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개미의 날 다섯 번째 비밀 개미들의 주인 146. 신을 믿는 개미들 반체제 개미들은 도시의 통로를 전속력으로 내리닫는다. 꿀단지 개미를 빼돌려 리빙스턴 박사에게 가져가려던 그들이 벨로캉 연방 경비대의 추격을 받고 있다. 몇몇 반체제 개미들이 경비대의 추격을 늦추려고 자기 몸을 던지고 있다. 개미산이 분출한다. 신을 믿는 개미 한 마리가 쓰러진다. 또 한 마리가 쓰러진 다. 살아남은 것들은 점점 빈대들의 방 쪽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반체 제 개미 모두를 죽이기 전에 여왕 클리푸니는 알고 싶은 게 있다. 여왕은 광신자 하나를 들여보내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여왕이 묻는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똑같은 얘기다. 여왕 클리푸니는 생각에 잠긴 듯 더듬이를 흔든다. 얼마 전부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반체제 운동이 새롭게 발 전하고 있다. 여왕의 첩보 개미에 따르면 겨우 몇 주 전만 해도 열 두 마리뿐이었는데 지금은 백여 마리나 된다고 한다. 반체제 개미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야 한다. 장차 그들은 너무 나 위험한 존재가 될 것이다. 147. 장난감 가게 "이제, 어떻게 하죠?" 래티샤 웰즈가 물었다. "자, 들어갑시다." 자크 멜리에스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 집 사람들이 우리를 들여보낼까요?" "사실 초인종은 누를 생각도 없어요. 건물 정면에 나 있는 저 창 문으로 들어갑시다. 누가 뭐라면, 수색 영장을 제시할 생각이오. 가 짜로 하나는 늘 휴대하고 다니니까요." "당신 형편없군요! 정말이지, 경찰과 강도는 크게 다를 게 없다니까." 래티샤가 쏘아붙였다. "그렇게 소심하고 감상적이어서는 범죄자들을 해치울 수가 없어 요. 자 갑시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래티샤는 호기심에 끌려서 그의 뒤를 따라 빗물받이 홈통을 타고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렵게 수직면을 기어올라갔다. 그들은 손을 긁히고 몇 번 떨어질 고비를 넘긴 후에야 테라스에 올라섰다. 집이 2층밖에 안 되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은 숨을 돌리고 방사능 탐지 장치를 들여다보았다. 푸른 점은 여전히 화면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살해범 개미들이 이제 5, 6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듯했다. 그들은 반쯤 열려 있는, 테라 스의 문을 겸한 창문으로 들어갔다. 회중 전등으로 비춰보니, 그곳은 흔히 볼 수 있는 침실이었다. 붉 은 슈닐사 이불이 덮힌 커다란 침대와 노르망디 식 가구가 있었고 꽃무늬 벽지에 여기저기 복제품 산수화들이 걸려 있었다. 방에선 나 프탈렌 냄새와 함께 라벤더 향기가 났다. 침실은 <가구점>같은 거실로 통해 있었다. 거기에는 다리가 잘 빠진 안락 의자들과 유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샹들리에가 있었다. 까치발 달린 테이블에 동양 향수들을 모아 진열해 놓은 것이 아주 특이해 보였다. 한 쪽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거기에선 아마도 사람들이 텔레비젼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멜리에스가 방사능 탐지 장치의 화면을 응시했다. "개미들이 지금 우리들 위에 있어요. 틀림없이 지붕 밑 방이 있을 겁니다." 멜리에스가 속삭였다. 그들은 천장에 뚜껑문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욕실 통로에 지붕 밑 방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 뜻밖에도 불빛이 흘러나왔다. "올라갑시다." 연발 권총을 꺼내며 멜리에스가 말했다. 그들은 기이하게 생긴 지붕 밑 방으로 들어섰다. 방 가운데에 개 미 사육통이 놓여 있었다. 레티샤의 사육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열 배는 더 커보였다. 그 거대한 사육통에서 나온 대롱들이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었 고, 컴퓨터는 다시 아주 다양한 색상의 유리병들과 연결되어 있었 다. 왼쪽엔 정보 처리 기기들, 돌로 된 작업대, 현미경, 뒤죽박죽 얼킨 전깃줄과 트랜지스터가 있었다. 레티샤가 <미친 학자의 소굴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뒤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손들엇!" 그들은 천천히 돌아섰다. 커다란 총열을 가진 총 하나가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 총 위에 놀랍게도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 믈랭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148. 백과 사전 폭격기 딱정벌레 폭격기 딱정벌레 Brachynus creptians는 <기관총>을 갖고 있다. 그 딱정벌레는 공격을 받으면, 폭발소리를 내면서 연기를 내뿜는다. 그 곤충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분비샘에서 분비되는 화학 물질을 배 합하여 연기를 만든다. 첫번째 분비샘에서 과산화수소수 25%와 하이 드로키논 10%를 함유한 용액을 분비하고 두 번째 분비샘에선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하는 과산화효소를 만든다. 이 분비액들이 연소실에서 혼합되어 온도가 100도에 이르면 연기가 나오고 질산 증기가 분출하 면서 폭발하게 된다. 폭격기 딱정벌레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곧 대포에서 뜨겁고 매 우 지독한 냄새가 나는 붉은 증기가 분출할 것이다. 그 질산은 피부 에 수포를 일으킨다. 폭격기 딱정벌레는 혼합과 폭발이 이루어지는 복부의 배출구로 방 향을 조정하며 목표물을 겨눌 줄도 안다. 그럼으로써 몇 센티미터 거리에 있는 표적을 맞출 수 있다. 설사 빗나가더라도 그 어마어마 한 폭음 때문에 어떤 공격자라도 도망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일반적으로 폭격기 딱정벌레는 서너 번 폭격할 혼합물을 비축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곤충학자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자극했을 때 한숨에 스물네 번까지 쏠 수 있는 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폭격기 딱정벌레는 오렌지빛과 은빛 파란색이어서 눈에 띄기가 아 주 쉽다. 대포로 무장했으니까 아무리 요란한 옷을 입고 자신을 드 러내도 끄덕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체로 현란한 빛깔과 화려한 딱지 날개를 자랑하는 딱정벌레목 벌레들은 모두 호기심 많 은 자들을 퇴치할 수 있는 아주 기발한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다. 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격기 딱정벌레들이 그 <기발한 방어 수 단>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아는 생쥐는 혼합과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딱정벌레의 배를 즉각 모래 속에 처박아버린다. 모래 속에서 마구잡이 공격을 하면서 이 곤충이 모든 폭약을 헛되이 다 써버렸을 때, 생쥐는 그것의 머리부터 삼킨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49. 아침을 노래하다. 코르니게아 아카시아의 속이 빈 어떤 잔가지 안에 자리를 잡았던 24호가 잠에서 깨어난다. 잔가지 옆구리에는 통풍구로 쓰이는 작은 구멍들이 배의 현창처럼 나 있다. 바닥의 얇은 막을 뚫고 들어가니 방 하나가 나오는데, 육아실로 쓰면 좋게 되어 있다. 다른 개미들은 아직 자고 있다. 24호는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간다. 코르니게라의 잎자루에는 개미들의 먹이가 들어 있다. 자란벌레를 위해서는 감로를 내놓고 애벌레를 위해서는 미세한 분말을 내놓는 다. 그 먹이는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해서 자란벌레, 애벌레 모두 의 영양 섭취에 적합하다. 잔물결이 절벽에 부딪치면서 찰방찰방 소리를 낸다. 진한 박하 향 과 사향내가 공기 속에 섞여 있다. 백사장 위로 나아가보니 붉은 태양이 강물 위를 비추고 있다. 물 빈대들이 수면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다. 고목의 잔가지 하나가 방파 제 구실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 맑은 물 속을 들여다보니 거머 리들과 장구벌레들이 떼지어 돌아다닌다. 24호는 섬의 북쪽으로 올라간다. 물 위에 좀개구리밥이 무성하다. 푸르고 둥그런 알갱이들로 이루 어진 풀밭 같다. 그 물풀들이 절벽의 기슭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 위로 이따금 송장개구리들의 두 눈이 뒤룩거린다. 멀리 만 안에는 연보랏빛 줄기를 가진 백련이 보인다. 수련은 곤충들 세계에선 효험 있는 진정제로 잘 알려져 있다. 기근이 드는 시기에 곤충들은 녹말 이 풍부한 수련 뿌리줄기를 먹기도 한다. <<자연은 언제나 모든 것을 배려하지.>> 24호가 중얼거린다. 치료법은 늘 병의 바로 곁에 있다. 썩은 물가 에서 자라는 능수버들의 껍질에는 비위생적인 장소에서 걸리는 질병 을 치료하는 살리실산(아스피린의 주성분)이 들어 있다. 섬이 자그마해서 벌써 24호는 동쪽 기슭에 있다. 그곳은 줄기가 물속 깊이 잠긴 수륙 양생 식물로 뒤덮혀 있다. 쇠귀나물, 여뀌, 미 나리 아재비들이 무성하게 자, 보랏빛과 흰빛을 푸르름 속에 보태고 있다. 24호 위로 잠자리들이 짝을 지어 선회하고 있다. 수컷들은 자기의 두 생식기를 암컷들의 두 생식기와 결합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수컷 은 생식기가 가슴 아래와 배 끝에, 암컷은 머리 뒤와 배 끝에 있다. 교미를 하면서 생식기 넷이 동시에 교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복잡한 곡예가 필요하다. 24호는 계속해서 섬을 돌아다닌다. 섬 남쪽엔 갈대, 골풀, 붓꽃, 박하 등 습지 식물들이 땅에 곧게 뿌리를 박고 있다. 갑자기 대나무 사이로 검은 눈이 나타나 24호를 바라보더니 앞으로 나온다. 도룡뇽의 눈이다. 그것은 도마뱀과 비슷 한 동물로,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얼룩 무늬가 있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머리는 둥글납작하고, 등에는 회색 무사마귀가 퍼져 있는데, 그것은 그의 조상인 공룡에게 있었던 뾰족한 돌기들의 마지막 흔적 이다. 그 동물이 다가온다. 도룡뇽들은 곤충 먹이를 대단히 즐기지 만 동작이 너무 느리기 때문에 대개 먹이들은 도룡뇽에게 잡히기 전 에 잽싸게 달아난다. 그래서 도룡뇽들은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난 뒤 물에 잠긴 곤충들을 긁어모을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린다. 24호는 아카시아 은신처로 질주한다. <<비상, 도롱뇽이다, 도롱뇽!>> 24호가 냄새 언어로 소리친다. 개미들이 나무에 뚫린 총 구멍을 통해 개미산이 들어 있는 배 끝 을 겨눈다. 목표물이 별로 빠르지 않기 때문에 개미산이 쉽게 적중 한다. 그러나 시커멓고 단단한 살갗을 가진 도롱뇽에겐 개미산 따위 는 그저 가소로울 뿐이다. 위턱으로 살갗을 뚫으려고 그 위로 달려 든 개미들은 살갗을 덮고 있는 아주 독한 체액 때문에 죽음을 당한 다. 이처럼 때때로 동작이 굼뜬 것이 재빠른 것들을 정복할 수도 있다. 스스로 불사신이라고 굳게 믿는 도롱뇽은 포수 개미들로 가득 찬 가지를 향해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다가온다. 그러다가.... 코르니 게라 아카시아 가시에 찔린다. 도롱뇽은 몸에서 피가 나자 질겁하여 상처를 살펴보고는 되돌아가서 골풀 사이에 몸을 숨긴다. 굼뜨게 움 직이던 도롱뇽이 이제 꼼짝도 안 하고 있다. 나무 안에 있던 모든 곤충들은 그 코르니게라 아카시아에게 찬사 를 보낸다. 마치 그 나무가 그들을 포식자로부터 지켜준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마워한다. 곤충들은 가지에 걸쳐 있는 기생 식물들을 마저 치워주고 뿌리 근처에 배설물을 쏟아 퇴비를 준다. 아침 공기가 따사로워지자 곤충들은 저마다 자기 일에 열중한다. 흰개미들은 강물에 떠내려온 나무 끝에 구멍을 뚫고, 파리들은 짝짓 기를 하느라 정신없다. 곤충들은 각자 좋아하는 구역으로 이동한다. 코르니게라 섬은 곤충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먹이를 제공하고 약탈 자들로부터 그들을 떼어놓는다. 강에는 갖가지 먹이가 풍부하다. 개미들이 즙을 짜서 당분이 많은 음료를 얻는 조름나물, 늪 물망초, 상처를 소독하는 거품장구채, 가 시로 물고기를 잡아 개미들에게 새로운 먹이를 만들어 주는 등골나 물 등이 있다. 하늘엔 모기와 잠자리가 떼지어 떠다니고, 그 아래에 원정군 병사 들은 저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대도시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 어나서 섬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사슴벌레 수컷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 집게와 뾰족한 뿔로 무장한 커다란 사슴벌레 두 마리가 빙빙 돌다 가 아주 잘 발달된 위턱으로 서로를 움켜잡더니 번쩍 들어올리면서 둘 다 나둥거러진다. 키틴질로 된 등판이 맞부딪치고 뿔이 충돌한 다. 프로레슬링 시합 같다. 먼지가 자욱하고 소리가 요란하다. 그들 은 하늘로 올라가 격투를 계속한다. 관중들은 모두 그 굉장한 결투를 보며 열광한다. 그들 속에서 벌 써 위턱들이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두 사슴벌레의 싸움은 몸집이 큰 쪽에 유리하게 돌아가더니 결국 작은 쪽이 공중에서 곤두박질하고 만다. 이긴 사슴벌레는 승리의 표 시로 하늘을 향해 날카롭고 긴 집게를 곧추세운다. 103호는 이 사건에서 어떤 낌새를 느끼고, 코르니게라 섬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을 끝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동물들은 원정을 계속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짝짓기를 둘러싼 다툼, 난투, 언쟁이 다시 벌어질 것이고, 종족간의 오랜 대 립이 다시 나타날 것이며, 동맹은 깨질 것이다. 개미들은 흰개미들 과, 꿀벌들은 파리들과, 풍뎅이들은 다른 풍뎅이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파괴하려는 충동을 공동의 적에게 집중시켜야 한다. 원정을 계속 해야 한다. 103호는 주위에 그런 생각을 알리는 페로몬을 발한다. 곧 이어 내일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자마자 다시 떠나자는 결정이 이루어진다. 황혼이 찾아들고, 원정군 병사들은 천연의 숙소 안에 자리를 잡고 여느 때처럼 환담을 나눈다. 어떤 개미가 문득 새로운 제안을 한다. 원정에 참여한 것을 기념 하는 뜻으로 각자 산란 번호 대신에 여왕개미들처럼 이름을 갖자고 한다. <<이름이라고?>> <<그래....>> <<좋아, 우리 서로 이름을 정하자.>> <<난 뭐라고 부를 텐가?>> 103호가 묻는다. <안내자>난 <새를 정복한 자>, 또는 <두려워하는 자>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온다. 하지만 103호는 자기의 성격을 가장 잘 특징짓는 것은 회의와 호 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는 <회의하는 자>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나는 <깨달은 자>로 불러주면 좋겠어. 손가락들이 우리의 신이 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23호가 나선다. <<난 <싸우는자>로 불러줘. 왜냐하면 나는 개미들을 위해 개미의 모든 적과 싸우기 때문이야.>> 9호가 주장한다. 다들 무엇인가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한다. 얼마 전만 해도 <나>는 금기의 단어였다. 개미들이 자기의 이름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자기들을 전체의 부분으로 뿐만 아니라 개체로 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3호는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은 정상이 아 니다. 그는 네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이런 생각을 포기할 것을 요구 한다. <<모두들 준비하게. 우린 내일 일찍 떠나야 해. 되도록 일찍.>> 150. 백과 사전 오로빌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 오로빌(오로르빌)의 모험은 인간이 시도한 가장 흥미로운 이상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다. 1968년 벵골 철학자 스리 오로벵도와 프랑스 여루 철학자 미라 알파사(<어머니>라 불리 었음)는 그곳에 이상형 마을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곳은 모든 것이 중앙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든 나 라로부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절대적 이상향을 추구하 던 유럽 인들이 오로빌로 모여들었다. 남녀 모두 풍차, 수공업 공장, 배수로, 정보 센터, 벽돌 공장을 건설했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 작물을 심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영적 경험을 세세히 기록한 몇 권의 책을 썼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어머니>를 신으로 받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처음에 그녀는 그런 영예를 사양했다. 그러나 스리오로 벵도가 죽고 나자,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 줄 힘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리 알파사는 오래지 않아 숭배자들의 요구에 무릎 을 꿇고 말았다. 그들은 그녀를 방에 가두고, 살아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으면 죽 은 여신이라도 되라고 강요했다. 미라 알파사는 스스로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미라 알파사는 억지 춘향으로 여신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머니>는 아주 쇠 약해 보였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기가 감금되어 있 다는 사실과 숭배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음을 폭로하려 하자, 숭배자들은 그녀의 말을 막고 방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는 자기를 숭배하는 척하는 자들이 매일매일 가하는 고통 때문에 점점 쭈그렁 노파가 되어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우여 곡절 끝에 자기의 옛 친구들에게 은밀한 전갈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은 여신, 즉 더 쉽 게 숭배할 수 있는 여신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구원 요청은 헛된 것이 되었다.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들은 즉각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최후의 통신 방법으로, 그녀는 갇혀 있던 방 안에서 자기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오르간을 연주하였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어머니>는 1973년에 죽었다. 십중 팔구는 치사량의 비소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오로빌 공동체는 그녀를 여신으로 예우하면서 장례를 치르어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어지자, 더 이상 공동체를 공고히 해줄 것이 남 아 있지 않았다.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대립했다. 이상 세계에 대한 꿈을 망각한 채, 그들은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나 갔다. 그들이 벌인 많은 소송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때 가장 야심만 만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실험의 하나였던 오르빌에 대해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51. 니콜라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라.>> 니콜라는 클리푸니가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반체제 운동이 가 가스로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권능을 가진 신이 되려면 자기 말이 즉각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니콜라 웰즈 는 지하 공동체 모두가 잠든 시간을 이용하여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니콜라는 영감을 떠올린 다음,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어린 모짜르트 같았다. 다만 니콜 라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신으로 바꾸어줄 페로몬의 교향곡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봉헌의 임무에 충실하라. 너희가 우리를 지성으로 공양하지 않았기에 고통과 죽음을 겪는 것이니라.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손가락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의 .... "니콜라, 안 자고 뭐 하니?" 조나탕 웰즈가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면서 다가왔다. 니콜라 웰즈는 기겁을 하며 컴퓨터를 끄려 했지만 스위치를 잘못 눌러 모니터가 더 밝게 되었다. 조나탕은 얼핏 쳐다본 것만으로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마 지막 구절을 읽을 시간밖에 없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이들은 개미들이 자기들을 부양하게 하려고 신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조나탕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곧 개미들을 기만하는 니콜라 의 그 술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깨달았다. 니콜라가 개미들에게 신앙을 갖게 했다! 조나탕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접하고 잠시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니콜라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이해해 주세요. 아빠. 우리를 구하려고 그랬어요. 개미들이 우리 를 부양하게 하려고...." 조나탕 웰즈는 당황했다. 니콜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모든 개미들이 우리를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싶었어요. 우리가 여 기에 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개미들 때문이고, 우리를 여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도 개미들이에요. 그런데 개미들이 우리에게 더 이상 양식을 가져오지 않고, 우리를 내팽개쳐서 굶겨 죽이려 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반격을 가하고 무언가 를 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해서 해결책을 찾아낸 거 예요. 우리는 개미들보다 천 배는 똑똑하고, 강하고, 위대하고, 사 람은 누구나 이 곤충에겐 거인이예요. 만약 그것들이 우리를 신으로 여긴다면, 우리가 굶어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거예요. 그래서 나는 개미들이 신을 믿게 했어요. 아빠가 분비꿀과 버섯을 조금이라도 더 먹게 되셨다면 그건 제 덕이에요. 열두 살짜리 어린애인 제가 아버 지와 어른들을 구했단 말이에요! 그때 어른들은 스스로를 개미로 여 기고 있었고요." 조나탕 웰즈는 손가락 자국이 빨갛게 나도록 아들의 볼을 사정없 이 힘껏 때렸다. 그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순식간에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니콜라가!...." 오귀스타 할머니는 아연해 하면서 소리쳤다. 니콜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의 차가운 눈길을 받고 그 기세가 등등하던 개미들의 신이 거 짓 울음을 우는 사내아이로 변했다. 조나탕 웰즈가 다시 손찌검을 하려고 하자 그의 아내가 말렸다. "그만둬요. 여기에서 다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폭력을 없애려고 그렇게 애썼느데 왜 이래요!" 그러나 조나탕은 극도로 화가 나 있었다. "저 애가 인간의 특권을 남용했소. 개미의 문화에 <신>의 개념을 도입하다니! 누가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겠소? 종교 전쟁, 이단 심 판, 광신, 배척, 그 모든 것이 내 아들 때문에...." "우리 모두의 잘못이에요." 뤼시는 관용을 바랐다. "어떻게 그 엄청난 잘못을 돌이킬 수 있단 말이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조나탕은 한숨을 지었다. 뤼시는 남편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벌써 내 눈엔 해결책이 보여요. 어서 니콜라하고 얘기를 나눠봐요." 152. 코르니게라 자유 공동체(CLC)의 탄생 날이 밝는다. 오늘 아침 24호는 또 다시 안개 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해야, 솟아라." 그러자 태양이 그의 말을 따른다. 24호는 가지 끝에 혼자 앉아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생각에 잠긴다. 신은 존재하지만, 굳이 손가락들의 몸을 빌어 존재하지는 않을 것 이다. 그렇게 거대하고 괴상한 동물로 바뀔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 히려 신들은 저기에 있다. 코르니게라 나무가 개미들을 끌어들이려 고 만들어낸 달콤한 먹이 속에, 풍뎅이의 눈부신 딱지 속에, 흰개미 도시의 온도 조절 장치 속에, 강의 아름다움과 꽃의 향기 속에, 빈 대들의 난잡한 교미 행각과 나비 날개의 노란 빛깔 속에, 울멍줄멍 한 산들과 평온한 강물속에 개미를 죽이는 비와 새로운 힘을 주는 태양 속에! 23호처럼 초월적인 힘에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24 호는 그 초월적인 힘이 도처에 그리고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힘은 손가락들에 의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신이다. 23호가 신이고 손가락들이 신이다. 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더듬이와 위턱이 닿는 모든 곳에 신이 있다. 24호는 103호가 전해 준 개미의 전설을 생각한다. 이제 그는 그 전설을 온전히 이해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지금이다. 행해야 할 가장 중요 한 일은 무엇인가? 자기 앞에 놓인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행복의 비결이란? 땅 위를 걷는 것이다!>> 그는 우뚝 선다. <<해야, 더 높이 솟아 환히 비추어라!>> 태양은 또 다시 고분고분하게 복종한다. 24호는 걸어가다가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나방 고치를 내려놓는다. 메르쿠리우스 임무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 는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제 원정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 24 호는 늘 자신의 위치를 몰라 길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있을 곳이 바로 여기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이 섬을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이고, 그의 유일한 희망은 한 순간 을 삶의 경이로운 선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24호는 더 이상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 도 이젠 두렵지 않다. 누구나 자기의 올바른 자리에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24호는 103호를 찾아 달린다. 침으로 물망초 배를 수선하고 있는 103호를 찾아낸다. 더듬이들의 접촉. 24호는 고치를 103호에게 건넨다. <이제 이 보물을 운반하지 않을거예요. 당신 혼자서 이걸 가져가 세요. 난 이곳에 남겠어요. 이제 모든 걸 깨달았어요. 싸움에도 신 물이 났고 길을 잃고 헤매는 것에도 지쳤어요.>> 급작스러운 24호의 페로몬에 놀라 다른 개미들이 모두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103호는 얼떨떨해 하면서 나방 고치를 받는다. 103호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두 개미가 더듬이 끝을 살짝 맞댄다. <<난 여기 남겠어요. 이곳에 도시를 세울 겁니다.>> 24호가 되풀이한다. <<하지만 자네가 태어난 둥지 벨로캉이 있는데!>> 젊은 개미는 물론 벨로캉이 크고 강력한 연방이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개미 도시끼리 경쟁하는 것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태어나 면서부터 각자에게 하나의 역할을 부여하는 계급 제도에도 싫증이 난다. 24호는 그들과 손가락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 모든 것을 무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자네 혼자 있게 될텐데!>> <나 말고도 섬에 남고 싶어하는 병사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과 기 꺼이 함께하겠습니다.>> 불개미 한 마리가 다가온다. 그 개미 역시 이 원정에 지쳐 있다. 손가락들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는 손가락들과 아 무런 상관이 없다. 다른 여섯 마리도 역시 섬을 떠나기 싫다고 페로몬을 발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꿀벌 두 마리와 흰개미 두마리가 원정군과 결별 하기로 결정한다. <<개구리들이 너희를 모두 삼켜버릴거야.>> 9호가 경고한다.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코르니게라 아카시아가 가 시로 포식자들로부터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딱정벌레 한 마리와 파리 한 마리가 24호의 동아리로 간다. 그리 고 다시 개미 열 마리, 꿀벌과 흰개미 각각 다섯 마리가 그들에게 합류한다. 어떻게 그들을 만류하겠는가? 불개미 한 마리가 자기는 신을 믿는 개미지만 이곳에서 살고 싶 다고 신호를 보낸다. 24호는 손가락들에 대한 신앙과 관련해서, 그 들의 공동체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섬에서는 각 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다....>> 103호는 전율한다. 처음으로 곤충들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든다. 그들은 페로몬으로 <코르니게라 도시>라 이름 짓고 나무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호르몬 이 가득한 약간의 로열 젤리를 가진 꿀벌들이 생식 개미가 되고 싶 어하는 비생식 개미들을 원하는 대로 바꾸어준다. 그럼으로써 장차 여왕들이 생길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103호는 그런 결정에 놀란 듯 망연 자실한 채 움직일 줄 모른다. 그러더니 다시 더듬이를 움직이면서 원정군을 계속할 병사들에게 다 시 모이라고 요구한다. 153. 백과 사전 나무들끼리의 의사 소통 아프리카에는 놀라운 특성을 보여주는 아카시아들이 있다. 그 나 무는 영양이나 염소가 뜯어먹으려고 하면 제 수액의 화학적 성분을 독성 물질로 변화시킨다. 동물은 나무의 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 고 다른 나무를 뜯어먹으러 간다. 그러면 이 아카시아는 즉각 향기 를 발산하여 근처의 다른 아카시아들에게 약탈자의 출현을 알린다. 몇 분 만에 그 아카시아들은 모두 동물들이 뜯어먹을 수 없는 것들 이 된다. 그러면 초식 동물들은 멀어져간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경보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아카시아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 데 동물들을 대규모로 사육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염소 떼와 아카 시아 무리가 같은 장소에서 맞부딪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 경 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뜯긴 아카시아가 다른 아카시아들에 게 위험을 알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들은 독이 든 나무를 뜯을 수 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염소 떼가 독으로 죽게 되는데, 인 간은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54. 세계의 끝이 지척에 있다. 정오. 코르니게라 섬에 남은 개척자들이 정착할 준비를 하는 동안, 103 호는 출항 준비를 한다. 원정군 병사들이 물망초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원정군이 배를 댈 건너편 강기슭을 조사하려고 파리들이 정찰을 떠난다. 파리들은 정박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 말하자면 가장 덜 위 험한 곳을 찾을 임무를 띠고 있다. 모든 배들이 정박지를 떠난다. 코르니게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물 가까지 따라와 배를 강으로 미는 것을 돕는다. 개미들은 서로 격려 의 페로몬을 교환하느라 더듬이를 곧추세운다. 외딴섬에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나, 세상 저쪽의 괴물들과 싸우는 일이나 어렵 기는 매일 반이다. 두 집단 모두 끈기가 있어야 하고,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각자가 세운 목표를 포기해선 안 된다. 배는 강기슭에서 멀어지고, 물망초 잎에 승선한 향해자들은 신을 믿는 개미들이 세운 점토 동상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본다. 함대가 줄지어 나아간다. 물방개 사공들이 미는 가냘픈 쪽배들이 강물 위로 빠르게 나아간 다. 배들에서는 뿔풍뎅이들이 함대에 접근하려는 새들을 몰아낸다. 원정군은 그런 식으로 진군, 또 진군한다. 포근한 대기 속에 페로몬 군가가 울려퍼진다. 그들은 거대하다, 그들은 저기 있다. 손가락들을 죽이자, 손가락들을 죽이자. 그들은 우리의 창고에 불을 지른다. 손가락들을 죽이자, 우리는 그들을 죽이리라! 그들은 우리 도시를 약탈한다. 손가락들을 죽이자, 손가락들을 죽이자. 그들은 작은 벌레들에 핀을 꽂는다. 손가락들을 죽이자, 우리는 그들을 정복하리라! 그들은 우리의 목숨을 살려두지 않는다. 손가락들을 죽이자, 손가락들을 죽이자. 이따금 잉어, 송어, 메기가 등지러미 끝을 드러낸다. 하지만 뿔풍 뎅이들의 경호엔 언제나 빈틈이 없다. 수중 괴물들 가운데 배를 위 협하는 자가 있으면 그들은 비호같이 달려들어 이마에 난 창으로 그 자의 비늘을 찔러버린다. 척후 파리들이 녹초가 된 채로 돌아와, 항공 모함에 비행기가 내 려 앉듯 잎에 앉는다. 그들은 둑 가까이에서 세계의 끝을 보았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그들을 저편으로 건네줄 돌로 된 아치도 발견 했다는 것이다. 운수 대통이다! 터널을 파지 않아도 되겠군! 103호는 몹시 기뻐한다. <<그 다리가 어디 있는데?>> <<조금 북쪽에. 강물을 거슬러오르면 돼.>> 원정군 병사들은 마음이 설렌다. 세계의 끝이 지척에 있다지 않는가. 함대는 큰 피해 없이 맞은편 둑에 닿는다. 배 한 척만이 도롱뇽의 먹이가 되었을 따름이다. 항해에는 그만한 위험쯤이야 늘 따르는 법이 아닌가! 부대별, 종족별로 헤쳐모여. 전진! 파리들이 말한 대로다! 세계의 끝을 결코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 인가! 저기 있다. 신비와 전설에 싸인 검은 띠가. 저기 덩어리들이, 연기와 탄화수소로 역한 내가 풍기는 뿌연 먼지 속을 눈이 핑핑 돌 만큼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고 있다. 지축을 흔드는 저 힘은 전혀 미 지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니다. 103호가 보기에는, 돌진하는 그 덩어리들은 세계의 끝의 경비대들 이다. 그는 또 그것들은 손가락들의 화신이라고 여긴다. <<자, 저것들을 공격하자!>> 병정 흰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안 돼, 우리의 공격 목표는 저것들이 아냐. 게다가 여기선 안돼.>> 103호는 검은 띠가 손가락들에게 놀라운 힘을 준다고 믿고 있다. 덜 위험한 곳에서 싸우는 게 낫다. 세계의 끝 다른 편, 이를테면 다 리 저편에서 싸워야 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부대에나 무분별하고 무모한 자는 있기 마련이다. 흰개미 하 나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검은 띠 위로 나아가자마자, 그는 나 뭇잎처럼 납작해지고 만다. 하지만 곤충들이란 그런 것이다. 무엇이 건 시험해 보지 않고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고 후, 원정군은 103호를 따라 다리로 가서 손가락들의 무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미지의 땅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옮긴다. 155. 낯익은 얼굴 뚜껑 문 위로 한 사람이 상반신을 드러내더니, 사다리에 선 채로 두 사람에게 소총을 겨누었다. 그녀가 사다리를 몇 단 더 올라와 그 들과 마주하게 되자, 자크 멜리에스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레티샤 웰즈의 입 안에서는 금방이라도 떠오를 듯 떠오를 듯 어떤 이름 하나가 맴돌고 있었다. "총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으시죠, 선생!" 멜리에스는 총을 발치에 놓았다. 이 음색, 이 목소리.... "우리는 강도가 아니예요. 제 동료는...." 레티샤가 입을 열었다. 경정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이 동네에 살고 있소." "아무래도 좋아요!" 그 여자는 전깃줄로 그들을 의자에 묶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 이제 최상의 조건에서 대화할 수 있겠군요." (정말이지 누구였더라?) "멜리에스 경정과 당신, '일요 메아리' 기자 레티샤 웰즈 양, 내 집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죠? 그것도 둘이 함께. 난 늘 두 사람 이 앙숙이라고 생각했는데. 웰즈 양은 신문에 당신을 모욕하는 기사 를 썼고, 당신은 그녀를 잡아넣었잖아요! 그런데 두 사람이 작당을 해서 내집에 숨어들다니, 그것도 한 밤중에." "그건...." 이번에는 그녀가 레티샤의 말허리를 끊었다. "나는 왜 당신들이 이런 성가신 방문을 했는지 잘 알아요. 자, 말 해봐요. 우리 개미들을 어떻게 따라왔지요?" "여보, 무슨 일이 있소? 거기에서 누구와 얘기하는 거요?"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리집에 온 불청객들과 이야기하고 있어요." 뚜껑문 위로 다른 사람의 머리와 몸뚱이가 차례로 올라왔다. (저 사람은 모르겠는데.)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르고 붉은 체크 무늬가 찍힌 회색 셔츠를 입 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산타 클로스, 하지만 너무 나이가 들어 힘이 다 빠져버린 산타 클로스 같았다. "멜리에스 씨와 웰즈 양이에요. 이들이 여기까지 우리의 작은 친 구들을 따라왔어요.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제 우리에게 말할거예요." 산타 클로스는 아연 실색하는 듯했다. "한데 그들은 둘 다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오. 경찰관으로서, 기자 로서 말이오! 그들을 죽이면 안 돼요. 게다가 우리는 사람들을 벌써 너무 많이 죽였소...." "아더, 당신 포기하고 싶으세요? 공든 탑이 다 무너져도 좋아요?" 여자가 냉정하게 물었다. "그렇소." 아더가 대답했다. "우리가 포기한다면, 누가 우리의 일을 이어서 하지요? 아무도 없 어요, 아무도...." 그녀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흰 수염의 남자는 손가락을 비틀었다. "이들이 우리를 발견했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 는 얘기가 돼요. 그러면 죽이고, 또 죽여야 한단 말이오! 아무리 해 도 우린 임무를 결코 끝내지 못할거요. 한 사람을 처치하면 열 사람 이 나타날거요. 난 이 모든 폭력에 진절머리가 나요." (산타 클로스, 저 남자는 본 적이 없는데.... 저 여자는, 저 여자는....) 레티샤는 갑작스런 소동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그 부부가 두 사람의 목숨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데도 그걸 제대로 이해하 지 못하고 있었다. 아더는 검버섯이 얼룩덜룩한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부인과의 말다툼이 그를 지치게 만든 듯했다. 그는 무엇에 매달려 몸을 지탱 하려다가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고 실신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여자는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그들을 풀어주었다. 두 사람 은 묶여 있던 발목과 손목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비벼댔다. "당신들이 저분을 침대로 옮기도록 도와주면 좋겠어요." "저분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레티샤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병이에요. 요즈음에 점점 흔해지는 병이지요. 이이는 아주 심하 게 아파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이가 이번 모험에 전력 을 다했던 것도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제가 전에 의사였는데, 진찰 좀 해볼까요? 아마 이분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을거예요." 여자는 슬픔으로 입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부질없어요. 무슨 병인 줄 뻔히 아는데요 뭘. 암이 전신에 퍼졌어요." 그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아더를 침대 시트 위로 옮겼다. 환자의 아내는 곧바로 진정제와 모르핀이 든 주사기를 들었다. "이제 이이는 휴식을 취해야 돼요. 체력을 회복하려면 수면이 필요하거든요." 자크 멜리에스는 그 여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됐어요. 당신이 누군지 알았어요." 같은 순간 똑같은 생각이 레티샤 웰즈의 뇌리에도 떠올랐다. 레티 샤 역시 그 부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156. 백과 사전 동시에 이루어지는 진보 1901년에 어떤 과학 실험을 몇 나라에서 동시에 실시한 적이 있었 다. 그 실험에서 행한 일련의 지능 검사에서 생쥐는 20점 만점에 6 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1965년, 같은 나라들에서 똑같은 지능 검사를 했는데, 생쥐는 20 점 만점에 평균 8점을 맞았다. 이 현상은 지리적 위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유럽의 생쥐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아시아의 생쥐보다 더 영 리하지도 덜 영리하지도 않았다. 모든 대륙에 걸쳐, 1965년의 생쥐 들은 모두 1901년 그들의 조상 생쥐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었다. 전 지구에서 생쥐들은 진보했다. 마치 지구적인 차원의 <생쥐적>지능이 라는 게 존재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향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세계에서도 어떤 발명품들, 예를 들어 불, 화약, 직물 등은 중국, 인도 유럽에서 동시에 발명된 것으로 확신되었다. 오늘날에도 발명은 일정한 기간을 놓고 보면 지구의 몇몇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다. 혹시 어떤 아이디어들이 대기권 밖 공중에서 떠다니고 있고, 그것 들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서 인류의 총체적 지식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57. 세상의 저쪽 원정군은 가파른 돌들을 따라서 암벽 등반을 하듯이 전진한다. 다 리 건너편에 높은 구조물들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그것들 은 뿌리를 타고나지 않은 것 같다. 원정군 병사들은 꼼짝 않고 서서 산맥처럼 늘어선 그 웅장하고 가파른 형체들을 관찰한다. 손가락들의 둥지인가? 원정군은 이제 세계의 끝을 넘어 손가락들의 나라에 들어와 있다. 이제까지 숱한 감정들을 느껴왔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감정 이 원정군 병사들을 사로잡는다. 손가락들의 둥지가 저기 있다!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도 천 배나 두껍고 높을 만큼 거대하고 어마어마하다. 선명한 그림자가 수 천 걸음이나 늘어져 있다. 손가락들은 터무니없이 큰 둥지를 짓고 있다. 자연은 절대로 그런 둥지를 지어주지 않는다. 103호는 불박힌 듯 멈추어 있다. 그는 이제 손가락들에 대한 두려 움을 떨치고 한껏 용기를 내어 세계의 끝을 건너왔다.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일을 끝내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바로 그곳에 있다. 모든 문명의 밖에 있는 그곳에. 그의 뒤에서 다른 곤충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더듬이 끝을 움직인다. 원정군 병사들은 손가락들 나라의 거대한 모습에 주눅이 들어 한 동안 동작을 멈춘 채 침묵하고 있다. 신을 믿는 개미들은 무릎을 꿇는다. 다른 병 사들은 너무나도 낯선 손가락들의 세계에 대해 제 나 름의 생각들을 해보고 있다. 이 세계는 직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무 한한 부피를 지니고 있다. 병사들은 다시 모여 수를 헤아린다. 적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그 들의 수는 800이다. 그럼 저런 요새에 숨어 있는 손가락들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 저 둥지를 공격해야 한다! 뿔풍뎅이와 꿀벌의 벌 비행 부대는 지원 병력으로 남아 있다가 문 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나서기로 한다. 모두가 동의하자 신호에 따 라 원정군은 건물 입구오 돌격한다. 하늘에서 이상한 새가 떨어진다. 그것은 검은 판이다. 그것이 흰 개미 네 마리를 으스러뜨린다. 이제는 도처에서 검은 판들이 떨어져 포병들의 딱지를 부수어버린다. 손가락들인가? 그 첫번째 돌격을 하면서 70마리 이상의 병정들이 죽었다. 그러나 원정군은 절망하지 않는다. 잠시 후퇴했다가 그들은 두 번 째 돌격을 감행한다. <<전진, 모두 죽이자!>> 이번엔 개미 부대가 선두에 선다. 원정군이 돌진한다. 열한시다. 많은 사람들이 우체국으로 우편물을 가져온다. 거뭇한 작은 얼룩점들이 땅 위로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조금씩 미끄러져 가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모차 바퀴, 구두, 운동화 가 거뭇한 작은 형체들을 납작하게 만든다. <<손가락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도처에서 공격해 오고 있다.>> 으깨어지기 직전의 병정개미 한 마리가 울부짖는다. 퇴각 페로몬이 퍼져나간다. 다시 60마리의 사망자가 생겼다. 더듬이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손가락들의 둥지를 탈취해야 한다.>> 9호가 부대를 다르게 배치하자고 제안한다. 우회 작전을 시도해야 한다. 어떤 판이든 기어오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돌격!>> 선두의 포수 개미들이 농구화의 고무창에 독을 뿌린다. 어떤 개미 들은 여자 무도화를 빛나게 하는 얇은 플라스틱 막을 갈라놓는다. 후퇴. 다시 세어보니 또 20마리가 죽었다. <<우리는 신들을 다치게 할 수 없다.>> 신을 믿는 개미 무리가 열광적으로 페로몬을 발한다. 그들은 처음 부터 뒷전으로 물러가 기도만 하고 있었다. 103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담은 나방 고치만 여전히 움켜쥔 채 공격에 참여할 엄두를 못 낸다. 손가락들에 대한 두려움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손가락들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9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비행 부대와 함께 공격하기 로 결심한다. 모든 부대가 우체국 맞은편 플라타너스에 다시 모인 다. 9호는 뿔풍뎅이 위에 올라타고 자기의 공격 대열 양 날개에 꿀벌을 배치한다. 9호는 손가락들의 둥지의 벌어진 구멍을 보고 호전적인 선동 페로몬을 내뿜는다. 뿔풍뎅이들은 뿔이 조준선에 잘 맞도록 머리를 숙인다. <<자, 손가락들에게로 돌격!>> 우체국의 여직원이 유리문을 닫으며 <바람이 너무 세차군>하고 말한다. 원정군 병사들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투명한 벽이 나타났는데도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제동을 걸 겨를이 없다. 뿔풍뎅이들은 산산 조각이 나 굴러떨어진다. 뿔풍뎅이 등에 타고 있던 포병 개미들은 뿔풍뎅이 시체 속으로 빠진다. "우박이 오나?" 우체국 손님이 묻는다. "아녜요, 르티퓌 부인 아이들이 돌을 가지고 노는 걸거예요. 걔들 은 그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유리라도 깨면 어쩌죠?" "염려 마세요. 두꺼운 유리예요." 원정군 병사들은 회복 가능한 부상자들을 데리고 온다. 이번 돌격 에서 원정군은 다시 80마리의 병사를 잃었다. <<손가락들은 생각보다 더 질긴데.>> 어떤 개미가 페로몬을 발한다. 9호는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흰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시작 이다. 검은 판이나 투명한 벽보다 더한 장애물이라도 뛰어넘어야 한다. 원정군들은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다. 모두들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개미들은 어떤 일을 이루어내기까지 숱한 희생을 치르고, 많은 시 간을 들이며, 갖가지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척후 개미 한 마리가 그들이 전날 공격했던 둥지 정면의 박공에 틈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모 반듯하게 나 있는 틈이었다. 그 척후 개미는 그 틈새가 우회해서 들어가는 입구려니 생각하고 아무 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탐색을 하러 들어갔다. 틈새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러 기호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개미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개미 세계와 다른 시공간인 인간 세계에서 그 부호들은 <장거리 항 공 우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척후 개미는 하얗고 납작한 판 들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그 하얀 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아 보려고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가 거기에 서 다시 나오려고 할 때 하얀 벽이 나타나 그를 눌러버렸다. 그래서 척후 개미는 그 자리에서 머물며 기다렸다. 그리하여 3년 뒤, 사람들은 전형적인 프랑스 개미의 군체가 히말 라야 산맥 한가운데인 네팔에 자리잡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 이다. 좀더 후에, 곤충학자들은 개미들이 어떻게 그렇게 멀리 여행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 하다가 마침내 순전히 우연의 일치로 프랑스 개미와 닮은 종이 나타났다고 결론을 지을 것이다. 158. 바로 그녀였다. "나를 알아보겠어요?" 자크 멜리에스는 확신했다. "쥘리에트 라미레 부인이 아니십니까? 그 유명한 <알쏭달쏭....>." "<....함정퀴즈>의 스타이시죠." 레티샤가 덧붙였다. 퀴즈 프로그램의 스타와 산타 클로스 같은 남자와 살인자 개미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생각하느라고 기자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범죄자들을 심문하는 데 이골이 난 경찰관답게 멜리에스는 라미레 부인이 신경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인을 진 정시키려고 애썼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아주 좋아해요. 언뜻 보기엔 복잡해 보이 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문제들을 가지고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고 찰하도록 가르치거든요. 한마디로 <다르게 생각하기>를 가르치죠." "다르게 생각하기라고요!" 라미레 부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화장도 안 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잘 재단된 물방울 무늬 원피 스 대신 낡은 실내복을 입고 있는 탓에 라미레 부인은 텔레비젼 화 면에 나타난 모습보다 더 늙고 피곤해 보였다. 재치가 넘치던 출연 자는 한 노부부의 할멈일 뿐이었다. "내 남편 아더는 개미들의 <주인>이에요. 하지만 모든 게 내 잘못 이에요. 이제 당신들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더 이상 비밀을 간 직할 수가 없군요. 모두 털어놓지요." 부인은 침대 위의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159. 바로잡기 "니콜라, 너에게 할말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의 꾸중을 기다렸다. "아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아이는 온순하게 말했다. "니콜라, 나는 지금 네가 개미들을 기만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려 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우리 어른들이 <개미>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면 너는 게속해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지. 어떤 이들은 너도 우리의 공동체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만, 난 먼저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너에게 알려주고, 그 다음에 네가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나탕은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요, 아빠." "넌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니?" 개구쟁이는 시선을 땅에 박고 중얼거렸다. "어른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함께 노래해요. 그리고 점점 조금씩 먹어요." 아버지는 참을성있는 모습을 보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우리 일을 밖에서 본 모습일 뿐이란다. 다른 것들도 있지. 니콜라, 너는 감각을 몇 가지나 가지고 있지?" "다섯 가지요." "어떤 것들이지?" "시각, 청각..... 음, 촉각, 미각, 그리고 후각이죠." 개구쟁이는 엄격한 시험을 치르듯 암송했다. "그리고 또?" 조나탕이 물었다. "그게 전부예요." "아주 잘했어. 지금 네가 말한 것은 물질의 세계를 파악하는 육체 의 오감이란다. 그런데, 정신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세 계가 존재하지. 만일 네 육체의 오감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손가락 들 중 왼손의 다섯 개만 사용하는 것과 같단다. 왜 너의 오른손 다 섯 손가락은 사용하지 않지?" 니콜라는 아버지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다. "아빠가 말한, <정-신-의> 다른 오감은 뭐예요?" "감정, 상상, 직관, 보편적인 양심, 그리고 영감이란다." "머리로는 그저 생각만 하는 걸로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아니, 생각하는 방식에는 아주 여러 가지가 있단다. 우리의 뇌는 컴퓨터와 같아서, 프로그램을 잘 짜기만 하면 우리가 생각하기 어려 운 아주 어마어마한 일들도 해낼 수 있지. 우리는 모두 뇌를 가지고 있지만 그 도구의 완벽한 사용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단 다. 현재 우리는 뇌의 10%만 이용하고 있다. 아마 천 년 후엔 50% 를, 백만 년 후엔 90% 정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두 뇌만 놓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어린애지, 우리는 우리 주위에 서 일어나는 것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단다." "과장이에요. 현대 과학은...." "천만에! 과학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은 과학에 대해서 아무것 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만 감동을 줄 뿐이야. 참된 과학자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자기의 무지를 더 잘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하지만 에드몽 종조부는 많은 것을 알고 계셨잖아요. 그리고 그분은...." "그렇지 않단다. 에드몽 할아버지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방법 을 가르쳐주셨지. 그분은 우리에게 문제를 탐구하는 방법을 보여주 셨지만 해답을 제시하진 않았단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 과사전'을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할 듯한 느낌을 받 지. 그러나 그것을 계속 읽다보면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는 느낌이 든단다." "저는 그 책 속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알 것 같은데요." "넌 운이 좋구나." "그 책에는 자연, 개미, 사회적 행동, 지구에 사는 종족끼리의 대 결에 관한 것이 들어 있어요. 그 속에서 요리법과 수수께끼까지 보 았어요. 전 그 책을 보면서 더 똑똑해지고 전능해지는 걸 느꼈어요." "정말 운이 좋구나. 난 더 많이 읽을수록, 모든 것들이 얼마나 이 해할 수 없고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깨 닫게 된단다. 더 이상 도움이 안 돼. 그 책은 이제 우리에게 도움이 안 돼. 단어의 나열일 뿐이란다. 문자는 그림이고, 단어는 명칭 뒤 에 있는 사물, 관념, 동물 등을 포함하려고 하지. <하얀색>이란 단 어는 고유의 진동을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하얀색>은 다른 언어에 서는 다른 단어로 일컬어지지. <화이트>, <블랑코> 등으로 말이야. 그것은 <하얀색>이란 단어가 이 색깔을 정의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지. 옛날에 누군가가 발명해 낸 근사치이 지. 책은 단어들의 나열이고, 죽은 상징들의 나열이며, 근사치들의 나열에 불과하단다." "하지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은 실제적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책도 현재의 행위에 대해 사고하는 순간을 따라잡을 순 없어." "난 도대체 아빠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앞서나간 모양이로구나. 자 그럼 이제부 터 내가 얘기하는 것을 잘 들어라. 잘 듣는 게 중요하단다." "저는 분명히 귀담아 듣고 있는데 아빠는 제가 잘 듣고 있지 않다 고 생각하시나 보죠?" "귀담아 듣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대단한 주의를 필요로 하거든." "이상해요. 아빠." "너를 이해시키지 못해 미안하구나. 네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데. 눈을 감고 잘 들어봐. 레몬을 생각해 봐. 보이니? 노란 레몬이야. 샛노랗지. 햇빛에 반짝이고 있어. 까칠까칠하고 향기가 진하구나. 냄새가 나니?" "네." "좋아. 이제 커다란 칼을 하나 드는거야. 뾰족하고 잘 드는 칼이 지. 레몬을 둥근 조각으로 자르려무나. 자, 레몬이 벌어진다. 레몬 의 둥근 조각을 햇빛에 비추어보면 과즙으로 가득찬 살들이 하나의 그물처럼 드러나지. 레몬 조각을 눌러 보렴. 살이 터지고 즙이 흐르 지. 아주 노랗고 향긋해.... 냄새가 나니?" 니콜라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아, 네." "좋아, 입 안에 침이 고이니?" "음...." 아이는 입맛을 다셨다. "예,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죠?" "육체에 생각의 힘이 미쳤기 때문이지. 너도 보았다시피, 단지 레 몬을 생각함으로써 통제하기 어려운 생리적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단다." "대단하군요!" "이건 첫 걸음마일 뿐이야. 우리 자신을 신으로 여길 필요가 없 어.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이 되어 있는거야." 아이는 잔뜩 들떠 있었다. "저도 그처럼 되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아빠, 제 정신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160. 로메슈제의 마약 내전이 도시 안으로 점점 번져나간다. 신을 믿는 반체제 개미들이 한 구역을 완전히 점령했다. 꿀단지 개미들이 있는 구역이었다. 그 럼으로써 반체제 개미들은 손가락들에게 영원히 분비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호전되었는데 정작 손가락들은 리빙스턴 박사를 통 해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예언자의 목소리도 끊겼다. 그런 침묵이 종교에 대한 열광을 사그러들게 하지는 않았다. 반체제 개미들은 죽은 동료들을 방 하나에 가지런히 모아놓고, 싸 우러 가기 전에 그들을 찾아온다. 시체들은 대부분 전투하던 때의 자세로 동상처럼 꼼짝 않고 있는데, 반체제 개미들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영양을 교환하는 시늉을 한다. 한번 시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개미들은 모두 더듬이의 냄새를 쇄 신하고 나온다. 죽은 자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관하는 것은 산 자 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신을 믿는 개미들의 운동은 도시의 구성원들이 언제라도 초개처럼 버려질 수 있는 하찮은 개체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운동이다. 신을 믿는 반체제 개미들이 다른 개미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로 메슈제가 마약으로 홀리는 것과 같다. 그들이 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기만 하면 다른 개미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하여 자신도 모르게 더듬이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손가락들 종교>에 감염된 개미들은 더 이상 일을 하 지 않고, 알도 돌보지 않으며, 양식을 빼돌려 지하의 손가락들 집단 에게 가져갈 궁리만 한다. 여왕 클리푸니는 반체제 운동이 다시 부흥하는 것에 별로 당혹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여왕은 원정군 소식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날파리가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지금 원정군 병사들은 세상의 끝 을 통과하여 벌써 손가락들에 대항하여 전투를 개시했다고 한다. <<좋았어, 가엾은 손가락들, 우리에게 도전한 것을 얼마나 후회하 게 될까! 거기에서 그들을 정복하고 나면, 반체제 운동은 이곳에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될테지.>> 여왕이 페로몬을 발한다. 161. 백과 사전 이야기 프랑스 어에서 <이야기>를 뜻하는 와 <셈>을 뜻하는 는 발음이 같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어에서 숫자와 문자 사이에 이런 일치를 볼 수 있다. 그 예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영 어에서 <세다 to count>, <이야기하다 to recount>. 독일어에서 <세 다 zahlen>, <이야기하다 erza"hlen>. 헤브라이 어에서, <이야기하 다 le saper>, <세다 li saper>. 중국어에서, <세다 shu>, <이야기 하다 shu>. 숫자와 문자는 언어의 요람기 때부터 결합되어 있었다. 각각의 문 자는 하나의 숫자에 대응하고, 각각의 숫자는 하나의 문자에 대응한 다. 헤브라이 인들은 일찍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 경은 신비로운 책이고 암호 같은 이야기 형태고 제시된 과학적인 지 식들로 가득찬 책이다. 만일 각 문장의 첫 글자에 수치를 부여한다 면 숨겨져 있는 첫번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단어를 이루는 글자들에 수치를 부여한다면 전설이나 종교와 상관없는 어떤 공식과 조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62. 뜻하지 않은 사고 곤충들은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한다. 저기 바로 맞은편에, 견딜 수 없게 자신들을 모욕하는 손가락들의 둥지가 버티고 있다. 원정군 부대는 결연하다. 그들은 맹렬하게 싸울 것이다. 저 첫번 째 둥지는 개미들의 승리를 기리는 표상이 될 것이다. 저 둥지는 그 들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원정군이 종족별로 정열한다. <큰 뿔>에 걸터앉은 103호는 손가락들이 나타나면 두 개의 밀집된 방진으로 나누어 공격하자고 제의한다. 이 전술은 <개양귀비> 전투 에서 난쟁이 개미들이 사용한 것인데 큰 성과가 있었다. 각자 재무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영양을 교환한다. 앞장선 개미들 이 가장 사나운 페로몬을 뿜어낸다. <<돌격!>> 마지막 남은 원정군 개미 570마리의 대열이 사납고 결연하게 진군 한다. 그들의 더듬이 위에서는 독침을 내민 꿀벌들이 파닥거리고 뿔 뿡뎅이들이 위턱을 맞부딪쳐 소리를 낸다. 9호는 얼마 전에 어떤 손가락들을 공격했을 때처럼 다시 손가락들 의 살갗에 구멍을 뚫어 벌의 독을 주입하고 싶어한다. 뭐니뭐니 해 도 그 방법이 손가락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사냥 기술이라 고 9호는 생각한다. 공격대 제1진과 제2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볍게 무장한 보병 들의 양 날개에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진 기병대가 겅중거리며 나아간 다. 그것은 벨로캉, 제디베이나캉, 아스콜레인, 목실룩생 무리로 구 성된 웅장한 군대이다. 뿔풍뎅이들은 동료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벼 르고 있다. 느닷없이 튀어나와 동료들을 으깨어버린 그 벽을 응징하 고 싶은 것이다. 공격대 제3진과 제4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기엔 중포병 대열 과 경포병 대열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그 포병 부 대에게 겁을 주지 못했다. 공격대 제5진과 제6진이 죽음이 임박한 손가락들에게 최후의 일격 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공격대의 병사들은 위턱 끝에 꿀벌의 독을 발라놓고 있다. 곤충 군대가 자기 둥지에서 이렇게 멀리 나와 싸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정군 병사들은 모두 장차 주변의 모든 영토를 정복하느 냐 못 하느냐가 이번 전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의 전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 느냐 못 하느냐가 걸린 일대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의 승리자가 이 행성의 주인이 될 것이다. 9호는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다. 그가 아주 공격적인 자 세로 위턱을 내밀고 있음을 보고 다른 병사들은 그가 아주 과감하게 싸우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이제 손가락들의 둥지가 겨우 수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8시 30분. 우체국 문이 방금 열렸다. 첫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기 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간다. 곤충들의 걸음이 속보에서 구보로 바뀐다. <<앞으로, 돌격!>> 퐁텐블로 시의 청소 업무는 아침 8시 30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눗물을 가득 실은 덤프 트럭 한 대가 보도를 씻기 위하여 비눗물 을 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원정군 사이에 공포가 번져나간다. 매운 물이 태풍처럼 몰려온다. 원정군 전체가 물살에 두들겨맞고 물에 잠겨버린다. <<흩어져!>> 103호가 소리친다. 풍랑은 수십 걸음의 높이로 모든 세상을 침수시킨다. 튀어오른 물 이 비행 부대를 치려고 하늘로 솟구친다. 원정군 병사들은 모두 기진 맥진해 있다. 몇몇 뿔풍뎅이들이 질겁한 개미 무리를 싣고 이륙한다. 뿔풍뎅이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두들 안간힘을 쓴다. 개미들이 흰개미 들을 밀어낸다. 종족 간의 연대와 협조는 더 이상 안중에도 없다! 각자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킨다는 식이다. 병사들을 너무 많이 실은 뿔풍뎅이들은 힘겹게 파닥거리다가 살찐 비둘기의 맛좋은 먹이가 되어버린다. 아래에서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여러 개의 군단이 물벼락에 휩쓸려간다. 딱지로 덮인 병사들의 시 체가 광장을 굴러 길가 도랑에 떨어진다. 이리하여 원정군의 대대적인 군사 모험은 끝이 난다. 매운 비눗물 로 40초 동안 공격을 받은 원정군은 더 이상 진군할 수가 없다. 손 가락들을 끝장내기 위해 동맹을 맺었던 여러 종족의 3천여 곤충들 중 중경상을 당한 한줌의 부상자들만이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병사 들은 도시의 청소차가 내뿜은 물에 휩쓸려 갔다. 신을 믿는 자, 신을 믿지 않는 자, 개미, 꿀벌, 풍뎅이, 흰개미, 파리 할 것 없이 모두 방향을 잃은 채 물 소용돌이에 쓸려간다. 덤프 트럭을 운전하는 시의 청소부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아 주 보잘것없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가 지구적인 규모의 대전투를 승 리로 이끌었음에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점 심에 무얼 먹을까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를 생각하면서 계속 자기들 의 일에 몰두 할 뿐이다. 곤충들은 자기들이 세계 대전에서 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미처 깨달을 사이도 없었다. 모든 게 너무 나 빠르고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수킬로미터를 달려온 다리들, 산전 수전을 다 겪으며 싸워온 위턱들, 세상의 온갖 냄새를 다 맡아온 더 듬이들이 불과 40초만에 모두 올리브색 물 위를 떠다니는 파편들이 되어버렸다. 손가락들을 응징하겠다던 최초의 원정군은 이제 더 이상 진군을 할 수가 없고 앞으로도 영영 진군하지 못하리라. 비눗물의 소용돌이 속에 원정군의 마지막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163. 니콜라 니콜라 웰즈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다. 그럼으로써 니콜라의 음 파가 더해져 집단의 진동인 <옴>이 더 풍성해졌다. 니콜라는 한 순 간 자기가 높이높이 솟아오르더니 물체를 통과하는 무형의 구름이 되었다고 느꼈다. 개미들의 신이 되는 것보다 천 배는 더 좋았다. 자유다! 니콜라는 자유로웠다. 164. 결투 9호는 재빨리 반사적인 동작을 취하여 물에 휩쓸려가는 것을 면했 다. 그는 하수도 맨홀 뚜껑의 가는 흠에 발톱을 깊이 박고 있다. 9 호는 참담한 심정으로 광장의 보도 위로 기어간다. 한편 103호는 <큰 뿔>과 함께 가까스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물의 소용돌이를 피 할 수 있었다. 아스팔트 구멍에 숨어 있던 23호도 그와 마찬가지로 무사하다. 살아남은 뿔풍뎅이들은 조종사를 싣고 멀찌감치 달아나고, 마지막 남은 최후의 몇몇 흰개미들은 코르니게라 섬에 남지 않은 것을 후회 하면서 줄행랑을 놓는다. 세 벨로캉 개미가 한 자리에 모인다. <<손가락은 너무 강해서 우리는 상대조차 안 돼.>> 9호가 비눗물 때문에 가려운 눈과 더듬이를 문지르며 비탄에 잠긴다. <<손가락들은 신이에요. 손가락들은 전능해요. 우리가 이러한 사 실을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당신들은 우리를 믿지 않았어요. 이 피해 상황을 좀 봐요!>> 23호가 한숨 섞인 페로몬을 발한다. 103호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손가락이 신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공포의 대상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세 개미들은 서로의 몸뚱이를 비비대며 영양을 교환한다. 돌이킬 수 없게 참패를 당한 원정군 가운데 자기들처럼 살아남은 자들만이 서로를 어루만지고 먹이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에 가 슴이 미어질 듯하다. 그러나 103호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103호에겐 아 직 수행해야 할 임무가 남아 있다. 그가 나방 고치를 꽉 움켜쥐는 모습을 보고 여태껏 참고 있던 9호가 묻는다. <<자네 원정이 시작될 때부터 그걸 들고 다니던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지?>> <<별거 아닐세.>> <<어디 보세.>> 103호는 거절한다. 9호가 화를 낸다. <<자네는 좀 수상했어. 나는 줄곧 자네가 손가락들에게 매수당한 첩자일 거라고 생각했네. 자네가 선봉장임을 자처하면서 우리를 이 함정속으로 끌어들인 건 아닌가!>> 103호는 23호에게 고치를 맡기고 결투에 응한다. 두 개미는 서로 마주보고 위턱을 한껏 벌린 다음 더듬이 끝으로 상대를 겨눈다. 그들은 상대의 약점을 탐색하려고 빙빙 돌다가 돌연 서로에게 덤벼든다. 딱지들을 맞부딪고 가슴으로 상대를 밀어낸다. 9호가 두 번째로 위턱 공격을 해오자 이번에는 103호가 그것을 피 해내고, 상대가 돌진하는 틈을 노려 더듬이 끝을 잘라버린다. <<이 쓸데없는 싸움을 그만 두세. 이제 남은 건 우리뿐일세. 이러 다가 우리가 죽으면 좋아할 건 손가락들뿐일세.>> 그러나 9호는 제정신이 아니다. 오로지 배신자의 구멍에 우람한 더듬이를 박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뿐이다. 9호가 103호의 눈구멍을 향해 더듬이를 휘둘렀으나 103호가 아슬 아슬하게 피한다. 103호는 개미산을 쏘리라 마음먹고 배 끝을 조준 한 다음 한 방울을 내뿜는다. 그러나 그 개미산은 어떤 우체부의 바 지 아랫단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9호도 역시 개미산을 쏜다. 103호의 개미산 주머니가 텅 비어버리 자 9호는 상대를 완전히 죽일 순간이 왔다고 믿었지만, 103호에겐 아직 위기를 벗어날 다른 수단이 남아 있다. 103호는 위턱을 벌리고 돌진하여 왼쪽 가운데 다리를 잡고 앞뒤로 비튼다. 9호도 103호의 오른쪽 뒷다리를 잡고 비튼다. 서로 상대의 다리를 먼저 뽑으려고 있는 힘을 다한다. 103호는 전투 교훈 중 하나를 생각해 낸다. <똑같은 방법으로 다 섯번 공격하고 나서 여섯 번째도 같은 방식으로 공격하려고 하면 적 은 그 공격을 피할 것이다. 그러면 적을 공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103호는 더듬이 끝으로 9호의 일을 다섯 번 친다. 그런 다음 상대 의 위턱 아래에 있는 목을 잡는다. 103호는 날쌘 동작으로 9호의 목을 자른다. 지저분한 포장 도로 위로 9호의 머리가 데굴데굴 구른다. 굴러가던 머리가 멈추자 103호가 다가가 물끄러미 지켜본다. 개미 몸뚱이의 모든 부분은 죽은 뒤에도 어떤 독자적인 움직임이 있다. <<자넨 잘못 생각하고 있어. 103호>> 9호의 머리가 페로몬을 발한다. 103호는 머리 하나가 마지막으로 페로몬을 뿜으려고 애쓰는 장면 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이곳에 서의 일이 아니었고 이 페로몬도 아니었다. 그것은 벨로캉 왕국의 쓰레기터 위에서였다. 그곳에 버려져 있던 반체제 개미가 그에게 전 한 페로몬이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9호의 더듬이가 다시 움직인다. <<자넨 잘못 생각하고 있어. 103호. 자네는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럴 수는 없는걸세. 자네가 손가락 을 위해 싸우든, 개미를 위해 싸우든 간에 한 진영을 선택해야만 해. 아무리 훌륭한 이상이라도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할 수 는 없어. 폭력에 의해서만 폭력을 피할 수 있어. 오늘 자네는 나보 다 강하기 때문에 이겼어. 하지만 충고 하나 하겠네. 절대로 나약하 게 굴지 말게. 자네의 추상적인 이상이 자네를 구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일세.>> 23호가 다가와 많은 페로몬을 발하고 있는 그 머리를 확실하게 쏘 아버린다. 그리고 103호에게 승리를 축하하며 고치를 건네준다. <<이제, 무엇을 하셔야 하는지 아시죠?>>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23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그는 손가락 신들을 섬기 는 자임을 자처하고 있고, 때가 되면 자기가 수행해야 할 일을 손가 락들이 일러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기다리면서 그는 세계의 끝 너머, 이 손가락들의 땅에서 떠돌아다닐 것이다. 103호는 23호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큰 뿔> 위에 올라 그의 더듬 이에 신호를 보낸다. 뿔풍뎅이는 딱지 날개를 미끄러뜨린 다음 긴 갈색 날개를 펴고 시동을 건다. 돛의 활대를 돌리듯 날개 맥이 있는 날개가 손가락들 나라의 오염된 공기를 휘젖는다. 103호는 공중으로 솟아올라 마주보이는 손가락들의 첫번째 둥지 꼭대기로 돌진한다. 165. 요정들의 주인 먼동이 터오도록 레티샤 웰즈와 자크 멜리에스는 쥘리에트 라미레의 입술을 뚫어 지게 바라보며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늙어 지쳐버린 산타 클로스 같던 그 남자는 쥘리에트 라미레의 남 편 아더 라미레였다. 아더는 어려서부터 자질구레한 것을 고치고 만 들고 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원격 조종 장치로 조종할 수 있는 장난감, 비행기, 자동차, 배들을 만들었다. 물체와 로봇은 그의 어 떤 명령에도 복종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요정들의 주인>이라고 불렀다.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을 타고 나는 법이지요. 그 재능을 계발하느 냐 못 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내 친구 중에는 십자수에 뛰어 난 재주를 가진 여자가 있어요. 그 친구가 만든 벽걸이는요...." 그러나 듣고 있던 두 사람은 십자수를 아무리 잘 한다 한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랴 하고 아주 시큰둥해 했다. 라미레 부인이 말을 이었다. "아더는 원격 조종 장치를 능숙하게 다루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인류에게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그는 로봇 공학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쉽게 기술 자격증을 땄다. 그는 타이어 자동 교체 기계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자동차 변 속 장치, 그리고 원격 조종되는 등 긁개까지 발명했다. 마지막 전쟁중엔, <강철 늑대>라는 로봇을 발명했다. 그 로봇은 다리가 네 개라서 다리가 두 개인 로봇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게 다가 어둠 속에서도 촬영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 두 대, 코높이에 기관총 두 정, 입에 35밀리미터 소구경 포 한 문을 갖췄다. <강철 늑대>는 밤에 기습을 했고 병사들은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안전 지대에서 원격 조종을 했다. 그 로봇들의 성능은 대단했다. 그것들 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단 한 사람의 적군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더는 <강철 늑대> 때문에 생긴 피해 상황을 담은 극비 필름을 보게 되었다. 로봇을 원격 조종하는 병사들은 전자오락 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혀 통제 화면에 뭐든지 움직이는 게 나타나면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회의에 빠진 아더는 정년도 되기 전 퇴직을 결심하고 장난감 가게 를 차렸다. 어른들은 무책임해서 자기의 발명을 유용하게 쓰지 못하 므로, 그의 재능을 어린이들을 위해 발휘하기로 했다. 그때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던 쥘리에트를 만났다. 쥘리에트는 우 편환, 우편 엽서, 등기 우편 등 우편물을 그에게 배달했다. 그들은 곧 한눈에 반해 결혼을 했고,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페닉 스 가의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가 <사고>라고 부르는 그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였다. 어느날 평상시처럼 그녀가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우편낭 에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어버렸다. 일을 마친 쥘리에트는 파손된 소포를 집으로 가져왔다. 손재주가 좋은 아더가 수취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수선을 해 줄 것이고, 그럼 으로써 손해 배상을 요구하기 일수인 우편 이용자들과의 마찰을 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더는 그 소포를 끝내 원래대로 해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소포를 다루다가 아더는 내용물에 흥미를 느꼈다. 수백 쪽의 두꺼운 서류 뭉치, 이상한 기계 설계도,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는 그것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서류 와 편지를 읽고, 설계도를 검토했다. 그런 뒤에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더 라미레는 개미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지붕 밑 방 에 거대한 개미 사육통을 설치했다. 아더는 개미들이 인간들보다 더 영리하다고 말하곤 했다. 한 개미 군체의 지력을 총화는 그 군체를 구성하는 개미들의 지력을 단순히 합해 놓은 것을 능가하기 때문이 라는 것이었다. 그는 개미 세계에서는 <1+1=3>이라고 확신했다. 사 람의 몸에서 여러 기관이 한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공동 작용 을 하듯이 개미 군체에서는 사회적인 공동 작용이 이루어진다. 아더 는 개미들이 집단적인 생존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혁신시킨다고 생각했다. 쥘리에트 라미레는 한참 지나서야 설계도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았다. 그것은 <로제타 석>이라는 기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 기계는 인간의 음절을 개미의 페로몬으로 바꾸고, 역으로 개미의 페로몬을 인간의 음절로 바꿈으로써 개미 사회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기계였다. "아니.... 이럴수가.... 그건 저희 아버지의 계획이었어요!" 레티샤가 소리쳤다. "알아요, 당신을 대하게 되니 너무나도 부끄럽군요. 그 소포의 발 송인은 바로 당신의 아버지 에드몽 웰즈였고, 수취인은 레티샤 웰즈 당신이었어요. 그리고 그 서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 제2권의 내용이었고, 편지는.... 당신한테 쓴 것이었죠." 라미레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찬장 서랍에서 정성스레 접은 하 얀 종이를 꺼냈다. 레티샤는 부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어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딸 레티샤에게. 먼저 나의 죄를 묻지 말라는 부탁을 하 고 싶다.....> 레티샤는 글자 한 자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편지를 읽었다. 편 지는 <딸아, 사랑한다.>라는 애정이 듬뿍 담긴 말로 끝나 있었고 아 버지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레티샤는 화가 치밀어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들은 도둑이에요! 이건 다 내 것 이란 말이에요! 나의 유일한 유산을 당신들이 훔친거예요. 아버지의 후계자를 지정한 유서를 은폐했어요. 하마터면 나는 아버지께서 나 를 정신적 상속자로 생각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영영 모른 채 죽을 뻔했어요! 당신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레티샤가 멜리에스에게 쓰러졌다. 흐느낌을 억누르며 들썩이는 그 녀의 가녀린 어깨를 그가 감싸안았다. "면목이 없어요." 쥘리에트가 사과했다. "난 편지가 있으리라고 확신했어요. 그래요, 확신했어요! 줄곧 그 것을 기다렸단 말이에요!" "당신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이 나쁜 무리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 고 말씀드리면 우리를 덜 원망할실지도 모르겠네요. 우연 혹은 숙명 이라고나 할까요.... 우리 집에 이 소포가 온 것은 어떤 운명의 장 난이었는지도 몰라요." 아더는 설계도의 내용을 이해하자마자 기계를 설계도대로 만들어 냈다. 그는 몇 가지 기능을 더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부부는 사육통에 있는 개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그들 은 곤충들과 의사를 소통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해서 레티샤는 마 음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레티샤와 멜리에스가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라미레 부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엔 얼마나 행복했던지! 개미들은 그들 연방이 움직이는 방식 을 설명했고, 종족 사이의 전쟁과 분쟁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우 리 신발장 높이에 지능이 뛰어난 또 다른 세계가 우리와 나란히 존 재한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들도 아다시피, 개미들은 도구를 사용하 고, 그들 나름의 농사를 짓고, 첨단 기술을 발전시켰죠. 개미들의 세계에는 민주주의, 계급, 노동의 분담, 살아 있는 자들 사이의 상 부 상조 등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있어요." 개미의 도움으로 그들의 사고 방식을 더 잘 알게 된 아더 라미레 는 <개미 군체의 정신>을 재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고안했고 소 형 로봇인 <강철 개미>를 구상했다. 그의 목표는 수백의 개미 로봇으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개미 군체 를 만드는 것이었다. 각각의 개미 로봇은 기억 소자의 안에 입력된 전산프로그램의 형태로 독자적인 지능을 갖게 되지만 그것들을 집단 전체에 연결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공동으로 행동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라미레 부인은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애쓰다가 말을 이었다. "뭐랄까요.... 로봇 전체가 다양한 요소를 지닌 하나의 컴퓨터, 혹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신경 세포들로 나뉘어진 하나의 뇌를 구성 하는 것입니다. <1+1=3>이고 따라서 <100+100=300>이죠." 아더 라미레는 그의 <강한 개미>들이 우주 정복에 아주 적합하다 고 판단했다. 그의 개미 로봇을 이용하게 되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주 공학 기술처럼 멀리 떨어진 행성에 탐사 로봇 하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지능을 가진 천 개의 작은 탐사 로봇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것들 중 하나가 고장이 나거나 부서지면, 다른 999개가 바톤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와 같이 탐사 로봇 한 대가 기계적인 고장을 일으켰다고 해서 하나의 우주 개발계획 전체를 백지화하는 어리석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멜리에스는 경탄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무기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아주 단순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결합 되어 있는 1,000개의 작은 로봇을 파괴하는 것보다 지능이 아주 뛰 어난 한 개의 커다란 로봇을 파괴하기가 더 쉽지요." "그게 바로 협동의 원리죠. 단결은 각각의 재능을 단순히 합쳐놓 은 것보다 더 큰 힘을 낳으니까요." 라미레 부인이 강조했다. 그런데, 라미레 부부에겐 그런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돈이 부족했다. 작은 부속들이 너무 비싸다. 장난감 가게의 수입과 쥘리 에트의 우체국 월급으로는 필요한 장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머리가 비상한 아더 라미레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쥘리에트를 <알쏭달쏭 함정 퀴즈> 프로에 출연시키자는 것이었다. 하루에 만 프 랑이면 대단한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 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에 실린 수수께끼들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그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보냈고, 그녀가 방송에 나가 서 그것을 풀었다. 그가 보낸 에드몽 웰즈의 수수께끼는 언제나 채 택되었다. 누구도 그것들만큼 정교한 수수께끼를 고안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속임수였군요." 멜리에스는 기분이 상했다. "세상에, 그게 다 속임수였다니,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숫자 <1>, <2>, <3>이 나오는 그 수 수께끼 말이에요. 그 수수께끼는 왜 그리 오랫동안 답을 모르는 척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레티샤가 말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에드몽 웰즈의 수수께끼가 무궁 무진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조커 을 이용해서 날마다 천 프랑을 벌어들이면서 게임을 지속시킨 거죠!" 그 수입은 부부를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동안에 아 더는 <강철 개미>의 제작과 개미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 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아 더는 텔레비젼에서 어떤 광고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크락크락 가 는 곳에 벌레 전멸!>이라는 CCG 상품 광고였다. 화면에는 독한 살충 제를 먹고 바둥거리는 개미 한 마리가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아더는 격분했다. 그 작은 곤충을 독살시키자고 저렇게 해로운 살 충제를 만든단 말인가! 그때 마침 그의 <강철 개미> 가운데 하나가 작동되고 있었다. 곧바로 그는 그것을 CCG실험실로 정탐하러 보냈 다. 그 개미 로봇은 살타 형제가 국제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바벨> 이라는 한층 더 잔혹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벨>은 너무나 위험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환경 보호 운동가들 이 알았다면 당장 반대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그래서 살충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주 은밀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CCG 간부들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바벨>은 효능이 완벽한 개미 살충제예요. 종래의 유기인 살충제 로는 개미를 효과적으로 몰아낼 수 없었죠. 그런데, <바벨>은 그와 같이 독이 아니라, 개미들끼리 더듬이를 통해 의사 소통하는 것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물질이죠." 라미레 부인이 설명했다. <바벨>은 완성 단계에 가면 분말 형태가 되는데, 그 분말을 땅에 뿌리기만 하면 냄새가 발산되면서 개미들의 페로몬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그 분말 1온스만으로 사방 수 킬로미터를 오염시킬 수 있 다. 그런데 통신을 할 수 없으면 개미는 여왕 개미가 살아 있는지, 자기 임무가 무엇인지, 자기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위험한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된다. 지구의 전 표면에 이 약품을 뿌려 놓으면 5 년 후에는 지구상에 개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개미 들은 서로 의사 소통을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개미들에게는 의사 소통이 삶의 전부인 것이다! 살타 형제와 그의 동료들은 의사 소통이 개미 세계의 필수 조건임 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개미는 일소해야 할 해충일 뿐이었 다. 그들은 개미의 소화기에 독을 넣는 것이 아닌 완전히 뇌를 마비 시키는 방법을 발견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무서운 일이에요!" 레티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그마한 첩보 로봇의 힘을 빌어 남편은 <바벨> 프로젝트와 관련 된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요. 그 화학자들은 지구상의 개미 를 일거에 멸종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의 남편이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때였습니까?" 경정이 물었다. "네, 그래요." 레티샤와 멜리에스는 아더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이미 깨닫고 있었 다. 그의 아내의 말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아더는 척후 개미를 보내 표적이 될 사람의 냄새가 밴 미세한 천 조각을 오려오 게 했다. 그런 후 냄새의 주인공을 살해할 개미 로봇들을 풀어놓았다.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임을 알고 흡족해 하면서 멜리에스가 전문가 답게 그 범죄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부인, 당신의 남편은 내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가장 완벽한 범 죄방법을 고안했군요." 쥘리에트 라미레는 찬사인지 비난인지 모를 그 말에 얼굴을 붉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범행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방법은 틀립 없이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게다가 누가 우리에게 혐의를 두겠어요? 모든 알리바이를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요. 우리 개미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했지요. 범행 장소에서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야 관계없죠!" "범죄를 저지른 개미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했어요?" 레티샤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물론이죠. 개미를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살인 방식에 그치는 것 이 아니라, 일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이기도 하지요. 그 일이 살해 하는 임무인 경우라도 마찬가지예요. 이것은 아마도 최고의 인공 지 능일거예요! 웰즈 양. 당신 아버님은 아주 잘 깨닫고 계셨어요. 책 에 설명이 되어 있어요. 자 보세요!" 라미레 부인은 개미 군체의 개념이 어떻게 인공 지능을 혁신시켰 는가를 보여주는 '백과 사전'의 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살타 형제의 집으로 보낸 개미들은 원격 조종을 받고 있지는 않았 다. 개미들은 자율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모여, 냄새를 식별하 고 그 냄새를 풍기는 모든 것을 죽이고, 이어서 범죄 흔적을 모두 치우도록 전산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다. 사건의 목격자가 있다면 아 무 자취도 남기지 말고 모두 제거하라는 명령도 입력이 되어 있었다. 개미들은 하수도와 배수관을 통해 돌아다닌다. 그것들은 소리없이 나타나 몸의 내부에 구멍을 뚫어 죽인다. "발각되지 않는 완벽한 무기!" "하지만 멜리에스 경정,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도망을 쳤어요. 사 실 달려가기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죠. 여기로 개미들을 따라오 면서 아셨겠지만 우리 로봇 개미는 아주 천천히 전진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미가 습격할 때 문 쪽으로 서둘러 도망을 치기 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어쩔 줄 모르죠. 더욱이 습격을 피하려 해도 요즈음 자물쇠가 너무 복잡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재빨 리 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안전을 위해서 문에 가장 좋은 잠금 장치를 갖춰 놓은 사람들이 꼼짝 못 하게 갇혀서 가장 먼저 죽 는다는게 우리시대의 역설이죠." "그렇게 해서 살타 형제, 카롤린 노가르, 막시밀리앵 메커리어스, 오데르진 부부 그리고 마귀엘 시네리아즈가 죽게 되었군요!" 멜리에스가 정리했다. "그래요, 그들은 <바벨> 프로젝트의 주창자들이었어요. 우리가 당 신들이 만들어놓은 가짜 다카구미의 방으로 개미들을 보낸 것은 <바 벨> 프로젝트에 참가한 일본인이 우리로부터 도망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당신네 개미 로봇들이 대단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볼 수 있을까요?" 라미레 부인은 지붕 밑 방으로 개미를 가지러 올라갔다. 살아 있 는 곤충이 아닌 마디마디 연결된 로봇을 식별하려면 아주 가까이서 관찰해야 한다. 금속 더듬이, 광각 렌즈로 된 소형 비디오 카메라 눈, 일정한 압력을 유지하고 있는 캡슐로 되어 있어서 개미산을 발 산할 수 있는 배, 면도칼처럼 뾰족하고 녹슬지 않는 위턱, 로봇은 가슴에 있는 리튬 전지로 에너지를 얻는다. 머리엔 극소형 정보 처 리 장치가 있어서 관절의 모든 모터를 조종하고 인공 감지기에 감지 된 정보를 처리한다. 레티샤는 확대경을 들고 아주 정밀하게 제작된 자그마한 걸작품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작은 장난감이 응용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많을까! 첩보 활동, 전쟁, 우주 정복, 인공 지능 체계의 혁신.... 이건 진짜 개미 와 겉모습이 똑같군요." "겉모습만 똑같아선 안 돼요. 이 로봇의 성능을 정말 좋게 하기 위해선, 개미와 똑같이 복제하고 개미와 똑같은 기질을 불어넣어야 했죠.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봐요!" 라미레 부인이 힘주어 말하고는 '백과 사전'을 훌훌 넘기다가 한 대목을 레티샤에게 가리켰다. 166. 백과 사전 신인 동형론 인간은 그들의 척도와 가치에 모든 것을 귀결시키면서, 늘 같은 방식으로 사고한다. 자기들의 두뇌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갖기 때문 이다. 스스로 논리적이고 분별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은 늘 자 신들의 관점에서 사물을 본다. 의식이나 직관과 마찬가지로 지능은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켄시타인은, 신이 아담을 창 조하였듯이 인간도 자기와 똑같은 형상의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신 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인간은 무엇이든 인간을 닮은 형태로 만들 고 싶어한다. 로봇을 만들 때, 인간은 자기들의 모습과 행동 방식을 그대로 복제한다. 아마도 언젠가는 대통령 로봇, 교황 로봇도 만들 겠지만, 그것은 인간의 사고 방식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방식에 변화를 줄 다른 것들도 많이 존재한다! 개미도 다른 방식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마 외계인들 도 우리에게 다른 사고 방식들을 가르쳐 줄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자크 멜리에스는 껌을 자분자분 씹고 있었다. "모든 게 대단히 흥미롭군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라미레 부인, 당신은 왜 나를 죽이려 했죠?" "오, 먼저 우리가 경계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웰즈 양이었어요. 우리는 기사를 읽고 그녀가 에드몽 웰즈의 후손임을 알았어요. 당신 의 존재까진 몰랐어요." 멜리에스가 아주 신경질적으로 껌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쥘리에트 가 말을 이었다.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우린 개미 로봇 하나를 그녀의 집으로 보 냈죠. 우리의 첩보 개미가 당신들의 대화를 녹음해서 테이프를 전해 주었고 우리는 두 사람 중 통찰력이 예리한 사람은 멜리에스 당신이 라는 걸 알았죠. 당신이 <아믈렝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해 이야 기할 때, 우리는 곧 당신이 비밀을 알아내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당신에게도 또한 살해단을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그 때문에 내가 혐의를 뒤집어썼고요. 다행히 당신들의 살인이 계속되어어.. .." "미귀엘 시녜라아즈 교수는 수중에 <바벨> 완제품을 가지고 있었 어요. 우리가 가장 먼저 없애려고 했던 게 그것이었죠." "그런데, 그 유명한 개미 살충제 <바벨>은 어디 있죠?" "시녜리아즈가 죽은 후에 우리 개미 특공대 중의 하나가 그 더러 운 물질이 들어 있는 시험관을 부수어버렸어요. 우리가 아는 한 그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훗날 다른 연구원들이 다시는 그와 유 사한 발상을 하지 않기를 기원합시다. 에드몽 웰즈는 아이디어는 지 천으로 널려 있다고 썼어요....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가 함께 섞여서 말이에요!" 라미레 부인은 한숨을 지었다. "자, 이제 모든 것을 아셨죠. 당신들의 질문에 모두 답했어요. 하 나도 숨김 없이." 라미레 부인이 멜리에스가 호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나를 심문하고, 체포하고, 구속하세요. 하지만 남편은 내버려두 세요. 그이는 선량한 사람이에요. 그이는 단지 개미가 멸종된 세상 을 감당할 수 없었던거예요. 그이는 교만함 때문에 제 정신을 잃은 소수 학자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풍요로운 지구를 구하길 원했어요. 제발, 아더는 내버려두세요. 그이는 이미 암으로 심판을 받았어요." 167. 원정군에게서는 소식이 없다. <<원정군 소식은 어떻게 됐지?>> <<더 이상 없습니다.>> <<어째서 더 이상 소식이 없는거지? 혹 동쪽에서 전령 날파리 한 마리라도 도착하지 않았는가?>> 클리푸니는 더듬이를 입술 가까이로 모아 꼼꼼하게 닦는다. 일이 자기의 바램처럼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예감이 든다. 개미들이 손가 락들을 죽이느라 너무 지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왕 클리푸니는 <반체제 개미> 문제가 이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는지 묻는다. 머지 않아 200내지 300마리가 될 것이며, 그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 병정개미가 대답한다. 168. 백과 사전 열한 번째 계명 오늘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파리 시가지가 거대한 삽으로 퍼올 려진 다음 투명한 단지에 담겨졌다. 단지 속에 모든 것이 너무 흔들 려서 에펠 탑 끝이 우리 집 화장실 벽과 부딪혔다. 모든 것이 전복 되었다. 나는 천장에서 뒹굴고 있었고, 수천의 행인들이 우리집의 닫힌 창문에 부딪혔다. 자동차들은 길에서 부딪히고, 가로등은 바닥 에서 치솟아 있었다. 가구들이 나뒹굴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빠져나 왔다. 밖은 모든 게 엉망이었다. 개선문은 산산 조각이 났고, 노트 르담 사원도 거꾸로 되어 종루가 땅에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지하 철 차량들이 갈라진 땅에서 튀어나와 으깨어진 사람들을 뱉어냈다. 나는 폐허 속으로 달려가 거대한 유리벽 앞에 도착했다. 뒤에도 눈 이 하나 있었다. 하늘 전체만큼이나 큰 외눈이 나를 주시했다. 잠시 후, 나의 반응을 보고 싶어하는 듯 그 눈은 커다란 숟가락 같은 것 으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종소리가 울렸다. 아파트의 아직 깨지지 않은 유리들이 모두 박살났다. 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았는데 크기가 태양의 백 배는 되었다. 나는 그런 것이 나타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그 꿈 이후로 숲으로 더 이상 개미집 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 지금 키우고 있는 개미들이 모두 죽고 나면 다시는 개미도 키우지 않을 것이다. 그 꿈은 열한 번째 계명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 계명을 주위 사람들에 게 강요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실천하려고 한다. 그 계명이란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이란 말을 나는 다른 <모든> 생명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69. 바퀴 나라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이상한 동물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 동물이 발코니 철책을 지나갈 때 그것을 후려쳤다. 뿔풍뎅이 <큰 뿔>이 떨어진다. 뿔풍뎅이가 땅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103호는 뿔 풍뎅이의 등을 박차며 뛰어내린다. 다리에 충격을 받는다. 14층, 역시 높다. 풍뎅이는 운이 없었다. 그의 두툼한 딱지가 땅바닥에서 부서져버 렸다. 하늘을 나는 용감 무쌍한 투사, <큰 뿔>은 그렇게 전사하고 말았다. 103호가 추락할 때 오물로 가득 찬 커다란 쓰레기통이 충격을 덜 어주었다. 그는 여전히 고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103호는 쓰레기통의 알록달록하고 갈라진 표면 위를 걸어간다. 얼 마나 놀라운 곳인가! 이곳에선 모든 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103 호는 지천으로 깔린 그 먹이로 영양을 섭취한다. 진한 향기와 악취 가 뒤섞여 풍기지만 식별할 겨를이 없다. 103호는 위쪽의 나달다달해진 요리책 위에서 자기를 흘깃거리고 있는 수없이 많은 벌레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긴 더듬이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손가락들 나라에도 벌레가 살고 있구나!>> 103호는 그들을 알아본다. 바퀴들이다. 곳곳에 바퀴들이 있다. 통조림 통에서, 찢어진 슬리퍼에서, 잠든 쥐에서, 효소 분말 세제 곽에서, 비피더스 야쿠르트 병에서, 깨진 건전지에서, 용수철에서, 붉게 물든 반창고에서, 수면제 갑에서, 신 경 안정제 갑에서, 유통 기한이 지나 손도 대지 않고 버려진 냉동 식품 통에서, 꼬리도 머리도 없는 정어리 깡통에서 바퀴들이 나온 다. 바퀴들이 103호를 에워싼다. 개미는 이처럼 큰 바퀴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갈색의 딱지 날개를 가지고 있고, 마디가 없는 구부슴 한 더듬이도 갖고 있다. 바퀴들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썩는 냄새가 섞이게 되면 더 매케하고 구역질 나는 악취를 풍긴다. 양 옆구리는 투명하고, 반투명한 키틴질 속으로 꿈틀거리는 내장, 두근거리는 심장, 피가 흐르는 가는 동맥을 볼 수 있다. 103호는 강한 인상을 받는 다. 딱지 날개가 누르스름하고 작은 갈고리로 뒤덮인 다리가 달린 늙 은 바퀴 한 마리가 분비꿀 썩는 냄새와 비슷한 악취를 풍기면서 103 호에게 대화를 걸어온다. 바퀴는 그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묻는다. 103호는 손가락들 둥지에서 손가락들을 만나려 한다고 답한다. 손가락들이라고! 모든 바퀴들이 그를 조롱하는 듯하다. <<지금 손가락들이라고 한거야?>> <<그래, 왜 그렇게 놀라지?>> <<손가락들은 도처에 있어. 그것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아.>> 늙은 바퀴가 말한다. <<둥지 하나로 나를 안내해 줄 수 있겠나?>> 개미가 요청한다. 늙은 바퀴가 다가온다. <<그대는 손가락들이 어떤 자들인지 정말로 알고 있는거야?>> 103호가 마주보며 답한다. <<그들은 거대한 동물이지.>> 103호는 바퀴가 그렇게 묻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침내 늙은 바퀴가 답한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노예야.>> 103호는 그것을 믿기가 어렵다. 어떻게 거대한 손가락들이 혐오감 을 주는 작은 바퀴의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뜻인가?>> 늙은 바퀴는 매일 막대한 양의 먹이를 공급하도록 손가락들에게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설명한다. 손가락들은 그들에게 쉴 곳은 물론 양식과 따뜻함까지도 마련해 준다. 손가락들은 바퀴들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바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다. 매일 아침, 어떤 손가락들이 와서 먹이를 치워가기도 하지만, 바 퀴들은 다른 손가락들이 바친 산더미 같은 공물 중 약간의 음식만을 겨우 맛볼 뿐이다. 그래서 언제나 먹을 것이 넘친다. 그것도 아주 신선한 최고급 먹이가 말이다. 다른 바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 역시 전에는 숲에서 살았는 데, 손가락들 나라를 발견하여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들은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사냥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 다. 손가락들이 가져다주는 먹이들은 달콤하고, 기름지고, 다양하 며.... 특히 달아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작은 사냥감들을 쫓지 않게 된 지 15년이 되었 어. 매일 손가락들에 의해 아주 신선한 먹이들이 제공되거든.>> 등이 검은 뚱뚱한 바퀴가 득의 양양하게 페로몬을 발한다. <<당신들은 손가락들과 대화도 하는가?>> 103호가 묻는다. 그는 바퀴들의 이야기도 이야기려니와 자기 눈앞 에 보이는 거대한 먹이 더미 때문에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손가락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늙은 바퀴가 설명한다. 그들은 바퀴가 요청하기도 전에 복종한다. 세상에 그럴 수가! 한 번은 제물이 좀 늦게 도착했다. 바퀴들이 배로 벽을 두드리며 불만을 표시하자, 다음날 마침내 음식이 제 시간에 도착했다고 한 다. 대개 쓰레기는 매일같이 쏟아져 내려온다. <<나를 그들의 둥지로 데려댜 줄 수 있겠나?>> 103호가 페로몬을 발한다. 바퀴들이 더듬이를 맞대고 의견을 나눈다. 모두가 동의한 것 같지는 않다. 늙은 바퀴가 회의 결과를 전한다. <<우리는 당신이 <엄중한 시련>을 치루고 난 후에라야 손가락들의 둥지로 안내하기로 했다.>> <엄중한 시련>이라고? 바퀴들이 개미를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창고로 안내한다. 거기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방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낡은 가구, 살림 도구, 판지 등이 가득하다. 그들은 103호를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어떤 장소로 데려간다. <<그 <엄중한 시련>이란 게 뭔가?>> <엄중한 시련>의 중요한 내용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라고 어떤 바퀴가 대답한다. <<누군가를 만난다고? 그게 누구지? 적인가?>> <<그렇다, 당신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이다.>> 바퀴 하나가 알쏭달쏭한 대답을 한다. 그들은 일렬로 맞붙어서 나아간다. 이윽고 바퀴들이 103호를 문제의 그 장소로 데려간다. 다리 털이 헝클어진 개미가 한 마리 있다. 걸음걸이가 사나워 보이는 병정개미 다. 그 역시 바퀴들에 둘러싸여 있다. 103호는 더듬이를 앞으로 내밀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 개 미는 신분 페로몬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백병전에 능숙한 용병임에 틀림없다. 다리와 가슴에 위턱 공격을 받아 생긴 상처가 많다는 점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103호는 이런 낯선 환경에서 소개받은 그 개미가 왜 그렇게 대뜸 적대적인 태도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 자는 누구인가? 냄 새도 나지 않고 오래 굶주린 초췌한 행색에 걸음걸이는 꽤나 거만하 고 다리의 털을 핥지 않은 지가 이틀은 되어 보이는 자, 성깔 사나 운 개미가 틀림없으렸다! <<저 자는 누구인가?>> 103호의 반응을 궁금해 하며 그를 지켜보고 있는 바퀴들에게 그가 묻는다. <<바로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자다.>> 바퀴들이 대답한다. 103호는 의구심이 든다. 왜 저 개미는 자기를 만나기를 원했고, 그리고 지금은 왜 그에게 아무런 페로몬도 뿜지 않을까? 103호는 몇 가지 시험을 해본다. 머리를 가볍게 흔드는 척하다가 갑자기 위협하 는 자세로 위턱을 크게 벌려본다. 상대는 항복할까 아니면 도전에 응할까? 그가 위턱으로 전투 태세를 취하기가 무섭게 상대도 마찬가 지로 위턱 두 개로 싸울 자세를 취한다. <<너는 누구냐?>> 대답이 없다. 그 개미가 더듬이를 바로 세운다. <<너는 여기서 뭘 하는거지? 너도 원정군인가?>> 이제 결투가 불가피하다. 103호는 개미산을 쏠 자세를 하고 가슴 아래로 배를 내밀면서 좀 더 강하게 위협을 한다. 상대가 103호의 개미산 주머니가 비어 있다 는 것을 아는 것 같지는 않다. 마주 선 개미도 똑같이 움직인다. 개미 사회의 이 두 대표자들에 게 관심이 집중된 바퀴들은 꼼짝 않고 지켜보고 있다. 103호는 지금 이 시련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바퀴들은 개미들의 결투를 보 고 싶어하며 승자를 그들 집단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일게다. 103호는 같은 개미를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사명이 더 중요 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바퀴 한 마리가 결투하는 동안 그의 고치를 지켜주기로 했다. 103호는 앞에 마주한 자가 점점 더 사나워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페로몬도 발하지 않고 세계의 끝에 제일 먼 저 도달한 103호를 알아보지조차 못하는 이 건방진 자는 누구일까? <<난 103683호다!>> 상대는 다시 더듬이를 세우지만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들 은 둘 다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서로에게 사격은 하지 않기로 하자.>> 상대의 주머니에는 틀림없이 산이 가득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서 103호가 페로몬을 발한다. 103호는 자기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개미산 주머니 바다게 마 지막으로 한 방울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만일 그가 재빨리 쏜다면 기습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는 배의 근육으로 힘껏 한 방울을 밀어낸다. 하지만 상대도 거의 같은 자세로 동시에 쏘아서 개미산 두 방울은 서로 부딪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고? 사실 개미산 방울은 공중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아니었다. 그러 나 103호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위턱을 잔뜩 벌리 고 돌격하던 103호는 단단한 것에 부딪힌다. 상대의 위턱 끝이 아주 정확히 그의 위턱의 끝을 친 것이다! 103호는 숙고한다. 상대는 신속하고, 끈질기며, 그가 공격하려는 순간과 공격 지점을 예상하면서 정확하게 막아낼 줄 아는 자다. 이런 상황에서의 결투는 바람직하지 않다. 103호는 바퀴들에게 돌아서서, 이 개미는 자기와 같은 불개미여서 그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우리 둘 다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 든지 하는 것이 좋다.>> 바퀴들은 그 페로몬에 놀라지 않는다. 바퀴들은 103호가 결투에서 이긴 것이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103호는 이해할 수가 없다. 바퀴들이 그에게 설명한다. 사실 103호와 마주한 상대는 결코 없었 으며 유일한 상대자는 103호 자신이었다고. 103호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퀴들은 그가 어떤 마술 벽 앞에 있었으며, 그 마술 벽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물질로 덮여 있다고 덧붙인다. <<그 벽은 우리 세계에 들어오는 낯선 자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 은 것을 가르쳐준다. 특히 그 외래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늙은 바퀴가 말한다. 어떤 자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그 자를 자신의 영상 앞에 세워놓 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바퀴들은 아주 우연히 마술 벽을 발견했다.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바퀴들이 보였던 반응이 재미있었다. 어떤 바퀴들은 자신의 영상 과 몇 시간이고 싸웠고, 어떤 바퀴들은 욕을 해댔다. 대부분 자기들 앞에 있는 동물이 공격을 받아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냄새가 없거나 자신과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두가 자기의 영상과 단번에 형제처럼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자들에게는 우리를 받아달라고 요청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 은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지....>> 늙은 바퀴가 위엄있게 말한다. 자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 은 자를 어떻게 도울 마음이 생기겠는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자 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겠는가? 바퀴들은 <엄중한 시련>을 고안해 낸 자신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바퀴들에 따르면, 자기 자신의 모습에 저항할 수 있는 자는 아무리 큰 동물이든 작은 동물이든 존재하지 않는다. 103호는 그의 영상과 동시에 다시 거울 앞으로 돌아온다. 그는 거울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곧 자기가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거울이 거울이 가장 경이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와 동시에 움직이는 또 다른 자기를 보여주는 벽이라니! 그는 아마도 자신이 바퀴들을 과소 평가했나 보다고 여긴다. 바퀴 들이 마술 벽을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정말 손가락들을 지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네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우리도 자네를 받아들이 겠네. 자네가 스스로를 돕고 싶어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도 자네를 기 꺼이 돕겠네.>> 늙은 바퀴가 말한다. 170. 두 사람의 휴식 레티샤 웰즈는 자크 멜리에스와 함께 페닉스 가를 걷고 있었다. 레티샤는 장난스럽게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난 당신이 그 착 한 노부부를 당장 체포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경찰관들은 대개 일 은 티미하게 하면서도 소송 절차엔 지나치게 엄격하잖아요." 그는 해방된 기분이었다. "당신이 사람 앎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군요!" "당신이 사람들을 미워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당신은 나마 저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요. 당신은 나를 머리만 잘 굴리는 멋대 가리 없는 남자로만 알고 있었어요." "사실 당신은 멋대가리 없는 남자예요." "내가 설사 그렇더라도 당신은 나를 평가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 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 들을 증오하니까. 당신 마음에 들려면 다리는 두 개가 아니라 여섯 개여야 하고, 입술이 아니라 위턱을 가져야 할걸요." 멜리에스는 그녀의 눈길을 정면에서 마주보았다. 이제 그녀의 눈 초리가 메서워져 있었다. "당신은 오로지 귀여움만 받고 자란 아이처럼 구는군요.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자만하지요. 난 그래도 내가 틀렸을 때는 잘못을 인 정할 줄은 압니다. 당신은 정말." "나 말이요? 난 피곤해 지친 남자고, 어떤 여자가 앞에서 지나치 게 참을성 있는 모습을 보인 남자일 뿐이오. 그런데 그 여기자는 어 떤 사람인 줄 알아요? 나를 기죽이는 데 시간을 보내고 독자들에게 자기 자랑이나 실컷 늘어놓는 그런 여기자라고요." "나를 모욕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에요. 나, 가요." "그렇죠, 진실을 듣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훨씬 쉽겠어요. 그런 데 어디로 가는거요? 이 이야기를 한시바삐 기사로 써서 세상에 폭 로하려는 겁니까? 나는 똑똑한 기자보다 실수를 저지르는 경찰관이 더 좋소. 난 라미레 부부를 체포하지 않았소. 하지만 당신 때문에 단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 부부 는 철창 안에서 여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녀가 그의 뺨을 치려 하자, 그의 뜨겁고 억센 손이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검은 눈동자와 연보랏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흑단나무 숲 과 열대의 바다가 맞부딪치는 듯했다. 그렇게 눈길이 마주치고 보니 이내 웃음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 목젖이 보이도 록 마음껏 웃었다. 그들은 방금 아주 어려운 수수께끼를 해결했고, 아주 은밀하고 놀 라운 다른 세계를 목격하고 왔다. 그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연대할 줄 아는 로봇 자제로 실행하고 있었고, 개미들과 대화하고 있었으 며, 완전 범죄를 자유 자제로 실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글프게도 그 페닉스 가에서 어린애들처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레티샤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마음껏 웃으면서 보도 위에 주저앉았다. 새벽 세시였다. 하지만 그들은 젊었고 즐거웠으며 피곤 한 줄도 몰랐다. 그녀가 먼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어리석었어요." "아니, 당신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었어요." "그렇지 않아요, 나예요." 그들은 다시 웃음에 흠뻑 젖어들었다. 거나하게 취해 흥청거리며 늦게 귀가하던 남자가 그 젊은 남녀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는 그 젊은이들이 함께 즐길 곳이라곤 보도밖에 없는 사람들로 여 기는 듯했다. 멜리에스는 레티샤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갑시다." "뭐 하게요?" "길에서 밤을 보낼 생각이오?" "물론이죠." "그렇게 합리적인 당신이 어떻게 된 거요?" "그 합리적이란 말, 이젠 진저리가 나요. 불합리한 사람들이 오히 려 옳을 수도 있죠. 나는 라미레 부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채와 얇은 천의 검은 옷에 감싸인 그녀의 몸이 새벽 이슬에 젖지 않게 하려고 길 모퉁이 어떤 집의 현 관 아래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들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가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다. 레티샤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171. 달팽이 이야기 니콜라는 침대 속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엄마, 개미들의 신으로 군림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 하지 못하겠어요.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죠?" 뤼시 웰즈가 아들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가 결정할 수 있겠니?" "그건 분명히 나빠요. 너무 부끄러워요. 나는 아주 어리석은 짓을 했어요."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단다. 얘야.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예, 그러세요. 엄마." 뤼시 웰즈가 아들의 머리맡에 앉았다. "이건 중국의 옛이야기란다. 옛날에 두 수도자가 도교 사원의 뜰 을 거닐고 있었어. 그중 한 사람이 마침 길 위로 기어가던 달팽이를 발견했어. 동료 수도자가 무심코 그 달팽이를 막 밟으려던 찰나에 그가 때 맞추어 동료를 붙들었지. 그는 몸을 숙여 그 달팽이를 집어 들고 이렇게 말했어. <이보게, 하마터면 우리가 이 달팽이를 죽일 뻔했네. 이 달팽이도 하나의 생명이고, 하나의 개체를 넘어 계속 이 어져야 할 숙명을 가진 게 아니겠나. 이 달팽이는 살아남아서 윤회 를 계속해야해.> 그러면서 그는 달팽이를 조심스럽게 풀밭에다 내려 놓았어. 그러자 다른 수도자가 화를 내며 소리쳤어. <뭘 모르는군! 자네는 보잘 것없는 달팽이는 구하면서, 우리 일꾼이 애써 가꾼 채 소는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미물의 목숨 하나를 구하자고 우리 동 료의 농사를 망쳐도 되느냐 말일세.> 그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그리로 지나가던 다른 수도자가 궁금해 하며 그들을 지켜 보았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달팽 이를 구했던 수도자가 제안을 하나 했지. <스승님께 여쭤보러 가세. 그분은 현명하시니까 우리 중 누가 옳은지 판단을 내려주실거야.> 그들은 그 일의 결말을 궁금히 여기는 세 번째 수도자와 함께 스승 의 거처로 갔단다. 첫번째 수도자가 자초 지종을 말하고 미래 또는 과거에 수천의 다른 생명들을 품고 있는 고귀한 생명 하나를 구했노 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들은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 게 말했어. <너는 해야 할 일을 했구나. 네가 옳다.> 두 번째 수도 자가 펄쩍 뛰었어. <어째서 그렇습니까? 채소를 갉아먹는 달팽이를 구한 것이 옳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오히려 채소밭을 보호 하기 위해 달팽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스승은 그 얘기 를 다 듣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그래, 네 말이 맞구나. 마땅히 그래야겠지. 네가 옳다.>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 있던 세 번 째 승려가 나아가서 말했어.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의견은 정반대가 아닙니까? 어떻게 그 두 사람이 다 옳을 수가 있습니까?> 스승은 세 번째 수도자의 말을 한동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그래, 네 말도 옳구나.>" 마음이 편안해진 니콜라는 이불 속에서 조용히 코를 곯았다. 뤼시 는 다정히 이불잇을 여며주었다. 172. 백과 사전 경제 옛날에 경제학자들은 성장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했다. 성장률은 국가, 기업, 가게 등 모든 사회 구조의 건강성을 재는 척 도였다. 그러나 늘 앞으로만 나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아직 성장의 여력이 남아 있는데도 성장이 멈추는 때가 왔다.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힘의 균형이라고하는 지속적 인 상태만 존재한다. 건전한 사회, 건전한 국가, 건전한 노동자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타격을 주지도 않고 타격을 입지도 않 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연과 우주를 정복할 생각을 하지 말아 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과 우주에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의 유 일한 술로건은 조화이다.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 사이의 조화로운 상호 침투,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고 폭 력을 없이 하고 겸허해 져야 한다. 인간은 우주와 하나가 될 것이 다. 인류는 평형 상태를 맞게 될 것이고 미래에 자신을 던지지 않게 될 것이며 멀리 있는 목표를 겨냥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소박하게 인류는 현재에 살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73. 하수도 안에서의 활약 바퀴들은 울퉁불퉁한 통로를 따라 올라간다. 103호는 위턱 사이에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위한 나방 고치를 간직하고 있다. 올라가는 길이 무척 더디다. 한없이 긴 통로 위쪽에서 이따금 빛이 비친다. 바퀴들이 그에게 벽에 몸을 바싹 기대고 더듬이를 뒤로 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과연 그들은 손가락들의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빛의 신호가 떨어진 직후 요란한 굉음이 들리고 곧바로 쓰레기 통로를 따라 냄새 가 고약한 묵직한 덩어리가 떨어졌다. "여보, 쓰레기 통로에 쓰레기 봉투 버렸어요?" "그래, 그게 마지막 봉투였어. 다른 봉투를 사와야갰는데, 더 큰 걸로 말이야. 지난번 것은 용량이 너무 적어서 못 쓰겠더군." 곤충들은 쓰레기 덩어리들이 또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면서 위로 올라간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가?>> <<자네가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그들은 수직 통로를 몇 층 더 올라간 다음 멈춘다. <<저길세.>> 늙은 바퀴가 말한다. <<당신들도 함께 가는 건가?>> 103호가 묻는다. <<아니, 바퀴 속담에 <저마다 자기의 문제가 있다>라는 게 있지. 자네의 힘으로 고비를 넘겨보게. 자네의 최상의 동맹군은 바로 자네일세.>> 늙은 바퀴는 103호에게 부엌 개수대로 통하는 쓰레기 통로의 뚜껑문을 가리킨다. 103호는 고치를 꼭 그러쥐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뭣하러 왔지? 손가락들을 그토록 무서워하면 서 그들의 둥지 안에서 거닐고 있다니!> 하지만 그는 자기 도시와 자기 세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서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깨닫는다. 103호는 모든 것이 아주 반듯한 기하학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그 이상한 나라에서 거닐고 있다. 그는 굴러다니는 빵 조각을 갉아 먹다가 부엌을 발견한다.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원정군의 마지막 생존자인 그는 벨로캉의 노래를 부른다. 그날이 오면 불이 물과 맞서고 하늘이 땅과 맞서며 높은 것이 낮은 것과 맞서고 작은 것이 큰 것과 맞서게 되리라 그날이 오면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과 맞서고 둥근 것이 세모난 것과 맞서며 검은 것이 무지개와 맞서게 되리라 그 단조로운 가락을 흥얼거려보았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가시지 않 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불이 물과 맞서면 수증기가 생기고, 하늘이 땅과 맞서면 비가 천지를 덮어버리고, 높은 것이 낮은 것과 맞서면 만물이 어지럽도다. 174. 연락이 끊기다 "내 잘못이 너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를 바란다." <신>의 사건이 있은 후, 그들은 <로제타 석>을 부수어버리기로 결 정했다. 니콜라는 확실히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지만, 언제 또 다시 아이가 신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지 모르므로 아예 그 소지를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니콜라는 어린애였고 굶 주림이 견디기 어려우지면 또 다시 그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자종 브라젤은 컴퓨터 본체를 꺼내왔고, 모두가 단호하게 그것을 밟아 산산 조각을 냈다. (개미들과의 연락은 이로써 완전히 끊겼군.)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한 것은 위험했다. 에 드몽 웰즈가 옳았다. 개미 세계와의 만남은 시기 상조였다. 아주 작 은 실수 하나가 개미들의 문명 전체를 유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니콜라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 개미들은 제가 이야기한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거예요." "그럴 게다. 니콜라.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손가락들은 우리의 신이라네.>> 벽에서 뛰쳐나온 반체제 개미 한 마리가 강렬하게 페로몬을 내뿜 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정개미 한 마리가 배를 가슴 아래 로 내밀고 개미산을 쏜다. 신을 믿는 개미가 쓰러진다. 최후의 반사 적인 행동으로 반체제 개미는 자기의 몸을 여섯 개의 가지가 달린 십자가처럼 쭉 뻗었다. 175. 음양 아침이 되어 두 사람은 레티샤의 아파트 쪽으로 서두르지 않고 걸 어갔다. 다행히 아파트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라미레 부인처 럼, 그리고 예전에 그의 사촌 조나탕이 그랬듯이 퐁텐블로 숲 기슭 에 거처를 정해 놓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동네가 페닉스 가가 있는 동네보다 한층 더 살기가 좋았다. 그곳에는 호화로운 상점과 보도가 딸린 도로, 넓은 녹지가 있었고, 미니 골프장과 우체국도 있었다. 그들은 거실에서 축축한 옷을 벗고 안락 의자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졸려요?" 멜리에스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뇨, 나는 그래도 좀 잤거든요." 멜리에스는 간밤에 레티샤를 지켜보느라고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 했다. 그의 얼굴에 어린 아주 피곤한 기색만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 었다. 그래도 그의 정신은 활력에 차 있었고, 새로운 수수께끼, 새 로운 모험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레티샤가 함께 치룰 다른 일 자리를 제안해 오기만 한다면 좋으련만. "꿀술 좀 드릴까요? 올림푸스의 신들과 개미들의 음료 말이에요." "아, 그 개미라는 말은 더 이상 올리지 말아요. 개미 얘기라면 이 제 넌더리가 나요." 레티샤가 안락 의자의 팔걸이 위에 걸터앉았다. 그들은 건배를 했다. "수사가 끝났으니 이제 개미와도 작별합시다. 이제 개미 끝!" 멜리에스가 말했다. "지금 제 상태가 어떤지 알아요? 잠을 잘 수도 없을 것 같고 너무 피곤해서 일도 못 하겠어. 보리바쥬 호텔의 그 방에서 개미들을 감 시하면서 멋진 시간을 보냈을 때처럼 체스나 한판 하면 어떨까?" "개미 얘긴 하지도 말라면서요." 레티샤가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재미있는 놀이가 하나 생각났어요. 중국식 체스라고 할 만한데요. 상대의 말을 잡지는 않고 그것들을 이용해 자기 말을 더 빨리 나아가게 하는 놀이예요." 레티샤가 설명했다. "별로 복잡하지 않고 머리나 좀 식힐 수 있는 놀이면 좋겠는 데.... 배우면서 해야 돼요?" 레티샤 웰즈는 안으로 들어가서 육각형 대리석 판을 가져왔다. 그 판 위에는 뾰족한 여섯 개의 뿔로 이루어진 커다란 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레티샤가 놀이의 규칙을 가르쳐주었다. "별의 뾰족한 불마디 유리막대들이 모여 하나의 진영을 이루고 있 어요. 각 진영은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요. 자기 편의 유리 막 대나 상대 편의 유리 막대를 건너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막대 를 건너 뛸 때에는 막대 앞 칸이 비어 있으면 돼요. 건너뛸 공간이 있다면 아무방향으로나 건너가고 싶은 만큼 건널 수 있어요." "그럼 건너뛸 막대가 없을 때에는?" "한칸씩 한칸씩 아무 방향으로나 나아갈 수 있어요." "뛰어넘은 막대는 잡아버리는 건가요?" "아니요. 전통적인 체스와는 반대로 말을 잡는게 아니고 빈 공간 을 이용해서 맞은편 진영에 되도록 빨리 도달하는 길을 찾으면 되는 거예요." 그들은 놀이를 시작했다. 레티샤는 한칸씩 벌려서 막대를 늘어놓음으로써 일종의 길을 만들 었다. 레티샤의 막대들은 그 길을 이용해서 차례차례 멀리 나아갔다. 멜리에스도 레티샤를 따라서 했다. 첫번째 판이 끝났을 때 멜리에 스는 자기의 막대를 모두 레티샤의 진영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막 대 하나가 남아 있었다. 깜빡 잊고 빠뜨린 낙오자였다. 그가 홀로 남은 유리 막대를 옮기고 있을 때, 레티샤가 모든 막대들을 자기의 진영에 다 채워넣고 있었다. "당신이 이겼어." 그가 선선히 패배를 시인했다. "초보자치고 아주 요령 있게 잘하는데요.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빼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세요. 되도록 빨리 하되 단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모든 막대를 한꺼번에 보낼 생각을 해야 돼요." 그는 더 이상 듣지 않고 놀이판을 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몸이 별로 안 좋은가 봐요? 하긴 간밤에...." 그녀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괜찮아, 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 놀이판 좀 봐요. 자세히 봐요." "네, 보고 있어요. 그런데요?" "그런데요라니, 이게 해답이란 말이오!" 그가 소리쳤다. "이미 모든 해답을 찾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니,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못 찾았잖아요. 라미레 부인의 그 마지막 수수께끼 말이오. 성냥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여섯 개를 만들라는 문제 말이오." 레티샤는 육각형 놀이판을 살펴보았으나 멜리에스가 뭘 말하고 있 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잘 봐요, 여섯 개의 뾰족한 뿔로 이루어진 별 모양대로 성 냥개비를 놓으면 돼요. 이 판이 그걸 가르쳐주고 있지 않소. 삼각 형 두 개를 이렇게 포개면 작은 정삼각형 여섯 개가 나오잖아요.. .." 레티샤는 놀이판을 한층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것은 다윗의 벌이에요. 대 우주의 인식과 결합된 소우주의 인 식을 상징하지요. 무한히 큰 것과 무한히 작은 것과의 만남...." "나는 이 개념이 아주 좋아요." 멜리에스는 자기의 얼굴을 레티샤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 다. 그들은 놀이판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그것은 또한 하늘과 땅의 결합이라고도 혼연 일체가 되지요. 각 각의 구역들이 자기의 특수성을 간직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지요. 그 것은 높은 것과 낮은 것의 혼합을 의미해요." 그들은 경쟁이나 하듯 대조되는 것들을 나열했다. "음과 양." "빛과 어둠." "선과 악." "추위와 더위." 레티샤가 서로 대조되는 것들을 찾느라고 양미간을 찌푸렸다. "슬기로움과 어리석음." "정신과 육체." "능동과 수동." "당신이 가르쳐준 중국식 체스에서처럼 별은 각자 자기의 관점에 서 출발하여 다른 것의 관점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의 힌트가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였군요. 그런데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관념의 결합이 있어요. 미와 질서의 조화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레티샤가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어떻게 생각하지요." 그의 얼굴을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수염이 레티샤의 보드라 운 볼을 찔렀다. 그는 손을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채 속에 집어넣 고 어루만졌다. 그녀는 다소곳하게 있었다. 176. 신비한 세계 103호는 개수대에서 내려와 통풍기 가장자리 위로 기어올라간다. 다시 통로를 지나 의자 위에 올라가고, 벽 위를 기어올라가서는 탁 자 뒤에 숨었다. 잠시 후에 탁자에서 내려와, 화장실 변기 위 가파 른 가장 자리 위를 기어오른다. 아래에 작은 호수가 있지만 내려가고 싶지 않다. 세면대로 가서 마개가 잘못 닫힌 치약 튜브의 박하 향과 면도 후에 바르는 화장수 의 향긋한 냄새를 맡고, 마르세이유 비누 위로 올라갔다가. 계란 모 양의 샴푸 병 속으로 미끄러지던 찰나 가까스로 익사를 면한다. 이미 볼 만큼 다 보았지만 이 둥지엔 손가락들이 전혀 없다. 그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혼자다. 자기가 원정군의 가장 초라하고 볼 품 없는 종말을 상징하고 있는 것만 같다. 결국 모든 것이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 려 있다. 그에게는 아직도 손가락들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손가락 들에 대항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 남아 있다. 103호 혼자서 손가락들 모두를 없애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원정군 병사들은 3,000마리나 희생이 되었는데 손가락들은 단 한 마리밖에 죽지 않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상의 모든 손가락들을 자기 혼자서 해치우 겠다는 생각은 포기해야 할 것만 같다. 그는 어항 앞으로 가서 몇 분 동안 어항 벽에 둘러붙은 채, 알록 달록한 이상한 새들이 형광을 반짝이며 나른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 다음 103호는 현관문 아래를 지나 계단을 이용해 한 층 더 올라간다. 그는 욕실, 부엌, 거실을 둘러본다. 비디오 녹화기 뚜껑 속에서 길을 잃어 잠시 전자 부품 사이에서 헤매다가 다시 나와서 어떤 방 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아무도 없다. 멀리 둘러보아도 손가락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쓰레기 통로를 따라 한 층을 올라간다. 부엌, 욕실, 거실을 차례 로 둘러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는 멈춰서서 페로몬을 토해내어 손가락들의 풍습에 대해서 자기가 관찰한 것을 기록한다. 분야:동물학 주제:손가락들 정보제공자:103683호 정보제공연도:100000667년 손가락들은 모두 외형이 비슷한 둥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둥 지들은 뚫을 수 없는 바위로 된 커다란 동굴이다. 그것들은 입방형 으로 되어 있으며 층층이 쌓여 있다. 그 동굴 안은 대개 훈훈하다. 천장은 하얗고 바닥은 색깔이 있는 잔디 같은 것으로 덮여 있다. 손 가락들이 그곳에 머무는 일은 드물다. 103호는 발코니로 나와 다리에 붙어 있는 접착성이 강한 흡착반을 사용하여 건물의 정면을 기어오른 다음 앞의 것들과 비슷한 새 아파 트로 들어간다. 거실로 들어가니 마침내 손가락들의 모습이 보인다. 103호가 나아가자 손가락들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온다. 103호는 고 치를 꽉 쥔 채 가까스로 도망친다. 177. 백과 사전 방향 인류의 위대한 원정들은 대부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루어졌다. 옛부터 사람들은 불덩어리가 잠기는 고시 어디인가 궁금해 하면서 태양의 운행을 좇았다. 율리시즈, 크리스토퍼 콜롬부스, 아틸라 등 모두 서쪽에 그 답이 있다고 믿었다. 서쪽으로 떠나는 것, 그것은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태양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에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르코 폴로, 나폴레옹, 빌보 르 오비(톨키앵의 '반지의 주인'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등은 동쪽으로 갔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동방이야말로 발견할 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믿었다. 모험가들의 상징 체계에는 여전히 두 개의 방향이 남아 있다. 그 방향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북쪽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힘을 시 험하기 위한 장애물을 찾아가는 것이다. 남쪽으로 가는 것은 휴식과 평온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 178. 방황 103호는 그의 소중한 짐을 들고 신비한 손가락들의 세계에서 오랫 동안 떠돌아다녔다. 그는 많은 둥지들을 방문했다. 그것들은 비어 있는 때도 있었고 손가락들이 안에 있다가 그를 죽이려고 쫓아온 때도 있었다. 한때 <메르쿠리우스 임무>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들었다. 그러 나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산전 수전을 다 겪으면서 바친 그 많은 노 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착한 손가락들을 만나야 한다. 개미 들에게 우호적인 손가락들을. 103호는 거의 백여 채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영양분을 취하기는 쉬웠다. 여기저기에 많은 음식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각진 곳이 많 은 공간에서 홀로 있으니 모든 것이 기하학적이고 초자연적인 색깔 로 장식된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느낌이다. 반짝이는 흰색, 윤기 없 는 밤색, 파르스름한 불빛, 산뜻한 오렌지빛, 연초록빛이 어우러진 세계. 기이한 나라! 나무, 풀, 모래는 거의 없고 오로지 매끈매끈하고 차가운 물건과 물질들만 가득하다. 동물도 거의 없다. 그저 그가 다가가면 줄행랑을 놓는 좀벌레 몇 마리가 보일 뿐이다. 그 좀벌레들에게는 103호가 숲에서 온 야수처 럼 보이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103호는 걸레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밀가루 봉지에서 약간 고투하 고 신기한 물건이 담긴 서랍 속을 탐사한다. 후각이나 시각으로 감지되는 것이라고는 죽어 있는 형체들, 죽어 있는 가루들, 손가락들이 가득 들어 있거나 비어 있는 둥지들뿐이 다. 어떤 것이든 그 중심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 그 중심을 찾는 게 중요하다.>> 벨로키우키우니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서로 포개져 있거나 붙 어 있는 수많은 사각형 둥지 가운데서 어떻게 중심을 찾는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혼자고 너무나 외롭고 자기 도시에서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데! 고향이 그립다. 그는 벨로캉의 안정된 피라미드, 동료들의 움직 임, 영양 교환할 때의 포근함, 자기들의 씨를 퍼뜨려달라고 요청하 는 식물들의 매혹적인 향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나무 그늘이 그리워진다. 지금 그에겐 태양의 에너지를 마음껏 받아들이게 해주 는 바위들, 수풀 사이에 뿌려진 페로몬의 자취가 너무나 아쉬운 것이다! 그래도 103호는 예전에 원정군이 그랬듯이 계속 나아간다. 그의 존스톤 씨 기관들은 전파, 광파, 전자파, 자기파, 등 갖가지 파동들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이 손가락들의 나라에는 거짓 정보들이 와글 와글대고 있을 뿐이다. 103호는 관이나 대롱이나 전화선이나 밧줄을 따라 아파트를 배회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다. 자기를 환대하는 어떠한 신호도 없다. 손가락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103호는 낭패감에 빠진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그는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담?> <뭣 하러 이런 짓을 하지?>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때 돌연 숲속에 사는 불개미의 냄새가 풍겨온다. 기쁜 마음에 103호는 기적적인 냄새가 날아오는 쪽으로 달려간다. 달려가면 달려갈수록 냄새의 정체가 분 명해 진다. 지울리캉의 냄새다! 원정군이 출정하기 직전에 손가락들 에게 납치되었던 둥지인 지울리캉! 향긋한 냄새가 자석처럼 그를 끌어당긴다. 틀림없다. 지울리캉의 둥지가 저기 고스란히 있다. 지울리캉 개미 들은 모두 무사하다. 103호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더듬이를 내밀 었으나 그들 사이에 모든 접촉을 차단하는 단단하고 투명한 벽이 놓 여 있다. 도시가 입방체 안에 갇혀 있다. 103호는 지붕 위로 기어올 라간다. 거기에는 더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비좁지만 페 로몬을 교환하기에는 충분한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지울리캉 개미들이 그들이 어떻게 이 인공 둥지에 오게 되었는지 페로몬으로 전해준다. 그들이 여기에 강제로 정착한 이후로 손가락 들이 그들을 연구하고 있다. 손가락들은 공격적이지 않다. 그들은 개미들을 죽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번은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에게 낯선 다른 손가락들이 그들을 들어올려 사정없이 흔들어대 는 바람에 많은 지울리캉 개미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다시 온 후 더 이상 문제는 없다. 매력적인 손가락들이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고, 그들을 지켜준다. 103호는 몹시 기뻤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착한 손가락들을 만 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공 둥지에 갖혀 있는 개미들이 냄새와 몸짓으로 착한 손가락들 에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179. 상념 오귀스타 웰즈는 공동체 의례에 참여하고 있었다. 모두들 <옴>소 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하나의 정신적인 공간을 만들자 모두 가 나란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저 위, 머리 위 1미터 지점, 천장 아래 50센티미터 지점에 자리잡 은 상상의 공간에는 더 이상 배고픔도 추위도 두려움도 없고, 그곳 에서는 모두가 자기를 잊고 공중에 떠다니는 생각하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귀스타 웰즈는 서둘러서 그 거품 속에서 빠져나와 자기 의 육체로 다시 돌아왔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제대로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뭔가 다른 것에 몰두해 있었고 잡념이 끼여들었다. 지상 에 있었을 때의 정신과 자아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니콜라 사건이 할머니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세계는 한 마리 개미에겐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줄 것임에 틀 림없으리라는 느낌이 든다. 자동차, 커피 자동 판매기, 기차 검표기 가 무엇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개미 세계와 인간 세계와 의 거리는 아마도 인간 세계와 초월적인 (신의?) 어떤 세계를 갈라 놓는 거리만큼 될 것이다. 인간 세계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시공간에 또 다른 니콜라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신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 신은 심심풀이로 장난을 치는 철부지 어린아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그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간식 시간이 되었으 니 인간들과 장난치는 것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할 때는 언제일까?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개미들이 기차의 자동 검표기를 상상할 수 없다면 인간 세계보다 우월한 시공간의 신들은 어떤 독창적인 개념들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터무니없고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다시 정신을 집 중하여 공동체 모임의 부드러운 정신적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180. 목표가 다가오고 있다. 소리와 냄새와 열기가 가득 차 있다. 이곳엔 틀림없이 손가락들이 살고 있다. 103호는 붉고 두꺼운 융단 밀림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소리와 진동이 나는 곳으로 다가간다. 길엔 물렁한 장애물들이 뿌려 져 있다. 화려한 천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최후의 원정군 병사 103호는 자크 멜리에스의 저고리 위로 기어올 랐다가 다시 바지 위로 올라간다. 그런 다음 검은 비단 투피스를 밟 으며 계속 나아가 경정의 셔츠 위로 올라가더니 이번에는 험준한 산 맥처럼 생긴 레티샤의 브래지어를 오르내린다. 그는 소란스런 곳을 향해 나아간다. 정면에 뜨개질한 침대 시트 자락이 나타나자 그는 그 위로 기어올 라간다. 올라갈수록 손가락들의 냄새, 손가락들의 열기, 손가락들의 소리가 있다. 저 위에 그들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제 곧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103호는 나방 고치를 끄집어낸다. 메르쿠리우스 임무의 완수가 목전에 다다랐다. 침대의 꼭대기로 기어올라간다. 과연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레티샤 웰즈는 연보랏빛 눈을 감고, 멜리에스의 양기가 자기의 음 기와 합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몸이 엉켜 춤을 추고 있는 찰나였다. 살포시 눈을 뜬 레티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의 코 바로 앞에서 개미가 위턱 사이에 작게 접은 종이를 낀 채 흔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레티샤는 마음이 흐트러져서 움직임을 멈추고 벌 떡 일어나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 갑작스런 중단에 자크 멜리에스는 당황했다. "무슨 일이오?" "침대 위에 개미가 있어요!" "틀림없이 당신 개미집에서 나온 걸 거요. 하루종일 개미와 함께 있었고, 그것들을 추적했소, 자, 이리 가까이 와요!" "잠깐만요, 기다려요, 저건 다른 개미들과 달라요. 뭔가 특별한 것을 갖고 있어요." "라미레 부인의 개미 로봇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아뇨, 정말 살아 있는 개미예요. 믿기지 않겠지만 위턱 사이에 접은 종이 조각이 있어요.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경정은 투덜거리면서도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못해 일어났 다. 실은 그도 개미가 집은 종이 조각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알고 있었다. 103호는 자기 앞에 많은 손가락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대개 그 동물은 다섯씩 짝을 지은 두 무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데 여기 있는 것은 더 고등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다른 손 가락들보다 더 두터운 데다 다섯씩 두 무리가 아니라 네 무리로 되 어 잇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의 분홍빛 뿌리에서 나온 스무 개의 손가락들인지도 모른다. 103호는 앞으로 나아가 위턱 끝으로 편지를 내민다. 그 어마어마 한 존재들이 불러일이키는 너무나 당연한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으려 고 무진 애를 쓴다. 숲에서 손가락들을 상대로 싸웠던 일을 떠올리자 재빨리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두고 거기에 당당하 게 맞서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자, 저 개미가 위턱 사이에 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세요." 자크 멜리에스는 아주 천천히 개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설마 저 개미가 나를 물거나 개미산을 쏘지는 않겠지?" "지금 저 작은 개미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겠죠?" 레티샤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손가락들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밀려온다. 103호는 어렸을 때 벨로 캉에서 배운 교훈들을 상기한다. 포식자와 마주쳤을 때는 그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다른 것을 생각해야 한다. 침착해야한다. 포식자는 언제나 약한 상대가 달아나길 기다리고 있다가 달아나기 시작하면 즉각 행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고 당 당하게 맞서고 있으면 그 자는 당황하면서 감히 공격할 생각을 못한다. 손가락들 다섯이 침착하게 그를 맞으러 다가온다. 그들은 전혀 당 황하는 것 같지 않다. "개미를 놀래키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기다려요, 천천히 해요, 개 미가 달아나지 않겠끔...." "저 개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꼭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다 렸다가 나를 물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멜리에스는 천천히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손을 들이밀고 있었다. 103호에게 다가오는 손가락들은 그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적은 행동을 취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경계해야 한 다. 함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103호는 겁을 먹고 달아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겁내지 말자. 겁내지 말자, 겁내지 말자, 자, 난 그들을 만나러 아주 먼 곳에서 왔고, 지금 저기에 그들이 있는데, 이제 와서 전속 력으로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힘내라, 103호. 넌 이미 그들과 맞섰 으면서도 죽지도 않았잖은가.> 하지만 자기보다 높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열 배는 넘는 다섯 개 의 분홍빛 공들이 다가오고 있는 마당에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 로에게 타이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살며시, 살며시, 개미가 불안해 하고 있는 거 보이죠? 더듬이를 계속 떨고 있잖아요."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둬요. 저 개미는 내 손이 점점 다가 가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동물들은 느리고 규칙적인 현상 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옳지, 귀여운 것, 자, 자." 이건 본능이다. 손가락들이 스무 걸음 이내로 다가오자 103호는 위턱을 크게 벌리고 공격하려 한다. 위턱에 접은 종이가 틀어막혀 있어 더 이상 물 수도 없다. 그는 더듬이 끝을 앞으로 내민다. 그의 머리에서 열이 난다. 세 개의 뇌가 대화를 하며 각자 자기 의견을 내 놓는다. <달아나자!> <겁먹지 마. 이럴려고 우리가 그 동안 그렇게 고생을 한거야.> <우리는 곧 박살날지도 몰라.> <달아나고 싶어도 손가락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달아날 겨를 이 없어!> "그만둬요, 개미가 놀라서 죽겠어요." 레티샤가 명령조로 말했다. 멜리에스의 손이 멈췄다. 개미는 세 걸음을 물러서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도 보았죠. 내가 멈추니까 더 두려워하잖아요." 103호는 잠시 쉬고 싶었지만 손가락들이 다시 다가온다. 그가 아 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몇 초 후에 손가락들이 그를 건드릴 것이다. 103호는 손가락들이 개미들을 퉁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 미 잘 알고 있다. 그는 미지의 것 앞에서 취하는 두 가지 태도를 떠올린다. 행동하라! 아니면 모든 고통을 참아야 한다. 103호는 도무지 고통 을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아서 행동하는 쪽을 택한다. 놀라운 일이다. 개미가 손 위로 기어올라왔다. 자크 멜리에스는 깜짝 놀랐다. 개미는 돌진하여 그의 몸 위로 달리다가 팔을 도약판 으로 삼아 레티샤 웰즈의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103호는 신중한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먼젓번 손가락들 위를 걷는 것보다 여기가 더 기분이 좋다. 여유를 가지면서 자기가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분석한다. 그 내용을 잘 정리해 두면 훗날 손가락들에 대 한 동물학 페로몬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손가락 위에 올라와 보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깨끗하고 연한 분홍색의 평평 한 표면에 가는 줄무늬가 나 있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땀으로 가득 찬 작은 우물들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다. 103호는 레티샤 어깨의 하얗고 둥근 부분 위에서 거닌다. 레티샤는 개미를 다치게 할까 저어하면서 꼼짝 않고 있다. 개미는 그녀의 목으로 기 어오른다. 그 목을 감싸고 있는 새틴 천의 감촉에 개미는 황홀해 한 다. 개미는 입으로 다가가서 짙은 장미빛의 도톰한 살갗 위에 제 다 리의 모든 무게를 싣는다. 그러더니 레티샤의 오른쪽 콧구멍 안에서 잠시 방향을 잃는다. 레 티샤는 재치기를 참느라고 안간힘을 쓴다. 103호는 콧구멍에서 나와 왼쪽 눈동자 위로 몸을 기울인다. 그곳 은 촉촉하고 움직임이 있다. 상아빛 바다 한가운데에 연보랏빛 섬이 하나 있다. 103호는 거기에 다리가 빠질까 두려워 그곳으로 들어가 지 앞는다. 그러길 잘했다. 끝에 검은 솔이 달린 일종의 커다란 막 같은 것이 벌써 눈동자를 덮어버리고 있다. 103호는 다시 목으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와 젖가슴 사이로 미끄 러져 들어간다. 주근깨 몇 개가 있는데 103호는 거기에 걸려 잠시 비틀거린다. 가슴을 덮고 있는 얇은 천에 매료되어 젖무덤 위로 올라간다. 젖무덤의 발그레한 꼭지가 반짝거린다. 그는 그 위에 멈춰서서 몇 가지 정보를 기록한다. 그가 손가락들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손 가락들이 그에게 방문을 허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울리캉 개미 들이 옳았다. 이 손가락들은 정말로 우호적이다. 젖무덤 꼭대기에서 는 다른 쪽 젖무덤과 배의 골짜기가 일망 무제로 바라다보인다. 그는 거기에서 내려오면서 그 깨끗하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표면에 감탄한다. "움직이지 말아요. 당신 배꼽으로 가고 있어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너무 간지러워요." 103호는 배꼽 샘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와 긴 허벅지 위를 질주하 여 무릎 위로 올라간 다음, 발목으로 다시 내려와 발 뒷꿈치로 기어 오른다. 끝을 붉게 물들인 통통하고 짤막한 손가락들이 보인다. 103 호는 다시 다리로 기어오른다. 장딴지 위를 질주하다가 그 하얗고 매끄러운 살갗 위에서 미끄러진다. 103호는 그녀의 털이 나 있지 않 은 따뜻하고 발그레하고 매끄러운 살갗 위를 달려 무릎을 지나고 허 벅지 위쪽으로 올라간다. 181. 백과 사전 6 6이란 수는 구조를 만들기에 적합한 수이다. 6은 천지 창조를 뜻 하는 수이다. 하나님은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는 휴식을 취했다. 클레망 달렉상드리에 따르면, 우주는 서로 다른 여섯 방향 에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즉, 동서남북과 천정점(관측점을 기준으로 천구상 사장 높은 점)과 천저점(관찰자를 기준으로 천구상의 가장 낮은 점)이다. 인도에서 양트라고 부르는 여섯 뿔박이 별은 사랑의 행위, 즉 요니와 링감의 결합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옥쇠라고도 불 리는 다윗의 별을 헤브라이 사람들은 우주를 이루는 모든 요소의 총 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위로 뾰족한 삼각형은 불을 뜻하고 아래 로 뾰족한 삼각형은 물을 뜻한다. 연금술에서는 별의 여섯 개 뿔이 각각 하나의 금속성과 혹성에 대 응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위쪽에 있는 뿔은 달과 은에 해당한다. 시 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차례로 금성과 구리, 수성과 수은, 토성과 납, 목성과 주석, 화성과 철에 해당한다. 여섯 원소와 여섯 혹성이 오묘하게 결합되면서 중앙에는 태양과 금이 놓인다. 회화에서 여섯 뿔박이 별은 색깔들이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된다. 모든 색깔을 결합하면 가운데 육각형안 에 하얀빛이 만들어진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