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개미 제3장 세 편의 오디세이아 마침내 56호는 자기 도시를 건설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냈다. 그것은 하나의 둥그스름한 둔덕이었다. 56호가 그 둔덕을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비 주비캉과 글로비듀캉이다. 그렇다면 연방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56호가 그 장소를 조사하고 있다. 땅은 단단한 편이고 잿빛을 띠 고 있다. 새 여왕개미는 토질이 더 부드러운 곳을 찾아보지만 어디 나 만만치 않다. 56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첫번재 방을 만들려고 위턱을 쑤셔넣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땅이 흔들린다. 지 진인 듯도 한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국지적이다. 56호가 다시 땅 에 위턱을 박는다. 땅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더 심하 다. 둔덕이 솟아오르더니 왼쪽으로 미끄러진다.... 일찍이 이상한 일들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언 덕이 살아 움직이다니! 언덕은 이제 빠르게 나아가면서 키 큰 풀들 을 헤치며 덤불을 뭉갠다. 56호가 놀란 마음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또 하나의 둔덕이 다가 온다. 이게 무슨 행렬일까? 둔덕에서 미처 내려오지 못한 채 56호는 날뛰는 둔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 언덕이 사랑 이라도 나누려는 모양이다. 언덕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서 로를 더듬고 있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56호가 올라앉은 둔덕이 암컷이다. 수컷이 천천히 암컷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돌같이 생긴 머리가 조금씩조금씩 빠져나온다. 무시무시한 이무깃돌처럼 생긴 머 리가 입을 벌린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젊은 여왕개미는 그곳에 자기 도시를 세우겠 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둔덕 아래로 굴러내려와서야 56호는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서 빠져나왔는지를 깨닫는다. 언덕은 머리뿐만 아니라 발톱이 달린 네 개의 발과 세모꼴의 꼬리도 가지고 있다. 56호는 거북을 생전 처음으로 본 것이다. 음모가들의 시대 인간 사회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조직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복잡 한 위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관리자들',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 이 가장 제한된 권리를 지닌 '창조자들' 집단을 지도하거나 관리하 고, '중개자들'이 분배를 구실로 창조자들의 노동 산물을 가로챈 다.... 개미 세계에 일개미, 병정개미, 생식 개미의 세 계급이 있듯 이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는 관리자, 창조자, 중개자 라는 계층이 있 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두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권 력 투쟁은, 한 사회가 창조자들이 우대받는 체계에서 관리자들이 특 권을 누리는 체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학 자이자 '붉은 군대'의 창설자인 트로츠키가 음모가인 스탈린에게 밀 려남으로써 창조자의 시대에서 관리자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사 회 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 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 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모을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4000호와 103683호는 동쪽 흰개미 도시로 통하는 냄새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그 길에서 여러 곤충들과 마주친다. 동그란 부식토 덩 이를 미느라고 여념이 없는 풍뎅이들도 있고,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종류의 탐험 개미들도 있으며, 자기들을 겨우 알아 볼 만큼 아주 커다란 종류의 것들도 있다.... 그만큼 세상에는 개미의 종류가 많은 것이다. 1만 2천 종 이상의 개미가 저마다 고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가장 작은 것은 겨우 수 백 미크론에 불과하며 가장 큰 것은 7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불 개미는 중간에 속한다. 4000호가 마침내 방향을 찾은 듯하다. 저 푸른 이끼 웅덩이를 지 나 아카시아 덤불을 올라간 다음 노란 수선화들 밑을 지나야 한다. 그러면 고목 밑둥이 나오는데, 그 뒤로 가면 된다. 고목 그루터기를 지나자 과연 수송나물과 낙상홍 건너 저쪽에 동 쪽 강과 사테이 나루가 보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빌솅 내 말 들려요?" "잘 들립니다." "별일 없어요?" "네, 별문제 없습니다." "풀려나간 밧줄 길이를 보니 당신은 지금까지 480미터를 답파했군요." "그렇군요." "뭐가 보여요?" "별거 없습니다. 돌에 새김글이 몇 줄 있을 뿐입니다." "무슨 새김글인데요?" "밀교의 주문 같은데요, 하나 읽어볼까요?" "됐어요 빌솅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여왕개미 56호의 배가 한참 끓어오르고 있다. 뱃속에서 뭔가가 밀 고 당기고 꿈틀거린다. 장차 56호의 도시에 살게 될 생명들이 자발 없이 안달하고 있다. 이제 까다롭게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다. 56호는 검은빛이 도 는 황토 구덩이를 골라 거기에 알을 낳기로 한다. 골라놓고 보니 괜찮은 자리다. 주위에 난쟁이개미, 흰개미, 말벌 의 냄새도 없다. 게다가 벨로캉 개미들이 지나간 적이 있음을 알리 는 페로몬의 자취가 남아 있다. 56호가 땅의 냄새를 맡는다. 땅에는 희유 원소가 많다. 습기는 충 분하되 지나치지 않다. 윗부분이 불거져나온 작은 덤불도 있다. 56호는 지름 100머리의 원 안에 땅 거죽을 말끔히 치운다. 그것이 56호가 세우려는 도시의 가장 알맞은 형태이다. 힘이 다 빠지자 56호는 갈무리 주머니에 있는 먹이를 되올리려 한 다. 그러나 그것이 텅 빈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이제 비축된 에너지가 없다. 그러자 56호는 대뜸 자기 날개를 뽑아서 근육이 많 은 밑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렇게 영양을 섭취했으니 아직 며칠 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끝나고 나자 56호는 더듬이가 다 묻힐 정도까지 구멍 안 으로 들어간다. 56호가 공격력 없는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그 기 간 동안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해야 한다. 56호가 기다린다. 몸 안에 들어 있는 도시가 시나브로 깨어나고 있다. 그 도시의 이름을 무어라 지을까? 우선 여왕의 이름을 지어야 한다. 개미 세계에서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자율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미, 병정개 미, 생식 개미는 출생의 순서에 따라 붙여지는 숫자로 이름을 대신 한다. 그러나 알을 낳은 여왕개미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래! 56호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의 추격을 받다가 떠 나왔다. 그러니 '추격 당한 여왕'이라고 이름을 지으면 된다. 아니 야. 그보다는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려다가 추격을 당했으니까 그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불가사의에서 태어난 여왕의 도시'라 명명하기로 한다. 그것을 개미의 냄새 언어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냄새가 난다. 클리-푸-캉 두 시간 후, 다시 무선 호출. "별일 없어요, 빌솅?" "저희는 어떤 문 앞에 있습니다. 그냥 보통 문입니다. 문 위쪽에 뭔가 길게 새겨 놓은 글이 있는데요. 옛날 문자로 말입니다." "뭐라고 씌어 있는데요?" "읽어볼까요?" "그래요." 빌솅 경정이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읽기 시작한다. 원문을 조금씩 조금씩 해독하며 읽느라고 목소리가 느리고 엄숙하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위대한 '신비'를 깨우친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맨 먼저 힘겨운 애움길을 무작정 달린다. 어둠 속을 나아가는, 불 안하고 끝없는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다음에는 종말을 앞두고 공포가 절정에 달한다. 전율, 부들거 림, 식은 땀, 격심한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향해 올라간다. 눈에 경이로운 빛이 비치고 영혼은 노랫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울 려퍼지는 순결의 땅과 풀밭을 지난다. 성스러운 말들이 신심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완벽한 인간은 자유로와지고, '신비'를 찬양한다. 치안 대원 한 사람이 전율을 느낀다. "그 문 뒤에 뭐가 있어요?" 워키토키의 음성이 물었다. "글쎄요. 열어보겠습니다..... 여보게들 날 따라오게." 긴 침묵. "여보세요, 빌솅! 여보세요, 빌솅! 대답해요, 젠장, 뭐가 보여요?" 총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다시 긴 침묵. "여보세요, 빌솅, 이봐요, 대답해요!" "빌솅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쥐입니다. 쥐가 수천 마리입니다. 그놈들이 위에서 우리를 덮쳤 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놈들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총을 쓴 거예요?" "네. 이젠 그놈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뭐가 보이는지 얘기해 봐요." "여기는 온통 빨갛습니다. 벽에는 철광석의 광맥이 보이구요, 땅 에는 피가 있습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무선 연락을 계속 취하세요! 왜 자꾸 끊는거예요?" "허락해 주신다면, 멀리서 보내는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제 방식대 로 일했으면 하는데요." "하지만, 빌솅...." 딸깍. 빌솅이 통신을 끊어버렸다. 사테이는 엄밀히 말해서 나루가 아니며, 전진 기지도 아니다. 그 러나 벨로캉 개미들이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천혜의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옛날 '니'왕조의 선조 개미들이 이 강의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 은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개미에게 포기란 없다. 어떤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개미는 필요하다면 1만 5 천 가지 방식으로 1만 5천 번이라도 장애물을 머리로 들이박는다. 제가 죽거나 장애물이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런 행동 양식은 어떻게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개미 문명을 이룩하느라고 희생도 많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 다. 그러나 보람은 있었다. 결국 그 무모한 노력의 대가로 개미들은 언제나 어려움들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옛날 사테이 나루에서 탐험 개미들은 걸어서 건너는 것부터 시도 했다. 물이라는 장애물의 겉은 그들의 무게를 견딜 만큼 단단했지만 발톱을 걸 만한 데가 없었다. 개미들은 강의 가장자리에 스케이트장 위를 미끄러지듯 빙빙 돌아다녔다. 앞으로 두 발짝 간 다음 옆으로 세발짝, 그러다 첨벙 빠져 개구리들에게 잡아먹히곤 했다. 백여 차례의 시도가 보람없이 끝나고 수천 마리의 탐험 개미들을 희생시킨 후에, 개미들은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일개미들이 다리와 더듬이를 연결해서 건너편 강기슭에 이르는 사슬을 만드는 것이었 다. 그 실험은 강폭이 그렇게 넓지 않고 소용돌이 때문에 흔들리지 만 않았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24만 마리의 개미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개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의 여왕 뷰파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다리를 건설해 보려고 했다. 처음엔 나뭇 잎으로, 다음엔 잔가지로, 그 다음엔 풍뎅이 시체로, 그 다음엔 자 갈로 다리를 놓으려 했다. 그 네 차례의 실험을 하느라고 67만 마리 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그럼으로써 뷰파니는 재임중에 벌인 모든 전 쟁에서 잃은 것보다 더 많은 백성을 이상적인 다리를 건설하는 데 바친 것이다. 그럼에도 여왕은 단념하지 않았다. 동쪽 영토의 한계를 뛰어넘어 야 했다. 다리 건설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여왕은 북쪽 발원지로 거 슬러 올라가 강을 우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차례 탐험대를 보냈으나 어느 탐험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8천 마리 사망. 그 다음 에 여왕은 개미들이 헤엄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만 5천 마리 사망. 그 다음엔 개구리들을 길들이기로 했다. 6만 8천 마리 사망. 커다란 나무 위에서 나뭇잎을 타고 뛰어내리면 어떨까? 52마리 사 망. 굳은 꿀을 다리에 달고 물 밑으로 걸어가면 어떨까? 27마리 사 망. 전설에 따르면, 개미들이 여왕에게 이제 도시에는 온전한 일개 미가 열 마리밖에 안 남았으니 그 계획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진언을 하자, 여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유감스럽도다, 구상해 놓은 게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그러나 연방의 개미들은 기어코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30만 년 뒤, 리푸르뤼니 여왕이 백성들에게 강 밑 으로 터널을 파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너무나 간단해서인지는 몰라 도 전에는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해냈다. 그리하여 개미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테이로부터 강 밑으로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103683호와 4000호가 조금 전부터 그 유명한 터널 안을 걷고 있 다. 그곳은 습기가 많기는 하나 물이 새지는 않는다. 흰개미 도시는 건너편 강기슭에 있다. 흰개미들도 이 똑같은 지하도를 이용해서 연 방의 영토를 침범한다. 지하도 안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흰개 미든 불개미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그런 합의가 이제까지 암 묵적으로 지켜져왔다. 그러나 둘 중의 어느 한쪽이 자기의 우위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다른 쪽에서는 입구를 막거나 통로에 물을 가득 채워버리려 할 것이다. 두 병정개미가 긴 통로 안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터널 위의 물이 차가워지면 지하는 훨씬 더 차가 워진다. 추위가 그들의 동작을 굼뜨게 만들고 있다. 걷기가 점점 힘 들어진다. 거기에서 잠들면 영원히 겨울잠을 자게 된다. 그들은 그 점을 알고 있다. 출구에 도달하려고 그들이 허위허위 기어간다. 갈 무리 주머니에 남겨둔 단백질과 당분도 바닥나간다. 근육이 뻣뻣해 진다. 드디어 출구다. 밖으로 나온 103683호와 4000호는 몸이 너무 차가워져 있는 탓에 길 한복판에서 꾸벅거리며 존다. 창자 속처럼 캄캄한 동굴 속을 그렇게 한줄로 늘어서서 나아가다 보니, 빌솅은 내심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이 일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어딘가 끝이 있 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 말이 없 었다. 여섯 치안 대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빌솅은 자기가 정 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땅히 총경으로 승진을 해서 봉급다운 봉급을 받았어야 했 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남들보다 빨리 출근했으며 이미 10여 건의 사건을 해결한 바 있었다. 단지 두망이라는 여자가 승진을 가로막아 왔을 뿐이다. 그는 자기 처지에 갑자기 화가 났다. "빌어먹을!" 뒤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정지했다. "괜찮아요? 소장님?" "그래, 그래, 괜찮아. 계속 가세." 혼자말을 지껄이다니! 창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마음을 잡도 리하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수심에 빠져들었 다. 그가 두망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두망이 여자라서가 아니 라 무능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할망구는 겨우 읽고 쓸 줄만 알 았지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이제껏 수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으면서 180명 경찰관들의 꼭대기에 올라앉았다는 게 말이나 돼? 게다가 봉 급은 나의 네 배나 되고 말이야. 이러고도 경찰에 들어오라고 사람 들을 꼬실 수 있는 거야? 그 여자는 그뿐인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쓸데없이 끼여들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해대는 꼴이 영낙없 는 잔소리꾼 시어머니라니까. 그 여자는 부하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 고,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저기 과시하느라 고 자기 임무를 태만히 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던 중에 문득 예전에 보았던 기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두꺼비에 관한 것이었다. 두꺼비들은 발정기가 되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덤벼든다. 암컷이건 수컷이건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돌멩이에도 덤벼든다. 두꺼 비들은 상대의 배를 눌러서 자기들이 수정하려는 알이 나오게 한다. 암컷을 누르는 두꺼비들에게는 노력한 보람이 나타난다. 수컷의 배 를 누르는 두꺼비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상대를 바꾼다. 돌멩 이를 누르는 두꺼비들은 앞다리가 아파서 누르기를 포기한다. 그런데 특수한 경우가 하나 있다. 흙덩어리를 누르는 두꺼비들의 경우이다. 흙덩어리는 암컷의 배만큼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두꺼비 들은 쉬지 않고 눌러댄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그런 행위를 몇 날 며칠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그 두꺼비들은 자기들이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빌솅 경정은 그것을 떠올리면서 빙긋 웃었다. 솔랑쥬가 착한 사람 이라면,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는 행동 말고 보다 효과적인 다른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으로 족하리라. 그러나 솔랑쥬에게 그런 설명이 통할 거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경찰 일에 부적합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침울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말 없이 내려가면서 그들은 모두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 부분은 이 모험이 끝나고 나면 특별 수당을 요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아내와 자녀들, 고물 자동차나 맥주 한 잔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보다 더 기분좋은 일이 있을까? 쓸모가 있건 없건, 중요하건 덜 중요하건, 마음에 넘쳐나는 이 생각의 흐름을 중 단시키는 것. 다시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올 수 있기는 하되,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 텅 빈 상태가 되는 것. 근 본으로 돌아가는 것.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는 것. 무가 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갈망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아침 햇살이 비쳐들자, 진흙투성이의 강둑 길 위에서 밤새도록 꼼 짝 않고 있던 두 병정개미의 몸에 다시 생기가 돈다. 103683호의 낱눈들이 하나하나 다시 움직이면서 그가 맞닥뜨린 새 로운 환경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103683호의 위쪽에서 거대 한 눈 하나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공포에 질린 젊은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태울 듯한 강렬한 냄새를 발한다. 그 눈도 겁을 먹고 재빨리 뒤로 물러선다. 그와 함께 그 눈 이 달려 있는 기다란 뿔도 뒤로 물러선다. 두 병정개미가 동그란 조 약돌 아래로 숨는다. 달팽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달팽이들이 더 있다. 모두 다섯 마리의 달팽이들 이 껍데기 속에 숨어 있다. 두 개미가 그중 하나에게 다가가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개미들은 달팽이를 물어뜯어보려고 하지만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는 탓에 마땅히 물어뜯을 데가 없다. 그 움직이는 둥 지는 난공 불락의 요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103683호의 마음에 떠오른다. '안전한 것이 나 의 가장 나쁜 적이다. 안전은 나의 경각심과 진취성을 잠재운다.'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저 얼간이는 움직이지 않는 풀이나 뜯어먹 으면서 언제나 안일하게 살아왔다고 103683호는 생각한다. 저들은 싸우거나 유혹하거나 추격하거나 도망쳐본 적이 없고, 목숨을 걸고 위험에 맞서본 적도 없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진보가 없었다. 103683호가 문득 한 가지 충동에 사로잡힌다. 달팽이들을 껍데기 속에서 나오게 해서 그들이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걸 일깨우고 싶어진 다. 바로 그때, 다섯 달팽이 가운데 두 마리가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신경의 긴장을 풀 생각으로 껍데기 밖으로 몸을 내민다. 달팽이들이 서로 붙어서 배와 배를 맞댄다. 끈끈물이 맞붙으면서 두 몸이 하나가 된다. 온몸으로 하는 끈적거리는 키스다. 달팽이들 이 생식기를 서로 비빈다. 두 달팽이 사이에 아주 천천히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다. 오른쪽에 있는 달팽이가 딱딱한 침처럼 생긴 음경을 알이 가득 들 어 있는 왼쪽 달팽이의 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왼쪽 달팽이는 아직 황홀경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 달팽이는 이번엔 제 음경 을 세워서 상대의 질 속에 집어넣는다. 두 달팽이는 삽입하는 즐거움과 삽입당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 고 있다. 달팽이들은 질과 음경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두 생식기의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른쪽의 달팽이가 처음으로 수컷으로서의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 달팽이는 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기이하게 몸을 비틀면서 팽팽해 진다. 암수 한몸의 그 동물들이 네 개의 더듬이를 서로 결합한다. 끈끈물이 거품으로 되었다가 방울이 된다. 찰싹 달라붙은 채 느릿느 릿한 동작으로 흥분을 고조시켜가는 관능의 춤이다. 왼쪽의 달팽이가 제 더듬이를 세운다. 그도 수컷으로서의 오르가 즘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몸뚱이에 새 로운 관능의 물결이 밀어닥친다. 이번에는 질이 오르가즘을 느낀다. 오른쪽 달팽이도 암컷으로서의 쾌감을 맛본다. 그러고 나자 두 달팽이의 더듬이가 아래로 처지고, 사랑의 화살이 뒤로 물러나고 질이 다시 닫힌다. 그 행위를 다 끝내고 나자 사랑을 나눈 두 달팽이는 같은 극성을 가진 자석으로 변해 서로를 밀어낸 다. 사랑을 끝낸 뒤의 그 모습은 이 세상 만큼이나 오래된 동물계의 현상이다. 쾌락을 주고받는 기계 노릇을 마친 두 달팽이가 천천히 멀어져간다. 상대방의 정자로 자기 알을 수정시킨 채로. 103683호가 그 아름다운 장면에 충격을 받아 넋을 잃고 있는 사 이, 4000호가 한 달팽이에게 덤벼든다. 4000호는 사랑 뒤끝의 피곤 함을 틈타 두 달팽이 중에서 커다란 쪽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달팽이들이 다시 껍데기 속으로 몸을 숨긴 것이다. 늙은 탐험 개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제까짓 것들이 다시 기어나오 지 않고 배기랴 싶은 것이다. 4000호가 오랫동안 물러서지 않고 기 다린다. 마침내 겁먹은 눈 하나가 그 다음엔 더듬이 하나가 껍데기 밖으로 비집고 나온다. 그 복족류 동물이 제 작은 목숨 주위의 세계 가 어떠한지를 알아보려고 나온다. 두 번째 더듬이가 나오자 4000호가 달려들어 위턱으로 힘껏 눈을 물어뜯는다. 눈을 잘라내기라도 할 기세다. 그러나 그 연체 동물이 몸을 오그리면서 소용돌이 진 껍데기 안으로 탐험 개미를 빨아들인다. 후룩! 4000호를 어떻게 구하지? 103683호가 숙고한다. 세 개의 뇌 가운데 하나에서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103683호는 위턱으로 조약돌을 하나 들어서 껍데기를 힘 컷 두드리기 시작한다. 망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이 껍데기는 무른 묵재 같은 것이 아니다. 톡톡거리는 소리는 달팽이에 게 음악 소리를 만들어줄 뿐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103683호가 이번에는 지렛대를 찾아낸 것이다. 103683호는 달팽이를 뒤집어엎을 생각으로 단단한 잔가지 하나를 들고 작은 돌을 축으로 삼아 지렛대에 온 무게를 싣는다. 여 러 번 되풀이하자 껍데기가 앞뒤로 흔들리더니 뒤집어진다.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위를 향해 있다. 마침내 해낸 것이다! 103683호가 나선을 따라 기어올라가 우물 속처럼 텅 빈 껍데기 아 래로 몸을 기울이다가 그 연체 동물을 찾아 뛰어들어간다. 한참을 미끌어져들어가자 끈적거리는 갈색 물질이 와닿는다. 미끈거리는 끈 끈물속을 헤쳐나가노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103683호가 물렁물렁 한 살덩이를 찢기 시작한다. 개미산을 사용할 수 없다. 자칫하면 자 기가 그 산에 녹아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끈끈물에 이내 새로운 액체가 섞여든다. 달팽이의 투명한 피가 흐 르는 것이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달팽이가 몸을 축 늘어뜨리면서 두 개미를 껍데기 밖으로 밀어낸다.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난 두 개미가 한참 동안 서로 더듬이를 어루만져 준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된 달팽이가 도망을 가려 하지만 살덩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 두 개미가 달팽이를 다시 붙잡아 가뿐하게 죽여버린 다. 눈을 겸하고 있는 더듬이를 내놓고 일이 돌아가는 판세를 지켜 보던 다른 네 달팽이는 겁에 질려서 껍데기 맨 밑바닥에 바짝 움크 리고 있다. 그들은 하룬 낮이 다가도록 그렇게 꼼짝않고 있을 것이다. 103683호와 4000호는 그날 아침 터지도록 달팽이 고기를 먹었다. 끈끈물에 목욕을 하면서 달팽이를 잘게 썰어 따뜻한 스테이크를 먹 듯이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주머니처럼 생긴 달팽이의 질 안에 알 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달팽이 캐비어다! 그것은 불개미들 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로서, 지방, 당분, 단백질 등등의 귀중한 원천 이다. 갈무리 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태양에너지를 흠뻑 받은 두 개미가 발걸음도 경쾌하게 남동쪽으로 가는 길을 다시 접어들었다. 페로몬 분석 (34번째 실험) 나는 질량 분광계와 착색판을 이용해서 개미들이 의사 소통할 때 발산하는 냄새 분자 가운데 몇 가지 성분을 알아낸다. 그것을 토대 로 나는 어떤 수개미와 일개미가 나누는 대화를 화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화는 밤 10시에 엿들은 것인데, 수개미가 빵 부스러기 하나를 발견하면서 나눈 것이다. 그들이 발산한 대화는 이 런 것이었다. -메틸-6 -메틸-4 헥산-3(두 차례 발산) -세탄 -옥탄-3 그런 다음에 다시, -세탄 -옥탄-3(두 차례 발산)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길을 가던 중, 두 개미는 다른 달팽이들을 만난다. 달팽이들은 모 두 껍데기 속으로 숨는다. 마치 그들 사이에 '저 개미들은 위험한 놈들이다'라는 이야기가 오고가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몸을 감추 지 않는 달팽이가 하나 있다. 그 달팽이는 여보란 듯이 몸을 드러내고 있다. 의아하게 여긴 두 개미가 다가간다. 그 달팽이는 무거운 덩어리에 얻어맞아 완전히 으깨어져 있었다. 껍데기는 산산 조각이 나고 몸이 터져서 넓게 퍼질러져 있었다. 103683호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흰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혐의를 둔다. 적의 도시가 가까이 있음에 틀림없다. 103683호가 바싹 다가 들어 시체를 살핀다. 달팽이는 넓적하고 빠르고 아주 힘이 센 어떤 것에 맞았다. 그 정도의 비밀 무기라면 라숄라캉의 기지를 쑥대밭으 로 만들고도 남을 것 같다. 103683호가 마음을 굳게 먹는다. 꼭 흰개미 도시에 잠입해서 비밀 무기의 정체를 알아내든지, 탈취하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연방이 쑥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줄기 강한 바람이 일어난다. 발톱으로 땅을 그러 쥘 겨를도 없이 바람이 두 개미를 하늘로 날려버린다. 두 개미는 날 개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날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지하실 밖에 있는 대원들이 졸음을 느낄 정도가 되었 을 때, 워키토키가 다시 직직거렸다. "여보세요? 국장님? 드디어 바닥에 닿았습니다." "그래요? 뭔가 보여요?" "막다른 길입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벽이 있습니다. 아주 최 근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가 끝인 것 같습니다. 새김글이 또 하 나 있는데요." "읽어봐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그게 다예요?" "아니요, 글자판이 하나 있습니다. 글자판을 눌러서 질문에 답하 라는 것 같습니다." "옆에 다른 통로는 없어요?" "예." "다른 사람들의 시체도 안 보여요?" "예, 전혀 없어요. 음, 그런데 발자국은 있습니다. 바로 벽 앞에 발자국들이 많이 있군요." "이제 어쩌죠, 다시 올라가나요?" 치안 대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빌솅은 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저 수수께끼와 글자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콘크리트와 강철판들은 무엇인가? 어떤 기계장치 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이 벽을 통해 사라지 지 안았다면 달리 사라질 데가 없지 않은가? 뒤에 있는 치안 대원들이 계단 위에 걸터앉아 있는 사이, 그는 글 자판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수께끼의 답이 되는 문자들을 정확한 순서에 따라 눌러야 할 것 같았다. 조나탕 웰즈는 자물쇠 회 사에 근무했었다. 그가 건물 현관의 보안 장치를 본따 여기에 기계 장치를 설치한 게 틀림없었다. 암호 단어를 찾아내야 한다고 빌솅은 생각했다. 빌솅이 치안 대원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네들, 성냥 있나?" 워키토키의 음성이 조바심을 내며 다그쳤다. "여보세요, 빌솅, 당신 뭘 하는 거예요?" "정말 저희를 돕고 싶으시면 성냥개비 여섯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보십시요. 답을 찾으신 다음에 저를 다시 불러주십시요." "날 놀리는거예요? 빌솅?" 마침내 폭풍이 잠잠해졌다. 바람이 이내 잦아들고, 나뭇잎과 먼지 와 곤충들이 다시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각각 무게에 따라 속도대로 떨어진 다. 103683호와 4000호는 서로 수십 머리의 간격을 두고 땅바닥에 떨 어졌다. 두 개미는 상처를 입지 않고 다시 만나 자기들이 떨어진 장 소를 조사한다. 자기들이 떠나온 고장과는 사뭇 다르게 돌이 많은 지역이다. 나무는 한 그루도 없고 풀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바 람을 따라 풀씨들이 날아들었던 모양이다. 두 개미는 자기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모른다. 두 개미가 그럭저럭 기운을 되찾고 그 을씨년스러운 장소를 떠나 려는데, 또다시 하늘이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구름장이 두터워지 고 시커매진다. 번개가 번쩍이면서 하늘을 가르고 대기 중에 충전되 어 있던 전기를 방출한다. 동물들은 모두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개구 리들은 물로 뛰어들고 파리들은 조약돌 아래에 몸을 숨기며 새들은 낮게 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두 개미도 급히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빗방울 하나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들은 멀리에 두드러지게 튀어나와 있는 관목 같기도 하고 바위 같기도 한 어떤 형체를 향해 서둘러 나아간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방울과 뿌옇게 피어오르는 비안개 속을 뚫고나아감에 따라 그 형체가 점점 또렷하게 모습을 드 러낸다. 그것은 바위도 아니고 관목도 아니다. 흙으로 지어진 하나 의 거대한 건물이다. 탑이 하나 있는데, 그 끝이 구름을 찌를 듯 아 스라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흰개미 도시다! 동쪽 흰개미 도시다! 103683호와 4000호는 무시무시한 장대비와 적의 도시 사이에서 오 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두 개미가 흰개미 도시를 찾으 려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곤란했다. 수백 년간 지 속되어온 두 종 간의 증오와 알력을 생각하자 그들은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어쨌거나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흰개미 도시를 염탐하러 온 것이 아닌던가 하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 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떨리는 몸을 가누며 건물의 발치에 있 는 어둠침침한 입구로 나아간다. 더듬이를 세우고 위턱을 벌리고, 다리를 살짝 구부린 채로,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게 싸우리라 는 각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흰개미 도시 의 입구에는 병정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기이한 일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두 개미가 거대한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호기심이 이미 가장 기본적인 신중함마저도 잊게 하고 있다. 그곳은 개미 도시와 모든 점에서 다르다. 벽은 흙보다 훨씬 더 단단한 물질로 되어 있 다. 진흙을 굳혀서 나무처럼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통로에는 습 기가 가득차 있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공기 중에는 탄산 가스가 이상하리만치 풍부하다. 벌써 기온 3도 때의 시간 길이만큼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아직 문 지기 개미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두 개미가 걸음을 멈추고 더듬이를 맞대며 상의한다. 이내 계속 가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렇게 나아 가면서 그들은 완전히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이 도시의 통로는 두 개미가 태어난 도시의 것보다 훨씬 구불구불한 미로이다. 뒤푸르 씨 샘에서 나오는 그들의 냄새 표지도 벽에 달라붙지 않는다. 그들 은 이제 지상층에 있는지 지하층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두 개미는 가던 길을 되돌아가보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 는다. 끊임없이 낯선 형태의 새 통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완 전히 길을 잃은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띄었다. 빛이다! 두 병정개미 의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려진 흰개미 도시 한복판에 그런 빛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두 개미는 빛이 나오는 곳으로 향애 나아간다. 주황색의 발광체가 하나 있는데 이따금 녹색이나 청색으로 바뀌기 도 한다. 좀더 강력한 빛을 한 번 번쩍거리더니 그 발광체가 꺼진 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다시 작동하면서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 빛이 개미들의 딱지에서 반짝거린다. 103683호와 4000호는 최면에 걸린 듯 그 지하 등대를 향해 달려간다. 빌솅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껑충거렸다. 드디어 답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치안 대원들에게 성냥개비들을 어떻게 놓으면 정삼각 형 네개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치안 대원들은 처음엔 얼떨 떨해 하다가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솔랑쥬 두망이 속을 끓이며 수수깨끼를 풀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찾았어요? 찾았어요? 답이 뭐예요?"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기 계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 다음엔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빌솅,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워키토키가 시끄럽게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지지직 소리), 길을 뚫었습니다. 뒤에 통로가(지지직 소리) 하나 있습니다. 오른쪽으로(지지직 소리) 통하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 다!" "잠깐! 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든 거예요?" 그러나 빌솅과 그의 부하들은 지하실 밖에서 내리는 지시를 더 이 상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워키토키의 스피커가 작 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선이 끊어진 듯했다. 수신은 할 수 없었지 만 그래도 송신은 할 수 있었다. "와! 대단한데요. 안으로 들어올수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둥근 천장이 있고 멀리에 빛이 있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잠깐! 당신 지금 빛이라고 했어요! 그 아래 빛이 있다고요?" 솔랑쥬 두망이 헛되이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그들이 저기 있습니다!" "누가 있단 말이예요? 시체가 있어요? 대답 좀 해봐요! 왜 이래요 정말!" "조심해."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잇달아 들리고 비명소리가 뒤따르더니 통신 이 끊겼다. 밧줄은 더 이상 풀리지 않은 채로 팽팽해져 있었다. 지 하실 밖의 경찰관들은 밧줄이 어디에 끼인 것이 아닌가 하고 잡아당 겨보았다. 처음엔 셋이 밧줄에 달려들었다가 나중에 다섯이 붙어 당 겨보앗다. 갑자기 밧줄이 느슨해졌다. 경찰관들은 밧줄을 끌어올려 그것을 부엌에서 식당까지 끌고나가 식당을 거대한 실패로 삼아 감았다. 마침내 밧줄의 끈이 나왔다. 이 빨로 갉은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끊어져 있었다. "어떻게 하죠, 국장님?" 경찰관 가운데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기자들한테 아무 얘기도 하지 마. 누구한테든 아무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이 지하실들을 되 도록 빨리 폐쇄해 버려. 수사는 끝난 거야. 사건을 완결지을 테니 다시는 이 저주받은 지하실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말라구. 자, 빨 리, 가서 벽돌하고 시멘트를 사 오게. 그리고 자네들 말이야, 치안 대원들의 미망인들을 잘 무마하라구." 정오를 갓 넘기고 나서, 경찰관들이 마지막 남은 몇 개의 벽돌을 쌓으려고 하는데, 아래에서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관들이 길을 틔웠다. 어둠 속에서 머 리 하나가 나타나더니 뒤를 이어 생존자의 몸 전체가 빠져나왔다. 치안 대원 한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이제 아래에서 일어난 일의 자 초 지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엄청난 공포로 일그러 져 있었다. 어떤 습격을 받은 듯 안면 근육의 일부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유령이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코 끝이 찢어져서 피가 철 철 흘렀다. 그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떨고 있었다. "나브나아아아나...." 그가 토막난 소리로 드듬거렸다. 그의 축 늘어진 입에서 끈끈한 침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가 상 처 투성이의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동료들이 보기에 그 상처는 칼 로 몇 차례 맞아서 생긱 것으로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습격을 받은 거야?" "난봐아아아았난!" "저 아래 살아 있는 사람이 또 있어?" "봤어나아아봐봐나보았!" 그가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의 상처 를 치료하고 그를 정신 치료 센타에 데려다준 다음, 지하실 문을 막았다. 두 개미의 다리가 땅에 아주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 빛의 세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두 개미가 오고 있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것 처럼 빛이 가볍게 떨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개미들이 정말 그 빛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할 양으로 가만히 걸음 을 멈춘다. 빛은 여전히 점점 더 밝아지면서 통로의 구석구석을 모 두 비추고 있다. 두 첩보 개미는 그 이상한 발광체가 눈치채지 못하 게 재빨리 몸을 숨긴다. 그런 다음 빛의 세기가 잠시 약해지는 틈을 타서 그 발광체에 덤벼든다. 이런, 알고 보니 인광을 발하는 딱정벌레의 하나다. 발정기를 맞 은 개똥벌레다. 침입자들을 발견하고부터 개똥벌레는 꽁무니에서 빛 을 발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침입자들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자, 살며시 약한 푸 른 색 빛을 다시 발하기 시작한다. 희미한 빛을 발하는 품이 아직 침입자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103683호가 적의가 없다는 뜻의 냄새를 보낸다. 딱정벌레라면 으 레 이해할 그 언어를 개똥벌레는 이해하지 못한다. 개똥벌레의 푸르 스름한 불칭이 사그라들더니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조금씩 불그스 름해진다. 개미들은 그 새로운 불빛이 의문의 뜻을 담고 있다고 추측한다. '우리는 이 흰개미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 늙은 탐험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처음에는 아무 대꾸가 없다 가, 잠시 뜸을 들인 뒤에 개똥벌레가 빛을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 것은 화났다는 표시 같기도 하고 기쁘다는 표시 같기도 하다. 의아 해 하면서 개미들이 기다린다. 개똥벌레가 점점 빨리 불빛을 깜빡이 면서 옆 통로로 간다.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개미들이 뒤를 따른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훨씬 더 선선하고 습한 곳이다. 어디선가 음 산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고뇌의 절규 같은 것이 냄새와 소리의 형태로 번져오고 있다. 두 탐험 개미가 의문을 갖는다. 그럼, 빛을 발하는 저 곤충은 말 은 못해도 듣기는 완벽하게 듣는다는 것인가? 그들의 의문에 대답하 기라도 하듯 개똥벌레가 긴 간격을 두고 불을 켰다 껐다. 한다. 마 치 '걱정하지 말고 나를 따라오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셋은 이상한 땅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서 마침내 통로들이 훨씬 넓은, 아주 추운 지대로 들어간다. 비명소리가 훨씬 격렬하게 들려온다. '조심해!' 4000호가 갑자기 페로몬을 발한다. 103683호가 몸을 돌린다. 개똥 벌레 불빛에 괴물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얼굴은 쭈글쭈글하 고 몸뚱이는 속이 비치는 하얀 수의를 걸치고 있다. 103683호가 강 렬한 공포의 냄새를 발한다. 그 서슬에 두 동료도 숨막히는 긴장을 느낀다. 미라 같은 그 괴물이 계속 다가온다. 괴물은 그들에게 말을 붙이려고 몸을 숙이는 듯하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땅바닥에 몸을 길게 뻗는다. 껍데기가 벌어지면서 괴물 같은 벌레가 갓 태어난 생 명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흰개미 번데기다!' 그 번데기가 어떤 구석진 곳에서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껍 데기가 갈라지게 되자 비명을 내지르면서 계속 몸을 뒤틀고 있는 것 이다. 비명소리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던 것이다. 미라는 그것 하나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더 있다. 그러니까 세 곤충은 흰개미의 영아실에 있는 셈이다. 수백 개의 번데기가 벽들에 기대어 수직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4000호는 그 번데기들을 조사 해보고 나서 일부는 돌보지 않아서 죽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살아 있는 번데기들은 유모 흰개미들을 부르느라고 고통에 찬 냄새를 뿜 어대고 있다. 유모 희개미들이 번데기들을 핥아주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온 2도 때의 시간 길이만큼 되었다. 번데기들은 모두 영양 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듬살이 곤충치고 단 1도 때 의 시간 길이만큼이라도 알들을 방치하는 곤충은 없다. 그렇다면? 똑같은 생각이 두 개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흰개 미 일개미들이 모두 죽고 번데기들만 남아 있다는 말인가! 개똥벌레가 다시 불빛을 깜박여 다른 통로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상한 냄새가 공기 중에 섞이고 있다. 103683호는 어떤 단 단한 것을 밟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이 없어서 병정개미는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없다. 개똥벌레가 다 가와 103683호의 다리를 비춘다. 병정 흰개미의 시체다! 완전히 하 얗고 배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개미와 닮은 점이 많다. 수백 마리의 하얀 시체가 땅에 깔려 있다. 엄청난 대학살이 벌어 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이한 것은 시체들에 상처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이 찾아 온 것이다. 죽어 있는 흰개미 도시의 거주자들은 여전히 일상적인 노동을 할 때의 자세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한 시체도 있고 위턱 사이에 나무를 물고 자르고 있는 듯한 시체들 도 있다. 이런 끔찍한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4000호가 시체들을 조사한다. 시체에는 아주 독한 냄새가 배어 있 다. 두 개미가 전율을 느낀다. 독가스다. 바로 이것 때문에 흰개미 도시로 파견했던 첫번째 첩보 분대가 사라진 것이고 마지막 파견대 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개미가 상처도 없이 죽었던 것이다. 두 개미가 냄새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가 스가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데기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 까? 늙은 탐험개미가 하나의 가설을 내놓는다. 번데기들은 면역적인 특별한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다. 번데기들은 고치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번데기들은 이제 독에 면역이 되어 있음이 틀림 없다. 바로 이 면역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곤충들은 돌연 변이 세대 를 만들어 어떠한 살충제에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치명적인 가스를 누가 흰개미 도시 안으로 끌어들였단 말인가? 그건 정말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 를 풀려고 나선 103683호에게 또 다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4000호가 나가고 싶다고 하자, 개똥벌레가 알았다는 뜻으로 불빛 을 깜박인다. 두 개미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흰개미의 어린 벌 레들에게 섬유소 몇 덩이를 건네주고 출구를 찾아 그 자리를 떠난 다. 개똥벌레가 그들의 뒤를 따른다.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병정 흰 개미의 시체 대신에 여왕 흰개미를 돌보던 일개미들의 시체가 나타 난다. 어떤 시체들은 위턱 사이에 여전히 알들을 물고 있다. 건물의 구조가 점점 복잡해 진다. 세모꼴의 단면을 가진 통로들에 는 여러 가지 기호들이 새겨져 있다. 개똥벌레가 불빛의 색깔을 바 꾸어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뭔가를 감지한 것임에 틀림없 다. 과연 통로의 안쪽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개미와 개똥벌레는 다섯 마리의 거대한 경비 흰개미가 지키고 있던 어떤 동굴 앞에 다다른다. 경비 흰개미들은 모두 죽어 있다. 동굴 입구는 스무 마리쯤 되는 작은 일개미들의 시체가 막고 있다. 두 개미가 시체들을 다리에서 다리로 건네가며 치운다. 그러자 거의 공처럼 생긴 동굴이 드러난다. 여왕 흰개미의 방이다. 아까 소리가 흘러나왔던 곳이 바로 여기다. 개똥벌레가 흰색의 아름다운 불빛을 비추자 민달팽이처럼 이상하 게 생긴 벌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 흰개미다. 여왕개미를 우스 꽝스럽게 흉내낸 모습이다. 자그마한 머리와 구부정한 가슴 아래에 길이가 50머리 가까이 되는 기이한 배가 길게 이어져 있다. 지나치 게 비대해진 안면 돌기가 경련 때문에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여왕 흰개미는 고통에 겨워 작은 머리를 흔들면서 소리와 냄새의 형태를 띤 울부짖음을 발하고 있다. 일개미들의 시체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었던 탓에 가스가 스며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 왕은 이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 배를 보게! 알들이 속에서 자라고 있는데 여왕은 혼자서 알을 낳을 수 없는 거야.' 개똥벌레는 천장으로 올라가더니 천진 난만한 모습으로 오렌지색 불빛을 비춘다. 조르쥬 드 라투르의 그림에 나오는 불빛 같다. 두 개미가 힘을 합쳐 애쓴 덕분에 커다란 알 주머니에서 알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생명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이라 할 만하 다. 고통이 덜어지자 여왕 흰개미가 소리치기를 멈춘다. 여왕 흰개미가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원초적인 형태의 냄새 언어로 누가 자기를 구해 주었느냐고 묻는다. 여왕 흰개미는 개미의 냄새를 알아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대들은 가장개미들인가? 가장개미는 유기 화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종이다. 체구가 큰 개미들로서 북동 지역에 살고 있다. 가장개미는 풀즙, 나뭇진, 꽃가루, 침을 알맞게 섞어서 통행 허가 페로몬, 자취 페로몬, 의사 소통 페로몬 등 어떤 페로몬이라도 위조해 낼 수 있다. 가짜 페로몬으로 위장을 하고 나면 가장개미들은 흰개미 도시 같 은 곳에 발각되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잠입하고 나서 가장개미들은 도시를 약탈하고 거주자들을 살해한다. 희생자들은 그 드리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가장개미가 아니오.' 여왕 흰개미가 두 개미에게 자기 도시 안에 생존자들이 있느냐고 묻자 개미들은 없다고 대답한다. 여왕 흰개미는 고통받는 시간을 단 축할 수 있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다. 다만 그러기에 앞서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게 있다고 한다. 여왕 흰개미는 자기 도시가 무엇 때문에 파괴되었는지를 알고 있 다. 최근에 흰개미들은 세계의 동쪽 끝을 찾아냈다. 거기는 이 땅덩 어리의 끝으로서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시커멓고 반질반질한 고장이다. '거기에는 아주 빠르고 아주 사나운 기이한 동물들이 살고 있고. 그 동물들이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오. 그들은 무엇이든 박살낼 수 있는 검은 판으로 무장하고 있소. 게다가 그들은 이제 독가스까 지 사용하고 있지요.' 듣고 보니 옛날 비스탱 가 여왕이 품었다는 야망이 생각난다. 세 계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두 개미가 여왕 흰 개미의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해져 있다. 두 개미는 여태껏 지구는 너무 광대해서 그 가장자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여왕 흰개미는 세계의 끝이 가까이 있다고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곳을 괴물들이 지키 고 있다고 한다. 비스탱 가 여왕의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니란 말인 가?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라서 두 개미는 무엇부터 물어보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데 그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뭐 하려고 여기까지 진 출한 걸까요? 서쪽 도시들을 침략하려는 건가요?' 뚱뚱한 여왕 흰개미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아는 게 없다. 그 흰개미는 이제 죽기를 바라고 있다. 흰개미가 자기를 죽여달라고 간 청한다. 흰개미는 제 심장을 멎게 할 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그 흰개미를 죽여야 한다. 흰개미가 나가는 길을 일러주고 난 뒤에, 두 개미가 흰개미의 목을 자른다. 두 개미는 알 몇 개를 주워먹고 이제는 한낱 유령 도시에 불과한 그 숨막히는 도시를 떠난다. 그들은 도시 입구에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자초지종을 담은 페로몬을 뿌려놓는다. 연방의 탐험 개미로서 자기들의 의무를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똥벌레가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개똥벌레도 비를 피하려다 가 흰개미 도시에서 길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제 날씨가 다시 화창 해졌으니 개똥벌레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 먹고, 빛으로 암컷을 유인하고, 교미하고, 알 낳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런게 개똥벌레의 삶이 아닌가! 두 개미의 시선과 더듬이가 동쪽을 향한다. 이곳에서는 별다른 것 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두 개미는 세계의 끝이 멀지 않다는 것 을 알고 있다. 저쪽에 세계의 끝이 있다. 문명의 충돌 두 문명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미묘하다. 인류가 경험한 것 중 에서 재조명해 볼 만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18세기에 노예로 끌려나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경우를 주목해 볼 만하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대부분은 평원이나 숲속에 터를 잡 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웃의 왕 하나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전쟁을 걸어오더니,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서 사슬로 묶고 해안 쪽으로 끌고갔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긴 여정 끝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두 가 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바다였고 또 하나는 하얀 피부를 가진 유럽 인들이었다.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사자 들이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외계인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피부색도 이상했으며 입고 있는 옷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흑인들이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너무나 겁에 질린 나 머지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상어의 밥이 된 사람도 있었다. 살아남은 흑인들은 갈수록 놀라운 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 고 놀랐을까? 한 가지 예로 그들은 백인들이 포도주 마시는 것을 보 았다. 그들은 그것이 피, 그것도 자기들의 피라고 믿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여왕개미 56호가 허기를 느낀다.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자기 몸 이 먹이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한 도시의 전 구성원들이 먹이를 요 구하고 있다. 뱃속에 품고 있는 겨레붙이들에게 어떻게 영양을 공급 할 것인가? 56호는 마침내 산란 구멍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몇백 머 리쯤 기어나가서 솔잎 세 개를 가져와 그것들을 열심히 핥고 잘근잘근 씹는다. 그것으로는 허기를 메울 수가 없다. 사냥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 으나 그럴 힘이 없다. 도리어 주위에 숨어 있는 수천의 포식 동물에 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꼼짝없이 구멍에 틀어박혀서 죽음을 맞아야 할판이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알 하나가 빠져나온 것이다. 최초의 클리푸캉 백성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처음에 56호는 알이 빠져나오 려는 기미를 아주 어렴풋하게 느꼈다. 56호는 기력이 빠진 다리를 흔들고 정성껏 배에 힘을 주었다. 알이 잘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난다. 마침내 알이 흘러나온다. 자그마하고 거의 검게 보 일 정도로 잿빛 도는 알이다. 그런 알은 부하가 되어도 죽은 몸으로 태어나는 개미가 될 것이다. 게다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영양을 공 급해 주어야 하는데, 56호에게는 그럴 기력도 없다. 그래서 56호는 자기의 첫번째 자식을 먹어버린다. 그러고 나자 56호에게 힘이 솟는다. 배에서 알이 하나 빠져나온 대신 위에 알이 하나 들어간 것이다. 알 하나를 희생시켜 힘을 찾은 56호가 두 번째 알을 낳는다. 첫번째 알만큼 시커멓고 자그마한 알 이다. 56호는 그것도 먹어치운다. 한결 기력이 좋아진다. 세 번째 알은 빛깔이 조금 밝아졌다. 그래도 56호는 그것을 삼켜버린다. 열 번째 알을 삼키고 나서야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알 먹는 방식을 바꾼다. 알의 빛깔이 연한 잿빛으로 되었고 크기도 여왕개미 눈알만 해졌다. 클리푸니는 세 개의 알을 낳아서 하나를 먹고 나머지 둘은 살려서 제 몸 밑에 두고 덥혀준다. 클리푸니가 계속 알을 낳는 동안에, 운이 좋았던 두 알은 길쭉한 애벌레로 탈바꿈한다. 그 애벌레들의 머리에는 기이한 주름이 잡혀 있다. 애벌레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산술이 복잡해진다. 알 세 개를 낳을 때마다 하나는 여왕개미가 먹 고 나머지 두 개는 애벌레들이 먹는다. 그것이 바로 외부와의 교류 가 차단된 상황에서 무로부터 유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한 애벌레 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여왕개미는 그 애벌레를 다른 애벌레에게 먹인 다. 애벌레가 진짜 개미로 탈바꿈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자 면 그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애벌레는 여전히 굶주려 있다. 그 애벌레가 몸을 비틀며 울부짖는다. 겨레의 구성원들을 그렇게 먹어치우고도 허기를 메꾸지 못한 것이다. 결국 클리푸니는 개미가 될 뻔한 그 첫번째 애벌레를 먹어버 린다. 나는 그 일을 해내야 돼. 나는 그 일을 해내야 돼. 클리푸니가 그 렇게 되뇐다. 클리푸니는 수개미 327호를 생각하며 한꺼번에 다섯 개의 알을 낳는다. 빛깔이 훨씬 맑아졌다. 클리푸니는 그 가운데 두 개를 먹고 나머지 셋을 키운다. 그렇듯 영아 살해에서 산란으로 생명이 갈마든다. 3보 전진을 위 한 2보 후퇴다. 그렇게 잔인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완전한 개미의 원형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개미는 영양이 모자라서 아주 자그마하고 허약한 편이다. 하지 만 클리푸니가 마침내 최초의 클리푸니 개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 한 것이다. 도시를 만들기 위한 잔혹한 경기에서 이제 반은 이긴 것 이다. 그 일개미는 여왕개미보다 퇴화되기는 했어도 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주위 세계에서 곤충의 시체, 씨앗, 나뭇잎, 버섯 등과 같은 식량을 날라올 수 있다. 그 일개미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 클리푸니는 마침내 정상적으로 영양을 공급받고 제대로 된 알들을 낳는다. 알들이 훨씬 맑고 단단해진다. 견고한 껍데기가 추위로부터 알들을 보호한다. 애벌레들의 크기도 알맞다. 이 새 세대의 어린 개 미들은 크고 힘이 세다. 그들이 클리푸캉 구성원들의 토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여왕개미가 알을 낳는 동안 먹이를 날라다주었던, 첫번째 일개미 는 어떻게 되는가?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그 일개미는 아주 빠르게 죽음을 맞고 제 겨레붙이들의 먹이가 된다. 그러고 나서, 도시의 건 설을 위해 희생된 모든 죽음과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이로써 클리 푸캉이라는 개미 도시가 고고를 울리게 되었다. 모기 모기는 인간과 가장 흔하게 대결하는 곤충이다. 우리는 저마다 한 번쯤은 잠옷 바람으로 침대 위에 올라서서 한 손에 끌신을 움켜쥐고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은 모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살갗을 가렵게 하는 물질은 모기의 주둥이에서 나온 소독용 침일 뿐이다. 그 침이 없으 면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마다 오염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 언제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점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찌른다. 인간에 맞서기 위해 모기들은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모기들은 더 욱 빨라지고 더욱 신중해지는 법을 터득했고, 더욱 잽싸게 날아오르 는 법도 터득했다. 모기를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최 근 세대에 속하는 어떤 뻔뻔스러운 모기들은 희생자의 베개밑에 숨 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모기들은 에드가 엘런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원리, 즉 가장 좋은 은닉처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곳 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을 찾으려 고 언제나 더 멀리 갈 생각만 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오귀스타 할머니는 꾸려놓은 가방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일 시바리트 가로 거처를 옮기려는 참이다. 놀랍게도 에드몽은 조 나탕의 실종을 예상했던지 유언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어두었었 다. '만일 조나탕이 죽거나 사라지면서 유언서를 직접 작성하지 못 하게 되면, 나의 어머니 오귀스타 웰즈가 내 집에 오셔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어머니마저 사라지거나 어머니께서 유증을 거부하신 다면, 다니엘 로젠펠트가 그 집을 상속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다니 엘 로젠펠트마저 유증을 거부하거나 사라지면, 자종 브라젤이 그 다 음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에 비추어 보면, 에드몽이 적어도 네 명의 상속자를 미리 정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런 미신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에드몽이 인간 을 혐오했다. 한들, 제 조카나 어머니가 죽기를 바랄 이유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도 들었다. 자종 브라젤은 또 어떤가! 그는 에드몽과 가 장 절친했던 친구가 아니었던가! 한 가지 호기심 어린 생각이 오귀스타 할머니의 뇌리를 스치고 지 나갔다. 혹시 에드몽은 자기가 죽은 뒤에 모든 일들이 시작되도록 꾸며놓고 미래를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두 개미는 며칠 동안 해 뜨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4000호의 건 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도 그 늙은 병정개미는 불평없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정말 용감하고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진 개미 이다. 어느 날 해질 무렵, 두 개미는 어떤 개암나무 줄기를 기어오르다 가 문득 자기들이 빨강개미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깨달았다. 남쪽 에서 세상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개미들이 또 올라온 모양이다. 그들 의 기다란 몸뚱이에는 독침이 붙어 있다. 두 개미는 그 독침에 살짝 닿기만 해도 즉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 불개미는 그런 것은 생 각하고 싶지도 않다. 퇴화된 용병 개미 몇 마리를 도시 안에서 본 적은 있어도, 103683 호는 바깥 세계에서 빨강개미를 본 적이 없었다. 결국 동쪽 지방에 와서 그들을 보게 된 것이다. 빨강개미들이 더듬이를 흔든다. 그들은 벨로캉 개미들과 똑같은 언어로 의사 소통을 할 줄 안다. '너희들은 제대로 된 통행 페로몬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나가라! 여기는 우리 구역이다.' 두 불개미가 자기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며 동방의 세계 끝 으로 가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빨강개미들이 의논한다. 빨강개미들 은 두 개미가 불개미 연방의 구성원임을 진작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벨로캉 연방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힘이 강하고 최근에 있은 결혼 비행 전까지 64개의 도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벨로 캉 군대의 명성이 서쪽 강을 넘어갔던 것이다. 이동성을 지닌 빨강 개미들인지라 언젠가는 숙명적으로 불개미 연방의 영토를 지나게 될 날이 있으리라. 더듬이들의 떨림이 점차로 잦아든다. 각자가 내놓은 의견을 종합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빨강개미 한 마리가 자기 무리의 의견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원한다면 세계의 끝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 너희와 함께 갈 용의도 있다. 그 대신 우리 에게 너희 신분 페로몬 중의 일부를 남겨주기 바란다.' 그 정도면 공정한 거래다. 103683호와 4000호가 빨강개미들에게 자기들의 페로몬을 주는 것은 연방의 광활한 영토, 어디나 드나들 수 있는 귀중한 통행 허가 냄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 계의 끝에 갈 수 있다는 것과 거기에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다. 빨강개미들이 위쪽 가지에 만들어놓은 야영장으로 불개미들을 데 려간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둥지다. 실을 자아 바느질을 하는 빨강개미들이 커다란 개암나무 이파리 세장의 가장자리를 맞대고 꿰 매어서 임시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파리 하나는 바닥이 되고 나 머지 둘은 측벽 구실을 한다. 103683호와 4000호는 한 무리의 천막개미들이 밤이 되기 전에 '지 붕'을 씌우려고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천막개미들이 천장 구실을 할 개망나무 잎새를 고른다. 그 잎새를 다른 세 잎새에 붙이기 위해서 일개미 열 마리가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천장 잎새에 닿을 수 있을 만한 봉긋한 둔덕을 만든다. 살아 있는 사닥다리라 할만하다. 빨강개미들의 더미가 몇 차례 무너진다. 잎새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그러자 빨강 천막개미들은 방법을 바꾼다. 한 무리의 일개미 들이 천장 잎새 위에 기어올라가 사슬을 엮더니 잎새의 뾰족한 끝에 매달린다 아래쪽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닥다리가 만들어져 있고, 천장 잎새에 매달린 사슬이 그 사다리에 닿으려고 점점 아래로 내려 온다. 그러나 아직 간격이 너무 떨어져 있다. 천장 잎새에 매달린 사슬의 끝에 빨강개미들이 다시 포도송이처럼 달라붙는다. 이제 거의 됐다. 잎줄기가 휘어졌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사슬을 이루고 있는 개미들이 간격을 메꾸기 위해 진자 운동 을 시작한다. 한번 흔들릴 때마다 사슬이 늘어지면서 금방이라도 끊 어질 듯하면서도 별탈이 없다. 마침내 아래위 양쪽 곡예사들의 위턱 이 하나로 연결된다. 착! 2단계 작업은 사슬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사슬 가운데에 있는 일개미 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대열 밖으로 빠져나와 동료들의 어깨 위로 올라가고, 모든 천막 개미들이 두 잎새를 접근시키기 위해 잡 아당긴다. 천장 잎새가 조금씩 야영장 위로 내려와 바닥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상자에 뚜껑이 생겼으면 이제 그 것을 봉해야 한다. 늙은 빨강개미 한 마리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서 커다란 애벌레 한 마리를 데리고 나온다. 그 애벌레에게서 실을 자아내려는 것이다. 빨강개미들은 잎새들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맞추어 서로 닿게 해 놓은 다음 싱싱한 애벌레를 갖고 온다. 가련한 그 애벌레는 아주 조 용한 상태에서 허물벗기를 하려고 제 고치를 짓던 중이었는데, 이제 는 그럴 겨를이 없게 되었다. 일개미 한 마리가 실뭉치와도 같은 그 애벌레에서 실 하나를 잡고 뽑아내기 시작한다. 일개미는 침을 약간 묻혀서 그 실 끝을 잎새에 붙이고 애벌레를 옆의 일개미에게 넘긴 다. 애벌레는 실 하나가 뽑혀나간 걸 느끼고 그 대신에 다른 실을 만들어낸다. 실이 뽑힐 때마다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애벌레는 자꾸 자꾸 실을 뱉어낸다. 일개미들은 그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개미 들은 그 살아 있는 베틀을 위턱에서 위턱으로 건네가면서 아낌없이 실을 뽑아낸다. 자기들의 어린 자식이 기진 맥진하여 죽어버리자, 그들은 다른 애벌레를 가져온다. 그렇게 해서 그 천막 하나를 짓는 데 열두 마리의 애벌레들이 희생된다. 천장 잎새의 두 번째 가장자리를 막고 나니 야영장은 이제 하얀 모서리를 지닌 풀빛 통처럼 보인다. 103683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본다. '까망개미들은 용병들인가?' '아니다, 그들은 노예들이다.' 빨강개미들이 노예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금시 초문이다. 빨강개미들 가운데 하나가 설명에 응한다. 그들은 최근에 서쪽으로 가고 있는, 노예 제도를 가진 무사개미 떼와 만났다고 한다. 그때 이동식 천막 둥지를 하나 준 대가로 그들에게서 까망개미의 알들을 받았다는 것이다. 103683호는 대화의 상대방을 바로 놓아주지 않고, 그 개미들을 만 났을 때 싸움을 벌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빨강개미들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무시무시한 개미들은 배가 불러 있는 상태였고, 노예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게다가 빨강개 미들의 독침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막 둥지와 맞바꾼 알에서 나온 까망개미들은 자기 주인들의 통 행허가 냄새를 지니고 그들이 자기네 어버이라도 되는 것처럼 섬긴 다. 그들은 유전 형질대로라면 자기들이 다른 개미들의 노예가 아니 라 다른 개미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개미가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빨강개미들이 이야기해 준 것 이외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저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사실 덜컥 겁이 날 때가 있긴 있었다고 한다. 대개 빨강개미들은 말안 듣는 노예들을 격리시킴으로써 그런 사태에 대비해 왔다는 것 이다. 자기들이 어떤 둥지에서 탈취당해 와서 다른 종의 일원이 되 었다는 사실을 까망개미들이 모르고 있는 한, 반란을 일으킬 만한 현실적인 동기는 없으리라는 거였다. 개암나무 위에 밤고 추위가 찾 아온다. 빨강개미들은 두 탐정 개미에게 야간의 수면 시간을 보낼 자리를 마련해 준다. 클리푸캉이 차츰차츰 커진다. 제일 먼저 궁궐을 마련했다. 그 궁 궐은 그루터기 속에 건설되지 않고 그 자리에 묻혀 있던 이상한 물 건 안에 건설되었다. 그 이상한 물건이란 사실은 녹슨 통조림 깡통 이었다. 설탕에 절인 과일 3킬로그램이 들어 있던 통으로서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서 나온 폐품이었다. 그 새 궁궐 안에서 클리푸니는 개미들이 날라다 주는 당분과 지방과 비타민을 먹으면서 열심히 알을 낳는다. 제일 먼저 나온 일개미들은 궁궐 바로 밑에 부식토의 열기로 난방 이 되는 영아실을 만들었다. 도시 건설 공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잔가지 지붕과 햇빛방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러는 게 편리한 점이 많다. 클리푸니는 이제까지 알려진 모든 기술을 활용해서 자기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한다. 버섯 재배실, 꿀단지 개미, 진딧물 가축, 송악 뿌리 버팀대, 분비물 발효실, 곡물 가루 제조실, 용병실, 첩보원실, 유기화학실 등을 모두 갖추고 싶은 것이다. 여왕의 그러한 뜻이 도시 구석구석에 전해 진다. 젊은 여왕개미는 자기의 열정과 희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었다. 여왕개미는 클리푸캉이 다른 도시들과 같은 연방의 한 도시가 되는 것으로 만족 하지 않을 것이다. 여왕개미는 자기 도시로 하여금 진보의 선두에 서서 개미 문명의 첨단을 걷게 하리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왕개미인지라 이것저것 제안도 많다. 예를 들어 지하 12층 주위에서 지하수를 발견했을 때 여왕개미는 물이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요소라면서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라고 했다. 제안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떤 동아리가 물방개, 닷벌레, 물벼룩 등과 같은 민물에 사는 벌레들을 연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벌레 들은 식용에 적합한가? 장차 웅덩이를 만들어놓고 그것들을 사육할 수 있을까? 여왕개미가 행한 최초의 연설은 진딧물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전란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무기들이 나날이 복잡해 지고 있어서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무기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이다. 바깥 세계에서 사냥하는 일이 위태로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 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도시는 가능한 한 깊 숙이 뻗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모든 방법보다 진딧물 사육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장 아래 층에 축사를 짓고 그 가축들을 거기에서 키우는 게 좋을 것이다.....' 일개미 30마리가 밖으로 나가더니 알 낳기 직전에 있는 진딧물 두 마리를 가져왔다. 몇 시간 지나서 어린 진딧물 수백 마리가 생겨났 고 일개미들은 진딧물의 날개를 잘랐다. 일개미들은 그 가축 떼를 지하 23층에 살개 하면서 무당벌레로부터 지켜주고 싱싱한 잎새들과 즙이 많은 줄기들을 듬뿍 준다. 클리푸니는 탐험 개미들을 사방으로 파견했다. 돌아오면서 어떤 탐험 개미들이 느타리 홀씨를 가져왔다. 일개미들이 그 홀씨들을 버 섯 재배장에 심었다. 탐구욕이 왕성한 여왕개미는 어머니가 꿈꾸던 일을 실현해 낼 생각까지 했다. 여왕개미는 동쪽 경계에 벌레잡이 식물의 씨를 한 줄로 심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를 흰개미들의 공격과 그들의 비밀 무기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여왕개미는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와 수개미 327호의 암살과 화강 암 밑에 감추어놓은 식량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여왕개미는 벨로캉 쪽으로 한 무리의 사절을 파견했다. 이 사절이 띠고 있는 공식적인 임무는 어머니 여왕개미에게 예순다섯 번째 도 시가 건설되었다는 사실과 그 도시가 연방에 가맹한다는 사실을 알 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그 사절들은 벨로캉 지하 50층 에서 조사를 계속하라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애지 중지하는 세피아 사진을 회색 벽 위에 핀 으로 고정시키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할머니는 안전 사슬이 걸려 있음을 확인하고 문을 빠끔히 열었다. 아주 깔끔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저고리 깃 위에 비듬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웰즈 부인.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아드님 에드몽 의 동료, 르뒤크 교수입니다. 제가 온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 인의 손자와 증손자가 지하실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방대원 여덟 명, 치안 대원 여섯 명, 경찰관 두 명이 마찬 가지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인, 저는 지하 실에 내려가 보고 싶습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 사람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는지 보청 기의 볼륨을 최고로 올렸다. "로젠펠트 교수이신가요?" "아니요, 르뒤크라고 합니다. 로젠펠트 얘기를 들으신 모양이군 요. 로젠펠트와 에드몽과 저는 모두 곤충학자입니다. 전공도 같아서 셋 다 개미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에드몽이 저희보다 월등하게 앞 서갔지요. 인류가 그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 다..... 저는 부인 댁의 지하실에 내려가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잘 듣지 못할 때는, 보는 건 더 잘 보게 되는 법이다. 할 머니는 그 르뒤크라는 사람의 귀를 찬찬히 살폈다. 인간은 아주 오 래된 자기의 과거 모습을 몸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귀는 태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귓볼은 머리를 상징하고 귓바퀴 테두리는 척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르뒤크라는 사람은 태아 때는 야윈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태아 모습이 야윈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뭘 찾고 싶어서 그러시우?" "책입니다. 에드몽이 자기의 모든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적어놓 은 백과 사전이지요. 에드몽은 숨기기를 좋아하는 친구였습니다. 그 는 틀림없이 모든 걸 저 아래에 숨겨놓았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것 도 모르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물리칠 수 있는 함정을 만들 어 놓았을 거고요. 저는 모든 걸 알고 가는 겁니다. 잘 아는 사람은...." "잘 아는 사람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아주 많은거라우." 오귀스타 할머니가 그의 말을 자르며 불쑥 말했다. "기회를 주십시요." "들어오겠수?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더라." "르뒤크입니다. 국립 과학 연구소 352호 실험실의 로랑 르뒤크 교수입니다." 할머니는 그를 지하실 쪽으로 데리고 갔다. 경찰이 막아놓은 벽에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이 저주받은 지하실에 절대로 내려가지 마시오." 할머니가 그 글귀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르뒤크 씨,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우? 사 람들은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집은 식인 동물 같아서 자기 목을 간지럽히는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거지요. 아예 콘크리트로 이 집을 싸발라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르뒤크 씨는 죽는 게 무섭지 않수?" 그 물음에 르뒤크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요. 무섭지요. 저는 저 지하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 르는 채 바보처럼 죽는 걸 무서워하지요." 103683호와 4000호는 며칠 전에 빨강 천막개미들의 둥지를 떠났 다. 뾰족한 침을 가진 병정개미 두 마리가 그들과 함께 길을 나섰 다. 그들은 자취 페로몬의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나는 길을 따라 한 동안 걸었다. 그들은 개암나무 가지에 있는 천막 둥지로부터 벌써 수천 머리 떨어진 길을 답파했다.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동물들과 마주쳤다. 의심스러울 때면 그들은 낯선 동물을 피하곤 했다. 밤이 되면 그들은 되도록 땅을 깊게 파고 틀어박혀 유모 개미와도 같은 대지의 다사로운 열기를 이용하면서 대지의 보호를 받았다. 오늘은 빨강개미가 그들을 어떤 언덕 꼭대기까지 데려왔다. '세계의 끝은 아직 멀었는가?' '저쪽으로 가면 된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니 동쪽 아스라히 먼 곳에 시커먼 덤불로 된 어떤 세계가 보인다. 빨강개미들은 이것으로써 자기들의 임무가 끝 났으니 더 이상 불개미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다. 빨강 개미들의 냄새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역에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 그들은 불개미에게 수확개미들의 들녘까지 곧장 가라고 일러준 다. 수확개미들은 줄곧 '세계의 끝' 근처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틀림없이 길을 가르쳐줄 거라는 것이다. 안내자들과 헤어지기 전에 두 불개미가 연방의 신분 페로몬을 건 네준다. 여행에 동반해 준 대가로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 불 개미는 수확개미들이 경작하는 들녘에 닿으려고 비탈길을 달려내려간다. 뼈대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 거죽에 있는 것이 나을까? 뼈대가 몸 거죽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을 막는 껍질의 형태를 띤 다. 살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지고 거 의 액체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껍데기를 뚫고 어떤 뾰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가늘고 단단한 막대 모양을 띤다. 꿈틀거 리는 살이 밖의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처가 수없이 많이 생 기고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바로 밖으로 드러난 이 약점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고 섬유의 저항력을 키워준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출중한 지력으로 '지적인' 감각을 만 들어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였 다. 그들은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비웃었다. 그러 나 어떤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아 주 사소한 이견, 아주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 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에 민감했고, 어떠한 공격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무사개미들이 공격해 온다!' 클리푸캉이 공포에 휩싸였다. 기진 맥진한 척후 개미들이 이제 갓 태어난 도시에 그 소식을 전한다. '무사개미들이다! 무사개미들이다!' 무사개미들의 무시무시한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몇몇 개 미들이 목축, 저장, 버섯 재배, 화학 등과 같은 분야에서 특별한 발 전의 길을 찾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사개미들은 오로지 전쟁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키워왔다. 무사개미들은 전쟁밖에 모른다. 그렇지만 전쟁을 완벽한 예술처럼 수행한다. 그들의 몸은 온통 전쟁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그들의 관 절치고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휘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고, 그들의 껍질은 불개미들보다 두 배는 두껍다. 좁다랗고 완전한 세모꼴을 이 루고 있는 머리는 어떠한 발톱으로도 잡을 수 없다. 그들의 위턱은 뒤로 젖혀지기까지하는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지닌 것으로 두 개의 휘 어진 검이라고 할 만하다. 무사개미들이 그 검들을 자유 자재로 휘 두르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그들이 노예 제도를 갖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과도한 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 권력욕 때문에 자칫하면 그 종 자체가 소멸하게 될 지도 모를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싸움질에 골몰해서 그 개미들 은 둥지를 짓거나 제 새끼들을 키울 줄 모르며, 심지어는 제 스스로 먹이를 구할 줄도 모른다. 검처럼 생긴 위턱은 전투에서는 쓸모가 있지만 일상적인 삶에서는 도통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전쟁에 미쳐 있기는 해도 무사개미들은 어리석지는 않다. 일상적인 삶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집안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다 른 개미들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게 만들었다. 무사개미들은 주로 까망개미나 노랑개미들의 중소 도시를 공격한 다. 침이나 개미산이 없는 종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공 격하려고 마음먹은 도시를 에워싼다. 안에 갇힌 개미들은 밖에 나간 개미들이 전멸한 것을 알고 바로 입구를 봉쇄한다. 그러면 무사개미 들은 첫번째 돌격대를 뽑아 공격에 나선다. 돌격대는 쉽게 방어선을 뚫고 구멍을 열어버린다. 통로는 일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그 때 겁에 질린 일개미들이 알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도 시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무사개미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되는 것이 다. 무사개미들은 모든 입구로 지쳐들어가 일개미들이 자기들의 귀 중한 짐을 포기하게 만든다. 무사개미들은 항복하지 않는 개미들만 죽인다. 개미 세계에서 아무런 이요없이 개미를 죽이는 일은 없다. 전투의 막바지에 무사개미들은 둥지 안으로 쳐들어가 살아남은 일 개미들에게 자기들 대신 알을 옮겨서 계속 돌보아줄 것을 요구한다. 나중에 번데기를 깨고 나온 개미들은 침략자인 무사개미들을 섬기도 록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과거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커다란 개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약탈이 벌어지는 동안에 잡혀온 지 오래된 노예 개미들은 뒤로 물 러서서 주인들이 그 지역을 완전히 소탕하기를 기다리면서 풀숲에 숨어 있는다. 그러다가 주인들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면 허드렛일 하는 잡부로 현장에 투입되어 포로들과 어린 개미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는다. 예전에 납치된 알에서 나온 개미와 새로 포로가 된 알 이 서로 만나는 것이다. 침략자들이 이동하는 대로 그렇게 새로운 세대의 노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사개미 한 마리마다 대개 세 마리의 노예 개미가 달려 있다. 한 마리는 무사개미에게 먹이를 주고 (무사개미는 갈무리 주머니에서 되올려 입으로 먹여주는 먹이밖에 먹을 줄 모른다), 나머지 한 마리 는 배설물을 치워준다. (그것을 치우지 못하면 무사개미의 껍질 주 위에 쌓여서 껍질을 부식시킬 것이다.) 오로지 싸움밖에 모르는 무사개미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노예들 이 자기들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사개미들은 약탈한 둥지를 재빨리 빠져나와서 새로운 도시를 정복하러 나선다. 밤이 되기 전까지 새 도시를 찾지 못하면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 때 문에 죽을 수도 있다. 그 대단한 무사들에게 그런 죽음은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클리푸니는 무사개미들에 관한 전설을 수도 없이 들었다. 어떤 개 미들의 주장에 따르면, 노예 개미들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 적 이 있으며, 노예 개미들은 자기들의 주인이 어떤 자들인지 알고 있 기 때문에 반드시 복종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또, 어떤 무사개 미들은 모든 크기, 모든 종류의 알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개미 알 을 수집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클리푸니는 크기도 각각이고 빛깔도 가지 각색인 온갖 종류의 알 들이 가득 차 있는 방을 상상해 본다. 하얀 덮개 아래마다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개미 문명의 한 구성원이 그 미개한 야수들을 섬기기 위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클리푸니는 고통스러운 상상에서 깨어난다. 우선 그들과 맞설 생 각을 해야 한다. 무사개미 떼는 동쪽으로부터 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클리푸캉의 척후 개미들과 첩보 개미들은 그 병정개미들의 수 가 40만에서 50만 사이라고 한다. 무사개미들은 사테이 나루의 지하 터널을 건넜다. 그들은 지금 아마도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을 것' 이다. 왜냐하면 터널을 건너느라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잎새로 만든 이동 천막둥지를 처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들에겐 거처가 없다. 그들은 클리푸캉을 손에 넣지 못하면 틀림없이 밖에서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젊은 여왕개미는 되도록 침착하게 숙고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이 동 천막 둥지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무엇 때문에 굳이 강을 건너야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클리푸니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무사개미들은 도시를 혐오한다. 그들 마음 속 깊이 잠재해 있는 그 증오심은 도무지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도시가 그들에 겐 위협이고 도전이다.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 사이의 끝없는 대결 을 연상시킨다. 그런 무사개미들이 강 건너편에 너나 할 것 없이 풍 요롭고 세련된 수백 개의 개미 도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클리푸캉은 불행하게도 그런 공격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 다. 물론 며칠 전부터 백만은 족히 되는 거주자들이 도시를 가득 채 우게 되었고, 동쪽 경계에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을 만든 건 사실이 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클리푸니는 자기 도 시가 이제 갓 생긴 터라 전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연방에 가맹한다는 뜻을 전하러 벨로캉에 보낸 사절들에게서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러니 이웃 도시와 연대해서 싸울 수가 없다. 게예이톨로 기지마저도 수천 머리나 떨어져 있어서 그 여름 둥지의 개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없다. 어머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클리푸니는 완전 소 통을 하기 위해 가장 뛰어난 사냥 개미들 가운데 몇 마리를 불러 모 으기로 마음을 정한다. 그 사냥 개미들은 아직 자기들이 병정개미라 는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급히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된다. 사냥 개미들이 궁궐에 모여 있는데, 클리푸캉 위로 튀어나 온 관목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개미들이 달려와 군대가 달려오는 냄새를 맡았다고 전한다. 모두가 채비를 한다. 뾰족한 전략이 나오 지 않았다. 임기 응변으로 맞서나가야 한다. 전투 준비를 알리는 냄 새가 퍼져나가고 군대의 모습이 그럭저럭 갖추어진다. 그들은 난쟁 이개미들과의 전투에서 비싼 희생을 치르고 배운 병법을 아직 전혀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병정개미들은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에 더 희망을 걸고 있다. 말리에 사는 도공 말리에 사는 도공 부족은 태초에 하늘과 땅이 혼인할 때, 땅의 생 식기는 개미 둥지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혼인의 결과로 인간이 만들어질 때, 음문은 입이 되었고 거기 에서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는 데 물질적인 토대를 마련 해 준 것은 개미들의 실 잣는 기술이다. 개미들은 그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수하였다. 오늘날에는 도공 부족의 잉태를 기원하는 의식은 여전히 개미와 관련이 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은 개미 둥지 위에 앉아서 아마 신에게 잉태를 하게 해달라고 빈다. 개미들이 인간을 위해 해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개미들은 인간 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샘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기도 했다. 도공 부족 사람들은 물을 찾으려면 개미 둥지 아래를 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바로 저쪽에서 메뚜기들이 사방 팔방으로 뛰기 시작한다. 그것이 신호다. 시력이 좋은 개미들의 눈에는 벌써 바로 저쪽에 한 줄기 먼 지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무사개미 얘기를 많이 했다 해도, 막상 그들이 공격해 오 는 것을 보면 전혀 느낌이 다르다. 무사개미들에게는 기병대가 없 다. 그들 자신이 기병대인 것이다. 그들의 몸은 유연하면서도 견고 하다. 그들의 다리는 두툼하고 근육이 발달해 있다. 균형 잡힌 뾰족 한 머리에 딱 들어맞게 되어 있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다리가 움직 이면서 머리가 공기를 가를 때 바람결 하나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풀이 눕고, 땅이 흔들리고, 흙 먼지가 물결친다. 앞을 향하고 있는 더듬이들이 노호라고나 할 만한 독한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다. 안에 틀어박혀서 저항해야 하나, 아니면 나가 싸워야 하나? 클리푸니는 망설인다. 두려워하면서 무슨 명령을 내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니 불개미 병정들이 해서는 안 된 는 짓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병정개미들이 둘로 나뉜다. 반은 맨몸으로 적에게 맞서겠다고 나가고 다른 반은 예비 병력과 농성시 의 저항 병력으로서 도시 안에 웅크리고 있다. 클리푸니는 '개양귀비' 전투를 기억해 내려고 애쓴다. 그 당시 적 의 군대에 가장 커다란 타격을 주었던 것은 개미산 포격이었던 것 같다. 클리푸니는 곧 포수 개미 3열을 선두 대열에 배치하라고 명령한다. 무사개미 군대가 이제 벌레잡이 식물의 장벽으로 달려들고 있다. 따뜻한 고기 냄새를 맡은 그 식물들이 무사개미들이 지나가는 길목 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나 그 동작이 너무 느려서 적의 모든 병정개 미들은 끈끈이귀개가 그들을 붙잡기 전에 빠져나온다. 어머니께서 잘못 생각하신 것이다! 돌격해 오는 적에 맞서서 첫번째 줄의 클리푸캉 개미들이 근접 사 격을 한차례 퍼붓는다. 그러나 그 사격에 쓰러진 침입자는 겨우 스 무 마리 남짓이다. 두 번째 줄은 사격 자세를 취할 겨를도 없이 무 사개미들이 달려들어 목을 잘라버리는 바람에 개미산 한 방울 못 쏘아보고 무너진다. 머리만 공격하는 것이 무사개미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무사개미들 이 미친 듯이 위턱을 휘두른다. 어린 클리푸캉 개미들의 머리가 어 지러이 날린다. 머리 잘린 몸뚱이가 이따금 마구잡이 공격을 계속하 기도 하고 생존자들을 더욱 겁먹게 하면서 달아나기도 한다. 12분이 지나자, 불개미 병사들의 대부분이 쓰러졌다. 불개미 군대 의 나머지 반이 모든 입구를 막는다. 클리푸캉에는 아직 둥근 지붕 을 씌우지 않았기 때문에 흙으로 둘러싸인 열 개의 작은 분화구가 지표에 드러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두가 얼이 빠져 있다.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해서 세운 새 도시를 먹이도 혼자 구할 줄 모를 만큼 미개하고 야만적인 개미떼의 처분에 맡기게 되다니! 클리푸니가 아무리 완전 소통을 반복해 봐도 적에게 저항할 만한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입구에 설치한 돌담은 기껏해야 몇 초 밖에 더 못 버틸 것 같다. 통로에서 전투를 한다고 해봐야 밖에 서 엄폐물 없이 하는 전투보다 나을 것도 없다. 준비가 안 되어 있 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밖에서는 마지막 남은 병정개미들이 악착같이 싸우고 있다. 몇몇 병정개미들은 퇴각을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로 자기 등 뒤에 서 입구가 닫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과 자기들이 침략자들의 진입을 늦추면 늦출수록 입구의 봉쇄가 강고해 지리라는 생각이 그 들의 저항을 더욱 가열차게 만든다. 마지막 남은 클리푸캉 개미의 목이 잘린다. 그러자 그 몸뚱이는 반사적으로 입구 앞으로 옮겨가더니 문에 발톱을 박는다. 하찮은 방 패에 불과할지언정 끝까지 제 몫을 다하려는 것이다.... 클리푸캉 안에서는 무사개미들의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음울한 체념에 젖어 있다. 결국 기술로써 압도하지 못하니까 단순한 물리력이 효력을 발휘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무사개미들은 공격하지 않는다. 로마 앞에 선 하니발 처럼 무사개미들은 정복을 주저하고 있다. 모든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 는 것 같다. 틀림없이 함정이 있을 게다. 우리의 명성이 어디가나 뜨르르 하듯이 불개미들의 명성도 만만치 않다. 무사개미 진영에서 는 불개미들이 교묘한 함정을 만드는 데 도통한 자들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무사개미들은 불개미들이 용병 개미들과 동 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 때라도 용병 개미들이 튀어나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무사 개미들은 불개미들이 사나운 곤충들을 길들이고, 견디기 어려운 고 통을 가져오는 비밀 무기를 만들 줄 안다고 말한다. 게다가 무사개 미들은 한데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터라 안에 쳐들어가서 벽에 둘러 싸이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사개미들은 입구에 놓인 바리케이트를 치우지 않는다. 무사개미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충분하다. 밤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불개미 도시의 개미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그들이 왜 쳐들어오지 않는 걸까? 클리푸니는 그걸 꺼림칙하게 느끼고 있다. 적이 '자기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더 힘이 강한 적이 그럴 필 요가 없는데 왜 주저하고 있는 걸까? 몇몇 개미들이 조심스럽게 의 견을 내놓는다. 저들이 우리를 굶겨죽이려는 게 아닌가 하고. 하나 의 가능성으로 얘기된 것일 뿐인데도 그 의견이 불개미들에게 힘을 준다. 지하의 축사, 버섯 재배장, 곡물 가루 창고, 꿀단지 개미 등 이 있는 덕분에, 그들은 두 달은 족히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클리푸니는 적이 원하는 게 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위에 있는 적은 밤을 보내기 위한 둥지를 필요로 한다. 클리푸 니는 어머니의 유명한 격언을 떠올린다. '만일 적이 더 강하면 적의 의표를 찌르라.' 그렇다. 저 야만적인 개미들에 맞서려면 첨단의 기 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게 살 길이다. 50만의 클리푸캉 개미들이 완전 소통을 실행한다. 마침내 한 가지 흥미있는 제안이 나온다. 자그마한 일개미 하나가 다음과 같은 페로몬을 발한 것이 다. '벨로캉의 선조들이 사용했던 무기와 전략을 답습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다. 모방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 페로몬이 나오자 마자 정신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곧 하나의 결 정이 이루어진다. 그 결정을 따라 모두가 일에 매달린다. 터키의 근위병 14세기에 터키의 술탄 무라드 1세는 약간 특별한 부대를 하나 만 들고 '새로운 부대'(터키 말로는 에니 체리)라 명명하였다. 이 새 근위대는 고아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터키 병사들은 아르메니아 슬라브의 마을을 약탈하면서 아주 어린 아이들 은 모아다가 특수 군사 학교에 집어넣었다. 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 게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오로지 무술 훈련만 받고 자란 이 아이들은 전 오토만 제국에서 가장 뛰어 난 전사들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진짜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들을 가차없이 짓밟았다. 그 근위병들은 자기들의 부모 편에 서서 납치자들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 의 힘은 나날이 커졌고, 급기야는 술탄 마무트 2세가 그들의 힘에 불안을 느끼게까지 되었다. 결국 마무트 2세는 1826년 그들을 죽이 고 그들의 학교에 불을 질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르뒤크 교수는 커다란 여행 가방 두개를 가지고 왔었다. 그중 하 나에서 그는 가솔린 엔진이 달린 최신형 망치 겸 구멍뚫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경찰관들이 만들어놓은 벽에 구멍을 내 기 시작하여, 사람이 드나들 만한 둥근 구멍이 생길 때까지 계속했다. 망치질이 끝나자 오귀스타 할머니가 다가와 마편초 한 잔을 권했 다. 그러나 르뒤크는 차분한 어조로 그것을 마시면 소변이 마려울 염려가 있다면서 사양했다. 그는 다른 가방 쪽으로 몸을 돌려 동굴 탐사장비 일습을 꺼냈다. "이럴 만큼 지하실이 깊다고 생각하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말이지요. 여기 오기 전에 이 건물에 대해 서 조사를 해두었어요. 이 건물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이 살았는데, 그들이 비밀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는군요. 저는 그 통로가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을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프 로테스탄트들이 그리로 해서 박해자들을 피해다녔을 겁니다." "그러면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이 숲으로 빠져나왔을텐데, 왜 그들 이 안 나타나는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손자, 증손 자, 손자며느리, 게다가 열 명이 넘는 소방대워과 치안 대원들인데, 그들 가운데 누구도 숨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잖수.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프로테스탄트도 아니고 이제는 종 교 전쟁도 없잖수." "정말 그럴까요, 부인?" 그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종교 대신에 다른 것들이 나타났지요.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거드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교조적이기 는 마찬가지지요." 그는 동굴 탐사 복장으로 갈아입으려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그가 옹색한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이맛등이 달린 새빨간 헬멧을 쓰고 다 시 나타나자, 오귀스타 할머니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 프로테스탄트들 다음에는 이 집에 별의별 사람이 다 살았어 요. 고대의 이방 종교에 빠졌던 사람도 있었고, 양파나 검은 두 라 디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르죠." "양파와 라디는 건강에 아주 좋은 거라우. 그런 것들은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이해할 만하지. 건강보다 더 중한 게 뭐가 있겠 수. 보라구요.나는 귀가 먹었고, 곧 늙어 꼬부라질거요. 매일 조금 씩 죽어가고 있어요." 그는 자기 말이 할머니에게 위안을 주리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아직 정정하신데 그러세요." "그래요? 그럼 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슈?" "글쎄요. 예순이나 일흔 살 정도요." "백 살이라우. 1주일 전에 백살이 되었지. 이제 온몸이 다 병들었 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져. 특히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잃고 나서 더하다우." "그러시군요. 부인, 늙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난이지요." "이렇게 계속 남의 아픈 가슴을 찌르는 소리만 하고 있을거요." "그런 게 아니라." "자, 빨리 내려가시오. 내일 당신이 안 올라오면 경찰에 신고할거 요. 그러면 그들은 틀림없이 더 이상 아무도 못 부수게 아주 두툼한 벽을 만들거라우." 맵시벌 애벌레들이 몸 속에서 끊임없이 갉아대는 통에, 4000호는 밤 기온이 아주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의 끝을 발견하는 일처럼 흥미있고 위험이 따르 는 행동에 전념하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런 행동에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개미는 여전히 수확개미들의 들판을 향해 가고 있다. 103683호 는 그렇게 걸어가는 시간을 이용해 예전에 유모 개미들이 가르쳐 준 것들을 되새기고 있다. 유모 개미들은 이 땅덩어리가 입방체로 되어 있으며 그 표면 위에만 생명이 있다고 그에게 가르쳤었다. 세계의 끝에 다달하면 무엇을 보게 될까? 문? 다른 하늘의 허공? 103683호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동료는 시간이 시작된 이래 나타난 어떤 탐험 개미나 불개미보다도 세계의 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3683호의 발걸음에 갑자기 힘이 넘치자 4000호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정오를 반나절이나 넘기고 나서야, 무사개미들은 입구를 뚫고 들 어가기로 결정한다.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 것이 놀랍다. 이 도시 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불개미 군대 전 부를 궤멸시킨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바깥에서 사는 데 길들여져 있고 밝고 탁 트인 곳을 좋아 하기 때문에 지하에 들어가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불개미들 중에서도 비생식 개미 들은 땅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이 암흑 세계 의 미로 속을 헤집고 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다. 무사개미들이 궁궐에 다다른다. 완전히 비어 있다. 땅바닥에는 전 혀 건드리지 않은 양식 더미들도 있다. 그들은 계속 내려간다. 창고 마다 양식이 가득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 안에 개미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하 5층에서 그들은 발산된 지 얼마 안 된 페로몬을 발견한다. 무사개미들은 그 페로몬에 담긴 대화 내용을 해독하려고 애쓴다. 그 러나 불개미들이 백리향 잔가지를 놓아둔 탓에 거기에서 나는 향이 모든 페로몬에 섞여 있었다. 지하 6층. 이 도시 안은 너무 캄캄하다! 무사개미들은 그렇게 땅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싫어한다. 불개미들은 죽음처럼 어둡고 밀폐된 이런 공간에서 어떻게 영원히 지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지하 8층에서 무사개미들은 한결 더 신선한 페로몬을 발견한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한다. 불개미들은 이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하 10층. 무사개미들은 알을 옮기고 있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과 맞닥뜨린다. 일개미들이 침입자들을 보고 달아난다. 그러면 그렇지! 무사개미들의 의혹이 마침내 눈 녹듯이 스러진다. 전 도시의 개미들 이 알들을 구하려고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모든 일의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무사개미들은 이제 껏 지녀왔던 신중한 태도를 다 털어버리고 그들 특유의 괴성 페로몬 을 내지르며 통로 속을 달린다. 클리푸캉의 일개미들은 그들에게 쫓 겨 달아난다. 벌써 지하 13층이다. 갑자기 알을 나르던 일개미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들이 달려 오던 통로는 어떤 커다란 방으로 통해 있다. 그 방의 바닥에는 분비 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무사개미들은 본능적으로 그 맛 있는 끈끈물을 핥으려고 달려간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땅으로 다 스며들어 갈 염려가 있는 것이다. 다른 병정개미들도 서둘러 그들 뒤를 따라간다. 그러나 그 방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모든 무사들이 들어갈 공간이 되고 분비꿀 웅덩 이도 충분하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다! 이곳은 꿀 단지 개미들의 방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한 무사개미가 꿀단지 개미에 대해서 들은 얘기를 기억해 낸다. '이른바 현대적인 기술이 라는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가련한 일개미들로 하여금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배를 최대로 늘인 채 평생을 보내게 하는 거라네.' 무사개미들은 분비꿀을 마음껏 먹으면서 새삼스럽게 꿀단지 개미 의 삶에 조롱을 보낸다. 그때 무사개미 하나가 문득 대수롭지 않으 나 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음을 눈치챈다. 이렇게 중요한 방에 입 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 무사개미에게 좀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불개미 들이 천장을 뚫어버렸던 것이다. 천장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무사개미들이 통로 쪽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커다란 바 위로 막혀 있다.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진다. 쏟아져내리는 물에 맞아 죽지 않은 무사개미들이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친다. 이 전술은 선조들을 모방하려고만 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환기시 켰던 클리푸캉의 그 일개미에게서 나왔다. 그가 잇달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우리 도시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단하나의 페로몬일 뿐이다. 즉, 지하 12층의 개울!' 클리푸캉 개미들은 개울에서 물길이 갈라질 수 있도록 도랑을 팠 다. 그리고 땅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게 두툼한 나뭇잎을 깔아서 그 지류를 운하처럼 만들었다. 남은 것은 이제 꿀단지 개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클리푸캉 개미들은 어떤 방에 커다란 저수지를 만들고, 나뭇가지로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그 구멍 뚫는 막대기를 물 위에 꼿꼿이 세워두는 일이었다. 꿀단지 개 미 방의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개미들이 그런 영웅적인 일을 해낸 것이다. 아래에서 무사개미들이 발버둥을 친다. 대부분은 벌써 익사했지만 저수지에 있던 물을 아래층으로 다 쏟아부은 터라 수위가 꽤 높아져 서 몇몇 무사개미들이 천장 구멍을 통해 기어나온다. 불개미들이 그 들에게 개미산을 쏘아 쉽게 해치운다. 한 시간이 지나자 무사개미들이 빠져죽은 물에는 이제 아무런 움 직임이 없다. 클리푸니 여왕이 승리했다. 승리를 기념하여 여왕개미 가 역사적인 최초의 격언을 발한다. '험난한 장애물일수록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힘을 발휘하게 해준다.' 둔중한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을 느끼고 오귀스타 할머 니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르뒤크 교수가 몸을 비비꼬면서 벽의 구멍 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저런, 24시간을 넘겼길래 못 올라오는 줄 알 았더니! 이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내려갔던 터라 실종되거 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의 동굴 탐사용 작업복은 찢어져 있었지만, 그는 온전했다. 보 아하니 그 역시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오, 그런데 뭐지요?" "그들을 찾았수?" "아뇨...." 오귀스타 할머니는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지하실에 내려간 사람 이 아무 일 없이 살아서 다시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 다면 이 모험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아래에 뭐가 있습니까? 당신 생각대로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던가요?"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먼저 마실 것 좀 갖다 주세요. 비상 식량이 다 떨어 져서 어제 정오부터 물도 못 마셨어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보온병에 넣어 따뜻하게 해두었던 마편초 차를 가져왔다.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 듣고 싶으세요? 수백 미터 아래로 가파르 게 내려가는 나선 계단이 있고 문이 하나 있어요. 붉은 빛을 띤 통 로에 쥐가 우글거리고 그 통로의 끝에 벽이 하나 있지요. 틀림없이 부인 손자인 조나탕이 만들어놓았을 겁니다. 너무 단단해서 착공기 로 구멍을 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어요. 틀림없이 돌거나 움직이는 문일 겁니다. 암호 글자판이 하나 있었거든요." "암호 글자판이라구요?" "예, 어떤 질문의 답이 되는 단어를 누르는 거지요." "질문이 뭔데요?"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그 과 학자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 "답을 아시는군요!" 딸꾹질 사이사이로 오귀스타 할머니가 잘름잘름 말했다. "아니, 아니라우! 난 답을 몰라요! 하지만 그 문제는 아주 잘 안다우!" 그러면서 할머니는 웃고 또 웃었다. 르뒤크 교수가 투덜거렸다. "답을 찾느라고 몇 시간 동안 끙끙거렸어요. 물론 V형태로 된 것 까지 삼각형에 포함시키면 답이 금방 나오지만 V형태는 삼각형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는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수학하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왜죠?" "기회는 단 한 번이라우.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으니, 이제 기 회는 없어요. 이 여행 가방들을 내 집에서 끌어내주시구려. 잘 가우!" 할머니는 짐이 많은 그를 위해 택시를 불러줄 생각도 하지 않았 다. 그에 대한 혐오감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에게는 확실히 할머 니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가 있었다. 할머니는 구멍난 벽을 마주하 고 부엌 안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할머니는 자종 브라젤과 로젠펠트에게 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죽기 전에 좀더 인생을 즐기기로 결심한 거였다. 인간의 페로몬 냄새로 의사 소통을 하는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후각 언어 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눈다. 우리에게는 냄새를 발하는 더듬이가 없으므로, 우리는 겨드랑이, 유방, 두피, 생식기 등으로부터 페로몬을 발산한다. 그 메시지는 무의식적으로 감지되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5천만 개의 후각 끝신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혀 가 겨우 4가지 맛을 구별하는데 반해서 5천만 개의 세포로 수천 가 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냄새를 통한 의사 소통 방식은 어느때 사용하는가? 우선, 성적인 유인을 하는 데 쓰인다. 인간의 암컷은 인위적인 향 기를 쓰지 않고도 인간의 수컷을 아주 잘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컷이 암컷 본래의 향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인위적인 향기 때문에 본래의 향기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 다!). 마찬가지로 수컷은 다른 암컷에게 배척을 당할 수도 잇다. 암 컷의 페로몬이 그에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미묘하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후각적인 대화를 나누었 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저 '사랑은 맹목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의 페로몬은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들 이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공포'의 메시지가 담긴 냄새 를 맡게 되면,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페로몬이 가장 뚜렷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가 운데 하나로 월경 주기가 같아지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함께 사는 여러 여자들이 냄새를 발산하면, 그 냄새들이 그들의 기관을 조절해서 동시에 월경 주기가 시작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실제로 확인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두 개미는 황금 들녘의 한가운데서 자기들이 만나고자 했던 수확 개미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수확개미들은 사실은 나무꾼 개미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법하다. 자기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줄기의 밑동을 잘라서 먹이가 될 낱알들을 떨어뜨린다. 곡물 줍는 일을 제외하면, 수확개미들의 활동은 자기들 문명의 주 위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자기들이 직접 만든 제초제를 사용한다. 배애 달린 분비샘에서 나오 는 인돌 초산이 그것이다. 103683호와 4000호가 다가가자 수확개미들은 아는 체를 하느둥마 는둥 한다. 그들은 불개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두 개미는 기껏해야 도망쳐 나온 노예 개미이거나 로메슈제의 분비물을 찾는 개미이다. 그럼에도 수확개미 하나가 마침내 두 개미에게 빨강개미의 냄새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린다. 동료 하나를 데리고 그 개미가 일하던 것 을 멈추고 다가온다. '그대들은 빨강개미들을 만났는가?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벨로캉 개미들은 몇 주 전에 빨강개미들이 수 확개미들의 둥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빨강개미들은, 독 침으로 백여 마리의 일개미와 생식 개미를 죽이고 비축해 놓은 곡물 가루를 다 빼앗아갔다고 했다. 당시에 수확개미들의 군대는 새로운 곡물을 찾아서 남쪽으로 통하는 들녘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피해를 확인하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두 불개미는 자기들이 빨강개미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찾으러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수확개미들 이 질문을 하자 두 불개미는 자기들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그대들은 세계의 끝을 찾아나선 것인가?' 두 개미가 그렇다고 하자 수확개미들이 발랄한 냄새가 나는 웃음 의 페로몬을 터뜨린다. '왜 웃음보를 터뜨리는가? 세계의 끝이 없단 말인가?' '아니, 있다. 그대들이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의 끝이다! 수확하는 일외에 우리의 주된 활동이 세계의 끝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일이다.' 수확개미들은 다음날 아침부터 두 '관광객'을 그 형이상학적인 곳 으로 안내하겠다고 자원한다. 그날 저녁은 너도밤나무 껍질 속에 수 확개미들이 파놓은 작은 둥지의 보호를 받으며 토론의 시간을 보낸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던데.' 103683호가 묻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곧 그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떤 군대도 일거에 박살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던데 그게 사실인가?' 수확개미들은 이 낯선 개미들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워한다. '사실이다.' 그렇다면 103683호는 곧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게 될 것이다. 그날 밤 103683호는 꿈을 꾸었다. 땅덩어리가 직각을 이루며 멎는 다. 물로 이루어진 수직 벽이 하늘을 침범하고, 그 물 벽에서 아주 파괴적인 아카시아 가지들을 들고 있는 파랑개미들이 나온다. 그 마력을 지닌 가지의 끝을 갖다대기만 하면 어느것이나 박살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