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기욤 아르토 그림 Gust 타이핑 ------------------------------------------------------------------------------------------------------------------------------------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장(場)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지 싶다. 어느 날, 나는 뜰에서 놀다가 문득 몸을 숙이고 땅을 내려다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정원의 흙 속에 작은 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거주자들로 가득 찬,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였다. 그 시민들은 행렬을 지어 길을 가고, 오글거리며 일을 하는가 하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그 광경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계 생물을 찾아 지구 밖의 별들을 탐사하면서도, 우리 발 밑에 존재하면서 아주 현실적인 문명을 이룩하고 있는 개미라는 지중(地中) 생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류는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1억 년 전부터 존재해 온 것에 비해, 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지는 3백만 년밖에 되지 않았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5천 년 전의 일이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이다. 우리는 우리와 닮지 않은 것을 여전히 경계하며, 우리와 다른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우리는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겐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두 세계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다른 문명과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어느쪽이 더 강한가 확인하고 싶어한다. 잉카 인들, 마야 인들, 아즈텍 인들의 자취는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우리의 무기와 질병이 그들을 죽였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발견해 낸 그 부족들의 문명이 유지되었더라면, 지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서구 문명과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가 만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잘못이 저질러졌다. 나와 남 사이의 차이가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른다. 동물이나 식물 세계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풍요로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생각지 않고 자연을 파괴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 이로운 것은 모든 것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거창한 환경 보호론을 들먹거리자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상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한다. 그 훈련을 위한 도장을 개미들이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미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것들은 1억 년이 넘은 집단 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개미들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 다만 개미들을 보면서 그 생존 체제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개미를 관찰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어린 시절에 개미를 손 위에 놓고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일종의 터널을 만들고 그 속에 갇혀 버린다. 어른들은 이익을 찾는 일에 몰두하느라고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나아갈 줄을 모른다. 우리의 교육은 이상적인 미래를 향한 터널 속으로 곧장 우리들을 내몰지만 그 터널은 확실성의 이름으로 엄폐되어 있고, 그 안은 너무나 캄캄하다. 나는 열네 살에 백과사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잡동사니 창고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 안에 내 맘에 드는 것을 모조리 던져 넣었다. 나중에 나는 파리에서 발행되는 한 주간지의 과학부 기자가 됨으로써 세계의 탁월한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얻은 정보 덕분에 내 백과사전의 내용은 한층 풍부해졌다. 그 정보들 중에는 가끔 나만이 알아낸 독점적인 것들도 있었다. 나는 열여섯 살 때부터 소설『개미』를 쓰기 시작했다(그 작품을 쓰는 데는 12년이 걸렸고, 1백 40번의 수정을 거듭했으며, 가장 긴 이본(異本)은『개미』1부만 1천 1백 쪽에 달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내 백과사전을 활용하였다. 내 소설을 과학의 모든 분야를 향하여 활짝 열어 놓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세 개의 버팀목, 즉 개미들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두 이야기에 다리를 놓고 빛을 비춰 부는 갖가지 짤막한 정보들이 소설『개미』의 플롯을 떠받치게 되었다. 내가 기욤 아르토를 알게 된 것은 두 소설『개미』와『개미의 날』(각각 한국어 번역본 『개미』의 1부와 2부에 해당함)을 출판하고 난 후였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이『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따로 떨어져 나와 한 권의 책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기욤은 구조에 관심이 많고, 감추어진 메시지를 찾는 일을 즐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열렬히 좋아하며, 그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이 실현하지 못한 것까지도 형상화해 낸 사람이다. 기욤은 마치 자기 내부에 스무 사람 정도의 인격을 지니고 있기라도 하듯 화풍과 기법과 주제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내 소설에서 나는『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개미의 세계에 입문한 독자를 위해 간단히 에스라ESRA1)로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의 저자를 에드몽 웰즈 박사라는 인물로 설정했다. 물론 그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에스라는 분명히 실재한다. 나는 그 책에서 일부를 골라『개미』와『개미의 날』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그것들의 원본이 에스라이다. 미리 일러두지만, 이 책에는 과학이나 철학, 정치학, 요리 따위에 대한 거창한 주장들이 담겨 있지 않다.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화학이 연금술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박물학이 형이상학과 접하는 것을 보고 놀랍게 여길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저 관심의 차이일 뿐이다. 관점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며, 어느 관점이든 표명될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자기 문화의 경험에 따라서 자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관점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능동성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직관을 가동하면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에스라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빛을 비추고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점이 바로 이 책이 지닌 역동성 가운데 하나이다. 독자들은 틀림없이 에스라에서 저마다 다른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사실 스스로의 기억을 개입시켜 이 책을 고쳐 나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백과사전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 책에 담긴 정보는 확고 부동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할 것이고,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아무 방향으로나 마음내키는 대로 읽어도 좋은 소설쯤으로 여겨 주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정신의 입맛을 돋우어 주는 아페리티프 같은 백과사전이다. 이 에스라가 커다란 술단지가 되어 누구나 그 속에 담긴 술을 따라 마시고 마음껏 퍼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랴. 베르나르 베르베르 1) Encyclope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의 머리글자. ------------------------------------------------------------------------------------------------------------------------------------ ■■ ㄱ ■■ 각막으로 빛살이 들어오면 당신은 지금 책을 읽고 있다. 이 지면에 닿았다가 튀어나간 빛의 알갱이, 즉 광양자(光量子)가 당신의 각막에 입사(入射)된다. 이 지면의 상(像)이 동공을 지나 수정체에 다다른 다음, 안구 벽 맨 안쪽, 시세포가 분포되어 있는 망막에 거꾸로 맺힌다. 망막에 맺힌 상은 엄청나게 빠른 전기 · 화학적 신호로 바뀌어 대뇌 피질의 시각 중추에 전달된다. 당신의 머리속에서 각 문자는 대등한 가치를 갖는 하나의 소리에 대응된다. 소리들이 결합하여 낱말들을 구성한다. 당신은 그 낱말들을 대뇌 속에 이미 저장되어 당신이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낱말들과 비교한다(예를 들어 <의미>라는 낱말은 <말이나 글 또는 어떤 행동으로 나타내는 속내>를 뜻한다). 보통대로라면 당신은 뜻을 알고 있는 낱말을 10만 개는 족히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뜻이 알쏭달쏭하거나 어원(어원을 뜻하는 에티몰로지e'tymologie는 그리스 어에서 나온 말로 <참되다>는 뜻의 <에투모스>와 <말>을 뜻하는 <로고스>를 합친 것이다)을 통해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낱말들을 제하고도 그럴 것이다. 낱말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면 당신은 그 전체적인 뜻을 헤아린다. 그러면 그 문장은 뇌의 한 구역으로 옮겨져 임시로 저장이 된다. 그것의 중요성을 당신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운명은 달라진다. 만일 그 정보가 당신에게 흥미없는 것으로 여겨지면 당신은 쉽사리 그 <임시 서랍>을 비울 것이다. 반대로 그 정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당신은 더 오랜 기간 간직할 것을 예정하면서 뇌의 한구석에 <장기간 보관용 서랍>을 마련하고 정보를 거기에 저장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나중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활용하거나 이 책을 읽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간단한 놀이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음식이 바로 나오지 않고 시간이 걸릴 때, 우리는 이따금 따분함을 느낀다. 특히 자기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이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전혀 가지고 있을 않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그러한 때에 식당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면서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가 있다. 바로 마리언바트2)의 게임에서 유래한 놀이이다. 성냥개비나 궐련이나 이쑤시개 따위를 식탁 위에 다음과 같이 옆으로 늘어놓는다. ━━ ━━ ━━ ━━ ━━ ━━ ━━ ━━ ━━ ━━ ━━ ━━ ━━ ━━ ━━ ━━ 각자 번갈아 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성냥개비를 집어 가되, 반드시 한 줄에서만 집어 가야 한다. 상대에게 마지막 하나 남은 성냥개비를 가져가게 하면 이기는 것이다. 필승 비결 한 가지 : 상대에게 두 줄의 성냥개비를 남겨 주되, 아래의 예와 같이 양쪽의 개수가 똑같이 되도록 만들어 놓는다. ━━ ━━ ━━ ━━ ━━ ━━ 2) 체코 어로는 마리안스케 라츠네. 체코의 서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온천 휴양 도시. 간충의 여로 간충Fasciola hepatica의 순환은 자연의 가장 큰 신비에 속할 것이 틀림없다. 이 벌레만을 소재로 삼아도 소설 한 권은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양(羊)의 간에 번식하는 기생충이다. 간충은 혈액과 간세포로부터 영양을 섭취하여 성충이 된 후, 그곳에서 알을 깐다. 하지만 알은 양의 간에서 부화할 수 없다. 하나의 대장정(大長程)이 알들을 기다리고 있다. 알들은 대변과 함께 양의 몸 밖으로 나옴으로써 숙주를 떠나 춥고 건조한 바깥 세계와 만난다. 알들은 한동안의 성숙기를 거친 다음 부화하여 작은 애벌레가 된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숙주인 달팽이에게 먹힌다. 간충의 애벌레는 달팽이 몸 속에서 성장하여 우기(雨期)에 그 연체 동물이 내뱉는 끈끈물에 담겨 배출된다. 하지만 간충의 여로는 이제 반밖에 끝나지 않았다. 흔히 끈끈물은 하얀 지주송이 모양으로 개미들을 유혹한다. 이 <트로이의 목마>3) 덕으로 간충들은 개미의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일단, 개미의 몸 속으로 들어간 간충들은 개미의 갈무리 주머니, 즉 <사회위(社會胃)>에 오래 머물지 않고 그곳에 수천 개의 구멍을 뚫고 나온다. 그러고는 그 소동으로 개미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견고한 풀로 구멍을 다시 메워 개미의 갈무리 주머니를 여과기처럼 만든다. 양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미를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전혀 내부의 드라마를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간충은 개미의 체내에서 순환한다. 간충의 애벌레들은 이제 성충이 되기 위해 양의 간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간충의 성장 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 양으로 하여금 개미를 삼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충들을 수세대에 걸쳐 그 문제를 탐구해야 했다. 양들은 신선할 때 풀 줄기의 윗부분을 뜯어먹는다. 그러나 개미들은 따뜻할 때 둥지를 나와 풀 뿌리의 선선한 그늘 안에서만 돌아다닌다. 시간도 장소도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어떻게 양과 개미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간충은 개미의 몸 안 여기저기 흩어짐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가슴, 다리, 배에 각각 십여 마리씩 들어가고, 뇌에는 한 마리만 자리잡는다. 이 한 마리 애벌레가 개미의 뇌에 뿌리를 박는 순간, 개미의 행동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짚신벌레처럼 가장 하등한 단세포 동물에 가까운 간충이 이제부터 개미의 행동을 조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간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모든 일개미들이 잠든 밤에 개미집을 떠나,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간 다음, 풀 꼭대기에 올라가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풀에나 마구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양들이 가장 좋아하는 개자리4)와 냉이에 올라간다. 개미들은 거기에서 뻣뻣이 굳은 채로 풀과 함께 뜯어먹히기를 기다린다. 뇌에 있는 간충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 즉, 양에게 먹힐 때까지 매일 저녁 자기의 숙주가 밖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아침이 되어 따사로운 기운이 다시 찾아오면 양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개미는 자기의 뇌를 다시 통제하고 자유 의지를 되찾는다. 그 개미는 자기가 풀 꼭대기에서 무얼 하고 있었나 하고 의아해 하면서 재빨리 내려온다. 그런 다음 자기 둥지로 되돌아가 일상의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되면 그 개미는 간충에 걸린 다른 동료 개미들과 함께 몽유병 환자처럼 다시 밖으로 나가 양에게 잡아먹히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순환은 생물학자들에게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첫번째 문제 : 뇌에 숨어 있는 간충이 어떻게 밖을 보고 개미에게 이러저러한 풀을 찾아가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두 번째 문제 : 양이 개미를 삼키는 순간, 개미의 뇌를 조종하던 간충은 죽게 될 것이다. 그것도 그 간충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와 같은 희생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양상을 보면 마치 간충들이 자기들 가운데 하나, 그것도 가장 우수한 하나를 희생시킴으로써 나머지 모두가 목표를 달성하고 번식의 순환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3) 기원전 1182경 트로이 전쟁중 스파르타는 견고한 트로이 성을 함락시킬 수가 없자, 병사들을 속에 감춘 거대한 목마를 제작하여 트로이에 선물하였다가 밤에 목마 속에서 나온 병사들로 결국 트로이 성을 점령하였다. 4) 콩과에 딸린 두해살이 풀. 키는 30에서 60센티미터. 원산지는 유럽으로 녹비, 목초로 쓴다. 개미 몸의 기능성 개미 몸보다 더 기능적인 것이 또 있을까? 구부슴한 테두리 선은 맵시 좋게 다듬어져 있고, 몸매에 구현된 공기 역학의 원리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몸의 구석구석이 정교하게 고안된 차체(車體)와 같아서, 공기 역학의 원리에 맞게 오목오목 들어간 자리에 다리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박혀 있다. 몸 마디 하나하나가 경이로운 기계 장치이다. 몸 마디를 감싸고 있는 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어떤 디자이너가 마름질한 것처럼 싸개가 꼭 들어맞는다. 그것들은 삐걱거리는 일도 없고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다. 세모진 머리는 공기를 헤쳐 나가기에 딱 알맞고, 구부러진 긴 다리는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한 몸을 사뿐하게 받치고 있다. 마치 이탈리아의 스포츠 카를 보는 듯하다. 발톱은 천장에서도 붙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고 눈은 파노라마 같은 360도의 시야를 가지고 있다. 더듬이는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 수천 가지의 정보를 감지하며 그 끄트머리는 망치 구실을 한다. 배에는 화학 물질을 저장할 수 있는 주머니나 자루, 샘들이 가득하다. 위턱으로는 물건을 자르고 구멍을 내며 붙잡을 수 있다. 또 몸 안에 그물처럼 퍼져있는 관들을 통해 후각 정보를 방출한다. 개미산 개미산은 생명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 중의 하나이다. 사람도 세포 안에 개미산을 가지고 있다. 옛날에 개미산은 식량이나 동물의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특히 침대 시트의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이 산을 합성할 줄 몰랐기 때문에 곤충에게서 직접 뽑아 썼는데, 개미 수백만 마리를 압착기에 넣고 노란 액체가 나올 때까지 나사를 죈 후, 그 <개미 기름>을 한 번 걸러서 약국마다 물약선반에 올려 놓고 팔았다. 개미 소용돌이 개미들이 언제나 호기심 많고 용감하며 무모한 것은 아니다. 호전성으로 악명 높은 종(種)들조차 이따금 아주 사소한 문제를 마주하고 궁지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도릴린 아과(亞科) 에 속하는, 열대지방의 군대개미나 행군개미들이 그 좋은 예이다. 이 개미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지나는 길에 있는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한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개미들이 가끔 아주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 때가 있다. 한번은 비 때문에 행군 대열에서 낙오된 병정개미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소용돌이 모양으로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개미들은 그런 이상한 대형을 지은 채 원심력 방향으로 계속 돌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검은 은하가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개미들은 탈진해 죽을 때까지 돌고 또 돌았다. 가장자리 쪽에서 돌던 개미들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선회가 하루 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서 남은 것은 그 불가사의한 선회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한 채 융단처럼 널브러진 개미 떼의 시체뿐이었다. 개미의 현대화 : 아르헨티나 개미 아르헨티나 개미(이리도미르멕스 후밀리스5))는 1920년 프랑스에 상륙했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도로를 꾸미기 위하여 협죽도나무를 들여올 때,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 상자와 함께 실려 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개미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것은 186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이다(아르헨티나 개미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1891년에는 미국 뉴올리언즈에서도 그것들이 발견되었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 산(産) 말들을 수출할 때, 그 말들의 잠자리 짚 속에 묻어 1908년에는 남 아프리카에, 1910년에는 칠레에, 191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1920년에는 프랑스에 오게 된 것이다. 이 종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를 띤다. 하나는 체구가 아주 작다는 점이다. 다른 개미들에 비해 유난히 작기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아프리카의 피그미 족 정도가 될 터였다. 또 하나는 대단히 영리하고 병정개미들이 호전적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주요 특징들이 생태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오게 된다. 프랑스 남부 지방에 터를 잡기가 무섭게 아르헨티나 개미들은, 모든 토박이 종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그것들을 정복해 버렸다. 1960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로셀로나까지 진출했고 1967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지나 로마까지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더니 70년대부터, 이리도미르멕스는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프랑스 중부를 가로지르는 루아르 강을 건넌 것은 1990년대 말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법이 빼어나기로 말하면 시저나 나폴레옹을 찜 쪄 먹을 정도였던 이 침략자들이 루아르 강을 건넜을 때, 좀더 완강하게 저항하는 두 종의 개미들과 맞붙게 되었으니, 그것은 불개미(파리 지역 남쪽과 동쪽에 터를 잡고 있었음)와 왕개미(파리 북쪽과 서쪽에 터잡고 있었음)였다. 그러나 미래의 생존을 위한 전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던 쪽은 아르헨티나 개미들이었다. 그 개미들의 둥지에 물을 뿌리면 불과 10분 만에 먹어, 알, 여왕, 애벌레 등 모든 것이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다. 1986년 유난히 심한 폭우가 쏟아져 뢰카트 항구가 수면 10센티미터 밑으로 잠겨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곤충들은 모두 익사했는데, 유독 아르헨티나 개미들만은 재빨리 나뭇가지로 이동하여 살아남았다. 숲속 불개미와 아르헨티나 개미는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말하자면 그들의 적응 철학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개미 도시에서는 알 낳는 여왕개미가 하나뿐인데, 아르헨티나 개미의 경우는 도시마다 6백 마리의 여왕개미가 있다. 그러므로 그 개미들은 공동체의 생존을 오로지 한 개체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왕개미 하나가 죽더라도 개미 도시는 살아 남는다. 또, 불개미 쪽의 암개미들은 혼인 비행을 통해 짝짓기를 하고 새로운 도시를 세워서 갈려 나가는데, 아르헨티나 개미들은 도시 안의 통로에서 짝짓기를 한다. 그럼으로써 비행중에 발생하는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개미 쪽의 여왕개미는 50여개나 되는 산란관으로 매일 20개의 알을 낳을 수 있다. 그것은 불개미 쪽의 두 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르헨티가 개미의 특별한 점은 뭐니뭐니해도 동종 간의 연대성에 있다. 프랑스에서 잡은 아르헨티나 개미 한 마리를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져가 다른 아르헨티나 개미들의 둥지 안에 넣어 주면, 다른 개미들은 그 낯선 개미를 기꺼이 받아 준다. 그에 반해, 불개미 한 마리를 20미터 떨어진 아르헨티나 개미 둥지에 던져 넣으면 갈기갈기 찢기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아르헨티나 개미들이 보여 주는 거의 전지구적인 동종 간의 연대성은 곤충의 세계에서는 거의 유래가 없다. 5) Iridomyrmex humilis. 종명인 humilis는 <키가 작다>라는 뜻.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다. 내가 개미집을 유린하고 난 뒤에 개미들은 다친 개미들 중에서 어떤 개미는 데려가고 어떤 개미는 죽게 내버려둔다. 크기가 모두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무슨 선별 기준이 있길래, 어떤 개체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개체는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옛날에는 정보를 대중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단순하고 노골적인 검열 방법을 사용했다. 체제에 도전하는 서적들을 간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검열의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정보를 차단하지 않고 정보를 범람시킴으로써 검열을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이 오히려 한층 효과적이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무의미한 정보들 속에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텔레비전 채널이 늘어나고, 프랑스에서만도 한 달에 수천 종의 소설이 쏟아져 나오며, 온갖 종류의 비슷한 음악들이 어느 곳에나 퍼져 나가는 상황에서 혁신적인 움직임이란 나타날 수 없다. 설령 새로운 움직임이 출현한다 해도 대량 생산되는 정보들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 결국 이 거대한 진창 속에서는 대중 만들어 낸 상품들만이 살아 남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상품들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마음놓고 소비한다. 텔레비전에서는 게임과 쇼, 문학에서는 자전적인 사랑 이야기, 음악에서는 <수려한 육체를 지니> 사람들이 단순한 선율에 담아 제시하는 사랑 노래들이 판친다. 과잉은 창조를 익사시키고 비평은 마땅히 이 예술적 범람을 걸러 낼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홍수 앞에 주눅이 들어 버린다. 이 모든 것이 빚어 내는 결과는 자명하다. 기성 체제에 도전하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음에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검은 까마귀, 흰 까마귀 검은 까마귀 세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까마귀가 다 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칼 포퍼6)의 반증 가능성 원리에 따르면 흰 까마귀 한 마리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그 명제가 거짓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언제나 반증의 가능성이 있다. 반증할 수 없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일 따름이다. 만일 누군가 <유령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다. 그 말이 거짓임을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 증거를 찾아낼 수 없다. 반대로 만일 어떤 사람이 <빛은 직선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반박의 여지가 있다. 손전등을 물통에 집어 넣는 것만으로도 빛이 수면에서 굴절된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Karl Popper(1902 ~ 95) :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논리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비판적 합리주의>를 주창하였다. 대담한 추측과 그에 대한 반증을 통하여 과학이 발전한다고 보았으며,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으로 반증 가능성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점성술, 형이상학, 정신 분석학,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 등은 반증이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는『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역사주의의 빈곤』(1957)등이 있다. 게슈탈트7) 1901년에 어떤 과학 실험을 몇 나라에서 동시에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실험에서 행한 일련의 지능검사에서 생쥐는 20점 만점에 6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1965년, 위의 실험을 행한 같은 나라들에서 다시 똑같은 지능 검사를 했는데, 생쥐는 20점 만점에 평균 8점을 얻었다. 이 현상은 지리적 위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유럽의 생쥐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아시아의 생쥐보다 영리하지도 덜 영리하지도 않았다. 모든 대륙에 걸쳐, 1965년의 생쥐들은 1901년의 자기들 선조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전지구에서 생쥐들의 진보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 실험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적인 차원의 <생쥐적> 지능이라는 게 존재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것이 향상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인간 세계에서도 어떤 발명품들, 예를 들어 불, 화약, 직물 등은 중국, 인도, 유럽에서 동시에 발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늘날에도 발명은 일정한 기간을 놓고 보면 지구의 몇몇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다. 혹시 어떤 아이디어들이 대기권 밖 공중에서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그것들을 낚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인류의 지구적 지능을 같은 수준으로 통일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7) Gestalt. <형태, 형상>을 뜻하는 독일어. 형태 심리학의 중추 개념이다. 형태 심리학자들은 심리 현상은 요소의 가산적 총화로는 설명할 수 없고 전체성을 갖는 동시에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성질을 게슈탈트라고 불렀다. 경쟁자들 1 개미들은 흰개미들보다 5천만 년 늦게 지구상에 나타났다. 따라서 그들도 흰개미들처럼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개미들은 독립 생활을 하던 원시적인 벌의 일종인 티피벌8)의 먼 후손으로서, 커다란 위턱도 침도 타고나지 못했으며, 작고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지는 않아서 단결이 힘을 만든다는 흰개미들의 개념이 유용하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개미들 역시 촌락을 만들고 얼치기로나마 도시를 건설했다. 흰개미들은 지구 위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곤충은 자기들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얼마 안 가서 그 경쟁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섬이든 나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흰개미 도시의 군대가 개미 도시의 갓 만들어진 군대에 맞서 싸움을 벌였다. 동물 세계에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수백만 개의 위턱들이 나란히 늘어서서 칼 싸움을 하는데, 그 싸움은 먹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경험 많은 흰개미들이 매번 이겼다. 그러나 개미들도 싸움에 미립이 나기 시작했고 흰개미들의 무기를 모방하는 한편 새로운 무기들을 발명하기 시작했다. 흰개미와 개미 사이의 세계대전이 줄잡아 5천만 년에서 3천만 년 동안 지구를 뜨겁게 달구었다. 개미들이 개미산을 발사하는 무기를 개발해서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도니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늘날에도 그 적대적인 두 종 사이의 전투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흰개미 군대가 승리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8) 개미의 선조는 배벌상과 scolioidea 계통이라는 견해(Wilson,1971)와, bethyloidea 계통이라는 견해(Malyshev, 1968)가 엇갈리고 있다. 배벌상과에서는 배벌과scolioidae, 티피과tiphiidae, 개미벌과mutilldae가 진화되어 나왔으며, vethyloidea에서는 말벌과vespiaed, 구멍벌과sphecidae, 꿀벌과apidae가 진화되어 나왔다고 한다. 경쟁자들 2 그런 다음 3백만 년 전에 인류가 지구에 출현했다. 인류는 선사 시대부터 이미 개미를 관찰하면서 매혹을 느꼈지만, 처음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의 이점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류는 3백 년이 지나도록 씨족과 부족 단위로 살았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개미와 아주 다르다(다음 그림을 참조할 것). 그러나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만한 방어 수단을 타고나지 못했다. 칼날 같은 발톱이나 송곳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었으며, 뜀박질에 비상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인간과 개미는 공격과 방어를 위한 기발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동물들의 이상적인 사냥감이 되었다. 다른 동물들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집단을 이루어 사회 생활을 하고 도시를 건설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최초의 도시 사탈 호유크가 건설된 것은 불과 5천 년 전의 일이었고, 인간이 지구상에 위력적인 동물로 떠오른 것도 그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제야 인간은 비로소 가장 효과적인 생존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고,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경제 옛날에 경제학자들은 성장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장률은 국가, 기업, 가계 등 모든 사회 구조의 건강성을 재는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늘 앞으로만 나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아직 성장의 여력이 남아 있음에도 성장이 멈추는 때가 왔다. 경제적 팽창주의는 미래가 없다. 오로지 힘의 균형이라고 하는 지속적인 상태가 존재할 뿐이다. 건전한 사회, 건전한 국가, 건전한 노동자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타격을 주지도 않고 타격을 입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연과 우주를 정복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과 우주에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의 유일한 슬로건은 조화이다.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의 조화로운 상호 침투, 즉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고 폭력을 없애고 겸허해져야 한다. 인간과 인간 사회가 자연 현상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되는 날, 인류는 우주와의 항상성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인류는 평형 상태를 맞게 될 것이고, 미래에 자신을 던지지 않게 될 것이며, 멀리 있는 목표를 겨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주 소박하게 인류는 현재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공격용 군대 개미는 공격용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사회성 곤충이다. 흰개미와 꿀벌들도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적 진화가 덜되어 왕정주의에 머물러 있고, 그저 도시를 방위하거나 둥지에서 멀리 나간 일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병력을 사용한다. 흰개미 도시와 꿀벌 도시에서 영토 정복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그러나 그런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공룡 중생대에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크기며 생김새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렇게 다종다양한 공룡들 가운데, 6천 5백만 년 전에는 사람과 크기가 비슷하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며, 뇌의 용적도 사람 뇌와 거의 차이가 없는 특이한 종이 하나 있었는데, 스테노니코사우루스가 그것이다. 인간의 선조가 겨우 뾰족뒤쥐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 스테노니코사우루스는 대단히 진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두 발 가진 이 공룡은 생김새는 캥거루와 비슷하고, 살갗은 도마뱀 같았으며, 접시처럼 생긴 눈으로는 머리의 앞과 뒤를 다 볼 수 있었다(우리에게는 그런 기발한 감각 기관이 없다). 시감각이 비상했기 때문에 그들은 해가 져도 사냥을 계속할 수 있었고, 고양이처럼 발톱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었으며, 긴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조약돌을 집어 던질 수 있을 만큼 물체를 잡는 능력이 뛰어났다. 스테노니코사우루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캐나다의 두 학자 데일 러셀과 R. 스갱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스테노니코사우루스는 주변 환경을 분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그 공룡들은 당시 어떤 종보다 앞서갈 수 있었고, 왜소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력한 종이 될 수 있었다. 1967년에 캐나다의 앨버타에서 발견된 스테노니코사우루스의 뼈대를 보면, 이 공룡의 뇌 활동 부위가 다른 공룡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테노니코사우루스의 작은골과 숨골은 우리 인간들 것처럼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 그들은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집단 사냥의 전략까지도 생각해 낼 줄 알았다. 전체적인 생김새로 보면, 스테노니코사우루스는 파릴 19구에서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는 어떤 아주머니와 닮은 구석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초원을 달리는 캥거루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하지만 생김새가 그렇다고 얕잡아 볼 게 아니다. 러셀과 스갱의 말이 의미 심장하다. 공룡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면, 스테노니코사우루스가 사회 생활과 기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작은 사고가 없었더라면, 그 파충류는 틀림없이 자동차를 몰고 고층 빌딩을 짓고 텔레비전을 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파충류보다 뒤떨어진 가엾은 우리 영장류는 동물원과 실험실과 곡마단에 갇히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으리라……. 공생 크르니게라는 개미가 안에 들어가 사는 묘한 조건에서만 성숙한 나무가 될 수 있는 소관목이다. 이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개미의 보살핌과 보호가 필요하다. 또 이 나무는 개미를 유인하려고 스스로를 수년에 걸쳐 진짜 개미집으로 바꾸어 간다. 모든 가지는 속이 비어 있고, 그 비어 있는 속에 오직 개미의 편의를 위한 통로와 방이 갖추어져 있다. 그뿐이 아니다. 통로에는 일개미와 병정개미에게 더없는 기쁨이 되는 흰 진디가 서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코르니게라는 제 내부에 들어와 살아 달라고 개미들에게 집과 은신처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 대신, 개미들은 집주인으로서 스스로의 의무를 다한다. 개미들은 갖가지 애벌레, 외부에서 침입하는 진디, 민달팽이, 거미, 그 밖에 가지의 성장을 방해하는 나무좀들을 퇴치해 준다. 송악을 비롯해 그 나무에 기생하려는 덩굴식물을 아침마다 위턱으로 잘라 내기도 하고, 마른 잎을 자르고, 이끼를 긁어 내며, 소독 작용을 하는 자기의 침을 이용하여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보살핀다. 흰 진디는 코르니게라의 수액을 아주 적게 소비하기 때문에 나무에 별로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도 그 분비꿀로 개미들을 충분히 먹여 살린다. 그럼으로써 개미들과 흰 진디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세계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희귀하긴 하지만 우리는 식물과 동물 사이에 그렇게 성공적인 공생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개미 덕분에 코르니게라는 다른 나무들의 그늘을 빨리 벗어나 그 나무들을 굽어보면서 직접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개미를 공생의 파트너로 삼은 코르니게라는 그야말로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한곳에 붙박여 사는 식물이 어떻게 지극히 동적인 동물의 세계에서 자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광기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 가고 있다. 무엇에 미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 자신도 편집증과 정신 분열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낀다. 게다가 나는 너무나 민감해서 현실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그 광기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나는 더 미쳐 가고, 미치면 미칠수록 내가 설정한 목표를 더 잘 달성하게 된다. 광기는 각자의 머릿속에 숨어 있는 사나운 사자이다. 그 사자를 죽이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의 정체를 알고 그것을 길들여 마차에 매달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순치(馴治)된 사자는 어떤 선생, 어떤 학교, 어떤 마약, 어떤 종교보다도 우리 삶을 훨씬 더 높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광기가 힘의 원천이 된다고 해서 그것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위험하다. 때때로 가속도 붙은 마차가 모든 것을 박살낼 수도 있고, 극도로 흥분한 사자가 자기를 조종하려는 사람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 개미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아 이루어진다. - 제 1 일에서 제 10 일까지 : 대부분의 어린 개미들은 알 낳는 여왕개미의 시중을 든다. 어린 개미들은 여왕개미를 보살피고 핥아 주고 애무한다. 그 대신 여왕개미는 영양이 풍부하고 소독 효과를 지닌 침을 어린 개미들에게 발라 준다. - 제 11 일에서 제 20 일까지 : 일개미들이 고치를 돌볼 수 있게 된다. - 제 21 일에서 제 30 일까지 : 일개미들은 어머니인 여왕개미와 번데기들을 계속 돌보면서, 도시 안의 일과 길 닦는 일에 종사한다. - 제 40 일째 되는 날이 중요하다.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고 인정을 받은 일개미들은 도시 밖으로 나갈 자격을 얻는다. - 제 41 일에서 제 50 일까지 : 일개미들은 경비 보는 일이나 진딧물 분비꿀 짜는 일을 하기도 한다. - 제 51 일에서 생의 마지막 날까지 : 일개미들은 개미 도시의 일원으로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사냥을 나간다든다 미지의 지방을 탐험하는 일 같은 것이다. 주(註) : 제 11 일부터 생식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식 개미들은 대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인 비행을 하는 날까지 자기들 구역에 틀어박혀 지낸다. 구 무한대(無限大)에서와 마찬가지로 무한소에서도 우리는 구(球)와 마주치게 된다. 행성이 구이고 원자, 소립자, 쿼크⑼도 모두 구이다. 이 구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다. 1) 만유 인력 : 우리를 땅에 붙어 있게 하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달이 지구의 둘레를 돌게 하는 힘. 2) 전자기력 : 전자가 원자핵 둘레를 돌게 하는 힘. 3) 강한 상호 작용 : 그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들을 결합하는 힘. 4) 약한 상호 작용 : 그 소립자를 구성하는 쿼크들을 결합하는 힘. 무한소와 무한대는 그 기본적인 힘들로 결합된 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 네 가지 힘이 합쳐져 단 하나의 힘을 형성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죽는 날까지 그 힘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대통일(大統一)의 법칙>을 찾아내고 싶어했다. ⑼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생각되는 가설적인 입자. 물질의 구성 요소인 원자는 원자핵과 그 둘레의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핵은 핵자 즉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 및 그들 사이에 교환되는 중간자 등은 소립자라 하여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궁극의 입자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소립자가 잇달아 발견되자, 겔만과 츠바이크는 이들 입자도 더욱 작은 초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는 복합체라면서 그 초소립자를 쿼크라고 불렀다. 쿼크가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가속기를 사용한 실험 등이 쿼크설을 뒷받침하고 있어 현재 쿼크의 존재는 확실한 것으로 인전되고 있다. 쿼크라는 이름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피네간의 경야』에 나오는 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꿀술 인간과 개미는 꿀술을 만들 줄 안다. 개미들은 진딧물 분비꿀로, 사람들은 벌꿀로 술을 만든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그것을 히드로멜리10)라고 불렀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들과 갈리아의 사제들이 즐기던 음료가 바로 그것이다. 벌꿀술 빚는 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벌꿀 6킬로그램을 끓인 다음, 거품을 걷어 낸다. 끓인 벌꿀에 물 15리터, 새앙 가루 25그램, 사인(砂仁)11) 15그램, 계피 15그램을 넣는다. 전체 양의 4분의 1이 줄어들 때까지 혼합물을 졸인 다음, 불에서 꺼내 식힌다. 혼합물이 미지근해지면, 뜸팡이 세 숟가락을 넣고 12시간 동안 가만히 놓아두면서 부유물을 가라앉힌다. 그런 다음, 액체를 작은 나무 통에 따르면서 찌꺼기를 걸러 낸다. 나무 통을 단단히 봉하고 약 2주 동안 찬 곳에 둔다. 마지막으로 술을 병에 담고 마개를 철사줄로 동여맨 다음, 지하의 술창고로 가지고 내려가 병을 누인 채로 숙성시킨다. 너무 일찍 술병을 헐지 말고 기다렸다가, 두 달 정도가 지난 다음 벗들을 불러모으고 고대의 바커스제(祭) 같은 대 향연을 벌이면 좋을 것이다. 10) <물>을 뜻하는 hydro와 <꿀>을 뜻하는 meli를 합친 말. 11) 새앙과의 식물인 축사밀(縮砂 )의 씨를 약재로 일컫는 말. 꿈 말레이시아의 밀림 깊숙한 곳에 세노이라는 원시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꿈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꿈의 부족>이라고 불렀다. 매일 아침 불 가까이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들은 저마다 간밤에 꾼 꿈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부족의 모든 사회 생활은 그 꿈들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꿈을 꾼 사람은 꿈속에서 해를 입은 사람에게 곧바로 선물을 주어야 했다. 꿈에서 남을 때린 사람은 맞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선물을 주어야 했다. 세노이 부족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육보다도 꿈의 세계와 관련된 교육을 더 중시했다. 한 아이가 호랑이를 만나 도망치는 꿈을 꾸었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아이에게 그날 밤 다시 호랑이 꿈을 꾸고 호랑이와 싸워 그것을 죽이라고 시켰다. 노인들이 아이에게 그 방법을 일러주었다. 아이가 호랑이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부족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나무랐다. 꿈에 큰 가치를 두는 세노이 부족은 성 관계를 갖는 꿈을 꾸면 반드시 오르가슴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는 꿈속의 연인에게 선물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악몽 속에서 적대적인 상대와 마주치면 달아나지 말고 반드시 이겨야 했고, 나중에는 그 사람을 친구로 삼기 위해 그에게 선물을 요구해야 했다.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꿈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비상하는 꿈을 꾸었다는 사람이 있으면 부족 사람들 모두가 축하의 말을 건넸고,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비상하는 꿈을 꾸는 것이 기독교 세계의 세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선물을 듬뿍 주었고, 어떻게 하면 미지의 나라까지 날아가서 신기한 물건들을 가져올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세노이 부족은 서양의 민속 학자들을 매혹시켰다. 그곳에는 폭력이나 정신병이 없었고, 스트레스나 정복의 야망도 없었다. 노동은 생존에 꼭 필요한 만큼만 하면 되었다. 세노이 부족은 1970년대에 그들이 살고 있던 숲이 개간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꿈을 꾸는 동안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먼저 전날의 꿈을 매일 아침 기록한 다음, 제목을 달고 날짜를 써넣는 일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세노이 부족처럼 그 꿈에 대해서 아침 식사시간 같은 때에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라. 그 다음엔, 이른바 꿈의 항공학에 도전할 차례이다. 잠들기 전에 어떤 꿈을 꿀 것인가를 결정하는게 바로 그것이다. 꿈꾸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며 잠이 든 다음 그것을 꿈에서 만나는 것도 시도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떠오르면, <그래, 이젠 자는거야. 이 상황이 실제로 나타나는지 시험해 보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산들을 솟아오르게 하는 꿈, 자기가 선택한 동물들과 만나는 꿈 등 어느 것이라도 좋다. 우리는 꿈속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다. 꿈에서는 누구나 전지전능하다. 꿈의 항공학의 일차 관문은 비행술이다. 팔을 벌려 활공(滑空)하다가 급강하하고 다시 선회하면서 상승해 보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당신이 원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꿈속은 당신의 세계이므로 아무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괴물이 나타나거든 바주카 포(砲)를 터뜨리라. 연애를 할 기회가 생기거든 놓치지 말고 마음껏 활용하라. 꿈에는 성병도 없고 외설도 없으니 말이다. 꿈의 항공학은 점점 높은 수준의 훈련을 요구한다. <비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미립이 난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다섯 달만 훈련하면 자기가 원하는 꿈을 마음대로 꿀 수 있지만, 어른들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 ■■ ㄴ ■■ 나무의 의사 소통 방식 아프리카에는 놀라는 특성을 보여 주는 아카시아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은 영양이나 염소가 자신을 뜯어먹으려 하면 제 수액의 화학적 성분을 독성으로 변화시킨다. 동물은 나무의 맛이 달라졌음을 깨닫고 다른 나무를 뜯어먹으러 간다. 그러면 이 아카시아나무는 즉각 냄새를 발산하여 근처의 다른 아카시아나무들에게 약탈자의 출현을 알린다. 몇 분 만에 그 주위의 아카시아나무들은 모두 동물들이 뜯어먹을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만다. 그러면 초식 동물들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난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경보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아카시아나무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을 대규모로 사육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염소 떼와 아카시아나무 무리가 같은 장소에서 맞부딪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물들에게 먼저 뜯긴 아카시아나무가 다른 아카시아나무들에게 위험을 알리면 나머지 모두가 독성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짐승들은 독이 든 나무를 뜯을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염소 떼가 독으로 죽게 된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냄새 언어 냄새로 의사 소통을 하는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후각 언어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 언어는 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겨우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것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후각 언어는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에게는 냄새를 발하는 더듬이가 없으므로 겨드랑이, 유방, 두피, 생식기 등으로부터 페로몬을 발산한다. 그 메시지는 무의식적으로 감지되지만 그렇다고 효과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5천만 개의 후각 끝신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혀가 겨우 4가지 맛을 구별하는 데 반해서 5천만 개의 세포로 수천 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냄새를 통한 의사 소통 방식은 어느 때 사용하는가? 우선, 성적인 유인을 하는 데 쓰인다. 인간의 암컷은 인위적인 향기를 쓰지 않고도 인간의 수컷을 아주 잘 유인할 수 있다. 인간의 수컷이 암컷 본래의 향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인위적인 향기 때문에 본래의 향기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수컷은 다른 암컷에게 배척을 당할 수도 있다. 암컷의 페로몬이 그에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미묘하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후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저 <사랑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인간의 페로몬은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들이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서 <공포>의 메시지가 담긴 냄새를 맡게 되면, 그는 자연히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페로몬이 가장 뚜렷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하나로 월경 주기가 같아지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함께 사는 여러 여자들이 냄새를 발산하면 그 냄새들이 그들의 기관을 조절해서 월경 주기가 동시에 시작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실제로 확인된 바 있다. 노인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음조차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 아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놀이의 의미 1970년대에 프랑스의 한 수의사는 동물들이 일으키는 문제 하나를 해결했다. 그 문제의 해결 방식은 틀림없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마주(馬主)가 비슷하게 생긴 씨말 네 마리를 사들였다. 씩씩하고 잘생긴 잿빛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전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말들은 나란히 붙여 놓기가 무섭게 서로 싸웠고, 그들을 마차에 매달기도 불가능했다. 함께 모이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해결을 부탁받은 수의사는 궁리 끝에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냈다. 그는 말들에게 마구간의 네 칸을 나란히 배정한 다음, 칸막이 벽의 뚫린 창에 장난감들을 달아 놓았다. 그 장난감들을 가지고 이웃한 말들끼리 함께 놀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수의사가 활용한 장난감은 주둥이 끝으로 돌릴 수 있는 작은 바퀴, 말굽으로 쳐서 한 쪽 칸에서 다른 쪽으로 넘길 수 있는 공, 끈에 매달아 놓은 알록달록한 기하학적 형태의 물건 따위였다. 그는 말들이 서로 친해지고 상대를 바꿔 가며 놀 수 있게 하려고 말들의 자리를 규칙적으로 바꿔 주었다.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 말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말들은 함께 마차를 끄는 일을 직수굿하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놀이를 하듯 일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실험은 전쟁이나 적대 관계가 놀이의 원초적인 형태일 뿐임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놀이들을 고안해 냄으로써 그 원초적인 단계를 쉽게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ㄷ ■■ 다르게 생각하기 사람들은 오랫동안 정보 공학, 특히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개념을 뒤섞어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할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한마디로, 전자 공학에서 새로운 철학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고 해서 최초의 질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 낸 관념이라는 점에서는 결국 마찬가지이다. 그런 식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달걀 어떤 달걀이 날것인지 삶은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그것을 돌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달걀을 빙그르르 돌린 다음 손가락을 대었다 놓는다. 그러면, 삶은 달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이고, 날달걀은 계속 돌게 된다. 껍질 안에 있는 액체가 회전 운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더 나아가기 전에 나는 미지의 독자인 당신을 더 잘 알고 싶다. 이 책은 대화형 백과사전이다. 책장들을 넘기기에 앞서 당신의 이름과 나이, 직업, 국적을 말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이 살아가면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가?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가장 유쾌한 추억과 가장 고통스런 추억은 무엇인가? 당신의 부모, 당신의 친구, 당신의 꿈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듣는가?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즐겨 읽는가? 당신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을 가장 열광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이런 게 무슨 소용인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나는 내 책장에 와닿는 당신의 손길을 느끼고 있다. 그것도 기분좋은 손길을 말이다. 당신 손가락 끝의 지문에서 나는 당신의 가장 내밀한 특성을 읽어 낸다. 지문은 당신 몸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거기에서 나는 당신 조상들의 유전자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 버렸더라면 당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짝짓기를 한 끝에 당신이 태어난 것이다. 지금 당신이 내 앞에 보이는 듯하다. 아니, 웃지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있어 주기 바란다. 내가 당신 안에 있는 것을 더욱 깊이 볼 수 있게 말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이다. 당신에겐 하나의 사회사가 담긴 성과 이름이 있지만 그게 당신의 전부일 수 없다. 당신은 71%의 물과 18%의 탄소, 4%의 질소, 2%의 칼슘, 2%의 인, 1%의 칼륨, 0.5%의 나트륨, 0.4%의 염소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큰 숟가락으로 한 술 분량의 여러 가지 희유(稀有) 원소, 즉 마그네슘, 아연, 망간, 구리, 요오드, 니켈, 브롬, 불소, 규소를 함유하고 있다. 또 소량의 코발트, 알루미늄, 몰리브덴, 바나듐, 납, 주석, 티탄, 붕소도 지니고 있다. 이상이 당신의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다. 이 모든 물질들은 별들이 연소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당신 몸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신의 물은 흔하디흔한 바닷물과 다를 바 없고, 당신의 인은 성냥개비의 인과 한가지이며, 당신의 염소는 수영장 물을 소독하는 데 쓰이는 염소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단순히 그런 물질들을 합쳐 놓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하나의 화학적 구조물이면서 훌륭한 건축물이다. 구성 물질들이 적절히 배합되고 안정감 있게 평형을 이루며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다. 그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을 이루는 분자들은 다시 원자, 미립자, 쿼크,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모든 것들은 전자기적인 힘과 인력과 전자의 힘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그 절묘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각설하고, 당신이 이 책을 찾아냈다는 것은 당신이 꾀바른 사람임을 말해 주며, 당신이 벌써 나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당신이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혁명이 일어났는가? 개혁이 일어났는가? 물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책을 더 잘 읽기 위해 편안한 자세를 취하기 바란다. 등을 곧게 펴고 호흡을 잔잔하게 고른 다음, 입의 긴장을 풀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의 모든 것 중에서 쓸모없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당신도 물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하루살이 같은 당신의 삶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 당신의 삶은 막다른 골목으로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호흡을 한 다음, 근육의 긴장을 풀고 오로지 우주만 생각하라. 그 속에서 당신은 그저 하나의 티끌일 뿐이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간다고 상상해 보라. <응애> 하고 당신이 태어난다. 흔해빠진 하나의 버찌씨처럼 어머니 몸에서 빠져 나온 것이다. 쩝쩝거리면서 당신은 수천 끼의 갖가지 음식을 먹어 치운다. 수천 톤의 식물과 동물이 이내 똥으로 변한다. <억> 하고 당신이 죽는다. 당신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랴. 물론 당신은 그런 삶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행동하라! 무엇인가를 행하라!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의미 있는 뭔가로 만들라. 당신은 쓸모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발견하라. 당신의 작은 임무는 무엇인가?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대뇌 신피질의 시대 언어가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뇌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알 수 있다. 태초에 인간이 사용한 어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어휘가 적은 대신 어조 따위를 통해 낱말의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의사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준 것은 정동뇌(情動腦), 즉 대뇌 변연계(邊緣系)였다. 오늘날 인간이 사용하는 어휘는 방대하다.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낱말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뉘앙스를 분명히 하기 위해 더 이상 어조를 활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어휘는 우리의 대뇌 신피질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논리 체계를 가진 언어, 추론(推論)의 언어, 사고 작용과 자동적으로 결합되는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는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우리는 파충류의 뇌에서 대뇌 변연계로, 다시 변연계에서 신피질로 진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는 신피질의 지력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을 것이다. 육체는 잊혀지고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된다. 정신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 질환, 즉 심신증(心身症)이 그토록 많아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갈수록 사람들은 정신 분석가와 정신과 인가들을 점점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뇌 신피질을 다루는 의사, 즉 미래의 의사들이다. 대위법 1 : 카논 서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작곡 기법의 하나인 카논은 그 구조가 대단히 흥미롭다. 카논의 예로는 프랑스 민요「자크 수사(修士)」나「아침 바람, 상쾌한 바람」,「그대 종지기에게 저주가 있으리」, 파헬벨12)의「카논」등을 들 수 있다. 카논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작곡가는 그 주제의 모든 측면을 탐색하면서 그 주제를 그것 자체와 대면시킨다. 우선 제 1 성부가 주제를 제시한다. 그런 다음, 정해진 간격을 두고 제 2 성부가 주제를 되풀이한다. 다시 제 3 성부가 선행 성부를 모방한다. 전체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음 하나하나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1) 기본 선율을 만들어 낼 것. 2) 기본 선율에 반주를 덧붙일 것. 3) 기본 선율과 반주에 또 다른 반주를 덧붙일 것. 말하자면 각 요소가 세 가지 수준을 동시에 갖게 하는 구성이다. 각 요소는 위치에 따라서 주연이 되기도 하고 주연과 단역이 되기도 한다. 음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고음부와 저음부에서 음높이를 변경하는 것만으로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고, 후속 성부를 반(半) 옥타브 간격으로 시작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즉, 선행 성부가 <도>로 되어 있으면 후속 성부는 <솔>, 선행 성부가 <레>로 되어 있으면 후속 성부는 <라>가 되게 하는 것이다. 노래의 빠르기에 변화를 주는 것 역시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더 빠르게 하는 경우에는, 선행 성부가 선율을 연주하는 동안에 후속 성부는 빠른 속도로 선율을 두 번 되풀이한다. 더 느리게 하는 경우에는, 선행 성부가 선율을 연주하는 동안에 후속 성부는 두 배 더 느리게 선율을 연주한다. 제 3 성부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주제를 더욱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확장 또는 집중의 효과를 얻게 된다. 또, 선행 성부의 선율을 상하로 자리바꿈하여 모방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즉, 주제의 모든 음에 대해 선행 성부가 올라가면 후속 성부는 내려가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복잡한 카논 기법은 이른바 <가재 카논>이다. 음들이 가재처럼 뒷걸음질을 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카논 중에는 말 그대로 수수께끼라 할 만한 것들도 있다. 그런 카논에서는 주제를 변화시키는 법칙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바흐는 그런 종류의 <놀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12) Johann Pachelbel(1653 ~ 1706).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 건반 악기를 위한 작품들과 성악곡 및 실내악곡들을 남겼다. 오르간을 위한 그의 작품들은 당대의 다양한 미학을 종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들은 작곡 기법이 유연하고 화음이 단순하며 선율이 아름답다는 점이 특징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대위법 2 : 푸가 푸가는 카논에 비해 한층 발전된 기법이다. 카논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것이 스스로와 대면할 때 어떤 양상이 빚어지는지를 알기 위해 갖가지 방식으로 <고문>을 하지만, 푸가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주제가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푸가는 반복보다는 진전의 양상을 띤다. 제 1 성부가 시작되면서 기본 주제가 나타난다. 그러면 그 주제를 보완하기 위해 제 2 성부가 4도 높게 또는 3도 낮게 그 뒤를 따른다. 제 1 성부는 자기의 제 1 주제를 끝내고 대위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때 제 3 성부가 나타날 수 있다. 제 3 성부는 제 1 성부나 제 2 성부의 주제, 또는 제 1 성부의 대위 주제를 연주한다. 성부와 주제의 조합이 카논의 경우보다 더욱 복잡하다. 마침내 각 성부가 자기 구역을 다 탐색하고 다른 구역과의 교류도 끝내고 나면, 모두가 출발점에 모여 제 1 주제를 다시 불러낸다. 푸가 중에서 구성이 아름답기로는 바흐의 작품「음악의 헌정」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푸가가 그렇듯이, 이 작품도 다 단조로 시작된다. 그런데 마치 요술쟁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술수를 부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틈에 조가 바뀌어 라 단조로 끝을 맺는다. 듣는 사람의 귀가 조바뀜의 순간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처럼 조성(調聲)을 <도약>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는「음악의 헌정」을 음계의 모든 음에서 무한히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왕의 영광도 이와 마찬가지로 조바꿈을 통해서 끝없이 상승한다>고 바흐는 설명했다. 그의 이름 <바흐>는 엉뚱하게도 독일어로 <개울>을 뜻한다. 푸가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은 바흐의「푸가의 기법」이다. 바흐는 죽음을 맞기 전에 그 작품을 통해서 단순한 것에서 출발하여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점진 기법을, 일반 대중에게 설명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는 바람에(그는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한창 열정적으로 하던 작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결국 이 푸가는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바흐가 그 작품에 자기 이름의 네 글자 B, A, C, H를 새겨 넣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바흐는 그 푸가의 마지막 주제 가운데 하나를 자기 이름을 가지고 만들었다. 독일어로 B는 <시>, A는 <라>, C는 <도>에 해당한다. H는 B와 마찬가지로 <시>를 뜻하지만 B가 <시> 플랫임에 반해 H는 그냥 <시>를 나타낸다. 결국 BACH를 음악으로 나타내면, <시♭>, <라>, <도>, <시>가 된다. 바흐는 마침내 자기 음악의 내부로 들어간 셈이다. 그는 제왕들처럼 무한을 향해 상승하기 위해서 자기 음악에 의지했다. 도시를 버린 사람들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인물들 가운데는 도시라는 개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틸라13)와 폴 포트14)도 그런 부류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폭군은, 좁은 면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시 생활은 부패와 악의와 퇴폐만 낳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쟁터와 들판을 떠도는 생활 속에서만이 인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3) Attila(406? ~ 453) : 훈족의 왕 헝가리 평원을 거점으로 삼아 카스피 해에서 라인 강에 이르는 지역을 정복하였고, 비잔틴 제국을 종종 침략하여 공납을 강요했다. 451년 북갈리아에 침입하였으나 서고트 · 프랑크 · 부르군트 등의 연합군에 패하면서 이듬해 이탈리아 각지를 유린하다가 교황 레오 1세의 설득으로 철군했다. 453년 왕비에게 살해된 뒤, 그의 제국은 급속히 와해되었다. 14) Pol Pot(1925 ~) : 캄보디아의 정치가.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캄보디아 공산당을 이끌며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1970년에는 민족해방군 최고사령부 부의장이 되어 캄보디아 내전을 지휘하였고, 1975년에 론놀 정권을 타도하는 데 성공했다. 1976년에는 캄보디아 총리가 되어 강제 노역, 고문, 대량 학살 등으로 약 2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공포 정치를 행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되었다. 도시의 구역 배치 대도시에서 부자들이 사는 구역과 빈민들이 거주하는 구역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아주 분명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의 경우는 부자 구역이 서쪽에, 빈민 구역이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곧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것과 관계가 있다. 결국 부자 구역의 악취와 오염 물질이 날아와 빈민 구역의 대기를 더럽히곤 하는 것이다(그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와는 달리,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의 대도시에는 현재 부자 구역이 변두리에, 빈민 구역이 도심에 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땅이 광대한 그 나라에서는 새로운 구역은 으레 외곽에 건설한다. 그 결과 도심은 낡은 구역이 되어 버린다. 그런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경찰은 구역을 그렇게 배치하는 것에 또 다른 이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점이란, 빈민들은 도심에 있기 때문에 포위당하기가 쉽고, 변두리에 있는 부자들은 도망치기가 쉽다는 것이다. 돌고래 돌고래는 수수께끼 같은 동물이다. 포유류 가운데서도 돌고래는 몸집에 비해 뇌의 부피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침팬지의 뇌 무게가 보통 3백 75그램이고, 사람의 뇌 무게가 1천 4백 50그램인데 비해, 돌고래의 것은 1천 7백 그램이다. 그런 정도의 뇌를 가지고 있으니, 돌고래는 기호를 이해하고 언어를 만들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럼에도 돌고래는 그 지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작 해야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벌이는 쇼에 출연하여 사람들의 놀이를 흉내내거나 서커스 묘기를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지능은 정말로 스스로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주는 것일까? 돌고래는 포유강(綱) 고래목(目)에 속한다. 한마디로 바다에 사는 포유류 동물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공기를 들이마시고, 암컷들은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알을 낳지 않고 임신과 출산을 하며, 돌고래의 조상은 옛날에 육지에 살았다. 그들에겐 다리가 있었고, 땅 위를 걷고 뛰어다녔다. 그들은 아마도 악어나 바다표범과 비슷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땅에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까닭에서인지, 그들은 물 속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육지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라도 한 것 같았다. 우리처럼 물에서 나와 육지에 잘 적응해 가더니, 그래도 역시 물이 더 살기 좋다고 생각하고 훌쩍 떠나 버린 것이다. 1천 7백 그램에 달하는 커다란 뇌를 가진 그들이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육지에 남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경쟁자나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런데 돌고래는 왜 바다를 택했을까? 바다는 확실히 육지보다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육지에서 우리는 땅바닥에 붙어 살지만, 바다에서는 3차원 속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또 바다에서는 옷도 필요 없고 집과 난방 설비도 필요치 않다. 바다에는 먹이도 풍부하다. 돌고래가 정어리 떼에 다가가는 것은 우리가 슈퍼마켓에 가는 것과 같다. 단지 돌고래가 공짜로 먹이를 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돌고래의 뼈대를 조사해 보면, 지느러미 안에 길쭉한 손가락 뼈가 아직 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육지 생활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 부분의 변화가 돌고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손이 지느러미로 바뀜으로써 돌고래는 물속에서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그 대신 더 이상 도구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기관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어 내는 데 그토록 열을 올렸던 것은,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 속에서 행복을 되찾은 돌고래는 자동차나 텔레비전, 총, 컴퓨터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어의 필요성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돌고래들은 자기들 고유의 언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듯하다. 그들의 언어는 소리를 통해 교신하는 음향 언어이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는 음역이 대단히 넓다. 사람의 음성 언어는 주파수 1백 헤르츠에서 5천 헤르츠 사이에서 소통되지만, 돌고래의 교신은 3천 헤르츠에서 12만 헤르츠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돌고래의 음향 언어는 아주 풍부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나자렛 베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인 존 릴리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돌고래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와 교신하기를 갈망해 온 듯하다고 한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해변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 선박들에 다가와서는, 마치 우리에게 알려 줄 게 있다는 듯이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며, 어떤 몸짓을 하기도 하고,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돌고래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이따금 역정을 내기도 하는 것 같다>라고 존 릴리 박사는 말한다.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그런 행동은 동물 세계 전체를 통틀어 오직 돌고래에게서만 찾아 볼 수 있다. 동향(東向) 인류의 위대한 모험은 대부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루어졌다. 예부터 사람들은 불덩어리가 잠기는 곳이 어디인가 궁금해 하면서 태양의 운행을 좋았다. 율리시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틸라 등 모두가 서쪽에 그 답이 있다고 믿었다. 서쪽으로 떠나는 것, 그것은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태양이 <어디 가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르코 폴로, 나폴레옹, 빌보 르 오비(톨킨의『반지의 주인』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등은 동쪽으로 갔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동방이야말로 발견할 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험가들의 상징 체계에는 아직 두 개의 방향이 남아 있다. 그 방향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북쪽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힘을 시험하기 위한 장애물을 찾아가는 것이다. 남쪽으로 가는 것은 휴식과 평온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두려움 개미는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개미에겐 죽음이나 자기의 나약함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자기 도시와 공동체 전체의 생존 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가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일은 없다. 개미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개미집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각각의 개미는 인체의 세포와 똑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손톱을 깎을 때 우리의 손톱 끝이 그것을 두려워할까? 면도를 할 때 우리의 턱수염이 면도기가 접근해 오는 것에 전율할까? 뜨거운 욕탕 물의 온도를 가늠하려고 발을 집어 넣을 대 우리의 엄지발가락이 두려움에 떨까? 그것들은 자율적인 단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왼손이 오른손을 꼬집어도 오른손은 왼손에 대해 아무런 원한을 품지 않는다. 오른손에 왼손보다 더 많은 반지가 끼워져 있다고 해서 시샘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자기를 잊고 유기체와도 같은 공동체 전체만을 생각한다면 근심이 사라진다. 어쩌면 그것이 개미 세계의 모듬살이가 성공한 비결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의 원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1990년 프랑스 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른 것임). 1) 뱀 2) 현기증 3) 거미 4) 쥐 5) 말벌 6) 지하 주차장 7) 불 8) 피 9) 어둠 10) 군중 DNA와 RNA 생명은 복제와 전달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할 줄 안다. 모든 세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처음부터 이 두가지 성향이 발현된다. DNA는 유전 정보를 복제하고, RNA는 그 정보를 전달한다. DNA, 즉 디옥시리보 핵산은 세포의 신분증이자 기억 장치이며 설계도이다. DNA에는 디옥시리보스라는 당과 인산이 번갈아 가며 연결되어 있고, 각각의 당에는 한 개의 염기가 결합되어 있다. 염기에는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닌 등 네 종류가 있으며, 각각 첫글자를 따서 A, T, G, C라는 기호로 나타낸다. 이 염기들의 배열 방식은 마치 네 종류의 카드로 하는 게임과 같다. 하트, 클로버,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등 네 무늬의 카드를 섞어서 늘어놓듯이 염기들은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한 판의 게임이 된다. 하지만 그 게임은 카드를 양손에 나누어 쥐고 해야 한다. A, T, G, C라는 카드들이 모여 하나의 사슬을 이루면 정해진 법칙에 따라 또 한 가닥의 평행한 사슬이 그것에 대응한다. 즉, 한 쪽 사슬의 A는 다른 사슬의 T하고만 결합하고, G는 C하고만 결합한다. 따라서 GCCCAATGG로 이루어진 사슬은 CGGGTTACC라는 사슬과 결합한다. 유전자 하나하나는 수천 개의 A, T, G, C로 이루어진 화학적 단위이다. 그것의 배열 방식이 유전자의 특징을 결정하는 정보이자 암호이다. 우리 유전자에 설계된 ATGC의 조합 방식에 따라서 우리의 눈은 검정색이 되기도 하고 파란색 또는 갈색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선천적인 특성들은 모두 ATGC가 결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DNA에는 ATGC가 대단히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DNA사슬을 실 모양으로 펼친다면, 그 길이가 지구에서 달까지를 8천 번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세포는 분열하면서 복잡해진다. 그런데 만일 모세포(母細胞)가 저장하고 있는 정보를 딸세포에 전달할 수 없다면, 그 정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전달> 능력이다. DNA의 유전 정보는 전령을 통해 전달되어 단백질로 발현된다. 그 심부름꾼은 DNA를 닮았지만 화학 구조에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전령 RNA 또는 mRNA라고 부른다. 그것은 디옥시리보 핵산과 거의 비슷한 리보 핵산의 한 가지이다. 리보 핵산은 당의 성분이 리보이고, 염기 중의 하나가 DNA와 다르다. 티민 대신에 우라실이 들어간다. 결국 T라는 글자만 U로 바꾸면 된다. 예컨대 GCCCAATGG라는 형태의 DNA는 GCCCAAUGG라는 RNA와 결합하게 된다. DNA의 유전 정보를 단백질로 발현시키는 능력은 누에가 실을 토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DNA 분자 한 개로 세포는 필요한 만큼의 RNA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DNA의 유전자 하나는 1만 개의 RNA를 복제할 수 있으며, 그 각각의 RNA들은 정보를 세포들에 전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정보가 전달되면 누에가 실을 토하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복제와 전달이라는 생명 현상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임이 분명하다. 그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야, 따뜻한 명주 같은 생명이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세포 한 개의 유전자들의 나흘 만에 무려 10억 개의 단백질 분자를 만들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생명은 복제와 전달이라는 두 가지 일을 할 줄 안다. ------------------------------------------------------------------------------------------------------------------------------------ ■■ ㄹ ■■ 레이저 레이저는 거대한 과 에너지를 아주 좁은 표면에 집중시킬 수 있는 장치이다. 유연한 물질을 자른다든다, 탄두가 이탈되기 전에 적국의 미사일을 격추시킨다든다(아직은 실용화 단계가 아닐지라도), 나이트클럽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때 우리는 레이저를 활용할 수 있다. 레이저를 조립하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틀림없이 루비 막대를 구하는 일일 것이다.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가격도 너무 비싸다. 그럴 때는 값이 좀 더 헐한 인조 루비를 이용해도 좋다. ------------------------------------------------------------------------------------------------------------------------------------ ■■ ㅁ ■■ 마방진 3행 3열의 모눈에 1부터 9까지의 수를 넣어,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줄이든 수의 합이 15가 되게 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프랑스의 유명한 카발라 학자이자 리슐리외의 사서관이었던 가파렐은 마방진 연구에 대단히 열중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그 수학 유희에 관한 연구를 나무랄 데 없는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가장 먼저 알려진 마방진(魔方陣)은 수의 합이 15가 되는 형태이다. 가로 줄과 세로 줄 각각 세 개씩 아홉 개의 네모칸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안에, 1에서 9까지의 수를 넣되, 가로 줄이든 세로 줄이든 대각선이든 수의 합이 똑같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1에서 9까지의 수를 죽 늘어놓고 보면, 중축 5의 둘레를 모든 수들이 선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5를 중축으로 간주하면 좌우의 수들 사이에 대칭 관계가 이루어진다. 1은 9에 대응하며 두 수의 합은 10이다. 2는 8과 연결되며 두 수의 합도 역시 10이다. 마찬가지로 3은 7과, 4는 6과 연결된다. 5를 중축으로 삼고 다른 수들을 선회시키면 수의 쌍이 만들어지고 그 쌍의 합은 모두 10이다. 거기에 중축의 5를 더하면 언제나 15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나온 셈이다. 마방진의 한가운데에 5를 넣고 대칭 관계에 있는 나머지 수들을 그 주위에 배열하면 된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할 것은, 1과 9를 모퉁이에 넣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1과 9가 모퉁이에 들어가면, 1은 너무 약하게, 9는 너무 강하게 대각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답은 다음과 같다. ┌─┬─┬─┐ │4 │ 9 │2 │ ├─┼─┼─┤ │3 │ 5 │7 │ ├─┼─┼─┤ │8 │ 1 │6 │ └─┴─┴─┘ 이것을 우리는 3방진, 또는 토성의 도장, 카스피엘 천사의 도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형태는 식물에 비유하면 방진의 싹일 뿐이다. 우리는 이 싹을 키워서 점점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해답을 찾기가 가장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9방진을 여기에 소개한다. 달의 도장, 가브리엘 천사의 도장이라고도 불리는 마방진이다. 이 경우는 가로줄이나 세로줄이나 맞모금에 있는 수의 합이 언제나 369가 된다. 이 9방진의 수가 배열된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 표면에 가상적으로 그려 놓은 경선 같은 이상한 줄들이 눈에 들어온다. 좌상 귀와 우하 귀를 있는 맞모금 아래에 한 자리 수로만 이루어진 빗금이 있다. 그런가 하면, 1로 끝나는 수들이 하나의 세로줄을 이루어 지구의 적도처럼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줄로 갈수록 끝자리가 똑같은 수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 │ 37 │ 78 │ 29 │ 70 │ 21 │ 62 │ 13 │ 54 │ 5 │ ├──┼──┼──┼──┼──┼──┼──┼──┼──┤ │ 6 │ 38 │ 79 │ 30 │ 71 │ 22 │ 63 │ 14 │ 46 │ ├──┼──┼──┼──┼──┼──┼──┼──┼──┤ │ 47 │ 7 │ 39 │ 80 │ 31 │ 72 │ 23 │ 55 │ 15 │ ├──┼──┼──┼──┼──┼──┼──┼──┼──┤ │ 16 │ 48 │ 8 │ 40 │ 81 │ 32 │ 64 │ 24 │ 56 │ ├──┼──┼──┼──┼──┼──┼──┼──┼──┤ │ 57 │ 17 │ 49 │ 9 │ 41 │ 73 │ 33 │ 65 │ 25 │ ├──┼──┼──┼──┼──┼──┼──┼──┼──┤ │ 26 │ 58 │ 18 │ 50 │ 1 │ 42 │ 74 │ 34 │ 66 │ ├──┼──┼──┼──┼──┼──┼──┼──┼──┤ │ 67 │ 27 │ 59 │ 10 │ 51 │ 2 │ 43 │ 75 │ 35 │ ├──┼──┼──┼──┼──┼──┼──┼──┼──┤ │ 36 │ 68 │ 19 │ 60 │ 11 │ 52 │ 3 │ 44 │ 76 │ ├──┼──┼──┼──┼──┼──┼──┼──┼──┤ │ 77 │ 28 │ 69 │ 20 │ 61 │ 12 │ 53 │ 4 │ 45 │ └──┴──┴──┴──┴──┴──┴──┴──┴──┘ 마방진에 관한 연구는 중국15), 아랍, 장미 십자회 등의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랍 인들은 마방진을 <우피크>라는 부적으로 이용했고, 장미 십자회에서는『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숫자 666의 비밀을 6방진 ─ 6열 6행으로 이루어지며 수의 합이 언제나 111이 된다 ─ 속에 감추려고 했다. 15) 낙서(洛書)는 하 나라 우 임금 때 낙수에서 나온 신구(神龜)의 등에 있었다는 45점의 글씨인데, 거기에 벌써 3방진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마방진이 역(易)이나 역(曆)과 깊은 관련은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마방진 연구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의 기본 산서로 사용된『양휘산법(楊輝算法)』에는 여러 개의 방진이 소개되어 있고, 최석정은『구수략(九數略)』이라는 저서에서 아주 특이한 마방진을 제시한 바 있다. 마약 중독자 사람의 고유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개미 사회에 마약 중독자가 있다는 것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그 마약 중독자란 로메슈제라는 딱정벌레의 분비꿀에 중독된 개미를 말한다. 로메슈제라는 이름은 로마 황제 네로의 시녀였던 악명 높은 독살녀 메슈사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 마약 공급자들은 거리낌없이 개미 도시 안으로 들어온다. 어떤 개미도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로메슈제의 냄새를 맡은 개미는 이내 달려와 그 독물을 빨아먹는다. 그 독물 공급자의 꽁무니는 개미의 입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개미들은 그곳을 빨면서 자기 동료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십상이다. 로메슈제의 달콤한 독물을 맛보고 나면, 개미는 그것을 계속 빨아먹고 싶다는 일념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마약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장 소중한 시민들인 알들과 여왕을 로메슈제가 잡아먹어도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잡아먹히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다. 실제로 로메슈제가 개미의 배를 삼키고 있는 동안에도 개미 머리는 계속 로메슈제의 분비꿀을 핥고 있는 장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알과 여왕개미와 일개미로 포식한 로메슈제가 자기 노예들을 내팽개치고 도시를 떠나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노예들은 마약 공급자를 찾아 바깥 세상으로 떠난다. 개미들은 로메슈제를 찾아내지 못하면, 금단(禁斷)의 고통을 억누르며 허우허우 기어올라간 풀잎에 오랜 시간 매달려 있다가 속절없이 죽음을 맞는다. 마요네즈 달걀 노른자를 나무 숟가락으로 휘저어 크림처럼 만든다. 기름 225그램을 조금씩 따르면서 아주 천천히 섞는다. 노른자와 기름을 섞은 이 물질은, 섞이지 않는 두 액체를 잘 섞이게 하는 유화제(乳化劑) 구실을 한다. 기름을 더 넣고 싶을 때는 이 유화제가 완전하게 만들어진 다음에 해야 한다. 유화제가 다 만들어지고 나면 식초 20밀리리터와 소금과 향신료를 넣는다. 마요네즈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온도를 잘 맞추는 일이다. 달걀과 기름이 똑같은 온도에서 섞이도록 하는 것이 비결이다. 섭씨 15도가 이상적인 온도이다. 마요네즈를 망쳤을 때 그것을 바로잡고 싶으면, 샐러드 그릇에 찻숟가락 한 술 분량의 겨자를 넣고, 잘못 혼합된 노른자와 기름을 조금씩 휘젓는다. 서두르지 말고 아주 천천히 해야 한다. 처음보다 더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또 실패하기가 십상이다. 마요네즈와 회화 마요네즈 제조법은 회화(繪 )에도 응용된다. 즉, 잘 섞이지 않는 두 물질을 거대 분자의 수준으로 혼합하는 기술이 유화(油畵)에서 완전한 불투명성을 얻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유화제를 만들기 위해, 물 · 기름 · 달걀 노른자의 혼합물뿐만 아니라 물 · 기름 · 달걀 흰자의 혼합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것을 사용하는 목적은 그림물감의 투명효과를 없애는 데 있다. 기름 속에 갇힌 작은 수포들은 굴절률에 변화를 줌으로써 색깔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유화제를 사용하는 유화 기법은 플랑드르의 화가 반 에이크 형제가 15세기에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벨라스케스도 그 비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18세기의 위대한 화가들은 그 비법으로 자기들이 얻고 있는 특권에 집착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 생존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그 비법의 전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그 기술은 18세기 말에 완전히 잊혀졌다. 그 비법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유화제의 성분과 배합 비율을 다시 알아내기는 불가능했다. 근래에 들어서야 그 유화제의 비법이 극도로 복잡한 화학적 분석을 통해 재구성될 수 있었다. 말리에 사는 도공 부족 말리에 사는 도공 부족은 태초에 하늘과 땅이 혼일(混一)할 때, 땅의 생식기는 개미 둥지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혼일의 결과로 인간이 만들어질 때, 그 음문은 입이 되었고 거기에서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인간을 만드는 데 물질적인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은 개미들의 실 잣는 기술이다. 개미들은 그 기술을 사람들에게 전수하였다. 오늘날에도 도공 부족의 잉태를 기원하는 의식은 여전히 개미와 관련이 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은 개미 둥지 위에 앉아서 암마 신에게 잉태를 하게 해달라고 빈다. 개미들이 인간을 위해 해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개미들은 인간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샘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기도 했다. 도공 부족 사람들은 물을 찾으려면 개미 둥지 아래를 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기 모기는 인간과 가장 흔하게 대결하는 곤충이다. 우리는 저마다 한번쯤은 잠옷 바람으로 침대 위에 올라서서 한 손에 끌신을 움켜쥐고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은 천장을 노려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은 모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살갗을 가렵게 하는 물질은 모기의 주둥이에서 나온 소독용 침일 뿐이다. 그 침이 없으면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마다 오염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기는 살갗을 찌를 때 언제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지점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찌른다. 나는 어렸을 때, 모기 한두 마리를 상대로 곧잘 싸움을 벌이고 했다. 그 싸움을 통해서 나는 덩치 큰 쪽이 반드시 싸움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기들의 전략은 믿기지 않을 만큼 진보를 거듭했다. 처음엔 전등을 켜기만 해도 모기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모기들은 하얀 천장에 검은 반점처럼 달라붙어 있었어, 나는 빗자루나 끌신을 들고 침대위에 올라서거나 펄쩍 뛰어올라서 그것들을 짓눌러 버릴 수 있었다. 그 뒤로 모기들은 가구들이 놓인 구석진 곳이나 커튼 속, 전등갓 위같이 어두운 곳에 숨는 법을 배웠다. 모기가 숨은 곳을 알아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모기들의 진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들은 점점 더 빨라졌고, 위장 전술을 더욱 교묘하게 다듬었으며, 타격에 대한 저항력까지 갈수록 향상되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변이가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내 적을 확실히 죽이려면 끌신으로 후려칠 때 예전보다 두 배나 더 힘을 주어야 했다. 모기를 향해 내 무기를 정확하게 발사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 무기는 모기를 죽이지 못하고 되떨어졌다. 그 타격은 사람으로 치면 가벼운 따귀 한 대를 맞은 것에 불과한 듯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나는 완벽한 신무기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진공 청소기였다. 모기가 아무리 기를 쓰고 도망치려 해도 그 기계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어김없이 그것을 빨아들였다. 그 무기에 대응하여 모기들은 다른 전술을 개발했다. 나를 무척이나 성가시게 만든 전술이었다. 나는 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내 적들의 신세대가 바로 내 베개 밑에 숨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모기들은 에드가 앨런 포의『도둑맞은 편지』16)에 나오는 원리, 즉 가장 좋은 은닉처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그것들이 역으로 이용한 셈이었다. 16) 에드가 앨런 포가 1845년에 발표한 단편 추리 소설. 파리 경찰이 온갖 곳을 다 뒤져도 못 찾아낸 편지를 명탐정 뒤팽은 눈에 금방 띄는 편지꽂이에서 찾아낸다. 모듬살이의 기원 동물의 모듬살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것을 이해하자면, 지구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자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초의 거주자들 중에 곤충이 있었다. 곤충들은 지구에서 생존하기에 그다지 적합치 않은 동물로 보였다. 그것들은 작고 연약해서 모든 포식자(捕食者)들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이가 되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어떤 곤충들은 메뚜기처럼 번식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알을 아주 많이 낳아서 그것들 중에 꼭 살아 남는 자가 생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곤충들은 말벌이나 꿀벌처럼 독을 선택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독침을 갖추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무서운 존재로 만들어 갔다. 바퀴벌레처럼 포식자들이 먹기에 부적합하게 되어가는 쪽을 선택한 곤충도 있었다. 특수한 분비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그들의 살에서 고약한 맛이 나게 하기 때문에 어떤 포식자도 그 고기 맛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사마귀나 밤나방처럼 위장 전술을 채택한 곤충도 있었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풀이나 나무껍질과 비슷해 보이게 만듦으로써 살시 험난한 자연 속에서 발각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초기의 정글에서 살아 남는 <비결>을 찾아내지 못한 채 소멸할 운명에 처한 곤충들도 허다했다. 흰개미가 바로 그 <불리한 처지에 놓인 곤충>의 전형적인 예였다. 지표에 출현한 지 1억 5천만 년 가까이 된 곤충으로서 나무를 쏠아 먹고 사는 이 종은 불운하게도 종의 영속성을 유지할 만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포식자는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에 저항하기 위한 천연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흰개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흰개미가 죽어 갔고, 살아 남은 자들은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리다가 마침내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제부터는 혼자 싸우지 말고 똘똘 뭉쳐 집단을 만들자. 혼자 도망가려고 애쓸 게 아니라 스무 마리가 모여 함께 맞서면 우리의 천적들이 우리를 공격하기가 한결 어려워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이서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셋이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흰개미들은 <단결이 힘을 만든다>는 원리를 터득했고, 모듬살이의 정교한 생존 방식을 개척했다. 그것은 생존 방식의 왕도였다. 그때부터 흰개미들은 작은 세포들이 모인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 단위로 모듬살이를 했다. 알을 낳는 어미 흰개미 주위에 모두가 모여 살았다. 그러다가 가족이 촌락이 되고 촌락이 커져 도시가 되었다. 얼마 안 가서 모래와 흙반죽으로 이루어진 흰개미들의 도시가 지구 곳곳에 솟아오르게 되었다. 흰개미들은 모듬살이의 기틀을 마련하여 우리 행성을 가장 먼저 지배한 영리한 곤충이었다. 몽생미셸 몽생미셸17) 섬은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 장소이다. 하늘과 땅과 물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곳은 기독교도의 순례지일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들과 탕플 기사 수도회18)의 기사들, 더 거슬러 올라가 갈리아의 드루이드 사제들이 의식을 집전하던 곳이다. 그 고장 사람들은 몽생미셸 섬을 숭배했다. 옛날에는 그 섬을 죽은이들의 섬이라는 뜻으로 <툼바>라고 불렀다(툼바는 갈리아 말 툼에서 나온 것으로 높은 곳, 또는 죽음의 장소를 뜻했다). 로마 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갈리아 지방에 살았던 켈트 인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2일에 맞추어 <사윈>이라는 축제를 벌였다. 그날은 사자(死者)들이 서로 만나는 날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몽생미셸에서 보내는 그날 하루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노르망디의 영주들은 몽생미셸과 관련된 모든 미신을 타파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마침내 1023년 동료들을 시켜 그 섬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짓게 했다. 그런데, 이 성당 자체가 범상치 않다. 이 성당은 네 면이 비탈진 바위 산 위에, 정문이 동쪽을 향하도록 세워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현관 홀과 중앙 홀이 나타난다. 중앙 홀에는 열주(列柱)가 좌우 일곱 칸으로 늘어서 있고 양쪽에 측랑이 붙어 있다. 그 다음엔 둥근 천장을 가진 익랑(翼廊)이 있고, 후진(後陳)에는 성가대 자리와 제단이 자리잡고 있다. 중앙 홀의 측랑과 이어진 회랑이 그 성가대 자리와 제단을 둘러싸고 있다. 건물의 전체 길이는 80미터인데, 이 길이는 공교롭게도 성당을 받치고 있는 바위 산의 높이와 같다. 그러니까 바위 산의 단명과 건물의 대지(垈地)가 모두 완전한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그 안에 성당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대지를 사각형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각형은 4원소와 4방위와 바위 산을 후려치는 네 방향의 바람을 가리킨다. 성당을 건축한 사람들은 헤브라이의 성전(聖殿), 특히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본받으려고 했던 듯하다. 현관은 <울람>이라 불리는 헤브라이 성전의 현관과 그 위치가 동일하다. 기도소(헤칼)와 지성소(데비르)도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익랑으로 올라가는 일곱 계단은 솔로몬 성전의 일곱 계단과 유대교의 제례용 칠지(七枝) 촛대에 해당한다. 성당뿐만 아니라 몽생미셸 수도원도 어떤 상징을 담고 있다. 수도원의 길이와 너비의 비율은 구약 성서의 한 대목을 암시한다. 즉,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노아에게 길이 3백 자에 너비 50자의 방주를 만들라고 이르는 대목이 나온다. 몽생미셸 수도원의 비율이 바로 6 대 1이다. 또한 이 수도원은 노아의 방주처럼 상 · 중 · 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아의 방주에는 하층엔 짐승들이 탔고, 중층엔 양식이 실려 있었으며, 상층엔 노아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 수도원의 경우는 하층에 순례자와 신자와 이방인들을 맞아들이는 보시처(布施處)가 있고, 중층에는 수사들의 식당이 있으며, 상층엔 공동 침실이 있다. 수도원을 세운 사람들은 애초부터 몽생미셸이 한낱 작은 섬이 아니라 피안을 향해 항해하는 배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17)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망슈 도(道), 생말로 만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 원뿔 모양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산으로 현재는 방파제에 난 도로로 육지에 연결되어 있다.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 성 오베르가 대천사 미카엘(생 미셸)을 환상으로 보고 미카엘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예배당을 세웠다. 10세기 초 노르망디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서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들어서고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 후, 이곳은 프랑스 최대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18) 1119년 프랑스의 기사(騎士) 위그 드 팽과 고드프루아 드 생타무르가 팔레스티나 성지의 수호를 목적으로 창립한 종교 군사 단체. 요하네스 수도 기사회, 독일 기사 수도회와 함께 십자군 시대의 3대 기사 수도회로 꼽을 수 있다. 12세기 말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왕권 신장을 노리는 필립 4세의 박해 속에서 우상 숭배와 배교의 누명을 쓰고 1312년 폐지되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 구에레로 두 문명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미묘하다. 중앙 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처음 왔을 때 아즈텍 인들은 유럽 인들을 아주 엉뚱하게 오해했다. 당시 아즈텍 인들은 깃털 달린 뱀의 형상을 가졌다는 케찰코아틀이라는 신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아즈텍 신앙은 장차 그 신의 사자들이 지상에 도래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 사자들의 살갗은 깨끗할 것이고, 네 발 달린 커다란 동물들을 타고 올 것이며 우레를 통하여 경건하지 못한 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1519년 스페인의 기병대가 멕시코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즈텍 인들은 <툴>(중남미 인디언들의 언어인 나우아틀 말로 신을 뜻함)이 재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인 1511년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일깨워 준 사람이 있었다. 구에레로라는 스페인 선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코르테스19)의 군대가 아직 산토 도밍고 섬과 쿠바 섬에 주둔하고 있던 때에 유카탄 해안에서 난파를 당하여 멕시코에 상륙하게 되었다. 구에레로는 멕시코 원주민들과 쉽게 친해졌고 원주민 여자와 혼인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곧 상륙할 것임을 알리는 한편, 그들은 신도 아니고 신의 사자들도 아님을 역설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또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쇠뇌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그때까지 인디언들은 화살과 흑요석 날이 달린 손도끼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르테스 군대의 갑옷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쇠뇌밖에 없었다). 구에레로는 스페인 사람들이 타고 올 말들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고, 특히 불을 뿜는 무기에 겁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것은 마법의 무기도 아니고 우레도 아니라고 일깨웠다. 그는 <스페인 사람들도 당신들과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들은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거듭거듭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모든 원주민들과 똑같이 빨간 피가 흐르는 것을 보여 주었다. 구에레로가 자기 마을의 인디언들을 지성으로 가르친 덕분에 코르테스 군대의 정복자들이 그 마을을 공격했을 때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대다운 인디언 군대와 맞닥뜨리고 크게 놀랐다. 마을 원주민들은 몇 주 동안 스페인 군대에 저항했다. 그러나 구에레로의 가르침이 그 마을 이외의 곳까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1519년 9월 아즈텍 왕 목테수마는 공물로 보석을 가득 실은 수레들을 이끌고 스페인 군대를 맞으러 떠났다. 바로 그날 저녁에 왕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살해당하였다. 1년 후에 코르테스는 대포로 아즈텍의 수도 테노크니틀란을 파괴했는데, 3개월 동안 그 도시를 포위하여 주민들을 기아 상태에 빠뜨린 다음의 일이었다. 구에레로는 스페인의 어떤 요새에 대한 야간 공격을 준비하던 중에 죽었다. 19) Hernan Cortes(1485 ~ 1547). 스페인의 모험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함께 쿠바 정복에 참여했으며, 1519년에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여 아즈텍 인들과 싸웠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십자군 1096년, 교황 위르벵 2세는 예루살렘 해방을 위해 제 1 차 십자군을 진군시켰다. 결의에 가득 차 있기는 했으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순례자들이 참전했다. 총사령관은 고티에 상 자봐르와 피에르 레르미트. 십자군은 그들이 어느 나라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동으로 동으로만 향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지나는 곳마다 약탈을 했는데, 그 피해는 동방보다 서방에서 더 심했다. 굶주린 그들은 인육(人肉)을 먹는 만행까지도 저질렀다. 이 <참된 신앙의 대표자들>이 하루아침에 누더기를 걸친, 야만적이고 위험한 방랑의 무리로 변해 버렸다. 헝가리 왕은, 그 역시 크리스천이었지만, 부랑자들로 인한 피해에 화가 단단히 난 나머지 농민들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랑자들을 학살하기로 했다. 반인 반수의 야만인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십자군 병사들이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터키 해안에 이르렀을 때, 니케아20)의 토착민들은 털끝만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들을 처치해 버렸다. 고드프루아 드 부이옹이 총사령관이 되어 예루살렘과 예수의 무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제 2 차 십자군이 원정을 떠났다. 이번에는 전쟁을 경험해 본 4천 5백 명의 기사들이 수십만의 순례자들을 지휘했다. 대부분은 장자 상속법으로 모든 봉토를 장남에게 빼앗긴 귀족의 지차(之次)들이었다. 종교의 엄한 계율에 따라 상속권을 박탈당한 이 젊은 귀족들은 이국의 성을 정복하고 영토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 기사들은 성을 하나 정복할 때마다 십자군을 팽개치고 그곳에 정착했다. 그들은 정복한 도시의 토지 소유권을 둘러싸고 그들끼리 자주 싸웠다. 그 일례로 타렌트 가문의 보에몽 공작은 사리사욕을 위해 터키 남부에 있는 도시 안티옥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십자군 병사들은 십자군을 떠나려는 자들을 만류하기 위해 서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서방의 귀족들은 심한 경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동방의 적과도 동맹을 맺는 자가 당착을 범했다. 그들은 전우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동방의 토후들과 결탁하였고, 그러면 상대방들 역시 그들에 맞서기 위하여 주저 없이 다른 토후들과 연합하였다. 결국 누구와 더불어, 누구에게 대항하여, 왜 싸우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였다. 20) 소아시아에 있던 옛 도시. 오늘날의 이즈티크.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아프리카 두 문명이 만나는 것은 언제나 미묘하다. 인류가 경험한 것 중에서 재조명해 볼 만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18세기에 노예로 끌려 나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경우를 주목해 볼 만하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 흑인들의 대부분은 평원이나 숲속에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웃의 왕 하나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전쟁을 걸어오더니,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서 사슬로 묶어 해안 쪽으로 끌고 갔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 긴 여정 끝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바다였고 또 하나는 하얀 피부를 가진 유럽 인들이었다.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를 통해서나마 사자(死者)들이 사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외계인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피부색도 이상했으며 입고 있는 옷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흑인들이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배에서 뛰어내렸다가 상어 밥이 된 사람도 있었다. 살아 남은 흑인들은 갈수록 놀라운 일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놀랐을까? 한 가지 예로 그들은 백인들이 포도주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이 피, 그것도 자기들의 피라고 믿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이뉴잇 두 인간문명 사이의 만남은 언제나 힘을 겨루는 일로 시작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리 험악하지 않게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1818년 8월 10일, 영국 극지 탐험대의 대장인 존 로스 선장이 그린란드의 에스키모, 이른바 이뉴잇(캐나다와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는 스스로를 이뉴잇이라고 부른다. 에스키모는 <물고기를 날로 먹는 사람>을 뜻하지만, 이뉴잇은 <인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만남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이뉴잇들은 이 세계에서 인간은 자기들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영국인들이 누구인지, 영국이 어디에 있는지 따위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이뉴잇이 말했다. <당장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죽일 수도 있다.> 존 로스 선장은 마침 존 삭셰우스라는 통역자를 대동하고 있었다. 그 통역자는 남 그린란드 출신으로 서툰 영어로나마 영국인들과 의사 소통을 할 줄 알았다. 이뉴잇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자, 이 통역자가 재치를 발휘하여 자기가 들고 있던 칼을 얼른 땅바닥에 던졌다. 처음 만난 사람의 발 밑으로 자기 무기를 던져 버리는 것을 본 이뉴잇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그 칼을 집어 들더니, 자기들의 코를 잡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삭셰우스도 재빨리 그들과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고비였다. 그 고비를 넘기고나니 만사 형통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자기와 똑같이 행동하면 그를 죽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가장 나이 많은 이뉴잇이 다가와 삭셰우스의 면셔츠를 더듬어 보더니 그런 천은 무슨 동물의 가죽으로 만드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샥셰우스가 그럭저럭 대답을 하고 나자, 노인이 또 물었다. <당신들은 달에서 왔소, 아니면 해에서 왔소?> 지구에 자기들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다고 믿고있던 이뉴잇들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삭셰우스는 마침내 그들에게 영국 장교들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뉴잇들은 영국인들이 가져 온 돼지를 발견하고는 겁에 질린 채 배로 뛰어올랐다. 그들이 침착성을 되찾고 배에서 내려왔을 때 영국인들은 거울을 보여 주었다. 이뉴잇들은 거울 앞에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시계를 보여 주자, 그들은 무척 신기해 하면서 그것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비스킷을 한입 먹어 보더니, 그들은 역겨워하면서 도로 뱉어 냈다. 이윽고, 이뉴잇들은 우호의 표시로 그들의 주술사를 불렀다. 주술사는 신령들에게 영국 배에 있을지도 모를 모든 악귀들을 쫓아내달라고 빌었다. 그 다음날 존 로스는 이뉴잇의 땅에 영국 깃발을 꽂았고, 이뉴잇의 영토와 모든 자원을 가로챘다. 이뉴잇들은 그런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하루만에 그들의 나라가 지도상에 불쑥 나타났고 그들은 영국인이 되어 있었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인도 인도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 버리는 나라다. 인도를 무력으로 정복한 자들이 인도인들을 길들이려 했지만 모두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인도 안으로 파고들수록 그들은 인도 물이 들었으며 호전성을 잃고 세련된 인도 문화에 푹 빠져 버렸다. 인도는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 스펀지 같았다. 인도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온 자들을 오히려 인도가 정복해 버렸다. 인도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침탈은 터키와 아프가니스탄의 회교도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들은 1206년에 델리를 점령했다. 5대에 걸친 술탄 왕조가 계속되었는데, 한결같이 인도 반도 전체를 점령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진격하면서 군대는 약해져 갔다. 병사들은 학살에 신물이 났고, 전쟁에 흥미를 잃었으며, 점차 인도의 풍습에 매료되었다. 술탄 왕조는 어느덧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술탄의 마지막 왕조인 로디 왕조는 티무르의 후손인 투르케스탄 태생의 바뷔르21)에 의해 무너졌다. 바뷔르는 1527년에 무굴 제국을 세우고 인도의 중앙까지 진출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음악, 문학, 미술에 심취했다. 그의 후손인 악바르는 인도를 통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유화 정책을 폈고, 그 당시의 모든 종교에서 평화에 관한 교리들을 가려 모아 새 종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몇십 년 후에, 바뷔르의 다른 후손인 오랑제브가 회교를 인도에 강제로 이식하려고 했다. 그러자 봉기가 일어났고, 나라는 분열되었다. 인도를 폭력으로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19세기 초에 영국인들도 무력으로 모든 대도시와 주요 항구들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코 나라 전체를 통치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전적으로 인도적인 환경 속에서 이식된 <영국 문화를 가진 작은 동네들>을 확보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추위가 러시아를 보호하고 일본과 영국을 보호하듯이, 영(靈)의 장벽이 인도를 보호하고 그곳에 침입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오늘날에도 그 스펀지 같은 나라에서 한나절만 모험을 하고 나면 어떤 관광객이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을 얻자고 이런 일을 하는가>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21) 바뷔르Babur(1483 ~ 1530).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의 왕. 1511년 사마르칸트를 정복하였으며, 1526년 델리의 술탄과 싸워 이김으로써 갠지스 강 일대를 점령하고 이듬해 무굴 제국을 세웠다. 바베르 또는 바바르라고도 한다.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일본 일본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 인은 16세기의 포르투갈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서해안의 한 섬에 닿았는데, 그곳 다이묘[大名]는 아주 정중하게 맞아 주었다. 그는 <코쟁이들>의 새로운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조총이 마음에 들어서 그는 명주와 쌀을 주고 그것을 얻었다. 다이묘는 성의 대장장이에게 그 놀라운 무기와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지시했지만 대장장이는 총의 후미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일본산 조총은 번번이 사용자의 면전에서 폭발했다. 포르투갈 인들이 다시 항구에 들어왔을 때, 다이묘는 포르투갈의 대장장이에게 어떻게 하면 화약이 폭발할 때 총의 마구리가 터지지 않게 할 수 있는지를 자기 대장장이에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많은 양의 조총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로 인하여 나라의 전쟁 규범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전쟁은 으레 사무라이들이 칼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장군은 직접 조총 부대를 창설하여 속사(速射)로 적의 기마병을 잡는 방법을 가르쳤다. 물질 문명에 이어, 포르투갈 인들은 두 번째 선물, 즉 정신적 선물인 기독교를 가져왔다. 당시는 마침 교황이 세계를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갈라주던 시기였다. 일본은 포르투갈에 맡겨졌다. 그리하여 포르투갈 인들은 예수회의 선교사들을 파견했고, 그들은 처음엔 대단히 환영을 받았다. 일본인들은 이미 몇 가지 종교를 융합해 놓고 있던 터라, 기독교도 자기들의 종교에 통합시킬 하나의 외래 종교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의 배타성이 마침내 그들을 화나게 했다. 기독교는 다른 모든 신앙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일본인들이 아무런 이의 없이 숭배하는 그들의 조상들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 불에 타고 있을 거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종교가 어찌 보편적인 종교라는 뜻의 <카톨릭>이라는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가? 기독교의 독선적인 태도가 결국 일본인들을 자극했다. 일본인들은 대부분의 예수회 선교사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 뒤 시마바라 폭동22)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일본인들이 수난을 당했다. 그때부터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이 상륙하는 것이 허용하지 않았다. 단 한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섬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상륙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일본 열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22) 일본 큐슈 섬에 있는 시마바라 반도에서 1637년, 2만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봉기. 문명과 문명의 만남 : 중국 두 문명이 만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또 다른 예는,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다. 중국 한나라의 연대기를 보면, 서기 115년 경에 로마 제국의 것으로 보이는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며칠간 표류한 끝에 중국 해안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곡예사와 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뭍에 닿자마자 그 미지의 나라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코쟁이 이방인들이 불을 뱉어 내고 괴상망측하게 사지를 비틀고 개구리를 뱀으로 바꾸고 형형색색의 공을 돌리는 광경을 넋잃고 보게 되었다. 어떤 이방인들은 얼굴에 분을 덕지덕지 바른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물구나무를 선 채 돌아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서역에서는 인간들이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중국인들은 생각했다. 그 일을 계기로 아시아 인들은 서역엔 광대와 불먹는 자들이 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서양인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그 후로 수백 년이 지난 뒤였다. 문자와 숫자 :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 스물여섯 자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알파벳은 중국의 표의 문자나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 비해 월등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스물여섯 개의 기호로 우리는 미래에 나타날 낱말을 포함해서 무한히 많은 낱말들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낱말을 위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 필요가 없다. 알파벳의 글자 하나에는 아무 의미도 담겨 있지 않지만,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숫자 ─ 엄밀히 말해서 아라비아 인들 역시 인도의 숫자를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인도 숫자라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 는 모든 수를 나타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V, C, M, X 따위를 사용하는 로마 숫자 체계에서는, 더 윗단위의 수를 나타내려고 할 때마다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수를 표현하기가 너무 번거로웠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면 기호 열 개로 무한히 큰 수에서 무한히 작은 수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다.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는 대단히 훌륭한 발명품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사고 능력을 무한하게 만들어 주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도 지칭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자와 숫자 : 이야기와 셈 프랑스 어에서 <이야기>를 뜻하는 와 <셈>을 뜻하는 는 발음이 같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어에서 숫자와 문자 사이에 이런 일치를 볼 수 있다. 그 예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영어에서 <세다count> · <이야기하다recount>, 독일어에서 <세다zahlen> · <이야기하다erzahlen>, 헤브라이 어에서 <이야기하다le saper> · <세다li saper>, 중국어에서 <세다shu> · <이야기하다shu> 등. 숫자와 문자는 언어의 요람기 때부터 결합되어 있었다. 각각의 문자는 하나의 숫자에 대응하고, 각각의 숫자는 하나의 문자에 대응한다. 헤브라이 인들은 일찍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경이 암호 같은 이야기로 제시된 과학적인 책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만일 각 문장의 첫 글자에 수치를 부여한다면 숨겨져 있는 첫번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단어를 이루는 글자들에 수치를 부여한다면 전설이나 종교와 상관없는 어떤 공식과 조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미로 캄캄한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는, 벽에 손을 대고 더듬거리면서 그 벽을 따라서 아무데로든 가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울부짖기라도 해야 한다. ------------------------------------------------------------------------------------------------------------------------------------ ■■ ㅂ ■■ 박테리아 박테리아, 이것은 가장 먼 우리 선조의 이름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널리 세력을 떨쳐 온 유기적 구조의 이름이다. 우리 행성이 생긴 지가 약 50억 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최초의 박테리아인 태고 박테리아는 35억 년 전에 출현했다. 그 후로 20억 년 동안 이 행성은 태고 박테리아와 그것에서 갈려 나온 박테리아들의 독무대였다. 그것들은 양분을 섭취하고 번식하고 서로 싸움질을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박테리아들에게도 무척이나 많은 무용담과 드라마와 행복이 있었겠지만, 그런 것들은 이 행성의 땅 껍질을 마지막으로 차지한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돼지가 잠자고 있다>23)는 말을 흉내내어 말하자면 <누구의 마음속에나 박테리아가 잠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의 역사에서 세포핵의 출현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출현하기까지 지구가 거쳐온 역정을 네 시기로 나눈다면, 핵을 가진 세포가 나타난 것은 그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서였다(4분의 1은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정적의 시기였고, 그 뒤의 4분의 2는 박테리아가 유일한 거주자였던 시기였다). 그것이 생명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다. 그때까지 유전자들은 세포 속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들이 세포핵 안에 한데 모이게 되자, 마침내 일관성 있는 유전자 설계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층 진화한 새로운 생물이 박테리아에서 갈라져 나온다. 남조식물(藍藻植物)이 그것이다. 선조들과는 달리 남조식물은 산소와 햇빛을 좋아한다. 그것들의 전도는 양양하다. 진화가 거듭될수록,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남조류는 더욱 복잡한 생명 형태를 낳는다. 2억 5천만 년 전에는 곤충이 출현했다. 그 후로 또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인간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3백만 년 전의 일이다. 박테리아 가운데 진화에 실패한 부류는 여전히 산소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땅속, 바닷속, 심지어 우리 내장 속에 숨어 살고 있다. 발가락 아메리카 인디언과 중국인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20진법의 수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스물을 한 단위로 해서 수를 센다. 손가락과 발가락의 개수를 합하여 셈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셈법이 나왔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10진법을 셈법으로 삼았다. 발가락을 무시하고 오로지 손가락만을 세었기 때문이다. 변이 중국인이 티베트를 합병했을 때, 그들은 그 고장에도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중국인 가족들을 거기에 정착시켰다. 그러나 티베트 지방의 기압을 중국인은 견뎌 내기가 쉽지 않았다. 티베트 기압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어지럼증을 느꼈고 몸이 붓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생리적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티베트로 이주한 중국 여인들은 아이를 낳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에 반해 티베트 여인들은 가장 지대가 높은 마을에서도 매일같이 아이들을 쑥쑥 잘도 낳았다. 마치 거기에 살기에 신체적으로 부적합한 침략자들을 티베트의 땅이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분봉 꿀벌의 세계에서 분봉은 특이한 의식을 거쳐 이루어진다. 도시이자 왕국인 하나의 군체가 번성의 절정기에 이르러 느닷없이 분봉을 하기로 결정한다. 늙은 여왕벌은 백성들을 번영으로 이끌고 나서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들, 즉 왕국의 영토, 안락한 터전, 화려한 궁궐, 둥지 안의 밀랍과 꽃가루와 꿀과 로열 젤리 등을 포기하고 떠난다. 그러면 여왕벌은 그것들을 누구에게 물려주는가? 갓 태어난 사나운 벌들에게다. 구(舊) 여왕벌은 일벌들을 데리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른 곳에 터를 잡는다. 여왕벌이 떠나고 몇 분 후, 어린 벌들은 버려진 왕국에서 잠을 깬다. 어린 벌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본능으로 알고 있다. 비생식 일벌들은 서둘러 생식 암벌들이 부화하는 것을 돕는다. 성스러운 알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들이 알에서 나와 최초의 날갯짓을 경험한다. 제일 먼저 걷기 시작한 암벌들이 대뜸 다른 암벌들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 다른 암벌들에게 달려들어 작은 위턱으로 그들을 눌러 버린다. 그 암벌은 일벌들이 밑에 깔린 암벌들을 빼내지 못하게 막고는 독침으로 자매들을 찔러 버린다.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안도감도 커진다. 행여 어린 왕녀들을 보호하려는 일벌이 있으면, 제일 먼저 깨어난 암벌이 날갯짓으로 대갈일성한다. 벌집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보통의 날갯짓 소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면 신하들은 단념의 뜻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살생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둔다. 그러한 공격을 모면하는 암벌들이 간혹 있는데, 그러면 암벌들끼리 결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암벌이 두 마리만 남게 되면 상대를 독침으로 찌르는 자세를 결코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마리의 암벌은 살아 남아야 한다. 오로지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히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둘이 동시에 죽음으로써 둥지가 부모 잃은 자식 꼴이 되어 버리는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암벌은 둥지에서 나와 수컷들과 비행하면서 정받이를 한다. 그런 다음 왕국을 한두 바퀴 돌고 돌아와 알을 낳기 시작한다. 비트리올 <비트리올>은 황산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비트리올>이 <유리를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보다 더 연금술적인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다. <비트리올>이란 단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어떤 주문의 첫 번째 글자들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다. 즉 <땅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서 마음가짐을 바로하면 숨겨진 돌을 발견할 수 있을지니Visita Interiora Terrae, Rectificando Qccultem Lapidem>의 첫 글자들이 모여 <비트리올 V.I.T.R.I.O.L>이 된 것이다. 빛과 어둠 우주 공간은 캄캄하다. 별빛을 반사시킬 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선은 무한한 공간속에서 소진되고 만다. 언젠가 우리가 우주의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주의 경계가 되는 한 모퉁이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빵 모듬살이를 하는 동물들의 양식은 빵이다. 개미들은 버섯을 으깨어 일종의 반죽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개미들의 빵이다. 인간의 빵을 만드는 방법은 이러하다. 그 오랜 비법을 재발견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여기에 소개한다. <재료> 밀가루 한 컵, 마른 뜸팡이 반 갑, 물 반 컵, 설탕 한 찻술, 소금 반 찻술. <만드는 법> 뜸팡이와 설탕을 물에 넣고 반시간 동안 가만히 놓아둔다. 그러면 잿빛을 띤 진한 거품이 우러난다. 넓적한 그릇에 밀가루를 붓고 소금을 넣은 다음, 가운데를 오목하게 파고 거기에 뜸팡이와 설탕 녹인 물을 따른다. 따르면서 밀가루가 엉기지 않도록 거품기 따위로 잘 저어야 한다. 뚜껑을 덮고 그릇을 바람이 통하지 않는 따뜻한 곳에 15분 동안 놓아둔다. 이상적인 온도는 섭씨 27도지만, 그 온도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울 때는 그보다 낮은 편이 낫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뜸팡이가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반죽이 부풀어오르면 양손으로 좀더 주무른다. 그런 다음 반죽을 다시 30분 동안 부풀린다. 그러고나면 반죽을 구울 수 있다. 구울 때는 오븐이나 잿불에 넣고 한 시간 동안 굽는다. 오븐이나 잿불이 없을 때는, 평평한 돌을 볕바른 곳에 놓고 거기에 빵을 구울 수도 있다. 뼈대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 거죽에 있는 것이 나을까? 뼈대가 몸 거죽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을 막는 껍집을 형태를 띤다. 살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지고 거의 액체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껍데기를 뚫고 어떤 뾰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가늘고 단단한 막대 모양을 띤다. 꿈틀거리는 살이 밖의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처가 수없이 많이 생기고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바로 밖으로 드러난 이 약점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고 섬유의 저항력을 키워 준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출중한 지력으로 <지적인> 갑각을 만들어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였다. 그들은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비웃었다. 그러나 어떤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아주 사소한 이견, 아주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에 민감했고 어떤 공격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23) 샤를 몽슬레의 유명한 시구. 여기에서 돼지는 <추잡한 본능, 특히 색욕>을 가리킨다. ------------------------------------------------------------------------------------------------------------------------------------ ■■ ㅅ ■■ 사람과 개미 사람 : 포유 동물로서 크기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로 다양함. 몸무게는 30킬로그램에서 1백 킬로그램 사이. 암컷의 임신 기간은 9개월.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50억 이상으로 추산됨. 개미 : 곤충으로서 크기는 0.01센티미터에서 3센티미터로 다양함. 몸무게는 0.001밀리그램에서 1그램 사이. 산란은 정자의 저장량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 식성은 잡식성. 개체의 수는 수십억의 10억 배 이상으로 추산됨. 사회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미도 사회성을 타고난다. 새끼 개미는 너무 약해서 자신은 가두고 있는 고치를 혼자서 깨뜨릴 수가 없다. 사람의 아기도 혼자서 걷거나 영양을 섭취할 수 없다. 개미와 인간은 둘 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이며, 혼자서는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없다.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약점이다. 그러나 그 의존성이 또 다른 진화를 가져온다. 지식 추구가 그것이다. 어린 개체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터에, 생존 능력을 지닌 성숙한 개체들이 곁에 있으니, 어린 개체들은 당연히 성숙한 개체들에게서 지식을 구하게 된다. 삼각형 평범하기가 때로는 비범하기보다 더 어렵다. 삼각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삼각형에는 대게 이등변 삼각형, 직각 삼각형, 정삼각형 따위의 이름이 붙어 있다. 정의된 삼각형의 종류가 하도 많아서 특별하지 않은 삼각형을 그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특별하지 않은 삼각형을 그리자면, 가능한 한 길이가 같은 변이 생기지 않도록 그려야 할 터인데24), 그 방법은 확실치 않다. 평범한 삼각형은 직각이나 둔각을 가져도 안 되고, 크기가 같은 각이 있어서도 안 된다. 자크 루브찬스키라는 학자가 진짜 <평범한 삼각형>을 그리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 방법에 따라 우리는 평범한 삼각형을 아주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정사각형을 대각선 방향으로 잘라 삼각형 두 개를 만들고, 정삼각형을 높이 방향으로 잘라 역시 삼각형 두 개를 만든다. 정사각형을 잘라 만든 삼각형과 정삼각형을 잘라 만든 삼각형을 나란히 붙여 놓으면 평범한 삼각형의 한 표본을 얻게 된다. 24) 우리는 세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른 삼각형을 부등변 삼각형, 예각으로만 이루어진 삼각형을 예각 삼각형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정의되지 않은 평범한 삼각형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색채 심리학 색채를 지각할 때, 우리는 그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을 받는다. 잘 알려진 대로, 빨간색을 칠해 놓은 방은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 연초록색 방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감옥에서는 그 빛깔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보라색은 두통을 일으킨다. 검정색은 사물을 작아 보이게 하고, 주황색은 커보이게 한다. 옥색은 긴장을 풀어준다. 감색 상자는 연노란색 상자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하얀 방에서는 연보랏빛 방에서보다 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생각의 힘 인간의 생각은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물을 양륙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갈 산(産) 마디라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모든 짐이 다 부려졌는지를 확인하려고 어떤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 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배를 포르투갈을 향해 다시 떠났다.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힘을 내어 쇳조각 하나를 들고 냉동실 벽 위에 자기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날짜별로 새겨 나갔다. 그는 죽음의 고통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냉기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적었고, 찬 공기에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리는 상처로 변해 가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자기의 온몸이 조금씩 굳어지면서 하나의 얼음 덩어리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배가 리스본에 닻을 내렸을 때,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은 죽어 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 놓은 고통의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장은 컨테이너 안의 온도를 재보았다.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항해 동안 냉동장치가 내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 선원은 단지 자기가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은 것이다. 선물 금파리들의 세계에서는, 암컷이 짝짓기하는 동안에 수컷을 잡아먹는다. 짝짓기할 때의 감정이 식욕을 불러일으키면서 곁에 늘어져 있는 짝짓기 상대가 암컷에게는 먹거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사랑은 하고 싶으나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사랑 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즉, 타나토스 없는 에로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금파리의 수컷은 한 가지 책략을 찾아냈다. 수파리는 먹을 것을 <선물>로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암컷은 배가 고플 때 수컷이 가져온 고기를 먹게 되고, 그 수컷은 아무런 위험 없이 사랑을 즐길 수 있다. 그보다 훨씬 진화된 파리들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곤충 고기를 투명한 고치로 포장해서 가지고 온다. 그럼으로써 더 오랫동안 사랑을 즐길 수 있다. 또 어떤 파리 종은 수컷의 관점에서 선물의 질보다는 선물을 개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 종의 수컷들이 가져오는 고치 포장물은 두껍고 부피가 크지만 사실은 비어 있는 것이다. 암컷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이면 수컷은 이미 용무를 끝낸 뒤다. 수컷들의 그런 행동에 이번에는 암컷들이 꾀를 낸다. 암컷은 고치가 비어 있지나 않은지 확인하려고 고치를 흔들어 본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응책이 또 나타난다. 암컷이 고치를 흔들어 볼 것을 예상한 수컷은 고깃덩어리로 착각하게 하려고 자기 배설물을 적당히 담아서 선물 꾸러미를 만들기도 한다. 선택 다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내고 싶은 선택지(選擇肢)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세 가지와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에 대해서, 상대가 원하면 그것을 선택해도 좋다고 선선히 양보를 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자연히 당신이 바라고 있는 바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음식을 골라 먹는 방법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음식에 대한 기호는, 주위에 있는 다른 음식들에 대한 호오(好惡)의 판단을 거침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파악될 수 있다. 성서 성서 전체는 제 1권, 즉『창세기』로 요약할 수 있다. 창세기의 모든 내용은 제 1장인 천지 창조를 이야기하는 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장의 모든 내용은 다시 그 장의 첫번째 단어인 헤브라이 어 베레시트로 요약할 수 있다. 베레시트는 <창세기> 또는 <본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대개는 <태초에>로 잘못 옮겨지고 있지만 말이다)> 이 낱말의 모든 의미는 첫 음절인 베르로 요약할 수 있는데, 베르는 <자손>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소명인 생산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음절을 이루는 모든 글자들은 첫번째 글자 B로 요약할 수 있다. B는 헤브라이 어로는 <베트>로 발음된다. 베트는 가운데에 점이 있는 열린 사각형으로 나타낸다. 이 사각형은 집을 상징하기도 하고, 알이나 태아나 장차 자라날 작은 점을 담고 있는 모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왜 성서는 알파벳의 첫번째 철자가 아니라 두 번째 철자로 시작되는 것일까? 그것은 B가 이원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A, 즉 알레프(수소)는 만물이 비롯되는 통일성이고, B는 그 통일성의 발산이며 투영이다. B는 제 2의 것이다. <하나>에서 나온 우리는 <둘>이다. 우리는 이원성의 세계에 살면서 알레프, 즉 모든 것의 출발점인 통일성을 추구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그 통일성을 되찾을 수 있다. 세계를 창조하는 법 당신이 어린 신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여기에 그 방법을 소개한다. 무(無)에 가까운 상태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물질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을 적용할 때 주의할 일은, 성분과 배합에 대한 지시를 정확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기술한 대로 정확하게 따를 수 없을 때는,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기 바란다. 1) 작은 행성 하나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지름이 1만 3천 킬로미터쯤 되는 보통의 행성이면 된다. 그 행성에 열을 가하여 비등 상태로 만든다. 최소한 섭씨 4천 도 정도가 될 만큼 아주 뜨거워야 한다. 그 온도에서는 모든 화학 결합이 해리된다. 2) 행성의 온도를 조금 낮추어 섭씨 3천 도 정도가 되게 한다. 국물을 계속 저으면 원자들이 섞이면서 응결물이 생긴다.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본다. 수소 화합물, 규화물, 탄화물, 산소, 질소, 수소 따위가 안정된 분자로 가장 잘 엉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수소는 얼마든지 있으니, 결코 아끼지 말아야 한다. 3) 분자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계속 저으면서 불을 좀더 약하게 한다. 섭씨 5백 도에서 수소는 산화철을 환원하여 수증기를 만들어 낸다. 즉 대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므로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 수증기가 행성 밖으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뚜껑을 덮는다. 예컨대, 만유 인력 같은 것을 뚜껑으로 사용하면 된다. 4) 뚜껑을 들어올리고 관찰한다. 고온의 수증기가 다른 분자들을 변화시킨다. 탄화물이 수소의 공격을 받고 탄화수소로 변한다. 규화물은 규화수소로 변한다. 산소는 메탄을 용해하여 산화탄소를 만든다. 또 암모니아, 인화수소, 비화수소, 황화수소가 나타나는 것도 보인다. 이 단계는 토성과 목성의 현재 상태와 비슷하다. 이 상태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온도를 더 낮추면서 실험을 계속하자. 5) 한동안은 그대로 놓아둔다. 그런 다음, 용액 상태로 되어 있는 이 국물에 불꽃 방전, 즉 번개를 일으킨다. 탄화수소가 황, 암모니아, 청산 따위와 응축한다. 우리의 원래 국물은 이제 아름다운 청색으로 변하고, 작은 건더기가 떠오른다. 6) 바야흐로 <생명>을 조리할 때가 되었다. 더할 나위 없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단계를 망치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거품을 낸 달걀 흰자로 수플레를 만들 때, 오븐에 굽는 단계에서 제대로 부풀어오르지 않으면 모든 게 헛일이듯이 말이다. 이제 할 일은 평균 연령에 달한 태양을 고르는 것이다(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너무 어린 태양은 생명에 해를 입힐 수 있고 너무 늙은 태양은 힘이 부족하니 주의하여야 한다). 태양을 골랐으면, 행성을 왼손에 잡고 바다를 점진적으로 태양 광선에 노출시킨다. 행성을 태우거나 얼리지 말고, 금빛을 띠게 만들어야 한다. 풋내기 어린 신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행성을 태양에 너무 가까이 접근시켜 소시지처럼 구워 버리는 것이다. 그런 행성의 한 예가 바로 금성이다. 십중팔구는 서툰 풋내기 신이 너무 굽는 바람에 애석하게도 금성에 생명이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행성을 태양에 서서히 접근시켜야 한다. 그것은 마요네즈를 만들기 위해 달걀에 기름을 섞는 것만큼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태양의 열기와 자외선을 받고 당이 합성되어 포도당과 섬유소가 생겨난다. 행성의 대양은 약간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7) 행성을 태양에 더 접근시킨다. 자외선의 작용을 받아 포름산이 포름알데히드와 응축하여 글리코콜이라는 가장 간단한 유기산을 만든다. 이로써 생명의 성분이 될 수 있는 최초의 유기 화합물이 생성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어린 신치고는 솜씨가 아주 훌륭한 편이다. 8) 그 조리가 끝나고 나면, 행성의 대양에서 당, 유기산, 단백질, 소금을 얻게 될 것이다. 9) 이제 남은 일은 20억 년 동안 약한 불로 은근하게 달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미세한 먼지 같은 것들이 대양에 떠다닐 것이다. 그것이 박테리아, 즉 살아 움직이는 자율적인 세포이다. 이로써 그 동안에 쏟은 모든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다. 어린 신으로서는 여간해서 해내기 어려운 일을 이루어 낸 것이다. 세스토드 세스토드는 딱따구리의 내장에 성충 상태로 살고있는 단세포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딱따구리의 똥과 함께 배설된다. 딱따구리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종종 개미 도시 위로 똥을 뿌린다. 개미들은 이 흰 배설물을 치워 내려고 하다가 그것을 먹고는 세스토드에 감염된다. 이 기생충은 개미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딱지 색깔을 하얗게 변화시킨다. 감염된 개미는 무기력해지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느려진다. 그래서 청딱따구리가 똥으로 개미 도시를 공격할 때는 그 개미들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색소 결핍증에 걸린 그 흰 딱지 개미들은 행동이 느려질 뿐만 아니라, 밝은 딱지 색깔 때문에 도시의 어두운 통로 안에서도 눈에 훨씬 잘 띄기 때문이다. 소인국 사람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릴리푸트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 역시 인간의 모든 권리를 가진 집단이다. 그들은 난쟁이나 피그미와는 다르다. 릴리푸트 사람들의 신체는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어 있을 뿐, 보통의 인간과 똑같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신장은 40에서 90센티미터, 체중은 5에서 15킬로그램으로 다양하다. 그들은 19세기 말에 중앙 유럽, 더 정확하게는 헝가리에서 발견되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줄곧 도시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발견하자 마치 괴물을 쫓듯 그들을 사냥했다. 그 사냥을 피해서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다시 모아야겠다고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르눔 곡마단의 단장 바르눔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유랑 곡마단에 겨우 네 명의 릴리푸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1937년 국제 박람회를 맞아 전세계에 흩어진 릴리푸트 사람들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60명을 모을 수 있었고, 그들의 몸집에 맞는 집과 우물과 정원을 가진 마을을 지어 주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소인국 사람들은 현재 8백 명 정도다. 그들은 대개 곡마단에서 구경거리 노릇을 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소인국 사람들을 자기들 나라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들은 소인국 사람들의 체형에 맞는 마을과 학교를 세웠고, 소인국 사람들을 모아 극단을 만들었다. 그 극단은 현재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솔로몬 성전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은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의 본보기였다. 그것은 사면에 석벽을 두른 기단(基壇) 위에 세워져 있었다. 기단의 네 면은 존재를 구성하는 네 세계, 즉 물질 세계(육체), 감성 세계(영혼), 정신 세계(지성), 신비 세계(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신성)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 신비 세계의 한복판에는 창조, 형성, 작용을 상징하는 세 칸의 주랑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성전은 장방형이었다. 길이 50미터에, 너비 25미터, 높이 15미터였다. 그 중앙에 길이 15미터, 너비 5미터의 성소가 있었고, 그 안쪽에는 변의 길이가 10미터인 완전한 입방체 모양의 지성소가 있었다. 지성소 안에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제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 역시 변의 길이가 2미터 50센티인 완전한 입방체였다. 제대에는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열두 개의 빵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일곱 행성을 나타내는 칠지 촛대가 있었다. 옛 문헌, 특히 알렉산드리아 사람인 필론의 문헌에 따르면, <성소는 하느님의 역장(力場)을 형성하기 위해 설계된 하나의 기하학적 형상이다. 원래 황금비(黃金比)는 신성한 역학의 치수다. 성전은 우주의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며,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는 이행의 장소로 만들어진 것이다>. 수면 우리는 밤마다 잠을 자는 동안 <역설(逆說) 수면>25)이라는 특이한 단계를 거친다. 그 단계는 한 번에 15분에서 20분 정도 지속되며,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찾아온다. 그런 수면 상태를 그렇게 명명한 사람은 리옹 분자 몽학(夢學) 연구소의 미셸 주베 교수였다. 그 단계를 왜 <역설적>이라고 하는 걸까? 그것은 가장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서도 격렬한 신경 활동을 보이는 모순적인 상황 때문인다. 아기들의 수면은 역설 수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아기들은 늘 흥분 상태에서 밤을 보낸다고 볼 수 있다(아기들의 수면은, 보통 수면 3분의 1, 얕은 수면 3분의 1, 역설 수면 3분의 1의 비율로 이루어진다). 그런 흥분 상태에 있을 때, 아기들은 흔히 어른들처럼 이상한 표정을 짓곤 한다. 아기들은 노여움, 기쁨, 슬픔, 두려움, 놀라움 따위를 담은 갖가지 표정들을 잇달아 흉내낸다. 그런 감정들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그 단계가 더 은근하면서도 심도있게 나타난다. 프랑스 국립 보건 의학 연구소의 피에르 살수렐로 교수의 말이 흥미롭다. <우리는 밤마다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한창 역설 수면에 빠져 있는 성인을 깨운 다음, 꿈속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기를 다섯 차례 되풀이했는데, 피실험자의 이야기는 매번 달랐지만, 거기에는 공통적인 핵심이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방해를 받은 꿈이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것 같았다. 최근에 연구자들은 꿈에 대해서 또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꿈은 사회 생활에서 생기는 정신적 억압을 잊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한다. 우리는 꿈을 꿈으로써 남들이 우리에게 억지로 주입한 것, 그리고 우리의 뿌리 깊은 신념과 상충하는 것들을 잊을 수 있게 된다. 꿈은 외부의 모든 억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꿈을 꾸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자에게도 완전히 조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5) 급속한 안구 운동이 나타난다고 해서 렘수면이라고도 한다. 렘REM은 급속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을 줄인 말이다. 습관 누구에게나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새끼 고양이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고양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두운 곳에 집어 넣었다가, 생후 4주째에 투명한 원통 안에 넣는다. 그 원통은 고정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검정색과 흰색 줄을 수직으로 그어 놓은 다른 원통이 돌고 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새끼 고양이에게 검은색 띠와 흰색 띠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다음, 고양이를 다시 어둠 속으로 옮긴다. 줄곧 어둠 속에서 아니면 흰 띠와 검은 띠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세계에서만 살아온 새끼 고양이들이 생후 4개월이 되었을 때, 이번에는 띠가 돌아가는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그러면 새끼 고양이들은 원통의 움직임을 전혀 지각하지 못한다. 고양이의 뇌 세포 가운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지각하는 신경 세포들의 역할이 너무 커짐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세포들의 기능이 쇠퇴 버린 것이다. 그런 예는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 중부의 원주민이었던 크리 사람들은 원추형 천막 속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사선(斜線)을 특히 잘 지각했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고층 빌딩의 숲에서 사는 데에 길들여진 시카고 시민들은 사선 형태로 제시된 지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수직적인 형태와 수평적인 형태만을 지각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다. 승리 승리 뒤에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허망함이 찾아오고 패배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열정이 솟아나면서 위안이 찾아온다. 그것은 왜 그런가? 아마도 승리가 우리로 하여금 똑같은 행동을 지속하도록 부추기는 반면 패배는 방향 전환의 전주곡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패배는 개혁적이고 승리는 보수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가장 멋진 승리를 거두려고 하지 않고 가장 멋진 패배를 당하려고 노력했다. 한니발은 로마를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고, 케사르는 로마력 3월 15일26)의 원로원 회의에 나갈 것을 고집하다가 브루투스의 단검을 맞고 죽었다. 이런 경험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실패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고, 우리를 물이 없는 수영장에 뛰어들게 해줄 다이빙 대는 높을수록 좋다. 명철한 사람의 삶의 목표는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참패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승리로부터는 결코 배울게 없고, 실패를 통해서만 배우기 때문이다. 26) 기원전 44년, 케사르는 왕의 칭호를 받고 싶어했고 로마의 원로원은 로마력 3월 15일 회의에서 그에게 왕의 칭호를 주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지각은 사람의 경우와 개미의 경우가 아주 다르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절대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시간의 길이와 주기가 일정하다. 그와 반대로 개미에게는 시간이 상대적이다. 날씨가 더울 때는 시간의 길이가 아주 짧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간이 축축 늘어지고 무한히 길어져, 마침내는 동면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까지 된다. 시간에 대한 지각이 이렇게 탄력적인 까닭에, 개미는 사물의 속도를 지각하는 데서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사물의 운동을 규정할 때, 개미들은 단지 공간과 지속된 시간만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요소인 온도를 덧붙인다. 시간 여행 시간 속을 여행하려면, 아주 빠른 속도로 가면 된다. 빛의 속도, 즉 초속 30만 킬로미터에 가까워질수록 효과가 뚜렷이 나타난다. 자기가 시간 속을 얼마나 빠르게 여행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방정식을 이용한다. To Tv = ────── ┌──── │ V² │ 1 - ── √ C² (V = 여행자의 속도, C = 광속) Tv는 시간 여행자의 탈것 안에 놓인 시계로 측정한 시간이고, To는 관측자의 고정된 시계로 잰 시간이다. 아주 빨리 달리기만 한다면, 자동차로도 미미하나마 시간 여행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시간이 반초만큼 연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려면, 초속 20만 킬로미터 정도로는 달려야 할 것이다. 파리와 마르세이유 사이를 1초에 1백 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속도이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시공간의 문제 하나의 원자 핵 주위에 여러 개의 전자 궤도가 있다. 어떤 것은 중심부에서 매우 가까이 있고, 어떤 것들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외부의 충격으로 이 전자들 중에 하나가 궤도를 바꾸면, 빛이나 열이나 방사의 형태로 에너지 방출이 일어난다. 낮은 자리에 있는 전자를 보다 높은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은 마치 애꾸를 맹인들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전자는 빛을 내면서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바로 왕이 되는 것과 같다. 역으로 높은 궤도에서 낮은 궤도로 자리를 옮긴 전자는 완전히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우주 전체는 원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시공들이 켜켜이 겹쳐 놓인 채로 병존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빠르고 복잡한 반면에 어떤 것들은 단순하다. 존재의 모든 수준에서 그와 같은 중층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아주 영리하고 민첩한 개미가 인간 세계에 던져지면 그것은 서투르고 겁 많고 하찮은 곤충밖에 안 된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한 인간이 개미 사회에 떨어지면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 그래도 인간들과 접촉을 했던 개미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개미 사회로 되돌아갔을 때, 그 개미는 더 우수한 시공간을 경험한 덕분에 어떤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더 우수한 차원에서 최하층의 상태를 경험해 보고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진보를 이루어 내는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다. 신 신은 존재하는가? 신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존재다. 따라서 신이 존재한다면 정의된 바대로 신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신은 자기가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십이 초 동안 당신이 다음 몇 줄의 글을 읽는 십이 초 동안, ─ 40명의 사람과 7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 태어나고 있다. ─ 30명의 사람과 5억 마리의 개미가 지구 위에서 죽어 가고 있다. 싱가포르 : 컴퓨터 도시 싱가포르는 일사불란한 통제가 가능할 만큼 한정된 인구를 가진 새로운 나라이다. 인구는 3백만으로 중국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광요 수상은 싱가포르의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여 최초의 컴퓨터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싱가포르는 국민 하나하나는 싱가포르 공화국이라는 거대한 컴퓨터의 소자다.> 이광요는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먼저 시샘 많고 공격적인 이웃의 대국들, 즉 말레이시아(인구 1천 6백만)와 인도네시아(인구 1억 7천만)로부터 디즈니랜드 같은 자기 나라의 안전을 확보해 두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첨단 무기를 갖춘 현대식 군대를 만들었다. 그것이 외부를 겨냥해서 한 일이라면, 내부적으로는 자기 컴퓨터 소자들 사이에 질서가 확립되기를 바랐다. 이광요는 싱가포르 시에 관광 구역과 경제 구역과 주거 구역을 배치했다. 세 구역은 50킬로미터에 달하는 깔끔한 잔디밭을 경계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또 그는 공공 질서 침해를 규제하는 엄격한 법률들을 제정했다. 거리에 침을 뱉는 행위(벌금 20만 원),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벌금 20만 원), 거리에 휴지를 버리는 행위(벌금 20만 원), 화분에 물을 주다가 거리에 물이 고이게 하는 행위(벌금 20만 원), 도심 주차 따위가 금지되었다. 싱가포르에선 비누 냄새가 난다. 밤에 개가 짖으면 그 개의 성대를 잘라 버린다. 남자들은 더운 날에도 긴 바지만 입어야 하고, 여자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시속 80킬로미터를 넘으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내는 경적이 모든 자동차에 내장되어 있다. 교통 혼잡과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오전 6시부터는 승용차를 운전자 혼자 타고 다녀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직장 동료나 무료 편승자들을 태워 주어야 한다(위반할 때는 벌금 20만 원). 국민들의 행로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경찰은 모든 자동차의 밑부분에 발신기를 부착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이동 상황을 대형 스크린 위에서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에게 자기 이름을 말해야 한다. 도시 곳곳에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민주주의 국가지만, 국민들의 선거권 남용을 막는다는 구실로 투표 용지에 선거인 카드의 번호를 적게 되어 있다. 절도, 강간, 마약 복용, 뇌물 수수에 대해서는 교수형이 내려진다. 태형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이광요는 모든 국민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사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효율에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개인 소득의 향상을 격려하는 한편 ─ 싱가포르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소득 수준을 누리고 있고 능력껏 사유 재산을 늘릴 수 있다 ─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등 부의 분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앙의 자유는 완전하게 보장되지만, 언론은 검열을 받는다. 신문에서 섹스나 정치를 논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1982년 이광요는 남성 우월주의에 기인한 낡은 습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비단 그 나라만의 사정은 아니겠지만, 우수한 두뇌를 가진 남자들이 멍청하고 얼굴만 예쁜 여자들하고만 결혼하는 바람에 똑똑한 여자들이 신랑감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이광요는 학위를 가진 여자와 결혼하려는 사람에게는 장려금을 주고, 학위를 소지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둘 이상 낳을 때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문맹자에 대해서는 많은 돈을 주어 가며 불임 수술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영재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게 하고, 교육 수준이 아주 높은 고급 인력을 위해 해외 여행의 기회를 무료로 마련해 주었다. 이광요는 한 가정에 자녀가 둘이 넘으면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에선 자녀가 이미 둘 있는 가정으로 밤마다 전화를 걸어,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콘돔 사용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광요는 자기의 실험 국가를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와 그의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도박이 그것이었다. 이광요가 어떤 연설에서 인정했듯이, <중국인에게 다른 모든 건 받아들이게 할 수 있어도 마작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 ■■ ㅇ ■■ 아기의 애도 아기는 생후 8개월이 되면 특유의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소아과 의사들은 그것을 <아기의 애도(哀悼)>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자기 곁을 떠날 때마다 아이는 어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죽었다고 믿은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심한 불안감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돌아와도 아기는 어머니가 또 떠날 것을 걱정하며 다시 불안감에 빠진다. 그 나이에 아기는 세상에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기의 애도>는 자기가 세계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 다르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아기는 엄마와 자기가 뗄래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자기 혼자 남게 될 수도 있고, 엄마 아닌 낯선 사람들 ─ 아기에겐 엄마 아닌 모든 사람, 경우에 따라서는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낯선 사람일 수 있다 ─ 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아기는 생후 18개월이 지나서야 어머니와의 일시적인 이별을 범상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기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노년에 이르기까지 경험하게 될 그 밖의 많은 불안 ─ 고독에 대한 두려움, 소중한 존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적대적인 이방인과 마주칠 때의 공포 따위 ─ 의 대부분은 맨 처음 겪는 이 고통의 연장선 위에 있게 될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북미 인디언들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공생 형태를 실현했던 것 같다. 수 족, 샤이엔 족, 아파치 족, 크로우 족, 코만치 족, 그 밖의 어느 부족을 막론하고 그들은 똑같은 원칙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여겼을 뿐 자연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지역의 사냥감이 떨어지면, 사냥터에 다시 사냥감이 번성하도록 다른 곳으로 이주하곤 했다. 따라서 그들이 어디에 머물든 땅이 황폐해지는 일은 없었다. 인디언의 가치 체계에서 개인주의는 명예보다는 수치의 원천이었다. 자기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은 남우세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에 대해서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인디언들은 자동차를 사면 그것을 가장 먼저 요구하는 인디언에게 빌려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고 있다. 인디언 자녀들은 속박 없이 교육을 받았다. 사실 그들은 인생과 자연을 스스로 배워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식물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알아내고 그것을 옥수수 잡종을 만들어 내는 데에 응용했으며, 파라고무나무를 이용하여 비가 새지 않는 천막을 만들 줄 알았다. 또 유럽 인들이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무명을 곱게 짜서 옷을 지었으며, 아스피린(살리실 산)과 키넨, 심지어는 초콜릿의 유용성을 알고 있었다. 인디언 사회는 평등주의적인 사회였다. 물론 추장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의 지도를 따를 때만 추장일 수 있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우두머리를 뽑는 것은 상시적인 일이었다. 어떤 결정에 대해 90명이 따른다 해도, 그것에 찬성하지 않는 10명은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각자 자기 생각에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면 되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누구나 올바른 법률을 찾아내어 그것을 적용하는 셈이었다. 인디언 사회에서는 세습 권력도 영구 권력도 없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파우와우(부족 회의)를 열어 각자의 견해를 개진하였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훨씬 전에 의회 제도가 있었다. 다수가 추장을 신임하지 않으면 그는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들이 가장 빛나는 영화를 누리던 시절에도 직업적인 군대를 보유한 적이 없었다. 평시에는 사냥꾼, 경작자, 가장이었던 사람들이 필요할 때는 모두 전사가 되었다. 그들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목숨 가진 것은 다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적들의 목숨을 함부로 해치지 않았다. 적들이 자기들 목숨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고 방식이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용기를 보여 줄 수 있는 품위 있는 놀이였다. 상대의 몸이 다치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막대기의 둥근 끄트머리가 상대에게 닿는 것으로 전투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그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었다. 상대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피가 내비치면 전투는 즉각 중단되었다. 전투 중에 사망자가 생기는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인디언끼리의 전쟁은 주로 적의 말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백인들이 벌이는 대규모 전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백인들이 노인, 부녀자,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아무나 마구 죽이는 것을 보고 그들이 느낀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단지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도단의 만행이었다. 그래도 북미 인디언들은 남미 인디언들에 비해 더 오랫동안 저항하였다. 남미 인디언 사회는 공격하기가 더 용이했다. 추장의 목을 자르기만 하면 부족 사회 전체가 무너졌다. 그것은 복잡한 계급 제도와 막강한 관료 제도를 가진 체제의 큰 약점이다. 그런 체제는 머리만 손에 넣으면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북미 인디언 사회는 남미 쪽보다 더 분산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카우보이들은 수백 명씩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인디언들을 상대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머리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머리가 수백이었다. 1백 50명이 모인 한 부족을 굴복시키거나 학살하고 나면, 다시 1백 50명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부족을 공격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학살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1492년에 1천만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인구는 1890년에는 15만이었다. 그들 역시 백인들에게 묻어 온 질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1876년 6월 24, 25일에 치러진 리틀 빅 혼 전투에서 백인들은 최대 규모의 인디언들이 결집해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인디언들은 적게는 10명(그 중 전사는 3명)에서 많게는 1만 2천 명(그 중 전사는 4천명)까지 무리를 짓고 있었다. 인디언들은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백인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켰다. 그러나 좁은 지역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다가는 굶어 죽기가 십상이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백인들이 그런 수모를 겪었으니 다시는 자기들을 얕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인디언 부족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갔다. 인디언들을 적대시하던 미국 정부는 1900년 이후에는 그들이 흑인이나 멕시코 계, 아일랜드 계, 이탈리아 계 미국인들처럼 인종의 도가니에 통합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인디언들은 백인의 사회 · 정치 체제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들을 자기네들 것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여겼다. 1990년, 그들의 인구는 1백 50만이었다. 아브라카다브라 <아브라카다브라Habracadabrah>라는 마술의 주문은 헤브라이 말로서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뜻이다. 즉, 말로 나타낸 인들이 실제의 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세 사람들은 열병을 다스리는 주문으로 그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을 마술사들이 술법을 부릴 때 사용하는 주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술사들은 마술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즉 관중이 곧 멋진 구경거리를 보게 될 찰나(말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에 그 글귀를 사용하였다. 그 글귀는 언뜻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 주문을 헤브라이 문자로 적으면 다음과 같이 아홉 글자로 표현된다. HBR HCD B고(헤브라이 말에서는 모음 글자를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HA BE RA HA CA DA BE RA HA가 위와 같이 표기되는 것이다). 그 아홉 글자를 아홉 층으로 배열해서 알레프, 즉 최초의 (HA로 발음된다)로 점차 내려오도록 만들면 다음과 같다. 이 배열은 하늘의 힘을 되도록 넓게 받아들여 사람들에게 내려보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것은 깔때기를 닮은 부적이다.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깔때기 안에서 소용돌이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간다. 그 부적은 보다 우월한 시공(時空)의 힘을 붙들어 한군데로 집중시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HBR HCD BRH HBR HCD BR HBR HCD B HBR HCD HBR HC HBR H HBR HB H 그런데 옛날부터 유대교 라비들이 부여한 그런 의미말고도, 우리는 그 주문에 다른 의미, 즉 우리 우주의 탄생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붙일 수 있다. H, 즉 알레프는 수소를 상징한다. HB, 즉 알레프 베트(알파벳에 해당한다)는 헬륨을 나타낸다. HBR은 산소를 나타낸다. <아브라카다브라>는 단순한 마술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우주, 우리의 시공간을 상징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특별한 주문이다. 아이디어 공화국 개미 사회를 굳이 인간 사회와 비교하나면, 히피 공동체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미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우두머리 또는 위계 제도가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무정부주의 체제에 가깝다. 물론 여왕개미가 있지만, 그 개미는 자기 주거에 틀어박혀 알만 낳기 때문에 여왕이라는 이름에 걸맞는다고는 볼 수 없다. 여왕개미는 정치적인 힘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개미 사회에서는 의사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 걸까? 개미 사회의 정체(政體)는 활발한 의견 제시를 특징으로 삼고 있다.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 개미는 그것에 대해 병정개미나 일개미 집단과 토론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자기 관점이 올바르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의견을 내놓은 개미가 동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주장도 소홀히 다루어지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개미가 토질이 더 좋은 곳으로 집을 옮기자는 제안을 내놓는다고 하자. 그 개미는 자기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흙덩이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발의자가 도시 내의 어떤 집단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그 집단은 그 의견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 의견을 내놓은 지 5분도 안 되어 도시 전체가 옮겨질 수도 있다. 개미 도시는 그렇게 평범한 시민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발전한다. 어떤 제안이 실현되었다고 해서, 그 제안의 공로가 발의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진 사실에 대한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성공할 경우에 얻는 이점이 있다면, 그 개미가 동료들을 더 신속하게 설득하는 법을 알게 됨으로써 다음 번에 제안할 때는 더욱 잘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그 개미가 받을 상은 바로 경험의 축적이며, 오로지 행동하는 자만이 그런 보상을 향유할 수 있다. 실패할 경우라도 발의자에게 비난이 뒤따르는 일은 없다. 개미 도시에서 실패나 성공은 언제나 발전을 위한 보충적인 정보를 의미할 따름이다. 학위나 직위가 없어도 어떤 구성원이든 필요할 때는 사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직함을 가졌다가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인간 사회에 비해서 한 수 위가 아닌가 싶다. 인간 사회는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유능한 인재로 키워 주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젊은이들의 발언권을 유보하고 순치(馴致)를 강요한다. 그럼으로써 인간 사회는 엄청난 에너지와 창의력을 낭비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아이디어를 찾거나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구하고자 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시토 수도회 수사들의 묵상법을 본떠서 달리 자신이 개발한 방법이다. 수프 접시 하나와 작은 숟가락 하나를 갖다 놓고, 큼직한 팔걸이가 달린 의자에 앉는다. 잠귀가 어두운 사람에겐 큰 숟가락이 필요하다. 팔걸이에 팔을 얹은 채 엄지와 중지로 숟가락을 살며시 잡고, 그 아래 바닥에 접시를 엎어놓는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생각하면서 잠을 청한다. 숟가락이 접시 위에 떨어져 갑자기 잠에서 깨어날 때, 문제가 해결된다. 아프리카 두더지 아프리카 두더지heterocephalus glaber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북부 사이의 동 아프리카에 산다. 그 동물은 앞을 보지 못하며 분홍색 살갗에는 털이 나있고, 앞니를 이용해서 수 킬로미터에 걸친 땅굴을 팔 수 있다. 그러나 그 동물의 놀라운 점은 다른 데 있다. 아프리카 두더지는 곤충과 똑같은 방식으로 모듬살이를 하는 유일한 포유류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두더지의 한 군체에는 평균 5백 마리의 개체가 모여 산다. 그 개체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개미 세계에서와 똑같이 주요한 세 계급, 즉 생식 계급, 노동 계급, 병정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미 세계의 여왕개미에 해당하는 한 마리의 암컷은 한 배에 서른 마리까지 모든 계급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유일한 출산자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암컷은 자기 오줌 속에 냄새 나는 물질을 분비해서 굴 속에 있는 다른 암컷들의 생식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을 억제시킨다. 아프리카 두더지가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생물의 종이 군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프리카 두더지는 덩이줄기와 뿌리를 먹고 산다. 이따금 덩치 큰 먹이가 걸리기도 하는데 대개 그 먹이는 아주 널리 산재되어 있다. 독립 생활을 하는 설치류 동물도 자기 앞으로 곧장 수 킬로미터의 땅굴을 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듬살이를 하게 되면 먹이를 찾을 기회가 훨씬 많아진다. 작은 덩이줄기 하나라도 발견되면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두더지가 개미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수컷이 교미를 하고 나서도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알린스키 병법 히피 선동가이자 미국 최대 노종조합의 창립자인 솔 알린스키는 한때는 고고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고 알 카포네 밑에서 갱 노릇을 하기도 했던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1970년에 어떤 지침서 한 권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 데 필요한 열 가지 전술 법칙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1) 힘이란 당신이 지닌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2) 당신의 적이 자기 경험을 발휘할 수 있는 싸움터를 벗어나, 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새로운 전장(戰場)을 창안하라. 3) 적의 무기로 적을 쳐부수고, 적의 전술 지침에 나오는 요소들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라. 4) 말로 대적할 때는 익살이 가장 효율적인 무기다. 상대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더 나아가서 상대방 혼자 우스꽝스런 짓을 하도록 이끌 수 있으면, 상대가 당신에게 다시 도전하기는 어려워진다. 5) 어떤 전술을 상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잘 통하는 전술일수록 자주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어떤 전술을 반복 사용해서 그 효과와 한계를 알게 되었으면, 하다못해 정반대의 전술을 채택해서라도 그것을 계속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6) 적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적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전력을 재정비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시의 적절한 외적 요소들을 모두 사용하여 적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여야 한다. 7) 실행에 옮길 수 없으면,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허장성세는 적에 대한 억제력을 모두 상실하게 만든다. 8) 겉으로 보이는 단점은 가장 훌륭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자기의 특성 하나하나를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9)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승자의 몫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선출된 지도자는 낡은 정책을 대체할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장악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10) 목표를 하나로 집중시켜야 하고, 전투중에는 그것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작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상징적이어야 한다. 암개미의 운명 암개미의 운명보다 더 아름답고 더 비참한 게 무엇이 있을까? 비바람이 스치고 간 활짝 갠 여름날이면 개미들의 혼인 비행이 시작된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다른 개미들과는 달리 날개를 달고 있는 수개미와 암개미들이 개미 도시의 꼭대기로 모여든다. 암개미들이 먼저 공중으로 날아 오르면, 훨씬 몸집이 작은 수개미들이 곧바로 뒤따른다. 그러고 나면, 한바탕 흐드러진 대향연이 펼쳐진다. 암개미들은 상대를 바꿔 가며 많은 수개미들과 흘레를 붙는다. 그 수가 다섯, 열을 넘어 스물을 헤아린다. 수개미들은 더할 나위 없는 황홀경을 맛보고 그 기쁨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어떤 개미들의 경우에는, 정액을 사출하는 순간에 수개미의 몸이 폭탄처럼 터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 개미들의 혼인 비행이 끝나고 나면, 그 주변에 수개미 시체의 파편이 널리 흩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짝을 지어 한데 어우러진 개미들은 황홀경을 맞기 전에 하늘을 활공한다. 개미들의 사랑은 3차원 공간에서 펼쳐진다. 수개미들의 정액으로 암개미의 저정낭(貯精囊)이 가득 찬다. 암개미는 그날 하루에 비축한 정액으로 15년 동안 매일 알을 낳을 수 있다. 이제 암개미는 도시를 건설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암개미들은 반복된 오르가슴 때문에 대단히 흥분되어 있기가 십상이어서 자가의 진로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덕분에 새들이 횡재를 만난다. 새들은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온 암개미들을 게걸스럽게 삼켜 버린다. 암개미들의 수난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치기도 하고 거미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장애를 극복하고 땅에 닿으면, 이번엔 개미귀신, 도마뱀, 박쥐, 개구리, 거북, 고슴도치 따위가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개미 도시 한곳에서 암개미 2천 마리가 날아오르면, 그 중에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데 성공하는 암개미는 겨우 한 마리나 두 마리뿐이다. 살아 남은 암개미에게도 시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도 산란이라는 가장 혹독한 시련이 남아 있다. 여왕개미 ─ 수컷의 정자를 받아들인 암개미는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다 ─ 는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땅속에 들어가 몸을 반쯤 숨긴다. 그러나, 그렇게 꼼짝 않고 있으면 먹이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여왕개미는 우선 아무 쓸모가 없게 된 제 날개부터 먹어 치운다. 그 다음에는 주위에 널려 있는 먹을 거리를 모조리 삼켜 버린다. 이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해결책이란, 바로 제가 낳은 알을 먹는 것이다. 여왕개미는 알 하나를 낳고는,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알들을 낳기 위해 그것을 먹는다. 그때부터 으스스한 산술이 시작된다. 여왕개미는 알 세 개를 낳아 그 중 둘을 먹고 하나를 키운다. 나중에 그것을 마저 먹고 다시 알 세 개를 낳는다. 그 중 세 번째 알은 좀더 오랫동안 남겨 둔다. 그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 뒤에, 마침내 개미 한 마리가 알을 깨고 나온다. 그 무녀리 개미는 가냘프고 허약하지만, 구멍을 빠져 나가 밖에서 먹이를 날라 올 수 있다. 그럼으로써 여왕개미는 더 이상 알을 먹지 않아도 된다. 그 개미가 날라다 준 먹이를 먹고 여왕개미는 마침내 품종이 우수한 알들을 낳기 시작한다. 그 알들이 부화함으로써 제 1 세대의 <정상적인> 시민들이 출현한다. 그들의 첫 임무는 여왕을 먹여 살린 허약한 무녀리 개미를 죽이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여왕개미가 알을 먹었던 고통스런 과거가 깡그리 잊혀진다. 도시를 태어나게 한 최초의 개미를 죽임으로써 개미 사회는 식의(食蟻)의 관습으로 얼룩진 더러운 역사를 씻고 새롭게 출발한다. 이후에 태어날 새로운 세대들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잔학 행위와 도시를 살려 낸 영웅적인 선조의 죽음으로부터 자기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게 될 것이다. 에너지 놀이 동산의 모노레일 열차에 오를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 하나는 안쪽 차량에 앉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다. 그 경우에 예민한 승객은 대단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속도를 즐긴다기보다 참아 낸다. 눈을 살짝 뜰 때마다 그의 공포는 한층 더해진다. 두 번째 태도는 열차의 첫량 첫줄에 앉아서 눈을 크게 뜨고 자기가 곧 날아갈 것이며 점점 빨리 가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경우에 승객은 황홀한 생동감을 맛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기치 않았을 때 스피커에서 하드록 음악이 튀어나오면 그 음악은 난폭하게 느껴지고 귀청을 찢어 놓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간신히 그것을 참아 낸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즐기면서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 청중이 격렬한 음악에 자극받고 완전히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힘을 발산하는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땐 위험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에피메니데스 역설 <그 명제는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구성한다. 어떤 명제가 거짓인가? 그 명제다. 그 명제가 거짓이라면, <그 명제는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참이 된다. 고로 그 명제는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거짓이다. 고로 참이다. 그러므로 거짓이다. 이 순환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역경』 인생은 흔히 불역(不易)의 상황들이 천변만화로 재생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중국인들은 일찍이 그 사실을 깨닫고 인생의 모든 상황을 망라한 운명 체계를 만들었다. 그것이『역경』이다. 역은 처음에 점을 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신의 뜻을 묻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서양인들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는가 뒷면이 나오는가를 보고 어떤 결정을 내리듯이 원래는 음이냐 양이냐를 가리는 단순한 체계였다. 그러던 것이 점괘를 구성하는 효(爻)가 점점 늘어나더니 3효를 거쳐 6효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괘 하나를 구성하는 효가 여성 개이므로 당연히 점괘의 수는 64개가 된다. 그 64개는 인생에서 펼쳐지는 여순네 가지의 변화를 나타낸다. 결국 인생은 쌍륙놀이에 비유할 수 있다. 말들이 쌍륙판을 한 칸씩 돌아다니듯, 우리는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두루 겪으며 산다. 변화를 겪는 차례가 각자 다를 뿐, 우리의 모든 운명은 하나인 셈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열한 번째 계명 오늘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파리 시가지가 거대한 삽으로 퍼올려진 다음 투명한 단지에 담겨졌다. 단지 속에서 모든 것이 너무 흔들려서 에펠 탑 끝이 우리 집 화장실 벽과 부딪혔다. 자동차들은 길에서 부딪히고, 가로등은 바닥에서 치솟아 있었다. 가구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빠져 나왔다. 밖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개선문은 산산조각이 났고, 노트르담 성당도 거꾸로 되어 종루가 땅에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지하철 차량들이 갈라진 땅에서 튀어나와 으깨어진 사람들을 뱉어 냈다. 나는 폐허 속으로 달려가 거대한 유리벽 앞에 도착했다. 그 뒤에 눈이 하나 있었다. 하늘 전체만큼이나 큰 외눈이 나를 주시했다. 잠시 후, 나의 반응을 보고 싶어하는 듯 그 눈은 커다란 숟가락 같은 것으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종소리가 울렸다. 아파트의 아직 깨지지 않은 유리들이 모두 박살났다. 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았는데 크기가 태양의 백 배는 되었다. 나는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꿈을 꾸고 난 뒤로 나는 더 이상 숲으로 개미집을 파러 가지 않는다. 지금 키우고 있는 개미들이 모두 죽고 나면 다시는 개미집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그 꿈은 열한 번째 계명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나에게 일깨웠다. 나는 그 계명을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실천하려고 한다. 그 계명이란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27)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이란 말은 다른 <모든 생명>을 뜻한다. 27)『논어』제 12, 「顔淵」편, <己所不欲, 勿施於人.> 역학 관계 쥐들을 상대로 하나의 실험이 행해졌다. 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디디에 드조르라는 연구자가 쥐들의 수영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는 쥐 여섯 마리를 한 우리 안에 넣었다. 그 우리의 문은 하나뿐인데, 수영장으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쥐들은 그 수영장을 건너야만 먹이를 나누어 주는 사료통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실험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먹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 여섯 마리의 쥐가 다 헤엄을 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즉, 헤엄을 치고 먹이를 빼앗기는 쥐가 두 마리, 헤엄을 치지 않고 먹이를 빼앗는 쥐가 두 마리, 헤엄을 치고 먹이를 빼앗기거나 빼앗지 않는 독립적인 쥐가 한 마리, 헤엄도 못치고 먹이도 빼앗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쥐가 한 마리였다. 먹이를 빼앗기는 두 쥐는 물 속으로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하러 갔다. 그 쥐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자, 먹이를 빼앗는 두 쥐가 그 쥐들을 때리고 머리를 물 속에 처박았다. 결국 애써 먹이를 가져 온 두 쥐는 자기들의 먹이를 내놓고 말았다. 두 착취자가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야 굴복한 두 피착취자는 비로소 자기들의 크로켓을 먹을 수 있었다. 착취자들은 헤엄을 치는 일이 없었다. 그 쥐들은 헤엄치는 쥐들을 때려서 먹이를 빼앗기만 하면 되었다. 독립적인 쥐는 아주 힘이 세기 때문에 착취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천덕꾸러기 쥐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쥐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쥐들이 싸울 때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이번에는 스무 개의 우리를 만들어 똑같은 실험을 했다. 스무 개의 우리에서 역시 똑같은 구조, 즉 피착취자 두 마리, 착취자 두 마리, 독립적인 쥐 한 마리, 천덕꾸러기 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러한 위계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이번에는 착취자 여섯 마리를 함께 우리에 넣어 보았다. 그 쥐들은 밤새도록 싸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쥐들 가운데 두 마리가 식사 당번이 되었고, 한 마리는 혼자 헤엄을 쳤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참아 내고 있었다. 착취자들에게 굴복했던 쥐들을 가지고도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그 쥐들 가운데 두 마리가 왕초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실험에서 우리가 정작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은, 쥐들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서 두개골을 열어 보았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바로 착취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착취자들은 피착취자들이 복종하지 않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음에 틀림없다. 연금술 연금술의 모든 조작은 세계의 탄생을 모방하거나 재연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연금술의 첫 단계는 까마귀의 단계, 즉 <흑색화 단계>라고 불린다. <마테라아 프리마(최초의 물질)>를 취하여 거기에 흙을 넣은 다음 열을 가하여 굽는 배소(焙燒)의 단계다. <흑색화>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불길을 세게 하여 더 태우면, 검게 탄 고체가 액체로 변한다. 즉 흙의 성질이 물의 성질로 바뀌는 것이다. 그때 다시 불을 때면 액체가 증기가 되면서 원소들이 침전된다. 이 조작을 <백색화 단계>라고 부른다. 액체를 더 끓이면 두 번째 침전물을 얻을 수 있다. 이 작업을 <적색화 단계>라고 부른다. <승화>라고도 하는 그 마지막 단계에서 금가루가 고착된다. 그 금분은 다시 <현자의 돌>을 낳게 될 것이다. 그 금분은 예컨대 <원탁의 기사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 메를랭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야기를 짓는 모든 행위는 현자의 돌을 얻는 과정, 곧 우주 탄생의 역사를 재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원석에서 황금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는 어떤 비약도 없다. 연금술은 하나의 비유다. 현자의 돌은 각자의 머릿속에 있다. 그것은 세계 안에 훌륭하게 존재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상징할 뿐이다. 물론 그것을 찾는 것 역시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연대 의식 연대 의식은 기쁨이 아닌 고통에서 생긴다. 누구나 즐거운 일을 함께한 사람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친근함을 느낀다. 불행한 시기에 사람들은 연대 의식을 느끼며 단결하지만, 행복한 시기엔 분열한다. 왜 그럴까? 힘을 합해 승리하는 순간, 각자 자기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 친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공동의 성공을 안겨 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족이 상속을 둘러싸고 사이가 벌어지는가? 성공을 한 다음의 로큰롤 그룹이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정치 단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분열하는가? 벗들과의 우정을 간직하려면, 자기들이 성공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실망한 일, 실패한 일을 자꾸 들먹이는 쪽이 낫다. 어원적으로 보면, <공감sympathie>이란 말은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그리스 어 에서 유래한다. 마찬가지로 <동정compassion>이란 말 또한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뜻의 라틴 어 에서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순교자들을 기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도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다. 저마다 상상 속에서나마 골고다의 언덕이나 선구자들의 고난을 겪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끈끈한 연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어떤 집단에 응집력과 결속력이 건재하는 것이 그 골고다의 언덕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영양 교환 인간이 개미에게서 모방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먼저 예로 드는 것은 입맞춤이다. 흔히 말하기를, 입맞춤은 기원전 3백 년경 로마 인들이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개미들의 영양 교환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양 교환은 고결한 관용의 행위다. 개미들의 뱃속에는 사회위(社會胃)라는 제2의 위가 있다. 그 위에서는 먹이가 소화되지 않고 갈무리될 뿐이다. 그 먹이는 구걸하는 개미를 위한 것이다. 그러면 영양 교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굶주린 개미가 다른 개미를 찾아가 영양 교환을 요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요구를 받은 개미는 자기 입을 구걸한 개미의 입에 갖다 대고, 사회위에 갈무리된 먹이를 되올려 준다. 영이라는 수 영은 기원전 2세기 중국의 산술이나(점으로 표기) 그보다 훨씬 앞서 마야 인들의 문명에서(나선으로 표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영은 인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7세기에 페르시아 인들은 인도인들의 영을 모방했다. 몇 세기 후에 아라비아 인들이 페르시아 인들로부터 그 수를 빌려 왔고 그것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을 붙였다.(아라비아 말로 시파는 <비어 있음>을 뜻한다). 유럽에는 13세기가 되어서야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소개로 영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피보나치(필리오 디 보나치를 줄여 부르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피사의 레오나르도라고도 불렸는데, 그 별명과는 달리 베네치아의 상인이었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영의 개념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설명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영이 기존의 몇몇 개념에 수정을 가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교회는 영이 너무 많은 개념들을 뒤엎는다고 판단했다. 영이 악마적이라고 생각하는 종교 재판관들마저 있었다. 사실, 어떤 수와 곱하든 그 수를 무(無)로 만들어 버리는 영은 사탄의 수라는 오해를 받을 법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교회는 영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회계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영을 사용하는 아주 <물질주의적인> 이점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영은 당시로서는 완전히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다른 수에 붙이면 그 수를 열 배로 만들 수 있었다. 영을 덧붙임으로써 계량 단위의 변화를 장황하게 표시하지 않고도, 십 · 백 · 천 · 만의 계수를 얻게 되었다. 영은 아무 가치가 없는 수로서, 다른 수에 오른쪽으로 가져 가면 어마어마한 힘을 주고, 왼쪽으로 가져 가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영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 있는 위대한 수이다. 영이라는 마법의 문이 있기에 우리는 뒤집어진 평행 세계, 즉 음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왜와 어떻게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개미는 먼저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개미 세계에는 <유죄>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인간 세계는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외계 생물 우리는 다른 문명을 발견할 때마다 누가 더 강한 가를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이 밝혀지면 다른 문명의 사상과 문화를 파괴하고 우리 것을 강요하곤 했다. 우리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문명과의 만남은 언제나 그 문명의 파괴로 귀결되었다. 중남미 대륙의 발견은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의 파괴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발견은 원주민 문화의 파괴로, 북미의 발견은 인디언 문화의 파괴로 이어졌다. 우리는 아직 다른 사고 방식과의 만남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외계의 지능 생물을 탐색하기 위한 사업인 SETI28) 프로그램은 너무 일찍 시작되었다. 설사 우리가 외계 생물로부터 어떤 응답 메시지를 받는다 한들,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어느쪽이 더 강한가를 따지는 물음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리는 문화의 공생을 이루어 낼 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행성의 하찮은 동반자인 개미들은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개미들과 함께 우리는 다른 문명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방식을 훈련할 수 있다. 이 지중 생물과의 의사 소통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외계 생물과도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28) Search for Extra Terrestral Intelligence.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한데서 죽음을 맞으면, 죽는 순간부터 파리와 구더기와 빈대 따위가 우리 시체 위로 차례차례 몰려와서는 변함없는 안무법에 따라 한바탕 춤을 벌인다.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배우는 청파리calyphora다. 그것들은 썩지 않은 싱싱한 살을 먹고 시체의 조직 사이에 쉬를 깔긴다. 그러다가 시체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 싶으면 날아가 버린다. 그 파리들은 부패한 것은 뭐든지 싫어하기 때문이다. 금파리muscina가 그 뒤를 잇는다. 금파리들은 약간 부패한 살을 좋아한다. 그것들이 살을 먹고 쉬를 슬고 나면, 이번에는 쉬파리sarcophaga가 찾아와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파리의 첫 비행대들이 작전을 벌이고 나면 딱정벌레목의 곤충인 검은 수시렁이와 비계 수시렁이가 출현한다. 그것들 역시 우리가 어머니인 자연 속에서 재순환할 수 있도록 시체를 청소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것들이 일을 끝내면, 치즈 파리piophila ─ 발효 식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 파리의 애벌레들은 묑스테르나 코르시카 치즈처럼 오랫동안 숙성시킨 치즈에서도 발견된다 ─ 가 날아온다. 춤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침파리ophira, 송장벌레, 작은 거미 따위다. 그것은 각자 자기 몫만을 먹고 다른 자들의 몫은 건드리지 않는다. 시체를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해 날아온 곤충들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사망 후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시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따위를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으레 찾아오는 곤충의 무리 중 어떤 것이 빠졌다면, 그 시체가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람도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똑같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의 호감을 사고 싶으면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버릇을 그대로 흉내내면 된다. 식사 때에 특히 그런 버릇들이 잘 나타나므로, 그 시간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상대를 잘 살피고 있다가, 그 사람이 턱을 문지르면 당신도 턱을 문지르고, 그가 손가락으로 감자 튀김을 집어먹으면 당신도 그렇게 하고, 그가 냅킨으로 입을 자주 닦으면 당신도 똑같이 행동한다. 또 상대가 말을 할 때 당신 눈을 바라보는지, 음식을 먹으면서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빵에 손을 대는지 안 대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 사람이 자기 빵으로 접시의 소스를 닦는다면, 그런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당신도 얼른 그대로 한다. 밥을 먹을 때오 같은 가장 허물없는 순간에 상대의 버릇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인 메시지를 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된다. <나는 당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버릇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교육받은 것도 생각하는 것도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 우리의 몸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도구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체 기관들이 자동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잊고 산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 우리 눈꺼풀은 과도한 빛을 막기 위해 신축성을 지니고 있다. ─ 체온 조절 체계 덕분에 우리 몸의 내부 온도는 섭씨 37.2도 안팎에서 유지된다. ─ 우리 몸에 미생물이나 전염성 병균이 들어오면 예외적으로 발열 체계가 작동하면서 그것들을 태워 버린다. ─ 우리 콧구멍 속에는 털이 있어서 공기 중의 먼지와 불순물을 걸러 준다. ─ 우리 손톱은 전투시에 사용할 수 있는 천연의 무기다. ─ 우리 두개(頭蓋) 위에는 털이 덮여 있어서 태양 광선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막아 준다. ─ 우리 콧구멍은 아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빗물이 들어갈 염려가 없다. ─ 남자들의 고환은 몸의 다른 부분보다 더 시원한 곳에 정자를 저장하기 위해 몸통 밖에 나와 있다. ─ 우리 몸의 표피는 땀이라는 액체를 분출함으로써 지나치게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지방이 두둑히 들어 있는 우리 엉덩이는 유사시에 큰 불편 없이 몇 시간 동안 앉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우리 속눈썹은 스폰지 구실을 함으로써 눈을 빗물로부터 지켜 준다. ─ 우리 눈조리개는 빛의 세기에 따라 동공의 크기를 자동 조절함으로써 우리 눈에 가장 명료한 상이 맺히도록 해준다. ─ 우리 살갗은 탄력적이다. ─ 우리 뼈대는 심장과 뇌를 최대로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 우리 귀는 소리를 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오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우리 입은 피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점막과 입술로 둘러싸여 있어서 음식을 집어 넣은 순간에 그 온도를 감지할 수 있다. 우주 우주는 복잡성을 지향하고 있다. 수소에서 헬륨으로, 헬륨에서 탄소로, 끊임없이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다단해지는 것이 만물의 진화하는 방향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행성 가운데 지구가 가장 복잡하다. 지구는 자체의 온도가 변화할 수 있는 지대에 들어 있다. 대양과 산이 지구를 덮고 있다. 생명 형태의 다양성은 거의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지력으로 다른 생명들을 압도하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개미와 인간이다. 신은 지구라는 행성을 어떤 실험을 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은 어느쪽이 더 빨리 가는가를 보려고 완전히 상반된 철학을 가진 두 종을 의식의 경주 위에 던져 놓았다. 그 경주의 목표는 아마도 지구적인 집단 의식에 도달하는 것일 게다. 즉 그 종의 모든 뇌를 융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보기에는 의식의 경주가 나아가게 될 다음 단계이고 복잡성을 지향하는 진화의 다음 수준이다. 그러나 선두에 선 두 종은 비슷한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인간은 괴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뇌의 크기를 부풀려 왔다. 장밋빛이 도는 커다란 꽃양배추 같다 ─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개미들은 수천 개의 작은 뇌를 아주 미묘한 의사 소통 체계로 결합하는 방법을 택했다. 개미들의 양배추 가루 더미와 인간의 꽃양배추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보면 재료나 지능 면에서 동등하다. 경쟁은 막상막하이다. 그러나 지능을 가진 두 생명이 나란히 달리지 않고 협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주 공간 아무리 좋은 망원경을 사용한다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우주 공간이 아니다. 과거의 빛에 둘러싸인 우리는 그저 과거의 우주 공간을 뒤늦게 볼 수 있을 뿐인다. 오늘 우리 눈에 도달한 별들의 상은 오래 전에 방사된 빛이 일정한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아온 결과이다. 별빛들은 우리의 밤 하늘을 수놓기까지 아주 먼 여로를 거쳐온 것이다. 우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시계(視界)는 기다란 무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 시계는 우리 우주의 가장 깊숙한 원천에 닿아 있다. 원수를 사랑하기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웬다트 부족 캐나다의 휴런 족 인디언인 웬다트 부족 사람들이 사냥을 할 때면, 짐승을 죽이기 직전에 자기가 왜 죽이려 하는지를 그 동물에게 설명한다. 그들은 짐승을 잡아먹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큰소리로 이야기한 다음에 방아쇠를 당긴다. 사냥꾼이 그렇게 짐승의 살과 가죽이 없으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면, 그 짐승이 그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너그럽게 자기 목숨을 내놓는 거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유토피아 이야기 : 기원(起源) 유토피아라는 말은 1516년 영국인 토마스 모어가 만들어 냈다. 그리스 어 <우u>는 부정의 접두사이고, <토포스topos>는 장소를 뜻한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본주의 철학자이자 외교관, 대법관이었던 모어는 세금도 가난도 범죄도 없는 사회 체계를 가진 경이로운 섬을 묘사하면서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불렀다. 그는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첫 번째 특징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그가 묘사한 이상향은 다음과 같다. 한 섬에 10만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가구 단위로 편성되어 있으며, 50가구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시포그란트라는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지도자들이 모여 평의회를 구성하고 네 명의 후보 중에 한 사람의 군주를 뽑는다. 군주의 지위는 종신제이지만, 그가 전제적인 행동을 보일 때는 퇴위시킬 수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폴레트라는 용병을 부리는데, 그 병사들은 전투중에 적들을 죽이고 자기들도 죽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쓸모가 다하면 전쟁의 도구가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어 있는 셈이다. 화폐는 없고, 주민들은 각자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 물건을 구한다. 집들은 모두 똑같고 자물쇠가 없다. 누구나 한곳에 눌러 살지 않고 10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 무위도식은 금지되어 있으며, 가정부, 사제, 귀족, 하인, 거지 따위는 없다. 모두 노동을 하므로 일일 노동 시간을 6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2년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할 의무가 있다. 간통을 범하거나 유토피아에서 도망치려고 기도한 자는 자유인의 권리를 잃고 노예가 된다. 그러면 그는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소신을 굽힐 줄 모르던 토마스 모어는 1535년 자기 이상향과는 너무 동떨어진 현실 세계에서 감히 영국 왕 헨리 8세의 이혼을 비판하고 나섰다. 왕은 즉시 그를 런던 탑에 투옥하고 사형을 내렸다. 유토피아 이야기 : 아담 파 신자들 15세기 초엽 보헤미아에서 교회의 개혁과 독일 영주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후스 파 신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은 신교의 선구자였다. 그들 중에서 급진적인 한 집단이 떨어져 나왔다. 아담 파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해 이론을 제기했다. 그들이 보기에, 신에게 다가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담과 똑같은 조건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블타바 강 한복판의 섬에 자리를 잡고, 나체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공유화하고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살았던 지상 낙원의 삶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사회 제도가 철폐되었다. 화폐, 귀족 계급, 정부, 군인, 자산 계급, 유산 상속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작을 삼가고 야생 열매와 채소만을 먹는 채식 생활을 했다. 교회도 성직자도 필요치 않았다. 그들은 신에게 직접 예배를 드리고 살았다. 그러한 급진주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후스 파 신자들은 그들의 지나친 행동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신에 대한 예배를 간소하게 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아담 파의 경우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후스 파 신자들은 블타바 강에 있는 섬을 포위하고 아담 파 신자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학살하였다. 유토피아 이야기 : 오로빌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 오로빌(오로르빌)29)의 모험은 인간이 시도한 가장 흥미로운 이상주의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1968년 뱅골 철학자 스리 오로벵도와 프랑스 여류 철학자 미라 알파사(<어머니>라 불리었음)는 그곳에 이상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라로부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절대적 이상향을 추구하던 유럽 인들이 오로빌로 모여들었다. 남녀 모두 풍차, 수공업 공장, 배수로, 정보 센터, 벽돌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 작물을 심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영적 경험을 세세히 기록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아있는 <어머니>를 신으로 받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영예를 사양했다. 그러나 스리 오로벵도가 죽고 나자,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라 알파사는 오래지 않아 숭배자들의 요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들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살아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죽은 여신이라도 되라고 강요했다. 미라 알파사는 스스로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미라 알파사는 억지 춘향으로 여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머니>는 아주 쇠약해 보였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과 숭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폭로하려 하자, 숭배자들은 그녀의 말을 막고 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는 자기를 숭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매일매일 가하는 고통 때문에 점점 쭈그렁 노파가 되어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유여곡절 끝에 자기의 옛 친구들에게 은밀한 전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은 여신, 즉 더 쉽게 숭배할 수 있는 여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원 요청은 헛된 것이 되었다.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들은 즉각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최후의 통신 방법으로, 그녀는 갇혀 있던 방안에서 자신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어머니>는 1973년에 죽었다. 십중팔구는 치사량의 비소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오로빌 공동체는 그녀를 여신으로 예우하면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다. 이상 세계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그들은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나갔다. 그들이 벌인 많은 소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때 가장 야심 만만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실험의 하나였던 오로빌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29) 새벽을 뜻하는 aurore와 도시를 뜻하는 ville을 합친 것. 유토피아 이야기 : 텔렘 수도원 1534년 프랑수아 라블레30)는『가르강튀아』에 묘사된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거기에는 통치 기구가 없다. <자기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거늘,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으리오> 하는 것이 라블레의 생각이다. 통치하는 자가 없으므로 수도원의 공동 생활자들은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텔렘 수도원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까닭은 거주자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혈통 좋고 정신이 자유롭고 교양 있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남선녀들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여자들은 열 살, 남자들은 열두 살 때 들어간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할 마음이 나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쉬고, 마시고, 놀고, 사랑을 나눈다. 시계가 없으므로 시간의 흐름은 잊고 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다만 소요, 폭력, 분쟁 땅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겨운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수도원은 루아르 강 근처의 포르 위오 숲에 있다. 방은 9천 3백 32개이며 성벽은 없다. <성벽은 음모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성과 같다. 지름이 60보쯤 되는 둥근 망루도 여섯 채가 있다. 각 망루의 높이는 6층 건물에 해당한다. 하수도는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서관이 여러 곳에 있고, 중앙에는 연못이 있으며, 미로 모양의 포도(鋪道)를 갖춘 공원도 있다. 그러나 라블레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이상향이 언젠가는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과 선동과 불화 때문에 붕괴되고 말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다. 30) Francois Rabelais(1494 ~ 1553). 프랑스의 작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수도원에서 보내며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에 이단으로 취급되던 그리스 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독습하였다. 수도원을 나온 뒤, 고대 문화를 전범으로 삼는 인본주의자로서 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을 연구하였다. 의사와 해부학 교수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므동의 주임 신부를 역임하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프랑스 산문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안겨 준『팡타그뤼엘』(1532년)과『가르강튀아』(1532년) 등의 장엄하면서도 익살스러운 5부작 소설을 통해, 고대 그리스 · 로마의 학문과 도덕에 관한 인본주의자들의 열렬한 애정과 그들의 정치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육체와 정신의 균형 속에서 사는 행복을 찬미하였다. 온갖 수준의 프랑스 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풍자적인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가장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가장 방자한 해학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유토피아 이야기 : 팔랑스테르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1772년 브장송에서 나사(羅絲)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그는 인류를 위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을 드러냈다. 1793년에 그는 자기의 계획을 도의회 의원들에게 설명했지만, 그들의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그것에 낙담한 푸리에는 얌전히 살기로 결심하고 회계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집념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를 계속하여 자기가 꿈꾸는 사회를『사랑 가득한 신세계』와 같은 여러 저서를 통해 아주 면밀하게 묘사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1천 6백에서 1천 8백명으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공동체(팔랑주)가 가족을 대체하며, 혈족 관계나 지배 · 피지배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 위해 각자 약간의 세금을 내지만, 통치 기구의 권한은 최소한으로 엄격하게 재한된다. 중요한 결정은 마을의 중앙 광장에 함께 모인 가운데 이루어진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주택 단지에 모여 산다. 푸리에는 그것을 팔랑스테르31)라고 불렀다. 푸리에는 자기가 생각한 이상적인 팔랑스테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3층에서 5층 건물로 이루어진 성 같은 곳인데, 여름에는 분수 때문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볕이 잘 드는 길들이 나 있고, 중앙에는 극장, 휴게실, 도서관, 기상대, 교회당, 전신국이 있다. 그 후 푸리에의 후예들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미국 등지에서까지 팔랑스테르를 건설하였다. 프랑스에서는 1859년에 난로의 발명자인 앙드레 고댕이 푸리에의 팔랑스테를 본받아 생산자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1천 2백 명이 함께 살면서 난로를 만들고 이익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그 협동 조합은 오로지 고댕 가문의 가부장제적인 권위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31) 집단, 공동체를 뜻하는 <팔랑주>와 수도원을 뜻하는 <모나스테르>의 앞과 뒤를 따서 만든 말. 육이라는 수 6은 창조를 뜻하는 수다. 하느님은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에는 휴식을 취했다. 클레망 달렉상드리에 따르면, 우주는 서로 다른 여섯 방향에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즉, 동서남북과 천칭점(관측점을 기준으로 천구상 가장 높은 점)과 천저점(관찰자를 기준으로 천구상의 가장 낮은 점)이다. 인도에서 양트라고 부르는 여섯 뿔박이 별은 사랑의 행위, 즉 요니와 링감의 결합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옥새라고도 불리는 다윗의 별을 헤브라이 사람들은 우주를 이루는 모든 요소의 총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위로 뾰족한 삼각형은 불을 뜻하고 아래로 뾰족한 삼각형은 물을 뜻한다. 연금술에서는 별의 여섯 개 뿔이 각각 하나의 금속과 혹성에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위쪽에 있는 뿔은 달과 은에 해당한다. 시계 반대 반향으로 돌면서 차례로 금성과 구리, 수성과 수은, 토성과 납, 목성과 주석, 화성과 철에 해당한다. 여섯 원소와 여섯 혹성이 오묘하게 결합되면서 중앙에는 태양과 금이 높인다. 회화에서 여섯 뿔박이 별은 색깔들이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보여 주기 위해서 사용된다. 모든 색깔을 결합하면, 가운데 육각형 안에 하얀 빛이 만들어진다. 음모가들이 지배하는 시대 인간 사회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조직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복잡한 위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관리자들>,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제한된 권리를 지닌 <창조자들> 집단을 지도하거나 관리하고, <중개자들>이 분배를 구실로 창조자들의 노동산물을 가로챈다. 개미 세계에 일개미, 병정개미, 생식개미, 세 계급이 있듯이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는 관리자, 창조자, 중개자라는 세 계층이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두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권력 투쟁은, 한 사회가 창조자들이 우대받는 체제에서 관리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체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다. 수학자이자 <붉은 군대>의 창설자인 토로츠키가 음모가인 스탈린에게 밀려남으로써 창조아의 시대에서 관리자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사회 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모을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음양 만물은 음과 양을 함께 지니고 있다. 선에는 악이 있고 악에는 선이 있다. 남성에는 여성이 있고 여성에는 남성이 있다. 강한 것 속에는 약한 것이 들어 있고 약한 것 속에는 강한 것이 들어 있다. 중국인들은 그 사실을 3천 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다. 상대주의의 선구자는 그들이라고 할 만하다. 흑과 백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 섞이면서 가장 좋은 것을 만들기도 하고 가장 나쁜 것을 만들기도 한다. 의사 소통 세포 구조든 분자 구조든 모든 구조는 이웃한 구조와 메시지를 교환한다. 그럼으로써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우리 세포는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과 끊임없이 마주친다. 세포들이 혈액을 통해 그 미생물의 정체와 그것들에 저항하는 방식을 전달해 주지만, 우리 뇌는 세포가 참여하는 그 거대한 대화 체계를 의식하지 못한다. 세포의 방어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세포의 그런 소우주적 행위를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 과학자들은 기능하지 않는 것을 연구할 뿐, 기능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종 교배 개미 둥지에 다른 종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미는 저마다 자기 도시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그렇게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흙을 채운 어항에 불개미 1백 마리와 검은 목축개미 1백 마리를 함께 넣으면 어떻게 될까? 두 종 모두에 알 낳는 여왕개미 한 마리씩을 포함시켜 말이다. 그러면 우선 몇 차례의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길 정도의 충돌은 아니다. 그 후에는 더듬이를 맞대고 긴 토론을 벌이고 나서 함께 개미 둥지를 건설해 나가기 시작한다. 어떤 통로는 불개미의 체구에 알맞게 되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목축개미에 알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과 교배를 해서 서로 섞인다. 이상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개미 세계에서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어떤 종이 도시 안에 게토와 같은 보호구역을 만들어 다른 종을 격리시키는 일 없다는 것이다. 인디언의 곰 덫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곰 덫을 사용한다. 그것은 커다란 돌덩이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 놓은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곰은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생각하고 다가와 발길질을 하면서 돌덩이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돌덩이가 진자 운동을 한다. 앞으로 밀려갔던 돌덩이가 뒤로 되돌아올 때마다 곰을 때린다. 곰은 화가 나서 점점 더 세게 돌덩이를 때린다. 곰이 돌덩이를 더 세게 치면 칠수록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곰을 후려친다. 마침내 곰은 나가떨어진다. 곰은 <이 폭력의 악순환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할 줄 모른다. 그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더욱 안달을 할 뿐이다. <저놈이 나를 때렸겠다. 그렇다면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고 곰은 생각한다. 그러면서 곰의 분노는 점점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곰이 돌덩이 때리기를 중단하면 돌덩이도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곰은 돌덩이가 일단 멈추고 나면 그게 밧줄에 걸려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 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남은 일은 이빨로 밧줄은 잘라 돌덩이를 떨어뜨린 다음 거기에 묻은 꿀을 핥는 일뿐이다. 인류의 미래 미래의 인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해서 그의 초상화를 미리 그려 볼 수는 있다. ─ 그의 턱은 우리보다 짧고 이의 개수는 더 적을 것이다. 사랑니, 또는 지치(智齒)라고 부르는, 우리의 세 번째 어금니는 지금도 사라져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어금니는 고기 같은 것을 씹는 데 사용하는 것인데, 우리의 음식이 더 이상 씹을 필요가 없을 만큼 연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미래의 인간은 32개가 아니라 28개의 이를 갖게 될 것이다. ─ 그는 우리보다 키가 클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은 지금도 옛날에 비해 더 잘 먹고 잘 자란다. 의술은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질병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 주고 있다. 예를 들어 1800년에 징집된 프랑스 군인의 평균 신장은 1미터 63센티였는데, 1958년에는 1미터 68센티였고, 1993년에는 1미터 75센티였다. 성장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 그는 근시가 심해져 먼데 것을 더 못 보게 될 것이다. 도시에서는 멀리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그는 아마 혼혈인일 것이다. 교통 수단의 발달은 모든 민족이 쉽게 교류할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 그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역시 의술의 진보, 더 좋은 영양과 위생 덕분이다. ─ 뇌의 용적은 아마 우리보다 클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은 이미 3백만 년 전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보다 세 배나 커진 바 있다. 진화의 방향은 부피 그 자체보다는 회로가 정교해지는 쪽일 가능성이 많다. ─ 그의 아동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실제로 뼈가 단단해지는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3만 년 전에는 모든 뼈가 18세 정도면 단단해졌다. 오늘날에는 성장을 마감하는 빗장뼈의 경화가 25세에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은 신체적으로 아동기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오랫동안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심리적 경향이 심해지는 현상도 어쩌면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그와 반대로 여성의 초경은 일러지고, 폐경기는 늦어질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가임 기간은 길어질 것이다. 그 긴 기간을 단조롭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 인간은 어쩌면 더 음란해질지도 모른다. ─ 남성의 육체는 여성적으로 변할 것이다. 숲 속에서 사냥을 하며 사는 부족들은 남성의 얼굴과 여성의 얼굴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인류의 미래는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를 다 가진 사람들, 그리고 여자 같고 아이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이미 패션과 영화와 대중 가요 부문에서 가장 돋보이는 현대적 아름다움의 표본이 되어 있다. ------------------------------------------------------------------------------------------------------------------------------------ ■■ ㅈ ■■ 잡식 동물 지구의 주인은 잡식 동물일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먹이를 먹어 치울 수 있다는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종을 퍼뜨리는 데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다. 지구의 주인으로 확고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형태의 먹이를 삼킬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먹이에만 의존하는 동물은 그 먹이가 떨어지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한 종류의 곤충만 먹고 사는 많은 종류의 새들은 그 곤충들이 이동하는 것을 따라잡지 못한 채 멸종해 간다. 유컬립터스32)잎만 먹고 사는 캥거루들도 산림의 나무를 베어내면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인간은 개미, 바퀴벌레, 돼지, 쥐들처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 다섯 종은 거의 모든 종류의 먹이, 심지어 찌꺼기조차 맛보고, 소화시킨다. 또 이 다섯 종은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기 위해 언제라도 먹이의 종류를 바꿀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먹이 때문에 전염병에 걸리게 되거나 독성에 치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먹이를 먹기 전에 반드시 실험을 해본다. 32) 도금낭과에 딸린 늘푸른큰키나무, 또는 좀나무.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원산으로, 고무질 진과 기름이 나오며 기름, 고무, 타르의 원료로 쓰인다. 장례 어떤 문명이 지혜로운 문명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첫 번째 요소는 <죽은이들에 대한 숭배>이다. 인간들이 시신을 쓰레기와 함께 버렸던 시절은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인간들이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명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사자(死者)를 돌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위에 놓인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는 것이다. 또 사자를 돌본다는 것은 인생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 가는 과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적인 행동은 거기에서 유래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사자 숭배가 가장 먼저 행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7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 중기의 일이었다. 당시에 몇몇 부족들은 시신을 길이 1미터 40센티미터, 너비 1미터, 높이 30센티미터인 묘혈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부족의 구성원들은 시신 옆에 고깃덩어리와 부싯돌로 만든 무기들과 고인이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놓아두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부족 전체가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개미의 세계에서도, 그와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어떤 개미들은 여왕개미가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먹이를 갖다 준다. 개미의 시체에서는 올레인산이 발산되기 때문에 여왕개미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텐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략 웬만한 전략은 모두 예측이 가능하다. 적이 예측할 수 없는 전략을 짜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략을 구성하는 전술 과정 속에 모험적인 요소들을 끼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적은 이따금 판단이 혼란스러워지면서 이쪽의 전략을 해석할 수도, 전략의 바탕이 되는 논리를 발견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끝내 이쪽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전문가 현대의 개미 도시에서는, 수천 년간 되풀이된 분업의 결과로 유전자의 돌연 변이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어떤 개미는 절단기 구실을 하는 커다란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병정개미가 되고, 어떤 개미는 곡물을 빻기에 적합한 위턱을 지니고 태어나 곡물 가루를 생산하다. 또 어떤 개미는 고도로 발달된 침샘을 가지고 있어서 어린 애벌레들은 적셔 주고 소독을 해준다. 마치 우리 인간 사회에서 그런 유전자 돌연 변이가 일어나, 병사들은 칼처럼 생긴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고, 농부들은 과일을 따러 나무에 올라가기 편하도록 집게 모양의 발을 가지고 태어나고, 유모들은 열 쌍쯤 되는 유방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는 식이다. 개미들의 놀라운 적응 능력을 보여 주는 변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전략적으로 중요한 출입구를 봉쇄하기 위해서 개미들은 머리가 납작한 개체를 이용한다. 이른바 문지기 개미가 그것이다. 일개미들이 그 문으로 드나들려면 그 개미의 납작한 머리를 두드려야 한다. 그때 일개미가 잘못된 암호를 대면, 그 살아 있는 문이 덤벼들어 일개미를 먹어 버린다. ─ 열대 지방의 개미들은 분비꿀을 저장하기 위해 일개미들을 거꾸로 매달고 그것들의 배를 다른 개미들의 스무 배나 되게 부풀린다. 그 꿀단지 개미들은 평생 그렇게 거꾸로 매달려 산다. 일개미가 다가와 꿀단지 개미를 어루만지면 그것들은 꿀을 몇 방울 내놓는다. 그런데, <전문화를 가져오는> 모든 돌연 변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랑의 전무가를 만들어 낸 돌연 변이다. 실제로 일개미들은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할 일이 많은 일개미들이 성적인 충동 때문에 한눈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생식 능력은 모두 생식만을 도맡아 하는 전문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수개미와 암개미, 다시 말하면, 개미 문명의 왕자와 공주만이 생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식 능력을 가진 개미들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고 그것을 위한 특별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교미하기에 편리하게끔 여러 가지 오묘한 기관들을 지니고 태어난다. 날개가 그렇고, 추상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더듬이가 그러하며, 적외선을 감지하는 홑눈이 그렇다. 전사 진정한 전사는 친구들보다 적들에게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로 알아볼 수 있다. 전체주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개미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개미가 완벽한 전체주의 체제를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면서 흥미를 느낀다. 사실 밖에서 보면 개미 둥지에서는 모두 똑같이 일하고, 모두가 전체의 이익에 따르며, 모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고,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인가의 전체주의 체제는 현재로서는 모두 실패했다. 이집트 인, 그리스 인, 로마 인, 바빌로니아 인, 카르타고 인, 페르시아 인, 중국인, 프랑스 인, 영국 인, 러시아 인, 독일인, 일본인, 미국인들은 모두 영광의 시기를 경험했고, 그 시기에 그들의 생활 양식은 세계인의 본보기가 될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도 언제나 작은 모래알 하나가 떨어져 단일화한 그들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모듬살이 곤충을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나폴레옹의 휘장이 꿀벌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개미 둥지 전체를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 페로몬이라면,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서는 세계적인 방송망을 가진 텔레비전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모두가 따라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인간 사회가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만상의 이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은, 다윈 선생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좋은 것이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게다가 좋고 나쁜 것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악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꼽추, 언청이, 쾌활한 자, 슬픔에 빠진 자, 영리한 자,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도량이 넓은 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빨간 것, 흰 것 등등이 다 있어야 한다. 다양한 것들 중에서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 때문에 소멸당하는 것, 위험이라면 오직 그것뿐이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즉, 물을 더 적게 필요로 하고, 결빙에 가장 잘 견디며, 알곡이 가장 실한) 이삭의 덩이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이 돌아도 다 죽어 버린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 그루 한 그루가 저마다의 특성과 약점과 비정상적인 것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 스스로 찾아낸다.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은 바로 그 다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권(精神圈) : 집단적 무의식 우리는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 대뇌의 좌우 반구가 그것이다. 그것들은 저마다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다. 왼쪽 뇌는 모든 것을 숫자로 분석하면서 활동하고, 오른쪽 뇌는 모든 것을 형태로 분석하면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말하자면, 전자는 디지털 방식으로 기능하고, 후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정보를 놓고, 좌우 반구는 서로 다르게 분석하며 때에 따라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심각한 정신 장애에 빠질 염려가 있다. 무의식의 담당자이자 조언자인 우반구가 꿈을 매개로 삼아 의식 담당자이자 실행자인 좌반구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때는 오로지 우리가 잠잘 때뿐일 것이다. 그것은 부부 사이에서 뛰어난 직감을 가진 아내가 아주 현실주의적인 남편에게 자기 의견을 넌지시 비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테야르 교수에 따르면, 여성적인 뇌인 우반구는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능력이란 테야르가 말하는 정신권33)에 선을 댈 수 있는 소질이다. 정신권 ─ 칼 융은 그것을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 이란 대기권이나 전리권(電離圈)처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거대한 구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비물질적인 구름은 인간의 오른쪽 뇌가 발산한 모든 무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베르그송이 신이라고 부른 총체적 인간 정신, 위대한 내재적 정신 같은 것도 어쩌면 그것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우리 오른쪽 뇌는 밤에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정신권의 마그마에 들어가서 인류의 오른쪽 뇌가 발산한 것의 총합인 총체적인 정신을 퍼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무의식을 담당하는 우리 노의 우반구가 원초적인 진짜 정보들이 모여 있는 파장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상상하거나 발명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따지고 보면 우리의 오른쪽 뇌가 저위 정신권에서 퍼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왼쪽 뇌가 오른쪽 뇌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정보가 옮겨지고 어떤 생각으로 틀이 잡히면서 구체적인 행위로 이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가나 음악가나 소설가는 성능 좋은 전파 수신기에 지나기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의 오른쪽 뇌를 집단적인 정신과 연결하여 정보를 퍼올리고, 그것을 왼쪽 뇌로 전달하여 구체적인 작품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33) noosphe're. 정신을 뜻하는 그리스 어 <누스noos>와 구(球), 범위, 권(圈)을 뜻하는 <스파이라sphaira>를 합친 말. 정치적인 동물 가장 정치적인 동물로는 당연히 개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위에 놓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 늑대, 쥐, 돼지, 누34) 따위의 포유류 사회에서는 정치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속박이 된다. 그들 사회에서는 개인과 국가 사이의 유대보다 개인과 가족 ─ 자녀, 부모, 아내, 남편, 형제, 자매 ─ 사이의 유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군주제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이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해 입증되었다. 포유류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개념은 대규모 사회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 요인이다. 개미나 흰개미, 꿀벌 사회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성원 각자는 오로지 <레스 푸블리카>35)만 생각한다. 그 곤충들은 플라톤이 묘사한 대로 <이상적인 공화국>, 즉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서 모든 구성원들이 겨레의 일을 진정 자기의 일로 느끼는 거의 완벽한 공화국을 이미 건설했다. 34) 남 아프리카 원산의 유제류(有蹄類) 동물. 몸통은 영양과, 머리와 뿔은 소와, 꼬리며 갈기는 말과 비슷하다. 35) res publica. 공공의 일, 공공의 이익이라는 뜻에서 공화국이라는 뜻으로 발전한 라틴 어. 플라톤의 저서 이름이기도 하다. 종이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종이의 규격이 왜 길이 21센티미터, 너비 29.7센티미터로 되어 있을까 하고 이따금 스스로에게 물어 보곤 한다. 그 치수는 알고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발견한 카논(여러 수치 사이의 비율) 가운데 하나이다. 그 카논은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길이 21센티미터 너비 29.7센티미터 되는 종이를 반으로 접으면 길이였던 것이 너비가 되면서 둘 사이의 비율이 여전히 똑같아진다. 반으로 접기를 여러 번 되풀이해도 그 비율은 변함이 없다. 그 카논은 그런 특성을 가진 유일한 비율이다. 쥐들의 외통 <쥐들의 외통(外通)>이라는 말이 있다. 장기 둘 때에 상대방이 부른 장군에 궁(宮)이 꼼짝할 수 없게 되듯이, 쥐 떼가 어떤 이유에선지 한자리에 붙박인 채 그대로 죽음을 맞는 기이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꼬리를 매듭처럼 풀어지지 않게 엮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궁지에 빠진 쥐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외통에 걸린 쥐들의 수는 열둘에서 서른둘까지 다양하다. 그 현상이 무엇 때문에 빚어지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에 따르면, 어떤 비좁은 구석에 처박히게 된 새끼 쥐들이 <우연히> 꼬리를 엉클게 되었는데, 새끼 쥐들의 꼬리에는 아교처럼 끈끈한 액이 묻어 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가설도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어미 쥐들이 새끼들을 굶어 죽게 하려고 꼬리를 엮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가설은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근에 이루어진 관찰의 결과, 외통에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된 쥐들에게 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먹이를 공급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구가 되어 버린 그 쥐 떼를 살리는 일이 쥐들의 사회에 무슨 이익이 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쥐들의 외통>이라는 현상을 둘러싸고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770년 독일 과학자들은 <쥐들의 외통>이 발견된 자리를 표시함으로써, 마력의 축 같은 것의 자취를 추적하려고 했다. 사람들이 <쥐들의 외통>에 매료되어 있었던 18세기 동안에 독일에서는 그 현상이 80회 이상 발견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금세기 초 이래로 그 현상이 아홉 차례 발견되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스트라스부르 동물학 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능 나는 1990년 1월에 어떤 실험에 착수했다. 그 실험의 첫번째 주제는 개미의 지능이었다. 개미에게도 지능이 있는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중간 크기의 비생식충인 불개미 한 마리를 다음과 같은 문제 상황에 놓았다. 구멍이 하나 있고 그 구멍 바닥에 단단하게 만든 꿀을 한 덩어리 놓았다. 그런 다음 잔가지 하나를 구멍 위에 놓아 개미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 잔가지는 가볍지만 아주 긴 것이었고, 단단하게 박아 놓았다. 보통의 경우라면 개미는 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이 구멍의 테두리는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뚫을 수가 없다. 제 1일 : 개미가 잔가지를 이따금씩 잡아당긴다. 그러다가 잔가지가 조금 들썩이자 그것을 다시 놓았다가 들어올린다. 제 2일 : 개미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잘라 보려고도 하지만 성과가 없다. 제 3일 : 위와 같음. 이 곤충은 그릇된 추리 방식 때문에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다른 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곤충이 구멍으로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 듯하다. 그게 지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닐는지. 제 4일 : 위와 같음. 제 5일 : 위와 같음. 제 6일 :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나뭇가지가 구멍에서 치워져 있었다. 밤 사이에 그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실험에 다시 착수했다. 이번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기로 했다. 피실험자 : 먼젓번과 똑같은 개미집에서 꺼내 온 동종의 다른 개미. 제 1일 : 개미가 나뭇가지를 밀고 당기고 물어뜯는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는 없다. 제 2일 : 위와 같음. 제 3일 : 됐다! 개미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찾아냈다. 나뭇가지를 조금 당기고, 그 틈새로 제 배를 집어 넣은 다음 배를 부풀려서 나뭇가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다리를 내려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조금씩 간헐적인 동작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잔가지를 밀어낸다. 그러면 그렇지. 지능과 환경 미국의 신경 정신과 의사이자 버클리 대학 교수인 로젠츠바이크는 우리의 뇌 용적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것을 위한 실험에 그가 이용한 것은 햄스터36)라는 쥐였다. 같은 어버이에게서 같은 날 태어나고 같은 방식으로 양육된 햄스터들을 세 개의 우리에 나누어 넣었다. 첫번째 우리는 넓고,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햄스터들은 그 우리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바퀴, 철망, 사다리, 시소 따위를 이용해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다른 우리보다 햄스터들이 많아서 물건들을 먼저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두 번째 우리는 중간 크기였고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먹이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공급되었다. 첫번째 우리보다 햄스터의 수가 적고, 다툴 일이 없었기 때문에 햄스터들은 조용히 쉴 수 있었다. 세 번째 우리는 좁았고 단 한 마리의 햄스터만 들어 있었다. 먹이는 정상적으로 공급되었지만, 그 햄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치 텔레비전만 보고 사는 아이처럼 철망 너머로 다른 햄스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한 달이 지난 뒤에 햄스터들을 꺼내어 환경이 그것들의 지능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였다. 장난감으로 가득 찬 첫번째 우리에 있던 햄스터들이 미로 테스트와 이미지 인지 테스트에서 다른 햄스터들보다 훨씬 더 빠른 반응을 보였다. 다음에는 그것들의 두개골을 열어 보았다. 첫번째 우리에 있던 햄스터들의 대뇌피질이 두 번째 우리의 햄스터에 비해 더 무거웠고, 세 번째 우리의 햄스터에 비하면 훨씬 더 무거웠다.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신경 세포의 수가 증가한 건 아니었고 그보다는 뉴런 하나하나가 거의 13% 정도 더 커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번째 우리에 있던 햄스터들의 신경 조직이 가장 복잡해져 있었다.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영화는 대개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들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배경도 갈수록 웅장해지고 볼거리가 많아지는 영화일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는 극복해야 할 시련들로 가득 찬 풍요로운 세계이다. <행동하는> 주인공만이 사람들의 뇌를 복잡하게 만들어 준다. 식탁에 앉아 이야기만 하는 주인공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계를 보여 주지 못한다. 이상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것이다. 36) 쥐목 비단털쥐과에 속하는 동물. 등 쪽은 적갈색이고 배 쪽은 흰색이다. 건조한 초지, 사막 주변에 서식하며, 애완용, 실험용으로도 기른다. 지압(指壓) 지압은 변비증을 치료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다른 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의 살을 눌러 보면, 변비증에 걸린 사람은 심한 통증과 함께 망울과 같은 것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망울을 집고 주물러 주면 변비증을 고칠 수 있다. 지하철의 귀뚜라미 파리 지하철 안에 귀뚜라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무렵이다. 귀뚜라미들이 어떻게 파리까지 올라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채소나 향신료 바구니에 묻어 들어왔을 것이다. 수도에 짐과 함께 부려진 우리 귀뚜라미들은 처음 상경한 시골 사람들처럼 길을 잃고 헤맸다. 대부분은 굶주림에 허덕이다 죽어 버리고, 살아 남은 자들은 더 따뜻한 장소, 예를 들어, 빵집의 화덕이나 할머니들의 부엌 같은 곳을 찾아 무단 입주를 한다. 그 중의 작은 한 무리가 마침내 약속의 땅, 파리 지하철을 발견하게 된다. 열차 바퀴와 레일이 마찰하면서 생긴 열을 용암처럼 생긴 자갈들이 보존해 주기 때문에 레일 사이의 바닥은 거의 열대 지방이나 다름없는 온도가 유지된다.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는 섭씨 27도이고 오후 여섯 시에서 밤 열한 시 사이에는 섭씨 34도나 된다. 게다가 먹이도 걱정할 게 없다. 귀뚜라미들은 자갈에 널려 있는 빵 부스러기, 쓰레기, 휴지, 털실 오라기 따위를 먹고, 때로는 담배 꽁초까지 먹는다. 열차 하나가 지나가고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의 짬을 이용하여, 수컷들은 암컷들을 유인하기 위해 새된 소리로 노래를 한다. 암컷들이 다가오면 수컷들은 레일 사이에 함께 모여 노래 솜씨를 겨룬다. 가장 새된 소리로 노래하는 수컷들이 다른 수컷들을 쫒아낸다. 노래도 변변히 못 하는 자가 달아나지 않고 뻗대고 있으면 다른 귀뚜라미들의 기어이 발길질을 하고 만다. 노래 자랑이 끝나고 나면, 가수로 인정받은 수컷들과 암컷들은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열차가 도착하면 그들은 로맨틱한 유희를 벌이기 위해 차량들의 가변 저항기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은 공기가 아주 뜨겁기 때문에 열렬히 사랑을 나누기에 아주 제격이다. 파리의 지하철 역 중에서 현재 귀뚜라미가 가장 많고, 그것들을 관찰하기가 가장 용이한 곳은 생 토귀스탱 역이다. 파리 지하철의 귀뚜라미들이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단지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끈적한 실을 뱉어 내어 귀뚜라미들을 꼼짝못하게 하는 아롱가죽거미scytodes이고, 또 하는 레일을 차갑게 만드는 지하철 파업이다. 진나라 시황제 처음엔 혼돈이 있었다. 기원전 3세기의 중국에서는 한(韓), 위(魏), 조(趙), 제(齊), 진(秦), 연(燕), 초(楚) 일곱 나라가 할거하여 끊일 새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철제 무기와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고, 농업 공동체의 해체가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철기를 이용하기에 효과적인 더 큰 단위로 재조직되었다. 말하자면 농촌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났던 셈이다. 도시 인구의 증가는 유한 지식 계급의 번성으로 이어져, 이른바 제자백가의 시대를 맞았다. 제자백가 가운데 법가(法家)의 출현은 그때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제도인 절대 군주제를 낳게 했다. 법가 사상가들은 완벽한 절대 왕정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나중에 시황제가 될 진나라 왕 정(政)에게 그의 모든 권력을 시험하게 했다. 왕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분할하고 상호 감시 체계를 만들었다. 밀고 행위는 의무가 되었다. 범법 행위를 고발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범법 행위였다. 밀고의 순환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다섯 가구가 하나의 조를 형성하고 각 조에는 정기적인 보고의 책임을 맡은 공시적인 감시자가 있다. 그 공식적인 감시자는 다시 비공식적인 감시자로부터 은밀하게 사찰을 받는다. 다섯 조가 모이면 하나의 부락이 된다. 각 단위에서 밀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 그 책임은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간다. 그럼으로써 물고 물리는 감시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법가들은 유례없이 극도로 분화된 행정 제도를 만들었다. 진나라 시황제는 법가의 가르침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받아들여,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항시적인 사찰과 역(逆) 사찰을 강요했다. 나중에는 자기 신하들도 믿을 수 없어서, 순진한 소년들로 이루어진 경찰을 만들어 관리들을 감시하고 재앙의 두 원천인 반동 분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을 고발하게 했다. 관리들은 앞서가도 뒤쳐져도 안 되었고, 오로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만 일해야 했다. 법가들은 앞다투어 기발한 생각들을 내놓았다. 그들은 <반사적인 법>을 만들고 싶어했다. 반사적인 법이란, 구두나 문서로 표현된 법이 아니라, 그것을 어기는 게 불가능할 만큼 백성들의 유전자에 각인시킨 법이다. 그런 법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공포를 통해서다. 법가는 중국적인 형벌의 개념을 창안했다. 모든 백성들이 법률을 즉각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상상도 못 하게 만드는 그런 형벌이었다. 고문(拷問)은 하나의 과학이 되고, 형리(刑吏)는 선망의 직업이 되었으며, 고문을 가르치는 학교까지 생기는 판국이었다. 몇몇 죄인을 공개 처형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법을 주지시키기에 충분했을 터인데도, 백성들이 한시라도 법을 잊지 않게 하려고 형을 집행하기 전에 죄인들을 끌고 돌아다니는 조리돌리기를 생각해 냈다. 가혹한 형벌 제도를 만든 데 이어 법가들은 <생각하는 것을 금하는>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에 따라, 기원전 213년 진나라 시황제는 책들을 반체제적인 위험물로 규정하는 법령을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책을 읽는 것은 국가의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고, 똑똑한 것은 국가의 적 제 1호가 된 셈이었다. 누구도 똑똑해선 안 되었다.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황제에게 역심을 품게 마련이라는 것이 법가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들을 일에 취하게 만드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누구에게도 쉴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휴식은 반성을 낳고 반성은 반란으로, 반란은 형벌로 이어진다. 문제의 소지(素地)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과대 망상에 사로잡힌 황제는 스스로를 세계의 주인이라고 칭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중국인들은 세계가 동쪽으로는 중국해, 서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끝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히말라야 산맥 너머에는 야만인들과 야수들만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빠른 시일 안에 중국의 통일을 완수하였지만, 그것으로는 황제의 욕망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자기 군대가 정복자가 되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음을 깨닫고, 황제는 어마어마한 사업에 착수했다. 만리장성의 축조가 그것이었다. 그 공사장은 처음엔 지식인들의 노역장에 불과했지만, 곧 백성들을 통제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그 장성을 건설하면서 4천만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종말이 가까워질 무렵, 황제는 자기 주위의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후궁들과 법가 신하들을 모두 죽인 뒤에, 황제는 철기 기술자인 자기 스승에게 명하여 철제 꼭두각시들을 만들게 했다. 자기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신하들은 오로지 그 꼭두각시들뿐이었다. 그 인형들은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기술의 산물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려 했던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도 시황제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불사 영생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그는 양기가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액의 사출을 억제했고 ─ 사정의 순간에 가는 끈으로 정액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 자기의 모든 음식에 산화수은을 넣게 했다. 당시에 그 화학 물질은 불로 장생의 명약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결과는 황제를 산화수은 중독으로 죽게 했을 뿐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구축해 놓은 공포 정치가 어찌나 막강했던지, 그의 신하들은 그가 죽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때까지 그를 경배하였고 수라도 올렸다. 질서와 무질서 질서는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질서를 낳는다. 이론상으로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계란을 휘저으면 오믈렛이 다시 계란의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오믈렛 안에 무질서를 많이 넣을수록 최초의 알의 질서를 되찾을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결국 질서란 무질서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는 어떤 질서의 일부이다. 우주가 확장되면 될수록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로 빠져 든다. 무질서가 확장되면 새로운 질서들을 낳는다. 그 새로운 질서들 중에서 최초의 질서와 똑같은 것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자연의 적은 인위적인 질서다. 자연은 다양하고 무질서하다. 질서 정연한 것은 어떤 고유한 운동을 반복하지만, 그 운동은 굳은 것, 곧 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고에는 좋은 추론과 나쁜 추론, 확신과 의심, 성공과 실패가 두루 섞여 있다. 만일 두뇌의 활동 과정이 한 가지 방향으로 고정된다면, 설사 그것이 성공적인 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뇌는 어느 순간엔가 고통스런 방향 전환에 직면하게 된다. 우수한 두뇌의 특징은 그 혼돈 상태에 있다. 우수한 두뇌에는 틀에 박힌 생각, 확신, 요령이 없다. 우리의 사고는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돌아다니는 개미들처럼 어디든지 달려가서 뒤지고 시험하고 맛보아야 한다. 이따금 혼돈에서 아주 우연하게 질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시 희석되어 새로이 태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일개미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어떤 개미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 ■■ ㅊ ■■ 차투랑가 체스 종류의 모든 놀이와 갖가지 카드놀이, 나아가 도미노 종류의 몇몇 놀이는 모두 하나의 놀이에 기원을 두고 있다. 범어로 차투랑가라고 하는 놀이가 그것이다. 이 놀이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가장 멀리는 기원전 1천 년 무렵의 남 인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네 명이 하는 체스의 일종이다. 네 사람이 각각 한 귀를 차지하고 놀이를 벌인다. 놀 차례를 정할 때는 주사위를 던진다. 주사위는 짐승의 잔뼈로 공깃돌처럼 만든 것이다. 주사위의 각 면에는 인도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네 계급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각 계층은 저마다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사제 계급은 단지로 상징되고, 무사 계급은 칼, 농민 계급은 막대기, 상인 계급은 동전으로 나타낸다. 각 계급의 말들은 정승, 판서, 코끼리, 성장(城將), 기사, 병졸 넷으로 이루어진 위계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변하여 체스의 말과 카드의 그림패가 된다(체스의 퀸은 모든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퀸은 완전히 서양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장기의 포가 중국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체스에 퀸이 등장한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시대의 일이다. 에스파냐 체커에서는 졸이 상대방 진영의 첫 줄에 들어가면 <여왕>이 되었다고 말한다. 체스의 퀸은 그것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차투랑가의 네 계급은 훗날 카드의 네 무늬로 바뀌었다. 막대기는 클로버, 동전은 다이아몬드, 단지는 하트, 칼은 스페이드에 해당한다. 그러한 네 종류의 구분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세포들이 가장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는 A, T, G, C라는 네 염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채소 채소는 언제 심고 언제 거두는가? 아티초크 : 6월에 심고 8월에 거둔다. 아스파라거스 : 3월에 심고 5월에 거둔다. 가지 : 3월에 심고(볕바른 곳에) 9월에 거둔다. 무 : 3월에 심고 10월에 거둔다. 당근 : 3월에 심고 7월에 거둔다. 오이 : 4월에 심고 9월에 거둔다. 양파 : 9월에 심고 5월에 거둔다. 파 : 9월에 심고 6월에 거둔다. 감자 : 4월에 심고 7월에 거둔다(주 : 약간의 소금과 후추와 양파를 넣은 감자-파 수프는 맛이 괜찮다). 토마토 : 5월에 심고 9월에 거둔다. 촉각의 각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어긋나게 겹치고, 다른 손으로 당구공을 탁자 위에 놓는다. 겹친 손가락들의 끝을 당구공 위에 올려 놓고, 당구공을 가만히 돌리면서 그 운동을 손가락 끝으로 감지한다. 눈을 감으면 두 개의 당구공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갓잡은 상어의 눈알을 가지고도 같은 실험을 할 수 있다. 최소 공배수 동물에 대한 경험으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개미와의 만남이다. 고양이나 개, 벌이나 뱀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개미를 가지고 한두 번쯤 장난을 쳐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개미와의 만남은 가장 널리 퍼져있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우리의 손 위에서 걸어가는 개미를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개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더듬이를 흔든다. 둘째, 개미는 자기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간다. 셋째, 개미가 가는 길을 손으로 막으면, 개미는 그 손으로 옮아간다. 넷째, 젖은 손으로 개미 앞에 선을 그으면 개미를 세울 수 있다. 개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기라도 한 듯 머뭇거리다가 결국 빙 돌아서 간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과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초보적이고 유치한 이 지식이 활용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직업을 선택하는 데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학교에서 우리가 개미를 공부하는 방식은 따분하기 이를 데 없다. 개미의 신체 부위 이름 따위나 외우라는데 솔직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 ■■ ㅋ ■■ 카드 모든 것이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다. 52장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카드도 네 가지 무늬로 나누어져 있다. 카드의 네 가지 무늬는 사계절, 네 가지 행위, 네 행성의 영향에 대응한다. 1. 하트 ─ 봄 ─ 애정 ─ 금성 2. 다이아몬드 ─ 여름 ─ 여행 ─ 수성 3. 클로버 ─ 가을 ─ 노동 ─ 목성 4. 스페이드 ─ 겨울 ─ 죽음 ─ 화성 카발라 명상법 다음은 카발라37) 학자들이 문헌을 연구하기 전에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사용하던 명상법이다. 먼저 등이 바닥에 닿게 누워서 발을 약간 벌린다. 판을 몸에 붙이지는 말고 몸과 나란하게 쭉 뻗는다. 손바닥은 위를 향하게 놓는다. 명상은 자기 허파 안에 들어오는 공기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가슴이 열리고 허파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처음에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더러운 피가 다리를 거쳐 발가락으로부터 빠져 나가고 허파에 산소가 풍부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산소를 가득 빨아들인 스폰지 같은 허파가 다리에서 발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하반신 구석구석에 깨끗한 피를 분산시키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런 다음, 다시 숨을 들이마시면서 복부 기관의 피를 허파로 빨아들인다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활력이 넘치는 피가 간, 지라, 소화기, 생식기, 근육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면서 손과 손가락의 혈관을 깨끗한 필로 가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층 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뇌의 피를 허파로 빨아들이고 고여 있는 생각들을 모조리 비워 허파로 보낸다. 그런 다음, 활력으로 가득 찬 피와 맑아진 생각을 뇌로 돌려보낸다. 각 단계가 눈으로 보듯 분명하게 느껴져야 한다. 뇌에 깨끗하고 활기찬 피가 가득하게 하려면 머릿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모두 씻어 내야 한다. 37) <전통>을 뜻하는 헤브라이 어로서,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일컫는다. 그 기원은 기독교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천지 창조에 관한 신비주의적 사색과 성서한 관한 비유적 주석, 헤브라이 어 문자에 관한 우주론적 해석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11세기 이후 서서히 유대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다가 14세기 이후 스페인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확산이 이루어져,『탈무드』를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의 주류적 전통과 구별되는 중요한 한 흐름을 형성해 왔다. 카발라의 중요 문헌인『조하르』는『토라』(구약 성서의 모세 5경),『탈무드』에 이어 유대교의 제 3경전이라 할 만한 것으로, 신의 성질과 운명, 선과 악, 토라의 참뜻, 메시아, 구원 등에 관한 신비주의적 사색을 담고 있다. 칼리프 알 아킴 파티마 왕조38)의 칼리프 알 아킴은 카이로에 살았다. 그는 자기 도시를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자기 권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불합리한 법령을 제정한 다음, 자기 백성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수수한 마실꾼 행색으로 미복(微服)을 하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의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사회학적 실험을 한 셈이었다. 백성들이 자기 명령에 얼마나 잘 복종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맨 먼저 야간 노동을 금지했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빛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을 하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거였다. 누구든 밤에 촛불을 켜놓고 일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 밤 마실꾼으로 변장하고 돌아다니다가 그는 어떤 빵집 주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을 잡았다. 알 아킴은 그 사람을 빵 굽는 가마에 넣어 화형시켰다. 그러고 나니, 모든 백성이 밤일을 금한 그 법에 잘 따랐다. 그것을 확인하지 그는 법을 바꾸어 주간 노동을 금지했다. 이번엔 모두가 밤에만 일을 해야 했다. 그의 백성들은 길들여진 짐승처럼 그의 기발한 법령들이 공표되기가 무섭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금방 따라왔다. 그때부터 그에겐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지배하기 위하여 카톨릭 성당과 유대교 회당을 헐게 하고는, 변덕쟁이 군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두 종교의 신전을 다시 짓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었다. 이어서, 그는 여자들에게 향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신발 삼는 것을 금하고, 화장을 못 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여자들의 외출마저도 금지해 버렸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만든 법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러 돌아다니다가, 공중 목욕탕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을 찾아냈다. 그는 즉각 모든 출구를 봉쇄하도록 지시했다. 여인들은 그 안에서 굶어 죽었다. 알 아킴은 도박을 즐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토후들 앞으로 보내는, 봉인된 서신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서신에는, <이것을 가져온 자에게 황금을 듬뿍 주시오>라는 내용 아니면, <이것을 가져온 자를 죽이시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뿌린 편지를 줍는 것은, 읽는 자가 죽음을 당한다는 점만 빼면, 오늘날 복권을 사는 행위와 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날, 그의 옷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강변에서 발견되었다. 십중팔구는 그의 수많은 적 중의 하나가 그를 살해했을 터였다. 그의 시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죽은 뒤에 그에 대한 숭배가 은밀하게 번져 나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를 지혜와 상상력이 충만했던 군주로 추켜세우는 사람들마저 나타났다. 이슬람교의 종파 가운데는 알 아킴의 계승자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종파도 생겨났다. 시아 파의 과격한 종파인 드루즈 파가 그것이었다.(드루즈 파 신도는 특히 레바논에 많이 있다). 38) 북 아프리카에 있었던 한 왕조(909 ~ 1171). 이슬람 교 시아 파의 한 갈래인 이스마일 파의 왕조이다. 예언자 무하마드의 탈 파티마의 후손이 세웠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컴퓨터가 아직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사람은 풀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컴퓨터도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이따금 컴퓨터 강의 도중에 예시하는 수수께끼가 있다. 여기에 그것을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 세 딸을 둔 다른 사람에게 딸들의 나이를 묻는다. 그러자 딸들의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한다. <세 딸아이의 나이를 곱하면 36이 됩니다.> <그것만으로는 따님들의 나이를 미루어 헤아릴 수가 없겠는데요>라고 첫번째 사람이 말했다. <세 딸아이의 나이를 더하면 바로 우리 앞의 저 현관 위에 적혀 있는 번지수와 똑같은 수가 나옵니다.> <그래도 답을 못 찾겠어요!>라고 첫 번째 사람이 다시 말했다. <맏이는 금발이랍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이제 따님들이 각각 몇 살인지 알 수 있겠어요.> 첫번째 사람들은 어떻게 세 딸의 나이를 알 수 있었을까?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서 추리를 하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당장 답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바로 옆 페이지를 보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서 답을 찾고 싶은 독자들은 그 부분을 얼른 종이로 가리기 바란다. 세 딸의 나이를 곱하면 36이 된다고 했으므로, 세 딸의 나이는 틀림없이 다음의 여덟 개 조합 중의 하나다. 36 = 2×3×6, 이 세 수를 더하면 11이 된다. 36 = 2×2×9, 이 세 수를 더하면 13이 된다. 36 = 4×9×1, 이 세 수를 더하면 14가 된다. 36 = 4×3×3, 이 세 수를 더하면 10이 된다. 36 = 6×6×1, 이 세 수를 더하면 13이 된다. 36 = 12×3×1, 이 세 수를 더하면 16이 된다. 36 = 18×2×1, 이 세 수를 더하면 21이 된다. 36 = 36×1×1, 이 세 수를 더하면 38이 된다.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여덟 가지이므로, 첫번째 사람은 세 수의 곱이 36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세 딸의 나이를 합하면 현관 위에 적힌 번지수가 같다고 했을 때도, 첫 번째 사람은 여전히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도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이상임을 의미한다. 위에서, 세 수의 합을 살펴보면 2+2+9와 6+6+1이 모두 13이다. 따라서 현관 위에 적힌 번지수는 13이다. 이제 답은 둘 중 하나로 압축되었다. <맏이는 금발입니다>라는 말이 마지막 열쇠가 된다. 그 말속에는 맏딸이 하나라는 것, 즉 나이가 더 많은 쪽은 쌍둥이가 아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답이 될 수 있는 조합은 첫 번째 것뿐이다. 즉 세 딸의 나이는 맏이부터 각각 아홉 살, 두 살, 두 살이 된다. 크리슈나무르티 1875년 헬레나 블라바츠키라는 러시아 여인이 초월적인 정령들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았노라고 천명했다. 그 여인은 <미지의 초월자>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정령들이 이집트 여신 이시스를 에워싸고 자기에게 어떤 경전을 낭송해 주었다고 주장했다. 계시에 따라 헬레나는 견신론(見神論) 운동을 일으켰고,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최초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이었다. 헬레나는 공통된 하나의 길을 찾기 위해 모든 종교를 융합했다. 견신론 운동은 미국, 호주, 유럽 등지에서 성공을 거두어 많은 모임들이 생겨났다. 헬레나는 그들 속에서 메시아가 나타나리라고 예언했다. 그리하여 어떤 견신론자의 아들이 미래의 메시아로 인정되었다. 영국의 견신론자 애니 베전트는 그 아이를 양자로 맞아들여 메시아가 될 사람으로 교육을 시켰다. 아이는 열여덟 살이 되면 온 세계에 자기의 메시아 사상을 드러내 보이기로 되어 있었다. 마침내 그날이 와서, 그는 모든 견신론 단체가 집결한 가운데 계시를 더래는 대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리나 크리슈나무르티라는 그 젊은이는 모두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엉뚱하게도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밝히고 어린양 같은 사람들이 가짜 메시아들에게 이끌리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일을 겪고도 견신론 운동은 계속되었다. 크리슈나무르티 자신은 견신론자라기보다는 탁월한 철학자였다.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은 자기 내부에서 깨달음을 찾아야 하며 어떤 비단이나 어떤 인도자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려선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다음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깨달음을 찾는 길에서는 아무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길로 직접 나아가야 하는 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누구나 짐작하듯이 아주 힘겨운 순간이다.> 클라인 병(甁) 클라인 병은 자기 모순을 지닌 도형이다. 그것은 아가리가 밑바닥과 다시 만나게 되어 있는 병으로서 안쪽과 바깥쪽을 구별할 수 없고 가장자리도 업는 단측 곡면(單側曲面)이다. 입구가 곧 출구이며, 안이 밖이고 위가 아래다. 우리 우주는 어쩌면 시작도 끝도 없는 클라인 병과 같은 형상일지도 모른다. ------------------------------------------------------------------------------------------------------------------------------------ ■■ ㅌ ■■ 태아와 로큰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낮은 음조의 갖가지 소리들을 끊임없이 듣게 된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 내장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 어머니의 감정에 따라 더 빨리 혹은 더 느리게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허파의 풀무질 소리. 로큰롤이 우리의 심저를 뒤흔드는 까닭은 아마도 태아기 때의 그 경험 때문일 것이다. 타악기의 2박자 리듬과 약동감 넘치는 베이스는 우리에게 어머니 뱃속에서 물고기처럼 근심 없이 지냈던 평화롭고 포근한 시절을 일깨운다. 태초에 태초에 삼라만상은 단순함 그 자체였다. 우주는 약간의 수소만 지니고 있었을 뿐 거의 무(無)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러다가 수소가 폭발하는 개벽이 일어났다. 대폭발과 함께 끓어오른 수소 원소들이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가면서 변형이 생긴다. 가장 간단한 원소 H가 쪼개지고 섞이고 뭉쳐지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우주는 화학 실험장이다. 만물은 하나에서 나와 모든 방향, 모든 형태로 확장된다. 만물의 기원인 수소는 태초의 화덕에서 헬륨 같은 다른 원자들을 낳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모든 것이 뒤섞이면서 점점 더 복잡한 원자들을 낳는다. 최초의 대폭발이 빚어낸 결과를 우리는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100% 수소로만 이루어져 있던 우리의 우주, 우리의 시공간은 이제 다음과 같은 여러 원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수프가 되어 있다. 수소 90%, 헬륨 9%, 산소 0.1%, 탄소 0.06%, 네온 0.012%, 질소 0.01%, 마그네슘 0.005%, 철 0.004%, 황 0.002%. 이상은 우리 우주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부류에 속하는 원소들만 예로 든 것이다. 터키 근위병 14세기에 터키의 술탄 무라드 1세는 약간 특별한 부대를 하나 만들고 <새로운 부대(터키 말로는 예니 체리)>라 명명하였다. 이 새 근위대는 고아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터키 병사들은 아르메니아 슬라브의 마을을 약탈하면서 아주 어린아이들을 모아다가 특수 군사 학교에 집어 넣었다. 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오로지 무술 훈련만 받고 자란 이 아이들은 전 오토만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진짜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들을 가차없이 짓밟았다. 그 근위병들은 자기들의 부모 편에 서서 납치자들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의 힘은 나날이 커졌고, 급기야는 술탄 마무트 2세가 그들의 힘에 불안을 느끼게까지 되었다. 결국 마무트 2세는 1826년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학교에 불을 질렀다. ------------------------------------------------------------------------------------------------------------------------------------ ■■ ㅍ ■■ 파동 모든 사물과 관념과 사람은 하나의 파동으로 귀결될 수 있다. 형태파, 소리파, 그림파, 냄새파 등 여러 가지 파동으로 있을 수 있다. 이런 파동들이 유한한 공간 속에 있으면 다른 파동과 필연적으로 상호 간섭하게 된다. 사물과 관념과 사람들의 파동 사이에 일어나는 간섭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로큰롤>과 <클래식> 음악을 혼합하면 어떤 음악이 생겨날까? <철학>과 <정보학>을 섞으면 어떤 학문이 될까? 아시아의 예술과 서구의 기술을 섞으면 어떤 것이 나타날까? 잉크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린다고 하자. 두 물질은 처음엔 아주 단조로운 상태에 있다. 잉크 방울은 까맣고 물은 투명하다.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서, 일종의 위기가 조성된다. 이 접촉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혼돈의 모습이 나타나는 때이다. 바로 희석되기 직전의 순간이다. 서로 다른 두 요소끼리의 상호 작용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빚어 낸다. 복잡한 소용돌이, 뒤틀린 형태가 생기고 온갖 종류의 가는 실 형태가 생겨났다가 점점 희석되어 결국엔 회색의 물로 변한다.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아주 다양한 모습을 고정시키기가 어렵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어떤 만남이 고착될 수도 있고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 파리의 청결함 파리보다 더 청결한 게 무엇이 있을까? 파리는 끊임없이 제 몸을 씻는다. 그것은 다른 개체에 대한 의무 때문이 아니라 제 스스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더듬이와 낱눈들이 티 하나 없이 청결하지 않으면, 파리는 멀리 있는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를 죽이려고 덮쳐 오는 손을 보지 못할 것이다. 곤충의 세계에서 청결은 생존에 꼭 필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이다. 파킨슨 법칙 파킨슨 법칙(같은 이름의 파킨슨 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 성장할수록 점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고용하면서도 급료는 과다하게 지급하게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고위 간부들이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경쟁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능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반기를 들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급료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배 계급들은 영원한 평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평행적인 다른 현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현실은 유일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현실과 평행한 다른 현실들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예를 들어, 이 현실에서 당신이 책을 일고 있을 때, 제 2의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고 있는 중이고, 제 3의 현실에서는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고, 제 4의 현실에서는 갑자기 자살 충동을 느끼고, 하는 식으로 나무가 가지를 치듯이 평행적인 현실들이 수백, 아니 수천 가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한 가지 현실이 선택되고 고착되면서 다른 현실들은 증발해 버릴 것이다. 그렇게 한쪽 갈래의 현실이 굳어지면, 거기로부터 다시 다수의 새로운 평행 현실들이 갈라져 나오고, 새로운 가지들이 갈려 나온 줄기는 차츰차츰 고형화되는 것이리라.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이 에스라를 읽고 있는 현실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한 것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고착된 현실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정신나간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 물리학이 그와 똑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슈뢰딩거39)의 고양이 실험은 잘 알려진 예이다. 고양이 한 마리를 상자 안에 넣고, 고양이 위에 치명적인 시안화물 캡슐을 놓는다. 단지 전자 하나가 그 캡슐이 열리는 것을 막아 주고 있다. 상자에는 두 군데에 틈이 나 있다. 하나는 돌쩌귀 구실을 하는 그 전자로 빛을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빛이 그 전자를 비껴 가게 하는 것이다. 상자에 광양자를 쏘이면, 그 광양자가 고양이를 죽일 확률은 2분의 1이다. 실험이 끝나기 전의 고양이는 50%는 살아 있고 50%는 죽어 있다. 상자를 열고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그 두 가지 현실에 걸쳐 있는 셈이다. 상자를 열고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행위는 죽어 있는 현실이든 살아 있는 현실이든 고양이를 하나의 현실로 옮겨 놓는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에서는, 상자의 뚜껑이 열리지 않는 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39) Erwin Schrodinger(1887 ~ 1961) :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파동 역학 이론을 확립하는 한편, 생물 물리학적 연구를 통해『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펴냈으며,『과학과 휴머니즘』같은 계몽서도 썼다. 1933년 디랙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포식자 만일 인류가 늑대가 사자, 곰, 하이에나 같은 주요한 포식 동물들을 몰아내지 못했다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는 불안한 문명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고대 로마 인들은 술을 부으며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사람의 시체를 한가운데에 가져다 놓곤 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만사가 덧없다는 것과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멸종시키거나 희귀 동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미생물이나 개미 같은 곤충뿐이다. 인간의 문명과는 반대로 개미 문명은 주요 포식 동물들을 제거하지 않고 발전해 왔다. 그 결과 곤충은 끊임없이 생존의 문제로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개미들은 자기들 문명의 갈 길이 아직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이루어 놓은 결실을,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라도 발길질 한번으로 허물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폭격기 딱정벌레 폭격기 딱정벌레brachymus creptians는 <기관총>을 갖고 있다. 그 딱정벌레는 공격을 받으면, 폭발 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내뿜는다. 그 곤충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분비샘에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을 배합하여 연기를 만든다. 첫번째 분비샘에선 과산화수소수 25%와 하이드로키논 10%를 함유한 용액을 분비하고, 두 번째 분비샘에선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하는 과산화 효소를 만든다. 이 분비액들이 연소실에서 혼합되어 온도가 섭씨 100도에 이르면 연기가 노오고 질산 증기가 분출하면서 폭발하게 된다. 폭격기 딱정벌레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곧 대포에 뜨겁고 매우 지독한 냄새가 나는 붉은 증기가 분출할 것이다. 그 질산은 피부에 수포를 일르킨다. 폭격기 딱정벌레는 혼합과 폭발이 이루어지는 복부의 배출구로 방향을 조절하며 목표물을 겨눌 줄도 안다. 그럼으로써 몇 센티미터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출 수 있다. 설사 빗나가더라도 그 어마어마한 폭음 때문에 어떤 공격자라도 도망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일반적으로 폭격기 딱정벌레는 서너 번 폭격할 수 있는 혼합물을 비축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곤충학자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자극했을 때 단숨에 스물네 번까지 쏠 수 있는 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폭격기 딱정벌레는 오렌지빛과 은빛 파란색이어서 눈에 띄기가 아주 쉽다. 대포로 무장했으니까 아무리 요란한 옷을 입고 자신을 드러내고 끄떡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체로 현란한 빛깔과 화려한 딱지 날개를 자랑하는 딱정벌레목 벌레들은 모두 호기심 많은 자들을 퇴치할 수 있는 아주 기발한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다. 주(註) :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격기 딱정벌레들이 그 <기발한 방어 수단>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생쥐는 혼합과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딱정벌레의 배를 즉각 모래 속에 처박아 버린다. 모래 속에서 마구잡이로 공격해서 이 곤충이 모든 폭약을 헛되이 다 써버렸을 때, 생쥐는 그것의 머리부터 삼킨다. 피라미드 개미들은 자기들의 도시를 피라미드 형태로 짓는다. 악천후에 가장 잘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피라미드 형태는 기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집트 인들뿐만 아니라 아즈텍 인들과 마야 인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한가운데와 높이의 3분의 2 되는 곳에 어떤 물체를 놓아두면, 그 물체는 흔히 일어나는 변화를 겪지 않는다. 꽃은 본래의 빛깔을 잃지 않고 마르며, 살은 썩지 않고 굳고, 면도날이나 칼날은 무디어지지 않는다. 그런 특성을 지닌 피라미드를 만들려면, 크기의 비율을 잘 지키는 것이 긴요하다. 만일 높이가 10단위라면 바닥의 길이는 15.70단위여야 하고 모서리의 길이는 14.94단위여야 한다. 따라서 높이 10센티미터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경우라면 모서리의 길이는 14.94센티미터가 되어야 하고, 높이 1백 미터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경우라면 모서리가 149.40 미터라야 한다. 피라미드의 방향을 잡을 때는 네 면이 각각 동서남북을 향하도록 놓아야 한다. ------------------------------------------------------------------------------------------------------------------------------------ ■■ ㅎ ■■ 한스의 속임수 1904년에 세계 과학계를 들뜨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침내 <인간과 똑같은 지능을 가진 동물>을 찾아냈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문제의 그 동물은 오스트리아의 학자 폰 오스텐이 훈련시킨 여덟 살바기 말이었다. <한스>라는 그 말을 보러 온 사람들은 그 말이 근대 수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한스는 방정식의 답을 척척 알아맞혔다. 뿐만 아니라, 시계를 정확하게 볼 줄 알았고 며칠 전에 본 사람들은 사진에서 찾아냈으며 논리 문제를 풀기도 했다. 한스는 굽 끝으로 물건을 가리켰고, 바닥을 두드려 수를 표시했다. 독일어 낱말을 전달하고자 할 때도 굽으로 바닥을 두드려 글자들을 하나하나 나타냈다. a는 한 번 두드리고, b는 두 번, c는 세 번 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한스를 상대로 갖가지 실험을 했다. 한스는 어떤 실험에서도 자기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말과 주인만이 아는 모종의 암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인을 입회시키지 않고 실험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동물학자에 이어 생물학자와 물리학자, 나중에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까지 세계 전역에서 한스를 보러 왔다. 그들은 의심을 품고 왔다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돌아갔다. 그들은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는 깨닫지 못했지만, 한스가 <비범한 동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4년 9월 12일, 학위를 지닌 13명의 전문가들은 한스가 보여 주는 능력이 사기일 가능성을 일체 배제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당시에 그것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과학계는 한스가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지녔다고 생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한스 현상의 비밀을 밝여낸 사람이 나타났다. 폰 오스텐의 조수 가운데 하나였던 오스카 푼크스트가 그 사람이었다. 그는 한스가 어떤 경우에 틀린 답을 내놓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스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답을 모르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오답을 내놓았다. 또, 자기 혼자서 사진이나 숫자나 문장을 대하고 있는 때는 대답이 제멋대로였다. 마찬가지로, 입회한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눈가리개를 씌우고 실험을 했더니, 한스는 예외 없이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결국, 한스의 능력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은 수준의 주의력에 있다는 것이 유일한 설명이었다. 한스는 굽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입회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태도의 변화를 감지했던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먹이라는 보상이었다. 비밀이 드러나자, 학계의 태도는 표변(豹變)하였다. 학자들은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간 것을 후회하면서 그때부터는 동물의 지능과 관련된 일체의 실험에 으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한스의 사례를 속임수의 희화적인 본보기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가련한 한스에게는 사람만큼 똑똑하다는 영광도 속임수에 능하다는 오명도 걸맞지 않는다. 한스는 그저 사람들의 태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한때 사람과 대등한 동물로 오해를 받았을 뿐이다. 어쩌면 한스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진짜 이유는 더 깊숙한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한증막 이러퀴이 족이나 휴런 족을 비롯한 북미 인디언의 많은 부족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면 한증막을 활용하곤 했다. 그들의 한증막은 높이가 1미터쯤 되고 짐승의 가죽을 이용해 반구형으로 만든 작은 오두막이었다. 복판에는 네 방위를 상징하는 돌과 함께 불 때는 자리가 있었고, 문은 동쪽으로 나 있었다. 인디언들은 그 오두막 안에 두세 명이 함께 들어가 세 시간 동안 머물러 있곤 했다. 열기와 연기 때문에 그들은 대개 환각 상태에 빠지게 마련이었다. 인디언 샤먼들은, 그런 상태에서 정신이 육체를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에 초자연적 존재인 마니투가 들어와 도움말을 준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그런 관습을 타파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벌거벗은 남녀가 한데 섞여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좁은 장소에 머물러 있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정작 한증막의 관습을 타파시킨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아닌 술이었다. 함께 있기 수피즘40) 철학에 따르면,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은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에 속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되고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더 이상 마음을 쓰거나 떠벌릴 필요도 없다.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40)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나 분파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실천 활동을 일컫는 말. 8세기 말에서 9세기에 걸쳐 이슬람 성법(샤리아)의 고전적인 형태가 확립되고 국가 권력이 성법의 준수를 강제하면서 신앙의 형식주의와 위선이 나타났다. 수피즘은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으로, 자아 의식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신과 자아의 이원적 대립을 초월하여 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금욕적인 수행과 명상 등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실천을 강조했다. 항상성 모든 생명체는 항상성을 추구한다. <항상성>이란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 사이의 평형을 뜻한다. 모든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능한다. 새는 날기 위해서 속이 빈 뼈를 가지고 있다. 낙타는 사막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물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카멜레온은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가죽의 색소 구성을 변화시킨다. 다른 많은 종(種)들과 마찬가지로 그 종들은 주위 환경의 모든 변화에 적응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바깥 세계와 조화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종들은 소멸했다. 항상성은 외부의 제약과 관련해서 우리 기관들이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에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평범한 사람들이 아주 가혹한 시련을 견뎌 내면서 거기에 자기의 기관을 적응시켜 가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많다. 전쟁은 살아 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이겨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전쟁중에는 여태껏 고생을 모르던 사람들도 아무런 불평 없이 물과 건빵에 길들여진다.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읽은 사람들은 며칠이 지나고 나면 식용 식물을 구별할 줄 알게 되고 사냥할 줄 알게 되며, 언제나 혐오감만 주던 두더지, 거미, 쥐, 뱀 같은 동물들도 먹을 수 있게 된다. 다니엘 디포의『로빈슨 크루소』나 쥘 베른의『신비로운 섬』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인간의 능력을 기리는 소설들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항상성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간다. 우리의 세포들이 이미 악착같이 항상성을 추구하는 성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포들은 온도가 가장 알맞고 독성 물질이 섞이지 않은 최대한의 영양액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그 상황에 적응한다. 술꾼의 간세포는 술을 절제하는 사람들의 간세포보다 알콜을 분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흡연자의 허파 세포는 니코틴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미트리다트 왕은 자기의 몸을 비소에 견딜 수 있게 만들기까지 했다. 외부 환경이 적대적일수록 세포나 개체는 이제껏 잠자고 있던 능력들을 자꾸 개발해 나간다. 호르몬과 페르몬 인간이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내분비샘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 호르몬은 인간의 몸 내부에만 영향을 끼친다. 호르몬은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몸 안에서만 순환한다. 지금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 하거나, 땀이 나려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려 하거나, 소리를 치려 하거나, 울려 한다고 치자. 그런 것은 그 사람의 일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덤덤하게 바라볼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할 터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이성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미가 두려움이나 즐거움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호르몬이 몸 내부에서 순환할 뿐만 아니라 몸 바깥으로 나가 다른 개미들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몸 밖으로 나가는 호르몬이 이른바 페로-호르몬 또는 페로몬인데, 이것이 있는 덕분에, 개미들은 한 마리가 소리치려 하거나 울려고 하면 수백만의 개미가 동시에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경험한 것을 똑같이 느낀다는 것, 자기 자신이 느낀 것을 남이 똑같이 느끼게 한다는 것은 놀라운 감각임에 틀림없다. 확률 주사위 노름에서 돈을 따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 있다. 상대에게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점의 수효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다음, 점의 합이 7이 될 거라는 쪽에 돈을 건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질 때, 점의 합이 7이 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각각의 경우에 대해 확률을 따져 보면 다음과 같다. 수효의 합이 2나 12가 되는 조합은 각각 1+1과 6+6 한 가지밖에 없다. 합이 3이나 11이 되는 조합은 각각 두 가지가 있다. 또, 합이 4나 10이 되는 조합은 세 가지, 합이 5나 9가 되는 조합은 네 가지, 합이 6이나 8이 되는 조합은 다섯 가지다. 그런데, 합이 7점이 되는 조합은 여섯 가지가 있다. 따라서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합이 점이 될 확률은 2점이 될 확률보다 여섯 배나 높다. 황금비(黃金比) 선분을 가장 아름답게 나누는 비, 즉 황금비는 물체에 신비한 힘을 부여함으로써 훌륭한 건축과 회화와 조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술적인 수다. 케호프 왕의 피라미드, 솔로몬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은 부분적으로 이 황금비에 따라 지어졌다. 그 비율을 지키지 않고 지어진 건물은 결국 붕괴되고 만다고 한다. 1 + √5 황금비는 ─── 즉, 1.618033988이다. 2 우리는 어떤 동물이나 식물에 나타나는 여러 수치들 간의 비율에서도 황금비를 발견할 수 있다. 흰개미 우연한 기회에 흰개미 전문 학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내가 몰두해 있는 개미들에 대해 물론 관심이 가긴 하지만, 개미들의 문명은 흰개미들이 이루어 놓은 문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흰개미들은 <완벽한 사회>를 이룬 유일한 모듬살이 곤충임에는 틀림이 없다. 흰개미들은 절대 군주 체제의 형태로 조직되어, 각 구성원이 여왕개미를 섬기는 데 행복해 하며, 모두들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돕고, 어느 누구도 사소한 야심이나 이기적인 생각을 품지 않는다. <연대 의식>이란 말이 가장 강한 의미를 띠는 곳은 분명 흰개미 사회이다. 이미 2억 년 전에 최초로 도시를 세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흰개미 사회의 그러한 성공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이론상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흰개미 도시는 이의 제기, 혁명, 내분을 모르고 지낸다. 그곳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건전한 유기체처럼 너무 잘 돌아가기 때문에, 흰개미들은 아주 단단한 진흙으로 만든 정교한 둥지에서 그저 행복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에 비하면 개미는 훨씬 무질서한 사회 체제에서 산다. 개미들은 시행 착오를 통해서 진보하고, 그들이 시도한 모든 일에서 오류를 범하면서 발전한다. 개미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일이 없으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개미 군체는 그리 견실한 체제는 아닐지라도, 기상천외한 해결책이 나타날 때까지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자멸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사회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흰개미보다 개미에게 한층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히포다모스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의 군대는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와 에페소스 사이에 있는 밀레토스라는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뒤에 페르시아 인들은 히포다모스라는 도시 건축가에게 도시 전체를 재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도시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백지 상태에서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히포다모스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가하학적으로 설계된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했다. 도시의 형태가 사회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던 그인지라 단지 도로와 집을 건설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1만명의 주민이 농(農) · 공(工) · 병(兵) 세 계층으로 나뉘어 있는 이상적인 도시를 구상했다. 히포다모스는 자연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인공적인 도시를 원했다. 도시 한복판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었고 거기로부터 바퀴살처럼 퍼져 나간 열두 갈래의 도로가 도시를 열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도로는 일직선이었고 원형 광장과 집들은 모두 한결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었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개인은 없었고 오로지 시민들만이 있었다. 연예나 풍류 따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시인, 광대, 악사와 같은 예술가들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로 여겨져, 밀레토스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가난한 자와 독신자와 일할 수 없는 자들도 도시에 들어올 수 없었다. 도시를 완벽한 기계 장치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히포다모스의 생각이었다. ------------------------------------------------------------------------------------------------------------------------------------ 옮긴이 이세욱은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 작품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연작 소설『개미』(전5권),『타나토노트』(전2권),『아버지들의 아버지』(전2권),『천사들의 제국』(전2권),『밑줄긋는 남자』(카롤린 봉그랑),『드라큘라』(브램 스토커),『까트린 이야기』(빠드릭 모디아노),『속 깊은 이성 친구』(장 자끄 상뻬),『두 해 여름』(에릭 오르세나),『무엇을 믿을 것인가』(움베르토 에코,『카트린 M의 성생활』(카트린 밀레),『프란츠 파농』(알리스 셰르키),『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마르셀 에메)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