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행진 지은이: 케빈 워웍 출판사: 한 승 봉사자: 김 용 식 책을 내면서 지구상에서 인간이 왜 자유로운 두 손을 가졌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것처럼, 인간의 지 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한다. 인간은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기계나 동물들 을 다루어 왔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인간보다 더 지능적인 생명체와 마주치게 된다면, 과연 인간이 살 곳은 어디일까? 과연 우리는 인간의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노예처럼 되지는 않을까? 이 책은 미래의 인간보다 더 지능적인 기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 될 것이라는 결론은 매우 실질적인 관점에서 도출되었고, 로봇이나 컴퓨터 같 은 기계들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예로서 언급되었다. 레딩(Reading) 대학에서 제작한 로봇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로봇은 무엇이 미래에 가능하고,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예로 나오는 모든 레 딩의 로봇들은 실제 책에서 언급한 대로 동작하는데, 난폭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를 부리거 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책을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아마도 4장이 가장 깊이 있 는 부분일 것이다. 4장을 제외한 다른 장들은 튜링(Turing)의 논문을 포함해서 간략한 아이 디어만 소개되어 있는데, 요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적은 일반인도 쉽게 읽게끔 하는 것이므로 수학적인 난해한 공식은 실지 않았 다. 언젠가 '잘 이해되는 책일수록 그 내용은 혹독하게 비평을 받는다' 라는 말을 들었다. 따 라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이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미래의 기계들에 관하여 많은 논의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제발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하지 말게. 사람 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꼭 내가 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일세'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 이다. 인간들은 실수를 하고 난 뒤에, 혹은 실컷 즐기고 난 뒤에 자기 자신에게 '좋아. 그걸 다시 한번 했으면 좋겠군'이라든지, 또는 다른 식으로 자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오로지 한 번만 살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한 번만 태어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새로운 상 태로 한 번밖에는 경험할 수 없다. 즉 인간은 결코 다음에 무엇이 발생할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기억의 어떤 부분이 잊혀질 때, 그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간에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계에서 이러한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기계는 계속해서 새로 생길 수 있으며, 한 시대의 기계에서 다음 시대의 기계로 많은 정보들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나는 10년 내지 20년 후에, 인간보다 더 지능적인 기계들이 세상에 출현할 거라고 믿고 있 다. 기계들은 벌써 다른 기계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기계가 진화하리라는 미래 지 향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 지능적인 기계들은 자신의 결점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계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생각을 현실로 가능하도록 뒷받침해 줄 것이다. 이 책은 당신과 당신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신은 아마도 변화된 미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라 할지라도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다양 한 모습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공상과학소설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진솔한 사실이며, 논리 정연한 과정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다. 기계가 우리를 대신할 다음 세대가 될 수 있을까? 기계가 과연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까? 내가 독자인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가졌던 편견이나 선입관이 없는 열린 마음으로서 끝까지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독자들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아마도 미래에는...'하는 느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기계들이 인간보다 더 지능적일지 모른다. 또한 미래에는 기계들이 우리의 일을 떠맡아 줄지도 모른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러한 것들이 단지 실현 가 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곧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있 다. 감사의 글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에 계시는 데이비드 메인(David Mayne)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어떤 발표에서 그는 나에게 "자네는 수식을 너무 많이 쓰는군" 하는 충 고를 해주었다. 나는 항상 그 말을 기억하고, 가능하면 수식이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왔 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지은 시간의 역사 A Brief History of Time 라는 책에 서 그는 '책에 수식하나가 들어가면 판매량이 반으로 준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책에는 단 하나의 수식이 있었다. 두 분의 충고에 따라 나는 이 책에 X=0 수식을 포함시켰으며, 여기서 X는 수식의 숫자이 다. 이 책에 대한 동기와 아이디어들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왔는데, 특히 알렌 튜링 (Alan Turing),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마빈 민느키(Marvin Minsky), 스티브 존 (Steve Jones), 마이크 브레디(Mike Brady), 아이거 알렉산더(Igor Aleksander) 등이다. 또한 레딩 대학의 인공두뇌학과 학생과 조교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인데,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의 출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레딩 대학의 학생들 중 존 화이트헤드 (John Whithead), 데이브머레이(Dave Murray)에게 고맙다.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 책의 중심이 세워졌다. 이안 캘리(Ian Kelly), 이아인 굿휴(Iain Goodhew), 벤 헛(Ben Hutt), 다렌 왠(Darren Wenn), 락 파텔(Rak Patel) 등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글레스고(Glasgow)에서 열린 로보틱(Robotix)행사에 나를 참여시켜 주 머빈 에지컴 (Mervyn Edgecombe)에게 감사 드리며, BBC의 몇몇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나 의 사랑스런 아이들, 마디와 제임스의 지속적인 비평과 토론과 충고를 아끼지 않은 장인 어 른에게도 감사 드린다. 끝을 아내 아이린에게,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없이 많은 토론들 을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케빈 워웍 1996년 11월 CHAPTER 1 2050년에 때는 2050년,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우려하던 핵대란(nuclear holocaust)도 피 했다. 정말로 그 버튼을 누를 만큼 미쳐버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 었다. 지구 온난화도 단순히 공기가 뜨거워진 것으로 판명되었고, 오존층에 난 구멍은 아직 그대로 뚫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걱정하던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이었단 말인가? 거의 대부분은 그렇다. 이 살아 있는 지옥에서 아직은 버티고 있으니까! 2050년, 지구는 기계의 지배하에 있다. 원한다면 기계를 로봇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 간과 같은 하나의 종(species)이 아니라 각각 맡은 임무에 따라, 팔 그리고 뇌-상대적으로 작고 엇비슷한 크기를 갖는 단 하나의 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들은 대체로 서로 비 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50년에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우리는 다른 동물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런 단순한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보다 조금 더 똑똑 하다는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나름대로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2050년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때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전하는 그런 이야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이전의 다른 종들처럼 한때 지구를 지배했었지만, 역시 다른 종들처럼 그럼 역사를 송두리 째 날려버렸음을 알고 있다. 지배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은 행복하지만 만물의 역사 앞에서는 너무나 짧아서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 아무튼 인간은 상당히 제한된 능력을 가진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는 똑똑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전혀 똑똑하지 않으며, 육체적으로도 전혀 강인하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름대로 쓸모가 있고 그 덕분에 여전히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20세기, 그리고 그 이전에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지구 상의 다른 동물과 생명체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소는 우유와 고기를 얻기 위 해 사육되었고, 돼지는 단지 고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몇 년간 사육되다가 적절한 시 기에 도살되었다. 닭은 아마 좀더 살기가 편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달걀을 얻기 위 해서 사육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닭들은 그들의 몸집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아주 작은 닭장에서 길러졌다. 그러한 그들의 삶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왜일까? 이제 인류는 그러한 동물들과 다를 바 없고, 주 중 하나일 뿐이며 단순히 사육되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과거에 인간은 다른 인 간들에 의해서 부당하게 다루어지고, 착취당하고, 감금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길가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으로 죽음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정치적인 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행복하게 죽어갔다. 또한 자신의 국가를 위해서 투쟁했다. 그것이 현명하고 똑똑한 것인가? 기계가 명령을 내리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2050년의 인류는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지위에 있다. 2050년 인류의 삶은 기계에 의해서 지배되고, 기계가 계획해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 들이 일반 노동자로 사육된다. 기계간의 통신과 비교해서 매우 느리고 제한적이기는 하지 만 어느 정도는 기계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의 명령에 따라 약간은 일반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불규칙한 형태의 위치로 기어올라야 하는 상당히 거친 지역에서 말이다. 노동자들 은 육체적으로 불필요한 성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거세되었으며, 두뇌가 재구성되어 분 노, 우울, 그리고 추상적인 사고와 같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이 제거되었다. 가끔 유난히 힘 이 센 여성 몇몇이 노동자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는 남자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의 성별은 대부분 기계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인간은 매우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다양하고 불필요한 내분비선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지리적으로 운반하기 쉬운 곳에 위치한 마치 포로 수용소 같은 캠프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빛이나 열이 거의 없어(인간에게 그것이 왜 필요하겠는 가?) '편안함'을 느끼기에는 충분치 못하지만 그저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은 운반되기를 기다릴 때라든지, 수면이라고 하는 인간의 기묘한 관 습을 위해서만 캠프에 머무르게 된다. 인간은 상대적으로 짧은 가용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계는 특히 육체적인 노동을 수행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에 24시간의 3분의 1 정도는 수면을 취할 필요가 있을을 아직 인정하 고 있다. 인간 두뇌에 계속해서 걱정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을 주입하는 식으로 두뇌의 수면 유도 작용을 제거하기 위하여 많은 실험들이 수행되었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것들 은 인간의 수면 욕구를 억제하는 특성을 지닌 '걱정'이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느끼도록 두뇌 를 프로그램하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세기에는 불면증이 인간 스스로에게 부정적 인 현상으로 간주되었으나, 지금은 기계를 위한 매우 매력적인 특성이 되었다는 것은 재미 있는 사실이다. 불행히도 노동자들은 걱정 할 필요가 없었고, 두뇌의 그러한 면을 제거하면서 그들은 모 두 다시 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다행히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밤 시간대가 수면을 위한 최적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조명을 위한 전력 소모 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간들을 모두 수면을 위한 작은 공간에 몰아넣으면 어느 정도 따뜻하게 유지될 수 있었고, 결국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가 절약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종종 질식사하는 경우가 생겨서 소각로에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질식사하는 경우는 대부분 가용 노동 연령이 거의 끝나가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오래된 노 동자를 처리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선택되지만, 실제 노동은 대략 12세부 터 시작된다. 약 18세까지 노동자들은 최고의 효용 가치를 갖게 되고, 특별히 힘이 센 몇몇 사람들은 30대 초반까지 살아남기도 하지만 보통 약 27세나 28세까지 착취당하다가 소각로 에 버려지게 된다. 12세부터 소각로에 버려지기까지 감깐의 식사 시간과 수면을 위해 지역 수용소로 이동되는 시간을 포함해 하루 거의 16시간정도의 고된 육체 노동을 하게 된다. 이 러한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다른 수용소로 이동하는 경우뿐이지만 노동자들의 두뇌에서 걱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인간이 기계에게 할 수 있는 유용한 역할이 노동자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인간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여성이 인공 수정되고 9개월 후에 아이를 낳게 되 는 '자연적인'방법이 아직은 가장 나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한 여성들은 인간 농장에 서 길러진다. 그 인간 농장에서 여성들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작은 공간에 수용되는데 훈련 에 꼭 필요한 만큼의 크기이다. 여성들은 그들이 낳은 아기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주기 위 한 최적의 환경으로 양육된다. 일반적으로 한 여성은 한 번에 세 명의 아기를 낳는데 이는 생산성과 효용성 측면에서 최적의 숫자이다. 인간 농장의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20세기의 여성들에 비해서 몸집은 좀더 작고 엉덩이는 더 넓은 편인데, 그것은 기계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아이를 낳는데 가장 좋은 형태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다양한 임무에 요구되는 다양한 아이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른 크기의 여 성들 또한 필요하다. 일단 여성이 아이를 낳게 되면 짧은 회복시간이 주어지고 그 다음 다 시 인공 수정되는 식으로 반복된다. 여성의 생활 또한 노동자의 생활과 비슷해서 12세쯤에 아이를 낳기 시작하고, 30대가 되면 소각로에 버려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한 여성은 평생 동안50여 명 정도의 아이를 낳게 된 다. 태어날 아이의 성별이나 수를 조절하고 감독하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다. 사실 20세기와 21세기 초에 인류가 수행했던 유전학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기계지배하의 오늘낭에는 기계 들에게 매우 유용해졌다. 인간의 다른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 불행히고 거의 없다. 몇몇 간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 는 작없들이 오래된 기계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러한 작업에 요구되는 인간의 수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다른 인간들은 야생 인류라는 남은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군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야생 인류가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분만 아니라. 그들은 번식 본능에 이 Td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급속하게 엄청난 수로 증식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생 인류들은 살아 남은 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독성가스를 뿌려놓은 인간멸살가스 살포 지경과 영역 폭격(area bombings)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 공간에서 보낸다. 따라서 군인은 남아 있는 야생 인류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만큼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 12세까지 아이들의 생활은 그들의 추후 역할과 관련된다. 태어난 직후 두뇌와 신체의 불필 요한 부분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이 가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가상현 실 기반의 내과 수술의 개발로 인해 의사와 환자가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을 필요가 없 게 되었고, 결국 의사가 전혀 필요 없게 되어 기계들이 인간을 직접 수술하고 관찰할 수 있 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술 후에 아이들은 노동에 필요한 작업들을 수행하도록 역시 소위 가 상 현실을 통해서-기본적으로 장도 d제어되는 시각적 자극을 통해 교육된다. 필요한 곳에서 는 걷는 것을 배우고, 이후의 요구 사항에 부합되는 어휘들을 학습하여 기계로부터의 명령 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 사이의 의사 교환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의사 소통과 거의 모든 학 습이 '훈련' 기계와 모든 감각을 통해서 연결된 각 아이들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수행된다는 점에서 아이들 사이의 의사 교환은 불필요하다. 이것 또한 인간 스스로가 기계와의 의사 교 환이 어린아이들 사이 또는 아이와 부모, 선생님 사이의 상호관계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되면서 예전부터 이미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좀더 심하 게 말하자면, 기계는 이미 잘 정립된 인간의 행동 양식을 단순히 확장시킨 것이다. 2050년에 살아 남은 인간의 수는 20세기 끝 무렵의 경우에 비해서 엄청나게 적어졌다. 그 것은 기계들이 더 많은 수위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야생 인류의 수를 (기계에게는) 상 당히 거친 지역에서 다루기 수운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친 지역에 살고 있는 인간을 포함해서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제 매우 짧다. 사실 30세를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체가 아니다. 20세기 또는 그 이전을 돌아볼 때 인간의 기대수명이 새로운 약물의 출현뿐 아니라 기계 장기(臟器)의 사용을 통해서도 증가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기계 엉덩이, 기계다 리, 기계 팔, 심지어는 기계심장을 포함해 기계 장기는 나이든 사람들을 반 인간 반 rrP인 사이보그로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기계는 계속해서 동작하도록 관리되기 때문에, 즉 보통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바꾸어줘야 할 장기를 교체하기 때문에 수명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폐물이 되기는 한다. 왜냐하면 오래된 낡은 기계는 훨씬 더 향상된 기계로 대체된 다든지, 그들이 수행했던 작업들이 더 이상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기계는 엄청나게 빨리 재설계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체는 매우 빨리 그 효과를 보게 된다. 인간이 지배하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이 깨달은 하 가지 문제는 평균 수명의 증가에 의 해서 야기된 것이었다. 첫째로, 평균수명이 증가한다는 것은 60세 이상의 연령에 도달하는 사람의 수가 상당히 증가하여 일을 할 수 있는 60세 이하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 우게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작업장에서 점점 더 많은 인간이 기계로 대체됨에 따라 일할 사 람의 필요성은 점점 감소하였다. 인간이 일을 그만 두게 되는 은퇴 연령은 30세 수준까지 점점 더 감소해 갔고,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소모할 해로운 방법들이 발견되 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삶을 이미 다 살고 더 이상 기력이 없게 되었음에도 이들의 삶을 더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게된 데에는 몇 가지 감성적인 측면이 작용 했다. 그 중의 하나는 수많은 개별 집단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원동력이 된 인간으로서 지 닌 종족보존과 번영이라는 대명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나이든 사람들이 비록 매일 수많은 종류의 약을 복용하고, 순전히 기계장기에 의존하여 살아가면서도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에 기여할 수 없지만,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들이 오래 살 수 있도 록 해야 한다는 수많은 요구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 지배하에서는 한 번 인간이 살 만한 유 용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역할이 젊은 사람들에 의해서 훨씬 잘 수행되거나 혹은 심 각한 질병을 앓게 되면 그들을 단순히 소각장에 보내 버리면 그만이다. 이것이 2050년 이 세상의 그림이다. 단순한 동물에 불과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비슷하게 다루어지는 기계 지배하의 이 세상 말이다. 인간은 그 유용성 덕분에 사육되고 쓸모가 없어 지면 제거된다. 인간은 명령받은 그대로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실현 불가능할까? 2050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이것이 정말 비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가? 정말 기계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를 수 없겠 는가? 사실 인간은 기계에 비해서 훨씬 똑똑하고 원할 때면 기계를 켜고 끌 수도 있으며 또 한 기계는 못 해도 인간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든, 특히 기계 같은 경우에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실제 사실과 많은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말에는 '1990년 정도까지는 사람들은 50세쯤에 일을 그만두고, 오늘날 과 경향을 단순히 그대로 연장시켰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라고 예측했었다.1) 그러나 세상 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실 기계가 많은 일들을 대체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일을 더 많이 창출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옛날 정도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적은 여가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프로그 램된 작업을 수행하는 많은 조그만 기계들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것들은 모두 간과할 수 없는 사항들이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그 문장보다는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수많은 기계들이 있으며, 그 기계들 중 상당수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작은 공동 네트워크 또는 국제적인 네트워크인 인터넷을 통해서 서로 통신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덧붙여 기계들은 더 이상 미리 짜여진 프로그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로부터 학습하고 새로운 실험을 수행하며 학습한 결과에 따라 자신의 미래 행동을 향상시키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 두 다기 사항은 서로 맞물려 하나의 기계가 학습하고, 그 내용을 다른 기계에 전해주는 등의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기계에게는 분명히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더 이 상 프로그램 대로만 행동 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쯤 우리 인간의 수준을 따라 잡을까? 아직 기계의 지배는 요원한 것 아닌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놀라운 변화들을 몇몇 목격해 왔다.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가 돌아 온 것도 엄청난 업적이긴 했지만 컴퓨터 같은 기계의 놀랄 만한 영향을 최근의 커다란 기술 적 변화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변화해 왔다. 예를 들면 하루 안에 가능한 항공 여행, 혁명적인 수술 기술, 세계를 둘러싼 이동전화 통신, 전기에 대한 완벽한 의존, 텔레비 전의 계속되는 방송과 가정에서의 기술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변화율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더욱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시대이다. 내년 에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50년만 당신의 생각을 되돌려보자. 그 당시에 50년 후를 내다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아마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텔 레비전, 라디오, 전기, 항공기, 자동차 등이 개발된 지난 50년은 그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인 경험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다음에는 그 동안 개발된 것을 잘 사용하기 위한 안정과 정 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안정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당신이 50년 전에 살아 이었다면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컴퓨터 의 출현, 기술적 혁명, 교환수 없는 전화 교환기, 벽에 난 구명을 통한 금전 출납, 모든 지불 을 도와주는 작은 플라스틱카드, 세상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대화할 수 있게 해준 무선 전 화기 등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내 생각에는 당신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연구하는 과학자 도 아니며, 미래에 발생할 일들에 대해 체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잇는 것도 아니면서 이들 중 한 가지 이상을 생각해냈다면, 당신은 엄청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 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위에 나온 것들 중 하나나 둘 이상을 예측했던 사름들은 다른 사 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제 50년 동안 기술이 그전보다는 빠른 속도로, 분명히 50년 전보다는 훨씬 더 빠르게 변 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음 반세기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 각하는가? 당신이 언급하는 한두 개의 사건이 - 물론 훨씬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 그때가 되면 아마 100개 또는 200개의 새로운 발명품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신기하고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과학적 발전을 경험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역시 기계의 지배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려주지는 못할 거 이다. 사실 당신은 언급된 이 모든 것들을 전혀 근거 없는 순수한 소설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나. 심지어는 인공 지능 연구단체의 회원들도 그러한 견해에 지지를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척 메시지는 인류에 대한 기계의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다. 현재로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이상한 것들이 다음 50년 동안에 발생할 것이 다. 인류에 대한 기계의 지배가 그런 것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고 기계는 대부분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이런 상태에서 어 떻게 그 역할이 전도되는 상태까지 갈 수 있을까?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는 인 간과 다른 동물 사이의 차이와 인간과 기계사이의 차이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중요한 차이가 인간의 지능, 즉 두뇌의 작용일 것이라는 것과 덕분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이 나 기계들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 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능력을 갖게 되었는가? 특히 인간과 기계의 차 이점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을 돌려 겉모양은 보통의 사자와 동일하지만 지적인 면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더 똑똑한 한 무리의 사자들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그 사자들이 우리 인간을 발견했다면, 사자들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이며 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들이 우리를 겁나게 한다면 우리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 총으로 쏴버릴 수 있을 것이 다.! 하지만 만약 사자들이 우리보다 똑똑하다면, 인간의 무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엇인가 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사자를 잡을 덫을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 시 사자들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다면, 인간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여 인간을 잡기 위한 더 큰 덫을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사자 떼를 향해 총을 쏘려고 하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잡기 위 해 덮을 놓으려고 할 때, 만약 사자들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미리 예측하여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보다 더 똑똑한 기계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그런 기계들이 사람의 요구를 들어 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해줄 것 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일에 대한 대가가 충분치 않다면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할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그 기계들이 충분히 교육받았다면-우리보다 더 똑똑하다 면 교육받지 않았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자신의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보고 싶을 것이다. 이 것을 누가 비난할 것이며, 왜 안 그러겠는가? 어떤 식으로든 구들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 다 더 나을 수도 있다. 2050년의 현실은 기계가 인간보다 더 똑똑하고 따라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계가 우리보다 더 똑똑해진다면, 인류를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라 는 사실을 아주 잠시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간다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기계 는 정말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수 있겠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라면 2050년의 시 나리오는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사실 이 질문은 기술적인 발전에 따라서 조금씩 수정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만약 기계가 대략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질 수 있다면 기술적 발전에 잠재되어 있는 진보 덕택 에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분명히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의 질문 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변경될 수 잇겠다. 기계는 대략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기계라는 말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는 모든 비생물학적 구조체 와 매체, 로켓, 미사일, 인큐베이터, 생산라인, 현금지급기, 사진기, 보완경보기 등등을 포함 하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특히 그것은 컴퓨터와 관련된 설비를 갖는 기계들을 지칭하고 있 다. 예를 들면 컴퓨터 내장 자동차 같은 것 말이다. 이 예는 한때 대부분의 자동차가 운전에 필요한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데 인간을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 볼 때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자동차에 앉아서 차에서 발생되는 일의 대부분을 처리한다-자동차는 인 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간의 도 구이다. 여기에서 만약 인간이 차에 타지 않고 차가 스스로 운전한다면, 전혀 다른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자율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 이 기계가 계획된 작업을 수행한다. 기계는 서로 매우 다르게 생겼을 수도 있다. 위에 언급된 자율 자동차는 보청기와는 매우 다르게 생겼고, 또한 컴퓨터나 우주 로켓과도 매우 다르다. 이것들은 모두 기계지만, 처음부 터 특정한 동작을 수행하거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서로 다른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많은 경 주에 기계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라든지 감지하고 측정한 외부의 상황에 따라 스스로 동작과 작업의 계획을 변경하기 위하여 더 많은 계산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책에서 기계를 언급할 때에는 이러한 모든 기계의 집합을 보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간들은 서로 상당히 비슷하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눈, 다리, 두뇌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간은 서로 상당히 다르기도 한데, 그 것은 신체 구조나 얼굴의 생김새, 그리고 다른 육체적인 특성뿐 아니라 정신적인 특성, 즉 인간 두뇌의 동작 방식이나 두뇌의 상태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가끔은 매우 작은 차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 즉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육체적인 능력에서의 차이점은,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갖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 들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이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의 육체적인 상황은 또한 우리의 정신적인 상태, 즉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상당한 연관성을 갖게 되는 한 예로서 간질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 해 보자. 인간이 자기 육체의 동작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발작'을 야기하는 신호가 두뇌 전체 또는 일부에서 만들어진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발병 요인으로 인하여 간질의 종류도 매 우 많고 다양하다. 어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간질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간질이 없었다면 정상적인 아이의 성장기간이 되었을 시간 동안 두뇌가 발달하면서 나타날 수도 잇다. 머리 부상, 뇌의 성장. 그리고 심지어는 알코올 자극 등과 같은 주변 여건에 의해서도 간질은 발 생될 수 있다. 이러한 간질병은 두뇌 관자놀이엽(temporal lobe,두뇌의 앞부분)에 대한 수술-그 부분을 제 거하는 것도 포함해서-을 통해서 고생하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2) 관자놀이 엽은 사실 상당히 상처받기 쉬운 곳이기 때문에, 불행히도 너무 많이 잘라내면 새로 운 사 실을 기억하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왜 지금 이런 것들을 지적하는 걸까? 심하게는 어떤 사람은 자기 머리를 때렸지만 다른 사 람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아주 작은 차이점 때문에 인간이 간질 등으로 고생하는 것 과 같이 매우 다른 특징을 보이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두뇌 관자놀이엽이 간질 발작을 발 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 부위에서 새로운 기억과 학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사실 인간 두뇌의 각 영역은 기억뿐 아니라 운동 기술, 의사 소통, 시각과 같은 다양한 동 작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뇌만이 이런 것은 아니다. 모든 동물의 두뇌가 인간에 비해서 구조가 간단하고, 더 적은 뇌 세포(뉴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와 비슷하다. 곤충과 같은 좀더 기본적인 형태의 생명체로 감에 따라 뇌 세포는 그 수가 훨 씬 더 줄어들고, 구조는 점점 더 간단해진다. 예를 들어 개구리는 먹을 것을 찾고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시각적 감각기관에 크게 의존하 고 있다.3) 개구리의 눈은 사람의 눈과는 달리 물체의 움직임을 따라서 움직여주지 못하지만 아치 수준기(水準器,spirit level)속의 공기방울처럼 중심에 맞추어져 있어 눈은 고정된 상태 에서 몸 자체가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보지 못한다. 개구리 는 상당상할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먹이로 둘러싸여 있어도 먹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굶 어 죽을 수도 있다. 만약 무엇인가가 움직인다면, 이것을 보고 있다가 그것이 특정한 크기를 가지면서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판단되면, 개구리는 그것을 잡아야 할 먹이로 간주하 게 된다. 의사 결정은 단순히 시각적 검사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며, 따라서 개구리를 상당히 쉽게 속일 수 있다. 만약 적이 접근하고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된다면, 개구리의 행동양식은 (a) 공격자로부터 멀리 달아나거나, (b)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려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육체적으로, 개구리의 뇌 세포 전체에서 약 4백만 개는 두 눈의 시각적인 요구만을 다루는 뇌 세포이다. 개구리의 두뇌는 그 개구리의 행동 면에서, 그리고 살고 있는 환경 면에서 개구리에게 적 합하다. 개구리의 두뇌로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는 것은 개구리의 두뇌가 인간의 역할에 적 합하지 않기 때문에 좋지 못하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러시아어를 영어로 유창하게 번역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자 않는다. 청각 시스템이 세밀하지 않으며, 말을 이해할 수 잇는 능 력도 없으며, 러시아어나 영어를 할 수도 없다! 개구리의 환경에서는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 역하는 것은 일반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다. 비슷한 식으로 인간의 두뇌는 인간에게는 적합 하나 개구리나 사자, 그리고 기계에는 적합치 못하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것은, 한 생물의 두뇌와 지능은 바로 그 생물과 그 생물이 처한 환 경에만 적합한 것임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기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기계가 구조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동작에 필요한 만큼만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러시아어를 영어로 유창하게 번역할 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기계가 외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겠는가? 기계는 컴퓨터의 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는데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에는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잘 해봐야 어떤 사람들과 비교하 면 형편없는 능력만을 보일 것이다. 말하자면 번역은 특정한 기계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능 력일 뿐이다. 기계는 타고난 언어학자처럼 똑똑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점점 훨씬 나아지고 있다. 기계의 두뇌를 인간, 곤충, 개구리 등의 두뇌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바보스러운 짓이다. 그것은 일단 그 구조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교는 막기 힘든 경향이었고, 수년간 인공 지능 분야의 연구자들의 주요 연구 방향이기도 했다. 1950년 앨런 튜링(Alan Turing)에 의해서 개발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기계의 지능 과 인간의 지능을 비교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이 테스트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당신은 방안에 앉아서 옆방에 있는 그 무엇인가와 컴퓨터 키보드를 통해서 대화할 수 있 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 식으로 당신이 인간과 대화하고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한다. 이 테스트의 취지는 다른 방에 있는 '그것'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대화나 이동 또는 시각에 무관하다는 점에서 몇몇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 또한 많다. 테스트 중에 수나 질적인 면에서 만족할 만큼 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 을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보인다면, 그 안에서는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 인간이 대답을 하고 있지만 지루하거나 테스트 결과를 혼동시킬 수 있는 잘못된 답을 대답 했다. (b) 기계가 질문에 답하고 있자만 지루하거나 테스트 결과를 혼동시킬 수 있는 잘못 된 답을 대답했다. (c) '그것'은 생각할 수 없다. (d) '그것'은 컴퓨터와 통신할 수가 없어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인간일 수 있다. (e) '그것'은 당신의 질 문을 받지 못했다. 또는 (f) 인간 또는 기계가 대답을 하고는 있지만 모든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릴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실제로 그 테스트로부터 어 떠한 결론도 얻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분명 만족할 만한 결정적인 결과를 주지 못했다. 심지어는 긍정적인 결과 를 통해서 옆방에 있는 '그것'이 운 좋게도 자신에게 적합한 질문만을 받았을 수도 있기 때 문이다. 사실 튜링 테스트에는 너무나 많은 검사, 시험, 측정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한 번 측정하는 것도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우리는 하나를 시험해보고 매우 다른 무엇인가를 시 험함으로써 테스트를 끝내려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 치즈가 다른 것보다 더 나은지를 묻는다거나 지능처럼 분명치 않고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막연한 것을 측정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어떤 질적 수준을 검사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 어떤 질적 수준이라는 것은 각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달라 진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는 큰 견해 차이가 있다. 질(quality)이라는 개념은 다른 동물이 나 기계에 적용될 때에는 그렇게 쉬운 개념이 아니다. - 인간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을 수 도 있는 것이다. 레딩 대학 인공 두뇌학과(Cybernetics Department at Reading)에 있는 내 동료 중 하나인 리처드 미첼(Richard Mitchell)은 적어도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나 물체의 성능을 측정할 때에는 반드시 측정 그 자체가 각각의 성능을 변화시키며, 따라서 측정 자체를 무의 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 학교 교사가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계단으로 던져 채점한다고 생각해 보자. 빨리 떨어지는 보고서는 더 무거울 것이므로 사용된 종이도 더 많고 보고서 길이도 더 길 것이다. 그래서 그 보고서는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나중에 떨어지는 보고서는 더 가벼울 것이고, 따라서 더 낮은 점수를 받게 된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학 생들은 (a) 더 긴 보고서를 쓴다. (b) 훨씬 더 무거운 종이나 마분지를 사용한다. (c) 무언 가로 보고서의 무게를 증가시킨다. (d) 가장 빨리 땅에 떨어질 수 있는 특별한 공기역학적 보고서 용지를 개발한다. (e) 그들의 보고서가 가장 아래쪽에 놓이도록 한다 등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요점은 학생들이 공기역학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반응 중에서 그 어느 것도 학생들로 하여금 더 나은 보고서를 쓰게끔 유도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교사는 보고서의 질적인 면뿐 아니라 양도 측정하지 못하게 되 고,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측정하게 된다. 그것은 사실 보고서를 측정하는 방식에 따른 하 나의 성능 평가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학생들의 지능은 아직도 다음과 같은 형태의 질문과 답으로 측정되고 있다. 1. 빈칸의 숫자를 채워 넣으시오. 18 20 24 32 ( ) 2. 빈칸의 숫자를 채워 넣으시오. 19 (45) 81 18 (36) 64 10 ( ? ) ( ? ) 또는 3. 빈칸의 글자를 채워 넣으시오. O T T F F S ( ? ) ( ? ) 만약 한 아이가 이러한 질문들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이것은 그 아이의 지 적 능력에 대한 부분적인 증거로 간주되고,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했는가에 따라 그들이 선택한 학교나 대학에 합격 여부가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나중에 기계와 관련되어 비슷한 문제를 다시 살펴본다고 해도, 인간과 연관되어 있는 한 이러한 종류의 문제에 어떻 게 대답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배우고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똑똑한 학생으로 인정받아 출세할 수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런 테스트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만약 학생들이 잘 해낸다면, 그 학교는 테스트 결 과에 따라 좋은 학교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정 결과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4가? 우리가 원하는 숫자나 글자를 찾는 데 있어서 아이의(인간의) 능력이 뛰어난지 아닌지를 말해줄 뿐이다.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측정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보인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측정 결과 를 보일 수 있는지 충분히 습득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를 통해서 우리는 아이의 지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가? 아니다. 물론 그렇 지 않다. 이 결과는 단지 아이가 그러한 질문에 얼마나 잘 대답하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아울러 지능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측정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러 한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보이기 위해서 노예처럼 아무런 의문 없이 각 질문에 답하는 방 법은 한 가지임을 받아들여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질문이 원하는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뇌에 있는 핸들을 단순히 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은 인정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들은 사실 매우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지능을 측정하는 한 방법이다. 문제를 푸 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그렇게 똑똑한지는 못하다는 뜻이 된다. 왜 이런 질문들이 바보스럽다는 것일까? 우리가 보아왔듯이 이 문제들은 마치 답이 하나뿐 일 것이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각 질문 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거의 아무 숫나나 문 자가 와도 옭은 답이 도리 수 있다. 왜냐하면 각 문제에는 그 수열의 필요성이나 답이 도 는 숫자와 다른 숫자들간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관계를 찾고자 했더라도 질문을 데대로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이들 숫자 들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할 때, 빈 숫자를 채워 넣어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 지 않다. 엄청나게 많은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수많은 답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렇게 질문하더라도 만족치 못한다. 아마 질문은 다음과 같은 식이어야 할 것이다. '이들 숫자들 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 그 연관성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출제했 던 다른 문제에 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연관성을 추측하고, 추측된 연관성에 근거해 빈 칸을 채워 넣어라'따라서 누가 질문했는지가 상당히 중요하게 된다. 잠시 휴식을 위해서 앞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답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48(2, 4, 8의 순서이므로 마지막으로 16을 더한다. 즉 인접한 숫자들 사이의 차이는 매번 두배가 된다.) 1. 55와 100(마지막 수가 첫 번째 수의 제곱되므로 100, 두 번째 수는 100과 10을 더해서 전 체를 2로 나눈 것이므로 55가 된다.) 3. S와 E( one, two, three, four, five, six, seven, eight) 2번을 예로 들어, 주어진 55대신 답으로 27과 40을 사용해도 논리에 문제가 없다. 27은 가 운데 열의 수열에서 9를 빼면 쉽게 얻어진다. 즉 45, 36 그 다음에 27이 된다. 한편, 40은 9를 10으로 곱하고 2로 나눈 결과(45), 8을 9와 곱해서 2로 나눈 결과(36), 그리고 10에 8을 곱해서 2로 나눈(40) 수열로부터 나올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행을 이용한 다른 해답도 구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답은 문제를 만든 사람이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에 '틀린'것이 된다. 이런 수열이 '틀린'답이라고 해서 한 사람이 똑똑하지 않다고 결론짓는 것은 상당히 우스운 것이 분명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와 비슷한 형태의 질문에 근거해 정확히 이런 종류의 판단을 내리곤 한다. 그러한 테스트를 통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지능이라는 것을 살펴보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똑똑하거나 덜 똑똑한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하기 위해서 그 결과를 어떤 숫자로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히 우 리는 지능을 알아내는 작업을 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실 각 개인이 어떤 특정한 테 스트에서 얼마나 좋은 결과를 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 사실은 어쩔 수 없이 튜링 테스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가 다른 방에 있는 '그것'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능적인지를 보여주지는 못한 다. 그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방에 있는 '그것'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지능을 결정하기 위해서 과거에도 수많은 측정방법이 개발되어왔다는 것은 재미있 다. 하나의 예는 두뇌의 크기이다. 오늘날에도 생각컨데 이미 유명을 달리한 '매우 똑똑한 사람'이 인간의 평균 크기보다 훨씬 더 큰 두뇌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는 글을 쉽게 접 할 수 있고, 이런 사실로부터 그의 지능에서 두뇌의 크기는 적어도 하나의 주요 요소일 것 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만약 독자 당신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두뇌 를 가졌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생각에 별 차이가 없겠는가, 아니면 그 사실에 대해서 기분좋게 생각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 경쟁자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정직하게 생각해보라! 한편으로는 한 동물이 완두콩만한 크기의 두뇌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동물 을 매우 뒤떨어진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집은 인간의 두뇌보다 더 크지만 (일반적으로) 전혀 똑똑하지 못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a) 존재하는, 그리고 사용중인 뇌 세포의 수와 종류, (b) 뇌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c) 그들이 여러 가지 작업을 위해서 두뇌의 각 영역에 어떤 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그리고 (d)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잘 동작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사항들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측정하기 힘든 것들을 측정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또 다른 특징으로는 경험, 역사, 발 자취 등이 있다. 이 특징들은 항상 변화한다. 스포트 해설자에게 오후에 벌어질 축구 경기 에서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인지를 물으면 그는 가장 최근의 정보 - 한 선수가 아프다거나 부상당했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를 사용해서 대답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각 팀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역사에 근거해 대답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경기에서 A팀이 B팀을 쉽게 이겼으니까 제 생각에는 A팀이 이길 것 같 습니다.' 라든지 'A팀이 지난 여섯 경기를 모두 승리했기 때문에 분명히 A팀이 B팀을 물리 칠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A팀이 B팀보다는 승리할 수 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B팀이 승리할 수 없다거나 승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능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는 과거의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보인 사람들이 과거에 좋은 결과를 보이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좀더 똑똑했던 것 같다라는 경험과 견해에 기초해 테스트와 문제를 고안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시험을 쳐 좋은 결과를 보인다면 좋은 결과를 보이지 못한 다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좀더 똑똑한 것 같다고 추론할 수 있다. 요점은 단지 그가 좀더 똑똑할 것 '같다'라는 것이다. A팀이 B팀을 물리친다는 말이 확실하지 못하다. 비슷한 식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방에 있는 '그것'이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2050년의 삶의 모습과 이것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그것은 2050년이 되기 전에 기계가 인간과 대략 비슷한 정도의 지능 수준을 갖게 될 것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생 각된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생활 양식에 맞는 방향의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기계의 지능 형태를 인간의 지능 형태와 비교하 는 것은 비슷한 대상간의 비교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수영 팀이 축구 팀 만큼 좋아질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는 모두 스포츠의 한 종류이긴 하지만 너무 달라서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스포츠 팀에 대해서는 최소한 승리한 경기라든지 얻은 점수 같은 몇몇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지능에 대해서는 기준이 훨씬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단 측 정을 시작하면, '미첼(Mitchell)'요소가 작용하여 결국에는 우리가 원래 측정하고자 했던 것 과는 완전히 다른 엉뚱한 무엇인가를 측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든 기계든 그 지능 수준을 측정할 수가 없기에 인간과 기계의 지능 수준이 언제쯤 서로 엇비슷한 수준이 될지 확실하게 알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기계가 미래에 인간과 대략 비슷한 지능 수준을 갖게 될 때면 우리는 너무 늦어버린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쯤일지는 잘 모른다 하더라도 기계가 인간만큼 똑똑해지는 순간 그 사 실을 느낄 수는 있지 않을까? 나의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나는 이것이 '언제 그렇게 될 것 인가?'를 알아내는 것보다는 훨씬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믿고 있는 것일 까? CHAPTER 2 생명이란? 앞 장에서는 기계가 지구를 지배할 가능성과 그 해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지능에 대하 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만약 기계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때 기계의 생김새나 역할은 어떠할 것이며, 또한 자신들 간의 의사 소통이나 인간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 인가? 이 장에서는 잠시 지능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외부 적 형태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도록 하자. 생물학 개론서들을 펼쳐보면 지구상의 생명체들 간에는 공통된 특성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특별한 우선 순위 없이 열거해보면 성장, 재생산, 호흡, 영양섭취(먹 고 마시기), 배설, 움직임 그리고 자극에 대한 반응성 등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환경에 따라 몇 가지 다른 요소들이 포함되기도 하고, 한두 가지는 제외되기도 한다. 특히 움직임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상당히 애매하다. 여기서는 현재 지능에 대한 언급 이 없음을 인지하기 바란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기계 안에서 생명의 어떤 특성을 관찰하고자 한다면, 앞서 말한 생명 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기계에 적용하고 거기에서 얻어진 결과를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우 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기계임을 명심하고 각 요소들이 기계에 적용될 때 갖게 될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나로 하여금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는 방법에 대해 생각 해 보게끔 했던 학창 시절의 한 과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과목에서 배운 것은, 다른 행성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생명체로서의 요구 사항 이 비슷하게 적용되는 그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곳에도 생명체가 있음을 확신하 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지구상에서 정의한 생명에 대한 정의를 모두 만족할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다는 것 또한 쉽 지 않을 듯하기 때문에 문제를 좀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오히 려 나을 것 같았다. 외계인들은 그들이 본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아마 어떠한 생명의 형태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는 대략 3분의 2가 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외계인들은 우선 물위에서 생명체를 찾으려 고 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처음 발견하게 될 '생명체'는 항해하고 잇는 배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배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외계인들도 배를 무생물로 여길까? 만약 외계인들이 위에서 열거한 생명체의 7가지 요소를 배에 적용한다면, 몇 개나 되는 항목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까? 먼저 배에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양 섭취(연료)나 배설(배기)도 마찬가지이다. 외계인들이 배에 힘을 가하면 그로 인해서 배의 움직임이 변할 것이고, 따라서 자극에 대한 반응성도 있다고 생각될 수 있으며, 엔진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가스 분출되는 과정을 통해서 호흡이 이루어진고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따라서 외계인들은 배나 기계 가 미개하기는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고, 또 지구상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없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물에서 눈을 돌려 외계인들이 땅 위를 본다면 무엇을 불 수 있을까? 아마도 건물이나 다리 는 생명체의 범주에서 확실히 제외될 것이다. 나는 앞에서 말했던 그 과목에서, 외계인들이 '1970년대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전화망을 보았다면 그들이 지구상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 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또한 그러한 전화망은 자신을 보살피는 많은 작은 생명체(인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이 의견은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의 관심거리는 생명체이므로 외계인들이 전화선을 생명체로 간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충고 했다. 우선, 간단한 전화망보다는 통신망을 생각해보자. 생명체의 7개 요소 종에서 몇 개의 항목 이 긍정적으로 평가될까? 성장, 분명하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통신망의 성장은 엄청났다. 움직임, 이 또한 분명하다. 예를 들어 통신망 내 스위치의 움직임 같은 것이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 확실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통신망의 기본 역할이다. 영양섭취, 그 또한 분명 하다. 각종메시지가 망으로 입력된다. 배설도 맞다. 망에서 나가는 메시지들도 있으니까. 호 흡은 판단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역시 긍정적이다. 망 주변을 흐르는 수많은 전자 펄스를 생 각해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재생산의 경우를 보자. 재생산은 언제나 기존에 있는 통 신망에서 새로운 통신망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근거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외계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통신망에 기존에 설치된 통신망에 의존해 시작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전 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재생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 같다. 사실상 통신망 은 재생산보다는 성장에 의해서 확장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나 동물, 흑은 어떤 식물들의 일반적인 특징들을 기준으로 어떤 대상이 생명체인지 아닌지를 정의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러한 편협된 판단 기준으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기계도 생물체적인 특성을 나타낼 수 없지만,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본다면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 보여질 가능성도 충 분히 있다. 이러한 맹점을 피하면서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입장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기계 의 입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계에게 음식이란 햄버거나 포테이토 칩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의 입력이나 음성 명령, 배터리로부터의 전력 공급을 의미하게 되고, 배설물은 대소변이 아니라 모니터 화면이나 팩스의 출력을 뜻하게 된다. 기계라는 생명체를 다루게 될 때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잇는 것과는 상 당히 다른 측면을 보게 될 것이다. 재생산(Reproduction)이라는 말은 똑같은 것을 다시 생산 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같은 것이란 '같은 종에서 나온 새로운 개체'를 일컫는 사전적 의미 이다. 그러나 기계의 경우는, 공장이라는 한 개체가 자동차라는 다른 종의 개체를 생산하는 예처럼, 자신과 같은 종의 개체를 '재생산'한다기보다 보통의 생산이라는 의미가 더 어울린 다. 그러나 재생산이라는 말이 기계에서 쓰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특별한 타입의 기계는 아주 소수만 필요하기 때문에 몇 대 생산하고 나서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 우 같은 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의미는 더 이상 기계에게 적합하지 않다. 기계에게 적합하지 않다. 기계에게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생산(Production)이라는 말이다. 이렇 게 사람과 동물에게서 공통의 관심사로 가질 만한 것들이 기계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 다. 또한 특별히 기계의 모습이나 행동 방식은 동물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기계는 생각보다 더 큰 것이 될 수 있고, 통신망의 경우처럼 저 세계에 걸쳐 있을 수 있 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능적인 기계라고 하면 반드시 금속으로 만든 인간이라든지, 아니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사람과 같은 존재'를 떠올리곤 한다. 1장 '2050년에'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그 기계가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고 상상했는가? 금속 으로 된 복제 인간처럼 전부 인간을 닮았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았나? 글쎄, 그것은 저 자의 생각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사실 저자는 기계가 그저 기계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 했을 따름이다. 사실 기계가 인간을 닮을 특별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데, 독자들이 기계를 생각할 때면 주로 인간을 닮은 로봇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세월 동안 인간이 겪어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인위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인간을 재창조하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인간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많이 발견된다. 그 중 한 가지로 아시아에는 「생명의 서사시 Epic Gesar of Living」라는 시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한 대장장이가 왕에게 많은 양의 금과 은, 청동, 구리를 달라고 했다. 왕으로부터 이것들을 받자 대장장이는 며칠동안 분주히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궁 궐에서 그이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금으로 보통 사람 크기의 라마승과 천 명의 작은 승려 들을 만들었고, 은으로는 달콤하게 노래하는 백 명의 아름다운 소녀를 만들었다. 청동으로 는 700명의 관료들과 한 명의 왕을 만들었다. 더군다나 구리로는 만 명의 군인들과 장군들 을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정상적인 사람처럼 움직 이고 행동했다. 불행히도 그 시에는 '당신만의 인조 인간 만드는 법'과 같은 자세한 내용은 씌여 있지 않다. 특히 지난 세기에 큰 영향을 미친 피그말리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원래 피그말리온은 사이프러스(Cyprus) 섬의 왕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상아로 아주 정교 한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그 조각상을 가라티(Garatea)라고 불렀다. 그는 거친 시골 여자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여신 아프로디테로부터 받은 벌로 인해 ……. 그 후 피르감릴오는 가라티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가라티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자기의 아내가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고, 아프로디테는 가라티에게 생명 을 불어넣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조지 버나드 쇼의 개작 <피그말리온의 음모 the Pygmalien plot>은 신화나 전설과는 직 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인생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한 인간이 존재성에 대해 정면으 로 도전하고 있다. 특히 1장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감지되어지는 사람 의 지능 수준과 인간과 기계들이 어떻게 주어진 문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보면 꽃처럼 아름다운 소녀 엘리자 듀리틀은 말을 더듬는 문제 때문에 히긴스 교수로부터 6개월 동안 공주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왕궁의 무도회에 참석하여 참석한 손님들을 속여서 그녀가 모든 면에 있어서 진짜 공주임을 믿게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은 중세에 쓰여진 소설 「프라하의 두목 랍비 The Chief Rabbi of Pragu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한 랍비는 유태인 대학살로부터 유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든다. 진흙 사람 고렘은 자신의 이마에 박힌 보 석(혹은 돌)에 의해서 조종되며, 보석이 이마에서 빠져 나가면 단지 사람 형태의 진흙에 불 과하다. 그러나 보석이 랍비에 의해서 제자리로 놓여지게 되면, 고렘은 초인적인 힘을 갖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간과 같이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한번은 고렘이 통제 불능이 되어 유대인들을 위협하게 되었을 때 그 랍비가 간신히 고렘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빼내어 유대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목이 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그것이 프라하라는 점이다. 현대 우리가 쓰는 '로봇'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던 카렐 카펙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들 Rossum's Universal Robots> 역시 프라하가 고향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계를 켜고 끄는 스위치 개 념을 낳았다는 점, 즉 라비는 조종 장치를 가지고 고렘을 조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 최근의 이야기는 말로우의 조용히 흐르는 템즈강 둑에서 쓰여진 매리 셜리의 「프랑켄 슈타인 Frankenstein」이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육체의 각 부분들이 정확하게 맞추어 진 살아 있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한 세트의 부품들이 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생 각해 보았던 인간을 닮은 로봇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대부분의 소설들에서는 다 루지 않은 소위 창조물의 정체성, 자아 인식과 자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해서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좋 아한다. 즉, 프랑켄슈타인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상과학소설에서조차 인간들은 모든 주인공 기계들에게 인간으로서는 불완전한 특징들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렘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영리하지 는 못했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그저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 인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즉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어떤 사물 또는 피조물을 알아내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의 조각상이 살아났을 때, 피그말리온이 키스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가라티에게 달려 있 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녀가 그를 싫어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공상과학소설 속 의 대부분의 피조물들은 굉장히 건장한 체격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낮은 수준의 지능을 지 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들이 인간만큼 지능적이지 못 해서 결국 우리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약간 지능이 모자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종종 육체적으로 건장한 사람 들이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졌다든지, 혹은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연 결되어 버렸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 다.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면 인간은 그렇게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어떤 기구의 도움 없이는 날지도 못하고, 움직이는 것도 상대적으로 느리다. 단 한 가지 인간이 다른 동 물보다 월등한 것은 추상적인 생각들이나 창조력, 자각 등을 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이다. 소설들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여러 방면에서 지능적인 창조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2001년 우주여행 2001: A Space Odyssey>을 한번 보자. 여기서 할(HAL)은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분위기 파악도 할 줄 아는 말하는 두뇌 에 불과하다. 할은 인간들이 자신을 원하므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상당한 수준의 지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물리적인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 다. 여러분이 듣기 좋게 말하자면, 근 지능은 있지만 물리적인 힘은 없는 말 그대로 네모난 두뇌 상자인 것이다. 또다른 형태의 창조물은 지능과 물리적인 힘까지도 갖추었지만, 아킬 레스의 발꿈치와 같은 인간에게는 없는 어떤 약한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H.G. 웰의 <세계의 전쟁 The War of the Worlds>에서처럼, 외계 침입자들이 결 국 지구상의 미생물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신화, 전설 속 에서 보면, 인간들은 괴물들과 싸우는 것을 즐기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인간들은 지능을 이용하여 괴물들을 무찌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지능이 높은 생명체에게 인간이 위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체는 반드 시 하나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이 그 약점을 찾아내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이 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것보다도 인간이 더 월등하고 우위에 있다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심지어 오늘날의 과학적인 사고에도 따라다닌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가 유전인자로 프로그래밍한 로봇이라는 의견 이 제시된 적이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전인자 프로그램이 이 들이 갖고 있는 생물학적 토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밝힌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더라 도 이런 의미가 영혼이나 정신적인 측면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생각은 "자아 실현의 가장 우선적인 것은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깨닫는 것이다"라고 말한 크리슈나의 가르침과 육체와 자아는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 가 있어 보인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유전자를 운반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 은 자신의 유전자를 돌보고, 다른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함으로써 이를 후손에게 전해 준다. 인간이 전해주는 유전자는 후손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설치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사의 모든 것은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유전자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어져 오는 인간의 세대들은 아담과 이브의 것과 유 사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자신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가지 고 있다. 약 70년이 지나면 각 인간들은 사라지지만, 수백 년간 그들의 유전자는 이어져 오 고 있고, 또한 그들이 자식을 낳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개개 인은 일시적인 유전자 운반체인 것이다. 나의 생각은 도킨스의 의견과 비슷하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부 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설치 프로그램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견에는 동감이다. 이것은 우리의 외모와 육체적인 특징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초기의 정신 또는 뇌의 형성에 있어서도 또한 초기 시작 프로그램이 있다. 물론 호흡과 같은 프로 그램은 가장 기본적인 행동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태어남과 동시 에 경험들로부터 이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은 확실히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 떻게 배우는 것을 시작할 것인지를 지시해 주는 초기 프로그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한 우리가 무엇을 배우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지, 사회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취급되는지, 우 리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와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이란 우리의 부모나 스승, 어른들의 도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과 우 리가 태어나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도움이 전체적인 학습 환경을 더 풍요롭게는 하겠지만 이 환경에서 각 개인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그이 학습의 정도가 달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환경은 학습속도가 다른 시기에 비 하여 매우 빠른 유년기에 더욱 중요하다. 인가들이 매순간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하는가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된, 즉 원래 가지고 태어난 초기의 설치 프로그램 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그들이 태어난 이후 경험에 의해 배운 것들에 의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 사람의 초기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가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그 삶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확하 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사람의 초기 프로그램을 모르고, 더 욱이 그들의 눈과 귀로 목격하고 감지한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매우 힘드 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전체적인 학교 교육의 개념은 학생들에게 선택된 이전의 경험들의 몇 가지 를 소개하여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그러한 상황을 특별한 시각으 로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러고는 각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똑같은 상황 에 대해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하는지, 혹은 그들이 이전에 본 것과 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시험받게 된다. 학교에 다니는 시기에 학생들은 분명하게 이러한 특정 경험들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어떤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을 따라가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능력 혹은 능력의 부족은 그 학생의 초기의 유전자 조직 프로그램과 지금까지의 경험에 크게 연 관되어있다. 이런 식으로 잘 짜여진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면, 이론적 성격이 짙은 과목들 이라도 그 과목에 대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열한두 살 먹은 학생이 대개 18세 정도의 학생들 대상의 수학 시험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같은 또래와 비슷 한 교육을 받았어도, 근본적으로 그이 초기 유전자 프로그램에 그 교육 형태가 적절치 못하 기 때문에, 25세 수준의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다른 학생의 경우에는 유전자 프 로그램이 사실상 대학생과 같지만, 적절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여 결코 대학생들과 비슷 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복학습 현상(training phenomenon)은 가족, 혹은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집 단 내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의 훌륭 한 예는 한 결혼한 부부가 40년 혹은 50년을 함께 살아온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각 개인 은 그렇게 많이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훈련시키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이 닥치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힘 안 들이고 알아차릴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상황에서 상 대방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생가하고 느끼는지에 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화를 내거나 싫어할 것 같은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 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상대방이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해서는 좋아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은 아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내도 서로가 싫어하고, 짜증내는 것임을 알면서도 때때로 그런 것들을 일부러라도 말하거나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어떤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났는지, 혹은 저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해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대충 그 사람 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는 행동들이 파악되고, 나중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가 어떻게 행동하리라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이 행동이 평소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에서 놀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이 행동에 대해서 여전히 알아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전형적인 산업 로봇과 같은 기계들은 대부분 주어진 일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도록 프로 그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로봇을 원래 프로그램한 사람, 혹은 사람들은 로봇에 이상이 없 는 한, 그 로봇이 무엇을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들이 아니고서는 일정 시간 동안 로봇이 하는 일을 관측해야만 로봇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로봇의 작업이 단순하다면, 로봇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도 조금만 관찰하면 그것의 특성을 완 전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그 로봇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램의 정확한 성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그 로봇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특징을 배우거나 수정하지 않고, 원래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하다. 본질적으로, 일반 로봇 팔에 초기의 유전자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이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프 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고, 예기치 못한 문제들은 없다고 가정하는 한 매순간 무슨 일이 일 어날 것인지 확신할 수 잇다. 어떤 기계들은 초기 프로그램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인간과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 은 학습하게 된다면, 우리의 초기 프로그램과 이전에 배웠던 경험을 토대로 학습하게 된다. 두 경우에 대해서 보면,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학습하는지 는 모두 초기 유전자 프로그램에 기인한다. 최근가지 기계들은 전혀 학습 기능이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기능이 매우 세세하게 통제 되어 왔다. 그래서 기계에 학습 능력의 도입이라는 점이 주목되지도 않은 채 1970년대 후 반까지 이러한 개념은 확장되어 왔지만, 로봇이 프로그램되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의 학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간이나 동물에서의 학습과 비슷하 다. 초기 프로그램이나 명령어가 기계를 움직이게 하며, 이때 실행되는 다른 프로그램을 통 해서는 학습 알고리즘을 실행시키고, 거기에서 나오는 피드백 정보를 다시 제공한다. 이 학 습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은 성공할 경우, 그 만큼 보상해 주는 시행착오 방식으로 동작할 수 있고, 아니면 직접 반복 학습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기계의 학습에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들이 있다. 한 예로 처음에는 무작위로 초기 값을 설정하여 시작하지만, 그 기계가 점차 학습되어짐에 따라 어떤 하나의 형태로 서서히 수렴 해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간단한 규칙들로 초기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단 지 각 규칙들이 정의된 범위 내에서 학습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기계는 자신의 초기 프로그램과 그 동안 배운 것을 기초로 하여 실제 동작을 하게 된다. 편지 봉투들을 각기 다른 상자에 분류해 넣는 로봇을 생각해 보자. 이 로봇은 봉투더미 로부터 하나르 집어들어야만 하고, 검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동작한다. 1. 만약 그것이 큰 봉투이면 A 상자에 넣어라. 2. 만약 그것이 중간 크기의 봉투면 B 상자에 넣어라. 3. 만약 그것이 작은 크기의 봉투면 C 상자에 넣어라. 로봇은 봉투의 크기를 검사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상자에 넣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로봇은 단지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는 장치이다. 이것은 학습 형태 는 아니지만, 로봇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각 상황에 대하여 지극히 빠르고 신뢰성 있게 적절한 과정을 수행한다. 어떤 봉투가 크고 작은지는, 초기에 인간 전문가가 그의 다년간에 걸친 분류 작업에 관한 경험을 바탕으로 크기를 설정해 두면, 기계가 전문가의 지식을 가지 고 그 일을 대신 수행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최종적인 시스템을 우리는 '전문가 시스템' 이라고 부르며, 여기서 로봇은 단순히 인간 전문가에 의해 이전에 수행되어 왔던 일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처럼, 봉투 분류 로봇은 단지 봉투를 정리하는 하나의 특정 작업만을 한다. 우리가 이 로봇에게 학습 기능을 부여하지만, 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봉투를 정리 하는 것뿐이기에, 실질적으로 배우는 것 또한 그 일 외에는 그 이상도 이하도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로봇이 봉투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정확하게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수 년에 걸쳐서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배워 왔기 때문에 우리의 기술적인 노하우를 그대로 로봇에게 입력시킬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 리는 로봇에게 입력시킬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로봇에게 있을 수 있는 예측불허 의 문제점들을 방지하면서, 우리가 로봇이 했으면 바라는 바대로 일을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투 분류기와 같이 꽤 잘 정의된 로봇에서도 인간을 왜, 그리고 어떻게 로봇이 의사 결 정을 내리는지 알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가 그 로봇을 초기에 프로그래밍한 전문가가 아니 거나, 혹은 그 일에 대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위의 예에 있어서는, 단지 세 개의 규칙만을 기계가 검사하도록 하였지만, 만일 규칙들이 3,000개 혹은 3,000,000개라면 어떨까? 이 경우 그 기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수 있 을까? 봉투를 분류하는 로봇의 경우에는 이렇게 많은 규칙들이 사실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많은 규칙들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그 규칙들이 서로 연관 성을 갖고 있다면, 외부에서는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매 우 어렵다. 규칙 1을 확정한 다음의 예를 보자. 만약 그것이 큰 봉투이고, 주소가 쓰여 있으며, 주소지가 벅셔이거나 옥스퍼드셔이고, 토 요일자 소인일 경우, 그 봉투를 D 상자에 넣어라. 문제가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은 매번 그 일을 잘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인간 전문 가가 여러 해 동안 그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최적의 방법으로 그 일을 처리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서는 기계에게 그 일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매우 이득이 되 며 그 전에 누가 한 것보다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몇 가지의 일, 특히 서로 연관되어 있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 렵다. 아마 우리는 두세 가지 일은 동시에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일에 대 해서는 아주 곤란을 겪을 것이고 한 번에 한 가지씩 처리하거나, 한 가지 일을 다할 때까지 다른 일들은 뒤로 미뤄둘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2차원이나 3차원에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계들은 확실히 어떤 차원에 제한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상 기계 들은 다차원의 관계들을 발견하는데 적당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최근의 많은 기계들이 사람을 도와서 비행기가 뜨도록 하는 복잡한 작 업들을 해주거나 전화 교환소 같은 데서 사람을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의 기계가 전문가의 간단한 판단 근거에 의하여 특정한 작업들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한다. 오전 7시면 일어나야 한다. 오전 10 시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오후 5시면 집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많은 일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우선 한 가지 일을 먼저 끝내야만 했다면, 커피보다는 차 한잔을 마셔도 좋다든지, 오전 10시가 아니라 오전 10시 10분이라고 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우 리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이 꽤 간단한 판단들에 의해 소리 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종종 이전에 배웠던 판단들에 기초해서 다른 판단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배웠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흘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오전 7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오전 7시면 나는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 이런 것들이 시작되었을까? 이것이 살아가기 위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 의 유전자, 초기 프로그램, 우리의 본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개인의 본능과 기본적인 성격의 시작은 유전자에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유전 자를 선택할 수는 없다. 유전자들은 우리의 생물학적인 부모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며, 그 부모들의 유전자는 또한 그들의 부모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다. 우리의 초기에 육체적, 정신 적인 조건들은 우리들의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보이고, 나이가 얼마이며, 병에 걸리기 쉽다면 등등이 우리의 유전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유전자를 운동이나 어떤 화학 약품이나 약들을 복용함으로써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각자 바꾸기 힘든 기본적인 경향은 가지고 있다. 사실상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들보다 더 빨리 달리 수 있는 자연적인 능력이나,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힘 또는 어떤 병 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 나의 동료였던 카람은 - 그때 그는 27세이었다 - 한 번도 치아 치료를 위해 치과 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금도금을 한 치아도, 충치도 없고, 그때까지 한 번도 문제 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를 돌보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다. 그는 단지 나보다는 훌륭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다. 하루에 규칙적으로 몇 번씩 닦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치 아를 치료하느라 꽤 오랫동안 정규적으로 치과에 다녀야 했다.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상태 뿐만 아니라, 유전자들은 우리의 정신 상태와 기본적인 본능에까지도 직접 적으로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는 방법, 숨쉬는 방법, 잠자는 방법, 말하는 방법, 학습을 시 작하는 방법 등을 알게 한다. 유전자들은 또한 행복이나 우울과 같은 기본적인 특징들이 일어나게 한다. 물론 어떤 개인이 얼마만큼 그의 유전자와 경험에 영향을 받았는지 말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어렵다. 우리의 초기 프로그램인 유전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는가를 '정확히'는 모르고, 또한 경험에 의해서 어떤 영향을 받아 왔는지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태어나면서 떨어져 살게 되었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 쌍둥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짐 스프링거와 딤 루이스 쌍둥이 형제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들은 태어난 지 몇 주 후에 오하이오 집안에 입양되어 그들이 39세에 다시 만날 때까지 각기 다른 도시에서 완 전히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회했을 때, 자신들이 같은 상표의 맥주를 마시 고 똑같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지하실에서 작업하고 있었고, 나 무 트렁크 주위에 흰색으로 칠한 원형 벤치를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글쓰 기를 아주 싫어하고 셈하기리를 즐겼다. 또한 그들은 모두 '토이'라고 부르는 개를 기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두 사람 다 경찰이 되었고, 군 보안관의 부관으로 승진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일했다. 두 사람은 '린다'라는 여자와 결혼하고는 이혼했으며, 두 사람 모 두 '베티'라는 여자와 재혼하여 아들을 두고 있었다. 짐 루이스의 아들 이름은 제임스 앨런 (James Allan)이었다. 두 사람은 정기 휴가를 플로리다 해안의 같은 장소에서 보냈었다 - 그들이 결코 만나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그들은 다중 선택 지능 검사에서 거의 같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단지 희귀한 우스갯소리로 보든지, 아니면 어는 정도 사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라도 확실히 개인의 유전자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가지게 된 유전자들에 의해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정해져 있지만,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유전자가 가진 어떤 영향에 의해서 미리 정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유전자들에 의존하는 특징들을 점점 저 파헤쳐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어디에서 멈 추게 될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우리는 그저 우연히 생긴 일로 여겨 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자주 발생한다면, 우리는 결국 그 일들 을 다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우리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와 접촉하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까지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예측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면, 심지어 그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까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것이며, 그의 행동이 우연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그의 행동으로부터 배운다고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행 동들은 우리가 이전에 배운 것들을 더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만약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유전자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의 기본적인 본능과 새로운 행동들을 어떻게 배우게 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확히' 그의 모든 경험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는 그가 하는 일을 항상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는 그의 어떠한 우연 한 행동에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특정한 상황에서 그 어떻게 대처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루 동안 대하게 되 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똑같이 다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하게 될 일을 생 각해 본다면 그 하루 전체는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 형태도 모를뿐더러, 그들 삶의 정확한 경험도 모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그 사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이 전부인가? 우리 인간의 뇌는 단지 결정적이고 예측 가능 한가? 만약 내가 나의 유전자 형태와 모든 인생의 경험들을 정확히 안다면,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수행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도록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또는 그 결정 또 한 계획의 일부였던가?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4 장에서 뇌의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는 이 질문을 남겨둘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모든 경험들은 다 개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 고 독특하다. 다시 보면, 어떻게 특정한 사건이 우리의 유전자 조직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지, 그리고 우리의 축적된 경험에 의존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까? 두 팀간의 축구 시합은 그 사람이 어떤 팀을 응원하느냐에 딸 훌륭하고 좋은 시합으로도, 나쁘고 형편없는 시합으 로도 보여질 수 있다. 개인이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정말 그들 개인의 것이고, 그들이 육체적으로 어떻게 인지하느냐라는 것은 그들의 원래 유전자 조직과 경험에 관련 있다. 수직으로 매달린 우주선이 이륙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 면 그들은 이미 이전에 여러 번 그런 장면을 보았거나, 원래 그들의 유전자 조직이 그러한 일에 귀찮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보다도 훨씬 더 감명받았을 수도 있 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주입과 위협으로 어떤 습관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연스레 누군가가 무엇을 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우리 가 요구하는 반응을 보이게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아이가 단 한 번 들었는데도 나쁜 말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명백히 아이가 배운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이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가 킬킬 웃거나 아이의 얼굴을 잡아 당긴다면, 아이는 누군가 고맙다고 말할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응답 방법이라고 아주 빨리 배우게 된다. 때때로 어린이들이 폭력 영화를 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런 영화를 봄으로써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실이다. 특히 어른들에게 어떤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면 어린이들에게는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본능적이며, 근본적으로 광고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 조직안에 있는 폭격과 파괴에 대한 어떤 경향이나 폭력에 대한 경 험과 학습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폭력이 얼마나 많이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처해 무 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폭력적인 영화는 폭력적인 아이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잘 가르친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긍정적인 보상이 없다면 그 아이는 특정한 폭력적인 행 도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폭력을 보도하는 뉴스들이다. 같은 나라에서 한 명 의 시창자로서 특히 시청자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과 꽤 깊이 관계할 때 더욱 그러하 다. 이 경우에는 자명하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하다. 그는 폭력적인 행 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그는 텔레비전에 비춰졌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다. 만약 내가 똑같은 폭력을 저지른다면, 아마도 수백만의 사람들 여깃 나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여러 성인이나 어린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환경을 정의 하고 나서, 그 속에서 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결정하려고 한다. 여기서 말한 상황을 고려 하여 우리는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방영됮 말아야 되는지를 결정한다. 하나의 협조적인 언급은 만약 어린이들이 특정한 폭력 행위나 약물복용 따위의 일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어떤 개인이 특정 행동에 대하여 무지하다면, 그의 유전 조직이나 경험을 통해 그 행동이 가능하다고 별도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는,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 일들을 하지 않도록 종용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불행히도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이전에 그런 일에 대해서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이르이 실체를 알 려주게 된다. 둘째로, 시청자들이 그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될 경우, 그것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사람들이 아무리 말하더라도,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원초적 본능은 그 일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문제의 그 일을 더 잘 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약 복용 문제가 좋은 예이다. 뉴스에서는 마약 복용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보도하면서, 그들이 어디서 마약을 구입했으 며 어떻게 복용하는지와 같은 마약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함께 설명해야만 하는가? 특히 현 재 혹은 과거에 마약을 복용했던 자들이 마약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왜 다시는 복용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하는 내용은 소개하면서, 뉴스들은 마약 복용으로 인해 현재 진행되고 있 는 실제 병적 증세들이나 무엇이 주요 쟁점으로 토론돼야 하는지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는 지금까지 마약 복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마약 복용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 장에서의 한 가지 요지는 어떤 개인의 학습 환경에 관하여 어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정확하게 이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잘 모르는 사람이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로봇과 같은 기 계에 대해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른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기계들은 특정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만약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하더 라도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경험들이나, 미리 정해준 일 이상의 것들을 배울 수는 없다. 카렐 카펙의 작품을 통하여 현재 널리 쓰이게 된 로봇이라는 말은 원래 들에서 일하는 노 예와 같은 일꾼을 부르는 말로 쓰였다. 일꾼들은 소위 그들 주인이 요구하는 일만 하려고 했다. 그들의 존재는 그들 소유자의 의도에 달려 있었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인간 일꾼 로봇들과 기계 로봇 사이에 커다란 공통점이 나타난다. 아 마도 둘 다 좋지 못한 환경과 그들보다 상위 존재의 감독 하에서 단 하나, 혹은 몇 가지 일 들을 하도록 계획되어 졌고 반복적으로 그 일을 하도록 명령받았다. 실제로 그 둘은 학습 능력은 있었지만, 상위 존재가 그들이 배우는 것을 엄격히 감독하고 배움에 대한 기회 또한 심하게 통제하였다. 다른 점은 인간 로봇들은 거의 같은 형태지만, 심지어 그들 주인과도 비슷하지만, 기계 로 봇들은 그들의 작업이나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 로봇의 정신적 형태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물질적인 차이점은 조금 더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앞 장에서 지적했듯이, 확실히 소설 속에서 여러 해 동안 인간들은 인간과 같은 기계 로 봇을 상상하는 데 매우 열중해 오고 있다. 사실 공상과학소설뿐 아니라 과학 단체에까지도 미치고 있으며, 다음 장에서 그 가능성에 대해서 더 고려해 볼 것이다. 지금껏 과학자들은 동물이나 인간을 닮은 로봇 기계들을 만드는 데 상당한 열정을 보여왔다. 나의 좋은 친구인, 나고야 대학의 토시오 후쿠다는 각기 다른 형태로 나무를 타는 침팬지 와 흡사한 로봇을 완성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침팬지의 팔운동이 육체적으로 자연스 럽다는 점과 로봇이 한 가지를 잡은 뒤 다른 가지로 옮겨가는 능력이다. 또 다른 종류의 로봇은 동경공대에서 뱀의 생물학적인 움직임을 흉내내고자 다중으로 연결된 관절들을 갖고 있는 뱀 같은 로봇으로 이 기계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는 시게오 히로세의 연구에서 또다른 로봇 연구 추세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뱀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방법과 땅에서 기어가는 동작을 모방하였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기술했듯이, 레딩 대학의 우리 팀은 여서 개의 다리로 걸어 다니는 로봇들을 만들었다. 이것은 그들의 움직임이나 몸의 각 부분들 사이의 신호까지도 곤충들 의 것을 많이 닮았다. 크기는 다르지만, 특히 여섯 개의 다리는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흉내 내었다. 그 의도는 바퀴벌레의 걷는 동작을 단순히 흉내내려한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바퀴벌레의 움직임에 관하여 차츰 배우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 기계는 바퀴벌레와 비교될 수 있는 점이 있고 그것으로부터 얻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 지고 설계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떼어버릴 수 없는 장단점을 가진 하나의 걸어 다니 는 로봇에 불과하다. 아키야마가 지적했듯이, 로봇이 동물 모양이거나 작고 친절한 장치로 보이면 '우리는 그것 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한번 건드려 보기도 하고, 기계로서가 아닌 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대 한'라는 점은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내 자신의 경험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인간에 가까 운 존재'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존재'가 더 나은 표현일 것 같지만. 이 책의 뒷부분에도 적 었지만, 우리의 '일곱 난쟁이' 로봇에 대한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반응이 '귀엽고, 달 콤하고, 재미있다'라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난다. "아니! 그들이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들은 휴식이 필요해!" 확실히 인간들은 무거운 산업 로봇에게 이름은 붙여 주지만, 동물과 같은 친근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봇 기계들이 더 작고, 집안의 애완 동물처럼 우리의 도움과 안 내, 봉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이며, 그들이 우리 자신들보다는 덜 영리하게 느껴지고, 육체적 인 어떤 위협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빨리 그들을 동물처럼 생각 하게 되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하나의 로봇 기계가 그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하나의 로봇 크기가 자그마하 고 큰 소음을 내지 않으며, 인공적이지만 부드러운 털을 지니고, 실제 동물과 같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중위를 움직여 다닌다면 우리는 그것을 동물로 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는 그 로봇이 우리의 주위에 있을 때 그것이 달아나거나 우리를 향 해 걸어오거나 하는 것과 같은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원할 것이다. 심지어 그 로봇이 우리 의 말을 들을 수도, 들었다하더라도 대답할 수도 없는데 우리는 로봇에게 말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로봇이 더 작게 만들어져 우리의 존재에 반응하지 않고 동물과 같이 보이지 않는 다면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인 로봇 기계나 장난감으로 대할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부분 우리 삶에서의 경험과 배움의 덕택으로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꽤 작고, 눈을 가졌으면 부드러운 털이 있는 피조물은 귀엽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고 배운 다면, 그와 같은 물체가 로봇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견해를 즉시 바꾸지는 않는다. 이 장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프로그램된 로봇 기계라도 어떤 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꽤 작고, 눈을 가졌으면 부드러운 털이 있는 피조물은 귀엽고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고 배운다면, 그와 같은 물체가 로봇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견해를 즉 시 바꾸지는 않는다. 이 장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프로그램된 로봇 기계라도 어떤 적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봉투를 분류하는 로봇에서의 적응능력은 크게 유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에 게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만약 적응 능력이 작은 동물 같은 로봇에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 반응이 아주 멋있고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산업용 로봇 팔 경 우에도 그 로봇이 단지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기능을 바꾸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 어 봉투 분류기처럼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로봇 기계가 작고 동물을 닮았거나, 우리를 위해 어떤 작업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이것은 좋은 양상으로 여겨진다. 그 로봇이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그 행동을 바꾸더라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좋은 양상으로 비춰지는 로봇이 있는 반면, 사람을 헤치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나 군사용 로봇같이 우리에게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는 로봇들도 있다. 미 욱군과 해군이 공동으로 개발한 사지(SARGE : Th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Ground Equipment) 운반 로봇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로봇은 작고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원거리 정찰용 로봇이다. 이 로봇에는 열 영상과 낮과 방의 영상 을 찍어 저장하는 기능과 확대 감시용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것이 자매격인 '딕시'(DIXIE)는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곳을 향 해 가는 추측항법을 사용한다. 위치를 알기 위하여 비디오 카메라를 사방으로 움직이면서 3 각 측량으로 항해한다. 이러한 운반 로봇들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닌다. 그리 고 로봇의 눈을 통해 비춰진 주위의 영상을 멀리 떨어지니 곳에서 군 관계자가 지켜본다. 같은 맥락에서, 무인 비행체인 '파이어니어'는 SS-21 스카랩미사일의 배터리를 장착하는 일을 한다. 이 로봇의 손에는 특별히 제작된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다. PAC-3(the Loval Systems Patriot Advanced Capability) 미사일도 마찬가지이며, 스커드미사일을 맞추기 위 하여 밀리미터 전파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일단 발사되면, PAC-3는 적 미사일을 선택하고, 이를 따라가서 충돌에 의해 폭발할 것이 다. 그러므로 PAC-3는 계산을 하여 목표물을 따라가고, 레이더의 영상들을 기초로 미사일 교란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이제 완전히 자동화된 '프라울러'(Programmable Robot Observer with Logical Response) 를 보자. 프라울러는 미국 회사 로봇 방어 시스템의 부산물이며 사실 1950년대에 처음 만들 어졌다. 키는 탱크만하고 원래는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어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자 신의 적응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적을 방어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프라울러는 105mm대포와 스팅거 대공포와 M60기관총들을 장착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센 서들을 이용하여 전쟁 시나리오에서 사람의 형태를 알아보고 엔진의 열과 움직이는 사물을 감지할 수 있고,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결정하여 그에 따라 동작을 취한다. 간단히 말해 '만 약 적이면 공격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라는 결정들이 부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으로 프라울러는 낮게 비행하는 적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이 놀라운가?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잘 알려진 기술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가장 복잡한 것은 능동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 만 프라울러는 봉투 분류기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장치들 모두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 다. 탱크인 프라울러는 봉투 분류기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장치들 모두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탱크인 프라울러는 전쟁터에서만 사용되도록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기술은 지난 몇 년간 훨씬 발전되어 왔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군사 시스템 중에서 현재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현재 우리가 대하는 로봇은 적 표적들을 선택하고 파괴하도록 프로 그램된 자율적인 군사 적 사냥꾼이다. 우리가 서로 같은 편이고 그 사냥꾼을 프로그래밍했으며, 동작하도록 스위치 를 작동시킬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군이라면, 우리가 공격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사냥꾼, 아니 여러 사냥꾼이 우리를 찾으로 온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사람처럼 휴식이 필요 없으므로 그들이 정지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들 은 아마 인간처럼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보다 더 빨리 반응할 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이 그들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단지 공상과학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현재의 기술도 아니며 벌써 몇 년 전 기술이다. 적응 행위나 판단 행위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 장에서는 대부분 육체적으로 인간을 닮은 것 같지만 인간만큼 지능적이지 못하며, 인간 의 조종하에 있는 로봇과 이와 비슷한 창조물들의 공상적인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 리는 지금껏 인간과 같지도 않고 지능적이지도 않지만, 인간보다는 더 뚜렷한 장점을 지닌 기계들을 사용해 오고 있다. 그것들은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