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개미의 날 네 번째 비밀 대결의 시대 111. 푸르미라는 성을 가진 사람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한 뚱뚱한 사내가 문을 열었다. "올리비에 푸르미 씨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멜리에스는 삼색 줄이 그어진 신분증을 내보였다. "경찰입니다. 경정 멜리에스라고 합니다. 들어가서 몇 가지 질문 을 드려도 될까요?" "예, 그렇게 하시죠." 그 남자는 전화 번호부에 기입되어 있는 마지막 <개미>였다. 그의 직업은 교사로 나와 있었다. 멜리에스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가 놀라며 대답했다. 멜리에스는 사건 발생 당시 그가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올리비에 푸르미에게는 증인도 알리바이도 충분했다. 그는 늘상 학교에 있거 나 아니면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그가 무죄라는 사실은 너무나 쉽게 입증되었다. 그때 그의 아내인 엘렌 푸르미가 나타났다. 엘렌은 나비 무늬가 찍힌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 그걸 보자 멜리에스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푸르미 씨, 살충제를 사용하시나요?" "천만에요. 어려서부터, 나를 <더러운 개미>로 놀리는 얼간이들이 있었어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발 꿈치로 눌러버리는 그 곤충과 어떤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죠. 아마 팡뒤(<교수형을 당한 사람> 또는 <목매달아 죽은 사람>이라는 뜻)라 는 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집에는 밧줄이 없을 것입니다. 제 말 뜻을 아시겠어요? 마찬가지로 이 집엔 살충제가 없지요." 그때 오펠리 푸르미가 불쑥 나타나 그의 아버지에게 몸을 바싹 기 댔다. 안경이 두텁기로 학급에서 첫째가는 여자 아이였다. "제 딸아이예요. 방에 개미집을 두고 관찰하고 있답니다. 얘야, 그것을 이분께 보여드리렴." 오펠리는 멜리에스를 커다란 사육통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레티샤의 사육통과 비슷한 것이었다. 사육통은 개미로 가득했고, 잔 가지로 된 원추형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개미 판매는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지 않았어요. 숲에서 파온 거예요. 여왕개미가 달아나지 않도 록 땅을 충분히 깊게 옮겨 담은 거예요." 어린 딸이 반박하는 걸 보고 올리비에 푸르미가 딸아이를 매우 대견해 했다. "저 애는 커서 생물학자가 되고 싶어하죠." "아, 그래요? 저는 아이가 없어서 개미가 <장난감>으로 유행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장난감으로 유행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개미 사회 처럼 되어가니까 개미가 유행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개미를 관찰하 면서, 아이는 사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겁 니다. 다른 데 이유가 있는게 아닙니다. 경정께서는 개미 사육통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개미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말이죠...." 자크 멜리에스는 내심 애오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모든 개미 애호가들이 자기 주변에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정말 커다란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예요?" 오펠리 푸르키가 물었다. "경정이야." "경정이 뭐예요?" 112. 잿빛 두루마리구름 두루마리구름 뭉치들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황금의 도시 꿀벌들은 처음 에는 회색 구름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들이 소란스런 왕파리들인 줄로만 알았다가 잠시 후에야 그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왕파리들이 아니다! 딱정벌레 곤충들이다. 그러나 풍뎅이나 쇠똥구리는 아니다. 맞다. 저것들은 바로 뿔풍뎅이들이다. 뿔이 돋은 커다란 곤충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고 있다. 그 위 에 포문을 열 준비를 하고 개미들이 작은 대포처럼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이란 정말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다. 꿀벌들은 잠시 의아해 한다. <<어떻게 저 커다란 동물들을 길들여 싸움에 이용할 수 있었을까?>> 어느세 뿔풍뎅이 이십여 마리가 다가와 그늘을 드리운다. 벌들은 더이상 궁금해 할 시간이 없다. 뿔풍뎅이들은 벌써 벌들에게 기습을 가하고, 위에 타고 있는 불개미 포병들은 개미산을 발사한다. 벌들의 대형은 V형에서 점차 W형으로, 심지어 도망치는 XYZ형으로 바뀌고 있다. 기습의 효과는 완벽하다. 뿔풍뎅이마다 꿀벌들에게 강력한 개미산 포를 쏘는 네다섯 마리의 포수 개미를 싣고 있다. 아스콜레인 꿀벌들은 잠시 멈추어 정신을 차린 후, 독침을 뽑는다. <<점선 대형으로! 뿔풍뎅이들을 습격하라!>> 한 아스콜레인 벌이 소리지른다. 뿔풍뎅이 제2진이 달려든다. 그러나 꿀벌들이 대오를 수습한 마당 이어서, 공격의 효과가 1진만 못하다. 꿀벌들은 개미산 포를 피해 뿔풍뎅이의 배 아래로 내려가 목을 찾더니, 그곳에 독침을 쏘려고 기어올라온다. 이제 뿔풍뎅이와 그들의 서툰 조종사들이 아찔하게 추락하면서 버둥거린다. 춤으로 나타내는 꿀벌의 명령이 떨어진다. <<공격! 돌격하라!>> 독침이 비오듯 쏟아진다. 꿀벌들은 갈고리 모양으로 독침을 타고난다. 희생자 살 속에 독침 이 박히면 꿀벌들은 독침을 빼내려고 버둥거리다가 독샘이 뽑혀나가 면서 죽음을 맞는다. 개미의 딱지는 뿔풍뎅이와는 달리 꿀벌의 독침 을 붙들어두지 못한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몇몇 뿔풍뎅이들이 추락한다. 하지만 다른 뿔풍뎅이들은 동요하지 않고 마름모꼴로 대형을 좁혀 서 꿀벌들의 마지막 삼각 대열과 맞서 싸운다. 질서 정연하던 전투의 대형이 흐트러진다. 개미의 마름모꼴 전투 대형은 더 작고 촘촘함 몇 개의 마름모꼴로 바뀌고 꿀벌의 삼각형 대열은 고리형으로 바뀐다. 백여 개의 전장이 수직으로 겹겹이 포개어져 있고, 그 속에서 벌 이는 격전은 흡사 층층이 놓인 백 개의 체스 판에서 벌이는 체스 게 임과 같다. 전장의 모습이 장관이다. 벨로캉의 항공대가 반짝인다. 꿀벌들은 뜨거운 기류를 이용하여 올라가더니 뿔풍뎅이 항공대로 뛰어든다. 마치 한 무리의 작은 배들이 커다란 함선에 덤벼드는 형국이다. 개미들이 60% 개미산으로 일제히 사격을 한다. 액체 포탄을 사용 하는 자동 속사포라 할 만하다. 고열에 탄 날개에서 연기가 나고, 타격을 받은 꿀벌들이 비약하여 뿔풍뎅이의 갑각에 작은 화살을 박으려고 애쓴다. 독침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포를 겨눌수 없게 된 포수 개미들은 집게 같은 위턱으로 꿀벌들을 물리친다. 꿀벌들이 필사의 각오로 덤벼든다. 침이 종종 뿔풍뎅이의 껍질에 서 미끄러져나가 입에 박힌다.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개미산에 맞은 꿀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독이 다 떨어진 벌들은 적의 몸에 주사기로 꽂았으나 독약을 더 이상 주입할 수 없다. 포수 개미들의 개미산도 동나 이제 화염 방사 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위턱과 마른 침이 서로 부딪치며 최후의 접 전을 벌인다. 보다 빠르고 날랜 쪽이 이기는 것이다. 뿔풍뎅이들은 때때로 머리에 돋은 뿔로 꿀벌들을 찔러 죽인다. 노 련한 뿔풍뎅이는 뺨으로 적을 밀어붙이고 뿔로 파고든다 운이 나쁜 병정벌 네 마리가 검은 줄이 그어진 노란 과일 꼬치처럼 뿔풍뎅이의 뿔에 꽂혀 있다. 병정개미 103호는 꿀벌 하나가 9호와 접전중인 것을 발견하고 오 른 쪽 위턱을 꿀벌의 등에 박는다. 곤충의 세계에서는 등 뒤에서 찌 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다. 살아 있는 한 모든 공격이 허용된다. 뿔풍뎅이 위에 홀로 탄 병정개미 9호가 전투 대형으로 모여 있는 꿀벌들에게 돌진한다. 적진에서는 곧 날카로운 창이 삐죽삐죽 솟아 난다. 선두의 뾰족한 침들이 9호를 찌르려고 하지만, 뿔풍뎅이를 탄 9호가 너무나 빨리 적의 가시 전선과 충돌하자 꿀벌 떼가 흩어진다. 103호는 뒷다리 둘로 버티고 서서 요란하게 붕붕거리는 꿀벌 두 마리와 접전을 벌인다. 103호의 위턱이 사브르라면 꿀벌들의 독침은 플러레다(펜싱 경기에서 사브르는 찌르거나 자르는 두 기술을 사용 하지만, 플러레는 표적에 칼을 찌르기만 한다). 그러나 103호가 타 고 있는 뿔풍뎅이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의 뿔 주위에 꿀 벌들이 쏘아댄 독침들이 잔뜩 박혀 있어서 비행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기진 맥진한 뿔풍뎅이가 허공에서 피를 뿌리며 추락한다. 뿔풍뎅 이가 거의 배고니아에 닿으려 한다. 103호가 비상 착륙을 시도한다. 아직도 그의 위에 꿀벌들이 있지만, 포수 개미들이 재빨리 달려와 꿀벌들을 쫓아낸다. 이제 103호는 아주 중요한 다른 일에 착수해야 한다. 전투원들 위쪽에서 꿀벌들이 전황을 알리려고 8자 춤을 춘다. <<우리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해.>> 증원군이 벌집을 떠난다. 새로운 비행 부대는 대부분 생후 20일에서 30일 된 젊고 용감한 꿀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시간 가량의 치열한 접전 끝에, 벨로캉은 참전한 뿔풍뎅이 서 른 마리 가운데 열 두 마리와 병정개미 300마리 가운데 120마리를 잃었다. 한편, 작은 구름 쪽으로 파견되었던 700의 아스콜레인 꿀벌들 가 운데 400이 전사했다. 살아남은 꿀벌들은 망설인다. 끝까지 싸우는 것과 둥지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는 것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꿀벌들은 둥지를 지키기로 한다. 뿔풍뎅이들과 벨로캉의 병정개미들이 황금의 벌집에 다다라보니, 그곳은 이상하게도 텅빈 듯하다. 9호가 선두에 선다. 불개미들은 순 간 허방다리임을 감지하고 입구에서 망설인다. 113. 백과 사전 연대 의식 연대 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생긴다. 누구나 즐거운 일을 함께한 사람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느낀다.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 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는 자 신의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가 공동 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장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 성공을 한 다음의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얼 마나 많은 정치 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 어원적으로 보면, <공간 sympathie>이란 말은 <함께 고통을 껴다> 라는 뜻의 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연민 compassion>이란 말 또한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라틴어 에서 생긴 것이다. 사람은 자기 집단의 헌신적인 구성원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서, 세상에 자기 혼자뿐인 것 같은 견디기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집단에 응집력과 결속력이 건재하는 것은 함께 나눈 어려운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14. 벌집에서 9호는 뿔풍뎅이에서 내려 더듬이로 냄새를 맡는다. 주위에 다른 개미들이 도착하자 바로 협의에 들어간다. <<매우 위험한 지역이므로 특공 대형으로 들어가자.>> 개미들은 밀집된 방진을 짜고 벌집으로 침투한다. 벌집 안에서는 날으는 뿔풍뎅이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 같아서 개미들은 뿔풍뎅 이들을 입구에 남겨두고, 그 동안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약간 의 나무 껍질을 뜯어먹으라고 준다. 벨로캉 전사들은 자기들이 성전을 침입하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 꿀벌이 아닌 어떤 것도 결코 들어온 적이 없는 곳이다. 개미들은 밀 랍 벽에 늘어붙을까 저어하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로 된 칸막이가 금빛을 발한다. 새어든 몇 줄기 빛에 꿀이 반짝인다. 밀랍 판은 마로니에와 버드나무 눈 껍질 에서 구한 불그스름한 고무로 용접되어 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9호가 외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꿀에 이끌려 그 맛을 보고 싶어하던 개미들 이 곧바로 말려든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을 빼내기란 불가능하다. 구하려는 자들마저도 그 늪에 빠져들어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개미산을 약간 간직하고 있던 포수 개미들이 불시의 기 습에 맞서 신속하게 포를 쏘려고 뒤로 물러선다. 달콤한 냄새 속에 매복의 낌새가 가득하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개미들은 아스콜레인 일벌과 병정벌들이 밀랍 방 속에 숨어 명령 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음을 냄새로 감지한다. 벨로캉 원정군은 육각형의 방들이 격자 모양으로 늘어선 곳에 다 다른다. 그것은 우라늄 덩어리 대신 아스콜레인의 미래 시민들이 들 어 있다는 점만 빼면 마치 원자로의 한복판 같다. 그곳엔 알이 담긴 구멍 800개, 애벌레가 들어 있는 구멍 1,200개 하얀 번데기가 차지 하고 있는 구멍 2,500개가 있다. 중앙엔 훨씬 중요한 구멍 여섯 개 가 있다. 그곳에는 생식 능력을 지닌 암벌의 애벌레들이 자란다. 개미들은 문명의 절정에 이른 것 같은 건축물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도시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린다는 원리에 따라 되는 대로 건설된 무질서한 통로 외에는 볼거리가 없다. 개미 들이 벌들보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덜 세련된 것일까? 벌의 뇌 크기 를 고려하면 뇌 용량이 개미보다 훨씬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 나 클리푸니 여왕의 한 생물학 연구는 지능이 단지 뇌 용량으로 결 정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곤충들은 신경 조직이 온몸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개미들에겐 이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개미들은 계속 전진하여 식량으로 가득 찬 창고를 발견한다. 그곳 에는 벌집의 모든 식구들 몸무게의 스무 배는 될 10킬로그램 가량의 꿀이 있다. 흥분한 개미들은 더듬이를 심하게 떨며 토론에 들어간다. 섣부른 모험은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개미들은 되돌아서 출구 쪽으로 향한다. <<도망자들에게 덤벼라! 침입자들이 벽 사이에 갇혀 있는 동안에 공격하라!>> 어떤 벌이 신호를 보낸다. 육각형 구멍 곳곳에서 작은 병정벌들이 쏟아져나온다. 개미들이 독침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바닥 끈끈이에 걸린 개미들 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렇지만 9호를 포함한 특공대의 주력 부대는 벌집에서 빠져나오 는데 성공하여 뿔풍뎅이를 타고 달아난다. 아스콜레인 병정벌들이 승리의 페로몬을 뿜으며 개미들을 추격한다. 하지만 황금의 벌집에서 승리를 자축할 준비를 할 즈음 불길한 소 리가 들린다. 아스콜레인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백여 마리의 개미들 이 침투한다. 103호는 완벽한 전술을 세웠다. 꿀벌들이 개미들을 쫓 고 있는 동안, 103호는 급히 나무로 올라가 다수의 벨로캉 개미들을 병정벌들이 빠져나간 황금의 도시로 돌격시켰다. <<아무거나 다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 여야 한다. 생식 기관이 있는 애벌레를 볼모로 잡아라!>> 자하하에르샤 여왕의 친위 병정벌들에게 개미산을 난사하며 103호가 명령한다. 잠시 후 생식 애벌레들이 원정군 병정개미들의 집게에 모두 목이 잡힌다. 황금의 도시 아스콜레인 꿀벌들은 결국 벨로캉에 정복되고 말았다. 여왕벌은 비로소 모든 것을 파악했다. 개미 돌격대의 침입은 교란 작전일 뿐이었다. 그 틈을 타서 뿔풍뎅이들을 잃은 개미들이 벌집 지붕을 뚫고 처음보다 훨씬 위험한 기습을 해온 것이었다. <잿빛 두루마리구름> 전투를 승리로 이끔으로써 개미들은 이 지역 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정복을 이루어낸 셈이다. <<이제 당신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인가?>> 여왕벌이 묻는다. <<우리의 목표는 당신들이 아니라 손가락들이오. 손가락들이 우리 의 유일한 적이오. 벨로캉 개미들이 꿀벌과 싸울 이유는 없소. 우리 는 손가락들을 죽이기 위해 당신들의 독을 원할 뿐이오.>> 9호가 대답한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일 만큼 손가락들이 아주 중요한 모양이군요.>> 자하하에르샤 여왕벌이 페로몬을 발한다. 103호는 꿀벌 부대의 지원도 요청한다. 여왕벌이 동의하여 <꽃의 수비대>라는 정예 비행 부대를 제안하자, 곧 300마리의 꿀벌이 윙윙 거리기 시작한다. 103호가 만나보니, 그들은 아스콜레인 꿀벌들 중 벨로캉 부대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병정벌들이다. 원정군은 황금의 벌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해줄 것과 길양식으로 쓰게 꿀을 나누어줄 것을 다시 요청한다. 아스콜레인 여왕벌이 묻는다. <<당신들은 왜 손가락들을 공격하는가?>> 손가락들이 불을 사용하여 모든 종족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9호가 설명한다. 전에 곤충들은 불을 사용하는 모든 것에 대항하기로 협정을 체결 하였던 바 이제 그 협정을 준수할 때가 온 것이다. 그때 벌집 윗구멍에서 나오는 23호를 9호가 목격한다. <자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9호가 더듬이를 곧추세우며 묻는다. <<여왕벌 방을 구경하고 나오는 참이예요.>> 23호가 얼버무리자 감정이 상한 9호가 화를 낸다. 두 개미의 관계가 악화된다. 103호가 그들을 떼어놓으며, 24호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24호는 마지막 공격 때 벌집 안에서 길을 잃었다. 24호는 전투에 참가하여 벌들과 용감하게 싸웠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빛이 드는 곳인데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방고치를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24호는 죽 늘어선 육각형 구 멍으로 돌아다니면서, 다음날 아침까지는 원정군과 합류할 수 있기 를 기대하고 있다. 115. 후덥지근한 지하철 안에서 자크 멜리에스는 사람들이 빽빽히 들어선 전동차 안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전동차가 굽이 돌 때 어떤 여자의 배에 몸이 부딪혔 다. 누군가가 약간 메마르고 거친 목소리로 항의했다. "좀 조심할 수 없어요?" 그는 먼저 그 목소리를 식별했고, 잠시 후 찌든 때와 냄새 너머로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베르가모트 향, 베티베르 향, 귤 향, 갈록시 드 향, 백단향에 피레네 야생 염소 사향이 살짝 곁들여진 내음.... <저는 레티샤 웰즈예요.> 향기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사나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는 연보라빛 눈길, 그래 바로 그녀였 다. 레티샤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전동차의 문이 열리자 스물아홉 명이 나가고 서른다섯 명이 다시 들 어왔다. 찬 안이 아까보다 훨씬 더 빽빽해지면서 이제는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망구스트 새끼를 통째로 잡아먹으려고 벼르는 코브라처럼 그녀가 쏘아보자, 멜리에스는 그녀의 눈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레티샤는 죄가 없었는데, 그가 너무 경솔하게 행동했다. 전에 그 들은 의견을 나누었고 서로 호감도 가졌었다. 레티샤는 그에게 꿀술 을 대접했으며, 그가 늑대를 두려워한다고 하자 레티샤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단 한 번의 실수로 망쳐버린 친교의 순간들이 너무나 아쉬워 그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녀가 용 서해 주리라 믿으면서. "웰즈 양, 할말이 있는데요.... 제가 얼마나...." 레티샤는 차가 멈추자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신경질적인 발소리가 지하철 통로에 울렸다. 레티샤는 더러운 장 소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거의 뛰다시피 했다. 순간 레티샤는 응큼한 눈길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음을 느꼈다. 음침한 복도. 습한 통로. 어슴프레한 네온 빛이 깔려 있는 미로. "어이, 멋쟁이 아가씨! 데이트나 할까?" 비닐 잠바를 입은 불량배 세 명이 다가왔다. 그 가운데 하나는 며 칠 전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사내였다. 그녀가 무시하고 발걸 음을 재촉했지만, 사내들은 장화의 징으로 바닥을 울리며 따라왔다. "혼자야? 잠시 얘기나 나누는 게 어때?" 레티샤는 우뚝 멈춰서서 눈동자 속에 "꺼져!"라는 단어를 담았다. 지난번에는 그것이 통했는데, 오늘은 그녀의 매서운 눈빛이 그 악당 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이 예쁜데, 네 것이긴 한거냐?"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기른 사내가 빈정거렸다. "아냐, 빌린 걸거야." 또 한 사내가 대꾸했다. 상스러운 웃음들, 등에 닿는 손길, 수염을 기른 사내가 접칼을 꺼냈다. 레티샤는 갑자기 자신감을 모두 잃고 맹수 앞의 가녀린 사냥감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사내들은 곧바로 야수가 되었다. 레티샤는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허사였다. 사내들 가운데 하나가 그녀의 팔을 잡아 등뒤로 비틀었다. 레티샤는 비명을 질렀다. 환하고 그리 한적하지만은 않은 통로. 사람들이 그 무리와 마주쳤 지만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 장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체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칼부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졸여 가면서.... 레티샤 웰즈는 겁에 질렸다. 그녀가 평소에 사용하던 어떤 무기도 이 짐승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턱수염, 대머리, 우람한 사내, 그들에게도 웃으며 푸른 배내옷을 짜주던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다. 약탈자들은 눈을 번득였고, 사람들은 걸음을 빨리 하면서 계속 그 들 주위로 스쳐 지나갔다. "원하는 게 뭐죠, 돈인가요?" 래티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돈? 그건 좀 나중에. 지금 당장은 너한테 관심이 있어." 대머리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턱수염은 벌써 뾰족한 칼 끝으로 그녀의 웃옷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나갔다. 레티샤가 몸부림쳤다. 이렇게 당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오후 네신데, 누구 하나 도와 주려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하다못해 신고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은가. 턱수염은 그녀의 가슴을 풀어헤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작지만 예쁜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아시아 여자들은 그게 문제야. 모두 계집애 몸뚱이라니까. 가슴이 한줌도 안돼 ." 레티샤 웰즈는 실신한 노릇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인간 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의 더러운 손이 그 녀를 건드리고 주무르고 해치려했다. 래티샤는 공포에 질려 비명조 차 지를 수 없었다. 레티샤는 덫에 걸린 사냥감처럼 그렇게 꼼짝 목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꼼짝 마! 경찰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칼을 든 사내가 동작을 멈추었다. 멜리에스가 연발 권총을 겨누 며, 삼색 줄이 그어진 신분증을 제시했다. "빌어먹을! 얘들아, 튀자, 갈보, 너 다음에 따먹을거야." 그들이 달아났다. "거기 서!" 멜리에스가 소리쳤다. "쏠 테면 쏴라. 옷 벗고 싶으면...." 대머리가 도망치며 외쳤다. 그들이 멀리 도망가자 멜리에스는 총을 내렸다. 레티샤 웰즈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끝났다. 약탈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괜찮아요? 놈들이 너무 못되게 굴지는 않았나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 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아 안심시켰다. "자, 이제 안심하세요." 그녀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안겼다. 레티샤는 멜리에스에 게서 위안을 받았다. 멜리에스가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서 자기에게 위안을 주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거센 풍랑이 가라앉은 그녀의 연보랏빛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미 풍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잔물결이 담겨 있을 뿐, 그녀의 눈길에는 이제 사나운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크 멜리에스가 웃옷의 단추들을 주워주자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뭘,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단지 당신과 의견을 나누고 싶을 따름이지요." "무엇에 대해서죠?" "우리 둘 모두가 몰두에 있는 화학자들 살인 사건에 대해서죠. 제 가 어리석었어요. 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아니, 그전부터 늘 당신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레티샤는 망설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어찌 자기 집에 가서 꿀술 한 잔 더 하자고 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16. 백과 사전 문명의 충돌 1096년, 교황 위르벵 2세는 예루살렘 해방을 위해 제1차 십자군을 진군시켰다. 결의에 가득 차 있기는 했으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순례자들이 참전했다. 총사령관은 고티에 상 자봐르와 피에르 레르 미트. 집자군은 그들의 어느 나라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동으로 동으로만 향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지나는 곳마다 약탈을 했는데, 그 피해는 동방보다 서방에서 더 심했다. 굶주린 그 들은 인육을 먹는 만행까지도 저질렀다. 이 <참된 신앙의 대표자들> 이 하루아침에 누더기를 걸친, 야만적이고 위험한 방랑의 무리로 변 해 버렸다. 헝가리 왕은 그 역시 크리스천이었지만 부랑자들로 인한 피해에 화가 단단히 난 나머지, 농민들을 침략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랑자들을 학살하기로 했다. 반인 반수의 야만인으로 악명을 덜치고 있던 십자군 병사들이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터기 해안 에 이르렀을 때, 니케아의 토착민들은 털끝만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 들을 처치해 버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17. 벨로캉에서 날파리 전령들이 벨로캉에 도착했다. 모두들 같은 소식을 갖고 왔 다. 원정군이 벌의 독을 이용하여 손가락들 중 하나를 쳐부수었다. 게다가 그들은 아스콜레인 벌집을 공격해 꿀벌들을 정복했다. 원정 군에게는 그 어느 누구도 대항하지 못한다. 온 도시에 환희가 번져나간다. 클리푸니 여왕은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 여왕은 손가락들에게 약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이 증명된 것이다. 감격 한 여왕이 어머니의 시체를 향해서 페로몬을 발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죽일 수 있으며 정복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들 은 우리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습니다.>> 금단 구역 몇 층 아래에 있는 한 밀실에서 손가락들을 지지하는 반체제 개미들이 비밀 회합을 하고 있다. 그곳은 뿔풍뎅이 축사 위 에 있던 옛 본거지보다 훨씬 더 비좁다. <<원정군이 정말로 손가락들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은 손가락들 이 신이 아니라는 증거야.>> 신을 믿지 않는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그들은 분명 우리의 신이야.>> 신을 믿는 개미가 강력하게 주장한다. 원정군 병정개미들은 자기 들이 손가락을 공격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손가락이 아니라 분 홍빛의 어떤 다른 동물과 싸웠을 거라는 얘기다. 그가 더듬이를 열 심히 흔들며 되풀이한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야.>> 그렇지만 손가락 신을 열렬히 믿는 개미들 가운데 몇몇이 처음으 로 손가락들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들은 곧바로 그 유명한 예언 자 <리빙스턴 박사>에게 그 사실을 말해 버린다. 그것은 그들의 실수였다. 118. 신의 노여움. 니콜라 신이 노발대발한다. 감히 개미들이 녹박을 하다니,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이교도, 불경한 것들, 신을 모독하는 것들이라니! 그런 신성 모독자들은 쓸어버려야 해! 니콜라는 자기가 불경한 자들을 응징하는 무시무시한 신이라는 것 을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의 통치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다. 니콜라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자기 말을 페로몬으로 바꾼다. 우리는 신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의 세계는 우월하다. 아무도 우리를 무찌를 수 없다. 어는 누구도 우리의 통치를 의심할 수 없다. 우리 앞에서, 너희는 한낱 보잘것 없는 애벌레일 뿐이다. 너희는 세계의 어느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를 경배하고 우리를 봉양하라.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 "니콜라, 너 뭐하니?" 니콜라는 재빨리 기계를 껐다. "엄마, 주무시지 않았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깼어, 잠이 옅어진 탓인지, 내가 언제 자는 지 언제 꿈꾸는지 그리고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될 때가 가끔 있구나." "엄마, 지금은 꿈이에요. 계속 주무세요!" 니콜라는 엄마를 침대까지 다정히 데려갔다. 뤼시 웰즈는 <니콜라, 컴퓨터로 무얼 하고 있었지?>하고 우물거렸 다. 하지만 그 질문을 니콜라가 알아들을 수 있게 되풀이할 겨를도 없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뤼시는, <로제타 석>을 이용해서 개미 문명을 더 잘 이해하려고 애쓰는 아들을 꿈에서 보았다. 니콜라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더욱 조 심하리라고 다짐했다. 119. 의견의 분열 샐비어, 꼭박하, 백리향, 푸른 토끼풀이 어우러진 덤불 사이로 거 뭇한 행렬이 길게 뻗어 있다. 개미 역사상 최초로 손가락들에 도전 하는 원정군의 선두에서, 103호가 군대를 이끌고 있다. 그만이 세계 의 끝너머 손가락들 나라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려요! 기다려요!>> 잠에서 깨어나자 24호는 주위에 있는 곤충들에게 본대가 어디로 갔는지를 물었다. 마침 파리들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24호는 선두의 103호와 합류한다. <<설마 나비 고치를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 질문에 24호가 분개한다. <제가 가끔 덤벙거리기는 해도 임무의 중요성만큼은 잘 압니다. 메르쿠리우스 임무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단 말입니다.>> 103호가 24호를 진정시키고, 늘 자기 곁에 붙어 있으라고 당부한 다. 그러면 24호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24호는 그 제 안에 동의하고 103호 뒤를 바짝 쫓는다. 땅강아지 한 무리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냄과 동시에 그들의 뒤 에서 9호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손가락들을 죽여라, 병사들이여. 손가락들을 죽여라! 네가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너를 으깨어 죽이리라. 그들은 너의 보금자리에 불을 지르고 유모 개미들을 학살하리라. 손가락들은 우리와 같지 않네. 그들은 아주 나약하다네. 그들은 눈이 없다네. 그리고 그들은 타락해 있다네. 손가락들을 죽여라, 병사들이여. 손가락들을 죽여라. 내일이면 단 한 마리의 손가락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금은 원정군에게 희생당하는 쪽은 손가락들이 아니라 주 위의 작은 동물들이다. 원정군 전체가 하루에 소비하는 곤충 고기는 평균 4킬로그램이다. 거기다 수많은 둥지들이 유린되고 있다. 원정군이 다가온다는 기별을 받은 작은 마을의 곤충들은 약탈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원정군에 합류해 버린다. 그래서 원정군은 끊임 없이 증원된다. 원정군이 아스콜레인 벌집을 떠날 때는 2,300뿐이었으나, 가지각 색의 개미들이 주류를 이루는 혼합 부대가 합류한 후에는 2,600으로 불어났다. 공군도 증강되었다. 뿔풍뎅이 32마리에 꿀벌 군단의 병정 벌 300마리가 합류하고, 규율없이 오고가던 파리 한 가족 70마리가 보태졌다. 이제 원정군이 3,000에 육박한다. 정오가 되자, 견딜 수 없는 더위 때문에 부대가 잠시 휴식을 취한 다. 모두들 그늘진 커다란 참나무 뿌리 속으로 피하여 오수를 취한 다. 하지만 103호는 그 틈을 이용하여 꿀벌 등에 올라타고 시험 비 행을 하려고 한다. 그는 어떤 꿀벌에게 자기를 등에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시험 비행은 그다지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꿀벌은 쓸만한 탈것이 못 된다. 진동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선 개미산 포를 쏘기가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다. 꿀벌 비행 부대는 조종사 없이 비행하는 수밖에 없다. 한쪽 구석에서는 23호가 새로운 포교 집회를 갖고 있다. 이번엔 지난번 모임보다 훨씬 많은 청중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입니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신을 믿는 개미들의 구호를 복창한다. 개미들 은 동시에 같은 페로몬을 터뜨리며 열광한다. <<그렇다면, 이 원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복 전쟁이 아니라 우리의 신인 손가락들과의 만남입니다.>> 한편 9호는 전혀 성격이 다른 선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주위에 모인 백여 마리 병정개미들에게 단 몇 초만에 전 개 미 도시를 유린할 수 있는 손가락들에 대한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 를 한다. 그러자 모두들 전율을 느낀다. 멀리 떨어져 있는 103호는 아무 페로몬도 발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만 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동물학에 관한 자기의 기억 페 로몬을 보충하려고 다른 곤충들이 손가락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파리는 손가락들 열 개가 자기를 눌러죽이려고 추격했던 이야기를 한다. 꿀벌은 자기가 투명한 컵에 갇혀 있는 동안에 손가락들이 밖에서 자신을 조롱했던 이야기를 한다. 풍뎅이는 분홍빛의 물렁물렁한 동물과 충돌한 적이 있는데 그게 아마도 손가락들이었으리라고 주장한다. 귀뚜라미는 어떤 우리에 갇혀 푸성귀만 먹고 지내다가 풀려난 적 이 있다고 한다. 그에게 먹이를 가져다 준 것이 분홍빛 공이었던 점 으로 미루어, 자기를 우리에 가두었던 자들이 손가락들이었음에 틀림없단다. 빨강개미들은 분홍색 무리에게 독을 뿜어 그들을 내쫓은 적이 있 다고 자랑스럽게 페로몬을 발한다. 103호는 손가락들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페로몬에 모두 열심히 정리해 둔다. 더위가 한풀 꺾이자 개미들은 다시 길을 떠난다. 원정군은 기세 등등하게 진군, 또 진군한다. 120. 전투 계획 레티샤는 불량배들의 손때가 묻은 몸을 씻기 위해 서둘러 욕실로 갔다. 멜리에스에게는 그 동안 거실에서 텔레비젼이나 보고 있으라고 말했다. 멜리에스는 소파에 편안히 앉아 텔레비젼을 켰다. 그 동안에 레티 샤는 물 속에서 다시 물고기가 되어가고 있다. 레티샤는 호흡 정지 상태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멜리에스 는 무고한 그녀를 잡아넣었던 사람이고 위기의 순간에 그녀를 구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미워할 이유도 충분했고 감사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결국 서로 에낀 셈이다. 멜리에스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고 행복해 하는 아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럼, 라미레 부인, 답을 찾으셨나요? -음.... 성냥개비 여섯 개로 삼각형 네 개.... 그건 금방 알겠는 데, 삼각형 여섯 개라니.... 그건 도무지 모르겠는데요. -그 정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돼요. 우리 <알쏭달쏭 함정퀴 즈>에서는 여사께 7만 8천 개의 성냥개비로 에펠 탑을 만들라고 요 구할 수도 있어요.... 겨우 성냥개비 여섯 개로 삼각형 여섯 개를 만들라는 건데 뭘 그러세요. 웃음과 갈채. -조커를 사용하겠어요. -좋아요. 자,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물 컵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잉크와 같습니다.> 늘 입는 가운을 걸치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레티샤가 욕실에서 나 오자 멜리에스는 텔레비젼을 껐다. "당신이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싶어요. 멜리에스 씨, 당 신도 보았듯이 내 생각이 옳았어요. 인간은 우리의 가장 위험한 포 식자예요. 내 두려움에는 논리적 근거가 있어요." "그건 지나친 생각이요. 시시껄렁한 불량배들일 뿐이오." "그들이 시시껄렁한 불량배들이든 살인자들이든 그건 별로 차이가 없어요. 인간들은 늑대보다 더 위험해요. 도대체 자기들의 원시적 충동을 다스릴 줄 모른다니까요." 자크 멜리에스는 아무런 대꾸도 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개미 사 육통을 바라보았다. 레티샤는 이제 개미 사육통을 거실 한가운데에 눈에 띄게 놓아두었다. 그가 유리벽에 손가락을 갖다댔으나 개미들은 아무런 주의도 기울 이지 않았다. 개미들에게 그것이 단지 그늘에 지나지 않았다. "개미들이 생기를 되찾았군요?" 그가 물었다. "그래요. 당신이 개미집을 경찰서로 옮기는 바람에 10분의 9가 죽 었지만 여왕개미는 살아남았으니까요. 일개미들이 완충 벽을 만들어 여왕개미를 보호하려고 에워쌌거든요." "개미들의 행동은 정말 이상해요. 인간의 행동과 다를 수밖에 없 겠지만, 그래도....이상해요." "아마 새로운 살인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감방에 갇혀 있을 테고 개미들은 다 죽었을 거예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새로운 살인 사건이 터지지 않았어도 당신 은 풀려났을 겁니다. 살타 형제와 다른 피살자들의 상처는 당신의 개미들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법의학적 감정이 나왔습니다. 개미 들의 위턱이 상처에 비해 너무 짧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너 무 경솔하고 어리석게 굴었어요." 머리를 다 말린 레티샤는 안으로 들어가서 비취로 장식된 하얀 비 단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잠시 후 꿀술을 들고 돌아와서 그녀가 말했다. "예심 판사가 나의 석방을 명령한 마당에,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만한 몇 가지 그럴 듯한 가정 이 있긴 했어요. 당신도 그런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사실 개미들이 침실로 나를 공격하러 왔었고 그것들이 내 고양이 마리 샤 를로트를 죽였어요. 두 눈으로 그걸 똑똑히 보았어요. 살타 형제, 카롤린 노가르, 막시밀리앵 메커리어스, 오데르진 부부, 그리고 미 귀엘 시녜리아즈를 죽인 범인이 당신의 개미들은 아니더라도 그 어 떤 개미들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레티샤, 다시 말하는데 나는 늘 당 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해 봅시다. 당신도 나만큼이나 이 수수께끼에 관심을 갖고 있잖습니까? 경찰이다 기자 다 따지지 말고 함께 일합시다. 나는 <아물랭의 피리 부는 사나이> 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천재예요. 우리는 그와 맞서 싸 워야 해요.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인간과 개미에 대 한 당신의 지식과 당신이 함게 한다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레티샤는 궐련 파이프에 꽂힌 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생각에 잠겼 다. 멜리에스는 계속해서 그녀를 설득했다. "레티샤, 난 탐정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평범한 형사일 뿐이오. 실수도 하고, 날치기 수사를 하기도 하고, 죄 없는 사람을 가두기도 해요. 당신 일은 정말 심각한 실수였다는 걸 알아요. 후회가 막급이 오. 그래서 이제 그 실수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그가 실수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빠져들자 측은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좋아요. 당신과 함께 일하기로 하죠.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가 범인을 찾았을 때, 수사 발표와 재량권은 내게 맡겨야 해요." "문제될 게 없군요."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티샤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난 늘 너무 빨리 용서하죠. 틀림없이 내 생애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걸 거예요." 그들은 곧 작업에 착수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관계 서류를 모두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시체의 사진, 부검 보고서, 희생자들 각자의 전력을 요약한 카드, 내상의 엑스레이 사진, 파리떼 관찰 보고서 등. 레티샤는 자기가 수집한 것은 아무것도 넘겨주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개미>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다. 개미들이 무기였고 살인의 동기였다. 그렇지만 누가 어떻게 개미들을 조종하 였는가를 밝히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 그들은 어떤 단체와 개인 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조사했다. 과격 행동을 일삼는 환경 운동 단체들과 동물원의 동물, 우리 속의 새나 곤충을 모두 풀어주고 싶 어하는 광적인 동물 애호가들의 명단이었다. 레티샤는 머리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멜리에스 씨, 모든 정황으로 보아 개미들에게 혐의가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난 개미들이 살충제 제조자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죠?" "그런 일을 저지를 만큼 어리석지 않으니까요. 너희들이 우리를 죽이니까 우리도 너희를 죽인다. 하고 동태 복수법을 실행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에요. 복수는 인간의 개념이에요. 개미들에게 우리의 감정을 이입해서는 안 돼요. 인간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기를 기다 리기만 하면 되는데 개미들이 뭐 하러 인간들을 공격하겠어요?" 자크 멜리에스는 잠시 요모조모 따져보다가 말했다. "개미들이든, <피리 부는 사나이>든, 개미들의 짓인 것처럼 꾸미 려는 사람이든, 범인을 찾는 것은 가치가 있어요. 안 그래요? 더군 다나 당신의 작은 친구들이 무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요." 그들은 거실 큰 탁자에 펼쳐놓은 모든 자료들을 샅샅이 훑어보았 다. 그것들은 어떤 퍼즐의 조각들과도 같았다. 그 조각들을 결합하 는 어떤 논리를 밝히려면 처리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다. 레티샤가 불쑥 일어났다.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범인을 찾는 거예요. 내게 생각이 있어요. 아주 간단해요. 자 들어봐요!" 121. 백과 사전 문명의 충돌 고드푸루아 드 부이옹이 총사령관이 되어 예루살렘과 예수의 무덤 을 해방시키기 위한 제2차 십자군이 원정을 떠났다. 이번에는 전쟁 을 경험해 본 4,500명의 기사들이 수십만의 순례자들을 지휘했다. 대부분은 장자 상속법으로 모든 봉토를 장남에게 빼앗긴 귀족의 지 차들이었다. 종교의 엄한 계율에 따라 상속권을 박탈당한 이 젊은 귀족들은 이국의 성을 정복하고 영토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 가시들은 성을 하나 정복할 때마다 십자군을 팽개치고 그곳에 정 착했다. 그들은 정복한 도시의 토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그들끼리 자 주 싸웠다. 그 일례로 타렌트 가문의 보에몽 공작은 사리 사욕을 위 해 터기 남부에 있는 도시 안티옥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십 자군 병사들은 십자군을 떠나려는 자들을 만류하기 위해서 그들과 싸워야만 했다. 서방의 귀족들은 심한 경우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동 방의 적과도 동맹을 맺는 자가 당착을 범했다. 그들은 전우들을 무 찌르기 위하여 동방의 토후들과 결탁하였고, 그러면 상대방들 역시 그들에 맞서기 위하여 주저없이 다른 토후들과 연합하였다. 결국 누 구와 더불어, 누구에게 대항하여, 왜 싸우는지도 모를 지경이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22. 산 속에서 저 멀리에서 언덕들과 산들이 어슴푸레한 윤곽을 드러낸다. 본토 막이 회색 개미들은 그곳에 마른 토탄이 많다 하여 첫번째 봉우리를 <토탄봉>이라 불렀다. 그곳을 통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원정군은 그곳을 통과하기 위한 좁고 깊숙한 골짜기를 발견했다. 흰색, 회색, 베이지 색의 높은 암벽이 지층을 드러내며 계속 이어 진다. 아주 오래된 바위에는 나선 모양 또는 나팔 모양의 화석의 흔 적이 찍혀 있다. 협곡들이 계속 이어진다. 갈라진 틈 하나하나가 개미들에게 죽음 을 부르는 수렁이 되므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협곡 안의 썰렁한 기운이 견디기 어려워서 원정군 대열은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서두른다. 춥다고 불평하는 개미들에게 자비로운 꿀벌들이 원기를 회복하라고 꿀을 조금씩 나눠준다. 103호는 이 산악 지대를 올라와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웬지 불안하 다. 그러나 북쪽으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해가 뜨는 곳을 향해 전 진하기만 하면 세상의 끝에 이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놓는다. 그래, 곧장 나아가기만 하면 돼. 황량한 암벽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곤 노란 돌이끼뿐이다. 원정군들도 그것이나마 샐러드를 먹듯이 먹는다. 돌이끼는 습기에 민감해서 공기가 습해지면 꼬투리가 비틀린다. 드디어 베르가모트 나무 계곡이다. 신체의 기관은 쓰면 쓸수록 좋 아지는 것인지, 오랫동안 바깥에서 걷다보니 개미들의 시력이 좋아 진다. 그들은 빛을 잘 견딜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그늘을 찾지 않으 며, 서른 걸음 이상 떨어져 있는 경치를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척후 개미들은 길앞잡이(딱정벌레목 길앞잡이과에 딸린 벌레. 여름에 산길에서 사람이 걷는 길 앞을 앞질러서 잇달아 뛰어 날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그 작은 길앞잡이들은 땅 속에 구멍을 파고 그 위에 허방다리를 놓 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진동을 감지하자마자 불쑥 솟아올라 지나가는 개미들을 문다. 길앞잡이들의 함정을 지나고 나니 거대한 장벽 하나가 불쑥 나타 난다. 독턱이 나 있는 쐐기풀 장벽이다. 자칫하면 거기에 다리가 걸 릴 염려가 있다. 그러나 원정군은 별다른 손실 없이 그 장벽을 통과한다. 좀더 나 아가니 수렁이 하나 나타나고, 바로 뒤에 폭포가 보인다. 그거야말 로 진짜 장애물이다. 수정과 물의 장벽을 동시에 건너가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꿀벌들이 시도를 해보았지만 폭포로 떨어지고 만다. <<물은 날아다니는 것을 모두 아래로 끌어당겨.>> 파리들이 말한다. 하물며 사납고 차가운 물의 장막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난리는 난리다. 여전히 나방 고치를 거머쥔 24호가 앞으로 나선다. 아마 그에게 어떤 해결책이 있는 모양이다. 서쪽 숲에서 길을 잃었던 어느 날 그 는 어떤 흰개미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개울물을 나무 조각을 이용 해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 흰개미는 나무 끝을 폭포 속으로 밀어넣 은 다음 나무 속에 구멍을 뚫어서 폭포를 지나갔다. 개미들은 곧 도톰한 나뭇가지나 그와 비슷한 것을 찾기 시작한다. 그들은 커다란 갈대를 발견한다. 그것은 움직이는 완벽한 터널이 될 것이다. 개미들은 갈대를 다리 끝으로 들어올려 폭포를 관통할 때까지 천천히 밀어넣는다. 작업 도중 몇몇 개미들이 물에 빠지지만 그 갈대는 별 탈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땅강아지들이 헌신적으로 나서서 갈대 안에 구멍을 파놓자 마침내 수렁과 물의 장벽을 건널 수 있는, 물이 스며들지 않는 원통이 만들어진다. 뿔풍뎅이들은 딱지 날개가 약간 걸치적거려서 건너기가 힘들었지 만, 개미들이 그들을 밀어줌으로써 그들도 모두 갈대 속을 통과한다. 123. 다음 주 목요일. '일요 메아리' 기사 발췌. 일본의 저명한 화학자, 새 살충제 소개 요코하마 대학의 다카구미 교수가 다음 주 목요일 보리바쥬 호텔 회의실에서 자기가 개발한 새로운 살충제를 소개한다. 이 일본인 학 자는 독성이 강한 합성 물질을 이용해 개미들의 침입을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카구미 교수가 직접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그는 현재 보리바쥬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발표 날을 기다리며 국내의 동료 학자들과 다각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 124. 동굴 갈대 터널을 지나자 동굴이 하나 나타난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동굴은 돌이 깔린 긴 통로가 쭉 이어져 있는 데, 통로 안에는 신선한 공기가 정상적으로 순환하고 있다. 원정군은 계속하여 나아간다. 개미들은 커다란 석회암 덩어리들과 석순을 우회한다. 천장에 붙 어가는 개미들은 돌 고드름을 뛰어넘는다. 때때로 석순과 돌 고드름 이 만나 긴 기둥을 이루고 있다.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천장인지 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동굴 안엔 괴상한 동물들이 우글거린다. 정말 살아 있는 화석이라 고 할 만한 것들이 있다. 대부분 눈이 멀고 살갗이 탈색된 것들이다. 하얀 쥐며느리들은 부랴부랴 달아나고, 다족류들은 힘없이 기어가 며, 톡토기들은 미친 듯이 톡톡 튀어오른다. 더듬이가 몸체보다도 긴 투명한 작은 새우들이 웅덩이에서 헤엄친다. 103호는 움푹 파인 곳에서 동굴 노린재 떼가 송곳 같은 생식기로 교미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놈들을 몇 마리 죽여버린다. 개미 한 마리가 103호가 쏜 개미산에 구워진 노린재를 먹으러 온 다. 그 개미는 고기가 뜨겁게 구워지니까 차가운 날것보다 더 맛이 좋다며 좋아한다. <<이제는 개미산으로 고기를 구워먹어야겠군.>> 그가 중얼거린다. 그렇게 우연히 새로운 요리법의 발견이 종종 이루어지는 것이다. 125. 백과 사전 잡식 동물 지구의 주인은 잡식 동물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먹이를 먹 어치울 수 있다는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종을 퍼 뜨리는 데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지구의 주인으로 확고히 자리잡 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형태의 먹이를 삼킬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먹이에만 의존하는 동물은 그 먹이가 떨어지면 생존에 위 협을 받게 된다. 한 종류의 곤충만 먹고 사는 많은 종류의 새들은 그 곤충들이 이동하는 것을 따라잡지 못한 채 멸종해 간다. 유컬립 터스(도금낭과에 딸린 늘푸른큰키나무, 또는 좀나무. 서부 오스트레 일리아 원산으로, 고무질 진과 기름이 나오며, 고무, 타르의 원료로 쓰인다)잎만 먹고 사는 캥거루들도 산림의 나무를 베어내면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인간은 개미, 바퀴벌레, 돼지, 쥐들처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 들 다섯 종은 거의 모든 종류의 먹이, 심지어 먹이의 찌꺼기조차 맛 보고, 먹고, 소화시킨다. 또 이 다섯 종은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 응하기 위해 언제라도 먹이의 종류를 바꿀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 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먹이 때문에 전염병에 걸리거나 독 성에 치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먹이를 먹기 전에 반드시 시험을 해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26. 덫 '일요 메아리'에 그 짤막한 기사가 나갔을 때 이미 레티샤 웰즈와 자크 멜리에스는 보리바쥬 호텔에 다카구미 교수의 이름으로 객실을 하나 예약해 두었다. 그들은 몇 사람들에게 수고 삯을 적당히 쥐어 준 덕분에 방 안에 진짜로 착각할 만한 벽 하나를 새로 세우고 거기 에 아주 복잡한 제어 장치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또 공기가 조금만 움직여도 작동하기 시작하는 비디오 카 메라를 방 주위에 여러 대 설치하고, 침대에는 일본인 모습의 마네 킹을 눕혀놓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숨어서 망을 보았다. "곧 개미가 올 테니 두고 보십시오!" 멜리에스는 장담했다. "내기해요. 나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쪽에 걸래요." 레티샤가 자신 만만하게 말했다. 이제 그들에겐 어떤 물고기가 미끼를 물러 오는지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127. 정찰 비행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다. 날은 점점 더워진다. 원정군은 걸음을 재촉한다. 긴 행렬을 이루 며 그들은 선선하고 어두운 동굴을 떠나 양지바른 벼랑길로 들어선다. 잠자리들이 빛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잠자리가 있다는 것 은 곧 강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원정군의 목적지는 멀리 있지 않다. 103호는 정찰 비행을 할 생각으로 가장 늠름하게 생긴 뿔풍뎅이를 고른다. 안면의 돌기가 가장 길다 해서 <큰 뿔>이라는 이름이 붙은 뿔풍뎅이다. 103호는 그의 등 딱지에 발톱을 붙이고 정찰 비행을 떠 나자고 부탁한다. 새를 만나는 불운한 경우에 그를 보호하기 위해 포수 개미를 태운 뿔풍뎅이 열둘이 뒤따른다. 그들은 바람을 타고 올라가 햇빛에 반짝이는 강으로 급강하한다. 대기층 사이로 활강. 열 두 마리의 뿔풍뎅이는 동시에 가상의 축에 날개 끝을 박고 왼 쪽으로 선회한다. 회전 동작이 너무 빨라서 강한 원심력이 생긴다. 103호는 떨어지 지 않으려고 뿔풍뎅이 등에 바싹 들러붙는다. 103호는 맑은 공기에 흠뻑 취한다. 창공에선 모든 것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 곤충들에게 끊임없이 경 계심을 갖게 하는 갖가지 냄새도 풍겨오지 않는다. 맑은 공기의 투 명한 냄새만이 존재한다. 열 두 마리의 뿔풍뎅이들은 점차로 날갯짓을 늦추다가 아예 날개 짓을 멈추고 활공을 한다. 형형 색색의 풍광이 펼쳐져 있다. 정찰 비행대가 초저공 비행을 한다. 수양버들과 오리나무 사이로 화려한 정찰기들이 빠져나간다. <큰 뿔> 위에 올라탄 103호는 편안함을 느낀다. 처음에는 뿔풍뎅 이를 잘 구별할 수 없었는데, 자꾸 타고다니다 보니 이제는 그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큰 뿔>은 비행 중대의 모든 뿔풍뎅이 중에 서 가장 우뚝하고 가장 뾰족한 뿔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가장 튼튼 한 다리와 긴 날개를 갖고 있다. 게다가 <큰 뿔>은 어떻게 날면 병 정개미들이 사격을 더 잘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유일한 뿔풍뎅이이기도 하다. 그는 날아다니는 약탈자에게 쫓길 때는 180도 선회하여 도망갈 줄도 안다. 103호가 <큰 뿔>에게 행군이 어떠했느냐고 묻자, 그는 굴 속을 지 날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답한다. <<좁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 힘들었어. 덩치가 커다란 우리에 겐 공간이 많이 필요하거든.>> 언젠가 뿔풍뎅이는 우연히 자기 동료들 몇몇이 <신>에 관해서 이 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신이라는 것은 손가락들의 또 다른 이름인가?>> 103호는 얼버무리는 태도를 보인다. 용병들에게까지 <마음의 병> 이 퍼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논쟁은 확대될 것이고 세 계의 끝에 이르기도 전에 원정군이 자멸할지도 모른다. <큰 뿔>이 토탄이 많은 지역이라고 알린다. 남쪽 풍뎅이들은 토탄 속에 은신하기를 좋아한다. 남쪽 풍뎅이들 가운데는 아주 놀라운 면 을 지닌 자들이 있다. 딱정벌레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느 종도 유사하지 않다. 남쪽 딱정벌레들 역시 원정군에 게 유용할 것이다. <<그들도 모병하는 게 어때?>> 103호는 동의한다. 원정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 103호의 생각이다. 그들은 계속 날아간다. 강 주변에 독당근, 물망초, 흰꽃조팝나무 향기가 서려 있다. 강물 위에는 흰색, 분홍색, 노란색의 연꽃 융단이 오색의 색종이를 뿌려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다. 정찰 비행대가 강 위에서 맴돈다. 강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섬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열두 마리 뿔풍뎅이가 흰 물결 위로 미끄러져 나아간다. 뿔풍뎅이 의 다리들이 물결에 줄무늬를 그린다. 그러나 103호는 그 유명한 사테이 나루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다. 그 나루를 찾아야 강 밑을 통과하는 지하 터널로 들어갈 수 있다. 원정군이 예정된 길에서 벗어났음에 틀림없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들은 행군을 오래 해야 할 것이다. 정찰 편대는 다시 돌아와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알린다. 짙은 안개가 흐르듯 군대가 절벽을 내려간다. 개미들은 다리의 끈 적거리는 흡착반을 이용해서 내려가고, 뿔풍뎅이들은 파닥거리면서 내려가고, 꿀벌들은 급강하로 비행하며, 파리들은 소란스럽게 날아 내려간다. 아래에는 베이지색 고운 모래 사장이 펼쳐져 있다. 몇몇 식물들이 흩어져 있는 깨끗한 모래 언덕도 있다. 특히 화본과에 딸린 작은 식 물인 오야와 버섯의 홀씨들이 눈에 많이 띈다. 모두 개미에게 아주 좋은 먹이가 된다. 사테이 나루에 가기 위해선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가야한다고 103 호가 페로몬을 발하자 대열에 동요가 인다. 다른 뿔풍뎅이들과 함께 <큰 뿔>도 주력 부대에서 벗어난다. 그들 은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주력 부대와 합류하겠다 고 고집을 피운다. 앞서가던 척후 개미들이 달팽이 냄새가 나는 흰 덩어리들을 발견 한다. 개미들은 마침 오야에 물려 있던 터라, 그 알 무더기가 여간 맛있어 보이는 게 아니다. 9호가 개미들에게 주의를 준다. 새먹이를 먹기 전에는 먼저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해 봐야 한다. 일부만 9호의 주의에 귀를 기울일 뿐, 다른 개미들은 게걸스럽게 걸터듬는다. 이건 엄청난 실수다! 그것은 알이 아니라 달팽이의 구토물이었다. 게다가 디스토마에 감염된 달팽이의 구토물인 것이다! 128. 백과 사전 개미에게 몽유병을 일으키는 유령 간 디스토마 Fasciola hepatica의 순환은 자연의 가장 큰 신비 중 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벌레를 소재 삼아 소설 한 권은 충분히 쓸만하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양의 간에 번성하는 기 생충이다. 디스토마는 혈액과 간 세포로부터 영양을 섭취하고 자라 서 알을 깐다. 하지만 알은 양의 간에서 부화할 수 없다. 하나의 대 장정이 알들을 기다리고 있다. 알들은 대변과 함께 몸 밖으로 나옴으로써 숙주를 떠나 춥고 건조 한 바깥 세계와 만나게 된다. 알들은 한동안의 성숙기를 거친 다음 부화하여 작은 애벌레가 된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숫주인 달팽이에 게 먹히게 된다. 디스토마 유충은 달팽이 몸 속에서 성장하여 우기에 그 연체 동물 이 내뱉는 끈끈물에 담겨 배출된다. 하지만 디스토마의 여정은 이제 반밖에 끝나지 않은 것이다. 흔히 끈끈물은 흰 진주 송이 모양으로 개미들을 유혹한다. 이 <트 로이의 목마>덕으로 디스토마들은 곤충의 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다. 디스토마들은 개미의 갈무리 주머니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갈무리 주머니에 수천 개의 구멍을 뚫고 나온다. 그 소동으로 개미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견고한 풀로 구멍을 다시 메워 개미의 갈 무리를 여과기처럼 만든다. 양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미를 죽여서는 안된다. 바깥에서 전혀 내부의 드라마를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디스토마는 개매의 체내에서 순환한다. 디스토마 애벌레들이 이제 성충이 되기 위하여 양의 간 속으로 되 돌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디스토마의 성장 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 양이 개미를 삼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디스토마들은 수 세대에 걸쳐서 그 문제를 탐구했다. 양들은 신선 할 때에 풀줄기의 윗부분을 뜯어먹는다. 그러나 개미들은 따뜻할 때 에 둥지를 나와 풀 뿌리의 신선한 그늘 안에서만 돌아다닌다. 시간 도 장소도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양과 개미가 어떻게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디스토마는 개미의 몸 안 여기저기로 흩어짐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다. 가슴, 다리, 배에 각각 십여 마리씩 들어가고, 뇌에는 한 마리 만 자리잡는다. 이 한 마리의 디스토마 유충이 개미의 뇌에 뿌리를 박는 순간, 개 미의 행동에 변화가 오는데.... 아, 그렇다! 짚신벌레처럼 가장 하 등한 단세포 동물에 가까운 미세한 디스토마가 이제부터 복잡한 개 미를 조종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 저녁에 모든 일개미들이 잠들었을 때 디스토마에 감염된 개 미들은 그들의 도시를 떠난다. 그 개미들은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 처럼 밖으로 나간 다음, 풀 꼭대기로 올라가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풀에나 마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양들이 가장 좋아하는 개 자리와 냉이에 올라간다. 개미들은 거기에서 뻣뻣이 굳은 채로 풀과 함께 뜯어먹히기를 기다린다. 뇌에 있는 디스토마가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즉, 양에게 먹힐 때까지 매일 저녁 자기의 숙주가 밖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따사로운 기운이 다시 찾아오면 양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개미는 자기의 뇌를 다시 통제하고 자유 의지를 되찾는다. 그 개미는 자기가 풀 꼭대기에서 무얼 하고 있나 하고 의아해 하면서 재빨리 내려온다. 그런 다음 자기 둥지로 되돌아가서 일상의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이 되면 그 개미는 디스토마에 걸린 다 른 동료들과 함께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다시 나가 양에게 잡아먹 히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순환은 생물학자들에게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첫번째 문제: 뇌에 숨어 있는 디스토마가 어떻게 밖을 보고 개미 에게 이러저러한 풀을 찾아가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두번째 문제: 양이 개미를 삼키는 순간, 개미의 뇌를 조종하던 디 스토마는 죽게 될 것이다. 그것도 그 디스토마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와 같은 희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 모든 일들이 일어 나는 양상을 보면 마치 디스토마들이 자기들 가운데 하나, 그것도 가장 우수한 하나가 희생함으로써 나머지 모두가 목표를 달성하고 번식의 순환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29. 땀 첫날은 아무도 다카구미 교수 모형을 해치러 오지 않았다. 자크 멜리에스와 레티샤 웰즈는 자동으로 데워지는 통조림과 마른 음식들을 챙겨두고 사태에 금방 대처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체스를 두기로 했다. 터무니없는 실수 를 곧잘 범하는 멜리에스보다 레티샤가 한수 위였다. 레티샤가 우세해지자 약이 오른 멜리에스는 한층 더 정신을 집중 했다. 그는 졸 행렬로 상대의 모든 공격을 막는 방어선을 펼쳤다. 판세가 베르뎅 식의 참호전으로 바뀌었다. 전격적인 공격에 당황한 승정, 기사, 여왕, 그리고 룩이 후퇴했다. "체스에서조차 겁을 먹다니!" 레티샤가 내뱉었다. "겁쟁이라고? 내가? 빈자리가 나자마자 당신이 내 줄로 밀고들어 왔단 말이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달리 놓을 수가 있겠어요?" 멜리에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레 티샤는 방 어디에선가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제어 장치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레티샤 웰즈는 방 안에 범인이 있음을 확신했다. 동작 탐지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범인이 있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래요. 보여요. 단 한 마리군요. 침대에 오르고 있어요!" 통제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 채 멜리에스가 외쳤다. 레티샤는 멜리에스에게 달려들어 급히 셔츠 단추를 풀고 두 팔을 들게 하고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양 겨드랑이를 몇 번이고 문질렀다. "뭐하는거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요. 살인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 제 알 것 같아요." 그녀는 가짜 벽을 밀고 들어가, 개미가 침대 시트에 이르기 전에, 자크 멜리에스의 겨드랑이 땀이 밴 손수건으로 마네킹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재빨리 멜리에스의 곁으로 돌아와 숨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려고 했다. "조용히 하고 보세요." 개미는 침대 위 마네킹으로 다가가더니 가짜 다카구미 교수의 파 자마 속에서 미세한 네모 조각 하나를 도려냈다. 그러더니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욕실로 사라졌다. "이해할 수가 없군. 저 개미는 우리 마네킹을 공격하지 않았어요. 겨우 작은 천 조각 하나 빼앗아가는 것으로 끝내는군요." "저 개미는 단지 냄새를 알아내러 온 거예요. 멜리에스 씨." 이제 작전의 지휘권을 쥐고 있는 쪽은 래티샤인 것처럼 보였다. 그점을 인정하기라도 하듯 멜리에스가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뭘 하죠?" "기다리는거예요. 범인이 곧 나타날거예요. 이제 난 확신해요." 레티샤는 아주 매혹적인 연보랏빛 눈길로 그를 당황하게 하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혼자 들어온 아까 그 개미를 보자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바울레 부족들과 어울려 살 때 의 이야기예요. 원주민들이 사람을 죽이는 아주 놀라운 방법을 생각 해 냈어요. 누군가를 아주 은밀하게 죽이고 싶으면, 그 사람의 땀이 밴 옷 조각을 탈취해요. 그런 다음 그것을 독사가 든 자루에 넣는거 예요. 물이 끊고 있는 솥 바위 위에 그 자루를 매달아 놓으면, 고통 으로 격노한 뱀은 확대자를 천 조각의 냄새와 같은 냄새를 가진 사 람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고 나면 이제 마을에 뱀을 풀어놓는 일만 남는 거죠. 뱀은 옷 조각과 같은 냄새를 맡자마자 그 냄새의 주인을 물어버리죠." "범인을 유도하는 것이 피해자의 냄새란 말이오?" "맞아요. 결국 개미들은 냄새를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거 든요." "아! 마침내 살인자가 개미라는 것을 인정하시는군요!" 멜리에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현재까지는 개미들이 본격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어요. 파자마 하 나를 조금 찢었을 뿐이에요." 멜리에스는 깊이 생각하더니 벌컥 화를 냈다. "그런데 당신이 그 옷에 내 냄새를 묻혔잖아요! 이제 개미들은 나 를 죽이려들거요!" "역시 겁이 많이시군요, 멜리에스 씨... 겨드랑이를 말끔히 씻고 냄새 제거제를 살짝 뿌려주기만 하면 돼요. 그러기 전에 먼저 다카 구미 교수 마네킹에 당신의 땀을 흠뻑 빨라두는거예요." 멜리에스는 전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껌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하지만 개미들이 벌써 나를 공격한 적이 있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잖아요. 자, 그건 그렇고 내가 당신 마 음을 아주 편하게 해줄 도구를 가져왔어요. 다행히도 나는 준비 정 신이 투철한 사람이거든요." 레티샤는 가방에서 작은 휴대용 텔레비젼을 꺼냈다. 130. 모래 언덕에서의 전투 황량한 모래 언덕을 넘어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가는 먼지가 딱지에 들러붙고 입술을 말리며 키틴질 관절을 삐걱 거리게 한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딱지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다. 원정군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꿀벌들의 꿀이 남아 있으면, 그걸 나누어 먹고 힘을 내련만 그것 도 이젠 바닥이 났다. 개미들의 갈무리 주머니도 비어 있다. 다리의 흡착반이 메말라 부 서지기 쉬운 작은 석고 덩어리처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 는 소리가 난다. 원정군 병사들은 기진 맥진해 있다. 그때 새로운 위험이 나타난 다. 지평선에 먼지 구름이 일더니 점점 커지면서 원정군 쪽으로 다 가온다. 그 먼지 구름 때문에 그 쪽 군대가 어떤 군대인지 식별할 수가 없다. 3,000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르자 그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 다.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흰개미 군대이다. 병정 흰개미들 은 호리병처럼 생긴 머리 모양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이 끈끈물을 분사하자 첫번째 줄에 있던 개미들이 그 자리에 들어붙어 꼼짝달싹을 못 한다. 개미들은 배 끝을 들어 개미산을 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개미들의 사격이 너무 늦었다. 흰개미들은 재빨리 흩어지더니 포수 개미들을 우회하며 개미들의 첫번째 방어선 한가운데를 뚫어버린다. 위턱과 위턱이 맞부딪는다. 딱지들이 부서지며 격렬한 소리를 낸다. 개미 경기병대는 미처 움직여볼 겨를도 없이 흰개미떼에 빙 둘러싸였다. <<발사!>> 103호가 소리친다. 그러나 60% 개미산으로 중무장한 두 번째 줄의 포수 개미들은 개미와 흰개미가 뒤섞여 있어 사격할 엄두를 못 낸 다. 이미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원정군의 분대 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임기 웅변으로 대처한다. 원정군의 양 날 개는 흰개미부대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해 빠져나오려 하지만 동작이 너무 느리다. 날아오르려는 꿀벌들을 흰개미들의 끈끈물이 넘어뜨린다. 꿀벌들 은 파리들과 나방 고치를 지닌 24호처럼 모래 속에 숨어버린다. 103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병들이 견고한 방진 대형으로 다 시 모이도록 독려한다. 그는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난 늙었어.>> 사격이 빗나가자 103호가 중얼거린다. 곳곳에서 원정군이 후퇴한다. 손가락들과의 전투에서도 이긴 빛나 는 전사들이 어찌된 노릇인가? 황금의 벌집을 정복한 개미들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개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룬다. 이제 개미들은 1,2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도 곧 죽어간 동료들과 똑같은 끔찍한 운명에 처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패배하고 마는 것인가? 아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멀리에서 돌연 구름 덩어 리 하나가 또 나타난다. 아까는 흰개미 군대가 일으킨 먼지 구름이 었지만 이번엔 우군의 구름이다. 아주 무시무시한 비행 부대를 이끌 고 <큰 뿔>이 돌아오고 있다. 그들이 요란스럽게 시야에 들어오자 모두들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옛날의 괴기담에 등장하는 악마의 모습이나 다름이 없 다. 그들은 번들거리는 관절로 소리를 내며 위풍 당당하게 돌진해 온 다. 거기엔 하늘소, 송장벌레, 풍뎅이 그리고 집게 모양의 뿔이 달 린 커다란 사슴벌레가 있다. 딱정벌레의 여러 종들 가운데서도 내노라 하는 정예들이 <큰 뿔> 의 원조 요청에 응한 것이다. 그 늠름한 거구들은 장창, 단창, 뿔, 바늘, 방패, 발톱으로 무장 하고 있다. 딱지 날개에는 휘장 같은 것이 채색되어 있는데 어떤 날 개에는 입을 크게 벌린 얼굴이 분홍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고, 또 어떤 날개에는 좀더 추상적으로 빨강, 주황, 초록, 파랑의 반짝 거리는 점들이 찍혀 있다. 어떤 대장장이도 갑옷에 그렇게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지는 못하리 라. 투구를 쓴 모습이 중세의 전설에 나오는 용감 무쌍한 왕자들의 풍모이다. <큰 뿔>의 지휘를 받으며 20여 마리의 딱정벌레들이 선회한다. 그 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아주 빽빽히 늘어선 흰개미들의 진영으로 돌진한다. 103호는 그러한 장관을 일찌기 본 적이 없었다. 아연 실색하는 흰개미 진영, 새로 나타난 비행 부대에게는 끈끈물 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액체 발사물은 망치로 두드려 만든 듯한 커다란 갑옷 위에서 미끄러져 도로 흰개미 자신들 위로 떨어진다. 흰개미들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큰 뿔>이 103호 곁으로 다가온다. <<올라타게!>> 이륙. 뿔풍뎅이 다리 아래에 움직이는 융단처럼 전장이 펼쳐진다. 103호는 원정군이 선두에서 도망자들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날으 는 뿔풍뎅이 위에서 그가 쏘아대는 개미산이 매번 과녁에 적중한다. <<발사!>> 103호는 더듬이에 한껏 힘을 주어 원정군을 독려한다. <<발사!>> 개미들이 힘껏 달리며 개미산 포를 발사한다. 131. 군사 전략 페로몬 기억 페로몬 번호: 61 주제: 군사 전략 정보 제공 연일: 100000667년 제44일 모든 군사 전략은 일차적으로 적을 자극하여 흥분시키는 것을 목 적으로 삼고 있다. 자극을 받으면 적은 본능적으로 그 자극과 반대 방향으로 힘을 행 사하여 받은 것을 되갚으려고 한다. 그 순간, 적이 그렇게 나오는 것을 막으려 하지 말고 제풀에 지칠 때까지 보조를 맞추어주어야만 한다. 그러면 어느 한 순간 적이 아주 취약해질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완패시킬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모르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며 적은 더욱 경계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132. 전쟁 -발사! 비오듯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검은 형체들이 떼를 지어 달린다. 패자들의 시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병사들은 총탄에 맞지 않으 려고 참호 속에 숨고, 몇몇 분대는 모래 언덕에 몸을 숨긴다. 수류탄의 폭음, 기관총의 따다닥따다닥거리는 소리. 멀리 화염에 싸인 유전은 햇빛이 더 이상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검고 짙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이제 텔레비젼 좀 꺼요. 저런 건 신물이 나요!" "뉴스를 좋아하지 않나 보죠?" 멜리에스는 일일 세계 뉴스가 방송되고 있는 텔레비젼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뉴스를 잠깐만 봐도 인간의 어리석음에 진저리가 나요. ....그런 데 여전히 아무것도 안 나타나고 있지요?" "그래요, 아직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레티샤는 이불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그럼, 좀 자겠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세요, 멜리에스 씨." "당장 일어나야 되겠는데요. 동작 탐지기가 방금 전에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화면을 자세히 살폈다. "방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군요." 그들은 비디오 모니터를 하나 하나 켰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이 저기 있어요." 멜리에스가 말했다. "아니예요. <그것들>이 아니라 <그것>이에요. 화면에는 한 가지 신호가 있을 뿐이에요." 레티샤가 정정해서 말했다. 멜리에스가 생수 병 마개를 뽑고 헝겊 조각을 적신 다음 겨드랑이 를 마구 문질렀다. 그리고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 다 시 향수를 뿌렸다. "내게서 아직도 땀내가 납니까?" 그가 물었다. "향수 냄새 외엔 아무 냄새도 안 나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루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크 멜리에스는 방 안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 의 녹화기에 전원을 연결했다. "<그것들>이 침대로 다가가고 있어요." 양탄자에 닿을락말락하게 설치해 놓은 카메라에 먹이를 찾고 있던 털복숭이 생쥐의 주둥이가 나타났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연한 일이예요. 개미가 인간들 속에 끼여 사는 유일한 동물은 아니니까요. 이번엔, 정말로 잘 테니 좀더 그럴듯한 게 나타나면 깨우세요." 레티샤가 비아냥거렸다. 133. 백과 사전 에너지 놀이 동산의 청룡 열차에 오를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 하나는 한쪽 차량에 앉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다. 그 경우에 예민한 승객은 대단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속도를 즐긴 다기보다 참아낸다. 눈을 살짝 뜰 때마다 그의 공포는 한층 더해진다. 두 번째 태도는 열차의 첫량 첫줄에 앉아서 눈을 크게 뜨고 자기 가 곧 날아갈 것이며 점점 빨리 가게 될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경우에 승객은 황홀한 생동감을 맛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기 치 않았을 때 스피커에서 하드 록 음악이 튀어나오면 그 음악은 난 폭하게 느껴지고 귀청을 찢어놓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간신히 그것 을 참아낸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참고 있는 것이 아 니라 그 음악을 즐기면서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청중이 격렬한 음 악에 자극받고 완전히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힘을 발산하는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땐 위험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34. 사자 숭배 신을 믿는 개미 열두 마리가 벨로캉 안에 있는 퇴비 구덩이 가까 이에 임시 변통으로 만든 비밀 장소에 모여 있다. 신을 믿는 개미는 이제 그들뿐이다. 그들은 앞에 놓인 시체들을 응시하고 있다. 클리푸니 여왕은 반체제 개미들을 모두 죽이기로 결정했다. 반체 제 개미들은 손가락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려다가 차례차례 목숨을 잃 어가고 있다. 신을 믿지 않는 개미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반체제 운동은 홍수와 박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신을 믿는 몇 몇 개미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아무도 그들의 페로몬에 더듬이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무도 그들과 함께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며, 은 신처가 경비대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그들도 끝장이 날 판이다. 그들은 더듬이 끝으로 옛 동료들의 시체 세 구를 어루만진다. 그 세 동료들은 이제껏 잘 버텨오다가 끝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은 것이 다. 신을 믿는 개미들은 시체를 쓰레기터로 옮길 채비를 한다. 그때 갑자기 그들 가운데 하나가 반대를 하고 나선다. 다른 개미 들이 당황하여 그를 바라본다. 만일 슉교자들을 쓰레기터로 옮기지 않는다면, 몇 시간 동안 이곳에 올레인산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그 반체제 개미의 주장이 완강하다. <<여왕은 숙소에 어머니 시체를 보관하고 있다. 왜 여왕처럼 하면 안되는 건가? 왜 우리 형제들의 시체를 보관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결국 시체가 점점 많아질수록 신앙 운동에 많은 개미들이 참가했음 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게 될걸세.>> 열두 마리 개미가 더듬이를 맞댄다. 참으로 놀라운 생각이다! 시 체들을 버리지 말자니.... 그들은 완전 소통에 몰입한다. 그 개미의 제안은 신을 믿는 개미 들의 운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죽은 자들을 보존한다는 생각에 많은 개미들이 호감을 가질 것이다. 한 반체제 개미가 올레인산 냄새를 차단시키기 위해 시체들을 벽 속에 넣자고 제안하나, 제일 먼저 의견을 낸 개미가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야.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클리푸니 여 왕을 모방하자, 살은 파내고 빈 껍질만 간직하도록 하자.>> 135. 흰개미 도시 흰개미들이 진동진동 달아난다. <<앞으로!>> 103호는 <큰 뿔> 위에서 원정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강렬 한 페로몬을 발한다. <<가차없이 해치워라!>> 역시 날으는 뿔풍뎅이에 올라탄 9호가 페로몬을 내뿜는다. 포수 개미들은 쉬지 않고 개미산을 발포해 흰개미들을 죽인다. 흰개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 하늘에서 나타난 괴물들과 그 조종사들이 뿜어대는 치명적인 발사물을 피하려고 모두들 갈팡질 팡하며 달아난다. 각자 제 목숨 건지기에 바쁘다. 흩어진 흰개미들 은 그들의 도시 쪽으로 질주해 간다. 강 기슭에 최근에 진흙으로 지 은 커다란 요새다. 밖에서 보니 건물이 아주 인상적이다. 황토색 요새는 가운데가 종 모양으로 생겼고, 그 종 윗부분에 탑 세 개가 불쑥 튀어나와 있으 며, 탑에는 다시 망루 여섯 개가 뾰족하게 솟아 있다. 땅바닥과 거 의 같은 높이에 나 있는 출구는 모두 조약돌로 막혀 있다. 몇몇 보 초들이 총안 모양으로 틈을 지키고 있다. 원정군이 적의 성을 공격하자, 큰코흰개미 병정들이 수직으로 된 틈새로 코를 불쑥 내밀고 침입자들에게 끈끈물을 뿌린다. 첫번째 공격으로 불개미 50마리가 목숨을 잃는다. 두 번째 파상 공격으로 다시 30마리가 죽는다.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자들이 아 래서 위로 쏘는 자들보다 늘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공중에서 공격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뿔풍뎅이 들이 뿔로 망루에 충격을 가하고, 사슴벌레들이 탑들을 뽑아버리지 만, 흰개미들의 끈끈물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덕분에 흰개미 도시 목실룩생에서는 조금 숨을 돌리기 시작한다. 흰개미들은 부상병들을 돌보고 틈바구니를 메운다. 장기간의 포위 공격을 예상하여 곳간을 정비하고 보초들을 다시 세운다. 목실룩생의 흰개미 여왕에게선 두려워하는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 는다. 여왕 곁에는 신비에 싸인 채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왕이 있 다. 희개미들의 세계에서는 수컷들이 결혼 비행을 끝내고도 살아남 아 암컷의 곁에 있는 왕의 숙소에 머문다. 한 첩보 흰개미가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은밀한 태도로 소곤거린다. <<벨로캉의 불개미들이 원정군을 동으로 파병해 도중에서 몇몇 개 미마을과 꿀벌의 도시를 정복했습니다. 불개미들의 새로운 여왕, 클 리푸니는 건축, 농업, 공업 부문에서의 완벽한 혁신을 통해 연방을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젊은 여왕들은 늙은 여왕들보다 자기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목실록생의 늙은 여왕이 비아냥거리는 듯한 페로몬을 발한다. 흰개미들이 찬동의 냄새를 풍긴다. 그때 경보가 울린다. <<불개미들이 도시를 습격한다!>> 병정 흰개미들의 더듬이 사이에서 오가는 정보가 너무도 놀라워서 여왕 흰개미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땅강아지들이 건물 아래층을 뚫었다고 한다. 그들은 넓적한 앞다 리로 순식간에 지하 통로를 파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병정개미 수백 마리가 따라올라와 모든 것을 약탈하고 있다고 한다. <<개미들이! 땅강아지를 길들인다고?>>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흰개미 도시가 아래쪽으로 기습을 받기 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시를 우회하여 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공격을 감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목실룩생 전략가들은 어떻 게 반격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방들을 둘러보며 103호는 흰개미 도시의 정교 함에 감탄한다. 따뜻해야 할 곳은 따뜻하게 선선해야 할 곳은 선선 하게 되도록 모든 설비를 두루 갖추어 놓았다. 백 걸음쯤 깊이 들어 가야 수면이 나타나는 아루투아 식의 깊은 우물에서 선선한 공기가 나온다. 왕궁 위쪽에 몇 개의 층에 걸쳐 있는 버섯 재배장에서는 따 뜻한 공기가 만들어진다. 버섯 재배장으로부터 몇 개의 꿀뚝이 뻗어 나가는데, 어떤 것들은 탄산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망루로 향하고, 어떤 것들은 냉기를 빨아들이면서 여왕의 방과 부화실 쪽으로 내려간다. <<이제 영아실을 공격해야죠?>> 벨로캉 병정개미 하나가 묻는다. <<아니, 흰개미 도시에선 달라. 먼저 버섯 재배장으로 쳐들어가는게 낫다.>> 103호가 설명한다. 원정군 병사들은 작은 구멍이 많이 난 통로로 쏟아져들어간다. 지 하층에서 목실룩생 흰개미 군대는 앞을 보지 못한다. 개미들의 돌진 에 흰개미들의 저항은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싸움 의 양상이 달라진다. 흰개미들의 저항이 거세어지고 전투는 갈수록 치열해진다. 한 구역 한 구역 정복될 때마다 양 진영의 손실이 막대 하다. 매복해 있는 적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벨로캉 개미들은 모두 신분페로몬의 발산을 억제한다. 200마리의 목숨을 더 잃은 후에야, 벨로캉 개미들은 마침내 흰개 미들의 버섯 재배장에 진입한다. 목실룩생 측으로선 이제 항복할 수밖에 없다. 버섯 재배장을 빼앗 긴 흰개미들은 섬유소를 섭취할 수 없어 성충이고 알이고 여왕 흰개 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영양 실조로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례대로 승리자인 벨로캉 개미들은 흰개미들을 모조리 학살할 것인가? 아니다. 벨로캉 개미들의 태도가 너무나 뜻밖이다. 여왕 흰개미의 방에서, 103호는 여왕에게 불개미들은 흰개미들이 아닌 강 저편에 사는 손가락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먼 저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면 목실룩생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 금 원정군이 요구하는 것은 목실룩생에서 밤을 보내고 흰개미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136. 그것들을 포착하다. "별일 아녜요, 기대하지 말아요!" 레티샤는 짜증스러운 듯 눈 위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일어나지 않아도 되죠? 또 잘못된 경보일거예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멜리에스는 그녀를 한층 더 세게 흔들었다. "아니예요. <그것들>이 나타났어요." 멜리에스가 거의 외치듯 말했다. 레티샤는 이불을 내리고 연보라빛 눈을 떴다. 감시 장치의 모든 화면에 개미 백여 마리가 나아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레티샤는 펄쩍 뛰어 일어나 가짜 다카구미 교수의 몸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줌 렌즈 를 조정했다. 마네킹의 몸뚱이가 떨리고 있었다. "개미들이 안쪽에서 마네킹을 부수고 있는 중이오." 멜리에스가 숨을 몰아쉬며 설명했다. 개미 한 마리가 실물처럼 보이는 가짜 벽으로 다가와 더듬이 끝으 로 냄새를 맡는 듯했다. "내게서 땀내가 다시 나지 않아요?" 경정은 불안했다. 레티샤는 그의 겨드랑이에 코를 대어보았다. "아뇨, 라벤더 냄새밖에 안 나요. 두려워할 거 없어요." 벽으로 다가왔던 개미가 마네킹을 공격하고 있는 다른 개미들에게 로 돌아가는 걸 보니 레티샤의 말이 맞긴 맞는 것 같았다. 플라스틱 마네킹이 내부의 습격으로 흔들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보니 작은 개미들의 행렬이 마네킹 왼쪽 귀에서 나오고 있었다. 레티샤 웰즈는 멜리에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옳았어요, 멜리에스 씨. 믿기지 않지만 내 눈으로 분명히 개미들을 보았어요. 저 개미들이 살충제 제조자들을 살해한거예요. 하지만, 난 여전히 믿을 수가 없어요!" 최첨단 기술에 통달한 경찰관답게 멜리에스는 마네킹의 귀 안에 방사능 물질 한 방울을 넣어두었다. 어쩔 수 없이 개미 한 마리가 그 물질에 다리를 담갔고, 방사능 물질이 그 개미의 몸에 배어들었 다. 이제 그 개미는 그들에게 자기의 자취를 가르쳐줄 것이다. 작전성공! 화면에 나타난 개미들은 범죄의 흔적을 없애려는 듯 마네킹 주위 를 돌며 샅샅이 살폈다. "저래서 피살자가 죽고 나서 5분이 지나도록 파리가 접근할 수 없 었던 겁니다. 개미들은 범죄를 끝내고 나면 범죄중에 어쩌다 부상을 입은 개미들을 모으고 자기들이 들어왔다는 표시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거예요. 그 동안 파리들은 감히 얼씬도 못했던거예요." 화면에서 개미들은 하나의 긴 행렬로 다시 모여 욕실로 갔다. 그 런 다음 세면대 트랩에 이르러 그 안으로 모두 들어갔다. 멜리에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시의 배관망을 통해 어떤 건물이든지 침입할 수 있겠군. 불법 침입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말이야!" 레티샤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가 없었다. "난, 아직도 의문이 남아요. 어떻게 곤충이 신문을 읽고, 주소를 알아내고, 살충제 제조자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살아남게 되리라 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 곤충을 너무 과소 평가했어요. 생각 안 나요? 내가 상 대를 너무 얕잡아본다고 나무란 적이 있잖습니까? 이제 당신 차례군 요. 아버지가 얕잡아본다고 나무란 적이 있잖습니까? 이제 당신 차 례군요. 아버지가 곤충학자였는데도 벌레들이 얼마나 진화했는지 전 혀 모르는군요. 틀림없이 개미들은 신문을 읽고 적을 간파해 낼 줄 알 겁니다. 우린 장차 그 증거를 갖게 되겠죠." 레티샤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개미들은 읽을 줄 모른단 말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속였 을 리가 없어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개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그렇게 잘 안다면 그런 징후가 나타나도 벌써 나타났겠지 요. 여태껏 속이고 있다가 이제 와서 자기들이 사람들의 발꿈치에 밟히는 하찮은 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나서지는 않았을거란 말이에요." "아무튼 그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봅시다." 멜리에스는 먼 거리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가이거 계수관을 상자 에서 꺼냈다. 바늘은 방사선이 나오고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사능 물질이 묻은 개미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장 치에는 안테나가 달려 있었고, 모니터 화면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화면의 검은 원 안에서 푸르스름한 점이 깜박였다. 푸른 점이 천천히 나아갔다. "이제 우리에게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 개미만 따라가면 돼요." 멜리에스가 말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시속 0,1킬로미 터로만 달려 달라는 손님들의 요구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속 도는 살인범 일당이 이동하는 속도였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사람 은 많이 봤어도 이런 손님들은 생전 처음이었다. 저 두 사람은 그저 장난스런 연애를 하려고 차를 잡았는가 보다고 기사는 생각했다. 기 사는 백미러로 그들을 흘낏 보았다. 그들은 손에 이상한 물건을 쳐 다보며 논쟁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137. 백과 사전 문명의 충돌 일본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 인은 16세기의 포루투칼 탐험가들이었 다. 그들은 서해안의 한 섬에 닿았는데, 그곳 다이묘는 아주 정중하 게 맞아주었다. 그는 <코쟁이들>의 새로운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 였다. 특히 조총이 마음에 들어서 그는 명주와 쌀을 주고 그것을 얻었다. 다이묘는 성의 대장장이에게 그 놀라운 무기와 똑같은 것을 만들 라고 지시했지만 대장장이는 총의 후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일본산 조총은 번번이 사용자의 면전에서 폭발했다. 포루투칼 인들이 다시 항구에 들어왔을 때, 다이묘는 포루투갈의 대장장이에게 어떻게 하 면 화약이 폭발할때 총의 마구리가 터지지 않게 할 수 있는지를 자 기 대장장이에게 가르쳐주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많은 양의 조총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하여 나라의 전쟁 규범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전쟁은 으레 사무라이들이 칼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 문이었다. 오다 노부나가 장군은 직접 조총 부대를 창설하여 속사로 적의 기마병을 잡는 방법을 가르쳤다. 물질 문명에 이어, 포르투갈 인들은 두 번째 선물, 즉 정신적 선 물인 기독교를 가져왔다. 당시는 마침 교황이 세계를 포루투갈과 스 페인에 갈라주던 시기였다. 일본은 포르투갈에 맡겨졌다. 그리하여 포르투갈 인들은 예수회의 선교사들을 파견했고, 그들은 처음엔 대 단히 환영을 받았다. 일본인들은 이미 몇 가지 종교를 융합해 놓고 있던 터라, 기독교도 자기들의 종교에 통합시킬 하나의 오랜 종교쯤 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의 배타성이 마침내 그들을 화나게 했다. 기독교는 다른 모든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 고, 일본인들이 아무런 이의없이 숭배하는 그들의 조상들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 불에 타고 있을 거라는 말을 서슴치 않 았다. 그런 종교가 어찌 보편적인 종교라는 뜻의 <카톨릭>이라는 이 름을 내세울 수 있는가? 기독교의 독선적인 태도가 결국 일본일들을 자극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 뒤 시마바라 폭 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일본인들이 수난을 당했다. 그때부터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이 상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단 한 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섬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상륙 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일본 열도에 발 을 디딜 수 있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38.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흰개미 여왕은 당황하여 더듬이를 돌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작 을 멈추고 자기의 처소를 포위한 개미들을 마주 보며 페로몬을 터트린다. <<당신들을 돕겠소. 당신들이 무시무시한 개미산 공격으로 협박을 해서가 아니라, 손가락들은 또한 우리의 적이기도 하니까 돕겠다는거요.>> 손가락들은 아무것도 존중할 줄 모른다고 여왕이 설명한다. 손가 락들은 긴 장대에 달린 비단 실 끝에 가혹하게 새기 파리와 구더기 를 꽂아서 휘두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물에 던져넣고 물고기가 그것들을 먹어치우고 나면 들어올린다. 손가락들은 비단 실에 매달 미끼를 마련하려고 더 무자비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손가락들 한 무리가 흰개미들의 도시 목실룩생을 공 격했다. 그들은 통로로 쳐들어와 곳간을 약탈하고 여왕의 거처를 부쉈다. 그 잔인 무도한 자들은 번데기를 찾고 있었다. 손가락들은 흰개미 번데기들을 탈취해 갔다. 손가락들의 장대 끝에서 살려달라고 페로몬을 뿜어대면서 발버둥 치던 새끼들을 보았을 때, 흰개미들은 이제 새끼들을 구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번데기들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흰개미들은 물방개 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물에 사는 딱정벌레들이 흰개미들에게 배가 되어주었다. <<배라니요?>> 벨로캉 개미들이 의아해 하자 여왕개미가 설명한다. 개미들이 뿔 풍뎅이를 길들여 타고 다닐 수 있듯이, 흰개미들도 물방개들을 길들 여 물 위에 나아갈 수 있다. 물방초 잎에 앉은 다음 그것을 물방개 들이 밀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간단하지만은 않았 다. 처음엔 개구리들이 쪽배들을 대부분 조각내 버렸다. 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흰개미들은 마침 내 개구리의 주둥이에 끈끈물을 쏘는 법을 터득하였고, 커다란 물고 기에게 뛰어들어 위턱으로 구멍을 뚫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해군 흰개미들이 번데기들을 구한 적은 없었다. 손가락들은 흰개미들의 새끼들을 만나기도 전에 장대를 물 속에 집 어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전으로 흰개미들의 향해 기술은 발달하였고 강 표면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들이 옳아요. 손가락들은 더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어요. 우 리 도시를 파괴하고 불을 사용하고 새끼들을 괴롭히는 손가락들을 응징하기 위해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하겠소.>> 목실룩생의 흰개미 여왕이 침착하게 페로몬을 발한다. 불을 사용하는 자들을 응징하기로 했던 옛 협정을 준수하는 뜻에 서 흰개미 여왕은 큰코흰개미 4개 군단, 큰턱희개미 2개 군단, 독흰 개미 2개 군단을 원정군에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 흰개미 병정들은 다양한 전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신체 구조가 변형된 병정개미 아계 급의 흰개미들이다. <<개미와 흰개미들 사이의 해묵은 증오는 씻어버립시다. 무엇보다 도 먼저 그 괴물들의 약탈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합니다.>> 흰개미 여왕은 원정군이 빨리 진군할 수 있도록 자기의 함대를 내 준다. 목실룩생의 흰개미들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만에 자기 들의 항구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 항구는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 장으로 이어져 있다. 개미들은 강변 백사장으로 나간다. 물망초 잎들이 여기저기에 길 게 늘어서 있다. 어떤 잎들은 흰개미들의 식량을 싣고 떠나기를 기 다리고 있고, 비어 있는 잎들은 새로운 지방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흰개미들은 쪽배를 보호하려고 섬유소로 된 정박지를 설치했 다. 그들은 바람과 물결로부터 항구를 보호하려고 제방에 갈대를 심 기까지 했다. <<맞은 편 섬엔 무엇이 있지?>> 103호가 궁금해 한다. <<아무것도 없어요. 어린 코르니게아 아카시아만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먹지 않아요. 그런 종류의 섬유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요. 그렇지만, 폭풍이 일 때는 그 섬이 피난처가 되기도 해요.>> 흰개미 하나가 귀뜸한다. 103호와 나비 고치를 지닌 24호가 투명한 솜털이 깔린 물망초 잎 하나에 자리를 잡자 뒤를 이어 개미와 흰개미들이 탄다. 몇몇 흰개 미가 물 위로 배를 밀고 달리자 젖지 않도록 민첩하게 뛰어오른다. 목실룩생 흰개미 한 마리가 더듬이를 물에 잠그고 페로몬을 뿜자 벌레 두 마리가 다가온다. 흰개미 도시의 친구, 물방개들이다. 물방 개들은 딱지 날개 사이에 기포를 넣고 물 속에서 호흡하는 딱정벌레 다. 물방개들은 이 산소통 때문에 물속에서 아주 오래 머물 수 있 다. 물방개 앞다리에는 보통 교미할 때 사용하는 흡반이 있는데, 지 금은 그것을 잎 밑에 붙이고 잎을 밀고 있다. 물결 속에 냄새 신호가 떨어지자 물방개들이 긴 뒷다리로 물을 휘 젓기 시작한다. 그러자 흰개미들의 배가 조금씩 조금씩 강으로 진입한다. 원정군은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 139. 공동체 오귀스타 웰즈와 지하 생활의 동료들은 모임의 방식을 바꾸어 새 로운 공동체 의례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차례차례 하나의 소리를 내 다가 공동의 소리인 <옴>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 다음엔 모두 침묵에 빠져들었다. 느려진 그들의 숨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회합은 매번 달랐다. 어떤 때는 모두 천장의 바위를 뚫고들어온 에너지를 흡입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에너지가 바위를 관통하고 그 들에게까지 와 닿았다. '백과 사전'에서 우주파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우주파는 파장이 아주 길어서 물이든 모래든 어떤 물질도 통과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종 브라젤은 자기 몸에 여러 가지 에너지가 있음을 깨닫고 그것 들을 모두 소리로 나타냈다. 처음엔 기초 에너지 <우>가 있었다. 그 것은 하위 에너지 <아>와 <와>로 나뉘었고, 다시 네 가지 다른 소리 인 <워>, <웨>, <에>, <오>로 나뉘었다. 그것이 다시 여덟 개로 나 뉜 다음, <이>와 <위>의 두 소리로 끝났다. 자종 브라젤은 그 열일 곱 가지 에너지를 파라미드 형태로 단전 근처에 모았다. 그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프리즘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 프리즘 은 하얀 빛과 같은 <옴> 소리를 받아들여 그것을 모두 본래의 빛깔 로 분해했다. 집중, 확산. 그들은 색과 소리를 호흡했다. 들숨, 날숨. 그들은 소리와 빛으로 가득찬, 고요한 열아홉 개의 프리즘일 뿐이었다. 니콜라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빈정거렸다. 140. 광고 -날이 더워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바퀴, 개미, 모기, 거미. 집과 정원에서 그것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크락 크락>! 크락 크락과 함께, 여름을 편안하게! 탈수 작용을 하는 크락 크락 은 벌레들을 얇은 유리처럼 부서지게 만듭니다. 크락 크락 분말. 크락 크락 분무제. 크락 크락 방향제. 크락 크락, 그것은 위생의 대명사입니다! 141. 강 103호의 물망초 잎이 점점 속도를 낸다. 배는 낮게 깔린 물보라를 헤치면서 곧장 나아간다. 흰개미들은 배 앞에 흰 물거품이 생길 때 는 뱃머리를 들어올리기도 한다. 더듬이와 위턱으로 가득 찬 100척 의 배들이 향해하고 있다. 물망초 잎 100개에 탄 2,000 원정군 병사 들로 대함대를 이뤘다. 거울같이 매끄러운 강물에 잔잔한 물결이 인다. 목실룩생의 쪽배들 때문에 잠이 깬 모기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투 덜거리며 날아간다. 함대의 맨 앞쪽에서, 뱃머리에 자리잡은 큰코흰개미가 다른 흰개 미에게 최선의 항로를 안내한다. 그러면 제일 뒷자리의 흰개미는 물 속에 페로몬을 뿜어 물방개를 지휘한다. 움푹 패인 물 웅덩이, 수면과 같은 높이의 암초, 그리고 모든 것 을 가로막는 렌즈 모양의 해초를 피해야만 한다. 연약한 쪽배들은 모든 것을 비추는 잔잔한 강물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물방개의 다리가 일으키는 청록색 소용돌이만이 정적을 깨고 있 다. 쪽배들 위로 능수버들이 긴 잎을 드리운다. 103호는 강물에 눈과 더듬이를 담근다. 그 속엔 생물들이 우글거 린다. 갖가지 수중 동물들이 흥미를 끈다. 물벼락과 닷벌레도 보인 다. 그 작고 붉은 갑각류의 벌레들이 사방으로 달아난다. 물방개에 게 다가오던 모든 벌레들이 그 거구를 보고 숨을 죽인다. 9호도 미물들이 우글거리는 물 속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 올챙 이 떼가 물결 높이로 솟아오르며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온다. <<조심해, 올챙이야!>> 검은 피부를 반짝이며 올챙이들이 곤충 함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한다. <<올챙이다, 올챙이다!>> 신호가 모든 흰개미 배에 전해진다. 물방개들은 속도를 더 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개미들은 달리 할 일이 없으므로, 잎의 털에 꼭 붙 어서 균형을 잃지 말라는 당부만 받는다. <<큰코흰개미, 전투 대형으로!>> 머리가 호롱박 모양인 흰개미들이 물결에 코를 들이민다. 올챙이 한 마리가 뛰어들어 24호가 탄 물망초 잎을 물어뜯는다. 배는 진로를 못 찾고 소용돌이에 휩쓸려 맴돌기 시작한다. 다른 올챙이가 103호가 탄 배로 덤벼든다. 9호가 그 올챙이를 겨누고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 포가 적중한다. 그러나 그 시커멓고 끈적거리는 동물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잎 위로 뛰어오르더니, 기다란 꼬리로 잎을 후려치며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그 서술에 개미와 흰개미가 모두 물에 빠지고 만다. 9호와 103호는 때마침 다른 배로 구조된다. 몇몇 다른 물망초 잎들이 올챙이들 때문에 침몰하여 거의 1,000마 리가 물에 빠진다. 그러자 다시 한번 <큰 뿔>과 동료 뿔풍뎅이들이 나선다. 도강을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함대 위를 날고 있었다. 뿔풍뎅이들은 올챙이 들이 물망초 잎을 전복하고 물에 빠진 자들을 악착스럽게 따라다니 는 것을 보자, 급강하로 돌진하여 물렁물렁한 올챙이들을 뿔로 찌르 고 물에 젖기 전에 다시 날아오른다. 위험한 곡예 비행 도중 몇몇 풍뎅이가 익사하지만 대부분은 검고 축축한 올챙이를 뿔에 가득 꿰고 다시 날아오른다. 뿔에 꿰인 올챙 이들이 허공에서 긴 꼬리를 휘두르며 꿈틀거린다. 올챙이들이 오던 길을 되돌아 퇴각한다. 개미들은 조난자들을 구한다. 이제 파손된 배 50척에 1,000마리 남짓한 원정군만 남았다. 전투중 길을 잃었던 24호의 배는 속도를 빠르게 하여 함대와 합류한다. 마침내 모두가 고대하던 페로몬 외침이 울린다. <<육지가 보인다.>> 142. 어둠 속의 푸른 점 흥분이 절정에 달했다. "오른쪽으로 가세요. 천천히, 천천히. 계속 오른쪽으로 그 다음엔 왼쪽으로 이제 곧바로 가세요. 속도를 늦추세요. 곧장 계속 가세요." 멜리에스 경정이 요청했다. 레티샤 웰즈와 자크 멜리에스는 뒷좌석에서 추적의 결말을 알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아예 체념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이렇게 계속 기다간 시동이 꺼질 것 같은데요." "개미들이 풍텐블로 숲 가장자리로 가는 것 같아요." 초조하여 손을 꼬며 레티샤가 말했다. 길 저 끝에 보름달의 하얀 빛을 받고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천천히, 천천히 가세요.!" 뒤에서, 화가 치민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렸다. 저속 추격전이 교 통 운행을 아주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 추격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차라리 목숨을 내놓고 맹렬한 속도로 전개하는 추 격전이 훨씬 나을 것이었다. "왼쪽으로, 계속!"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던 기사가 결국 한숨을 지었다. "걸어가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게다가 좌회전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요." "상관없소, 경찰이오!" "아, 그렇습니까! 정히 그러시다면 하는 수 없지요, 뭐." 그러나 반대방향에서 오는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막혔다. 벌써 방사 능 물질이 묻어 있는 개미는 감지 구역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기자와 경정은 움직이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차가 워낙 느리 게 가고 있던 터라, 뛰어내리는 게 별로 위험하지는 않았다. 멜리에 스는 지폐를 던지고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사는 후진을 하면서 손님들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인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방사선 탐지 장치에 신호가 다시 나타났다. 살인범들은 분 명히 퐁텐블로 숲을 향애 나아가고 있었다. 자크 멜리에스와 레티샤 웰즈는 작고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지역 에 들어섰다. 가로등이 그 초라한 집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가난한 마을의 거리엔 인적이 끊겨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개들이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납게 짖어댔다. 개들은 대부분 독일 산 셰퍼드들이었다.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려고 근친 교미를 거듭 하는 바람에 퇴화된 종자들이었다. 거리에 누군가 나타나기만 하면 개들은 철책 위로 뛰어오르며 짖기 시작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두려웠다. 그의 늑대 공포증이 되살아나면서 공 포의 페로몬이 그를 휘감았다. 개들은 그 페로몬의 냄새를 맡자 그 를 물고 싶은 충동을 더 강하게 느꼈다. 어떤 개들은 담을 넘으려고 뛰어올랐다. 또 어떤 개들은 이빨로 나무 울타리를 물어뜯었다. "개가 무서워요? 정신차려요,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니예요. 개미들 이 우리에게서 벗어나려고 해요." 창백해진 경정에게 기자가 말했다. 바로 그때, 어떤 셰퍼드 한 마리가 유독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그 개는 사나운 눈을 번득이며 어금니로 울타리를 물어뜯어 널판지 하나를 절단냈다. 그 개는 겁에 질린 기미를 아주 심하게 보이는 사 람이 나타나자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겁에 질린 어린애나 눈에 띄 게 걸음을 재촉하는 할머니들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이처럼 심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사람을 그 셰퍼드는 본 적이 없었다. "멜리에스 씨, 왜 그래요?" "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 개는 악착스럽게 울타리에 달려들었다. 판자가 또 부서졌다. 번쩍이는 이빨, 충혈된 눈, 곧추세운 검은 귀, 멜리에스에겐 그 개 가 성난 늑대로만 여겨졌다. 바로 침대 밑에 숨어 있던 그 괴물이었다. 개의 머리와 발, 몸뚱이가 차례로 널판지를 통과하더니, 개가 아 주 빠르게 달려나왔다. 성난 늑대가 울타리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개의 날카로운 이빨과 멜리에스의 부더러운 목 사이엔 더 이상 아무 방패막이도 없었다. 야수와 문명인 사이엔 아무런 방책이 없다. 자크 멜리에스는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레티샤가 그와 개 사이로 끼여들었다. 레티샤는 <난 너 를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말하듯이 연보라빛의 차가운 시선으로 그 짐승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레티샤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떡 벌린 채 개를 노려보았 다. 그 자세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의 자세였고, 개 사육장에서 조련 사들이 집 지키는 법을 가르칠 때 취하는 자세였다. 그 짐승은 태도를 바꿔 꼬리를 감추고 겁이 난 듯 울타리 안으로 도망갔다. 멜리에스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는 두려움과 한기를 느끼 며 떨고 있었다. 레티샤는 멜리에스가 마치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안심시키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대뜸 감싸안았다. 레티샤는 그 가 미소를 지을 때까지 다정하게 꼭 껴안고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빚을 지고 갚았어요. 나는 개로부터 당신을 구했 고, 당신은 치한들로부터 나를 구해준 적이 있어요. 당신도 보았듯 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해요." "빨리, 신호가 들려요!" 푸른 점이 방사능 탐지 장치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들은 점이 원의 가운데로 올 때까지 달렸다.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긴 작은 집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따금 문에 <그거면 나에게 충분해요> 또는 <도 미 시 라 도 레> 같은 간판이 달린 집들이 있었다. 개들, 돌보지 않은 잔디밭, 광고 전단이 넘쳐 나는 우체통들, 갖가지 색깔의 집게가 달린 빨래줄, 파손된 탁구대 가 도처에 널려 있었고, 흔들거리는 캠핑 트레일러들도 여기저기 눈 에 띄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일한 흔적은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텔레비젼의 푸르스름한 빛뿐이었다. 방사능이 묻어 있는 개미는 그들의 발 밑 하수도를 질주하고 있었 다. 숲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경찰관과 기자는 신호를 따라갔다. 그들은 어떤 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언뜻 보기에 그 구역의 다른 거리들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정표가 이 거리가 <페닉스>라 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거 지역 사이로 몇 개의 가게가 희미하 게 보이기 시작했다. 패스트 푸드 점 안에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6도짜리 맥주를 앞에 놓고 뭔가를 씹고 있었다. 병의 상표에 <주의: 남용은 해로울 수 있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똑같은 문구가 담뱃 갑에도 찍혀 있었다. 정부는 곧 그와 유사한 딱지를 자동차의 액셀 페달과 시판이 자유로운 무기에도 붙일 예정이었다. 그들은 <소비의 전당> 수퍼마켓과 <벗과의 해후>카레를 지나, 어 떤 장난감 가게 앞에 멈추었다. "개미들이 멈췄어요. 여기예요."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게는 낡고 허름해 보였다. 진열장엔 먼지 낀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진 듯 나뒹굴었다. 장난감 토끼, 오락 게임기, 모형 자동차, 인형, 납으로 된 장난감 병정, 우주 비 행사 또는 요정 세트, 익살스러운 장난감들과 속임수 장난감들.... 그 난장판 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알록달록한 꽃 장식이 반짝이고 있었다. "개미들이 여기 있어요. 바로 여기예요. 푸른 점이 멈췄어요." 멜리에스가 레티샤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냈어요!" 멜리에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껴안고 입맞추려 했지 만 그녀가 그를 밀쳐냈다. "냉정하세요, 멜리에스 씨,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 "개미들이 여기 있단 말이오. 당신도 봤잖소. 신호는 계속 오고 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눈을 들었다. 가게 전면에는 굵 은 글자로 <장난감의 왕, 아더의 가게>라고 되어 있는 파란 네온 간판이 있었다. 143. 벨로캉에서 벨로캉에서 날파리 전령이 클리푸니에게 보고한다. <<원정군이 강에 도착했습니다.>> 전령은 그 동안 원정군이 겪은 일들을 자세히 전한다. 아스콜레인 의 비행 군단과 싸운 일, 산에서 헤맸던 일, 폭포를 건너 <모든 것 을 잡아 먹는 강>가에서 흰개미들과 싸웠던 일. 여왕은 기억 페로몬에 그 정보를 정리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강을 건널 참이지? 사테이 지하 통로?>> <<아닙니다. 흰개미들은 물방개를 길들여 물망초 잎 함대를 운행 하는데 그것들을 이용했습니다.>> 클리푸니는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흰개미들이 물에 사는 딱정벌 레들을 완벽하게 길들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전령은 나쁜 소식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원정군이 올챙이들의 공 격을 받았는데, 우여 곡절 끝에 많은 원정군 병사들이 죽고 1,000여 마리만 남았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 가운데도 부상자들이 많아 다 리 여섯 개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개미들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여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리가 모자라는 병사들이 있다 해도 장차 모두 치료되면, 1,000여 마리의 원정군으로도 지상의 손 가락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여왕은 생각한다. 이제 새로 이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으리라. 144. 백과 사전 코르니게라 아카시아 코르니게라는 개미가 안에 들어가 사는 묘한 조건에서만 성숙한 나무가 될 수 있는 소관목이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개 미의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하다. 또 이 나무는 개미들을 유인하려고 스스로를 수년에 걸쳐 진짜 개미집으로 바꾸어간다. 가지는 모두 속이 비어 있고, 그 비어 있는 속에는 오직 개미의 편의를 위한 통로와 방이 갖춰져 있다. 그뿐이 아니다. 통로에는 일개미와 병정개미에게 더없는 기쁨이되 는 흰 진디가 사는 경우가 많다. 코르니게라는 제 내부에 자리 잡길 원하는 개미들에게 집과 은신처를 제공한다. 대신, 개미들은 집주인 으로서 스스로의 의무를 다한다. 개미들은 모든 애벌레, 외부의 진 디, 민달팽이, 거미 그리고 가지의 성장을 방해하는 다른 나무좀을 퇴치해 준다. 매일 아침, 개미는 위턱으로 송악과 나무에 기생 덩굴 식물을 잘라낸다. 개미는 낙엽을 치우고, 이끼를 긁어내고, 침으로 나무를 소독하며 돌본다. 자연에선 희귀하게 식물과 동물의 훌륭한 공생이 일어난다. 개미 덕분에 코르니게라 아카시아는 다른 나무들의 그늘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나무들보다 빨리 자란다.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의 꼭대기를 굽어보면서 직접 햇빛을 받아들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45. 코르니게라 섬 야트막하게 깔린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백사장과 암초들과 절벽들이 보인다. 선두의 흰개미 배가 푸른 이끼가 낀 모래밭 위에 오른다. 이곳의 동식물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것들이다. 늪 지대 냄새가 나는 날파리들이 모기와 잠자리 떼에 섞여 어지럽게 돌고 있다. 꽃들은 쪼그라들어 있고, 잎은 심지 모양으로 말려서 떨어진다. 해초 아래 의 땅은 단단하다. 물결에 침식된 바위는 무수히 많은 벌집 구멍이 뚫려 마치 검은 스폰지 조각 같다. 더 멀리, 토질이 물러 보이는 작은 땅덩어리 한가운데에 어린 코 르니게라 아카시아가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씨앗 하나가 바 람에 날리다가 우연히 이 섬에 닿아 싹을 틔운 모양이다. 물, 토양, 공기, 삼요소가 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데 충분했지만 성장에 기여 하는 개미들이 부족했다. 옛적부터 개미들과 혼인하는 것이 이 식물 의 유전형질로 되어 있었다. 코르니게라 아카시아는 이미 2년 전부터 개미들을 기다려왔다. 이 코르니게라의 아주 많은 형제들이 이 우주적인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 이 코르니게라 나무가 이렇게 행복한 만남을 이루게 된 것은 간접 적으로 손가락들 덕이다. 아카시아 껍질에 <질은 나탈리를 사랑해> 라는 글귀를 새겨, 그토록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겼던 바로 그 손가 락들의 덕을 입은 것이다. 갑자기 103호가 몸을 떤다. 섬 한가운데에 아주 선명하게 옛일을 회상시키는 물건이 있다. 이 돌출물... 마자, 우연일 순 없어. 바로 그거야. 꼭대기가 둥글고 구멍이 가득 패인 탑, 그들이 하얀 나라에 서 최초로 발견했던 이상한 물건, 103호는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부대를 떠나 그 물건을 더듬는다. 그것은 단단하고, 투명하고, 안에 하얀 가루가 들어 있다. 지나번에 본 것과 똑같다. 흰개미 병정들이 103호의 곁으로 다가와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왜 부대를 떠나는거예요?>> 103호는 그 물건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요, 매우 중요한 거예요. 손가락 신들이 새겨놓은 겁니다. 신의 기념물이에요!>> 23호가 따라서 페로몬을 발한다. 그러자 신을 믿는 개미들은 진흙으로 그와 비슷한 조상을 빚기 시작한다. 몇몇 개미들은 여독도 풀 겸 전투에서 입은 상처도 치료할 겸 군 장비도 다시 손볼 겸 그 평화로운 항구에서 며칠 머물기로 결정한다. 모두들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103호가 몇 발자국 디디자 아내 무엇인가가 그를 놀라게 한다. 지구 자기장에 민감한 존슨톤씨 기관이 자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지금 하르트만 결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르트만 결절은 특별한 자기를 띠고 있는 지대이다. 일반적으로 개미들은 바로 그 지점에만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곳은 양 이온을 띤 지구 자장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곳은 많은 동물들, 특히 포 유 동물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개미들에겐 반대로 편안함을 안겨준다. 인체에 침을 놓기에 알맞은 자리인 경혈이 있듯이 하르트만 결절 은 지표에 있는 경혈이라 할 만하다. 그것을 통해서 개미들은 대지 와 대화하고, 물의 근원을 발견하며, 땅의 진동을 탐지한다. 그렇게 하여 개미들의 도시는 세계에 뻗쳐 있는 것이다. 103호는 정확히 자력이 가장 센 지점을 찾는다. 그는 코르니게라 아카시아 나무 바로 아래에서 하르트만 결절을 발견한다. 그는 곧 24호 그리고 9호와 함께 소관목 위를 거닐기 시작한다. 유난히 껍질이 얇은 곳이 한 군데 있다. 그들은 그 보호막을 벗겨내 고 코르니게라 아카시아의 처녀성을 빼앗는다. 놀라운 일이다! 그곳 에 텅빈 개미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한 둥 지이다. 뿌리에 들어가보니 개미들이 언제라도 들어가 살 수 있는 방이 가득하다. 곳간이나 산란실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게 지어진 방들도 있고, 날개를 읽은 흰 진디들이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 는 축사도 있다. 벨로캉 개미들은 그 예기치 않은 숙소를 구경한다. 가지들은 모두 속이 비어 있고, 방들의 얇은 칸막이엔 수액이 흐르고 있다. 처녀성을 잃은 나무는 개미들을 환영하는 뜻으로 가장 향긋한 수 지향기를 발산한다. 24호는 감탄을 하며 죽 이어진 방들을 둘러본다. 너무 감동한 나 머지 그는 위턱을 벌리다가 나방 고치를 떨어뜨린다. 24호는 자기의 의무를 망각하지 않고 얼른 그 나방 고치를 다시 집어든다. 늙은 탐험 개미 103호가 24호에게 그 아카시아 나무에 대해서 설명한다. <<나무 속의 그 둥지를 선물로 받는 개미들에게는 몇 가지 의무가 따른다. 이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개미들은 나무를 돌봐야 한다. 그 것은 영원한 속박이다. 자기 자신을 정원사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나무 둥지 밖으로 다시 나오자 노병 103호가 23호에게 새 삼 싹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새삼의 씨앗은 어떠한 썩은 물질과 닿더라도 싹이 튼다. 그런 다음 줄기 하나가 땅을 뚫고 뻗어나와 한 시간에 두 바퀴 정도의 속 도로 천천히 돈다. 이 줄기가 관목을 만나자마자, 뿌리는 쇠퇴하고 가시처럼 생긴 흡기가 나무에 박혀 나무의 진을 빨아들인다. 새삼과 식물이야말로 식물계의 흡혈귀인 것이다.>> 103호가 코르니게라 나무 가까이에서 자라고 있는 새삼 줄기 하나 를 가리킨다. 새삼은 아주 천천히 돌고 있어서 마치 바람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24호가 아주 예리한 위턱을 내밀어 새삼을 토막내려고 한다. <<안 돼, 그걸 자르면 토막이 각각 다시 살아날거야. 열 토막을 내면 다시 열 개의 새삼 줄기가 될거야.>> 103호가 페로몬을 발하여 깨우쳐준다. 103호는 전에 아주 놀라운 일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란히 버려진 새삼 줄기 두 토막이 나뭇진을 빨아들일 관목을 찾느라고 주위를 돌 고 있었는데, 관목을 발견하지 못하자 새삼 줄기들은 서로 감고 둘 다 죽을 때까지 자기들의 수액을 빨았다.>> <<그럼 어떻게 하죠? 그냥 자라게 내버려두면 결국엔 코르니게라 를 발견하고 그 줄기를 감을 텐데요.>> 24호가 궁금해 한다. <<뿌리째 뽑아서 바로 물에 던져버려야 해.>> 페로몬을 발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일이 이루어진다. 개미들은 코 르니게라 아카시아에게 해롭다고 여겨지는 다른 식물들을 모두 제거 한다. 그리고 주위에서 널려 있는 작은 좀벌레와 벌레들도 모두 쫓아낸다. 문득, 규칙적으로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딱정벌레의 하나 인 살짝수염벌레이다. <죽음의 시계>라는 별명을 가진 그 벌레가 나 무에 구멍을 뚫고 있다. 또 다른 똑딱 소리가 거기에 화답한다. <<암컷을 부르는 살짝수염벌레 수컷이야!>> 그 벌레들과 여러 번 맞닥뜨린 적이 있는 흰개미 하나가 일러준 다. 아닌게아니라 그 소리들은 두 개의 바라로 소리를 내듯 서로 화 답하는 것 같다. 개미들은 금방 그 벌레들을 찾아내고 사랑을 나누는 두 살짝수염 벌레를 엿본다. 원정군 병사들은 밤을 보내려고 하나의 도시인 나무 안으로 들어 간다. 코르니게라의 속이 빈 것을 보고 모두들 놀란다. 가장 커다란 가지 안에 있는 방에서 식사를 한다. 개미, 흰개미, 꿀벌과 풍뎅이들은 영양을 교환한다. 잔디를 짜서 달콤한 진디의 물을 나누어 먹는다. 그런 다음 야영 때는 언제나 그 랬듯이 대장정의 대상인 손가락들을 주제로 다시 논쟁이 벌어진다. <<손가락들은 신이야.>> 신을 믿는 벨로캉의 개미가 주장한다. <<신이라고? 신이 뭔데?>> 목실룩생 흰개미가 캐묻는다. 신은 모든 것을 주재하는 힘을 지녔다고 23호가 설명한다. 꿀벌, 파리, 흰개미들은 손가락들을 숭배하고 그들의 세계를 만들 었다고 믿는 개미들이 원정군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란다. 논쟁이 계속된다. 각자 견해를 발표하고 싶어한다. <<손가락들은 존재하지 않아.>> <<손가락들은 날아다녀.>> <<아냐, 손가락들은 기어다녀.>> <<그들은 물 아래로 다닐 수도 있어.>> <<그들은 고기를 먹고 살아!>> <<아냐, 초식 동물이야.>> <<전혀 먹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에너지로 살아.>> <<손가락들은 식물이야.>> <<아냐, 파충류야.>> <<손가락들은 무수히 많아.>> <<다섯 마리씩 무리지어 지구를 돌아다니는데, 기껏해야 열 내지 열 다섯 마리밖에 안 될거야.>> <<손가락들은 죽지 않아.>> <<천만에, 우리가 닷새 전에 하나 죽였어.>> <<사실 그건 손가락이 아니었어?>> <<그런, 뭐였는데?>> <<손가락들은 공략되지 않아.>> <<손가락들은 말벌들처럼 진흙으로 만든 둥지를 가지고 있어.>> <<아냐, 새들처럼 나무에서 자.>> <<겨울잠은 안 자!>> <<그만둬, 무슨 헛소리야. 손가락들도 틀림없이 겨울잠을 잘거야. 동물들은 모두 겨울잠을 자니까.>> <<어떤 흰개미가 그러는데 이상하게 구멍이 뚫린 나무들을 보았 대. 그러니까 손가락들은 나무를 먹고 살거야.>> <<아냐, 손가락들은 개미를 먹고 살아.>> <<좀 전에 내가 예기했듯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저장하고 있는 에너지로 살아.>> <<손가락들은 분홍색이고 둥글어.>> <<그들은 또한 검고 평평하기도 해.>> 논쟁은 계속된다. 신을 믿는 개미들과 믿지 않는 개미들이 대립한 다. 23호와 24호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9호를 화나게 한다. <<다른 원정군 병사들을 전염시키기 전에 저 떼거지들을 죽여야해.>> 그 내부의 적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103호가 인정해 주기를 바라 면서 9호가 독한 페로몬을 내뿜는다. <<안 돼. 내버려두게. 그들도 다양한 세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일세.>> 9호는 당황한다. 이상한 일이다. 원정이 시작된 이후로 개미들이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개미들은 추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토론 한다. 그들은 갈수록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불개미들에 게 <마음의 병>이라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점점 개미답지 않게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맞서 싸워야 할 괴물들을 앞에 두고 그들은 여전히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게 낫겠다. 행복에 젖은 코르니게라 아카시 아가 그들의 잠을 지켜줄 것이다. 밖에선 밤 두꺼비가 울부짓고 있다. 섬유와 나뭇진으로 된 성이 곤충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먹이를 목전에 두고도 잡아먹을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원정군 병사들이 모두 잠들어 있다. 간디스토마에 감염된 개미들 만이 몽환 상태에서 줄지어 빠져나와 어떤 풀 꼭대기로 기어올라간 다. 양에게 잡아먹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섬엔 양이 없 다. 아침이 되면 그 개미들은 몰래 빠져나갔던 일을 까마득히 잊고 동료들 곁으로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