 클리푸니는 더듬이를 꺼낸 후, 명상에 잠긴 채 화학 정보실을 거 닐었다. 그렇듯 지구는 몇몇 세입자를 맞이했고, 그들은 전능한 주인 노릇 을 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저마다 명성을 누리다가, 개미에 의해 보 잘것 없는 존재들로 전략했다. 개미야말로 지구의 유일한 진정한 소유자이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이종에 속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비록 작지만 잔인하게 구는 커다란 자들을 뭉개버릴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작지만 생각할 줄 알고 언뜻 보기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풀기도 한다. 우리는 비록 작지만, 완전 무결 해 보이는 산처럼 거대한 동물들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을 게 없다.>> 개미 문명은 모든 경쟁자들을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지속되어 왔다. 여왕개미는 개미 사회에 갇혀 있는 손가락들을 연구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103호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손가락들을 관찰함으 로써 그들의 결점을 찾아냈을 것이고, 원정군은 패주하는 대신에 승 리의 노래를 불렀을텐데.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아직까지도 손가락들이 살아 있을까? 여왕 개미는 신을 믿는 개미들이 그들에게 양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얼마 나 애를 쓰고 있는지 알고 있다. 클리푸니는 첩보 개미들이 그토록 떠벌리던 <리빙스턴 박사>와 이 야기하기 위해 손가락들의 둥지로 내려가기로 작정한다. 193. 암 103호는 손가락들 세계에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 한다. 저 높은 곳에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죽음의 냄새 같은 것이 공기 중에 떠돈다. 103호가 묻는다. 수신:<<무가 잘 안 되는가?>> 발신:"아더가 기절했다. 그는 몹시 아프다. 그는 암에 걸렸다. 아 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나의 어머니도 암 때문에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 질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수신:<<암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발신:"세포들이 제멋대로 증식하는 병을 그렇게 부른다." 찬찬히 생각해 보기 위해서 개미는 더듬이를 정성스럽게 닦는다. 수신:<<우리도 그 페로몬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병이 아니 다. 암은 병이 될 수가 없다.>> 발신:"그럼 뭔가?" 103호가 수없이 되풀이했던 질문 <그것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사람이 거꾸로 물어본 것이다. 이제는 개미가 설명할 차례다. 수신:<<아주 오래 전에 우리도 당신들이 암이라 부르는 병에 걸린 적이 있다. 많이들 죽었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이 재앙은 치료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감염된 개미들은 곧바로 심장박동을 멈 추고 더이상 살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듣고 있었다. 수신:<<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그 문제를 바르지 못한 시각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우선 병처럼 보였던 것을 다르게 이해 하고 연구해야 했다. 우리는 찾아냈다. 수십만 년 전부터 우리 문명 에서는 더 이상 암으로 죽지 않았다. 다른 병으로 인해 많은 희생자 가 우리에게 생겨나지만 암은 우리에게서는 끝났다.>> 깜짝 놀란 레티샤가 한숨을 쉬자, 유리 덮개가 흐려졌다. 발신:"당신들이 암 치료법을 발견한 것인가?" 수신:<<물론이다. 당신들에게 곧 그걸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우 선 바깥 공기를 쐬고 싶다. 이 유리 덮개 안에서는 숨이 막힌다.>> 레티샤가 바닥에 푹신한 솜을 깐 성냥갑 안에 103호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발코니 쪽으로 들고 나갔다. 개미는 신선한 산들바람을 들이마셨다. 그곳에서 103호는 먼 숲의 냄새까지 느끼고 있었다. "조심해요. 개미를 난간 위에 놓지 말아요. 개미가 떨어지지 않도 록 특히 조심해야 해요. 정말 조중한 개미예요. 그 개미가 인간의 생명을 구해주기로 했어요. 게다가 암의 치료법도 알고 있다고 했어 요. 그게 사실이라면...." 자크 멜리에스가 외쳤다. 그들은 두 손을 모아 성냥갑을 감싸고 요람을 만들었다. 조금 후 에 라미레 부인이 남편을 부축하여 침대에 눕히고 발코니로 나왔다. 그는 자고 있었다. "우리 개미가 암치료법을 안다고 했어요." 멜리에스가 라미레 부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 페로몬을 뿜도록 해야죠. 빨리요! 아더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개미가 바깥 바람을 조금 쐬고 싶다고 했어 요. 개미를 이해해야 해요. 쉬지 않고 텔레비젼을 시청하느라 유리 덮개 안에서 며칠을 보냈거든요. 세상에 어떤 동물도 그렇게 지낼 수는 없을거예요!" 레티샤가 말했다. 하지만 부인은 냉정을 잃고 있었다. "개미는 조금 뒤에라도 쉴 수 있잖아요. 우선 내 남편을 구해야 해요. 급해요." 쥘리에트 라미레는 레티샤의 팔에 달려들었다. 레티샤는 쥘리에트 가 성냥갑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뒤로 물러났다. 한 순간 나무 쪽배 가 나울 고스락에 걸리듯 레티샤의 손에 놓인 성냥갑이 허공으로 올 라갔다. 라미레 부인이 레티샤의 손목을 잡아당기자 손바닥이 뒤집 혔다. 103호가 추락한다.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잠시 활공 비행을 하다 가, 폭신한 양탄자가 떨어져 나가면서 급전 직하로 떨어지기 지작한 다. 끝없는 낙하, 손가락들의 집이 이렇게 높은 줄 미처 몰랐다! 103호는 자동차의 금속 지붕에 부딪혀 몇 차례 되튀어오르고 나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는 정신없이 내달린다. 친절한 손가락들은어 디고 가버렸나? 그들과 대화하는 기계는 어디에 있나? 103호는 거기 에 있는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페로몬을 외치면서 달려간다. <<레티샤, 쥘리에트, 아더, 자크! 당신들은 어디 있지? 나는 충분 히 쉬었어. 이제 제발 나를 다시 올려줘! 내가 당신들에게 모든 걸 얘기 하겠어!>> 개미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갑자기 자동차에 시동이 걸린다. 103호는 있는 힘을 다해 라디오 안테나에 매달린다. 바람이 주위로 세차게 지나간다. 103호가 <큰뿔>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닐 때도 결 코 이처럼 빨리 가지는 않았다. 195. 백과 사전 문명의 충돌 인도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 버리는 나라이다. 인도를 무력으로 정복한 자들이 인도인들을 길들이려 했지만 모두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졌다. 인도 안으로 파고들수록 그들은 인도 물이 들었으며 호전 성을 잃고 세련된 인도 문화에 푹 빠져버렸다. 인도는 모든 것을 흡 수해 버리는 스펀지와 같았다. 그들은 인도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으 나, 인도가 그들을 이긴 것이었다. 인도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침탈은 터키와 아프카니스탄의 회교도 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들은 1206년에 델리를 점령했다. 5대에 걸친 술탄 왕조가 계속되었는데, 한결같이 인도 반도 전체를 점령하고 싶 어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진격하면서 군대는 약해져갔다. 군인들은 학살에 신물이 났고, 전쟁에 흥미를 잃었으며, 점차 인도의 풍습에 매료되었다. 술탄 왕조는 어느덧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술탄의 마지막 완조인 로디 왕조는 티무르의 후손인 투르케스탄 태생의 바뷔르에 의해 무너졌다. 바뷔르는 1527년에 무갈 제국을 세 우고 인도의 중앙까지 진출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음악, 문학, 미 술에 심취했다. 그의 후손 중의 하나인 악바르는 인도를 통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 었다. 그는 유화 정책을 폈고, 그 당시의 모든 종교에서 평화에 관 한 교리들을 가려모아 새 종교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몇십 년 후에, 바뷔르의 다른 후손인 오랑제브가 회교를 인도에 강제로 이식하려고 했다. 그러자 봉기가 일어났고, 나라는 분열되었다. 인도를 폭력으 로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19세기 초에 영국인들도 무력으로 모든 대도시와 주요 항구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코 나라 전체를 통치하지는 못했다. 그들 은 전적으로 인도적인 환경 속에 이식된 <영국 문화를 가진 작은 동 네들>을 확보하는 데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추위가 러시아를 보호하고 바다가 일본과 영국을 보호하듯이, 영 의 장벽이 인도를 보호하고 그곳에 침입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아버린다. 어늘날에도 이 스펀지 같은 나라에서 한나절만 모험을 하고 나면 어떤 관광객이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을 얻자 고 이런 일을 하는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95. 도시를 떠도는 103호 자크 멜리에스가 몸을 숙였다. "개미가 떨어졌어!" 모두들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아래를 굽어보며 개미의 흔 적을 찾아보려 했다. "개미가 죽었겠는데...." "아마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개미들은 충격에도 잘 견디어낼 줄 알아요...." 그 말에 쥘리에트 라미레는 다시 생기가 돌았다. "개미를 다시 찾아보세요. 그 개미만이 내 남편과 개미 집 아래에 있는 당신 친구들을 구할 수 있어요."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서 주차장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특히 발을 내디딜 때 조심하세요." 레티샤 웰즈는 자동차의 바퀴 아래를 찾아보았다. 쥘리에트 라미 레는 건물의 아래에 예쁘게 꾸며놓은 조그만 화단을 체로 거르듯 훑 었다. 자크 멜리에스는 돌풍에 날려간 개미가 아래층의 발코니에 떨 어지지나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댔다. "혹시 머리에 붉은 점이 있는 개미를 보지 못했나요?" 이웃 사람들은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삼색 줄이 쳐진 신분증을 보고는 그가 이곳저곳을 찾아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개미를 찾느라고 한나절을 보냈다. "어떻게 하지? 신만이 103호가 어디 있는지 알겠는데!" 쥘리에트 라미레는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미가 정말 암을 어떻게 치료하는가를 알고 있다면, 어떤 대가 를 치르더라도 개미를 다시 찾아야 해요." 그들은 다시 오랫동안 찾아보았다. 곤충들은 어디에나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조명 돋보기까지 들고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이마에 붉은 점이 표시된 숲속 불개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매니큐어를 칠하기 말고 방사능 물질로 표시해 두기만 했어도 이 런 고생은 안 할텐데!" 멜리에스가 푸념을 터뜨렸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다. "퐁텐블로 시 같은 도시 안에서도 개미를 다시 찾는 방법이 반드 시 있을거예요."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열거해보고 그 중에서 좋은 것들 을 골라봅시다." 라미레 부인이 조언을 했다. 갖가지 제안들이 쏟아져나왔다. "군인들과 소방대원들의 도움을 얻어 일 미터씩 도시 전체를 수색 하는 게 어때요." "혹시 머리에 붉은 표시가 있는 개미가 지나가는 걸 보았는지, 우 리가 만나는 모든 개미들에게 물어봅시다." 어떤 해결책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때 레티샤가 제안을 했다. "신문에 호소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뜻 생각하기에 좀 엉뚱하다 싶었지 만 그다지 어리석은 제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다시 곰곰히 생 각해 보았지만 아무도 더 나은 묘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196. 백과 사전 승리 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면서 위안이 찾아온다. 그것은 왜 그런 가?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 는 반면 패배는 방향 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막 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가장 멋진 승리를 거두려 고 하지 않고 가장 멋진 패배를 당하려고 노력했다. 한니발은 로마 를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고, 케사르는 로마력 3월 15일의 원로원 회의에 나갈 것을 고집하다가 브루투스의 단검을 맞고 죽었다. 이런 경험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실패는 이 르면 이를수록 좋고, 우리를 물이 없는 수영장에 뛰어들게 해 줄 다 이빙 대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명철한 사람의 삶의 목표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참패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승리로부터는 결 코 배울 게 없고, 실패에 의해서만 배우기 때문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97. 대중에 호소 '일요 메아리' 신문의 <잃어버린 동물> 난에 몽타쥬가 보인다. 개 미의 머리가 펜으로 그려져 있다. <시민 여러분! 잘 읽어보세요!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위의 개 미를 찾아 주십시오. 그 개미가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스무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사항을 참조하시어 다른 개미와 혼 동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103683호는 불개미입니다. 따라서 보통 개미들처럼 검은 색이 아 닙니다. 가슴과 머리는 적갈색이고 배만 검은 색입니다. 신장은 3밀리미터, 딱지에는 줄무늬가 있고 더듬이는 짧습니다. 손가락을 갖다대면, 개미는 개미산을 내뿜습니다. 눈은 비교적 작은 편이고, 위턱은 넓고 앙바틈합니다. 이 개미에는 독특한 표시가 하나 있습니다. 이마에 붉은 점이 있 다는 것입니다. 이 개미를 발견하신 분께서는, 확신이 서지 않더라 도 붙들어서 보호해 주시고, 주저없이 31-41-59-26으로 전화하여 레 티샤를 찾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찰서에 전화하여 자크 멜리 에스 경정을 찾으셔도 됩니다. 103683호를 찾는데 도움을 주신 분께는 10만 프랑의 사례금을 드 리겠습니다.> 레티샤, 멜리에스, 쥘리에트 라미레는 개미 사육통의 개미들이 우 연히 길에서 마주친 개미들과 103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행여 사육통의 개미들이 벨로캉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하 더라도, 그 개미들은 그들을 벨로캉으로 데려갈 수 없었다. 그 개미 들은 현재 자기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 니 암에 대해서도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길에서, 정원에서, 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개미들도 모르기는 마찬 가지였다. 그들은 개미들의 어리석음을 확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 했다. 개미들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 고 있었다. 그저 먹이를 찾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자크 멜리에스와 쥘리에트 라미레, 레티샤 웰즈는 103호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의 탐구적인 태도 는 다른 개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레티샤 웰즈는 103호가 손가락들에 대한 페로몬들을 모아놓은 갭 슐을 작은 핀섹으로 끄집어냈다. 확실히 103호는 자기 시대와 자기의 세계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싶 어했다. 그토록 많은 호기심과 알고자 하는 열망은 사람에게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103호는 정말 특별한 존재하고 레티샤 웰즈는 생각했다. 한 순간 그녀는 기도를 하고 싶었다. 인간의 도시에 떨어진 개미 를 찾는 일이 기적이라면, 그것을 바랄 뿐이었다. 198. 납골당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긴 위턱을 가진 경비 개미들의 호위를 받으 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여왕개미는 진작 <리빙스턴 박사>와 얘기해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클리푸니는 <리빙스턴 박사>에게 어떤 것 을 물어 보아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손가락들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기로 결심했다. 먹이를 주 면서 그들을 길들여야 한다. 야생의 진딧물들을 길들일 때도 그렇게 했다. 그것들의 날개를 자르고 축사에 가두어두기 전에 먼저 먹이를 주어 유인했던 것이다. 지하 10층:어떤 새로운 열정이 여왕개미를 사로잡는다. 걸음을 재 촉한다. 그렇다. 여왕개미는 그들에게 양식을 줄 것이고, 그들과 대 화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기록해서 손가락들에 대한 기억 페로몬을 많이 저장할 것이다. 여왕개미 주위에 경비 개미들이 뛰어다닌다. 경비 개미들은 오늘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라고 느낀다. 혁신 운동의 창시자이고 개미 연방의 여왕인 클리푸니가 마침내 손가락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을 효 과적으로 무찌르기 위한 연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하 12층: 클리푸니는 103호의 얘기를 일찍이 귀담아듣지 않았던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손가락들과 대화 했어야 했는데, 벨로키우키우니가 손가락들과 대화를 나누었듯이, 마음만 먹으면 클리푸니도 얼마든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 다. 지하 20층: 저 아래 손가락들이 아직 살아 있기만 하면 좋겠는데! 뽐내고 싶은 마음으로 괜히 어머니와 다른 짓을 한 것이 모든 걸 망 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같은 식으로 해도 안 되었고 정반대로 해 서도 안되었다. 계속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했다. 어머니의 업적을 부정하기보다는 어머니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야 했다. 여왕개미 주위에는 여전히 경비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개미 들이 더듬이 끝으로 클리푸니에게 인사한다. 대다수 개미들은 여왕 이 이렇게 도시 아래로 깊게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란다. 지하 40층: 클리푸니는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는데>라고 되되면 서 경비 개미들과 함께 걸음을 빨리 한다. 여왕개미는 여러 번 통로 의 방향을 바꾸어, 알지 못하는 어떤 방으로 들어선다. 개미들의 발 길이 뜸한 곳에 지어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방인데, 지은 지는 일주일도 채 안 된 듯하다. 여왕개미 앞에 신을 믿는 개미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반체제 개미 들의 시체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져 있다. 꼼짝하지 않고 있는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귀찮은 방문객들에게 도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시 안에 죽은 병정개미들이 보존되어 있다니! 깜짝 놀라서 여왕 개미의 더듬이가 뒤로 움찔거린다. 여왕개미는 뒤에서 수행하고 있 는 벨로캉의 병정개미들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쓰레기터에 있어야 할 시체들이 어째서 여기에 다 모여있단 말인 가? 여왕개미와 경비 개미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시체 들 사이를 오가며 둘러본다. 죽은 개미들 대부분은 전투를 하고 있 는 자세로 위턱을 벌리고 더듬이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역시 움직 이지 않고 있는 어떤 적에게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몇몇 시체들의 등에는 풀노린재들의 생식기가 뚫어놓은 구멍의 ㅎ 느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 개미들이 모두 클리푸니의 지시에 따라 처단된 것이다.... 클리푸니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클리푸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시체들이 모두 마치 왕실에 있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동도 하지 않는 개미들 사이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처 럼 보인다. 그렇다. 거의 절반 가까이가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유령인가? 옛 날에 경솔하게 굴다가 맛을 본 적이 있던 마약인 로메슈제의 오래된 분비꿀이 되올라오기라도 한 것일까? 경악스럽다! 시체들이 움직이다니! 이것은 환각이 아니다!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지금 자신을 둘러싸 고 있는 경비 개미들을 공격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진 다. 긴 위턱을 가진 경비 개미들이지만, 신을 믿는 반체제 개미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싸움이 힘겹다. 기습의 효과와 그 낯선 장소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싸움의 판세는 여왕의 병정개미들 쪽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신을 믿는 개미들은 싸우면서도 계속 더듬이를 흔들어 <손가락들 은 우리의 신이다>라는 똑같은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199. 재발견 레티샤 웰즈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맹렬한 기세로 지붕 밑 방에 뛰 어 올라왔다. 거기에서는 자크 멜리에스와 쥘리에트 라미레가 현상 수배광고가 나간 뒤에 들어온 수백 통의 전화 메모와 편지들을 앞에 놓고 그 가운데서 쓸 만한 것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103호를 찾았어요! 어떤 사람이 그 개미를 찾아냈어요!" 레티샤가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개미를 찾아냈다고 연락한 사기꾼이 벌써 8백 명이나 돼요. 그들 은 보상금을 탈 욕심으로 아무 개미나 주워서 이마에 붉은색을 조금 칠해서 가지고 왔다고요!" 멜리에스가 외쳤다. 쥘리에트 라미레는 한술 더 떴다. "심지어 거미에 붉은 색을 칠한 가짜 개미를 갖고 오는 사람도 봤어요." "아니, 아니예요. 이번에는 아주 진지한 사람이에요. 그는 사립 탐정인데 우리가 현상금을 건 날부터 계속해서 돋보기 안경을 끼고 도시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대요." "그가 103호를 발견했다고 믿는 이유가 뭐죠?" "그가 전화로 개미 이마의 점이 붉지 않고 노란색이었다고 말했어 요 그런데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가 오래되면 노랗게 바래거든요." 그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 그 개미가 어디 있대요?" "그는 개미를 갖고 있지 않아요. 그는 그 개미를 보았다고만 말했 어요. 그는 103호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갔는데, 다시 잡을 수가 없었대요." "그가 개미를 어디서 봤는데요?" "진정하세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요." "어딘데? 말해 봐요!" "퐁텐블로 지하철 역 안에서!" "지하철 역 안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6시면 한창 러시 아워라 사람들이 많이 붐빌 때인데...." 멜리에스는 기겁을 했다. "일초가 급해요.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완전히 103호를 잃어버 릴 겁니다. 그러면...." "뛰어갑시다!" 200. 잠깐 동안의 휴식 눈이 푸른 두 마리의 뚱뚱한 개미가 볼썽사납게 입을 비죽 거리면 서 소지지와 잼 단지, 피자, 양배추 절임이 쌓여 있는 더미로 다가간다. <<니에르크, 니에르크야. 인간들이 뒤를 보고 있어! 빨리 먹어치우자!>> 개미 두 마리가 접시 위로 올라간다. 개미는 스튜 통조림을 열기 위해서 깡통 따개를 사용한다. 그리고 샴페인을 가득 부어 축배를 든다. 갑자기 불빛이 개미들을 비추고 노란 포말이 분사된다. 그 두 마 리 개미는 눈썹을 치켜뜨고 푸르고 큰 눈을 끔벅거리다가 헐떡이면 서 고함을 지른다. <<개미살려. <프로프매종>이다!>> <<아냐, 그개 아냐, 그건 절대 <프로프매종>이 아냐!>> 검은 증기가 뿌려진다. <<아....>> 두 마리 개미는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카메라가 뒤로 이동한다. 한 남자가 대문자로 <프로프매종>이라고 씌어진 것을 들고서 분사기를 휘두른다. 미소를 띠면서 그는 카메라에 대고 추천의 말을 한다. <태양의 계 절, 더위가 찾아오면 바퀴, 개미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 징글징글한 바퀴, 개미의 해결책! 바로 <프로프매종>입니다. <프로프매종>은 당 신의 찬장 속에 기어다니는 모든 것을 말끔히 치워줄 것입니다. 어 린이 에겐 절대 안전, 곤충에겐 절대 위험! <프로프매종>은, 효율의 상징 CCG의 신제품입니다.> 201. 지하철 역에서의 수색 그들은 완전히 흥분해 있었다. 자크 멜리에스, 레티샤, 쥘리에트 라미레는 승객들을 마구 떼밀었다. "혹시 개미 한 마리를 못 보았어요?" "뭐라고요?" "그 개미가 틀림없이 이곳을 지나갔어요. 틀림없어요. 개미들은 그늘진 곳을 좋아합니다. 어두운 구석에서 찾아내야 해요." 자크 멜리에스는 어떤 사람에게 고함을 지른다. "발을 조심해서 내딛어요. 빌어먹을! 당신은 그 개미를 죽일 수도 있어요!" 아무도 그들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죽인다고요? 누구를 죽여요? 무엇을 죽인다고요?" "103호요!" 습관대로 승객들 대부분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을 쳐다보 지도 않고,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그냥 지나쳐버렸다. 멜리에스가 타일 벽에 기댔다. "빌어먹을! 지하철 역 안에서 개미 한 마리를 찾는 것은 건초 더 미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아." 레티샤 웰즈가 자신의 이마를 두드렸다. "생각이 났어요!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 했지! <건초 더미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거란....?" "무슨 얘깁니까?"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 하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것을 불가능해요." "아니, 가능해요. 좋은 방법이 있어요. 건초 더미 안에서 바늘 하 나를 찾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을 거예요. 건초에 불을 질러 재를 만든 다음 자석을 갖다대는 거예요." "맞아요. 그런데 그게 103호와 무슨 관계가 있죠?" "이건 하나의 비유예요. 그런 식으로 개미를 찾아내면 돼요. 분명 히 무슨 방법이 있을거예요."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자크, 당신은 경찰이잖아요. 그러니 역장에게 부탁해서 사람들을 모두 철수시키세요." "역장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걸요. 지금은 러시 아워거든요." "폭발물이 있다고 얘기해요! 그가 수천 명이 죽는 위험을 감수하 지는 않을 거예요." "좋아요." "그리고 쥘리에트, 당신은 페로몬 문장 하나를 만들 수 있겠죠?" "어떤 문장인데요?" <<가장 밝은 곳에서 만나자.>> "문제 없어요! 페로몬을 300cc라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 정도 면 스프레이로 여기저기 뿌릴 수 있을 거예요." "됐어요!" 자크 멜리에스는 레티샤의 의도를 깨닫고 들뜨기 시작했다. "알겠어. 당신은 103호가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강력한 탐조등 을 승강장 위에 설치하려는 거죠?" "내 개미집의 불개미들은 항상 불빛 쪽으로 갔어. 왜 그걸 생각해 내지 못했지...." 쥘리에트 라미레는 <가장 밝은 곳에서 만나자>라는 페로몬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페로몬을 분무기에 담아 가지고 왔다. 역 구내의 확성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서 정연하고 침착하게 역 구내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사 람들은 너나할것없이 떼밀고, 아우성치고, 부딛히고, 짓밟으며 난리 를 쳤다. 인간은 자기만 위하고 신은 모두를 위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103호는 주위 사방을 진동시키는 구두창들의 북새통을 피해 <퐁텐 블로> 역 표지판의 사기로 만든 글자의 틈에 몸을 숨기기로 작정한다. 알파베트의 여섯 번째 글자 F에 숨어 103호는 손가락들의 땀 냄새 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202. 백과 사전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 Habracadabrah>라는 마술의 주문은 헤브라이 말 로서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뜻이다. 즉, 말로 나타낸 일들이 실 제의 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세 사람들은 열병 을 다스리는 주문으로 그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을 마술사들이 술법을 부릴 때 사용하는 주문으로 바꾸어놓았다. 마술사들은 마술 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즉 관중이 곧 멋진 구경거리를 보개 될 찰 나 (말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에 그 글귀를 사용하였다. 그 글귀는 언뜻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 주문을 헤브라이 문자로 적으면 다음과 같은 9개의 글자로 표현된다:HBR HCD BRH(헤브라이 말에서는 모음 글자를 표기 하지 않기 때문에 HA BE RA HA CA DA BE RA HA가 위와 같이 표기되는 것이다). 그 9개의 글자들을 아홉 층으로 배열해서 최초의 (알레프는 HA 로 발음된다)로 점차 내려오도록 만들면 다음과 같이 된다. HBR HCD BRH HBR HCD BR HBR HCD B HBR HCD HBR HC HBR H HBR HB H 이 배열은 하늘의 힘을 되도록 넓게 받아들여 사람들에게 내려보 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것은 깔때기를 닮은 부적이다. <아 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깔때기 안에서 소용돌 이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간다. 그 부적은 보다 우월한 시공의 힘을 붙들어 한군데로 집중시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03. 지하철 역 안에 있는 개미 한 마리 이제 됐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103호는 에서 나와 지하 철 역의 넓은 통로를 걷는다. 어찌 됐든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103 호는 이렇게 하얗고 강렬한 네온 불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 갑 자기 공기 중에서 페로몬 메시지 하나가 감지된다. <<가장 밝은 곳에서 만나자.>> 103호는 그 냄새 언어의 억양을 알아차린다. 손가락들의 말을 번 역하는 기계의 억양이다. 됐다! 가장 밝은 곳을 찾기만 하면 된다. 204. 불가능한 해후 벨로캉의 도시 안 여기저기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반체제 개 미들이 천장에서 떨어진다. 어떤 병정개미도 여왕개미를 구조하러 오지 않는다. 신을 믿는 개미들의 말라비틀어진 시체 사이에서 개미 들이 서로 싸운다. 하지만 전세는 수가 많은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고 있다. 클리푸니는 살기 등등한 위턱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개미들은 클 리푸니 여왕의 페로몬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개미들 중의 한 마리가 위턱을 잔뜩 벌린 채 다가온다. 마치 여왕개미의 목을 자르 고 싶어하는 것처럼 다가오면서 그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다!>> 해결책은 단 한 가지, 손가락들을 만나야 한다. 클리푸니는 여기 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왕개미는 싸움판에 뛰어들 어 자신을 가로막는 위턱들과 더듬이를 물리치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질주한다. 이제 갈 데는 한 곳뿐이다. 손가락들에게로. 지하 45층, 지하 50층: 여왕개미는 도시 아래로 내려가는 지름길 을 발견한다. 여왕개미 뒤에서 신을 믿는 반체제 개미들이 쫓고 있 다. 그들의 적의에 찬 냄새가 풍겨온다. 클리푸니는 화강암 속의 통로를 지나 제2의 벨로캉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옛날에 어머니가 손가락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지은 은밀한 도시이다. 중앙에 하나의 물체가 놓여 있고, 거기에서부터 굵은 대롱이 빠져나와 있다. 클리푸니는 전에 첩보 개미들이 알려준 정보가 있어서 그 볼품없 게 생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게 바로 <리빙스턴 박사>이다. 여왕개미는 <리빙스턴 박사>에게 다가간다. 신을 믿는 개미들이 여왕개미를 뒤쫓아와 에워싼다. 그러나 그들은 여왕개미가 자기들 신의 사자에게 다가가도록 내버려둔다. 여왕개미는 로봇 개미의 더듬이를 건드리며 자기 더듬이의 첫번째 마디에서 페로몬을 발한다. <<나는 클리푸니 여왕이다.>> 동시에 열 개의 다른 더듬이 마디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갖가지 길이이 냄새 파동으로 마구 발산한다. 신을 믿는 개미들은 마치 하나의 기적을 기다리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리빙스턴 박사>는 며칠 전 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그는 여왕개미에게조차 말하기를 거부한다. 클리푸니는 메시지의 냄새 농도를 높인다. <리빙스턴 박사>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는 여전히 꼼짝 을 안 하고 있다. 여왕개미의 뇌리에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 럼 스치고 지나간다. <<손가락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손가락들은 존재한 적도 없다.>> 손가락들에 관한 이야기는 개미들을 현혹시키는 엄청난 속임수, 유언 비어, 거짓 정보이다. 여러 세대를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이 병 든 개미들의 운동에 의해 확산된 것이다. 103호가 거짓말을 했어. 어머니 벨로키우키우니가 흰소리를 한거 야. 반체제 개미들이 거짓부렁을 하고 있어. 모두들 진실을 숨기고 있는거야. <<손가락들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 적도 없다.>> 여왕개미의 모든 생각이 거기에서 멈춘다. 신을 믿는 개미들의 서 슬 푸른 위턱 십여 개가 여왕개미의 가슴팍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205. 103호를 찾아서 역장은 등불을 모두 껐다. 그런 다음 역장은 멜리에스가 요구한 대로 그들에게 승강장을 밝혀줄 정도로 강력한 손전등을 주었다. 쥘 리에트 라미레와 레티샤 웰즈는 역 구내 전체에 103호를 찾는 페로 몬을 뿌려놓았다. 그들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103호가 그들의 불 빛을 보고 다가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103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네온 빛보다 더 밝은 빛에 의해서 생긴 그림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를 찾기 위해서 <착한> 손가락들이 뿌 려놓은 메세지를 따라서 밝은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거기에서 자 기를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103호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기다림이란 왜 이렇게 지루한 것인 까! 자크 멜리에스는 제자리에 가만 있지 못하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뱃불 꺼요. 담배 연기 냄새가 103호를 도망하게 할 수도 있어 요. 103호는 불을 무서워하니까요." 경정은 발 뒤꿈치로 담배를 끄고서 다시 왔다갔다 한다. "그만 돌아다녀요. 개미가 그쪽으로 오다가 밟힐 수도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선 염려 붙들어매요. 발검음 떼어놓기 전에 여기저 기 살피는 게 이젠 아예 버릇이 되어버렸으니까요." 103호는 새로운 구두창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 페로몬은 함정이다. 개미들을 죽이는 손가락들이 더 많은 개미를 죽이기 위해 서 이런 메세지를 뿌린 것이다. 103호는 도망을 친다. 레티샤 웰즈는 불빛이 미치는 동그란 원 속에 있는 103호를 알아보았다. "저기 봐요! 개미가 한 마리 있어요. 틀림없이 103호예요. 개미가 다가왔는데 당신이 구두창으로 겁을 주었어요. 103호가 도망가면 영 영 못 찾게 될지도 몰라요." 그들이 가만가만 다가갔지만 103호는 달아났다. "저 개미가 우릴 알아보지 못하고 있어요. 개미에게는 모든 인간 이 산으로 느껴질 거예요." 레티샤는 애석해 했다. 그들이 개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103호는 마치 스키에서 슬람폼 경기를 하듯이 갈지자걸음으로 달아났다. 개미는 철길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개미가 우리를 몰라봐요. 우리 손도 몰라보고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죠? 개미가 승강장에서 빠져나가면, 철길의 자갈 속에서는 103호를 영영 못 찾을텐데!" 멜리에스가 외쳤다. "저것은 개미예요. 개미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냄새가 또 뭐 없을 까요? 당신 수성 펜 있어요? 잉크 냄새가 매우 강하니까 어쩌면 103 호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레티샤는 부랴부랴 103호 앞에 잉크로 굵은 선을 그었다. 질주하는 103호 앞에 돌연 알콜 냄새가 풍기는 벽이 우뚝 막아선다. 103호는 다리의 힘을 모두 모아 급정거를 하고는, 마치 눈에 보이 지는 않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냄 새나는 벽을 따라 옆으로 나아간다. 그런 다음 그 벽을 우회해서 다시 달려간다. "103호가 수성 펜 선을 돌아가고 있어요." 레티샤는 길을 막기 위해서 재빨리 세 줄을 그어 삼각형 모양의 감옥을 만들었다. <나는 이 냄새나는 벽 사이에 갇혀 있다, 어떻게 하지?>라고 103호는 생각한다. 103호는 두 다리에 힘을 모으고는 마치 유리로 된 벽을 뚫고 나오 듯 이 수성 펜 자국을 건너뛴다. 그러고는 어디로 가는지 살피지도 않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달린다. 사람들은 개미가 그렇게 대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 부딪혔다. "103호가 저기에 있어." 멜리에스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 있는데요?" 레티샤가 물었다. "조심해!" 레티샤 웰즈가 균형을 잃었다. 한 순간 모든 일이 꿈결처럼 느리 게 진행되었다. 레티샤는 균형을 잡기 위해서 옆으로 발걸음을 떼었 다. 순전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하이힐의 뾰족한 뒤축이 위로 올 라갔다가 곧 개미 위에 다시 떨어졌다..... "안돼!!!!!!!!" 라미레 부인이 부르짖었다. 레티샤의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부인은 온 힘으로 레티샤를 밀었다. 너무 늦었다. 103호의 반사 신경은 구두 뒤축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103호는 바로 자기 위로 덮쳐오는 그림자를 보고서, 이제 삶이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103호의 삶은 파란 만장했다. 텔리비젼의 화면에 서처럼 수많은 영상들이 그의 뇌속에 펼쳐진다. <개양귀비>전투, 도 마뱀 사냥, 세계의 끝의 광경, 뿔풍뎅이를 타고 출정했던 일, 코르 니게라 아카시아 나무, 바퀴들의 거울, 손가락 문명을 발견하기 전 에 있었던 무수한 전투, 축구, 미스 유니버스 선발 대회, 개미에 관 한 기록 영화.... 206. 백과 사전 입맞춤 인간이 개미에게서 모방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입술과 입술을 맞대는 것, 사람들은 고 대 로마 인들이 기원 수백 년 전부터 입맞춤을 생각해 냈다고 오랫 동안 믿어왔다. 사실 고대 로마 인들은 곤충들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배웠다. 그들은 개미들이 서로 입술을 접촉시키면서 너그러운 행위 를 하고 또 그런 행위가 개미들 사회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는 사실 을 알았다. 그들은 이런 행위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 만, 개미 사회의 응집력을 되찾기 위해 개미들이 이런 접촉을 계속한다고 생각했 다. 입술과 입술을 맞대는 것은 영양 교환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입맞춤에서는 양분이 없는 타액을 제공할 뿐이지 만, 개미들의 영양 교환에서는 말 그대로 먹이를 나누어 준다는 점이 다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07. 다른 세계에 있는 103호 그들은 망연 자실한 채 103호의 찌그러진 몸을 바라보았다. "103호가 죽었어요?" 개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개미가 죽었어!" 쥘리에트 라미레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 "모든 게 사라졌어. 더 이상 누구도 내 남편을 살릴 수 없게 됐 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어."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거의 다 다해 놓고 실패하다니!" "불쌍한 103호. 이 기구한 삶! 구두 뒤축 때문에 간단하게 끝장을 보다니...." "그건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었어." 레티샤가 반복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현실을 받아들였다. "103호 시체를 어떻게 할까요? 내다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조그만 무덤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103호는 여느 개미와는 달랐어요. 그는 율리시즈와도 같았어요. 아니면 더 낮은 차원의 시공간에서 온 마르코폴로였어요. 개미 문명 전체를 대표하는 중요한 개미였지요. 103호는 무덤보다 더한 것도 받을 만해요." "무얼 생각하세요. 기념물?" "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개미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들 이외에 아 무도 몰라요. 아무도 이 개미가 우리와 개미 문명 사이의 교량 역할 을 했다는 걸 몰라요." "그 사실을 여기저기 알려야 합니다. 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요!" "우리는 103호만큼 재능이 있는 <특사>를 다시는 찾지 못할 거예 요 이 개미는 두 세계의 만남에 필수적인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갖 고 있었어요. 다른 개미들과 대화하면서 그런 사실을 알았어요. 정 말 특이한 경우였어요." 레티샤 웰즈가 단언했다. "103호와 같이 재능이 있는 개미는 10억 마리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103호가 그들에게서 배우려 했던 것처럼 그들도 103호에게서 배우 려 하던 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인간을 필요로 하고 인간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 개미를 필요로 한다. 얼마나 유감스런 일인가! 목표에 이만큼 다가와서 실패하다니! 자크 멜리에스라고 한가닥 서운한 감회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벤 치에 앉아 발로 바닥을 툭툭 쳤다. "내가 너무 되통스러웠어요!" 레티샤가 자책의 한탄을 늘어 놓았다. "나는 이 개미를 못 봤어요. 이 개미는 너무 작았어요. 나는 그걸 못봤단 말이에요!" 그들은 모두 꼼짝 않고 있는 조그만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제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물품없이 찌그러진 몸뚱 이를 보고 그것이 손가락들을 향한 첫번째 원정군의 안내자인 103호 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였다. 그들은 개미의 시체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레티샤 웰즈가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개미가 움직였어요!" 그들이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은 희망을 현실과 착각하고 있어요." "아녜요. 꿈을 꾼 게 아니라 103호가 더듬이를 움직이는 걸 확실 히 봤어요. 겨우 느낄 수 있는 정도이긴 했지만 움직인 건 분명해요." 그들은 서로 마주보았다. 그런 다음 오랫동안 개미를 관찰했다. 그러나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어떠한 미동도 감지하지 못했다. 더듬 이는 세워져 있었고, 여섯 개의 다리는 어떤 장거리 여행을 준비하 고 있는 것처럼 움츠리고 있었다. "개미가 분명히 다리 하나를 움직였어요!" 자크 멜리에스가 레티샤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그녀가 흥분한 나 머지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것은 순전히 시체의 반사 운동입니다. 확실해요!" 쥘리에트 라미레는 레티샤 웰즈의 의혹을 풀어주고 싶었다. 쥘리 에트는 103호의 몸통을 잡고서 귀에 대어보다가 아예 귀속에 넣어보 기까지 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거라고 믿고 계세요?" "누가 알아요? 내 귀는 예민해요. 나는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레티샤 웰즈는 103호의 시체를 다시 잡아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조심스럽게 103호의 위턱에 거울을 갖다놓았다. "103호가 숨쉬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거요?" "개미들도 호흡을 하지요, 안 그래요?" "하지만 호흡이 너무나 미약해서 우리 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워요." 그들은 감정을 억제한 후에, 개미를 주시했다. "개미는 죽었어요. 분명히 죽었어!" "103호는 인간과 개미가 연대하기를 희망한 유일한 개미였어요. 103호는 많은 시간을 들여 우리 세계를 관찰하고 나서 두 문명이 서 로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가 돌파구를 열었고 두 문명 사 이의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다른 개미였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103호는 조금씩 인간에 동화되기 시작했고 우리의 유머와 예술을 높이 평가했어요. 실용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지만 매력적 인 것이라고 예술을 평가했어요." "다른 개미를 교육시킵시다." 자크 멜리에스가 그녀를 껴안고 위로했다. "다른 개미를 잡아서 인간의 유머와 예술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면 돼요." "103호와 같은 개미는 없어요. 모두 내 잘못이에요." 레티샤가 되뇌었다. 그들 모두는 103호의 몸에 시선을 고정시켰 다. 한 순간 침묵이 흘렀다. "103호에 걸맞는 장례를 치러줍시다." 쥘리에트 라미레가 말했다. "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이 묻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103호를 묻어줍시다. 아주 조그만 무덤이 되겠지만, 그 묘에 <그는 위대한 시작이었다>라고 씁시다. 우리만이 비석의 의미를 알게요." "십자가는 세우지 말죠." "꽃도 화환도 준비하지 맙시다." "시멘트에 나뭇가지 하나만 세워둡시다. 103호가 두려움을 느낄 때 조차도 언제나 사건들에 당당하게 맞섰던 것을 기리는 뜻에서 말이지요." "그 개미는 언제나 두려움을 느끼면서 사물을 대했어요." "해마다 묘지를 찾읍시다." "나로써는 내 실수를 상기하고 싶지 않아요." 쥘리에트 라미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라미레 부인은 손톱으로 103호의 더듬이를 건드렸다. "자, 일어나 당장! 너는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어. 우리는 네가 죽 은 줄로만 알았어. 네가 장난으로 이러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 다오. 너는 우리 인간들처럼 농담도 할 줄 알았지. 자 됐어. 너는 개미의 유머를 생각해 냈어!" 라미레 부인은 할로겐 램프 아래로 103호를 옮겼다. "혹시 따뜻하게 해주면...." 그들 모두 103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멜리에스는 탄식처럼 짧은 기도를 했다. 신이여. 기적을 일으켜주소서.....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레티샤 웰즈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흘러내려 콧등과 뺨을 타고 턱에 머물렀다가 개미 곁에 떨어졌다. 짠 눈물 방울이 103호의 더듬이를 적셨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개미의 눈이 크게 벌어지더니 이윽고 몸이 구부러졌다. "개미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모두들 더듬이가 떨리는 것을 보았다. "움직였어요. 개미가 아직 살아 있나 봐요!" 더듬이가 다시 한 번 떨린다. 레티샤는 다시 눈물을 찍어서 더듬이를 적셨다. 개미가 다시 한 번 눈에 뜨일락말락하게 움찔거렸다. "103호가 살아 있어. 살아 있어요. 103호가!" 쥘리에트 라미레는 미심쩍은 듯 손가락으로 입을 문지른다. "아직 완전히 살아난 것은 아니예요." "이 개미는 심하게 다쳤어요. 하지만 우리가 구해 낼 수 있을거예요." "수의사가 필요해요." "개미에게 수의사라니, 그것은 말도 안 돼!" 자크 멜리에스가 말했다. "그런, 누가 103호를 치료할 수 있을까? 치료를 안 하면 죽을텐데!" "어떻게 하지요?" "일단 데리고 나갑시다, 빨리" 개미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랐던 만큼 그들은 기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 개미가 살아나자 그들은 개미 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몰랐다. 레티샤 웰즈는 그 개미를 어루만 지며 안심시키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작이 굼뜨 고 개미들의 세계에 익숙치 않은 레티샤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 이었다. 순간 레티샤는 자기가 개미가 되어 103호를 핥아주고 영양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미만이 103호를 살릴 수 있을 거예요. 103호를 개미들에게 데려가야 해요." "안돼요. 저 103호에게는 이상한 냄새가 묻어 있어요. 개미집에 있는 다른 개미가 103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죽일 수도 있어요. 그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소." "아주 미세한 메스와 핀셋이 필요할텐데...." "다른 도리가 없잖아요. 빨리 서두릅시다!" 쥘리에트 라미레가 외쳤다. "집으로 빨리 갑시다.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예요. 누구 성냥갑 하나 있어요?" 레티샤는 성냥갑 속에 아주 조심스럽게 103호를 옮겨놓았다. 그녀 는 성냥갑 속에 깐 손수건 조각이 수의가 아니라 침대가 되기를, 자 기가 관을 운반하는 게 아니라 앰블런스를 운반하는 게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103호는 더듬이 끝을 미미하게 움직여 구조를 요청한다. 마치 자 신의 생명이 끝나가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는 듯이.... 그들은 성냥갑이 흔들려 개미의 상처가 악화되지 않도록 애를 쓰 면서 지하철 역 구내를 벗어나 지상으로 달려 올라왔다. 밖으로 나온 레티샤는 구두를 벗어 도랑에 집어던지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는, 기사에게 요동을 피하면서 되도 록 빨리 달려줄 것을 요구했다. 택시 기사는 승객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지난번에 시속 0.1 킬로미터를 넘지 말라는 희한한 요구를 했던 바로 그 남녀였다. 또 다시 그 골치 아픈 사람들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어찌된 게 그들은 지나치게 느리거나 지나치게 빠른 것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고객은 왕인데 어쩌랴, 기사는 쥘리에트 라미레의 집 쪽으 로 방향을 잡았다. 208. 페로몬 분야:동물학 주제:손가락들 정보 제공자:103683호 정보 제공 연도:100000667년 딱지:손가락들은 부드러운 살갗을 갖고 있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 해 식물로 짠 <천> 혹은 그들이 <자동차>라고 부르는 금속판으로 피부를 감싼다. 거래:손가락들은 상업적인 거래에서는 완전히 손방이다. 순진한 그들은 많은 양의 먹이를, 먹을 수 없는 채색된 <종이> 한 조각과 교환한다. 색깔:손가락들로부터 3분여 동안 공기를 빼앗아버리면 그들은 색깔이 변한다. 구애 행위:손가락들은 구애 행위를 복잡하게 한다. 구애 행위를 위해서 그들은 대개 <나이트 클럽>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장소에서 만난다. 거기에서 그들은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얼굴을 맞대고 교 미 행위를 흉내내면서 심하게 몸을 꼬아댄다. 그러다 각자 상대방의 몸짓에 만족하면 번식을 하기 위하여 함께 방으로 간다. 이름:손가락들은 그들끼리 <인간>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리를 <개 미>라고 부른다. 외부와의 관계:<손가락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한다. 그 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손가락들을 죽이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인위 적으로 만들어진 엄격한 사회 규범인 <법>이 살생의 충동을 억제하도록 해준다. 타액:손가락들은 그들의 침으로 씻을 줄도 모른다. 몸을 씻기 위 해서는 <욕조>라고 부르는 도구가 필요하다. 우주론:손가락들은 지구가 둥글며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고 생 각한다. 동물관:손가락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대단히 잘못 알 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만이 유익하게 영리한 동물이라고 믿고 있다. 209. 수술, 마지막 기회 "메스!" 아더가 요구하는 대로 수술 도구들이 바로바로 건네졌다. "메스 여기 있어요." "1번 핀셋!" "1번 핀셋 여기 있어요." "메스!" "메스." "봉합사!" "봉합사." "8번 핀셋!" "8번 핀셋 여기 있어요." 아더는 103호를 수술했다. 다 죽어가는 103호를 데리고 그들이 집 으로 왔을 때, 아더는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 평상의 모습으로 되돌 아와 있었다. 아더는 동료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즉시 알 아차렸다. 아더는 소매를 걷어올렸다. 섬세한 수술에 필요한 예민한 감각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어서 그는 아내 쥘리에트가 권유한 진통 효과가 있는 칵테일조차 사양했다. 자크 멜리에스, 레티샤 웰즈, 쥘리에트 라미레는 장난감 주인이 임시변통으로 마련한, 현미경이 부착된 외과 수술용의 조그만 탁자 위로 몸을 기울인 채 아더를 둘러싸고 있었다. 현미경의 슬라이드는 비디오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들 텔레비젼으로 수술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고장난 로봇 개미들이 이미 여러 차례 슬라이드 위를 거쳐갔지만 살아 있는 개미가 짓뭉개진 모습으로 놓여지기는 처음이었다. "피!" "피, 여기 있어요." "피가 좀더 필요해!" 죽어가는 103호를 살리기 위해 살아 있는 네 마리의 개미가 수혈 에 필요한 피를 제공하고 죽어갔다. 그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103호는 특별한 개미였고 그를 위해 다른 개미 몇 마리를 희생시키 는 것은 불가피했다. 아더는 아주 미세한 바늘을 갈아서 103호의 왼쪽 뒷다리 마디의 부드러운 곳에 찔러넣고 수혈을 시작했다. 엉겁결에 외과 의사가 된 아더는 수술을 받고 있는 개미가 아파하 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개미의 상태를 고려하여 마취 없이 수술을 진행했다. 아더는 가운데 다리부터 접골사가 하는 방식으로 끼워맞춰나갔다. 왼쪽 앞발을 맞추기는 아주 쉬웠다. 로봇 개미를 가지고 작업을 해 온 그의 능수 능란한 솜씨가 진가를 발휘했다. 자동차의 찌그러진 흙받이를 고치는 것처럼, 개미의 납작한 가슴 을 미세한 핀셋으로 들어올려 원래대로 해놓았다. 그리고 희틴질에 구멍이 난 곳을 풀로 막아주었다. 풀은 수혈을 할 때 미세한 바늘이 뚫어놓은 구멍을 메꾸는 데도 사용되었다. "머리와 더듬이가 무사했던 게 천만 다행이야." 한숨 돌린 아더가 말했다. "당신 구두의 뒤축이 매우 좁아서 개미의 배와 가슴만 짓누른거요." 현미경 슬라이드의 불빛을 받으며 103호가 원기를 회복한다. 머리 를 조금 내밀어 위턱 앞에 놓여진 꿀을 천천히 핥아먹는다. 아더는 일어나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미는 이제 위급한 상황을 넘겼어요. 그렇지만 완전히 회복하려 면 며칠 동안의 휴식이 필요할거예요. 개미를 어둡고 촉촉하고 따뜻 한 곳으로 옮겨놓으세요." 210. 백과 사전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서기 1억 년의 사람(현재 개미들만큼 경험을 쌓은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우리보다 10만 배 이상 진보된 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 다.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 바로 우리의 손자, 그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십만 대의 후손을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황금의 길>을 닦아놓아야 한다. 쓸모없는 형식주의에 허비하는 시간을 가장 적게 해줄 길, 그리고 모든 독재자들과 야만인들과 반동주의자들의 억압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해줄 길, 그 길을 닦아야 한다. 그 길은 우리의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닦여질 것이다. 그 길을 제대 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점을 변화시켜야 하고 한 가지 사고 방식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사고 방식이라도 받아들일 준 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물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개미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사고 방식을 제시한다. 개미들의 입장 에 서보라, 또한 돌멩이, 구름, 물결, 물고기, 나무들의 처지로 들어가보라. 서기 1억 년의 인간은 산과 얘기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고 산들 이 지니고 있는 기억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 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11. 지하 동굴 사흘 간의 회복기를 거치자 103호의 타박상이 어느 정도 치유되었 다. 먹는 것도 거의 보통 때와 같이 먹기 시작했다(메뚜기 고기 조 각이나 익힌 곡식 알갱이도 먹었다). 더듬이도 정상적으로 움직였 다. 개미는 상처 부위를 있던 풀를 떼어내고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서 침으로 계속 닦았다. 아더 라미레는 모든 충격으로부터 103호를 보호하기 위해서, 탈지 면을 채운 상자 안에서 103호가 거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개미의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러졌던 다리가 잘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103호는 그래도 흔들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개미의 다리에 힘이 붙도록 할려면 운동 요법이 필요해." 자크 멜리에스가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더는 돌아가는 조그만 양탄자 위에 103호를 올려놓았다. 모두를 번갈아가며 103호의 다리에 허벅살이 붙도록 그를 걷게 했다. 103호는 토론을 다시 할 정도로 원기를 회복했다. 103호가 다친 지 열흘이 지나, 그들은 조나탕 웰즈와 그의 동료들 을 구출하기 위한 구조대를 편성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에밀 카위자크와 세 명의 부하 경찰을 차출했다. 레티샤 웰즈와 쥘리에트 라미레도 구조대의 일원이 되었다. 아더 는 지병과 최근의 정신적 피로로 너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안락의 자에 앉아 편히 쉬면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은 삽과 곡괭이를 챙겼다. 103호가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서 앞장을 섰다. 퐁텐블로 숲을 향해서 앞으로! 레티샤는 손가락으로 103호를 풀 속에 내려놓았다. 이제 더 이상 개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일론 실을 배 마디에 매어 놓았다. 이를테면 그것은 개나 말에 매단 끈과 같은 구실을 했다. 103호는 주위에서 풍기는 냄새로 방향을 식별해 더듬이로 알려준다. <<이곳으로 가면 벨로캉이 있다.>> 손가락들은 더 빨리 가기 위해서 개미를 들어올려 멀리 옮겨놓았 다. 개미가 더듬이를 움직이면 그들은 개미가 새로운 방향을 일러주 고 싶어 그러는 것임을 깨닫고 개미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개미가 새로이 길을 가리켜주었다. 한 시간 남짓 걸은 후에 그들은 도랑을 건너 가시덤불 속으로 들 어갔다. 103호가 냄새를 정확히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주 천 천히 뒤따라가야만 했다. 아직 세시밖에 안 되었다. 그들은 전방 멀리 커다란 잔가지 더미를 발견했다. 개미가 다 왔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벨로캉이 바로 여기인가? 다른 때였더라면 이 같은 언덕은 그냥 지나쳤겠 군." 멜리에스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경정님, 지금 시작할까요?" 경찰관 하나가 물었다. "그래, 지금 파내려가자." "개미 도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셔야 돼요." 개미들에게 험악하게 굴 것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레 티샤가 다짐을 놓았다. "개미 도시를 붕괴시키지 않겠다고 103호와 약속한 것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카위자크 형사는 어떻게 파내려가야 좋을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좋아요. 바로 옆으로 파내려가면 돼요. 지하 동굴이 크다면 개미 둥지 옆으로 파내려가도 별 문제 없이 동굴과 마주치게 될 것이고, 설사 동굴 위로 내려서지 못하더라도 개미집을 망가뜨리지 않고 아 래로 비스듬히 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레티샤가 말했다. 그들은 어떤 섬 안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해적들처럼 땅을 파내려 갔다. 구조원들은 곧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썼다. 아직 그들의 삽 끝 이 바위에 닿는 기미는 없었다. 멜리에스는 그들이 계속 파내려가도록 독려했다. 10, 11, 12미터를 파내려가도 여전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벨로캉의 개미들은 도시 주위에 무시무시한 진동이 일어나 주변 통 로들이 뒤흔들리자,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하고 의아해 하면서 하나 둘씩 밖으로 나왔다. 에밀 카위자크는 꿀을 주어 개미들을 안심시켰다. 삽질을 계속하던 경찰관들은 이제 지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 들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적잖이 불안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상관이 끝까지 가볼 결심을 하고 있는 눈치여서 그들은 계속 파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손가락들을 구경하러 나온 벨로캉 개미들의 수가 점점 불어난다. <<손가락들이다.>> 카위자크가 준 꿀을 거부했던 병정개미가 페로몬을 발했다. 그 개 미는 꿀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손가락들이 원정군에 대해 복수하러 왔다!>> 쥘리에트 라미레는 그 조그만 미물들이 모두 무엇 때문에 동요하는지를 눈치챘다. "빨리! 개미들이 경보 페로몬을 뿜어대기 전에 모두 붙잡아요." 레티샤와 멜리에스는 개미들을 풀과 흙이 뒤섞인 채로 한줌 잡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라미레가 상자 위에 페로몬을 뿌렸다. <<소동 피우지 마라, 모든 게 잘 될거다.>> 그 페로몬은 즉시 효력을 발휘했다. 상자 안에서는 더 이상의 동요가 없었다. "서둘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등 위로 벨로캉 연방의 군대 들이 모두 올라올거예요. 살충제 분무기를 아무리 많이 들이대도 저 개미들을 끝내 저지하지 못할거예요." <알쏭달쏭 함정 퀴즈>의 챔피언인 라미레 부인이 말했다. "걱정 하지 마세요. 자, 이제 됐어요. 밑에서 뭔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요, 우리 바로 아래에 동굴이 있는 것 같아요." 경찰관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세요, 아래 누구 있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들은 손전등을 가지고 주위를 밝혀보았다. "사원인 것 같은데.... 아무도 없군." 카위자크가 말했다. 경찰관 하나가 밧줄을 가지고 왔다. 그는 밧줄을 나무 밑동에 단 단히 묶어놓고 손전등을 들고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카위자크가 뒤 따라갔다. 그는 동굴 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전에 우선 방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다. "됐어요. 그들을 찾았어요. 그들은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아 요. 그런데 지금은 자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북새통 속에서 잠을 자다니.... 말도 안 돼. 우 리들이 떠드는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 자크 멜리에스는 자기가 직접 확인하려고 내려갔다. 방에 불을 비 추어 보다가 그는 샘과 컴퓨터와 웅웅거리는 전기 기계들을 발견하 고 깜짝 놀랐다. 그는 침실 쪽으로 나아가 거기에 누워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깨우려고 팔을 잡았다. 팔은 너무나 여위어서 해골을 만지는 듯했다. 그는 뒤로 움칫 물러섰다. "이들은 모두 죽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오...." 멜리에스는 펄쩍 뛸 듯이 놀랐다. "누가 말을 한 거지?" "나요." 누군가가 연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돌아선 멜리에스 경정 앞에 뼈가 앙상히 드러난 사람 하나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니오, 우리는 죽은 게 아니오. 우리는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당신들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소." 조나탕 웰즈가 팔을 벽에 기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들은 서로를 주시했다. 조나탕 웰즈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당신들은 우리가 땅을 파내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요?" 자크 멜리에스가 물었다. "들었소.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고 싶었소." 잠에서 깬 다니엘 로젠펠트가 말했다. 그들은 모두 일어났다. 하나같이 피골이 상접했고, 더 이상 말할 기운조차도 없어 보였다. 경찰관들은 흡사 귀신을 보고 얼이 빠진 표정들이었다. 사실 그들 의 몰골은 사람의 형상이라 보기가 어려웠다. "여러분들, 배가 몹시 고프겠군요!" "아닙니다, 성급하게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지 마세요. 그 것은 우리를 죽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아주 적게 먹고 사는 데 익 숙해져 있거든요." 에밀 카위자크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지하실의 사람들은 침착하게 옷을 걸친 다음 앞으로 나왔다. 그들 은 햇빛을 보자 눈을 가리고 뒤걸음질을 쳤다. 햇빛이 그들에게 너 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조나탕 웰즈는 지하에서 공동 생활을 한 동료들 몇몇을 모이게 했 다. 그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자 자종 브라젤이 질문 하나를 제기했 다. 이미 그들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던 질문이었다. "나가는 게 좋겠소, 남아 있는 게 좋겠소?" 212. 백과 사전 비트리올 <비트리올>은 황산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비트리 올>이 <유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보다 더 연금술적인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비트리올>이 란 단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주문의 첫번째 글자들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다. 즉 <땅속으로 들어가보라, 거기서 마음가짐을 바 로 하면 숨겨진 돌을 발견할 수 있을지니 Visita Interiora Terrae, Rectificando Occultem Lapidem>의 첫 글자들이 모여 이 된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213. 준비 클리푸니의 시신은 시체실에 놓여 있다. 신을 믿는 개미들이 거기 에 여왕개미를 옮겨놓았다. 산란하는 여왕개미가 없으면 벨로캉 왕국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불개미에게는 여왕개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도 말고 한 마리 의 여왕개미만 있으면 된다. 모든 개미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도시를 몰락의 위기에서 구 하는데 신을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될 수 없다. 시기가 지났다 할 지라도 신생의 축제를 다시 열어야 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지난 7월 신생의 축제 때 날지 못했던 늦된 암개 미들을 모으고, 지난 결혼 비행 때에는 너무 허약해서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수개미들을 채근하여 결혼 비행에 임할 준비를 시킨다. 짝짓기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손가락들이 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산란하는 여왕이 사흘 안으로 즉위하지 않 으면 벨로캉 개미들은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개미들은 사랑의 행위를 준비하는 암개미들에게 활력을 넣어주기 위해 꿀을 먹이고 미욱한 수개미들에게 결혼 비행의 절차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벨로캉의 둥군 비웁 위로 개미 무리가 모여 든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신생의 축제>는 언제나 환희가 넘쳐났 지만, 올해는 공동체의 존속이 문제가 되고 있는 탓에 결혼 비행의 기쁨이 예전만 못하다! 한 마리의 여왕개미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서 벨로캉으 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페로몬들이 뒤섞이면서 잠시 소동이 일어난다. 투명한 두 날개만 으로 된 예복을 입은 암개미들이 결혼 비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포수 개미들은 새들이 접근할 경우를 대비해 도시 지붕의 요소요소 에 포진해 있다. 214. 동물학 기억 페로몬 분야:동물학 주제:손가락들 정보 제공자:103683호 정보 제공 연도:100000667년 의사소통:손가락들은 입으로 소리의 진동을 일으켜서 서로 의사 소통을 한다. 이 진동들은 머리 양측의 구멍 안에 놓인 둥글고 얇은 막에 전해진다. 소리를 받아들인 이 막은 그것들을 전기 자극으로 바꾸어 뇌에 전달하고, 뇌는 즉시 이 소리에 적합한 의미를 부여한다. 생식:손가락들의 암컷은 자기 새끼들의 성, 신분, 심지어 형태마 저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각각의 탄생은 하나의 우연일 뿐이다. 냄새:손가락들은 마로니에 기름 냄새를 풍긴다. 영양 섭취:가끔 손가락들은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심심하기 때문에 먹기도 한다. 비생식 개체:손가락들 중에 생식 능력이 없는 개체는 없다. 그들 에게는 암컷 또는 수컷만 있을 뿐이다. 알을 낳는 여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유머:손가락들은 우리에게는 아주 생소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유머>라 부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지 만 재미있어 보이기는 한다. 수:손가락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보다 수가 훨씬 많 다. 그들은 줄잡아 천 마리의 손가락들로 구성된 십여 개의 도시를 세계 도처에 건설해 놓았다. 짐작컨대 지상에 존재하는 손가락들이 1만 마리는 족히 될 듯하다. 체온:손가락들은 바깥 온도가 차더라도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보 존해 주는 내부 항온 장치를 갖고 있다. 이런 체계는 그들이 밤이나 겨울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눈:손가락들은 머리의 나머지 부분에 비해서 움직임이 활발한 눈을 갖고 있다. 걸음:손가락들은 두 다리로 균형을 잡고 걷는다. 그런 자세는 비 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생리적 진화이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그 자 세를 완전하게 제어하지는 못 한다. 암소:손가락들은 우리가 진딧물에서 분비꿀을 짜는 것과 마찬가지 로 암소(손가락들보다 더 크고 뚱뚱한 네 발 동물)에서 젖을 짠다. 215. 다시 태어나다. 그들은 지하 동굴에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아주 의연한 모 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병들어 있지도 않고 죽어가고 있지도 않았으며 단지 약해져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들 말이에요,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카위자크가 투덜댔다. "작년에만 우리를 구하러 왔어도 당신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을거 야. 그러나 지금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어." 그의 경찰 동료였던 알랭 빌솅이 그 소리를 듣고 한마디 했다. "어쨌든 우리는 당신들을 구했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했단 말인가?" "살다 살다 이렇게 배은 망덕한 건 처음 보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더니만...." 카위자크는 어이없어 하면서 지하 사원 바닥에 침을 뱉었다. 갇혀 있던 스무 명이 줄사다리를 타고 하나씩하나씩 밖으로 나왔 다. 그들은 햇살이 눈부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눈을 보호할 안대 가 필요했다. 그들은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얘기 좀 해봐요." 레티샤가 조나탕을 붙잡고 말했다. "얘기해 줘요, 조나탕! 저는 사촌 동생 레티샤예요. 에드몽 웰즈 의 딸이지요. 어떻게 지하실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어요?" 조나탕 웰즈는 그 집단의 대변자 노릇을 해야 했다. "우리는 그저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 우리는 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미안해." 오귀스타 할머니가 돌 위에 올라앉아 거절하는 몸짓을 하면서 경 찰관들에게 말했다. "물도 필요 없고 먹을 것도 필요 없어요. 담요나 좀 줘요. 바깥에 나오니까 너무 춥군요." 할머니는 엷은 미소를 띠면서 덧붙였다. "우리에겐 추위를 막아줄 지방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레티샤 웰즈, 자크 멜리에스, 쥘리에트 라미레는 지하에 갇혔던 사람들이 반사 상태에 빠져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로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걸 보고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하에 갇혔던 사람들을 자동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간 다 음 종합 진찰을 받게 했다. 그들의 건강 상태는 걱정했던 것보다 훨 씬 양호했다. 모두 비타민과 단백질이 극도로 결핍되어 있긴 했지 만, 내부 또는 외부의 손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세포의 파손이 생기지도 않았 다. 정신 감응의 메시지처럼 쥘리에트 라미레의 머리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어머니 같은 대지의 자궁에서 그들은 새로운 인간성을 지닌 아기들로 태어나리라 .> 몇 시간 후, 레티샤 웰즈는 그들을 진찰했던 정신 요법 의사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요. 나를 바보로 여기고 있기라도 하듯 모두 나를 보 고 빙그레 웃고 있는데, 그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예요. 무엇보 다도 놀라운 것은 그들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무척 애를 먹고 있어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건드리면 모두가 그 손길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직 뭔가 더 있어요?" "그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른다고요?" 멜리에스는 깜짝 놀라 의사의 말을 되뇌고는, 자기 나름의 의견을 덧붙였다. "당신이 잘못 들었을 겁니다. 그들이 다시 말을 하는데 익숙해지 려고 애쓰는 소리를 듣고 그러시는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그들은 노래를 해요. 서로 다른 소리를 내다가 모두가 똑같은 음으로 결합한 다음 그 음을 유지해요. 그 독특한 소리가 병 원 전체를 진동시켜요.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위안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그들은 치매 상태가 된 겁니다!" 경정이 외쳤다. "그 소리는 아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호일거예요. 그레고리 언 성가처럼 말이에요. 제 아버지도 그런 소리에 무척 관심이 많으셨어요." 레티샤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개미 세계에서 냄새가 개미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신호이듯이 그들에게는 소리가 결속의 신호가 되는 거로군요." 쥘리에트 라미레가 보충했다. 자크 멜리에스 경정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세요. 새로운 명령이 있 을때까지 그 사람들을 격리해 두세요." 216. 누가 토템을 세웠을까? 어느 날, 퐁텐블로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던 낚시꾼 한 사람이 아 주 특이한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떤 개울이 두 갈래로 나뉘 었다. 합쳐지면서 자그마한 섬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섬 위에 찰 흙으로 빚은 조그만 조상들이 눈에 띄었다. 그 조상들은 아주 미세 한 연장으로 제작된 듯했다. 왜냐하면 그 조상들에는 아주 작고 다 양한 주걱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상들은 수백 개나 되었는데, 모두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 았다면, 아마 소금 따위로 만든 미니어쳐라고 믿을 법했다. 그 사람은 낚시 이외에 또 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느데, 그것은 바 로 고고학이었다. 사방에 배열된 이 토템들에서 그는 곧 파스쿠아 섬에 있는 형상들을 연상했다. 그는 자기가 옛날 이 숲에 살고 있었 던 소인 부족의 파스쿠아 섬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부족의 구성원 들이 벌새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어떤 고대 문명의 마지막 흔적 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쟁이들이 이것 들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요정들이 만들었을까? 하지만 고고학자인 그 낚시꾼은 그 섬을 면밀하게 조사하지는 않 았다. 용의 주도하게 조사했더라면 그는 아마 의사 소통을 위해서 더듬이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곤충들의 무리들을 알아볼 수 있었 을 것이고, 진흙으로 형상을 만든 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7. 암 103호는 첫번째 약속을 지켰다. 개미 도시 아래에 갇혔던 사람들 은 구조되었다. 쥘리에트 라미레는 103호에게 두 번째 약속을 지켜 줄 것을 부탁했다. 암의 비밀을 벗기는 것, 병정개미 103호는 <로제 타 석>의 유리 덮개 안에 다시 자리를 잡고 긴 연설의 페로몬을 발하기 시작한다. 분야:생물학(이 페로몬은 손가락들을 위해 만든 것임) 주제:손가락들이 암이라고 부르는 것 정보제공자:103호 당신들 인간들이 암을 근절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들의 과학적 지 식이 낡았기 때문이다. 암과 관련한 당신들의 분석 방법이 당신들을 눈멀게 하고 있다. 당신들은 단 한 가지 방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다. 오로지 당신들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본다. 당신들은 과거의 포 로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여러 실험 덕분에 몇몇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들은 그런 사실을 통해서, 실험만이 모든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텔레비젼에서 방영한 과 학 영화에서 그걸 깨달았다. 당신들은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서 그것을 측정하고, 틀 안에 넣고, 분류하고 점점 더 작은 조각으 로 나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은 잘게 자르면 자를 수록 더욱 더 진 리에 다가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매미를 잘게 자른다고 매 미가 왜 노래하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난초 꽃잎의 세 포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고 해서 난초 꽃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 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처지 가 되어보아야 하고 그것들과 한마음이 되어보아야 한다. 당신들이 매미를 이해하고 싶으면 십 분 동안 만이라도 매미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느끼려고 노력해 보라. 당신들이 난초를 이해 하고 싶으면 당신 자신을 난초라고 생각해 보라. 주위의 대상들을 잘게 자르고, 지식의 성채로부터 그것들을 관찰하기보다는 그것들의 처지로 들어가보라. 당신들의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 가운데 어떤 것도 하얀 가운을 입 은 구태의연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텔레비젼에 서 당신들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품에 관한 기록 영화를 봤다. 그러 나 그런 것들은 그저 실험 도중의 사고, 수증기에 들어올려진 냄비 뚜껑, 개에 물린 아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 우연히 뒤섞인 생성물 등일 뿐이 다. 당신들의 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의 시인이나 철학 자, 작가, 화가들을 참여시켰어야 했다. 간단히 말하면 선조들의 경 험을 모두 암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직관과 영감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신들의 고전 과학은 이미 낡았다. 당신들의 과거는 현재를 바라 다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옛날의 성공들은 오늘날의 성공을 방 해하고 있다. 당신들의 옛 영광들은 당신들의 가장 나쁜 적들이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당신들의 과학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교조적인 학설을 되풀이하고 있고, 당신들의 학교는 판에 박힌 실험 계획안으 로 상상력을 억압하고 있다. 게다가 당신들은 학생들이 스스로를 바 꾸어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에게 시험을 강요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당신들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 는 이유이다. 당신들은 뭐든지 똑같은 사고 방식으로 대하려 한다. 어떤 방법으로 콜레라를 치료하게 되었으니 같은 방식으로 암도 정 복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암은 마땅히 그 자체로서 연구를 해야 한다. 암은 완전한 별개의 실체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해결책을 제공하겠다. 당신들이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죽여버리는 우리 개미들이 어떻게 암의 문제를 해결했는지 당 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우리는 우리 개미들 중 암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죽지 않은 희귀 한 개체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암으로 죽어가는 개미들을 연구하는 대신, 암에 걸렸지만 이유도 알 수 없이 갑자기 나아버린 개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 는지 찾아보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공통점을 찾는데 몰두했다. 아주 오랫동안.... 드디어 우리는 그 <기적적으로 살아난> 개미들 대부분 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보 통 개미들보다 주위 환경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암은 의사 소통의 문제다. 그렇다면 누구와의 의사 소통인가? 다른 실체들과의 의사소통이다. 우리는 암에 걸린 개미들의 몸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했 다. 만질 수 있는 실체는 아무 것도 없었다. 포자도, 세균도, 유충 도 없었다. 그때 어떤 개미가 천재적인 발상을 내놓았다. 바로 병이 퍼져나가는 리듬을 분석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리듬이 언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질병은 우리가 언어 의 형태로 분석할 수 있는 파동에 따라 진전되었다. 우리는 그 언어 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언어를 발하는 실체를 다스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언어를 해독했 다. 그것은 대략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이해했다.암에 걸린 게체들은 사실은 본의 아니게 촉지할 수 없는 외계의 실체들을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외계의 실체들이란 어쩌면 의사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파동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 다.... 그 파동은 우리의 세계에 다다르면 말을 걸고 싶다는 하나의 생각, 즉 자기 주위에 보다 많은 것을 끌어들이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파동이 살아 있는 몸 안에 다다랐을 때, <안녕하세요, 당신은 누구예요? 우리는 적의가 없어요. 당신의 행성은 이름이 뭐죠?>라는 형태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기를 둘러싼 세포들을 증식시켰 다. 우리 개미들을 죽였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환영의 뜻을 담은 문장과 길 잃은 여행가들의 질문 들이었다. 당신들을 죽이는 것도 바로 그 것이다. 아더 라미레를 구하려면 당신들은 개미와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로제타 석>과 비슷한 기계, 즉 암의 언어를 번역하는 기계를 만들 어야 한다. 암의 리듬과 파동을 연구한 다음, 그것들을 재생하고 조 작해서 이번에는 당신들 쪽에서 암에게 말을 걸어보라. 그런 번역이 가능하리라고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당신들의 자유다. 그러나 그 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잃어버릴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자크 멜리에스, 레티샤 웰즈, 그리고 라미레 가족들은 103호의 그 이상한 제안에 당혹감을 느꼈다. 암과 대화를 한다고? 장난감 가게 주인인 아더 라미레는 이제 며칠 밖에는 더 살지 못할 처지였고 엄 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103호의 얘기는 어느 모로 보나 터무 니가 없어 보였다. 개미에게서 의학에 대한 가르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어쨌든 103호의 논리는 받아들이기 가 어려웠다. 그러나 아더는 죽어가고 있었다. 전혀 터무니가 없어 보이는 그 방법이라도 써 봐야 되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두고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218. 만남 화요일 오후 2시 30분, 오래 전에 해 놓은 약속에 따라 과학부 장 관 라파엘 이조는 자크 멜리에스 경정을 맞이했다. 멜리에스는 장관 에게 쥘리에드 라미레 여사, 레티샤 웰즈 양을 소개하고, 이어서 개 미가 들어 있는 병을 보여주었다. 대담은 20분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덟 시간 삼십 분이 연장되고, 다시 여덟 시간이 연장되어 그 다음날로 이어졌다. 목요일 오후 7시 23분, 프랑스 대통령 레지 말루는 응접실에서 과 학부 장관 라파엘 이조를 맞이했다. 대통령은 오렌지 쥬스, 크르와 상, 삶은 계란 등을 앞에 놓고 긴히 전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과학 부 장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통령은 크르와상 위로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당신은 도대체 나에게 무얼 요구하는 겁니까? 개미와 대화를 하 라는 거요? 안 됩니다. 천부당 만부당해요! 당신 주장대로 그 개미 가 지하에 갇혀 있던 스무 명의 사람을 구했다 하더라도 안 돼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얘기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얘기인지 생각 이나 해보았습니까?" "...." "웰즈 사건 때문에 장관 어떻게 된 거 아니오? 자, 나는 당신 얘 기를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소. 그러나 당신도 그 얘기라면 더 이상 하지 마시오. 개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마시오!" "이 개미는 보통 개미가 아닙니다. 103호입니다. 이미 인간들과 얘기를 나누었던 개미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개미 연 방 벨로캉의 대표입니다. 1억 8천만의 개체를 가진 강력한 연방입니다." "1억 8천만 마리가 어쨌다고요? 어허, 당신 미쳤군요! 그래봤자, 개미고 곤충이오! 우리가 손가락으로도 죽일 수 있는 미물들이란 말 이오.... 광대들의 속임수에 놀아나서는 안 돼요. 이조 장관." "...." "아무도 당신 얘기를 믿지 않을거요. 유권자들은 수면제 같은 얘 기로 사람들을 잠재우는 얼렁뚱땅 세금 하나 더 늘리려 한다고 생각 할거요. 야당의 반발은 어쩌구요.... 벌써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이조 장관이 반박했다. "사람들은 개미에 대해 너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에 게 호소하듯이 개미에게 호소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그들에게 배울 게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당신은 지금 암에 관한 터무니없는 이론을 말하고 싶은거죠? 황 색언론을 통해 벌써 다 읽었어요. 당신에게 중요하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조 장관?" "개미들은 지구상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동물이고, 가장 오래 되 고 가장 진화한 동물들 가운데 하나일 게 분명합니다. 1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개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지는 3백만 년 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은 기껏해야 5천 년 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경험이 많 이 축적된 사회에서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의 개미들은 우리에게 1천만 년 후의 인간 사회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나는 이미 그 내용도 들었어요. 하지말 말도 안 돼요. 고작 개미 들일 뿐이요! 개들에 대한 얘기를 했더라면 오히려 나을 뻔했어요. 그랬더라면 어느 정도는 내가 이해했을거요. 우리 유권자의 3분의 1 이 개를 키우고 있잖소? 하지만 개미는 기르지 않아요." "우리가 하기만 하면...." "됐어요. 잘 기억해 둬요! 나는 개미와 얘기를 나눈 최초의 대통 령이 되고 싶지는 않소. 나는 온 세상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 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이끄는 정부나 나 자신이 하찮은 미 물 때문에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어요. 이제 더 이상 개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소." 대통령은 흥분한 나머지 삶은 달걀을 포크로 힘껏 찍어 꿀꺽 삼켜 버렸다. 과학부 장관은 냉정하게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안 됩니다. 저는 각하께 개미에 대해 계속 얘기하겠습니다. 각하 께서 생각을 바꿀 때까지 말입니다. 며칠 전 몇몇 사람들이 저를 만 나러 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간결한 말로 모든 걸 설명했습니다. 저는 곧 그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몇 세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 회가, 그리고 미래를 향해 커다란 도약을 할 기회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저는 그 기회가 사라져버리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짓!" "들어보십시오. 저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대통령께서도 마찬가 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구상에 우리가 지나갔던 독창 적인 자취를 남기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개미들과의 문화적, 경 제적, 나아가 군사적인 협력을 고려해 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어 쨌든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강한 종인데 말입니다." 대통령 말루는 토스트를 삼키다 목에 걸려 재채기를 하고는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내친 김에 개미 나라에 프랑스 대사관을 개설하지 그러시오?" 하지만 장관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예, 저도 대사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쳤군,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오!" 대통령은 팔을 위로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그저 하찮은 미물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외계인을 생각하듯이 개미를 생각하십시오. 물론 그것들은 외계인이 아니라 지중 동물입 니다. 개미들이 외계인들만큼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이 너 무 작고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우리는 개미가 갖고 있는 경이로운 것들을 더 이상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말루는 장관을 쏘아보다가 말했다. "장관이 나에게 건의하고자 하는 게 뭐요?" "공식적으로 103호를 만나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조 장관이 주저없이 대답했다. "103호가 누구죠?" "우리 인간들을 잘 알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통역관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개미입니다. 각하께서 그 개미를 비공식적인 오찬을 마련 하여 엘리제 궁에 초대해 주십시오. 개미는 기껏해야 한 방울의 꿀 을 먹을 것입니다. 각하께서 개미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말씀을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개 미와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라미레 부인이 각하께 페로몬 번역기 를 제공할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응접실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오랫동안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찬성이냐 거절이냐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듯했다. "안 되겠소. 절대로 안 돼요!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우리 시대를 빛낼 기회를 놓치는 게 낫겠소. 개미와 회담을 한 대통 령이라니....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거요." "그러나 각하...." "끝났소. 당신의 개미 얘기로 더 이상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지 마 시오! 대답은 불가요. 절대 안 돼요. 그럼 잘 가시오. 이조 장관!" 219. 에필로그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광활한 빛살이 퐁텐블로 숲 위에 퍼져 있 다. 천연의 거미 그물이 빛살로 짠 레이스로 변한다. 햇살의 열기가 대지를 덥히고 있다. 나뭇가지 아래에서 보잘것없는 미물들이 꼼지 락거린다. 지평선이 붉게 물들어 있다. 고사리들은 잠이 든다. 빛이 삼라 만상 위에 쏟아진다. 더할 나위 없이 기이한 모험이 벌어지고 난 무대를 강렬하고 순수한 빛살이 핥고 있다. 별들의 저편, 창공의 한쪽 끝에서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혹성 들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관심한 채 은하수가 천천히 움직인다. 한편 지구의 조그만 개미 제국에서는 신생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 다. 벨로캉의 여든한 마리 암개미들이 자신들의 왕조를 구하기 위해 날아 오른다. 그때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개미들을 발견한다. "와, 엄마, 엄마, 저 파리들 좀 봐!" "저것은 파리가 아니란다. 저것은 여왕개미들이야. 텔레비젼에서 언젠가 보았잖니? 저게 바로 결혼 비행이라는 거야. 저 암컷들은 곧 수컷들과 공중에서 짝짓기를 할거야. 그리고 몇 마리는 아마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왕국을 세우게 될거야." 암개미들이 하늘 높이 올라간다. 높이, 높이, 제비나 참새들 따위 를 피해, 뒤따라 수컷들이 날아올라 암개미들과 결합한다. 함께 올라간다.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빛이 그들을 빨아들인다.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뜨거운 햇빛 속에 녹아든다. 따사로움, 밝음, 빛. 삼라 만상이 빛을 받아 하얗게 부서진다. 눈 부신 빛으로 부서진다..... 빛 '개미의 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