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개미 제4장 미로의 끝 오귀스타 할머니는 하루 내내 성냥개비 여섯 개를 가지고 씨름하 였다. 벽은 현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에드몽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 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들이 뭔가를 발견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기의 지력을 이용해서 그것을 감춘 것이다. 할머니는 에드몽이 어린 시절에 만들었던 둥지를 떠올렸다. 그에 게는 자기의 '굴'을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그의 모 든 굴을 부수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굴을 하나 만들려고 했던 모양이다. 아무도 자기를 방해할 수 없는 장 소.... 내면의 어떤 장소처럼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를 사로잡고 있던 무기력감을 떨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느 겨울 밤이었다. 아주 어릴 때 문득, 영 아래에 수들이 존재한다는 즉, 3, 2, 1, 0 다음에 -1, -2, -3.....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갑을 뒤집은 것처럼 거 꾸로 뒤집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0은 모든 것의 끝이나 시작이 아니었다. 반대 편에 또 다른 무한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 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갑자기 '영'의 벽이 폭발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밖에 안 되었을 때의 일이지만, 그 발견이 어 린 오귀스타의 마음을 흔들어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게 했다. 뒤집 어놓은 수.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이 열린 것이었다. 3차원. 입체! 오 하느님! 할머니의 손이 흥분으로 떨리고 있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할 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성냥개비들을 집는다. 성냥개비 3개를 세 모꼴로 놓는다. 그런 다음 꼭지점마다 성냥개비를 하나씩 세우고, 그 세 성냥개비가 위쪽의 한 점에서 만나게 한다. 그러자 세모꼴 하 나가 만들어진다. 세모뿔 하나와 정삼각형 네 개. 여기가 세계의 끝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너무나 놀랍 다.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땅 한 뼘 보이지 않는다. 103683호 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다. 세계의 끝은 검은색이다. 그렇게 까만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아주 단단하고 매끈매끈하며 미지근하고 광물성 기름의 냄새가 난다. 꿈에서 본 수직의 바다는 없고 어마어 마하게 사나운 공기의 흐름들이 있다. 두 개미는 어찌된 영문인가를 이해하려고 한동안 애를 쓴다. 이따금 진동이 느껴진다. 진동의 강 도가 기하 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더니 돌연 땅이 흔들리면서 세 찬 바람이 더듬이를 강타하고, 끔찍한 소음이 앞다리 종아리마디에 있는 고막을 찢는 듯하다. 사나운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듯한데, 그 현상은 일어나기가 무섭게 멎어버리면서 먼지의 소용돌이만을 남긴다. 수확개미들 가운데 많은 탐험 개미들이 이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 지만 감시자들이 지키고 있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소음, 그 바 람, 그 진동이 바로 세계의 끝을 지키는 감시자들이다. 그들은 검은 땅 위로 나아가려는 모든 것들을 죽여버린다. 두 불개미가 수확개미들에게 그 감시자들을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 다. 불개미들이 대답을 들으려는 찰나, 또 한차례 격렬한 소음이 일 었다가 사라진다. 불개미들과 동행한 여섯 수확개미들 가운데 하나 가 아무도 저 '저주받은 땅' 위로 갔다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검은 땅을 밟기만 하면 감시자들이 으깨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감시자들이 바로 라숄라캉과 수개미 327호의 원정대를 공격했 던 그 자들일 게다. 그런데 그들이 왜 세계의 끝을 떠나서 서쪽으로 진출했던 것일까? 그들은 세계를 침략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수확개미들은 그 점에 대해서 불개미들보다 더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 자들의 생김새를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아는 거라곤, 감시자들에게 다가섰던 모든 개미들이 박살이 났다는 것뿐이다. 심지어는 그 감시자들이 어떤 생물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조차 모르 고 있다. 즉, 그들이 거대한 곤충인지, 새인지, 식물인지조차 모르 는 것이다. 수확개미들은 그저 그 감시자들이 아주 빠르고 힘이 세 다는 것만 알고 있다. 그들의 힘은 개미들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것 보다 월등하다고 한다. 그때 4000호가 먼저 도전해 보겠다고 나선다. 뜻밖이다. 4000호는 그 무리를 떠나 과감하게 금기의 땅에 올라선다. 죽을 때 죽더라도 4000호는 그렇게 대담하게 세계의 끝을 건너보고 싶은 것이다. 다른 개미들이 가슴을 졸이며 그를 바라본다. 그가 천천히 나아간다. 다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죽음 을 예고하는 아주 사소한 진동이나 냄새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50머리, 100머리, 200. 400, 600, 800머리를 건너갔다. 아무 일도 없다. 그가 무사하다! 개미들이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는 자기가 얼마만큼 왔는지 돌아본다. 좌우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하얀 띠들이 보인다. 검은 땅 위 에는 목숨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곤충 한 머리, 풀 한 포기 보이 지 않는다. 땅이 너무 시커멓다.... 이런 건 땅이라고 할 수가 없다. 머리 앞쪽에 식물들이 보인다. 세계 끝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 단 말인가? 4000호가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려고 둑 위에 머물러 있는 동료들에게 페로몬을 쏘아보낸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 어서 대화하기가 힘들다. 4000호가 반 바퀴 돈다. 그때 거대한 진동과 소음이 다시 일어난 다. 감시자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달린다. 그의 동료들은 엄청나게 큰 어떤 덩어리가 어마어마한 소리로 붕 붕거리면서 그들 앞의 허공을 스쳐가던 짧은 시간 동안 돌처럼 굳어 있었다. 감시자들이 광물성 기름의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그 서 슬에 4000호가 사라졌다. 개미들은 가장자리로 바싹 다가서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4000호의 몸뚱이는 두께가 10분의 1머리밖에 안 될 만큼 바싹 짓눌 러져서 검은 땅에 늘어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벨로캉의 늙 은 탐험 개미의 자취는 오간 데가 없다. 맵시벌 애벌레들이 주던 고 통도 동시에 끝이 난다. 그 와중에서 맵시벌의 애벌레 하나가 등 껍 질을 뚫고 나오는 게 보인다. 붉은 갈색의 납작한 몸뚱이 한가운데 에 하얀 점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감시자들은 그렇게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저 한바탕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한줄기 바람이 스쳐갔을 뿐인데,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가루가 되고, 으깨어진다. 103683호 가 그 현상을 분석해 내기도 전에 또 다른 폭음이 들려온다. 아무도 제 문지방을 건너지 않았는데 죽음의 사자들이 휩쓸고 지나간다. 먼 지가 일어났다가 내려앉는다. 검은 땅을 건너보겠다는 103683호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사테이 나루를 생각한다. 위로 건널 수 없다면 밑으로 가야한다. 이 검은 땅이 강물이라고 생각하자. 강물을 건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밑에 터널을 뚫는 것이다. 그가 여섯 마리의 수확개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다, 그들은 즉 각 열띤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었는데 왜 여태껏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모두 위턱을 부지런히 눌러 땅을 파기 시작한다. 자종 브라젤과 다니엘 로젠펠트 교수는 마편초 차를 그다지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귀 스타 할머니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자상하게 설명했다. 에드몽이 자 기 다음으로 두 사람을 집의 상속자로 지명했다는 것, 오귀스타 할 머니 자신이 그런 것처럼 두 사람도 언젠가는 지하실을 탐사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될 거라는 것, 그래서 셋이서 힘을 합해 아주 효 과적으로 일을 해내고 싶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이미 오귀스타 할머니가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터라, 세 사람에겐 말이 별로 필요없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해쓸 것도 없이 눈길 하 나 미소 하나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셋 중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 즉각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마치 하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고, 세 사람의 유전자 배열이 서로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늙을 대로 늙은 오귀스 타 할머니이지만 두 사람은 할머니를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에드몽을 떠올렸다. 한점의 사심도 없이 고인에 대한 애정 이 새삼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에 그들 자신이 놀랄 정도였다. 자종 브라젤은 자기 가족들을 들먹이지 않았고, 다니엘 로젠펠트는 자기 일 을 들먹이지 않았으며,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 건강을 들먹이지 않 았다. 그들은 그날 저녁에 당장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은 정보 공학, 특히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개념을 뒤섞어서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마 디로, 전자 공학에서 새로운 철학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다고 해서 최초의 질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 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관념이라는 점에서 결국 마찬가지 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에 서 벗어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클리푸캉은 규모 면에서나 지력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하여, 이제 하나의 '청년' 도시가 되었다. 치수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지하 12 층에 완벽한 운하망을 만들어놓았다. 그 운하들 덕분에 식량을 도시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신속하게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클리푸캉 개미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수상 운송 기술을 본 궤도 에 올려놓았다. 둥둥 떠다니는 월귤나무 잎새가 뗏목으로는 아주 제 격이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수백 머 리의 물길을 여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동쪽의 버섯 재배장에서 서 쪽의 진딧물 축사까지 물길로 오고갈 수가 있는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도 언젠가는 물방개 사육에 성공하리라고 기대하 고 있다. 물 속에 사는 커다란 딱정벌레들은 그들의 딱지날개 아래 에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어서 아주 빨리 헤엄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길들여 월귤나무 잎새를 밀게 만든다면, 다소 불안정한 현재 의 뗏목 추동 방식을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리푸니가 손수 미래 지향적인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거 미 그물에서 자기를 구해준 뿔풍뎅이를 떠올린 것이다. 그 곤충을 전투에 이용한다면 얼마나 완벽한 무기가 될 것인가? 뿔풍뎅이는 이 마에 커다란 뿔을 하나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갑을 두른 것처 럼 단단한 딱지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도 한다. 여왕개미의 생각은 그 곤충들의 부대를 만들어, 그 곤충 하나 하나의 머리마다 열 마리의 포수 개미들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클리 푸니의 눈에는 벌써 포수 개미들을 태운 뿔풍뎅이가 적진으로 날아 가 적들의 머리 위로 개미산을 쏟아붓는 광경이 선하다. 거의 완벽한 무기가 아닌 가.... 한 가지 걸림돌은 아직 그들이 언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방개나 뿔풍뎅이를 사육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개미 수십 마리가 그들의 후각적인 발산물을 해독하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들에게 개미의 페로몬 언어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 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결과가 보잘것없지만,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래도 그들 에게 분비꿀을 주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먹이야말로 곤충 세계의 가장 확실한 공통어인 것이다. 도시 전체가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클리푸니는 마 음이 편치 않다. 예순다섯 번째 도시를 재가받으려고 세 번이나 사 절단을 연방 쪽으로 보냈건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벨로키우키 우니가 동맹을 거부하는 것인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기가 보낸 사절단 겸 첩보원들이 서투르게 행동하다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에게 들킨 게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하 50층에 있는 로메슈제의 환각제 분비 물에 유혹당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일일까? 클리푸니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었다. 여왕개미는 연방의 재가를 받는 일도 조사를 계속하는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 왕개미가 801호를 파견하기로 결정한다. 클리푸캉에서 가장 훌륭하 고 민첩한 병정개미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기 위하여 여왕개 미가 젊은 병정개미와 완전 소통을 시행한다. 그 병정개미는 여왕개 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클리푸 캉의 눈, 클리푸캉의 더듬이, 클리푸캉의 발톱이 되어 보고, 느끼 고, 싸울 것이다. 할머니는 식량과 음료가 가득 든 배낭을 준비했다. 그 속에는 따 듯한 마편초 차가 든 보온병도 세 개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못된 르뒤크처럼 식량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되올라 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터였다..... 그런데 혹시 그 사람 이 암호 단어를 찾아낸 것은 아닐까?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했다. 자종 브라젤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왔는데, 그 가 운데는 대형 최루탄과 방독면 세 개도 들어 있었다. 다니엘 로젠펠 트는 플래시를 부착한 최신형 사진기를 가져왔다. 세 사람은 바햐흐로 회전 목마와도 같은 나선 계단 속에서 돌고 있었다. 앞서 계단을 내려갔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계단을 내려가노 라니 옛날 일들과 묻혀 있던 생각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린 시 절, 부모님, 가장 먼저 겪은 고통, 이러저러한 잘못들, 못다 이룬 사랑, 이기주의, 오만, 회한.... 세 사람의 몸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 었다. 그들은 지구의 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과거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긴 것이다. 그 긴 인생을 우리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살아왔던가? 창조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너무 쉽 게 파괴적인 삶 쪽으로 쏠려왔던 것은 아닌가! 세 사람은 마침내 어떤 문 앞에 다다랐다.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 귀가 새겨져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 영혼은, 위대한 '신비'를 깨운친 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것을 느낀다. 맨 먼저 힘겨운 에움길을 무작정 달린다. 어둠 속을 나아가는, 불 안하고 끝없는 행로이다. 그 다음에는 종말을 앞두고 공포가 절정에 달한다. 전율, 부들거 림, 식은땀, 격심한 공포가 지배한다. 그 단계가 끝나고 나면 바로 갑작스럽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 빛을 향해 올라간다. 눈에 경이로운 빛이 비치고 영혼은 노랫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울 려퍼지는 순결의 땅과 풀밭을 지난다. 성스러운 말들이 신심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완벽한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신비'를 찬양한다. 다니엘 로젠펠트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저 글귀를 읽은 적이 있지요. 플푸타르코스의 책에 나오는 겁니 다." 자종이 힘주어 말했다. "정말 멋진 글귀인데요." "어째 으시시하지 않아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물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저 글귀에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요. 저대로라면, 두려움 다음에 빛이 나타나겠군요. 이제 저 글귀대로 단계를 밟아나가면 되는 겁니다. 두려움이 필요하다면 두려워합시다." "바로, 쥐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듯이 정말로 쥐들이 나타났다. 세 탐 험가는 쥐들이 굽 높은 신발께까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서 쥐들이 몸에 닿을까 전전 긍긍했다. 다니엘이 다시 사진기를 작 동시켰다. 회색 낯짝에 새까만 귀를 가진 징그러운 털 짐승의 모습 이 플래시 불빛에 드러났다. 자종이 부랴부랴 방독면을 나누어주고 주위에 최루가스를 듬뿍 뿌렸다. 쥐들은 이내 줄행랑을 쳤다. 세 사람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더 내려갔다. "우리 뭐 좀 먹을까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제의했다. 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은 식사를 했다. 쥐 사건을 모두 잊은 듯했다. 세 사람 모두 최강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좀 썰렁했기 때문에 그들은 식사 끝에 술 한 모금과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을 마 셨다. 마편초 차는 언제나 그렇듯이 간간이 입가심으로만 마시는 거였다. 개미들은 한참을 파들어간 다음 무른 흙이 있는 지대를 거쳐서 다 시 올라온다. 마침내 더듬이 한 쌍이 땅 위로 비죽 솟아올랐다. 잠 망경 같다. 처음 맡는 냄새들이 잠만경에 밀려든다. 개미들이 한데로 나온다. 세계의 끝 건너편에 다다른 것이다. 여 전히 물의 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다. 몇 그루의 나무, 몇 군데의 풀밭이 보이는가 했더니 이내 단 단하면서 매끄러운, 잿빛의 허허벌판이 나타난다. 개미 도시 하나, 흰개미 도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나아가니 시커멓고 거대한 것들이 그들 주위로 덤벼든다. 감시자들과 비슷하기는 한데, 마구잡이로 덤벼든다는 점이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앞쪽 멀리에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서 있다. 너무 높아서 더듬이로 그 끝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돌덩이는 하늘을 가 리고 땅을 짓누르고 있다. 저건 세계의 끝의 벽일 게다. 저 뒤에는 문이 있다. 103683호가 생각한다. 조금 더 나아가다가 그들은 한 떼의 바퀴벌레들과 맞닥뜨린다. 바 퀴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 위에 달라붙어 있다. 그들의 딱지는 투명하기 때문에 내장과 기관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혈관 속에서 움 직이는 피도 보인다. 흉측한 것들! 개미들이 바퀴벌레들을 피해 달 아난다. 그때 어떤 덩어리가 떨어져서 수확개미 세 마리가 가루가 되었다. 그럼에도 103683호와 세 동료는 계속 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구멍 이 송송 뚫린 나지막한 벽돌을 지나 커다란 돌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때, 그들은 너무나 기이한 구역 안으로 들어온 것 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곳은 땅이 빨갛고 우툴두툴하다. 우 물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다. 그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좀 취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름이 10머리는 족히 될 하얀 공이 하늘 에서 떨어져 통통거리며 그들을 쫓아온다. 그들은 우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벽에 달라붙자 공이 바닥에 부딪힌다. 그들이 다시 우물에서 나온다. 겁에 잔뜩 질려서 허둥지둥 달린 다. 주위를 둘러보니 땅이 파랗기도 하고 풀빛이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다. 도처에 아까와 같은 우물이 있고 하얀 공들이 그들을 쫓아온 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 용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세계는 정말 이지 너무 기이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숨이 끊어질 정도로 내달려 도망을 친다. 지하도를 건너 정상적인 세계로 되돌아온다. 문명의 충돌(계속) 두 문명이 만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또 다른 예는, 서양과 동양의 만남이 다. 중국 한나라의 연대기를 보면, 서기 115년 경에 로마 제국의 것으 로 보이는 배 한 척이 풍랑을 만나 며칠간 표류한 끝에 중국 해안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곡예사들과 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뭍에 닿자마자 그 미지의 나라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구경 거리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코 큰 이방인들이 불을 뱉어 내고 자기들의 사지를 묶고 개구리를 뱀으로 바꾸는 광경을 넋을 읽고 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서방에는 광대와 불 먹는 자들이 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당연하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흘러서야 중국인들의 그릇 된 생각을 일깨워줄 기회가 생겼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이 마침내 조나탕이 만들어놓은 벽 앞에 이르렀다. '성냥 개비 여섯 개로 정삼각형 네 개를 어떻게 만드는가?' 다니엘은 사진 찍기를 잊지 않았다. 오귀스타 할머니가 'PYRAMIDE'라는 단어의 철 자를 하나하나 누르고 나자 벽이 스르르 돌아갔다. 오귀스타 할머니 는 자기 손자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곧 벽 이 원래 위치로 되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종이 벽에 불빛을 비추었다. 어디나 바위뿐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보았던 벽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아까는 벽이 불그스름했는 데 이제는 벽이 노랗다. 유황의 광맥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공기는 여전히 숨쉬기에 거북함이 없었다. 어디선가 조금씩 공기 가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르뒤크 교수 말대로 이 동굴이 퐁텐블로 숲으로 통해 있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또 한 무리의 쥐들이 나타났다. 앞서 만났던 쥐들보 다 훨씬 더 공격적인 놈들이었다. 자종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방독 면을 다시 쓰고 최루 가스를 뿌렸다. 조나탕이 만든 벽이 자주 회전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마다 '적색 시대'에 있던 쥐들이 먹이를 찾아 '황색 지대'로 넘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적색 지대의 쥐들은 그래도 근근히 살아나갈 수 있었겠지만 황색 지대로 이주해 온 쥐들 은 먹고살 만한 것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 나머지 저희들끼리 먹고 먹히고 했을 것이었다. 그러니 세 사람은 그 살아남은 쥐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놈 들에게는 최루 가스가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놈들이 덤벼들었 다. 펄쩍펄쩍 뛰면서 달라붙으려고 했다. 다니엘은 혼비 백산하여, 놈들이 앞을 못 보도록 손전등 불빛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나 그 흉측한 짐승들은 무게가 수 킬로그램이 나 되는데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세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자종이 오피넬표 접칼을 빼어들고 쥐 두 마리를 찌른다음 그것을 다른 쥐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 오귀스타 할머 니는 작은 권총을 몇 방 쏘았다..... 그렇게 그들은 쥐 떼를 벗어났 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렸을 때 나는 몇 시간 동안 땅바닥에 길게 엎드려서 개미집을 관찰하곤 했다. 나에게는 그것이 텔레비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 로 느껴졌다. 개미집을 관찰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내가 개미집을 유린하고 난 뒤에, 개미들은 다친 개미들 중에서 어떤 개미는 데려가고 어떤 개미는 죽게 내버려 두었다. 크기가 모두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어떤 선별 기준 이 있길래 어떤 개체는 쓸모가 있고 어떤 개체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세 사람은 유황 광맥의 노란 줄무늬가 있는 굴 속을 달렸다. 그러 고 나서 다다른 곳은 어떤 철망이었다. 철망의 가운데에 나 있는 출 입구가 철망 전체의 모습을 고기잡이 할 때 쓰는 통발처럼 보이게했다. 출입구는 보통 몸집을 가진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 아지면서 둥근 뿔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둥근 뿔의 출구에 뾰족한 것들을 놓았을 것으로 보아 한번 빠져나가면 다시는 되돌아 나올 수 없을 것 같았 다. "이건 최근에 설치한 거예요...." "그렇군요. 이 문과 이통발을 만든 사람들은 일단 들어온 사람들 이 되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 역시 조나탕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나탕은 문과 금속에 통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세요!" 다니엘이 새김글 위에 불빛을 비추었다. 여기에서 의식이 끝납니다. 무의식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그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죠?"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끝까지 가봅시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다니엘이 말꼬리 같은 머리채가 걸리지 않도록 깃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엉금엉금 기어서 차례차례 강철 통발 속을 통과했다. "이상하네.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말했다.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통발 속에 들어가 보신 적이 있다구요?" "그래요. 아주 오래 전 일이었지." "아주 오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지. 생후.... 1초나 2초쯤 되었을 때지." 도시로 돌아온 수확개미들이 세계의 건너편, 괴물들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가득 찬 땅을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 다. 바퀴벌레, 시커먼 덩어리들, 거대한 돌덩어리, 우물, 하얀 공....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렇게 괴상한 세계에 도시를 만드는건 불가능해. 103683호는 구석 자리에 앉아 힘을 다시 모으며 생각에 잠겨 있 다. 동포들이 그의 얘기를 듣게 되면, 모든 지도를 다시 만들고 지 리학의 기본 원칙들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연방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통발을 빠져나오고 나서도 세 사람은 한참을 더 걸었다. 정확하게 는 알 수 없었지만 10킬로미터 정도는 족히 나아간 듯했다. 그렇게 걸었으니 피곤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동굴 바닥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 다다랐다. 실개천의 물 은 아주 뜨겁고 유황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다니엘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물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 뭇잎 위에 언뜻 개미들을 본 것 같았다. 그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 다. 아마도 유황 냄새 때문에 환각이 일어나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햇다. 몇백 미터를 더 나아갔을 때, 자종의 발 밑에서 우두둑거리는 소 리가 났다. 그가 불빛을 비추어 보고 떨리는 비명을 질렀다. 해골의 갈비뼈였다! 다니엘과 오귀스타 할머니가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추어 보다가 다른 해골 두 개를 더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는 크기로 보아 아이 것 같았다. 혹시 조나탕 네 식구들은 아닐까? 그들은 다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하여 내처 달렸다. 쥐들이 다가 오는 듯 둔중한 울림이 느껴졌다. 벽의 노란 빛깔이 흰색으로 바뀌 었다. 석회암의 빛깔이다. 기진 맥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그들은 동 굴의 끝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는 나선 계단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총알을 쥐들을 향해 쏘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선 계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자종은 아직 정신이 말 짱해서 그 나선 계단이 먼저 것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시계 방향으로 돌 면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벨로캉 개미 하나가 도시 안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온 도시가 술렁 거리고 있다. 클리푸캉이 연방의 예순다섯 번째 도시로 공인되었음 을 알리기 위해 연방의 사절이 올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백성들처럼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 지 않았다. 클리푸니는 벨로캉에서 온 그 개미를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벨로캉에서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를 파견하여 이 도시에 침투시킨 것은 아닐까? '그 자는 어떻든가?' '아주 지쳐 있습니다. 며칠 만에 오느라고 벨로캉에서부터 달려 온 것 같습니다.' 기진 맥진해서 주위를 배회하고 있던 그 개미를 발견한 것은 목축 개미들이었다. 그 개미는 이제껏 아무 페로몬도 발산하지 않았으며, 클리푸캉 개미들은 그의 원기를 되찾아주려고 그를 꿀단지 개미들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를 여기로 데려오라.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렇지 만 경비병들은 입구에 머물러 있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즉각 출동하기 바란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에서 소식이 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던 차에 그곳의 개미 하나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이 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접하고 클리푸니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 개미가 첩자가 아닐까라는 의심과 그렇다면 그를 죽여버려야 한 다는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볼 때까지는 두고볼 것이지만,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바위 냄새가 풍긴다면 가차없이 죽여버릴 것이다. 클리푸캉 개미들이 그 벨로캉 개미를 데려온다. 클리푸니와 그 벨 로캉 개미는 상대방을 알아보고 이내 서로에게 달려들어, 위턱을 활 짝 벌리고 가장 기름진 먹이를 교환한다. 감정이 복받쳐서 두 개미 는 한 동안 발산할 페로몬을 잊고 있다. 클리푸니가 먼저 페로몬을 발한다. '조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흰개미 도시는 가보았나?' 103683호는 동쪽 강을 건너 흰개미 도시를 찾아갔던 일이며, 폐허 가 된 도시에는 흰개미가 한마리도 살아 있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려 준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 몬느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일으킨 자들은 세계의 동쪽 끝 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병정개미가 설명한다. 그 동물들은 보이지 않 고, 느껴지지도 않는 아주 이상한 것들이며, 갑자기 하늘에서 튀어 나와 모든 개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클리푸니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 103683호가 덧붙인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자들이 어떻게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을 조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클리푸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첩자들도 아니고 용병들도 아니며, 유기체와도 같은 도시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는 비밀 군대이다. 그 들은 도시를 고뇌에 빠뜨릴 염려가 있는 정보들을 차단한다.... 그 리고 클리푸니는 그 암살자들이 327호를 죽인 것이며, 클리푸니 자 신을 죽이려 했던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럼 도시 바닥의 바위 밑에 감추어놓은 식량은 어떻게 된 겁니 까? 화강암 속의 통로는요?' 그 점에 대해서는 클리푸니가 아무 대답을 못 한다. 바로 그 두 가지 수수께기를 풀려고 사절 겸 첩자들을 파견해 놓은 터였다. 젊은 여왕개미가 벗에게 자기 도시를 구경해 보라고 권한다. 길을 가면서 여왕개미는 물을 얼마나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설명 한다. 예를 들어 동쪽 강은 빠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줄곧 생각되어 왔지만, 그것 역시 물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여왕개미는 거 기에 빠졌어도 죽지 않고 살아났다. 언젠가는 나뭇잎 뗏목을 타고 그 강을 내려가서 세계의 북쪽 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클 리푸니는 어쩌면 북쪽 끝을 자들도 있을 거라면서 그들을 부추겨서 동쪽 끝에 있는 자들과 싸움을 붙일 수도 있으리라며, 흥분된 페로 몬을 발한다. 103683호는 클리푸니에게 거창한 계획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모든 계획이 실현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벌써 이루어놓은 성과가 분부시다. 그 병정개미는 이렇게 광대한 버섯 재배장이나 진딧물 축 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고, 지하 운하 위를 떠다니는 뗏목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병정개미를 놀라게 한 것은 여왕개 미가 발한 마지막 페로몬이다. 여왕개미 클리푸니는 사절들이 두 주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벨로캉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겠다고 단언한다. 여왕개미는 자기가 태어난 그 도시가 세계에 대한 적응력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 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나만 보아도 그 도시가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다. 벨로캉은 달팽이처럼 겁이 많은 도시이다. 옛날에는 혁신적이었 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져 있다. 세댁 교체가 필요하다. 여기 클리푸 캉 개미들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클리푸니는 자기가 연방을 이끌 게 된다면 연방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65개 도시가 함께 클리푸니의 제안을 실천해 나간다면 열 배나 더 많은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클리푸니는 벌서 강물을 정복할 생각 을 하고 있으며 뿔풍뎅이를 이용하여 비행 군단을 가동시킬 구상을 가지고 있다. 103683호가 망설인다. 그는 자기의 모험담을 들려주기 위하여 벨 로캉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클리푸니가 그 계획을 포 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벨로캉에는 비밀 부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자기네들이 원하 지 않는 것은 굳이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나선 계단의 꼭대기에 알루미늄으로 된 층층대는 몇 계단 더 이어 져 있다. 그 알루미늄 층층대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세 사람은 어떤 하얀 문에 다다른다. 또 뭔가가 씌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벽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그 벽은 수정으로 지어졌고, 넘실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처음에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 뒤에 나는 넘실거리는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수정으로 지어 진 커다란 저택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바라보니 그 집의 벽은 바둑판 무늬가 진 수정의 물결 같았고, 다 닥도 수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천장은 은하수 같았습니다. 별들 사이사이에 불의 형상이 있었고, 하늘은 물처럼 맑았습니다. '에녹' 1장 그들은 문을 밀고들어가 아주 가파른 통로를 올라간다. 그깨 갑자 기 그들이 밟고 있던 바닥이 무너진다. 회전 바닥이다! 추락의 시간 이 길어지고, 공포의 순간이 지나가자, 그들은 날고 있는 느낌이 든 다. 그들이 날고 있다! 그들의 몸은 그네 곡예사들이 쓰는 그물처럼 코가 촘촘한 거대한 그물에 떨어진다. 엉금엉금 기면서 그들이 땅바닥을 더듬는다. 자종 브라젤이 다른 문 하나를 찾아낸다. 이 문에는 암호 글자판 같은 것 은 없고 평범한 손잡이가 달려 있을 뿐이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두 동료를 부른 다음, 문을 연다. 노인 아프리카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 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 음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갓난아이의 죽음을 슬퍼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 아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에 비 해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노 인은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이곳에는 파르스름한 빛이 흘러넘치고 있다. 성화와 성상이 없을 뿐 하나의 사원이나 다름없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르뒤크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옛날에 신 교도들이 박해가 심해질 때마다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얘기가 사실인 듯하다. 돌을 깎아 만든 넓다란 둥근 천장 아래에 널찍하고 아름다운 네모 꼴의 방이 하나 있다. 장식이 될 만한 것이라곤 가운데에 놓인 자그 마한 옛날 풍금뿐이다. 풍금 앞에 보면대가 있고, 그 위에 두툼한 서류철이 하나 놓여 있다. 벽은 온통 새김글로 덮여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세속의 안목으로 보더라도 사람의 솜씨라기보다는 악마의 솜씨에 가깝다. 르뒤크가 말한 대로, 신교도들의 뒤를 이어 밀교도들이 이 지하 은 신처를 차지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회전 벽이며, 통발처럼 생긴 문 이며, 그물를 간춘 허방다리는 옛날부터 있던 것이 아님에 틀림없 다. 어디선가 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세 사람은 소 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두리번 거리며 보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파르스름한 불빛이 오늘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거기에 일종의 실 험실 같은 것이 있다. 컴퓨터와 시험관들이 가득하다. 컴퓨터에는 모두 불이 들어와 있다. 사원을 밝히는 그 파르스름한 빛은 컴퓨터 의 화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뭐가 뭔지 모르시겠지요, 예?"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천 장에 달린 전등에 불이 켜진다. 세 사람이 몸을 돌린다. 하얀 잠옷을 입은 조나탕 웰즈가 그들 쪽 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실험실 반대쪽에 있는 문을 통해 사원 안 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브라젤 선생님, 로젠펠트 선생님!" 이 느닷없는 인사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대답을 못 한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저기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 여기에 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지? 세 사람은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갈피 를 못잡고 있다. "우리 작은 공동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가 어디지?" "여기는 17세기 초에 앙드루에 뒤 세르소가 세운 신교도 사원안입 니다. 장 앙드루에는 파리 생탕투안 가에 있는 쉴리 저택을 지어 유 명해졌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지하 사원이 그가 남긴 최고의 걸작 이에요. 돌을 깎아 만든 수 킬로미터의 동굴이지요. 이미 아셨겠지 만, 어느 곳이나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 앙드루에가 환기 구멍들을 따로 설치해 놓았거나 천연 동굴에 있는 공기 구멍의 원리 를 활용했던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놀 라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공기가 통할 뿐만 아니라 물도 있습니 다. 동굴 몇 군데에 개울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보세 요, 여기까지도 개울이 하나 흘러들고 있습니다." 조나탕이 졸졸거리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곳을 가리킨 다. 풍금 뒤에 조각 장식을 새겨넣은 샘이 하나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고요를 찾아서 이곳에 은둔했습니다. 어떤 일, 예컨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일을 하 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이지요. 에드몽 삼촌은 어떤 비서에서 이 동굴을 발견하고 여기에 와서 일을 하신 겁니다." 조나탕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에게서 예전 같지 않은 부드러움 과 느긋함이 풍겨나온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진이 다 빠졌을텐데, 저를 따라 오세요." 그는 방금 전에 들어왔던 문을 밀고 들어가 세 사람을 어떤 방으 로 데려간다. 방 안에는 팔걸이가 없는 긴 의자 몇 개가 둥그렇게 놓여 있다. 조나탕이 소리친다. "뤼시, 손님들이 오셨어!" "뤼시라구! 그 애도 함께 있니?" 오귀스타 할머니가 기쁜 마음에 소리친다. "그렇군, 여기에 모두 몇 명이 있는 겐가?" 다니엘이 묻는다. "여러분께서 오시기 전까지 열여덟 명이었습니다. 뤼시, 니콜라, 소방대원 여덟, 갈랭 형사, 치안 대원 다섯, 빌솅 경정, 그리고 저 까지 열여덟 명입니다. 한마디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내려온 사람들 전부죠. 곧 그들을 만나게되실 겁니다. 모두 자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서는 지금 새벽 네 시거든요. 여러분께서 오시는 소리를 듣 고 저만 잠이 깬 거예요. 그건 그렇고 오시면서 봉변을 당하지는 않으셨나요?" 뤼시가 나타난다. 그녀 역시 잠옷 차림이다. "안녕하세요!" 뤼시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세 사람과 뺨을 맞대며 인사를 나눈 다. 그녀의 뒤에는 파자마 차림의 사람들이 새로 온 사람들을 보려 고 문설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나탕이 샘물이 담긴 커다란 병과 물잔을 가져온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들어가서 옷도 갈아입고 나머지 사람들을 깨워서 여러분을 맞을 준비를 해야 되니까요. 우리는 새로 운 사람들이 올 때마다 조촐한 잔치를 벌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밤중에 오실 줄은 몰랐어요....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오귀스타 할머니와 자종과 다니엘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사실이 너무나 엄청나다. 다니엘이 갑자기 자기 팔뚝을 꼬집는다. 오귀스타 할머니와 자종도 다니엘의 행동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 자기들도 따라 한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이 꿈보다 더 믿기지 않 을 때가 있는 법이다. 세 사람은 얼떨떨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마 주 보고 미소를 짓는다. 몇 분 후, 모든 사람들이 긴 의자 위에 둘러앉았다. 오귀스타 할 머니와 자종과 다니엘은 마음을 가다듬고 온갖 궁금증을 풀 수 있으 리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 "좀 전에 환기 구멍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지표 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겐가?" "아니예요. 기껏해야 4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거예요." "그럼 바깥으로 다시 나갈 수는 있는 겐가?" "아니예요. 장 앙드루에 뒤 세르소는 이 사원을 어떤 것으로도 깨 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도 거대한 바위 바로 밑에다 세웠어요. 화강암으로 된 바위예요." "그래도 팔뚝 크기만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기는 해요. 그 구멍이 당시에는 통풍구 구실을 했던 거지요." 뤼시가 남편의 말을 거들었다. "지금은 그것이 통풍 구멍으로 안 쓰인다는 얘긴가요?" "예, 지금은 그 구멍을 다른 용도로 쓰고 있어요. 그래도 상관없 어요. 옆쪽에 다른 통풍 구멍들이 있거든요. 지금 숨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으시잖아요." "우리는 그럼 나갈 수 없는 겐가?" "예, 다른 곳으로는 혹시 몰라도 바로 위쪽으로는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제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자종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조나탕 자네는 왜 그 회전 벽이며 통발이며 밑이 빠지는 바닥이며 그물 따위를 설치한 겐가?" "그건 바로 에드몽 삼촌께서 계획한 대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거 만드느라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고 힘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 나 꼭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이 사원에 와서 저는 보면 대와 마주쳤습니다. 그 위에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 전' 말고도 에드몽 삼촌이 직접 제 앞으로 써놓은 편지가 한 통 있 었습니다. 이게 그 편지입니다." 세 사람이 편지를 차례로 읽는다. 사랑하는 조나탕에게 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려오기로 결심을 했구나. 결국 너 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용기가 있었던 셈이야. 잘했다. 나는 네가 성공할 확률이 5분의 1정도라고 생각했지 네 어머니가 너의 어 둠 공포증에 대해서 얘기해 준 적이 있단다. 네가 여기에 왔다는 사 실은 무엇보다도 먼저 네가 그 약점을 극복해 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의지력이 강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 서류철 속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사전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연구 작업에 대해 서 적어놓은 28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네가 288개의 장 들을 모두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이 사전에 담긴 연구의 주안점은 개미 문명에 있다. 읽어보면 자 연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먼저 너에게 당부해 둘 것이 하나 있 다. 네가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은 내가 미처 내 비밀을 지키는 데 필요한 안전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내가 그것을 마련했더라면 네가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안전 장치를 설치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내가 구상한 것을 몇가 지 스케치해 두겠지만, 네가 더 잘 아는게 있다면 내 제안을 수정해 도 좋다. 이 기계 장치의 목적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이곳까지 쉽사 리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하고, 일단 들어온 사람은 자기가 발견한 것을 이야기하러 다시 나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네가 잘해 내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장소가 나에게 가져다준 만큼의 '풍요로 움'을 너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에드몽 "조나탕은 그 일을 해냈어요. 에드몽 삼촌이 구상한 함정들을 다 설치했지요. 여러분께서도 그것들의 성능을 확인하셨을 거예요." 뤼시가 토를 달았다. "그런데 그 시체들은 뭐였지? 쥐들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인가?" "아니예요. 에드몽 삼촌이 여기에 자리잡으신 뒤로 이 지하실에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장담할 수 있어요. 여러분께서 보신 해골들 은 아무리 못 돼도 50년 전에 죽은 사람들 거예요. 그때 여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지요. 어떤 밀교 집단이...." "그런데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겐가?" 자종이 불안해 하며 물었다. "전혀 없어요." "밖으로 나가려면 그물 위쪽에 있는 구멍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물 에서 구멍까지의 높이가 8미터나 돼요. 또 통발같이 생긴 그물은 들 어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지요. 게다가 암호 글자판이 있는 문도 통과해야 하는데 조나탕이 문의 이 쪽에서 열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놓지 않았어요." "쥐들은 또 어떻고요...." "쥐를 어떻게 지하실로 데리고들어온거지?" 다니엘이 물었다. "그건 에드몽 삼촌의 생각이예요. 삼촌은 울퉁불퉁한 바위 벽의 어느 우묵한 자리에 아주 크고 공격적인 쥐 한 쌍을 충분한 먹이와 함께 놓아두었어요.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라는 쥐였습니다. 삼촌은 그 쥐들이 엄청난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겁니다. 먹 이를 충분히 먹으면 그 쥐들은 기하 급수적인 속도로 불어납니다. 매달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두 주일 지나면 그것들이 또 새끼 칠 채비를 하지요..... 삼촌은 그 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류 동물들이 견디기 힘들어 하는 공격적인 페로몬을 분사하곤 했지요." "그럼 우아르자자트를 죽인 게 그 쥐들이로구나?" 오귀스타 할머니가 물었다. "불행하게도 그건 사실이예요. 그리고 조나탕은 회전 벽 건너로 옮겨간 쥐들이 훨씬 더 사나와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요." "제 동료들 가운데 하나는 전부터 쥐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커다란 쥐 한 놈이 얼굴로 달려들어 코 한 귀퉁이를 깨무는 바람 에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그 친구는 회전 벽이 제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바로 빠져나가서 다시 올라갔어요. 바깥에서 그 친구 소식 못 들으셨어요?" 치안 대원 한 사람이 물었다. "소문에 그 사람은 미쳐버려서 정신 병원에 갇혀 있다더군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대답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자기 물잔을 가지러 갔다가 탁자 위에 개미들 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손전등으로 개미들을 쓸어버린다. 조나탕이 펄쩍 뛰 어와서 할머니 손목을 잡는다. 그의 눈길이 자못 험악하다. 이제껏 그들 집단에서 물씬 풍겨나오 던 극도의 평온함과 아주 대조적이다. 입술을 바르르 떠는 그의 옛 버릇이 되살아났다. "다시는 이러시면 안 돼요.... 절대로!" 자기 방에 홀로 있는 벨로키우키우니가 제가 낳은 알 한 무더기를 무심히 집어먹는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의 영양 섭취가 우선인 것이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801호라는 자가 새 도시의 사절로만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56호, 아니 자칭 클리푸니 여왕이 자기가 조사하 던 일을 계속하게 하려고 그를 보낸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아무 문제 없이 그 자를 처치할 것이다. 특히 절름발이 병정개미는 불필요한 목숨을 제거하는 데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거의 예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꺼림칙한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클리푸니가 사 절들을 보내온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 사절들은 한결같이 도시 의 비밀을 꼬치고치 캐려고 했다. 첫 사절들은 로메슈제가 있는 방 을 찾아내기도 전에 죽음을 당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절들은 그 딱정벌레의 중독성 강한 환각 물질에 빠져버렸다. 801호라는 자도 벨로키우키우니와의 면담을 끝내자마자 아래로 내 려간 듯하다. 사절들이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다. 매번 도시 밑바닥 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 그 사절들 가운데 기어이 그 통로를 찾아낸다면? 그리고 비밀을 알아낸다면? 그리고 그 비밀을 폭로하는 페로몬을 퍼뜨린다면.... 겨레는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막는 병 정개미들도 더 이상 정보를 차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벨로 캉의 백성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 하나가 서둘러 들어온다. '그 첩자가 로메슈제를 죽여버렸습니다. 그 자가 바닥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무제 666이 그 짐승의 이름입니다. '요한 계시록' 그런데 누가 누구에 대해서 짐승이 되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조나탕이 할머니의 손목을 놓는다. 어색한 분위기가 오래가기 전 에 다니엘이 기분을 바꾸려고 얼른 말문을 연다. "사원 초입에 있는 저 실험실은 뭐 하려고 만든 거지?" "그건 '로제타 석'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의 열망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열망이란 그들과 의사 소 통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라니, 누구 말인가?" "개미들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요." 그들은 거실을 떠나 실험실로 간다. 조나탕이 돌로 만든 작업대 위에서 개미가 가득 담긴 시험관을 꺼내 눈 높이로 들어올린다. 그 의 표정에 에드몽 후계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만족해 하는 빛이 역력하다. "보세요, 이게 그 생명들입니다. 완전한 자격을 갖춘 생명들이지 요. 이들은 한낱 보잘것 없는 미물들이 아닙니다. 삼촌은 그 사실을 진작에 깨달았습니다.... 개미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문명 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드몽 삼촌은 말하자면 콜롬부스 같은 분입니 다. 우리의 발가락 사이에서 신대륙을 발견한거죠. 우주로 외계인들 을 찾으러 가기 전에 먼저 지중 생물들을 만나야 마땅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분입니다." 모두 할 말을 잊고 있다. 오귀스타 할머니는 며칠 전의 일을 떠올 리고 있다. 퐁텐블로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신발창 밑 에서 뭔가 아주 작은 것들이 오도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 무리 의 개미들을 밟은 것이었다. 몸을 숙여 바라보니 개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개미들은 끝이 뒤집 어진 화살 모양을 이루려는 듯 나란히 줄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조나탕이 시험관을 내려놓고 자기 얘기를 이어간다. "삼촌은 아프리카에서 돌아오신 뒤에 시바리트 가의 그 건물과 지 하실과 이 사원을 발견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 다. 그분은 여기에 실험실을 만드셨습니다.... 그분 연구의 첫 단계 는 개미들이 대화할 때 발산하는 페로몬을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에 사용된 기계는 질량 분광기입니다. 그 이름에서알 수 있듯이 그것을 통해 질량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어떤 물질이라도 분석 해서 구성원소들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 삼촌께서 적어놓으 신 것을 읽고 알게 되었죠. 삼촌은 우선 실험용 개미들을 유리 덮개 아래에 놓았습니다. 그 유리 덮개에는 대롱이 달려 있고 그 대롱을 통해 덮 개 안에 발산된 페로몬이 질량 분광기로 빨려들어오도록 되 어 있습니다. 삼촌은 개미를 사과 한 조각과 만나게 합니다. 그 개 미가 다른 개미를 만나서 틀림없이 이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저기 사과가 있다.' 결국 그러한 가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개 미가 발산한 페로몬을 빨아들여서 그것을 분석한 다음 하나의 구조 식을 이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북쪽에서 사과가 있다.'라는 말은 '메틸-4메틸피롤-2 카르복실산'으로 표현됩니다. 페로몬의 양은 지극히 적어서 한 문장 마다 약 2-3피코그램(10E-12g)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충분했 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사과'와 '북쪽'을 개미들이 어떻게 말하 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삼촌은 많은 물건과 먹이를 가지고, 또 상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 가면서 실험을 계속하셨습니다. 그 결과 로 '프랑스어-개미어 사전'이라고 할 만한 것을 얻게 되셨습니다. 삼촌은 열매 이름 약 100개, 꽃 이름 약 30개, 방위 이름 열 개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경보 페로몬, 기쁨 페로몬, 제안 페로몬, 묘사 페로몬 등을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식 개미들도 만나서 그들이 더듬이 일곱 번째 마디로 '추상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 법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삼촌은 개미들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삼촌은 다음 단계로 개미들에게 말 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대단해!" 경탄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로젠펠트 교수가 중얼거린다. "삼촌은 먼저 각각의 구조식을 음절 형태의 소리에 대응시켰습니 다. 예를 들어 메틸-4메틸피롤-2카르복실산을 MT 4MTP 2CX로 나타내 고, 이것을 다시 '미티카미티피디식수(Miticamitipidicixou)'로 표현하는 겁니다. 대화발췌 불개미속 루파 종의 전형적인 한 병정개미와 나눈 첫번째 대화의 발췌문. 인간: "내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 인간: "내가 신호를 보냅니다. 내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크르르르크르르르르르르르르. 개미살려.....' (주: 기계를 몇 군데 조정했다. 특히 송신이 너무 강해서 피실험 자를 놀라게 했으므로 송신 스위치를 1에 놓아야 한다. 반대로 수신 스위치는 분자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10까지 밀어올려야 한다.) 인간: "신호를 받고 있나요?" 개미: '이게 뭐야.' 인간: "내가 신호를 보냅니다. 내 말이 들리나요?" 개미: '에그머니나, 개미살려. 아유 숨막혀.' 세 번째 대화의 발췌문 (주: 이번에는 어휘를 80단어 더 늘였다. 송신이 여전히 너무 강 했으므로 다시 조종해서 스위치를 0에 아주 가깝게 놓아야 한다.) 개미: '뭐요?' 인간: "뭐라고요?" 개미: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개미 살려!' 인간: "더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개미: '당신 냄새가 너무 강해요! 내 더듬이가 포화 상태예요. 개 미 살려! 아유 숨막혀.' 인간: "자, 됐나요?" 개미: '아니오, 당신 대화할 줄 모르는군요?' 인간: "그럴 겁니다." 개미: '당신 누구세요?' 인간: "난 커다란 동물입니다. 내 이름은 에드-몽. 인-간입니다." 개미: '뭐라구요, 전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개미 살려! 도와 줘요 아유 숨막혀 !....' (주: 이 대화를 끝내고 그 피실험자는 5초 후에 죽었다. 송신이 여전히 너무 강했던 걸까? 그가 겁을 먹었던 걸까?) 조나탕이 읽기를 중단하고 설명을 계속한다. "아셨겟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어휘만 축적한다 고 그들과 대화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게다가 개미 언어는 기능하 는 방식이 우리 언어와 다릅니다. 개미들이 주고받는 페로몬에은 순 수하게 대화를 위한 것 말고도, 나머지 열한 개의 더듬이마디가 발 산하는 페로몬이 더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개미들은 개체의 신 분, 직업, 심리 상태.... 즉, 개체 상호간의 원만한 이해에 필요한 전체적인 정신 상태 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에드몽 삼촌이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분의 노트을 읽어보겠습니다. 어리석은지고 어리석은지고! 설사 외계인이 존재한다. 한들, 우리는 그들을 이 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려고 할 때 그것이 그들에게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우리가 악수를 하려 고 손을 내밀며 다가가면, 그들은 그것을 위협하는 몸짓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할복 자살을 하는 일본인이나 카스트 제도를 가진 인도인 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들끼리도 서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마당에.... 개미를 이해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품었다니! 801호의 배가 잘려나가고 짤막한 동강만 남았다. 로메슈제를 제때 에 죽이기는 했어도 버섯 재배장에서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 들과 접전을 벌이다가 몸뚱이가 참혹하게 잘린 것이다. 낭패스럽기 도 하고 잘된 일이기도 하다. 배가 떨어져나가고 나니 가볍기가 이 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801호는 화강암 속에 파놓은 널찍한 통로로 들어간다. 개미들의 위턱으로 이런 통로를 만들었을 리는 없다. 바닥에 이르니 클리푸니 가 일러준 것이 나타난다. 많은 양식으로 가득 찬 방이다. 방 안으 로 몇발짝 들어가자 다른 출구가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내 하나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냄새가 나는 완전한 하나의 도시가! 도시 아래 또 도시가 있다. "결국 에드몽은 실패한 겐가?" "사실 삼촌은 한동안 그 실패를 되새기며 연구를 중단했지요. 인 간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다른 출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그러던 차에 어떤 일 이 벌어져 염세적이 태도가 도지면서 삼촌은 다시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전에 삼촌 얘기 해주신 거 기억하시죠? '스위트밀크'라 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동료들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 말이에요." "상사 가운데 한 사람이 삼촌의 사무실을 뒤졌습니다. 그 상사가 바로 마르크 르뒤크로서 로랑 르뒤크 교수의 형입니다." "곤충학자 말이냐?" 오귀스타 할머니가 끼여든다. "스스로 그렇다고 주장하지요." "이럴 수가.... 그 사람 우리 집에 왔었다. 자기가 에드몽의 친구 라고 주장하면서 지하실에 내려갔었지." "그 사람이 지하실에 내려왔어요?" "그래,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그는 얼마 못 오고 되올라갔으니 까, 회전 벽을 통과 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랬군요. 그 사람 니콜라를 만나고 간 적도 있어요. 백과 사전 을 손에 넣으려고 했던 거지요. 그건 그렇고.... 마르크 르뒤크는 삼촌이 기계 설계에 몰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바로 로제 타 석의 기초 설계도들을 본 것입니다. 그는 에드몽 삼촌의 서류함 을 열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에 관한 서류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개미와 의사 소통을 위한 기계의 초기 구 상을 담은 모든 설계 도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이 이해하기에 충분한 주석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기계가 쓸모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동생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연 동생은 아주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내 그 서류들을 훔쳐달라고 형에게 부탁을 했지 요.... 그런데 에드몽 삼촌이 누군가가 자기 물건들을 뒤졌다는 것 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하려고 서랍 안 에 맵시벌 네 마리를 넣어두었지요. 마르크 르뒤크는 서류를 훔치러 다시 들어왔다가 그 곤충들에게 쏘였습니다. 그 곤충들은 살갗에 침 을 박아서 몸 속에 알을 깔기는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나중 에 그 애벌레들이 몸 안에서 살을 파먹게 되지요. 다음날 에드몽 삼촌은 곤충의 침을 조사하여 범인을 찾아내고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했습니다. 그 뒷얘기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쫓겨난 건 삼촌이었지요." "르뒤크 형제는 어떻게 됐나?" "마르크 르뒤크는 벌을 톡톡히 받았어요. 맵시벌 애벌레들이 몸 속에서 그의 살을 파먹었거든요. 아주 오랫동안 시달렸지요. 아마 몇 년은 될 겁니다. 애벌레들이 성충으로 탈바꿈하려면 그 거대한 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출구를 찾아서 사방 으로 파고드는 겁니다. 결국 고통을 견디다 못 한 그는 지하철 차량 밑으로 몸을 던졌어요. 저는 그것을 우연히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로랑 르뒤크는?" "그는 기계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어요...." "그런 것이 에드몽으로 하여금 다시 연구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는 얘기 같은데, 도대체 그 오래 전 사건하고 에드몽의 연 구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겐가?" "뒷날 로랑 르뒤크는 에드몽 삼촌을 직접 만났어요. 그때 그가 '개미와 대화하는 데 쓰이는' 기계에 대해 알고 있다고 고백했습니 다. 그는 그것에 관심이 많다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지요. 삼촌 은 그 제안을 별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연구가 답 보 상태에 있는 데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사람이 홀로 계속 나아갈 수 없는 때가 오리라'라 는 성경 말씀도 있잖습니까. 에드몽 삼촌은 르뒤크를 동굴로 데려갈 생각과 함께, 그를 좀더 알고 싶어했어요. 둘이서 많은 얘기를 나누 었습니다. 그때 로랑이 인간이 개미들과 대화하게 되면 분명히 개미 들을 모방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개미들의 질서 와 규율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에드몽 삼촌은 심한 노여 움을 느꼈습니다. 삼촌은 화를 벌컥 내면서 다시는 자기 집에 얼씬 도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지요." 다니엘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보탠다. "푸후, 뻔한 일이지. 르뒤크는 어떤 비교 행동 학자들 패에 가담 하고 있지. 동물의 행동을 어떤 측면에서 모방하여 인류을 변화시키 려는 자들이 도이치 학파인데, 그 안에서도 그 패거리들이 제일 심 하다네. 활동 구역에 대한 동물들의 지각, 개미들의 규율 따위에 대 해서 그들은 여전히 환상을 품고 있지." "에드몽 삼촌이 갑자기 연구를 다시 시작할 이유를 갖게 되었습니 다. 삼촌은 말하자면 정치적인 관점에서 개미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 습니다. 삼촌은 개미들이 무정부주의적인 원리에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긴 그래!" 빌솅이 중얼거렸다. "삼촌은 사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개미의 입장에서 연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촌은 다시 오랫동안 곰곰히 생각한 끝에 개미와 의 사 소통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은 '개미 로봇'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조나탕이 그림이 그려진 종잇장을 흔든다. "이것이 그 로봇의 설계도입니다. 삼촌은 그 로봇에 '리빙스턴 박 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재료는 플라스틱입니다. 그 작은 걸작 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 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일을 어디 손목 시계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마디 하나하나를 개미의 걱과 똑같이 만들어 아주 작은 전기 모터의 힘으로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그 전기 모터 는 뱃속에 있는 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더듬 이는 실제와 똑같이 동시에 열두 가지 페로몬을 발할 수 있는 열두 마디를 갖추고 있습니다. '리빙스턴 박사'가 진짜 개미와 다른 점은 머리카락 굵기만한 11개의 대롱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 롱들이 다시 모여서 가는 실 굵기만한 일종의 탯줄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자종이 흥분된 어조로 경탄한다. "그런데 '리빙스턴 박사'는 어디에 있니?" 오귀스타 할머니는 묻는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801호를 추격하고 있다. 도망치던 801호가 문득 아주 널찍한 통로를 발견하고 서둘러 그리로 들어간 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에 거대한 방이 하나 있는데, 방 한가운 데에 이상한 개미 하나가 오도카니 웅크리고 있다. 몸집은 보통 개 미보다 월등히 크다. 801호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 홀로 있는 이상한 개미는 반 정 도 진짜 개미의 냄새를 풍긴다. 그 개미의 눈은 빛나지 않고 껍데기 는 검은색을 덧씌운 것처럼 보인다..... 젊은 클리푸캉 개미는 호기 심을 느낀다. 어떻게 저렇게 생기다 만 개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병정개미들이 벌써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낸다. 절름발이가 결투를 하려고 혼자서 다가온다. 그가 801호의 더듬이로 덤벼들어 물기 시작한다. 두 개미가 땅바닥에 나뒹군다. 801호는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린다. '적이 너의 어떤 부분을 유달 리 자주 공격하는지 보거라. 그곳이 대개 그 자의 약점이니라....' 과연 801호가 절름발이 개미의 더듬이를 낚아채자 그가 격렬하게 몸 을 뒤튼다 그자는 너무나 예민한 더듬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련한 것! 801호는 그의 더듬이를 싹뚝 자르고 달아나는데 성공한 다. 그러나 이제 50마리가 넘는 개미떼들이 801호의 뒤를 쫓아 몰려든다. "'리빙스턴 박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으세요? 질량 분광기에 서 나온 실들을 따라가세요." 조나탕 말대로 투명한 대롱 같은 것이 석조 작업대를 따라 가다가 벽에 연결되어 천장까지 올라간 다음, 사원 한가운데 풍금 바로 위 에 매달린 커다란 나무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 상자에 는 흙이 채워져 있는 듯하다. 새로 온 세 사람은 상자를 좀 더 자세 히 보려고 목을 길게 뺀다. "우리 머리 위에 깨뜨릴 수 없는 바위가 있다더니." 오귀스타 할머니는 의아한 점을 지적한다. "예, 그런데 우리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통풍 구멍이 있다는 말씀도 드렸잖아요." "그것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막아버렸기 때문은 아니예요." 갈랭 형사가 거든다. "여러분들이 막은 게 아니라면?" ".... 그들이죠!" "개미들이요?" "그렇지요! 거대한 불개미 도시가 돌 바닥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 다. 숲속에 커다란 잔가지 지붕을 만드는 개미들이지요...." "에드몽 삼촌의 추정에 따르면 저 위에 천만 마리 이상의 개미가 있다고 합니다." "천만 마리? 그럼 개미들이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겠구만!" "아니예요, 겁내실 건 없어요, 우선 그들이 우리와 대화를 하고 우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요. 그 다음으로 그 도시의 모든 개미들 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조나탕이 그 말을 하고 있는데 개미 하나가 천장의 상자에서 떨어 져 뤼시와 아미 위에 닿는다. 뤼시가 그 개미를 집으려고 한다. 그 러나 801호는 도망을 쳐서 뤼시의 살구빛 머리채 속에서 해매다가 귓볼 위로 미끄러져 내려가 목덜미를 달려내려간 다음, 잠바 속으로 들어가서 젓가슴과 배꼽을 돌아 허벅지의 여린 살갗 위를 내리닫더 니 발목으로 떨어진다. 거기에서 땅바닥을 향해 뛰어내리더니, 잠시 방향을 가늠하다가 측벽에 뚫린 구멍 쪽으로 달려간다. "저 개미 왜 저러지?" "글쎄요. 잘은 몰라도 통풍 구멍의 신선한 공기가 저 개미를 유인 했을거예요. 별문제 없이 다시 나올거예요." "하지만 저래 가지고는 제 도시를 못 찾아가겠는걸. 아예 연방 동 쪽으로 가겠어. 그렇지?" '첩자가 달아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스스로 예순다섯번째 도시라고 칭하는 도시를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더듬이를 낮추고 보고를 해왔다. 그들이 물러간 뒤에 벨로키우키우니는 잠시 자기의 비밀 정책을 심 각한 실패에 빠뜨린 그 사건을 곱씹는다. 그러다가 아주 피곤해진 벨로키우키우니는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를 회상한다. 아주 어렸을 때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떤 거대한 실체가 배후에 있 음을 추정케 하는 무시무시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를 목격한 적이 있 었다. 어머니에게서 떨어져나온 직후에,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떤 시 커먼판이 몇몇 수태한 여왕개미들을 잡아먹지도 않으면서 짓눌러버 리는 것을 보았다. 훗날 자기의 도시를 건설하고 나서,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주제를 다룰 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그 회의에는 어이딸 가리지 않고 모든 여왕개미들이 참석했었다. 벨로키우키우니가 지나간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을 때 제일 먼 저 말문을 연 것은 주비주비니였다. 그 여왕개미는 자기가 보낸 원 정대 가운데 몇몇이 장미빛 공의 세례를 받고 백 마리 이상이 사망 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여왕개미들은 한술씩 더 떴다. 각자 장미빛 공과 검은 판 때 문에 생긴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를 들먹였다. 늙은 여왕개미 콜블가 이니가 이르기를, 증언에 따르면 장미빛 공들은 언제나 다섯씩 떼를 지어 다니는 듯하다고 했다. 루브그펠리니라는 다른 여왕개미는 지 하로 거의 300머리 가까이 들어와서 꼼짝 않고 있는 공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장미빛 공은 꽤 독한 냄새가 나고 물렁물렁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위턱으로 뚫고 들어가보니 하얗고 딱딱한 줄기가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동물들은 몸 밖에 껍데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껍데기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회의를 끝내면서, 모든 여왕개미들은 그러한 현상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개미 도시에 공포가 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절대적인 비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벨로키우키우니는 아주 신속하게 자기 나름의 '비밀 정치'를 계획 하고 당시에 병정개미 50마리로 구성된 작업 단위를 말들었다. 그 병정개미들의 임무는 도시 안에 광기와 공포의 위기가 생기지 않도 록 장미빛 공이나 검은 판에 대해 증언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지의 어떤 도시에서 온 일개미 하나가 바위 냄새를 풍기는 병정 개미들에게 붙잡혔다.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일개미의 이야기가 이제 껏 들어본 어떤 이야기보다 기상 천외해서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 일개미는 자기가 장미빛 공들에게 납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 다. 장미빛 공들은 그를 다른 수백 마리와 함께 투명한 감옥에 가두 었다. 그러고는 개미들을 가지고 갖가지 실험을 했다. 장미빛 공들 이 가장 흔히 했던 일은 개미들을 유리 덮개 밑에 넣어두고 아주 농 도가 짙은 냄새들을 뿜어 개미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에는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점차 냄새가 희석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마침내 그 냄새들과 유리 덮개를 매개로 장미빛 공들이 개미들에 게 말을 걸어왔고, 자기들을 '인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동 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벨로캉 밑의 화강암 속에 통로가 나 있 다면서 여왕개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여왕개미는 그게 별로 해로울 게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벨로키우키우니 는 그들의 '개미 사절'인 '리빙스턴 박사'를 만났다. 그는 내장이 훤히 비치는 기다랗고 이상한 개미였지만 벨로키우키우니는 그와 대 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둘은 오랫동안 대화를 가졌다. 처음에는 그의 얘기를 전부 이해하 지는 못했다. 하지만 둘 다 똑같은 흥분을 느끼고 있었고 함께 나눌 얘기가 너무나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인간들은 통풍 구멍 입구에 흙이 가득 담긴 통을 설치했다. 그리고 벨로키우키우니는 다른 모든 백성들 모르게 그 새로운 도시 에 알을 뿌렸다. 제2의 벨로캉은 바위 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의 도 시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미들의 세계와 인간들의 세계 사이에 있 는 중개 도시였다. '리빙스턴 박사'(어쨌든 참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다)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 그곳이었다. 대화발췌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와 나눈 열여덟 번째 대화의 발췌문. 개미: '바퀴라고요? 우리가 바퀴를 사용할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쇠똥구리들이 공을 밀고 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거기에서 바퀴를 생각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인간: "이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개미: '현재로선 모르겠습니다.'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와 나눈 쉰여섯 번째 대화의 발췌문. 개미: '어조가 슬프게 느껴집니다.' 인간: "냄새를 발산하는 내 기계를 잘못 조절해서 그럴 겁니다. 감성적인 언어를 첨가한 뒤로 기계가 작동이 잘 안 됩니다." 개미: '어조가 슬프게 느껴집니다.' 인간: "....." 개미: '더 이상 발산할 냄새가 없습니까?' 인간: "이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입니다만, 사실 나는 슬픕니다." 개미: '무슨 일인가요?' 인간: "나에게 암컷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서는 수컷들 이 암컷만큼 오래 삽니다. 그래서 수컷과 암컷이 서로 도우며 짝을 지어 삽니다. 그런데 나의 암컷을 몇 년 정에 잃었습니다. 나는 그 암컷을 사랑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개미: '<사랑한다>는게 무슨 뜻입니까?' 인간: "우리가 같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게 아마 사랑한다는 것일 겁니다." 벨로키우키우니는 '인-간 에드-몽'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다. 난쟁이개미들과 첫번째 전쟁을 치르던 때의 일이었다. 에드몽은 벨로캉 개미들을 돕고 싶어했다. 에드몽은 지하실에서 나왔다. 그는 페로몬을 줄곧 다루어왔기 때문에, 몸에는 온통 페로몬이 배어 있었 다. 그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숲속으로 들어왔다. 말하자면 그는 연방의 한 불개미로서 온 셈이었다. 마침 그때 전나무의 말벌들이 그의 통행허가 페로몬 냄새를 맡았다(그 당시 불개미들은 말벌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말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말벌들은 그를 벨로캉 개미로 알고 죽인 것이다. 그는 행복하게 죽었음에 틀림없다. 뒷날, 조나탕이라는 사람과 그의 공동체가 연락을 재개했다.... 조나탕이 새로 온 세 사람의 잔에 꿀물을 더 붓는다. 세 사람은 계속 질문을 던져 그의 대답을 재우친다. "그런데 '리빙스턴 박사'는 저 위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재생해서 전달할 수 있는가?" "예, 그리고 우리는 개미들의 얘기를 그 로봇을 통해 들을 수 있 지요. 개미들의 대답이 저 화면에 나타나면 그걸 보는 겁니다. 에드 몽 삼촌이 완전히 성공하신 거예요!" "그런데 에드몽과 개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었지! 그리고 자네들 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 "그건 말이죠.... 로봇을 통한 접촉에 성공한 다음부터 에드몽 삼 촌의 기록이 조금 듬성듬성해졌어요. 삼촌은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 에 집착하지는 않았던 듯해요. 그건 그렇고, 초기에는 서로 자기를 설명했고, 각자 자기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 리는 개미들의 도시가 벨로캉이라는 것을 알았고, 벨로캉이 수억 개 미를 가진 어떤 연방의 중심 도시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군!" "그 후 양쪽은 자기 세계의 거주자들이 정보를 퍼뜨리기엔 너무 이르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접촉'에 관한 절대적인 비밀을 보장하 기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소방대원 한 사람이 끼여들어 덧붙인다. "에드몽 웰즈 교수가 조나탕보고 그 모든 장치를 설치하라고 신신 당부했던 게 그 때문입니다. 그분은 특히 사람들이 너무 일찍 알기 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나 신문들이 야단 법석을 떨면서 일을 망쳐버릴까봐 무척 걱정을 했 던 것이지요. 광고, 열쇠 고리, 티셔츠, 인기 연예인들의 쇼 들의 제작자들이 그 발견을 둘러싸고 벌일 온갖 어리석은 짓거리를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왕개미 벨로키우키우니도 자기 백성들이 그 사실을 너무 일찍알게 되면 바로 그 위험한 외계인들을 상대로 싸우러나설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뤼시가 덧붙인다. "그렇지요. 두 문명은 아직 서로를 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하물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개미들은 파시 스트들도 무정부주의자들도 왕정주의자들도 아닙니다. 그냥 개미입 니다. 그들의 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은 우리 것과 다릅니다. 또 그 렇게 다르다는 것이 그들 세계의 풍요를 만들어내는 것일 테고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빌솅 경정이다. 그는 상관인 솔랑쥬 두망 을 떠나 여기에 들어온 이후로 확실히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 조나 탕이 말을 잇는다. "도이치 학파와 이탈리아 학파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 미들을 '인간의' 이해 체계 속에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하기 때문입 니다. 그러니 분석이 거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마치 우 리의 삶을 개미들의 삶과 비교하여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 자면 인간을 개미의 이체 동종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미들의 특수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흥미진진하지요. 사람들 은 일본 사람, 티벳 사람, 인도 사람 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들의 문화, 음악, 철학에 홀딱 반하고, 우리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왜곡하기도 하지요. 우리 지구의 미래는 이종 교배에 있음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런데 두 문명이 만난다고 할 때 개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오귀스타 할머니가 의아해 묻는다. 조나탕은 아무 대답 없이 뤼시 에게 신호를 보낸다. 뤼시는 잠깐 사라졌다가 잼 단지로 보이는 것 을 들고 돌아온다. "보세요, 바로 이런 겁니다. 아주 귀중한 것이죠. 진딧물 분비꿀 입니다. 자, 드셔보세요!" 오귀스타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집게 손가락을 놀린다. "음, 아주 달콤한데.... 아주 맛있어! 벌꿀하고는 사뭇 다른 맛이야." "그렇지요! 할머니는 우리가 이 앞뒤가 꽉 막힌 땅 속에서 뭘 먹 고 살아왔는지 물어보지 않으셨지요?" "왜, 이제 물어볼 참이었는데...." "개미들이 저희들의 분비꿀과 곡물 가루로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 어요. 개미들은 우리를 위해 저 위에 양식을 저장하고 있어요. 그뿐 이 아니예요. 우리는 저들의 농업기술을 본따 느타리버섯을 키우고 있어요." 조나탕이 커다란 나무 상자 뚜껑을 열자, 위쪽에 하얀 버섯들이 보인다. 버섯들이 부식토 더미 위에서 자라고 있다. "갈랭이 우리의 위대한 버섯 전문가랍니다." 갈랭이 겸손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직 배울 게 많은걸요." "하지만 버섯과 꿀만 가지고는 틀림없이 단백질 결핍증이 생길텐데." "단백질이라면 막스가 맡고 있지요." 막스라는 이름의 소방대원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저는 개미들이 저 흙 상자 오른쪽의 작은 상자에 놓아주는 곤충 들을 모으는 겁니다. 그것을 끓여서 겉껍데기를 분리해 내죠. 그러 고 남은 것은 작은 새우 요리나 다름없습니다. 맛도 생김새도 새우하고 비슷해요." "보시다시피 여기에서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을 잘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편안함을 누리고 있지요. 전기는 작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집니다. 그 수명은 500년이지요. 에드몽 웰즈 교 수가 여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설치해 놓은 것입니다. 공기는 통풍 구멍으로 들어오고 먹이는 개미들이 가져다 주고 신선한 샘물도 있 고요. 게다가 열중해서 매달릴 수 있는 작업도 있어요. 우리는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개척자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우리는 우주 기지에 상주하면서 이따금 이웃의 외 계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우주 비행사 같습니다." 그들이 웃는다. 즐거운 기분이 짜릿하게 등골을 타고 흐른다. 조 나탕이 거실로 돌아가자고 권한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랫동안 내 주위의 벗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모색했지요. 공동체, 집단 거주, 푸리에 식의 공동체 등등, 그러나 저는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저 자신이 바보까지 는 아니라 하더라도 얼치기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 런데 바로 여기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서로를 완성시켜야 하며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도망갈 방법도 없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를 꾸려나가 는 것이 삼촌의 깨달음을 이어받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머리 위에 존재하는 개미들이 우리를 가르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현재로서는 우리의 공동체가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네 그래요, 우리가 특별히 애를 쓴 것도 아닌데 잘 되어가고 있 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각자가 마음 놓고 퍼 쓸 수 있는 공동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 말에 자종이 나선다. "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네. 장미 십자회와 몇몇 프리 메이슨 집단에서는 그런 것을 일컬어 에그레고르라고 한다네. <동아 리>의 정신적인 자산이라는 뜻이지. 하나의 냄비에 자기 힘을 쏟아 서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수프를 만드는 것과 같지.... 그러나 일반 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힘을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둑이 있게 마련이라네." "여기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땅 속에서 작은 동아리를 이 루어 사는 마당에 개인적인 욕심을 가질 리가 없는 거지요...."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말을 적게 합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거든요." "그래요, 여기에서 뭔가 이루어지고 있는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아직 통제하지도 못해요. 우리는 아 직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여정의 중간에 있을 뿐입니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어쨌든 간단히 말씀드려, 저는 우리 작은 공동체가 여러분들 마 음에 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801호가 기진 맥진한 채로 자기 도시에 다다른다. 그가 해냈다! 그가 해낸거야! 클리푸니는 곧바로 완전 소통을 시행하여 자초 지종을 알아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화강암 바닥 밑에 감추어진 비밀에 대한 자기 의 가정에 확신이 선다. 클리푸니는 즉시 벨로캉에 대한 군사적인 공격을 결심한다. 밤새 도록 병정개미들이 준비를 한다. 새로 편성된 뿔풍뎅이 비행 군단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103683호가 전술을 제안한다. 군대의 일부가 정면 공격을 하는 동 안 12개 군단은 도시를 슬쩍 우회해서 궁궐이 있는 그루터기를 공격하자는 것이다. 세계는 세계는 복잡성을 지향하고 있다. 수소에서 헬륨으로, 헬륨에서 탄 소로, 끊임없이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다단해지는 것이 만물이 진화 하는 방향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행성 가운데 지구가 가장 복 잡하다. 지구는 자체의 온도가 변화할 수 있는 지대에 들어 있다. 대양과 산이 지구를 덮고 있다. 생명 형태의 다양성은 거의 무궁 무진하다. 그러나 지력으로 다른 생명들을 압도하는 두 종류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개미와 인간이 다. 신은 지구라는 행성을 어떤 실험을 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신은 어느 쪽이 더 빨리 가는가를 보려고 완전히 상반 된 철학을 가진 두 종을 의식의 경주 위에 던져놓았다. 그 경주의 목표는 아마도 지구적인 집단 의식에 도달하는 것일 게 다. 즉, 그 종의 모든 뇌를 융합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보기에 는 의식의 경주가 나아가게 될 다음 단계이고 복잡성을 지향하는 진 화의 다음 수준이다. 그러나 선두에 선 두 종은 비슷한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 인간을 괴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뇌 의 크기를 부풀려왔다. 장미빛이 도는 커다란 꽃양배추 같다.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개미들은 수천 개의 작은 뇌를 아주 미묘한 의사 소통 체계로 결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미들의 양배추 가루 더미와 인간의 꽃양배추는 절대적인 의미에 서 보면 재료나 지능 면에서 동등하다. 경쟁은 막상 막하이다. 그러 나 지능을 가진 두 생명이 나란히 달리지 않고 협력한다면 어떤 일 이 벌어질까?....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장과 필립은 텔레비젼 말고는 별로 좋아하는 게 없다. 기껏 한다 는 것이 핀볼 게임 정도이다. 최근에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해 놓은 최신식 미니 골프에도 이제 관심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숲속 산책도 그렇다. 감독 선생이 바람 쐬라고 내모는 것만큼 두 아이가 마딱찮게 여기는 것도 없다. 지난 주에는 두꺼비를 죽이는 재미가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너무나 짧았다. 그런데 오늘 장이 정말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찾아낸 모양이다. 다 른 고아들이 따분하게 낙엽을 모아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나 만들며 놀고 있는데, 장이 필립을 그 무리에서 멀리 끌고가더니 진흙으로 된 적은 무덤 같은 것을 가리킨다. 흰개미 집이다. "도로 보수하는 아저씨가 여기다 약을 뿌렸어. 살충제 냄새가 나 는데. 봐. 안에 흰개미들이 다 죽어 있어." 실망한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던 찰나, 장이 실개천 건너편에서 관목에 반쯤 가려진 파라미드 모양의 개미집을 발견한다. 이번에는 진짜다! 너무나 인상적인 개미집이다. 지붕의 높이가 아 무리 못 돼도 1미터는 되겠다! 기다란 개미 행렬들이 들어가고 나온 다. 수백 수천 일개미, 병정개미, 탐험개미들이다. 여기에는 아직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다. 장이 그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야, 너 저거 봤지?" "아이 싫어! 또 개미 잡아먹으려고 그러냐? 지난 번 개미들 아주 구역질 나는 맛이었잖니." "누가 먹겠대! 지금 네 앞에 하나의 도시가 있는 거야. 뉴욕이나 멕시코 시티 같은 곳을 뺨치는 도시란 말이야. 방송에서 사람들 얘 기하던 거 생각나니? 안에 개미들이 우글우글해. 봐. 일밖에 모로는 이 바보들. 이 멍청한 놈들!" "그래도.... 너 니콜라가 개미에 관심 갖다가 결국 사라져버린 거 알지? 내 생각엔 걔네 지하실 안에 개미들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놈들이 니콜라를 잡아먹었을거야. 그래서 하는 얘긴데 난 저놈들 옆에 있고 싶지가 않아. 저놈들이 싫어! 에이 더러운 개미놈들. 어 제는 미니 골프장 구멍에서 몇 놈이 기어나오는 것도 봤어. 그놈들 은 그 속에다가 둥지를 만들려고 했나봐. 에이, 더럽고 멍청한 개미새끼들!" 장이 필립의 어깨를 흔든다. "바로 그거야! 네가 개미를 싫어하듯이 나도 그래. 이놈들을 죽여 버리자! 우리 친구 니콜라의 복수를 해주잔 말이야!" "이놈들을 죽이자고!" "그래 바로 그거야! 이 도시에 불을 지르자고. 멕시코 시티 같은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는 걸 상상해봐 정말 재미있지 않겠니?" "좋아. 불을 지르자. 니콜라를 위해서 하는 건데 뭐...." "잠깐만. 더 좋은 생각이 있어. 저 안에 농약을 집어넣고 불을 지 르는 거야. 그러면 꽃불처럼 멋있게 탈거야." "멋진 생각이야...." "지금 11시거든. 정확히 두 시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그 시 간이면 감독 선생이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고. 애들은 모두 구 내 식당에 있을거야. 나는 농약을 찾으러 갈 테니까 너는 성냥통을 슬쩍 가지고 와. 라이터보다 그게 나을 거야." "좋아!" 보병 군단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벨로캉 연방에 속한 다른 도시의 개미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클리푸캉 개미들은 서 쪽지역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다든가, 중심도시가 자기들의 도움을 요 청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보병 군단의 머리 위쪽 공중에서는 뿔풍뎅이가 웅웅거린다. 머리 위에 포수 개미들을 얹고 가는데도 비행 속도가 별로 느리지 않다. 13시. 벨로캉 개미들이 한창 일을 하고 있다. 햇볕이 좋을 때를 이용하려고 알과 번데기와 진딧물을 햇빛방에 모으고 있다. "더 잘 타게 하려고 알콜을 가져왔어." 필립이 알린다. "잘했어. 난 농약을 사왔어. 요만큼에 20프랑이래, 젠장!" 장이 말한다. 벨로키우키우니가 벌레잡이 식물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벌레잡이 식물들을 이곳에 가져오고 나서 처음엔 그것들을 심어 방 호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벨로키우키우니의 생각이 다시 바퀴에 미친다. 그 멋진 생각을 어 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진흙으로 커다란 공을 만든 다음 다리 끝으 로 밀고가서 적들을 으깨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겠다. "됐어. 알콜과 농약을 다 뿌렸어." 장이 그 말을 하는 동안에 탐험 개미 한 마리가 그 아이 몸으로 기어오른다. 개미가 더듬이 끝으로 아이의 바지 천을 두드린다. '당신은 살이 있는 거대한 구조물 같은데,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 지 알 수 있을까요?' 아이는 개미를 붙잡아 엄지와 집게로 눌러 으깨어버린다. 이크! 노랗고 까만 즙이 손가락 위로 흐른다. 장이 의기 양양하게 말한다. "자 벌써 한 놈이 죽었다. 좋아, 이제 저리 비켜, 불을 붙여야지." "이로써 놈들은 천벌을 받는거야." 필립이 소리친다. "<요환 계시록>이지!" 장이 히죽거리며 말한다. "저 안에 개미가 몇 마리나 될까?" "틀림없이 수백만 마리는 될거야. 작년에 개미들이 근처에 있는 어떤 별장을 습격한 모양이더라." 그 말을 받아 장이 소리친다. "그 사람들의 원수도 갚아주자. 자, 너는 저 나무 뒤로 피해 있어." 여왕개미는 인간들을 생각하고 있다. 다음 번에 그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야겠다. 그들은 바퀴를 어떻게 사용하지? 장이 성냥을 그어서 잔가지와 바늘잎으로 된 봉긋한 지붕을 향해 서 던진다. 그러고는 파편에 다칠까봐 뛰기 시작한다. 마침내 연방의 중심 도시가 클리푸캉 군대의 눈에 들어온다. 참으 로 커다란 도시이다. 날던 성냥개비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여왕개미는 더 기다릴 것 없이 인간들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한다. 별 문제없이 분비꿀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이야기할 생각이 다. 올해는 분비꿀 생산량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성냥개비가 지붕의 잔가지 위에 떨어진다. 클리푸캉의 군대가 이제 돌격 태세에 들어갈 만큼 가까이 와 있다. 필립이 먼저 와 숨어 있던 커다란 소나무 뒤로 장이 뛰어든다. 성냥개비는 연료 알콜이나 농약이 스며든 어떤 자리에도 닿지 못 한채 꺼져버린다. 두 아이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이런, 빌어먹을!" "불을 붙이려면 이렇게 해야 돼, 종이 쪼가리를 저기다 놓는거야. 그러면 커다란 불꽃이 일어나면서 알콜에 불이 붙을거야." "너 종이 가진 거 있니?" "어디.... 지하철 표 한 장밖에 없는데." "이리 줘." 지붕에서 보초를 서던 개미가 뭔가 이상한 것이 있음을 알아차린 다. 조금 전부터 몇 군데서 알콜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방금 노란 나뭇개비 하나가 나타나더니 지붕 꼭대기에 꽂힌 것이다. 그 개미는 곧바로 한 무리의 일개미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잔가지들을 닦게 하 고 노란 들보를 치우게 한다. 다른 보초 개미가 5번 문으로 달려온다. '비상! 비상! 불개미 군대가 공격해 온다.' 두꺼운 종이가 타고 있다. 두 아이는 다시 소나무 뒤에 가서 숨는다. 세 번째 보초 개미가 노란 나뭇개비 끝에서 커다란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클리푸캉 개미들이 돌격 자세로 달려간다. 무사개미들이 그러는 걸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폭발. 일거에 온 지붕에 불이 붙는다. 폭음, 불꽃. 장과 필립은 뜨거운 기운이 뻗쳐옴에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려 한다. 두 아이는 그 장관에 흡족함을 느낀다. 마른 그루터기에 금방 불이 붙는다. 농약이 고인 곳에 불꽃이 닿자 또 폭발음이 일어난다. '길 잃은 개미의 도시' 벨로캉에서 폭발음이 터져나오고 푸르스름한 불꽃, 빨간 불꽃, 연보라빛 불꽃이 솟아오른다. 클리푸캉 군대가 갑자기 정지한다. 처음에 햇빛방에 불이 붙어 알 과 가축들을 모두 태우더니 이어서 지붕 전체를 태워버린다. 몇 초가 지나자 재앙이 궁궐이 있는 그루터기에도 미쳤다. 입구에 끼여 있던 문지기 개미들은 터져버렸다. 병정개미들이 여왕개미를 꺼내려고 달려간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여왕개미는 이미 유독 가 스에 질식해 버렸다. 경보 페로몬이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1단계 경보: 개미들 이 자극적인 페로몬을 뿜어대고 있다. 2단계 경보: 바닥을 두드리는 불길한 소리가 모든 통로에 울려퍼진다. 3단계 경보: '미친' 개미들 이 통로를 뛰어다니면서 공포를 확산시킨다. 4단계 경보: 알, 생식 개미, 가축, 양식 등 귀중한 것을 모두 가장 깊숙한 아래 층으로 옮 기는 동안 병정개미들은 적들과 맞서기 위해 그 행렬과 반대 방향으 로 올라간다. 지붕에 있는 개미들이 대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포수 개미 몇 개 군단이 농도 10% 미만의 개미산을 쏘아서 몇 군데를 진화한다. 그 임시 소방대원들은 자기들의 임기 웅변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 그루 터기에 개미산을 뿌린다. 그것을 축축하게 적시면 그루터기 안에 있 는 개미들을 구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불을 당할 수가 없다. 갇혀 있는 개미들은 모두 유독 가스 에 질식해 죽었다. 혼비 백산한 개미떼 위로 불붙은 나뭇가지들이 무너져 내린다. 불기에 닿은 플래스틱처럼 개미들의 딱지가 비틀리며 녹아버린다. 그 뜨거운 불길의 공격을 당해낼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삽화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인간과 개미는 대등하지 않으며 서로 경쟁하 지도 않는다 인간들의 존재는 그들이 전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는 동 안에 일어난 짤막한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개미들은 우리보다 더, 한없이 더 수가 많다. 그들이 더 많은 도 시를 가지고 있고 훨씬 더 많은 생태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건조 지대, 한랭 지대, 열대 지대, 습지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눈길이 미치는 어느 곳에나 개미들이 있다. 개미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기 1억 년 전에도 있었고, 원자 폭탄을 견디어낸 희귀한 유기체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때, 우리가 지구에서 사라나고 난 1억 년 후에도 틀림없이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3백만 년에 걸친 우리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에 비하면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어느 날 외계인들이 우리 행성 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겉모습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 이 개미들과 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개미들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다음날 아침, 지붕은 완전히 사라지고 검은 구루터기만이 알몸을 드러낸 채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박혀 있다. 벨로캉 거주자 5백만 마리가 죽었다. 지붕과 그 바로 근처에 있던 모든 개미들이 죽은 셈이다. 아래로 내려간 개미들은 무사하다. 벨로캉 밑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거대 한 화강암 바닥이 가로막고 있는 데다가 모든 사건은 그들이 임의로 정한 밤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벨로키우키우니의 죽음이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 있다. 알 낳 는 여왕개미를 잃어버린 겨레의 운명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데 불을 상대로 한 전투에 동참했던 클리푸캉 개미들은 벨로 키우키우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자기들 도시로 전령을 보낸 다. 몇 시간 후 클리푸니가 손수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뿔풍 뎅이를 타고 온다. 클리푸니가 궁궐에 이르러 보니 소방수 노릇을 하던 개미들이 여 전히 잿더미 위에 개미산을 뿌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다. 클리푸니가 질문을 던지자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태한 여왕개미가 없으므로 클리푸니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벨로 키우키우니가 되고 중심도시의 궁궐을 차지한다. 가장 먼저 잠이 깬 조나탕은 컴퓨터 프린터가 드르륵거리는 소리 를 듣고 깜짝 놀란다. 화면 위에 한 단어가 보인다? '왜?' 그러고 보니 개미들이 밤새 신호를 보냈던 모양이다. 개미들이 대 화를 하고 싶어한다. 조나탕은 대화에 으레 선행하는 문장을 두드린다. 인간: "안녕, 나 조나탕이다." 개미: '난 새 벨로키우키우니다. 너희는 왜....' 인간: "새 벨로키우키우니라고? 그런 전 벨로키우키우니는 어디에 있는가?" 개미: '너희가 죽였다. 난 새 벨로키우키우니다. 너희는 왜....' 인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개미: '너희는 왜?.... 그러고 나서 대화가 끊겼다. 이제 클리푸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인간들이 그 짓을 했다. 어머니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사실을 비밀에 부쳐왔다.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낌새를 채는 자들이 있으면 다 없애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어머니는 자기 백성들을 죽이면서까지 그들을 도왔던 것이다. 새 벨로키우키우니는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경비 개미들이 쓰레기터에 버리겠다고 시체를 가지러 오자 새 여왕개미가 펄쩍 뛴다. '안돼, 이 시체를 버리면 안돼.' 클리푸니는 이미 죽음의 냄새가 나고 있는 전벨로키우키우니를 유 심히 살펴보다가 명령하기를, 부서진 다리들을 나뭇진으로 다시 붙 이고 물렁한 살을 빼낸 다음 흙으로 채우라고 한다. 어머니의 시신 을 자기 방에 놓아두고 싶은 것이다. 새 벨로키우키우니가 된 클리푸니가 병정개미 몇 마리를 불러 모 아 중심 도시를 더욱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건하라고 당부한다. 둥근 지붕과 그루터기는 너무 취약하니 지하 개울을 찾는 데 몰두하라고 한다. 나아가 연방의 모든 도시들을 연결하는 운하를 뚫는 데 진력하라 고 이른다. 벨로캉의 미래는 물을 잘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이 클리 푸니의 생각이다. 물을 잘 다스리면 화재를 막을 수 있고 빠르고 안 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게 하지요?' 새 벨로키우키우니가 대답을 얼버무린다. '그들에겐 별로 흥미가 없어.' 질문을 던졌던 병정개미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불로 우리를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하지요?'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해주지.' '그럼 커다란 바위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요?' 벨로키우키우니는 아무 대답 없이 혼자 있게 해달라며 병정개미들 을 내보내고는 전벨로키우키우니의 시체 쪽으로 몸을 돌린다. 새 여왕개미는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 더듬이를 어머니 이마에 갖다댄다. 그러고는 아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는다. 길고긴 완전 소통에 몰입해 있는 듯하다. ----------------- * 제1부 '개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