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개미 제2장 아래로 아래로 지하 45층. 비생식 개미 103683호가 전투 훈련실로 들어간다. 병 정개미들이 춘계 전쟁에 대비해서 훈련을 하고 있는, 천장이 낮은 방들이다. 어디에서나 병정개미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다. 대련자들은 먼저 상배방의 체격과 다리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서로서로를 더듬는 다. 다음에는 몸을 돌려 옆구리를 서로 더듬어보고 상대방의 털을 잡아당기면서 냄새를 풍겨 도전장을 내고, 더듬이의 도톰한 끝으로 서로를 가볍게 두드린다. 대련 준비를 끝낸 병정개미들이 마침내 서로서로를 향해 달려든 다. 딱지 부딪는 소리, 저마다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으려고 안 간힘을 쓴다. 한쪽이 상대방의 가슴마디를 붙잡자, 다른 쪽은 상대 의 무릎을 깨물려고 한다. 로보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몸짓 하나하나 가 나뉘어 있다. 두 뒷다리로 버티며 몸을 곧추세웠다가, 쓰러지며 구르기도 한다. 맹렬한 연습이다. 대련자들은 대개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면 동작을 멈추고, 다른 대상에게 달려든다. 이것은 그저 전투 기술을 익히기 위한 연습일 뿐 이다. 그러나 몸 한 부분이라도 깨지거나 피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 해야 한다. 등을 대고 누워버리는 개미가 생기면 전투가 중단된다. 그때 그 개미는 항복의 표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항복을 하면 중단하는 대련이기는 해도, 실제 상황과 다를 게 없 다. 상대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발톱으로 사정없이 눈을 찌르기도 하 고, 위턱이 맞부딪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지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50머리 떨어진 곳에 조약돌을 놓고, 겨냥을 해서 개미산을 쏜다. 개미산은 대개 과녁에 적중한다. 고참 병정개미가 신참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모든 것은 접전 을 벌이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는 것이다. 위턱으로 공격을 하거 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 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전을 벌이기 전에 이미 이기 려고 마음을 먹은 자와 패배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정해지기 마련이 다. 전투란 그렇게 역할을 나누는 문제일 뿐이다. 각자 자기의 역할 을 선택하고 나면, 승리를 결심한 자는 겨냥을 하지 않고 쏘아도 과 녁의 한가운데를 명중시킬 수 있을 것이고, 패배를 생각한 자는 제 위턱을 아무리 휘둘러도 상대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해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 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하는 것을 자기 몫으 로 받아들인 자를 그 무엇이 당할 수 있으랴. 결투를 하고 있던 두 개미가 병정개미 103683호를 떠밀었다. 103683호는 그들을 힘껏 밀어젖히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103683 호는 전투 연습장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용병들의 구역을 찾아가 고 있다. 그리로 가는 통로가 저기 보인다. 용병들의 방은 일반 부대의 방보다 훨씬 더 널찍하다. 용병들은 끊임없이 훈련장 위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오로지 전쟁에 대 비해서 존재할 뿐이다. 용병 부대에는 벨로캉 인근의 갖가지 미개 부족의 개미들이 어우러져 있다. 동맹을 맺은 부족의 개미들이 있는 가 하면, 정복을 당한 부족의 개미들도 있다. 즉, 노랑개미, 빨강개 미, 까망개미, 끈끈이침 개미, 독침을 가진 원시개미 등이 들어 있 고 심지어는 난쟁이개미도 섞여 있다. 다른 부족의 개미를 먹여살리는 대가로 적들이 침입해 올 때 그들 이 자기 편에 서서 싸우게 만든다는 생각은 흰개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개미 도시에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즉, 외교적인 문제가 미묘해 지면서 개미들이 다른 개미와 싸우기 위하여 흰개미와 동맹 을 맺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흰개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 미부대를 아예 용병으로 만들어서 흰개미 도시에 영원히 주둔하게 하면 어떨까? 그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개미군대가, 흰개미들을 위해 싸우는 같은 개미 동포들과 맞서 싸워 야 했다. 개미 문명이 아주 빠르게 적응력을 키워감에 따라 이번에 는 개미쪽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개미들은 흰개미들이 했던 대로 흰개미 부대를 용병으로 삼아 제 종족과 싸우게 함으로써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 요한 장애가 생겨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여왕에 대한 흰개미 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충성심이 워낙 빈틈이 없어서 제 겨레에 맞서 싸우질 못했다. 결국 용병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용병을 제 겨레와 싸우게 하는 패륜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인 데, 그 모든 폐단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개미들뿐이었다. 개미들은 생리적인 특징만큼이나 다채로운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흰개미들을 용병으로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족의 개미들이 있 기에 용병 제도를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불개미 대연방 들은 많은 이방 개미 부대를 만들어 자신들의 군대를 강화하는 것으 로 만족했다. 이방 개미들의 부대는 모두 벨로캉 페로몬의 기치 아 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103683호는 난쟁이개미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시게푸의 비밀무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순식간에 불개미 원정대 28마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출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느냐고. 용병 개미들은 그렇게 강력한 무기는 본 적이 없고, 그런 소리는 듣던 중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103683호는 가까운 동료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있는 개미들은 모두 103683호가 잘 아는 개미들이었다. 그들 은 103683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를 믿어주었다. 그의 얘 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결의에 찬 30마리 이상의 개미들이 모여 '난 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를 탐색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아, 327호 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주의할 점이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를 모두 죽이려 하는 한 무리의 조직된 집단이 있다. 그 자들은 틀림없이 난쟁이개미들을 위해 일하는 불개미 용병들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보안을 위해서, 그들은 첫 모임을 도시의 가장 밑바닥인 지하 50 층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방 가운데 하나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아 무도 거기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 거기에서라면 마음놓고 거사 계획 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때 103683호의 몸이 갑작스럽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을 알려 온다. 그는 몸으로 기온이 23도임을 느낀 것이다. 103683호는 동료 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327호, 56호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개미의 미학 개미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구부슴한 테두리 선은 맵시좋 게 다듬어져 있고, 몸매에 구현된 공기 역할의 원리가 더할 나위 없 이 훌륭하다. 몸의 구석구석이 정교하게 고안된 차체와 같아서, 공 기 역학의 원리에 맞게 오목오목 들어간 자리에 다리 하나하나가 완 벽하게 박혀 있다. 몸 마디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다. 몸 마디를 감싸고 있는 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어떤 디자이너가 마름질한 것처 럼 사개가 꼭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삐걱거리는 일이 없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세모진 머리는 공기를 헤쳐나아가기에 알맞고, 구부러진 긴 다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몸을 사뿐하게 받치 고 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스포츠카를 보는 듯하다. 발톱은 천장에서도 붙어다닐 수 있게 되어 있고, 눈은 180도의 넓 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더듬이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가 지의 정보를 감지하며, 그 끄트머리는 망치 구실을 한다. 배에는 화 학 물질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나 자루나 샘들이 가득하다. 위턱 으로 물건을 자르고 구멍을 내며 붙잡을 수도 있다. 몸안에 그물처 럼 퍼져 있는 관들을 통해 후각 정보를 방출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니콜라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도 텔레비젼 앞에 앉아 있었다. 무인 탐사 우주선 '마르코폴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뉴스가 방금 끝났다. 탐사 작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지구 와 가까운 태양계에는 생물이 살고 있는 징후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 다. 무인 우주선이 탐사한 행성들이 보여준 모습이란 바위 투성이의 사막이나 암모니아 액으로 된 표면이 고작이었다. 아주 보잘것 없는 이끼 하나, 아메바 하나, 미생물 하나도 없었다. '정말 아빠 말대로 외계의 생물은 없는걸까? 온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의 형태는 우리뿐인가?....' 니콜라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 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가 끝나자 '세계의 문화'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은 인도의 카스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힌두교인들은 태아날 때부터 각자의 카스트를 타고나 죽을 때까 지 거기에 속하게 됩니다. 카스트마다 따라야 할 규율이 있는데, 그 규율이 엄격해서 그것을 범했다가는 출신 카스트는 물론이고 다른 카스트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그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떠올려야 할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니콜라가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지하실에서 개 가 죽은 뒤로, 아이는 매일 4시간씩 일삼아 텔레비젼을 보았다.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 딴 사람처럼 되어보려는 제 나름의 방 법이었다. 니콜라 어머니의 음성이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일깨웠다. "자, 이제 그만 보거라. 피곤하지 않니?" "아빠는 어디 계셔요?" "아직 지하실에 계시단다.... 이제 자야지." "잠이 안 와요." "옛날, 얘기 해줄까?" "예, 좋아요!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로요." 뤼시는 아이의 방으로 함께 가서, 오렌지빛의 긴 머리채를 풀어 해치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뤼시는 히브리의 옛이야기 하나를 골랐다. "옛날에 석수장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 뻘 흘리며 산을 파는 일이 그 사람 일이었지. 어느 날 그 석수장이 는 자기 일에 싫증이 났어. 석수장이는 생각했지. '이런 삶은 지긋 지긋해. 허구헌 날 돌맹이나 깎고 있자니 지겨워서 못 하겠어.... 저 햇님은 늘 따가운 햇살로 나를 힘들게 해. 아, 내가 햇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 높은 곳에서 세상에 햇살을 가득 뿌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못 할일이 없을 거야.'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어. 곧바로 석수장 이가 햇님이 된 거지. 그는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자 행복했어. 그런 데,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 여기저기에 햇살을 보내고 있는데, 구름이 나타나서 햇살을 막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이 소리쳤지. '구 름이 저렇게 쉽게 내 햇살을 막아버리니 햇님이 된 게 무슨 소용이 있담! 구름이 햇님보다 더 힘이 센 거라면 구름이 되고 싶어.' 이렇 게 말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구름이 되었어. 그는 세계 위를 날아다니면서 비를 뿌렸지.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구름을 흩 뜨리는거야.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생각을 했지. '아, 바람이 구름을 흩뜨릴 수 있다면, 가장 힘이 센 건 바람이다. 난 바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그는 바람이 되었나요?" "그렇지,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 폭풍을 일으키고, 돌풍을 만들기도 하고, 태풍이 되기도 했어. 그런데 느닷없이 벽이 하나 나타나서 그가 가는 길을 막았어. 아주 높고 튼튼한 벽이었지. 산이 나타난거야. '고작 산 하나가 내 길을 막는다면, 바람이 된 게 무슨 소용이람? 가장 힘이 센 건 바로 산이로구나!' 하고 그가 말했어." "그래서 그는 산이 되었겠군요." "맞아, 그때 그는 산이 된 자기를 뭔가가 두드리고 있는 걸 느꼈 지. 그보다 더 힘이 센 무언가가 안에서 그를 후벼파고 있었던 거 야. 그건.... 자그마한 석수장이였어...." "아아!"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니?" "그럼요, 엄마." "텔레비젼에서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하는 거 본 적이 없지?" "예, 엄마." 뤼시는 웃으면서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 "그런데 엄마, 아빠도 뭔가를 파고 있는 건가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간 아빠는, 저 아래로 내려감으로 써 아빠 자신이 해나 구름과 같은 다른 것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빠는 이곳이 편치 않은가 봐요." "그렇단다. 니콜라. 아빠는 실업자인 걸 부끄러워하셔. 아빠는 햇 님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는거야. 땅 속의 햇님 말이야." "아빠는 아빠 자신을 개미들의 왕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뤼시가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야. 네 아빠에겐 아이 같은 구석이 있 지 않더냐. 어린애치고 개미집에 반하지 않는 애가 없지. 너는 개미 를 갖고 장난해 본 적이 없니?" "왜요, 있어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베개를 다독거리고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자야지. 그럼 잘 자거라."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뤼시는 아이의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성냥개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아직 정삼각형 네 개 만드는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뤼시는 거실로 돌아와서 읽던 책을 다시 들었 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집의 내력을 밝혀놓은 건축 책이었다. 그 책에 따르면, 많은 학자들이 이 집에 살았으며, 특히 중세에는 신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미셸 세르베라는 사람이 그 한 예인데, 그는 이 집에서 몇 해 동안 산 걸로 나와 있었다. 책의 어떤 구절이 유독 뤼시의 눈길을 끌었다. 그 구절에 따르면, 종교 전쟁중에 도시 밖으로 신교도들을 도망시키기 위해 지하실을 팠다고 한다. 보통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깊고 긴 지하실을.... 개미 세 마리가 완전 소통을 실행하려고 세모꼴을 이루며 앉아 있 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도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조사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하여 한 몸뚱이가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더듬이를 결합하자 생각들이 순환하면서 융합하기 시작한 다. 아무 문제없이 일이 잘되어 간다. 각각의 뇌수는 하나의 트랜지 스터가 되어, 자신이 받아들인 전기 신호를 증폭시켜 다른 뇌수에 전하고 있다. 그렇게 결합된 세 개미의 정신은 그들의 능력을 단순 히 합쳐놓은 것보다 뛰어나다. 그때 갑자기 꿈결 같은 더듬이 대화가 중단되었다. 103683호는 잡 스러운 냄새가 끼여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벽에 웬 더듬이가 붙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56호 암개미의 방 입구에 더듬이 두 개가 비 죽 나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분명하다. 밤 열두시, 조나탕이 다시 올라오지 않은 지 이제 이틀이 되었다. 뤼시는 가슴을 졸이며, 거실 안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니콜라를 보러 건너가보니 아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뤼시의 눈길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성냥개비였다. 문득 어떤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성냥개비의 수수께끼 속에 지하실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었다. 성냥개비 여 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해 서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어.'라고 조나탕이 되뇌이었지. 뤼시는 성 냥개비를 들고 거실로 돌아와서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다. 마침내 그 녀는 불안감에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뤼시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먼저 에드몽 삼촌이 보였다. 아니 꿈에 보인 그 사람이 에드몽 삼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 만, 남편이 전에 얘기했던 에드몽 삼촌의 모습과 일치하는 사람이었 던 건 확실했다. 그 사람은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은 사막 한복판 돌투성이 땅이었다. 멕시코 병 사들이 그 줄을 둘러싸고 '모든 게 제대로 되어가는지'를 감시하고 있었다. 멀리에 사람들의 목을 매다는 교수대가 여남은 개 보였다. 사람들이 뻣뻣한 시체가 되면, 그들을 떼어내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 에 세웠다. 그 사람이 들어 있는 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에드몽 삼촌 뒤에는 조나탕과 뤼시 자신과 아주 작은 안경을 쓴 뚱뚱한 남자가 바짝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사형수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두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그들 넷이 나란히 교수대에 매 달렸다. 그들은 하릴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에드몽 삼촌이 처음으 로 입을 열었다. 쉰 음성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모르겠어요.... 살아야죠. 이왕 태어났으니, 되도록 오래 살아야 죠. 그런데 이거, 끝이 날 것 같은데요." 조나탕이 대답했다. "이보게 조카, 자네 비관하지 말게. 우리 목이 매달리고 멕시코 병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이건 어쩌다 맞닥뜨 린 인생의 고비일 뿐 끝은 아니야. 그저 하나의 고비일 뿐이라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있다네. 뒤에 있는 자네 들, 올가미가 느슨한가 보게." 그들은 포승에 묶인 채 버둥거려보았다. "아, 내 올가미는 느슨하군요. 이걸 벗어버릴 수가 있겠어요."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잘했네, 그럼 우리를 풀어주게...." "어떻게 해야 되죠?" "내 손에 자네 몸이 닿을 때까지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게." 그 뚱뚱한 남자가 몸을 뒤틀며 애를 쓴 끝에 살아 있는 시계추가 되었다. 그가 에드몽 삼촌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 두 똑같은 방식으로 차례차례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자 에드몽 삼촌은 '다들 내가 하는 대로 하게!'라고 말하더 니, 목을 조금씩 들썩거리면서 그 줄의 맨 끝에 있는 교수대를 향해 서, 올가미들을 하나씩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잖아요! 이 들보를 지나면 아무 것도 없어요. 저 자들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눈치챌거예요." "보게, 이 들보에 작음 구멍이 하나 있네, 저기로 가세." 그러면서 에드몽 삼촌은 들보를 향하여 뛰어올랐다. 그리고 삼촌 은 아주 작아지면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조나탕과 뚱뚱한 남자가 그대로 했다. 뤼시 자신은 도저히 못 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나뭇조각을 향해 달려들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나선 계단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 다. 그들이 도망친 것을 알아차린 군인들의 고함 소리가 벌써 들려 오고 있었다. 로스 그링고스, 로스 그링고스, 퀴다도! 장화 소리, 총소리, 군인들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현대적인 호텔 방이 나왔다. 바다가 보이는 방이 었다.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8호실. 문이 꽝 하고 닫히는 바람에 꼿꼿이 서 있던 8자가 옆으로 누우면서 무한대 기호 로 바뀌었다. 방은 호사스러웠다. 거기에 있으니 험악한 군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뤼시가 다짜고짜 남편에게 덤벼들었다. '니콜라를 생각해야죠, 니콜라를 생각해야 한다구요.'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오래된 화병 하나를 집어들어 남편을 때 렸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뱀을 목 졸라 죽이는 그림이 그려진 화병 이었다. 조나탕은 양탄자 위에 거꾸러지더니 껍질이 벗겨진 새우로 변했다. 그 새우가 꿈틀거리는 모양이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에드몽 삼촌이 앞으로 나섰다. "질부, 자네 후회하고 있지, 안 그런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알게 될꺼야. 나를 따라오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뤼시를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발코니로 데려가더니, 손가락을 구부리며 두두둑 소리를 냈다. 그러자 곧 구름에서 불붙은 성냥개비 여섯 개가 내려와 그의 손 위에 일렬로 늘어섰다. 그가 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내 얘기를 잘 듣거라. 사람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생각 을 한다. 세계를 언제나 똑같은 진부한 방식으로 파악하지. 그걸 사 진 찍는 것에 비유하자면 언제나 광각 렌즈 하나만 가지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지. 그것도 현실의 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건 하나의 시각일 뿐이야.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생 각해야 한다! 보거라." 성냥개비들이 잠시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더니 땅바닥에 모였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기어다니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었 다. 그 모양은.... 다음날, 뤼시는 무척 흥분한 상태가 되어, 용접을 하거나 쇠를 녹 일 때 쓰는 불꽃뿜개를 샀다. 그걸 가지고 뤼시는 지하실 문의 자물 쇠를 녹여버렸다. 그녀가 지하실 문턱을 넘어가려는데, 니콜라가 아 직 잠이 덜 깬 채로 부엌에 나타났다. "엄마! 어디 가요?" "아빠 찾으러 간다. 아빠는 자신이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거 야. 산들을 넘어다닐 수 있는 구름 말이다. 아빠 얘기가 허풍이 아 닌지 좀 알아봐야갰어. 갔다와서 얘기해 줄께...." "안돼요. 엄마, 가지 마세요. 가지 말아요.... 저 혼자 남잖아요." "걱정 마라, 니콜라. 다시 올라올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태니 기다리고 있거라." 뤼시는 지하실 구멍에 불을 비추었다. 그곳은 캄캄했다. 너무나 캄캄했다. '게 누구요?' 두 더듬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머리와 가슴과 배가 차례로 모습들 을 드러낸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예의 그 작은 절름발이다. 그들이 그 절름발이를 덮치려 하는데, 그 뒤에 위턱으로 단단히 무장한 백 마리쯤의 병정개미들이 나타난다. 병정개미들은 모두 바위 냄새를 풍기고 있다. '비밀 통로로 도망가자!' 암개미 56호가 페로몬을 뿜었다. 56호는 지하 통로의 입구를 열었다. 그러고는 날개를 파닥여 천장 에 스칠 정도로 올라가더니, 앞장서서 난입해 오는 자들에게 개미산 사격을 한다. 그 틈에 두 공모자들이 도망을 치고, 병정개미들 속에 서 '저놈들을 죽여라!'하는 야만적인 구호가 튀어나온다. 이번에는 56호가 구멍 속으로 숨어들어 간다. 병정개미들의 개미 산이 아슬아슬하게 56호를 스치고 지나간다. 빨리, 빨리! 저놈들을 잡아라! 수백 개의 다리가 56호를 쫓아 몰려든다. 첩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들은 도망치는 셋을 잡으려고 비좁은 통로에서 시끌벅적거린다. 수개미와 암개미와 병정개미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더듬이를 뒤로 젖힌 채, 통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 통로는 이제 비밀 통로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암개미 거주 구역을 빠져나와 아래층으로 내 려간다. 얼마 안 가서 좁은 통로가 끝나고 갈림목이 나온다. 거기서 부터 네 거리가 자꾸 나온다. 그렇지만 발씨가 익은 327호가 낭패스 러워 하는 동료들을 이끌고 간다. 그때 느닷없이, 터널 모퉁이에서 그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한 마리의 병정개미들과 맞다뜨렸다. 아니 이럴 수가.... 절름발이가 벌써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 간교한 곤충은 모든 지름길을 훤히 알고 있지 않은가! 세 도망자들이 뒤로 물러서며 도망을 친다. 그들이 가까스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103683호가 한 가지 의견을 내놓는다. 적 들이 지리를 훤히 아는 구역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이 난마처럼 뒤얽힌 통로 속에서도 적들은 너무나 쉽게 돌 아다니고 있었다. '적이 나보다 강할 때는 적의 의표를 찌르라.' 벨로캉의 시조께서 말씀하신 이 오랜 격언이 지금 그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56호가 꾀를 하나 낸다. 벽 속에 숨자는 것이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내몰리기 전에 숨을 곳을 마 련하려고, 세 개미는 안간힘을 다해 측벽에 구멍을 판다. 위턱을 부 지런히 놀려 흙을 부수고 퍼낸다. 눈과 더듬이가 흙투성이다. 그들 은 일을 더 빨리 끝내려고 이따금 흙을 크게 한입씩 삼켜버리기도 한다. 구멍이 꽤 깊어지자 그들은 그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벽을 원래대로 해 놓고 기다린다. 추격자들이 다가왔다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훨씬 더 느린 걸음 이다. 얇은 벽 뒤에서 추격자들이 세 개미를 찾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병정개미들은 세 마리가 벽 속에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 다. 그렇다고 마냥 벽 속에 있을 수는 없다. 병정개미들이 셋의 냄 새 중에서 어떤 냄새인가를 감지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그들 은 다시 땅을 판다. 더 커다란 위턱을 가진 병정개미가 앞에서 곡괭 이질을 하고, 두 생식 개미는 그 흙을 퍼다가 그들의 뒤를 메운다. 암살자들이 그들의 작전을 눈치챘다. 그 자들은 벽을 조사해 보고 나서 세 개미가 지나간 흔적을 찾아내고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한 다. 세 개미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검은 안개 속을 가고 있는 듯한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길잡이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는 1초마다 세 개의 통로가 생기고 두 개의 통로가 막히는 판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믿을 수 있는 도시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고정되어 있는 기준점은 둥근 지붕과 그루터기 뿐이다. 세 개미는 과실의 살덩이를 파고들어가듯 천천히 도시 속을 파고 든다. 이따금 기다란 덩굴 식물이 길을 막아선다. 그것은 실은 비가 올때 도시가 무너지지 말라고 농경 개미들이 심어놓은 송악의 뿌리 이다. 어딘가를 가다 보면 땅이 딱딱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위턱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빙 돌아서 다른 곳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두 생식 개미는, 추격자들이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 개미는 거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 곳은 벨로캉 한가운데, 개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텅 빈 동굴이다. 비도 스며들지 않고, 공기도 희박한 곳으로 서, 아무도 여기에 이런 동굴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무인도 같은 곳이다. 이 작은 동굴까지 그들을 찾으러 올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어머니 뱃속의 난소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56호가, 마주 대하고 있는 327호의 머리를 제 더듬이 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영양 교환을 부탁하는 것이다. 327호는 받아들인다는 표 시로 더듬이를 낮추고 제 입을 암개미의 입에 갖다 댄다. 327호는 진딧물 분비꿀을 조금 되올린다. 그 분비꿀은 전에 경비 개미가 그 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56호가 다시 원기를 찾는다. 이번에는 103683호가 56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그들은 서로 입술을 갖다 댄다. 56호는 방금 전에 제 먹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영양물을 되 올려 103683호에게 나누어준다. 그러고 나서 세 개미는 서로를 어루 만져주고 비벼준다. 아! 개미에게 있어서, 동료에게 뭔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원기를 되찾기는 했지만, 무한정 거기에 있을 수는 없는 형편이었 다. 산소가 다 떨어져간다. 개미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도, 공 기도, 온기도 없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생명의 요소가 없으면 결국 잠이 들게 되고, 그 잠은 죽음을 불러오게 된다. 세 개미가 더듬이를 맞대고 상의를 한다.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 계획에 찬동하는 3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지하 50층의 어 떤 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가자.' 그들은 다시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들이 방향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지구 자장에 민감한 존스톤 씨 기관 덕분이다. 그들은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이제 자기들이 지하 18층 곡물 창고에서 지하 20층 버섯 재배장 사이에 와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추워지고 있다. 밤이 되면서 냉기 가 땅 속 깊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몸놀림이 느려지더니 마침내 땅을 파던 자세 그대로 멎은 채 잠이 들어버린다. 다시 따뜻 해지기를 기다리면서. "조나탕, 조나탕, 나예요 뤼시예요!" 그 암흑 세계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면서, 뤼시는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다가 나선 계단을 끝없이 내려가면서는 다른 심리 상태 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내부로 점점 깊이 침잠해 들어가는 기분이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가, 그 다음에는 뱃구레의 태양 신경절이 고통스럽게 조여드는 듯했고, 이 어서 명치가 콕콕 쑤셔왔다. 그러더니 이제는 배 전체로 통증이 퍼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릎과 발이 기계가 움직이듯 무의식적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 다. 그것도 얼마 못 가서 탈이 날 것만 같다. 거기에서도 통증이 느 껴지는 듯하다. 곧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다.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독선적이었던 어 머니, 어머니는 그녀를 늘 죄인으로 만들었고, 귀염둥이 아들들 편 에 서서 불공정한 처사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졸장부였던 아버지, 아내 앞에서 벌벌 떨었고,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도 입 한번 뻥긋 못하고 피하려고만 들었으며, 여왕 같은 어머니 말이라면 무조건 예 예 하던 아버지, 겁쟁이였던 아버지.... 자신이 조나탕을 온당치 못하게 대했던 것도, 어린 시절의 그 고 통스런 기억이 지어내는 감정 때문이었다. 사실 뤼시는 친정 아버지 를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자나깨나 잔소리를 퍼부어대니까 남편이 기가 죽고 오갈이 들어 친정 아버지를 닮아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악순환이 다 시 시작되었다. 뤼시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것, 즉 친정 부모들 같은 부부 관계를 다시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선 안 되었는데, 뤼시는 남편에게 퍼부어 댔던 질책이 후회스러웠다.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뤼시는 나선 계단을 돌고 돌아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이 남 편에게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몸을 짓누르던 두려움과 고통이 가시었다. 계속 돌며 내려가다가 뤼시는 하마터면 어떤 문에 부딪힐 뻔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인데, 한쪽에 무슨 글귀 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읽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 잡이가 하나 달려 있었다. 문은 삐걱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문 너머 저쪽으로도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까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위 복판에 철광석의 앎은 광맥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었다. 땅 속 물줄기에서 스며들어온 물과 섞여서, 철광 석은 붉은색이 섞인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달라진 게 그것밖에 없었는데도, 뤼시는 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 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뤼시의 손전등이, 발치에 있는 피 얼룩을 비추었다. 우아르자자트의 피 얼룩이 남아 있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겁 모르던 작은 푸들 종 개가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여기저기에 피가 튀어 묻은 것 같은 얼룩이 있었 다. 그러나 벽에 있는 얼룩들은 핏자국인지 녹슨 철광석의 얼룩인지 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문득 무슨 소리가 들렸다. 따닥거리는 소리였다. 무엇인가가 뤼시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것들은 마치 겁을 먹고 감히 다가올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듯했다. 뤼시는 발걸음을 멈추고 손전등 빛으로 어둠 속을 뒤져보았다. 맨 처음 소리가 났던 곳을 비춰보고 나서, 뤼시는 사람의 소리가 아닌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뤼시가 있는 그곳에서는 그녀의 울 부짖음을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들을 위해 아침이 찾아온다. 세 개미가 다시 내 려가기 시작한다. 지하 36층. 103683호의 발씨가 익은 곳이다. 103683호는 이제 통로로 나가도 위험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거기까지 그들을 따라올 리는 없었다. 그들은 개미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나지막한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의 왼쪽 또는 오른쪽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열 번의 겨울나기 이전부터 버려진 곡물 창고들이다. 땅바닥 이 끈적거린다. 물기가 배어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지대는 비위생적인 곳으로 여겨졌던 것이고, 벨로캉 내에서 가장 악 명 높은 구역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취가 풍긴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뭔가 적의를 가진 자들이 숨어 있음을 느끼고 더듬이로 그것들을 탐색한다. 이곳에는 기생 곤충과 불법 거주자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다. 그들은 위턱을 활짝 벌리고 음산한 방들과 터널 속을 나아간다. 갑자기 새되게 긁는 소리가 들려 그들을 소스라치게 한다. 씨르, 씨 르, 씨르.... 음조가 단순하다. 그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최면을 거 는 듯한 그 단조로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살핀다. 진흙 동 굴 속에서 울리고 있다. 병정개미의 얘기에 따르면 귀뚜라미가 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 소 리가 그들의 사랑 노래라는 것이다. 두 생식 개미는 조금 안도가 되 기는 했으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다. 어쨌든 귀뚜라미 들이 도시 안에까지 들어와서 연방의 군대를 조롱하고 있다는 게 도 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103683호 자신에게는 그 일이 놀라울 게 없다. 선대의 여왕께서 이런 격언을 남기시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보다 는 자신의 강점을 공고히 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이런 일은 바로 그 가르침의 산물일 뿐이다. 다른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아주 빠르게 땅을 파들어오고 있 는 듯하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그들을 찾아낸 것일 까? 아니다. 앞다리 두 개가 그들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발톱에 날이 서 있어서 쇠스랑처럼 보인다. 그 앞다리로 흙을 움켜쥐었다가 뒤로 밀어내면서 시커멓고 커다란 몸뚱이를 추진시키는 것이다. 땅강아지가 아니면 좋으련만! 세 개미는 모두 위턱을 벌린 채, 꼼짝 않고 있다. 땅강아지다. 흙의 소용돌이가 인다. 검은 털과 하얀 발톱이 달린 공 같다. 그 동물은 흙의 침전층 사이를 헤엄치듯 나아간다. 마치 개구리가 호수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세 개미는 흙에 두드려맞고 이리저리 내 둘리고, 진흙 덩어리에 들러붙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 상처도 입 지 않고 고비를 넘겼다. 땅 파는 기계 같은 땅강아지가 지나갔다. 땅강아지는 벌레들만 찾고 있었다. 벌레들의 신경절을 깨물어서 마 비시킨 다음에, 그것들을 제 땅굴에 산 채로 저장해 두는 것이 땅강 아지의 커다란 낙이다. 세 개미는 몸에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찬찬하게 몸 단장을 한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그들은 이제 아주 좁으면서도 높은 통로에 들어섰다. 길잡이를 맡 은 병정개미가 천장을 가리키면서 주의하라는 냄새를 발산했다. 천 장에는 아닌게아니라, 검은 얼룩이 있는 빨간 빈대들이 덕지덕지 붙 어 있었다. 지긋지긋한 골칫덩이! 길이가 3머리(9밀리미터)인 이 곤충의 등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곤충은 대개 죽은 곤충의 축축 한 살을 먹고 살지만 때로는 팔팔하게 살아 있는 곤충을 먹기도 한다. 빈대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세 개미 위로 떨어진다. 그놈이 땅에 닿기 전에 103683호가 가슴 아래로 배를 디밀어 개미산을 쏘았 다. 개미산을 맞은 빈대는 땅에 떨어지자 뜨거운 잼으로 변해버렸 다. 그들은 잼처럼 변해 버린 빈대를 서둘러 먹고는, 또 다른 놈이 공격해 오기전에 얼른 그 방을 떠났다. 개미의 지능 나는 이른바 '1월-58'이라는 실험에 착수했다. 첫번째 주제는 지 능이었다. 개미에게 지능이 있는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중간 크기의 비생식 충인 불개미(불개미속 루파 개미) 한마리를 다음과 같은 문제 상황에 놓았다. 구멍이 하나 있고, 그 구멍 바닥에 단단하게 만든 꿀을 한 덩어리 놓았다. 그런 다음 작가지 하나를 구멍 위에 놓아 개미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 작가지는 가볍지만 아주 긴 것이었고, 단단하게 박아놓았다. 보 통의 경우라면 개미는 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 갈수 있겠지만, 이 구멍의 테두리는 딱딱한 플래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뚫을 수가 없다. 제1일: 개미가 잔가지를 이따금씩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잔가지가 조금 들썩이자 그것을 다시 놓았다가 들어올린다. 제2일: 개미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잘 라보려고도 해보지만 성과는 없다. 제3일: 위와 같음. 이 곤충은 그릇된 추리 방식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다른 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곤충이 구멍 으로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그게 지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제4일: 위와 같음. 제5일: 위와 같음. 제6일: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뭇가지가 구멍에서 치워 져 있었다. 밤 사이에 그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 통로는 반쯤 막혀 있었다. 흘러내리던 차갑고 메마른 흙 이 하얀 뿌리에 매달려 포도송이를 이루었다. 이따금 흙덩이가 굴러 떨어진다. 흔히들 그것을 '안에서 내리는 우박'이라고들 한다. 그렇 게 흘러내리는 흙덩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알려진 것이라 고는, 한층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재빨리 흙더미 쪽으로 건너뛴다는 것뿐이다. 세 개미가 전진하고 있다. 배를 땅에다 붙이고 더듬이를 뒤로 바 짝 젖힌 채 다리를 성큼성큼 벌리고 있다. 103683호는 자기가 이들 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땅이 다시 축축해진다. 메스거운 냄새가 주위를 맴돈다. 산 것의 냄새, 어떤 벌레의 냄새다. 수개미 327호가 멈춰선다. 완전히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327호가 보기에 누군가가 몰래 벽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가 미심쩍은 곳 으로 다가갔다. 벽이 다시 덜덜 떨린다. 거기에서 입처럼 생긴 것이 하나 나타났다. 그가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땅강아지가 아니다. 그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다. 입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변하더니 그 한가운데서 혹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수개미에게 덤벼든다. 수개미가 비명을 지르듯 냄새를 뿜는다. 지렁이다! 수개미가 위턱으로 쳐서 지렁이를 잘라버린다. 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는 벽들이 그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무너져내 리기 시작한다. 곧 지렁이들이 잔뜩 몰려든다. 꼭 회충이 많은 새의 창자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지렁이 한 마리가 암개미의 가슴을 휘감으려들자, 암개미는 위턱 으로 잽싸게 쳐서 지렁이를 몇 토막으로 잘라버렸다. 그 토막들이 암개미 양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다른 지렁이들이 떼를 지어 그들 의 다리와 머리를 휘감았다. 더듬이에 지렁이가 닿는 게 특히 견디 기 힘들다. 세 개미는 일제히 사격 준비를 하고 공격력이 약한 그 지렁이들에게 개미산을 쏘았다. 마침내 땅바닥에 황토색 살덩이가 질펀하게 깔렸다. 그 살덩이들은 세 개미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팔딱 거렸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자 103683호가 그들이 지나가야 할 통로들 을 가리킨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수록 고약한 냄새가 조금씩 진하 게 나고, 그럴수록 그들은 그 냄새에 익숙해진다. 무엇이든 되풀이 되면 익숙해지는 법 아닌가. 병정개미가 벽 하나를 가리키며 이곳을 파야한다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이곳은 옛날에 퇴비 처리장으로 쓰던 곳이다. 모임 장소는 바로 옆이다. 조용하니까 여기서 모임을 갖는게 좋을 게다.' 그들은 벽을 파고 넘어간다. 건너편에 커다란 방이 하나 나타나는 데, 배설물 냄새가 진동한다. 아닌게아니라 그들의 대의에 동참한 30마리의 병정개미들이 거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는 했다. 그 러나 그 병정개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먼저 초보적인 조각맞추기 놀이라도 해야할 만큼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병정개미들이 모두 토막이나 있었던 것이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두려움에 떨면서, 세 개미가 그 죽음의 방을 조사하고 있다. 도대 체 누가 여기, 벨로캉의 맨 밑바닥에서 이들을 죽였을까? '틀림없이 위에서 내려온 어떤 자의 소행일 게다.' 327호가 페로몬을 발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든다.' 56호 암개미가 반박하고, 땅바닥을 파보자고 제안한다. 수개미가 위턱을 바닥에 박는다. 아프다. 밑에는 바위가 있다. 조 금 뜸을 들이다가 103683호가 설명을 한다. '거대한 화강암이다. 그게 도시의 맨 밑이고 단단한 바닥이다. 두 껍다. 아주 두껍다. 그리고 널찍하다. 아주 너른 바위다. 아무도 이 바위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바위가 세계의 끝일지도 모른다. 그때, 이상한 냄새 가 풍겨왔다. 무엇인가가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과 금방 친해 질 수 잇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겨레 개미는 아니고, 딱정벌레의 한 종류인 로메슈제이다. 아주 어린 애벌레 시절에, 56호는 어머니에게서 이 곤충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메슈제의 감로에 한번 맛들이면, 그것을 마실 때의 기분을 따 라갈 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을 게다. 그건 온갖 육체적 욕망이 빚어낸 음료다. 그 로메슈제의 분비물을 마시게 되면 아무리 강인한 의지라도 맥을 못 추게 되느리라.' 실제로 그 물질을 마시게 되면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력이 작용을 멈추게 된다. 로메슈제를 도시 안에 들여와 그 독물을 마시 던 개미가, 그것을 공급해 주던 로메슈제가 죽은 뒤에도 어쩌다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그 개미는 새로운 약을 찾아서 어 쩔 수 없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 개미는 더 이상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탈진할 때까지 걷는다. 그러다가 로메슈제를 찾아내 지 못하면, 풀잎에 달라붙어 죽음을 맞는다. 금단의 고통을 이겨내 려고 수없이 물어뜯은 상처를 온몸에 남긴 채로. 어린 56호가 어느 날 이렇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흰개미와 꿀벌 들은 로메슈제를 가차없이 죽여버리는데, 우리는 왜 그 재앙의 씨앗 이 도시에 반입되는 것을 용인하느냐고, 어머니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떤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이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이 반드시 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로메슈제의 분비물은, 복용량 을 알맞게 조절하거나 다른 물질하고 배합하면, 훌륭한 약이 될 수도 있다. 수개미 327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로매슈제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홀려서, 수개미가 로메슈제의 배에 난 털을 핥는다. 거기에서 환각 작용을 하는 끈끈한 액체가 묻어나온다. 너무도 놀라 운 사실은, 그 독물 공급자의 배에 두 개의 기다란 털이 달려 있어 서,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진 개미 머리와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도 달려든다. 그러나 미처 그 맛을 즐길 겨를이 없었 다. 개미산 한 방이 날아든 것이다. 103683호가 배를 들어 사격을 했다. 화상을 입은 로메슈제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을 비튼다. 병정개미가 간결하게 자신이 방해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이런 곤충을 만나게 되는 것은 범상한 일 이 아니다. 로메슈제는 땅을 팔 줄 모른다. 누군가가 우리 일을 방 해 하려고 일부러 이놈을 데려온 것이다. 여기를 뒤져보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두 개미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자기들 동지의 명철함에 그저 감복할 따름이었다. 세 개미가 오랫동안 수색을 벌인 다. 자갈들을 치우고, 방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아본다. 이렇다. 할 실마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마침내 이미 알고 있는 냄새를 감지해 냈다. 암살자들의 엷은 바위 냄새다. 느낄 듯 말 듯한 겨우 두세 개 의 냄새 분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냄새는 저쪽에서 오 고 있다. 바로 저 자그마한 바위 밑이다. 그들이 그것을 밀어내자 비밀 통로 하나가 나타난다. 역시 비밀 통로가 있었다. 다만, 그 통로는 아주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흙이나 나무를 파서 만든 통로가 아니라 놀랍게도 화강암을 뚫어 각이 지게 만든 통로였다. 아무리 강한 위턱을 가졌다 해도 이런 재료에 구멍을 낼 수는 없다. 통로는 꽤 넓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서 그들은 양식이 가득 찬 커다란 방에 내려섰다. 곡물 가루, 꿀, 알곡, 갖가지 고기....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만한 양이면 온 도시가 다섯 차례의 겨울을 날 수 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에서, 바 위 냄새가 난다. 그들을 쫓고 있는 병정개미들이 풍기는 냄새와 똑같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듯 많은 양식을 갈무리해 둔 창고가 이런 곳에 은밀하 게 꾸며질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인가! 이 창고에 접근하는 것 을 막으려고 로메슈제를 이용하다니! 이런 사실을 다른 동료들은 까 맣게 모르고 있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양식으로 실컷 배를 채우고 나서, 현재 자신 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알기 위하여 더듬이를 결합한다. 일이 갈수록 오리 무중이다. 첫 원정대를 몰살한 비밀 무기, 특별한 냄새 를 풍기는 가는 곳마다 그들을 공격하는 병정개미들, 로메슈제, 도 시의 바닥밑에 감추어진 양식 창고, 난쟁이개미들에게 매수된 용병 첩자들이 있을거라는 가정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자 들은 대단히 잘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327호와 동료들은 한가롭게 마냥 생각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었 다. 희미한 진동이 그곳까지 깊숙하게 전해져오고 있다. 둥둥 둥둥, 둥둥 둥둥. 위에서 일개미들이 배 끝으로 땅을 두드리고 있다. 비상 사태다. 2단계 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원 요청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 개미의 다리가 반사적으로 반회 전을 한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들의 몸은 벌써 겨레의 다른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에 들어서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뒤쫓고 있던 절름발이 개미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휴! 다행히 저 자들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군....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하실에서 돌아오지 않자, 견디다 못한 니콜 라는 경찰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얼마 뒤, 많이 운 탓에 눈은 발갛고, 무척 굶주려 보이는 아이 하 나가 경찰서에 들어와 '아빠, 엄마가 지하실로 사라졌어요'하면서 아마도 쥐나 개미에게 죽음을 당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깜짝 놀란 경찰관 두명이 아이의 뒤를 따라 시바리트 3번지의 지하층까지 왔다. 개미의 지능(계속) 실험에 다시 착수했다. 이번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피실험자: 먼젓번과 똑같은 개미집에서 꺼내온 동종의 다른 개미. 제1일: 개미가 나뭇가지를 밀고 당기고 물어뜯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는 없다. 제2일: 위와 같음. 제3일: 됐다! 개미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나뭇가지를 조 금 당기고, 그 틈새로 제 배를 집어넣은 다음 배를 부풀려서 나뭇가 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잡 고있는 다리를 내려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조금씩 간헐적 인 동작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잔가지를 밀어낸다. 그러면 그렇지....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경보는 비상 사태 때문에 발동된 것이었다. 서쪽 맨 끝에 자리잡 고 있는 분가도시 라숄라캉이 난쟁이개미 군대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반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전쟁은 불가피하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시게푸 개미들의 봉쇄를 뚫고 도망쳐 와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태의 자초 지종은 이러했다. 기온이 17도인 시작에, 기다란 아카시아 가지 하나가 라숄라캉의 주입구로 다가왔다. 기이하게도 움직이는 나무가지였다. 그 가지가 단번에 짓쳐들어와 빙빙 돌면서 입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파수 개미들이 사정없이 후벼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를 공격하려고 나갔지만, 모두 죽음을 당했다. 그 다음에는 모두들 그 나뭇가지의 광란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는 장미 봉오리 하나를 날려버리듯 둥근 지붕을 날려버리 고, 통로를 휘저어댔다. 병정개미들이 닥치는 대로 사격을 해보았지 만, 개미산으로는 그 식물성 파괴자를 조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여 라숄라캉의 개미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기진 맥진 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뭇가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기온이 2도 일 때의 시간 길이만큼 쉴 틈을 주더니, 이번에는 난쟁이개미 군대가 돌격해 왔다. 이미 지붕이 날아가 구멍이 뚫려버린 분가 도시는 그 첫번째 공격 에 힘겹게 저항했다. 사망자가 수만을 헤아렸다. 견디다 못한 생존 자들이 자기들의 소나무 그루터기 속으로 도망을 쳐서 가까스로 버 티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양식도 없으려니와 난쟁이개미들이 벌서 금단 구역의 나무 속 통로에까지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라숄라캉은 연방의 일원이므로, 벨로캉과 인근의 모든 분가 도시 들은 마땅히 원군을 보내야 한다. 사태의 전말에 대한 이야기의 초 입 부분을 더듬이들이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전투 준비가 포고되어 있었다. 이 마당에 누가 쉴 생각을 하고 도시 보수 공사를 운운하 랴! 봄철의 첫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수개미 327호와 암개미 56호와 병정개미 103683호가 최대한 빠르게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어디에서나 그들의 주위에는 개미들이 북적거린다. 유모 개미들은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를 지하 43층으로 옮기고 있 다. 진딧물 감로를 짜는 개미들은 그 풀빛 가축들을 도시의 맨 밑바 닥에 숨기고 있다. 농경 개미들은 전투 식량으로 쓸 양식을 잘게 다 져서 비축하고 있다. 병정개미 계급의 방들에서는 포수 개미들이 배 에다 개미산을 가득 채우고 있고, 절단 개미들은 위턱을 갈고 있다. 용병 개미들은 밀집 대형으로 모여 있다. 생식 개미들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힌 다. 당장 공격할 수는 없다. 지금은 춥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리라. 두 경관 중에서 더 뚱뚱한 사람이 자기 팔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면서 물었다. "그런데 얘야,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네 부모님이 저 안에 계시단 말이지?" 아이는 지친 기색을 보이며 대답을 하지 않고 경관의 팔에서 빠져 나왔다. 갈랭 형사는 계단 아래로 몸을 기울여보더니, 우스꽝스럽기 도하고 우렁차기도 한 소리로 '이리 와봐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 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정말 아주 깊어 보이는데요. 이대로는 못 내려가겠어요. 도구들 을 좀 가져와야겠어요." 빌솅 경정은 불안한 낯빛을 보이며 손가락 끝을 입술에 댔다. "하긴 그래." "소방대원들을 데리러 가겠습니다." 갈랭 형사가 말했다. "그러게, 그동안 나는 이 꼬마에게 뭘 좀 물어봐야겠어." 경정이 녹아버린 자물쇠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는 네 엄마가 그런거냐?" "예." "그렇다면 네 엄마 솜씨가 대단하구나, 응? 용접 토치를 가지고 이렇게 철통같은 문을 딸 줄 아는 여자는 드물거야.... 그리고 하수 구를 뚫고 들어갈 줄 아는 여자는 네 엄마밖에 없을거다." 니콜라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간거예요." "그렇구나,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저 아래로 내려가신 지는 얼마나 됐니?" "이틀 됐어요." 빌솅이 코를 긁으며 난처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아빠가 왜 내려가셨는지 너는 아니?" "처음엔 개를 찾으러 내려가셨구요, 그 다음엔 잘 모르겠어요. 금 속판을 사들이시더니 그걸 아래로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개미에 관 한 책들도 잔뜩 사셨어요." "개미라구? 하기야 그럴 수도 있지." 빌솅 경정은 상당히 어리둥절해 있으면서도, '하기야'라는 말을 몇 번 더 중얼거리면서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사건의 해결이 쉬 울 것 같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가 '특별한' 사 건들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태껏 늘상 쓰레기 같 은 일들만 맡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성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다들 미친 소리라고 외면하는, 얼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관대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는 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아도 그런 것들을 귀기울여 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럴 때면 그는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고개 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하긴 그래'라 는 말만 되뇌었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심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끌려고 복잡한 말과 칭찬의 말을 늘어놓느라고 정 신이 없는데, 빌솅은 '하긴 그래'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의사 소통이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어린 빌솅은 실제로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면서도 그의 학교에서 가 장 말을 잘하는 학생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심지어는 학년말의 학생 대표 연설을 하라는 요청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빌솅은 정신과 의사가 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제복이 주는 매력 에 이끌렸다. 의사의 하얀 근무복도 제복은 제복이겠지만 그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이 들끊는 세상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경찰과 군대가 '절도있게 사는 사람들'의 기수라고 그는 생각했다. 횡설수 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는 그런 사 람들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빌 솅의 신경을 가장 심하게 거스르는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 로 떠드는 자들이다. 조금 전에 겪은 일들을,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손짓 발짓해가며 떠벌여대는 족속들 말이다. 빌솅이 경찰에 투신했을 때, 그의 천성은 곧 상관의 눈에 띄었다. 상관들은 온갖 '터무니없는 사건들'을 모두 그에게 떠맡겼다. 전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자 기가 맡은 사건에 몰두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대단한 일이었다. "아참, 성냥개비가 있었어요!" "성냥개비가 어쨌다는거냐?" "이 사건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만들어야 돼요." "답이 뭔데?" "'새로운 사고 방식'이에요. 아빠는 그것을 '새로운 논리'라고 하셨어요." "하긴 그래." 그 말에 아이가 불거진 소리를 했다. "'하긴 그래'라는 말만 하면 어떡해요! 삼각형 네 개를 만들 수 있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찾아야 돼요. 개미, 에드몽 할아버지 성냥 개비,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있는거예요." "에드몽 할아버지? 에드몽 할아버지가 누구냐?" 니콜라가 생기를 되찾았다. "그분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지은 분이에 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아마 쥐들 때문일거예요. 우아르자자트를 죽인 것도 쥐들이고요." 빌솅 경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저 녀 석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지? 잘돼봐야 알콜 중독자겠다. 드디어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데리고 왔다. 빌솅은 대견스럽 다는 듯 갈랭 형사를 바라보았다. 갈랭은 타고난 형사였다. 짓궂은 구석도 많은 녀석이었다. 정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곧잘 흥미를 느꼈다. 이야기가 기이하면 기이할수록 그는 더 깊이 빠져들곤 했다. 이해심 많은 빌솅과 정열적인 갈랭은 둘이서 '아무도 맡고 싶어하 지 않는, 넋 나간 자들의 사건' 전담반을 비공식적으로 구성한 바 있다. 이미 그들이 파견되었던 사건은 많이 있었다. '자기 고양이들 에게 물려 죽은 노파' 사건을 위시하여, '혀로 손님들을 질식시켜 버린 매춘부' 사건이 있고, '햄, 소시지 제조업자들의 수를 줄이려 던 사람'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 소장님은 여기에 계십시오. 저희가 들어가서 이 튜브 식 들것으로 그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새 생명을 낳는 순결한 방에서, 어머니가 알 낳는 일을 중단했다. 어머니가 한쪽 더듬이만을 들어올린다.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다. 시종 개미들이 사라진다. 벨로캉의 살아 움직이는 모태라 할 만한 벨로키우키우니의 심사가 편하질 않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불안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겪은 전쟁이 50차 례는 족히 된다. 여왕을 불안케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비밀 무기 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빙빙 돌면서 둥근 지붕을 날려버린다는 그 아카시아 가지 말이다. 수개미 327호의 증언도 마음에 걸린다. 스물여덟 마리의 병정개미가 전투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몰살을 당 했다고 한다. 이 특별한 사건들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래선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벨로키우키우니는 옛날 '이해할 수 없는 비밀 무기'에 맞서야 했 던 때를 회상한다. 남쪽 흰개미들과 전쟁을 벌이던 때의 일이다. 어 느 날 개미들이 와서 보고하기를, 120마리의 병정개미 부대가 죽은 것도 아닌데 '꼼짝 않고 있다'고 했다. 두렵기 이를 데 없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더 이상 흰개미들을 정 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벨로캉에서 첩보원을 파견했다. 아닌게아니라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쏘아대는 포수 개미 계급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고 있던 참이었 다. 즉 큰코흰개미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으로써 흰개미들은 끈끈물 을 200머리(600밀리미터)까지 쏘아보내, 병정개미들의 다리와 털을 마비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벨로캉 연방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대응책을 찾아냈다. 즉, 낙 엽으로 끈끈물을 방어하면서 전진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 것을 바탕으로 저 유명한 '낙엽' 전투를 벌였고, 그 전투는 벨로캉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의 적수는 멍청한 흰개미들이 아니라, 민첩성으로 보 나 지능으로 보나 흰개미들을 몇 배 능가하는 난쟁이개미들이다. 게 다가 그들의 비밀 무기는 대단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신경질적으로 더듬이를 만지작거린다. 난쟁이 개 미들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는 것도 많지만 모르는 것도 많다. 난쟁이개미들은 100년 전에 이 지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척후 개미 몇 마리뿐이었다. 그들의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다들 대수롭 지 않게 여겼다. 척후 개미들의 뒤를 이어 난쟁이개미들이, 다리 끝 에 알과 식량을 싣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커다란 소나무 뿌리 밑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 그들의 반수가 굶주린 고슴도치에게 떼 죽음을 당해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북쪽으로 멀리 떠나, 까망 개 미들의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터를 잡았다. 연방에서는 '난쟁이개미들과 까망개미들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이 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허약한 것들이 덩치 큰 까망개미들의 먹이가 되게 방치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개미들조차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매일 잔가지와 작 은 딱정벌레들을 나르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초의 예상과 는 달리 사라지는 쪽은 놀랍게도.... 덩치 큰 까망개미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벨로 캉 척후 개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후로 까망개미들의 둥지 전체 를 난쟁이개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벨로캉 개미들은 그 사 건을 그저 팔자 소관으로 치부하고 심지어는 재미있어 하기까지 했 다. '까망개미놈들 건방지게 굴더니 고거 참 고소하다.'라는 뜻의 냄새마저 통로에 퍼져나왔다. 그 보잘것없는 작은 개미가 연방의 골 칫거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까망개미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들장미 꿀을 먹고 사는 꿀 벌들의 둥지가 난쟁이개미들에게 점령당했다. 그 다음에는 북쪽의 마지막 남은 흰개미 도시와 독을 지닌 빨강개미들의 둥지가 난쟁이 개미들의 깃발 아래로 들어갔다. 피난자들이 벨로캉으로 모여들어 용병대의 규모가 커졌다. 그들이 와서 전하는 얘기로는, 난쟁이개미들이 첨단의 병법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난쟁이개미들은 희귀한 꽃에서 추출한 독 을 물에 풀어서 수원을 오염시키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벨로캉 개미들은 여전히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에 니지우니캉이라는 도시가 기온 2도 대의 시간 만큼 버티다가 무너지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무시무시한 적 들을 가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과소 평가했던 것은 사실이지 만, 난쟁이개미들도 불개미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는 마찬가지였다. 니지우니캉은 아주 작은 도시였지만, 그 뒤에 벨 로캉 연방 전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난 쟁이개미들이 승리를 쟁취한 다음날, 각각 1,200마리의 병정개미들 로 이루어진 240개의 부대가 몰려와서 팡파르를 울리며 난쟁이개미 들의 단잠을 깨웠다. 전투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난쟁 이개미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런 탓에, 연합군이 도시를 탈환 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해방된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난쟁이개미들은 니지우니캉 안 에 한 마리의 병정개미가 아닌 200마리의 여왕개미를 들여앉혀 놓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충격이었다. 공격군대 개미는 공격용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회성 곤충이다. 흰개미와 꿀벌들도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적 진화가 덜 되어 왕정주의에 머물고 있는 그 종들은, 그저 도시를 방위하거 나 둥지에서 멀리 나간 일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병력을 사용한 다. 흰개미 도시와 꿀벌 도시에서 영토 정복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 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포로가 된 난쟁이 여왕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의 역사와 관습에 대 해서 이야기했다. 기상 천외한 이야기였다. 난쟁이 여왕개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쟁이개미들은 수십억 머 리나 떨어져 있는 다른 고장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고장은 연방이 깃들여 있는 숲과는 아주 달랐다. 때깔 좋고 맛 좋은 살진 과일들이 열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겨울이 없어서 겨울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그런 꿈 같은 풍요의 땅 위에, 난쟁이 개미들이 '고대' 시게푸를 건설했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어떤 왕조에서 갈라져나온 도시였다. 그 도시는 협죽도나무 밑동에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협죽도나무가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과 함께 뿌리째 뽑혀 나무 상자 안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나무 상 자는 다시 아주 단단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구조물 안으로 옮겨졌다. 그 구조물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보니 물이 펼쳐져 있었다. 끝간데를 알 수 없이 너르고 소금기가 있는 물이었다. 많은 난쟁이개미들이 제 선조들의 땅을 찾아 돌아가려다가 물에 빠졌다. 그러자 대다수의 난쟁이개미들은 체념을 하고, 짠 물로 둘 러싸여 있는 그 단단하고 거대한 구조물 안에서 삶을 도모하기로 결 정했다. 그렇게 갇힌 상태가 몇날 며칠 계속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존스톤씨 기관을 통해 자기들이 먼 곳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는 지구 자기 장벽을 백 개쯤 통과했다. 그 구조물이 우리를 데려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협죽도나무와 함께 여기에 부려 졌다. 그럼으로써 우리느 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국적인 식물 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보니 실망스럽기 한량없었다. 과일이며 꽃 이며 곤충들이 더 작고 때갈도 보잘것이 없었다. 빨강, 노랑, 파랑 이 주조를 이루던 고장을 떠나와 맞닥뜨린 이 고장은 초록과 검정과 밤색이 지천이었다. 산뜻한 원색의 세계에서 파스텔 색조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겨울과 추 위가 있었다. 고향 땅에서는 추위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 고, 그들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은 오로지 더위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우선 추위에 대항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 련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 두 가지를 얘기하자면, 하나는 당 분을 섭취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달팽이가 분비하는 끈끈물을 몸 에 바르는 것이었다. 당분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딸기, 오디, 버찌의 과당을 모았다. 또 지방분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일대의 달팽이들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한편, 난쟁이개미들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매사에 실용성을 중시 했다. 그들에게는 날개 달린 생식 개미가 없었고 결혼 비행도 없었 다. 그들의 암개미는 땅 속에 있는 자기들 집에서 교미를 하고 알을 낳았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도시는 알 낳는 개미를 한 마리가 아니 라 수백 마리씩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져다 주는 이점은 대 단한 것이었다. 훨씬 더 커다란 강점이었다. 불개미 도시 하나를 괴 멸시키려면 여왕개미를 죽이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난쟁이개미의 도 시는 단 한마리의 생식 개미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알을 낳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난쟁이개미들은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에서도 불 개미들과 달랐다. 불개미들은 결혼 비행을 통해 되도록 먼 곳에 착 륙한 다음, 냄새의 자취로 연방 내의 분가 도시와 다시 연결되는 데 반해서, 난쟁이개미들은 중심 도시로부터 조금씩조금씩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들의 작은 체구마저도 장점이 되었다. 아주 적은 칼로리만 있어 도 그들은 정신이 활발해지고 행동이 민첩해질 수 있었다. 장대비가 쏟아졌을 때 난쟁이개미들이 대응하고 있는 걸 보고, 불개미들은 그 들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불개미들 은 아직 침수된 통로에서 진딧물 떼와 갓 낳은 알들을 빼내느라고 여념이 없는데, 난쟁이개미들은 벌써 몇 시간 전에 커다란 소나무 껍질의 울퉁불퉁한 곳에 둥지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자기들 의 모든 보물들을 옮겨놓은 뒤였다. 벨로키우키우니는 불길한 생각을 쫓으려는 듯 몸을 움직이더니, 알 두 개를 낳는다. 병정개미들의 알이다. 그 알들을 거두어 갈 유 모 개미도 없고, 배도 고프고 해서 여왕은 그것들을 아귀아귀 먹어 버린다. 그것은 아주 좋은 단백질인 것이다. 여왕이 벌레잡이 식물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근심은 이미 털어버 렸다.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하는 길은 단 하나, 성능이 더 우수하고 더 무시무시한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는 것밖에 없을 듯 하다. 불개미들은 이미 개미산과 낙엽 방패와 끈끈이 함정을 잇달아 개발해 낸 바 있다. 다른 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서 그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주리라. 여왕은 자기 방에서 나온다. 병정개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서 여왕은, '난쟁이개미들의 비밀 무기에 대항할 비밀 무기 찾아내 기'라는 주레를 다룰 집단을 만들어 연구해 보자고 제안한다. 온 겨 레가 여왕의 자극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르는 곳마다 병정개 미들뿐 아니라 일개미들까지도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작은 집단을 형 성한다. 그런 다음 더듬이들을 삼각형이나 오각형으로 연결하고 완 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러한 완전 소통이 수백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조심, 조심! 밀지 말게. 정지할거야." 갈랭 형사는, 소방대원 여덟 명에게 등을 떠밀리고 싶지가 않아서, 그렇게 말했 다. "안이 너무 깜깜한데! 더 성능 좋은 전등을 주게." 그가 몸을 돌리자 누군가가 커다란 손전등을 내밀었다. 소방대원 들은 안심찮은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가죽으로 만든 웃옷도 입었고 헬멧도 쓰고 있었다. 갈랭 형사만이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 더 적합한 복장을 착용했어야 했는데, 그 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그들은 조심조심 내려갔다. 길잡이 구실을 하는 갈랭 형사는 한걸 음 한걸음을 떼어놓기 전에 구석구석을 열심히 비추어 보았다. 나아 가는 속도는 아주 더뎠지만, 그래도 그게 더 안전했다. 손전등 불빛이 눈 높이의 나지막한 둥근 천장에 새겨진 글귀를 찾 아내 붓질을 하듯 스치고 지나갔다. 그대 자신을 돌아보라. 끊임없이 그대를 정화하지 않으면, 화학적 인 혼인은 그대에게 해악을 끼치리. 거기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자에 게 재앙 있으라. 너무 자발없는 자, 몸가짐을 삼갈진저. 아르스 마그나 "저기 봤어요?" 소방대원 한 사람이 물었다. "오래된 새김글이군. 별거 아닐세."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의 마음을 누그려뜨렸다. "마법사들의 어떤 비결을 새겨놓은 듯한데요." "어쨌든 너무 깊어보이는군." "저 글귀의 뜻이 말인가요." "아니, 계단 말일세. 저 아래로 수 킬로미터는 이어져 있을 것 같구만." 그들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표고에서 150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와 있는 듯했다. 계단은 여전히 나선 모양으로 돌게 되 어 있었다. 세포 핵 속에 들어 있는 디옥시 리보 핵산의 나선 구조 를 닮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현기증을 느끼다시피 했다. 그들은 깊 이, 점점 더 깊이 내려갔다. "이렇게 무한정 계속 내려갈 거예요? 우리가 뭐 동굴 탐사하는 사람들인 줄 아시 오?" 소방대원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그 말을 받아 튜브 식 들것을 메 고 있던 다른 소방대원이 말했다. "난 그저 지하실에서 사람 하나 꺼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거야 원. 집사람이 8시부터 저녁 차려놓고 나를 기다렸을텐데, 벌써 10시 아닌가! 우리 마누라 잔소리깨나 하게 생겼군." 갈랭 형사가 대원들을 다시 다독거렸다. "여보게들, 이제 입구보다 바닥이 더 가까울텐데. 조금 더 힘을 내 보자구. 여기까지 와서 어정쩡하게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그때까지 내려온 길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되는 거리였 다. 15도쯤 되는 기온에서 몇 시간 동안 완전 소통을 한 끝에, 노랑 용병 개미들의 한 무리가 하나의 방안을 내놓았다. 그 방안이 나오 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모든 집단들이 그것이 가장 좋다고 인정한다?a 그 방안이란 '낫개미'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벨로캉에는 '낫개미'라고 하는 특별한 종류의 용병개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특징은 머리통이 크다는 것과, 아주 단단한 씨앗도 깨뜨릴 수 있는 예리하고 기다란 위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는 그들이 쓸모가 없었다. 몸뚱이가 너무 육중한 데 비해서, 다리는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곳까지 겨우겨우 기어가느 라고 힘을 다 쓰고 적에게 별로 타격도 주지 못하니 그들을 전쟁터 에 데리고 가봐야 말짱 헛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맡길 일 이라곤, 나뭇가지 자르는 일 같은 허드레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랑개미들이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덩치만 커다랗고 굼 벵이 같은 이 개미들을 싸움터의 용사로 만들 방도가 있다는 것이 다. 몸이 잽싼 작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들을 한 마리씩 싸움 터로 데리고 나가면 된다는 것이 그 방안의 요지였다. 그렇게 되면, 낫개미들이 '살아 움직이는 다리' 구실을 하는 일개 미들을 냄새로 이끌어가면서 적들에게 덤벼들 수 있을 것이고 그들 의 기다란 위턱으로 적들을 토막토막 잘라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당분을 잔뜩 섭취한 병정개미들이 햇빛방에서 그 방법이 적절한지 시험해 보고 있다. 일개미 여섯 마리가 낫개미 한 마리를 들어올린 다음 보조를 맞추어 달린다. 제법 효과가 있을 듯하다. 바야흐로 불 개미 도시 벨로캉에서 전차를 발명해 낸 것이다. 그들은 끝내 다시 올라오지 않는다. 그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퐁텐블로 소방대원 8명과 경찰관 1명, 지하실 안으로 의문의 잠적. 천지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새벽이 오자, 라숄라캉의 금단 구역 을 포위하고 있던 난쟁이개미들은 안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 루터기 안에 고립된 불개미들은 굶주린 채 탈진해 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그리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전투가 재개되었다. 개미산 포 공방을 한참 벌인 끝에, 난쟁이개 미들이 보조 교차로 두 개를 점령했다. 개미산을 맞고 구멍이 뚫린 나무안에서, 농성하며 버티던 병정개미들의 시체가 쏟아져나왔다. 아직 살아남아 있는 불개미들의 운명도 백척 간두에 서 있다. 난 쟁이개미들이 금단 구역 안으로 전진해 오고 있다. 천장의 울퉁불퉁 한 곳에 숨어 있던 유격대원들이 겨우겨우 그들의 전진을 늦추고 있다. 여왕의 방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다. 그 방 안에서 여왕 라숄라키우니가 심장 박동을 늦추기 시작한다. 이제 만사휴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맨 앞에 있던 난쟁이 부대에 돌연 경보 냄새가 날아든 것이다. 밖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 난쟁이개미들이 되돌아 나 간다. 저기, 도시를 굽어보는 '개양귀비' 언덕 위에, 선홍빛 꽃 사이로 수천 개의 까만 점들이 보인다. 마침내 벨로캉 개미들이 공격에 나선 것이다. 가소로운 것들, 스 스로 무덤을 파러 왔군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은 저희들의 중심 도시 에 이 사실을 알리려고 날파리 용병들을 전령으로 보냈다. '날파리들이 모두 똑같은 페로몬을 지니고 날아간다.' '놈들이 공격해 온다. 동쪽에 원군을 보내 놈들을 협공하라. 비밀 무기를 준비하라.'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아침 햇살의 따사로움이 불개미들의 공 격 결정을 서두르게 했다. 지금 시각 8시 3분. 벨로캉 군대는 질풍 처럼 비탈길을 내리닫아, 풀들을 우회하고 작은 돌들을 뛰어넘는다. 수백만의 병정개미들이 모두 위턱을 벌린 채 달려가는 모습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것에 겁먹을 난쟁이개미들이 아니다. 불개미들이 그런 전술을 들고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터이다. 간밤에, 난쟁 이 개미들은 주사위의 5점 눈 모양으로 간격을 벌려서 이미 구멍을 파두었다. 그들은 그 구멍에 틀어박혀 위턱만 내놓고 있다. 그럼으 로써 그들의 몸뚱이는 흙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불개미들의 돌격이 이 방어선 때문에 곧 주춤해졌다. 몸뚱이는 땅 속에 감춘 채, 가장 강한 부분만 드러내 놓고 있는 적들을 상대로, 연방군들은 헛되이 위턱을 휘둘러대고 있다. 난쟁이개미들의 다리를 자르거나 배를 뽑아버릴 방도가 없었다. 그때, 볼레 독버섯의 앞이갓을 덮개 삼아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하 고 있던 시게푸 보병의 주력 부대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불개미들이 중간에서 협공을 받게 되었다. 벨로캉 군대가 수백만이지만, 시게푸 군대는 그것의 수십 배가 된 다. 줄잡아도 불개미 한 마리가 다섯 마리의 난쟁이 병정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개별 참호 속에 있는 난쟁이개미들을 계산에 넣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들은 구멍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자 기들의 위턱이 미치는 범위로 지나가는 것들은 뭐든지 잘라버리고 있다. 전투의 형세가 시시 각각으로 수가 적은 쪽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도처에서 튀어나온 난쟁이개미들의 공격을 받고, 연방군의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다. 9시 36분이 되자 연방군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한다. 난쟁이개 미들은 벌써 승리의 냄새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전략이 완벽하게 적중한 것이다. 비밀 무기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은 퇴각 하는 군대를 추격하면서, 라숄라캉의 점령은 이미 끝난 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쟁이개미들은 다리가 짧아서, 불개미들이 한 번 펄쩍 뛰 면되는 거리를 열 발짝으로 가야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헐떡거리면 서, '개양귀비'언덕을 오르고 있다. 벨로캉 연방의 전략가들이 예상 했던 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첫번재 공격의 목표가 그것이었 다. 즉, 난쟁이개미들의 군대를 분지에서 끌어내 비탈길에서 맞붙으려는 것이었다. 불개미들이 능선에 다다랐다. 난쟁이 군대가 대열을 완전히 흐트 린 채 불개미들을 계속 추격해 오고 있다. 능선 위에 돌연 가시의 숲 같은 것이 우뚝 나타난다. 집게 모양을 한, 낫개미들의 거대한 위턱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낫개미들은 위턱을 휘둘러 햇빛에 번 쩍거리게 하면서 난쟁이개미들에게 달려든다. 곡물을 자르는 낫개미 가 난쟁이개미를 자르는 낫개미로 변한 것이다! 기습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넋이 나간 시게푸 개미들은, 겁에 질 려 더듬이가 뻣뻣해진 채, 잔디가 깍여나가듯이 쓰러진다. 낫개미들 은 비탈길의 기복을 이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적들의 전열을 무너뜨 린다. 각각의 낫개미 밑에서는 일개미 여섯 마리가 즐거움을 만끽하 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전차의 무한 궤도에 해당하는 셈이다. 전차 의 포탑과 바퀴들 사이에 혼연 일체의 더듬이 소통이 이루어지는 덕 분에, 36개의 다리와 2개의 커다란 위턱을 가진 동물이 적들의 한가 운데를 종횡 무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마스토돈같이 커다란 동물 수백 마리가 위에서 달려내려오며 난쟁 이개미들을 쳐부수고 어깨버리는 와중에서 난쟁이개미들은 그 동물 을 제대로 쳐다볼 겨를조차 없다. 거대한 위턱들이 난쟁이개미들의 무리 속에 깊숙히 들어가, 풀을 뜯어먹듯 풍지 박산을 내고는 다시 올라온다. 피범벅이 된 다리와 머리들을 그 위턱에 잔뜩 묻힌 채 나 온다. 그 다리와 머리들은 밀짚이 으스러지듯 다시 부서진다. 난쟁이개미들의 진영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겁에 질린 난쟁 이 개미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지지밟고 난리가 났다. 자기들끼 리 싸우다 죽는 자들도 있다. 벨로캉의 전차들은 난쟁이개미들의 보병 부대를 그렇게 '빗질하 듯' 휩쓸고 지나감으로써 일거에 그들을 제압해 버렸다. 전차들은 일단 멈추었다가, 완벽하게 줄을 맞춘 상태 그대로, 또 한바탕의 밀 어붙이기를 하려고 비탈길을 다시 올라간다. 살아남은 난쟁이개미들 이 선수를 쳐서 달아나려는데, 이번에는 저 위쪽에서 새로운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나타나더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2열의 전차 횡대가 평행선 을 이루며 사목사목 조여든다. 각각의 전차들 앞에 시체가 산을 이 룬다. 대학살의 현장이다.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던 라숄라캉 개미들이 자매들을 응원하기 위 해 밖으로 나온다.?a 처음의 놀라움이 신명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환희의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이것은 기술과 지능의 승리다. 연방 의 재능을 이렇게 유감없이 발휘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시게푸가 자기들의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시게푸에는 아직 비밀 무기가 남아 있다. 원래 이 무기는 도시 안에 틀어박혀 완강하게 저항하는 적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 만, 전세가 워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난쟁이개미들 은 그 무기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 비밀 무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갈색 식물로 불개미들의 머리통들을 꿰어놓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난쟁이개미들은 벨로캉 연방에 속한 어떤 탐사 개미의 시 체를 발견한 바 있다. 그 시체는 붙살이하는 팡이의 하나인 '알테르 나리아'의 압력 때문에 터져 있었다. 난쟁이개미 연구자들이 그 현 상을 분석한 뒤에, 그 붙살이 팡이가 휘발성 홀씨를 만들어내고 있 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홀씨들이 불개미의 딱지에 달라붙어 그것을 부식시킨 다음 불개미의 몸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딱지를 터뜨려 버릴 정도까지 그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무기인가! 게다가 난쟁이개미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 홀씨들은 불개미의 키틴질에는 달라붙지만, 난쟁이개미들 의 키틴질에는 전혀 달라붙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난쟁이개미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몸에다 달팽 이 끈끈물을 바르는데, 그 끈끈물이 '알테르나리아'를 막아주는 효 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벨로캉 개미들이 전차를 발명했다면, 시게푸 개미들은 세균전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난쟁이개미의 보병 부대 하나가 행동을 개시한 다. '알테르나리아'로 오염시킨 300개의 불개미 머리를 운반하는 중 이다. 그 불개미 머리는 라숄라캉과의 첫번째 전투에서 확보해 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이 적들의 한가운데로 그것들을 던진다. 낫개미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개미들이,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들이 지어내는 치 명적인 먼지 속에 재채기를 해댄다. 그들의 딱지에 홀씨들이 달라붙 자, 그들은 겁에 질린다. 운반 개미들이 메고 있던 낫개미를 팽개치 자, 본래의 무기력 상태로 되돌아간 낫개미들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다른 낫개미들을 사납게 공격한다. 불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10시경에, 갑작스레 추위가 밀어닥쳐 교전자들을 갈라놓았다. 차 가운 기류 속에서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난쟁이개미 부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전차 부대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왔고, 불개미 부대의 전차들은 간신히 비탈길을 되돌아왔다. 양쪽 진영에서 부상자들을 헤아리고 사망자의 수를 세었다. 잠정 적으로 집계된 피해가 막심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투의 양상을 바꾸어야 한다. 벨로캉 개미 진영에서는, 자신들을 괴롭혔던 먼지가 알테르나리아 의 홀씨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 홀씨가 몸에 닿은 병정개미들을 모두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 장차 다가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첩보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보고를 한다. 그 세균 무기로부 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달팽이 끈끈물을 몸에 바르 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행동으로 옮겨졌다. 벨로캉 개미 들은 그 연체 동물을 세 마리 잡아(그것들을 찾아내기가 점점 더 어 려워진다), 각자 재해에 대비해 그 끈끈물을 몸에 바른다. 그런 다음 더듬이를 맞대고 전략을 숙의한다. 불개미의 전략가들 은 전차만 가지고 공격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다. 병력을 새롭게 배치하기로 한다. 전차가 가운데를 맡고, 120개의 일반 보병 군단과 60의 용병 군단이 양 날개로 산개하기로 한다. 병사들의 사기가 되살아 난다. 아르헨티나 개미 아르헨티나 개미(학명: 이리도미르멕스 후밀리스)는 1920년에 프 랑스에 상륙했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도로를 꾸미기 위하여 협죽 도나무를 들여올 때,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 상자에 함께 실려온 것임이 거의 확실 하다. 그 개미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것은 186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서이다(아르헨티나 개미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1891년에 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도 그것들이 발견되었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 산 말들을 수출할 때, 그 말들의 잠자리 짚 속에 묻어, 1908년에는 남아프리카에, 1910년에는 칠레 에, 191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1920년에는 프랑스에 오게 되었다. 이 종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를 띠었다. 하나는 체구가 아주 작다 는 점이었다. 다른 개미들에 비해 유난히 작기 때문에 사람으로치면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 정도가 될 터였다. 또 하나는 대단히 영리하 고 병정개미들이 호전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주요 특징들이 생 태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오게 된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터를 잡기가 무섭게, 아르헨티나 개미들은 모 든 토박이 종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그것들을 정복해 버렸다. 1960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로셀로나까지 진출했다. 1967년 에는 알프스 산맥을 지나 로마까지 쏟아져들어갔다. 그러더니 70년 대부터, 이리도미리멕스는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프랑스 중부를 가로지르는 루아르 강을 건넌 것은 1990 년대 말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법이 빼어나 기로 말하면 시저나 나폴레옹 찜쪄먹을 정도였던 두 종의 개미들과 맞붙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개미(파리 지역 남쪽과 동쪽에 터를 잡 고 있었음)와 왕개미(파리 북쪽과 서쪽에 터잡고 있었음)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개양귀비'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 시게푸는 10시 13분에 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240개의 예비 군단이 첫번째 공격의 생존자들 과 합류하러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전차' 공격에 대한 설 명을 듣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완전 소통을 하기 위하여 더듬이를 모은다. 이 괴이한 기계를 막아낼 방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10시 30분경에 일개미 하나가 한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낫개미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일개미 여섯 마리가 그들을 싣 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 '살아 있는 다리들'을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다른 일개미가 불쑥 페로몬을 발한다. '그 기계의 약점은 신속하게 뒤로 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약점 을 이용할 수 있다. 밀집된 방진을 치는 것이다. 그 기계가 돌진해 오면 저항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게 길을 틔원준다. 그러다가 그 기 계가 달리던 힘으로 계속 앞으로 가고 있을 때 뒤에서 치고 들어가 는 것이다. 기계가 뒤로 돌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하면 된다.' 또 다른 개미가 의견을 내놓는다. '일개미들의 다리가 보조를 정확히 맞추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았다시피, 더듬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서 낫개미들이 일개미들을 이끌지 못하도록 낫개미들에게 달려들어 더듬이를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모든 의견들을 받아들여, 난쟁이 개미들이 전투 계획을 새로이 짜기 시작한다. 개미의 고통 개미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개미들에겐 고통을 느끼게 할 만한 신경 조직이 없다. 신경이 있다 해도 통증을 전달하는 물질이 없다. 개미 몸의 일부를 잘라버렸을 때, 그 토막이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과 떨어져서 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 '살아 움직이는' 것을 어쩌다 보게 되는 것 도, 그런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개미에게 고통이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공상 과학의 세계로 우리 를 이끌어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고, '자 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개미들은 고통을 느 끼지 못한다. 개미 사회의 응집력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랫 동안 곤충학자들은 그런 이론에 기울어 있었다. 그 이론은 모든 것 을 설명하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또 다른 이점을 지니고 있다. 즉, 아무런 꺼리낌없이 개미들을 죽일 수 있게해준다는 점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어떤 동물이 있다면, 나는 그 동물을 무척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 은 잘못이다. 목이 잘린 개미는 특별한 냄새를 발한다. 고통의 냄새 인 것이다. 개미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 런 냄새가 생길 리 없다. 개미에게 전기적인 신경 감은은 없지만, 화학적인 신경 감응은 있는 것이다. 개미는 자기 몸의 일부가 떨어 져나가면 고통을 느낀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인 데, 그 방식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하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전투는 11시 47분에 속개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이 밀집 대형으로 길게 늘어서서 '개양귀비'언덕을 치기 위하여 천천히 올라간다. 꽃 사이에서 전차들이 나타난다. 신호가 떨어지자 전차들이 비탈 을 내리닫는다. 전차 부대의 좌우로 보병 군단과 용병 군단이 산개 하면서, 마스토돈 같은 전차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면 그것을 이어 일을 마무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쪽 군대가 이제 100머리(300밀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가 사목사목 좁혀진다. 50머리.... 30머리.... 10머리! 가장 먼 저 공격에 나선 낫개미가 난쟁이개미들과 막 접전을 벌이려는 찰나,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빽빽하게 늘어서 있던, 시게푸 개미들 의 전열이 갑자기 간격이 넓은 점선 모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이 방진을 치고 있 다. 전차 앞에 있던 시게푸 개미들이 자취를 감추고, 전차 앞에 보이 는 것은 텅 빈 통로뿐이었다. 난쟁이개미들을 붙잡으려면 재빨리 갈 짓자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느 전차는 하나도 없다. 위턱들이 허공을 찌르며 소리를 내고, 36개의 다리는 달리던 힘 때문에 티미하게도 계속 내딛기만 한다. 톡 쏘는 냄새가 훅 끼쳐온다. '놈들의 다리를 잘라라!' 냄새가 날아오기가 무섭게 난쟁이개미들이 전차 밑으로 달려들어 운반 개미들을 죽인다. 그러고는 무너져내리는 낫개미에 깔리지 않 으려고 서둘러 빠져나온다.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과감하게, 세 마리씩 두 줄로 늘어선 운반 개미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한쪽 위턱으로 낫개미의 드러난 배를 후 빈다. 그러자 액체가 흘러 나온다. 물탱크가 터져 물이 쏟아지듯이 낫개미의 체액이 땅 위로 쏟아진다. 또 어떤 난쟁이개미들은 마스토 돈 같은 낫개미의 몸뚱이로 기어올라 더듬이를 자르고 뛰어내린다. 전차가 하나씩하나씩 무너져내린다. 운반자들을 잃은 낫개미들은 기동을 못하는 환자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는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참상이다! 낫개미가 배 터져 죽은 줄도 모르고, 그 시체들을 열심히 메고 가 는 여섯 일개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낫개미의 더듬이가 잘 린 전차들은 '바퀴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뿔뿔 이 흩어지고 만다.... 그렇게 참패함으로써, 전차의 발명이라는 기술적 개가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무기가 나왔다가도, 적들이 대응책을 너 무 빨리 찾아내는 바람에, 위대한 발명품이 역사의 뒤안으로 그렇게 사라지는 일은 개미 역사에 숱하게 있어 왔다. 전차 부대를 측면에서 지원하던 보병 부대와 용병 부대는 전차 부 대가 괴멸됨으로써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전차 부대가 거둔 승리의 이삭이나 주으라고 배치되었던 이 부대들이 필사적으로 싸워 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난쟁이개미들은 낫개미들을 신속하게 해치우고, 벌써 다시 방진을 치고 있다. 벨로캉 개미들이 그 방진의 한쪽 가장자리를 건드리기가 무섭게, 수천 마리의 난쟁이개미들이 탐욕스럽게 위턱을 들이대서 벨로캉 개미들의 기를 꺽어버린다. 불개미들과 그들의 용병 개미들은 이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언덕 위에 재집결한 불개미들이 난쟁이개미들을 살피고 있다. 난쟁 이개미들은 여전히 밀집된 방진을 짠 채로, 공격을 하러 서서히 올 라오고 있다. 기세가 당당하고 서슬이 시퍼렇다. 시간을 벌려는 생각으로, 덩치 큰 병정개미들이 돌을 날라와 언덕 위에서 아래로 굴린다. 그러나 그 돌 사태도 난쟁이개미들의 전진을 별로 늦추지 못한다. 약삭빠른 난쟁이개미들은 돌덩이가 지나가는 길에서 비켜섰다가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돌덩이에 맞아 으깨 지는 난쟁이개미는 거의 없다. 벨로캉 부대는 그 궁지에서 벗어날 묘책을 찾느라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다. 몇몇 병정개미들이 고전적인 싸움 방식으로 되돌아가자 고 제안한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그저 개미산 포격을 하자는 것이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개미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접전 중에 개미산을 쏘면 적군뿐 아니라 아군까지도 다치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난쟁이개미들이 밀집된 방진을 짜고 있을 때 는 그 효과가 크리라는 얘기였다. 포수 개미들이 부랴부랴 사격 자세를 취한다. 뒤의 네 다리로 단 단힘 몸을 받치고 배를 앞으로 내민다. 그렇게 해야만 배를 상하 좌 우로 움직여 가장 알맞은 조준 각도를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능선 바로 아래까지 올라온 난쟁이개미들은 수천 개의 배가 능선 위로 끝을 비죽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양진영 사이에 아직은 좀 거리가 있다. 난쟁이개미들이, 비탈길의 마지막 몇 센티미터를 건너 가려고 힘을 한껏 내어 속도를 높인다. '돌격!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그러자, 반대쪽 진영에서 단 한마디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사!' 아래쪽으로 방향을 돌린 배들이 난쟁이개미들 위로 뜨거운 독물을 뿜어댄다. 피웅, 피웅, 피웅, 노르스름한 분출물이 바람처럼 허공을 날아, 공격자들의 제1선을 정면으로 내리친다. 먼저 더듬이가 녹아서 머리 위로 굴러떨어진다. 그 다음에 독이 딱지로 퍼져나가면, 마치 플라스틱이 불에 녹는 것처럼 딱지가 녹아버린다. 개미산에 쏘인 몸뚱이가 털썩 내려앉으면서, 거치적리는 장애물이 되어 난쟁이개미들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성난 난쟁이개미들이 비틀 거리는 몸을 추스리고 더욱 격렬하게 능선을 향해 돌진한다. 위에서는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앞서 사격에 나섰던 포수 개미들과 교대를 했다. '발사!' 방진은 흐트러졌지만, 난쟁이개미들은 물컹거리는 시체를 짓밟으 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또 한 줄의 포수 개미들이 나섰다. 끈끈 이침 개미 용병들도 그들과 합세했다. '발사!' 이번에는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난쟁이개미 전체가 끈끈이침 개미가 뿜어낸 끈끈이물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린다. 난쟁이개미들도 포수 개미들을 정렬시켜 반격을 시도한다. 그 포수 개미들은 능선을 향해 뒷걸음을 치면서 겨냥도 하지 않고 사격을 한 다. 가파른 비탈이라서 위에 있는 불개미처럼 뒷다리로 버티는 자세 를 취할 수가 없는 탓이다. '발사!' 난쟁이개미 쪽에서도 그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짤막한 그들의 배는 겨우 작은 개미산 방울을 쏘아댈 뿐 인. 그 분출물은 설사 목표물에 맞는다 하더라도, 딱지를 뚫지 못 하고 가벼운 염증만을 일으킬 뿐이다. '발사!' 양진영에서 쏘아대는 개미산 방울들이 서로 엇갈리며 어지러이 날 린다. 이따금 부딪혀 상쇄되기도 한다. 개미산 포격이 이렇다 할 성 과를 거두지 못하자 시게푸 개미들은 포병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 기로 한다. 그들은 보병들이 밀집된 방진을 치고 돌격하면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열과 열 사이를 좁혀라!' '발사!' 불개미들이 응답한다. 그들의 포병 부대는 여전히 놀라운 전력을 과시하고 있다. 개미산과 끈끈물이 또 한차례 분출한다. 불개미들의 사격이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쟁이개미들 은 '개양귀비'언덕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능선 위에 늘 어선 그들의 윤곽이 검은 띠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복수를 갈망하고 있다. 격돌. 격노. 격멸. 이제는 '묘책'이 따로 없다. 불개미 진영 포수 개미들은 더 이상 배로 사격할 수 없고, 난쟁이개미 진영 방진도 이제는 밀집 대형을 유지할 수 없 다. 의산 의해. 질풍노도 모두 한데 뒤섞여서, 어지러이 흩어졌다. 가지런히 정렬하고, 치 달리고, 돌아가고, 달아나고, 덤벼들고, 흩어지고, 모여들고, 쑤석 거려 시비걸고, 밀었다가 당겼다가, 뛰어오르고, 주저앉고, 일어나 서 추스르고, 욕지거리, 맞대거리, 뜨거운 김 내뿜으며 울부짖듯 악 을 쓴다. 도처에 살기가 어려 있다. 서로 맞서서 힘을 겨루고 칼싸 움 하듯 위턱을 휘두른다. 살아 있는 몸뚱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 는 몸뚱이를 가리지 않고 짓밟으며 내달린다. 불개미 한 마리마다 성난 난쟁이개미가 적어도 세 마리씩은 달라붙어 있다. 그러나 불개 미들의 덩치가 세 배는 더 크니까, 거의 대등한 전력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 다. 드잡이 싸움, 냄새의 아우성, 엷은 안개처럼 뿜어지는 씁쓸한 페 로몬. 수백만 개의 위턱이 맞부딪치는데, 그 생김생김도 가지각색이 다. 끝이 뾰족한 것이 있는가 하면 가장자리가 깔쭉깔쭉한 것이 있 고, 톱니처럼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검처럼 생긴 것과 얇은 집게 처럼 생긴 것도 있다. 또 외날인 것이 있는가 하면 양날인 것도 있 고, 독물을 바른 것이 있는가 하면, 끈끈물이나 피를 바른 것도 있 다. 그 위턱들이 서로 뒤엉키며 땅바닥이 진동한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끝에 자그마한 곤봉을 매단 듯한 더듬이들이 상대가 가까이 접근 하지 못하도록 허공을 후려친다. 그러면 갈퀴가 같은 발톱을 가진 상대방의 다리가 더듬이를 때린다. 더듬이가, 성가시게 구는 작은 갈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낚아채기, 허 찌르기, 허방치기. 상대를 붙잡을 때는 위턱이나, 더듬이나, 머리, 가슴, 배, 다리를 잡기도 하고, 뒷다리 관절, 앞다리 관절, 다리 마디에 솔처럼 난 털 을 잡기도 하며, 등딱지에 난 홈이나, 키틴질에 난 구멍, 눈을 잡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몸뚱이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져 축축한 땅에 나동그 라진다. 나는 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서 있는 개양귀비 위로 난쟁이개미들이 기어오른다. 그러더니 그 위에서 발 톱을 있는대로 세우고 불개미에게 뛰어내린다. 마치 마차에 뛰어들 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불개미 등에 구멍을 뚫어 심장까지 파고든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위턱들이 반들반들한 딱지에 줄무늬의 흠집을 낸다. 어떤 불개미는, 두 개의 투창을 동시에 쏘아대듯이, 더듬이를 노 련하게 사용한다. 그럼으로써 더듬이에 묻은 맑은 피를 닦아낼 겨를 도 없이, 적의 머리통을 열 개씩이나 관통시키고 있다. 몸과 몸이 맞부딪친다. 죽자 하고 싸운다. 잘라진 더듬이와 다리가 땅에 지천으로 깔려서 가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라숄라캉의 생존자들이, 자기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듯, 달려 들어서 접전에 합세한다. 불개미 한 마리가 많은 난쟁이개미들에게 사로잡혔다. 절망에 빠 진 그 불개미는 제 배의 끝을 구부려 제 몸 쪽으로 개미산을 쏜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들을 죽이면서 자기도 죽으려는 것이다. 그들 은 모두 밀랍처럼 녹아버린다. 거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는 불개미 쪽의 다른 병정개미 하나가, 적이 자신의 머리를 뽑아버리려 할 찰나에, 잽싸게 상대의 머리를 먼저 뽑아버리고 있다. 병정개미 103683호는 아까 난쟁이개미들의 선두 병력이 몰려올 때, 다른 병정개미 수십 마리와 함께 삼각진을 쳤었다. 몰려드는 난 쟁이개미 떼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삼각진이 깨진 마당이라서 혼자서 다섯 마리의 시게푸 개미들을 상대해야 할 판이다. 시게푸 개미들은 벌써 사랑하는 전우들의 피로 칠갑을 하고 있다. 시게푸 개미들이 103683호의 몸뚱이 여기저기를 물어뜯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들에게 대항하는데, 불현듯 전투 연습실에서 늙은 병정개미가 신참들에게 해주던 충고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접전을 벌이기 전에 결정이 나버리는 것이다. 위턱으 로 공격을 하거나 개미산을 쏘는 것은, 이미 두 교전자가 인정하고 있는 승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법,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이기 지 못할 것이 없다.' 적이 한 마리라면 그 가르침이 통할 법한데, 다섯 마리일 때는 어 떻게 해야 하나? 103683호가 보기에 그 다섯 마리의 적 중에 적어도 두 마리는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의에 차 있는 듯하다. 그의 가슴 마디를 끈질기게 물어뜯고 있는 자와, 왼쪽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 는 자가 그렇다. 103683호의 몸에 힘이 충만해 온다. 몸을 버둥거리 면서, 한놈의 목 위에 비수를 꽂듯 더듬이를 박아넣고, 위턱이 평평 한 쪽으로 또 한놈을 쳐서 박살을 냄으로써 적들을 떨쳐버린다. 그러는 사이 비밀무기를 가지러 갔던 난쟁이개미들이 돌아와, 싸 움터 한복판으로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수십 개의 머리를 던져넣는다. 그러나 불개미들도 저마다 달팽이의 끈끈물로 방비를 하고 있는 터라 알테르나리아의 홀씨는 공중에서 나풀거리다가 딱지 위에서 미 끄러져 기름진 땅 위로 살포시 떨어진다. 결국 오늘은 새로운 무기 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날이다. 양쪽 진영 모두 장군에 멍군을 불렀던 것이다. 오후 세시에 전투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개미들의 시체가 내뿜는 올레인 산이라는 특이한 발산물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 다. 4시 30분에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남은 다리가 뚜 개밖에 없어도 아직 서 있을 수 있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양귀비 밑 에서 싸움을 벌였다. 전투는 다섯시가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비가 들이닥칠 것을 예고 하는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3월에 뒤늦게 우박 섞인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하늘이 땅에서 벌어지는 오랜 폭력 에 신물이 난 듯하다. 생존자들과 부상자들이 물러간다. 전투의 총결산: 사망자 500만, 그중 난쟁이개미 400만, 라숄라캉 수복. 마디가 잘려나간 몸뚱이, 구멍난 딱지, 이따금 단말마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을씨년스런 토막들이 땅 위에 까마득하게 깔려 있다. 래 커처럼 투명한 피와 노르스름한 개미산의 웅덩이가 지천이다. 끈끈이침개미들이 뱉어냈던 끈끈이물의 진창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몇몇 난쟁이개미들이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면 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새들이 날아와 그 개미들 을 쨉싸게 쪼아먹는다. 먹장 구름을 비추면서 번개가 번쩍거리자, 그 불빛에 아직도 위턱 을 오만하게 세우고 있는 전차의 등딱지가 반짝거린다. 그 위턱의 뾰족한 끝으로 멀리 있는 하늘이라도 구멍을 내고 싶어하는 듯하다. 배우들은 모두 돌아가고, 빗물만이 무대를 씻어내리고 있다. 그 여자는 입에다 잔뜩 문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빌솅?" "여보세요?" "(우물거리는 소리....)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요, 빌솅? 신문 봤 어요? 갈랭 형사, 당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죠? 처음 들어왔을 때 부터 나한테 버르장머리없이 굴던 그 애숭이 맞지요?" 경찰국장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그 친구 잘라버리라고 했더니 그냥 두어가지고, 이제 죽은 뒤에 용을 만들어 놨더군요. 당신 완전히 돈 거 아니예요? 그렇게 중요한 사건에 어쩌자고 경험도 하나 없는 그런 자를 보냈어요?" "갈랭은 경험이 없는 친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뛰어난 요원 이지요. 다만 저희가 그 사건을 너무 얕잡아보았던 겁니다...." "훌륭한 요원은 해결책을 찾고 무능한 요원은 핑계거리를 찾는 거예요." "사건에 따라서는 우리들 중엥 아무리 훌륭한 요원들이라도...." "사건에 따라서는 당신들 중에 아무리 무능한 요원들이라도 꼭 해 결해 내야 하는 사건들이 있는 법이에요. 지하실 안에 들어가서 거 기 갇힌 사람들을 다 꺼내 오세요. 당신이 그렇게 잘났다고 말하는 그 갈랭이라는 친구는, 교회 묘지에나 보내세요. 경찰 묘지는 어림 도 없어요. 이달 말까지는 신문에 우리가 일 잘한다고 칭찬하는 기 사가 실릴 수 있겠지요?" "말씀인즉슨, 이 사건이...." "말인즉슨, 전적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달렸다는 말 이에요!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벌리지 말았으면 좋 겠어요. 일단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언론에다 떠벌이란 얘기예요. 필요하다면 치안 대원 여섯 명하고 첨단 장비를 보내주겠어요." "그런데 만일...." "그런데 만일 당신이 계속 그렇게 뭉기적거리고 있으면, 당장이라 도 퇴직시켜 줄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빌솅 경정은 미치광이들을 다루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러 나 그녀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지하실 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 내분비샘에 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 지 금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거나, 땀이 나려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려 하거나, 소리를 치려 하거나, 울려고 한다고 치자, 그런 것은 그 사람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덤덤하게 바라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 기도 할 터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성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안 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이른바 페로-호르몬 또 는 페로몬인데,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 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 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 을 남이 똑같이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연방의 모든 도시가 환희에 차 있다. 지친 병사들에게, 달디단 영 양교환이 넘치도록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영웅은 없다. 저마다 제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임무가 끝나면 모든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개미들이 침을 듬뿍 발라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다. 어리숙한 몇 몇 어린 개미들은 전투 중에 뽑혀나간 제 다리들을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찾아내서는 위턱으로 꼭 부여잡고 있다. 다른 개미들이 그것들을 다시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지하 45층의 전투 연습실에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개미들 을 위하여 '개양귀비' 전투의 실황을 차례차례 재연해 보이고 있다. 두 진영으로 나뉘어 한쪽은 난쟁이개미 역할을 하고, 다른 쪽은 불 개미 역할을 하기로 한다. 난쟁이개미들이 라숄라캉의 금단지역을 공격한 장면부터 시작해서 불개미의 공격, 난쟁이개미들이 몸을 땅에 묻고 머리만 내놓고 있던 때의 싸움, 짐짓 도망가는 체했던 것, 전차의 투입, 난쟁이개미들의 방진에 밀려 퇴각했던 일, 난쟁이개미들이 능선 위로 돌격해 왔던 일, 포수 개미들의 활약, 마지막 대접전 등을 하나하나 그대로 흉내낸다. 일개미들이 그것을 보러 많이 왔다. 장면 하나하나가 재현될 때마 다 그들이 토를 단다. 특히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차'라는 새 로운 기술이다. 자기네 계급이 거기에서 한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다. 그 기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개미들의 의견이다. 비 단 전선의 공격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기술을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개미들 중에는 103683호도 들어 있다. 103683 호는 죽을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살아남았다. 다리 하나만을 잃었을 뿐이다. 다리 여섯 개를 자유자재로 쓰던 때에 비하면 약간 흠이 되지만, 크게 표시 나지는 않는다. 생식 개미라서 전투에 참가 할 수 없었던 암개미 56호와 수개미 327호가 103683호를 한쪽 구석 으로 이끈다. 더듬이 접촉. '여기는 별 문제가 없었는가?' '없었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도 모두 전투에 참가했었 다. 우리는 난쟁이개미들이 안에까지 쳐들어올 경우에 대비해서 금 단구역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떤가? 비밀 무기를 보았는가?' '못 보았다.' '어째서 못 보았단 말인가? 움직이는 아카시아 가지가 있었다고들 하던데....' 103683호가 설명한다. 자신들이 접해본 새로운 비밀 무기는 하나 뿐이었는데, 그것은 잔인무도한 알테르나리아였으며, 그 무기에 대 한 대응책을 찾아냈다는 것을. '첫 원정대를 죽인 것은 그게 아닐 것이다.' 수개미가 단언한다. 알테르나리아는 개미를 죽이는 데 시간이 많 이 걸린다. 게다가 그가 조사해 본 개미들에는 분명히 그 치명적인 홀씨가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완전 소통을 연장하기로 한 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다. 관념 과 의견들이 교류되면서 더듬이들 사이에 새로이 거품이 인다. 스물여덟 마리의 탐사 개미들을 순식간에 몰살한 그런 강력한 무 기를 어째서 난쟁이개미들이 전투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걸까? 승리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동원했던 그들이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들 은 아무런 주저없이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럼 난쟁이개미들은 그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까? 비밀 무기의 공격이 있기 전 이나 있은 후에 언제나 난쟁이개미들이 나타난다. 그건 어쩌면 까마 귀 날자 배 떨어지는 식으로 순전히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른다. 라숄라캉을 공격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러한 가정에도 일리가 있 다. 첫 원정대가 몰살당한 사건을 생각해 봐도, 누군가가 겨레를 혼 란에 빠뜨리려고 난쟁이개미들의 냄새를 뿌려놓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해서 덕을 볼 자가 누구인가? 이제껏 행 해진 짓가지 나쁜 짓이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혐의를 두어야 할까? 의심이 가는 다른 자들이 있는가? 있다! 악착 같은 제2의 적, 대대로 이어져온 원수, 흰개미들이다! 그 의심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동쪽의 커다란 흰개미 도시에서 떨어져나온 흰개미 병정개미들이 강을 건너서 연방 의 사냥구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맞다. 틀림없이 흰개 미들의 소행이다. 그 자들이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서로 싸우 도록 이간질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싸움 한번 안 하 고 양쪽을 몰아내려는 것이다. 난쟁이개미들과 불개미들이 아주 힘 이 빠져 있을 때 힘 안 들이고 개미 도시들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그 자들은 흰개미들 을 위해 일하는 용병 첩자일 게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그렇게 된 것이다. 세 개미는 한결같은 생각이 세 개의 뇌 속을 순환하면 할수록, 그 의혹투성이의 '비밀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자들은 흰개미들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들은 대화를 멈추어야만 했다. 겨레 전체가 함 께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벨로캉 도시는 전쟁의 막간을 이용하여 신생의 축제를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생의 축제는 내일 열릴 것이다. '모든 계급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라! 암개미와 수개미들은 꿀단 지 개미들의 방으로 가서 당분을 실컷 섭취하라! 포수 개미들은 유 기화학실에 가서 배에다 개미산을 재충전하라!' 동료들의 곁을 떠나기 전에 병정개미 103683호가 페로몬을 내어 한마디를 일러준다. '교미 잘 하게! 이 일은 내가 계속 조사를 할 테니까 걱정들 말 게. 자네들이 공중에 올라가 있을 동안 나는 동쪽의 흰개미 도시로 가 보겠네.' 그들이 서로 헤어지자 마자 두 암살자, 즉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병정개미와 자그마한 절름발이 개미가 나타났다. 그들은 벽을 긁어 서 아까 세 개미가 나눌때 발산되었던 휘발성 페로몬들을 거두어들였다. 갈랭 형사가 소방대원들을 들여보낸 일이 비극적인 실패로 돌아감 에 따라, 니콜라는 한 고아원에 보내졌다. 시바리트 가에서 몇 백 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에는 진짜 고아들 말고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 모의 학대를 피해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제가 난 새 끼들을 버리고 학대하는 동물은 별로 없는데, 인간은 사실 그런 희 귀종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힘겨운 세월을 보내 면서, 엉덩이를 때리는 우악살스러운 발길질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 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그 아이들은 강해져가고, 더 나이가 들면 직 업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가는 것이었다. 고아원에 들어간 첫날, 니콜라는 실의에 빠진 채 발코니에서 우두 망찰 숲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텔레비젼에서 위 안을 찾았다. 텔레비젼 수상기는 식당 안에 놓여 있었는데, 감독 선 생들은 그 '거지 같은 녀석들'이 줄창 텔레비젼이나 보면서 멍청이 가 되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텔레비젼 덕분에 아이들에게 해방되는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 장과 필립이라 는 다른 두 고아가 공동 침실에서 니콜라에게 물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 봐. 너만한 나이에 이런 데 오는 애는 없 어. 먼저 네 나이나 좀 알자. 몇 살이니?" "난 알아. 쟤네 엄마 아빠는 개미들한테 죽었나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던?" "누가 그러더라.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면 그게 누군지 가르쳐줄께." "너희들 까불면 죽을 줄 알아." 장과 필립이 니콜라에게 달려들었다. 필립이 니콜라 뒤에서 팔을 비트는 동안, 힘이 더 센 쪽인 장이 니콜라의 어깨를 잡았다. 니콜라는 불의의 습격에서 몸을 빼내어, 손바닥의 새끼손가락 쪽 을 칼날처럼 세워 장의 목을 후려쳤다(아이는 그런 것을 텔레비젼의 중국 무술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이 캑캑거리기 시 작했다. 필립이 니콜라의 목을 조르려고 다시 덤벼들었다. 그러자 니콜라가 팔꿈치로 그 아이의 명치를 쑤셨다. 덤벼들던 필립이 무릎 을 꿇고 주저앉아버리자, 니콜라는 다시 장에게 맞서서 그 아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아이가 달려들어 장딴지를 피가 나도록 물 어뜯었다. 세 아이는 침대 밑을 굴러다니면서 넝마주이들이 서로 싸 우는 것처럼 계속 싸웠다. 마침내 니콜라가 밑에 깔렸다. "네 부모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 그러지 않으면 개미 가 너를 물어 죽이게 할꺼야!" 장은 싸움을 하던 중에 무심코 그 말을 생각해 냈다. 말을 해놓고 보니까 꽤 그럴 듯했다. 정이 새로 들어온 아이를 마루 바닥에 눕혀 놓고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동안에 필립은 어딘가로 달려가서 개미 몇 마리를 가져왔다.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였다. 필립 은 니콜라의 얼굴에 개미들을 들이대고 흔들었다. "자, 아주 살진 먹이가 여기 있단다!" 그 말투가 마치 뻣뻣한 딱지로 덮인 개미들이 사람의 살찐 정도를 식별할 수 있다는 투다. 필립은 니콜라의 입을 벌리게 하려고 코를 움켜쥐었다. 니콜라가 입을 벌리자 그 아이는 거기에다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개미 세마리를 던져넣었다.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던 개미들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때 니콜라는 생전 처음 느끼는 놀라운 기분을 맛보았 다. 개미가 달착지근했던 것이다. 다른 두 아이는, 니콜라가 더러운 곤충을 다시 뱉어내지 않는 걸 보고 놀라서, 이번에는 자기들도 개 미를 맛보고 싶어했다. 분비밀을 저장하는 꿀단지 개미들의 방은 벨로캉에서 가장 최근에 성취한 혁신의 하나이다. '꿀단지' 기술은 남쪽의 개미들에게 빌러 온 것이었다.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남쪽의 개미들은 언제나 북쪽으 로 올라온다. 그 개미들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을 때, 밸로캉 연방의 개미들이 그들의 꿀단지 개미의 방을 발견했었다. 곤충의 세계에서 전쟁이란 발명의 원천이자, 발명을 널리 퍼뜨리는 매개자 역활을 한다. 그때 그 현장에서 벨로캉 병사들은 꿀단지 개미들을 발견하고 경 악을 금치 못했다. 평생 천장에 매달려 살도록 되어 있는 일개미들 이 있었는데, 머리는 아래쪽으로 두고 있고, 배가 어찌나 뚱뚱한지 여왕개미 배보다도 두 배는 커 보였다. 남쪽 개미들의 설명에 따르 면, 그 일개미들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개미들로서, 어마 어마한 양의 꽃꿀이나 이슬이나 분비꿀을 싱싱하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당분 덩어리라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모든 개미들이 영양 교환을 가능케 하는 갈무리 주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갈무리 주머니'라는 개념을 극단으로 밀고 가서 '꿀단지 개미'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실용화한 것이었다. 개 미들이 와서 그 살아 있는 저장고의 배 끝을 건드리면 꿀단지 개미 는 자기가 저장하고 있는 소중한 액체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주거나 줄줄 쏟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남쪽 개미들은, 그런 꿀단지 개미가 있는 덕분에, 열대 지역을 휩 쓰는 지리한 가뭄에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동을 할 때, 꿀단지 개미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 기간 내내 갈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꿀단지 개미는 알 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벨로캉 개미들은 꿀단지 개미라는 기술을 차용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양의 먹이를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 음에 들었던 것이다. 도시의 모든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당분과 수분을 가득 섭취하기 위해서 꿀단지 개미의 방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살아 있는 꿀 덩어리 앞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날개 달린 개미들이 줄 지어 서 있다. 327호나 56호가 흠뻑 단것을 빨아들이고 나서 물러난다. 모든 생식 개미들과 포수 개미들이 지나가고 나자, 저장 개미의 몸이 텅 비어진다. 그러자 일단의 일개미들이 꽃꿀과 이슬과 분비꿀을 신속하게 다시 가져와, 훌쭉해진 그들의 배가 작은 공처럼 빛나는 제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채워놓는다. 니콜라와 필립과 장은 어떤 감독 선생에게 들켜서 함께 벌을 받았 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고아원 내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세 아이는 대개 식당의 텔레비젼 앞에 붙어 있었다. 그날은 마침 아이들이 '자랑스런 외계인'이라는, 방영을 시작한 지 꽤 오래된 연 속극을 보고 있었다. 극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우주 비행사들이 어떤 행성에 도 착했는데 그 행성에 거대한 개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장 면을 보면서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쿡 쿡 찌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구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즈귀 별의 거대한 개미들입니다. 그 뒷얘기는 늘 보던 것과 비슷했다. 즉, 거대한 개미들은 정신 감응을 일으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메세 지를 보내어 서로서로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지구의 마지 막 생존자가 모든 것을 깨닫고 적의 도시에 불을 지른다. 운운.... 그 결말에 만족한 아이들은 달착지근한 맛을 내던 개미들을 잡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그들이 잡은 개미 들에게서는 지난 번과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를 않았다. 이번 것을 더 작고 신맛이 났다. 레몬 즙을 농축시킨 것 같은 맛이었다. 우웩! 정오 무렵에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아침 공기에 다사로운 기운이 감돌자마자, 포수 개미들이 도시 꼭 대기 주위를 화환처럼 두르고 있는 방호 구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 다. 새들이 곧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서, 포수 개미들이 꽁무니를 하 늘로 치켜들고 대공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포수 개 미들은 사격 때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배를 작은 나뭇가지들 사이에 끼워넣고 있다. 그렇게 하면 과녁을 별로 빗겨가지 않고 똑같은 방 향으로 두세 차례의 일제 사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자기의 방 안에 있다. 시녀 개미들이 암개미의 날 개에 침을 발라주고 있다. 소독력을 지닌 침이다. '당신들은 위대한 '바깥 세상'에 나가본 적이 있어요?' 일개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가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곧 여왕개미가 될 이 암개미는 잠시 후면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터인데, 밖에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암개미는 더듬이 접촉으 로나마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한시라도 먼저 알고 싶다고 한사코 때를 쓴다. 일개미들은 그래도 여전히 암개미의 몸단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 다. 일개미들은 암개미의 다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당겨보기도 하고, 몸을 비틀게 해서 가슴마디와 배마디에서 오도독거리는 소리 가 나게 하기도 한다. 또 암개미와 모이주머니를 눌러서 분비꿀 한 방울이 나오는 걸 보고, 모이주머니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 그 꿀이 암개미로 하여금 몇 시간 계속되는 비행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드디어 56호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다음 암개미를 준비시킬 차례 이다. 한껏 치장을 하고 향기를 듬뿍 머금은 공주 개미가 규방을 떠난다. 327호 수개미가 그 모습을 보면 56호를 딴 개미로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그 맵시가 정말 곱다. 56호는 날개를 들어올리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요 며칠 사이 에 날개가 어찌나 빨리 자라든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이제는 날개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땅에 질질 끌린다.... 웨딩드레스 같다. 다른 암개미들이 통로의 출구에 나와 있다. 수백 마리의 그 처녀 개미들과 함께 56호가 벌서 둥근 지붕의 잔가지 속을 돌고 있다. 너 무 흥분한 어떤 암개미들이 잔가지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네 날 개에 줄무늬의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구멍이 나기도 하며 아예 뽑혀 버리기도 한다. 그 불행한 암개미들은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가 없 다. 설사 올라간다 해도 날아오를 수는 없으리라. 안타까운 일이지 만, 그 암개미들은 5층으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난쟁이개미의 공주들처럼, 그 암개미들은 결혼 비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볼 썽사납게도 밀폐된 방에서 그것도 땅바닥에서 교미를 하게 될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아직 무사하다. 56호는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서, 그리고 여린 날개가 다치지 않도록 아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 면서,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강중거린다. 다른 암개미 하나가 56호에게 다가와 더듬이 접촉을 하자고 청한 다. 그 암개미는 말로만 듣던 수개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수벌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파리처럼 생겼을까? 56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문득 327호와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이젠 모든 게 끝났다. 일을 함께할 세포가 없다. 설사 있 다해도 수개미와 자신은 이제 그 일을 나설 수가 없다. 이제부터 모 든 일은 103683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애잔한 아쉬움을 느끼며 56호는 지나간 일들을 되새기고 있다. 도 망치던 수개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었다.... 통행냄새도 없이! 그와 나누었던 최초의 완전 소통. 103683호와의 만남.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도시의 밑바닥에 갔던 일. 그들의 '군대'가 될 수도 있었던 병정개미들의 시체로 가득찼던 은신처. 모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통로.... 56호는 걸어가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돌이켜보고, 자신은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도시를 떠나가기도 전에 그렇게 파란만장한 일 들을 겪은 암개미는 하나도 없을 터였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암살자들....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그렇게 많은 개미가 가담하고 있는 걸 보면, 미친 자들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흰개미들 편에 서서 첩자질하는 용병들이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엔 아귀가 안 맞 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첩자의 수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거니와, 그렇게 잘 조직되어 있을 수도 없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도시의 밑바닥 밑에 왜 식량을 저장해 둔단 말인가? 첩자들을 먹이 기 위해서? 아니다. 그만한 양이라면 수백만을 배불리 먹일 수 있 다.... 첩자가 수백만이 될 리 만무하다. 의외의 장소에서 만났던 그 로메슈제는 또 어떤가. 로메슈제는 지 표에 사는 곤충이다. 것이 제 발로 걸어서 지하 50층까지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곤충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 곤충에게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그 발산물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 괴물을 보들보들한 나뭇잎 같은 것으로 폭 싸서 조심스럽게 아래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꽤 강력한 어떤 집단이 있어야 한 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떤 엄청난 수단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놓고 보면, 겨레의 일부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같은 구성원들에 게조차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낯선 암개미들과의 접촉이 56호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한다. 56 호가 걸음을 멈춘다. 동료들이 보기에는 56호가 결혼 비행 전의 흥 분을 이기지 못하고 졸도한 것만 같다. 그런 일이 이따금 일어난다. 그만큼 생식 개미들은 예민하다. 56호는 더듬이를 입 쪽으로 가져간 다. 그간의 일들이 다시 빠르게 스쳐간다. 첫 원정대의 죽음, 비밀 무기, 병정개미 30마리의 죽음, 로메슈제, 화강암 속의 비밀 통로, 비축되어 있는 양식.... 아뿔싸! 56호는 문득 깨달았다. 56호가 오 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너무 늦은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개미의 교육 개미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이루어진다. -제1일에서 제10일까지. 대부분의 어린 개미들은 알 낳는 여왕개 미의 시중을 든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핥아주고 애 무해 준다. 그 대신에 여왕개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독 효과를 지 닌 침을 어린 개미들에게 발라준다. -제1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이 고치를 돌볼 수 있게 된다. -제21일에서 제20일까지. 일개미들을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들 을 돌보고 먹이를 준다. -제31일에서 제40일까지. 일개미들은 어머니인 여왕개미와 번데기 들을 돌보면서, 도시 안의 일과 길 닦는 일에 종사한다. -제40일째 되는 날이 중요하다.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인정을 받은 일개미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제41일에서 제50일까지. 일개미들은 경비 보는 일이나 진딧물 분 비꿀 짜는 일을 하기도 한다. -제51일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일개미들은 개미 도시의 일원으 로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사 냥을 나간다든가 미지의 지방을 탐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주: 제11일부터 생식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식 개미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결혼 비행을 하는 날까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혀 지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수개미 327호도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더듬이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수개미들은 너나없이 암개미들 얘기만 하고 있다. 암개미들을 본 적이 있는 개미는 아주 적다. 그나마도 금단 구역의 통로에서 슬쩍 훔쳐본 게 고작이었다. 많은 수개미들이 나름대로 암 개미들을 상상해 보고 있다. 그들은 고혹적인 향기와 넋을 잃게 할 만한 관능을 지닌 암개미들을 상상하고 있다. 수개미 하나가 자기는 암개미하고 영양교환을 한 적이 있노라고 떠 벌리고 있다. 그 암개미가 나누어 준 분비꿀은 자작나무의 수액 과 같은 맛이었고, 성호로몬 냄새는 노란 수선화 줄기를 잘랐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고 한다. 다른 수개미들은 그 수개미를 부러워하며 묵묵히 듣고만 있다. 327호야말로 어떤 암개미(그것도 보통 암개미가 아닌)가 나누어준 분비꿀을 맛본 적이 있기에, 그것이 일개미나 꿀단지 개미가 나누어 주는 분비꿀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대화에 끼여들지 않는다. 다른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딴 생각을 하고 있는 탓이다. 한 가지 엉큼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암개미 56호에게 미래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정자들을 실컷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56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까.... 56호하고 군중 속에서 다시 만나려면, 서로를 찾아낼 수 있 는 페로몬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는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다. 그때 암개미 56호가 수개미들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모든 수개미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암개미가 여기에 오는 것은 겨레의 법도에 어긋난다. 수개미와 암개미는 결혼 비행 전까지 서로 만나서는 안 된다. 여기는 난쟁이 개미들의 도시가 아니다. 통로에 서 교미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암개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수개미들은 정작 암개미가 들어오니까 일제히 비우호적인 냄새를 풍겨서 56호가 이 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표시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56호는 결혼 비행을 준비하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는 그 북새통의 한가운데 로 계속 나아간다. 56호는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방으로 페 로몬을 발산하고 있다. '327호! 327호! 327호! 어디에 있지?' 수개미들은 56호를 보고 대뜸, 교미할 수컷을 그렇게 대놓고 고르 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힐책한다. 그러고는, 원하는 수개미가 있어 도 참아야 한다고, 상대방을 고르는 게 아니라 우연에 맡기는 거라 고, 몸가짐을 좀 정숙히 하라고 타이른다. 그런 얘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암개미 56호는 끝내 자신의 수컷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수개 미는 죽어 있었다. 위턱에 맞아 머리가 잘린 채로. 전체주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개미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완벽한 전체주의의 체제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사실 밖에서 보면 개미 둥지에서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 두가 전체의 이익에 따르며,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전체주의 체제는 현재로 서는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모듬살이 곤충을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나폴 레옹의 휘장이 꿀벌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개미 둥지 전체를 하나 의 생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 페로몬이라면, 오늘날인 인간 사회 에서는 세계적인 방송망을 가진 텔레비젼이 그런 역활을 한다. 사람 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인간 사회가 이루 어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 만상의 이치는 그런 것 이 아니다. 자연은 다윈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좋은 것이 지 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좋고 나쁜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악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곱추, 언청이, 쾌활한 자, 슬픔에 빠진 자, 영리한자,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도량이 넓은 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빨간 것, 흰 것 등등 이 다 있어야 한다. 갖가지 종교, 갖가지 철학, 갖가지 광신, 갖가 지 지혜를 가진 자들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 때문에 소멸당하는 것, 위험이라면 오직 그것 뿐이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 이삭(즉, 물 을 더 적게 필요로 하고, 결빙에 가장 잘 견디며, 알곡이 가장 실한 이삭)의 덩이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 이 돌아도 다 죽어버린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그루한그루가 저 마다의 특성과 약점과 비정상성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 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 스스로 찾아낸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 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둥근 지붕을 향해서 56호가 시름에 겨운 발걸음을 조금씩조금씩 옮겨 놓고 있다. 암개미 방 가까이에 있는 한 통로에서 두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56호의 적외선 홑눈에 감지된다. 바위 냄새를 풍기 는 암살자들이다. 커다란 병정개미와 다리를 저는 작은 개미가 있다! 그들이 56호 쪽으로 곧장 다가오자, 56호는 날개를 붕붕거리면서 절름발이 개미의 목덜미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56호를 꼼 짝 못 하게 만들어버렸다. 56호를 당장 처단해 버릴 수 있을텐데도,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더듬이 대화를 하자고 강요한다. 암개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어차피 결혼 비행을 하고 나면 죽게 될 327호 수개미를 왜 죽였느냐고 따진다. 그를 왜 암살했는가? 두 암살자가 암개미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일 중에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한시바삐 해치워야 할 일이 있 다. 겨레가 계속 정상적으로 움직여나가기를 바란다면, 비난받을 만 한 임무가 나쁘게 생각되는 행동일지라도,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순진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벨로캉의 단결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따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이들은 첩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이들은 첩자가 아니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겨레의 안전 과 건강을 지키는 요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주 개미가 분노의 페로몬을 사납게 뿜어낸다. 327호가 겨레의 안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를 죽였단 말인가! 두 암살자가 그렇 다고 대답한다.?a 지금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거라면서 .... 이해할 거라고? 도대체 뭘 이해한단 말인가? 겨레의 한 가운데에 치밀하게 조직된 암살자 집단이 있다는 걸 이해한다고? '겨레의 생 존이 걸린 위급한 일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수개미를 죽여놓고, 겨 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란 말인가? 절름발이 개미가 나서서 해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이라는 것 이다. 스트레스에는 유익한 스트레스와 악성 스트레스가 있는데, 유 익한 스트레스는 겨레를 발전시키고 사기를 복돋워주지만, 악성 스 트레스는 겨레를 자멸에 빠뜨린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있다. 어떤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것은 모두에게 아주 해롭다. 겨레에 독성 물질이 생겨나 모두를 중독시켜버린다. 사실을 아는 건 '잠깐'이지만, 겨레의 생존은 '영 원'하다. 따라서 겨레의 영원한 생존이 더 중요하다. 눈 하나가 어 떤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유기체의 다른 모든 부분에 해가 된다면 뇌가 그 눈을 무시해 버리는 편이 낫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절름발이 개미가 늘어놓 자, 덩치 큰 병정개미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는 눈을 파낸거라네. 우리는 신경 자극을 잘라버린거라네. 우 리는 고뇌를 끊어버린거라네. 그들은 더듬이로 페로몬을 계속 발하면서, 모든 유기체는 그와 같 은 안전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기체는 두려움 때문에 죽거나 고뇌스러운 현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살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56호는 무척 놀라기는 했으나 냉정을 잃지 않는다. 참으로 그럴듯 한 페로몬이다! 그러나 적에게 비밀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들 이미 너무 늦지 않았는가. 그 비밀 무기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해도, 라숄라캉이 이미 그것 때문 에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고 있는 사실이다.... 두 병정개미는 여전히 침착하게 56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채로 설 명을 계속한다. 라숄라캉에 대해서는 다들 벌써 잊어버렸다. 승리가 호기심을 잠재운 것이다. 정 의심스러우면 통로의 냄새를 한번 맡아 보라. 독성 물질의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을 것이다. 온 겨레가 신 생의 축제를 차분하게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왜 머리를 이렇게 짓누르고 있는가? 아래층에서 쫓고 쫓길 때 개미 하나가 더 있었다. 병정개미였다. 그 자의 신분 번호가 어떻게 되는가? 그제서야 56호는 왜 암살자들이 자기를 바로 죽이지 않았는지 깨 달았다. 대답하는 척하면서 암개미는 덩치 큰 병정개미의 눈을 더듬 이 끝으로 찌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다고는 해도 더듬이 끝이 그렇게 박히고 보면 몹시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그 서슬에 놀라 절 름발이 개미가 당황하면서 잡고 있던 것을 반쯤 풀었다. 암개미가 달아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달려가다가 나중엔 더 빨리 가려고 날개짓을 한다. 날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자 추격자들이 길 을 잃고 헤맨다. 빨리 둥근 지붕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56호가 신생의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고 있다. 이제 56호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장난감 개미집의 판매 금지 입법을 청원하며 (국회 조사 위원회에서 에드몽 웰즈가 행한 연설을 발췌한 것임.) 어제 저는 어떤 가게에 들렀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새로운 장난감을 보았습니다. 흙이 채워진 플라스틱 상자였는 데, 흙 속에는 개미 300마리가 들어 있었고 그 중에는 알 낳는 여왕 개미 한 마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장난감을 통해서 개미들이 일하는 것이며, 땅 파는 것,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 장난감은 매력적입니다. 아이는 아마 하나의 도시를 선물로 받은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거 주자들이 아주 작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것은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 습니다. 그 거주자들은 자치 능력을 지닌, 수백 개의 작은 자동 인형과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자신도 그와 비슷한 개미집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개미 연구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저는 생물학자로서 개미 연구를 제 직업의 일환으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개미집들을 어항에 들여앉 히고 공기가 잘 통하는 판지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미집 앞에 있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곤 합 니다. 마치 자신이 개미들의 전지전능한 신이 된 듯한 느낌 말입니 다. 내가 먹이를 빼앗아버리면, 제 개미들은 모두 죽어버릴 것입니 다. 문득 비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들면, 물 한 컵을 물뿌리개에 담아 그들의 도시 위에 뿌려주면 그뿐입니다. 개미집 안의 기온을 높여주고 싶으면, 개미집을 난방 장치 위에다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 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하려고 그중의 한 마리를 납치하고 싶으면, 핀셋을 어항 안에 집어넣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개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해치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개미들은 자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말하자면 그 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힘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작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떨까 요.... 아이들 역시 개미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따금 어떤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모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혹시 이게 우 리의 도시는 아닐까? 혹시 우리는 어떤 어항 안에서 갇혀 있고 다른 거대한 존재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무대 장치를 만들어 아담과 이브를 넣어놓고, 실험용 흰쥐를 관찰하 듯 '구경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단지 갇혀 있던 어항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노아의 대홍수라는 것도 기껏해야 신이 조심성이 없거나 호 기심이 많아서 그저 물 한 컵 쏟은 걸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시겠지요? 글쎄.... 개미집과 우리가 사 는 지구가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우리는 물리적인 힘, 즉 지구의 인력에 의해 갇혀 있다는 점뿐입니다. 제 개미들은 갇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어항의 주둥이를 막고 있 는 판자를 베어내고, 벌써 몇 마리는 도망을 쳤습니다. 우리는 어떻 습니까? 우리도 중력을 벗어나는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습니다. 어항 안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개미들을 상대로 힘을 남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관대하고 자비 로우며 개미들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기는 신입니다. 그래서 백 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제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개미들에게 행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수천 개의 개미집이 팔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만한 수의 아이들이 어린 신이 될 것입니다. 그 아이들 모두가 저 만큼 너그럽고 자비로울 수 있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나의 도시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이 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미집의 주인이 됨과 동시에, 개미들에게 먹이를 주고,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며, 장난으로 개미들을 죽이 지 않을 의무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일로 불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 히, 아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문제입니다. 불만의 원인은 학교 성적일 수도 있고 부모의 꾸지람이 나 동무와의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아이들은 '어린 신'의 의무를 망각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때 아이들의 손아귀 에 있는 '피통치자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장난감 개미집을 규제하는 이 법안을 가결해 주십 사고 부탁드리는 것은, 개미에 대한 연민 때문도 아니고 개미에게도 동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어떠 한 권리도 없습니다. 우리가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을 희생시켜 우리의 소비에 충당하려는 것이겠지요. 제 가 거대한 존재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는 포로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구가 어느 날 어떤 무책임한 어린 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넘겨져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지각한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도시의 거죽으로 빠지는 통로 속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일개미들이 그들을 밀어주고, 핥아주고, 격려한다. 암개미 56호는 환희에 찬 개미들의 물결 속에 때맞추어 합류한다. 모든 통행 허가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들이 군중 속에 뒤섞여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 도 제 발산물의 냄새를 분간해 내지 못하리라, 물 흐르듯 나아가는 자매들의 흐름에 실려, 56호는 이제껏 알지 못하던 구역들을 지나 자꾸 위로 올라간다. 한 통로의 모퉁이에서, 56호는 갑자기 어떤 낯선 것과 마주쳤다. 햇빛이다. 처음엔 그저 벽 위에 빛이 비치는가 싶었는데, 이내 그 햇무리 같은 빛이 눈을 못 뜰 만큼의 강렬한 빛으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유모 개미들이 말하던 그 신비로운 힘이다. 따뜻하고 보드랍고 아름다운 빛, 놀라운 신세계에 대한 약속. 눈알에 빛 알갱이들이 글자 그대로 빨려들어오자, 56호는 취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마치 32층에서 발효한 분비꿀을 너무 많이 먹 었을 때의 기분 같다. 56호 공주 개미는 계속 나아간다. 땅바닥에 하얀 알갱이들이 부서 진다. 56호는 따듯한 빛 알갱이 속을 허위허위 해쳐 나간다. 어린 시절을 땅 속에서만 보낸 개미들에게는, 어둠과 빛의 대조가 너무나 강렬하다. 다시 모퉁이를 돈다. 투명한 빛이 붓질하듯 56호를 간지르다가 눈 부신 원 모양으로 넓어지더니, 은빛 너울이 되어 56호를 휘감아 버 린다. 빛이 너무 강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탓에 56호가 주춤거린 다. 눈 속으로 빛 알갱이가 들어와 시신경을 태워버리고 세 개의 뇌 를 갉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미의 뇌는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벌레와도 같았던 조상 때부터 내려온 유산이다. 개미 의 조상들은 몸 마디마다 신경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몸의 각 부분에 신경 체계를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56호가 바람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빛 알갱이를 거슬러 나아간다. 멀리 햇빛에 휘감긴 자매들의 윤곽이 어른거린다. 마치 허깨비를 보는 듯하다. 56호는 계속 나아간다. 몸을 둘러싸고 있는 딱지가 따뜻해지고 있 다. 많은 개미들이 수없이 이 빛을 묘사하려고 해보았지만, 빛은 어 떤 언어로도 도저히 형용할 수 없다. 빛은 그냥 즐겨야 한다! 문지 기 개미들이 생겨난다. 가엽게도 그들은 평생 도시 안에 갇혀 있어 서 바깥 세계가 어떠한지, 태양이 어떤 건지를 모르고 산다. 56호는 장벽처럼 버티고 있는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 도시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수많은 낱눈들로 이루어진 겹눈이 조금씩조 금씩 빛에 익숙해져간다. 빛에 익숙해졌다. 싶으니 이제는 거친 바 람이 눈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의 공기와는 반대로 차 갑고 빠르고 갖가지 냄새가 섞여 있다. 56호의 더듬이가 빙글빙글 돈다. 뜻대로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더 세찬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56호의 얼굴을 때린다. 56호가 날개를 파닥거린다. 둥근 지붕 꼭대기, 저 위에서 일개미들이 56호를 기다리고 있다. 일개미들은 56호의 다리를 잡고 들어올려서, 생식 개미들이 모여 있 는 앞쪽으로 밀어준다. 좁은 땅거죽 위에 수백 마리의 수개미와 암 개미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이 결혼 비행을 위한 이륙용 활주로 위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일기 상태가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바람이 계속 심술을 부리고 있다. 개미들이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열 마리쯤 되는 참새들이 생식 개미들을 발 견했다. 웬 횡재인가 싶어, 참새들이 점점 더 가까이 날아든다. 참 새들이 아주 가까이 접근해 오자 지붕 꼭대기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포수 개미들이 일제히 개미산을 퍼부어댄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과감하게 달려들어 암개미 세 마리를 낚아챘 다. 그 대담한 참새가 다시 날아오르기 전에 포수 개미들이 공격을 가했다. 참새가 풀밭으로 나뒹군다. 가련하게도 부리를 벌리고 날개 에 묻은 독을 닦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다른 놈들은 정신을 차릴거야! 실제로 참새들이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저 들은 곧 다시 돌아와서 대공 방어 태세를 다시 시험하려 들 것이다. 포식자 만일 인류가 늑대나 사자, 곰 하이에나 같은 주요한 포식 동물들 을 몰아내지 못했다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끊임없 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는 불안한 문명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대 로마 인들은 술을 부으며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사람의 시 체를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곤 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만사 가 덧없다는 것과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 을 멸종시키거나 희귀 동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미생물이나 개미 같은 곤충뿐이다. 인간의 문명과는 반대로 개미 문명은 주요 포식 동물들을 제거하 지 않고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이 곤충은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개미들은 자기들 문명의 갈 길이 아직 험 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이루어 놓은 결실을,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라도 발길질 한번으로 허물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 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바람이 잠잠해졌다. 공기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기온이 올라간다. 기온이 22도가 되자, 벨로캉은 자녀들을 놓아 보내기로 결정한다. 암개미들이 네 날개를 붕붕거린다. 암개미들은 만반의 준비가 되 어 있다. 성숙한 수개미들의 갖가지 냄새가 암개미들의 성적인 욕구를 절정으로 끌 어올렸다. 첫번째 처녀 개미들이 우아하게 이륙한다. 100머리쯤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들이 덤벼들어 암개미들을 낚아챈다.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아래에 있는 개미들 사이에 동요가 인다. 그러나 그 정도로 이 일 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암개미 100 마리 중 네 마리만 참새의 부리와 깃털 장벽을 벗어난다. 수개미들 이 그 암개미들의 뒤를 쫓아 밀집 대형으로 날아오른다. 참새들이 수개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너무 작은 수개미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 번째의 암개미 떼가 구름을 향해 솟구친다. 50마리가 넘는 새 들이 암개미들을 가로막는다. 대학살이 벌어진다. 살아난 암개미는 한 마리도 없다. 날짐승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저희들끼리 신호라도 보낸 모양이다. 이제 공중에는 참새뿐만 아니라, 티티새, 울새, 방울새, 비둘기들도 있다. 새들이 신나게 짹짹거린다. 그들에 게도 오늘은 잔칫날이다. 네 번째의 암개미 떼가 이륙한다. 이번 역시 단 한 마리도 통과하 지 못한다. 새들이 더 맛있는 먹이를 차지하려고 저희들끼리 싸운 다. 포수 개미들이 화가 났다. 개미산 분비샘에 있는 힘을 다 주어 수직 사격을 한다. 그러나 개미를 잡아먹는 그 날짐승들은 너무나 높이 있다. 치명적인 개미산 방울들이 빗물처럼 도시 위로 떨어져 내려와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았다. 겁에 질려서 결혼 비행을 포기하는 암개미들이 생겨난다. 새떼를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다시 내려가 방 안에서 교미를 하려는 것이다. 사고를 당해 못 올라온 다른 공주 개미들처럼 말이다. 다섯 번째의 암개미 떼가 죽을 각오를 하고 일어선다. 있는 힘을 다해서 저 새들의 장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17마리의 암개미가 통 과하자 43마리의 수개미들이 바싹 따라 붙는다. 여섯 번째 떼: 12마리가 통과했다. 일곱 번째 떼: 34마리! 56호가 날개를 움직인다. 아직 날아오를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 늘에서 자매의 머리 하나가 56호의 발치로 떨어지더니 이어서 새의 솜털하나가 살며시 떨어진다. 불길한 조짐이다. 56호는 위대한 '바 깥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안달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다. 여덟 번째 떼와 함께 날아오를까? 아니야.... 안 그러기를 잘했다. 여덟 번째 떼가 전멸을 한 것이다. 56호 공주 개미가 겁을 먹는다. 네 날개를 다시 붕붕거리면서 조 금 올라가본다. 좋다, 날개는 아무 이상이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두려움이 56호를 엄습해 온다. 냉정해야 한다.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 56호가 날개짓을 멈춘다. 아홉 번째 떼에서는 73마리의 암개미가 통과했다. 일개미들이 격려의 뜻이 담긴 페로몬을 내뿜고 있다. 열 번째 떼와 함께 출발할까? 56호가 망설이고 있는데, 좀 떨어진 곳에 돌연 작은 절름발이 개 미와 눈이 불구가 된 커다란 암살자 개미가 나타났다. 더 이상 머뭇 거릴 겨를이 없다. 56호는 단숨에 날아오른다. 위턱을 벌리고 달려 들던 두 병정개미들이 허탕을 치고 위턱을 다시 오무린다. 간발의 차로 암개미를 놓친 것이다. 56호는 잠시 동안 도시와 새떼의 중간 높이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열 번째의 암개미 떼가 날아오르면서 56호를 덮어버리자, 그 틈을 이용하여 56호 자신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공중의 그 지점으로 힘 껏 날아오른다. 옆에서 날고 있던 두 암개미가 잡히는 사이에 56호 는 구사 일생으로 박새의 어마어마한 발톱 사이를 빠져 나간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열 번째 떼 중에서 무사히 새떼를 빠져 나온 암개미는 열네 마리 이다. 그러나 56호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다. 이제 겨우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더 힘겨운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56호는 자신의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개 1,500마리의 암개미가 날아 오르면, 그중에서 열 마리 정도만 무사히 땅에 닿는다. 아무리 낙관적인 가정을 한다 하더라도 그 열 마리 중에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고 여왕이 되는 개미는 네 마리 정도일 것이다.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이따금, 여름에 산책을 하다보면 파리 같은 것을 밟을 뻔하는 때 가 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가 아니라 여 왕개미임을 알게 된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그렇게 쓰러져 있다는 얘기는, 여왕개미들이 그런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 왕개미들이 그렇게 땅바닥에서 몸을 뒤틀며 죽어간다. 사람들의 신 발에 밟히기도 하고 자동차의 앞 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한다. 더 이 상 날아오르지 못하고 탈진해 간다. 그럼으로써 개미 도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여름날 여왕개미가 단지 자동차 와이퍼에 부딪히 는 것만으로 길 위에서 사라져간 개미 도시가 얼마나 많았을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생긴 네 날개를 움직이고있을 때, 뒤에서는 새떼들이 열한 번 째와 열 두 번째로 날아오를 암개미 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불쌍한 자매들! 이제 다섯 차례 더 암개미 들이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면 벨로캉은 미래를 향한 모든 희망을 다 내보내는 셈이 된다. 56호는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무한한 창공 속에 서 심호흡을 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푸르다! 땅 속의 삶밖에 모르 던 개미에게는 공중을 비상하는 일이 너무나 황홀하다. 또 다른 세 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56호는 좁은 통로들을 떠나 이제 모든 것이 3차원으로 드러나 있는, 현기증 나는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56호는 본능적으로 모든 비행 방법을 알아낸다. 오른쪽으로 돌 때 는 오른쪽 날개에 체중을 싣는다. 올라갈 때는 날갯짓의 각도를 조 절한다. 내려가보기도 하고 속도를 내기도 한다.... 완벽하게 회전 을 하려면 날개 끝을 중심 축에 박고 지체없이 45도 이상으로 몸을 돌려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56호는 하늘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기는 커녕 공기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기류는 '펌프'처럼 56호를 밀 어올린다. 반대로, 진공 상태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추락하게 된다.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이 달리 있는 것은 아니고 앞에 가고 있는 곤 충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56호가 한기를 느낀다. 높이 올라올수록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따금 회오리바람이 일기도 하고, 훈훈한 기류나 찬 기류의 돌풍이 몰아치기도 하면서 56호를 팽이처럼 뱅그르 돌려버린다. 한 무리의 수개미들이 56호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암개미 56호가 속력을 낸다. 가장 빠르고 가장 끈질긴 자들만 따라오라는 뜻이다. 보다 좋은 유전 형질을 골라내려는, 일차적인 선별 방식이다. 무엇인가가 56호의 몸에 와닿는다. 수개미 한 마리가 56호의 배에 올라타더니 기어오른다. 수개미 몸집은 작은 편이지만, 56호의 날갯 짓을 중단시킨 걸 보면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듯하다. 56호가 조금 아래로 위에 탄 수개미는 암개미의 날갯짓 때문에 떨 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는 완전히 평형을 잃고, 침처 럼 생긴 제 생식기를 암컷의 생식기에 닿게 하려고 배를 구부린다. 56호는 어떤 기분이 들는지 호기심을 느끼며 기다리고 있다. 기분 좋게 따끔거리는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문득 하나의 생 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56호는 갑자기 앞으로 움직이더니 급강하하 기 시작한다. 숨막힐 듯한 기분이다! 엄청난 황홀감이다! 속도감과 교미의 쾌감이 어울려 이제껏 맛보지 못한 환희의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수개미 327호의 영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눈에 난 털 사이 로 바람이 빠져 나가면서 소리를 낸다. 톡 쏘는 듯한 나뭇진 냄새가 56호의 더듬이를 짜릿하게 만든다. 56호의 내부에 있던 혼들이 사나 운 파도가 되어 요동친다. 56호의 모든 분비샘에서 이제껏 분비되어 본 적이 없는 체액이 흐른다. 그 체액들이 섞이어 끓어오르는 수프 처럼 되더니 56호의 뇌 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풀밭 위에 이르자, 56호는 다시 힘을 모아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화살처럼 다시 올라간다. 암개미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음에 반해, 수개미는 이제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수개미가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의 위턱이 마냥 벌어져 있다가 저절로 오무라든다. 심장이 멎는 다. 그런 다음엔 추락만이 남아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 대개 수컷들은 교미를 하고 나면 죽게 되어 있 다. 수개미들에게는 단 한 번의 사랑을 할 권리만 주어져 있다. 정 자들이 수컷의 몸을 빠져나오면서 주인의 목숨도 앗아가는 것이다. 개미의 세계에서도 수컷들은 사정을 하고 나면 죽는다. 어떤 곤충 의 암컷은 제 몸에 정자가 가득 차면 정자를 제공한 수컷을 죽여버 리기도 한다. 격한 감정 상태가 암컷의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곤충의 세계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암컷의 세계이 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홀어미들의 세계이다. 수컷들은 부차적인 지 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수컷이 벌서 56호에게 달라붙고 있다. 수컷 하나가 떠나 기가 무섭게 다른 수컷을 받아들인다. 세 번째 수개미가 오고, 다시 여러 수개미들이 거쳐 간다. 암개미 56호는 그 수를 더 이상 헤아릴 수가 없다. 적게 잡아도 열일곱이나 열여덟 마리의 수개미들이 번갈 아가면서 56호의 저정낭을 싱싱한 생식 세포로 가득 채워주었다. 56호는 제 뱃속에서 살아 있는 액체가 부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장차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서 살게 될 거주자들을 저장하고 있는 것 이다. 수컷들이 넣어준 수백만 개의 성세포들이 있기에 56호는 15년 동안 매일 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56호 주위의 암개미 자매들도 56호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늘 가득히 암개미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의 수개미들이 암개미 위에 올라타서 똑같은 암컷을 상대로 교미를 한 다. 한데 뒤엉킨 사랑의 행렬이 구름처럼 공중에 걸려 있다. 암개미 들은 피곤에 지치고 행복에 취해 있다. 암개미들은 이제 공주가 아 니라 여왕이다. 반복되는 사랑의 즐거움이 몸을 녹초로 만들어 암개 미들은 이제 날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힘겹다. 바로 그 순간을 노리고, 꽃이 만발한 벗나무에서 제비들이 위풍 당당하게 튀어나온다. 제비들은 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층과 층 사이를 미끄러져 내리는 듯하다. 그 태연 자약한 모습에 소름이 돋 는다. 제비들이 부리를 활짝 벌리고 날개 달린 개미들에게 달려들어 차례차례 삼켜버린다. 이번에는 56호가 당할 차례이다. 103683호는 탐험 개미들의 방에 있다. 동쪽 흰개미 도시에 잠입해 혼자서라도 조사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일단의 탐험 개미들이 '용 사냥'을 하러 가는데, 함께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 의를 받았다. 알고 보니 주비주비캉이라는 도시의 초원 지대에서 도 마뱀 한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주비주비캉은 전 연방에서 가장 중요한 진딧물 목장을 가진 도시로서, 분비꿀을 짜낼 수 있는 진딧 물만도 900만 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나서 목축 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주비주비캉은 연방의 동쪽 경계, 즉 벨로캉과 흰개미 도시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103683호는 그 원정대와 함께 떠나기 로 했다. 그렇게 되면 그가 흰개미 도시로 떠난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103683호의 주위에서 다른 탐험 개미들이 꼼꼼하게 원정 준비를 하고 있다. 탐험 개미들은 각자 갈무리 주머니에 당분이 많은 식량 을 가득 채우고, 개미산도 가득 장전해 둔다. 그러고 나서 추위도 막고 알테르나리아 홀씨에 대한 방비도(이제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 는 것이다) 할 겸 몸에다 달팽이의 끈끈물을 바른다. 도마뱀 사냥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혹자는 도마뱀이 도룡 뇽이나 개구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탐험 개미 서른 두 마리 가운데 다수가 사냥하기 어렵기로 말하자면 도마뱀이 최고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어떤 나이 많은 개미가 주장하기를, 도마뱀은 꼬리가 잘리면 그것 을 다시 자라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다들 그 개미의 말을 비 웃는다. 또 한 개미는, 도마뱀 한 마리가 기온 10도 때의 시간 동안 을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한 다. 모두들, 개미산의 사용이 그리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벨 로캉 선조들이 위턱 하나만으로 그 괴물들을 상대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103683호는 소름이 오싹 끼쳐오는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는 이 제껏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도마뱀을 위턱이나 개미산으로 공격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자신이 생전 처음으로 달아나는 짓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 냥에 열심히 참가하는 것보다 '비밀 무기'에 대한 조사를 하는 쪽이 겨레의 생존을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탐험 개미들의 준비가 끝났다. 그들은 도시 외곽의 통로를 올라가 7번 출구, 즉 '동쪽 출구'를 통해 빛 속으로 나아간다. 우선 도시의 변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 다. 벨로캉 주변은 너나할것없이 바쁘게 일하는 일개미와 병정개미 들로 북적거린다. 몇 군데에 특히 개미들이 많이 몰려 있다. 어떤 개미들이 잎새, 열매, 알곡, 꽃, 버섯 따위를 나르고 있다. 어떤 개미들은 건축 자 재로 쓸 잔가지며 잔돌들을 운반하고 있다. 또 어떤 개미들은 사냥 물을 싣고 온다.... 냄새들의 아우성. 도마뱀 사냥에 나선 개미들이, 교통이 혼잡한 곳을 비집고 나아간 다. 그곳을 지나니 교통이 한결 원활해 진다. 대로가 점점 좁아져, 폭이 3머리(9밀리미터)가 되더니, 다시 두 머리로, 이어 한 마리로 된다. 그들은 이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집단적으로 의사 소 통을 하느라고 풍기던 냄새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그 무리는 도 시와 연결되는 냄새의 탯줄을 잘라버리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하 나의 단위가 된 것이다. 그들은 '산보'대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 보'대형이란, 개미들이 둘씩 짝지어 행진할 때의 대형을 말한다. 그 무리는 이내 다른 무리와 마주쳤다. 역시 탐험 개미들의 무리 이다. 그들은 갖은 고생을 다했던 모양이다. 그 대열에는 몸이 성한 개미가 한 마리도 없다. 다들 몸뚱이 여기저기가 잘려나갔다. 어떤 개미들은 다리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 처참한 모습으로 기어가고 있 다. 더듬이나 배가 잘린 개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03683호는 '개양귀비' 전투 이래로 그렇게 심하게 다친 병정개미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들은 어떤 무시무시한 것과 부닥뜨렸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그 '비밀 무기'가 아니었을까? 103683호는 기다란 위턱이 부서진 커다란 병정개미와 대화를 나누 어보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무슨 일이 있었는 가? 흰개미들에게 당한 것인가? 그 병정개미는 걸음을 늦추더니, 대답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린 다. 아니 이럴 수가, 눈 구멍이 텅 비어 있다! 게다가 입에서 목관 절까지 머리가 쪼개져 있다. 103683호는 그 병정개미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참을 더 가더니, 그 병정개미가 쓰러진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지 못한다. 그래도 아직 길 수 있는 힘은 남았는지 엉금엉금 기어서 길 밖으로 나간다. 자기의 시체가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암개미 56호는 제비를 피하려고 잽싸게 급강하를 시도한다. 그러 나 제비가 열 배는 더 빠르다. 커다란 부리가 더듬이 위로 덮쳐오는 가 했더니 벌써 배와 가슴과 머리를 덮어버린다. 부리가 56호보다 훨씬 빨랐다. 입 천장과의 접촉이 견디기 어렵다. 이어 부리가 다시 닫힌다. 모든 게 끝난 것이다. 희생 개미를 관찰해 보면, 저 자신의 생존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몸통에서 머 리가 잘려나가면 그 머리는 적의 다리를 물거나, 곡물 알갱이를 자 름으로써 여전히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쓴다. 가슴이 잘려나 갔을 때도 그 가슴은 적이 쳐들어오는 입구를 막으려고 기어 간다. 자기 희생인가? 공동체에 대한 광신인가? 집단주의 때문에 생긴 미련함인가? 그 어느것도 아니다. 개미 역시 외톨이로 살아갈 줄 안다. 겨레를 필요로 하지 않고, 겨레에 반역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자기 희생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현재 내 연구가 도달한 수준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겸양에서 비롯 되는 것으로 보인다. 개미에게는 자신의 죽음이 그리 대단한 사건이 못 되는 것 같다. 즉, 개체의 죽음이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일을 단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탐험 개미들은 나무와 흙 둔덕과 가시나무 덤불들을 돌아, 불길한 조짐이 느껴지는 동쪽으로 계속 헤쳐나간다. 길이 좁아졌지만, 도로 공사하는 일개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일개미들은 한 도시와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도 소 홀히 하지 않는다. 도로 개미들은 이끼를 뽑고, 걸치적거리는 잔가 지들을 치우고, 뒤푸르 씨 샘에서 페로몬을 발하여 냄새 신호를 남겨놓는다. 이제 반대 방향으로 통행하는 일개미들은 거의 없다. 땅바닥에 놓 인 길 안내 페로몬이 이따금 눈에 띈다. '29번 교차로에서 아가위나 무들을 돌아가시오!' 적들이 잠복해 있음을 알리느라고 최근에 뿌려 놓은 냄새의 자취인 듯하다. 103683호는 걸어갈수록 경이로움에 젖어들고 있다. 이 지역에는 한번도 와본 적이 없다. 높이가 80머리나 되는 볼레 독버섯이 있다 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종류의 버섯은 서쪽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버섯인 것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뱀눈나비도 눈에 띈다. 비위에 거슬리는 그 냄새가 파리들을 유인한다. 또 머리가 진주처럼 생긴 말볼버섯과 샹 트렐 버섯도 눈에 띈다. 103683호는 샹트렐 버섯에 기어올라 그것의 부드러운 살을 밟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103683호는 갖가지 낯선 식물들을 발견한다. 꽃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야생 대마, '비너스의 나막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려하면서 도 꺼림칙한 개불암꽃, '고양이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줄기가 길 쭉한 적설초.... 103683호가 꽃이 꿀벌레처럼 생긴 봉숭아 한 그루에 다가가 무심 코 톡건드린다. 건드리자마자 봉숭아의 여문 씨앗이 얼굴에 쏟아져, 끈적거리는 노란 알갱이로 103683호를 덮어버린다. 다행히 알테르나 리아의 홀씨처럼 딱지 안으로 파고들어오는 씨앗은 아니다. 그런 일로 주눅들지 않고, 103683호는 미나리아재비의 일종인 아 네모네 한 그루에 기어오른다. 하늘을 좀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공중에서는 꿀벌들이 꽃가루 많은 꽃이 있는 장소를 동료들 에게 알려주기 위해 8자를 그려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위 경관이 갈수록 신기롭게 느껴진다.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 새들이 진동을 한다. 이름모를 작은 곤충들이 사방으로 달아난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 작은 곤충들이 있 다는 것을 알게 될 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있는지도 모를 판이다. 103683호가 대열에 합류한다. 아까 봉숭아 씨 세레를 받은 머리가 아직도 따끔거린다. 어느덧 동맹 도시 주비주비캉의 경계에 이르렀 다. 멀리에 여느 것과 다름없는 덤불이 하나 보인다. 주비주비캉 개 미들이 닦아놓은 이 길과 냄새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쪽으로 해서 어떤 도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 할 것이 다. 가까이에서 본 즉, 주비주비캉은 전형적인 불개미 도시이다. 그 루터기가 있고, 잔가지로 만든 둥근 지붕과 쓰레기터가 있다. 그러 나 그 모든 것이 나무 덤불 아래 감추어져 있다. 주비주비캉의 입구는 둥근 지붕의 꼭대기와 거의 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도달하자면 고사리 한 무더기와 들장미 한 무더기를 통과해야 한다. 탐험 개미들이 그것들을 통과해서 입구에 이르렀다. 안에는 작은 곤충들이 우글우글하다. 도시에서 기르고 있는 진딧 물이다. 진딧물은 잎새와 색깔이 똑같아서 언뜻 보면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에 숙달이 된 더듬이와 눈을 가진 개미라면, 어렵지 않게 풀빛의 작은 돌기들을 알아볼 수 있다. 수백만 마리의 진딧물들이, 젖소가 풀을 뜯듯, 식물의 즙을 '뜯어 먹으면서' 조금씩조금씩 통통해져가고 있다. 개미와 진딧물 사이에 아주 오래 전에 하나의 협약이 맺어졌다. 진딧물들은 개미들에게 먹 이를 제공하고, 대신 개미들은 진딧물들을 보호해 주기로 했던 것이 다. 어떤 개미 도시에서는 아예 '젖소들'의 날개를 잘라버리고, '젖 소들'에게 통행 허가 냄새를 주는 일도 있다. 가축을 관리하는 데는 그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주비주비캉에서도 실제로 진딧물의 날개를 자르는 야비한 짓을 행 하고 있다. 그것에 보상하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순전히 현 대화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비주비캉은 2층에 대규 모 축사를 세우고 진딧물의 복지에 필요한 갖가지 편의 시설을 갖추 어 놓았다. 거기에서 유모 개미들이 개미 알을 돌볼 때와 똑같은 정 성으로 진딧물 알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고 나면, 주비주비캉에서 목축업이 특별히 중요한 산업이 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103683호와 동료들이 장미 가지의 진을 열심히 빨고 있는 진딧물 떼에 다가간다. 그들이 두세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진딧물들은 체 도 않고 장미 가시의 살 속에 주둥이를 처박고 있다. 개미의 냄새 언어를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탐험 개미들은 더듬이로 목축 개 미를 찾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병정개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 당 벌레 세 마리가 진딧물 떼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 무시무 시한 야수들이, 날개가 잘려 도망을 못 가는 진딧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 고 있다. 다행히 목축 개미들이 튀어나와 그 늑대 같은 무당벌레들을 응징 한다. 두 마리의 주비주비캉 개미가 나무잎 뒤에서 뛰어나온 것이 다. 그들이 거기에 숨어 있었던 까닭을 이제는 알 만하다. 까만 얼 룩을 가진 빨간 무당벌레들에게 효과적인 기습을 가하려고 숨어 있 었던 것이다. 목축 개미들은 무당벌레들을 겨누고 정확하게 개미산 사격을 퍼부었다. 무당벌레들이 쓰러지자, 목축 개미들은 아직 겁에 질려 있는 진딧 물 떼를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다닌다. 진딧물의 배를 주무르고, 토 닥거리다가, 더듬이를 어루만져준다. 그러자 진딧물들은 커다란 당 분 덩어리를 내놓는다. 맛있는 분비꿀이다. 그 액체로 한껏 배를 채 우고 있던 주비주비캉의 목축 개미들이 벨로캉의 탐험 개미들을 발견했다. 인사를 나누고 더듬이를 맞댄다. '우리는 도마뱀 사냥을 하러 왔다.' 탐험 개미들 중의 하나가 페로몬을 발한다. '그렇다면, 동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그 괴물 한 놈을 발견한 적이 있다.' 먼 길을 다니는 나그네 개미들에게는 영양 교환을 제안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목축 개미들은 그 대신에 직접 진딧물 분비꿀을 짜먹으 라고 권한다. 탐험 개미들은 주저하지 않고 각자 진딧물을 하나씩 골라 맛있는 분비꿀을 짜내려고 배를 살살 주무르기 시작한다. 인두 안은 컴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미끈미끈하다. 암개미 56호는 이제 끈끈한 액체로 온통 뒤범벅이 된 채, 제비의 식도로 미 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제비는 이가 없어서 씹지를 않기 때문에 56 호는 아직 다치지 않았다. 체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다. 자신이 죽으면 도시 하나가 온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56호는 있는 힘을 다해서 식도의 매끈매끈한 살에다 위턱을 박아 넣는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서 56호가 목숨을 건진다. 제비가 구 역질을 느끼고 콜록거리다가 그 성가신 먹이를 멀리 뱉어버린 것이 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으면서도 56호는 날아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날개가 끈끈물에 젖어 있어서 너무 무겁다. 56호가 강의 한 복판으로 떨어진다. 교미를 끝내고 죽어가는 수컷들이 56호 주위에 떨어진다. 공중에 는 제비 떼를 뚫고 살아남은 수무 마리쯤 되는 암개미들이 고르지 못한 리듬으로 비행하고 있다. 암개미들은 기력이 다 빠져서 점점 아래로 내려온 다. 그 암개미들 중의 하나가 수련위에 내려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 룡농 두 마리가 달려들어 암개미를 낚아채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다른 암개미들은, 비둘기, 두꺼비, 두더지, 뱀, 박쥐, 고슴도치, 닭, 병아리 등등의 공격을 받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결 국, 벨로캉에서 날려보낸 1,500마리의 암개미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여섯 마리 뿐 이었다. 56호도 그 살아남은 여섯 마리에 들어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56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 하고 그 비밀 무기의 수수께끼를 풀리라고 다짐한다. 그러자면 누군 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바로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생명들이 힘 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생명들을 낳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은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 햇살의 각도를 헤아려보고, 56호는 자신이 추락한 지점이 동쪽 강 물 위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별로 바람직한 곳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섬에 개미들이 살고 있는 건 사실이지 만, 헤엄 칠 줄 모르는 개미들이 어떻게 그 섬들에 정착하게 되었는 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나뭇잎 하나가 위턱이 닿을 만한 거리로 흘러가고 있다. 56호가 위턱에 있는 힘을 다 주며 그 잎새에 매달린다. 그러고는 뒷다리로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데, 그 추진 방식이 도리어 비참한 결과를 낳 고 만다.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한참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수 면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생김새는 올챙이인 듯도 한데 덩치는 천 배나 더 크다. 몸매는 유선형으로 되어 있고, 살갗은 매 끈매끈하며 얼룩 무늬가 져 있다. 56호로서는 처음 보는 동물이다. 송어였다! 그 괴물이 나타나자 닷벌레, 물벼룩 같은 작은 견갑충들이 달아난 다. 괴물이 자맥을 하며, 겁에 질린 채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암개 미 쪽으로 다가온다. 지느러미에 힘을 잔뜩 주면서, 물살을 가르고 송어가 달려든다. 암개미가 커다란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사이, 공중으로 솟구 친 송어는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입을 벌리더니 저쪽에서 파닥거 리고 있던 날파리 한 마리를 삼켜버린다. 그런 다음 꼬리를 한 번 휘둘러 몸을 비틀고는 수정처럼 맑은 제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그 서슬에 해일과도 같은 물결이 일어 개미를 삼켜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개구리들이 송어에게 암개미와 그 뱃속에 있 는 알들을 빼앗기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암개미를 서로 차지하려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암개미가 다시 물 위로 솟아 올랐으나 이번에는 소용돌이가 일면서 다시 여왕개미를 견디기 힘든 심연 속으로 빨아들인다. 개구리들이 암개미를 쫓는다. 한기가 엄습해 오면서 암개미는 꼼짝을 하지 못한다. 암개미가 의식을 잃고 있다. 니콜라가 새로 사귄 두 친구 장, 필립과 함께 식당에서 텔레비젼 을 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 주위에도 발그레한 얼굴을 한 다른 고아 들이 둘러앉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에 넋을 잃고 있었다.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시속 500킬로미터 의 속도로 뇌의 기억 장치에 전해지고 있었다. 인간의 뇌는 600억 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 장치가 포화 상태가 되 면, 가장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정보들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연스 럽게 조절이 된다. 그렇게 해서 충격적이었던 일에 대한 기억과 즐 거웠던 일에 대한 아쉬움만이 남게 된다. 연속극이 끝나고 곤충에 대한 토론 프로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아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지껄여대는 과학 프 로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르뒤크 교수님, 선생님께서는 로젠벨트 교수와 더불어 유럽 최고 의 개미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개미를 연구하시게 된 특별 한 동기라도 있으신지요? -어느 날, 부엌의 찬장을 열다가 일렬로 늘어선 개미들과 마주치 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서 있었지요. 그 개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겸손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개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 온 것이지요. 그게 동기 라면 동기죠(웃음). -로젠펠트 교수와 선생님 두 분 다 탁월한 과학자이신데, 로젤펠 트 교수와 선생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 로젠펠트 교수와 말입니까? 그분 아직 은퇴하지 않으셨나 요?(다시 웃음) 안 하셨군요. 웃자고 해본 소리고요, 사실 우리는 학문하는 입장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개미라는 곤충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모듬살 이 곤충들(흰개미, 꿀벌, 개미)은 모두 왕정주의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지요.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개미 사회에서 여왕은 알을 낳는 것 말고는 아무 런 권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개미 사회의 정치 형태는 다양합니다. 군주 정치, 과두 정치, 병정개미들의 삼두 정치, 민주 주의, 무정부주의 등등이 다 있습니다. 때로는 개미 시민들의 정부 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고, 도시 안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대단하군요! -제 생각도 그렇고, 제가 속해 있는 이른바 '도이치'학파의 생각 도 그렇습니다만, 개미 세계의 조직은 뭐니뭐니 해도 몇 개의 계급 으로 이루어진 위계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평균적인 개미보 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엘리트 개체들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 고 일개미 집단을 이끄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로젤펠트 교수나, 그가 속해 있는 소위 '이탈리아'학파는, 개미들은 근본적으로 무정 부주의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엘리트, 즉 평균보다 더 많은 능력을 타고난 개체들이 없다는 겁니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 기 위해서 어쩌다 자발적으로 지도자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것을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말하자면 이탈리아 학파의 생각은, 어떤 개미라도 다른 개미들의 관심을 끌 만한 독창적인 생각이 있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 도이치 학파의 생각은, '우두머리의 자 질'을 타고난 개미들이 언제나 다른 개미들에게 임무를 부과한다는 것이구요. -그 점에서 두 학파가 다른 건가요? -사회자께서 알고 싶어하는 게 이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은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을 때, 그러한 견해 차이가 주먹다짐으로 까지 발전한 적이 있지요. -색슨 정신과 라틴 정신 사이의 유서 깊은 경쟁과 맥을 같이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오히려 '선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후천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맞붙은 싸움과 비슷합 니다. 바보는 태어날 때부터 바보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가 하는 식의 논쟁 말입니다. 그게 우리가 개미 사회를 연구하 면서 해답을 구하려고 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토끼나 생쥐들을 상대로는 왜 그런 실험을 안 하십니까? -어떤 사회, 즉 수백만의 개체로 구성된 사회가 움직이는 것을 관 찰할 수 있게 하는 실험 대상으로는 개미만한 게 없지요. 개미들이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개미들을 관찰하는 것은 하나의 세 계를 관찰하는 거나 다름이 없지요. 수백만 마리의 토끼나 생쥐가 어울려 사는 도시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어요. 누군가가 팔꿈치로 니콜라를 꾹 찔렀다. "야, 니콜라, 너는 저거 듣고 있니?" 그러나 니콜라는 듣고 있지 않았다. 저 얼굴, 저 노란 눈, 언젠가 본적이 있었다. 그게 어디서였지? 그게 언제였지? 니콜라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마침내 생각이 났다. 책 정장하는 일을 한 다던 바로 그 남자였다. 그는 자기가 구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텔 레비젼에서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르뒤크라는 사람이 영락없는 그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니콜라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일 저 교수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그건 백과 사전을 가로채려는 생각 에서였을 것이다. 백과 사전의 내용이 개미 연구에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어. 그것은 틀림없이 지하실 저 아래에 있을 것이다. 모두들 백과 사전을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저 르뒤크라는 사람도, 그 빌어먹을 백과 사전이 문제였던거야. 그것을 찾으러 가 야겠어. 그러면 모든 걸 알게 될꺼야. 니콜라는 일어났다. "어디 가니?" 니콜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 개미에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니콜라는 문까지 가만가만 걸어가다가 문을 나서자마자 달음박질 을 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많은 소지품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 았다. 마스코트처럼 여기는 가죽 자켓과 주머니칼과 고무 창이 달린 커다란 구두만을 챙겼다. 니콜라가 1층의 커다란 홀을 지나가는데, 감독 선생들은 니콜라에 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니콜라가 고아원을 빠져나갔다. 멀리서 보니, 게예이톨로 기지 중에서 화산 분화구처럼 동그란 부 분만 눈에 들어온다. 꼭 두더지가 만들어놓은 흙 무더기 같다. '전 진 기지'는 일종의 작은 개미 도시로서 백 마리쯤 되는 개미들이 머 무르고 있는데,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되고 가을과 겨울에는 내내 비어 있다. 이곳에는 원시적인 개미 사회에서처럼 여왕개미도, 일개미도, 병정개미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곳에선 누구나 스스럼없이, 열병을 앓고 있는 듯한 거대 도시를 비판한다. 교통 체 증이며, 통로의 붕괴, 도시를 벌레 먹은 사과처럼 만들어버리는 비 밀 통로, 전문성을 너무 키운 나머지 이제는 사냥할 줄도 모르는 일 개미, 좁은 입구에서 평생 갇혀 지내는 눈 먼 문지기 개미 등등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103683호가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게예이톨로는 다락방 하나와 널찍한 주실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주실에 천장등과 같은 구실을 하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두 줄기의 햇살이 박제로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열 개쯤 되는 사냥물을 비추고 있다. 그것들 사이로 바람이 스쳐가면서 획획 소리를 낸다. 103683호가 그 알록달록한 박제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기지 에 거주하는 개미 하나가 다가와 103683호의 더듬이를 어루만지면서 그 화려한 동물들을 가리킨다. 그것들은 개미들이 갖가지 꾀를 써서 잡은 것이다. 그 동물들은 개미산으로 덮여 있다. 개미산은 시체를 보전하는 데도 쓰이는 것이다. 가지런하게 줄을 맞추어 늘어놓은 사냥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 비란 나비는 다 모아놓았고, 크기와 생김새와 빛깔이 가지각색인 곤 충들을 모아놓았다. 그런데 잘 알려진 동물 가운데 수집 품목에 들 지 않은 것이 있다. 여왕 흰개미이다. 이웃 흰개미들과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103683호가 묻는다. 기지 의 개미가 더듬이를 세우는 것으로 보아 무척 놀라는 눈치다. 위턱 을 가볍게 움직이고 있던 그 개미가 움직임을 멈추고 무거운 침묵에 빠져든다. '흰개미 말인가?' 기지 개미의 더듬이가 아래로 처진다. 무슨 페로몬을 내서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또한 설명을 하고자 해도 그럴 겨를이 없다. 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썰던 중이었다. 벌써 시간을 꽤 허비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그 개미가 몸을 돌려 꽁무니를 빼려 한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103683호가 아니다. 기지 개미는 이제 완전히 겁을 먹은 눈치다. 그의 더듬이가 가볍 게 떨린다. 흰개미라는 말만 나와도 어떤 끈찍한 일이 떠오르는 모 양이다. 흰개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 하는 듯하다. 그가 한창 술 잔치를 벌이고 있는 한 무리의 일개미들이 있 는 곳으로 줄행랑을 친다. 그 일개미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긴 사슬 모양으로 둘러서서, 각 자 앞에 있는 개미의 꽁무니를 빨고 있다. 그 일개미들은 이미 각자 의 갈무리 주머니에, 꽃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득 채워놓았던 것이다. 그 기지에 배치된 다섯 마리의 사냥 개미가 꽤 요란한 소리를 내 며 들어온다. 사냥 개미들이 애벌레 한 마리를 내민다. '이걸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이놈에게서 꿀이 나온다!' 그 새로운 소식을 전한 사냥 개미가 더듬이 끝으로 애벌레를 톡톡 건드린다 그런 다음 애벌레 앞에 잎새 하나를 놓아둔다. 애벌레가 사냥 개미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헛일이다. 사냥 개미는 애 벌레의 옆구리를 발톱으로 그러쥐고 몸을 돌리더니 애벌레의 꽁무니 를 핥는다. 이윽고 애벌레의 꽁무니에서 끈끈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모두가 그 사냥 개미의 공로를 치하한다. 개미들은 생전 처음 보 는 분비꿀을 위턱에서 위턱으로 돌려가며 맛을 본다. 진딧물의 분비 꿀과는 맛이 다르다. 그보다 더 기름기가 많고 뒷맛이 나뭇진 맛처럼 진하다. 103683호가 그 끈끈한 액체를 맛보고 있는데, 더듬이 하 나가 그의 머리를 스친다. '자네, 흰개미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는 듯한데.' 누가 그런 페로몬을 발했는가 하고 돌아보니, 아주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개미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 개미의 딱지에는 위턱에 긁힌 상처들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103683호는 동의의 표 시로 더듬이를 뒤로 젖힌다. 그 개미의 이름은 병정개미 4000호이다. 머리가 나뭇잎처럼 납작 하고 눈이 작다. 그 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떨림이 많아서 술 냄새 에 금방 묻혀버린다. 그래서 굳이 밀폐된 곳이나 다름없는 이 작은 구멍 안에서 대화를 나누려 했던 것이다. '걱정 말게. 여기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네. 이 구멍이 내 방일세.' 103683호는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달라고 청한다. 그 개미가 더듬이를 벌린다. '왜 그걸 알고 싶어하는가? 자넨 도마뱀 사냥을 하러 온 게 아니던가?' 103683호는 그 늙은 비생식 개미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하 기로 하고, 라숄라캉 병정개미들이 불가사의한 비밀 무기에 공격 당 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엔 난쟁이개미들의 소행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2의 적인 동쪽 흰개 미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는 것 등등. 늙은 병정개미가 더듬이를 구부리며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런 사 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개미가 103683호를 찬찬히 살펴보고 나서 질문을 던진다. '자네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도 그 비밀 무기 때문인가?' 젊은 병정개미는 그건 그런 게 아니라, 라숄라캉을 수복하던 '개 양귀비' 전투에서 잃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4000호가 반색을 한다. 자기도 그 전투에 참가했던 것이다! '몇 군단에 있었는가?' '15군단에 있었다. 자네는?' '3군단!' 마지막 공격 때 15군단은 왼쪽 날개에서 싸웠고, 3군단은 오른쪽 날개에서 싸웠다. 두 전우가 몇 가지 일들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나 눈다. 전투를 겪고 나면 언제나 소중한 교훈들을 많이 얻게 마련이 다. 4000호가 전투의 초동 단계에서 난쟁이개미들이 날파리 용병을 전령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것도 그런 교훈 중의 하나이다. 원 거리 통신에는 그런 방식이 재래적인 '파발 개미'보다 훨씬 유리하 다는 것을 4000호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103683호는 진심으로 그 개 미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고 서둘러 자기가 처음 꺼냈던 화제로 돌아간다. '왜 다들 흰개미 얘기를 꺼리는가?' 늙은 병정개미가 다가온다. 둘이서 머리를 맞댄다. '이곳에서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늙은 병정개미가 발하는 페로몬은 이곳에 뭔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아주 이상한 일, 아주 이상한 일....' 그 말이 벽에 부딪혀 냄새의 메아리로 되울린다. 4000호의 설명이 이어진다. 얼마 전부터 동쪽 도시의 흰개미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흰개미 첩자들이 사테이 쪽으로 강을 건너 서쪽으로 잠입하곤 했다. 불개미 쪽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첩자들을 그럭저럭 다스릴 수 있었 다. 그러더니 이제는 첩자들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공격해 오는 적이 성가시다가도, 막상 그 적이 사라지면 더 불안 해지는 법이다. 흰개미 첩자들과 사소한 접전을 벌이는 일마저 없어 지자, 이번에는 게예이톨로 기지 쪽에서 첩보원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첫번째 첩보 분대가 그곳으로 떠났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분대가 뒤를 이었으나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혹 자는 아주 탐욕스러운 도마뱀이나 고슴도치에 당했을 것으로 생각하 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동물들의 공격을 받았다 면 적어도 한 마리는 상처를 입은 채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 데 파견된 병정개미들은 마술의 힘에 의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 103683호가 페로몬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늙은 개미는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차례의 파견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게예이톨로의 병정개미 들은 마지막 모험을 한 번 더 하기로, 중무장한 병정개미 500마리로 소규모 군단을 만들어 파견했다. 이번에는 한 마리의 생존자가 있었 다. 그 개미는 수천 머리나 되는 거리를 기어와서는 기지에 다다르 자마자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힌 채 죽었다. 그 개미의 시체를 조사해 보았지만 상처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더듬이에는 전투를 겪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죽음이 아무 까닭 없 이 그 개미를 덮쳤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왜 다들 동쪽 흰개미 도시 얘기를 꺼리는지 이제 알겠는가?'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103683호는 아주 흡족해 하면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확신한다. 비밀 무기의 수 수께기를 풀려면 어쩔 수 없이 동쪽 흰개미 도시를 거쳐야 한다. 홀로그래피 인간의 두뇌와 개미 둥지는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홀로그래피 방 식으로 만들어낸 입체 상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홀로그래피란 무엇인가? 레이저 광원에서 나온 간섭성 빛을 물체 에 비추면 빛이 난반사되는데 그 빛을 모은 다음 일정한 각도에서 참조광을 비추면, 빛이 겹치면서 물체의 일체 상이 만들어진다. 그 렇게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일체 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홀로그래피라고 한다. 사실 그 입체 상은 어디나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성 빛이 모임으로써 다른 것, 즉 입체의 환영이라 는 제3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두뇌에 있는 각각의 신경 단위, 개미 둥지에 있는 각각의 개 체는 저마다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의식, 즉 '입체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으려면, 신경 단위가 모이고 개체가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암개미 56호, 이제 갓 여왕이 된 그 개미가 의식을 되찾는다. 둘 러보니 강가의 자갈밭에 닿아 있다. 급한 물살에 휩쓸린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싶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구리 먹이가 되었기가 십상 이다. 날아오르고 싶지만 아직 날개가 젖어 있다. 기다려야 한다.... 56호는 찬찬히 더듬이를 닦고 주위의 냄새를 맡는다. 도대체 여기 가 어디인가? 어느쪽 강기슭에 닿아 있는 것일까? 살기 힘든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56호가 1초당 진동수를 8천으로 해서 더듬이를 작동한다. 종종 맡 아본 적이 있는 냄새들이다. 다행히도 서쪽 강기슭 위에 와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연방 개미들의 자취를 알리는 페로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56호가 세우려는 미래의 도시가 연방과 결합될 수 있으려면 중심 도시쪽으로 좀 더 다가가야 한다. 마침내 56호가 날아오른다. 비행 방향은 서쪽이다. 당장은 그다지 멀리 날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날개 근육이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6호는 초정공 비행을 하고 있다. 두 병정개미가 게예이톨로 기지의 주실로 돌아온다. 103683호가 동쪽 흰개미 도시에 대해 캐물으려고 하면서부터, 기지의 개미들은 '알테르나리아'에 오염된 개미를 피하듯 그를 피했다. 103683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서 벨로캉 개미들이 게예이톨로 개미들과 영양 교환을 하고 있다. 벨로캉 개미들은 햇느타리를 맛보게 해주는 대신 야생의 애벌레에서 짜낸 분비꿀을 맛본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이러저러한 화제로 페로몬을 주고받는다. 바햐 흐로 도마뱀 사냥이 화제로 오른다. 최근에 도마뱀 세 마리가 나타 나 주비주비캉의 진딧물 떼와 그것들을 돌보던 목축 개미들이 그놈 들에게 모두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공포에 떨었고, 목축 개미들은 가축들을 나무가지 속에 파놓은 안전한 통로에서만 놀게 했다. 그러다가 개미산 포격 덕분에 그놈들을 쫓아버릴 수 있었다. 두 마리는 멀리 달아났는데, 상처를 입은 다른 한 마리가 여기에서 5만 머리 떨어진 어떤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주비주비캉 군대가 이미 그 도마뱀의 꼬리를 잘라놓았다.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놈이 다시 힘을 회복 하기 전에 요절을 내야 하는 것이다. '도마뱀 꼬리는 잘리고 나면 다시 나온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어떤 탐험 개미가 묻는다. 기지의 어떤 개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똑같은 꼬리가 다시 나오는 건 아니다. 어머니 말씀대 로 잃어 버린 것을 그대로 되찾는 법은 없다. 새로 난 꼬리엔 등골 뼈가 없어서 훨씬 더 말랑말랑하다.' 게예이톨로의 어떤 개미가 다른 정보들을 전해 준다. 도마뱀은 기 상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개미보다 훨씬 민감하다. 태양 에너지를 많이 축적하고 있을 때는 움직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반 대로 몸이 차가워지면 모든 몸짓이 느려진다. 이런 사실을 감안해서 내일의 공격을 계획하자. 가장 좋은 것은 날이 밝자마자 도마뱀을 공격하는 것이다. 도마뱀은 밤새 몸이 차가워져 혼수 상태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차가워져 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벨로캉 개미 하나가 불쑥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러자 기지의 사냥 개미 하나가 반박한다. '난쟁이개미들이 추위를 막을 때 사용하는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꿀과 술을 잔뜩 먹고, 열이 몸에서 너무 빨리 빠져나가지 않도록 끈끈물을 딱지에 바르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103683호의 더듬이가 그 얘기를 받아들인 다. 103683호는 흰개미 도시의 수수께끼와 늙은 병정개미가 들려준 의문투성이의 실종 사건을 생각하고 있다. 기지에 와서 가장 먼저 만났던 게예이톨로 개미가 다시 그에게 다 가온다. 사냥 노획물을 그에게 보여주었고 흰개미들에 대한 언급을 마다했던 그 개미이다. '4000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103683호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것을 못 들은 셈쳐라. 시체와 대화한 거나 다름없다. 그는 며칠 전에 맵시벌에 쏘였다....' 맵시벌! 103683호가 전율을 느낀다. 맵시벌은 기다란 산란관을 가 진 벌로서 밤에 개미 둥지를 뚫고 들어와 개미의 따뜻한 몸에 내려 앉아 개미 몸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알을 깐다. 맵시벌은 또 개미 애벌레를 가장 못살게 구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 나이다. 주사기같은 산란관이 천장을 뚫고 들어와서는, 개미 애벌레 의 보드라운 살을 더듬더듬 찾아서 거기에 알을 깐다. 처음에는 맵시벌의 알들이 개미 몸 속에서 자라는 게 느껴지지 않 는다. 그러다 알들이 탐욕스런 애벌레로 변하면서 살아 있는 개미를 몸안에서 갉아먹는다. 아니나다를까. 그날 밤 꿈 속에서 103683호는 자기에게 알을 까려 고 덤벼드는 맵시벌의 끔찍한 산란관에 쫓겨다녔다. 현관문의 비밀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니콜라는 자기 열쇠를 지니 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붙여놓은 봉쇄 표지를 뜯는 것만으로 쉽 사리 집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소방대원들이 사라진 뒤로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지하실 문도 활짝 열린 채 그대로였다. 손전등이 없었지만 니콜라는 낙심하지 않고, 대신 횃불 만드는 일 에 열중했다. 탁자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그 끝을 구긴 종이로 빽빽 하게 둘러싼 다음 불을 붙였다. 그러자 별 까탈 없이 나무에 불이 붙었다. 불꽃은 작았지만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바람이 불 어도 좀체 꺼지지 않았다. 니콜라가 횃불을 다 만들자 이내 나선 계단으로 내려섰다. 한 손 에는 횃불을 또 한 손에는 주머니칼을 들고 있었다. 니콜라는 마음 을 단단히 먹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니콜라는 스스로 영웅의 자 질이 있다고 믿었다. 니콜라가 다시 힘을 내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울퉁불퉁한 둥근 천 장 아래에서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불러보 기도 하고 힘을 얻기 위해 떨리는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니콜라 의 걸음이 아주 당당해졌다. 니콜라는 의식에 제동을 걸 사이도 없 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날아가듯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니콜라 앞에 돌연 문이 하나 나타났다. 니콜라가 문을 밀고 들어 갔다. 두 무리의 쥐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가, 불빛에 둘러싸인 니콜 라가 고함을 지르며 나타나자 줄행랑을 놓았다. 늙은 쥐들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얼마 전부터 '커다란 것들'이 자꾸 그곳을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새끼 밴 암컷들의 둥지에 불을 지르러 온 건 아닐까? 제발 그런 게 아니어야 할텐데.... 니콜라는 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 내려갔 다. 여전히 계단이 이어졌고 천장에 새김글도 나타났다. 그러나 니 콜라는 그 새김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파닥파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박쥐 한 마리가 니콜 라의 머리로 덤벼들었다. 소름이 끼쳐왔다. 니콜라가 박쥐를 떨쳐내 려고 횃불을 들이댔다. 그러나 자기 머리털만 몇 가닥 태웠을 뿐이 었다. 니콜라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박쥐는 모 자처럼 머리 위에 달라 붙어 있다가, 니콜라 머리에서 약간의 피를 뽑아낸 다음에야 떨어졌다. 공포에 짓눌린 니콜라는 이제 피곤함도 느끼지 못했다. 숨결이 거 칠고 심장과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했다. 니콜라는 갑자기 벽에 부딪 혀 넘어졌따. 니콜라는 이내 다시 일어났다. 횃불은 꺼지지 않고 그 대로 있었다. 니콜라가 불꽃을 앞으로 내밀었다. 확실히 벽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끌어들인 콘크리트 판과 강철 판으로 만들어진 벽임에 틀림없었다. 시멘트로 된 이음매가 아직 완 전히 마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게 눈에 띄었다. "아빠! 엄마! 거기 계시면 대답하세요!"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이 메아리만 어지럽게 되울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목표에 가까이 왔음에 틀림없다. 니콜라가 생각하기에 그 벽은 빙그르 도는 벽일 것 같았다. 문이 없는 데다가, 그런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벽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마침내 니콜라는 다음과 같은 새김글을 찾아냈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그 새김글 바로 위에는 전화기 번호판 같은 작은 글자판이 붙어 있었다. 숫자가 아닌 문자가 들어 있는 글자판이었다. 스물네 개의 문자가 들어 있었다. 문제를 풀어서 답이 나오면, 글자판의 누름단 추를 하나하나 눌러 그 답의 단어나 문장을 조합하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니콜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니콜라는 자기가 소리를 쳐놓고도 깜 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니콜라는 글자판을 누를 엄두를 못 내고 한참 동안 답을 열심히 찾 았다. 그러는 사이 니콜라는 기이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갖가지 생 각을 다 떨쳐버리게 하는 깊은 침묵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침묵의 힘에 이끌려 니콜라는 여덟 개의 문자를 잇달아 눌렀다. 기계 장치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이 돌아갔 다! 그것을 보고 흥분한 니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 다. 그러자 벽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 서술에 바람이 일면서 몽당이 남아 있던 횃불이 꺼져버렸다. 빛 한 줄기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 갇히자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니콜라는 다시 나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벽의 이쪽에는 암호 글자판이 없었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니콜라는 콘크리트판과 강철판에 기대어 손톱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니콜라의 아버지가 철저하게 작업을 해놓은 것이었다. 니콜라의 아버지는 유 능한 자물쇠장이였던 것이다. 곤충의 청결함 파리보다 더 청결한 게 무엇이 있을까? 파리는 끊임없이 제 몸을 씻는다. 그것은 다른 개체에 대한 의무 때문이 아니라 제 스스로에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더듬이와 낱눈들이 티 하나 없이 청결 하지 않으면, 파리는 멀리 있는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 를 죽이려고 덮쳐오는 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 곤충의 세계에서 청 결은 생존에 꼭 필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그 다음날, 대중 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퐁텐블로, 저주받은 지하실에 또 하나의 실종 사건! 웰즈 가의 외아들 증발.... 경찰 속수 무책.' 거미가 고사리 꼭대기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주 높은 곳이다. 거미는 거미줄 액을 한 방울 분비해서 잎새에 바르고는 가지 끝으로 나아가서 허공으로 뛰어내린다. 거미가 떨어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거미는 땅에 닿기 직전까지 줄에 매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어쩌다가 줄이 끊어져 몸통이 물렁 열매처럼 터져버릴 뻔한 적도 있 었다. 많은 동료들이 이미 사고를 당해 등딱지가 부서졌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치면서 줄이 튼튼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거미는 줄에 매달린 채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여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다리를 쭉 뻗어 다른 잎새 위에 내려앉는다. 그곳이 그 거미가 만들려는 그물의 두 번째 버팀대가 되어 줄 지점이다. 거미 는 그 잎새에 거미줄의 끝을 붙인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처지게 해서 붙인다. 왼쪽에 줄기가 하나 보인 다. 거미가 달려가서 그 줄기로 기어오른다. 다시 몇 차례 펄쩍펄쩍 뛰면서 몇 개의 가지와 거미줄을 연결한다. 드디어 테두리 줄이 만 들어졌다. 바람과 먹이의 무게를 지탱해 줄 버팀줄이다. 전체 모습 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거미줄은 피브로인이라는 섬유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피부로인 이 질기고 방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개미들은 먹이를 제대로 먹었을 때 지름 2미크론의 실을 7백 미터나 뽑아낼 수 있다. 그 실은 같은 굵기의 나일론과 맞먹을 정도로 질기며 탄력성은 나일론의 세 배이다. 거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일곱 개의 분비샘에서 각각 다른 실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즉 그물의 테두리 줄을 만들기 위한 실, 퇴각 줄을 만들기 위한 실, 그물 가운뎃줄을 만들기 위한 실, 신속하게 먹이를 잡는데 쓰이는 끈끈물이 묻어 있는 실, 알을 보호하기 위한 실,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한 실, 먹이를 감싸기 위한 실 등이 있다. 거미가 뽑아내는 실은, 알고 보면 개미의 페로몬과 마찬가지로 호 르몬의 연장선 위에 있다. 즉, 거미의 실은 호르몬이 실 모양으로 발전한 것이고, 개미의 페로몬은 호르몬이 기화하기 쉬운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거미가 퇴각 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올라선다. 어떤 위험이 나타 나면 거미는 그 줄에 매달려 뛰어내릴 것이다. 헛된 노력을 들이지 않고 위험을 모면하는 방법이다. 그 거미는 숱하게 목숨을 지켜왔다. 그 일이 끝나자 거미는 팔각형 그물 안에 네 개의 실을 엇건다. 수억년 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온 몸짓이다.... 그물이 제법 모양 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오늘은 마른 실로 그물을 짤 생각이다. 끈끈 물 묻은 실은 먹이를 잡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지만 너무 쉽게 끊어 지는 게 흠이다. 갖가지 낙엽 부스러기들이 날아와 달라붙기 때문이 다. 마른 실은 먹이를 붙잡는 힘은 약하지만 아무리 못해도 밤이 될 때까지는 버틸 것이다. 대들보 실을 놓고 나자, 거미는 방사사 열 개를 덧붙이고 그물 가 운데 나선사를 두름으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나선사를 두를 때가 가 장 기분이 좋다. 거미는 마른 실이 걸려 있는 가지에서 나와 방사사 사이를 건너뛰면서 되도록 천천히 그물 가운데로 나선사를 돌러나간 다. 언제나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간다. 거미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이 세상에 똑같이 생 긴 거미 그물은 없다. 사람들의 지문이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거미에겐 이제 그물코를 촘촘하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물의 한 가운데에 다다르자 거미는 실을 엮은 자기 작품이 튼튼하게 만들 어졌는지 흔들어본다. 그 다음엔 방사사마다 성큼성큼 올라가서 여 덟 개의 다리로 흔들어본다. 그렇게 흔들어도 끄떡없다. 이 지역에 있는 거미의 대부분은 75:12 방식으로 그물을 만든다. 다시 말하면, 방사사 12개에 나선사를 75바퀴 둘러 안을 채우는 것 이다. 그러나 그 거미는 섬세한 레이스와도 같은, 95:10 방식의 그 물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눈에 더 잘 띈다는 약점은 있지만 더 튼 튼하다는 강점도 있다. 마른 실로 그물을 짤 때는 실을 아끼지 말아 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이 왔다가듯 곤충들이 걸리지 않 고 빠져나가 버릴 것이다. 거미는 시간이 꽤 걸리는 그 일을 하느라고 기력이 다 빠졌다. 거 미는 당장 뭔가를 잡아먹어야 한다. 그건 하나의 악순환이다. 그물 을 짓느라고 힘을 다 빼고는, 그 그물로 먹이를 잡아 허기를 메운다. 대들보 실 위에 스물네 개의 발톱을 올려놓고 잎새 아래에 거미가 숨어서 기다린다. 그물이 마이크 진동판처럼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덕분에, 거미는 눈이 여덟 개나 되면서도 눈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공간을 지각하며, 다시 사이에 극히 미세한 공기의 파문이 일어도 그것을 감지한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8내지 10머리 떨어진 곳에서 꿀벌이 맴 돌고 있다. 꽃밭의 위치를 제 둥지의 꿀벌에게 가리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물이 가볍게 떨고 있다. 잠자리가 다가오고 있음에 틀림없다. 잠자리는 맛이 좋다. 그러나 그 잠자리가 날고 있는 방향이 그물 쪽 이 아니라서 거미의 먹이가 되어주지는 않을 듯하다. 뭔가가 묵직하게 와닿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그물 위에 뛰어내 린 것이다. 남이 해놓은 일을 가로채려는 도둑 거미다! 그물 주인은 먹이가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그 도둑 거미를 쫓아낸다. 바로 그때, 왼쪽 앞다리에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동쪽으로부터 파리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다. 그다지 빨리 날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 곤충이 비행 방향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그물에 걸려 들 것 같다. 찰딱! 그 곤충이 달라붙었다. 날개 달린 개미다.... 거미에게는 이름이 없다. 독립 생활을 하는 탓에 종족들끼리 서로 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미가 가만히 기다리 고 있다. 그 거미가 더 젊었을 때는 너무 자발 없이 굴다가 먹이를 놓친 적이 많았다. 자기 그물에 걸린 곤충들이 모두 죽는 줄만 알았 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물에 걸린 곤충 중에서 50퍼센트만 죽는다. 모든 것은 시간이 결정한다. 참고 기다리면 사냥물이 미쳐 날뛰면서 스스로 제 몸을 옭아맨다. 거미 세계의 철학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이런 것이다. '최상의 병법은 적이 제풀에 쓰러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 거미는 자기 먹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다가간다. 여왕개미다. 벨로캉이라는 서쪽 불개미 제국의 한 여왕개미다.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제국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다. 수백만 이 함께 모여 살면서 '서로 의존하기'때문에 이제 그들은 혼자서 살 아갈 수 없게 된 듯하다. 거미가 생각하기에 그런 생존 방식은 별로 이로울게 없다. 진보도 없을 것 같다. 이 개미는 벨로캉 제국의 여왕개미 가운데 하나이다. 그물에 걸린 개미를 살려두면, 그 제국의 일부가 될 도시를 또 만들 것이다. 그 다루기 힘든 침입자들의 영토가 확장되는 것이다. 거미는 개미를 좋 아하지 않는다. 자기 어머미가 벨로캉 빨강 천막개미 떼에 쫓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거미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먹이를 바라본다. 먹이는 아직 버둥거 리고 있다. 어리석은 곤충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해롭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날개 달린 개미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그물에 옭매인다. 그 와중에 그 물이 망가져 거미를 언짢게 한다. 성이 나서 버둥거리던 56호는 절망에 빠진다. 이제는 거의 움직일 수가 없다. 이미 몸에는 가는 실이 칭칭 감겨 있고 움직일 때마다 감긴 것이 점점 두터워진다. 산전 수전을 다 겪은 56호이건만 여기 에서는 이렇게 티미하게 당하고 있다. 하얀 고치 안에서 태어나 이제 거미줄이 만든 하얀 고치 안에서 죽게 될 판이다. 거미는 다시 다가와 지나는 길에 그물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살펴 본다. 56호는 오렌지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동물을 이제 가까이 에서 볼 수 있다. 그 동물의 머리 위쪽에 빙 둘러가며 여덟 개의 눈 이 달려 있다. 저런 동물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자기 가 먹이가 될 차례이다.... 그 자가 위에서 실을 뱉어내려고 한다! 거미는 먹이를 지나치게 칭칭 감는 법이 없다. 독이 든 실을 두 번 뱉어서 죽이지 않고 그냥 겁만 준다. 사실 거미류는 그물에 걸린 먹이를 바로 죽이지 않는다. 거미류는 살아 있는 고기를 먹기 때문 에, 사냥물을 죽이기보다는 마취 효과가 있는 독으로 혼절시킨 다 음, 조금씩 갉아먹고 싶을 때만 깨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 미류는 아주 신선한 고기를 실로 싸서 감춰놓고 먹고 싶을 때 마음 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 동안 신선한 먹이를 유지할 수 있다. 56호도 그런 습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소름이 끼친다. 그렇게 당하는 것은 지금 죽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몸이 한 부분씩 차례차례 잘려나갈 것이다. 한 번 깨어날 때마다 거미가 몸의 한 부분을 잘라 먹고 다시 마취를 시킬 것이다. 매번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침매 몸 의 중요한 기관이 뽑히고 나서야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게 낫다! 거미의 발톱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56호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장 박동을 늦출 채비를 한다. 바로 그때 하루살이 한 마리가 그물에 부딪힌다. 그러자 기다렸다 는 듯이 거미줄이 하루살이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린다. 그 하루살이 는 겨우 몇 분 전에 태어났을 것이고, 거미 그물에 걸리지 않았더라 도 몇 시간 후면 수명이 다 되어 죽을 터였다. 하루뿐인 삶이 하루 살이의 삶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허비하지 않고 바쁘게 살아야 하 는 삶이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 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게 될까? 애벌레로 2년을 살고 나면 하루살이는 바로 자기 재생산을 하기 위해 암컷을 찾아 떠난다. 자식을 통해 불멸을 누리려는 덧없는 노 력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삶을 하루살이는 교미의 상대를 찾는데 바친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먹거나 쉴 생각을 안 하고 상대 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의 천적은 '시간'이다. 1초, 1초가 하루살이의 적이다. 거미가 무섭다 해도 '시간' 그 자체에 비하면, 단지 시간을 잠복시 키는 요인일 뿐 온전한 의미에서의 적은 아니다. 거미 그물에 걸린 하루살이는 제 몸 속에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음 을 느낀다. 몇 시간 후면 하루살이는 늙어버릴 것이다. 이제 그 하 루살이에게는 희망이 없다. 태어나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참담하게 실패한 삶이다. 하루살이가?a 발버둥친다. 곤충들이 거미 그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이유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그물에 옭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 잡아드쇼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다가가서 보조 실을 몇 바퀴 더 두른다. 이 제 좋은 먹이가 두 개다. 그 먹이들이 내일 두 번째 그물을 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제공해 줄 것이다. 거미가 다시 자기 희생물을 잠 재우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다시 그물의 떨림이 느껴진다. 영리한 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떨림이다. 팁 팁 팁팁팁 팁 팁팁, 암거미다! 암거미가 실 하나를 타고 다가오면서 실을 두드려 신호를 보낸다. '나는 네 거야. 난 네 먹이를 훔치러 온 게 아니야.' 그렇게 요염하게 구는 것을 수거미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팁 팁팁팁. 아, 수거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암컷을 향 해 달려간다. 암컷은 네 차례 허물을 벗은 어린 거미다. 그에 비해 수거미는 벌써 열두 차례나 허물을 벗었다. 그럼에도 암컷이 세 배 는 더 크다. 하지만 수거미는 커다란 암컷을 좋아한다. 수거미는 그 들에게 곧 새로운 힘을 주게 될 먹이들을 암컷에게 보여준다. 두 거미가 교미를 시작한다. 거미의 교미는 꽤 복잡하다. 수컷은 음경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쌍열박이 총처럼 생긴 생식기를 가지고 있 다. 수거미가 서둘러 과녁이 될 만한 작은 그물을 만들고 거기에 제 생식 세포를 뿌린다. 거기에 다리 하나를 담가 적신 다음 암컷의 생 식기에 집어넣는다.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수거미는 극도 의 흥분상태를 맞는다.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진 아름다운 암컷이 갑 자기 수컷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그렇게까지 된 마당에 수컷을 통째로 먹어버리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게다. 그렇게 수컷을 해치우고도 여전히 암컷은 허기를 느낀다. 암거미가 하루살이에게 달려들어 하루살이의 삶을 더 짧게 만들어 버린다. 암거미가 이제는 여왕개미 쪽으로 몸을 돌 린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물릴 차례가 되었음을 알고 겁에 질려 다 리를 달달 떤다. 56호는 정말 운이 좋다. 지평선 너머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 로운 동물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 북쪽으로 올라온 남쪽 출신의 한 곤충이다. 개미와 마찬가지로 곤충이기는 하지만 아주 커다란 곤 충이다. 뿔풍뎅이라고도 하고 뿔쇠똥구리라고도 한다. 그가 거미 그 물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 실을 끈끈이처럼 길게 늘여서 끊어버린 다. 95:10 방식의 그물은 정말 질기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비단 레 이스는 올올이 뜯겨 넝마쪽이 되어버린다. 암거미는 벌써 제 퇴각 줄에 매달려 뛰어내린다. 하얀 굴레에서 벗어난 여왕개미가 땅바닥에서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다. 다시 날아 오를 힘이 없다. 그런데 그 암거미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암거미는 어떤 가지로 기어올라가더니 실을 뽑아 알 낳을 집을 만든다. 수십 개의 알을 깨고 나올 거미 애벌레들은 나오자마자 저희들의 어미를 잡아 먹을 것이다. 그렇듯 거미 세계에서는 은혜라는 것을 모른다. "빌솅!" 그는 수화기가 사람을 쏘는 벌레라도 되는 양 재빨리 멀리 떼어놓 았다. 전화 목소리의 주인은 그의 상관인.... 솔랑쥬 두망이었다. "여보세요?" "내가 명령을 내렸는데 당신 아무 일도 안 했어요. 도대체 뭐 하 고 있는 거예요?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자하실로 사라질 때를 기다리 는 거예요? 빌솅, 당신 보아하니 그저 쉴 생각만 하고 있군요! 하지 만 난 게으름뱅이는 딱 질색이예요! 48시간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하 세요. 안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거예요." "하지만 국장님...." "그놈의 '하지만 국장님' 소리는 듣기도 싫어요! 당신 부하들한테 는 내가 지시를 해놓았으니까 내일 아침에 그들하고 내려가기만 하 면 돼요, 필요한 장비는 다 현장에 있을 거예요. 이제 그놈의 엉덩 이는 그만 뭉개고 일어나세요!" 빌솅은 울화통이 터졌다. 손이 떨렸다. 그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위에 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자유를 누릴 수 있 는 길은 부랑자가 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는 아직 그런 것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의 한쪽에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갈망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는 데, 또 한쪽에는 남의 의지에 따라 살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마음이 싸우는 와중에 궤양이 생겨났다. 위궤양이 었다. 질서에 대한 갈망이 자유를 향한 욕망을 눌렀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한 무리의 사냥개미들이 바위 뒤에 숨어서 도마뱀을 살피고 있다. 도마뱀의 길이는 60머리(18센티미터)는 족히 된다. 푸르스름한 기운 이 도는 노란 바탕에 검은 반점이 박힌 울퉁불퉁한 등딱지는 무시무 히하고 징그럽다. 103683호에게는 그 검은 반점이 도마뱀에게 희생 된 온갖 동물들의 피가 튀어 얼룩진 것처럼 느껴진다. 예상했던 대로 그 동물은 추위 때문에 둔해져 있다. 걸음이 느릿 느릿하다. 마치 발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것 같다. 해가 막 떠오르려 할 즈음, 페로몬 하나가 발산된다. '저놈을 쳐라!' 도마뱀은 한 떼의 새카맣고 작은 것들이 자기에게 호전적으로 덤 벼드는 것을 보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불그스름한 주둥이를 벌린다. 그 주둥이 안에서 날랜 혀가 춤을 추며 나오더니 가까이 다가온 개 미들을 후려치고 끈끈물로 붙잡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다. 그러고는 가볍게 트림을 한 번 하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서른 마리쯤의 동료를 잃은 사냥 개미들이 숨을 죽인 채 멍하니 있다. 추위 때문에 동작이 둔할 거라더니 도마뱀은 힘이 철철 넘치지 않은가! 저런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개미 들 사이에서 나온다. 겁이라고는 모르는 103683호도 그런 얘기를 먼 저 꺼낸 개미 가운데 하나였다. 도마뱀은 난공 불락의 요새처럼 보 인다. 도마뱀의 가죽은 위턱이나 개미산으로는 공격할 수 없는 갑옷 이다. 덩치도 너무 큰 데다가 기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빠 른 걸 보면 개미들은 따라잡기 어려운 우월함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미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작은 이리들이 몰려가듯이 그 들은 그 괴물의 족적을 쫓아 달려간다. 고사리 덤불 아래를 달려가 면서 그들은 살기 어린 페로몬을 내뿜는다. 그 서슬에 겁먹는 것은 민달팽이들뿐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개미들 스스로에게는 힘을 주고 자신감을 준다. 수천 머리 떨어진 서쪽에, 가문비나무 껍데기에 붙 어 있는 도마뱀이 보인다. 아마도 방금 식사로 먹은 개미들을 소화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공격해야 한다! 늑장을 부리면 부릴수록 저놈이 힘을 더 얻 을 것이다! 추울 때도 날쌘는데, 태양 에너지를 흠뻑 받으면 더 힘 이 세어질 것이다. 더듬이를 맞대고 토론을 한다. 즉석에서 전술을 짜야 한다. 하나의 전술이 실행에 옮겨진다. 병정개미들이 나뭇가지에서 그 동물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개미 들은 눈꺼풀을 물어뜯어서 도마뱀이 눈을 못 뜨게 하고는 콧구멍으 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첫 특공대는 실패하고 만다. 화가 난 도마뱀이 발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떨어지는 개미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두 번째 돌격대가 달려간다. 도마뱀의 혀가 미 치는 지점까지 거의 다가가서 개미들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몽당이 로 남아 있는 꼬리 위로 사납게 덤벼든다. 어머니 말씀마따나, '어 떤 적이든 약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로지 그 약한 부분만을 공격하라.' 개미들은 꼬리가 잘려나간 부분의 상처를 찾아 거기를 개미산으로 지지고 도마뱀의 몸 속으로 들어가 창자를 공격한다. 도마뱀은 벌렁 나자빠지기도 하고, 뒷발로 달리기도 하고, 앞발로 제 배를 두드리 기도 한다. 개미들이 몸 속 곳곳을 갉아먹고 있다. 그 틈을 타서 또 한 무리의 개미들이 마침내 콧구멍에 들어가서 뜨거운 개미산으로 구멍을 넓히면서 파고들어간다. 그 바로 위에서는 개미들인 눈을 공격한다. 개미들이 물렁물렁한 눈알을 터뜨린다. 그러나 눈구멍으로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시신경 구멍이 너무 좁아서 그 구멍을 통해서 뇌에 도달할 수가 없 는 것이다. 그래서 눈구멍에 있던 개미들은 이미 콧구멍 안으로 깊 이 들어간 동료들을 뒤쫓아간다. 도마뱀은 몸을 비비꼬면서 목을 찌르고 있는 개미들을 죽이려고 주둥이 안에 발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허파의 한 쪽 구석에서 4000호는 젊은 동료 103683호를 만났다. 안이 캄캄한데다가 비생식 개미들은 적외선 홑눈을 가지고 있지 않 으므로 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더듬이 끝을 연결한다. '자, 동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틈을 이용해서 동쪽 흰개미 도 시쪽으로 떠나세. 동료들은 우리가 전투중에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처음에 들어왔던 도마뱀의 몽당이 꼬리 쪽으로 빠져나온 다. 꼬리에서는 이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내일이면 그 도마뱀은 개미들이 먹을 수 있는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뉠 것이다. 그 고깃조각 가운데 일부는 흙에 싸여서 주비주비캉으 로 옮겨질 것이고 일부는 벨로캉에도 갈 것이다. 그러면 개미들은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이 사냥을 묘사하리라. 개미 문명은 힘을 더 키워야 한다. 도마뱀을 정복한 일은 개미 문명에 자신감을 준 특별한 사건이다. 이종 교배 개미 둥지에 다른 종이 섞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다. 개미는 저마다 자기 도시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그렇게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다. 예를 들어 흙을 채운 어항에 불개미 100마리와 검은 목축 개미 100마리를 함께 넣으면 어떻게 될까? 두 종 모두에 알 낳는 여왕 개 미 한 마리씩을 포함시켜서 말이다. 그러면 우선 몇 차례의 작은 충 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길 정도의 충돌은 아니다. 그 후 에는 더듬이들을 맞대고 긴 토론을 벌이고 나서 함께 개미 둥지를 건설해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통로는 불개미의 체구에 알맞게 되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목축 개미에 알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과 교배를 해서 서로 섞인다. 이상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개미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어떤 종이 도시 안에 게토와 같은 특별 보호 구역을 만들어 다른 종 을 격리시키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동쪽 영토로 가는 길은 아직 말끔히 닦여 있지 않다. 흰개미들과 의 전쟁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평상적인 일들을 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4000호와 103683호는 수많은 접전이 벌어졌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려한 빛깔의 독나방들이 그들 의 더듬이로 바로 위에서 빙빙 돈다. 그때마다 그들은 불안을 느낀다. 한참을 더 가다가 103683호는 자기 오른쪽 발 밑에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것을 느낀다. 진드기 떼다. 침과 더듬이와 털과 갈고리를 갖 춘 미물들이다. 그 미물들은 먼지가 많은 둥지를 찾아 떼를 지어 이 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103683호의 기분이 좋 아진다. 세상에는 진드기처럼 작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개미처럼 커 다란 존재도 있는 것이다. 4000호가 어떤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 해진다. 오늘 너무 많은 고생을 한 그의 몸 안에서 맵시벌 애벌레들 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벌레들이 그 가련한 개미 의 내부기관들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이대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103683호는 그를 구하려고 갈무리 주머니 안쪽에 숨겨 두었던 로 메슈제 분비꿀 몇 덩어리를 꺼낸다. 벨로캉 지하에서 벌이던 싸움의 막바지에 103683호는 진통제로 쓰려고 로메슈제 분비꿀을 조금 모아 두었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에 그 달콤한 독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 끈끈한 액체를 삼키고 나자 4000호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하지 만 4000호는 그것을 더 달라고 한다. 103683호가 4000호를 설득하려 고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다. 그는 싸움을 해서라도 동료의 갈무리 주머니에서 그 귀중한 약을 빼앗아낼 기세이다. 뛰어오르며 103683 호를 때리려던 4000호가 분화구처럼 생긴 흙구덩이로 미끄러진다. 개미귀신이 파놓은 구멍이다. 명주잠자리의 애벌레인 개미귀신은 머 리가 삽처럼 생겨서 그걸 가지고 절구통 같은 구멍을 팔 수 있다. 일단 구멍을 파놓고 나면 그 안에 숨어서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 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4000호는 뒤늦게서야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는다. 개미는 원래 가볍기 때문에 그런 곤경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 다. 그렇지만 개미가 미처 구멍에서 올라오기 전에, 구멍 아래쪽에 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기다란 위턱이 올라오고 개미에게 흙을 뿌 리는 경우도 어쩌다가 있는 것이다. '개미 살려' 4000호는 이제 몸 속의 맵시벌이 주는 고통도 로메슈제 분비꿀을 맛본 뒤에 찾아온 금단의 고통도 다 잊고 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 다.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개미귀신의 함정은 거 미의 그물과 마찬가지로 희생물이 겁을 먹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4000호가 구멍을 기어오르려 고 버둥거릴수록 비탈이 허물어지면서 점점 바닥 쪽으로 끌려간다. 바닥에서는 개미귀신이 계속 흙을 뿌리고 있다. 103683호는 동료를 구조하겠다고 몸을 기울여 발을 내밀다가는 자 신도 빠질 염려가 있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하고, 구조하는 데 쓸 만 한 길고 튼튼한 풀줄기를 찾으러 간다. 안달이 난 늙은 개미가 강렬한 냄새를 뿜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흘 러내리는 거나 다름없는 흙 속에서 더욱 세게 발버둥을 친다. 그럴 수록 내려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개미귀신의 가위 같은 위턱들이 불과 5머리 아래에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은 정말 무시무시하 게 생겼다. 구부러진 두 개의 기다란 창을 벌려놓은 듯한데, 위턱마 다 수백 개의 작은 톱니들이 뾰족뾰족하게 나 있다. 게다가 그 끝은 송곳처럼 생겨서 개미의 어떤 딱지라도 쉽게 뚫을 수 있을 듯하다. 103683호가 다시 구멍 가장자리에 나타나 동료에게 데이지 줄기를 내민다. 빨리! 4000호가 그 줄기를 잡으려고 발을 뻗는다. 그러나 순순히 먹이를 포기할 개미귀신이 아니다. 개미귀신은 두 개미에게 미친 듯이 흙을 끼얹는다. 개미들은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개미귀신이 이번에는 돌을 던진다. 그 돌이 음산한 소리 를 내며 개미의 딱지에 부딪친다. 4000호가 반쯤 흙에 묻혀서 죽 미끄러진다. 103683호는 위턱 사이에 데이지 줄기를 꽉 물고 버틴다. 그는 동 료가 그 줄기를 붙잡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의 절망적인 순 간에 발 하나가 흙구덩이에서 삐져나왔다. 살았다. 4000호가 마침내 죽음의 구덩이 밖으로 뛰어 나온다. 아래에서는 먹이를 놓친 개미귀신이 분노와 실망을 이기지 못하고 집게 같은 위턱을 맞부딪치고 있다. 개미귀신이 명주잠자리로 탈바 꿈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필요하다. 다른 먹이가 미끄러질 때까지 저 개미귀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까? 4000호와 103683호는 서로를 닦아주고 여러 차례 영양 교환을 하 면서 갈무리의 주머니에 있는 양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메슈제 분비꿀을 메뉴에 넣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빌솅 경정!" 여자가 그에게 보드라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여기 온 걸 보고 놀라는 눈친데. 하지만 사건이 오래가고 심각해지는 데다, 지사께서 임기 말년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하 시고, 또 곧 장관이 될 분이기도 하셔서 내가 이렇게 직접 나섰어 요. 밥줄 끊어질까봐 불안한 모양이지요. 자, 얼굴 좀 펴요. 농담이 에요. 당신 유머 감각도 이젠 다 죽었구만?" 늙은 형사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 앞에 서 주눅들며 지내온 세월이 15년이었다. 그 여자에게는 '하긴 그래' 가 통한 적이 없었다. 그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려 했지만 눈길은 긴 머리채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살구빛으로 물들인 머리채였다. 요즘에는 그게 유행이었다.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여자 는 머리털이 본래 살구빛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이었 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풍기는 진한 염색 약 냄새는 이제 완전히 그 녀의 냄새가 되어버렸다. 솔랑쥬 두망. 그 여자는 폐경기를 맞으면서부터 아주 까다로워지 기 시작했다. 정히 늙는 게 싫으면 여성 호르몬 제를 복용하면 되었 을텐데, 그 여자는 뚱뚱해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호르몬 제 가 살찌게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여자 는 자기를 늙게 만드는 골치 아픈 일들을 이를 악물고 부하들에게 떠넘겼던 것이 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지하실에 내려가시려구요?" 빌솅이 물었다. "농담마세요, 빌솅! 내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당신이 내려가는 거 예요. 난 여기 있겠어요. 미리 모든 걸 다 준비해 왔지요. 차가 들 어 있는 보온병하고 내 워키토키 말이예요." "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벌써부터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걸 보니 겁나는 모양이지요? 말했다시피 우리는 무선으로 연결이 돼요. 어떤 위험이 느껴지면 바 로 나한테 신호를 보내세요. 그럼 내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테니까. 게다가 까다로운 임무에 필요한 최신 장비들도 가져왔으니 그걸 가 지고 내려가세요. 우리도 당신 생각 끔찍히 하고 있는 거예요. 자 봐요. 등산용 밧줄에다 총, 게다가 건장한 남자가 여섯 명이나 있잖아요." 솔랑쥬가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치안 대원들을 가리켰다. 빌솅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갈랭은 소방대원 여덟 명하고 같이 갔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되었는 걸요." "그들은 무기도 없었고 워키토키도 없었잖아요! 자, 우거지상 좀 펴세요, 빌솅." 빌솅은 더 이상 왈가 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상관이랍시고 재면서 을러대는 꼴에 배알이 뒤집혔다. 솔랑쥬하고 싸우다 보면 자신이 솔 량쥬가 되고 말았다. 그 여자는 꽃밭의 잡초 같았다. 그 잡초에 물 들지 않고 자라는 게 상책이었다. 빌솅은 마음을 가다듬고 동굴 탐사 복장을 갖추었다. 허리에 등산 용 밧줄을 두르고 워키토키를 어깨에 걸었다. "제가 만일 다시 못 올라오거든, 제 재산을 모두 경찰 고아원에 주십시요." "바보 같은 소리 그만 하세요, 빌솅. 당신은 다시 올라올 꺼고 우 리 모두 레스토랑에서 그것을 축하하게 될꺼예요." "제가 다시 못 올라올 경우를 생각해서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솔랑쥬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 애들 장난 같은 짓은 그마두세요, 빌솅!"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행한 나쁜 짓 에 대해서 언젠가는 모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젠 숫제 신비주의자가 되셨군! 빌솅,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 어요. 우리는 나쁜 짓을 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아요. 당신 생각대로 '착한 신'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우리에겐 털끝만큼도 관심 이 없어요! 그러니 살아서 이 존재를 활용하지 않으면 나중에 죽어 서는 활용할 길이 없어요." 솔랑쥬는 빈정거림을 얼른 멈추고 자기 부하에게 다가가 그를 닥 거렸다. 고약한 냄새, 빌솅은 숨 들이쉬기를 멈추었다. 저런 냄새를 지하실 안에서도 지겹도록 맡게 되겠지. "걱정 마세요. 당신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당신은 이 사건 을 해결해 낼거예요. 당신의 죽음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갑자기 달라진 솔랑쥬의 태도가 빌솅을 어린애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이제 흉기를 들고 반항하다가 그걸 빼앗기자 풀이 죽은 채 허 세로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사내아이나 다름없었다. "물론이죠. 내가 죽으면 '친히' 조사에 나선 국장님이 실패하게 되는 거지요. 국장님이 '직접 나선'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게 되실 겁니다." "빌솅, 나를 좋아하지 않나 보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난 상관 없어요.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사랑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알아야 돼요. 당신이 저 아래에서 죽는다 해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꺼예요. 또 다른 대원들을 보내면 돼요. 당신이 나에게 정말 폐를 끼치고 싶으면 일을 끝내고 살아서 돌아오 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솔랑쥬의 머리채를 흘끗거렸다. 유 행에 따라 손질한 머리채 밑 부분이 희끗희끗하다. 그것을 보니 빌 솅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치안 대원 가운데 한 명이 총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모두가 밧줄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좋아. 내려가자고." 그들은 밖에서 그들과 연락을 계속 취하기로 되어 있는 세 경찰관 에게 신호를 보내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솔랑쥬 두망은 워키토키를 들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행운을 빌어요. 빨리 돌아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