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개미의 날 세 번째 비밀 세계의 끝으로 76. 왜 마릴린 먼로는 메디치를 죽였는가? 그 이디오피아 과학자 두 사람은 똑같은 이상으로 하나가 된 아주 궁합이 잘 맞는 부부였다. 이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질 오데르진은 개미집을 관찰하느라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비어 있는 잼 단지에 개미를 담아 집에 들여놓기를 원했다. 단지를 빠져나와 집안을 돌아다니는 개미를 보 자마자, 그의 어머니는 역정을 내면서 개미들을 실내화로 밟아 죽여버렸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개미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는 개미 단지를 더 잘 숨겨놓고 꼭 막아놓았다. 그러나 개미들은 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어버렸다. 오랫동안 그는 그 작은 곤충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로테르담 대학의 곤충학자 에서 쉬잔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개미에 대해 아주 강한 매력을 느 끼고 있던 터라 금방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쉬잔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열성적이었다. 쉬잔은 개 미 사육통을 집에 들여놓고 많은 개미들을 기르고 있었는데, 개미들 은 구별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주었고, 사육통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사건이라도 기록해 두었다. 두 사람은 토요일이면 늘 개미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그들이 결혼을 해서 역시 유럽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어 느 날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쉬잔은 당시 자기의 개미집에 여섯 마리의 여왕개미를 키우고 있 었다. 쉬잔은 짧은 더듬이를 갖고 있던 여왕개미에게는 클레오파트 라라는 이름을, 위턱에 맞은 상처가 머리에 나 있는 것에는 마리 스 튜어트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에 곱슬곱슬한 털 이 난 것을 퐁파두르, 끊임없이 더듬이를 움직이는 가장 '수다스 러운'쪽은 에바 페론이라 불렀다. 또 가장 요염한 쪽은 마릴린 멀 로, 가장 공격적인 것은 카트린 드 메디치라고 명명하였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성격에 걸맞게 한 무리의 암살 개미들을 모아 모든 경쟁자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도록 지시했다. 오데르진 부 부는 그 내전에 개입하지 않고, 메디치의 자객들이 다른 여왕개미를 체포해서 물통으로 끌고가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쓰레기터에 내다 버리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런데 그 대학살에서도 마릴린 먼로는 살아남았다. 마릴린 먼로 는 쓰레기터에서 빠져나오자 서둘러 자기 편의 암살 개미들을 조직 한 다음 카드린 드 메디치를 죽이게 했다. 개미 문명에 매력을 느끼고 있던 두 사람은 그 끔찍한 학살 장면 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알고 보 니 개미 세계는 인간 세계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더 이상 참을 수 가 없었다. 그날 밤을 계기로 해서 그들은 개미 세계를 혐오하기 시 작했다. 열렬히 사랑했던 것만큼이나 증오도 격렬했다. 이디오피아로 돌아가자마자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곤충을 몰 아내자는 대대적인 운동에 참가했다. 그들은 그 운동을 계기로 해서 세계의 주요한 지도자들이나 그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다. 오데르진 교수가 시험관을 꺼내어 눈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성체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와도 같은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의 부인 이 역시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시험관에 분필 가루 같은 하얀 가루를 부었다. 그러고 나서 그 혼합물을 원심 분리기에 쏟아붓고 우유빛 액체를 몇 방울 첨가한 다음 뚜껑을 닫고 스위치를 눌렀다. 5분이 지나자 전체가 은회색의 아름다운 색조를 띠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달려들어와 위급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려주었다. 역시 과학자로서 키가 후리후리하고 훌쭉하게 마른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미귀엘 시녜리아즈. "빨리 해야 돼요. 그들이 우리를 추적하고 있어요. 막시밀리앙 매 커리어스도 죽었어요. '바벨' 실험은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습니까?" "다 됐어요." 질이 자신있게 말하면서 은빛 액체가 든 시험관을 보여주었다. "훌륭하군요. 이번에는 우리가 이긴 것 같군요.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일을 방해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들이 다시 공격해 오기 전에 떠나야지요." "우리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잘은 몰라도 과격한 사이비 환경 보호론자 집단일 겁니다. 그놈 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겁니다." 질 오데르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째서 무슨 일을 하려고만 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집단이 나타나 는지 모르겠어요." 미귀엘 시녜리아즈는 자긴들 알겠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늘 그 모양이죠. 그들이 방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일을 해치우 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적이 누구예요?" 그 질문에 미귀엘 시녜리아즈가 남들이 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은 밀한 태도로 말했다. "그걸 꼭 알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지옥의 군대와 싸우고 있 으며, 그 군대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바로 우리 정신의 내밀한 곳에도 숨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가장 사악한 적입니다." 미귀엘 시녜리아즈 교수가 은빛 물질을 가지고 나간 뒤 정확하게 30분 후, 오데르진 부부가 죽었다. 77. 곤충들의 우상 아직 더 많은 공물이 필요하다. 너희가 너희들 신들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를 흙과 불과 물로 벌할 것이다. 손가락들은 너희를 죽일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너희를 죽일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단호한 메세지를 막 두드리고 난 손가락들은 갑자기 두 개 의 긴 터널처럼 생긴 구멍 쪽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그 가운데 두 개가 그 구멍을 샅샅이 후벼댄다. 손가락들은 쇠똥구리를 뺨치는 능 숙한 솜씨로 작은 공을 굴리다가 그것을 멀리 던져버린다. 그런 다음 손가락들은 더욱 높이 올라가서 이마를 만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일을 멋지게 해치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치운 것이다. 78. 원정군 두 개미 주위로 원정군의 다른 개미들이 모여든다. 103683호는 더듬이 하나를 세워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느껴보라고 한다. 이제 햇살이 살갑게 그의 몸을 덥혀주고 있다. 두 개미 주위에는 많은 개미들이 모여 있다. 벨로캉 개미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러 나온 제디베이나캉 개미들도 있다. 제니베이나캉 개미들은 자기들의 두 포병 부대와 경기병대를 위한 힘찬 격려의 페 로몬을 내뿜고, 원정군 전체를 향해서도 힘찬 격려를 보내고 있다. 23호는 위턱을 날카롭게 갈고 있고 24는 나비 고치를 지키고 있 다. 103683호는 동작을 멈춘 채로 기온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 다. 이윽고 섭씨 20도가 되자 103683호는 몸을 움직여 출발을 알리 는 페로몬을 발한다. 끈기가 있으면서도 가벼운 카프리산 (C6-H12-O2)으로 구성된 동원 페로몬이다. 신호가 떨어지자 병정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첫번째 대열이 길게 앞으로 나아가자 더듬이와 겹눈과 개미산을 가득 채운 배와 뿔 풍뎅이의 뿔에 흥분이 일기 시작한다. 손가락들을 치러가는 최초의 원정군은 다시 그렇게 출발했다. 원 정군은 부스럭거리면서 갈라서는 풀잎 사이를 거침없이 헤쳐나가면 서 곧 순조로운 행군 리듬을 되찾는다. 원정군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곤충, 지렁이, 설치류, 파충류들은 맞서려 하기보다는 도망을 간다. 몸을 숨기고 원정군이 지나가는 것 을 구경하던 드물게 용감한 동물들은 불개미와 나란히 걸어가는 뿔 풍뎅이를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대열의 선두에서는 척후 개미들이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 다하면서, 주력 부대를 가장 덜 구불구불하고 안전한 길로 이끌고 있다. 그렇게 척후 부대를 선두에 배치라는 것이 대개는 아주 효율적이 고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대가 예기 치 않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척후 개미들이 지름이 백 걸음은 족히 되는 거대한 구덩이 가장자 리에 모여서 북적거리고 있다. 척후 개미들은 곧 그 구멍이 무슨 구 멍인지를 깨닫고 경악한다. 그 무시무시한 사건의 현장이다. 어떤 거대한 괴물이 도시 전체를 파내어 투명하고 거대한 껍질에 담아 갔 다더니 이것이 바로 지울리캉의 잔해인 것이다.... 이게 바로 손가 락들이 저지른 일이다! 그들이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다니. 건장하게 생긴 개미 하나가 더듬이를 곧두세우며 동료들 쪽으로 몸을 돌린다. 9호 개미다. 모두들 손가락들에 대한 9호의 증오심을 잘 안다. 9호가 위턱을 넓게 벌리면서 강력한 페로몬을 발한다. <우리는 지울리캉 개미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죽어간 우리 동 료 하나의 목숨 값으로 우리는 손가락 두 마리를 죽여야 마땅하다!> 모든 원정군들은 지상에 있는 손가락이 100마리도 안 된다는 이야 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그래도 그들은 9호의 독한 페로몬에 담긴 뜻을 헤아리며 결의를 다진다. 손가락들에 대한 분노와 사기가 하늘 을 찌를 듯한 원정군들이 구멍이를 빙 돌아서 다시 길을 떠난다. 그렇게 흥분해 있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뜨 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이나 넓은 평원을 가로지를 때면 개미들 은 포수 개미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조치를 취한다. 개미산이 너 무 뜨거워져서 폭발하면 자칫 운반하는 개미나 옆의 동료들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것이다. 60%의 고농축 산이 터졌을 때 군대의 대열에 미칠 피해를 상상해 보라! 원정군이 어떤 도랑 앞에 다다른다. 최근의 홍수에 의해 생겨난 것같다. 103683호는 그 도랑이 별로 길지 않으니 남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개미들은 그의 얘기를 듣지 않는 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척후 개미들이 물에 뛰어들어 다 리를 서로 잡고 다른 개미들이 건널 수 있도록 교량을 만든다. 군대 가 지나가고 나면 다리를 만들었던 그 개미들은 죽음을 맞게 될 것 이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두 번째 밤이 다가오고 있다. 원정군은 흰개미 도시나 적의 도시 라도 들어가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지평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단풍나무만 겨우 자라는 척박한 땅이다. 한 나이 많은 병정개미의 제안에 따라 개미들은 한데 모여 공처럼 둥근 덩어리를 이룬다. 그렇게 모여서 밤을 지새우는 방식은 거기에 서 아주 먼 곳에 사는 마냥 개미들이 하는 방식이다. 그 나이 많은 병정개미는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을 텐데도 그런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 임시 둥지의 둘레에는 적이 오면 언제라도 물어뜯을 태 세를 갖춘 위턱들이 깔축깔축한 레이스 모양을 이루고 있고, 그 안 쪽에는 추위에 더민감한 뿔풍뎅이들과 병자와 부상자들을 위해서 방 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임시 둥지 전체는 10층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 통로와 방들이 들어 있다. 어떤 동물이라도 그 적갈색 진지를 스치기만 하면 곧바로 개미들 의 밥이 되어버린다. 어린 피리새와 강하다고 자부하던 도마뱀이 그 들의 호기심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밖에 배치된 개미들이 경계를 하는 동안, 안에서는 개미들의 움직 임이 점차 느려지고 잠잠해진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통로나 방의 한부분에 틀어박혀 있다. 추위가 찾아오자 모두 잠이 든다. 79. 백과 사전 최소 공배수 동물에 대한 경험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개미와의 만남이다. 고양이나 개, 벌이나 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개미를 가지고 한두 번쯤 장난을 쳐보지 않은 사람들은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개 미와의 만남은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우리의 손 위에서 걸어가는 개미를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개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더듬이를 흔든다. 둘째, 개미는 자기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셋째, 개미가 가는 길을 손으로 막으면, 개미는 그 손으로 옮아간다. 넷째, 젖은 손으로 개미 앞에 선을 그으면 개미를 세울 수 있다. 개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뛰어넘을 수 있는 장벽이 있기라도 한듯 머뭇거리다가 결국 빙 돌아서 간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과 현대인 들이 공유하고 있는, 초보적이고 유치한 이 지식이 활용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작업을 선택하는 데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학교에서 우리가 개미를 공부하는 방식은 따 분하기 이를 데 없다. 개미의 신체 부위 이름 따위나 외우라는데 솔 직히 그런 것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80. 심야의 방문객들 그는 자기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부검의가 그에게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몸 안의 상처는 개미의 위턱 때문에 생긴 것이 확 실했다. 자크 멜리에스는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확실한 실마 리를 잡았다고 믿고 있었다. 너무 흥분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텔레비젼을 켰다. 마침 <알쏭달쏭 함정 퀴즈>의 심야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라미레 부인은 소심한 태도를 버리고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라미레 여사, 이번에는 답을 찾으셨나요? 라미레 부인은 자기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예, 그래요, 풀었습니다! 마침내 해결한 것 같아요. 우렁찬 박수 소리. -정말입니까? 사회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라미레 부인은 소녀처럼 손뼉을 치며 말했다. -예, 그렇고 말고요. -그럼, 우리에게 그걸 설명해 주시죠. -사회자께서 주신 힌트 덕분에 찾았어요. '영리한 사람일수록 답 을 찾기가 더 어렵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 다.', '우주가 그렇듯이 이 수수께끼는 절대적인 단순성 속에 기원 을 두고 있다.'.... 저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시 어린애가 되어 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본원으로 되 돌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팽창하는 우주가 원래의 빅뱅으로 되돌 아가듯이 단순한 정신으로 돌아가야 했고 어린아이 적의 내 영혼을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그건 너무 생각이 지나친데요. 라미레 여사. 몹시 들떠 있었기 때문에 라미레 부인은 사회자가 끼여들 틈을 주 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어른들은 항상 더 영리해 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요. 틀에 박힌 것을 깨뜨리고, 우리 습관과 정반대가 되는 것을 취해 본다는 것이지요. -대단합니다. 라미레 부인. 박수 갈채가 터져나온다. 멜리에스와 마찬가지로 방청객들도 다음 말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앞에 두고 영리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요? 수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수학 문제로 생각할 것입 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들의 줄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찾으 려할 것입니다. 그는 더하고 빼고 곱해서 모든 숫자를 뒤섞어버립니 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답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결국 아 무것도 얻지 못하고 이 문제는 수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이 수수께끼가 수학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문학 적인 수수께끼가 될 겁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라미레 부인. 방청객들이 박수를 친다. 도전자는 그 틈을 이용해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련의 숫자 묶음에 문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단 말이지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어린애들처럼 하면 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은 하나의 숫자를 보면 그 숫자의 이름을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6'은 육이라는 소리에 대응합니다. '젖소'가 젖퉁이가 달린 네 발 동물에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 서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임의적인 소리로 사물을 지칭합니다. -라미레 여사, 오늘은 철학자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러나 우 리 시청자들은 구체적인 해답을 요구합니다. 자, 그럼 답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1'이라는 숫자를 쓰면 읽을 줄 아는 아이는 나에게 '일이 하나예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11'이라고 씁니다. 그런 다 음 방금 쓴 것을 아이에게 다시 보여주면, 아이는 '일이 두 개예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즉 '12'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나 가면 답이 나옵니다. 다음 줄에 들어갈 수를 알아내려면 윗줄에 있 는 숫자들의 이름을 불러보면 됩니다. '12'를 아이는 '일 하나, 이 하나'라고 읽습니다. 즉, '1211'가 됩니다. 다시 '1121'을 이루는 숫자를 열거하면 '일 둘, 이 하나, 일 하나'가 되어 '122111'로 나 타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112213이 되고, 다음에 '12221131, 다음에 '1123123111'이 됩니다. 따라서 정답은.... 굳이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마 '4'라는 숫자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훌륭합니다. 라미레 여사! 맞추셨습니다. 방청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낸다. 약간 멍해 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멜리에스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사회자는 방청객들에 조용히 할 것을 요청하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라미레 여사, 이번에 맞추셨다고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잇다는 사실을 잊고 계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부인은 상기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두 손을 발그레해진 뺨에 갖 다 댄다. 두 손에는 아마 땀이 흠뻑 배어 있으리라. -그래도 숨돌릴 시간은 주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그런가요? 라미레 여사. 방금 그 수수께끼는 정말 훌륭하게 해결 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벌써 우리 <알쏭달쏭.... -....함정퀴즈!> -....에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 역시 익명의 어느 시청자께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문제를 말씀드 리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분명히 여섯 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러뜨리지 않고, 풀을 사용하지 도 말고, 똑같은 크기의 정삼각형 여섯 개를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정삼각형 여섯 개라고 그러셨어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네 개의 정삼각형을 만드는 게 아니고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여섯 개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자가 단호한 어조로 반복한다. -그럼 성냥개비 하나로 삼각형 하나를 만든단 말이에요? 라미레 부인이 놀란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라미레 부인. 이번에 드리는 첫번째 힌트 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청자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도 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저의 프 로그램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크 멜리에스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마침내 어렴풋이 잠이 들었으나, 사건의 실마리를 푼 흥분이 꿈 속까지 따라왔다. 레티샤 웰즈, 연보라빛 눈과 개미 도판, 세바스티앵 살타와 공포 영화에서 나올 법한 그 끔찍한 얼굴, 정치가의 길을 포기하고 경찰 에 투신한 뒤페롱 경찰국장, 결코 함정에 걸려들지 않는 라미레 부 인 등등이 어수선한 꿈 속에서 뒤섞였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잠이 옅어지더니 마침내 잠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침대 발치에서 메트리스 위를 두드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괴물이다. 증오에 찬 눈빛을 번득이는 성난 늑대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잠결에 서 완전히 벗어나 불을 켜고 침대 발치에서 작은 혹처럼 생긴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침대 밖으로 튀어나갔다. 실제로 무언가가 혹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주먹으로 그것을 내리치자 어떤 외마디 비명이 들렸 다. 그런 뒤에 마리 샤를로트가 시트 아래에서 다리를 절며 빠져나 오는 것을 보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불쌍한 것이 울음소리 를 내면서 그의 팔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고양이를 위로하기 위해 쓰다듬어주고 자기가 아프게 했던 발을 만져주었다. 그런 다음 고양이에게 포식을 시켜주기로 마음먹 고 마리 샤를로트를 부엌으로 데려가 타라곤을 넣은 참치 파이 곁에 둔 다음 부엌문을 꼭 닫았다. 그는 냉장고에서 물 한 잔을 꺼내 마시고 화면에 질리도록 텔레비 젼을 보았다. 텔레비젼을 오래 보다보면 진정제를 먹은 것처럼 마음 이 가라앉곤 했다. 몸이 나른해 지면서 머리가 텅 비워지고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들에 눈길이 푹 빠져들어가곤 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는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번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방금 텔레비젼에서 본 것들을 꿈에서 보기 시작했다. 즉, 미국 영화, 광 고, 일본 만화, 테니스 경기, 뉴스에서 본 몇몇 학살 장면 등등. 그는 계속 잤다. 아주 깊이 잤다. 그러다가 잠이 점점 옅어지면서 다시 잠에서 빠져나왔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그를 악착같이 따라다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또다시 그는 그의 침대 발치에서 봉긋 솟아오른 뭔가가 움직이는 것 을 느꼈다. 그는 다시 불을 켰다. 마리 샤를로트가 또 장난을 하고 있나? 그럴 리는 없다. 고양이를 부엌에 가두고 문고리를 단단히 걸었던 것이다. 그는 얼른 일어섰다. 봉긋 솟아 있던 것이 둘, 넷, 여덟, 열여섯, 서른 둘로 갈라지더니 시트에 겨우 보일까 말까 한 백여 개의 작은 물집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작은 물질이 시트의 앞자락으로 이동하 고 있었다. 그는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개미들이 그의 배개 속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첫번째 반응은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쓸어내고자 하는 것이었 다. 그러다가 그는 불현듯 어떤 사실을 떠올리고 곧 생각을 바꾸었 다. 세바스티앵과 다른 모든 사람들도 틀림없이 손으로 개미를 쓸어 버리려 했을 것이다. 적을 얕잡아보는 것처럼 더 큰 실수는 없다. 멜리에스는 그 작은 곤충들과 마주치자 단 한 순간도 그것들이 어 떤 종의 곤충인지를 알아볼 생각을 못하고 도망을 쳤다. 그는 개미 들이 자기를 뒤쫓아온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행히도 출입문은 빗장 이 하나만 채워져 있었고 개미들이 그를 따라잡기 전에 집에서 빠 져나올 수 있었다. 계단에서 그는 그 사악한 곤충에 죽어가고 있는 마리 샤를로트의 끔찍한 비명을 들었다. 모든 일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빠른 동작의 화면 을 보고 난 느낌이었다. 그는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거리에 나온 다 음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 기사에게 시경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틀림없었다 범인은 이제 살해된 화학자들의 수수께끼를 그가 해결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범인은 서둘러 자기의 작은 암살자 들을 그에게 보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수수께끼를 해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 로지 한 사람뿐이었다. 오직 한 사람만이! 81. 백과 사전 이원성 성서 전체는 제1권, 즉 창세기로 요약할 수 있다. 창세기의 모든 내용은 제1장인 천지 창조를 이야기하는 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장의 모든 내용은 다시 그 장의 첫번째 단어인 베레시트로 요약할 수 있다. 베레시트는 '태초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낱말의 모 든 의미는 첫 음절인 베르로 요약할 수 있는데, 베르는 '탄생된 것' 을 의미한다. 이 음절의 모든 글자들은 첫번째 글자로 B로 요약할 수 있다. B는 '베트'로 발음되고 가운데에 점이 있는 열린 사각형으 로 나타낸다. 이 사각형은 집을 상징하기도 하고, 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알이나 태아를 담고 있는 모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 우 작은 점은 바로 알이나 모태를 상징한다. 왜 성서는 알파벳의 첫번째 철자가 아니라 두번째 철자로 시작되 는 것일까? 그것은 A가 근원적인 통일성을 나타내는 반면, B는 세계 의 이원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B는 그 통일성의 발산이며 투영이 다. B는 제2의 것이다. '하나'에서 나온 우리는 '둘'이다. A에서 나 온 우리는 B안에 있다. 우리는 이원성의 세계에 살면서 통일성, 즉 모든 것의 출발점인 알레프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그것을 추구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82. 앞으로 앞으로 야영지에 단풍나무의 날개 열매 하나가 떨어져 동요가 일어난다. 그 날개 열매는 자기들의 종자를 널리 퍼뜨리려고 식물인 제 씨앗에 프로펠러를 달아놓은 것과 같다. 막으로 된 두 날개가 빙글빙글 돌 면 그 씨앗들은 개미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 밤을 보내느라고 공 처럼 뭉쳐 있던 원정군들은 임시 둥지를 풀고 각자 땅바닥으로 흩어 진 다음 행군을 계속한다. 행군중에 그 날개 열매가 대화의 소재가 된다. 개미들은 식물들이 뿜어내는 여러 가지 물질들이 빚어내는 위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개미들은 민들레의 갓털이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그것이 더듬 이에 붙으면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3683호는 그런 식물로는 봉숭아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봉 숭아 열매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가는 실 같은 씨앗을 휘감아 100 걸움이 넘는 거리까지 날려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더라도 행군이 지체되거나 하지는 않는 다. 개미들은 뒤에 오는 동료들이 길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자취 페로몬을 남기기 위해 이따금 배를 땅바닥에 문지른다. 공중에는 많은 새들이 날고 있다. 그들은 날개 열매와는 다른 위 험을 지니고 있다. 남쪽 지방에서 올라온 푸르스름한 깃털의 꾀꼬리 도 있고, 륄뤼라는 작은 종달새도 있지만, 특히 많은 것은 오색딱따 구리, 검정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등 딱따구리 종류가 많다. 그것이 퐁텐블로 숲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날짐승들이다. 그들 가운데 검정 딱따구리가 가까이 오면서 겁을 주더니, 개미의 대열 앞을 비행하면서 부리로 개미들을 노린다. 갑자기 급강하로 달 려들었다가 다시 솟구치고 다시 초저공 비행으로 달려든다. 질겁한 개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 딱따구리의 목적은 낙오된 몇 마리 개미를 잡자는 게 아니다. 딱따구리는 어떤 부대의 위를 날다가 느닷없이 하얀 똥을 싸서 개미들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운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하고 나 자 30여 마리의 개미가 똥칠갑을 당한다. 그 똥의 위험성을 알리는 페로몬이 전 군대에 퍼져나간다. <그걸 먹지 마라! 그걸 먹지 마라!> 사실, 딱따구리 똥은 곤충에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먹는 개미들은.... 83. 백과 사전 촌충 촌충은 딱따구리의 내장에 성충 상태로 살고 있는 단세포인 기생충이다. 이 촌충은 딱따구리의 똥과 함께 배설된다. 딱따구리는 그런 기생 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개미들의 도시 위로 똥을 뿌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개미들은 이 흰 배설물을 치워내려고 하다가 그것을 먹고 는 촌충에 감염된다. 이 기생충은 개미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ㄸ가지 색깔을 하얗게 변화시킨다. 감염된 개미는 무기력해지고 자극에 대 한 반응이 느려지게 된다. 그래서 청딱따구리가 똥으로 개미 도시를 공격할 때 그의 똥에 감염된 개미들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색소 결핍증에 걸린 그 흰 딱지의 개미는 행동이 느려질 뿐만 아 니라 개미 도시의 어두운 통로 안에서도 그들의 몸 색깔 때문에 훨 씬 눈에 잘 띄게 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84. 첫 희생자들 딱따구리가 다시 오물 폭격을 하러 온다. 딱따구리는 온건한 전술 을 펼치고 있다. 즉, 우선 악취를 뿌리고 그것에 중독되어 힘없이 비틀거리는 개미들은 다음 공습 때 잡아먹는다. 그 공습 앞에서 병정개미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9호는 하늘에다 대고 자기들이 지금 손가락들을 죽이러 가는 길이며, 자기들을 공격 하는 것은 어리석게도 손가락들 편을 들게 되는 것이라고 울부짖듯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러나 딱따구리는 개미의 냄새 언어를 이해하 지 못한다. 오히려 딱따구리는 거꾸로 공중 회전을 한 번 하고는 원 정군의 행렬 위로 더 빠르게 덤벼든다. <모두 공습에 대비하라!> 어떤 늙은 병정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중무장한 포수 개미들이 재빨리 높다란 풀 줄기로 위로 기어올라 간다. 새가 날아가는 자리에 개미산을 쏘아보지만 새가 너무 빨라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실패다! 더욱 사나운 일은, 포수 개미 두 마리가 쏘아올린 개미산 이 서로 상대방을 거꾸러뜨린 것이다. 그러나 검정딱따구리가 다시 똥을 퍼부을 채비를 할 때 그의 눈 앞에 이상한 광경이 나타난다. 뿔풍뎅이 한 마리가 양 날개를 번갈 아 퍼덕이면서 공중에 머물러 있는데, 그의 머리에 난 뿔 위에서 개 미 한 마리가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 개미는 103683호이다. 그의 항문에서 연기가 나온다. 60%의 고농축 개미산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개미가 전전 긍긍하고 있다. 딱따구 리는 곧 그 개미를 죽일 것 같다. 딱따구리는 그보다 엄청나게 더 크고 강하고 날쌔다. 개미의 배가 걷잡을 수 없이 떨린다. 더 이상 조준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개미는 손가락들을 생각한다. 손가락들에 대한 공포는 모 든 다른 공포를 압도한다. 약해져서는 안 된다. 손가락들에게 다가 갔던 때를 생각하면 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개미는 다시 배를 세우고 독 주머니의 내용물을 일거에 발사한다. 발사! 딱따구리는 미처 다시 올라갈 겨를이 없었다. 딱따구리는 앞이 보 이지 않자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가 나무 줄 기를 들이받고 다시 튀어나와 땅바닥에 곤두박질친다. 그러나 그의 살을 뜯어먹으려는 개미들이 오기 전에 딱따구리는 다시 날아오른다. 그 사건으로 인해 103683호는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렇지 만 103683호가 훨씬 더 큰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개미는 하나도 없다. 이제 원정군 개미들은 103683호의 용기와 경험과 노련한 사격 솜 씨를 본받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공중의 커다란 포식자를 완전히 제 압할 수 있는 개미가 103683호 말고 누가 있겠는가? 그의 인기가 그렇게 높아가면서 한 가지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 다. 개미들은 이제 103683호를 부를 때 애정이 담긴 친숙함의 표시 로 103호로 줄여서 부르게 된 것이다. 다시 출발하기에 앞서서 딱따구리의 똥이 묻은 개미들에게 영양 교환을 삼가하라고 충고한다. 다른 병정개미들이 촌충에 감염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행군 대열이 다시 갖추어졌을 때 23호가 103호에게 다가온다. <무슨 일인가?> <24호가 사라졌어요. 한참 찾아보았지만 보이질 않아요. 검정딱따 구리한테 죽음을 당한 개미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 24호가 사라진 것은 매우 낭패스러운 일이다. 그가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나비 고치를 가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개미들에게 알릴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24호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개체보다는 전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85. 수사 멜리에스는 혼자서 오데르진 부부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디오피아의 그 여자 과학자는 물이 없는 욕조 안에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다. 머리에 초록색 샴푸가 흥건하게 발라져 있었고 이미 앞선 사건들에서 익히 보았던 흔적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살갗 에 돋은 닭살이며, 공포에 짓눌린 얼굴, 귓가에 엉긴 피가 그러했다. 욕실 옆 화장실에 있는 남편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가 변기에 앉은 채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져 있고 바지가 구두 위에 걸 려 있다는 점이 달랐다. 사실 리크 멜리에스는 한 번 흘낏 보았을 뿐 두 시체를 그다지 찬 찬하게 살피지 않았다. 그는 문득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깨 닫고 곧바로 에밀 카위자크의 집에 전화를 건 다음 그곳으로 향했다. 카위자크 형사는 자기 상관이 그렇게 이른 시간에 잠옷 위에 트렌 치 코트를 걸친 채 나타난 걸 보고 매우 놀랐다. 멜리에스는 좋지 않은 때에 찾아온 것이었다. 카위자크는 자기의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즉 그는 채집한 나비를 박제로 만들고 있었다. 그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경정은 대뜸 말했다. "에밀 형사, 됐어요! 이번엔 범인을 꼭 잡을 거예요." 에밀 형사는 의아해 한다. 멜리에스는 자기보다 함참 연상인 부하 직원의 책상 위에 뭔가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에밀 형사, 뭐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나비 수집하는 거 모르셨던가요? 제가 말씀을 안 드렸던가요?" 카위자크는 개미산이 담긴 병을 닫고 붓으로 <누에나방>의 날개에 색칠을 한 다음 끝이 평평한 핀셋으로 나비를 다듬었다. "예쁘지 않습니까? 자 보세요. 이것은 솔잎나방입니다. 며칠 전에 퐁텐블로 숲에서 발견했죠. 신기하게도 한 쪽 날개엔 아주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고 다른 쪽 날개에는 주름이 잡혀 있지요, 제가 아마 새로운 종을 발견했나 봅니다." 멜리에스는 몸을 기울여 들여다보다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나비들은 다 죽은 거 아닙니까? 에밀 형사는 시체들을 나란히 걸어놓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누가 에밀 형사를 유리 안 에 넣어놓고 '호모 사피엔스'라는 꼬리표를 붙여두면 좋겠어요?" 그 말에 늙은 형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경정님은 파리에 관심이 많지만, 저는 나비에 관심이 많지요. 각 자 저마다 취향이 따로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멜리에스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 화내지 마시고....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살인범을 찾았으 니, 같이 갑시다. 종류는 다르지만 예쁜 나비 한 마리를 채집하러 가는 거예요." 86. 길 잃은 24호 하는 수 없다. 단념해야 한다. 원정군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저쪽은 아니다. 아쪽도 역시 아니다. 저기도 조기도 요기도 아니다. 어느 구석에도 개미 냄새라고는 없다. 어떻게 이처럼 빨리 사라졌 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딱따구리가 개미들에게 달려들 때 어떤 병정개미가 도망가서 숨으 라고 일러주었다. 그의 말을 너무 고지식하게 들었던 탓에 24호는 이바깥 세계에서 홀로 길을 잃은 것이다.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는 그가 동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신들에게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길을 잃어버렸을까? 방향 감 각이 부족하다는 것이 24호의 커다란 결점이다. 24호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른 개미들도 설마 24호가 원정군과 함께 떠날 욕 기를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개미들이 모두 24호를 덜 떨 어진 개미라고 놀리곤 했다. 24호는 귀중한 짐을 운반하고 있다. 바로 나비 고치이다. 24호가 사라짐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4호 자신 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원정군 동료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나 아가 모든 개미 종족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정군의 자취 페로몬을 다시 찾아야 한다. 24호는 초당 진동수 2만 5천 회로 더듬이를 진동시키기 시작한다. 별다른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 역시 24호는 길을 잃었음에 틀림없다. 24호의 짐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더욱 무겁고 성가시게 느껴진다. 24호는 짐을 놓고 열심히 더듬이를 닦은 다음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는다. 씁쓸한 냄새가 느껴진다. 말벌의 둥지가 가까이에 있다. 말 벌둥지, 말벌 둥지.... 냄새를 맡아볼수록 붉은 말벌의 둥지가 가까 이 있다는 확신이 굳어진다. 아주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구 자기장에 민감한 존스톤 씨 기관이 자기를 잘못 이끌고 왔음에 틀림없다. 문득, 날파리 한 마리가 자기를 정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러나 그것은 환각일 것이다. 24호는 고치를 다시 들고 곧장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길을 잃은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낭패스럽기는 처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24호는 줄곧 길을 잃곤 했다. 태어난 지 며칠 밖에 안 되었을 때 비생식 개미들의 통로에서 길을 잃었던 것을 시 작으로 그 후에도 개미 도시 안에서나 바깥 세계에서 숱하게 길을 잃고 헤맸다. 원정을 나갈 때마다 24호는 대열에서 떨어져 혼자 헤매는 일을 겪 었고, 그때마다 어떤 개미가 이런 페로몬을 발하곤 했다. <아니 24호 어디 갔지?> 그 순간에 가련한 병정개미 24호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전에도 24호는 어디를 가나 주변에 있는 바위, 나무, 꽃, 덤불 숲 등 모든 것을 이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러다가 한참만에댜 저 꽃은 전에는 다른 색깔이었는데 하면서 길을 잃었다 는 것을 깨닫고 자기 원정대의 페로몬 자취를 찾아 빙빙 돌곤 했다. 그래도 벨로캉에서는 바깥 세계의 원정길에 24호를 계속 내보냈 다. 그 이유는 이상한 유전적 사고로 인해 24호가 비생식 개미로서 는 드물게 우수한 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24호의 겹눈은 거의 생식 개미의 눈만큼 발달되어 있었다. 24호는 자기가 좋은 시 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더듬이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되 풀이해서 주장했지만 파견을 나가는 개미들마다 24호를 데려가려고 했다. 24호로 하여금 그들의 행렬을 시각적으로 통제하게 하려는 목 적에서였다. 그래서 24호는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그의 도시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 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지금 그의 목표는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너는 다른 개미들과 더불어 겨레 전체를 이루는거야. 너 혼자만 으로는 아무것의 일부도 될 수 없어.>> 24호가 스스로에게 되뇐다. 24호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쪽으로 가다가 처음 만나는 포 식자에게 잡아먹혀도 좋다는 심정으로 나아간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그는 갑자기 깊이가 한걸음은 좋히 되는 움푹 패인 땅 앞에서 걸음 을 멈춘다. 그 우묵한 땅의 가장자리를 둘러보고 그는 커다란 구덩 이가 두개 있음을 확인했다. 두 웅덩이는 밑이 평평한 그릇처럼 생 긴 것으로서 서로 가까이 있었는데, 하나는 알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모양이었고 속이 더 깊은 다른 쪽은 반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두 웅덩이의 직경은 거의 비슷하고 거의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있다. 24호는 냄새도 맡아보고 만져보고 맛도 본 다음, 다시 냄새를 맡 는다. 냄새가 예사롭지가 않다. 전혀 맡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냄새 다.... 처음엔 그저 어리둥절해 있던 24호가 강렬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거대한 모양의 자 취들이 60걸음 간격으로 계속 이어진다. 24호는 그것이 손가락들의 자취일 것으로 확신한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손가락들이 그를 이끌고 있다!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24호는 신들의 자취 위로 달린다. 그는 마침내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87. 신들이 분노한다. 너희들의 신을 두려워하라. 너희의 공물이 너무 드물게 오고 있음을 알지어다. 우리의 위대함에 비해 너희는 너무나 미약하다. 너희는 비가 곡물 창고를 파괴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만, 그건 너희에게 주는 우리의 벌이었다. 너희가 충분한 공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비가 반체제 운동을 약화시켰다고 말한다만, 그 운동을 훨씬 더 강력하게 전개하라. 모든 백성들에게 손가락들의 힘을 가르쳐라. 유사시엔 자살까지도 할 수 있는 특공대원들을 파견하라. 금단 구역의 식량 창고를 비우라. 너희들의 신을 두려워하라.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손가락드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이니라. 손가락들은 기계를 끄고 자기가 신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니콜라는 조심스럽게 다시 잠자리로 들어간다. 눈을 뜬 채 공상에 잠겨 니콜라는 빙그레 웃는다. 언젠가 이 동굴에서 살아서 나간다면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학교 친구들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종교의 필요성을 설명할 것이다. 곤충들의 세계에 종교적인 신앙을 심어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단히 유명해질 자신을 생각하 니 마음이 여간 설레는 게 아니다. 88. 첫번째 전초전 원정군은 벨로캉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을 지나가면서 많은 동물 을 희생시켰고, 그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그것은 불개미 병 정개미들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더지 한 마리가 개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땅을 파고 들어왔었 는데, 그 두더지는 겨우 개미 열네 마리를 집어삼키고 죽었다. 두더 지가 공격해 오기가 무섭게 개미들이 그를 공격하여 갈기갈기 찢어 버렸기 때문이다. 개미들의 긴 행렬 위로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행렬 앞에 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다 보니 사냥을 하면서 느꼈던 초 기의 도취감 대신에 이제 공복감이 오고 이어 격심한 굶주림이 찾아온다. 원정군이 힘겹게 나아가고 난 자취 위에 이제 굶주림 때문에 죽어 가는 개미들이 남겨지기 시작한다. 이런 재난의 상황을 타개하려고 9호와 103호가 서로 숙의 한 끝에 척후 개미들에게 25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전개하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부채살 모양으로 나아가는 것 이 더 신중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숲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게 겁 을 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개미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후퇴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페로몬이 오고간다. 그러자 굶주림이 오히려 걸음을 더욱 서두르게 하는 것이라는 단호한 대답이 날아온다. 원정군은 동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들의 다음 사냥 목표는 손가 락들이 될 것이다. 89. 마침내 용의자는 체포되다. 레티샤는 욕조 안에서 몸을 쭉 뻗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 인, 숨 쉬지 않고 물 속에 있기를 즐기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레 티샤는 얼마 전부터 자기에게 연인이 없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 다. 많은 남자를 겪어보고 그 사람들에게 금방 싫증을 내곤 했던 그 녀였다. 레티샤는 한 순간 자크 멜리에스를 자기 침대로 끌어들일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멜리에스는 그녀에게 가씀 성가시게 구 는 남자이긴 했지만, 그녀가 남자를 갈급하게 원할 때 그녀의 손길 이 미치는 가까운 곳에 금방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세상에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같은 남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링미는 그 분과 삶을 함 께 나누는 행운을 누렸다. 모든 것을 열림 마음으로 대했던 분, 돌개 바람이면서 산들바람이었던 분, 농담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분, 다정 다감했던 분, 에드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지 력은 끝이 없는 공간이었다. 에드몽은 지진계처럼 작동하면서 동시 대의 모든 지적인 진동과 모든 중심 개념을 기록했으며, 그것들을 소화하고 종합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상에 다시 내놓았다. 개미는 단지 하나의 소재일 뿐이었다. 그는 별이나 의학이나 금속을 연구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했더라도 역시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우 주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었고, 천재적이면서도 겸허했으며, 특이한 모험가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그녀를 놀래키면서 결코 지치지 않게 할 만큼 활발한 정 신을 가진 다른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레 티샤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레티샤는 '모험가를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내볼까 하는 생각을 했 다. 그러나 그 광고를 냈을 때의 반응을 생각하니 지레 역겨운 생각이 들었다. 레티샤는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한껏 숨을 들이마신 다음 다시 머리를 물 속에 담갔다. 생각의 흐름이 바뀌었다. 어머니, 암.... 갑자기 숨이 막혀서 레티샤는 다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레티샤는 욕조에서 나와 가운을 걸쳤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레티샤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진 다음에 심호흡을 세 번하고 문을 열었다. 멜리에스가 또 찾아왔다. 그의 갑작스런 방문 에 익숙해져 있기는 했지만 레티샤는 그가 멜리에스라는 것을 알아 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는 벌 치는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 고 있었고, 모슬린 천 너울이 달린 밀짚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 으며, 고무 장갑을 끼고 있었다. 레티샤는 멜리에스 뒤에 같은 복장 을 한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가 그 가운데 카위자크 형사가 있음을 알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멜리에스 씨, 이런 복장으로 찾아오신 건 무슨 뜻이죠?" 대답이 없다. 멜리에스가 옆으로 비켜섰다. 형사임에 틀림없을 낯 선 두 사람이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중에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그 녀의 오른쪽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레티샤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 다고 생각했다. 모슬린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탓에 둔탁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카위자크가 말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당신을 살인과 살인 미수죄로 체포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말하 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신 은 당신의 변호사가 없는 곳에서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레티샤를 검은 래커를 칠한 방문 앞으로 데리 고 갔다. 멜리에스는 날랜 솜씨로 불법 침입 강도들이 하는 짓을 능 숙하게 해냈다. 문은 쉽게 열렸다. "열쇠를 달라고 할 것이지 자물쇠는 왜 망가뜨리고 그러세요?" 용의자가 된 그녀가 항의했다. 네 형사는 개미 사육통과 컴퓨터 앞에 우뚝 멈춰서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아마도 살타 형제와 카롤린 노가르, 메커리어스, 오데르진 부부 를 살해한 놈들일거야." 멜리에스가 어두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가 외쳤다. "당신들은 오해하고 있어요. 저는 아믈랭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보면 몰라요? 이건 제가 지난 주 퐁텐블로 숲에서 가져온 단순한 개미집에 불과해요. 이 개미들은 살인범이 아니예요. 이 개미들은 내가 여기에 갖다 놓은 이후로 한 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어요.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개미는 없어요. 사람들은 개미를 길 들일 수 없어요. 개나 고양이하고는 다르단 말이에요! 개미들은 자 유롭게 행동해요. 멜리에스 씨. 제 말 듣고 있어요? 개미들은 자유 롭다고요. 개미들은 자기들 마음내키는 대로 해요. 아무도 개미를 조종할 수 없고, 영향을 미칠 수도 없어요. 제 아버님께서는 진작에 그걸 아셨어요. 개미들은 자유로워요.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 이 늘 개미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요? 길들일 수 없는 자유 로운 개미만 있을 뿐, 이 세상에 다른 개미는 없어요. 저는 당신들 이 찾는 살인자가 아니라고요?" 경정은 그 항의를 건성으로 듣고 에밀 카위자크를 돌아보며 지시했다. "에밀 형사, 컴퓨터하고 개미들을 모두 실어요. 이제 곧 개미들의 위턱의 크기가 피해자들의 몸 안에 있던 상처와 일치하는지 알게 될 겁니다. 개미 사육통을 잘 밀봉하고 이 아가씨를 곧장 예심 판사에 게 데려가세요." 레티샤는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당신이 찾는 범인이 아니예요. 멜리에스 씨! 당신 또 실수 하고 있어요. 이렇게 엉터리로 일하는 게 완전히 당신 특기군요?" 멜리에스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다. 그가 다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어이, 이 개미들 중에 단 한 마리도 도망가지 않도록 조심하게. 개미들 하나하나가 다 증거물이니까." 자크 멜리에스는 더할 나위 없는 성취감에 젖어 있었다. 그는 자 기 세대에서 가장 복잡한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 범죄가 될 뻔한 것을 해결했다. 그는 아무도 성공할 수 없었던 일에 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범인의 살인 동기도 파악하고 있었다. 즉 레티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미 애호가이자 개미광인 에드몽 웰즈의 딸이었다. 그는 레티샤의 연보라빛 시선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나는 죄가 없어요. 당신은 경찰 생활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 고 있어요. 나는 죄가 없단 말이에요!" 90. 백과사전 문명의 충돌 기원전 53년, 시리아 주재 로마 총독이었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랏수스 장군은 갈리아 지방에 있던 율리우스 케사르의 성공에 질 투를 느낀 나머지 자기도 대정복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케사르가 서양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브리타니아 지방까지 떨치고 있었으므 로, 크랏수스는 동방을 침략해서 바다에까지 닿으려고 했다. 그리하 여 그는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파르티 제국이 그의 앞길을 가 로막았다. 대군의 선두에서 그는 그 장애물에 맞서 싸웠다. 그것이 바로 카레스 전투인데, 승리한 쪽은 파르티 제국의 수레나 왕이었 다. 그 때문에 크랏수스의 동방 정벌은 끝이 났다. 그런데 크랏수스의 그 시도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파르티 제국은 수많은 로마 인들을 사로잡아 쿠산 왕국과 교전중이던 그들 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이번에는 파르티 제국이 패배했고, 로마병사 들은 쿠산의 군대에 통합되어 중국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 그 전쟁 에서 중국이 승리하게 되자 그 포로들은 마침내 중국 황제의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백인들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특히 대포나 다른 무기 를 만들어내는 백인들의 과학에 대해서 감탄했다. 중국인들은 로마 병사들을 받아들이고 토지와 함께 그들에게 도읍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로마 병사들은 중국 연인들과 결혼을 해서 자식까지 두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로마의 상인들이 그들에게 자기 나라로 데려다주겠 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그 제의를 거절하고 중국에서 사는 게 행 복하다고 말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91. 소풍 샤를 뒤페롱 경찰국장은 8월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퐁텐블로 숲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다. 그의 아들과 딸인 조르쥬와 비르지니는 숲속에서 돌아다니기에 편한 신발을 준비했고, 그의 아 내 세실은 냉요리 준비하는 일을 맡았다. 뒤페롱 국장은 아내가 만 든 요리를 커다란 얼음 상자에 담아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아가 면서 숲으로 운반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벌써 더위가 기승을 부렸 다. 그들은 급히 서쪽에 있는 나무들 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유 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삐빠빠롤라 쉬스 마이 베이비'. 세실은 자동차 바퀴 자국에 빠져서 발목을 삐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뒤페롱 국장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면서도, 경호원이나 비서도 대동하지 않고 언론이나 온갖 아첨꾼들의 등쌀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온 것에 만족해 하였다. 자연으로 돌아오는 일은 역시 매력적이었다. 반이나 말라버린 개울에 다다르자 그는 즐거운 기분으로 꽃 향기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근처에 있는 풀밭에 자리를 잡자고 제안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실이 반대하고 나섰다. "당신 왜 그래요? 여기는 모기 득실거리는 곳임에 틀립없어요. 여 기 모기가 있는데. 이거 안 보여요? 나는 모기한테 잘 물린단 말이에요!" "모기들이 엄마 피를 좋아해요. 엄마 피가 달아서 그런가봐요." 비르지니가 나비채를 휘두르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그 애는 제 교 실에 나비를 더 갖다놓고 싶어서 나비채를 가져온 것이었다. 작년에 아이들은 나비 8백 마리의 날개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 그 림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오스트렐리츠 전투를 그림으로 나타낼 생각이었다. 뒤페롱은 아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이토록 좋은 날을 모기 얘 기로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 좀더 멀리 가지 뭐, 저 아래에 빈터가 있는 것 같은데." 그 빈터는 부엌만큼 넓은 네모진 땅이었는데 토끼풀이 가득 덮여 있었다. 게다가 그늘도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뒤페롱은 얼음 상자 를 내려놓고 뚜껑을 연 다음 아름다운 하얀 식탁보를 꺼냈다. "여기가 안성맞춤인데. 얘들아, 엄마가 자리 까는 것 좀 도와드려라." 그는 맛좋은 보르도 산 포도주 한 병을 따려고 했다. 그러자 곧 아내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그게 그렇게 급해요? 애들은 벌써 장난을 치고 있고 당신은 그저 술 마실 생각만 하시는 거에요.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좀 해봐요." 조르쥬와 비르지니는 흙덩어리를 던지며 싸우고 있었다. 그는 한 숨을 내쉬면서 애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타일렀다. "얘들아, 그만 해라! 조르쥬, 너는 사내 녀석이 왜 그 모양이냐? 모범을 보여야지." 국장은 아들의 바지를 낚아채고 쥐어박을 듯한 시늉을 했다. "너 자꾸 네 동생 놀리면 한대 맞을 줄 알아, 알았지?" "하지만 아빠, 내가 먼저 그런 게 아니예요. 비르지니가 먼저 그랬어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동생이 어떻게 하든 네가 참아야지." 소규모 부대를 이룬 척후 개미 80마리가 주력 부대 앞에서 모든 방향을 샅샅이 수색하면서 멀리 나아간다. 원정군의 정찰 부대로서 척후 개미들은 원정군이 가장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자취 페로몬 을 뿌려 놓는다. 가장 빨리 나아간 부대는 103호가 지휘하고 있다. 뒤페롱 가족은 나무 아래의 후끈한 열기 속에서 천천히 음식을 먹 고 있었다. 뒤페롱 국장이 윽박지른 보람이 있어서인지 아이들도 이 제는 조용했다. 고개를 들면서 뒤페롱 부인이 침묵을 깨뜨렸다. "여기에도 모기가 있나 봐요. 모기는 아니더라도 곤충들이 있는 건 틀림없어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어느 숲에나 곤충은 있는 거 아니오?" "당신이 소풍을 오자고 해서 왔지만 제대로 온 건지 모르겠어요. 노르망디 해안으로 갈걸 그랬나봐요. 조르쥬가 알러지 체질이라는 거 당신도 아시죠?" 세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를 너무 감싸려고만 들지 말아요. 그러다가 이 애를 정말 나약 하게 만들고 말겠소." "하지만 들어보세요. 곤충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요." "불안해 할 것 없소. 내가 살충탄을 준비해 왔오." "아, 그래요. 상표가 뭐죠?" 한 척후 개미로부터 신호가 날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냄새가 북북동에서 풍겨오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광대한 세상에는 아직 개미들이 모르는 수십억 개의 냄새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척 후 개미의 신호에 담긴 특별한 기미를 감지하고 정보 부대 안에서 지체없이 경보 페로몬이 터져나온다. 개미들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 를 살핀다. 거의 맡아본 적이 없는 미묘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 그것이 멧도요 새 냄새임을 감지한 척후 개미 하나가 위턱을 떤 다. 개미들이 더듬이를 맞대고 의논한다. 103호는 무슨 동물인지 확 인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개미들 이 103호의 의견에 따른다. 개미 스물다섯 마리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따라 나아가다가 마침내 넓은 공간을 발견한다. 하양 바닥에 미세한 구멍들이 점점이 뚫려 있는 아주 이상한 곳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실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몇 가지 예비 조 치를 취해야 한다. 척후 개미 다섯 마리가 방금 왔던 길로 되돌아가 더니 풀밭에 벨로캉 연방의 냄새를 뿌린다. 말하자면 화학적인 깃발 을 꽂은 셈이다. 그곳이 벨로캉의 영토라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리 기 위해 테트라데실아세테이트(C6-H22-O2) 몇 방울을 뿌리는 것이다. 그 일이 개미들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어떤 지역에 이름을 붙인다 는 것, 그것은 이미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위를 돌아다닌다. 거대한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척후 개미 네 마리가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꼭대기는 둥글고 불룩한데 거기에도 바닥처럼 구멍이 뚫 려 있다 그곳으로부터 짜고 매운 냄새가 풍기고 있다. 척후 개미들 은 더 가까이에서 안에 있는 물건을 보고 싶었지만 그 구멍이 너무 작아 들어 갈 수가 없다. 그들은 낙담해서 다시 내려간다. 안타깝다. 기술적인 장비가 있으면 틀림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척후 개미들이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다른 개미들이 그들 을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은 훨씬 더 이상한 곳이다. 냄새를 풍기는 둔덕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생김새가 자연의 모습으로 보이 지는 않는다. 개미들은 그 위로 올라가서, 고랑과 이랑으로 흩어졌 다. 위턱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더듬이로 탐지해 보기도 한다. <<먹거리다!>> 딱딱한 표면을 맨 먼저 뚫어본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돌멩이쯤 으로 알았던 것 아래에 맛있는 것이 들어 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 게 많은 양의 단백질이다. 그 개미는 더듬이를 떨면서 가는 섬유로 된 먹거리를 입에 가득 물고 그 소식을 전한다. "다음엔 뭘 먹어요?" "꼬치 구이가 있어." "무슨 꼬치 구이인데요?" "양고기, 비계, 토마토." "맛있겠는데요. 소스는 뭐죠?" 개미들은 그곳에서 꾸물대지 않는다. 오랫만에 산해 진미를 발견 한 것에 도취해 있던 개미들은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자 하얀 식 탁보 위로 흩어진다. 척후 개미 네 마리가 노랗고 끈끈한 물질이 담긴 하얀 통으로 들 어간다. 그들은 오랫동안 발버둥을 치다가 그 물렁한 물질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소스가 뭐냐고? 음식점에 주문해서 만든 베아르네즈 소스야." 103호는 거대한 노란 물건들 더미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 걸음 을 내디딜 때마다 표면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그것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103호는 무너지는 더미에 깔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어 오른다. 그곳을 간신히 빠져나와 겨우 어떤 곳에 다다랐는가 싶었더 니 이번에는 저 아래 투명하고 부서지기 쉬운 물질이 보인다. 자칫 하다가는 거기에 떨어져 파묻힐 것 같아서 103호는 다시 펄쩍 뛰어오른다. "야 신난다. 감자 튀김이다!" 기름을 발라놓은 어떤 비탈 위로 미끄러지면서 103호는 마침내 그 노란 물건과 투명한 물질의 재난에서 벗어난다. 그는 포크를 따라가 면서 탐험을 다시 시작한다. 놀라운 일의 연속이다. 그는 단맛, 신 맛, 매운맛을 차례로 맛본다. 그 다음에는 푸른 야채 속에서 이리저 리 헤매다가 조심스럽게 빨간 크림에 접근한다. "러시아 식 코르니숑도 있다. 케첩은 여기 있다." 낯선 것들을 너무 많이 발견한 탓에 더듬이가 너무 흥분되어 있 다. 103호는 연환 노란색의 넓은 지역을 지나간다. 그곳에서 진한 발효 냄새가 풍기고 있다. 개미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고 구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놀고 있다. 동그란 구멍들이 죽 이어져 있 다. 개미들이 위턱으로 벽을 뚫으니 노란 벽이 투명해진다. "그뤼예르 치즈다!" 103호는 온통 먹을 것으로 되어 있는 그 이상한 지역에 반하여 그 인상을 동료들에게 전하려 한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다. 나직하 고 둔중하면서도 거대한 어떤 소리가 천둥처럼 위에서 크르릉거리며 개미들에게 떨어진다. "여기 개미가 있어요." 분홍빛 공이 하늘에서 튀어나오더니 개미 여덟 마리를 차례차례 짓이겨버린다. 풋, 풋, 풋....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습의 효과는 완벽하다. 그 병정개미들은 모두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러나 저항 한번 못 해보고 당해 버렸다. 구릿빛의 단단한 딱지는 터 져버리고, 살과 피가 뒤섞여 끈끈한 죽처럼 되었다. 하양 바닥에 널 려 있는 하찮은 적갈색 부스러기가 되어버렸다. 원정군의 병정개미들에게는 그 광경이 도무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 는다. 그 분홍빛 공은 기다란 기둥으로 이어져 있다. 그 공이 개미 들을 죽이고 나자 네 개의 다른 기둥들이 펼쳐지면서 처음의 기둥과 합쳐진다. 그것들은 다섯 개다. 손가락들! 저것은 손가락들이다!!!! 손가락들!!!! 103호는 그것들이 손가락들임을 확신한다. 손가락들이 저기에 있 다! 그토록 빠르고 그토록 강한 손가락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103호는 가장 자극적인 경보 페로몬을 발한다. <<조심해라, 손가락들이다!>> 103호가 공포의 물결에 휩싸인다. 뇌 속이 부글거리고 다리가 후 들거린다. 위턱이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한다. <<손가락들이다! 모두 숨어라!>> 손가락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오더니 그들 가 운데 하나만 꼿꼿이 선다. 그 손가락의 평평한 분홍빛 끝이 개미들 을 뒤쫓아가 아주 쉽게 죽여버린다. 용감하지만 결코 무모하지는 않은 103호는 위험을 직감하고 널따 란 베이지색 동굴에 숨는다. 모든 일이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103호는 무슨 일이 일 어났는지 깨달을 겨룰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손가락들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공포의 물결이 다시 엄습한다. 더 무서운 다른 것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손가락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겠는데 그런 것을 생각 해 낼 수가 없다. 그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불가 해하고 가장 강력한 손가락들과 맞닥뜨린 것이다. 두려움이 103호의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몸이 떨린다. 숨이 막힌 다. 이상하게도 손가락들과 맞닥뜨려 있을 때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굴에 안전하게 숨어 있는 지금은 두려움이 절정에 달해있다. 바깥에는 그를 죽이려는 손가락들이 가득하다. 손가락들이 신이라 면? 103호는 그 신들을 경멸했었고, 그들이 지금 화가 나 있으니, 그는 곧 죽게 될 가련한 한 마리 개미에 불과한. 클리푸니가 걱정했던 대로이다. 설마 연방 근처에까지 손가락들이 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손가락들이 세상의 끝을 건너 숲 을 침범한 것이다. 103호는 뜨거운 베이지색 동굴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 신경질적으 로 자신의 배를 두드리면서 그는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는 다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그는 신중한 발걸음으로 반원형의 그 이상한 동굴을 둘러본다. 검정색의 얇은 조각들이 내부 를 장식하고 있다. 그 얇은 조각들에서 미지근한 기름이 베어나오고 있다. 역겨운 곰팡내가 진동을 한다. "구운 통닭을 썰어볼까. 아주 먹음직스러운데." "그놈의 개미들이 성가시게 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벌서 다 죽였어." "그래도 당신 참 비위도 좋아요. 아니 저기, 저기 또 있어요." 역겨움을 이겨내면서 103호는 뜨거운 동굴을 가로질러 가장 자리 로 나아간다. 더듬이를 앞으로 내밀고 밖을 살피다가 그는 너무나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분홍빛 공들, 즉 거대한 포식자들이 그의 동료들을 모두 몰아내고 있다. 손가락들은 컵 아래, 접시 아래, 냅 킨 아래에서 개미들을 몰아낸 다음 다짜고짜 목숨을 앗아버린다. 대 살육이다. 어떤 개미들은 침략자들에 대해 개미산을 분사하려고 한다. 그러 나 아무 소용이 없다. 분홍색 공들은 날고 뛰고 도처에서 튀어나와 자그마한 적들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런 뒤에 모든 게 잠잠해진다. 공기에는 개미 시체가 뿜어낸 올레인산이 가득 차 있다. 손가락들 은 다섯씩 무리를 지어 식탁보 위를 정찰한다. 손가락들은 다친 개미들을 완전히 죽여 하얀 바닥 위에 반점을 만 들어버리기도 하고 바닥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긁어내기도 한다. "여보, 큰 가위 좀 건네줘요." 갑자기 거대한 쇠끝이 동굴의 천장을 뚫고 들어오더니 둔탁한 소 리를 내며 한가운데가 양쪽으로 벌어진다. 103호는 자기 앞 오른쪽으로 뛴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빨리, 빨 리, 무서운 신들이 바로 위에 있다. 여섯 개의 다리를 최대한으로 빨리 놀리며 뛰어간다. 분홍빛 기둥 들은 약간 뜸을 들였다가 다시 움직인다. 그들은 그가 그곳에서 빠 져나가는 것을 보고 대단히 화가 난 것 같다. 103호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급회전을 했다가 다시 반대 방 향으로 돌기를 수 없이 되풀이한다. 심장이 곧 끊어질 것처럼 사정 없이 뛴다. 그러나 아직은 살아 있다. 두 개의 기둥이 그의 앞에 우 뚝 내려선다. 103호는 처음으로 체 같은 그의 눈을 통해서 지평선 위로 드러난 5개의 거대한 형체를 본다. 사향 냄새가 섞인 손가락들 의 냄새가 느껴진다. 손가락들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멍해지면서 사고가 정지된다. 너무나 두려워 아무것도 생각할 수 가 없다. 한바탕의 광기가 휘몰아친다. 103호는 도망치는 대신에 추 격자들 위로 뛰어오른다. 기습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전속력으로 손가락들 위로 기어오른다. 손가락 끝에 도달하자 발 사대 위에 있는 로켓처럼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추락하는 그를 분홍빛 공들이 받아낸다. 손가락들이 그를 죽이려 고 다가온다. 103호는 아래로 내려와 다시 한 번 뛰어내린다. 이번에는 풀 속에 떨어진다. 재빨리 클로바 잎 아래로 숨는다. 주위의 풀들을 끌어대 는 손가락들이 보인다. 손가락들이 자기를 몰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데이지 꽃들이 있는 풀밭은 바로 그의 세계이다. 그들은 더 이상 그 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103호는 달린다. 갖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서 뒤섞인다.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손가락들을 보았고 그들의 몸에 닿 았고, 심지어 그들을 속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이 근복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못 된다. <<손가락들은 정말 신일까?>> 샤를 뒤페롱 국장은 체크 무늬의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봤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놈들을 몰아낼 수 있어." "그래도 아까 말했다시피. 이 숲은 깨끗하지 않아요." "나는 100마리나 죽였어." 비르지니가 자랑했다. "나는 더 많이 죽였어. 너보다 훨씬 많이 죽였다고." 조르쥬가 외쳤다. "얘들아, 가만 있어 봐.... 개미들이 우리가 모르는 새에 음식을 더럽히지 않았을까?" "닭고기에서 개미 한 마리가 나가는 걸 봤어요."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르지니가 소리쳤다. "개미가 더럽힌 닭고기는 이제 안 먹을거야." 뒤페롱은 눈살을 찌푸렸다. "닭고기에 개미가 지나갔다고 이 맛있는 고기를 버린단 말이냐?" "개미는 더러워요. 병을 옮겨요.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어요." "그래도 닭고기를 먹어라." 아버지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르쥬가 바닥에 엎드렸다. "빠져나갔던 개미 한 마리가 여기 있어요." "요놈, 잘 걸렸다." "그냥 둬! 그놈이 다른 개미들한테 가서 여기에 오면 안 된다고 전해 줄거야. 비르지니아, 개미 다리 자르는 짓 좀 그만둬, 그 개미 는 죽은 거야." "아니예요, 엄마. 아직 조금 움직이고 있어요." "알았다. 하지만 식탁보 위에 그것들을 버리면 안돼. 더 멀리 던 져버려. 이거 원 소풍이라고 와서 밥도 마음 편하게 못 먹으니." 세실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 랐다. 뿔 달린 풍뎅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여들더니, 그녀의 머리위 1미터 되는 곳에 작은 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 구름이 공 중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고 세실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남편의 안색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는 풀밭이 까맣게 변해 버 린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개미들의 늪에 갇히게 되었다. 그 개미들 은 수백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사실 그것은 손가락들을 치러 가는 첫번째 원정군인 3천 마리의 개미일 뿐이었다. 개미들은 단호하게 위턱을 모두 내밀고 앞으로 나 아가고 있었다. 남편이면서 애들의 아빠가 불안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여보, 나에게 빨리 살충제를 건네줘요." 92. 백과 사전 개미산 개미산은 생명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의 하나다. 사람도 세포 안에 개미산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개미산은 식량이나 동물 의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특히 침대 시트의 얼룩을 제거하기 위 해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이 산을 합성할 줄 몰랐기 때문에 곤충 에서 직접 뽑아서 썼다. 개미 수천 마리를 기름 틀에 넣고 액체가 나올 때까지 압축했다. 그 <으깨어진 개미들의 시럽>을 한 번 걸러서 모든 약국의 물약 선 반에 놓고 팔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93. 마지막 단계 미귀엘 시녜리아즈 박사는 아무도 자기들의 프로젝트가 마지막 단 계에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옥의 군대'에 맞설 절대적인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은빛 액체를 넓적한 그릇에 부었다. 그리고 붉은 액체를 붓 고서 화학에서 일반적으로 <2차 응고>라고 하는 과정을 진행시켰다. 밑 부분의 색이 공작새의 꼬리 빛깔을 띠었다. 시녜리아즈 박사는 그 그릇을 발효기 안에 넣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마지 막 단계에서는 기계가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인 시간만이 필요했다. 94. 손가락들이 후퇴하다. 공격하고 있는 보병들의 전초 부대가 갑자기 초록색 연막에 둘러 싸인다. 연막 때문에 보병들은 매우 심하게 콜록거린다. 꽤 높은 곳에서 풍뎅이들은 움직이는 산을 공격하고 있다. 세실 뒤페롱의 가느다란 머리털 위에 도달한 포병 개미들은 개미 산포를 쏘아댄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그곳을 주거로 삼으려던 이 몇 마리를 죽였을 뿐이다. 아래에 있던 포수 개미 한 무리는 커다란 분홍빛 공에 대고 집중 사격을 한다. 그것이 세실의 엄지 손가락이라는 것을 개미들이 알 리가 없다.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개미산은 레몬수 정도의 효과밖에 못 주기 때문이다. 또 다시 초록색 살충제가 연막을 형성하며 벨로캉 개미들의 대열 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그것들의 구멍을 찾아라!>> 9호가 울부짖는다. 포유류나 새들과 맞서 싸운 경험을 가진 모든 개미들은 그 메시지의 의미를 곧바로 깨닫는다. 몇몇 부대가 과감하게 거대한 손가락들에게 덤벼들어 그들의 옷 속에 위턱을 단단히 박는다. 면으로 된 티 셔츠와 반바지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다. 비르지니의 셔츠는 아크릴 30%, 폴리아미드 20%가 섞여 있어서 개미들의 위턱에 별로 손상을 입지 않는다. "아이구, 코 안으로 개미가 들어갔어요." "빨리, 살충제 좀 줘!" "그렇다고 얼굴에 살충제를 뿌릴 수는 없잖아요." "엄마야!" 비르지니가 소리친다. "정말 골치아프군!" 뒤페롱이 소리치며 가족들 주위로 윙윙거리는 풍뎅이들을 손으로 흩어버리려고 애쓴다. "도저히 안 되겠어...." <<...저 괴물들을 당할 수가 없어. 저들은 너무 크고 너무 강해. 저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들이야.>> 103호와 9호는 그 상황에 대해 열띤 논의를 하고 있다. 그들은 지 금 어린 조르쥬의 목 언저리에 있다. 103호는 다른 곤충들에게서 뽑은 독을 가져왔냐고 묻는다. 9호가 가져왔다고 대답한다. 말벌이나 꿀벌의 독이다. 9호가 즉시 그것을 가지러 간다. 9호가 꿀벌의 독침에서 나온 노란 액이 담긴 알을 다리 끝에 싣고 온다. 전투는 여전히 격렬하다. <<그것을 주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침이 없잖아.>> 103호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붉은 살 속에 위턱을 꽂고 최대한 깊 이 독을 밀어넣는다. 여러 번 그 동작을 되풀이한다. 살이 물렁물렁 하기는 해도 여간 질긴 것이 아니다. "도망가자." 후퇴가 용아하지 않다. 거대한 동물이 경련을 일으킨다. 숨이 막 히고 몸이 떨린다. 조르쥬 뒤페롱은 무릎을 꿇고 옆으로 쓰러진다. 조르쥬가 작은 용들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것이다. 조르쥬가 넘어지자 개미 4개 부대가 머리채 속에 들어가고 다른 개미들은 여섯 개의 구멍을 찾아낸다. 103호의 마음이 밝아진다. 이번에는 분명하다. 우리가 손가락들 하나를 해치웠어! 비로소 손가락들에 대한 두려움이 머리에서 사라진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기쁘기 한량없다. 103호는 자유를 느낀다. 조르쥬 뒤페롱은 땅바닥에 엎드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9호가 뛰어가서 얼굴 위로 올라간다. 붉고 거대한 몸 위로 한 걸 음 손가락들은 하나의 완전한 영토라 할 만하다. 9호가 손가락들의 여기저기를 대충 돌아본 바로는 그들이 손가락들이라 부르고 있는 그 동물은 길이 200머리에 너비가 100머리는 족히 될 듯하다. 그 동물의 몸 안에는 없는 게 없다. 동굴, 골짜기 산, 분화구 등. 원정군 가운데 가장 기다란 위턱을 가진 병정개미 9호는 그 손가락 들이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눈썹으로 기어올 라 갔다가 미간의 한가운데, 콧마루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인 도 사람들이 제3의 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9호는 오른쪽 위턱의 끝을 높이 들어올린다. 햇빛을 받아 위턱의 날이 번득인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9호는 자 기의 위턱을 날쌘 동작으로 발그레한 살갗 속에 박아넣는다. 흡입음을 내면서 9호가 키틴질로 된 그의 칼을 뺀다. 곧 간헐 온 천에 물이 솟듯이 그의 더듬이 위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솟아오른다. "여보! 여기 좀 봐요. 조르쥬가 몸이 안 좋은가봐요." 샤를 뒤페롱은 살충탄을 풀밭에 내려놓고 아들에게로 몸을 구부렸 다. 아이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호흡이 가빴다. 아이의 몸에 개미들 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알러지 발작을 일으키고 있어. 빨리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 춰야 겠어." "빨리 여기에서 나가요." 소풍 도구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뒤페롱 가족들은 부랴부랴 자동차 쪽으로 달아났다. 샤를 뒤페롱은 아들을 팔에 안고 있었다. 병정개미 9호는 제때에 뛰어내렸다. 그는 자기의 오른쪽 위턱에 남아 있는 손가락들의 피를 핥는다. 이제 개미들은 손가락들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개미들이 손가락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꿀벌들의 독이 있으면 손가락들을 죽일 수도 있다. 95. 니콜라 손가락들의 세계는 너무 아름다워 어떤 개미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손가락들의 세계는 너무 평화로워 불안과 전쟁이 사라졌다. 손가락들의 세계는 너무 조화로워 모두가 끝없는 환희를 누리며 산다. 우리는 우리 일을 대신 해주는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주 빠르게 우즈로 날아갈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날 수 있다. 우리는 물 속을 갈 수 도 있다. 우리는 이 행성을 떠나 하늘 저편으로 갈 수도 있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의 말씀이니라. "니콜라!" 아이는 재빨리 기계를 끄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 전'을 보는 체했다. "예, 엄마, 왜 그러세요?" 뤼시 웰즈가 나타났다. 비쩍 말랐지만 그녀의 깊은 눈길은 이상한 힘이 빚어내는 생기를 띠고 있었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구나? 하지만 우리가 정해 놓은 밤 시간이잖니?" "저는 '백과 사전'을 보기 위해 가끔 다시 일어나잖아요." 뤼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하는 거야. 이 책에는 배울 게 많아." 뤼시는 아들의 어깨를 잡는다. "니콜라, 우리가 하는 정신 감응 수련에 너도 참석하고 싶지?" "아뇨. 지금은 아니예요. 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해요." "준비가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걸 느끼겠지. 무리할 건 없다." 뤼시는 아들을 팔에 껴안고 등을 두드린다. 니콜라는 살며시 어머 니의 품을 빠져나온다. 니콜라는 어머니의 사랑의 표시에 점점 무덤 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뤼시가 니콜라의 귀에 속삭인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 거다만 언젠가는...." 96. 24호가 최선을 다하다 24호는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남동쪽이기를 바라며 걷는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 동물들에게 다가가 길을 묻는다. <<원정군이 지나가는 걸 보았는가?>> 그러나 개미들의 후각 언어가 아직 보편적인 언어로 격상되지 않 다. 그래도 풍뎅이 한 마리가 벨로캉 개미들이 손가락들과 싸워 이 겼다는 소문을 전해준다. <그럴 리가 없다>라고 24호는 생각한다. 개미들은 신들을 이길 수 없어! 그러나 도중에 계속 질문을 하고 똑같은 답변을 듣게 되자 손 가락들과 정말 접전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24호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신들을 만날 수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정군에게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위한 고치를 갖다주 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숱하게 자신의 칠칠치 못함을 책망했고, 방향감각이 부족한 것을 한탄했다. 24호는 지나는 결에 멧돼지를 발견한다. 저것은 나보다 훨씬 빨리 가겠지. 동료들을 다시 만나려는 욕구와 손가락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24호는 멧돼지 다리로 올라간다. 곧 멧돼지는 달리 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너무 치우쳐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24호 는 달리는 멧돼지 위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운이 좋았다. 다람쥐가 나타나자 24호는 쏜살같이 다람쥐의 털 속 으로 들어간다. 다람쥐 또한 북동쪽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날쌘 다 람쥐가 갑자기 나무 꼭대기에서 멈춰버린다. 24호는 되도록 빨리 땅 에 닿으려고 뛰어내린다. 멧돼지와 다람쥐를 타고 빠르게 달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동료들은 보이지 않는다. 갈팡질팡하지 말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24호는 전지 전능한 신들인 손가락들의 존재를 믿고 있다. 자기를 원정군 쪽으로, 그리고 손가락들 쪽으로 인도해 주도록 손가락들에 게 구원을 빌고 싶다. <오, 손가락들이여. 저를 이 무서운 세상에 버려두지 마소서. 제 동료들을 다시 찾도록 해주소서.> 24호가 더듬이를 포갠다. 마치 신들과 더 잘 접촉하고 싶어서 그 러는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뒤쪽에서 가장 익숙한 냄새가 풍겨온다. <<아, 당신이군요!>> 24호의 기쁨이 절정에 달한다. 황금의 벌집 아스콜레인에 대한 정보를 찾으러 떠났던 103호는 고 치를 보자 마음을 놓는다. 그 또한 신을 믿는 어린 반체제 개미를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나비 고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구나?>> 24호는 103호에게 그 귀중한 고치를 보여주고 나머지 일행과 합류한다. 97. 백과 사전 시공의 문제 하나의 원자 핵 주위에 여러 개의 전자 궤도가 있다. 어떤 것은 중심부에서 매우 가까이 있고, 어떤 것들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외부의 충격으로 이 전자들 중에 하나가 궤도를 바꾸면, 빛이나 열이나 방사의 형태로 에너지의 방출이 일어난다. 낮은 자리에 있는 전자를 보다 높은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은 마치 애꾸를 맹인들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전자는 빛을 내면서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바로 왕이 되는 것 과 같다. 역으로, 높은 궤도에서 낮은 궤도로 자리를 옮긴 전자는 완전히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우주 전체는 원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공식 들이 켜켜이 겹쳐 놓인 채로 병존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빠르고 복 잡한 반면에 어떤 것들은 느리고 단순하다. 존재의 모든 수식에서 그와 같은 중층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 리하여 아주 영리하고 민첩한 개미가 인간 세계에 던져지면 그것은 서투르고 겁많은 하찮은 곤충밖에 안 된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한 인간이 개미 사회에 떨어지면 전지 전능한 신이 된다. 그래도 인간 들과 접촉을 했던 개미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개미 사회로 되돌아갔을 때, 그 개미는 더 우수한 시공을 경험한 덕분에 어떤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보다 우수한 차원에서 최하층의 상태를 경험해 보고 원래의 차원 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진보를 이루어내는 훌륭한 방법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98. 우리의 친구들 : 파리 원정군이 야영하는 숲속의 빈터에 도착한 24호는, 불개미들이 신 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24호는 어떤 커다란 동물과 손가락들을 혼돈한 것이 아니냐며, 그 것이 정말 손가락들이었다면 손가락들은 죽은 척했을 뿐일 거라고 주장한다. 24호는 그런 식으로 동료들의 반응을 시험해 보고 그들의 진심을 헤아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들 순진하게 보고 있는 24호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만약, 손가락들이 죽었다면 그의 시 체는 어디로 갔나? 103호는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자신 있는 태도로 자 기가 쓰러진 손가락들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았으며, 지금은 손가락 들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페로몬을 발한다. 24호에게 그 페로몬을 발하는 중에 문득 어떤 생각이 103호의 뇌 리에 떠오른다. 자기가 경험한 손가락들에 관한 정보를 기억 페로몬 에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103호는 기억 페로몬을 내어 거 기에 정보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분야 : 동물학 주제 : 손가락들 정보 제공자 : 103683호 정보 제공 연도 : 100000667년 1) 손가락들은 존재한다. 2) 우리는 손가락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며, 꿀벌의 독으로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 a) 손가락들을 죽이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 서는 꿀벌의 독이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b) 손가락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서는 꿀벌의 독이 많이 필요하다. c) 그렇지만 손가락들을 죽이기는 매우 어렵다. 3) 손가락들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4) 손가락들은 따뜻하다. 5) 손가락들은 식물성 섬유로 된 표층으로 덮여 있다. 그 표층은 색깔이 있는 인공적인 피부인 듯하다. 우리는 위턱으로 찔러도 그 피부에서는 피가 나지 않는다. 그 표층 밑에 있는 피부를 뚫어야만 피가 난다. 103호는 자신의 기억을 다시 모으기 위해 더듬이를 세운 다음 기 록을 계속한다. 6) 손가락들의 냄새는 매우 진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냄 새와도 다른 아주 독특한 냄새다. 103호는 한 무리의 파리가 붉고 거무스레한 웅덩이 주위에서 날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7) 손가락들은 새들처럼 붉은 피를 가지고 있다. 8) 만일 손가락들이 신이라면.... 정말 이런 조건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리들이 한바 탕 잔치를 벌이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103호는 작업을 중단하고 파리들을 쫓아버리려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파리들이 원정군에 유용하게 쓰일 것도 같다. 99. 백과 사전 선물 금파리들의 세계에서는, 암컷이 짝짓기하는 동안에 수컷을 잡아 먹는다. 짝짓기할 때의 감정이 식욕을 불러일으키면서 곁에 늘어져 있는 짝짓기 상대가 암컷에게는 맛있는 먹거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사랑은 하고 싶으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사 랑 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즉, 타나토스 없는 에로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금파리 의 수컷은 한 가지 책략을 찾아냈다. 수파리는 먹을 것을 <선물>로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암컷은 배가 고플 때 수컷이 가져온 고기를 먹게 되고, 그 수컷은 아무런 위험 없이 사랑을 즐길 수 있다. 그보 다 훨씬 진화된 파리들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곤충고기를 투명한 고 치로 포장해서 가지고 온다. 그럼으로써 더 오랫동안 사랑을 즐길 수 있다. 또 어떤 파리 종은 수컷의 관점에서 선물의 질보다는 선물을 개봉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 종의 수 컷들이 가져오는 고치 포장물은 두껍고 부피가 크지만 사실은 비어 있는 것이다. 암컷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이면 수컷은 이미 용무를 끝낸 뒤이다. 수컷들의 그런 행동에 이번에는 암컷들이 꾀를 낸다. 암컷은 고치 가 비어 있지나 않은지 확인하려고 고치를 흔들어본다. 그러나 거기 에 대한 대응책이 또 나타난다. 암컷이 고치를 흔들어볼 것임을 예 상한 수컷은 고기 덩어리로 착각하게 하려고 자기 배설물을 적당히 담아서 선물 꾸러미를 만들기로 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00. 레티샤가 잠 속으로 빠져든다. 멜리에스는 유치장에 가서 레티샤를 만나려고 면회를 신청했다. 그가 소장에게 물었다. "그 여자는 구금 생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아무 반응도 없어요." "무슨 말이죠?" "여기에 온 뒤로 줄곧 자고 있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 한 방울도 안 마셨어요. 꼼짝 않고 잠만 자고 있어요. 깨우려고 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예요." "잠 든 지 얼마나 됐습니까?" "일흔두 시간쯤 됐습니다." 자크 멜리에스는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 그가 잡아 넣은 여 자들이 성이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은 흔히 있었어도 내처 잠만 자는 경우는 없었다. 전화 벨이 울렸다. "멜리에스 씨, 당신을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소장이 말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카위자크 형사였다. "경정님, 저는 부검의와 같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 다. 그 여기자의 개미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뭐라고요?" "개미들이 동면을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8월에 무슨 동면을 한다고 그래요?" "정말이라니까요?" "에밀 형사, 의사에게 조금 후에 간다고 전해 주세요." 자크 멜리에스는 창백한 얼굴로 수화기를 놓으며 말했다. "레티샤 웰즈와 그녀의 개미들이 동면을 하고 있다는군요." "뭐라고요?" "그래. 생물학 책에서 그런 걸 본 적이 있어. 날씨가 추울 때, 비 가 올 때, 여왕이 사라졌을 때 곤충들은 모든 활동을 중지합니다. 심장 고동도 느려지고 잠을 자든가 죽어버리지요." 두 사람은 유치장을 가로질러서 레티샤의 방까지 뛰어갔다. 그들 은 곧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멜리에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맥박이 천천히 뛰고 있는 걸 확인했다. 그는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흔들었다. 레티샤는 연보라빛 눈을 반쯤 떴지만,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있는 지를 이내 깨닫지 못했고 멜리에스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레티샤는 마침내 경정을 알오보고는 미소를 띠고서 다시 잠들어버 렸다. 멜리에스는 자신을 동요시키는 혼란스런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는 소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일 아침이면 이 아가씨가 식사를 요구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연약한 살결의 눈꺼풀 아래에서 눈알이 상하 좌우 돌아갔다. 마치 꿈의 변화를 좇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레티샤는 꿈의 세계 속으로 도망자처럼 빠져들어갔다. 101. 포교 <<자,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23호는 그렇게 연설을 시작한다. 그는 사암안에 있는 우묵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 그 곁에 24호가 있다. 서른세 마리의 개미가 그 들을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 23호는 야영지 안에서 병정개미들을 상 대로 포교 모임을 가질 생각이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야영지 안에서 그런 모임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이곳에서 손가락들에 대한 신앙을 전파하고 있다. 23호는 네 개의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페로몬을 발한다. <<손가락들은 그들에게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상에 우리를 만 들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게 불경한 짓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 리를 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봉사하는 만큼 그들 은 그 보상으로 그들의 힘을 나누어줍니다.>> 참석한 개미의 대부분은 검정딱따구리의 똥에 감염된 개미들로 구 성되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잃어버릴 게 없는 개미들이었고, 자신 들의 불행한 처지에 대해 위안을 찾고 있는 개미들이었다. 딱따구리 의 똥에 맞아 하얗게 탈색된 개미들이 신을 믿는 개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의아해 하지만, 그들 은 모두 죽음이 없는 좋은 세상을 갈망하고 있다. 그 불쌍한 흰둥이들은 신산의 세월을 살고 있다. 질병의 고통이 나날이 가중되는 가운데 행렬의 뒤를 허위허위 따라오는 그들이 존 재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행렬에서 완전히 낙오되어 갖가지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렇지만 병든 개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다른 개미들은 주 저없이 달려온다. 개미들의 연대 의식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 더구나 손가락들을 치러 가는 첫 원정대 내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말이 무엇이든간에 신을 믿는 개미의 메시지는 매력이 있고, 호감을 느끼게 한다. 사암 구덩이에 모여 있는 개미들이 손가락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그래도 빈약한 반대 논리가 튀어나오고 질문자도 나타난다. 그런 것들이 나중에 걱정거리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3 호는 미리 준비된 대답을 내놓는다. <<중요한 것은 손가락들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나머지 일에 대해 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손가락들은 신이고 그들은 영원 불멸합니다.>> 개미 하나가 또 더듬이를 쳐든다. <<손가락들은 왜 우리가 매순간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지 않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어요.>> <<벨로캉에서 우리는 손가락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포병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신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주 강렬하게 그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들은 그것들을 <기 도>라고 부릅니다. 어디에서 기도를 하든 신들은 그것을 알아듣습니다.>> 딱따구리 똥 때문에 하얗게 되어버린 개미가 절망적으로 페로몬을 발한다. <<손가락들은 촌충에 감염된 우리를 치료할 수 있을까?>>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병정개미가 묻는다. <<여왕개미가 모든 손가락들을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했는데, 우 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23호가 질문하는 개미를 흘끗 쳐다보고 가만히 더듬이를 흔든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쪽에 물러서서 바라보기만 할 것입니다. 신들을 두려워 마십시오. 신들은 전지 전 능합니다. 리빙스턴 박사의 말을 널리 전파합시다. 우리와 함께하려는 개미가 점점 많아지게 합시다. 늘 기도하는 걸 잊지맙시다.>> 개미들이 여왕개미가 아닌 반체제 개미들의 말에 열광하는 것은 처음이다. 개미들은 설사 손가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102. 백과 사전 신 정의를 내리자면 신은 무소부재하고 무소불위하다.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신은 자기가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03. 아스콜레인, 황금의 벌집 꿀벌이 신호를 보낸다. 수직 8자춤, 뒤집어진 8자춤, 나선 8자춤, 비스듬한 8자춤, 잠시 춤사위를 멈추었다가, 다시 겹친 8자춤. 태양을 기준으로 각도를 조 절한 뒤, 다시 좁은 수평 8자춤, 넓은 수평 8자춤. 신호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그 신호에 화답하는 춤사위. 비스듬한 8자춤, 겹친 8자춤, 뒤집어 진 8자춤. 이어 다음 벌에게 신호를 보낸다. 공중에 있는 역참과 역참으로 파발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꿀벌들은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허공에 자기들의 정보를 새긴다. 먹이가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벌들 은 8자춤을 춘다. 그 8자의 중심 축이 날아갈 방향과 거리를 알려준 다. 동쪽 강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전나무에 개미들의 냄새 언어로 <아스콜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꿀벌들의 도시가 있다. 이 말은 벌 의 언어로는 <황금의 벌집>이라는 뜻이다. 그 도시에는 꿀벌 6천 마 리가 살고 있다. 동료가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린 아스콜레인의 탐색 벌이 빠른 속 도로 날아오른다. 그 벌은 엉겅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비스 듬히 올라간 다음, 풀밭에서 우글거리는 개미들의 행렬 위를 날아간 다. <아니, 개미들이 저기서 뭐 하는 거지?> 탐색 벌은 커다란 떡갈 나무를 돌아 모래 둔덕들이 있는 지역을 아주 낮게 날아간다. 저기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는 것 같다. 탐색 벌은 날개 젓는 속 도를 늦추고, 노란 수선화들 위를 빙빙 돌다가 어떤 식물의 꽃술에 발을 담근다. 탐색벌은 그 꽃이 데이지임을 알아차리고 길고 가는 혀를 천천히 노란 가루 속에 밀어넣는다. 그런 다음, 다리에 신선한 꽃가루를 묻힌 채 꽃을 떠나간다. 탐색 벌은 즉시 280헤르츠의 진동으로 날개를 치기 시작한다. 브즈즈즈즈즈 브즈즈즈 브즈즈즈. 280헤르츠는 한 마리의 벌이 먹 이를 담당하는 일벌들을 최대로 모을 수 있는 진동수이다. 260헤르츠로 식량의 관리나 어린 벌들의 보호를 맡은 일벌들을 부 를 때 사용한다. 또 300헤르츠는 군사적인 경보를 발동할 때 사용한다. 탐색 벌은 육각형의 밀랍 위에 자리를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밀랍으로 된 벌집의 바닥 위에서 8자를 그린다. 말하자면 2차원의 8자 춤이다. 탐색 벌은 몸짓의 언어로 아주 신속하게 자기 의 모험담을 들려주면서, 꽃 무더기가 있는 방향과 거리 및 꽃들의 특성 등을 알려준다. 꽃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탐색 벌은 빠르게 춤을 춘 다. 꽃이 멀리 있었다면 한층 더 느리게 춤을 추었으리라. 마치 먼 곳을 날아오느라고 지쳐 있음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벌은 춤을 출 때 태양의 위치나 움직임도 고려한다. 동료들이 달려온다. 꿀을 모을 수 있는 꽃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 만, 그 꿀의 질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따금 꽃들이 새의 똥으로 덮여 있을 때도 있고, 꽃들이 시들어 있을 때도 있으며, 다른 벌들 이 먼저 채어가버리는 때도 있다. 몇몇 꿀벌들은 무척 들떠서 자기들의 배로 밀랍으로 지은 방들을 두드린다. 그들은 꿀벌 세계의 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자네가 가져온 꿀을 직접 보고 싶다.>> 탐색 벌은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고 제가 가져온 꿀을 되올린다. <<맛을 보게. 최고의 품질이라는 걸 알게 될 걸세.>> 그러한 춤과 대화와 꿀의 교환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지 만, 벌집 안에 있는 모든 일벌들이 자기들 임무의 중요한 내용을 알 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날아오른다. 기진 맥진한 탐색 벌은 견본으로 가져온 꿀을 게걸스럽게 다시 삼 킨다. 그런 다음 아스콜레인 꿀벌들의 여왕벌 67호 자하하에르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 여왕벌은 자매 여왕벌 20마리와 싸 운 끝에 그 꿀벌의 왕국의 왕좌에 올랐다. 꿀벌들은 언제나 많은 여 왕벌들을 낳는다. 그러나 여왕벌은 한 벌집에 한 마리만 있으면 되 기 때문에 여왕벌들은 최후의 승리자가 나올 때까지 산란실에서 격 렬하게 싸운다. 지도자를 고르는 방법치고는 좀 야만적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방 식을 통해서 가장 강인하고 가장 전투적인 여왕벌을 그 꿀벌 도시의 우두머리로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왕벌은 노란색으로만 되어 있는 배를 보고 구별할 수 있다. 여 왕벌의 수명은 4년이며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지면 하루에 천 개 까지알을 낳을 수 있다. 아스콜레인 벌집은 벨로캉 동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오렌지빛 밀랍으로 지은 방들에 꿀을 모으는 일벌이 모여사는 완벽한 곳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향기를 풍긴다. 노랑, 검정, 분 홍, 오렌지빛이 어우러져 있다. 일벌들은 다리에서 다리로 귀중한 꿀을 전달한다. 한쪽에서는 일벌들이 밀랍 단지에다 로열 젤리를 만들고 있다. 좀더 멀리에는 어린 꿀벌들에게 교욱을 하는 방이 있다. 꿀벌들의 교육은 언제나 일정한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꿀벌이 알에서 나오면 다른 벌들이 어린 벌에게 영양을 공급한다. 그 다음 에는 그 꿀벌이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처음 사흘 동안은 벌집 내부 의 일에 전념한다. 사흘째 되는 날, 입 근처에 로열 젤리를 만드는 분비샘이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그럼으로써 그 꿀벌은 유 모 벌이 된다. 그 분비샘은 점차 중요성이 줄어들고 배 밑에 자리잡 은 새로운 분비샘들이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밀랍 샘으로서 벌집의 방을 만들고 고치는 데 필요한 밀랍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렇게 해서 12일째부터 꿀벌은 집 짓는 벌이 되어 벌집을 구성하 는 구멍들을 만들어낸다. 18일째부터 이 밀랍 샘은 기능을 정지한 다. 일벌은 경비 벌이 되고 외부 세계와 시간을 가진 다음, 꿀 모으 는 벌이 된다. 일벌은 꿀 모으는 벌로 일생을 마무리한다. 탐색 벌이 여왕벌의 방에 다다른다. 탐색 벌은 자기가 본 개미들 의 이상한 행렬에 대해서 여왕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 왕벌은 안에서 누군가와 중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탐색 벌은 더듬이를 내밀어 그게 누구인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도무지 믿 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왕벌이 어떤 개미와 대화를 나누 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벨로캉 연방의 개미이다! 탐색 벌은 좀 떨어진 곳에서 여왕벌과 개미의 대화를 엿듣는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왕벌이 묻는다. 그 개미가 벌집 안에 들어왔을 때 꿀벌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꿀 벌들이 개미가 <황금의 벌집>안에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은 그 개미에 대한 호감 때문이 아니라 그 개미의 당돌함 때문이었다. 개 미가 벌집 안에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인가? 그 때 23호는 자기가 벌집에 올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을 이야기 했다. 23호는 자기의 동료들인 벨로캉 개미들이 미쳐버려서 손가락들을 치러가기 위한 원정군을 파견했으며 이미 손가락 하나를 죽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23호는 원정군 개미들이 분명히 자기들이 지나는 길 에 있는 꿀벌들을 공격할 터이니, 그러기 전에 먼저 원정군을 공격 하라고 충고했다. 23호는 원정군 개미들이 미나리아재비 골짜기에 갇혀 있을 때 공격하면 된다는 것까지 일러주었다. <<매복을 하란 말인가? 당신은 지금 당신 종족을 쳐부수도록 매복 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인가?>> 여왕벌은 깜짝 놀란다. 개미들의 행동이 갈수록 패륜적으로 되어 간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서 듣기는 했다. 특히 먹이를 얻기 위해 자기가 태어난 도시와 맞서 싸우는 용병 개미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 다. 그러나 여왕벌은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싶었다. 그러니 자기 동료들을 죽이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알려주는 개미를 마주한 여왕벌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확실히 개미들은 여왕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뚤어져 있 다. 혹시 이게 함정이 아닐까? 스스로 배반자라고 주장하면서 미나 리아재비 계곡 안으로 꿀벌들의 군대를 유인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 다. 그 틈을 타서 원정군이 벌집 안으로 공격해 오려는 것은 아닐 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왕벌 자하하에르샤가 등날개를 떤다. 그러고는 개미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냄새 언어로 묻는다. <<왜 당신은 당신의 동료들을 배반하는가?>> 23호가 변명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지상의 모든 손가락들을 죽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손가락들은 다양성을 지닌 세계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다른 생물종들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개미들은 이 세계를 빈곤하게 만듭 니다. 종들은 제 나름의 쓸모를 갖고 있는 것이고, 생명 형태의 다 양성이 바로 자연의 본질입니다. 어느 한 종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 의 죄악입니다. 개미들은 벌써 많은 동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동물들을 이해하 려 하지 않았고, 그들과 대화할 생각도 해보지 않은 채 고의로 그런 짓을 했습니다. 단순한 무지 몽매함 때문에 제거된 것들도 모두 자 연의 한 부분입니다.>> 병정개미 23호는 한발 더 나아가, 손가락들은 신이며 자기도 신을 믿는다고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열렬히 믿고 있는, 손가락들의 전지 전능함을 말하지는 않았다. 여왕벌은 극도로 추상적인 그런 이야기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왕벌이 반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왕벌은 신을 믿지 않 는 반체제 개미들이 23호에게 반박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자에게는 알 기 쉬운 얘기로 설명해야 한다. <<손가락들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수준에서 그들 나름대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손가락들을 살려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연구하기 위해 서라도 한 쌍은 살려야 합니다.>> 여왕벌은 23호의 말뜻은 알겠으나 개미와 손가락들 사이의 싸움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현재 검은 말벌 도시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어서 군사력을 모두 거기에 동원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여왕벌은 꿀벌과 검은말벌 사이의 전투 광경을 신명을 내가며 묘사하기 시작한다. 날개를 맞부딪는 수천 마리의 벌들, 공중에 머물며 행하는 결투, 독침 공격, 배설물 공격, 발사물의 난무! 여왕벌은 자기가 독침 검 술의 열렬한 애호가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스포츠를 할 줄 아는 곤충은 꿀벌과 말벌뿐이라면서, 공중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능숙하 게 독침을 사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여왕벌은 상상 의 적을 상대로 결투하는 모습을 흉내내면서 타격 자세를 열거한다. 휘두르기, 찌르기, 대기 자세 4번, 대기 자세 5번, 제1자세, 우측 받아넘기기 등등. 여왕벌은 자기의 배 끝을 병정개미 23호의 머리에 바짝 들어댄다. 그러나 23호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왕벌은 계속 말벌과 꿀벌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다. 비껴찌르기, 침과 침을 맞대기, 포위, 원위치, 반격 등등 23호가 여왕벌의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그런 다음, 꿀벌들도 개미 와 손가락들의 전쟁에 관계가 있다고 역설한다. <<103호라는 노련한 병정개미가 있습니다. 그는 꿀벌의 독이 있으 면 손가락들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현재로서는 손 가락들을 죽일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원정군은 독 을 얻기 위해서 아스클레인을 공격할 것입니다.>> <<개미들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자기들 연방에서 이렇게 멀리 나 와 있는 자들이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바로 이 순간에 공습 경보가 황금의 벌집 방방마다 울려퍼진다. 104. 곤충은 우리의 적이다. 곤충과의 전쟁에 대한 세미나에서 미귀엘 시녜리아즈가 자기의 연 구 성과를 제시할 차례가 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자들에 게 세계 지도를 보여주었다. 검고 동그란 드러냄표가 점점이 박혀 있는 지도였다. "이 점들은 전쟁 지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곤충과의 전쟁 말입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곤충과 싸우고 있 습니다. 모로코에서, 알제리에서, 세네갈에서 사람들은 메뚜기의 침 입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페루에서는 모기가 말라리아를 퍼뜨리 고 있고, 남아프리카에서는 체체파리가 수면병을 옮기고 있으며, 말 리에서는 이가 창궐해서 티푸스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마존과 적 도 아프리카, 인도네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마냥개미의 침입에 대항하 여 싸우고 있습니다. 또 리비아에서는 암소들이 쇠파리에 물려 죽어 가고 있고, 베네주엘라에서는 공격적인 말벌이 어린이들에게 달려들 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만 해도 여기서 아주 가까운 퐁텐블로 숲으 로 소풍을 나왔던 한 가족이 불개미 떼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감 자 농장을 파괴하는 감자잎벌레나 목조 건물을 갉아먹고 주민들에까 지 달려드는 흰개미들, 옷을 쏠아대는 좀벌레, 개를 공격하는 나방 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백만 년 전부터 인간은 곤충들과 전쟁을 벌려왔습니다. 전쟁은 여 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들이 작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과소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을 통기는 것만으로 곤충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곤충을 없애 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곤충들은 독에 적응해 나가며, 돌연 변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살충제에 저항하고, 멸종을 피하려고 엄 청난 속도로 번식합니다. 곤충은 우리의 적입니다. 동물 수의 9할이 곤충입니다. 수십억의 수십억 배의 수십억 배가 되는 곤충에 비하면 우리 인간과 포유류 동물은 한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곤충들을 <지옥의 군대>라는 말로 정의했습니 다. 곤충들은 지옥의 군대, 즉 비천한 것, 기어다니는 것, 땅속에 사는 것, 숨어 있는 것, 예측 불가능한 것 모두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시녜라이즈 박사님, 그 지옥의.... 아니 곤충들에 대항해서 싸우 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시녜라이즈는 청중에게 미소를 보내고 말을 이었다. "우선 그것들을 얕잡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 겠습니다. 칠레 산티아고에 있는 실험실에서 우리는 개미들이 <시식 개미들>을 따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개미 사회가 새 로운 먹이와 마주쳤을 때, 그 먹이를 먼저 먹어보는 개미들입니다. 시식하고 나서 이틀이 지난 뒤에도 의심스런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 그제서야 동료 개미들이 그 먹이를 먹습니다. 이 사실은 대 다수 살충제의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을 먹은 후 72시간이 지나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새로운 살충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독이 개미들의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개미 도시에 널리 퍼지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사님, 살충제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을 죽이도록 개미들을 훈련 시키는 데 성공한 웰즈 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녜라이즈는 고개를 들어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곤충들에게 매료된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이제서야 나타났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희 생자의 대부분은 같은 동료들이었고 친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웰즈 양은 남을 해칠 수 있 는 상태가 아니니까요. 며칠 후에 저는 여러분께 엄청난 위력을 지 닌 기적의 상품을 소개할 것입니다. 저희가 많은 희생을 치러 가며 만든 상품, 그 암호명은 <바벨>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으신 분은 내일 이 시간을 기대해 주십시오." 시녜리아즈 박사는 휘파람을 불면서 걸어서 호텔에 다다랐다. 그 는 자기 이야기에 대해 청중이 보인 반응에 만족했다. 그는 방에서 손목 시계를 풀다가 소맷자락에 네모난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침대 위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때 목욕탕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최고급 호텔에 고장난 수도가 웬 말이람! 그는 일어나서 조용히 목욕탕 문을 닫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에 내려가자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를 이용해야 했다. 그는 피곤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선택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엘리베이터가 두 층 사이에서 멈추었다. 바로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투숙객들은 시녜리아즈 박사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면서 온 힘을 다해 엘리베이터 벽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밀실 공포증 환자인가봐." 어떤 여인이 말했다. 하지만 종업원이 달려와 엘리베이터을 열었을 때, 안에는 시체 한 구뿐이었다. 시체의 얼굴에 나타난 공포의 표정은 악마와 싸운 사람 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105. 꿈 조나탕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 의례 가 강도를 더해가면서 잠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어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전율을 느꼈다. 모두가 <옴>이라 는 하나의 소리를 내고 있던 중에 그는 어떤 이상한 것을 느꼈다. 몸 안의 모든 것을 그 소리가 빨아들이는 듯했다. 손이 장갑에서 빠 져나가듯이 그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 육식이라는 껍데기에서 빠 져나가려고 했다. 조나탕은 무서웠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다. 이윽고 몸에서 빠져나간 그것이 다른 이들 의 그것과 함께 자유로이 화강암을 지나 개미집으로 올라갔다. 그것 은 <옴>이라는 음파같기도 했고 기나 영혼 같기도 했다. 그런 현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마치 늘어난 고무줄이 원 상태로 돌아오듯이, 그것은 순식간에 육신의 껍데기 안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집단적인 꿈이었다. 집단적인 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개미들 곁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개미 꿈을 꾸었다. 그 는 '백과 사전'에 꿈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기술한 대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손전등을 들고 그는 풍금 앞 보면대 위에 있는 '백과 사전'을 보러 갔다. 106. 백과 사전 꿈 말레이지아의 밀림 깊숙한 곳에 세노이라는 원시 부족이 살고 있 었다. 그들은 꿈을 삶의 중심에 놓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꿈의 부족>이라 불렀다. 매일 아침 불가에 둘어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저마다 간밤에 꾼 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꿈을 꾼 사 람은 꿈 속에서 해를 입은 사람에게 곧바로 선물을 주어야 했다. 꿈 에서 남을 때린 사람은 맞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선물을 주어야만 했다. 세노이 부족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보다도 꿈의 세계와 관련된 교육을 더 중시했다. 한 아이가 호랑이를 만나 도망 치는 꿈을 꾸었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아이에게 그날 밤 다시 호 랑이 꿈을 꾸고 호랑이와 싸워 그것을 죽이라고 시켰다. 노인들은 아이에게 방법을 일러주었다. 아이가 호랑이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나무랐다. 꿈에 큰 가치를 두는 세노이 부족은 성 관계를 갖는 꿈을 꾸면 반 드시 오르가즘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는 꿈속의 연인에게 선물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 다. 악몽 속에서 적대적인 상대와 마주치면 반드시 이겨야 했고,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에게 선물을 요구했다.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꿈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부족 사람들은 모두가 비상하 는 꿈을 꾸는 것이 기독교 세계의 세례와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미지의 나라에까지 날아가서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올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세노이 부족은 서양의 민속학자들을 매혹시켰다. 그곳에는 폭력이 나 정신병이 없었고, 스트레스나 정복의 야망도 없었다. 노동은 생 존에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엄격히 제한되었다. 세노이 부족은 1970년대에 그들이 살고 있던 숲이 개간되면서 사 라졌다.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그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전날의 꿈을 매일 아침 기록한 다음, 제목을 달고 날짜를 써 넣으 라. 그리고 세노이 부족처럼 그 꿈에 대해서 아침 식사 시간 같은 때에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라. 꿈의 항공학에 관한 기본 규칙 을 활용해서 한층 더 멀리 나아가라. 잠이 들기 전에 어떤 꿈을 꿀 것인가를 결정하라. 산들을 솟아오르게 하는 꿈, 하늘의 색깔을 바 꾸는 꿈, 낯선 땅을 찾아가는 꿈, 자기가 선택한 동물들과 만나는 꿈 등 어느 것이라도 좋다. 꿈속에서는 누구나 전지 전능하다. 꿈의 항공학의 일치 시험은 비 행이다. 팔을 벌려 활공하고 급강하하고 다시 선회하면서 상승하는 것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꿈의 항공학은 점점 높은 수준의 훈련을 요구한다.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과 표현력이 증대된다. 어린이들은 다섯 주만에 꿈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어른들은 몇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자종 브라젤은 보면대 옆에서 조나탕을 만났다. 그는 조나탕이 꿈 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실은 자기도 개미 꿈을 꾸었노라고 고 백했다. 꿈속에서 개미들이 모든 사람들을 죽였고 살아남은 것은 <웰즈의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메르쿠리우스 임무와 반체제 개미들, 새 여왕 클리푸니 때 문에 생긴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종 브라젤은 니콜라가 왜 공동체 의례에 항상 불참하느냐고 물 었다. 조나탕은 웰즈는 아이가 아직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며 아이에게 뭔가 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그런 행위 를 권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브라젤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얼버무렸다. "우리의 깨달음을 아이에게 주입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밀교의 종파가 아니고, 누구를 개종시키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니콜라는 자 기가 원할 때 입문하게 되겠지요. 입문 의식은 어찌 보면 죽음과도 같습니다. 고통이 따르는 탈바꿈이지요. 그것은 자기가 원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영향을 준다고 되는 건 아니예요. 저는 아이에게 그것 을 요청할 생각은 없어요." 서로를 이해한 두 사람은 느릿느릿 잠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기 하학적인 도형 속에서 비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들은 하늘에 돋을새 김된 숫자들을 통과했다. 1. 2. 3. 4. 5. 6. 7. 107. 황금의 벌집 안에서 수직 8자춤. 뒤집어진 8자춤. 나선 8자춤. 비스듬한 8자춤. 겹친 8자춤. 수평 8자춤. 태양을 기준삼아 각도를 바꾼다. 곧바로 3단계 경보이다. 공중의 파발 벌이 전한 바에 따르면 공격 군은 날아다니는 개미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왕벌이 의아해 한다. 날아다니는 개미는 암개미와 수개미뿐이고 그것도 공중에서 교미를 하기위해서만 날지 않는가! 그러나 파발 벌들은 확신에 차 있다. 분명히 개미들이 아스콜레인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개미들은 수천 머리 높이에서, 초 속 300머리로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꿀벌들이 8자춤을 추며 대화를 나눈다. <<모두 몇 마리인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벨로캉의 불개미들인가?>> <<그렇다. 그들이 이미 파발 벌 다섯을 죽였다.>> 일벌 스무 마리가 여왕벌 자하하에르샤를 둘러싼다. 여왕벌은 두 려워할 것 없다고 부하들에게 이른다. 여왕벌은 밀랍과 꿀의 전당인 황금의 벌집을 금성 철벽으로 생각한다. 꿀벌의 한 군체는 8만 마리 까지 거느릴 수 있다. 황금의 벌집은 6천 마리밖에 거느리고 있지 않지만 그 일대에서 모두 두려워하는 군체이다. 꿀벌의 세계에서는 아주 드물게도, 이웃 둥지에 대한 침공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자하하에르샤는 23호가 했던 이야기들을 되새기고 있다. 왜 그 개 미는 그런 것을 알려주었을까? 그 개미는 손가락들을 치러 가는 원 정군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머니도 언젠가 손가락에 대해서 말씀하 신 적이 있었다. <<손가락들은 곤충들하고는 다르단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 지. 손가락들과 곤충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손가락들을 보면 모 른 체하려무나. 그러면 그들도 너를 모른 체 할 게다.>> 자하하에르샤는 어머니 말씀에 그대로 따랐다. 백성들에게도 그렇 게 가르쳤다. 그들을 공격하지도 말고 돕지도 말라고 일렀다. 여왕벌은 부하들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꿀을 좀 먹어두라고 지시한다. 꿀은 생명의 양식이다. 꿀은 완전히 소화, 흡수될 수 있 는 먹이이다. 그만큼 순수한 물질인 것이다. 자하하에르샤는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벨 로캉 개미들은 자기들이 그냥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러 오는 것일 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협상이지 전쟁이 아니다. 개미 몇 마리가 공중에 있다 해서 그들이 공중전의 기술을 터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개미들이 파발 벌들을 쉽게 해치우기는 했지만 아 스콜레인 군대에 맞서서도 그럴 수 있을까? 어림도 없지. 우리 군대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맞 서 싸울 것이고 개미들과 벌이는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여왕벌은 곧바로 병정벌들의 사기를 북돋는 벌들을 소집한다. 그 들은 흥분을 잘하고 다른 벌들을 흥분시킬 줄 아는 벌들이다. 자하 하에르샤는 전투 준비를 명한다. <<벨로캉 개미들을 안에까지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공중에서 그들을 차단하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정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밀집 편대를 지어 이륙한다. 말벌과 전투할 때처럼 V자 대형을 짓는다. 황금의 벌집 안에 있는 모든 날개가 300헤르쯔로 진동한다. 전동 기가 윙윙거리는 소리같다. 브즈즈즈즈즈즈즈즈즈 브즈즈즈..... 독침들은 숨겨져 있다. 그것 들은 적을 죽일 때만 튀어나올 것이다. 108. 방향 전환 샤를 뒤페롱은 집무실에 자크 멜리에스를 불러다 놓고 방 안을 빙 빙 돌고 있었다. 그의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이거 원 내가 그 꼴이 되었으니." 자크 멜리에스는 <그런 일이야 정계에서는 다반사지요>라고 말하 려다가 꾹 참았다. 뒤페롱이 한바탕 퍼부을 기세로 다가왔다. "나는 자네의 재능을 믿었네. 그런데 웰즈 박사의 딸을 왜 잡아 넣어가지고 웃음거리가 되나 그래. 그것도 신문 기자를 말이야." "그 여자는 제가 사건의 단서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 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집에서 개미를 키우고 있었고요,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개미들이 제 방에 쳐들어왔습니다."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하나? 개미가 어디 자네만 공격하던 가? 나도 숲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미들에게 공격을 당했잖은가." "아참, 아드님은 괜찮습니까?" "완전히 회복되었지. 그런데 정말 희한하더군. 의사는 벌에 쏘였 다고 진단하더라고. 개미떼에 뒤덮여 있었다는데도 우리 애의 상처 가 벌에 쏘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거야. 그런데 벌에 쏘였을 때 맞는 혈청 주사를 놓으니까 금방 나아버렸지 뭔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지." 국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제 개미라면 넌덜머리가 나. 그래서 지방 의회에 방충 사업 계 획을 입안해 달라고 요청했지. 퐁텐블로 숲에 DDT를 살포해서 벌레 들을 박멸하면 시민들이 몇 년 동안 안심하고 소풍을 즐길 수 있을거야." 뒤페롱 국장은 커다란 레장스 책상 뒤로 가 앉으면서 불만이 가시 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이미 웰즈 양을 석방하도록 지시했네. 시녜리아즈가 살해당함으 로써 자네가 체포한 용의자는 무죄가 입증된 셈일세. 우리 꼴이 말 이 아니야.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해." 멜리에스가 항변할 기미를 보이자 국장은 화를 내며 말했다. "웰즈 양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 최대한 사과하고 응분의 보상을 하라고 지시해 놓았네. 그렇다고 여자가 경찰 헐뜯는 기사를 안 쓸 리는 없겠지만. 결국 경찰의 체면을 세우려면 한시바삐 진범을 잡는 수 밖에 없어. 피살자 가운데 하나가 자기 피로 <푸르미 FOURMIS>라 고 단어를 써놓고 죽지 않았는가 말일세. 전화 번호부를 뒤져보면 알겠지만 푸르미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14명밖에 안돼. 나야 수사의 수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힘을 다해 푸르 미라는 단어를 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대번에 그게 살인자의 성 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 방향으로 수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나" 멜리에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럼, 당장 착수하게, 멜리에스 경정. 이번엔 실수 없도록 하게." 109. 백과 사전 분봉 꿀벌의 세계에서 분봉은 특이한 의식을 거쳐 이루어진다. 도시이 자 왕국인 하나의 군체가 번성의 절정기에 이르러 느닷없이 분봉을 하기로 결정한다. 여왕벌은 백성들을 번영으로 이끌고 나서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들, 즉 왕국의 영토, 안락한 터전, 화려한 궁궐, 둥 지 안의 밀랍과 꽃가루와 꿀과 로열 젤리 등을 포기하고 떠난다. 그 러면 여왕벌은 그것들을 누구에게 물려주는가? 갓 태어난 벌들에게이다. 여왕벌은 일벌들을 데리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른 곳에 터를 잡는다. 여왕벌이 떠나고 몇 분 후, 어린 벌들은 버려진 왕국에서 잠을 깬 다. 어린 벌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본능으로 알고 있다. 비생식 일벌들은 서둘러 생식 암벌들이 부화하는 것을 돕는 다. 성스러운 알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들이 알에 서 나와 최초의 날갯짓을 경험한다. 제일 먼저 걷기 시작한 암벌이 대뜸 다른 암벌들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 다른 암벌들에게 달려들어 위턱으로 그들을 눌러버린다. 그 암벌은 일벌들이 밑에 깔린 암벽들을 빼내지 못하게 막고는 독침으 로 자매들을 찔러버린다.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안도감도 커진다. 행여 어린 왕녀들을 보호 하려는 일벌이 있으면, 제일 먼저 깨어난 암벌이 날갯짓으로 대갈일 성한다. 벌집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보통의 날갯소리와는 사 뭇 다르다. 그러면 신하들은 단념의 뜻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살생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둔다. 그러한 공격을 모면하는 암벌들이 간혹 있는데 그러면 암벌들끼리 결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암벌만이 남게 되면 상대 를 독침으로 찌르는 자세를 결코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일 이 있어도 한 마리의 암벌은 살아남아야 한다. 오로지 왕국을 건설 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히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둘이 동시에 죽음 으로써 둥지가 부모 잃은 자식 꼴이 되어버리는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암벌은 둥지에서 나와 수컷들과 비행하면 서 정받이를 한다. 왕국을 한두 바퀴 돌고 돌아와 암벌은 알을 낳기 시작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10. 매복 꿀벌들의 비행 편대가 위풍 당당하게 공기를 가른다. 아스콜레인 꿀벌 하나가 옆에서 날고 있는 동료에게 신호를 보낸다. <<저 수평 8자춤을 보게. 벨로캉 개미들이 날고 있다는 것을 우리 파발 벌들이 분명히 알려주고 있네.>> 다른 꿀벌이 자신감을 가지려고 애쓰며 대꾸한다. <<날아다니는 건 생식 개미밖에 없네. 아마 떼지어 결혼 비행을 하는 걸거야. 그것들이 뭐 공격다운 공격을 할 수 있겠어?>> 그 꿀벌은 자신의 힘과 자기네 군대의 힘을 의식하고 있다. 언제 든 무모한 불개미들의 딱지를 구멍낼 태세가 되어 있는 배 꿎의 뾰 족한 침, 자기에게 힘을 줄 내장 속의 꿀, 개미들에게 괴로움을 안 겨줄 독, 뒤에 있는 태양마저도 다가오는 개미들의 눈을 멀게 한다. 한 순간, 자기들의 무모함 때문에 바싼 대가를 치르게 될 그 곤충 들에 대한 연민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파발벌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꿀벌들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저 개미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 저 멀리에서 두루마리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흥분한 꿀벌 한마리가 제안한다. <<저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녀석들이 나타나면 위에서 덮치자.>> 그러나 꿀벌들이 날갯짓 100번이면 닿을 만큼 구름에 접근하자마 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꿀벌들은 자기들의 더듬이, 자기들의 눈을 의심한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날갯짓 회수가 초당 300에서 50으로 떨어진다. 꿀벌들의 비행은 잿빛 구름을 목전에 두고 제동이 걸린다. 어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